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역사
1. 초창기(1999 ~ 2000년)
1999년 7월 18일, 먼저 파일럿 방송을 내보냈고, 호평 덕에 같은 해 9월 4일 밤 9시에 정규 1회가 방송됐다. 당시 멤버로는 선배 라인의 김미화와 전유성, 개그콘서트의 기획자 백재현, 중간 라인의 김경희, SBS 출신 심현섭과 김준호[1] , 그리고 당시 KBS 희극인실 막내였던 공채 14기 김영철, 김대희, 김지혜가 있었다.[2][3] 파일럿 방송 당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은데, '개그콘서트' 명칭을 처음 사용한 컬트 삼총사가 축하무대를 선보였고, 박경림이 파일럿 멤버에 들어가 있었다. '''수다맨'''이라는 코너도 있었는데, 여기서는 심현섭이 따발총 말빨로 치한을 무찌르는 말 그대로 슈퍼히어로 컨셉이었다. 참고로 나중에 수다맨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강성범은 이 당시 동티모르 파병 중에 '''지하철 노선도를 외우고 있었다.'''
초창기에는 말 그대로 백재현과 서울예대 후배들이 대학로에서 하던 '투유' 공연을 그대로 방송에서 재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공개 코미디라는 점에서 80년대 쇼 비디오 쟈키와 공통점이 있지만, 기존의 콩트형 코미디 프로그램과 다른 빠른 호흡과 '앵콜 개그'로 대표되는 즉석 애드리브로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고, 방송 시작 3개월 만에 시청률 30%에 육박하며 초대박을 터뜨렸다. 이 시기 대표 코너로는 심현섭을 스타덤에 올린 '''사바나의 아침''', 김미화가 스승으로 분해 제자들과 세태를 풍자하는 '''스승님! 스승님!''', 김영철의 '''안내전화''', 틴틴파이브의 동굴 개그를 리메이크한 '''스크림''' 등이 있었다.
개그"콘서트"라서 그런지 극초창기는 개그 말고 다른 공연들도 하고 있었다. 레귤러 출연진은 위 9명[4] 이지만, 이병진이 키 작은 사람으로 변장하는 빌리 진, 개그맨 이영재의 마술과 박준형, 김상태, 김현기의 퍼포먼스 공연인 스마일 매니아나 전유성을 제외한 레귤러 출연진들의 난타 공연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실제 이름도 개그와 콘서트의 결합이었으니 적절한 셈이지만 불과 몇년 뒤 코미디로만 채워진 것에 비해 큰 차이가 있는 셈.
초창기 당시에는 당연하겠지만 지금 시각에서 보면 유치할 정도로 현재와 개그코드가 상당히 달랐으며,[5] 대학로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하려고 한 듯 복장의 경우 해당하는 코너에 맞는 복장이 아닌(사바나의 아침의 심현섭을 제외한) 전부 검은색 바지에 회색+검은색 유광으로 된 사이버틱한 복장이었다. 이 복장은 의외로 당시 유명 디자이너의 옷으로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주문 제작한 백재현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그냥 만들어진 걸 입었다고. 심지어 별도의 소품도 없이 직사각형의 상자하나가 유일한 무대 장치였다. 그래서 소품이 없어서 그냥 마임으로 때우는 경우도 많았을 정도. 지금의 개그콘서트처럼 극에 맞는 복장과 소품을 제대로 준비해서 공연을 한 것은 2000년 초 사이버 복장을 벗고 평범한 의상을 입고 코너를 진행할 무렵부터였다. 멤버 구성도 초창기엔 대학로 무대를 그대로 이식했기 때문에 KBS 공채로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었고,[6] 심지어는 그다지 길지는 않았지만 정태우,[7] 박경림도 개그콘서트에 출연한 경력이 있었다. 참고로 정태우와 박경림의 본업들은 각각 배우와 방송인이다.
개그콘서트가 대성공을 거두자 KBS는 방송 초창기엔 토요일 오후 9시에 방영하다가, 2000년 1월 22일에 토요일 오후 6시 50분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시간대 이동 직후 god의 육아일기를 앞세운 MBC 목표달성 토요일이 타 방송사를 압살하면서 개콘도 약 9개월 간의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김영철이 아는 형님에서 밝힌 바와 같이, god의 육아일기의 선전으로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이 반토막났을 정도였으니... 실제로 김준호도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개그콘서트가 god의 육아일기와 맞붙는 바람에 시청률이 7%까지 하락한 적도 있었다고 밝힌 적 있다. 90년대부터 리얼 버라이어티가 코미디를 압도하기 시작했는데, 토요일 황금시간대에서의 개콘의 부진이 사실상 쐐기를 박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장기간 히트한 코너도 없었고, 유행어도 강남영의 "나니까!"를 제외하면 전무했다. 그나마 봉숭아 학당이 방송을 시작한 것이 특기할 만한 사항. 같은 해 10월 21일, 다시 오후 5시 20분으로 옮겼다.
