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해외파 선수들/시즌별 정리/2000년대
1. 개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축구계엔 2차 해외진출 열풍이 분다.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4강에 올라가버리는 대형 사고를 치면서 여러 선수들이 유럽 빅리그의 관심을 받았고, 거기에 병역 특례혜택까지 선물처럼 따라오는 등 적극적으로 유럽에 진출할 본격적인 판이 깔렸던 시기가 이때부터다. 기존에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많이 갔던 J리그는 자연스럽게 유망주들이 진출하는 리그로써 그 성격이 바뀌기 시작해 오히려 국내 수많은 유망주들에게 J리그 열풍이 불기도 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선수유출이 심해지자 '''5년룰'''이라는 극약처방까지 도입하며 선수들의 무리한 일본행을 막으려고도 했다.
조영증 이후로 20여년만에 홍명보가 미국 무대인 MLS에 진출하면서 MLS 리그 자체에도 큰 힘을 실어주었으며 중국 리그도 광저우 헝다라는 슈퍼클럽의 등장으로 인해 2000년대 말부터 엄청나게 돈이 몰리는 리그가 되면서 한국선수들의 진출 무대는 더욱 넓어졌다. 또한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그동안 인연이 없었던 중동 리그에도 설기현이 처음으로 진출하면서 한국 선수들에 대한 수요가 생기게 된다. 이런 와중에 AFC에서 2009시즌부터 아시아 쿼터제를 공식적으로 도입하면서 한국 선수들에 대한 아시아 무대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게 된다.
2002 월드컵 이전 시즌인 2001-02 시즌, 2001 시즌까지만 이 문서에 기재하며, 이후 시즌은 시즌별로 세부문서로 돌린다. 양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
2. 춘추제
2.1. 2000 시즌
2.2. 2001 시즌
2.3. 2002 시즌
2.4. 2003 시즌
2.5. 2004 시즌
2.6. 2005 시즌
2.7. 2006 시즌
2.8. 2007 시즌
2.9. 2008 시즌
2.10. 2009 시즌
3. 추춘제
3.1. 2000-01 시즌
2000년 들어 유럽 진출은 갑자기 늘어난다. 특히 K리그 최고의 스타들이었던 안정환과 이동국이 각각 이탈리아와 독일에 진출하며 당시 축구팬들의 기대감을 높혔다. 또한 대한축구협회의 유망주 해외진출 프로젝트의 가장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설기현이 벨기에로 진출한 것도 이 시즌이다.
안정환은 소속팀 부산 아이콘스의 재정적 어려움과 잘생긴 외모를 보고 상업적 가능성을 본 이탈리아 AC 페루자의 노림수등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한국인 첫 세리에 A 진출 선수가 되었다. 세리에 A는 당시 세계 최고리그의 지위에 있었기에 국내에선 굉장한 이슈가 되었다. 세계 최고의 리그인데다, 임대 신분, 구단주의 지나친 선수선발 개입 등 악조건이 많아 경기를 많이 뛰진 못했지만 나올때마다 임팩트 있는 활약으로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반면 2001년 초 분데스리가로 진출한 이동국은 별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6개월만에 원 소속팀 포항 스틸러스로 돌아가야 했다. 세리에 A보다는 덜하지만 분데스리가도 세계적인 리그였고, 또한 당시 베르더 브레멘의 투톱은 클럽, 아니 리그 역사에 남을 외국인 공격수들인 클라우디오 피사로와 아일톤 곤칼베스 다 실바였고, 백업으로도 K리그 레전드 출신이자 라리가에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치고 이적한 라데 보그다노비치까지 있었으니 안정환 못지않은 험난한 상황이었다.[4] 거기다 안정환과는 다르게 국대에서의 혹사로 인해 무릎 상태가 좋지 못했고, 이후 병역을 핑계로 한 구단의 말바꾸기도 일어나 이동국의 첫 해외진출은 실패로 끝나버린다.
