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범수용소/북한/실상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일입니다. 마오쩌둥도 이런 일을 안 했고, 스탈린도 이렇게까지는 안 했습니다. 히틀러의 경우는 시도하긴 했었죠. 제2차 세계 대전 후, 오직 북한에서만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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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빗 호킨스
1. 수용 대상
김정은이 직접 지정한 정치적 숙청 대상이냐, 아니냐에 따라, 혹은 시대 분위기에 따라 범위가 좀 달라지기는 한다. 예를 들어 장성택의 유가족은 전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지만, 일반 남한행 탈북자의 가족들은 대부분 적대계층 편입 후 지방으로 추방하는 선에서 끝낸다고 한다. 물론 인권적으로 무언가 개선된 것은 전혀 아니고, 그냥 이전처럼 다 잡아 가두려니 대상자가 너무 많아서 그럴 뿐이다.
주로 다음 사항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다.
- 탈북 시도를 한 자: 과거에는 탈북자가 적발될 경우 본인 뿐만 아니라 그 가족까지 모두 수용소로 끌려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만 무려 3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현재는 탈북자의 일가족을 전부 수용소로 보내는 건 불가능하기에, 요새는 탈북자가 북한 내 가족에게 송금하는 돈의 일부를 뜯어가는 조건 하에 눈감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렇게 송금되는 돈은 해당 마을을 감시하는 노동당 간부의 주 수입원이기도 하다. 다만 탈북자가 남한에 가서 북한 정권을 비난할 경우 여전히 위험하다.
-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통치를 비판하거나 그 우상화물에 손상을 가한 자: 예를 들면, 김씨 왕조의 얼굴이 나온 로동신문의 지면으로 벽면을 도배하는 경우. 심지어 실수로 손상시킨 경우에도 끌려갈 수 있다. (예: 오토 웜비어)
- 숙청의 대상이 된 자: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박남기[1] 처럼 본인은 공개처형 당하고 박남기의 친척 전체가 완전통제구역으로 끌려가 1년도 안 되어 끔찍한 최후를 맞은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장성택처럼 VIP급인 경우 바로 사형 당하는 경우도 있다.
- 종교를 믿는 자: 김일성의 부모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고, 김일성 본인도 개신교 신자였던 점과는 별개로 기독교 신자들을 가둔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강철환의 증언에 따르면 요덕 수용소의 혁명화 구역에 수감된 개신교 신자의 가족 전체가 얼마 못 가 요덕 수용소의 다른 구역인 용평 완전통제구역으로 끌려갔다.[2] 최근에는 가톨릭, 불교 등 다른 종교도 피할 수 없다고 한다.[3]
- 월북자: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이곳에 온다. 실제로 수많은 월북자들이 이곳에서 잔혹하게 처형되었다. 안명철의 증언에 의하면 월북자들은 주로 승호 수용소와 요덕 수용소 등지에 수감된다고 한다. 이 두 수용소에는 납북된 외국인들도 수용되어 있다고 한다. 다만 북한의 실상이 너무나도 잘 알려진 현재는 월북자의 선전 따위가 먹힐 리 만무하기 때문에, 별다른 이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냥 돌려보낸다고 한다. 이 경우 해당인은 남한으로 신병이 인도되는 즉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에서 코렁탕을 시식하게 된다. 그러나 월북에 성공하여 북한에서 개만도 못한 삶을 살아가다 수용소에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받으며 죽을 바엔 차라리 남한에서 체포되어 남한의 교도소를 가는 편이 훨씬, 아니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낫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 보안원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거나 김씨 왕조 혹은 높으신 분 또는 권력기관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끌려오기도 한다.
- 김씨 왕조에서 임의로 정한 자: 즉, 김씨 일가에게 밉보일 경우 아무 이유 없이도 수감될 수 있다.
- 더 중요한 것은 위의 사항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직계혈통들도 같이 끌려간다. 북한은 아주 철저한 연좌제 국가다.[4]
- 일반 범죄자들도 가끔 재수 없으면 여기 오는 경우가 있다. 비정치적인 범죄자의 경우 대개 노동단련대나 교화소 몇 개월 선에서 끝나지만, 재수 없으면 여기 끌려오는 경우도 있다.
