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찰스/출연자 목록/외국인 신입생/2015년
1. 개요
본 문서는 이웃집 찰스의 2015년 외국인 신입생을 설명하는 문서이다.
2. 상반기
2.1. 1회~5회
- 줄리아 : 본명은 줄리아 알폰소. 이탈리아 출신 요리사로 출연 당시 유로구르메 역삼점[2] 을 운영했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서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다. 직설적인 성격과 시집살이, 언어문제가 안 좋은 방향으로 삼위일체를 이루어서 한창 카오스 진행 중. 남편과 맞벌이를 했던데다가 시집살이 중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집안일은 시어머니가 거의 전담하고 있었다.
- 아노 : 본명은 아노 로드랭. 프랑스 출신. 출연 당시 한국인 부인과 결혼해서 살고 있었다. 서울특별시 강서구에서 1인 크레페(크레이프) 포장마차 야마뜨 포차를 운영해왔는데 장사가 잘 되지는 않은 듯. 어째 촬영할 때마다 진상 손님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술 취한 아저씨들이 아노의 크레이프 집에 와 행패를 부렸고, 아줌마가 크레페가 너무 달다며 덜 단 걸 내놓으라고 하질 않나 심지어 외국인이 천막 쳐놓고 장사한다고 한심하다고 혀차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틈날 때 마다 모델 활동도 겸하고 있었다. 주 고객은 초중고딩들. 얼굴이 데이비드 베컴과 닮았다. 개인주의적인 성격으로 누군가가 자신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내 왈, 자기 주장이 너무 세서 본인의 의견과 조금만 어긋난 의견을 내놓으면 귀를 닫아 버린다고. 아노가 크레이프 장사가 안 된다고 아내에게 고민을 털어놔 아내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팥과 프랑스의 크레페를 합치면 어떻게 되냐는 둥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지만 아노가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고 하다가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그러다가 붕어빵의 시즌 겨울이 되자 크레페 장사가 잘 안되어 결국 팥 크레페를 내놓았다. 2015년 7월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동고동락축제에 참가하여 박원순 시장[3] 을 만나기도 했다. 일본어도 잘한다는 듯. 꿈은 일 년 내에 홍대거리에 가게를 여는 것이었다. 축제 참가 이후 노점상을 폐업하고 프랑스 브르타뉴에 다녀왔으며, 귀국 후에 공인중개사한테서 폐업한 일식 전문점 자리를 인수해 2016년 2월에 합정동에서 크레페 전문점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 아델리아 : 본명은 아델리아 하미예바. 러시아 출신. 출연 당시 한국에서 혼자 하숙집에서 살며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LG전자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갔으며, 각종 언어장벽과 문화적 차이 때문에 신나게(?) 고생했다. 2년 동안 교육을 이수한 다음 러시아 법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려운 단어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말하는 선배들이 여러 부가설명을 덧붙여야 해서 당사자보다 더 고생하고 있었다. 1회 방송 녹화시점에서 따끈따끈한 입사 1주차. 신입생 딱지를 뗄 시점에는 회사 근처로 이사했다.
2.2. 6회~9회
- 샤넌 : 본명은 샤넌 윌리엄스. 영국 출신이자 한국계 혼혈 가수. 해당 문서 참조.
- 마흐무드 : 본명은 마흐무드 아브둘라에프. 우즈베키스탄 출신. 출연 당시 고국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운영난을 겪었다. 샘 해밍턴의 설명을 들은 다음 이를 실천해서 라자트(LazzaT)를 운영하고 있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인하여 한국 생활에 고충이 많은 편이었다. 시장에 갔을 때 기도 시간이 되자 한 구석에서 상자를 깔고 기도를 했다. 아들들과 함께 동대문구에 위치한 홈플러스 매장을 찾았을 때는 초코파이와 밀키스에 금기된 성분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구매하지 않았고 할랄 인증을 받은 프링글스와 식물성 성분이 함유된 채식주의라면, 그리고 초고추장을 샀다. 초고추장은 음식점에서 내국인 손님들이 양고기 요리를 주문하면 제공할 거라고. 용산구청에 내야 할 과태료를 내지 못 해 자동차 번호판을 영치당하자 용산구청을 찾아 110여만 원이 체납되었음을 확인하고 한참을 헤맨 끝에 우리은행에 가서 밀린 과태료를 완납하고 번호판을 되찾았다. 아내, 자녀와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갔는데 종교적인 이유로 기차역에서 메카를 향해 절을 해야 했고 부산에 도착한 뒤에 겨우 찾은 음식점에서는 돼지고기와 술을 판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사온 해산물을 숙소로 가져가서 먹어야 했다. 동업자가 운영하고 있는 음식점을 찾은 그는 술 없이 음식점을 운영할 수 있다는 점에 놀라게 되었고, 신장개업을 결심하게 되었다. 방영 이후 자신의 음식점에 손님이 늘어 동향민을 종업원으로 고용했다. 그리고 팬들도 생겨 할랄 식품을 선물로 받았다. 요리학원에도 다녔다고. 숭어 요리를 팔기 시작했는데, 손님 2명이 한국에서 맛보지 못 한 음식이라고 했다. 이어서 통닭구이도 제공했는데, 맛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의 아들 아히전은 드라마 오늘부터 하모니에서 전학생역으로 출연했다.
