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Day
[clearfix]
1. 개요
[image]
198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결성된 펑크 록 밴드. 90년대 초반 오프스프링과 함께 네오 펑크의 새 지평을 열며, '''펑크 록을 메인스트림에 리바이벌 시킨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1994년 메이져 레이블에서의 데뷔앨범인 《Dookie》가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시작해서 이후 앨범들의 성적은 부진한 듯 보였으나[2] 2004년에 발매된 록 오페라 앨범 《American Idiot》이 대성공을 거두며 제 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American Idiot, Holiday, Boulevard of Broken Dreams 등의 그린 데이의 대표곡들이 대부분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앨범의 전곡이 히트를 쳤다. 또 2009년 발매된 《21st Century Breakdown》 앨범을 통해 음악적 성숙미를 보여주었다. 2012년에는 좀 더 실험적인 3부작 앨범 《¡Uno!》, 《¡Dos!》, 《¡Tré!》를 발매했지만 밴드 내 악재가 잇달아 터지면서[3] 잠정적인 휴식 기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2016년 10월 7일, 드디어 새로운 앨범 《Revolution Radio》를 발매하며 다시 복귀하였다!
2012년 집계 기준으로 미국에서만 2,5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으며, '''전세계적으로는 7,5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또 2006년에 수상한 '올해의 레코드 상'을 포함해 총 5번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를 수상하였으며, VH1에서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100인(100 Greatest Artists of All Time)'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2015년에는 자격요건이 갖춰지자마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2. 활동
2.1. 결성과 인디 시절 (1986 – 1993)
1986년, 당시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DIY 924 Gilman Street' 펑크 씬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던 밴드 '오퍼레이션 아이비(Operation Ivy)'.[4] [5] 에서 영향을 받은 빌리 조 암스트롱(Billie Joe Armstrong)은 중학교 절친인 마이크 던트(Mike Dirnt)와 함께 밴드를 결성한다. 당시 14살 소년이었던 둘은 베이시스트 씬 휴즈(Sean Hughes)와 드러머 라주 펀자비(Raj Punjabi)와 함께 '스위트 칠드런(Sweet Children)'이라는 이름의 밴드로 활동을 시작한다.[6] 그러나 1년 뒤에는 드러머가 존 키프마이어(John Kiffmeyer)로 바뀌었고, 1988년에는 씬 휴즈가 떠나면서 마이크가 베이스 기타를 맡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린 데이는 현재와 같은 3인 구성체제를 갖추게 된다.
그렇게 'DIY 924 Gilman Street' 펑크 씬에서 활동을 하던 그들은 당시 독립 레코드 회사 'Lookout!'의 사장이었던 래리 리버모어(Larry Livermore)의 눈에 띄게 된다. 그리고 1989년, 《1,000 Hours》라는 EP판[7] 으로 데뷔하면서부터 밴드는 '''본격적으로 현재의 '그린 데이(Green Day)'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다.'''[8][9]
[image]
그 후 1990년 초, 그린 데이는 밴드의 첫 번째 정규 앨범 《39/Smooth》를 내면서 첫 전국투어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해 연말 드러머 존 키프마이어가 대학교 진학문제 때문에 밴드활동을 잠시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그린 데이는 당시 '더 룩아웃츠(The Lookouts)' 밴드의 드러머였던 트레 쿨(Tré Cool)을 임시 드러머로 영입한다.[10] 이후 밴드는 1991년 두 번째 정규 앨범 《Kerplunk》를 발매, 1992년부터 1993년까지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투어 공연을 다닌다.
2.2. 《Dookie》의 대성공 (1994 – 1996)
앨범 《Kerplunk》가 미국에서만 5만 장이 팔리며 언더그라운드 등지에서 히트를 치자 메이져 레코드 회사들은 그린 데이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1994년 그린 데이는 메이져 레코드 회사들 중 'Reprise Records'와 계약을 맺게 된다.[11] 3주 간의 레코딩 작업 이후 1994년 2월 1일, 그들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이자 메이져 레이블 데뷔 앨범 《Dookie》가 발매된다.
[image]
첫 번째 싱글 "Longview"와 세 번째 싱글 "Basket Case", 네 번째 싱글 "When I Come Around"가 모두 빌보드 모던 락 트랙스(Billboard Mordern Rock Tracks) 차트[12] 에서 1위를 차지하고, 앨범 자체는 빌보드 200 차트에 2위를 기록하면서 그린 데이는 메이져 레이블 데뷔부터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95년에는 이 앨범으로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MTV Video Music Awards)에서 Video of the Year를 포함한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노미네이트 된 3개 부문 중 '최고의 얼터너티브 음악 앨범 상(Grammy Award for Best Alternative Music Album)'을 수상하는 등 각종 시상식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그리고 《Dookie》는 1999년, 미국에서만 1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돌파하며 '''앨범 발매 5년만에 RIAA에서 Diamond 등급을 인증 받는다.'''[13] 이후 이 앨범은 단순한 상업적 성공뿐만 아니라 밴드를 지금의 위치까지 갈 수 있게 한 명반으로 평가받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 선정한 '최고의 200대 명반(The Definitive 200 Albums)'에서 50위[14] 로 기록되는 등 록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앨범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그린데이는 이러한 성공으로 인해 자신들의 본고장이었던 'DIY 924 Gilman Street' 펑크 씬에서 퇴출당하는 아픔을 겪게 된다. 밴드가 메이져 레이블 회사와 계약을 맺으며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자, 펑크 순수주의를 고집하는 이들이 반감을 갖게 되어 '그린 데이는 더이상 펑크 밴드가 아니다'라고 비판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빌리 조 암스트롱은 이후 인터뷰에서 그때의 심정을 얘기하며 이렇게 받아쳤다 - "가끔은 우리가 완전히 (펑크 씬에서) 쓸모없게 되어버린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단순히 거대한 밴드가 되었고, 많은 돈을 벌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더이상 펑크 록이 아니라고 하니까요. 그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지만, 결국엔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더군요. ''''당신들이 우리로부터 펑크 록이라는 환경을 빼앗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절대로 우리 안의 '펑크 록' 자체를 부정하진 못할 거라고.''''[15] "
여튼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린 데이는 1995년, 새로운 싱글 "J.A.R."[16] 을 공개하며 또다시 빌보드 모던 락 트랙 차트 1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같은 해 가을에는 4번째 정규 앨범 《Insomniac》을 발매한다. 이 앨범에는 멜로디가 중시되었던 전작보다 조금은 어둡고 무거운 느낌의 곡들이 수록되어있어 비평가들에게는 호평을 받았으나, 《Dookie》로 그린 데이를 알게 된 신생팬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전작 《Dookie》만큼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Insomniac》은 빌보드 200 차트에 2위를 기록한다. 그리고 미국 내에서만 2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2x Platinum 등급을 인증받는다. 또 그린 데이는 이 앨범으로 1996년 미국 음악 시상식(American Music Awards)에서 '최고의 아티스트(Favorite Artist)', '최고의 하드 록 아티스트(Favorite Hard Rock Artist)', '최고의 얼터너티브 아티스트(Favorite Alternative Artist)'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그 외에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그래미 어워드에서 노미네이트 된다.
그러나 밴드는 1996년 《Insomniac》의 월드 투어 도중에 남은 일정을 전부 캔슬한다. 《Dookie》 때부터 그간의 쉼없는 공연 때문에 피로가 누적되어 도저히 유럽 투어까지 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2.3. 대중적 침체기 (1997 – 2002)
잠깐의 휴식기를 갖은 그린 데이는 1997년 곧장 다음 앨범을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레코딩 작업 직전에 밴드 구성원들은 전작들과는 좀 색다른 음악을 시도하고 싶다며 프로듀서 롭 카발로와 합의하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같은 해 10월에 발매된 5번째 정규 앨범 《Nimrod》다. 이 앨범은 그린 데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팝 펑크 사운드를 서프 록, 스카 음악, 어쿠스틱 발라드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켜서 밴드의 일탈적인 실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앨범으로 평가되었다.
그전까지의 그린 데이 음악과는 조금 달라서였는지 《Nimrod》는 빌보드 200 차트에 10위로 그치고 만다. 그러나 뜻밖에도 두 번째 싱글 "Good Riddance (Time of Your Life)"가 졸업식 파티곡으로 선풍적인 인기[17] 를 끌면서 빌보드 모던 락 트랙스 차트에 2위를 기록한다. 이 곡은 또 밴드에게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최고의 얼터너티브 비디오(Best Alternative Video)' 상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렇게 1997년 말부터 그린 데이는 《Nimrod》의 투어를 다니며 1998년 한 해를 보낸다. 기타리스트 제이슨 화이트(Jason White)가 투어멤버로 합류한 것도 이맘때다. 제이슨은 1999년부터는 아예 라이브 공연 시 리듬 기타 파트를 맡게 된다.
그리고 2000년, 그린 데이의 6번째 정규 앨범 《Warning》이 발매된다. 이 앨범의 첫 번째 싱글 "Minority"와 두 번째 싱글 "Warning"은 빌보드 모던 락 트랙스 차트에서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하고, 앨범 자체는 빌보드 200 차트에서 4위를 기록하는 등 나름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평단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렸다. 《Warning》을 긍정적으로 본 평론가들은 이 앨범이 전반적으로 전작 《Nimrod》보다 음악적으로 좀 더 다채로운 색깔을 띄는 한 편, 그간의 앨범 전체를 관통하던 90년대 감성코드[18] 로부터 조금씩 벗어나 '사회 비판'의 메세지를 넣기 시작했다며 극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을 아니꼽게(...) 본 일부 평단에서는 오히려 "푸념이나 늘어놓아도 잘 팔리는 밴드로부터 어떤 미친놈이 개인적인 신념이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코멘터리를 듣고 싶어할까?[19] "라면서 대차게 까기도 하였다.
[20]
이 앨범은 또 대중들의 호응도 제대로 얻지 못하면서, 빌보드 차트에서의 준수한 성적과는 별개로 앨범 판매량이 100만 장에 그치는 미진한 기록을 내었다. 그 결과 《Warning》은 그린 데이 앨범 중 유일하게 RIAA에서 Gold 인증을 받은 앨범이 되어버렸다. 이렇듯 밴드의 인기가 퇴조를 보이기 시작하자 이 당시 몇몇 평론가들은 그린 데이의 마력(mojo)이 다해가고 있다며 밴드의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고 예측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다음 해까지 《Warning》 투어를 다니던 그린 데이는 2001년 11월, 1994년부터 2000년까지 발매된 히트곡들만 모은 《International Superhits!》 편집 음반을 발매한다. 그리고 2002년부터는 blink-182와 함께 합동공연 투어를 다닌다. 같은 해 7월에는 B-side곡과 커버 곡, 미발매 곡들을 담고 있는 또다른 편집 음반 《Shenanigans》를 발매한다. 《Shenanigans》에 수록된 B-side곡 중 하나인 "Espionage"는 이후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 된다.
