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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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라북도 서남부에 위치한 군으로 북쪽이 부안군에, 동쪽으로 정읍시에, 남쪽으로 영광군에, 남동쪽이 장성군과 접해 있다. 군청은 고창읍 교촌리에 소재한다.
인구는 2019년 1월 주민등록인구 기준 56,991명. 1966년에는 '''19만 명''' 수준까지 올라갔다가 다음해 부터 인구가 감소하였으며, 1980년대 들어 10만선 붕괴, 2010년에 잠깐 6만명선이 붕괴되었던 적이 있지만 끈질기게 6만명선을 지키고 있었다. 6만명선이 결국은 붕괴되었다. 전라북도의 군 중에서는 완주군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면적은 607.85㎢로 전라북도에서 여섯번째로 넓다.
인구가 3만 명도 안되는 군들이 판을 치는 전라북도에서 고창은 그나마 제 구실 하고 사는 큰 고을에 속한다.[3] 인구로만 봐도 전라북도의 군 중에서 2위이며, 호남의 군으로 범위를 확대해도 6번째로 상당히 높다. 게다가 전라북도 하위 2곳인 무주군(25,366)과 장수군(23,304)을 합쳐봤자 '''고창의 4/5 정도'''밖에 안된다.
호남의 군 지역 인구순위가 차례로 완주군(90,310), 무안군(81,530), 해남군(77,064), 고흥군(69,736), 화순군(66,900), 그 다음이 고창군(60,067)인데, 완주, 무안, 화순은 각각 전주, 목포, 광주의 배후지역으로 통합 떡밥까지 나오는 위성지역이고, 해남군의 판타스틱하게 넓은 면적을 생각해 보면, 저 여섯 지자체중 가장 땅이 좁은 고창에 저 정도 인구가 거주한다는 건 대단한 것이지만, 그러나 고창은 시골이라는 것은 사실이며, 1960년대~1990년대에 벌어진 경부ㆍ경인라인을 중심으로하는 경제 개발로 인해, 고창군을 비롯한 전라북도의 각 시/군들이 인구 유출을 당할 때, 고창군은 예외도 아니여서, 인구가 크게 줄어들었다.
2. 역사
백제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이었고 신라 경덕왕의 전국 지명 한화정책 때 지금까지 사용되는 고창현(高敞縣)으로 바꾸었다. 지금은 전라북도지만 이 당시에는 9주 5소경 중에서 전주가 아니라 지금의 광주광역시인 무주를 중심으로 하는 무주 행정구역 소속이었다. 즉 전라남도 쪽이었다.
1896년 전라도가 남북으로 분도(分道)될 당시에도 전라남도에 속해 있었다가 1907년 흥덕, 무장 두 고을과 함께 전라북도에 편입되었다.[4] 이후 1914년 고창, 무장, 흥덕 3개 군을 통합하여 오늘날의 고창군이 형성되었다.
2.1. 문화
3. 지리
군의 서북부는 서해 바다와 곰소만에 접해 있고, 동남부는 노령산맥에서 뻗어나온 산줄기에 막혀있는데, 이 산줄기에서 인천강이 발원하여 선운산 옆을 지나 곰소만으로 흘러든다.[5] 선운산은 한때 걸리는 게 야생란일 정도로 야생란이 지천에 널렸었으나,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캐가는 바람에 나날이 감소하여 지금은 보존을 위해 야생란을 캐가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6] 행여나 선운산에서 야생란을 보게 되면 캐갈 생각을 하지말고 그냥 보고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기 바란다. 더군다나 요즘은 야생란보다 철쭉이 많다. 서해안에는 구시포와 동호 해수욕장이 있다. 여담으로 구시포의 경우 해수월드가 있는데, 수질면에서 고평점이라고 한다. 갯벌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모양…인데 폭염때문에 바지락이 다 죽어버려 올해는 영 좋지 않을 듯 하다.
곰소만 갯벌과 구시포 앞바다와 관련하여 부안군과 해상경계를 두고 다툼이 있었는데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고창군의 관할이라며 고창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간조시에 곰소만은 고창군 육지와 연결되나 부안군과는 갯골로 경계가 생긴다.
3.1. 전북 고창? 전남 고창?
