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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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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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의 남부에 위치한 자치구. 동으로는 부산만, 서로는 서구, 남으로는 남해를 통해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시, 북으로는 중구와 남구와 접한다. 1957년 구제(區制) 실시로 영도 지역을 관할로 하는 영도구를 설치하였다. 별칭은 '영아일랜드'('영'의 영어표기 'Young'+'도'의 뜻인 Island가 합쳐진 일종의 언어유희)[3]
동해안과 남해안을 아우러 이르는 섬이기도 하며 면적은 여의도의 3~5배.
도심 상권인 남포동과 가깝게 위치하고 있지만, 부산 사람들에게는 묘하게 외곽으로 분리된 느낌을 주는 동네다. 섬인데다가 부산 16개 구/군 중에서 유일하게 지하철 노선도 없고 태종대 같은 바닷가 갈 일이 아니면 좀처럼 접할 수 있는 게 없는 동네라...
참고로 우리나라의 섬 단위의 행정구역들 중에서 유일하게 구 단위의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행정구역들 중 섬 단위의 지자체들이 총 10곳인데 제주특별자치도는 특별자치도, 거제시는 유일하게 시고 나머지들은 죄다 군[4] 이다.
2. 역사
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는 절영도(絶影島)라고 불렀다.[5] 과거 영도에는 나라에서 경영하는 국마장이 있었는데, 절영도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곳에서 자란 말은 워낙 빨라 달리면 그림자(影)가 끊어져(絶) 보이기 때문에 절영도라고 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영도가 지금처럼 시가지로 꽉 차있지 않았고 초지가 넓었으며 말 키우는 데 방해되는 맹수도 없고[6] 서라벌에서 가깝기 때문에 말을 키우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조에는 신라 33대 성덕왕이 삼국통일을 이룬 김유신의 공을 치하해 김유신의 손자 김윤중에게 절영도 명마 한 필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사와 동국여지승람에도 926년에 후백제왕 견훤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절영도산 명마 한 필을 선물했다는 기록도 있다.
임진왜란 이후 공도 정책에 따라 일시적으로 무인도가 되기도 했으며 독립협회가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를 막았다는 내용으로 근현대사 교과서에도 등장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말을 키우는 목장의 섬'이라는 뜻의 마키노시마(牧ノ島)로 불렸으며, 영도대교의 개통으로 교통이 편리해져 부산 시가지의 일부가 되었으며 해방 이후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절 자가 빠지고 영도로 바뀌었다.
국내에서 최초로 근대적인 조선소가 생긴 곳이 영도. 일제시대때 미쓰비시사가 1937년 7월 10일 부산 영도에 '''조선중공업주식회사'''(현 한진중공업)를 설립. 1938년 3,000톤 급 건조대 2기, 6,000톤 급 도크를 갖추면서 본격적으로 조선업을 시작했다.
한국 전쟁 당시 최후방어선 지역이었기에 피난민들이 영도로 대거 몰렸고, 이때문에 50~60년대 생 유명인들의 출생지나 성장지가 이곳 영도인 경우가 꽤 많다. 대표적으로 '''문재인'''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지금의 영도구는 조선시대까지 별다른 지명 없이 동래부 소속의 부속도서로 존재했으나, 1881년에 절영도진이 설치되었다. 영도구에 있는 지명의 상당수는 1885년 절영도 첨사를 지냈던 임익준이 중국의 전설에 등장하는 장소를 따서 지었다. 섬 중앙에 우뚝 솟은 봉래산부터 시작해서 영선동, 신선동, 봉래동 등이 그 예.
일제강점기에 부산항 일대가 개발되면서 점점 도시화되었고, 1934년 영도대교가 생긴 뒤 부산 도심의 일부가 되었다. 1957년 부산시에 구(區)제가 최초로 실시될 당시 설치된 6개 구 중 하나.
- 1896년 : 행정구역 개편으로 13부제가 실시되어 동래군 사중면[7] ·사하면[8] 관할이 됨.
- 1910년 10월 1일 : 동래부에서 부산부로 개칭.
- 1947년 10월 1일 : 일본식 동명을 한국식 동명으로 개정.
- 1951년 9월 1일 : 부산시 영도출장소 설치.
- 1957년 1월 1일 : 구(區)제 실시로 영도출장소가 영도구로 승격, 영선동이 영선1·2가동과 영선3·4가동으로 분리.
- 1959년 : 영선1·2가동이 영선1동으로, 영선3·4가동이 영선2동으로 개칭.
- 1966년 1월 1일 : 신선2동의 일부가 신선3동으로 분리.
- 1970년 7월 1일 : 청학동이 청학1동과 청학2동으로 분리.
- 1979년 8월 8일 : 봉래3동의 일부가 봉래4동으로 분리.
- 1982년 5월 1일 : 법정동 경계조정으로 영선동3가의 일부가 신선동3가로 편입.
- 1984년 1월 1일 : 법정동 경계조정으로 신선동3가의 일부가 영선동4가로 편입.
- 1985년 12월 1일 : 동삼동이 동삼1동과 동삼2동으로 분리.
- 1994년 7월 11일 : 동삼1동의 일부가 동삼3동으로 분리.
- 1998년 9월 21일 : 남항동, 대교동, 대평동이 남항동으로 합병.
- 2007년 1월 1일 : 봉래3동과 봉래4동이 봉래2동으로, 신선1동과 신선2동, 신선3동이 신선동으로 합병.