2.4. 록 오페라 《American Idiot》과 제2의 전성기 (2003 – 2006)
2003년 여름, 그린 데이는 새로운 앨범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다. 새 앨범에 담을 20개의 곡 녹음을 끝내며 무사히 마스터 레코드를 완성한 밴드는 이 앨범에 잠정적으로 'Cigarettes and Valentines'라는 제목을 붙인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 마스터 레코드가 스튜디오에서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에 밴드 멤버들은 도난당한 이 앨범을 재녹음하는 대신, 이 프로젝트를 없었던 걸로 치고 다시 처음부터 새로운 앨범을 만들기로 한다.[21]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바로 2004년에 발매된 7번째 정규 앨범 《American Idiot》이다.
[image]
콘셉트 앨범 형식의 록 오페라 《American Idiot》은 '교외(郊外)의 예수(Jesus of Suburbia)'로 불리는 한 미국인 청년의 여정을 노래한다. 앨범은 이 가상의 인물이 그 여정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허위와 선동에 침식당하는 현대 미국인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American Idiot》은 또 조지 W. 부시의 멍청함을 대놓고 까면서 이라크 전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이 앨범은 조지 W.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기 두 달 전에 발매되면서 '2000년대 최고의 프로테스트 아트(protest art) 앨범'이라는 평가까지 받게 된다. 그린 데이는 이 앨범을 통해 음악적으로도 인정받으면서 평단으로부터 '오늘날의 명작(modern day masterpiece)'을 내놨다는 극찬을 받는다.
이렇게 《American Idiot》은 발매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단숨에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른다. 뿐만아니라 27개 국가의 차트에 올라 그 중 19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며, 전세계적으로 1500만 장[22]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2005년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올해의 앨범상(Album of the Year)'을 포함한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최고의 록 앨범(Best Rock Album)' 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또 그 해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는 노미네이트 된 8개 부문 중 7개 부문에서 상을 받는 쾌거를 이룬다. 그리고 2006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그린 데이는 앨범의 2번째 싱글 "Boulevard of Broken Dreams"로 '올해의 레코드상(Record of the Year)'을 수상하게 된다.
여튼 밴드는 2005년 내내 《American Idiot》 월드 투어를 돌며 150일 가까이 순방 공연을 한다. 여담이지만 이게 현재까지 밴드의 최장기 투어 기록이라고. 그 와중에 영국 밀튼 케인즈 지역의 국립 야외 공연장(Milton Keynes National Bowl)에서 진행한 2번의 콘서트[23] 는 필름으로 레코딩 되는데, 이는 같은 해 11월, 실황 공연 CD/DVD 《Bullet in a Bible》로 발매된다.
이후에도 《American Idiot》은 'Kerrang! 매거진 선정 21세기 50대 명반(Kerrang! Top 50 albums of the 21st Century)'에서 '21세기 최고의 명반'으로 뽑히고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에서 225위를 기록[24] 하는 등 《Dookie》와 더불어 그린 데이의 명실상부한 최고 앨범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2.5. 《21st Century Breakdown》과 브로드웨이 뮤지컬 "American Idiot" (2007 – 2010)
2006년 1월부터 밴드는 또다시 새 앨범을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2007년 10월까지 빌리 조는 45개의 곡을 작곡한 상태였지만, 그린 데이의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 'Foxboro Hot Tubs'의 활동을 하느라 스튜디오 레코딩 작업이 미뤄진다.[25] 그러다가 2008년 10월, 그린 데이의 유튜브 공식계정을 통해 밴드 구성원들이 프로듀서 '부츠 비그(Butch Vig)'[26] 와 함께 새 앨범을 레코딩하는 영상이 올라온다. 그리고 2009년 4월 드디어 8번째 정규 앨범 《21st Century Breakdown》이 완성된다.[27]
[image]
이 앨범 역시도 전작 《American Idiot》과 같은 콘셉트 앨범 형식의 록 오페라로, 전작의 연장선상에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다. 그러나 《21st Century Breakdown》은 '특정 정부와 정책에 대한 문제'보다는 좀 더 '시대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빌리 조는 이 앨범을 "우리는 지금 권력자들이 정부 혹은 종교, 미디어 등 어떤 형태의 권한으로든 사람들을 자기 이익에 맞게 조종하려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이 앨범은 그것에 대한 의문을 갖으면서도,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에 대한 스냅샷입니다."[28] 라고 묘사하였다. 여튼 전작에 비해 주제는 조금 광범위해졌지만, 오페라적 음반구성을 훨씬 치밀하게 구성하면서 밴드의 음악적 완숙미를 보여준 앨범이 되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평론가 배순탁씨의 평을 잠시 빌리자면,
그렇게 《21st Century Breakdown》은 2009년 5월 발매와 동시에 엄청난 히트를 치며 25개 국가의 차트에서 1~4위를 기록한다. 이 중에서도 빌보드 200 차트, 유로피안 100대 앨범(the European Top 100 Albums) 차트와 UK 차트(UK Albums Chart)를 포함한 16개 차트[29] 에서 1위를 차지하고 19개 국가에서 Gold나 Platinum 등급을 따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그린 데이의 앨범 차트 성적 중 가장 뛰어난 기록이다. 또 이 앨범은 2010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쟁쟁한 선배 밴드 AC/DC와 U2를 제치고 그린 데이가 '최고의 록 앨범(Best Rock Album)'상을 거머쥐게 하는 쾌거를 안겨주기도 한다.그 방향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 수준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4년 전, 한 편의 장대한 록 파노라마 < American Idiot >으로 지구촌을 강타했던 그린데이(Green Day)의 2009년 신보 < 21st Century Breakdown >은 아찔할 정도로 명백한 걸작이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된 이 앨범은 펑크라는 장르의 극한을 실험 하는 동시에 '''이 탁월한 재능의 밴드를 더 이상 펑크라는 족쇄로 재단할 수 없음을 입증하는 위대한 예시로서 일제히 찬사를 받을 것'''이다. 링크
- izm 별 네개 반 라고 극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월마트에서는 이 앨범을 팔지 못하겠다고 하는 소동이 일어난다. 월마트 측에서 그린 데이에게 '우리는 Parental Advisory 스티커[30] 가 붙어있는 앨범은 팔 수 없기 때문에 검열삭제 판을 추가 발매하지 않으면 이 앨범은 이곳에서 팔 수 없다'며 판매를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밴드는 앨범의 그 어떤 가사도 바꿀 수 없다며 이러한 요구를 거절한다. 빌리 조는 당시 인터뷰에서 이 해프닝에 대해 "우리의 레코드에는 그 어떠한 불순한 것도 담겨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들은 아티스트들이 레코드를 팔고 싶다면 아티스트 스스로 검열삭제하길 바라더라구요. 우린 그래서 싫다고 했죠. 단 한 번도 그런 짓 따윈 하지 않았으니까. 꼭 무슨 1953년도로 돌아간 느낌이네요."[31] 라고 덧붙인다.
여튼 그린 데이는 2009년 5월 초부터 3년 만의 라이브 공연을 다니며 7월부터 있을 월드 투어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밴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32] 의 감독 마이클 마이어(Michael Mayer)와 제작진들에게서 앨범 《American Idiot》을 연극화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뮤지컬 "American Idiot"은 2009년 말 버클리 레퍼토리 극장(Berkeley Repertory Theatre)에서 처음 올려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2010년 4월 20일에는 브로드웨이에 입성하게 된다. 그에 따라 그린 데이는 앨범 《American Idiot》에 수록되지 않았던 미발매곡 "When It's Time"을 공개한다.[33] 이후 브로드웨이 뮤지컬 "American Idiot"은 2010년 토니 어워드에서 '최고의 뮤지컬(Best Musical)' 부문을 포함하여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그 중 2개 부문에서 상을 탄다. 그리고 2011년 4월 24일에 막을 내릴 때까지 총 422회 공연하는데, 가끔 빌리 조가 극 중의 St. Jimmy역으로 등장하기도 했다고.
2009년 7월부터 시작된 《21st Century Breakdown》 월드 투어는 2010년 초까지 계속된다. 그러다가 2차 투어 도중 밴드는 또 새로운 앨범을 내자는 계획을 세운다. 월드 투어를 다니며 틈틈이 레코딩한 데모 음반을 모아 발매하겠다는 것이 당초 계획[34] 이었던 모양인데, 이후 이 계획은 수정되어서 투어 당시 찍어놓은 라이브 공연과 미발매곡 "Cigarettes and Valentines"를 수록한 CD/DVD[35] 《Awesome as Fuck》이 2011년 3월 발매되었다.
2.6. 3부작 앨범 《¡Uno!》, 《¡Dos!》, 《¡Tré!》 (2011 – 2014)
2012년 2월, 밴드는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앨범을 작업하기 시작하여 그 해 9월 21일에는 9번째 정규 앨범 《¡Uno!》를, 11월 9일에는 10번째 정규 앨범 《¡Dos!》, 그리고 12월 7일에는 《¡Tré!》를 발매한다. 이 3부작 앨범은 《American Idiot》과 《21st Century Breakdown》 같은 록 오페라나 콘셉트 앨범이 아니었지만 빌리 조의 말에 따르면 조금은 색다른 시도를 한 앨범이라고 한다. 특히 《¡Uno!》에는 팝 펑크에서 팝적인 요소를 더 부각한 곡들이, 《¡Dos!》에는 개러지 록의 색깔을 입힌 곡들이 수록되었는데, 전반적으로 그동안 밴드 구성원들이 해온 사이드 프로젝트의 영향이 묻어나온 느낌을 준다. 여튼 이 3부작 앨범은 오랫동안 투어 멤버로 함께했던 기타리스트 제이슨 화이트(Jason White)를 4번째 구성원으로 정식 영입하며 레코딩한 첫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36] 이기도 하다.
[image]
3부작 앨범 중 가장 먼저 나온 《¡Uno!》는 발매되기 무섭게 빌보드 200 차트 2위에 오르고 전세계 29개 국가 차트에서 1~8위를 기록하며 기분좋은 스타트를 끊는다. 그러나 그 뒤 약 한 달 간격으로 차례대로 발매된 《¡Dos!》와 《¡Tré!》는 그린 데이의 앨범 커리어 역사상 처음으로 일주일 판매량[37] 이 10만 장을 넘지 못하는 등 흥행에 실패한다.
그러나 3부작 앨범의 성적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된 건 빌리 조의 건강이었다. 2012년 9월 21일 iHeart Radio에서 주최한 콘서트에서의 사건[38] 으로 문제가 대두되자 밴드의 매니저 펫 매그나렐라(Pat Magnarella)와 밴드 멤버들은 상의 끝에 빌리 조를 재활원에 보내기로 한다. 공연 전에 술을 마시는 습관이 알코올 중독으로까지 심각해져서 내린 결정이었다고. 게다가 빌리 조는 만성적인 불면증[39] 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이 증상이 더 심해지면서 '''처방받은 항불안제와 수면제를 술에 칵테일처럼(...) 섞어서 먹는걸 즐기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40] 마이크가 빌리 조에게 죽고 싶은 거냐고 윽박지를 정도였다니 심각하긴 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빌리 조가 몸을 좀 추스리고 난 뒤 밴드는 2013년 3월부터 3부작 앨범 기념 "99 Revolutions" 투어를 돌기 시작한다. 그 해 6월 영국 에미레이트 스타디움(Emirates Stadium)에서 열리는 공연에서는 6만 개 이상의 표가 팔리며 해당 스타디움 관객수에 있어 신기록을 수립하기도 한다.[41] 이렇게 투어를 도는 와중 4월에는 이 3부작 앨범을 만드는 작업 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 DVD "¡Cuatro!"가 발매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그린 데이가 뮤지컬 "American Idiot" 제작에 참가한 모습을 찍은 다큐멘터리 "Broadway Idiot"도 공개된다. 그러나 2014년 마이크의 아내가 유방암 판정을 받으면서, 밴드는 남은 투어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마이크 가족들을 돕기로 한다.