광역생활권이 좀 애매하다. 지역 안에서야 고창읍을 중심으로 잘 짜여져 있지만, 타지역에서 가장 많이 가지는 오해가, '전북이니까 전주시랑 가깝겠네?'다. 그러나 고창은 '''전북지역 중 전주와 가장 멀다.'''[7][8] 광주는 거리 자체는 가까웠지만 당시엔 길이 험했기 때문에, 읍과 가장 가깝고 '당시엔' 큰 도회지였던 정읍의 생활권에 속하게 되어 전북지역 주민들에겐 세트로 인식되었으나, 정읍이 이제는 저 먹고살기도 힘든 상황이 되고, 고창담양고속도로의 완공으로 광주광역시의 입김이 확 밀어닥쳐서 지금은 거의 광주의 그늘 아래에 있는 편. 1시간도 안 걸린다. 전라남도의 웬만한 군들보다 광주에서 더 가까우며, 남해안 라인 중 가장 가까운 보성(길어야 1시간)조차 고창보다 멀다. 물론 이건 광주가 전남권에서 비교적 북서쪽에 붙어있는 까닭도 있고, 전라남도가 전라북도보다 면적이 훨씬 넓고 복잡하게 퍼져 있는 까닭도 있다. 단적인 예로 광주에서 같은 전남권인 진도나 완도를 가는게 광주에서 전북 북부의 군산, 익산을 가는 것보다 더 멀다. 물론 전주로 가는 버스편은 월등히 많지만 워낙 멀어 도청이나 병무청 아니면 별로 갈 일이 없다. 그래선지 타 전북지역의 전주고-전북대학교 라인이 엘리트라고 치면 이 지역은 고창고-전남대학교 쪽이 오히려 대접을 받는다. 물론 어른들의 이야기. 고창고나 전주고나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 시행 이후에는 똑같은 공립학교가 된 지 오래다. 프로야구 역시 지금은 물론 쌍방울 레이더스가 있었던 시절에도 KIA 타이거즈가 지역 구단으로 인식돼있다. 사실 쌍방울은 전주만 벗어나면 존재감이 없었지만...이러한 이유 때문에 고창군이 직장인 공무원이나 교원들 중에는 광주에 살면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전주-고창간 이동시간이 광주-고창의 거의 두 배에 육박하기 때문.[9]
그러나, 위의 '전북이니까 전주랑 가깝겠네?'라는 질문은 그나마 상대가 '전북' 고창 출신이라고 미리 말했기 때문인 경우가 대다수며, 실제로는 '들어봤는데 정확히 어느 쪽에 있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알 법한 사람들, 특히 광주 시민이나 전남 도민들은 전남 소속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며, 심지어 다설지라는 사실에 이끌려 '''강원도''' 아니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다(...).[10]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전라북도고, 황해 바다에 접한다.
다만, 언어는 전북보단 전남쪽에 가까운게 사실이며, 고창은 쌍방울보다 해태를 좋아했는데, 이건 순창도 마찬가지다. 전북 쪽에 가까운것은 전통가옥의 모양새 정도다. 당연하게도, 전북식과 전남식 가옥의 복합 표본으로 제시되는 모델이 고창과 순창에 있다. 정서나 문화에서 전남과 비슷한 점을 많이 공유하지만 지역이 전북이니만큼 전북의 정서와 감정을 상당부분 공유한다. 광주광역시가 가깝긴 하지만 전주시로 진출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지역민 스스로가 전북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교통
서해안고속도로가 군의 남북을 관통하며, 고창담양고속도로가 고창에서 분기하여 장성군에서 호남고속도로와 연결된다. 고속도로 나들목은 흥덕의 선운산IC, 고창읍의 고창IC, 고수면의 남고창IC 등 세개. 이 중 남고창 나들목만 고창담양고속도로소속 IC다.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할 거라면 옆의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는 백양사IC도 괜찮다.
23번 국도가 고창과 부안군, 영광군을 연결한다. 한편 고창에서 부안 방향으로 가다보면 흥덕에 이르러서 22번 국도와 교차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좌회전을 하여 22번 국도를 계속 따라가면 선운산에 도착한다.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IC [11] 서 빠져 나와도 22번 국도를 따라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한다.[12]
고창의 동서 지역을 잇는 15번 지방도[13] 는 방장산 구간만 내려오면 2016년에 전 구간 4차선으로 확장되었다. 이 구간에는 회전교차로 4개소가 있다. 그리고 고창군에 흔치 않은 '''고가차도'''도 세워졌다.
여담으로 2010년대 들어서 고창에 회전교차로가 많이 늘어났다. 위에 서술한 4개 이외에도 흥덕 앞에 한개, 고수면에 1개가 또 생겨났다. 성두 교차로도 입체교차로 밑에 23번 국도와 교차하는 곳은 회전교차로 형태다. 심지어 이젠 군청오거리도 회전교차로가 되었다.
철도가 통과하지 않으므로[14] 철도를 이용할 경우 정읍역에 하차하여 근처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고창행 시외버스를 이용하거나, 시내버스 정류소에서 고창 방면으로 가는 261번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시내버스의 소요시간은 1시간 가까이 걸리니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걸 추천한다.
한편, 철도가 없는 지역에서 벗어나려 제3공화국 시기에 부안-고창-영광을 잇는 서해안선이 1967년 착공하려고 했으나 경제성문제로 사실상 포기 후 고속화도로 시설로 전환된 이후 2000년대부터 지역정치권 차원에서 목포-군산간 서해안철도를 건설하자는 목소리가 지금까지도 있지만 광주.전남동부권 연계하는 영광~광주연결 서해지선철도 건설까지 동원해야 할정도로 인구가 부족해 경제적 타당성문제 때문에 무척 애를 먹고 있다.보충자료
하지만 호남권 시.도 정치권에서는 때 마다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어 고창출신 전북도의원이 서해안철도 건설 촉구 정부에 건의에 촉구를 했고 고창군 차원에서도 정부에 서해안고속철도 사업을 요청한것으로 알고 있다.
