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식

 


1. 개요
2. 중요성
3. 병영식의 역사
3.1. 고대
3.2. 중세
3.3. 근세
3.4. 근대
4. 국가별 병영식
5. 관련 문서


1. 개요


'''"군인은 잘 먹어야 잘 싸운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군대에서 제공되는 식사를 뜻하는 '''국방부''' 공식 용어. 본래는 병식(兵食)이라고 했으나 병식은 본래 높으신 분들이 이미지 메이킹용으로 (兵)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뜻이고, 병이란 말이 사병(enlisted) 가운데서도 부사관(Non Commissioned Officer, Petty Officer)이 아닌 사람을 가리키는 용법으로 제한된 한국군의 특성상 병만 먹는 것도 아닌데 병식이라 부르면 이상하다고 2009년부터 병영식으로 바뀌었다.
짬밥이란 속어로도 불린다.
대부분 조리 또한 부대 내에서 직접 하며, 이를 전담하는 병 신분의 군인을 조리병이라고 한다.

2. 중요성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걸 보면 전쟁터의 군인들이 색욕에 굶주려 있는 것처럼 묘사해 놓는 경우가 많다. 규율이 잡히지 않은 군대가 강간을 포함한 대민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참전 용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섹스 생각보다는 밥 생각이 무엇보다 우선이었고, 배를 든든히 채운 뒤에야 비로소 섹스 생각이 났다고 한다. 생각을 해보면 간단하지만, 욕구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인간의 3대 욕구는 식욕, 수면욕, 배설욕으로 욕구의 강도는 수면욕>배설욕>식욕 순서로 강하며, 성욕은 그보다 후 순위의 욕구. 당연히 가장 필요하며 강한 욕구가 먼저 충족되어야만 다른 욕구도 생기는 법이다.
전쟁 때 보급이나 먹거리 잘 챙겨 먹은 군대로 유명한 미군에서도 한국전쟁 때 처음 북한 지역으로 진격하면서 보급 문제[1]를 겪은 일이 있는데, 이때 참전용사[2]의 증언에 따르면 하루에 소대원들끼리 통조림 하나를 나눠 먹는 게 다였고. 그렇다 보니 틈만 나면 먹는 거 생각하고, 동료들끼리 집밥 먹은 거 이야기 하고, 밤에 꿈을 꿔도 먹는 꿈을 꿨다고 한다. 오죽하면 생각도 못한 개고기를 먹고는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맛있었다고 회고할 정도. [3]
전장에서 군인들에게 제공되는 식사는 전쟁터에서 몇 안 되는 즐거움을 줄 수 있기도 하다. 목숨 걸고 굴렀더니 아침 점심 저녁으로 별사탕도 안 들어간 건빵을 주면 기분이 좋진 않을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장병들을 장기간 굶기거나 맛없는 음식만 먹일 때는 아무리 강력하게 통제하려 해도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상관 살해, 항복, 약탈, 탈영, 반란 등 각종 대형사고가 터졌고, 반대로 병사들에게 술과 고기를 줘서 사기를 올렸다는 기록은 복붙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주 나온다. 먹는 즐거움은 예로부터 인간의 원초적인 스트레스 해소방식인 것이다.
이렇듯이, 배불리 먹이지 못하면 매일 약 4,000kcal를 소모하는 군인들의 체력을 보충할 수 없고, 맛있는 밥을 먹지 못하면 군인들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고, PTSD 등의 전투피로를 회복할 수 없어 정신적인 건강상태마저 나빠진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소모된 부대는 전투력도 약해질 뿐더러 같은 명령을 받아도 제대로 통제되지 않을 위험이 있다. 북한군에서 군인을 굶겼다가 별의별 막장 사고가 연달아 터지는 것만 봐도 군대에서 식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3. 병영식의 역사



3.1. 고대


스파르타에선 평민이건 왕이건 다 같이[4] 공동식당에서 보리로 만든 딱딱한 빵에 고기잡탕같은 검은 국, 물 탄 포도주와 약간의 치즈와 말린 무화과 정도를 먹었다. 이들 중 검은 국은 주로 돼지앞다리살, 뒷다리살 같은 퍽퍽한 고기에 선지를 섞고 식초로 맛을 냈는데,[5] 아테네인이 "이런 건 아테네의 돼지도 먹지 않는다."며 까자, 스파르타인은 "이런 걸 먹으면 아테네의 돼지도 스파르타인과 같은 용사가 될 수 있다."며 정신승리를 했다. 이건 '''고대부터 짬밥은 맛없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화이다. 다만 검은선지고깃국은 평시상황에서 병영에 있을 때나 먹인 거고, 전시상황에선 현지에서 사냥을 하든 거기까지 끌고 간 가축을 잡든지 해서 신선한 고기를 먹었다. 이외에도 스파르타 시민은 국가에 빵, 치즈, 무화과, 포도 같은 것을 바칠 의무가 있었는데, 스파르타가 무역을 중시하던 나라가 아니었으므로 이건 당연히 군대를 먹이기 위해 걷은 것이다. 그러니까 언제나 저런 똥국을 먹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식사 및 전투조인 피디티온의 구성원들이 매월 1인당 정해진 양을 납부하는데 미납부시 해당 조원은 '''시민권을 박탈해버렸다.'''

로마군은 밀가루로 끓인 폴렌타[6]를 주식으로 먹었는데, 보리의 경우 흔히 말 먹이로 쓰이던 것으로 보리를 식량으로 배급받는건 일종의 처벌이었다. 빵은 하루에 800~1000g 정도로 배급되었는데, 이때 배급된 빵은 단단한 건빵으로, 보존성과 휴대성이 높았다.[7] 이런 건빵을 와인이나 우유에 적셔서 먹었다. 그 밖에 포도호두, 무화과, 올리브 등을 군영 주변에 심었고, 당근, 렌즈콩, 셀러리, , 복숭아 등의 채소나 과일도 먹었다. 대부분 가공해서 보존 기간을 늘릴 수 있는 식재들인데, 실제로 건포도나 건과류, 말린 무화과는 행군 할 때 주로 먹는 전투식량의 역할을 하는 음식이었다. 행군할 때는 불을 사용한 음식을 금지했는데, 이는 적군에게 위치를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유가 있을 때는 10명 분대 단위로 재료를 모아 단체로 조리하여 먹었다. 수에토니우스하드리아누스 황제가 트라야누스 아래에서 군 생활을 할 때 베이컨 지방, 치즈와 신 포도주(larido, caseo et posca)[8][9]를 먹었다고 적었으며[10], 황제가 된 후에도 비슷하게 조촐한 식사를 했다고 전해진다.
고기를 먹는 일은 드물었는데, 소고기는 꿈도 못 꿨다.[11] 보통은 닭이나 양, 돼지의 고기를 먹었고, 이것도 생고기가 아닌 소금에 절이거나 말린 종류였다. 소세지 같은 가공육도 당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기가 없을 때는 양젖/염소젖으로 만든 치즈가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군단병은 대부분 농민 출신이었으므로 치즈를 직접 만드는 방법을 알았다. 치즈를 굳히는 효소는 무화과 줄기에서 추출했다. 이집트콩, 렌즈콩 등의 콩류도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고기는 잘 먹지 못했지만, 생선류는 그런대로 쉽게 먹을 수 있었다. 원래 지중해 지역을 근거지로 삼는 나라들의 상황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생선을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썼다. 대구나 장어 등을 많이 먹었는데, 생으로 먹기보다는 주로 말리거나 소금에 절여서 먹었다.
군단병은 다른 장비와 마찬가지로 배급되는 식량도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라 받은 월급을 떼서 사비로 구매해야 했다. 군단 차원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방법은 주변 신민들로부터 징발하거나, 전투가 끝난 후 약탈하거나, 군단을 따라다니며 물자를 공급하는 상인(Sutlers)에게서 구매하는 것이었다. 징발한 식량은 군단장이 지정한 도로 근처의 위치에 먼저 가져다 놓도록 요구되었고, 징발 후에 지불하는 보상금의 양은 전적으로 군단장의 재량인 복불복이었으며 언제나 싯가보다 쌌다. 식량의 징발은 비-로마 신민에게 추가적인 세금 부담처럼 작용하게 되었다.
켈트족이나 게르만족은 로마에 비해 고기를 더 잘 먹었는데, 이들은 목축과 수렵 문화가 남아 있었고, 이탈리아 반도와 달리 숲이 울창해서 사냥감이 많았기 때문이다. 와인을 주로 마신 로마인들과 달리 켈트족은 맥주를 마셨다.[12]
중국의 경우 초한전쟁 당시에 항우밥에 콩을 반이나 섞고 있다고 하니 철군을 결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평시에는 몰라도, 전시에는 쌀밥을 줘서 사기 유지에 노력했다는 증거이다. 삼국시대 촉나라 군대는 순무를 반찬으로 즐겼다. 제갈량은 장기간 주둔할 기미만 보이면 둔전을 해서 무를 심었는데, 그 이유가 첫째로 영양가가 좋고, 둘째로 뿌리와 순을 모두 먹을 수 있으며, 세째로 저렴하기 때문에 버리고 가더라도 아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술의 군대나 오나라에서는 물풀이나 다슬기 같은 것을 강에서 채집해서 반찬으로 먹었다고.

