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병영식

 





쌀밥, 미역국, 비엔나 소시지 케첩 볶음[1], 깍두기, , 후식으로 250ml 우유로 이루어진 일반적 한국군 병영식.[2][3]
일명 '짬밥'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이나 경제 규모에 비해 형편없는 음식을 장병들에게 먹인다는 평이 압도적이다.

병영식들 중에서도 최악의 식단으로 꼽히는 조기 튀김[4]과 악명에 퇴출된 해물 비빔 소스.
1. 개요
2. 상세
3. 예비군의 병영식
4. 명칭
5. 문제점
5.1. 맛이 없는 이유는?
5.1.1. 재료비 관련
5.1.2. 기타
6. 각종 루머
6.1. 정력 감퇴제 투입 루머
6.2. 전염병과 육식
6.3. 군납비리 루머
6.4. 교도소소년원 배식과의 비교
7. 한국군 병영식의 역사
7.1. 6.25 전쟁 이후
7.2. 1970년대
7.3. 1980년대
7.4. 1990년대
7.5. 2000년대
7.6. 2010년대
7.7. 2020년대 이후
7.8. 결론
8. 육군, 공군 비행단 병영식
9. 육군, 공군 비행단 외 기타 병영식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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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국군의 병영식과 그 역사, 문제점에 대해서 다룬다.

2. 상세


한국군의 1일 병영식 가격은 2020년 기준으로 1인당 8,493원으로 배정되어 있어, 끼니당 '''2,831원'''에 불과하다. 출처 병의 경우 3끼를 다 먹는데 영내 생활하는 군인들은 병사식당, 간부식당 등에서 병영식을 무조건 먹어야 하기 때문에 급식전표를 작성해 식사를 했는지 체크하는 부대가 있으나, 해군공군은 딱히 강제하지 않는다.[5]
1주일에 2번(월 6회)은 군대리아가 나온다. 원칙적으로 영내거주중인 하사나 양성과정중인 후보생 신분 외 간부들은 병영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저 비용을 매달 수당 형식의 부식비로 받고 대신 자비로 밥을 사 먹어야 하며, 밥 먹을 일이 있으면 미리 신청을 해야 한다. 부식비 타면서 병들 부식 훔쳐먹는 간부들이 수두룩해 문제가 되고 있다. 해당사례가 있으면 국방부에 신고도 가능하다.
지금도 그런 악습이 남아 있는 부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부대는 각 간부들이 영내 식당에서 밥을 먹은 횟수를 정리해서 달마다 정산하게 되어 있다. 자율보고식의 경우 적당히 낮춰서 보고해서 한두 푼 아끼는 수준은 가능해도 몽땅 떼어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정산은 '''행정병이 한다'''. 시간외 근무수당과 영외급식비는... 잘못 작성했다가는 코렁탕 위험이 있으니 생략.
일부 당직자, 출동중인 함정이나 독립된 소부대라 간부들에게 식사를 판매하는 식당이 없는 곳, 병들과 거의 영내생활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간부들은 부분적 혹은 매 끼니 영내 식사를 할 수 있다. 이런 곳은 아예 부대 여건에 따라 매일 일정 끼니 수를 자동으로 영내에서 먹은 걸로 간주하고 부식비에서 까버리기에 안 먹으면 영외거주자 개인의 손해다.
민간 밥값이랑 단순 비교는 곤란한 것이, 재료값만 들어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식당의 경우 밥값에는 재료값+인건비+수도광열비[6]+관리비+지대+이윤이 몽땅 포함되어야 하지만, 군대에서는 인건비와 관리비와 지대와 이윤은 0이고, 수도광열비도 신경 꺼도 좋은 수준이다. 한 끼에 2,800원인 꼴이지만 민간 식당의 밥으로 치면 적어도 4,000원 이상, 보통 5,000원에서 6,000원 수준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군 장병들의 활동량때문에 병영식의 양이 일반 식사의 1.5배 정도이기 때문에[7] 취사병들의 실력을 거르고 재료의 질로도 값싼 백반집보다 확실히 못하기 마련이다.
육군 훈련병들은 조교들의 지시 하에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하고 식사를 시작하게 했는데, 2020년 들어서 점점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해공군 훈련병들은 별도의 구호 제창 후 식사한다.
그래도 육군 병영식이 그나마 맛있게 나오는 경우는, 바로 간부식당과 병사식당이 합쳐져 있어 간부나 병사나 같은 밥을 먹게될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보통 식수 인원이 매우 적다는 뜻이고, 이는 식사의 양보다는 질에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쓸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 간부도 매일 먹기때문에 맛없게 만들래야 만들수가 없다. 해군 함정 병영식과 공군 대부분의 방공포대와 몇몇 정비대[8], 사이트 병영식도 사정은 비슷하다.

3. 예비군의 병영식


[image]
동원 미지정 훈련시, 대부분 위의 예시와 같이, 판매용 도시락이 나온다.
동원 지정 훈련에서의 급양대가 어느 정도 식단과 재료를 통제가능한 군 식단과 달리, 동원 미지정 훈련시에는 계약한 업체마다 질이 천차만별이다보니 업체 바뀌는걸로 질이 천차만별이다.[9][10] 제대로 된 현지 업체와 계약한 경우는 당연히 통상 판매되는 수준의 도시락이 그대로 나오기에, 민간에서 먹는 밥이랑 똑같다. 사실 한국군의 급양 문제는 돈 문제가 아니라 돈 외의 모든 부분이 문제다 보니, 시스템을 정비한다면 충분히 나아질 부분이 많기는 하다.
예비군훈련 짬밥의 경우 몇 차례의 실태가 고발된 이후 예비역들의 화산과 같은 분노에 힘입어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고 맛 없다는 게 예비군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예비군 훈련에서 가장 괴로운 것 중 하나는 맛없는 밥으로 꼽힌다. 이러니 가격을 들으면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대체 이렇게 맛없는 식사의 어디에 그 가격이 들어갔는지 도통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훈련 부대 입장에서도 골칫거리인 게 예비군들에게 제공할 도시락을 납품할 납품업체를 구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그나마 일부 대도시 시가지 근처에 있는 훈련장이라면 경쟁 입찰이 가능하고 년초에 도시락 품평회를 개최한다든지 평가해서 선정이 가능하니까 부대에서 의지가 있다면 꽤 개선할 여지가 있지만 많은 예비군 훈련장들은 외진 곳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경쟁은 커녕 납품을 해준다는 자체로 감지덕지인 을의 입장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매일 수백식의 도시락을 납품하는 게 가능한 업체는 생각보다 한정적이고 거기다 외진 곳까지 배달을 해주는 업체라면 선정 범위는 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더운 계절에는 식중독 관리 문제가 있고 말이다. 또한 년초에 약속했던 내용과 실제 납품 내용이 크게 다른 경우 또한 흔하다. 여러모로 개선이 쉽지 않은 이유이다.

4. 명칭


대한민국 국방부 정식 명칭은 병영식이다. 하지만 실제 언어생활에선 "짬밥"이 압도적인 편이다. 앞글자만 따서 ''이라고도 한다. 병영식이라는 말을 아예 못들어본 사람도 꽤 많을 정도. 심지어 국군의 병영식 상세 항목은 이 문서에 등재되어 있었다.
군대 밥이 '짬밥'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설들이 있다.
  • 60년대 이전엔 식판이 없이 커다란 주발#에 밥과 반찬을 배식한 뒤 국을 거기에 끼얹어 먹는 게 일반적이었고, 이것을 짬뽕밥이라고 불렀고 이게 축약된 게 짬밥이라는 설.
  • 남은 음식을 뜻하는 '잔반[11]'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
  • 솥에서 짓는 밥이 아니라 증기로 쪄서 만드는 군대식의 '찐 밥'에서 유래되었다는 설.[12]
한편 약칭인 짬이라고 할 경우에는 '먹고 남은 음식쓰레기'의 의미가 부가적으로 생기며 이를 이용해 짬처리, 짬통 등의 어휘도 쓰인다. 짬을 수거해서 [13]돼지 사료로 쓰기 위해 부대와 계약한 민간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보통 '''짬아저씨'''라 불리며 이들은 트럭에 커다란 짬통을 싣고 이 차는 '''짬차'''라 불린다. 지휘통제실마저도 '''"짬차 들어왔습니다"''' 하며 보고된다. 일부 부대는 용어가 좋지 못하다 하여 잔반수거차량이라는 불편한 용어를 쓰기도 한다.
이 짬아저씨와 달걀 껍질 때문에 트러블이 생기기도 한다. 민간에서도 달걀 껍질은 일반 쓰레기로 분류되고, 누렁이나 도야지들이 달걀 껍질을 먹다가 탈이 나는 경우가 있지만 병들이야 뭐 노예신분인데 최대한 대충 하고 싶어하니 그냥 짬통에 던져버리는 경우가 많고, 이 달걀껍데기가 빵식을 제공하는 날에 정기적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간부들이 관리감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도 따지고 보면 그냥 직장인이나 병역의무 이행을 위해 반강제로 끌려온 카포가 많다 보니 정확한 지시통제가 잘 되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조리병들도 달걀껍질 따로 배출하면 일거리 늘어나니 싫어한다.
이 용어는, 징병제로 인해 군출신이 많은 한국에선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조차 잔반이나 음식물쓰레기를 뜻하는 말로 널리 쓰고 있다.

