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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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성(三星)'''은 대한민국에 기반을 둔 다국적 기업이자 대한민국의 최대 재벌 집단이다.
창업주는 호암 이병철이며 1938년 창업한 '''삼성상회(三星商會)'''가 모태다. 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 69번지 일대며 현재는 그 일대에는 '크레텍책임'이라는 기계공구 및 산업용품 사업장이 있다. 옛 삼성상회 건물은 1997년 노후화로 인해 철거되고 대신 그 자리에는 높이 5.95m, 너비 8.7m의 삼성상회 재현 벽과 삼성상회 실물을 250분의 1로 축소한 청동 모형으로 구성된 작은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북구 침산동 옛 제일모직 자리에 들어선 대구삼성창조경제단지에 삼성상회 건물을 복원해 놓았다. 이병철이 당시에 살았던 집은 현재 북성로 오토바이 골목 내부에 보존되어 있다. 관련 기사
지주회사로 전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삼성물산이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삼성전자가 삼성카드를 지배하고 삼성카드가 다시 삼성물산을 지배하는 순환출자 구조. 사실상 너무 덩치가 커져버린 삼성전자를 오너 일가가 직접 지분으로 지배하기 힘들기 때문에 삼성생명의 자금을 이용해 지배하는 구조로 한국의 전형적인 재벌 구조다.
단 2011년 금융 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의거 순환출자 구조 탈피 선언을 한 바 있으며, 관련 기사 2014년 이건희의 심장마비 입원으로 인해 이건희 유고상황을 대비 경영권 방어가 필요해지면서 급속도로 지배구조가 변동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삼성그룹 사업체는 무조건 우리은행만을 유일한 거래처 은행으로 취급한다.[2] 그룹 전체가 하나의 은행만을 취급하는 건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인데, 삼성은 이걸 진짜 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외환실력을 쌓는데 결정적인 공로를 하는 중. 우리은행의 외국 지사 역시 삼성그룹 현지법인의 주거래은행이다. 원래 삼성그룹은 한일은행이 1958년 불하과정을 통해 초기 민영화될 때 한일은행을 소유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한일은행에 모든 거래처를 몰빵하고 유지한 관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한국 제외 외국 파견지점을 보면 죄다 삼성그룹의 외국지사가 있는 도시에 '''같이''' 파견되어 있다.
2017년 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삼성그룹은 그룹의 경영을 총괄하던 미래전략실의 해체 계획을 발표했다. 미래전략실은 삼성의 계열사(관계사)들을 수직적 지배하는 조직으로서, 미래전략실의 해체는 삼성그룹의 해체를 의미한다. 한편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 해체 후엔 계열사들이 각자 자율적으로 경영하는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룹 공채도 2017년을 끝으로 없어지고, 계열사별로 독자적으로 채용하는 체제로 바뀐다고 하였다. 기사
'''이에 따라 ‘삼성그룹’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다.'''기사1 기사2 한편 ‘그룹 홈페이지’나 ‘그룹 블로그’도 당연히 존재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2017년 4월 3일에는 삼성그룹 공식 홈페이지와 블로그가 문을 닫았다. 이보다 앞선 2017년 3월 2일에는 그룹 사내 방송이 종료되었고, 3월 3일에는 그룹 기자실이 폐쇄되었다.기사
다만 삼성 관계사간의 지분관계는 여전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룹이 해체한 것은 아니다. 물론 세대를 거듭하면서 삼성 계열사간의 관계가 점점 멀어질 가능성도 있으므로[3] 삼성의 미래를 밝다고만 보기는 어렵지만...[4]
2. 역사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8년 3월, 협동정미소 주인이던 이병철이 대구부 수동(현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개업한 게 본 그룹의 시초이다. 당시 29세였던 이병철은 경상남도 김해에서 농지 투기에 실패한 후 심기일전을 굳히며 자본금 3만 원[5] 으로 삼성상회를 세우게 되었다.[6]
처음에는 농산물 판매와 '''별표국수''' 판매 등 가볍고 기본적인 것으로 훗날의 삼성그룹 형태와 비교하면 차이가 현격히 나는 편이었다. 요즘에는 삼성이 일류 재벌 집단이라고 한다지만 초창기까지는 서민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던 곳. 전 CJ그룹 명예회장이자 이병철의 장남인 이맹희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당시 삼성상회는 지금의 삼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으며 국수 공장이 매출은 늘었지만 정작 이병철 본인은 그 돈을 모두 공장 설비 투자에 쏟았고 이병철 일가 역시 공장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잤을 정도로 공장 상태가 열악하였다고 말했다. 오늘날 삼성과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최악의 환경이었으며 가히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당시 별표국수가 많이 팔려 매출액도 올라갔지만 대구(1981년 6월 30일까지 대구는 경상북도였다.)에는 경북에서 1위를 차지하는 소표국수가 있었고, 2위인 풍국면도 있었다. 풍국면은 지금도 대구광역시 북구 만평네거리 북쪽 근처에 공장이 있으며 현재는 범 삼성가인 신세계그룹의 국수 OEM 회사다. 결국 별표국수는 이들의 아성과 도전을 이기지 못해 폐업했다.
1942년 조선양조를 인수해 사업 확장의 발판을 마련한 후 1948년 서울 종로2가에서 조홍제와 함께 삼성물산공사로 재출범했다. 1950년 6.25 전쟁으로 임시수도였던 부산으로 피난가 '삼성물산'으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전쟁 이후 국가를 지불보증인으로 세워 차관을 받아오면서 정경유착을 통해 점차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953년 제일제당을 세워 처음으로 제조업을 시작해 국산 설탕을 개발했고, 1954년 제일모직을 세워 국산 양복지 '골덴텍스'를 개발해냈다.
1957년에 한국 재계 사상 최초로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개시한 후 1958년 안국화재를 인수해 금융업에도 처음 진출하고 이듬해에 한국 재벌 중 최초로 비서실을 설치해 기업집단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1963년에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및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을 세트로 인수했다. 1965년 중앙일보를 창간해 언론사업에도 진출하고 신문용지 자체 수급을 위해 새한제지도 인수했다.
그러나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병철은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으나, 1968년 경영 일선에서 복귀한 후 전자산업 진출을 선언하여 수원 공단부지를 매입했고, 이듬해 삼성전자 및 삼성-SANYO전기를 세웠다. 이후 1970년 삼성NEC를 세워 전자사업 확장을 개시하며 1973년 제일합섬, 임피어리얼, 1974년 삼성석유화학 등을 세우며 화학이나 관광분야 등에도 영역을 확장했고, 같은 해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산업에 처음 손을 뻗었다. 1976년 본사를 태평로 신사옥으로 이전하고 1977년 삼성종합건설을 세워 건설업에도 손을 뻗고 1979년에 삼남 이건희가 부회장이 되면서 2세 경영체제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1980년 한국전자통신을 인수한 후 1982년 프로야구단 삼성라이온즈를 창단하며 종합연수원을 열었고, 1983년 한국 최초로 64K D램 개발에도 주도했다. 1985년 삼성데이타시스템을 세워 전산사업에도 진출했고 1987년에 삼성종합기술원도 세웠다. 그해 11월 이병철이 사망하자 이건희가 가업을 이어받아 12월부터 회장이 됐고, 1990년대부터 친족분리를 진행해 1991년 신세계백화점과 전주제지, 1993년 제일제당을 각각 분리시켰다. 1993년 '신경영 선언'에 따라 로고와 기업이념 등을 바꾸고 1995년 한국 대기업으로서 최초로 소그룹 제도를 도입했으며, 동년에 삼성자동차를 세워 자동차 산업에 진출했다. 1997년에는 외환위기로 구조조정을 거듭 단행해 2000년에 삼성자동차를 프랑스의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매각했고, 2008년 서초 삼성타운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이건희가 쓰러진 후 이재용 체제하에서 2014년 삼성종합화학 등 4개 석유화학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했고, 2015년 (신)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역합병해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켰다. 2016년 삼성정밀화학과 삼성SDI 케미컬사업부문을 롯데그룹에 팔고 2017년 2월 미래전략실 해체를 선언하였다. 이에 따라 계열사별 독립/자율경영체제 전환 수순을 밟게 되었으며, 삼성그룹 공식 홈페이지도 문을 닫았다.기사
3. 사명(社名)
본래 홈페이지의 설명에 근거하면 '삼성이라는 이름에는 끝없는 확장을 지향하고 있다. 삼(三)은 크고 많은 것, 강한 것이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며, 성(星)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이 빛난다는 의미'로 삼성이라고 지었다고 한다.[7][8] 2019년부터 삼성은 사명의 의미를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힘'''을 상징하는 숫자 3에 '''꺼지지 않는 의지'''를 상징하는 별이라고 쉽게 풀어서 설명 해 주고 있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글로 읽는 것보다 재미있게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 영어로는 'SAMSUNG'이라서 네티즌들이 '샘숭', '삼숭'이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실제 미국인들의 발음은 쌤썽에 가깝다. 서양권 외국인들 사이에서 별명은 'Sammy'.[9] same soon이라고 애플 삼성 소송전 관련하여 삼성을 비꼬는 별명도 있긴 한데...
- 러시아에선 Самсунг(삼숭크)[10] 라고 칭한다. 러시아에는 경제가 안 좋았던 시절 삼성이 자국한테 보여준 의리로 거의 자국 기업처럼 취급을 받는다.
- 일본어 정식 발음은 사무슨(サムスン)이라고 부른다. 옛날엔 ㅓ를 オ행으로 표기하는 관례에 따라 사무손(サムソン)이라 표기하기도 했는데 이러면 성서인물 삼손의 발음과 같아지는지라 삼성 입장에선 이러한 이름으로 쓰이는게 기업 인지도와 삼성에 관한 검색의 용이성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11]
- 중국어로는 그냥 三星을 중국어 독음으로 읽어서 '싼싱'이라고 발음한다.[12]
4.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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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마크는 타원형과 색상, 'SAMSUNG'이란 글자가 유기적으로 작용해서 전체적으로 삼성을 표현하는 아이덴티티가 반영되어 있다. 또 마크 안의 문자를 영어로 표현하여 세계 어디서나 같은 발음으로 읽혀지고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타원형의 디자인은 유연성과 단순함을 강조하며, 우주와 세계무대를 상징하는 타원을 비스듬히 처리하여 동적이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또 S와 G의 터진 부분을 통해 내부와 외부의 기운이 통하게 하여 세계와 호흡하고 인류사회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으며, A자의 가로 지름을 제거하여 개방성을 나타내었다. 영문 로고의 디자인은 세련되고 정교하게 처리해 기술주의의 고객지향 의지, 첨단기업의 이미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했다.
기본 색상의 경우, 기존에 써 온 청색을 그대로 유지하여 영속성을 지니도록 했다. 그룹 공통색상인 청색(Pantone 286 C : M 80%+C100%)은 안정감과 신뢰감을 주는 색으로 고객과 보다 친숙해지려는 세계 제일주의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상징하고 있다.
1993년 6월, 이건희는 그룹 사내방송 SBC의 한 고발 프로그램에서 삼성 세탁기의 라인 작업자가 칼로 불량인 부품을 대충 깎아내서 조립하는 모습으로 삼성 세탁기의 불량률이 높아지는 현상과, 후쿠다 다미오가 "삼성그룹은 2류나 다름없다"면서 삼성그룹의 문제점과 경영 방식의 모든 것을 바꿔야한다는 개선책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를 읽고 큰 충격을 받은 뒤, "마누라랑 자식 빼고 다 바꾼다"란 신경영을 시작했다.#
이후 삼성의 첫 번째 쇄신은 바로 로고 교체였다. 이전까지 파란 바탕에 사립학교 재단 로고 비스무리했던 그룹 로고가 존재했으나, 삼성전자, 제일모직, 제일기획, 제일합섬, 전주제지, 동방생명, 안국화재, 코리아엔지니어링, 한국안전시스템, 중앙일보, 제일제당 등 대부분의 관계사는 각기 다른 로고를 쓰고 사명도 통일되지 않았는데, 1989년 이후 삼성생명, 안국화재, 한국안전시스템 등 일부 계열사가 그룹 로고를 사용했다. 글씨 로고는 서예가 일중 김충현이 만든 '일중체'를 썼다.