3.2. 중세


군대가 자기 등짐에 진 것에만 의존한다느니, 항상 약탈로 채운다느니 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드문 일이었다. 특히 중세에는 아직 민족감정 따위가 희미했기 때문에 함부로 약탈을 허락했다가는 오히려 군대가 뿔뿔이 흩어져 자멸할 수도 있었다. 이는 현대에도 마찬가지로, 한국군에서 약탈 행위는 군형법에 의해 처벌된다.
당시 군대의 식량 보급방식과 조리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 기본적으론 지원임무를 맡은 부대가 전투부대의 식량을 챙겨주는 보급형태가 일반적이다.
  • 전장으로 가는 와중에 미리 지원을 약속한 군주나 도시에서 식량을 사서/보급받아 챙겨간다. 유럽의 경우는 쉬운 일례로 십자군 전쟁 때의 이야기를 찾아보면 알 수 있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십자군들을 태워다주거나 도시나 귀족들 영지에서 마련한 식량을 실어주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 식량이 될 동물을 몰고 간다. 냉장고도 없는 시절이니 신선한 고기를 먹이려면 살아있는 동물을 끌고 가야 하니까.
  • 필요하면 민간에서 약탈한다. 삼국지를 보면 이게 엄청 흔하게 나온다. 군용물자의 종류가 많지 않았고 운송기술과 식품가공기술이 형편없었던 시절이라 약탈은 반쯤 필수였다. 손자병법에서도 군량을 적지에서 취하는게 가장 상책이라고 적혀있을 정도[13]
  • 조리할 때는 10명 정도의 분대단위로 취사조를 짜서 각자 알아서 조리해먹는다. 대개 장교들에게는 따로 식사를 제공하는 조리병 혹은 당번병들이 있다.
전근대 군대는 약탈이 일상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약탈을 주 보급수단으로 삼게 되면 전쟁지속능력이 사라진다.[14] 가장 먼저 약탈의 성공 여부는 불확실하기에 충분한 보급을 취할 수 없다. 비료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잉여 농산물의 양은 제한되었으며 대부분의 농민은 세금을 바치고나면 한 해를 겨우 넘길만한 양식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마을 몇 개를 약탈해봤자 몇천몇만의 군대에 있어서는 하루 식량도 되지 않으며 간혹 큰 도시를 털어 식량을 꽤 얻었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이지 않기에 약탈만 믿고 보급선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소리다. 물론 약탈로 식량을 보충한 사례는 각종 사서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이런 약탈은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이거나 퇴각 또는 유격전 등 특별한 경우에만 실시되었다. 약탈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던 바이킹들조차도 식량과 물부터 확보하고 원정을 진행했으며, 식량이 떨어지면 본거지로 돌아가든 주변에 주둔지를 만들고 거점부터 굳혔다.
또한 청야전술에 취약하다. 약탈을 주 보급수단으로 삼으면 주민들이 스스로 기반을 없애버리고 도망치는 경우 속절없이 굶어죽게 된다. 게다가 고대의 전쟁은 땅을 정복하려고 하는 것인데, 약탈한 땅은 정복을 해봤자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에다가 적대적인 사람이 살고있는 형태가 돼버려서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만 보는 장사다. 물론 가져간 식량이 다 떨어졌거나 본격적인 재물약탈 때 함께 보충하는 식으로 행해진 약탈은 많았지만, 여튼 조금이라도 현명한 장수는 약탈은 기본적으로는 피해왔던 행위였다. 일단 '''그 당대에''' 작성된 기록에서도, 약탈을 장려하는 장수라면 '''그 본국에서도''' 절대로 좋은 평을 듣기 힘들었다.
그래서 대규모 전쟁에서는 대개 군주가 우호 지역을 지나가면서 식량을 사기로 미리 계약을 맺거나 일부 대영주들에게 병력을 대신 군자금과 식량을 지원하도록 했고, 그러한 계약을 명시한 계약서가 왕실 서고 등에서 흔히 발견된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로 보급이 의도치 않게 중단되는 일도 자주 있었지만, 일단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식량 보급의 품질은 당시 기준으로 퍽 풍족한 편이었다. 중세 시대의 군인은 다들 용병이기 때문에 계약에서부터 식량의 질과 양을 깐깐하게 따지는 편이었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희멀건 꿀꿀이죽을 먹는 삶을 택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것은 전황이 최악의 사태로 다다를 때에 한정되며, 그쯤 되면 탈영이나 용병들의 계약 파기가 일상다반사인 상태다.
중세 군대에는 항상 며칠에서 몇주의 식량을 쌓은 짐수레가 잔뜩 따라다녔는데, 15세기 말 독일 기록에는 보병 12,000명을 위해 650대의 짐수레가, 3,000명의 기병을 위해 300대의 짐수레가 따라붙었다고 한다. 독일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국가들 역시 이러한 보급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600명으로 구성된 주둔부대의 6개월치 식량 보급 기록을 예로 들어보자. 60t의 밀이 들어가서 그중 1/3인 20t을 비스킷으로 굽고 나머지는 갈아서 밀가루로 사용했다. 콩과 완두콩은 42t, 와인은 105갤런짜리 큰통으로 두 통(800리터), 식초는 두 통, 기름 1통, 버터 1통, 소금 1톤, 각종 양념과 향신료 50파운드, 아몬드와 사프롱 같은 주전부리도 몇 파운드 넣어주기로 돼 있고, 황소 100마리(약 10톤~15톤의 고기), 양 160마리(약 8톤의 고기), 가금류는 원하는 만큼, 장어 1,000마리(약 2톤의 고기), 청어 25통. 이 기준과 여러 기록을 통틀어서 볼때, 중세 시대의 군인들의 하루 식단은 빵 1.5kg 가량, '''신선한 고기 1파운드''' 가량에 '''달걀이나 염장 고기, 치즈와 버터''' 약간과 채소를 포함해 하루 4천2백~5백 킬로칼로리 가량으로 계산된다. 이는 현대 성인의 평균 식단의 칼로리 2배에 가까운 양이고, 현대 군인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다. MRE로 3끼를 먹으면 3600킬로칼로리 가량 된다. 재밌게도, 전투중인 현대 군인들은 하루에 최대 4200킬로칼로리를 소모한다고 하니 의외로 딱 맞아 떨어진다. 당시엔 도보행군이 사실상 유일한 기동수단이라는 점를 오히려 칼로리 섭취가 부족한 걸수도 있다.[15] 물론 이런 보급 계획이 항상 잘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의외로 중세 군인들이 잘 먹었고 보급에도 상당히 신경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장거리 보급을 할 역량은 없었기 때문에 원정이 길어지는 등의 상황에서는 위의 기록들처럼 제대로 된 음식이 공급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오스만 제국은 보급 분야만큼은 통제력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예니체리나 카피쿨루 군단이라도 일단 먹여 주지 못한다면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는 명령 불복종, 반란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깐. 병영에 주둔해 있을 때 예니체리나 카피쿨루같은 오스만 장병들은 하루에 약 3,000칼로리 정도의 열량을 섭취할 수 있을 정도의 식사를 했다. 320g의 빵, 160g의 건빵, 160g의 쌀에 192g의 양고기, 80g의 버터로 구성되어 있었다. 17세기에는 5만 명이 넘는 수도의 예니체리를 위해 오스만의 유럽 영토에서 300,000마리의 양떼가 보내졌다고 한다.
17세기 프랑스의 여행자 Jean de Théveno는 오스만 군대는 절대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으며, 온 땅으로부터 그들의 주둔지로 음식을 가져온다고 평했다. 발칸의 경우 오스만은 이 지역의 수많은 강들을 이용해 원정군에게 비교적 많은 식량을 공급할 수 있었다. 또한 이스탄불부터 해서 오스만 지배 헝가리(오스트리아와 항상 일전을 벌여온...)까지 멘질-하네(menzil-hane)라고 불리는 식량 창고가 있어 군대가 이동할 때마다 이곳에서 보급을 받고, 적진으로 넘어가면 그제서야 같이 가져온 식량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군대가 한번 움직일 때 대체 얼마 정도의 식량이 필요했을까. Perjes의 연구에 따르면 90,000명의 병력과 40,000필의 말이 30일간 움직일 때 필요한 식량을 공급하려면 낙타 30,000마리가 7,600t의 양을 운송해야 했다. 무라드 4세의 1638년 바그다드 원정 시 하루에 1인당 최소로 필요로 했던 식량이 약 600g의 빵과 600g의 비스킷이었는데, 20,000명의 예니체리와 시파히 군과 말과 운송용 소를 먹이려면 두세 달 간의 원정기간동안 35,000~55,000마리의 낙타가 필요했다고 한다. 물론 빵과 비스킷만 먹인 것이 아니라 고기도 먹였는데, 같은 원정에서 21개월 동안 217,279마리의 양을 먹어치웠다고 한다. 발칸과 같은 지역이라면 흑해나 강을 통해 해상 운송이 가능했지만, 이라크와 같은 동방 지역의 경우는 쌩으로 육로 운송을 해야 했으니 오스만 군이 그 지역에서 특히나 고전을 한 게 무리는 아니었다.
중세 군대에 요리사가 항상 붙어있거나 단위 병력 수준에서 조리가 이루어진 것 역시 식량이 조리된 상태로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족 장교들은 그를 따라다니는 당번병 혹은 고용된 민간 요리사가 조리를 했고, 일반 사병들도 밀가루, 고깃점, 물고기, 야채, 과일 등의 원재료를 일정량 보급을 받아 5~10여명 수준의 배식조 단위로 직접 조리해 먹었다. 조리를 전담하는 조리병이 생긴 것은 고작 100년밖에 안됐을 정도로 상당히 최근이다.[16][17] 그런데 만약 밥 먹다 말고 갑자기 비상 사태가 나거나, 취사할 여건이 전혀 안 되거나, 급히 부대를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밥도 못 먹고 급하게 이동하거나 뜻하지 않게 건너뛰는 상황이 일상이 되어버린다.
다만 위의 글들은 고대 게르만 쌍무적 계약관계→중세 봉건제로 이어진 서양 기준에서 쓴 글이다. 군주가 도시와 계약을 맺거나 영주가 식량을 군주에게 보급하거나 중세 군인들이 대부분 용병이라 계약하면서 음식의 질을 따졌다는 것은 동아시아의 역사와는 잘 맞지 않다.

