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지도자 경력
1. 개요
선동열의 지도자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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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수석코치 취임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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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당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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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코치 시절에 82번을 달았었다. 참고로 코치 김태한도 82번을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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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승격 후.
감독으로 승격되면서 90번으로 등번호를 바꾼다.
2.1. 부임 성적
은퇴 후 KBO 홍보위원으로 활동했다가 2004년 삼성의 수석코치에 취임하고 그 다음해 김응용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 사장으로 영전하자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2005년, 2006년 2년 연속으로 정규시즌 1위를 기록하고 한국시리즈도 2연속 우승. 그러나 2007년, 2008년에는 4위에 그쳤고 2009년에는 5위에 그치면서 1996년 이후 처음으로 4강에서 탈락하였다. 2010년 SK에 이어 2위로 페넌트레이스를 마쳤으며, 플레이오프에서 시즌 3위 두산에 3승 2패로 승리, 한국 시리즈에서 SK에게 4연패하여 2010 시즌 준우승--꼴찌--을 차지하였다.
6년 재임기간동안 우승 2회, 2위 1회, 4위 2회, 5위 1회.
일반적인 팀이었다면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삼성의 통산 성적과 비교해 본다면 4-4-5라는 성적은 결코 좋은 성적이라 평가받기 어렵다. 더욱이 2009년을 5위로 마쳐 1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좌절시켜버렸다. 그 이후로 6년이나 더 가을야구에 진출했다는 걸 생각하면 2009년에 명맥이 끊겨버린 게 더 아쉬운 상황이다. 허나 구단 역사상 첫 2회 연속 우승을 기록한 감독도 선동열 감독.[1]
팬들과의 관계에서 논란이 많았던 감독으로 대구 지역 골수팬들은 한국시리즈 2연패 당시에도 선동열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삼성 특유의 선굵은 공격야구 대신 투수 중심 스몰볼을 추구했는데, 화끈한 공격 야구를 20년간 봐온 팬들과의 상성도 맞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배영수를 시작으로 주축 투수들에게 과부하가 가는 등[2] 팀 전체의 잠재력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더군다나 선동열에게 한국시리즈의 좌절을 맛본 기억이 대다수 있기 때문에 올드 팬일수록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다.
다만 2회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 역시 어쨌거나 의미 있는 기록이었기에, 지지하는 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또한, 해태의 전설적인 레전드 선수출신이다 보니 2004년 이후 성적이 시원찮던 KIA를 뒤로 하고 선동열을 따라서 삼성을 응원하던 감독의 개인팬들도 상당수 존재했다.[3] 하지만 이런 팬들도 팀이 좋은 성적을 뽑으며 잘 나갈 때에나 목소리가 컸고, 이후 성적이 곤두박질 치고 각종 프렌차이즈 스타에 대한 홀대가 불거지면서, 삼성 팬들의 다수는 선동열 감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돌아섰다.
우승 시기 이후 삼성은 선동열 감독을 놓고 수많은 논란이 양산되었으며, 선동열을 옹호하는 팬들은 선수 시절 선동열을 좋아하던 선동열 개인팬들이 삼성팬 위장전입해서 자기 레전드가 욕먹는 걸 쉴드치는 경우가 다수였다.[4] 이로 인해 당시 삼성은 논란이 벌어지기만 하면 겉보기에는 내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삼성팬 vs KIA팬 + 소수의 삼성팬의 싸움이 되기 일쑤였다고. 실제로 삼성 라이온즈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몇몇 선동열을 옹호하는 기아팬들이 가입하여 여론몰이를 하다가 관리자로부터 적발(?)되어 차단당하기도 하였으며, 모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선동열 경질과 기아 감독 부임 무렵 슬그머니 응원팀을 바꾸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5위로 가을 야구를 탈락하고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인 양준혁이 강제 은퇴 당한 이후에는 소수의 선동열 옹호파 삼성팬들도 등을 돌렸기 때문에, 선동열의 임기 말기에는 그를 옹호하는 이는 KIA팬, 혹은 선동열 개인 팬이 대부분이였던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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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스윕패를 앞두고 헛웃음을 짓는 선동열과 심각한 표정인 류중일 코치의 대비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2010년 한국 시리즈에서 우리는 우승할 시기가 아니라는 드립과 함께 4-0으로 무기력하게 지는 운영을 펼쳐 큰 비판을 받았으며, 특히 한국 시리즈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SK는 선발의 의미가 전혀 없는 팀 같다. 이렇게 되면 야구가 이상해지고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어떤 식의 야구인지 알 수가 없다. 한국식인지. 미국식인지, 일본식인지... 물론 졌으니 할 말은 없다"라고 말하며 삼성 팬들의 어이를 상실케 했다. 비록 김성근의 행적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니기는 하지만, 정반대의 스타일인 로이스터라면 모를까 김성근 감독과 가장 스타일이 비슷한 불펜 중심의 야구를 하는 선동열 감독이 할 소리는 아니다. 실제로 10시즌 한국시리즈 동안 SK와 삼성 양팀 선발 중 5이닝을 채운 선발은 2차전에 나와서 5.1이닝 3자책을 기록한 차우찬밖에 없다. 정규시즌 기록을 봐도 선발 평균 이닝이 SK 5.01, 삼성이 5이닝으로 동일한 수준. 추가로 한국시리즈 동안 출장한 투수 숫자도 같다.
2.2. 스타일
2.2.1. 투수 기용
공식적으로는 수석코치로 입단 뒤 1년만에 감독으로 승격했기 때문에 코치경력이 짧아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2004년 수석코치 입단때 팀은 사실상 그를 투수코치로 영입했고 투수코치로 활동한 뒤 감독으로 승격된 케이스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짧은 경력이지만 투수코치로서의 능력은 대부분 인정해준다. 그래서 2006년 WBC에서도 투수코치로 활약했다.
대투수 출신 감독답게 투수를 중심으로 하는 지키는 야구를 한다. 그 결정판은 "KO펀치"라 불리던 권오준 - 오승환[5] 의 필승 계투진. 그와 더불어 권오준 - 권혁의 "쌍권총" 라인 또한 유명하다. 외에도 정현욱, 안지만 등을 기용하여 계투진의 강력함을 유지했다. 이렇게 완성된 게 이른바 안정권KO 라인.
삼성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불펜혹사 문제 때문에 투수육성 성과가 상당부분 부정당하고 있지만(배영수, 권오준은 아예 재기불능으로 싹 갈아마셨고) 큰 부상 없이 롱런했고 선동렬 시절 꾸준히 기회를 부여받은 윤성환, 안지만, 차우찬 3명은 정말 어지간히 선동렬 싫어하는 안티팬이 아니라면 선동렬의 공적으로 인정한다.
다만 선발에서 잘 던지거나 선발로 정착해야할 유망주들을 빼서 불펜에 넣었던 점에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권오준은 원래 선발이었지만[6] 2004년 시즌 중 혈행장애 드립[7] 을 치면서 기어이 불펜으로 전향시키고, 굴린 결과 권오준은 인생의 토미존 서저리 3회 중 2회를 선 감독 아래서 받게 되었다. 권혁 또한 좌완 파이어볼러 '''선발 유망주'''였지만, 토미존 서저리에서 복귀한 직후인 2007년 불펜에서 마구 구른 결과[8] 결국 평범한 좌완 계투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만 정현욱의 경우에는 선발로만 가면 난조에 시달리는 것을 봤고, 안지만 또한 선발로서는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기에 반대가 없다[9] .
그리고 "투수가 자기 공을 제대로 뿌리려면 일단 많이 던져봐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어서인지[10] , 스프링캠프에서 투수들에게 많은 공을 던지는 훈련(소위 3000투구 훈련)을 요구하기도 한다. 다만 이에는 체계적인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력을 탄탄히 해놓아야 한다는 선제조건이 있기 때문에[11] , 초보 코치 시절에는 이 조건을 간과하고 그냥 무작정 많이 던지라는 식으로 주문했다가 몇몇 투수들이 이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부상으로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드러눕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12] 본인이 3000투구로 부활했던 건 그냥 본인의 신체조건이 사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는 사실을 잊었던 듯. 이후로는 좀 나아져서 공을 던지기 전에 일단 몸을 만들 것을 주문하고 있다.
투수 운용 능력은 수준급이어서 2010년에는 "5회 이후 리드시 승리"라는 무시무시한 진기록을 이어가기도 하였다. 이 기록은 9월 4일 롯데에게 패하면서 '''52연승'''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허나 이 투수 운용은 불펜에 무리를 많이 가해 후에 많은 부상선수들을 유발하게 된다. 게다가 사실 저 2010년엔 선동렬이 2이닝 이상 등판하면 3일 이상 쉬게 한다는 등 혹사를 안하는 감독으로 비추어 졌지만 실제로 2009년까지 선동렬의 투수 기용을 보면 '''이 때까지 투수들 다 혹사시켜서 말아먹다가 2009년에 단체 시즌 아웃을 겪고 나서야 정신차렸다'''라고 봐야 한다. 또한 이만수, 양준혁, 이승엽 시절부터 홈런을 뻥뻥 쳐대는 것에 익숙하던 삼성팬들은 매번 1점차, 2점차로 쥐어짜내 이기는 야구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이것도 인기가 없던 요인 중 하나. 후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인 류중일이 선동열과 반대로 선발을 길게 가져가고 연속 우승을 차지하게 되면서 삼성 라이온즈의 팬들은 선동열의 이러한 스타일을 더욱 비판하고 있다.
투수 출신 감독이어서 그런지 투수에 대한 애정이 넘쳐흐르며 투수오타쿠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 신인선수가 오면 닥치고 투수부터 만들고 보려는 경향이 크다. 팀내 타자가 모자른 탓에 타자로 갈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라고 예상됐던 2008 지명 신인 최원제조차도 투수로 낙점지었다. 거기에 이상목, 구자운 등 타 팀에서 방출된 투수들을 1억씩 쥐어주고 컬렉션으로 만들었으니(…). 이 양반 투수오타쿠 맞다. 2008 시즌이 끝난후 스토브 리그에서는 히어로즈의 장원삼을 자기 콜렉션으로 만들려다가 타 구단과 KBO의 제재로 실패. 그러나 2009 시즌 이후 히어로즈 가입금 완납 이후 기어코 장원삼 영입에 성공. 이는 이미 작년부터 계속 진행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8 시즌 후 장원삼은 30억+박성훈의 조건으로 트레이드 되었었으나 이때 지불한 30억원을 2009 시즌 후까지도 히어로즈가 반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언론에 발표한 20억+김상수+박성훈의 딜은 김상수에게 10억의 가치를 인정해서가 아닌 단순히 김상수를 끼워준 명목상의 트레이드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투수오타쿠라기보다는 불펜오타쿠에 가깝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선발로 10승 투수가 된 권오준의 불펜 전향과 권혁의 불펜 강제 전향. 그나마 이 불펜 오타쿠 질 속에서도 '''윤성환과 차우찬을 꾸준히 선발투수로 키운 부분'''과 안지만을 리그 정상급 불펜으로 성장시킨것 만큼은 훌륭한 업적이라 봐야 할 듯. 선동렬의 투수운용을 비판하는 삼성팬들도 저 3명은 군말없이 인정하는 편이다.
