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교황)
1. 개요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는다면, 세속적으로 우리는 주교요, 사제요, 추기경이요, 교황일 수 있지만, 주님의 진정한 제자는 될 수 없다. 진정한 권위는 봉사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자. 아주 가난하고, 약하고,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 교황 프란치스코
가톨릭의 제266대 교황으로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신대륙·남반구·예수회 출신 교황이다.[5]'''하느님의 자비는 한계가 없습니다. 만일 당신에게 종교나 신앙이 없다면,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살아가면 됩니다.'''[3]
[4]
― 교황 프란치스코, 무신론자의 '하느님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느님이 용서할지'란 질문에 대한 답변
사목표어는 성 베다의 설교의 한 구절을 인용한 'Miserando atque eligendo(자비로이 부르시니)'. 교황 즉위 후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2. 프란치스코란?
일찍이 교황 바오로 6세는 '''"앞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가진 교황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거룩한 성인이신 프란치스코는 인간의 규칙을 깨고 오직 교리에만 순종했기 때문입니다."'''라며 탄식했었다. 하지만 베르골료 추기경은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역사상 최초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했는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른 것이다.
전임 교황의 이름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교황명을 정한 것은 요한 바오로 1세 이후로 35년 만인데, 요한 바오로 1세도 사실 요한(23번)과 바오로(6번)로 각각 생각해 보면 이미 흔히 사용된 이름이긴 하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에 한번도 쓴 적이 없는 이름으로는 913년에 즉위한 제123대 교황 란도 이후로 딱 1100년만이다. 교황은 교황명을 이렇게 정한 이유를 기자들 앞에서 직접 밝혔는데, 콘클라베에서 3분의 2 득표를 했을 무렵 옆자리에 앉아있던 브라질 상파울루 명예주교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이 그를 안고 입맞춤하며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말한 순간 프란치스코 성인이 떠올랐다고 하였다.
선출 당일 한글 표기가 정립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국 언론은 프란치스코 1세, 프란시스코 1세, 프란체스코 1세 등 중구난방으로 표기했으나, 바티칸과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입장에 따르면 올바른 한글 표기는 '''프란치스코''', 정식 교황명은 프란치스코 '1세'가 아니라 '''그냥 '프란치스코' '''이며, 훗날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쓰는 다른 교황이 나온다면 그 때 가서야 프란치스코 1세가 된다(관련기사). 사실 원래 이게 맞고 요한 바오로 1세 때가 이례적이었다 볼 수도 있는데[6] , 이는 '요한'과 '바오로'가 모두 사용되었던 명칭인 만큼 구분을 위해 붙였던 것이고, 프란치스코는 이번이 처음이기에 1세를 붙이지 않는다.
3. 교황이 되기 전의 생애
3.1. 출생과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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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마리오 호세 베르고글리오(Mario José Bergoglio)와 레히나 마리아 시보리(Regina María Sívori) 부부 사이에서 1936년 12월 17일에 태어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서 화학과 학사를 취득하고 예수회에 입회해 33세 생일을 4일 남기고 수사신부가 되었다. 젊은 시절 경위가 불분명한 폐렴 합병증을 앓았다. 여러가지 일을 해보았는데 한때 바운서#s-1로 일한 적도 있다 한다.
사제가 되기로 한 계기가 조금 독특한데, 12살의 어린 나이에 아말리아라는 여자아이에게 러브레터를 건네며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받아주지 않으면 신부가 되겠다"'''고 청혼했다가 단칼에 거절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관련기사).
그래서, 아말리아 할머니는 60여 년이 흐른 2013년 그가 교황이 되자 말 그대로 '''기절초풍했다고 한다.''' 그녀가 자랑스레 공개한 이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실 다른 여자친구가 없었는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다만, 청소년기 탱고를 같이 춘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단순히 꼬마 시절에 실패한 사랑 고백 때문에 사제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신학에 좀 더 열중하기는 했었던 것 같다.
3.2.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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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에 대해 침묵했던 전적이 있다는 비난을 받았고 관련 건으로 인권단체에서 2010년도에 고발된 적이 있다. 예수회 소속의 사제 2명이 독재정권에 납치되어 고문당한 사건에 침묵했다는 의혹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황이 아르헨티나 군부 유력자의 가족신부 등의 개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독재자들에게 사적으로 선처를 호소하였고, 두 사제는 결국 풀려났다고 밝혀졌다.[7]
비겁해 보일지는 몰라도, 이는 쿠바의 가톨릭 사제들도 택하고 있는 나름의 실용적 전략이다. 당장 정권을 전복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직접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타협과 조정을 통해 어떻게든 사람들을 돕는 것도 현명한 전략이다. 게다가 교황이 군사독재에 찬성한 것은 결코 아니며, 군부의 살인부대에 쫓기는 사람들을 숨겨주고 자신의 여권을 주어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의 개인적인 저항을 적극적으로 했다.
아르헨티나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당시 성직자들이 '애국주의' 선언을 통해 군사독재와 결탁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지만, 이건 상황에 따른 것이다. 독재와 인권탄압 수준에서 당시 아르헨티나는 더러운 전쟁이라는 탄압을 벌여 정부를 비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자루에 넣어져 대서양에 수장되거나 생매장으로 끔살당했다.[8] 적극적으로 전면저항에 나설 경우 프란치스코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인 국가에서 추기경이 공개적으로 정권에 대한 반대를 조직한다면 교황청과 타 가톨릭 국가들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생명에 위협을 미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전에 언급된 자신의 여권으로 독재에 탄압받는 정치범을 국외로 탈출시켜주는 행위도, 들켰으면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한 정치범 생존자는 당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너무나 침착하게 선뜻 도와서 "자기가 어떤 곤경에 뛰어들고 있는지를 정말 알고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특히나 호르헤 비델라의 습관 중 하나가 다름아닌 반대 인사를 쥐도새도 모르게 납치한 뒤 자루에 담아서 그걸 헬기에 실은 뒤 대서양 한복판에 갖다 버리는 짓이었다. 만에 하나, 베르골리오 추기경도 전면에 나섰더면 이 꼴이 났을 것이다. 훗날 순서대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되는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변호사 부부가 호르헤 비델라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괜히 시골로 낙향한 게 아니다. '''도시는 위험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이웃나라 엘살바도르에서는 1970년대에 독재에 저항하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미사 중에 대중의 눈 앞에서 사살당했는데도 범인들은 밝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엉뚱한 사람들이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했다.[9] 요한 바오로 2세가 맞서 싸웠던 스탈린주의 이후의 공산당이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과 대립했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그래도 최소한의 눈치를 보느라 말이 통하기라도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10] 당시 베르고글리오 신부였던 교황은 "(군부에게) 믿음을 심어줘서 누가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하게 하는 전략을 썼"던 것이다.
2014년 즉위 1주년을 앞두고 앞에서는 침묵했지만 뒤에서는 은신처를 제공하고 해외도피를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최소 20~30명, 최대 100명까지 반정부 인사들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3만''' 명이나 희생된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의 참상에서 수백 명 구했다는 것이 침묵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분명히 나은 행동이며, 위쪽 문단에서도 설명했듯이 은신처는 물론 해외도피까지 실제로 도왔다는 점에서 자신의 위험도 기꺼이 무릅썼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특히나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벌일 수 있는 일에 대한 한계'''를 생각할 때 이 정도면 꽤 선방한 것이다. 즉 당시에 '''교황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이 모든 일에 대해서 교황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비판은 비판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도… 이 부분은 2015년 12월 13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다만 시골 하급 성직자 운운하기는 좀 그런게, 그는 1973년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이 되었다. 이 때문에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있었던 호르헤 비델라 군사독재 기간 동안 가톨릭 국가 아르헨티나에서 그보다 높은 직위의 성직자는 없었다. 또한 구한 사람은 구한 것이지만, 정작 자신이 체포 등에도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최상단 납치 피해자였던 신부 2명중 한명인 올란도 요리오 신부[11] 는 1985년 재판에서 주교가 명단을 넘겼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2000년대에 벌어진 재판에서 베르고골리오 추기경은 수차례 재판 출석 자체를 거부했으며, 단 한번 출석한 재판에서도 모든 증언을 얼버무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교황으로 즉위하는 그 시점에도 그는 재판장에 피의자로 불려다니고 있었다. 교황이 되면서 이 문제가 흐지부지 되었지만, 만일 교황이 되지 못했다면 본격적으로 말이 나올 상황이었다.
