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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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陸軍士官學校'''
'''Korea Military Academy'''
[image]
'''智(지) 仁(인) 勇(용)'''
'''개교일'''
1945년 12월 5일(군사영어학교)
1946년 5월 1일(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1946년 6월 15일(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1948년 9월 5일'''(육군사관학교)'''
'''상징명칭'''
'''화랑대(花郞臺)'''
'''소속'''
[image]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image] 육군본부
'''종류'''
국립대학/군사학교
(사관학교설치법)
'''역할'''
육군 장교 육성
'''학교장'''
[image] 중장 김정수(육사 43기)
'''생도대장'''
[image] 준장(진) 이우헌(육사 50기)
'''위치'''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574 (공릉동)

'''홈페이지'''
육군사관학교
1. 개요
2. 상세
3. 입시
3.1. 생각해야 할 점
3.2. 절차
3.2.1. 화랑기초훈련
3.3. 선호도
3.4. 경쟁률
4. 교육
4.1. 생도들의 생활
4.2. 육사 구호(무락카/Mul-Aca)
5. 퇴교
6. 편제
7. 출신 인물
7.1. 학교장
7.3. 가상 인물
8. 기타
8.1. 학교 방문
8.2. 육사교수
8.3. 육사 출신 장교
8.4. 교가
8.5. 동기회 명칭
9. 복무환경(현역병)
10. 비판 및 논란
10.1. 군사정부의 잔재
10.2. 여성 생도 우대 문제
10.3. 직업군인과 의무복무자를 구분못함
10.4. 대입 채점 오류 사건
11. 사건사고
12. 여담
13. 과거의 육사
14. 다른 나라의 육군사관학교 혹은 유사기관
15. 관련 문서

'''사관학교 설치법'''
'''제1조(사관학교의 설치)''' ① 육군·해군·공군의 정규 장교가 될 사람에게 필요한 교육을 하기 위하여 육군·해군·공군에 각각 사관학교를 둔다.
② 군사과학기술의 발전과 장교의 자질 향상을 위하여 각군 사관학교에 이공계대학원(이하 "대학원"이라 한다)을 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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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표'''
'''마스코트'''
'''70주년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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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기지를 방문 중인 육사생도들, 2010년
美 제2보병사단을 방문 중인 육사생도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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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생도 분열식,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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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육군본부 직속으로 육군에서 초급 장교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한 4년제 특수대학교, 졸업자는 학사 학위를 받고 육군 소위로 임관된다.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소재.

2. 상세


1945년 12월 5일 군사영어학교라는 명칭으로 개교하였다가 1946년 5월 1일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로 개명하였다 6월 15일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로 재개명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1948년 9월 5일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로 명명해온 이래로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다.
'사관학교 설치법'이라는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고등교육기관이며,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3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지원가능한 국립대학' 정도로 인식되고 실질적으로도 그 정도의 위치에 있으나, 고등교육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곳이므로 신입생 모집에 있어 수시모집에서의 지원가능횟수에 포함되지도 않고, 정시모집의 대학군(群)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육군본부 직속 직할 부대 중 하나이며, 육군3사관학교는 원래 육군교육사령부 소속이었다가 2005년 경 육군본부 직할로 변경되었다.
초대 교장은 이형근으로 일본제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후 육군 야전포병학교 과정을 거쳤다. 육군 포병 대위로 복무하다 해방을 맞이한 후로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하였다. 수료 후 군번 1번을 부여받아 국군 최초의 대위로 임관하여 1946년 5월 1일 초대 남조선경비사관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학교장은 보통 육군 교육사령관과 같은 계급중장이 임명된다. 2013년 5월 생도간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후 당시 교장인 박남수 중장이 사퇴하고, 잠깐 고성균 소장[1]이 학교장에 부임했으나, 다시 양종수 중장이 보임되어 중장 보직으로 되돌아갔다.
입학 조건에 나이 제한이 있으나, 입시 기준으로 만 17세 이상에서 만 21세 이하만 입학이 가능하다.[2]

90년대 육군사관학교 생도의 전반적인 생활을 담은 영상이다. 기합이나 저녁점호 등 적잖은 행사가 사라졌지만, 생활 자체는 지금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3. 입시



입학 전형은 일반 대학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다. 일반 대학에 비해 전형이 많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내신만으로 1차 합격자를 선발했으나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는데, 다른 학교에 입학했으면 전교 1등 수준이지만 자기네 학교에서는 중·하위권의 내신을 가진 특목고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 반면 인문계에서조차 중·하위권 이하의 능력을 지녔으면서 자기네 학교에서 전교 1위를 하는 특성화고 출신자들이 대량 선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마디로 하위권 학교 출신일수록 유리한 내신의 맹점을 이용한 꼼수를 부리는 지원자들이 대거 합격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 때 당시에는 내신 때문에 수능에서 더 좋은 성적을 받고도 탈락하는 학생들이 속출하는 바람에 육군사관학교의 커트라인이 인서울 최하위 이하 수준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또한 이걸 노리고 특목고에 갈 성적을 갖고도 고의로 특성화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입학에 성공한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더 큰 문제는 중간에 퇴교하는 생도들 중 성적 미달로 퇴교하는 생도들이 대부분 특성화고등학교 출신자라는 점. 이 때문에 1998학년도(58기) 전형에서부터 모의 수능 성적표로 내신을 대체할 수 있도록 조치함과 아울러 본고사를 도입했다.
육군사관학교는 목적과 입시절차가 타 학교와 분명하게 구별되기 때문에, 일반대학과의 비교를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굳이 가늠하자면 80년대 까지는 최상위권 대학이었지만 지금은 인서울 중상위~상위권 대학 수준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사관학교 1차시험을 수능대비용으로 생각하여 대부분의 n수생을 비롯하여 의치한과 스카이를 준비하는 상위권 학생들도 많이 응시하기 때문에 1차를 통과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성적수준을 요한다. 일반적으로 1차 시험의 커트라인은 해군사관학교보다 높고 공군사관학교보다는 낮은 추세이다.
가장 중요한 시험은 1차 시험으로 이 시험을 탈락하면 그냥 탈락이다. 다음 단계란 없다. 보통 300점 만점의 1차 시험에서 합격자 커트라인은 220 ~ 240점 정도에서 형성된다. 250점을 넘겨본 사례가 없기 (2020년 기준 육군사관학교 이과 1차 커트라인은 256~8점대로 형성됐었다.)때문에 250점을 맞으면 무조건 합격이라고 보면 된다. 때문에 이 1차 시험에서 270점 이상을 득점하면 내신을 완벽하게 상쇄할 수준의 가산점을 받게 된다. '''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싶다면 1차 시험에 목숨걸어야 한다.''' 국가유공자니 뭐니 하는 특별전형조차 이 1차 시험을 통과하고 나서야 적용된다.
2022학년도 이후 1차 시험 출제 범위
국어
독서 + 문학
수학
공통
수학 Ⅰ + 수학 Ⅱ
선택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영어
고등학교 영어 교과 전범위
강남과 노원 일대 학원가에서는 수험생들 감 유지를 위하여 수험생들에게 사관학교 입시를 치르게 하는 경향이 있어 허수가 굉장히 많다.[3] 때문에 수능보다는 1차시험의 통과 여부에 따라 최종합격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일단 1차시험만 통과한다면, 후에 2차시험에서는 진성지원자를 제외한 허수지원자 대다수가 불참하기 때문에 수월하다.
1차 시험 성적과 2차 시험 성적을 이용하여 산출한 점수로 등수를 메겨 정원의 60%에 해당하는 인원을 수능을 보기 전인 10월에 '''우선선발'''한다. 이 후 우선선발되지는 못하였지만 2차 시험에 합격한 인원은 수능 성적을 반영하여 최종 선발한다. 이를 종합선발이라 한다.
문과의 경우 평균 2등급 중후반, 이과의 경우 평균 2등급 극후반대 정도의 성적이면 합격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체력검정(1.5km 오래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과 심층면접(인성검사, 국가관검사, 약술시험, 생기부 확인, 집단토론 등)에서 받은 2차 성적이 선발에 많이 반영되기 때문에 합격자의 성적 스펙트럼이 넓다. SKY대학을 모두 포기하고 입교하는 인원이 있는 반면 인서울 중하위권 성적을 받고 입교하는 인원도 있다.

3.1. 생각해야 할 점


'''이 학교에 입학한 후 졸업까지 하게 되면, 평생 군인으로 살게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육군 장교양성기관 중 최상위에 있는 만큼, 안보나 국방정책과 관련된 수많은 분야에서 종횡무진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일단 입학해서 졸업하면 30살 때까지는 무조건 군복무를 해야만 한다. 20살에 입학하면 대학 4년과 최소복무연한인 5년차 전역까지 합쳐 대략 9년 동안은 군인이라는 직업으로 고정된다. 일단 입학하기 전에 일명 가입교훈련이라는 기초군사훈련을 받게 되며, 훈련의 강도는 신병훈련과 연계되어 조정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가입학 생도 훈련은 4학년 진학 예정인 3학년 생도들이 '''기파생도'''[4]를 맡아 대부분 시행하며, 경계 교육·화생방 교육·각개제식 및 집총제식·개인화기 분해결합 등은 병계급의 조교를 동원하여 교육훈련하고 있다.
연애는 1학년 생도만 제한된다. 1학년 생도+ 생도끼리의 연애는 불가능하다. 외부인과의 연애는 상관이 없다. 1학년 연애 금지 규정은 상급생도의 위계에 의한 반강제적 교제 요구로부터 1학년 생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2학년 이상의 학년끼리는 크게 제한이 없다.
여기에 입학하려는 고등학생들은 정말 잘 생각하고 입학해야 한다. 생도생활 4년은 일반병 1년 6개월~9개월 생활[5]을 4년으로 늘려놓은 것보다도 빡세다.[6] 이 과정에서 경쟁과 훈련의 반복을 4년 내내 겪게 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할 때가 많다. 또한, 깐깐하고 복잡한 규율들을 보고 있자면 거의 가톨릭 신학생을 능가하는 수준의 절제력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코미디언 서경석은 수석으로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못 견뎌 가입교 기간 때 자진 퇴소를 했다. 또한 2학년 여름방학 때는 특전사에 가서 공수훈련까지 받게 된다. 즉, 고소공포증이 있으면 입학하지 않는 게 좋다.[7] 거기에 생도 간의 정기적인 상호평가도 있다. 모든 장교 육성과정에서 다 하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육해공군 사관학교는 특히 이것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지속적으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으면 퇴교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자신의 초중고 12년 학창생활 동안 대인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거나 심각한 트러블을 일으킨 적이 있다면, 육해공군 사관학교 지원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더군다나 사관학교에서 시작된 경쟁은 '''전역할 때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8] 특히 장교들은 장기를 통과해도 계급정년이라는 것이 있어 정년이 보장되지 않기에 더더욱 그렇다.[9][10][11] 5년차 전역을 택해 군문을 나간 인원을 제외하면 소령까지는 100% 가깝게 1차로 진급한다고는 하나, 중령부터는 육사 출신도 1차 진급을 보장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경쟁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12] 육사 졸업생 중 준장 진급자도 10%에 불과하고 이 역시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치열해지게 되며 대장에 이르러서는 5명 내외[13]로 확 줄어든다. 특히 장성급 장교는 정권 색깔에 따라 진급에 대한 유동성이 너무 커서 미래를 예측하기 너무 힘든데 '''보수정당''' 집권기와 '''민주당계 정당''' 집권기의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즉, 결론적으로 제복이 멋있다고, 학비가 공짜라고, 취업이 보장된다고 멋모르고 가다가는 큰코 다칠 수가 있다.[14] 직업군인이 꿈이어서 사명감으로 사관학교를 지망하는 고등학생들도 최소한 MBTI 검사를 받아보고, 군생활을 겪어본 20-30대 젊은 남교사와의 상담 후 진학여부를 결정할 것을 권한다. 혹시 학사장교나 ROTC를 나온 예비역 중-대위 교사가 있다면 더욱 좋다.[15]

3.2. 절차


현재 육군사관학교 입시는 크게 1차 시험, 2차 시험, 수능 및 신원조회로 나뉜다.
1차 시험은 7월 말 육군사관학교가 지정한 장소에서 치르게 되는데 국어, 영어, 수학 영역(2014학년도부터 언어, 외국어, 수리 영역에서 국어, 영어, 수학 영역으로 명칭이 변경) 각 100점씩, 총 300점 만점으로 정원의 5(남자), 6(여자)배수를 선발한다. 필기시험은 국어 80분, 영어 70분, 수학 100분이고 4개 사관학교(육해공군사관학교+국군간호사관학교) 공동 출제[16]로 같은 날 시험을 치르며 문제는 객관식이다. 단, 수리 영역은 수능과 같이 뒷부분의 문제가 주관식이다. 시험의 난이도는 수능보다 어려워서 2013학년도 1차 시험 합격자 총점의 평균이 남자 문과 250, 이과 247, 여자 문과 255, 이과 252점이었다(커트라인은 약 230점 대에서 형성)(1차 시험에 합격할 정도의 실력이면 모의고사에서 국영수 260~80정도). 다만 2014학년도에는 수능과 마찬가지로 A/B형 선택형 제도를 도입해서 A형과 B형의 난이도 차이로 인해 합격자 평균 점수가 급증하기도 했다. 2015학년도부터는 1차 시험에 한국사를 추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추가하지 않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으로 가산점을 준다). 1차 시험에서 270점을 넘기면 가산점이 주어지는데 '''이게 내신에 할당된 점수보다 크다.'''[17] 즉, 270점만 넘겨버리면 내신 9등급이라고 해도 수능이나 체력검정을 망치지 않는 한 탈락할 일은 거의 없다. 1차 시험에는 허수가 많아서 1차 시험에 합격하면 최종 합격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수능 점수가 최종 점수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수능을 못 치면 떨어진다.
'''1차 시험은 응시자가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있는지를 물어보는 시험'''이기 때문에 이걸 탈락하면 그걸로 끝이다. 때문에 무조건 합격해야만 하는 시험이다.
2차 시험은 1차 시험을 통과한 응시생들에 한해서 치러지는데, 합격자들을 8개의 조로 나뉘어 조별로 각기 다른 날에 육군사관학교서 1박 2일동안 본격적인 시험을 치르게 된다. 2차 시험에서는 신체검사 및 체력검정과 면접을 치른다. 체력검정에서는 오래달리기(남자 1.5km, 여자 1.2km)를 하게 되는데 최하기준을 넘지 못하면 '''무조건 탈락'''이다. 오래달리기를 중간에 포기하면 당연히...
2차시험을 마치고 수능까지 치르면 1차, 2차 시험 및 수능점수를 합산하고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이 과정에서 신원조회까지 거치는데 과거에는 연좌제 를 적용하여 응시생 본인뿐만 아니라 친족들의 사상적 이력도 같이 깨끗해야 했지만, 현재 육군사관학교 신원조회에서 연좌제는 폐지된 상태이다. 문제는 '''본인의 이력은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학을 당하는 것도 신원조회에서 엄청나게 불리하며 소년교도소는 당연히 사관학교 지원자격이 없으며 소년교도소보다 급이 낮은 소년원도 수감된 적이 있다면 아예 사관학교 지원자격이 없다. 단 1년밖에 수감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소년원에 발을 들이는 순간 육사와는 영원히 연관성이 없어진다. 강제전학의 경우도 사실상 합격을 못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신도 반영되긴 하지만 상당히 미미한 수준.[18] 내신은 사실상 하위권 동점자 중에서 당락을 정하는 용도 외엔 쓸모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내신이 허접하면 '''1차 시험이나 수능으로 왕창 올려버리면 그만'''이다. 1차 시험에서 300점 만점을 따내거나 수능에서 600점 만점을 따내면 내신 9등급이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합격이다. 아니면 수능을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는 수준으로 획득해내면 전교꼴찌급 내신으로도 합격할 수 있다.
육사에도 우선선발이 생겼다. '군 적성 우수자'라 하여 따로 시험을 보지 않고 1차 시험 합격자 중 2차 시험 성적만으로 정원 내 최대 20% 까지 선발한다고 한다. 단, 성별과 계열 구분하여 선발.
2016학년도 대입 전형의 경우에는 고교학교장추천을 받은 학생을 대상으로 정원내 10%이내를 우선 선발한 뒤, 이에 해당되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시 정원내 20%이내를 선발한다. 즉 우선선발의 비율이 30%로 작년에 비해 10%가 늘었다. 학교장추천은 고등학교당 현역, 재수생, 삼수생에 상관없이 2명에게 주어질 수 있으며 학교장추천을 받은 자가 학교장추천자 우선선발에 선발되지 않아도 그 뒤에 뽑는 20%에 해당이 될 수 있다.
발표 날짜는 우선선발, 2차 합격, 2차 불합격과 동시에 공개되며 우선선발의 경우 최종합격 이라고 뜬다.
중요한 건 '''제 아무리 우선선발이든 특별전형이든 1차 시험만은 무조건 통과를 해야 무슨 기회든 주어진다'''는 점이다. 1차 시험에서 탈락하면 그 해 육군사관학교 시험은 그걸로 끝이다. 즉 '''무조건 낙방.''' 그러니까 입시준비는 1차 시험을 최우선적으로 하고 나머지를 부가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만''' 합격한다.
'''결론은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면 학업성적, 체력, 인간성에서 모두 인정받은 인재라 할 수 있다.'''