3.3. 근세



스튜와 해쉬로 된 군인들의 식단 재현 영상.[18]
이들에게 보급된 건빵은 무식하게 딱딱해서 오직 바구미같은 벌레들만이 쉽게 갉아먹을 수 있었는데, 해군 함선같이 동물을 키울 수 있는 공간적 여유가 있을 경우 그 벌레들을 에게 먹여 키워서 나중에 닭을 잡아먹었다는 기록도 있고, 상황이 극단적으로 처절하다면 닭을 거치지 않고 벌레를 그냥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충식 항목을 보면 단백질 섭취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효율적인 방법이긴 했겠지만, 위생이나 심리적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일부 인원들은 벌레먹은 건빵이 이리저리 난 구멍 덕에 덜 딱딱해 먹기 쉽다고 좋아하기도 했다.
한편 짐을 줄이고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동물은 끌고 가지만 조리기구는 챙겨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 짐승을 잡아서 그 생가죽을 솥 삼아서 걸고 그 안에 물과 고기를 집어넣어 삶아 먹었다. 그냥 태우면 잘 타는 소재라도 물이 끓는 동안은 그릇이 타지 않기 때문이고, 가죽은 방염 피복으로 쓰일 만큼 내화성도 있다. 수천년 전 금속기를 사용하지 않은 문명이 가죽 냄비에 달군 을 넣는 방식을 고안한 이래 나름대로 오래 검증된 방식이기는 하나, 이런 식으로 조리하면 생가죽의 누린내까지 음식에 우러나와 버린다. 충분한 조미료가 있다면 어떻게 수습이 되었겠지만, 조미료를 따로 챙겨줄 환경이면 조리기구도 챙겨줬겠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군은 계급에 따라 3가지 밥상을 받도록 규정되었다.[19] 고급군관은 천자호반이라고 하여 밥과 채소, 절인생선, 고기, 두부, 술 3잔을 받았고, 하급군관은 지자호반이라 하여 밥과 채소, 고기, 두부를, 일반 병사들은 인자호반이라 하여 밥과 절인새우/새우젓과 두부를 받았다. 여기서 보면 두부는 항상 들어가 있는데, 명나라군은 조선 측에 말단병사까지 반찬으로 두부를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두부는 콩으로 만드는 음식이라 가격도 과히 비싸지 않은데다, 조선 두부가 맛있다는 것은 조선 초기부터 명나라에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두부를 먹는 명나라 군대야 입이 즐거웠겠지만, 그 두부를 만들기 위해 콩을 삶고, 갈고, 짜서 굳히는 조상님들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실제 때 맞춰 두부를 만들지 못했다고 조선 관리가 명나라 군사들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한편으로 당시 조선군의 식단은 당상관(고위 지휘관)은 밥과 나물, 젓갈, 어육전, 소고기장국이었고, 당하관(하급 지휘관)은 밥과 무짠지, 쇠고기장국, 일반 병사들은 밥과 간장, 소고기장국이었다.
수군의 경우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로 보면 대략 알 수 있는데, 고위 지휘관들은 물론이고 병사들까지 술을 자주 먹었다는 기록이 많다. 한 번은 수영 전체가 밤새 1천 동이 넘는 술을 마시기도 했다고[20]. 이순신은 고기를 육해공으로 구분해 놓았는데, 육고기는 소고기, 돼지고기, 사슴고기, 개고기 등을 제주에서 지원 받았다고 하고[21], 물고기는 전복, 대구, 청어, 숭어, 조기, 고래 등을 먹었다고 한다. 특히 청어잡이에 중시하여 청어를 많이 잡아 군량과 무기를 조달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날짐승은 꿩을 빼면 기록에 없는데, 닭은 따로 군영에서 키우거나 보급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22].
이 밖에 난중일기에서 수군이 먹은 것들로 여러 가지 떡, 국수, 약식, 칡, 팥죽, 홍시와 곶감, 참기름, 꿀, 무, 연포, 수박, 동아전, 귤(!) 등이 나오는데, 앞서 언급된 육군과 비교해서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군이 다들 기피하는 병종이기 때문에 충무공이 현대의 해군처럼 식단에 여러모로 신경을 써서 사기를 진작 했던 것으로 보인다.
쌀은 섬에 둔전을 일구거나, 상선에 통행세를 받아 마련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이순신이 중요하게 관리했던 것은 무였는데, 무밭을 감독할 사람도 따로 두고, 이와 관련된 보고도 상시적으로 받았다.
참고로 조선시대 국수는 가루를 소주에 담궜다가 말리는 과정을 몇 차례 거친 다음에 가공했다고 한다. 알콜을 방부제 삼아 면이 상하는 것을 막으려 한 듯 하다. 전투 상황 먹는 주먹밥의 경우도 소금과 식초를 쳐서 보급했는데, 이렇게 하면 쉬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 주먹밥은 현대 한국군도 작전 중 이용하곤 하지만 꽤나 식중독 사고를 잘 일으키는 관계로 여전히 편의성과 위험성이 공존하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전국시대 당시 아시가루들이 농번기 때에는 농사일을 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병사로 일하는 구조였다. 그랬기 때문에 대부분 농번기 때는 전투를 쉬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그로 인해 군용 보급식량 역시 그렇게 긴 보존기간을 갖는 편은 아니었다. 보통은 농민=병사 였다보니, 지급되는 쌀과 부식 외에는 각자 알아서 준비해야 했으며 쌀은 1일에 6홉, 소금은 10인에 1홉, 된장은 10인에 2홉이 지급되었다. 1홉은 약 0.18리터 인데, 6홉은 약 1.1리터(약 900g)에 달하는 양으로. 양으로 밥으로 지으면 대략 2.1kg에 달해 결코 적은 양은 아니었다. 대개는 하루 두끼를 2홉씩 먹었지만 전투하느라 밥을 지을 시간이 없을 경우 밥은 하루에 한번만 하여 2홉을 바로 먹고, 나머지 4홉은 허리에 동여메고 나중에 먹었는데[23] 보통 현미가 지급되었으며, 정미된 흰쌀도 있긴 했으나 하급 병사들에게는 지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 지휘관급 이상의 무사들에게 지급되었으며, 부식은 거의 없었고 위에서 언급된 소금과 된장만으로 밥을 먹었다. 매실장아찌나 절인야채, 때에 따라서 생선포 등의 보존식품은 각자 집에서 만들어 챙겨와야 했는데, 이 때문에 농민을 병사로 부리던 다른 다이묘와는 달리 상비군 체계로 군을 움직인 노부나가의 경우 한 병영에서 공동생활을 시켰던지라 다른 부식을 챙길 방법이 없었기에 병사들의 피로나 사기에 악영향을 주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심했다. 된장은 대개 토란 줄기에 절여서 토란줄기를 잘라 씹어먹거나 물에 넣어 즉석으로 국을 만들어 먹을 때 사용되었으며 필요한 경우 콩과 누룩을 짚단에 넣어 전쟁중 즉석으로 된장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금의 경우 대개 작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국에 넣어 간을 맞추며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투중 시간이 없을 땐 그냥 밥과 같이 집어먹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최소한으로 짐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조리도구 등은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때문에 대개 먹을 그릇은 아시가루들의 가사(삿갓 모양의 투구)를 뒤집어 이를 밥그릇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찬도 부실한데다가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동물성 단백질도 필요하다보니 병사들이나 무사들은 종종 야산에서 들짐승과 생선을 잡았으며. 당시 일본 사회가 불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 형태가 변질되고 무엇보다 '''본인들도 살아야 했기에''' 의외로 그렇게 얻는 단백질의 양이 많은 편이었다. 또한 수송의 어려움과 보존의 어려움, 그리고 병사의 사기를 위해 적지의 밭과 마을은 약탈대상이 되기 때문에 보통 민심 이반을 우려해 약탈을 금지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도리어 약탈을 막는 쪽이 싸움에 이겨도 경제적, 정치적 데미지를 입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적국의 식량을 빼앗아먹는 것은 훌륭한 군사행동으로 취급되었다고 했기에 그것을 임진왜란에서도 적용하려 했다가 조선인들의 반감을 사고, 이순신과 의병들의 활약으로 보급에 차질이 발생했다.

3.4. 근대


남북전쟁 당시에 북군 육군은 병사들에게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베이컨)와 건빵, 커피를 지급했다. 근데 이걸 어떻게 해 먹는지는 병사 개개인의 역량에 맡겼기 때문에 병사들은 괴상한 식사를 만들어내거나 고참들에게 레시피를 전수받아야 했다고. 건빵의 경우, 하드택(Hardtack)이라고도 하며 여유가 있으면 그냥 먹기보다 으깨어서 가루로 만든 다음 소금과 후추등 조미료를 첨가해 스프처럼 끓여먹거나 반죽을 해서 오늘 날의 팬케이크처럼 다시 불에 구워 먹었다고 한다. 북군보다 열악했던 남군 육군은 식량으로 땅콩을 지급했는데, 이걸 삶아먹기도 하고 볶아서 커피 대용으로 차를 끓이는 등 알아서들 먹었다.

1차 대전 때 영국 왕실 근위대 소속 리버풀연대의 스미스 이병[24]이 경계근무 중 점심식사 시간이 되자 스스로 잡탕 콘비프 스튜를 만드는 영상이다 신선한 감자와 당근[25]을 썰고 염장된 쇠고기 통조림을 따서 조금씩 넣고[26] 맛을 돋우기 위해 배급받은 비스킷을 부셔서 같이 넣고 물을 살짝 부은 후[27] 참호 모래주머니를 칼로 잘라서 연료로 써서 불을 붙힌 후 재료를 모두 섞은 반합뚜껑에다 숟가락을 이리저리 저어가며 익었다 싶을때 동료와 함께 싸제 HP소스를 넣고 좀 더 섞어준 다음에 남은 20분의 점심시간 동안 먹는다. 1시간 동안의 점심식사 시간에 제때 못 만들면 먹지도 못하고 버려야 한다는 나레이션의 언급에서 1차 대전 당시 병사들의 열악했던 처우를 볼 수 있다.
루리웹의 한 유저가 1, 2차대전의 병영식을 재현 했다. 많은 사진과 설명으로 따라 만들기 쉬우니 맛이 궁금한 위키러들은 한번 만들어 보자.
1차대전 영국군 참호요리[28]
1차대전 영국 해군 함상식
1차대전 독일군 슈니첼과 맥주수프
2차대전 미군 덤플링 치킨 스튜
2차대전 미군 엘 란초 스튜
2차대전 미군 미트볼 스파게티[29]
2차대전 미군 고등어 캐서롤
2차대전 미군 + 일본군 카레
2차대전 영국군 카레
2차대전 호주군 카레
2차대전 독일군 굴라시
2차대전 독일군 피셸스타이너 거뮤제아인토프
2차대전 소련군 보르시
2차대전 소련군 까샤 + 쿨레시

4. 국가별 병영식


참 당연한 것이지만 결국 군대의 병영식이라는 것은 그 나라의 빈부(貧富)가 큰 영향을 끼침을 알 수 있다. 부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의 병영식은 퍽 호화롭거나 일반 집에서도 꽤 먹을 만해 보이는 반면, 익히 알려진 빈국의 군대 밥은 거의 개밥으로 보일 지경. 그래도 밑에 다 읽어보면 좋은 소리 나오는건 별로 없다.[30] 몇몇 지역에서는 아무리 잘해주고 싶어도 종교적 이유로 병영식 개선에 난감한 곳도 있기 때문이다.[31]

4.1. 대한민국 국군




4.2. 독일 연방군



스테이크에서 완두콩 수프까지
(영상 출처: 독일 연방군 공식 유튜브)
1987년 당시 서독군 병영식의 모습.