칠레의 라울 실바 엔리케즈 추기경과도 대비된다는 견해도 있다. 추기경이자 산티아고 대교구장의 직위에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맞이했다'''. 엔리케즈 추기경은 해당 쿠데타를 즉각 비난했으며, 그 과정에서 벌어진 살육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쿠데타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서 정교회, 유대교, 개신교 등과도 연합해서 대립했다. 그래서 군사 쿠데타가 붕괴된 이후 칠레에서 성인이나 마찬가지 대우를 받았으며, 칠레 500페소 주화에 그 얼굴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정치적 문제로 대립했다'''라는 이유로 1983년 산티아고 대교구장 직위에서 은퇴해야 했다고 한다.[12]
3.3. 추기경 시절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주교에 임명되었고, 2001년 2월 21일 같은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교구장 재임 시 아르헨티나 동성결혼 법안 반대운동을 주도하며 국제사면위원회 등의 인권단체의 비판이 많았다. 반대운동 때 동성결혼과 피임을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는 아르헨티나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에게 "중세적 마인드를 가진데다가 이단심문관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때문에 서로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아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추기경 시절인 2012년 성명을 통해 대통령을 "독재를 노리는 선동꾼"이라고 비판하였다. 페르난데스는 페론당(정의당) 출신 정치인으로[13] 실제로 후안 페론&이사벨 페론 부부에 이어 아르헨티나 2번째의 부부 대통령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의 동성결혼 합법화 및 입양조건 동등화는 상하원 모두에서 통과되었다.
교황이 수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당시 교황이 비난했던 것은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통치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는 어휘가 강했을지는 몰라도 타당한 비판이다. 정치학이나 행정법을 공부하면 약간이나마 언급되는 부분인데, 원래 행정명령은 제왕적 대통령이 입법부와 사법부를 우회하여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는 단골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위임민주주의의 일종으로 "포고령주의"로 불리는 행정명령의 남용은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방해하고 법을 통한 법치주의를 훼손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베르골료 추기경이 교황이 되자,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그에게 포클랜드 섬에 대해 영국의 군사적 증강을 막고 자신과 대화 창구를 놓아달라는 개입 요청을 하였다. 교황의 공식 반응은 아직 없지만, 영국은 교황은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주권 국가 사이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매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 탓에 가만 있다가 불똥이 튄 격인데, 이래저래 악연인 듯.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통해 가톨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2015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베아트리즈 발레라(Beatriz Valera)라는 여성이 자신의 아들이 사제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발하려고 들어오자 강제로 사무실에서 내쫓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 모자는 나중에 교회와 금전적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이 여성은 '''베르골리오 추기경도 물론 알고 있었다. 모두가 알면서 침묵하고 있으므로, 모두가 공모자이다.'''라고 하였다.
10대 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훌리오 세자르 그라씨(Julio César Grassi) 신부에 대하여 공개적으로는 연을 끊은 것처럼 행동하여 언론의 공격을 피했으나, 직접 사설 조사관을 고용하여 그라씨의 무죄를 주장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을 주도하였으나 그라씨는 결국 유죄로 밝혀져 감옥에 갔다.
3.4. 교황 선출과 즉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건강상의 문제로 퇴위한 후에 치러진 콘클라베 이틀째인 2013년 3월 13일 오후 7시 기준으로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청이 부패 스캔들과 섹스 스캔들로 홍역을 치른만큼 개인적으로 청렴하고 교리적으로는 보수적이며 사회적으로는 개혁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차기 교황으로 선출된 듯. 그동안 거론되던 주요 교황 후보는 아니지만 인지도가 아예 없던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비유럽파 추기경들은 개혁적인 교황을 원했으나 적절한 후보를 내지못한 상태에서 콘클라베에 돌입했다고 한다. 투표 전에 모든 추기경들이 소신을 피력하는 개인발표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베르골료 추기경이 교회가 본연의 영적인 임무에 돌아가야 한다고 피력한 것이 결정적이 되었다. 그의 이런 피력을 계기로 개혁파 추기경들이 그에게 주목했고 뒤이은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투표가 진행돼서 개혁파 추기경을 중심으로 의견이 정리되고 미국의 추기경인 우얼 대주교가 미국 표를 끌어모으고 일부 유럽표가 그에 가담하면서 베르골료 추기경은 수월하게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가디언의 추측으로는 전 교황 선출 때도 이미 득표 수가 2위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15]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례적으로 빠른 콘클라베의 결과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고령으로 인한 건강 문제 때문에 퇴위했음에도 고령인 프란치스코가 선출된 것을 놓고 추기경단이 '몇 년 간의 시간벌기'를 선택했다는 관측이 있다. 한편 그의 선출에 베네딕토 16세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는 음모론도 나왔다.
그의 교황 취임을 두고 흑인 교황을 기대했던 아프리카에선 섭섭해하는 분위기이다. 이탈리아인 교황을 바랐던 이탈리아에선 아쉬워하면서도 이탈리아계 이민자 교황이라서 좀 낫다는 분위기. 물론 남미에선 역사상 첫 남미인 교황이라고 기뻐하는 분위기이다.
4. 성품 및 종교관
4.1. 개인적인 면
개인적인 성품은 매우 겸손하고 온화한 편이라고 한다. 추기경 시절 화려한 관저가 아니라 작은 아파트에 거주하였으며, 바티칸에서 대주는 비행기 값을 빈민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을 정도. 운전기사를 따로 두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동은 거의 항상 사복 차림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며 식사는 직접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손수 요리해서 먹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에 선출되자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저처럼 모자란 놈을 교황이라고 뽑아 놓아준 분들을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고 말해 온통 폭소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아르헨티나 출신답게 예르바 마떼를 즐겨 마시는 편.
취미는 별로 없지만 좋아하는 작가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특히 축구의 경우는 자국 리그의 팀인 CA 산 로렌소의 열성적인 팬이며 회원이기도 하다.
축구를 좋아하는 교황을 위해 오직 교황 한 사람만을 위한 A매치를 치르기로 했다. 2013년 8월 14일에 교황을 위해 로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조국인 아르헨티나와 가톨릭의 종주국인 이탈리아의 평가전을 치르기로 양 국가의 축구협회에서 합의를 봤다. 이 경기는 교황 프란치스코 본인은 물론 바티칸 시국 교황청에 소속된 모든 이들이 직접 관전했다.
그런데 경기 당일 양팀의 주포인 리오넬 메시와 마리오 발로텔리 둘 다 부상으로 결장했고, 메시 대신 에릭 라멜라가 들어갔다. 경기 결과는 아르헨티나의 2-1 승리. 전반전에 일찌감치 곤살로 이과인이 선제골을 넣은 뒤 후반에 에베르 바네가가 추가골을 넣었다. 이탈리아에서는 2골을 먹은 이후 로렌초 인시녜가 만회골을 넣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2017년 11월 15일 람보르기니 사에서 교황에게 흰색 람보르기니 우라칸에 금줄로 장식한 교황 에디션을 기증했다. 교황은 이 차에 손수 축복을 내리고 보닛에 서명까지 해서 자선단체 후원 경매에 내놓았고 기존 람보르기니보다 3배나 비싼 71만 5,000유로(한화로 약 9억 1,100만원)에 최종 낙찰됐다.
4.2. 종교적 성향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교회가 아니라 (그저) 동정심많은 NGO일 뿐이다.
