명장/유럽
1. 로마 제국
1.1. 고대 로마 제국
-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 가이우스 마리우스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
- 게르마니쿠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
-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
- 아우렐리아누스
- 콘스탄티누스
- 플라비우스 스틸리코
-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
1.2. 동로마 제국
2. 프랑크 왕국
3. 신성로마제국
4. 독일
4.1. 프로이센
4.2. 제1차 세계 대전
-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 한스 폰 젝트
- 파울 폰 힌덴부르크
- 에리히 루덴도르프 [1]
- 파울 폰 레토프 포어베크 - 식민지 동아프리카 전역에서 영국, 벨기에, 포르투갈 연합군 30만 병력을 1만 4천에 군사로서 성공적으로 유격전을 펼치고 불패를 달성 당시 독일의 영웅이자 아프리카의 사자란 호칭을 받음
- 프리츠 폰 로스베르크 - 독일 육군이 자랑하는 방어의 사자, 방어전의 마스터, 서부전선의 소방수로 새로운 개념의 종심방어 전술을 정립시키면서 전사에 한 획을 그었다. 1차 대전 당시 대령 계급으로 전선을 통제할 수 있는 폴마흐트 권한을 위임받을 만큼 인정 받았으며 The British Official History는 로스베르크 장군을 'Very remarkable soldier'라 기록했다. 종전 후에도 군에 남아 바이마르 공화국군의 정예화에 힘썼고 젊은 참모장교들과도 격식 없는 전술 회의, 토론을 진행하며 활발하게 의견을 교류했다. 이때 로스베르크 장군이 키워낸 '마법사의 제자'가 현대전에서 가장 뛰어난 방어전 지휘관으로 일컬어지는 발터 모델 원수. 스승의 별명을 전부 계승했다.
- 게오르그 브루크뮐러
- 윌리 로어
- 오스카 폰 후티어 - 그 후티어 전술의 창시자.
-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 - 바이에른 왕국의 마지막 왕세자로 로렌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을 가했다.
4.3. 제2차 세계 대전
- 에리히 폰 만슈타인
- 하인츠 구데리안
- 발터 모델
- 빌헬름 리터 폰 레프
- 발터 폰 라이헤나우 : 강조 명령의 원흉이지만 군사적 재능만은 뛰어났다.
- 헤르만 호트
-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 귄터 폰 클루게
- 페도어 폰 보크
-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 오토 슈코르체니
- 에르빈 롬멜
- 핫소 폰 만토이펠[2]
- 에리히 레더
- 카를 되니츠[3]
- 아돌프 갈란트
- 알베르트 케셀링
- 쿠르트 슈투덴트[4]
- 파울 하우서
- 요아힘 파이퍼 : 말메디 대학살의 주범이지만 군사적으로는 유능했다.
- 쿠르트 마이어
- 펠릭스 슈타이너
- 빌헬름 비트리히[5]
5. 프랑스
5.1. 갈리아
5.2. 프랑스 왕국
- 필리프 2세
- 베르트랑 뒤 게클랭
- 아르튀르 드 리슈몽
- 잔 다르크[6]
- 앙리 4세
- 루이 2세 드 콩데 부르봉(앙기엥 공작)
- 앙리 드 라 투르 도베르뉴(튀렌 자작)
- 프랑수아 앙리 드 몽모랑시(뤽상부르 공작)
- 루이 조제프 드 몽캄(생베란 후작)
- 루이 조제프 드 부르봉(방돔 공작)
- 클로드 루이 엑토르 드 빌라르(빌라르 공작)
- 제임스 피츠제임스(베릭 공작)
- 모리스 드 삭스(삭스 백작)
- 뤼크 위르뱅 드 부엑식
5.3. 나폴레옹 전쟁 및 프랑스 혁명전쟁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루이 니콜라 다부
- 앙드레 마세나
- 에두아르 모르티에
- 장 란
- 장 바티스트 베시에르
- 조아킴 뮈라[7]
- 루이 가브리엘 쉬셰
- 라자르 오슈
- 장 바티스트 클레베르
- 프랑수아 세브랭 마르소
- 루이 알렉상드르 베르티에
5.4. 제1차 세계 대전
5.5. 제2차 세계 대전
6. 영국
6.1. 중세
6.2. 십자군 전쟁
6.3. 백년전쟁
6.4. 16세기
6.5. 17, 18세기
6.6. 나폴레옹 전쟁
6.7. 식민지 전쟁
- 가넷 울슬리 - 영국군 육군 원수 겸 육군총사령관, 아프리카 식민지 전쟁 중 가나의 아샨티 족과 싸운 아모폴 전투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포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고 줄루 전쟁, 이집트 원정에 텔엘케비르 전투 등에서 대활약하였다. 당시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우리의 유일한 장군이라 평가받았다.
6.8. 제1차 세계 대전
- 허버트 키치너 -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육군 원수 겸 전쟁장관이다. 1차 세계대전 전 아프라카 식민지 전역에서 맹활약하고 2차 보어전쟁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 당시 모병광고 모델로 유명하다.