5. 문제점


대한민국 국민들 가운데 국군장병이 좋은 음식을 잘 먹고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 식단의 열악함과 형편없는 맛으로 악명이 높다. 대부분은 반 세기째 잘 쓰고 있는 레퍼토리 "전시 징병제라서 어쩔 수 없다." 정도로 넘어가거나, 아직도 쌍팔년도 시절의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며 "군대에 가면 원래 배고픈 법이다."식의 후진국적 사고를 견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저조한 국민의 관심 때문에 제도의 개선도 굉장히 느리다.
현역병들이 먹는 식사만 그런 게 아니라, 예비군이 먹는 식사도 마찬가지. 병영식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원래 짬밥이라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별 맛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국군 병영식은 그런 사실을 어느정도 감안해도 경제수준에 비해 심각하게 부실한 수준의 병영식을 주고 있다. 주한미군을 필두로 한 미국 커뮤니티나, 일본 혐한 사이트에서 "'''이 음식들이 북한군이 아니라 남한군이 먹는 식단인데 놀랍지 않나?'''" 식의 조롱거리가 될 정도이다. #

3분 3초부터 주목. "저희 소초 밥은 호텔식보다 훨씬 더 맛있습니다 '''이건 대한민국 해병대가 공식적으로 만든 영상'''인데도 병영식이 호텔식만큼이나 맛있다는 소초장의 발언으로 셀프 풍자할 정도다.

5.1. 맛이 없는 이유는?


[image]
▲2013년 국회 감사로 국방부에서 올린 훈련소급식사진[14]
2013년 조사에 의하면 국군 장병 급식비는 2,051원(1일 6,155원)으로 미군 3,795원의 54%에 불과했다.# 또한 급식단가가 초등학생 2,580원의 79%, 중학생 3,250원의 63%에 불과했는데 고된 훈련을 받은 군인이 초등학생보다도 못한 급식을 먹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국군 전역자들의 거의 대부분은 대한민국 군대의 병영식이 '''똥국이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음식의 질도 빈약하고 맛도 없다는 의견에 모두 공감하고 있다. 사람이 먹을 만한 정상적인 요리를 20년 이상 먹어오다가 갑자기 품질이 들쑥날쑥한 대량 조리 음식을 약 2년 내내 먹게 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현상이다. 짬밥이 맛이 없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군대 관련해서 벌어지는 모든 종류의 사건사고가 그러하듯 대한민국 군인에 대한 대우가 개차반인 것도 있지만, 굳이 세세하게 따져보자면 한국 병영식이 맛이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일개 병사가 대부분의 요리를 전담
국군의 조리병은 해당 인원을 맞추기 위해 요리 관련 경험이 없더라도 억지로 선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관련 자격증을 보유하고 요식업계에서 일하다가 조리병이 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사회에서 요리는커녕 라면이나 겨우 끓일 줄 아는 사람이 후반기 교육만 대충 받고 조리병이 되는 경우가 태반인 것이 현실이다. 다시 말해 조리병을 담당하는 병사들은 대부분 아마추어도 못 되는 요리 문외한이라는 말이다. 심지어 요리를 전문으로 배우고 사회에서 업으로 삼던 사람도 갑자기 100인분이 넘는 대량 조리를 시키면 원래 실력이 나올 수 없는 법인데, 하물며 요리 능력이 떨어지는 20대 일반 성인 남성이 날림으로 받은 교육 지식만으로 맛있는 요리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간조리원들이 소수 있긴 하지만 여러가지로 한계가 있다.
  • 제한된 시간에 초대량의 식사를 조리
일반 식당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 식사 시간 조리 시간은 언제나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 식사 시간이야 말할 것도 없고, 조리 시간 역시 식중독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 식사 시간 직전에 바로 조리해서 내놓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드려면 식자재, 부식 등을 보급병과 같은 일반 병사들과 손수 운반해야 하고, 상하차 훈련과 같은 식당에서 하는 훈련도 받아야 하며, 이런 일들을 모두 한 다음에 또 수백명분의 식사를 만들어야 하는데, 조리 과정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매 끼니마다 수백명 분의 밥을 해야 하며 그만큼 더 힘든 대형부대보다는[15] 식수인원이 적어서 시간도 널널한 독립중대나 특수한 부대의 밥이 더 맛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부대는 우선 간부식당이 따로 없어서 중령이든 대령이든 이등병이든 다 같은 메뉴를 먹어야 하고, 오히려 취사병들의 시간이 남으니 취사병들이 꿀빤다고 욕을 먹거나 다른 일거리를 부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디테일을 좀 더 살린다거나 남는 시간에 남는 재료로 레시피나 양념, 소스같은 걸 개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형 부대일수록 고생만 죽어라 하고도 밥이 맛없다고 욕 먹고, 소형 부대일수록 일은 편한데 밥맛도 좋다고 칭찬을 받는 아이러니한 일이 생기게 된다.
  • 부족한 식자재
대부분 요리 경험이 많은 민간조리원들이 불평하는 내용. 만일 주 메뉴가 육류이면 고기의 양은 그럭저럭 들어오는데 반해, 조미료부터 시작해서 각종 채소류들은 그에 걸맞지 않게 부족하게 들어온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맛’을 만들기 위한 식자재가 부족하니 당연히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반 사회라면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발생하는 공급 에러이지만 보급량을 위에서 할당하다시피 하는 시스템은 사실상 사회주의 배급 시스템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보니 각 부대별로 최적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힘들게 된다. 부식비를 현금으로 받는 함정 및 격오지 부대라던지, 아예 선구입 후 영수증을 제출하여 추후 부식비로 받는 잠수함의 병영식이 맛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끼니마다 급변하는 메뉴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맘대로 사먹으러 나가지도 못하는 군 부대 특성상 급양단에서 설문조사라도 나왔다 하면 먹고싶은 메뉴들을 잔뜩 써버리고 그것을 최대한 섭렵하려 하는데, 덕분에 끼니마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에서 내로라하는 대표 메뉴들이 줄줄이 섞어나온다. 당연히 약간의 메뉴만 정해놓고 판매하는 일반 식당같은 전문성을 보유할 수 없다. 군대 치킨이 싸제 치킨만큼 맛있길 바라는 거 자체가 바보다. 게다가 이는 먹는 사람 입장에서도 영향을 받는데,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16] 식단표 자체를 선호할 수가 없게 된다.
  • 근본적으로 부족한 개선 의식과 동기 결여
위의 상기된 문제는 주로 어쩔 수 없는 취사병과 대량 요리의 특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모든 문제에 가장 선행하는 것이 이 '맛있게 만들어야 할' 동기의 결여이다. 한국군은 시스템상 이 동기가 전혀 없기 때문에 병사의 식사에 대한 개선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정상적인 서비스 제공의 패턴은 이렇다. 가령 식당으로 비유하면 식당측은 보다 맛있는 요리를 손님들에게 제공하려 하고 최대한 손님들이 만족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한다. 손님들은 그에 만족하며 식당에 계속 찾아와 음식을 주문하고 먹게 된다. 이는 식당이 착해서가 아니라 그래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맛없고 불친절하면 손님들은 더이상 그 식당에 안가고 식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군은 병사가 의무적으로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17] 어차피 손님이 거부하여 망하는 식당이 될 염려가 전혀 없다. 밥 먹을 사람은 언제나 있고, 가령 안 먹는다고 해도 알 바가 아니기 때문. 또한 마찬가지로 음식이 맛이 없다고 해도 개선할 필요가 없다. 병사에겐 그 맛없는 음식을 거부할 권리도, 항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식사 자체는 아예 불취식을 처벌할 수 있게 만들어놓았음을 물론이거와, 항의는 형식적으로는 종종 설문조사를 해서 개선점을 찾는다고는 하지만 마음의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시피 그런 설문조사에 항의해봤자 "모두 만족" 이라는 결과를 받지 못한 높으신 분의 심기만 거스를 뿐이며 누가 썼느냐는 색출만 행해지고 그에 따른 불이익만 몇배로 돌아오게 될 뿐이다. 만약 병사들에게 식사에 대한 항의가 보장된다면 부모님의 피땀어린 세금으로 만든 거니까 주면 주는대로 감사히 먹으라는 선동보다는 민간 요리사를 더 채용해 식사 질을 높이려 한다던가, 재료가 문제였다면 재료쪽에 더 예산을 투입해 보다 질 좋은 재료를 확보하려 하거나는 식으로 해결 방안을 찾아볼 수 있다. 하다못해 예산이 부족해 당장 어떻게 해줄 수 없다면 그렇다라고 최소한 해명이라도 병사들에게 이루어졌을 것이다.[18] 하지만 군대는 식사를 제공하는 측에서 식사의 질을 체계적으로 개선할 의지를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개선하지 않는 것이고, 병사들은 일방적으로 맛없는 식사를 무조건 그냥 수용만 해야 하며 더욱 그래서 속으로 불만이 쌓여가는 것이다.

5.1.1. 재료비 관련


1인당 급식비가 적게 책정되어 있어서 쓰레기같은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으나, 군납비리같은 사정이 개입되지 않는 이상 딱히 옳은 말은 아니다. 2019년도 기준으로 3,000원에 살짝 못미치는 수준이지만,[19] 사회에서 음식값의 대부분은 임대료, 인건비, 식당 마진 등을 고려해서 책정되기 마련이다.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재료값은 음식값의 30%~40%를 초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 요식업의 불문율일 정도. 때문에 군대에서의 끼니당 2,000원은 사회 음식값으로 환산하면 최소 4~5천원 이상의 가치는 있다. 사회에서 짬밥 수준의 식사를 먹으려면 최소한 4,000원은 줘야 하며, 자취생이 직접 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으려 해도 한 끼 2,000원은 든다. 즉, 예산이 모자라서 짬밥이 맛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본 자위대도 하루 식비는 순수 재료비만 830엔으로,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사실 군납비리가 있지 않는 한 군납 식재료들은 재료 단계에선 품질이 괜찮다. 평소 육군 행보관 등 담당 간부의 주 일과중 하나가, 급양대에서 날라온 식재료들을 매의 눈으로 살피고 뭔가 이상하면 냉큼 사진 찍어다 급양대를 까는 것이라, 최소한 못 먹을 재료는 사용이 안 된다고 보면 된다.[20] 채소나 고기뿐 아니라 식용유나 된장, 고추장 등의 가공품조차 사회 기준으로도 백반집에서 쓰는 것 보다는 질이 좋은 양품이다. 또한 2010년대 기준으로는 고기나 생선은 넣어주는 등 적어도 메뉴차원에서는 먹을만하게 구성되며 아무리 이상해지더라도 최소한 영양 균형만큼은 맞춰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맛이 없는 건 앞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이다. 그리 숙련되지 못한 조리병[21]들이 조리용 삽 등을 써서 대량 조리를 하는데, 맛이 있으면 그게 더 신기한 게 아닐까? 더구나 양이 늘어나면 조미료나 소금 간도 신경 써서 해야 하는데, 이게 굉장히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에서는 병영식 레시피를 제작해서 배부하긴 했지만, 그날 반입되는 재료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는데, 그대로 써먹을 수 있을 리가. 거기다 역시 언급되어 있지만, 취사반은 인력과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 가끔 조리병이 훈련 열외되는 걸 봤다면 그건 마냥 부러워할 일이 절대 아니다!

