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생애
1. 출생 및 성장
1957년 4월 15일 서울특별시 용산구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출생[2] 했다. 부모는 황해도 출신 실향민으로, 해주시에 터를 잡고 살다가 1.4 후퇴 때 월남했다고 한다.
경기고등학교 재학 당시 학도호국단 연대장[3] 으로 활동했다.[4] 경기고는 1976년 2월 종로구 화동(현재의 정독도서관)에서 에서 강남구 삼성동으로 교사를 이전하였는데, 당시 이삿짐 행렬 트럭에서 황교안이 교기를 들고 이동했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재수까지 해가며 도전했지만 결국 낙방하고, 후기로 성균관대학교 법학과에 77학번으로 입학했다.
담마진으로 군대를 면제받았다.
2. 법조인 경력
25살인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13기를 마치고 1983년 청주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임용된다. 이 시기에는 후일 보수진영의 거물이자 황교안의 경쟁자가 될 홍준표 검사와 같이 일한 적도 있었다. 이후 서울지검 공안부에 충원되면서 그가 얻은 별명은 '''Mr. 국가보안법'''[5] 이며, 김진태처럼 대표적인 공안검사로 알려져 있다.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임수경 방북 사건,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등을 담당했다.
1994년에는 법무연수원 교관, 1995년에는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장(부장검사)[6] , 1997년 사법연수원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재직 중이던 1998년에 그가 쓴 것으로 잘 알려진 저서인 국가보안법 해설을 출판했으며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당시엔 특검 수사팀의 일부로 활동했다.[7] 이후 1999년에는 서울지검 북부지청 형사 5부장을 거쳐 2000년 대검찰청 공안1과장, 2001년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장을 지냈고 다시 2002년에는 서울지검 공안2부장으로 전보되었다. 부장검사 시절동안 나름 힘이 센 지방 지청장과 서울에서만 돌았으니 더 높은 자리로 갈 것이 유력해보였고 실제로 2003년 검찰인사에서 부산지검 산하 동부지청 차장검사[8] 로 승진했다.
황교안은 노무현 정권 최고의 미운털이었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황교안은 참여정부시절 내내 차장검사만 무려 5년을 하며 눈 앞에서 여러 번 승진을 놓쳤다. 2004년 부산 동부지검 차장검사에서 검사장 승진을 목전에 두고 서울고검 검사로 발령을 받았다[9] . 이후 2005년 4월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로 자리를 옮겼지만 2006년 국정원 도청 사건과 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10] 으로 검사장 승진에서 다시 밀려나 2006년에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장으로 전보되었고 2007년에는 다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으로 전보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새로 임명된 공안통 김경한 법무부장관이 단행한 검찰인사에서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임명되며 검사장 승진 막차를 타게 되었다. 2009년에는 저서 집회·시위법 해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을 출판했으며 창원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전보되었다.
2010년에는 고검장 승진에 성공하여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냈고 2011년에는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저서 국가보안법 을 출판했다.
2011년 9월에 연수원 동기인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에 임명되자 신임총장의 선배/동기는 사직한다는 전통에 따라 검사 생활을 그만두고 법무장관 임명 때까지 법무법인 태평양의 형사부문 고문변호사로 재직했다. 또한 2011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과 CBS 자문위원[11] 으로 활동하였다.
3. 박근혜 정부 시절
3.1. 법무부 장관
2013년에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법무부장관 재임 시절에 그는 정점식 사법연수원 기획부장 등, 소위 공안통 검찰 간부들과 함께 2013년 11월 5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직접 청구했다.
3.1.1. 통합진보당 해산
'''황교안이라는 인물을 대중에게 알린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교안은 법무장관 재직 중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직접 청구했고, 변론에도 직접 나섰다. 최후변론에서 통합진보당 측 변호를 맡았던 이정희와의 최후변론 대결이 주목 받았다.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통합진보당 해산 지지가 더 높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보수진영에서 차기대권주자로 황교안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12] 그러나 이때만 해도 김무성, 반기문의 지지에 가려져서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어쨌든 헌재판결과 여론전을 승리로 이끈 실적을 인정받아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결론적으로, 통합진보당은 대한민국에서 정당으로 활동해서는 안 될 반헌법적인 정당입니다.'''
― 2014.11.25.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최후변론 전문에서
황교안이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 일화가 있다. 당시 통합진보당 측 변호를 맡았던 이재정 변호사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제20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재정 의원은 대정부 질의에서 황교안에게 "통합진보당 해산도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 대선 토론에서 이정희 대표가 '당신 떨어뜨리러 나왔다'라는 말을 괘씸하게 여긴 최순실 언니가 기획했다는 보도가 있다."고 말하자 황교안이 '그건 다른 누구가 아닌 내가 했다!!'고 반박. 이에 이재정은 '지금 그거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고 하고 오방끈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는데 황교안은 계속 '내가 사실이 아닌 걸 정확히 아니까 짚고 넘어가겠다'고 기싸움 시전.
여러 가지 의미로 레전드 영상이다 [13]
3.1.2. 국무총리
황교안이 국무총리가 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는 3연속으로 성균관대학교 출신이 됨[14] 으로써 이른바 '''성시경'''[15] 인사 중 하나가 되었다.
2015년 6월 18일 임명 동의안이 처리됨으로써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 찬성은 156표, 반대는 120표, 무효는 2표였고, 표결에 참여한 새누리당의 의석 수가 156석이므로 사실상 새누리당 전원이 찬성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16] 결국 56.1%라는 낮은 찬성률로 통과되었는데, 이는 총리 인사청문회가 생긴 이래로 3번째로 낮은 찬성률이라 여론 일각에선 앞으로의 국정운영이 쉽지만은 않으리란 전망이 있다.
해당 정부의 국무총리인 데다 검찰 출신으로 일해 온 사람으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사임 의사를 밝히고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국무총리로 내정되었지만, 야당이 사전 협의가 없었음을 이유로 국회 동의 절차를 거부하여 사실상 유임되었다.[17] 황교안의 책임도 있으므로 황교안도 사퇴하라는 요구가 많았으나, 국무총리로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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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6년 12월 9일[18] 박근혜의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권한을 대행하게 되었다. 제6공화국 성립 이후 고건 前 총리에 이어 2번째로 국무총리로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3.2. 대통령 권한대행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었지만 황교안 총리는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총리라는 점과 공안 검사였다는 점, 그리고 아래 나온 논란들로 인해 야권에서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박근혜 정부의 핵심 비리로 의심을 산 '김기춘의 아바타'라는 점과 논란의 엘시티가 황교안 총리 직후에 통과된 정황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 국민들 중에서도 박근혜 정부나 황교안 총리나 다를 바 없다는 시선을 가진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황교안 총리는 국무총리 재직 기간 동안 발언권이 센 총리도 아니었고 대통령에게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인물도 아니었다.