교황 즉위 미사에서#
[image]부에노스아이레스는 눈물을 흘릴 필요가 있어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직 충분히 슬퍼하지 않았어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일을 하고, 직장을 찾아 나서고, 장사를 하고, 여행과 관광에 대해 걱정을 하지만 정작 이 충격적인 참사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어요. 이 도시에서 일어난 참사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고 있지 않아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남긴 것을 마음에 간직합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이 투쟁을 멈추지 맙시다.
1주기 미사 중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교황이다. 아래에 제시된 사례처럼 미혼모가 낳은 자녀에게 세례성사 주는 것을 거부하는 사제들을 비판했으며, 콘돔 사용을 반대해서 홍역을 치른 베네딕토 16세와는 달리 에이즈 예방을 위해서 사용해도 된다는 생각을 밝힌 적도 있다고 한다.[17] 더구나 재임 중 해방신학의 창시자를 초청하여[18] ,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에서 해방신학이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콘클라베 시기 <가디언>에서 정한 기준에서도 "Moderate"(온건한)에 속하는데, 진보-온건-보수에서 중간 정도라는 의미가 아니라 Moderate(온건)-Conservative(보수)-Ultra Conservative(강경보수) 가운데 가장 온건하고 진보적인 것이다. 'Papabile'라고 표기된 교황 가능성이 있는 인물 가운데 필리핀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을 제외하고 moderate는 거의 없다. 교황청 개혁에 적극적이면서 스캔들에도 해당 안 되는 인사라는 점에서도 베르골료 추기경은 두드러진다.
또한 사회경제적인 면에서는 진보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기작가는 "그는 해방신학자는 아니지만, IMF에 반대하며, 신자유주의에도 반대한다"고 언급하였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직후에도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여 아르헨티나의 빈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외국의 반응들도 전반적으로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지도자로서는 대중적인' 교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외신마다 평가가 갈리는 편인데, 이에 대해 미국과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진보의 기준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생각하는 진보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이라는 지적이 있다. 꼬리표를 뭐라고 붙이든 간에, 사회적 약자에 대해 온정적이며 공동체의 가치와 평화를 중시하는 성향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11월 27일 펴낸 교황 권고에서는 자본가들의 천문학적인 연봉을 비난하면서 규제 없는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로 규정하고, 가난을 만드는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난민 문제에 있어서도 (IS에 대한 비판과 별도로)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실제 지원 활동도 자주 하고 있다. 신자들에게도 당부하는 편.
교황명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으로 삼은 것만 보더라도, 사회경제적인 면에서는 청빈을 강조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관심이 많아 보인다.
이런 진보적인 행보 때문에 미국의 기독교 우파 중 가톨릭 계열 극우 강경파 중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별로 탐탁치 않는 이들도 있다.
여성 사제 인정 문제에 대해서는 '''"여성 사제는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답변'''하였다.기사
4.2.1. 사생아, 동성애, 동성결혼에 대해
" If someone is gay and he searches for the Lord and His good will, who am I to judge?
'''"만약 게이라도 주님의 말과 바른 뜻을 찾아 간다면, 내가 누구라고 그들을 판단하겠습니까?"'''
그는 가톨릭 교리에 따라 '''동성 간 성행위와 동성결혼'''을 '''반대'''하지만[19] , 사생아에게조차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례성사를 줬다. 가톨릭에서 사생아를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이 중세부터 시작된 오랜 전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파격. 또한 사생아에게 세례를 주길 거부하는 사제들을 비판했다. 사실 교회법상 사생아를 외면할 근거는 부족하므로, 교황이 이상한 태도를 취한 것은 딱히 아니다."When it shows itself from childhood, there is a lot that can be done through psychiatry, to see how things are. '''It is something else if it shows itself after 20 years.'''"
"그러한(동성애) 성향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정신의학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 '''그러고나서도 20년이 지나 아직 성향이 남아있다면 그 때는 또다른 것이다."'''
2018년, 자녀에게 동성애적인 성향을 발견한 부모들에게 한 조언. 그러나 교황이 동성애를 정신병이라고 생각한다고 사람들이 착각할 수 있다면서 교황청은 이 발언을 '''삭제'''해버렸다.
그리고 동성결혼과 동성애자 부부의 입양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 개개인들을 탄압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또한 아르헨티나에서 동성결혼 법안에 반대운동을 주도할 당시, 동성결혼에는 반대하지만,동성커플은 인정하는 시민결합(Civil Union)이라는 타협안에 '그나마 덜 악한 것'라라며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하였지만 대다수 주교단의 반대로 기각된 적이 있다고 한다. 2013년, '''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 추기경을 교황청 '주교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에서 해임, 다른 추기경으로 교체하기도 했다.결혼의 신성함 속에서 잉태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미혼모의 자녀들에게 세례성사를 주지 않는 성직자들이 우리 교구에 있습니다.
이런 성직자들은 현대의 위선자들입니다. 이들은 권력으로 교회를 오염시키는 자들이며, 주님의 백성들을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자들입니다.
사생아들을 아이를 주신 분께 돌려보내지 않고 이 세계에 낳을 용기를 가진 불쌍한 소녀들은 이런 성직자들 때문에 세례를 받으려고 여러 교구들을 떠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교리에 얽매여 신자들을 정죄하는 것보다는 교리와 실제 소외당하는 소수자들의 처지에 대한 배려를 조화시키는 것을 추구하는 입장[20] 이기 때문에 앞으로 가톨릭교회의 동성애 문제에 대한 태도가 주목된다.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2014년 시노드에서 동성애자와 이혼, 피임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방향으로 결정문 초안을 발표했다.[21][22] 하지만 교황 본인은 시노드 의장으로서 중립을 견지하며 중재할 뿐이었고, 이 중간 선언문은 소수의 교부들에 의해 독단적으로 작성되었다고 대다수 대의원 교부들이 반발했다. 결국 최종 결정문은 가톨릭 교리에 일체 변화가 없다는 내용으로 발표되었다.
그런데 2014년 11월 17일 기독교 교파 대표들이 모인 콜로퀴움에서 "결혼은 '''남성과 여성'''간의 결합"이라고 천명하기도 했다.
위의 행보들과 모순되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가톨릭은 '동성애 지향'과 '동성결혼'은 엄격히 구분한다.''' 동성결혼(나아가서 동성 간의 성교)은 가톨릭 윤리학에 붕괴 수준의 대격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허용되는 것은 어렵다. 문제는 '그러면 동성애 성향은 죄인가?'라는 질문이다. 일단 동성애적 성적인 욕구를 느끼는 건 죄다.[23] 하지만 그런 동성에게 끌리는 성향으로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데, '죄(특히 대죄)'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죄인 것을 알고, 고의적으로''' 저질러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한데, 동성애자의 성행위와 결혼 등은 자의적인 행동일지라도, 동성애자로 태어난 것(내지는 동성애자가 된 것) 자체는 선천적/후천적이라는 논쟁이 있을지언정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경험적으로 옳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만약 후자 또한 죄라고 주장하려면 신이 이 사람에 대한 구원을 포기했다고 봐야 하는데, 이는 가톨릭에서 진즉에 부정한 칼뱅의 이중예정설과 연결된다.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동성애 성향'과 '동성결혼'은 가톨릭 입장에서 보면 '''페도필리아'''와 '''아동 성범죄''' 만큼이나 격차가 크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매우 폭력적인 성격으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성질을 잘 다스려 실제로 사람을 때리지 않고 온순하게 산다면 그 사람은 교회는 그 사람의 성향을 죄라고 판단할지언정 하느님이 어떻게 보실지는 자신들이 심판할 수 없다고 본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가톨릭 내부의 윤리관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가톨릭(더 넓게 보면 기독교)의 윤리관을 비판한다면 몰라도, 교황 한 사람을 공격한다면 교황 입장에선 굉장히 억울한 일이다. '''교황은 전제군주가 아니다.'''[24] 또한 교황은 다수결이 아닌 가톨릭 사제들 간의 '''만장일치'''로 선출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톨릭 윤리관에 가장 모범을 보이면서도 이를 고수하는 면모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원래 교황 개인의 인간적 면모가 어떤 가에 떠나서 가톨릭 자체가 굉장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그의 이러한 주장은 어쩌고 보면 기독교의 관점으로 볼 때 상당히 진전된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나 실질적으로 가톨릭은 입장 변한 게 없다.
