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호/e스포츠

 



1. 개요
1.1. 주요 경력
1.2.1. 개인리그
1.2.2. 팀 단위 리그
1.3. 통산 전적
2. 스타크래프트 1 프로게이머(2000년~2011년)
2.1. 플레이 스타일
2.1.1. 부유한 저그(?)
2.1.2. 평가
2.2. 데뷔와 전성기(2000년~2003년)
2.3. 몰락
2.4. 공군 입대와 공군에서의 경력(2008년~2010년)
2.5. 전역 이후의 활동(2010년~2011년)
2.6. 은퇴(2011년)
2.7. 은퇴 이후 스타크래프트 관련 활동(2011년~)
3. 스타크래프트 1 관련 사담
3.1. 준우승의 설움,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
3.2. 우승도 있다
3.3. 프로게이머로서
3.4. 스타크래프트 예능 활동
3.5. 콩은 까야 제맛
4. 스타크래프트 1 이후 게임 관련 활동(2011년~)
4.1. 스타크래프트 2 도전(2011년)
4.2. 리그 오브 레전드 감독 홍진호(2012년~2013년)
4.3. GG 투게더(2017년)
4.3.1. 1세트: 투혼
4.3.2. 2세트: 신 개마고원


1. 개요


홍진호의 e스포츠 관련 활동을 기록한 문서.

1.1. 주요 경력


> 브루드 워 개인 리그 우승, 준우승 총합 상금 : 5,100만원 + $ 25,000

1.2. 브루드 워



1.2.1. 개인리그






우승 기록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벼룩시장 Find All배 챌린저 오픈 GhemTV 스타리그 우승자
( vs 이윤열, 3:0 )
( 우승 상금: 400만원 )
3차 GhemTV 스타리그
이윤열

홍진호

대회 폐지
2005 Blizzcon Invitational 우승자
( vs 박정석, 2:1 )
( 우승 상금: $ 10,000 )
대회 개최

홍진호

2007 Blizzcon Invitational

{{{#white 우승 기록 }}}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color=#373a3c>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자
( vs. 임요환, 2:3)
준우승 상금 : 500만원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장진남

홍진호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임요환
<color=#373a3c> 2002 KPGA TOUR 1차 리그 우승자
( vs. 임요환, 1:3 )
준우승 상금 : 없음
대회 창설

홍진호

Reebok 2002 KPGA TOUR 2차 리그
홍진호
<color=#373a3c> Reebok 2002 KPGA TOUR 2차 리그 우승자
( vs. 이윤열, 2:3 )
준우승 상금 : 없음
Reebok 2002 KPGA TOUR 2차 리그
홍진호

홍진호

Pepsi Twist 2002 KPGA TOUR 3차 리그
박정석
<color=#373a3c> 2003 Olympus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자
( vs. 서지훈, 2:3 )
( 준우승 상금 : 1,000만원 )
2002 Panas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조용호

홍진호

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강민
<color=#373a3c> TG삼보 MSL 우승자
( vs. 최연성, 0:3 )
( 준우승 상금 : 1,000만원 )
Stout MSL
이윤열

홍진호

하나포스 센게임 MSL
이윤열
WCG 2002 브루드 워 부문 우승
( vs 임요환, 0:2 )
( 준우승 상금: $ 10,000 )
WCG 2001
베르트랑(Elky)

홍진호

WCG 2003
Fredrik Keitel(Fisheye)
Blizzard World Wide Invitational 2006 우승자
( vs 강민, 0:2)
( 준우승 상금: $ 5,000 )
대회 개최

홍진호

WWI 2007
마재윤
  • 2000년
- 8월 청오 정보 통신 NETEL 헌터 맵 2:2 전국 대회( 전국 8개 지역 1~8위 팀으로 구성한 64강 대회 ) 준우승
  • 2001년
- 고수를 이겨라(VS 강도경 0:1)
- 쉐르파'배 오픈 대회 준우승(VS 조성봉 0:1)
- 한빛 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 메가패스'배 CGGL 우승(VS 나경보 1:0)
- 8월 KPGA 32강(VS 박현준 0:1)
- WCG 2001 최종 예선 32강(VS 조정현 0:1)
- 9월 KPGA 16강(VS 최인규 0:1)
-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VS 임요환 2:3) 준우승 상금 : 500만원
- 10월 KPGA 16강(VS 조정현 0:1)
- GGTV StarWars 2001 Ep2
- iTV 라이벌'전(VS 임창덕 1:3)
- 11월 KPGA 28강(VS 장진남 0:1)
- 라이벌 리벤지(VS 세르게이 3:0)
-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4위(VS 김정민 0:2)[1]
- KPGA 12월 Championship 준우승(VS 성학승 2:3)
  • 2002년
- iTV 신인왕전 우승(VS 장진남 3:1)
- 2222002 KT배 온게임넷 왕중왕전 우승(VS 조정현 3:0)
- 1차 KPGA 투어 준우승(VS 임요환 1:3) 준우승 상금 : 없음
- 2002 NAT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 무한 종족 최강전(VS 이재훈 3:2)
- 무한 종족 최강전(VS 김정민 3:1)
- 무한 종족 최강전(VS 박정석 1:3)
- 2차 KPGA 투어 준우승( VS 이윤열 2:3 ) 준우승 상금 : 없음
- 제 3차 KPGA 투어 Mega Match 준PO(VS 박정석 0:2)
- WCG 2002 최종 예선 1위(VS 한웅렬 2:1)
- 2002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3위(VS 베르트랑 2:0)[2]
- 무한 종족 최강전(VS 이재훈 3:1)
- WCG 2002 브루드 워 준우승 ( VS 임요환 0:2.) ( 준우승 : $ 10,000 )
  • 2003년
- 겜TV 고수 초청전 준우승(VS 김정민 1:2)
- 2002 Panas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3위(VS박경락 3:1)[3]
- KTF Bigi배 4대 천왕전 4위(VS 박정석 0:1)
- KTEC KPGA Winners Championship 우승(VS 임요환 3:1)
- 벼룩시장 FindAll배 GhemTV 스타리그 챌린저 오픈 우승(VS 이윤열 3:0) ( 우승 상금 : 400만원 )
- Stout MSL 패자 8강 1차전(VS 변은종 0:1)
- iTV 5차 랭킹전 우승(VS 성학승 3:2)
- 핫 브레이크'배 마스터즈 8강
- 2003 Olympus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VS 서지훈 2:3)[4] ( 준우승 상금 : 1,000만원 )
- 제 1회 여수 Cyber 게임 대회 4대 천왕전 우승(VS이윤열 1:0)
- WCG 2003 최종 예선 16강(VS 김성제 0:1)
- CJ 가야 방송'배 준우승(VS 서지훈 0:1)
- 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 TG삼보 MSL 준우승(VS 최연성 0:3) ( 준우승 상금 : 1,000만원 )
- KBC 파워 게임쇼 4대 천왕전 우승(VS 김정민 2:1)
- KT Megapass 프리미어 리그 P.O.(VS 임요환 1:2)
  • 2004년
- 하나포스 센게임 MSL 패자조 2R(VS 조용호 0:1)
- Spris MSL 패자조 1R(VS 김환중 0:1)
- WCG 2004 한국 대표 선발전 16강(VS 서지훈 0:2)
- EVER 스타리그 2004 4위(VS 박정석 2:3)[5]
- KT Megapass 프리미어 리그, 리그 챔피언쉽 준우승(VS 박태민 0:2)
- KT-KTF 프리미어 리그 4위(VS 이윤열 0:2)
  • 2005년
- IOPS 스타리그 04~05 8강(VS 이윤열 0:2)
- EVER 스타리그 2005 16강
-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1R 3위(VS 강민 2:0)[6]
- 우주닷컴 MSL 패자조 2R(VS 전태규 1:2)
-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2R 우승(VS 강민 3:1)
-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통합 우승(VS 이윤열 3:2) ( 우승 상금 : 2,200만원 )
- KTF 광주 신사옥 준공 기념 스타크래프트 클럽 초청전
- WCG 2005 한국 예선 6조 8강(VS 서지수 0:2)
- So1 스타리그 2005 16강
- 2005 Blizzcon Invitational 우승( VS 박정석 2:1) ( 우승 상금 : $ 10,000 )
  • 2006년
- Blizzard WWI 2006 준우승(VS 강민 0:2) ( 준우승 상금 : $ 5,000 )
- 엘리트 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대전 투어
- 엘리트 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광주 투어
- 엘리트 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서울 투어
-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3위(VS변은종 3:0)[7]
- WCG 2006 한국 예선 F조 2위(VS 김동건 1:2)
- WEF 2006 8강(VS 0:2)
-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24강
- 제 1회 CJ 슈퍼파이트 B경기(VS 임요환 2:3)
- IEST 2006 3위(4강에서 박정석에게 0:2패배. 3/4위전 VS Peter Neate 3:0)
  • 2007년
- 블리즈컨 2007 패자 4강(VS 강민 0:2)
- 서울 국제 e스포츠 페스티벌 128강(VS 주현준 1:2)
  • 2008년
- 곰TV클래식 시즌1 32강(VS 주영달 0:2)
- 블리즈컨 2008 패자 4강(VS 이윤열 1:2)
  • 2009년
- 곰TV클래식 시즌3 128강(VS 김종화 1:2)
- e스타즈 헤리티지 4강(VS 0:2)
- IeSF 스타 인비테이셔널 클래식 준우승(VS 이윤열 1:3)
브루드 워 양대 개인 리그 기록을 살펴보면, MSL에서 준우승을 1회 더 했지만,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훨씬 꾸준했던 것이 특징이다. 이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우승을 1회 더 했지만 MSL에서 훨씬 꾸준했던 이제동과는 대비되는 특징이다.

1.2.2. 팀 단위 리그


2003년 계몽사배 KPGA 팀리그 3위
2003년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3위
2003년 neowiz Pmang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준우승
2004년 Tucson MBC GAME 팀리그 3위
2004년 SKY 프로리그 2004 3Round 준우승[8]
2005년 SKY 프로리그 2004 그랜드 파이널 4위
2005년 MBC 무비스 MBC GAME 팀리그 4위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준우승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3위
2006년 SKY 프로리그 2005 그랜드 파이널 준우승
2006년 SKY 프로리그 2006 올스타전 MVP
2006년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4위
2010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올스타전 MVP
2011년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10-11 준우승

1.3. 통산 전적


스타크래프트 역대 전적
상대 종족
승패
승률
vs 테란
235승 192패
55.0%
vs 프로토스
165승 110패
60.0%
vs 저그
127승 94패
57.5%
총합
527승 396패
57.1%
홍진호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방송사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vs 테란
97전 53승 44패 (54.6%)
47전 27승 20패 (57.4%)
144전 80승 64패 (55.6%)
vs 저그
43전 30승 13패 (69.8%)
31전 20승 11패 (64.5%)
74전 50승 24패 (67.6%)
vs 프로토스
41전 23승 18패 (56.1%)
19전 8승 11패 (42.1%)
60전 31승 29패 (51.7%)
총 전적
181전 106승[9] 75패 (58.6%)
97전 55승 42패 (56.7%)
278전 161승 117패 (57.9%)

2. 스타크래프트 1 프로게이머(2000년~2011년)



2.1. 플레이 스타일


부자스럽고 여러가지 여러 군대에다 해처리 마구 피고 이러는 거 홍진호 아니거든요! 어느 정도 알맞게 먹고 무조건 상대방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재차적으로 공격하던 게 바로 홍진호 스타일입니다!