3.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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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는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자치구 중 유일하게 오직 섬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9] 지역이 구명과 동일한 영도[10] 와 그 부속도서인 조도(鳥島), 태종대 남쪽에 있는 무인도인 생도를 포함한다. 조도는 영도사람들 내에선 주로 '아치섬'이라 불린다. 원래 이 섬에서 아침을 맨 처음 본다고 하여 아침섬(朝島)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글자를 더 줄여서 '아침 조'를 쓴 조도라고 부른다
3.1. 기후
여름철이면 섬에 구름이 잔뜩 끼는 일이 잦다. 실제로 내륙에서 영도를 바라보면 허구한 날 섬의 산자락에 하얗게 구름이 씌워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명 '영도 구름모자'. 이는 영도의 지형적인 요인 때문인데, 낮 동안 해풍이 불어와 영도 중앙의 산을 타고 상승, 상층에서 찬 공기를 만나 이슬점에서 구름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영도의 구름이 바다에서 내륙 쪽으로 뻗는 것을 볼 수 있고, 산을 탄 공기가 넘어가며 작게나마 푄 현상도 일으키고 아래의 공기와 만나며 다시 더워짐에 따라 점차 구름이 사라지는 것도 볼 수 있다.
4. 교통
4.1. 도로
4.1.1. 영도의 연륙교
섬인 특성과 꽤나 많은 교통량으로 인해 육지와 연결을 위한 연륙교가 4개가 있다.
영도대교(1934년 개통)를 통해 일찌감치 육지와 연결되었고, 일제강점기 부산부로서 개발이 된 동네다. 참고로 1966년 부터는 고정식 교량이 되어버렸지만 원래는 교량 아래로 선박을 통과시키기 위한 도개교였던 영도대교 개통식 행사 시 무려 5만 명의 인파가 운집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이 다리가 우리나라 최초이자 단 하나밖에 없는 도개교다. 도로확장을 겸해(왕복 4차선->왕복 6차선) 다시 도개교로 재시공하여 2013년 11월 27일 재개통되었고 매일 오후2시부터 15분간 '''도개식'''을 하고 있다. 이 행사를 보기 위해 매일 (주로)노인들이 도개 행사를 구경하곤 한다. 개통 당시에는 '''7만 여명'''의 인파가 몰렸으며 이 인파들이 대교를 걸어다니는 사진이 보도되어 "저정도 인파에 안무너지는거 보면 거참 튼튼하게 만들었구만" 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도개식 직전 직후 약 3~5분간 다리를 올리고 내리는 시간도 포함하면 약 20분 정도 통행이 제한되는데, 그 때 영도대교를 지나가려다 막히면 정말 열받는다(...). 그래서 도개식 직전 시간대의 영도대교를 지나는 시내버스를 타면 빨리 지나가고 싶어하는 기사님들의 마음이 전해지면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영도 주민들은 지나가야 할 일이 있다면 보통 부산대교를 통해(자차나 대중교통) 통행 제한의 변수를 없앤다.[11]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감염 예방 차원에서 도개 행사를 2월 25일부로 잠정 중단했다.
영도대교 말고도 부산대교, 남항대교, 부산항대교 를 통해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부산대교는 준공될 당시 시뻘건 타이드 아치를 내세워 지금의 광안대교 마냥 부산의 상징으로 잘 써먹다가 지금은 그냥 과거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더군다나 지금은 보수공사로 인해 회색으로 재도색해 예전처럼 튀지도 않는다. 서구로 이어지는 남항대교는 2008년 7월 9일에 개통했다.[12] 남구로 이어지는 부산항대교는 2014년 5월 22일에 개통했다.
부산 항만배후도로의 일부인 남항대교와 부산항대교를 연결하는 남항·부산항대교 영도연결도로가 건설되었다. 건설 과정에서 영도구 주민과 부산시간에 이 고가도로를 두고 갈등이 깊었었다. 청계천 복원 사업 등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고가도로를 일종의 기피시설로 인식하는 분위기 까지 편승하는데다가 고가도로 노선이 남항동, 영선 1,2동, 봉래동등 나름 영도에서 상권좀 있다는 곳을 지나가는 탓에 그 지역 주민들의 반대의견이 강했다. 거기다 공사 도중 사고까지 나버렸으니...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고.
4.1.2. 도로사정
'''온 동네'''가 고저차가 빡세다. 부산이 원래 산이 많고 경사가 심하지만, 영도는 그 중에서도 특별하다. 거기다 섬은 좁은데 사람은 많아서 길이 매우 좁다.(익숙해지면 차를 '''피하면서''' 걸을 수 있다. 물론 그래도 날 '''사고는 다 난다.''')
이런 고저차로 인해서 아이들이 자전거나 스케이드보드로 동네를 다니기 매우 빡세다. 특히 초심자. [13]
그런데 이렇게 열악하고 '''빡센''' 고저차가 있는 지역인데도 운전연습학원이 존재한다. 무려 2개씩이나. 거기다 도로주행 코스도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따라서 주행시험을 앞둔 사람들에게는 일정 지점까지 나가서 코스를 돌며, 급경사에서 코스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면허보유자들의 도로연수는 바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고저차가 심하고 골목길과 막힌 길이 많기 때문에 경험많은 기사분들도 영도만 들어오면 헷갈린다고 농담을 치기도 한다.
