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유엔
UN
'''
[image]
[image]
'''깃발'''
'''엠블럼'''[1][2]
'''설립'''
1942년 1월 1일 연합국 선언
1945년 6월 26일 유엔 헌장 조인
1945년 10월 24일 공식 출범
'''본부'''
치외법권(소재지: 미국 뉴욕)[3]
'''공용어'''[4][5]
아랍어,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한국어 명칭'''
'''유엔'''(한국어[6]문화어[7] 공식 표기)
국제연합
'''각 공용어 명칭'''
United Nations(영어)
Organisation des Nations Unies(프랑스어)
Organización de las Naciones Unidas(스페인어)
Организация Объединённых Наций(러시아어)
联合国(중국어 간체)[8]
الأمم المتحدة(아랍어)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
(2017년 1월 1일 ~)
'''사무부총장'''
아미나 모하메드
(2017년 1월 1일 ~)
'''총회의장'''
마리아 페르난다 에스피노사
(2018년 9월 13일 ~)
'''무비자 입국'''
유엔 직원→한국: 30일[9]
한국인→유엔: 90일[10]
'''가입국'''
193개국[11]
[image]

유엔 찬가 유엔 헌장
<colbgcolor=#4b92db> '''뉴욕에 소재한 유엔 본부 청사의 외관.'''
<colbgcolor=#4b92db> '''제네바에 소재한 유엔 유럽 본부 청사의 외관.'''
1. 개요
2. 명칭
3. 역할
3.1. 국제평화 유지
3.2. 인도주의적 지원과 인권보호
3.3. 세계 인구 및 식량 관리
3.4. 경제개발 지원과 무역,투자 진흥
3.5. 문화유산 보존과 자연환경 보호
4. 역사
4.1. 설립 배경
4.2. 설립 선포
4.3. 출범 직전과 초기 유엔
4.4. 냉전기의 유엔
4.5. 냉전 이후와 현재
5. 구성
5.1. 핵심 기구
5.1.1. 유엔 총회
5.1.2. 안전보장이사회
5.1.3. 경제사회이사회
5.1.4. 유엔 사무국
5.1.4.1. 유엔 사무총장
5.1.5. 국제사법재판소
5.1.6. 신탁통치이사회
5.2. 유엔 관련기구
5.2.1. 산하기구
5.2.2. 전문기구
5.2.3. 협력 기구
6. 회원국
6.1. 상임이사국
6.2. 이전 회원국
6.2.1. 과거 상임이사국
6.2.2. 유럽권
6.2.3. 중동권
6.2.4. 기타권
6.3. 참관국
6.3.1. 과거 참관국
7. 공용어
8. 현실적인 문제점 및 비판
8.1. 분담금과 영향력의 관계
8.2. 군사적 부분에서의 한계
8.3. 비군사적 분야에서의 한계
9. 관련 문서
10.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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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An inclusive United Nations —It’s your world.''

'''폭넓은 나라들의 연합'''— '''바로 당신의 세계입니다.'''

유엔의 모토

'''유엔'''(United Nations, UN) 또는 '''국제연합'''()은 국제 협력을 증진하고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 기구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국가간 연합체이자 가장 많은 국가가 모이는 다자 회의 기구이다.
사실상 모든 국가와 민족을 아우르는 범세계적 기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 현존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가입되어 있다.[12] 유엔의 시작은 애초에 제1차 세계 대전과 같은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해 설립되었지만, 정작 제2차 세계 대전을 막지 못한 국제 연맹의 역할을 대신하여 1945년 10월 24일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 연합국들을 중심으로 전보다 더 큰 전쟁을 막고, 안정적인 국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창립 당시 회원국은 총 51개국으로 현재(2017년) 190여개국에 달하는 회원국들과 비교해 봤을 때, 국제 연합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시작은 그리 크지 않았다.
유엔 본부는 뉴욕맨해튼에 있으며, 이 본부는 사실상 미국의 영토가 아닌 국제적인 지역이다. 본부 이외의 주 사무소는 제네바, 나이로비에 위치하고 있다. 유엔의 운영 자금은 회원국들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이 기부금으로 유엔의 한 해 예산이 편성되며, 그 쓰임은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 인권 증진, 사회 경제적 개발 육성, 환경 보호, 기근을 비롯한 자연재해 및 무력 충돌 시 인도주의적 원조 제공 등에 주로 쓰인다. 유엔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국제적으로도 대부분 국가들이 합의한다는 대표성을 가지는 세계에서 명성이 가장 높은 국제 조직이다.
유엔의 설립 목적은 유엔 헌장 제1조에 명시되어 있다. 핵심 기치는 '전쟁 방지를 위한 분쟁 중재', '집단적 안보 체제 확립', 그리고 '기본적 자유와 인권에 대한 존중'이다. 그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엔 헌장 및 국제사법재판소 규정'''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and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제1조''' 유엔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국제평화와 안전(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을 유지하고, 이를 위하여 평화에 대한 위협의 방지·제거 그리고 침략행위 또는 기타 평화의 파괴를 진압하기 위한 유효한 집단적 조치를 취하고 평화의 파괴로 이를 우려가 있는 국제적 분쟁이나 사태의 조정·해결을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또한 정의와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실현한다.

2. 사람들의 평등권 및 자결의 원칙의 존중에 기초하여 국가 간의 우호관계를 발전시키며, 세계평화(universal peace)를 강화하기 위한 기타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3.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또는 인도적 성격의 국제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인종·성별·언어 또는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촉진하고 장려함에 있어 국제적 협력을 달성한다.

4. 이러한 공동의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서 각국의 활동을 조화시키는 중심이 된다.

유엔 헌장은 1945년 4월 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강화 회의에서 초안을 작성한 후, 1945년 6월 26일 회의가 끝날 때 즈음 서명되었다. 유엔 헌장은 1945년 10월 24일 발효되고, 본격적으로 세계를 대표하는 국제 기구로서의 역할을 시작했다. 유엔의 주 임무는 알다시피 세계평화 유지이다. 특히 유엔의 세계평화 보존 임무는 특히 미국소련 간의 냉전 대치 상황 속에서 더욱더 부각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유엔은 미국소련 두 양 강대국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아찔하고 위험한 국제 위기 상황을 잘 넘김으로써 세계평화를 책임지는 국제기구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이러한 냉전 흐름 속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기존 열강들로부터 독립한 신생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한 경제 및 사회 개발 원조 예산이 급증하였으며, 이에 수반된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지출도 급증했다. 냉전 종식 후엔 유엔은 현재까지도 개발도상국 경제 개발 원조, 세계 주요 분쟁 지역 중재 작업 및 평화유지군 파견 등을 중심으로 식량, 문화, 복지, 교육, 환경, 노동, 보건,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다.

2. 명칭


1941년 12월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먼저 제2차 세계 대전의 동맹을 가리키는 말로 'United Nations'를 제안했고, 이것은 제1차 세계 대전 때의 동맹 명칭인 'Associated Powers'(협상국)의 대안이었다. 그러자 윈스턴 처칠 수상은 바이런 경의 시에서 나온 동일한 어구(United Nations)를 인용하며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이 시에서 언급된 'United Nations'는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의 동맹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전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국제기구의 이름이 되었다.
유엔의 모체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결성된 연합국의 회의기구이기 때문에 국제연합(國際聯合)보다는 '연합국(聯合國)'이라는 단어가 본래 뜻에 더 걸맞는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United Nations를 연합국(聯合國)으로 칭한다.
한국이 'United Nations'를 '국제연합'으로 부른 이유는 일본이 'United Nations'를 '국제연합(国際連合)'이라고 번역한 것을 그대로 들여와 썼기 때문이다. 일본이 UN을 국제연합으로 번역한 까닭은 2차대전 당시 일본은 연합국에 맞서 추축국 진영에서 싸웠으므로 전후 1956년 유엔에 가입할 때 적국이 만든 연합체인 'United Nation'이라는 기구에 들어가는 것이 아무래도 꺼림칙한데다 일본인들에게 설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구 국제 연맹(国際連盟)의 예에 빗대어[13] 'United Nation'을 국제연합(国際連合)이라는 용어로 번역하였다. 일본에서는 '국련(国連)'으로 통칭한다.[14] 자세한 사항은 곳들이나 일본어 위키백과 문서를 참조.
그러나 사정이 비슷했던 독일과 이탈리아는 그냥 쿨하게 연합국(기구)을 직역한 Vereinte Nationen, Organizzazione delle Nazioni Unite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보면 유독 일본이 특이한 편에 속한다. 물론 유엔의 공식언어 중 서양권 언어와 다른 서양국가에서도 모두 연합국기구, 혹은 연합국들이며, 유일한 아시아권 유엔 공용어인 중국어에서도 직역인 연합국(联合国)으로 칭한다.[15] United Nation과 연합국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는 아니라 똑같은 대상을 다른 명칭으로 부르는 것에 불과하다.
이후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는 '국제연합'과 '주 국제연합 대표부'를 각각 '유엔'과 '주 유엔대표부'로 변경'''했지만, 외교부가 이를 변경한 이후에 제정된 대한민국 법률[16] 및 그 이후에 대한민국이 체결한 조약[17]에서는 여전히 ‘국제연합’이라는 표현이 나타나는 등, 혼용이 계속되고 있다.
[image]
현 유엔대표부 휘장.
UN은 UN 지정 공용어를 가지고 있으므로, 국제법의 번역 명칭의 기준은 UN 공용어인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UN 헌장은 UN 공용어로 되어 있는 판본이 '''동등한 원본'''으로 인정받으며, 그 외의 언어로 되어 있는 것은 번역본이기 때문에 번역할 때 원본을 참고해서 번역해야 하므로, 한국어에서도 한자문화권인 중국어 원본을 참고해서 번역하는 것이 올바른 국제법의 번역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유엔의 중국어 버전 홈페이지.
유엔 공용어 중 하나인 중국어(간체)로 '연합국'이라 적혀 있다.

한편 현재의 유엔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의 직접적인 계승자들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전세계 200여개국이 가입하여 모두 표결권을 행사하는 이상 그 중심도 상당 부분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유엔 5개 상임이사국 중 4개국이 원래의 연합국임에도 오히려 이들 때문에 유엔이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기술이 빈번히 나타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또한 유엔은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국가 간의 기구에 그치기 때문에 독자적인 주권을 가진 국가 단위의 주체라고도 할 수 없다.

