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조선

 


'''근육조선'''
'''장르'''
대체역사, 빙의
'''작가'''
차돌박E
'''출판사'''
KW북스
'''연재처'''
문피아
'''연재 기간'''
1부: 2019. 05. 01. ~ 2020. 04. 06.
2부: 2020. 07. 06. ~ 연재 중
1. 개요
2. 줄거리
3. 연재 현황
4. 특징
5. 등장인물
5.1. 1부
5.1.1. 조선
5.1.1.1. 왕실
5.1.1.2. 신료
5.1.1.3. 기타
5.1.2. 명/만주/몽골
5.1.3. 일본
5.1.4. 유럽
5.1.5. 아프리카
5.2. 2부
5.2.1. 조선
5.2.1.1. 신료
5.2.1.2. 왕실
5.2.1.3. 기타
5.2.2. 명
5.2.3. 일본
5.2.4. 유럽/중동
5.3. 근현대
5.3.1. 근대
5.3.2. 현대
6.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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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차돌박E.

2. 줄거리


안타까운 역사라 한탄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탄은 사라지고 몸이 재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몸을 길러 나름 성공하였더니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설마 아니겠지. 내가 꿈을 꾸는 거겠지. 이게 대체 뭐야.”

한때는 사학과를 나왔고, 피트니스 센터 코치로 일하는 내가 누군가의 몸에 들어왔다.

권력의 화신, 조카를 죽인 자, 그리고 왕위를 빼앗은 자.

수양대군의 몸으로.

“그러니까 세종대왕님이 운동하셔서 오래 사시면 끝나는 일 아닌가?”

이제 조선은 변할 것이다.

다른 어떠한 것도 아닌 근육으로 시작되어.

모두 변할 것이다.

헬스 트레이너였던 주인공 최영직이 수양대군에 빙의해서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으로 단명한 세종대왕장수를 위해 헬스를 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입신체비라는 이름으로 헬스를 유교화 시켜 점점 조선헬스대국으로 변화해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3. 연재 현황


디시인사이드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서 단편으로 처음 연재되었다. 당시에는 현재의 1부에 해당하는 수양대군 파트는 몇 화만에 빠르게 끝났고, 뒤이어 외전으로 임진왜란 파트가 연재되던 중 문피아 정식 연재가 시작되며 중단된다.
이후 대략적인 줄거리는 유지한 채 웹소설 형식으로 가다듬어 문피아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되기 시작했고 2020년 4월 6일 1부 연재가 종료되었다.
2020년 7월 6일부터 2부 연재가 시작되었다. 2부 주인공은 최영직의 친구 김성원. 수양대군으로 빙의한 최영직이 바꿔놓은 역사에서 서애 류성룡빙의되었다.

4. 특징


근육조선이 다른 대체역사물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빙의자인 주인공들은 각자 자기 전문 분야가 있고 그 쪽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만, 전문 분야 외의 것은 '''아예 못 한다.''' 그래서 흔히 완벽초인형 주인공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식 전개로 문제를 해결하는 클리셰를 따르지 않고, 신하나 왕족들 같은 조력자의 도움을 구하거나 주인공의 행동이나 귀띔에서 영감을 얻은 주변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식으로 역사적 인물들을 조역으로만 그치지 않고 능력을 부각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두 번째로, 유머러스한 장면을 이용해 사건을 전개하는 경향이 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뛰쳐나오는 근육개그는 둘째쳐도 신료들의 '나만 죽을 수 없다' 식의 물귀신 개그는 다른 다른 소설에서도 어느 정도 다루는 소재들이기는 하나, 근육조선에서는 이를 사건 전개의 발단으로 삼아 버린다. 예를 들어 조선 발전의 본격적인 계기가 되는 서행사는 창설 계기부터가 한명회에게 엿을 먹이려는 목적[1]에서 창설된 기관이다. 그리고 그 한명회는 '나 혼자 외방을 돌면서 죽도록 고생 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인해 광기에 휩싸여 참하관에서 참상관으로 승진하려면 외방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고, 2부의 주인공인 유성룡 역시 '나 혼자 고생하는데 인력들이 꿀빠는건 못보겠다'라는 마음으로 현대의 표준품셈 제도를 조선시대로 끌어와버린다.
근육적 전개와 개그로 점철된 스토리도 잘 보면 작가의 해박한 역사적 지식이 녹아있고 고증도 잘 지키는 편이라, 제목과 일러스트에서 느껴지는 진한 막장의 향기와 다르게 내용 전개도 꽤 탄탄하다.

5. 등장인물


가상인물은 ★ 표시.

5.1. 1부



5.1.1. 조선


1부 조선의 역사는 '''진양군에 빙의한 헬창이 조선 초기부터 얼마나 큰 나비효과를 불러왔는가?''' 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빙의자 최영직이 왕위찬탈에 대한 욕망을 완전히 버리면서 게유정난과 그로 인한 공신의 폐해 등 여러 만행이 싹부터 원천 차단되었다. 또한 아버지인 이도와 형 이향 모두가 최영직이 전파한 입신체비, 즉 헬스 트레이닝으로 건강을 되찾아 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생전 이루지 못한 여러 과업을 이루는 동시에 후계자를 육성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이 입신체비로 인해 왕과 후계자들이 건강해지고 자연스레 수명도 연장되면서 왕위계승도 큰 충돌없이 계속 이어지게 된다.
또한 수양대군이 쇠질을 할 생각으로 속이 빈 철봉을 개발하면서 쌓인 기술력 덕분에 자연스레 조선 초기에 초기형 머스킷이 제작 보급되었고, 입신체비를 기반으로 현대의 군 훈련 시스템을 접목한 육성시스템을 갖춘 훈련도감에서 양성한 강군을 토대로 군사력이 대폭 증강되었다. 덕분에 본래 역사보다 일찍 일어난 토목의 변에서 조선이 몽골 + 여진 세력을 제압하는데 성공하고, 명나라 북방의 영토 일부를 떠넘김 당하는 식으로 할양받아 북방에 진출해 일부 여진족을 조선의 문화에 성공적으로 동화시킨다. 그리고 혼란스런 일본 막부 정치로 인해 경인년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만 이 역시 성공적으로 제압하면서 본토 땅 일부와 후일 초대형 금광과 은광이 묻혀있는 지역을 소유하게 된다. 또한 장영실과 명 선박 기술자들이 개발한 신형 선박으로 해양진출을 나서면서 대만을 개척하는 것을 시작해 동남아, 폴리네시아, 아프리카까지 진출, 세력에 편입하였으며 오스만 제국과 신성로마제국과 인삼무역을 시작하며 대외무역 진출에 성공한다.

