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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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자치군. 강화도와 15개 부속도서를 관할한다.
지리적으로 최북단에 북한과 접경하고 있는 지역이라서 개발이 다소 더딘 편이지만 통일 이후에는 미개발지가 많은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어서 향후 통일 이후에 개발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2. 역사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교동군을 흡수하면서 지금의 강화군이 되었다. 교동군을 합치기 전의 강화군의 역사는 항목 참조
2.1. 교동군의 역사
옛 강화부 서쪽에 교동도와 석모도를 관할하는 교동현이 있었다. 경기수영을 교동도로 옮기기 전의 교동현의 역사는 교동도 항목을 참조.
1629년 남양도호부에 있던 경기수영을 여기로 옮기면서 도호부로 승격[5] 되었다.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까지 무려 3개 도의 수군을 관할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워낙 유명해서 교동에 있는 것도 삼도수군통제사라고 오인하는 경우[6] 도 있지만 삼도수군통어영이 맞고, 지휘관은 삼도수군통어사이다. 그리고 삼도수군통제사라고 잘못 아는 사람 중에는 교동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다는 설명만 보고 이순신이 교동에서 근무한 걸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7]
1894년 1차 갑오개혁 때 경기수영/삼도수군통어영을 폐지하면서 강화부에 흡수되었다
2차 갑오개혁으로 1895년에 23부제를 실시할 때 복구하면서 인천부 교동군[8] 이 되었다.
1896년에 23부를 13도로 개편하면서 경기도 교동군[9] 이 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강화군에 다시 흡수되었다.
3. 지리 및 기후
동쪽으로는 염하(鹽河)를 경계로 경기도 김포시와 마주한다. 강화도로 통하는 유이한 육로인 강화대교와 초지대교 역시 김포로 통한다. 그러나 강화도의 지리적 위치상 인천 본토로의 교량 건설이 불가능하다. 즉, 인천 본토에서는 배를 타지 않는 한 김포를 거치지 않고 강화도를 육로로 바로 갈 수 없다. 이 때문에 강화군의 경기도 복귀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북쪽으로 한강 하구를 통해 '''북한'''과 인접해있다. 북부 지역의 경우 굳이 전망대에 가지 않아도 그냥 동네 뒷산에만 올라가면 개성특별시 구 개풍군 지역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 특히 근접한 일부 지역은 아예 민통선 지역으로 지정되었으나 재산권 행사도 자유로운 편이고, 볼음도 지역을 제외하면[10] 검문도 거의 하지 않는 등 반쯤 해제된 상태이다. 사실 강화군 북부와 김포시 북부는 비무장지대가 지정되지 않은 한강 하구 평화지대이다. 휴전협정문에는 나루터 이용 보장까지 언급되어 있을 정도다. 단지 그 동안 안보를 이유로 민통선을 설정한 것이다.
서북쪽 끄트머리란 위치 덕에 부울경쪽으로 오는 일반 대한민국 내습 태풍은 빗나가거나 강수가 가장 적기도 하다. 다만 백령도가 가장 태풍으로부터 안전한 편이다. 한편 링링과 곤파스처럼 서해상으로 올라오는 태풍의 경우는 직접 내습하거나 약간의 위험반원으로 가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피해를 입게 된다.
섬답게 아침에는 안개가 심하고 밤에는 바람이 많은 편이고, 8월 평년기온도 24.5도로 매우 적절하다.[11] 강원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사람에 따라 여름에도 밤에 추위를 느낄 수 있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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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이 되어온 역사도 길다. 간척은 고려시대부터 시행되어 수많은 섬들이 합쳐졌다.
3.1. 부속 도서
3.2. 인구
강화군의 인구는 2020년 5월 기준으로 69,102명이며 수도권 지자체 중에서는 경기도 가평, 양평, 연천군, 인천시 옹진군과 같이 저인구 비율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연령상으로는 7,80대 이상이 많으며 60대 이상이나 50대 이상도 많지만 어린 층이나 젊은 층은 주민 집단 중에서 드물다.