3.2.1. 화랑기초훈련


최종 합격하게 되면 고3 겨울방학기간에 임시입교 훈련(기초군사훈련)을 하게 되는데 임시입교 기간까지 완전하게 이수해야 정식으로 입교하여 신입 생도로 인정받는다. 다만 임시입교기간 도중 탈락하면 입교한 것이 아니므로 육군사관학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며 이것으로 인한 육군사관학교를 포함한 육군 장교 지원 과정의 결격사유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정식으로 입교한 이후 질병이나 성적 미달을 제외한 사유로 퇴교당하면[19] 두번 다시 어떤 과정으로도 육군 장교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20]


기초군사훈련생도(약칭 기훈생도)들은 3학년 선배 생도로 구성된 기초군사훈련 파견생도(약칭 기파생도)에 의해 지도를 받는다. 일반 병들과는 다르게 기파 생도가 기훈 생도를 지칭할 때 '야, 너' 라 부르지 않고 '귀관'으로 말한다.

2001년 화랑기초군사훈련 다큐

실제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말하는 화랑기초훈련.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인은 육사 67기 출신의 코리아세진.

3.3. 선호도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외환위기 이후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된 만큼 상위권 학생들이 대거 몰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던 육군사관학교의 컷이 예전보다 높아졌으며 2016년 드라마 태양의 후예 열풍으로 그해 경쟁률과 이듬해 경쟁률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4년 전액 국가등록금 외에 매월 50~70만원 상당의 품위유지비가 지급되기 때문에 가난하지만 성적과 체력이 우수한 응시생들이 몰려서[21] 경쟁률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임관 후에도 인적자원, 특히 장기복무 자원들 수준이 매우 낮은 육군 특성상, 육군사관학교 출신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이다.
2014년 기준으로 육사생도 1명에 대한 양성비용이 '''2억 3,000만원''' 정도 든다고 한다(출처 : 안규백 의원실).

3.4. 경쟁률


보통 2015학년도 기준 13:1~15:1(남생도 기준) 내외로 형성된다. 2016년엔 남여평균 22:1수준으로 경쟁률이 높아졌다. 2013년도에 입학하는 2012년도의 경쟁률은 27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2012학년도 입시를 기준으로 290명 선발에 6,403명이 지원했다. 이 기수에서 실제로 체력검정과 심층면접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는지 수능 만점자가 탈락했다. 기사 다른 사관학교도 마찬가지지만, 이 학교 역시 '''수능 외적인 요소로 탈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2차 탈락이다. 이는 만점자가 2차면접 자체를 보러 안 갔을 확률이 매우 높다. 수능 준비생들 중 높은 점수를 노리는 친구들은 사관학교, 경찰대학교 1차시험(국·영·수)을 예비삼아 치르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해사의 경우 1차때부터 자소서 제출하라는 이유 때문에 경쟁률이 감소했다. 관련기사
심각한 취업난과 태양의 후예의 여파 때문에 육군사관학교의 경쟁율이 31.2대 1까지 화끈하게 치솟았다.[22]
2019학년도(79기)기준 34.2:1의 경쟁률을 보이면서 다시 한번 경쟁률 최고기록을 갈아치웠다(...)뉴스
2020학년도(80기)에는 '''경쟁률이 44.4대 1'''까지 치솟았다. 육사 사상 경쟁률이 40대 1을 넘어선 것은 역대 최초이다. 여자 생도 경쟁률은 '''111.2대 1'''로 아예 3자리수까지 올라갔다. 기사
2021학년도(81기)에는 경쟁률이 26.2대 1 수준으로 폭락했다. 1차 시험 전 지원동기서 제출과 높아진 응시료가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기사

4. 교육



사관학교이면서 동시에 법정 고등교육기관이므로 졸업문학사, 이학사, 공학사 중 한 가지와 군사학 학사를 동시에 취득하며, 육군 소위임관하게 된다.
육사니까 왠지 군사학과만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으며 인문과학처, 사회과학처, 이학처, 공학처, 체육학처로 나뉘어 그 아래에 여러 학과가 존재한다. 다만 대학 치고 구성원 수가 극도로 적은데, 전 생도수가 1,000여 명밖에 안 되고 교수 및 기타 병력이 2,800여 명 존재한다. 이렇게 생도 수가 적은 탓에 일반 대학이라면 독립적으로 존재할 만한 학과들을 비슷한 학과끼리 묶어 하나의 과로 만들어 놓았다.
일반 학기에는 일반 대학에서 배우는 학과목과 동일한 과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교생이 복수전공(군사학과 + @)을 하고 있고 교양과목도 겸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빡빡하다고 한다. 일반 대학교가 학기당 평균 18학점이라면 육사는 이것보다 많다. 무도 및 체육 교양이 편성되어 있으나 승마나 국궁은 체육 과목에 포함되지 않고, 원하는 사람에 한하여 주말이나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비교적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다.
육군사관학교의 수업은 크게 교수부 수업과 체육 수업으로 나눌 수 있다.
교수부 수업은 일반 대학교와 유사한 전공수업, 교양수업과 군사학(이론)수업 등을 포함한다. 1학년의 경우 일반 대학의 학부생과 마찬가지로 문/이과로 나누어 한국사, 미·적분, 화학, Java 등의 수업을 듣는다. 2학년 때부터는 각자 전공을 선택하여 전공수업을 병행한다.
눈여겨볼만한 점은 필수과목이 핵심과목 29학점, 기초학문 과정 29학점으로 무려 58학점이라는 것(참고로 전공은 36학점). 1학년 말에 전공을 선택하며 2학년 때 전공기초과목, 3학년때 전공필수과목을 수강하는데 1개 교반에 16명 내외가 편성되어 있고, 많은 교수들이 육사 출신인 만큼 교수들의 관심도 각별하다는 점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2020년 기준 개설되어 있는 전공 과정은 다음과 같다.
  • 문학사 과정
    • 국제관계(법학, 안보)
    • 군사사
    • 군사영어
    • 군사인문
    • 리더십(심리, 경영)
    • 응용경제
    • 지역학(프랑스, 독일, 스페인, 중국, 일본, 러시아, 아랍)
    • 군대사회문화연구(융합전공)
  • 이학사 과정
    • 운영분석(수학)
    • 응용물리
    • 응용화학
    • 컴퓨터과학
    • 사이버전(융합전공)
    • 인공지능(융합전공)
  • 공학사 과정
    • 기계공학
    • 시스템공학
    • 전자공학
    • 토목공학
    • 환경공학
교수부 수업을 마친 후에는 체육 수업을 받게 된다. 체육 수업 시간에는 태권도, 검도 등 무도를 배우거나 순환식 체력단련, 육상 등 체력단련을 받는다. 이때 태권도는 무조건 초단 이상 승단하게끔 되어 있다. 하지만 사회에서 단을 이미 취득한 생도의 경우에도 1학년 과정에서 별도 분반에 편성된 후 승단심사를 다시 받아야 했으나, 현재는 태권도 이외의 체육학과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임관 최소기준은 태권도에 한해서 초단인데 만약, 4학년 때까지 태권도 초단으로 승단하지 못할 경우에는 졸업이 제한되고, 성실의무 위반으로 퇴교 조치까지 당할 수 있다. 빨간띠에서 올라가는 승단 심사가 상당히 까다롭다. 초단 전의 빨간 띠인 사람들을 레드 워리어라고 부른다. 승단 심사 탈락 이외에도 체력검정 탈락, 사격 탈락 등의 경우 외박이 통제된다.
태권도 초단 이상 취득자에 한하여 유도, 검도, 합기도 등 다른 무도도 수련할 기회가 주어진다. 사회에서 태권도를 어느 정도 수련하고 온 일부는 5단 이상을 취득하기도 한다. 매년 한두 명 정도가 나오는 편.
다른 사관학교들도 마찬가지지만 중간/기말의 정규 시험은 명예시험이라 하여 무감독 시험을 보는 전통이 있다.[23] 물론 무감독 시험이라 하여 부정행위가 횡행할 것이라 생각하면 곤란한데 사실상 함께 시험보는 모든 생도가 감독이 된다고 보면 되며, 시험 부정행위는 훈육심의에 회부되어 퇴교 사유가 된다고 한다. 시험이 끝나고 일정 시간 이내에 자수하면 퇴교까지 가진 않고 중징계 정도에 그치기도 한다. 하지만 졸업 후 진급을 생각한다면.. 명문상 규정이 아니라 실제 명예 시험 위반 행위로 징계를 받는 생도들이 수두룩하며 퇴교도 드물지 않다. 이 중에는 자수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군사학 교육은 기본적으로 일반군사학, 전투, 전술 대충 이런 식으로 나누어서 전 생도가 배우게 되며 실기 및 실제 훈련은 각 군사훈련 기간(일반 대학의 방학 기간)중에 거치게 된다. 2학년때 공수훈련을 받는데, 육사와 3사에서 공수와 유격훈련 이수는 졸업 요건 중 하나이므로 이수하지 못하면 퇴교 조치. 육사 생도에게 공수훈련을 시키는 이유는 엘리트 장교이기 이전에 만능형 군인으로 육성하기 위해서이다. 육사 출신은 어느 부대(심지어는 특전사)에 떨궈놔도 임무 수행이 가능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것이 육사의 지침이다. 따라서 야전에서 보게 되는 소위가 특공부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공수마크를 달고 있다면 100% 육사 아니면 3사 출신.
졸업시 취득하는 학점은 2013년 기준 197학점. 필수과목(핵심과목+기초학문)에 선택과목, 전공과목, 군사학, 체육 등 151학점에 영어집중(2학점), 군사훈련(24학점), 훈육(20학점) 등이 더해져 이런 말도 안되는 수의 학점을 4년간 취득하게 되는 것이다.[24][25] 그 외에도 체력 특급, 수영 200m 완주, 운전면허태권도 초단 취득 및 공수/유격훈련 이수가 졸업 요건이다. PCT와 토익, 한자능력시험은 졸업조건에서 2015년 빠지게 되었다. 졸업시에는 전술한 전공에 따라 문학사/이학사/공학사에 군사학사가 더해진 복수 학위가 수여된다.