5.1.1.1. 왕실

수양대군으로 빙의한 최영직이 평하길, '''헬스장 상위 1% 이내의 재능충 집안.''' 우선 최영직이 아무리 능력있는 헬스 트레이너라지만 조선으로 빙의하고 고작 3년 만에 3대 천근(600kg)을 찍었고, 커팅을 하고도 근육과 근력 손실이 없는 수준이며 육식위주의 편향된 식습관과 당뇨 초기증세에 시달리던 세종도 식단조절과 운동을 병행하니 금새 회복하다 못해 나이에 걸맞지 않게 건장해질 정도. 입신체비에 전혀 관심없이 술만 퍼마시던 양녕도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는 걸 본 최영직이 추측하길 고려말 때 맹장으로 활약했던 '''태조대왕'''의 유전인가 생각할 따름이다.
정확히는 수양대군에 빙의한 헬스 트레이너 최영직[2]. 본 작품의 주인공으로 역사학과를 졸업했지만 중간에 보디빌더로 진로를 틀고, 식품영양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생활스포츠지도사 1급 자격증을 따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실력도 상당해 꽤나 유명한 기업의 회장의 개인 트레이너를 할 수 있을 정도. 밤에 혼자 TV를 보면서 술을 먹다 과거에 자기 같은 헬스 트레이너가 있었으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소리를 했는데, 진짜로 수양대군이 되어버린다. 빙의 후 현대문명과의 괴리에서 잠시 고생하나 싶지만 진성 헬창답게 자신의 육체를 단련할 기반을 다질 겸 왕위를 노리기는 커녕 아예 포기하고 아버지인 세종과 형 문종을 적극 보좌해 조선을 성장시키기로 결심한다. 이로써 계유정난의 싹이 아예 사라져 조선의 운명이 바뀌는 시발점이 된다.
자신의 헬스 지식으로 세종을 훑어보고 고도비만과 당뇨 초기증상에 시달리는 것을 인지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냥 막무가내로 시키면 세종대왕이 따라올 리가 없을뿐더러 대군이 헛짓거리 한다고 탄핵까지 당할 수 있다보니[3] 성리학 사상을 첨가하여 헬스 트레이닝을 입신체비[4]라는 학문으로 정립한다. 그리고 몸을 단련해 세종대왕의 생일 때 중신과 부모의 눈 앞에서 삼대운동 1000근을 들어보여 자신의 이론과 효심을 모두 입증, 세종대왕의 체질 개선에 들어서게 된다. 이후에도 운동을 계속하여 삼대운동 1200근,[5] 더 나아가 인생 최고기록으로 삼대운동 1350근을 달성한다. 이렇듯 당시 입신체비의 경지로는 조선의 어떤 사대부들도 범접치 못할 경지에 달했으며 이 근육으로 칸 타이순을 내수린으로 제압하고 그의 동생이 탄 말을 메쳐서 제압하는 등의 신화를 남겼다. 후대에는 위대한 가르침의 창시자, 수양자라 불린다.
이렇게 조선 초기부터 거대한 사상적 변화를 일으켰지만 정작 자기가 아는 건 헬스와 몇 가지 역사 지식, 대학원에서 얻은 식품영양학 지식, 그리고 수양대군이 원래 알던 왕자로서의 지식뿐이다. 대외정책과 내부통치에 대한 아이디어는 건강해진 세종과 문종, 기타 신료들이 훨씬 더 뛰어나다. 그래서 다른 대역물의 주인공들처럼 혼자서 모든 테크트리를 다 올려버리는 짓은 못 하고, 주변 인물들과 적극적으로 협조해 활동하는 편이며 휘하 사람들을 갈고 자기도 갈리면서 발전을 이루어내는 편. 작중에서 수양대군이 직접 도입하거나 바꾸어낸 것은 다음과 같다.
  • 헬스 트레이닝[6]
  • 프로레슬링[7]
  • 비누, 알코올 소독과 위생 개념
  • 원인과 결과, 실험을 통한 검증 등 과학적 방법론
  • 중국 돼지, 인도 닭, 이슬람의 아마, 폴리네시아의 고구마 등 각종 의식주 재료
  • 입신체비 기구 제작으로 조선의 야금술 발달. 그로 인하여 본래 역사보다 빠른 총기 발명
  • 현대식 군대 제도에 입각한 훈련도감 설치
  • 태형-장형-도형-유형-사형의 오형 대신 현대적 형벌 제도 도입
사망 후 자신이 바꾸어낸 세계의 현대로 돌아오는데, 여전히 역사학과 출신 입신체비사이다. 그런데 원래는 사학과 학사 - 식품영양학과 석사 - 헬스 트레이너라는 특이할지언정 충분히 가능한 경력이, 바뀐 세계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하이 커리어로 탈바꿈한다.[8] 그래서인지 수양대군이 돌아오기 전 최영직은 어마어마한 헬창에 꼰대였던 듯.
여담으로 수양대군 본인의 신체비율을 강범동에 가까울 것이라고 자평하는데. 댓글창에서는 관상에서 등장한 수양대군같이 훤칠한 외모라 생각해서 놀란 댓글이 많았다. 안평대군이 로마에 가서 도나텔로와 이야기 하던 중 수양대군의 몸을 묘사하자 도나텔로가 "그건 근육 덩어리"라고 기겁하거나 안평대군을 따라 조선에 정착한 예술가들이 수양대군을 실제로 보고는 골리아라고 경악하자 뜻을 알아들은 수양대군이 안평대군에게 혹독한 입신체비를 시행해 화풀이 하기도 했다.
작중 초기에는 심각한 고도비만, 그리고 당뇨와 그로 인한 시력 저하를 앓고 있어 일급 트레이너의 식견에 기반한 수양대군의 판단으로는 당장 입원부터 시작해야 할 수준이였다. 다행히 증상이 더 심해지기 전에 입신체비를 성공적으로 과시한 수양대군의 각진한 트레이닝 끝에 당뇨 증상이 완화된 이후로는[9] 적극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왕손들과 수양대군의 긴밀한 협력 끝에 본래 역사보다 빠르게, 그리고 더 발달된 훈민정음을 반포하기에 이른다. 이후 세월이 지나 트레이닝으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노쇠해지자 세자인 문종에게 양위한 후 국가운영의 짐을 아들 문종에게 넘긴 대신, 자신의 두 번째 숙원인 조선 초기의 악법과 악습을 처단하기 위한 경국대전 집필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10] 물론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고 아버지 태종이 그러했듯이 군권만큼은 아직 유지하고 있었으며 경국대전 집필 와중에도 문종과 수양, 두 아들에게 이따금 결정적인 조언을 해주는 등 그 방대한 식견과 존재감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 세종 본인은 물론 후대의 문종까지도 모두 왕세자에게 양위를 하면서 이후 국왕이 나이가 들면 세자에게 양위하는 것이 조선의 전통이 된다.
비누를 보자마자 몸을 닦을 생각은 안 하고 화포의 탄매를 벗길 생각부터 하는 진성 밀덕. 수양대군이 쇠질을 위해 만들어낸 속이 빈 대역기봉을 보고 사람이 견착해서 쏠 수 있는 초기단계의 머스킷인 보총을 개발해서 조선군을 화력에 미친 강군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작 초기에는 수양대군의 찬탈 의혹 때문에 세종의 밀명으로 수양대군을 추궁하는 등 본래 역사의 불편한 관계가 조금 엿보였지만, 트레이닝 지식은 빠삭하지만 성리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수양대군이 현대 이론을 적당히 끄적여서 만든 미완성 입신체비서를 보고는 오해를 푼다. 본인도 세종의 고도비만과 초기 당뇨 증세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어, 함께 세종을 설득하기 위해 미완성 입신체비서에 음양오행의 이치를 접목해 내용을 수정하고 주석을 달아 당시 성리학에 빠삭한 중신들이나 그 중신들의 끝판왕이였던 아버지 세종조차도 인정할 만한 완벽한 유학 서적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를 어머니인 소헌왕후에게 들켜[11] 졸지에 입신체비를 같이 하게 되었고 동생이 아들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며 처절한 골육상잔으로 끝맺었던 본래 역사와 달리 형의 무병장수를 위해 동생이 헬스장식 기적의 연산법으로 조지는 눈물겨운 형재애를 과시하게 된다. 이후 혼자 당하기 억울했는지 동생인 안평대군을 입신체비의 늪에 끌어들이면서 근육조선식 물귀신 문화의 첫걸음을 밞게된다.
본래 역사에선 3년상을 치르다가 몸이 상해 일찍 죽었지만 근육조선의 역사에서는 3년상의 간소화는 물론 수양대군의 트레이닝 덕분에 몸이 축나기는 커녕 굉장히 건장해졌고, 결국 오래 살아남아 성인이 된 본래 역사의 단종, 이홍위에게 양위한다. 이 소설에서 문종은 화포 덕후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실용성을 중요시하는 인물인데, 이 때문에 문종 치세에는 조선이 성리학적 명분론에서 벗어나 해상 진출 등 대외 확장을 시도하게 된다.
본래 역사대로 예술에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 특히 그림의 경우 일본과 명나라는 물론 멀리 서양에서도 감탄을 금치 못할 경지에 이른 수준. 문종의 물귀신 작전에 넘어가 입신체비에 입문했는데, 진또배기 헬창인 수양대군의 우락부락한 근육괴물 바디와 달리 깔끔하게 마른 근육의 소유자가 되었다. 형 수양과 마찬가지로 권력에 대한 욕심을 접고 완전히 예술에 전념한 인생을 보냈으나 역으로 그 예술적 재능이 조선에 국제외교에 큰 도움이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일본에 통신사로 건너가 정이대장군의 호감을 사는데 성공, 예술적 스승이 되어 사실상 합법적인 첩자가 되어 당시 일본의 정세를 낱낱히 파악해 조선에 전달했다[12]. 또한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문화적 영향을 심심치 않게 주었다. 명에서 과거 수양의 일화가 알음알음 전해져 만들어진 근육질 불상과 탱화를 보고 아름답지 못하다며 분개해 절벽에 형을 모델로 한 육체미를 과시하는 벽화를 그리거나 로마에 방문했을 때 완벽한 육체미라고 숭상받으며 르네상스 로마의 예술품들과 형의 역사적 평가를 근육덩어리로 바꿔놓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때 귀국하면서 로마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을 대거 등용해서 조선의 문화가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가 남긴 대표적인 유물로는 수양팔근도[13]가 있다.
석전을 옹호하다가 수양한테 걸려 역기를 들게 되는 약간 철 없는 성격으로 묘사된다. 훗날 수양의 천축/유럽행 사절단 당시 효령대군을 보좌하는 역할로 함께 따라왔는데 40을 넘기고도 백호를 보고 놀라서 체통을 지키지 못한다거나 눈표범 잡겠다고 히말라야 산맥을 철없이 뛰다니다 두번이나 쓰러지고도 형 수양에게 그렇게 잡은 눈표범 가죽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다 고생고생한 효령이나 수양에게 핀잔을 받는 등 여전히 철 못 든 모습을 보여준다.
문종이 건강해진 영향으로 본래 역사보다 일찍 태어났다. 게다가 수양대군에 주인공이 빙의하면서 왕위 욕심을 내지 않게 된 덕분에 찬탈은 커녕 수양대군에게 직접 베드민턴을 배우는 것은 물론 수양대군의 아들 이장과 함께 베드민턴을 하는 등, 사이좋은 조카삼촌 관계를 맺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어 문종에게 정상적으로 양위를 받아 왕이 되었고, 수양대군이 죽기 전에 과제로 남겨 준 종계변무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며 본래 수양대군의 것이었던 세조라는 시호로 불리게 된다.[14] 이때 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이어져온 신하를 붙잡고 평생 갈아넣는, 특히나 능력있는 신하의 약점을 잡고 절대로 놓치지 않는 각종 혹사의 노하우를 내려받으며 이후 조선왕조부터 대한제국을 지나 현대까지 대대로 이어내려져 오는 잔혹한 고위공직자 혹사의 전통을 써내리게된다.
세종대왕이 고기라면 양녕은 술이라고 할 정도의 주당. 할아버지 태조대왕의 핏줄을 이어서 그런지 나이에 맞지 않게 상당히 건장한 중장년으로 성격은 좋게 보자면 호탕한 것이고, 적나라하게 말하면 그냥 생 망나니. 본래 역사에도 기록된 아들의 첩을 강간하려는 초유의 사태 때 호신술을 알음알음 익한 첩에 의해 도리어 윗턱의 앞니 두개가 나가고 팔이 부러지는 참교육을 당해버린다. 이후 조용히 은거하지만, 여자에게 팔이 부러지고 앞니가 나갔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졌는지 점점 주량이 늘어나다 극심한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게 되었고 종극에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치매증상까지 보이게 된다. 아들 서산군과 동생인 효령대군의 부탁으로 진찰을 위해 방문한 수양대군의 눈 앞에서 벽에 된장을 바르고[15] 효령대군을 어릴 때와 같이 부르다 입신체비로 건장해진 수양을 보고 할아버지 태조대왕으로 착각해 엎드려 싹싹 비는 장면은 참담할 정도. 결국 수양이 방문한 뒤 3일 후에 폐사해 원 역사보다 일찍 사망한다. 죽은 과정이 워낙 처참하다보니 조정에서는 급격한 노환으로 앓다 죽은 것으로 소문을 퍼트렸는데 진상을 모르는 왕실 종친들에게 노환에 대한 우울함 내지는 체념이 퍼지자 입신체비로 건강을 찾은 효령대군의 주도로 종친들 사이에서 입신체비가 유행하게 된다. 어느 의미로는 작중 유일하게 양녕대군이 일으킨 긍정적인 영향.
  • 서산군 이혜
양녕대군의 셋째 아들. 원래 역사와는[16] 달리 본작 에서는 본래 인성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영 좋지 못한 아버지 밑에서 커와 비뚤어져 있던 것으로 나온다. 수양대군이 입신체비로 교화시키기로 결심하지만 만난지 얼마안된 초기엔 효를 중시하는 성리학 교재에 반발심을 품는 등, 잘 맞지 않았으나 함께 낚시를 즐기던 중 술을 마시고 바위 위에 서있다 발이 미끄러진 서산군을 수양대군이 몸소 구하는 것을 계기로 자신의 한량스러운 과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수양대군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고 갱생. 열성적으로 입신체비를 행하는 제자가 된다. 이후 일번제자 마일용 다음가는 기수의 제자로 활약, 왕손 출신이라는 특성을 살려 종친들을 위한 입신체비 강습을 담당하게 된다. 본래 역사와 달리 미수로 끝났지만 첩과 관련된 불미스런 사건 때문에 사실상 의절하면서 양녕대군을 남남이나 다름없게 대했지만 가족으로서 일말의 정이 남아있었는지 아버지 양녕대군이 알코올 중독으로 비참하게 죽어버리자 한동안 실의에 빠져 술로 지새우기도 했다. 이후 무사히 추스리고 무난하게 왕실 입신체비사로써 모범적인 삶을 살게 된다.
임영대군의 아들이자, 세조(원 역사의 단종) 이홍위의 배동. 한명회와 함께 자역을 항해하다 아프리카에서 마사이 족을 만나고, 이들의 아름다운 육체적 소양과 연로자를 공경하는 문화에 호감을 느꼈고 마찬가지로 육체적 소양이 우월한 조선인들에게 호감을 느낀 마사이족들과 성공적으로 친해져 청년들 중 일부를 조선으로 데려온다. 입신체비와 성리학, 역사학을 비롯한 조선식 교육을 받고 돌아온 마사이 청년들은 솔로몬 왕국이라는 조선과 우호적인 사이의 강대한 국가를 세우게 되고, 이는 훗날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세력에 대한 견제책이 된다.
원래도 90세까지 장수한 인물이었지만, 여기에서는 입신체비로 육체를 단련한 영향으로 108세까지 산다.[17] 형 양녕대군이 죽은 뒤엔 자연스레 왕신 종친회의 대표가 되어 종친들 사이에서 입신체비를 널리 퍼트리기도 한다. 원 역사대로 불교에 심취한 인물인데, 문제는 조선왕조 특유의 한번 마음을 다지면 하늘이 뒤집어져도 바꾸지 않는 쇠고집 때문에 티베트에서 불법을 배우고 오겠다고 떼를 쓰는 것이[18] 왕조와 신하들 사이의 물귀신 기질로 인해 사태가 점점 커지더니 결국 조선의 해외진출 기관 '탐검사'의 시초가 된다. 결국 본인 소원대로 티베트까지 가고야 마는데 이때 히말라야 산맥의 험준한 산길에 시달리지만 여행 전 수양대군이 하체를 죽어라 조져준 덕분에 단련이 되어 고산병을 비롯한 각종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은 겨우 면했다고 한다. 이후 겔와 겐뒨둡이라는 승려의 첫 번째 제자가 되었다고 언급된다.
  • 삼한국대부인 윤씨
원 역사에서 정희왕후가 되었던 인물로 수양대군의 아내. 최영직이 빙의하여 건강을 핑계로 돈을 펑펑 써대며 헬창이 되어가는 수양대군을 보고 처음에는 차라리 집 대들보를 들라며 기겁하지만, 남편에게 요가를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배드민턴을 비롯한 여러 운동에 맛을 들리더니 가면 갈수록 물이 들어 나중에는 삼대 500근을 치며 복근에 王자를 세기는 근육녀가 되어버린다. 입신체비의 육체적 소양은 당대 여인은 물론 현대에도 손꼽히는 경지에 달했으나 유교적 소양은 사서삼경을 겨우 떼는 것에 그쳐, 당시 여인치고는 학문에 뛰어난 며느리 한씨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결국 의녀 40인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치는 것을 시작으로 여인들을 위한 입신체비의 기반을 다지는데 큰 기여를 하게된다.
수양대군의 아들로, 실제 역사에서는 의경세자로 추존되는 인물. 아명이 현동이라 주인공은 현동이라고 부른다. 역모 의혹을 해결하고 긴장이 풀리니 번식욕에 홀려 버린 수양대군이 그만 입신체비장에서 윤씨를 덮쳐[19] 본래 역사보다 1년 빠르게 출생하였다. 역사를 알고 있던 수양대군이 출산전부터 알코올 소독법을 개발하거나 어릴 적부터 유청을 먹이는 등 극진히 보살펴 병약한 몸으로 일찍 죽었던 실제 역사와 다르게 건강히 살아남았으며, 나이가 들며 아버지를 따라 행한 입신체비 덕분에 180cm의 건장한 사내로 성장한다. 수양대군의 가르침과 스스로의 열정으로 역사학의 시초인 금석학의 전문가가 되어 북한산 순수비, 광개토대왕릉비와 본래 역사에서 소실된 유적들을 비롯한 고구려의 역사를 발굴하고 삼한의 위치와 계통에 대해 파악하는 업적을 남긴다. 또한 그의 후손은 대대로 종친의 직위를 인정받으며 왕실의 제사를 올리게 되었고, 현대에도 입신체비의 종주 가문으로 남는다.
  • 군부인 한씨
실 역사에서 훗날 소혜왕후가 되는 인물. 마찬가지로 도원군 이장과 혼인한다. 집 안에서 자수를 놓거나 공부를 하고 있던 전형적인 아가씨라 체력은 딸리지만 성품은 좋아서, 시어머니가 될 삼한국대부인이 며느리의 성격을 테스트한다고 생전 처음 하는 배드민턴을 함께하며 스매시로 수십 번을 꽂아대는 신체적, 정신적 굴욕을 줘도 크게 내색하지 않는다. 수양대군이 그녀를 며느리 삼은 이유는 역사에서 엄격한 성품이 검증된 인물이기도 하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유학에 통달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아내 삼한국대부인과 힘을 합쳐 여성을 위한 입신체비를 완성하게 하기 위한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이후 근육이 잘 붙지 않거나 몸에 맞는 식재를 찾는 등, 여러 고생 끝에 본인의 체질에 맞는 입신체비를 성공하며 잔근육이 아름다운 육체를 가지게 되었고 시어머니와 함께 의녀 40명을 가르치는 것을 시작으로 조선 여인을 위한 입신체비의 토대를 다지게 된다.