-

- 20090620 신한은행 프로리그 SKT vs 공군 ACE 3set

지금의 저그도 그런 면이 있지만, 홍진호 이전의 저그는 단순히 빠른 앞마당, 더 많은 자원을 바탕으로 나오는 더 많은 병력으로 승리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 스타일에 도전장을 던진 선수가 바로 황제 임요환이다. 임요환의 해법은 '상대가 자원을 많이 가져가게 놓아두지 않겠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한 타이밍 빠르게 진출해서 자신이 우위에 있는 소수 병력 컨트롤로 이득을 보고, 여기저기 드랍쉽을 날리며 저그를 정신없이 몰아붙여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었는데, 여기에 대응한 게이머가 바로 홍진호다.
홍진호는 기존의 저그와는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자원을 바탕으로 물량을 모으기보다는 끊임없이 몰아쳐서 병력을 교환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런 해법은 프로게이머 변성철이 처음 선보였지만, 변성철의 기반은 빠른 병력 우위와 컨트롤에 기반한 것으로 홍진호가 이해한 개념과는 분명히 달랐으며 임요환 같은 테란을 상대하는 데 애를 먹었다. 예를 들어 1.07 시철 변성철을 포함해 다른 저그들이 즐겨 쓰던 전략은 1해처리 레어 3러커 전략이었다. 100원짜리 터렛과 본진 1스캔, 그리고 러커의 사거리를 이용한 이 전략은 임요환이 선보였던 바이오닉 컨트롤과 드랍쉽 전략에 완벽히 파훼당했다. 그러나 홍진호는 오히려 1.08 패치가 된 시점에서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이는 홍진호의 개념이 이전 저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홍진호가 보여준 개념은 라바와 병력을 조율하는 것으로, 해처리 하나에서 모든 병력이 나온다는 저그의 특징을 잘 이해한 것에 기반했다. 그래서 홍진호의 경기는 어느 타이밍에는 드론을, 어느 타이밍에는 어떤 병력 조합을 갖춰야하는지에 대한 순간최적화가 잘 이뤄졌다. 지금 들으면 너무 당연한 소리같지만 당시 저그의 실상을 이해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포닝풀 가격이 1.08 패치 이후 200원으로 오르고 12앞마당 전략이 정석화된 저그들의 플레이는 그냥 앞마당에 해처리를 짓고, 성큰으로 방어하면서 SD를 연타하다가 타이밍 맞춰 들어온 상대 병력에 뚫리거나 그 타이밍을 놓친 상대방을 앞마당 자원을 바탕으로 한 물량으로 상대를 찍어누르거나 하는 둘 중 하나의 플레이였다. 이때 홍진호는 저그의 자원활성화를 노리고 들어오는 상대방의 타이밍에 병력을 찍어내서 상대의 병력을 잡아냈다. 그리고 이 이득을 바탕으로 상대를 더욱 몰아치거나(코크배~왕중왕전의 초기 모습), 드론과 자원으로 환원하는(위너스 챔피언쉽~올림푸스의 후기 모습) 플레이를 선보였다.
다른 저그들도 홍진호의 플레이를 많이 모방했지만 홍진호의 핵심적인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아직 애를 먹었고,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플레이는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히드라 두마리를 빼돌려서 러커 변태, 3센티 드랍, 스탑러커, 지형 지물과 사거리 차이를 이용해 뮤탈만으로 아콘 잡기, 빈집털이를 하며 회군하는 병력을 스탑러커로 제거하는 등, 유기적이고 개인의 센스에 의존하는 플레이였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훗날 그의 플레이가 정석이 되지는 못했다고 생각하며, 홍진호가 저그의 계보에서 남긴 영향을 저평가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보다 옵저빙이 훨씬 낮은 수준으로 진행되었던 당시 방송 경기에서 시각적으로 보이는 양상은 '적은 드론'과 '폭풍 러쉬'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성철 - 홍진호 - 박성준이라는 공격형 저그(?)의 계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홍진호가 저그 게이머들에게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홍진호 이전의 저그 게이머들을 떠올려보면, 그들의 플레이스타일을 짚어내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서 저그 게이머들의 별명은 게이머들이 선호하는 유닛에 결정되었다. 국기봉의 히드라리스크, 봉준구의 뮤탈리스크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홍진호 이후 이러한 별명 대신 저그가 초반을 도모하는가, 후반을 도모하는가, 공격적인 운영을 선호하는가, 방어적인 운영을 선호하는가 등 게이머들의 플레이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다양한 분류가 등장하게 되었다.
[image]
초창기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맵이었던 "네오 정글 스토리". 이 맵에서 테란:저그 밸런스는 105:84로 그럭저럭 맞았었지만, 홍진호가 날고기는 테란들을 모조리 잡아내며 23승 4패를 기록해버려 밸런스가 맞춰진 것이다. 홍진호의 전적을 제외한다면 101:61로 테란의 승이 2배 가까이 난다. 참고로 맵 제작자는 엄재경. 스타리그 해설하시는 그분 맞다!
이에 더해서, 가난한 저그 홍진호의 이미지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맵의 영향으로 대체로 적은 자원과 컨셉 맵이 자주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시절 저그맵이 적어서 홍진호가 맵빨을 못받은 건 아쉬운 일이긴 하다. 상대 선수들이 테란 맵 끼고 게임한 건 사실이니.
그러나 개인의 센스와 자원-병력을 조율하는 감각에 의존하는 홍진호의 스타일은 스타1 프로게이밍의 경향이 본진자원만을 최적화하는 것에서 앞마당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며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기존의 감각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특히 뭉치면 뭉칠수록 화력이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는 테란의 병력은 1부대가 진출하는 것과 2부대가 진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화력을 선보이는데, 홍진호는 이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이는 확장과 해처리 확보가 아닌 병력 싸움 위주였음에도 불구하고 컨트롤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닌 탓도 있다. 전성기에도 홍진호는 세세한 컨트롤보다는 조합과 타이밍, 빈틈을 노리는 플레이를 주로 써서 많은 승리를 거두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플레이가 패러다임에 맞지 않게 된다. 결국 훗날에는 이런 스타일이 홍진호 자신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사실 당대 홍진호와 동시대 게이머들 중 컨트롤에 신경을 썼던 건 조용호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10] 그리고 이쯤해서 홍진호가 보여줬던 탁월한 최적화 능력은 최적화가 아닌 드론은 인구수 낭비라는 조롱으로 돌아왔다. 감이 무너진 와중에 진출하려는 테란 병력을 어떻게든 잡아내려고 병력을 찍어내다보니 병력은 병력대로 몰살당하고, 드론은 드론대로 부족한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혹자는 홍진호 이후 대부분의 저그들이 부유한 것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결국 원점 회귀이며, 홍진호가 저그에 미친 영향은 매우 적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홍진호가 제시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다. 홍진호가 들어가는 타이밍은 그 어떤 저그가 컨트롤 하더라도 이득을 보는 타이밍이다. 그런데 그 타이밍을 잡아낼 수 있는 선수는 당시 홍진호가 유일했다. 홍진호의 컨트롤은 당대에도 특출나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홍진호가 갖고 있는 개념들, 예컨대 병력을 교환하는 타이밍이나 상대의 자원을 끊임없이 견제하는 것 등은 이후 저그에게도 훌륭한 교보재가 되었다. 박태민은 인터뷰에서 홍진호의 부대 지정까지 따라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고, 박성준 또한 2008년 스타 뒷담화에 출연했을 때 홍진호 빠돌이스러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에 몰락할 때 즈음해서는 이 감각이 무뎌졌는지 타이밍을 못잡아서 패배한 경기가 많아졌다.

2.1.1. 부유한 저그(?)


흔히 온게임넷의 홍진호만 생각하며 홍진호를 어떻게든 레어에서 게임 끝내던 가난한 저그로 기억하는데. 이는 저그는 레어 싸움, 드론은 인구수 방해, 그래서 홍진호는 부유한 저그는 못한다는 엄재경의 포장술과 폭풍 저그라는 별명이 만들어낸 편견에 가깝다. 반면 KPGA 시절의 MBC게임리버 오브 플레임, 플레인즈 투 힐, 블레이드 스톰 등 풍부한 자원과 로템형의 스탠다드한 맵을 오랜기간 사용했고, 이런 맵에서 홍진호는 부유한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03년 올림푸스 스타리그나 위너스 챔피언쉽으로만 올라가도 홍진호는 울트라리스크를 주력으로 한 목동저그를 즐겨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홍진호 전성기의 후반부인 2003년으로 가면 이 점이 더 도드라지는데, 2002년 초중반까지는 폭탄드랍이나 가디언 등을 활용해가며 어떻게든 테란을 빠르게 끝내는데 집중했다면 2002년 후반~2003년부터는 초중반에 거둔 이득을 자원과 테크로 환원하는 노련한 운영에 중점을 두었다.
사실 가난하지만 몰아치는 공격형 저그와 후반을 바라보며 부유한 플레이를 시도하는 운영형 저그를 명확하게 구분내리기는 쉽지 않다. 애초에 공격형의 반대어는 수비형인데도 굳이 운영형이라는 말이 붙은 것 자체가 이 분류의 모호함을 잘 알 수 있다. 흔히 생각하는 공격형 저그라 하면 드론이 적고, 계속 병력만 뽑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공격형 저그는 중반 이후로 물량을 뽑아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초반에 드론을 많이 뽑는다. 즉, 초반에 드론을 많이 뽑아 중후반에는 병력만 찍는 것이다. 홍진호가 대단했던 것은 드론으로도, 병력으로도 환원될 수 있는 라바를 조율하는 감각이 대단히 뛰어났다는 점에 있었다. 조용호도 목동저그로 임요환, 김현진을 꺾고 이윤열과 다투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고, 박경락도 삼지안 드랍으로 테란전에서 이름을 날린 적은 있었지만 이들의 대 테란전 전성기는 홍진호만큼 길지 못했는데, 이유는 저그가 한 번 플레이스타일과 타이밍이 읽힐 경우 테란에게 맞춰나가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KPGA 4차 투어에서 조용호는 임요환을 공식전 다전제에서 꺾은 처음이자 마지막 저그가 되었지만 이윤열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갈수록 밀리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주력 체제인 목동저그가 완성될 경우 이윤열에게 결코 밀리지 않고 때로는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막상 그 과정까지 가는 길에서 이윤열이 보여주는 스팀러쉬, 드랍쉽, 벙커링, 3가스 노점단속, 메카닉 타이밍 등 다전제에서 다양한 카드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테란을 상대로 대응하는데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경락도 KPGA 4차 투어에서 서지훈, 임요환, 변길섭을 격파하고 2002 Panas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변길섭, 서지훈, 베르트랑, 임요환을 무너뜨리고, 2003 Olympus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도 이윤열, 서지훈을 격파했지만 특유의 경락 마사지를 위한 초반을 부유하게 시작하려는 스타일이 결국 그 이전 타이밍의 약점이 제대로 파훼되면서 결국 약점을 제대로 간파한 플레이를 선보인 임이최와의 전적이 계속해서 커지게 되었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게임의 상황에 맞춰 라바를 조율하는 능력은 당시에 받아들이기에는 굉장히 희귀한 것이었다. 당대 대부분의 해설자나 마니아들도 홍진호가 보여주는 탁월한 센스나 끊임없는 공격에만 주목했지 이러한 공격이 왜 먹혀드는지, 왜 홍진호는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병력이 준비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데는 애를 먹었다. 당대에 홍진호의 플레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따라할 수 있는 다른 게이머들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후대의 모든 게이머들은 그를 '모방'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11]
지금도 가끔씩 저그들이 초반 대비를 허술하게 하다가 앞마당이 뚫려버리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시 홍진호의 이러한 플레이는 놀라운 수준이다. 박성준조차 2005년에 전성기 이윤열에게 타이밍이 읽히자 아이옵스배 결승전에서 0:3으로 패한 반면, 홍진호는 2005년에도 이윤열을 격퇴하며 스니커즈 올스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이때에는 5전제에서 과도하게 운영을 중시했던 경향에서 탈피해 9드론 발업저글링 등 올인성 플레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 1 4강에서도 저그전 마스터 한동욱을 많이 무뎌진 감각으로도 변칙 플레이를 통해 거의 제압할 뻔했다.