같은 로고라도 업종에 따라 이니셜을 넣기도 하는데, 제일제당은 로고 중앙에 'C', 제일모직은 'W', 안국화재는 'U', 신세계백화점은 'D', 제일합섬은 'T', 한국안전시스템은 'V'를 썼다. 이렇게 다양한 로고들은 1993년 3월부로 새로운 로고로 바뀌게 되었는데 20억의 비용을 들여서 미국 L&M에서 직접 디자인했고, 이때 나온 디자인이 바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파란색 타원 속에 '''S Λ M S U N G '''이라 쓰인 로고다. 1993년, 이건희가 신경영을 표방하며 변경한 로고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파란색 로고다. 그러나 새로운 로고에 그룹 내 고위 임직원들은 단체로 최면에 걸렸는지 엄청난 거부감을 표출했다고 했으며, 특히 안국화재, 한국안전시스템 등 대부분의 사명을 삼성으로 통일하여 영업에 차질을 입힐 것이라 걱정했다고 한다. 이 당시에 많은 기업들이 로고와 회사명을 바꾸면서 도색 업체들과 스티커 제작 업체들이 때 아닌 호황을 맞았었다고 전해진다.[13]
1983년 이병철이 창업한 삼성상회에서 당시 판매하던 별표 국수에 들어간 브랜드 로고를 삼성 CI의 기원으로 본다. 별표 국수에 들어간 로고는 삼성상회의 로고가 아니라 별표 국수의 브랜드 로고다. 이후 1965년에 그룹 로고가 제정되면서 CI를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위에서도 서술되어 있지만 이당시 삼성의 몇몇 관계사들은 그룹 로고를 응용한 로고를 사용했다. 신세계백화점[14] 이나 삼성 라이온즈[15] 가 대표적. 1969년에 설립한 삼성전자의 당시 CI를 삼성그룹의 CI로 오해하는 경우가 매우 많으나 이당시에는 지금처럼 그룹 전체가 통일된 CI를 사용한 시기가 아니다. 현재의 CI는 이건희가 회장으로 취임한 후 1993년 신경영 선언과 함께 기업 브랜드 쇄신을 목적으로 변경, 통일한 것으로 오벌(Oval) 마크라고도 한다. 세번째와 네번째의 차이가 뭔지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오벌 마크 안에 들어간 SAMSUNG의 장평이 2005년 이후로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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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CI가 변경되면서 관계사들 대부분이 통일된 CI를 가지게 됐다. CI 통일 당시에는 이런식으로 사명이 오벌 마크 오른쪽 하단에 고정된 형태였다.
이후 CI 규정이 개정되면서 사명 배치에도 변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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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2015년 이후로 기존의 CI를 사용하지 않고 워드마크를 CI로 사용한다고 결정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타원형 마크의 짙은 파란색은 경직된 느낌을 줘 혁신을 지향하는 정보기술(IT) 기업에는 맞지 않는다. 워드마크는 특정한 색이나 모양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것은 삼성전자의 마케팅에 국한되며 공식 로고를 바꾼 것은 아니다. 이미 삼성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CI는 예전부터 워드마크만 사용했었기 때문인 것도 있고 다른 세계적인 기업들의 로고도 대부분 글자만 있는 형태의 로고를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계열사들의 경우 기존 로고를 계속 사용한다고 한다.# 다만 기존 SAMSUNG 로고와 사명을 위아래로 배치하지 않고 수평으로 배치하는 케이스가 늘고 있다. 수평으로 배치하면서 계열사별로 로고가 회사명 앞으로 가거나 뒤로 가거나 통일이 안되어 있다.[16] 삼성전자가 워드마크로 로고를 변경하면서 해외에서 삼성그룹 전체의 로고를 워드마크로 변경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서의 인식이 대부분 삼성하면 삼성전자를 떠올리기 때문. 이후 삼성전자 CI는 삼성의 고유 컬러인 파란색도 빼버리고 검정색을 사용하면서 이재용 체제에서의 삼성전자는 기존 삼성의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글 서체는 고딕체 계열, 영문 서체로는 Universe체 계열을 쓰고 있다.
5. 경영이념과 기업정신
- 경영이념
- 1993년 이전
'''사업보국, 합리추구, 인재제일'''
- 1993년 이후
- 기업정신'''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한다.'''
- 1993년 이전 - 삼성정신
'''창조정신, 도전정신, 제일주의, 완벽주의, 공존공영'''
- 1993년 이후 - 삼성인의 정신
- 경영철학과 목표'''고객과 함께한다'''
'''세계에 도전한다'''
'''미래를 창조한다'''
- 핵심가치'''1.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2.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3. 인류사회에 공헌한다'''
- 경영원칙'''인재제일, 최고지향, 변화선도, 정도경영, 상생추구'''
'''1. 법과 윤리를 준수한다.'''
'''2. 깨끗한 조직문화를 유지한다.'''
'''3. 고객, 주주, 종업원을 존중한다.'''
'''4. 환경·안전·건강을 중시한다.'''
'''5. 글로벌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6. 슬로건
- 첨단기술 첨단경영의 상징 (1986~1987)
- 인재와 첨단기술의 삼성 (1988~1992)
- 고마움을 아는 마음, 감사할 줄 아는 사회 (1992~1993)
- 세계 초일류기업을 지향하는 삼성 (1992)
- 새시대를 열어가는 국민기업 삼성 (1993)
- 국민과 함께 세계로 도약하는 기업 삼성 (1993)
- 고객과 함께 세계로 미래로 삼성 (1994~1997)
- 세계일류 (1994~1996)
- 믿을 수 있는 친구 삼성 (1997~1998)
- 할 수 있다는 믿음 (1998)
- 새 천년, 새 삼성 (1999)
- 밀레니엄 프론티어 삼성 (2000)
- 디지털 프론티어 삼성 (2001~2002)
- 우리의 대표브랜드 삼성 (2002~2013)
- 함께가요 희망으로 (2003~2005)
- 해피투게더 (2006~2007)
- 고맙습니다 (2007)
- 더 뛰겠습니다 더 땀흘리겠습니다 국민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2008)
- 두근두근 Tomorrow (2009~2010)
7. 사가(社歌)
7.1. 삼성찬가 (1974 ~ 1993)
작사는 이은상, 작곡은 이흥렬이 맡았다.
7.2. 우리의 노래 (1993 ~ )
1993년 제2창업 5주년을 맞이해 사원 공모를 통해 채택되었으며, 작곡은 <그리운 금강산>으로 유명한 최영섭이 맡았다.
8. 특징
레드오션의 강자, 패스트팔로우 전략 등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다만 업계 선두 제품을 벤치마킹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런 이미지는 삼성전자의 삼성 갤럭시의 초기시절 형성된 것이고 본래 삼성의 기업 DNA는 마켓크리에이터와 초격차에 가깝다. 기업 출범 초기 IT의 볼모지였던 한국에서 남들이 하지않았던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고 멈추면 도태된다는 위기의식이 삼성을 끊임없이 질주하고 발전하게 스스로를 훈련시킨다.[17] 이러한 삼성의 특징은 20세기 최고의 기업 역전 사례로 손꼽히는 명성의 근원이다.
8.1. 사옥
2008년에 중심지를 서울특별시 서초구 삼성타운으로 옮겼다. 일단 삼성그룹 전체를 강남으로 옮기고, 구 태평로 사옥을 리모델링한 뒤 삼성의 금융 관련 계열사는 다시 태평로로 보내겠다는듯. 그래서 금융 계열사는 태평로에, 전자 계열사는 강남이라는 구도가 예측된다.
그러나 이재용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이후 사옥은 또 다시 재배치됐다. 이재용이 계열사의 현장 중심 경영을 강조하면서 서초 사옥에 있던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을 내보냈다. 삼성전자 본부는 수원 디지털시티로 이전했고 R&D와 디자인 관련 부서는 우면동의 R&D캠퍼스로 이전했으며 자금과 홍보 담당 부서는 구 태평로 사옥으로 돌아갔다. 삼성물산 역시 서초 사옥을 떠나 판교(건설)와 잠실(상사)[18] , 도곡동(패션)[19] 과 용인 에버랜드(리조트)로 각각 흩어졌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떠난 서초 사옥에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증권 등 삼성 금융 계열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삼성 서초 사옥에는 안습한 일화가 있다. 사옥 부지가 강남역 바로 옆에 있는데, 부지 안에는 윤빌딩[20] 이, 사옥이 바로 보이는 강남역 한 모퉁이에는 대각빌딩이 있어 삼성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 빌딩을 피해 사옥 재설계를 해야 했다고 한다.[21]
여담으로 일본법인 사옥은 그 땅값 비싼 도쿄 롯폰기 근처에 있었으나, 일본 법인이 2012년경 핸드폰을 판매하는 SEJ 법인(Samsung Electronincs Japan)과 반도체를 판매하는 SJC 법인(Samsung Japan Corporation)으로 나눠져서 SEJ만 롯폰기 Tcube에 있다가[22] 2015년 이이다바시로 이전했다. SJC법인은 시나가와에 있다. 보통 일본 삼성하면 갤럭시를 판매하는 SEJ 법인을 생각하지만 실제 일본에서의 판매금액이나 비중을 볼 때 갤럭시는 들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오히려 반도체는 B2B에서 잘나가고 있다. 반도체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듯.[23]
삼성전자의 "공식적인" 본사는 수원. 회사의 법적 주소도 수원으로 되어있다. 왜냐하면 이병철이 전자 사업을 시작할때 현재의 수원시 영통구 매탄3동에다 엄청나게 큰 땅을 사서 공장을 지어 시작했기 때문. 현재 공장은 용인이나 화성으로 이전하고, 연구소나 전국의 지사(광주, 온양, 기흥, 구미 등)들을 연결해주는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본사는 R1부터 R5까지의 5채의 빌딩과 그 주위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사실상 본사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
외부인은 영통문과 동문으로 진입이 가능하고, 내부엔 직원만이 중앙문으로 진입이 가능하다.
8.2. 엔진, 모터에 약하다
삼성테크윈이야 방위산업체이니 어쩔 수 없다해도[24] 삼성자동차로 출발한 현 르노삼성자동차는 하필 시장이 과잉공급상태에서 시작해 제반기술없이 맨 땅에 헤딩을 하는 식으로 시작해서 실패했다. 르노와 닛산의 기술을 받았다지만, 어차피 남에게 사온 기술은 1세대 전의 기술이므로(파는 쪽도 기술을 써야 하니까) 기술에 적응하고 발전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 새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져서… 그리고 KAI는… 말을 말자.[25]
모터가 달린 것도 약하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 백색가전류를 비롯해서 하드디스크, ODD 모두 잔고장이 많기로 유명했고 결국 이러한 사업은 다 정리했다. 대신 SSD에 투자하여 기존 1위 인텔을 누르고 승승장구하는 중. 삼성은 SSD 이전에도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인텔과 경쟁할 정도의 강자였다.
8.3. 참모 조직
8.3.1. 미래전략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회장 직속의 참모 조직이다.[26]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며 다른 그룹에서 벤치마킹을 시도하고 있다. 실장 밑에 7개의 팀과 15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실장은 부회장, 실차장은 사장, 팀장은 부사장~전무이며, 150여 명 중 전무 이상 직급만 '''18명'''이다. 팀원은 대부분 부장 이상이고 '''최하 직급 과장'''이라는 무시무시한 직급 구성이 돋보인다. 각 계열사의 에이스급 부장들을 뽑아와서 몇년간 근무하다가 임원으로 승진시키면서 돌려보내는 식의 커리어패스를 가지게 된다. 그룹 전체에서 가장 인사고과 잘 받은 사람들이 최소 십수년 이상의 경력까지 갖춰서 150명 가까이 몰려 있으니만큼, 재벌 2~3세 한두 명이 회의를 통해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전략과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승진 속도 외에 연봉도 오른다. 실적 위기가 있는 해가 아니라면 늘 최고 성과급(OPI)을 받으며, 이는 남들보다 연봉 50%를 더 받는 것이다.
- 전략1팀장: 전략 1팀은 삼성전자 및 전자 관련 계열사의 사업 구조조정이 주 임무다.
- 전략2팀장: 전략 2팀은 전자 이외 계열사의 사업 구조조정이 주 임무다. 예를 들면 매각(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 방위산업 화학 관련 기업을 한화에 매각), 합병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상장(삼성SDS, 제일모직)을 주도했다. 하지만, 2015년 초에 단행된 조직 개편과정에서 1팀에 사실상 흡수되는 식으로 통합됐다.
- 커뮤니케이션팀장: 홍보 및 그룹 대변인 역할. 미래전략실 외에도 삼성전자 등 계열사마다 홍보팀이 따로 있다. 가령 삼성전자의 경우 홍보 담당 인원이 3~4명이다.
- 기획팀장: 기획.
- 경영진단팀장: 감사 및 경영컨설팅. 20여명으로 구성되어 각 계열사의 감사팀을 통제한다. 사장급 인사도 감사로 자른 적이 있을 만큼 권한을 주고 있다. 제일모직의 대구 공장을 감사할 때 연못의 물을 퍼낸 뒤 물고기 숫자를 파악해 문제점을 따졌던 적이 있는데 당시에도 화제였다고 한다. 감사 시 대상자의 수십년간 업무 이력, 가정생활, 술버릇과 주량, 은행거래, 동창관계, 거래처 인맥, 가족관계 등 개인 사생활에 관련된 소소한 사안까지 샅샅이 파헤친다. 감사 외에 경영진단 기능도 수행한다.