2014년 4월, 미발매곡 "State of Shock"와 3부작 앨범의 스튜디오 세션 버전을 레코딩한 편집 음반 《Demolicious》이 발매되었다.
2.7.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 그리고 《Revolution Radio》 (2015 – 2019)
2014년 12월 15일, 그린 데이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이 확정되었다는 결과가 발표된다. 이로써 밴드는 자격요건[42] 이 갖춰지자마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4월 18일, 후배 밴드 '폴 아웃 보이 (Fall Out Boy)'의 헌정연설과 함께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American Idiot", "When I Come Around", "Basket Case" 차례로 기념공연을 하였다.
2015년 12월 24일에는 밴드의 공식 계정을 통해 "Xmas Time of the Year"라는 크리스마스 송을 공개하는 팬서비스를 한다.
드디어 2016년 8월 11일, 새로운 앨범의 첫 번째 싱글 "Bang Bang"이 발매되었다! 이 곡은 빌보드 얼터너티브 송(Alternative Songs) 차트,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Mainstream Rock) 차트를 포함한 5개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기분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곧이어 9월 9일에는 타이틀 곡 "Revolution Radio"가, 9월 23일에는 "Still Breathing"이 공개되었다.[43] 앨범이 발매되기 약 일주일 전에 앨범 전체가 유출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2016년 10월 7일, 예정대로 12번째 정규 앨범 《Revolution Radio》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부터는 3부작 앨범 《¡Uno!》, 《¡Dos!》, 《¡Tré!》에서 합류했던 제이슨이 빠지면서, 밴드가 다시 '''예전의 트리오로 돌아왔다'''.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200 차트를 포함한 5개 국가 차트에서 1위로 데뷔하였다.
[image]
그린 데이는 9월 26일부터 《Revolution Radio》 월드 투어를 시작한다. 11월 20일에는 미국 음악 시상식(American Music Awards)에서 공연을 했는데, "Bang Bang"을 부르던 도중 도널드 트럼프의 극우적 포퓰리즘에 반대하며 '''"No Trump! No KKK! No Fascist USA!"'''를 제창하여 화제가 되었다. 밴드가 《American Idiot》 때부터 보여준 정치적 행보로 짐작 가능하듯이,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그린 데이는 sns 계정과 공연을 통해 트럼프의 인종차별적·여성비하적 발언, 그리고 그의 성소수자 혐오를 지지하는 행보와 "MAKE AMERICA GREAT AGAIN"으로 축약되는 인기 영합적 정책 등을 계속 비판해왔다.[44] 그렇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 때문에 극우 단체와 폭스 뉴스에서는 엄청 까이는 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린 데이는 이번 미국 음악 시상식에서의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거라고 한 상황.
현재 월드투어 중인 2017년 11월 17일에 《Greatest Hits: God's Favorite Band》[45] 편집 음반이 발매되었다. 1994년부터 2017년까지 발매된 히트곡들만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새로 선보인 싱글 "Back In the USA"가 수록되어있다.[46] "Back In the USA" 가사를 보면 알겠지만, 내용 자체가 맹목적인 국수주의를 조장하는 정치계와 그에 찬동하는 애국보수를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풍유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팬들은 "American Idiot 2.0"라고까지 부르며 환호하고 있는 중. 게다가 뮤직비디오에서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의 메세지도 꼽사리 껴놨다. 아예 대놓고 상당히 수위높게 트럼프를 비난하고 있는 건 덤(...). 하지만 American Idiot 시절의 곡들처럼 마냥 까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더 성숙해졌다는 평가도 받는다. 제목과 후렴구를 봐도 알 수 있듯, ''''미우나 고우나 어쨌든 이 나라는 우리들의 고향이자 우리가 가꾸어나가야할 터전''''이라는 메세지가 주요 내용이기 때문.
그리고 2017년 11월 20일 기점으로 《Revolution Radio》 월드 투어가 끝났다.
2.8. 《Father of All...》와 HELLA MEGA 투어 (2019 – 현재)
그러던 2019년 9월 10일, 갑자기 그린데이의 13집 정규 앨범 《Father of All Motherfuckers》가 나온다는 소식과 함께 동명의 타이틀 곡이 공개됐다. 그와 동시에 폴 아웃 보이와 위저와의 합동 월드 투어인 HELLA MEGA TOUR가 확정되었음이 발표되었는데, 각자 밴드의 솔로 공연과 합동 공연 2가지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거기다가 2020년 3월 22일에는 그린데이 단독 내한 공연까지 잡혔다! 2010년 내한 공연 이후 거의 10년만의 내한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모든 일정이 연기되었다.
참고로 2020년에 발매 예정인 13집 앨범에 대한 루머가 확산되었다. 《Dookie》 시절부터 함께 했던 'Reprise Records'와 그동안 갈등이 많았던 모양인지 이번 13집 앨범으로 계약 조건을 충족시키는 대로 계약을 종료, 밴드 단독으로 내년에 곧장 다른 앨범을 내려고 한다는 후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그린데이의 공식적인 활동은 모두 연기되었으나 현재 활발한 사이드프로젝트[47] 활동을 하고 있다.
3. 멤버
3.1. 빌리 조 암스트롱 (Billie Joe Armstrong)
[image]
1972년 2월 17일생. 그린 데이의 프론트맨이자 리드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빌리 조 암스트롱 문서 참조.'''
3.2. 마이크 던트 (Mike Dirnt)
[image]
1972년 5월 4일생. '마이크 던트(Mike Dirnt)'라는 예명[48] 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본명은 '마이클 라이언 프릿처드(Michael Ryan Pritchard)'이다. '''빌리 조 암스트롱과 함께 그린 데이를 결성한 원년 멤버로, 베이스 기타와 백업 보컬을 맡고 있다.''' [49] 가끔 리드 보컬을 맡기도 한다.[50] 빌리 조와는 10살부터 동고동락한 절친이자 형제 같은 사이로, '''30년 넘게''' 밴드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 단순한 리프를 반복하는 펑크 락의 특성상 실력이 저평가받기 쉬운데, 마이크 던트는 오히려 어떠한 락 밴드의 베이시스트에게도 밀리지 않는 실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칭송받고 있다. 펑크 밴드에서 활동하는 만큼 피킹으로 베이스를 주로 연주한다.[51][52]
평소 성격이 워낙 조용하고 낙천적이다보니 잘 드러나지 않지만 굉장히 불행한 가정사를 가졌다. 마이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에서 태어나 갓난아기일 때 버려졌는데, 그의 친모는 헤로인#s-2 중독자였다. 아기였던 그를 백인 아버지와 아메리카 원주민 어머니가 입양하지만 그의 양부모는 마이크가 7살 때 이혼을 한다. 잠시동안 양아버지와 함께 살던 마이크는 다시 양어머니에게 돌아와서 캘리포니아 주 로데오(Rodeo) 지역에 살게 되는데, 이때 너무나도 빈곤한 가정형편을 견디지 못한 13살 누이가 집을 나간다. 한동안 집을 안 들어오던 양어머니는 마이크가 10살 쯤 어느날 처음 보는 남자를 집에 들이고 재혼한다. 그러나 그 생활도 몇 년 안 가서 양어머니는 아예 집을 나가버린다. 이후 마이크는 새아버지와 가까워지게 되고, 그런 마이크를 안쓰럽게 여긴 새아버지는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몇 해 가지 않아 새아버지마저도 사망하면서 마이크는 17살에 혈혈단신이 되어버린다.
빌리 조 암스트롱과 마이크가 만난 건 둘이 10살 때로, 둘은 만나자마자 친해져서 곧잘 빌리 조의 집에서 함께 기타를 치며 놀았다고 한다. 이 당시의 둘이 제일 좋아한 밴드가 '라몬즈(The Ramones)'와 '밴 헤일런(Van Halen)'이었다고. 15살 때부터 트럭에서 숙식하는 생활을 하던 마이크는 이후 빌리 조가 자신의 어머니를 설득하면서 빌리 조의 가족과 함께 살게 된다. 동네 음식점 알바를 하며 생활비도 벌고 빌리 조와 함께 밴드 활동을 하면서도 마이크는 끝까지 고등학교 학업을 포기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불안정한 미래에 확신이 없어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마이크의 생각을 존중해준 빌리 조는 자신은 밴드를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하면서도 마이크는 졸업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이후 둘은 함께 오클랜드의 무허가 건물에서 살면서 'DIY 924 Gilman Street' 펑크 씬에서의 활동에 본격적으로 임한다. 이런 우여곡절을 어린 시절부터 함께하다 보니 빌리 조와는 죽마고우를 넘어서 지음(知音) 같은 사이이다. 밴드 뿐만아니라 가정사도 서로 챙겨주고 사업[53] 도 같이 하는 등 본인들도 서로를 소울메이트라고 인정(...)할 정도.
어린 시절은 불행했지만 지금은 그래도 나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잘 사는 중이다. 2009년에 아내 '브리트니 케이드(Brittney Cade)'와 결혼하여 현재까지 잘 살고 있다. 2014년에 아내가 유방암 판정을 받으면서 3부작 앨범 기념 "99 Revolutions" 투어 도중 모든 일정이 중단되기도 하였지만, 간병에 집중하여 2015년에는 아내의 건강이 완쾌되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노안이다. 빌리 조와 동갑인데도 불구하고 빌리가 동안이라 더 비교되어서 엄청 늙어 보인다(...). 멤버들도 인정할 정도로 블라디미르 푸틴과 굉장히 닮았다.
그리고 스타워즈의 광팬이다. 또 본인 말에 따르면 젊은 시절 손목 터널 증후군 수술을 한 이후로 베이스를 칠 때마다 삑사리가 좀 난다고 한다. 베이스 기타 외에도 기타[54] , 드럼, 전자 오르간도 칠 줄 안다.
2018년부터는 빌리 조와 함께 'The Coverups'라는 커버 밴드도 시작했다. 무명 시절 때처럼 집 동네 클럽이나 작은 음악 관련 행사에 불쑥불쑥 나타나서 활동한다고 한다. 특이점은 마이크가 베이스가 아닌 기타를 잡는다는 것. 트레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만 빼면 밴드원들이 전부 그린데이와 관련된 인물들이지만,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가 아니라 여가 시간의 취미 활동(...)이라고 한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3.3. 트레 쿨 (Tré Cool)
[image]
1972년 12월 9일생. '트레 쿨(Tré Cool)'이라는 예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본명은 '프랭크 에드윈 라이트 3세(Frank Edwin Wright III)'이다. 1990년부터 그린 데이에 합류하여 드럼과 퍼커션을 맡고 있다. 아주 가끔 리드 보컬을 하기도 한다. 드럼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서 유력 일간지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에서는 트레를 ''''존 본햄(John Bonham)'과 '키스 문(Keith Moon)'을 떠올리게 하는 드러머이자 '그린 데이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극찬하기도 했다.[55] 그 외에도 2011년 드럼 전문 잡지 'DRUM! Magazine'에서 최고의 펑크 드러머로 선정되는 등 여러모로 실력 하나는 확실하게 인정받고 있다.
