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비판 및 논란

 




1. 개요
2. 상세
3. 비판
3.1. 불특정 다수 남성 비난, 공격
3.2. 문화 탄압
3.3. 여성의 신체 노출 억압
3.4. 남성의 성욕에 대한 몰이해
3.5. 젠더 기반 흑백논리
3.5.1. 이게 다 젠더 때문이다?
3.6. 흑백논리
3.7. 이중잣대
3.7.1. 인신공격과 외모지상주의적 이중잣대
3.9. 일관적이지 못한 모순적 논리
3.9.1. 정자은행 출산 관련
3.10. 여성우월주의로의 경도
3.10.1. 남성배제
3.11. 숟가락 얹기
3.12. 무책임
3.12.1. 사과 거부
3.12.2. 불리하면 일부 이단
3.12.3. 강약약강 및 선택적 인권 운동
3.13. 보다 정치적 차원에서의 비판
3.13.2. 급진적 방법에 대한 비판
3.14. 시골귀농인에 대한 성차별 근절 소홀
4. 논란
4.1. 진짜, 가짜 페미니스트?
4.2. 여성 보호에 대한 반대
4.3. 집안일과 사회활동
4.4. 임신과 출산
4.5. 원시시대는 모계사회였다?
4.7. 현실과 이론의 괴리감
4.8. 성소수자와의 관계
4.9. 강간의 해결에 대한 방법론적 문제
5. 국내의 경우
5.1. 양극화
5.2. 방향성 상실
5.3. 외모지상주의 및 성고정관념
5.5. 중/상류층 인텔리 여성 위주
5.6. 청소년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추진
5.8. 성격차지수 중하위권 논란
5.9. 백인우월주의
5.10. 극단적 알페스 옹호
5.11. 예산 낭비 및 횡령
6. 정리


1. 개요


"'''여성해방운동가들은 모두 브래지어를 태우고 남자를 증오하는 정신병자들입니다. 임신이 불행이고 아이를 낳는 것이 재앙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정신나간 여자들을 어떻게 용인할 수 있겠습니까?"'''

골다 메이어(이스라엘의 여성 총리)

2016년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페미니즘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123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123이 동시에 커짐으로서 양측 사이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인용문들을 보면 알겠지만 전세계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응도 극과 극으로 간 상황이다. 대한민국보다 먼저 페미니즘이 도입된 스웨덴, 핀란드 등 서유럽-북유럽권과 영국,미국 등 구미권에서도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경우가 꽤 있다. #
현재 한국의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와 여성주의의 혼합체 이다.

2. 상세



당연하지만 페미니즘은 하나의 사상이자 이념(ideology)이라서 논란과 문제점이 따라온다. '''페미니즘은 남녀평등을 위한 여권 신장이 아니라, 여성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여성우월주의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적 주장이 그 예시. 한국 내부에는 1970년대 말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한국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계기가 되는 데 일조하였으며 1980년 중엽에 발전하였다. 하지만 이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곡해하여 이용하는 여성인권단체 출신 정치인들과 어설프게 배운 페미니즘을 가부장적 사고와 연계시켜 레이디 퍼스트 형식으로 전파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어, 무조건 여성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쪽으로 발전하였다.
이제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페미니즘이 성역화되어 일체의 반론을 거부하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성차별주의자 혹은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페미니즘계가 저지른 각종 문제는 페미니스트와 관계없는 페미나치의 소행이라며 꼬리를 자르고 있다. 심지어 여성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면 꼴마초 혹은 여성혐오자로 몰아 상대방을 마녀사냥하고 명백한 잘못을 옹호하거나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사건에 무조건적으로 여성의 편을 들어주는 사건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런 사례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미국의 팀 헌트 경 여성비하 모함사건이 있으며, 국내의 사건으로는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가 주도한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이 있다. 멀리갈 것 없이 2017년 5월의 나무위키 내에서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승민의 20대 득표율에 페미니즘에 환멸을 느낀 남성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분석에 대해 '그럼 왜 여자가 설거지 하는 게 당연하다는 꼰대 수준의 홍준표는 20대에서 꼴찌인가?' 라는 논리를 들이밀며 페미니즘 반대자 = 여성차별 꼰대로 몰아세우려 했다.[1]
결국 페미니스트들의 온갖 폐단으로 인해 아래 후술할 내용들을 비롯하여 페미니즘에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졌으며, 국내외 할것 없이 페미니즘의 이미지는 점점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유튜브에 페미니즘을 한글과 영어로 검색해 보면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인 내용이 훨씬 더 많다. 물론 인터넷 상의 여론은 대부분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기는 하지만 이곳은 세계 최대의 동영상 사이트라서 더욱 위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이거는 페미니즘의 현주소를 제대로 표현한 만화이다.[2]

3. 비판



3.1. 불특정 다수 남성 비난, 공격


주로 래디컬 페미니즘 계열이 저지르는 대표적인 사건사고 중 하나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류인 트페미, 메갈리아 등등 넷페미들의 만행[3], 그리고 정치인[4]들과 언론의 옹호가 대표적인 예시다. 이러한 것들은 순수하게 여성혐오, 차별, 비하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등 돌리게 하고, 사회 내부에서 젠더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자칭''' 온건 페미니스트[5]들도 이러한 패악질을 옹호하고 있어 화전양면전술을 의심케 한다.

3.1.1. 성폭력 무고죄


남성이 가해자로 지목되고 여성이 피해자로 지목된 성범죄 의혹에서는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을 맹렬히 공격하는데, 나중에 해당 남성이 가해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아니면 말고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거나 오히려 ''''남자가 조사한 것이니 믿을 수 없다(!)'''며 맹렬한 공격을 계속한다.
보통 이러한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더 나아가서는 스스로 피해자 행세를 하며 애꿎은 남성에게 성범죄의 누명을 씌우는 경우도 있다. 여론의 지지 혹은 정치적/금전적/사회적 이익을 노린 무고가 먹혀들기 쉽게, 혹은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에게 주어지던 보호 장치를 치워버리는 쪽으로 법이나 행정의 체계를 바꿔버리는 정치권, 사법계, 수사기관도 공범. 이는 법, 정치, 공권력, 사회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미투 운동의 문제점으로도 지적되는 부분으로, 실제로 미투 운동에서 여성이 가해자인 경우는 거의 공론화가 되지 않고 있다. 사례에 대해서는 성폭력 무고죄/사례 문서 참고.

3.2. 문화 탄압


페미니스트들, 특히 래디컬 페미니즘이나 보수주의적 페미니즘 계열에서는 문화 콘텐츠, 관련 종사자들에 대한 공격을 자행하거나 이걸 옹호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문제다. 그들이 주로 세우는 명분은 서로 다르지만[6] 어쨌거나 탄압인 것은 맞다. 이는 그 사회의 표현의 자유문화 산업을 모두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문화 탄압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없지는 않지만 수나 영향력이나 미미한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2011년에 유명 페미니즘 언론으로 알려진 제제벨닷컴이 페미니즘을 대체할 단어 공모전에서 이퀄리즘이 나온 적이 있는데, 이 이벤트는 사실 여성 연예인들[7]이나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여성들을 무턱대고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이라고 비하하는 바람에 논란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사례로 대한민국의 경우 과거 YWCA의 만화 탄압이 있었다. 80대 중반 ~ 90년대 초반, 대표적인 여성단체인 YWCA에서 청소년 보호등을 구실로 만화 탄압 및 검열을 실시, 그러지 않아도 독재정권 시절부터 탄압받으며 힘겹게 키워온 대한민국 만화계를 아예 박살내 버렸다.[8] 실제로 영미권에서도 보수 개신교와 연대한 보수주의적 페미니즘이 문화에 대한 해코지를 자행하거나 옹호하는 경우가 특히 많은 편이다. 물론 YWCA가 끈 어그로를 보수정당 집권기의 여성가족부가 게임에 관해 또 끌어버리면서 재림이 일어났다. 그리고 치어리더를 없애버리자고 워마드에서 들고 일어난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포뮬러 1이 그리드 걸을 없애버렸다가, 직장을 잃은 그리드 걸의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이 또한 페미니스트들의 만행이다. 이 때문에 영국의 프로다트협회는 여성 경기 안내원을 없애고 만다.
이 부분에 대한 이중잣대 또한 문제다.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과 소녀전선 K7 업데이트 연기 논란에서 보듯이, 페미니즘 진영은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며, 불매를 선언하는 사람들을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 돈으로 갑질하는 사람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러브앤프로듀서 성우 교체 논란 때 자유를 사랑하며, 돈을 권력으로 휘두르는 것을 비판하는 페미니즘 진영은 없었다. 이렇게 일관성은 없는 태도는 결국 자유를 악화시키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

3.3. 여성의 신체 노출 억압


페미니즘에서 여성의 신체적 노출에 대한 의견은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보수주의적 페미니즘은 퇴폐적이라고 보고, 래디컬 페미니즘은 당당한 것이라는 의견부터 성적대상화를 방관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문제는 이것이 과격한 형태로 나타나서 여성의 개인적인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영미권 배우 엠마 왓슨은 유명 페미니스트인데, 2017년 3월, 같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왓슨이 악플 테러를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페미니스트들이 엠마 왓슨이 화보 촬영에서 가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다고 비난했고, 엠마 왓슨은 이에 항거했다. [기사] '노출 논란' 엠마 왓슨 "페미니즘은 여성을 때리는 도구가 아냐"
국내 유명 쇼핑몰 대표 이희은 역시 자신의 SNS에 섹시한 복장을 올리자 어떤 페미니스트가 그런 무개념짓이 여성 인권과 페미니즘을 후퇴시킨다는 악플을 달았다. 그러자 이희은은 당신은 그런 댓글로 어그로 끌어서 페미니즘을 깎아내리고 싶어하는 반대파일 뿐이라며 본인이 입고 싶은 옷 입는게 진짜 페미니스트라고 썼다.
“이런 무개념 때문에 한국 여성인권 바닥” 말에 쇼핑몰 대표가 한 말
물론 원론적으로 섹시한 옷을 입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게 아니라 이것으로 인한 성상품화를 비판한다. 실제로 위의 이희은 역시 성희롱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성희롱 고발계정[9] 다만 SNS에서는 보통 어중간한 인식으로 무분별하게 비판을 날려대는 사람이 많기에, 정확한 성향은 알 수 없다. 물론 근래에 발생한 페미니즘 문제를 모르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자칭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사람에게 "넌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만, 그저 사이비일 뿐이다." 라는 의도로 언급한 것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3.4. 남성의 성욕에 대한 몰이해


남자란 그저 성적 흥분과 동시에 ‘발기한 괴물’로 돌변해 버리도록 만들어진 ‘로봇’ 쯤으로 알고 있는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나 같이 야한 여자[10]

는 남자의 육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나는 여자가 남자의 궁둥이를 살짝 깨물어줄 때 남자가 미치도록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남자의 앞가슴 역시 여자처럼 성감대를 갖고 있어서, 여자가 가슴을 보드랍게 만져 주거나 키스해 줄 때, 작은 젖꼭지지만 보기 좋게 발딱 부풀어 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여자가 남자의 귓바퀴를 혀끝으로 뱅뱅 돌려가며 핥아줄 때, 남자는 갑자기 의기양양해져 가지고 졸지에 달아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다가 여자가 뜨거운 입김을 남자의 귓속에 ‘훅’하고 불어넣을 때, 남자는 다 죽어가는 환자 같은 신음소리를 내며 마음속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나는 야한 여자다. 나는 남자에게 서슴없이 몸을 주는 여자다. 야한 여자는 섹스에 적극성을 갖고서 '여성해방'에 대한 강박증에서 나온 '성(性) 혐오증' 따위의 촌스러운 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섹스를 즐길 수 있는 여자다.[11]

어쩔래? 나를 마초들의 노예라고 욕할래? 모든 건 내 자유야.

'''난 너희들의 위장된 출세욕이 싫어.'''

마광수, < 한국 페미니스트 여성들에게 보내는 충고 >

'''(중략)'''

남성은 남성의 욕망이 작동하는 방식을 안다. 그러나 이런 욕망은 공적으로 취급되지 못한다. 남자는 영상을 원하지 음성을 원하지 않는다는 항변은, 영상이나 소리나 똑같이 처벌되어야 할 욕망이고 소리를 원하는 더러운 욕망을 가진 남자가 소수라도 존재하는 한 싸잡아서 취급될 수밖에 없다. 여성들(과 여성보호진영)은 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남성의 욕망 자체가 죄악시되는 상황에서 디테일한 취향과 경향성은 더러움과 덜 더러움의 문제일 뿐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남성은 공적으로 다뤄질 가치가 없는 총체적인 더러움의 덩어리가 되어가는 반면, 여성의 욕망은 아주 세밀하게 탐구되고 재평가된다.

욕망과 권력 모두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는 문제적 현상이다.

나는 성 관련한 사안에서 페미니스트 여성 기자들의 단선적인 기사를 보면 '''남자의 욕망, 나아가 인간의 욕망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줄곧 받는다.''' 이들에게 남성 파트너가 없거나, 있다 해도 자유롭고 깊은 성적 대화를 나누는 관계에 이르지 못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혹은 성적 행위는 욕망이 아닌 권력의 문제라는 그녀들의 인식 때문에 파트너가 성적 대화를 기피하거나 억압적인 상태에 놓여있을 수도 있다고 짐작한다.

파트너에게나 고백해야 할 자신의 내밀한 성적취향을 만인에게 공개하면서 페미니즘 논리를 설파하는 현직 남성판사의 기이한 글을 보면서도 들었던 생각이다.

페미니즘이 지지를 얻을수록 성에 대해 여성들이 보수화되고 청교도적인 성적 엄숙주의가 강화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마주한다. 게다가 우리사회에 뿌리깊은 유교적 성윤리와 남성혐오가 만나 남성의 성적 행동을 모두 혐오하며 통제와 처벌로 연결시키려 드는 세상이 되었다. 불행한 일이다.

'''(중략)'''

이선옥, < 성적 영역에서 관용과 프라이버시의 중요성 >

마광수, 이선옥이 페미니즘에 대해 지적한 문제점 중 하나가 페미니즘이 전근대 시대에 억압받아온 여성의 성욕에 대한 담론이 있지만 남성의 성욕에 대한 담론은 '''여성혐오''' 낙인으로 금지된다는 것이다. 대안우파 남성주의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의 남성 성욕 탄압이 성을 무기로 남성을 지배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꽃뱀, 골드디거의 언행을 페미니즘과 연관지은 억측이다.
이는 한국의 뷔페미니즘만 겪는 문제가 아니고 세계적으로 1세대 페미니즘부터 현재 페미니즘까지 겪고 있다. 다만 성긍정 페미니즘, 립스틱 페미니즘은 남성의 성욕을 이해하려고 하기에 예외가 있다. 오해하지 말 것은 상호교차 페미니스트들도 남성과 연대하고 남성혐오와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일반화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들도 남성의 성욕에 대한 연구의욕이 없다.
1960년 당시 성긍정 페미니즘은 남성의 성욕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여성의 성욕만을 내세운 래다컬 페미니즘은 1980년대에 안티포르노 페미니즘으로 전향하게 되었다. 그들끼리 치룬 '''여성주의 성 전쟁(Feminist Sex Wars)'''으로 성긍정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약화되었고 안티포르노 페미니즘도 1990년 전후로 몰락했지만 안티포르노 페미니즘이 끼친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에 현재 주류 페미니즘은 남성의 성욕은 절제되어야하고 심지어 남성의 성욕은 가부장적 남성성때문에 왜곡된 것이라고 간주하게 되었다. 이런 여파는 미투 운동성상품화 반대에서 드러나게 되었다.
이는 성적 자유주의페미니즘은 연관이 없다는 사례이다. 실제로 현재 주류 페미니스트들은 안티포르노 페미니즘정치적 올바름의 영향으로 1980년대 초까지 있었던 성혁명을 시스젠더 남성 위주의 성적 자유주의라고 폄하하고 있고 프랑스에서 68혁명 결과로 생긴 누디스트 비치도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이용하지 않고 있다.

3.5. 젠더 기반 흑백논리



3.5.1. 이게 다 젠더 때문이다?


