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비판
1. 대통령 임기 중 여론
1.1. 지지율
박근혜는 지난 4년 간의 임기 동안 30~5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였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2016년 11월 3일, 임기가 1년 넘게 남았었는데도 지지율이 5%까지 떨어졌다. 이는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의 김영삼,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 당시의 이명박보다 낮은 역대 최저의 지지율이다. 이승만과 전두환은 비록 폭정을 일삼다가 쫓겨났지만, 이렇게 처참하지는 않았다. 더욱 끔찍한 것은 임기 말 김영삼이 최저 지지율 6%, 부정 평가 78%이었지만, 박근혜는 최저 지지율 4%, 부정 평가 93%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호남에서는 지지율이 아예 0%이었다. 사실 호남이 대대로 反 보수 정당, 親 민주당 계열 지지가 높은 지역임을 감안하더라도 지지율 0%까지 곤두박질친 보수 계열 정치인은 박근혜 이전까지는 없었다. 게다가 오차범위 내에서의 0%"대"가 아니다.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도 호남 지지율만이 유일하게 공란인데, 여론조사에 응한 호남 사람들 중 지지를 표한 사람이 정말로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리얼미터의 통계를 인용해서 "2016년 11월 4일, 대국민 담화 (혹은 제2차 대국민 사과) 이후로 지지율 하락 추세가 멈칫하더니 소폭 반등하여 10% 이상으로 미약하게 회복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다른 여론 조사 기관의 지지율을 그대로 대입해서 생긴 착시다. 박근혜/지지율 문서에도 나와 있듯이 한국갤럽과 리얼미터는 서로 다른 기관이고, 조사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숫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리얼미터 통계로도 게이트가 터진 10월 이후 한 번도 지지율 상승 없이 계속 하강 중이었다. 그나마 리얼미터 통계에서도 계속 10% 선을 유지하고 있다가 11월 3주차에서 10%가 무너졌다. 어느 기관에서 조사를 하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11월 17일까지 계속 하강만 하고 상승은 없었다.
2016년 11월 11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긍정 평가가 5%로 지난 주와 같았지만, 부정 평가는 90%까지 치솟았다. 주목할 점은, 20대 이하에서는 0%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데, 이건 한국에서 정치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조사하는 측에서도 경악할 정도로 나쁜 결과라는 것이다. TK 지역에서 새누리당 탈당이 이어지면서 더더욱 악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2주 뒤인 2016년 11월 25일, 한국갤럽 기준으로 마침내는 '''대한민국 대통령 지지율 역대 최저치인 4%'''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1]
1.2. 20대 총선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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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3일에 열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16년 만의 여소야대''' 현상이 나타나면서 박근혜 정부는 크나큰 위기에 봉착했다. 당시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122석을 얻으면서 '''원내 제1당을 더불어민주당에 내주었고,''' 중도 이념을 표방한 국민의당이 38석이나 얻으며 선전했다. 그 밖에 새누리당의 주요 표밭이었던 대구와 강남을 잃고, 민주당은 오랜 지지 기반인 호남을 잃는 등 지역주의에 균열이 일어났다. 새누리당의 지도부는 총선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보다 상황이 안 좋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문서 참고.'''"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 '''박근혜''', 2015년 6월 25일 국무회의 모두발언 중. 원문. 이 발언의 의도는 자신에게 비협조적인 야당 및 비박계 정치인들을 심판하라는 것이었지만, 결국은 박근혜 본인과 친박계 정치인들이 자초해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집권당이 참패한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민심이 정권 심판론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후술된 박근혜 정부의 부정적 평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박근혜 정부는 집권 기간에 담뱃값 인상, 단통법, 도서정가제, 맥통법, 노동 개혁을 비롯한 실책을 밀어붙였다. 초이노믹스라는 거창한 정책을 빌려 집값을 가계 부채로 유지하는 방안을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대놓고 친재벌 및 규제 혁파, 정규직 및 노조 탄압 등을 선전했다. 가계 부채와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만큼 경제도 엄청 나빠졌다. 