5.1.2. 기타


반대로 위 요인들 중 빠지는 것이 있는 부대의 경우, 짬밥이 상당히 맛있어진다. 숙련된 조리병들이 있거나 민간조리원[22], 군무원 등이 붙어 조리를 감독하는 부대의 짬밥은 제법 먹을 만한 정도의 퀄리티까지 상승하며, 조리병을 모조리 조리전공 특기병 중에서 선발하는 몇몇 상급부대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짬밥이 맛있어진다. 조리 전공하다 온 조리병들은 전역 이후 진로도 요리사인 경우가 많아서 직업공부도 할 겸 꽤나 프로의식을 갖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입대 전 뷔페 등 대량조리 경력이 있다면[23] 금상첨화.
또한 식수 인원이 적은 독립중대급 부대같은 경우 짬밥이 꽤 괜찮으며, 해군 함정 근무자용 식사처럼 부식비가 보다 많고 부대별 메뉴 선별의 재량권이 큰 곳 역시 밥이 매우 잘 나온다. 해군은 특히 함정 및 격오지 등에 조리병 및 예산을 우선 배치해주고 있기에, 되려 제독이 근무하는 상급 부대인 전단이나 함대급의 육상식당 밥이 더 맛이 없다. 간부식당의 경우는 보다 메뉴가 다양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는 이용하는 간부들이 돈 내고 식권 사서 먹는 거라 비교할 꺼리가 되지 않는다. 해군이 이렇게 부식비가 많은 이유는 좁은 공간에서 근무하며 스트레스를 먹는것으로 밖에 풀수없는 해군의 특성과 사기 유지를 위해서이다.[24]
급양관리관이 의욕이 있을 경우 더 맛있는 신메뉴를 개발하거나 자체적으로 포상휴가를 걸고 요리대회를 열기도 한다. 요리대회의 결과물은 장병들이 시식하는데, 제대로 요리를 배운 사람이 마음먹고 요리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맛볼 수 있다. 본래 이런 우수한 조리병 자원들은 사령부급 이상의 상급부대나 국직부대 간부식당에 우선적으로 배치되는데, 간부식당과 병사식당의 구분이 애매하거나 같은 조리병들이 둘 다 담당하는 경우나 두 식당 조리병 간 인적자원의 질 차이가 별로 없는 경우[25]에는 병들은 그나마 먹을 복은 있는 셈이다.
또한, 부대에 따라 모종의 이유로 같은 메뉴라도 밥의 질이 완전히 달라지는 수가 있다. 한 예로, 같은 제2작전사령부 소속임에도 부산의 모 해안경계 부대에서는 마파두부랍시고 두부에 고추장이랑 돼지고기 좀 넣고 으깬 괴상망측한 무언가가 나올 때 대전의 모 공병단(대령인 단장이 운영)에서는 '''정말로 마파두부가 나왔다'''. 이곳은 주변이 온통 군부대 천지인 곳이었기 때문에 사정이 양호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곳이라고 해도 장병들이 자기네 부대의 밥을 맛있다고 생각할지는 미지수. 그렇지만 부산의 어느 격오지에서 말 그대로 쓰레기만 먹다가 잠시 파견 온 입장에서는 신세계를 겪을 수 있었던 만큼, 짬밥이라 해도 클라스가 다르게 질이 똥망 그 자체인 곳도 있다. 이는 결국 부대 배치 운빨에 달린 셈이다.
다만 위생에 집착하는 것만큼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다. 덜 익거나 설익은 반찬을 먹고 식중독이 발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인데 군대는 주기적으로 검열이 나와 위생상태를 점검한다.[26] 검열때만 되면 밥 하랴 대청소하랴 고생하는 조리병들의 하소연을 들을 수 있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중독 환자가 1명이라도 나오면 그날부로 부대엔 비상이 걸린다고 봐야한다. 이 때 취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날 경우 담당 간부부터 병까지 줄줄이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벤트로는 수도관 동파, 보일러 고장 등이 있다. 즉, 한국군은 병참의 중요성을 모르는 게 아니라 그 비효율적인 구조적 문제로 인해 병 처우가 개차반인 것이다.
음식을 익히는 시점을 잘 아는 조리병(=밥 잘 하는 조리병)이라면 충분히 잘 익히고도 맛있는 튀김이나 볶음을 만들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경험 부족+대량 취사라는 한계로 기름에 말려 뼈만 남은 닭튀김이나 화석화된 오징어튀김, 생선살이 소멸된 생선까스 같은 강화 실패가 벌어진다. 물론 덜 익히는 것만이 식중독의 원인은 아니다. 식중독은 재료의 선도, 유통 과정, 보관 상태 등 복합적인 원인 하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언론에만 공개가 안될 뿐이지 일선 부대에서 여름에 뻑하면 터지는 게 식중독 크리다. 그래도 식중독의 요인 중 하나라도 없애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 맛이니 원성이니 하는 것은 "일단 먹고 사는 데 지장없는 음식을 공급"하는 지상과제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전투로 치면 일단 이겨야 하는 것이나 같다.
부대에서도 짬밥이 맛이 없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어서, 각 부대별로 밥맛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된대로 민간조리원을 고용하거나, 하다못해 간부의 부인을 데려오는 경우도 있고, 각 부대 시찰로 병사식당의 전반적인 상태를 점검해서 포상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6. 각종 루머



6.1. 정력 감퇴제 투입 루머


군대 식사에는 정력 감퇴제가 들어있다는 도시전설이 있어, "혈기왕성한 장정들을 바글바글 모아둔 곳이 군대이다보니 만약의 불상사를 방지하고 통솔을 쉽게 하려고 몰래 먹인다"는 이야기를 종종하곤 하지만 루머다. 사실 군용 찍힌 식품이면 뭐든 다 그런 소문이 돈다.
이런 이야기가 도는 이유는 입대 후 아침에 기상했을 때 대다수가 발기가 안 되기 때문인데, 입대 전에는 매일매일 되던 아침 발기가 갑작스럽게 안 되니, 다들 원인을 찾다보니 저런 도시전설에 다다른 것이다. 실제로는 군대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이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병영식에 쓸 돈도 아까워하는 국방부가 정력 감퇴제에 돈을 쓸까?'를 생각해보면 된다.

6.2. 전염병과 육식


구제역이 터지면 주구장창 쇠고기, 돼지고기 요리들이 나오며 조류독감 파동이 터지면 닭고기 요리와 오리고기 요리가 줄창 나오기 때문에 해당 질병에 걸린 가축을 '''억지로''' 도축해서 먹인다는 소문이 돌지만 이 것은 오해이다. 군대 식단은 다음달 분량도 이미 보통 급양대 단위로 계획이 잡혀 있다. 이걸 갑자기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군대는 당장 전쟁이 터져서 구매를 못 하더라도 1년치 이상 보급이 가능할 정도로 식재료들을 평소에도 축적해 놓는다.
그런데도 질병과 연관 있는 식재료가 나오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보통 식재료 관련으로 일이 터지면 해당 식재료 값이 폭락해버리기 때문이다. 조류독감이 터지면 닭고기 가격이 폭락하며, 콜레라가 터지면 돼지고기 값이 폭락하는 매우 일상적인 일인 것이다. 이 경우 축산농가 생계 안정 명목으로 정부가 대량으로 구매하여 냉동창고에 보관해 놓는다. 그리고 정부에서 직접 급식을 손댈 수 있는 게 일부 관공서를 제외하면 짬밥이 거의 유일하다보니 거기다 몰아주는 것이다.[27] 엄밀히 말해서 식재료 관련 사태에 따른 농가의 경제적 불안정을 국군 장병들이 떠안게되는 것이다.
다만 실제로 저질 고기를 먹는 경우도 있긴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질병이라기보다는 원체 허약한 가축을 폐사시키고 그런 물건을 납품하는 케이스다. 진짜 가축 전염병이 돌 때 가축들은 이미 다른 정부 부서에서 다 폐사시키기 위하여 혈안이 돼있으며 정부에서 사서 주는 고기는 비축분이거나 공급 조절을 위하여 급하게 사온 물건이니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비록 쓰레기통이 된 듯한 기분나쁜 감정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적어도 폐사한 고기 먹고 죽는 것이나 그러고 쿠데타 벌이는 것보다야''' 좀 기분나쁘더라도 멀쩡한 고기 먹는 게 여러 모로 좋을 테니까.
반대의 경우도 있다. 특정 식재료 가격이 폭등한 경우 식재료 가격이 안정될 때 까지는 해당 식재료가 들어간 음식은 구경도 할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2010년의 배추값 폭등사건. 당시 군 생활했던 사람들은 배추 가격이 안정될 때까지 배추김치는 국 속에 들어간 것만 보고 그냥 김치는 깍두기만 봐야 했다. 심지어 메뉴는 김치찌개인데 '''김치'''만 빼고 나머지 재료들은 다 넣은 김치찌개가 나오기도 했다.