고창군 농어촌 버스는 모두 대한고속에서 운행한다. 모두 산뜻한 오랜지색으로 도색되어 있다.[15] 주로 무장, 해리 쪽으로 가는 방면과 흥덕쪽으로 가는 노선이 수요나 공급면에서 활발한 편. 선운산 쪽은 시내-시외 모두 배차가 많고, 순환선이나 영광, 정읍방면 노선도 있다. 어르신들이 많은 탓에 농어촌버스안내'군'도 있고, 중간즈음 가서 기사양반이 친절히 어르신들에게 직접 돈을 받는다던지, 가끔 정류장 아닌데에서도 세워준다던지 하는 정겨운 광경도 많다. 다만 요금체계가 거리제가 아닌 경계제라, 경계를 1M라도 넘어가면 돈을 더 받는다. 주로 운용되는 차는 BS090 F/L과 글로벌900 F/L, 그린시티다. 2014년 여름까지 BM090이 목격되기도 했다.[16] 정읍에서 들어오는 시내버스는 슈퍼 에어로시티 도 있다.[17] [18]
고창공용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고창에서 센트럴시티로 하루 16회 고속버스가 운행되며 40~70분 간격인데, 주로 1시간대에 1대꼴이라 보면 된다. 대한고속, 호남고속, 전북고속 3사가 공동 배차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만 운행(막차가 저녁 7시)한다. [19][20] 2020년 4월 현재 성인 17,200원. 참고로 16회 모두 흥덕면을 경유한다. 전주, 광주, 정읍, 부안, 김제, 익산, 군산, 영광, 장성, 목포, 법성포 등으로 시외버스가 운행된다. 공용버스 터미널은 고창읍에 있는데, 이보다 북쪽 지방으로 오가는 버스는 흥덕면을 반드시 경유한다. 시외버스를 타고 면 지역으로 갈 수도 있는데, 주로 무장, 해리, 상하, 흥덕, 대산, 선운산, 구시포 등이다.
2014년에는 인천행 시외버스가 신설되었다.[21] 운행 업체는 '''대원고속'''이다. 차량은 FX120 40석.
5. 관광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 되어있지만, 2021년 고창 고수면 산업단지에 닭공장 “동우팜”이 들어오며 생물권보전지역 박탈위기에 놓여있다
https://youtu.be/FhM4nxe4RPA
5.1. 관광명소
'모양성'으로도 불리는 고창읍성이 고창읍내에 인접해 있다. 현지인들은 고창읍성이라는 이름보다 원래 이름인 모양성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으며 고창 군민들 스스로도 고창군의 아이덴티티로 생각하는 듯한 장소. 매년 10월이면 지역축제인 '모양성제'가 이 고창읍성 앞에서 열리는데 지역축제로서는 상당히 규모가 있으며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1973년부터 계속되어온 꽤 전통있는 축제. 고창읍성은 전남 순천시의 낙안읍성, 충남 서산시의 해미읍성과 함께 현재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는 조선시대 읍성(邑城)으로, 평지를 둘러싸는 형태로 축조된 다른 두 읍성과 다르게, 산언덕을 둘러싸는 형태로 축조되어 있다. 아마도 성 안은 평상시의 주거지가 아닌 유사시의 피난처로 계획되어 있었던 듯. 성 안에는 동헌, 군량고, 옥사(獄舍), 객사(客舍) 및 망루 등이 복원되어 있다. 성벽 위를 세바퀴 돌면 살아서는 무병장수하고 죽어서는 극락왕생한다는 전설이 내려온다.[22] 현재는 군청 근처에 있는 고창여자고등학교[23] 가 예전에는 '''고창읍성 내에''' 위치했었다. 읍성 내에도 여고 터에 안내판이 있는데, 1986년에 성 보존을 위해서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이전 당시 상황을 직접 본 고창 군민의 증언에 따르면 여고생들이 책걸상을 들고 줄줄이 읍성에서 나오는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고창읍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옆에 판소리 여섯마당[24] 을 정초한 동리 신재효[25] 의 고택이 있으며, 바로 옆에 판소리 박물관이 있다. 또 바로 옆의 동리국악당에 고창군 유일의 영화관 동리시네마가 2014. 06. 20. 개관하였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며 비용도 일반 극장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곳이라 고창 군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극장이다.
한편 무장면 소재지로 가면 무장읍성을 볼 수 있는데, 지금은 읍성 남문 및 객사, 동헌 등 일부 건물만 남아있다.[26] 무장에서 법성포 방향으로 가다 보면 국내 최초의 체험형 관광목장인 학원농장의 청보리밭으로 최근 도깨비의 메밀꽃밭으로 유명세를 타고있는 공음면에 이르는데, 이 곳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동학당이 최초로 기포(起包)한 곳이기도 하다. 전봉준 다음으로 유명한 동학군 지도자 정읍대접주 손화중이 이 동네의 유지였다.
아산면 죽림리, 상갑리 일대는 수백기의 고인돌이 밀집된 지역으로 유명하다. 물론 고인돌은 강화, 부안, 화순 등 전국 어디에도 있지만, 이처럼 수백기가 몰려있는 경우는 한반도는 물론 세계에서도 보기힘든 광경이다. 한국의 스톤헨지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곳 고인돌은 대부분 네개의 작은 주춧돌 위에 큰 돌을 올려놓은 바둑판식(일명 남방식)이지만, 드물게 북방식 탁자형 고인돌도 볼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이처럼 많은 고인돌로 인해 고창군은 캐치프레이즈를 '한반도 첫 수도, 고창'으로 내세우고 있다. 삼한시대에 마한 54국 중 모로비리국이 고창 지역에 있었다고.