2000년 KBS 공채 15기 코미디언들이 선발되자 개콘에서는 바빠진 심현섭과 김영철 등을 대신해서 개콘을 이끌 차세대 주역들로 이 15기 + 바깥에서 영입한 특채들을 내세운다. 조수원, 홍종호, 권혜수, 정태우, 김학준 등이 개콘에서 내세운 새로운 주역이었는데 이들은 부진했고 결국 계속 심현섭 라인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8]
2. 전성기의 시작(2001 ~ 2002년)
2001년 5월 봄 개편을 계기로 개콘은 말 그대로 사지(死地)였던 토요일 오후 시간대를 떠나 '''이후 18년 넘게 정착하게 될''' 일요일 밤 9시대로 이동했다. 당시 일요일 9시대는 황금시간대이기는 하나, KBS 2TV 입장에서는 사실상 버리는 시간대였다. 뉴스와 드라마 시청층이 굳건하고, 뉴스가 끝나면 당시 50%대 시청률을 자랑하던 같은 방송사 다른 채널의 태조 왕건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그랬기 때문에 개콘의 일요일 9시 편성은 유배와 다름이 없었는데, '''오히려 이게 신의 한 수가 되면서 개콘은 본격적인 전설을 쓰기 시작한다.'''
사실 흥행의 조짐은 개편 전부터 있었다. 멤버 확충으로 김지선, 이병진, 이태식, 황승환, 박성호, 강성범 등을 영입한 후 박성호의 뮤직토크, 몰래가중계가 인기몰이를 했고, 2001년 4월에는 강성범의 '''수다맨'''이 첫 선을 보였다. 개편 후에는 봉숭아 학당에서 황마담, 연변총각, 하니, 운동권 학생 등의 캐릭터들이 히트하면서 인기를 견인하기 시작했고, 2001년 9월, 그 동안 리포터로 각 방송사를 돌아다니던 박준형이 '''갈갈이 삼형제'''로 개콘에 정식으로 합류했다. 그리고 마침내 개콘의 파죽지세가 시작되었다. KBS 코미디가 무시무시하게 성장하자 SBS에서도 다시 공채 개그맨을 선발하고는 외부에서 끌어온 유명 개그맨과 함께 '''코미디쇼 오 해피데이'''에 출연시켰다.[9]
한편 이 무렵에 개그계에서도 연예 기획사라는 개념이 생겼다. 심현섭처럼 기존의 인기 스타들은 스타밸리와 계약했고 대학로에서 새롭게 떠오르던 뉴페이스들은 박승대, 박준형의 스마일 매니아와 계약했다. 이때 개콘은 스타밸리 vs 스마일 매니아의 라이벌 구도였다. 이태식처럼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들의 팬카페에 가면 박승대나 박준형처럼 스마일 패밀리에 속한 개그맨들을 욕하는 글이 올라올 정도로 두 소속사의 경쟁은 치열했다. 한편 비원엔터테인먼트라는 기획사도 있었는데 이곳의 대표인 이봉원이 SBS 공채 출신인 최국, 윤성호, 엄태경을 제작진에게 추천해서 개콘에 출연시켰고 이 셋은 KBS 16기 기수를 받게 된다.
2002년은 개콘의 에이스가 심현섭에서 박준형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심현섭이 동물본부 24시 이후 봉숭아 학당의 맹구 캐릭터에 집중한 반면, 박준형은 갈갈이 삼형제 외에도 '''청년백서'''와 '''생활사투리'''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명실상부한 개콘의 핵심 멤버로 떠올랐다. 박준형과 갈갈이 삼형제를 함께 하고 있던 정종철은 봉숭아 학당의 옥동자로 맹구의 자리를 위협했고, 김숙도 7년 무명 생활을 딛고 따귀소녀로 벼락스타가 되었다. 다른 개그맨들도 '''700 오! 병팔이''', '''바보삼대'''를 히트시키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2001년 가을부터 20%를 돌파한 시청률은 2002년 말 30%에 육박하고 있었고, 연말 특집에서는 34.8%로 역대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으며,기사 이러한 대히트를 바탕으로 2002년 연말 7년 만에 KBS 연예대상이 부활하게 되었다. '''그런데...'''
3. 전화위복과 역대 최고 시청률(2003년)
2003년 초, 심현섭, 강성범, 이병진, 이태식, 박성호, 김준호, 김대희, 김숙 등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들이 개그콘서트에서 집단 하차하고 SBS로 이적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성호의 증언에 의하면, 2002 KBS 연예대상에서 심현섭이 대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당시 스타밸리 대표가 불만을 나타냈고, 시상식 직후 소속 개그맨들에게 개콘에서 하차할 것을 권하면서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다고...[10] 그리하여 이들은 2003년 1월 12일 방송을 끝으로 개콘을 떠났고, 700-오!병팔이, 바보삼대, 지그재그 송 등 주요 코너의 절반과 봉숭아 학당의 캐릭터 대부분이 말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당장 다음 주(1월 19일)부터 어떻게 진행될지 오리무중인 상황.
하지만 개콘에서는 이미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었다. 2002년 하반기부터 '''우격다짐''', '''무림남녀''', '''도레미 트리오''' 등 16기, 17기 신인들의 코너가 전파를 타고 있었고, 특히 우격다짐의 이정수는 잘생긴 외모로 이미 스타덤에 올라 있었다. 2003년 1월 19일 이후 개그콘서트는 장웅, 이덕재, 임혁필, 김상태, 김기수 등 오랜 무명 생활에 시달리던 중고참 개그맨들과 김시덕, 김인석, 정형돈, 김병만, 김다래 등 당시 파릇파릇하던 신인들[11] 의 맹활약으로 전보다 더 뜨거운 반응을 받았고, 개콘의 전성기는 계속되었다. 결국 선배 개그맨들의 퇴장은 조금씩 기회를 받고 있던 신인 개그맨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되었다.