게다가 웬만한 도로가 전부 연결되어 있어 초보자가 길 잃기 정말 좋다.
4.2. 대중교통
부산광역시의 16개 자치구/군 중에서 유일하게 철도가 지나지 않는 자치구이다. 부산전차의 지선이 영도로 들어오기는 했으나, 전차가 폐선된 이후 본선이 1호선으로 부활한 것과 달리 영도지선은 부활하지 못했고[14] , 부산 경전철 계획중 하나인 영도선이 있긴한데 언제가 될지는 미정이다. 사실 교통량만 보자면 경전철이 과연 필요한지가 의심스럽지만[15] 폐선된 부산전차의 영도 지선이 있었다. 영도대교가 개통된 1934년부터 1968년 폐선시까지 운행되었다. 요즘은 소식이 거의 없지만 앞서 말한 영도선 경전철이 구상 단계에 있고 영도로 들어오는 북항 트램 노선 계획이 2014년 1월 발표되었다.
시내버스는 17개 노선이 영도대교를 경유하며 3개 노선만 부산대교를 경유[16] 하고 있다. 또한 영도 내 시내버스 노선 특성상 남포동과 송도로 나가는 노선이 집중 되어 있는 반면 북부산과 동부산으로 가는 노선은 빈약한 편이다. 동부산 방면도 1006번과 1011번이 신설되면서 그나마 비중이 생긴 편이나 그 동부산 지역도 커버하는 곳이 얼마 안 돼서 해운대구 내에서 다른 노선으로 환승해야하는 건 매한가지. 최근 남항대교와 부산항대교를 경유하는 1011번 노선이 2015년 11월 28일에 신설되었으며 2018년 1월 29일에는 1006번 노선이 개통되어 영도 내를 관통하는 급행 노선들은 모두 영도대교와 부산대교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17]
시내버스 노선은 영도 특유의 도로구조와 버스회사, 그리고 노선 특성에 따라서 크게 영도구 중앙의 봉래산을 중심으로 동쪽인 태종로를 지나는 노선과 서쪽인 절영로를 지나는 노선, 그리고 와치로를 지나는 노선과 영선대로를 지나는 노선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태종로 노선은 크게 두개로 종점이 태종대와 동삼동 중리(부산남고등학교 앞)이다. 절영로 노선도 크게 종점이 산복도로와 고신대학교, 급행 한정으로 태종대[18] 부근 세 가지로 나눌수 있다. 다르게 이야기 하자면 노선경로 5개로 전지역을 커버 하고 있는 셈. 물론 마을버스도 있다. 사실 산을 기어오른다기보다는 앞서 말한 '''빡센 고저차'''와 '''좁은 도로'''때문에 산만한 덩치의 버스가 2차선 도로를 뽈뽈거리면서 올라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태종로 노선의 핵심노선은 태종대 종점의 30번, 8번과 동삼중리의 113번, 절영로 노선의 핵심노선은 508번, 7번 그리고 하나길 노선의 핵심노선은 6번,82번, 85번 등등.. 이중 30번, 508번은 심야버스가 있다.
영도를 관통하는 노선은 1011번이 유일하며 영도 경유 첫 급행버스(입석금지)로 운행된다. 청강리공영차고지를 출발하여 해운대,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남항대교, 을숙도대교, 명지오션시티를 거쳐 녹산공단까지 가는 노선. 단 영도구 구간에서는 한진중공업과 영선2동주민센터 단 2곳에만 정차하므로[19] 이용할 영도주민들은 주의. [20]
2011년 7월 27일에 집중호우로 백련사 아래 절영로 구간의 1개 차로가 무너져내리면서 교통이 두절되었다. 이 때문에 이 도로로 다니던 시내버스가 대거 태종로 쪽으로 우회운행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희망버스와 겹쳐 출퇴근시간의 교통이 마비되어버렸던 흑역사가 있었다. 다행히 복구는 완료되어 교통사정도 원래대로 회귀.
5. 경제
중구, 서구, 동구와 함께 부산의 구도심으로 분류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들 지역에서는 존재감이 가장 희박하다. 태종대는 알아도 그 곳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부지기수다(물론 부산사람들은 다 안다).
남포동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인지 전통적으로 상권이 상당히 미약하다. 중구로 대표되는 구도심의 상권의 주 고객층이 영도구 주민들이기도 하다. 게다가 1011번 개통 이후 센텀시티와 해운대역 일대를 보조 상권으로 두기 시작하면서[21] 더더욱...
소재 주요 기업으로는 한진중공업 본사가 있다.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조선공사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청학동에 있다.( 상륙함인 독도함 역시 한진중공업에서 건조됨) 사실 공기업이었던 대한조선공사는 1989년에 한진그룹으로 흡수되긴 했지만 대기업으로서 지방에 본사를 둔 기업이 흔치 않다. 다만 한진중공업 말고도 그 옆에 영세 조선소가 들어서 있어서 청학동 일대의 주거환경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긴 하다. 하지만, 영도의 경제가 거의 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빅으로 조선소 이전을 발표했을 때는 노조와 인근 상인들이 들고 일어나기도…. 수빅 조선소에 수주량을 몰아주고 있기 때문에, 2009년 이후 영도 조선소의 선박 수주량은 0이다. 노조와 시민단체는 영도 조선소를 사실상 철수시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단 노조 지도부와 일부 노조원은 사실상 항복을 하고 업무에 복귀한 상태이나, 이에 반발하는 노조원들이 이에 반발하여 계속해서 시위를 벌였다. 3차례의 희망버스 방문을 거쳐 국회에서는 청문회가 열렸고, 해고 직원들은 이대로 꿈도 희망도 없는 나날을 보내나 싶었는데 2012년 11월 10일 재취업 형식으로 전원복직이 확정되……나 싶었는데, 위에 언급한 영도조선소 수주물량 분배문제에다 노조원에게 대한 158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으로 인한 갈등의 불씨가 12월 22일 조합원 최강서 씨의 죽음으로 다시 폭발하고 말았다.