2. 처참한 참상
탈북자들이 지은 정치범 수용소 관련 책들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탈북자들의 수기를 읽어보면 간접적으로나마 이곳의 실상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데, 충격적이지 않은 게 없긴 하지만 몇 가지 특히 충격적인 일화를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밑에 보다시피 이 바닥에서 북한 수용소의 참혹함과 악랄함의 비교 대상이 스탈린 시절 굴라크도 아닌 731 부대, 아우슈비츠 정도가 거론된다는 점[5][6] 에서 북한의 수용소가 얼마나 막장인지 알 수 있다. 그나마 비견되는 아우슈비츠도 게르만 민족을 대상으로 만든 곳이 아니었는데, 유독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한민족을 넘어 김일성 민족을 대상으로 만든 곳이란 점에서 얼마나 잔혹한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스탈린이 집권하던 시절에도 굴라크는 개막장스런 헬게이트이긴 했지만, 그 쪽은 적어도 멸살이 목적은 아니었으니 그나마 살아남을 확률이란 게 있었고, 희박하긴 해도 석방될 수 있었으며, 스탈린 사후 그나마 강제 노동이 줄어드는 등 많은 것이 나아졌지만, 여기는 그런 거 없다. 그러니까 여기 끌려갔다 나온 사람은 거의 전부 탈출을 통해 나온 것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아니면 혁명화 구역에 수감되었다거나.
사이코 스릴러 영화 '펫'에서는 유기견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이 사나운 유기견을 길들이는 수법인 며칠 굶긴 뒤에 음식 주기를 활용하는데 사람을 납치, 지하의 철장에 가둬놓고 며칠 굶겨놓은 뒤에 음식을 주는 식으로 순응하게 만든다.[7] 한국에서는 감옥에 갇힌 흉악범들도 하루 3끼 잘 먹고 포동포동하나, 북한에서는 삼백처벌이라 하여 굶기는 것 자체를 공식적인 처벌로 활용한다. 빠삐용이 바퀴벌레라도 잡아먹으려 하는 것처럼 사람을 완전히 정신적, 육체적으로 쇠약하게 만든다. 가끔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부모가 훈육 목적으로 아이를 굶기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조차 '아동학대'로 분류될 정도로 사람을 굶기는 것은 정말 잔인한 짓인데, 지상락원을 표방한 곳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악한 짓이 다 벌어지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2019년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북한은 나라 전체가 감옥이라고 일갈했는데, 헬조선이 단순한 드립이 아니다.
2.1. 상세
2.1.1. 결혼
'표창 결혼'이라는 것이 있어 일을 잘하는 수감자들을 짝을 지어 포상으로 결혼시킨다. 당사자의 의사는 무시된다. 거절하면 이 기회를 영영 못 얻는다. 이것 외의 성행위는 금지되며 처벌 받는다. 소련의 굴라크는 강제 낙태가 없었고, 원하는 상대와 같이 있을 수도 있었다. 일을 잘 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물론 굴라크의 노동도 여기 서술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못지 않게 혹독하다.
2.1.2. 성폭행 및 강간
정치범수용소에서 보위원은 생살여탈권을 가지므로 여성들은 꼼짝 못하고 강간당할 수도 있다. 신동혁도 어렸을 때 자신의 어머니가 보위원의 방을 청소하던 중, 그 보위원의 강요로 성관계를 갖는 것을 창문 너머로 목격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임신하면 임신한 수용자는 살해 당하고 관계를 가진 사람도 처벌한다. 수용자면 100% 사형이며, 보위원도 운 좋아야 탄광 행이다. 이 경우에는 보위원도 같이 처벌된다. 보위원까지 함께 처벌하는 이유는 성범죄가 결코 아니라 '''수간.''' 그러니까 인간과 성관계를 해야 하는데 동물과 했기 때문에 처벌 받는 것이다. 이 경우 성범죄를 저지른 보위원이 피해자를 완전히 걸레 쪼가리로 만든 뒤 비밀리에 죽이거나, 몰래 탈출이나 다른 죄목을 덮어 씌워서 죽이는 것도 다반사다. 이유는 여자가 자신을 꼬셔서 인생을 망쳤다고. 한 마디로 적반하장. 정치범수용소 안에서 성관계는 절대 금지되기 때문에 가족 단위로 방을 쓰는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성욕 해소를 위한 근친상간까지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8] 특히 젊은 여성 수감자들은 간수들에게 농락 당하는 게 보통이다. 임신이라도 하면 강제로 낙태시키고 비밀스럽게 살해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증언을 동료 수감원 김영일을 통해 들은 김용이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14호 관리소에는 간부 초대소라는 것이 있는데, 이곳은 평양에서 부부장급이 내려오면 숙식하는 일종의 특각입니다. 평양에서 간부들이 내려오면 여성 수감자 중에서 얼굴이 반반한 21~25세 사이의 처녀들을 선발하여 목욕을 시킨 후 간부들에게 바친다고 합니다. 간부들은 이런 여성들을 온갖 노리개로 삼은 후 비밀 유지를 위해서 '도주분자'로 몰아 비밀리에 죽인답니다."[9]
2.1.3. 기아