5.1.1.2. 신료

조선 초의 클리셰대로 사직을 윤허받지 못하고 갈려나가고 있었다. 수양대군이 처음 만났을 때는 이미 79세이며, 심한 척추측만증에 시달리는 상태라 수양이 스스로 자신의 손을 떠났다고 판단해 간단한 스트레칭을 가르치고 끝났다. 세종은 10년은 더 써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심 아쉽다고 생각한 게 무서울 따름. 헌데 스트레칭이 효과가 있었는지 세종이 퇴위하는 88세까지도 살아남아서 결국 살기 위해 문종 앞에서 지금까지 행한 죄를 읍소하며 퇴직을 노리지만 문종 역시 역시 황희의 사직을 윤허하지 않았고, 은퇴 후 세종이 진행하는 경국대전 편찬에 부정부패의 산증인으로서 참여한다. 그렇게 거의 죽지못해 살아가다가 93세가 되어서야 사망하게 되는데, 죽기 전 한명회를 자기 후계자로서, 동시에 자기 다음 대 갈려나갈 인물로 점찍어놓았고 웃으며 죽는다. 근육조선의 현대에는 '황희 묫자리에서 일하듯 한다'라는 속담도 생긴다. 잘못한 게 있는 사람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는 뜻.
  • 마일용
수양대군의 하인격 역할을 하는 인물. 서자 출신으로 출세길이 막혀 있어 좌절하고 수양대군의 밑에서 일하던 것을, 수양대군이 설득하여 제자로 삼는다. 수양대군의 제자들 중 몸을 놀리는 실력이 가장 뛰어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한다. 다만 학문적으로는 뛰어나지 못해, 보통 훈련도감의 신병을 대상으로 한 체력훈련을 하곤 한다. 수양대군에 따르면 체구가 마동석[20]과 닮았다고 한다.
특유의 잔머리 때문에 설렁설렁 단련한 탓에 입신체비의 정진이 미비했고 같이 단련하는 유생들 사이에서도 겉돌고 있었다. 이후 역사대로 수양의 눈에 띄긴 하지만 애초에 수양이 현대인 빙의 상태라 한명회를 곱게 보지 않고 있었고, 수양대군이 파놓은 함정에 걸린 뒤 큰 약점을 잡혀[21] 본래 역사와 조금 다르지만 수양대군에게 거두어져 충실하게 일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후 약은 꾀를 부리다가 혼이 났다고 크게 반성, 입신체비를 비롯한 여러 업무에 성실히 임한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본성 자체는 어느 정도 남아 있어 그 뒤로도 발목을 잡게 된다.
과거시험 때 명, 일본을 넘어 대식국을 비롯한 해외로의 진출을 장려해야 한다는 답안을 제출했다가 문종의 인재 레이더에 걸려버렸고 졸지에 효령대군의 티베트행 여행을 빌미로 한 서역 국가들의 교역 원정에 들어가게 된다. 이 때 여국강과 함께 조와국의 교역을 담당할 4 함대를 이끌게 되었으나, 탐욕 때문에 화약을 비싸게 팔아치우다가 해적에게 걸려 중과부적으로 싸우고, 태풍에 휘말려 교역품은 모조리 바다에 던져버리고, 배도 세 척 중 두 척이 박살나는 등 큰 피해를 입어 교역 허가 서류와 종자 몇 개만 겨우 챙기는 비참한 성과를 거둔다. 자책감에 술로 나날을 지새우지만 갖고 온 종자 중 고구마가 있었고 이 종자를 얻는 과정 중 폴리네시아인과 교류를 시작해 결과적으로 다른 함대에 뒤지지 않는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탐검사의 수장이 되어 전세계를 탐험하는 신세가 되었다.
귀화한 폴리네시아인과 함께 태평양 곳곳을 누비던 중 수양대군이 현대의 지식을 활용해서 아메리카와 호주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 준 결과 결국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해 청해군이라는 칭호로 불리는 위대한 항해가이자 탐험가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이 여정중 자신의 여행일지를 남겨 후대까지 전해지는데, 초반에는 그럭저럭 정상적인 내용이지만 뒤로 갈수록 사직, 퇴청의 파자가 난무하는 등 징징거림이 강해진다고 한다. 심지어 희망봉의 세 곶은 '사직 윤허 희망'을 비튼 '사허, 윤직, 희망'으로 정하기까지 한다. 자신의 호인 압구갈매기와 친하다는 뜻인데, 이름 때문인지 바다와 자꾸 엮이자 스트레스를 받아 짱돌로 갈매기를 맞춰 죽이는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후대에는 조선 전기 제일의 위인 중 하나로 남으며, 코가 꿰어 억지로 일한다는 뜻의 '한명회 배타듯 한다'라는 속담으로도 알려진다.
본 역사에서 수양대군의 편에서 수많은 반대파를 도륙한 인간백정. 여기선 수양대군이 현대 군사 훈련법을 본따서 만든 훈련도감의 1기 인원으로 편제되었으며, 출세욕이 있어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덕에 우수한 도감군으로 남는다. 그러나 계속해서 추운 북방 영토를 떠도는 것에 지쳐 잔꾀로 위기를 벗어나고 전역하려는 습관을 갖게 되었는데, 그게 도리어 '위기상황을 기발한 발상으로 격파하는 유능한 장졸'로 평가받아 온갖 전선을 떠도는 백전노장으로 성장한다. 야인여진 세력을 상대할 때는 도감병의 단련된 근육을 과시해 야인들의 전의를 꺾는 근육겁박지계를 선보이고, 대만 원정 중에는 토인의 잠복전술을 간파하기 위해 온 몸에 쑥물을 발라 열대우림에 녹아드는 위장을 시작으로 위장복 개념을 최초로 발명하게 되면서 전쟁사의 흐름을 바꾼 위인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그가 참여한 전선만 만주, 대만, 일본, 남미[22]에 인도와 중동에도 다녀왔으니, 유럽을 제외한 세계 전체를 돌아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렇듯 본래의 역사와 달리 외세무리를 도륙하며 조선의 위명을 드높였으며 후세에도 위대한 장수로 기록되지만, 정작 홍윤성 본인은 과도한 업무로 인해 기분과 상관 없이 어명만 들으면 웃음이 나오는 병에 걸려버렸다.
젊은 시절 두각을 나타낸 천재인데, 수양대군이 입신체비와 함께 도입한 현대식 교육법을 배운 사람들에 밀려 소과에 합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조건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앉아 달달 외우는 조선식 교육법을 배운 천재가 충분한 영양 섭취,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인 구획학습과 반복학습, 충분한 휴식을 통한 기억, 입신체비와 접목된 상벌 제도 등 현대식 교육법을 배운 범재만 못한 것. 이후 입신체비를 배우고 관직에 오르는데, 친구 한명회가 뛰어난 항해사가 되었다면 김시습은 대 북방 정책의 전문가가 된다. 말년에는 북방을 오가며 시베리아 원주민과 몽골 및 여진인들의 풍습을 기록하였고, 덕분에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일흔 살에 백두산에 오른다고 청하고 실종되었다고 한다. 근육조선 특유의 사직을 윤허하지 않는 관료 혹사에 지쳐 도망친 것으로 추정되었고, 작가의 언급으로 도망친 것이 맞다고 확정되었다.
  • 우공
본 역사에서 무과에 급제하고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장수. 수양대군의 소문을 듣고 힘자랑을 하다가 허리를 삐끗해버린 뒤, 어떻게든 재활을 하려다 극심한 염증에 고통받다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악순환 끝에 급격하게 살이 불어버려 온몸이 망가져버린다. 보다못한 상관에게 파면당한 것을 서산군이 수양대군에게 천거하고 수양대군의 현대식 재활 훈련을 거친 끝에 재활에 성공한다. 이후 수양대군의 세 번째 제자가 되지만 오랜 방황동안 몸이 너무나 망가져 다른 두 제자와 같은 경지의 입신체비는 불가능했고, 대신 자기와 같이 부상을 입은 사람을 돌보는 재활의로 나서게 된다. 말년에는 재활학을 완성한, 조선에서 으뜸가는 명의가 된다.
세종에게 가장 심하게 갈려나가던 공돌이. 얼마나 혹사당했는지 수앙대군이 찾아오는데도 온갖 그림과 글이 그려진 한지 뭉치에 뒤덮인 책상 위에서 기절하다시피 곯아떨어져 있었다. 이후 수양대군이 세종을 빡시게 운동시킬 거라는 말을 듣고는, 안 그런 척 하면서도 너무나 좋아하며 운동기구를 만드는 데 전력으로 협력한다. 그 공적으로 1년간 휴가를 받지만 고향에서 친구와 술자리를 가지던 중 우연히 상한 청어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여기에서 세종이 내준 과제를 떠올려내 청어를 낚아내는 즉시 배 위에서 가공이 가능한 크레인을 이용한 낚시배를 만들어내는 참된 공돌이. 이 일종의 트롤 어선은 정화의 대원정에 사용한 대선을 만든 명나라의 방길주가 보고 조선으로 이민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고, 더 나아가 조선이 해양으로 진출하는 초석이 된다.
따로 입신체비를 하지 않았는데도 50대에 웬만한 장정보다 체력이 뛰어난 무장. 입신체비를 몸소 체험해보고 훌륭한 가르침이하 평하면서도 군사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게 여기며, 이 탓에 열받은 수양대군이 현대식 훈련법을 적용한 군대인 훈련도감을 창설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본의 아니게 어그로를 끈 것과는 별개로 청렴결백의 표본과도 같은 장수로, 이 때문에 적당히 부패한 장수인 형 이징석과 관계가 껄끄럽다. 이만주 토벌 때 이징석은 포로나 말 등을 팔아넘겨서 적당히 이익을 보려 했으나, 이징옥은 모조리 원칙대로 처리하는 데다 전공도 더 많이 세우는 바람에 형이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이러한 성정덕에 조정에서도 신뢰가 깊어 북방개척을 맡기는 것은 물론 국제정세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군사관련으로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다만 워낙 융통성이 없어서 기만전술에 능통한 야인여진과 상성이 좋지않은 모습을 보인게 흠이라면 흠.
25세에 벌써 비만으로, 수양대군이 만든 사대부 입신체비 열풍에도 크게 신경쓰지 않다가 수양대군이 직접 명나라로 끌고 가 데리고 다니면서 운동을 시키는 바람에 수양과 진성 헬창이 되버린 집현전 일행 사이에서 끝없이 고통받다 결국 본인도 삼대 오백근을 들어올리는 어엿한 입신사대부가 된다. 원래는 배신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로 기록되다보니 수양대군도 은근하면서도 대놓고 굴렸으나, 통역 겸 외교관으로 오랜 기간 같이 다니다보니 정이 들어서 친구 관계가 된다.
  • 하위지
본래 사육신의 일원. 사가독서를 하면서도 입신체비에 빠져 수양대군의 눈에 든다. 결국 수양대군 밑에서 입신체비사가 되며, 제자들 중 가장 학식이 뛰어나 입신체비의 학문적 기반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 이개
공조 출신으로 수양대군과 함께 명 사행을 다녀온 인물. 그 이후 공조판서 정창손과 의견이 맞지 않아 한지인 개성에 있었다. 개성에서 도량형을 통일시키는 업무를 맡았는데, 엄청난 독종에 일 중독자로 조선에 반감을 강하게 가진 개성의 도량형 중 무게 단위나마 통일시키는 데 성공한다. 도로 확장과 교량의 중요성, 공공근로에 대한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 문종의 눈에 들어 쾌속 승진한다.
청렴결백한 성격 덕분에 형무소 부소장으로 취임, 양반 죄수들 때문에 넘어온 뇌물들을 모조리 거절해 버리며 문종의 인물안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 홍일동
홍길동전의 모델인 실존인물 홍길동의 이복 형으로 호는 마천. 본래 역사대로라면 홍길동을 의붓동생으로 둔 것으로 끝나겠지만 수양대군의 영향으로 사대부들 사이에서 입신체비가 널리 퍼지자 이에 심취하여 동생과 사이가 원만하다 못해 함께 입신체비를 행하는 것은 물론 서얼로 태어나 제 뜻을 펼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좋은 형이 되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삼 대 칠백오십근(480kg)이 가능한 건장한 육체의 소유자로 열 사람 분의 식사를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는 대식가인 동시에 절육을 위해 볶은 콩을 잔뜩 넣어 걸쭉한 미숫가루만 계속 먹어도 멀쩡한, 기이하고도 입신체비에 특화된 식습관과 체질을 지니고 있다. 조정의 명으로 북방 개척을 위해 거양현으로 부임하게 되자 가문의 부흥과 동생의 면천을 위해 의욕을 불태우나, 인성과 별개로 워낙 추진력이 강한 대장부 체질인 동시에 주변에 무심한 경향이 있는 마이페이스인지라 다소 대책없이 일을 추진하여 동생인 홍길동과 먼저 부임해있던 부관 홍윤성에게 끝없는 고통을 안겨준다. 하지만 몸소 밭을 일구거나 동생으로 의압을 구사하며 육체를 과시하는 동시에 평소 즐겨 섭취하던 미숫가루가 북방유목민들의 전통 음식인 미스가라와 유사한지라 힘을 숭상하는 야인들의 마음을 휘어잡았고 결과적으로 북방개척에 큰 공을 세웠다.
한명회, 구성군과 함께 아프리카 항해에 나섰던 인물. 그 이전에 서출을 면하기 위해 솔빈(현 우수리스크)으로 발령받았는데, 발령지에서 어떤 처녀를 임신시키는 바람에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출세길이 막혀 있었다. 구성군 빽 정도로 출세하는 건 턱도 없고, 수양대군은 유자광의 존재에 대해서도 몰랐고, 근육조선의 과거는 원래보다도 난이도가 폭증했으니 결국 출세길이 완전히 막혀 있는 상태다. 결국 한명회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압구정이라는 주점에서 바지사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후 수양대군의 조언에 따라 한명회의 후임자가 되어 전 세계를 구를 운명에 처해진다.
수양대군이 추천한 한명회의 후계자 중 하나. 다만 후대에 간신으로 평가받고 있어서, 수양대군은 '삿된 욕심을 가지지 마라'고 충고한다. 실제로 아즈텍에서 황금을 보고 눈이 돌아가 원주민들을 착취하며 빼돌리다가 현지인들의 조선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켜 스페인이 중미를 장악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는 대형 트롤링을 저지르고 남은 평생을 형무소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후대에는 나치 독일의 금괴마냥 임사홍이 빼돌린 황금 일만 근 이상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도시전설이 내려져 오지만 김구가 평하길 "일만 근의 황금이 있었다면 사십 년 넘게 형무소에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수양대군은 사관으로 일하는 김종직의 이름을 들었으나, 조선에 빙의한 지 너무 오래돼서인지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정도로만 반응하고 지나간다. 이후 멋대로 입신체비 규정을 만들고 이를 지키지 않는 자를 은근히 비판하는 조의제문을 썼다가 유자광에 의해 탄핵당한다.

5.1.1.3. 기타

  • 상원사의 스님
토목의 변때 처음으로 겪은 진짜 전쟁과 살인의 후유증을 불공으로 달래기 위해 전국 각지의 절을 방문하던 수양대군이 동행하고 있던 효령대군과 잠시 관상을 가지고 농담따먹기를 하던 중, 돌연 본래 일정이였던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진로를 바꾸며 만나게 된 스님. 갑작스럽게 변경된 일정이지만 본래 역사에서도 세조가 된 수양대군이 말년에 찾아와 불상을 만들어 공양을 올린 곳이기도 해서 흥미가 동해 흔쾌히 따라가게 된다. 동자승의 안내를 따라 효령대군 다음으로 들어간 수양대군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를 두고 일컬어 왕이 될 상, 독선적인 성격, 그리고 조카와 벗을 해칠 관상이라고 평하는 동시에 이 있어 모든것이 변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꺼낸다. 빙의자였던 수양대군이 이에 잠시 경악하다가 허를 찔러본다고 궁예 코스프레를 하고 문짝을 부수고 들어가보니 알 수 없는 쪽지만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있었다.
기이한 것은 다음날 함께 갔던 효령대군에게 이야기를 꺼내니 정작 효령대군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수양대군 본인도 직접 이야기도 나누었던 스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여러모로 신비롭기 그지 없는 인물. 후일 2부에 등장하는 이지함이 이 스님의 속성을 일부 이어받는다.
  • 흑우
에센 타이시의 동생인 마오나하이가 타고 다니던 검은 한혈마. 마오나하이가 무모하게 돌격하다 수양대군의 활에 의해 사망하자, 격노해 달려들지만 제압당한다. 수양대군이 마오나하이를 정중히 납관하는 것까지 보이자 수양대군에게 복종하게 되었는데, 워낙 덩치가 큰 말이라 100kg가 넘는 수양대군의 체구도 태우고 다닐 수 있었다. 나이가 들자, 고향이자 마침 우호 국가인 티무르 제국에 보내져 편히 여생을 보낸다.
홍일동의 동생으로, 서출에 천출이라 딱히 하는 일 없이 전라도의 가문에서 마름이나 서리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형 홍일동이 동생을 면천시키기 위해 북간도 지방의 거향현 현령으로 발령받고, 홍길동은 매우 직선적인 성격의 홍일동에게 이끌려 같이 북방으로 오게 된다. 여기에서 나름의 상재와 잔머리를 발휘하여 황무지나 다름없던 거양현을 나름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고, 그 경험을 살려 율도라고 이름지은 사할린도 개척한다. 북방에서 쌓은 나름의 인맥으로 율도상회라는 상단의 주인이 된다. 다만 그의 최종 목표는 부나 입신양명이 아니라 자기 소유의 땅을 얻어서 편하게 노후를 보내는 것. 율도상회는 계속 발전해, 2부 시점에서는 조선 최대의 상단 중 하나로 언급된다.
  • 최 생원
배제당에서 수학하던 유생 중 한 명. 한명회, 김시습 등과 같이 대과에 응시할 당시 "왜인은 통제해야 한다, 통제는 근육이다, 나는 근육을 통제했다, 그러니 왜인도 근육하면 충분하다." 라는 전설적인 오답을 써서 떨어졌는데, 이후 배제당의 다른 동문인 윤사철 등이 이 말을 인용하기 시작하면서 후대에는 아예 근육이란 단어를 참교육과 같은 뜻으로 널리 정착시킨 시조가 되어버렸다.
  • 변 서방
경상도 영덕에 살던 농민으로써, 수양대군의 제자 출신인 박 생원이 높게 평가할 만큼 뛰어난 육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형편상 학문이랑 입신체비를 배울 엄두도 못 내던 가난한 농민. 하지만 그의 소유인 땅에서 구리 맥이 발견되고 이 땅을 조정이 매입하면서 형편이 급격히 피게 되자 자식들의 신분 상승을 꾀하게 된다. 이후 2부에서 그의 아들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언급되는데 큰아들은 말단 한직을 전전하며 살았지만 작은아들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아버지를 구하고자 맨몸으로 맞서 싸워 두 팔을 잃는 대가로 호랑이를 물리쳐 효자라 칭송받으며 명예직도 받고 제법 괜찮게 살았다고 한다.