주류 페미니즘은 다른이의 사회적 억압에 정말이지 무관심하다.[12]

이를테면 주류 페미니즘은 모든 사회적 억압의 출발점인 계급 문제에 대해 정말이지 무관심하다. 그들은 아마도 여성이라는 계급이 일반적인 의미의 계급보다 더 근본적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 김규항

페미니즘의 담론이 점차 성별을 기준으로 한 니편/내편식의 이분법적인 편가르기로 고착화 되고 있다는 논란이 있다. 실제로 이것에 대해 우려하는 학자들도 상당수이다.
그외에도 페미니스트들이 성별 대립에만 함몰되어서 사회 계급과의 연관관계나 계급간의 차이 등 다른 사회적 변수들에 대한 고려와 이해가 지나치게 부족하며, 성별위주로만 접근한 나머지 페미니즘 담론이 점차 편향적이고 경직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현실 사회에서는 다양한 사회적 억압 요소들이 있는데, 성별뿐만 아니라 나이, 출신 지역, 학벌, 타고난 재력의 차이에 의한 기회, 교육의 제약, 정보의 비대칭성[13] 등이 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은 현실에서 무시 못할 요소들을 무시하고 성별 문제만을 중요시 여기며 다른 요소들을 싹 무시하고 있다. 같은 여성일지라도 학벌, 나이, 부모의 재력에 의한 교육 수준, 정보의 불균등, 기회의 차이등으로 인해 사회적 지위가 차이가 나고 이러한 지위의 차이가 왜곡되어 사회적 억압으로 이어진 결과 사회에서 받는 대우가 같은 여성일지라도 하늘과 땅 차이인데, 페미니즘은 이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때문에 아예 여성이라서 차별을 받는 건지 다른 사회적 요소에서 기인한 사회적 억압에서 차별을 받는 건지 그 구분과 기준이 모호한 경우도 생긴다. 당사자가 남성이었더라도 멸시와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을 피할 수 없는데도 페미니즘 담론에 지나치게 함몰되어서 자신이 받는 사회적 억압을 단지 성별에 의한 것으로만 치부하기도 하며, 심지어 법적 또는 윤리적 문제를 일으킨 경우에도 단지 여성이라서 처벌 또는 지탄을 받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14] 물론 여성주의니 여성중심의 분석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 뒤에 사회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시각이 심각하게 걸여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남성 문화로 보다 보니 남자가 잘못했다는 결론에 종속되고 그 결과만 얻으면 거기서 논의가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15] 그리고 이러한 사례들이 쌓이면 여성만이 사회적 억압을 받는 듯한 착시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남성이라고 해서 이러한 요소들에서 자유로운가 하면 전혀 아니다. 남성들도 이러한 나이, 출신 지역, 학벌, 타고난 재력의 차이에 의한 교육의 불평등, 정보의 비대칭성등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억압받고 이들 요소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속박되어 있다.
때문에 페미니즘 내에서도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사회 계급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며 주류의 위치에서 기득권을 줄곧 누리며 위에서 군림하며 살아가는 여성들도 있는가 하면 사회적 위치와 권력에서 소외된 피지배 남성들도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들도 사회적 지위를 근간으로 한 현대 사회의 엄격한 상하위계질서에서 소외자로서 불합리한 대우와 멸시, 차별을 줄곧 받아온 피해자들이라 연대가 가능하다고 보고 페미니즘 담론이 성장하기 위해선 이들과도 연계가 필요하다고 보기도 한다. 물론 이들은 페미니즘은 여성을 위한 것이며 남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기존의 페미니즘 주류에 의해 크게 비판받는다.

3.5.2. 아동학대


심한 경우 아이의 성적 결정권을 빌미로 아동학대를 일삼기도 한다.
일례로 3살 아이 앞에서 천주교인 페미니스트 부모가 2020년 10월 11일 동화책을 죄다 찢어서 버리는 아동학대를 벌인 전적이 있는데 육체적 학대는 아니었을지라도 정신적 학대라 정상참작이 불가능한 사례였다. 원본비판1비판2 원본은 삭제되었으나 이미 인터넷 커뮤니티의 사이트에 반면교사로 남은 지 오래며 이후 사과글을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다. 이후 본인이 2021년 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에서 범인들의 학대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내로남불을 보여주기도 했다.

3.6. 흑백논리


한겨레가 나름대로 '진보'를 표방하고 있다면 더 이상 여성주의에 대해, 여성운동계에 대해 무책임한 자세를 보여선 안 될 것이다. 여성주의와 여성운동을 쉽게 폄하하는 태도에 있어선 조중동과 같은 보수 언론과 별 다를 바 없다.

- "일다" 편집장 조이여울

여성운동 외부에서도 여성운동을 비판할 수 있다. 자신들의 시각과 맞지 않는다고 싣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한겨레와의 인터뷰 거절합니다"에서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거절한 여성주의저널 일다에 대한 기자의 답변.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에 대한 비판에 대해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편향적인 시각을 가지고 적대적으로 나오며, 페미니즘 담론 내에서도 자신들과 입장과 의견이 다르면 흑백논리에 의거 사실상 적으로 규정하며 '너는 저쪽편이다'라고 낙인을 찍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렇게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 것만으로도 여성계가 당사자를 아예 보수주의 꼴마초로 낙인찍는 것은 악명이 자자할 정도다. 당시 김규항조차도 이러한 기준하에 한때 좌파 꼴마초가 되는 굴욕(?)을 겪었다.[16]
심지어 이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우호적인 진보언론들도 예외는 아닐 정도다. 어쩌면 2010년대 중후반 페미니즘에 대해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던 한겨레조차도 자신들과 시선이 다르다고 하여 보수 언론의 트리오 조중동과 다를 것이 없다고 몰아버릴 정도다.[17]
문제는 여성학자나 페미니스트들이 언론 등을 통해서 쓰는 논리들이 이런 경향에 제동을 걸기는 커녕 오히려 더 부추기고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혐오, 동성사회성, 정동의 개념들과 대중적인 언어를 철저히 외면하고 그들만의 학술용어들을 제멋대로 짜집기한 이론들이 단단히 지지하고 있는 견해 세 가지만 봐도 알 수 있다.
1. 여성기가 없고, 여성이라는 사회적 분류에 해당되지 않는 자, 혹은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적인 자들이 내놓는 모든 비판은 수구적이고 남근중심주의에 물든 자들의 불안과 공포가 낳은 억압 혹은 공격이다.
2. 또한, 남근중심주의자들의 연대와 권력은 너무나 막강하고, 페미니스트들은 이들로부터 사방에서 공격당하고 있는 처지이므로, 이에 대응하는 페미니스트들의 그 어떤 행동도 정당화될 수 있다.
3. 남성들이 주장하는 역차별에 대한 감정, 부당함,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등 모든 문제점은 모두 남근중심적인 헤게모니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이 새로운 헤게모니로 자리잡을 경우 이 모든 것은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메갈리아 이후 나오는 여성학자들의 연구라는 것이 거의 이 세 가지 견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살펴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들이 만들어놓은 페미니스트라는 울타리에 속하지 않는 자들이 내놓는 그 어떤 견해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페미니스트들은 그들 무리밖에 사람들과의 논쟁이나 토론을 철저히 회피하거나 외부에서의 비판에 대해서 극심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이나영(교수)가 토론회를 거부하면서 이선옥이나 오세라비 작가를 5.18 망언자로 몰아부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할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경향은 페미니즘 이론을 더욱더 취약하게 만들고 극단로 몰고 가는 한편, 대중이 이들을 외면하게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3.7. 이중잣대



3.7.1. 인신공격과 외모지상주의적 이중잣대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과 안티 페미니스트들의 외모 비하와 조롱은 문제 삼으면서 정작 자신들은 '와꾸 빻은 한남', '한남콘', '십이한남', '파오후남''' '도퇘지', '번탈남' 등과 같은 외모비하 표현을 쓰며 남성의 외모를 조롱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또한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인권을 주장하거나 남성 대상 외모지상주의를 지적하는 뚱뚱하거나 못생긴 남자를 보면 '와꾸 빻은 한남' '못생긴 한남'이라며 욕하는데, 잘생긴 남자를 보면 찬양하기 바쁘다.
네이트 판 같은 곳에 일부러 라는 글을 올려서 어그로를 끌기도 한다. 물론 똑같은 내용으로 못생긴 여성을 욕하는 글이 올라오면 여혐이라 게거품을 문다. 아무튼 자신들이 남혐 어그로임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글에 대해 정당하게 화내는 사람들을 보고 "본인이 못생겨서 화내는 것", "해당사항 없으면 화날일 없는데" "이 글에 화내는 사람들은 못생긴 남자거나, 못생긴 남자를 아들/남친/남편으로 둔 여자"라는 저급한 프레임을 씌워 자신들을 향한 모든 비판을 원천봉쇄한다.
이러면서 정작 자신들(페미니스트들)이나 여성은 절대 외모로 공격 해서는 안되며 페미니스트/여성을 외모로 공격하는것은 매우 부당한 행위라고 주장한다.
즉, 페미니스트나 여성을 외모로 공격하는건 매우 빻은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그 빻은 행위를 똑같이 남자들한테 하면서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써 쇼타콘 옹호 관련 문제도 있다. 어린 여성의 성상품화는 그토록 문제시 삼던 그들이 정작 메갈의 쇼타콘 사건은 이 악물고 옹호했던 것이다. 그들의 로리콘 혐오는 결국 열등감 표출에 불과했다는 걸 알 수 있다.

3.8. 원천봉쇄의 오류


원천봉쇄의 오류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모든 주장에 대해서 비윤리적, 비도덕적과 같은 사전적 평가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리반박을 사전에 차단하는 오류'''이다. 쉽게 말해서 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의 권리를 신장시켜 달라"라는 주장을 하면 "게이들이 항상 말하는 게 저거지...똥꼬충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페미니스트들은 다음과 같이 이러한 오류를 범한다.

'''페미니스트:''' 못생긴 남자랑 애까지 마세요.[18]

'''일반인:''' ? 남혐하지 마세요. 그 논리면 못생긴 여자도 애 낳지 말아야죠. 자식 외모는 아빠만 닮나요? 엄마도 닮는데?

'''페미니스트:''' 혹시 못생긴 남자세요? 아들이나 남편이 못생겼어요? 못생긴 남자랑 사귀는 흉자세요? 해당사항 없으면 화낼 이유가 없죠ㅋ 네 다음 못생긴 한남.

위의 상황에서, 정당한 주장을 하는 일반인들의 주장을, '못생긴 남자' '흉자' 같은 혐오표현과 외모비하를 이용해 원천봉쇄하는 걸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발언을 하면 페미니스트들 끼리는 옳은 말 했다며 칭찬하는 경우가 많다. 반박할 논리가 부족하니 혐오 표현과 외모비하로 자신의 주장을 대체하는 것이다.
이런 주제에 정작 자신들이 못생긴 애들만 페미한다, 쿵쾅쿵쾅, 82키로 김지영 같은 말을 들으면 "페미니스트에게 외모비하를 하는 것만큼 무식한 행동이 없다"면서 게거품을 물며 상대를 '졸렬하게 외모비하나 하는 여혐충'으로 몰아가는데, 정작 자신들이야말로 '졸렬하게 외모비하나 하는 남혐충'인것은 죽어도 모르는 듯 하다.

3.9. 일관적이지 못한 모순적 논리



3.9.1. 정자은행 출산 관련


후지타 사유리정자은행 출산이 이슈가 되면서 여쭉메웜, 트페미 등의 여초 사이트에 있는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이 당사자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정자은행을 이용한 여자도 아기를 기를 자격이 있다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재조명된 문제점이다.
정자은행 출산이 이슈가 되기 전까지 주류 페미니즘은 여성의 낙태권 강화, 독박육아 개선 위주로 강력히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이슈가 되면서 낙태권에 힘을 실으면 페미니스트들이 아기는 기생충이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도 모자라 불법 낙태약을 권장함으로서 아이를 기르고 싶어하며 성매매에서 몸을 망치고 싶지 않은 상식적인 여성들의 반감을 사는 전례가 있었고, 이후 그들이 독박육아 개선과 정자은행 출산에 집중하게 되자 자기들이 그토록 말해왔던 '아기는 기생충이다'와 반대되는 정치적 행동이라 자신들의 논리에 모순이 생겨버리니 페미니스트든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는 사람이든 페미니즘이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갈피를 못 잡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스 갤러리 이후 친페미 언론으로 분류되는 시사IN 등의 페미니즘 진영은 논리적 모순을 방치한 채 후지타 사유리의 정자은행 출산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낙태죄 폐지와 페미니즘식 비혼주의를 정당화에 쓰기 급급해 하고 있다.

3.10. 여성우월주의로의 경도


페미니즘의 가장 큰 비판점은 이 사상 자체가 여성우월주의와 남성혐오로 흐를 위험이 크다는 것. 예시로는 일부 래디컬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여권이 신장함에 따라 남성은 퇴물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거나, 페미니즘을 방패로 내세워 기득권을 얻으려고 하거나 온갖 사회적 문제와 범죄를 일으키려는 이익 집단과 메갈리아, 워마드 등의 커뮤니티들이 우후죽순으로 창궐한 것이 있다.
페미니즘은 어떤 의미에서는 성평등을 추구하는 사상이지만, 그 사상을 실천하는 페미니스트는 결국 인간이고 오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는 인간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한 페미니즘은 이상(ideal)이 아니라 사상(ideology)이기에 절대적인 의미의 성평등과는 관점의 차이가 존재한다. 페미니즘만이 아니라, 이상적인 사상을 따른다고 반드시 '이상적이고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사례는 역사적으로 얼마든지 나타났다. 당연히 페미니즘을 실천한다고 페미니스트가 하는 모든 행동이 언제나 올바른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 페미니즘이 정말 성 평등을 위시한 사상이라고 주장하는 경우 명칭의 문제도 다소 걸릴 수 있다. 성 평등을 주장하는 사상이 왜 '''페미'''니즘[19]인가? 과거에는 성 소수자에 대한 담론이 없다시피 했고, 남성과 여성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여성이 보다 차별을 받는 위치에 있었기에 여성의 권익 신장이 성 평등에 다가가는 빠른 길이었으므로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의 권익도 많이 신장되고 차별받는 남성의 문제도 대두되었으며, 다양한 성 소수자들의 문제까지 나타나는 등 상황이 바뀌었다. 왜 차별받는 '''남성과 성 소수자의 문제까지 페미니즘의 깃발 아래에서 이야기되어야만 하는가?''' 페미니즘 진영은 특히 용어의 문제에 민감하다. 일례로 전이나 지금이나 절대 다수가 남성인 소방관의 경우도 fireman이 아닌 firefighter로 바꾸고 그 외에도 다양한 단어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물론 소방관 일을 하는 여성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fireman이 아닌 firefighter인 것이 맞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단어의 정치적 올바름에 매달리면서 어째서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가 아닌 성 평등을 위시한 사상이다' 및 ''''성 평등을 위해서는 페미니즘을 해야만 한다' 고 주장하는 것인가?''' 페미니즘이 정말로 성 평등을 추구한다면 명칭부터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과연 명칭부터 특정 성을 강조하는 이념 아래에서 정말로 성 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정치적 올바름의 측면에서 재고해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또, 그런 '좋은 의도'를 끌어와 특정 상황에서만 내세우며 방패막이로 사용하려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장애인 인권운동을 예시로 들며, 페미니즘의 정체성 정치를 옹호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회적 인식은 다르다. 우선, 성소수자는 정말로 소수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세력에서 밀린다. 동성결혼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아직도 많은 국가들이 동성 결혼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소위 말하는 서구권조차도 2010년대 들어서야 활발히 인정하기 시작했다. 즉, 서구권조차도 봐도 법적인 차별조차 사라지지 않았거나, 사라진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정도이다.
장애인은 신체적∙정신적 문제를 대다수가 인정한다. 장애인 전용주차 구역과 여성 전용 주차구역에 대한 인식이 다른 이유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스스로도 바뀔 줄 알아야지, '애당초~'라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바뀔 요소 하나도 없다.

3.10.1. 남성배제


  • 본 문서의 위 문단에도 관련 내용이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여자들이 말하는 페미니즘, 이거 참 편리하지 않나요? 왜냐하면, 남자들을 X같이 대한 후, 그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반감을 느끼게 되면, 그냥 "페미니즘은 평등에 대한 거라고요!"라고 우기기만 하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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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로 이아노풀로스

맨 박스도 참고하면 좋다.
우선 반론부터 말하자면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의 명칭이 과거 성이 여성과 남성만으로 구분되던 시절에 만들어진 단어이기 때문에 생긴 불상사이며, 현재는 소수자의 인권을 대표하는 사상으로 자리잡았다고 항변한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의 목적이 '여성의 권익 향상'을 통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지니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남성 인권에 할애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페미니스트들은 인권은 제로섬이 아니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남성의 인권을 퇴보시키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음 이미지만 보더라도 이러한 반론은 지극히 감탄고토스러운 진영논리가 아닐 수 없다. 필요할 때는 정치적 올바름 진영에 섞여서 세력을 불리다가도, 정작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에서는 여성주의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도 인정하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부분이다.''' 관련 칼럼
[image]
페미니즘이라는 명칭의 어원은 femi(feminine)+ -ism으로 성평등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또한 페미니즘의 목적은 여성의 권익 향상이기 때문에 남성 인권에 할애할 이유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어휘는 일상적인 언어 생활에서 분명히 성평등과 거의 비슷한 용법으로 쓰이고 있으며,[20] 이 때문에 종종 남성이 배제된 평등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물론 온건파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에 대한 차별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페미니즘 이념이 여성우월주의 또는 남성에 대한 혐오 문제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 페미니즘 단체와 언론에서는 사실상 '오직 여성만을 위한', 심지어는 여성의 권익을 위해서라면 남성에 대한 차별과 비하도 용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페미니즘이 등장하고 200년이 지난 지금도 페미니즘 진영 안밖에서는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로 의견이 분분하며, 정치인이나 할리우드 배우 등 정치적 올바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종사자를 제외한다면 여성에 비해 남성 페미니스트가 압도적으로 적은 것 또한 사실이다. 당장 (사실상 여성위원회인)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위원회 위원의 절대다수가 여자인 것만 봐도 그렇다.