섬에다가 농어촌 지역이라는 점 때문에 인구 증가가 더딘 추세이다. 교통망에 있어서도 섬이라 경기도 김포시를 통해서 갈 수 있다. 이러한 영향 등으로 인구 감소가 이어지는 편이다. 게다가 '''지리적으로 북한과 인접해 있는 영향'''도 있어서 일부 지역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서 개발하기 어렵다. 공장이나 회사가 거의 없어서 공해도는 청정한 편. 강화군에 공장이 없는 것은 문화재 보호와 자연보호도 위주겠지만 북한과 가까운 영향으로 군사보호구역이 많고 정부에서 개발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차후 군사보호구역 및 개발 제한이 해제되면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울주군처럼 도시화가 이루어져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강화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12] 그리고 강화도가 인천광역시 전체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0%가 넘지만, 인구는 2.5% 남짓으로 아주 적다. 따라서 인천의 8개 구에 인구가 집중되어서 땅이 비교적 넓은 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와 대구광역시보다 인천광역시의 도심이 훨씬 미어터진다.
4. 교통
도로교통에 100% 의존하는 지역이다. 전에는 북부에 강화대교 하나만 있었기 때문에 외부로의 출입이 매우 불편했고 교통량이 포화에 달했다. 2002년에 남부에 초지대교가 개통되어 강화대교의 부담은 조금 덜해졌지만, 그래도 서울로 가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인 48번 국도는 매일 막힌다. 교동대교는 2014년에 개통되었고,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는 2017년에 개통되었다. 2018.12월 인화-강화간도로가 개통되어 시점인 강화읍 용정리에서 종점인 이강교차로까지 신호가 걸리지 않는다면 거의 10분만에 갈 수 있어 기존 국도보다 빠르고 편해졌다.
지속적으로 남쪽 영종국제도시까지 15km짜리 연도교를 놓는다는 떡밥이 일긴 했는데 6,000억이 넘는 막대한 사업비에 비해 경제성이 부족하여 단기적으로 추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단 영종도에서 신도까지 1단계 건설 후 강화도까지 연장될 계획이 유력하다.
하지만 시 재정난과 굳이 연관시키지 않더라도 수천 억에 달하는 사업비에 비해 얻을 만한 편익이 없다. 인천 본토로 통하는 것도 아니고 강화도는 최전방이고 인천, 서울에서도 멀리 떨어져 대규모 개발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강화도 남단에 인천경제자유구역 지정이 검토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연도교 건설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연도교 건설이 우선순위가 낮기 때문에 토지 소유주 혹은 민간 자본 투입 등의 방식으로 진행을 검토 중이다.
서해남북평화도로 사업에 포함되는 영종-신도 연도교 건설이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에 포함되었다.[13] 인천시에서는 영종-강화-해주를 잇는 남북평화도로를 개설해 통일 이후 북한 지역의 인천공항행 물류를 담당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영종-강화 연도교는 어떤 식으로든 개통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철도가 들어오지 않았다.[14] 일단 2030 인천도시기본계획에 인천 도시철도 2호선의 강화 연장 계획 및 영종-강화 간 광역철도 계획이 포함되어 있지만, 인천 2호선의 경우 경전철로 그 장거리를 어떻게 버티냐는 게 문제다. 인천 2호선이 사실상 중전철에 가까운 규격을 가지고 있다 한들, 낮은 B/C 값 역시 발목을 잡는다. 영종-강화 광역철도 역시 현재로서는 이 노선을 이용해 얻을만한 편익이 없어 사실상 비슷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철도를 놓는 등의 개발을 하려면 강화군에 적용된 각종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강화군에 철도가 도입되려면 일단 규제부터 풀고 대규모 개발에 맞춰 인천 도시철도 1호선이 연장되거나, 인천 도시철도 3호선이 대순환선이 아닌 다른 경로로 추진되어야 한다. 만약 인천 3호선이 예정대로 대순환선이 된다면 아예 '인천 도시철도 4호선' 같은 새로운 형태의 철도를 도입해야 한다.
시외버스 노선은 청주와 광주로 가는 노선뿐이기 때문에, 강화여객자동차터미널은 사실상 시내버스 환승센터이다.
- 관내 경유 노선
5. 관광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고인돌부터 고려 시대의 항몽 유적지와 조선 후기의 열강과의 항쟁지가 있다보니 역사 관련 유적이 매우 많고 마니산 등을 위시한 자연도 청정하여 매 연휴나 주말이면 적지 않은 인파가 모여든다.