선운산도립공원, 선운사 또한 유명하다. 산중에 위치한 사찰이 운치있지만, 이 선운사의 하이라이트는 바위맥 끝지점에 위치한 도솔암 마애불. 보물 1200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말그대로 도솔암에 새공된 거대 불상으로, 15.6m의 크기로 찾아오는 이를 압도한다. 명치 부근에 봉인된 흔적이 있는데, 이 안에 검단선사가 비결록을 써넣었다는 전설이 있다.[27]
고창읍에는 '웰파크시티'라는 골프장+시니어타운+요양병원을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서울 지하철을 타고 있다보면 종종 광고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니어타운 쪽에서는 제법 유명하다. 석정휴스파라는 온천이 있으며, 이 근처에 체육관과 축구장 등이 위치하고 있고 고창 MTB 파크와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이 있어 레저 스포츠의 명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상하면 구시포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상하농원(매일유업 운영. 바로옆에 매일유업 상하공장이 위치하고 있다.)이 유명해지기 시작했다.[28] 상하목장 우유가 여기서 나오는데 고창군 외의 전북 지역민들도 이 사실을 잘 몰라서 '그 상하가 이 상하였어?'하고 놀라기도. 치즈, 햄등을 직접 만들어볼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며, 작은 동물원(염소, 양, 송아지 돼지 등... 어른소는 방목)이 있어서 직접 건초주기&우유주기등도 체험할 수 있다.[29] 농원안에는 한식당, 양식당(퓨전), 카페등이 있어서 농원에서 만들어지는 치즈나 소세지, 빵 등을 이용한 요리를 즐길수도 있고, 파머스마켓이나 농원상회에서는 농원에서 만든 빵, 잼등을 공장에서 생산된 유제품과 함께 판매하고 있으며 지역 특산품도 판매한다. 그러나 입장료가 비싸다. 대인기준 8,000원, 소인 5,000원. 체험료 별도. 자세한건 상하목장 홈페이지를 참고.[30] 공음면에 위치한 학원농장은 청보리밭으로 유명하다.
5.2. 특산물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산지다. 이 고장의 유명한 산물로 수박[31] , 풍천장어, 복분자를 들 수 있다. 수박은 대산면이 주산지며[32] , 인천강이 곰소만으로 흘러드는 하구에서 양식되는 풍천장어는 복분자주와 함께 선운산을 찾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맛보게 되는 별미이기도 하다. 선운산 입구와 그 근처에 풍천장어를 요리하는 식당이 여러군데 있다. 원래 유명했지만 박명수가 입원했을 때 무한도전 길과 정형돈이 고창군 심원면까지 풍천장어를 찾으러가서 젊은이들에게도 유명해졌다. 자동차 넘버판이 바뀌기 이전에는 장어식당에 가면 전국 팔도의 자동차 넘버판을 다 볼 수 있었다.
대산면 수박은 물빠짐이 좋은 황토 토양에 남부지역 특성상 일조량이 많아 농산물품질평가에서 수박 부분은 항상 수위를 다툰다. 실제로 수박 농사가 잘되면 최대 22brix 수준의 당도[33] 가 측정된다. 수확철에는 2kg 정도의 수박이 5~6천원 정도. 그 덕에 고창 군민들은 다른 지역 수박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고창 수박은 땅콩과 함께 고창의 대표적인 특산물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으나 근래 들어서는 수박 농사를 짓는 곳이 많이 줄었다. 대략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진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 지었으나 지금은 대산 아니면 찾기 힘들다. 비슷하게 땅콩 역시 저렴한 수입산의 러시 앞에 재배량이 많이 줄어든 상태.
복분자는 흔히들 복분자주의 재료로 알려져 있으나, 약재로도 많이 쓰인다. 요즘들어 여러 지역에서 앞다퉈 복분자를 재배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서해의 바닷 바람을 맞으면서 자란 선운산의 복분자를 최고로 쳐주고 있다. 사실 복분자는 산딸기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과일이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고창 복분자주(3호), 고창 복분자(35호)가 각각 등록되어 있다.
풍수가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한 흥덕 윤도[34] 를 만드는 장인이 300년에 걸쳐 대를이어 윤도를 만들고 있다. 1996년에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윤도장 기능은 현재 성내면에 사는 김종대 씨가 보유하고 있는데, 일년에 약 30개 정도를 주문 제작한다고 한다. 주로 농한기 때 작업을 하기 때문에 주문하고 완성품을 받을때까지 상당히 느긋하게 기다려야 할 듯.
먹는 것은 아니지만, 토질이 황토성분이 많다. 덕분에 농작물도 잘자라고, 타지에서도 흙이 좋다고들 한다. 고창에는 한참 황토 바람이 불 때 황토 팔아서 돈 좀 만지신 분들이 꽤 많다고.
옛날에는 구시포 주변의 해안에서 나는 바지락이 매우 맛있었다고 한다…만, 지금은 바지락의 개체수 자체가 워낙 큰 폭으로 감소(한 90년대 즈음...?)해서 특산이랄 것 까진 못되지만, 전북에서 패각류 채취업으로 가장 명성이 높던 윗 동네 갯벌이 거의 사라지면서 고창군의 패류 생산도 나름 의미는 있다. 품질도 나쁘지 않은 편. 고창 읍내나 구시포에는 지금도 바지락, 백합 등의 패류 전문 음식점이 제법 있고 맛도 좋다.