딱 까고 말해서 가톨릭 입장은 이렇다, 동성애자로 태어난 건 죄가 아니지만, 타인과 동성애적 성관계를 맺거나 동성결혼을 하는 것은 죄이며,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적 요구를 잘 누르고, 하느님 믿고,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삶을 살면, 하느님이 판단하시겠지 어떻게 인간인 자신들이 동성애자들을 심판하겠냐? 이런 입장이다. 가톨릭(그리고 정교회)는 성관계를 혼인성사[25] 를 완전하게 만드는 성스러운 행위로 보며, 섹스를 '''오로지 부부 간 사랑 표현과 자녀를 출산하기 위해서 해야만 한다고 본다.''' 이 때문에 가톨릭에서는 원칙적으로 혼외 성관계, 피임, 자위행위 및 기타 유사 성행위가 모두 "죄를 짓는 행위다." 고로, 남성 간 혹은 여성 간의 동성애 행위 역시 '''죄라고 보는 것'''이다. 가톨릭이 혼인성사를 얼마나 진지하고 신학적으로 보는지는 혼인성사 문서를 참고하라. 이 부분은 공의회가 몇 천번 열려도 불가능에 가깝다. 동성애를 건들려면, 혼인성사를 남녀 부부가 하느님의 은총 아래에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새로운 가톨릭 공통체의 시작으로 보는 개념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데 이건 유대교 전통부터 내려오는 유산이며 신학적으로도 영구불변하며 포기할 수 없는 자연도덕법이므로 사도전승을 간직한 보편 교회인 가톨릭 입장에서는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
교회법과 혼인성사 교리에 따르면 '''혼인 전'''부터 영구적인 성교 불능인 사람과의 결혼은 무효가 된다. '''혼인 이후'''에도 교회 법정에서 혼인 무효를 인정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가 있다[26] 혼인무효 소송시에 교회 법정에서 배우자가 성불구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해서, 결혼과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가톨릭에서의 결혼(혼인성사)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자녀를 만들며 새로운 가정 공동체와 신앙을 이어가는 행위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아이를 전혀 만들 수 없거나, 남녀간이 아니거나,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부부/커플은 어찌어찌 혼인성사를 치르고, 교회를 속이고 사회적인 부부로 계속 지낸다고 하더라도 가톨릭교회 가르침 내에서는 원칙적으로 그냥 동거(간음상태)고, 혼인관계가 아니다.
사실 위에 언급된 사생아 문제도 이 혼인성사의 엄격성과 거룩함을 지키는 원칙에서 나온 문제이다. 혼인성사는 기본적으로 한 남성과 한 여성이 사제의 축복을 받아 새로운 가톨릭교회를 만들고, 아이를 가짐으로써 완전해 지는 것인데, 여성이 혼인성사로 맺어지지 않은 남성과 성관계를 맺어서 애를 만들었다? 원칙적으로 남녀 둘 다 죄(사음죄)를 지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생아는 이런 악행의 부산물이므로 간혹 세례를 안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중세시대에서도 부모에게 죄가 있지 이렇게 태어난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는 인식은 있었고, 유아세례를 주지 않는 건 더 큰 죄로 여겼기 때문에 최소한 세례는 다 해줬다. 특히 세례도 못 받고 버려진 아이들에게 세례를 주기 위해 가톨릭교회에서 거두어 보살피기 시작한 것이 보육원의 시초이다. 결론적으로 '''미혼모 혹은 미혼부의 자식이라도 세례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는 데에 원래부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2015년 10월에 교황청이 전 엘리제궁 의전수석이었던 로랑 스테파니니의 바티칸 주재 프랑스 대사 임명을 거부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로랑 스테파니니가 동성애자라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가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이후 교황청과 프랑스의 사이가 악화된 상황의 연장선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가톨릭의 신학적 입장은 둘째치고 외국에서 임명한 대사를 정당한 사유없이 거부한 것은 확실히 문제의 소지가 있는 행보라는 입장과 동시에, 바티칸에게는 가톨릭의 기본 교리 입장상 당연히 거리감이 있는 인사의 접수를 거부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를 무시한 채 강행한 올랑드 정부도 욕 먹고 있는 중.
또한 2015년 9월 24일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동성커플의 결혼증서 발급을 거부하여 논란이 되었던 개신교 신자이자 미국 켄터키주 로완 카운티의 법원 서기인 킴 데이비스를 비밀리에 초청하여 격려해준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티칸은 그 사실을 귀국한 뒤에야 밝혔는데, 그러나 교황청 측에서는 교황이 킴 데이비스 측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주미국 교황 대사인 비가노 대주교(후술될 폭로 사건의 주인공이다)가 사전 예고도 없이 킴 데이비스를 데리고 와서 언론플레이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비가노 대주교 교황 대사 해임의 원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비가노 대주교는 2018년 8월 이후 킴 데시이브스 초청 과정에 관련한 사실을 밝힌다며 언론에 기고를 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투옥되었던 킴 데이비스의 양심에 따른 행동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만남을 교황에게 제안했고, 교황은 자신들의 참모들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하였으며, 그 이후 참모들이 동의하자 교황도 정식으로 만난 것이라고 주장하며 '''모르고 갔다'''는 교황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하였다. 비가노 대주교는 이와 별개로 맥캐릭 추기경의 성추행 사실을 교황이 알고도 묵살했다는 주장을 하였는데, 비가노 대주교의 공격에 대해 부인함 없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교황청은 대신 비가노 대주교 개인에 대한 공격을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데이비스에 대해 알고 만났음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면서 다시 파문이 일고 있다.
2020년 10월 동성애자들도 주님의 자녀들이며 하나의 가족이 될 권리를 갖고 있음을 공식 인정했다. 로마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에서 공개적으로 동성 커플에 대한 법적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 # 이 때문에 성소수자(LGBTQ) 이슈와 관련한 가톨릭교회의 역사적인 방향 전환이라는 평가와 함께 보수 가톨릭계에선 불만들이 나왔다. #1 #2 이 발언에 대해서 멕시코 최대 방송사 텔레비사의 대변인을 인용해 교황이 이 방송사와 1년여 전 바티칸의 거처인 카사 산타 마르타에서 인터뷰했을 때 이 발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 이에 교황청은 왜곡된 것이라고 반발했다.#
4.2.2. 무신론자들에 대하여
무신론자라 밝힌 라 레푸블리카의 공동 설립자 에우제니오 스칼파리가 교황에게 '주님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주님이 용서할지'를 물었고, 교황은 '''주님의 자비는 한계가 없으며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서 답변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칼파리 본인이 먼저 전화해온 교황과 약속을 잡아 직접 산타 마르타 관館에서 인터뷰하고 주로 이탈리아 지성인들의 의견을 포함해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27] 로 편집, 출간되었다. 한국에서는 바다출판사 발행, 번역은 최수철과 윤병언.
