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번뇌

 

1.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가지는 108가지 번뇌
2. 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의 초선의원 108명을 비꼬아 일컫던 말
2.1. 108번뇌에 속하는 인물


1.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가지는 108가지 번뇌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중생의 , , , , , 마음의 감각기관이 사물을 접할 때 좋다, 싫다, 그저 그렇다의 세가지가 서로 같지 않아서 괴로워하며 또한 괴로움, 즐거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과 관련이 되어 6x3=18에 다시 18을 더해서 36이 된다. 거기에 36개의 번뇌가 과거, 현재, 미래를 가지기 때문에 36x3=108이 됐다고 한다. 쉽게 말해,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늘 느끼게 되는 108가지의 느낌을 의미한다.
실제 인간의 번뇌가 108가지라기보다는 그만큼 많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듯 하다. 불교에서는 108개의 알로 염주를 만들어 돌리면서 삼보를 생각하면 108번뇌를 끊을 수 있다고 말하며 혹은 본래적 자신의 마음인 일심의 회복을 강조하기도 한다. 비단 염주 뿐만 아니라 종종 절에서 행하는 특수한 기도법인 '108배' 또한 바로 이 108가지 번뇌를 순환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다. 기도라는 게 은근히 고통스러운 행위이고 따라서 108개의 번뇌를 해소하려면 기도를 108번 올려서 그 고통으로 108개의 번뇌가 가져다주는 고통을 상쇄한다.[1] 뭐 이런 개념으로 보면 된다.
서브컬쳐에선 종종 애용되는 개념이기도 한데, 서브컬쳐의 생산지로 유명한 일본이 불교의 영향력이 큰 곳이다보니 그만큼 불교의 아이템들이 꽤나 친숙해서 창작물에 간간히 쓰다보니 108번뇌 또한 사용빈도가 꽤 된다. 실제 아이돌 그룹 번뇌걸즈라던가... 포켓몬스터 중에서 도감 설명으로 미루어 화강돌의 모티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다만 사천왕이나 삼신기 마냥 하나하나 끼워맞추기엔 숫자가 너무 많다보니 대충 숫자만 채우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일본의 제야의 종 행사 때도 타종을 108번이나 하는데, 이때 마지막 종은 새해 자정 정각에 맞추어 친다.
그리고 머털도사마법천자문에 나오는 108요괴들도 이 108번뇌에서 따왔다. 과거 게임잡지에서 소개된 머털도사 게임 공략페이지 중 세계관 소개에서 설명하길 이 108번뇌를 창조한 건 인간을 창조한 신들 중 하나라고 한다. 과거 성신과 마신이 누가 더 뛰어난지 승부하려고 힘을 합쳐 인간을 창조했는데, 자신들이 만든 인간들이 성신의 빛의 힘과 마신의 어둠의 힘 중 무엇을 선택하는지로 우열을 가리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두 힘을 합쳐 절대힘이란 걸 발명해놨고 이런 인간들에게 위협을 느낀 두 신은 인간을 견제하기 위해 족쇄를 채워 인간의 가능성을 제한했다고 한다. 성신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나눠서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었고 마신은 108번뇌를 인간들에게 내렸다고 하니 이 108요괴는 그 근원이 인간의 창조주 중 한명인 마신에게서 기원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가면라이더 드라이브에 주적인 로이뮤드의 수가 108대라는 점을 들어 108번뇌도 포함된 것 같다.
파생형으로 128근본번뇌가 있다.

2. 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의 초선의원 108명을 비꼬아 일컫던 말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 힘입어 대승하며 152명의 거대여당이 되었다.[2] 그런데 이들 중 초선의원들이 무려 108명에 달했고, 이들 중엔 386세대 운동권 출신이거나 노동계 출신들이 많았다.
이들은 당선 이후 초선답게(?) 기존의 의원들과는 달리 튀는 행보를 이어갔다. 당론과 배치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가 하면, 토론에서 자기 의견만 내세우다 날밤새우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이들의 안티측에선 이들을 가리켜서 열린우리당의 골칫거리라는 의미에서 108번뇌라는 비아냥스런 별칭을 붙이게 되었다.(...) 그리고 비아냥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게, 이때엔 국회선진화법도 없어서 과반수의 머릿수로 법안을 밀어붙여도 다 됐을 여당임에도 의원들이 개인 플레이를 벌이며 제멋대로 놀아나느라 121석밖에 없던 한나라당에게 끌려다니며 법안 하나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며 국정동력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자기들 딴에는 진영 논리에 휩쓸리지 않는, 참신하고 양심적인 행보를 보이는 중이라고 자평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악수가 되었다.
결국 이 108번뇌 의원들 중 상당수가 그 다음인 18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재선에 성공한 의원들은 자기들이 비판하던 선배의원들이 하던 방식대로 지역구를 관리해서 재선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들을 부르던 또다른 별칭으로 탄핵역풍의 수혜자란 의미에서 탄돌이라는 표현도 있었다.