한 번씩 노사문제로 떠들썩해질 때마다 정문과 담을 업그레이드 해서, 현재 한진중공업 정문은 거의 성문이 되었다.현재 콘크리트로 정문을 막아버리고 대선조선쪽은 철문으로 막아놓았다.
2020년 3월에 부산 ~ 헬싱키 노선으로 취항하는 핀에어의 부산영업소가 영도구에 있다. 2019년 12월 1일에 개소했다고. 주소는 봉래나루로 82 (봉래동1가).
이외에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기업은 견과류 가공판매 업체로 유명한 머거본의 본사와 공장이 영도구 동삼동에 위치 해 있다.
5.1. 금융
제주와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 제주은행이 있는 유일한 곳이다.
6. 문화/관광
관광지로 태종대가 유명하기는 하지만 정작 영도구 주민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소풍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아웃 오브 안중.(가족 단위로 가끔 오는 사람들이거나 '''운동삼아'''가기도 하다만.) 하지만 2010년 1박 2일 촬영장소로 다시 각광을 받고있다.(이승기와 이대호 선수 방문) 태종대 옆의 태종대 자유랜드내의 곤포의 집은 '''여름에 만남의 장소로 일품'''이었다. 그 당시엔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곳이 근처에 없는지라. 다만 유원지가 시설 노후화와 입장객 감소로 문을 닫아버렸고 2008년 말에 철거된 후 2010년 9월에 공원 및 주차장으로 조성되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신혼여행 코스 중의 하나였다. 2000년대 초반 원도심에 거주하였던 초등학생들은 아마 소풍으로 태종대 자유랜드를 한 번쯤은 와 봤을 것이다. 그리고 상당히 낡고 노후화된 놀이기구를 타고 충공깽에 빠진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태종대 앞에서 말을 태워주는 할아버지가 오래도록 영업하고 있었는데 2008년까진 확인했으나 2010년 이후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말등이 굽어 있었다. 아마 돌아가셨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에 주변 여러 가게에서 공기총이나 다트를 쏘아 풍선 터뜨리기 등 카니발놀이를 할 수 있다.[22] 물론, 난이도는 '''엑스퍼트'''. 공기총 쏘기의 경우 총이 오래돼서 그런지 쏴도 맞질 않고, 공기총으로 쏴서 맞춰도 인형이 '''쓰러지질 않는다.'''(가게에 따라 다르긴 하다. 2018년 요즘은 '''꽝 없음!''' 이라는 팻말을 내건다. )
이래저래 이미 쇠락해버린 관광지의 느낌. 따라서, 개인 혹은 단체 단위로 오는 사람들은(단체 관광은 거의다 중국인&일본인 관광객들이 대다수이다.) 거의가 부산 사람이 아닌, 태종대의 현실을 모르는 타지 관광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태종대공원 내 순환도로를 타고가는 다누비열차를 타거나, 도보로 갈 수 있는 태종대등대+등대인근 자살바위는 태종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태종대 자갈마당은 바다를보며 조개구이를 섭취할 수 있는 명소 )
정작 영도구 주민들은 태종대보다는 절영해안산책로를 더 많이 찾는 편이다. 정비를 잘 해놔서 산책로가 깔끔하고, 해변 경치를 만끽하면서 운동할 수 있다. 사실 말이 산책로지 계단이 많고 고저차가 심해서 거의 산행 수준의 운동량이 요구된다. 이 코스에 익숙해진 동네 어르신들은 밤낮으로 이곳을 가뿐하게 다니신다.
봉래산을 올라가는 등산코스도 잘 갖춰져 있는데(주로 남부여객 종점 근처에서 등산코스가 시작된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부산타워에서 바라보는 풍경 싸다구를 날릴 수준의 절경을 볼 수 있다. 부산타워와는 또다른 절경이 바로 리아스식 해안선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쪽 끝으로 거제도,가덕도로 시작해서 다대포 송도 신선대 해운대 달맞이고개까지 경치를 감상할 수 있고 부산의 해안선을 다 볼 수 있는 곳은 영도 봉래산이 유일하기 때문에 부산타워에서 보는 풍경과는 또 다른 부산의 멋을 느낄 수 있다
상기했듯 나름의 천혜의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어 아름다운 도시미관을 해칠 우려가 있는 불법 적치물에 대해서 부산 내 단속이 빡센 지역 중 하나. 특히 난립하는 상업적 아파트 불법현수막에 대해서는 '''얄짤없이 칼같이 정리하고 과태료 후려버리는 곳으로 유명하며''', 이 때문에 부산 내 광고대행사 업계에서는 영도구는 기피지역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전단지나 벽보에도 칼을 대고 있는 모양. 심할 경우 10초 정도 걸고 난 후에 바로 철거되어버린다. 다른 구에 비해 시야적으로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이유.
