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1. 개요
경상남도 중동부에 위치한 시. 2020년 7월 기준 인구는 1,039,595명. 공업을 기반으로 한 '''계획도시이자 명실상부한 경남의 중심지'''로 '''경상남도 최대도시'''이며 '''경상남도청 소재지'''다. 과거 부산에 있던 경상남도청이 1983년 창원으로 이전되었다.[6]
대한민국의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많은 5개의 일반구가 설치되어 있고,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수도권을 포함할 경우 수원시, 고양시, 용인시에 이어 네번째로 많은 인구이다. 시의원 선거구도 18개로 가장 많다.[7] 전반적인 인구는 2010년대 들어 완만한 증가세를 보여 110만 가까이에 도달했으나, 장기적으로 청년층의 인구 감소가 꽤 심각히 진행중이다. 조선과 기계, 자동차 등의 창원시 경제를 지탱하는 중후장대 산업 성장세가 규모 면에서 한계에 다다르고, 외곽 도로망이 확충되면서 집값이 비싼 창원을 떠나 시계 밖의 장유, 진영 등의 신도시로의 접근성이 향상되어 인구가 유출되는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또한 마산합포구 지역은 면지구뿐만 아니라 옛 시가지의 노후화 때문에 인구유출이 가속화되고 있기도 하며, 그나마 월영마을에 형성된 학군이나 현동지구 등의 신규 아파트 택지공급이 감소세를 덜어줘주는 것에 그친다. 특례시를 유지하고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신혼부부에게 1억을 대출해주고 아이 세 명을 낳으면 원금을 탕감해주겠다는 출산장려책이 나왔지만 여성단체에서 반발하고 있다.
2. 상징
'''창원시의 꿈과 희망의 메신저'''
"창원의 새로운 희망을 꽃 피우다"는 의미의 "피우미"는 시화인 "벚꽃"을 귀여운 아이의 모습으로 형상화.
창원의 꿈과 희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라잡이이자, 시민의 화합과 조화를 돕는 사랑의 메신저.
'''창원시민의 노래(영상)'''
3. 역사
역사적으로 조선시대부터 한 지역이었으며, 개화기에 들어 행정적으로 완전히 분리되기 시작하였다가 2010년 다시 하나의 지역으로 통합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역사 문서 참조.
3.1. 뚜렷한 지역성
이명박 정부 들어 많은 인센티브를 거론하며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을 유도하였으며, 당연히 그전부터 경제/사회/문화적 교류가 많은 소위 마창진(마산, 창원, 진해)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에 자극받은 3개 시는 지난한 정치적 협상 및 행정적 조율을 거쳐 드디어 2010년 7월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게 되었으며,[8] 이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수립 이후 첫 번째 사례가 되겠다. 이 과정에서 함안군도 포함될 뻔했으나 제외되었다.[9]
통합시 출범 당시 명칭으로 '마창진'이니 '진창마'니 '창마진', ‘가야’, ‘산해원’, ‘경남’ 등 여러 안이 나왔는데, 결국에는 그냥 '창원'이 되었다. 통합시청사 역시 기존 창원시청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새 시청사 소재지는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미루고 있어 결정이 안 나고 있다. 한때는 구 39사단 부지로 결정되었다는 허위 사실을 문자로 유포해 난리를 쳤던 적이 있었다. 결국 시청소재지를 놓고 대립이 일어난 끝에 창원시 의회에서 '''그냥 원상태로 되돌아가자'''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켜서 파문이 일었다. 2011년 11월 4일 창원시의회 임시회에서 이 결의안이 통과돼버린 것. 결의안을 제시한 의원은, "지역 이기주의가 극심한 몇몇 의원 때문에 통합의 정신이 흔들린다"라고 했다. 그런데 웃긴것은 같은날 통합창원시의 시청사 입지를 조속히 선정하자는 결의안도 통과되었다. 같은날 통합시의 시청사를 확정하자는 결의안과, 통합시의 통합을 취소하자는 결의안이 동시에 통과가 된것이다.
물론 통합 창원시청은 이제 와서 다시 마산, 진해가 분리되는 건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당장 자진통합으로 중앙정부에서 받아먹은 추가 재정지원이 교부세만 연간 10% 수준인데 재분리한다고 하면 중앙정부가 가만있을 리도 없을 뿐더러 교부세 추가분을 반환한다고 하면 그거 분담률로 개꼴날 게 뻔하다. 그런데 어이없는 건 이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통과시킨 결의안이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하자'''라는 것. 2011년 안에 통합시청사 부지를 선정한 뒤에 세 도시로 분리된, 원 상태로 되돌리자라는 거라 앞뒤가 안맞는다는 비난이 나왔다.
이런 모순된 결의안들이 통과된 이유는 舊 마산, 진해 측과 舊 창원 측에서 서로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통합시청사 소재지를 결정하기 위한 힘겨루기라는 지적이다.