TERF는 많이 알려진 편이기도 하고 본 문서의 앞의 문단에도 해당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흔히 간과되고 있는 사실이지만 남성을 배제하는 페미니즘의 특징은 젠더퀴어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문제는 모두 주류 페미니즘에서 반대하는 개념인 젠더 이분법의 옹호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자체의 논리적 모순이라고 볼 수도 있다. 3세대 페미니즘의 주장에는 교차성, N개의 성, 옷장담론과 같이 성별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진보적인 페미니즘 비판자들은 이러한 내용들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은 이미 페미니즘이라고 부를 수 없는 다른 무언가가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어쩌면 4세대 혹은 그 이후의 페미니즘은 외부의 영향이 아닌 페미니즘 내부의 진보에 의해서 스스로 페미니즘이라는 명칭을 버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소수자 문제 이외에도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특정 다수를 잠재적 가해자, 젠더 권력자로 매도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하는 논의도 있다. 이는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정치적 올바름 진영의 공통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관한 논의는 정치적 올바름/비판 문서 참고.
이외에 평등을 위한 논의 과정에서 남성을 철저히 배제하는 폐쇄성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비판1 http://blog.naver.com/tama910606/221066928240
-비판2 http://blog.naver.com/tama910606/221066929117
-비판3 http://blog.naver.com/tama910606/221066929838
이는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논평으로 남성도 차별을 겪는다고 낸 민주당에서 낸 논평이 공격받고 철회된 것으로 잘 나타난다. #남성의 고통 호소는 이해가 아니라 공격이 대상이 된다.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로 인한 피해를 남성 역시 입고, 가부장제가 사라지면 남성 역시 혜택을 받을 것에 동의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논의를 내세우는 이유가 실제 성평등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여성우월주의를 성평등으로 위장하는 것에 가깝다. 부유층의 경제 활동이 늘면 그 혜택이 마치 공평하게 수많은 다른 사람에게 갈 거처럼 낙수효과를 주장하듯이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 권리를 취하면 취할 수록 마치 남성 역시 자연스럽게 가부장제의 짐에서 해방될 거처럼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남성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 역시 줄일 수 있으니까.
탈코르셋 운동으로 인해 남성들은 어떤 면이 해방되었는가? 오히려 탈코르셋은 남성을 그저 억압자로 간주했다. 남성들이 여성보다 꾸미기에 덜 압박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이 남성을 배제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남성들은 꾸미기 압박 대신에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할 의무를 훨씬 더 받아왔다. 하지만 탈코르셋 운동은 남성을 면도 넥타이에서 해방되자고 손을 내밀거나 남성들의 부담이 더 심한 분야에 대해서는 담론을 진행시키지 않았다.
독박 군복무에 대해서 페미니스트들이 행동으로 적극적으로 나선 적은 없다. 페미니스트들은 군 복무자에 대한 보상 그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그게 끝이다. 물론 징병제 그 자체가 부조리라고 본다면 징병제를 확대하는 것은 부조리를 확대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대안책까지 마련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방치하고만 있을 뿐이다. 아울러 혐오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군무새 같은 단어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지도 않는다.

3.11. 숟가락 얹기


영화나 드라마 같은 문화 산업 내에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말 그대로 어떤 컨텐츠가 인기를 끌거나 뭔가 이슈가 생기면 어디선가 페미니스트들이 우루루 몰려와 이슈를 독점하기 시작하거나 끼어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작품은 여성 차별적이라 고쳐야 한다, 어떤 작품은 훌륭한 페미니즘 걸작이다, 어떤 작품은 페미니즘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며 다들 한 다리씩 걸치려는 행위를 말한다. 물론 작품에 대해 평가하거나 해석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이고 정당한 비판이거나 주제에 맞는 토론이라면 아무 문제도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이슈를 독점하고, 나아가서는 콘텐츠 자체에 이래라 저래라하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민폐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극히 작은 부분을 오도하거나 침소봉대하여 남의 컨텐츠에 민폐를 끼치는 것은 결국 남의 권리를 해치는 행위가 될 뿐이다. 남의 컨텐츠의 가치를 폄훼하거나 요점과는 아무 관계없는 토론으로 이슈를 소모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서 더 나아가 남의 작품을 마음대로 페미니즘의 상징이라고 선포하거나 남의 캐릭터를 자기네 마스코트로 삼고 로고를 박아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 정도까지 가면 민폐를 넘어서 저작권 침해다. 아무 상관도 없는 캐릭터나 컨텐츠를 자기네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건 소유권자의 동의를 얻지 못한 이상 그저 범죄 행위에 불과하다. 단적으로 말하면 미국 극우들이 개구리 페페를 자기들 상징으로 만들어서 제작자가 직접 조치를 취한 사태와 유사한 경우다.
게다가 보통 이런 행동을 하는 부류들은 '''반론에는 절대 관대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정상적인 논의가 어렵다. 심지어 SNS로 인해 이슈 확산이 가속화되면서는 그 컨텐츠에 별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이슈를 독점하며 민폐 끼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고 있다. 컨텐츠 제작자들로서도 전혀 원치 않는 논쟁에 휩싸여 컨텐츠의 가치가 훼손당할 수 있으니 골치 아픈 일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단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몰려왔던 인원들은 우루루 사라진다. 사실 인기 있는 무언가에 이런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인종 차별, 정치적 올바름, 넷우익 등 좌우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페미니즘 쪽은 수도 많고 이런 행위를 일종의 운동의 성과로 여기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진다.
또한, 단순히 숟가락 얹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들이 각본이나 감독으로 영화나 드라마 내에 억지로 페미니즘 요소를 우겨넣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페미니즘에 치중한 나머지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때문에 스타워즈고스트 버스터즈처럼 잘 나가는 거대한 프렌차이즈에 끼어들어 작품성을 망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게다가 팬덤에서도 이게 끼어들면 팬덤 내에서 상당한 검열적 분위기를 형성하기에[21] 오덕계에서도 이런 페미니즘이 작품에 반영되는 것에 대해 페미니즘 옹호파와 페미니즘 거부파가 의외로 상당히 대립하며, 심지어 남덕보다 페미니즘이 강세인 여덕계에서도 소수나마 안티페미니즘적 경향을 보이는 이들까지 보일 정도다.[22]
그나마 숟가락 얹기만 하면 모를까. 진짜로 여성 인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상해죄 피해자까지 된 사람을 페미니스트들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숟가락을 얹고 조리돌림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TERF 페미니즘 출판사 '열다북스'가 있는데, <젠더는 해롭다> 등 TERF 성향이 강한 페미니즘 서적을 전문으로 번역 및 출판한다. 페미니즘 진영에서 단순히 페미니즘 출판사로 취급받는 게 아니라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출판사로 입지가 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들의 연대를 내부분열시키고 페미니즘이라는 파벌로 국지혜 파벌을 만드는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의 악질적인 사례로 악명이 높다. # 페미니즘의 진정성을 상실시킨 예가 무수한데, 대표적으로 2020년 12월 12일 필리핀 내부까지 입국해 적자까지 보면서 유흥업소 사장들에게 칼로 찌르겠다는 협박까지 받으면서 코피노코피노 피해 어머니를 도운 배드 파더스 보호자[23] 구본창을 여성 착취범이라고 페이스북에서 추종자들과 조리돌림한 사례가 있다[24]. @1@2@3@4@5@6@7@8@9@10 이 때문에 그녀를 옹호하는 페미니스트는 국지혜와 열다북스 쪽 인맥밖에 없다. 페미니스트들의 평가에 따르면 그녀가 TERF든 TERF가 아니든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는 어머니와 아이를 버린 부모를 벌하기 위해 구본창이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 국회 본회의에서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으면 출국금지, 신상공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법을 통과시키는 데에 공헌하기까지 했는데도, 국지혜 측에서 여성혐오자라고 누명을 씌운 점이 문제라고 한다. 이후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가 악의적으로 쓰인 전례가 나왔으니 악의적으로 쓰인 전례가 나왔으니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통탄해하고 있으며 본 사건은 페미니즘 진영의 유년시절의 성폭행 기억은 억압된다처럼 역린이 되었다.
이들의 숟가락 얹기 행태의 정점은 바로 정치권에서의 일이다. 이들은 정치권에서 여성담론을 각목으로 쓰며 지분을 요구한다. 본인들의 능력(=대중적 지지도)은 한없이 바닥에 수렴하는데 권력은 차지하고 싶으니 선택하는 일이 대중적으로 인기 있거나 득표력이 있는(=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등) 정치인, 혹은 정파들에 강짜를 부려서 전부 다 자기네들 사람을 한두명씩 박아놓고 자기들만의 방식의 성평등 서약서에 서명하게 만드는 등의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유명 정치인들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고 나면 계파 안배라는 이유로 모자라는 자들을 억지로 써야하니 국가 차원에서도 손해고 이들이 사고를 치는대로 그 비난은 전부다 이 유명 정치인들이 받아야하니 이 정치인들도 손해고 페미니즘을 비판하는+아니면 페미니즘 자체는 찬성하더라도 이 여성계를 비판하는 절대다수의 유권자들은 페미니즘 거르고나면 찍을 후보가 아예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페미 묻은 후보를 찍어야 하니 국민 대부분에게도 손해만 끼친다. 또한 여성 몫으로 주어진 자리는 진짜 능력있는 여성이 아닌, 여성운동 하는 인간들이 다 차지하므로 이들은 여성들에게도 피해만 끼치는 인간들인 것이다.

3.12. 무책임



3.12.1. 사과 거부


많은 사상운동과 마찬가지로 사상운동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신경쓰지 않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과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 당시 경희대 총여학생회는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학생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러 시위를 하여 본인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2차 가해를 서정범 교수에게 행했다. 최종 무죄 판결이 나온 후에도 사과 요구에 대해 독이 든 사과를 먹는 행위라며 여성의 권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사과하지 않았다.
게구리 핵 의혹 논란 때에도 전디협 측에서 본인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게구리 선수를 자신들의 운동의 기치로 삼았다. 전디협이 내걸은 가치인 '여성프로게이머가 차별받지 않는 미래의 디바'를 위해 '차별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현재의 디바'를 희생시킨다는 조롱섞인 비판 여론이 일기도 하였다. 결국 계속되는 게구리 선수의 요청에 공식 입장문 및 사과문을 올렸지만 게구리 선수의 사건이 게임계의 여성혐오를 수면 위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고, 이로 인해서 많은 논의가 활성화되었다며 사과 없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3.12.2. 불리하면 일부 이단


여성 인사들 중 한두 사람의 언행으로 인해 여성계 전체, 심지어 여성운동계 전체가 매도당한다. 이는 여성운동의 흐름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여성운동계가 어떤 타격을 입을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 언론의 무책임함 때문이다.

"한겨레와의 인터뷰 거절합니다" 여성주의저널 일다 편집장 조이여울[25]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잘못을 저지른 것은 어디까지나 진짜 페미니즘이 아닌 이단이기 때문에 전체 페미니즘에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페미니즘에 분파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페미니즘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페미니즘 내에서는 과격하거나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도 사상의 변방이 아닌, 주류 가까이에 포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석사 이상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과학연구 등에서 여성은 배제되었다는 이유로 자연과학을 자X과학이라고 부르며 여성혐오, 남성우월주의로 매도하는 경우도 더러 있기에 일부 이단론은 힘을 잃는다.
일부 이단 식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도덕적 실태를 지닌다. 위에서도 논의된 바 있듯이 '슬프게도' 여성 우월주의와 그 선을 그을 수 없는 종류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 또한 페미니스트들에게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인정되었다. "그들도 페미니스트고 나도 페미니스트이나 그들과 나는 수단이 다를 뿐이다." 정도의 인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진짜'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이 문서에도 분명 다수 존재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거부하는 사례가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것이 어떠한 심각성을 지니는가. 간단한 비유를 들어 보자. 과격파 운동가를 지닌 두 집단 A, B가 있는데, A집단의 경우 '그들은 우리 일파가 아니라 일부 이단이다.'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룬다. 그런데 B집단은 '그들과 우리는 같은 일파고 그들의 방식을 내가 따르지는 않으나 존중한다.'식의 인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전자와 후자는 크나큰 차이를 지닌다. 범죄를 저지르는 일부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A집단은 '우리의 이데올로기를 곡해한 이단적 행태'라고 분명히 선을 긋고 포용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치나, B집단은 그러한 범죄조차 이데올로기의 다른 해석일 뿐이라며 '방관자적 지지'를 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의 일반적 행태는 어디에 가까운가. '선을 긋지 아니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일부를 그들과 같은 집단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을 통하여', '방관자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이므로 명백하게도 후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도 '일부 이단' 운운은 문제가 발생하자 발을 빼기 위하여 내비친 표리부동한 예시일 따름이고 근본적으로는 단순한 페미니즘 계파적 차이임을 '개인 내적으로 주장'하고 있음과 다름없다.
단순하게 의견을 밝히지 않는 것은 중립일 수 없다. 비도덕적 행위를 앞에 두고 중립을 표방한다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소극적 • 방관적 지지'일 따름이기 때문이다.[26] 이처럼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집단 내부에서 언급되는 '일부 이단' 식의 꼬리 자르기 행태는 일견 비겁하게 느껴지리만큼 안팎이 대조된다고 할 수 있다.
트위터에서 '100명의 페미니스트가 있으면 100가지 페미니즘이 있다.'는 식의 '백 가지 페미니즘' 드립이 잠시 흥하기도 했는데,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를 정당화하려다 진짜 여성인권관련 문제를 제시하는 사람들마저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고.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일부 이단 주장을 들이대는 경우가 많아 페미니스트 자체의 평판을 급추락시키고 있다.
미국에서도 페미니즘의 원로급 인물들이 극단적인 발언을 쏟아내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대표적으로 글로리아 스타이넘 같은 페미니즘의 대표격 인물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힐러리 클린턴 선거 운동에 뛰어들어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을 성차별주의자에 창녀라고 매도한 사례가 있다(...). 창녀라는 단어는 여성 비하인데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비하를 일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당장 한국만 봐도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문화검열 찬성자들이 주요 단체에 상당수 포진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페미니즘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또한, 이런 논리대로라면 가정폭력, 단톡방 성희롱 등의 여성 인권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도 제기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이것도 일부 남성인사들의 언행을 여성계가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일 뿐이니 무시해도 된다는 소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처럼 말로 사람을 마녀사냥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분명히 보여주는 예시가 존재하는 이상, '그저 가벼운 문제'라며 넘어갈 순 없는 것이다.
페미니즘 자체가 공산주의(혹은 사회주의)처럼 하나의 '''사상(ideology)'''이기에 극단적인 현상이 간헐적으로 나올 수는 있다. 위에 나온 사회주의인 경우도 현재의 쿠바나 과거의 현실사회주의를 표방하던 시대의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처럼 그럭저럭 살 만한 사회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소련의 스탈린 시대나 중국의 마오쩌둥 시대, 북한의 김일성 시대처럼 폭압적인 통치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표방한 국가들은 스탈리주의 같은 극단주의자와 손을 못 끊었기 때문에[27] 이들의 기반인 사회주의마저도 무조건 좋지 않게 평가한다. 특히 직접적인 피해자인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평판은 개판이다. '''심지어 북한은 사이비 종교라고 해도 무방한 주체사상으로 아예 갈아탔는데도 그렇다.''' 정치적인 지형을 봐도 유럽에서는 좌익 정당(사회주의 계열 정당, 예로 들자면 영국의 노동당, 프랑스의 사회당)들이 집권하거나 약진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대한민국에 있는 좌익 정당인 정의당이 원내에 진출을 했지만 기를 못 피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문제는 그런 것이 페미니즘에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앞으로도 극단주의자들을 무작정 옹호하거나 방치한다면 이들도 대한민국에서의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처럼 망할 수도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주류 페미니즘의 극단적인 색채를 전부 여성시대, 메갈리아, 워마드 탓으로만 돌리는 성향이 강하다. 미러링, 만물여혐설, 잠재적 가해자, 젠더 권력 논쟁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주류 여성단체나 인터넷상의 넷페미들은 메갈리아의 행동이나 논리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적어도 반대하지는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본인들 쪽에서 문제가 터지면 메갈리아의 행동이라고 하거나 일부의 문제라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 메갈리아가 아닌 페미니즘이 메갈리아 측의 논조에 동조하거나 극단적인 소리를 낸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2, 3
최대한 우호적으로 해석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도움이 된다는 정치적 이유라고 봐도,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나치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지위 향상을 기치로 세우는 사상이지 남성혐오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하는 사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쪽은 잘라내고 배격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 명분이 없는 사회운동은 효용성을 잃기 쉬우므로, 이런 식의 은근한 옹호는 대중의 냉소를 사고 본인들에게도 뼈아프게 돌아올 확률이 높다.[28]
2020년 초의 한국 상황을 보면 극단주의 페미니스트들을 일부 이단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페미니스트가 차라리 나은 편이다. 숙명여자대학교 트랜스젠더 여성 입학 허용 논란 사건에서 숙명여대 내부의 반발로 트랜스젠더 여성이 입학을 포기했는데, 정의당은 숙명여대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교육당국을 비판했다. 한국의 페미니즘 수준은 일부 이단조차 주장하지 못 할 정도로 자정 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2020년 11월 19일 아청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이슈가 되었는데, 위법논란이 많은 법임에도 페미니스트들이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고 통과시키려 하는 바람에 역풍을 맞아 공인 페미니스트들마저 공개적으로 찬성하는 움직임을 내지 않고 있다. 개정안 이전에는 단순히 아동이 묘사된 2D 짤을 소지하거나 배포하면 잡혀가는 수준이라 조금만 조심하면 문화업계에 직접적인 타격이 없었는데, 개정안 통과가 확정되면 한국 문화업계에 경제적 타격을 입히는 것도 모자라 문화업계 종사자들을 단 한 번의 검열로 억울한 범죄자로 전락시키는 명백한 악법이기 때문이다. 이는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때 트페미 공인들이 발 벗고 나서 넥슨을 부당 해고 기업이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인 것과 대조적이다. 다른 국민들의 생계에 위협이 가는 법을 자신들이 만들면 직접 책임지지 않고 도망가기 바쁜데, 그와중에도 익명 계정들로 무보수 무조건 찬성 댓글 알바짓을 하는 추태를 보이고 있다.

3.12.3. 강약약강 및 선택적 인권 운동


페미니스트들의 프로불편러적이며 폭력적인 검열에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사회적 지위가 낮은 존재에게 차별주의자 낙인을 붙이는 무고죄를 벌일 정도로 폭력적이면서 CEO 등의 사회적 지위가 높으신 분들에게는 찍소리도 못하고 점잖게 욕한 지 1주일만에 사과하는 추태를 보이기 때문이다[29]
대표적인 예시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2004년부터 2020년까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것을 그나마 여성가족부가 지속적으로 공론화시키려고 노력할 동안 오프라인의 페미니즘 세력의 힘을 등에 업은 여쭉메웜, 트페미 등의 여초 사이트 페미니스트들은 단 한 번도 공론화시키지 않고 가볍게 잊어버리는 사례도 있다. 남성혐오에는 열을 올리면서 정작 진짜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또한 2014년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성추행 사건의 강석진 교수가 국내에서 충분히 죗값을 치르지 않고 2019년부터 아랍에미리트의 대학에서 도피성 교수 재직을 택하였음에도 대한민국의 여성인권단체들과 여성가족부와 정치권의 페미니스트들이 본래라면 천인공노해야 할 일임에도 외국 페미니즘 진영과 연대해 성범죄자 교수를 임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항의시위를 벌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에서 적극적으로 유죄추정의 원칙을 광적으로 주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중잣대라 할 수 있다.