일반적으로 성인 기준 하루 500g 이하의 옥수수가 주어지며, 심한 경우 200g 가량으로 떨어지기도 한다.[10] 처벌받는 경우에도 200g의 식량으로 줄어드는데 이것을 삼백처벌이라 한다. 규정을 어기거나 일을 제대로 못하여 처벌을 받아 감소된 분량의 경우, 일을 잘한 수감자 그룹에게 더 주어서 일을 잘 하도록 한다. 이 때문에 수감자들은 만성적인 영양실조를 앓고 있으며, 펠라그라병[11] 을 비롯한 질병에 시달린다. 신장 170cm 기준으로 42kg은 허약 1도, 40kg은 허약 2도, 38kg은 허약 3도로 분류하고 보통 1달 이상 못 버틴다. 재배 및 수확 중인 무나 양배추 같은 작물을 몰래 먹거나, 소똥에 박혀있는 강냉이나 돼지 여물로 줄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 건 일상 다반사며 벌레를 먹든지, 생선 저장 탱크를 세척한 물에 밥을 말아 먹거나 쥐[12] , 개구리, 도마뱀 등의 야생 동물을 잡아먹기도 한다. 이런 허용되지 않은 음식물은 강력히 금지되어 있으며, 보위원에게 적발되면 두들겨 맞거나 감시 수색견에게 죽는 등 엄벌을 받으며, 혁명화 구역에서는 완전통제구역으로 이송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수감자들의 대부분의 사망 원인은 질병과 추위, 영양실조. 일단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사람은 안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한다. 오히려 덩치가 작고 재빠른 사람이 오래 살아남는다. 덩치가 있으면 그만큼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먹어야 되는 식량도 더욱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의외로 20대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서 더욱 센 강도의 노동을 강요받기 때문에 사망할 확률이 제일 높은 연령대라고 하며, 20대를 수용소 안에서 넘기면 생존 확률이 올라간다고 한다. 위에서 서술한 대로 고기를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주로 쥐나 도마뱀 등을 잡아서 통째로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마저도 간수들한테 걸리면 얻어맞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먹을 사람은 어떻게든 먹어서 수용소 안에는 쥐가 거의 씨가 말랐다고 한다. 수감자들은 2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바짝 마르는 게 보통이며, 영양실조로 배가 튀어나오고 허리가 휘어지는 등, 몸이 완전히 망가진다고 한다.
2.1.4. 물품소유권
김정일은 정치범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의 옷을 몰수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특별지시를 하긴 했었다. 그러나 식량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워낙 식단이 부실하다 보니 결국 수용자들은 보위원들과 밀거래해서 자신의 소지품과 식량을 바꿔먹고 얼마 안 가서 금세 거지 몰골이 된다.
2.1.5. 생존권
1989년, 지금은 폐쇄된 13호 관리소에서 13세 여학생 2명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도중 경비견에게 유린당해 잡아먹힌 사례가 있다. 이 사건 후 소장이 개를 사납게 잘 키웠다는 개드립을 날렸다. 또 15호 관리소에서는 경비대원들이 공명심을 얻기 위해 일부러 수감자들에게 수용소 경계선 근처로 오게 한 뒤에 사살한 일화도 있다.
2.1.6. 영아살해
'종파분자와 계급의 원수는 그가 누구이건 3대에 걸쳐서 씨앗을 없애야 한다'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서 수용소에 가족 단위로 수감된 예외적인 경우, 표창 결혼으로 태어난 경우를 제외하고 태어난 아기는 모두 살해당한다. 바닥에 눕힌 임산부의 배 위에 긴 널빤지를 가로질러 올려놓고 다른 수감자 두 명이 그 위에서 널뛰기를 하도록 강요했다는 목격담도 있다.[13] 강제 낙태 실패로 영아가 살아 나온 경우도 당연히 살해당한다. 웃긴 것은, 북한이 중국과 친하게 지내겠다고 스스로 달려들어서 중국과 친해졌음에도 중국인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 수감자의 경우에는 한족 놈의 씨를 뱄다고 철저히 유산을 시킨다. 단, 평생 수용이 원칙이라면 그냥 내버려두기도 한다.
2.1.7. 우민화 교육
대부분의 학교 생활이 강제노동에 할당된다. 요덕 수용소에 존재하는 혁명화구역에 한해서는 주체사상과 김일성-김정일의 혁명 역사 등의 교육 시간표 자체'''만''' 일반 학교와 동일하지만, 혁명화구역에서도 학교 시간표대로 돌아가지 않고 강제노동에 그 시간들을 뺏기는 게 다반사다. 참고로 강제 노동은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대부분은 학교에서 덧셈, 뺄셈, 작업 지시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어만 교육한다. 탈북자인 신동혁이 기본적인 돈 계산이 힘들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다. 이러한 교육의 담당자는 수용소 경비병들과 보위부원들이지만, 이들을 "선생님"이라 부르라고 교육을 한다고 한다. 또 보위원의 자녀들을 부를 경우 선생님의 아들/딸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2.2. 상세 - 고문과 심문
2.2.1. 입소 과정
처음 정치범수용소로 끌려오면, 각종 고문을 하고 난 뒤에 24시간 동안 꼼짝 없이 무릎 꿇고 앉혀놓거나 가부좌 자세를 시킨다. 이 때 허리는 반드시 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소리 내면 문 밖으로 손등을 내밀게 한 다음 손등을 몽둥이로 마구 내려치거나, 발바닥을 내밀게 한 다음 회초리로 발바닥을 마구 내리쳤다.