6.3. 군납비리 루머


군납비리의 경우,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70~80년대만 해도 이 문제는 굉장히 심각했다. 예산 횡령같은 정통파적 비리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보다 소득수준 대비 식재료 가격이 높아서 식재료 자체를 되팔아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상황상 아예 보급으로 나오는 식재료까지 빼돌려서 팔아먹는 사건이 비일비재했다.
다만 이 경우는 군납비리가 아니라 군수비리다. 쉽게 이야기하면 납품하는 업체 측에서 미리 비리를 저지르고 개판인 물품을 군납하는 게 흔히 군납비리 혹은 방산비리고, 납품하는 업체는 멀쩡하고 질 좋은 물건을 믿고 납품했더니 부대 간부들이 중간에서 다 떼어먹고 일반 병들에게는 개판인 물건이 내려가는 게 군수비리다. 대대에 모처럼 부식으로 쇠고기 보급이 나왔다더니 대대장 댁에 5근, 각 중대장 집에 3근, 소대장 몫으로 1근, 이외 장교나 부사관은 계급과 직책에 따라 3근에서 반근까지 미리 나눠주고 병사들 몫으로는 남은 고기가 별로 없어서 그냥 물 붓고 무 넣어서 국을 끓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이를 비꼬아서 나온 농담이 '''황우도강탕'''이다. 고깃국이라기에 먹어봤더니 황소가 건너간 물을 떠다 끓인 것 만큼 고기맛이 난다는 것이다. 이는 군수비리라고 할 수 있으나, 2000년대 쯤 부터는 한국의 생활수준이 올라가서 이렇게 간부들이 병사 식자재를 뺏어먹어야 할 경우는 극히 드물어졌다.
이 외에도 보급계 장교나 부사관들이 시시때때로 창고의 식재료를 몰래 꺼내다가 팔아서 용돈벌이를 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흔해서 신기할 것도 없다. 식용유 산업이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이전에는 기름이 꽤 값나가는 식재료라 조리용 콩기름이 간부들 용돈주머니가 되었는데, 새로 온 쏘가리 한 마리가 멋모르고 그저 부럽다고 말통 2통을 통채로 꺼내서 내다 팔려다 위병소에 딱 걸려서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이런 문제는 90년대 이후로 많이 해결되었다. 이런 식으로 잘못된 식자재가 들어옴으로서 집단 식중독이 터지면 말 그대로 전투력 손실이다. 꼭 군납비리, 군수비리와 연관짓지 않아도, 집단 식중독 사건은 그 자체로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인명손실과 다름없다. 그만큼 상부에서 굉장히 엄격하게 다스리는 문제라 간부들, 특히 급양감독관은 간부 경력이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다. 다만 높으신 분들이 급식재료 조달 간에 장난을 친다면, 그 식재료를 인수하는 일선에서는 어떠한 조치를 내릴 수 없다는 게 문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28]

6.4. 교도소소년원 배식과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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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미지를 놓고 '교도소 밥보다 군대 밥이 훨씬 못하다'는 논란이 나왔었다.
그런데 이 사진은 아주 잘못된 예시이다. 왼쪽 교도소 밥은 죄수들 밥이 아니라 '''교도소에 근무하는 교정직 공무원'''들의 식사다. 교도소 밥에 나오는 숟가락과 젓가락은 무기로 쓰이는 걸 막기위해 쇠가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원칙상'''으로만은 병영식비가 교도소 급식비의 1.9배 수준으로 교도소 밥보다는 병영식이 양도 많고 질도 좋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다만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가량은 세대불문 군대를 갔다오기에 실상이 어떤지 뻔히 알고 있는데도 우롱하려고 하니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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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 개방교도소의 식사. 이곳은 전국의 모범수만 가는 전국 유일한 개방시설로 유일하게 쇠로된 수저를 쓴다. 처음 이송가는 수용자는 식사할 때 수저가 무거워 깜짝 놀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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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부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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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외국인교도소. 빵식등 여러 종류의 외국인 식단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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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 재단 소망교도소. 법무부 소속이 아닌 민영기관으로 식당에서 민간 직원과 수용자가 다 함께 먹는 것을 컨셉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문제는 예산이 부족하여 반찬이 다소 부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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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천정보통신학교(전주소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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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정보통신학교(춘천소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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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정보통신학교(서울소년원)
'''위 사진들은 어느 정도 연출이 들어갔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도 한국군의 급식 상태가 영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현역이나 예비역이나 체험상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군의 급양시스템을 차차 개선시켜나가는 것으로 풀어야지, '감히 국민이 낸 세금으로 주는 밥을 교도소 밥에 비교하다니! 불경하다!' 혹은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좋은 밥을 먹다니! 당장 군대의 밥보다 개판으로 만들어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문제를 개선하는데 손톱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방부 측의 해명과 네티즌들의 반응
국방부는 '병영식이 교도소 식사보다 낫다'며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그러나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위해 청춘을 희생하고 있는 군인들의 식사와, 중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의 식사가 비교 대상으로 오르는 상황만으로 국방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국군 장병들의 식사 품질은 국방부의 해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아직도 만화 같은 곳에서는 수용자들에게 '콩밥'을 주는 이미지가 강한데, 콩은 건강에는 좋지만 값이 비싸기 때문에 1986년에 폐지되었고, 보리쌀마저 가격이 올라 2012년 이후 현재까지 건강에 안좋은 순수 흰밥만 나온다. 반면 군인들은 콩밥, 콩나물밥, 보리쌀밥, 흑향미밥 같은 잡곡이 돌아가며 나온다.

7. 한국군 병영식의 역사


대한민국 국군은 사실 해방 이후 여러가지의 군사 단체가 난립하던 도중[29] 미 군정의 주도 하에 한반도 남부의 치안 유지를 위해 나머지 단체를 해체/흡수하여 만들어진 단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군+만주군+국부군 군기[30][31]와 미국식 장비가 혼재한 기기묘묘한 군대가 되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군인복무규율도 1965년이 되어서야 제정되었으며 군 공통 조달 시스템도 1970년이 되어서야 확립된다. 그 전까지는 각 군의 군위부대, 각 군 본부, 국방부 합동조달본부에서 각각 따로 물품을 조달했다. 그래서 1980년대까지 설치되어 있던 것이 군관구사령부였다.
이렇게 엉망진창인 군대다 보니 창군 당시부터 매우 부실하게 구성된 것이 있었는데 바로 '''급양'''이었다. 이상하게도 '''"군인은 좀 굶어도 되는 사람들"''' 이라거나 '''"군대는 원래 춥고 배고픈 곳"''', '''"군대는 편하면 안 되는 곳"''' 이라는 개념이 뿌리박힌다. 이게 유교문화권의 사고방식이 대체로 이러한데, 중국의 경우도 '좋은 쇠는 못으로 쓰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군을 천시했다. 이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면 '''"나라 지키고 싸워야 되는 사람들이 이런 사소한 걸 불평해서 적군 쳐들어오면 어떻게 싸우겠단 거야?"'''라는 유서 깊은 똥군기 드립이 내리꽂힌다.
사실 급양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똥군기에 무개념이라는 구 일본군조차도 1930년대 이후로 외형상으로는 군인들에겐 최소한 밥 한끼라도 먹여주려고 노력했던 편이라는 것이다. 특히 일본 육군보다 일본 해군의 식사는 이보다 더 양질이었는데 야마토급 전함의 경우 '''야마토를 갖다 버리기 전까지, 즉 1940년대까지''' 매 주말마다 카레라이스와 사과+마카로니 샐러드가 나왔다고 하니... 전함 야마토 승무원의 수기 중에 '내가 이런 훌륭한 음식을 먹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라는 게 있으니 흠좀무. 다만 이 때는 일본이 한창 막장으로 치달아가는 전시상황이라 한창 궁핍했을 때였고, 야마토는 해군 중에서도 최고의 시설과 식사라는 특급 대우를 받은 군함이었기 때문에 '나만 이리 잘 먹어도 되는가' 하는 생각에서 남긴 말이었다. 본토 시민들이나 타 부대, 타 군은 쪼들리고 있었다.
물론 일본군의 보급은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도 이미 특정 부대나 주둔지 등 특수한 곳에서만 정상적이었고, 전장 등 나머지 장소에서는 기본적인 보급 상태가 타 국가와 비교하자면 굉장히 열악했지만 그래도 보급 체계가 붕괴된 시점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인 1943년부터이다. 물론 이 보급 체계의 공급을 위해서 식민지 등에서 수탈까지 병행한 상황이었지만 중일전쟁태평양 전쟁 등으로 너무 늘어난 병력 수, 제공권과 제해권을 잃어 보급품 수송에 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보급 능력 자체가 무너지면서 아무거나 먹어야 하는 상황이 오고 말았던 것이다.
일본군이 조선인 지원병을 받기 시작한 것이 중일전쟁 이후인 1938년이고 그 이후 특별지원병 제도가 점점 확대 되다가 조선인에게 징병제가 실시된 것이 1944년이다. 즉, 일본군이 막장 수준이 되었을 때 일본군에 입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그러다보니 그 막장 일로를 달리던 당시 일본군의 군기 문화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한국군의 간부로 임명되어서 한국군에 똥군기를 전수시킨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물론, 꽤 많은 똥군기가 짬밥 냄새도 제대로 못 맡아본 사람들에 의해 자행된다는 점을 봤을 때, 그냥 윗선 편하려고 갖다 붙인 거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냥 군대를 천시하던 유교 문화가 일제와 군사 독재 시대를 거치며 해방 이후로 존속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제의 군국주의 체제로 징발과 착취를 겪고 6.25와 군사 독재를 겪으면서 군에 대한 인식이 더욱 나쁘고 편협해졌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인식이 나쁠수록 관심 역시 멀어지니 군대에 문제가 생겨도 '군대는 원래 그런 시궁창임'이라고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아무튼 창군 초기의 급양 관리 실태는 엉망이었다. 국방경비대 시절 이등병으로 입대하여 장군으로 전역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인물인 최갑석 장군의 회고록에 따르면 식사라고 나온 게 찰기 없는 부실한 밥에 콩나물이나 무가 한두어 개 떠다니는 된장국이 전부였다고 한다.# 여러 증언에 따르면 당시에는 식기도 변변치 않아서 그냥 반합에 먹거나 주발에 넣어서 먹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쓰던 '밥그릇'이 종종 동묘공원 근처 시장 같은 곳에서 발견되곤 하는 것 같다.# 단기 4293년이니까 1960년에 만들어진 밥그릇. 급양 관리 기준도 없어서 어림짐작으로 양을 가능해서 대충 만들어서 대충 주는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급양의 상당 부분을 미군전투식량인 C-레이션에 의지했다.#
물론 소수의 예외는 있었다. 당시의 육군사관학교인 조선경비대 사관학교에서는 미군 장병의 급양 기준을 따라서 매일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계란, 생선 등이 나왔고 주식인 밥도 매일 10홉(1,800cc) 정도 나왔기 때문에 꽤 풍족하게 먹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도 푸대접한 사례는 존재했다. 해병대의 경우 2차대전 때 아직도 스프링필드 M1903을 쓰던 해병대가 육군의 총기인 M1 개런드를 훔쳐 쓴 적이 있을 정도였고 이후 시간이 흘러 1980년대 말 ~ 1990년대 초반의 걸프전쟁 때도 그리 차이는 없어서 해병대원들은 필요한 물품들은 자기네 돈 주고 사서 운용한 사례도 있었고 기갑장비의 경우도 육군은 M1 에이브람스 계열을 운용하고 있을때 해병대는 M60 패튼을 운용한 것이 그 사례이다.
물론 미국의 경우에는 타 국가와 다르게 예산 분배의 영향이 주 원인이다. 당장 해병대의 경우 타 군(육군, 해군, 공군)에 비해 예산 순위가 최하위로 장비나 보급품 전반으로 상당히 인색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타 국가에 비하면 일반적인 급양, 보급 상황은 매우 우수하다. 당장 한국군이 군대리아를 먹을 때 미군은 군대리아보다 퀄리티가 엄청 높은 잭슨 버거를 먹는다.