19대 총선 때는 시청사 소재지를 두고 후보들 간에 치열한 대립각을 세웠다. 옛 창원 지역에서는 현 청사 리모델링을, 옛 마산 지역에서는 마산으로의 이전을 주장하고, 옛 진해 지역의 야권, 무소속 후보들은 진해 분리독립을 주장했다. 선거 결과를 보면, 진해구에서 막판에 간신히 야권 단일화를 이루었음에도 꽤 큰 차이로 여당 후보에게 패한 것을 볼 때, 다시 나누어지는 파국으로 치달을 생각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통합의 후유증이 상당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창원시의회에서 舊 마산시 분리 건의안과 현 임시청사의 시청사 확정안이 동시에 통과되었다. # #
舊 마산 지역에서는 시 명칭, 청사 소재지, 야구장 등 어느 하나도 얻지 못했다는 박탈감과 소외감이 고조되어 분리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이주영 마산합포구 국회의원이 국회에 마산 분리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제대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다시 논의할 가망도 없어 사실상 무산된 상태.#
당연한 말이지만 통합을 한다고 지역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 서울이나 부산, 대구, 인천처럼 주변 지역을 흡수하며 성장한 대도시들이 도시 안에서 옛 지역명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컨대 부산의 서면은 본래 동래군 서면, 대구의 칠곡은 본래 칠곡군에 속했던 지역. 그 외 구명은 대체로 과거의 지역명을 따른다. 다만, 고만고만한 동네를 서서히 흡수한 게 아니라 어느정도 규모를 갖춘 지역을 단번에 통합한 지라 이렇게 갈등이 심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삼여 통합으로 탄생한 여수시, 사천군과 삼천포시를 통합한 사천시 가 있다.
문제는 舊 마산 지역 중장년층이 마산이라는 지명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이 타 지역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데 있다. 발단은 원 창원지역이 1973~1980년 사이에 '''마산시에 편입되어 있었던''' 데 있다. 즉 이 시기를 겪어봤던 舊 마산 중장년층의 입장에서는 ''''새로 생긴 촌동네가 박혀있던 마산 지명을 밀어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역통합에서 이리저리 치고박고 볶은 지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 쪽의 명칭이 역사성이나 인지도에서 압도적이었던 데 반해[10] 마산은 창원에 비해 인지도 면에서도, 역사성 면에서도 뒤지지 않고 오히려 앞선 적도 있다 보니 계속해서 마산 지명 사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마산은 창원에 맞서 자신들이 통합의 주체이자 중심이 되려고 시도하기도 했고 그랬으면 통합마산시가 출범할 수 있었으리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같은 舊 마산에서도 청년층은 이미 유소년기부터 지역의 몰락을 봤고[11] 창원의 종주권을 받아들이며 살아오다보니 중장년층의 마산 바라기에 쉽게 동조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런 사례처럼 지역 중장년층들의 마산 타령이 동네 망신만 시킨다면서 비판적인 입장이다.
아무튼 2010년 통합한 이후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으나 기존 3개 시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뚜렷한 지역성을 보유하고 있다. 옛 마산시와 진해시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도시권이 형성되어 온 곳인지라 동 지역 급의 좁은 범위(예:북마산, 신마산 등)에도 별칭이 붙어있을 정도이고, 뒤늦게 도시로 출범한 옛 창원시는 창원공단의 조성으로 대규모 이주해온 외지인들로 구성된 계획도시인데다가 진해는 특히 군사도시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창원-진해 사이는 장복산으로, 창원-마산 사이는 팔룡산으로 가로막혀 있어 3개 시의 지역성이 모두 제각기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는 지금도 마산이나 진해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에게 거주하는 지역을 물어볼 때 '마산 살아요', '진해 살아요'라고 대답이 많이 돌아오지만 '창원 살아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과 같은 경우라 볼 수 있다. 이는 통합한 지 10년이나 지난 2020년에도 달라진 건 없어서 특정 지역 토호들의 주장대로 야구장 이름을 제멋대로 바꾼 적도 있다.
다만 위에서 나왔듯 타 시군에서도 자신이 사는 지역을 명확히 나타내기 위해 시군명이 아닌 하위 지명을 말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마산, 진해는 여타 시군의 하위지명보다 인지도가 높은 편인 까닭에 외지인들도 웬만하면 거의 알아듣는다는 점. 수도권으로 치면 분당이나 일산 같은 경우라고 보면 된다. -정작 고양이라고 하면 잘 모르다가 일산이라고 말하면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면 호남 지방에 있는 벌교라든가.
반면 뚜렷한 지역성과는 반대로, '''각 지역간을 오가는 교류는 굉장히 활발하게 이어져 왔다.'''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도시가 '마창진'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동일한 생활권으로 인식되어 온 주된 이유. 이들 3개 지역에 시내버스가 통합 운행을 시작한 건 '''1977년'''의 일이었고(마창시내버스협의회의 출범과 함께), 창원의 대규모 계획도시가 1970년대부터 조성에 들어갔음에도 마산의 창동, 오동동 상권이 1990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창원공단에서 근무하던 직장인이 퇴근 후 마산으로 넘어와 주류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번호를 누르면 칼같이 시외전화 요금을 받던 시절[12] 에도 마산/창원은 0551로 동일하였고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했다.[13] 그러나 상남동의 상권 개발 이후로는 오히려 舊 마산 지역 사람들이 공단에서 퇴근하고 근처 상남동에 가서 술을 마신 뒤 마산으로 돌아가는(...) 문화가 정착했다. 역사적으로도 창원과 마산은 1300년대에 의창현[14] 와 회원현[15] 이 합쳐서 만들어진 창원도호부가 그 시작이 된 도시로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의 필요에 의해 마산이 새로이 탄생한 이전까지는 같은 도시였다.