일찍이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도 2001년 'KBS 도올의 논어이야기'에 출연하여 정하상 바오로 성인[28] 의 예를 들며 이러한 견해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런 논조는 종교가 아예 필요 없다거나, 가톨릭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야 지옥벌을 면하고 천국으로 향할 수 있다'는 가톨릭의 정체성이자 핵심 교리이기 때문. 이건 가톨릭 그 자체나 다름없는 명제이기에 어떻게 손을 댈 수도 없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스칼파리가, 교황의 발언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인정했다. 실제로 대화 당시 스칼파리 본인은 별 다른 기록을 하지 않고 자신의 기억력만으로 이 내용을 전했는데, 그의 기억력이 고령으로 인해 부정확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인한 것이다. 하지만 교황이 비신자나 무신론자에 대해서 관용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건 사실이다. 교황 선출 후 진행된 첫 일반 알현에서 알현 마지막에 참석자들을 향해 축복기도의 성호를 긋지 않은 대신 다음과 같이 스페인어로 말한 적도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신론자들은 본인의 양심에 따라 살아라'라고 말했다고 해도, 가톨릭 신앙이 필요없이 착하게만 살면 구원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앙을 강요하는 것이 무의미함과 주님의 자비로움을 강조하는 언급으로 봐야 한다. 가톨릭 교리를 충분히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가톨릭 신자가 되기를 거부하거나 불신의 상태에 있으면서 종교적인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사람들 대해서, 가톨릭은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주님이 알아서 판단하실 몫'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교리상으로는 지옥으로 가는 것이 맞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참고.이곳에 모인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고 어떤 분들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가지고 계신 양심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여러분 각자가 주님의 자녀임을 알고 있기에 말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십니다.
범죄자, 폭력 조직, 가톨릭 교회 내의 부패한 성직자들을 격하게 비판하면서 그따위로 행동하느니 '''차라리 무신론자가 되는 것이 낫다'''고 언급하기도 했다.[29]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무신론자가 갖는 위치를 생각하면[30] 파격적인 언행이다.[31]
5. 재위기간
6. 바티칸 개혁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에 의해,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한 직접적 원인이 바티리크스 사건이었다면 더욱 근본적 원인으로는 바티칸 내 최고행정기구인 교황청의 관료제적 폐해와 부패라는 분석이 있었다. 국무원장과 궁무처장을 겸임한 반개혁파 타르치시오 베르토네가 이탈리아 출신들을 대거 요직에 앉혀 사실상 최고 실력자로 군림했으며, 그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출신-교황청 관료-반개혁 세력이 온갖 부패와 전횡을 저지름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사실상 고립되어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탈리아 출신들로 관료들을 가득 채워 놓은 교황청에서,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는 파벌이 전혀 형성될 수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어디든 고관대작이 존재하는 곳은 파벌이 존재하며 파벌이탈죄는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중범죄로 간주한다.
대표적으로 베네딕토 16세는 바티칸 은행을 개혁하려고 했으나, 바티칸 은행을 관할하는 베르토네 국무원장의 음해와 방해로 실패했다고 한다. 교황청의 2인자 비가노 대주교 역시 교황을 보필하여 교황청 개혁 작업에 나섰으나, 이후 베르토네 국무원장에 의해 상대적으로 한직인 미국 주재 교황 대사로 발령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교황의 집사 파올로 가브리엘레가 이 같은 상황을 바깥에 알리기 위해 교황과 비가노 대주교 사이에 있었던 교황청 내부 문제들을 다룬 비밀편지를 고의적으로 유출한 것이 바티리크스라는 분석이다. 이는 바티리크스의 배후로 알려진 가브리엘레 집사가 큰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8년의 징역형까지 가능했으나 18개월의 징역형만을 선고 받았고 그나마 2개월 후 교황에 의해 사면됐다는 정황으로도 방증됐다. 요컨대 부패척결을 위해 신임했던 개혁파 비가노 대주교[32] 와 가브리엘레 집사가 교황청에 의해 무력화되자 자진사임했다는 것.[33] 이후에도 바티리크스의 처리과정에서도 베르토네가 도청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차기 교황은 바티칸을 개혁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교황 유력후보였던 밀라노의 안젤로 스콜라 추기경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과 안젤로 소다노 수석추기경으로 대표되는 교황청의 반발에 의해 이탈리아 추기경 표가 갈려 밀려났다고 한다. 이상의 연합뉴스 링크에 의하면 바티칸 내부관계자들은 이와 같은 이전투구가 쿠리아 세력의 '질투와 경쟁심' 때문이었다고 하니 내부분열은 상당했던 모양. 결국 비유럽파와 개혁파의 응집에 의해 프란치스코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는 정황이 제기되었고, 따라서 이들의 지지를 업은 프란치스코에게 교황청의 개혁과 부패 말소는 숙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외신을 비롯한 대다수 언론에서도 부패척결과 관료주의 타파를 새 교황의 대표적인 직면과제로 꼽았다.
그러나 외부적으로는 빈곤 타파, 기후변화 등에 이슈에 대한 강조와 개혁적인 발언을 통해 진보 세력들의 지지를 받는 데 성공한 반면, 구체적인 실천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가톨릭계 복지시설에서 터져나온 학대와 아동 매장 등의 사건들과, 2018년에 터진, 상기한 측근이었던 비가노 대주교에 의한 폭로로, 재위도중 계속 터져나온 가톨릭 성직자들에 의한 각종 성범죄 및 성폭행 사건 은폐에 대해 교황 본인이 이를 알고도 해당 성직자를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이에 대한 '''무대응''' 때문에 2018년부터 사면초가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워낙 진보적인 언사(신학적+사회적으로 모두)와 행보를 취하여,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톨릭 내의 보수파들은 대놓고 입장표출만 안하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단단히 불만 내지는 미운털이 박혀있는 상황이고, 비가노 대주교에 의한 부정 폭로 및 교황직 사임요구가 제기되자 아예 비가노 대주교를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더라도 교황의 바른 해명과 처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아래에 나온 것처럼 비가노 대주교의 폭로 내용이 과장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지자들과 함께 부패한 바티칸 추기경들과 관료들과 싸우는 내용이 들어있는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잔루이지 누치(Gianluigi Nuzzi)의 "성전의 상인들(원제: Via Crucis. Da registrazioni e documenti inediti la difficile lotta di Papa Francesco per cambiare la Chiesa, 영역 제목: Merchants in the Temple: Inside Pope Francis's Secret Battle Against Corruption in the Vatican)". 전작인 "교황 성하(Sua Santità. Le carte segrete di Benedetto XVI)"도 번역되길 빌어본다.
7. 비판과 논란
먼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제기되는 대표적인 논란과 비판은 가톨릭 내 고위 사제들의 성범죄에 대한 덮어주기 의혹[34] , 그리고 보수파의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자유주의 성향으로 치우치는 각종 발언, 행보들이 신학적, 사회적 반발을 부르는 것이 있다. 논란의 대부분이 교황 및 지지자 vs. 비가노 대주교 및 보수파의 형태로 이어지는 것에서 알 수 있다.
7.1. 가톨릭 사제 아동 성폭행 및 조직적 은폐에 대한 대응과 은폐 가담 의혹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2002년 미국 보스턴대교구 사제들의 상습적 아동 성폭행과 은폐 사건 폭로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톨릭의 성폭행과 학대 비리에 대한 폭로에도 "교황의 대응이 느리고 불충분하다"며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사건에 관련된 사제들 가운데 자신의 심복으로 알려진 사람들에 대한 관용에 이어 본인도 은폐에 가담했다는 폭로, 그리고 이에 책임을 지고 교황직을 사임하라는 요구로 인해 2018년~2019년 서구 가톨릭계가 매우 시끄러워졌다.
- 미국 보스턴대교구 은폐 사건의 주도자로 알려진 로(Law) 전직 추기경의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로 추기경이 성폭행 사제 은폐로 인하여 불명예스럽게 퇴직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장례식을 치르게 하고, 교황이 참석한 것을 보고 보스턴 성폭행 피해자는 "로 추기경은 지옥으로 가야 할 사람"이라고 힐난했다.
- 2015년 교회 회의에 교황은 은퇴한 벨기에의 고드프리드 다니엘스 추기경을 초대하였는데, 사제에 의해 성폭행 당한 피해자에게 외부에 발설하지 말 것을 종용하는 발언의 녹음이 공개되어 크게 비웃음을 샀던 인물이다. 피해자는 가해자였던 로제르 방헬루에 신부의 조카였다고 한다.