비벼먹는 짬짜면[35] 역시 고창군 인근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음식이다. 첫인상이 매우 이질적이긴 하지만 고정관념을 버리고 맛을 보면 상당히 맛있다. 짜파구리를 생각하면 선입견도 어느정도는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낙농업도 발달한 편으로, 매일유업의 상하목장 브랜드 우유를 고창군 상하면에서 생산한다.
6. 생활
6.1. 금융
6.2. 상업
대형마트가 전무하다시피 한 이유도 있지만, 놀랍게도 익산시와 함께 5일장이 전북에서 제일 많이 서는 동네이다. 더욱이 익산의 인구가 '''30만'''을 넘는다는 점에서 20% 수준의 고창이 같은 수의 장이 선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당연히 규모는 익산의 장들보다 큰 편은 아니다. 그냥 시골 동네 장터 수준.
6.3. 언어
사투리가 약간 특색이 있다. 전라남도와 접해 있으므로 어휘는 거의 대부분 전남권 사투리를 쓰고있는데,[36] 지역드립의 금메달리스트인 ~께를 안쓴다. ~게! 로 쓰는데, 사실 타지인이 들으면 게와 께의 중간즈음. 전남지방도 일부는 게로 통용된다. 사투리가 많이 희석된 전북지방과는 달리 활발히 방언을 사용한다. 사실상 전북지방에서 가장 사투리 심한 동네. 가끔 2010년대 와서도 전주 출신이 이 동네 말투에 괴리감을 느낀다는 얘기도 있다.[37] 억양도 광주랑은 약간 미세한 차이가 나는데, 글로리아에서 최재환이 연기하는 모습이나, 양학선 인터뷰를 보자. 둘이 억양부터 목소리까지 똑같다.
6.4. 교육
6.4.1. 초등학교
6.4.2. 중학교
6.4.3. 고등학교
7. 정치
구 민주당의 중진 정균환이 4선을 한 지역구다. 16대 총선부턴 인구 감소로 이웃 부안군과 공동선거구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전 정균환은 고창 출신이지만 현재 김춘진은 부안 출신이라는 차이가 있다. 20대 총선에선 31년만에 정읍과 한 선거구로 묶였다. 고창군수 출신인 무소속 이강수 후보는 고창에서 60%의 득표를 올렸으나 정읍시장 출신의 현역 의원인 국민의당 유성엽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다.
오래 전부터 전형적인 전북의 민심을 따라가는 지역이긴 하지만 '''전북과 전남의 중간 성향을 보이는 지역'''이다. 이웃 부안군이 호남 내에서 강한 보수 성향을 보이는 것과는 다소 대조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지역구도가 정착되기 전에는 여촌야도의 특성으로 전형적인 보수 강세지역 중 하나였다. 1963년 5대 대선에서는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가 50.96%를 얻어 39.54%를 얻은 윤보선 당시 대통령을 10% 이상 앞질렀고, 1967년 6대 대선에서는 신민당 윤보선 후보가 47.28%를 얻어 박정희 후보의 41.67%에 적은 격차로 앞섰다. 또한 동시기에 치뤄진 6대 총선에서도 민정당 김상흡 후보가 28.63%의 득표율을 얻어 민주공화당 성정기 후보를 0.26%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되어 두 선거 모두 야당이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다. 4년 뒤 1971년 7대 대선에서는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김대중 후보가 61.28%를 얻어 33.19%에 그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큰 차이로 앞섰는데, 동시기에 치뤄진 7대 총선에서는 민주공화당 신용남 후보가 56.68%를 얻어 과반 이상의 득표율로 압도적인 당선을 이뤄냈다.
이처럼 당시에는 여야 어느 한쪽의 편이 서지 않고 상황에 따라 민심이 바뀌는 스윙보터로서의 역할을 했다. 김대중 후보가 전면에 나선 7대 대선을 제외하고도 당시의 여권, 야권 모두 선거에서 승리한 적이 있을 만큼 고창의 민심은 딱 잘라서 이야기할 수 없는 오묘한 민심을 보였는데, 이는 1980년대 중반까지 유지되었다. 12대 총선 결과를 보면 전주시-완주군 선거구를 제외한 모든 전북 선거구에서 당시 여당이던 민주정의당 후보가 1위를 차지했는데, 고창군에서도 민주정의당 전종천 후보가 54.93%를 얻어 신한민주당 이원배 후보의 20.01%를 2.5배 이상의 압도적인 표 차이로 1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당시 전두환이 만든 관제야당 민주한국당 후보의 득표율까지 합하면 무려 2/3 가까운 득표율이 전두환 독재 여당에 대한 지지도를 보였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고창군은 전북의 타지역과 마찬가지로 급격하게 친 민주당, 반 독재의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심각한 탄압을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강화되었고, 5.18 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전두환의 각종 인권탄압에 대한 진실이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민주당의 텃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13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88.93%,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 정균환 후보가 54.31%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민주당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대선에 한해서는 전북보다 전남에 가까운 득표율을 꾸준히 올려 대체로 김대중 후보가 전북 최고 득표율을 이곳에서 기록했다.