또한 투수혹사도 종종 논란에 오른다. 단적인 예로 주전투수 배영수, 권혁, 권오준, 오승환 등 수많은 투수가 혹사의 결과 재활해야 했다. 그나마 삼성 라이온즈의 돈빨로 선수들이 그럭저럭 복귀할 수 있던 것이 다행일까. 특히 배영수같은 경우는 종래의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구위회복이 문제가 아니라 에이스가 완전 망한 선수가 된 판. 삼성 팬들은 배영수의 어깨를 우승과 바꿔왔으므로 못해도 아무도 안 깐다. 선동열이 배영수에게 영구 까임방지권을 줬다는 어두운 우스갯소리까지 있다.
이러한 투수 혹사 문제는 선동열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늘어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팀 간판 에이스와 초특급 불펜을 부상시켰으니 좋아할 리가 있나. 사실 선동열의 투수 운용은 투수가 넘쳐나지 않는 이상 불펜에 심하게 무리를 줘서 부상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2.2.2. 타자 기용
철저한 스몰볼을 추구해 쥐어짜는 야구를 했다. 이때문에 삼성은 삼점 라이온즈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아무리 쉴드를 쳐준다 해도 '''2005 시즌 득점 2위이던 타선이 부임 3년만인 2007 시즌에 득점 8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낸 것은 선동열의 타자 발굴 능력이 아주 형편없다는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 기간 동안 선동열이 밀어준 타자들은 김응용이 점찍어둔 미래의 클린업 최채박말고는 전부 1군에서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실망스런 성적을 뒤로 한 채 쫓겨났다.
이러한 성향은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발견되는데 소위 떡대픽이라 불리는 하드웨어에 중점을 둔 픽이 아니라 빨리 써먹기 편한 멸치 쌕쌕이 픽을 선호하였다. 삼성 시절엔 허승민, 이영욱, 김종호, 오정복, 배영섭, 정형식 등이 있고, 기아 시절은 윤완주, 강한울, 박찬호이 대표적이다. 이 멸치 쌕쌕이 드래프트는 인성의 대졸과 맞물려서 감독으로 이끌었던 팀의 타자진들을 황폐화시킨 원흉으로 지목받는다. 저 중에 제일 성공한 배영섭의 전성기가 딱 3년이었고[13] 정형식은 1군 주전으론 함량미달임만 입증하다 음주운전으로 야구계를 떠났다. 김종호는 NC로 이적해 도루왕까지 차지했지만 수비와 컨택툴로 받치지 못하는 주루툴은 현대야구에 대주자 이상의 의미가 없음만 증명하며 밀려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스승 입김이 들어간 채최박은 꾸준히 기회를 주며 밀어줬기 때문에 류중일 시절 대폭발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후임 류중일은 똑같이 멸치 좋아하며 차세대 장타자 육성에 손을 놓았음에도 전성기를 맞이한 채최박과 돌아온 이승엽, 바뀐 제도로 영입된 외인타자로 화려한 빅 볼을 할 수 있었다. 선동렬 시절에 채최박만 두고 멸치, 류중일 시절엔 걍 다 멸치만 키운 결과 그뒤를 이은 김한수 재임기 삼성은 리그 최고 타자친화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장타력이 약점인 구단이 되었다.[14]
2.2.3. 사단 구축
날이 갈수록 프런트 입김이 강해지는 메이저리그 야구는 감독의 운신폭도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지라 감독이 자기 사단 끌고 옮겨다니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각종 학연, 지연으로 얽혀있는 한국 야구계는 실력 유무를 떠나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감독들은 저마다 자기 사단을 꾸리는 게 일반적이다. 예외는 염경엽이 SK로 나르며 자기 사람 다 뜯어가 외인구단화한 넥센 뿐 이다.
삼성의 주요 코치진이었던 선동열-한대화-조계현 라인은 모두 해태 출신이고, 이 라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삼성 출신인 양일환 투수코치가 나갔다. 2009 시즌 종료후 조계현을 내치고 한대화는 한화 감독으로 나가며 코치진의 해태색은 엹어지고 김현욱, 전병호, 김한수, 김재걸같이 선동렬 시기 인선된 삼성 출신 코치들이 자리잡았다.
2.2.4. 포스트시즌 운용
감독으로서의 그의 단기전 능력에 대해서도 논란거리가 많다. 코시 2연패를 달성한 감독[15] 중의 한 명이기에 단기전 능력이 나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그저 전력이 우세할 때만 이길 뿐 비등하거나 뒤질 때는 맥을 못추며, 특히 넘어간 흐름을 다시 잡아오는 능력이 형편없다는 평가 또한 있다. 이는 그의 장기전 능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기는 경기를 잡는 데는 능하지만 지고 있는 경기는 거의 포기해 버린다는 것이다. 2009 시즌, 2010 시즌. 삼성은 5회까지 리드시엔 압도적인 승률을 보였지만, 그 승률의 이면에는 반대로 5회까지 못 이기고 있을 시 매우 낮은 승률이라는 그늘이 존재한다. 심지어 10시즌은 '''포스트시즌에서도 경기를 리드하지 못하면 그 경기를 포기했을 정도'''니...한 경기 한 경기가 페넌트레이스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중요함에도 경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다. 반면 삼성은 전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해도 준우승한 적이 부지기수니...단기전을 아예 못 한다고 보기도 뭐하다.[16] 애초에 "전력이 약한데 우승" "전력이 강한데 준우승"이란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전력이 곧 성적이고, 성적이 곧 전력이기 때문이다. 강한 녀석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긴 녀석이 강한거다...라고는 하지만 분명히 보유한 선수층의 뎁스라는건 존재한다. 2002년의 LG와 2006년의 현대가 아직도 용병술의 승리로 회자되는 이유는 명백히 얇은 선수층을 가지고도 파이팅과 적재적소에 터지는 작전으로 선두권 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력이라는 개념은 이 용병술까지도 포괄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2.2.5. 대졸 신인 선호
2009년 8월, 2010년 신인 지명을 불과 며칠 안 남겨둔 시점에서 언론에 대놓고 '''고졸 투수는 안 뽑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삼성 코치를 시작했을 때인 2004년 윤성환이나 삼성 감독이 된 2005년에는 오승환 등 주축 불펜으로 성장한 선수들이 다 대졸인데다 주축 투수들의 부상으로 대신 기용한 투수들이 부진했고 이들 대다수가 고졸 투수였기 때문이었다. KIA 감독이 된 후 신인 지명에서 대졸 선수를 선호해 KIA 팬들로부터 질타를 받았으나 선동열의 대졸 선호는 원래 삼성에 있을 때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실제 삼성은 2010년 신인 지명에서 1, 2라운드 모두 대졸 투수를 지명하는 등, 지명한 투수 6명 중 4명이 대졸이었다. 삼성의 지명 결과에 대해 타팀 스카우트는 "삼성이 대졸 투수를 뽑으려고 어쩔 수 없이 (임진우와 김현우를) 상위라운드에서 지명한 느낌이 있다. 나머지 2명의 대졸 투수(김재우, 이규대)도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선수들."이라고 평가했다. 2010년 신인 지명을 앞두고 전면 드래프트로 방식이 바뀌면서 이로 인해 고졸 선수들이 미국으로 진출하며 예년에 비해 유망주 풀이 안 좋다고 평가받았지만, 실제 지명 결과 1, 2라운드 동안 삼성을 제외한 타팀에서 지명한 대졸 투수는 3명 뿐으로, 고졸 선수 풀이 안 좋아졌다고 그만큼 대졸 선수들이 고평가 받은 건 아니었다. 비록 프로야구 스카우트가 아닌 아마야구 팬들이 진행했다지만, 아마야구 사이트인 아마야구사랑의 모의 지명에서도 김현우는 3라운드였고 임진우는 4라운드였다.
삼성 스카우트는 지명 결과에 대한 자평에서 "감독의 인터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원래 뽑으려고 했던 선수들이었다."라든지 "우리 팀은 즉전감이나 완성형을 선호한다."고 인터뷰했지만, 이듬해 2011년 신인 지명에서는 3라운드까지 모두 고졸 투수를 지명하면서 결국 2010년 신인 지명은 감독 눈치를 본 결과였다는 게 증명됐다[17] .
약간의 변론을 한다면 선동렬이 프로팀 감독하던 2005~2014년이 2000년대 초반 '''야구인기 침체'''와 2002년 월드컵 특수의 영향을 받은 소위 '''월드컵 키즈'''라 불리는 세대들 시절이라 대졸지명만으로 팜 황폐화가 심하게 발생하진 않았다. 고졸 1차 지명 유망주도 1~2년차부터 프로에서 활약하는 일이 없었고 오래오래 묵혀야 했기 때문.[18] 그 영향에서 자유로운 90년대 중반생들은 선동렬의 프로감독 마지막 해인 2014년에야 데뷔하기 시작했다. 야구 인기가 부흥하고 구단들이 팜의 중요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투자한 뒤에 데뷔한 이들은 1차 지명, 2차 상위권 쯤되면 2~3년차에 두각을 드러내는 인원이 나왔고 99~2000년생인 베이징 키즈 전후로 1년차에 프로팀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특급 유망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니 부작용이 커진건 단순히 '''대졸선호'''때문만이 아니라 '''쌕쌕이 멸치선호'''와 소모성 강한 '''불펜야구'''까지 더해진 탓이다.
그래서 삼성 시절과 기아 시절이 모두 지난 2010년대 후반의 평가는 이러한 픽들이 삼성과 기아의 유망주 팜을 아주 망치게 만든 원흉으로 지목된다. 선동열 감독이 감독으로써 삼성에서 재임한 05~10년에 뽑은 신인 중에 성공했다고 말할 선수는 투수인 차우찬과 백정현, 심창민 뿐이며, 야수는 고교 시절 5대 유격수로 손꼽힌 김상수, 11년도 신인왕 배영섭, 신고선수로 입단한 이지영말고는 싸그리 망했다. 특히 야수들의 경우 '''똑딱이만 있고 장타력을 갖춘 선수가 전혀 없다.'''
이러한 팜황폐화는 16년도부터 시작된 암흑기의 씨앗이 되었다. 2010년대 중후반 이후 컨텐더팀들 중에 1차 지명 제도 부활 이후 서울팜의 이점을 뽑아먹을만큼 뽑아먹은 키움 히어로즈와 2012, 2013년 신생팀 특별지명에서 기둥들과 주전 선수들을 일구어냈던 NC 다이노스, 베테랑의 선전과 외국인 용병의 성공으로 최종 우승을 차지했던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와 별개로 꾸준히 가을야구에 진출하고 있는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의 주전 선수들이 선발되었던 시기는 대부분 선동열의 삼성 감독 재임시기였던 2005년부터 2010년 시기에 지명받았던 선수들이다.
