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수혜자
1. 개요
《삼국지연의》는 원형인 삼국지평화 등의 이전 작품에 비해서 사서 내용을 상당히 많이 참고해서 반영했지만, 어쨌든 역사서가 아니라 군담 소설이므로 흥미를 끌기 위한 과장이나 각색 등이 많이 덧붙었다. 더구나 당대의 주요 사서인 《정사 삼국지》가 조위정통론을 따르는 반면, 이 소설에서는 유비가 주인공이고 촉한정통론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정사 삼국지》와는 다르게 취급되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민중에게 어필하기 위한 소설이기 때문에 이런 띄워주기와 낮추기는 당시 민중의 생각과 큰 연관이 있다. 이전에 나온 삼국지평화와 차별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도 있으며, 나관중의 개인적인 취향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이에 따라 전반적으로 촉한의 활약자들, 특히 연의의 주역 선역인 관우와 제갈량이 많은 버프를 받았다. 해당 두 인물의 경우에는 실제 역사서에서도 먼치킨적인 인물들이었으므로, 버프가 그렇게까지 과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으나, 저 둘의 직접적인 버프보다 중요한 건, 저 둘을 띄우기 위해 수많은 인물들이 버프, 혹은 너프를 받은 것으라 하겠다.
반대로 연의의 주인공인 유비의 경우엔, 소설이 쓰여질 당시의 기준으로는 이상적인 군주상에 맞추어져 분명 수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세대에선, 이상적인 군주상이 바뀜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연의에서의 캐릭터 변화로 인해 오히려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장수들의 "전사(戰死)"에 대해서도 피해인가 아닌가를 좀 고민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재중동포 작가 리동혁은 《삼국지가 울고있네》라는 책에서 고대 군담소설에서는 장수가 전사로 목숨을 잃는 것을 오히려 명예롭게 보았다고 쓰고 있다. 실제 역사와 다르게 전사자로 처리된 서황, 태사자 등이 이러한 경우다.
2. 위
2.1. 곽가
곽가가 죽자 조조가 "곽가만 있었더라면 대업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탄식하는 장면으로 설명 끝. 과장 좀 보태서 묘사만 놓고 보면 유비에게 제위를 권유받은 제갈량에 버금간다. 같은 모사들 중에서도 젊은 피에 속하다보니 변칙적인 계략을 펼 때가 많고, 그러다보니 조조의 뒤를 이을 천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순유의 공적 상당수와 조조군 no.2 참모 이미지를 빼앗다보니, 창작물에서의 순유는 투명라인이 돼버렸다. 또한 전략적 식견 면에서는 주군인 조조와 순욱의 공도 빼앗아 버렸다. 그냥 곽가 하나 때문에 대부분의 위나라 참모들이 조금씩 너프 당했다고 보면 될듯.
엄밀하게 따져서 조조군에서 내정과 대전략에서는 순욱, 군략에서는 순유가 원탑이었으나, 곽가가 대전략과 군략 두 분야에서 지나친 버프를 받아 순욱은 그냥 집 지키는 정치가가 되었고 순유는….. 정욱과 유엽을 제외한 다른 참모들 모두 너프당했지만 순유의 너프가 가장 심각하다.
2.2. 방덕
마등의 부장으로 그를 보좌했으며 마등의 아들인 마초가 출병했을 때도 함께 했다. 연의에서는 용감하면서도 지혜를 쓸 줄 아는 지용겸비의 호걸로 등장, 계책을 써서 장안성을 우려빼는 포스를 보인다.[1] 우여곡절 끝에 조조 휘하에 들어가 형주에서 관우와 용호상박의 대결을 펼친다. 연의에서 관우를 일기토로 바른 유일한 인물이다. 정면 승부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자 화살로 기습공격하여 관우를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는데, 목까지 벨 수 있었으나 공을 빼앗길 것을 걱정한 우금이 징을 쳐 방해하는 바람에 실패한다. 어쨌든 관우에게 화살을 날려 이마를 맞춘 것은 사실이지만 연의에서는 치명상이라고 생각했는지 팔뚝으로 바뀌었다. 정작 임팩트는 엉뚱하게도 무마취 수술을 시행한 화타와 관우가 다 가져간다(…).
결국 전투에는 패해 관우에게 사로잡혔지만 끝까지 절개를 지켜 회유에 넘어가지 않았다. 몇몇 삼국지 판본에서는 정중하게 자신의 휘하로 들어올 것을 권유하는 관우에게 "관공도 위왕께 있었을때 결국 한중왕에게 돌아가지 않았소? 나 역시 놓아주면 그럴 뿐이오"라고 말하고 관우가 감탄하면서 이런 호걸은 일개 도수부의 손에 보낼수 없다며 손수 목을 치는 전개도 있다. 정사에선 관우의 정중한 권유에 쌍욕으로 대응했는데(...) 그에 비하면 확실히 품격있는 최후를 맞은 셈. 반대로 정사 쪽을 따라 관우가 회유했으나 쌍욕으로 받아쳐서 관우가 열받아 목을 베는 판본도 있다.
주인인 마초에 뒤지지 않는 영웅으로 묘사되며 충의를 아는 그야말로 의기의 남아로 그려진다. 정사의 기록도 연의와 별반 다르지 않으나 연의에서의 군공은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다. 연의에서는 관우를 안드로메다 일보직전까지 보내지만 우금의 시기로 인해 공을 놓치고 만다. 관을 메고 출전하여 "관우 아니면 내가 이 관에 들어가리라."고 떵떵거리는 식으로 비장함이 강조되기도 했다. 결국 그 관에 자기가 들어갔지만(…). 방덕이 무용이 뛰어나고 새로 섬긴 주인인 조조에게 충성을 바친 건 사실이나 조조군의 웬만한 용장들보다 뛰어나게 묘사된 용맹이나 관우에 맞서 처절하게 고군분투하는 묘사는 연의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관우와의 일기토나 하후연, 장합, 허저, 서황과 차륜전을 벌인 것은 물론 허구다. 하지만 평양에서 원상군의 상장 곽원을 직접 벤 것은 사실. 정사에 단 3명 등장하는 일기토 승리자 중 한 명이다. 관우와의 싸움에서도 불리한 처지에서 끝까지 용감히 싸우다가 사로잡혔다. 확실히 정사에서도 대단한 용장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2.3. 사마의
제갈량이 연의에서 엄청나게 주인공 버프를 받았기 때문에 사마의도 그 라이벌로 대우를 받아 혜택을 많이 입었다. 조진, 장합, 곽회 등에게 돌아가야 할 공로를 몽땅 몰아줬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자세한 내용은 삼국지연의/피해자 조진, 장합 문단 참고.[2] 정사에서는 일단 처한 위치가 달랐고[3] 제갈량과의 정면 전투는 전부 패했다. 그런데도 사마의가 제갈량에 견줄만한 라이벌로 여겨지는데는 연의의 역할이 크다. 물론 많이 나온만큼 굴욕씬도 많이 찍었지만.[4]
2.4. 서서
삼국지연의에서는 군략에 능한 군사로 등장한다. 조인의 팔문금쇄진을 간파하여 격파하고 번성까지 함락시키는 대활약을 펼치고 이후 정욱의 계략때문에 유비의 곁을 떠난다. 조조에게는 어떤 계책도 주지 않을 것임을 맹세하고 떠나기 직전엔 제갈량을 추천해주며 적벽에서는 방통의 충고를 듣고 양주 방면 방비를 핑계로 미리 빠져나간다.
실제로는 장판파 전투 이전까지 제갈량과 함께 일했으며 유비의 곁을 떠난 이유도 정욱의 계략 때문이 아니라 장판파에서 피난 중에 어머니가 조조군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팔문금쇄진이나 적벽의 일화 등은 전부 허구이며 애초에 정사에서는 제갈량을 추천했다는 것과 어사중승 자리까지 올랐다는 것, 제갈량이 그의 의견을 높게 평가했다 정도의 기록밖에 없어서 군사쪽 재능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서서의 방촌지지 일화를 보면 서서가 단순한 문관이 아닌 책사로서의 면모가 있었음을 알 수 있지만 군사 전략에 능했는지는 해당 기록만 봐선 알 수가 없다.
어째선지 위나라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측 촉한의 보정을 받은 특이한 케이스인데, 아마도 제갈량의 삼고초려를 끌어내는 과정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하기 위한 설정이라는 목적이 개입된 것이 아닐까 싶다.
2.5. 왕쌍
조인의 부장 상조의 지휘 아래에서 주환이 지키고 있는 유수오를 공격했다가 붙잡혀서 무창으로 보내졌다. 언제 위나라로 다시 보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갈량의 2차 북벌 때 다시 나타났는데 진창성에서 학소에게 막혀 퇴각하는 촉군을 추격하던 중 적의 반격을 받아 전사한다. 정사의 기록은 이것으로 끝.
삼국지연의에서는 엄청나게 존재감이 상승하여 조진이 추천하는데 키가 아홉자에 60근이 넘는 대도를 위두르며 유성추를 잘 다루고 대완마를 타고 다니니 믿음직해 보여서 조예가 호위장군[5] 에 임명해 제갈량과 싸우고 있는 학소를 구원하러 가기 위해 출진한다. 적도(狄道) 출신이며 자는 자전(子全)이라고 나오지만 정사 삼국지에는 그의 출신에 대해서 전혀 나와 있지 않다.
때마침 학소한테 촉군이 발리고 있을 때 원군으로 등장하면서 촉군에서 사웅, 공기를 보내자 이들을 죽였으며, 장억도 부상을 입힌다.[6] 이에 촉군은 사기가 꺾이게 되면서 결국 제갈량은 퇴각하지만 그 뒤를 쫓던 왕쌍은 복병에 걸려 위연에게 죽고 만다.
특이한 이름에다가 엄청난 포스로 등장해 대단한 활약을 하고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서 죽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 실제로는 매우 안습한 이력의 장수임에도 제갈량에게 죽었다는 이유 때문에 엄청난 맹장으로 각색됐다. '봐라, 제갈량이 이런 대단한 장수를 잡았다!' 라는 식의 버프인 듯. 더불어 위연도 원님 덕에 나팔 좀 불었다.
전체적으로 양민학살하다가 네임드에게 썰리는 화웅과 비슷한 포지션이다.
2.6. 유엽
정사에서는 참모지만, 가후보다 더 늦게 들어온 인재이다. 연의에서는 순욱의 다단계 추천으로 곽가가 천거하여 들어온 것으로 나온다. 덕분에 노숙과 친분이 삭제되고 "유자양"이라는 별개의 가상인물이 노숙과 친한 것으로 나온다. 조조가 진궁의 계략으로 전씨의 거짓 투항에 속아갈 때 이를 저지하는 것으로 시작으로 관도대전에서 원소가 강노 부대로 조조를 압박하자, 발석거를 개발하여 원소의 전술을 무력화시켰다. 이 발석거는 원소 군대에서 '벽력차(번역하면 벼락수레)'라 하여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정사에서는 조조군이 발석거를 쓴 기록도 없고, 원소의 강노 부대를 견제한 적도 없다.
이렇게 관도대전 중에 발석거를 발명해 원소군을 물리친 연의의 에피소드 덕분에 삼국지 관련 2차 창작물에서 공돌이 이미지가 붙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유엽이 포차계로 나오는 삼국지 조조전.
2.7. 이전
정사에서 학문을 좋아하고 주도적으로 활약하기보다 묵묵히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성실한 군인이었지만 연의에서는 한층 더 나아가 침착한 지장의 모습이 강해졌다. 거기에 숙부인 이건과 사촌 이정의 활약까지 대신 소화하면서 실제보다 더 오래 조조군에서 활약한 최고참급 경력자가 됐다. 박망파에서 하후돈에게 계략을 경계하여 조심해야한다는 일화도 충실히 나왔고, 장판파에서는 유비를 다시 추격하려는 조조에게 복병이 정말 있을 수 있다는 조언을 하는 오리지널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조조군 초창기 때 황건 잔당을 이끌던 황소를 사로잡거나 합비 공방전 때는 송겸을 사살하는 활약의 추가에 2차 합비 공방전 때 갈등하던 장료와 극적 화해를 하며 오를 막아내는 등 긍정적인 묘사가 많다.
이전에 경우 특이하게 삼국지연의/피해자, 삼국지연의/수혜자 어디에도 거론이 없던 인물이다. 연의에서 딱히 주도적으로 활약하는 모습이 안 나온 건 정사의 이전도 자기가 직접 나서기보다 묵묵하게 맡은 일을 수행하는 역할이니 딱히 의도적으로 너프하거나 버프할만한 구석이 없다. 굳이 거론을 넣자면 수혜자에 가까운데 위에 언급됐지만 침착한 지장이자 성실한 군인 캐릭터로 나왔기 때문이다. 조운에게 일기토에서 패하고, 박망파에서 상황이 여의치 않자 달아나는 모습이 나왔지만 전자에 경우 상관 조인이 계속 이전을 닥달하자 마지못해 나가서 싸워서 제대로 싸울 수 없던 상태였다. 후자는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나중을 기약하며 퇴각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 굴욕이라고 하기도 힘들다. 장료와 곽가가 나관중의 버프를 화려하게 받은 위나라 인물이라면, 이전은 드러나지 않게 버프받은 인물이다.
2.8. 장료
일단 정사나 연의를 막론하고 장료가 위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힐 정도로 군사적으로 대단히 뛰어난 명장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관우와 엮인 덕분에 인격적으로 상당히 우대를 받았다. 또한 위나라의 주요 장수들이 줄줄이 너프되는 탓에 반사적 효과를 받아 위나라의 대표 무장격이 되었다. 실제로는 조인이나 우금의 공적은 장료에 전혀 뒤지지 않고 오히려 상회한다 봐도 무방하다.
백문루의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는 나관중의 창작으로 정사에서는여포가 패망한 이후에 잔당을 인솔하여 조조에게 투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에 연의에선 끝까지 맞서 싸우다가 사로 잡혀서 끌려간 백문루에서 조조를 역적이라고 욕하다가 분노한 조조에게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관우와 유비가 조조에게 장료는 충의지사이니 살려달라고 청하여 살아남고 조조군의 장수가 된다.[7]
실제로도 관우와는 친우관계를 가졌던 까닭에 백마전투 이후 조조가 그를 시켜 관우의 속을 떠본 것[8]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백문루에서 장료의 목숨을 살려주거나 하비에서 세 가지 죄[9] 를 내세워 항복을 권유한 것은 모두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내용이다.
여기에 서황이 더해져서 세 명이 제법 친하게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연의에서도 이후 방덕이 목숨을 잃자 서황이 대신 관우를 잡으러 가는 내용이 나오며, 서로 적국의 장수로서 대치하는 와중에 긴시간 사담을 주고 받고는 이야기가 끝나자 마자 공격 명령을 내린다. 이에 관우가 당황하는 묘사가 나오는데, 서황은 "사사로운 인정으로 나랏일을 그르칠 순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이 장면은 정사에도 나오는 기록이다.
다만 관우에게 희석되어 장료 본인의 캐릭터가 흐릿해지는 경향도 있다.
2.9. 장호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쪽도 아버지의 덕을 받았다. 정사에서는 편장군으로 임명되었다는 기록외에는 행적이 없지만, 연의에서는 대릉, 악침과 같이 세트로 다니는데 이 둘에 비하면 비중이 크고(…) 오의의 동생인 오반을 죽이고, 공손연의 난에서 선봉으로 활약했다는 행적으로 본다면 연의의 수혜자다.[10] 다만 대릉, 악침과 세트로 다니다보니 진법 싸움에서 제갈량에게 포로로 잡히는 등, 피해를 입기도 한다.
2.10. 정욱
연의나 정사나 뛰어난 모사지만, 연의에서 참가한 적이 없는 창정전투에서 "십면매복계"으로 통해 원소군을 몰살시키는 활약도 하고, 서서의 어머니에게 동향 친구인 척 접근해 호의를 얻고 필적을 베껴서 서서를 속이고, 화용도에서 관우에게 은혜를 입은 것을 강조해서 관우가 조조를 놔두게 만드는 등 곽가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수혜를 받았다. 모사들 중에서 적벽가, 영화 적벽대전을 비롯한 적벽대전을 다룬 창작물들에서는 당시 조조의 책사로 자주 등장한다. 아니, 자주 정도가 아니라 적벽대전 시점이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책사로 등장한다.
다만 통찰력은 있지만 나쁜 품성이 두드러져 인정조차 이용하는 비정하고 냉혈한 이미지로 그려져서 이미지가 약간 손해봤다고도 할 수 있으나, 정욱의 최대 논란거리인 인육 문제가 언급되지 않아서 이정도로 끝난 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2.11. 조숭
정사에서의 매관매직 사건을 연의에서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연의만 보면 그저 억울하게 살해당한 사람으로 보인다. 조씨 일족 중에서 드물게 수혜자.