그러나 민주당계 정당이 둘로 갈라진 시기에는 고창군의 민심 또한 둘로 갈라진 모습을 보였고, 이 때마다 고창군은 당시 전북 민심이 가지고 있던 평균적인 대세를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의 역풍이 불었던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김춘진 후보가 35.45%의 표를 얻어 새천년민주당 정균환 후보의 33.63%를 근소한 차이로 앞섰고, 비례에서는 52.23:26.53으로 큰 격차가 벌어졌다. 당시 전북에서 67.26:13.58까지 벌어졌던 두 당간의 지지율 격차에 비하면 적은 격차였으나, 새천년민주당 정균환 후보는 13대부터 고창에서 뿌리를 내린 토호 중의 토호 의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 역풍으로 자신의 지역구에서 패배하고, 자신이 몸담은 정당의 득표율이 더블스코어로 경쟁 정당에 밀린 것이었다. 지역 토호가 있음에도 이렇게 패배했다는 것은 탄핵 역풍으로 인한 민심의 분노가 고창에서도 이어졌다는 것을 뜻하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얻고도 입법에 문제를 드러내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2006년 4회 지방선거에 와서는 결과가 다시 뒤집어졌다. 당시 여당이 전북에서 유일하게 이겼으나 고창에서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도지사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김완주 후보가 42.87%를 얻어 민주당 정균환 후보(46.03%)에 3.16% 차로 밀렸고, 군수 선거에서는 민주당 이강수 후보가 58.56%를 얻어 열린우리당 정길진 후보(32.79%)를 크게 압도하였다. 2년 전 총선에서 낙선한 정균환 후보는 이번에도 도지사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고창에 한해서는 2년 전과 반대로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설욕하였으며, 군수 선거에서는 더 큰 격차를 보였다. 이때 전북에서는 열린우리당, 전남에서는 민주당이 승리했던 것을 보면 고창의 민심은 전북보다 전남에 가까운 성향을 보였다는 이야기이다.
가장 최근에 민주당계 정당의 분열이 있었던 2016년에는 20대 총선에서도 고창군은 전남에 가까운 민심을 보였다. 정읍을 연고로 하는 유성엽 후보가 국민의당 당적으로 출마했고, 고창군수 3선 연임을 했던 이강수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경쟁상대인 더불어민주당 하정열 후보는 문재인 대표의 영입인사 9호로 예비역 육군 소장 출신이었지만, 각각 정읍과 고창을 연고로 하는 두 후보에 밀려 선거 보전자금도 받지 못할 수준의 낮은 득표율을 고창에서 얻었다(4,779표, 14.99%). 고창 출신 이강수 후보가 13,781표(43.24%)를 얻어 정읍 출신 국민의당 유성엽 후보(9,889표, 31.03%)를 큰 격차로 누르고 1위를 차지했으나, 약 2배에 달하는 인구수 차이에 의해 유성엽 후보가 당선되었다. 후보의 연고지에 따라 지지하는 정당이 갈리는 '소지역주의'가 적용되었음이 확인된 선거였다. 비례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 26.32%, 국민의당 43.19%로 전북 평균(32.26:42.79)보다 전남 평균(30.15:47.73)에 가까운 편차를 기록했다.
당시 상황을 보면 두 정당 모두 불신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더민주에 대해선 '친문패권' '호남홀대' 정서가 강하게 작용했던 상황이었고, 국민의당에 대해선 '그래도 한 번 믿어보자'는 심리가 있었다. 단지 무소속 후보가 동향 사람이라는 이유로 소지역주의가 작용해 두 정당 지지율 모두 호남 평균치에 비해 낮은 편이었던 것인데, 어쨌든 국민의당이 유리한 상황이 지속되다가 총선 6개월 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이 때 국민의당은 초반에 강경모드로 나서다 정작 탄핵 발의를 앞두고는 비박과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한발 빼는 모습을 보이자 전국적으로 230만명이 운집하여 시위를 벌이는 대대적인 역풍을 맞았다. 이후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지지율 격차가 벌어졌다. 결국 탄핵이 되고 재보궐선거로 치뤄진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전라북도 전역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고 고창군에서도 마찬가지 결과를 보였다. 최종 '''23,877표(61.38%)'''를 얻어 과반은 물론 60% 선까지 돌파했고, 가장 낮은 득표율을 얻은 공음면에서도 57.08%를 얻어 과반이 훌쩍 넘는 압도적인 표를 받은데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고창읍에서는 63.31%로 무려 65%에 가까운 득표율을 얻었다. 지역과 세대를 막론하고 모든 계층의 유권자들에게 고르게 1위를 가져갔다.
한때 라이벌이자 대항마로 여겨졌던 국민의당(2016년) '''안철수''' 후보는 '''11,182표(28.74%)'''의 저조한 표를 받아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득표율을 가져갔다. 만 표를 겨우 넘기면서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했으나 가장 높은 득표율을 얻은 공음면에서조차 34.91%를 얻는데 그쳤고, 고창읍에서 27.40%, 흥덕면에서 27.34%에 그치면서 문재인과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격차가 벌어졌다. 그나마 이것이 '''전라북도 안에서 안철수 후보가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것'''이었다. 전주에서는 전국 평균치인 21.4%에 그쳤고, 전북 북부지역에서는 25% 미만의 득표율을 올린 곳이 속출했던 것에 비하면 그나마 고창 결과는 전북에서는 가장 선전한 편이었다.