특히 2015년부터 호성적을 거두고 있는 두산 베어스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지명받은 선수 중에서 A급 주전들을 야금야금 만들어낸게 컸다. 물론 선수를 지명한 시기와 주전 선수가 된 시기가 상당히 겹치기때문에, 모기업의 위기때문에 주전 외야수였던 민병헌의 이적부터 시작하여 메이저에서 돌아온 김현수의 이적 다음으로 주전 포수 양의지의 이적까지 꾸준한 대형 선수 유출과 역대 최다급으로 선수 이적이 예상되는 2020년 시즌 후 FA과 같은 문제가 있지만, 이 시기에 지명한 선수들로 2015년 부터 2019년까지 최종 우승 3번, 통합 우승 2번, 정규 1위 3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삼성은 선동열이 감독으로 부임한 2006년 신인지명부터, 2011년 신인지명으로 선발된 선수층이 위에서 언급한 대로 사실상 텅 비어버리고 류중일 시대의 드래프트였던 2012년 신인지명부터 2016년 신인지명마저 멸망 수준이라 김한수 시대부터 지명한 선수들로 새판을 짜고있다. 덕분에 2020년 삼성의 뎁스는 종잇장을 넘어서 주전 한명이 부상이라도 당하면 순식간에 2군 라인업으로 추락해버리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투명 뎁스를 자랑하고 있다.[19]
기아 시절도 윤완주, 강한울이 대표가 되며 이러한 팜 황폐화로 후임 김기태 감독 부임 이후 적극적인 리빌딩, 외부 선수 유입, 용병 대박으로 겨우 메워 우승할 수 있었다.[20] 하지만 15년 드래프트가 대성공이 되면서 삼성 시절보다는 결과적으로 나았다.
그나마 대졸 지명 선호의 장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바로 선수들의 장래성을 생각한 측면. 프로 1군의 로스터는 30명이 채 안 된다. 누구나가 프로야구선수로 성공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성공하는 한 줌의 선수보다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선수가 수십 배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대졸은 방출이 되더라도 대학 졸업장이라도 있으니 그걸로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지만 고졸이라면 불의의 부상 등으로 야구를 그만둬버리면 정말 학력도 뭣도 없는 낙오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선감독은 KIA 감독시절 대졸선호에는 이러한 이유도 크다는 논지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자칫 당장의 성적에 급급하기 쉬운 프로야구인으로서는 드물게 넓은 시야이지만, 고졸 유망주에 비해 성장가능성이 떨어지고 서비스타임이 짧아 팀 전력에 도움이 덜 된다는 단점 또한 분명하고 선동열은 야구선수들의 장래를 생각해 주는 것이 직업이 아닌 한 팀의 전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직업인 프로야구팀 감독인 것도 맞기에, 판단은 개인의 몫.
2.2.6. 최종 평가
이러한 점들 때문에 감독으로서의 선동열은 그가 이룬 두 번의 우승이라는 결과물에 비해 삼성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삼성팬들 사이에서는 2번의 우승도 감독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라 전임 감독이었던 김응용의 유산 내지 선수들이 잘해서 그랬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뭐, 잘하면 선수탓 못하면 감독탓은 이 바닥의 영원한 떡밥이긴 하지만. 근데 김응룡이 만들어 놓은 타선이 폭발하고,[21] 권오준-오승환으로 이어지는 KO펀치의 위력, 거기에 라이벌 팀의 주축이었던 박진만, 심정수까지 빼와 주었는데[22] 우승 못하면 그게 감독인가? 더군다나 이 경우는 삼성의 전력만 강해진 것이 아니라 삼성의 가장 유력한 대항마 팀의 전력약세도 포함되니 더더욱 우승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그 때도 2위팀과의 승차가 별로 크지 않았는데, 2004년까지는 삼성과 대등한 전력을 갖춘 팀이 현대 유니콘스 밖에 없었다. 1999년과 2001년에 한화와 두산이 반짝 우승을 한걸 제외하고는 1998년부터 삼성과 현대가 우승과 준우승을 도맡아 했으며 2005년 시즌 전에도 다른팀에서 눈에 띄는 전력보강이나 신인수급이 없었는데도 가장 큰 라이벌인 현대의 주전력을 빼오고도 2등과 큰 차이가 없는 아슬아슬한 패넌트레이스 우승했다는 부분은 '''실드가 전혀 불가능하다.''' 거기에 덧붙히자면 '''키운 선수보다 부상시킨 선수가 더 많다.''' 4월 한 달 미친 듯이 굴려대다가 부상으로 커리어 아웃된 권오원, 토미존 3회에 빛나는 권오준, 마찬가지로 화려한 수술 경력을 자랑하는 권혁 등이 있다. 오승환도 신인시즌[23] 에 미친듯이 굴리다가 뒤늦게서야 마무리로 정착시키며 관리를 시작한거다. 이미 대학교때 팔꿈치 수술을 한 선수를 99이닝이나 굴려대며 망가뜨렸으니 뒤늦게 관리한다고 나아질리는 없었고 결국 이는 2009년 시즌 아웃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팬들마다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감독. 삼성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고 부르는 팬들도 많지만, 인간적인 평판은 둘째치고서라도 그 능력 자체는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삼성팬들도 많았다. 다만 양준혁 은퇴 이후엔 거의 대부분의 삼성팬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고 팀 프랜차이즈 출신인 류중일 감독이 4년 연속 통합 우승이라는 아주 좋은 성적을 내면서 삼성 팬덤 내부에서는 선동열 감독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사실상 조롱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 외에, 지금은 없어진 승리수당제도, 선수들 사이에서는 주로 메리트라고 불렸던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한 감독이기도 하다. 당시 선수생활과 코치연수를 일본에서 하면서 일본에서 시행하던 것을 보고 배워온 것. 요는 경기마다 현상금을 거는 것이다. 보통 1천만원 정도를 걸었으며 중요한 경기나 포스트시즌 등에는 몇 배까지 뛰기도 했다. 1천만원을 걸어놓아서 이기면 선수단에 1천만원을 지급하고 선수끼리 나눠갖는 것. 기본적으로 n빵을 하되 데일리 MVP나 결승타, 홈런, 무실점 투구 등 고과를 따져 활약한 선수는 더 많이 갖는다.
그냥 직접 돈을 뿌리는 이 방식은 단순하지만 선수단에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선수들이 너도나도 다쳐도 2군을 안 가려고 할 정도로 열성이었고 당시 선동열 부임 직후 삼성의 호성적에는 이 메리트 제도가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많다. 덕분에 몇년 안 지나 타팀에서도 너도나도 똑같이 메리트를 도입해서 효과는 좀 줄었으나, 돈 많은 구단답게 삼성만큼 메리트를 많이 주는 구단이 없어서 한동안 선수들 사이에서 선망의 구단이었다고 한다.
이후 2010년대에는 구단들이 너도나도 거품 줄이기를 시도하며 없어졌으나[24] 여튼 이 메리트 제도를 도입해서 호성적 내며 트렌드를 주도했던 부분 또한 평가받아야 할 부분.
여담의 여담으로 당시 메리트 최고액은 배영수가 완봉승했을 때 800만원, 최저액은 강영식이 5실점으로 불질렀다가 뒤집은 경기때의 500원(...)이라고...
2.3. 선수기용 논란
선동열의 선수 기용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다. 물론 어느 감독이나 총애하는 선수가 있고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기는 선수가 있지만 선동열은 그 정도가 심하다는게 대부분.
대체로 그가 아끼는 선수와 아끼지 않는 선수는 크게 그가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부터 잘했던 팀 프랜차이즈 선수와 그가 부임한 뒤부터 잘했든가, 그전부터 잘하긴 했지만 원래 삼성 선수가 아닌 경우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좋은 대접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후자는 총애하는 경우가 많다. 전자에는 박한이, 양준혁 등이 있으며, 후자에는 박진만, 신명철, 강봉규, 최형우, 박석민 등이 있다. 진갑용은 앞의 조건은 충족하지만 OB에서 건너온 이적생.
삼성 라이온즈의 대표 타자이자 국민타자인 '''이승엽''' 역시 "우리 팀 온다 해도 뛸 자리 없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당연히 채태인, 최형우, 박석민의 클린업이 삽질을 하면 할 수록 더욱 더 욕을 먹는다. 그리고 2011 시즌, 삼성의 '''1루수 세 명(채태인, 모상기, 조영훈)의 홈런개수를 모두 합한 것 = 2011 시즌 이승엽이 오릭스에서 친 홈런 개수'''[25] 라면서 선동렬은 미친듯이 까였다.
다만 투수의 경우에는 그가 투수코치 시절부터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차별이 거의 없다. 다만 한국시리즈에서 에이스 배영수의 팔꿈치가 이상 증세를 보임에도 팀의 우승을 위하여 재활의 나락에 빠질 때 까지 쓴걸로 봐서는 실제로 선수를 배려하는지는 의문이다. 또 대놓고 홀대한 선수가 한 명 있는데 바로 임창용. 해태시절 차기 마무리를 꼽는 과정에서 모두가 임창용을 골랐지만 선동열은 김정수를 지목하는 등, 해태 시절부터 사이가 안 좋았고, 그 이후 삼성에서 뛸 때 임창용이 해외 진출을 시도하자, '''20억도 아깝다'''라는 발언을 하며 대놓고 홀대하였다. 이후 임창용은 팔꿈치 수술을 받고 커리어 로우를 기록하는 등 시망.[26] 악연은 임창용이 삼성을 떠난 뒤까지 이어져,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전 당시 임창용의 스즈키 이치로에 대한 정면 승부건에 대해 김응용과 함께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선동열과 임창용을 엮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애초에 선동열의 재임기간 내내 임창용은 그야말로 망했어요였기 때문이다. 2005년 선동열이 부임할 당시 FA 신분이었던 임창용은 해외진출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게 되자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과 FA 계약을 체결했다가 다음 날 갑자기 취소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팀 분위기를 박살내버렸고, 사장으로 막 취임한 임창용의 은사 김응용은 격분, 임창용이 당장 복귀하지 않으면 임의탈퇴시키겠다고 길길이 뛰었다. 결국 임창용이 백기투항하면서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이후 3년간 임창용의 성적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방어율이 2005년 6.50, 2006년 4.50, 2007년 4.90'''[27] 이 정도 성적이면 감독과 사이가 좋건 말건 써먹을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2007년의 저 성적은 임창용의 태업이라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뭐, 정말 태업했다면 그게 더 문제지만.'''
게다가 임창용은 고마웠던 사람 세 명으로 가족, 김성근, 선동열을 꼽았지만 선동열에 대해서는 은인이라는 뜻이 아닌, 자신의 야구 인생에 변화를 준 사람으로 말했다. 근데 링크한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질문 내용도 은인이 아니라 질문 내용도 "야구선수 임창용을 만든 세 사람"이며, 선동열 감독에게 뭔가 직접적인 도움을 받았다기 보다는 그의 채찍질이 재활에 도움됐다는 이야기다. 선감독은 임창용에게 제구와 변화구를 주문했지만, 그는 직구와 구위 회복에 더 매달렸다고.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파워 피처에서 피네스 피처로 변화를 강요하는 감독을 엿먹이기 위해 재활에 매달렸다고 볼 수 있겠다.
관련 이야기는 임창용이 삼성 복귀한 뒤 마해영과의 인터뷰에서 좀 더 명확하게 밝혀진다. 자신에게 자극을 준 사람으로 이야기하며 코치시절(2004)과 감독시절(2005 이후)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에 대해서 대놓고 말하는 걸 보면 위에서 말한 별 의미가 없다는게 의미가 없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이렇게 외부 출신 선수를 선호하는 것은 감독으로서의 권위 문제가 크다. 프로야구도 직장이고, 여러 사람 얽혀있다 보니 팀내 권력관계가 매우 복잡하다. 가끔 감독보다 파워가 센 코치나 심지어는 선수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감독이 원하는 대로 팀을 이끌 수가 없다. 당연히 감독이 가장 큰 권위를 갖고 팀을 이끌기를 원하는데, 감독의 권위는 그냥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실력과 실적, 경력에서 나온다. 까놓고, 감독이 현역 시절 듣보잡이었거나 낙하산이거나 하면 선수들이 말을 듣지를 않는 것이다.