트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헬기조종사#s-2.1였는데, 종전 후 트레의 누나와 트레를 데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윌리츠(Willits)' 시로 이사한다. 그 후 트레는 당시 친한 이웃이었던 래리 리버모어(Larry Livermore)의 권유로 12살(!)의 나이에 펑크 밴드 '더 룩아웃츠(The Lookouts)'의 드러머로서 활동하게 된다. 이때 래리가 드러머로 활동하려면 멋진 예명이 필요하다며 지어준 이름이 바로 '트레 쿨(Tré Cool)'인데, 프랑스어 "très"와 영어 "cool"을 합쳐서 만든 이름[56] 이라고 한다. 그 전부터 사람들이 트레를 부를 때 사용하던 별명 "Trey"[57] 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했다고. 여담이지만 트레는 이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서 래리와 엄청 싸웠다고 한다(...).
빌리 조 암스트롱과 마이크 던트를 처음 만난건 아직 그 둘이 '스위트 칠드런(Sweet Children)'이라는 이름의 밴드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였다고 한다. 같은 'DIY 924 Gilman Street' 펑크 씬에서 활동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마주쳤는데, 동갑내기면서 같은 씬의 고참 밴드 '더 룩아웃츠(The Lookouts)'의 드러머로 있는 트레를 보고 빌리 조가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나. 이후 '더 룩아웃츠'의 보컬이었던 래리가 독립 레코드 회사 'Lookout!'를 차리고 '스위트 칠드런'과 계약하게 되면서[58] 셋은 계속해서 친하게 지내게 된다.
그러다가 1990년, 당시 그린 데이의 드러머 존 키프마이어(John Kiffmeyer)가 대학교 진학을 위해 밴드활동을 잠시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빌리 조와 마이크는 래리의 권유로 트레를 그린 데이의 임시 드러머로 영입한다. 트레가 밴드의 정식 구성원으로 안착한 것은 이후의 일인데, 처음 트레를 영입했을 때만해도 서로의 사운드를 맞춰가느라 힘들어서 밴드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였다고 한다. 밴드가 해체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트레는 이 기간 동안 학교를 자퇴한 뒤 검정고시[59] 를 봐서 지역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이내 밴드 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대학교 자퇴를 결정한다.
그린 데이에 합류하면서부터는 마이크의 베이스 라인과의 조화를 위해 드럼 구성을 전보다 간소화하면서 리드미컬한 스타일을 도입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그전까지만 해도 좀 더 기교를 중시하는 복잡한 스타일을 지향했는데, 어느 순간 중요한 건 음악이지 악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그래서 이제는 드럼이 밴드의 사운드를 단합시키는 역할을 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어째 상당히 기행(...)을 자주 벌인다. 콘서트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웃기는 표정을 지으며, 가끔 자기 자리를 이탈해서 드럼을 치기도 한다. 이상한 변장을 하고 나와 웃기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등[60] 거의 밴드의 개그 담당 수준이다. 1998년에는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최고의 얼터너티브 비디오(Best Alternative Video)' 상을 받고는 기분이 좋아져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있는 유니버설 글로브 모형 위에 기어올라가기도 했다(...).
여담으로 고등학교 때 무대에서 외발자전거를 타다가 낙차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때 두 개의 알 중 하나가 몸속으로 들어가서 반(半)고자가 됐다고 한다. 그래도 부인 사이에서 딸도 낳고 아들도 있는 걸 보면 성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3.4. 투어 멤버
- 제이슨 화이트(Jason White) – 1999년부터 투어를 함께 하며 기타와 백업 보컬을 맡고 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는 정식 멤버로 활동했으나, 본인의 편도암과[61] 아내의 출산 등으로 다시 객원 멤버로 돌아갔다. 그래도 리드기타로써 그린데이와 꾸준히 공연하고 있다. 주로 깁슨 ES-335를 애용한다. 빌리 조 암스트롱과 함께 Adeline Records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 제이슨 프리즈(Jason Freese) – 2004년부터 투어 멤버에 합류하여 피아노, 키보드, 색소폰, 트롬본, 리듬 기타, 백업 보컬을 맡고 있다. 가끔 아코디언도 연주한다. 다양한 아티스트랑 연주를 한 경험이 있는데, Dr. Dre, Weezer, Busta Rhymes 등 이 있다.
- 제프 마티카(Jeff Matika) – 2009년부터 약 10년 간 투어 멤버로서 리듬 기타, 백업 보컬을 맡았으나 2018년 말에 사생활 문제로 SNS에 물의[62] 를 일으키면서 강퇴 조치되었다.
- 케빈 프리스턴(Kevin Preston) – 2019년부터 제프 마티카를 대신하여 투어 멤버에 합류, 기타와 백업 보컬을 맡고 있다. 그린데이 정식 객원 멤버는 아니었지만 2008년에도 사이드 프로젝트 Foxboro Hot Tubs를 함께한 만큼, 멤버들과 합을 맞춘 경력이 꽤 된다.
- 로니 블레이크(Ronnie Blake) - American Idiot 투어에 참여했던 인물로 트럼펫, 팀파니, 퍼커션, 백킹 보컬 등을 담당했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아티스트랑 연주를 하였다.
4. 디스코그래피
- 정규 앨범 (기재된 판매량은 2014년 집계 기준으로 통일)
- 1집 - 39/Smooth (1990) – 미국 내 8만 장 이상 판매[63]
- 2집 - Kerplunk (1992) – 미국 내 110만 장 이상 판매, RIAA 인증 Platinum, 전세계 400만 장 이상 판매
- 3집 - Dookie (1994) – 미국 내 1081만 장 이상 판매, RIAA 인증 Diamond, 전세계 2500만[64] 장 이상 판매
- 4집 - Insomniac (1995) – 미국 내 265만 장 이상 판매, RIAA 인증 2× Platinum, 전세계 580만 장 이상 판매
- 5집 - Nimrod (1997) – 미국 내 230만 장 이상 판매, RIAA 인증 2× Platinum, 전세계 520만 장 이상 판매
- 6집 - Warning (2000) – 미국 내 125만 장 이상 판매, RIAA 인증 Gold, 전세계 345만 장 이상 판매
- 7집 - American Idiot (2004) – 미국 내 620만 장 이상 판매, RIAA 인증 6× Platinum, 전세계 1525만 장 이상 판매
- 8집 - 21st Century Breakdown (2009) – 미국 내 120만 장 이상 판매, RIAA 인증 Platinum, 전세계 400만 장 이상 판매
- 9집 - ¡UNO! (2012) – 미국 내 33만 장 이상 판매, 전세계 105만 장 이상 판매
- 10집 - ¡DOS! (2012) – 미국 내 18만 장 이상 판매, 전세계 65만 장 이상 판매
- 11집 - ¡TRÉ! (2012)[65] – 미국 내 15만 장 이상 판매, 전세계 55만 장 이상 판매
- 12집 - Revolution Radio (2016)
- 13집 - Father of All Motherfuckers (2020) – 2020년 2월 7일 발매 예정. 참고로 현재 공개된 13집 앨범은 레코드사와의 계약 관계에 의한 트롤링이고 실질적인 13집 앨범은 후속 발매를 기다리고 있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해당 항목 참조.
- 비정규 앨범
- 1,000 Hours (1989) – E.P. 앨범[66]
- Slappy (1990) – E.P. 앨범
- Sweet Children (1990) – E.P. 앨범
- 1,039 / Smoothed Out Slappy Hours (1991) – 컴필레이션. 미국 내 88만 장 이상 판매
- Bowling Bowling Bowling Parking Parking (1996) – E.P. 앨범
- International Superhits! (2001) – 컴필레이션. 미국 내 200만 장 이상 판매, RIAA 인증 Platinum[67]
- Shenanigans (2002) – B-Side 컴필레이션. 미국 내 28만 장 이상 판매
- Bullet In A Bible (2005) – 라이브 앨범 : UK Milton Keynes National Bowl (2005.06.18-19). 미국 내 53만 장 이상 판매
- Last Night on Earth: Live in Tokyo (2009) – 라이브 E.P. 앨범
- Awesome As Fuck (2011) – 라이브 앨범 : 21st Century Breakdown World Tour (2009–2010). 미국 내 10만 장 이상 판매
- Demolicious (2014) – 한정판 Demo 컴필레이션
- Greatest Hits: God's Favorite Band (2017) – 컴필레이션
- 라이브 DVD 및 비디오 앨범
- International Supervideos! (2001) – 비디오 컴필레이션. 미국 내 100만 장 이상 판매, RIAA 인증 Platinum[68]
- Bullet In A Bible (2005) – UK Milton Keynes National Bowl 실황 (2005.06.18-19) DVD / Blu-ray
- Awesome As Fuck (2011) – Japan Saitama Super Arena 실황 (2010.01.23-24) DVD / Blu-ray
- ¡Cuatro! (2013) – 다큐멘터리 DVD / Blu-ray
- 사운드트랙 앨범
- American Idiot: The Original Broadway Cast Recording (2010)
4.1. 싱글
4.1.1. 1위
- "Longview" (1994) – UK 차트 30위
- "Basket Case" (1994) – UK 차트 7위
- "When I Come Around" (1995) – UK 차트 27위
- "J.A.R." (1995)
- "Minority" (2000) – UK 차트 18위
- "American Idiot" (2004) – UK 차트 3위, 빌보드 Hot 100 차트 61위
- "Boulevard of Broken Dreams" (2004) – UK 차트 5위, 빌보드 Hot 100 차트 2위
- "Holiday" (2005) – UK 차트 11위, 빌보드 Hot 100 차트 19위
- "Know Your Enemy" (2009) – UK 차트 21위, 빌보드 Hot 100 차트 28위[69]
- "Bang Bang" (2016)
- "Still Breathing" (2016)
4.1.2. 2~3위
- "Geek Stink Breath" (1995) – UK 차트 16위
- "Brain Stew/Jaded" (1996) – UK 차트 28위
- "Good Riddance (Time of Your Life)" (1997) – UK 차트 11위
- "Warning" (2000) – UK 차트 27위
-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2005) – UK 차트 8위, 빌보드 Hot 100 차트 6위
- "21 Guns" (2009) – UK 차트 36위, 빌보드 Hot 100 차트 22위
- "Oh Love" (2012) – 빌보드 Hot 100 차트 97위
4.1.3. 4~10위
- "Welcome to Paradise" (1994) – UK 차트 20위
- "She" (1995)
- "Hitchin' a Ride" (1997) – UK 차트 25위
- "Working Class Hero"[70] (2007) – 빌보드 Hot 100 차트 53위
4.1.4. 11~35위
- "Walking Contradiction" (1996)
- "Redundant" (1998) – UK 차트 27위
- "Nice Guys Finish Last" (1999)[71]
- "Waiting" (2001) – UK 차트 34위
- "Jesus of Suburbia" (2005) – UK 차트 17위
- "The Saints Are Coming"[72] (2006) – UK 차트 2위, 빌보드 Hot 100 차트 51위
- "East Jesus Nowhere" (2009)