여튼 현재 창원의 경제적 규모는 광역시급이며, 통합시 출범을 토대로 2010년 중후반 광역시 승격을 노렸었다. 그러나 창원시가 경상남도에서 빠져나간다면 경제적 타격이 크기 때문에 경남은 창원이 독립하고자 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역 균형발전 정책상 수원과 더불어 광역시 승격은 매우 힘들다. 다만 통합으로 인한 혜택을 몇 가지 받기는 했지만 역시나 시 규모에 걸맞는 권한을 못 가졌다는 문제가 있으므로 비슷한 처지인 수원, 성남, 고양 등과 더불어 새로운 자치단체 규정을 만들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는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 할 듯. 최근 여러번의 선거를 거치며 광역시로 승격하자는 슬로건과 플래카드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긴 한데, 이미 언급했듯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자세한 내용은 창원광역시 참고.
참고로 현재의 창원시는 마산시와 진해시가 창원시에 흡수된 게 아니라 舊 창원시와 다른 엄연히 '''3개 시가 통합되어서 설립된 새로운 시'''다.[16] 舊 창원시는 명칭만 이어졌을 뿐 통합되어 사라진건 마찬가지. 그래서 홈페이지의 연혁에도 현재의 창원시와 통합 전 마산, 창원, 진해시를 분리해서 설명하며 시장도 통합 창원시 시장을 다시 초대부터 시작했다. 따라서 홈페이지의 역대 시장 항목에도 통합 이후의 시장과 통합전 창원시장, 마산시장, 진해시장이 각각 별도로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창원시의 난리버거지를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상황에서, 2000년대에 한 때 유력하게 제시되었던 도 폐지와 기초자치단체 광역화 논의는 그야말로 '''쏙 들어가버렸다'''. 나름대로 지역간 교류가 활발해 통합이 당연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던 창원이 이 지경이니, 아예 남남인 지자체를 묶어버리자는 도 폐지론은 지자체고 중앙정부고 민간학계고 간에 손을 댈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늘어난 인구를 근거로 광역시 승격까지 해달라고 난리를 치니 중앙정부로서는 이렇게 난감한 일도 없는 상황이다. 만약 통합창원시의 출범과 상기한 갈등이 좀 더 빠르게 나타났다면, 혹은 각 지역의 도청 이전이 좀 더 늦게 진행되었다면 지역통합을 미끼로 내걸고 유치된 도청 신도시들은 다른 운명을 맞았을 수도 있다.
4. 지리
4.1. 지형
경상남도의 남동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부산광역시 강서구와 김해시, 북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밀양시와 창녕군[17] , 서쪽으로는 함안군, 진주시, 고성군, 남쪽으로는 거제시에 접한다. 시의 중앙에는 마산만이, 남쪽에는 진해만이 있다.
남부지방이라 평야를 연상하기 쉽지만 부산처럼 의외로 산이 많다. 舊 창원 시가지는 정병산, 대암산, 불모산, 장복산, 팔용산, 천주산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분지 지형이며, 마산회원구 북쪽에는 무학산도 있다. 봉림동에서 흘러나오는 창원천과 성주동에서 흘러나오는 남천이 합류하여 마산만으로 흘러나간다.
마산 및 진해 지역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 마산은 무학산을 등에 지고 마산만을 맞대고 있으며, 진해는 장복산을 등에 지고 진해만을 맞댄 형태. 특히 마산같은 경우 좀 평평하다 싶은 지역은 죄다 시가지 확장 중에 생긴 매립지들이다. 이 과정은 항구 도시로 번창하던 일제강점기부터 실시되어 왔으며 현재까지도 해양신도시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지형 때문에 2003년 태풍 매미가 들이닥쳤을 때 남마산 일대가 모조리 물바다가 되어버린 적도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낙동강에 접한 의창구의 동읍과 대산면 지역에는 꽤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이 지역은 원래 논농사가 흥해서 농업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어 놨는데, 이것이 주남 저수지이다. 하지만 근래엔 논농사 보다는 지역 특산물로 떠오른 단감을 재배하는 과수원이 늘어나는 바람에 지금의 주남 저수지는 인간의 손을 벗어나 철새의 낙원으로 재탄생했다.
4.2. 기후
'''"따뜻한 남쪽바다"''' 한 마디로 설명이 가능한 지역이다. 인근의 부산과 매우 비슷한 기후특성을 보이지만, 동해/남해상에 접하고 있는 부산에 비해 창원은 마산만이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어 부산보다는 좀 더 내륙분지적 특성이 강하다.