상술한 김정일의 지시 전에는 처음 수용소에 끌려오면 설사약을 강제로 먹여서 설사가 나오게 한다. 행여 입으로 삼켜서 숨기거나 여성의 경우 질에 숨긴 귀중품을 죄다 토해내게 만들어서 죄다 몰수했다. 만일 귀중품을 숨기고 들어온 것이 적발되면 보위부에게 심한 구타를 당하게 된다.
2.2.2. 열악한 환경
보위원들이 수시로 둔기로 폭행하기 때문에 온몸이 흉터와 멍 투성이가 된다. 거기다가 거의 씻지도 못하기 때문에 위생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 그 자체다. 몸에 이가 들끓고 썩는 냄새가 나는 것은 기본이다. 수감실은 벽이 말려진 진흙으로 되어있고 천장은 나무 널판지위에 지푸라기가 올려져있는 형태로 물이 새고 썩은 상태라고 한다. 또한 바닥은 말린 지푸라기로 만든 매트로 구성되어있다고 한다. 수감실은 약 50제곱미터이며 이 수감실안에 30명~40명 사이의 수감자들이 취침한다고 한다. 각기병과 각종 폐질환들 또한 수감자들 사이에서 만연하다. 씻을 기회 조차 없어 진흙에 뒤덥혀 있기 때문에 벼룩이나 빈대와 이가 많아 가려움증 때문에 창살에 매달려 잔 적도 있다는 증언도 있다. 따라서 수감자들은 아토피나 습진, 무좀 등 여러 가지 피부병에 시달린다. 게다가 거주 환경만이 아니라 노동 환경도 열악해서, 노동을 하는데 오직 노동만 위한 장비만 주어져 그 외에 필요한 기본적인 장비[14] 도 주어지지 않아 갖은 사고가 자주 난다. 게다가 냉난방도 허술해서 추운 지역의 경우 얼어죽는 사람, 더운 지역의 경우 쪄죽는 사람이 많이 발생했다. 겨울에는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져 수감자들이 동상에 걸린다. 수용소의 건물은 그냥 창고 수준이기 때문에 수감자들은 한겨울에는 추위에 바들바들 떤다고 한다. 중장년을 넘긴 노인 계층이 가장 많이 죽는 것은 이 겨울 무렵으로, 추위를 이기지 못해 얼어 죽거나 못 먹고 병들어서 죽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어차피 보위원들은 수감자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고 잡혀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대놓고 죽일 작정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면 답 나오며 이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은 열악한 환경은 결코 개선되지 않는다.
2.2.3. 중노동
수감자들은 대개 새벽 5시에 기상하여 6시까지 아침 식사를 마치고 7시에 작업 집합, 8시부터 12시까지 오전 작업, 12시부터 30분간 식사, 그 이후 20시까지 오후 작업. 작업 계획에 따른 작업량이 달성되지 않으면 보통 23시까지 작업을 한다. 당연히 달성되지 않으면 혹독한 고문을 또 당하는데, 수감자 간부들과 보위원들에게 2중으로 당한다. 그리고 경비대원들이 수감자들을 약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참고로 이 중노동하는 나이는 수용소마다 다르지만 보통 만 6세부터 하게 되는데, 한국 기준으로 보자면 유치원에 갈 나이부터 평생 이런 강도의 노동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아동 노동은 국제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은밀하게 북한에서만 행해진다는 소리. 노인의 경우도 처참하기 짝없는데 혁명화구역에서는 그래도 이들은 노동이 면제되나 완전통제구역에서는 그런 거 없고 죽을 때까지 중노동을 하게 된다. 즉 고령의 노인들도 무자비한 고문과 폭행을 당한다. 한편 수용자들의 수는 북한 인구의 1%도 되지 않으나, 그들이 북한 경제에서 담당하는 비중은 3~5%에 이른다. 즉, 수용자 1명이 일반인 5~7명의 노동량을 해야 하는 것이다.