더구나 위안부(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당사자 몰래 처리하고, 세월호와 전염병 메르스 유행 등 국민 안전의 위기에서도 정부의 안위만 걱정하는 형태의 정책만 내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될 수준의 언행만 일삼았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도 오로지 일 안 하는 국회와 발목 잡는 민주당만을 탓하며 국민들에게 심판해주기를 요구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되고, 야권 분열이라는 호재 및 신뢰도가 높기 힘든 지역 위주의 여론조사를 과신한 박근혜 정부와 친박은 공천관리위원장 등의 요직을 이용해 노골적으로 공천에 개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맘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조리 쳐내고 당선되기 쉬운 곳에 함량 미달의 친박 인사들을 마구 공천하는 행태가 선거 내내 반복되었고, 이것 때문에 새누리당에서는 온갖 내분이 일어났다. 옥새런, 유승민, 주호영, 장제원, 강길부 등 비박계의 불복, 진박 마케팅, 막말 파동 등 여당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마저 눈꼴 사납게 만드는 추태가 선거 기간 내내 반복되었고, 민심 이반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새누리당이 선택한 타개책은 '''국민들에게 한 번만 뽑아 달라고 반다송을 부르는 구걸 전략'''이었다. 이번 총선에서 야당은 하나같이 박근혜 정부를 심판할 것을 주문했고, 국민들은 그에 동의했다.
똑같이 공천파동이나 논란거리 등이 있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문재인의 개입 및 비대위 사퇴 후 재조직, 유세단 등의 활동으로 그 상처를 모조리 봉합해가며, 총선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절박함을 보여줬고, 국민의당은 안철수의 이미지 덕에 호남에서 있었던 함량 미달의 공천 파동이 거의 보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1번과 2번에겐 기회가 많았다."는 전략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 결국 '''공천 논란과 구태 정치의 논란 이미지는 모조리 새누리당에게로 몰려간 것'''이다. 그 결과 수도권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으며, PK 지역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의 의석과 지지율이 상당히 상승했다. 심지어는 보수의 새크로생티티(성역)인 TK에서도 더불어민주당 및 민주당 계열[2] 에게 2석을 허용했다. 그 덕에 더불어민주당은 텃밭이었던 호남권에 걸린 의석을 국민의당에 상당수 내주고도 1석 차이로 새누리당을 제쳤다. 중위 투표자 이론에 따라 중도층, 중도 보수층을 빼앗은 야당이 승리했으며, 이번 결과로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던 모든 정책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동이 걸린 것은 정책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 그 자체가 되었다.'''
총선 2년 후, 국정원 특수 활동비가 청와대로 흘러갔고 이동의 일부가 여론조사하는 데 쓰여진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여론조사 결과는 새누리당으로 전해지고 친박 공천하는 데 자료로 쓰여졌다. 이는 당시 청와대의 불법적인 선거 개입이었다. 탄핵 이후 결국 이 혐의로 기소되어 2018년 11월 21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
2. 상세
[3]
'''"제가 대통령이었으면 진작 했어요. 그러니까 제가 이번에 대통령으로 되면 할 겁니다."'''
— '''2012년''' 대선 토론회에서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 '''2016년''' 제2차 대국민 담화에서
박근혜 전 대한민국 대통령 집권기의 대한민국에서는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고 청년 실업률도 역대 최악이었다. 2015년 대한민국 교수들의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로는 혼용무도(昏庸無道)[4] , 사시이비(似是而非), 갈택이어(竭澤而漁)[5] , 위여누란(危如累卵)[6] , 각주구검(刻舟求劍)이 나왔다.[7] 한 마디로 재임 중 내세울 만한 업적 하나 없이 '''나라를 망쳐 놓은 것이 전부'''라고 볼 수 있다.'''"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는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하였다."'''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여야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
—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중에서
행정 실무 능력이 없다시피 하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과거 2012년 대선 토론회에서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는 국정현안에 대한 문재인의 질문에 "'''그래서 대통령 되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대통령 되면 다 할 겁니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었으면 진작 했어요."''' 라고 대답하였는데, 이 말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현안을 아예 모른다고 시인한 꼴이었다. 정치인 박근혜가 수십 년간 보여준 말들은 '자신이 정권을 잡으면 경제를 살리겠다', '일자리를 늘리겠다' 는 식의 두루뭉술한 주장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대책과 근거가 전무했다.[8] 그리고 대선 토론회에서 비친 대통령의 능력 부족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현실로 드러났다. 그동안 박근혜가 보여준 행적이나 언행에서 이미 전조가 드러난 비극이었다.
