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비판/자질
1. 설명
'''Poor President Park doesn’t even remember what the other question was.'''
(가여운[1]
박 대통령은 방금 전의 질문이 뭔지 기억조차 못 하시는군요.)[2]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 2014년 5월에 열린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박근혜의 면전에서 했던 발언. #
'''진짜 VIP는 이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진짜 뭐 하나 결정도, 뭐 글씨 하나, 연설문 토씨 하나. 다 어쨌든 여기서 수정을 보고 새벽 늦더라도 오케이 하고, 옷도 무슨 옷을 입어야 하고, 어떤, 뒷 배경을 어떻게 해야 되고…'''
고영태 녹취록 중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근혜는 아버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어서 아버지의 후광을 잔뜩 받은 덕분에 대한민국 대통령을 해 봤지, 경제 급성장을 비롯한 박정희의 업적들이 없었다면 '''대통령은커녕 9급 공무원조차도 하지 못했을 인물'''이었다. 오죽하면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행동의 '''잘잘못''' 뿐만 아니라 행동의 근본, 다시 말해 '''자질'''에 대해 평가를 논하는 문서가 만들어졌을까?'''대통령의 논리로는, 대통령의 머리로는 창조경제에 대해서 30~40분 동안 이야기할 만한 그런 지식이 없으세요. 무슨 얘기를 했습니까, 30~40분 동안?'''
# (이 영상 6분 13초경)
바꿔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 이전의 역대 대통령들이나 이후의 대통령까지 포함한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주로 안보와 경제 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치 노선이나 반대파까지 끌어 안을 수 있는 리더십, 혹은 본인과 주변인들의 부정부패 여부 등의 측면 중 일부 또는 전부가 논란이 되었고 정치인으로서의 기본기가 문제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처럼 이 3가지 요소들에 '''대통령 개인의 능력 자체에 대한 논란까지 +@로 추가되어 발생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위의 인용문처럼 안민석이 박근혜에 대해 '그럴 지능이 없다'라고까지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론은 거의 대부분 그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소수 등장한 비판도 '그래도 그렇지 사람인데 너무하다'라는 것처럼 표현의 수위를 지적했지, '박근혜는 실제로는 똑똑했다'라는 식의 박근혜 옹호는 거의 없었다.
박근혜는 오랫동안 나라를 양분한 거대 정당인 한나라당, 새누리당 중역에서 대통령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그에 맞는 정책적 비전이나 정세 파악 능력을 보여주기는커녕, 공(公)과 사(私)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국정 운영, 미래에 대한 기본적 통찰조차 결여된 기분파 외교에 현실과 동떨어진 경제 정책을 벌이면서 실책만 저질러 어렵게 일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정체를 훼손해버렸다.
이렇게 지도자 본인에게 필요한 지성이 없다면 최소한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도움을 얻어내고 자신의 약점을 극복해 나갈 줄 아는 품성이라도 필요하다. 하지만 박근혜는 일부 과격시위대의 새총 사격 행위를 두고 법률상 보장된 권리를 이용해 시위하던 시위대까지 '''ISIL'''에 비유하는가 하면[4] , 국무회의 때마다 국정 운영의 주체인 자신의 책임은 생각도 않은 채로 국회만 탓하며 임기 내내 비판을 자초했으면서도 이런 현실을 외면했다. 게다가 박근혜는 스스로를 참된 애국자라 여기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었다.
결정적으로 박근혜는 '''사회 현실에 대한 이해 자체가 결여된 인물'''이었다. 다시 말해 직장에서 상사 밑에서 일해 보거나 자신의 사업을 운영하는 등의 사회 생활을 스스로 경험해 본 적도, 억지로 이끌려서 체험해 본 적도 없다. 박근혜를 제외한 다른 대통령들은 정치적 입장이나 정치적 공과를 떠나서 미성년자 시절이나 일제강점기에나 군대에서나 대학생일 때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다양하게 해 봤고, 고생도 해 보았다. 태어난 이래 평범한 인간관계가 통제된 환경에서 금수저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대통령은 현재까지 박근혜가 유일하다. 금수저라고 욕먹거나 또는 후광으로 정치판에 입성했다는 비판은 있을지언정 그 이후부터는 오로지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입지를 다진다. 전자는 거제도의 유지 집안 출신인 김영삼 대통령, 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광이 강하게 작용한 문재인대통령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 세계에서는 스스로 무언가를 할 능력이 없으면 금방 도태된다. 박근혜는 후광이 지나치게 거대해서 예외 사례가 되었을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금수저로 태어나기는 했으나, 가문의 사업을 키운 것은 어쨌건 그의 노력에 의한 결과였고, 미국 대통령이 된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트럼프도 엄청 자기중심적인 인물이기는 하나 최소한 직원들 해고 등 경영 일선에 직접 나서면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트럼프가 문제가 되는 건 능력 부족보다 어디까지나 독선적인 행태와 노골적인 반대파에 대한 적대행위지, 반대파도 독재자라고 비판하는 일은 있어도 박근혜에 비유하는 짓은 트럼프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자 모욕이다.
또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결혼, 임신, 출산, 육아, 집안일 같은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경험하는 일만 아니라 취업, 창업 같이 여성들이 현대에 들어서 부딪히게 되는 현실을 겪어본 적도 없기에, 생물학적 성별만 여성일 뿐, 여성의 입장을 대변할 만한 자질도 없다. 정말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나이만 먹었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린이, 아니 영유아보다도 떨어지는 수준의 정신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1974년 아버지를 죽이려던 암살자 문세광이 저지른 총기 테러 사건에 목숨을 잃고 아버지가 5년 후인 1979년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총탄에 암살당한 슬픈 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추악한 진실을 숨김으로써 콘크리트 지지층을 지켜내고 본인이 탄핵될 가능성을 차단하여 계속 대통령직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을 마구 탄압했기 때문에,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할 만한 자질도 없다. 결국 그야말로 '''자신의 슬픔만 큰 슬픔이고 남의 슬픔은 하찮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온 이기주의자'''였다. 부모가 모두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난 박근혜의 슬픈 과거 때문에 박근혜를 동정하던 이들도 그나마 남은 친박, 박사모와 같은 지지자들을 제외하면 박근혜의 세월호 참사 유가족 탄압을 기점으로 더 이상 박근혜를 동정하지 않게 된 상황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일수록 자신처럼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다른 사람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는 경향이 강한데, 박근혜는 그런 상식조차 안 통할 만큼 이기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결국 박근혜는 남에게 동병상련을 느낄 줄도 몰랐다고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진보층을 비롯한 몇몇 인사들이 꼬집던 박근혜의 이러한 문제점을 여태껏 보수 언론과 정치권이 언급하길 꺼렸기 때문에, 국민 대다수는 본격적으로 박근혜의 본모습이 드러나기 전까지 이 기가 차는 내막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물론 박근혜가 무능하더라도 보수 쪽에서는 김기춘, 조윤선 등 그래도 나름 경륜 있는 보좌관들이 대신 정치를 하는 걸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봤을 것이다. 실제로 역사 속 수많은 지도자들이 그런 식으로 자신의 무능을 감춘 게 사실이었고, 박근혜 정부 체제의 실무자들 대다수는 이전 관료들과 마찬가지로 부패하거나 문제가 많다고 해도, 최소한 대통령의 공백을 메꾸고 일을 추진할 정도의 역량은 되는 사람들이었다. 박근혜를 비판하던 중도-진보 쪽에서도 '박근혜가 무능한 것은 맞지만 지금부터라도 소통의 자세를 갖추고 쓴소리에 귀 기울이면 조금이라도 낫지 않겠나?'라며 설마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는 '''아예 도움을 받을 능력조차도 없는 인물'''이었다.
문제는 박근혜가 그냥 무능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데 있었다는 거다. 결국 대통령이 되자 이 씨앗들이 싹을 틔워서 대한민국을 심각하게 망가뜨리게 되었다. 이렇듯이 일반인으로서의 사회생활조차 감당할 능력이 없었음에도 제 능력에 과분한 대통령 직위를 맡은 박근혜는 결국 일명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불리는 극성 지지자 한 줌 빼고는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한 채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나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이 문서를 독해하는 나무위키 유저들이 주목할 점은 사실상 박근혜의 인물 자체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문서라는 점을 머릿속 깊이 유념해둬야 한다. 또한 박근혜 문서가 긍정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서술된 가장 큰 원인이자 이유이기도 하다.
2. 박근혜의 특이한 성장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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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군장성의 딸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자랐다. 초등학생 시절 즉, 인격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시기인 9세 때(1961년)부터 인격이 거의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27세(1979년)까지, 재벌집단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로 일반인, 사회에서 격리된채 살아왔으며[5] 청와대에서 나와 1998년 재보궐선거에 당선되기까지를 합하면 심지어 자신의 친남매들과도 인연을 끊다시피하며 특정한 사람들하고만 교류하며 살아온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터진 문제는 둘째 치고, 지도자에게 필요한 상식이나 지적 능력이 전무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이것은 무척 심각한 일이다. 박근혜는 중학교 입시[6] 때도 특혜를 받아 가톨릭계 명문 성심여자중학교[7] 에 합격했고, 같은 재단인 성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0년 3월 명문 대학인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8] 서강대에서는 어려운 학과인 전자공학을 주전공으로, 물리학을 부전공으로 하여, 평점 3.82/4.00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기사.
그러나 박근혜의 출신 학교나 졸업 평점이 좋은 것은 '인간 박근혜'가 아닌 '대통령 부처의 장녀'[9] 여서 입시 특혜 및 학점 특혜를 받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당장 정유라가 어떤 식으로 학점을 받았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정말 본인 실력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이라면, 박근혜가 정치를 하며 보여준 상식이 떨어지는 모습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 시절의 박근혜는 정유라보다 훨씬 핵심권력에 가까운 위치였다.
비슷한 예로 남동생은 '인간 박지만'이 아닌 '대통령 부처의 외아들 박지만'으로서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정작 본인은 육사를 다니기 싫어했고, 1학년 때 육사 생도로는 해서는 안 되는, 호텔에서 엽색행각을 벌였다.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도 이것이 짤막하게 나온다. 이것이 '''육군사관학교 규율상 명백한 퇴출 사유'''인데도 소위로 무사히 임관했다. 現 시점에서 사관학교는 정통파 장교로 거듭나는 과정일 뿐이지만, 저 때는 사관학교 출신만이 행정 고위직을 차지하는 시대였다.[10]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명문대 이공계(전자공학과) 출신임에도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이명박 후보가 기후변화 협약에 관해 질문하자 이산화탄소 혹은 탄산가스(모두 CO2를 의미)를 "이산화가스"라는 어처구니없는 명칭으로 말해서 비난과 조소를 받은 바 있다. 이산화탄소가 온실가스라는 것이나 온실가스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며, 박근혜 화법으로 얼버무렸다.[11] 또한 2012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원자력 발전소 안전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하자, 횡설수설하다가 결국 '''"그 문제는 제가 대통령이라면 확실하게 할 겁니다."'''라고 어물쩍 넘어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74년 8월 15일에 어머니 육영수가 사망하면서 퍼스트 레이디 자리를 대신 수행했다. 어머니가 그랬듯이 퍼스트 레이디로서 본인이 뚜렷한 성과를 남겼으면 그 또한 국가 지도자로서 자질과 경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도 박근혜는 육영수의 대용품일 뿐이었다. 1979년에 10.26 사건이 발생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이름만 걸어 놓은 재단(영남대학교, 정수장학회)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20년 내외를 인의 장막 속에서 지냈으며, 1981년에 박근혜는 영남대학교 이사장에 취임했지만, 자질이 모자라고 학생들의 반발도 심해서 7년 만에 쫓겨났다. 그나마 이것도 전두환이 준 자금 덕분에 겨우 버텼을 뿐이다.
게다가 전여옥이 지적했듯이 제대로 된 독서도 거의 하지 않았고, 길라임#s-2 해프닝에서 알 수 있듯이 저녁 시간 대부분을 TV 드라마 시청으로 보낸 만큼[12] 박근혜의 지적 수준이나 현실 인식 수준이 어떠한지는 불 보듯 뻔하다.
더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지금까지 모든 일을 최태민과 최순실 일당이 결정했다는 사실이 들통났다. 그러니 누가 보더라도 박근혜는 지도자가 될 재목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최순실이 적어준 듯한) 수첩에 있는 말만 한다고 해서 '''수첩공주'''라는 말을 들었다. 한때 측근이었던 전여옥과 이혜훈은 '회의 때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있다가 잠시 나가서 어디에(최순실로 추정) 전화를 해보고, 돌아와서 결론을 내리곤 했다.'고 증언했다.
현실이 이런데도 박근혜의 지지 세력은 단지 박정희의 적녀(嫡女)[13]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돌이나 여신처럼 그녀를 숭배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여준 능력이나 업적이 전무함에도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곤 했다. 지금도 박근혜 지지자들 중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종북주의자들의 조작이며, 광화문 촛불집회는 돈 받고 모인 것"으로 폄하하는 이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설령 전제군주제 시대의 왕이라고 하더라도, 선대 왕의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본인의 실적이 저조하다면 백성들은 등을 돌리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선의 제10대 국왕인 연산군이다. 연산군도 성군이라는 성종의 적장자였지만, 폭거를 일삼다가 쫓겨났다. 심지어 러시아 제국의 니콜라이 2세 일가, 프랑스의 루이 16세&마리 앙투아네트 부부, 영국의 찰스 1세는 폐위된 뒤 총살, 참수형을 당하기까지 했다. 전제군주제 체제에서도 이러한데 민주주의 체제에서 순전히 그저 대통령의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적으로 숭배를 받았으니,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떤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을지 뻔하다.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리며 한나라당의 쇄신과 새누리당의 상승을 이끌었지만, 정작 본인이 한 것은 그냥 얼굴마담이었고, 전략이나 비전을 세우거나 제시하지도 못했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아무리 개판을 쳐도 상승세를 지속적으로 탈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박근혜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었다. 19대 대선에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가 20%대의 득표율을 점유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은 박근혜를 성토하는 보수층들 또한 매우 많았기에 파면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충격으로 다가와 선거 초반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 미만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홍준표의 보수층 공략 발언과 확고한 보수색이 결집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그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의 실체가 바로 안방 챔피언이라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마치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6-1로 이기고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을 2-0으로 이겼다고 하더라도 그 경기가 치뤄진 장소가 에스타디오 에르난도 실레스 스타디움 한정이라는 문제점이 존재하듯,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 5선 의원이라고 하지만 마지막은 비례대표이며 나머지 4곳 모두 오직 대구광역시 달성군 단 한곳에서만 출마했다. 만약 박근혜가 反 박정희 성향이 전국에서 최고로 쎈 광주광역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중립지역인 대전광역시에서 출마했다면 당선을 보증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그리고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는 대선토론 당시 본인의 부족한 자질을 여실히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정희 후보가 지 혼자 네거티브 전략으로 출마한 뒤 대선토론에서 "박근혜를 낙선시키려고 출마했다"라는 말을 한 후 문재인과 쓸데없이 친한척을 한 뒤 후보 사퇴를 하는 바람에 보수 지지층이 탄탄한 조직력으로 결집한 데다가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이었던 임수경이 탈북자를 변절자라 호칭한 발언으로 인해 국가안보에 불안감을 느낀 중립층이 박근혜를 지지한 것 등 여러가지 요소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박근혜는 특유의 자질부족으로 인해 이 많은 버프들을 받고도 불구하고 진땀승을 거두었다. 이렇게 박근혜는 계속 자질 외적인 요소의 버프를 많이 받아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그랬기에 더욱 불안한 지지층을 죽을힘을 다해 결집시키려고 노력해야만 했지만 그런 노력을 하기는 커녕 '''이렇게 힘들게 당선되고도 자신의 당선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다.''' 한마디로 박근혜는 '''난 원래부터 왕이다'''라는, 민주주의에 부적합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성격적 결함이 있었다.