7.1. 관련 문서
8. 하위 행정구역
9. 기타
크게 회자되지는 않지만, 상하면 구시포에 간첩이 나타난 적이 있다. '''1970년'''의 일인데, 그 당시 간첩이 이곳으로 올 생각이 없었는데 '떠내려와서' 재수없게 걸렸다 한다. 경찰이나 군도 이 간첩을 생포할 생각이었는데, 지레 겁먹은 간첩이 필사적으로 도망가서 할 수 없이 헬기까지 동원한 결과 사살하고 시신을 수습했다고 한다. 이 여파로 구시포에 해군부대와 병기고, 그리고 모래사장에 철책이 설치되었던 이력이 있다. 물론 50년이 넘은 지금은 이미 철거되어 철책의 흔적은 없는 상태.
지리적으로 고립된 영향 탓인지 외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한때 타지에서 고창으로 전입해 온 공무원, 교원들이 동네 양아치들로부터 호된 꼴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고창고 출신들의 텃세가 강하여 전라북도 내에서 파워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전주고 출신들조차 고창에서는 고창고 출신들에게 한 수 접어야 할 정도.[38] 다만 관광객들한텐 그런거 없고 친절한 편이다. 특히 서해안고속도로 개통 이전만 해도 교통오지였던 탓인지, 길잃은 여행객들한테는 매우 친절한 편.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는 예전처럼 외지인에에게 텃세를 부리거나 하는 것은 찾아보기 어려워졌으니
후삼국시대에 고려와 후백제가 맞붙어 후삼국시대의 승패를 결정지은 고창 전투의 고창은 여기가 아니라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다. 한자부터가 다르다. 거긴 古昌, 여긴 高敞. 의외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좀 있는 모양. 간혹 웹을 뒤지다보면 고창 전투를 高敞 戰鬪(...)로 잘못 쓴 문서가 걸리기도 한다.
2013년 5월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선정되었다. 이는 설악산, 제주특별자치도, 신안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광릉숲에 이어 국내에서 5번째로 선정된 것이며, '''행정구역 전체'''가 선정된 것은 고창군이 처음이라고 한다.
인구 대비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많이 배출한 군이기도 하다. 금메달리스트만 해도 최소 2명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외에도 유명 체육인이 지역 규모를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편.
10. 출신 인물
- 강병원
- 강수원(1916)
- 강원채
- 강인섭
- 기보배 : 2012 런던 올림픽,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양궁 금메달리스트
- 김기석
- 김명수(1963)
- 김성수
- 김성중
- 김소희
- 김수학
- 김양수
- 김연수
- 김영동
- 김영인
- 김이수
- 김충식(1954)
- 김형선
- - 범죄자. 이 인간은 이 고창군에서 거주를 오래 해서 진짜로 동네 망신이다.
- 김희철(정치인)
- 류갑종
- 류진(정치인)
- 문희철
- 박우정
- 박종률
- 박주원
- 백관수
- 백남운
- 백재현 : 前 국회의원.[39]
- 서정주
- 성백진
- 손화중
- 송아량 제10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 심덕섭 (前국가보훈처 차창)
- 신용남
- 신용욱
- 신재효
- 안규백 : 제18~21대 국회의원[40]
- 양학선 :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체조 도마 금메달리스트
- 오상훈
- 유기상
- 유덕상
- 유동균 : 現 서울특별시 마포구청장
- 유영진
- 유하
- 유한준
- 은희경
- 이강수
- 이영희
- 이호종
- 이홍훈
- 임병식
- 임종인
- 전봉준
- 정균환
- 정세환
- 정운천 : 제20, 21대 국회의원[41]
- 정찬택
- 조봉업
- 조일장
- 조재미
- 주영섭 (전 관세청장)
- 주진우 : 기자
- 진동수
- 진영곤 (전 여성부 차관, 대통령실 고용복지수석)
- 진의종
- 진진형
- 차경석
- 최유정
- 최일화
- 최재환
- 탁형춘
- 한경노
- 허영생 : 그룹 SS501의 멤버
- 홍영표 : 제18~21대 국회의원[42]
- 황춘자
[1] 1907년 전라남도에서 전라북도로 이관되었다.[2] 2021년 1월 주민등록인구[3] 70년대에는 인구가 '''10만명'''대에 있었으며, 1966년에는 무려 '''19만명'''이 거주했다. 1980년대 이후 매우 큰 폭으로 감소하여 지금은 리즈시절 35%의 인구.[4] 동시에 전라북도에 속했던 구례군이 전라남도로 편입되었다.[5] 원래 이 곳이 자연산 풍천장어의 산지였다.[6] 고창읍성 안쪽의 죽림에도 많은 수의 야생란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군청 관계자에 따르면 시가 2천만원을 호가하는 물건들도 가끔 나온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7] 전주보다 대전광역시가 더 가깝다는 이유로 충청남도에 편입된 금산군조차 고창이나 무주, 장수, 순창보다 전주에 더 가까웠다.[8] 하지만 다른 도(권역)들의 중심 도시와 가장 먼 곳들인 강원도 춘천시와 삼척시, 충북권의 청주시와 단양군, 충남권 대전광역시와 태안군, 전남권의 광주광역시 와 완도군, 경북권의 대구광역시와 울진군, 경남권의 부산광역시와 거창군 같은 케이스들하고 비교해 보면 고창과 전주는 훨씬 형편이 나은 것이, 고창과 전주는 각 권역들의 중심 도시와 가장 먼 곳들 중에서 '''1시간 반 이내로 주파할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나머지 지역들은 기본이 2시간이며, 심하면 3시간은 가야 하는 곳들도 있다.) 