선동열은 선수시절을 타 지방 팀인 해태 타이거즈에서 보내서 삼성에서는 입지가 약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투수파트에서는 현역시절 대투수였으니 실적으로 찍어누를 수 있어서 차별대우를 할 필요가 없던 것이지만, 야수파트는 그렇지가 못하다. 투수출신인 선동열은 문자그대로 방망이질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을 뿐더러, 삼성 라이온즈 팀의 일원도 아니었다. 선수시절 삼성시절에서 뛰어본 적도 없을 뿐더러 초-중-고를 다 광주에서 나온 광주 토박이 출신으로 고향 선배도, 삼성 팀 선배도 아닌 말 그대로 일면식도 없는 외부인일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코치라도 오래 해서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코치님'으로서 팀의 일부로 녹아들었다면 반발이 없을 텐데, 해태에서 온 주제에 숱한 삼성 프랜차이저들을 제치고 김응룡의 후계자라는 이유로 코치를 고작 1년 하고 덜컥 감독이 되었으며, 일본에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고 빠르게 올라간 덕에 나이로 누를 수도 없다. 말 그대로 새파란 어린 외부인이 갑자기 감독이라고 떡 굴러들어온 것.
선동열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지도자 커리어가 화려한 김응룡조차 처음 삼성에 부임했을 때 '외부인'이자 '번번히 삼성의 앞길을 가로막았던 적장을 데려온다'고 반감이 상당했다. 그 때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던 삼성은 팀 차원에서 워낙 우승에 목이 말랐었고, 김응룡 감독은 당시에도 60대로 야구계의 원로 중 하나이자 자타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장이었음에도 반발이 적지 않았는데, 하물며 갓 마흔을 넘겼고, 일본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지만 실제 코치 경험은 딱 1년뿐인 새파란 선동렬은 오죽하랴. 게다가 하려는 야구는 여태까지의 삼성 라이온즈 팀컬러와는 정반대의 스몰볼 불펜야구. 그야말로 사방이 적뿐인 상황이다. 실제로 선동열은 이런 조건때문에 팬들로부터도 민심이 안 좋다. 아무리 돈을 많이 대주고 전임감독이 뭘 물려줬건 간에 투핏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이후 왕조의 기둥이 된 채최박과 윤성환, 안지만, 오승환, 권혁 등의 선수들을 발굴해낸 나름의 업적도 분명히 있긴 하다. 그런데도 삼성의 시스템이 선동열을 우승시켰다느니 같은 말로 업적마저 크게 평가절하당하고 있는 데는 이런 '낙하산 외부인'인 선동열의 입지가 크게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팀을 휘어잡고 원하는 대로 팀을 이끌기 위해서는 자칫 수틀리면 감독의 권위를 위협할 수 있는 프랜차이저가 아닌 자신과 마찬가지로 팀내 입지가 약한, 순혈이 아닌 외부영입 선수들, 혹은 자신이 키워낸 젊은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이다. 물론 이게 좋은 방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상황에서는 분명 효과적인 방식이기는 했다. 상황이 선동열을 그렇게 만든 것. 초보 감독 시절부터 이런 안 좋은 방식으로 팀을 휘어잡는 방식을 몸에 익히다보니 본인이 대스타인 기아에 가서도 그대로 했고, 양 팀 팬들로부터 프랜차이저를 홀대한다는 비난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홀대하기도 했고.
2.3.1. 오승환 타이틀 만들어주기
2005년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잘던지던 선발투수 라형진을 조기강판시키고 9승을 기록하고 있던 오승환을 등판시켜 '''시즌 10승을 만들어줌과 동시에 승률왕 타이틀까지 만들어줬다.''' 오승환이 이 해 KBO 최초로 한 시즌에 승리, 세이브, 홀드 모두 두자릿수를 달성했지만 이로 인해 저평가되기도 한다.
2.3.2. 양준혁 은퇴 관련
2010년에 삼성의 프랜차이즈 선수이자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양준혁의 기용문제 및 그의 은퇴와 관련하여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이미 2009 시즌 부터 양준혁이 2008 시즌의 부진을 뛰어 넘는 활약을 보여주었음에도 무참히 플래툰으로 돌려버려 총 82경기에 밖에 못 나오게 하여 은퇴의 포석을 깔았다는 비판이 있다. 82경기에 나온 양준혁의 성적은 안타82, 타점48, 타율.329, 출루율.464 장타율 .526 이었다. 후반기에는 부상이 있었다고는 하나, 정말 잘 나가던 전반기에서조차 플래툰으로 돌려버렸다.
2010년 시즌 들어선 아예 대타요원으로 돌려버렸고 결국 한국 프로야구계의 타격관련 대다수의 통산 기록 보유자였던 양준혁은 은퇴를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 양준혁이나, 다른 팀 감독들, 동료 선수들의 인터뷰를 볼 때, 기량으로 봐서는 절대 은퇴할 상황이 아니었다. 특히 1위팀인 SK 김성근 감독은 양준혁에게 왜 SK에 오지 않고 은퇴하느냐라고까지 하였다.
물론 2010년 시즌 초반에는 양준혁에게 얼마간의 기회가 간 것은 사실이고, 그 때 양준혁의 성적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땐 계속 선발로 보내더니, 타격 타이밍을 잡아가고 4월부터 맹타를 휘두르며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대타요원으로 돌려버린 것이 문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양준혁은 5월 말까지 주전으로 뛰었고, 아예 대타로 내려간 것은 6월부터다.[28]
양준혁이 2010년에 기록은 타율 .252/ 출루율 .387/ 장타율 .319로 그로서는 안 좋은 기록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장타율 .319은 심각했다. [29] 노장선수의 건재함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인 출루율은 3할8푼 이상으로 타율보다 1할3푼 가량이나 높았다. 당시 삼성 선수들 가운데 양준혁보다 출루율이 높은 선수는 박한이, 박석민 둘 뿐. 한 마디로 '''장타력을 제외한''' 양준혁의 기량은 살아있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특히나 전해 OPS 1.0에 가까운 타자는 리바운드만 한다면, 리그에서 5손가락 안에 드는 생산력을 발휘한다는 이야기지만 불과 2개월도 지켜보지 않고, 무엇보다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할 무렵에 주전에서 제외한 것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따라서 팀 승리를 추구하고 전력을 극대화 해야 하는 감독이 은퇴를 종용한 것은 '''비상식적인 행위'''임에 틀림없다. (특히 양준혁을 은퇴 시키고, 그자리에 고용한 강봉규의 2010년 기록을 보면.. 이게 무슨 미친짓이냐 싶다.)
마찬가지로 또다른 프랜차이즈 스타인 박한이의 경우에도 2009 시즌 후반기부터 이어진 맹활약에도 FA 계약부터해서 2010 시즌 구상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팀의 주력으로 쓰지 않을 것 처럼 이야기하며 홀대하다가, 박한이가 2010 시즌 매우 뛰어난 활약을 보이자 어쩔 수 없이(?) 주전으로 계속 쓰는 모양새를 보여 삼성팬들에게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반면에 강봉규, 최형우와 같은 선수들은 부진할 때도 계속해서 많은 기회를 주었기에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 심지어 당시 최형우의 수비가 그다지 좋지 않았음에도 집요하리만치 양준혁을 폄하하면서 최형우를 띄우는 모습을 보였다.양준혁이 수비 잘 해서 골든글러브 탔나?최형우의 경우에는 차세대 4번타자를 육성한다는 의미라도 있었으나, 강봉규의 경우엔 젊은 나이도 아니었기에[30] 특히나 많은 비판을 받았다.
결국 2010년 7월 양준혁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강제은퇴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이른바 "선졸렬"이라 불리며 줄기차게 까이는 중. 올드팬들이 많은 엠엘비파크 등에서는 反선동열 움직임이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원래 엠엘비파크는 친 선동열 측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 건이 터진 순간 선동열은 동네북이 되었으니 이 건의 파장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2010년 9월 19일 양준혁 은퇴 경기 후 감독의 코멘트는 다음과 같다.
"이런 은퇴식(경기)은 복 받은 거다. 나도 일본에서 은퇴경기를 했지만 이렇게 화려하게 선수생활의 끝을 마무리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부럽다. 양준혁은 아주 열심히 했고 '''볼을 잘 맞혔던 선수'''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프로선수로서 자기 할 일을 다 했던 선수로 기억될 거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고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한국 프로야구의 타자 관련 대부분의 통산 기록을 갈아치운 그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영욕의 세월과 그에 대한 투쟁을 고작 방망이질이나 잘 했던 선수라고 뭉뚱그려버리는 만행이라 해석할 수 있겠으나 그러한 코멘트의 뉘앙스에 대해선 각자 판단하길 바란다.
2007년에 양준혁이 2000안타 달성했을 때 응했던 감독 인터뷰와 비교하면 정말 애매한 답변이다.[31]
2011년 시즌 초에 유행했던 류중일 감독의 부도수표 '나믿가믿' 발언 뒤에 양준혁은 "나도 믿어주는 감독님 밑에서 야구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2.3.3. 외국인 선수 기용 관련
2008년 5월, 제이콥 크루즈가 방출되면서 박동희가 올린 기사 중 선동열 감독 부임 후 외국인 선수들이 성적에 대한 중압감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려 불만이 심했다고 언급되었다. 팀 하리칼라는 삼성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언급했고, 제이미 브라운은 삼성 시절 하루하루가 악몽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둘 다 당시 팀내에서 1, 2선발을 맡아 하리칼라는 2006년 팀내 다승 1위였고 브라운은 2007년 팀내 다승 1위를 했음에도 선동열은 둘에게 더 뛰어난 성적을 요구했었다. 게다가 선동열은 하리칼라와 브라운을 5이닝에서 길게는 6이닝만 던지게 하고 교체시켰으면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선수 요청이나 선수 능력 부족 등으로 교체했다고 말하는 등, 외국인 선수들이 자신의 기대만큼 성적을 못 올린다고 평가절하 하기도 했다.
이렇게 외국인 선수들에게 성적에 대한 중압감을 안기는 선동열의 방식은 에이전트들을 통해 다른 외국인 선수들에게까지 퍼지면서 삼성은 한동안 외국인 선수들이 가장 기피하는 팀이 되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삼성 외국인 선수들은 그야말로 최악을 달렸다. 부진한 제이콥 크루즈 대신 데려온 톰 션은 실제로는 메이저리그 등판 경력이 7경기 뿐인 만년 마이너리거였고, 웨스 오버뮬러와 톰 션을 방출하고 데려온 존 에니스는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강판되면서 그동안 기용법에 대해 쌓인 불만이 터져 중도 귀국했다#.
최악을 겪은 2008년 이후로는 삼성의 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고 선동열도 외국인 선수들에 대해 부드럽게 대하면서 외국인 선수들의 불만이 대외적으로 표출된 적은 없었다.