결과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박근혜의 현실성과 합리성이 결여되어 성과라고 보이지 않는 국정 운영에 지지자들도 하나둘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40%에 육박하는 콘크리트 지지층[9] 만 믿고 진박을 운운하며 박근혜 바라기 마케팅에만 열을 올리던 새누리당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를 당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군사 정권과 그 후신인 박근혜까지 찬양하는 지지층이었던 극우 사이트인 일베저장소도 등을 돌려버렸다.
이토록 숨은 실태가 명백히 드러나 지지하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등을 돌리고, 연일 하야 요구가 빗발치는 와중에도 박근혜는 대통령으로서의 진심 어린 사죄는커녕 자리를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추태만 보여주었다. 폭정으로 저항을 받았던 이승만과 전두환도 정권이 기반을 잃으면서 자리를 끝내 포기하였으나, 박근혜는 이승만과 전두환보다도 권력 욕심을 놓지 않았다. 심지어 박근혜의 국정 운영이 국가 발전이 아닌 최순실 일가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을 돕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음을 감안하면, 자신이 옳다는 신념도 아닌 부정부패를 끝까지 저지르겠다는 의도에서 나오는 권력 욕심이라는 점에서 더욱 질 나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의 국정 농단과 비선 실세의 존재, 그리고 그동안의 실책의 근본 원인이 모두 드러난 상황에서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권력을 유지할 방안 찾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 바 있으며, 2016년 12월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로는 아예 '''노골적으로 국민들을 분열 시키고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지속적으로 물밑 공작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전통 지지 세력이었던 박사모,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의 어용 단체와 극우 인사들은 물론, 새롭게 떠오른 남녀 갈등마저 워마드 등을 통해 국민 분열과 여론 선동의 소재로 삼으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스스로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마저 전부 갉아먹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의로 국민 간 분열을 획책하는 모습은 박근혜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었던 현상은 아니지만, 박근혜는 엄연히 민주주의라는 틀이 갖춰져서 이러한 시도가 금기시될 국가에서 대놓고 이런 행위를 저지른 것이며, 그 목적조차도 국가 발전이 아닌 자기 영달과 측근들의 비리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결국 정치적 스펙트럼을 떠나 어떻게 이런 '''지도자로서 최악의 인간상인 존재가 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까지 되었는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이며, 동시에 한국 정치사의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대통령은커녕 기본적인 사회인의 자질조차 의심되는 존재가 국가 원수가 된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고질적 병폐인 세대 투표, 지역 투표, 해결되지 못한 산업화의 독재 평가 담론 등이 뭉쳐 발생한 일종의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보자는 의견까지 있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이미 박근혜의 무능함은 선거 전부터 충분히 드러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보수층은 그저 박정희 신화를 계승한 핏줄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박근혜에게 무분별하게 동정했고, 그렇지 않은 이들조차 진보층에 대한 적대감에 애써 사실을 외면하며 박근혜에게 지지를 보냈다. 즉, 선거 시 후보자의 자질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세대, 지역, 심지어는 그놈이 그놈이라는 논리까지 앞세우며 투표에 임하는 유권자들이 그 대가를 뼈저리게 치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냉소적인 비판으로, '''박근혜의 진정한 공로는 '박정희 신화'를 시원하게 갈아버린 것'''이라는 평가까지 있다. 