2.2.4. 구류장
수용소 안에서도 구류장이란 곳이 있는데, 그 곳은 '''온갖 험한 일 다 겪은 수감자들도 매우 치를 떠는 곳으로 악명높다.''' 그 곳은 먹을 것도 평소보다 훨씬 적게 줄 뿐만 아니라,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깨진 유리 조각이나 빨래판이 있는 그 자리에서 나뭇가지들을 오금 사이에 끼운 채로 양 무릎을 붙이고 무릎 꿇고 발등을 바닥에 붙여 발뒤꿈치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허리를 피고 각 잡고 계속 꿇어앉아 있어야 한다.[15] 이 상태에서 양팔을 귀에 딱 붙여서 하늘을 향해 들고 있게 하거나, 앞으로 나란히 자세를 시키고 수용자의 겨드랑이나 발바닥을 간지럽히기도 한다. 그러다 수용자가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엉덩이가 바닥에서 떨어지거나 다리를 오므리지 않는 등 무릎을 제대로 안 꿇거나, 신음소리를 내거나, 졸면 바로 회초리로 때리거나 채찍질이 날라온다.[16] 매일 이런 생활을 하다 보면 불과 1달 안에 폐인이 되어 끔찍한 모습으로 죽게 된다. 더군다나 수용소 보위부원들은 바로 앞에서 아주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서 수용자 얼굴 앞에 발을 내밀고 그들을 계속 감시한다. 만일 수용자가 목이 말라 물을 달라고 요구하면 보위원들이 입에 침을 뱉거나 오줌을 싸지르며 "이것도 물이라 생각하고 마셔라"라는 인격모독을 행한다. 만일 마시지 않고 뱉어버리면 똥을 먹이기도 한다.
2.2.5. 구타 및 가혹행위
말이 필요 없이 보위원 마음대로이며 내키는 대로 폭행을 가한다. 신동혁의 말마따나 "죽느냐? 사느냐?"는 보위원의 손 끝에 달려있다. 보위원이 기분 좋으면 욕설이나 몇 대 맞는 걸로 끝나지만, 기분이 나쁘면 저 세상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장난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 격. 뿐만 아니라, 보위원들의 마을은 수용소 내부에 있는데 이 마을에서 나온 보위원 자녀들도 수감자들을 괴롭힌다. 이 때문에 수용자들은 보위원들이 분노하지 않기를 하늘에 빌어야 할 판이다.
2.2.6. 고문
체벌은 기본이고 전술한 그 신동혁의 배에는 바람 구멍이 나 있다. 어떻게 된 것인가 하면, 신동혁이 13살 때 신동혁의 가족이 탈출하다 잡혀 죽었는데 이 때 보위부원들은 신동혁의 배에 갈고리로 꿰어서 매달고, 등을 불로 지지면서 신동혁을 고문했다. 이 때문에 신동혁의 배에는 갈고리에 뚫린 바람 구멍이 나 있고, 등에는 큰 화상 흔적이 남아있다. 다른 일화로, 간수들이 임산부에게 몇 시간 동안 시계를 흉내 내도록 하는 고문을 가한다는 일화도 있다.
2.2.7. 연좌제
정치범 본인만 데려오면 북한이 절대 아니다. 가족은 물론이고 일가친척까지 다 끌고 온다. 문제는 피가 하나도 안 섞인 며느리나 사위, 형수 등의 인척들도 해당된다. 이들의 경우 이혼하면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만 요즘은 아예 수용소에 자리조차 없어서 며느리나 사위 등은 나치의 경우처럼 강제 이혼 후 타지로 추방당하는 정도로 그치는 편이다. 또한 현재는 정치범의 가족이어도 배우자와 그 자식들의 경우 정치범 당사자와의 이혼을 조건으로 수용소행이 면제되기도 한다.
재판부터 공개 처형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25분에 불과하다. 당연히 변호사, 최후변론도 없다. 본인만 수감된다 해도 가족에게 통보하지 않는다. 게다가 남들이 다 잠을 자는 한밤중에 가족 전체를 체포해서 그 가족 전체를 노예처럼 부려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2.8. 인격모독
보위원, 경비원, 간부 수감자는 수감자를 "무슨 새끼" 라고 부르는데, 이는 나이 구분 없이 남녀노소 다 그렇게 부른다. 바닥에 가래침을 뱉은 후 수감자에게 개처럼 핥아 먹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수감자를 앞에 무릎 꿇고 공손하게 앉힌 뒤에 입에 직접 넣는 경우도 있다. 만일 수감자가 거부하거나 뱉어내거나 가래침이 입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면 채찍질과 온갖 학대를 한다. 심한 경우 오줌이나 정액을 얼굴에 뿌리거나 입에 넣기도 하며, 엉덩이로 얼굴을 깔아뭉개서 방귀를 뀌는 경우도 있다.[17] 이는 들어온 순간부터 아예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간수들을 보면 무릎 꿇고 허리를 세우고 두 손을 배꼽 위에 올린 뒤 공손하게 앉아서 도게자 절을 하듯이 머리를 땅에 처박고 고개를 숙여야 되며, 이 때 발등이 바닥에서 떨어지거나, 엉덩이를 발뒤꿈치에 붙이지 않거나, 양 무릎을 오므리지 않거나, 절하는 자세가 조금이라도 뻣뻣하면 가차없이 군화 신은 발로 쪼인트를 까거나 주먹과 개머리판과 욕설이 날아온다. 