2.1.2. 평가


홍진호는 프로토스에게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었다(사실 약한 편이라기보다는 중요한 순간에서 패배를 당한 경기가 많았다). 먼저 온게임넷에서는 김동수박정석에게 4강에서 패하며 결승길을 열어준 것이 홍진호고, 2005년에도 So1 스타리그 2005 16강에서 오영종에게 닥템 러쉬로 관광당하면서 테프전 패닼으로 붙은 '사신 토스'라는 별명이 저프전까지 적용된 상대도 홍진호였다. 이 때문인지 EVER 스타리그 2004,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에서 가을에 토스가 우승하지 못한 것이 홍진호를 만나지 못해서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심지어 EVER 스타리그 2004에서는 삼연벙의 여파로 인해 저프전 최악의 압살맵인 머큐리가 1경기와 5경기에 쓰였지만 결국 2:3으로 박정석에게 패하며 차기 시즌 시드 확보에 실패하고,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24강에서는 당시 개인전이 매우 취약했던 팀플 멤버인 박성훈에게 본경기와 재경기 모두 패하며 24강에서 광탈하였다. 가을의 전설의 희생자는 임요환만이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MBC게임에서도 2002 KPGA 3차리그 메가매치 준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면서 3연속 4강 진출에 실패하고, Spris MSL 패자 8강에서 김환중에게 패해 마이너리그로 강등되고, 우주닷컴 MSL에서도 16강 첫 경기와 패자 8강에서 전태규에게 패하며 서바이버 리그로 떨어지고 말았다.
조용호와 함께 초기 저그의 운영 및 빌드와 그에 알맞는 개념들을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진호는 대표적인 천재 게이머였다. 당대에는 매우 드물었던 특출난 랜덤 실력은 홍진호가 다른 종족에 대한 이해가 깊었음을 보여주며[12], 적은 연습량으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탁월한 재능은 이윤열 옆에 그를 두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저그가 타 종족의 도전을 받을 때 가장 유연하고 완벽한 대처를 보여주는 것이 홍진호였다. 실제로 홍진호보다 더 먼저 WCGC 2000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보였던 박태민조차 홍진호에 대해 부대지정까지 따라하며 배우려고 했던 게이머와 붙는 것이 영광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당시 홍진호의 플레이는 무작정 가난한 저그, 혹은 부유한 저그라고 낙인찍을 수 없는 수준이다. 그보다는 진출과 유리한 교전을 위한 '타이밍 감각', 이를 뒷받침해주는 드론 수의 최적화, 그리고 그 결과로 화면상에서 펼쳐지는 병력상의 우위가 폭풍 저그 홍진호의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당대의 맵 전적과 종족 밸런스를 고려하면 01-03 시즌 홍진호의 대 테란전은 이제동의 07-09 시즌 테란전에 비교될 정도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실력을 지닌 홍진호의 문제점이라면 승부사 기질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는 사람 좋은 게이머로 잘 알려져있었고, 팬들에게 저그의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며 저그로 테란, 토스에게 이길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라그나로크와 패러독스에서 저그를 선택하기도 했다. 또 마이큐브배 8강에서는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네트워크 문제가 일어나자, 재경기를 기대해볼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음에도 그냥 GG를 치고 나가기도 했다.[13] 삼연벙 이전까지 그는 단 한 번도 프로의 경기에서 5드론을 써본 적이 없었다. 이는 홍진호가 사람 좋고 팬서비스 좋은 게이머였을 지는 몰라도 승부의 세계에서는 큰 약점을 지닌 게이머라는 소리이기도 했다.[14] 특히 홍진호는 다전제 5세트의 성적이 지독히도 안좋았는데, 머큐리를 1,5경기 끼고 프로토스에게 패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또한 상술했듯, 홍진호의 플레이가 다분히 본인의 감각과 천재성에 의존[15]했다는 점을 들며 현재 저그들의 플레이에 끼친 영향이 적다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테란전의 투해처리는 3해처리의 시기를 거쳐 현재 잘 사용되고 있는 빌드이고 이 투해처리의 패러다임-상대를 빠르게 견제하여 바이오닉의 수를 갉아먹거나, 메카닉일 경우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홍진호가 최적화한 투해처리 빌드와 전혀 다르다고는 볼 수 없다. 그리고 저그전에서의 드론 수 최적화와 라바 활용법, 그리고 저글링과 뮤탈을 활용한 전술은 홍진호의 전성기 시절 플레이 스타일과 완전히 부합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넘어 홍진호가 저그라는 종족에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테란전 승률 5할을 넘는 저그 유저가 두세명 될까말까 한 시절에 저그가 테란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저그 유저들에게 심어줬기 때문이다. 전성기 시절의 홍진호를 명장에 비유한다면 이당시 홍진호는 저그의 한니발이라고 할수있다.

2.2. 데뷔와 전성기(2000년~2003년)


Hanbitsoft OSL YellOw vs nO.1 2001-02-16 @ Hall of Valhalla
▲홍진호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첫 승. VS 유병준. 2001년 2월 16일~~.
데뷔 초기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테란맵 라그나로크홀 오브 발할라라는 반 섬맵을 끼고도 결승에 진출하여 임요환에게 5경기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며 주목을 받았다.
그 당시 홀 오브 발할라는 테저전 전적이 21:8 으로, 테란의 승률이 자그마치 72%나 되는 어마어마하게 유리한 맵이다. 1.07패치에서 부유한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저그는 1.08패치로 들어서며 급격히 가난해졌다. 홀 오브 발할라는 저그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던 1.07버전에 만들어진 맵이었으나, 1.08패치가 된 후 첫 스타리그인 코카콜라배에서도 쓰였다. 그러니 저그 유저가 죽어나간 것은 당연한 일. 그 당시 홀 오브 발할라를 끼고 테란과 호각을 다툰 홍진호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전적만 봐도 저그인 홍진호가 7승 2패로 77.8%의 고승률을 자랑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된 맵이 있었으니 그 맵의 이름은 라그나로크. 희대의 테란맵이라 불리는 라그나로크는 테저전 14경기 중 13:1로 테란이 압도한다. 유일한 1승이 홍진호가 올린 승리이고, 임요환은 이 맵에서 총 8승 0패의 성적을 거두었다. 얼마나 씹테란맵인지 알 수 있는 대목.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테란이 이 맵에서 지면 스타를 접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면 말 다 했다.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에서 네오 홀 오브 발할라는 1,5세트에, 라그나로크는 4세트에 사용되어 5경기 중 3경기가 씹테란맵으로 장식되었다. 나름 저그맵이라고 깔아 놓은 것이 네오 정글 스토리네오 레가시 오브 차인데, 네오 정글 스토리는 테란 대 저그가 94:75, 네오 레가시 오브 차는 17:37로 네오 정글 스토리는 오히려 테란의 전적이 앞선다. 참 어이가 없는 맵 구성이니 그 당시의 홍진호는 정말 억울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결승에 진출해 3:2로 준우승한 것이 놀라울 따름. 심지어 1세트의 네오 홀 오브 발할라에서 홍진호는 47분의 전투 끝에 패배한 것이라 더 아쉬울 것.
또한 수준있는 게이머들이 참여한 KT 왕중왕전 건담테란 조정현을 결승전에서 3 : 0으로 완벽히 개발살내버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초창기 별명은 '제2의 최진우'였는데 본인이 제2의 최진우보단 제1의 홍진호가 되고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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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월 20일부터 약 2달에 걸친 홍진호 포스 구간. 32전 30승 2패(승률 93.8%)에 달하는 기록이다. 이 기록은 테란맵들의 향연에서 온갖 테란들을 씹어먹으면서 창출한 기록이다. 전성기 홍진호가 우승을 못한 이유로 라그나로크, 홀 오브 발할라, 플레인즈 투 힐 등의 테란 맵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은 절대 푸념이 아니다. 게다가 저기서 홍진호가 종종 토스전을 벌인 스노우 바운드시메트리 오브 싸이섬맵이다... 섬맵 저프전 밸런스가 얼마나 막장인지를 생각하면 식겁할 만한 부분.[16] 김명운을 비롯한 후대 게이머들이 "그 때 맵보정이 더 됐더라면 아마 진호형이 JD의 커리어를 뛰어넘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 또한 과장이 아니다.
폭풍과 같이 쉴새없이 공격을 몰아쳐 '폭풍 저그'라는 별명이 생겼으며 팬 층도 두터워 동시기의 프로게이머인 임요환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이후 '임요환의 제자/후계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던 이윤열과도 박빙의 상대 전적을 유지했다. 소위 임진록이라는 타이틀 매치는 스타 판에서 흥행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는'데, 사실 '임진록'이 정립될 시기, 소위 프로게이머 1.5세대로 분류되는 임요환은 이미 전성기 끝물이었고 프로게이머 2세대로 분류되는 홍진호는 이제 막 등장한 루키였다. 때문에 vs 임요환전 못지않게 vs 이윤열전(소위 '달콩록')에서 당대 테저전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박빙의, 그리고 재미있는 경기를 더 많이 만들었다고 회자되기도 한다. 여기에 02시즌~03시즌 초까지 한참 암울기였던 프로토스의 유일한 희망 박정석을 더해 임요환-홍진호-박정석-이윤열의, '사대천왕 구도가 만들어지고, 이들 간에 대결을 벌이는 '사대 천왕전' 같은 이벤트가 열리기도 했다.
이후 이윤열을 위시로 한 테란 진영의 아카데미 더블커맨드로 모든 저그들이 깨지고 있었음에도 홍진호만은 더블 커맨드가 내려앉은 직후 병력 공백기를 노리는 타이밍 러쉬라든지, 진출한 테란 한방 병력과의 교전을 피하는 도망자 저그를 구사하며 끝끝내 살아남았다. 반면 다른 저그들은 조용호라는 걸출한 저그가 등장해 목동저그를 개발하기 전까지 엄청나게 쓸려나갔다.
최연성의 등장 이후에는 점차 성적이 저조해지기 시작하면서, 박성준, 박태민 등의 신진 저그들이 각각의 스타일을 드러내며 밀리기 시작했다. 특히 저그 최초 온게임넷 우승이 박성준에게 넘어간 것은 단순히 팬들의 아쉬움뿐만 아니라 홍진호, 강도경 등의 2세대 저그 프로게이머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였다? 또한 이는 '홍진호가 했어야 될 우승을 빼앗았다'는 심성으로 박성준이 한동안 비호감 프로게이머로 남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저그 팬의 절반은 홍진호의 팬이었고, 심지어 박성준이 우승했을 때 상대는 홍진호와 같은 팀이었던 박정석이었다. 홍진호의 팬들 입장에선 박성준은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은 홍진호의 치어풀에 박성준의 우승을 폄하하는 내용을 실린 적이 있어 논란이 일었던 적도 있다. 또한 저그 최초 MBC게임 우승도 박태민에게 넘어가버리고, 심지어 그 상대가 본좌급 테란이자 홍진호와 친한 동생이었던 이윤열이었기 때문에 그 상실감은 더욱 커졌다.
5회 준우승이라는 것이 놀림감, 우스갯소리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그가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서지훈과 같은 당대 최고의 테란들이었다. 그가 결승에서 대결한 테란들의 결승 당시의 테저전 실력은 비공식전 포함해서 임요환의 2001년 대저그전은 77승 17패 81%, 2002년 대저그전은 55승 32패 63%였고 이윤열의 2002년 대 저그전은 78승32패 70%였으며 2003년 서지훈의 대 저그전은 51승22패 69%, 2003년 최연성의 대저그전은 27승5패 84%로 홍진호는 3년연속으로 저그를 제일 잘 잡는 테란들과 결승에서 수없이 대결하였다. 홍진호는 임요환에게 삼연벙을 당하기 전까지 5드론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할 정도로 무른 면이 있었는데, 설령 그런 면이 그를 정상의 자리로 이끌지는 못했다 해도 오랜기간 저그의 자존심으로 자리매김한 업적은 폄하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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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 종료후 시상 中. 좌측부터 우승자 서지훈, 준우승자 홍진호, 3위 임요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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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삼보 MSL 결승전에서 만났던 무서운 기세를 자랑하면서 빠른 시기에 올라온 신예 최연성
역시 가장 아쉬운 대회라면 2003 Olympus배 온게임넷 스타리그TG삼보 MSL 결승전이다. 2003 Olympus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은 홍진호 스스로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할 만큼 맵도 이전의 어느 시절보다 좋았으며, 상대도 서지훈이라는, 임요환, 이윤열(이 시절 최연성은 아직 신인이었다)보다는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테란이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1경기가 서지훈 측의 에러로 재경기가 선언되고 1,5경기 다른 전략을 준비해왔던 홍진호는 5경기 전략을 1경기에 사용했다. 결국 5경기까지 가면서 패배. 무대 위에서는 서지훈의 우승을 축하했지만 끝난 후 눈물을 흘렸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 TG삼보 MSL 결승전은 홍진호가 결승전 전까지 전승으로 올라왔고, 또한 이 과정에서 높은 비율로 한 대회에서만 각종 수많은 테란 플레이어들을 상대하면서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올라왔기 때문에 더욱 우승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최연성은 그 전에 프로리그 다승왕을 차지했지만 아직 개인 리그에서는 검증이 되지 않은 신인에 불과했다. 거기에 1경기 맵은 저그가 테란에게 유리한 건틀릿-TG여서 여기서 기세를 타고가면 나머지 맵들이 테란한테 유리하긴 하지만 홍진호의 기량으로서는 충분히 극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홍진호의 우승 가능성을 더 높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결국 홍진호는 최연성에게 3:0으로 셧 아웃 패을 당하면서 최연성에게 생애 첫 개인 리그 우승 기록을 안겨주게 되었다. 그리고 이 결승전이 끝난 후 홍진호는 눈물을 흘렸다.
2003년은 홍진호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승을 단 한번도 하지 못했음에도 우승 타이틀을 하나씩 거머쥐었던 서지훈, 강민을 제치고 "함께하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Gamer Ranking+"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03년의 홍진호 함온스 플러스 랭킹은 782.0점으로 2위였던 강민을 519.0점으로 따돌리고 1위를 기록했다. 또한 2003년 한해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함온스 Gamer Ranking"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한국e스포츠협회 랭킹에서는'2위를 기록했다. 다만 KPGA 랭킹은 말이 많았다. 2004년 1월자 기사에서는 "KPGA 공식 랭킹의 포인트 산정 기준을 공개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팬들의 의견을 반영해 공식 랭킹을 수정하거나 새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팬들의 지지가 없는 랭킹은 무의미하다. 필요하다면 누적 랭킹과 최신 랭킹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라고 하기도 했다.
정규 시즌 우승이 없다는 점으로 그의 경력이 저평가받기도 하는데, 그의 전성기가 임 - 이 - 최로 이어지는 테란의 초전성기였으며 테란>저그의 상성을 생각해 보면 운이 나빴다고 볼 수도 있다. [17]
또한 테란 천국이던 시절, 희대의 테란 맵 라그나로크(VS 김정민)와 어나더 데이(VS 김현진)에서 테란이 아닌 종족으로 유일하게 테란을 이겼고 더불어 기량이 많이 떨어진 2010년 이후에 희대의 토스맵 중원에서 장윤철을 꺾은 적도 있다.