이후에도 대단해요, 4인4색 등을 히트시켰으며, 2003년 8월 31일(200회 특집) 방송에서는 역대 최고 시청률 '''37.3%'''(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했다.[12] 기사 개콘의 수장이 된 박준형은 개콘에서의 활약만으로 2003 KBS 연예대상 '''대상'''을 수상했다.[13]
4. 웃찾사와의 경쟁(2004 ~ 2005년)
거칠 것이 없어 보였던 개콘도 2004년에 접어들면서 기세가 한풀 꺾였다. 시청률은 20%대 초반을 유지했지만, 인기 캐릭터를 쉼없이 배출하던 봉숭아 학당도 신선한 캐릭터가 사라졌고, KBS의 옴부즈맨 프로그램인 TV 비평 시청자데스크에 개콘의 가학성 논란이 매주 제기되던 시기였다.[14]
그 와중에 웃찾사로 넘어갔던 황승환, 박성호, 김대희, 김준호가 개콘에 복귀했고, 개콘 역사상 최고의 기수 중 하나로 꼽히는 19기[15] 가 이 해 데뷔했다.[16] 19기는 데뷔와 동시에 맹활약을 시작하며 개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7월, 강유미가 마이걸로 데뷔하고 유세윤이 봉숭아 학당에서 '''복학생''' 캐릭터를 들고 나왔으며, 9월에는 안어벙을 탄생시킨 '''깜빡 홈쇼핑'''이 시작했다. 10월에는 황현희와 김대범이 춤추는 대수사선을 들고 나왔고, 12월에는 장동민이 경비 캐릭터로 봉숭아 학당에 투입되었다.
한편, 스타밸리 사태에서 출발했던 SBS 웃찾사가 2004년 하반기부터 인기몰이를 시작하더니, 2004년 11월부터 약진하며 본격적으로 개콘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2월 넷째주[17] 에 처음으로 시청률에서 개콘을 넘어서면서 이후 2005년 4월까지는 웃찾사 시청률이 개콘을 앞서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때 개콘이 침체기였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웃찾사과 개콘의 차이가 크지 않았고, 장난하냐, 주먹이 운다, 수능 박선생 같은 인기 코너들과 봉숭아 학당의 출산드라 같은 대박 캐릭터가 계속 나오던 잘 나가던 시기였다. 웃찾사가 노예계약 파동으로 하락세를 탄 2005년 5월부터는 다시 개콘 1강 체제가 공고해졌다.
한편, 2005년 1월 30일부터 코너 시작 전 출연진을 소개하는 자막이 추가되었다.[18] 2004년 12월 26일 방송분부터 집으로, 깜빡 홈쇼핑에서 워터마크 형식으로 처음 출연자 이름이 나왔고, 2005년 1월 30일부터는 봉숭아 학당을 제외한 전 코너 타이틀에 출연자 자막이 붙었다. 같은 해 4월 17일부터는 봉숭아 학당에도 출연자 하단에 이름이 붙었다.
이 시기에도 개콘 출신 코미디언들이 타 방송국으로 옮기는 일이 잦았지만 최국[19] , 손소연, 김병달, 허동환, 차민준, 신기루[20] 처럼 개콘에서는 기회를 잡지 못하고 출연도 없던 코미디언들인지라 파동은 없었다.
5. 제2의 도약(2006 ~ 2007년)
- 2006년 평균 시청률: 18.45%(AGB닐슨 기준)
- 2007년 평균 시청률: 16.45%(AGB닐슨 기준)
2006년 1월, '''고음불가'''를 시작으로 5월 '''사랑의 카운슬러''', 6월 '''패션 7080''', 8월 '''마빡이''', 11월 '''대화가 필요해''' 등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코너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살짝 가라앉았던 개콘의 인기가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다만 2006년 상반기에는 SBS 하늘이시여에 밀려 10%대 초반까지 시청률이 떨어졌는데, 그래도 이런 악재를 딛고 하반기에 나온 코너들이 연달아 대히트하면서 '제2의 전성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개콘의 수장 박준형은 패션 7080에서 각종 분장쇼를 선보였고, 정종철은 마빡이에서 말 그대로 온 몸을 던지며 웃겼으며, 꾸준히 음악개그의 길을 가던 이수근이 고음불가로 한 획을 그었다. 19기의 활약도 2006년에 절정에 달했다.[22] 이 외에도 당시 개그사냥 우승을 통해 2005년 11월 개그콘서트 데뷔를 하게 된 신인 고혜성과 강일구의 코너 현대생활백수도 위에 언급된 코너들 못지 않게 인기를 끌게 된다.[23] 여기에 SBS 웃찾사와 MBC 개그야까지 인기몰이를 하면서 짧지만 강렬했던 공개 코미디의 황금기가 도래하게 된다.