또한 신발 깔창과 밑창을 혓바닥으로 핥게 하거나, 양말 신은 발을 얼굴에 올려놓고 발냄새를 맡게 하며, 발판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보위원들과 경비원들의 발바닥이나 발가락, 양말 신은 발 등을 하나하나 핥고 맡고 빨게 하는 비인격적인 행동을 시킴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게끔 만드는 경우도 있다. 최악의 경우 펠라치오나 리밍을 시키거나 도그플레이 시키듯이 옷을 모두 벗기고 목줄을 채워서 개처럼 기어다니게 하는 등 인간이기를 포기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2.2.9. 간접 통제
마을 형태의 수용소인 관리소에서는 수감자가 매우 많아서, 일을 잘하는 수감자들의 일부에게 총반장, 작업반장, 탄광사무, 통계원, 학급장, 조장 등의 직책을 주고 그들에게 수감자들을 통제할 권한을 준다. 권한 뿐만 아니라 질 좋은 식사, 피복 지급 등 일반 수감자에 비해 좋은 대우를 해주어 이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기 때문에, 간부급 수감자들은 직책에 더 오래 있기 위해서 보위원들보다 훨씬 더 심하게 수감자들을 학대한다고 한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에는 보위원들조차도 그들을 뜯어말릴 정도라니 말 다했다. 여기까지 언급된 간수들의 사례들만 봐도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 텐데, 그런 보위원들에게도 강력히 제지당할 정도면 사람이란 게 극한 상황에 몰리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보위원들이 수감자들 중에서 스파이를 또 뽑아 서로 감시하게 한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경찰 제도 혹은 카포와 비슷하다.
2.2.10. 생체실험
회령 수용소에서는 가스 실험을 수감자들에게 행한 적이 있으며, "개천 수용소"에서는 이에 감염되어 가려움증에 시달리는 수감자들에게 치료라는 명목으로 정체불명의 하얀 약물을 실험했는데, 그 약물에 노출된 수감자들은 피부가 변하고 고열에 시달리다가 모두 사망한 케이스가 있다. 21세기에도 과거 일본이 했던 짓들이 모두 남아있는 것이다.(21세기는 대부분의 나라가 인권을 중요시함에도 불구하고) 생체실험과 관련된 문서를 확보했다는 기사도 있다.
2.2.11. 시신 처리
수감자가 사망한 경우, 장례식조라고 하면서 수감자들에게 시체를 처리하게 하는데, 묻어주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 그 자체.[18] 대개 아무 곳에나 방치하며 가끔 경비견의 먹이로 주기도 한다. 개천 수용소에서는 돼지 거름에 수감자의 시체를 던져 넣어버린 케이스가 있다. 강철환의 언급에 따르면 보위원의 눈을 피해 시신을 매장한 곳을 가족에게 알려주기도 하는데, 알려줬다는 것이 발각되면 그 인부는 그날 이후로 남아날 수 없다고 한다.
2.2.12. 그 외
도주를 시도하다 잡히면 공개처형당한다. 처형 방식은 총살형이 일반적이며, 교수형이나[19]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하도 많이 봐서 효과가 떨어지자 비밀처형으로 바꾼 경우도 있다. 공개처형의 경우 도주를 시도한 수감자를 본보기로 처벌한다고 한다. 도주를 시도했던 한 수감자는 차 뒤에 줄로 매달려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거리를 끌려 다닌 다음 나무에 묶여 총살당했다고 한다. 그것도 1발이 아니라 몸 전체에 여러 명이 난사한다고 한다.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이미 나무에 묶이기 전에 피투성이가 되어서 살아있는 거 같지도 않았다고 한다.[20] 만약에 도주한 사람을 찾지 못하면 그 사람의 책임자도 처형된다고 한다. 그리고 사살된 수감자는 경우에 따라서 수감자들에 의하여 돌팔매질당한다고 한다.
자살도 하지 못하게 늘 감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자살 방법이 거리에 떨어진 녹슨 못을 몰래 주워 먹거나 못에 머리 혹은 몸통을 뚫으려 시도하거나, 죽을 때까지 벽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하고, 목을 매거나, 양잿물을 마시기도 한다. 이것들마저도 불가능하면 혀를 깨물기도 한다.[21] 그리고 자살을 한다 해도 남아있는 가족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냥 자살만 해도 형이 최소 3년은 증형되고 유서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해 한 마디 욕이라도 적혀 있다면 살아있는 가족의 삶은 더욱 참혹해지게 된다. 물론 완전통제구역의 경우에는 어차피 다 끝장난 상황이다 보니 그런 거 전혀 신경 안 쓰지만.