4.1. 생도들의 생활


대한민국 건국 초창기인 50~60년대에는 절대빈곤으로 인해 나라에서 생계를 보장해주는 직업군인, 공무원의 인기가 상당히 높았기에 사관학교도 마찬가지였고[26], 이후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유신사무관제도의 시행으로 80년대까지는 그 인기가 유지되었지만[27], 1988년 이후 군사정권이 물러가고 거품경제 시대로 접어들면서 3D 직종 기피 풍조로 인해 1994학년도 입시에서는 경쟁률이 한 자리대로 떨어지기까지 했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 이후 취업난으로 다시 인기가 치솟았지만.
그래도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비하면 입결이 다소 낮으며[28] 추합권까지 생각하면 인서울 중상위권 수준이다.[29] 다만 합격자들의 성적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굳이 장기복무가 아니더라도 공무원공기업대기업에서는 최종학력에 육군사관학교 졸업이라고 써 있으면 대우받는다.[30] 실제로 최근(?) 5년차 전역을 한 인원들 중 80% 이상이 공무원,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전력공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LG전자, 포스코 등 대기업, 시중은행에 입사했다.[31][32] 이것도 옛날 말이고 공기업은 블라인드 채용으로 바뀐지 오래다.
공부도 공부지만, 절대적으로 몸이 튼튼해야 '''4년간의 군 생활'''을 버틸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생도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만, 실제로 이 4년 학교생활은 군생활에 포함된다. 졸업 후에는 같은 시기에 임관한 타 출신 장교와는 달리, 학교생활이 군생활로 여겨져서 호봉이 더 높고 이에 따라 급여도 더 많이 받는다. 육사는 소위 3호봉, 3사는 2호봉이며, 학군/학사 출신은 1호봉이다. (단, 학군은 임관 6개월 후 2호봉으로 승급하며, 병/부사관 근무 후 학군/학사 등으로 재입대한 사람은 복무연한에 따라 1~2호봉이 추가된다.)
사실 사관생도는 군인은 군인인데 아주 군인이라기엔 뭐하고 그렇다고 민간인도 아닌 굉장히 미묘한 위치. 그래서 부사관들, 군무원들, 병들과도 상호 존대하며 상호간 경례도 하지 않는다. 다만 교육 목적상 경례를 생략하는 것이며, 조교나 부사관 교관은 생도를 교육함에 있어 경어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생도들이 편제되는 생도대는 1개 여단 예하의 2개 대대가 각 4개 중대로 구성된다. 1개 중대는 4개 소대로, 또 1개 소대는 4개 분대로 나누어진다. 생도들은 장교가 되었을 시의 각 보직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리더십을 함양하기 위해 지휘실습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4학년 생도는 지휘관, 지휘자, 연대·대대·중대본부 참모직을 맡아 수행하게 된다. 3학년 생도는 기존에 보좌관 생도 (행정, 정작, 보급, 교훈) 또는 부분대장 생도 직책 중에서 택하였으나, 보좌관 생도 직책이 2018년부로 폐지됨에 따라 대다수의 인원이 부분대장 생도를 맡게 되었다. 또한 8개의 중대의 기수생도 직책을 3학년들이 맡게 되었으며, 소수에 한하여 3학년이 분대장 생도를 맡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보좌관 생도는 각자 맡은 일에 대해 실질적으로 중대가 돌아가게 하는 실무자들이며, 행정 보좌관을 필두로 하여 1학년 및 2학년들의 군기를 잡는 역할을 했'''었'''다.[33] 하급생도의 군기 함양은 행정적 처벌인 벌점을 이용하거나, 고함(사자후)과 고압적 태도 를 통한 공포를 이용하거나 완전군장 뜀걸음 등의 얼차려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때문에 중대의 보좌관 생도들은 언제나 하급 생도의 공포의 대상이 된다.
2학년을 위한 지휘근무는 중대급에 1개 마련되어 있'''었'''다. 행사 시 중대의 기를 들고 있는 기수생도이다.[34] 엄격한 군기를 상징하는 위엄있는 직책이고, 2학년의 유일한 지휘근무인 관계로 경쟁률이 높았으나 현재는 2학년 생도의 지휘근무가 아닌 3학년 생도의 지휘근무로 바뀌었다.
2018년에 이르러, 생도대 문화혁신의 일환으로 보좌관 생도 직책이 폐지되고 통칭 9호실 또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기수생도직이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이관되고, 기존과 같은 군기 담당의 이미지를 벗게 되었다. 중대 내 군기확립은 3학년 행정보좌관생도가 아닌 4학년 행정 담당관생도를 필두로 한 중대본부 소속 생도의 몫으로 일원화되었다. 이로써 2학년의 지휘근무는 사라졌고, 3학년 역시 부분대장생도와 기수생도 지휘근무만 존속하게 되었다. 이는 군기담당 캐릭터를 하나씩 삭제해나감과 동시에 상급생도에 의한 얼차려와 고압적 지도를 지양하고, 대신 행정적 처벌(벌점을 통한 징벌)을 강화함으로써 중대 내 군기를 확립하려는 수뇌부의 의도가 담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과시간은 다음과 같다.
오전 6시 기상
오전 6시~8시 아침점호, 아침식사
오전 8시~오후 3시 일반학 수업
오후 3시 20분~5시 체육학 수업[35]
오후 5시~11시 개인자유시간[36]
오후 11시 취침
생도는 1인당 1대씩 노트북이 지급된다(이는 졸업 시 반납 대상이다). 태블릿 PC가 73기부터 지급되었다.(이전 기수는 무조건 노트북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트북과 태블릿 PC는 학교 밖으로 가져가지 못한다. 학교 내에서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데 cert로 인하여 교육 목적이 아닌 사이트는 접근이 제한된다.[37] 이 외에도 피복 및 장구류, 서적, 학용품, 일용품 등이 모두 보급으로 지원되며[38] 육사 내 모든 편의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 피복(정복, 예복, 근무복 등)은 임관 후 개인이 집에 가져가게 된다.
외출 및 외박[39]은 주말에 실시하나 주말에 짤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월 1번 정도는 행사준비/검열준비/추모기간/전적지 답사 등의 이유로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참고로 1학년 첫 임시입교[40]한 74기의 경우 1.27~8.8까지 특박/외박/외출 자체가 아예 통제되었다. 주석에 설명한 월1회 외박규정은 1학년 2학기부터 적용된다. 여름/겨울휴가는 3~4주간 실시.
핸드폰은 거의 자유롭게 사용 가능하다. 육사에는 술, 담배, 결혼을 금하는 3금이 있는데 근래 들어 술은 외박시 정복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허용하는 걸로 방침이 바뀌었지만 담배는 교내외에서 무조건 금지다. 그리고 남녀 생도 간의 연애는 1학년 때는 제한되며 2학년부터 훈육관에게 보고한 후 교제가 가능하다. 물론 타 학교 여학생과의 교제는 자유롭다. [41] 실제로 이를 어겨서 퇴교당하는 생도들이 꽤 있다. 또한 남녀 생도 간의 관계로 임신하게 되는 경우 두 생도 모두 퇴교 조치된다.
생도 시절에는 생도간 상호평가를 주기적으로 하게 되어 있다. 이 상호평가를 할 때에 서술식으로 그 생도가 어떠했는지 쓰는 항목이 있는데, 익명성을 이용해 아주 직설적으로 쓰는 것이 대부분이라서 자신의 인간관계가 어떠했는지 가슴시린 피드백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모든 장교 양성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실시하는데, 육해공군 사관학교 생도의 경우 상호평가 기준이 매우 엄격하다. 좋지 않은 쪽으로 몰표를 받으면 바로 퇴교.
육군사관생도로 입교한 뒤 소위로 임관할때까지 총 540번의 시험을 치르게 된다. 평균 한 학년당 135번의 다양한 시험을 치르는 셈이라서 긴장감이 장난이 아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중간고사 + 기말고사 16회 * 학기 당 평균 7과목 = 112회
  • 4년간 약 56과목 * 과목 당 시험 및 과제 평균 6회 = 336회
  • 하기군사훈련 30과목 * 과목 당 평균 3회 = 90회
성적이 영 좋지 않으면 퇴교심의 수준(평점평균 2.0/4.3 미만)까지 추락하지 않는 한 징계선에서 끝나지만 '''부정행위는 무조건 퇴교'''다. 아무리 사소해도 얄짤없다.
부정행위의 기준이 엄청나서 완전히 고립된 상태로 혼자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동기들끼리 시험 내용을 공유하는 것도 부정행위로 간주하여 퇴교 조치된다.
2014년 기준 학사경고제도는 없으며[42] 다만, 매 과목당 성적이 60점 미만일 시 하기/동계 휴가를 통제하고[43] 학교 내에서 다시 학점을 이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재수강 제도가 있다. 학기당 3과목 이상 F를 맞거나 재수강을 1과목 이상 불합격한 경우, 연간 재수강 과목이 3과목 이상인 경우는 '''자동 퇴교 대상'''이 되며 매 학년 말 진학 및 졸업 기준[44]에 미달하거나 하기군사훈련 성적 60% 미만자, 졸업시험 재시험 불합격자는 퇴교 심의에 올라가게 된다. 이래서 생도로 있는 기간은 단 한 순간도 학업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원칙상 휴학은 불가능하며 제적당할 경우 재입학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유일하게 휴학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6개월 이상 입원할 정도로 몸이 아픈 경우이다. 이 경우 아예 1년 단위로 휴학이 되며 복학을 하면 해당 후배 기수로 기수가 수정된다. 그러니까 육사 생도는 휴학을 하면 후배와 동기가 되고 동기는 본인의 선배가 된다. 학번 그런거 조를 깐다. 다만 국외 위탁교육으로 인한 휴학은 이렇게 밀리지 않고 자신의 원래 기수를 그대로 인정받는다. 생도의 신분으로 국외 위탁교육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이후에 어학능력(40%) 및 훈육점수, 체력, 성적 등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선발하며 거의 전체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받아야 선발된다. 국외 위탁생으로 선발된 생도는 미국 웨스트포인트(4년에 3명), 독일, 프랑스 육사(이상 매년 1명), 일본 방위대학(2년에 1명), 터키 육사, 스페인 육사(이상 3년에 1명) 등에 재학하게 되며[45] 이들 외국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는 다시 복학하여 중위로 임관하게 된다. 재학 기간 때문에 다른 동기들보다 늦게 임관하는 경우도 있다.
국외 위탁교육을 받고 임관한 생도는 진급이 상당히 빠르며 심지어는 소위 → 대장까지 가는 동안 단 한번의 누락도 없이 진급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국방부장관을 차례로 지낸 김태영 제42대 국방장관과, 김관진 제43대 국방장관이다. 이들 두 사람은 육사 1기수 차이로 각각 2학년 때 독일 육사에 위탁생으로 3년간 파견되어 졸업까지 하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소위 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독일 육사가 우리나라 육사처럼 한 곳에 있는 형태가 아니고 지역별로 명문 사관학교들이 몇몇 있었던지라, 김태영 장관은 함부르크(북부 독일)에서, 김관진 장관은 뮌헨(남부 독일) 등 같은 독일이긴 해도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별개의 지역에서 각각 수학을 하였기에 이들이 위탁생 시절 한솥밥을 먹은 사이까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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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의 임관반지
육사 출신 장교들은 그해 임관하는 장교 중 가장 빠른 군번으로 임관하며,[46] 졸업을 기념하여 받는 임관반지의 보석은 빨간색 '''루비'''이다.
또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는 장교 전원은 기본 10년의 의무복무 기간이 부여되며 졸업과 동시에 복무구분이 장기복무가 된다. 다만 5년차에 전역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의무복무를 5년으로 보는 이들도 있는데, 엄연히 배려차원에서 기회를 주는 것이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보면 안 된다. 5년차 전역시 기업에서 장교전역자 특채를 하기 때문에 취업을 하거나 공무원을 하거나 아예 수능을 다시 보는 경우도 있다.
육사는 타 출신들에 비해 의무복무가 10년으로 상당히 긴 편인데, 이러한 이유는 투입된 국가 비용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후술할 내용이지만 육사의 1인당 생도 양성비용으로 2억 1천만 원 정도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대체로 육군사관학교에 최초로 입학하는 자원의 70~85%가 소위로 임관한다. 2012년 임관한 68기가 대략 50년 만에 200명 안쪽인 198명으로 임관하였는데, 최초 입학자는 230명이었다.

4.2. 육사 구호(무락카/Mul-Aca)


무락카(Mul-Aca)라고 하는 육사 고유의 구호가 있으며, 육사 11기에서 만들었다. 육사 출신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 전두환, 노태우가 바로 11기인데 그 기수에서 만들 었다. 선진강군 24시라는 다큐멘터리 및 육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11기 출신 당시 초대 응원단장이었던 이동희 장군(육군사관학교 교수부장, 준장)가 만든 구호라고 한다.
육사 11기 출신이라고는 하나 박정희 대통령부터 노태우 대통령에 이르기 까지의 군부독재 혹은 군부 출신 대통령과는 별다른 연이 없었고 구호 자체도 중립적인 까닭에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을 포함한 6공화국 정권에서도 자유롭게 사용되고 있다. COVID-19로 지친 국민을 응원하는 육사생도
라틴어, 이탈리아어, 영어[47], 우리 말 고유어의 혼합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는 전통으로 남아서 지금도 행사에서 계속 제창되고 있다.
육사 홈페이지에는 '필승의 힘찬 결의와 함께 아량과 포용력을 강조함으로써 화랑정신과 기사도 정신의 핵심가치를 골고루 담고 있다'고 하며 연세대의 '아카라카'나 고려대의 '입실렌티' 같은 '''응원구호'''로 소개하고 있다.
구호는 "'''무락 Veni Vidi Vici 억센MA Vital Vigor 카슈카라 Leben 사자 호랑나 카레스 카레스 육사 육사'''"이며 한국어로만 쓰면 "'''무락 베니 비디 비키 억쎈 엠에이 바이터러 비거러 카슈까라 레벤 사자 호랑나 카레스 카레스 육사 육사'''[48]"이며 번역하면 "육사여!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49] 억세고 강한 육사여![50] 힘차고 용맹하게 달려가서 묵사발을 만들어라! [51] 그러나 사자나 호랑이처럼 항복하는 자는 너그럽게 살려주겠노라![52] 나의 사랑 육사여! 나의 사랑 육사여!.[53]"[54]이다.육사 홈페이지 참조
솔직히 처음 들어본 사람들은 마지막의 '카레스 카레스 육사 육사'말고는 뭔말인지 알아먹기 어렵다...