-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 : 쿠바 출신 프로배구 선수. 방송 출연 당시 소속은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이탈리아 출신인 여자 친구 마우나[4] 와 함께 살고 있었다. 문서 참조.
2.3. 10회~13회
- 칼리 : 본명은 칼리 셔달. 미국 출신. 알래스카의 한인 업소에 일하고 한국 애니메이션 등을 보며 한국어를 배워 2015년 2월에 한국으로 건너왔다. 방송 당시 아나와 함께 고려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자기 이름이 틀렸다며 직접 고치고 간 적도 있었다.
- 아나 : 본명은 아나 산토스. 포르투갈 출신. 칼리와 함께 고려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방송 이후 모델#s-1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 숨 : 본명은 실라 마마두. 코트디부아르 출신. 2005년에 내전이 일어나자 한국에 난민 신분으로 건너가 살다 플로라를 만나 부부로 살게 되었다. 출연 당시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상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코트디부아르 국민의 60%가 이슬람을 믿고 있어 본인도 이슬람을 믿고 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에 터진 IS 사건이나 이슬람에 대한 편협한 시각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수산시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익숙해져야 하다는 이유로 된장찌개에 돼지고기를 섞어 주지 않나[5] 숨을 '스타(Star)'라고 부르는데 이유가 혼자만 피부가 까만 것이 눈에 띄어서 스타(...) 심지어 숨에게 보는 앞에서 말로 성희롱까지 한다. 인터뷰 도중에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면 스트레스가 굉장히 컸던 듯. 다행히 방송 이후에 이들로부터 사과를 받았다고 한다. 탈장으로 서울적십자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으며, 아내 플로라는 마포구에 위치한 음식점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17회에서 근황이 소개되었는데, 충청남도 예산군이 제2의 고향이라고 직접 밝혔다. 2015년 연말 특집에서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음을 밝혔다.
- 재커리 : 본명은 재커리 마블. 미국 출신. 한때 중국에서 직장 생활을 한 적이 있었지만,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영국 출신인 벤저민 허프와 함께 배달 업체 셔틀 딜리버리[6] 를 세워 운영하고 있었다.
2.4. 14회~16회
- 러블리, 부피, 안누, 드네쉬, 발비르, 자르디슈, 라왓 : 인도 출신. 출연 당시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위치한 인도음식점 웃사브(위치)에서 주방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동업자인 중국계 주방장이 사정상 음식점을 떠나게 되어 더 이상 소고기 요리를 만들 수 없게 되자 이현자 점주와 논의한 끝에 바닷가재 요리를 만들게 된다. 한편, 15회에서 점주가 인도를 직접 찾아 자르디슈와 라왓을 채용해 한국으로 데려왔다. 방송 이후 드네쉬의 아내인 수머가 딸 아시를 데리고 한국을 찾았다. 그는 아내와 딸에게 자신이 한국에서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점주와 직원들이 문화적 차이 때문에 갈등을 보였던 일도 지금은 서로 이해하기로 해서 아무 문제 없이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 이바일로 : 불가리아 출신. 부산에서[7] 원어민 영어교사로 일하고 있다. 방송 이후 학원 강사 외에 학교 방과후 강사와 주점 직원 등 4가지 일을 하고 있었음을 전했다.
2.5. 18회~20회
- 사무엘 : 본명은 사무엘 주카. 이탈리아 출신. 출연 당시 젤라또 전문점 주카스 아티산 젤라또(위치)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이전까지는 호텔에서 주방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방송 이후 주카 가스트로 펍[8] 도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2015년 연말 특집의 촬영 장소로 쓰였다.