2.3. 몰락


전성기 이후 최연성의 등장은 홍진호의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을 무위로 만들어버렸다. 임요환도, 이윤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홍진호를 상대로 최연성더블커맨드를 앞세워 무자비하게 격파해버렸다. 2003년 열린 TG삼보 MSL 결승전에서 이 둘이 맞붙었는데 홍진호는 최연성에게 1세트 건틀렛에서 발리앗에 털린 걸 시작으로 2세트도 내주고 3세트의 유보트 혈전에서 석패하며 또 다시 전승준을 하고 마는데, 이것이 홍진호가 마지막으로 진출한 결승전이자 준우승을 기록한 마지막 대회가 되고 만다. 일단 드러눕고 보는 수비와 누적 자원으로 뿜어내는 중후반 물량으로 이득을 극대화하는 최연성의 스타일은 공격성과 번뜩이는 전장 선택 능력으로 저테전의 강자로 군림하던 홍진호에게는 천적과도 같았으며, 결국 홍진호는 2005년을 기점으로 쏟아진 최연성을 기반으로 한 양산형 테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만다.
여기에 2003년 마이큐브 스타리그 이후 챌린지리그로 떨어졌다가 올라온 EVER 스타리그 2004 8강전에서 전 시즌 대회 우승자 박성준을 꺾고 올라갔지만, 4강전에서 그 유명한 삼연벙 0:3 셧아웃으로 패배한 홍진호는 테란전의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리고 홍진호는 다시는 연간 케스파 승률 60% 이상을 찍지 못 하였다.
결국 홍진호는 저그가 최강의 종족이었던 의 테저전 앞마당 3해처리 운영 목동저그 등장부터 레이트 메카닉 이전까지도 끝끝내 테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후 양박(박성준, 박태민)과 준동까지 이어지는 후배 저그들이 테란 극복의 역사를 기록한다. 그리고 2004년 여름에 박성준, 2005년 겨울 박태민이 각각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MSL의 저그 최초 우승을 이루면서 저그 강자 홍진호의 위상도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성적 부진이 장기화되자 사람들로부터 "진호야 군대가라"라는 말을 듣게 되고, 화려했던 뮤탈 컨트롤도 뮤탈짤짤이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며 '노킬 투다이의 콩탈'이라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어찌나 콩탈이 까였는지 홍진호 본인도 한동안 테란전에 뮤탈 운영 자체를 배제하다시피 할 정도로 트라우마틱한 반응을 보였다. 물량 중시 테란에게는 3가스를 가져가기 전의 뮤탈 활용이 필수적이다시피 한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저테전의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18] 잘만 하던 저럴히럴도 홍진호의 자신감 하락이 전투력 하락으로 이어지며 테란전 기량이 급감하고 말았다.
하향세의 절정이던 2005년 WCG 예선 당시, 서지수에게 0:2로 패배한 이후 상한 육회를 먹고 배탈이 났다는 프론트 보도, 이른바 '폭풍설사' 사건은 KT 매직엔스 프론트의 많은 삽질 중 단연 백미라 할 만하다. 이어진 사상 초유의 리플레이 공개 거부 사태로 인해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에서 까이고 까여 가루가 되기도 했었다. 사실, 이 날 예선조차 뚫지 못한 건 홍진호뿐만 아니라 김정민, 변길섭, 조용호, 강민, 박정석 등 사실상 팀 전력 전부였으니 육회의 오명을 뒤집어 쓸 건 단지 홍진호뿐만은 아닌 셈인데, 문제는 홍진호가 패한 상대가 하필 서지수였다는 것. 게다가 서지수는 홍진호를 이긴 후 다음 상대인 삼성 박성준에게는 그냥 0:2로 패배했기 때문에 더욱 까였다. 더 가관인 것은 박성준도 최종 진출자는 되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2019년 4월 24일 개인방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설사한것은 팩트라고 한다. 같이 방송중이던 박정석도 맞다고 동의하는 것을 보면 당시 무언갈 잘못 먹은것이 맞긴 한듯
이후 임요환을 PC방으로 보내버리고 올라간 EVER 스타리그 2005에서는 그저 그런 성적으로 떨어지고, 우주닷컴 MSL에서는 자신의 또 다른 라이벌 이윤열을 서바이버 리그로 강등시키긴 했지만 전태규에게 16강 첫 경기와 패자조에서 모두 패배하는 결과를 맛보고 이후 그는 두 번 다시 MSL 본선 무대에 복귀하지 못한다. So1 스타리그에서는 테프전 패닼으로 유명한 오영종에게 저프전에서 패닼 관광을 당하고[19] 최연성에게 장판파 관광을 당하는 등, 그리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815개척 시대 등의 특이한 컨셉의 맵들이 대폭 활용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 24강 조별 대진에서 전상욱벙커링을 막고 역전, 16강에 진출하여 이병민에게 2:0 승리를 거두고 8강에서 와의 경기에서는 1경기를 내주었으나 내리 2,3경기를 잡아내며 2:1로 역전함과 동시에 스타리그 100승을 달성하며 4강에 진출한다. 하지만 4강에서 한동욱에게 2:3으로 무너지며 마지막 결승 진출 기회는 사라진다. 콩빠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회인데 결승전 상대가 조용호로 변수 많은 저저전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나마 3, 4위전에서 변은종을 셧아웃시켜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나 이후 시즌 2에서 허무하게 탈락해버린다. 이것이 마지막 메이저 대회였다.
2007년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막장 퇴물의 길을 걸었다. 의 등장으로 저그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버린데다 돌아오고 보니 그나마 홍진호의 강점으로 뽑히던 상황 판단과 컨트롤이 눈에 띄게 떨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인 듯하다. 뭐, 당시는 홍진호뿐 아니라 동세대 올드 게이머 전체가 약속이라도 한 듯 급작스런 몰락 과정을 밟기 시작했으니 홍진호만 까일 일은 아닐 것이다.[20] 실질적으로 이후 홍진호의 인기는 게이머의 성적에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스덕들 사이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컨텐츠에 의존했다. 예를 들면 2에 대한 집착이나 콩댄스, 드론은 인구수 방해된다 등등. 이 즈음부터 소위 '황건적'이라는 까인지 빠인지 불분명한 세력의 준동으로 홍진호를 까는 문화가 조성되어 갔다. 콩댄스스동갤이 흥했던 것도 이 시점.
양대 리그에 진출도 못하는 막장스러운 성적에도 불구하고 1군 로스터에는 항상 남았다. '얼굴 마담이냐'는 비난도 생겨났다. 참고로 이때는 김철 감독 시기와 겹친다.
한편 2008년 곰TV 클래식에서 윤용태를 잡고 16강을 찍으면서 다시 재기하는 듯하였으나 개인리그 예선에서 탈락하고 프로리그는 팀플레이가 폐지된데다 후배 저그 유저인 배병우온게임넷 스파키즈에서 이적한 찬레기의 합류로 인해 출전 기회를 잃은 뒤 공군으로 입대한다.

2.4. 공군 입대와 공군에서의 경력(2008년~2010년)


공군 ACE 당시 홍진호의 상세 경력은 홍진호/e스포츠/공군 ACE 경력 문서를 참조.
공군 ACE 소속 당시, 소속팀 KT 롤스터가 위너스 리그를 우승했는데, 감독이고 선수고 해설이고 전부 콩을 깠다. 해설진은 황신의 저주를 깨느냐 마느냐 이야기했고, 이지훈 감독과 KT 선수들은 '황신이 우승을 허락하셨다'라며 콩을 까댔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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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호의 친정팀 kt 롤스터위너스 리그 우승의 여세를 몰아 숙적 SK텔레콤 T1을 꺾고 프로 팀 리그 09-10 시즌의 최종 우승자가 되었는데, KT가 우승을 확정지을 때 광안리를 찾았던 홍진호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팀이 우승한 것에 대한 기쁨과 자신이 있을 때 우승하지 못했던 아픔이 겹치면서 흘린 눈물이었으리라. 스갤이나 PGR21 등에 서식하던 스타리그를 초창기 때부터 봐 온 스덕들은 이 장면이 나오는 순간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1경기에 출전한 KT의 주장 우정호고인규를 물리치고 홍진호를 강권하여 콩댄스를 함께 하기도 하며, 팀의 최고의 순간을 대선배와 함께 하려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그리고 시상식까지 마친 뒤 홍진호와 박정석이 대기실에도 찾아왔는데 우정호는 여기서도 홍진호에게 "이게 우승 트로피예요."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2010년 12월 29일에 드디어! 전역했고, 2010년 12월 30일, 홍진호 갤러리에 폭풍 같은 인증글을 남겼다. 인증글.
12월 30일. KT 롤스터와 팬들이 가진 송년회에선 한 프로토스 유저를 상대로 마우스만 사용하는 핸디캡 매치를 벌여 패하기도 했다.[22] 인터뷰에서 현재 스2는 해본적이 없으며 전향할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스2로 전향한 이윤열과 임요환에 대해서는 '게이머 생활을 연장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니 좋은 선택이었다'고 코멘트를 남겼다.
이등병 때는 굉장히 기 죽은 모습이 많이 찍혔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1년 넘게 부대 투고를 잡는 풀린 군번이라 실세가 된 후에는 평소 성격처럼 장난을 많이 쳤다고 한다. 이주영이 홍진호가 정말 믿음직한 후임이라 말하고, 박정석도 홍진호가 후임 관리를 잘한다고...
전역 후에 홍진호가 말하는 주된 공군 이야기는, 자신은 7기이며 맞선임인 6기 중에서 박정석이 제일 심하게 갈궈서 매우 당황스러웠다. 자신과 1년 반정도 차이나는 5기 이주영이 가장 지독했다. 자신의 맞후임인 8기 박태민이 자기 주장이 강한 스타일이라 꽤나 갈궜다는 주제가 가장 많이 나온다.
2020년 3월 이주영과의 인터뷰에서 공군시절 비화가 알려졌는데 홍진호는 2007년에도 공군 입대를 하려 했으나 그때 면접까지 보고 입대를 미뤄버렸고 이에 상부에서 열받아서 1년넘게 추가 선발을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결국 이 일의 최대피해자는 상병말호봉까지 막내를 해야했던 이주영.(...)이 덕분인지 홍진호는 입대후에 주변에서 자신을 벼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거기에다가 입대 전에 면회를 왔는데 숙소와 연습실을 둘러보고 '응~뭐 좋네'이런식으로 말을 해서 당시 공군에 있던 김선기가 이 일로 많이 화가 났고 이주영또한 자신의 바로 다음 기수에게 군기단속을 제대로 해주기를 당부했다고 하였다.그 덕분에 맞 선임인 박정석이 많이 쪼았다고 하긴 했지만...