- 에드먼드 앨런비 - 보어전쟁 영웅이자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육군 원수, 황소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며 전략적 식견이 당시 영국군 최고라 칭송받고 특히 규율을 강조하여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오스만 제국 전선에서 예루살렘 점령 및 메기도 전투에서 맹활약하여 전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었다. 일선에서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야전군인 타입으로, 당시 지지부진한 전황 때문에 축축 늘어지던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앨런비 효과"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
- 존 프렌치
- 줄리언 빙 - 보어전쟁당시 성공적으로 기병대를 이끌어 전세를 뒤집은 영웅이자, 1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영국군 육군 원수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전역, 아랍 전역, 서부전선에서 맹활약하였으며, 특히 1차 세계대전 후반기 등장한 탱크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시대에 앞선 안목이 있었다.
- 허버트 플러머 - 1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원수이며, 특히 영국군 장군으로서는 드물게 부하들에게 신망을 받아 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며, 메신 전투에서의 승리, 파스샹달 전투, 루덴도르프 공세를 성공적으로 대처함
- 존 젤리코 -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 대함대 사령관
- 데이비드 비티 - 유틀란트 해전 당시 현장 지휘관
6.9. 제2차 세계 대전
7. 불가리아
8. 알바니아
- 제르지 카스트리오티(스칸데르베그)
9. 스웨덴
10. 스페인
11. 러시아
11.1. 러시아 제국
- 미하일 일라리오노비치 골레니시체프 쿠투조프
-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 알렉세이 브루실로프
- 로만 콘드라첸코 : 뤼순 공방전 때 축성과 방어의 달인으로, 비록 패배하여 전사했지만 일본군에게 막심한 피해를 입혔으며 5개월 넘게 버텨냈다.
- 표트르 바그라티온
11.2. 소련
- 게오르기 주코프
-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 니콜라이 쿠즈네초프
- 로디온 말리놉스키
- 미하일 투하쳅스키
- 바실리 추이코프
- 이반 코네프
- 세르게이 고르시코프
- 알렉산드르 노비코프
-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 시디르 코브파크
12. 네덜란드
- 마우리츠 판 나사우
- 마르텐 트롬프 - 네덜란드 해군 제독, 스페인 함대를 다운스 전투에서 격파하고 그 후 1차 영란전쟁에서 던즈네스 전투, 포틀랜드 전투 등에서 맹활약
- 미힐 더라위터르
13. 폴란드
-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
-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 얀 카롤 코드키에비츠[9]
14. 핀란드
15. 이탈리아
16. 오스트리아
17. 헝가리
18. 루마니아
19. 스칸디나비아 및 노르만
20. 오스만 제국
21. 그리스
21.1. 아테네
21.2. 에페이로스
21.3. 스파르타
21.4. 마케도니아 왕국
22. 조지아
23. 체코
24. 유고슬라비아
[1] 명장이긴 한데, 카이저를 장식으로 전락시키고 실권을 장악해 군부독재를 편 인물이며, 배후중상설의 신봉자였다. 나치당에도 가입했으며, 뮌헨 폭동 당시 히틀러에게 협력하기도 했다. 이를 보면 정치적 능력은 형편없는 듯하다.[2] 이상 육군[3] 이상 해군[4] 이상 공군[5] 이상 무장친위대[6] 문서에 들어가서 관련된 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정말로 어린 나이에 별다른 군사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전투를 경험한 적이 없음에도 (그리고 경험이 적은 탓에 전술적인 면에서는 별다른 활약이 없지만) 전략면에서는 정말이 신이 내린 것이 아닐까 하는 혜안을 보여주었고, 잔 다르크의 전략에 의해서 프랑스 왕국은 백년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7] 기병으로는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으나, 전체적인 군사적 식견은 부족했다.[8] 니벨 공세의 참사만 아니었어도 명장 소리 들었을 양반.[9]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의 정예기병부대 윙드 후사르의 상징이자 아이덴티티격 되는 인물이다 오늘날의 윙드후사르의 화려한 무공과 이미지는 모두 코드키에비츠의 무공이라 할수있다.. [10] 왕을 사랑하는 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헤파이스티온과 달리 이쪽은 능력이 있는 동시에 사교성과 덕도 갖추고 있어서 인기가 많았다.[11] 인도인이지만 알렉산드로스 사후 바빌론 분열 당시 태수중 하나로 포함되어 있었고 기록에 따라선 인도 지역에서 디아도코이들끼리 싸운 전쟁에 참여되어 있다가 죽었으니 마케도니아 왕국으로 표기.[12] 2차대전의 티토는 나치가 못 잡아서 안달이 날 정도였다. 오토 슈코르체니를 데리고 작전을 해도 부상밖에 못입힐 정도였고, 오죽하면 티토같은 사람이 독일군에 있었으면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