- 준법경영실장: 법무 및 컴플라이언스(내부통제).
- 인사지원팀장: 인사.
- 금융지원팀장: 2013년 신설된 부서.
업무 부담이 너무 커서, 5년 정도 미래전략실에서 일하고 본래 소속 계열사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2012년에는 새벽 6시 30분~8시에 삼성전자 본관 42층 회의실에서 벌어진 회의를 소개하였다. 최지성 부회장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에 대한 발제를 하고 각 팀장들이 토론에 참여했다. 부사장~부회장에 가까운 고위 임원은 6시 반에 '''전원 참석'''해야 한다는 소리다. 이런 '아침회의'는 미래전략실 뿐만 아니라 각 계열사 CEO 주재로 거의 전 사업장에서 비슷한 시간에 열리고 있다. 일반 직원들의 출근은 8시 정도다.
과거 구조조정본부(구조본)나 전략기획실(전기실) 시절에는 실장의 지시에 반론은 없이 그 지시를 어떻게 수행할 인가가 결정됐다면, 미래전략실(미전실)로 전환된 이후에는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방향을 찾는 작업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 결과물에는 고졸 공채, 저소득층 채용 할당, 저소득층 중학생 방과 후 교실인 드림클래스 등이 있다.
2016년 12월 6일 있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청문회에서 이재용은 "국민 여러분이나 의원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면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없앤다고 완전히 없애는건 아니다. GE와 같은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2017년 2월 28일, 미래전략실을 해체한다고 밝혔다. 미래전략실의 해체는 삼성그룹의 해체를 의미한다. 기사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엔 계열사들이 자율적으로 경영하는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고 밝혔다.기사
8.3.2. GSG
Global Strategy Group
외국인으로 구성된 삼성 내부 경영컨설팅 조직이다. GSG엔 20여개국 출신 1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매년 40~50여 명이 확충되며 비슷한 수가 삼성 계열사 해외법인으로 빠져나간다.
1997년 이건희의 지시로 설립되었다. 신사업에 진출하거나 기존 사업이 정체될 때 외부 시각으로 해결책을 찾는 게 주 업무다. 이들이 2014년까지 수행한 프로젝트로는 그룹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마케팅 지침, 삼성SDI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 전략, 삼성전자의 의료기기 사업부 유통 채널 확보 방안 등이 있다.
MBA 또는 경영학과 박사 학위자로서 3년 이상의 직장 경력을 갖춘 사람을 뽑는다. GSG가 석 달 동안 대학교를 세 차례 찾아 ‘채용설명회 → 집중 면접 → 지원자 사례연구 발표’ 등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뽑는다. 2015년까지는 16군데 대학에서만 뽑았고[28] 2016년 9월부터는 베이징대, 칭화대, CEIBS(상하이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 등 중국 3곳을 추가했다. 어느 사업부로부터도 간섭받지 않고 주어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대우는 파격적이다. MBA 졸의 경우 모든 혜택을 합쳐 수입이 2억쯤이다. 주거비, 의료비, 자녀 학비 등도 대준다. 2~3년 동안 서울에서 핵심 사업에 대한 경영컨설팅을 하다가 삼성 계열사의 해외법인에 간부로 나가게 된다.
한국인이나 재외교포는 무조건 배제한다. 하지만 '미국 명문대 MBA를 다니고 한국에 혈연이 없는 순수 외국인' 입장에서는 서울이나 삼성에 연고가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으므로 GSG는 크게 인기가 있는 직장은 아니다. 그리고 유럽 본토에서 유일하게 뽑는 곳은 INSEAD(프랑스)인데, 2014년 GSG에서 INSEAD의 비중이 가장 높은 이유는 프랑스의 높은 실업률의 탓이 크다.
9. 직장 생활
스마트폰 경쟁이 심화된 이후 삼성 직원이면 삼성 제품을 강제로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는 삼성 전체에서 공통적인 것은 아니다. 삼성 안 쓰면 겁나 눈치주는 사업부도 있지만 그게 그룹 전체의 의지는 아니다.[29] 다만 모바일 그룹웨어와 각종 사내용도의 앱이 갤럭시S와 노트 시리즈 대상으로만 지원되므로 사용이 어렵고, 보안구역에 들어갈 때에도 아이폰은 번거롭다.
9.1. 채용
삼성그룹/채용 문서 참조.
9.2. 신입 연수
삼성그룹 공통 신입연수는 SVP (Samsung Shared Value Program)이라고 한다. 그룹 공채에 합격한 직원들은 약 3~4주간 관계사 구분없이 전국 각지에 위치한 삼성 연수소에서 그룹공통연수(SVP)를 받게 된다. 주진행과 각 팀별 지도 선배의 지도 및 안내에 따라 팀 활동, 신체 활동, 과제 수행 등을 한다.
'BP'라는 깜짝 이벤트도 존재하는데, 이건 깜짝 생일파티다. 연수기간 중 생일을 맞은 신입사원 대상. 지도 선배들이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들어 긴장감이 최고조일때 음악이 흐르면서 케익이 등장한다. 그리고는 가족들의 영상편지가 스크린에 뜬다. 이걸 본 생일자들의 반응은... 신병 훈련 중 데굴데굴 구르다 연병장에 누워 '어머님의 마음'(낳으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를 부를 때를 방불케한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과연 지도 선배들이 뭘 꼬투리로 깜짝쇼를 할지가 첨예한 관심사로, 이거 유출 안 시키려는 지도 선배들과 알아내려는 신입사원들 간에 첩보전이 벌어진다고. ROTC 전역 장교 신입연수 때, 전쟁나서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고 군용 트럭, 군복, 군장 등을 준비해놓고 대규모의 몰래 카메라를 시전한 적도 있다고 한다. 군복에 지프차까지 동원되어서 다들 진짜 전쟁난 줄 알고 말없이 주섬주섬 군복 입고 있었다고 한다.
9.3. 노동조합
휴렛팩커드, IBM, 월마트, 아마존닷컴 등처럼 다국적기업이면서 노동조합이 없는 특이한 사례인데, 이는 창업주 이병철의 유훈을 충실히 지키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노사 교섭단체는 '노동자협의회'나 '노사협의회', '한마음협의회'같은 이름으로 존재한다.
사실 노조 자체가 완전히 없지는 않있는데, 1960년 제일모직[30] , 1977년 제일제당 김포공장, 1987~1988년 삼성중공업에서 결성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좌절되었고, 2011년 7월 1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개정되고 시행되기 전까지 복수노조가 허용되지 않아[31] 1회사당 1노조였기 때문에 회사에서 먼저 유령노조를 만들어 버리면 실질적으로 노조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32] 게다가 그런 노조조차도 얼마 없었다고 한다. # 그 외 탄압 사례들은 여기서 확인 가능하다.
법적으로 노조설립이 의무화된 유럽쪽 법인은 이에 반발, 2년 가까운 시시비비 끝에 노조가 설립되었다. 그런데 노조가 그야말로 상층부에 충성을 바치고 있어서 있으나 없으나 그게 그거라고 한다. 삼성이 의도한 게 아니라 현지법을 따르다 보니까 노조가 알아서 현지 법인의 충실한 시종이 되었다고 한다.
노조 결성자는 김성환 현 노조위원장으로 1996년 전압기 제조업체인 이천전기 매각 문제를 두고 노동조합을 결성하다 해고된 후에 해고자 복직투쟁의장을 통해 2003년 삼성SDI 계열 노조인 삼성일반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노조 결성과 동시에 삼성SDI 측은 2003년 삼성SDI 노동자들의 분신 사건과 관련,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김성환을 고소했다. 재판 결과 법원은 김성환에게 실형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김성환은 집행유예 기간 중인 2004년 삼성SDI 휴대전화 불법 위치추적 의혹 관련,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백서 등을 작성해 노조탄압 사실 등을 알렸다.
김성환은 다시 삼성 SDI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김성환은 법원으로부터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3년 5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2005년 2월 22일부터 복역하기 시작했다.
복역 도중인 2007년 2월 3일 한국 노동자 최초로 앰네스티 양심수로 선정된 바 있으나, 본인의 말에 따르면 선정만 하고 실천은 없는 앰네스티에 실망했다고 한다.
2007년 12월 31일 특별사면을 받아 출소해 다시 삼성일반노동조합장에 취임, 2009년 2월 삼성전자, 삼성중공업, 삼성SDI 등 이것저것으로부터 서른여 가지 혐의로 또 다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이 중 2가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벌금 300만 원형을 받았다.
당시 이러한 삼성 측의 고소는 다시 김성환을 교도소에 넣으려는 계산이 일부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소한 지 3년 내 또 다시 유죄 판결을 받으면 법정 구속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사가 크지 않은 죄로 법정 구속을 하는 건 오버라고 판단, 벌금형으로 끝냈다.
이후에도 김성환은 또 삼성으로부터 이것저것 고소, 고발을 당했다. 어용이 아닌 이상 현 삼성 노조들의 숙명인 듯. 주요 간부들은 줄줄히 명예훼손으로 고소, 고발당하거나 해고당해 복직투쟁을 진행중이다. 그러다 2012년 11월 19일, 공교롭게도 이병철의 기일인 이날 삼성이 지역대책협의회라는 조직을 통해 노조 관계자들에 대해 미행, 감시, 도·감청했다며 이건희 등 삼성그룹 임직원 9명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고소 내용은 삼성이 신세계 이마트의 불법사찰과 같은 방법과 조직으로 노조를 탄압했다는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의 성격과 내용의 민감성을 고려해 밝히지 않으나 김성환의 정보 출처에 따르면 삼성이 일종의 정보기관을 만들어 상부조직은 정보의 해석 및 지시, 하부조직은 현장정보 '불법'수집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신세계 이마트 불법사찰 체계와 KT 직원퇴출 프로그램은 이를 벤치마킹한 것 혹은 상호모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담으로 김성환은 이맹희-이건희 상속소송 소식이 알려졌을 때 이재현 CJ 회장을 미행한 삼성 직원들을 지역대책위라는 일선 하부조직의 일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3년 10월에 이런 일들을 진두지휘한 문건이 발견되었다. 이후 언론사에 노조 결성을 막기 위해 직원들을 미행 했다고 주장하고, 영상을 제공했다. # 노동청은 증거가 없으며, 그룹에서 한 일이 아닌 실무진 개인의 판단이라는 삼성의 주장을 인정했다.
9.3.1. 현재
유럽을 제외하곤[33] 방침상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삼성이지만, 찾아보면 은근히 노조가 많다. 사실상 본진인 한국 내에도 노조가 상당수 존재한다.
삼성에게 흡수합병된 회사들이 가진 노조는 기업법상 해체가 불가능해서 수용해주고 있는 상황이며, 아무나 다 들어갈 수 있는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을 통해 결성하면 된다. 삼성정밀화학의 경우 원래 삼성이 소유한 한국비료공업이었으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했었는데, 그 사이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다시 찾고보니 노조가 있는 케이스.
2011년 7월 1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에 따라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됐으니, 삼성 경영진 입장에서는 헬게이트가 열릴 전망이다. 그런데 오래 전부터 벼르고 있던 노동계가 의외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듯하다.(연합뉴스 기사)
결국 박원우 등 삼성에버랜드 노동자 4명의 주도로 '삼성노동조합(현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부 삼성지회)'이 결성됐으나,# 그날 조장희 부위원장이 '경영기밀 누출'과 '공기호부정 사용' 혐의를 뒤집어써 해고를 당했으며[34] 사측도 조합원을 징계하고 형사고소하는 등으로 대응했다.(참고.) 박근혜 정부 때까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탄압' 등과 같은 노조 탄압이 이어지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점차 균열이 보였고, 2020년 5월 6일 이재용 부회장이 "앞으로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란 말이 안 나오게 하겠다"며 노동3권과 노사관계 법령을 준수하겠다고 하여 사실상 '무노조 경영'에 종지부를 찍었다.
9.4. 연구원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연구직들은 마구 굴린다는 소문이 있다. 이유는 연구직들은 대개 노조가 최소고용기간을 커버쳐 주는데 삼성은 노조가 없어서 실적 문제나 비주류 연구로 분류되면 바로 해당팀이 해체되어 실업자로 전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는 말도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 꼭 삼성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연구직들이, 특히 자연계열 연구직들이 받는 대우는 열악하기 그지없기는 한데, 삼성은 노조도 없는데다 업무강도 등에 있어서도 여러모로 직원에게 '''피도 눈물도 없기'''때문에 보통 짤리기 전에 못 견디고 이직하는 경우도 많다. 또 한국에서 자연계열 연구직의 대우가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연구직들이 교수 다음으로 선호하는 정출연들이 연구원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2년 계약직) 주로 충원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정규직은 그간 들인 노력에 비하면 (비슷하게 공부한 의사 등에 비해) 흡족하진 않지만 대우가 나쁘지 않다. 삼성그룹의 경우 연구개발직은 당연히 모두 정규직으로 뽑으며, 임원이 아닌 직원급의 연구원이 자기팀이 해체되었다고 실업자가 되는 경우는 없다.[35] 대한민국 노동법이 그정도로 막장은 아니다. 물론 석·박사 특히 박사급 연구원들이 자기 팀이 해체되고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다가 자기가 하던 연구랑 맞지 않거나 마음에 안드는 팀으로 배치되는 경우 이직해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원하는 때 이직할 수 있는 능력자라면 실업자 될 일은 없는터라. 무엇보다 삼성의 대부분의 연구개발조직은 인원 부족에 시달린다.