- 엠마 : 미국 출신으로, 한국계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자녀를 두고 있었다. 아버지가 자동차 딜러로 근무한 적이 있다보니 차덕후이기도 해서 중고차 매매상이 되었다. 방송 이후 명견만리에 출연했는데, 집에서 쓰는 가전제품들 가운데 텔레비전만 일본 기업의 제품이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 기업들의 제품이라고 밝혔다.
2.6. 21회~23회
- 에이미 : 한국 이름은 에이미 김. 캐나다 출신. 2013년에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남편과 함께 더헐크복싱클럽을 창업해 운영하고 있었다.
- 니르 : 이스라엘 출신. 고국에서 금속세공업에 종사하다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방송 당시까지 취업준비생으로 직장을 구하고 있었다.
2.7. 24회~26회
- 하루나 : 본명은 고사카 하루나(小坂春奈). 일본 출신[9] . 2000년에 한국인 남편과 혼인하여 2012년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정착해 생활하고 있었다. 주부로 생활해 오다 해녀[10] 생활을 시작했다.
[1] 해당 방송분에 출연한 선수와 관련한 내용은 부천 FC 1995 문서 및 부천 FC 1995/2014년(호드리고 한정.), 부천 FC 1995/2015년 문서 참조.[2] 2016년 5월에 폐업했다(관련 공지).[3] 2020년 7월에 별세했다. 박원순 자살 사건 문서 참조.[4] 이 사건과 엮이면 곤란하다.[5] 이슬람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몰라서 주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일부러 준거다.[6] 원래 이름은 버드 라이더스였으나,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했다. 현재 서울특별시에서만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으므로 서울 밖에서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가 곤란하다. [7] 20회까지 전체 출연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비수도권 지역에서 살고 있었으나, 21회에서 기록이 깨지기 시작했다.[8] 현재는 우디 가스트로로 이름이 바뀌었다.[9] 백인을 제외하고 동아시아 출신이 출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및 몽골 출신 이외에 중국과 타이완, 기타 중화권 국가 출신이 출연한 적은 2024-11-10 11:34:20까지 한 번도 없다.[10] 제주도의 해녀들은 일제 강점기 당시에 항일 운동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고 한다. 하루나는 2000년대 초반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동참한 적이 있기도 했다(관련 기사).
3. 하반기
3.1. 27회, 28회
- 라파엘, 장로랑, 토마, 알렉스, 마가리 : 프랑스 출신. 마가리만 여자고 나머지는 모두 남자다. 2013년에 라파엘이 한국으로 유학하러 왔다 정착한 뒤로 나머지 4명도 함께 한국에 와서 4개월 간의 준비 끝에 한국인 여성과 함께 음식점 드모아젤을 창업했다. 하지만, 개업을 열흘 앞두고 고국에서 들여온 기자재들이 인천세관에서 통관이 보류되자 여자친구와 함께 세관을 찾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 하고 돌아와야 했다. 한양대학교에서 축제가 열리자 재학생들을 상대로 프랑스 요리를 팔기도 했다. 개업 이후 위치를 찾기 어렵다는 손님들의 불만이 있었지만, 단골 손님이 지속적으로 늘어 2015년 10월에 2호점을 열었다고 밝혔으나, 2020년 현재 두 곳 모두 폐업했다.
3.2. 29회~31회
- 파울라 : 본명은 파울라 에삼. 독일 출신으로, 파리정치대학에 다니던 도중 2013년에 교환학생 자격으로 한국에 와 고려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11] . 두산 베어스 응원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KBO 리그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외국인 치어리더이기도 했다.
- 폴리나 : 우크라이나 출신. 원래 롯데월드에서 행사가 열릴 때마다 무용수로 참여했으나, 나중에 한 연예기획사에서 에일리와 김태우 전담 백댄서로 활동하게 되었다.
- 윌리엄 : 본명은 윌리엄 리. 미국 출신. 레이첼과는 친구 관계였으며, 그의 말에 따르면 레저 활동을 좋아해서 섬으로 가는 걸 원했다고.
- 레이첼 : 미국 출신. 전라남도교육청의 발령을 받아 비금도 소재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원어민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 아누팜 : 인도 출신. 사앙드와 함께 문화 강사로 활동한 적이 있다.
- 사앙드 : 코모로 출신. 원래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으나, 아누팜과 함께 문화 강사로 활동한 적이 있다.