혹여나 황 총리 탄핵 소추안이 의결되면 탄핵심판 전까지 권한행사가 정지되고 다음 순위인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되며 총리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1/3 이상의 발의와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되기 때문에 야당 단독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통령도 탄핵되고 총리마저 탄핵된다면 국정의 공백이 매우 심화되기에 이 부분은 박근혜 탄핵을 지지하는 보수층에게도 반발이 컸다. 유시민 작가도 황교안 총리의 탄핵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야권도 국정 공백의 심화로 인한 역풍과, 황교안 총리를 탄핵하고 야권 성향의 총리나 거국내각 총리를 앉혔다가 그가 실수라도 저지르면 대선에도 영향이 간다는 문제점 때문에 황 총리의 탄핵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또한 유시민 작가는 이에 더해 어차피 권한 '대행'인 데다 황교안 본인이 원래 주도적으로 나서서 뭔가를 하려는 성향[19] 이 아니라 큰 문제가 아닐 것임을 썰전에서 밝히기도 했다.
고작 3~5개월 정도밖에 쓸 수 없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이라는 명패를 새로 만들었는데 직책에 집착하는 게 아니냐, 권위주의가 강하단 말이 있다. 과잉의전으로 논란을 빚기도 하였다. 이에 국무총리실은 해명자료를 내고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라는 명칭은 공식직함이며 공문서, 훈·포장 증서, 임명장, 외교문서 등에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각종 중요행사 경조사 시 화한·조화·축전 등에도 동일 직함을 사용한다"이라고 밝혔다.
황교안마저 탄핵된다면 국정혼란이 더 커지기에 결국 황교안 총리 본인이 국회와 잘 소통을 하고 적절하게 처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이 때문에 정/재계 원로인사들도 황교안 총리가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기 고건 총리가 했던 것처럼 크게 일을 벌이지 않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제1가치로 두고 충실하게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다만 고건 총리는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노 전 대통령이 곧 귀환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청와대의 업무를 넘보지 않았던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귀환은 상당히 불투명한 데다 만약 귀환하더라도 임기 말이라, 남은 임기에 제대로 국정운영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이므로 탄핵으로 장기간 국정에 공백이 큰 상황. 따라서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와는 양상이 다른 만큼 황교안 총리가 적극적인 국정수행으로 소홀해진 경제와 민생을 챙기는 것이 옳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통합진보당을 해산했을 때부터 박 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감으로 점지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박사모단체쪽에서 '황교안 대통령만들기' 각종 모임들을 만들었다.
황교안 총리의 예상 대선 지지율이 10%대를 넘기면서 오래전부터 대선 후보로 여론의 입에 오르내리는 안철수나 안희정보다 높게 집계되고 있는 것이 특이한데, 박근혜 대통령보다는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한다는 여론이 반영되었다고 보인다.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있느냐, 여론조사에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 할 생각이 없느냐 등 대선출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일체의 답변을 하지 않으면서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대선출마설이 크게 나왔다. 인명진 비대위원장과 친박계 홍문종 의원[20] 이 공식 러브콜을 한 상황.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문형표가 체포되었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황교안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된 비리에 직접적으로 개입했거나, 밀월 관계를 최소한 인지하고 있었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주장이 있다. 모르고 있었으면 모르고 있는 대로 '허수아비 총리' 인증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와 관련해서 삼성전자 부회장이며 당시 삼성그룹의 최고 실권자였던 이재용의 구속영장이 기각됨으로 사실관계 입증이 힘들어져 차후 추궁이 가능할지 불투명해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은폐 및 방해에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크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청문 초기부터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안 통과로 인해 모든 직무가 정지되었으므로 황교안 총리에게 협조를 구해야 하고,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을 시 황교안 총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왔다. 현 행정부 수반은 황교안 대행인데, 직무정지된 박근혜가 여전히 대통령 권한을 남용하고 있는 것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부터, 청와대 행정관들의 청문회, 특검수사, 재판, 탄핵심판 출석을 막았다는 의혹이 있고, 구치소청문회에서는 청문위원들에 의해 법무부와 구치소에 수감 된 최순실이 실시간으로 연락 되고 있으며, 정권 차원에서 최순실을 비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2월 4일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을 위한 진입이 실패했다. 형사소송법상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형사소송법 110조 1항)는 규정 때문이었는데 황교안 총리에게 공식적으로 협조를 구했으나 제대로 된 답변이 돌아오지 않아 그리 되었다는 것인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청와대의 경우 책임자는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으로 봐야한다며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 주장하고 있다. # 참고로 대통령 권한 대행은 청와대에서 기거하지도 직무를 보지도 않고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경호실장의 보좌를 받는 것도 아니므로 여기서 책임자를 황교안 대통령 직무권한 대행으로 봐야하는지 아니면 여전히 청와대에서 직무를 보는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 등으로 봐야하는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정권의 올바른 수사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은 충족시키지 못했다.
2017년 3월 15일 국정 공백의 안정과 공정한 대선관리를 위해 자신은 19대 대통령선거에서 불출마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반기문의 불출마 선언 이후 범여권에서는 그나마 지지율이 높은 황교안이 불출마 선언을 한 것에 대해 이런저런 해석이 오가고 있다. 대체적으로는 '불출마하는게 더 이득이라고 황교안 본인도 계산했다'는 해석이 있다. 전체 지지율도 그다지 높지 않은 데다, 현직 대통령 권한대행이란 임무를 포기하고 대선 후보로 출마하기엔 명분이 너무나 부족하며 가뜩이나 혼란한 국정을 내팽겨쳤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 뻔한 상황.