애초에 R&D직이라는 것이 별게 아니다. 매년 공채할 때 (학·석사급은 매년 신입 공채로, 박사급은 경력 공채나 수시로) 이공계 인력이 채용돼서 연구소나 개발부서에서 근무하면 R&D직인 것이다. 연구원들은 스스로를 사무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근무 특성상 총무, 인사나 영업, 마케팅과 같은 타 직군에 비해 복장이나 근태에서 좀 특이하게 근무하는 경우는 있다. 아무래도 회사 바깥의 사람을 대하는 직군이 아니다 보니 복장도 자유롭고 출퇴근 시간도 유동적인 사업장/사업부가 많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오후 2시에 퇴근하는 것이 가능한 곳도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나 대부분의 회사 사규 상으로나 일반 사무직과 비슷한 취급을 받으며, 근무 특성상 근무 강도가 높다는 차이밖에 없다. 가령, 해고를 쉽게 당한다거나, 비정규직 신분이라거나 하는 건 삼성에서는 그런 거 없다.
그나마 영업직이 대부분 컴퓨터를 잘 못해서 이런 곳에 썰을 못 풀어서 그렇지 근무 강도도 사실 웬만한 연구원보다는 영업직들이 더 빡센지라.[36]
10. 오너 일가
오너 일가에 대해서는 범 삼성가 문서를 참고할 것.
11. 경영진
11.1. 회장급
11.2. 부회장급
11.3. 사장급
-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봉사단장)
- 김현석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겸 CE부문장 겸 삼성리서치 소장)
- 고동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겸 IM부문장 겸 무선사업부장)
-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
-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 김상균 (삼성전자 법무실장)
- 손영권 (삼성전자 최고전략책임자 겸 하만 이사회 의장)
- 이정배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
- 강인엽 (삼성전자 DS부문 시스템LSI사업부장)
- 최시영 (삼성전자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장)
- 이재승 (삼성전자 CE부문 생활가전사업부장)
- 한종희 (삼성전자 CE부문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 전동수 (삼성전자 CE부문 의료기기사업부장 겸 삼성메디슨 대표이사 사장)
- 김영기 (삼성전자 IM부문 네트워크사업부장)
- 노태문 (삼성전자 IM부문 무선사업부장)
- 황득규 (삼성전자 중국삼성 사장)
- 팀 백스터 (삼성전자 북미총괄 사장 겸 SEA 공동법인장)
- 경계현 (삼성전기 대표이사 사장)
-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
- 전영현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 홍원표 (삼성SDS 대표이사 사장)
- 남준우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
- 현성철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
- 최영무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
- 원기찬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
- 구성훈 (삼성증권 대표이사 사장)
- 차영수 (삼성선물 대표이사 사장)
- 전영묵 (삼성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
- 전용배 (삼성벤처투자 대표이사 사장)
-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 이건희 장녀)
- 한인규 (호텔신라 면세유통사업부문 사장)
- 이영호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 사장)
- 고정석 (삼성물산 상사부문 대표이사 사장)
- 정금용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대표이사 사장 겸 삼성웰스토리 대표이사 사장)
- 김명수 (삼성물산 EPC경쟁력강화 TF장)
- 유정근 (제일기획 대표이사 사장)
-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사장)
-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 사장)
- 육현표 (에스원 대표이사 사장)
- 성인희 (삼성생명공익재단 대표이사 사장)
-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
-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겸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 / 이건희 차녀)
- 차문중 (삼성경제연구소 대표이사 사장)
-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스포츠마케팅 연구부문 사장 / 이서현 남편)
- 임대기 (삼성 라이온즈 대표이사 사장 겸 구단주)
11.4. 역대 임원
1998년 이후 그룹 회장 직함은 공식적으로 쓰이지 않으며, 총수는 관계사 회장 직함을 지니고 있다.
- 그룹 회장
- 그룹 부회장
- 이건희 (1979~1987)
- 그룹 비서실장
- 구조조정본부장
- 이학수 (1998~2006)
- 전략기획실장
- 이학수 (2006~2008)
- 미래전략실장
- 김순택 (2010~2012)
- 최지성 (2012~2017)
- 전자 소그룹장
- 김광호 (1995~1996)
- 윤종용 (1997~1998)
- 기계 소그룹장
- 경주현 (1995)
- 이대원 (1996~1997)
- 이해규 (1998)
- 자동차 소그룹장
- 임경춘 (1997)
- 이대원 (1998)
- 화학 소그룹장
- 황선두 (1995~1998)
- 금융/보험 소그룹장
- 이수빈 (1995~1998)
12. 기타
한국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혹은 의존도)에 관한 김형태 前 자본시장연구원장의 평가. 제목은 "삼성 없이도 한국 경제는 살 수 있을까?"(Could Korea's Economy Survive Without Samsung?)[38] 관련 언론보도
애초에 iPhone의 핵심 부품 중 대다수를 삼성에서 만든다. 그 부작용으로 스티브 잡스가 삼성 제품을 까도 감정상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안습. 게다가 그 때문에, 같은 삼성전자 안이라도, 반도체 총괄에 근무하는 직원과 정보통신 총괄에 근무하는 직원 간에 애플을 바라보는 태도가 매우 상반된다. 반도체 쪽에서는 애플은 메모리와 AP 칩을 가장 많이 팔아주는 우수 고객이지만, 정보통신 입장에서는 철저히 타도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 애플의 실적이 좋으면 반도체 부문의 실적도 덩달아 좋아지지만, 정보통신 부문의 실적은 나빠지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런데 여태껏 삼성 행보를 보아 부품도 덤핑으로 팔았을 가능성도 있다. 이미 아이팟 나노에 들어갈 부품을 애플에만 덤핑으로 팔아서[39] 자사 브랜드 YEPP의 경쟁업체인 아이리버를 말 그대로 학살한 전례가 있다. 결과적으로 YEPP 역시 시장에서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이후 스마트폰 경쟁 이전까지 삼성은 말 그대로 애플의 가장 친한 파트너였다. 매년 5조원씩 발주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봐야하는데 애플은 꾸준히 최소 그 정도는 삼성과 거래한다. 서로 5조원씩 발주할 정도면 엄청난 친구. 결국 애플 삼성 소송전을 계기로 애플이 아이폰에서 삼성 부품을 배제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애플이 삼성에게 덤핑을 요구했다느니 뭐니 말이 나오고 있다는 듯. 그런데 2014년 들어서 다시 삼성 부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는 듯. 삼성의 점유율이 워낙 높은 탓에 삼성을 배제해서는 원활한 부품 수급이 어려운듯하다.# 특히 2017년 새로 나온 iPhone X의 디스플레이는 삼성디스플레이가 만든 커브드 OLED다.
창업주 이병철이 제일제당에서 미풍이라는 조미료를 냈지만, 미원의 아성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때문에 이병철은 살아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 중 하나가 미원보다 미풍이 잘 팔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처음부터 미원보다 미풍이 잘 팔리고 있었다. 미원이 장악한 일반소비자층을 뚫기 어렵다고 생각한 판매부가 반찬제조공장이나 체인형 식품점, 군납 등을 위주로 납품해서 남기는 이득만큼은 미원을 초월했다. 미풍은 인지도 면에선 듣보잡이었으나 수익면에선 미원을 가볍게 넘어섰고, 인지도 문제도 MSG 파동 이후 CJ제일제당에서 생산하는 '''다시다'''가 일반소비자층의 조미료 시장을 휘어잡아 버리며 미원을 듣보잡으로 전락시켜 사실상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룹 주요 관계사나 추후 독립한 범 삼성가 기업들을 보면 '''제일'''이라는 이름이 제법 쓰였다.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과거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다가 1993년에 독립한 CJ그룹의 CJ제일제당이 있으며, 2000년에 부도나 존재감이 사라진 새한그룹 또한 삼성에서 독립하기 전의 모체 기업이 바로 제일합섬이었다. 삼성그룹 관계사 중에서도 제일모직, 제일기획 등 제일이라는 명칭을 가진 계열사 및 기관들이 남아있다.
삼성그룹이 비판받는 이유는 주로 분식회계 의혹을 비롯한 돈 문제와 경영권 승계 문제, 무노조 경영, 언론 플레이 때문이지, 삼성 제품 자체의 신뢰도는 좋은 편이다. "삼성이니까 믿을 만하다.", "삼성이니 불량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삼성이니까 안 좋겠지"라는 이미지보다 많다. 그러나 하드디스크같은 예외도 있다. 컴덕들에게 삼성 하드는 그야말로 폭풍처럼 까인다. 누군가가 '이번 삼성 하드는 좋다. 벤치마크도 좋고 리뷰도 좋고 나도 써봤는데 좋더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은 '''1기가''' 시절부터 들었다'고 할 정도. 참고로 1기가 하드는 1995년 전후로 쓰였다. 결국 현재 삼성 하드 사업은 매각되어 삼성 하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안습한 결말을 맞았다. CD-ROM, DVD-ROM같은 ODD도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다.
위처럼 좋지 않은 인식이 많긴 하지만, 한국 기업 중 사회에 환원하는 재산이 제일 큰 기업도 삼성이다. 맹인견 사업, 다문화 가정 지원, 각종 교육 지원 프로그램[40] , 기부활동, 아이캔[41] , 사원들이 개별적으로 하는 봉사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물론 규모가 아니라 매출 대비 사회 환원 '''비율'''을 보아야 하겠지만.
1994년부터 한국 기업으로서 최초로 삼성전자가 영국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광고판에 광고를 하고 있으며,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광고는 1992년부터 진행해 뉴욕 타임스퀘어를 배경으로 하는 헐리우드 영화에도 종종 노출된다.
삼성그룹 관계사들이 산업용 전기를 일반용으로 몰래 돌려쓰다가 걸렸다.#
외국인 지분에 대한 문제와 다국적 기업에 대한 것과, 한국 기업임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원문기사는 지워짐) 등으로 논란이 많은데, 일단 한국에 본사가 있고 외국인지분이 60%를 넘어가는 다국적 기업이다. 그런데 또 외국 지분이 60%가 넘어간다고 다국적 기업이라 보기엔 무리가 많다. 소니의 경우도 외국 지분이 40%가 넘어갔을 때도 자국내에서 日기업이 아니라는 소리가 많았고, 2014년인 현재에는 50%를 이미 넘어 있는 상태. SK 역시 외국지분이 50% 이상이다. 지분이 국적의 기준이 되면 법적인 기준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외국 지분이 많아도 삼성그룹(정확히는 삼성전자)은 법적으로 대한민국에 상장된 대한민국의 기업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몇몇 대기업도 알고보면 다국적 기업이지만 삼성그룹은 한국의 다른 재벌들과 마찬가지로 개발독재시절에 한국 정부와 국민의 힘이 상당히 들어갔고, 한국에서 손꼽히는 기업이기에 다른 기업에 비해 유독 논란이 많다. 엄밀하게 따지면 삼성전자의 문제를 그냥 삼성의 문제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지만, 삼성그룹 관계사중 가장 유명하면서도 핵심이 삼성전자라서 삼성=삼성전자라고 통일된 듯.
삼성전자나 삼성 라이온즈와 관련해서 삼적화라는 신조어가 있다. 해당 문서 참조.
트라이버튼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6년 4월 26일, 응답자의 75.2%가 삼성전자 임원의 보수가 직원의 66배인 것이 그 정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삼성그룹이 2018년에 3년간 180조를 투자하고 4만명을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경향
13. 비판 및 문제점
14.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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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공정거래법)으로는 계열사라는 명칭이 맞는다. 하지만 삼성 그룹 내부에서는 계열사라는 명칭 대신에 관계사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과거보다 순환출자가 완화되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상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삼성물산이 산업 부문의 최상단 지주회사, 삼성생명이 금융 부문의 최상단 지주회사 형태를 띄고 있다.