3. 촉한
3.1. 강유
막내 아이돌이다. 제갈량 사후 사실상 삼국지연의의 주인공 계보를 이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제갈량 사후부터는 대충 넘겨버리는 각종 연의 매체들 때문에 대부분의 인물들은 인지도가 바닥이지만 그나마 강유는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원래 유능한 사령관이지만, 연의에서는 더 부풀려져 상향받은 부분이 많은 편이다. 연의에서는 삼국지 최고의 문무겸장 포지션이지만, 실제 강유는 순수한 무장, 사령관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본인이 정현의 학문을 사사했고 20대 시절에 위, 촉에서 문관직인 창조연을 맡았다는 것을 보면, 군정이나 문관으로서의 능력이 탁월했던 것은 맞겠지만, 다만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군사적인 부분에만 치중했을 뿐이다.
첫 등장인 천수전에서 제갈량의 계책를 파악하고 조운과 일대일 전으로 조운이 쉽게 이길수가 없는 무력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화공책으로 제갈량을 털어버리는 등 문무 양쪽으로 S급 능력을 발휘한다. 그 덕에 제갈량에게 알려져서 멍청한 상관인 하후무로 통해 제갈량에게 포박당해 귀순하게 되지만.
그 후 서강군, 비요[11] 전에서 진언를 하는 제갈량의 참모로 등장하고, 그 후 행적은 정사와 같지만 사마사에게 연노맛을 쪼끔 맛보이고 사마소를 철릉산에서 포위해 리타이어 직전까지 가게하고 등애를 여러 번 이기는 활약를 떨쳤다.
다만 역사대로 흘려가서 등애의 모략으로 인해 어쩔수가 없이 퇴각하고 트롤러 종결자인 황호의 모함까지 더해 북벌을 거의 성공하다가 뭔가 아쉽게 되어서 실패하는 느낌으로 처리되었다. 그 후 행적은 정사와 같다. 다만 종회 부분은 강유쪽이 유리하게 서술되어서 이쪽도 역시 수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강유를 대장군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염우로 대체하려던 움직임은 연의에서 황호의 농간으로 나왔지만, 정사에서는 동궐, 번건 등의 대신도 참여하였다. 이들은 간신배 소리를 들을 인물도 아닌지라 이들과도 대립각을 세운 건 논란이면 논란이었지 절대 좋은 일은 아니다. 강유가 위연처럼 성격에 문제있었다는 언급은 없지만 아마도 무리한 북벌 정책을 무모하게 몰아붙이는 게 반대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정사에서는 유능한 인물은 맞지만, 귀순할때 연의처럼 싸운게 아니라 천수의 태수 마준이 도망가버려서 어쩔수가 없이 투항하고, 제갈량의 북벌 당시 참모로 활동하지않고 오장원에서 참전한 한 것 빼고 내정하느라 서촉땅에서 있었고 강유의 북벌에서 1, 2차에서 곽회에게 진격이 막히고 등애에게 여러 번 이기는커녕 호제와 연계해 단곡에서 등애를 공격하려다가 호제가 미처 도착하지 못해 전투에서 털렸다.
그래도 북벌에서 이긴 전투는 있긴 하다. 이간의 투항을 받아들인 2차 북벌에서 장억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서질전에서 서질을 죽이는 전공을 올리고 연의든 정사든 크게 승리한 적도 전투가 있다. 연의와 달리 이 전투는 등애도 적도를 강유에게 내주라고 포기할 정도의 압세를 떨쳤다. 물론 3차는 말했다시피 장억이 전사하고 이간이 바친 금성의 지리가 좋지않고, 4차는 진태의 계책으로 인해 어쩔수가 없이 퇴각하지만. 화양국지에 따르면 위장군이 된 직후 곽회와 하후패를 이긴 기록이 존재하지만 연의에선 다루지 않아서 정사와 같이 우두산 전투에서 이기지 못하고 이후 곽회를 죽여 설욕하는 것으로 나온다.
또한, 조운과의 일기토는 연의 한정이라도 강유의 무력이 실제로 뛰어났다는 기록은 정사에도 있다. 종회와 손 잡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을 때, '''63세의 나이에 위군 5~6명을 손수 죽였다'''는 기록이 버젓이 남아있다. 유비가 병들어 죽고 조조가 골골거리던 나이에 이 양반은 진삼국무쌍 실사판을 찍었다. 거의 정봉, 문앙과 같은 후반부 인간흉기 급. 그런데 연의에서는 이 간지와 비장미가 넘치는 일화가 삭제되고 단순히 자결한 것으로 처리됐다....[12]
3.2. 관우
나관중을 비롯해 세대를 거듭하며 재창조된 중국을 상징하는 아이덴티티이며, 넓게는 동양문화권 전체에서 의리와 무(武)의 화신[13] 이라 불린다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다. 항우와 함께 무의 아이콘으로 꼽히기도 한다.기실 정식 역사서에 기록된 관우의 기록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세간에 알려진 관우의 캐릭터는 연의에 의해 창작된 것들이 많다. 흔히 연의의 관우하면 떠올리게 되는 굳센 충의와 고아한 인품을 떠올리게 되지만 이러한 이미지를 형성한 세세한 에피소드들은 나관중이 만들어낸 허구성이 짙다. 관우의 의를 대표하는 장면들은 각색이 더해진 것.[14]
물론 관우는 연의가 만들어지던 시점에서도 이미 민간 설화에서는 상당한 인기인이었다. 다만 일단 관우의 명성 자체를 널리 퍼뜨린 건 연의가 주된 매체이고, 나관중이 좀 더 그럴듯하게 포장을 한건 분명한 사실이다. 즉 종합하자면 관우의 이미지를 나관중이 다 만들었다는 주장은 어폐가 있으나 그렇다고 기존에 있던 민간 이미지를 집대성 시킨 것 뿐이므로 '관우가 연의의 수혜자가 아니다' 라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해당 항목에 있기는 하지만 '''실제 아래에 있는 모든 사항은 거진 역사적 사실에 가까우며 연의 이전에도 있었던 시각 임을 유의하자.'''
다음은 연의에서 관우의 인품과 행적을 미화하기 위해 창작되었거나 삭제 혹은 변경된 장면들이다.
- 정사에 따르면 조조가 여포를 토벌할 당시 관우가 미인으로 알려진 진의록의 전처, 두씨를 달라고 조조에게 청했다고 한다.[15]
- 유비와 떨어져 있는 동안 형수님들을 잘 돌봐준 것은 창작이다. 정사에서는 유비의 처자가 조조에게 잡혔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후 형수들의 행방이 나와있지 않아 관우가 유비에게 형수들을 데려갔는지조차 불분명하다.
- 관우가 미래가 약속된 조조의 곁을 떠나 유비에게 돌아간 것은 사실이나, 오관육참과 천리행 장면은 허구다. 특히 천리행은 지도상으로는 가까운 거리(당시의 기준으로는 아주 가깝다고 하기는 힘들겠지만)를 빙빙 돌아가게 만들었다.
- 적벽대전 직후, 화용도에서 조조를 옛 정을 생각해서 놓아주는 장면은 허구다.
- 황충과의 일기토 도중 황충이 말에서 떨어지자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고 싶다면서 말을 갈아타고 오라고 요구하는데 이 장면도 허구다. 정사에서는 관우와 황충이 일기토를 했었다는 언급조차 없다.
- 정사에 따르면 문빙과 악진이 관우를 심구에서 격퇴하였다고 하며, 이통이 관우를 공격하여 포위당했던 조인을 구원하였다는 언급도 있지만 연의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 정사에 따르면 익양대치 중 감녕을 경계하여 강을 건너 공격을 하지못했다는 언급이 있는데 연의에는 나오지 않는다.[16]
- 연의에선 형주 반환 문제로 인한 노숙과의 회담에서 영리하게 노숙을 인질 삼아 피신했다고 하지만, 정사에 따르면 거진 침묵으로 일관했다.
- 정사에 따르면 그의 부하였던 미방, 사인, 반준과 불화했다고 한다. 결국 이 셋 모두 손권의 밑으로 들어간다.
- 연의에선 번성에서 수공을 사용하여 우금과 방덕을 사로잡고 칠군을 수몰시켰다고 하는데, 정사에선 단지 장마로 인한 홍수였다고 한다.다만 정사 방덕전을 보면 관우가 배를 타고 공격했다는 문구가 있기 때문에 관우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큰 비를 예견하고 대비는 한 것 같다.
- 정사에 따르면 손권과 불화한 장면이 많다. 손권을 '오소리'라고 모욕했고, 이후 우금과 조조군 소속의 포로 3만여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상관 지역에 있던 손권의 군량고를 급습하기까지 했다. 다만, 손권이 관우에게 지원군을 먼저 보내겠다고 언질을 준 후, 고의로 지원군을 천천히 보내도록 지시했기 때문에 손권 역시 어느 정도의 원인 제공은 했다. 관우 스스로 자신의 성질을 못 이긴게 문제. 그런데 손권과의 갈등은 오히려 연의쪽이 더 심각하게 묘사된다. 손권이 혼인 제의를 하자 관우는 "호랑이의 새끼를 개의 새끼에게 줄 수 있겠느냐"며 거절하는데 이건 연의의 창작이다.
- 연의에선 손권의 항복 제의를 거절하고 도망치다 사로잡혀 죽었다고 나오지만, 정사에 따르면 맥성에서 거짓으로 항복한 척하고 몰래 도망가다가 생포된 것이라고 한다.
- 죽어서도 유령으로 계속 등장하여 기어코 원수를 갚고 만다는 연의에서의 묘사는 당연히 허구다.
다음은 정사와 연의에서 각각 묘사된 관우의 무예를 교차 검증한 것이다.
- 연의에서 관우가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을 베는 장면은 창작이다.
- 연의에서 여포가 유비 삼형제와 일기토를 벌인다는 삼영전여포 대목이 있는데, 이 역시 여포를 무력 최강으로 만들기 위한 후대의 창작이다.
- 연의에서 관우는 황건적 관해를 상대로 일기토를 벌여 수십합의 경합 끝에 승리하는데 이것도 창작이다.
- 연의에서 관우는 기령을 상대로 한 일기토에서 30여 합이 넘어가면서부터 우세함을 보이나 이것도 창작이다.
- 정사에서 관우는 장료와 함께 선봉에 서서 적진 한가운데 있는 상장 안량을 참했다. 이후 원소의 수많은 장수들 가운데 아무도 관우를 당할 자가 없어 백마의 포위가 풀렸다는 대목을 보면 관우가 얼마나 높은 수준의 무공을 지녔던 장수였는지를 알 수 있다.
- 연의에서 관우가 문추를 죽인 것은 허구다.
- 연의에서 오관육참 후 관우와 하후돈이 경합으로 일기토를 겨루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도 창작이다. 오히려 연의를 통해 제대로 무예 버프를 받은 것은 하후돈이다.
- 연의에서 관우가 장사성을 공격했을 때 황충과 일기토를 벌였다고 하지만 이 역시 창작이다.
- 연의에서 번성 공방전에서 방덕, 서황과의 일기토가 경합으로 묘사되는데 정사에는 없는 창작 장면이다.
- 정사에서 방덕이 관우의 이마에 화살을 맞추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관우는 죽지 않았다. 또 정사에 따르면 관우는 화살에 맞은 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피가 넘쳐 흐름에도 불구하고 태연자약 했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관우의 강인함을 증명한다.
아울러 정사에서의 관우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유비군의 초창기 시절부터 적국의 모사들로부터 만인지적이란 소리를 공공연히 들었으며 범같이 용맹한 장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관도 대전에서는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가 안량을 베어버렸고, 이때 원소군 장수들이 관우 한명을 당해내지 못하여 백마의 포위가 저절로 풀렸다고 정사에 기록될 정도였다. 또한, 번성 공략 당시 7군 수몰로 명성이 천하에 퍼져 잘 나갈 때는 그 조조조차도 관우를 피해 수도를 옮기려 할 정도였었다고 하니 확실히 당대 최고의 명성을 얻은 용장이었다.
관우의 충의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원래 이름 높았던 관우의 충의에 더더욱 포장을 해놨기 때문에 연의에서 수혜를 입었다고 하는 것일뿐, 아예 충의가 없었던 장수인데 미화가 되었다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연의의 오관참장은 허구이나, 실제로 당시 조조 진영에서의 약속된 부귀영화를 버리고 객장 노릇이나 하던 유비를 찾아간 건 실제 있었던 일이다. 즉, 나관중은 후한의 이 의기높은 무인을 재해석하여 천하에 이름을 떨친 충의지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재창조된 그의 이미지는 중국인들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으며, 중화를 대표하는 모범적인 캐릭터로서 피지배 계급과 이민족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로 이용되었다.
결국 관우에 대한 사실을 정리해보자면, 평생 유비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은 것이 확실하며 삼국시대 최고의 용장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후세에 의해 재창조가 덧씌워졌을지언정 관우의 의(義)나 무(武) 자체가 의심받을 일은 아닌 것이다. 또한 관우가 당대부터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었고, 후대에도 무신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물론 그의 무예가 대단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충의지사로서의 이미지가 더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마디로, 실제로도 신의있고 무예가 출중한 무장이었으나, 연의에 의해 여기에 고고한 인품과 학식이 추가되고 무예가 조금 너프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덧붙이면 관우는 학자급도 아니었지만, 자기 이름도 못쓰는 일자무식의 장수도 아니였다.[17]
단, 관우 때문에 캐릭터가 뒤틀린 인물들은 많다. 관평, 주창, 관흥 등 그의 주변 인물들이 상당히 업그레이드 된 반면 그의 죽음에 관여했던 여몽, 반장, 반준, 미방 등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그려지게 된다. 화웅이나 안량, 문추는 상당히 애매하게 혜택을 받아서 적어도 관우에게 썰리기 전까진 신나게 썰고 다닌다. 즉, 관우와 반목하되 결국 관우에게 패배해서 죽으면 미화가 되고 되려 관우를 죽게하는 데 책임이 생기면 평가가 떨어지고 관우를 잘 우대한 사람도 좋게 평가받는다고 볼 수 있다.
조금 더 추가하자면 관우를 죽이는데 직접 관여한 오나라 장수는 정말 어이없이 죽음을 당하거나 무능하게 나온다. 오나라의 대도독까지 역임했던 주연은 수명이 무려 20년이나 줄어들어 죽었으며, 여몽은 몸의 전 구멍에서 피를 토하면서 죽는 호러스러운 죽음을 겪었고, 반장, 이이, 사정 등은 참 황당하게 죽임을 당했다. 위나라 장수도 딱히 나은 편은 아닌데, 번성공방전에서 관우의 포위를 깨부신 위나라 최고 명장 중 하나인 서황은 안량에게 일기토에 패하고, 왕평을 핍박하는 소인배에 죽음마저도 맹달이 아무렇게나 쏜 화살에 맞아죽는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관우를 상대로 번성을 사수해낸 조인 역시 연의에서는 여기저기 털리는 호구로 나온다. 만총은 그에 비하면 너프는 아니지만 뛰어난 지휘관이자 도독으로써의 모습이 거의 삭제되고 그저 외교전담 셔틀정도로만 등장한다.
3.3. 관평
연의에서는 관우의 양아들이라는 설정. 정사에서는 양아들이라는 말은 없고 정말 짤막하게(관우와 함께 붙잡혀 참수되었다. 끝) 기록되는 데 반해, 연의에서는 이리저리 스토리가 많이 붙어 나름 인기 캐릭이 되었으며, 이 덕에 현재 여러 곳의 관제묘(關帝墓)에서 아버지와 같이 실제로는 있지도 않는 장수와 함께 모셔지고 있다.
3.4. 관흥, 장포
아버지들의 덕을 톡톡히 본 케이스. 연의에서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일어선 용맹스러운 젊은 2세들로 그려지며, 이릉대전, 북벌시에 맹활약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유비가 손권을 공격했을 때 관흥은 반장을 죽여 원수를 갚고 청룡언월도를 되찾았으며, 장포는 손권이 화해 선물로 보낸 범강과 장달을 직접 죽여 원수를 갚았다. 북벌에선 위군에게 포위당한 조운을 구출하고 그 과정에서 동희, 설칙도 죽이는 공을 세운다.
장포는 아예 장비가 죽기 전에 이미 요절했고, 관흥도 제갈량에게 그 재능이 촉망받았지만[18] 약관 20세의 나이에 죽었다. 따라서 아무 활약도 하지 못했고 원수인 반장, 미방 등은 이릉전투 이후에도 잘 살았다.
촉빠라고 해서 이 둘을 무조건 좋아하진 않는다. 둘때문에 왕평, 오의 등 원래 활약하는 장수들의 비중이 줄어들었기 때문.[19] 오죽하면 '''나관중의 메리 수'''라는 불명예스런 칭호까지 생길정도.