- "Last of the American Girls" (2010)
- "Let Yourself Go" (2012)
- "X-Kid" (2013)
4.2. 사이드 프로젝트
- Pinhead Gunpowder
- The Frustrators
- The Network - 《Money Money 2020》(2003), 《Money Money 2020 Part II: We Told Ya So!》(2020)
- Foxboro Hot Tubs - 《Stop Drop and Roll!!!》(2008)
- The Longshot - 《Love is for Losers》(2018), 《Devil's Kind》(2018)
5. 음악적 특색과 논란
초기 그린 데이의 사운드를 짧게 요약하면 '멜로디 요소를 강조한 3코드 펑크 록에 빠르고 경쾌한 파워를 더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Dookie》 시절만 해도 그린 데이의 곡은 90년대 X-세대 특유의 감성을 담은 루저 의식에 대한 내용이었기에, 같은 펑크 록이지만 선배 밴드 '더 클래시(The Clash)'나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와 같이 기존 체제에 대해 저항한다거나 무정부주의를 주창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때문에 정통 펑크만을 추구하는 순수주의자들은 '이게 무슨 펑크냐'라고 까면서 그린 데이를 펑크 록 밴드로 인정하길 거부하기도 하기도 했다.[73]
그린 데이가 80년대에서 90년대에 활동한 수많은 멜로딕 코어, 팝 펑크 밴드 사이에서 유독 가장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이유에는 또다른 이유도 있었다. 《Kerplunk》 앨범이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성공하자 그린 데이는 독립 레코드 회사 'Lookout!'에서 메이져 레코드 회사 'Reprise Record'로 옮기는데, 이게 또 언더그라운드 펑크 밴드들과 펑크 순수주의자들에게는 밴드를 '돈 밝히는 벌레'라고 공격할만한 빌미가 된 것이다. 즉, 안티들의 입장에서는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사회 비판이 없는 가사만으로도 이단인데, 대형 레코드 회사와 계약하여 《Dookie》로 대중적인 성공까지 거두니 꼴도 보기 싫었던 것. 이 때문에 안티들은 그린 데이를 '제도권에 붙어먹는 가짜 펑크 밴드'라며 잡아먹을 듯이 비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의 이러한 평가는, 70년대 말부터 언더그라운드로 들어간 펑크 록이 80년대 들어 하드코어 펑크로 바뀌면서 생긴 고정관념[74] 때문에 일방적으로 희생된 결과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또 점점 팝 펑크에 대한 여론도 호의적으로 변하면서, 90년대 당시에 그린 데이가 유독 과소평가 되었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그러다가 2004년에 《American Idiot》이 발매되면서부터는 펑크의 저항 정신이 없다는 비판은 들어갔다.[75]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밴드의 첫 콘셉트 앨범이어서 그런지, 록 오페라로서는 짜임이 조금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는데, 2009년에 나온 앨범 《21st Century Breakdown》에서는 음악성과 가사의 문학성뿐만 아니라 서사적 짜임까지 치밀하게 구성하면서 '''2000년대의 더 후(The Who)'''라는 찬사까지 듣게 되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 잡지 롤링 스톤(Rolling Stone)에서는 심지어 이 앨범을 '더 클래시(The Clash)'의 《London Calling》과 '더 후'의 《Quadrophenia》, '휴스커 듀(Hüsker Dü)'의 《Zen Arcade》를 합쳐놓은 듯한 명반이라며 극찬하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제 스케일이 너무 커져서 《Dookie》 시절의 그린 데이 같지 않기 때문에 더이상 펑크 록이 아니라는(...) 비판이 생기기도 했다.
특이점이 하나 있다면 《American Idiot》 앨범부터 그 이후에는 계속 5분 이상의 대곡이 1곡 이상 수록되어 있다.[76]
6. 기타
- 라이브를 잘하기로 유명한 밴드답게[77] 콘서트가 끝내준다. 무대 매너도 좋지만 팬들을 위한 서비스도 장난이 아니어서, 중간중간에 덥다고 물도 뿌려주고 그걸 닦으라고(...) 휴지도 뿌리고 무료 티셔츠도 뿌린다.[78] 특히 빌리 조는 팬을 무대 위로 불러내 함께 노래 부르게 한 뒤 스테이지 다이빙 시키는 걸 좋아하는데, 이때 올라온 팬에게는 기타 피크, 드럼 스틱은 물론이고 가끔은 자기가 쓰던 기타(!)도 선물로 준다. 또 때로는 DDR(...)과 같은 좀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도 팬들은 좋다고 덩달아 미쳐서 팬들이 무대 위로 던진 팬티나 브래지어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79]
- 7번째 정규앨범 《American Idiot》이 발매되기 전인 2003년도까지만 해도 콘서트가 끝날때 악기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했다. 앵콜 공연의 마지막 곡이 끝나면, 트레 쿨이 자기 드럼 세트를 부수다가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이는데, 이 때 마이크 던트는 드럼 스틱으로 베이스 기타를 마구 갈기다가 불붙은 드럼 위로 베이스를 던진다. 때론 드럼에 불을 안 붙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때는 그냥 둘이 함께 마이크 스탠드를 이용해 크고 아름다운 베이스드럼을 작고 아기자기한 사이즈로(...) 만들어 버린다. 이제 부실게 없다 싶으면 마이크 던트는 베이스 앰프를 넘어트리고, 트레 쿨과 같이 관객들에게 물을 날린다. 그동안 빌리 조 암스트롱은 뭐하냐고? 빌리 조는 그냥 묵묵히 앉아서 기타를 코드 안 잡은 채로 치다가, 멤버들이 악기를 다 부수고 나면 "Good Riddance(Time of Your Life)"라는 어쿠스틱 곡을 치기 시작한다(...). 참 아름다운 엔딩이다. 직접 보도록 하자.
- 또 2007년 개봉한 심슨 가족 극장판 애니메이션 '심슨 더 무비(the Simpsons Movie)'에 출연하여 본인들 역을 더빙했다.[80]
[image]
한 3분간 나오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스프링필드 호수에 바지선을 띄어놓고 공연[81] 을 하던 그린 데이는 오염된 호수물에 바지선이 녹기 시작하자 콘서트 중 환경 문제에 대해 관객들과 대화해보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리사 심슨 같은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프링필드 주민들은 환경 문제에 대해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었고, 오히려 반감을 갖게 되어 설교하지 말고 노래나 하라면서 물건을 집어던지기 시작한다. 결국 관객들이 던진 돌[82] 에 트레 쿨이 영 좋지 않은 곳을 맞고(...) 바지선은 다 녹아버려서 밴드는 오염된 호수에 빠져 죽는다.[83] 그리고 스프링필드 교회에서 치뤄지는데 이때 장례를 치르며 나오는 음악이 "American Idiot"의 장례식 버전(...).
한 3분간 나오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스프링필드 호수에 바지선을 띄어놓고 공연[81] 을 하던 그린 데이는 오염된 호수물에 바지선이 녹기 시작하자 콘서트 중 환경 문제에 대해 관객들과 대화해보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리사 심슨 같은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프링필드 주민들은 환경 문제에 대해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었고, 오히려 반감을 갖게 되어 설교하지 말고 노래나 하라면서 물건을 집어던지기 시작한다. 결국 관객들이 던진 돌[82] 에 트레 쿨이 영 좋지 않은 곳을 맞고(...) 바지선은 다 녹아버려서 밴드는 오염된 호수에 빠져 죽는다.[83] 그리고 스프링필드 교회에서 치뤄지는데 이때 장례를 치르며 나오는 음악이 "American Idiot"의 장례식 버전(...).
- 2010년에 뮤직 비디오 게임 시리즈인 락밴드에서 '비틀즈: 락밴드(The Beatles: Rock Band)'의 후속 시리즈로 그린데이: 락밴드(Green Day: Rock Band) 게임을 발매하기도 하였다.
[image]
- 여담이지만 메탈 밴드들과 사이가 좋은 듯하다(?!!). 특히 '메탈리카(Metallica)'와는 합동 공연도 하는 등 친하게 지내고 있다. 2012년 10월 27일에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부두 페스티발(Voodoo Festival)[84] 에서는 빌리 조 암스트롱의 재활치료 때문에 공연이 불가능한 그린 데이를 돕기 위해서 메탈리카가 대신 무대에 서주기도 했다. 그리고 해당 공연에서 그린 데이의 "American Idiot" 리프 부분을 잠깐 연주했는데, 두 밴드의 연령대와 경력[85] 을 생각하면 이같은 친분은 이례적이다. 이후 2014년에도 함께 공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해당영상 그 외에도 기타리스트 스티브 바이(Steve Vai), 잭 와일드(Zakk Wylde)가 인터뷰에서 그린 데이를 칭찬[86] 하는걸 보면, 장르 안 가리고 선배 뮤지션들과 잘 지내는 모양.
- 이상하게 국내에서는 그린 데이가 표절 논란이 있는 밴드로 잘못 알려져있기도 한데, 이는 애초에 기자들이 잘못 번역해서 보도하면서 생긴 일이다. 2006년도에 영국 밴드 '오아시스(Oasis)'의 메인 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가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농담조로 그린 데이의 곡 "Boulevard of Broken Dreams"가 자기가 작곡한 "Wonderwall"을 표절한 것 같다고 말하면서 장난치듯 "그 놈들은 적어도 내가 죽을 때까지는 기다렸어야 했어. 나는 적어도 내가 표절한 노래에 대해서는 (표절한) 값이라도 지불하는 예의를 차린다구.[87] "라고 했는데, 그걸 인터넷 타블로이드 'Stuff'가 "Noel Gallagher accuses Green Day of ripping off his song[88] "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근데 이걸 국내 언론에서 'accuses'라는 단어를 법률적인 단어로 잘못 해석하면서 '노엘 갤러거가 그린 데이를 표절로 고소(告訴)하다'로 오보가 나갔고, 이 때부터 이런 오해들이 생겼던 것이다.[89]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이러한 해프닝을 논란거리로도 취급하지 않았다.
- 간혹 2004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DJ 겸 프로듀서라는 '파티 벤(Party Ben)'이 만든 매쉬업 곡 "Boulevard of Broken Songs"[90] 가 표절 논란을 가져왔다는 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애초에 이 곡은 파티 벤이 그린 데이의 "Boulevard of Broken Dreams"와 오아시스의 "Wonderwall" 뿐만아니라 스코틀랜드의 록밴드 '트래비스(Travis)'의 "Writing to Reach You"와 미국의 래퍼 '에미넴(Eminem)'의 "Sing for the Moment"를 부분부분 리믹스해서 만든 곡이다. 게다가 파티 벤이 이 매쉬업 곡을 만든 이유도 9.11 테러로 목숨을 잃은 이들에게 헌정하려고 한 거지 표절 논란을 제기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 결정적으로 그린 데이의 "Boulevard of Broken Songs"와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가 각각 오아시스의 "Wonderwall"과 "Rockin' Chair"를 표절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는 몇몇 팬들이 개인적인 독자연구를 근거로 한 썰일 뿐, 그린 데이는 단 한 번도 음악 전문가들의 문제제기로 인해 공식적으로 표절 논란에 휩싸인 적이 없다.
- 한편 국내에서는 가수 조영남이 그린 데이가 자신의 곡 "도시여 안녕"의 후렴구 부분을 표절해서 "American Idiot"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사실 우스갯소리 정도로 끝났다.