2.5. 전역 이후의 활동(2010년~2011년)


공군 활동기 출전 기회가 생기면서 간간이나마 승리를 보여주었기에(+ 부실한 KT 저그 라인) 전역 후 기대를 모았으나, 전역 이후에 김형준이 등장하는 예능 프로에 감독을 맡는 등 방송인이 되어간다고 까였다. 공군 ACE 입대 전에 프로게이머 생활을 30대까지 하겠다고 했지만 별로 자신없고 의지가 없는 듯한 말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했었는데, 공군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서 올드팬들은 큰 기대를 했다. 그런데 전역 후 또 방송으로 빠지는 모습을 보이니 까가 늘어날 수밖에. 같은 올드인 박정석, 이윤열 등은 어떤 식으로든 게임계에서 출전하며 활동 중이고, 특히 임요환이 '팬들에게 계속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신조 하에 노력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것 때문에 더욱 비교가 되었다. 실제로 전역 이후에 경기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 은퇴했으니 안타까움이 더하다.
박카스 스타리그 2010의 결승전이 정명훈 VS 송병구로 치뤄지게 됨에 따라 결승전이 열리는 광주에 직접 내려갔다. 두 선수가 홍진호와 팀이 다른 것을 감안하면 영락없는 콩라인 계승자 선정을 위한 방문...
군 전역 이후 박정석과 함께 인터뷰를 했는데 여자 친구 관련 내용이 공군 ACE 이등병 시절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울상을 짓고 있었더니 박정석이 '표정이 안 좋다''고 갈궜다고 한다. 게다가 전역하니 여자 친구는 이미 결혼한 뒤라고 한다...
2011년 3월 3일에 열린 MSL 서바이버 예선에서 노준규에게 마패를 당하는 치욕을 겪으면서 0 : 2으로 패배하여 탈락하였다.
2011년 4월 9일 위너스 리그 결승전에서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SKT T1에게 팀 KT 롤스터가 준우승을 하면서 준우승의 전설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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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KT 프로필 촬영 현장에서. 포모스 기사

2.6. 은퇴(2011년)


2011년 6월 15일 밤, 자신의 다음 팬 카페에서 은퇴 의사를 밝혔다. 안주하는 것이 부끄럽다면서 프로게이머의 길을 그만두고, 안주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스갤은 대 폭발. 안 그래도 하나가 나대는 바람에 우울한 때였는데 홍진호의 은퇴 소식까지 겹쳐 스갤은 패닉 상태였다. 그나마 황신 은퇴 추모의 의미에서 야갤, 와갤, 스투갤 등의 테러를 시도했으나 잠깐 글쓰기를 내리거나 소수가 도배하는 정도로 그쳤다. 말 그대로 스타 판과 황신의 모습이 일치하는 안타까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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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잘 살펴 보면 글이 22줄임을 알 수 있다. [23]글 쓴 시각도 22
'새로운 도전'이라는 부분에서 스투 전향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있지만 프로게이머의 길을 그만둔다고 했으므로 확률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데일리e스포츠의 기사에서 홍진호의 은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게임방송국의 섭외 제의였다고 나오며, 온게임넷의 경우는 박용욱 해설이 공익 근무 소집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은퇴 후 해설자 전향의 가능성이 높았으나, 홍진호 본인이 e스포츠와는 관련된 일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이라 이 역시 가능성이 적다.
6월 25일 KT 롤스터와 위메이드 폭스의 경기 시작 전 홍진호의 은퇴식이 치러졌다. 원래는 1시 프로 팀 리그 시작 이전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온게임넷 측과의 협상을 통해 프로 팀 리그 방송 시간인 1시부터 TV를 통해 방송되었다.
전용준 캐스터가 2남 중 "둘"째, 22회 준우승 등 콩 까는 기록들을 읊으면서 은퇴식이 시작, 홍진호는 정장을 입고 무대 위에 등장해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지만, 2등도 많이하면 이렇게 기억해 준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서 기쁩니다."라는 멋지지만 뭔가 슬픈 소감을 남겼다.
그리고 부상으로 순금 22돈으로 만들어진 골든마우스가 주어졌다(하지만 정식 골든마우스는 아니고, KT에서 온게임넷의 협조를 얻어 제작한 이벤트성 물품이라고 ). 이외에 KT의 격려금도 그에게 주어졌다.
이 은퇴식에는 같은 팀의 박정석뿐만 아니라 임요환, 이윤열도 참석해 사대천왕이 한 자리에 모여 그를 기렸으며 스타2 oGs의 플레잉코치인 박상익, 과거 KTF의 인사 송병석도 참석하였다.
그리고 박완규가 와서 그를 위해 '비밀'을 불러줬다. 박완규는 "홍진호에게 가장 어울리는 숫자는 2가 아닌 1이다."라고 말해줬다. 이유는 그가 사분오열된 스타크래프트 판을 하나로 묶어줬기 때문이라고. 덧붙여 자신은 라이벌팀 티원의 팬이지만 홍진호는 비단 라이벌팀 선수이기만 한 게 아니라 모든 스타팬들의 프랜차이즈 스타라며, 김택용이 진 경기 중 유일하게 홍진호와의 경기에서는 박수를 쳤다는 말도 하였다.
은퇴식 마지막 세레머니에서 임요환은 스타2 패키지 CD를 줬다...지만 정작 준 패키지는 비어 있었다고 한다. 스타2를 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찾아 오라는 의미라고. 여담으로 임요환의 스타 2 드립은 스갤에서도 흥했다.
그 후 은퇴식 날 1SET 끝나고 광고 시간 종료 후 2SET를 시작하기 위해 방송이 재개된 시간이 정확히 222분이었다. 그리고 제 2세트에 노란 셔츠를 입고 출전해 전상욱과 vs 테란전 200번째 경기이자 프로게이머로서 마지막 경기를 2인용 맵 얼터너티브 12시에서 치렀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2해처리 체제에서 올인 뮤탈 + 약간의 저글링을 통한 전성기 시절의 폭풍 스타일로 전상욱을 몰아쳐 잠시 환호성을 부르기도 했으나 경기가 장기화되면서 결국 패배했다.
이 경기로 전상욱에게 상대전적이 4승 2패가 되었고 전상욱은 이 경기의 승리로 통산 200승을 찍었다.
마지막 경기의 패배로 KT와 폭스의 스코어는 0 : 2가 되었으며 이후 폭스가 2패 후 2승을 거두어 최종 스코어 2 : 4로 폭스가 승리하였다. 참고로 이 날 경기 6세트 강현우 vs 전태양의 경기에서는, 강현우의 다크템플러 러시 중 이 걸려 레프리가 게임 중단을 선언했고[24], 이후 경기가 재개되는 카운트다운이 3에서 멈춰, 경기를 보는 모든 관중이 2를 외치는 해프닝이 있었고, 황신의 가호가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사실 KT롤스터 코칭스태프 쪽에서 심판진에게 어필하는 상황이었고, 이에 카운트 다운이 중단된 것이었다. 어필 이후 경기는 속행.
이날만큼은 스갤은 물론이고 스2갤 역시 한 마음으로 은퇴 경기를 지켜보며 그를 기렸으며, 스타2 유저들 중 상당수가 그의 은퇴식을 계기로 스 1을 다시 시청했던 만큼 둘 사이의 반목이 줄어들기를 기대하는 유저들도 있는 듯.
그리고 teamliquid는 그의 은퇴를 기려 Power Rank "2"위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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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은퇴식 날...무슨 운명인지, 그는 그렇게 원하던 1위를 했다. 은퇴식의 사회를 본 전용준 캐스터가 은퇴식만이라도 1위 하게 해달라고 했다…

2.7. 은퇴 이후 스타크래프트 관련 활동(2011년~)


은퇴 이후인 2011년 7월 4일, 펩시 GSL July. 코드 A 경기에서 선수 아이디를 소개하는 역할로 찬조출연했다. # 단순 찬조 출연인지 향후 스투로 전향할 지를 놓고 스갤과 스투갤이 처절하게 싸우는 중 본인이 앞으로 E스포츠 계열 활동을 안한다 했으니 단순 찬조 출연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데 홍진호가 2번째로 소개한 선수가 해설진 2명의 승자예측을 동시에 받으며 2 : 0으로 3번 모두 승리했다. 4경기에서는 첫번째로 소개된 안호진이 2 : 1로 승리하며 무마되었으나, IM팀 소속인 안호진 선수가 그날 입은 것이 황색 티셔츠였기에 단순히 콩 vs 황 구도라서 그랬을 뿐이라고...
7월 6일 신애와 밤샐기세.scx가 종방되면서, 공식적으로는 양대 방송사에서 방송 활동을 모두 종료했다. 이날 디시 뉴스에서는 홍진호와 인터뷰를 한 기사가 올라왔다.#
그런데 7월 14일! 베넷어택에서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프로게이머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홍진호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는데… 상대 아마추어에게 이 자식이라고 내뱉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스타 2 프로게이머들의 소양 교육을 하게 된다고 한다. #
7월 22일 양민이 뿔났다에 특별 출연. 여기서 홍진호의 가상 리그 우승을 목표하는 것을 컨셉으로 잡고 방송을 했는데 결국 우승했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2로부터 벗어났다면서 1자 모양의 트로피를 받았지만...시상식이 정말 비범했다. 우승자에게 입히는 옷이 황색, 그것도 90년대 말, e스포츠 극 초창기에나 입던 촌티나는 옷에, 축하 BGM이 바로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질 않나…. 제보에 따르면 당시 조연출이 콩 빠라서 오프닝부터 마지막까지 BGM을 전부 '혼자'서 선정했다고 한다.
8월 5일에는 부산 해운대에서 임요환과의 스타크래프트 2 이벤트전을 펼친다.#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8월 5일 밤 22시에 경기가 치러지며, 관련 말 풍선 채우기 이벤트가 7월 29일 오후 222분에 시작된다. 이벤트 상품으로는 참여자 수가 22명 미만일 때 스타 2 패키지 2개, 22명 이상 222명 미만일 때 블리자드 머니 클립 2개, 스타 2 패키지 2개, 222명 이상일 때 Geforce GTX 460 그래픽 카드 2개, 블리자드 머니 클립 2개, 스타 2 패키지 22개를 준다. 굳이 8월 5일 밤 22시, 7월 29일 오후 222분으로 시간표현을 다르게 하는 걸 보면 이거 작정하고 까는 거다. 경기 결과는 2:1로 임요환의 승리. 2세트 무너진 사원에서 2시 저그로 시작해, 바퀴 폭풍 드랍과 이후 뮤탈 견제로 임요환을 몰아붙인 끝에 승리. 그 와중에 본진이 날아갔지만 그 때 임요환은 자원줄이 끊긴 상태였다. 참고로 경기가 종료된 시점인 오후 11시 34분 현재 팬들의 승리 예측 투표 결과는 임요환이 77.8%, 홍진호는 22.2%...그리고 그날 네이버 인기검색어 순위도 2위.
그리고 2011년 8월 19일 프로리그 결승에서 직관을 온 것이 포착되었다. 이날 KT가 T1을 꺾고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2014년 2월 5일, 친한 프로게이머들을 모아 경기를 펼치는 스타 파이널포를 기획, 참가, 우승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문서 참조
2014년 2월 16일 위메프 곰 TV 클래식 8강에 출전해서 구성훈을 상대했으나 0:2로 패배했다. 준비는 많이 해온 티가 났으나 피지컬이 따라주지 않았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벽을 실감해야 프로게이머의 미련을 버릴 것 같았다"라며 초반 승부가 아닌 운영으로 경기를 푼 이유에 대해 밝혔다.#
2015년 11월 7일 블리즈컨 2015에서 공허의 유산 발매 기념 집정관 모드 이벤트전에 출전하였다. 2:2 매치였는데 두 번 연속으로 2시 방향에 걸린 것도 모자라 2패를 하여 2위가 되었다.(...)
2016년 2월 20일 KT에서 마련한 초청전 기가 레전드 매치에 출전하였다. 임요환을 2-0으로 꺾었지만 결승에서 이윤열에게 1-2로 역스윕당하며 20시 20분 2위를 차지했다.

3. 스타크래프트 1 관련 사담



3.1. 준우승의 설움,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


앞서 말했듯 저그 게이머를 손에 꼽으라면 빠질 리 없는 강력한 그리고 스타일 강한 게이머였고, 이를 증명하듯 당대의 저그 유저 중 가장 많이 결승에 진출한 게이머이기도 하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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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습케스파 공식 리그 결승전 승률 0%...[25]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2회, KPGA 투어 리그에서 2회, MSL에서 1회 준우승을 했을 뿐 양대 개인 리그 우승은 한번도 차지한 적이 없다. 워낙에 홍진호가 2의 상징이 되다보니 이 공식 리그 준우승을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은데, 홍진호가 준우승만 했던 이유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간단하다. 모든 게이머를 통틀어 결승 대진 운이 별로 없는 편이기도 하다.
홍진호가 개인 리그 결승에 올라간 횟수는 무려 5번이나 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테란을 밀어주기 위해서 테란맵이 너무 많았는데다가 결승 5번 모두 저그에게 상성인 테란만 만났다. 게다가 상대했던 테란도 보통 테란이 아니라, 각각 전성기 시절의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서지훈이었다. 임이최 세명이야 본좌 소리를 듣던 괴물급 게이머였고, 서지훈 또한 상당히 강력한 게이머였는데, 이들의 최전성기의 기량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치뤘던 것이 홍진호의 결승전이었고 그 결과 준우승만 차지하게 된 것이다. 물론 정상급 테란을 잡고 우승한 저그의 사례(대표적으로 박태민, 이제동)도 있으므로 이것만 가지고 홍진호의 준우승의 이유에 대한 절대적인 해명이 될 수는 없겠지만... 참고로 준우승 횟수로도 역대 최다이다. 그 다음은 이윤열, 이제동, 임요환, 송병구, 정명훈이 공동으로 4회다.[26] 이들은 전부 다 최소 1번씩은 우승해봤다는 점이 홍진호와 다르다.
그가 속했던 팀 또한 그가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팀 리그에서 한번, 양대 개인 리그에서는 다섯 번의 준우승만 했을 뿐 우승은 한번도 거머쥐지 못했다. e-sports계의 명문 구단이라 불릴만큼 화려한 라인 업을 자랑하던 그의 소속팀 KTF 매직엔스는 개인 리그와 팀 리그도 이윤열의 임대 시절 그랜드슬램 우승을 제외하면 조용호가 MSL에서 우승할 때까지 단 한번도 정규 리그의 우승을 한 적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 투나SG시절에서도 프로 팀 리그에서 준우승했었다.
이 시절 기록을 보면,
  1. 2003년 12월, 이윤열과 함께 KTF 매직엔스 임대 생활을 마치고 투나 SG로 복귀.
  2. 복귀하자마자 네오위즈-피망 프로리그에서 준우승.[27]
  1. 이후 2004년 4월 홍진호가 KTF 매직엔스로 정식 이적(이윤열은 남았다).
  2. SG는 팬택 앤 큐리텔 큐리어스로 새롭게 창단. 이후 팬택 앤 큐리텔 큐리어스는 이병민이윤열을 앞세워 SKY 프로리그 2004 2라운드에서 우승.
  3. 정작 홍진호가 몸담게 된 KTF 매직엔스는 SKY 프로리그 2004 3라운드에서 준우승.
  4. KTF 매직엔스, SKY 프로리그 2005 전기 리그에서 준우승.
  5. KTF 매직엔스, SKY 프로리그 그랜드 파이널에서 준우승.
  6. 2008년, 홍진호 공군 ACE 입대.
  7. KT 롤스터, 홍진호가 아직 말년병장이던 2010년 10월 신한 은행 프로리그 2009-10에서 마침내 우승.
  8. 홍진호 전역 후 KT 롤스터 복귀. 신한 은행 프로리그 2010-11의 3라운드 위너스 리그에서 또 준우승.
  9. 2011년 6월 홍진호 은퇴.
  10. KT 롤스터, 신한 은행 프로리그 2010-11에서 우승.
...공포가 따로 없다.
여담으로 스1 양대 리그 테저전 결승은 총 17대7로 테란이 우세를 보이는데, 홍진호의 양대 리그 준우승 5회를 우승했다고 가정하면 12대 12의 동률이 된다...