- 칠레의 악명높은 성폭행범 사제인 페르난도 카라디마(Fernando Karadima) 신부를 옹호하고 함께 성폭행에 가담했다는 의심을 사던 후안 바로스(Juan Barros) 신부를 주교로 임명하였다. 2018년 칠레 방문시 바로스의 신부의 면직을 요구하던 피해자에게는 '명예 훼손'이라고 공격하며 "증거를 대라. 본인은 2번이나 사의를 표했지만, 그를 믿고 내가 반려했다."고 답했다.
- 하지만 비판이 일어나자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칠레에 교황 특사 찰스 시클루나(Charles Scicluna) 대주교를 파견한다. 사실로 밝혀지자 사과하였다. 찰스 시클루나 대주교 파견 후 작성한 보고서에 따라 "진실하고 균형 잡힌 정보의 부족"#을 시인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했으며 그해 4월 말에는 카라디마 사건 피해자들을 교황청으로 초대해 직접 면담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칠레 가톨릭교회 성직자 성범죄 전수 조사로 칠레 주교들은 전원 사임 서한을 제출했으며, 논란의 중심에 있던 후안 바로스 주교의 사임이 수리되었다. 2018년 9월 28일에는 페르난도 카라디마의 성직을 박탈했다.
- 뿌리깊은 가톨릭 국가였던 아일랜드에서 가톨릭 사제의 성폭행과 학교에서의 아동 학대, 미혼모 자녀들의 강제 입양, 유아 집단 매장으로 가톨릭에 대한 반감이 매우 높은 가운데 2018년 8월에 국빈 방문하였다. 방문 전 성폭행 피해자들의 면담 요청에 교황청이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 번복하였다.
- 아일랜드에서 20명이 넘는 아동을 성폭행하여 실형을 산 유진 그린(Eugene Greene) 신부가 현직이던 시절 그를 상급자로서 파문하기를 거부한 필립 보이스 주교(Bishop Philip Boyce)를, 사건이 일어난 곳 이웃 교구장으로 2018년에 임명하였다.
- 11세 남자 아동과 젊은 사제, 남자 신자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정직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미국의 시오도어 맥캐릭(Theodore McCarrick) 추기경의 비위 사실을 알고도 수년간 은폐하였다...는 전 주미 교황청 대사 비가노 대주교의 폭로가 이어졌으나 비가노 대주교가 교황이 사건을 은폐하였다는 근거로 든 맥캐릭 전 추기경에 대한 '처벌'(sanction)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언론들을 통해 밝혀졌으며#, 심지어 전 교황대사가 2차로 공개한 서한에서는 말을 바꾸어 '처벌'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시인하고 말았다. 결국 미국 가톨릭교회에서는 맥캐릭의 추문이 어느 정도 알려졌으나 이것이 교황에게까지 전달되지 않고 중간에서 가로 막혔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 교황청 조사가 이뤄진 것은 지난 6월이며, 7월 말 추기경직 사임이 곧바로 수리되었다.#
-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도 교황 측에서 아직 비가노 대주교의 의혹에 대한 공식적 대응을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교황은 개인적으로 평온한(serene) 심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이에 관하여 한 외신은 "공개발언을 지금까지는 제일 즐겨온 교황이 굳이 지금 와서 침묵하고 있는 이유가 뭐냐"고 반문하면서, "교황 측의 책임 있는 자세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였다.
- 현재 비가노 대주교의 폭로로 인해 주목받는 또다른 쟁점은 미국 시카고 대교구장 블레이스 수피치(Blase Cupich) 추기경인데, 그는 "친동성애 이데올로기"#를 가졌다고 보수파들에게 비판받고 있다.[35] 비가노 대주교 측과 이에 동조하는 사목자들은 맥캐릭 사태가 이런 '친동성애자'들의 네트워크 때문에 일어났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다만 비가노 대주교의 주장에도 의구심이 드는 구석은 있는데, 본인 주장에 따르면 이미 미국 주교들이 맥캐릭의 비행에 대해 다 알고 있었음에도, 본인이 주미 교황 대사로 재직했을 당시에는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있다.
- 미국의 대주교 2인이 이 사태와 관련된 의혹을 조사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하였다. 또 많은 평신도들과 사제들도 이에 동참하였다.
7.2. 킴 데이비스 격려 방문 결정 과정 의혹
2015년 미국 방문시, 동성 커플의 혼인신고서를 받아주지 않아 법 위반 혐의로 투옥되었던 미국의 킴 데이비스를 만나 격려한 사실이 알려진 뒤 논란이 일자 교황청은 당시 주미 바티칸 대사인 비가노 대주교가 예고 없이 데리고 와 만나게 되었다며 의도한 바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비가노 대주교는 킴 데이비스를 만나는 일정에 대해서는 이미 프란치스코 교황과 최측근들이 합의했던 일이었다고 폭로하면서 진위공방 논란이 일고 있다.
7.3. 중국과의 무리한 타협
중화인민공화국은 건국 이래로 종교를 탄압해 왔으며, 바티칸의 수위권을 따르는 일반적인 천주교와 달리 중국 공산당의 지휘를 받는 '중국 천주교 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라는 조직을 1957년 수립하고 모든 신부와 신자들이 이 단체에 소속될 것을 강요하고 있다.[36] 심지어 주교 서임도 교황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서임하고 있었다. 그동안 바티칸은 중국 공산당이 서임한 주교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 문제로 바티칸과 중국은 수교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공산당의 정책에 반발하여, 교황의 수위권을 따르는 중국의 가톨릭 신자들은 중국 천주교 애국회 교회에는 나가지 않고 지하에서 자체적으로 종교활동이나 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하 교회는 중국 정부의 탄압의 대상이며, 적발될 경우 바로 감옥행이다. 또한 18세 이하의 청소년은 성당을 방문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등 여러 직/간접적 종교 박해를 일삼고 있다. 시진핑의 일인독재체제 강화 이후에는 이런 박해가 가톨릭과 중국 내 다른 종교들인 개신교, 이슬람 등을 가리지 않고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9월 중국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주교 임명권을 중국 정부에 양보'''하고 중국이 자체적으로 임명한 주교 7명을 정식 주교로 승인, 중국 주교단의 세계주교시노드 참석도 승인했다.# 또한 앞으로도 중국 애국회가 주교 후보자를 지명하면 교황청이 이를 승인하는 것으로 중국과 합의되었다고 알려졌다.