4.3. 러시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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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 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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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막장이던 1990년대는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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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모스크바 방면 부대의 식사.

러시아군의 식사는 수프를 중심으로 하는 러시아 요리에 기반한다. 주식은 카샤(죽), 흘레브(빵), 시(수프) 위주로 나오며 파스타 종류도 상당히 많이 나오는 편이다.
역사적으로 러시아 제국, 소련, 러시아를 거치며 국가적 위기가 발생할 때 마다 병영식에도 큰 영향을 주어 다양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 러시아 제국 : 러시아 제국 후기, 러시아 제국 해군은 오랜 기간 누적된 갖은 국가 내부의 모순로 사회적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 폭발 직전까지 몰린 상태에서, 수병들의 식사로 제공될 예정이었던 쇠고기가 벌레 먹은 덕분에 포템킨 반란의 직접적인 신호탄이 되었다.
  • 소련 : 소련 건국 초기, 제2차 세계대전독소전쟁의 발발로 미국의 원조가 있기 전에는 배게 삼아 갖고 다니는 딱딱한 흑빵-일명 베개빵-이 전투식량이었을 정도였다. 다만 소련이 초강대국으로 등극한 이래로 국방예산에 돈을 쏟아부었기에 그럭저럭 먹을만한 수준으로 개선되었기는 했다.
  • 러시아 연방 : 러시아 건국 초기, 소련에서 러시아 연방으로 소련 붕괴 직후 모라토리움을 선언할 만큼 국가의 재정이 심각하였기에 질적인 면에서 굉장히 부실해졌다. 이는 2010년을 전후로 경제가 정상궤도에 올라 본격적인 개선이 반영되기 까지 러시아군의 큰 과제로 작용하였다.
러시아 국방부는 국민들의 여론을 바탕으로 병사들의 인권과 처우 개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므로[33] 병사들의 주둔지 개선안을 내세우며 질적으로 매년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주요 부대를 기점으로 개선이 진행되고 있으며 아직까지 완벽하게 모든 시설이 최신화 되어 개선된 것은 아니다 보니 모두가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다.[34]

대표적인 병영식 장비로 고기동 굴절식 궤도 트레일러 DT-30을 야전 취사장비로 운용하는 등 수많은 장비들이 병영식을 위해 운용되고 있다.

4.4. 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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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병영식도 과거에 얼마간의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해당 내용.

주한미해병대 조리병들이 포항시의 캠프 무적에서 식사를 조리하는 모습으로, 한국 현지에서 납품된 식재료들이 보인다.

미군의 경우 일반적인 급식도 있고 뷔페식도 있다. 미군의 예산이 전 세계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미군 병영식도 짬밥일 뿐이다.
미군이 잘 먹는 것은 사실이다. 카투사들이 호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군은 간부식당 조차도 상태가 부실한 경우가 많은데, 한국군이 이라크쿠웨이트에 파병됐을 때 한국군 원사, 상사, 심지어 병장(!)들이 미군 식당에서 풍부한 부식을 건빵주머니에 엄청 챙겨갔다. 물론 미군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면 곧바로 제재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카투사의 미군 식당 이야기
기본적인 구성은 평일 점심-저녁, 휴일 저녁의 경우 주찬(Main menu) 또는 간편식(Short order : 치킨,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으로 각각 4~5개 정도의 메뉴에서 택일한 다음, 샐러드나 과일, 드링크[37], 기타 사이드는 바에서 갖다 먹는 방식이다.
논산에서 기초훈련 뛰는 카투사 신병의 희망 잭슨 버거가 바로 Short order 메뉴. 평일 아침은 주찬이 오믈렛이나 소시지 등으로 바뀌며, 여기에 토스트나 팬케이크, 그리츠 등이 덧붙는다. 부대 지휘계통의 관심에 따라 현지화도 이루어지는데, 주한미군 식당은 당연히 김치가 들어오고 쌀밥도 있다.
영내 식당[38]은 부대 직영이거나 민간 위탁인 경우로 나뉘는데, 한국에서 Area I(의정부 등 경기 북부)은 주요 대대 소속으로 조리병이 배치되어 주임원사의 관리를 받지만 캠프 잭슨이나 용산에서는 민간 위탁으로 한국 민간인이 식당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39] 덧붙여 각 메뉴는 거의 포장 뜯고 핫플레이트에 구우면 끝나는 수준으로 납품되고 있어서 조리병도 딱히 요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오믈렛은 굽는다.
미군의 급식기본수당(Basic Allowance for Subsistence)은 2014년 기준으로 월마다 사병은 357.55달러, 장교는 246.24달러이다. 출처 하루로 치면 사병은 12달러에 가까운데[40] 한국군의 두 배 정도이며 자위대의 1.5배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E-7 이상의 부사관과 장교는 돈으로 지급이 되기 때문에 D-FAC에서 식사를 할 경우 돈을 내야 한다.
문제점이라면 대침체 이후로 미국의 경제도 많이 어려워져 군비 축소를 시도했었고, 병영식의 질이 조금씩 낮아졌던 안타까운 상태였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주한미군 병영식이 이렇게 화려한 이유는 현지 민간 업체들에게 경쟁납품을 시키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에서 군인이 요리에 참여하는 것은 징계 차원에서 감자깎기나 설거지, 식당 청소 등 식사지원을 맡기는 정도가 전부이다. 하지만 본토 내 주둔지의 경우 당연히 조리병들이 조리하며, 조리병들의 근무 여건은 같은 미군 내에서도 악명높은 편이다. 해군, 해안 경비대의 경우 전 수병들이 돌아가며 설거지나 부식 운반 등을 돕는 식사당번 제도가 있어서 무조건 벌받느라 저런 일을 하는 건 아니며, 가벼운 규정 위반자에게 추가 당번일을 내보내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는 SOFA 등 현지 주둔 국가와의 협약 때문으로,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사전 합의된 정도의 정해진 양의 일자리를 현지인들에게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41] 현지 업체에서 전투 지역에 식품 납품을 꺼리거나 업체 내부에서 파업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엔 조리병들이 조리한 음식이나 맛없는 전투식량으로 때워야 한다. 실제로 2001년 아프간 현지에서 푸드 업체들이 파업을 하는 바람에 미군들이 아프간군 병영에서 밥을 얻어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예외적인 사안으로, 음식으로 인한 식중독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 전에 전투식량을 트럭으로 옮겨와 전투식량을 먹이면 먹였지, 현지에서 '''공식적으로''' 타국군 또는 현지식을 조달하는 경우는 '''없다.''' 또한 민간인 조리사의 배치가 불가능한 함정이라는 근무지 특성상 해군, 해안 경비대의 조리 직별은 숫자도 많고 하는 일도 실제 조리 임무이다. 또한 대부분이 직접 밥을 하는 전문 인력이므로 타군보다 전반적으로 취사 실력도 좋은 편이다. 민간에서 조리 분야로 취업할 때, 해군이나 해경, 민간 선박 취사 업무 경험자는 그 경력을 후하게 쳐 줄 정도다. 실제 원양어선이나 컨테이너쉽 같은 장거리 선박의 요리사들은 실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넓은 대양과 높은 노동강도에서 낙이라고는 먹는 것 밖에 없으니 실력 좋은 요리사를 쓰는 것이다.
아무튼 이쪽도 자기네 짬밥에 대해 좋은 소리는 없다. 병영에서 먹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를 밖에서 먹고 오기도 하고[42], 좋은 고기가 들어와도 업자와 조리병들이 다 태우거나 맛없는 회색 덩어리로 만든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거기다 대량으로 만들기 편하자고 패스트푸드 형태의 열량이 높은 구이와 튀김류의 식단으로 인해 비만 문제[43]가 지적되고 있다.
이외에 근래에는 드물지만 21세기 초입만 해도 미군부대 식재료나 심지어 잔반을 빼돌려 유통시키는 범죄가 벌어지곤 했다. 2003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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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지에선 이렇게 조촐하게 먹기도 한다. 점심은 MRE로 때우고 아침, 저녁에 Field kitchen 밥이 나오는 식이다.
전쟁터(이라크)에서는 이렇게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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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주 방위군 육군의 배식.
그리고 미국 예비군 짬밥은 충격과 공포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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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의 바비큐 파티.[44]