-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 황금의 바람 나오는 스탠드 그린 디의 이름은 그린 데이로부터 따온 것이다.[91]
6.1. 국내 인식
- 한국에서의 록의 입지가 시망 수준이다보니 해외 유수의 록 아티스트들에 대한 한국 대중음악 소비자들의 인지도 역시 처참한 수준이다. 그래도 그린 데이는 그나마 '오아시스(Oasis)', '뮤즈(MUSE)', '린킨 파크(Linkin Park)', '마룬 5(Maroon 5)'[92] 와 더불어 인지도가 높은 밴드에 속하는 편. 2000년대 초중반 잠깐 흥했던 '조선펑크'의 탄생도 그린 데이를 필두로 한 네오 펑크 열풍이 국내까지 덮친 결과였으니 한국의 인디 음악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 꽤 많은 그린 데이 곡들이 파워코드로 이루어진데다가 멜로디도 외우기 쉽다보니 일렉기타나 베이스 입문자들이 거의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밴드이기도 하다.[93] 이 때문에 뮤즈와 함께 중고등학교 밴드에서 가장 많이 카피하는 밴드이기도 한데, 이러다보니 또 좆문가들은 음악 수준이 급식 수준이라는 등 그린 데이 때문에 펑크 록이 쉬운 음악이 되었다며 까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애초에 펑크 록이라는 장르 자체가 'DIY[94] '를 신조로 내세운 펑크 문화의 일환으로 탄생했다는 배경지식도 없이 내뱉는 소리다. 게다가 파워코드로 이루어진 쉬운 멜로디 덕분에 대충 흉내내기는 쉬워도, (기타를 좀 쳐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오리지널처럼 똑같이 연주하는 건 수준급 이상의 기타실력이 요구된다. 워낙 빠른 속도에 변박, 엇박, 빌리 조 특유의 연주 습관까지 고려해야 될 요소가 많기 때문. 고로 '그린 데이 곡들은 입문자도 배우기 쉽다'는 건 '곡을 통해 파워코드 배우기 좋다'는 말이지 '쉽게 똑같이 연주할 수 있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 물론 이제 이런 논란들은 그린 데이가 2015년에 자격요건을 갖추자마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로큰롤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으니 이제 좀 들어갈 듯 싶다.
- 기타스트리머이자 유튜버, 트위치 스트리머인 정소율은 방송 초창기에 많이 들었다고 하며, 커버영상도 많다.
6.1.1. 내한공연
- 2010년 《21st Century Breakdown》 월드 투어 라인업에 한국이 추가되어 있음이 그린 데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밝혀졌다. 2010년 1월 18일에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을 했는데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중간에 무대 위로 올려진 한 소녀 팬이 빌리 조에게 난데없이 딥키스를 하는 바람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팬들도 밴드도 만족한 공연이 되었던 듯하다.[95] 빌리 조는 이때 '이제껏 본 관객들 중 최고로 미친 관객'이라는 말로 화답(?)하기도 했다.
- 그리고 2013년 9월에는 뮤지컬 "American Idiot"이 내한을 왔다. 밴드가 내한을 오는건 아니지만 그린 데이 팬들은 이 소식에 엄청 기뻐했다.
- 신보 《Revolution Radio》 월드 투어 라인업[96] 이 공개되었으나 아직 아시아 투어 일정은 나와있지 않다.
6.2. 사건 사고
- 펑크 록 밴드답게(...) 사건, 사고가 꽤 된다. 지금은 좀 얌전해졌지만, 밴드 초기만 해도 공연 중 기행을 자주 보여주었다. 예컨데 1994년의 한 공연에서는 빌리 조 암스트롱이 전라[97] 로 퍼포먼스를 해서 체포되기도 했고, 또 1996년에는 위스콘신에서 열린 공연 중 빌리 조가 엉덩이를 까서 음란죄로 벌금을 물기도 했다.
- 199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공연에서는 가면을 쓰고 밴드를 도발하던 슬립낫(Slipknot) 팬을 빌리 조가 드롭킥으로(!) 날려버린 사건이 생겨 그린 데이와 헤비메탈 밴드 슬립낫이 사이가 안 좋은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해당 관객은 슬립낫 팬도 아니었거니와[98] 당시 공연을 관람하던 14살짜리 소녀 팬을 성추행하는 등 난동을 부려서, 이에 빡친 빌리 조가 싸움판에 뛰어들며 생긴 일이었다고 한다. 해당 영상
- 또 2012년 9월 21일에는 공중파에 생중계되고 있었던 iHeart Radio 콘서트에서 빌리 조가 공연 도중 콘서트 주최 측에 욕을 바가지로 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이전 항목에서 상술되어있듯이 이 사건은 그린 데이에게 좀 억울한 상황이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콘서트 당일 그린 데이에게 배정된 45분의 공연시간을, 주최측에서 갑자기 리한나와 어셔에게 시간을 더 할애하기 위해 사전 양해도 없이 20분 넘게 잘라버렸기 때문이다.[99]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빌리 조는 생방송 중임에도 노래를 중단하고 욕을 섞어 항의하며 무대 위에서 기타를 부셔버렸다.
충분히 항의할 수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평소보다 훨씬 난폭한 모습을 보여준데다가, 이 어마어마한 쌍욕이 공중파를 타고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어서(...) 욕도 엄청 먹는다. 게다가 그날 밤에 빌리 조가 약물 과다복용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면서 여론은 더 안 좋아졌다. 결국 그린 데이 측에서 빌리 조의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사건이 마무리 되긴 했지만, 마이크는 당시 빌리 조의 행동이 과하긴 하였으나 분명 항의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동의했던 것이며[100] 그때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여담이지만 이 사건을 국내언론에선 주최측이 공연시간을 통보도 없이 단축한 앞의 이야기는 생략하고 '그린데이 보컬이 약물을 복용하고 공연 도중 난동을 부렸다'는 식으로 오보하는 바람에 한층 더 까였다.
- 2019년 12월 12일, The Game Awards 공연 도중 무대 스크린에 욱일기를 디스플레이하여 국내 팬들 사이에어 논란이 되었다.[101]
[1] 다수의 평론가들이 그린데이를 논할 때 'Punk revivalists'라는 단어와 함께 흔히 사용하는 어구이므로 특정 출처만을 밝혀 적을 수는 없음. 그러나 대표적이게는 미국 음악 평론가 Stephen Thomas Erlewine, Evan Serpick 등이 이 표현을 사용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성문영", "남무성" 등 다수의 음악 평론가가 관련 칼럼에 이러한 글귀를 쓴 사례가 있음.[2] 이것도 RIAA에서 Diamond 등급을 인증받은 《Dookie》와 비교했을 때 성적이 부진하다는 것이다. 1995년 발매된 《Insomniac》과 1997년 발매된 《Nimrod》는 RIAA에서 각각 2x Platinum을 인증받은 앨범이며, 2000년 발매된 《Warning》은 비록 당시 RIAA에서는 Gold 인증을 받았으나 이후 Platinum 등급을 도달한 앨범이다. 각각의 후속 앨범들 모두 기본적으로 '''미국 내에서만 1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참고문서[3] 프론트맨 빌리 조 암스트롱(Billie Joe Armstrong)의 건강 악화와 베이시스트 마이크 던트(Mike Dirnt) 아내의 유방암 판정 등[4] 같은 암스트롱 가문인 랜시드의 팀 암스트롱이 랜시드 결성전 이끌었던 지역 전설의 밴드.[5] 실제로 둘은 친척형제 사이이다 둘다 펑크락에 사촌은 Clash 영향을 받은것도 특징.[6] 이때는 마이크가 리드 기타를 맡았고 빌리 조는 주로 보컬을 하며 간혹 리듬 기타 파트를 맡았다.[7] Extended Play 레코드판. 싱글판보다는 더 많은 트렉을 담을 수 있지만 앨범이나 LP판보다는 재생시간이 짧다.[8] 사실 '스위트 칠드런'이라는 밴드명으로 계속하려고 했는데, '스위트 베이비(Sweet Baby)'라는 또다른 로컬밴드와 헷갈릴까봐 바꾼거라고 한다. [9] '그린 데이'라는 밴드명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마리화나와 관련된 이름이다. 그걸 피면 세상이 그렇게 보인다나... [10] 트레가 그린 데이의 정식 구성원으로 안착한 것은 조금 이후의 일이다.[11] 이후 멤버들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Reprise Records'를 선택한 이유가 프로듀서 롭 카발로(Rob Cavallo) 때문이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만나본 프로듀서 중 롭 카발로와 가장 말이 잘 통하고 죽이 맞았다고. 여튼 그래서인지 롭 카발로와의 만남 이후 그린 데이는 자기들이 프로듀싱한 앨범 《Warning》과 《Revolution Radio》, 프로듀서 부츠 비그(Butch Vig)와 작업한 앨범 《21st Century Breakdown》을 제외한 모든 앨범을 그와 함께 프로듀스 하였다.[12] 이 차트는 이후 얼터너티브 송(Alternative Songs) 차트로 이름이 바뀐다.[13] 참고로 이 앨범의 판매고를 논할 때 보통, 전세계적으로 '''2000만 장''' 이상의 판매실적을 기록했다는 결과가 많이 인용되는데, 이는 '''2000년에 집계된 기록'''으로 그나마 가장 정확하게 집계되었다고 여겨지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가별 갱신 날짜 기준이 다르다보니 정확성이 떨어지지만, 2016년 기준 약 2500만 장으로 추정된다고. 확실한 것은 《Dookie》가 아직까지도 그린데이의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14] 참고로 《American Idiot》 역시도 200대 명반으로 선정되었는데, 《Dookie》보다 조금 낮은 61위에 기록되었다.[15] 해당 원문 : "Sometimes I think we've become totally redundant because we're this big band now; we've made a lot of money – we're not punk rock any more. But then I think about it and just say, 'You can take us out of a punk rock environment, but you can't take the punk rock out of us.'"[16] 마이크 던트의 어렸을적 친구 이름 'Jason Andrew Relva'의 약자. 이 곡 자체가 19살의 이른 나이에 죽은 친구를 기리며 쓴 곡이라고 한다.[17] 현재까지도 이 곡은 각종 매체에서 주관한 'Top 10 Prom Songs' 인기 투표에 거의 항상 껴있다(...).[18] 90년대 감성코드 중 하나는 '루저 의식'(?)이었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네오 펑크는 주로 패배자의 신변잡기 혹은 권태로운 푸념을 주제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네오 펑크를 대표하던 밴드였던 그린 데이는 메이져 레이블 데뷔 앨범 《Dookie》 때부터 이미 안티들에게 (그들의 선배 클래쉬나 섹스 피스톨즈처럼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 정신 혹은 사회 비판 메시지가 없다는 이유로) '저게 무슨 펑크 락이냐'하고 대차게 까이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항목에도 추가로 후술되어있다.[19] #[20] 앨범 《Warning》의 두 번째 싱글이자 타이틀 곡 "Warning"은 모순어법과 그린 데이 특유의 조소로 권위에 대한 의문을 해학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후 이 곡은 초기 그린 데이가 조금씩 사회비판 목소리를 내려는 시도를 보여준 대표적인 곡으로 평가되고 있다.[21] 심지어 몇몇 곡들은 백업이 되어있던 상태였으며, 심지어 데모테이프는 온전히 존재했던 상태였다. 그래서 팬들은 이 앨범의 노래 중 몇몇 곡은 이후 앨범에 재활용 된게 아닌가 추측 하기도 한다.[22] 2010년 집계 기록.[23] 이 콘서트는 영국의 록 전문 매거진 Kerrang!에서 진행한 독자투표에서 '지상 최고의 쇼(The Best Show On Earth)'로 선정되기도 한다.