3.5. 마대
연의에서는 여러 장면에서 군공을 세우고, 배신자 위연을 참살하는 등 대활약한다. 그러나 정사에서는 군공은 커녕 언급되는 기록조차 찾기 힘들다. 전장에 있던 기록은 진서 선제기에 우금에게 패배한 기록 하나밖에 없다. 마초가 죽을 때 "저희 일족 중에서 살아남은건 대 하나뿐입니다. 저희 가문이 단절되지 않도록 우리 대를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는데 마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이거 하나다. 위연을 죽인 건 사실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위연의 난을 진압한 건 왕평이다.
알고 보면 이쪽도 관흥, 장포와 같이 오호대장군 2세 무장 보정. 사촌형인 마초의 덕을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보통 까일때 셋이 세트로 까인다.
3.6. 마속
정사에서는 유비가 언과기실하고 위급할 때는 절대로 써선 안 될 인물이라 평가하며, 실제로도 나름 평균은 했으나 가정에서 1차 북벌을 말아먹은 1등공신이다. 그리고 결국 잡혀서 사형당하는 잉여 장수 중 하나다. 물론 그렇다고 실력이 안 좋은건 아니고 남만은 무력이 아닌 마음으로 회유해야 한다는 등 나름대로 능력는 있는 사람이다. 그를 포함한 다섯 형제 모두 능력이 출중했다는 기록이 있다. 게다가 장완 등이 사형하지 말라고 비는것도 정사에 나오는 사실이다. 결국엔 유비 말대로 말은 앞서지만 실속이 없다는 것만 증명했지만.
그러나 연의에서는 언과기실함은 유언에서 나오나, 사마의를 실각시키는 등의 온갖 활약을 펼쳐 강유를 제외하고 "후반 촉의 최고의 참군 = 마속"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사형당할 때에도 패퇴후 '''도망치다''' 잡혀서 참수당한 정사와 다르게 스스로를 결박하고 벌을 해달라고 요청해달라는 일반적인 충신으로 나와 이미지를 전부 회복했다. 연의에서 여러가지 버프를 받았다.
3.7. 마초
마초가 주목을 받는 계기는 조조에게 싸움을 걸며 장안을 공격하면서부터이다. 연의에서는 아버지 마등의 죽음에 분개해 상복을 입고 출진, 위군을 가루로 만들며 진군하지만 가후의 비열한 이간계에 걸려 패퇴한다. 역적 조조와 대비되는 충의의 인물로 묘사되며 시종 내내 복파장군 마원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강조된다.
하지만 정사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 우선 출병의 이유가 거론되는데 마초가 움직인 시점에서 마등은 생존해 있었으며 아들의 반역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처형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마초 본인의 야망설이 있고 다른 하나는 한중으로 진격하려는 조조의 움직임을 보고 관중 진격으로 오해하여 아버지의 죽음을 각오하고 난을 일으켰다는 의견이 있다. 마초가 직접 한수에게 '''"저의 아버지가 처형당하면 공이 저의 아버지가 되어주십시오"'''라 말한 기록도 있기 때문에 마초는 마등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도 반란을 일으킨 것이 맞다. 또 무제기와 고유전 등에 조조가 한중으로 진격하자 관중군벌들이 자신들을 치려고 했다고 여겨 공격했다는 기록과 고유가 지금 거대한 군대를 움직이면 서량의 군대가 움직일테니 먼저 서량을 평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기록을 보아 조조의 진격을 본인들의 위협으로 보고 군사를 일으킨것도 사실이다.
전공도 상당 부분 과장이 섞여있다. 조조가 스스로 수염을 자르고 달아나는 장면은[20] 연의의 명장면이지만 실제와는 다르다. 실제 상으로도 조조가 강을 건나다가 허저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났지만 조조가 전포를 벗는다던지 수염을 자른다던지 하는 굴욕은 없고 정사에선 조조가 간신히 살아와서는 "껄껄, 오늘 내가 도적놈들에게 당할뻔했구나!"라고 호탕하게 웃기까지 한다. 충의지사 이미지도 역시 덧씌워진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연출은 모두 훗날 촉한 오호대장군직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마초가 조조를 상대로 상당한 전과를 올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패배 역시 정면대결이 아닌 이간계에 의한 내분 때문이었으며 그가 기신, 경포와 비견될 정도로 영용한 호걸이었다는 것과 "마초를 살려두면 안 된다"고 조조가 탄식하고 경계한 것 또한 정사의 기록이다. (한문 원문은 "信、布之勇"이라 기록하는데 여기서 "신"은 한신으로, "포"는 여포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위수에서 패배한 이후 재기해 농서 일대를 재점령하고 하후연을 격파하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연의에서 벌인 일기토는 모두 거짓이다. 오히려 위략에서 마초는 염행과 일기토를 벌여 염행의 부러진 모에 목을 맞아 끔살 일보직전까지 갔다는 기록이 있다. 염행이 마초와 일기토를 벌이다가 창이 부러지자 부러진 창자루로 마초의 목을 공격해 죽일뻔한 것으로 기록 된것인데 실존인물 마초는 어느정도는 용맹하기도 했고 병력 통솔에 대한 재능은 있었으나 무력에선 연의에서처럼 후덜덜한 수준은 아니였다.
한편으로는 무장으로서의 용맹함이 강조되다보니 유력 군벌로서의 정치적 입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정사에서의 오호대장군 서열은 관장마황조 순이었으나 연의에서는 관장조마황으로 조운에게 밀렸다. 참고로 유비가 칭제할 때 신하들이 축하하는 표를 올렸는데, 여기서 마초가 1위, 제갈량은 8위에 그쳤으며, 조운은 아예 언급조차도 되지 않는다.
3.8. 부첨
연의에서는 강유가 북벌에 나설 때 장서와 함께 발탁되면서 등장하고 우장군에 임명되는데 꽤나 용맹하다는 설정이다. 데뷔전에서 위나라 장수 왕진이 창으로 찌르려 하자 팔로 왕진을 붙들었으며[21] 이붕을 유인하여 철편으로 얼굴을 내리쳐 쳐 죽였다.
촉나라에 거짓으로 항복한 위나라의 장수 왕관(王觀)의 계책을 강유가 간파하고 등애를 유인하는 계책을 세울 때 마른 풀을 실은 수레 수백 대를 가지고 매복해 있다가 한밤중에 등애가 당도하자 수레에 불을 붙여 군호로 삼고 위군을 공격하고 종회가 양평관으로 쳐들어갈 때 부첨이 맞아 싸우다 죽었다.
그러나 정사에서는 부첨은 아버지 부융[22] 이 죽은 후 좌중랑장에 임명되었고, 후에 관중도독이 되었다.
위의 촉 정벌 당시 종회는 한중까지 진군하고 호군 호열로 하여금 양안관구를 공격하게 하였다. 부첨과 함께 관구를 지키던 장서가 나가 싸울 것을 주장하자[23] 부첨은 '성을 보전하라는 명을 받았으니 오로지 온전히 지키는 것이 공을 세우는 것이오. 이제 명을 어기고 출전하였다가 만약 져 하여 나라를 저버리게 된다면 죽는다 하더라도 아무 이득이 없는 것이오.'라고 말렸으나 장서가 '그렇다면 각자 알아서 하십시다.'라고 했고 부첨은 장서가 싸우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장서는 처음부터 싸울 생각이 없었기에 호열이 이끄는 위군을 만나자 바로 항복했다. 호열이 헛점을 틈타 성을 습격하자 부첨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으나 끝내 전사했고 양안관구는 위군에게 점령되었다.
애시당초 장서를 너무 믿다가 털렸지만 장서가 대놓고 항복하려고 작정을 해 그를 속인 면도 있거니와[24] 부첨은 처음부터 양안관구를 굳게 지킬 작정을 했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기 때문에 위나라에서는 적이었지만, 촉나라 멸망 후에 부첨의 두 아들 부처, 부모가 죄인의 자식이라 노비가 된 상태에서 진나라를 세운 사마염은 부첨의 충의를 높이 평가하여 조서를 내려 부첨이 촉나라를 위해 전사한 것을 선한 일이라고 하고 아들들인 부저와 부모를 노비 신분에서 해방시켜 서민으로 살아가도록 했다. 그래서인지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의 삼국지 9부터 통, 무, 지가 70대 이상.[25] 물론 게임이지만 그래도 촉빠들로써 강유의 보좌 측근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고 동상도 있다.
3.9. 미부인
정사에서는 별로 언급도 없는 여성이지만 연의에서는 조운에게 유선을 맡기고 자신은 우물에 투신하는 장면이 있다.
게다가 정사와 다르게 사후 감부인과 함께 황후로 추존된다. 정사에서는 감부인만 황후로 추존되었다.
물론 무조건 수혜만 받았다고 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도적이란 이유로 배원소, 요화를 남편인 유비 밑에서 일하게 하는 것을 반대했다. 배원소는 그 덕에 조운에게 목숨이 날아가고, 특히 요화는 미부인의 목숨을 구한 은인임에도 도적이란 이유로 받아주길 꺼리는 점으로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해석하기 딱 좋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자기를 구해줬다지만 본래 도적이었던 사람을 느닷없이 남편 부하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선뜻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있다.
3.10. 양의#s-2
정사에서 양의는 참으로 화려(?)하다. 관우에게 항복해서 촉에 소속되었는데 유비는 양의가 능력있어 보이길래 중용했지만 유파에게 시비를 걸어서 싸움을 일삼았다. 열받은 유비는 양의를 홍농태수로 좌천시켜버렸다. 당연한 게 유비는 유파를 정말 어렵게 모셔왔고 유파의 능력을 존중해서 유파에게 중요한 일을 계속 시키고 있었는데 양의는 매양 유파와 싸웠다. 또한 위연과도 사이가 매우 안좋기로 유명했다. 제갈량 사후, 위연의 반란 이후에 그리고 나서 양의는 내심 자기가 제갈량의 후임 승상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으나 장완이 제갈량의 후계자가 되고 승상은 영구결석이 되었으며 양의는 중군사가 되자 양의는 희대의 병크를 터뜨리고 만다. 비의와 독대면에서 '위씨를 따랐을걸!'이라고 외쳐버린 것. 정사 원문은 분명 위씨라고 밝혔으므로 위연인지 위나라인지 애매하지만, 얼마 전까지 서로 못죽여서 안달이었던 위연을 가리킬 가능성은 낮으니 보통 위나라로 보는 것.
하지만 연의에서는 단지 위연과 원수지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청난 버프를 받았는데 유비에게 버림받은 것은 삭제되고 위연을 제멋대로 살해한 것이 아니라 위연의 반란을 진압한 것으로 나온다. 거기에 위연의 일족을 몰살시킨 것도 빠져있다. 물론 '위씨를 따랐을걸!'이라고 외친 것은 연의나 정사나 내용이 일치하기 때문에 연의에서도 깠다고 볼 수도 없다.
또한 마속이 가정에서 진지를 잘못 구축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양의가 자신이 마속을 대신하겠다고 나서자 제갈량이 허락하는데, 상식적으로 제갈량이 연속 두 번이나 사람을 잘못 썼을 확률은 희박하니 이는 연의에서 양의가 군사적 능력도 어느 정도 갖췄다고 암시하는 것이다.
찌질한 명성이 외국까지 퍼져서 손권은 "양의와 위연 같은 막장인간들은 왜 쓰냐"고 촉나라 사자에게 말한적 있는데 연의에서는 이 발언중 양의가 짤리고 "위연이 조만간에 반역할 인물인데 왜 쓰냐"로 바뀌었으니 이것도 수혜.
연의에서도 손권이 둘을 깠다는 주장이 있으므로 연의 원문을 첨부한다.
權問曰: "丞相軍前, 用誰當先破敵?" 褘曰: "魏延爲首" 權笑曰:"此人勇有餘, 而心不正. 若一朝無孔明, 彼必爲禍, 孔明豈未知耶?"
——출처: 모종강본 연의 102회
대략 번역하자면 이러하다.손권이 물었다. "승상께서는 누구를 선봉으로 삼아 적을 격파하시오?" 비위가 대답하였다. "위연이 그 우두머리입니다." 이에 손권이 웃으며 말했다. "그사람은 용맹은 넘치지만 마음은 올바르지 못하오. 공명이 죽은 후 화를 저지를 것이 분명한데, 공명은 왜 모르시오?"
그래서인지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의 삼국지 9부터 이 인간의 매력 스텟은 '''25를 넘어본 적이 없다.'''
이상한 것은 촉한의 입장에서는 인격적으로 이보다 더한 쓰레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연의의 수혜자라는 점이다. 더군다나 나관중이 항장에 대한 용서가 없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항복을 시도하려는 마음을 내비친 양의에 대해 평가가 좋은 것은 또 아이러니하다.
3.11. 엄안
정사에서는 장비에게 사로잡힌 뒤에도 꿋꿋한 태도를 보여 장비가 감복했다는 내용만 남아있을 뿐, 이후에 서천 공략에 공을 세운다거나 황충과 함께 한중에서 조조군을 격퇴했다는 내용은 모두 연의의 창작이다. 정사 기록으로는 엄안이 노장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장비의 의석엄안을 띄워주려고 포장된 케이스. 연의에서는 지나치게 이 부분을 강조하려고 엄안이 장비에게 사로잡힌 후 "서촉에 목 잘릴 장수는 있어도 항복할 장수는 없다"고 소리치다가 잠시 후 바로 자신이 서촉 출신 항장 1호가 되는 웃지 못할 전개가 펼쳐진다.[26] 하여간 이 에피소드가 유명하긴 한 것인지 후일 남송의 진정한 마지막 충신인 문천상의 정기가에 엄안의 일화가 들어가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나중에는 한중공방전에 참여, 같은 노장인 황충 밑에서 '''장합''',하후덕,하후상,한호 네명을 개발살내버리며 황충은 한호를 엄안은 하후덕을 날려버린다. 정사에서는 항복 이후의 행적이 없는것과 비교해보면 이정도면 버프중의 버프인 셈 심지어 장합은 한번도 아니고 세번이나 산 송장이라 무시한 황충과 엄안에게 개발살난다.[27]
3.12. 이엄
크게는 정사와 다르지 않지만, 탁고대신 중 제갈량에 버금가는 2인자라는 신분이 퇴색된 대신, 편지로 맹달의 침략을 격퇴하는 등 활약상을 보여주기도 했고, 제갈량의 립서비스도 많은 편이다. 데뷔전에서 황충을 상대로 무려 50합이나 싸워 무승부를 내는데, 제갈량은 이엄이 무력으로 이기지 못할 상대라고 평가하였고 북벌 때에 다른 신하들이 손권의 뒷치기를 걱정하자, 제갈량은 이엄이 육손을 대적할만 하다고 평가한다. 즉 립서비스로만 보면 무력은 촉나라의 오호대장, 용병술과 지략은 오나라의 육손에 필적하거나 버금가는 정도니, 사기캐가 따로 없다. 게다가 실제 중요한 후방 수비를 맡겼으니, 단순한 립서비스 정도로 봐주기도 어렵다.
3.13. '''제갈량'''
물론 제갈량의 능력은 실제로도 굉장히 출중하였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주인공보정까지 받아 아예 자연 기후를 조종하는 수준의 먼치킨으로 등극하였다. 일각에선 원래도 뛰어난 제갈량이 오히려 연의로 인해 현실성에서 타격을 받아 희생되었다고도 하나, 매니아 적인 삼국지 팬덤을 제외한 일반 대중의 시선에서는 굉장한 수혜를 받았다. 후술되는 제갈량의 내치나 인격적인 부분에서 너프되었다는 주장은, 삼국지를 탐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제기될 수 있을 지 모르나, 연의가 어디까지나 소설이라는 점을 볼 때 이러한 내용들은 너프가 아니라 소설의 특성으로 인해 그 비중이 줄거나(내정 능력) 묘사가 소설식으로 표현(위연의 배반에 대한 복선-위연을 반골의 상이라고 한 것을 두고 일부 삼국지 팬덤에서는 제갈량의 인격에 대한 너프였다는 주장을 하나, 이건 소설적 복선과 제갈량의 예지력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된 것들이라고 봐야한다. 무엇보다 전략면에서 제갈량이 수혜를 입은 것들로 인해 다른 수많은 인물들이 ‘제갈량보단 그래도 한 수 아래다.’라고 주장되기 위해 너프를 받았는데, 이릉대전 이후 부상하는 육손을 제갈량 보다 한 수 아래로 만들기 위해서 꾸며낸 돌무더기 일화가 대표적이다.