이를 고려해서 차라리 19대 대선은 포기하고 권한대행의 업무에 집중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게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 한편으로는 반기문이 각종 검증과 구설수로 인해 탈탈 털리는 모양새를 보고 굳이 더 정계에 발을 들이밀지 않고 후퇴하려는 움직임으로 보기도 한다. 아울러 황교안도 정석적인 정치가라기보다는 반기문처럼 관료 성향이 강한 인물이라 무조건 정적이 존재하는 정치판에 뛰어들기가 거북했을 수도 있고 황교안 본인도 가능성이 낮은 시도를 상당한 위험부담을 감수해가면서 할 정치적 목적과 사명감을 가졌다고 보기 힘들다. 그리고 비록 반년이지만 국정전반을 총괄한 사실상의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관심을 받았다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도 있다는 평.[21]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후보가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사표를 제출했고 다음 날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수리하면서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는 결말 지어졌다.#
3.3. 국무총리 사퇴 이후
제19대 대통령 선거 이후 행보를 보면 정치에 뜻이 있다는 심증이 굳어진다. 2017년 5월 11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회동에서 문 대통령이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총리직 사퇴를 고집했다. 유일호[22] , 김관진, 한민구 등 박근혜 정부 각료들이 대부분 문재인 정부의 후임 인선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현직을 지킨 것과 대비된다. '공무원 황교안'이 아닌 '정치인 황교안'의 행보이며, 문재인 정부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다른 견해로는 전임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한 인사가 새 대통령이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탄핵정국 이후 전 정권의 실질적 책임자로서 용퇴하지 않고 내각에 남아있는다면 신임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부분이 고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황교안 총리는 검찰출신으로서 동기나 후배가 검찰총장이나 법무부장관 등 검찰수장이 되면 용퇴하는 법조 기수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페이스북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사드배치 관련 중국의 뒤통수를 쳤다는 의혹,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외압 의혹 등 본인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더 나아가 "사드 배치는 갈수록 고도화하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필요 최소한의 조치", "최근 대통령특보 한 분이 한•미 동맹을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을 하고 (있다)"는 등 외교안보 이슈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밝히고 있다. 페이스북 포스팅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행간에 자기 정치철학이 담긴 뉘앙스를 물씬 풍긴다. 자유한국당 페이스북 정치의 대가인 홍준표 대표보다 평균 좋아요와 공유 횟수가 더 많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다자대결 여론조사에서 13.9%로 3위를 차지했는데,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등 지난 대선에서 출마한 인물들을 제치고 야권에서 1위를 기록했다. 자유한국당 인사 중 1위인 나경원 후보와는 9% 차. #
본인의 경력으로 보나 이념으로 보나 정치에 진출한다면 자유한국당으로 나올 가능성이 백프로다. 자유한국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홍준표의 약점을 메울 수 있는 인물로 기대를 거는 분위기가 있는듯 하다. 홍준표가 확고한 보수우파 스탠스로 24% 득표를 얻어냈지만, 잇따른 설화, 정제되지 않은 화법, 빈정대는 말투, 꼰대스러운 이미지 등으로 깎아먹은 표도 많았다는 지적이다.[23] 그에 비해 황교안은 통합진보당 해산에서 보여준 보수 스탠스는 홍준표와 거의 동일하지만, 모범생스러운 외모, 차분한 말투, 흥분하지 않는 태도로 홍준표의 약점을 메운다는 것이다. 또한 홍준표는 박근혜 비난 발언, 바른정당(특히 배신자로 분류되는 장제원, 권성동, 황영철 등등) 복당으로 박근혜 지지자들이 다수 돌아서서 득표율이 24%에 머물렀으나, 황교안은 집토끼를 잡는 데 더 유리하다는 평이다.
단, 홍준표는 비박계였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경상남도지사로서 중앙정치에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박근혜 정부의 실정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자유로운 면이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반면 황교안은 전형적인 성시경 인사[24] 였으며,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로서 국정실패에 대한 책임이 있고, 법무부 장관으로서 김기춘-우병우의 사정라인 장악에 보조를 맞췄다는 의심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25] 고향이 서울이라 지역기반이 약하다는 게 정치인으로서 약점으로 꼽히며, 특유의 보수적 기독교 신앙관은 타 종교 신자들뿐 아니라 기독교 내에서도 반감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26] 게다가 서울은 우파 정당의 전통적 약세 지역인 데다 탄핵 이후 한국당에 대한 민심이 제일 안 좋은 광역단체이기에 민주당에서 누가 나와도 황교안의 승리는 거의 불가능한 편이다. 특히 민주당 후보가 현역 재선의 박원순 시장, 즉 박 시장의 3연임 도전이면 그에게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닐 공산이 크며 그렇지 않다고 해도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이 패배했다고 가정하면 그 책임자들 중 한 사람으로 찍혀 정관계에서 강제로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로 행적이 잠잠했었지만 최근에는 책을 발간하며 광폭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 그가 정치를 재개하게 된다면 자유한국당에 입당할 가능성이 크며 자유한국당 당대표로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 정치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재 양천구 성일교회[27] 에서 전도사로 일한다고 한다.
SBS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단독] 황교안 "한국당 대표 선거 출마"..친박·TK 결집 자유한국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다고 한다. 자유한국당 내에서도 특히 친박계가 황교안 전 총리와 가까웠던 것을 생각하면 친박계가 당을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해서 꾸준하게 황교안 전 총리를 설득해왔고 결국 황교안 전 총리가 당권에 도전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원내대표 선거 때 친박계가 나경원 원내대표를 밀었고 그래서 당선이 되기는 했지만, 나경원 원내대표가 본래는 친박계가 아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친박계로서는 황교안 전 총리 말고는 자신들이 당권을 잡을 수 있는 카드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한편에서는 황교안 전 총리가 당대표로 나오는 게 대선을 생각하면 그에게 있어서 손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황교안 전 총리의 인기는 그가 국무총리였단 점, 박근혜 전 대통령 때 국무총리이기는 하지만 친박이란 이미지보다는 대통령 대행이란 이미지가 더 크다 점, 정치인과는 조금 다른 신비주의 같은 게 있단 점, 그와 더불어 현재 야당에 강력한 카드가 없단 점 등등이 있는데. 여기서 정치인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그 신비주의가 지금부터 당대표를 해서는 대선까지 간직할 수가 없을 텐데. 과연 그가 대선까지 그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란 거다. 실제로 당대표 전까지는 실무,행정 능력 등으로 이미지가 좋았던 강력한 대선 후보들이 당대표를 맡고 정치인 이미지가 너무 생긴 나머지 강력한 대선 후보에서 거론조차 안 되게 추락한 선례들이 있다. 그 정도로 당 대표라는 자리는 너무 정치적인 자리이며 리스크가 크다. 게다가 황교안 전 총리는 정치 색채야 뚜렷했다지만 자기 일만 하면 되는 전통 관료 출신인지라 앞 뒤에서 쏟아질 정치공세에 얼마나 잘 대응할 수 있을지, 어지러운 자유한국당 내부를 잘 평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리고 그 우려는 2020년 4월에 현실이 되었다.
4. 정치 활동
4.1. 자유한국당 입당
2019년 1월 15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입당 기자회견에서 "나라상황이 총체적 난국",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을 바로 잡겠다"고 변을 밝혔다. 40분에 걸쳐 진행된 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23개 中 13개) 그중 "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있었던 점을 들어 대국민사과와 석고대죄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란 질문에는 " 송구스럽게 생각하지만 함께 일했던 모든 일과 공무원들을 적폐라는 이름으로 몰고가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입당 직후 상임고문 직을 주는 것과 관련하여 비대위에서 논의가 있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국무총리까지 지내신 분이니 그에 합당한 예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취지로 황교안 전 총리에게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직을 주는 것을 제안[28] 했지만,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일부 비대위원들의 반대[29] 로 논의가 보류되었다.
입당하자마자 언론에서는 황교안 전 총리의 한국당 입당을 앞다투어 보도했고 심지어 이른바 친황계[30] 가 형성되었다고 보도한 언론도 있다.
4.1.1. 자유한국당 대표
황 전 총리는 2월 27일 열리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당대표로 출마했다. 상대 후보는 김진태, 오세훈 후보.
전체 국민들 사이에서는 3명의 후보들 중 지지도 및 호감도가 오세훈 후보에게 밀리나, 당내 지지도 및 호감도는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2월 19~21일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 대표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37%가 오세훈 후보, 22%가 황교안 후보, 7%가 김진태 후보를 답했다. 하지만 한국당 지지층에서만 보면 황교안 후보가 52%, 오세훈 후보가 24%, 김진태 후보가 15%로 조사되었다. 호감도 조사에선 오세훈 후보(41%), 황교안 후보(27%), 김진태 후보(13%) 순이며, 한국당 지지층만을 놓고 보면 황교안 후보(71%), 오세훈 후보(49%), 김진태 후보(38%) 순이다.