박근혜가 대선 레이스에 오르고 그 전보다 대중에 더 많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수많은 자질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지지자들은 이를 극단적으로 감싸고 현실을 부정했다. 그래서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나라를 위하기는커녕 망쳐버리는 정책만 펼쳤다. 열렬한 지지자들은 타 후보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깐깐하게 검증을 하면서, 박근혜 당시 후보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곤란한 질문 하나만 던져도 '싸가지가 없다' 혹은 '어떻게 저 따위 질문을 하냐'라며,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쏟아냈다. 이는 박근혜에 대한 보수층의 지지가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라 신앙에 가깝게 무조건적이었으며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와 그녀의 동생들인 박근령과 박지만은 어떠한 공로도 없고 각각 물의들만 자주 일으켰을 뿐이다. 박지만의 경우 젊었을 때부터 마약 등 문란한 생활을 일삼았고, 현재 회장직을 맡아 경영하고 있는 주식회사 EG도 사실상 본인의 후견인 역할을 담당했던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으로부터 거저 물려받은 것이지, 현대그룹의 정주영이나 삼성그룹의 이병철처럼 스스로 노력하여 창업한 것도,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를 제외한 유한양행의 역대 대표이사들처럼 평사원으로 입사해 30년 넘게 수많은 경쟁을 뚫고 이 자리에 오른 것도[14] 아니다. 그리고 박근령은 여러 지탄을 야기한 본인의 각종 망언과 사기 범죄 행위를 논란을 일으켰을지언정 늙을 때까지 미혼으로 지내고 어머니 육영수 사망 후 영세교 교주 최태민 - 최순실 부녀에게 세뇌되어 놀아나며 그들과의 관계를 끊지 못한 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저지른 언니와는 달리, 최태민 - 최순실 부녀 등과 가까이 하지는 않았다.[15]
박근령은 1979년 10.26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후 류찬우 풍산그룹 회장의 장남 류청 PMX인더스트리 사장과 결혼했으나 얼마 못 가 이혼하고 2008년에 현재의 남편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와 재혼했으나 재혼한 남편의 정치 활동과 기괴한 행동, 신동욱과의 재혼 과정에서 언니 박근혜와 남동생 박지만의 견제와 반대, 본인의 경제 관념 미비로 금전 문제와 빈곤을 겪는 등 평탄하지 못한 일생을 보냈다.[16]
3. 무능력, 무책임의 극치
野, 박근혜 정부 3년 "무능과 부실, 독선으로 점철", 연합뉴스
“메르스보다 박근혜 정부 무능이 더 무섭다”, 한겨레
이상돈 "박근혜 정부, 무능한 정권으로 평가될 것", 프레시안
[사설] '메르스 非常사태' 대통령은 어디 갔나, 조선일보
[박성원의 정치해부학] 박근혜 정부의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동아일보
이준구 교수 “박근혜 정부를 한 마디로 말하라면 단연 ‘무능’이다”, 경향신문
중앙정부의 무능과 실패, 한국일보
‘아몰랑’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놔두고 어디 갔나, 미디어오늘
조중동도 못 참겠는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응 '무능', 미디어스
朴정권의 '경제무능' 보수언론도 비난, 입법정책신문
[20대 총선]與 참패 野 압승…"여권 오만·무능에 대한 국민 심판", 뉴시스
무능한 너무나 무능한 박근혜 대통령, 뉴스타파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 박근혜의 무능 정면 비판, 서울의소리
'국가는 뭘 하나요?', JTBC
조중동과 한경오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능은 불통과 함께 박근혜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박근혜는 각료회의나 기자회견에서 집권 이래로 꾸준히 혁신과 창조를 강조했지만 집권 4년 차인 2016년까지 아무런 성과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 것 때문에 "한낱 립 서비스밖에 못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10분만 파일을 듣고 있으면 '대통령이 어떻게 저렇게 무능할 수 있을까'... 실망과 분노에 감정 조절이 안 될 정도."'''
또한, 각료회의나 기자회견에서 발언할 때마다 "옛날에 이런 말이 있는데~"란 뉘앙스로 시인이나 극작가의 말을 인용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는데[18] 특히 TV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인기를 끌고 있을 때는 "송중기야말로 애국자다. 해외에 한류를 수출해야 한다.", 무역투자진흥회의 자리에서는 "최고 상품 팀 코리아 돼야", 문화관광사업회의에서는 "불만제로 관광환경 만들자"고 말하는 등,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구체적 대책 수립은 둘째 치고, 일반인도 할 수 있고 알맹이도 없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 참고로 저 송중기 관련 말은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대박을 치고 있을 때도 대통령 주재의 국무회의에서 똑같이 한 얘기다(...).
모름지기 국정의 최고책임자라면 싱크탱크의 정책 제안과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관료, 정치인들과 협의하여 구체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이를 추진하여야 한다. 만일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거나, 세세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분야라면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고[19] 주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구하고 적임자들을 배치하여 권한을 대폭적으로 위임해서 믿고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통치자로서 동원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고 효율적으로 조율해서 국정을 잘 이끌어나가는 게 지도자의 '''의무'''지만, 박근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물론, 국가의 정책이란 것이 매번 성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실패한 정책이라도 있어야''' 정책에 대한 의견 수렴이나 싱크탱크 같은 제안 또는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더 좋은 정책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전혀 없이 오로지 본인의 자기 PR을 위해 그냥 독불장군으로 밀고 나갔다는 것이다. 그만큼 무능하고 무책임하다는 것이 문제다. 이 정부가 욕 먹는 문제 중 가장 큰 것은 필요할 때는 요긴하게 써먹다가 필요한 것이 충족되면, 본인이 중용한 인사를 토사구팽 시켜 내치는 경우도 많았는데, 본인이 당선된 이유 중 하나였던 경제민주화는 취임 이후 얼마 안 가서 폐기해버렸다. 당시 박근혜의 경제교사였던 김종인과 김광두는 실망감을 표하며, 박근혜와 아예 손절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자기가 원하는대로 했던 게 초이노믹스였고, 그 결과는 알다시피 '''망했다'''.
창조경제 정책이 유명무실하단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가브랜드로 표절 논란에 휩싸인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로고가 선정되면서 더욱 비웃음을 샀다.
더욱이 집권 2년차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대응체계의 마비로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집권 3년 차에 발생한 메르스 대유행 당시 조기에 감염병을 차단하지 못하고[20] 정부 불신 기조를 키우는 데 크게 일조하였으며,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최고책임자로서 부적절한 대처였단 평가를 받았다. 박근혜가 보여준 것은 세월호 참사 할머니 조문객 동원 논란, 살려야한다 문구 등 보여주기 식 퍼포먼스 뿐이었고, 실질적인 대책은 전무했다. 또한 이런 점을 지적하면 공권력을 동원해서 탄압을 가하고, 실책을 덮으려는 언론통제에만 혈안이 되었다.
많은 국민은 "박근혜는 그저 박정희와 육영수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을 뿐"이라고 비난한다. 실제로 박근혜가 보이는 국정수행 능력은 매우 나빴다. 전국 지지율만 보더라도 국민들이 박근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일찍이 김영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를 '칠푼이', '공주'에 빗댄 바 있고, 전여옥 국회의원은 박근혜를 '공주병 걸린 사람'이라고 일갈했다.
이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2년 전에 "지도자가 나라를 운영하려면 용기, 합리성, 결단력 같은 덕목을 갖춰야 하는데 이게 다 판단력이죠. 사람을 볼 줄 아는 능력도 판단력이고요. 박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통치할 판단력을 구비했는지 의문입니다. 광범위한 보수 성향 시민들이 이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치명적인 거죠."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는데[21] , 돌이켜보면 매우 정확한 관찰이었다.
이것도 모자라, 반도체 산업의 부진을 야기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R&D를 철저히 외면해 찬밥 취급을 받는 동안 미국은 더 도망가고, 중국이 바짝 붙어 따라와 대한민국이 오히려 쫓기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보통신진흥기금으로 배정되는 R&D에 배정되는 게 연간 4,000억원인데, 이 중에서 반도체 분야에 할당되는 R&D 예산은 2015년 561억 원, 2016년에는 40%가 깎인 356억 원, 2017년에는 아예 '''0원'''으로 책정해버리는 대참사를 벌이기도 했다. 메모리 강국 한국에 기업은 있고 사람은 없다 - 주간조선 2015년 11월 호
이 게 왜 큰 문제냐면, 한국이 '''반도체 제국'''이라 불릴 정도로 굉장한 메모리 강국이긴 하나, '''반도체 강국'''은 아니라는 것이다. 산업자원부 관계자가 "2017년 이후 반도체 R&D 예산 관련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즉답을 피했을 정도. 특히, 정부/기업 합동의 R&D나 정부 주도의 R&D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의 주력 수출산업 중 하나가 바로 반도체임에도 불구하고 이 것에 대한 R&D 연구예산을 할당 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은 굉장히 비판거리다. 이 것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인력을 없애버리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이것은 박근혜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참여정부가 차세대 메모리 R&D 산업을 주도하면서 이후로 반도체 R&D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다는 것. 원래 반도체 산업에 관한 것은 일반예산으로 반도체 R&D를 지원해왔는데,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식경제부가 관리하는 정보통신진흥기금으로 재원을 바꾸더니, 박근혜 정부 들어서 정통기금 관리 주체가 미래부로 변경되면서 산자부 관할에 있는 반도체가 더더욱이 찬밥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박근혜 정부가 그리도 주창하던 창조경제로 인해, 소프트웨어 등 ICT 쪽의 쏠림이 완전히 극대화된 결과라며 R&D 실무인사가 개탄했을 정도.
한국은 반도체가 아니라 메모리 강국이고, 메모리보다 훨씬 시장 규모가 크고, 이익률이 높은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존재감이 없었다. 비메모리, 반도체 공정 장비 쪽으로 할 일이 산더민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잘 하고 있으니 미래 기술도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건 반도체 산업의 저변을 포기하는 꼴이기 때문. '''참고로 박근혜 정부는 디스플레이 분야도 이렇게 했다가 중국한테 따라잡혔다'''. 국가의 R&D 기금이 관련 분야의 대학과 중소기업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생각해보면, 저변에 투자해 함께 커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버려 두는 것은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주력사업 조차도 위태하게 만들어 대량 실업자들을 양성할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그냥 별 기술 없이 하루 이틀 투자한다고 되는 공산품 따위가 아니라, 삼성전자가 처음에 그랬듯,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익을 위해 뛰어야 하는 사업이기 때문.
3.1. 불성실한 근무 태도
3.1.1. 세월호 참사 당시 공백 논란
세월호 7시간 공백 논란에 대해 박근혜는 관저에서 서면 보고와 유선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 현재까지 나온 청와대 주장이었다. 거기에서 문제 제기가 시작됐는데, 박근혜는 취임 후 관저에서 주로 근무(?)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1 관련기사 2
이에 대해 야권과 일부 언론에서는 "관저는 집무 공간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대통령이 관저에서 머물렀다는 것은 곧 출근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관련기사
그런데 세월호 참사 당일, "금방 일어난 것처럼 머리를 부스스하게 연출하였다"고 박근혜의 전속 미용사의 증언이 나왔다. 중앙대책본부를 방문하기 전, 민방위복을 입는 것에 맞춰 일부러 머리를 부스스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면 세월호 참사 당일 언제 가서 머리를 해주었느냐??"고 취재진이 미용사에게 계속 물어봤으나,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전직 청와대 조리장인 한상훈 씨는 "박근혜는 평일에도 주로 관저에 머물렀다"고 고백하였다. 관련기사 초기에는 조리장 이름이 익명으로 나왔으나 촛불민심을 보고 용기를 내 실명을 밝혔다고 한다. 실명이 공개된 것에 대해 우려도 일부 있었으나, 오히려 실명을 공개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박근혜가 혼밥을 즐겼다는 것에 대해, 일간지에서 "히키코모리 대통령"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대통령의 식사 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시간이다. 이런 식사 시간을 일반인도 아니고 대통령이 그냥 혼밥으로 보낸다는 건,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전혀 할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관련기사
3.2. 무책임과 나 몰라라 태도
본인의 지지자들이 집회 도중 사고로 죽어나가도 박근혜는 묵묵부답이었다. 심지어 사망 사고 발생 이틀 뒤인 3월 12일에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왔을 때, 친박 의원들을 보며 활짝 웃는 등 죄책감은 조금도 느끼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대변인을 통해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 이라는 메시지를 발표했는데, 헌재의 결정에 사실상 반기를 든 것이다. 즉 파면되었는데도 끝까지 헌법을 지킬 마음이 없다는 소리다.
이런 형국이니 박근혜의 업무 수행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따지기에 앞서, 업무 수행 '''의지가 있었는지 여부'''부터 따져봐야 옳을 것이다. 즉, 능력의 유무는 고사하고 대통령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겠다는 의지조차 거의 없다. 서면보고를 받으면서 모든 게 알아서 정리되기를 바라는 식으로 나왔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렇게 정리되고 나면 자신이 고귀한 모습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즐겨하던 것이다.
3.3. 언어 능력 부족
사실 언어 능력을 측정하는 기준은 불분명하고 다양하기도 하다. 케네디나 노무현처럼 즉흥적인 문답에 능한 사람도 있고, 카이사르나 링컨처럼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으며, 혹은 한비자나 토머스 제퍼슨처럼 개인적 사유 때문에[22]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걸 꺼려서 말솜씨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훌륭한 저술 활동으로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드러내는 능력을 지닌 사람도 있고, 한고제나 김영삼처럼 논리적이거나 지적이진 않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화술로 사람을 사로잡는 사람[23] 도 있을 정도로 언어적 능력을 발휘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렇다면 박근혜의 언어 능력은 어떠한가? 박근혜는 예전부터 말을 못하는 정치가로 악명이 높았다. 보수 언론에서는 이를 옹호하느라 '''"눌변이 매력적이다"'''라는 기사까지 작성했다.[24]
게다가 박근혜는 말을 할 때마다 자꾸 핵심을 겉돌았다. 박근혜는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뽑아서 자신에게 유리한 맥락에서 해석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는 과정 없이 그걸로 발언을 끝낸다. 게다가 정말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할 때 사용하는 표현과 단어 또한 세련되지 못하고, '내가 대충 말해도 너희가 알아서 잘 들어 먹어라.' 같은 오만한 생각까지 바탕에 깔려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박근혜 화법 문서 참고.
결국 박근혜의 언어는 그녀의 모자란 지능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스스로도 그런 약점을 아는지, 가급적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기피하고, 다른 사람과 말하는 자리(식사, 회의)를 최대한으로 줄이며, 말을 해야 하는 대면보고보다는 말할 필요가 없는 서면보고를 선호했다. 박근혜가 고급 지식은 고사하고 일반적인 상식조차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국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이, 박근혜가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에 도전하면서[25] 그 전과는 다르게 TV 토론회에 나오면서부터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그 전에는 대중 앞에 설 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거나 악수를 하는 정도의 모습만 보였기에 나름 신비스럽고 우아하게 보일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기 위해 필연적으로 TV 토론회에 출연해[26] 대중에게 말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게 되면서 껍질이 벗겨지고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흔히 역사에 만일은 없다고 하지만, 만일 박근혜가 대통령 지위까지 노리지 않고 새누리당의 유력한 국회의원 정도로 만족했더라면 국민들은 지금까지 박근혜의 실체를 모르고 박근혜 역시 지금까지 잘 지냈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자기 능력을 지나치게 넘어서는 자리를 욕심 내다가 망한 것이다.
또한, 한때 박근혜의 입이라고 불렸던 전여옥에 따르면, 박근혜가 서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잘 알지 못하자 보다 못한 나머지, 일상 생활 용어를 익히게 할 생각에서 드라마 시청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때 그렇게 개판을 친 것이다. 나중에 전여옥이 김어준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전보다, 대통령이 된 후에 언어 능력이 더 퇴보했다'고 얘기했다. 전에도 대통령이 되기에는 능력이 많이 모자랐지만, 최소한 기억력은 괜찮아서 남이 미리 작성해준 답변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서 대답할 정도는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통령 시절처럼 심하게 태만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전여옥이 이에 대해서 의사인 지인에게 물었는데, 약물의 후유증으로 이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전여옥은 박근혜가 각종 약물을 사용해온 만큼, 최태민이 최면술을 사용했던 것처럼 그 딸인 최순실도 약물로 박근혜를 조종하려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상돈 의원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서 심하게 망가졌다는 표현을 했는데, 대통령이 되기 전의 박근혜 '의원'은 주변의 참모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이러한 면모가 아예 사라졌다고 증언했다.
4. 불안정한 정신 상태
이 문서를 포함하여 박근혜의 정신 상태에 대한 다양한 서술에 앞서 반드시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그 내용이 '''어디까지 '추정'에 불과할 뿐이지 전문의에 의한 '진단'은 아니다'''라는 점이다. 이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인 황상민 전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진단을 할 자격이 없는 심리학 박사임에도 '빙의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박근혜의 정신 건강 상태를 단정하고 유희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 소장 역시 전문의이기는 하지만, 당연히 박근혜 본인과 상담 과정을 거쳐 예후를 파악하고 진단을 내린 것이 아니며, 황상민과 다를 바 없이 그저 '이러할 것이다'는 내용을 조심스럽게 추측하는 데 그쳤다. 개인의 정신 건강은 '''절대로 유머나 조롱의 소재가 아니며''', 적절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인의 정신 건강 상태에 대해 결론짓는 것은 윤리 규정 위반이자 잘못된 행위다. 이것은 박근혜가 불쌍하니까 봐 주자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박근혜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보호 받아야 할 최소한의 인권에 관한 것이다.