혁명화 구역에서는 나갈 방법이 있는데, 그게 바로 죄를 지은 당사자의 사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얼떨결에 끌려온 가족들은 "저 인간 언제 죽나" 하고 더 이상 가족 취급을 하지 않고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밥먹듯이 하게 되고, 당사자는 눈칫밥 때문에 미칠 노릇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내 한 몸 불사질러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괘씸죄로 나가기는 더 어려워진다. 물론 완전통제구역에서는 평생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자살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3. 여담
- 탈북 무용인 김영순의 증언에 따르면 원로배우 최무룡의 장인인 영화감독 강홍식도 요덕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 외에 무용가 최승희와 만담가 신불출도 그 곳에 죽었다는 설이 있다.
- 혁명화구역 수용자들은 출소할 시 정치범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함구하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발설할 시 최대 사형까지 당할 수 있다.
- 북한에서도 가장 악명 높기로 유명하고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최고 형량의 수용소는 용평 완전통제구역과 수성 교화소인데, 여기에는 김정일, 김일성, 김정은의 사진이 걸려져 있지 않다. 북한 기준으로는 수감자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선언이다.[22] 신발 같은 건 아예 꿈도 못 꾼다. 여태 나온 여러 증언들은 공통적으로 폐타이어로 만든 고무신이라도 신으면 다행이라는 수준. 아니면 쥐를 잡아서 가죽으로 쓰든지 하는 것이다. 오직 처음 입고 온 의복에 처음 지급된 담요만으로 평생을 버텨야 한다. 여기서는 안 쓰는 물건이 아예 없다. 닳아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써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살아남기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 다음의 링크로 가면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형성 과정이 매우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끝 부분의 '보설' 편을 보면 지하 수용소가 존재한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범수용소들은 그나마 구글 어스상으로 관측이 가능한 지상 수용소. 지하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의 삶은 지상 수용소에서의 삶에 비해도 훨씬 비참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냥 원시적으로 만든 지하 감옥에 가두고는 죽게 방치해 두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그야말로 존재 자체의 말살이 주된 목적인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최악의 완전체라고 볼 수 있겠다. 게다가 북한에는 화성 수용소 등 핵실험에 필요한 사람들을 가둬놓은 수용소도 존재한다. 그들이 방사능에 노출되어 어떤 피해를 입으며 죽어가는지 북한 당국에서는 그런 거 알 게 뭐야라는 태도다. [23]
- 남한 주도의 남북통일이 된다면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할 곳이다. 또한 생존한 수감자가 있다면 반드시 구출해 내 영양 공급 및 치료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도 참혹할 것이고, 무엇을 상상하든지 그 이상일 것이다. 다만 북한 체제의 특성상 신동혁, 강철환 등 이미 탈출한 사람이나 간수들을 제외하면 남북통일 이후 정치범수용소 생존자는 거의 없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현재도 완전통제구역에서 수용자 신분으로 탈출, 생존한 것이 확실한 사람은 없다. 물론 경험자는 몇 명 있으나, 이들도 혁명화구역으로 이송되어서 생존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 학살에 참여했던 보위원 또는 고위층들은 무조건 체포, 도주했다면 전국 지명수배나 경우에 따라서는 인터폴의 협조를 받아 국제 적색수배가 발령될 것이고 당연히 대한민국 경찰, 검찰, 국정원, 군사경찰, 형사 등등 수사기관 및 군 수사기관의 고가치 표적이 될 것이며, 저항 시 즉시 사살될 것이다.
- 사실 간수나 경비병들도 엄격히 말하면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하다. 수용소 시절 경비병이었던 안명철의 증언에 의하면 수용소의 수인들을 인간 취급하지 말라고 세뇌 시킨다고 한다. 또 한 가지로 강철환의 일화에 따르면 수용생들에게 좀 잘해주었던 교원이 있었는데, 해당 보위원은 교체당하고 용평에서도 악명 높은 교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잘해주면 안 된다고 세뇌를 당했기 때문에 당연히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하게 되고, 잘해주려고 하다가 자기도 날라갈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들이 저지른 잘못을 아예 덮어줄 수는 없지만[24] . 정치범수용소 해방 이후 이들의 앞날은 매우 어두운데, 실상이 드러날 경우 남한에서는 냉정하게 대응한다 쳐도 북한 주민들의 분노가 상상 이상일 가능성이 크므로, 만약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북한 주민들이 납득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 통일 이후 몇몇 간부나 경비원들은 분노한 북한 주민들에 의해 사적으로 살해당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오히려 이런 근거 있는 공포감이 북 간부들에게 체제가 망하지 않도록 더욱 악착같이 충성하도록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는 분석도 있기는 있다.