4.5. 북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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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시궁창
당연히 이것은 김정은이나 고위급 인사들이 나올때나 먹는 특식이고 대다수 부대에서 묵은쌀이나 강냉이로 만든 밥이나 잡곡밥에[45] 채소국, 반찬이라고 해봐야 짠지나 나물 정도가 나오는 수준이다. 대다수 부대의 식사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한군에서 1960년대에 먹을법한 식사를 하는 수준에 머물고있다. 북한의 최전방 군인들이 직접 농사를 짓고 있는 걸 한국군에서 관측할 정도로 여유가 없다. 여유가 있는 소수의 부대에서는 이보다는 좀 더 풍성하게 먹는데 남한군에서 197~80년대에 먹을법한 식사를 하는 수준이며 이런 부대는 별로 많지 않다. 사실 고기가 없다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채식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할정도로 배식이 심하게 부실한 이유에 대해서는 북한군 내부의 부정부패 문제때문인데 사실 원칙대로라면 북한군의 식단이 심하게 부실할 이유는 없지만[46] 쌀을 장마당에 내다 판 다음에 차액을 상관들이 챙기고 남은 돈으로 값싼 옥수수를 사와서 먹이는 경우가 태반이다보니 그 만큼 군인들이 부실한 식단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예산 자체가 부실한것이 원인이지만 내부의 부정부패도 큰 문제인것. 실제로 기강 단속을 할때마다 식단이 개선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다만 이렇게 개선된 식단도 남한 기준에서 초라하기는 하다. 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빈곤함 문서에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해당 항목으로.

4.6. 영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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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 공개하는 사진이니 저렇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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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그 자체인 병사들이 자신의 SNS에 올린 최근 사진 중 일부.
밥이 이렇게 개판인 것은 최근 급양 업무를 민간에 외주하는 과정에서 크게 문제가 생긴 탓이다. 최저가 입찰과 비리가 종합 선물 세트로 들어갔다는 듯. 사진에 적힌 sodexo가 그 급식 업체 이름이다.

1940년 당시 영국 병영식 제조 모습. 빵, 페이스트리, 셰퍼드 파이, 수많은 감자 요리와 삶은 양배추 등으로 구성되었다.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식사는 참을 수가 없어요."[47]

軍 급식에 폭발한 영국군 장병들과 입을 틀어 막으려던 지휘부. 더 가관인 것은 국방부의 대응인데, 간단히 말하면 "사진올리면 고소할 꺼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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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 전쟁 당시 섬에 고립된 아르헨티나군이 빵과 물로 연명하고 있을 때, 영국군은 본토에서 아이스크림까지 후식으로 공수해 먹었다. 그러나 참전 장병은 전쟁 중에 지급된 짬밥이 맛없었다며 깠다.

4.7. 일본 자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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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므로 "병영"식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실제로는 군대나 다름없으므로 여기에 서술.
식사를 식판이 아닌 트레이에 주는 경우가 많다. 해상자위대 같은 경우엔 식판에 주기도 한다. 배를 타고 다녀야 하는데 트레이로 담아주면 식후에 설거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겉모습만 보면 괜찮아 보이는데 실제 질은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다. 건더기가 드문 똥색 카레에 식용유로 만드는 이미테이션 치즈, 삶은 계란에 샐러드... 후르츠 칵테일은 그냥 통조림 딴거 퍼준 거다.
식사비용은 하루에 1인당 850엔인데 이는 재료비만 포함된 수치다. 일본 내에서는 "젊은이들한테 너무 빈곤하게 먹이는 거 아니냐"고 비판 여론이 많다. 한국의 웹에 보면 자위대 식사 사진들이 돌아다니는데, 사실 그 사진들은 체리피킹에 가깝고, 홍보용이나 부대 방문 행사 등에선 잘 주지만 평소엔 부실할 때도 많다. 외부인 방문시에 390엔을 지불한다고 한다.
항공자위대는 철저하게 자체 급양을 돌리지만, 육자대의 경우엔 민간 위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러한 점은 자위대가 사실 군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군대의 경우 전시 상황 하에서 취사능력이 중요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경찰보다 좀 더 센 치안 유지'''가 목적이기 때문에 야전 취사는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48] 물론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은 것은 아니지만. 해상자위대는 타국 해군들과 마찬가지로 장기간 배를 타고 떠다녀야 하므로 민간위탁 비율이 낮을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 특히 함정 근무자 특성상 타 자위대보다 급양 수준은 매우 높다. 특히 카레는 수시로 함정별 경연 대회를 하고 민간에도 조리법을 공개할 정도로 우수하다. 육상의 경우는 함정보단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영내의 경우 식비가 무료이며, 영외 인원은 영내식당에서 밥을 먹을 경우 돈을 내야 한다. 다만 급여 내역에 식비가 나온다. 영내자 식당과 간부용 식당이 따로 있지만 메뉴는 똑같다.

4.8. 중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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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도 대부분의 병영식이 뷔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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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군 시절부터 중국군의 높으신 분들은 장병들에게 질 좋은 식사를 강조했다. 안 그러면 민간인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니까. 그러나 나라가 가난했던 1990년대까지 병영식의 질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래도 1980년대 이전에는 이것도 꽤 좋은 식사라는 평을 받았다. 일반인들은 식량을 배급표 받아서 사왔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군대 식사가 상대적으로 풍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90년대에 일반인들의 식사는 점차 풍성해지는데 군대 식사는 그대로였다가(...) 2000년대 이후로 이른바 급식 혁명이 일어나서 많이 개선된 상태고, 과거 식판에 정량배식으로 담던 것이 접시에 담는 자율배식으로 바뀌었다. 2007년에 중국군의 병은 1일에 11위안을 1일 식비로 썼다. 당시 중국의 돼지고기 1kg이 10위안이었다. 중국에서는 식생활 문제가 상당히 민감하다. 한때 한국에서 중국의 가짜 식품들이 이슈가 되긴 했지만 그런 식품들의 소비가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중국이기 때문에 오히려 중국은 한국보다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49] 중국 정부는 이런 문제를 일으킨 범죄자들에게 사형을 때려버린다. 중국의 생활 수준이 나아지면서 이 문제에 굉장히 민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군에도 간부와 사병 간의 식사에 질적인 차이는 존재하고 군구 별로도 차이가 있다. 경제 사정이 나쁜 지방의 군구면 병영식의 질도 떨어진다.
다만 중국군의 비리는 조 단위로 놀 정도로 문제도 심각하고 언론통제가 심한 국가이기도 해서, 중국의 병영식에서 과연 별 문제가 없는지 의심해 볼 여지는 있다.[50]

4.9. 터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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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잘 나온 것.