다만 위 문단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정신과 진단의 추정은 정신과 전문의의 임상적 판단에 의거할 뿐이고, 심리 검사 등 다른 검사들은 그저 진단에 참조가 될 뿐이다. 게다가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그 사람의 걸어온 발자취와 각종 신뢰성 있는 정보들을 통해 얻은 데이터가 수년 간 쌓였다면 추정 진단은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전문의 실기 시험의 경우 러닝 타임 1분 정도의 비디오만 보여준 뒤 비디오 속 인물의 진단을 쓰라는 문제가 출제된다. 2017년 10월, 27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모여 엮은 책, The dangerous case of D.Trump 에 따르면 타인의 자·타해 우려를 알려야 할 의무를 명시한 타라쇼프 규율에 더욱 힘을 실어, 온 국민에게 경고할 의무 (duty to warn)란 관점을 취합하여 펴냈다. 이 책은 2017년 4월, 예일대 정신과학 교실에서 가진 컨퍼런스에서 정리되어 출간 된 것으로, 대통령의 판단력 및 결정 능력 등은 한 국가와 모든 이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골드워터 규율[27] 은 어디까지 선거 전 후보들에 대해 함부로 진단하지 말라는 뜻이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그의 정서 건강에 대한 의견은 오히려 내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신과 의사의 윤리를 저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박근혜'의 정신 건강과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의 정신 건강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위의 정신 건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시점은 일단 대통령직을 수행할 시점이었고, 이는 대통령이 국정수행 능력이 있느냐로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위의 골드워터 규율이 있는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행을 보고 정신 건강에 관한 여러 심리학자들의 우려가 계속 보도되는 실정# #이며, 시대는 다르지만 심리학계의 거장 지그문트 프로이트 역시 자신의 전공에 맞추어 미국 대통령의 정신 분석에 초점을 맞춘 전기를 낸 바 있다.
특히 박근혜의 정신 문제에 대한 여러 심리학자들의 논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밝혀져 박근혜가 탄핵 국면에 들어간 상태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당시 박근혜의 대통령 자질에 대해서 제대로 알릴 필요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인 심리학자나 정신의학자들이 이것을 담론화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박근혜를 정신증, 신경증으로 단정하고 조롱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행위가 '''실제 정신증, 신경증으로 투병하고 있는 다른 환자들의 인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변기나 거울방 사건 등의 예를 볼 때 박근혜의 정신 건강이 정상 범주를 벗어나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글, 혹은 방송을 통해 '어떠한 병을 앓고 있을 것이다'라고 단정지어 서술하는 것은, 자칫 환자들에게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잘못된 이미지를 씌울 수 있을 뿐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 치료자 사이의 라포[28] 를 약화 시켜 치료를 어렵게 할 수 있다. '''박근혜를 위함이 아닌 정신과 환자들과 그들의 보호자 그리고 치료자를 위해서''' 관련 서술에는 신중을 기하길 부탁 드린다.
4.1. 변기 교체 요구 등 결벽증/강박증 의혹
박근혜의 결벽증은 지나치게 과도하여 정신병의 일종인 강박증으로 의심받고 있다. 또한 심리학 박사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는 박근혜가 17~18세 전후에 고착화된 성인 자폐증 증세를 갖고 있다는 주장도 했다. 만약 자연인 박근혜였다면 그냥 넘길 사안이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 박근혜로서 혈세까지 낭비하며 저런 정신나간 행각을 보였기 때문에 더욱 지적되었다. 이것 때문에 박근혜에게 '''변기 공주'''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관련 일화는 이렇다.
- 전여옥이 2007년에 증언한 바에 의하면, 패스트푸드, 즉 햄버거를 먹을 때도 나이프와 포크를 썼다고 한다.[29] 또한 이미 단종된 브랜드의 샴푸 제품을 강요해서 참모들이 시장을 뒤지느라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 청와대 관저의 거실을 온통 거울로 도배된 거울방으로 만들어 놓아서, 박근혜 탄핵 후 새 대통령의 입주를 위해 찾아간 관계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 사실 이 의문의 거울방에 대해서는 2017년 1월부터 이야기가 나왔다. 한편, 이 부분에 대해 청와대는 노 코멘트로 일관했을 뿐더러 청와대에서 식사를 담당했던 요리연구가 김막업 씨는 '한쪽 벽면만 거울로 돼 있었다'고 회상하여 진위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 2013년 영국 방문을 했을 때, 단 하루 숙박했던 5성급 호텔[30] 에 샤워기 꼭지와 침대 매트리스를 교체해 달라고 호텔 측에 요구했다. 손잡이 부분을 눌러야 물이 나오는 형태로, 한국에서 공수해 간 제품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화장대 주위에 쓸 조명과 스크린 장막도 요구했는데, 조선일보 이때 교체 비용은 호텔 측이 지불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것도 대통령의 숙박 준비를 위한 작전이었는데, 코드네임은 "대평원"이었다. 대통령의 식사를 따로 준비해야 한다며 싱싱한 활전복을 가져오고, 냉장고가 잘 보이게 하기 위해 문짝을 뜯고, 온·습도를 맞추기 위해 가습기와 공기청정기를 세팅하고, 방 곳곳에 라벨을 붙이는 등, 갖은 갑질을 부렸다. # 또한, 호텔 방 안에서 별도로 마련한 음식을 아침 식사로 준비하기 위해(활전복으로 만든 전복죽으로 추정) 전자레인지까지 별도로 설치했다. #
- 송영길 의원이 인천광역시장으로 재임하고 있었을 때, 국정 간담회차 온 박근혜는 송영길에게 "시장 집무실을 빌리겠다"고 요청했다. 송 시장은 흔쾌히 "쓰시라"고 했지만, 얼마 안 가 경호실 관계자가 자기 집무실에 달린 변기를 뜯어내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놀란 송 시장이 "왜 교체합니까?"라고 묻자 경호실 관계자가 "대통령이 쓰실 변기를 새로 달아야 합니다"라고 했다고. 변기 커버 사용 등의 대안을 제시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송 시장은 변기 교체 공사로 1주일 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고...
- 2014년 부산광역시 ‘아세안 정상회의’ 행사에 참석할 때 잠시 머무를 대통령 대기실이 설치됐는데, 그 안에 ‘박근혜 전용 변기'를 설치하기 위해 인근에서 수도를 끌어오는 공사를 하는 촌극을 벌였다. 며칠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단 몇 십 분 머무를 장소에 전용 변기를 설치한 것이다. 10개국 정상들과 부인들이 쓰는 화장실이 있음에도 박근혜는 끝끝내 ‘전용 화장실’을 만들었고, 이후 행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타인과 화장실을 함께 쓰지 않는다’는 말이 떠돌았다고 한다. 참고로 저 벡스코 행사장의 ‘한·아세안 10개국 정상회의장 제작 설치’는 시공테크가 맡았다. 시공테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차은택 씨가 감독을 맡은 ‘밀라노 엑스포 한국관 전시제작’을 수주한 회사이기도 하다.# 또한, 단 하루 머무르는 부산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침대가 너무 푹신하다"며 최고급 매트리스를 싸구려로 교체하고 드레스룸까지 설치했다. 내부 조명도 지나치게 밝다는 이유로 교체하고, 호텔 측에서 구비한 전자레인지를 "대통령이 사용할 줄 아는 모델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특정 모델까지 지정해서 교체했다.# 여기에 든 비용은 호텔 측이 지불했다고 한다.
-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4차 핵안보정상회의’ 당시 각국 정상과 국제 기구 대표들의 단체 사진에 박근혜가 빠져 "회의를 주최한 미국이 박근혜를 챙기지 않았다", "한국을 무시한 것 아니냐", "국제적으로 왕따를 시키는 것이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이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인 〈팟짱과의 인터뷰〉에서 어느 공무원에게서 제보 받은 내용에 의하면, 당시 사진 촬영에 박근혜가 참석하지 못한 이유는 정상 회담이 열리는 장소에 있던 공용화장실엔 가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전용 변기가 설치되어 있는 현지 숙소의 화장실까지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약 회의가 열리는 장소가 한국이었다면 전용 변기를 설치하는 공사를 할 수 있었겠지만, 미국에 있는 핵안보 정상회의장 공용화장실의 변기까지 뜯어내는 건 불가능하여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 2013년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 사령관실에 방문 예정 통보를 하며, 사령관 집무실 화장실에 전면 교체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제보자에 의하면, 해당 군부대는 갑작스러운 화장실 교체에 쓸 예산이 없어서, 다른 예산까지 끌어다 써서 화장실의 타일부터 변기까지 싹 갈았다고 한다. 그러고도 정작 화장실은 들르지 않았다고... #
- 강원도 원주시의 한 공군 부대를 방문하기 전 기존의 VIP 전용 화장실을 대대적으로 공사하여 박근혜 전용 변기를 설치하였는데, 이 와중에 애꿎은 남성용 소변기까지 모두 떼어냈다고 한다. #
이런 식이면 대통령이 방문하는 곳마다 변기를 교체하려고 했다는 것인데, 결벽증이 어처구니없는 수준이다. 1970년대 이전 한국에 방문하던 외국 고위 인사들[31] 이 수세식 좌변기 설치를 요구한 적도 있기도 하지만, 이 때의 한국은 변기는커녕 수세식 화장실도 드물었을 때이니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영국인들이 자국에 있는 5성 호텔에서 진상 고객 짓을 하는 박근혜를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보나마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지지 이유를 묻는 설문에는 항상 '''외교를 잘해서'''가 순위로 꼽혔다. 물론 박근혜가 정말로 외교를 잘 했다면 위에 열거된 기행들은 호사가들의 흥미 거리 정도로만 남았겠지만, 박근혜 임기 말(2017년 초 기준) 한국 외교는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쌩얼로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대면도 극히 피했다고 한다.
- 한상훈 셰프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에 입사해서, 조리장으로서 박근혜 취임 후에도 재직하며 3년 간 박근혜의 밥솥을 책임졌다. 그는 퇴임하면서 자기가 모셨던 대통령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박근혜는 "머리 단장과 메이크업이 되지 않았다"며 작별 인사를 받는 것을 거절했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오랫동안 재직했던 직원이 퇴직할 때는 대통령과 직접 대면해서 작별 인사를 하고, 기념 사진을 찍는 것이 관행인데도, 화장을 안 한 상태라서 기념 사진을 안 찍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만나기조차 거절한 것은 상식 밖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의 여왕" 소리를 들은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애초에 여왕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게, 자기가 이길 만한 선거에만 출마해 왔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위기감이 극에 달하던 당시, 새누리당 내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직접 수도권[33] 에 출마해서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건의가 나왔으나, 박근혜는 간단하게 묵살했다. 그리고 실제로 서울에선 새누리당이 참패했다. 같은 선거에서 정세균, 정동영, 김효석 등 민주통합당 내의 전라도에 지역구를 두던 중진 의원들이 서울로 지역구를 옮겨서 선거에 도전했던 것과 대비된다[34] . 그리고 비록 낙선하긴 했지만 친박계였던 홍사덕 의원도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서구 대신 종로에서 정세균과 맞붙었다. 즉 여야 막론한 여타 정치인들과 달리, 그녀에겐 공당을 위해 험지나 격전지 출마를 감수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게다가 손혜원 의원이 공개한 제보에 따르면 독일 출장 시 해외교포 모임에 잠깐 들렸던 장소에서도 전원 온오프 스위치를 알려주는 라벨링을 반드시 했어야 했다고 한다. 심지어 욕실의 온수 냉수도 스티커를 붙였어야 했다고... # 이를 같은 방향에서 해석하면 자신이 하는 행동이 틀려서는 안 된다(고 믿)는 강박 행동으로 볼 수 있다.[35]
다만, 박근혜의 행적을 정신분석학 적으로 살펴보면, 흔히 말하는 결벽증보다 강박장애로 해석할 근거가 더 많은데, 박근혜의 행동들은 청결 목적보다는 일정한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위에 열거된 사례도 강박증에서 비롯되었다는 의견이 강세다. 어떤 행위에 대해 강박적인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며, 그 조건을 만족하지 않는다면 극도의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행동해왔다는 것이다.
햄버거를 먹을 때도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식사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우아하게 하는 것'이라는 강박 때문일 수도 있다. '손이 더러워질까 걱정해서 집어먹지 못한다', '내 손이 더러울까 봐 음식을 건드리기 꺼려진다' 등의 이유가 아니라, '포크와 나이프 같은 식기가 없이 식사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이유일 거라는 해석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 방문 당시 침대 매트리스를 갈았던 것도 같은 느낌의 침대에서 자길 원했기 때문이며[36] , 샤워기 역시 평소에 쓰던 버튼을 눌러야 물이 나오는 샤워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해석할 수 있다.[37]
변기와 관련된 소동 역시 쓰던 것과 같은 기종의 변기가 아니라면 일을 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일 수 있다. 배설 행위를 할 때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일반인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38] 결벽증 때문이 아니라 변기가 다르면 강박장애 때문에 불안 증상이 나타나 쓰던 것과 같은 변기가 아니면 일을 볼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박근혜 같은 정치인은 지지자나 정치적 활동을 위해 지방에 가는 일이 잦다. 다른 사람도 그렇지만 보통 시간이 늦어지면 대개는 그곳에서 하룻밤 정도 묵는 것이 보통인데, 박근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 또한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또한 박근혜는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불면증은 강박장애나, 불안장애의 증상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메이크업과 헤어, 그리고 의상이 완비되지 않으면 사람을 절대 만나지 않으며, 식사 자리에 사람을 초대하는 일 또한 일절 없다는 것 역시 결벽증으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강박증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 강박증이 심한 경우, 자기 눈에 자신의 흠점이 보이면 그 부분을 가리기 전까지는 남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식사 자리에 사람을 초대하지 않는 것 역시 원래 혼자서 TV를 보며 식사해왔기 때문에 이 패턴을 바꾸고 싶지 않았거나, 자신이 밥을 먹기 위해 입을 벌리거나, 흘리거나 하는 행동을 드러내기 싫어서라는 해석이 남들과 같이 식사하면 더럽기 때문에 꺼렸다는 해석보다 자연스럽다는 시각도 있다.
비선의료의 주체인 의사 김영재의 증언을 보면, 김영재는 "박근혜가 흉터[39] 에 대해 컴플렉스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흉터, 뾰루지 등 외모에 대한 강박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치의를 통하지 않고 비선의료 행위를 한 것 아닌가하는 추정도 가능하다. 세월호 7시간 30분 당시의 행적을 밝히지 않은 것도 헤어 세팅이 본인이 만족할 만큼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며, 박근혜가 미용사를 근 20여 년이나 존속한 까닭도 바로 강박 때문이 아닐까 의심할 수 있다. 보통은 청와대 전속 미용사가 아니라 극히 비효율적인 외부의 비상근 미용사를 계속 쓸 이유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세월호 참사 당일 의료 시술이나 약물 투여 행위가 있었다면, 의사가 아니라 간호장교 조여옥 육군 대위가 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굳이 다른 의사를 부르느니 평소에 감초주사, 백옥주사, 마늘주사를 놔주던 측근이 행하는 것이 더 심리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전문적인 의사가 아닌 야매 돌팔이라고 해도 말이다.[40] 뿐만 아니라 박근혜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오래되었고[41] , 어떤 패턴과 동선을 따라야만 하며, 이를 따르지 않을 시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온다는 말 역시 무성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 발언을 보면 국론 분열을 극도로 꺼리고,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이 또한 분열과 혼란을 극도로 꺼리고 무엇이든 일사불란한 것을 원하는 강박증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무슨 국가 운영을 위한 계획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혼란을 개인적으로 참지 못한다는 것. 박근혜 자신이 보기에 대한민국은 매우 혼란하며, 그 때문에 자신은 늘 불안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항상 위기 상황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이 항상 나라만 걱정하는 애국자라는 전제를 당연히 깔고 간다.[42]
이렇게 해석하면 예컨대 '''"국가비상상황이니 공직자들은 국내에서 골프를 열심히 쳐야 한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발언도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공직자가 해외로 나가는 것은 혼란한 것이니 애국자인 자신이 늘 불안장애를 겪지만, 이들이 국내에서 골프를 친다면 애국자인 박근혜 입장에서 불안이 해소되니 국가의 위기가 해소되는 것이다.
어디까지 의심에 불과하긴 하지만 박근혜의 강박증이 이 정도로 심하다면 의존성 성격장애와 결합되어 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불안증상이 가시지 않는데 생활 능력을 포함해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전무한 박근혜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변 인물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원인이 무엇인지 지목할 수 있는 능력 역시 없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때문에 사이비 종교, 최태민 등에 심각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최순실 일가가 전횡을 일삼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박근혜가 의존성성격장애를 앓고 있다고 보면 맞아떨어진다. 또한 의존성 성격장애는 회피성 성격장애와 함께 나타날 가능성도 높은데, 만약 여기까지 인격장애가 있다면 평소 사람을 만나지 않는 행적도 설명할 수 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부모가 둘 다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 커터칼 습격, 주변 인물의 의문사 등과 무의식 중에 연관 지어서 자신의 목숨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것이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박근혜가 젊었을 때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은 ''''어머니(육영수)는 착한 사람인데 왜 총에 맞아 죽었나?''''하는 것이었으며,[43]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거의 모든 저명한 종교계 인사들과 만났다고 한다. 그중 가장 박근혜에게 큰 깨우침(?)을 준 답변이 바로 최태민의 '꿈에서 육영수가 직접 말하길 박근혜를 아시아의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희생한 것'이라는 소위 현몽설이다. 이후 박근혜의 삶을 보면, 최태민에 홀린 것 아니냐는 말을 동생들이 할 정도로 최태민에게 극도로 의존하게 된다.