3.3. 32회~34회
- 그렉, 제니 부부 : 본명은 그렉 글렌과 제니 글렌. 미국 출신. 슬하에 자녀 13명을 두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 한 명은 혼인하여 가족과 살지 않았다. 남편인 그렉이 주한미군의 회계사로 재직하기 위해 2008년에 한국으로 건너왔다. 남편은 전 현대 유니콘스 소속 투수이자 현 KT 위즈 소속 코치인 정명원의 팬이기도 했다. 2015년 8월에 남편이 본국으로 발령받아 이삿짐을 본국으로 먼저 보낸 다음 캠프 험프리에서 머물다 9월 24일에 한국을 떠났다. 방송 이후 수원 KT 위즈 파크에서 정명원 코치를 만나 유니폼을 선물받았으며[12] , 며칠 뒤에는 인간극장에 출연한 김정수, 함은주 부부 가족과 함께 캠핑을 했다. 흥부네 가족이 삼겹살을 굽는 동안 그렉 가족은 햄버거와 핫도그를 만드는 한편, 과자에 초콜릿과 마시멜로를 끼워서 먹기도 해 한국과 미국의 식습관 차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100회 특집에서 근황이 공개되었는데, 일가족이 고향집에서 말하기를 '한국에서 우리 가족들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이 그립다.', '한국 프로야구가 그립고 된장찌개와 육개장이 먹고 싶다'고 밝혔다.
- 소냐, 스베타, 니키타, 이고르 : 우크라이나 출신. 이고르를 뺀 셋은 고국에서 아티스틱 스위밍 선수로 활동하다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이고르는 30년 넘게 광대로 활동하다 한국으로 건너왔다. 출연 당시 아쿠아플라넷 일산에서 공연단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스베타는 6개월 간의 계약이 끝나 2015년 8월에 한국을 떠났다.
- 나스타 : 벨라루스 출신. 위의 세 명처럼 고국에서 아티스틱 스위밍 선수로 활동하다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들은 방송 이후에도 공연 활동을 잘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 엘렌 :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출연 당시 아쿠아플라넷 일산에서 아쿠아리스트로 근무하고 있었다.
3.4. 35회
- 강바타르 : 본명은 강바타르 차그나도르지. 몽골 출신. 몽골철도공사에서 근무하다 배우 오디션에 참가해 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한국에 건너와 한국영상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이후 간호사 출신인 통가와 혼인했고, 첫째가 태어난 뒤로 대전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아내는 임신한 몸으로 모텔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출연 당시 코리아액션스쿨에서 액션 연기를 전공하고 있었으며, 생계를 위해 하루종일 여러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 리모트 컨트롤은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상을 받았다(관련 기사). 방송 이후 아내가 둘째를 낳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3.5. 36회
- 유수프, 이브라힘 : 터키, 정확히는 쿠르드족 출신. 출연 당시 부산에서 상인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터키인들과 갈등이 심한 쿠르드족 출신이다보니 터키가 고향이어도 터키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게 보지는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한국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나, 그동안 너무 먹고사는 문제에 치중하다보니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고 때문에 귀화시험이 존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크게 낙담했다. 하지만 형 유수프는 좌절하지않고 공부하기 위해 한글학원에 다니며 만학도 할머니들과 같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줘 훈훈함을 자아냈다. 그러면서도 생계를 위해 여름엔 터키 아이스크림과 겨울엔 터키 전통음식인 아슈레를 팔기위해 만드는등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화는 유달리 속이 터지는 편이기도 했는데 잘 장사하겠다는 이 형제에게 자기 가게앞을 내줬다고 수입의 절반을 뜯어가는 정신나간 사장부터 밑도끝도 없이 갑자기 아이스크림을 파는 이브라힘에게 와서 자릿세 더달라고 시비를 거는 할아버지 통에 시청자들도 속이 터졌던 화였다. 특히 곁에 있던 상인이 "너무 심하지 않냐"며 할아버지와 언쟁을 벌였고 동생 이브라힘이 기자 앞에서 눈물을 보일 정도였다.