2.1. 108번뇌에 속하는 인물


이상 108명의 의원들이 소위 말하는 108번뇌였는데 지역구 의원 85명, 비례대표 의원 2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비례대표 김혁규 의원은 임기 중 탈당하여 의원직을 상실, 정덕구 의원은 의원직 사퇴, 박홍수 의원 역시 입각으로 인해 의원직을 사퇴했으나 그 자리를 서혜석, 신명, 김영대가 승계하여 108명의 숫자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17대 대선 전에 열린우리당이 여러차례 이합집산을 거치며 대통합민주신당이 된 후 역대급으로 대참패를 당하면서 정권을 빼앗겼고 그 직후에 통합민주당으로 재편해 치른 18대 총선마저도 대참패를 기록했다. 이 때 이 108번뇌 중에서 무려 '''73명'''이 낙선하거나 아예 공천에서 탈락하는 고배를 마시게 된다. 18대 총선에서 살아남은 108번뇌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이 중에서 강길부는 2007년에 열린우리당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탈당하여 한나라당으로 전향해 버렸고 권선택과 이상민 또한 자유선진당으로 전향해 버렸다. 그리하여 108번뇌 중에서 단 33명 만이 18대 국회에 살아남았고 이 중 30명 만이 민주당에 잔류하게 된 것이다. 18대 국회를 거치면서 108번뇌들은 사실상 거의 대부분이 정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일부는 아예 지자체장으로 전향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19대 총선에서 일부가 다시 등장하게 된다. 19대 국회에 남은 108번뇌들은 다음과 같다.
18대 총선 때 떨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서 총 47명이 19대 국회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이 19대 국회에 살아남은 108번뇌 중에서 강길부는 이미 지난 국회부터 한나라당으로 전향한지 오래였고 2015년 연말에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으로 갈라지면서 문병호, 김동철, 주승용 등은 국민의당으로 가버렸고 조경태 또한 새누리당으로 전향해 버렸다. 그런데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이 컷오프 칼바람을 일으키는 바람에 이 47명의 잔류파들이 대거 낙천되는 사태를 낳았다. 그 결과 20대 총선에 살아남은 108번뇌들은 민병두, 유승희, 우원식, 우상호, 노웅래, 이인영, 박영선, 김영주, 김진표, 김태년, 김현미, 윤호중, 안민석, 조정식, 정성호, 오제세, 변재일, 이상민, 양승조, 김동철, 주승용, 조경태, 강길부, 강창일, 까지 단 24명 뿐이다. 그리고 이 25명 중에서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해 있는 인원은 단 21명 뿐이다.
이 중 21대 총선에서 살아남은 인물들은 20대에서도 살아남았던 14명에 21대에서 컴백한 5명을 합쳐 19명이다.
  • 우원식 - 서울 노원구 을 (4선)
  • 우상호 - 서울 서대문구 갑 (4선)
  • 노웅래 - 서울 마포구 갑 (4선)
  • 정청래 - 서울 마포구 을 (3선)[18]
  • 이인영 - 서울 구로구 갑 (4선)
  • 김영주 - 서울 영등포구 갑 (4선)
  • 유기홍 - 서울 관악구 갑 (3선)[19]
  • 김교흥 - 인천 서구 갑 (재선)[20]
  • 김진표 - 경기 수원시 무 (5선)[21][22]
  • 김태년 - 경기 성남시 수정구 (4선)
  • 윤호중 - 경기 구리시 (4선)
  • 안민석 - 경기 오산시 (5선)[23]
  • 조정식 - 경기 시흥시 을 (5선)[24]
  • 정성호 - 경기 양주시 (4선)[25]
  • 이광재 - 강원 원주시 갑 (3선)[26]
  • 변재일 - 충북 청주시 청원구 (5선)[27][28]
  • 이상민 - 대전 유성구 을 (5선)[29][30]
  • 한병도 - 전북 익산시 을 (재선)[31]
  • 조경태 - 부산 사하구 을 (5선)[32][33]
20대 총선에서 살아남은 108번뇌 중 21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108번뇌들의 행방은 다음과 같다.
  • 민병두 - 컷오프
  • 유승희 - 경선 패배
  • 박영선 -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 입각함[34]에 따라 불출마[35]
  • 최재성 - 미래통합당 배현진 의원에게 밀려 낙선.
  • 김현미 - 국토교통부장관 직을 내려놓지 않음[36]에 따라 불출마.
  • 오제세 - 컷오프
  • 양승조 - 20대 임기 도중에 의원직을 사퇴하고 7회 지방선거에 나가 충청남도지사에 당선.
  • 김동철 - 민주당 이용빈 의원에게 밀려 낙선.
  • 주승용 - 불출마
  • 강길부 - 불출마
  • 강창일 - 불출마
결론적으로 그 당시 108번뇌들 중 단 1번의 낙선 없이 21대 국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김진표, 변재일, 이상민, 조정식, 안민석, 조경태까지 단 6명이다. 이 중 조경태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은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며 그 5명 중 이상민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은 단 1번도 당적을 바꾸지도 않았다.