이건 조리병과 한판 크게 붙어야 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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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군에서는 맨날 콩과 칠면조만 준다.[51] 그리고 가지로 만든 요리에 대한 악명도 높다. 그래서 터키군 병사들도 외출이나 휴가를 나오면 피자를 자주 먹는다고.
터키군은 병영식의 검역이 부실하고 군납비리가 심해서 곧잘 식중독 사건이 터지고 있다. 위에 조리병과 배틀 떠야 할 메뉴의 사진도 식중독으로 75명 감염, 3명 중태라는 기사에서 올려졌던 것.

4.10. 프랑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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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프히트(홍합-감자튀김), 살라미, 브리치즈가 나오는 식사.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의 식사 자리. 장소는 서 아프리카 말리.

4.11.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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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카불, NATO군의 크리스마스 병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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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 내전 당시 코소보에 주둔 중이던 알바니아군에서 배식 준비를 하는 중이다.[52]
필리핀군 짬밥.[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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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군[54]
스웨덴 기갑부대의 야전 취사[55]
우크라이나군 짬밥. 러시아군과 호각을 다툴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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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국경에 주둔하고 있는 이탈리아 육군 조리병.

NATO 신속대응군 소속의 이탈리아 지원단 조리병이 빵을 구울 준비를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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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지대 주둔군의 야전식
일요일 아침 식사는 간단하다.

점심은 이렇다.

인도는 종교에 따라 금지되는 식품들이 있기 때문에 병영식 개선이 난감하다.