현재 지배구조의 최후의 목적은 산업 부문은 삼성물산, 금융 부문은 삼성생명으로 금산분리를 이루면서 하나의 지주회사 체제로 단일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난관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해소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42] 중간금융지주법이 무산되고, 순환출자 해소를 정부가 압박하는 만큼 삼성의 금산분리는 해소 못하고 있음이 아킬레스건이다. 금감원이나 공정위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라고 하는데 문제는 지분 가치만 26조에 육박한다.(...) 누가 사줄 것이며 설령 사준다고 해도 이씨 일가의 지배력을 상실하게 된다. 결국 최선책은 이씨 일가 혹은 삼성물산이 사주는 방법 외에 없으나 돈이 없어서 가능성은 절대적으로 희박하다.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삼성은 법이 바뀌는 것을 기도하며 그저 배째는 것외에 답이 없는 실정. 정부로서도 무척 난감한 점이 이런 수십조가 넘는 삼성 지분을 사줄 집단은 결국 외국인 세력외에 없다. 만약 외국인 세력이 삼성을 인수하려 한다면 어떤 헬게이트가 열릴지 생각해보자. 특히 중국 세력이 인수하려 한다면? 그러니 정부도 무작정 몰아붙일 수 없는 노릇이다.
보면 알겠지만 매출도 그렇고 영업이익까지 다른 계열사들을 죄다 합쳐봤자 삼성전자의 반도 안 된다. 삼성전자는 단일 회사이지만 그 안에 반도체, 가전,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등 다양한 사업군을 영위하는 종합 전자회사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 부서 하나하나가 여느 경쟁사 뺨치는 규모지만... 삼성물산의 경우 계열사 구조조정을 위한 인수합병의 영향으로 15년부터 주요 재무정보에 큰 변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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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관계사
14.1.1. 전자
당연한 말이지만, '''삼성그룹의 주력 업종'''이다. 이 부분에 바탕을 둔 자금력으로 다른 분야를 키우고 있다.
- 삼성전자: IFRS에 따른 연결회계정보에 따르면 삼성전자 계열사만 147개라고 한다. 물론 이는 한국에 설립된 자회사, 해외의 생산공장, 연구소, 판매, 유통, A/S 법인등을 모두 합친 숫자이긴 하지만... 백색가전 전문 생산업체인 삼성광주전자를 흡수했다. 또, 삼성테크윈의 카메라 부분이었다가 분사한 삼성디지털이미징과, 삼성LED 등을 흡수한 바 있다.
- 삼성전자판매: 1996년 7월 11일에 설립된 곳으로 리빙프라자에서 사명을 변경했다. 삼성디지털프라자 등을 운영하고 있다.
- 삼성전자서비스: 삼성전자의 AS센터를 운영하는 회사.
- 삼성전자로지텍: 1998년 3월 27일에 삼성전자에서 분리된 물류회사다. 당초 사명은 토로스물류주식회사였다.
- 세메스: 반도체 및 LCD 제조용 설비 제조 회사. 1993년 삼성전자와 일본 다이니폰스크린이 합자해 만든 한국디앤에스를 전신으로 한다. 삼성전자가 일본 측 지분을 전량 인수하며 현재의 사명으로 바꿨다. SEMES는 System Engineering Mega Solution의 약자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Samsung Electronics MEchatronic Solutions의 약자로 알려졌다.
- 스테코: 삼성전자와 일본 도레이가 합작하여 만든 회사다. 사명인 STECO는 Samsung Toray Electronics Co.의 약자라고 한다.
- 하만 인터내셔널: 2016년 삼성전자에 인수된 미국의 오디오, 인포테인먼트시스템 전문기업이다.
- 삼성메디슨: 1985년 설립된 메디슨이 전신으로, 의료기기사업체다. 2010년 12월 삼성전자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자의 디스플레이 사업부문이 분리된 자회사.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를 흡수합병 했다. 자회사로 삼성코닝정밀소재를 가지고 있었으나, 2013년 10월 삼성이 보유 지분 전체를 합작사인 코닝에 매각함으로써 삼성 계열사에서 벗어났다. 2020년 현재 삼성전자의 자회사다.
- 삼성전기: 1973년 삼성산요파츠로 설립된, 전자부품 제조 전문 회사로, 이부진의 남편 임우재가 이 회사 부사장직까지 오르다 고문으로 물러났다.
- 삼성SDI: 이차 전지 및 전자재료(소재) 생산. 이차 전지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기술과 점유율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근데 15년 기준으로 전지 사업부문은 내리 적자를 보는 중. 그룹의 맏형이었으나 2013년에 패션부문을 삼성에버랜드에 넘긴 제일모직을 2014년에 흡수합병한 바 있다. 삼성전관에서 1999년 삼성SDI(Samsung Display Interface)로 사명을 변경하였으나, 사업구조가 바뀌면서 사명에 있던 디스플레이와는 상관없게 되자 사측은 고유명사 SDI라고 홍보하고 있다.
- 에스티엠: 2011년에 토다공업과 삼성이 합작한 회사로 양극재를 생산하는 계열사이다. 현재는 지분이 전부 삼성SDI가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차전지 산업에서 소재를 내재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 삼성SDS: 한국 최대의 IT 기업으로 최고의 SSAT 경쟁율을 자랑한다. 멀티캠퍼스라는 교육기관이 별도로 존재하며 밥맛이 일품이다. 사옥 이전후 저녁식사가 가능하다. 일반적인 IT 종사자들이 생각하는 4D 업종이다. 구 서울통신기술인 삼성SNS를 2013년에 흡수합병했다. SDS는 Samsung Data System의 준말이지만 사측은 고유명사 SDS라고 답하는 중.
- 멀티캠퍼스: 삼성그룹 인력개발원에서 기업분할을 통해 설립된 HR 전문기업. 2016년 3월 크레듀에서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다.
- 미라콤아이앤씨: 2011년 인수한 회사로,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하는 회사다. 기존 삼성의 오픈타이드코리아를 흡수합병했다. 오픈타이드코리아는 지난 2000년 이재용이 e삼성을 만들 때 세운 회사 중 하나로, 닷컴버블 이후 남았던 마지막 회사였다.
- 에스코어: 2010년 인수한 회사로, 경영컨설팅과 소프트웨어 R&D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오픈타이드코리아에서 컨설팅부문을 분사시킨 코어브릿지컨설팅을 흡수합병했다.
- 시큐아이: 2000년 3월에 삼성그룹의 물리보안 전문 회사인 에스원의 자회사로 출범한 네트워크 보안 장비 개발 및 판매 회사이다. 2015년 9월에 삼성SDS가 에스원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전체를 인수하여 삼성SDS의 자회사가 되었다.
- 오픈핸즈: 대기업 특성상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삼성SDS 지분 100%로 출자한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초기에는 총무지원이 대부분이였으나, 현재는 모기업 삼성SDS의 업무를 함께하는 소프트웨어 TEST,정보보안 등 이 대표사업이다.
14.1.2. 중공업·건설
삼성그룹에서 전기/전자 부문 다음으로 매출 볼륨을 캐리했다가 미운 오리새끼가 됐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국제적인 '''유가 폭락''', 한국 업체 간 '''제 살 깎아먹기''' 경쟁으로 인한 건설-조선업 불황이 사단을 만들었다. 내우외환이 쌍으로 터져 위기를 맞이한 셈. 그나마 삼성중공업은 외국발 LNG 운반선 발주 러시 덕분에 실적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건설업은 저가 수주로 인한 적자 때문에 아직도 깜깜하다.
- 삼성중공업: 1974년 8월 5일 설립된, 선박 건조와 해양플랜트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
- 삼성엔지니어링: 화공플랜트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 1970년 1월 설립된 코리아엔지니어링을 1978년 4월 삼성이 인수했다.
- 삼성물산 건설부문: 1977년 통일건설이 인수된 후 삼성종합건설로 재설립되어 1979년 신원개발에 합병된 후 그 회사를 존속법인으로 했다. 1993년 삼성건설로 사명을 바꿨다가, 1995년 12월 삼성물산으로 합병된 상태다. 아파트 브랜드로는 래미안이 있다.
- 씨브이네트: 2000년 4월 6일 설립된, 홈네트워크 시스템 개발사다.
-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2014년 8월 공식적으로 인수하여 자회사로 두었으나 그 이전부터 위장계열사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14.1.3. 금융
'''삼성그룹의 숨겨진 대들보.''' 막강한 자금력으로 구원 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 삼성 그룹을 위기에서 구했다.
- 삼성생명: 삼성전자와 함께 삼성그룹에서 가장 중요한 계열사. 그래서인지 "회장"직도 삼성전자와 함께 그룹 내에서 둘뿐이다. 동방생명이라는 회사였으나, 1963년 삼성에 편입되었고, 1989년 삼성생명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지배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회사로 금산분리법 때문에 차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시 문제 요소 중 하나다. 때문에 중간 금융 지주 회사법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무산되어 골치가 아프다. 금산분리가 실현된다는 전제하에 금융 지주로의 핵심적인 회사로 전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경우에는 사실상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두 개의 그룹으로 쪼개지고, 한 명 또는 복수의 총수가 삼성전자, 삼성생명 양쪽의 회장을 모두 맡아 관리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당장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부터 처리하기 요원한 실정이다.
- 삼성생명금융서비스보험대리점
- 삼성생명서비스손해사정: 삼성생명 콜센터, 보험심사 등을 전담하는 업체.
- 삼성자산운용: 1997년 4월 삼성그룹과 미국 JP모건 등이 지분 참여한 삼성제이피모건투신운용으로 설립된 자산운용사. 이후 미국 지분이 빠지면서 삼성생명이 97% 가까이 지분을 가지고 있다. 운용하는 자산규모가 상당하기에 기민함이 떨어져 수익률은 경쟁사보다 낮지만 자산규모대비 수익률은 양호한 편이다.
- 삼성SRA자산운용: 2012년 11월에 설립된 부동산자산운용사. 삼성생명이 100% 보유하고 있다.
- 삼성액티브자산운용: 2017년 설립됨.
- 삼성헤지자산운용: 이하 동일.
- 삼성카드: 1978년 '한국신용카드'로 설립된 회사로, 1988년 6월 코카신용카드를 인수하여 삼성신용카드로 변경했다. IMF 이후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카드와 삼성캐피털을 합병해서 출범한 회사다. 2007년 6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면서 한국 신용카드사들 중 유일한 상장사로 기록되고 있다. 삼성생명이 71.9%로 대주주다.
- 삼성카드고객서비스: 손자회사.
- 생보부동산신탁: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이 지분을 반반씩 출자한 업체.
- 삼성화재: 1952년 1월 26일 한국안보화재해상보험로 설립되었다. 1962년 삼성그룹에 인수되어 안국화재해상보험이 되었고 1993년 삼성화재해상보험이라는 현재 사명으로 바뀌었다. 2000년 1월에 아시아 보험사 1위라는 괴물같은 기록도 세웠다. 삼성생명과 더불어 그룹의 든든한 돈줄 역할이다. 삼성생명이 자회사로 편입시키기 위해서 지분을 확대하고 있으나 아직 기준인 30%에는 못미친다.
- 삼성화재금융서비스보험대리점
- 삼성화재서비스손해사정: 구 애니카랜드. 애니카 긴급출동 서비스, 콜센터 등을 운영함.
- 삼성증권: 1982년 10월 19일 한일투자금융로 설립되어, 1991년 2월 국제증권으로 이름을 변경한 뒤, 1992년 삼성에 편입되었다. 증권중개 및 자산관리, 기업금융과 자금운용 등을 하고 있다. 삼성생명이 지분을 확대하고 있으나 아직 기준인 30%에는 못미친다.
- 삼성선물: 금융투자회사. 1992년 국제선물로 설립된 선물회사. 1996년에 삼성물산이 인수해서, 1997년 사명을 삼성선물로 변경했다. 삼성증권의 100% 자회사다.
- 삼성벤처투자: 삼성그룹의 4개 계열사, 전기, 중공업, 전관, 전자가 공동 출자하여 자본금 200억 원 규모로 1999년 10월 22일 설립되었다.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사업을 하는 벤처캐피탈이다.
14.1.4. 서비스
- 삼성물산: 종합물류, 무역, 레저, 건설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로, 사실상 삼성의 모기업이며 삼성전자 주식의 4%를 소유한 삼성의 준지주기업이기도 하다. 1938년 이병철이 세운 삼성상회에서 시작하였다. 합병과 분할이 여러번 이루어져 복잡하다. 제일모직의 원래 사명은 삼성에버랜드였다. 본래 사업은 그룹 내 부동산 관리라고 한다. 그런데 제일모직에서 패션사업부를 넘겨받고, 2014년 1월에 기존 제일모직이 삼성SDI에 합병된 후, 2014년 7월에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으로 사명변경하였으나… 2015년 5월에 삼성물산에 합병되었다.
- 삼성물산 상사부문: 1938년 삼성상회로 출발한 삼성물산의 본류다.