7.1. 6.25 전쟁 이후


창군 초기부터 개판 5분전이던 한국군의 체계는 6.25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가닥을 잡았다. 좀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1954년에 한미 '''급식위원회'''에서 하루 열량 섭취 목표를 3800Kcal로 설정한 것이다. 장병들에게 1인당 적어도 이 정도의 열량을 섭취할 수 있는 식량을 보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당시는 비리가 심해서 식량이 수송되는 동안 중간에서 이리저리 떼어먹는 바람에, 전방의 장병들에겐 항상 식량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상급부대로 올라갈수록 물자가 풍부했으므로, 있는 집 자식들은 부모가 과 돈을 써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높은 부대의 본부로 보내려고 했다. 게다가 지금과 달라서 정량배식이었기 때문에 한 명당 먹는 밥의 양이 모두 똑같았다.
이 시기 이후 국과 밥만 보급되던 것에서 약간 더 확대돼서 밥, 국, 반찬의 1식 2찬의 식사로 발전했다. 이 1식 2찬 시스템은 1970년대 중반까지 유지된다. 어느 부대가 오래된 취사장 지붕을 수리하다가 1960년대 당시의 식단표를 발견했는데, 무와 콩나물로만 이루어진 1식 2찬의 엽기적인 식단이 줄줄이 써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물론 이때도 간부들은 따로 식사를 했고, 병사들의 식사와는 구분되는 식단으로 밥을 먹었다.
이 시기 병사들의 식사 모습은 황석영 작가의 수필집 『황석영의 밥도둑』에 잘 표현되어 있다.

내가 군에 갔던 육십년대에는 나라의 경제가 신통치 않은 때여서 부식이 정말로 형편없었다.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을 콩나물국만 먹었다. ...(중략)... 멀건 된장에 배추 오래기나 콩나물이 떠 있고 두부가 가끔 나타났으며 '왕건이'라야 통째로 넣은 꽁치가 고작이었다. 그것도 취장에서부터 유리한 부서 순으로, 다시 막사에 오기전에 고참 순으로 건져내어 나중에는 꼬리나 대가리나 가시만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맛을 내고 간을 맞추는 데 양념이라고는 된장, 고추장, 그리고 소금이 전부였다. 특히 생선이 '헤엄만 치고 지나간' 콩나물국은 거의 소금국이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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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이 부대에 배치되어서 가자마자 하는 일이 고참들의 식사 당번인데, 제일 먼저 매점에 가서 화학조미료를 사다가 군복 윗주머니에 지참해두어야 한다. 국을 받아오면 제일 먼저 국을 맛있게 드시라고 조미료를 적당량 털어넣는다. 자기 것은 포기하더라도 아랫것들 국 속에서 건더기를 건져서 따로 반찬거리를 만든다. 콩나물은 건져내어 알토란같이 아껴 쓰는 박카스 병에 담긴 참기름을 치고 관급 고추장에 비벼서 콩나물무침을 만들고, 두부는 건져서 간장과 참기름을 쳐서 두부무침을 만들고, 뭇국의 무를 따로 건져서 고춧가루 조금 치고 간장 쳐서 무나물을 만든다.

1960 ~ 1970년대 당시 군대의 식사 시간을 촬영한 영상. # 43초쯤을 보면 정말 엽기적인 것이 반찬이 2칸인 식판에 한쪽 칸이 아예 비어있다. 홍보영상을 찍는 상황이었다면 나름 챙겨준다고 식사량을 많이 줬을 텐데, 그래도 반찬 가짓수 자체가 모자라다.
강원도의 부대는 감자가 반찬의 주를 이루어서 감자탕, 감자볶음, 감자조림, 감자찌개 등의 반찬들만 나왔다고 한다. 거기다 이 시기에는 감자의 종자도 좋지 않아 뒤끝에 아린 맛이 강해서 이 시절에 강원도에서 군생활 하신 어르신들은 감자라면 학을 땔 정도. 이때도 식판 같은 게 없어서 그냥 그릇같은 데 담아먹었고, 일부 부대에서는 취사장에서 음식을 받아와서 내무반에 상펴고 먹기도 했다고 한다.
아무튼 먹는 게 부실하다 보니 보리빵도 지급되곤 했는데, 월남전 참전 후로 부대내 식량 사정이 좋아지고[32] 라면 같은 부식들도 슬슬 나오면서 예전에는 없어서 못 먹던 보리빵을 관물대에 쳐박아두고 안 먹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33]

7.2. 1970년대


1976년에는 군급양에서 '''1식 3찬''' 시스템이 확립된다.# 밥과 국과 반찬 2가지로 이루어진 식사가 정착된 것이다. 그래서 당시 식판은 반찬 담는 칸이 2개였다. 그리고 플라스틱이었다. 플라스틱 식판은 1990년대 중후반까지 쓰였다. 물론 그럼에도 당시에는 정량 배식이었고 식사의 질은 그렇게 높지 않았기 때문에, 짬이 좀 되는 병사들은 집에서 보내준 돈으로 몰래 부대 밖 가게에서 이것저것 사먹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FM 군대가 아닌 경우가 의외로 많았기 때문에, 상병장쯤 되는 고참병들이 업무상 필요에 의해[34] 잠시 부대 밖을 다녀오는 일도 제법 있었다. 심지어 병장들이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부대 철조장을 뜯어 수육과 막걸리로 바꿔먹은 일화도 존재한다. 연대 본부에 일이 있어서 갔다온다고 해 놓고, 1종창고에서 쌀을 몰래 빼다가 인근 민가에 좀 주고 제대로 된 밥을 한상 거하게 받아먹고 돌아오는, 참으로 전설적인 이야기가 가능했던 게 바로 그 시절이다.
급양은 부실하고, 운영은 주먹구구였던 70년대 무렵에는 이런 식으로 주변 민가와 일종의 거래를 해서 배고픔을 해결하는 사례가 많았다. 상기된 것처럼 군 창고에서 쌀을 꺼내다가 민가에 주면서 찐밥이 아닌 제대로 된 밥을 지어달라고 한다던지[35] 군용 라면 보급이 시작되었지만 취사설비 미비로 라면을 끓이기 힘든 상황에서 짬 좀 찬 병사가 라면 여러 개를 몰래 가져가서 하나만 끓여주고 나머지는 그 집에 준 경우 등이 있다.
실제 사례 중에는 수완 좋은 할머니가 아예 라면 끓여주는 일을 사업으로 시작하다시피 해서, 이병은 1:1, 일등병은 1:2, 상병은 1:3, 병장은 1:5로 계급별 차등 가격까지 책정한 경우가 있을 정도. 즉, 이등병은 라면 2봉을 가져가면 1봉을 끓여주고 1봉은 할머니가 가지지만, 병장은 6봉을 가져가면 1봉만 끓여주고 5봉은 할머니 몫이 되는 것이다[36].
덕분에 이 할머니 집 창고에는 항상 군용 라면이 그득그득 쌓여 있었고, "자식 같은 군인들이 배고프다니 도와주는 거지, 군용 라면은 봉지부터 티가 나서 어디에 팔아먹지도 못한다"고 말하는 것과는 달리, 수개월에 한번씩 쌓여 있던 라면이 싹 사라지는 걸로 봐서 어디 판로를 개척한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37]
또 1980년대까지만 해도 쇠가 귀해서 부대 철조망을 끊어 몰래 개구멍으로 나가서 막걸리며 각종 사제 간식을 바꿔먹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물론 걸리면 영창이다. 당시 배식이 볼품없고, 부식이 부족해서 나타났던 현상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한국의 섬유산업이 융성하던 때여서 을 키우는 목장들도 꽤 있었는데, 털을 깎고 난 양들은 고기가 되어 군대로 납품되는 일이 꽤 있었다. 70년대 군생활을 추억하는 사람들 중에는 군대에서 양고기를 먹어본 사람들이 꽤 있다. 당연히 대부분의 부대에서 섬세한 처리는 힘들었고, 결국은 노린내와 함께 양고기를 씹어야 했다. 당시 군생활을 하신 분들의 회고에 따르면 "심할 경우 취사장 근처에 며칠씩 누린내가 진동할 정도였으며, 양고기가 나오는 날에 고참들이 가혹행위로 자기들 것까지 후임들에게 먹였다"는 경험담도 있다.
2010년대 이후로 양고기가 대중화가 되면서 양고기를 싫어 했다는게 이해가 안 갈수도 있는데, 털을 깍을 정도로 다 자란 양은 머튼(mutton)이라고 누린내가 많이 나는 것으로서, 90년대 후반 까지도 한국에서는 '''정통 식육용으로 어울리지 않는 고기'''로 분류 되었다. 우리가 지금 먹는 어린 양고기는 램 (lamb) 이라고 불리며 양고기가 익숙한 곳에서 머튼은 램과 아예 다른 고기로 취급되고, 그에 맞는 요리법이 따로있다[38]. 하지만 제대로 된 양고기 조리법을 모르는 조리병들이 질기고 냄새가 강한 머튼을 적절하게 요리할 수 있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머튼을 맛있게 요리하려면 누린내를 줄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고기에서 피를 철저히 빼내고 지방도 충분히 제거해야 하며 후추, 민트(박하), 로즈마리, 고수, 커민, 카다몸과 같은 다양한 향신료 및 조미료를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사실 솥에 넣고 오랫 시간을 조리해야 되는 머튼의 특성상 향신료만 준비되면 대량배식에 오히려 잘 맞아서 중동 지역의 뷔페를 가면 머튼이 들어간 요리가 꼭 하나씩 포함되어 있는걸 볼 수 있다. 다만 문제는 한국에서 조리병들에게나 병사들에게 양고기가 익숙치 않은 고기라는 것과 보급될리 없는 향신료의 부재.
그런데 70년대는 사병들의 배식이 하급부대로 내려갈수록 고급식재는 부족하던 시기인지라, 오히려 귀한 고기가 나왔다고 좋아하며 누린내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먹은 경우들도 많다고 한다.