5.1.2. 명/만주/몽골


수양대군은 토목의 변을 어찌어찌 막아보려고 했으나, 조선이 조공으로 바친 시험생산용 보총 때문에 자신감을 얻은 명이 예상보다 빠르게 몽골을 도발하면서 결국 토목의 변은 역사보다 1년 일찍 일어나게 된다. 정작 보총은 크게 만들면 더 강할 거라는 믿음 하에 실전에서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무겁게 만들고, 비리로 인해 실사격은커녕 사용 방법 교육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엄청난 생산력으로 미친듯이 만들어 국경지대까지 여기저기 뿌려버리니 에센 타이시가 이게 화약무기라는 것을 깨닫고 대응훈련을 하는 바람에, 결국 수양대군의 의도와는 반대로 보총 때문에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

토목의 변 이후 명은 요동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편입시키려 대대적인 사민정책을 펼치고, 대신 요동에 살던 여진족은 모조리 몰아낸다. 그리고 송화강 서쪽까지는 조선의 영역권이 되는데, 강한 자를 숭상하는 유목민의 특성과 왕까지도 입신체비를 하여 매우 강해진 조선의 특징이 맞물려 조선이 여진을 완전히 흡수해 버린다. 새로 섬기는 왕은 웬만한 부족장 따위는 뺨칠 정도로 힘센 장수에, 입조 후 새로 할 일이라고는 아직 적대적인 부족들을 평소 하던 대로 털어버리라는 신나는 것인데다, 그 과정에서 웬만하면 조선이 뒷배를 봐 줄 것이고, 조선에서는 자기 후계자들을 데려다 교육시키고 관직도 내려 준다. 여진 입장에서는 입조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반면 요동은 정통제의 어설픈 배려 때문에 남방에서 억지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적응하지 못하는데다 대규모 수해까지 입자 행정 체제가 붕괴한 무법지대가 되어버린다. 관료들조차 자신의 공적을 위해 주민들을 죽여 여진이나 몽골 도적이라고 수급을 보내는 판이다.
대만은 조선에 양도된다. 조선의 이간책으로 일본 왜구들이 남경 근처까지 약탈을 나가게 되자, 골치를 썩던 명에서는 조선의 해군으로 왜구를 소탕하려 한다. 조선에서는 이 참에 대만을 양도받아 해군 기지로 사용하게 된 것. 초기에는 대만 원주민들과 마찰이 있었으나, 점차 원주민들을 동화시키고 아예 구르카처럼 운영되는 임해도감이라는 특수부대를 운용하기까지 한다.
역사에서처럼 몽골에게 포로로 잡히는 굴욕을 맞는다. 에센 타이시가 급박하게 후퇴한 이후 태상황이 되어 돌아오는데, 원 역사와 달리 별궁에서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살다 동생 경태제가 병사한 이후 아들인 영덕제의 섭정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책에 대해서 잘 모름 + 어중간한 위민정신 + 토목의 변 이후 주변 공신들에 대한 불신 때문에 요동 정책을 망쳐 버린다. 농업 위주로 굴러가던 요동에 갑자기 10만 명이 넘는 상인과 공인들을 보내고, 이들은 해본 적도 없는 농사와 개간에 시달리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조선으로 탈주하거나, 도적이 되어 버린다.
명의 환관은 거시기를 완전히 잘라내기 때문에 소변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고, 이 때문에 항상 오줌 지린내가 배는 문제가 있어 수양대군이 조공으로 가져온 향석감에 환장한다. 그래서 명 순회를 떠나는 수양대군에게 극진한 대접을 해 주고, 조선에 대해서도 여러 편의를 봐 준다. 결국 실제 역사대로 토목의 변 와중 장수 번충에게 살해당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원래는 철퇴로 사망했지만, 여기에서는 모든 사태의 원흉이 된 비누로 팼다는 것 정도. 토목의 변 이후 그의 깨진 두개골은 정통제가 변소 속에 던졌다. 이후 그의 일가가 멸족되고 축적한 재산들은 모조리 몰수되었는데, 어찌나 부를 축적했는지 예산 부족이 해결될 정도였다고 한다.
토목의 변이 끝나고 정통제가 책임을 지고 태상황이 되어 물러난 뒤 즉위한 황제. 왕진과 정통제가 망쳐놓은 나라 꼴을 어떻게든 되살리기 위해 몰수한 왕진의 재산을 처분하면서 예산을 확보하고, 북방 민족의 통제력을 상실하자 굳이 되찾으려 하지 않고 조선에게 영토를 하사하며 동시에 북방 민족에 대한 관리 책임도 떠넘긴다. 토목의 변에서 두각을 드러낸 조선을 은근히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병약한 몸 때문에 후손을 남기지 못한 상태로 그만 병사하고 만다.
  • 영덕제
정통제의 아들이자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붕어한 경태제의 후임 황제.[23] 즉위 당시 8살인지라 태상황 정통제가 섭정이 되었고 시간이 흘러 정통제가 승하한 뒤 본격적으로 통치를 시작한다. 조선에 대해서는 상국을 잊지않고 충실한 조공을 보내는 충직한 번국이라 생각해 상당한 호감을 표하고 있으며 경인년에 조선에서 환학이 올라와 일본의 정세를 낱낱히 고하자 대노하여 백규를 파견, 조선의 큐슈 정벌에 아낌없이 지원을 보낸다. 이후 조선이 큐슈를 바치고 백규가 자신의 실책을 밝히면서까지 홍윤성의 맹활약을 보고하자 매우 흡족해하며 그에게 직책을 하사하는 장계를 보내고 홍윤성도 뛸듯이 기뻐하지만, 문제는 그 직책이란 것이 황실의 지원이 끊기고 북방의 땅에서 야인으로 전락한 주민과 군벌이 활개를 치어 사실상 통제를 상실한 요동이었다는 것. 안타깝게도 영덕제 본인은 환관과 전임 요동 담당자들이 말을 맞추어 요동의 참상을 속여 보고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 백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일어난 경인년 전쟁 당시 명에서 파견한 감찰관으로 조선군의 강성한 모습을 보고 감탄하였고 이후 홍윤성의 부대에 합류한다. 당시 홍윤성의 부대는 호시탐탐 침입을 시도하는 시노비를 찾기위해 군영 주변의 거수자를 닥치는대로 수하하는 등 바늘 찌를 틈 없는 철통 경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시끄러워 잠을 못자겠다고 야간 경비를 줄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명을 내린다. 그러자 시노비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잠입해 백규를 암살하려 하지만, 다행히 홍윤성이 들어와 구사일생한다. 이후 가벼운 경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본인은 아니라지만 실책을 저지른 것이 된 홍윤성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폭주하고 만다. 그렇게 근방의 일본군을 모조리 갈아버리는 홍윤성을 보고 경탄하는 마음 반, 자기때문에 피해를 본 것에 대한 미안함 반으로 황제에게 보고할 장계에 홍윤성의 활약상을 상세히 작성하는 것은 물론 황제의 어전에서 당시 자신의 실책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이 장계를 보고 감탄한 영덕제가 홍윤성에게 직접 직책을 하사하게 되었고 홍윤성의 은인이 될...뻔 했지만 그가 발령된 지역이 통제를 상실한 요동 땅이라서 결과적으로 그를 또다른 지옥으로 몰아넣은 원흉이 되었다
조선과 몽골, 명 사이에서 정치적 줄다리기를 하는 교활한 인물. 셋 모두에게 어중간하게 잘못된 정보를 넘겨 주면서, 몽골과 조선 중 누가 이기든 패자의 뒤통수를 칠 생각을 하고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몽골이 조선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 충샨이 조선의 뒤통수를 쳐 여진이 조선의 영향권에서 독립하는 것이었으나, 반대로 몽골이 명을 박살내고 조선에게 깨지면서 계획이 모조리 틀어지게 된다. 결국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명이 요동에 주민을 이주시키며 요동이 여진의 세력권에서 벗어나게 되고, 결국 여진은 조선에 완전히 흡수되는 운명을 맞는다. 게다가 그의 부족은 배신자로 낙인찍혀 여기저기 치이다 마찬가지로 조선에 귀부하여 원동산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청 태조 누르하치의 선조인 충샨이 조선에 귀부함으로써 청나라의 건국은 이 시점에서 물건너갔다.
원래 역사에서는 1467년에 어쩌다 보니[24] 토벌되었지만, 여기에서는 조선의 숙적 중 하나로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토벌작전 하에 토목의 변이 일어나기도 전에 처단당한다.
오이라트의 지도자로, 능력은 출중하지만 황금씨족(칭기즈 칸의 직계 후예)이 아니라 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인물. 토목의 변으로 명군을 대패시키고 정통제를 포로로 삼는다. 그러나 남경 일대에서 징집되어 올라온 수십만의 물량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타이순 칸이 사망했다는 소문을 듣고 후퇴한다. 이후 혈통은 있으되 실적이 없는 타이순 칸을 압박하며 칸의 자리를 노리지만, 타이순 칸과 협력한 조선에 의해 패배한다. 이후 몽골은 에센 타이시 파와 타이순 칸 파로 나뉘어 내전에 들어서며, 에센 타이시가 사망한 이후 오이라트 계열은 서쪽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 타이순 칸 토크토아부카
현재 몽골의 대칸. 황금 씨족 출신으로 에센 타이시가 명을 공격하는 동안 그 또한 조선을 박살냈어야 정상이나, 조선군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오히려 박살난다. 불공정한 조건이나마 화친을 맺고 세력을 어느 정도 보전하지만, 정작 본인은 근육 괴물에게 조리돌림당해 뇌진탕에 걸린 악몽[25] 때문에 알콜 중독에 걸려버린다. 이후 에센이 죽고 권력이 안정화되자 장남한테 대칸 직위를 물려준 뒤 다른 아들인 바얀 뭉케[26]를 데리고 투메트부로 내려가 조용히 말년을 보내게 된다. 알콜 중독도 고쳤다. 후대에는 근육요괴에게 지혜를 받아 투메트부를 부흥시킨 위대한 칸으로 묘하게 미화된 평가를 받게 된다.
  • 방길주
정화의 7차 대원정 때 보선 제작에 참여했던 선박 기술자. 이후 명이 해금령을 내리고 선박 산업이 쇠퇴하자, 의욕을 잃고 작은 고깃배나 만들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수양대군을 만나 다른 기술자들과 함께 조선으로 이주한다.
  • 여국강
방길주가 만들었던 함선을 운용했던 선원 출신의 노인. 정통제와 서유정의 실정 때문에 요동으로 끌려와 농사를 짓고 있다가, 한명회 덕분에 방길주가 조선에서 함선을 만들고 있고 이 함선을 조선에서 어설프게 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같이 끌려온 장인/상인들과 함께 배를 만들어 탈출한다. 뛰어난 선원으로서 조선에 항해 기술을 전수하고, 덕분에 조선은 본격적으로 바다로 뻗어나갈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방길주가 데려온 사람들은 나름 실력있는 장인들이라 조선의 물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자신과 인연이 닿았고 나중에 항해에도 함께한 한명회와 매우 친하여 사돈 관계를 맺는다.
  • 아구지
여진의 족장 중 하나로, 충샨의 아버지인 아이신기오로 먼터무의 7촌이다. 조선은 먼터무가 배신당해 죽은 것에 대한 복수를 명분삼아 여진족을 흡수할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아구지는 애매하더라도 나름의 친척 관계[27]인지라 조선에서 이를 이용해 여진을 복속시킨다. 이 공로로 문종에게 정충렬이라는 이름을 받고 경원부의 만호가 된다. 이후 수양대군의 일본행에 따라가고 대양도(대만) 개척에도 참여하는 등 여진족의 대표 역할을 한다. 사후에도 가문은 계속 번창해, 여진족의 대표 가문으로 자리잡는다.
  • 정진영
정충렬의 아들. 배재당에 들어간 여진족장들의 아이 중 하나로써 당당히 빈공과에 합격하여 금의환향한다. 이후 큐슈 정벌 당시 여진족 부대의 지휘관으로 참전한다. 작가는 부정하지만 부하 중 하나로 조상해가 나오고 일본인 중 심영을 모티브로 한 인물도 나오는 걸 보면 아무래도 모티브는 이 정진영인 듯.

5.1.3. 일본


일본을 분열시키려는 조선의 계략에 따라, 인삼 씨앗을 대규모로 불하받는다. 그러나 토질과 기후의 문제 때문에 인삼은 제대로 자라지 않고, 땅은 땅대로 황폐해진다. 이 때문에 식량이 부족해지자 명에 나가 닥치는 대로 해적질을 하는데, 이에 분노한 명나라의 명을 따른 조선군에 의해 토벌당한다. 이 전쟁에서 패배 후 규슈 지방을 조선에 할양하는데, 미래를 알고 있는 수양대군이 금광, 은광이 있는 알짜배기 땅을 모조리 선점해 버린다. 규슈는 1900년대 초에 일본에 반환되었다.
정계에서 은퇴하여 스님 행세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은퇴 후 배후에서 가문을 통제하던 노인. 그러나 수양대군은 이미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에 그를 엿먹이는 방향으로 행동해 버리고, 수양대군의 파천황적 행보 때문에 화병을 얻어 사망한다.
이 시기에는 나이 17세의 청년이고, 실 역사와 마찬가지로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예술에만 관심이 있다. 수양대군의 힘과 안평대군의 예술 실력을 보고 홀딱 반해 조선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낸다. 특히 안평대군의 실패작 중 하나인 낙양시전도[28]를 보고 좋아하며, 이 그림이 금과 같으니 그에 걸맞는 절인 은각사를 지어 모셔놓겠다고 한다. 이후 조선이 뿌린 인삼 씨앗에 대한 대가로 일본서기 등 고문서를 필사하도록 허락해 주고, 탐광자[29], 대장장이, 어부 등 기술자들도 보낸다. 그러나 인삼은 씨앗만 보내고 정작 중요한 키우는 법을 알려 주지 않아 더덕만도 못한 삼이 되었고, 일본은 인삼에 대한 탐욕 때문에 갈라지게 된다.