5. 퇴교


사관학교는 자퇴를 인정하지 않는다. 즉, 자의이든 타의이든 '퇴교'로 처리되는 것. 해당 퇴교자는 퇴교심의위원회[55]의 심의를 거친 후 퇴교처리 된다. 이 때 입교 전 신분으로 복귀되는 것이 원칙이나 1학년 하기군사훈련을 수료 후 퇴교하는 자에 한하여 민간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입대를 할 경우는 징병검사를 거치지 않고 현역병으로 입대하거나 부사관으로 임관할 수 있으며, 병으로 입대하게 되면 기초군사훈련이 면제되고 퇴교 전 군사훈련을 받은 기간이 복무기간에 산입되어 실제 복무기간은 현역병에 비해 짧아지게 된다. 또 병으로 입대 시 1학년은 일병, 2학년 부터는 상병으로 입대하게 된다. 군사훈련 기간은 학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여름에 거진 6~7주 동안 받으며 따라서 만약 3학년 하기군사훈련을 수료한 자가 육사 퇴교 시에는 1, 2, 3학년 하기훈련 기간을 차감한 약 16개월을 복무하면 된다. 그러니까 3학년 하기군사훈련을 수료한 자가 퇴교하여 육군 병으로 갔을 때는 '''상병 6개월+병장 10개월''' 복무해야 한다. 전입 때 족보가 꼬이는 건 덤.
물론 여기까지는 남자 퇴교자 얘기고, 여자 퇴교자는 그런 거 없다. 여자들은 병역의무 자체를 하질 않으므로. 퇴교 후 곧바로 입대할 때의 계급 구분을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일병
상병
상병 또는 하사
퇴교 후 즉시 입대하지 않으면 일단 집으로 돌아간 뒤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가서 영장을 받고 재입대 하게 되며, 이 경우는 기초군사훈련을 제외한 현역병으로 입대하게 되며, 재학기간에 받은 군사훈련 기간을 제한 기간만큼 복무하게 된다. 다만 3학년 하기군사훈련 이후 퇴교하여 바로 입대하게 되면 생도에서 곧바로 육군 보병 하사로 임관하게 되며 복무기간 단축 없이 병 복무기간과 동일한 1년 6개월을 복무하게 된다. 병사로 짧게 할 것인지, 아니면 정상적으로 하되 부사관으로 돈을 모을지는 본인의 선택(이었다. 후술할 내용) 워낙 복잡하고 전 육군에 전례를 찾기 힘든 규정이다보니 육사 출신 부사관이라고 하면 그 자신이 근무하는 부대 전체에 소문이 나게 된다. 처음 발령난 초임 하사인데 2~3년 된 낡은 전투복을 입고 공수윙을 부착하고 오다보니 바로 티가 난다는 듯. 특히 1990년대에 육사출신 특전부사관이 하사로 임관했을 때는 특전사령부 전체에 소문나기도 했다.
3학년 또는 4학년 퇴교자가 부사관으로 입대할 때의 병적 구분은 "단기 하사"가 된다.[56] 이 때 "단기"는 짧게 군 생활을 한다고 해서 사전적 개념으로 쓰는 "단기" 하사가 아니라, 전문 하사 또는 유급 지원병과 구분하기 위한 공식 명칭 "단기 하사"이다. 따라서 자력표에도 임관 구분이 일반 하사들과 마찬가지로 "단기"로 기재되며, 복무 연장 및 장기 지원 또한 자유롭게 가능하다.[57] 4년 복무하는 일반 하사들과 완전히 동일한 봉급을 받고 군 생활을 하며, 유급 지원병과 달리 초과 근무 수당도 수령할 수 있고 당직 근무에도 포함된다. 위에 서술된 "부사관으로 제대로 급여 받고 중사 진급 및 장기 지원"은 육사 퇴교 시 특별히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라, 4년짜리 단기 하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 남자라면 모두 지원 가능하다. 병사로 지원 시의 군 생활은 그 위에 서술된 바와 같다. 그러나 육사를 나온 퇴교자가 과연 장교가 아닌 부사관으로서의 신분에 만족하며 계속 군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며 선택할 수 있다면 대부분이 4년의 부사관 생활이 아닌 1년 6개월의 하사 생활을 선택할 것은 자명하다.
2013년 5월 경 남자상급생도가 여자하급생도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터지고, 학교 위상이 추락하면서 많은 이들이 퇴교를 신청하였다. 생도생활 전반이 더 통제적·강압적으로 변화하고 외적으로는 이미지 추락, 내적으로는 생도대와 교수부 장교들의 힐난과 연좌제 시행[58]이 겹치면서 많은 생도들이 퇴교를 희망하게 된 것. 기존의 훈육관, 훈육장교들까지 모조리 교체되고 학교장까지 교체되면서 생도들이 목격한 것은 군생활을 아무리 개인적으로 잘 해 내어도, 부하 한 명의 행동에 보직 해임된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퇴교를 희망한 생도는 2013년 5월부터 시작하여 9월까지 4학년 1명, 3학년 8명, 2학년 30여 명, 1학년 66여 명[59]이고 이렇게 짧은 기간에 대거 퇴교를 신청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그래서 학교 당국은 1, 2학년의 탈주는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재학 기간이 비교적 된 3학년과 4학년의 이탈을 막기 위해 앞서 언급했던 '''"3학년과 4학년은 퇴교 시 부사관으로 입대할 수 있다'''"라는 규정의 해석에 있어서 병/부사관 선택의 권한이 생도가 아닌 학교에게 있으므로, 더 이상의 퇴교자는 모두 병으로 보내겠다는 엄포를 놓게 된다.
즉, 퇴교 신청자들을 괘씸죄 명목(학교 평판이 떨어지자 나가려고 한다는 것)과 더 이상의 인재이탈 방지 목적으로 모두 병으로 보내버리려고 한 것. 이전까지는 이런 식의 대거 퇴교신청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할 수 있다'''는 말은 생도가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학교 당국도, 퇴교자 본인도 해석하였고, 퇴교 당사자 3(혹은 4)학년은 언제나 부사관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언급했던 2013년 5월~9월 경의 대거 퇴교 사건을 계기로 학교 당국의 판단에 따라 간부의 자질이 없으면 병으로 보낸다는 해석을 학교 측이 들고 나온 것이다.[60]
하지만 학교 당국의 이 같은 해석은 입법취지나 일반적 법 해석을 감안하고, 3학년 또는 4학년이 장교가 되기 위한 수련 생활을 3년 혹은 그 이상을 했음을 생각해 보았을 때(비례의 원칙), 그리고 퇴교 후 3학년 혹은 4학년이 병으로 갈 경우 해당 퇴교자는 3년이나 4년을 인생에서 허비한 것이 된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명백한 권력 남용이다. 만약 생도를 퇴교 시킨다면 사관학교 당국은 해당 퇴교자가 간부로 입대할 자질이 있는지의 여부를 훈육 성적, 동기 평가 등의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공정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객관적 지표 없이 '''괘씸죄 명목'''이나, 더 이상의 인재이탈을 막는다는 명목의 '''일벌백계'''적 성격의 퇴교자 병사 입대 조치는 엄연한 권력 남용이다. 만약 공정하지 못한 심사로 병으로 가게 되는 이가 있다면, 법률적 구제 장치를 적극 활용해서 권리를 스스로 보호해야 할 것이다.

6. 편제


  • 학교본부
학교장을 포함한 감찰, 법무, 연구, 정책, 생도선발 등 학교운영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다.
  • 행정부
교무기획, 계획운영, 인사행정 등의 학교 내부의 주요 행정업무를 맡는 부서.
  • 교수부
교수부장 산하의 교학처, 인문과학처, 사회과학처, 이학처, 공학처 등이 있다.
  • 생도여단
생도들이 소속된 곳. 생도여단장 산하로 여단본부 및 생도 1중대 ~ 생도 8중대가 있다.

7. 출신 인물


장관, 정치인 등을 꽤 많이 배출했다. 그리고 가장 많은 대통령(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을 배출해낸 곳이기도 하다.[61]
군사정권이 종식된 후에도 흐름이 이어졌다. 군부 정권 종식 후에도 육사를 졸업하고 반평생을 군에서 보내다 보니, 보고 들은 것도 많아 장성급 정도 되어서 전역하면 좋든 싫든 해당분야에서는 권위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안정적인 정치인 인력풀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이 경우는 사실상 장군으로 전역한 경우로 한정된다. 참고로 요즘은 육사 중에서 장군으로 진급하는 사람들은 10%~20%를 밑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학군이나 3사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비대했던 군 조직을 재무 관료들이 점점 득세하면서 군 예산을 축소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출산율 저하로 징집 인구도 줄어드는 추세에다가 군대도 타 국가의 군에 대응하기 위해 현대화가 시작되면서 첨단과학과 결합한 기계화, 전산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T.O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인데 2019년에는 제1야전군제3야전군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되면서 대장 TO도 1개가 줄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소장 이상으로 전역할 경우, 각 정당에서 공천이 들어오는데, 주로 비례대표로 들어간다. 여기에 응해서 비례대표에 출마한 뒤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면 각 정당에서 국방자문위원으로 활약한다. 전역했다고 끝이 아니다.

7.1. 학교장



자세한 내용은 육군사관학교장 문서를 참고 하십시오.
  • 정일권 (1947)
  • 송호성 (1947)
  • 김백일 (1947~1948)
  • 최덕신 (1948~1949)
  • 김홍일 (1949~1950)
  • 이준식 (1950)
  • 안춘생 (1951~1952)
  • 김종오 (1952~1954)
  • 박병권 (1954~1955)
  • 장창국 (1955~1956)
  • 백남권 (1956~1957)
  • 이한림 (1957~1960)
  • 강영훈 (1960~1961)
  • 김용배 (1961~1962)
  • 박중윤 (1962~1964)
  • 정래혁 (1964~1966)
  • 이세호 (1966~1967)
  • 김희덕 중장 (1967~1969)
  • 심흥선 중장 (1969~1970)
  • 최세인 중장 (1970~1972)
  • 최우근 중장 (1972~1975)
  • 정승화 중장 (1975~1977)
  • 백석주 중장 (1977~1979)
  • 차규헌 중장 (1979~1980)
  • 김복동 중장 (1980~1982)
  • 최연식 중장 (1982)
  • 황인수 중장 (1982~1985)
  • 지일한 중장 (1985~1986)
  • 최문규 중장 (1986~1987)
  • 장준익 중장 (1987~1988)
  • 민병돈 중장 (1988~1989)
  • 이필섭 중장 (1989~1990)
  • 임인조 중장 (1990~1991)
  • 김정헌 중장 (1991~1993)
  • 장성 중장 (1993~1994)
  • 김정남 중장 (1994~1995)
  • 장창규 중장 (1995~1997)
  • 한승의 중장 (1997~1998)
  • 오남영 중장 (1998~2001)
  • 박준근 중장 (2001~2003)
  • 김충배 중장 (2003~2004)
  • 김선홍 중장 (2004~2006)
  • 임충빈 중장 (2006~2008)
  • 김현석 중장 (2008~2009)
  • 정승조 중장 (2009)
  • 이봉원 중장 (2009~2011)

7.2. 주요동문


육군사관학교/출신 인물 항목으로.

7.3. 가상 인물


  • 송곳(웹툰) - 이수인(송곳)
  • 신고합니다 - 차성현
  • 작전명 충무 - 이기석
  • 태양의 후예 - 유시진, 윤명주
  • 푸른거탑 - 홍석천
  • 슬기로운 감빵생활 - 유정우
  • 아저씨(영화) - 차태식 - 해당 스샷 보기.
  • 슬기로운 의사생활 - 이익순, 안치홍
  • 더킹 투하츠 - 이재강[62], 은시경[63]

8. 기타



8.1. 학교 방문


2008년 10월 1일부터 모든 사람에게 학교를 무료개방하였다(이전까지는 예약 접수를 통한 유료 관광). 물론 그렇다고 아무 때나 육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2주일 전에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방문 가능 요일은 화~일요일. 이것과 별개로 생도 및 병사들의 가족 면회와 전역병 부대 방문은 주말 및 공휴일에 한해서 가능하며, 이 경우는 사전 예약이 필요 없다. 이를 악용해서 생도나 병사 가족이 주중에 관광 목적으로 부대에 방문, 자식을 만나러 갈 수도 있는데, 적발되면 해당 생도나 병사가 심한 징계를 받을 수도 있으므로 하지 말자.[64]
일반인이 군부대에 들어갈 수 있는 매우 드문 경우로, 생도 및 현역 군인을 볼 수 있다. 운 좋으면 성판 차량과 그를 향한 장군 경례를 생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간부는 잘 안돌아 다니고 생도들은 주중에는 수업중이다. 일반인이 생도들을 제대로 볼 수 있을 때는 화랑의식을 할 때이므로, 생도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면 금요일 중 화랑의식을 하는 날에 맞춰서 부대 관람을 신청하면 된다. 병사들은 작업하는 모습만 볼 수 있으므로 큰 기대는 하지 말 것. 애초에 총 들고 뭘 하라고 있는 병사들이 아닌 만큼 뉴스에 나오는 전방 병사들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홍수나 폭설 때 대민지원 나온 바로 그 모습과 가장 비슷할 듯
친인척이나 지인이 이 곳에서 결혼식을 할 경우 하객으로 방문이 가능하다. 학교 내부에 있는 육사회관과 생도회관에서 주말에 결혼식을 진행한다.[65] 이곳에서 결혼식을 할수 있는 사람은 육사 출신 장교, 학교 근무자 및 자녀(친인척 4촌이내) 또는 기타 육군에 근무하는 현역 및 군무원, 예비역(19년 6개월 이상 근속)의 자녀.

8.2. 육사교수


교수는 전임직, 순환직, 교수사관, 군무원 교수의 4가지 부류가 있다. 전임직 교수는 육사 출신 장교 중에서 별도의 선발 전형을 통해 교수 자원으로 분류한 뒤, 위탁교육으로 학위를 취득하여 후배 생도들을 가르치게 된다. 석사학위를 받고 나서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몇 년간 강사 내지 전임강사 신분으로 생도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는 군생활을 마칠 때까지 육사의 전임 교수로 근무한다. 순환직 교수는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장교들 중에서 선발하여 순환 보직의 하나로 교수직을 맡는 경우를 말한다. 교수 자원이 아니기 때문에 근무 기간이 끝나면 대부분 야전으로 돌아간다. 교수사관은 민간 대학 석사학위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을 별도 선발하여 3년간 교수로서 복무하는 장교들이다. 소위로 임관하여 중위로 전역하며, 대개 2년차부터는 전임강사가 된다. 인문사회계 대학원생들이 노리는 가장 큰 병역 혜택이자 최고의 엘리트 코스로 취급된다. 다만 전공별로 사실상 3년에 한 번 TO가 나고, 그 TO도 뽑는다는 보장이 없다. 2011년 7월부터는 민간인 교수도 군무원 대우로 임용하기 시작했다. 기사.
교수들은 특성상 장군이 될 기회가 드물어 대부분 대령으로 군생활을 마친다. 대신 다른 장교들과 달리 근속 정년이 없고 연령 정년이 '''만 60세'''로 일반 장교에 비해 길다(일반적인 대령의 연령 정년은 만 56세이고 근속 정년은 35년이다). 이와 관련해 육군사관학교에서 발간한 「교수부 20년사」에는 라. 신분보장, (1) 정년제도 라는 제목 하에 군인사법 제8조, 다시 말해 군 교수의 정년을 왜 60세로 규정하였는지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62년 군인사법이 제정, 공포됨에 따라 사관학교의 일반학 교관들도 일반병과 장교들과 동일한 조건하에서 동법의 적용을 받게 되어 ...아직도 젊은 40대의 교수가 연령 정년, 근속 정년, 계급 정년에 저촉되어 예비역 편입 또는 퇴역하게 되어 학교로서는 성숙기에 있는 교수를 상실케 되고... 불안한 상태에서 퇴역 후의 생활을 위하여 노력하게 되어 교육에 대한 성의가 결여되는 폐단을 초래하게 되었다... 따라서 교수부에서는 교육공무원법의 교수 직위에 구애됨이 없이 연령만을 표준하여 65세를 교수의 정년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참작하고 군인최고 정년연령을 60세로 제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사관학교 교수의 정년을 군인과 교수라는 이중적 신분의 입장에서 계급 정년 및 근속 연령의 적용을 배제하고 연령 정년만을 60세로 할 것을 건의하였다. 결국 사관학교 교수요원은 연령 정년을 60세로 하며 계급 정년 및 근속 정년을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3항이 1971.1.22. 법 제2295호로 신설되게 되었다.(1962.1.20.)”