3. 역할


유엔의 기능에 대한 비판점은 '''8. 현실적인 문제점 및 비판'''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유엔의 직접적인 창립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끔찍한 반인륜적 사태를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그러한 인식이 태동하며 국제연맹이 창설됐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었다. 때문에 창설 초기 유엔의 역할은 종전 국제연맹의 역할에다가 단순히 국제평화 유지의 임무만 더 주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세계화가 진행되고, 국제사회의 상호교류가 전보다 증가함에 따라 범인류를 아우르는 세계기구인 유엔의 역할은 국제평화 유지에만 국한되지 않고, 보다 더 다양한 분야에서 역할과 그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2차적인 목표로 경제분야에 진출하여 개도국의 경제개발을 지원하고, 이와 관련된 사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유엔의 역할 확장을 알렸다. 후 냉전이 끝나고, 자유진영공산진영으로 벽을 치던 상황에서 벽이 허물어 짐에따라 국가들의 상호 협력은 더욱 더 심화되었다. 이에 유엔은 자연스럽게 경제, 군사, 정치분야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기후, 인구, 식량, 노동, 교육, 환경등 거의 인류와 관련된 모든 분야를 담당하고 포괄하는 차원으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현재 유엔은 국제평화 유지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세계각지에 고문단을 파견하고 있다. 또 역할이 늘어남에 따라 유엔의 관련 산하기구들이 많이 생겨났고, 유엔에 협력하는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들이 많이 등장했다.

3.1. 국제평화 유지



유엔은 제1임무로 국제평화를 유지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보통 국제사회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먼저 이 국제 안보 이슈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안을 만들고 유엔 총회에 상정한다. 그리고 표결을 거친 후 국제평화를 해치는 국가나 단체, 지역에 결의안의 내용을 집행한다. 국제평화를 유지하는 결의안의 내용으로는 주로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이 가장 대표적이다. 또는 국제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국가에게 경제제재를 가하는 방법도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두 국가 이상이 이해관계를 두고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제3자인 유엔이 두 국가의 전쟁이 사전에 더 큰 전쟁으로 번지지 않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이 파견된 평화유지군은 평화를 위해 활동하게 된다. 군대가 직접 전쟁에 국제평화를 해치는 불온 집단과 함께 싸우는 경우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현상 유지를 위해 국경지대에 완충지역을 설정해 놓고 유엔군이 주둔하는 방식으로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유엔 평화유지군의 제1 핵심목표는 전쟁의 승리나, 영토 차지에 관련된 것이 아닌 "평화 유지"이기 때문에 일단 전쟁을 멈추고, 평화 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때문에 해당 국가에 일정 목표를 성취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작전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경제제재의 경우엔 직접적으로 군사작전을 전개하여 평화 유지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해당 국가에게 간접적인 경제적 타격을 주어 국제사회의 요구에 순응하게 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국가가 운영되는 원동력 중, 제일 중요한 요소가 바로 “자금”이다. 때문에 이 자금줄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국제평화를 해치는 활동에 제동을 건다. 유엔군 파견 이외에도 자주 쓰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제재안의 내용을 교모하게 피해 제3의 루트로, 제재 대상 국가가 자금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은 아직 한계점으로 남아있다. 그 외에도 국제재판소를 두고 국가 간의 분쟁을 조정하기도 한다

3.2. 인도주의적 지원과 인권보호



유엔의 설립배경에는 참혹한 인권 유린 사건인 제2차 세계 대전과 같은 사건을 방지하고자, 국제평화 유지임무와 더불어 인권보호 활동과 인도주의적 지원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인권과 관련된 사안은 유엔 헌장에도 명시되었는 사안이기 때문에 국제평화 유지 임무와 준하는 급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유엔은 인권 문제가 심각한 지역에 “사람이라면 이러한 인권의 현장을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정치적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인권 문제가 심각한 지역에 물자지원이나 구호활동, 봉사활동 등을 전개한다. 또한 유엔은 유엔 산하에 유니세프와 난민 전담 기구를 설치하고 있다.
단순히 인간의 존엄성에 관련한 “인간답게 살 최소한의 기본 권리”에서의 관점에서 인권보호 활동을 전개하지 않는다. 이것이 정확하게 의미하는 것은 인권의 의미를 더욱 확장하여 성 평등, 노동 평등과 같은 분야까지도 포괄한다는 것이다. 인권 보호의 범주를 넓게 봄으로써, 인간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유엔은 실제로 국제노동기구(ILO)와 협력하여 노동 권리 보호를 위한 국제 활동도 전개하고 있으며, 유엔 산하에 유엔 여성기구를 둠으로써 억압받고, 차별받는 여성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추가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라는 의미는 시대와 사회의 모습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변동성을 지니기 때문에, 앞으로의 유엔의 인권보호 활동도 시간이 갈 수록 더 광범위해지고,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3.3. 세계 인구 및 식량 관리



유엔은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기구가 된 만큼 전지구적 문제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인구와 식량에 관련된 주 역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엔은 현재 지구의 인구는 75억에 달하는데, 이 거대한 인구가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이며, 현재 우리가 인구를 어떻게 조절하고 이에 수반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하는 지를 광범위하게 연구한다. 또한 주요 약소국에서 식량난을 겪고 있기 때문에 각 국가에 식량을 보급하여 식량난을 해소하는 작업을 한다. 또한 식량난으로 빚어지는 영양실조 문제, 빈곤과 같은 부차적인 문제들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아울러 유엔은 유엔 산하에 인구 기구와 식량 계획등과 같이 이 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를 설치하여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인구와 식량 문제와 관련해서 그 중요성과 의미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한 국가에서 인구, 식량의 문제를 고려해 봤을 때는 비교적 수월해 보일 수 있지만 지구로 시야를 확대해 봤을 땐, 상당히 문제가 심각해진다. 전인류를 대표하는 유엔이 “언제까지 거대한 인구를 지구가 버틸 수 있을 지, 그리고 인구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소비되는 식량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인구가 늘어난 만큼의 식량 부양이 가능은 한 것인가, 거대한 인구 앞에서 일어나는 식량 분배, 빈곤,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와 같은 시대적 과제를 안은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과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3.4. 경제개발 지원과 무역,투자 진흥





유엔은 냉전 당시에, 수많은 중재 실패를 겪었기 때문에, 국제평화 유지의 임무에 집중적으로 신경쓸 수 없다고 판단하여 2차적인 목표로 “경제개발 지원과 무역,투자 진흥”이라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경제개발과 경제성장과 같은 경우 산업기반 시설이 전무하거나 자력으로 경제성장을 추진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제3세계 국가들이나 경제적으로 뒤쳐진 나라들에게 필요한 사업으로 환영을 받았다. 유엔은 유엔개발계획(UNDP)을 설치하여 국제 원조를 통해 해당 국가의 경제 성장을 돕는다. 국제 경제 자문단을 파견하거나, 또 선진국으로 구성된 경제 파견단들이 산업 노하우를 전수해주기도 한다. 경제개발 지원과 더불어, 세계의 경제교류가 증가됨에 따라, 유엔의 무역 및 투자 진흥 관련 사업도 함께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유엔은 대표적인 경제 국제기구인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 그리고 몇몇 기구들과 협력 관계를 가지고 세계 경제 교역과 투자를 보다 더 활성화 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3.5. 문화유산 보존과 자연환경 보호




유엔은 유네스코(UNESCO)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 문화유산을 지정하여 보존하고 관리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약자 자체가 “교육, 과학, 문화”를 의미하고 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이 접하는 모든 형태의 문화유산을 전담하고 있다. 이는 단순 역사의 유형 문화재가 아닌, 지적유산과 연구 가치가 있는 교육적 문화, 그리고 사회적 유산까지 광범위한 인류 “문화유산”을 의미한다. 인류가 남긴 가치 있는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관리함으로써 후대에 되물려 주는 이러한 활동은 역시 인류 발전의 발자취를 계속 기억하고 배운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 문화유산 보존 활동과 더불어 전지구적 문제를 책임지는 유엔답게 자연환경 보호활동도 전개하고 있으며, 문화유산처럼 세계유산의 한 범주로 자연유산 또한 지정하고 있다.[18] 환경관련 유엔 협력 기구로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있다.

4. 역사



4.1. 설립 배경


유엔이 창설되기 약 100년전엔 국제적십자위원회와 헤이그 협약과 같은 국가 간의 긴장과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몇몇 국제 조약기구와 회의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상자를 낸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앞서 언급된 몇몇 국제 조약기구와 협약들의 평화 정신을 기초로 국제연맹이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를 아우르는 국제기구로 설립되었다. 이 조직은 일부 영토 분쟁 및 평화 유지를 위한 목표로 창설되었다. 그러나 국제연맹은 현재 유엔과는 다르게 주요 강대국들의 참여가 부족하였고, 실질적으로 분쟁을 조절할 만한 힘이 없었다는 것이 큰 한계였다. 강대국의 불참과 실질적인 힘의 부재는 곧 국제 질서를 유지하고, 세계를 대표하는 기구로써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원인이기 때문에, 국제연맹은 사실상 이름만 세계를 대표하는 허수아비나 다름 없었다. 따라서 일본 제국만주 침략중일전쟁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를 중심으로한 나치 독일의 유럽 대외 팽창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국제연맹은 이러한 침략 행위를 사전에 막지 못하여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건인 제2차 세계 대전을 발발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엔, 국제 평화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공감대와 국제연맹의 부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주요 승전국들은 실질적으로 국제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고, 분쟁과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국제기구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이런 배경 속에서 유엔의 설립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4.2. 설립 선포


1941년 8월 10일, 킹 조지 5세급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함미 갑판에서 열린 대서양 회의 예식에서 만난 처칠과 루스벨트.
새로운 국제질서를 책임질 유엔의 위한 가장 초기의 구체적 계획은 1939년 미국 국무부의 기획아래 시작되었다. 1941년 12월 29일 백악관에서 이 유엔의 초기 계획에 대하여 논의하기 위해서 회동을 가졌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과 그의 보좌관과 함께 "유엔 창설 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했다. 이 초안에 담겨진 "유엔의 상임이사국 4개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연합국 진영의 영국, 미국, 소련, 중화민국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추후에 프랑스도 추가되었다.[19] 이 초안 대로 후에 제2차 세계 대전연합국들은 상임이사국으로서 절대적인 국제적 힘을 얻을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연합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져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새로운 국제기구의 명칭을 "연합국(United Nation)"이라는 이름으로 정했는데, 이는 곧 "제2차 세계 대전연합국 진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42년 미국, 소련, 프랑스, 중화민국의 정상들이 이 초안에 서명함으로써, 유엔의 시작을 알렸다. '''즉 1942년에 유엔의 모태가 생긴 것이다.'''