'''그동안 온갖 탄압 아래에서도 순교하며 신앙을 지켜온 중국 지하 정통교회 신자들의 믿음을 배반하고, 중국이라는 세속 권력과 타협하는 행동'''이라는 비판이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는 상황. # 애국회가 중국의 정통교회로 공인되게 되면 그동안 탄압받으면서도 교황청의 지도를 받으며 일치해왔던 지하 가톨릭 교회 신자들이 오히려 교회 일치를 깨는 자들로 몰리게 되고, 중국 정부의 탄압 명분이 더욱 강화되어 버릴 것이다. 물론 교황은 지하 정통교회에 대한 탄압 중지를 중국 정부에 협상조건으로 내놓았다지만, 이건 그간의 중국 정부의 박해 행태를 볼때 전혀 지켜질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정통 지하교회를 인정하는 제스처를 보이면서도 교황이 정식 임명했던 지하교회 주교들을 한단계 '''강등'''한 보좌주교로 만들고 이제 애국회가 정통교회라고 주장하며 지하교회의 자택미사를 금지하는 등 정통 지하교회에 대한 사실상의 탄압을 지속하고 있다. # 또한, 교황은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하면서도, 중국 정부의 분노를 의식하여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공식적으로 요청한 대만 방문 초청을 거절하는 친중적인 행보를 보여 논란이 되었다. # 이런 교황의 행보가 대만의 천주교 신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즉, 중국과 바티칸의 주교 서품 협정을 맺으면서 국가 무신론을 고수하고 있는 중국에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이 고개를 숙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일단, 현재 가톨릭이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에 큰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서구는 신자 수의 증가가 정체상태에 빠진데 비해 중국은 신자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점도 있다. 교회 내 보수주의자들이 이런 지하교회를 무시하는 것으로 비추어지는 현 상황을 기회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임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론적으로 공산당의 심각한 간섭 아래 있는 교회(애국교회)와 타협을 하느라 정작 교황을 온전히 따르는 중국 및 대만의 정통교회 신자들이 내몰리는 양상이 된 현 상황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가 난제로 남게 되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화를 바란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 별다른 입장이 없다. 그나마도 교황의 공식 입장은 11월 11일 사이완호역에서 홍콩 경찰이 비무장 시위대를 권총으로 실탄 사격해 중상을 입힌 직후에야 나왔다. 바티칸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에 홍콩 가톨릭 내부에서는 바티칸이 홍콩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 수가 없어, 홍콩 가톨릭 교회 내부의 분열상이 외부로 표출되고 말았다. 홍콩의 젊은 가톨릭 사제들과 신자들은 '''교황이 중국 눈치만 본다며 대놓고 비판'''한다. 홍콩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 성공회를 포괄하는 범 기독교계이다. 홍콩 민주화 인사 중에 범 기독교계가 아닌 인사가 없다. 홍콩에서는 주말 시위를 일요일 오후에 한다. 시위를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에 하는 이유 자체가 교회나 성당에 갔다가 예배/미사를 보고 나오는 길에 시위에 참가하는 것이다. 그 정도로 홍콩 민주화에서는 기독교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범 기독교계의 한 축을 담당한다 할 수 있는 교황이 홍콩 문제에 대해 함구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으니 홍콩 기독교계에 대한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홍콩의 젊은 사제들과 가톨릭 신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국 당국의 눈치를 보지 말고, 요한 바오로 2세가 조국 폴란드에 대해 민주화 운동을 정면으로 지원했고 그 결과 폴란드가 1989년 민주화된 것처럼, 홍콩 민주화를 지지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을 언급하려고 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 신간 '렛 어스 드림'(Let Us Dream: The Path to A Better)에서 "나는 자주 로힝야족과 위구르족, 야지디족 등 박해받는 사람들을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아예 외면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과거에 호르헤 비델라 군사독재에 대한 침묵이 다시 불거지는 상황이다.
8. 2014년 방한
동북아시아, 특히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이 깃들기를 빕니다.
9. 기타
성 말라키의 예언에 따르면 예언에 명시된 마지막 교황. 그런데 예언 내용인 '로마인 베드로'가 어떻게 꿰어맞춰도 맞는 내용이 나오지 않아서 다들 잊은 듯. 교황청이 말라카이의 예언이 가톨릭 교회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예언 내용 자체가 찝찝해서 일부러 입에 담지 않는 느낌도 든다. 마지막 교황은 흑인 교황이라던 출처 미상의 떡밥도 분쇄되었고 결국 '교황이 그래도 이탈리아인이지 않냐는!'이란 식의 우기기만 남았다고 한다. 말라키의 예언이라는 것이 16세기까지 존재 자체가 언급된 적도 없거니와 끼워맞추기에 불과한 쉰 떡밥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인 마당에 거론하는 자체가 문제.
국내 잡지 시사in에서는 '''지도자의 격은 집단 전체를 달리 보게 한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사in의 진보적인 성향과 교황의 행보를 연결시키면 저런 평가가 나올 만하다는 중론. 종교를 초월한 교황의 인기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진정한 리더를 원하는 현대인의 갈망이 교황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어렸을 적엔 독실한 가톨릭 신자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지만 무신론자로 유명한, 미국 HBO의 유명한 토크쇼 호스트 빌 마허는 프란치스코가 교황에 취임된 이후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행보를 할 때마다 "내가 장담하는데, 이번 교황은 무신론자일 거야 ㅋㅋ"나 "지금 바티칸에선 독약을 준비하고 있을 거야"[37] 같은 농담을 하면서 그의 행보를 칭찬해주었다. 다른 가톨릭계 토크쇼 호스트인 스티븐 콜베어[38] 역시 마허와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반응을 매번 보여주었다.
교황이 일반 사제 복장을 갖추고 몰래 바티칸을 빠져나와 노숙인들을 만나는 등 잠행을 한다는 설이 돌았다. 이런 추측이 나오는 이유는 교황이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고, 추기경 시절 실제로 밤에 몰래 나와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주고 함께 나눠먹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베네치오 리바라는 장애인을 감싸안은 모습 또한 많은 이들의 감명을 불러일으켜 만화로 그려지기도 했다. 번역된 곳
2013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로 뽑혔다. 하지만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면 으레 하게 되어있는 인터뷰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미국의 남성잡지 에스콰이어가 교황을 올해의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했다. 지마라가 아닌 소박하고 검소한 백색 수단에 수수한 검은 구두를 신은 차림새가 교회 개혁을 위한 행보에 부합하며 교황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며 호평했다. 2015년에는 미국 방문을 앞두고 스포츠 스타들의 피규어를 전문 생산하는 블리처 크리처가 제작한 피규어가 등장했다. 스포츠 스타는 아니지만 블리처 크리처가 피규어의 대상으로 삼을 만한 인물이라는 게 블리처 크리처의 창업주 매슈 호프먼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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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전까지 쓰이던 포프모빌[39] . 대부분 메르세데스-벤츠의 값비싼 특수 방탄 개조 SUV 차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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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용하게 될 포프모빌. 상대적으로 훨씬 저렴한 현대 싼타페 2.2 디젤 모델인데, 심지어 방탄 개조같은 것조차 하지 않은 무개차다! 해외 기사 한국 기사 [40] 이 포프모빌은 2014년 교황의 한국 방문 당시 현대차가 지원했던 모델 중 하나였는데, 이후에 교황청에서 카니발과 함께 아예 인수를 해가서 포프모빌 중 하나로 쓰고 있다고 한다. 이전 교황들이 주로 값비싼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를 이용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행보인데, 프란치스코 교황의 검소한 품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차를 쓰기로 한듯. 앞서 설명했지만 방탄 개조같은 것은 하지 않은 무개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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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방문 때는 이스즈의 픽업 트럭을 개조한 것을 사용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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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왔을 때는 방한 때 기증된 기아 카니발을 사용했다.
그 외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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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카렌스급의 차 폭스바겐 투란도 이용하였다.
씀씀이가 매우 소탈하고 검소하기로 유명하다. 50달러도 안 하는 저렴한 스와치 시계를 사용하며, 이동 간에 사용하는 차량으로 추기경이었을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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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4.
이탈리아로 왔을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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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소형차를 이용한다.'''
으레 교황용 의전차는 메르세데스-벤츠의 특수개조 SUV차량을 이용해온 것이 관례이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런 고급차를 마다하고 16,000달러도 안 하는 구형 포드 포커스. 국산차로 비유하자면 아반떼나 i30 정도 수준이다. 게다가 지금 포커스는 3세대이지만 교황의 포커스는 2세대 전기형으로, 2004년식 차량을 몰고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터뷰에서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이 고가의 최신 차량을 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물론 업무 목적으로 자동차가 필수적이긴 하지만, 고가의 비싼 차를 구입하기 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의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이 굶어죽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라며 '''성직자들의 사치 자제를 몸소 주문하였다.''' 바티칸 근처에서 돌아다니는 SCV 009** 번호판의 파란색 포드 포커스를 발견하면 그것은 교황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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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남미 방문 때에도 쏘울급, 혹은 벤가급의 소형 MPV인 피아트 이데아를 의전차로 사용했으며, 2014년 여름 내한 때에도 한국산 소형차를 의전차로 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기아 쏘울을 의전차로 사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준비 당시 국산 경차 및 소형차로 택한다는 소식에 국내 중-소형차 4사 관계자들이 긴장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교황 의전차로 선정될 시의 홍보효과를 노릴수 있기 때문. 특히 경차를 만드는 한국GM과 기아자동차가 큰 관심을 보였는데 최종적으로는 경비 문제 등으로 기아 쏘울이 의전차로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방탄차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저격 사건 이후로는 경호를 위해 방탄차를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경우에는 '''"정어리 깡통 안에서는 대화가 안 됩니다."'''는 말을 하며 의전 때는 앞서 말했다시피 소형차를, 퍼레이드 때는 사방이 뚫린 무개차를 즐겨 탄다. 심지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 지역 방문 때도. 프란치스코 교황 본인은 경호 문제에 대해 "내 나이쯤 되면 잃을 것도 없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라는 말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있다. #
- 오펠 CEO Karl-Thomas Neumann이 최근 바티칸을 방문하여 친환경차 Ampera-e를 전달했다.