2019년 2월 2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다음 날인 28일에는 한선교 의원을 새로 사무총장에 임명하며 대표로서 행보를 시작했다.
한편,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1일과 2일 이틀동안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월 정례조사에서 ‘황교안 신임 당 대표가 앞으로 당 대표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7.7%가 ‘잘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3월 4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황교안 대표 체제의 당직 인선을 확정할 예정이다.
주요당직자로 사무총장에 4선의 범친박계 한선교 의원, 전략기획부총장에 친황계 핵심 추경호 의원[31] , 대변인에 민경욱 의원과 전희경 의원, 중앙연수원장에 친박계 정종섭 의원, 인재영입위원장에는 비박계 이명수 의원이 각각 임명될 예정이다.
또 중앙여성위원장은 송희경 의원, 중앙청년위원장은 신보라 의원이 각각 임명된다. 또 디지털정당위원장은 비례대표 김성태 의원, 대외협력위원장은 비박계 이은재 의원, 재외동포위원장은 비박계 강석호 의원, 노동위원장은 임이자 의원, 재해대책위원장은 김정재 의원, 상임특보단장은 비박계 이진복 의원이 각각 임명되었다.
또 이날 최고위는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를 신설, 위원장에 비박계 신상진 의원을 임명하였다. 신적폐저지특별위원회도 신설해 친박계 김태흠 의원을 위원장에 임명하였다. 또 자유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에는 비박계 김세연 의원을 앉혔다.
2019년 3월에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한국당이 가장 주요하게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로 보수통합과 중도확장, 여야협치를 꼽은 것으로 조사됐다. 자유한국당 지지층[32] 과 보수층[33] 에서는 ‘극우세력을 포함한 보수통합’이 절반 이상의 대다수로 나타났다. 또한, 50대[34] , 부산·울산·경남[35] 과 서울[36] 에서도 ‘극우세력을 포함한 보수통합’이 다수였다.
3월 4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만났는데, 황 대표가 "김경수 지사 댓글조작사건에 대해 당에서 어떻게 하고 계시나"라고 물었고, 이에 이정미 대표는 "정의당을 처음 찾아오셔서 드루킹 사건을 말씀하시는 건 참 저로서는 놀랍다"라고 답했다. 작년에 노회찬이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자살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대표가 된 이후 과거에 비해 직설적·공격적인 화법으로 문재인을 비판하고 있다. '''문세먼지, 사람이 먼지인가''' 등의 패러디 표현을 쓰면서 문재인의 미세먼지 대책을 비난한 게 대표적 예시로 꼽힌다.[37][38] 또한 성창호 판사 기소에 대해서는 "좌파독재가 시작됐다. 누가 봐도 명백한 김경수 판결에 대한 보복이고, 사법부에 대한 겁박", 문재인식 외교에 대해서는 "중국을 향해선 한없이 굴종적 모습을 보이면서 동맹국인 미국을 향해서는 한번 붙어보잔 식의 거꾸로 된 외교를 펼친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노총 간 갈등에 대해서는 "촛불청구서를 찢어버리라"라고 하며 보수 우파 진영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었다. 자유한국당 당원들이 '강하고 당당한 대표'를 원하는 건 분명하지만, 본인의 인기 요인 중 하나였던 신중하고 조용한 이미지와는 대비되는 행보인지라 본인에게 어떻게 작용할지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일단 이러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강경한 화법을 통해 이탈했던 우익세력을 다시 결집하며 핵심 지지층의 기반을 다지는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4.1.1.1. 삭발 투쟁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장관에 임명된 것에 항의하여 2019년 9월 16일 삭발식을 진행했다. 좌파 진영에서는 소설가 박완서의 글 <도둑맞은 가난> 을 인용하면서 기득권층 인사가 서민과 저소득층의 투쟁방식을 빼앗았다고 비판했고 자한당 정치인들의 삭발투쟁이 줄을 이으면서 삭발한 정치인은 국회의원 공천 안정권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4.1.1.2. 단식 투쟁
2019년 11월 지소미아 유지 및 패스트트랙 철회, 공수처 철회를 요구하며 청와대에 영수 회담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황교안 대표는 지소미아 유지, 선거법 저지, 공수처법 저지, 문재인 정부 국정 대전환을 요구하며 11월 20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정당들은 이러한 행태가 몽골텐트를 동원하고 임신한 당직자까지 상시 동원하는 등# 황제단식이자 명분도 없는 단식이라고도 비판했다. 보수진영과 자유한국당 내에서도 황 대표의 독단적이고 기습적인 단식 개시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문 대통령, 미동도 안 할 것"이라며 평가절하했고, 박지원 무소속 의원도 "이런 방식의 제1야당으로는 국민의 눈높이에 부응할 수 없다. 위기를 단식으로 극복하려 해도 국민이 감동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단식의 파괴력과 진정성이 의심받은 것으로, 박찬주 영입과 계속 삐걱대는 리더십으로 불거진 사퇴론을 덮기 위한 꼼수로 바라보는 정치인들이 많다. 한편 일각에서는 황 대표의 정치경력 부재를 들어 이것이 당 패권을 위한 고차원적인 술수라는 비난에는 선을 긋는다.
황 대표는 일반적인 단식과 달리 소금을 일절 섭취하지 않고 물도 충분히 마시지 않으며 엄동설한에 노상에서 버티는 가장 극단적인 방식을 택했다. 일반적인 단식의 경우 맑은 정신과 활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2리터 정도의 물과 2티스푼 정도의 소금을 섭취하며 진행하는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충분한 이슈가 되기도 전에 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량 섭취 없이는 사람에 따라 한 달에서 수 개월까지도 버틸 수 있지만, 소금과 물을 섭취하지 않아 전해질 균형이 붕괴되면 일주일을 버티기 어렵다. 몇몇 사람들이 8일 밖에 안했는데 왜 실신을 하냐고 말하는데 고령의 나이, 나트륨 결핍, 추운 날씨, 수분 섭취 부족을 고려하면 8일로도 충분히 실신할 수 있기는 하다. 물론 3일차부터 몽골 텐트안에서 온매트랑 전기 장판을 깔고 잠바랑 목도리,귀마개로 완전무장을 했지만. 페이스 조절을 초반부터 실패하니 저렇게 몸이 버티질 못한 것이다.