5. 관련 문서



[1] 미국이 보급품을 만들 능력이 없거나 그걸 수송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국 지도에 그려진 도로가 미국에서 보던 깔끔한 도로라고 잘못 알고 엉터리 보급계획을 짜는 바람에 수송트럭이 병사들에게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지게와 조선낫으로 무장한 미국군 병사들이 태백산맥을 뚫고 보급을 전달했을 정도.[2] 제임스 카디널(James Cardinal) 당시 미육군 1기병사단 5기병연대 I중대 소속.[3] 하도 배가 고파서 부대에 있던 한국인(카투사)들에게 달러를 주고 먹을 것 좀 구해오라고 보냈는데, 소나 닭을 가져올 줄 알았던 카투사가 잡종개 한 마리를 끌고 왔다고. 당연히 제임스과 미군들은 식겁했지만, 결국 3주 후에 굶주림에 지쳐 잡아 먹어버렸다.[4] 한번은 왕이 결혼기념일이라 왕비와 오붓하게 식사를 하고 싶어서 신하에게 밥을 궁전으로 배달해 오라 지시한 적이 있었는데, 신하의 반응은 '''"개소리 집어치우고 빨리 튀어 오십쇼"''' 였다.[5] 돼지는 가축 중에 양과 더불어 누린내가 심한 축에 속한다. 현대에야 향신료와 조미료, 숙성 등으로 누린내를 잡지만 저 당시에 그런 게 있을 리가... 누린내나는 고기에 비린내나는 선지까지 때려넣고 채소 한점 없이 딸랑 소금과 식초만 썼으니 맛과 향이 어떨지 짐작할 만 하다.[6] Polenta. 옥수수가 전래된 이후에는 옥수수 가루로 만드는 아침 식사용 스프를 가리킨다.[7] 당시 로마인들의 취향은 폭신폭신한 빵보다 단단한 빵이 인기가 더 있었다. 부풀려서 만든 빵은 양을 속이는 듯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8] 사실상 식초. 맛은 접어두더라도 건강에는 좋았을 것이다. 실제 大카토는 평소에 시어진 포도주를 물에 타서 마셨고, 매우 피곤할 때만 제대로 된 포도주를 마셨다. 그 덕분인지 카토는 당대에 85세라는 상당히 많은 나이까지 장수했다.[9] 로마 병사들은 이 식초가 된 포도주에 물과 , 허브, 소금을 타서 마셨다. '''포스카(Posca)'''라고 불린 이 음료수는 박테리아에 오염되기 쉬운 맹물을 식초의 아세트산으로 살균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포스카를 지급하지 않고 그냥 물을 마시게 하는 것 자체가 가혹행위 혹은 형벌이었다. 여기에 약간의 소금을 첨가하여 전해질 보충을 하기도 했다. 현대의 기준으로는 스포츠 음료와 정수제의 조상격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갈증을 호소할 때 그를 안쓰럽게 여긴 로마 병사가 해면에 포스카를 적셔 건네준 바 있다.[10] SHA, Hadrian X, 2[11] 로마에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만 소의 도축이 허용된다.[12] 켈트인들도 포도주를 마시기는 했지만, 손님에게 대접하는 등 귀한 대접을 받았다.[13] 다만 이건 틀린 말인데 손자병법에서 취하라는 건 어디까지나 적의 군량이지 민간 약탈을 허용하지 않았다. 애시당초 민간 약탈은 사령부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일이므로 옛날부터 제대로 된 장수라면 군법으로 엄히 다스렸다.[14] 손자병법의 예를 드는 경우가 있으나, 손자는 이전 장에서 '명장은 보급로를 길게 늘이지 않는다' 등으로 보급의 중요성을 몇번 강조하고 있다. 손자병법 내부에서 약탈을 권장하는건 '''남의 것을 뺏어서 내가 쓰면 적에게 수십곱절 손해니까 어쩌다 얻었으면 요긴하게 쓰라'''는거지, 눈 돌아가서 약탈하란 소리가 아니다.[15] 물론 '전투 중'인 현대 군인들이 4200킬로칼로리를 소모하는 것이고, 중세 병사들은 행군만할때나 주둔만 할때도 저만큼 먹었다[16] 조리병이 생겨난 것은 1차대전 이후, 정확히는 1차대전 초반 이후이다.(관련글)[17] 또한 개개인, 혹은 몇명 정도의 소규모 그룹이 각자 조리도구를 챙겨야 했는데, 크기와 무게탓에 가지고 다니기 번거로워 조리도구의 종류나 수량, 크기등이 제한되면서 짬밥의 질이나 종류에 큰 한계가 생기기도 했다.[18] 단, 이건 재료가 풍족한 때나 만들어 먹는 고급이며 물자가 부족한 야전에서는 풍족한 식사를 기대하기 어려웠다.[19] 시장경제가 발달하지 않은 조선에서, 명에서 하던 것처럼 은자로 식량을 사려고 하니 살 수가 없어 보급문제가 발생, 약탈이 빈번히 발생했다. 이에 따라 명나라 총관이 규정한 것이긴 하나, 이건 약탈에 대비한 배급기준에 가깝지 실제로 매번 이렇게 지급되었다 보긴 어렵다.[20] 난중일기를 보면 병사들이 술 마시는 것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편이다. 다만 술을 훔치거나 빼돌리는 놈들에겐 알짤 없이 곤장을 쳤다.[21] 표범고기도 있는데 약으로 쓴 듯 하고 가죽은 조정으로 보냈다.[22] 실제 조선시대 기록을 봐도 닭보다는 꿩을 더 많이 먹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선시대 토종닭은 '''무진장 질기기 때문이다.''' 이것을 먹을 만하게 만들려면 조리시간도 4~5시간 가량으로 굉장히 길다. 괜히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남아있는 게 아니다.[23] 대개 떡이나 볶아서 과자처럼 만든 현미, 또는 쪄서 말린 밥이 지급되었다[24] 이 영상 말고도 유튜브로 검색하다 보면 스미스 이병이 영국의 전통인 티타임이 되자 홍차와 간식을 준비하는 영상도 있다.[25] 영국군도 채소를 배급하긴 했지만, 나레이션의 언급에 따르면 배급 채소는 대개 동결건조되어 비쩍마른 것이라 맛이 없었다. 채소는 당연히 농부를 협박해서 훔친건 아니고 텅빈 농장에서 가져온것으로 보인다. 나래이터가 프랑스인 농부라고 언급한것도 있고...[26] 교대 근무자도 만들어 먹어야 하니까[27] 나레이션의 언급으로는 물을 너무 많이 부으면 핑크색 요리가 된다고 한다(...).[28] 위에서 소개된 스미스 이병의 짬밥이다. 사용한 반합은 무려 2차대전때 쓰이던 물건이라고 한다.[29] 정확히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허버트 소블이 만들라고 요구한 스파게티를 재현한 것.