'''풍물시장'''이라고 종합 재래시장이 있다.
특히 길상면, 화도면, 양도면 등 서남부 지역의 경우 경치 좋고 한적한 곳에는 여지없이 숙박업이 발달해 있다. 특히 읍내를 벗어나 바닷가로 나가면 펜션과 해변뷰 카페 천지다. 이와 관련해서 강화군에서 제주 올레길을 모방한 강화 나들길이란 것을 밀고 있기는 하다. 전국 올레길 유사 공모에서 대상을 받았으나 이런 도보길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탓에 정작 반응은 신통찮다. 구간 곳곳에도 걷기 불편한 비포장 도로가 산재해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체험 학습 장소로 무척 자주 애용된다.
특산물로 화문석, 밴댕이, 약쑥이 유명하다. 약쑥의 경우 지리적 표시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외에도 강화섬쌀, 강화 순무, 강화속노랑고구마, 강화인삼이 있다.
서울 근교이고 영종도, 대부도, 영흥도 등과 함께 수도권에서 배를 타지 않고 오로지 차량으로 왕래할 수 있는 대표적 섬 지역인만큼 당일치기 나들이가 주를 이루는 편이다. 본섬인 강화도와 강화도에서 차를 이용해서 갈 수 있는 교동도, 석모도중 하나를 정해서 보고 오는 편이 효율적이다.
5.1. 강화도
- 용두돈대
- 고려궁지
- 강화읍성당
- 고려산[15]
- 용흥궁
- 마니산(참성단)
- 전등사
- 초지진
- 덕진진
- 광성보
- 갑곶돈대(강화전쟁박물관)
- 강화역사박물관
- 강화산성
- 강화석수문
- 고인돌
- 강화고려홍릉
- 동막해수욕장
5.2. 석모도
5.3. 교동도
6. 교육
대학교로는 화도면에 인천가톨릭대학교 강화캠퍼스(신학대학)[16] , 길상면에 가천대학교 강화캠퍼스(가천리더쉽센터), 불은면에 안양대학교 강화캠퍼스가 있다.
7. 생활문화
도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농어촌. 다리도 원래는 강화대교 하나였다가 2002년도에 초지대교가 개통되며 2개가 되었다. 현 강화대교 옆에 강화교가 있긴 하지만, 노후화로 인해 자전거도로로 바뀌었다.
중심지인 강화읍은 그럭저럭 도시화가 되어 있긴 하지만 그 외의 지역은 그냥 깡촌이다. 읍내만 벗어나면 논, 밭, 논, 밭의 무한루프에[17] 심지어는 가로등조차 없는 곳도 많다. 읍내도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돼 있다는 말이지 PC방이나 노래방 이외의 유흥시설이 전무하다.
내로라 하는 프랜차이즈도 없어 롯데리아는 성지, 배스킨라빈스와 파리바게트는 준성지 취급을 받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영화관이 있었다고는 하나 감소하는 인구수에 못 버텨서 문을 닫았고 그 이후로 2014년까지 해도 영화 한 편을 위해 저 멀리 김포 시내까지 나가야 했으나 2015년에 마침내 영화관이 생겼는데 5천원에 관람할 수 있는 87석 정식 개봉관이다. 향후 발전에 대해 귀추가 주목된다. 2019년 12월 20일, 강화군에도 스타벅스가 생겼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다.
강화도 사투리는 경기도 사투리와 확연히 다른데, 지금도 강화에서 나이드신 분들은 ''''"했습니까?" 를 "했시꺄?"'''로 말한다. 이는 황해도 사투리에서도 볼 수 있는 어투이다. 강화도가 황해도와 가까운 지역이고 황해도 실향민들이 많이 정착하여 사투리에도 영향을 받은 듯하다. 김포나 경기도권 보다는 억양이 연백평야에 가깝다, 6.25 전에는 개성과 함께 38선 이남이었다. 강화는 39년 동안 고려시대 수도 역할을 했을 정도로 개성과 인연이 깊으며, 6.25전쟁 때 개성이 회복될 줄 알고 강화에 눌러 앉은 실향민들이 다시 개성의 문화를 많이 전파했다. 강화의 오랜 토박이들은 동란이후 개성출신 기생들이 만들어 놓은 '새시장'을 기억한다. 서울에서도 찾아 올 정도로 환락지역이었다. 당연히 강화사투리는 노인층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전혀 쓰지않는다
그 외 특기할 만할 것이라면 인천광역시를 연고지로 두고 있는 SK 와이번스의 2군 야구장인 SK 드림파크가 길상면에 위치하고 있다.