국사 교과서 등에서 선사시대 유물로 중요하게 평가받는 동삼동패총이 영도구에 있다. 실제로 가보면 매우 아담한 규모로 3분이면 다 둘러볼수 있다. 이 패총의 조개유적을 이미지로 한 마스코트 '''영가비(영도+조가비)'''가 영도의 공식 마스코트로 지정되었다. 차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보이는 조개껍질 모양의 마스코트 캐릭터가 그것.
7. 교육
주요 소재 대학교로는 한국해양대학교, 고신대학교가 영도구에 있다.
한국해양대학교는 영도 옆에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는 조그만 섬인 조도(鳥島)를 통째로 캠퍼스로 쓰고 있다. 다만 대학가 풍경을 기대하지 말자. 참고로 말하자면 이 학교 앞에는 매립지랑 횟집 몰려있는 하리선착장이 전부다. 하지만 2010년 부터 매립지에 동삼혁신지구의 입주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선원학교로 유명했던 부산해사고등학교(舊교사는 드라마 친구, 영화 고死: 피의 중간고사 촬영지)와 해기사 양성시설로 유명한 한국해양수산연수원(구 해기연수원)이 이 학교 앞 매립지로 이전했으며, 기타 해양 유관기관들이 입주할 예정이어서, 수년 후에는 이 일대의 모습이 크게 변모할 것으로 전망된다.(2012년 7월에는 국내 유일의 국립 해양테마 박물관인 국립해양박물관이 개관하였다.)
구도심에 위치한 학교 특성상 남자중학교랑 여자중학교로 크게 양분되어 있는 중학교들을 남녀공학으로 전환시킨 케이스가 상당히 많다. 동삼중학교, 영선중학교, 태종대중학교 등등..
괜찮은 학교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영도구의 낙후된 이미지 탓에 다소 평가절하되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광명고등학교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별로 없지만, 부산광역시교육청에서는 상당히 우수한 사립학교로 평가하고 있으며, 남도여자중학교와 해동중학교 또한 부산교육청에서 우수 사립학교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부산남고등학교도 흡연 등 경미한 교칙 위반을 저지르는 학생들은 있으나 일진 등 중범죄까지 갈 수 있는 사건을 저지르는 학생들은 없고, 펜싱부 학생들과도 마찰이 없으며 인근에 위치한 부산체육고등학교 등 다른 학교와도 마찰이 없어서 수준 차이가 좀 난다는 것만 빼면 역사와 전통이 상당히 오래되어 좋은 학교라는 평이 다수이다. 또 다른 일반계 고등학교인 영도여자고등학교 또한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명문 학교라는 평가가 대다수이다. 사실 영도는 특성상 아무리 다른 학교를 나와도 초/중/고등학교에서, 그리고 학원 등 사교육을 통해 한번씩은 스쳐 지나게 되어있어 서로 다 아는 사이라 학교간 마찰이 생길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해 파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다. 사실상 영도구라는 큰 틀의 고등학교에 3개의 분교처럼 굴러가는 시스템이라 보면 되며, 수준은 좀 낮을지는 몰라도 면학분위기는 보장되는 준명문 학교라 보면 된다.
다만 학령 인구 감소 현상이 가장 심각한 곳이다보니 학교들이 잇다라 폐교되고 있는데 2019년 3월 1일부로 동삼중학교가 폐교되어 바로 옆 영도중학교와 통합하여 영도제일중학교로 출범하였다.
7.1. 관내 각급학교
7.1.1. 대학교
7.1.2. 고등학교
- 광명고등학교 (동삼동 226-118)
- 부산남고등학교 (동삼동 616)
- 부산보건고등학교[23][24] (영선동4가 200)
- 부산영상예술고등학교 (신선동3가 71-1)
- 부산체육고등학교 (동삼동 525)
- 부산해사고등학교 (동삼동 1125-21)
- 영도여자고등학교[25] (동삼동 514-13)
또한 셋 뿐인 일반계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 하나도 없고 모두 단성학교로 운영된다.[26] ''' 때문에 남녀공학 고등학교 지망을 희망한다면 무조건 영도 바깥으로 나가야만 한다.[27] 반면 영도 바깥에서 특성화고등학교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은 반면 일반계 고등학교로 통학하는 비율은 거의 없다. 그나마 역사와 전통이 오래되고 기숙사까지 있는 부산남고등학교로 오는 학생들이 드물게나마 있지만 거의 다 경남고등학교로 가버린다(..)
7.1.3. 중학교
- 남도여자중학교 (신선동2가 102)
- 부산남중학교 (남항동2가 217-1)
- 신선중학교 (신선동3가 40)
- 영도제일중학교 (동삼동 510-5) - 동삼중학교와 영도중학교가 2019년 3월 1일부로 통합하여 영도제일중학교로 출범하였다.