7.3. 1980년대



1980년대부터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면서 군 급양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다. 메뉴에 닭튀김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는 고열량 메뉴가 추가되었고 1982년부터 군대리아로 유명해진 햄버거시범적으로 처음 배급이 시작되었다.
이후 1985년에는 우유가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공군 기준으로 수도권 부대에는 서울우유, 강원도에는 춘천우유(구 농협우유), 영남권 부대에는 부산우유가 보급되었지만 '''1976년부터 정착된 1식 3찬'''으로 유지되어 군 급양은 여전히 열악했다. 당장 위의 영상의 3분 52초 이후 구간을 보면 녹색의 플라스틱 식판에 밥, 국, 반찬 2개로 1식 3찬이며 다른 식사 사진을 봐도 1식 3찬임이 잘 드러난다. 그나마 이 당시에는 지금과 다르게 생활관 내부에 술 반입이 허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군대리아가 이 때부터 2020년대 현재까지 잼이 있는 이유로는 1980년대 막 도입될 당시 대다수 취사병이나 간부들이 햄버거가 어떤 재료로 만들어지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일부 의견에서는 신메뉴 담당자가 롯데리아 가서 한번 사먹어보고 먹는 방법을 지도하는 정도의 성의는 보였어야 한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는데 국내에 롯데리아가 설립된 것은 1979년 10월 25일이지만 1980년대 초반에는 아직 대중적인 음식이 아니었다. 당장 영상이나 사진들을 보면 병사들이 배급받은 빵을 그냥 잼에 발라먹거나 했지, 지금처럼 빵 속에 재료를 넣어 먹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 요리 예능 프로그램들과 달리 당시 TV의 요리 프로들만 봐도 일반 가정에선 엄두도 못 낼 레시피를 소개하거나, 시청자의 편의에 맞는 재료들로 요리를 하지도 않았다. 진행자는 가정에서 흔한 거리고 하는데, 정작 1980년대 일반 서민 가정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게 많았고 호텔 요리사 출신이 아닌 일반 가정 출신이 많은 간부와 취사병 둘 다 모르니 당시에 소스를 어떻게 만들고 공급해야 할지 개념이 잡히지 않았다[39]. 그러다보니 그들의 입장에서 가장 잘 아는 재료인데다가 햄버거에 들어가는 정체불명의 소스보다 구하고 납품받기도 훨씬 쉬운 잼이 들어가게 되었고 이게 현재까지 정착된 것이다.

7.4. 1990년대



1994년 이전까지는 1980년대 중후반 급양 상태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우선적으로 식판이 플라스틱에서 스테인리스로 전방부터 순차적으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당장 1992년 11월 18일에 제작된 대한뉴스 제 1932호 영상과 비교하면 1994년 1월 6일에 제작된 대한뉴스 제 1991호의 경우 1분 29초 구간을 보면 플라스틱 식판에서 스테인리스 식판으로 개선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1980년대 중후반 시기에 비해 1990년대 초반부터 식단도 개선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전방 부대부터 시범적으로 1식 3찬에서 4찬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고 공식적으로 1994년부터 전군에 '''1식 4찬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반찬이 하나 늘었다. 여기에 돈까스, 짜장면을 비롯하여 1982년부터 시범적으로 처음 배급이 시작되기 시작한 군대리아가 1994년부터 공식적으로 전군에 배급되기 시작되고 동시에 콜라 등의 탄산음료도 보급이 시작[40]되면서 다양한 메뉴가 추가되었다.
1996년부터는 정부양곡[41]에도 변화가 있어서 사실상 몇 년 이상 묵은 쌀로 취급되던 통일미가 사라지고 이전 년도 가을에 생산된 쌀을 가공해서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쌀'''(일반미)'''로 밥을 짓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를 전후해서 김치 또한 지역 농협에서 사다 먹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위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대한뉴스 제 1932호로 1992년 11월 18일에 제작된 영상인데 38초 구간부터 김치가 군대에 납품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998년도부터는 김치도 다양해져서 아삭아삭 총각김치와 속이 꽉 찬 시원한 오이소박이가 식탁에 올랐고, 1999년에는 밋밋하던 떡국에 만두가 추가됐다. 물론 한 때 1998년경에는 잠시 보급이 엉망이 되었던 때가 있다. 원인은 바로 '''IMF'''. 이 시기에 군납업체가 여럿 부도나면서 몇몇 식자재 보급이 끊겼다. 다행히 이 사태는 새로운 군납업체들이 그 자리를 채우면서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김치가 군대에 납품되기 전까지는 각 부대별로 구덩이를 파고 병사들과 간부들의 부인들이 동원되어 김치를 담가서 땅에 묻는 안습한 상황을 보여주었다. 당장 김장독도 없어서 구덩이를 대충 파고 구덩이 안에 시멘트나 벽돌을 대충 쌓아 방벽을 만든 뒤 그 안에 김치를 넣는 것[42]이었는데 물론 군대이다 보니 액젓이나 젓갈 등의 재료가 매우 부족한 현실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지만 김치가 아니라 단순히 짠지 수준의 맛이었다고 하며 여기에 1970년대까지만 해도 "김치를 창고에 그대로 보관하다 보니, 창고 서까래 위를 달리던 가 김치 더미에 빠져 같이 숙성되어 있더라"는 경험담도 있었으며 여기에 장병의 부모(주로 어머니)들을 불러다가 병사들이 먹을 김치를 담그게 한 사례까지 있었다.[43]

7.5. 2000년대


2000년대 들어서 생선까스, 삼계탕, 돼지갈비 등 다양한 메뉴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2003년 이후부터는 창군 최초로 흰 쌀밥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의무적으로 '''보리[44]를 일정 비율 혼합하여''' 밥을 해야 했다.#[45]
이것과 관련해서 2000년대 중반 한 번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터졌다. 한 국회의원이 "만 먹이다 보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 현미와 잡곡을 섞은 밥을 군인들에게 먹이자" 고 했다가 "요즘 군대는 반찬도 잘 나오고 해서 영양소 공급에 문제가 없는데, 굳이 왜 쌀밥에 태클을 거느냐" 라는 예비역 및 현역들의 거친 반발에 순식간에 버로우한 바가 있다.
실제로 자취해본 사람은 알지만, 잡곡밥이 일반 쌀밥을 짓는거보다 시간과 과정이 더 든다. 최신식 전기밥솥의 잡곡밥 코스는 백미 코스보다 십분 정도 시간이 더 길다. 압맥이 아닌 보리는 따로 미리 삶아서 밥을 해야 덜 익지 않고 식감이 탱글탱글하고, 수수나 귀리 같은 종류도 물에 넣고 불리는 과정이 있어서 쌀보다 당연히 오래 걸린다. 무엇보다 현미 같은 잡곡이 일반 쌀보다 비싸다! 그렇다고 잡곡 대신 콩을 쓸 수도 없는 게, 콩밥은 죄수들 먹는 밥이라는 인식이 강하며 나이 든 아저씨들보다 젊은이들이 콩밥을 좋아할 가능성은 낮다.

7.6. 2010년대


2019년 빅 데이터 방식을 도입해 장병들이 선호하는 음식은 배식 횟수를 늘리고 선호하지 않는 음식은 배식 횟수를 줄이는 방식을 도입한다고 한다.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짜 장병들의 기호를 우선시한다면 매우 유의미한 개선이 될듯.# 이 과정에서 평가가 좋지 않던 비빔소스가 2020년부터 공식적으로 퇴출되었다.