3.13. 보다 정치적 차원에서의 비판



3.13.1.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


페미니즘은 현대에서 일어나는 정체성 정치의 대표주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체성 정치는 이런 저런 비판을 많이 받고 있으며 문제점 또한 많이 지적되어 왔다. 그에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싶다면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론 참고

3.13.2. 급진적 방법에 대한 비판


"성평등은 지지하지만, 페미니즘은 지지하지 못하겠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다. 즉, 페미니즘이 성평등을 지지하는 것까진 자신도 지지하는데 성평등을 이루기 위한 방법론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건 국내나 해외를 막론하고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고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생기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이다. 특히 래디컬 페미니즘이 강세인 지역에서 두드러지는 반응이니 사실상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환멸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일이다.
일례로 영국에서 벌인 조사에 의하면 총 인구의 2/3 이상이 성평등을 지지하지만, 오직 7퍼센트의 사람만이 페미니스트라고 응답했다. 해당 기사
몇몇 페미니스트들이 하는 착각들 중에 하나는 "쟤는 성평등을 이루려는 목적을 가진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으니까 성차별주의자야." 같은 것이 있는데, 전혀 틀린 생각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 몇몇 이들은 페미니즘을 볼 때 성평등을 추구한다는 목적성을 보는게 아닌, 성평등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적합성을 보는 것이고, 그 적합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페미니즘"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해놨지만 이 세상에는 많은 페미니즘이 있고 그만큼 많은 방법론이 있다. 그러나 대중에게 제일 와닿는 페미니즘은 그 목소리가 정부에게까지 잘 들릴말큼 큰 목소리를 내고 정책 형성에 영향을 주는 페미니즘이다. 즉, 그런 거대한 페미니즘이 그 시점에서는 페미니즘의 대표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대중의 인식을 차치하더라도, 정부의 정책 형성 기능에 영향을 줄 정도면 "주류"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런 페미니즘 집단이 대부분 사회적, 문화적 요소에도 할당제 등의 공권력을 투입한 급진적인 변화를 선호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당장 멀리 갈 것도 없이 정부기관이나 페미니즘 단체가 성평등을 위한답시고 남녀성비가 틀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남녀할당제를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그에 준하거나 그보다 더한 특혜를 찍어내는 것을 보자. 이 "성평등은 지지하지만 페미니즘은 반대"하는 사람들은 할당제나 특혜제공 같은 것은 성평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어서는 안되거나 사용되더라도 엄격한 기준에 따라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성평등을 위한답시고 이런 행태를 보이니 당연히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의 할당제여성가산점 등에 대한 관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자.
이 관점은 할당제 등은 본질적으로 특혜적 성격이 있다고 보며, 남녀할당제와 같이 남성을 향한 특혜든 여성을 향한 특혜든 이러한 조치 자체가 근본적으로는 공평한 경쟁 자체를 방해한다고 본다.
만약 어떤 문제로인해 불평등이 생겼다고 하자. 그 문제가 장애나 난치병과 같은 선천적인 혹은 해결하기 요원한 문제라면 당연히 할당제나 특혜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인한 것이라면 그 근본 원인 자체를 해결해야지 단지 성비나 인종 끼워맞추기 식의 할당제는 사회 구성원의 박탈감과 사회적 모순만을 키운다고 본다.
예를 들어 남자 아이의 90%는 로봇을, 여자 아이의 90%는 인형을 가지고 논다고 가정해 보자. 이 관점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 혹은 문화적 요인 때문인가? 그렇다면 남성이 인형을 가지고 놀고 여성은 로봇을 가지고 노는게 전혀 이상할 게 없고 그것을 이유로 배척되어선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캠페인과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 만약 사회적 혹은 문화적 요인이 장난감 성비 불균형에 정말로 큰 영향을 미친거라면 그런 요인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성비 불균형이 크게 해소될 것이다.
그것이 경제적 요인 때문인가? 그렇다면 로봇과 인형을 둘 다 구매할 만큼의 경제적 여유도 없는 모든 계층에게[30]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저소득층의 소득 수준을 끌어올리며 소득 격차를 어떻게 해소하고 사회적 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논해야 한다. 정말로 이 장난감의 성비 불균형에 경제적 요인이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거라면 이런 조치로서 성비 불균형이 크게 해소될 것이다.
그것이 그저 개인의 선호에 따른 선택인가?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소수자인 10%의 남성과 10%의 여성들이 배척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수 성향이 보호받는 것은 물론 만약 사회적 요인으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지 못하던 아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조치로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낼 수 있게 될 것이다.[31][32]
그런데 갑자기 정부가 쳐들어와서는 "어? 성비 불균형이 발생했네? 그럼 이제부터 로봇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과 인형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의 성비를 50:50으로 맞추기 위해 할당제를 실시하겠습니다."라고 한다고 생각해 보자. 현실에서 정부와 페미니즘 단체가 성평등 정책이랍시고 내놓는 것이 딱 이 정도 수준이다. 오히려 사회적 모순을 키우는 것이다.[33]
물론 이들이 할당제를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할당제가 꼭 필요한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다른 유효한 수단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해결책의 효과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해결책의 효과가 충분한 시간이 흘러야 발휘된다면 그때까지 로봇이나 인형을 가지고 놀게끔 강요당하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할당제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관점에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할당제 등의 특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관점은 기회의 평등을 지향하며, 그에 반해 할당제나 여성 가산점등의 특혜들은 본질적으로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본다. 그렇기에 할당제는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을 때에만 최후의 수단으로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엄격한 기준 아래에서 사용되어야 하며, 그것의 수단으로서의 적합성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그 필요성이 낮아진다면[34] 지체없이 폐기해야만 한다고 본다.[35]
이 관점에서 특혜를 이렇게 시한폭탄처럼 조심스럽게 다루는 이유는 특정 집단으로의 특혜가 그만큼 사회 구성원들에게 사회적 박탈감을 유발하고 사회 모순을 심화시키기 좋기 때문이다.[36] 당장 어퍼머티브 액션도 역차별 문제가 거론되며 굉장히 많은 구성원들의 반발을 사고 여러가지 문제점이 지적되지 않는가? 이처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와 더불어 해결 수단들이 무엇이 있으며 그것들의 효과와 부작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 없이 이루어지는 특혜는 굉장한 부작용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양날검이다.
그런데 정부나 정책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영향력 있는 페미니즘 단체에서는 부작용에 대해 그저 "필요악"이라는 한 단어로 일축해 버린다. 즉, 이들은 여성정책으로서 급진적인 변화를 부르는 정책을 선호하면서도 그에 따를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은 그다지 심각하고 진중한 고려를 하지 않고(혹은 하지 않는 것처럼 대중들에게 비쳐지고), 이런 태도가 위에서 말했다시피 사회 구성원에게 사회적 박탈감, 더 나아가 반감을 사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무분별한 급진정책으로 인하여 반감이 터져나온 예를 들어보자.
  • 경찰청 이성은 성평등 정책 담당관은 여경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와중에 여경의 체력검정 시험이 수준미달이라는 것에 관련해 "100m 달리기나 팔굽혀펴기 등이 경찰 업무에 정말 필요한 역량인지 살펴봐야 한다" 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이에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국민들은 이성은 담당관을 해임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해당 기사
물론 기사에 나온 이성은 담당관은 "체력 검정이 실무에 적합한지 검토해 봐야 한다는 취지였다."라고 해명했다. 일단 경찰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체력수준을 검증하는 시험에 의문을 품는 것 자체가 경찰로서 기본이 안된 관점이라는건 넘어가자.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사회 구성원들이 특정 계층에게 과도한 편의를 봐주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불합리하다고 느끼는지이다.
여경도 충분히 남경처럼 범죄자 제압 등을 할 수 있게끔 교육시키거나, 여경의 체력 검정 시험도 충분히 합리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거나, 지원하려는 직렬별로 체력 기준을 차별화시킴으로써 체력이 낮은 사람도 경찰 업무에 동참할 수 있게끔[37]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의 선행되어야 할 정책들에 대해선 일언 반구도 없이 그저 할당제의 비율을 늘리겠다고 하면 당연히 사회적 반감이 들끓을 수 밖엔 없다. 대중들이 정부가 공정한 경쟁을 조성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저해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서울권 대학교의 총여학생회 폐지와 잡음도 이를 잘 나타낸다. 총여학생회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려 해서 생긴 사건이다. 페미니즘 이론처럼 성평등한 사회가 될 수록 남성이 지는 가부장제의 짐이나 역차별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하면, 오늘날 총여학생회가 스스로 총여학생회의 존재에 이의를 제시하여 스스로 해산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총여학생회는 물론이고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오히려 총여학생을 유지하려 했다.
이와 같은 사태는 할당제 등과 같은 특혜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충분히 조심스럽게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사회적 반감과 박탈감을 유발하는지를 보여주는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반발감은 특히 젊은 남성 층에서 두드러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단군 이래에 최고로 성평등한 세대이다. 당장 20대의 양성간 소득격차를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소득이 더 높으며''', 양성간 대학 진학율을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대학 진학율이 높다.'''
그런 젊은 남성층들에게서 무슨 말이 나오는가? "정말로 가부장제가 강한 세상에서 가부장제의 꿀 빨던건 40~50대 이상의 남성이다. 그런 이들이 표 좀 얻어먹으려고 성 불평등 해소랍시고 20~30대 남성을 희생양 삼아 여성가산점 같은 것을 사방팔방 뿌려댄다.[38] 그런데 페미니스트들은 그런 기득권 남성 옆에 붙어서 성평등을 위하기는 커녕 이익만 취하려 한다." 이런 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바로 위에서 말한 그것이고 2030대 남성 내부에서 안티페미니즘이 세를 불리게 된 이유 또한 같다.[39]상기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젊은 남성층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렇게 박탈감을 유발시킬만한 행동을 골라서 했는데 이런 반응이 안나오면 더 신기한 것이다.

3.14. 시골귀농인에 대한 성차별 근절 소홀


페미니즘의 시작은 여성인권을 증진시키고 여성차별을 철폐하는 것이지 남성인권과 남성차별에 소홀한 것이었다. 게다가 차별 철폐 운동이 도시에 집중되어 시골에 주목하지 않았다. 페미니스트들은 점점 도시 내 남성의 권리를 좁혀가는 어용 집단으로 변질되었고, 자연스럽게 시골에서 아직까지 남은 시대착오적인 성차별 근절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권력에 집착하는 어용으로 변질된 만큼 목숨을 걸고 낙후 지역의 여성인권을 상승시키는 건 뒷전이 되었다.
진짜 문제는 섬노예 등의 곪은 악습이 시골에서 비일비재한데다 페미니스트들이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골의 악습은 섬노예만이 아닌 외지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에 있다. 시골 사정에 밝지 못한 약자들을 매일 협박하거나 강간해놓고 묻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한데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들은 적극적으로 시골의 시대착오적인 성인지 감수성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았다. 페미니스트들이 섬노예와 시골 귀농인 중 귀농여성의 인권증진 및 보호에 대해서 참여하는 여론은 페미니즘 진영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 성폭력 무고죄 폐지와 남성혐오에만 집착하여 악법을 만드는 데에 매진할 동안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데에 투자해야 할 귀중한 재원을 낭비한 것이다.

4. 논란



4.1. 진짜, 가짜 페미니스트?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을 배려하고 여성을 위해 온갖 힘든일과 봉사를 마다하지 않는 남성'이나 '남성이 할 일도 할 수 있다며 도맡아서 하는 여장부'를 페미니스트로 생각한 경우가 많았는데, 페미니스트 입장에선 후자는 좁은 의미의 페미니스트일 뿐이고 전자는 오히려 페미니즘의 반대편인 전형적인 가부장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40] 오히려 남혐페미니스트들은 진성 페미니스트들을 흉자라고 놀리며 조롱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우월주의, 남성차별주의 등의 주장을 펼치는 자들은 '진짜 페미니스트'가 아니며 '가짜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의 탈을 쓴 ~' 으로 표현하고 있다.[41]
그러나 페미니스트, 또는 그렇게 자칭하는 자에 대해서 일률적으로 '사회적으로 올바른 주장을 펼친다' 라고 정의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그 예시로,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등이 각각 '공산주의', '자유주의', '무정부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것처럼 페미니스트 또한 넓은 의미에서 단순히 '페미니즘'을 신봉하는 이들을 일컬을 뿐이다. 앞서 나열한 사상이 선악에 기반해 판단될 수 없는 것과 같이 페미니스트들의 주장 또한 단순히 '페미니즘에 기반한 다른 주장'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는 이상과 사상의 근본적인 차이이기도 하며, 생각하는 방식과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포함하는 '사상'으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즉, 페미니즘은 수단적 의미로써의 사상이지 궁극적 도달점으로써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페미니즘의 기반 이론이 그 주장의 온건함이나 (일반적인 의미의) 절대적 성 평등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에 기반해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 그의 주장이 도덕적인가, 사회적으로 올바른 의견인가, 성평등에 기반한 의견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접근 방식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실제로 페미니즘이 남성차별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음은 이미 문제시된 바 있다. 특히 현대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는 담론이 가부장제 기반 담론이기에, 이에 대해서 여성의 참여가 높고 논의 대부분은 여성 권리의 신장, 불평등의 해소에 대해 일어나기 때문에 여성우월주의나 성별 이기주의로 빠질 가능성도 있다.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과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결별한 뒤에 나타난, 2파 이후 현대 페미니즘의 기본 전제는 '역사 이전부터 뿌리깊게 내려온 남성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이 존재한다'는 점을 가정하고 있다. 이는 가부장제(patriarchy)로 대표되는 개념이기도 하며 성 역할 고정관념과 같은 사상적 형태로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가부장제 등이 잔재한 사회적 구조 안에서 가부장적 사회를 살아가는 한 성차별은 피할 수가 없다. 이에 대해 성 역할에 근거한 사회적 고정관념을 해소하고 성적 불평등을 해소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있다.
페미니즘 분파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현대 페미니즘 분파가 여기까지는 기본적인 전제나 이론의 틀로써 인정한 바 있다. 이 중 페미니즘의 일파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 구조를 철저히 파괴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기존 가족 구조의 대체, 성 구분의 소멸 등으로 완전한 남성 중심적관념의 파괴를 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래디컬(radical) 페미니즘은 이러한 방식 중 급진적이거나 과도한 파괴를 행함으로써 이에 대한 해소가 더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수단으로 남성 도태(정확히는 남성성 도태), '''여성우월주의(!)'''의 전파 등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논의와 비판을 알고 싶으면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항목을 참고하면 된다. [42]
한편, 사회주의 페미니즘 등에서는 다른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구조를 유지시킨 채 기존 사회관념에서 묵살되었던 여성 권리, 또는 성적 불평등에 기반한 권리를 신장시킴으로써 성 평등 구조를 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권리는 인권일 수도 있으며 경제권일 수도 있고 여타 다른 사회문화적 권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한 방식을 유지한다면 언젠가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 구조를 부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얻게 되며 그 때 비로소 여성의 해방, 성적 불평등의 해소가 일어난다고 보는 것 등이 있다.
조금 다른 맥락에서 대학을 포함해 각종 연구에서는 페미니즘을 활용하지만, 정작 본인은 실현할 의지가 별로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 경우 학문으로서 페미니즘을 연구하여 출세의 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일명 '강단 페미니스트'. 이는 정치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잘 알려진 수필가이자 문예비평가인 록산 게이(R.Gay)는 자신의 저서 《나쁜 페미니스트》 에서, 소위 "진짜" 페미니스트와 "가짜" 페미니스트를 구분하려고 드는 페미니즘 내외부의 시각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페미니즘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의 유일한 것이 아니며, 각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개인적 특성에 맞게 자기만의 페미니즘을 꾸려가더라도 얼마든지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고, 또 그런 정체성이 존중받아야 한다고도 주장을 한다.
불행하게도 "페미니즘=좋고 옳은 것"이라는 한국 여성계의 흔한 편견과는 달리, 반사회적인 측면 또한 '''엄연히 페미니즘의 일부'''다.[43] 당장 페미니즘 하면 떠오르는 PC 운동, SJW 같은 것들이 가장 활발히 전개되는 집단은 바로 숱한 여성주의 단체이다.
쉽게 말해서, 흔히 생각하는 "(사상으로서의) 페미니즘은 좋은 것"이라는 대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 대단히 불쾌한 일이지만, 여시나 메갈, 워마드 등이 보이는 양태 또한 분명 페미니즘이 맞다. 이 페미니즘에 과격성 등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하며 옳고 그름을 가릴 수는 있겠지만, 진짜-가짜 페미니즘같은 구분이나 그에 의거한 비판은 페미니즘의 넓은 스펙트럼을 완전히 도외시한 빗나간 비판이 된다.