3.6. 37회
- 조피노 : 본명은 조세피노 콜린. 캐나다 출신. 고국에서 권투 선수로 활동하다 2001년에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이후로도 선수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국 권투계를 잘 알고 있었으며, 2017년 당시 경기도 성남시에서 빅뱅복싱을 운영하고 있었다. 2000년대 중반의 언론 보도 내용에 따르면 영어 강사로도 활동한 적이 있었다는 듯(관련 기사). 2020년 현재도 영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 앤드류 : 본명은 앤드류 글래디에이터 실바. 캐나다 출신. 조피노의 뒤를 이어 권투 선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3.7. 38회
- 나히드 : 아프가니스탄 출신. 아버지 압둘 구두스와 어머니 피피 마리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며, 가족은 내전을 피해 2012년에 한국으로 건너왔다. 하지만, 난민#s-1.1이 아닌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아서 생활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13] 하지만, 방송 이후 시청자들의 후원 문의가 이어졌으며 각계각층의 도움을 받아 가족이 음식점을 창업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6년에 근황이 또 한 번 공개되었는데, 초등학교 6학년생이 되면서 라마단 기간에 금식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금식이 끝난 뒤에는 여성회에서 식사를 했다. 타릭은 초등학생이 되었고, 아브바케르는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다만 한편으로 가족들이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
3.8. 39회[14]
- 호드리고 : 본명은 호드리구 도밍구스 두스 산투스. 브라질 출신. K리그 챌린지 부천 FC 1995에서 공격수 역할을 담당하다 2016년에 일본 J2리그 V-바렌 나가사키로 이적했다.
- 알미르 : 본명은 조제 아우미르 바호스 네투. 브라질 출신. K리그 챌린지 부천 FC 1995에서 공격수 역할을 담당하다 2016년에 태국 2부 리그 나콘빠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 루키안 : 본명은 루키앙 아라우주 지 아우메이다. 브라질 출신. K리그 챌린지 부천 FC 1995에서 공격수 역할을 담당했다. 2017년에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했으나 시즌 도중 FC 안양 임대 선수로 이적했다.
3.9. 40회
- 베아트리스 : 브라질 출신. 2014년에 한국으로 건너와 1년 만에 내국인 남성과 혼인했다. 원래 모델로 활동한 적도 있었으나, 한국으로 건너온 뒤에 자동차 정비사가 되었다. 명절을 맞아 지인들과 송편을 만들었는데, 시장에서 사온 식용 색소를 사와서 반죽을 만들고[15] 초콜릿과 과자까지 넣어서 만들었다고.
3.10. 42회
- 앨러릭 : 본명은 노디아 앨러릭. 호주 출신. 아쿠아플라넷 일산에 인턴으로 입사해 기초적인 업무를 하다 설명회에서 물개[16] 를 소개하는 것으로 정직원 활동을 시작했다.
- 벨라 : 본명은 벨라 골루보바. 우크라이나 출신. 2015년 8월 말에 한국을 떠난 스베타를 대신해 한국으로 와서 공연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3.11. 43회
- 니콜라 : 본명은 니콜라 캉포. 출연 당시 푸드 트럭 프랑스 분식 셰 니코를 운영하고 있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있는 딸기 농장에서 일하다 한국인 여성을 만나 혼인을 했다. 방송 초기에 나온 아노처럼 크레페(크레이프)를 파는데 장사는 주로 서울 목동에서 하고 그밖에 수도권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한다. 하지만, 지자체의 단속으로 인해 장사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타개하고자 상설 매장을 세워서 운영하는 것을 검토하게 되었는데, 공인중개사를 찾아 점포 시세를 물어보고 라파엘 일행이 창업한 드모아젤을 방문해 사업에 대한 논의도 했다. 장사를 위해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아인스월드에 갔다가 마술공연을 보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배우자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3.12. 44회
- 알랜 :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2005년에 아내인 조세핀과 함께 내전을 피해 한국으로 건너와 살게 되었다. 한 종교 단체의 도움으로 한 주택에서 살다 해방촌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이태원까지 가서 이사 업체의 차를 부를 수 있는지 물어본 결과 차를 부를 수 없다는 대답을 받아 하는 수 없이 택시로 이삿짐을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17] 강남에 있는 폐기물 수거 업체에서 일했지만, 원래 직업이 음악가였기에 거리에서 공연을 한 적도 있다. 둘째인 레온시오가 갑자기 아프자 조세핀이 그를 데리고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으로 찾아갔고, 알랜은 지인에게 돈 11만 원을 달라고 전화를 했다[18] . 조세핀이 디바인[19] 을 학교에 보냈을 때 반대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가고 반대 방향에 있는 출입구로 나가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고국인 콩고민주공화국에는 한국에 오기 전 낳은 자식 4명이 있었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자식들을 모두 한국에 데려올 수 있고 사례자 본인도 그렇게 하려고도 했으나 10년 넘게 난민비자를 못 받고 있어서 데려오지 못하고 있었다[20] . 그래도 전화통화는 가능하여 시간이 날때마다 전화를 하고 있었다. 사례자가 직접 고향에 가서 보면 되지않느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는 한국에 오기 전 콩고민주공화국의 독재를 비판하는 활동을 활발히 했기 때문에 반정부인사로 찍혀서 더 이상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21] . 때문에 자식들을 보러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어서 매우 슬퍼하고 있다. 100회 특집에서 그는 자신의 본업 때문에 색소폰 연주를 할 수 없다며 그대로 자신은 음악 활동을 계속 하겠다고 밝혔다.