2.4. 사임
2010년 12월 30일 갑작스럽게 감독직에서 용퇴, 후임으로 류중일 작전코치가 내정되었다.
삼성 단장은 본인이 용퇴를 말하고 후임으로 '''젊은''' 류중일 코치를 추천했다고 말했지만 이는 언플일 뿐이다. 왜냐면 선동열은 1963년 1월 10일생, 류중일은 1963년 4월 28일생. 류중일이 딱 '''108일''' 젊다. 그리고 학업으로는 빠른63인 선동열과 유급63인 류중일보다 2살 많기도 하고, 또한 류중일 코치를 2군으로 쫓아 보낸 적도 있던게 선동열이였으니. 결국 5위를 하여 12년 연속 가을잔치가 끊어진 2009 시즌중에 5년 재계약을 했고, 얼마전까지 외국인 투수 선발에 참여했던 걸 생각하면 사실상 해고다. 삼성전자 서울본사에서 호출해서 가봤더니 구단주-단장-사장이 참석해서 퇴진을 통보했다고 하니. 구단 운영위원이란 자리를 준다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자리. 은사인 김응용 사장이 전격은퇴하고[32] 김응룡, 선동열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김재하 단장이 교체되는 등 그룹 인사 개편의 영향으로 보인다. 정작 자신은 짤릴 거란 사실을 몰랐다고 하는데 용퇴 발표 하루 전날에 선수들에게 발표할 신년사를 작성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보면 그런 듯하다.
소문으로는 삼성그룹 수뇌부가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SK에게 4전 전패 광탈, 그것도 '''4차전'''을 보고서 격분했고 그것이 용퇴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한국시리즈 졸전이 감독 교체의 이유라면 한국시리즈 직후에 바꿨어야 하는데 거의 두달이 흐른뒤에 교체되었다. 실상은 그냥 경질.
이렇게 갑자기 물러나게 된 원인은 삼성 비자금 사건 때문에 물러났던 이건희가 이명박의 원포인트 사면을 받고 2010년 경영일선에 복귀하면서, 회장 부재시에 그동안 그룹 경영을 실질적으로 지휘했던 이학수인맥을 대거 숙청했는데 그 유탄을 맞았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건희가 부재중에 이학수는 그룹 곳곳에 자기 사람을 심었는데 그룹에 복귀한 이건희는 이학수를 의심, 이학수 및 이학수 인맥들을 모조리 날려버릴 때 같이 날라갔다는 것이다. 혹은 이건희가 이재용 후계체제를 본격화하면서 그동안 그룹내에서 2인자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학수 인맥을 통으로 날렸다는 분석도 있다.[33][34]
2010년 당시의 삼성 라이온즈 야구단으로 한정해보면 이학수에게 김응용 사장은 부산상고 선배, 선동열 감독은 고려대 후배, 김재하 단장은 제일모직 경리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학수의 직계 후임이다.[35] 그리고 평생 해태맨일꺼 같던 김응용을 삼성으로 데리고 온 사람이 바로 이학수였다. 결론을 내보면 이건희가 이학수 인맥을 정리하면서 야구단에선 학연으로 연결되는 김응용이 날아갔고, 마치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히 이어져서 선동렬까지 짤렸다는 것이다.[36]
향간에는 이승엽 와도 자리없다 발언으로 이승엽빠돌이인 이재용의 심기를 건드려서 짤린거라고 하지만 실상은 위의 이유 때문에 짤린 거지 이승엽하고는 상관없다는 시선이 대부분이다. 만약에 이승엽에 관련된 문제로 선동열이 이재용의 심기를 거슬렀다면, 선동열만 날라갔어야 하는데, 김응용 및 이학수 인맥 전체가 삼성그룹에서 날라갔기 때문. 또한 이재용은 이승엽이 아니라 아예 야구단 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는게 정설이다. 이건희가 식물인간 상태가 된 후 이재용이 한 일중의 하나가 삼성 라이온스에 대한 구단차원의 재정지원을 줄이고 제일기획 산하로 편입시킨 것이었다.
2.5.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평가
이러한 이유들로 '''삼성 팬들은 이 시기를 흑역사로 본다'''. 하지만 2회 우승의 성적이 무색하지는 않았는지, 선감독이 FA로 풀린 후 당장 다른 팀들에서도 선감독 영입을 놓고 신경전을 벌일 기미가 보이기도 했다. 서울특별시 팀들과 고향 팀이라고 할 수 있는 KIA 타이거즈, 창원시에 신설될 예정인 NC소프트의 제9구단 중 한 팀이 선감독이 커리어를 이어나갈 팀들로 거론되었다고 한다. 두산과 LG는 2011년 10월 기준으로 신임 감독을 정하였다.
야구계에서도 이미 실적과 명망이 있었고, 2014년까지 재계약까지 하면서 4년의 임기가 더 남아있던 선동열 감독이 이렇게 잘려나간 것에 대해 경악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선감독이 이렇게 잘릴 정도면 우승 감독인 김성근 감독 정도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구단 맘대로 쳐낼 수 있다는 거라... 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으나, 2011년 여름,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어 4년 간 세 번 우승시키고도 잘릴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짤린 건 '''재미없는 야구를 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구단에서 '''경질'''한 것이 아니라 '''용퇴'''한 것이기 때문에 남은 계약기간의 금액도 받을 수가 없다. 단, 관례상 챙겨주기는 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감독 사퇴 후에 선수단 운영위원이란 직함을 부여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는 일 없는 그냥 명예직으로 잔여연봉을 챙겨주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2011년 말, 기아 감독 선임 시에 나온 기사에 따르면 연봉 3억 8천을 그동안 월급형식으로 지급해왔다고 한다. 기아 감독 선임으로 이제 운영위원 자리는 계약해지 예정.
왠지 2002년 LG 트윈스의 재림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2011 시즌, 삼성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일단 그 의견은 틀렸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을 두둔하는 팬은 전혀 없다'''. 원래부터 선동열은 삼성 팬덤 내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감독이었고, 양준혁 은퇴와 박한이 기용 문제로 그나마 남은 선감독 지지파도 온라인에서 잠수탔기 때문에[37] 선 감독 용퇴를 공개적으로 걱정하는 의견은 이대호 도루, 이대형 홈런만큼이나 보기 힘들 정도. 대충 "조금 불안하기는 한데 일단 '''부왘을 울려라'''" 정도의 분위기. 침소봉대하기로 유명한 한국 언론에서조차 '''선감독 퇴진에 팬들이 반발했다는 기사는 단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다'''. 선동렬 감독 시절에 유입된 신규팬들은 반발했지만, 이것도 순식간에 묻혀버렸다.[38]
오히려 현장 관계자, 기자, 타팀 팬들이 대동단결, 준우승 감독을 자르다니 미쳤나며 신나게 삼성을 까고 있는 중 사실 현장 관계자들, 특히 감독들은 이런 반발이 나올 수 밖에 없는게 결국 자신들도 언제 퇴진을 강요당할지 모르는 선례가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준우승 감독을 이런 제대로 된 이유도 없이 짤라버리면, 3위 이하 감독은 얼마든지 오너 맘대로 잘라도 할 말이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위협의 유일한 예외로 평가받던 감독은 당시 우승감독인 김성근이었으나, 그 '''김성근'''조차 11월 경질되면서 결국 한국 프로야구는 성적으로 운영하는 주식회사가 아닌 오너의 장난감인 펫스포츠라는 사실만을 증명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2012년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이길 때마다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선동열이 전 소속팀에게 승리를 헌납한다는 뜻에서 '''푸른 피의 멍게'''(줄여서 푸피멍)라는 별명이 붙었다. 게다가 류중일 감독 체제에서 우승까지 하게 되면서 선동열 감독은 라이온즈의 흑역사라는 식으로 '''멍게강점기'''라고 부르는 중.
2.6. 고향 팀으로
KIA 타이거즈 팬들이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의 KIA 감독 영입을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분위기였다. 지역주의 의식이라면 삼성 못지 않게 강한 광주 연고의 팀이라 대구 출신 조범현 감독보다 프랜차이즈 스타 선동열이 더 매력적인 것이 당연하다. 2010 시즌 기록적인 연패와 부진으로 2011 시즌에 결과가 안 좋을 경우 가장 경질될 가능성이 높은 감독 1순위로 조범현이 꼽힐 정도다. 그리고 KIA는 2011년 페넌트레이스를 4위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2011년 10월 18일, KIA 팬들이 원하던 대로 선동열 감독은 KIA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감독들의 행보를 살펴보면, 일단 김성근 감독은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김경문 감독은 사퇴한 후 NC 다이노스로 직을 옮겼다. LG는 박종훈 감독이 사퇴하자 김기태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올렸고, 두산도 1군 투수코치 김진욱을 감독으로 올렸다. SK는 이만수를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선동열은 KIA에서의 임기 3년 동안 팬들의 기대를 완벽히 저버리고 임기 중 588을 찍으며 무능의 대명사로 유남호, 서정환에 필적하는 타이거즈 역사상 무능의 감독으로 기록되어 본인과 팀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39]
3.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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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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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11년
2011년 10월 18일, 조범현이 KIA 타이거즈 감독직에서 자진사퇴 함에 따라 후임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팀에서는 당연하게도 선동열 감독이 선수 시절 달았지만 지금은 영구결번이 된 18번을 주려고 했으나, 그렇다면 영구 결번의 의미가 없다면서 90번을 달았다. 더불어 세트로 딸려온 수석코치는 이순철. 해태 전설들이 모여들고 있어!
KIA의 약점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게 불펜이고, 선동열이 삼성 감독 시절 잘한 일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게 철벽불펜 구축인 만큼, 당연히 선동열이 불펜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다. 선동열 본인도 그걸 아는지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투수진 전원이 마무리 훈련부터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발언을 했다. 불펜 한두명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리고 임명되기가 무섭게 한 기자의 오타로 졸지에 부동산 폭격기라는 별명을 득한다. 실제로는 광주 주위에 땅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땅값이 내려가는 바람에 손해만 보고 그다지 재미를 못봤다고 한다. 그래서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받은 거금의 연봉도 대부분 날렸다고...
10월 21일 취임식을 가졌고 바로 마무리 훈련 일정을 변경, 1.5군 위주로 들어가던 훈련을 개편, 10월 23일부터 1, 2군 선수 전원을 훈련시키겠다고 밝혔다. 윤석민, 이종범, 최희섭 등 예외는 전혀 없으며 훈련을 통해 바로 옥석가리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었다.
KIA 타이거즈의 감독이 되고 나서도 삼성 라이온즈가 전지훈련장으로 사용하는 일본 오키나와의 온나손 아카마 구장을 KIA 타이거즈의 전지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접촉하였다는, 소위 '멸치 두 박스 소문'[40] 이 돌기도 하였으나 김평호 코치가 트위터를 통해서 전지훈련장은 아카마 구장이 아니라고 인증했다.* 그래서 멸치 두 박스는 거짓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아카마 구장을 며칠 이용할 권리를 얻어냈다는 기사가 떴다.* 삼성팬들에게는 그저 충격과 공포.
다만 선동열 감독의 취임으로 삼성 팬과 기아 팬은 시즌 초에 그야말로 개싸움 모드였다. 선동열 감독을 6년간 직접 경험한 삼성 팬들은 '''너네도 직접 경험해봐라'''라면서 비아냥댔고[41] , 그에 대해서 KIA 팬들은 '''너네 팀이나 잘하세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멸치 사건은 그 와중에 나온 해프닝.