전술된 바와 같이 군 교수의 연령 정년이 왜 60세가 되었는지 명확하게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요컨대 군 교수의 정년 보장은 사관학교 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교육자인 교수들의 신분을 보장하고 또 한편 군인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국립대학의 교수보다는 정년을 단축하여 60세로 규정한 것이다. (육군사관학교,「교수부 20년사」, 1973, 85-86면)
이로 인해 일반 부대에선 상상할 없는 높은 기수의 대령 교수들이 엄청나게 많다. 학교장[66]이 다과회 등으로 교수들을 초청했는데, 4~6년 선배[67]인 대령 교수들은 귀찮다고 안가는 경우가[68] 있는가 하면 신년 행사 등으로 전 장병과 생도들이 모일 때, 뒷열의 대령 교수들은 흐느적거리며 앉아있는데 앞열의 생도대장 등 준장[69]들은 빳빳하게 각을 잡고 있는 희한한 광경도 볼 수 있다. 겨울에 눈이 내려 제설 작전이 발동되면 나와서 후배 영관들과 눈싸움을 즐기기도 하는 거의 자유로운 영혼 수준... 단, 근속 정년이 없는 대신 중령은 51~52세, 대령은 54~55세 사이에 각각 재임용심사를 받아야 하며 재임용 탈락자는 일반 장교와 같은 정년을 적용하므로 연구실적 등을 열심히 쌓아두지 않으면 도태된다. 또한 사관학교 교수들은 일반 장교들보다 상위 계급 진급이 소령의 경우 1년, 중령은 2년, 대령은 평균 5-6년이 늦다. 교수직에서의 장성은 딱 한 자리 있는데, 교수들 전체를 대표하는 교수부장(준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수부장은 임기가 끝나면 정년 보장 없이 전역해야 하기 때문에 교수들이 그다지 원하지 않는…정도까진 아니고, 군인은 군인이니 별에 대한 로망이 있고 장성으로 전역하면 대우도 달라지며 마지막 2년이라고 해도 교수부의 정점에 올라설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내심 원하는 편이다. 특히 퇴역 후 연금 면에서 영(領)과 장(將)의 차이는 넘사벽이다.[70] 딱히 계급 및 명예의 차이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차이도 존재하는 것이다. 보통 2년 주기로 교체되므로 짝수 해 연말에 교수부장이 누가 되느냐는 교수부 초유의 관심사가 되며 발표 당일 수많은 영욕과 희비가 엇갈린다.
또 같은 기수끼리 교수가 된 경우에는 계급을 떠나서 친하게 지내는 일이 빈번하다. 실제로 동기인 중령 교수와 대령 교수가 커피 한 잔 하던 중, 대령 교수가 생도에게 자네도 스타 좋아하냐고 묻자 중령 교수가 대령 교수에게 "네가 스타를 알긴 아냐"라고 면박을 주는 장면에서 생도들은 얼음이 됐다는 일화. 그 밖에도 중령인 교수와 준장인 생도대장이 동기나 친한 1~2년 선후배일 경우 계급을 뛰어넘은 잡담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야전 부대에서도 이렇게 되는데 대대장과 연대장이 같은 출신 동기일 경우 상호반말을 까며 잡담을 한다.

8.3. 육사 출신 장교


언제나 그렇듯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경향성을 일률화시켜서 말하기 힘들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고급 군사 교육을 이수한 엘리트들답게 능력이 뛰어나다는 인식이 있다. 반면,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군사독재시대의 뿌리 깊은 악습과 부패에 물든 이들이라는 평판도 있다. 게다가 사관학교 출신 장교라면 부정을 저질러도 군법대로 처리가 안 되고 솜방망이 처벌만 받는다는 인식이 있다. 이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학벌이 뒷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부정부패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전두환노태우가 있다.
그래도 사관학교 출신이면 평균적인 능력치는 다른 학군장교학사장교들보다 높다는 평이 많다. 이는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은 다른 장교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지휘실습' 능력을 생도 4년 간 체득하기 때문이다.[71] 이런 교육 경험 덕분에 구령 조정이나 인솔, 소대원 리더십 등에서 상당히 뛰어나다. 물론 작전 계획이나 임무 수행과 같은 업무적인 면에서는 소위 수준에서는 오십보백보이다. 오히려 명문대 출신의 비사관학교 장교들이라면 사관학교보다 더 뛰어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전문적인 군사 교육 기관에서 4년이나 학습하고 나오는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최소한의 능력만을 양성하여 임관하는 타 장교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뛰어날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기실 해당 장교의 하급자(특히 병사) 입장에서 사관학교 출신 장교의 가장 좋은 점은 군대에 대해 잘 알면서 쓸데없는 일도 잘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군인연금 받을 수 있는 소령까지 95% 진급하는데'''[72] 무리하게 안 해도 될 일을 시키거나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보장이 어느 정도 되어있고 심적으로도 안정되어 있다보니 부하들에게 나름 너그러운 편이다. 부하들의 복지혜택을 보장해주는 한편, 얼차려나 가혹행위도 용납하지 않는 편이고, 탐욕이 지나친 장교만 아니라면 의외로 군납비리와 성폭행에서도 깨끗한 장교가 많다. 이들은 ROTC와는 달리 이것이 평생 직장이기 때문에 자신이 관리해야하는 병들은 물론이고 언젠가 다시 보게 될 수 있는 간부들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반면 원리원칙에 매우 충실하여 모든 일을 FM으로 처리하려는 육사 출신 소위(소대장)가 보편적인 인식이다. 육사 출신 장교가 업무를 섬세하고 꼼꼼하게 해결하려는 경향이 지나치면 극심한 완벽주의자가 된다. 자기가 전역을 앞둔 말년(중위/하사/병장) 시절에 이런 소위를 소대장으로 받으면 군생활이 꼬인 것이다. 왜냐하면 정작 군이라는 환경에서의 업무역량과 상황 파악능력은 하사/이등병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소위를 벗어나 중대장급까지 가더라도 묘하게 이상한 본인들만의 기준으로 주변의 모든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경우도 허다하며, 더군다나 이런 인원은 대대장 이후까지 가서는 부하들을 엄청나게 고통스럽게 만든다. 게다가 쓸데없는 엘리트 의식까지 겸하며 자존심이 매우 강한 경우는 그야말로 최악. 물론 지휘관들 입장에서도 이런 장교가 부하로 들어오면 피곤하긴 마찬가지이다. --결국 케바케-
육사 출신이라 하더라도 대개 인성이 자애로운 사람들이 대장까지 올라간다.[73]
진급이 빠른 대신 불필요한 보직에 대한 처우가 잔인하다. 대한민국 육군 장교 중 가장 진급이 빠른 대신 한직을 하나도 맡지 말아야 한다. 학사장교ROTC, 육군3사관학교의 경우, 진급이 육사보다 늦는 대신 한직 몇 개쯤은 맡아도 진급에 대해 어느 정도 관대하고, 가장 극단적인 예인 홍순호 대장의 경우 군생활 내내 진급을 막차로 타서 잡보직을 맡고, 잡보직을 맡아서 다음 진급도 막차로 밀리면서 얻어터졌어도 서울대학교 ROTC 출신이라 이런 게 죄다 묵인되고 끝내 대장에 올라갔다. 반면 육사가 막차-한직 콤보를 맞으면 커리어가 바로 끝난다. 다만 사단장군단장의 경우 존재 자체가 요직이므로 평시에 별을 하나씩 깎아서 보임되는 부대만 아니라면 어디서 지내든 한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한민구의 경우 후방사단장을 하고도 육군참모총장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했다.
육사 출신만 받을 수 있는 보직이 4개 존재했었다.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1개 + α.
  • 육군참모총장(대장급): 육군의 상징이기 때문에 육사 출신에서만 임명한다. 그러나 송영무 국방장관이 비육사 출신을 육군참모총장에 앉힐 수도 있다고 한 만큼 3사ROTC 출신을, 먼 훗날에는 학사장교 출신 중에서 임명될 수도 있다. 출신보다 능력을 우선해서 뽑는다면 타 출신이 들어갈 여지는 당연 더 넓어지겠지만 당장 그렇게 되기에는 상황이 만만찮다. 2017년 하반기 및 2019년 상반기 군 장성 인사에서는 육사 출신 중장(김용우, 서욱 장군)이 참모총장으로 인선되긴 했다. 그러나 야전군사령관 2명이 비육사 출신으로 채워진 만큼 (3사 1명, 학군 1명), 장래에는 비육사 출신 육군참모총장을 배출할 수도 있다. 결국 동아대학교 ROTC 출신 남영신 대장이 참모총장에 임명되면서 현재 육사 출신만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육군사관학교장 딱 1개이다.
  •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대장급) : 이 자리는 한미연합사 한국 측 사령관의 직책으로, 공식적으로는 해군, 공군에서도 사령관이 나올 수 있으나, 해병대사령관, 해군작전사령관, 공군작전사령관이 전시에 각 군(혹은 해병대)의 한국 측 병력을 대부분 지휘하기 때문에 사실상 육군에서 임명되며, 실제로도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인물만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맡아왔다. 실제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소령 시절부터 미군 측과의 주기적인 교류는 기본이고, 중~대령 시절부터는 한미연합사 핵심 요직 근무 경력을 중요시하는데 이곳은 거의 육사가 장악해 있는 상태이다. 다만, 지상구성군사령관을 겸임하던 시절과 다르게 현재는 꼭 육군사관학교 출신만이 이 자리에 앉는다는 보장은 없다. 영어에 능통하고 한미 연합 작전 능력에 뛰어나고 주요 직위를 거친 타 출신 장교들도 상황이 맞아떨어지면 진출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 한국군과는 다른 한미연합사만의 특징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 육군특수전사령관(중장급): 특수전 부대답게 개인전투력이 공식적으로 전군에서 가장 높은 부대 중 하나로, 주로 육사 출신으로만 임명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2017년 동아대학교 제117 학생군사교육단(학군단, ROTC) 23기 출신인 남영신 제3사단장이 비육사출신 중 최초로 육군특수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육사 죽이기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그동안 특수전사령부를 진급을 위한 요직으로 여기는 병폐 탓에, 특수전에 무지한 육사 출신 장교들에 의해 많이 병 들었던 곳이기에 반드시 바뀌어야 하기도 한다.
  • 육군사관학교장(중장급): 육사 교장 자리는 육사에서 가장 높은 자리다. [74] 당연히 처음 만들어져서 졸업생 나오기 전 교장은 비육사 출신일 수밖에 없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육사 전신인 군사영어학교 초대 교장이었던 이형근도 군사영어학교 학생이자 학장이라는 이중적 신분이었기 때문에 첫 졸업생이 나오기 전에도 교장은 결국 군사영어학교(즉, 육사) 출신이라는 요상한 일이 벌어졌다.[75] 육군참모총장이나 특수전사령관은 정책이 바뀐다면 다른 출신이 들어갈 여지라도 있지만, 육사 교장은 전통과 문화에 대한 이해문제로 타 출신이 들어가기 어렵다.[76]
엘리트 군인의 상징인 전속부관도 대부분 육사 출신 장교로 채워진다. 군단급 이상 제대의 참모부처럼 간부가 병사보다 많은 곳에서 근무했던 병사라면 능력 있는 간부와 무능력한 간부를 보는 눈이 생기게 되는데 특급 간부는 높은 확률로 육사 출신 장교들이다.(그 다음은 명문대 출신 장교들이 많다.) 육사 자체가 능력 있는 학생들을 뽑아서 육성하는 기관이고, 또 육사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마음가짐 자체가 군에 뼈를 묻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3년에 임관한 69기에서는, 4년 전 입학을 꼴찌로 하였던 모 여자 생도가 이를 악물고 노력하여 졸업은 수석으로 해냈다.#[77]
한 해에 임관하는 장교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극히 적은 데다 육사 출신 소위들은 주로 전방부대 위주로 배치되므로, 후방부대에서는 찾기 힘들다.[78] 다만 예외적으로 후방은 7군단 제7강습대대, 201특공여단, 203특공여단 등의 부대분류상 특공인 부대에서는 육사 출신 소위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중 제7강습대대는 실제 대대의 성격이 보병부대라서 다른 특공대 혹은 특전사로 전출가는 일이 많다. 2008년 중순에 이 부대에 소대장으로 부임한 육사 출신 장교가 약 1년 동안 있었는데, 중위로 진급하자마자 특전사로 전출갔고 전출 가고 얼마 안 있어 훈련 중 허리를 다쳤다는 소문도 있다.
그리고 육사 출신은 지휘통솔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소위 임관과 동시에 직책은 전원 소대장이 되며 심지어는 지휘견장과는 아무 상관없는 부관, 재정, 정훈같은 병과조차 소대장으로 군생활을 출발했었다.[79] 보병/포병/기갑/공병/정보통신/방공 병과를 받은 졸업생도는 졸업과 동시에 해당 병과 학교에서 초군반을 이수 후 해당 병과의 야전 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정보/항공 및 기술/행정병과를 받은 졸업생도는 졸업 후 보병 초군반을 이수하고 야전 부대에서 소대장을 1년간 거친 뒤 중위 진급 후 해당 병과 초군반 교육(항공병과는 조종사 양성교육)을 받고 해당 병과에서 근무하는 방식이고 여생도 중 기행병과 배정자는 졸업 후 바로 해당 병과 초군반 이수 후 해당 병과에서 근무하는 체제였는데 '''2009년 졸업생부터는 전원 전투병과로만 임관'''하고(정보/항공병과는 종전과 같음) 기행병과 지망자는 1차 소대장을 마친 뒤부터 전과를 허용한다고 한다. 2009년 졸업생들의 병과 분류가 끝난 시점에 이렇게 바뀌어서 2009년 졸업 예정 생도들은 병과 분류를 아예 다시 했다고 한다.[80]
본래 육사 설립의 1차적인 목적이 대대장 육성이기 때문에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육사 출신은 사고를 치지 않는 한 100% 중령으로 진급했었다. 하지만 이후 정책적으로 비율을 약간 줄여 2010년대 현재는 무조건 다 중령을 달아주는 건 아니다. 실제 사례로 2000년대 학군단 모 기수 입영훈련 중 특정 교육대에 배정된 훈육관 4명 중 고참 대위급 3명이 한번에 진급심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고, 공교롭게도 3명이 각각 육사, 3사, 학군 출신인 임관 동기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소령 진급심사 뚜껑이 열리고 나니 각각 3사, 학군출신인 2, 3훈육관이 소령(진)을 달고 육사 출신 훈육관은 진급 누락이 되는 울트라충공깽의 사태가 벌어진 것. 이렇게 되면 당장 후보생들 앞에서 본인이 육사 진급대상자 중 하위 20%에 해당한다는 것을 강제인증당한 꼴이니 쪽팔리는 것도 있지만, 육사 출신이 한 번 미끄럼을 탔으니 나중에 중령 이상까지 진급한다 하더라도 대장 내지는 연대장을 향토동원사단에서 보직할 확률이 그만큼 올라가며, 이러면 이게 다시 한 번 발목을 잡아 준장 진급할 확률이 더더욱 내려간다...
그래서 육사 출신 장교는 소위로 임관하면 절대 첫 자대를 특전사로 배치받지 않는다. 즉 특전사의 소위는 전부 非육사 장교이다. 그러한 것에는 이유가 있는데, 우선 특전사의 경우 대위의 부하가 겨우 11명이고 그 부하라는 게 1명의 장교와 나머지 모두 부사관이다. 하사가 가장 막내 팀원인 곳이 특전사다. 그렇다면 부중대장인 중위는? 당연히 부하가 있을 리가 없고, 그러니 반드시 소대장으로 시작하는 육사 출신 장교가 올 수가 없다. 물론 비육사 출신 중 본인이 희망하거나 후보생 성적이 좋아 차출당하는 곳이 특전사인 만큼, 위관급 특전사 장교는 비육사 출신 중에서 엘리트인 것은 맞다. 초군반은 자대배치가 완료된 이후 해당 부대에 맞는 병과학교에서 받는다. 특전사를 받으면 초군반 역시 보병학교에서도 특전 특공 수색 학생대로 배치된다. 문제는 안티테제격인 향토 보병 육직을 받은 학생대와 같이 지낸다. 왜냐 하면 일반 보병은 6~7개 정도 학생대가 있는데 이들의 학생대는 하나씩 뿐이고 보통 2개의 학생대씩 묶어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보통 육군에서 별을 다는 인물들은 대부분이 육사 출신으로, 육사를 나오지 않은 사람은 장군 되기가 대단히 어렵다. 특히 육사 출신은 5년차 전역을 택하는 인원을 제외한 상태에서 특별한 사고를 치지 않는다면 거의 모두 소령으로 진급하기 때문에 타 출신은 상당히 힘들다. 2010년을 기준하여 육군의 출신에 따른 장성 진출률은 '''육사 77.8%''', 3사 14.7%, 학군 5.9%였다. 아시아경제 기사 또한 2011년 들어서는 육군의 장군 319명 중 육사 출신이 250명('''78.4%''')으로 늘어났다. 이는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7년에 장군 299명 중 육사 출신이 226명(75.6%)이었던 것보다 24명 증가한 것. 뉴시스 기사 2012년은 육군 전체 장군 318명 중 육사 출신이 253명('''79.6%''')으로 작년보다 3명이 더 증가하였다. 중앙뉴스 기사 애초에 200여 명이 임관하는 육사, 400여 명이 임관하는 3사, 4,000여 명이 임관하는 학군단, 800여 명이 임관하는 학사의 최초 임관자 수를 생각해본다면 지나친 독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들 대다수가 '''단기자원'''이라. . . 게다가 육사 출신의 진급율이 떨어진다고 해서 타 출신의 진급률이 올라가는 것도 아닌 게 '''전반적으로 장교 TO를 점점 줄여나가는 추세'''인지라 자리가 줄어드는 거지 무슨 3사나 ROTC, 학사를 편애하는 게 아니다. 2018년 이후에는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를 통합해서 지상작전사령부로 창설함과 동시에 야전군사령관 보직이 3개에서 2개로 감소했고 이에 따라 대장 1개, 중장 3개 등 장교 보직 개수가 차례대로 줄어들어 장교 진급은 출신을 막론하고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지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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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정희수 의원실)
1970년대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하는 장군 진출 비율은 非육사 출신이 육사 출신에 비해서 월등히 높았으나, 5공 정부 이후 이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하지만 이는 3사나 ROTC 출신이 육사보다 진급률이 높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 당시의 육사는 갑종장교에게 밀렸기 때문일 뿐이며 현재 갑종장교는 마지막 기수까지 모든 인원이 다 전역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ROTC 1기가 1963년에 소위로 임관했고 3사 1기는 이보다 더 늦다. 1970년대라면 ROTC 1기와 3사 1기는 잘해야 소령 내지는 중령인 셈이다. 다만 김영삼 정부에서 하나회 척결 등으로 90년대 초반 육사 출신 장군의 진급이 60%대까지 떨어졌지만, 20여 년이 지난 2010년대 현재는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다시 육사 출신 장군 비율이 80% 수준까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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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010·2011·2012년 하반기 출신별 장군 진급 결과 분석)
이러한 편중 현상은 굳이 장관급 장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영관급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앞서 말했듯이 처음부터 장기복무를 목적으로 월등한 성적으로 입교하고, 일반적으로 그에 비례하는 진급역량심사에 반영되는 수준 및 실력의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력이 있으나 가난해서 대학에 다닐 여력이 없었던 갑종장교출신이나 초기 학사장교, 3사 출신 장교들이 장군 등의 고위 장교를 현대의 지원자보다 비교적 더 많이 역임했던 것이고 지금은 과거보다 3사나 학사장교 등 출신 장기자원의 진급률이 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도 영관 장교 진급심사 결과를 보면, 중령 진급도 육사는 77.1%가 진급한데 반해 학군은 13.3%, 3사는 10.6%, 학사는 11.4%를 차지하고 있다. 이 비율은 실력대로 하면 더욱 육사편중이 될 가능성이 높으나 출신별 고려를 통해 더 이상 육사출신이 진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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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642594)
참모총장도 1969년 9월 1일 취임한 19대 참모총장(서종철, 육사1기) 이후로 非육사 출신은 단 한명도 없었다. 非육사 출신도 학군단3사 출신이 대장 진급을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육사 출신에 비하면 인원도 적은데다 거의 후방을 담당하는 2작전사령관으로 가고 1야전군이나 3야전군사령관은 거의 모두 육사 출신으로 보임되어왔다. 非육사 출신 1야전군은 정호근 대장(갑종5기,87년~89년), 정수성 대장(갑종202기,03년~05년), 박성규 대장(3사10기,11년~13년)이 있으며, 합동참모의장은 오자복 대장(갑종3기, 86년~87년), 정호근 대장(갑종5기, 89년~91년), 김진호 대장(학군2기, 98년~99년), 조영길 대장(갑종172기, 99년~01년), 이순진 대장(3사14기, 15년~現)이 있다.
당장 학교장 계급을 살펴봐도 3사 교장이나 학군 교장은 소장 계급인데 반해 육사교장은 중장 계급이며, 군 교육기관이 모두 교육사령부로 예속될 때에도 육사만은 예외였다.
국방경비대 이등병 출신으로 육군 소장까지 진급한 최갑석 장군의 회고에 의하면, 1955년 자신이 소령 계급으로 포병대대장을 할 때 소위로 임관한 육군사관학교 11기생들이 1973년에는 자신을 앞질러 준장으로 진급했다고 한다. 국방일보 기사 6.25 전쟁 당시 현지 임관하여 미국에서 포병교육을 받는 등 실전과 이론을 겸비한 인물이었는데, 그런 그조차 포병대대장에 7년간이나 머무른 사례를 통해 非육사 출신 간부들의 승진이 육사 출신에 비해 느렸음을 알 수 있다.