삼국지를 읽던 한 사람이 도중에 책을 세 번 집어던졌다가 다시 주워 읽었다는 일화가 있는데 그때가 각각 관우, 유비, 제갈량이 죽었을 때라고 한다. 그만큼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인데, 제갈량은 그 중에서도 삼국지 중후반부의 중심에 선 메인 캐릭터로서 최고의 수혜를 입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삼고초려, 적벽대전, 칠종칠금 등 제갈량에 관련된 대목들이야말로 나관중의 작가로서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부분이다. 일단 삼고초려로 대표되는 그 등용과정에서부터 형주의 석학[28] 들과 제갈량의 인척들을 동원하여 몽환적이고 초월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망파, 적벽에서의 암약과 더불어 동오에서 벌어진 설전 역시 창작에 가깝다. 이러한 경향은 남만정벌에서 그 정점에 달하는데 목록대왕, 올돌골 등 정사에 등장하지 않는 이국적인 세력들을 등장시켜 독자들의 몰입감을 높이는 한편 이들을 지혜로 격파하는 공명을 돋보이게 만든다.
또한 사마의, 주유 등은 공명을 위해 아예 캐릭터가 다시 만들어질 정도이다. 주유는 뜬금없이 공명의 재능을 시기하며 그를 죽이려고 하지만 번번히 책략에서 패배하여 결국 분사하기에 이른다. 사마의는 어떤 의미로는 공명으로 인해 평가가 올라간 인물이다. 원래 공명의 1차 북벌을 막아낸 데는 장합의 공이 컸지만, 연의에서는 그 역할을 사마의가 맡았다. 즉 중달을 공명의 유일무이한 라이벌로 만들기 위해 장합과 곽회의 공을 말소하고 그것을 사마의에게 돌려 '''공명은 사마의 이외의 인물에겐 패하지 않는다'''라는 공식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 예외적인 부분이 딱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진창성에서 학소에게 패한 부분이다. 비록 공성전이었지만, 압도적인 숫적 우위를 가지고도 학소에게 패하였는데, 이 패배에 대한 묘사가 정사에 비해 연의에 훨씬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오히려 실제 패배보다 더 큰 참패를 당한 것처럼 묘사된다. 여러 번 실패하자 침착함의 아이콘이던 제갈량이 열폭까지 하는 건 덤. 물론 정사와는 다르게 진창성 2차 공격이라는 창작을 연의에 수록하여 제갈량을 체면을 어느 정도 세워주었지만, 연의에서만큼은 완벽한 제갈량이기에 진창성에서의 패배가 생생히 묘사된 것은 나름대로 의외의 부분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학소 문서 참조.
나머지 하나는 뭐 워낙에 유명한 강유에게 패배하는 부분. 물론 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갈량이 다시 강유와 맞붙어 천수를 함락하고 강유마저 얻게 되지만 해당 전투가 무적이라고 할만한 제갈량이 '''계략으로 패배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충격은 더할 나위가 없다. 물론 이건 제갈량을 폄하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강유를 띄워주려는 목적으로 넣은 게 자명하지만 어쨌든 없던 패배가 생겨버렸으니 이미지 피해를 본 건 확실하다.
공명은 유비의 뜻을 잇는 자로 한황실의 부흥의 중심에 있던 영웅에게는 그에 합당한 매력적인 요소를 부여해야 했기 때문이다. 유비의 유언을 철저하게 지켜내 유선을 전심으로 보좌한(정사에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의기에서도 그는 삼국지연의의 후반부를 맡길 만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적인 부분에서 너무 극단적으로 띄워진 탓에 다른 부분에서도 만능이었던 점이 가려지고 오히려 폄하된 부분도 많다.
제갈량의 진정한 재능은 화려한 전략보다는 '''건실한 내치'''[29] 에 있었다. 남에게서 빼앗은 땅에 기반을 굳히고 이릉의 손실을 극복하여 마침내는 10배 가까운 국력을 가진 나라에게 싸움을 걸었다.[30] 위나라는 4만의 상비군을 보유하는데도 쩔쩔 매는데 비해, 훨씬 땅과 인구가 적은 촉은 그보다 많은 군사를 상비군으로 가지고 있었다.[31] 비록 북벌은 실패로 끝났지만 위는 그의 생전 단 한 번(조진이 한중을 공격하려 했으나 장마로 철수)밖에 공세를 펴지 못했으며 그가 발굴해 낸 인재들은 사후 30 년간 촉을 이끌어갔다. 가히 촉의 소하나 춘추시대 제나라의 관중에 해당하는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의 시대 내내 촉과 위의 관계가 공세와 수세라는 부분에 있어서 국력과는 정 반대의 상황으로 이어졌다는 점, 그리고 위의 장수들 중 올스타 라인업에 해당되는 인물들이 대 촉 전선에 투입되어 있었다는 점은 그의 군사적 재능 역시 비범치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단, 내치라는 것이 소설에서 표현할 수 있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부분이었기 때문에(연의는 기본적으로 군담소설이기 때문에 문관들의 역할이 대폭 축소되었다) 여러 가지 장치들이 더해졌던 것이다. 사실 전략 단위에서의 군사 운용은 어차피 내치와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치에 뛰어났던 그가 군사적으로 뛰어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게다가 툭 하면 징징거리는 부분도 연의에서 피해를 입은 부분이다. 엄밀히 따지면 제갈량이 걸핏하면 탄식을 할 만큼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나, 연의에서는 제갈량을 띄워주겠다고 다른 촉의 인물들까지 죄 다 띄워주었는데도 이 상황 자체를 그대로 유지하는 바람에 이해가 가지 않는 행적을 보여주는 경우가 잦다.
마속이야 연의에서도 삽질을 했으니 그렇다쳐도 연의에서 위연, 마대, 강유[32] 등의 군공이 상당히 부풀려지고 관흥, 장포 같은 관우와 장비 못지 않은 2세대 장수까지 추가 되어서 이릉 대전 직전의 유비군 못지 않은 올스타 팀을 꾸리게 된 반면 제갈량이 상대해야 할 위나라는 사마의만 제정신 박힌 인물이고[33] 장합[34] , 조진, 곽회 등은 죄다 원래보다 못하게 그려져서 병력이랑 물자만 많은 사마의 원맨팀(...)이 되어 버리고 제갈량은 소속 장수들이 죄다 뛰어난 팀을 꾸리게 되었는데 '''이 상황은 확실히 정사와 반대된다'''. 정사에선 오히려 위나라의 올스타팀에 가까운 북벌 방어 라인을 제갈량이 고군분투하면서 뚫어나가는 눈물나는 이야기인데, 어째 연의에서는 정 반대로 인간 흉기 수십 명을 데리고 위나라를 침공하는 촉군을 상대로 무능하고 짬밥만 많으신 높으신 분들과 공적에 미쳐서 툭하면 명령에 불복종하는 장수들 사이에 치이면서 고군분투하는 사마의(...)의 구도로 바뀌었기 때문.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제갈량은 촉나라에 인재가 없다고 푸념을 일삼는다. 차라리 물자나 병력이 위나라보다 못하다고 하는거면 이해라도 되는데 연의 특유의 촉나라 뻥튀기 현상으로 인간 흉기급이 살벌하게 퍼져있는데 '아이고 내가 인재가 없어 인재가~' 이런 타령하는 게 정당성이 없어진다는 게 문제. 즉 정사에서 제갈량은 정말로 자기 혼자 내치를 다 다지고 전략 다 짜서 쳐들어가는데 그놈의 미친 인재풀 격차랑 국력차에 좌절하고 고군분투하는 승상의 이미지였다면 연의에서의 제갈량은 언뜻보면 상황이 그리 나빠보이지 않는데도 징징대기 때문에 이미지에 피해를 보는 것이다.
물론 연의에서도 여전히 길목 막으려고 보내놨더니 뜬금없이 등산을 하는 마속(...), 심심하면 시기가 안 좋다고 전쟁을 반대하는 초주, 위나라의 간계로 유선한테 제갈량이 반란을 일으킨다고 부추기는 답 없는 중신들, 그걸 또 듣고서 귀환시키는 황제 유선, 보급 힘들다고 자군 장수한테 반간계를 거는 이엄 등 공대 내부의 적들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기에 마냥 답 없는 푸념까진 아니지만 최소한 이러한 답없는 놈들은 뒤에서 정치하는 놈들이고 일선에서 싸우는 장수들은 여전히 인간 흉기들 데리고 사마의 원맨팀한테 덤빈다는 비교 우위가 있는데 저러니까 아무래도 정사의 모습에 비하면 당위성이 떨어진다. 이런 연유로 연의 제갈량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 결국 이미지적인 피해는 내치가 생략된 점 보다 촉나라 장수들이 원래보다 푸쉬를 많이 받았고 위나라 장수들이 역으로 너프를 먹었는데도 역사상의 제갈량과 똑같은 인재 드립을 친다는 점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제갈량을 지혜의 화신으로 만들었으면서 처세에서 은근히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으로, 우선 짧게 요약하자면 재주에 대한 과시욕이 너무 강하고 상황에 따라 재주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가장 드러나는 것이 적벽대전 무렵으로, 주유가 뭔가 계책을 시전한다 → 노숙을 제갈량에게 보내 제갈량의 생각을 알아본다 → 제갈량은 주유의 타산을 간파한고 노숙에게 알려준다 → 노숙이 주유에게 보고하고, 주유는 이러한 제갈량에게 위협을 느껴 견제를 시도한다 이러한 패턴이 자주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재주를 드러내서 다른 사람의 어그로를 끈다는 점에서 양수와 매우 비슷한 부분. 물론 이로 인하여 생기는 위기까지 제갈량이 스스로 재치를 발휘하여 해결하긴 하는데, 그럴바엔 차라리 처음부터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인격적인 면에 있어서는 상당히 많은 폄하가 이루어졌다. 정사에 따르면 제갈량은 상벌이 명확하고 공정하여 엄한 규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불만을 가지는 자가 없었으며 촉의 문무백관과 백성들은 그런 제갈량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하니 실제 그의 인품은 매우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사람을 꼽태워서 홧병으로 죽여버리고는 그 장례식에 가서 통곡하는 쌩쑈를 한다던지, 관상 때문에 초면에 사람 목을 베라고 하고는 이후로도 계속 핍박한다던지[35]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 제갈량은 매우 성실하고 청렴하며 공명정대한 사람인데도 연의에서 인자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도쟁이스러운 껄렁함이나 보여주고 있다.[36] 오나라를 부추겨 전쟁에 끌어들이고 주술로 동남풍을 불러오는등 현대 관점에서 보면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사기꾼인지 지략가인지 마법사인지 알 수 없는 난잡한 캐릭터로 만들어 버렸다. 덤으로 정사에서 적벽대전에서나 형주 점령전에서 손권과 연합하여 많은 역할을 한 유비 세력의 행적을 이상하게 뒤틀어 놔서 오나라가 다 해놓은 일을 주워먹거나 뒤통수나 후려갈기고 이득을 챙기는 야비한 놈으로 보이게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연의에서 제갈량을 띄워주기 위해 동원한 허구적이고 상식을 넘어서는 화려한 연출은 현대에 들어서는 오히려 그의 평을 깎아먹고 있는데, 근래에는 정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연의에 대한 반발로 안티들이 양산되는 중이다.[37]
다만 이러한 안티들은 직접 정사와 비교해서 지나치게 띄워준 부분을 까기보다는 "정사를 잘 모르지만 연의를 부정하는게 좀 더 있어보인다"는 생각에 "그거 다 연의 거짓말임. 정사는 정반대." 라는 식의 논리를 들먹이는 경우가 많아 "제갈량은 실제 내치에만 유능했지 사령관으로서의 능력은 전무하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물론 해당 주장들은 실제 정사를 참조한 것이 아닌 연의에 기반해서 정사는 반대일 것이라고 '''추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직접적인 피해라기보다는 연의에서 과도하게 띄워준 부작용으로 봐야 할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제갈량은 내치에도 사령관으로도 유능한 천재였다.
또한 위연에 대한 과도한 빠질이 제갈량에게 옮겨붙는 경우도 늘어났는데, "위연은 사실 반역이 아니었다" 는 정사의 내용[38] 과 "제갈량이 위연을 반골의 상이라고 지적했다" 는 연의의 내용을 짬뽕하여 "제갈량이 애꿎은 위연을 반역자라고 매도하여 갈군다" 는 괴랄한 주장을 보이는 실태. 오히려 정사에서의 제갈량은 위연의 용맹과 양의의 재간을 아껴 서로 화목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고 비의가 서로의 사이를 열심히 중재하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위연 본인은 반란 의도가 없다고 백번 양보해 그렇다고 쳐줘도 명령 위반, 동료 납치 및 감금 미수, 탈영, 거짓 보고로 국가 혼란 유도, 아군을 공격해 몰살시켜 자신이 한 짓들을 증거인멸을 시도한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반란 의도가 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일까? 사실 반역이 아니었다고 진수가 옹호해줬다지만 진수는 위연이 죽은 건 자업자득이라고 확실하게 언급한 점은 위연빠들이 교묘하게 빼버렸다.
최근에는 이렇게 정사의 정 자도 안보고 정사드립을 치는 사람들의 패악질 때문에 그에 대한 안티테제 격의 제갈량 팬도 늘고 있는 추세다.
종합하자면 제갈량은 분명 삼국지의 아이돌이자 천재 지략가에 충신이라는 위치를 가지고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는 정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으나, 그 과정이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소설 특유의 과장이 덧붙여지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정작 가장 중요한 제갈량의 캐릭터성을 너무 희석시켜버렸다. 정사에서나 연의에서나 제갈량이 천재였음은 분명하지만 정사에서의 제갈량은 껍데기에 싸이지 않은 제갈량의 모습을 서술하면서 그를 높이 평가했으나 연의에서는 제갈량을 포장하겠다고 온갖 화려한 껍데기를 뒤집어씌운 탓에 정작 독자가 그 알맹이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어버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의라는 소설 내에서의 대접과 위상, 삼국지 팬덤이 아닌, 절대 다수인 후대 대중에서의 인식을 볼 때 제갈량은 연의의 수혜자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
3.14. 제갈첨
정사에서도 나름대로 능력이 있다고 인정받았고 무엇보다 충성심은 아버지 제갈량 못지않다는 호평을 받았다. 다만 나이가 너무 어린 탓도 있고 강유를 필요 이상으로 견제하였다는 논란이나 황숭의 간언을 듣지 않아서 등애가 평지에 진입하게 만든 사례 등의 실책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전반적인 평은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할 수준의 호부견자는 아니지만 부족함도 있는 아쉬운 인물 정도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오에게 원군을 요청하고 황숭의 간언 부분도 생략하고 제갈량의 목상을 앞세워서 위군을 혼란에 빠트리는 등 최선을 다했으나 아깝게 패전한 인물로 묘사했다. 즉 실제보다 버프를 받은 측면이 분명히 있다.
3.15. 조운
물론 조운이 매우 뛰어난 무장이었다는 것은 정사에서도 공인된 사실이고[39] , 무려 관우, 제갈량과 더불어 역대제왕묘에 공신으로 배향되었다는 점만 하더라도 조운의 능력이나 인물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40]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전공이 크게 과장되어 있으며 조운을 위해 희생된 가공인물들과 숫자는 말 그대로 수레로 실어날아야 할 판이고[41] 사실무장의 경우도 3명을 더 죽였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연의 최고의 수혜자.
등장자체도 실제로 기록조차 안된 문추와의 일기토로 등장하며, 원래 큰 전공을 세우지만 나중에 교만해져서 원소한테 숙청당하는 국의 또한 일기토로 죽인다. 조조와 싸워서 도망가는 장면에서도 실제인물인 고람을 일기토로 죽이고, 장판파에서는 아이를 안고 수많은 가상인물을 죽이며 무쌍난무를 펼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실제 크게 영향력이 없는 인물이거나 가상인물이라 크게 상관이 없지만 나중에 이릉대전에서는 자기보다 훨씬 더 오래살고 수많은 공을 세운 오나라의 주연까지 죽여버린다. 늙은이가 된 이후[42] 에는 제갈량이 자기를 선봉에서 빼자 노해서 선봉에 세워주지 않으면 기둥에 머리를 찧고 죽겠다고 하는데, 선봉에 서서 가상인물이긴 해도 한덕과 그 아들들까지 '''일가족을 완벽히 파멸시킨다.''' 그외에도 배원소[43] , 금환삼결, 하후은, 종진, 주선, 순우도, 안명 등이 있다.
심지어 죽은 이후에도 문앙이 등장하자 뜬금없이 시까지 붙여 문앙이 제2의 조운이라고 칭찬하면서 적국의 인물을 촉나라 인물과 비교하면서 띄우기에 이른다.
아무리 주인공으로 띄워줄만한 인물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정도의 버프를 받은 인물은 사실상 전무하며 나관중의 동향이라 그렇다는 말이 나올 정도.