[24] 참고로 여기엔 그린데이의 3번째 정규 앨범 《Dookie》도 포함되어 있는데, 《Dookie》는 193위로 《American Idiot》보다 조금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하였다.[25] 이러한 이유 때문에 7번째 정규 앨범 《American Idiot》과 8번째 정규 앨범 《21st Century Breakdown》 사이에는 거의 5년 가까이 빈 갭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게 그린 데이 정규 앨범 커리어의 최장 공백기라고 한다.[26] 밴드 '너바나(Nirvana)'의 명반 《Nevermind》를 프로듀싱한 사람이다.[27] 여담으로 이 앨범은 3년 동안 4개 스튜디오를 전전하며 만들었다고 한다.[28] 해당 원문 : "There is a whole lot of selfish manipulations going on around us, whether it be the government, religion, media or frankly any form of authority. 21st Century Breakdown is a snapshot of the era in which we live as we question and try to make sense of all these situations."[29] 국가로만 따지면 유럽 차트는 제외가 되므로 15개 국가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이 된다.[30] '부모의 조언 필요' 스티커로, 미국 음반 산업 협회(RIAA)가 미성년자에게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음악 작품에 첨부하는 권고이다. 이 스티커가 붙어있으면 미성년자는 앨범 구매가 불가능하며, 부모의 동의 하에만 청취 가능하다.[31] 해당 원문 : There's nothing dirty about our record... They want artists to censor their records in order to be carried in there. We just said no. We've never done it before. You feel like you're in 1953 or something.[32] 이 뮤지컬은 2007년 토니 어워드에서 '최고의 뮤지컬(Best Musical)' 부문을 포함하여 8개 부문에서 상을 휩쓸었다.[33] 이 곡은 이미 뮤지컬에서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해당 곡은 공개된 후 같은해 6월에 iTunes에서 싱글로 발매된다.[34] 영국 록 전문 매거진 Kerrang!에서 인터뷰 당시 빌리 조가 "베를린과 스톡홀름에서도 몇몇 데모를 레코딩했어요. 글래스고 교외지역과 암스테르담에서도 조금 작업한게 있는데, 그 곡들을 빨리 발매하고 싶어서요. 조만간 새 앨범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35] CD/Blue-ray 형태로도 발매되었다.[36] 2016년에 정식 멤버에서 탈퇴하고 다시 투어 멤버로서 함께 다니게 되었다.[37] 발매 '''첫 일주일 동안 미국에서만 팔린 앨범 판매량'''을 말한다. 《¡Uno!》만해도 일주일만에 139,000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무난한 출발을 했지만 《¡Dos!》는 69,000장, 《¡Tré!》는 58,000장에 그쳤다. 참고로 《¡Dos!》와 《¡Tré!》도 그린 데이의 평균적인 기준으로 망했다는거지 일반적인 기준으로 망한게 아니다. 《¡Dos!》는 빌보드 200 차트 9위로 데뷔하였고, 《¡Tré!》의 경우에는 빌보드 200 차트 13위로 데뷔하였다.[38]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 콘서트 당일 그린 데이에게 배정된 45분의 공연시간을 주최측에서 갑자기 리한나와 어셔에게 시간을 더 할애하기 위해 '''사전 양해없이 20분 넘게 잘라버린 것'''.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빌리 조는 노래를 중단하고 욕을 섞어 항의하며 무대 위에서 악기를 부셔버린다. 충분히 항의할 수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평소보다 훨씬 난폭한 모습을 보여주어 관객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날 밤에 빌리 조가 약물 과다복용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면서 그날의 거친 항의가 신경 쇠약으로 인한 해프닝이었단게 알려진다. 여담이지만 이 때문에 국내언론에선 공연시간이 통보없이 단축된 앞의 이야기는 생략하고 '그린데이 보컬이 약물을 복용하고 공연 도중 난동을 부렸다'라는 식으로 오보하기도 하였다. [39] 이런 불면증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도 꽤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4번째 정규 앨범 《Insomniac》에 수록되어있는 곡 "Brain Stew"다. 게다가 앨범 제목도 Insomniac, 즉, '불면증 환자'라는 뜻이다.[40]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상하게 빌리 조가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다고 잘못 알고있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도 수정 전까지는 이렇게 써져 있었는데, 빌리 조는 '''마약이 아니라 알코올과 처방알약(prescription pill) 중독'''이었다. 더 정확히 하자면 항불안제(anti-anxiety drugs)와 수면제(sleeping pills) 중독이었는데, 특히 항불안제는 중독성 있는 약이 많아 주의해서 복용해야한다. 보통 영어로 drug라고 하면 불법적인 마약을 먼저 떠올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튼 drug는 의약품이라는 의미로도 자주 쓰인다. 그러니 '''제발 약물 중독을 마약 중독과 헷갈리지 말자.'''[41] '''해당 스타디움 관객수'''의 신기록이다. 그린 데이의 '''당일''' 최다 관객 기록은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엄(Wembley Stadium)'에서의 9만 명이다. 또 '''공연''' 최다 관객 기록은 이틀 동안 열린 'Milton Keynes National Bowl' 콘서트에서의 13만 50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 두 추정기록 모두 2010년 기준임. 갱신 요망.)[42] 첫 레코드 발매 후 25년이 지나야 헌액 대상자로 심사될 자격이 주어진다.[43] 두 번째 싱글로써 "Still Breathing"을 발매한 건 11월 12일이다.[44] 특히 빌리 조는 Kerrang! 매거진 인터뷰에서 트럼프를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는 등 맹비난을 해왔다.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는 영국에서의 일정 때문에 런던에 가있었는데, 이 날 소식을 듣고 하루 뒤 팬들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Instagram에 올리기도 하였다. 해당 링크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번 미국 대선에서 밴드 구성원들은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45] 이 앨범의 제목이 'God's Favorite Band'가 된 역사(?)가 재미있는데, 이 얘기는 팬들 사이에서도 나름 유명하다. 시작은 《American Idiot》 월드 투어 중 영국 밀튼 케인즈에서의 콘서트를 담은 실황공연 CD/DVD 《Bullet in a Bible》에 나온 장면으로, 그 당시 영국 날씨가 안 좋아서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콘서트 당일 날씨가 좋자 마이크가 "왜 하늘에는 구름이 없을까? (Why are there no clouds in the sky?)"라고 묻고 트레가 "'''신이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밴드'''를 다시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지! (Because God wants to watch '''his favorite band''' again!)"라고 답하며 장난치는 모습이 담긴 장면이었다.(해당영상) 그런데 트레의 이 말을, 이번 《Revolution Radio》 월드 투어 중에 밴드가 게스트로 출연한 스티븐 콜베어의 레이트 쇼에서 '신(God)'이 밴드를 소개한답시고 "...5번 그래미 수상의, '''신이 가장 사랑하는 밴드''' 그린데이를 환영해주세요! (...Please welcome, five time Grammy winners, and God's favorite band - Green Day!)"라고 하면서 다시 사용하였고 (해당영상), 이걸 다시 밴드가 콜베어에게 고맙다며 앨범 이름으로 붙이면서(해당포스트) 어째 "신이 가장 사랑하는"이 그린데이를 위한 수식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건 그린데이 멤버들과 스티븐 콜베어가 서로 팬이고, 또 밴드가 콜베어 이전 데이비드 레터맨 시절의 레이트 쇼와도 친분이 깊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일종의 팬질(?)을 하다가 생긴 웃긴 사례인 셈이다.[46] 뮤직비디오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메이킹 필름을 보면 여러나라의 국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태극기가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47] 빌리 조는 도시 봉쇄 기간 동안 No Fun Mondays라는 프로젝트로 자기 집에서 혼자 단독 앨범까지 냈다. 한편 2020년 12월부터는 그린데이의 사이드밴드 'The Network'가 15년만에 다시 돌아왔다![48] 이 예명은 그의 학교 친구들이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마이크가 베이스 소리를 흉내낼 때 항상 "Dirnt, dirnt" 거려서 붙여준 별명이라고.[49] 5번째 정규 앨범 《Nimrod》에 수록되어있는 곡 "Walking Alone"을 들어보면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온다. 이 때문에 앨범 라이너 노트의 멤버 소개를 보면 '마이크 던트 - 베이스, 백업 보컬, 야구 방망이 담당'이라고 적혀있다(...).[50] 목소리가 빌리 조 보다도 더 펑크스럽다는 평도 간간히 있다.[51] 펜더 사의 마이크 던트 프레시젼 베이스 소개영상을 보면 슬랩도 찰지게 한다.[52] 2005 Rock Am Ring 공연을 보면 피킹과 슬랩을 동시에(!) 하는 걸 볼 수 있다.[53] 함께 'Oakland Coffee Works'라는 커피 사업을 하고 있다. 유기농 커피콩을 파는 회사라고.[54] 참고로 밴드 결성 초기에는 마이크가 리드 기타를 맡았었다.[55] 해당 기사 원문 발췌 : "His monstrous kick-drum wallop evokes John Bonham, while his manic fills make him punk's answer to Keith Moon. That's high praise, but he's Green Day's most potent weapon and the best reason to celebrate the trio's unexpected embrace of adulthood." 참고로 이 전부터 트레의 정열적인 드럼 연주와 넘치는 장난끼, 드럼 세트를 부시고 불태우는(...) 퍼포먼스 등은 여러면에서 키스 문과 비교되어왔다.[56] 프랑스어 "très"를 직역하면 "아주, 정말"이라는 뜻이다. 즉 이름을 영어식으로 번역하면 "very cool"이 되는데, 이를 한국식으로 의역하면 "'''존나 쩔어!'''"(...)가 된다.[57] 트레의 본명이 '프랭크 에드윈 라이트 '''3세''''여서 붙여진 별명. 영미권에서 이름이 'XXX 3세'인 사람들을 흔히 부르는 애칭이다.[58] 위에서도 상술되어있듯이, '스위트 칠드런'은 직후 《1,000 Hours》라는 EP판으로 데뷔하면서 현재의 '그린 데이'로 밴드명을 바꾼다.[59] 정확히 말하면 트레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하고 GED를 땄다. 미국에서는 정규 고교 교육을 마치지 못한 사람들이 GED를 따면 고졸 학력이 인정되어 대학교 진학이 가능해진다.[60] 예전에 한창 젊었을 때는 트레 본인이 작사·작곡한 (앨범에 히든트렉으로 삽입된) 곡들도 콘서트 장에서 가끔 불렀는데, 이제는 그런거 없다(...). 