8.4. 교가



'''現 육군사관학교 교가'''

1절

동해수 구비 감아 금수 내 조국

유구 푸른 그 슬기 빛발을 돋혀

풍진노도 헤쳐 나갈 배움의 전당

무쇠같이 뭉치어진 육사 불꽃은

모진 역사 역력히 은보래치리

2절

아사달 길이 누려 여기 반만년

변함없는 그 기상 하늘을 내쳐

천추만리 바람결에 이야기 하리

백사 고쳐 쓰러져도 육사혼이야

가고 오지 않으리 오질 않으리

후렴

아아 영용 영용

이제도 앞에도 한결 같아라

온누리 소리 모아 부르네

그 이름 그 이름 우리 육사


'''舊 육군사관학교가'''[81]

태백산 삭풍 속에 정기 엄정타

영봉에 천지마다 길이 흐르는

반만년의 유구한 배달민족도

천만대에 핏줄 받은 청구의 건아

울창한 태릉무대 우러러 서니

새 대한의 희망인 사관학교다


8.5. 동기회 명칭


육군사관학교는 각 기수별로 동기회가 있고 2학년이 되면 동기회 명칭을 부여받는다.
  • 1기 - x
  • 2기 - x
  • 3기 - 태백
  • 4기 - 사사
  • 5기 - 오성
  • 6기 - 육기생
  • 7기 - 칠성
  • 7후 - 공덕
  • 8-2기 - 팔이동지
  • 9기 - 구군
  • 10기 - 일생
  • 생도 2기 - 생도2기
  • 11기 - 11기동기
  • 12기 - 통성
  • 13기 - 범무
  • 14기 - 일사
  • 15기 - 오성
  • 16기 - 화랑동기
  • 17기 - 지북성
  • 18기 - 아사달
  • 19기 - 승화
  • 20기 - 신조
  • 21기 - 21세기
  • 22기 - 쌍둘
  • 23기 - 이삼
  • 24기 - 육사이사
  • 25기 - 여명
  • 26기 - 한얼
  • 27기 - 대열
  • 28기 - 은보래
  • 29기 - 초석
  • 30기 - 설흔
  • 31기 - 삼일
  • 32기 - 새얼
  • 33기 - 삼삼
  • 34기 - 멋 동기
  • 35기 - 삼오
  • 36기 - 참빛
  • 37기 - 한뜻
  • 38기 - 삼팔동기
  • 39기 - 한백
  • 40기 - 맥
  • 41기 - 참멋
  • 42기 - 횃불
  • 43기 - 뿌리
  • 44기 - 한맥
  • 45기 - 신성
  • 46기 - 한빛
  • 47기 - 천지
  • 48기 - 불꽃
  • 49기 - 기라성
  • 50기 - 다물
  • 51기 - 겨레지기
  • 52기 - 포효
  • 53기 - 아필립
  • 54기 - 하나
  • 55기 - 아성
  • 56기 - 개벽
  • 57기 - 남아
  • 58기 - 태동
  • 59기 - 한다움
  • 60기 - 예맥
  • 61기 - 무한
  • 62기 - 해닮
  • 63기 - 기백
  • 64기 - 상승
  • 65기 - 파란
  • 66기 - 투혼
  • 67기 - 지성
  • 68기 - 휘한
  • 69기 - 전성
  • 70기 - 초현
  • 71기 - 가온
  • 72기 - 청웅
  • 73기 - 진격
  • 74기 - 휘훈
  • 75기 - 헌위
  • 76기 - 나린
  • 77기 - 신아
  • 78기 - 청휘
  • 79기 - 하랑
  • 80기 - 휘월

9. 복무환경(현역병)


학교기관이지만 엄연히 군부대이므로 현역병도 가끔 배치를 받는다. 부대규모가 작아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단은 육본 소속의 근지단임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별도 문서에 서술한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10. 비판 및 논란



10.1. 군사정부의 잔재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들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불의는 바로 쿠데타다. 그리고 바로 이 육사 출신들이 일으킨 대표적 군사 쿠데타로는 '''2기 졸업생군사 쿠데타'''와 '''11기 졸업생들군사 쿠데타'''가 있다.
이로 인해 비록 안정된 월급과 출세 가도가 보장됐다지만 학교 자체의 과거사는 타 사관학교에 비해 깨끗하지 못하다. 그 증거로 '''아직도 유신시절 라인[82]들과 하나회 출신들, 대한민국 제5공화국 인사들이 깊게 연루됐을 정도로 정치성에서 그렇게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 인사들이 육사를 방문하여 거수경례를 받았는데 이 일로 육사는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의아한 건 독재 정권시절 푸대접 받았던 공군과 해군에선 수뇌부들부터 초급 간부들까지 계급과 짬밥을 막론하고 독재의 잔재들을 증오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장성출신 대통령이 문민시대에 되는 게 하늘에 별따기라고 최종 상한선이 총리나 장관급이라 할 정도.
2012년 6월 8일 전두환과 5공의 고관들이 육사 발전기금을 기부해 육사발전기금 2백억 달성행사에 초대받았고 사열을 받았다. 전두환은 육사교장 바로 옆 좌석에 앉아 유일하게 의전용 탁자 등을 사용하고 건배를 제의하는 등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았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인터넷에서 하나회 출신들을 중용하더니 전두환 사열까지 연다며 비난받았고 민주당 등 야당 측도 김관진 국방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2006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기사가 있었고 2012년 초에도 왔었다.

10.2. 여성 생도 우대 문제


2017년 국방홍보원에서 운영하는 국방TV에서 육사 생도들의 훈련 영상을 내보냈다. 무슨 영상이냐면 한 여자 생도가 행군 훈련 중 자기가 멘 군장을 못 메고 힘들어하자 주변의 남자 생도들이 해당 여자 생도의 군장 속 물건을 대신 나눠 메는 모습이 잡힌 것이다. 물론 방송용 멘트인지 몰라도 팀장 맡은 생도가 "여생도 군장을 남생도들과 분배해서 오늘 훈련에 있어서 여생도의 체력분배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함" 이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누리꾼들은 분노하는 모습이다.

영상을 본 많은 누리꾼들은 "군인에게는 성별이 없다. (특히 병으로는 여성이 한 명도 없으니 이 말까지 할 필욘 없겠지만 간부로 갔으면 더욱 당연한 이야기다.), "전쟁 나면 총알이 여자라고 피해가냐?", "여생도가 위장크림도 제대로 안 바르고 립스틱이나 바른 이유가 궁금하다", "앞으로 병사를 지휘할 장교가 될 사람이 저런 상태로 훈련에 임하냐?" 는 등 이야기를 하며 분노를 쏟아냈고 국방TV는 논란이 일자 해당 영상을 황급히 삭제해버렸다. 특히 2017년 12월 20일 국방부에서 국방개혁 2.0일환으로 앞으로 여군 비중 더욱 확대시킨다는 계획이 발표나고 난 직후라 누리꾼들의 분노가 더 강해진 모습이었다. 기사

물론 '''이건 육사만 이런 게 아니다.''' 그렇다고 육사가 잘못 한 게 아닌 건 아니지만 육사만의 문제는 아니라 전군의 문제다.

10.3. 직업군인과 의무복무자를 구분못함


육사 출신 장교들은 애초에 군복무를 직업으로 생각하는 이들이며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와 마찬가지로 졸업. 즉, 소위임관 시점부터 군복무를 평생 직장으로 인식한다. 문제는 '''이걸 오직 본인의 입장으로만 기준을 정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병은 100%이며 부사관 역시 50% 이상에 육사와 출신만 다른 타 출신 장교들의 절대다수인 병역 의무 이행자와 일부 육사 출신 장교들이 늘 마찰을 일으켜 왔다. 그리고 그 마찰은 현재진행형이며 윤의철(43기)이 이 마찰에 대해 독보적으로 유명할 뿐이다. 참고로 군 입대 계급 중 직업군인 100%인 계급은 준사관밖에 없다. 그리고 나머지 과정은 '''직업군인의 비율이 30% 이하'''이다. 임관자 기준 직업군인 비율이 높은 부사관이 25~30% 정도에 불과하며 장교는 5~10% 언저리[83], 병은 직업군인이 아예 없다. 특히 비육사 장교의 장기복무 선발이라는 건 '''중소위 기준 연간 대대별로 1명만 선발'''하기 때문에 연간 16명당 1명만 장기복무 선발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대대의 중소위급 장교 중에서 장기복무자는 육사 1명(육사 출신이 있을 경우), 비육사 1명 / 육사 0명(육사 출신이 없을 경우), 비육사 1명이 된다.
아무리 군대가 강력한 위계서열을 바탕으로 한, 지휘관의 절대적인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집단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국군의 병역은 징병제이기 때문에 이걸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못하든 그 여부따위 일절 상관없이 군복무를 이행해야만 하는 나라이다. 모병제였으면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원을 선발과정에서 탈락시키면 그만이지만 징병제에서는 '''탈락이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한다. 또한 대한민국이 대체복무의 문이 지나치게 좁은 나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입대연령을 놓쳐서 늦은 나이에 장교로 입대하는 인원들[84]이 장교들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일부 육사출신 지휘관들은 이런 장교로서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자들에게조차, 본인들이 '''병 이외에는 전부 직업군인'''이라는 썩어빠진 마인드를 갖고 있는 탓에 자신들이 생도시절에 겪은 악랄한 훈련, 그 이상의 아웃풋을 요구한다. 이러면서 이런 틀에 박힌 일부 육사 출신 장교들이 병력들을 비교적 빡세게 굴리게 된다. 그들은 생도시절 4년 동안 빡세게 구른 게 군대의 전부인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군대는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학군사관은 아예 '''생도시절부터 출퇴근'''을 하는 이들이며 학사장교단기간부사관은 육사만큼 지옥훈련을 받지 않는다. 이런 면모가 정말 심한 윤의철의 경우 '''타출신 장교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부족한 인원'''이다.
대한민국 군인들의 신분 중에서 직업군인의 비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 심지어 전문사관이나 군장학생 등은 '''계급이 대위인 의무복무자'''이다. 당장 나무위키의 직업군인항목을 보라. 뭐라고 써 있나 말이다. 병역 의무 이행자라 단언할 수 있는 장교 계급은 소령서부터라 명시되어 있다. 그 때문에 무조건 육사식 커리큘럼이 몸에 밴 본인들의 기준에 병력들과 부하 참모들을 맞추면 안되며 그들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간파한 후 그에 맞게 지휘해야 한다. 이런 점을 현재 육사 생도들이나 육사 출신 장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