3.2. 우승도 있다


그런데 사실 우승 기록이 전무하지는 않다.
꽤 수준 높은 선수들이 모인 대회에서 우승을 따낸 사례가 좀 있다.
특히 가장 빛나는 우승 경력은 2002 KT배 온게임넷 왕중왕전 우승. 왕중왕전의 경우 2000년 1회 대회 때 우승자가 기욤 패트리인데 그의 프로게이머 국내 커리어 중 가장 빛나는 우승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 내용이 2:0으로 지고 있는 상대에서 국기봉을 역 스윕. 더군다나 다음 시즌 시드까지 확보했었다. 이 것은 당시 온게임넷과 스타 팬들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으로 왕중왕전이 당시에는 결코 정규 리그에 못 미치는 대회가 아니었다는 게 드러난다. 게다가 온게임넷은 기욤 패트리를 소개할 때 하나로통신'배 우승과 왕중왕전을 합쳐 2회 우승자로 소개했다. 당시 왕중왕전의 무게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해당 문서 참고. 이곳도 참고하자. 그리고 이 대회의 결과를 기점으로 하여 차기 시즌인 2002 NAT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시드 결정은 조지명식 전에 따로 시드 결정전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MBC게임의 왕중왕전이라 할 수 있는 KTEC 위너스 챔피언쉽에서도 우승 경험이 있다. KPGA 1차~4차 투어의 상위 입상자들을 모아 승부를 가린 대회로, 김철민 캐스터 역시 우승 후에 첫 메이져 대회 우승이네요라고 했으며, 1회 MSL인 Stout MSL에서 시드가 지급되었다. 이때의 시드는 네 장으로, 4차 KPGA 투어 우승/준우승자인 이윤열/조용호, 위너스 챔피언쉽 우승/준우승자인 홍진호/임요환이다. 홍진호의 마지막 결승전으로 이야기되는 2003년 TG삼보 MSL 결승전에서도 제3경기에서 해설이 홍진호의 열번째 결승전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28] 적어도 당시까지는 준우승자 기믹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이야기. 여담으로 위너스 챔피언십(MBC게임)+왕중왕전(온게임넷)+파인드올배 챌린지 오픈(겜TV)에서 우승했지만 양대 개인 리그에서는...
덧붙여 2003년 iTV 랭킹전 5차 대회에서도 우승한 전력이 있다.[29]
어쨌거나 양대 개인 리그 체제가 갖춰지면서 이들 대회는 전부 정규 리그 기록에서는 제외당해서…. 콩빠들도 홍진호가 워낙 잘하다보니까 "언젠가는 우승하겠지?"식으로 생각했다. 거기다가 진성 콩빠(=스타리그 올드팬)의 상당수가 임요환과 팬층을 공유하기 때문에, 스타리그-엄재경 사관, 양대 리그 사관에 순응해버린 것도 크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이후 박성준Gillette 스타리그 2004 우승을 "결승전에서 테란 안 만났다", "머큐리 끼고 우승했다"라는 이유로 우승을 격하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의 박성준은 듀얼 토너먼트에서 임요환, 16강전에서 한동욱, 8강전에서 서지훈, 4강전에서 최연성을 꺾고 결승전 전까지 거의 저그전을 가장 잘한다는 정상급 테란들을 물리치면서 올라갔는데도 말이다.[30] 또한 박성준이 두 번째로 우승한 EVER 스타리그 2005에서는 16강전에서 전상욱, 8강전에서 변형태, 4강전에서 서지훈, 결승전에서 이병민을 꺾고 이번에는 16강부터 결승전까지 모두 테란을 만나는 대진 끝에 우승했는데도 말이다.[31][32] 그리고 이는 반대편 [박태민]]의 당신은 골프왕 MSL 우승도 잘 인정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승자 8강에서 전상욱, 승자 4강에서 서지훈, 패자 결승에서 다시 서지훈, 그리고 7전 4선승제로 치뤄진 결승전에서 이윤열을 꺾는 등 거의 저그전을 가장 잘한다고 평가받은 정상급 테란들을 승자 8강부터 결승전까지 매라운드 만나면서[33] 꺾고 우승했는데도 말이다.[34] 홍진호의 팬이 저그빠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적절한 예시이다.
요약하자면 온게임넷 스타리그 / MSL 위주로 커리어를 대접하는 시대가 오면서, 하필 그 대회들만 우승 경력이 없던 홍진호의 다른 우승 경력은 자연스레 묻혀지고, 이후에도 정규 대회 우승을 못한 탓에 자연스레 2인자 기믹이 붙으면서 2등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은 흥행을 위해 방송사가 우승을 말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엄재경의 스토리텔링은 홍진호 이후에도 끊임없이 저그, '테란을 꺾고자 하는 2인자 저그'를 붙들고 이루어졌다. 박성준Gillette 스타리그 2004에서 우승하자 저그의 한이 풀렸다고 했음에도 IOPS 스타리그 04~05에서는 또 다시 테란을 꺾지 못했다고 저그의 한이 풀리질 않았다고 하다가, EVER 스타리그 2005에서 결승전에서 테란을 꺾고 우승을 해서 저그의 한이 풀렸다고 발언을, 그리고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는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을 꺾고 우승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그의 한이 풀리질 않았다고 드립을 치는 등 끊임없이 스토리를 이었다. 결국 홍진호는 저그의 대표주자였기 때문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보았고, 이 과정에서 희생 당한 것이다. 물론 본인이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했었다면 논란이 없었겠지만(...).
정작, 홍진호는 이에 대해서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냥 대인배라서(...) 일수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다 보면 더 억울한 사람도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컨데 김정민은 당시에는 방송사 게임보다 중요했던 오프 라인 대회에서 무수한 우승을 거두었지만, 방송사 위주로 정립되면서 사실상 커리어 이미지가 4강 테란 정도로 고정되어버렸다. 이런 선수는 사실 한 둘이 아니고,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꾸준했던 홍진호는 상대적으로 덜 희생당한 편이었다. E스포츠가 커지면서 생긴 로비라고 볼 수 있겠다.
여기에 반론을 더하자면, 방송사대회보다 중요했던 오프라인 대회는 사실상 없었다. 당시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위상이 낮아 스타리그만큼 권위있는 대회들이 있었지만, 그 대회들이 스타리그'보다' 중요하다고 평가받은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당시 스타리그 외에 가장 평가받는 대회도 인터넷 중계로 진행되던 겜큐리그였다. 무엇보다 오프대회들이 스타리그와 비슷한 메이저로 인정받았던 것은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까지이며, 홍진호가 활약을 시작한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부터는 스타리그와 다른 대회간의 격차는 매우 벌어졌다.
또한, 시간이 흐른 후에 양대리그로 재편됐으니까 양대리그만 권위가 남았다고 말하지만 이것도 명백히 오류다. 당시 엄재경의 스토리텔링은 양대리그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온게임넷'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온게임넷 대회에서 온게임넷 해설자가 하는 말이기 때문이기도하고, 당시까지는 온게임넷과 다른 대회와의 격차가 컸다. 차후에는 '양대리그'로 인정받은 MSL과의 차이도 꽤 컸다. 마침 MSL의 전신인 02 KPGA투어에서부터 저그가 준우승이 최고성적이었고 이후 Stout MSL부터 본격적으로 메이저 대회로 올라가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였고, 하나포스 센게임 MSL 시기부터는 본격적으로 MSL의 권위가 강화되면서 '온게임넷'을 기준으로 말했던 것이 '양대리그'를 기준으로 확장되었을 뿐이다.
당시부터 권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양대리그가 남은 것이지, 단순히 남았기 때문에 권위를 인정받은 것이 아니다. 이는 MSL로 알 수 있는데, 시간이 흐른 후 겜비씨 시절 중계하던 KPGA투어를 빼고 MSL만으로 권위를 인정하려다가 팬들의 큰 반발로 인해 실패한 역사가 있다. 하지만 KPGA투어를 모두 인정하는 것도 아닌데, 02년의 KPGA1,2,3,4투어는 인정하지만, 01년의 KPGA투어는 '월별대회'라고 부르며 인정하지 않는다. 본래 KPGA투어가 매달 대회를 열었는데 스타리그와 규모와 권위면에서 너무 차이가 나자, 02년부터 대회기간을 늘리는 선택을 했고 이 때부터 다수 팬들과 선수들이 '메이저'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2~4월리그' 같은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과거에 있던 대회 중 나중에 그 때까지 역사가 남아있는 대회만을 선별한 것이 아니고, 과거시점에 이미 선별되었기 때문에 나중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과거대회 중 겜큐리그만은 당시에 인정받았으나 남아있지 않은 대회라고 할 수 있는데(겜비씨가 개국하면서 겜큐를 진행하던 사람 다수가 겜비씨에 합류했다.), 홍진호는 겜큐리그가 있던 당시 막 떠오르는 신인이었기 때문에 성적이 없으므로 해당사항이 없다.
단순히 흥행을 위해 기록을 말소했다는 건, 그때부터 지켜보단 스타판의 팬들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다. 판이 작았기 때문에 당시 팬들의 영향력은 도리어 더 강했다. 양대리그가 정립된 이후 홍진호가 우승한 대회들(왕중왕전, 위너스챔피언쉽, 챌린저오픈, 올스타리그등)은 모두 대회 전에 다음대회가 열리지 않는 것이 확정된 후 열렸던 대회들이다. 다음 대회 기약도 있었던(홍진호의 활약이 적었던) GhemTV 스타리그나, KT-KTF 프리미어 리그, CJ 슈퍼파이트조차도 결국 차기대회가 열리지 않으면서 삭제됐는데, 홍진호가 활약한 대회만을 언급하면서 흥행을 위해 삭제했다는 식의 표현은 옳지 않다.
스타크래프트 은퇴 이후 2013년 7월 13일,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에서 상금 7천 9백만 원을 거머쥐며 우승했다! 시즌 2 예고가 떴으니 정규시즌이다.