강화도의 행정 사무 업무를 보면 경찰서는 1946년부터 설립하여 오늘에 이른 반면, 소방 사무는 1980년대 후반기 들어 부천소방서 관할이었다가 1995년 인천광역시에 편입하여 인천서부소방서 관할이었다가 2008년 강화소방서가 공식적으로 개청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거기에 세정 사무는 현행대로 김포세무서[18] 에서 관장하고 있지만 이전까지는 서인천세무서 본서 관할이었으며, 케이블TV 사업 권역은 티브로드 서해방송이 중구, 동구, 옹진군과 묶어서 관할받고 있다. 법원 관련 재판 관할권은 당연히 인천지방법원 본원 관할이지만 향후 서부지원(또는 북부지원)이 신설되면 서구, 계양구, 김포시와 한 축으로 묶어 관리받게 될 예정에 있다.[19]
차량 번호 체계는 경기도이던 시절 부천시에서 관장하였을 때 경기X러YYYY 같은 번호판[20] 을 사용하였고 이후 김포군[21] 으로 권한을 넘기다가 다시 인천광역시로 넘기면서 인천X그YYYY라는 차번호판도 나왔다가 이듬해인 1996년부터 승용은 60, 소형 승합은 78, 중대형 승합은 79, 소형 화물은 94, 중대형 화물은 95, 특수는 99로 각각 바뀌었다.
2019년 기준으로 어느정도 개발이 되긴 했지만 지역 특성상 서울 & 수도권의 접근성이라던지 기반 & 여가시설 면에서 딱히 매리트가 있는 도시가 아님에도 집값이 어지간한 인천 & 경기권보다 더 비싸다. 신축 아파트나 투룸 빌라의 경우 특히 그런 경향이 크다.
8. 정치
한 줄 요약: '''인천 속의 작은 경상도'''
최전방 지역답게 옹진군과 같은 대표적인 보수 정당의 텃밭이다. 원래 인천은 수도권에서 비교적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갖고 있었지만 점점 빠르게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변해간 반면에, 강화군은 인천 도심에서도 완전 떨어져있고 섬이라는 특성상 TK의 울릉군처럼 고립되어 있다. 북한과 가깝고 외지인의 유입도 적어 고령화가 다른 지역보다 빨라 보수정당 지지율이 수도권에서도 가장 높다. 사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옹진군보다는 보수세가 약간 밀렸으나, 2010년대 후반 이후에는 꾸준히 옹진군보다 유의미하게 보수 정당 지지도가 높게 나온다. 이는 옹진군이 접경 지역의 특성을 강하게 띄기 때문에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군인 표심의 보수색이 다소 약화되는 등의 유동성이 있는 반면 강화군은 접경 지역임과 동시에 고령 인구가 많은 농촌 지역의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강화군 역사상 그나마 민주당계 지지율이 높았던 때는 참여정부 시기였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자그마치 '''39.9%(!)''' 를 받은 적이 있지만, 참여정부 인기가 떨어지면서 다시 보수세가 거세지다가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보수 정당의 초강세 지역으로 완전히 굳어졌다. 18대 대선때는 박근혜 후보가 69.8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29.51%를 기록한 문재인 후보를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꺾었다.
국회의원 선거 때는 19대 총선까지 서구 검단지역이랑 같은 선거구였으며, 검단지역에서의 민주당계의 우세를 상쇄시켜 언제나 박빙 끝에 민주당계의 환상을 부숴 주는 지역구였다. 그래서 선거구 전체의 당락을 좌우하였다. 이 때문에 번번이 낙선했던 인물이 현재 인천 서 을의 신동근 의원. 2002년 재보선부터 4번이나 국회의원에 도전했지만 전부 2등으로 낙선만 하다가 5번째 도전인 20대 총선에서 서구 단독 선거구로 드디어 당선되었다.