- 영선중학교[28] (신선동3가 8)
- 태종대중학교[29] (동삼동 523-1)
- 해동중학교 (동삼동 산57)
7.1.4. 초등학교
- 남항초등학교 (영선동4가 247)[30]
- 대교초등학교 (봉래동4가 18)
- 대평초등학교 (남항동2가 65-9)
- 동삼초등학교 (동삼동 258)
- 봉삼초등학교 (동삼동 510-8)
- 봉학초등학교 (청학동 389-53)
- 상리초등학교 (동삼동 1123-11)
- 신선초등학교 (신선동3가 76-6)
- 영도초등학교 (신선동1가 251)
- 절영초등학교 (동삼동 1124-5)
- 중리초등학교 (동삼동 454-34)
- 청동초등학교 (청학동 71-1)
- 청학초등학교 (청학동 412-3)
- 태종대초등학교 (동삼동 962)
8. 정치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생활을 시작한 곳이자[33] , 부산광역시장, 부산진구 을 국회의원에 나왔다가 낙선한 김정길이 정계에 처음 진출했던 곳이다. 그리고 민병렬, 김비오의 주요 활동지역이다. 부산광역시에서 호남 및 제주특별자치도[34] 출신의 외지인이 많은 편이다. 때문에 고령층이 많은 구도심 지역임에도 보수정당의 득표율은 부산 평균 정도에 그친다.
지역구 국회의원으로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영도구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이었다. 무려 '''5선'''. 그것도 연속으로. 18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후 19대 총선에는 불출마했다.[35] 노무현 탄핵 소추 이후 치른 17대 총선때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표를 가르는 바람에 불과 4% 차이(표로 환산하면 2560여표 차)로 아슬아슬하게 이기고[36] , 18대 총선때, 고가도로 논란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김형오 국회의원이 이 지역의 지지율의 악화로, 낙선할 뻔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10년이 넘는 표밭인 영도구 선거구에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도 무소속 김용원 후보에게 겨우 960표 정도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퍼센티지로는 대략 '''1.5%차.'''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전 국토부 차관 출신 이재균 후보와 노동 운동가 민병렬 후보가 붙었고, 한진중공업이 있던 영선2동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이재균 후보가 이기면서, 겨우 '''6% 차이'''로 승리했다. 물론 당시 통합진보당 후보가 37%를 얻은 것은 진보 정당으로써는 큰 성과이었다. 부산은 진보 정당세가 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재균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였고, 이어진 재보궐선거에서 남구 을에서 4선을 지낸 김무성과 김비오 후보와 위에 나온 민병렬 후보가 맞붙었고, 결과는 65.2%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했다. 물론 영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노년층 인구가 많은데다 재보궐선거 특성상 젊은 층들이 투표를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실제로 20대 총선 때 중구랑 합구 한뒤 다시 투표를 했더니 김무성이 55% 정도의 득표율로 당선했지만, 상대인 김비오 후보가 40.7%를 얻어서 낙선되었기에(영도 기준으로는 41%) 영도의 표심이 보수정당에 압도적이지 않다는 걸 증명했다. 실제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40% 이상을 받은 유일한 자치구였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가 홍준표 당시 후보를 6,634표, 6.12%차로 이겨 29년 만의 민주당계 승리를 일궈냈다. 남항동, 신선동, 봉래2동에서 홍준표에게 패배하고 나머지 전 지역에서 이겼는데, 남항동에서 약 8% 차이로 패배했지만 신선동과 봉래2동에서는 각각 3표, 26표 차이로 초박빙이었다. 해양수산연구원 및 해양대학교가 있는 동삼1,2동 일대에서 홍준표의 득표율이 가장 낮았다. 다만 해양대학교가 있는 동삼2동에선 문재인 후보가 34.9%로 영도 및 부산 평균보다 저조한 득표율을 받았는데, 대학생 유권자들의 상당수가 유승민과 심상정에게 표를 주면서 진보 및 중도성향 표가 대거 이탈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연구원에서 일하는 30~40대 유권자가 많은 동삼1동에선 문재인 후보가 39.8%를 받아 영도구에서 가장 득표율이 높았다.
홍준표는 남항동에서만 40%에 겨우 턱걸이했을 뿐 나머지 모든 동에서 30% 득표율로 주저앉았다. 한진중공업 사태로 지역 경제가 초토화된 상황이 보수 정당에 대한 민심 이반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대학생이 많은 동삼2동, 3040 화이트칼라 연구원이 많은 동삼1동, 그리고 청학2동에선 30%를 겨우 넘는 수준의 표를 받아 보수세력에 대한 실망감이 그대로 표출되었다. 특히 영도구는 노령화가 굉장히 심한 지역으로 일부 노동자, 학생, 연구원을 제외하면 젊은 인구가 거의 없다시피 한 지역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부산을 포함한 영남권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새누리당-자유한국당에 대한 반감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8.1. 관련 문서
9. 여담
영도에는 '영도할매'에 관한 미신이 있는데, 사람을 너무나 좋아하는 영도할매가 봉래산 꼭대기에서 영도를 내려다보며 지키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영도로 이사를 들어오는 사람은 너무나 좋아하면서 그 사람의 하는 일이 잘 되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그러나 영도 사람이 밖으로 나가버리면 그 사람은 영도할매의 저주가 내려서 3년만에 쫄딱 망해서 다시 영도로 들어오게 된다고 한다. 회피하는 방법은 영도할매가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이사하거나, 할매가 잠든 새벽에 (도망치듯이)이사해야 화를 피할 수 있다고 카더라.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표준 설정이고, 소수설로는 10년 넘게 살았으면 이미 많이 살았으니까 영도에서 나가도 봐준다거나, 반대로 10년 이하만 봐준다거나 하는 말도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1년에 몇번정도 할매신이 지정한 날이 있는데 그날 이사를 하는 방법이 있다. 대도시 안의 섬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조건 때문인지, 이게 단순한 지역 미신치고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아는 이야기라, 영도구민은 물론 영도 밖 부산시민이나 심지어 부산 밖에 사는 젊은이들도 가끔 아는 사람들이 있다. 봉래산 꼭대기에 영도할매 바위가 있다. [37]
부산광역시에서 타지 출신 사람들이 정착했던 비율이 높은 지역에 속한다. 특히 제주도 출신 사람들이 영도구에 많이 거주한다. 영도에 거주하는 제주도 출신 사람들은 대부분이 제주 4.3 사건이 터지면서 뭍으로 피난을 떠나 영도에 정착한 케이스다. 그래서 제주도민회관과 제주은행의 유일한 부산지점이 영도구에 있다. 활동하는 제주 출신 해녀 할머니만 150여 명이 있으며 제주 돼지고기나 고기국수 등을 파는 가게도 종종 있으며, 제주자리돔 전문점 들이 있으며, 제주도 출신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호남 출신과, 경상북도 출신의 비율도 높은 편이다. 한창 때에는 영도에서 등하교 시간에 버스를 타면 부산 사투리보다 제주도 사투리가 더 많이 들린다고 할 정도로 제주도 사람들이 많았다.