3.3. 프로게이머로서


  • 저그로 종족을 정한 후에도 랜덤 실력이 출중해서 타 종족으로 팀원들 연습을 도와줄 정도였다고 한다. 이게 2006년의 인터뷰에서 나온 사실이니 전성기 기량을 유지하는 동안 타 종족 역시 잘하는 편이었다는걸 알 수 있다. 실제 올스타전에서 랜덤 테란으로 박정석의 랜덤 프로토스(랜덤이었는데 주종이 걸렸다)를 멀리 보내버린 적이 있다. 또, 2003 에버 프로리그 올스타전(030816, 기요틴)에서도 '랜덤 프로토스'''로 박정석의 '랜덤 저그'를 관광 보낸 바 있다(근데 영상 초반에는 홍진호 저그라고 뜨는 걸로 봐선 즉흥적으로 랜덤을 택했다가 프로토스가 나온 듯하다).
  • 무려 택뱅리쌍과 상대 전적이 vs 이제동 1승 1패, vs 송병구 4승 4패, vs 김택용 1승 1패로 상대전적을 동률을 기록하고 있다. 단 vs 이영호는 같은 팀이었던지라 공식전에서는 전적이 없으나 연습 경기 때 단 한판을 치뤘고 그 경기를 이겼다고 박태민, 강민의 개인방송에서 이야기했다). 이제동과는 썸다운 세리머니와 35분짜리 하이브 명승부, 송병구와는 스타리그에서 자주 마주쳤던 데다 콩라인의 수장과 계승자의 관계, 김택용과는 6.20 황색혁명, 이영호와는 팀 선후배 등으로 택뱅리쌍과도 이런저런 관계가 맺어져 있다.
  • KT 매직엔스의 마스코트 쇼군은 홍진호를 상징한다. 티원의 마스코트 벙키임요환을 상징하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나 인기는 벙키가 더 높다. 그러던 중 쇼군은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 박카스 스타리그 2010 결승전에서 오프닝을 전용준과 함께 장식했다. 그리고 콩 라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우승과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먼 존재. 참으로 적절한 정의다.) '비록 자기 라인들의 선수들이 한두 번의 콩라인 이탈을 하더라도 자신도 우승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서 너그러이 그들을 명예 콩라인으로 대우할 것'이라고 했다.
  • 2011년 9월 28일, 켠김에 왕까지를 촬영중이라는 소식이 트위터에 올라왔다. Wii로 베이징 올림픽을 하는 중이라고. 방영 날짜는 아직 불분명하며, 빠르면 11월 초에 방영될 예정. 여담이지만 트위터에 살려달라고 올렸다.(...)
  • 2011년 8월 15일 젤나가 동굴에서 벌어진 곰 TV 스페셜 매치 임요환vs홍진호 전에서 홍진호가 맹독충을 쓰자, 임요환이 채팅으로 '니가 그 연두색 콩 좋아할 줄 알았다'라고 했다!
  • ~~블앤소 진출~~

  • 2012년 9월 4일 GSL 2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2번째로 인터뷰 영상이 나왔다. 첫번째로는 이정훈이 나왔고 그의 모습을 본 중계진은 외계어를 구사해 앞부분 내용이 묻혔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난 후 중계진은 둘을 훈콩으로 엮어줬다.
  • 2003년 8월 MBC의 TV특종 놀라운 세상에 출연해 시각장애인 게이머 이민석 씨와 게임을 했는데 프로게이머답게 여유있게 플레이하다가 핸디캡인 경기 중간 1분동안 모니터 끄고 플레이하기가 적용된 순간 굉장히 당황하며 본진이 털릴뻔 하였다.[35] 핸디캡이 해제된 순간 쑥대밭이 된 화면을 보고 허탈해하다가 이내 상황을 수습하고 최종적으로는 승리를 거두었다.

3.4. 스타크래프트 예능 활동



3.4.1. 강민의 올드보이


프로그램의 '최종보스'.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고. 5화에서 엄청난 예능 감각을 보여줬는데 이 편이 방송되었을 때가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과 연이어 임요환이 연애 스캔들 터트렸던 시기라 '임 논개'를 뒤따르는 '콩 논개', 역시 그분의 유일한 라이벌라는 말이 나오기도. 그리고 실제로 스갤에서는 대단한 효과가 나타났다.
공개된 에피소드에 의하면 22일에 '새마을'호를 예약하자 2호차 22호석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2010년 7월 8일 포모스와의 인터뷰에서 문제의 2호차 22호석 새마을호 표를 '인증'했다.
[image]

3.4.2. 드리머


2010년 7월 23일 온게임넷 10주년 기념 올드게이머들에 대해 재조명하는 '드리머'에 1회 출연하였다. 가장 아쉬운 경기는 올림푸스 스타리그 결승전으로, 서지훈에게 패배한 이후 무대 위에서 울었다고 한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던지, 홍진호의 형이 굉장히 닮았다던지 하는 가정사도 나왔다. 이등병 시절엔 개념없어서 맞선임에게 대든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후임을 받고 선임들을 이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태민, 서지훈, 박영민의 인터뷰로 미루어보아 꽤나 후임들을 갈궜던 모양. 스탭롤에서 그네와 미끄럼틀을 타는 장면이 잡히기도 했다.

3.4.3. 기타


제대해서 KT롤스터로 복귀한 후 출연, 질문에 대답을 할 때마다 폭풍 같은 전기를 받았다. 하필이면 특집이라고 2회 방송했다.
감독. 이 프로그램을 기점으로 '방송인이냐'는 비판이 폭증했다.
프로그램 말기에 출연, 은퇴 이후 프로그램이 폐지되기까지 잠시나마 얼굴을 더 비추었다.
2011년 2주년 특집부터 출연, 이후 100회 특집에도 출연하고 2013년에 재등장.

3.5. 콩은 까야 제맛


이렇듯 강한 게이머, 저그의 기초를 다진 게이머, 2017년 현재까지도 스타판에서 활동하며 살아있는 전설로 남은 게이머 홍진호. 그가 보여준 승리와 세운 업적은 물론 팬들과 함께한 오랜 시간은 분명히 많은 게이머와 팬들의 존경을 받아야 마땅한데… 실제 상황은…

스갤러 A : 콩은 까야 제맛!

스갤러 B : 콩 까면 사살!

스갤러 C : 콩은 두 번 까야 제맛!

스갤러 D : 콩 까면 3대가 폭풍설사!

현실의 홍진호는 스갤을 넘어서 대한민국 인터넷 서브컬처계 전반에서 가장 많이 까이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까이는 방법도 기상천외하며, 까이는 이유도 셀 수 없다. 본 문서에 따로 분류되어 있는 준우승 횟수, 콩 댄스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 콩탈과 드론 조공 그리고 삼연벙 등등. 또한 희대의 2인자라는 의미로 그냥 2에 관련되면 모든 것을 그의 공으로 돌리게 된다.
이러한 끝없는 까임 떡밥들은 스갤을 비롯한 스타크래프트 관련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있으며, 또한 즐긴다. 이 까임은 비단 스타관련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DC인사이드 전체, 아니 일정 이상의 남성 이용자를 보유한 인터넷 전반에 넓게 퍼져있다(스덕 외부로의 확산은 2008년부터로 보이며, 이런 확산에는 당시 엔하위키가 상당한 공헌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까이는 만큼 수명이 는다면 홍진호 또한 불로불사에 닿았으리라...
콩까가 준동한 것은 삼연벙 이후이다. 삼연벙 사건 이후 초기에는 이기기 위해서 별 짓을 다 한다며 임요환을 깠지만, 과도한 홍진호 실드에 대한 반동+이후 저그들이 벙커링을 잘 막아낸 사실+홍진호의 성적이 하락한 것에 대한 반동으로 콩까가 늘었다. 그러니까, 2006년까지만 해도 콩까는 택까, 꼼까, 벼까, 임까와 같은 진짜 까였다. 콩까가 문화로 자리잡은 것은 2007년 경,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 시절이다. 이 시절 스갤은 PGR21이 문을 닫음으로써 명실상부한 스타 커뮤니티의 중심지가 되어있었다. 중계권 협상, MSL 예선 보이콧 등으로 매일매일 우울한 하루를 보내던 스갤러들은 새벽마다 콩까기 문화로 하루의 슬픔을 달랬고, 결국 이것이 빠와 까를 떠나 스갤러의 소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까야 제맛의 경지에 올라섰다는 것. 올드 게이머는 대체적으로 호감의 아이 콘이 되어있기 때문은 물론, 까다 보니 정들었다는 팬들도 존재. 결국 그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시간이 지나도 지칠 줄 모르는 까임과 함께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는 황신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요약하면 콩까기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꾸준한 화제거리이자 떡밥, 이슈이자 공감대로 아직도 남아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겠다. 좀 심하게 비약해서 이 바닥의 선수 까는 문화의 가장 큰 공로자는 홍진호가 아닌가하는 의견도 있을 정도이다. 3연벙처럼 게임을 마구 던지는 것만이 홍진호의 특성은 아니고 , 스타리그에서 불리한 상황에서 컴퓨터 이상이 생기자 바로 GG를 치고 나갈 정도의 인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상위 문서말말말 문단 중 '저그로 합니다. 남들이 못해 본 승리, 제가 해보고 싶어요.' 참고.
그러나 과도한 콩까기 문화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조성하는 것도 사실. 아래의 '그림자살인 평점 2.2점 사건'에서 보듯이, 이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만은 아니다. 또한 이런 과도한 콩까기 문화가 홍진호를 조롱거리로 만들었고, 결국 홍진호가 게임에 대한 열정을 잃게 만든 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4. 스타크래프트 1 이후 게임 관련 활동(2011년~)



4.1. 스타크래프트 2 도전(2011년)


펩시 GSL July. 결승전에서 심상치 않은 떡밥이 흘러나왔다. 결승전 전 틀어 주는 영상에서 홍진호가 망치로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를 부수는 영상과 함께 'I'm coming'이라는 문구가 뜨더니, '2011.08.12'라는 날짜와 '프로젝트 A'라는 단어가 뜬 것. 뭔가 곰 TV 와 함께 스타크래프트 2와 관련된 이벤트를 벌이는 것은 분명하나, 그 이벤트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스투유저들이 가장 기대하는 시나리오는 강민의 올드보이와 같이 홍진호가 코드 A 획득을 위해 노력하는 프로젝트. 허무 맹랑한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확실히 무시못할 가능성이었다. 하필이면 프로젝트 A라고 하는 바람에 더 수상했다.
다만 스타크래프트2 레디액션이 2주간 결방되어서 12일쯤엔 다시 방송을 시작한다는 점에 미루어 홍진호가 참여하는 개편된 레디액션 방송일 것이라는 관측이 주요했으나, 8월 9일 기사와 당일 GSL에서 해설자들의 입으로 "홍진호의 코드 A 도전기"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12일 '홍진호의 Project A'라는 이름으로 첫 회가 방영되었다.
1화에서는 홍진호를 스타크래프트 2 예선 리그에 출전시키는 서약을 받아내는 것에서 시작해서 종족을 선택하는 과정까지의 내용을 다뤘다. 조금 고민하지만 역시 저그를 선택. 이 날 방송에서 스타 1에서 저그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는데, 악당이 되어 깨 부수고 싶은 의도였다고. 그리고 결국 정의는 승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같은 날 김가연이 홍진호의 개인 에이전트를 맡게 되었다는 기사가 뜸으로 SlayerS 입단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다만 김가연은 에이전트일뿐이지 입단은 아니며, 이것은 차후 홍진호가 직접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이에대해서 한쪽은 골드 리거가 어디 가냐는 비관적인 입장이고, 다른 쪽은 임진록 때 메카닉 등의 기본기는 충분히 갖추고 있음을 보였고 선수 생활의 경력도 길다는 이유로 해 볼 만하다는 입장. 물론 양쪽 다 콩이 코드 A에 진출하길 바라는 것은 똑같다.
다만 본인은 전향이라는 단어에 상당히 부담을 느끼는 듯. 자신의 실력이 아마추어 수준보다 떨어진다고 인정하고 있으며[36], 프로젝트 A 자체도 도전에 의의를 두는 것이지 실제 스타 2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게 될 지는 미지수이다. 에이전트를 맡게된 김가연씨도 자신의 트위터에서 홍진호의 전향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전향 같은 단어로 부담감을 주지말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대망의 코드A 예선이 있는 9월 3일...하필이면 두 번째 경기에서 Maelstrom이라는 선수에게 패배해 코드A 진출에 실패했다.

4.2. 리그 오브 레전드 감독 홍진호(2012년~2013년)


2012년 2월 22일 22번째로 창단된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임단 Xenics Storm의 감독이 되면서 E-Sports로 돌아왔다. # 팀 합숙을 2월 2일 시작하고 발표를 22일에 했다(이후 인터뷰를 보면 어느정도 본인이 의도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날 하필이면 2월 내내 떠들썩했던 강용석 국회의원의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고소사건이 드디어 종결되면서 전 인터넷이 이 이야기로 불타오른 날이라 묻혔다.
2월 14일, LOL의 국내 첫 정규리그인 '리그 오브 레전드 더 챔피언스 스프링 2012(=LOL 더 챔피언스)의 출정식이 있었는데, 조 추첨식에서 B공을 뽑았다.
2월 22일 LOL the Champions 예선전에서 Xenics Storm의 첫경기를 치렀는데, 2경기 연속 22킬을 기록하면서 승리, 예선 통과를 확정지어 성공적으로 데뷔하였다! 그리고 2월 27일 나는 캐리다에 출연이 확정됐다!
3월 28일, 챔피언스 스프링 2012 제 2경기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북미지역 No.1 CLG를 상대를 하게 되었는데 초반에 기습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기가 막힌 역전극을 펼쳐내며 12킬 2데스로 CLG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게 된다. 해설진들도 2드립을 뿜어내며 이 정도면 무섭다라고 드립을 칠 정도(...)
4월 20일 열린 8강전에서 제닉스 스톰은 MKZ를 상대로 1경기는 압도적으로 유리함을 이끌어내면서 22분에 서렌을 받아내면서 승리하였다. 2경기에서는 22킬로 게임을 승리로 끌어낼 수 있었지만, 21킬째 상황에서 MKZ의 남은 챔프는 우르곳 한명 뿐일 때 우르곳을 잡으려던 SBS의 시비르가 무리하게 다이브를 해서 우물 포탑에 맞고 사망하는 등 실패하고 경기가 더 길어지다가 승리. 22킬은 하지 못하였지만 제닉스 팀의 서포터였던 폭풍의 분노 잔나가 2킬 2데스 22어시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5월9일 제닉스 스톰과 팀OP의 경기에서 승리해 3등으로 상금 200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OLYMPUS the Champions Winter 2012-2013 이후 안습의 상황. 예전 Storm은 하필 모기업 Xenics와의 문제로 인해 팀원 전원이 계약해지를 당해버렸고, 2팀이었던 Tempest는 예선 탈락. 그런데 계약해지한 팀원의 이야기에 따르면 선수단 관리나 오더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감독의 자질에 대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Xenics Storm 문서 참조. 게다가 남는 시간에는 프로 포커 플레이어로 연습도 하고 있다는 루머도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고, 관련 질문을 받으면 본인은 감독직이 별로 맞지 않았다는 것과 선수들과 불화가 생겼다로 넘어가고 있다. 애초에 팀 설립 배경 자체에 어른의 사정이 개입해 있다는 설도 있다. 이후 모 대학 강의에서 홍진호는 1년간의 감독을 실패라고 자평하며 안타까워했다.
결국 2013년 LOL 클럽 마스터즈를 앞두고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 구단 프론트로 이동하였다.