- 삼성물산 패션부문: 구 제일모직 패션부문. 에잇세컨즈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 제일패션리테일: 이탈리아 브랜드 "콜롬보 비아 델라 스피가"의 한국법인이다. 현재는 삼성물산이 100% 소유하고 있으며 에잇세컨즈 매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
-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구 제일모직 리조트부문. 에버랜드 등 테마파크를 운영한다.
- 삼성웰스토리: 2013년 11월에 삼성에버랜드에서 분리된 회사로, 급식업체다. 삼성물산이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 서울레이크사이드: 강남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운영법인이다.
- 호텔신라: 신라호텔과 신라스테이, 신라면세점을 운영하는 회사로, 1973년 5월에 설립된 임페리얼이 전신이다.
- 제일기획: 종합 광고대행사로 한국 1위의 규모다. 2014년부터 계열사별로 흩어져있던 삼성그룹 내의 스포츠단을 모두 여기로 모아서 운영하고 있다.
- 에스원: 보안, 경비솔루션, 부동산종합서비스 업체. 일본굴지의 보안솔루션 브랜드 세콤과 합자형태로 투자되었다. 2010년기준으로 지분관계도는 일본세콤 본사가 24, 삼성 계열이 20으로 여전히 세콤의 영향력이 높은편. SKT/KT 망을 임차해 MVNO 통신사업을 시작했다. 물론 삼성 계열이라 에스원 안심폰을 비롯한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만 판매·취급하는 중이다.
- 에스원CRM: 콜센터 및 텔레마케팅 업체이다.
- 휴먼티에스에스: 2010년에 에스원에서 만든 자회사다.
- 삼성경제연구소: 원래는 삼성생명 부설 연구기관이었으나, 1991년 4월 주식회사 삼성경제연구소로 전환했다. 즉 현재는 관계사의 부설 기관이 아니라 그 자체로 엄연한 회사(영리법인)이다. 경영컨설팅 사업 등의 영리 사업을 하고 있다.
- 삼성의료원
-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그룹, 특히 삼성전자를 위시한 전기/전자 부문이 고급 세그먼트의 애플이나 저가 세그먼트의 다수 경쟁업체들 때문에 넛 크래커의 위기에 몰리기 시작하자[43] 이에 대한 대책으로 발굴한 5대 신수종사업 투자로 인해 출범했다. 초창기에는 돈 잡아먹는 기계[44] 라는 날선 비판도 있었지만, 제약 사업이 돈 앞에 장사 없는 분야인데다 경영 노하우만큼은 이골이 날 정도로 쌓인 삼성인지라[45] 2015년 들어 언론 보도를 탈 정도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제약이라는 상장제약사가 있으나 삼성그룹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별도의 제약사다.
- 삼성바이오에피스: 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로, 신약 개발을 맡고 있다.
14.1.5. 스포츠
이건희 체제 때만 하더라도 삼성이 스포츠 마케팅에 쏟아붓는 돈이 막대했다. 대표적으로 올림픽 공식 파트너가 있으며 전세계 각지에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며 삼성의 이름을 알리는데 활용했다. 국내에서도 1등 주의를 앞세워 투자에 적극적이었으나 이재용 체제 이후 대부분의 스포츠 마케팅에 투자를 줄이고 운영팀들도 해체하거나 투자액을 줄였다.
- 야구: 삼성 라이온즈 (제일기획)[46]
- 축구: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제일기획)
- 남자 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 (제일기획)
- 배구: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제일기획)
- 여자 농구: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제일기획)
- 삼성전자 육상단
- 삼성생명 배드민턴단
- 삼성생명 탁구단
- 삼성생명 레슬링단
- 에스원 태권도단
- 삼성전자 승마단
14.2. 공익사업
- 삼성재단: 별도의 사이트를 운영 중이지만, 별도의 법인이라기 보다는 산하 4개 재단을 묶어 총칭하는 이름으로 보인다.
- 삼성문화재단: 1965년 설립되었다.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을 운영하며, 서울상상나라 위탁운영도 맡는다. 삼성장학회가 여기 소관이였으나 2016년부터 신규 장학생 선발을 중단했고, 1995~2014년까지 잠실 삼성어린이박물관도 운영한 바 있다. 2015년, 이재용이 이사장직을 물려받았다. 총수 승계의 상징으로 해석되고 있다고. 문화재단은 삼성생명의 지분 4.68%를 보유하고 있다.
- 삼성생명공익재단: 1982년 설립된 동방사회복지재단이 기원이다. 삼성의료원 삼성서울병원과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 어린이집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실버타운인 삼성노블카운티도 맡고 있다. 삼성문화재단과 마찬가지로 이재용이 이사장직을 물려받았다. 생명공익재단은 삼성물산의 지분 1.05%와 삼성생명의 지분 2.18%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재단의 목적사업비가 총 수입액의 0.88%에 그쳐 경영 승계용 재단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삼성복지재단: 1989년 설립되어 드림클래스 등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 호암재단: 1997년 6월 설립되었다. 매년 호암상 시상식을 개최하고 있으며, 학술연구 지원 사업 등을 맡고 있다.
-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맞춰 삼성전자가 10년간 총 1조5000억원 규모를 출연해 만든 재단이다.
- 삼성언론재단: 1995년 설립되었다.
- 삼성의료재단: 삼성의료원 강북삼성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참고로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삼성창원병원은 학교법인 성균관대학교가 운영하고 있다. 삼성의료원은 그룹 내 병원 총괄 조직이름일 뿐 별도 법인은 아니다. 법인 통합 자체는 어렵다고.
- 삼성법률봉사단: 법률상담과 변론활동 등의 법률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 삼성안전환경연구소: 1993년 삼성지구환경연구소로 출범하였다.
- 삼성소프트웨어멤버십: 1991년 설립되었다.
- 학교법인 성균관대학교: 성균관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이다. 1965년 참여하였다가 1977년에 빠진 이후, 1996년 다시 삼성이 재단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삼성창원병원은 여기 소속이다.
- 학교법인 충남삼성학원: 2014년에 삼성 아산산업단지에 위치한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자, 삼성SDI 등의 임직원 자녀들을 위해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에 개교하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인 충남삼성고등학교의 학교법인이다.
14.3. 부설 기관
이하에 열거된 곳들은 회사가 아니다. 따라서 삼성그룹의 관계사(계열사)도 아니다. 삼성의 관계사가 설립한 부설 기관들이다.
-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삼성화재의 사회공헌 사업 중 하나로,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보행을 돕는 안내견을 훈련시키고 분양하는 곳이다. 참고로 사회공헌 사업이므로 안내견은 무료로 분양된다. 참고로 안내견 한 마리를 교육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1억~2억이다. 위치는 에버랜드나 캐리비안베이를 가다 보면 매표소 옆으로 쭉 나있는 길이 있는데, 이곳을 따라가다보면 삼성안내견학교로 가는 길이 나온다. 참고로 약속이 잡혀있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으며[48] , 약속이 잡혀있더라도 안내견들의 생활리듬을 위해 시간을 철저하게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이건희가 생전에 애견인으로 유명해 그 영향으로 설립한 것이다.
- 삼성종합기술원: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 위치한 전문 연구 조직이다. 통칭 종기원. 연구소답게, 대기업답지 않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직급이 따로 없고 모두 공식 직함이 "연구원"이…었으나 폐지됐다. 삼성전자가 그룹의 대들보인 만큼 전자 관련 연구과제를 많이 진행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삼성이 하는 모든 분야+미래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 분야의 연구까지 담당하는 삼성의 브레인이다. 이곳에 위치한 삼성 사내 대학에서는 학사학위를 딸 수 있다.
14.4. 분가한 기업
삼성그룹에서 분리되었다고 해도 실제로는 친인척 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에 범 삼성가라 불린다. 친인척 관계에 관해서는 범 삼성가 문서의 가계도를 참고할 것.
- 전주제지 (현 한솔그룹): 이병철 회장의 장녀 이인희氏 가계다. 1998년 전주공장 매각 이전까지 한솔제지에서 중앙일보에 신문용지를 공급했기 때문에, 한국 신문사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신문용지의 자체보급이 가능했다. 원래 이름은 전주제지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중앙일보가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실은 삼성의 목줄을 조이는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을 수 있었던 배경이 이 회사 덕분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타 신문사는 정부에 밉보이면 종이가 떨어져서 신문을 발행하지 못하게 되지만 중앙일보는 그 점에서 자유로웠으므로.
- 제일병원: 2005년 독립.
- 제일제당·제일제당건설·제일씨앤씨·제일냉동식품 (현 CJ그룹):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氏 가계. 제일제당 등을 필두로 계열이 분리되어, 제일제당그룹을 이뤘고 이름을 CJ그룹으로 변경했다. 이후 다양한 사업에 진출하여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다. 삼성에서 계열분리한 기업 중 신세계와 더불어 가장 큰 기업집단이다.
- 제일합섬·제일시바가이기 (이후 새한그룹): 이병철의 차남 이창희氏 가계. 2000년에 워크아웃을 받고 해체되었다.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맹희와 함께 내쳐진 이창희가 따로 차린 새한미디어와, 그의 사후 삼성그룹이 계열분리될 때 이창희의 장남 이재관이 받은 제일합섬을 합쳐 출범했던 그룹이다. 그러나 얼마 못 가 IMF 때 범 삼성가 그룹 중 유일하게 망해서 해체되었다. 이후 제일합섬은 웅진그룹에 편입되어 사명을 웅진케미칼로 바꿨다가, 웅진도 망해버리면서 새한그룹 출범 때부터 제휴관계였던 일본의 도레이에 넘어갔고, 2019년 도레이첨단소재에 합병되었다. 제일시바가이기도 2000년 퍼시픽에폭시로 바뀌었다가 2006년 한국다우케미칼에 합병되었다.
- 신세계백화점·조선호텔 (현 신세계그룹) - 이병철의 오녀 이명희氏 가계.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등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에서 계열분리한 기업 중 CJ와 더불어 가장 큰 기업집단이다.
- 중앙일보·중앙M&B·중앙일보뉴미디어·중앙이코노미스트·중앙컬처미디어·보광·보광훼미리마트·보광창업투자·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현 중앙그룹·BGF그룹): 이병철의 사돈 홍진기氏가계. 이건희의 처가. 보광그룹의 경우, 모체 기업이던 (주)보광과 STS반도체 같은 계열사들이 서서히 타 기업으로 흩어짐에 따라 기업집단명이 BGF로 변경되었다. 편의점 체인인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이 있으며, 휘닉스파크 등의 레저 부문은 2016년 2월 중앙일보사로 넘어갔다. 반면 중앙M&B는 단행본 사업부문을 랜덤하우스중앙으로 독립시켰다.
14.5. 계열 분리된 법인
- 가치네트: 2003년 웰시아닷컴을 SK그룹 계열사 팍스넷에 팔고 2005년 계열제외됐다가, 2014년 폐업.
- 고려흥진: 고려의료재단 자회사로, 1991년 계열분리됐다가 1996년 한솔그룹에 인수된 후 1998년 한솔제지에 합병.
- 노비타 (현 콜러노비타): 구 한일가전. IH압력밥솥과 비데 등을 생산하는 업체로, 2005년 VIG파트너스에 매각됐다가 2011년 미국 콜러 사에 매각.
- 대한정밀화학 (현 한국솔베이정밀화학): 벨기에 솔베이 사와의 합작사로, 1999년 지분매각.
- 동남증권 (현 하나금융투자 IB사업부): 1973년 한양투자금융에 매각.
- 스템코: 1995년 3월 24일에 설립된 삼성전기와 일본 도레이의 합작 회사나, 1999년 이후 도레이가 대주주가 되면서 2000년에 계열제외됐다. 사명인 STEMCO는 Samsung Toray Electro-Mechanics Co.의 약자라고 한다.
- 에스에프에이: 1998년 삼성항공(現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물류사업부에서 분할되어 설립됨. 분할 이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경기도 화성시에 본사가 있고(사업장을 겸한다) 아산시에도 공장이 하나 있다.
- 에프앤가이드: 2005년 화천기공에 매각.
- 이천전기공업: 1999년 일진그룹에 매각된 후 일진중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했으나, 2008년 일진전기에 합병.
- 장미라사: 구 제일복장. 1975년 삼성물산에 합병된 뒤 관련 사업부가 제일모직으로 이관됐다가 1988년 독립.
- 중앙디자인: 1985년에 발족된 중앙개발 인테리어사업부가 모태로, 변인근 대표 몫이며 1991년 독립법인으로 분사 후 1998년 계열분리됐다.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자회사 JAD건설이 어려워지자 경영난이 생겼고, 2010년 법정관리 후 이듬해 코스닥 상장이 폐지된 뒤 2012년에 신규법인으로 넘겨졌다.