우선 여름엔 무진장 덥다. 한반도에서 열대야가 가장 많이 관측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겨울엔 타 지역에 비해 별로 춥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눈도 거의 안 온다. 물론 추위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겨울되면 춥긴 추워서 시민들도 타이즈+티셔츠+스웨터+패딩 입고 다닌다. 다만 눈은 진짜 구경하기 힘든데 일년에 눈이 1번도 안 오는 해도 많을 정도. 와봤자 쌓이지 않을 정도로만 잠시 내리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2018년 1월 현재, 2015년 2월에 눈이 몇cm 쌓여 꽤나 오래 눈이 남아있던 이후로는 눈이 쌓이지 않았거나 쌓이고 얼마 안 있어 다 녹아버렸다. 그래서 이 곳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은 빙판이 뭔지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다(...)[18] 이처럼 시민들이 눈에 대한 대비가 거의 안 되다보니, 정말 십몇 년에 한번 눈이라도 쌓일라치면 서울에선 이정도 눈쯤 하며 씽씽 달리는 차들이, 창원에선 15~30km 거북이 운행을 하며 골목골목에서 접촉사고가 나는 난리가 벌어지기도 한다.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마산합포구 권역은 정말 헬게이트가 벌어진다. 실제로 눈이 쌓였던 날 평소 30분 정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수도권에선 진눈깨비엔 불과한 눈이 내렸을 뿐인데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1997년 약 10cm 정도의 적설량을 보였을 때에는 단 1개 노선[19] 만 제외하고 대중교통이건 승용차건 화물차건 모두 운행을 중단했던 적도 있다.
진해 지역은 장복산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고 있고 남쪽으로 바다가 트여있어 마산과 舊 창원 지역보다 훨씬 더 따뜻한 기후를 보이는데 이 때문인지 약 50년동안 기록된 최대 적설량이 4cm이다.
바다에 바로 접해있는 옛 마산 지역이나 진해구 쪽은 여름~가을에 걸쳐 태풍 및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피해와 강풍피해를 종종 입는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내습한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이 때는 만조와 강풍으로 인한 5미터 높이의 해일까지 덮쳐 엄청난 재난을 겪었다. 덕분에 2003년 이후 해안가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터돋움식으로 지어서 '''아파트 1층이 다른 건물 2~3층 높이로 올려 지어지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교적 내륙인 양덕동에도 2000년 초반에 완공한 한일4차부터 2015년 후반에 지어진 창원 메트로시티 2차까지 모두 터돋움식이다.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강수량은 연도마다 들쭉날쭉하다'''.[20] 1987년에는 최악의 겨울가뭄으로 저수지가 다 말라붙었고, 1999년에는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거의 100일에 걸쳐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여름 8월에는 제대로 된 비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땡볕이 쏟아졌다. 일기예보에서 전국(남부지방 포함) 비 예보를 할 때조차 땡볕이었다! 뉴스를 볼 때마다(일기예보에서만 윗 지방의 홍수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므로) 밥 먹다 숟가락 던지는 사람도 많다고. 경남 지역 뉴스의 일기예보조차 맞지 않아 각 개인이 날씨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단, 더위 관련은 예보를 뛰어넘는 찜통을 보여준다. 2016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2016년 전국 최고기온을 달성한 적도 있으며, 대개 숫자상 최고기온은 내륙의 대구, 경산, 밀양이 갖고가지만 창원도 정말 만만찮게 덥다. 게다가 창원기상대는 마산합포구 해안가의 옛 마산측후소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舊 창원 권역은 분지 지형이라 열섬현상에 분지 특성까지 얹어서 더 덥다.
5. 인구 추이
5.1. 창원시
5.2. 舊 창원시 (의창구, 성산구)
舊 창원시는 원래 산으로 둘러싸인 깡촌이었다. 그러다가 1974년 인구 30만의 중화학기계공업 도시로 계획되었고, 1983년에 부산에 있던 경남도청이 이전해오면서 예상했던 인구 30만을 훌쩍 뛰어넘어 50만까지 달성했으나,[21] 그 후로는 통합 전까지 증가와 감소가 반복되는 상황이었다. 통합 후에는 수원시의 인구를 추월하여 기초자치단체 1위였으나 다시 감소하여 1위 자리를 내주고 현재 2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창원시의 인구는 감소세인데, 원인은 주요 산업인 조선, 기계, 자동차 산업의 불황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창원을 떠나는 인구가 증가하고, 창원의 비싼 집값을 피해 교통이 편리하면서, 인근 지역인 김해의 장유나 진영, 양산 등으로 빠져나가는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5.3. 舊 마산시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
마산시의 인구는 무역항구의 발달과 수출자유무역지역의 혜택으로 급증하기 시작했고 한때 경상남도 최대도시로 성장하였고 1990년 인구가 50만을 달성하면서 특례시로 승격되고 합포구 회원구로 분구되었다. 하지만 90년대부터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하였고 90년대 중반부터 창원시에 밀렸고 2000년대 중반에는 김해시[22] 에도 밀려버렸다. 인구 감소로 2001년 일반구가 폐지되었다가 2010년 통합창원시가 출범하면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로 재편되었다.
5.4. 舊 진해시 (진해구)
구 마산, 창원지역과 반대로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6. 교통
경남의 중심 도시인만큼 도로, 철도교통이 골고루 발달한 편이다. 도시철도가 없는 게 살짝 아쉬울 뿐. 도시철도는 부전-마산 광역철도가 개통되면 들어오고, 그 이전엔 창원 도시철도가 계획됐으나 무산됐다.