7.7. 2020년대 이후


2020년 이후 병영식의 일반 메뉴가 추가되고 특식도 추가된다. 탕수육, 볶음밥, 갈비찜, 치킨텐더, 샤인머스캣, 컵에 담아주는 과일, 꼬막, 장어, 전복[46], 삼계탕 등 고급 메뉴도 맛볼 수 있다. 장병들이 선호하는 메뉴는 빈도가 증가되며 비선호 하는 메뉴는 빈도가 줄어든다. 1인 1일(조식+중식+석식) 급식비는 8493원이다. 이와 관련해서 국방부 대변인실 트윗에는 일부 트페미 세력이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

7.8. 결론


2021년 기준으로 병영식은 많이 개선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점이 더 많다. 한국 군대의 밥이 집에서도 먹을 만한, 특히 집과 사회에서의 정상적인 요리를 먹던 젊은이들의 입맛을 충족시키는 일은 앞으로도 요원할 것이다. 사실 애초에 요리에 능숙하지 않은 조리병들의 실력에 맛이 결정된다는 것 부터가 한계점이다. 상급부대에서 아무리 좋은 대안을 내놓아도 휘하 조리병들 실력이 좋지 않으면 재료의 질은 차치하더라도 요리의 맛만큼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 외의 병영식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로는 '이 정도면 됐다', '뭘 자꾸 해주려 하느냐', '요즘 젊은이들은 배가 불렀다' 하는 기성세대의 태도도 한 몫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한국군 병영식의 이미지 자체나 너무 나쁜 것도 큰 이유 중 하나다. 한국군 병영식은 예로부터 '짬 차면 먹지도 않는 저질 음식' 이미지가 단단히 박혀 있는데, 이에는 국방부의 거듭된 삽질과 방관 + 전역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나마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 조금씩이라도 개선이 되고 있고, '진작 이렇게 바뀌었어야 했다!'라던지 '군대는 잘 먹어야 진격한다.'라면서 나아진 군대 식단을 지지하는 군필자들도 나오고 있다.
병영식 문서에도 써있듯이, 병영식이라는 것은 자기가 살고있는 그 나라의 경제력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 유념해야 하지만, 어쨌든 한국군의 병영식이 2021년 기준으로도 맛이 없다는 사실은 변함 없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다른 나라의 병영식을 먹어보는 것 부터가 쉽지 않고 단순 선전 자료만 보고 판단 내릴 순 없다. 당장 병영식 문서를 보면 만국 병사들이 공통으로 자기 나라 병영식은 정말 맛없다며 비웃고 있다.
그러므로 일단은 다른 나라와 비교부터 할 게 아니라, 병영식의 맛이 없다는 사실에만 신경을 써야 한다. 한국군보다 1인당 지원이 좋을 수밖에 없는 다른 선진국의 병영식도 비슷한 문제점을 크든 작든 가지고 있다. 다만 그런 복무 환경이 좋은 타국의 장병의 불만은 '다른 건 다 참아도, 밥이 이 따위인 건 도저히 못 참겠다!'인 것과 달리, 대한민국 국군 장병의 불만은 ''''다른 것도 거지같은데 밥까지 쓰레기냐!''''인 게 한국군 병영식에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8. 육군, 공군 비행단 병영식