3.16. 황충
정사에서 황충의 군공 중 특별히 부각되는 것은 한중 전투에서 하후연을 참살한 것뿐이고, 그 외에 한 일이 없지는 않으나 잘 싸웠다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서술되어 있다. 다만 관우, 장비, 마초와 동급의 지위까지 오르고 진수도 황충을 하후영, 관영에 견주는 등 뛰어난 무장이었던 건 틀림없는 사실.[44] 그런데 연의에서는 이를 구체적이고 충실하게 묘사함으로 황충에게 명궁과 노익장으로 대표되는 확고한 이미지를 잡아줬다. 한현의 부하로 관우와 호각의 승부를 겨루는 것으로 등장해 의리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많은 전투에서 활약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최후 역시 그냥 수명이 다해서 죽었지만 연의에서는 유비에게 충성하고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릉대전에 참전하겠다고 고집부리며 나섰다가 전사한 것으로 묘사된다. 나이도 불분명해서 노장인지도 알 수 없으며 오히려 황충 항목에서는 황충이 젊은 나이로 죽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어찌보면 삼국지 내에서가 아닌 중국 역사상으로도 크게 이득본 케이스인데 본래 노익장의 시초는 마원이고 황충 이전까지 노익장으로 유명한 건 염파였는데 둘다 삼국지연의의 압도적인 인지도와 인기에 밀려 황충이 노익장의 대명사로로 이미지가 굳어져 버렸기 때문. 마찬가지로 황충 이전에는 양유기, 이광 등이 신궁의 대명사였지만 신궁의 이미지마저 황충이 가져가 버림으로 노익장의 대명사, 신궁의 대명사 이미지를 모두 가지게 되었다.[45]
4. 오
4.1. 감녕
촉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버프받은 케이스.
일단 첫 등장 자체가 황조 휘하로 나오며 과거의 수적 시절이 어영부영 넘어가면서 한 때의 치기어린 시절 혹은 의적으로까지 여겨지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은 관리와 결탁해서 수상의 이동경로를 장악하고 이권을 독점한 조폭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게다가 황조 휘하로 들어가게 된 케이스는 익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서 도망갔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황조에게 천대시받았던 건 괜히 황조가 능력있는 부하를 질투 혹은 냉대한 게 아니라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감녕이 능통의 아버지인 능조를 죽인 후에는 서로 원수지간이 되고 대면한 적이 없었던 사이였는데 연의에서는 연회 도중에 칼들고 캐삭빵를 벌일 정도로 험악했던 건 같지만 합비 공방전에서 능통이 악진과 싸우다가 조휴의 화살에 맞아 낙마하여 악진에게 죽을 위기에 처하자, 감녕이 화살를 날려 악진을 저격했다. 능통이 그 화살를 날린 사람이 누구냐고 손권에게 묻자 손권이 감녕이라고 답하자, 능통은 그대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친선을 맹세하는 사이가 된다. 물론 정사에는 그런 거 없다.
인격면에서도 버프를 받아서 황개의 사항계로 초주검이 될 지경에 처하자 주유에게 "황장군은 오나라의 원로이니 가혹한 처벌은 말아주십시오"라고 간청하는 장면까지 있다. 반대로 허물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아이 살해 사건은 삭제하였다.[46]
사망에 관련해서 원래는 그냥 병사였지만, 연의에서는 뜬금없이 이릉 전투에 참전하여 사마가에 죽는 굴욕을 당하기는 했으나 삼국지연의/피해자항목에 나왔듯이 병사보다는 전사를 명예시여기는 특성상 이를 감녕을 깔아뭉갰다고 보기는 힘들 뿐더러, 감녕이 죽자 수없이 까마귀가 날아들어 그의 시체를 지켰다는 묘사까지 더하는 등 오히려 대놓고 감녕을 띄워주고 있다.
4.2. 감택
연의에서 손권 밑에서 일한 문관으로 적벽대전에서 황개의 고육책을 도와 서신을 보낼 때 조조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말빨로 고육책을 성공시킨다. 이후 이릉대전에서 육손을 천거하지만 장소 등 문관들이 이에 반대하였고 이에 "육손이 아니면 유비 못 이김. 그러므로 육손이 진다면 내 온 집안의 목을 바침"라고하여 손권이 이를 받아들였으며 결과적으로 그가 추천한 육손이 승리를 이끈다.
정사에서는 손견의 문관이라는 기록이 없고, 적벽대전에 참가한 적이 없을더러 이릉대전은 육손은 이릉대전 시작부터 대도독 자리에 있어서 천거한 기록이 없다. 또한 그 자랑스러운 말빨은 연의에서 제갈량에게 무시당한 설종에게 털리는 기록이 있는 등 연의하고 매우 다르다. 다만 학자로써의 실력을 뛰어나고 달력에 가까운 건상력주을 저술하는 등 잡학에 능한 학자다.
즉 연의에서는 잡학에 능한 학자라는 부분을 삭제하고, 주로 꼰대들이 득실한(...) 오나라 문관 중에서 혁신적인 문관으로 바꾸어 버렸다. 정사에서의 평가도 좋은 편이지만 정사대로 학자 포지션이었다면 군담소설인 연의에서 비중이 마땅치 않으니 컨셉 변화가 수혜인 셈.
4.3. 손권
연의에서도 연전연패하고 다녔다는 점은 정사와 똑같지만, 장소와의 불화나 '''말년에 저지른 최악의 병크'''는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 실제로는 화해시키지 못했던 능통과 감녕이 연의에서는 화해하고 의형제 같은 사이가 되도록 기지를 발휘한 창작까지 넣어줬다. 하지만 이는 연의 자체가 제갈량 사후에는 내용을 대폭 생략하였기에, 엄밀히 말하면 덕을 봤다기 보다는 '''관심을 못 받았다'''고 하겠다. 나관중이 손권을 깔 가치 조차 없다고 판단했으면 피해라고 볼 수 있을 지도?
작품론적 관점에서 보면, 이궁의 변은 구도가 굉장히 복잡한 궁중 막장 드라마이기 때문에 군담 소설이라는 기본적인 연의의 주제에 맞지 않아서 편집 되었다고 봐야 할 듯. 화끈하게 싸움질하는 이야기 책에다가 늙은이가 젊은 새아내와 나쁜 딸에게 넘어가서 아들들 죽이고 하는 에피소드는 영 안 어울린다.
관우를 죽였다는 것 때문에 얻은 마이너스 요인이 있었지만 말년의 대실패를 어물쩍 넘길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문제도 아니다. 암군으로 말년을 마친 인물이 마지막까지 명군으로 살다 죽은 셈이니.
물론 까이는 것도 있는데, 합비성 쳤다가 적군이 놀리는 거에 빡쳐서 무리하게 진격했다가 애꿏은 병사나 장군들만 죽었다.[47]
4.4. 손부인
정사에선 유비와 그냥 사랑도 뭐도 없는 정략결혼이었고 성격이 괄괄하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기가 아주 센 여자여서 시집와서도 무기를 든 시녀 백여 명을 마치 사병처럼 거느리고 다녀 유비가 내심 꺼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유비 측 인물들이 손부인을 경계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뿐만 아니라 조운별전 등의 기록을 보면 유비는 기껏해야 일개 군벌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오빠는 오나라 연합의 맹주였으니 그걸 믿고 법을 어기거나 깽판을 치거나 유비의 부하들을 함부로 다루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결국 촉오 동맹이 파탄을 보이자 유비의 후계자인 아두(유선)을 데리고 무단으로 오로 돌아가려다가 조운에게 제지당해서 자신만 오로 돌아가고 그걸로 기록은 끝, 이후 유비는 목황후 오씨를 새로 부인으로 들이며 그녀가 유비 즉위 후 황후에 오른다.
연의에서도 무예를 좋아하는 괄괄한 여성인건 변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사병을 이끌고 다니며 깽판을 치는 다소 조폭스러운 모습에서 단순히 무를 숭상하는 정도로 순화되었고 또 유비를 진심으로 사랑한 여인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48] 정사에서 무장시녀를 대동하면서 유비측 진영에 굉장히 위협적인 인물로 여겨졌던 것과는 달리 연의에선 이를 꺼리는 유비가 시녀들이 칼차고 다니는걸 두려워하자 평생 전장에서 산 남자가 잠자리에 칼이 있는걸 무서워하냐고 웃으면서도 유비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시녀들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이미지로 바뀐다. 이후 유비가 몰래 형주로 돌아갈때 오군 병사들이 제지하자 유비에게 홀딱 반해버린 손부인이 "니들이 감히 내가 남편 따라 가는 길에 방해를 해?"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대 실패. 아두를 데리고 오나라로 돌아간 것도 자기 의지가 아니라 어머니 오국태가 아프다는 거짓 편지를 오빠 손권이 보내서 그런 것으로 변경.[49] 이후 유비를 그리워하면서 지내다가 이릉대전 이후 누구보다 유비의 건업 입성을 바랐으나 유비의 붕어 소식을 듣자 장강에 투신 자살한다.
그냥 위험하기까지 한데다 당시 기준으로도 상당히 똘끼 넘치던 정략결혼 대상 A에서 거의 마성의 중년남 유비에게 홀린(...) 왈가닥 순정소녀로 이미지가 바뀐 셈인데 이 덕분에 적벽대전부터 유비 입촉 때 까지 거의 히로인급 입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후세 삼국지 관련 매체에서도 삼국지의 중요 히로인급으로 나오고 버프받는 경우가 대부분, 무예에 관심이 있었다는 기록 때문인지 게임상에선 남성무장보다 무력보정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유비의 사망 소식을 듣고 물에 빠져 투신자살했다는 일화는 후세학자들이 '그랬다는데?vs그게 말이 되냐?'로 키배(...)를 뜰 정도로 유명해졌다.
4.5. 손책
삼국지연의에서는 '''한 화를 통째로 써서''' 손책의 강동 정복기를 장렬하게 묘사해주었으며, 이것은 용장 손책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어주게 된다. 왕랑, 동오의 덕왕 등을 그야말로 철저히 짓밟는 손책의 모습은 확실히 강렬하다.[50]
사실 삼국지평화 시대까지는 아직 오나라는 위, 촉에 비해서 이미지가 명확하지 않았는데, 손견에서 손권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인 손책은 이야기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고 불분명했다. 이것을 3국의 비중을 적당히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사실상의 개국군주인 손책에 묘사를 많이 더해서 크게 띄워준 것이다. 물론 이렇게 손책을 띄워준 덕에 손책은 '''게임의 제왕'''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무방할 정도로 삼국지 관련게임에서는 무조건 좋은 대우를 받는다. 삼국지 11의 경우도 손책(용장)은 전투 특기 사천왕이라는 특기를 항우(패왕), 관우(신장), 여포(비장)와 나란히 달고 있으며 삼국지 12에서는 전법을 강습으로 달고 나와서 모든 장수들 중 이동속도가 제일 빠르다. 거기에 삼국지 무장쟁패 2에서는 여포나 전위보다도 더 쎄다.
고대를 죽인 일이나 진등과 싸운 일(정사에 따라 승패가 다르다.)과 같이 부정적인 기록은 넣지 않았으며, 사망씬도 꽤 극적이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다만 극적이라는 게, 우길에게 시달리다 심신이 피폐해져서 죽는다는 얘기라서 '''다른 의미로 극적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그리 부각되지 않지만, 주유와 의형제 관계가 강조되면서 덕분에 손책과 대교&소교와의 로맨스도 강해졌다. 삼국극에서 로맨스로는 손책, 대교가 여포, 초선과 함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주유와 소교도 만만찮다. 원래 정사에서 이들의 결혼이 약탈혼이라는걸 생각하면 참 미묘하긴 한데 어쨌거나 수혜는 수혜.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손책이 육강을 토벌한 사건이 삼국지연의에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언급된다. 비록 원술이 시켜서 한 행동이라지만 손책은 '''죄없는 육강을 박살내고 그 가정을 파탄내다시피''' 했다. 그런데 삼국지연의에서는 이게 그냥 군벌 A를 토벌하였다는 식으로 짧게만 언급되었다. 결국 손책을 띄워주려고 줄였지만 본의 아니게 원술도 같이 덕을 본 경우라 하겠다.
4.6. 정봉
시대 고증 오류에 따른 삼국지 연의의 대표적 수혜자로 등장시기가 굉장히 이르다. 정사의 정황한장주진동감릉서반정전[51] 에서 마지막에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그가 후시대 인물이라는데 증거를 보태는데도 말이다. 정사에서 촉한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는 점[52] 때문인지 연의에서 엄청 후한 대우를 받았다. 실제로는 천수를 다해 죽은 장료를 정봉이 사살했다고 묘사되었다. 연의에서는 서성과 세트로 나오는데, 실제 정사에서 정봉이 장군으로 본격적으로 활약한 기록은 손권 사후부터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수혜. 손권 초창기 전투에서 대부분 등장한다. 콤비로서도 덕을 보아, 천막과 지푸라기로 가짜 성벽을 만들어서 위성계로 조비에게 엿을 먹인 서성과 콤비가 되어 맹활약을 하고 장료를 사살하는 활약이 추가되는 등 삼국지 중후반에서는 나름 뛰어난 장수로 묘사되었다. [53] 그렇지만 정봉의 정사 속 무용담이 두드러지게 묘사되지는 않아서 그의 포스가 상대적으로 희석된 감은 있다. 그에 따라 강자로서의 묘사가 부족한 편. 실제로 인간흉기 문앙과 비견되는 삼국지 후반부 맹장이었지만 연의에서 추가활약상을 너무 준 만큼 문흠이 위군에 패하고 오나라로 도망왔을 때 추격해온 위군을 필마단기로 적병 수백을 베고 군기를 빼앗은 활약상은 삭제되었다.[54]
오나라 장수들 중에서는 삼국지연의의 최대 수혜자로서 오나라에 속한 장수들 중에 가장 덜 까인 편인 장수이다. 까인 부분은 적벽대전 편에서 서성과 함께 제갈량의 손바닥에서 놀아난 점과 손부인에게 데꿀멍 당하는 정도.
5. 그 외 세력
5.1. 기령
정사에서 행적은 유비를 공격하다가 여포의 제안으로 화친를 맺고, 후에 여포를 공격하다가 역습당해 패배하는 원술의 잡장A 이지만, 연의에서는 관우하고 30여합를 붙을 정도의 용장으로 강화되었다. 게다가 용장이라는 포지션임에도 여포와의 정략결혼을 간언하는 등, 지능적인 부분에서도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원본도 원본이고, 상대하는 측들이 만인지적 2명에 인중적토여포인지라 그들에게 치이고, 치여다니는 안습 한 모습를 많이 보여준다. 게다가 관우와의 싸움에서 은근히 불리해지자 휴식을 핑계로 자신의 부장인 순정을 죽음에로 내모는 등, 비겁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래도 정사에서 잡장A에 불과했던 인물이 삼국지 시리즈에서 원술군의 무력본좌에 등극할 정도로 버프를 받았으니 상쇄라고는 보기 어려운, 확실한 수혜자다.
5.2. 고정
정사에서는 병사를 보내 신도현을 포위하였으나, 유비가 임명한 건위태수 이엄의 구원군에 격파당해 도주했다. 옹개, 주포와 같이 반란을 일으키고 월수태수 초황을 죽이고 자기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고 촉한에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제갈량이 이를 진압하여 옹개는 고정의 부하에게 참살당하고, 고정은 제갈량에게 목이 베였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월수태수로 있었으나 맹획의 권유로 옹개, 주포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영창군을 공격하였다. 이때 제갈량이 인솔하는 토벌군에 대해, 아장(亞將) 악환을 보내 요격했다. 그 후, 제갈량의 이간계에 걸려, 옹개와 주포에게 배신을 당하였다고 착각하여, 옹개와 주포[55] 를 죽여 제갈량에게 투항하였고, 그 공로로 익주 태수로 임명되었다. 반란분자가 잘못을 뉘우친 충의지사로 바뀐 수혜자.
5.3. 관해
정사에선 잠깐 나오고 사라지는 인물이지만, 연의에선 '''관우를 상대로 수십합을 겨루고 패배해 죽는다.''' 마땅히 수혜자 목록에 올라야하는 인물이지만 원체 듣보잡이라.
정사에서는 공융을 포위하고 쌀내놓으라고 협박했으나 태사자가 부탁한 유비군이 오자 도망가고 끝. 정사 삼국지에서 관해의 등장은 이게 전부다. 연의와 달리 생존하긴 했지만 존재 자체가 없어졌으니 생존여부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5.4. 괴량
원래 정사에서는 그저 그런 책사였지만, 연의에서는 계책을 써서 손견을 죽인다. 이 정도면 꽤 많이 버프를 받은 셈. 연의에서도 동생이 더 뛰어난 인물임을 묘사하는 것은 많다. 특히 조조가 괴월에게 한 평가는 엄청난 극찬이다.[56] 그 예로 유표가 족당의 도적 토벌 때 괴량은 '인의면 다 해결 됨'이라고(...) 했고, 괴월은 '일단 제 명성을 이용해 도적들 대장 불러서 죽이면 거의 항복할 것이니 걔들로 형주 먹으셈' 이라 했고 유표는 괴월의 말을 따랐고 결국 형주를 얻었다. 만약 유표가 괴량의 말대로 했다면.. 다들 알아서 생각해 보자(...).