20대 총선부터 선거구가 개편되어 강화군은 전술한 중구, 동구, 옹진군과 한 선거구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여기서 이기는 후보가 선거구 전체의 당락을 쥐고 흔드는 징크스가 이어졌는데, 여기서 몰표를 받은 안상수 의원이 중구, 동구, 옹진군에서 전부 새누리당 배준영 후보에게 졌음에도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상수는 인천광역시를 말아먹은 장본인이라는 평가가 있다.
8.1.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강화군의 보수 일변도는 문재인 정부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도 이어졌다. 시장 선거에서는 옹진군과 함께 유정복 후보가 과반을 넘어 가장 많은 표를 가져갔으며, '''인천에서 유일하게 자유한국당 후보가 기초자치단체장과 시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강화군수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한연희 후보, 전직 군수인 자유한국당 유천호 후보, 현직 군수이자 보수 성향 무소속 이상복 후보가 경쟁했는데, 유천호 후보가 43퍼센트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무소속 이상복 후보가 2등(30%), 민주당 한연희 후보는 3등(26%)에 그쳤다. 옹진군까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가운데 보수성향 후보 득표율이 73%이나 나온 것이다. 시의원 선거에서도 한국당 후보가 59퍼센트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한국당에 대한 반감, 한국당 심판론이 매우 크게 작용한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3등밖에 못 한 것을 보면, 강화군에서 민주당계 정당의 당선은 강화군민의 연령대 구성, 세대교체가 이뤄지기 전에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래도 광역의원비례대표 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이 앞서긴 했지만 두 정당의 격차가 2%(800표 미만) 정도로 줄어들었고, 군의회 만큼은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강화군 의회의 지역의원은 3인 선거구 두 곳에서 6명을 뽑았는데, 더불어민주당은 강화읍이 포함된 가 선거구에 3명, 나 선거구에 2명을 공천했고, 자유한국당은 가 선거구에 2명, 보수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나 선거구에 3명을 공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가) 후보자에 표가 집중되는 것을 막고 (나)-(다) 후보자에게도 표가 골고루 돌아가도록 선거 전략을 짠 것에 비해 자유한국당은 그런 전략이 없었다. 이러한 더불어민주당의 선거 전략이 성공하여, 두 선거구 모두 1위 득표자는 4천 표를 받은 자유한국당 (가) 후보자였으나 자유한국당의 나머지 후보자들은 2천 표 씩을 받는 데 그친 것에 비해, 더불어민주당 후보자들은 골고루 3천 표 씩을 받아 2-3위 득표자가 되었다.[29] 그나마 가 선거구는 총득표가 더불어민주당 8천 표, 자유한국당 6천 표로 더불어민주당이 앞서기라도 했지, 나 선거구의 총득표는 더불어민주당이 6천 표, 자유한국당이 8천 표로 자유한국당이 앞섰지만 더불어민주당의 후보 두 명이 3천 표 씩 받았고, 자유한국당은 후보 세 명이 4천 표, 2천표, 2천표를 받는 바람에 더불어민주당 2명, 자유한국당 1명이 당선된 것이다.[30] 그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당선자 4명[31] , 자유한국당은 지역구 당선자 2명에 비례대표 1명[32] 을 추가해도 3명에 불과해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강화군 의회에서 민주당계 정당은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1명이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2명이 당선되는 등 꾸준히 당선자를 내왔으나, 대개는 보수정당에서 공천된 후보와 보수정당 공천에서 탈락한 무소속 후보의 대결이었고 민주당계 정당은 보수정당과 무소속 후보에 밀려 2-3위로 당선되는 수준이었음을 생각하면, 강화군에서도 작지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대 기초의원비례대표 선거에서 민주당계 정당의 득표율이 44%(제4회, 열린우리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합계) -> 40%(제5회) -> 30%(제6회)로 갈수독 떨어지다가 이번에 50%를 바라보는 수준으로 올라간 것도 변화의 가능성을 볼 수 있게 한다.