- (주)중앙일보·동양방송 방송부문 (현 KBS 2TV 및 KBS 2FM): TBC로 불리며 1964년에 라디오서울을 모태로 설립되어 1974년에 중앙일보와 통합해 방송부문이 되었으나, 1980년 언론통폐합에 따른 신방겸영 금지 조치로 방송부문이 한국방송공사에 흡수되면서 라디오는 KBS 제3방송(1981년 9월 7일 폐지) 및 KBS 2FM, 텔레비전은 KBS 2TV로 통합되었다. 한편 중앙미디어네트워크는 종합편성채널 자회사로 JTBC를 출범시키면서 후신이라고 선언했다.
- 삼성중공업 공작기계사업부 (현 스맥): 1999년 독립.
- 삼성중공업 냉동설비부문 및 주차설비부문 (현 삼중테크): 이하 동일.
- 삼성중공업 중장비사업본부 (현 볼보그룹코리아 및 클라크머티리얼핸들링아시아): 1999년에 건설기계는 스웨덴 볼보로, 지게차는 미국 클라크 사에 각각 넘어감.
- 삼성테스코 (현 홈플러스): 원래 신세계가 삼성그룹에서 독립한 후 삼성그룹에서 새로이 유통업에 진출하기위해 삼성물산 유통부문의 한 갈래로 설립했으나 IMF 크리로 인해 신규 투자여력이 없어 1999년 들어 삼성은 현물자산을, 영국 유통업체인 테스코는 자본을 투자하여 50:50 지분의 합작법인 형태로 삼성테스코를 설립. 이후 삼성 측의 증자 미참여, 지분매각 등으로 인해 테스코의 지분비율이 94%로 높아졌으며, 테스코 측에서 삼성의 지분을 모두 인수한 후 2011년 4월 1일부로 홈플러스주식회사로 사명 변경. 영국 테스크 본사의 위기로 사모펀드사인 MBK파트너스에 매각되었다.
- 삼성GE의료기기 (현 GE헬스케어 코리아): 1999년 지분 매각.
- 삼성SDS 사내벤처 네이버포트 (현 네이버) - NHN 중 네이버 부분은 삼성SDS의 사내 벤처로 출발했다. 현재는 완전한 독립법인이며 지분관계도 없다. 창립자인 이해진의 아버지는 이시용 전 삼성생명 대표이사다.
- 삼성SDS ETC사업부 (현 엠피온): 구 삼성SNS ETC사업부. 교통정보기기 브랜드 엠피온으로 유명하며 2014년 독립.
- 삼성전기 플로피디스켓 사업부 (현 세마전자): 2005년에 삼성전기에서 플로피디스크, 카드리더기, 임베디드 장치 등을 만들던 사업부에서 분리 독립했다. 현재는 외장 하드, 카드리더기, 임베디드 장치등을 만들고 있다.
- 삼성휴렛팩커드 (현 한국휴렛팩커드): 1988년 경영권이 미국 휴렛팩커드로 넘어갔고, 1998년 지분 매각.
- 선일포도당: 1984년 2대 주주 삼양사에 매각된 후 1995년 삼양제넥스가 됐으나, 2015년 삼양사에 합병.
- 송도랜드마크시티: 2018년 현대건설에 매각.
- 제일모직 학생복사업부 (현 아이비클럽): 2001년 사업부를 분사시키고 대원에 매각.
- 영보엔지니어링 (현 알머스·애니모드): 2005년 실시된 위장 계열사 자진신고 기간에 직접 신고된 위장 계열사. 직후 계열분리가 되었으나, 여전히 삼성전자를 통해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병철의 셋째딸 이순희의 아들 김상용이 대표로 있다. 목업폰이나 휴대폰 케이스 등을 제조하고 있다.
- 에스프린팅솔루션: 2017년 미국 휴렛팩커드에 매각.
- 엠포스: 2005년 계열제외.
- 올앳 (현 KG올앳): 2016년 KG그룹에 매각.
- 용산역세권개발: 2010년 롯데관광개발에 지분매각.
- 유니텔: 2001년 온라인사업부만 분리돼[49] UDS란 종업원 지주사로 출범. 2003년 다우기술에 인수된 후 2006년 '유니텔네트웍스'로 변경됐다가 2007년 다우기술에 합병.
- 이니즈: 2002년 계열제외.
- 글로벌텍·삼성코닝정밀소재: 2013년 그룹에서 분리됨. 현 코닝정밀소재.
- 신공항하이웨이: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민자사업자이고, 2004년 최대주주가 삼성물산에서 한국교직원공제회로 바뀌면서 삼성에서 분리되었다.
-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 (현 한화종합화학·한화토탈·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 삼성종합화학은 2014년 말 한화그룹에 매각결정이 내려졌고 2015년 5월 1일자로 매각되어 각각 한화종합화학으로 개명되었다. 삼성토탈은 삼성종합화학과 프랑스기업 토탈의 합작회사다. 지분율은 정확히 5: 5. 다만 종속회사는 아니다.[50] 삼성종합화학과 함께 한화에 매각되어 한화토탈로 개명했다. 삼성테크윈은 방산업체로, 2014년 말 한화에 매각 결정이 내려져 삼성그룹 최초로 노조에 의한 합법적인 파업이 2015년 4월에 진행되고 있다. 결국 7월달에 매각이 이뤄져 한화테크윈으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삼성탈레스는 프랑스의 방산업체인 탈레스와 삼성테크윈의 합작회사. 영화 <쉬리> 및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 장소가 이 회사 용인 연구소다. 삼성테크윈의 자회사로 같이 한화에 매각되었다. 2015년 7월 매각되어 한화탈레스로 바뀌었다. 이후 탈레스측이 합작을 포기하여 현재는 한화시스템이 되었다.
- 삼성정밀화학·삼성SDI 케미칼사업부문·삼성BP화학·한덕화학 (현 롯데정밀화학·롯데첨단소재·롯데BP화학, 나머지 1개는 동일.): 2015년 10월 29일자로 삼성BP화학, 삼성SDI 케미칼사업부문과 함께 3조원가량에 롯데케미칼로 매각되기로 결정되어 롯데정밀화학이 되었다. 이로써 삼성그룹의 화학 관계사가 모두 정리되었다. 삼성BP화학은 삼성과 영국기업 BP의 합작으로 설립된 회사로 2015년 10월 29일자로 롯데케미칼에 매각되었다.
- 아이마켓코리아: 2011년 인터파크로 매각.
- 제일보젤 (현 하쿠호도제일): 미국 보젤 월드와이드와의 합작 광고기획사로, 1999년 일본 하쿠호도에 경영권과 지분을 넘겼다.
- 학교법인 중동학원: 삼성그룹이 1994년에 인수하여 17년간 804억을 투자한 사립학교 법인으로 산하에 이병철의 모교인 중동중학교와 중동고등학교가 있었으나, 2011년 10월에 학교법인 중동학원에서 철수선언을 한 이후로 일단 경영에서는 철수했다. 아직까지 삼성그룹의 재정 지원은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것도 2016년까지 할 예정이며 이후에는 완전히 철수한다.
- 케어캠프: 2014년 지오영에 매각.
- 한국신에츠실리콘: 1994년 계열분리 후 1998년 지분매각.
- 한국알라스카개발: 1981년 현대종합상사, 대성탄좌, 삼척탄좌 등 3개사와 합작해 세운 기업으로, 1994년 계열 분리.
- 한국전산 (현 교보정보통신): 1972년 동방생명이 대한교육보험과 합작해 세운 기업으로, 1995년 교보생명에 지분매각.
- HTH: 구 주산실업. 2006년 CJ그룹으로 매각된 후 2008년 CJ GLS에 합병.
14.6. 해산된 회사
- 경주호텔신라: 1985년 중앙개발에 합병.
- 개미플러스유통: 2013년 (구)제일모직에 합병.
- 광주삼성전자: 2010년 삼성전자에 합병. 삼성전자 제품 중에서 백색가전을 생산하던 광주공장의 지역법인이었다.
- 대경빌딩: 2000년 청산.
- 대도제약: 1997년 삼성정밀화학에 합병.
- 대산정밀: 1994년 정리.
- 대성중공업: 1983년 삼성중공업에 합병.
- 동립산업: 1985년 제일제당에 합병.
- 동방빌딩관리: 1993년 삼성생명서비스에 합병.
- 동양제당: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와의 합자회사였으나, 1957년 인수 후 1971년 제일제당에 합병.
- 무진개발: 골프장 이글스네스트 컨트리클럽(현 가평 베네스트 컨트리클럽) 운영사로, 1999년 삼성에버랜드에 합병.
- 미풍산업: 1968년 제일제당에 합병.
- 삼영산업: 1974년 삼성물산에 합병.
- 삼성건설: 구 신원개발. 1995년 삼성물산에 합병.[51]
- 삼성광통신: 2012년 삼성전자에 합병.
- 삼성네트웍스: 2009년 삼성SDS에 합병.
-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2012년 삼성디스플레이에 합병.
- (구)삼성물산: 2015년 제일모직에 합병[52] .
- 삼성반도체: 1980년 삼성전자공업에 합병.
- 삼성반도체통신: 구 한국전자통신. 1988년 삼성전자에 합병.
- 삼성상용차: 2000년 부도 후 2001년 폐업.
- 삼성석유화학: 2014년 삼성종합화학에 합병.
- 삼성시계: 1998년 퇴출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손목시계사업을 SWC로, 벽시계사업을 신영정밀로 각각 넘기고 이듬해 폐업.
- 삼성에머슨전기: 1994년 계열분리 후 1997년 폐업.
- 삼성영상사업단: 독립법인이 아닌 미디어 사업군으로서 그룹 차원에서 사실상 계열사처럼 취급되었으나, 1999년 해체.
- 삼성유나이티드항공: 1993년 폐업.
- 삼성일렉트릭스: 1973년 삼성전자공업에 합병.
- 삼성자동차: 1999년 부도 후 2000년 자산이 신규법인 르노삼성자동차에 이관.
- 삼성전기: 구 삼성-SANYO전기. 1977년 삼성전자공업에 합병.
- 삼성조선: 1983년 삼성중공업에 합병.
- (구)삼성종합건설: 1979년 신원개발에 합병.[53]
- 삼성캐피탈: 2004년 삼성카드에 합병.
- 삼성코닝: 2007년 삼성코닝정밀유리에 합병.
- 삼성클뢰크너: 1994년 정리.
- (구)삼성투자신탁운용: 1999년 삼성생명투자신탁운용에 합병.
- 삼성투자신탁증권: 구 동양투자신탁증권. 2000년 삼성증권에 합병.
- 삼성해외건설: 1978년 삼성종합건설에 합병.
- 삼성GTE통신: 1980년 한국전자통신에 합병.
- 삼성OLED: 구 삼성NEC모바일디스플레이. 2006년 삼성SDI에 합병.
- 삼성SNS: 구 서울통신기술. 2013년 삼성SDS에 합병.
- 서울FM방송: 1966년 동양방송에 합병.
- 서해리조트: 1999년 삼성에버랜드에 합병.
- 아산전자: 2001년 한일가전에 합병.
- 아이피씨: 1999년 청산.
- (구)안국화재: 1962년 한국안보화재(현 삼성화재)에 합병.
- 엠피온: 무선인터넷 솔루션 업체로, 2004년 청산종결.
- 연포레져개발: 1999년 삼성에버랜드에 합병.
- 에이스디지텍: 2011년 구 제일모직에 합병.
- 오픈타이드코리아: 2015년 미라콤아이앤씨에 합병.
- (구)제일모직: 2014년 삼성SDI에 합병. 현 삼성물산 패션사업부문 및 롯데첨단소재의 뿌리이기도 하다.[54]
- 제일복장: 1975년 삼성물산에 합병.
- 제일제당판매: 1975년 제일제당에 합병.
- 조선양조: 1969년 해산.
- 구 중앙개발: 1967년 동화진흥(현 삼성물산)에 합병.
- 중앙엔지니어링: 1976년 중앙개발(현 삼성물산)에 합병.
- 충남화학: 1994년 정리.
- 테크윈에코: 2010년 삼성중공업에 합병.
- 하이크리에이션: 1999년 구 제일모직에 합병.
- 하이퍼네트코리아: 인터넷 광고업체로, 1999년 폐업.
- 한우리조경: 1997년 중앙개발에 합병.
- 한일전선: 1998년 퇴출 후 청산.
- e삼성: 2005년 청산.
- e삼성인터내셔널: 2013년 청산 후 2014년 폐업.
- EXE c&t: 2012년 삼성SDS에 합병.
- IST: 1991년 일본 이비덴과 세운 합작사. 1994년 정리.
- SB리모티브: 삼성SDI와 독일 보쉬와의 합작사로 자동차 배터리 제조 업체. 2013년 삼성SDI와 합병.
- S-LCD: 2012년 삼성디스플레이에 합병.
- STS커뮤니케이션: 삼성생명 콜센터 담당 업체. 2011년 SIS특종상해손해사정에 합병.
- SWS: 삼성생명 홈페이지 운영사. 이하 동일.