5.5. 도겸
연의에선 서주에 쳐들어온 조조가 서주 대학살을 저지르자,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겠다고 나서는 등 인의로운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정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른 군벌들과 비교하기도 민망한 '''날강도'''다.
당시 군벌들 중에 약탈을 한적 없는 군웅이 거의 없다며 옹호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대부분은 적지에서 일어난 경우다. 자기 백성들을 약탈한 군웅을 영웅이라 칭송한 경우는 거의 없으며, 조조의 경우도 야사에서 정욱이 부족한 군량을 고향사람들을 죽여 인육으로 포를 떠서 보급했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인지도 미심쩍을 뿐더러,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정욱은 이후 끝내 고관대작에 오르지 못했다. '''도겸은 서주자사였으므로 서주에 속한 하비성을 약탈한 것은 당연히 자기 백성을 약탈한 것이다.'''
군사적 역량이 형편없는 인물로 묘사되면서 피해를 보았다는 주장도 있으나, 13주 중에서도 풍요롭기로 유명했던 서주를 오랫동안 다스렸으면서도 이제 간신히 연주를 통일해가고 있던[57] 조조를 상대로 지리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방어전을 치르면서 제대로된 반격 한번 못한 사람을 군사적으로 유능하다고 보긴 불가능하다.
5.6. 동승
마등과 비슷한 케이스. 물론 이 경우는 대놓고 조정에 반기를 들지는 않았지만 출신이 동탁의 휘하였고 어가를 호종하는 와중에도 동료들과 세력다툼을 벌여 헌제를 몇 차례 위태롭게 만드는 등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낙양에 복귀한 다음에는 함께 헌제를 모셨던 양봉이나 장양 등을 견제하려고 조조를 끌어들였으니 상당히 이기적이고 보신주의/권력지향적인 성향도 강했던 인물.
그런 것을 유비가 조조 제거계획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살붙임이 더해지고 나쁜 부분은 쏙 빠뜨려 후한의 충신으로 그려졌으니 엄연히 수혜자라 하겠다.[58]
5.7. 마등
'''정사에서는 이리저리 줄타기 하는데다 한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군벌이었다.''' 다만 처음부터 반란자는 아니었으며 원래는 반란군을 토벌하던 입장이었다. 나중에 동탁, 조조가 정략적으로 사면시켜줬다.
게다가 마등의 처우에 대해선 본디 관중의 싸움에 지친 마등이 아들 마초에게 세력을 물려주고 조조가 있는 업으로 스스로 간 것이나 연의에서는 마등의 암살계획을 눈치챈 조조가 헌제의 이름을 팔아서 제멋대로 잡아들이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마등의 주살 시점도 마초 봉기 이후가 아니라 이전로 바뀌었다.[59]
연의에서는 마초의 아버지라는 점에서 띄우기를 받았는지, 유비와 함께 황실을 보위하려는 뜻을 가진 충의지사로 묘사되었다. 당연히 반란을 일으킨 것과 친동탁파라는 사실도 전부 삭제되었고 오히려 반동탁연합에 참가했으며 동승의 혈조 사건에도 참여했다. 최후도 조조를 암살하려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것으로 멋지게 표현했다.
즉, 한나라의 역적이 촉장이 된 아들 덕에 한의 충의지사로 설정이 180도 바뀐 케이스다. 게다가 2차 창작물에서 아예 신이 되거나, 편애를 받기때문에 騰神이라고 까인다.
다만 분명 반란자에 불과하고 연의에서 미화받았다며 까이는 인물이긴 하나 의형제 한수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반란을 목적으로 활동했다고 보긴 어렵다. 군 커리어의 시작부터가 원래 조정의 공식관원으로서 반란군을 토벌하는 입장에 있었다가 조정관리의 실책 이후 반란군으로 돌아선 인물이기도 하고, 성격 자체도 정사 인증으로 반란자에 대한 묘사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본래 성정이 어질고 온후하니 많은 사람들이 그를 공경했다고 한다.
또 건안 무렵 전장군에 임명되었을때는 외적의 침입을 막고 도적을 막았으며 어진 이를 등용하고 백성들을 구제하여 이각, 곽사 이후 난장판이던 관중을 안정시켰다고 한다. 반란자이긴 하지만 이런 인물이 단지 연의에서 마초의 아버지라고 엄청 띄워줬다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인품이 지나치게 폄하받는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 아들 마초처럼 적어도 어설프게 아는 작자들이 정사랑 연의랑 다르다며 무작정 깔만한 인물은 아니다.
5.8. 사마가
정사에서는 무릉만(武陵蠻)의 왕으로 이릉대전에서 유비를 돕다가 육손에게 패해 죽는다 이게 그냥 끝이다. 이릉대전에 유비를 도와주러 참전했다가 육손의 반격으로 사망한 게 전부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그 오나라의 수위급 장수이자 삼국지 전체로 따져도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는 무예를 가진 감녕을 헤드샷으로 사살했다고 묘사되었다. 이 때문에 일부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이런 잡장이 90대 무력이라는 말도 안되는 능력치를 들고 등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삼국지 3.
물론 연의 기준으로 따져도 일기토가 아닌 활로 사살한거라 높은 무력을 주기에는 무리가 있다. 궁술 관련 특화라면 모를까. 그래서인지 삼국지 12에서는 병과가 궁병에 진짜 궁술 관련 특기인 원사병격을 받았다.
5.9. 서모
서서의 어머니이다. 정사에서는 평범한 붙잡한 할머니였지만 연의에서는 여장부로 각색되었다.
5.10. 신평
원소 사후 곽도와 함께 원담을 지지하고 원상과의 사이를 이간질해 원가 분열에 일조했으나 연의에서는 트롤링은 곽도 혼자 다하고 신평은 조조에게 항복사절로 갔다가 원담 말고 자기를 섬기라는 권유를 딱 잘라 거절하고, 원담이 자길 의심하자 분사하는 충신으로 나온다.
5.11. 심배
부정부패, 권력 독점, 정치 싸움과 원가 분열에 앞장섰던 부정적 이미지는 나오지 않은 채 원가에 대한 충성 등 긍정적인 이미지만 부각되었다. 능력적인면에서는 기주의 행정을 담당하는 등 행정적 부분이 나오지 않은 대신 군사적 활약이 대폭늘었고 지모쪽으로도 어느정도 보정을 받았다.
5.12. 안량, 문추
관우 버프의 수혜자. 역시 관우에게 죽을 운명이지만 그 전까진 절대무쌍의 힘을 발휘했다.[60] 실제로도 이들은 하북의 명장 소리가 나왔고 이들의 패사가 원소군에 상당한 동요를 일으켰다는 기록만 봐도 원소군의 필두를 맡을 만큼 뛰어난 무인들이었음에는 의심이 없지만 연의에서와 같은 맹활약은 사서상에 나오지 않는다. 정사에선 행보상으로는 하북의 명장이라는 말 빼곤 백마, 연진에서 죽었다는 기록뿐인데 사실 이건 원소군에 있던 시절 장합같이 기록이 부족한 원소군 장수들 전반의 문제들이다. 오죽했으면 삼국지연의에서도 원소군은 주로 문관, 책사들만 주로 비중을 받을까. 연의에서도 주로 용맹만 앞서는 인물들로 묘사되는데 실제 정사에서도 이들은 용맹하긴 하지만 그뿐이라는 평가가 있기도 했다.
순욱이 조조에게 아뢰기를 "안량과 문추는 필부의 용맹을 지닌 인물에 불과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 했다.
다만 공융처럼 안량과 문추를 칭찬하는 평가도 있다.저수가 원소에게 아뢰기를 "안량과 문추는 성격이 병력을 지휘하기엔 지나치게 급하고 인격적으로 도량이 너무 좁아서 군대를 맡기면 안됩니다."라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안량은 관우에게 너무나 허무하게 죽었고 문추는 안량보다 더욱 허무하게 죽었다. 이쪽도 관우를 띄우기 위해서 보정을 받아먹은 예.공융이 조조에게 아뢰기를 "안량과 문추는 능히 삼군을 이끌 지도자입니다."라 했다.
5.13. 여포
정사에서도 여포는 무력이 뛰어나서 '비장(飛將)'이라고 사람들에게 불렸다고 기술되어 있고 맹장#s-2 곽사와의 일기토나 원문사극의 일화도 사실이지만, 연의에서처럼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거나, 허저, 전위, 하후돈, 하후연, 악진, 이전 등의 여섯 사람과 동시에 싸우는 천하무적의 무력킹까지는 아니다. 연의에서 절대적인 무력을 지닌 것처럼 묘사되는 반면에 정사에서는 그냥 힘이 센 무장. 그의 인간적 결점도 오직 배신과 부하들의 말을 안 듣는 것으로만 제한되어있고 부하들의 아내와 간통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61] 도리어 초선을 통해 로맨틱한 남자로 비추어지기도 한다.[62]
여포가 유비를 배신한 장면에서는 모두 여포에게 유비를 공격할 명분을 만들어준 것도 특이하다. 유비가 원술과 싸울 때 뒤치기한 장면에서는 장비가 여포의 장인으로 설정된 조표를 매질하고 여포에게도 폭언을 함으로써 여포를 먼저 도발한 셈이 되었고, 원문사극 장면 이후 여포가 유비를 공격한 것도 장비가 도적으로 가장해서 여포의 말을 빼앗아갔기 때문이며, 조조의 중재로 유비와 화해했다가 나중에 다시 유비와 싸우게 되는 것도 유비가 여포의 뒤통수를 치겠다고 조조에게 서신을 보낸 것이 여포에게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유비군이 여포의 말을 훔쳐갔다는 것은 영웅기에 나오는 기록이고 연의에서도 여포가 서주를 통째로 차지할 욕심으로 유비를 공격했다는 묘사는 빠지지 않지만, 장비가 여포의 장인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고 매질했다거나 유비가 먼저 여포의 뒤통수를 치려고 했다는 명분이 붙은 것은 것은 인격 면에서 수혜라고 할 만하다.
물론 나관중의 이상적인 모델인 '충의지사'에는 백만 광년 쯤 떨어진 인물이었지만 최강의 무장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부여받았으며 여기에 인간적인 찌질함이 더해져서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기회주의적인 군웅 중 한 명에서 단숨에 주연급 조연으로의 발돋움이다. 또한 나관중은 여포를 무력에서 최종보스의 포지션으로 올려놓기 위해 삼국지 전체최강을 여포로 설정해 놓고 이 때문에 유비-관우-장비 3형제가 여포에게 동시에 덤벼서 겨우 물리치는 일기토를 보이는 것으로 묘사했다. 2~3 스테이지의 보스 정도밖에 안되는 캐릭터를 나관중이 최종보스로 대폭 승격시켜 놓은 셈. 당연히 작중 일기토도 대부분 허구다.
또한 정사에서 손견과 싸운 양인 전투 때와 학맹의 난 때에는 겁에 질려서 상황파악할 생각은 안하고 무작정 도망부터 치는 추태까지 보였는데 연의에서는 말끔히 삭제.
이러한 연의의 버프 덕분에 후대의 2차 창작물들에서 여포의 이미지가 대폭 상승하기까지 한다.
한가지 소소한 너프라면, 정사에서의 여포가 어느 정도 학식에 능통했다는 점이[63] 연의에서는 드러나지 않아서 무식한 놈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지만 어차피 정사의 여포가 지략이나 학식에서 크게 부각되는 것은 아니므로 장합이나 장비처럼 큰 피해를 입었다고 보긴 힘들다.
5.14. 오습
본래는 곽사의 부하로 천자를 핍박했다가 후에는 주군을 배신하고 습격해 죽인 인물이지만 연의에서는 곽사의 부하라는 것과 천자를 핍박하는 것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곽사를 죽인 것을 통해 역적을 죽여 한 황실을 도운 이미지로 남았다.
5.15. 유표#s-1
유비와 의형제를 맺고 유비를 의동생으로 뒀다는 설정이 추가. 그리고 유비를 매우 적극적[64] 으로 도와줬다고 묘사되었다.
반면 황제에게 바치는 조공을 끊고, 교사를 지내며 황제와 동일한 복식을 갖추어서 칭제를 시도한 것은 생략되어 역적 이미지는 없어졌다. 본디 황제에게 공물을 보내는 군벌들이 거의 없었는데 유표는 그나마 좀 보낸 편이라 보정이 들어갔다고 보기는 무리인 것이, 조조의 협천자 이전까지 관동에서 황제의 최대 지지자는 '''원술'''이었다. 물론 원술과 달리 강역 내에서의 행정은 매우 건실한 편이었기에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편. 다만 초중반부에는 별 비중이 없고, 하필 역사상으로도 우유부단함이 두드러졌던 말년의 레임덕(...)시기에 유비와 엮이면서 분량이 집중되어 우유부단한 이미지가 강조되는 등 이미지 상으로 약간의 손해를 봤다고 볼 수는 있다.
5.16. 원담
원소가 그를 폐출했다는 사실이 쓰여있지 않다. 이것은 후에 원담이 원상에게 한 막장행위를 어느 정도 정당성 있게 보이게 한다. 그리고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원담을 옹호하는 면도 있다. 원담이 명목상 장자임을 내세웠기 때문에 호의적으로 기록한게 아닌가 싶다. 당시는 유교 사회였으며, 이후 비슷한 전철을 밟고 망한 유표 일가(유기, 유종)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몇살 못살고 죽은 손책도 나관중에 의해 장자버프를 받았다.
그리고 연의에서 서주를 잃고 방황하는 유비를 받아들인 게 바로 청주를 관할하던 원담이었다. 그가 유비를 융숭하게 대접한 뒤 업의 원소에게 보낸 것. 유비와 얽힌 이상 수혜자가 될 수밖에 없는 듯.
다만, 군사적인 활약이 대부분 잘려나갔기 때문에 군재쪽으로는 손해를 보았다.
5.17. 이유#s-2
정사에서 이유는 기록이 한두 줄 정도 있는 듣보잡 인물에 불과하다. 다만 동탁의 명령으로 소제를 독살한 건 사실.
연의에서는 그걸 뻥튀기했는데 엄청난 회춘을 거쳐 동탁#s-1의 사위#s-1이자 심복이 되어 온갖 계략과 묘계를 짜내는 동탁 휘하 최강의 모사로 만들어놨다. 대신에 순 악당이 되기는 했지만.
5.18. 장임
정사에서 방통이 죽기전에 유비에게 포박당해 회유를 거절해 죽는 인물이었나, 연의에서는 방통를 죽이고, 유비를 거의 포박할 뻔하고 장비를 고전하게 하는 명장으로 등장한다. 사실상 제2의 화웅이라 봐도 무방하다. 명장 포지션은 확실한게 낙성을 지키다 항목한 오의,뇌동,오란은 '''"장임을 잡지 못하면 저 성 못넘어요."'''라고 하기도 했다. 다만 죽기 전 "충신은 죽더라도 두 주인은 섬기지 않는다."라며 끝까지 충성하는 것은 정사와 연의 모두에 나와 있는 표현이라서 수혜라고 보기는 어렵다.
5.19. 진궁
정사에서 여포가 말을 안 듣어서 학맹과 모의해서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다던지 여포의 처인 엄씨가 여포한테 진궁은 고순과 불화하고 조조가 우리보다 진궁을 후대해줬는데도 배신때렸으니 진궁한테 성전체를 맡기면 안된다라고 말하는 장면같은게 같은게 대거 삭제됨에따라 충신 진궁의 말을 미련한 여포가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으로 변해서 수혜를 봤지만, 그냥 조조의 부하 출신이었던 진궁이 조조가 동탁암살에 실패하고 그것을 붙잡고 풀어준 중모현 헌령으로 나오고 조조를 따라가다가 여백사를 죽이는 모습을 보고 실망하여 이 사람은 동탁에게 대항하는 사람으로 망설하고 떠나게 되어 조조하고 진궁의 관계가 더욱 한때 가까운 사이였다고 각색되었다.
연의에서 진궁이 긍정적으로 묘사가 되었지만 허나 그 여백사를 죽인 조조보다 더한 패륜아인 여포를 따르는 모습과 유비를 쫒아내서 서주를 얻으려고한 것을 보면[65] 완전 수혜를 받은 것까진 아니다.[66]
5.20. 풍씨
정사에서는 비운을 맞이했지만 연의에서는 황후가 되었다.
5.21. 한복
이 경우는 미묘하다. 정사에서는 남을 이용해 먹으려는 기회주의자였는데 연의에서는 어리석지만 그래도 사람이 좋은 인물로 그려졌다.
즉, 원소가 한복을 속여 기주를 빼앗은 건 정사에선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연의에선 간계한 속임수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돼버렸고 한복은 원소에게 속은 착한 사람이 된 셈.