박근혜가 정계에서 성공하고 결국 대통령이란 자리까지 오르게 된 것은 다른 것도 아닌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국민들의 긍정적인 평가와 그로 인한 '후광' 때문이었다. 결국 그 이후 박근혜의 어마어마한 실정은 곧 새마을운동,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경부고속도로 등이 대변하는 박정희 신화까지 깔끔하게 훼손했고 오히려 10.26 사건, 김재규를 재평가하자는 여론까지 나오고 있다. 그만큼 박정희, 육영수, 박근혜에게 등을 돌린 사람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그러나 더욱 믿기 힘든 일은 경제 정책 표류, 외교 고립, 세월호 사건 당시 7시간 30분 동안 대통령이 실종되는 초유의 사건을 겪고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내내 꾸준히 50%대를 넘기고 있었으며, 최저치도 40%대였다는 사실이다.[10] 매스컴에 극우 성향의 칼럼을 써온 것 외에 이렇다 할 이력이 없는 윤창중[11] 을 청와대 대변인으로 등용하는가 하면,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두둔한 김희정이 그 공로로 여성가족부 장관에 오르는 등[12] , 박근혜 정부는 임기 초부터 황당할 정도의 인사 참사를 되풀이했지만, 국민들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13] 박근혜가 몰락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말 최순실의 사익을 위해 설립된 미르재단과 K스포츠의 실체가 드러나고[14] , 고영태 등 관련자들의 내부 고발이 터져 나오면서 시작되었다. 결국 임기 내내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었던 박근혜도 언론의 공세와 명백한 물증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고, 이는 결국 탄핵으로 이어지게 되었다.[15]
2.1.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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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검증의 쓰나미가 몰아닥칠 것입니다. 쓰나미가 몰아치면 아무리 깊이 감춰둔 것도 다 드러납니다. 그때 가서 또 땅을 치고 후회해야 하겠습니까?"'''
- 2007년 8월 6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중 유세 발언. 이 발언은 당시 라이벌이었던 이명박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썼던 표현이지만, 결국 본인과 나중에 이명박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았다.
2016년 10월경에는 40년 절친이자 사이비 종교 교주 최태민의 친딸인 최순실이 '''대통령 본인 대신 국정운영 전반을 도맡아 한 비선실세'''[16] 란 사실이 폭로되면서 대국민 사과를 하는 등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졌다. 최순실은 국정 운영 전반을 마음대로 움직인 것도 모자라서, '''국정 운영에서 얻어낸 기밀 정보들을 이용해 자신과 그 일족의 이익을 창출하고,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해 수백 억의 돈을 수수하기까지 했다.''' 최태민 일가의 전횡은 조응천, 박관천, 이명박 '''전 대통령''', 이제는 동생들(박지만과 박근령)도 걸고 넘어졌고, 이로써 ''''무당 하나에 나라가 좌지우지됐다''''면서 여야와 시민사회 등을 막론한 탄핵론이 등장하게 되었다.'''"이러한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입니다."'''
- 최순실의 국정개입 허용과 권한남용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평가. '''결국 박근혜는 이 사유로 파면되었다.'''
특히 대통령의 사과와 JTBC에서 관련 보도가 있었던 2016년 10월 25일에는 순식간에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10위가 박근혜 탄핵, 하야 등으로 채워졌으며, 트위터에서도 마찬가지로 실시간 트렌드에 관련 해시태그가 최상단에 올랐다.[17] 그 스캔들에 관한 내용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참고.
11월 21일 민병두 의원에 의해 밝혀진 바로는 그녀는 이 사건에 대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는 반응을 보여서 주위 및 국민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즉 그녀의 대국민사과 등 입장 발표들은 정치 쇼이자 거짓말이었다.