3.2. 2012년
해당 문서 참조.
3.3. 2013년
해당 문서참조.
3.4. 2014년
해당 문서 참조.
3.5. KIA 감독 시절 특이사항
성적이 좋지 않았던 2012년, 이래저래 타이거즈 팬은 물론이요 타팀 팬들에게도 주목받는 것은 선동열의 감독으로서의 행보가 아니라 표정 변화(…)였다고 한다. 득점 여부에 관계없이 카메라가 비춰주는 선동열의 뚱한 모습이 그림자와 특유의 푸짐한 얼굴살이 겹쳐서 한껏 무서워 보이는 게 포인트라면 포인트.
KIA에 부임하고 부쩍 자극적인 인터뷰가 늘었다. 2012년에는 성적이 좋지 않아서 더 부각되었다.
KIA 감독에 취임한 뒤 유독 對 삼성 전적이 영 좋지 않다. 2012년 9월 26일, 27일 추가 일정으로 편성된 대구 2연전에서 김진우의 완투와 윤석민의 완봉으로 2연승을 한 것을 제외하고, 부임 이후 정규 3연전에서는 삼성에게서 위닝시리즈를 가져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직구와 조크볼에서도 이 모습을 묘사하였다. 심지어 2013년에는 삼성전에서 트리플 스윕패를 당하고 시즌 상대전적 4승 12패를 기록중이며(...) 8월 11일 광주에서 이기기 전까지는 삼성전 11연패를 하고 있었다. 그 두 번 이긴 것 중 한 번은 선발 투수가 아네우리 로드리게스(...).
프랜차이즈 레전드 출신이라고 2012 시즌엔 욕은 덜 먹고 있었지만 2013-14 시즌 내내 욕을 흠씬 먹고 있다. 감독으로서의 밑천이 슬슬 드러나고 있다는 평. 투수조련 1인자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평이었지만 2013년 전반기 종료 현재 팀 평균자책 4.53(7위), 팀 WHIP 1.53(8위), 팀 피안타율 0.285(8위), 팀 피출루율 0.364(8위), 팀 피장타율 0.402(8위), 팀 피OPS 0.766(8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가장 높은 게 평균자책 7위일 정도. '''투수 교체로 그렇게 욕먹었던 조범현도 4년간 팀 평균자책 4, 2, 3, 3위다.'''
게다가 약한 불펜으로 역전패도 빈번하며, 선수들의 멘탈 문제와 잇단 실책성 병맛 플레이, 이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한 박자 늦은 투수교체 타이밍, 경기를 쉽게 포기한다는 점과 희생번트에 대한 집착 등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투수력을 강화하려면 수비를 강화해야 하거늘 수비에 소홀하다고 하여 언행불일치라고 까인다.
2013 시즌 하반기로 들어 갈수록 점입가경. 7월 23일 대패로 팀 평균자책도 8위가 되었다. 신생팀인 NC만도 못한 성적. 바로 밑이 팀이리고 부르기도 뭐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한화니 사실상 최하위.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 결국 그동안 인내했던 KIA 팬들도 결국 한계를 보이고 선동열을 가루가 되도록 깠다.
여기에 매년 즉전감, 인성 등을 운운하면서 대책없이 '''대졸몰빵 픽'''을 하면서 차기 감독이 군 문제로 골머리를 썩혔다. [42] 이렇게 지명한 대졸중에 즉시전력 주전으로 자리잡은 선수는 아무도 없어서[43] 권윤민 스카우트 팀장과 함께 쌍으로 더 까이고 있다. 그 외에 이 시절에 뽑은 대졸 픽 중에서는 이홍구, 박준표, 고영창, 고장혁, 강한울, 박준태, 이민우, 문경찬, 황인준, 김호령, 김명찬 정도를 건지긴 했는데[44] 문제는 즉시 전력감으로 제대로 써먹은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홍구는 트레이드로 강한울은 최형우의 보상 선수로 떠났고 나머지는 군대를 갔거나 갔다온 이후에 활약하고 있다. 그와중에 대학교 진학을 만류하면서까지 데려온 박찬호가 2019 시즌에 대박을 터트리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비판받는 건 '''자기 스타일을 너무 고집한다는 점'''. 스타 출신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신의 야구관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밀고나가며, 부진한 성적에 대해서 반성하거나 주변의 조언을 구해서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은 전혀 없다. 하루가 다르게 모든 게 바뀌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야구계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데, 발전이 없이 자기 방식만 고집하다가는 이대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45] 일각에서는 삼성에서의 초보 감독 시절 2연속 우승을 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평도 있다.
우천연기를 너무 많이 시킨다고 타 팀빠들로부터 졸렬하다고 까인다. 사실 우천연기 자체는 KBO 리그 경기감독관이 결정하는 일이라 크게 까일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천연기와 별도로 계속되는 입놀림으로 스스로 비호감지수를 올리는 것은 사실이다. 자기 팀 상황이 개차반인데 한가롭게 국내선수들의 해외진출에 관련한 인터뷰나 하고 있으니, 야구팬들한테 오지랖도 넒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13게임 만에 모가지를 당한 김동엽 감독을 제외하고, 역대 타이거즈 감독 중에서 '''유일하게 팀을 4강 못보낸 감독'''이 되었다. 타이거즈의 최하위란 큰 굴욕을 안긴 두 감독인 유남호와 서정환은 적어도 각각 2004년과 2006년에 팀을 4강에 보낸 적이 있다. 둘 다 그 다음해에 거하게 말아먹어서 문제였지만.(...) 덤으로 후임 감독 김기태가 2016년엔 와일드카드전 진출, 2017년에는 아예 리그 통합우승까지 달성하면서 이 불명예스런 호칭에 한층 더 치욕을 더하게 되었다.
2013년엔 타어강이라는 현실이자 비아냥마저 들으며 신생팀 NC에게까지 밀려 8위로까지 추락해버렸다.
그리고 설령 그가 경질된다 하더라도 KIA 팬들은 이후 6668587667급의 암흑기가 올 것이라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2013 시즌 후에도 결국 살아남았다. 구단에서 계약기간은 채워주기로 했다는듯. 하지만 이순철 수석코치가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대신 경질당했다.
그리고 2014년. 예상대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2014년을 마지막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 2016년까지 KIA맨…2년 10억 6천만원 재계약 10월 19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도중에 뜬금포로 연임발표를 했다. 실제로 발표가 난 지 30분도 안 되어서 호랑이 사랑방이 터졌다(...).
KIA 팬들은 말그대로 충격과 공포에 빠졌고 타팀팬들은 축제분위기. 팬들 중 일부는 2년 재계약 소식이 혹시 오보가 아닐까 생각하며 희망고문 속에서 정정기사가 뜨기를 기다려 보았으나 역시나. 많은 KIA 팬들이 떠날 것이 예상되며... 3년동안 눌러참고 있던 광주아재들의 활약이 기대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계약 기간이나 연봉으로 봐서는 애초에 3+2 계약이 아니였나 하는 의견도 올라 오는 중.
다만 세간의 평과는 반대로 선수들과의 관계는 별다른 트러블이 없는 편. 비록 이종범 등 기존 노장들과의 마찰이 있었긴 했지만 타자들에게 방망이를 선물해주고 과감하게 장비를 제공해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주니치에 뛰었던 연이 닿으면서 일본에서 물품을 공수해와서 선수들에게 선물해주기까지도 했다. 다만 이런 모습도 그냥 물품을 지원해 주는 정도에서 그칠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선 감독이 맘에 들어하는 선수들에게는 한없이 베푸는 성격이기는 하지만[46] 모든 사람에게 그랬다면 많은 선수들과의 트러블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예상됐으나...
2014년 10월 24일자 매일경제에서 23일자 광주일보 기사를 인용하여 군입대를 하겠다는 안치홍에게 '''임의탈퇴를 시킬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한 사실을 기사로 냈다. 매일경제 기사: 상처 투성이, `名家` KIA는 실종됐다 광주일보 기사: 선동열 “소통” … 선수들 “분통”
더구나 기아 타이거즈 홈페이지에 본인이 직접 '''소통'''드립친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으니 기아팬들의 분노는 가히 하늘을 찌를만 했다. 가뜩이나 재계약으로 기아팬들이 들끓은 상태였는데, 이 사건은 그야말로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부어버리는''' 꼴이 돼버렸다. 그런데도 선동열이나 기아 구단은 이 일에 대해 사죄는커녕 일언의 해명조차도 하지 않아 기아 팬들을 더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결국 악화된 팬심으로 인해 자진사퇴를 결정했다. 이번 재계약 직후 자진사퇴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 관련기사 이종범과 함께 타이거즈 역대 최고 프렌차이즈로 꼽히는 그가 다른 무엇도 아닌 '''팬들의 반대'''로 물러났다는게 심히 씁쓸한 부분.
# 이 기사에서는 '안치홍 임의탈퇴' 발언에 대해 이렇게 해명을 했는데, "너나 나나 프로들이고 어떻게 보면 우리들은 소모품들이다. 최악의 경우 구단쪽에서 임의탈퇴까지 생각하면 안되지 않느냐. 생각을 바꿔보자"고 말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때늦은 해명이라 대차게 까였다.
이후 또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해명을 했다.
'''"오해가 있어요. 김선빈의 군 입대가 결정된 상황에서, 구단에서 저한테 치홍이 좀 말려달라고 부탁했어요. 치홍이한테 '너까지 가면 안 그래도 어려운 팀이 더 어려워 진다. 나중에 가면 안 되겠냐'고 했죠. '구단에서 못 가게 하면 어떻게 할래' 그랬더니, 치홍이가 '그래도 가야죠' 해서, '그러면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치홍이 생각이 확고했어요. 2년 재계약 후 어떻게 팀을 이끌어야 하나 고민이 컸는데, 치홍이 문제가 잘 못 전해지고, 팬사이에서 안 좋은 얘기가 나와, 물러나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
- KIA와 2014년 말 2년 재계약을 하고도 내야수 안치홍의 군대 문제가 불거진 질문-
3.6.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평가
3년의 재임기간 동안 구단으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타이거즈 역사상 '''유일하게 팀을 4강 못보낸 감독'''이 되었다.[47] 전임 조범현 감독보다 성적이 더 나으리라 생각하고 불러왔는데 팀 성적을 오히려 더 추락시켰으며, 그의 재임기간은 타이거즈의 암흑기로 불리고 있다. 명선수라고 해서 꼭 명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는 평.
세부적으로 들여다본다면, 그나마 좋아보였던 타선은 이름값과 14년 타신투병에 의한 착시현상이었다. 재임 기간 3년동안 팀 WRC+는 95 정도로, 리그 6,7위권을 전전했다.