5.22. 한수
연의에서도 정사와 마찬가지로 군벌로 등장하지만 언급이 적어서 마등에 비해 약한 군벌처럼 여겨지는 경향도 있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조조와의 싸움에서 정사에서는 끝까지 항거하다가 조조에게 사망하는데에 비해, 연의에서는 사망이 아니라 팔 하나 잃는데만 그치고 조조에게 항복한다.
또 초반부에 마등과 함께 이각, 곽사에게 반란을 일으킨 것도 황제가 마등과 한수에게 밀서를 보내 부탁해서 내려온 것으로 묘사된다. 마등과 세트로 묶여 의리면에서도 혜택을 본 셈.
게다가 "병사가 강을 건너는 도중에 공격하라"는 병법을 언급하면서 조언을 하는 등(게다가 먹혔다.), 지능적으로도 어느정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 덕분에 삼국지 시리즈에서 한수는 마등/마초군의 브레인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사에서는 머리를 쓰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5.23. 화웅
연의에선 관우를 띄우기 위한 장치로 등장하지만, 그 이전까진 손견을 기습하여 격파하고 여러 가공 무장들을 끔살하는 등 이런저런 활약이 있었다. 또한 '닭잡는데 어찌 소잡는 칼을 쓰리까?" 하는 인상깊은 대사까지 남겼다. 오히려 화웅의 상관이었던 호진이 연의에선 화웅의 부장으로 격하되었다. 하지만 정사에는 손견전에 손견에게 패해서 전사한 사실만 달랑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심지어 동탁전에는 본래 주장이었던 호진이 손견에게 패했다는 사실만 있을뿐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더구나 손견을 대파해 손견이 조무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할 만큼 굴욕을 안겨준 장본인도 본시 화웅이 아니라 서영이었다. 한마디로 화웅 하나 띄운다고 호진은 물론이고 서영까지 폄하된 셈.
6. 정사에 등장하면서 연의에는 등장하지 않은 악인들
실제 역사에는 각종 악행을 저지르거나 평가가 안 좋은 인물과 결탁했음에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악행이 잘 알려져 있지 않는 경우다.
대표적으로 황호와 함께 촉을 말아먹은 진지[67] 와 거짓격문으로 손견을 꾀어 왕예를 추궁하러 가게 만들고 왕예를 자살하게 만든 조인#s-2이 있다.
7. 미묘한 경우
7.1. 일부 가공인물
피해자 항목에도 수많은 일기토 전용 엑스트라로 동원된 가공인물들이 거론된 만큼, 반대로 일부 대접이 좋은 가공인물들도 수혜자 항목에 추가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주창. 관우라는 주인을 따른 덕분에 조운과 엮인 가공인물이라는 사망 플래그를 깨고 당당히 생존, 거기다 선역으로 고평가 받는 인물, 사실 주창의 경우 연의 이전, 그 민간전승의 일화가 송나라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물이라서 좀 미묘한 편이긴 하지만. 그리고 좀 마이너한데 촉한의 노손도 연의에서 창작한 가공인물이지만 종회를 죽일뻔 하는 기염을 토했다.
7.2. 문앙
정사에서 무쌍찍은 것도 나오고, 8척 장신의 소년 장군이자 동편과 창의 명수로 그려지고 있으며 심지어 그를 조운과 견준 시까지 창작되어 실렸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운에게 얼마나 거대한 버프가 들어갔는지를 감안하면 후반기 인물치고는 엄청나게 고평가를 해준 셈.
단신으로 사마소의 추격병을 격퇴할 때, "쥐 같은 놈들이 어찌 목숨을 아끼지 않느냐!"라는 대사를 내뱉었는데, 후반부 인물이라서 쉽게 묻히는 한국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삼국지의 멋진 대사 중 하나로 꼽힌다.
다만 또다른 문앙의 주요 전공인 독발수기능 토벌은 해당 파트 자체가 연의에서 통째로 생략되었다는 피해를 입었고, 문앙의 사망은 삼국통일 이후 시점이라 연의에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인물의 마무리가 흐지부지되어 그냥 제갈탄의 난 이후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즉 연의에서 버프와 너프를 모두 받은 셈.
7.3. 황개
일단 손견을 따르던 시절에 일기토로 소소한 활약이 꽤나 된다. 이때문에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대대로 80대 무력을 확보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적벽대전에서의 활약상으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낸다.
우선 제갈량이 동오의 문관들과 설전을 벌일 때 난입하여 동오의 선비들을 꾸짖는 것으로 개념인 인증을 한다. 그후 화계를 스스로 고안해내여 주유에게 진언하며 화계의 성사를 위해 고육지책까지 마다하지 않는 등, 충성스러움과 비장함이 여러모로 겹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오 공기화 분위기 때문에 산월 정벌, 무릉만 통치 등 행적들이 삭제되고 적벽대전 이후 존재감도 급격하게 줄어드는 피해를 봤다.[68]
7.4. 공손찬
군웅할거 초반, 북방 4주에 압도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신생 세력 원소를 압박하던 강자였으나 연의에서는 오히려 공손찬 쪽이 영세 군주에 가까운 인상으로 나와서 그 강대함을 알 길이 없다. 작중 취급은 유비 일행에게 구원당하는 피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계교 전투야 정사에서도 공손찬이 패한 전투이니 피해가 아니라 쳐도 사서상에 나왔던 공손찬의 미친 무용은 살짝 언급되는 수준에만 그치고 호뢰관에서 여포에게 발리기까지 거의 능욕에 가까운 왜곡을 당했다.
이렇듯 효웅 캐릭터가 싹둑 잘려나간 대신 유비 버프로 인해 정사에서의 막장 행각들은 삭제되어 악독하던 인격이 많이 순화된 것은 확실한 버프. 다만 여기에서도 주의해야 할 점은 악인 속성이 순화되었을 뿐, 근본적으로 소설의 공손찬도 선한 캐릭터는 아니다. "포위된 자들을 구해주면 이후 병사들은 남들이 구해주기만을 기다리고 힘써 싸우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병사들을 구원하지 않고 버리는가 하면 조운에게도 "공손찬도 원소와 다를 바 없는 인간" 이라고 까인다. 사실 정사에서 조운이 공손찬에 의탁할때도 "딱히 니가 덕있는 사람이라 너한테 오는게 아니라 그냥 어쩌다 이렇게 왔다"는 식으로 조운한테 까였고 결국 조운은 형이 상을 당했다는 핑계로 낙향해 버린다. 연의에서 확실하게 성인군자로 환골탈태한 도겸과는 다른 부분.
현대의 컨텐츠들에선 정사드립을 통한 촉까위빠 성향 때문인지 성격적으로도 찌질하게 묘사되면서 전투력 면에서는 정사 보정을 못 받고 연의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온다. 하지만 공손찬의 적수였던 원소 역시 정사 보정은 못 받는다. 원소나 공손찬이나 삼국지연의의 중심 플롯 자체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이래저래 안습.
7.5. 동탁
무능하고 비열한 지휘관에 잔인하고 포악한 권력자로 나오는 등 기본적인 묘사가 워낙 부정적이지만, 그게 사서상의 행적, 평가와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권모술수를 부리는 등 머리 쓰는 역할이 이유에게 넘어간 것 외에는 전반적으로 딱히 손해를 봤다고 보긴 어렵다. 동탁 개인의 무용 역시 이미 최고권력자가 된 동탁이 선봉에서 무쌍을 찍는 것도 말이 안 되거니와 권력을 잡는 시점의 동탁은 상당한 고령이었기 때문에 강조되지 않는 편이 자연스럽고, 오히려 원소와 서로 칼을 뽑아들고 대치하는 일화나, 암살을 시도하는 오부를 역관광태우는 일화, 여포에게 창을 던진 일화가 전부 묘사되는 등 그냥 만만한 늙은 뚱보가 아니라는 것이 작중에서 이미 수차례 강조되기에 너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진정한 수혜는 여포와 마찬가지로 분량에 있는데 관동 연합군에 '반동탁 연합' 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여가며 그 진행을 실제 역사와 완전히 다르게 마개조시킨 결과, 동탁은 (작중 동탁 자체의 능력과는 별개로) 작중 포지션을 대마왕, 한없이 절대악에 가까운 최종보스로 확고히 자리매김했고, 여기에 초선을 둔 여포와의 삼각관계 끝에 암살당하는 드라마틱한 최후까지 더해졌기에 연의를 기반으로 한 평역, 혹은 3차 창작물에서는 오히려 작품 초반의 절대악적인 메인빌런으로서 어마어마한 푸쉬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작 연의에서 동탁 자체의 능력은 무능하게 묘사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작품 외적으로는 장점이 되었는데, 제갈량의 남만원정급 판타지로 허황되게 각색되었으나 이미 독자들의 뇌리에는 강하게 남은 반동탁연합의 구조 자체를 손보는 모험[69] 을 벌이지 않으면서도 작중 대마왕 포지션의 동탁에게 메인빌런 역에 걸맞는 능력과 카리스마를 주는 것만으로 독자들에게 연의를 따라가지 않아 독창적이고 신선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기 때문.
이 때문에 승자의 역사에서 왜곡된 비운의 개혁가, 이민족 출신이라 한족 중심사관에서 배제되었다는 등 골수팬들 뒷목 잡게 하는 헛소리 또한 쉽게 나타난다. 작품 자체에서는 부정적으로 묘사되었으나, 오히려 이야기 전체의 뼈대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비틀기 쉽다는 점 때문에 작품 외적으로는 엄청난 고평가를 받기 쉬운 미묘한 케이스.
7.6. 원술
정사의 원술은 삼국지연의에서 나온 것보다 더욱 악행을 많이 했다. 손책을 시켜서 죄 없는 육강을 토벌시킨 것, 기껏 손책이 육강을 토벌해놓으니까 그 대가로 주겠다는 여강태수 자리를 뜬금없이 유훈에게 줘서 손책의 뒷통수를 후린 것[70] , 손견이 옥새를 발견하자 손견의 아내를 인질로 잡고 옥새를 강탈한 것 등등 정사에서 원술의 개차반스러운 행동들 상당수가 연의에서는 잘려나가거나, 간단하게 언급되는 정도에 그쳤다.[71]
다만 육강 토벌의 경우는 나관중이 원술을 좋아하는 인물이 아니라 손책을 띄워주려다가 원술까지 덤으로 수혜를 입은 경우고, 본디 주종관계에 가까웠던 손견과의 관계가 대등한 입장으로 묘사된다거나, 찌질한 계략이나 세우면서 손견을 팀킬하다 빡친 손견에게 죽을 뻔하는 등 전반적으로 찌질한 이미지가 강조됨과 동시에, 군웅할거 초반 단독 낙양 입성에 성공하며 원소,동탁을 견제하는 정치적 신성으로 떠올랐던 위상은 완전히 편집되는 등 분량 면에서 크게 손해를 본 편이라 전반적으로는 너프에 가깝다.
7.7. 방통
적벽전투에서 연환계를 성공시켜 연합군의 승리에 큰 도움을 주는 버프를 받았고 그동안 쌓인 엄무를 반나절만에 처리해서 장비를 놀라게 하고 유비한테 직접 능력을 보여 증용되는 수혜를 입었다.
하지만 외모가 추하다는 설정이 붙은 데다가 제갈량의 충고를 자신에 대한 질투로 착각해 공을 서두르다가 장임의 습격으로 죽는 너프를 받았다.
7.8. 양수
채옹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것 같은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일화가 나오지 않고 계륵의 의미를 알아채서 죽는것도 똑같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조조가 양수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그의 말대로 철수하기를 거부하고 싸우다가 큰 부상을 당한다. 결국 죽었지만 양수의 말이 옳았다는게 증명된 셈.
7.9. 왕보
정사보다 일찍 죽어(원래는 이릉대전에서 전사) 수명이 줄어들었지만 관우와 함께 전사해 더욱 충성스러운 이미지가 덧붙여졌다.
7.10. 유비
누가 뭐래도 삼국지 연의의 주인공인 만큼 시작부터가 뭔가 다르다. 연의에서의 그의 이미지는 부드럽고 자애로우며 인정이 많은 군자다. 스스로는 능력이 없으면서도 사람을 잘 다루는 한고조 유방과 유사한 타입의 군주로 묘사된다.
정사도 인물평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연의에서의 유비는 개인의 능력이 과소평가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지연의/피해자의 유비 문단 참조.) 전투에서 연전연패하여 계책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거나 우유부단하여 결단력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인정에 치우쳐 중요한 선택을 그르치는 모습도 보여준다. 실제로는 독우를 직접 두들겨패고, 칼을 들고 사신을 위협하는 등 열혈스럽고 과격한 인상이다. 군재도 모자란 것이 아니어서 유대, 왕충을 관광태우고 하후돈의 대군을 격파하는 등 그가 지휘하여 승리로 이끈 싸움도 많다. 이렇듯 그가 보여준 모습은 당시 일반적인 군웅들의 행동원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나관중은 여기서 효웅, 장수로서의 유비를 잘라버리고 '''무위의 치'''로서의 캐릭터로 재창조해낸다. 여기서 중국인들의 인물상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이 무위의 치는 한고조 유방을 비롯하여 중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었던 친숙한 영웅상이다. 사실 유비를 유방에 비유한 건 정사 삼국지 저자 진수부터가 그랬으니 이런 인물로 재해석되는건 어쩌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의 재능은 매력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유방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듯, 진정한 군주의 덕목은 일선에서 재능을 뽐내기보다는 가슴 속에 큰 계책 하나를 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합비에서 장굉이 손권에게 올린 간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상을 읽을 수 있다.
이로서 유비는 다른 군벌들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인물상을 가지게 되며, 특히 개인의 재능이 극에 달해있던 조조와 대비되는 캐릭터로서 완벽한 대비구도를 만들게 되는데 이는 둘의 싸움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즉 유비는 난세 속을 헤치고 나가는 단 하나 남은 신의의 사자로서 다른 인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로 묘사되는 것이다. 원소, 조조가 아무리 세력을 떨쳐도 '''유비의 영웅상에는 근본부터 범접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사에서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 유비의 이중성을 만든 점에서 엄청난 디메리트. 거기다가 반대급부로 능력 면에서 많이 손해를 보기도 하였다.
삼국지연의/피해자 항목에선 유비가 미묘한 경우에 서술 되어 있다. 위에서의 서술대로 정사에서의 능력을 모두 잃어버린 것, 이중성으로 인해 수혜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입었기 때문.재밌게도 이건 유비와 닮았다는 선조인 한고제가 초한지 소설에서 은근히 능력치 너프를 받는 것이랑 유사하다. 정사의 한고제 역시 단순히 사람좋은 건달만은 절대로 아닌 사람이기 때문
7.11. 유종
연의에서는 조조에게 암살당해 일찍 죽지만, 형을 후계자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탐욕스러운 모습은 나오지 않고 내부의 암투와 조조 세력에게 이용당할 뿐인 착하고 힘없는 아이의 모습으로 나온다.
7.12. 조조
사실 나관중이 띄워주기 했다기 보다 유비 라이벌 느낌으로 받은 간접적 수혜자. 후반 들어 악인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집필할 당시 조조의 이미지가 개차반이었던 것[72] , 오히려 연의야말로 조조 재평가의 시발점이라고 해도 될 정도.[73]
유비의 활약이 적은 초반부를 장식하는 주인공 포지션으로 등장한다. 허자장으로부터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는 인물평을 들으며 껄껄 웃는다든가 동탁을 죽이는데 실패하고 달아나 반동탁연합군을 주도하며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자 다른 군웅들을 질타하고 자신의 군세만으로 동탁을 추격한다. 사방에 적을 둔 연주에서 일어나 사방에서 몰려오는 여포, 원술, 유표, 장수, 원소 등 당대의 쟁쟁한 군웅들과 사력을 다한 혈전을 벌인다. 이각, 곽사로부터 핍박받는 천자를 구해내고 허도에 새로운 조정을 새우는 등 사직을 받들며 나라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동탁 암살 등의 이야기를 새로 만들어 주기도 하고, 원소군의 포로들을 생매장한 일화가 어물쩍 넘어가는 등 상당한 보정을 받았다. 안목이 좋기로 유명한 유비조차 처음엔 천대했던 방통을 처음부터 높이 평가하고 매우 정중하게 대접한 유일한 군주이기도 하며, 관우를 휘하에 두고 벌어졌던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 유비의 숙적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관우를 후하게 대접하며, 결국 관우가 떠나려고 마음 먹었을때도 내적갈등끝에 쿨하게 보내주고 무사히 돌아가길 기원해주는 대인배급의 멋을 선보이기도 했다.
능력 면에서 제갈량이나 주유, 법정, 장수, 마초 등에게 깨지는 등 손해를 보긴 했으나 당시 개차반이던 조조의 이미지를 개선했다는 점 또한 존재한다. 덕분에 조조는 고전소설에선 찾아보기 힘든 입체적인 캐릭터성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조조가 '''단순히''' 연의의 피해자라 보기 힘든 건 '''서주대학살이 생략된 것'''이 워낙 크다.