또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에도 ''''최순실은 시녀 같았던 사람이라며 그런 사람 때문에 나라가 이렇게 됐다''''며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최순실의 반말 지시에 "'''예예예'''"라며 존칭을 갖추어 대화하는 녹취록이 공개됨으로써 이 말 또한 거짓말임이 밝혀졌다. 세상에 어느 시녀가 주인에게 반말로 지시를 하겠는가?
임기 내내 최순실의 확인 없이는 국정을 운영하지 못했다고 한다.[18] 탄핵 사유 중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집무실에서 매일 업무를 처리했던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거의 모든 때를 관저에서 보냈으며, 청와대 본관 집무실로 출근한 날이 절반도 안 된다고 한다. 사실상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출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19] 그 때문인지 아무리 긴급한 사항도 대면 보고보다 서면 보고를 선호했다고 하며, 이는 세월호 사건이 터진 7시간 동안 대통령에 연락이 닿지 않는 초유의 사태를 빚게 되었다. 이는 국회가 제출한 탄핵 사유 중 하나였지만 실제 법정에서 탄핵 사유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임기 내내 국정운영이 대단히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성향을 띤 것은 최순실의 영향으로 보인다. 당시 북한 핵 개발로 인해 대북 제재의 필요성이야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국내 기업들의 피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개성공단을 폐쇄했고[20] , 특별한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하루아침에 고위 공무원들을 대거 좌천시켰고,[21][22] 다분히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불이익을 주는 등의 행태가 그런 것이다. 박근혜의 오른팔인 전 여성가족부,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윤선은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을 지닌 인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데 직접 개입한 것이 밝혀져 구속 수감된 상태다.[23]
2.2. 인간성 및 자질 문제
2.3. 개인처신 문제
2.4. 역사의식 편향
2.5. 사이비 종교 유착 관계
2.6. 민주주의 후퇴
2.7. 박근혜와 최태민
3.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여지?
박근혜의 임기 중 성과들은 전부 전임 대통령들(노무현, 이명박)이나 국회의원들에게 공이 있으며, 박근혜 본인이 대통령 임기 동안 세운 업적은 '''단 하나도 없었다.''' 박근혜는 업적이 전무한 것은 물론 임기 내내 물의만 일으킨 것도 모자라 최소한의 염치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미숙한 권력이 오만하기까지 했습니다."'''[24]
- 전원책
그나마 이념과 사상에 따라 평가가 갈릴 항목이 몇 개 있을 뿐이지만, 그것들마저도 전임 대통령 이명박이 차린 밥상에 박근혜는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었다. 박근혜의 정책 대부분은 "박근혜가 아닌 비선실세 최순실이 본인의 사익 추구를 위해서, 혹은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뒤 주도한 정책이었으며, 대부분이 권력을 위해 보수층을 모으려는 포퓰리즘에 기반한 것이었거나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정책들이다"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제정된 긍정적인 내용의 법률들도 박근혜가 직접 주도한 것이 아니라 의회가 직접 시민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발의, 제정한 유형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또한, 자칭 업적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들도 하나같이 업적이 아니라 민폐 수준이다.
- 담뱃값 인상: 그 인상으로 번 차액이 박근혜와 최순실의 비자금이 되었다.
-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 현실은 일본의 빵셔틀을 자처하는 짓거리였다. 이건 타결이 아니라 굴복 수준이다.
- 한미 원자력 협정 타결: 이 역시 현실은 미국의 빵셔틀을 자처하는 짓거리였다.
- 전승절 70주년 기념 행사 참가와 사드 배치: 전승절 행사 참가의 경우 중국의 빵셔틀을 자처하는 짓거리였다. 의도와는 달리 미국과 중국 모두를 분노케 하여 코리안 패싱을 유발한 최악의 외교적 삽질로,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 경제민주화: 가장 핵심인 기업 지배 구조 개선(재벌 개혁)과 공정한 경쟁 구조 확립은 시늉만 하다가 끝났고, 남은 것은 현실성 없는 창조경제와 그에 따른 경기 침체, 하향 평준화.