3.13. 45회
- 시엔 : 본명은 세인 칸 탕[22] 미얀마 출신. 2003년에 한국으로 건너온 다음 2008년에 난민으로 인정을 받아 이듬해부터 6년 동안 셋째와 넷째를 뺀[23]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왔다[24] . 출연 당시 경기도 부천시에서 살고 있었으며, 친 족 출신이라서 가족 전체가 기독교 신자였다[25] . 2004년부터 10년 동안 어떤 업체에서 근무하다 2014년부터 도장공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첫째인 쿱비는 미래와 혼인을 한 이후 육가공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며, 손님들에게 고기를 직접 판매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조항조의 사랑찾아 인생찾아가 그의 애창곡이다. 쿱비가 미래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는데, 아내가 임신을 했다는 진단 결과를 받았다. 시엔의 배우자인 누만은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어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에 입원했다. 딸인 누암누는 학교 생활이 어려웠는지 문제를 풀지 못 했다고. 그래도 영어 문제는 많이 풀긴 했다. 시엔이 큰딸을 찾기 위해 인천에 갔으나, 찾지 못 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누만과 미래가 어디로 가기 위해 7호선 춘의역에서 열차를 타고 1호선 중동역에 가야 하는데, 개찰구에서 누만이 교통카드를 가지고 오지 않아 역무원의 지시에 따라 무임승차를 했다. 분명히 중동역에서 내려야 하는데도 신중동역에서 내리는 실수를 저질러 20여 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만에 갔다[26] . 쿱비가 상동에 있는 한 음악 스튜디오를 찾아 일기예보 출신 가수 유원형의 지도에 따라 노래 실력을 검증받았다. 며칠 뒤에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가 이벤트를 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타를 가지고 야산에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 이 때, 그 장면을 본 다른 등산객이 자신의 노래 실력을 과시하자 이에 자극을 받아 노래를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벤트에 응모를 하지 않았다는 듯[27] .
3.14. 46회
- 타베아 : 본명은 타베아 텐베르크. 독일 출신. 한국어의 매력에 빠져 한국에 건너왔으며, 광주광역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베를린 자유대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한국에서 만난 남성과 혼인을 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비자가 만료될 예정이라 국내에서 먼저 혼인 신고를 하고 사진관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시가(媤家)에서 살기로 했다고. 미국 배우 앤 해서웨이를 닮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 프로그램에 나오기 전에는 MBN 허락해주세요와 EBS 육아학교 PIN에도 출연했다. 방송들을 보면 알겠지만 외모가 매우 뛰어나다. 어느정도냐면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관람중이었는데, 서양인 관광객들이 계속 흘깃흘깃 쳐다보는 것은 물론 카메라가 있는데도 작업을 건다. 남자친구가 있을 때는 그나마 얌전히 있었지만 남자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그새를 못 참고 또 누군가 작업을 걸러올 정도였다. 현재는 한국인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2019년에 한 유튜버가 주작설을 제기하면서[28] 논란을 일으킬 조짐이 나타나자 제작진은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거짓이라며 유포자에게 법적 대응[29] 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공지 내용, 아카이브). 이후 유튜버로 활동했으나 2020년 촉발된 BLM 시위에 관해서 흑인들도 동양인을 차별하면서 왜 동양인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하냐는 한국 네티즌에 대해 한국계 미국인이 쓴 글을 리그램했다가 논란이 되었다. 해당 글은 "동양인도 물론 인종차별을 당하고 그 가해자가 흑인인 경우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양인은 개인적 차원의 인종차별이고 흑인들이 당한 것은 조직적 인종차별이므로 뿌리가 다르고 경중의 차이가 있는 것이 당연하니 동양인은 이를 이해해야 한다. 흑인들도 동양인을 차별한다는 말은 교육 받은 어른이라면 하지도 말고 이해가 안된다면 공부나 해라. 공부할 시간이 없다면 닥치던가."라는 매우 과격하고 인종차별의 급을 나누어서 동양인이 겪는 차별을 경시하는 어이없는 내용이었다.[30] 거기다 흑인들이 당한 인종차별에 있어 가해자 계층으로 분류되는 백인, 그것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제노사이드를 저지른 독일 출신의 타베아가 이런 글을 올린 것에 대해 내로남불이라는 여론이 퍼지면서 "독일이 유태인에게만 사죄한 것은 조직적 차별이라 그런 것이고 아프리카 식민지들에 대해 아직도 입다물고 있는 것은 개인적 차별이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결국 사과글을 게재하고 모든 SNS 활동을 중단할 것을 선언했다.