오히려 투수진은 혹사가 없었고, FIP을 보면 의외로 평균에 근접하는 수준이었다. 정작 투수진이 처참해 보였던 것은 바로 큰 효과를 내지 못한 선발의 불펜 돌려막기와 '''리그 최악의 수비를 기록한 야수진 때문이었다.''' 13,14년 팀 ERA는 팀 FIP에 비해 '''0.8'''이나 높았으며, DER 등의 세부적인 수비지표는 한화와 최하위를 양분하였다. NC가 압도적인 수비로 포스트시즌 진출의 쾌거를 이뤄낸 것과 완전히 대조되는 결과인데 원인은 물론 주전선수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인한 공백과 1, 2군 간의 심각한 격차로써 이전부터 생긴 고질적인 문제점이 결국 선동열 때 한꺼번에 터진 결과였다고 보인다. 물론 프로 감독은 노력으로 동정은 받을 수 있으나 결과물이 있어야만 인정을 받는다는 점에서 그럼에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선수뎁스의 보충은 그럭저럭 괜찮게 이루어졌는데, 투수진에서는 '''양현종'''의 포텐셜을 만개시켰다는 어마어마한 업적이 있고 그 외에도 대졸몰빵픽 한다고 욕도 많이 먹었지만 의외로 그 대졸들 중 건진 선수도 많았다. 비록 그중 선감독의 의도대로 즉전으로 써먹은 선수는 드물지만 12년 임준섭, 김윤동, 홍성민, 박지훈, 13년 이홍구, 고영창, 박준표, 14년 강한울, 박찬호, 김호령에 고졸에다 아직 1군에서 뚜렷한 활약을 보이진 못했지만 기대주인 최원준과 황대인까지, 매년 2~3명 이상씩 1군급 자원들을 건져서 생각보다 드래프트도 풍작을 거두었다. 팬들이 대졸에 기대치가 낮아 대졸이라면 무조건 발작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졸이건 뭐건 드래프트에서 1군급 자원을 저 정도 건졌으면 나름 풍작으로 뎁스 보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기존 선수들도 돌아와서 포텐을 다시금 폭발시킨 김진우, 준수한 백업으로 자리잡은 박기남, 포텐을 폭발시킨 신종길 나지완이나 개조에 성공한 이대형 등 나름 기존 선수층도 충실하게 키워냈고 최향남이나 최영필 등 나이든 선수도 쏠쏠하게 주워서 보강했다. 아쉬운 점은 이렇게 직접 키워낸 선수들이 후일 주축이 되어 왕조를 이룩한 삼성과는 달리 이 선수들이 나이 때문이건 부상 때문이건 대부분 오래 가지 못했다는 점과 임의탈퇴된 손영민, 군대를 가야 했던 김선빈이나 FA로 팀을 떠난 이용규, 부상 등으로 선동열 재임기간동안 부진에 시달린 최희섭과 이범호 김상현과 트레이드해 왔지만 역시 부진에 시달린 송은범, 베테랑의 비중이 높아 은퇴하는 선수도 많았던 등 기존 전력의 유출도 많았고, 육성과는 다른 얘기지만 즉시전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외국인 뽑기가 3년간 거의 다 실패해서 결국 선동열이 보강한 만큼 빠져나간 것도 많아 재임 기간 중 팀이 강해지지는 못했다는 점.
그래도 선동열 시기 지명하거나 포텐셜을 발휘하기 시작한 양현종, 나지완, 김주찬, 김윤동, 김호령 등이 17년 우승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저평가받는 것에 비해 육성 면에서는 중박 이상은 쳤다고 할 만 하다. 죄다 선동열 나가고 난 후 완전히 만개해서 그렇지.
또한 재활시스템 등 설비에 대한 구단지원을 이끌어낸 것은 업적이라고 할 만하다. 재임 당시 구단 윗선에 모기업 이사들까지 찾아가서 재활시설 및 2군시설의 투자를 끌어내려고 고생한 건 사실이라고...뒤에 재계약을 그렇게 강행하려 한 것도 그 당시 윗선들에게 투자는 다 끌어왔는데 막상 그 열매를 먹을려고 할 타이밍에서 재계약이 걸려버렸기 때문이라는 뒷얘기도 있다. 그래도 재활 및 2군 투자의 성과는 김기태가 물려받아 잘 써먹고, 결국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니까 그런 점에서는 기여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겠다.
결과적으로 당장 성적을 끌어올릴 것을 기대하고 데려왔는데, 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떨어진 성적과 삼성에서도 그랬듯 프랜차이저 홀대로 인한 기존 선수단과의 마찰으로 욕도 많이 먹었고 실패한 감독임에는 부정할 수 없으나 2군과 재활시설의 투자, 성공적인 신인발굴과 육성으로 리빌딩의 토대를 닦아 17년 우승에 일조한 면도 있던 감독이었다.
4. KIA 타이거즈 감독 사퇴 이후
KIA 타이거즈 감독 사퇴 후 야인으로 돌아간 그는 자택에서 가족들과 많은 시간들을 보낸다고 한다. 선동열의 현재 근황
2015년 11월에 개최되는 국제 야구대회인 프리미어 12 국가대표팀 사령탑 1순위로 거론됐지만 결국은 김인식 감독으로 내정되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제 1회 WBC에서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를 맡았던 선동열에게 코치로 합류를 상의한다고 해서 국제 대회에서 그의 참여가 다시 있을 지 미지수이다.김인식 감독 "선동열 코치 합류 상의할 것"
2015년 7월 5일에는 2015년 11월에 열리는 국제 대회인 2015 WBSC 프리미어 12 기술위원으로 확정되었다. 프리미어12, 선동열 전 감독 등 기술위원회 확정
2015년 8월 20일 KBO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인 김시진, 이만수와 함께 KBO 유소년 야구캠프에 참여하여 아이들을 지도해주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동열 감독님! 슬라이더 좀 알려주세요"
2015년 9월 3일에는 프리미어 12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 선임됐다. 투수코치로서의 평가는 꽤나 호평. 매끄러운 투수교체로 철벽불펜진 구축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이 많다.
2015년 10월 2일 엠엘비파크에서 LG 트윈스가 고려대학교 출신 깜짝 놀랄 인물을 감독으로 선임할지도 모른다는 썰이 나오자 선동열의 LG 감독 설이 나오기 시작했고 곧바로 엠엘비파크 한게는 엄청난 글리젠으로 혼돈의 카오스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곧이어 디시인사이드 LG 트윈스 갤러리 역시 그렇게 헛소문 하나에 거품물고 반대를 하였다. 어떤 스포츠 관련 사이트든지 항상 이런걸 지어내고 난리법석인것과 별개로, 프로감독으로서 선동열은 대중들이 원치 않는다는것은 확인 가능하였다.
2015 WBSC 프리미어 12 우승으로 이끈 투수코치가 되었다. 대회에서 매끄러운 투수교체로 좋은 결과가 이어졌다. 이에 네티즌들은 감독이 아닌 투수코치가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평가들이 주를 이뤘다.
프리미어 12에서 투수코치를 맡아 신들린 투수 운용으로 우승을 이끈 1등공신이 되었다. 이를 통해 어느 정도 명예회복을 하게 되었으며, 2016시즌의 결과에 따라 감독 복귀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KIA 시절 나타난 단점은 극복하고, 장점은 극대화하는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아예 감독의 자질이 없다는 다른 금지어급 감독들과는 달리 선동열은 감독으로서 2회 우승 커리어도 있고 투수코치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는 인물이기에 재기의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보기는 곤란하다.
다만 재기를 위해서는 언급했듯 자신이 실패한 원인에 대해 보다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스타 선수 출신으로서 감독 커리어에서도 조기에 성공을 맛본 것이 이를 가로막을 위험이 아주 높다.[48] 감동님계의 투 톱인 이만수 감독 또한 조기에 준우승을 맛보았고 장점도 보여주었지만 팀케미 관리에 심각한 난점을 보인 면에서 선동렬과 꽤 공통점이 있는 편이다.
2016년 김성근 감독의 노장들 기용이 좋은 성과를 못내고 한화 이글스 운용이 망가지는데 한 원인을 제공하자, 선동열 감독을 데려오자는 의견이 대다수. 노장을 정리하자는 뜻이다.
2016년 10월 12일 kt wiz가 조범현 감독과의 재계약 포기를 선언하면서 후임 자리 후보 4인 중 한명으로 거론되었다. 기사에 이니셜 처리를 했지만 대놓고 힌트까지 주면서 선감독임을 야구팬들이 눈치챌 정도.
2017년의 인터뷰에서 이승엽, 양준혁, 이종범의 은퇴와 관련해 구단의 입장을 대신하여 악역을 자처했던 것이라 밝혔다.
2017년 7월 24일 '''야구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5.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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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WBSC 프리미어 12 이후 물밑에서 검토되었던 전임감독제가 고척돔 참사로 인해 WBC 2회 연속 탈락의 충격을 받자, 이에 선동열, 류중일, 조범현 등 3인의 전임감독에 대한 후보군이 추려졌고, 이에 2017년 7월 24일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첫 전임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수 발탁 과정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후 활동은 선동열호 문서 참조. 그리고 결국 '''한국 야구 사상 최악의 참사'''가 터졌으며, 그래도 이후 경기를 모두 이기면서 금메달을 따긴 땄다. 하지만 선수단 선발 등의 문제로 선수단 출범 당시부터 논란이 끊이질 않았고(특히 선수단 선발 논란의 중심에는 오지환과 박해민이 있었다) 첫 경기였던 대만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를 이기긴 했으나 내용면에서 봤을 때 실망스러운 모습이라 많은 비난을 받았다. -
결국 '한국청렴운동본부'라는 시민단체로부터 권익위에 신고당했다.# 싸늘한 여론만 확인한 셈.[49]
아무튼 시민단체는 말 그대로 시만단체일뿐 거의 전체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에 엎친데 덮친데 격으로 2018년도 문화관광부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됐다. 바른미래당 김수민의원은 MK스포츠와의 김대호 기자[50] 와의 전화통화에서 “선동열 감독을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했다”라고 밝혔다. 병역면탈을 의도적으로 시도한 오지환(28·LG 트윈스)을 대표팀에 선발한 경위를 따지기 위해서다.
국민권익위원회에 2018년 9월 15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을 지휘한 선동열 감독이 LG트윈스 내야수 오지환 등을 선발한 것이 부정청탁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수민의원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증인 신청은 우선 소속 국회의원별로 이뤄진다”라면서 “위원회 교섭단체 간사단이 이를 모아 채택 여부에 대한 조율을 거친다”라고 설명했다. 교섭단체 간사단 조율을 거친 명단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2018년도 국정감사 증인 채택으로 확정된다. 김수민 의원실은 “간사단 논의에서 이의가 제기되지 않으면 대체로 통과되는 것이 관례”라고 전했다.
2017년도 국정감사의 경우 2017년 9월 20일 제354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제3차 회의에서 계획서 채택과 서류 제출 및 증인 출석요구가 모두 처리됐다.
결국 "'''2018년 10월 10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이 확정되었다.'''" #
이에 대해 선동열 감독은 2018년 10월 4일 긴급기자회견 등을 통해 오지환 등의 선발과정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서 지켜봐야 될듯 싶다. 기사
그런데 하루 전인 2018년 10월 3일 <엠스플뉴스>에서 국회에서 제출한 자료를 통해 얻은 내용을 보면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 권한, 부정한 청탁 운운은 명예훼손. 비공개를 전제로 선수 선발 기준을 제출할 수 있다”'''즉 비공개 전환을 통해 자료를 제출해서 더더욱 의혹만 증폭되는 상황이다. '''"즉 오지환 선발과정은 7명인 현역 코치의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한 바이며 일본을 이겨서 메달을 딴 걸로 만족한 것같다라는 의견..'''"