- 증세 없는 복지: 문서 내용을 직접 보자.
- 부정 부패 비리 척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만 보아도 전혀 지켜지지 못했다고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당장 전임 대통령 이명박과 비교해 보아도 박근혜는 DNA부터 금수저[25][26] 에, 조직의 맨 아래에서 일해보는 등 제대로 된 사회적 경험[27][28] 을 하지도 않고,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역량을 증명한 이력[29] 도 없다. 그야말로 '''평생 동안 검증된 능력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스스로 바닥에서 올라온 적이 없다. 실제로 대통령직에 있을 때도 전세계 민주 국가들이 지닌 President가 아닌, 제왕적인 느낌의 대통령에 가까웠다.[30] 최소한 이명박의 경우에도 대통령으로선 몰라도 서울특별시장으로서는 역대 시장 통틀어 시정 능력이 1~2위권에 올려도 될 정도로 검증된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혹자는 박근혜의 등장과 몰락으로 전임 대통령의 업적이 재평가 받고 전임 대통령들의 지지자를 더욱 늘린 것이 유일한 업적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나아가서 국고를 바닥내고,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사실 청와대에서는 2016년 12월, (삭제됨)라는 제목으로 경제 부흥, 창조 경제 육성 등을 중심으로 긍정적인 일면을 홍보하고 있으며, 249페이지 분량의 (삭제됨)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에서 소개하는 주요 업적들은 다음과 같다.
- 4대 개혁 추진으로 경제 재도약 기반 구축, 꾸준한 경제 민주화
- 창조경제의 성과 가시화 및 청년 일자리 창출 토대 마련
-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완성으로 평생 사회 안전망 기틀 마련
- 튼튼한 안보와 원칙에 입각한 남북관계 재정립, 국익 우선 신뢰 외교로 국제적 위상 강화[31]
- 부정부패와 비리 척결, 자유민주주의와 헌법 가치 수호[32]
그리고 경제 민주화는 '''아예 폐기라도 해도 무방하다'''. 박근혜의 공약이었던 경제 민주화를 설계한 이는 김종인이었다. 하지만 경제 민주화 공약을 사실상 파기 시켜버리자, 실망한 나머지 김종인은 이후 탈당했다. 이걸 수혈하겠다고 경제학자 출신의 최경환이 주도하는 경제 정책이었던 초이노믹스는 원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근혜노믹스 또는 창조노믹스'''라는 이름을 밀었다고 한 것이 공개되었는데, '''이 초이노믹스는 대재앙만 불렀다'''.
또한 일자리 창출은 '''역대 최악의 청년 실업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색해진 의미다. 그리고 일자리 창출을 위함이랍시고 추진했던 4대 개혁 중 하나가 바로 '노동계 버전 유신 헌법'이라 불렸던 '''노동개혁'''이다. 얼마나 악질적으로 불렸으면 별명이 '''노동개'악(惡)''''이다.[33] '''비정규직 사용 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무려 두 배로 늘어난 것과 근로 시간이 줄어들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노동개혁 반대 서명을 시민 단체에서 '''자비''' 투표소를 구입해 투표한 결과, '''96%'''가 반대했을 정도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맞불로 노동개혁 찬성 서명을 하기 시작했는데, 첫 서명자가 박근혜였다. 결국 이 노동개혁 법안은 2016년 5월 19일에 모두 폐기되었다. 청와대에서는 진영 논리에 갇혀 법안 통과가 지지부진해졌다고 평했다.
그나마 문화가 있는 날 정도가 박근혜가 시행한 정책 중 매우 드물게 호평을 받았지만, 이마저도 박근혜가 제멋대로 휴일로 정한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정했다는 비판이 있고, 문화가 있는 날을 아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또한 일부에서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34] 이라는 점을 내세우기도 하나,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의견이 강세다. 원래부터 낙하산 인사일 뿐이었고, 그 정의(무능력 + 인맥빨 + 낮은 인격 수준 + 돈빨)를 모두 만족한다. 낙하산 인사는 무능력과 인맥, 돈 문제 때문에 쓴소리를 듣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은 저 4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으므로, '''정계 입문 시절부터 낙하산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점은 분명히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박근혜가 아니라 다른 어떤 여성 정치인이었어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본인의 공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여권이 기존보다 더 퇴보되는 악영향만 낳았다.