- 북한 언론에서는 교화소의 실상이 터무니없이 묘사된 부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임산부의 배 위에서 간부가 널뛰기를 했다는 것으로, 북한 언론은 이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 당연한 얘기지만 종북주의자들은 정치범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인정하더라도 왜곡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 북한의 화폐개혁에 대한 실패를 뒤집어썼다.[2] 용평 지역은 완전통제구역 중에서도 최고의 악명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나마 인위적으로 죽이지 않는 회령이나 개천은 어떻게 버티고 버티면 수십 년을 살아남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여기는 성인이 되면 일부러 광산으로 보내 죽인다. 수용소의 노래에 실린 강철환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수감되기 몇 해 전에 용평에서 수감자 봉기가 일어난 뒤, 16세 이상 남성 수감자는 용평에서도 따로 수감되어 광산처럼 위험한 곳에 배치된다고 한다.[3] 성경책 뿐 아니라 가톨릭의 묵주나 불교의 염주 또한 단속 대상이라는 증언이 최근에 있었다.[4] 대한민국 역시 1970년대까지는 연좌제가 적용 되었지만, 1980년 제 8차 개헌에서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하지만 연좌제의 악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5] 아예 말살이 목적이란 점에선 아우슈비츠와 비슷하다.[6] 731부대는 북한 수용소와는 역할이 아예 다르다. 다만 북한은 정치범수용소와 별개로 731 부대보다 더 악랄한 짓인 장애인을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끌고가 생화학무기 실험에 쓰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7]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들이 피해자의 목을 졸라 죽이면서 자신이 신이 된 것 같은 쾌감을 느꼈을 것이라 한다. 한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권한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주로 사회에서 별다른 권한이 없이 남에게 짓눌려 살며 열등감에 시달리던 자들이 욕구가 왜곡된 채 뒤틀려 표현된다. 영화에서 재벌이 사이코패스로 묘사되는 경우도 부모에게 휘둘려 살며 불만을 가졌거나 하는 식으로 묘사된다.[8] 출처[9] 북한의 개혁·개방과 인권 허만호 著 P.240.[10] 남한에서의 그런 삶은 옥수수를 생각하면 안된다. 거의 쓰레기 수준의 옥수수를 준다.[11] 비타민 B3 결핍증. 특별한 처리를 거치지 않은 옥수수에는 비타민 B3가 없다. 수용소에선 가장 흔하며 이 병의 초기 증상은 설사, 피부병, 의식 장애 등이다. 더 심해지면 무관심, 무표정, 발열, 공포심, 망각, 환각 등이 나타나고 급기야 죽게 된다. 수용소 내에서는 '삐라그라'라고 부른다.[12] 강철환이 언급한 일화에는 일부러 쥐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13] 북한 정부는 이 사건은 탈북자 측에서 조작한 거라고 한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14] 목장갑, 안전화, 안면마스크, 안전모, 고글 등. 막노동을 할 때 반드시 필요한 장비들이다.[15] 알몸인 상태로도 행해지며 무릎과 허벅지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아서 발로 밟거나 올라타서 뛰기도 한다.[16] 앞허벅지를 회초리로 마구 내려쳤다는 기록이 전해지기도 했다.[17] 더 심한 경우 똥을 먹이기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다.[18] 이를 '평토해치운다'라고 한다.[19] 강철환의 증언에 따르면, 인민군 출신 수감자 두 사람이 탈출하려다 붙잡혀 처형당할 때는 수용소 측에서 총알이 아깝다고 교수형으로 집행했다고 한다(수용소의 노래 '총알이 아깝다' 편 참조). 안명철도 총살형과 교수형으로 사형이 집행된다고 증언했고, 표창결혼한 사람이 아닌 임신한 수감자는 초기에 드러날 경우 강제낙태에 처하며 낙태를 할 주수가 지났다면 비밀처형한다고 증언했다.[20] 요덕 수용소 수감자였던 김정일의 전 보디가드 이영국의 증언 외 다수.[21] 다만 혀를 깨물면 죽는다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널리 알려진 바와는 달리 실제로는 사망 확률이 매우 낮은 방법이다.[22] 북한에서는 원래 어느 건물을 가든 최소한 김일성의 사진, 보통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 많으면 김정은 사진까지 모셔둔다. 이들이 계속 최소한의 관심을 가지고 북한 주민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인데, 사진을 치워버린다는 건 그 관심마저 거둔다는 것으로 중세 기독교 사회의 파문에 버금가는 사회적인 사형 선고에 해당한다. 사실 주체사상에는 알게 모르게 기독교 교리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23] 후지모토 겐지의 <김정일의 요리사>에 의하면, 1995년 12월 30일 당 선전부장 김기남이 "현재 핵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나 머리가 빠지는 등 피폭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아주 비참한 상태입니다"라고 보고했으나, 그에 대하여 김정일은 아무 말이 없었다고 한다.[24] 동독에서 탈출자 사살을 담당한 경비병들은 그것이 명령에 의한 것임이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참작을 받았을 뿐 처벌 자체는 면치 못했다. 어쨌건 비인간적 명령에 따른 것 자체가 범죄라는 인식 때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