"'''즉 자신은 할일만 했을 뿐이라는???'''" 엠스플
2018년 10월 4일 기자회견'''"-“현장 스포츠인에 대한 국정감사 증인 채택은 위험”'''"
'''"-“야구는 철저히 통계와 포지션이 최적화된 독특한 스포츠. 그 기준과 통계에 따라 대표팀 선수 선발했다”'''"
'''"-“아시안게임 과정에서 여러 논란이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일본 이겼고, 국민 여러분들께 금메달과 함께 즐거움을 선사했다”'''"
'''"-“정치가 스포츠에 개입할 땐 평등해야. 다른 종목에도 유사한 문제 제기 있는데…”'''"
'''"-“난 국회가 정한 법과 제도에 충실했을 뿐 오로지 야구만을 위한 병역 특례제도를 설계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국민과 야구를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질문에 답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
먼저 분명하게 말씀드린다.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그 어떤 청탁도, 불법행위도 전혀 없었다.
나와 야구대표팀을 향한 근거없는 비방, 명예훼손은 자제돼야 한다. 나 선동열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명예가 존중되길 희망한다. 대표 선수 선발 과정은 공정했다. 코칭스태프와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 출장기록, 포지션, 체력 등 여러 지표를 살폈다.
토론 결과를 바탕으로 감독인 내가 최종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아시안게임 경기력, 전략적인 면에서 부족했다. 깊이 성찰하고, 더 노력하겠다. 무엇보다 국민과 야구를 사랑하는 분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병역혜택에 대한 비판에 공감했다.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있을 대표팀 선발 방식, 병역혜택 제도에 대해선 정부와 야구미래협회의 결정에 충실히 따르겠다.
그럼에도 대표팀 감독이 감사에 서는 것은 내가 처음이라고 들었다. 마지막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다시 한 번 부족함으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죄송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감독인 내 권한과 책임으로 함께 금메달을 따낸 특정선수에 대한 비난은 자제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대표팀에 대한 최종 책임은 어떠한 경우라도 나의 몫이다. 나와 대표팀, KBO는 이번 일을 계기로 대한민국 야구 발전을 위해 더욱 정진하겠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하지만 2018년 10월 5일 엠스플 뉴스에서 선동열 감독 기자회견 중 언급한 내용도중에 KBO회의록이 있다고 해서 문서를 입수했지만 KBO 기록실 자료를 복붙한 수준에 스카우팅 리포트만 있고 참석자 토론 내용은 없는 등 내용이 부실해서 더더욱 의심만 가는 상황.. 엠스플단독
'''"- KBO “대표팀 선수 선발 회의록 이미 대한체육회에 전달” 주장'''"
'''"-회의록 입수하니 한 줄 요약이 회의내용 전부, 참석자 토론 내용 전무'''"
'''"-선동열 “통계 활용했다.” 주장. 회의자료와 회의록은 KBO 기록실 ‘복붙’ 수준'''"
또 한 가지, 기자배포용 회의록 자료 중 오지환 관련 기록 부분에서 모순이 발견되었다. 2018년 6월 10일까지 LG가 소화한 경기는 66경기인데 그 밑에 첨부된 통산기록에는 73경기에 출전한 것으로 나왔으며 홈런 순위도 오지환보다 많이 친 선수가 후보군에서만 해도 4명이 있었음에도 1위로 기재되어 있었다. 또한, 국회 제출용 자료에는 기자 배포용 자료에 기재되지 않았던 10개의 실책과 67개의 삼진 기록이 기재되어 있어서, 여기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디. 관련 기사[51] 결국 손혜원 국회의원이 이를 국감자료를 통해 폭로했다. 어설픈 수를 쓰다가 오히려 화를 자초한 셈이다.#'''"-부실한 회의자료, 회의내용 없는 회의록. 야구인들 "선동열 감독과 KBO 운영팀은 야구계와 야구팬을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건가"전무'''"
이럴 바엔 사퇴하면서 솔직하게 털어놓으라는 김영석기자의 논평이 나왔다. 기사
2018년 10월 10일, 프로스포츠 사상으로 촌극이 펼쳐진 가운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일반증인으로 출석하여 내용은 위에도 서술했지만 그대로 공정성을 강조했다. 기사
이에 대해 손혜원의원은 "양혜영 전 사무총장의 시나리오대로 가는것 같다"라며 "김응룡 KBSA 회장과 함께 모든 선수를 뽑는 권한을 KBO에 넘겼다”며 “그렇게 넘기고나서 일주일 뒤 선동열 감독이 선임된다. 참 이상하지 않나”고 말했다.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이용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양해영 전 KBO 사무총장이 계속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아마도 2020년까지 본인이 이 일을 맡으려고, 선수선발 권한을 가져왔다고 추측한다”고 했다.
아울러 손 의원은 “전임감독 제도도 이들이 만든거다. 선동열을 그 자리에 두려고 한 것”이라며 “거기엔 아마 이 일을 획책한 사람의 더 큰 그림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기사
그런데 2018년 국감에서 야구에 대한 연관성이 전무하거나 지식 자체가 결여된 의원들을 청문회에 앉혀놓고 시종일관 고압적이고 민심 여론에만 기댄 사퇴 요구 및 제대로 된 해명은 듣지도 않은 채 질의를 진행하는 태도에 오히려 의원들에 대한 역풍이 거세지고 있다.
당장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은 전년도 김선빈과 오지환의 스탯을 놓고 블라인드(...)형식으로 선동열 감독에게 "A와 B 선수 중 누구를 선택하겠느냐" 라는 질의 자체가 문제가 되었으며,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선동열 감독과의 질의 중 "국가대표 감독직 연봉 2억원이 너무 많은 거 아니냐" , "판공비를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다" 등 본질과 어울리지 않는 깎아내리기식 질문을 주도하고 선 감독의 답변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말을 끊어버리고 본인의 주장만을 강조하는 등 질의 태도에도 문제를 보였다. 점입가경으로 SNS에서 자신을 질타하는 여러 댓글에 "나는 골목길을 걸었고 고무다라이" 라는 궤변섞인 멘션을 올리며 정신승리를 하고 있다. 참고로 '다라이'는 대야의 일본말. 국감 전날이 한글날(9일) 이었다(...)
이후 각종 기사 및 댓글여론은 "이럴거면 선 감독을 왜 부른거냐" "국민 정서에 반하는 건 오히려 국회의원들" "공부 좀 하고 질문하세요" 및 일부 스포츠 기사는 오히려 자신의 소신을 묵묵히 피력한 선동열 감독을 조금이나마 높이 평가하고 있다.
2018년 11월 14일 KBO에 오후 2시 30분에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요청했고 이후 정운찬 총재에게 사임 의사를 밝히며 국가대표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사퇴 이후 KBO 정운찬 총재, 당시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은 야구팬들에게 현재까지 까이고 있다.'''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여러분, 야구인 여러분. 국가대표 감독 선동열입니다.
저는 오늘 국가대표 야구 감독직에서 스스로 물러납니다.
지난 9월 3일, 저와 국가대표 야구팀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였습니다.
아시안게임 3회 연속 금메달이었음에도 변변한 환영식조차 없었습니다. 금메달 세레모니 조차할 수 없었습니다. 금메달을 목에 걸수도 없었습니다.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금메달의 명예와 분투한 선수들의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한 데에 대해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감독으로서 선수들을 보호하고 금메달의 명예를 되찾는 적절한 시점에 사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지난 10월, 2018 국회 국정감사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어느 국회의원이 말했습니다. “그 우승이(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 또한 저의 사퇴결심을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국가대표 감독직을 떠나며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감독의 책임은 무한책임입니다. 저는 그 책임을 회피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선수선발과 경기운영에 대한 감독의 권한은 독립적이되, 존중되어야 합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귀국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간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청렴운동본부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저의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신고를 했습니다. 억측에 기반한 모함이었습니다. 마음 아팠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종결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구체적 문제 제기가 무엇이었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 종결처분되었는지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정보공개를 요청했습니다만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을 뿐입니다.) 잠시 언급했듯이 국가대표 감독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으며, 대한체육회 역사상, 국가대표 감독 역사상, 한국야구 역사상 처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스포츠가 정치적 소비의 대상이 되는, 그리하여 무분별하게 증인으로 소환되는 사례는 제가 마지막이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되어야 마땅합니다.
불행하게도 KBO 총재께서도 국정감사에 출석해야만 했습니다. 전임감독제에 대한 총재의 생각,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자진사퇴가 총재의 소신에도 부합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정치권 일각의 ‘스타 선수가 명장이 되란 법 없다’라는 지적, 늘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독직 수행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인내심을 갖는 것. 둘째는 인내하는 것. 셋째로 가장 중요한 것이 인내심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사표를 제 가슴속에 담아두고 기다리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수차례 사퇴를 공표하고 싶었습니다만 야구인으로서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국가대표 야구선수단의 명예 회복, 국가대표 야구 감독으로서의 자존심 회복,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영예 회복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야구인의 대축제인 포스트시즌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사퇴하는 것이 야구에 대한 저의 절대적 존경심을 표현함은 물론 새 국가대표 감독 선임을 통해 프리미어12나 도쿄올림픽 준비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구성 과정에서 있었던 논란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리고자 합니다.
기자회견과 국정감사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우리 시대 청년들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병역 특례에 대한 시대적 비판에 둔감했습니다. 금메달 획득이라는 목표에 매달려 시대의 정서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정중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공을 만지기 시작한 이래 저는 눈을 뜨자마자 야구를 생각했고, 밥 먹을 때도 야구를 생각했고, 잘 때도, 꿈속에서도 야구만을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야구를 생각하지 않은 유일한 시간이 있다면 마운드에, 그리고 덕아웃에 서 있을 때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야구에 대한 저의 열정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아무튼 2019년 1월 28일 후임으로 고려대학교 시절 함께 같은 룸메이트기도 했던 김경문 감독이 선임되었다.
6. 다시 야인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을 떠난 이후 뉴욕 양키스에서 연수를 받기로 했으나 코로나19 영향으로 보류되었다.
이후 온택트 연수를 시작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일간스포츠에서 선동열 야구학을 연재중이다. 구시대적 야구관이 아닌 전문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한 세이버매트리스적 해석과 과거 야구관에 대한 반성으로 감독 시절 선동열을 생각하던 팬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7편 8편 9편 10편 에필로그
2020년 10월 30일, SK 염경엽 감독이 사퇴하면서, 동시에 SK 감독으로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해당기사 만약 복귀한다면 6년만에 KBO 감독으로 복귀하는 셈이다. SK 감독 면접을 본 것은 확실하지만 김원형이 11월 6일자로 SK의 새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복귀가 무산되었다.
2020년 11월부터는 여러 썰쟁이들을 중심으로 한화 이글스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소문이 있으나, 이렇다할 오피셜 근거는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한화 역시 거물급 감독이 아닌 젊은 감독을 선임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키움 역시 젊은 감독을 선호하던 터라 현장 복귀가 어려워졌다. 결국 한화 이글스가 외국인인 카를로스 수베로를 사령탑으로 선임하여 올 시즌 복귀는 물 건너 간 듯.
이후 비시즌에 LG와 KT의 스프링캠프를 순회하며 인스트럭터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