[30] 파라과이 군에 있다가 한국군에서도 복무하는 장병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국군은 파라과이 군보다 짬밥 질이 좋다고 한다. [31] 특히 제약이 많은 코셔 푸드와 힌두식이 그렇다. 종교에 따라 금기시되는 음식을 감안한다면 그나마 할랄 푸드가 그나마 양질에 가깝게 만들 수 있다.[32] 어깨 견장의 K는 사관생도를 의미.[33] дедовщина(데도브시나)로 지칭되는 병영부조리의 경우 Дисциплинарный устав ВС РФ, Глава 3 «Дисциплинарные взыскания»(러시아 연방의 군사 훈장 3장)에 의한 처벌을 규정하는 등 러시아 국방부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34] 2013년 극동방면 부대들의 급양 상태가 당국에 의해 적발되었으며뉴스 음식 저장고에서는 쥐의 배설물이 널려 있고, 통조림은 녹슬었으며, 구더기와 벌레가 나오는 사건이 발생하였다.[35] 이 사진은 이탈리아 비첸차의 미합중국 육군 기지의 '''추수감사절''' 때의 모습이다. 추수감사절 등 몇몇 기념일엔 사진처럼 고급 장교들(연대장, 대대장 등)이나 고급 부사관들(주임원사 등)이 정복 차림으로 직접 배식하는 게 미군의 전통이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 또한 조지 W. 부시 이래 임기중 한 번 정도는 해외 주둔지나 보훈시설에 가서 배식을 한다.[36] 실제로는 서바이벌 훈련 중에 취사 준비를 하는 중이다. 생존 훈련의 일환이다 보니 실제 살아 있는 가축을 가져와서 도축을 했다. [37] 우유, 주스, 쿨에이드, 소프트드링크 파운틴 등이 있다. 콜라를 타 가고서는 식탁에서 설탕을 왕창 부어마시는 막나가는 인원도 있다.[38] Dining Facility를 줄여 흔히 D-FAC이라 부른다[39] Area I도 한국인 컨트랙터가 끼어 있지만, 취사와 배식은 전적으로 조리병이 담당한다. 한국인은 설거지와 청소 정도.[40] 중국군의 1일 식비는 11위안이다. 달러로 환산하면 1.7달러가 좀 넘는 수준이다.[41] 같은 이유로 부대 환경미화 등도 한국 민간인들이 위탁받아 하는 경우가 있다. 본토 기지에서 그런 잡무는 일부를 빼면 군인들이 직접 한다. 본토에 있는 것보다 심신이 힘든 해외 근무자들의 업무량을 줄여 주는 일종의 공평한 배려이기도 하다.[42] 사실 집밥이나 외식이 더 맛있다고 여기는 건 한국군이나 미군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군인이나 마찬가지다.[43] 현역 군인의 16%가 비만이며, 퇴역자와 그 가족의 80%가 과체중, 33%가 비만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그 때문에 현재 고기와 과자류는 통제하고 있지만, 탄산음료나 초콜렛 음료는 여전히 방관하는 실정이다.[44] 미 해군에서는 적도를 넘거나 행사가 있을 때 저렇게 바베큐 파티를 벌인다. 즉, 평소에는 저렇게 자유분방하게 놀고 먹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미 해군처럼 기지에 입항하기 전에는 세계 여러 대양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기에 집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상실감과 반복되는 일상 때문에 군인들의 사기가 떨어지기 쉽다. 때문에 쉽게 사람의 기분을 올려주는 맛있는 음식을 통해 사기를 올린다고 말하기도 하며, 저런 행사들도 주기적으로 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타국군에 비해서 저런 잔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육군 등 타 군종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매년 한두번씩은 중대나 대대 단위로 바비큐를 한다. 올라가는 고기가 어차피 D-FAC 메뉴에 들어갈 바로 그 고기라는 게 함정이지만, 고된 업무 중간중간에 일정하게 만들어진 짬밥의 형태로 먹는 것과, 휴무를 취하고 자기 취향에 맞게 구워먹는 것하고는 일선 장병들에게는 당연하겠지만 하늘과 땅 차이다.[45] 우리가 생각 하는 그런 잡곡밥 보다는 옥수수밥에 가까운 음식이라고 한다. 아예 옥수수만 넣고 만든 밥도 있다.[46] 물론 북한 기준이고, 남한기준으로 치면 고기 반찬이 별로 안나오기때문에 부실한것은 맞기는 하다.[47] 다큐멘터리에서 영국군 신병이 이렇게 말했다.[48] 자위대 기지들의 주소가 버젓이 구글 지도에 나와있는 것도 같은 맥락.[49] 당연한 게 먹는 거에 장난을 치고, 이러한 먹거리가 자국 내에서 유통되면 자국 안보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전 세계 어디든 마찬가지다.[50] 중국 전투식량은 맛이 없다고 중국 언론에서도 보도된 바 있는데다, 이를 입수해 시식한 유튜버가 배탈이 났고, 초록색으로 변색된 고기를 보여주며 분개하기도 했다.[51] 칠면조 고기는 닭가슴살 만큼이나 퍽퍽하고 맛이 별로다. 더구나 터키군에서는 굽지 않고 삶거나 찌거나 끓이는 모든 요리에 사용하고 있는데, 맛이 나아지지 않는다. 특히 찜요리일 경우 칠면조 고기가 굉장히 질겨진다. 콩은 너무나 많이 줘서 제대하고 나서 콩은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52] 빵을 저렇게 쌓아 놓고 배식 하는 건 2차 대전 때나 볼만한 광경이다.[53] 부들(따갈로그 어로 '먹을거리, 음식'.) 파이트(Boodle Fight)라는 일종의 행사 특식 내지는 회식으로 원래 야전에서 도구 없이 빠르게 식사하는 훈련에서 유래했다.[54] 노르웨이군은 기후변화에 의한 식량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소, 돼지를 비롯한 육류 소비를 줄이고 배추, 무를 비롯한 채류 소비를 늘리기로 했다. [55] 전차 엔진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이용한다고. 실제 스웨덴 뿐만 아니라 타국 기갑부대에서도 엔진의 열기를 조리나 보온에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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