결국 8일차 투쟁 도중 의식을 잃은 것을 아내가 발견하여 병원으로 이송되었다.[39]
아무것도 얻은 것 없는 초단기 단식으로 조롱받았으나 소기의 성과는 있었다. 기습단식으로 당 전체가 초비상사태에 돌입하면서 당권과 리더십을 둘러싼 분란이 일소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4.1.1.3. 국회 중앙홀 농성
2019년 12월 2일 당무에 복귀하였고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1 협의체가 12월 10일 2020년도 512조원 예산안의 처리순서를 고쳐 빠르게 통과시킨 것을 날치기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패스트트랙 철회, 공수처 철회를 요구하며 12월 11일부터 국회의사당 중앙홀 계단에서 24시간 농성을 시작하고 16일부터 자유한국당은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황교안이 직접 국회의사당에 진입한 태극기를 든 시위대를 만나고 연설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2월 24일 건강 악화로 병원에 다시 입원했고 12월 28일에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였다.#
4.1.2. 미래통합당 대표 시절
자유한국당이 미래통합당으로 신설합당되었지만, 당대표직은 이어서 맡게 되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는 박형준과 같은 친이계 출신 인사를 적극 등용하였다.[40] 함께 최고위원으로 활동한 이준석 최고위원은, 황교안 대표가 친박계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 대표가 되었음에도 실무적으로는 친이계 인사를 중용하고 있다며 다소 의아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4.2.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41]
2020년 1월 1일 전광훈 목사에 대해 아이디어가 많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에 대한 질문에는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통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날인 1월 2일 전광훈 목사의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진행되자 SNS에 글을 올려 종교 집회에 대한 탄압이 국민의 저항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광훈을 옹호하였다. 아울러 1월 3일 자유한국당 주관으로 문재인 심판 국민대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1월 3일부터 정치 집회로 장외투쟁을 이어가면서 "자유한국당 지도부, 중진들과 함께 수도권 험지에 출마해 필사즉생으로 싸우겠다."라는 발언을 거듭하고 있다. 종로에 출마해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겨룰 것이라는 설, 전통적으로 민주당 세가 강했던 강북에 출마할 것이라는 설 등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당 내에서 수도권 중 자유한국당의 험지로 불리는 금천, 관악, 구로[42] 에 출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낙선의 가능성이 종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 적절한 실리를 챙길 수 있으면서도 수도권의 험지 출마라는 명분 쌓기에도 좋다는 당내 의견이 나오고 있다.
2월 2일 발표된 종로구 총선 여론조사에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에게 패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한국당에서는 황 대표의 맞대결보다는 과거 19대 총선 때 사상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손수조를 붙였던 식으로 언더독 전략을 구사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그가 종로구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출마할 수 있다며 '''이길 수 있는 험지'''를 찾는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유력한 출마지로 거론된 곳에 출마를 준비하는 황희[43] , 김민석, 전현희, 권혁기는 황교안을 조롱하기에 이르렀다. 그 중 권혁기와 전현희가 준비하는 용산구와 강남구 을은 전통적으로 보수 지지층이 많아서 이 쪽 출마설도 나왔다. #%
시간이 지나고 결국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이끄는 한국당 공관위는 황교안에게 '종로 출마를 하고 아니면 총선 불출마를 하라'며 최후 통첩을 했다.# 이에 황교안은 2월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44]
2월 24일. 황교안 대표는 오늘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신천지 교인을 중심으로 감염증이 전국적으로 퍼진 것에 대한 당 차원의 대책을 묻는 질문에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밀어선 안 되며 이미 전국적인 사태가 돼 있다고 말했다. 신천지 교인이 연락이 안 돼 추적을 통한 방역이 어렵다는 우려가 크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특정 교단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
대통령과 여야 수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 자리에서도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청했다. #
박근혜의 옥중 서신에 황교안 대표가 반응을 보였다. 황교안, 박근혜 옥중서신 “천금같은 말씀···통합 과제 챙기겠다”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에 대해 발언했다. 황교안 "코로나 추경안, 국민에게 빚 내서 버텨보라는 식
3월 28일 SNS에 “종교계가 (물리적 거리두기에) 전혀 협조하지 않은 것처럼, 마치 교회에 집단감염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신천지 여론을 악용해 종교를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고 주장했다. 황교안 "교회는 신천지와 다르다, 매도해서 안 돼" 그러나 일부 교회는 3월 29일 예배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라 방역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대통령 호소에도 일부 교회 예배 강행
유세중 이낙연 후보가 생각이 다르더라도 미워하지 말자는 말을 했는데 같은 날 황교안은 무능한 정권, 이들을 미워하겠다고 SNS에 올렸다가 글을 내렸다. 이낙연 "미워하지 않겠다" 황교안 "미워한다" 신경전(종합)
선거 당일, 출구조사에서 44.8%를 득표할 것으로 예측되어 53%의 이낙연 후보에게 패배할 것으로 예측되었고, 실제 득표는 출구조사보다 훨씬 더 차이가 벌어져[45] 40%도 넘기지 못하고 최종 득표율 39.9%로 참패했다.
4.3. 선거 후
출구조사 결과는 110~130석 정도로 '''일반적인''' 출구조사의 승자 편향[46] 을 감안하면 그래도 지도부가 어느 정도의 할 말은 있는 수준이었으나, 막상 표를 까보니 110석도 안되는 최악의 참패에 점점 가까워지자 결국 밤 11시 43분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구에서 패배 뿐 아니라 총선의 패배를 인정하며 일선에서 모든 당직을 내려놓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당대표 자리에서도 사퇴했다. 공교롭게도 선거 당일이 황 대표의 63번째 생일이었는데 '''자신의 생일에 정치 인생 최악의 패배를 맞이한 셈이다.'''
결국 황교안의 당대표 행보는 이렇게 용두사미로 끝났으며, 사실상 정치적 생명이 끊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친박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화려하게 당대표로 입성했지만, 관료 출신의 정치인의 장단점이 황교안 대표에게 제대로 드러났다. 법무부 장관-국무총리직을 역임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는 확실히 얻어갔지만, 당내에 계파의 장악력이 부족했다.[47][48]
때문에 국회에서 움직임을 보이기보다 농성이나 여당을 공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선거기간이 다가오면서 더불어민주당이 무대응으로 일관하자 그 이상을 해내지 못했으며, 실제 총선 홍보 전략에서도 황교안 본인, 당 차원 모두 문재인 정부와 국무총리 후임자인 이낙연 후보,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으로 일관하면서 종로구 지역정책, 현안에 대한 몰이해[49] 또한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되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SBS 이호건 기자가 종로에서 이루고자 하는 바와 본인의 강점을 질문했는데 지역현안이 아닌 정권심판만 강조한 비디오머그 인터뷰. #
분명히 황교안 대표에게도 경제 문제와 대북 문제, 조국사태, 코로나19[50] 등 여론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그에 대안들을 제시하지 못한 채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어버린 선거전략도 패착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무엇보다 중도표를 잡을 수 있는 천운의 상황들이 분명 존재했음에도 그럴 때마다 대책이 없는 망언이나 일삼으며 중도층의 지지를 잃어갔고, 철밥통 친박들이나 극우 지지자 지키기에만 급급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총선의 핵심인 공천에서도 후보등록일 직전까지 후보가 뒤바뀌는 상황이 일어나며 당의 컨트롤타워 역할도 해내지를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김대호, 차명진, 주동식이라는 최악의 막말 엑스맨에 연달아 걸리면서 모조리 공멸하는 결말을 맞았다.