아마 최태민의 신탁, 예언이 적중하고, 그의 뜻에 반한 인물들이 제거되는 것을 보며 그를 따라야 한다는 강박사고가 생긴게 아니겠냐는 것. 만약 최태민의 뜻과 어긋난 행보를 보일 시 자신이 위험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식의 불안에 사로잡혔다는 추측이다. 실제로 최태민이 박근혜의 팬티 한 장까지 주술적 의미를 부여해 관리하는 등 모든 생활 전반을 관리했기 때문에, 최태민을 맹신에 가까울 정도로 추종하던 박근혜의 입장에서 이를 어기는 행위는 마치 종교적 금기를 어기는 것과 같은 의미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이 생명에 대한 두려움과 결합되어 강박장애로 발전한 것 아닌가 하는 해석이다. 꼭 생명과 관련된 불안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기반, 지위 등의 상실에 대한 큰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을 개연성도 높다. 자신의 능력에 비해 과도한 지위에 오른 경우 불안감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의존성 성격장애를 겪게 되고, 의존대상의 지시에 대해 강박장애를 얻는 것 역시 가능하다.
의존성 성격장애에 의한 강박장애 발생설에 따르면 이해할 수 없을 박근혜의 기행은, 최태민의 개입이 매우 구체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변기의 경우 최태민이 '이 화장실이 기운이 좋아 여기서 일을 보면 신이 복을 내려준다' 이런 식으로 말했다면? 최태민은 박근혜가 자신의 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얼렁뚱땅 얼버무린 것일 뿐인데 박근혜가 이를 마치 신탁처럼 받아들였다면? 같은 기종의 전용 변기를 매번 설치하는 번거로움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샴푸 같은 경우에도 정황상 최태민이 사다준 것이 유력한데 박근혜가 '왜 이 샴푸를 권유하셨나요?'하는 식으로 물었다면 사이비 교주인 최태민이 과연 뭐라고 답했을까? '기운이 박근혜와 잘 맞는다'든가, '육영수 여사가 쓰던 것이라 기운이 좋다'는 식으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샴푸가 단종이 되어도 바꿀 수 없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도 충분히 가능하다.
또 청와대 출입 의사 중 정신과 전문의가 단 1명도 없었다는 점 역시 뭔가 수상한데, 이것도 최태민 등이 멀리하도록 지시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44]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 인터뷰에 따르면, 전문가들 역시 박근혜를 강박장애 환자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 관저에서 일한 요리연구가 김막업 씨도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 기본적으로 박근혜를 옹호하는 내용의 진술을 하면서도, 박근혜의 몇 가지 강박적인 행동을 곤혹스러운 어조로 토로하였다.
함께 지낼 때 그분은 늘 "전기 절약하세요"라고 했어요. 넓은 관저 복도의 전등을 끄는 통에 힘들었어요. 어두워서 한번은 이마를 받은 적 있어요. 해외 순방 떠날 때도 "이제 좀 쉬세요. 전깃불 끄는 거 잊지 마세요"라며 단 두 마디를 해요. '신경 쓸 일도 많을 텐데 이런 것까지' 하는 마음이 들지요.
(해외순방 때 큰 거울이 달린 화장대를 들고 갔다는 풍문은 거짓말이지만,) 삼성동에서 써왔던 110V 옛날 스탠드는 꼭 들고 갔어요.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지요. 요즘은 110V 전구가 귀해서 수소문해서 몇 상자를 구해야 했어요.
4.2. 조현병 스펙트럼?
반면 김어준의 파파이스 16.12.23 방송분 (16년 10월 26일 녹화)에 출연한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 소장[45] 은 조금 다른 얘길 한다. 박근혜에게 강박증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강박증 ≠ 강박장애라는 것이다. 강박장애가 있는 사람, 예를 들어 어느 특정 변기에서만 일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면, 그 변기가 없으면 아예 일을 안 보는 식으로 그런 강박증을 자기 선에서만 해결하려고 들지, 저렇게 변기를 떼거나 샤워기를 바꾸는 등 민폐란 민폐를 다 부리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실제로 강박장애를 앓는 사람들의 경우는 자신의 강박증을 인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에 큰 불편함과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에 타인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들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강박적 행동을 숨기려 하지만 숨겨지지 않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박근혜의 경우는 자신의 강박증상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에 김현철 의사는 "악성적인 자기애를 보유했고, 현실인지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해당 방송분에선 박근혜가 원했던 룸 셋팅이 나오는데 화장을 할 때 가로 세로 1.5m × 1.5m의 거울과 10개의 조명과 배경 담당의 하얀 스크린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이러한 장치들은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만들고,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 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부분에서 김현철 소장은 악성적인 자기애에 빠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이런 증상은 약 1년 정도 꾸준히 약물치료를 진행하면 상담치료도 필요 없을 정도로 완치가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김현철 소장은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이 사람이 정신과 진료가 필요하다, 아니다' 정도는 의사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을 텐데, 이를 지적하는 의사가 청와대에 단 1명도 없었던 것 아니냐??"는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46] 여기서 추론해 보면, 자신에 대한 지적을 허용치 않는 박근혜 특유의 권위주의가 문제이거나, 더 나아가서 박근혜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편이 더 조종하기 쉽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방치하려는 세력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식의 의견도 제시해 볼 수 있겠다.
강박장애가 아니라고 김현철 소장이 확신하는 부분은 박근혜가 먼저 이해할 수 없는 요구들을 한다는 부분인데, "강박장애 환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생각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먼저 요구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강박증은 있지만 그것이 강박장애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강박장애보다 더 낮은 수준의 정신상태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을 했는데 조심스럽게 조현병[47] 스펙트럼의 일종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근거는 자신의 강박증상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이며, 적어도 박근혜 스스로가 느끼고 있는 현실은 바로 우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그 형태라고 믿고 있으며, 이는 현실 인지 능력이 현저히 낮은 것 아니냐는 추론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스위치 라벨링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요구들은 조현병 스펙트럼 중 피해망상에 의한 것 아니겠는가 하는 가설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거실 불을 끄면 폭탄이 폭발한다고 상상하거나, 전자레인지를 호텔에 반입해 호텔식이 아닌 식사를 따로 조리해 먹은 것도 독살에 대한 불안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모두 총격으로 사망했고 자신도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박근혜에게도 피해망상 증상이 있을 확률이 높다.
조현병 스펙트럼에 들어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현실에 대한 인지와 감각이 무척 다르다. 전문가라도 진단하기 전까지 확신할 부분이 적다. 조현병으로 가정하고 박근혜의 행적을 살펴봐도, 박근혜를 강박장애라고 가정했을 때 보다도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얼굴 표정이 사라지고, 언어구사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방콕을 선호하고,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믿음'과 '의심'이 굳세다.[48] 이러한 증상들은 박근혜에게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일치한다. 단, 강박장애든 조현병이든 정식 진단은 아직 안 떨어졌다.
한편, 박근혜가 파면된 후 새 대통령 문재인이 청와대에 입주하게 되면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박근혜가 사용하던 청와대의 거실이 '''사방팔방에 거울이 설치된 기괴한 모습'''이었던 것.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가 거울이 가득한 방에서 요가를 배우고 있었다는 '거울방 의혹'은 이미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거울방'은 요가나 필라테스를 배울 목적의 작은 공간 수준이 아니라 거대한 규모의 거실 공간을 모조리 거울로 채워 놓은, 괴상하기 그지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로써 박근혜의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를 보여주는 지표가 하나 추가되었다. 아무튼 이 상태로는 도저히 방을 사용할 수가 없어 정비가 필요했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입주는 예정보다 며칠이나 늦어지게 되었다. 출처
결국 박근혜의 정신상태는 단순히 일상생활에만 불편을 주는 강박장애가 아니라 좀 더 심각한 정신질환인 조현병 스펙트럼, 오래된 표현으로는 '''정신분열'''에 해당할 수 있으며, 강박장애나 조현병 어떤 경우라도 5천만 국민의 생존을 책임진 대통령을 맡기에는 상당히 부적절한 정신상태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2017년 7월 8일 모 언론사 보도에 따르면, 서울구치소에서 한밤중에 벽을 보고 중얼거리고 식사한 지 30분 만에 "왜 식사를 주지 않느냐"고 묻는 이상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 하지만 구치소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4.3. 리플리 증후군?
정신과 전문의인 서천석 박사는, 박근혜가 리플리 증후군과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는 심리분석을 내놓았다. # 리플리 증후군이란, 현실을 부정하고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기반으로 성공한 모델을 자기 자신에게 투영하여, 자신이 다른 사람이나 가상의 사람이라고 거짓말을 계속 반복하다가 그것이 정말로 실제 자신이라고 믿게 되는 정신병을 말한다. 서천석 박사는 박근혜의 특징으로 “우선 지적으로 취약한데, 무엇보다 자기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약하다. 둘째, 대인 관계에서 타인을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 두려워한다. 셋째, 그럼에도 자기 스스로 자기 관리를 하는 것조차 어려워하기에 소수의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의지해 왔다”라고 3가지를 꼽았다.
상상 속의 소설이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그는 "높은 자리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았나 싶다. 모두가 받드는 존재로 살기를 원해 왔고, 스스로 그럴 만하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박근혜의 심리상태를 분석하며 “그는 거짓 자신을 스스로 자신이라 믿으며 마음의 평화를 지켜가는 리플리 증후군과 비슷해 보인다. 결정적인 차이는 리플리 증후군처럼 적극적으로 자기와 주변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매우 특수한 박근혜의 조건 덕분인데, 박근혜는 박정희 대통령의 영애와 퍼스트레이디 직무대행으로서 10, 20대를 보냈다.
스스로를 포장하기 위해 타인에게 체계적인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타인이 적당히 포장해준다. 그저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수준이면 충분했다. 무능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출을 피하는 정도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녀가 다른 리플리 증후군 환자와 다른 환경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환자들처럼 굳이 애써 상상 속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한 "오히려 주변에서 박근혜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포장해주다보니 스스로 자신이 굉장히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하게 되었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상태에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지만, 그 트라우마를 계기로 일체의 정신적 성장을 이뤄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쉽게 예를 들어서 미성숙한 4살 여자애가 '공주놀이'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처음엔 놀이지만 주변에서도 부모, 친구, 교사 등이 그 아이를 정말 공주처럼 대해 주면,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자신이 정말 공주라고 착각하게 된다. 이렇게 자신이 공주라는 믿음이 굳건한 상황에서 갑자기 주변 인물들이 다시 아이를 공주가 아니라 평범한 4살 아이처럼 대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보통 사람들이라면 처음엔 어리광을 부릴지라도, 차차 다시 평범한 아이로 돌아오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사람이 정신적 성장을 이루는 과정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부모가 총에 맞아 죽고 친동생들과 함께 청와대에서 퇴거하는 계기를 갖고도 자신이 평범한 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근혜의 머리 속에 있는 박근혜란 사람은 주변의 다른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무관하게 특별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아꼈던 사람들이 줄줄이 '배신'하더라는 박근혜의 화법을 보면 매우 개연성 높은 추정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많은 논란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인신공격이 많았는데도 굳이 대통령직에 오르기를 고집한 것은 어린 시절 오랫동안 살아온 청와대에서의 삶을 살기 위한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그 이후에 대한민국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이끌어야 하는지 검증된 정책 전문가들과 의논하며 자신의 머리에 구상한 개혁플랜을 실천해나갔다면 이런 악평을 들을 소지는 별로 없었겠지만 불행히도 그러지 못했다.
4.4. 나라 망신
전여옥 의원이 밝힌 바에 의하면 이러하다. 박근혜는 당 대표시절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 강연을 하러 가서 외국인 대학생들과 질의응답시간을 열었는데, 이때 외국인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평소처럼 횡설수설이나 두루뭉술 식으로 대답했다고 한다. 맥빠진 학생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뜨고, 박근혜와 동행한 의원들이 창피해서 황급히 강연을 중단시켰다. 이때 강연에 참석했던, 어떤 흑인 학생이 전여옥 의원에게 다가가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또한 상술했듯이 가는 곳마다 전용 변기를 설치하는 기행을 벌이거나, 영국에서는 5성급 호텔에서조차 침대 매트리스를 교체해 달라고 떼를 쓰는가 하면,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행사가 길어지자 시진핑 주석에게 "배고파 죽겠다"고 말하는 등의 어린애 같은 투정을 하기도 했다. 연합뉴스.'''She is really stupid, thicken headed.'''(저 여자, 진짜 멍청해요. 돌머리인가.)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을 만난 자리에서, 최순실에게 천만 원 짜리 구찌 가방을 선물하여 로비한 KD코퍼레이션의 제품[49] 을 네덜란드 국영석유기업인 로열 더치 쉘에서 사 달라는 청탁을 했다고 한다.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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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밝힌 바에 의하면, 박근혜는 G20 정상회담에서 외교적 결례를 감수하면서까지 고영태의 회사 '빌로밀로'에서 제작한 가방을 간접광고하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한다. 보통 정상외교에 임하는 국가정상들은 악수나 포옹 등의 의전 절차를 위해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는 것이 예의인데다, 가방은 속에 든 것이 드러나지 않는 특성상 테러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그런데 박근혜는 가방을 든 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악수하려다 독일 측 수행원에게 가방을 빼앗기고 말았다. 손혜원 의원은 "과거 오랜 기간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수행한 데다 당 대표, 대통령으로서 수많은 해외 순방을 다닌 박근혜가, 이런 기본적인 의전을 모를 리 없다"고 분석하며 최순실이 박근혜를 PPL(간접광고)로 이용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했다. #
5. 벽창호
정치판에서는 적군과 아군이 시시각각으로 바뀌어서 쉽게 예측하기 어렵지만[50] 박근혜는 놀라울 만큼 피아식별이 확고하다. 게다가 '''박근혜가 누군가를 한번 적군으로 여기면, 그 사람은 영원히 적군이 된다.''' 정계 입문, 한나라당 - 새누리당 국회의원 및 대표, 대선 후보에서부터 집권 4년 차 이후 탄핵이 인용되어 파면 당하고 나서도 박근혜가 '''일관적으로 보여주는 문제점 중의 하나'''였다.한국에 닥친 가장 큰 위협은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주의'''다.
그 어떤 타협도 없는 극에 달한 강경파이다.
이를 상징하며 박근혜가 자주 사용하는 어휘가 "좌시(하지 않겠다), 엄단(하겠다)" 등이다. 전임 이명박 때도 이런 어휘가 나왔는데 박근혜는 더더욱 많이 들먹인다. 게다가 국회의원일 때도, 본인이 몸담은 정당의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회창 총재에게 사사건건 대들었다. 그때 이명박이나 이회창은 박근혜보다 정치적인 경륜도 오래되었고 나이도 많다. [51] 권위주의 자체도 문제지만 전여옥이 말한 대로 박근혜는 오직 본인에게만 관대하다.
전여옥 전 의원이 밝힌 바에 의하면, 예전 한나라당 대선후보경선 책임자를 선출하던 선거에서 자신의 정적인 이재오의 연설을 대놓고 방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앞선 후보들의 연설이 끝나고 이재오의 연설이 시작되는 순간, 박근혜 당시 당 대표는 이재오의 연설을 방해하기 위해 관중석에서 일어나 무대 앞으로 가서 근처에 있는 한나라당 관계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악수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모든 카메라와 관중들의 이목은 순식간에 이재오에서 박근혜로 쏠렸고, 그렇게 7분 동안 이재오의 연설을 방해하다가 연설 시간이 끝나자마자 박근혜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사이가 틀어진 이후 유승민의 부친 유수호 전 의원상에 끝내 근조화환을 보내지 않아서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 인사들도 박근혜의 눈치를 보느라 유수호 전 의원의 상가에 아무도 가지를 못했다고 한다. 사실 이전에도 박근혜는 역시 가까이 지내다가 사이가 나빠진 이상돈[52] 전 중앙대 교수의 모친상 때도 조화를 보내지 않은 전례도 있다. 애초에 예의라곤 눈꼽만큼도 없었다는 것.