한국군 병영식/육군, 공군

9. 육군, 공군 비행단 외 기타 병영식


한국군 병영식/육군 외

10. 관련 문서



[1] 속칭 '쏘야'[2] 가끔 과일음료가 우유 대신 배급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대부분 우유가 배급된다. 군납우유의 경우 2014년 1월 1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먹는 200ml의 우유와 다르게 250ml 규격으로 나왔으나 2012~2013년 당시 우유급식 용량을 250ml에서 200ml로 축소, 연 365회 공급계획을 세우고 수입 과일주스를 대폭 늘리려다 덜미를 잡힌 바 있었다. 당시 반발이 일자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2014년 1월 1일부터 200ml로 축소하되 456회로 조정하여 급식총량을 유지키로 한다고 정책이 바뀌게 되었고 그 결과 200ml으로 용량이 줄었으며 이후 456회에서 감소하여 437회로 조정되었다. 이후 2018년에는 200ml 365회를 공급하되 72회에 대해서는 가공유를 도입하자는 안이 등장하면서 오히려 2012년 ~ 2013년 이전보다 퇴보되었다. 자세한 것은 출처 기사 참고.[3] 해당 메뉴는 주로 조식으로 제공되며, 어떤 메뉴든 욕을 들어먹는 것이 국군 병영식이지만 이 구성은 그나마 자주 나오면서도 평가가 좋은 편으로, 이걸 만드는 조리병 입장에서도 참 조리하기 편한 메뉴이기도 하다. 조식은 조리병 입장에서도 조리하기 편한 메뉴로 구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4] 대개 튀김 재료로 쓰는 조기의 크기가 일반보다 작아서 살점이 얼마 없다. 그런 주제에 가시는 쓸데없이 많아서 처리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병영식에서 만든 튀김의 특성상 갓 맛있는 생선튀김이 나올 리 만무하고 식어 눅눅해지지 않는것만 해도 감지덕지이다. 생선에 환장했거나 생선을 귀신같이 잘 발라먹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여지없이 잔반통으로 직행시켜버린다. 그마저도 대량으로 조리하는 특성상 튀긴지 시간이 지나 눅눅해진 채로 나오는 조기의 경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5] 그러나 어쩌다 한 번씩 불취식 검사를 하는데, 이때만큼은 먹어줘야 한다.[6] 회계/용어에서도 사용되는 내용이지만 전력비. 수도요금. 가스요금. 난방용 유류대금을 말한다.[7] 하루에 3,000kcal 이상을 공급해야 한다.[8] 격오지로 갈수록 밥이 맛있어지며, 비행단 내 파입부대에 있는 포대와 정비대는 해당사항이 없다.[9] 해안지방 모 부대는 12월 보충훈련에 쌀 샤베트가 나오는 바람에, 예비군들이 극대노한 후 스티로폼 보온도시락이 도입되기도 했다. 놀랍게도 해당 예비군 부대는 2016년 이후부터는 '''밖에서도 만원 내고 사먹고 싶을 정도로 초 고퀄리티의 식사를 6천원에 제공중이다'''. 업체 하나만 바꿔도 이렇게 달라지는게 현실이라 부대 급양관들도 골치아플 듯 하다.[10] 공군 동미참 훈련도 공군행정학교 혹은 제10전투비행단 식당에서 밥을 먹기 때문에 학생예비군 등으로 빠지지 않는 한 군 식단을 그대로 먹게 된다.[11] 1880년대부터 일본군에서 쓰였던 단어로, 발음은 ‘잔판’이다.[12] 쪄서 만든 밥은 밥솥에서 한 밥에 비해 영양면에서 못 미치지만 쉽고 빠르게 많은 밥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찐 밥은 2000년대 들어서 퇴출되고 가스식 자동 취반기로 바뀌는 추세지만 훈련장같이 상시 밥을 하는 곳이 아니거나 소규모 부대라면 여전히 사용하곤 한다.[13] 주로 보신탕 공급용 누렁이 농장.[14] 사진만 봐도 매우 열악하지만 좋게 보이기 위해 여러 식사 중 잘나온 것을 올렸기 때문에 실제 식사는 이보다 더 열악하다는 것이다. 해병대는 아예 메뉴가 3가지 밖에 없다.[15] 사령부 등의 상급부대보다는 보충대, 육군훈련소 등의 훈련 및 교육부대. 사령부의 경우 사령부 자체를 담당하는 소규모의 본부대가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소형부대에 더 가깝고, 결정적으로 장성 등의 높으신 분들이 상시 존재하는 곳이다보니 절대 밥을 대충 지을 수가 없다.[16] 이에 따라 최근에는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식단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봤자 겨우 소스나 카레+짜장을 선택하는 수준에 그친다.[17]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무작정 의무 식사를 폐지해버릴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이번엔 식사를 갖고 새로운 가혹행위가 등장할 게 뻔하기 때문. 가령, 일이병을 혼낸다고, 식사 자체를 못하게 하거나 거짓말을 쳐서 굶는다고 하는 등 고참이 밥 자체를 가지고 못 먹게 하는 것들이 있다. 의무적인 식사는 전투력 유지 목적도 있지만 어느 정도 병사를 보호하는 측면도 있다.[18] 사실 예산이 없다는 소리도 병사와 예비역 출신들에겐 전혀 와닿지 않는 것이 하루가 멀다하고 장성전용 골프장과 복지시설 복지비용이 늘어가는 곳이 군대이다. 물론 소수의 장성만을 위한 예산과 수십만 단위의 병사들 전체를 위한 식사 비용이 같진 않겠지만 예산이 없는데 장성만을 위한 것은 계속 늘어가고 병사를 위한 것은 고정이라는 말을 납득할 사람은 극히 적다.[19] 기사 내용은 1일 8,493원이며, 군대에서는 하루 3끼를 모두 먹는 것이 기본이므로 대략 2,830원 정도 나온다.[20] 별거 아닌 업무 같지만, 모 부대에서는 약간 불량한 정도를 넘어서 식중독을 일으킬만큼 상한 식자재가 납품된 것을 발견한 행보관이 빠른 조치를 취한 것만으로 무려 군단장 표창을 수여한 적도 있을 만큼, 보급 계통에선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업무다. 당연히 정신이 제대로 박힌 행보관이라면 정말 꼼꼼하게 재료를 살펴본다.[21] 특기병도 조리학과 '재학 중'에 오는 경우가 많고, 대대급 이하는 숫제 소총수를 보직 변경시켜서 채우는 게 대부분이다.[22] 대대급 이상의 대형 부대에서는 의외로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이분들이 요리를 못하거나, 농땡이를 피우거나, 집과는 많이 다른 취사장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라면 맛이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23] 보통 이러한 요리 경력이 있는 경우 취사병 중에서도 엘리트이기 때문에 상급부대에서 채간다. 매우 높은 확률로 지휘관이 소장 이상인 곳으로 간다.[24] 해군은 배 위의 갑판 이등병이 육상 사령부의 제독보다 양과 질에서 더 좋은 배식을 받는게 당연시 된다.[25] 간부식당 조리병이나 병영식당 조리병이나 해당 전공자, 종사자 출신에 조리특기 지원해서 자원입대한 자원[26] 이 검열관들은 짬통까지 뒤져서 살펴볼 정도로 지독한 양반들이다.[27] 심지어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에는 고기조차 제대로 못 먹이던 부대에서 ''' 요리가 나왔다.''' 그만큼 당시 서해안이 입은 관광, 먹거리 산업쪽의 피해는 엄청났다.[28] 2000년대 라디오에서 나온 사연에 따르면, 사연을 밝힌 시청자가 90년대 복무한 말년병장 시절에 고기가 고파서 취사병이랑 몰래 고기 삥땅쳐서 구워먹다가 불시에 취사장에 찾아온 간부에게 딱 걸렸단다. "뭐하냐"는 살벌한 물음에 이 둘은 "아무래도 고기가 이상한 것 같아서, 구워서 조사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변명을 했고, 간부는 직접 알아보겠다며 고기를 가져갔다. 그리고 둘다 '우린 죽었구나 OTL' 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간부가 "그거 상했더라. 니들 덕에 큰일 넘겼다."라면서 칭찬하면서 휴가를 보내줬다고. 엔딩이 훈훈하긴 해도, 상한 고기가 납품되었다는 점에서 보급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29] 예를 들면 국군준비대.[30] 한국전쟁 이후 미국 레인저 부대와 미 해병대 똥군기가 추가된다.[31] 주로 육군, 공군, 해병대에 해당하는 이야기. 해군은 손원일 제독과 상선사관들이 주도하여 만들었고, 타국 해군 경험자들이 별로 없었던 관계로 타군과는 다르다[32]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파견 국군의 보급과 급양은 한국 정부가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국내 산업을 육성하고 관련 비용을 미국 정부에게서 받았다. 그 전까지는 군복같은 기본적인 피복장구도 미군 재고였다.[33] 당시 보리빵이란 게 정말 맛이 없었다. 배가 고파서 먹은 것이라 먹을 게 많아진 후엔 뒷전이 된 것이다. 심지어 관물대에 쳐막아 둔 게 검열에 걸렸을 때도 병사들이 다들 "그거 맛없지 말입니다."라고 했을 때 간부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을 정도다. 모두가 맛없음을 알고 인정할 정도로 맛이 없었다. 결국 이 보리빵은 군견들에게 넘겨졌는데, 개들도 몇 번 먹다가 맛이 없었던지 나중에는 안 먹었다.[34] 부식을 수령해 온다던가 물자나 문서를 받아온다던가 하는 이유로 말이다.[35] 물론 준 쌀의 일부는 그 집에서 수고비 겸 반찬값으로 챙겼다.[36] 왠만하면 계급에 상관없이 공정하게 보급되는 21세기 현재와는 달리, 7080년대 당시에는 보급품을 받는데도 계급간 차별이 심했다. 특히 라면과 같은 간식(증식)은 면도날등의 위생용품과 함께 '일정량을 보급받으면 부대 내에서 재량껏 나눠쓸 여지'가 큰 것이라 계급이 높을수록 많이 챙겨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일정량의 라면 보급이 나오면 병장은 6봉 챙겨가는데 이등병은 2봉밖에 못 가져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 따라서 해당 사례의 할머니는 이를 역이용하여 나름 공정한(...)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모든 군바리가 공평하게(...) 1봉씩 먹게 된 셈이다.[37] 군대에 납품되던 라면은 봉지부터 군용이라고 인쇄되어 있고, 특히 7080년대의 군용 라면은 일반 소매용 라면과는 달리 한 봉지에 2개씩 포장되어 있기에 봉지부터 티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렇게 빼돌린 라면들은 일반 소매 고객이 아니라 분식집 등 식당으로 팔렸을 가능성이 높다. 봉지에서 티가 난다고 해도 가게 창고에 보관했다가 주방 안에서 봉지를 뜯어 끓여내면 손님이나 주변 사람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는 것. 아마 지인의 식당이나 식당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도매상등에 덤핑으로 넘겼을 것이며, 위 비율대로라면 (군바리들에게 김치쯤 챙겨주더라도) 상당한 이익이 남았을 것이다.[38] 머튼은 향신료를 많이 넣고 오래동안 조리하는 커리, 스튜등의 요리에 쓰고 램은 주로 스테이크나 로스트에 쓰인다.[39] 80년대 당시의 요리 풍토에 대해 알 수 있는 매체로 당시 출판되었던 요리책들이 있다. 낱장을 떼어 레시피카드로 사용할 수 있도록 두꺼운 종이에 인쇄하여 링바인더로 제본하고, 당시로써는 호화로웠던 (2010년대 이후 기준으로도 초라해보이기는 커녕 제법 화려해 보일 정도의) 풀 컬러 인쇄로 요리 사진까지 싣고 있는 요리책들이 많이 출판되었고,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는 새신부의 혼수품으로도 크게 유행했던 것.(종이의 질이나 컬러 인쇄비용등으로 인해 그냥 사기는 많이 부담스러운 가격이었기에, 결혼하여 새 집안을 꾸리는 신혼부부를 축하하기 위한 혼수품으로 마련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멋진 요리책을 선물받은 새신부중에서 그 요리책에서 소개하는 요리를 정말 해 본 사례는 거의 없었는데, 그 이유인즉 요리책이 소개하는 레시피들이 일반 가정에서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하다는 듯 오븐에 익히라고 하는데, 80년대 당시 일반 가정집 중 오븐을 갖춘 집이 얼마나 되었겠는가.(전자레인지의 보급률도 높지 않은 시대였다. 아마 당시 기준으로 '오븐이 뭔지 아는 사람'의 비율이 2020년대 기준으로 '집에 오븐이 있는 사람'의 비율과 비슷했을 것이다.) 식재료조차도 당시 국내에서는 구하기 쉽지 않은, 삼풍백화점등 백화점 치고도 럭셔리 지향 백화점의 식품관에나 가끔 들어오는 재료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안 그래도 한국의 경제발전이 모자라 일용품이나 생활용품에 수입품을 쓰는것조차 사치라고 욕먹던 시기에 먹어서 없어질 음식 재료로 수입품을 쓸 만한 가정이 그리 많을리가... 하다 못 해 '소-스는 오이스터 소-스나 엔초비 소-스를 사용하라'는데, 오이스터 소스는 굴소스(호유)로써 중국식당들을 상대하는 식자재상에 가면 살 수 있다거나, 엔초비 소스는 멸치젓국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정도의 설명도 해 주지 않은 것. 말하자면 평생 요리를 해 오신 아주머니께 보여드려봤자 "까만건 글자고 흰 건 종이구나. 그런데 음식 사진은 참 예쁘네~ 이걸 해 달라고? 이런건 비싼 전문 식당에서나 만드는거야~" 수준의 반응 이상은 나오기 힘들었다. 결국, 정통 레시피에 구하기 힘든 재료나 도구가 있으면 생략하거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체품을 알려주는 등 일반인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요리 레시피를 소개하는 것은 20000년대 이후에나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고 80년대~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요리 관련 정보에서는 '난 이렇게 특별한 것을 알고 있다'고 자랑하는 식의 불친절한 레시피가 요리계의 대세였다. 여기에 인터넷 보급 이후 시대와는 비교할수도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시대이기도 했으므로, 취사병이나 간부에게 설명서를 가져다줘봤자 "이거 무슨 소린지 전 하나도 모르겠고요, 애들 빵 먹이라니 쨈이나 발라줍시다" 라는 반응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던 것.[40] 하지만 1990년대 이후로 현재는 장병 건강을 생각해서 콜라는 메뉴에서 빠졌다가 2016년부터 일부 급양대에서 다시 보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탄산음료가 아닌 건 잘 나와서 그 유명한 맛스타는 애교 수준이고 아이스크림, 두유, 이온음료 심지어 비타민 음료도 나온다. 사이다도 나오는데 이건 별로 맛없다는 의견이 다수이다.[41] 흔히 정부미(政府米) 등으로 불렸다가 2000년대 후반에 가서 "나라미"로 개명되었다.[42] 그래서 김장굴이 무너져 병사가 깔려 죽은 사건 사고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43]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귀한 자식 군대에 데려온 것도 모자라 부모의 노동력과 돈까지 갈취한 사례이지만, 당시 부모들은 안 하면 자기 자식이 제대로 된 김치를 못 먹는다니 할 수 없이 가서 해 주었다. 그래서 개중에는 세 아들을 모두 군대에 보내면서 매번 김치 담그러 쫓아다녀서, 이걸 추억으로 승화시켜서 수기를 쓴 어머니까지 있었다고 한다.[44] 압맥이라고 해서, 요즘도 시장 가면 판다. 보통 보리쌀은 불려서 한번 삶은 후에 밥할 때 넣어야 하지만, 이놈은 그냥 밥할 때 섞어주면 된다. 맛이 없고 양 대비 열량도 떨어진다.[45] 하지만 실제로는 병사들이 보리밥을 안 먹으니 보리쌀만 창고에 쌓여 처치곤란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46] 다만 전복은 알다시피 그 비싼 가격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중급 크기의 전복이 아니라 작은 크기의 새끼 전복이다. 이걸 요리로 내놓기는 좀 난감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삼계탕과 같이 나온다. 흔히 오분자기라고 하는 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