이렇게 당대표로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보수정당의 역사 중 2000년대 이후 치뤄진 선거에서 노무현 탄핵 사태 이후 치뤄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의 패배보다 더한 역대급 참패[51] 를 당해 정치 생명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사실 황교안이 당 대표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탄핵 프레임에 갇힌 미래통합당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반증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즉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황교안을 내세웠냐'''라는 것. 이미 보수에서는 황교안 이전에 홍준표를 선택, 당 대표까지 밀어주면서 내세웠지만 홍준표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참패하면서 심각한 역량 미달을 드러냈다. 때문에 보수에서는 어떻게든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했고 이때 선택한 인물이 바로 황교안이였다.
하지만 황교안도 홍준표와 마찬가지로 대표 시절 내내 미숙한 행보를 보이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퇴장한다. 여의도에 기반이 전무한 황교안이 정치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종로에서 승리하거나 당 차원에서 승리한다는 성과가 필요했으나, 완전히 실패로 끝나며 적어도 당분간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상실했다. 그나마 희망이라면 보수진영 자체가 인물이 없다는 점과 친황계 인사들이 어느 정도 국회에 들어왔다는 점이 있다.[52] 나이가 더 젊거나 경쟁력이 있으면 차차기 대선을 위해 움직일 수 있겠지만 애매한 상황. 당장 오세훈이 지난 총선에 종로에서 황교안보다 더 낮은 득표를 했지만, 광진으로 출마하면서 복귀했다.[53] 이후 조중동 보수언론에서 황교안에 대한 태세전환을 시전하며 일방적인 비방과 적극적인 손절에 나서고 있다. 동아일보의 대기자는 칼럼을 통해 배경 분석이 없는 일방적인 황교안 까기를 시전하며 # 황교안의 역할은 끝났다며 정계 은퇴를 종용하는 주장을 내뱉는가 하면, 조선일보에서는 윤여준, 김종인의 말을 인용하며 이게 다 황교안 탓이다를 시전하는 중. @ $ 오죽하면 황교안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측에서도 총선 내내 황교안의 메시지에 분석이나 평가없이 일방적으로 옳다고 해대며 퍼뜨리기를 해온 곳은 다른 누구도 아닌 보수 언론들임을 성토하며 이제와서 황교안에 대해 태세 전환을 하냐고 평가하는 중이다. @
실제로 보수언론의 황교안 책임론은 생각보다 지엽적인 상황. 21대 총선은 미래통합당의 참패를 넘어 대한민국의 선거 지형이 바뀌었다는 분석들이 줄곧 나오는 상황이다. 즉, 황교안 개인의 실책은 크고 대표로서 패배에 따른 책임은 분명히 막중하나 황교안이란 하나의 요소만 가지고는 이 정도로 역대급 대패 상황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당장 조선일보에서 황교안 때리기에 열광하는 동안 조선일보 계열사인 TV 조선만 하더라도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가 강적들에 출연하여 보수는 비주류이지만 아직도 자신들이 주류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일갈하였다.
차기 대권을 바라본다고 하지만 친황세력에서 곽상도, 김석기, 김도읍 외에는 초선이 대다수인 경우가 많고, 친유, 친이, 친홍 등 비박계에서 그를 다시 후보로 추대할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왜냐하면 친유의 경우는 민현주 공천파동, 정병국 컷오프 사건[54] , 새로운보수당 당직자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고, 이미 친유와 친황은 틀어진 관계이다. 홍준표, 김무성과 같이 황교안에 대해 강한 비토를 행사하는 인물이 유승민이다.
친홍의 경우도 홍준표가 컷오프되고, 그가 다시 복당해도 이미 사이가 틀어져버린 상태이다. 황교안은 이미 선거에서 패배한 반면, 홍준표는 선거에서 승리한 상태이고, 홍준표 입장에서도 본인의 경쟁자는 황교안이 아닌 유승민, 오세훈, 원희룡에 해당돼서 큰 의미를 둘 이유도 없고, 황교안과 같이 협조할 이유도 없다.
친이의 경우도 대다수가 친유, 소장파, 친홍, 친무와 가까운 관계를 가지고있기 때문에 황교안을 지지할 가능성이 낮다. 바른정당 복당파나 새로운보수당에 합류한 인사거나 이들이 친박, 친황과는 견원지간 수준이라 협력할 가능성이 낮다. 친박은 21대 총선 패배의 요인으로 회자되어, 이로 인해 와해될 가능성이 높다. 즉 무소속으로 나오든 당적을 가지고 나오든 황교안에게 있어서는 불리한 상황이다.
친무의 경우, 그나마 친박 컷오프하고 자리를 획득한 친유, 소장파, 홍준표 외에는 공천을 받은 친홍, 김형오가 공천한 것과 더불어 친박 청산으로 공천을 받은 친이와 다르게 친무는 황보승희, 김학용 외에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지역구 내 중진인 강석호, 박명재는 경선 기회조차도 박탈당한 수준이고, 나머지는 컷오프 대상이거나 공천에서 배제되었다. 김무성도 21대 총선 이후 김웅을 초대한 후, 황교안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한 편이다.
2020년 7월 9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살하면서 공석이 된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에 도전하며 정치적 재기를 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법무부장관, 국무총리, 자유한국당 및 미래통합당 당 대표를 거치면서 수없이 논란을 일으키고 소란을 일으킨 사람인데다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크게 패배한 인물이라서 국민들 사이에서 이미 '실패한 정치인'이 되버린 황교안이어서 가능성은 없다. 애초에 국민의힘, 특히 공천권을 쥔 김종인 비대위원장 측에서는 황교안을 서울특별시장 선거 카드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임명한 인사 중 상당수가 비박계 인사인지라 친박 핵심인 황교안에게는 불리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2020년 8월 사랑제일교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과 8.15 광복절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는 이들 사건의 주모자 전광훈과 친밀하게 지냈던 황교안에게 카운터펀치를 먹였다.
한편, 9월 21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패스트트랙 1심 재판에 참석하면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2020년 10월 19일, 박훈 변호사가 ‘라임 사태’ 핵심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옥중서신 관련, 검사장 출신 야당 정치인으로 지목된 이가 "황교안 전 대표의 최측근"인 윤갑근이라고 주장했다.
2020년 10월 28일 황교안이 국민의힘 종로구 조직위원장에서 사퇴하였다. 일각에서는 대권 후보 준비를 하는 시나리오와 정계 은퇴 시나리오 그리고 당무감사 회피용으로 미리 빠져나왔다는 시나리오 중 하나라고 했다.