또한 2015년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서 유승민이 소속된 국방위원회를 오찬장 가장 뒤쪽에 자리 잡게 하였는데, 한겨레신문에 의하면, 유승민을 불편하게 여긴 박근혜가 일부러 유승민을 자신과 멀리 떨어진 곳에 앉힌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박근혜는 2014년부터 공무원 연금 개혁을 밀어붙이면서 여당을 압박했다. 이를 통해 새누리당이 11월부터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야당과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된 점은 좋았지만 2015년 5월 국회가 도출해낸 합의안에 청와대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50% 인상' 을 이유로 크게 반발하면서 협상이 뒤집혔다.# 이 이후로 여야 간의 갈등이 거세지는데 박근혜는 가이드라인을 고집하거나 조윤선 정무수석을 사퇴시켜 국회를 압박하는 등의 여야 간 합의 과정에 있어 도움이 되기는커녕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타협 가능성을 미궁 속으로 빠뜨려 버렸다. 그 위기 상황을 유승민이 해결해냈음에도 정작 본인은 당시 함께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을 빌미로 "배신의 정치" 운운하면서 공무원 연금 개혁의 공신을 몰아낸다.#
국회법 개정안 파동[53] 당시 국회법 중재안을 제시하여 박근혜의 노여움을 산 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푸대접한 적이 있다. 2015년 7월 2일, 박근혜는 '5개 중견국가협의체' 국회의장들을 접견하였는데, 막상 이 협의체의 '''주최자'''인 정의화 국회의장을 부르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당시 정의화의 측근은 박근혜의 이런 처신에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막식에서 정의화 의장이 박근혜에게 다가가 "가까운 시일 안에 한 번 보자"며 면담을 요청하였지만 박근혜는 무반응으로 일관하였다고 한다. 이 당시에, 자신과 불편한 관계인 김무성 전 대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행사를 마치고 헤어질 때까지 악수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김무성은 불쾌해 하며 "우리는 쳐다보지도 않네"라고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출처
22년 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2012년 박근혜의 대선캠프 실무자로 일한 장성철 씨가 목격한 박근혜는 '''"다가가기 힘들고, 비상식적인 판단과 결정을 하고, 비민주적인 사람이었다."'''고 평가한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박근혜 청와대의 정무수석실에서 2016년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하면서 '''"다 떨어져도 좋다. 박 대통령에 충성하는 80, 90명 정도의 의원만 있으면 된다."'''는 황당한 말까지 하였다고 한다. #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대유행, 한국사 국정교과서 도입 등 정치적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해명과 소통, 적극적인 대처 대신에 "지금은 국가 위기니 국민 대통합을 이루고 국민 분열을 막아야 한다" 는, 요약하자면 '''"입 다물고 그냥 참아라."'''라는 식의 발언을 계속해왔다. 이러한 발언이 진정성이 느껴지는 지는 둘째 치고, 정치적 반대파를 봉쇄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54]
박근혜는 1963년부터 1979년까지 청와대에서 식솔들과 귀족처럼 살았고, 정계에 입문한 9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항상 권력의 정점 또는 그 근처에서 살았다. 박근혜가 지난 65년 간 누린 신분을 분석하면 이렇다. 18년 간 청와대 생활에 15년 간 정수장학회와 영남대에서 이사장을 지냈다. 그리고 15년 간 국회의원과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 평범한 사람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생활을 박근혜는 평생 동안 누렸다.
다시 말해서, 다른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본인들 스스로 이루어낸 성과라도 있었다거나 가난했는데,[55] 최저임금이 얼만지조차도 모르는 발언 등 민생에 무지하다는 것도 당연한 결과물이란 것이다. 또한 이런 태도가 계속되면 남은 재임 기간 및 그 이후에도 무능한 통치자로 역사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물론 재벌 2세들 출신들은 모를 수도 있었다. 당장 현대가 쪽 정몽준 전 의원의 "버스비 70원"을 생각해보자(...).[56] 그나마 이 쪽은 정치를 하면서 자신이 서민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고 반성이라도 했었고, 고시원을 찾아가서 비좁은 방을 보고 이런 곳에 어떻게 사느냐며 경악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그런 노력조차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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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의 소통 부재 역시 권위주의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취임 4년 차인 2016년 1월까지 취임한 이후부터 그동안 공개 기자회견을 가진 횟수가 '''고작 5회'''로, 참여정부와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다 못해 대한민국 역대 최하 수준이다. # 게다가 집권 후 7개월 동안 단 1차례의 기자회견도 없었다. 물론, 상기에 언급된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국회의원 시절에도 기자회견을 밥먹듯이 했던 사람들인지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임기 내내 "뭐가 그렇게 구리시길래 기자회견을 가뭄에 콩 나듯 여냐"고 욕 먹었던 이명박보다도 적은 수준이라는 건 상당히 심각한 거다.
2016년 1월에 이루어진 기자회견의 경우, 회견 전에 질문을 받는다며 청와대에서 홍보를 나서 국내 기자는 물론 외신 기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회견 직후 사전에 질문지가 유출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회견 도중 박 대통령의 '내가 기억력이 좋아서 이 질문을 다 기억한다'는 발언은 거짓말로 드러났다. 후술할 외신과의 악연 문단에서도 볼 수 있듯 외신 기자들의 볼멘소리가 많다.
고질병이었던 '인사 참사'와 세월호 참사 당시 국민과의 소통 부족으로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등 논란이 생겨났으며 미숙한 해명으로 국민의 신임을 잃어가는 것이 현황이다. 좋게 표현하자면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걷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의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택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에서 이런 방식이 맞는 길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러한 문제는 더욱이 정책 추진에 있어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 정책 문제나 외교 문제에서 청와대와 대통령 뜻으로만 해결하려고 했지 현실과 현장의 실무자들이나 이해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제대로 절충하거나 경청하지 못하는 문제를 낳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한중 FTA에서 제조업에 엄청난 이익이 될 것처럼 선전하는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의 이야기와 다르게 우리나라의 제조업계는 한중 FTA로 비상인 상황이다. 당장 상기한 R&D 예산도 주력 산업인 반도체는 매년 깎아먹더니 2017년에는 '''0원'''이 되었을 정도.
이익이 된다고 하는데 정작 이익 당사 집단은 비상이자, 경쟁력 강화라는 이야기의 대비는 그 문제는 정책 추진에서 관련 핵심 당사자들과의 의견 조율과 대화가 얼마나 부족한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위안부 협상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의 기본적인 대화 경청이 없이 진행된 것에 대한 국내의 불만과 비판과는 다르게 너무나 판이한 인식으로 협상을 추진했다는 걸 대통령 스스로가 보였던 점도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다만 이 타결은 현 정부처럼 위안부 문제로 심각하게 얼어붙고 전승절 참석이 보여주듯이 반일친중외교로 일관하다 대중국 포위만을 완성하려는 미국의 강권으로 성사된 것은 알 만한 사람은 알고있다. 만약 사전에 여론을 경청 하였다면, 이후에 발생한 것처럼 처음부터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을 것이다.
또 유승민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인'이란 대명사로 부르면서 '이런 사람은 반드시 떨어뜨려 달라'는 식의 선거 개입 발언을 공개 석상에서 하는가 하면[57] ,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면서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의 한 원인으로 손꼽히는 '진박(진실한 친박) 마케팅'에 불을 당기는 등, 행정부 수장이 계속 입법부의 일에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제 또한 잦았다.[58] 그리고 그 배신의 정치를 자신이 직접 저질렀다. 다시 말해서, 박근혜 또한 저 말 자체로 탄핵 소추안 한 번 올라가고도 남았어야 했지만, 참여정부 시절의 여당은 20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여소야대가 되어버린 새누리당과는 판이하게 매번 여소야대였다. 아무튼, 박근혜는 노무현과 달리 더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친박계였던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 작업을 하는 와중에 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과 은밀히 만났던 게 드러났고, # 또 윤상현 의원,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현기환 정무수석이 서청원 의원을 위해서 친이계인 김성회 전 의원에게 출마 지역구를 (서청원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화성시 갑에서 다른 곳으로) 바꾸라고 거의 협박하다시피 하며 '이게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다'라는 말을 하는 등 #1, #2 청와대가 새누리당의 공천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왔던 게 아닐까하는 의심을 입증해주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정책 전반에서 나타나는 '나를 따르라'는 식의 권위주의적 가치관과, 행정부 수장으로서 입법부에 대한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게 원칙인데도 거의 노골적으로 새누리당의 국회의원 공천에 개입하는 모습이 (새누리당의 압승이 확실시 되었던) 4.13 총선의 참패를 가져왔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 또 국회에 ''''민의를 따르라''''고 요구하는 등의 책임회피식 태도를 보여 다시금 비판 받았다. # 또한, 쏟아지는 내각 교체 요구를 일축하며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꼽히는 노동개혁,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의 문제시되는 정책 역시 계속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기존처럼 일방적인 국정 운영을 강행할 것을 시사하였다. #
박근혜의 책임회피식 태도는 계속해서 나타나는데, 4월 26일 중앙언론사 보도국장 편집국장들과의 청와대 오찬간담회에선 총선 참패가 자신의 국정 운영에 대한 심판이 아닌 ''''국회에 대한 심판' '''이라고 강조하며 자신에 대해 쏟아지는 총선 참패의 책임을 회피하였다. # 대통령의 이런 모습에 보수 언론으로서 줄곧 박 대통령을 옹호해왔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마저 "자폐적 권력"이라고 칼럼의 형식을 통해 비판하였다. #1, #2 다시 말해, 국회에 대한 심판은 곧 집권여당과 대통령의 무능함 때문이라는 것인데, 얼마나 모순된 발언인지...
공무원 사회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 역시 국가주의와 집단 통제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일례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5급 공무원들이 사용 중인 교재를 보면 국가를 '일정 지역을 지배하는 최고 권력에 의해 결합된 인류 집단'이라 소개하면서, 보편적인 민주 국가에 없어서는 안 될 '주권재민'의 개념을 누락해서 비민주적인 관료 집단을 육성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장희#s-4 한국외대 교수는 이러한 교육과정이 "경찰국가적인 질서와 원칙만 지나치게 부각시켜 시민의 자유 영역을 상당히 위축받게 하고 있다"고 비판하였으며, "중국의 가치를 중시했던 김구 선생에 비해 이승만은 보다 거시적 시야를 갖고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해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반기문 사무총장"[59] 과 같은 주관적인 표현을 써 정치적 중립성 위반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당시 반기문은 대선주자로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60]
또, 일제 패망 당시 김구의 한탄 중 "우리는 아직 민족적 자각이 부족하다", "헛꿈을 꾸고 귀중한 시간만 허송해"란 끝부분 만을 인용하여 국민성이 미개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 제3장 위대한 대한민국에는 처음에 나온 '국가의 정의'가 반복되고, '개별 집단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통제가 실패하면 소말리아와 같은 꼴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수습기간 당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다 안고 가는 짓을 내가 왜 해야 하느냐"라며 역정을 냈다고 한다. 역시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하며, 자신을 대통령이 아니라 전제군주제의 군주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다.
# 박근혜가 인터뷰 당시 "탄핵이 기각되면 국민의 이름으로 검찰과 언론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하여[61] 이 역시 권위주의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탄핵 기각이 이루어졌으면, '''북한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5.1. 국립중앙박물관장 사퇴압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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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9일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퇴임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관심을 가졌던 프랑스장식미술전 개최를 반대하다 청와대의 압박으로 퇴임했다고 밝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프랑스장식미술전은 한불수교 130년을 맞아 기획된 전시로 프랑스의 명품 업체들이 참여해 상품을 전시하기로 되어있었는데, 김영나 전 관장은 "상업적 전시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할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했고 결국 전시가 무산되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관심을 가진 것은 전시가 무산된 이후"라고 밝혔으나,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전시에 대한 거부가 '상부에 대한 집단항명'으로 심각하게 받아 들여지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특히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은 지난해 박 대통령이 "이 전시에 가보고 싶다"고 관심을 나타내자 이례적으로 김영나 전 관장을 수차례 불러 전시를 성사시키라고 계속 압박한 것으로 드러나는 등, 청와대가 문화예술계 전시와 관련해 기관장 인사까지 일일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며 도를 넘는 권력 행사란 비판이 일었다.
2017년 1월 17일, 사건의 내막을 밝힌 인터뷰가 나왔다.“청와대에 보고서 올린 직후 최순실 측근 ‘가만두지 않겠다’ 협박” 2급 고위 공무원이었던 문체부 국장이었다가 정유라의 승마 관련 문제를 처리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쁜 사람"이라고 지목[62] 해 국립중앙박물관 국제교류단장으로 좌천되었다가, 프랑스장식미술전 개최 논란이 벌어지자 또 다시 박근혜가 직접 "이 사람 아직도 있어요?"라며 해고를 종용해 공직을 떠났던 노태강 전 국장이 당시 상황을 밝힌 것이다.
노 전 국장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700만~800만 원짜리 원피스 등 프랑스 명품을 전시하라고 했다. 전시관 앞에서 판촉 행사까지 하겠다고 했다”, “지나친 상업성에 박물관 직원들이 나자빠졌다. ‘병인양요’에 빗대 ''''병신양요' '''[63] 라고들 했다”라며 “김영나 관장이 끝까지 반대하다가 잘렸다”고 밝혔다.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외국 명품 브랜드 판촉장으로 전락할 판이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직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소임인데 김영나 전 관장, 노태강 전 단장 등은 맡은 소임을 다 하다 잘렸다. 국정을 이런 식으로 하면 모두 아첨을 떨 뿐이다.
'박근혜가 왜 프랑스 명품전 개최에 혈안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표면 상의 이유는 한불수교 기념 사업이나, 고작 이런 이유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명품 판촉장을 여는 행사 주최에 혈안이 될 이유는 없고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 박근혜는 프랑스에 유학했고, 박정희가 걱정했을 정도로 프랑스 명품에 사적으로 큰 관심이 있었다는 점
- 최순실도 검찰 출석 시에도 프라다 신발을 신고, KD코퍼레이션으로부터 부정청탁 뇌물로 샤넬 가방을 받는 등 명품을 좋아한다는 점
- 국가에서 진품임을 보증해주는 외국 명품 판촉장이 열리면 자연히 막대한 커미션이 딸린 이권 사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
프랑스가 왜 남의 나라 국립박물관에 판촉장을 열려고 했는가에 대해서 '지나친 무례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프랑스에서 이런 제안을 한 것은,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종종 이런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은 국가에서 운영자금을 대주는 것에 비해 프랑스는 사기업들의 후원금이 많고, 후원기업들과 함께 행사를 열기도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측 담당자가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정을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 기준에 비추어 제안한 것 아닌가 하고 추측되고 있다. 정작 이걸 적극적으로 추진한 건 박근혜 정부였다. 생각해보자. 명품전을 열 곳이 '''서울에 없는 것도 아닌데''' 박근혜에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평론가들은 이 사건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집권 4년 차 레임덕이 걱정되던 와중에, 김영나와 노태강 등이 소신을 지키기 위해 항명하자, 본보기삼아 날려버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사건이 설령 사익추구 목적이 아니었다 해도, 일종의 '충성심 테스트'가 아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일부러 무리한 요구를 하고, 말을 듣나 안 듣나 보려 했던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것도 막장 운영임은 두말할 것도 없으나, 차라리 권력 싸움을 위한 충성심 테스트였던 것이 낫다. 이것이 아니라면 이 사건은 사익추구를 위한 직권남용, 혹은 박근혜는 무엇이 문제인지 구별조차 못하는 멍청이이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 파면 이후 무대응 및 입장 발표 거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진행될 때 한 번도 법정에 나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쪽 내부에선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의 탄핵 인용·기각 전망을 5 대 3, 또는 4 대 4 정도로 확신하고 있었다고 한다. # 법정에 나가지 않은 것 자체가, "나는 이 나라의 최고 권위자이고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법정이란 곳을 나가야 하냐? 솔직히 사법부 네까짓 게 나를 어떻게 할지 생각할 필요도 권리도 없잖아. 당연히 무죄 선고를 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오만한 권위주의적인 태도였다.
실제로 박근혜 자신은 정말로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한참 광화문 광장에서 탄핵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을 때조차도, "모든 것은 최순실이 잘못했고 나는 죄가 없는데 왜 그러냐?"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 태도는 재판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의자가 오만방자하게 굴면, 형량이 더욱 올라간다. 이것 때문에 '탄핵 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조차 없었다고 비판한다. 탄핵 여론이 인용 쪽으로 크게 기운 상황을 몰랐다는 소리다. 박사모급 코어 지지층을 제외하고 그나마 박근혜를 동정하던 콘크리트 지지층조차도, 박근혜의 이러한 태도를 보고 완전히 등을 돌렸다.