이런저런 면이 합쳐져서 상당히 인기가 많은 교황이다. 당장 나무위키에도 하위문서가 있는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일하다. 하지만 개혁적이고 동성애자 및 무신론자들에게 관용적인 면 등으로 인해 극렬 안티가 많고, 심지어는 적그리스도 소리까지 듣는 교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비종교인들은 그에게 매우 큰 감동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베네딕토 16세의 퇴위와 연관시켜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의 재임기간을 종신제에서 임기제로 바꾸려는 게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하기도 한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기에 대해서 어떤 언급도 한 바 없지만, 만약 프란치스코 교황도 전임자처럼 선종이 아닌 생전 퇴위를 선택한다면 가톨릭 내에서 교황 임기제에 대한 논란이 불붙을 가능성도 있다.
2014년 3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았다.
번역기 하나가 교황을 전쟁광으로 만들어놓았다.관련 링크(1), 관련 링크(2)[41] 사실은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 2번 강조한 것 뿐이다. 이것 때문인지 방한 이후 교황의 인기가 급격히 올라간 한국 인터넷 상에서 교황의 발언마다 '''교황님께서 (OO와의) 전쟁을 원하신다!!'''와 '''결코 다시 전쟁! 결코 다시 전쟁!!''', '''성전이다 우매한 이단들아!''' 같은 장난스런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는 개드립이 생겼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호의가 섞인 농담이지, 부정적으로 비꼬는 의미가 아니다. 심지어 네이버 검색어에도 서로서로 연관검색어로 나온다. 교황이 창문을 통해서 손으로 하트를 그리는 모습 결국 트위터 기본 제공 번역기가 Bing에서 구글로 바뀌면서 정상적인 번역으로 보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교황마저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에 대해서는 '''전세계의 협력 하에 군사적으로 토벌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이들은 그 만한 비난을 들어도 싼 놈들인건 맞다. '''매우 많은 악행을 저지른 북한에게조차도 평화를 내세운 교황이 저런 말까지 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일지는 해당 항목 참고.''' 결국 현실이 된 건지 미군과 러시아군이 손을 잡고 얼마 전까지 싸우던 현지 군벌들까지 단합하여 두들겨 팬 끝에 2018년 현재는 이라크 강역을 전부 잃고 시리아 사막 지역에 찌그러져 있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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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교황의 젊었을 적 모습으로 알려진 사진. 이 사진은 합성이다. 하지만 필리핀 방문 당시의 사진을 보면 헤비메탈이랑 인연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ILY'''를 의미하는 영어 수화 표현이며 이는 "I Love You"의 약자, 즉 '당신을 사랑합니다'란 의미다. 자세한건 ILY sign 항목 참조.
2014년 5월 5일/12일자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기사를 쓴 사람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인터넷은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며 극찬했다. 하지만 "그러나 인터넷에 계속 접속해 있으려는 과도한 욕망은 친구와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소외될 수 있다"라는 발언으로 인터넷 중독에 대한 주의를 촉구했다. 인터넷을 극찬하지만 인터넷 중독은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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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015년, 교황의 친구 엘리자베타 피크의 책 <교황 프란치스코의 인생과 혁명>을 바탕으로 한 아르헨티나 영화 Francis: Pray for Me가 개봉했다. 해당 영화는 2016년 3월 10일 국내 개봉.
2016년 촬영 예정인 종교 영화 <Beyond the Sun>에 '''본인 역으로 출연 예정'''이라고 한다. 가톨릭 역사상 최초로 교황이 영화에 출연해 연기를 하게 되는 것. 다만 예전에 비오 12세도 연기까지는 안 했지만 독일 영화에 찬조출연한 적은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8aLzycbkH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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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배우 조나단 프라이스[44] 와 도플갱어 수준으로 닮았다. 이미 해외에서는 유명한 사실. 심지어 이런 동영상이 만들어지거나 대놓고 '''프라이스가 교황을 연기하는 중'''이라는 드립도 있다. 하필 프라이스가 에비타에서 아르헨티나인인 후안 페론 역을 맡은 적도 있어서, 프라이스의 새 역할도 아르헨티나인이라는 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거기다가 왕좌의 게임에서는 칠신교의 수장인 하이 스패로우 역할을 맡았는데 작중에서의 행적이나 역할도 상당히 매치된다! 다만 조나단 프라이스는 부패로 악명높은 추기경인 토머스 울지 역도 했다는 게 함정.
관련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국산게임 엘라의 2048에서는 '''프란체스코 교황'''의 DNA를 복제한 클론이 등장한다. 일종의 패러디 캐릭터로 볼 수 있을 듯.
그리고 2019년에 지난 2013년 콘클라베를 다룬 영화,<두 교황>(THE TWO POPES)에서 조나단 프라이스가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역을 맡아 연기하게 되어 재미로 이야기하던 장난들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상대역인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역을 맡은 대배우 안소니 홉킨스도 대단한 싱크로율을 보여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예고편을 보고서는 "다큐인 줄 알았다"고 평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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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기간 동안 약 100여회 이상의 시복식을 거행해 약 1,200위의 복자를 시복했고, 16회의 시성식을 거행해 892위의 성인을 시성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때 시복된 복자의 목록은 시복식/목록/프란치스코(교황) 문서를, 시성된 성인의 목록은 시성식/목록/프란치스코(교황) 문서를 참고.
페미니즘에 대해 치마입은 마초라고 비판하였다. 이에 대해 페미니스트를 제외하면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20년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이 브라질의 섹시 모델의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 화제가 되었다. 이를 처음 조명한 언론사는 교황께서 발정나셨다는 트윗을 날렸고, 해당 모델이 직접 이를 리트윗하여 적어도 자기는 천국에 갈 것이라는 재치있는 반응을 보였다.
2021년 1월에는 패션 잡지의 표지 모델로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
2021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음모론자들이 캐나다의 황색언론인 Conservative Beaver가 1월 10일에 보도한 가짜뉴스# '교황이 아동성범죄 혐의로 체포되었다'를 트럼프측 변호인단 린 우드가 그대로 인용한 것에 단체로 낚였다. 교황 체포 뉴스가 나간 지 3일 후 교황은 1월 13일 바티칸 공식 영상에 나왔다. #
9.1. 홀리 슈퍼게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16강 7경기가 말 그대로 '''바티칸 동족상잔 매치'''[45] 였던지라 바티칸 트위터에서 이런 이미지를 유머로 올릴 정도였고 이런 이미지가 올라와서 진짜 따로 본…줄 알았는데, 해당 글의 리플에 달린 링크를 보면 저 사진은 2013년 5월 4일에 보도된, 전혀 다른 일의 사진이다.
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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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와 독일의 대결이 성사됨으로 인해, 전/현직 교황의 모국 간의 수퍼매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독일인이고[46] 이례적으로[47] 생존해 있던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대단히 스케일이 커진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교황청은 "교황께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이 경기를 관전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으며, 베네딕토 16세의 비서인 게오르크 겐스바인 대주교도 "베네딕토 16세께서는 결승전을 직접 보지 않고 먼저 주무셨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