설기현과 남궁도는 대한축구협회 우수 유망주로 선발되어 벨기에 1부리그 로열 앤트워프 FC에 동반 입단했다. 설기현은 대학생 신분으로 완전이적했고, 남궁도는 전북 현대에서 6개월 임대 형식으로 입단. 남궁도는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국내로 복귀했지만 설기현은 놀랍게도 주전을 꿰차면서 리그 10골을 넣는 대활약을 보이고 일약 국가대표팀의 기대주로 주목받게 된다. 이들과 동시에 진출한 중앙대의 이상일은 입단테스트 끝에 입단한 KSK 베베런에서 프로 데뷔시즌인데도 불구하고 19경기 1골이라는 좋은 활약을 보이며 리그 내 상위권 팀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도 첫 한국인 선수가 탄생하는데 바로 대표팀 주전급 수비수인 최성용과 강철. 2001년 2월 LASK 린츠에 동반 입단해 강철은 4개월만에 8경기만 뛰고 다시 K리그로 복귀했으나 최성용은 남은 하반기 경기 거의 대부분을 주전으로 뛰며 13경기 1골의 기록을 남겼다. 시즌 종료 후 팀이 2부리그로 강등되었으나 최성용은 다음 시즌에도 팀에 남아 활약한다.
3.2. 2001-02 시즌
안정환이 1년만에 복귀할 뻔 하다가 임대 연장을 통해 1년 더 AC 페루자에서 뛰게 되었다. 다만 2002년 초 국가대표팀의 장기 합숙 훈련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전반기만 활약하게 되었고, 15경기 1골 1도움으로 작년만큼의 임팩트는 보여주지 못했다. 최성용은 2부리그에서 반년동안 고생하다 2002년 수원 삼성에 입단하며 K리그로 돌아갔다.
벨기에의 이상일은 벨기에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국가대표팀 선발도 논의되는 등 상한가를 치면서 더 상위권 팀인 게르미날 베르스홋으로 무려 4년계약의 조건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여기선 부진했고, 6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시즌 종료 후 K리그 진출을 택하게 된다. 설기현 또한 상위권 팀으로 이적했는데 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RSC 안데를레흐트에 입단하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았으나 입단 첫해 주전급으로 경기를 뛰면서 국가대표팀의 잦은 차출에도 불구하고 20경기를 소화한다. 저번 시즌 설기현으로 재미를 본 로열 앤트워프 FC는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유망주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여러 선수들을 2군에 입단시킨다. 이후 2군에서 올라온 호남대 중퇴 선수인 신영록이 1군 로테이션 멤버로 13경기 출전하면서 쏠쏠한 활약을 한다.
또한 원조 거스 히딩크의 황태자로 불렸던 수비 유망주 심재원이 2부리그지만 독일 명문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해 한국인 최초 유럽 진출 중앙수비수가 되었다. 당시 국가대표 주전이었기에 입단 기사가 독일 빌트지 1면에 실렸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초반 주전으로 활약했고 연이어 풀타임을 뛰며 활약도 좋았다. 하지만 안정환과 설기현처럼 잦은 차출에 의한 컨디션 난조를 이겨내지 못했고 부상까지 겹치며 급격한 폼 저하로 인해 후반기에는 후보로 밀렸다. 거기에 2002년 월드컵 최종엔트리 탈락이라는 아픔도 맛봐야 했다. 이동국의 탈락에 묻혔지만 당시 심재원의 탈락도 못지않은 충격을 주었다.
3.3. 2002-03 시즌
3.4. 2003-04 시즌
3.5. 2004-05 시즌
3.6. 2005-06 시즌
3.7. 2006-07 시즌
3.8. 2007-08 시즌
3.9. 2008-09 시즌
3.10. 2009-10 시즌
[UEFA컵] A B C D E F G H I J K L [1] 개명 후 현재 이름은 오휘성[2] 1981년생 공격수. 김동찬과는 동명이인.[UEFA컵예선] A B C D [UEFA컵/07-08] A B [3] 1981년생 공격수. 김동찬과는 동명이인.[챔피언스리그/08-09] [UEFA슈퍼컵] A B [유로파예선] A B [리그컵] A B C D E F G H I J K L M [FA컵]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4] 여담으로 라데와 이동국은 모두 포항 스틸러스 출신이었기에 상당히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챔스예선] A B C D E F G [챔피언스리그] A B C D E F G H I J K L [벨기에슈퍼컵] [5] 1981년생 측면 수비수[6] 구단명 변경[슈퍼컵] A B 요한 크루이프 샬레[FA컵/울버햄튼] [챔스예선/안데를레흐트] [슈퍼컵/아인트호벤] 요한 크루이프 샬레[인터토토컵] A B [FA컵/풀럼] [리그컵/풀럼] A B [FIFA클럽월드컵] [7] 2부리그[커뮤니티실드] [리저브리그] A B [유로파리그] [8] 2부리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