10.4. 대입 채점 오류 사건


43명 인생 바꾼 육·공사 대입 채점 오류···軍은 1년간 몰랐다

11. 사건사고


  • 2008년 4월 육사생도 김모씨가 지하철 여자화장실에서 불법촬영물(몰카)를 찍다가 잡혀서 퇴교당한 후 구속되었다. 기사
  • 2013년 육사 1학년(73기) 생도가 위의 육해공 통합교육차 육사에서 위탁교육을 받던 공사 2학년 생도를 폭행해서 퇴교되었다.
  • 2013년 5월 28일 교내 기숙사에서 4학년 남자 생도(70기)가 2학년 여자 생도(72기)를 대낮에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SBS뉴스 기사 해당 4학년 남자 생도는 군교도소에 수감되었고, 교장부터 교수까지 도미노로 보직해임 및 전역 처리 되었다.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해 불침번이 생겨 1~2학년 생도들만 고생하게 되었다.
  • 2013년 8월 3학년(71기) 남자 생도 9명이 정전 60주년 기념 봉사활동을 하러 방콕에 갔다가 숙소를 무단 탈출해서 주점과 마사지 업소에 출입하다가 적발됐다.
  • 2013년 8월 4학년(70기) 남자 생도가 여중생과 성매매를 했다가 구속됐다. 기사 잡힌 경로는 더 황당한데, 성매매 후 약속했던 돈을 주지 않고 여중생의 핸드폰을 훔쳐 달아나자 여중생이 이를 경찰에 신고해서 덜미가 잡힌 것이다.
  • 2013년 육사의 3금 제도(금주·금연·금혼)로 인해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졌다가 퇴학당한 4학년 남자 생도(70기)가 소송을 걸어 법원에서 퇴학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기사 대법원 판결에서 생도가 승소를 함으로써 퇴학이 취소되었다. 그 이후 퇴학에 관해서 7790만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소송을 걸었다. 1심에서는 패소했으나, 2심에서는 승소를 했으며, 대법원 판결에서는 결국 72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다만, 이 생도는 손해배상 청구 1심 재판중인 5월 중에 휴학을 하면서, 1심에서 패소한 직후 자퇴를 신청해서 퇴교처리되었다고 한다.
  • 2016년 11월, 3학년(74기) 여생도 1명이 동기 여생도에게 성추행을 하다가 자퇴한 사건이 있었다. 해당 생도에게는 아무런 징계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육사출신인 현역 장성이며 육사생도대장과 동기라서 유야무야 덮었다는 식의 논란이 일었고 정확한 사건 경위는 조사 중이라고 한다. 기사1 기사2
  • 2017년 2월, 4학년(73기) 생도 3명이 강남 오피스텔에서 성매매를 했다가 적발됐다. 기사 실제로 성매매를 한 생도는 2명이고 1명은 동기들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성매매 방조죄로 걸렸다. 이들은 결국 졸업식 하루 전에 퇴교되었다.[85]
  • 2017년 7월, 학년미상의 생도 2명이 각각 성매매와 성매매 방조죄로 퇴교되었다.기사 동기에게 성매매 비용을 지원해줬다가 실제로 성매매를 해버린 동기와 함께 퇴교된 것이라고 한다.
  • 2020년 8월 15일, 육군사관학교 1차 필기시험 고사장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진자가 나와 밀접 접촉자 20여명이 검사를 받았다. 기사

12. 여담


  • 해사(경남 창원), 공사(충북 청주)는 지방에 있는데 육사만 서울에 있다. 주요 육군 장교 배출 시설을 향후 북한의 타격 사정거리에서 가까운 서울에 둔다는 점은 2년 교육 후 장교를 배출하다가 한국전쟁이 터지자 생도들을 모아 생도대대를 구성, 알보병처럼 소모시킨 뒤 이후 수급 부족으로 교육과정을 1년으로 간략화해 교육시켜 전쟁터에 계속 몰아넣은 과거가 있더라도 교통이 발달된 지금은 굳이 육사가 서울에 있어야 하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게다가 육사 출신들이 군사반란을 일으켰던 흑역사와 그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육사가 서울에 잔존하는데 영향을 주었을 개연성도 충분하다. 대신 3사관학교 정도가 영천에 있긴 하지만 서울 내 알짜 부지를 재활용하고, 지방균형발전 측면도 감안해서 향후 전남을 비롯한 남부 쪽에 이전할 수도 있다. 몇번 이전 논의가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육사 부지를 뭘로 활용할 것이냐 하는 논의에서 국민임대주택을 원하는 중앙정부와 이미 서울 동북지역에 임대주택이랑 주공아파트가 몇인데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버티는 지방자치단체(노원구, 중랑구 등) + 지역주민의 거센 반발로 인해 번번이 무산됐다.
  • 10월 1일 국군의 날 분열을 할 때 5개 사관학교 중 가장 먼저 입장한다. 분열 준비를 하느니 차라리 중간고사+기말고사를 2번 보겠다고 할 만큼 힘든 준비를 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큰 영예를 안기 때문에 내심 국군의 날 분열 행사를 희망하는 기수가 적지 않다. 기수에 따라 2년 동안 행사를 뛰는 기수(예를 들면 66기)가 있는가 하면, 그 때문에 졸업할 때까지 국군의 날에 참가하지 못하는 기수도 있다. 해사나 공사의 경우 생도 숫자가 적기 때문에 2~3개 기수가 합쳐서 나간다는 모양.
  • 제복의 구조가 일반 사복과 매우 다르다. 생도 예복과 정복은 상의가 지퍼식인데 일반적인 지퍼식 상의와는 정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지퍼를 채우는 구조로 되어있으며, 하의 역시 옆주머니가 없다. 게다가 하의는 허리띠가 아니라 멜빵으로 결속하게 되어있는 구조이다. 옷의 구조 자체를 철저하게 군인기본자세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는데 이는 모든 사관학교가 동일하다. 어차피 예복은 행사 때만 잠깐 입는 옷이고, 설령 주머니가 있어도 행사복에 이거저거 쑤셔 넣으면 보기 안 좋으므로 상관은 없다. 외출시 입는 정복 하의에는 뒷주머니만, 교내에서 입는 근무복은 옆/뒤 주머니가 모두 존재한다.
  • 4년제 육사 첫 기수인 육사 제11기 졸업 당시 4학년이 되었음에도 학사학위 인정이 안 돼서 골치를 썩였다. 당시 대학 졸업자가 극히 드물었다는 문제도 있었고, 구 일본 육사 역시 학사학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전례가 있었기 때문인데, 결국 이를 극복하고 졸업을 코앞에 둔 1955년 10월에 사관학교설치법이 통과됨으로써 육사 졸업생에게 이학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었다.
  • 코미디언서경석은 정상적으로 졸업했다면 육사 50기로 임관했을 케이스. 1990년 육군사관학교 입학 전 가입교 기간 중 자진 퇴소한 후 이듬해에 서울대학교에 다시 들어갔다. 그 때문에 2001년 3월, 빠른 72년생인 그는 30세의 나이로 군대에 그냥 가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육사를 나와 임관했다면 대위였을 나이에 이등병이 되었다.
  • 15학번은 75기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입학한 학생들은 63~79학번(23~39기)이다. 군사정권 시절 육사 출신은 5급 공무원으로 특채되는 유신사무관이라는 제도가 있었지만, 졸업자 중 38기부터는 군부가 막을 내렸기에 그 덕을 보지 못했다. 이때부터 장성 진급이 이전에 비해서 힘들어졌으며 장포대, 대포중들이 양산되었다.
  • 육사 홈페이지 주소는 www.kma.ac.kr이다. 그런데 2000년대 초중반 까지만 해도 www.64.ac.kr을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 육사아파트 옆에 화랑회관이 위치해있다. 고기집,[86] 목욕탕,[87] 통신사 대리점[88]이 위치해 있다.
  • 학교 정책이 수능 정책마냥 지휘관 마음대로 확확 바뀐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행태는 이전부터 계속되어 온 것이었지만 2014년 70기 생도의 졸업 직전에 성적 산출 기준을 바꾼 것으로 크게 기사가 났다. 파문이 일자 학교본부는 성적 산출 기준 변경을 70기생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71기생부터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성적 산출이라는 게 한 번 정해졌으면 일관성이 있어야지 재학 중인 생도들에게까지 일괄 적용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 매년 공군사관학교해군사관학교와 3군사관학교[89] 친선교류가 있다.[90] 미 육사와 해사의 스포츠 경기와 같은 3군사관학교 체육대회를 개최했으나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고 부상을 입는 생도가 많다는 비판이 있어 폐지되었다.[91] 현재 1학년 생도들을 대상으로 3군 통합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각 학교 인원을 1/3로 나누고 3주기로 돌아가며 각 학교에서 생활을 한다. 그래서 육사에 해사, 공사의 생도들이 보이는 것이다. 이는 해사, 공사도 마찬가지.[92] 2012년 그러니까 육군사관학교 72기, 해군사관학교 70기, 공군사관학교 64기부터 시작되었는데 반응이 조금 미적지근해서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미지수. 실제로 반학기를 1개 주기로 실시하였는데 2014년(육사 74기, 해사 72기, 공사 66기)에는 2학기에 3주기를 몰빵했다. 덕분에 중간고사를 2번, 기말고사를 1번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6년(육사 76기, 해사 74기, 공사 68기) 부터 1학년은 육사, 2학년은 해사, 3학년은 공사에서 겨울에 2~3주간 통합교육을 진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2018년(육사 78기, 해사 76기, 공사 70기, 간사 62기) 부터는 국군간호사관학교도 참여한다.
  • 2013년 하반기까지 육군 통역장교 선발 시험은 이천시에 위치한 국방어학원에서 진행되었지만 2014년 상반기부터는 육사에서 보게 되었다.
  • 출신자 중 대통령[93]이 많지만 정당한 방식으로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노태우는 민주적인 선거로 대통령이 되었다.[94][95]
  • 군사시설이라 위치 작성하면 코렁탕의 위험이 있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지도에 대놓고 잘만 나온다. 카카오맵의 경우 위성지도 켜면 블러 처리도 안 된 채로 자세히 나온다. 교육기관이고 부지 내에 딱히 중요 보안시설이 없어서 공개해 놓은 듯. 원래는 공개를 안 했지만, 도로명주소 시행으로 인해 도로명주소를 부여하게 되면서 보안 등급이 낮은 보안 3등급 군부대들은 도로명주소를 외부에 공개하기로 결정(2011년)하여 2012년부터 육사의 상세주소를 공개한 것이다. 통행량이 많은 길목과는 약간 떨어져 있어서 아주 눈에 잘 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학교가 좀 커야지. 게다가, 1990년대 공릉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말로만 서울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젠 거의 시가지 한 가운데 있다. 이 학교 근방에 있는 화랑대역의 역명은 육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유 예하 부대로는 군사경찰대, 육군사관학교 근무지원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근무지원단 예하에는 본부근무대, 보급근무대, 병원, 통신근무대, 군악대, 영선대, 정비근무대가 있다. 인근에 있는 대학으로는 서울여자대학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삼육대학교, 광운대학교가 있다.
  • 2014년 8월 1일자로 육군 전체에서 충성 구호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육사에도 충성 구호는 대지 않고 상급 생도, 장교를 보았을 때 거수경례만 한다. 과거에는 "통일"이라는 구호를 사용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 때 충성으로 바뀌었다.[96]
  • 육군사관학교 군악대에서 복무한 군악병들이 전역 후 소년64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발표하였다. 관련 링크
  • 2020년 문재인 정부의 태릉골프장 개발 정책에 따라 육사도 이전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국방부 측에서는 육사 이전을 검토한적이 없다고 한다.

13. 과거의 육사


대한제국 시절에 육군무관학교를 운영했다.
지금은 사라진 육사로 과거 일본 제국에서 운영하던 일본육군사관학교가 있었다.