2006년 11월부터 2008년 3월까지의 김석윤 PD 체제에서는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시도가 많이 나왔다. 개편 첫회 코너가 없어진 것에 앙심을 품은 착한 녀석들이 각종 코너에 난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봉숭아 학당 잠정 폐지와 뒤풀이 개그, 코너 시작 전과 종료 후의 비하인드, NG 장면까지 노컷으로 내보내는 등 전례가 없는 장면들이 많이 나왔다. 훗날 넌버벌 코미디로 월드스타가 되는 옹알스가 개콘에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2007년 3월, 개콘의 또 다른 황금기수인 22기[24] 가 선발되어 4월, 개그전사 300을 통해 개콘에 데뷔했다. 이들 역시 19기처럼 데뷔 첫 해부터 주요 코너에 투입되었다.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의 김원효와 3인 3색의 박지선이 이 해 신인상을 받았고, 집중토론의 박성광, 박영진, 송준근, 지역광고의 최효종, 정범균, 버퍼링스의 안윤상 등이 이름을 알렸다. 22기의 데뷔는 또 다른 세대교체의 시작을 의미했다. 2007년 7월 400회 특집을 끝으로 정종철이 제작진과의 노선 갈등으로 더 이상 개콘에 나오지 않았고, 19기의 대표주자였던 유세윤도 무릎팍도사 엄홍길 편 촬영 때문에 잠시 제작진과의 관계가 껄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일부 선배 멤버[25] 와 주축인 19기가 흔들리면서 역대 가장 많은 인원이 뽑힌 22기가 차세대 개콘의 핵심으로 낙점 받아 자신들만의 코너를 선보일 수 있었고,[26] 이 전략은 공개 코미디가 암흑기로 접어든 후에도 개콘만큼은 그나마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6. 시행착오, 22기와 달인의 시대(2008 ~ 2010년)
- 2008년 평균 시청률: 13.95%(AGB닐슨 기준)
- 2009년 평균 시청률: 18.77%(AGB닐슨 기준)
- 2010년 평균 시청률: 16.62%(AGB닐슨 기준)
또 다시 세대교체가 필요해진 상황에서 개콘은 봉숭아 학당을 부활시켰고, 여기서 윤형빈, 허경환, 박성광, 박영진, 박지선, 송준근 등이 캐릭터 구축에 성공했다. 19기의 유세윤, 장동민, 유상무, 강유미, 안영미가 2009년을 끝으로 개콘에서 하차하고, 그 자리를 22기가 채우면서 개콘의 중심축이 22기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김준호의 도박 파문, 박성호의 음주운전 등 선배들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같은 사회풍자적 코너에 대해 방송인 출신 모 국회의원이 지적하는 등 과거에 비해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로 인해 훗날 개콘이 자기검열의 덫에 빠지게 되는 단초가 마련되었다.
개콘의 주류였던 박준형 - 정종철의 갈갈이 라인이 사실상 통째로 MBC로 옮겨가면서 김대희 - 김준호 라인이 새로운 주류로 떠올랐지만,[28] 이 시기 개콘 최고의 스타는 '''달인''' 김병만이었다. 달인은 2007년 12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방영되면서 봉숭아 학당을 제외한 역대 최장수 코너로 기록되었고, 무술 이미지가 굳어져 있던 김병만에게 만능인 이미지를 가져다 주며 훗날 SBS의 간판 프로그램이자 김병만에게 2번의 대상을 안겨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29]
한편 2009년 9월 6일 10주년 특집 방송에서는 올드 멤버들이 나왔는데, 이 올드 멤버가 말 그대로 '''개그계의 올스타'''들이 줄줄이 다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MBC로 갔었던 박준형, 정종철, 오지헌 등이 나와서 무를 갈거나 옥동자 및 마빡이를 보여주는가 하면, SBS로 이적한 강성범도 출연하였다.[30] 게다가 개콘 출신이 아닌 유재석, 신동엽, 남희석 등 다른 코미디언들에 본업이 코미디언이 아닌 노홍철, 임창정 등 게스트도 대거 출연했고, 소녀시대도 출연해서 고음불가를 선보였다. 10주년에 걸맞게 개그야나 웃찾사에서 전속계약된 멤버들을 선뜻 보내주었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있다.
7. 중흥기(2011 ~ 2012년)
- 2011년 평균 시청률: 17.98%(AGB닐슨 기준)
- 2012년 평균 시청률: 20.62%(AGB닐슨 기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가 앞으로 이어질 몰락의 단초를 제공했다는데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먼저 감수성, 생활의 발견 같은 코너에서 게스트 출연 빈도가 늘어나면서 코너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생활의 발견은 당초 두 남녀의 이별 속에서 깨알 같이 나오는 일상 속 풍경을 웃음 포인트로 삼던 취지가 다 사라지고 '이번 주는 누가 게스트로 나올까'와 김준현의 분장쇼가 주가 되어버린 채 2년 넘게 방송되었다.
또한 이 시기 개콘의 중흥은 과거 전성기처럼 다양한 소재, 기발한 아이디어, 참신한 캐릭터 등이 아닌 출연진의 개인 기량과 연기력에 의존하여 이뤄낸 성과였다. 이미 팽배해진 자기검열 분위기 속에 개그의 장르도 과거보다 제한적이었고,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하드코어 드립이 난무하는 시대에 방송을 통해 여과된 개그는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으면서 개그맨들도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개그만 반복하다가 식상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일례로 최효종은 2009년 봉숭아 학당의 행복전도사 캐릭터부터 비슷한 유형의 공감과 풍자 개그만 선보이다가 사마귀 유치원 종영 이후 인기가 급락했다.