8.2.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21대 총선에서도 또 징크스가 이어졌는데, 이번 총선의 피해자는 서구 검단지역이 아니라 영종도로 인해 민주당이 강세가 되어가는 중구다. 실제로 당시 조택상 후보는 중구에서 8850표 차이로 이기고도, 강화군에서 9700표 차이로 졌고, 중-동-옹진 지역구 시절 때 보수정당의 낙승에 기여를 했던 옹진군도 여기에 거들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석패를 하게 된다. 다만 조택상 후보가 36%를 받아서 강화군에서 꽤 선방을 했는데[33] ,이는 군의회에서의 승리와 이상복 전 강화군수의 입당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8.3. 관련 문서
9. 군사
북한과 접경하고 있는 특성상 육군 수도군단 예하 부대와 제2해병사단이 주둔하고 있으며 교동도로 가는 길에 해병대원들이 검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교동도는 '''목함지뢰가 종종 발견되고 수영해서 탈북이 가능할 정도'''라서 분위기는 살벌하다. NLL과 근접한 위성도서들에도 해병대 전초기지들이 주둔해있다. 강화군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과 아시아나 항공기 오인 사격 사건도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공군방공관제사령부 예하 모 부대도 강화군에 주둔중이다.#
10. 하위 행정구역
11. 기타
북한 접경 지역이기 때문에 일부 지역은 접근이 제한된다. 교동도의 경우 교동대교를 통해서 강화 본섬과 직결되어 갈 수 있으나 방문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검문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며 출입증을 받고 입도할 수 있다.[34] 지리적으로 북한 황해도 지역과 근접한 영향이 있어서 검문을 받아야 한다. 또 양사면 북성리, 철산리, 당산리, 숭뢰리 최북단 지역 역시 지리적으로 강화군 최북단 지역이며 북한 황해도 지역과 마주하고 있는 곳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 마을 강 건너 윗쪽부터는 '''북한 땅'''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강화군은 철원, 파주시, 연천군 등과 더불어 말라리아 위험 지역이다. 그래서 임시 해금 시기[35] 를 제외하곤 강화군민들은 전혈 헌혈이 불가하며 혈장 성분헌혈만 가능하다.[36]
인천 지역은 노래방의 90%가 TJ미디어인데 강화군에서는 특이하게 금영엔터테인먼트를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강화군 노래방을 검색하면 강화군 관내에 있는 노래방과 모텔에 금영반주기가 설치된 것을 볼 수 있다.
12. 출신 인물
- 갈홍기
- 고우석
- 권삼
- 권오준
- 권율
- 김남춘
- 김성수 - 초대 성공회 한국관구 관구장 주교, 前 성공회 서울교구장 주교
- 김영실
- 김용우(1912)
- 박상은
- 방실이
- 변희재
- 안덕수
- - 강화도에 연개소문에 관한 설화가 있긴 하나 연개소문이 태어날 당시에는 이미 신라 영토였을 가능성이 높다.
- 오홍석
- 윤재근
- 이경재
- 이돈해
- 이임생
- 인재근
- 정철범 - 3,4,6대 성공회 한국관구장 주교, 前 성공회 서울교구장 주교
- 조봉암 : 출생 당시에는 대한제국 경기도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 한장석
- 황재원
13. 관련 문서
13.1. 고려 시기
13.2. 조선 시기
13.3. 기타
[1] 2021년 1월 주민등록인구[2] 원래는 강화통화권(0349)이었으나 1995년 인천 편입 이후인 1996년 1월 인천통화권(032)로 편입.[3] 이름은 '강돌이'[4] 위 강화군청 사진에서 깃대에 게양된 깃발들 중 파란 깃발이 군기다.[5] 동시에 남양도호부는 남양현으로 강등 [6] 교동도의 교동읍성 남문지에 설치된 설명문에도 '''경기, 황해, 충청의 수군을 관할하는 삼도수군통제사'''라고 되어있다. [7] 삼도수군통어사가 경기, 황해, '''충청'''의 수군을, 삼도수군통제사가 전라,경상, '''충청'''의 수군을 지휘하다보니 충청수사가 양쪽의 지휘를 받게 되는데, 자세한 상황은 조선 수군항목을 참조. 