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치바나

 

1. 일본의 성씨
1.1.1. 실존 인물
1.1.2. 가공 인물
1.2.1. 실존 인물
1.2.2. 가공 인물


1. 일본의 성씨


히라가나
たちばな
표준 외래어 표기법
다치바나
통용 표기
타치바나, 다치바나
최영애-김용옥 표기법
타찌바나
백괴사전 표기법
타치바나
일본성씨. 귤을 뜻하는 타치바나(橘) 씨와 타치바나(立花) 씨로 분류된다.
한자 橘은 을 의미하나, 귤이란 뜻으로는 미캉(蜜柑)을 더 많이 쓰고, 橘은 성씨로 많이 사용된다.

1.1.



[image]
'''▲ 타치바나(橘) 가문의 문장.'''
'''본가'''
일본 황실
'''종별'''
황별씨족(皇別氏族)
'''창건'''
와도 원년(708년) 11월 25일
'''시조'''
아가타노 미누카이노 미치요(県犬養 三千代)
타치바나노 모로에(橘 諸兄)
미나모토(源), 타이라(平), 후지와라(藤原)와 함께 일본 4대 본성 중 하나이다. 이 일족이 담당한 부분은 사건의 기록과 그 문헌의 보관이었다.
아스카 시대 말기의 궁녀였던 아가타노 이누카이노 미치요(県犬養 三千代)[1]겐메이 덴노로부터 '''귤나무 가지가 장식된 잔'''을 하사받았던 것에서 유래한 으로, 미치요의 두 아들인 가쓰라기 왕과 사이 왕이 어머니의 타치바나 성을 이어받아 각기 타치바나노 모로에(橘 諸兄)와 타치바나노 사이(橘 佐爲)로 이름을 바꾸었다. 타치바나의 기원은 '''모계로부터 물려진 성씨'''인 것이다.
타치바나 중에 유명한 인물로는 헤이안 시대 극초기 일본 역사상 유일한 타치바나 출신의 황후였던 단린황후 타치바나노 카치코가 있다.[2] 헤이안 시대 초기에 후지와라씨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등용되었으나, 곧바로 후지와라의 전성기가 열리자 쇠퇴를 거듭해 지금은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이때문에 국내 교육과정(세계사, 동아시아사)에서도 헤이안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후지와라씨, 막부 성립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미나모토씨와 다이라씨에 비해 비중이 매우 낮은 편.
타치바나씨의 후손이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징비록에 나오는 귤강광(橘 康廣)[3]이나 귤진중(橘 眞重),[4] 남북조 시대가마쿠라 막부를 타도하고, 고다이고 덴노에게 끝까지 충성을 바쳐 충의의 상징이 된 구스노키 마사시게도 타치바나를 혼세(本姓 본성)으로 자처했다.

1.1.1. 실존 인물



1.1.2. 가공 인물


대중 문화에서에서는 상당히 흔한 성씨로 등장하는데, 한자로 한 글자인 성씨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성씨이기 때문이다.
'4대 본성'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다른 세 가문은 각각 연상되는 역사상의 인물이 너무 많은 반면에, 타치바나는 빨리 몰락한 탓에[9] 유명세에 비해서 이미지가 희박한 탓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히이라기(柊, ひいらぎ), 쿠스노키(楠, くすのき),[10] 카츠라(桂, かつら) 등이 있지만 타치바나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참고로 에로게/미연시 등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성씨라고 한다. 정말 압도적으로 많다.

1.2.


[image]
'''▲ 타치바나(立花) 가문의 은행잎 문장.'''
立花는 발음은 たちばな로 같으나, 橘와는 다른 성씨이다.
이쪽은 본성이 아닌 묘지로 분류되며, 무사 가문으로 1의 橘씨와의 혈통적 관련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立花씨의 본성은 橘이 아니다. 예를 들면 아래의 타치바나 도세츠의 본성은 후지와라다.

1.2.1. 실존 인물



1.2.2. 가공 인물


가면라이더 시리즈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성이기도 한데, 초대 가면라이더에 등장한 이래, 쇼와 라이더의 정신적 지주가 된 타치바나 토베에(오얏상)의 존재 때문. 이 캐릭터가 등장했던 쇼와 라이더 시리즈는 물론, 헤이세이 라이더에서도 이를 오마쥬하여 타치바나란 이름을 가진 캐릭이 많이 나왔다.

[1] 비다츠 덴노의 후손으로 알려진 미누 왕과 결혼해 가쓰라기 왕과 사이 왕 두 아들을 두었고, 나중에 후지와라노 후히토에게 재취해서 후지와라노 고묘시를 낳았는데 이 고묘시가 쇼무 덴노의 황후가 된다.[2] 후지와라노 나카마로의 정적이었던 타치바나노 나라마로의 손녀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라마로가 죽고 난 후에 카치코가 사가 덴노의 황후가 되었고, 후지와라노 나카마로는 몰락하여 나카마로가 박탈당한 정1품의 직위가 죽은 나라마로에게 주어졌다.[3] 유즈야 야스히로. 쓰시마에서 온 일본의 사신으로 "조선의 창은 참 짧군요 ㅋㅋ"하고 비웃었다고 한다.[4] 다다 요자에몬. 쓰시마 도주의 명을 받아 조선에 와서 울릉도가 일본의 ‘다케시마’라고 주장하면서 조선 어민들의 출어를 금지해 달라는 요구했다.[5] 러일전쟁 당시의 장교로 요양(遼陽) 전투에서 전사하여 군신(軍神)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6] 1974년 문예춘추다나카 가쿠에이의 비리의혹을 게재하여 총리직에서 사임하게 한 인물이다.[7] 館花.[8] 유키노조 라고도 하지만 이름의 가타가나를 그대로 읽으면 유키노죠가 맞다.[9] 겐페이토키쓰 4대 혼세의 경우 헤이안 시대에 일어난 타이라노 마사카도후지와라노 스미토모의 난을 진압하면서 성립된 무문(武門)인데, 타치바나가 여기에 끼이는 것은 이요노쿠니(지금의 일본 에히메 현)의 경고사였던 타치바나노 토야스(橘遠保)라는 인물이 '''후지와라노 스미토모를 잡아 죽이는 공'''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타치바나노 토야스는 포상으로 미노노스케가 되고 얼마 안 되어 의문의 피살을 당했는데, 밤중에 길을 가다 습격을 당하고 다음날 죽은 채로 발견된 것. 이 점도 타치바나 가문이 다른 세 혼세/본성과 달리 무사 가문으로써 성장하지 못한 원인이 아닐까 추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타치바나노 토야스가 왜 누구한테 살해를 당한 건지는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후지와라타와라노 토타와 같은 무가 집안이 있다.[10]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경우는 타치바나 씨를 혼세로 한다는 설도 있다. 상술한 타치바나노 토야스가 마사시게의 선조라는 것.[11] 본명은 橘 표기이다. 예명이 立花.[12] 다만 작중에서는 가타카나 표기인 タチバナ로 표기되는 경우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