4.2. 여성 '''보호'''에 대한 반대


한국에서 무조건 여성을 보호하려는 사람을 페미니스트로 보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잘못된 것이다. 위에 열거된대로 페미니즘에서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약한 여성은 무거운 짐을 들면 안된다", "약한 여성과 싸워서는 안된다"는 등의 발언은 '''여성을 남성에게 의존하고 보호를 받는 약자'''로 간주하는 가부장제의 소산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여기기도 한다. 페미니즘에서 여성에 대한 보호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성을 보호하려는 것 자체와 페미니즘이 일대일 대응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여성의 권리증진과 피해약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는 보호라고 볼 수는 있다. 다만, 그 주체가 남성이 부여하는 게 아니라 제도적 압력과 사회적 인식변화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몇몇 대학에서 총여학생회가 주축이 되어 만든 여학생 휴게실은 많은 부분에서 남여학생의 차별이 개선된 지금에도 성추행의 위험으로부터의 자유, 여성의 흡연을 백안시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 함축되어 있다는 핑계로 아직 존재하고 있다. 물론 여휴가 없어진 학교나 공평하게 남녀휴게실을 모두 설치하는 단과대학도 존재하지만 남학생 휴게실은 여학생 휴게실에 비해 시설이 매우 열악한 편이다.
주로 아마존 페미니즘 계열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스포츠에 참여해 신체를 단련하고 힘을 기를 것을 강조하며, 많은 경우에 군대 역시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문호가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현대에는 상당수의 국가에서는 직업군인으로 여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90년대 여성단체에서 여성의 평등한 군 참여 확대를 주장하며 운동을 벌인 바 있으며 심지어 일부 여성주의자들은 여성도 군대에 가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여성징병제에 찬성하는 것은 완전한 비주류이다. 이는 대다수 여성주의 단체가 본인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군인이 되도록 나라에서 강제하는 징병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워낙에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다른 국가에 비해 이 문제에 대한 대립이 첨예하다. 권리와 의무가 같이 가는 것이라면 여성이 군대를 가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많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2세대 페미니스트들을 중심으로 남녀평등 수정헌법 운동이 반짝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반페미니스트들 및 보수적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그 법이 통과되면 여자도 징집당한다고 약을 팔아서 침몰당한 적도 있다, 물론 여성징병 문제가 운동이 파토난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꽤 큰 영향을 미쳤다.

4.3. 집안일과 사회활동


“설거지, 세탁, 화장실청소, 기저귀 갈기 같은 집안일은 창조성도 필요하지 않고 더럽고, 명예도, 돈도 되지 않으며 일생을 바쳐도 역사에 이름도 남지 않고 존경도 받지 못하는 하찮은 육체노동이다.”

- 와카쿠와 미도리

초등학생 2학년 아들과 4개월 된 딸을 키우는 38세의 전업주부의 경우 음식 준비 및 정리 시간 3시간 30분 *세탁, 다림질, 바느질 등 의류관리 1시간 30분 *청소 및 정리 40분 *시장 보기 등 가정관리 관련 물품 구입 30분 *가계부 정리, 은행, 관공서 일 보기 등 가정경영 30분 *미취학 자녀 보살피기 5시간 * 초등생 자녀 보살피기 2시간 *배우자 보살피기 20분으로 김씨의 1일 총 가사노동시간은 14시간. 이를 월급으로 환산하면 432만 9000여 원이 된다고 한다.

-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산정한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

대개는 밥을 먹기만 하는 쪽은 남성, 밥을 해야만 하는 쪽은 여성이다.

- 조주은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이 집안일에 종사하는 것을 남성중심사회와 가부장제의 억압으로 보고 있다. 가사노동이 '여자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겨지는 것 자체가 그 가치를 격하시키고, 여성을 집 안에 묶어놓고, 사회적 약자로 만드는 구조적 억압이라는 것. '가사일=쓸모없는 일'이라기보다는 '가사일=하찮은 일=근데 여자는 무조건 해야함 왜냐면 여자일이니까'라고 박혀 있는 사고방식 자체가 여성을 억압해왔다는 쪽이다. 다시말해 이렇게 구조화된 억압으로서의 가사일이 여성의 자아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는 주장. 따라서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이 집안일(사적 영역)에서 해방되어 자아 실현과 자기 가치의 발견을 위하여 사회활동(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런 기존의 관점은 이 역시도 가사노동이나 육아, 즉 돌봄노동을 하찮고 능력없는 여성들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부딪히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남성이 여성의 사적 노동을 폄훼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 사실상 맞벌이 부부가 아니라면 출근을 하지 않는 쪽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해야한다
하지만 '어떤 역할이 다른 역할보다 가치가 낮다는 것이냐'라는 것은 이슈의 본질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역할을 강요받아야 하느냐'''"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 제기이며, 이는 "'''왜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집안일에선 소외된 채 가족 부양과 국가의 방위를 전적으로 책임지어야 하느냐 '''"라는 질문으로도 연장될 수 있다. 즉, '''직업이든 집안일이든 성별에 의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역할에서 멀어지거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다른 역할을 강요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페미니즘에서는 돌봄노동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직업이 있는 여성 vs 전업주부의 구도를 폐지하려는 추세. 집안일과 주부를 가사노동과 가사노동 종사자라는 개념으로 대치시키는 것 역시 페미니즘의 과제 중 하나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사적 노동 자체에서 해방되는 것을 과제로 여겼다면, 지금은 사적 영역의 가치를 공적 영역에 맞먹는 것으로 회복시키는 것 역시 운동의 일환으로 편입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2번째 예시에 대해서는 논란이 꽤 많은데, 먼저 임금을 주는 기준 자체가 명확하지 않고, 저 모든 일들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보장도 없다. 또한 가족을 위한 헌신을 임금으로 어떻게 감히 환산할 수 있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2번째 예시 같은 경우 정확하게 통계청급에서 통계를 내겠다고 해서 나온 것이 아닐 뿐더러 한 개인의 삶을 추산한 것이다. 즉,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논쟁이 벌어진다. '''물론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양 선동하는 일도 당연히 없어야만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성이 이러한 과도한 집안일 및 의무를 떠안는 것에 대한 개선은 필요하지만 이를 너무 깎아내릴 필요 또한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당장 그 힘들다는 일 아무도 안하면 그다음 집안이 어떤 꼴이 날지는 볼보듯 뻔하다.

4.4. 임신과 출산


여성억압의 원인은 생물학 즉, 언제나 여성의 운명이라고 해온 불공평한 임신에 있다.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급진적 페미니즘의 관점이 반영된 《성의 변증법》 에서는, 여성, 그러니까 생물학적으로 암컷으로서의 숙명인 임신과 출산, 그리고 거기에 이어지는 아동 양육은 여성의 자주적인 삶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즉, 임신과 출산을 여성만이 하므로 남성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임신과 출산은 공적 사회 영역에서 여성이 출세하는 데 방해가 되며, 아동 양육 또한 여성의 시간을 과도하게 빼앗아 여성의 사회 진출에 크나큰 장애를 만든다. 따라서 궁극적인 여성 해방은 '''과학적 방법'''(인공자궁의 개발 등)을 통하여 임신과 출산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44]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90년대 이후로는 인기가 시들한 상태이다. 현재 주류 페미니즘계에서는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노동이 아니라면''' 육아는 신성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더 크다. 당장 여성계에서 모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국내의 주류인 랟펨 쪽에서는 비혼을 끝끝내 고수하며 결혼보다 비혼이 낫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들에게 "엄마로서" 과도한 모성애 이미지가 부과되고 있다고 보는 페미니스트들은 존재한다. 이들은 모든 여성들이 필연적으로 자식 사랑을 하는 게 순리라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제 아이가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아요, 제가 비정상인가요?" 라고 묻는 여성들[45]에게 그렇지 않다고, 사회가 강제로 주입한 의무감을 내려놓으라고 확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 모성애는 '''"모성신화"''' 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가끔 등장하는, 남성은 몰라도 여성에게는 필연적인 모성애가 있다고 주장하는 측에 대한 반기이기도 하다.
EDEN의 소피아 테오도레스가 이와 비슷한 캐릭터를 보여주기도 한다. 해당 캐릭터는 인간의 신체를 하고 있을 때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전혀 사랑하지 못하고 방치하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입양시키는 인물이다. 그러나 뇌를 제외한 신체 전부를 기계로 대체한 이후에는 모성애 비슷한 것을 느낀 것인지, 혹은 어떤 다른 이유 때문인지 가상 가족 관계까지 형성하면서 부모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페미니즘과 비교해서 보면 꽤나 복잡미묘한 캐릭터.

4.5. 원시시대는 모계사회였다?


남성 사냥꾼이 먹여살리는 일부다처 부계사회가 있었다는 기존 학설의 반박으로, 공산주의에서 말하는 '원시 공산주의'와 비슷한 설이며, 정확하게는 엥겔스가 주장한 모계사회론을 받아들인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모계사회가 있었으며 이것이 인간의 본래 사회 형태라고 말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주장을 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많이 없어졌다.
다만 현대 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원시 모계사회', '군혼 사회'은 없고, 남녀 모두 비슷한 위치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실제로 수렵채집 사회에서도 일부일처제, 부계사회가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으며,이들의 수가 모계사회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추정된다. 아래 역사학 부분 참조.

4.6.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남성 페미니스트, 남성 페미니스트(도서), he for she 문서 참고.

4.7. 현실과 이론의 괴리감


한마디로 말해 현실에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 페미니즘 이론들을 토대로 사회운동, 시위를 하는 사람들과 페미니즘 이론의 근거를 논하는 학계, 학자들이나 칼럼,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 사이의 괴리감과 거리감에 따른 논란. 물론 같은 학자들 및 기자들 간, 사회 운동, 시위자들 끼리도 괴리감들도 상당히 있다.
그 외에도 페미니즘 이론가들의 담론과 그 과정에서 나오는 페미니즘의 부작용, 모순, 오류에 대한 이해를 모르거나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채 페미니즘 담론에서 본인들에게 유리한 것을 취사선택하여 이를 토대로 사회운동,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 의해 생겨난 오해와, 모순들도 논란이 되었다.[46]
그밖에도 페미니즘은 현재 학자들이나 언론인들 개개인에 따라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하는 논리와 주장들이 매우 다양하다. 때문에 한 쪽에서는 페미니즘은 남성 혐오나 차별, 비하 모욕 조장이 아닌 성 평등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이퀄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실제로 현실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변호하는 일반 대중의 경우는 페미니스트는 남성 혐오나 차별, 비하 모욕주기가 아니라고 언급하지만 오히려 학자와 언론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주장하며 여성 위주의 페미니즘에 힘을 더 실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페미니즘을 생각하는 것과 학자, 언론인등 지식인이라 일컫는 식자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들이 서로 매우 다른 경우는 매우 많다.
때문에 페미니즘에 대해 '차별받는 여성들에게 공정하게, 비하 혐오 발언 하지 말고 성적 모욕이나 가해를 하지 말라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하고 페미니즘에 대해 지지한다고 했다가 수많은 남성 비하 발언들과 모욕이 난무하는 페미니즘 시위에 등장하자 이에 벙쪄서 아니 도대체 내가 생각하던 페미니즘이란게 뭐냐고 혼란을 겪거나 아예 페미니즘에 대해 남성 혐오 비하 차별이였나 라고 생각하며 입장을 바꾸기도 한다. 물론 페미니즘에 대한 회의감과 불신감을 마음속에 품고서.....[47]
현실에 적용이 힘든 이론을 그대로 대입하는 경우도 많다. 성상품화같은 경우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본주의 시장에서 막는다는 것은 페미니즘국가라도 수립하지 않는 이상 힘들다. 그러다 보니 서양에서는포르노가 버젓이 유통되는데 2D 여성 캐릭터 벗은 몸이 검열되는 눈가리고 야옹하는 일이 생긴다. 특히 한국에서는 기존 보수적인 사회상과 연관되어 성적인 것 자체를 으로 취급하는 경향성 마저 보인다. 성적대상화같은 경우 나쁜건 상대방의 동의가 없거나 강요, 혹은 범죄가 이루어지는 경우지, 남성의 머리 속 까지 검열하는 건 가능하지가 않다. 성욕이란건 본능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인데, 현실적으로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경계를 세워야 되는데, 무조건 안된다고 하면 현실성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반작용만 가져온다.
스포츠계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현재 여자 축구계에서는 남녀 축구선수의 동등 임금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남녀 축구의 인프라 차이가 막대하기 때문에 이는 현실에 적용하기 힘든 이론 중 하나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자 축구 문서 참조. 당장 같은 여자 축구에 열광할 여성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을지도 의문이고.[48]
또한, 어디까지나 페미니즘의 혜택을 보는 건 어느 정도의 힘이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가령 여성 고아의 경우, 페미니즘이 적용되면 어떻게 될까? 그냥 성인되면 보호자도 없이 내던져져 알아서 살라는 식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4.8. 성소수자와의 관계


성소수자의 권익 집단과도 긴밀한 연대가 있기도 하다. 이는 페미니즘이 섹슈얼리티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49][50] 하지만 성소수자 운동 활동가들 중 페미니즘 성향을 가진 이들도 반페미니즘 성향을 가진 이들도 있어 꼭 긴밀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양성애자/동성애자/이성애자/무성애자/범성애자 등 활동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반목은 페미니즘을 고민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꽤 골치아픈 문제. 성 소수자 운동가들과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이성애 중심의 가족 구조와 사회 구조를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뜻을 같이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주류 사회와 투쟁하여 권리를 쟁취한다는 '전략적 목표' 때문에 서로를 이용하고 있는 '정치적 동맹'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성소수자 가운데도 보수적인 사람은 존재하고, 성소수자 운동에 끼어드는 페미니스트들을 안 좋게 보는 성 소수자들도 존재한다. 특히 시스젠더 게이의 경우 소위 말하는 '성차별 꼴마초'인 게이도 적지 않다. 반대로 성소수자를 경멸하는 페미니스트나 남성 성소수자 역시 남성이라며 적대적으로 대하는 부류도 적지 않아[51][52]
래디컬 페미니즘이나 그 하위분파인 TERF가 페미니즘의 주류에 가까워짐과 동시에[53] 같은 성소수자 운동권에서의 연대 유지를 위한 무리수에 의해[54] 페미니즘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소수자 역시 계속해서 생기고 있는 상황이다.
남녀관계 자체를 남성의 여성 지배로 파악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랑을 하겠다는 뜻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레즈비언이 되겠다 주장하는 일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도 존재한다. 본인은 헤테로섹슈얼이지만 페미니즘을 실천하기 위해 호모섹슈얼처럼 행동하겠다는 의미인데, 이는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취급하며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호모포비아들에게 크나큰 빌미를 내어주는 혐오행동일 뿐이다.

4.8.1.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핍박과 멸시




4.9. 강간의 해결에 대한 방법론적 문제


페미니스트는 강간을 성욕 및 정신병과는 별개로 문화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보고 있기에 교육을 통해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범죄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강간의 심각성에 대한 경시와 관대한 처벌을 통해 구현된 "강간 문화"가 사회문화적 요인으로서 존재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페미니스트들이 즐겨쓰는 가부장적 사회의 프레임에 합치한다. 이렇게 페미니스트는 강간을 젠더 이슈로 해석하기에 성범죄에 대한 교육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강간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여성들에게 조심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남성들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Teach Men Not To Rape) 한다는 주장이다. 기존의 성교육에서는 강간을 단순히 여자가 조심해야 하는 것으로만 몰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이에 따른 결과로 강간 피해자에 대해 "그러게 왜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녀?" 혹은 "그러게 왜 야한 옷을 입었어?" 등의 언행으로 상처를 더하는 2차 가해가 빈번했다. 심한 경우는 성희롱으로까지 번지는 이러한 2차 가해는 21세기에 들어서도 해결되지 않은 사회적 문제다. 강간의 도덕적 범죄적 책임이 가해자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여 사회적으로 2차 가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성폭행에 관한 교육에 변화가 필요하다.[55]
여기에 대해서 "왜 남성들에게 강간의 책임을 지우는가? 차라리 '사람들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가르쳐라(Teach People Not to Rape)' 가 낫지 않은가?" 라고 반문하거나, 혹은 "흑인들에게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고 가르쳐라", "무슬림에게 테러하지 말라고 가르쳐라" 라고 말하는 것도 정당화되느냐고 반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두 가지 반응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만,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는 이것이야말로 강간 문화에서 예상되는 가장 대표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이 강간과 섹슈얼리티에 대해 앞뒤 맥락 다 잘라버리고 슬로건 하나만 던져놓은 것도 상당 부분 사실이다.) 아마도 페미니스트들은 전자의 반응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도 '괜찮아, 남자가 싫다고 말하는 건 사실 내숭떠는 거니까 억지로 섹스해도 돼!' 라고 가르치던가? 여성들에게도 상대방의 의사를 거슬러 섹스하는 게 여자다운 여자라고 가르치던가?"[56] 그리고 후자의 반응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흑인들에게 재산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에게 '그러길래 왜 거기다 주차를 했어? 왜 거기다 상점을 차렸어?' 라고 비판하던가? 세계무역센터 옆을 지나가다 변을 당한 사람들에게 '그러게 왜 하필 그 시간 그 장소에 거길 지나갔어? 알아서 몸조심을 했어야지!' 라고 비판하던가?"
페미니즘 진영의 방법론이 거창한 사회문제를 다루기 위한 방편으로 고작 '의식 고양'이니, '대중 계몽'이니, '차별적이지 않은 일상언어'니 하는 것들만 내놓는다는 지적은 사회적으로 정말 많은 의의가 있으며 굉장히 건설적인 논쟁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왜 모든 남자들을 죄다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가느냐", "흑인이나 무슬림에게도 그럴 셈이냐" 라고 항의하는 것은 거의 생산적인 논의가 불가능하게 만든다. 오히려 이런 식의 주장은 우리 사회 전체의 공공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방어적 반응에 가깝다. 그보다, 이미 숱하게 많은 지식인들이 강간 문제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대응방식이 부적절하다는 측면을 지적해 왔으며, 특히 보수주의적 관점에서 볼 경우 '강간 우범군일지라도 교육하고 계몽하면 얼마든지 교화될 수 있다' 식의 주장은 인간관 수준에서 공격받을 여지가 다분하다. 그 외에도 강간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가해자군을 교육하느니 차라리 여성들이 피해 상황에 처했을 때 호신 방법이나 자구책을 알려주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은가 하는 문제,[57] 강간 피해자들의 삶을 지나치게 눈물과 비극의 서사로만 프레임화함으로써 이들이 젠더 위계와 지배체제를 교란할 권력을 갖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탈권력화를 초래한다는 문제 등의 비판이 매우 많이 제시되었으나, 이에 대한 페미니즘 진영의 답변은 모두를 만족시키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5. 국내의 경우