7. 경제
경제 규모로는 이미 광역시급이다. 창원 덕분에 경상남도는 부산에 이어 울산을 제치고 지역총생산이 '''광역자치단체 4위'''이다[23] . LG(LG전자), 현대기아차그룹(현대위아, 현대로템), 한화(한화에어로스페이스[24] ), 두산(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 많은 재벌기업들이 창원에 공장을 갖고 있다. [25] 심지어는 정부, 정확히는 대한민국 육군에서도 초대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8. 관광
8.1. 관광지
8.2. 특산물
8.2.1. 먹을거리
- 마산 아구찜: 마산합포구 오동동에는 아예 아구찜 거리가 있을 정도.
- 복국: 복어를 조리해서 탕(지리)처럼 끓여먹는 냄비 요리. 복국골목은 2000년대 들어 활성화되고 있는 중.
- 각종 해산물: 250년간 이어져 온 거대한 어시장이 있기 때문에 생선을 비롯한 해산물의 질이 웬만한 고급 백화점 뺨친다.
- 무학소주: 진짜 마산야구장에서 보면 지역특산물 같아 보인다.(...) 마산아재 문서를 참조. 舊 마산시 시절에는 9경 5미라고 해서 나름 밀던 콘셉트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일제시대 현재의 두월동 인근에 있었던 시미즈 양조장의 명맥을 계승한다.
- 하이트맥주: 하이트 제2공장이 천주산(마산역과 창원역 사이)에 있다.[26] 창원시의 지질이 화강암반이라 물맛이 좋다는 장점이 있었고, 1990년 페놀사태 당시 이 점을 크게 활용하여 광고했다. 그 결과 하이트가 히트상품이 되었고 사명을 아예 조선맥주에서 하이트맥주로 바꿔버렸다.
- 몽고간장: 일제시대 몽고정 옆에 있던 간장 양조장. 현재도 몽고식품 본사가 이 자리에 있고, 경남지역 간장 시장 점유율 부동의 No.1이다. 수도권에서는 기성 업체에 밀려 보기 힘들지만 가성비가 괜찮기 때문에 가끔 수도권의 오래된 식당들이 플라스틱 벌크째로 사다가 쓰는 게 관측되기도 한다.
- 단감: 창원 하면 국가산업단지의 정밀기계공업이 많이 알려져 있어 공업도시로 알고들 있는데 의외로 단감의 전국 최대생산지이다.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논과 밭이 펼쳐져있고 감나무 과수원과 산에 빼곡하게 심어진 감나무를 볼 수 있다. 단감은 창원과 가까운 진영이 전국적으로는 더 많은 지명도를 가지고 있지만 의외로 생산량은 창원이 더 많다. 진영이 더 알려진 이유는 진영에도 단감이 많이 생산되는 이유도 있지만 폐쇄적인 지형의 창원은 유통이 불편해 창원에서 나는 단감을 진영에 가져가 팔아 전국적인 생산지로 진영이 더 알려졌다.
창원은 야자수가 자랄 수 있을 정도로 온난한 지역이다. 부산과 마찬가지로 눈보기가 힘들정도로 따뜻한 지역이기에 고구마가 한국에 제일 처음 도입 되었을 때도 기후가 맞는 곳을 찾아 현 진해구(옛이름 웅천)에서 실험재배했을 정도다. 그래서 아열대과일도 잘 자랄 수 있다.
8.2.2. 가전제품 및 기계설비류
이 항목들은 무려 '''창원시 향토백과 홈페이지'''에 떡하니 기재되어 있다. 기계공업이 흥한 창원의 특성 때문인 듯.
8.3. 주요 행사
- 진해 군항제: 창원시에서 가장 크고 성대한 행사. 일년에 딱 한 번 이 때만큼은 진해구 전체가 사람으로 미어터진다. 한때 통합 후 제1회 창원 군항제로 변경하여 진행했다가 비난이 커지자 원래대로 바꾸었다.
- 가고파 국화축제: 국화가 유명한 마산지역의 명성을 이용하여 대규모 꽃축제를 매년 가을에 연다. 원래는 마산앞바다의 돝섬 유원지에서 열었으나 섬이라는 특성상 입/퇴장에만 세 시간이 걸리는 헬게이트가 열리는 등 여러 부작용으로 2016년까지는 용도폐기된 제1부두에서 열린다. 마산항제1부두선 선로는 흙이 덮인 화단으로 쓰고 있다.
- 만날제 : 마산합포구 문화동과 예곡리를 잇는 고개인 만날재에 전해지는 민담을 주제로 20세기 후반에 재구성한 축제. 舊 마산시의 마스코트인 '만남이'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창원시 홈페이지 참조.
- 창원진동 미더덕축제: 미더덕 생산량이 전국 2~3위권을 다투는 곳이라 최근에 이를 이용한 향토축제를 열고 있다.
- 창원 시민의 날 축제
- 천주산 진달래 축제: 동요 고향의 봄의 무대가 된 천주산의 진달래를 이용한 향토축제.
- 창원시립교향악단 연주회: 2010년 7월 통합으로 마산시립교향악단이 창원시립마산교향악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2012년 4월 두 악단이 통합되었다.
- 창원 길마켓: 시민을 대상으로한 대규모 중고장터로 매달 셋째주 토요일 성산 아트홀 가로수길에서 열린다. 꼭 창원시민이 아니라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축제.