5.1.4. 유럽


오스만의 술탄. 약간 살집이 있는 젊은 나이지만 술탄으로서의 위엄이 충분하고, 냉혹하고 독선적이며 교활하지만 언제나 나라의 이득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명군. 수양대군의 탄탄하 육체와 자신의 친위대인 예니체리와 호각인 조선의 호위병들을 보더니 이들을 영입하거나 기술을 빼내려 한다. 그러나 수양대군도 이를 예상하고 있어 기존 조선에서 사용하던 최신식 보총은 베트남에 넘겨 주고 구형 화포를 받아 온 상태였으며, 군사 전술 대신 참호격투 정도만을 가르쳐 준다. 메흐메트는 수양대군의 행동을 보고 답례로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는데, 수양대군은 단순한 금은보화 대신 학자와 작물의 종자들을 요청해 메흐메트를 감탄시킨다.
이후 조선과 유럽을 잇는 홍삼 중개무역으로 큰 이득을 얻으며 유럽 전체에 위협을 가하는 강대한 세력으로 부상하는데, 자신의 행적을 숨기느라 피렌체 등에서 보내 온 편지를 위조하다가 아프리카 항로를 개척한 한명회에 의해 위조임이 들통나 조선에 의해 견제와 보복을 당한다.[30] 조선의 함대에 의해 항구가 작살나자 메흐메트는 화병을 얻어 사망하고, 아들 바예지드 2세가 예상보다 빨리 술탄이 된다.
  • 카심
수양대군의 요청으로 조선에 파견된 오스만 제국의 학자 중 하나. 조선에서는 가심이라 불린다. 그 외에도 자파(자배), 핫산(하산) 등이 언급된다. 이 학자들은 과학 전담 기관인 이현전에서 3대 강산, 현미경, 유리 등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력을 자랑하던 이슬람의 기술을 그대로 도입해 조선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다. 메흐메드 2세가 피렌체 인들은 물론 자신들에게까지 위조된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신성한 코란의 문자를 더럽혔다 하며 격분하여 오스만으로 귀국할 생각을 접고 조선에 눌러앉기로 결심한다.
이 중 화학자인 자배는 수은 중독으로 45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며, 류성룡의 세대에는 그 증손자가 이현전에서 일하고 있다.
안평대군이 유럽을 방문할 당시 교황. 안평대군을 만나고는 조선을 대 오스만 동맹에 끌어들이고자 적극적으로 나선다. 물론 조선과 안평대군 입장에서 응할 이유는 없었지만 덕분에 구텐베르크를 만나고 서양 예술가들과 교류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인쇄기의 발명자. 푸스트에게 채무를 쓰고 인쇄기를 저당잡혀 곤궁하게 살고 있었던 것을 안평대군이 도와주고 조선으로 스카웃해간다. 세종대왕한테 구단배(具端培)라는 조선식 이름을 받고 조선의 실정에 맞는 인쇄기를 개발하게 된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상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안평대군의 몸을 보고 감탄하며, 수양대군에 대해 듣자마자 그건 이상적인 몸이 아니라 근육 덩어리라고 깐다. 나중에 수양대군은 그 말을 전해듣고서는 괜히 안평대군을 갈군다. 또한 안평대군의 몸을 본 피렌체 학파의 일원들이 배움을 주고받아 경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조선으로 향한다. 이들은 나중에 피렌체로 돌아오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입신체비를 하는 건 그들뿐이다보니 입신체비의 전통은 서서히 사라져 입신체비 비슷한 어설픈 단련법만 남는다. 대신 이 예술가들이 나중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가르치고 그 가르침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에게까지 이어져, 다비드 상과 피에타가 각각 근육빵빵한 다윗과 극한의 커팅을 거친 예수로 바뀌어 버린다.

5.1.5. 아프리카


  • 레무아니
한명회를 따라온 마사이족 청년 중 하나. 조선말로 내모아라는 이름을 받았다. 수양대군에게 에티오피아에 대한 정보를 귀뜸받고 훗날 아프리카로 돌아간 뒤 부족들을 통합해 마사이국을 세우고는 북상하여 솔로몬 왕조와 접촉, 동맹을 맺게 된다. 이렇게 성립된 솔로몬 제국, 먼 훗날의 솔로몬 연방국은 동부 아프리카 전체를 지배하는 강대국이 되었고, 당연히 조선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 레무아니의 출신 부족인 마사이는 이 연방의 핵심 세력. 솔로몬 제국은 삼한석이라 이름붙은 탄자나이트 채굴, 그리고 조선/유럽 양측과 사이가 좋지 않은 오스만을 대신해 동서방 중계무역으로 부를 쌓는다.
원래는 무식 그 자체였던 17세기의 유럽 선원들이 재미로 사냥한 끝에 멸종했으나, 근육조선에서는 왕손이 직접 항해를 나선데다 선원들의 성향도 온건한 편이라 한 번 사냥한게 전부였고 그마저도 맛을 본 조선인들이 맛이 끔찍하다고 진상용으로나 몇 마리 데려가는 바람에[31] 멸종을 피했다. 또한 사람을 겁내지 않고 다가오는 경계심 없는 모습과 극락도(모리셔스)에서 유유자적 사는 새라고 하여 이름도 안양(安養)조로 바뀐다. 역사가 바뀐 이후에도 극락도의 생태계가 파괴되어 멸종에 가깝게 절멸하기는 했지만, 근육조선의 현대에는 일부가 박물관에서 살고 있다.

5.2. 2부



5.2.1. 조선



5.2.1.1. 신료

2부 주인공으로, 정확히는 유성룡에 빙의한 현대인 김성원. 본래 직업은 전통 건축 관련인데, 야근을 하던 도중에 1부 주인공인 영직이 바꾼 세계선이 적용되면서 유성룡에 빙의하게 되었다. 역사에 대해서는 딱히 공부한 게 아니라 일반 상식 정도, 거기에 전통 건축을 하며 배운 것 정도만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시의 명신들을 줄줄이 친구로 사귀면서도 유명한 인물 몇몇이 아니면 별 감흥이 없는 모양. 영직과는 친구 사이라서 틈만나면 씹어대고 있으나 2부 중반까지 수양대군이 영직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조선을 부강하게 만든 수양대군은 어떤 대단한 사람인지 몰라도 영직이같은 놈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수양대군이 최영직이라 알아차린건 수양대군이 의도적으로 모순을 담아서 남겨둔 저작을 보고 눈치챘다고.
수양대군에 빙의한 최영직이 헬스 트레이너이자 식품영양학도로서 관련된 업적을 이루어냈다면, 유성룡은 본업인 전통건축을 살려 설계, 도시계획, 측량, 감리 등의 부분에서 발전을 이루어낸다. 최영직과 마찬가지로 아는 것은 많아서 일을 저지르고 보는데, 남을 갈아서 부려먹는 입장이던 수양대군과는 달리 유성룡은 본인이 갈리는 입장인지라 결국 본인이 일을 키워서 더 갈려나간다는 안습한 처지에 놓여 있다. 대표적으로 과거시험 당시 적은 답변[32]때문에 10년 뒤 필리핀에서 도시 건축 담당자로 선정되어 갈려나간 전적이 있다. 그 덕에 뛰어난 지식과 행동력을 인정받아 차기 영의정이 확정된 위치이지만, 당연히 사직을 윤허받지 못하고 더욱 곱게 갈릴 예정이다.
본래 현대에서도 운동을 싫어했던지라 과체중이었고, 헬창조선에 빙의되고 나선 어떻게든 입신체비를 피하려고 애썼지만 결국 본인의 선택이 그대로 돌아와서 조선시대 최고의 헬창인 이황, 조식, 이이에게 전신을 개조받아 본인도 헬창이 되버렸다.
특기사항으로 바둑을 매우 잘 둔다. 유성룡도 바둑을 잘 뒀고, 현대인 김성원도 웬만한 아마고수 수준으로 바둑을 꽤 두는 편인데다 조선 시대에 혼자서만 현대 바둑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니 동양 3국을 통틀어 적수가 아예 없다. 6명과 동시에 접바둑을 두면서도 여유가 있고 아예 귀신이 나타나서 바둑을 두지 않는 이상 조선의 내로라하는 기사들도 승률 20%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1부 시절 주인공인 최영직과 비교했을 때 좀 더 독하고 날카로운 성격이다. 왕족인 수양대군과 일개 관료인 유성룡 간의 입장 차이도 있겠지만 원래 인격인 김성원의 가장으로써의 책임감 하에 아픈 몸을 일로 혹사시키며 여유를 즐겨보지 못한 채로 닳고 닳은 여파가 더 큰 듯. 아직 성격이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전인 하급 관료 시절에도 자신의 정책으로 인한 약간의 부작용을 예상했음에도 '그것은 내 알 바가 아니다.' 라며 냉정히 선을 긋는 모습이 나왔고, 이후 본격적으로 짬 좀 먹고 나서는 화가 났을 때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며, 심지어는 피아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잔뜩 죽어나가는 전쟁터에 여러 차례 나갔음에도 수양대군과는 달리 별다른 PTSD 묘사 또한 없다. 1부 외전에서 이 성깔이 예고된 게 최영직이 수양대군으로서의 기억을 되찾았다는 것을 알자마자 내수린을 걸어,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느냐며 다짜고짜 파워 밤을 날려버린다. 하지만 인성에 큰 결함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기에 가족을 소중히 여긴다거나 자신의 화풀이에 휘말린 미츠히데한테 사과한다거나 제자들의 죽음을 믿지 못하며 슬퍼하는 인간적인 모습들도 자주 보여준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는 성품이 그나마 온화해져, 젊은 시절의 정책 수립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유운룡
유성룡의 형. 감정이 풍부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이다. 어렸을 때부터 닭의 품종개량에 관심을 보였으며, 유성룡의 추천으로 요리사로 진로를 정한다. 유성룡이 필리핀에서 돌아온 이후 휴가중일 당시 닭의 목이나 갈비같은 부위를 싸게 먹을 방법을 찾으라는 국왕 이연의 숙제[33]를 받고, 유성룡과 궁리하던 와중에 최초로 고추장과 닭갈비를 만들어낸다.
유성룡의 스승. 입신체비의 두 당파인 상체파의 수장 격 되는 인물로, 부모님께 물려받은 몸을 갈고 닦아 효를 드러내는 것이 입신체비이니, 가장 잘 드러나는 상체의 단련이야 말로 진정한 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성룡은 처음부터 입신체비에 관심이 없었으나, 이황은 이를 '너무 똑똑하다보니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입신체비에 흥미를 못 느끼는 것'이라 생각해 카누 등 여러 가지 운동으로 입신체비에 흥미를 느끼도록 유도한다.
유성룡이 아는 지식은 많은데 의외로 활용은 잘 못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었다.
유성룡의 장인어른. 입신체비의 두 당파인 하체파의 수장 격 되는 인물로, 효도는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니 겸손함을 갖추고 드러나지 않게 효를 행하는것이 옳다는 논리로 하체의 단련이야 말로 진정한 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상체파인 이황과는 평생의 라이벌 관계. 칼 찬 선비라는 원 역사의 별명과 달리 반으로 자른 대역기봉을 허리에 차고 다닌다. 유성룡이 현대 지식을 기반으로 풍구를 만들어내었을 때, 편하려고 만든 발명품이 오히려 백성들을 괴롭힐 수 있다[34]는 주변의 의견 덕분에 정쟁을 무릅쓰고 보급에 나서기도 한다. 덕분에 유성룡은 조식에게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조식이 사위를 삼고자 할 때 수락해 버린다.
당연하지만 유성룡이 장가간 조식의 딸도 튼튼한 하체를 지니고 있었기에, 스승덕에 상체만 단련하면 그만일줄로 알았던 유성룡은 부부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체도 함께 단련해야 했다.
유성룡의 직장 상사이자 동료. 입신체비의 당파에도 속하지 않고, 겉보기엔 마른 체구를 지니고 있어서 작품 초반 입신체비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어떻게든 근육에 갈려나가기 싫었던 류성룡이 동료로 삼고자 했던 인물. 다만 마른 체구는 페이크고, 근육이 잘 붙지 않는 체질이라 고민하던 중 벌크업(양생)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 극한의 절육과 분절을 하여 순수하게 압축된 근육 덕분에 체구가 작아 보인 것. 어쩌다 보니 이런 상체를 본 유성룡이 무의식 중에 이소룡이라고 중얼거린 것을 듣고, 자신의 별호를 소룡이라 정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던 유성룡을 이런 소룡식 입신체비의 동반자라 착각하며 쉴새없이 굴려서 유성룡은 결국 이황과 조식, 그리고 이이의 삼대 입신체비 비법을 모두 전수받게 된다.
어렸을 때에는 유성룡의 형 유운룡이 키우던 닭을 서리하다 혼나는 둥 철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서 급격히 진중한 성격을 지니게 된다. 친구인 유성룡이 자신의 건축학적 지식과 사람 병 걸리게 만드는 게임에서 익힌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병법서인 "수성전수방략"[35]의 초안을 우연히 보고, 탄도학에 눈을 떠서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 조선시대에 사격제원을 만들고 화포 곡사사격으로 저격을 하는 원 역사 이상의 먼치킨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 성격은 여기에서도 똑같아서, 병사들에게 얼차려로 스쿼트 200회를 시키면 자기도 모범이 되겠다며 옆에서 똑같이 하고 있고, 찌는 듯한 더위의 필리핀에서도 갑옷을 벗지 않는 지옥의 원칙주의자.
게다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성격도 그대로라, 작중 유성룡의 말을 빌리자면 "이순신을 상대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피해를 모면할 수 있지만, 이순신 기준으로는 보통 사람은 뇌수가 비어 있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라고 한다.
역사가 변하면서 20대라는 젊은 시절에 빠르게 관직에 출사하게 되었다. 강화도 훈도직에 정철, 유성룡과 같이 부임하게 되면서 친분을 쌓게 된다. 잡기에 능한지라 유성룡이 해결책을 못 찾고 막힌 부분을 해결해 주기도. 이후 유성룡이 거쳐간 파양군(현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수리가오 근처에 새운 항구도시)에 감무로써 부임하는데 남부 수리가오 호족들의 침공에 맞서 파양군 시가지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훌륭하게 격퇴하면서 시가전의 기초를 세우게 된다. 이순신과는 원 역사보다 이른 시기에 인연을 맺게 된 여파로 대등한 친구 사이.
원 역사에서는 이순신을 몇 번 모함한 일 때문에 평가절하되나 의외로 대 여진족 전문가로 능력 자체는 상당한 인물이었다. 여기에서는 원리원칙주의를 지키는 군인으로, 이순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순신은 원칙을 응용해 변칙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지만 이일은 그 정도는 아니라서 교과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면이 있다는 것. 스페인 원정대의 남경 공격(경진만란) 때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이각이라는 군인의 상관으로서 파직당하고, 추후 복직하지만 온갖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원 역사랑 마찬가지로 저돌적인 기병대장. 첫 등장은 이순신이 무과 급제 후 본격적으로 보직을 정할 때 스쳐 지나가며 몇 마디 한 게 전부고[36] 이후 한참 지나 큐슈편에서 유성룡과 함께 하주도로 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성미가 급하고 병사들을 조련할 때 당근보다 채찍을 선호하는 성향 탓에 유성룡의 우려를 산다. 아니나다를까 히데요시가 쳐들어와 전쟁이 한창인 와중 히데요시의 함정에 빠지게 되지만 다행히 최소한의 피해로 빠져나오고, 주의를 받고 나서는 적당히 사리면서 활약을 펼쳐 실수를 만회한다.
관료로 일하고 있었으나, 윤원형 사건과 연관되어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자 은퇴한다. 산가지와 주역을 이용한 점괘에도 심취하였다. 그런데 너무나 용한 나머지, 점을 쳐도 수양대군 빙의로 바뀐 인물에 대해서는 바뀌기 이전의 결과만 내어놓곤 한다. 유성룡이 빙의 후 처음으로 만난 역사적 인물이기도 하고, 유성룡을 여러 모로 도와 주는 삼촌같은 인물이자 아들의 스승인지라 유성룡이 각별하게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데, 사후 수양대군이 조선의 운명을 바꾸었음을 깨닫고 유령으로 나타나 유성룡에게 또 한 번 조선의 운명[37]을 바꿀 것을 주문한다.
  • 상이경
1부 당시 건너왔던 유럽 예술가들 중 상갈로 가문 출신과 조선 여인이 혼인하여 나온 혼혈 가문 비륜(佛倫, 피렌체의 음역인 비륜제의 줄임말.) 상씨의 후손. 서양 피가 1/8밖에 섞여있지 않지만 매우 서양인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첫 등장 당시 강화도 도호부사로써 훈도이던 유성룡의 일폭탄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처음으로 직면한 관리이기도 하다. 이 때 유성룡의 능력이 나름 인상깊었는지 이후 본격적으로 관직에 나선 유성룡을 밀어주기도 하였는데 덕분에 운 좋게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외국인 핏줄이라 그런가 외교 전담 부서인 외조에서 근무하며 판서까지 찍고 최신화 기준으로 우찬성에 재직 중.
권율, 유성룡과 함께 강화도 훈도에 부임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다. 원 역사처럼 글만 잘 쓰지 술 좋아하고 게으르고 까칠한 비호감적인 인물. 입신체비도 정말 체면치레 할 수준인 500근으로만 하면서 절육도 하지 않는다. 워낙 뺀질거리는 비호감 성격이라, 유성룡이 백과사전을 만들면서 지방의 술이랑 음식이나 먹으라는 의도로 백과사전에 대한 아이디어를 줘서 쫒아낸다. 마침 조정에서도 정철이 하는 짓을 좋게 보지 않았는지, 사고뭉치지만 작문은 끝내주게 잘하는 정철과 일은 못하지만 글씨는 기가 막히게 잘 쓰는 한석봉을 세트로 묶어 보내 버린다.
바뀐 조선의 군관답게 입신체비를 익히고 있었으나, 절육(커팅)을 하지 않아 근육돼지인 인물. 원래 역사처럼 뺀질거리는 성향에 남의 공을 강탈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 부패한 군관이라 언급된다. 우연히 원균과 만나게 된 유성룡이 원균을 어떻게든 처리하기 위해 캐틀벨로 저글링을 하는 걸 입신체비랍시고 가르쳐 줬는데[38], 그것을 자신이 새롭게 개발한 입신체비라고 자랑하면서 하고 다니다가 결국 유성룡이 북방에 있을 때 머리에 캐틀벨을 맞아 사망했다고 한다.
  • 고란
1부 외전에서 운명/위대한 명령에 등장하는 '백정 고란'으로 잠시 언급된 인물. 니탕개의 가문인 하마 니씨의 식객으로 있었는데, 류성룡이 외조부와 연이 있어 니씨 가문에 들렀을 때 비장[39]으로 추천받아 유성룡과 함께한다. 신체도 건장하고 서양 핏줄도 약간 섞여 있어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연상케 하는 외모라 유성룡이 만도라는 호를 지어주고 몸을 단련시킨다. 다만 머리가 나빠 글을 떼지 못해 무과 급제는 사실상 물건너간 상황이었는데, 뛰어난 무용을 본 이순신이 데려가 부장으로 삼는다. 덕분에 지독한 원리원칙주의자인 이순신 밑에서 죽을 고생을 한다.
  • 김지
원 역사에서 승자총통을 개발한 무관. 군기시에 소속되어 화포 연구를 하고 있다. 화약에 지나치게 심취하여 우연히 뇌홍을 발명하는 대신 손가락 하나를 날려먹은 화력덕후. 더 많고 강한 화포를 원하여, 수성의 전문가인 유성룡과 창-방패의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덕분에 조선은 원 역사에서의 천자총통이 현자총통으로 격하되고, 천자총통 위에 다른 포 등급이 추가되는 미친 화력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5.2.1.2. 왕실