4.3. 출범 직전과 초기 유엔


유엔은 1944년 연합국 4개국 (소련, 영국, 미국, 중화민국) 대표단들 사이에서 공식화되어 본격적으로 협상되었다. 1945년 3월 1일 추가로 20여개국이 서명하였다. 1945년 4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국제 회의에서는 유엔 헌장 초안 작성에 참여하기 위해 50여개국과 비정부기구가 참석하였다.[20] 헌장 초안을 작성하기 위하여 연합국들을 중심으로 여러 대표단들과 수많은 회동과 논의를 거쳤다. 연합국들은 1945년 9월 2일 일본 제국의 항복을 받아낸 후, 전쟁 전후 처리를 마무리하고 1945년 10월 24일 공식적으로 "프랑스, 중국, 소련, 미국, 영국" 주요 5개국과 기타 46개국들이 서명하여 정식으로 국제연맹 이후로 세계를 아우루는 범세계적 기구인 '''"유엔(United Nation)"'''이 정식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1949년 1월 6일부터 영국 런던에서 유엔 총회안전보장이사회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총회에서는 미국 뉴욕에 유엔 본부를 두기로 결정하였으며 미국은 유엔 본부의 영토와 법적 행정적 권리를 포기했다. 1952년 유엔 본부의 시설을 완공하였다. 그외에 제네바, 비엔나나이로비에 유엔 주 사무실을 두고 운영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당시 노르웨이 외교부 장관이었던 "트뤼그베 리(Trygve Lie)"가 초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

4.4. 냉전기의 유엔


미국소련사이의 대치 상황 속에서 국제 평화가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엔의 기본 임무가 세계평화 유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두 양 초강대국들의 대치 상황이 유엔의 기본 역할 자체를 마비시켰고, 또 세계평화의 당시 가장 큰 위협이었던 냉전 대치 상황엔 정작 개입하지 못하게 하고, 냉전과는 상관없는 분쟁에만 개입할 수 있게 했다. 게다가, 평소엔 냉전 대치 속에서 개입 자체를 허락하지 않다가 필요할 때만 개입을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가 있는데, 공산진영[21]북한자유진영[22]대한민국을 기습침공하자 1950년 총회에서 미국을 위시한 자유진영측이 급히 결성한 국제연합군을 승인시킨 전례가 가장 대표적이다. 당시 소련이 총회에 불참하고, 공산진영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자유진영중화민국이 상임이사국 지위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6.25 전쟁을 위해 결의안을 가결한 것 외에, 1947년 총회에서는 팔레스타인을 분할하여 이스라엘 국가 건국을 승인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23] 1956년에는 제2차 중동전쟁 종전 직후,[24] 이스라엘이집트 사이의 완충을 위해 유엔긴급군(UNEF)를 파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이것은 순수히 양 강대국이 개입되지 않은 중동 국가들의 문제였기 때문에 문제없이 처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유엔은 소련헝가리를 침공한 것에 대해서는 평화유지군 파견은 고사하고, 중재를 위한 개입조차도 하지 못했다.[25]
1960년대에, 유엔은 1964년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을 매듭짓기 위하여 수십년 동안 콩고에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여 작전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유엔의 노력 속에 당시 사무총장이던 다그 함마르셸드가 반란 중 반란군 지도자를 만나기 위해 콩고로 가던 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였다.[26] 1961년 사무총장이 갑자기 사망하자, 급하게 후임자를 물색하여 우탄트(U Thant)를 취임시켰다. 후에 콩고 내전우탄트가 지휘하는 유엔 작전에 의해 종식될 수 있었다. 1964년 우탄트키프로스에 군사적 위기가 발생하자 키프로스에 유엔 평화유지군을 배치했다.[27]
우탄트의 임기 동안에 탈식민지화가 전개됨에 따라, 수많은 독립 국가들이 유엔의 회원국이 되었다. 1960년 한 해에만 무려 17개국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였고, 그 중 16개국은 기존 열강에서 독립한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이었다. 1971년 10월 25일에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많은 소련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원으로 공산주의 진영의 중화인민공화국상임이사국으로 취임했다.[28] 이 사건은 유엔 내에서 미국의 영향력 감소로 해석되었다. 이 시기에 유엔은 극심한 냉전 대치 상황 속에서 수 많은 중재 실패를 겪었다. 따라서 유엔은 기본 임무인 평화 유지를 넘어 두번째 목표로 개도국 경제 개발 지원과 문화 교류를 설정하였다. 실제로 냉전이 가장 극심했던 1970년대 말까지는 기본 임무를 위한 평화유지 예산보다, 사회 경제적 개발 및 문화 교류에 관련된 예산 규모가 훨씬 더 컸다.

4.5. 냉전 이후와 현재


냉전 이후 유엔은 과거 40년 동안보다 냉전이 끝난 이후 20년 동안 더 많은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 말은 냉전 동안 처리했던 평화유지 임무가 냉전 이후에 처리했던 평화유지 임무보다 더 적었다는 소리이다. 1998년2000년 사이에 채택된 안보리 결의안 수는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평화 유지 예산은 무려 10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유엔은 살바도르 남북 전쟁의 종식을 협상하고 나미비아에서 성공적인 평화 임무를 시작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위기 해결 이후 캄보디아에서 민주적 선거를 감독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91년 유엔은 이라크쿠웨이트 침공을 격퇴시킨 미국 주도 다국적군을 승인했다.
1990년 초, 유엔은 소말리아, 보스니아, 르완다 등 여러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먼저 소말리아에서의 유엔 대표단은 모가디슈 전투에서 사상자가 생기자, 미국이 철수 한 후에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은 실패한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인식되었다. 또 보스니아에서 유엔이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또 1994년 르완다 대량 학살에 대해서 유엔이 개입하지 않아 수많은 희생을 치룰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이시기에 유엔의 국제 개입의 형태는 보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1991년부터 2002년까지의 시에라리온 남북 전쟁에서 유엔의 임무는 영국 왕실 해병대에 의해 보완되었고, 2001년 아프가니스칸 침공은 나토에 의해서 감독되었다. 즉 기존 유엔의 군대가 직접 파병을 나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닌 다른 다국적 군사조직과 강대국과의 협력 작전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2000년대 초기, 2003년미국은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 승인을 받지 않은 채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새로운 천년 2000년의 시작과 함께 밀레니엄 정상 회의에선 21세기 유엔의 역할에 대하여 논의했다. 이 회의는 역사상 가장 많은 세계 지도자가 모인 모임으로 남아있다. 이 정상 회의에선 빈곤 감소, 양성 평등 및 공공 분야와 같은 분야에서 일정 목표를 도달하겠다는 내용의 결의안이 모든 회원국들의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2005년 세계 정상 회의에선 유엔이 개발, 평화유지, 인권 및 세계 안보를 증진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음을 재확인 하였다. 반기문 사무총장 임기 중엔 수단의 콩고의 갈등에 개입하여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였고 결국엔, 기존 분쟁을 겪던 수단을 남수단으로 분리하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그리고 화학무기 사찰단을 시리아 남북 전쟁에 파견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10년에는 아이티 대지진에서 유엔 직원이 사망하였다. 2013년 스리랑카 남북 전쟁의 마지막 전투에서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이 전체적으로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5년엔 앞서 언급된 밀레니엄 정상회의에서의 공약을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유엔은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 외에도 유엔이라는 조직의 이름으로 시민 사회와 더 많은 관계를 맺고 상임이사국의 입김대로 부여되는 유엔의 민주적 정당성을 자체적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투명성 제고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016년 유엔은 처음으로 사무총장을 뽑기 위해서 후보자들 간에 공개 토론을 실시하였다. 2017년 1월 1일 유엔 난민 고등 판무관직을 맡았던 포르투갈의 외교관 안토니우 구테흐스가 제9대 사무총장이 되었다. 구테흐스는 갈등을 방지하기 위하여 효과적인 평화유지 노력에 초점을 맞추고 국제 사회의 필요에 맞춰 빠르고, 다양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유엔 조직 자체를 간소화하는 등, 그 외에도 몇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5. 구성



5.1. 핵심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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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에는 6개의 주요 기관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유엔 가입국들의 의견을 모아 결의안을 채택하고, 국제 사회에서 주요한 현안을 처리하는 "유엔 총회"가 있다. 두 번째는 국제 사회의 안보와 국제 평화를 위협하는 사안에 대해서 심도 있게 논의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있다. 세 번째로 국제 사회 및 경제 개발을 촉진시키고, 이와 관련된 분야에 있어서 상호협력 증진을 위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가 있다. 네 번째로 '유엔'이란 거대한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행정 기구인 "유엔 사무국"도 존재한다. 다섯 번째로 두 나라가 갈등을 겪고 있을 때, 국제법에 의거하여 사법 판결을 내려주는 "유엔 국제사법재판소"가 있다. 마지막으로 해당 국가가 자체적으로 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여 해당 국가가 국민들의 치안, 행정, 인권 등을 책임질 수 없다고 판단되는 나라들을 지정하고, 이러한 국가들을 신탁통치하여 관리하는 것을 주 업무로 삼는 "유엔 신탁통치이사회"가 있다. 현재 유엔 사무총장포르투갈 출신의 9대 안토니우 구테흐스이다.

5.1.1. 유엔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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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총회(General Assembly)'''는 유엔의 주요 의사결정기구이다. 모든 유엔 회원국으로 구성되며, DISEC, ECOFIN, SOCHUM, SPECPOL, Administrative and Budgetary, Legal 의 여섯개의 위원회가 모여서 매년 정기적으로 회의를 갖지만, 유사시에 비상 회의가 소집 될 때도 있다. 총회는 회원국에서 각 선출된 유엔 대표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주로 총회에서 중대한 사안으로 다뤄지는 것은 국제 안보와 관련된 사안, 유엔 사무총장 선출, 가입국 심의, 회원국 제재, 유엔 예산 심의 등이다. 여기서 주요 유엔 대표부들이 정해진 현안에 대하여 연설하며, 표결을 진행한다. 총회에서 채택 대기중인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선 참석국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모든 표결 및 의사결정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며, 각 회원국들 마다 어느 한 사안에 대하여 하나의 표결권을 가질 수 있다. 유엔 가입국 심의, 유엔 예산 심의, 사무총장 선출, 각 기구의 인사에 관련된 처리 그리고 국제 안보에 관련하여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논의를 거쳐 올라온 사안을 제외하고는 유엔 총회에서 결정된 주요 결의안들은 해당 국가에게 별다른 구속력을 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를테면, "환경 보호"에 관하여 탄소 감축 및 개발 지연에 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면, 이 사안은 "권고"의 성격을 가질 뿐, 특별한 법적 구속력을 가져 해당 국가에 이 결의안을 강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안전보장이사회가 심의중인 국제 안보 이슈에 관한 사안을 제외하고는 유엔이 할 수 있는 모든 범위안에서 결의안을 채택하고, 권고할 수 있다.
참고로, 매년 세션이 열릴 때마다 각국이 배정된 자리가 바뀌는데, 첫 번째 좌석에 앉게 되는 나라를 뽑기(...)로 정하고, 그 뒤로 부터는 알파벳 순서로 앉게 된다.