8. 쇠퇴기(2013년 ~ 2014년 상반기)
8.1. 2013년
- 2013년 평균 시청률: 17.40%(AGB닐슨 기준)
2011 ~ 2012년 즈음부터 여전히 잘 나오는 시청률과는 별개로 지나친 게스트의 활용이나 박수 유도 개그, 유치한 코너들과 우려먹기 문제가 불거졌다. 그러다가 700회 특집 방송을 하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위의 문제점들을 점점 해결하려는 모습이 조금이나마 보이고 있다. 최효종은 활동을 쉬다가 10월에 경찰 소속 호루라기 연극단으로 입대했고, 용감한 녀석들의 정태호는 휴식기를 거쳐서(그 사이 인간의 조건에 출연.) 정치색이 없는 코너인 끝사랑으로 복귀, 신보라도 역시 정치와 상관없는 뿜 엔터테인먼트에 나왔고, 박성광과 양선일 역시 정치와 전혀 관련 없는 시청률의 제왕에 출연했다. 캐릭터 우려먹기의 예로 등장했던 것들과 코미디언들의 앨범 발매 같은 것들도 모두 없어졌다.
다만, 개콘의 상대적으로 떨어진 인기 탓에 개콘 소속 개그맨들의 광고 섭외도 끊어진 것과 더불어서 억지 밈스러운 유행어 개그나 유치한 개그는 여전히 산재하고 있어서 등을 돌린 시청자들을 다시 잡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실제로 시청률에서도 2013년 상반기에는 14~15%대의 부진한 시청률을 보이다가 하반기에 들어서야 새 코너들의 호평으로 시청률 18~19% 대로 일요일 예능 시청률에서 다시 1위를 회복했다. 다만, 20%대의 시청률은 2013년 3월을 마지막으로 끝끝내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 흠.
그런데 버티고에 주상욱이 출연하면서 게스트들의 부활의 조짐이 보이는 게 아니냐면서 걱정하는 의견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김석현 때도 특집 방송이 아니었을 때 게스트가 출연한 적도 간간히 있었는지라 아주 가끔씩만 나온다면 오히려 개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근데 개콘은 2011년 하반기부터 2012년까지 게스트가 너무 많이 나온지라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더군다나 서수민 체제 이후로 이런 현상이 너무 심해졌다.
하지만 2013년 추석 연휴에는 코너마다 게스트를 대거 출연시키는 방식 대신 코너간의 크로스오버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한편 2013년 3월 3일에는 KBS의 공사창립 40주년 특집 기념으로 과거 KBS 코미디를 빛냈던 임하룡, 이경래, 최양락, 김학래, 이봉원, 오재미, 심현섭, 김미화, 김현숙 등이 총출동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후배 개그맨들과 함께 하는 무대를 꾸몄다. 고인이 된 김형곤은 유재석의 내레이션으로 추모영상을 내보내고, 체형이 비슷한 김준현이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서 김형곤 역할의 회장님 역할을 맡았다. 코미디는 흐른다 문서도 참고.
그리고 개콘은 KBS 연예대상에서 '''시청자가 뽑은 프로그램상'''을 3년 연속 수상하며 2013년도 어찌어찌 잘 보냈다고 평가받을 수 있었다.
한편 2010년 하반기에 KBS에서 퇴사한 김석현 PD는 tvN에서 야심차게 코미디빅리그를 출범시키고는 개콘을 포함해서 세 방송국에서 유명했던 개그맨들을 많이 영입한다.
힘을 주고 준비한 700회 특집에서는 셀럽들은 부르지 않고 오로지 개콘 출신 코미디언[33] 들만 게스트로 출연시켜 오랜 세월 개콘을 봐 온 골수팬들의 환호를 끌어냈다. 하지만 코빅에 출연 중인 개그맨들은 섭외하지 못하고 대신 대역으로 출연시켰다.
8.2. 2014년 상반기
- 2014년 평균 시청률: 15.4%(AGB닐슨 기준)
하지만 3월에 한 주 간격으로 새 코너들이 다섯 개나 나왔는데, 한 코너를 제외하곤 6개월도 이어가지 못했고, 심지어 그 중 세 코너는 2개월도 채우지 못할 정도의 아쉬움을 보이며 시청률은 15%대로 하락하였다. 게다가 '''정도전'''까지...
그러다 2014년 여름, 세월호 사건 여파로 인해 '''6주간 결방'''이 된 이후로 약 두 달 간 현재 마지막 불꽃이라 불리는 1년 넘게 방영된 시청률의 제왕과 두근두근을 비롯해 많은 장수 코너들이 종영되며 이를 대체할 새 코너들의 재미 여부가 중요해졌다.