하일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인으로 귀화한 미국 출신의 방송인 로버트 할리가 처음 한국에 정착했던 곳과 현재 사는 곳 또한 영도구. 그래서 그는 '영도 하씨'라는 본관을 새로 부여받았다. 대한민국에서 영도 하씨의 인구는 2016년 현재 4명.
2014년 2월 15일 남외항에서 화물선과 유류공급선이 충돌하면서 바다에 기름이 약 23만 7000리터가 유출되었다. 이는 지난 1월말에 있었던 여수에서의 사고보다 더 많은 양이 유출되었으며 다행히 아직 해안 근처에는 기름띠가 보이지 않고 있으며 대략 양식장이나 해안 등과는 6km 떨어진 곳이고 당장 오일펜스가 설치되어 작업중이지만 하필이면 기름이 벙커C유라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2016년 4월 17일. 절영산책로 해안가에서 강풍에 배가 휩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여파로 기름이 유출됐는데 영도구 공무원 및 해경이 일요일부터 나와서 방제 작업을 실시했다.
6.25 전쟁 피난민들이 많이 정착한 까닭에, 주거환경이나 도로구조가 난잡해진 부분도 있다. 정상적인 도시발전 과정을 거쳤다면 현재 해운대와 비슷한 분위기가 되었거나, 아예 멕시코 칸쿤의 호텔 구역처럼 분리되어 부산 도심, 동래 지역과는 다른 분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개발 중단의 여파로 폐가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버려진 공원, 간혹 가다가 우물도 있다. 거기다가 지역 토착민이 아니면 잘 모르는 뒤숭숭한 이야기들도 존재한다. 일례로, 하수도에서 시체 발견된 이야기 등등.
일제시대에 밀항이 빈번했고, 당시 영도의 해양경찰서가 그 최후방어선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사고가 많았다. 그리고 80년대까지도 영도 해안가 근처에서 간첩들이 침투하다 검거되기도 하는 등 북한의 침입 노선 중 하나이기도 했다.
2003년에 러시아 마피아 야쿠트파의 두목 바실리 나우모프가 이곳의 고급 아파트에 숨어지내다가 반대파 히트맨에게 총격을 당해 암살 당하는 일이 있었다.
10. 행정 구역
[image]
10.1. 남항동
10.2. 동삼1동, 동삼2동, 동삼3동
10.3. 봉래1동, 봉래2동
10.4. 신선동
10.5. 영선1동, 영선2동
10.6. 청학1동, 청학2동
11. 출신, 관련 인물
- 이주헌: 유명 유튜버
- 강다니엘: 가수
- 강지섭: 배우
- 김나율: 대원방송 2기 성우
- 김비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
- 김영애: 배우
- 김희진: 배구선수
- 남주혁: 배우
- 문재인: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거제시 출생이지만, 자란 곳은 영도구다.
- 이언주: 미래통합당 소속 前 국회의원. 출생지는 서구 대신동이지만 초중고를 나온 영도구를 실질 고향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 : 영도구에 실제로 거주했었고, 본관이 영도 하씨이다.
- 은비(프레셔스): 가수
- 정경미: 개그우먼
한현희: 야구선수
- 한현희: 야구선수
- 김태현--: 영도 왕자 출신으로 소문에 의하면 대량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영도 여행 시 적어도 한 번은 꼭 그의 땅을 밟아야 한다는 설화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베스킨라빈스에서 기프티콘 교환도 못하는 시대에 뒤처진 인물이다.