5.1.2. 안전보장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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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The Security Council, UNSC)'''는 유엔의 기본 임무인 세계평화 유지를 담당하는 제1 핵심 기구로, 국제 질서와 세계 평화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국제 안보 이슈에 관련된 결의안을 심의하고, 채택하는 기구이다. 유엔의 주요 기관들은 회원국들에게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 '권고안'만을 제출할 수 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헌장에 따라 회원국들이 반드시 이행해야만 하는 구속력있는 결의안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사회의 결정은 익히 한국에는 "안보리 결의안"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안전보장이사회의 구성은 프랑스, 러시아, 영국, 미국, 중국연합국으로 구성된 '''상임이사국''' 5개국과 유엔 총회에서 2년 임기로 선출된 '''비상임이사국''' 10개국을 포함하여 총 15개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의안 결정을 위해선 상임이사국 5개국의 만장일치 동의와 비상임이사국 10개국 중 7개국의 찬성이 있어야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되어 유엔 총회에서 심의가 가능하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은 매달 알파벳 순으로 교체된다.

5.1.3. 경제사회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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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경제사회이사회(The Economic and Social Council, ECOSOC)'''는 국제 경제 및 사회 협력과 개발에 관련한 결의안을 담당하는 기구이다. 경제사회이사회는 총회에서 3년 임기로 선출되며, 회장국은 1년 임기로 선출된다. 주로 선출되는 국가들은 개발도상국이나 지역강국 등이 주로 선출된다. 경제사회이사회의 회의는 매년 7월 정기적으로 개최된다. 경제사회이사회가 하는 일은 경제 개발 지원, 회원국 자문, 권고안 작성등이 있다. 경제사회이사회의 보조기구에는 산림, 원주민 문제 해결, 비정부 기관 관리 등에 관련된 기구들이 산하에 위치하고 있다. 또 비정부기구들에게 해당 국가에게 자문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

5.1.4. 유엔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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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사무국(The UN Secretariat)'''은 유엔의 행정적 업무를 처리하는 기구이다. 사무국은 사무총장을 수반으로 둔다. 유엔의 이사회들의 회의에 필요한 연구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며, 관련 시설을 준비한다. 또한 안전보장이사회, 유엔 총회, 경제사회이사회 및 기타 유엔 기구들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5.1.4.1. 유엔 사무총장



'''유엔 사무총장(United Nations Secretary-General)'''은 유엔 사무국의 사무총장이다. 사무국의 수반이며 명목상으론 유엔의 한 기관의 수반이지만, 사실상 유엔의 대표이자, 지도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사무국이 국가로 치자면 일종의 행정부에 해당하고 이 기관의 수반이라는 의미에서 이 직책을 과장해서 "세계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29] 임기는 5년이며 한 번 더 재선이 가능하다. 유엔 헌장에는 특별하게 사무총장의 임기를 제한하는 조항이 없다. 따라서 헌장의 이론상으로는 3선까지도 가능하지만, 관례상 2선까지만 가능하다는 국제사회의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 고로 총 10년의 임기가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5.1.5. 국제사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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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법재판소(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는 유엔의 주요 사법 기관으로, 국제법에 의거하여 주요 국제 분쟁 사안들을 처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국제사법재판소의 구성은 유엔 총회에서 선출된 9년 임기의 15명의 판사로 구성된다. 또한 모든 재판관은 모두 다른 나라 출신이어야한다. 이는 국제적 분쟁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전 장치이다. 한 국가가 국제사법재판권 자리를 독점할 경우 그 판결은 상당히 편파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법재판소의 주요 목적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주요 국가들의 분쟁을 판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사회이사회와 같이 이 국제 판결은 지극히 '권고안'에 그치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 따라서 두 국가가 분쟁 해결을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여 판결을 받는다고 한들, 국제법에 의거하여 판결된 사안이라고 한들, 꼭 분쟁 당사자 국가들은 이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따를 필요가 없다. 한편 국제 분쟁을 처리하기 위해 유엔의 기구들에게 자문을 필요로 할때도 있다. 자문 및 관련 정보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다른 유엔 기구들에 관련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

5.1.6. 신탁통치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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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신탁통치이사회(The UN Trusteeship Council)'''는 국제 평화와 안보가 불안정한 국가들을 유엔이 신탁통치하여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이다. 이 기구의 본 설립 목적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주요 독립국들의 관리를 위해 설립되었다. 최근 대부분 신탁통치로 관리를 받던 국가들이 자치 정부를 수립하여 자체적인 국가 운영 능력을 보유하였으며, 독립을 달성하여 주권국가를 수립하였다. 따라서 사실상 신탁통치이사회는 기능을 다하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마지막 신탁통치이사회의 업무는 1994년 12월 태평양 제도신탁통치 지역이었던 팔라우를 마지막으로 끝이났으며, 현재까지 신탁통치에 관련된 업무는 없다.

5.2. 유엔 관련기구


UN 조직 목록
유엔에 직접적인 지배를 받는 산하기구와, 유엔의 간섭은 덜 받으면서 전문적인 분야를 전담하고 있는 전문기구가 있다. 마지막으로 완전히 독립된 기구이지만 유엔과 상호협력 관계에 있는 기구도 존재한다. 다음은 유엔의 관련기구들을 나열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 추가되거나 없어지는 산하기구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분류에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혹여나 자료를 사용할 때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사용하기를 바람.

5.2.1. 산하기구


  • 세계식량계획(WFP)
  • 아시아태평양방송개발기구(AIBD)
  • 유엔환경계획 (UNEP)
  • 유엔인간정주위원회 (HABITAT)
  • 유엔마약통제계획 (UNDCP)
  • 유엔마약통제및범죄예방사무소 (ODCCP)
  • 구유고국제형사재판소 (ICTY)
  •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 (ICTR)
  • 유엔인구기금 (UNFPA)
  • 유엔대학(UNU)
  • 국제공무원위원회 (ICSC)
  • 국제해양법재판소 (ITLOS)
  • 유엔사막화방지협약사무국 (UNCCD)
  • 유엔무역개발회의 (UNCTAD)
  • 유엔합동감사단 (JUD)
  • 유엔아동기금 (UNICEF)
  • 유엔개발계획 (UNDP)
  •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사업기구 (UNRWA)
  • 기후변화에관한유엔기본협약(UNFCCC)
  • 유엔시스템대학(UNSSC)
  • 유엔직원합동연금기금 (UNSSC)
  • 유엔인간주거계획 (UN-Habit)
  • 유엔여성기구 (UN Women)
  • 유엔인구기금 (UNFPA)
  • 유엔난민기구 (UNHCR)
  • 유엔에이즈합동계획 (UNAIDS)
  • 유엔연구사업소 (UNOPS)
  • 유엔재해경감국제전략 (UNISDR)
  • 유엔인권이사회 (UNHRC)

5.2.2. 전문기구


'''국제연합헌장 및 국제사법재판소규정 제57조''' ① 정부간 협정에 의하여 설치되고 경제·사회·문화·교육·보건분야 및 관련분야에 있어서 기본적 문서에 정한대로 광범위한 국제적 책임을 지는 각종 전문기구는 제63조의 규정에 따라 국제연합과 제휴관계를 설정한다.
② 이와 같이 국제연합과 제휴관계를 설정한 기구는 이하 전문기구라 한다.

5.2.3. 협력 기구



6. 회원국



[image]
  • 밝은 파란색: 창립 회원국 - 주로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과 그의 동맹국[30]
  • 청록색: 1945년~1959년 - 주로 동남아시아에 분포
  • 초록색: 1960년~1989년 - 주로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 제도 국가
  • 녹갈색: 1989년 이후 - 냉전 후 가입 국가
  • 노란색: 비회원국, 옵저버 국가
현재 2017년 10월 기준 193개국이 가입한 상태이며, 거의 모든 국가들이 가입한 상태이다. 이 모든 유엔 가입국들은 유엔 헌장에 명시된 사항들을 준수해야 하며, 유엔 총회의 영향을 받도록 되어 있다. 평화를 지향해야 하며, 전쟁을 비롯한 침략적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 특히 안보리 결의안은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6.1. 상임이사국



[image]
순번
국명
2019년 GDP 규모($)
2019년 국방비 지출 규모($)
기축 통화 여부
2019년 핵무기 전력 규모
국제 공용어 여부
1
미국
21조 4,394억 $ (세계 1위)
6,488억 $ (세계 1위)
달러화
약 6,185기 (세계 2위)
영어
2
중국
14조 1,401억 $ (세계 2위)
2,500억 $ (세계 2위)
위안화
약 290기 (세계 4위)
중국어
3
영국
2조 7,435억 $ (세계 6위)
500억 $ (세계 7위)
파운드화
약 225기 (세계 5위)
영어
4
프랑스
2조 7,070억 $ (세계 7위)
638억 $ (세계 5위)
유로화
약 300기 (세계 3위)
프랑스어
5
러시아
1조 6,378억 $ (세계 11위)
614억 $ (세계 6위)
X
약 6500기 (세계 1위)
러시아어
핵무기 전력 규모 출처
국방비 지출 규모 출처
유엔을 실질적으로 쥐고 흔들 수 있는 국가들이라는 음모론자들의 주장이 있다.[31]이 주요 5개국 상임이사국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로 이루어져 있다. 이 5개국들은 전 지구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대국이며, 이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면에서 다른 국가들을 압도한다. 본래 정식 명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32]

6.2. 이전 회원국


중화민국은 영향력 감소로 상임이사국의 자리를 내주는 형식으로 이전 회원국이 되었고, 나머지는 흡수통합, 분리독립, 통합의 형식의 국가의 형태가 바뀜으로써 이전 회원국으로 남아있는 경우의 사례들이다.