9. 몰락과 종영 (2014년 하반기 ~ 2020년)
9.1. 2014년 하반기
하지만 이러한 코너들을 대체하는 새 코너들의 내용들이 다시 단순화되는 문제가 재현되기 시작하였고,[34] 이는 결국 2014년 9월, 개그콘서트 방영 시간대가 9시대로 변경된 이후 '''6년만의 최저 시청률'''인 12.3%를 기록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시청자들을 웃기기 힘들어져 점차 프로그램 자체의 재미를 빨리 잃어가는 문제점도 자주 발생하게 되어 '''사실상 이 때부터 개콘의 암흑기가 본격화된 것이라 말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가장자리, 힙합의 신, 렛잇비 등의 참신한 주제의 인기 코너도 몇몇 있었으나, 예뻐 예뻐를 위시하여 '''대다수'''의 코너들은 시청자로부터 악평을 받았다.
또한, 이 시기에도 인기 있는 엔딩 코너들인 끝사랑, 깐죽거리 잔혹사 등이 오랜 방영 끝에 종영되며 빈 자리를 메울 코너가 더욱 필요하였다.
결국 개콘은 2014년, 위와 같은 부침을 통해 3년 연속 수상해왔던 시청자가 뽑은 프로그램상 수상에 실패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까지도 연 평균 시청률 15%로 예능 프로그램 중 1위 시청률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2015년에는 긍정적 변화를 하여 다시금 인기가 반등하도록 기대를 할 수는 있었으나...
9.2. 2015년
- 2015년 평균 시청률: 12.24% (AGB닐슨 기준)
2014년 하반기에 재미가 없고 단조로운 원 패턴 개그가 많다는 지적을 받은지라 2015년에는 더 노력하여 발전해야 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이 해부터는 개그콘서트의 몰락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지적대던 문제에도 불구하고 개그콘서트가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게 된 것은 '재미'가 있었기 때문인데, 2015년부턴 그런 것도 없었다. 당연히 시청률도 추락.
2015년 1월 연초부터 사둥이는 아빠 딸 코너에서의 김치녀 발언 논란과 그 무렵 시작한 부엉이 코너에 대한 일베 논란, 즉 한 회에 두개의 논란이 발생하면서 부정적인 전망을 가져오게 되었고, 두 코너 모두 3개월을 채 못 넘기고 일찍 종영되었다.
2015년 4월 시청률은 11%까지 떨어지면서 이대로라면 곧 한 자리 수 시청률의 영광을 누리게 될지도... 그리고 인기 코너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입증하듯이 당시 방송 후반부 코너들이였던 도찐개찐 - 알포인트 - 닭치高 라인도 갈수록 노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현재는 서수민 PD에서 김상미 PD를 거쳐 조준희 PD로 바뀌었지만, 시청률은 오히려 조금씩 떨어지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정 시청층이 존재해서 시청률이 11~12%에서 바닥을 형성하며 더 떨어지진 않고 있다. 몇 년 동안 개콘을 봐온 고정 시청자들은 그래도 현재도 개콘을 꾸준히 챙겨보고 있긴 하나, 그들도 하나같이 개콘이 재미없다고 해서 문제이다. 군인들도 요즘 이거 보면 선임한테 욕먹는다고...
2015년 4월에는 방송 시간이 기존 110분(21시 15분 ~ 23시 05분)에서 105분(21시 15분 ~ 23시)으로 5분 줄어들었으나, 지나치게 긴 시간은 여전한 듯. 하지만 2015년 5월에는 코너 수가 줄어들면서 개콘 방송시간이 약 10분 ~ 20분 줄어들었다. 총 방송 시간은 85분(21시 15분 ~ 22시 35분)이다. 그리고 12월 들어서는 1시간 15 ~ 20분(21시 20분 ~ 22시 35분)으로 또 5 ~ 10분 줄어들었고, 최근 들어서는 코너 수가 13코너가 되면서 웃찾사보다 적게 하고 있다.[35]
2015년의 상반기가 지나고 난 후 시청자들의 반응은 심하면 모든 코너 전부 다 재미없다는 반응이 존재할 정도다. 니글니글만 재미있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2015년 하반기에는 이마저도 식상해지고 말았다. 이 외에도 우주 라이크는 참신한 소재 때문에 호평이 존재하고, 나는 킬러다는 폭넓은 기수들이 참여해 각자 모습을 다르게 보여줘서 호평이 존재한다. 또한 민상토론은 수위 높은 풍자 덕분에 정치에 관심이 많은 시청층에는 그나마 호평을 받았지만, 정치풍자개그의 특성상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외압 논란 및 말장난이 식상하다는 평가 등으로 인해 7개월만에 종영했다.[36] 그리고 민상토론 하나만으로는 개콘 자체가 회생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해 보인다. '''더군다나 개콘 코너가 민상토론 하나만 달랑 있는 것도 아니고...'''
2015년 8월까지 시청률은 10%대 초반에 머물러 있었으나, 10월 기준 10% 최초반에 있는 것을 보아 두자리수가 깨질 위기가 생겨나더니 10월 25일, TNMS 기준 시청률이 9.8%을 기록하면서 '''결국 두 자리 수의 벽이 기어이 깨졌다.'''