2020년 12월 10일 공수처법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페이스북을 통해 밝히며 약 8개월만에 SNS 활동을 재개했다. #
2021년 2월8일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책을 내고 정계에 복귀한다
[1] 이 선거가 치러지는 날이 황교안의 63번째 생일이다.[2] 원래는 3남 3녀로, 위에 형이 1명 있었으나, 피난 도중 잃었다고 한다.[3] 고등학교 학생회가 폐지되면서 대신 생긴 조직. 자치기능이 없다는 점에서 학생회와는 다르긴 하지만 요즘 말로 보면 황교안은 1975년부터 1976년까지 학생회장을 지낸 것이다.[4] 황교안은 72회 졸업생이며 해당 기수는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시행 직전 마지막으로 입학한 기수다. 경기고등학교를 비롯한 모든 서울시내 고등학교 입시가 폐지된 건 1974년부터이다. 또 화동 교사 마지막 졸업생이기도 하다. 고교 동기로 고승덕, 이종걸, 노회찬, 김기준, 김용덕 대법관이 있다. 72회는 졸업생 720명 중 450여명이 서울대에 진학했다.[5] 실제로 공안 수사의 교과서인 <국가보안법 해설>을 쓴 사람이다.[6] 게다가 이 시기에는 대통령이 김영삼이었기 때문에 거제 인근의 통영지청의 위상이 제법 높던 시절이었다.[7] 당시 특검에서 황교안을 지휘했던 김형태 변호사는, 황교안이 친정인 공안을 수사해야 하는 상황이라 다시금 공안으로 돌아갈 상황을 위해 손을 뗄 것을 요구하고 황교안이 이를 수락했으나, 정작 공안이 민간 조사관들을 앞세워 임의제출한 수사자료를 요구할 때 이에 합류하면서 검찰을 위해 사건의 진상을 숨겨버린 장본인으로 언급하고 있다.#[8]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차장검사가 있는 차치지청이다.[9] 검찰 내에서 고검검사는 한직으로 인식되며 고검 발령을 '정학 맞았다'고 표현한다.[10] 이 때 그를 승진시킨 김종빈 검찰총장은 천정배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인해 생긴 갈등 끝에 사직했고 결국 황교안은 중앙지검 1차장, 3차장이었던 황희철, 박한철과 달리 승진에서 물먹었다.[11] 황교안이 독실한 개신교 신자여서 초빙된 것으로 추정.[12] 현재 박근혜가 탄핵이 되고 정권 교체가 되면서 비난이 사그러들었지만 당시 김무성은 킹무성, 차를로스 성 등등 온갖 멸칭으로 불리며 당시 대통령인 박근혜보다 더 많이 비난받았다.[13] 황교안은 '거만하다' vs. '점잖으면서 당당하다'고 호불호가 갈렸고, 이재정은 이재정대로 '사이다였다' vs. '국회의원으로서 갑질이다'라고 평이 엇갈렸다.[14] 특수통 검사 출신의 정홍원 총리(성대 법학과), 고위경찰간부 및 여당 원내대표 출신의 이완구 총리(성대 행정학과), 그리고 공안통 검사 출신의 황교안 총리(성대 법학과)[15] 박근혜 정부 들어 '''성'''균관대·고'''시'''출신·'''경'''기고 출신이 고위 공직자에 많이 임명되었음을 가리키는 말. 참고로 입법부인 국회에서 성.시.경에 해당하는 대표적 인물은 새누리당의 정우택 의원이다. 당시 학력고사 최상위권 문과생들은 전기에 서울대학교 법대를 쓰고 후기에 성균관대학교 법대를 쓰는 게 공식이었다 [16] 바꿔 말하면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에서는 무효 2표를 제외하고 전원 반대했음을 의미한다.[17] 정치평론가들 중에는 이때 야당이 청와대의 김병준 카드를 받았어야 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병준은 노무현 정부에서 기용된 경력이 있어 비교적 친 야당 성향이며, 큰 야심이 없는 인물이었기에 여소야대인 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김병준 총리가 권한 대행이 되었다면 야당이 정국을 주도하는 데에 유리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란 해석이다. 예를 들어 특검 연장을 승인했을 가능성도 황 대행 체제보다는 훨씬 높았을 것이다.[18] 사실 권한대행이 되기 전인 11월부터 이미 대통령이 가기로 약속된 행사를 대신 가곤 했었다.(물론 총리 신분으로 대통령 대신 참석한 거라 그게 권한대행은 아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레전드급 쇼크로 10월 말부터 촛불집회가 계속 열리자 청와대는 실질적 국정 중단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박근혜는 서문시장 화재 후 방문하기 전까지 행사는커녕, 외부에 나오지 않았고, 대통령이 11월 중 참석하기로 약속되어 있던 수많은 공식행사 참석을 취소하거나 그 행사들 중 일부를 거의 반강제로 연기했었다. 그중 상황상 갑자기 미룰 수도 없고 누구라도 대통령 대신 가야 하는 행사들에 황교안이 갔었다. 대표적으로 후술된 APEC 정상회담과 무역의 날 행사가 있다. 사실 이례적이다 못해 심히 불미스러운 일로, 대통령의 APEC 정상회담 불참은 참가 20여 년 만에 처음이었고, 무역의 날 행사 불참은 행사 50여 년 동안 한 번밖에 없던 일을 불미스럽게 2번째로 한 것이었다.(첫 번째는 노태우였지만, 국가적 문제가 아니라 그해 해외순방 일정 때문에 취소된 것뿐이었다.)[19] 2016년 12월 9일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는 황교안 총리를 가리켜 "범생이 스타일이다" 라고 언급한 바 있다.[20] 두 사람이 독대했으며 대선출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홍문종 의원은 이 독대에 대해 '그냥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다며 긍정도, 강한 부정도 하지 않은 상황.[21] 실제로 역대 대통령 권한대행 중 쿠데타를 일으켜 권한대행과 대통령이 된 박정희를 제외하면 최장 기간 권한대행을 했다.[22] 심지어 자유한국당 소속인 유일호 부총리는 김동연 부총리 임명 전에 열린 여당(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 협의회에 경제부총리 자격으로 참석하여 어색한 사진을 찍기도 했다.[23] 사실 홍준표의 정치 스타일은 그가 싫어하던 노무현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리고 이런 껄렁한 태도는 진보에서는 그나마 속 시원하다고 지지받을 수 있어도 점잖은 보수 유권자에게는 정말 비호감 대상이다.[24] 성균관대, 고시, 경기고 출신이라는 뜻으로 박근혜 정부 인사의 특징으로 꼽힌다. 황교안은 3개 모두 해당된다.[25] 참고로 이 게이트 전에도 장관으로서 박근혜정부 때 발생한 중대한 사건(국정원 여론조작, 세월호 수사, 정윤회 문건) 등의 수사 방해와 외압을 가하고 은폐시켰다는 의혹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직까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런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권은 고사하고 구속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크게 부각되고 있지 않지만, 스텔라데이지호의 진상 규명을 방해하고 은폐하려 했던 주범이 황교안이라는 의혹이 있다. 본인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할 때 발생한 사건이기에 책임을 회피하기가 불가능할뿐더러, 박근혜의 세월호 대응과 마찬가지로 거의 직무유기에 가까운 수준으로 방치를 했기에 제2의 세월호 참사라는 혹평이 자자하다. 만에 하나 이 사건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경우 후의 정치생명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사안이다.[26] 보통 정치인의 종교는 '기불릭'이라고 한다. 기독교(개신교), 불교, 카톨릭(천주교) 다 믿는다는 것이다. 교회, 절, 성당 모두 다니면서 얼굴을 알리기 위함인 동시에 특정 종교신자들을 적으로 돌리지 않기 위함이다.[27] 원래 다니던 교회라고 한다.