  • 이호
유성룡이 관직에 진출할 시점의 조선 왕. 첫 등장 당시에 이미 50을 넘겼지만 여전히 무관급으로 건장한 몸을 지니고 있다. 유성룡이 소과 응시 당시 세필폭탄을 날려 예조 관원들의 혈압을 올릴 시절부터 유성룡을 주목하고 있었다. 유성룡의 대과 답안에서 지나치게 많은 재주가 드러난 탓에 이곳저곳 돌려 시험하고 갈고닦기 위해 일부러 장원을 주지 않는 결정을 내린다. 이후 세월이 흘러 자신이 늙고 세자가 장성하자 안정적으로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며, 대중 전략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이연에게 중국을 먹으려단 오히려 먹히니 차라리 중국을 분열시켜라라는 조언을 해준다.
  • 이연
이호의 장남이자 첫 등장 시점 세자. 나이가 차서 조금씩 국정에 나서기 시작했는데 아버지가 주목하는 인재인 유성룡에게 일을 맡겼다가 동궁전 지붕이 뜯기고 다시 지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이후 이호에게 양위를 받아 왕이 된다. 나이를 먹어 신중한 이호와 달리 아직 젊고 혈기왕성한지라 절육 기간의 삭막한 식단을 못 견디고 꼼수를 부려 닭갈비를 먹다 이균한테 걸린다거나 이호 앞에서 중국 정벌 의견을 내놓는다거나 하는 실수들을 저지르기도 한다. 다케다 가문에서 보낸 얼토당토않은 국서를 보고는 극대노해 용상을 들어다 집어던질 정도. 그래도 능력은 출중하기에 히데요시의 전략을 저 멀리 한양에서 귀신같이 예측하고 대비책을 수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의 언급에 따르면 선조보다 정치력이 좀 부족하고 자만심이 강하지만, 똑똑하고 책임감 넘치고 인격이 좋은, 선조를 근육적으로 개조한 완전체라고 한다.
  • 진해대군
이호의 아들이자 이연의 동생. 순수한 성품의 소유자로, 이 때문에 친구인 양반가 자제들이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알지 못하고 함께 사업에 참여하는[40] 등 순진한 모습을 보인다. 이후로는 마음을 잡고 유성룡한테 배우며 건축 쪽에 매진하게 된다. 나이를 먹고 장성하자 다른 대군들이 그러하듯 대명외교에 나서게 되는데, 유럽 원정대와 해적의 침공으로 남경이 위험한 와중 해적들이 들끓는 위험한 장강에서 정보를 수집해 지원온 조선 수군에게 넘겨주는 의외의 깡을 보여준다.
원 역사에서 선조가 되었던 사람. 원 역사의 개차반 성격은 여전한지라 개성 읍내에서 까불다가 임꺽정한테 얻어터졌다고 한다. 이때는 언급만 되었고 직접 등장은 세월이 한참 지나 유성룡이 장성하고 관직에 진출한 지 좀 되고 나서인데, 족친위에서 근무하며 조금은 정신 차린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다시 왕족에 복귀하여 역사대로(?) 예진원 대제학이 된다.
  • 영흥부정
금성대군의 5대손으로 남명 조식의 큰사위. 4대보다 더 아래이니 엄밀히 따지면 종친은 아니고 그냥 전주 이씨 사대부로써 때문에 관직도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아랫동서인 유성룡을 찾아와 조씨와의 결혼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충제로써 하늘소 애벌레를 준다. 이후에는 세스페데스의 입신체비 스승 중 하나로써 거쳐갔다고 언급이 된다. 특이하게 작중 이름이 전혀 안 나오고 관직명인 영흥부정으로만 나온다.
  • 영천대군 이숭
이호의 동생. 딱히 특출난 재주도 없고 나이도 이호랑 11살 정도 차이나는지라 별 존재감 없이 중국행 사신단의 얼굴마담이나 하며 지내고 있다. 그래도 일단 왕족인지라 3대 800근 정도는 칠 수 있을 만큼 건장하다는 듯. 이연이 왕위를 물려받고 진해대군 등 젊은 세대가 나서기 시작하자 존재감이 없다는 첫 등장 당시 소개문 그대로 잊혀져 버렸다.

5.2.1.3. 기타

관료로써 제법 승승장구하다가 김안로한테 탄핵당한 뒤 복권에 실패하자 상회를 차려 미주까지 진출하였는데, 미주 원주민들이 천연두에 대한 저항력이 없다는 것을 악용해 원주민들에게 천연두를 퍼트리고 주변 마을이 도망가면 사금을 캐내다 암행어사에게 걸려 거열형에 처해진다. 보통 죄인은 형무소에 갇히고 그보다 악질이면 대만의 유황 광산으로 가는데, 중간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사형에 처해진 것이니 반역죄에 가까운 취급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상회 설립부터 군선 매각, 건축물 설립까지 당시 담당자들은 모조리 파직당한 일대 사건.
원 역사에서는 조선에 대항하여 니탕개의 난을 일으켰던 여진족 추장이었지만 1부 시절에 여진족들이 조선화되면서 그 영향으로 그냥 조선 사람이 되어버렸다. 북방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며 나름 위세를 떨치는 지역 유지로써 현감으로 부임한 유성룡에게 비장으로 고란을 소개시켜준다.

5.2.2. 명


조선에 은을 내주고 친조선파 관료들을 등용하는 것은 물론 일부 지역의 국방까지 맡기는 무한한 신뢰를 보내, 후대에 고려천자라 놀림당하고 묘비명조차 쓰이지 않는 초라한 묘만을 남긴다. 다만 여기에는 만력제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만력제 본인은 명의 현실에 대해 나름 명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관료들은 물론, 스승인 장거정조차도 부패했음을 깨닫고 좌절한 것. 게다가 스페인 원정대와 해적이 쳐들어온 경진만란 때 남경의 군대는 모조리 도망가고 조선군과 일부 관료, 민병들만이 남아 남경을 방어하게 되자 완벽하게 비뚤어졌다. 그래서 썩어빠진 명 관료들을 믿고 나라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느니 일 잘하는 조선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자기는 놀겠다는 생각이다.
본래 역사와같이 스승으로서 만력제의 무한한 신뢰를 받지만 조선측에 의해서 생전에 수많은 비리가 걸리고, 부친이 와중 사망하면서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41] 그러다가 잠시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정력제[42]를 먹고 첩과 거사를 치루다가 복상사 해버리면서 단순 비리의혹뿐만 아닌 부친상기간에 예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격하되고, 만력제의 흑화를 가속화시킨다.
명 최후의 명장. 일본의 명 영토인 하주도에서 왜구의 공격을 막아내며 두각을 드러낸다. 조선의 군대를 보고 감명받아 조선에서 군사 훈련에 대해 배우고, 산해관에서 계속해서 병사를 훈련시키고 병기를 개량하였다. 북원 세력이 요동을 공격할 때 소수의 병력으로 공격을 막아낸 후 전사한다. 장거정의 세력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황실에 대한 충성심이 더 강해, 장거정이 퇴각 후 거점을 지키면 자신이 무마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명령을 지키다 전사한 충신. 척계광의 분전 끝에 북원 세력은 반쯤 와해되어 남하할 생각을 버리게 되었으니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지만, 장거정은 이런 충신이자 자신의 일파를 토사구팽하려 한다. 장거정 사후에는 충신의 상징으로 복권하며 그가 양성했던 척가군도 정예로 남아 활약한다.
요동의 총병관. 요동은 한족, 여진족, 일본인 등이 섞여 만인이 만인에 대한 투쟁을 벌이는 거대한 도적 소굴로 변해 있고, 명 조정에서는 백년 이상 끌어온 사기극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으니 요동에 대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요동 총병관들은 대대로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 했으나, 대부분 실패하고 미심쩍은 이유로 사망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요동이 몽골에 침략당하자, 군사 지휘관인 경략 중 하나인 독고율과 언쟁을 벌인다. 그 와중에 독고율이 전대 총병관이었던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말을 실수로 내뱉자 격노하여 독고율을 살해, 명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는 자신이 독고율로 가장해 탈출한다. 이 때문이 이여송은 후대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신 독고율은 도적 우두머리에서 갑자기 사람이 바뀌어 버린다.
능력은 좋지만 꽤나 부패해 돈을 밝히는 인물. 하지만 아예 썩어빠진 것은 아니고 최소한의 상식은 있다. 유성룡이 세스페데스 신부를 앞세워 자신이 설계한 보선에 잠입하려 할 때, 뇌물을 받고 이걸 무마하며 등장한다. 장거정의 실각 이후 조선에서 진행 중인 친조선파 관료 육성 계획의 대상자 중 하나가 된다. 능력은 있고, 부패했으니 매수할 수 있고, 게다가 수틀리면 부패를 수단으로 압박할 수도 있어서 적합한 인사. 다른 인물로는 전사한 척계광의 부장 둘이 있다.