5.1. 양극화


한국은 같은 여성이라도 누리고 있는 인권이 같지가 않다.[58]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은 여성 남성을 떠나서 여전히 후진국 정도인데, '''중~상층의 여성들의 인권의식만 전세계에서 유래가 없을만큼 미친 수준으로 높아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매우 크게 들린다.''' 당장 대학에서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면서 현장실습을 나가보면 '''빈곤층 여성들의 인권은 2017년 시점에서도 여전히 별로라는 수준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59] 여성 인권이 충분히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여겨지는 서구권도 이 문제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에서도 대도시권만 벗어나면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남성들과 가사 노동을 강요받는 여성들에 관한 문제가 아직도 하루이틀이 아니고, 서유럽에 가도 조금만 변두리로 가면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해 보수적인 가정도 의외로 적지 않으며,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딸아이와 아내에 대한 심각한 수준의 가정 범죄도 최근까지 적지 않았다. "요즘 세상에 매맞은 여자가 어딨냐. 당장 고소하고 여성가족부 진정하고 난리날 것이다."라고 섣불리 단정짓는 것은 큰 오산이다.
한국에서 여성인권의식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데, 문제는 '''그게 골고루 적용되지는 않고 있다는 것.'''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못 견뎌서 쉼터로 도망치는 여성들을 보면 대부분 초, 중졸 학력에다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권리에 대해 무지하다.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으로 와서 다문화가정를 이루고 사는 여성의 경우에는 더 심각해서, 심지어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면 그걸 경찰에 고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이들에게 있어서 페미니즘은 다른 나라 이야기다.
그런데 이러한 불평등을 페미니즘의 주류에서 다루지 않고, 자꾸 빈곤층 문제로 미뤄버리면서 사회복지 차원에서 해결하라고 외면하는지라 동호회 수준의 여성단체만 소외계층 여성의 인권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단체들은 거창하게 여권신장이 아니라,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시키는게 주목적인데, 페미니스트들과 이들의 요구를 국정에 반영하는 사회지도층들은 이런 소외계층 여성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상태라 이들 단체의 활동영역은 민/관 쉼터로의 연결 혹은 법적인 자문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불균형과 소외계층 여성의 인권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여권이 신장되어 있는 북미나 유럽에서도 공통적으로 대두되는 문제다.
정리하자면, 이렇듯 징병제 및 이런 저런 법규들 때문에 한국은 여성이 남성보다 제도적으로는 우위를 누리고 있는 사회이며, '''기득권을 차지한 페미니스트들은''' 상대적 성 불평등에 대해서는 매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공격에 나설때는 '''여성차별의 존재'''만 강조할 뿐, '전체적 평등'은 강조하지 않거나 무시한다. 게다가 기득권 페미니스트들은 인권 취약 계층의 피해사례를 본인들의 편향된 이권 확보에 활용하는 악행을 저지르면서, 정작 취약한 이들에 대한 보호는 외면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양성평등보다는 여성의 피해의식 주입에 주목하여 여성우월주의와 젠더분쟁으로 끌고가려 하니 경계가 필요하다.

5.2. 방향성 상실


정치계와 엮여있는 여성권 운동에서 핵심은 호주제 폐지였다. 그 다음에 좀 더 강하게 나선 것이 군 가산점 폐지였다. 주요 담론들이 김대중 정권 시기에 다 끝나버렸다. 여기에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는 시기에 성추행이 일본을 포함한 한국에 이슈화 되면서 여성부가 설립되는 전개로 나가서, 성추행과 성희롱이 나쁘다는 것이 적어도 사회적으로는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즉, 이전에 주장하던 대형 이슈가 다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새로운 이슈를 잡아야 조직과 체제가 유지'''되는데, 이 다음에 이슈로 낼 것이 마땅치 않았다. 이 때문에 여성부를 비롯한 주류에서 들고 나온 이슈가 성매매와 음란물 문제[60]이고, 후에 메갈리아로 이어지는 비주류에서 들고 나온 이슈가 여성혐오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간 것이 메갈리아 등이 주장하는 '혐오에 대한 공포와 그 방어기제의 정당성'이다. 그리고 이를 감추기 위한 주류 언론들의 가짜뉴스는 덤이다. 즉, 자신들의 존재를 위해 여성은 (실제로는 어떻든지) 항상 억압받는 상태여야 하는 것이다.

5.3. 외모지상주의 및 성고정관념


남자가 뚱뚱하거나 덩치가 크면 못생긴 사람 취급하며 '도퇘지', '파오후남', '근육돼지'라고 비하하면서, 여자는 뚱뚱해도 사랑스럽고 다산을 상징하는 건강한 여성상이라며 치켜세운다. 이는 성편견 및 고정관념이며[61]오히려 여성의 육체는 출산을 위한 자원이라는 인식을 조장한다. 또한 남성이 키가 작으면 미적인 이점이 하나도 없다며 루저라고 조롱하면서 여성이 키가 작으면 아담하고 귀엽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여성이 얼굴이 못생기면 그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하며 그 여성에 대한 부정적 외모평가를 원천봉쇄하지만, 남성이 얼굴이 못생기면 아주 대놓고 '와꾸 빻은 한남', '한남콘' '십이한남 몇시방향' 이라며 비하하고 조롱하는 수백만명의 페미니스트들을 바로 여성시대쭉빵카페에서 목격 할 수 있다. 이들은 여성이 못생기면 보호받아야 하지만 남성이 못생기면 '재기해야'(故 성재기씨를 따라 자살해야 한다고)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자 대상 외모지상주의는 그 누구보다 욕하면서 남자 대상 외모지상주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조장한다. 남성인권을 주장하거나 남성혐오를 비판하는 뚱뚱하거나 못생긴 남자를 보면 '와꾸 빻은 한남', '번탈남'이라며 욕하는데, 잘생긴 남자를 보면 온갖 주접을 떨고 찬양하기 바쁘다. 이러면서 남자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남성에게 또 다시 외모로 인신공격을 한다. 이들은 여자 외모지상주의는 무조건 비판받아야 하고, 남자 외모지상주의는 절대 비판받으면 안된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또한, 남성을 비난할 때 논리적인 비판에 근거한 일침보다는 '와꾸 빻은 한남', '한남콘', '십이한남' 등등 사고나 생각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외모 비하에 의존하는 편인데, 이런 비난들은 지극히 외모지상주의적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미러링을 의도했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논리에 반박을 못하니 외모를 잡고 늘어지는것으로 밖에 안보인다. 하도 이런 경향이 심해서 여성혐오에 맞서는게 아니라 못생기고 뚱뚱한 남성에게 맞서는 것으로 보일 정도. 이런 행동은 마르거나 잘생긴 여성혐오자들에게 전혀 타격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여성혐오자들과 전혀 상관 없는 비만인들 및 못생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다.
또 남성들이 남성대상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비판을 하면 '''"자기들이 안 잘생겼으니 질투해서 그러는 것"'''이라며 원천봉쇄의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잦다.
반대로 여성이 남성혐오나 남성대상 외모지상주의를 비핀하면 트랜스젠더명예여성으로 몰고 가며, '흉자'', '똥꼬충', '젠신병자' '같은 저질스러운 워딩으로 상대를 비난한다.

5.4.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및 무조건적 여혐/흉자/성소수자몰이


이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모든 비판을 여성혐오로 간주하며, 정당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공격한다. 남성이 페미니즘을 비판할 경우, 일베충, 여혐, 똥꼬충 또는 '못생겨서 도태된 번탈남'으로 몰아가면서 원천봉쇄를 하고, 나이든 여성이 페미니즘을 비판할 경우 흉자명예여성으로 몰아가며, 젊은 여성이 페미니즘을 비판할 경우 그 사람이 트렌스젠더인지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젠신병자라며 몰이를 시도한다. 여고를 졸업하고 트렌스젠더라는 일말의 근거도 없는 유튜버 시둥이를 단지 페미니즘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트렌스젠더라는 가짜뉴스를 만들어 몰아간 것이 바로 그 예이다.

5.5. 중/상류층 인텔리 여성 위주


한국의 페미니즘이 남성혐오주의와 중상위층의 기득권 여성들의 편의와 이익만을 대변해 주는 사상으로 변질된 데에는 다른 진보적 운동(예 : 노동운동, 환경운동 등)과는 다르게 초창기부터 진보 정치권(특히 모든 야당들)의 무한한 비호를 받아서라는 주장이 있다.##이희호 여사나 이태영 변호사 같이 여성운동을 위해 노력한 위인들의 업적이 폄하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이런 여성운동가들은 진보권 정치인들과 오랫동안 결탁하였다.[62] 그 결과 대한민국 여성운동계는 네임드 여성운동가들과 예스’우먼’들로만 구성된 과두제 집단이 되었고, 헌재 페미니즘이 세상물정을 모르고 양성평등이 아닌 여성우월주의남성혐오를 외치고 다른 소수자들에게는 '''오만방자'''해보이기까지한 결과를 양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초창기 페미니즘(자유주의 페미니즘의 계급적 한계성에 대한 지적으로 인하여 교차 페미니즘, 블랙 페미니즘 등 제3세계를 위한 페미니즘도 많이 나왔다. 사실, 현대 구미,서유럽권의 자유주의 계열이 상호교차성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에 대한 비판을 수용한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은 래디컬이 주류이고 다른 분파는 이미 나가리 된 상황이라서 의미가 없긴 하지만.

모든 사회적 억압의 출발점인 계급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며 ‘그 페미니즘’을 구성하는 ‘중산층 인텔리 여성’들은 “성적 억압의 좀더 분명한 피해자인 하층계급 여성의 고통을 이해하지 않고 단지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사회적 억압인 성적 억압을 ‘남성 일반과의 문제’로 만드는 데 열중한다.

- <씨네21> 김규항 칼럼.

지금 미국의 소수민족이나 제 3세계 여성들 사이에서는 백인 여성 위주의 ‘웨스턴 페미니즘 (Western feminism)'에 대한 반발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한 것은 주로 미국이나 유럽의 상류층 백인 여성들이었고, 그들이 외친 구호는 결국 ‘남자를 배척하는 사회 (Society of cutting up men)’에 머물렀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런데 그런 구호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소수 상류층 여성들의 사회적 신분상승이 진짜 숨겨진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치사하게 위장된 ‘출세 전술’이 진짜 의도였다는 말이다.

- 마광수.

예나 지금이나 페미니즘은 중산층 이상 여성들에게나 유리하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 등 다양한 페미니즘 유형들은 모두 딜레마를 갖고 있다. 여기에는 빈곤층 여성들의 실질적인 문제는 언제나 빠져 있다는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자신의 유엔총회 마지막 연설에서 ‘페미니스트’ 선언을 했다. 반 총장은 지나날 20일(현지시각) 미국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1차 유엔총회 개막연설에서 “나는 재임 중 유엔 고위직에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여성을 임명했고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부를 수 있게 돼 자랑스럽다”며 “민족·종교·성적 지향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권리를 수호해왔다”고 했다.

반 총장의 말대로 고위직에 여성을 임명하는 것이 페미니스트인가? 지구 위에 절반은 여성이다. 유엔 고위직에 오르는 여성은 극히 극소수 중 극소수다. 선택받은 여성들이다. 이런 여성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페미니스트인가? 그것이 자랑스럽다는 말인가?

- 중산층 언니들의 인정투쟁 ‘페미니즘’ 빈곤층 여성들의 문제는 ‘아웃 오브 안중’ - 中 -

(숙명여대 동문인 김순례 의원이 5.18 유공자를 괴물이라 칭한 망언에 대해)

"지금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검열이 아니라 고위직 진출을 통한 카르텔 형성입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굳이 학교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 말아주세요."

“여성 네트워크를 방해하고 지나친 도덕적 검열을 가하는 자칭 페미총학 '오늘'을 규탄한다."

"굳이 우리가 나서서 동문을 규탄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여성이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기회가 과연 몇이나 되는지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숙명여대 중앙운영위원회 14차 정기회의 중 숙명여대 재학생의 발언. (출처: 중앙운영위원회 14차 정기회의 회의록)[63]


5.6. 청소년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추진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 명 이상의 청원을 받아 공식적으로 청와대에서 답변을 했다.
페미니즘 자체가 위에서 서술했듯 'Femini-(여성의-)' 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보다는 새로운 성평등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페미니즘이 젊은 남성층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포함한 여러 종교세력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기에 사회적으로 이슈가되고 있는 미투운동의 영향으로 급하게 판단하기보다 신중히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해당 국민청원을 답변한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은 "페미니즘 교육은 체계적인 인권 교육과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여성뿐 아니라 종교, 장애, 나이, 인종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적 표현은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 '차이를 인정하는 인권문제'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유럽국가에서 페미니즘에대해서 의무적으로 교육시키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소수자에대한 존중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즉 페미니즘 교육의 내용이 래디컬 페미니즘 등의 사회적으로 편향된 주장에 치우친다면 문제가 된다. 현재 교육과정을 검토하고 성평등적 내용의 분량이 부족하다면 이 부분을 강화하면서 '''"모든 인간은 똑같이 소중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보편적 당위에 대해서 도덕, 사회 등의 교과목에서 더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가르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64]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의 페미니스트들이 바라는 것은 초중고생들에게 "인권"과 "평등"의 이름으로 래디컬 페미니즘, 페미나치즘을 주입시키겠다는 것이란 데 있다. 실제로 최현희를 비롯해 몇몇 교사들이 학교에서 개인적으로 페미니즘 교육을 실시하여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들에 대해 진보 운동권에서는 맹목적 옹호와 지지에 나섰고 심지어는 페미니즘 교육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선전하기까지 했다. 박근혜 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 때는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반대했던 사람들이 말이다. 청소년에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가르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만, 젠더 권력론이니 잠재적 가해자론이니 맨박스니 차별비용이니 하는 온갖 황당무계한 궤변으로 점철된 급진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것은 용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극 지지하고 또 의무화해야 한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실제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 당시에 전희경을 비롯한 극우 권위주의자, 시장근본주의자들은 역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과목이 좌편향되어 있다면서 모든 교과서를 국정화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떠든 바가 있다. 그때는 그렇게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정작 자기네들이 실시하는 페미니즘 교육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하다고 목에 핏대를 올리는 것이 이러한 진보 운동권 일각의 실태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교육은 용납할 수 없지만 페미니즘 교육은 꼭 해야 한다? 실로 내로남불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 더 나아가서는 똘이장군 등의 저질 선전물을 보여 주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끊임없이 주입 세뇌시키던 60~7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반공교육과 다를 바 없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발상이다. 초중고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어떤 내용이 되었든 특정한 정치이념을 갖다가 절대화하여 무비판적으로 주입시키고 세뇌시키는 교육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으며 시도하는 것 자체가 아동학대, 청소년 학대일 뿐이다. 그럼에도 "성평등 교육"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특별교육 시간의 초청강사들이 노골적으로 그런 교육을 이미 시도하고 있고, 그것을 갖다 아예 제도화, 정례화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것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수구 기득권 세력과 다를 것이 없는, 근본적으로 닮은 존재에 불과한 비민주적이고 전체주의적이며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존중심이 결여된 또 다른 적폐 세력이라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2020년대의 페미니즘이 '''"모든 남성은 젠더권력자이고 (잠재적) 가해자이기 때문에 존재 그 자체가 죄악이다"'''라면서 남성 원죄론을 선전하며 남성에 대한 인격 모독을 정당화, 고무, 찬양하고 있으며, 이미 노골적으로 소수0 "성평등 교육" 강사들이 그런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는 데 있다.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여성에 대한 성적 욕망과 지향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너는 가해자이고 죄 지은 자이니 반성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차별과 배제일 뿐이며 더 이상 교육이라고 할 수도 없다.
설령 개인의 잘못된 행위를 비판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목적이더라도 그런 개인의 인격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거기에 그 개인의 성별이 개입되고, 또 그걸 명분으로 그런 개인에 대한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행위를 교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예를 들면 여학생(A)을 못살게 구는 남학생(B)이 있다고 하자. 정상적인 방식대로라면 "B 너의 인격이 소중한 만큼 A의 인격도 소중한 것이니 그렇게 못살게 굴고 괴롭히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페미니즘 교육이란 B 같은 남학생들에게 "너는 남성이고 따라서 젠더 권력자이며 가해자이다. 지금까지 남성으로서 A 같은 여성들을 차별하고 혐오한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언제까지 '한남'이 되어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억압하며 나라를 망치고 사회를 병들게 할 것이냐?"[65]고 가르치는 것이다. 만약 B의 입장이라면, 그렇게 본인의 '남성'이라는 성별을 부각시켜 인격을 모독하고 본인을 정죄, 심판하는 "교육"에 얼마나 감화감동을 받을 수 있겠는가? 인격을 존중하지 않고서 사람을 감화감동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짓, 즉 남학생에 대한 인격모독을 "평등"과 "인권"의 이름으로 대놓고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정치, 사회적 의식을 심어 주는 교육 자체는 가치가 있고 또 필요하다. 특정한 떡밥을 하나 던져 주고서 이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은 입시위주 교육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장려할 필요도 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남성차별, 남성에 대한 소모품 취급과 노동력 착취에 대한 떡밥도 투하되고 메갈, 워마드를 위시한 페미니즘 세력의 준동과 행패에 대한 떡밥도 투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페미니즘 교육" 운운하는 여성계가 바라는 일일까? 물론 페미니즘 진영에서 저지른 일들은 어떻게든 합리화하거나 감추겠지만...
어찌되었든 "모든 사람의 인격은 똑같이 소중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기본적 당위, 그리고 그에 입각한 기본적인 인성교육의 범위를 벗어나서 '''특정한 가치관, 이념, 정치 사상을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절대화하여 주입시키려는 발상은 그 자체로 비민주적이며,''' 학생들을 자기 편으로 무조건 끌어들이려는 편에 지나지 않는다. 해당 노선만 고집하면 당연히 페미에 대한 반감은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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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여성 징병제 관련