[11] 그러니까 10회부터 13회까지 출연한 칼리와 아나보다 1년 앞서 입학한 선배였던 것이다.[12] 부부는 등번호 12번을, 자녀들은 나이에 맞게 등번호를 배정받았다. 결정적으로, 가족이 방문한 다음날에 잠실 원정에서 KT 위즈가 명경기를 만들었다. 해당 문서 참조. 가족이 홈구장을 방문한 날의 경기 결과는 KT Wiz/2015년/9~10월 문서 참조.[13]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으면 1년마다 허가를 갱신해야 하는 데다 의료비 등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난민법 문서 참조. 대한민국 법무부 출입국 · 외국인정책본부로 이 가족이 차후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문의한 결과 국적 · 통합정책단 난민과 관계자가 '귀국 시 박해 가능성 및 그 사유'의 정당함이 인정되면 난민으로 인정해줄 수 있다면서 자세한 사항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답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가족이 고국으로 돌아가도 어떠한 박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인도적 체류 허가를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이런 사건처럼 난민 신분을 범죄에 악용할 수도 있을테니 심사가 까다로운 것이다.[14] 해당 방송분에 출연한 선수와 관련한 내용은 부천 FC 1995 문서 및 부천 FC 1995/2014년(호드리고 한정.), 부천 FC 1995/2015년 문서 참조.[15] 송편을 포함한 떡을 만들 때 치자, 오미자, 쑥 등으로 색을 내지 색소로 색을 내지 않는다.[16] 이 수족관에서 선정한 2015년 10월의 스타 생물이 바로 물개이다(관련 기사).[17]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이사를 마치고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18] 위의 압둘 구두스 가족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인도적 체류 허가 비자(G1)를 받으면 건강보험료를 지원받을 수 없다.[19] 무국적자라서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고 밝혔다.[20] 그래서 얼굴을 직접 못 본 지도 10년이 넘었다.[21] 알랜이 방송중 말하길 자신이 콩고민주공화국에 재입국하는 순간 본인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버린다고 한다.[22] 인터뷰 장면에서 표창장에 기재된 이름이 노출된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23] 뚱뿌는 작곡가로, 외레는 가수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국에 남아 있었다.[24] 이 일도 모종의 문제 때문에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25] 실제로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유독 친 족과 카렌 족만 기독교 신자가 많은 편이다.[26] 춘의동에서 중동까지 가는 데 도시철도를 이용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도시철도를 이용하면 온수역까지 간 다음 수도권 전철 1호선 열차로 갈아타야 하거나 부평구청역에서 인천 도시철도 1호선 열차로 갈아탄 다음 부평역에서 수도권 전철 1호선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8번, 50번, 75번, 606번, 661번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게 더 빠르다.[27] 이벤트 페이지와 당첨자 발표에서 쿱비가 보이지 않는 걸 봤을 때 응모를 포기한 것이 확실하다.[28] KBS미디어의 신고로 영상이 삭제되었다.[29] 민법 제750조와 형법 제307조 및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를 근거로 들었을 가능성이 확실하다(불법정보의 유통금지와 사이버 명예훼손 문서 참조.).[30] 이를 타베아가 직접 썼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일반인 동양인 인스타그램 유저가 작성한 것을 퍼온 것이다. 동양인이 이런 글을 썼다는 것에 더 어이없어하는 사람도 많다. "그 가벼운 개인적 인종차별 너나 잘 참고 사세요" 라는 반응이 대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