5.2.3. 일본


다케다 신겐과의 분쟁 중 밀리는 상황이 되자,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인지 조선 왕실에 딸을 달라는 국혼을 제의한다. 당연히 조선에서는 격노하여 격문을 보냈지만, 마침 다케다 신겐에게 크게 밀리는 상황이었던지라 결국 이걸 받지고 못하고 사망한다. 이후 아케치 미츠히데와 아들은 조선에 유폐되어 있다.
상인 집안의 아들로, 어렸을 적 류성룡과 약간의 인연이 있었고 카톨릭 신앙을 가진 덕에 세스페데스의 복사 역할을 하며 조선에 입국한다. 이 때 유성룡에게 집중적으로 단련받고 좋은 음식도 많이 먹어서, 당시 일본인치고는 체구가 매우 큰 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원래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여기에서는 고니시의 지인인 키노시타 토키치로였다가 이후 후지와라 토키치로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다케다 가문에서 난데없이 조선의 영토인 규슈에 이 인물을 도독으로 임명해 조선에 어그로를 끄는데, 히데요시는 물론 후지와라 가문의 꼭두각시이자 버림패였다. 게다가 히데요시는 원래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다가 먹고살기 위해 다케다 정권 밑에 들어간 것이니, 다케다 가문 입장에서는 히데요시가 적의 가신 중 하나고 히데요시 입장에서 다케다는 원수다. 그렇다보니 가족은 모조리 인질로 잡히고 자신 주변에는 첩자만 그득한 신세라 유성룡에게 바둑을 두며 필사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알리려 한다. 그러나 유성룡은 원 역사의 간웅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만을 생각해, 그가 이미 정권을 꼭두각시처럼 거머쥔 상태이며 조선 침략의 야욕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해 버린다.[43]
결국 히데요시는 우연히 만난 고니시의 조언을 듣고 일단 규슈를 점령한 뒤, 조선에 항복해서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수성 성애자 유성룡과 전장포로 조준사격을 하는 이순신에게 박살나고, 조선의 보복공격을 막기 위해 도리어 동래에 대군을 상륙시킨다는 계획[44]을 세우지면 조선 국왕 이연에게 계획이 이미 간파된 상태다.
일본의 옛 질서를 되돌리겠다며 세력을 모으는 세력가. 무로마치 막부 시대를 이상향으로 여기고 있어, 유서 깊은 가문들은 대접하고 신흥 세력을 억압한다. 이 때문에 신흥 세력 출신인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원래 전국시대의 승자들은 모조리 공격당하거나 암살당하거나 억압받고 있다. 다만 신겐의 아들인 다케다 카츠요리는 그만한 능력이 없어, 다른 명문가들과 함께 과두정에 가까운 통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 유성룡의 열두 제자
유성룡이 규슈 지방의 일본 가문을 복속시키기 위해 꾀를 내어 영입한, 각 가문의 12명. 이 중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대표격이며, 그 외에 타치바나 무네시게, 아리마 하루노부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유성룡에게 집중적으로 교육받았으며, 최종 목표는 명의 지방 향시 합격이다. 성장기에 잘 먹고 잘 운동한 덕분에 육체와 정신 모두 완벽하게 조선식으로 근육질이 된 인물들.
이들은 가문의 뜻에 따라 히데요시를 돕지만, 스승과 나라(조선)를 배신하는 일에 회의를 느껴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화약고를 폭파시키며 사망하고, 다른 제자들은 유폐되었던 시마즈 요시히사를 구해 복귀하지만 후쿠시마를 포함한 6명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는다. 이들은 이후 사육신과 생육신이라 불리며, 삼남 지방에 정착하여 생육신들이 사육신들의 사당을 관리하게 된다. 다만 이들의 사상 자체가 전국시대 일본의 삭막한 상무정신과 효율주의자 유성룡의 유학이 합쳐져 과격한 면이 있고, 이 때문에 조선에서는 유학자치고는 좀 심하다는 평가를 듣는 편. 일본에서는 이들의 행동 때문에 유학자들을 보고 자폭도 불사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처럼 여기게 된 듯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전쟁에 참전하였으나 이순신에 의해 대패하고, 부하들과 함께 무인도에서 미역을 먹으며 버티다 부하들이 식량을 구하러 간 것을 배신했다고 착각하여 탈출한다. 그렇게 흘러흘러 제주도까지 표류하고, 귤을 훔쳐먹다가 포로로 잡힌다. 마침 수령관으로 있던 유운룡이 나름 호의랍시고 미역을 듬뿍 넣은 미역국을 끓여줬는데, 와키자카 입장에서는 신물나게 먹었던 미역인지라 발광하다가 유운룡에게 철저히 근육당한다. 그리고는 보름 내내 미역국에 꽁보리밥만 먹다가 한양으로 압송되었다고. 작가는 아예 이름이 아니라 미역이라고 부른다.

5.2.4. 유럽/중동


직접 등장은 하지 않고 언급만 된다. 예전에 선교를 위해 조선에 왔었는데,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사대부들한테 불교보단 낫다는 평을 받고 있었지만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고 우상 숭배라 비난하다 분노한 유생들에 의해 대역기봉에 묶여 역기 대용으로 쓰이다가 추방되었고, 조정에서도 이 소식을 듣고 가톨릭 선교를 금지하게 된다.
신성로마제국 사절단과 함께 조선에 방문한 젊은 신부. 조선에 선교를 할 방법을 찾지만, 기존의 선교 방법은 문화적, 사회적으로 발달된 조선에 소용이 없어 종교적 교리보다 학술적인 접근으로 선교를 시도해 보려 해도 성경조차도 입신체비로 해석하는 조선의 근육적 풍토 때문에 입신체비를 배우며 죽을 고생을 한다. 하지만 육체적 자질 자체는 충분히 뛰어난 편으로, 더 노력하면 진양근(3대 1000근)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평가받는다. 게다가 그의 스승은 입신체비 마스터가 되어가는 류성룡에, 분절 개념의 창시자인 이이, 상체의 거장인 이황의 제자, 하체의 거장인 조식의 사위[45]다. 뛰어난 자질에 스승도 완벽해 입신체비의 성과가 매우 뛰어난 편. 보선의 비리를 밝혀내려던 유성룡의 계획에 휘말려 명에서 단련된 몸을 십분 살려 몸소 선원들의 일을 돕는 식으로 카톨릭을 전파하게 되었는데 이게 성공적으로 먹혀 예상수치의 몇 배나 되는 200명 가량의 신자를 만드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후 돌아와 성균관에서 유학하는데 문제는 스페인의 남경 공격으로 서역인에 대한 편견이 심해져 다른 유생들이랑 시비가 붙게 되었고, 성경 내용을 거짓이라 매도하는 유생 앞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버티기를 하다 5시간동안 매달렸는데 몸에 치명적인 무리가 없는 기적을 행하고 만다. 본인은 고작 몇십 분 가량 메달리다 기절했다고 생각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기겁.
세스페데스 신부의 후임으로 명에 파견된 신부. 유성룡의 입신체비적 감상으로는 자질 자체는 충분히 타고난 세스페데스에 비교하면 아주 평범한 수준. 문제는 세스페데스가 입신체비로 단련된 몸 불살라 선원들과 함께 일하는 선교방식을 취했고, 이 때문에 명 선원들에게 '서양 도사는 몸소 일을 돕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었던 것이다. 평범한 남성인 마테오 리치가 선원들의 일을 도울 리가 만무하니 크게 고생을 하게 된다. 후일 로베르트와 베르나르가 이끄는 선단이 남경을 침공하자 유성룡과 함께 이를 저지하고 퇴각하는 로베르트, 베르나르 선단에 합류해 고생만 하다가 성과 없이 귀국하게 된다.
  • 로베르토 우리엘 레예스, 베르나르 루이 발레타
모로에 의해 선단이 피해를 입자 분노한 펠리페 2세에 의해 파견된 원정대의 사령관과 부사령관. 로베르토는 세스페데스가 매우 싫어하는 이단심문관 모즈구스만 레예스의 친척이며, 베르나르는 장 파리소 드 라 발레트의 조카다. 둘 다 몰타 기사단 출신에 갑옷을 입은 상태로 헤엄을 치고 적 함선에 올라타 무쌍을 벌이며 어지간한 도감군 장교를 상대로도 우세를 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스펙에 굳건하면서도 광신적인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스페인산 인간 백정이다. 이슬람에겐 일체에 자비가 없으나 조선에 대해서는 잘못 전해져 온 소식만 듣고 카톨릭에 귀의한 형제의 나라라 멋대로 착각 중. 조선군이 모로와 호족들의 잔당을 추적하던 중 돌연 난입해 명령대로 충실하게 모로 잔당의 뚝배기를 부쉈으나 몇 가지 오해가 겹치는 바람에 해적과 연합하여 유정 도독이 지휘하는 보선을 탈취, 남경을 공격하는 대형 사고를 저지르고 만다. 세스페데스가 입신체비 덕분에 선원들의 일을 도우며 마음을 휘어잡았는데 후임인 마테오 리치는 그렇지 못했고, 선원들은 이걸 보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오해하고, 원정대는 이걸 천주교 박해라고 생각하고, 명나라도 조국인 스페인같이 당연히 봉건제일 것이라 멋대로 추측한 뒤, 남중국의 영주를 응징하고 북중국의 황제와 협상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 하지만 남경에 있던 마테오 리치와 유성룡에 의해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닽게되고 더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마테오 리치와 가톨릭에 귀의한 명나라 수부를 데리고 약탈한 은이나 무거운 대포도 내버릴 정도로 황급히 퇴각 했으나, 돌아가는 길에 조선 수군에게 걸리는 바람에 일대 격전을 벌이게 되고 어떻게든 떨쳐내려고 직접 백병전까지 벌이며 분전하지만 허벅지 근육을 내준 고란의 도끼에 팔이 잘려나가는 중상을 입고 한 놈도 살려보내지 않으려는 조선 수군의 화력투사를 겨우겨우 버틴 끝에 돛을 태워 발을 묶고 나서 겨우겨우 도주에 성공한다. 결국 함선은 20척이 출발해서 3척만 돌아오고, 지휘관인 로베르토는 한 팔이 잘리고, 명을 공격하면서 동방 선교 가능성이 낮아지고, 지역 강대국인 조선과의 홍삼 거래도 한동안 중지되었으니 스페인은 엄청난 손해를 입게 되었다. 이 때문에 대노한 펠리페 2세는 이 둘과 더불어 모즈구스만 레예타를 모조리 파면해버리고, 베르나르는 후일 병사한다.

5.3. 근현대


1부에서의 최영직과 2부에서의 김성원의 활약으로 인해 변해버린 근현대사의 인물들.

5.3.1. 근대


한양 국립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원 역사랑 달리 조선-대한이 훨씬 부강한 나라가 되면서 정치랑 별 상관이 없는 길을 걷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스트레스 받고 피 볼 일도 없었던 탓에 성격 또한 온유해졌다. 다만 근본적으로 타고난 성깔 자체는 여전했는지 궁궐로 뛰쳐들어가 황실 폐지 반대를 주장한다거나 주변 사건이나 인물들한테 쓴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구의 제자. 고려공산당 활동을 하면서 현재는 제적된 상태이다. 일본에서 활동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지낸 탓에 심각한 근손실이 찾아와 김구의 분노를 산다. 일본의 참상을 김구에게 알린다.
직접 등장은 하지 않고 언급으로만 등장. 입신체비를 즐겨한 탓에 근육빨로 팔 한짝만 잃고 오미야 사건에서 살아남아 일본의 총리대신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친구라는 사해동도(四海同道) 사상을 주장하였으며, 한편으로는 대한제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적극적으로 일본을 1차대전에 참전시켜 전공을 세우고 민족자결주의를 바탕으로 대한한테 큐슈를 반환받기도 하였다. 1919년 시점에서는 이미 고인.
료마의 후임 총리대신. 가격경쟁을 위해 임금을 동결하고 자원을 바닥까지 긁어대는 등 강력하고 무자비한 개발독재 정책을 강행하여 훗날 일본이 갈라지게 되는 계기를 초래한다.
원 역사에서 고종이 되었어야 했을 인물. 원 역사처럼 키가 작지만 입신체비의 종주 수양대군의 후손답게 일흔 가까운 나이에도 근육으로 가득 찬 근육맨이 되었다. 황실 폐지를 반대하고자 궁궐에 뛰쳐들어온 김구를 20년이 넘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내수린으로 제압하거나 리볼버 권총을 손으로 비틀어 박살내는 괴력을 가지고 있다. 베이브 루스의 잠재성을 보고는 그를 자신의 마지막 제자로 받아들인다.
이형의 5남. 베이브 루스를 스카웃하기 위하여 아버지를 따라 북미로 왔다. 이형의 자식들은 각자 전문분야가 있는데 이은의 전문분야는 내수린과 택견이라는 무술 분야였는데 이를 모르고 까불던 카포네가 자신의 육체를 모독하는 것으로 느껴 대노, 바로 우람한 상체 근육을 드러내며 "지금부터 너를 근육해주겠다!"라고 선언, 상황파악 못한 카포네를 붙잡고 돌진해 상자와 벽을 뚫는 것을 시닥으로 손날치기, 테이블들고 내려치기, 강철제 접이식 의자로 두들기기의 순서로 제대로 참교육해준다.
아메리카[46]의 야구선수. 1920년 시점에서는 대한제국 vs 아메리카 전에서 압도적인 패배를 겪은 뒤 실의에 빠져 술만 먹는 폐인 상태로 지내고 있었지만, 그를 눈여겨 본 이형한테 스카웃된다. 이때 근 6개월을 폐인으로 지냈음에도 조금만 트레이닝 해도 다시 실전에서 뛸만한 수준의 축복받은 신체의 소유자 인것이 드러난다. 이후 식단조절부터 시작해 철저하고도 체계적인 입신체비를 전수받고는 원 역사 이상의 전설을 찍게 된다.
루스가 술을 마시던 불법 술집을 관리하던 마피아 간부. 나름 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며 실제로 대한인을 여럿 이겨 본 경험을 있어서 평범한 대한인이라 생각하고 이형와 이은 부자에게 까불다가 처절하게 이은한테 참교육당하고 황실가를 건드린 대형 사고를 친 책임을 물어 조직에서도 파문된다.
이탈리아 전투파쇼당 당수. 원 역사보다 일찍 정권을 잡아 원 역사의 에티오피아에 해당하는 솔로몬 연방을 침공하지만 마사이족의 활약으로 패배하게 된다. 전세역전을 위해 협정으로 금지된 겨자가스 포탄을 수천 발이나 썼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원 역사처럼 나치 독일의 총통. 대한인들을 위대한 육체를 가진 위버멘쉬라 띄워주면서 대한 공화국과 우호 관계를 맺었지만 T4 작전이나 홀로코스트 같은 악행들을 원 역사 그대로 저질러버리는 바람에 장애인 인권이 발달한 대한 공화국이 분노해 2차대전에 참전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한다. 대한 공화국의 참전 사유를 뒤늦게 알게 되자 부랴부랴 학살 작전들을 중단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했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었고, 결국 1946년 벙커에서 수류탄으로 자살한다. 유해는 그의 무덤이 네오나치들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한 연합군에 의해 화장되어 태평양 곳곳에 뿌려졌다.
작중 근대 시점(대략 1차대전 전후)에서 조선은 1821년 칭제건원하여 대한제국이 되었다가 원 역사의 경술국치와 비슷한 시점에서 황가가 제위를 내려놓고 공화국이 되었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시베리아, 필리핀, 뉴기니, 호주, 북미와 중남미의 서부를 모두 통치하는 거대한 제국이었으며, 공화국이 되며 일부 국가가 독립하였으나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 중 하나. 이후 2차 대전에도 참전하였는데, 처음엔 대한 공화국의 우월함을 찬양한 히틀러에게 호감을 느꼈으나 이후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를 보고 충격받아 전쟁에 참여해 독일군을 말 그대로 갈아버렸다고 한다. 소련의 경우 카틴 학살이 전후 1947년에 발견되는 바람에 승전국 직위를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소련이 대한 공화국의 눈치를 보는 바람에 동유럽 쪽에 세력을 크게 뻗치지는 못했고, 아메리카는 태평양까지 뻗어나가지 못해 세력이 크지 않아 냉전이 확대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냉전으로 인해 촉발된 우주경쟁도 지지부진한 상황. 게다가 대한 공화국은 (근손실로 추정되는 이유로) 우주 개발에 크게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명은 여러 국가로 갈라졌다. 먼저 요동 도적이 결집한 국가인 대연, 이자성이 시안과 북경을 거점으로 세운 순, 쓰촨 지방을 기반으로 한 제, 현재의 저장/장시/푸젠/광둥에서 명맥을 유지한 남명으로 갈라졌다. 조선은 지원과 공작을 통해 이 세력들 간의 힘의 균형을 유지해 중국이 다시 통일하지 못하도록 막았으며, 남명 황실은 조선으로 망명해 춘천에 살림을 차린다. 그렇게 수백 년이 지나니 이름만 명나라지 사실상 조선이 되었으며, 그저 관광지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본토의 국가들은 중국의 3개국 vs 대한제국/일본/연방국 간의 전쟁인 무신천명대전에서 패전하여 7갈래로 찢어져 버린다. 내몽골 자치구는 몽골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투르키스탄으로, 요동과 만주는 대한 공화국으로 흡수되었으며, 티베트는 독립을 유지하고, 본토는 군사 독재국가인 북부의 중화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서부는 중화 소비에트 공화국, 남동부는 중화민국으로 갈라진 상태다.
일본은 태평양을 내해로 둔 거대한 국가인 대한제국에 포위당한 형국이며, 흑선내항 같은 사건도 없고 자원고갈과 인구 증가로 점점 피폐해져 간다. 대한제국은 이런 일본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식민지화하려 하였으나, 성리학자 출신의 총리대신 사카모토 료마가 무진천명대전과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가까스로 큐슈를 돌려받는 이득을 거두고 자립을 위해 사해동도주의를 주장하며 개혁을 추구하였다. 그러다 료마의 사망 후 후임 총리대신인 이토 히로부미가 중국의 순나라와의 가격경쟁을 위해 자원과 사람을 쥐어짜는 바람에 공산주의가 득세하고, 결국 교토 이남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인 일본 볼셰비키 공화국이 건설되어 독립해 버린다. 그런데 그 사상이라는 게 '덴노 옹립을 통한 노동 계급의 정치적 독립성 추구'라는, 성리학과 트로츠키주의, 신토 문화의 끔찍한 혼종. 그렇게 2번의 내전을 걸쳐 1963년에야 통일된다.