9. 생활문화
전반적인 생활문화시설이 확충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이 많다. 마산, 진해 지역도 여러 가지 개발을 벌이고는 있지만 아직 舊 창원에 비하면 모자란다. 그 舊 창원도 북면, 대산, 동읍을 아우르는 북쪽 농업 지대의 불균형 발전 때문에 통합을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통합이 성사되면 안그래도 지금까지 지지부진하던 농업 지대 개발에 쓰이던 자본이 마산이나 진해 쪽으로 쏠릴 우려가 있었기 때문. 다행히 통합을 하고 나서도 농업 지대의 개발 또한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9.1. 금융
9.2. 상업
1980년대 창원에 공단이 들어서는 등 개발이 시작될 무렵 이 지역의 중심 상업지역은 마산 창동과 오동동 일대였다. 당시 창원의 개발로 인구는 급증한데 비해 문화시설은 확충이 되지 않아서 창원 노동자들이 낮에는 창원공단에서 일하고, 밤에는 마산으로 넘어와서 음주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지금은 어떻게 됐냐고? 완전히 폭삭 주저앉아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파리만 날리고 있다. 그런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던지, 창원시 차원에서 이 지역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장사가 그나마 되는 곳은 어시장과 롯데백화점 마산점(구 대우백화점) 뿐으로, 구 원마산지역의 전통 상권은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수준. 30년 전만 해도 추석 전날 부림시장 인파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명동 못지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따로없다.
창동, 오동동 지역이 망한 이유는 창원에도 곧 상업지역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창원에서 가장 먼저 조성된 상업지구는 중앙동 일대로서, 이 곳에는 창원시청과 용지호수가 인접해 있다. 중앙동 상업지구의 중심지는 정우상가이다. 창원 중앙동에서 약속을 잡을 때는 정우상가 앞에서 만나는 것이 불문율일 정도이다.[27]
예전 상남시장 주위를 개발하기 이전 창원시의 상징이 바로 중앙동이었다.
현재는 상남동 등 다른 지역에 다소 밀리는 감이 있지는 않으나 그래도 주로 30~40대들은 다른 곳보다도 중앙동에서 만나는 것을 가장 선호하고 있다.
주변에 창원시청 등 관공서가 많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자주 이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 다음으로 개발된 상업지구는 상남동이다. 상남동은 창원 중앙부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이 안되고 빈 땅으로 남아있다가 1990년대 들어서야 개발이 시작되었다. 현재 상남동 상업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은 원래 꽤나 큰 시장이 들어서던 곳이었는데, 시장을 다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상업건물을 지어버렸다. 과거에 비하면 규모가 상당히 줄어들긴 했지만, 시장은 여전히 들어서고 있어, 장날이 되면 네온사인으로 도배된 번쩍번쩍한 건물 앞에서 시장장인이 쪼그리고 앉아 과일이며 채소를 파는 기묘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상남동 상업지구는 유흥가 그 자체이다. 노래방과 술집이 극도로 밀집해 있어 한강 이남 최대의 유흥지역이라는 별명도 있다. 주로 10대~30대의 젊은층이 많이 찾는다. 한 가지 기묘한 점은 이 곳에는 학원도 군데군데 위치해 있기 때문에 낮이 되면 중고등학생들의 건전한 교육의 장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상업지구는 더시티세븐 자이이다. 2008년 문을 연 이 거대한 복합상업건물은 창원시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마산지역과도 멀지 않아 마산과 창원 두 지역 모두에서 접근성이 좋다는 평이 있다. 이 곳에 위치한 오피스텔은 창원시는 물론이고 경남 전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가 현재는 창원 메트로시티 2차가 추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시티7을 창원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라고 하기도 한다. 바로 옆에 통로로 연결된 창원컨벤션센터와 풀만호텔이 위치한다.
의창구 유니시티의 상업지구에 대형 상업시설 어반브릭스가 있으며, 2023년 상반기 스타필드 창원의 오픈이 예정되어 있어 유니시티 일대가 새로운 상업지구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창원중앙역 역세권과 마산해양신도시에도 넓은 상업 용지가 있어서 창원시의 상업지구는 더욱 다핵화될 것으로 보인다.
舊 마산 지역 최고의 상권은 마산시외버스터미널과 마산역을 끼고 형성된 합성동으로, 마산역이 현재 위치로 옮겨오면서 부흥하기 시작했다. 경남에서 몇안되는 지하상가가 있을 정도.
창원시청 앞에는 영플라자.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이마트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진풍경을 볼수있다. 롯데 영플라자의 개점으로 창원광장에 이어진 대형 상업건물만 4개다. 정작 주민들은 이마트를 더 익숙하게 느끼는데 아마도 서민층이 자주가는 마트라는 특성과 함께 롯데마트, 영플라자는 2010년대 지어서 그런듯.
대형마트 및 백화점 개수 등의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경제#s-2문서 참고
9.3. 생활, 문화, 교육, 의료시설
9.4. 스포츠
프로스포츠 구단으로는 농구의 창원 LG 세이커스를 시작으로 축구의 경남FC와 야구의 NC 다이노스가 있다. 그 중 경남 FC는 엄밀히 따지면 창원시의 연고 구단은 아닌 경상남도 전체가 연고지이지만 주 경기장으로 창원축구센터를 사용한다.