6.2.1. 과거 상임이사국


첫째로 현재 대만, 과거의 중화민국/국민정부제2차 세계 대전의 연합국 진영의 한 축으로써,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중 하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승리로 중화민국은 1945년 유엔 창립 당시 상임이사국 자격으로 가입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중일전쟁을 이유로 국공합작으로 잠시나마 길을 같이했던 국민당과 공산당은 다시 중국 본토를 놓고 다시 국공내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승리함으로써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기존 중국 본토의 주인이었던 중화민국/국민정부대만 섬으로 천도하면서 세력이 급속도로 작아지게 된다. 이 시기에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의 원칙과 상관없이, 유엔에서는 상임 이사국의 지위에서 중국의 대표가 두 나라인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당시 중국의 대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중화민국이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지는 더 커져만 가고, 기존 중국의 주인이었던 중화민국의 입지는 합법적인 오직 하나의 중국 대표라는 의미에서 다소 애매한 위치에 서있게 되었다. 이는 유엔이 중국 대표 문제를 다룰 때에도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고, 힘의 논리에 의해 국제사회의 여론도 기울기 시작했다. 또한 냉전이 심화되던 상황인 만큼 소련의 입장에선 공산진영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을 대신하여 상임이사국의 자리를 꿰찰 경우 자유진영의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나쁠 것이 전혀 없었다. 또한 이런 소련의 국제적 계획을 일종의 힘의 균형을 바라는 제3세계 국가들도 지지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에 반대로 자유진영의 맹주였던 미국은 당연히 자유진영의 중화민국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영국은 국공내전에서 중화민국이 패하자 영국령 홍콩의 안위를 위해 즉각 중화민국의 승인을 취소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였으며 1964년, 프랑스도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는 등 중화민국의 입지는 자꾸만 좁아졌다. 1970년에는 캐나다가 중화민국과 단교하는 등 서유럽과 북미 국가에서도 중화민국과 단교 행렬이 이어져 중화민국 외교부는 절교부라 불릴 지경이었다.
결국 1971년 동유럽 공산국가 알바니아를 중심으로 처음으로, "중국 대표를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교체하자"라는 안건이 제출되었다. 당시까지 미국은 중화민국을 절대 지지하였다. 그래서 미국은 중화민국을 보호하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국의 주도로 "중화민국의 대표 지위를 보호를 담은 절충안"을 유엔 총회에 상정했지만 거부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자유진영의 최대 파트너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대표 지위를 승계하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으며, 후진국들의 주장으로 결국엔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의 상임이사국 자리를 승계하게 되었다.[33] 이에 반발한 중화민국은 유엔을 탈퇴하게 된다.
둘째로 소련이 있다. 소련이 이전 회원국이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연방의 해체 때문이다. 당시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가 취임하면서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게 된다. 이는 지금까지 소련이 추진해왔던 폐쇄적인 정책과 상당히 대비되는 것인데, 이는 소련에서의 경제 개방과 표현의 자유 실현, 각 동맹국들에 대한 내정간섭 중지를 추진하는 것이었다. 소련이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폐쇄적인 정책을 철회함에 따라 소련의 지원을 받던 공산주의 국가들은 지금까지 숨겨왔던 자유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으로 점차 흔들리기 시작하였으며, 결국엔 이런 자유주의 혁명의 물결로 각 소련 동맹국들의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하기에 이른다. 원래 소련의 동맹국들의 정권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판명될 시에, 공산진영의 보호 차원에서 소련이 직접적인 개입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소련이 개방, 개혁 정책을 실행함에 따라 더이상 그런 개입은 없어졌기에 소련에게 정치적으로 많은 의존을 해왔던 공산주의 동맹국들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던 것이다.
소련의 개혁 정책에 의하여 제2세계가 상당히 불안정해졌다. 제2세계의 리더가 체제 개혁 정책을 편다는 것 자체가 공산주의의 실패를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이는 곧 지구상 대부분 공산진영의 붕괴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소련의 해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소련 해체의 징조는 기존 소련의 방향성을 역행하는 고르바초프의 정책에 항의하는 보수파들이 반란으로 나타났다. 보수파들의 반란으로 초강대국 소련마저 상당히 불안정하게 되었고, 고르바초프는 일시적으로 실각되었다. 보수파들의 쿠데타로 가뜩이나 불안정한 소련의 재조직 가능성마저 무너뜨려 소련의 존재 자체를 보장할 수 없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버렸다. 이런 보수파들의 내전이 진압되고, 혼란스러워진 전후 상황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보리스 옐친은 현 상황을 감안하여 소련의 재조직이라는 길을 버리고,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련의 해체"를 결정하고, 소련을 직접적으로 계승하는 "러시아 연방"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소련이 해체되었고, 러시아 이외에 연방으로 소련을 구성하고 있던 여러 국가들도 독립을 맞이한다. 유엔의 상임이사국의 변동 또한 불가피하였다. 따라서 유엔 총회에서는 소련을 전신으로 하고 있는 러시아에게 상임이사국 자리를 승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외에도 소련과는 별도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도 유엔에 창설 회원국으로서 가입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소련이 공식적으로는 독립된 공화국들의 국가연합이였고, 유엔창설 당시의 소련 헌법 역시 이론적으로 각 공화국의 국방권[34] 외교권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과거 국제연맹에 영국의 자치령들도 가입했던 전례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유엔만 하더라도 당시 미국의 자치령이었던 필리핀과 영국의 자치령이었던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 가입한 터였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유엔에서 16개(소련+15개 공화국)의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한 속셈이었다. 각각의 공화국들은 이론적으로는 독립국이지만 실제로는 소련 공산당의 통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 중앙정부에 반대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미국이 48개 주[35]를 모두 가입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자[36] 최종적으로는 '나치에 의한 피해가 크고, 대 나치 투쟁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만 가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물론 예상대로 소련 해체 전까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철저히 소련의 거수기 역할을 했다.

6.2.2. 유럽권


첫째로 '''독일민주공화국'''이 있다.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은 유엔총회에 1973년 9월 13일에 가입했다. 하지만 소련으로부터 시작된 공산진영의 균열은 동독까지 그 영향이 미쳤다. 따라서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직후에 독일민주공화국의 영토는 독일연방공화국의 일부로 편입하면서 오늘날의 통일 독일이 되었다.
둘째로 '''유고슬라비아'''가 있다. 여기서 서술하는 유고슬라비아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말한다. 1945년 10월 24일 유엔총회에 가입한 유고슬라비아는 1992년까지 하나의 연방공화국으로 존속했는데, 5개국으로 갈라지면서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구성한 회원국들은 1992년 5월 22일에 각각 유엔총회에 가입했다. 따라서 유고슬라비아는 유엔총회의 회원국 명단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되었다.
셋째로 '''체코슬로바키아'''가 있다. 1945년 10월 24일 유엔총회에 가입한 체코슬로바키아는 1993년 냉전이 끝남과 동시에 해체되었으며, 체코슬로바키아로 나뉘어졌다. 두 나라는 1993년 1월 19일에 각각 유엔총회에 가입하였다.

6.2.3. 중동권


북예멘(당시 예멘 왕국)은 1947년 9월 30일에 유엔에 가입했으며, 남예멘은 1967년 12월 14일 유엔에 가입했다. 후에 두 국가는 1990년 5월 22일 양국은 합병되어 예멘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단일 회원국으로 가입을 했다.
아랍 연합 공화국은 1958년 이집트와 시리아에 의해 세워졌던 단일 아랍 국가이다. 하지만 연방 구성 회원국이 사실상 대등한 관계가 아닌, 아랍의 맹주인 이집트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모양새였기 때문에 시리아가 반발하면서 1961년 아랍 연합 공화국은 사실상 해체되었고 1971년 아랍연합공화국의 국호가 이집트 아랍 공화국으로 변경되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기존 유엔 회원국이었던 아랍 연합 공화국은 1972년 다시 이집트, 시리아 각자 독립적으로 유엔에 가입하였다.

6.2.4. 기타권


말라야 연방은 1957년 9월 17일 유엔에 가입했다. 말라야 연합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후에 형성된 곳이다. 이후 싱가포르 등을 받아들여 현재의 말레이시아를 수립하였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말라야 연방은 사라지면서 유엔 회원국이 아니게 되었다. 이후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를 자국에서 축출했고 축출당해 강제 독립한 싱가포르도 유엔에 가입하였다.
탕가니카는 1961년 12월 14일에 유엔에 가입했으며, 잔지바르는 1963년 12월 16일에 유엔에 가입했다. 1964년 4월 26일 탕가니카와 잔지바르 연합 비준에 의해 양국은 합병되었다. 따라서 두 나라는 하나의 나라가 되었으며 따라서 단일 국가로 유엔에 가입하게 되었다.

6.3. 참관국


아래는 유엔의 참관국이다. 즉 옵저버. 유엔에 등록은 되어 있으나 비회원국으로 표결권이 없다.
국기
국가명(가나다순)
수도
소속지역
제1공용어
통화
정치형태
대한수교현황
[image]
바티칸 시국
바티칸
유럽
라틴어
EUR
군주제(교황)
남 1963, 북 미수교
[image]
팔레스타인
라말라
아시아
아랍어
JOD
공화제
남 미승인, 북 1966

6.3.1. 과거 참관국


아래의 국가들은 한때 특정 사유에 의해 유엔 회원국 자격을 얻지 못한 참관국이었으나, 북베트남에 흡수된 남베트남을 제외하면 모두 이후에 회원국의 자격을 얻었다.
국기
국가명
기간
사유
[image]
오스트리아
1952~1955
구 추축국에 대한 제재
[image]
이탈리아
[image]
핀란드
[image]
스페인국[37]
1955
[image]
일본
1952~1956
[image]
서독
1952~1973
구 추축국에 대한 제재
분쟁 중이었던 지역
[image]
동독
1972~1973
[image]
대한민국
1949~1991
분쟁 중이었던 지역
[image]
북한
1973~1991
[image]
북베트남
1975
[image]
남베트남
1952~1975
[image]
(통일)베트남
1976~1977
통일 승인 이전
[image]
쿠웨이트
1962~1963
독립 승인 이전
[image]
방글라데시
1973~1974
[image]
모나코
1956~1993
프랑스가 외교를 대행
[image]
스위스
1946~2002
자발적으로 미가입[38]