11월 15일, TNMS 기준 8.8%를 기록, 점점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얼마 남지 않은 부동층을 제외하고는 이탈할 시청자들 대부분이 이탈해버린 셈. 그리고 11월 22일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인해 개콘 자체가 결방되었고, 2015년 11월 29일, 결국 AGB닐슨 기준으로 9.9%로 하락하면서 '''10%대가 완전히 무너졌다.'''[37] TNMS 기준으로는 심지어 8.6%로도 하락했다. 이러다가 대대적인 개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프로그램 자체가 한물갔다는 인식이 생겨서 종영 위기까지 갈 수도 있다. 오죽하면 비슷한 시기에 시즌 7으로 말아먹어 망해가는 망스케, PD의 무리수와 어그로로 인해 나쁜 인식으로 끝나가다가 끝끝내 망해버린 망결과 같은 길을 따라간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12월 6일, 닐슨 기준 9.7%, TNMS 기준 8.7%을 기록했다.
12월 13일 시청률은 AGB닐슨 기준 9.9%, TNMS 기준 8.3%로 닐슨은 0.2% 올라갔지만 TNMS는 0.4%로 추락했다. 그리고 동시간대 방영하는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보다 '''재미없다는 댓글'''이 나왔으니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
12월 20일 선배 개그맨들의 효과[38] 에 힘입어 닐슨 기준 '''12.6%'''로 시청률이 올라갔다. 다만, TNMS 기준으로는 9.3%로 한 자리 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2015 연예대상에서 '''방송작가상을 수상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개그콘서트를 몰락시킨 주범들 중 한 명이 작가상을 받는다는 건 정말 아니라는 반응.
12월 27일, 게스트 이애란이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닐슨 11.9%, TNMS 9.1%로 하락하며 초라하게 마무리했다.
결론적으로 개그콘서트의 2015년은 비록 프로그램 내외적인 논란은 적었지만[39] 프로그램 구성과 시청률 면에서 암흑기에 처음 접어든 해가 되었다. 같은 해 재기에 대성공한 1박 2일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 해에 개그콘서트 공식 캐릭터가 나왔다.
9.3. 2016년
- 2016년 평균 시청률: 9.85%(닐슨미디어코리아 기준). 한 자리 수로 추락했다.
9.4. 2017년
9.5. 2018년
9.6. 2019년
9.7. 2020년
[1] 정규 1회부터 합류, 이후 KBS 14기로 편입.[2] 훗날 박준형, 임혁필 등 개콘의 레전드 스타를 다수 배출한 KBS 13기에서는 당시 단 한 명도 개콘에 진입하지 못했고, 1999년 말 박성호와 서동균이 '로보캅'으로 고정출연을 시작했다. 단 박준형은 동기 김현기, 후배 김상태와 함께 스마일매니아로 2회 때 나온 적이 있다.[3] 당시 연예가 중계에서 개콘 오디션에 낙방한 개그맨으로 유재석과 이창명이 나왔는데, 실제 개콘에 들어가려 했다기보다 후배들의 지원사격을 위해 그런 컨셉을 잡은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심현섭이 썰빵에서 증언한 바로는 유재석의 경우 실제로 개그콘서트 오디션에 참여해 합격을 했지만 스케줄 문제로 실제 녹화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도중 하차했다고 한다. 그리고 유재석의 빈 자리를 채운 사람이 바로 김대희라고. 이창명은 직접 출연하지 못하지만 동기 허동환의 자학개그 소재로 언급되었다.[4] 커튼콜을 할 때도 다른 출연진은 안 나오고 이 9명만 나왔다.[5] 현재 개콘의 경우, 당시와는 다르게 '''누가 봐도 확실한 개그코드를 넣는다.''' 이는 남자의 자격에서 감독이 언급한 것이다.[6] 김준호도 원래 SBS 출신이다.[7] 여기서 단종 역할만 맨날 한다고 한탄하는 개그도 했었다.[8] 15기에서 가장 잘 됐다고 볼 수 있는 정종철은 당시 개콘에서는 자신의 특기인 비트박스를 선보이며 반짝했다. 이때 박준형이 정종철을 눈여겨보고는 대학로로 데리고 갔다.[9] 개콘 초창기 멤버였던 서동균은 이때 SBS에 옮겼다. 함께 출연하던 신인 개그맨들 중 몇몇은 KBS로 건너오게 된다.[10] 당시 스타밸리 대표는 소속 연예인들에게 16대 대선 이회창 후보 유세에 참여할 것을 강요하는 등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정치색 때문에 소속사와 갈등을 빚던 강성범은 결국 개콘으로 돌아가기로 하고는 스타밸리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하지만 김준호, 김대희와의 불화 때문에 보류했다가 결국 웃찾사가 종영할 때까지 SBS 개그맨으로 남는다.[11] 정형돈의 '''갤러리 정''' 캐릭터와 유치개그의 "오우~ 이런~ 이런~ 이런~"이 이 회차에 처음 나왔고, 우비소녀 김다래의 '''우비 삼남매'''도 이 날 첫방송되었다. 