아래의 논의들은 여성 징병제 문서에 더 자세히 나와있다.
징병제를 논하기에 앞서 '국방의 의무'와 '징병'이 동등한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한다. 여성 징병제 논란의 핵심은 '현재 대한민국 국적의 여성들이 징병이 아닌 어떤 형태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여성은 남성의 징병제와 비교할만한 국방의 의무를 부여받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징병제를 주장하는 것은 국방 의무의 수행에 있어서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부여된 불평등인 징병제에 대한 반발의 산물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불평등에 대한 논의를 다룸에 있어 징병제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틀에 갖히게 되는, 또는 그렇게 유도하거나 당하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
징병제 국가인 한국에서, 여성징병제에 대한 찬반 여부는 오랫동안 회자된 이야깃거리다. 여성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징병제에 찬성해야 하는가, 아니면 여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군대에 여성이 부적절하니 반대해야 하는가의 차이이다. 일단 원론적인 페미니즘적 관점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서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의무를 짊어질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찬성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하지만 메갈리아 계열에서는 '''"대다수 여성에게 병역의무는 무리이고 남성이 누리는 권리만 똑같이 내놓아라"'''라는 식의 주장이 강하다. 여기에 더불어 여군의 존재를 들먹이면서 아주 안 가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우습게도 '''군대 가지도 않을 사람들이 더 강력하게 주장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일부 페미니즘 지지자들은 병역 의무는 특수 의무이고 여성 인권은 보편적 권리이기 때문에 특수 의무를 이유로 보편적 권리가 침해당해서는 안된다는 주장까지도 내놓는다. 문제는 병역 의무가 국방이라는 현실적인 사정이라는 이유로 국가에 의해 개인의 의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강제적으로 개인의 보편적 권리들을 모조리 짓밞는 행위[66]임을 생각하면 해당 논리의 설득력이 엄청나게 부족하다.[67]
여성의 징병시 각종 성군기문란 사고가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도 여성징병에 반대하는 논리로 자주 등장한다. 우선 이것은 성군기 문란행위를 방지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결론이 나야하는 것이지, 여성을 징병해서는 안된다라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군대 내 자살 사고도 많고, 총기 사고 많다고 군대를 해체해야 하냐고 한다면 납득할 사람이 있을까? 또한 여성은 여성끼리 군생활을 수행하는 등의 대안도 어렵지 않게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단순히 징병을 받지 않는다는 여성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기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또한 노르웨이처럼 양성할당제는 실시하지 않으면서 여성징병제는 하고 싶어한다. 군대 내 성폭력문제부터 해결하고 여성 징병제를 논의해라. 군대 내 성폭행 문제에는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여군이 쓸모없다고 까면서 여성징병제는 원한다. 등의 주장도 하고 있다,
거기에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대체복무의 수단이 현실적으로 마련되면서 여성들도 이러한 형태로 복무하면 되지 않느냐는 보다 합리적인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성계는 이에 대한 논의 자체를 여성혐오규정하고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오히려 완전모병제바꾸자는 역제안을 내놓고 있다. 물론 모병제를 시행함으로써 현 징병제에서 나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들이 모병제를 주장하는 이유가 '''국방에 대한 책임 회피'''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으며, '''무엇보다 성별 문제를 떠나 병력 수행이 가능한 젊은 인구가 매우 부족하다.''' 당장은 물론이고 미래에는 더더욱 부족할 것임이 기정사실화이다. 현대 대한민국의 출산률은 1명조차도 못 넘는 소수점 단위이다.[68] 국가와 국방에 대한 이들의 인식수준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남자들의 경우 일각에서는 여자가 군대 가는 것 자체를 바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저 여성들이 나라를 지켜 피땀 흘리는 군인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거나, 최소한 남성이라서 겪어야 하는 큰 시간/비용/정치[69]적 손실[70]을 지며 국방에 기여하는 것에 감사하게라도 여기고 비난은 말아야 한다고 보는 건데,[71] 적어도 전쟁 위험성 높은 국가군에서 여성으로 태어나서 병역 '애초에 여성은 연약한데 군대 보내면 안 돼요' 하는 것부터가 여성은 남성보다 연약한 열등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밖에 안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즘은 국내 페미니즘 안에서 여성들도 징병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이다. 남성이란 특정 성별을 존경하도록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휴전국가이기때문에 군사훈련에서 여성만 빠지는 것은 여성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라고 보기도 하다.
애당초, 한국 수준의 전면전 위험성을 갖고 있는 나라는 바로 우리와 대치하고 위의 북한이스라엘이 대표적인데, 정작 이 두 나라는 '''여성도 징병'''한다.[72] 성평등 측면에서도 그것이 올바른 것이고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국가 안보가 위험한 나라에서는 나라 존속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징병한다는 상황속에서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그런 판국에 우리나라는 거의 동등한 위험성이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여성이라는 성별이라면 징병은 커녕 5주의 훈련소 입소나 군사훈련조차도 받지 않는다. 여성들에게 편의의자, 또 다른 면으로는 여성에게도 성차별을 행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북한군이 현재 압도적으로 나약한 상황을 보아 굳이 여성을 징병해서 억지로 대군을 유지해야 하냐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르게 보면 북한이 망하기 전에 그냥은 안 망하려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도 크다.

5.8. 성격차지수 중하위권 논란


세계경제포럼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성(性)격차지수 (Gender Gap Index)에서 2014년 135개국 중 117위, 2015년 115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 통계는 '''내전과 집단강간, 여성할례, 명예살인 등이 일어나는 국가들이 한국보다 순위가 높은데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보다 약 7퍼센트 높은데도 불구하고, 군 복무한 남성도 포함시켜서 남성의 대학진학률이 110퍼센트를 육박한다는, 각 나라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통계를 내기도 하는 문제가 있다. 이 자료는 상당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보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성격차지수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반면, UN에서 발표한 성불평등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09년 기준 11위로 미국뉴질랜드보다 높다.통계에 따르면 순위는 27위로 떨어졌다가, 17위로 다시 올랐다. 하지만 이 순위는 한국에서 격차가 가장 심한 소득 부분누락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임금격차는 10년 넘게 OECD 1위를 차지하고 있다.[73] 참고로 이에 대해 통계청은 "우리나라 여성은 결혼이나 출산 후에 직장을 아예 떠나거나, 아니면 전과 같이 전일제 근무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 출산률과 모성 사망률이 한국의 배경에서 여성 인권과 큰 상관이 없음에도 한국이 큰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74][75] 그러나 경제구조의 경우 후진국과 선진국, 동양권과 서양권의 차이가 두드러지고 여성의 종사직종, 경제력 부분에서의 남녀의 사회적 압력이 다르므로 성별에 따른 여기서 표시된 임금격차만으로 차별을 논하기는 힘들다.[76] 이에는 반론도 있는데,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전일제·시간제 등 근로시간 형태와 직종을 포함하여 37.8%이다.[77] 다만, 임금격차의 경우 '''차별로 추정되는'''이라는 부분은 사실은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다. 실제로 차별적 요소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요인분석에서 포함시키지 못한 요인의 기원이라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차별을 밝혀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며 통계만이 아닌 실험이 포함되어야 한다.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OECD 응답 국가 32개 국가 중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으며 국가 지표 체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주당 36시간 미만 근로하는 여성 취업자의 수는 남성보다 약 천 여명 가량 많은데 비해 주당 36시간 이상 근무하는 남성의 수는 여성보다 약 오천여명 차이가 난다. 참고로 당시 취업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남자 46.0시간, 여자 40.4시간이였다. 이 자료는 해석하기에 따라 남녀싸움의 단초를 제공하게 되기도 한다. 일단 여성 측에선 입사과정에서부터 출산 혹은 육아로 문제로 인해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하며, 그로 인한 경력단절과, 고소득 직종에 종사하는 남성의 비율 또한 여성보다 많음을 들어 동등하게 진출하지 못하는 건 성차별의 영역이라 말한다. 그러나 사실 위험하고 고소득인 직종에선 남성이 많고, 여성이 더 편하게 일하고, 남성이 더 많이 일하며, 소득차가 있어봤자 부담하는 세금이 더 많다. 또한, 경제활동에 있어서 성평등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놓쳐서는 안되는 부분은 생산활동에의 참여뿐만 아니라 소비활동에의 참여를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류의 조사가 주로 서구권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성평등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에 경제활동의 주체가 아닌 가족구성원(한국에서는 주로 여성)이 가정 내에서 경제권을 가지는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여 반영는 것이 어려운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경제활동에 관런한 성평등을 수치화할 때, 남성들이 스스로를 현금인출기로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하여 개정토록 하는 요구가 필요하다.
여성계 대부분이 관심을 가지고 있을 성추행 문제도 그렇다. 성폭행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근절되어야 할 범죄이긴 하나, 이진욱이 무고하게 성폭행 죄를 뒤집어 쓴 것처럼, 최근 남녀 서로에 대한 돈 때문에… 복수심에… 성범죄 무고죄 급증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무고죄는 성폭력을 당했다는 주장을 하는 여성의 입을 막고 있으므로 선량한 남성들이 성범죄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인생이 박살나더라도 성폭력 케이스에 한에서 무고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며#, 무작위 대중에게 '''연예인들처럼 훼손될 명예'''와 '''갈취할 돈''' 없는데 니들은 왜 반발하냐는 차별적이고 비하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78]
일부 페미니즘에서는 한국이라는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는 한국이라는 국가와 사회를 가부장제가 국가주의적 매커니즘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을 여성이 포함된 공동체라기보다는 여성이 배제되어 있는 '남성만의' 공동체로 여기며, 여성을 예속시키는 것으로 본다. 물론 전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니며, 한국의 페미니즘도 그렇게 좁은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성향의 영 페미니스트, 환경 운동과 더불어 여성운동을 전개하는 에코페미니즘 계열, 기존의 리버럴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자들 등 그 스펙트럼은 서양의 그것과 비교해 많이 좁지 않다.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조금만 해 보면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납득 가능한 논지의 운동을 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요즘 알려진 '''여성가족부 이미지'''로 한국 페미니즘의 이미지가 굳은 것은 국민의 정부 시절 여성부가 만들어지면서 이 부서의 주류를 꿰찬 것이 상~중상위층 중심의 페미니즘이기 때문이다. 초기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한계로 지적되는 상~중산층 이상 여성 위주의 특권의식과 다른 부류의 약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그대로 지닐 수밖에 없다. 여성가족부는 그 외의 부류의 페미니스트에게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않지만, 공인된 정부 부처인 만큼 여성가족부의 영향력이 매우 큰 것도 사실이므로 오히려 다른 파벌은 비주류로 밀려나는 상황이다. 소위 '남성도 납득할 수 있는 논지의 주장을 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비주류 그룹이나 개인적인 활동에 불과하여, 법안 제출은커녕 제대로 활동 지원도 제대로 못 받는 입장에 있다.
게다가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이후 여러 사건들로 비주류 주류할 것 없이 전부 다 메갈리아 같은 비상식적인 반사회집단을 성 대결로 보고 적극적으로 그들의 목적과 방법을 옹호하거나 혹은 극단적인 방법은 비판하는 척만 하고 소극적으로 그들의 목적이나 결과물을 지지하는 추태를 보이고 있어, 이미 한국 페미니즘계에는 자정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79]

5.9. 백인우월주의


서구 페미니스트들은 대부분 겉으로든 진심이든 정치적 올바름을 중시하기 때문에 대체로 그러지 않지만 국내 페미니스트들은 매우 극심하다.[80]
페미니즘을 주로 서구 선진국 백인들이 주장했으며 미의 기준이 서구적이라서 백인들의 평균 외모가 좋다는 점, 백인 남성은 대부분 여성에게 매너 있고 깨어있다는 편견과 한국인 대부분이 갖고 있는 백인 우월주의 정서가 합쳐져 대놓고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백인 남성을 갓양남 이라는 인종 우월주의 단어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한국남자들은 한남이라고 부른다 남성들이 미러링을 한다면 미개하다, 역시 한남충 등등 이라고 비하한다.
백인에 반대되는 부류로 주로 소환되는 것이 일본인 인데 주로 깨어있고 멋있는 백인과 반대되는 미개하고 열등한 일본인 이런식으로 대비 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군대에 징병돼서 군대에 끌고 가게 만든 원인이 된 중국의 6.25전쟁 참전 이나 여러가지 가치관으로 중국에 대한 반감을 가진 젊은 남성이 많아서 남성들은 반 외국 감정이 일본에만 집중 되는 경향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반해, 여성들은 학교나 언론을 통해서 반 외국 감정은 주로 교육을 통하여 점하는 경우가 많기에 때문에 반일감정이 큰 탓도 있다. 거기에 일본의 여성 지위가 낮은 것도 여기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서구의 대안우파를 비롯한 백인 우월주의자들 대부분은 페미니즘을 혐오한다. 페미니즘이 출산율을 낮춰 백인 비율을 줄어들게 만든다는 화이트 제노사이드의 주된 소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아시안 페티시가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 여성에 대한 환상이 있으며 동아시아 여성이 페미니즘을 한다고 해도 착한 페미니즘이라는 반응이 레딧에 있을 정도이다.

5.10. 극단적 알페스 옹호


손 심바가 알페스 근절 공론화를 하자, 알페스 공론화 사건 도중, 한국 페미니즘 진영에서 엄연히 '''실존인물'''을 불법으로 성희롱한 창작물인 알페스를 전력으로 옹호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하필 한국 페미니즘 진영을 지지하는 여초 커뮤니티 대다수가 알페스의 주요 소비자이기 때문. 즉, 지지층을 잃지 않기 위해 저러는거다. 설상가상으로 청소년 성매수유인죄에 해당하는 범죄이기에 신고 포상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알페스 옹호자면서 이용자인 일부 여초 커뮤니티의 네티즌들을 신고할 수 있어, 한국 페미니즘 진영의 온라인 지지층 기반이 초토화되게 생겼다[81]. #

5.11. 예산 낭비 및 횡령


한국 페미니즘 주류를 대변하는 부서인 여성가족부예산 낭비 및 횡령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횡령으로 인한 피해자 중 미혼모들이 있어 여성가족부 무용론이 거세지는 등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와 페미니즘 진영은 침묵과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추태를 보였다.

6. 정리


정리하자면, 성평등을 지향하는 것은 좋다. 애초에 성평등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은 정말로 적다. 하지만 성평등을 위한다고 사용했던 방법이 이렇게 갈등을 조장하고 한 쪽에 박탈감을 심어줌으로써 사회 불만세력을 키웠다면 비판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82]
첫째로, 자기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은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서 사회적 정당성을 얻지 못하면 비판의 소지가 있다.[83] 둘째로, 페미니즘 역시 민족주의와 마찬가지로 각종 다른 이데올로기와 결합이 가능한데, 이 경우는 그 결합한 이데올로기가 받는 비판에 노출될 수 있다. 셋째로, 오늘날 페미니즘은 특히 포스트모더니즘과 결합해서 감수성, 소통 등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이런 감수성 운운으로 인해 페미니즘은 자집단 이기주의를 정당화하면서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기만 할 뿐, 구성하지는 못한다는 비판 역시 가능하다.[84]