게다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인용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하고 퇴진 매뉴얼을 제대로 논의하지도 않았다. # 참모진이라는 것들은 4대 4로 탄핵이 기각될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내놓으며 내부적으로 박근혜의 업무 복귀를 대비한 시나리오까지 마련했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참모들조차 탄핵 인용 가능성을 제대로 보고하지 못했다는 증언도 있다. # 그러면서도 탄핵 기각 축하용 5단 케이크마저 준비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
헌법재판관 출신인 이동흡 변호사 등 변호인단은 박근혜에게 "탄핵 기각이 확실시 된다"는 보고를 올렸고, 이 보고를 철썩 같이 믿은 박근혜는 자중하며 근신 하기는커녕 탄핵 기각 후의 내각 개편과 국정 쇄신 계책을 짜는 데만 몰두하였다고 한다.[64] # "쓴소리를 아예 듣기 싫어하는 박근혜에게 탄핵 인용 후의 대비책을 얘기하는 것은 불경죄를 짓는 것과 같아, 아예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한다. # 대통령 리더십연구소장인 최진, 전여옥 전 의원 등 여러 인사들이 인맥을 통해 당시 청와대의 분위기를 확인한 결과, 박근혜와 청와대 인사들은 100% 탄핵 기각을 확신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으며 탄핵이 인용될 경우의 대처는 전혀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를 보다 못한 몇몇 친박 원로들이 "탄핵이 기각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에 하야 선언을 하는 게 어떠냐."고 제의하였으나, 이미 탄핵 기각을 확신한 박근혜에게는 쇠 귀에 경 읽기였다. 이에 윤석진 정치 평론가는 "탄핵 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듣고 싶은 얘기만 듣는 박근혜의 모습에 참담함을 느꼈다"며 논평하였다.
그런데 실상은 8 대 0 만장일치로 탄핵이 인용되었으니, 결과적으로 개망신이 되었다. 박근혜가 이 따위로 굴었기 때문에 헌법재판관들은 '''도무지 박근혜의 탄핵 반대에 대한 명분을 찾을 수가 없어서''' 전원 탄핵을 인용했고, 박근혜는 그렇게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 되었다.[65] 참고로, 박근혜가 직접 임명한 헌법재판관인 서기석과 조용호 조차도 탄핵을 찬성했다.
박근혜를 호위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직위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려는 간신#s-2, 그리고 권신의 표본이 되어, 임기였던 4년 간 박근혜에게 사탕발림만 나불댔다. 박근혜는 아무런 판단도 없이, 이를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박근혜에게는 본인의 생각과 다른 의견 자체를 제시할 수 없을 정도로 독선과 고집, 권위주의가 극심한 셈이다. 당연히 이런 막장으로 치닫는 꼴을 그냥 둘 리가 없었던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하였다. 그리고 구속 절차가 진행되어가면서, 이러한 간신들의 행태는 박근혜 본인의 '듣기 좋은 말만 듣고, 듣기 싫은 말은 절대로 듣지 않는' 태도가 자초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TV 생중계로 자신의 파면 사실을 눈치챈 박근혜는 비서실장에게도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친박계 조원진 당시 자유한국당[66] 의원의 방문도 거부했다. 방송인 김어준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박근혜는 "다음 대통령이 당선돼서 청와대에 들어와 인수인계를 할 때까지 청와대에 남아 있겠다"고 고집을 피웠고, 이로 인해 청와대 퇴거가 늦어졌다고 한다.# 탄핵 선고 직후 황교안 총리는 매뉴얼에 따라 박근혜에게 전화로 연락을 취하는데 황교안의 예상과는 달리 박근혜는 탄핵이 인용되리라고 전혀 예상을 못하여 마음의 준비가 안된 상태였다고 한다.
뒷일을 부탁한다는 식의 응답을 예상했던 황교안은 뜬금없이 박근혜로부터 '''"대통령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입을 닫고 있던 박근혜는 3월 12일 삼성동 자택으로 이동 후 단 네 문장의 탄핵 불복 선언을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것이 전부였다.[67] 결과가 어떻든 간에 발표가 된 직후, 자기 자신은 그 결정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일단 담화를 진행하여 국민들의 결정에 겸허히 따르겠다고 말하는 것이 사회 갈등을 줄이려는 정치인의 기본적인 자세인데도 말이다.
그동안 자신에게 사건이 발생하면 지지자들의 결집을 모으기 위해 애매모호한 메시지를 던지던 것과는 전혀 다른 행동이다. 이 행동 자체가 지지자들을 향한 ‘묵시적 불복 선동’이라는 해석도 나오는 중이나, 그냥 자신이 탄핵 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다. # 어느 쪽이든 박근혜 자신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심각하게 드러나는 중이다.
7. 사이비 종교 논란
7.1.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박근혜가 은인처럼 생각한다던 최태민[68] 의 5녀이자 정윤회 전처(2014년에 이혼)인 최순실[69] 이 국정 전반에서 전횡을 일삼으며 비선실세로 대통령을 조종하여, 사실상 국정을 주도한 사건이다. 쉬운 말로 짧게 말하자면, 이것이 박근혜 정부인가, 아니면 최순실정부인가 하는 문제다. 투표로 당선된 것도, 당선인이 공직에 올려준 것도 아닌, 자격 없는 민간인이 국가 기밀과 비밀 문건들을 청와대 인사들을 통해 보고 받으며 국가 기관의 업무를 주도했다. 즉, 민주주의가 뿌리부터 짓밟혔다.
8. 인사 참사
박근혜는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꾸준히 인사 문제가 거론되어 왔다. 당선되었을 때부터 탕평책 인사를 뽑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고 인사 선임에 대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성시경 인사[70] 라는 코드 인사를 보이기도 했지만 전임의 논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인수위 때부터 시작해 취임 1달도 지나지 않아 불과 3개월 만에 박근혜 본인이 지명한(임명) 장차관급 인사 7명이 '''부동산 투기와 탈세, 병역기피 등의 문제로 줄줄이 낙마'''하는 위기를 맞았으며,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의 공금 유용 문제로 도덕성을 크게 실추되었으며[71] 청와대 대변인이던 윤창중의 성추행 사건으로 방미 성과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아래 논란까지 이어지며 곤혹을 치러야 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 공직자 이수 4대 필수 과목[72] 이 박근혜 정부에서도 별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꾸준하게 지적되었다.#1#2#3#4
주요 낙마사례 역대 정권과 비교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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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대한민국 국무총리 자리만 보더라도 김용준[77] , 안대희[78] , 문창극[79] 이 후보 심사 중 낙마했고, 정홍원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사퇴의 뜻을 밝혔으나 안대희와 문창극이 사퇴하면서 총리직을 어쩔 수 없이 더 유지해야 했다. 이후 총리로 지명된 이완구는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 정치자금 의혹으로 총리가 된 지 불과 70일 만에 자진사퇴했으며 결국 혐의가 인정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의 경우 논문을 표절하고 제자의 연구비를 갈취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청문회에서 무신불립[82] 의 뜻을 몰라 뒤쪽 직원들에게 물어본 뒤 "신뢰가 없으면, 뭐라고?"라고 되물어 제지를 받았으며,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청문회에서 청문위원들의 질문에 하나도 대답하지 못해서 '몰라요 장관', 뒷사람이 알려준 말을 그대로 따라 대답하여 '앵무새 장관' 이란 별명이 붙었다. 시도 때도 없이 웃는 태도 때문에 '크크큭' 이란 별명이 생긴 것은 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윤진숙을 "모래 속의 진주"라며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하지만 윤진숙은 초기부터 해당 분야에 대한 얕은 지식 수준을 보이며 자격 논란에 휩싸였으며, 여수 기름 유출 사건이 터진 이후 "1차 피해자는 해당 기업, 2차 피해자는 어민"이라는 망언스런 발언[83] 으로 질타를 받자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가 올린 해임 건의안을 박근혜 대통령이 받아들여 결국 해고되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메르스 방역 실패로 경질되었는데, 얼마 안 있어 박대통령에 의해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되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경우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유신 헌법의 초안을 만든 사람이었으며, 이병기 前 국정원장(2015~)의 경우 노무현 정부 시절 한나라당이 자행한 희대의 불법 정치자금 전달방식 '차떼기' 사건의 배달책으로 곤혹을 치렀던 사람이어서 청문회에서 이 사실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경우 그 유명한 초이노믹스 정책의 실패로 경제난을 불러일으켰다.
뽑은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역량 부족, 비리 의혹 때문에 청문회 통과에 난항을 겪거나 청문회에도 가기 전에 낙마하는 바람에 "저런 사람들만 뽑는 것도 능력이다"라며 조롱을 받기도 했고, 이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박근혜 정부는 외부에서 인사를 기용하기보다는 이미 청문회를 통과한 사람을 다른 자리에 앉히거나[84] , 아니면 국회의원들을 입각시키는 방법으로 인사를 단행하기 시작했다.[85]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하면서 장관직이나 국무총리직을 겸직할 수 있는데,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에게는 신상 털기에 가까운 날 선 비판을 하지만[86] 현직 동료 국회의원이 장관으로 내각에 들어가게 되었을 경우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확률은 명백하다고 한다.
유일하게 능력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던 사람은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청와대와의 연금정책 갈등으로 낙마했다. 이후 그가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고 훗날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이 되었다는 것만 봐도 박근혜가 얼마나 소통 능력이 부족한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김무성, 유승민, 김종인, 이상돈 등 한나라당 시절이나 대선 후보 시절 뜻을 같이해 친박으로 분류된 인사들도 현재는 모두 박 전 대통령과 완전 결별했으며, 이렇게 소원해진 사람들에 대한 원한이 남아 보복함으로써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한 처사란 비판도 일었다.
2016년 8월 16일에 단행한 개각도 실망스럽단 평가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표적수사, 넥슨 게이트, 어버이연합 게이트 연루, 아들의 꿀보직, 처제의 조세회피처, 가족회사 논란에 휘말려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 우병우 민정수석을 일방적으로 비호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결국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의 우병우 감싸기를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 또, 문체부 장관으로 한국 문화 탄압에 앞장서고 있는 전 여가부 장관 조윤선을 임명하면서 진보 뿐만 아니라 20대 남성이 주류인 일베저장소 등의 친정부성향 커뮤니티에서도 비난 받는 실정이었다. 또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취임 후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자신이 '시골출신의 흙수저라서 공격을 받았다'라는 식의 부적절한 글을 동문 밴드에 올려 논란이 돼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통과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다행히 대통령이 해임안을 거부해 정식으로 해임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 등 측근 비리를 폭로하자 청와대는 묵과할 수 없는 사안,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고 변명하는 내로남불스러운 모습을 보여 줬다. #, #2
8.1. 낙하산 인사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장의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그런데 집권 1년 차 말기인 11월에는 박근혜 정부 임명된 공공기관장 77명 가운데 낙하산 인사가 절반에 가까운 44.2%인 34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도 새 정부에선 없어져야 한다”고 한 발언과 배치돼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2015년에는 출범 이후 지난 2년 동안 303개 공공기관에 임명된 2천 109명의 임원 중 318명으로, 5명에 1명 꼴로 낙하산 인사가 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어(MB정부 대비 30% 증가율) 비판을 받고 있다.
2013년 말에는 연 매출 7조 원에 이르는 대형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 사장에 박근혜 캠프 유세지원단장을 맡은 친박계 중진의원 김학송이, 한국마사회장에는 박 대통령의 대표적 재계 인맥으로 꼽히는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이 임명돼 자기 사람에게 자리 나눠주기란 비판을 받았다.
2014년 3월에는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이 양성평등교육원장에 임명되었으며, 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이른바 해피아(해수부+마피아)가 관련기관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해수부 산하 항만공사 역시 별 다를 거 없는 상황. 9월에는 인터넷 관련 지식이 전무한 백기승 전 국정홍보비서관이 인터넷진흥원장으로 부임해 보은인사란 비판이 나왔다. 같은 달 제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이 전문성과 무관한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임명되면서 야당의 항의를 받았다. 이 시기를 '2차 낙하산' 시기라고 한다.
8.1.1. 코드인사
'''친박''' 문서 참고. 박근혜 대통령은 원조 친박으로 불렸으나, 취임 이후 자신이 임명한 측근들('청와대 얼라들' 발언)과 정책('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발언)에 대해서 비판한 유승민 의원을 향해 공개 석상에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고 비난, 4.13 총선의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 친박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을 움직여 유승민을 포함한 비박계 의원들을 소외시켰고, 탈당한 의원들의 지역구에 친박 의원들을 대거 공천하게 만들었다. 이는 새누리당 총선 참패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으나, 4월 26일 오찬 간담회에서 "유승민이 복당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중이 담긴 발언을 하여 또다시 물의를 빚었다. #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던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이 코드 인사라고 많이 깠던 것을 생각하면 내로남불에다 언어도단이다. 그리고 인사 관리도 제대로 못하였다. 자신에게 국정 운영에 쓴소리를 충언했던 같은 편 사람들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소신있게 원칙대로 일하던 공직자들을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경질시키니 측근들은 자기들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심기 관리와 오직 자리와 권력에 연연하는 아첨꾼으로 전락하였다.
그렇게 코드인사라고 비판하던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과 성향이 맞지 않더라도 능력이나 해당 프로젝트에 그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면담 후 '저 사람 한나라당 찍었을 사람이네...'하고 평할지언정 등용해 활용했다. 이런 인사들이 나중에 참여정부 타이틀 달고 자한당 당직을 맡거나 하며 분란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의 능력을 직무에 맞게 활용한 것, 외교장관과 통일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맞서자 불안해하는 외교장관에게 '당신은 그런 입장을 대변하라고 그 자리에 앉힌 것이니 당연한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일화까지 있을 정도면 참여정부가 코드인사라는 것은 언어도단이요, 이런 상황 속에서 전횡을 일삼은 것이 김기춘과 우병우이며 우병우는 자신의 파벌까지 형성해 아직까지 대한민국 공직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실 박근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적녀라는 직함을 달고 2000년대 보수 정치권의 중심 역할을 맡았던 만큼 주변의 인재가 많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차고 넘쳤다. 당장 잘 알려진 유승민 의원을 제외하고도 보수를 표방하는 전직 관료층과 정계 원로 등 식견과 경험 있는 인물들이 박근혜 주변에 모여들었지만[88] 박근혜는 정작 대통령이 되자마자 이 모든 사람들을 적극 기용하여 그들의 지원과 조언을 얻어 국정 운영을 하기는커녕 전부 토사구팽으로 쳐내거나 그들의 말을 무시했으며 김기춘, 이정현, 조윤선, 우병우, 김종, 서청원, 나향욱 등 부패한 인물들을 행정부의 인사로 기용하거나 그들의 편을 들었고, 아무런 정치적 지위가 없는 일개 민간인이었던 최순실에게 국정 운영권을 맡겨버리고, 최순실과 자신이 중용한 박근혜 정부의 여러 부패 인사들을 인맥으로 두어 이들의 부정부패 범죄 행위들을 방치함으로서 파멸을 자초했다.
후임인 문재인도 5대 공약 원칙을 위반했다고 자유한국당이 비난하기도 했는데, 물론 자신의 공약을 어긴 건 명백히 잘못이 있지만, 인수위도 없이 급박하게 대선을 치러서 인사 검증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바라는 정권 안정과 내각 구성의 신속한 구축이 필요했기 때문에 도덕성이나 흠이 약간 있더라도 어느 정도 용납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뽑은 인사들에게 흠이 있다고 하나 사회적으로 명성이 있었고 역량도 있어 특정 분야 관계인들에게 지지를 받는 사람들인 데다가, 윗 항목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최순실의 농단으로 뽑힌 인사에 비교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89]
극단적인 경우로 강경화를 예로 들어보면, 처음에는 지지율이 낮았다가 청문회 이후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90] 외교부 장관에 임명되었을 정도이다.
9. 소통 문제
새누리당 인사들에게는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로 연락이 왔다.[91] 솔직하게 털어놓고 소통하지 않는다든가, 만나거나 접근하기 어렵다든가 등의 경험들을 예로 들며 박근혜가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사실 소통 능력이 부족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소통 하길 거부 하는것이 맞다고 봐야겠지만. 2004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맡고 있던 박근혜와 함께 원내대표로 활동하였던 김덕룡은 박근혜가 소통이 안 되는 것을 넘어 "먹통"이라고 평가하면서, 당시 박근혜에게 "정수장학회 문제를 털고 넘어가야 한다"고 조언을 했지만 자신의 조언을 거부한 것은 물론 이후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또한 박근혜에게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으며, 참모들조차 주요 현안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누구와 상의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출처.
전여옥 전 의원이 밝힌 바에 의하면 박근혜는 당 대표 시절부터 대면보고를 좋아하지 않았고, 어쩌다 그런 자리가 마련되더라도 항상 아무 말없이 눈을 내리깔고 침묵하기만 하였다고 한다. 본래부터 회의를 싫어하고, 사람들과 토론하는 건 더 싫어하고 힘겨워하여, 자기 의견을 전혀 내지 않았다고 한다. 2008년 총선 직후엔 낙선하고 자기를 찾아온 친박 의원을 위로해주기는커녕, 40분간 친박계와 친박연대가 몇 명 됐는지만 떠들어댄 적도 있다고 한다.