7. 공용어



유엔의 공식 언어는 위의 6개다. 이 언어들의 기본적인 공통점은 대개 상임이사국들의 언어이거나 전세계에서 가장 폭넓게 쓰이는 언어라는 것인데 이는 '''인구 기준은 아니다.'''[39] 본래 아랍어를 제외한 나머지 5개 언어만 공용어였다가 1973년에 아랍어가 추가되어 현재의 6개 언어 체제가 되었다. UN의 모든 공식 문서들은 이 6개의 언어로 번역된다.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이다. 영어야 영국과 미국 두 상임이사국의 언어이자 두말할 필요가 없는 국제공용어이고 유엔의 모든 공식 회의는 전부 영어로 진행된다.
영어만큼 크지는 않아도 유엔에서 프랑스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프랑스어도 상임 이사국 중 하나인 프랑스가 쓰고, 영어와 더불어 세계 외교가의 표준 언어다. 프랑스가 프랑스어를 못한다고 반기문 총장을 깔 정도.[40]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게 스페인어인데, 스페인중남미 국가들이 자주 쓰며 모국어로 쓰는 인구도 5억 명 이상으로 중국어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다. 아랍어, 중국어, 러시아어는 공용어로 지정은 되어 있지만 비교적 잘 쓰지 않는다. 간혹 중국 외교관이 유엔 공식 석상에서 중국어로 발표할 때가 있는데, 이는 영어나 프랑스어를 못해서가 절대 아니라 '''일부러''' 쓰는 것으로, 중국어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중국어 또한 공식 언어 중 하나이므로 절차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UN의 영어는 대체로 영국식 영어의 규범을 따르지만 옥스퍼드 철자법(Oxford spelling)이라 하여 -ise가 아닌 -ize를 쓴다. 중국어의 경우 간체자를 쓰머, 2008년까지는 번체자와 간체자가 모두 사용되었으나 2008부터 바뀌어서 간체자만 쓰도록 바뀌었다.관련 기사

8. 현실적인 문제점 및 비판


'''우리 연합국 국민들은 우리 일생중에 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인류에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고,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 및 가치, 남녀 및 대소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며, 정의와 조약 및 기타 국제법의 연원으로부터 발생하는 의무에 대한 존중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을 확립하며, 더 많은 자유속에서 사회적 진보와 생활수준의 향상을 촉진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관용을 실천하고 선량한 이웃으로서 상호간 평화롭게 같이 생활하며,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힘을 합하며, 공동이익을 위한 경우 이외에는 무력을 사용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원칙의 수락과 방법의 설정에 의하여, 보장하고, 모든 국민의 경제적 및 사회적 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 국제기관을 이용한다는 것을 결의하면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의 노력을 결집할 것을 결정하였다. 따라서, 우리 각자의 정부는,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유효하고 타당한 것으로 인정된 전권위임장을 제시한 대표를 통하여, 이 국제연합헌장에 동의하고, 국제연합이라는 국제기구를 이에 설립한다. '''

ㅡ UN 헌장 전문

'''“우리는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 그 운명에 함께 맞서야만 운명을 지배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유엔의 존재 이유다.”'''

ㅡ 코피 아난, 7대 사무총장

'''“유엔은 인류를 천국으로 이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옥에서 구출하기 위해 존재한다.”'''

ㅡ 다그 함마르셸드

'''“유엔은 중립 기구가 아니라 공정한 기구다.”'''[41]

반기문, 8대 사무총장

'''“유엔은 미국의 개다.”'''

체 게바라

'''“사담 후세인의 공포 정치가 끝나간다. 그는 곧 사라질 것이지만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아이러니하지만 유엔을 붙잡고 같이 사라지게 될 테니까.”'''

(“Saddam Hussein's reign of terror is about to end. He will go quickly, but not alone: in a parting irony he will take the United Nations down with him.”)[42]

ㅡ 리처드 펄[43]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와 충격은 세계가 진정한 평화를 가질 수 있는 세계규모 기관을 만들게 했다. 유명무실한 기관이었던 국제연맹과는 다르게 유엔 평화유지군(#)이라는 이름하에 군대를 끌고 다니며 세계 분쟁에 개입한다. 예상대로라면 유엔은 세계 평화에 크나큰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44]
  • 유엔 창설 직후부터 소련중국 문제로 총회 참석을 보이콧 해대면서 시작부터 유엔의 체면을 마구마구 구겨준다. 근데 소련이 이렇게 열심히 보이콧을 해준 덕분에 1950년 6월 26일 유엔 안보리에서 유엔군의 한반도 파병안이 통과되었다. 다만 통과 안 됐다 하더라도 미군과 몇 나라 군대는 유엔과 상관없이 파병했을 것이다.
  • 미국도 그다지 다를 것은 없어서 네오콘 집단이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주유엔 미국 대사였던 존 볼턴"너희 유엔은 그저 우리 위대한 미합중국의 리더십에 따라오게 되어있는 허수아비일 뿐이지!"라는 요지의 발언을 끝도 없이 해댔다. 이 발언은 이라크 전쟁 당시 유엔의 무력승인을 얻어내지 못해 열받아서 한 소리다. 특히 유엔에서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으나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여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켰다.

8.1. 분담금과 영향력의 관계


2019-2021 유엔 분담금률
순위
나라
비율(%)
1위
미국
22.000
2위
중국
12.005
3위
일본
8.564
4위
독일
6.090
5위
영국
4.567
6위
프랑스
4.427
7위
이탈리아
3.307
8위
브라질
2.948
9위
캐나다
2.734
10위
러시아
2.405
11위
대한민국
2.267
132위
북한
0.006
미국의 가장 강한 힘은 역시 ''''''. 그래서 유엔총회나 기타 의사결정기구에서는 미국이 반대하는 일은 재정상의 문제로 실현되기 대단히 어렵다. 미국이 돈을 안 내버리기 때문. 200여개 국가가 가입되어 있는데 '''미국 혼자서 부담금 22%'''[45]를 내고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과의 격차를 줄이려 하는 중국이 12%로 2위,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고 있는 일본이 8%로 3위이다.[46] 한국은 2%[47]를 내고 있다.
한편, 유엔 '''기부액'''만큼은 미국이 전세계 1위다. 유니세프 같은 기구는 전액 기부금으로만으로 운영되니 미국이 없으면 사단난다.[48]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게 유엔총회에서 의결하는 문제는 전부 의무분담금에서 예산이 책정되기 때문에 수틀리면 분담금을 안 내버려도 되지만, 그렇다고 굶어죽는 어린애들을 보고 모르쇠 할 수는 없어서 분담금으로 낼 돈을 기부금으로 내버리는 것.[49][50] 참고로 대한민국의 유엔 기부금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51]
분담금이 곧 그 나라의 유엔 내 영향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국가간에 분담금을 두고서도 국가간에 신경전이 벌어진다. 중국은 자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2위인만큼 분담금을 더 내겠다는 입장이지만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미국 등의 견제로 쉽지 않다. 일본도 자국의 영항력 축소를 우려해 분담금을 2번째로 많이 내는 나라 지위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제연합이 지금의 미국과 같이 강대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일을 막기 위해 전체 예산 (2012~2013년 2년간 55억 달러)의 22%[52] 이상을 한 나라가 지불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고 미국은 22%를 지불하고 있다.
예산의 최소 0.001%는 아무리 규모가 작은 후진국이라도 지불해야 한다. 참고로 한국의 유엔 예산 지불액은 총액의 약 2%. 다만 국제관계가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역분쟁이나 환경문제 등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전쟁 말고도 할 일이 많은데 이 방면에서의 영향력은 설립 당시보다 크게 늘어났다. 범인류를 아우를 수 있는 국제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유엔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는 설립 목적인 전쟁방지와 평화유지보다는 포괄적인 국제문제의 조정 기구에 가까운 현실이다.''' 여기엔 심지어 학술회의 등 인문 협력까지 포함되어 영역이 매우 넓다.
또한 아무리 분담금을 많이 내는 강대국이라고 해도 힘의 논리로 군사 작전을 전개하고 싶어도 의외로 유엔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힘든 게 '''유엔의 지지를 얻느냐 아니냐에 따라 국제여론이 심각하게 좌지우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UN결의안이 전쟁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 간단한 예로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받은 걸프 전쟁의 경우 반미여론이 거의 없었지만 유엔의 지지를 받지 못한 이라크 전쟁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어그로를 끌었다.[53]
이때문에 분담금을 많이내는 미국 등 강대국이라 해도 어떻게든 유엔의 승인을 받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54] 그 때문인지 미국과 유럽국가들도 리비아 사태에서는 얌전히 유엔의 승인을 받았고 안보리 결의안 내용대로 지상군 파병을 하지 않고 있다. UN결의안이 있었기 때문인지 전쟁으로 인한 반미감정이나 반유럽감정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도 대표적으로 유엔 결의를 무시하는 나라인데 덕분에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여론은 대단히 나쁜 편이다. 하지만 남오세티아 전쟁에서 보듯 서방 국가들의 여론은 크게 좌지우지하는 데 반해 러시아중국처럼 언론이 통제되고 정치적으로도 독재에 가까운 국가들은 딱히 유엔의 승인 여부에 여론이 흔들리지 않는 듯 하다.
유엔 회비위원회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2019~2021년분 유엔 분담금에서 중국의 몫은 10.81%로 늘어나 2위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40년 가까이 미국에 이어 2위였던 일본은 현재 9.68%에서 8.72%로 낮아진다고 한다. 이미 중국은 유엔 평화유지군 예산에서는 일본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선 바 있다.
위의 분석대로 2019년부터 중국이 첫 2위로 올라갔고, 일본이 3위로 떨어졌다. 한국은 러시아보다 낮은 11위.#