다만 광주하고 너무 가까운것 뿐이지. 오히려 전주는 도청 소재지로서의 입지 조건도 전국의 도청 소재지 중 가장 좋은 곳이다.[9] 전주시청-고창군청은 72.8km(1시간13분), 광주광역시청-고창군청은 43.5km(39분)[10] 좁은 우리나라 땅이지만 전라도와 강원도의 관계는(특히 전남과 강원영동) 위치도 극과 극일 뿐더러 상호 교류도 가장 없는 지역이다. 최근 수십년간 개발에서 소외되고 인구가 꾸준히 줄어왔다는 아픔의 정서를 갖고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11] 실제로 공사 당시 흥덕IC로 예정되어 있었다.[12] 애초에 선운산 가라고 만든게 아니고 흥덕, 부안(면) 등 북부지역 가라고 만든 나들목이다. 단지 흥덕보다 선운산이 전국적 인지도가 더 커서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 다만 직선거리로는 도립공원과 꽤 가깝다. 그리고 길이 좋아서 20분도 안걸린다.[13] 그래서 도로명도 '''동서대로'''다.[14] 청주시와 마찬가지로 지역에서 반대해서 철도를 놓지 못했다는 카더라 반면 현재 청주는 오송역이 있는데 후술할 광주 가는 고갯길만 생각해봐도 신빙성이 떨어지는 썰이다. 광주를 버리고 영광 - 목포로 잇기엔 광주를 버리는게 또 아까웠을테고.[15] 사실 전주와 남원을 제외한 전북의 모든 버스가 그런 도색을 하고있다.[16] 현재는 그린시티로 대차했다.[17] 마찬가지로 NEW BS090으로 대차되었다.[18] 이런 차들은 이곳과 정읍은 물론 김제, 부안에서도 볼 수 있었으며 해당 지역에서 자취를 감춘 이후로는 더이상 국내에서 무냉방 영업용 버스는 찾아볼 수 없다.[19] 옛날엔 있었다. 대한고속에서 크루져 우등을 굴렸다. 지금은 대차되었다.[20] 2020년 1월 8일부로 하루 왕복 8회 28석 우등이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요금은 2020년 4월 현재 성인 22,400원.[21] 인천~김제 노선을 연장한것이다.[22] 실제로 돌아보면 산길이라 엄청 빡세다. 성벽을 타고 걷는다고 가정하면 1.21km로 이 동네 체육관 선수부의 훈련코스중 하나. 한바퀴만 돌아도 어지간한 산행급. 세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는게 아니라 '''무병장수할 만큼 건강한 사람'''이 세바퀴 돌 수 있는 것이라는 드립을 현지인들도 종종 친다.[23] 지역명이 붙어있지만 사립학교다. 고창고등학교는 공립.[24] 춘향가, 흥보가,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 변강쇠 타령. 현재 변강쇠 타령을 제외한 다섯 마당이 전해 온다.[25] 영화 도리화가 (류승룡, 수지 주연)의 실제 인물. [26] 이 곳에 있었던 무장초등학교는 다른곳으로 이전되었고 지금은 발굴 조사가 진행중이다. 2018년, 조사 중에 비격진천뢰가 무더기로 나왔다고.[27] 조선 말 전라감사 이서구가 이 봉인을 풀려 하자 하늘에서 갑작스래 천둥벼락이 내렸고, 책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연다" 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이를 본 이서구는 두려움에 다시 봉인을 하였고, 19세기 말 동학 접주 손화중이 이 비결록을 가져갔다고 한다.[28] 기사 참조[29] 건초주기, 우유주기 등은 무료 체험. 방문객 선착순 신청으로 매일유업 상하공장견학도 가능하다.[30] 군민은 신분증 지참시 무료. 16시 이후부터는 모두 무료 입장이 가능. 농원 운영시간은 17시 까지이며 퓨전식당등은 21시까지 영업.[31] 게다가 수박은 과거엔 엄청 많아서 1980년대만 해도 큰 대야통에 수박이 담겨있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수박은 많이 나오나 예전만은 못한다.[32] 동남권에서 수박으로 유명한 함안군도 대산면이 주산지다. 어?[33] 참고로 수박은 10brix정도가 보통이다.[34] 輪圖. 패철이라고도 한다. 일종의 전통 나침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35] '짬짜장'이라고도 한다. 업소마다 약간씩 지칭하는 이름이 다르다.[괄호] A B C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36] 전북 남부 지역일지라도 정읍시는 노령산맥, 순창군과 남원시는 섬진강과 산맥의 영향으로 전남권과 구분되는 사투리와 문화가 나타난다. 고창은 비교적 전남과 비슷. 고창읍에서 장성 - 광주로 이어지는 라인은 험한 고개가 있지만 무장권에서 영광(홍농/법성포)으로 넘어가는 부분은 고개가 없이 거의 완만하다.[37] 일단 전주는 주로 표준어를 쓰고 전북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는 거의 표준어화된 동네다.[38] 구한 말부터 이 동네가 타지에서 온 수령이나 일제시대 일본 사람에 의해서 수탈을 좀 심하게 당한 편이라, 외지에서 '공적'으로 온 사람들을 약간 싫어할 뿐이다.[39]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 : 경기도 광명시 갑[40] 지역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갑[41] 20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지역구였다.전라북도 전주시 을. 그러다가 21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16번으로 당선되었다.[42] 지역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