저녁 6시 이후엔 완전히 연락이 두절되어, 최측근도 직접 연락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박근혜의 측근이라도 연락을 하려면 박근혜의 집에 있는 경비에게만 연락이 될 정도였는데, 김선일 피랍 사건 당시 전여옥 전 의원이 열댓 번을 전화하고서 가까스로 박근혜와 통화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이는 비슷해서 극단적으로 사람을 잘 만나지 않으며, 공무처리도 정말 알려지지 않는 측근이 아닌 이상 대통령과 직접 대화하거나 건의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총리실 비선을 통해 일으킨 민간인 사찰 사건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처음부터 수십 년 간 알고 지낸 몇몇 지인들, 즉 비선이 아니면 접근조차 어렵고... 모든 일을 극소수의 심복들을 통해 전달 받으려는 태도로 인해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을 불러왔다. 집권여당의 대표였던 김무성마저 대통령을 제대로 만나지 못 했다고 토로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예 그 이외의 사람들은 대통령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속칭 문고리 3인방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를 자초하게 된 것이다. #
이쯤 되면 아예 불통 그 자체이다. 오죽하면 박근혜정부 경제라인이였던 '''김종인'''과 '''김광두''' 같은 주요 인사들이 "소통이 안 된다."고 이유를 들어 결별을 선언했을까? 정작 박근혜는 "내가 왜 소통이 안 되냐?"고 노발대발을 했다고... 훗날 김종인은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대표로 추대되어 민주당의 승리를 이끌어냈고, 김광두는 문재인 정부 대통령 직속 국가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2년 가까이 역임하며, 제대로 박근혜에게 빅엿을 선사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도 소통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러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김병준을 총리로 지명한 개각이다. 사실 국회에서 거국중립내각에 대한 안이 나온 이후에도 한 번도 청와대는 관련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고, 국회 주요 의원들과 제대로 된 회의를 한 적이 없다. 여당 지도부 의원 몇 명과 얘기한 것이 전부다. 그 어느 누구도 청와대의 의중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국회는 내각과 관련한 협의를 계속 진행하였으나, 갑자기 아무런 상의도 없고, 심지어 여당 의원들조차 제대로 모르는 개각을 시도하였다. 이는 국회의 협상 테이블을 청와대가 걷어차 버린 꼴이 되었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개각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더 이상 청와대와 국회가 제대로 된 협의를 할 수 없다고 봐도 될 정도이며, 정국의 혼란만 더욱 가중 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심지어 이에 대한 해명을 한다고 3차례의 대국민 담화를 할 때도, 기자들의 질문을 하나도 받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고 들어갔다. 오죽하면 기자들이 질문좀 받아주십시오라고 아우성을 치는데도 말이다(...).
세계의 여러 지도자들의 예를 보면, 버락 오바마는 기자들을 모아놓고 연설할 때는 꼭 기자회견을 한다. 같은 여성 지도자인 영국의 테레사 메이도 마찬가지다. 같은 한국인 지도자인 노태우의 경우만 해도 <국민과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국민들 중 지원자를 받아 같이 출연해서 대화했다. 김영삼 때는 실시하지 않았다가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다시 만들어져 이때 실시한 <국민과의 대화>는 김대중 정부 내내 방송되었다. 김대중 퇴임 이후에도 노무현 역시 국민과의 대화에 출연하였고[92] , 상대 당 후임 대통령인 이명박도 <대통령과의 대화>로 제목만 변경한 같은 포맷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각 방송 내용에 따라 논란이 된 바가 있긴 했어도 6공 하에 있던 대다수 대통령들이 국민과 소통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건 이어진 기조였지만, 박근혜는 임기 중 한 번도 이런 프로그램을 추진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광화문 1번가라는 상시 소통 창구를 통해 아예 거리로 나와버렸으며, 이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에는 LIVE 11시 50분 청와대입니다.를 만들어 방송하는가 하면[93] , 틈만 나면 오찬, 만찬 자리를 만들어[94] 국민들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더니 2019년 11월에 국민과의 대화 프로그램이 귀신같이 부활하였다. 2017년부터 매년 한 번씩은 프레스센터를 통으로 빌려서 신년기자회견을 갖고 본인이 직접 대답을 하는 식으로 소통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국가 지도자라면 항상 소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지도자 1명이 모든 시민들과는 일일이 소통할 수는 없으니 지도자의 생각을 대신 전해 줄 기자가 필요한 것이고, 간접적인 방식이라도 지도자의 의견을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기회가 바로 기자회견인 것이다. 6공 때 실시되는 국민과의 대화도 이러한 국정 운영의 기조라 할 수 있다.
역사적 예를 들자면 1980년대 냉전 말기 미국을 통치했던 로널드 레이건은 취임 초인 1981년에 본인의 국정 철학을 알 수 있는 라디오 담화를 무려 7번이나 했고, 그 후에도 시민들을 위한 메시지를 많이 남겼다. 그 결과, 1984년 대선에서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상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다.[95]
박근혜처럼 금수저 출신인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는 지역구 중의원 의원(1963년부터 사망한 2000년까지 12선)부터 시작해 관방장관, 외무장관 등을 역임하고 총리가 되었는데, 경제와 상관없는 이력 때문에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았던 당시 일본의 국민들은 무슨 생각으로 (오부치를) 뽑았냐고 조롱하거나 식은 피자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시민적인 이미지 어필과 국민들과 '''전화 통화'''까지 하는 등으로 소통 행보를 보여 취임 1년 만인 1999년 지지율 50%를 이뤄냈고, 뇌경색으로 급사하지만 않았더라면 5년 이상의 집권도 가능하다고 평가된 인물이다.
굳이 외국의 사례를 들 것도 없이, 전직 경기도지사 남경필이나, 현 경기도지사인 이재명 또한 청년들과 도민들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편이고, 주기적으로 라이브 방송을 틀어서 간담회를 갖는 등으로 광역자치단체장이 매우 자주 얼굴을 보이며 질의응답을 갖는 시간이 종종 보여진다. 이재명의 경우, 이러한 소통으로 굉장히 수혜를 봤다. 1년차만 해도 30% 후반의 낮은 지지율로 전체 시도지사 평가에서 바닥을 찍으며 도정을 시작했지만, 2년차에는 50%, 3년차 첫 조사에서 60%까지 찍으면서, 매우 좋아진 도정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게 시민과 소통하는 지도자는 정책의 찬반 여부와는 상관없이 큰 인기를 얻는 것이 정석이다.[96] 만약 박근혜가 언론에서 사건을 터뜨렸을 때 재빨리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과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최소한 시민들이 직접 거리로 나와 탄핵을 요구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97] 하지만 전여옥의 말마따나 박근혜는 국회의원 시절부터 소통에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였고, 우상호는 "그렇게 소통 안 되는 사람이 자기를 욕하는 건 귀신 같이 알아듣더라!"고 할 정도로 평소 의원들 사이에서도 소통이 그리 원활하지는 않았던 듯 하다(...).
박근혜 정부 초반인 2013년 3월부터 2014년 7월까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유진룡은 "박근혜 대통령은 토론이 뭔지도 모른다"라고 밝혔다. 또한 해경 해체 문제를 놓고 "장관들의 의견도 안 들어보고 결정하냐?"고 반발하자, "어떻게 모든 사람들 말을 다 들어주냐?"고 되레 역정을 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종범 전 수석의 검찰 진술에서 지시할 때도 전화로만 했으며, 수첩 읽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
9.1. 최태민 일가의 비선실세 행세
박근혜는 대통령 당선되기 전부터 "최태민 일가가 비선실세 행세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당선 후에도 여전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10. 위기 대처 능력 부족
박근혜 정부는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가진 문민정부가 떠오를 정도로 수많은 안전사고를 겪어, 막대한 사회적 손실이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 불과 2개월 전에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가 일어났고,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 및 뒤이은 해양 사고인 돌고래호 전복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발생도 문제지만, 그것은 사고 현장에서 사고를 낸 당사자들의 문제지 대통령과는 아무 관계 없다.[98]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이 크게 연관되는 수습 및 대책 수립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인데, 이 역시 수많은 국민들이 실망할 수준이었다. 그 결과, 기업에 대한 정부 당국의 관리감독이 미흡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원자력 발전소 정책 관련해서도 안전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으며[99] , 정부의 과대 광고 및 핵피아(핵 + 관피아) 논란이 있다. 이를 주제로 뉴스타파가 2014년 원전묵시록 기획을 다룬 바 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로 논란에 중심에 있는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사고 발생 후 대처를 잘해 피해를 최소화한 경우라면 오히려 "우리 대통령은 능력 있네" 라고 할 수가 있다.[100][101] 그러나 일부 사고에는 발생에서도 정부 책임이 분명하거니와, 사고 발생에도 제대로 대처를 못한 것도 아니고 '''그냥 안 해서 피해를 키웠다는 점''' 때문에 비판 수위가 넘쳐도 모자란다.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보다 못할 정도로.#
10.1.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는 사고 발생 이후 재난대응체계의 마비, 구조당국의 무능한 대처와 직무유기, 부패한 기업과 정부의 유착(관피아)이 빚어낸 재앙이었다.[102] 때문에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과 박근혜 정부가 많은 비판을 받는 이유가 되었다. 또한 유병언 사망 원인, 세월호 실소유주 논란, 세월호 7시간 30분 행적, 급변침 원인 등등 각종 의문점들이 풀리지 않아 온갖 음모론이 양산되는 원인이 되었다.
구조요청을 받고 출동한 해양경찰이 구조는커녕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선내 진입도, 퇴선방송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로 밝혀지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대국민 사과문에서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겠다"는 충격적인(?) 발언으로 도마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문제가 있는 기관을 쇄신해야지, 해체해서 될 일이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야당의 반대로 해경을 존치하는 대신에 국민안전처 산하로 옮기기로 결정되었다. 또한, 세월호 참사 대처 과정에서 "무능한 모습으로 일관한 해경 관계자들을 엄벌에 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김경일 123정 정장, 김수현 서해해경청장 등 일부를 제외하고 김석균 해경청장과 최상환 차장, 이춘재 경비안전국장, 여인태 경비과장, 고명석 대변인, 이용욱 정보수사국장, 황영태 상황실장 등의 주요 책임자들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고 승진하여 그저 말 뿐인 궁색한 사과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난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 때 수습은 뒷전이고 정유라를 위한 승마 개혁 따위 같은 쓰잘떼기없는 것에나 급급했다는 것도 알려졌다.
10.1.1. 베일에 감춰진 대통령의 7시간 행적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304명의 인명 피해를 낳은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이 묘연하여 큰 비판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서면보고를 받은 오전 10시로부터 7시간이 흐른 오후 5시에 중앙대책본부 현장을 방문해 회의를 주재하며 "(단원고) 학생들은 모두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던데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듭니까?"라고 질문하였다. 이에 관계자가 "승객들이 배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별로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1분 5초부터 시작)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관계자의 저 대답을 듣고 박근혜 대통령은 "아, 갇혀 있어요?"라는 식으로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문제가 여기서 발생했다. '''서면보고를 받았다면서 어떻게 7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승객들이 뒤집어진 배 안에 갇혀 있다는 가장 기초적인 상황조차 몰랐던 거냐(상황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함)'''라는 질타를 피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2014년 7월 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 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대통령의 동선은 공개해도 될 것과 공개하지 말아야 할 것(기밀)이 있지만, "공개할 수 없다"도 아니고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동선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발언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해명이다. 만약 이 7시간 동안 전쟁 등 국가 초비상 사태라도 발생했으면 대체 어쩌려고 그랬냐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당연히 알고는 있지만 절대로 밝힐 수는 없어서 저런 대답을 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무성해졌고 조선일보는 칼럼에서 "그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정계에 갓 입문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맡았었던 정윤회 씨와 밀회를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일본의 우익 성향의 신문인 산케이 신문이 이를 인용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으로 세월호 특조위의 주요 진상규명 과제 중 하나로 뽑혀 왔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는 이 문제가 정치권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정진석 당시 원내대표가 '''특조위 활동 연장을 조건으로 박 대통령 7시간 행적 조사 제외를 요구'''한 사실을 폭로하자, "(대통령이) 뭘 숨기고 있길래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7시간이란 행적도 공개 못하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
2018년 3월 28일, 검찰의 수사에 의해 '''박근혜가 늦잠을 자느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과 '''최순실이라는 비선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정권에서 발악을 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10.1.2. 합동분향소 연출 논란
박근혜가 정부 합동분향소 방문 당시 조문에 동행하고 박 대통령이 위로했던 할머니[103] 는 청와대 측이 섭외한 인물인 것으로 확인되며 논란이 일어났다. 노컷뉴스와 CBS에 따르면 정부 핵심 관계자는 30일 "미리 계획했던 건 아니지만, 청와대 측이 당일 합동분향소에서 눈에 띈 해당 노인에게 '부탁'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104] 청와대는 방송으로 논란이 확산되자 CBS 측에 소송을 걸었고, 법원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한편 CBS 측은 "방송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10.2. 메르스 대유행
메르스 유행 시기 당시 대한민국 사회는 유언비어가 나도는 등 대혼란에 휩싸였다.
보건당국의 총체적 무능으로 인한 초반 대처 실패[105] 로 중동 한정의 감염병이었던 메르스에 의해 189명이 감염되고 그 중 38명이 사망하면서 치사율이 20.4%을 기록했다.2012년 질병 최초 보고 이후 중동 이외의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에서는 메르스 환자가 고작 '27명' 밖에 되지 않았다. 단순히 수치상으로만 비교해봐도 아예 손을 놨다고 까여도 할 말 없는 수준이다.
첫 감염자가 보고된 5월 20일 질병관리본부가 최초 감염자 검사/격리 요청을 거부하고 운동회를 개최하였다.정부당국은 대한병협에서 병원명단을 공개하는 것을 막고 지자체와 일반국민을 상대로 정보를 차단하였다.[106] 감염자 관리에 실패하여 외국과 마찰까지 빚는 상황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청와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독자적 대응을 하려는 박원순 現 서울특별시장을 협박하는 식의 추태를 보여 주며, 여론이 크게 악화되게 만들었다. 2016년에는 박근혜 정부에서 메르스 유행 종료를 선언한 뒤에도 감염자 3명을 추가로 확인하고도 은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0.3. 한국수력원자력 원전문건 유출사태
이명박 정부 시절 환경영향, 안전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여 비판받던 원자력 발전 정책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해나가고 있다. 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데, 2012년 대선후보 시절 문재인 후보의 원전 안전성 정책 질문에 구체적 답변 없이 철저하게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답변했기 때문이다.
결국, 2014년 12월 북한 세력으로 추정되는[107] 원전반대그룹에서 잇따라 원전 자료를 빼내 유출 시키고 "성탄절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 중단하지 않으면 원전을 폭파시키겠다"는 협박을 가해와 불안한 여론이 조성됐는데도 늦장 대응 등 1달 가까이 속수무책인 태도를 보여와 국민들의 실망을 가져왔다. 관련기사
2015년에도 원전자료가 인터넷에 유출되었고, 해킹범으로 지목된 원전반대그룹에서 '''"대한민국의 적대국에 관련 자료를 팔아넘기겠다"'''는 위협을 계속하고 있는데도 한수원 등 수사당국은 범인을 잡기는커녕 "일반적인 수준의 문서가 유출된 것에 불과하다"는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태의 핵심은 한수원의 허술한 보안체계 관리 때문에 자료가 유출되고 국민적 불안감이 형성된 것이기 때문.
심지어 북한 세력 소행이라고 발표한 이후에도 유출 경위만 대략적으로 파악한 상황이지 사실상 범인(및 범죄 집단)의 실체나 행적에 대한 수사는 답보 상태라 합수단 발표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후에도 보안 문제가 심각하며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고,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태를 보고서도 상황이 이러하다는 것은 정부의 안전불감증이 도를 넘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0.4.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2016년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진상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어났다.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가 국내에 처음 반입되었던 것은 1996년이었고 이후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에서도 꾸준히 그 위험성이 제기되었고, (훗날 밝혀지지만) 계속 피해자가 발생하였다.
그런데 왜 박근혜 정부가 이 사건으로 거센 비판을 받는가 하면, 피해자들의 사망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확인된 뒤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문제 해결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문제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게 드러나자 취임 1년 차인 2013년에 야당에서는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 독성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구제법''',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법''', '''생활용품 안전 관리 및 피해 구제법''', '''화학물질 및 화학물질이 함유된 제품 등에 의한 피해 구제법'''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 새누리당은 기업과 소비자 간의 문제라고 선을 그으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내어 3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었다'''는 사실이 2015년 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보도 등으로 폭로되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 주도로 편성된 50억 원 규모 긴급 구제 추경 예산안을 '근거법 부족'을 이유로 전액 삭감하였으며, "사고가 날 때마다 특별법 제정해서 보상할 것이냐"고 뻔뻔하게 대응하였다. 이때 기획재정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1달 차에 임명한 현오석이었다.