- 365홈케어: 2014년 오픈타이드코리아에 합병.
14.7. 관련없는 회사
이 회사들은 三星이 아니라 三省 등 다른 한자를 쓰며 물론 삼성과 관련 없다. 三星을 쓰지만 삼성과 관련 없는 회사도 있다.
- 삼성낚시
- 삼성당[55]
- 삼성제약: 이 회사의 경우 삼성보다 설립이 더 앞서고 한자도 다르나 영문은 동일하고 2015년에 변경한 CI가 삼성과 비슷한 파란색을 사용하면서 삼성 측에서 CI 변경을 요구하며 상표권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 #
- 삼성출판사[56]
- 삼성(三城)여객
- 삼성마트[57]
- 삼성공조
- 삼성비철금속
- 삼성교통
- 삼성스포츠
- SC제일은행 - 2016년에 삼성카드와 제휴관계가 생겼다.
- 제일생명 - 現 ABL생명. 지금의 서울 강남대로 신논현역 사거리 인근 부지에 본사 건물을 지었는데, 과거 벌판에 가까웠던 강남개발 초창기 때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던지라 강남역 부근의 랜드마크로 유명했으며, 2003년 강남교보타워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신논현역 사거리의 정식 명칭은 제일생명 사거리였다.
- 제일약품 - 제일파프, 케펜텍 등을 생산하는 제약회사.
- 제일증권 (現 한화투자증권)
- 제일화재 (現 한화손해보험)
- 제일홀딩스 - 하림의 지주사.
- 제일여객
- 제일교통
- 제일연마
15. 가상매체에서의 삼성
- 1995년에 맹인호가 편저자로 낸 소설 <바벨탑의 제왕>이 해당 그룹을 모티브로 한 듯하며, 1997년에 기아 출신 이신행 의원이 지은 소설 <이씨춘추>에선 오성그룹으로 나온다. 이하 두 책은 발매 후 그룹측이 수거하여 현재는 구하기 힘들다.
- 드라마 영웅시대에서는 기업의 실명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대한그룹으로 등장한다.
- 게임 GTA 5에서 삼성을 모티브로 한 한국 기업인 위왕과 텐션이 나온다 로고와 색상을 비교하면 비슷하다.
- 게임 사이버펑크 2077에서는 서초일렉트로닉스라는 대기업이 존재한다.
- 게임 라스트오리진에서는 삼성을 모티브로 한 삼안산업이라는 대기업이 존재한다.
16. 관련 문헌
[1] 삼성전자는 1969년에 설립되었다.[2] 그룹 전체의 정책은 그러할 지 몰라도, 그룹 내 개별 회사들은 복수의 은행과 거래를 하기도 한다.[3] 국가의 사례이긴 하지만 중국에서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된 것도 혈연 관계였던 주나라 왕과 제후들의 관계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촌수가 멀어짐에 따라 점차 멀어져 서로를 친족으로 여기지 않게 된 게 크며, 신성 로마 제국의 경우 카를 4세의 금인칙서로 인해 선제후들이 주권국가 군주 수준의 막강한 권력을 가지기 시작한 게 몰락의 원인들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큰 집단을 구성하는 작은 집단들이 각 집단들의 독립적인 힘이 강해질수록 서로를 같은 집단의 일부로 여기지 않게 되기 마련이다.[4] 사실 공식적으로도 하나의 기업인 것과 공식적으로는 별개의 기업이면서 지분관계에 의존하여 동질성을 유지하는 건 완전히 똑같다고 보기 힘들다.[5] 2010년 기준으로 약 3억원 상당.[6] 일제강점기 당시는 물론이고 그 전 세기부터 굴지의 대기업이었던 일본의 미쓰비시사와 비슷하게 들리려고 이름을 지었다는 짝퉁으로 시작했다는 카더라가 있지만, 근거는 희박하다. (삼성을 일본어식로 훈독해 읽으면 "미쓰보시"로 읽을 수도 있다.)[7] 삼성상회 및 삼성 창업자 이병철의 자서전 호암자전 34쪽에 홈페이지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아마도 호암자전의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린 듯 싶다.[8] 당시 한국을 강점한 일본에 三으로 시작하는 기업이 있고 이병철이 일본 유학을 해서 그것을 모방한 것 이니냐는 주장이 간혹 보이는데 '''전혀 근거가 없다.''' 본인이 자서전에 유래를 밝혔는데도 부정하며 왈가왈부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뿐더러 3이란 숫자는 매우 자주 쓰였다. 애초에 '''창립지 옆 도시'''에 삼성현(세명의 성인이 나왔다는 의미)이라는 잘 알려진 지명이 있고 삼성혈, 삼성각(절에 있는 토속신을 모신 사당) 등 한민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숫자다. 서양에도 삼위일체 교리로 인해 트리니티라는 명칭이 종종 쓰인다. 애초에 3이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라서 넣었다고 위에서 본인이 분명히 밝혔다.[9] 'Sammy'는 남자이름 새뮤얼, 여자이름 사만다의 애칭과 같다.[10] 원래 г 발음은 ㄱ과 유사하지만(정확히는 /g/임) 러시아어 발음 원칙에 의거하면 유성음이 단어 맨 뒤에 들어가면 무성음으로 발음하기 때문이다.[11] 한편, 가타카나 철자가 하필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주인공인 사무스 아란(Samus Aran, サムス・アラン)의 이름(サムス)과 마지막 한 글자를 빼고 똑같은지라 일본 웹사이트를 번역기로 한국어 번역하면 종종 뜬끔없이 '삼성'이 튀어나오는 일이 있다.[12] 중국에 진출하는 회사들은 동양계의 경우 대부분 이렇다. 토요타도 한자를 그대로 음독한 풍씨옌으로 읽는다. 다만 마쯔다(마자달이라고 표기한다)처럼 현지 음차를 한 경우도 있다.[13] 이 때 CI와 더불어 관계사의 사명을 통일했으나 제일 사명이 들어가는 관계사는 그대로 제일 사명을 사용했으며 제일기획, 중앙일보 등 소수 관계사의 경우는 CI도 독자적인 CI를 유지했다.[14] 링크[15] [image][16] 다만 이는 회사에서 허용하는 표기 방식이다. 오벌 마크를 중심으로 사명이 좌우와 하단에 위치하는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관계사 CI다.[17] 이는 이건희의 신경영 선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불량은 암이라는 인식하에 애니콜 휴대폰 수억대를 망치로 때려부수고 인화제를 끼얹어 태우는 화형식을 거행하면서 품질 경영과 디자인 경영을 선언하고 실천한 것, 이 두 가지가 삼성이 세계화 시대에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18] 옛 향군타워 빌딩. 삼성SDS와 사옥을 같이 쓴다.[19] 군인공제회 소유의 빌딩.[20] 큐원 간판의 그 빌딩.[21] 당연히 삼성 측에서 돈다발을 들고 이들 건물을 매입하려고 나섰지만 윤빌딩과 대각빌딩 건물주가 완강히 반대했다고 한다.[22] 롯폰기 1번가 삼거리.[23] 이러니 일본에서만 경제 불황을 당하고 있기에 'SAMSUNG' 로고를 게양하지 않기로 하고 있다.[24] 그마저도 한화그룹에 매각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사명이 변경되었다.[25] 여담으로 엔진 달린 것에 미련이 많은 이유는 이건희가 자동차 덕후라서라고 한다. 이건희가 소유한 1억 이상의 수입차만 124대, 차량의 가격을 모두 합치면 약 477억 원.# 에버랜드 근처에는 자동차 박물관과 레이싱 서킷이 있다.[26] 과거에는 회장 비서실 (1959~1998), 구조조정본부 (1998~2006), 전략기획실 (2006~2008)로 불리다가 2008년 김용철 변호사 폭로 관련 특검을 계기로 전략기획실이 사라졌다. 그러다 2010년 미래전략실로 부활했다.[27] 삼성그룹의 한 계열사 관계자는 “주요 사업 현안은 미래전략실에 보고하고 끊임없는 소통과 협업으로 사업을 추진한다”고 말했다.[28] 2014년에는 INSEAD, 컬럼비아, 듀크, 시카고 부스, 펜실베니아대 와튼, 런던 비즈니스 스쿨 , 다트머스대 터크, 버지니아대 다든, IMD, NYU 스턴, 켈로그, 미시간, 버클리, 하버드, MIT 슬론.[29] 반면,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LG전자는 자사 스마트폰 사용이 사실상 의무에 가깝다.[30] 당시 주도자는 노동운동가 나경일(1930~2010)이었다.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7년 간 복역함.[31] 1997년 제정 때부터 형식적으로 허용되었으나, 세 차례 유예되었다.[32] 대표적인 예가 1987~1988년 삼성중공업 노조결성 방해사건이다.[33] 다만 위에서도 서술했듯이 어용노조나 다름 없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삼성의 압력이 원인이 아니라 현지법을 따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34] 그러나 조장희 전 부위원장은 2016년 대법원으로부터 해고무효 판결을 받았고, 2017년 3월 복직 후 2020년에 근로복지공단은 과거 노조 탄압 과정에서 발생한 적응장애를 산재로 판정했다.[35]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팀이 해체되면 다른곳으로 발령이 나고 일이 없어도 두세 달 놀릴지언정 절대 짜르지는 않는다. 여성들의 육아휴직도 자유로운 편이며 남성도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차장(책임연구원)급 이하로 한정하면 고용 안정성 면에서는 거의 준 공무원급…[36] 원래 태스크포스 위주로 연구직을 돌리는 회사의 연구원들은 한가할 때는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여유로운 경우도 있다. 가끔은 '이렇게 일하고 돈 받아도 되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37] 사실상 삼성그룹 회장 지위로 취급된다.[38] 해당 문서는 미국 소재 한미경제연구소(KEI)의 발표 자료다. 즉 영어로 작성되었음.[39] 반도체는 구매량에 따라 가격이 천지차이인데, 애플의 구매량이 어마어마해서 애플에 판매하는 가격이 저렴해진 것. 아이리버는 물론이거나와 삼성 자체도 그만한 물량을 소화할 수 없어 애플이 사가는 가격에 살 수 없었다.[40] 대학생 대상 멘토링, 드림 클래스 뿐만 아니라 사회 약자 대상으로 학교를 방문하여 교육 기자재와 재능 봉사를 하는 것도 있다.[41] 전신 마비 장애인을 위해 오픈 소스로 공개하는 개발품; 눈으로로 움직이는 마우스다.[42] 이 문제만 아니라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이 산업 계열사에 가진 지분들이 꽤 많다.[43] 10년 내에 삼성그룹의 주력 사업은 후발주자에 의해 잠식당할 거라고 말했는데, 그게 삼성전자가 한창 잘 나가던 2010년~2011년에 나온 말이었다.[44] 생판 처음해보는 분야인 데다, 삼성답게 대규모의 경제를 만들려고 말 그대로 거대한 생산시설을 만들었다.[45] 청결과 정밀함이 중시되는 반도체 공장 건설 및 운영으로 축적된 노하우를 접목하겠다고 영삼성 매거진을 통해 홍보했다.[46] 삼성전자(27.5%) 삼성SDI(15.0%) 삼성전기(12.5%) 삼성물산(9.5%)의 지분을 인수 2016년 1월 1일자로 제일기획으로 편입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 참조[47] 제일기획으로의 이관 이후 처음에는 김동환 삼성 웰스토리 대표이사가 맡았는데, 웰스토리 대표이사는 부사장급이다. 이전 前 제일기획 사장인 임대기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으며 직급이 다시 사장급으로 올라갔고 현재는 원기찬 前 삼성카드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48] 안내견학교 입구에 경비원이 서있으며, 들어가려 할 경우 어떤 용무로 왔냐고 묻는다.[49] 구 유니텔 법인은 삼성네트웍스로 변경됨.[50] 실적을 따로 집계한다.[51] 구포 참사의 영향 때문에 전국적으로 이미지가 나빠져서 불가피했다는 것이 정설. 삼성물산의 건설부문이 이 회사의 후신이다.[52] 1938년에 설립된 법인. 지금의 삼성물산은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꿨다가 다시 합병을 통해서 이름을 바꾼 회사다.[53] 그 신원개발은 삼성건설이 되었으나 1995년에 아예 없어지고 만다.[54] 이후 1963년에 설립된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꿔서 달았으나 삼성물산을 역합병하면서 현재는 삼성물산으로 바뀌었다.[55] 출판사. 참고로 지명으로서의 삼성당이 따로 있는데,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자연취락과 그 지명을 따서 만든 다리이름.[56] 한자가 삼성(三星)그룹과 다른 삼성(三省)이다.[57] 삼성역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삼성과 관련이 없다. 실제로 삼성그룹과 관련이 있는 마트는 이마트이다. 한때 삼성그룹에 속했다가 현재는 신세계그룹으로 분리.[58] 제일모직, 제일기획, 제일합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