4.3. GG 투게더(2017년)


광안리에서 열리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런칭 행사에 참석, 임요환과 맞붙을 예정이다.[37]

4.3.1. 1세트: 투혼



서로 치고 박는 난타전 끝에 홍진호가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초반에 임요환이 대놓고 벙커링을 시도했을 때 홍진호가 드론들을 동원해서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모습이 나왔다.

4.3.2. 2세트: 신 개마고원



임요환의 센터 팩토리를 홍진호가 일찍 발견했음에도, 임요환의 벌처 이후로 들어온 빠른 바이오닉 러시에 홍진호가 속절 없이 밀리면서 임요환이 승리를 거두었다.
게임 시작 전에 임요환이 홍진호에게 연예계 활동보다 게임을 더 많이 했냐는 투로 채팅에 글을 쓴 게 보인다. 스타 공식 경기에서 채팅이 금지된 게 임요환의 게임 중의 채팅들 때문이었는데, 이날 친 임요환의 채팅을 보면 임요환 채팅의 독기는 여전했던 모양이다.
여담으로 2세트 2경기는 정확히 22시 22분에 시작하였다.



[1] 4강에서 김동수에게 1:2 패[2] 4강에서 박정석에게 2:3 패[3] 4강에서 이윤열에게 1:3 패[4] 1세트에서 재경기 발생. 마지막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 진출이자 준우승.[5] 4강에서 임요환에게 0:3 패[6] 4강에서 이윤열에게 0:2 패[7] 4강에서 한동욱에게 2:3 패[8] 김갑용, 조용호, 주진철, 장진수와 함께 팀플전 공동 다승왕 수상[9] 온게임넷 역대 다승 2위[10] 조용호는 재야시절 9드론만으로 한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11] 물론 정말로 홍진호의 경기를 직접적으로 참고했다는 소리는 아니고, 홍진호가 처음으로 선보였던 개념들이 보인다는 소리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허영무가 신저격능선에서 보여준 한방러쉬와 임성춘이 전성기 시절 보여준 한방러쉬의 관계정도라 할 수 있겠다.[12] 2000년대 초반 스타를 중심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랜덤전을 하면 다른 게이머들이 홍진호와 같은 팀을 하려들기도 했다. 겜비씨 시절 방송한 TPZ에서도 임요환, 홍진호, 김동수 vs 이윤열의 무한맵 랜덤전을 보면 임요환과 김동수가 홍진호에게 기대를 하는 모습을 보였고, 다른 게이머들을 부종으로 연습해줬다거나 심지어 테란 게이머인 김정민에게 바이오닉에 대한 어드바이스를 줬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13] 이후 홍진호는 NHN한게임배와 질레트 스타리그 2시즌 동안 스타리그에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14] 김정민의 말에 따르면, 숙소에서 질레트 스타리그 결승을 보던 홍진호와 조용호는 박성준이 우승하는 장면을 차마 끝까지 보지 못했다고 한다.[15] 홍진호는 손이 특출나게 빠르거나 컨트롤이 좋은 즉 ‘피지컬이 좋은’ 게이머는 절대 아니었다.[16] 이 항목에 들어올 정도 사람은 다 알겠지만 섬맵은 2010년대 후반 섬맵에서의 저그 약세를 극복하기 위해 갖은 요소(크립을 통한 멀티 확보 제한과 나이더스 커널 이용 보조, 저그 전용 가스)를 깔아둔 스파클조차도 프로토스에게 기울었을 정도로 저프전 밸런스가 막장이다.[17] 하지만 홍진호의 양대리그에서의 저프전 같은 경우 총 전적이 온게임넷에서는 41전 23승 18패 (56.1%), MBC게임에서는 19전 8승 11패 (42.1%)를 기록했을 정도로 불안한 측면이 있어서 아무리 상성 종족이 유리한 결승전이어도 불안한 측면이 보여서 무조건 우승을 하기 쉬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보이기에는 어려운 편이다. 반면 홍진호의 양대리그에서의 저저전 성적 같은 경우에는 총 전적이 온게임넷에서는 43전 30승 13패 (69.8%), MBC게임에서는 31전 20승 11패 (64.5%)로 굉장히 높은 고승률을 자랑했기 때문에 만약 저저전 결승전이었으면 홍진호의 우승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이다.[18] 홍진호의 뮤탈이 콩탈의 오명을 벗어던진 것은 공군 ACE에서 연습을 한 이후였다.[19] 이 경기를 통해 오영종은 자신의 상징하는 사신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20] 같은 팀의 박정석은 2007년 프로리그 개인전 전패(...)를 기록하기도 했다.[21] 실제로 홍진호가 공군 ACE 전역 후 다시 KT에 복귀했을 때 KT는 위너스 리그에서 SKT에게 패해 준우승을 했다.[22] ...KT 롤스터 팬들과 함께 하는 송년회에서 팬들과 함께하는 프로 팀 리그로 진행됐다. 성승헌 캐스터와 전문 MC 장용휘가 진행을 맡은 이번 프로 팀 리그는 팬과 선수들이 함께 섞여 한 팀을 이룬 채 7전 4선 승제 프로 팀 리그 방식으로 경기가 이루어졌다. 핸디캡 매치로 진행된 본 경기에서 박정석은 주종이 아닌 테란으로 경기를 해 승리를 거뒀으나 홍진호는 마우스만 사용한 경기에서 패하는 등 팬들에게 색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경기 결과 박정석이 속한 최용주 팀이 4대1로 홍진호, 이영호가 속한 강현우 팀을 꺾고 승리 상품인 문화 상품권을 획득했다(이상 출처 포모스). 이 이벤트'전은 아프리카에서 방송을 했다고 한다.[23] 당시만 해도 다들 팬서비스로 22줄 맞춰준 줄 알았는데, 2019년 개인방송에서 홍진호가 바로 이 항목을 보면서 22줄이었어?라고 하며 그냥 우연히 22줄이 된 것임이 밝혀졌다. [24] 강현우 쪽 문제라는 심판의 설명이 있었다. 키보드 조작 실수로 윈도우 바탕화면으로 나갔다고[25] 원본은 카모가와 겐지 "노력한 사람들이 모두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반드시 노력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26] 특히 임요환과 정명훈은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만 4회 준우승을 기록하면서 온게임넷 기준 최다 준우승 타이 기록을 가지고 있고, 이윤열과 이제동은 MSL에서만 3회 준우승을 기록하면서 홍진호와 함께 MBC게임 기준 최다 준우승 타이 기록을 가지고 있다. 홍진호의 나머지 준우승은 온게임넷에서 두 번, 이윤열과 이제동의 나머지 준우승은 온게임넷에서 한 번 기록했다. 송병구는 온게임넷에서는 세 번, MBC게임에서는 한 번을 기록하면 단일 대회 최다 준우승자 기록은 가지고 있지 않다.[27] 엄밀히는 복귀하자마자는 아니다. 투나SG 소속으로도 리그경기가 있었다. 이때 홍진호는 피망 프로리그의 1라운드는 거의 끝까지 KTF매직엔스 소속으로 경기했고, KTF는 이미 8팀 풀리그 후 4위에 들지 못해 1라운드 광탈한 상태였다. 한편 투나SG는 이병민 등의 활약으로 1라운드에서 4위로 2라운드에 진출하였고, 이 1라운드 막바지 시점에 KTF와의 임대계약이 끝난 홍진호와 이윤열이 투나SG로 복귀, 투나SG 소속으로 1라운드에서 팀플 1경기(1패), 2라운드에서 팀플 3경기(2승 1패) 출전하여 도합 2승 2패의 성적을 기록하였으며, 2라운드에서의 저 팀플 성적을 보면 투나SG의 1위 결승 직행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 문제는 결승이었는데, 슈마GO와의 결승에서 1경기부터 박태민과의 저저전에서 패하고, 바로 이어지는 2경기 팀플에서 이윤열과 팀을 짜 출전했으나 강민/박태민 조합에 또 패하여 7전4선승으로 진행되는 결승전 경기에서 팀에 2패를 안겨주고 시작하게 된 바람에 팀이 준우승하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해버렸던 것이었다. 결국 이 결승은 4:1 슈마GO의 우승. KTF 소속으로는 1라운드 탈락(KTF소속으로는 당 시즌 개인전 1승1패, 팀플 1승2패로 저조한 성적), 임대가 끝나 돌아온 투나SG에서는 결승행까지 기여를 하기는 했지만 결승에서는 패배의 주역과 같은 역할이 되어버려 까였던 데다가, 이 결승이 끝나고 한달 정도 후 KTF로 완전이적하게 되어 투나SG 소속의 선수들이나 팬들 입장에서도 썩 뒷맛까지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여 홍진호 개인적으로는 영 달가운 시즌이 아니었을 것이다. 3연벙을 당하던 해의 시작은 정말 썩 좋지 않았다..[28] 이 영상의 40분 5초부터 보면 된다.[29] 이전에 iTV 랭킹전온게임넷 스타리그보다 역사가 오래됐으며, 역사가 끊기지않고 이어졌다면 홍진호가 우승자 대접을 받았을 것이란 기술이 있지만, 명백히 틀린 이야기이다. iTV 랭킹전은 투니버스보다 늦게 게임방송을 시작했으며, 투니버스가 이 게임방송을 더욱 키워서 새로운 방송국(온게임넷)을 개국해서 명칭이 온게임넷 스타리그로 변경된 것인데, 이를 기준으로 ITV 랭킹전의 역사가 더 길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심하다. 또, 우승자 대접도 낭설인 것이, 같은 해 2003 Olympus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홍진호가 결승에 진출한 당시 방송사에서 밀던 스토리는 '홍진호의 정규리그 첫 우승'이 아니라, '저그의 정규리그 첫 우승'이다. 저그 유저 봉준구가 1회대회를 우승한 iTV 랭킹전인데 대회가 계속 진행되던 당시조차 대접을 안해줬다는 증거. 애초에 우승자 대접을 해 줄만한 권위의 대회였다면 대회가 없어지지도 않았다. 양대리그만 남아서 양대리그만 인정받는다고 사람들이 착각하지만, 양대리그 외에 제3의 대회를 노린 대회는 정말 꾸준히 열렸지만 인정을 못 받았기 때문에 남지 못한 것이지 남지 못해서 인정을 못받은 것이 아니다. 그런 대회 중에는 양대리그보다 더 많은 상금을 내건 대회도 있었지만 실패했다.[30] 단 이 당시 한동욱은 아직 프로 데뷔도 하지 않은 신예 시절이라 완전히 정상급 저그전을 자랑한 테란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도 있다.[31] 단 8강에서 만난 변형태 같은 경우에는 그 당시 저막이라고 평가받던 시절이자 A급 이상 테란으로는 평가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32] 박성준은 3번째 우승인 EVER 스타리그 2008 때도 역상성 종족인 테란을 안 만났다고 저평가 당했다.[33] 심지어 세트스코어 2:3으로 패한 승자 결승에서도 이윤열을 만날 정도였다.[34] 단 이 당시 전상욱 같은 경우에는 아직 저막이라고 평가받던 GO 시절이라 T1 시절에 저그전이 급격히 강해진 시절과는 차이가 좀 있던 시절이다.[35] 이때 홍진호는 "내 히드라가 죽는 소리만 들려"라며 어쩔 줄 몰라했다.[36] 사실 스1의 저그와 스2의 저그는 완전히 다른 진영 수준으로 운영상의 차이가 있다.[37] 혼자서 둘로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