13년 7월에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법 공청회에서는 김상민 의원이 새누리당에서는 단독으로 참여하였는데, 이는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박 대통령을 향해 "귀태(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의 후손"이라고 막말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차원에서 주요 원내활동을 잠정 중단하기로 하면서 그랬던 것이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은 기업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해당법에 대한 반대하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박근혜 정부에 제출하였다. 친박 실세라고 불리던 최경환 의원은 가습기 청문회에 대해서 "수사해서 처벌할 사안이지 국회가 정치적으로 갑론을박할 사안인가"라며 일축하였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기업 수사와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3년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노컷뉴스의 취재 결과 2015년에는 환경부가 유럽연합에서 생활용품에 사용이 금지된 유해물질이 국내 업체가 판매하는 세정제와 살균·탈취 및 방향제 제품 등에 포함된 것을 파악하고도 사용제한 등의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2015년 4월 발표한 ‘살생물제 안정성 평가기법 도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업체에서 판매하는 세정제 31제품, 탈취제 24제품, 방향제 41제품에 대한 활성 성분 설문조사 결과 세정제에서 유럽연합에서 퇴출된 ‘시트릭에시드’[구연산]이 포함돼 있다.
또한 탈취·방향제에는 ‘시트릭에시드(구연산)’, ‘벤질 벤조에이트’, ‘클로록실레놀’, ‘2-메틸-4-이소티아졸린-3-온’ 등 EU에서 사용 금지 물질 4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제/살균, 소독제, 방균제 등에 사용되는 ‘2-메틸-4-이소티아졸린-3-온’은 유독 물질로 흡입할 경우 치명적일 수 있고 피부 접촉 시 심한 화상 등을 일으킬 수 있음에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2011년 피해자가 대거 나온 이후 국무총리실과 보건복지부, 환경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도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 2016년까지 5년 동안 계속되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임기 중에 진상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와중에 정부의 후속대처가 미흡했다는 점이다. 2013년 6월 20일에는 가습기 살균제 흡입으로 아내와 사별한 유가족이 박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정부 관련자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제조사 처벌을 탄원하였고, 청문회가 열린 7월에 질병관리본부에서 조직된 폐손상 조사위원회에서 피해 의심 사례를 대상으로 가습기 살균제와의 관련성을 조사한 것을 시작으로 정부에서 자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나, 2016년까지 221명 만을 피해자로 인정하였고, 더욱 황당한 것은 2016년 피해 사례 접수는 1월 4일을 마지막으로 종료됐다는 것이다. 앞으로 실제 사례가 발생해도 구제받을 길이 없어졌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등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을 추진 중인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는 피해자 구제 접수 신청에 대해 연장할 의도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환경부장관 역시 박 대통령이 임기 초반인 3월에 임명한 윤성규로, 현재까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고 재직 중이어서 사퇴하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 윤성규는 제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선대위 환경 정책 담당 특보, 지속국가가능책임단장 등을 맡았을 정도로 박 대통령 후보 시절 환경정책을 책임진 사람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임명 당시 환경부 내부와 시민단체에서는 윤석구를 "책임감 있고, 꼼꼼하며, 합리적인 사람"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기업 관리감독의 주체인 정부 관료들에 대한 행정적 처벌 역시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유가족에게 편지를 받은 적이 있던 박근혜 대통령은 "생활 화학제품 안전관리에 미흡한 부분은 없는지, 사각지대는 없는지 다시 한번 점거해서 미진한 부분은 조속히 보완하고,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고 원론적인 입장 표명 만을 하여 비판 받았다. #
10.5. 2016~2017년 대한민국 AI 유행
AI는 과거 노무현 정부 때도 2번 발생했다. 그 시기는 각각 2004, 2006년이며, 이 당시는 큰 문제 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굳이 노무현 정부와 비교하지 않아도, 같은 시점인 2016년 일본도 AI를 겪었지만, 재빨리 움직인 덕분에 피해가 적었고, 이는 박근혜 정부와 크게 비교된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당한 후, 12월 9일부터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이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권한대행이 아니었더라도 메르스 때를 보면 별반 차이 없었겠지만 말이다.
11. 안보에 관해 안일하고 무능한 모습
11.1. 군납비리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처럼 '안보'를 강조했지만, 군납비리, 인권 후퇴 문단에 상술한 병영부조리 해결과 병사들의 처우개선은 안중에도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이 임명한 국방부 장관 한민구가 군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그런 작은 사건", "부분적인 일"이라고 말해서, 군 인권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잘 드러냈다. 또 구체적 대책도 없이, 립서비스로 일관한다는 지적도 나왔다.'박근혜식 선군정치'로는 방산비리 못 막는다
참여정부에서 방위사업청이 태어났는데도 방산비리는 넘쳤다. 특히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뒤로 국가보훈처와 대한민국 국방부가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이 찍혔다."세금 7조 원을 쏟아붓고도 내무반 현대화에 실패"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한민구 국방장관은 '''"방산비리는 생계형 비리다"'''라며 오히려 옹호했다. 그만큼 정부가 방산비리를 우습게 본다는 것이다.군함에 설치된 참치잡이용 음파 탐지기
비판이 쇄도하자 박근혜 정부는 집권 2년 차인 2015년에 들어서야 부랴부랴 내부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방산 비리 규모가 1조 원에 달한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2015년 9월 17일 장명진 방사청장은 국회 인터뷰에서 방산비리에 대해 "대표적 방산비리요? 글쎄요, 하도 많아서…"라고 대답했다가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외에 방산비리 증거를 인멸한 회사 임원들에게 국방부 소속 군사법원에서 집행유예를 내릴 만큼 법 의식도 아주 심각하다.
음영처리된 부분은 한민구 참고.
11.2. 국방비 인상 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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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동안 연평균 8.4%에 달했던 국방비 증가율은 이명박 정부 때 6.1%, 박근혜 정부 때 4.2%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말로만 안보를 외쳤지, 실제로는 국방에 소홀했다는 뜻이다. 19대 대선 대선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유승민 후보에게 "보수 정권이 안보를 내세웠지만 노무현 정부 때 국방비가 연평균 8.8%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국방 예산 증가율이 5%대로 떨어지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4%대로 떨어졌다"는 질문에 유승민은 이 부분을 인정하였다. 반면, GDP대비 국방비 3퍼센트를 내세운 문재인은 집권하자마자 국방비를 7% 인상하였고 임기 중 연평균 국방비 인상율을 7.5%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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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는 병사월급 인상에도 소홀하였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때는 병사월급을 크게 올린 것과 반대로 이명박 정부때는 인상률이 낮았고 세계금융위기를 이유로 병사월급을 2010년, 2011년 2년연속 동결하기도 하였다. 반면, 병사월급을 "임기 내 최저임금 대비 50%까지 인상"을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병사월급을 2배로 올려 최저임금 대비 30%까지 인상하였고 병사월급을 역대 정부 중 가장 큰 폭으로 인상하여 임기동안 4배이상 인상하였다.
11.3. 허술한 안보의식
안보의 핵심인 대북 견제조차도 '말만 그럴 듯할 뿐 유명무실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3 무능함의 대표적으로 한미관계를 소원하게 한 '친중외교'가 있다. 정부는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전승절에 참석하고 중국을 끌어들였으나, 북한의 광명성호 발사와 사드 국내 도입에 대해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며 한국 정부를 비난하면서 물거품이 돼 버렸다. 또, 국방위 국정감사에서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한 달 정도 전에 징후를 알아낼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2016년 1월 7일 북한의 수소탄 실험을 사전에 포착하지 못 하면서 정보력도 형편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108] 국정원장 "우리가 졌다"···핵실험 1달 전엔 알 수 있다더니 그밖에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 북한 무인기 추락사건에서도 미흡한 안보 대책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밝혀지기도 했다.
2014년 6월 19일에는 북한군 3명이 경기도 파주시 인근의 비무장지대를 통과해 경계 초소까지 와서 귀순 유도 표지판과 귀순벨을 가져가거나 담력 시험 삼아서 벨튀를 하기도 하였다.관련 기사
이 와중에 대체 복무 폐지 안건이 공개되며, 대한민국 국방부의 실태를 드러내는데 일조했고, 아무런 생각이 없었음은 물론, 그냥 방치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말았다. 적정 병력에 대한 고찰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다른 부서와 어떠한 상의도 없었다는 점에서 국방부의 막장성은 물론이고 국방 정책에 대한 방향성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군 인권 개선에 대한 관심도 전혀 없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안보무능에 대한 질타가 더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주요 국방관련 기밀을 최순실이 열어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보는 1번"이라는 선거 슬로건이 실은 "안보는 쥐뿔도 신경 쓰지 않는 1번, 안보는 믿고 거르던 1번"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심지어 북한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보 전략을 세워야 하는 국가정보원에서도 박근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북한에 대한 정보를 왜곡 및 조작했다는 정황까지 드러나며 충격을 주었다. 박근혜 국정원, 대통령 입맛 맞춰 '대북정보' 왜곡 보고
결정적으로 박근혜 편지 사태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의 절차를 무시하고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가며 김정일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가관이다. 북한에서 쓰는 주체연호를 들먹이고,[109] 마치 존경하는 듯한 뉘앙스도 드러난다. 쉽게 말해서 박근혜는 북한을 사대했다. 박근혜는 야당 대표였는데도 불법으로 북한과 접촉했다. 그것만으로도 기가 막히는데, 국가보안법에 걸릴 편지까지 드러났다. 그래서 간첩죄, 찬양고무죄를 묻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박근혜 본인 뿐만 아니라 국방부장관이었던 한민구는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방산비리는 생계형 비리다."'''라는 귀를 위심할 정도의 발언을 하였다. 시대나 각국상황에 따라서는 즉결처형까지 받는 범죄유형인데도 한 나라의 군 통수권자가 저런 발언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안보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의심받는건 물론이고 군 전체의 기강과 사기를 떨어뜨릴수 있는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면 나라를 멸망에 빠뜨릴 시발점이 될 수가 있다. 그 예시로 조선을 사실상 멸망으로 빠뜨린 임오군란의 도화선이 된 것이 병조판서[110] 민겸호를 필두로 한 민씨 일파들의 군납비리였다.
쉽게 말하면 박근혜 자신과 자신의 재임시절 측근부터 국방, 안보 문제를 조금도 모르는 건 물론이고 간첩이나 역적으로 취급되어도 할말 없는 수준으로 '''안보 의식 자체가 결여'''된 마당이었다.
12. 종합 평가
현실로 보자면 보리스 옐친과 서태후의 단점을, 픽션에서는 돌로레스 엄브릿지의 단점만 골라서 닮은 희대의 암군이다. 또 다르게 보자면 명성황후, 진성여왕, 나폴레옹 3세의 단점만 고루 합쳐져 매우 안 좋은 의미로서의 삼위일체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느 분야에서든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음은 물론이며 모든 정책 분야에서 골고루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무능하고 오만한 탓에 주변과 소통하지 않았고 업무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탓에 최순실, 정윤회, 김기춘, 문고리 3인방, 삼성동계, 우병우 사단, 알자회, 기무사, 양승태 같은 간신배 무리들이 사익 추구를 위해서만 권력을 남용하기 시작했고 대한민국은 마치 바이러스 걸린 컴퓨터처럼 국가 시스템이 철저하게 망가졌다. 특히 우병우의 경우 본인만의 인맥을 구축해 대한민국의 모든 합법, 불법 감찰 기관을 장악하려 한 정황이 있었을 만큼 국가 시스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 태만: 중, 고등학교 때 출석만 열심히 해도 받는 개근상도 박근혜와 거리가 멀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수장인 대통령이었으나 너무나 태만했다. 심지어 자기 마음대로 수요일을 휴일로 정하고 그나마 일하는 월, 화, 목, 금요일마저 일을 대충 했다. 이것은 명나라 만력제와 같은 암군처럼 나라를 뒤흔든 왕들이나 저지를 짓이다. 그런데 박근혜가 탄핵소추를 당하고 나서는 '시국이 엄중하니 근무 기강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하라'는 공문이 떨어졌다. 공문 자체는 평범한 일이지만 하필 대통령 본인이 근무태만을 일삼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기막혀했다.
- 품위 결여: 강박장애와 결벽증이 있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나라 망신 소리는 듣지 않도록 노력하는 면모는 필요했다. 이것은 국가 수반이 지킬 최소한의 의무다. 하지만 박근혜에게 그런 노력은 없었고 허영심까지 더해져 타국 정상이나 기자, 심지어 학생들에게까지 대놓고 까이는 등 대한민국을 망신시킨 일도 수두룩하다. 박근혜는 자기중심적인 존재라서 대한민국은 아예 신경도 안 썼고 그렇게 망신을 자초했다.
- 소통 부재: 대통령은 민주주의 국가의 우두머리이자 대표자이기 때문에 국민이 내비친 의견도 받아들여야 하는 신분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그런 점이 일절 없었으며 심지어 국민의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이어 온 '국민과 소통하는 프로그램'마저 박근혜 정부는 폐지했다. 또한 기자회견도 거의 하지 않아서 독단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면모만 보였다. 더구나 그 권위주의를 빛낼 능력도 없이 허영심에만 가득 찬 행보를 보여왔으니 국민들은 박근혜를 닭대가리라고 비하하기에 이르렀다.
- 사이비 종교: 국가 지도자가 가장 멀리할 부분이 사이비 종교다. 하지만 박근혜는 사이비 종교인 영세교와 깊이 엮였다. 근현대사를 예로 들자면 러시아 제국과 조선이 무엇 때문에 멸망을 가속화했는지 생각해보자. 국가 지도자는 사이비 종교를 척결할 신분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되려 자기가 사이비 종교에 사로잡혀 받들었으니 문제가 매우 컸다. 이것은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박근혜만 보인 문제점이다.
박근령, 박지만, 박영옥, 김종필, 육예수, 육인수, 홍세표, 홍소자의 경우를 보면, 동생인 박근령과 박지만은 처음에는 박근혜가 최태민과 만나는 것을 묵인해줬으나 아버지가 사망하고 청와대에서 퇴거하고 난 이후 최태민에 대한 박근혜의 의존도가 청와대에 있을 때보다 더욱 심각해졌고, 박근혜를 최태민에게서 떼어 내려고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서한까지 보내며 박근혜를 구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최태민이 죽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가 탄핵 당하자 최순실과 그녀의 친정아버지였던 최태민을 맹렬히 비난했다.
박영옥과 김종필의 경우 박정희 정권 말기에 김종필이 국무총리직에서 사직하면서 각각 박영옥과 김종필에게 작은아버지/처숙이었던 박정희와 그의 자녀들과는 거리를 두고 자기 가정 일에 신경 쓰고 있어서, 여기에 개입하여 박근혜를 말릴 방법이나 여지가 없었다. 외가 쪽 식구들인 작은이모 육예수와 외삼촌 육인수, 큰이모 육인순의 아들딸인 홍세표와 홍소자는 육영수가 사망하고 난 이후에 박근혜가 최태민과 최순실의 영세교에 빠져 정신적으로 망가져가고 있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다만 김종필의 경우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에 대해서는 본인도 잘 알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박근혜는 아버지마저 총탄에 잃고 나서 최태민-최순실 부녀에 대한 의존이 더욱 더 심해져 결국 최순실이 저지른 국정개입과 그와 관련한 뇌물수수로 인해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
- 무능: 본인이 판단한 대로 움직였으면 탄핵소추, 탄핵주문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골방에 박혀서 하루 종일 드라마를 보았고 집권한 이후 국민이 준 권력을 최순실,정윤회 그리고 소수의 측근들에게 위임해 이들이 사익추구를 위해 전횡을 일삼고 국가 기강과 시스템을 좀먹는 사태를 초래했다. 심지어 파면 이후 구치소 수감이 되었음에도 위기의식조차 보이지 않은 채 같은 태도를 유지하였다. 이는 신라하대 기록상의 진성여왕과도 일부 유사한 점이 있다.
- 처참한 인사 능력: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박근혜가 추천하는 인물들마다 논란 속에 인사청문회에서 낙방하거나 이전 빠르게 사퇴하였는데 게다가 능력과 인품을 가진 사람이 아닌 자기가 원하는(더 정확히 말하자면 최순실의 취향 및 본인에게 아첨하고 굴종하는 사람) 사람들을 국가 주요 직위에 앉히려 했으며 추가적으로 책임 의식 없는 인사들만 골랐다. #
그러나 박근혜는 '박근혜가 다 해주실 거야.'라며 굳게 믿은 사람들을 배신했고, 정체불명의 사이비 종교 집안의 범죄자 딸에게 나라 일을 멋대로 넘기고 몰상식과 추태, 태업을 일삼다가 참다 못한 국민들에 의해 그렇게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직에서 파면되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보수 세력을 부흥시킨 인물에서 보수 세력을 몰락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4연속으로 더불어민주당에게 참패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보수 세력이 여러갈래로 찢어지고 의석수까지 큰 폭으로 떨어져 거의 몰락 일보 직전까지 가는 데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물론 여전히 친박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박근혜를 옹호하려는 움직임도 남아있는 보수세력도 문제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