그리고 이따금 인터넷에서 삼도수군통제사의 지휘를 받지 않는 경기, 황해, '''평안'''의 수군을 지휘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을 설치했다는 설명도 나오는데, 애초에 평안도의 수군은 평안도 관찰사가 평안수사를 겸임해 지휘했다. [8] 하위 행정구역을 부, 목, 군, 현에서 군으로 통일했다. [9] 23부제를 폐지했지만 부, 목, 군, 현을 군으로 통일한 건 유지했다. [10] 교동도의 경우도 연륙교 개통 이후 주민들의 24시간 왕래가 가능해지고 외래방문객도 새벽시간대 이외의 통행이 가능하게 되며 신분증 검사만 하는 등 사실상 해제되었다.[11] 서울특별시가 25.7도, 대구광역시가 26.4도이다.[12] 비슷한 예로 '''최전방인 철원군 김화읍'''에도 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섰다. 참고로 오레오를 라이선스 생산하는 공장도 여기에 있다.[13] 출처.[14] 수도권 지역 중 철도가 없는 지역은 강화군과 안성시, 포천시, 옹진군 뿐이다. 그나마 안성이나 포천은 철도가 들어올 수 있는 지역이고 포천은 실제로 공사 중이지만, 옹진군은 지역 전체가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철도 건설은 불가능하다.[15] 매년 4월경 진달래 군락을 중심으로 진달래 축제가 열린다.[16] 천주교 인천교구에서 운영중인 종합대학. 사실 강화도의 신학대학이 인천가톨릭대학교의 원류였지만 조형예술대학과 간호대학 등이 있는 송도국제도시 캠퍼스가 신설된 이후 대학본부를 송도로 옮겼다. 2018년 6월 송도신도시 인천글로벌캠퍼스 옆에 (신)송도국제캠퍼스 기공식을 개최하였고 2020년 완공되면 간호대학과 종교미술대학이 이전할 예정이다.[17] 사실 강화읍 안에도 논밭이 엄청나게 많다.[18] 1999년 세무서 개편에 따라 서인천세무서 김포지서로 격하하였다.[19] 강화도에서 죄, 뇌물 등을 짓거나 수수하게 되는 사람에게 재판을 별도로 받으려면 40여km 떨어진 인천지방법원 본원까지 나가야 하고 버스를 타려면 800번을 이용한 후 주안 일대에서 지선버스로 갈아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등 교통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지적을 받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다.[20] 이 사업소에 등록된 기호는 러 외에도 로, 루, 르, 조 등도 눈에 띄게 나왔다.[21] 김포시가 김포군이던 시절에는 경기X흐YYYY 같은 번호판이 존재.[22] 1995년에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으로, 14대 국회 종료 후 선거구가 인천으로 변경되었다.[23] 02.6.24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24] 15.3.12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25] 02.8.8 재보궐선거[26] 15.4.29 재보궐선거[27] 11.12.12 군수직 사퇴(19대 총선 출마)[28] 12.4.11 재보궐선거[29] 가 선거구에서 낙선한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자유한국당의 낙선한 후보보다 표를 더 많이 받아 가, 나 선거구를 통틀어 강화군 의회 지역의원 선거에서 최다득표 낙선자가 되었다. [30]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는 두 정당이 공천한 후보를 앞설만한 비중있는 무소속 후보도 없었다. [31] 가, 나 선거구의 득표수를 합치면 더불어민주당이 3백 표 정도 더 많다. [32] 기초의원비례대표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앞서긴 했지만, 더불어민주당 49.77%에 자유한국당 50.23%로 두 정당의 격차가 0.5%를 넘지 않았고 표 수는 불과 170여 표 차였다.[33] 6:3 정도인데 왜 선방이라하는지 모른다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26%를 얻은 지역이 바로 강화군이고, 20대 총선에선 당시 정의당 소속이였던 조택상 후보가 10% 미만을 얻었다.[34] 교동면이 연고지로 되있는 가족이 있는경우에 연고자를 통해 해병대 2사단 마크가 찍힌 상시출입증(출입제한 시간에 상시출입증이 있으면 출입이 가능하며 검문소에서 정차 안하고 바로 통과)을 발급 받을수있다.[35] 보통 헌혈 참여율이 굉장히 저조한 시기에 풀린다.[36] 6개월 이상 거주한 사람은 2년, 1박~6개월 미만 거주한 사람은 1년간 헌혈이 제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