[1] 21개 법정동, 11개 행정동[2] 2021년 1월 주민등록인구[3] 다만 영도구는 고령층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16년 3월 주민등록인구 기준으로 영도구 인구의 20.7%가 65세 이상이었는데, 이는 부산에서는 동구(21.9%)와 중구(20.9%)에 이어서 세 번째로 높은 순위.[4] 전라남도 완도군, 진도군, 신안군, 경상남도 남해군, 경상북도 울릉군, 인천광역시 강화군, 옹진군[5] 삼국지 미디어에서 조황비전과 함께 명마로 자주 등장하는 절영과 같다.[6] 한반도 본토의 산에는 호랑이가 살았다.[7] 동삼동·청학동. 동삼동의 경우 상구룡리와 하구룡리로 나눠져 있었다.[8] 현 남항동·대교동·대평동·봉래동·신선동·영선동. 당시에는 이들 동네가 전부 영선리였다.[9] 인천광역시 중구 내륙 지역과 동구가 통합된다면 남은 중구가 영종도, 무의도만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10] 면적 14.0 km²의 작은 섬이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섬 중 제주도, 거제도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섬이다.[11] 남항대교나 부산항대교의 경우 좌석버스를 타야 하므로 논외다.[12] 남항대교의 개통으로, 기존 암남동(송도)에서 영도까지 자가용으로 30분 이상이 걸리던 것이 단 3분으로 단축(!)되었다. 또한 도보로 25분 남짓이면 왕복할 수 있는 산책로가 설치되어 인근 시민들의 운동코스로 애용되고 있다.[13] 워낙에 고저차가 빡센 지역이라 그런지 하루만 자전거로 타고 동네를 돌아다며 보면 허벅지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하는 기현상(...)이 나타난다.[14] 물론 1호선 지을 당시의 기술력을 감안하면 부활하지 못한게 이상할 건 없다. 본선 남포동~중앙동 일대 구간의 경우 지하철 건설을 포기하고 대청동 쪽으로 우회하자는 의견 까지 나왔고 실제 공사 도중 바닷물이 새어들어오거나 '''지반이 통째로 꺼지는 사고'''가 나는 바람에 사상자가 여럿 발생할 정도로 엄청난 난공사였다. 그나마 내륙구간도 겨우겨우 지었는데 영도로 해저터널을 뚫는다는건 그냥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15] 도로가 한산하다는 게 아니다. 도로가 매우 '''협소해서''' 교통 체증이 항시 대기 중이다. 그나마 남항·부산항대교 영도연결도로가 개통되면서 아래 쪽에 도로 확장 공사를 해서 이 곳 만큼은 도로가 매우 잘 뚫려있다. [16] 70, 88-1, 101. 11번은 편도 경유[17] 그런데 남항대교나 부산항대교에 행사가 있어 한 쪽이 통제될 경우 방향에 따라 부산대교나 영도대교 중 하나를 이용하게 된다. 가령 부산항대교가 통제될 경우 남항대교를 통해 영도에 들어왔다가 부산대교를 통해 영도를 빠져나가는 그런 식.[18] 2018년 1월 부로 운행 중인 1006번이 태종대에서 태종로를 거쳐 바로 부산항대교로 가지 않고 함지골과 영선로터리를 거쳐 부산항대교로 가는 걸로 예정되어있다. 게다가 1011번의 하프코스 격으로 신설되어 절영로 노선과 북영도 관통 노선 두 가지의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19] 이로 인해 1011번은 영선2동에서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유일한 노선이 되었다. 부산 버스 501 폐선 후 10년만에 영선2동에서 한진중공업 쪽으로 가는 노선이 다시 생긴 셈. 그런데 구 501번과는 달리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며 급행버스라 요금이 비싸므로 차라리 영도우체국에서 환승하는 것이 낫다.[20] 예전 같았으면 최소 1번 이상은 환승해야하고 거기에 1시간 내에는 절대 갈 수 없었던 해운대, 남구 지역을 용당까지는 10분대, 해운대까지는 20분대 후반에 가기 때문에 영도에서의 수요가 폭발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상 영도 주민들의 발.[21] 그렇다고 대단한 건 아니고, 남포동에 원하는 물건이 없을 경우 2 ~ 3순위로 고려하는 정도다.[괄호] A B C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22] 무려 8~90년대부터 운행되어온 상당히 오랜 역사가 있다.[23] 구.영도여자상업고등학교 구.한국테크노과학고등학교[24] 개그우먼 신봉선의 출신 모교다.[25] 국회의원 이언주, 황보승희 당선인이 나온 고등학교다.[26] 물론 나머지 학교들은 모두 남녀공학이다.[27] 영도에서 가장 가까운 남녀공학 고등학교인 부경고등학교로 가는 듯 하다.[28] 구.부산남여자중학교[29] 구.영도여자중학교[30] 문재인 대통령의 모교이다.[A] A B 남항동 · 대평동 · 대교동을 관할하는 동네[B] A B 한진중공업 공장이 있는 동네[C] A B 한국해양수산연구원이 있는 동네[D] A B 한국해양대학교 및 태종대가 있는 동네[31] 13.2.14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32] 13.4.24 재보궐선거[33] 문재인은 거제시 출신이지만 사실 전쟁 때문에 잠시 피난가 있던 곳에서 태어난 거고 사실상 어린 시절은 부산광역시 영도구에서 보냈다. 대통령이 된 2017년에도 모친은 영도에 살고 있었다가 2019년에 부산 중구 메리놀병원에서 타계했으므로, 영도에서 타계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34] 그래서 해녀도 많고, 제주은행의 유일한 부산지점이 영도구 남항동에 있다.[35] 사실 국회의장을 지낸 의원은 차기 총선은 불출마하는게 국회의원들의 관행이다. 그래서 국회의장을 지낸 후 그대로 정계 은퇴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36] 참고로 이때 열린우리당 후보가 11번 출마해서 겨우 2번 당선된 부산 영도를 기반으로 한 김정길 후보다.[37] 이 미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는데, 625 전쟁 이후 영도로 몰린 피난민들이 전쟁이 끝나도 고향으로 돌아가지못하고 영도에 정착해버린 것이 유래라고 하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