또한 이 신인들 중에는 훗날 개그 프로그램의 저니맨이 된 최국과 당시 '양배추'로 활동하던 조세호도 있었다. 이때 KBS에서는 대학로에서 인기를 얻던 타이즈와 쫄쫄이 팀까지 특채로 불러들인다.[12] 37.3%라는 기록은 '''지상파 예능 역사상 2번째로 높은 시청률이다.''' 1위는 1박 2일의 43.3%.[13] 10년 후에 대상을 받은 김준호는 개콘 위주로 활동하긴 했지만, 리얼체험 프로젝트 인간의 조건을 병행하고 있었고, 연말에 1박 2일에도 투입되면서 정통 코미디만으로 대상을 탄 건 아니다.[14] 특히 몸 개그 위주였던 김병만의 역사스페셜과 조세호의 대신맨 캐릭터가 시청자 의견의 타겟이 되었다.[15] 유세윤, 장동민, 강유미, 안상태, 황현희, 김대범, 안영미, 유상무, 홍인규 등.[16] 이러한 위상 덕에 일부 사람들은 19기가 KBS 역사상 유일무이의 최고 기수라고 하는데, 전혀 틀린 소리다. 이로부터 13년 전인 1991년 데뷔한 7기들이 더 압도적이다. 김국진, 유재석, 김용만, 남희석 등이 있고, 김국진은 '''1995, 1997년 MBC 코미디대상 수상자이자 한국 코미디언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유재석은 '''말할 것 없는 국민MC''', 김용만은 도박으로 방송을 쉬긴 했으나 '''2000, 2002, 2003년 MBC 방송연예대상 수상자이며 대단한 전성기를 누린 인물'''이고, 남희석은 '''1999년 백상 TV 남자 코미디언상 수상자이며 20세기 SBS의 에이스'''로 군림했으므로 7기에 비빌게 못 된다(...)[17] 개콘 12월 19일, 웃찾사 12월 23일.[18] 참고로 후발주자였던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은 첫방송 당시부터 출연진을 등장시마다 별도로 소개하는 자막이 도입되었다.[19] 실은 모 선배와의 마찰 때문에 따돌림당하다가 떠났다.[20] 차민준과 신기루는 아예 기수 자체가 없었고 개그사냥에 출연하다가 아주 잠깐 개콘에 출연한 게 전부다.[21] 참고로 후발주자였던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은 프로그램 초반부터 출연진을 등장 시마다 별도로 소개하는 자막이 도입되었다.[22] 유세윤 - 사랑의 카운슬러, 강유미 - 사랑의 카운슬러, 봉숭아 학당 강유미 기자, 장동민 - 대화가 필요해, 유상무 - 연인, 김대범 - 마빡이, 고교천왕, 황현희 - 범죄의 재구성.[23] 이 둘은 이후 2006년 21기 특채로 편입된다.[24] 김원효, 김준현, 박성광, 박영진, 박지선, 송준근, 안윤상, 양상국, 장도연, 정범균, 조윤호, 최효종, 허경환 등.[25] 사실상 이 때부터 박준형을 비롯한 갈갈이 라인이 개콘을 떠날 조짐이 있었다고 한다.[26] 보통 신인 개그맨들은 선배들의 코너에 끼워 들어가는 형태로 방송에 데뷔한다. 같은 해 데뷔한 MBC 16기와 SBS 9기도 이런 방식으로 데뷔했다.[27] 갈갈이 패밀리의 멤버면서 자신들의 측근이기도 한 오지헌과 옹알스까지 데려갔다.[28] 갈갈이 라인 중에서 오지헌과 옹알스가 개그야로 넘어갔고, 김시덕은 건강 상의 이유로 하차, 변기수와 박휘순은 김대희 - 김준호 라인으로 넘어갔다.[29] 사실 달인이 아니었다면 김병만은 무명의 평범한 개그맨이었고, 그대로 방송계를 떠났을지도 모르니 김병만의 인생을 바꿔준 코너라 할 수 있겠다.[30] 사실 자신이 직접 이적했다 하기 뭐하고, 실제로는 스타밸리 사태 때문에 이적한 것이다. [31] 실제로 이 사건 직후에 방송된 2011년 11월 27일 방송은 절반 이상의 코너에서 강용석을 신랄하게 까면서 레전드 회차가 되었다.[32] 정확히 시청 등급 표시 화면이 나오면서 방송이 시작된 시간은 9시 22분. 정작에 9시 15분부터 라고는 하지만 오프닝이 나오고 7분동안은 광고가 나왔다.[33] 예외가 있다면 SBS 7기 출신인 최기섭이 있지만, 이 사람은 옹알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비록 딱 한 번 뿐이지만 개콘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34] 단순히 행동을 웃기게 하거나 다른 개그맨들이 고통받는 걸 보고 웃기게 하는 등의 방식의 비중이 늘어나 넓은 폭의 코미디 연출이 많이 식었다는 평이다.[35] 거짓말은 아니고 진짜로 웃찾사는 1시간 15분 방송을 한다.[36] 그래도 민상토론은 당해 KBS 연예대상에서 최우수 아이디어상을 받았다.[37] 사실 이게 처음 일어난 건 아니었고, 이로부터 7년 전인 2008년 9월 14일에 '''9.0%'''을 기록한 적이 있다. 물론 이때는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보다는 대왕 세종으로 인한 악영향이 컸다. 그리고 사실 명절 연휴 중에는 잘 나가는 정규 프로그램이라도 시청률이 평소보다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38] 동창회 특집으로 원래 동년 여름 800회 특집 때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메르스 사태로 인해 연말로 연기.[39] 대표적인 논란을 꼽아봐야 부엉이, 김치녀 논란, 시아준수 묵음 처리로 별로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