5.3.2. 현대


대한 공화국은 독립해나간 미 서부, 남미 서부 등을 제외하고 자체적으로도 유럽 전체와 유사한 경제규모를 가지고, 원 세계의 미국과도 비슷한 능력을 가진 대국이다. 러시아는 러시아 혁명 때 황실이 시베리아 동부로 피난왔으며, 대한 공화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입신체비의 전통 덕에 생활체육에 대해서는 할머니도 링피트를 하는 강국이지만, 반대급부로 오타쿠 문화와 E스포츠는 발전하지 못했다. 오타쿠 문화는 아예 말라비틀어진 수준이며 E스포츠는 중국이 한국의 자리를 가져갔다고 한다.
  • 이수길
최영직의 외조부. 원 역사에서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죽었지만 역사가 변하면서 살아나게 된다. 킬리만자로를 등반하다 무릎을 다쳤지만 자신의 실수라며 인공관절 수술을 거부하는 것만 빼면 여전히 정정하다.
  • 최영직의 외조모
원 역사에서는 남편을 잃고 허름한 연립주택에서 쇠약하게 살고 있었지만 역사가 변하면서 번듯한 단독주택에서 남편과 함께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취미는 서클 피트.
  • 최영직의 조카들
최영직의 외조카들. 원 역사에서는 3명밖에 없었지만 역사가 변하고 나라가 부강해지면서 7명으로 늘어났다. 삼촌한테 이두박근을 보여달라는 등 훌륭한 대한 공화국 어린이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 최영직의 남동생
원 역사에서는 안경 여드름 멸치라는 전형적인 오타쿠 외모로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하는 오타쿠였다. 역사가 변하며 정어리급으로 약간 건장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오타쿠 일러스트레이터. 아마도 이 회사로 추정되는 일본 회사랑 계약을 맺어 진양옥의 일러스트를 작업하고 있었는데 지나치게 근육 넘치게 그리는 바람에 계속 퇴짜당하다 보다못한 최영직의 조언으로 근육을 상당히 빼고 나서야 간신히 사측으로부터 OK 사인을 받아낸다. 하는 말을 들어보면 자기랑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대한 공화국 내에 30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 생활체육이 활성화된 대한 공화국의 특성상 방구석에서 덕질하는 사람이 극히 드문데다가 대한 공화국의 미적 기준 자체가 근육녀인만큼 오타쿠 문화는 정착되지 않은 듯.
  • 조왕(趙王) 주상진
춘천에 이름만 남은 명나라의 막내 친왕으로, 최영직의 사촌 여동생이랑 약혼 관계에 있다. 대명국 박물관의 관장으로 근무 중이지만 반쯤 명예직인지라 평소에는 농어촌 같은 곳에 봉사활동을 다니는 듯 하다. 최영직의 수양대군 시절 익혀놓은 유창한 명대 중국어를 듣고는 놀라 그에게 역대 황제들의 무덤을 보여준다.
  • 주영잔
춘천에서 이름만 남은 명나라의 현 황제. 본인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고 언급만 된다. 최영직은 주영잔이 아마 중국어도 제대로 못 하리라 생각하지만, 그의 아들 주상진이 유창한 명 시기 중국어를 구사하는 걸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가문의 전통 비슷하게 남아 명대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 가문의 의무가 된 듯하다.

6. 바깥 고리


[1] 한명회가 과거시험의 답안지로 대외 무역 확충을 주장한 것 때문에 조정의 일이 늘어났고, 이 때문에 조정 관원들은 한명회에게 이를 득득 갈고 있었다.[2] 작중 대사를 빌리자면 , 즉 손님이라고 표현된다.[3] 실제로 개인 단련을 위해 바벨과 아령을 만든다고 대장간에 들락날락거리고, 식이요법을 연구하기 위해 몰이꾼들 집을 드나든 것이 세력을 키우고 무기를 모으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으로 번져 왕세자였던 형에게 추궁받기도 했다.[4] 立身體備. 부모에게 받은 몸을 훌륭히 키우고 단련하는 것이 바로 참된 효도라는 논리. 실제로도 유교에서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이름으로 부모에게 받은 몸을 잘 돌보는 것 또한 효도의 기본으로 생각하였는데, 개화기 당시 단발령에 반대하는 세력이 이 교리를 내세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해당 문서에서 볼 수 있듯 이 교리는 몸을 함부로 다루지 말라는 뜻이지 손 하나 대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실제로도 손발톱은 깎고 지냈을 뿐만 아니라, 상투를 틀 때도 정수리의 머리카락을 완전히 깎았다. 비슷한 흐름에서, 스스로의 몸을 단련해서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야말로 충분히 몸을 잘 돌보는, '신체발부 수지부모'의 원래 뜻에 오히려 더 잘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5] 700kg 이상. 앞서 말한 삼대운동 1000근은 진양대군 때 성공했다 하여 '진양근', 1200근은 수양대군 때 성공했다 하여 '수양근'이라 칭하는 입신체비의 경지를 부르는 말이 된다.[6] 여기에서 보디빌딩의 7가지 기본 포즈에 더해 장난삼아 흑드라군 자세를 흑룡세라 칭하며 승리할 때마다 신나서 사용하는데, 이게 수양대군이 즐겨 사용했던 승리의 포즈라서 후대인들도 승리의 흑룡세를 자주 취하곤 한다.[7] 작중에서는 내수린이라 불린다. 수양대군이 태조 왕건/신숭겸 태그 팀과 궁예의 대결을 주제로 내수린을 선보이면서 조선의 내수린은 크게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상황극, 그리고 조선 유생들의 호신술로 자리 잡는다.[8] 역사학과는 수양대군과 입신체비의 적통을 잇는 학과로 교수라면 아무리 못해도 3대 500을 찍고(...), 입신체비는 정부에 전담 부서도 있는 국기이자 국책사업급 스포츠이다. 거기에 약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전통 입신체비사이니 그야말로 엘리트 중의 엘리트.[9] 초기에는 적당히 투덜거리며 빠져나갈 궁리를 하긴 했지만 점차 시력이 돌아오고 건강이 회복되자 아버지인 태종이 생전에 계속 말했던 충고의 뜻을 깨달아 잠시 눈물을 보이기도 했으며 이후 형식적으로만 움직였던 사냥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인다.[10] 양녕대군의 서산군 첩 강간미수 사건으로 인해 보다 제대로 된 법률 제정 및 반포에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로 인해 본래 역사에서 세조 때 편찬작업이 시작된 경국대전 집필이 이 소설에서는 세종대왕의 업적이 된다.[11] 소헌왕후: 적어도 네 동생 하는 것의 6할은 하거라.
문종: (저놈이 1000근을 들었으니… 600근?!)
[12] 하지만 안평대군 본인은 그렇게 사치를 즐기지 않아, 나랏일을 내팽겨치고 극심한 사치를 즐기는 정이대장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을뿐더러 정이대장군의 측근들의 경계 때문에 언제 칼침맞을지 몰라 불안에 떨었다.[13] 병풍에 보디빌딩의 7가지 기본 포즈에, 수양대군이 장난삼아 포함시킨 흑룡세, 즉 흑드라군 자세까지 넣은 것.[14] 다만 '~조'라는 명칭은 뭔가 국가적 사건이 일어나고 이걸 해결한 왕에게 붙이는 식이다. 물론 순조처럼 별일 없어도 조가 붙는 왕도 있긴 하지만...[15] 비유상의 그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된장이다. 수양대군이 방문했을때 마당의 장독대가 깨져있었다.[16] 아버지에 의해 첩을 빼앗기는 초유의 사태 이후 반쯤 정신이 나갔는지 계속해서 막장짓을 하다가, 결국 서산윤(尹)에 이어 황계령(黃溪令)까지 강등당하고 자살을 시도하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17] 이때 수양에게 반 농담으로 내가 얼마나 살 관상인가 하고 물어보는데 역사를 알고 있는 수양대군이 "108살... 아니 농담이고 88세까지 살지 않겠습니까" 하는 식으로 농을 건네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만담을 나누기도 한다. 후일 수양대군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현대에 돌아온 최영직은 박물관의 기록에서 효령대군이 예상이상으로 장수한 것을 보고 경악한다.[18] 사실 정말 효령대군이 떼를 쓴 것도 있지만 명의 눈치를 피해 해외진출을 노리던 문종에게 육로를 거치지 않고 티베트를 넘어 서역국으로 가는 길을 찾을 구실이 되기도 했다. 효령 본인도 반쯤은 이걸 의도하기도 했고.[19] 후일 회임하자 수양대군이 뱃속의 아들에게 모든 역기들이 이름을 속삭여주고 서른 즈음에 "입신체비서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아버지."라고 말하는 실없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20] 소설에서는 마철석이라고 언급.[21] 개성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수양대군이 왕릉을 보수한다고 하자 혹시 왕릉의 보물을 챙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자원한다. 그러나 이건 왕건 동상이 그 쪽에 묻혀있는 걸 알고 있던 수양대군의 계획이었고, 동상을 파손시켜서 뭇매를 맞던 걸 수양대군이 덮어 준다. 그리고 왕건 동상을 파낸 수양대군은 개성 사람들의 민심을 얻어 일석이조가 된다.[22] 코르테스 대신 테노치티틀란을 무너트린 인물이 된다.[23] 원래 역사의 성화제다.[24] 세조 대에 이루어진 일로, 이시애의 난 진압 부대가 그대로 북방으로 올라가 이만주 토벌에 나섰지만 조선에서는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만주는 그걸 예상을 못 했는지 본거지에 있다가 사망.[25] 타이순 칸을 생포하기 위해 김종서가 순수한 일대일 대결로 승부를 내는 것을 제안, 수양대군이 레슬링을 도입해 결투를 벌인다. 그런데 무기 잡는 것만 알던 무인이 체계적으로 몸을 단련한 보디빌더를 맨몸으로 상대할 수 있을 리 없다. 타이순 칸은 근육이 좀 있는 90 kg 정도의 체구인데, 수양대군은 전형적인 보디빌더형 근육덩어리에 체중만 120 kg를 넘어가는 괴물이니.[26] 에센의 조카로써, 원 역사에서 다얀 칸의 아버지.[27] 분명히 친척은 친척인데, 증조부의 형제의 손자다. 이쯤 되면 현대에서는 친척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과거에도 '사돈의 팔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먼 친척 관계이다.[28] 이 시기 낙양은 이미 수도가 아니라 쓸쓸함이 느껴져야 하는데, 괜히 화려해 보이기 때문에 실패작이라고 여긴다.[29] 광맥 찾는 사람[30] 오스만과 적대 관계인 티무르 제국백양 왕조에 군수품 지원, 맘루크 왕조에는 홍삼 판매로 상잔 유도, 그리고 오스만과 맘루크 항구에 대한 직접 공격 등.[31] 먹어 본 구성군이 이홍위에게 엿을 먹이려고 진상했지만, 이홍위가 '좋은 건 너희들이 먹어야지'라며 돌려주는 바람에 도리어 구성군이 빅엿을 먹는다.[32] 현대의 도시계획을 조선 식으로 해석하여 답변했는데, 이것이 최소 다섯 부서의 업무를 전부 제대로 알아야 나올 수 있는 답변이었던 탓에 단번에 주목을 받게 되었다.[33] 사실 숙제는 핑계고, 고통스러운 절육 기간을 꼼수로 빠져나가려던 이연의 노림수였다.[34] 원래 백성들은 쌀겨가 많이 섞인 곡식을 세금으로 내서 세금 내는 양을 줄였고 정부도 이걸 어느정도 묵인하고 있었는데, 풍구 도입으로 쌀겨가 다 날아가면 오히려 세금이 늘어나는 것. 당시만 해도 약관의 청년이었던 유성룡은 이런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으니, 조식 같은 고위 관료가 문제를 제기해 정쟁으로 만들어버린 것.[35] 원래 역사에서는 '증손전수방략'이라는 병법서를 보내준다. 아쉽게도 현대에는 유실된 서적이라 내용을 알 수는 없다.[36] 원래는 신립이 이순신의 한참 군 선배였지만, 본작에서는 이순신이 일찍 급제하면서 동기가 되었다.[37] 이 시기 조선은 군사적으로 강력한 국가이기는 하나, 재정 등 체계에 있어서는 아직 탄탄한 내실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지함이 점친 결과로는 경신대기근을 버티지 못하고 살기 위해 중원을 점령하지만, 다른 이민족과 마찬가지로 중국에 흡수되는 운명을 맞이한다.[38] 과거 1부 주인공인 영직이 직접 김성원에게 보여주면서 잘못 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행위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39] 호위 무장[40] 그래서 이걸 보다못한 유성룡이 감리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41] 삼년상을 치를 경우 본인의 세력이 흩어질 것이고, 치르지 않으면 유교 사상이 남아 있는 명에서 탄핵감이다.[42] 수은과 커피가루가 들어간 골로가기 딱 좋은 독약이다.[43] 줄로 인형극을 하듯이 대국 상황을 알려 여러 기사들에게 도움을 받는 사기 바둑인데, 그처럼 자신도 꼭두각시 신세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했던 것. 하지만 "내가 이렇게 줄로 명령받는 꼴이다"라는 의도는 "내가 이렇게 줄로 사람을 부린다"로 잘못 읽혀버렸다.[44] 일본은 조선의 함대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조선의 함대는 해안가를 초토화시키는 통상파괴전을 벌일 확률이 높은데, 이걸 맞받아치기 위해 기습적으로 상륙작전을 펼친 후 우위를 잡겠다는 전략.[45] 게다가 입신체비의 종가인 수양대군의 직계후손인 영흥부정이다.[46] 원 역사에서 미국이라 불리던 미합중국. 여기서 미국은 미합중국과 별개로 있는 조선계 북미국가의 명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