8.2. 군사적 부분에서의 한계


유엔 휘하 군대가 하나도 없다. '''다국적군'''이라는 단어는 유엔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라고 해도 된다. UN 소속의 군대는 타국군에서 차출한 것이다. 이런 점에선 나토군도 마찬가지 아니겠냐 싶겠지만 나토군은 한미연합군사령부처럼 상설부대인데 비해 유엔 평화유지군은 그냥 그때그때 필요하면 피스키퍼로 차출되는 비상설부대이다.
특히 한국에 사령부를 두고 있는 유엔군은 유엔기를 쓰고 명칭에만 유엔이 들어갈 뿐 유엔이 통제하는 군대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불과 5년만에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신생 조직이였던 유엔은 북한에 철군을 안보리 결의로 권고했다. 그러나 먹히지 않았고 유엔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 각국을 통합된 사령부로 묶어 유엔기를 사용할 수 있게 조치하였다.[55][56] 당연하게도 지원군 총 35만여 명 중 30만 명이 미군이었기 때문에 지휘권을 미군 중심으로 통합하는것이 합리적이었고 한국에 파병된 미군의 지휘권자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연합군을 지휘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유엔이 통합시킨 유엔군 사령부가 가장 파이가 큰 미군에 좌우되는 것을 보고 현재는 한 나라의 영향력이 크지 않은 선에서 다국적군을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유엔 평화유지군의 전투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은 것은 평화유지군 자체가 강대국의 주력군이 아니라 어중간하게 가난한 나라들이 파견보조금을 탈 겸 해서 파견하는 병력이 주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평화유지군에서 다수 병력을 차지하는 나라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군사강국들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아랫급에 있는 국가들이 대다수이다. 사실 평화유지군이 소집될 때 상임이사국은 못 끼도록 정해져 있다. 그래야 평화유지군이 상임이사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이 아닌 약소국의 분쟁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화유지를 하는 곳이 있는 반면 전혀 사태해결을 하지 못하고 쩔쩔 매는 곳도 있다. 대체적으로 해당국가의 무장세력들이 독한 맘 먹고 대대적으로 밀어붙이면 비록 장비는 뛰어나지만 수적으로는 절대적으로 열세인 평화유지군은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에 인종청소 방지를 위해 파견되었던 유엔 평화유지군이 세르비아 정규군이나 민병대들에게 제압당해 인간방패로 사용된 것은 두고두고 유엔의 굴욕으로 남아있다(관련글). 그 밖에 시에라리온이라든지 여러 아프리카 나라에서도 유엔 평화유지군이 가서 개털린 굴욕도 있긴 하지만 이런 건 좀 특별한 경우. 왜냐하면 겉은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찬란했으나 정작 주변의 가난한 아프리카 나라들의 군대들이 열악한 무장을 하고 가니 내전으로 전투 질리게 한 시에라리온이나 여러 내전 국가에선 이들 나라 군대는 말그대로 이었다. 미국은 물론이오, 유럽이나 아시아 쪽은 일절 해당되지 않음.
결국 소말리아 해적 소탕을 기점으로 다국적군 파견보다는 민간군사기업을 통한 분쟁지역의 무력개입방식이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으며 소규모나마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시리아 내전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도대체 유엔은 뭐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국가간(특히 미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의 충돌 때문에 유엔 차원에서 개입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중에서 거부권을 가진 러시아가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고 있어 시리아 정권을 전복시킬 군사 개입은 불가능하다.

8.3. 비군사적 분야에서의 한계


현실적으로 자체 군사 조직을 갖추지 못하고 회원국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존하는 유엔의 군사적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비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국제기구 중에서 외교문제, 경제문제, 무역문제, 조약문제, 인권문제, 환경문제, 빈곤문제, 핵문제 등등 국제사회와 정치 분야에 있어서 가장 많이 참여하고 있으며 가장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유엔이 미국의 개라는 것도 군사적 측면을 두고 한 말이지, 그 외의 분야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냉전이 끝난 지금 유엔의 영향력은 전보다 더 커졌다는 것이 국제법학계의 중론. 그러니 유엔의 군사적 측면만을 보고 실체없는 단체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애당초 아무 힘이 없다면 수많은 나라들이 돈 내가며 가입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유엔의 비군사적 역할을 알려면 보조기구와 전문기구를 살펴보는 것이 빠른데 유엔에 소속된 보조기구(총회를 비롯한 경제사회이사회 등 유엔의 조직을 직접적으로 보조하는 산하기구)로 UNICEF(국제아동기금), UNCTAD(UN무역개발회의), UNDP(UN개발계획), UPeace(UN평화대학), UNU(UN대학), WFP(세계식량계획)를 두고 있으며, UN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전문기구(UN경제사회이사회와 협정을 맻어 연대관계에 있는 별도의 독립기구)로는 IMF(국제통화기금), IBRD(국제개발부흥은행), WTO(세계무역기구), WHO(세계보건기구), ILO(국제노동기구), UNESCO(UN교육과학문화기구)등이 있다. 국제 정세에 별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뉴스나 신문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국제단체들 대부분이 유엔산하기구 혹은 관련기구다.[57]
비군사적이고 세계적으로 합의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주제에 대해서라면 유엔은 오히려 막강한 행동력을 과시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새천년개발목표'''로 대표되는 국제개발 이슈에 대해서라면 유엔이 그냥 허수아비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강대국의 영향력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군사적인 영향력이 약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유엔 무용론' '유엔 개혁론' '세계정부론' 등이 나오기도 한다. 해당 기사 한편,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일어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전세계가 법인세나 노동법을 통합하는 방안이 제시되지만 UN을 위시한 국제기구의 한계를 넌지시 언급하면서 해당 방안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9. 관련 문서



10. 여담


  • 2007년대한민국반기문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의 사무총장으로 취임하였고 2011년에 연임이 확정되었다.[58]
  • 한국계 UN직원으로는 전직 사무총장인 반기문 이외에도 패티김의 장녀 최정아도 있다.
  • 유엔의 본 건물처럼 보이는 저 높은 빌딩은 사실은 그저 직원들 사무실이다. 실제 안보리 회의장과 국제연합 회의장은 그 옆에 있는 낮은 건물에 다 있다.[59] 유엔 본부 설계에는 당시 쟁쟁한 건축가들이 모두 탐내던 프로젝트로 결국 최종안은 브라질의 현대 건축가인 오스카르 니메이예르의 고층 빌딩안과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르 코르뷔지에의 단일 대형 건물안을 절충하여 사무동 및 회의건물이 지금 모습과 같이 지어지게 된다. 그리고 유엔 본부 건물의 내부는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공역으로 정해져 있다. 대사관을 해당 국가의 영토로 취급하는 것과 유사한데, 예시를 들자면 유엔 세계본부 내부에서 범죄가 발생할 경우 세계본부가 위치한 뉴욕 경찰이 바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유엔 측과 협의를 거쳐서 처리 과정을 결정해야 한다.
  • 남한북한의 유엔 가입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훨씬 후 제6공화국 시기인 1991년 9월에 가입이 이루어졌는데, 가입 당시 북한이 160번째, 남한이 161번째로 가입했다.[60] 사실 1960년대 이후로는 전세계에서 가입하는 국가들이 상당히 늘었다는 점에서 의외인데, 이미 한국전쟁 이전에 광복 이후인 1949년 2월에 한국의 가입 권고 결의안에 채택되어 당시 가입국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 국가들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부결되는 것을 시작으로 근 40~50년 동안 가입을 하고 싶어도 소련의 극구 반대로 인해서 가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소련은 거부권 행사를 할 수 있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쪽에 잘 설명되어 있다. 어쨌든, 가입을 안했지만 유엔에서 여러 가지 원조는 받아 왔다. 그리고 가입하기 위해 남한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도 참고할 수 있다. 한국의 유엔 가입이 늦어진 이유에는 남한의 단독 가입을 주장했던 것도 한 이유였다. 헌법상 한반도의 유일한 정부를 자임하는 한국으로서는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는 것은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었고, 미국도 이런 입장에서 북한의 유엔 가입을 반대했다.[61] 마찬가지로 소련에서는 88올림픽 전까지는 북한을 한반도의 유일한 정부임을 지지해 왔기 때문에 반대하였다.
  • 스위스는 남북한보다 11년 늦은 2002년 9월에야 유엔에 가입했다.
  • 팔레스타인이 2012년 11월 29일, 상주옵저버국가(Permanent Observer State)에서 옵저버 국가(Observer State)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옵저버 국가는 유엔총회의 정식 의석을 갖지 않은 국가로 의결권은 없으나, 회의에 참석해 활동할 수는 있다. 이전까지 옵저버 국가로 인정 받은 것은 바티칸뿐이었다.
  • 전 세계적으로 중/고/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의 유엔 회의(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UN 한국협회에서 전국 대학생 모의UN을 시행하고 있다. 그 외에 학생주최로 2015년 여름 기준 3기를 맞은 SIGMUN, HAIS MUN, 조선일보에서 주최하는 MUNOS (Model United Nations of Seoul), 비영리 법인 GLIS®에서 주최하는 GLIS MUN,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서 각각 주최하는 KMUN과 YMUN등이 있다. 자세한 것은 모의 유엔 문서로.