다만 가끔 콘서트에서 그린데이의 쉬어가는 곡이자 팬서비스 타임으로 유명한 "King for a Day"를 부를때, 빌리와 트레가 자리를 바꿔서 빌리가 드럼을 치고 트레가 웃기는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61] 현재는 수술을 받고 완쾌했다.[62] 자신의 여자친구가 외도를 한 것 같다는 짐작성 게시글을 본인 SNS 계정에 올리면서 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부적절한 언행을 계속했다. 결국 그가 희롱적인 폭언까지 SNS에 올리면서 사태가 악화되었고, 그린데이의 투어 멤버에서 사퇴시키라는 팬들의 거센 항의가 계속되자 그제서야 사과했지만 결국 제명 처리되었다.[63] 1990년에 단종되어 1991년에 《1,039 / Smoothed Out Slappy Hours》라는 이름의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리이슈되어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1집 앨범의 정확한 판매량을 알고 싶다면 밑의 비정규 앨범에 기재된 《1,039 / Smoothed Out Slappy Hours》 앨범의 판매량도 참고하길 바람.[64] 이전 문서의 '2000만 장'이라는 판매량은 정확히 2000년도에 집계된 결과값이다.[65] 원래는 2013년 1월 15일에 나오기로 되어있었으나 예정날짜보다 앞당겨져서 12월 7일에 발매되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반농담으로 밝히길, 드러머 트레 쿨의 생일선물(...)로 그랬다고. 실제로 앨범 발매 이틀 후가 트레의 생일이긴 했다.[66] E.P.는 'Extended plays'의 약자. E.P. 앨범은 정확한 집계가 불가함으로 집계 기록을 표기하지 않음.[67] RIAA 등급 2x Platinum으로 업그레이드 예정 중.[68] 2008년 기준.[69] WWE 스맥다운 11th 인트로곡으로 사용됐다.[70] 《Instant Karma: The Amnesty International Campaign to Save Darfur》의 수록곡. 참고로 해당 앨범은 전세계의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당시 상상을 초월하는 인권유린의 현장이었던 다르푸르 지역을 돕기 위해 만든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수록곡들은 전부 존 레논의 명곡들을 커버한 곡들이다. 이 앨범의 저작권료와 수익금은 전부 국제 앰네스티 협회에 기부되었다.[71] 영화 마스크에서 짐캐리와 패기와 대화중 자동차 얘기를 하다가 자신이 패기라고 하자 '저의 편지를 실어줬아요. 기억 나요?? 좋은 사람과 항상 함께 한다.' 는 대사가 나온다. 그런데 짐 캐리가 Nice Guys Finish Last를 '좋은 사람은 항상 함께 한다.' 라는 자막이 나오는대 이건 오역이다. 정확히 해석하면 '좋은사람은 항상 꼴찌 한다.', 또는 '좋은사람은 항상 늦게 끝낸다.' 라고 해석하면 된다.[72] U2와 함께 작업한 콜라보레이션 싱글. 《U218》에 수록되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발생한 수 만명의 수재민을 돕기 위해 만든 자선 싱글로, 수익금은 전부 해당 자선단체에 기부되었다.[73] 하지만 이것도 90년대 초반 평론가들과 리스너들의 무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그린데이가 초기에 영향 받은 밴드는 버즈콕스였고(90년대 중반 AP나 기타 월드 같은 음악 잡지들과의 인터뷰에서 누누히 밝히고 있다) 버즈콕스는 당대의 다른 밴드들과 달리 내면의 가치에 더 집중하던 밴드였다. 지금에 와서야 밝혀진 이야기지만, 당시 반항의 아이콘처럼 여겨졌던 섹스 피스톨즈가 오히려 철저히 매니저의 기획력으로 탄생한 밴드였다.[74] 따지고 보면 초기 펑크 록은 오히려 허무주의에 가까웠기 때문에, 저항정신이나 사회비판 같은 것이 초기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러한 고정관념이 당시 평론가들 사이에서 생겼던 것은 80년대 초반부터 발달한 하드코어 펑크가 상당히 급진적이고 공격적이었기 때문인데, 펑크 록이 '사회 반항아' 이미지를 강하게 띄게 된 것도 이 하드코어 펑크가 발달함에 따라서였다. 여담이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린 데이도 상당히 억울했던 모양인지 밴드 초기에 "니들이 저항에 대해 뭘 아느냐"고 말한 평론가에게 트레가 "씨발 그럼 '라몬즈(Ramones)'는 뭔데?"라고 맞받아친 사건도 있었다.[75] 사실 2000년에 발매한 《Warning》 때부터 그린 데이는 조금씩 나름의 사회 비판의 메세지를 조소의 형태로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또 누가 그런 걸 듣고 싶어하냐고 까였다(...).[76] 《American Idiot》의 "Jesus of Suburbia"(9:08)와 "Homecoming"(9:19), 《21st Century Breakdown》의 "21st Century Breakdown"(5:09)와 "21 Guns"(5:21), 《¡Uno!》의 "Oh Love"(5:03), 《¡Tré!》의 "Dirty Rotten Bastards"(6:26)와 "The Forgotten"(5:00), 그리고 《Revolution Radio》의 "Outlaws"(5:02)와 "Forever Now"(6:52)가 그 예시이다. 예외적으로 《¡Dos!》에는 이러한 곡이 없다.[77] 각종 매거진에서 라이브 잘하는 밴드를 뽑는 리스트에 항상 들어가있을 정도. 2011년에는 'Kerrang!' 매거진 선정 '최고의 라이브 밴드(Greatest Live Bands)'에서 2위를 차지했다. 또 그래미 어워드를 포함한 여러 수상식에서 최고의 라이브 퍼포먼스 밴드로 노미네이트 되고 수상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애초에 그린 데이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계기가 《Dookie》 시절 참가한 '1994년도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94)'에서 보여준 라이브 공연이었다.[78] 이걸 위해 아예 특별 물총과 휴지총, 티셔츠 배포총을 제작해서 투어 시 들고 다닌다. 특히 휴지를 뿌릴 때 두루마리 휴지가 길게 흩날리면서 예쁜 경관이 펼쳐지는 걸 볼 수 있다.[79] 여담이지만 독일 공연 중 한 번은 무대 위로 너무 많은 팬티가 날아다녀서(...) 빌리 조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많은 팬티를 보는 날인 것 같앜ㅋㅋㅋㅋ 그만 좀 던졐ㅋㅋㅋㅋ"라고 하는데, 그 순간 빌리 조의 품 속으로 사각팬티가 날아와서 모두가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80] 단 실제로는 빌리 조 암스트롱만 본인이 더빙했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했다.[81] 유명 밴드를 불러놓고 가사 없는 오프닝만 죽어라 부르게 한다(...). [82] 돌은 모 시즐랙이 던졌다.[83] 이 와중에 다들 자기가 연주하던 악기를 버리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타이타닉 호 침몰 장면을 패러디 한 것. 연주하는 곡도 영화에서 악단 단원들이 연주한 찬송곡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다.[84] 정식 명칭은 'Voodoo Music + Arts Experience'이다.[85] 메탈리카는 80년대 헤비메탈을 대표하는 밴드다. 그린데이는 88년 데뷔...[86] 스티브 바이는 "그가 기타 치는거 본 적 있어? 완전 본능적이야. 모든 코드 안의 모든 음이 톡톡 튄다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 무슨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듣는 느낌을 주는데 - 그건 정말 하기 힘든 것이거든 - 하지만 그 소리가 그 녀석 머리 속에 있었던 거지.(Did you ever see him play? It's visceral. Every note in every chord pops. Do you know I mean? It sounds like a giant orchestra - and that's hard to do - but it was in his head.)"며 극찬했고, 잭 와일드는 기자와 '기타솔로'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기타연주는 무슨 신기한 테크닉을 가지고 나왔다 해서 대단한게 아니야. 그런건 훌륭한 연주의 일부분일 뿐이지. 꼭 솔로를 해야되는 것도 아니야. 그린 데이 봐 바! 세상에서 가장 큰 밴드중 하나잖아.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방법은 말이야,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것을 하면 되는거야."라고 얘기했다.[87] 해당 원문 : "They should have the decency to wait until I am dead. I, at least, pay the people I steal from that courtesy." 여기서 노엘이 말한 '자기가 표절한 노래'는 코카콜라의 광고 노래로 쓰였던 "I'd Like To Teach The World To Sing (In Perfect Harmony)"라는 곡인데, 오아시스는 자신들의 곡 "Shakermaker"가 이 곡의 멜로디를 5초 동안 표절했다는 이유로 코카콜라 회사에 호주 달러로 50만 달러를 지불해야했다.[88] 번역 : "노엘 갤러거가 그린 데이가 자기 곡을 표절했다는 의심을 제기하다"[89] 용어 오역 관련 설명. 애초에 오아시스 본인들도 표절 시비에 실컷 시달려서 골머리를 앓았던 밴드다. 위 각주에서도 언급되어있듯, 오아시스는 자신들의 데뷔 싱글인 "Sharkermaker"가 코카콜라 CF송을 표절했다는 판결을 받고 50만 달러를 배상한 전례가 있으며, 또 다른 곡 "Cigarettes & Alcohol"은 T.Rex의 "Get It On"이란 곡의 리프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서 또다시 표절 시비에 시달린 적이 있다. 뿐만아니라 오아시스는 자신들보다 까마득한 선배들을 존경한다는 의미로 비틀즈의 곡에서 이것저것 오마쥬하며 곡을 만들기도 했다. 여튼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아시스는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창작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옛 곡의 오마주를 긍정하는 밴드이다. 또 노엘은 오히려 '누군가 우리 곡을 베껴도 아무 상관 없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90] 제목이 사실 3개(...)나 된다. "Wonderwall of Broken Songs"라고도 불리고 "Wonderwall of Broken Dreams"라고도 한다고.[91] 재밌는 건 원래는 그린 데이 그대로 따오려 했는데 오타가 나서 그린 디가 됐다.[92] 마룬 5의 경우 더 이상 록과는 거리가 멀어지긴 했지만(...).[93] 특히 밴드의 초기 곡들, 그 중에서도 앨범 《Dookie》에 수록되어있는 곡들은 기타를 입문할 때 거의 누구나 한 번쯤은 배우게 된다.[94] "Do It Yourself"의 축약어. 70년대 펑크 문화 운동에서 일어난 평등주의 에토스를 함축하고 있는 구호로,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95] 10초 이상 했다(...). 빌리 조도 처음에는 소녀 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연주를 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나름 즐기는듯 했지만 정작 끊어야 할 타이밍이 되었는데도 이 팬이 입술을 안 놔줘서(...) 조금 당황해 하는 모습은 보였다.[96] 2016년 9월부터 시작하여 2017년 11월에 끝난다. 총 8개 분기(북미-북미-유럽-북미-오세아니아-유럽-북미-남미)로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있다.[97] 정확히 말하면 벌거벗은 상태에서 기타로 성기만 가리고 무대에 올라가 "She"를 불렀다(...). [98] 그냥 얼굴을 가리기 위해 슬립낫 가면을 썼던 것 뿐이라고(...).[99] 참고로 이때 뉴메탈 밴드 '린킨 파크(Linkin Park)'의 공연 시간 역시 무더기로 잘려나가서 그쪽 멤버들의 표정 역시 굳어있었다.[100] 참고로 이때 마이크도 동참하여 자신의 베이스 기타를 부쉈는데 묻혔다.[101] 이전에도 메탈리카의 공식 소셜 미디어 계정에서 욱일기를 새긴 굿즈를 판매한단 소식이 알려져 크게 비판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