또한, 세미프로 축구팀으로는 3부리그 K3리그에 참가하는 창원시청 축구단이 있다.
10. 정치
11. 군사
창원기계공업단지에는 장갑차 등 무기를 직접 생산하는 현대로템을 필두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방위산업체들이 몰려있어 전시에는 가장 중요한 군수물자 생산기지가 되는 도시다. 이 때문에 전쟁 발발시 서울 다음 폭격 지역으로 지목받기도 한다. 만약 전시에 이곳이 단기간에 박살나게 되면, 스타크래프트에서 본진 팩토리나 게이트웨이가 터졌을 때와 똑같은 상황을 현실에서 겪게 될 확률이 높다. 게다가 한국은 땅이 좁은 까닭에, 2차 대전 때 소련이 독일한테 진창 두들겨 맞아 막장이 된 상황에서도 생산 시설을 저 머나먼 우랄 산맥으로 옮겨, 독일군이 진군해 오는 동안 그 새로 만든 생산 시설에서 화기를 뽑아서 막아내는 그런 무리한 일을 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그 방어가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는 도시이다.
전군 지상 공통장비에 대한 창정비지원을 하는 육군종합정비창이 동읍에 주둔한다. 그와 함께 국방과학연구소의 기동시험장 역시 창원 동읍에 있다.경상남도 지역의 방어를 담당하는 제39보병사단도 창원에 존재했었으나 2015년 5월부로 함안군 군북면으로 이전했다. 그래도 함안군은 창원시 바로 옆이기는 하다.
창원대로가 10km 넘는 길이로 일직선으로 쭉 뻗은 것도 비상시 수도 역할을 하기 위한 활주로 대용이다. 지금은 중앙분리대와 지하차도로 인해 활주로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으나 본 목적이 전시상황에서 비상활주로 역할이니만큼 창원은 계룡시 못지 않은 비상용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진해구는 해방 직후부터 해군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며 애초부터 해군의 거점 도시로 발달한 곳이다. 지금도 해군의 주둔지 가운데 하나인 진해 해군기지에는 해군 신병들을 교육하는 해군기초군사교육단, 보급을 담당하는 해군군수사령부 해군 장교를 양성하는 해군사관학교와 진해기지사령부가 있다.
육군종합정비창과 더불어 진해기지사령부 안에는 모든 국방부 및 해경등의 배들을 정비하는 해군정비창이 있고, 각함대 수리창에서 정비가 안되는 함정들은 모두 진해로 온다. 해군 및 육군의 헬기 정비창도 풍호동에 위치해있고 육,해군의 헬기부대를 운용하는 진해비행장도 마련되어 있다.
진해에서 부산으로 해군작전사령부를 옮기기 전까지 해군본부 제외하고 거의 주요사령부는 진해에 몰빵되어 있었다.
12. 하위 행정구역
13. 여담
- 주요 번화가(특히 마산회원구 합성동과 성산구 중앙동,상남동)을 중심으로 "대표종자"라고 하는 사이비 종교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모르는 남자가 지나가는 사람보고 말을 거는데 보통 타지사람같아 보이면 달라붙으며 혹시 대표종자라고 아냐고 성, 본관, 파 뭐냐고 물어보는게 특징이다. 복 많아보이게 생겼다고 몇년생이라고 물어보는데(일명 도를 아십니까) 조심해야하며 그때는 관심을 안주고 도망치는게 상책이다. 중앙동 이마트와 롯데백화점 주변에 많이 출몰하며 대표종자는 창원(혹은 마산)에서만 활동하는 사이비로 보인다.
14. 창원 출신 인물
15. 관련 문서
- 계획도시
- 역사
- 랜드마크
- 스포츠
- 교통
- 특산물
- 창원컨벤션센터(CECO)
-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16. 자매결연 도시
16.1. 국내
16.2. 해외
- 중국
- 안휘성 마안산시
- 길림성 서란시☆
- 미국
- 일본
- 러시아
- 베트남
- 티엔장성 미토시
- 다낭시☆
- 멕시코 사뽀빤시☆
- 모로코 나도르시☆
- 터키 이스탄불 카흐트하네구☆
- 독일 베를린 노이쾰른☆
- 칠레 발파라이소주 비냐델마르시★
17. 둘러보기
- 문서 삭제식 이동(창원 → 창원시)
[1] 2020년 11월 기준 주민등록인구[2] 경상남도 최대 번화가[3] 의창구 일원의 저수지로 겨울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다.[4] 진해 군항제(벚꽃축제) 명소 중 한 곳이다.[5] 창원시청 인스타그램 페이지에서 캡처한것으로 추정 해당 페이지[6] 여담으로 도청 이전 당시 진주와 옛 마산이 유치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진주는 부산으로 이전하기 이전에 원래 경상남도청이 있었던 곳이라는 점을 내세웠고, 마산은 당시 경남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전국적으로도 대도시 축에 들었다는 점에서 도청 소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981년 도청이전지가 현재의 장소로 확정되었는데, 옛 창원시 권역은 마산시 창원출장소가 1980년 시로 승격된 같은 생활권인지라 사실상 마산으로 이전한 것에 가깝긴 했다. 비슷한 예론 광주광역시에 있던 전라남도청이 사실상 목포시 생활권인 무안군 남악신도시로 이전한 바 있다.[7] 일반적으로 시의원 선거구는 '가'~'하' 순서로 선거구 기호를 매기는데, 통합되면서 '하' 선거구까지 다 채우고도 모자라 '거'에서 '러'까지 매겼다. 참고로 거~러 선거구는 모두 진해구에 있다.