[1] 북극점 위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구도의 정거 방위 도법으로 그려진 지도로, 그 이유는 어떠한 국가도 엠블럼의 중심에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의도된 구도라고 한다.[2] 이 엠블럼은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는 국장의 역할도 겸한다.[3] 미국이 유엔 본부 소재지의 영토를 포기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영토는 맞지만, 외국 대사관보다도 한 단계 높은 완전한 치외법권 지역으로, 미국은 유엔 본부의 영토로서의 법적 행정적 권리를 완전히 포기했다. 사실상 미국이 유엔 본부의 영토를 포기했다고 봐도 된다. 영어 위키백과에도 유엔 본부는 미국 영토라고 명시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고 외국 대사관도 보장받지 못하는 완전한 치외법권 지역이라고 서술되어 있다.[4]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의 공용어 4개에다가 많은 회원국이 공용어로 사용하는 언어 2개가 더해졌다. 다만 많은 국제 기구가 그렇듯이 사실상의 실무 언어는 영어프랑스어 2개이다.[5] 이 언어들의 공통점이라면 전세계 화자가 2억명 이상의 언어라는 점이다.[6] 대한민국 외교부 국제기구・지역협력체 정보 참조.[7] 북한 외무성 "싸이트" 참조.[8] UN에서 사용하는 중국어는 간체자로 쓰도록 규정되어 있다.[9] LAISSEZ-PASSER라고 불리는 유엔 직원만이 발급받을 수 있는 여권이 있는데, 한국은 이 여권으로 입국하는 사람에 대해 원래 국적과 상관없이 30일의 무비자 입국 기간을 부여한다. [10] 미국 영토 안에 있기 때문에 미국과 동일한 무비자 기간이 적용된다.[11] 현대에 들어서는 미가입국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우선 가운데 눈에 띄는 회색은 서사하라다. 중화민국(대만)은 탈퇴했기 때문에 미가입국 색상이어야 하나 유엔에서는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 영토로 간주해 대만도 색칠해져 있다. 아예 가입 신청 자체를 못하게 해 둔 셈이다.[12] 현재 193개국이 가입해 있다. 현재 현존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가입되어 있으며, 인류 역사상 "인류 전체"를 테마로 논의가 오고가고 있는 기구는 이 기구와 그 산하기구들이 거의 유일하다. 미승인국속령이 아닌 실제 국가 수준의 대접을 받으면서 UN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는 바티칸, 대만, 코소보, 서사하라, 팔레스타인뿐이다. 이 중 바티칸은 교황이 UN 총회에서 연설하는 등 사실상 회원국 취급이다.[13] United Nations는 2차 대전 시절부터 연합국의 이름으로 존재했지만, 패전하기 전까지 일본 제국은 '국제 연합군'이라는 이름으로는 불러주지 않았다.[14] 참고로 중국에서 國聯은 국제연맹을 말한다.[15] 그러나 중국어에서 2차대전 중의 연합국을 칭할 때는 동맹국(同盟国)이라고 하여 한국어 및 일본어와 마찬가지로 국제기구로서의 유엔과 구분해서 부른다. 1차대전의 동맹국과 명칭이 겹쳐 헷갈릴 수 있으니 주의.[16] 예컨대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 참여에 관한 법률[17] 예컨대 국제연합 초국가적 조직범죄 방지협약[18] 주로 당장 닥친 지구온난화에 관련된 문제를 비롯하여 산림, 습지, 해양, 토지 훼손 및 오염 문제까지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지구가 계속 이렇게 오염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될 경우.. 인류의 생존은 보장하기 힘들기 때문에 유엔은 회원국들과 협력하여 여러 협약을 맺고 관련 사항을 이행함으로써 자연환경 보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19] 당시 프랑스는 국가가 없는 상태로 나치 독일에게 레지스탕스로 대항하고 있던 중이었다.[20] 나치 독일이 항복한 날은 1945년 4월 30일이다. 일본 제국과는 아직 전쟁 중이었다. 추축국의 패배가 거의 확실히 되는 상황에서 진행된 것이다[21] 대표적인 국가로는 소련[22] 대표적인 국가로는 미국[23] 당시 팔레스타인땅에 유대인 민족들이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제1차 중동전쟁를 일으켰고, 결국엔 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 유엔의 승인을 얻어 이스라엘을 건국했다.[24] 이집트수에즈 운하를 차지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25] 1956년 당시 헝가리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났는데, 소련동유럽내에서의 영향력 감소를 우려하여 헝가리를 침공한 사건. 당연히 유엔은 소련의 문제이기 때문에 개입하지 못했다.[26] 콩고 내전을 해결하기 위한 평화적 노력을 전개한 그에게 사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27] 그리스에서 1964년 군사정권이 수립되자, 같은 인근 그리스계 국가인 키프로스와 군사적 긴장이 심화되었다.[28] 당시 중화민국국공내전에서 패배하여, 대륙에서 밀려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1949년 대륙에서 밀려난 이후에도,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는 중화민국이었다.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의 급부상으로 중화민국은 힘의 논리에 의해 기존의 지위에서 강제로 내려오게 된 것. 같은 자유진영이었던 미국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이 결의안이 통과되었던 것은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이 상당히 부상하고 있었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표결을 막을 수 있었던 중화민국이 표결 과정 자체에 불참해버렸기 때문이다.[29] 물론 실제 한 나라의 대통령의 권한과는 천지차이가 날 정도로 실권이 없는 자리이기는 하다.[30] 대만 지역의 경우, 중화민국(대만)은 UN 미가입국이지만 UN은 중국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 대만 지역을 중화인민공화국 영토로 인정하므로 파란색으로 표시되었다. 중화민국은 1971년 UN을 탈퇴했다.[31] 모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과 싸웠던 나라들이다.[32]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에 대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며, '''유엔이 어디로, 어떻게 국제 분쟁에 개입해야하는 지를 결정할 수 있어서 실질적으로 유엔의 주인이나 다름없다.''' 한편, 이 상임이사국들의 입김에 따라 유엔이 움직이는 일이 실제로 많으며, 종종 제기능을 못할 때도 있다. 이에 유엔은 국제 여론으로부터 "유엔은 단지 강대국들의 이익기구이며,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33]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은 더 이상 국가 자격을 갖지 못하게 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로 간주되어 중화 타이베이로 취급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고 일방적으로 선전한다. 하지만 유엔 결의안은 대만의 국가 자격을 인정/부정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34] 엄밀히는 소련군 중 각 공화국과 관련된 일부 부대의 지휘권[35] 당시 미국의 주는 48개였다. 이후 알래스카하와이가 주가 되면서 50개 주가 되었다.[36] 약간 억지인 것이 미국의 주는 소련의 공화국에 비해 이론적으로도 외교권이 없는 등의 제약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은 소련의 반박에 헌법을 바꾸면 된다고 맞받아쳤다.[37] 공식적으론 중립국이었으나 실질적으로 추축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추축국과 거의 동일한 제재를 받았다.[38] 다른 게 아니라 영세 중립국 지위 때문에 그렇다. 실제로 2002년 유엔에 가입하려고 할 때 보수파의 강한 반발이 있었고 결국 국민투표를 통해 가입이 결정되었다. 다만 다른 영세 중립국들, 라오스와 오스트리아는 일찌감치 유엔에 가입했다.[39] 사용 인구로 따지면 힌디어가 아랍어보다 많다.[40] 프랑스는 프랑스어 못 하는 반 총장에 대해 선출 거부권까지 행사하려 했었다. 물론 반 총장도 이를 알고 프랑스어를 열심히 공부하여 지금은 수준급의 프랑스어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는 자기 대통령과 반기문 총장이 무난하게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고 선출 거부권을 행사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공교롭게도 그것에 극찬한 프랑스 대통령이 그 평가를 내리는 걸 듣는 인물이 반기문처럼 고등학생 때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빌 클린턴이다. 거기에 영부인인 재클린 케네디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해서 프랑스 방문 때에는 남편보다 더 관심이 집중된 것을 둔 유머를 케네디 스스로가 할 정도여서, 케네디와 링컨의 공통점이란 음모론 비슷한 말에서도 링컨의 배우자도 프랑스어가 유창했다는 것까지 이를 적용할 지경이었다..[41] 이 말을 했을 당시(위안부 문제로 한일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극우주의자는 물론 '''일본의 관방장관까지 나서서 똑같은 단어가지고 왜 말장난을 하냐고, 이 말을 이해 못하겠다고 항의'''했으나 중립이란건 누구의 편도 들지않고 니들이 그러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방관한단 뜻이고 공정하다는 건 선과 악을 구분하거나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짓고 선과 피해자를 도와주고 갈등을 조정한다는 뜻이다. 즉 중립이라는건 유엔의 본래 취지와는 크게 모순되는 단어다. 유엔이 중립입장이면 유엔의 이름 아래 다국적군이 결성되거나 안보리의 제재결의안 등이 만들어질 이유가 없다.[42] 이걸 프레시안 등에서는 유엔이 작별선물로 같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라고 번역해서 우리가 없애주마라는 표현으로 번역을 해 놨는데, 뉘앙스를 보면 유엔에서 전쟁 반대하면서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사회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환상(fantasy)으로 밝혀졌으니 자업자득이라는 식이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는 것. 다만, 유엔은 쓸모가 없으니까 국제구호 기구와 평화유지 관료체제 약간만 남겨두고 없애야 한다는 것은 차이가 없다. 전문을 보면 미국식 일방주의가 어느 정도까지 갔었는지 알 수 있다.[43] 도널드 럼즈펠드가 미 국방장관이었던 시기 미 국방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겸 국방부 자문위원. 리처드 닉슨 정권 시기 대표적인 데탕트 반대파로 네오콘의 주요인물이기도 했다. 펄은 이 글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임했는데, 일단 공식적으로는 이 글을 써서가 아니라 통신업체 해외매각에 개입하는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밝혀졌기 때문이다.[44] 사실 유엔의 주요 권력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UNSC)의 5개 상임 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애초에 국제 사회의 유일한 능동적 주체인 강대국'''들을 기반도 자금도 몽땅 바로 그 강대국에 의지하는 국제기구 따위로 제지할 수 있을 리 없었다.[45] 2015년 기준 약 6억 5천만 달러, 한화로 약 7400억원.[46] 일본은 사실상 명백한 친미국가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유엔에서 미국의 입김이 상당히 크게 작용하는 셈이다.[47] 약 5천 9백만달러, 한화로 약 680억원[48] 실제로 미국 트럼프 정부때 미국이 유엔 기부금을 대폭 감축하자 유엔이 공개적으로 직원들 임금줄 돈도 없다면서 호소한적이 있었다.[49] 기부금 낼 때 특정 판무관 사무소나 평화유지군 예산으로 책정할 수 없도록 사용처를 지정하여 요구할 수 있다.[50] 트럼프 정부 미국은 이스라엘 문제를 이유로 유네스코유엔인권위원회를 탈퇴한다.[51] 한때는 멕시코보다도 적었던 적이 있었다.[52] 2000년까지는 25%였는데 소폭 내려갔다.[53] 미국 내에서도 이라크 전쟁 당시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한 전쟁이라고 크게 비판 받았고(반전단체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가 유엔의 승인이 없는 전쟁이라는 점이다), 전세계적인 반미감정의 증가 때문에 이를 교훈으로 지금은 미국 내에서도 유엔의 동향에 신경써야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54] 사실 이라크 전쟁 때도 미국이 유엔을 완전히 무시한 건 아니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유엔의 승인을 받기 위해 본인이 직접 유엔총회에서 연설까지 하고 안보리에 상정했지만, 끝내 지지를 받지 못하자 결국 미국 단독으로 전쟁을 일으켰던 것. [55]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유엔군은 유엔 산하의 기구가 아니다. 자세한 것은 유엔군사령부 문서로.[56] 유엔 산하 조직이 아니지만 유엔 결의에 의해 탄생했기 때문에 부산광역시UN기념공원은 유엔이 관리하는 유일한 군사 관련 묘지이다.[57] 유엔의 비군사적 영향력 역시 강대국의 자본에 기반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IMF, WTO 등으로 대표되는 경제적인 영향력 역시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에 기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유엔은 강대국의 정치논리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58] 사무총장이라고 유엔의 수장인건 아니고 유엔 산하 국제연합사무국의 수장이라고 봐야 한다. 애초에 사무총장이라는 자리는 UN의 통치자가 아니니 세계정부의 황제 같은 걸 생각하면 안 된다. 국제분쟁의 조정자 혹 중개인 정도가 적절하다.[59] 사실 이건 다른 단체들 역시 비슷하다. 예를 들면 웬만한 국가의 의회나 지방정부의 의회 역시 보통 1층에서 입장가능하게 되어 있다.[60] 남북한보다 늦게 가입한 나라들은 특정 나라에서 분리되거나 독립된 나라들, 면적이 코딱지만 한 나라들, 그리고 스위스뿐이다.[61] 단,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의하면, 남북한이 동시에 UN에 가입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남한이 북한 정부를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반국가 단체가 무단으로 북쪽지역을 점령하였으며, 남북한의 UN 가입은 UN과 UN 내 다른 회원국에서 남북한 두 정부의 실체를 확인한 것일 뿐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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