하지만 박근혜는 앞서 말한 것처럼 '''긍정적으로 볼 만한 부분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옹호를 받아왔는데, 이런 꾸준'''했던''' 옹호의 이유는 보통 60대 이상 극보수층에게 많이 적용된다는 '박정희의 후광 효과 + 진보파에 대한 부정적 인식 + 감성적 지지 +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지부조화''' + 콘크리트 지지층 + 헌정 최초의 여성 대통령' 이라는 의미 등이 그 근거라고 지목되고 있다. 당연하게 이런 뚜렷한 근거도 없고 맹목적이기만 했던 옹호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박근혜 정부의 가렴주구식 국정 운영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당장 새누리당의 친박 계열이 박근혜에게 이유 없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선거 마케팅으로 삼는 황당한 짓까지 하는데도 견제가 먹히지 않았던 이유는 결국 30%에 달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으니까 말이다. 후술되듯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로는 이런 꾸준한 옹호조차도 급속도로 사라져가는 추세이지만, 눈으로 뚜렷이 드러나는 각종 실책과 사회 문제들을 목격하면서도 눈과 귀를 막고 진영논리에만 열을 올리던 행태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정국이 거의 마비되는 대사단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 때문에 지지율이 5% 아래로 내려가 바닥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공개된 옹호자들과 여론 통계에 잡히지 않았을 뿐이지, 소수나마 존재한다고 추측되는 숨은 옹호자들, 즉 샤이 박근혜가 있다고 추정되는 상황이지만[35] 현재 이런 옹호 여론은 의미가 없어진 상태다. 그리고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예상보다 큰 표 차이로 가결되며, 오히려 새누리당 내 샤이 탄핵파, 샤이 반 박근혜 세력이 더 많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래서 농담 삼아 박근혜가 온 국민을 대동단결시켜서 위 아 더 월드를 만들어낸 업적이 있다고 네티즌들이 언급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문제로 인해 온 국민이 박근혜에게 하야하라고 대동단결한 상황을 비꼬아 말한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본인조차도 그게 진짜로 박근혜의 실정 때문이지, 업적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끊임없는 실정으로 인해 2016년 12월 9일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이로써 당일 오후 7시 3분을 기해 공식적으로 박근혜의 모든 권한 정지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만장일치로 탄핵이 인용되었다.'''
사실 이런 식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 자체가 의미가 없게 된 것이, 박근혜는 같은 당의 상당수 의원들은 물론이고 '''한때 지지자였던 前 친박들도 일부 돌아선'''[36] 정말 답 없는 인물이었다. 균형이라는 것은 공정한 시각에서 공과 과를 공정하게 살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만 언급했다고 해서 무조건 있지도 않은 공이 적혀야 할 이유는 없다. '''잘한 것 하나도 없이 전부 다 못하기만 한 인물'''도 이론적으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만화가 아니라 현실에서는 어지간히 못난 통치자라도 작은 업적 정도는 있게 마련이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나 조선의 연산군은 초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왕이었고, 선조는 도덕성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능력은 좋은 편이었고 할아버지 선조보다 나쁜 평가를 받는 인조조차 의외로 재평가 할 가치가 있었다. 전두환의 경우도 수치상으로 좋은 경제 성장률 등의 장점은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상식적으로 박근혜에게서도 작은 장점을 한 가지라도 찾아보려고 했던 시도들이 모두 헛수고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박근혜가 '''만화, 애니, 영화, 드라마 같은 픽션에나 나올 정도로 비상식적이고 독선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며, 또한 비현실적으로 나쁜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