[8] "경상남도의 창원시, 마산시 및 진해시를 각각 폐지한다."(경상남도 창원시 설치 및 지원특례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경상남도에 창원시를 다음과 같이 설치한다."(같은 조 제2항. 제1항에 따라 폐지되는 창원시 일원, 마산시 일원 및 진해시 일원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창원시 설치)[9] 마산과 함안이 밀었던 모델은 함안+마산+창원 이었고 창원이 밀었던 모델이 마산 + 창원+ 진해 였다. 당시 마산시의 생각은 이 3도시가 통합되면 마산은 발전동력이 다해 쇠퇴하던 도시가 다시 도시중심부가 되어 새로운 발전동력을 얻을수 있었고, 함안은 새로이 공장이 들어서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 도시였으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탓에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없으므로 많은 재정을 유치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창원시는 아직도 북면 등 미개발지역이 남아 있고 함안과의 연동으로는 별 메리트를 찾을수 없었던 터라 함안과 마산을 제외하고 신항이 들어서던 진해와 합쳐서 항만도시로의 발전을 추구하는게 낫다고 판단하고 도시통합을 추진했다.[10] 이미 도농통합 직전에 군명을 시 지명과 맞춰 환원한 지역은 별 문제가 없었고, 군산-옥구, 포항-영일, 순천-승주, 울산-울주는 시 지명이 군 지명의 인지도를 압도했기 때문에, 익산-이리, 평택-송탄, 남양주-미금, 여수-여천, 청주-청원, 광양-동광양, 정읍-정주, 경주-월성, 문경-점촌, 사천-삼천포, 거제-장승포, 통영-충무는 전자의 역사성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지명에 합의할 수 있었다. [11] 2019년 현재 만 30세인 1989년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마산의 구 폐지를 겪었다. 즉 이들이 눈 뜨고 말 익힌 후로 알고 있는 마산의 모습은 1990년대에 이미 15만의 인구가 빠져나가고 한일합섬이 이전해 몰락해 버린 인구 30만 수준의 지방 중소도시일 뿐이다.[12] 서울-성남/안양/구리/의정부/고양, 창원-진해도 당연히 시외요금이었다. 시내요금권역은 서울-과천·광명, 인천-부천, 대구-경산, 대전-두계(계룡) 등 정말 몇 안 되었고 거의 대부분 정책적 위성도시였다. '''분당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 논란'''도 있었을 정도로 시외전화라는 것에 민감하던 시절이었음을 상기하자.[13] 이 당시 시외전화라 그러면 10원짜리가 쭉쭉 떨어져 100원짜리를 2개는 준비해야 제대로 통화를 했던 시절이다. 시내요금은 20~50원으로 3분간 통화를 즐길 수 있었다.[14] 현 창원시 의창구[15] 현 마산시 회원구[16] 반대의 경우가 청주시와 청원군으로, 청원군이 청주시에 흡수되는 방식이었다.[17] 정확하게는 창녕군 이남지역(=남지읍/영산면)으로 이뤄진 창녕 남부권[18] 타 지역처럼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두껍게 어는 빙판이 아니라, 응달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가 살짝 언 정도의 매끈한 빙판 정도만 경험한다. 물론 육군 예비역들은 거의 다 전방을 다녀오기 때문에 눈 하면 이를 가는 건 타지 사람들과 마찬가지긴 한데 지역 특성상 해군, 해경에 지원하는 비율도 타지역보다 높은 편이라 눈이 익숙하지 않은 비율이 더 올라간다.[19] 주간선 역할을 하던 구 21번 버스, 현재의 103번과 비슷한 노선이다.[20] 이는 연강수량 대부분을 장마와 태풍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 때문이다. 유달리 장마가 길고 태풍도 여러개씩 통과하는 해는 연 강수량이 2000mm 가까이 내리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장마가 짧게 끝나고 태풍이 통과하지 않는 해는 1000mm도 채 안내리는 경우도 있다. 당장 2016년만 하더라도 서울의 누적 강수량은 776mm(9월 20일 기준)로 평년의 66% 수주밖에 되지 않는다.[21] 이때쯤에 마산시의 인구를 추월하였다.[22] 같은 시기 김해시의 인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2010년에는 특례시가 될 수 있는 요건인 50만을 돌파하였다.[23] 경기도, 서울특별시, 충청남도 다음이다.[24] 구 삼성테크윈[25] 이제는 외국계 기업이지만 삼성중공업 건설기계사업부도 있었다[26] 원래는 한독맥주 공장이었으나 1976년에 금융 관련 사건으로 인해 도산하면서 이듬해에 조선맥주가 인수했다.[괄호] A B C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27] 정우상가는 엄밀히 말하면 성산구 중앙동이 아닌, 의창구 용호동 소재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구와 동이 갈리는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