7.13. 정무#s-2
아버지가 그 유명한 정욱이란 이유로 상향받았다고 하나, 무적 기믹을 받은 조운에게 잠깐 페널티로 주기 위해 상향받은 케이스다.
정사에서는 정욱의 뒤을 이어받았다는 기록만 있다.
근데 연의에서는 하후무의 참모로 등장해 그 무적의 조운를 매복 계책으로 잠시동안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메리 수 관흥, 장포의 방해로 실패했지만. 조운를 위기에 처할 정도의 지력이 돋보여서 코에이 삼국지 시리지 초창기에서 지력 80대 이상을 차지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연의에서도 그 장면만 빼고는 전혀 나오지 않으므로 수혜를 받았다고 하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다.
[1] 성을 맹렬히 공격하다가 공격을 멈춰서 적들이 천천히 수비를 풀게 했다(계속 닫아두고 있으면 백성들이 밖에서 식량을 못 구해오니까). 그러던 중에 첩자들을 잠입시켜서 내부에서 문을 열게 했다.[2] 하지만 조진은 과연 피해자로 봐야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조진이 무능한 건 아니지만 장합과 사마의와 비교해 능력과 군공에서 딱히 폄하당했다고 말하기 미묘하다.[3] 제갈량은 일국의 재상, 사마의는 주유, 육손같은 도독의 위치에 있었다. 정사에서 이 둘을 비교할 수 있는 것은 군사적인 부분뿐이다.[4] 심지어 공명에게 아녀자의 옷을 선물받는다든가 후대에 전해오는 이야기에서도 다 사마의가 공명에게 굴욕겪는 이야기다. 다만 옷 얘기는 정사에도 나오는 얘기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쫒아내었다가 대표적인 일화. 그러나 정사에서도 나오지 않은 제갈량 상대로 완승을 거두었다는 창작을 나관중이 해주기도 했다.[5] 조운의 경우와 마찬가지지만 경호원이 아니고 호랑이 같은 위세다.[6] 근데 정작 장억은 손례를 털어갈때는 부상이 나은 것인지 잘 돌아다닌다.[7] 하후돈이 눈알을 잃기 이전에, 장료가 여포의 명령에 따라 소패성을 공격하자 관우가 "당신 같은 충의지사가 어찌 이런 짓을 하냐"라고 타이르자 공격을 하지 않고 물러갔다는 식으로 서로 마음이 맞는 걸로 나온다. 그래서 백문루에서 관우(&유비)가 목숨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더욱 자연스러워졌으며, 이후 관우가 조조에게 잠깐 투항하도록 설득하는 식으로 조조와 관우의 의견을 사이에서 전달하는 식의 역할까지 맡는다.[8] 안량을 베고 난 후 공을 세운 그가 떠나버릴까 염려하여 장료에게 '조공이랑 유비랑 누가 더 이쁨?'하고 물어보게 한 것.[9] 관우가 싸우다 죽으려 들자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이를 말렸다. 첫째, 관우 같은 뛰어난 장수가 목숨을 가벼히 여기는 것은 한황실에 대한 불충. 둘째, 같은 날 같은 시에 죽기로 한 결의를 어기는 일이 됨. 셋째, 유비의 가솔들을 책임질 책무도 버리는 것임.[10] 첨언하자면 정사에서는 오반은 장호에게 죽지 않았다. 즉 연의에서 오반은 장호의 칼밥이 되었다. [11] 원래 조진을 잡을 계책인데, 비요가 뭔가 이상한다고 해서 대신 나섰다.[12] 그래도 '아오 다 망했네' 하면서 자포자기하고 죽은 건 아니고, 다른 설정을 추가해 다른 방면에서 비장미를 살렸다. 작전 회의 중 심장 발작이 일어나 실신했다가 겨우 깨어났고(마치 실패를 암시하는 복선 같기도 하다), 최후의 전투 때 재차 발작이 일어나 더 이상 싸울 수가 없게 되자 하늘의 뜻임을 한탄하며 자결한다는 묘사.[13] 농담이 아니다. 이후 재물신 타이틀까지 얻으시면서 삼관왕을 달성하셨다.[14] 애초에 촉의 1세대 장수들은 마초를 제외하면 남겨진 기록이 매우 적다.[15] 그러나 결국 그녀의 미모에 반한 조조가 두씨를 데려간다.[16] 다만 연의에선 익양대치 자체가 누락되어 있다.[17] 정사부터 관우는 춘추좌씨전을 즐겨 애독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등 그의 학식이 일개 무부수준이 아니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긴 하다.[18] 이 때문에 문관으로 여겨지지만, 기록이 적어 무관이었는지 문관이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19] 진삼국무쌍7에서 촉 신무장 후보로 관흥, 장포와 왕평, 요화가 경쟁하다가 결국 전자가 나왔다. 이것만 봐도 촉 2세대 무장들이 저 둘에게 얼마나 피해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20] 수염만 자른 게 아니라 나중엔 전포도 벗었다. [21] 그후 왕진은 이붕이 죽고 나서 촉군들에게 창에 찔려 사망(…). [22] 연의에서는 부융의 아들이란 말이 없다.[23] 아다시피 연의에서는 부첨이 했다.[24] 물론 비판은 있다. 자치통감에 주를 단 호삼성은 '장서가 뭐 어떻게 이길줄 알고 따로 대비를 안하다 털렸냐? 부첨에게도 죄가 있다.'라고 깐다.[25] 무력은 무려 80대.[26] 그러고는 낙성까지 가는 33개의 관문을 자기가 다 열어버린다. 물론 그 덕에 장비는 빨리 도착했지만.[27] 두번이나 개발살난 시점에서는 아예 황충과 엄안에게 후덜덜해져 있었다.[28] 연의에선 나오지 않지만 이 석학들은 제갈량과 방통을 제외하고 전부 위나라에 임관했다. 서서만 어머니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조에게 갔고 나머지는 자발적으로 갔다.[29] 그렇다고 군사적인 재능이 떨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사마의가 그가 죽은 직후 오장원의 진영을 둘러보고는 "천하의 기재"라고 말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30] 그렇다고 싸움을 걸어서 이기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지지도 않았다. 즉 '''어떻게든 무승부'''(이 부분은 좀 논란이 있을 듯하다. 사실 대부분은 군량이 딸린다든지, 내부의 적(이엄)이 나온다든지 하는 내적인 문제였다.)였던 것. 사람들은 이 부분을 많이 칭송한다.[31] 물론 상비군의 문제이지 전쟁 동원 능력은 조금 다르다.[32] 강유가 능력자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적어도 제갈량 생존 때 이렇게까지 활약한 장수는 아니었으므로 제갈량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높은 대우를 받는 장수는 아니었다.[33] 학소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지만 연의에서 딱 두 번 밖에 안 나와서...[34] 연의에서 제갈량이 칭찬하고 마속을 격파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 장합에 비하면 멧돼지형으로 묘사되었기에 관흥, 장포, 위연 등보다 한 수 아래로 느껴진다. [35] 여기서 한 술 더 떠 연의 파생 창작물에서는 제갈량이 위연을 자오곡에서 불태워죽이려는 장면까지 추가하면서 토사구팽해먹으려는 모습까지도 나온다.[36] 다만, 정사에서도 초야에 묻혀 살던 시절부터 본인을 관중과 악의에 비견하는 자신감 넘치는 성격이긴 했다. 이 발언은 제갈량 쯤 되니까 자신감인거지, 웬만한 사람이 했으면 그냥 망언 수준이다(...).[37] 유비, 관우 등에게도 해당된다. 반대로 주유, 조조 등 연의에서 악역으로 평가받았던 인물들은 팬들이 생겼다.[38] 단 위연이 반역급은 아니더라도 주위와 불화하고 결국 연의에서처럼 촉군 퇴각의 길을 끊어놓은 대형사고를 친 건 맞다, 단지 그가 마지막에 도망간 곳이 위나라가 아니라 한중이라는 점에서 진수 등이 반역이 본심이 아니라고 평가할 뿐이다.[39] 역사적으로 조운의 직무는 (지휘관 역할도 하긴 했지만) 특공대나 선봉장수, 최고사령관 (유비, 유비 사후엔 제갈량)의 친위대장에 가까웠다. 오히려 지휘관보다도 무력이 중요한 역할인만큼 매우 뛰어난 무예를 가졌을 것이다. 애초에 기록상으로도 용맹스럽다고 나오고...사실 실제 삼국시대의 지휘관급 무인들은 인간흉기인 관우 정도를 제외하곤 일기토 기록이 거의 없다.[40] 역대제왕묘는 단순히 공이 높거나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중국사 수천년의 역사를 통틀어서 수없이 많은 검증이 이루어진 공신 중의 공신들만 들어갈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고조에게 천하를 안겨다 준 장본인이자 중국사 최고의 명장으로서 공적으로만 따지면 중국사를 통틀어 상대할 자가 없는 한신조차 뒤끝이 안좋았다는 이유로 제왕묘에 들지 못했다. 들었던 인물은 끽해야 한삼걸 장량이나 소하, 조참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41] 장판교에서만 50명도 넘는 장군이 희생되었다고 했다.[42] 문추와 싸울 때는 소년장수였는데, 불가사의할 정도로 나이를 빨리 먹었다. 사실 이 시기쯤에는 조운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인물들이 거의 다 죽어나간 이후라서 한 세대 전의 인물이라는 느낌이 있기는 하다.[43] 굉장히 어이없이 죽었는데, 주창과 배원소가 관우를 모시기 위해 합류하러 오던 도중 난데없이 창을 쓰는 젊은 장수를 만나 배원소는 바로 죽고, 주창도 부상을 입은채 겨우 도망나왔는데, 격노한 관우가 복수하러 찾고보니 조운이었다. 당연히 이 시점에선 이제 막 관우를 모시기로 한 주창과 배원소보다 잃어버린 동료였던 조운이 백배는 소중했기에 배원소를 죽인거나 주창을 반죽음 만든건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사실 배원소 자체가 그리 무예가 뛰어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버프라기보단 관우와 조운이 재회하는 걸 좀 더 박진감 있게 그리기 위해 기워넣은 에피소드에 가깝다.[44] 하후연은 연의에서는 뜬금없이 무력 버프를 엄청 얻은 하후돈에 묻히는 경향이 있지만, 정사에서는 위나라 최고의 맹장 중 하나였다.[45] 역으로 생각하면 마원, 염파, 양유기, 이광은 시대는 달라도 이렇게 보면 삼국지연의의 피해자인 셈이다.[46] 주방에서 일하던 한 어린아이가 감녕과 갈등이 생겨서 여몽에게 보호를 요청했는데, 분명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한 감녕이 그 어린아이를 죽여버려서 여몽이 엄청나게 분노했다가 여몽의 어머니가 중재해서 겨우 무마된다.[47] 그러나 손권은 정사에서도 걸핏하면 만용을 부렸다고 나온다. 손권의 가장 큰 패배 중 하나인 합비 공방전에서도 얼른 퇴각할 생각은 안 하고 가장 뒤에 남아 몸소 적을 막는답시고 굴다가 진무가 전사하고, 능통은 손권 호위하다가 자기 식객이 다 전사했다.[48] 사실상 적의 가족임에도 진심으로 사랑에 빠진 비운의 여성이라는 캐릭터성+유비의 매력을 강조하려는 각색이었던 걸로 보이는데, 아이러니하게 '''실제''' 이런 케이스였던 조조의 딸 조황후는 남편 헌제에게 헌신적인 부분은 전부 없어지고 오히려 아버지의 의도에 충실하게 헌제를 핍박하는 악역으로 그려진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위나라는 악역, 촉나라는 선역에 가깝기 때문에 편애를 받는 경향이 있다.[49] 정사의 상황대로라면, 유괴 내지는 납치 의도였겠으나, 여기서는 손부인이 아두를 친자식처럼 사랑했다는 설정으로 바뀐다.[50] 게다가 우미를 질식시켜 죽이고 번능에게 고함쳐 낙마해 죽게 하는등 후덜덜한 모습도 나온다.[51] 정보, 황개, 한당, 장흠, 주태, 진무, 동습, 감녕, 능통, 서성, 반장, '''정봉'''. [52] 정확히는 형 정봉은 위나라가 촉한정벌에 전력투구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끄는 역할을 했으며 동생 정봉이 손이와 함께 촉한을 구하기 위해 건업에서 성도로 출발했다. 하지만 손이와 동생 정봉이 도착하기 전에 유선이 항복하고 말았다.[53] 사실 삼국지에서 등장인물의 강함은 고전 소설답게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현대 작품들처럼 엄밀하게 무예 서열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54] 군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대의 상징으로서 지휘관의 생명과 더불어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할 대상이다. 이런 군기를 탈취당했다는 건 부대가 아예 박살이 났다는 것을 의미한다.[55] 사실 먼저 옹개를 죽이고 제갈량에게 옹개의 목을 바치는데, 제갈량이 '주포가 말하길 니가 나를 죽이려하구나 하고 저놈의 목을 쳐라' 하다가 고정이 '주포의 이간질입니다'(…)라고 하자 제갈량이 '주포를 죽이면 살려준다'고 하며 고정을 살려주었다.[56] 나는 형주 땅을 얻은 것보다 이도(괴월의 자)를 얻은 것이 더 기쁘다.[57] 그나마도 포신이나 장막 등은 조조의 동맹에 가깝지 조조의 수하라고 보긴 어려웠다. 게다가 허창성 또한 조조에게 복속되기 이전이었으므로 국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조조가 도겸을 이길 가능성은 결코 높지 않았다.[58] 그렇지만 동료들과의 다툼 같은 경우 원소와 원상에게 죽을 때까지 충성하던 심배도 한 적이 있고, 조조 제거계획을 주도했다가 살해당한 부분에 경우 이각과 곽사는 동탁 수하 출신에 세력도 막강하다보니 멀리있는 군벌 원소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조조를 불러들여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조조를 불러들인 것도 황실을 받들어 충성할 사람으로 기대한건데 조조는 자기 국가를 세우기 원하는 야심가였으니 동승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조조의 두뇌이자 멘토이던 순욱도 조조를 한실 부흥을 할 수 있는 인물로 철썩같이 믿고 돕다가 자기가 잘못봤다는 걸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연의처럼 지극한 충신은 아니지만 마냥 간신이라고 보기는 미묘하다.[59] 사실 이것도 조조가 종료에게 장로(張魯)를 토벌하게 하자 관서 지방의 여러 장수들은 자신들을 치려는 것이 아닌지 의혹을 품어 봉기를 일으킨 것이고 마초측에서 계속 협상을 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60] 그나마 조운이 데뷔전에서 문추와 50합을 대등하게 싸운 적이 있다.[61] 물론 이야기 구조상 그런 부분이 필요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62] 그런데 따지고보면 연의에서도 여포는 호색한이라는 설정이고, 왕윤의 연환계도 이것을 노린 것이다. 둘의 러브스토리가 부각된 건 연의를 기반으로 한 창작물들의 재해석 때문이다.[63] 정사에서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소건에게 보내는 항복 권고 편지나, 조조에게 목숨을 구걸할 때 관중, 악의의 고사들을 예로 들어서 말하는 점, 그리고 정원의 휘하에서 주부라는 문관직을 지낸 걸 보면 어느 정도 배운 게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64] 채모와 채부인이 유비를 죽이려 할 때 실드를 쳐주거나 죽음을 앞두고 형주를 유비에게 주려고 하는 등이 대표적.[65] 다만 처음에 서주를 침공한것은 장비가 술을 안 마신다는 이유+ 여포의 장인이라는 이유로 죄없는 조표를 두들겨패면서 조표가 원한을품고 여포를 부른거고 두번째로 소패로 침공한것 역시 장비가 여포의 말을 빼앗은 게 원인인지라 어느정도의 명분은 있는 셈.[66] 그래서 연의를 기반으로한 2차 창작에서는 여포의 막장성을 어느 정도 희석시켜서 진궁한테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67] 그래도 진지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황호는....[68] 손부인 에피소드에서 한당과 함께 언급이 되긴 하는데 정말 말 그대로 언급만 하는 정도다.[69] 삼국 중심의 전개에서 듣보잡에 가까운 원소,원술,공손찬의 비중은 철저히 편집되었고, 의외로 삼국에 골고루 비중이 가 있다.[70] 물론 연의에서는 여강태수 자리를 유훈에게 주는 장면은 나온다.[71] 육강 토벌은 간단하게 언급되긴 하지만, 육강이란 인물에 대한 지식이 없을 경우, 육강 토벌에 대해서 악행이 아닌, 단순한 군벌 A와의 싸움으로 인식하기 쉽다.[72] 연극에서 조조 역을 맡은 사람이 관객들에게 맞아 죽은 사건이 일어났을 정도였다고 한다(...). 배우는 무슨 죄(...)? [73] 평역 삼국지를 내놓은 이문열이 작중 내내 조조를 정사 이야기를 끌어내며 찬양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