[1] 물론 교집합도 상당수 있지만 주로 진보 정치권에 있는 기성세대 정치인처럼 여성차별을 하는 꼰대이면서 페미니즘에 찬성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성평등을 지향하면서도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2] 원본은 미국의 코미디언 빌 버가 한 말인데, 이것을 카연갤에서 초월번역 한 것이다.[3] 사실상 대다수의 청년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의 평판을 개차반으로 만든 원흉이다.[4] '''절대적인''' 여성인권 수준의 측정에 한계가 있는 성격차지수(GGI)를 근거로 대한민국의 여성 인권 수준이 중하위권이라고 주장한 박주민정춘숙이 바로 그 예시다. 추가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일부 정치인도 바로 여기에 들어갈 수 있다.[5] '자칭'이라는 단어에 주의해야 한다. 사실 대한민국 내부에도 온건 페미니스트가 있긴 하다. 이들의 지분이 적고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것이 함정이다.[6] 대표적으로 보수주의 계열은 여성/청소년 보호, 래디컬 페미니즘은 성적 대상화이다.[7] 비욘세, 레이디 가가[8] 참고로 검정 고무신의 경우 에피소드를 보면 알겠지만 그 당시 탄압받아 온 만화계를 잘 보여주는 사회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다.[9] 물론 성상품화 비판에서도 성별에 따라 비판유무가 달라지는 내로남불은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다.[10] 남성 작가가 쓴 소설 속의 가상인물이다.[11] 일부 자유주의 여성 단체들은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한다.[12] 참고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페미니스트가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할 때 썼던 레퍼토리다. 단,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 도래하면서 어느 정도 완화된 상태다.[13] 이것에 대한 비판과 이슈화로 인해 크게 회자된 것이 바로 수저계급론이다.[14] 가장 단적인 예로, 전자는 워마드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도촬 사건, 후자로는 대한항공 086편 이륙지연 사건을 들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전자의 사건에 대해 "유X무죄 무X유죄"라며 시위를 벌였고, 후자의 사건에 대해서는 일부의 주장이기는 하지만 조현아는 여자이므로 남자인 박창진보다 약자라며 사건 자체를 여성혐오로 물타기를 시도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15] 예를 들어 학교 운동장이 남자 아이들한테 점령되어 있다는 의견이 있는데, 운동장을 점령하는 것은 남자 아이들 중에서도 신체 능력이 좋고 외부 활동을 좋아하는 인싸틱한 아이들 위주고, 이는 운동장의 크기가 작을수록 심화된다.[16] 문제는 김규항은 페미니즘내의 모순과 문제점을 비판하기를 즐겨 하지만 페미니즘 자체에는 매우 긍정적인 인물이다. 이후에는 페미니즘은 철학으로서 수준이 떨어진다는 비판에 대해 철학의 역사 대부분이 남자만을 인간으로 상정한 반쪽짜리였음을 정정한 것만으로도 페미니즘은 최고 수준의 철학라고 주장하기도 할 정도다.[17] 당시에도 한겨레가 페미니즘에 대해 유독 편향적인 편들기를 줄곧 일삼는다는 비판이 나오던 상황이었다.[18] 실제로 네이트판, 여시, 쭉빵에 올라왔던 못생긴 남성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글의 제목이다. #[19] feminine(여성의)+ -ism(주의/主義)[20] 여초 사이트 중에서는 가장 클린하다는 인스티즈 유저 대다수도 '페미니즘 = 성평등' 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할 정도. 인스티즈는 흔히 말하는 온건 페미 성향이다.[21] 기존 인기 작품들의 여러 요소들을 따져가며 비판하는 선에서 안 그치고 여성혐오라던지, 빻았으니 하지 말라고 한다던지 여캐 배제라 주장한다던지(...) 등등.[22] 보통 이들은 페미니즘이나 정치적 올바름이 주장하는 것들이 서브컬쳐에 강하게 반영되는 것이나 페미니즘 + 정치적 올바름 지지 계열 팬덤이 서브컬쳐 팬덤 내에서 분탕질 치는 것이나 선동질 하는 것, 혹은 강세인 것을 불만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덕질 관련 여초 사이트만 해도 트위터 마이너 갤러리 같은 일부 여초 사이트는 대다수의 서브컬쳐계 여초 사이트들 사이에서 팽배한 페미니즘적 시선들이나 잦은 여성혐오 언급, 페미니즘적 시선에서 강하게 지지하는 여성상과 배척하는 여성상으로 이분법된 풍조, 이를 강하게 지지하며 반대 의견을 취좆해 버리는 풍조, 취향에 관한 강한 검열적 풍조를 불편해하거나 못마땅해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이들은 소수고 열세다보니 강세인 페미니즘 지지파들에게 밀려서 그 판을 떠나거나 숨죽이며 살거나 아예 안티페미니즘적 분위기의 소규모 판을 만들고 자기들끼리만 모이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런 판들조차도 어느새 기어들어온 다른 유입자들에 의해 패미니즘 옹호파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23] 대표가 아닌 배드 파더스라는 막장 부모의 양육비 미지급을 해결하는 단체를 보호자다.[24] 사실 국지혜는 조리돌림하지 않고도 가만히 있으면 역풍을 맞을 일이 없었다. 배드 파더스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아버지의 신상을 무단으로 임시공개하고 적자를 보면서까지 남편에게 버려진 어머니와 아이를 지원하는 곳 배드 파더스를 도울 수 없다고 하면 역풍을 맞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구본창의 남편에게 버려진 어머니들을 후원하기 위해 배드 파더스 후원을 도와달라는 간절한 요구를 무시해도 끈질기게 달라붙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화를 냈고, 배드 파더스에 비해 실제로 남편에게 버려진 어머니와 아이를 위해서 목숨 걸고 봉사한 적이 없는 열다북스는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25] 다만 본 기사는 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낸 기자와의 인터뷰를 거부하면서 한 주장이기에 본 항목의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는다.[26] 이것은 사실 페미니스트들이 모든 남성을 성차별주의자 또는 잠재적 성범죄자로 몰아갈 때 사용한 논리 중 하나이다. 뭐 "논리는 남성들이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낸 도구"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도 있긴 하지만...[27] 물론 같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라고 친한 것은 아니었지만(중소분쟁, 중월분쟁 등이 있다.) 서로 사회주의 블록이라는 이유로 암묵적으로 용인했다. 물론 중월전쟁의 계기인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밀어버린 것처럼, 그 정권이 막장이면 갈아 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28]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통합진보당과 손잡았다가 중도층과 충청도에서 참패했던 민주통합당을 생각해보면 된다.[29] 앰버 허드, 아질리아 뱅크스(본인은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듣기 싫으며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페미니즘에 여성주의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보면 페미니스트의 기준에 부합한다) 등.[30] 이것도 중요하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그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의 비중이 어느 집단이 더 큰가는 중요하지 않다. 여성은 90%가 겪고 남성은 10%가 겪고있는 문제라고 여성만을 위한 해결책을 내놓는다면 소수자인 10%의 남성이 소외된다. 즉, 근본적인 원인 자체를 해결해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31] 여기에 대해서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형성에는 사회적, 문화적 요인만이 영향을 끼치며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데이비드 라이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오로지 사회적 요인만이 남성성과 여성성을 형성한다는 관점에서 실시한 실험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았는지 보면 여러 가지 성향의 형성에서 생물학적 (다르게 표현하자면 선천적)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다.[32] 당연하지만 남성이 우월하고 여성은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은 이걸 선호하고 여성은 저걸 선호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여성 중에서도 로봇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고 남성 중에서도 인형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저 그들 중 다수가 "무엇을 선호하는가"가 생물학적 선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생물학적 요인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33] 특히 현실에선 로봇이든 인형이든 그 숫자가 제한되어 있고 소수의 사람들만 그것을 쟁취할 수 있게끔 경쟁을 유도하는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권력이 개입하여 저런 할당제를 실시한다면? 당연히 사회적 반감과 불만이 커질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34] 예를 들면 예상보다 효과가 미약하거나, 이젠 더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거나, 부작용이 효과보다 크거나, 본질적 해결책이 본궤도에 올라서 더 이상 필요 없거나, 실용성에 의문이 생기거나 등.[35]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과도한 수단을 사용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비례의 원칙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36] 심지어 그 특혜가 사회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말이다.[37] 물론 이럴 경우 수행 업무에 따른 인사상의 차별(진급 등)은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페미니스트들은 부정하겠지만.[38] 당장 여성가산점은 여성에게 혜택을 주는 것인데 그런 여성과 경쟁해야 하는 것은 2030 남성들이지 중장년층이 아니다.[39] 거기에다가 그런 이들(40~50대 남성이 주류인 진보 정치권)의 행동은 페미니즘과 거리가 먼 경우가 허다하니 (더불어민주당/비판,정의당/비판 문서 참고), 2030대 남성은 물론 2030대 여성에게도 진보씹치라는 말을 들을 때가 비일비재하다. 참고로 이들에 대한 비판으로 탄생한 정당이 바로 여성의당이고, 한 때 트위터에서 박복권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에서 기인한다.[40] 성별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따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원류 여성주의 계열에서는 상당히 성차별적이라고 인식해 저런 해석 자체를 옳지 않다고 본다.[41] 페미니즘의 정의가 대체로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하며 성별과 관련된 한 사회적으로 올바른 주장만을 펼치는 이'라는 거지 실제 상황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42] 이전 문서에는 이런 급진적 방식을 그 어디에서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듯이 써놓았으나, 이는 차별에 관한 문제를 너무 단편적으로 본 것이다. 단적으로 말콤 엑스를 생각해 보자. 그는 현대까지도 그 과격하고 급진적인 운동방식으로 크게 비판받는 인물이지만 말콤 엑스를 빼놓고 흑인인권운동에 대해서 논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과 별개로 그를 아예 지우고 흑인인권운동에 대해 논할 수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과격한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을 뿐더러 그 말콤 엑스 자신조차 이후 본인의 강경하고 배타적인 노선 방향의 한계를 인식하고 다른 인권운동 노선을 모색하고 서로 단결하고 노력하는 변화된 모습을 자주 보였다.[43] 주류 여성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메갈리아와 워마드가 이렇게까지 분탕을 칠 수 있었던 것은 그 인정이 있었기 때문이다.[44]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1세대 여성운동이 시작된 계기가 콘돔의 발명과 상용화에 있다고 생각한다.[45] 그런데, 정작 이 사람들은 대부분 아동 학대 가해자들이 펼치는 논리라는 게 문제다.[46] 당장 페미니즘 시위에서 자주 등장한 남성 비하 차별 혐오 발언들만 해도 학계 페미니즘에선 남성혐오와 비하, 차별에 대해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령 있었더라도 이러한 페미니즘 학자들은 다른 페미니즘 학자들에 의해 거세게 비판받았다.[47] 참고로 JTBC와 한경오가 크게 비판받은 것이 페미니즘에 대해 옹호를 하면서도 현재 페미니즘 시위들에서 나타나는 남성 혐오, 비하, 조롱의 주장들에 대한 보도를 꺼리는 편파 보도 때문이다.[48] V-리그,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문서를 보면 알다시피 오히려 여자 배구가 여자 축구보다 남녀 팬들에게 인기가 더 많다.[49] 애초에 젠더학의 가장 큰 세 갈래는 여성학, 남성학, 퀴어학이다.[50] 실제로 페미니즘에서 정의하는 분파에 따라서 여성혐오에 동성애 혐오도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존재한다.[51] 그나마 메갈리아는 대놓고 적대적이진 않았고 우호적인 구성원들도 있었던 편이다. 반면 워마드는 애초에 메갈리아에 있던 호모포비아나 TERF가 성소수자와의 연대 문제로 갈라져 나와서 만들어진 것, 즉 혐오세력이 주류다.[52] 사실 이쪽에선 여성인권단체들이 이들을 두둔하기까지 해 상황이 더 복잡하다. 단 주류 여성인권단체들의 입장은 남성 성소수자라도 공통의 적인 동성사회성을 해소하기 위해 연대하자는 TIRF에 가깝다.[53] 네이트 판 등에서의 아웃팅을 시작으로 트랜스여성의 여대 입학 논란까지[54] 예를 들어 2019년 서울 퀴어문화축제의 대리모 논란의 경우, 옳고 그름을 떠나 어느정도의 지속적 논의가 필요한 주제에 대해 초창기에는 대응을 잘 한 편이었으나, 계속된 페미니즘 단체의 항의에 의해 자신들이 대표해야 할 성소수자의 의견취합과정 없이 연대세력인 페미니즘 세력의 의견만을 수용하는 결말을 내는 등 비판의 여지가 생기기도 하였다. 물론 해당 부분은 클로짓이 대다수일 수 밖에 없는 '성소수자'가 신뢰 가능한 모집단으로 통계를 낼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섣불리 언급을 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대표성을 깨뜨리는 문제가 되어버린다.[55] 어떤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맞다. 예를 들어 절도를 예방하려면 문단속을 잘 해야 하고 뻑치기를 당하지 않으러면 밤늦게 술취해서 으슥한데 혼자 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범죄 자체의 책임은 가해자에게 있는 것이지 피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학교로 치면 왕따도 잘못했으니 그것도 왕따 탓이라고 주장하는 꼴이다. 이 부분에서 옛날의 관점의 문제는 피해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페미니즘의 관점은 아예 조심할 필요가 없다는 식이라는 문제가 있긴 하다.[56] 첨언하자면 이것은 특히 미국에서 효과적인 논변이다. 미국에서 흔히 이상화되는 남성성은 우리나라 사회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꼴마초라고 느껴질 정도로 무지막지한 폭력성과 야수성을 자랑(?)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흔히 말하는 "고개 숙인 가장", "축 처진 아버지의 어깨" 같은 표현들에서 보듯이 남성성이 훨씬 더 약한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 대신 군사독재의 영향으로 인해 권위주의전체주의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고, 실제로 진중권이나 박노자 등도 이를 지적해 왔다.[57] 심지어 극단 페미니스트 측에서는 피해자의 자구책이나 안전책을 언급하는 것 만으로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것이라는 등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도 하여 대화를 더 어렵게 만든다. 피해자 측에서 최소한의 경계 및 예방을 할 수 있는 법을 가르침과 동시에 범죄의 책임은 무조건적으로 가해자에게 있다는 점 또한 확실히 알리는 교육이 가장 균형잡힌 형태라 할 수 있다.[58] 사실 이는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일어나는 특징이다. 그래서 힐러리 클린턴이 페미니즘 관련 이슈에서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백인 여성 중 53%만 얻고 참패했다.[59] 실제로 다문화 여성의 학대 피해 건수는 늘고 있다.[60] 여성부가 다룬 이슈는 거의 대부분 이쪽으로 귀착된다.[61] 비만은 오히려 불임의 원인이 된다[62] 이렇게 된 이유로는 현재 대한민국의 여성인권단체가 진보권 정치인과 같이 민주화 운동을 같이 한 것이 컸다.[63] 눈치를 챘겠지만 1990년대 김활란의 친일반민족 행위에 대한 일부 이화여대생의 발언과 정말 유사했다.[64] 래디컬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파쇼적인 발상일 수 있으나 기존의 인권평등 개념을 구체적으로 가르칠 필요는 있다. 만일 실제로 시행된다면 기존 인권 교육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강화하여 교육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65] 여기서 마지막 밑줄 그은 문장은 남한 페미나치의 수괴인 정희진이 한겨레신문 칼럼 '한국 남성의 더러운 잠'이라는 제목으로 떠든 소리를 약간 변형한 것이다.[66] 강제적 병역 의무 이행 강제 집행을 통해 짓밞히는 권리들도 똑같은 보편적 권리들이다.[67] 결정적으로 최근 여성에게도 공평하게 징병제를 실행하는 국가들이 sns 등의 발달로 인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속속 알려지기 때문에 남성에게만 징병제를 실행하는 현재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들에 대한 10~30대 젊은 세대의 반감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68] 2018년과 2019년의 총출생자수는 총합 679,866명이다. 이들이 20년이 지나 성인이 될때까지 모두가 생존해 있지는 않을테니 2017년의 미성년자 사망자수가 458명인데, 사망자수 자체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으므로 대략 250명으로 잡아 보면 679,616명 정도라고 생각해보자. 또한 모든 미성년자들이 군 복무에 적합하지는 않을 테니 현 징병률 96%를 적용해보자. 652,431명 정도 나온다. '''여기서 여성을 제외할 경우, 현 성비가 103:100 정도 되니 331,036명 정도 된다.''' 현 정부의 군 감축 목표가 50만명인데, 타국에서 용병을 대규모로 고용하지 않는 이상 '''미래에 여성의 징병 없이는 병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69] 한국 20대 남성의 정치적 결집이 어려운 이유엔 군 복무 문제도 한몫한다.[70] 나라의 존속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논리가 들어가서 어쩔 수 없지만 2년여의 자유박탈은 보통은 납득하기 어려운 기본권 침해이다. 말이 좋아 징병이지, 강제노역이다. 그런데 그것을 한 성별에게 법적으로 강요한다면 이건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레벨에서는 명백한 성차별이 된다.[71] 감사하게 여기고 비난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도 있고 감사는 해야하지만 툭하면 군대군대거리는 것은 여성에게 죄책감을 주는 행동이라고 비난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다.[72] 북한은 가려서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여성징병은 '''자살에 가까운 짓'''인데, 남자를 10년이나 군대에 가둬두는 동안 남아서 경제를 책임져야할 여자까지 군대에 돌린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73] 남녀간 임금격차 13년째 OECD 1위[74] 특히 한국에서 청소년 출산률이 낮은 것은 청소년 출산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 각주 참조. "UNICEF는 한국,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의 '청소년 출산률'이 낮다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그것이 (개선된) 성교육 덕분이 아니라 아직 전통적 가치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한다. 즉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 이른 출산이 축복으로 여겨져 '청소년 출산률'이 높았다면 이들 국가에서는 그 반대의 문화 때문에 도리어 '청소년 출산률'이 낮다는 것이다. UNICEF는 특히 한국의 사례를 별도로 언급한다. 한국에서는 혼전 성관계와 임신이 강력한 사회적 불승인에 직면하게 되고, 임신한 청소년들이 상당한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런 요소가 한국의 매우 낮은 '청소년 출산률'에 일부분 영향을 준다고 분석한다."[75] 자세한 것은 링크에 잘 설명되어 있다.[76] 대표적으로 가정주부의 비율은 한국, 일본 등에서 높으며, 이 국가들에서 GGI지수가 낮다. 하지만 일본은 비슷한 직종에서의 임금격차가 0.68포인트로, 0.63인 중국과 비슷하며 한국은 0.51로 그래도 낮다.[77] 남녀 임금격차, 가장 큰 이유는 ‘그냥’[78] 돈은 그렇다 쳐도 명예훼손이라는 법적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발언이다. 또한 2000년대 이후의 대한민국에서 성범죄 특성상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가해자로 찍힌 남성이 주변으로부터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여성들이 더 잘 알 것이기 때문에 명예도 돈도 없다는 말은 틀렸다.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 남성도 훼손될 명예는 차고 넘친다.[79] 이와 비슷한 일로 민주통합당에서 통합진보당이나 임수경, 김용민을 안다가 18대 대선,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부산경남에서 선전하고도 중도성향과 충청도, 경기도에서 패해서 새누리당에게 밀린 것이 예다. 또한 그 통합진보당에서도 경기동부연합이 나댄 결과는 해산이었다.[80] 한국계 영국인 페미니스트인 '''"여혐민국"''' 저자는 남친이 영국 백인 남성이며 한국 남성에 비해 친절하다고 자신의 책에 서술했다.[81] 오프라인 알페스만 발각되었더라면 숨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알페스는 온라인으로 음지에서 불법대중화되었다. 한 번 수사가 탄력을 받으면 은폐할 가능성이 적어진다. 따라서 알페스를 옹호하는 한국 페미니즘 진영의 대다수 온라인 지지층이 초토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82] 약간 기존 좌파의 관점을 섞어보자면 이들이 키운 그 불만세력은 무려 진보의 핵심이 되어야 할 무산계급이다.[83] 단적으로 중화민족주의를 생각해 보자.[84] 소위 꿀빠니즘이라는 비판이나 페미니즘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면 보편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필요하다면 특수한 배려를 요청하는 이중잣대가 이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