[1] 불교가 본디 인도에서 유래하였고, 인도의 토착종교(주로 힌두교)들이 대부분 몸의 고행을 통해 더욱 높은 경지로 올라가는 것을 추구한다(같은 맥락에서, 고생 꽤나 하는 하급 카스트들은 현세에서 고생한 만큼 내세에서 더 좋은 삶을 누린다는 사상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면 왜 고통으로 고통을 가감하려는 이런 행위가 생겨났는지를 알 수 있다.[2] 하지만 당시 여론을 생각하면 대승이라고 여기기도 어렵다. 당시 추측엔 155석에서 180석. 최대는 200석까지도 전망하고 있었으며, 한나라당은 50석에서 120석으로 예상되었는데###, 정동영의 60대 이상은 투표를 안해도 된단 망언이나 수도권 및 강성지역에서 세력이 공고했던 한나라당의 수성, 거대여당 집권에 대한 반발이 있었기에 열린우리당은 예상보다 못한 승리를, 한나라당은 예상외의 선전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3] 2004년 12월 10일 당선무효[4] 2005년 8월 19일 의원직 상실[5] 2006년 11월 10일 의원직 상실[6] 2005년 3월 25일 의원직 상실[7] 2005년 3월 25일 의원직 상실[8] 2006년 11월 5일 별세[9] 2005년 1월 27일 의원직 상실[10] 2005년 3월 10일 의원직 상실[11] 탈당으로 인한 의원직 상실[12] 2007년 2월 1일 의원직 사퇴[13] 2005년 1월 6일 입각으로 인한 의원직 사퇴[14] 2010년 12월 9일 의원직 상실[15]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낙천된 뒤 자유선진당 당적으로 당선.[16] 2009년 9월 24일 의원직 상실[17] 2015년 11월 12일 의원직 상실[18] 20대 총선에서는 김종인(...)에 의해 컷오프되고, 21대 총선에서 다시 공천을 받아 의회에 복귀.[19]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에 밀려 낙선했지만 21대 총선에서 설욕하며 의회 복귀.[20] 17대 당시의 지역구 이름은 서구·강화군 갑. 18대부터 20대까지 이학재 의원에게 3연패를 당했으나 21대 총선에서 드디어 설욕하고 12년 만에 의회복귀.[21] 내리 5선이다.[22] 다만 19대 임기 도중 의원직을 사퇴하고 6회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가 남경필과 겨루었던 적이 있다. 이 선거에서 낙선하며 20대 총선 전까지 2년 남짓 동안은 백수였고, 20대부터는 본인 원래 지역구인 수원시 정(영통구)를 떠나 권선구영통구가 반반 섞인 신설지역구 수원시 무에 출마해 당선되었다.[23] 내리 5선이다.[24] 내리 5선이다.[25] 17, 19대 지역구는 양주시·동두천시였으나 20대부터 양주 단독선거구로 분리.[26] 18대에서도 살아남았지만 도중에 의원직을 던지고 5회 지방선거에 나가 강원도지사에 당선. 이후 박연차 게이트 건으로 당선무효되고 피선거권이 상실되었으나 2019년 12월 특별사면됨에 따라 공민권을 회복하고 21대 총선에 나와 10년 만에 의회복귀. 17-18대 당시 지역구는 고향인 평창군을 포함하는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복합선거구였다.[27] 내리 5선이다.[28] 19대까지는 구 청원군이 지역구였다.[29] 내리 5선이다.[30] 19대까지는 유성구 전체가 지역구였으나 20대부터는 분구된 유성 을로 출마. 특이사항으로 18대에는 자유선진당 당적으로 당선되었으며,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에 복당해 공천을 받고 당선.[31] 17대 당시 지역구는 익산시 갑. 18대 및 20대에서는 이춘석 의원에게 경선에서 밀려 낙천되었고, 20대부터 익산시 을로 지역구를 옮겨 재수 끝에 21대에서 당선되며 12년 만에 의회복귀.[32] 내리 5선이다.[33] 다만 알다시피 20대 총선 직전에 새누리당으로 이적함에 따라 지금은 보수정당(미래통합당) 소속.[34] 입각 당시부터 불출마를 결단하고 입각.[35] 21대에도 나와서 당선되었다면 내리 5선이었을 것이다.[36] 21대 출마의지가 강했지만 지역구 여론도 그렇고 본인 후임 장관을 찾지 못함에 따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불출마. 박영선과는 케이스가 미묘하게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