[28]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입당 직후 한국당 미래비전위원장이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29] 견제한 것이다. 직책 없이도 이른바 친황계 논란이 있을 정도로 입당 직후부터 강한 파급력을 가져온 황 전 총리에게 상임고문 직까지 주게 되면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당권주자들 간 균형이 더욱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물론 나 원내대표 본인은 황 전 총리를 견제한 것이 아니고 상임고문은 원래 3선 이상의 원로급 정치인들에게 주는 직이라며 견제 논란에 선을 그었다.[30] 대부분 친박계가 친황계로 흡수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친박계 혹은 범친박계로 분류되는 당권주자들은 이에 불편해하며 황 전 총리를 견제하는 듯한 경계성 발언을 이어가는 중이지만, 상대적으로 계파 색이 옅은 초선, 재선 의원들 및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하지 않는) 친박계 중진의원들을 중심으로 친황계가 형성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31] 前 국무조정실장. 국무조정실장은 총리를 보좌하는 가장 가까운 자리이다.[32] 1위 보수통합 54.7%, 2위 중도확장 14.8%[33] 1위 보수통합 50.5%, 2위 중도확장 12.2%[34] 1위 보수통합 31.9%, 2위 여야협치 24.3%[35] 1위 보수통합 27.9%, 2위 여야협치 21.0%[36] 1위 보수통합 26.0%, 2위 중도확장 18.4%[37] 정작 자신이 총리로 있었던 박근혜 정부때에는 미세먼지 고등어드립이 나왔다.[38] 자신이 권한대행이었던 시절에도 경유차 규제 이외에 뚜렷한 방법을 제시한 적이 없어서 내로남불이라고 보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권한대행은 선출되었다는 정통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현상유지 정도나 할 수 있을 뿐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39] https://v.daum.net/v/20191127232503212[40] 당장 원내대표도 친이계의 중진이었던 나경원과 투톱을 맞췄다.[41] 이 선거가 치러지는 날이 황교안의 63번째 생일이다.[42] '''금관구'''라고 불리는 전형적인 진보세가 강한 지역이다.[43] 황교안이 목동 부동산 관련해서 양천구 갑 지역을 찾은 적이 있는데, 이 때 '''이 지역 일 잘만 돼 가는데 여기 와 봐야 소용없다'''고 돌직구를 날릴 정도다.[44] 상술한 두 지역구는 각각 권영세와 박진에게 돌아갔다. 참고로 박진은 종로구에서 내리 3선을 지낸 사람.[45] 21대 총선에서는 대체로 미래통합당 후보가 전반적으로 출구조사보다 득표율이 더 낮게 나왔다. 역대급 사전투표 비율을 제대로 보정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고 한다.[46] 꼭 여당 편향이라기보다는 이길 것으로 보이는 당 의석이 뻥튀기되는 경향이 있다. 18대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의 의석이 뻥튀기됐고, 19대 총선에서는 이길 것으로 보였던 민주통합당의 의석이 뻥튀기되었고, 20대 총선은 역시 이길 것으로 보였던 새누리당 의석이 범위 안엔 들었으나 출구조사의 하한선에 근접해서 나왔다. 따라서 통상적인 경우라면 통합당은 출구조사상 최대치에 가까운 120석대 후반 정도를 얻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47] 예외적인 게 이명박이다. 그는 서울시장 당시 성과와 인지도로 국회 외의 대중적인 지지도를 국회로 끌고오는데 성공했고, 무엇보다 친형인 이상득이 정계에 20년 넘게 발을 담근 경력으로 정치신인에 가까운 이명박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또한 이명박은 아무래도 기업인 이력이 긴 만큼 추진력 및 결단력, 조직장악력과 같은 정치인으로서의 덕목 또한 황교안보다는 우월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는 총선 기간 동안 황교안이 보여준 갈팡질팡 행보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48] 게다가 친박계 핵심인사들과는 썩 관계가 좋지 못했다.[49] 실제로 SBS 인터뷰에서도 종로구 동별 현안, 돈화문로 개발, 신분당선 지하철 연장, 창신, 숭인동의 패션산업 육성 등을 공약으로 꼽은 이낙연 당선인과 다르게 종로를 정권심판 최전선이라고만 표현하였다. 지역구 공약에 관한 질문에서 오로지 정권심판같은 대답만 하는 것은 자기가 출마할 지역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50] 당장 황교안 본인이 메르스 방역 부실대응으로 비판받은 적이 있다.[51] 17대 당시 한나라당은 지역구로 100석, 비례대표까지 합쳐 121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해, 탄핵 역풍으로 민심이 극히 안좋았던 악조건 하에서도 당시 박근혜 대표가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장에 당시 한나라당과 함께 탄핵을 주도했던 새천년민주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총 9석으로 단독 교섭단체 설립 요건조차 상실하고 말았다.[52] 그걸 희망이라고 하기도 힘든 것이 미래통합당 및 범 보수세력 내, 이번 총선에서 큰 타격을 입지 않은 유승민, 홍준표 등 황교안과 관계가 껄끄러운 사람들의 지지도가 올라가게 되고, 친황 인사들이 들어왔지만, 이들 조차도 영남 지역에서 당선된 곽상도, 김도읍, 김석기를 제외하면 당 내 영향력이 없다. 넓게 봐서 대경권 친박조차도 추경호, 곽상도, 김정재, 이만희, 김석기, 윤두현 정도 외에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청년층의 경우는 자유보수주의적인 유승민, 정병국을 위시한 친유+보수 소장파+남원정 등 비박계와 더 가깝다. 간단히 말하자면 정치적인 경력이 정지된 것이다.[53] 이조차 낙선하여 더 큰 위기가 오긴 했는데, 여기서 당선되었으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낙선했기 때문에 정몽준처럼 은퇴하거나, 김무성처럼 전국 판세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실상 정치 인생이 마감될 수 있긴 하다. 그래도 오세훈이 황교안보다는 나은 것이 오세훈이 출마한 곳은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인 광진구 을인데다 고민정이 상대라는 것을 감안해도 표차가 적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 대해서 변명할 거리라도 생겼지만 황교안에게는 상대가 이낙연인 것을 감안해도 평창동, 삼청동과 같은 종로구 내에는 전통적인 서울토박이나 부유층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있어 오세훈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편이다. 다른 동네들을 포함해도 종로구는 경합지역이었다. 광진구 을에서는 오세훈의 득표율이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득표율보다 높았다. 그 의미는 오세훈을 투표한 시민들이 오세훈이라는 이유로 투표했다는 것이다. 물론 당권과 대권을 바라보는 오세훈 입장에서는 신인에게 패했으니 쓰라리긴 하다. 하지만 황교안은 압도적으로 져서 오세훈과 달리 다시 재기할 기회가 거의 없다.[54] 황교안, 친박, 친황이 황교안의 대권에 방해되는 홍준표, 김태호와 같이 정병국을 컷오프하고, 그 자리에 친황 심기로 김선교를 공천한 것이다. 당연히 정병국은 탈당하지 않는 대신, 김선교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김선교를 지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