14. 다른 나라의 육군사관학교 혹은 유사기관



15. 관련 문서



[1] 소령 시절 훈육관을 역임했고, 대령(진)에서 준장 시기 생도대장을 역임했으니 육사에만 3번째 보직이다. 그 만큼 훈육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기도 하다.[2]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받았다는 가정 하에) 삼수생 까지만 지원할 수 있으며 그 이상의 장수생은 아예 입학이 안 된다.[3] 2000년대 후반 지방의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상위권 학생들이 사관학교 1차 시험을 모의고사로 보는 분위기가 유행해서 한 학교에서 1차 시험 합격자가 40여 명이 나왔는데 그 중 실제로 진학 의사가 있어서 지원한 학생이 5명에 불과하여 지역 언론 등에서 상당히 논란거리가 된적이 있었다. 그 뒤로 해당 학교 진학 지도 교사들이 실제 진학 희망자 이외에는 사관학교 입시 응시를 자제시켰다고 한다.[4] 기초훈련파견생도의 줄임말[5] 육군/해병대: 1년 6개월, 해군: 1년 8개월, 공군: 1년 9개월[6] 그나마 일반병은 의무복무 기간이 끝나면 민간인이 되고 집에서 놀지만, 사관생도는 생도생활이 끝나는 순간 본격적인 군생활이 시작된다.[7] 공수훈련 내용에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게 해 주는 커리큘럼도 있기는 하나 형식적일 뿐이고 사실상 강제로 등을 떠민다. 결국 극복하지 못하자 공수훈련 중에 생도가 퇴교된 사례도 있다.[8] 즉, 사관학교 동기들은 곧 내가 군생활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평생 경쟁자라고 볼 수 있다.[9] 보통 직업군인 정년은 평균 53세라고 볼 수 있다. 보통 장교들의 1차 목표인 중령의 계급정년이 53세이며, 부사관들의 1차 목표인 상사의 계급정년 역시 53세(원사 55세)까지기 때문이다.[10] 보통 육사를 나왔다고 하면 예전에는 복무 기간동안 큰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중령~대령까지의 진급은 자동 고속도로라고 볼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예전과 다르게 소령 정도까지가 자동 진급 고속도로라는 평가를 받으며, 중령 진급의 경우 육사 출신이라고 해도 1차 진급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는 대위까지만 진급하고 5년차 전역을 선택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형편이다. 그래서 육사 출신 장교들도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할 시기가 되면 진급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11] 반면, 부사관은 장기만 통과하면, 자신이 자진해서 그만두거나 자신이 복무하고 있는 부대에 사고가 터져 중징계를 받지 않는 이상 정년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12] 대령 이후로 별 다는 것도 엄청나게 어렵다. 왜 괜히 '''장포대란 말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이 때문에 간혹 몇몇 대령들은 별 달기를 포기하고 대령에서 전역하거나 군무원 특채를 알아보기도 한다. 대령에서 준장 이상으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여러 실적과 인맥관리는 기본이고, 정치권 상황까지 신경을 써야한다. 실제로 육사 출신에 병과도 전투병과였던 모 대령의 경우 실적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집권정부와 정치 성향이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준장으로 진급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왔을 정도다.[13] 육군참모총장, 지상작전사령관, 제2작전사령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은 육군 고정보직이고 합동참모의장은 해군 대장 및 공군 대장과의 경합을 통해서 선발되기 때문에 육군에서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또한 전술한 5개의 육군 대장 보직도 사실 알고 보면 육군3사관학교, ROTC, 등과 경합을 벌여서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 학사장교가 취소선인 이유는 아직 중장이 최선임이지만 몇년 이내에 학사장교 출신 대장이 배출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윤의철의 잦은 꼴통 짓으로 인해 학사 9기의 최진규의 대장 진급이 다소 유력해졌다.[14] 병영부조리, 우리의 주적은 간부 등의 문서를 읽고 환경에 대한 적응이 가능한지 미리 고민해보는 게 좋다.[15] 아무래도 40대 이상의 남교사의 경우, 군생활을 마친지 오래되어 감이 떨어져서 그렇다.[16] 라 하지만 실상은 4개 사관학교가 해마다 돌아가면서 출제한다.[17] 이래야만 할 수 밖에 없는 게 육사는 과거에 똥통학교로 내신을 공짜로 거저먹고 줄 탄 생도들이 정작 육사식 학업 커리큘럼을 못 견디고 탈락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18] 3등급 정도면 걱정할 필요 없고 4, 5등급이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수준. 무엇보다도 수능 만점이면 7등급 이하라도 충분히 커버칠 수 있다. 왜냐하면 민족사관고등학교와 같은 케이스도 있기 때문이다.[19] 육군사관학교와 ROTC 등의 자질차이를 고려한 결정이다. 육군사관학교를 못 견딘다고 해서 ROTC를 못 견디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003년 이전에는 얄짤없이 어떤 사유로든 영원히 육군 장교가 되는 길이 막혔다.[20] 다만 해/공군으로 갈 수는 있다.[21] 안정적인 직업만을 가지려고 육사 지원하다가 피본다. 직업군인은 사명감도 사명감이거니와 적성과 둥글둥글한 대인관계까지 같이 요구되는데 다른 게 다 맞아도 대인관계가 별로일 경우 지원하다가는 피를 제대로 보게 된다. 이런 사람은 그냥 국·공립대를 지원해서 평범한 대학생이 되는 편이 낫다. 물론 육사가 아니라 ROTC나 학사장교로 가서 의무복무만 땡치고 나갈거면 딱히 상관없지만 군에 계속 남아 진급경쟁을 벌일 때 인맥과 정치력에서 밀리면 끝장이다.[22] 2차 시험을 보러 간 사람들은 타년도와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허수가 많아서 그런 듯하다. 경쟁률이 높아졌다고 커트라인이 같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23] 이 경우 생도들은 예복을 입고 시험친다.[24] 정말 엄청나게 심한 경우 일주일에 공강이 2시간, 그 2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월화수목금은 8교시까지 수업으로 가득차있다.(금요일은 6교시까지 하고 나머지 2시간은 행사한다.)[25] 4학년이 되면 그나마 여유로워지는 편이어서 일주일에 공강이 6시간(!!)이나 된다.[26] 사관학교뿐만 아니라 역대 ROTC 장성 진급자들의 출신대학을 보면 육군 기준으로 60년대 학번(한 자릿대 기수)들은 명문대 출신이 상당히 존재하지만, 70년대 학번 이후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60년대 당시에는 절대빈곤으로 명문대 출신들도 취업이 상당히 어려웠기에 우수한 인재들이 군대에 말뚝을 박는 선택을 많이 했다는 것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27] 막상 유신사무관 제도 시행에 따라 그것만 믿고 육사에 입학했던 기수들은 그들이 사무관으로 특채될 시기가 되었을 땐 그 제도가 폐지되어 단체로 낚인 꼴이 되고 말았다. 뭐 이들이 30대가 되었을 때 외환위기가 덮치면서 일반대학을 나와 사기업에 취직한 자기 또래들이 칼바람을 맞은 걸 생각하면 인생사 새옹지마이긴 하지만....[28] 단 경제호황기였던 86세대가 입학할 때의 입결보다는 지금의 입결이 높다.[29] 물론 일반적인 대학교와는 평가요소의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다.[30] 이것도 기업마다 케바케인 것이, 어떤 기업에서는 리더십을 가진 인재로 우대하지만, 어떤 기업에서는 복무부적응으로 전역한 인원으로 생각해서 서류 탈락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31] 출처 요망[32] 사실 전역 장교를 선호하는 곳에 대부분 입사하게 되는데, 통상적으로 업무강도가 강한 곳이 많다. 전역 장교를 선호하는 이유는 이직을 잘 안해서라 카더라.[33] 이 보좌관 생도들은 109호실이라는 중대 내 특정위치에 있는 호실에 편성되는데, 통상 '9호실' 로 불리며 1학년과 2학년이 동기에게 가장 듣기 싫은 소리 중 하나가 "야, 너 9호실로 오래!!" 일 정도. , 이 곳에 하급생도가 들어갈 때에 '상급자 방문 시 제식'을 조금이라도 어기거나, 복장에 문제가 있으면 +@의 갈굼이 보태지거나,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크리가 뜨게 된다. 이게 시전되면 해당 생도는 재빨리 나가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파악하고 재도전을 하게 된다. 파악이 늦을수록 갈굼은 길어진다...[34] "중대 기 = 중대의 군기"라는 인식 때문인지 1학년들의 군기를 잡는 역할을 맡게 된다. 육사의 특이한 문화로 이 기수생도가 기를 들고 있을 때에는 1학년은 쳐다봐서는 안 되고, 기수생도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모든 걸음을 직각보행 및 완벽한 바른 걸음(앞으로 45도 뒤로 15도의 그 바른걸음 맞다)으로 걸어야 하며 완벽한 복장(깨끗한 단화, 칼같은 옷매무새, 단정한 두발)을 항시 갖추어야 한다. 게다가 기를 들고 있을 때는 말을 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평소에도 중대에 하나뿐인 샤워실에서 1학년과 마주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밤늦게 씻어야 한다. 모두 중대의 깃발을 신성하게 여기기 때문인데, 정작 4학년은 기수가 기들고 차렷 자세로 정면 응시 중에 기수에게 장난친다.[35] 수요일에는 문화체육활동, 금요일에는 화랑의 식을 한다.[36] 수요일에는 종교활동을 할 수 있다.[37] 물론 국방망은 아니지만, 군에서 운용하는 회선인 만큼 IP를 우회하다 걸리면 퇴교감이다.[38] 남생도용은 보급으로 지급되나 여생도용 소모성 피복 및 일용품의 경우는 현금으로 대체 지급.[39] 학년별로 외출 외박은 차등적으로 주어진다. 1학년은 2학기부터 월 기준 외출 3회 외박 1회, 2학년은 외출 2회 외박 2회, 3학년은 외출 1회 외박 3회, 4학년은 매주 외박[40] 가입교의 순화어[41] 서울여대와 가까워서 미팅이 빈번했다는 썰이 있다. 육사 윗선에서도 풀어줘야 하나 고민 중인 듯..[42] 학사경고 성적을 받을 시 바로 퇴교심의. 이른바 one out 제도.[43] 휴가 21일중 약 1주~2주 통제.[44] 1학년 1.70/2학년 1.80/3학년 1.90/졸업 2.00 이상.[45] 반대로 외국 사관생도가 한국 육사로 위탁교육 오는 경우도 존재한다. [46] 따라서 육사 1등 졸업자가 해당 년도 장교 임관자 중 1번 군번을 가졌었다. xx-10001과 같은 식. 그러나 성적공개에 따른 부작용 및 차별인식을 우려해 17년도 임관자부터 이름 순서(가나다순)대로 군번을 부여받는 식으로 바뀌었다.[47] 당시 고문관으로 와 있던 영어 교관들의 발음에서 가져온 탓에 구호도 "미락카"가 아닌 "뮬리터리"의 "무ㄹ-"을 가져왔다.[48] 육사 홈페이지 기준[49] 무락 베니 비디 비키[50] 억쎈 엠에이[51] 바이터러 비거러 카슈까라[52] 레벤 사자 호랑나[53] 카레스 카레스 육사 육사[54] 육사 홈페이지 기준[55] 장교 7명으로 구성되며, 훈육관 및 훈육장교들로 편성하고 소령 또는 중령이 심의위원장이 된다.[56] 과거에는 부사관으로 임관하는 경우 '지원에 의하지 않고 임용된 하사(구 일반하사)'로 구분되어 199,000원의 봉급을 받고 병 복무기간만큼 복무하였는데 61기의 헌법소원으로 위헌 결정되어 현재와 같이 변경되었다.[57] 다만 일반적인 야전 하사들이 진급 심사에 들어가는 2년 차에 이미 전역을 하게 되므로, 1년 내지는 2년 정도 복무 연장을 사전에 신청해야 중사 진급이 가능하며 장기 지원도 마찬가지다.[58] 해당 사건에 대한 반성문 제출, 하루에 한 번 2시간 씩 완전군장구보로 반성할 것, 자숙의 시간을 가지며 함부로 웃지 말고 무엇이 잘못되었나 돌아볼 것 등이 시행됐는데, 문제는 생도들에게 해당 사건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니, 너희들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많은 생도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59] 1학년의 경우 이게 무시못할 인원인 게 '''총원의 30%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인 것이다.[60] 그러나 2012년 경 '''절도행각'''으로 퇴교당한 생도가 부사관으로 입대한 일이 있다. 애초에 간부의 자질을 따진다는 둥 하는 소리는 자가당착적 주장인 것이다[61] 단 후술하듯 이는 결코 자랑스런 결과만이라고는 할 수 없다.[62] 육군사관학교를 나왔다는 이야기는 없었지만 남동생 이재하가 왕족 최초 병사 제대를 했다고 하는걸 보면 왕족 남자의 경우 육군사관학교를 나와야 하는걸로 보인다.[63] 1화에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사단 전진부대에서 근무하는 장교로 소개되었고 공주에게 자신이 육사 재학시절 정복입고 시내 나가면 비웃음 당했다고 얘기하기도 하였다.[64] 병사야 휴가가 잘리거나 피아노 며칠 치는 선에서 끝나지만, 생도는 자칫하면 퇴교당할 수 있다. [65] 성당에서도 결혼식(혼인성사)을 한다. 다른 종교시설은 확인 요망.[66] 중장[67] 전직 국방부 장관과 동기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68] 당사자야 상관없지만 학과 행정병이나 전속부관은 차마 그대로 보고할 수 없어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는 둥의 핑계로 얼버무린다.[69] 이쯤 되면 10년 이상 후배이다.[70] 영(領)은 500~600 수준인데 장(將)은 800~1,200 수준이다. 대령과 준장이라 하더라도 600대 800이면 차이가 결코 작은 게 아니다.[71] 학군장교, 학사장교 출신은 아예 민간 출신은 그런 걸 체득하지 못하지만, 병으로 전역한 후 재입대할 경우 육사출신만큼은 아니지만 병 경험을 살려 어느 정도 체득하게 된다.[72] 특히 육사 출신은 대형사고를 치지 않으면 중령까지는 무리없이 진급한다.[73] 일례로 예비역 대장인 김장수, 김근태 장군은 군인 시절 자애로운 성격으로 부하들에게 덕을 베풀고 구타, 가혹행위, 병영부조리 등을 강력히 척결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중장의 경우는 윤의철이 올라갔으니 케바케다.[74] 7대 교장 김홍일 장군 등 몇몇 예외는 있다.[75] 다만 초기 군사영어학교는 일본 육사(이형근, 정일권 등), 중국 육사(송호성, 김홍일 등), 만주군관(김백일 등) 등 이미 어느 정도 사관교육을 받은 학생이라면 몇개월, 짧게는 며칠만에 졸업하고 나오기도 했다. 김홍일 같은 사단 지휘 경험자의 경우 군사영어학교 교육 없이 바로 준장으로 특별임관하기도 했다.[76] 경찰의 사관학교라는 경찰대학의 장은 그간 경찰대 출신이 아닌 학장도 여럿 있었다. 물론 경대 출신이 경찰대학장인 치안정감급까지 승진하는 시기상의 공백기도 있었으나 고시 특채나 경찰 간부 출신 등 다른 경로를 통해 입직한 사람도 충분히 경찰대학장에 임명될 여지가 있다. 육군3사관학교장도 지금은 3사 출신 장교들의 진급률이 높아지면서 대부분 3사관학교 출신 소장들이 보임되긴 하지만 간혹 육사 출신 소장들이 거쳐가는 정도로 보임되긴 했다.[77] 여담으로 이 생도의 사례로 인해 사관학교에서 우선선발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78] 99% 이상이 전방 상비사단의 수색대 소대장으로 배치된다.[79] 이는 육군3사관학교 출신도 동일해, 3사관학교 출신도 비전투병과의 특기를 부여받더라도 소위 임관 후 1년은 야전부대 소대장으로 근무 후, 중위 진급한 이후 해당 병과 초군반 교육을 받고 재배치 후 자신의 병과에 맞게 근무하게 된다.[80] 2017년 3월 임관하는 73기부터 정책이 바뀌어 기행병과로 병과를 정할 수는 있으며 일부 병과를 제외한 나머지 기행병과 임관대상자는 1년 보병소대장을 실시한 후 중위때 다시 해당 기행병과 obc를 받기로 예정되어있다.[81] 1~2기, 5~9기 생도들이 불렀다.[82] 대표적으로 김종필.[83] 의무복무군인이 자주 물갈이되기 때문에 한 해 임관자 기준으로 잡으면 진짜 이 정도 비율이 나온다. 특히 학군사관은 머릿수도 제일 많은 주제에 복무기간도 제일 짧아서 물갈이 정도가 엄청나게 심하다.[84] 학사장교의 절대다수가 이런 인원들이다.[85] 비슷하게 학사장교에서도 가짜 학사학위 사건으로 인해 학사 44기 3명이 전역 3일 전에 임관무효를 먹고 병으로 재징병 당했다.[86] 생도와 일정 이상 기간 동안 근속한 장교와 부사관과 군무원과 그리고 그 가족들 등만 이용 가능하다.[87] 가격은 1,500원. 물론 생도와 일정 이상 기간 동안 근속한 장교와 부사관과 군무원과 그리고 그 가족들 등만 이용 가능.[88] 군 전화의 개통은 대리점이 따로 지정되어 있다.[89] 육군3사관학교는 안 끼워준다.[90] 사관학교 교류에 국군간호사관학교와 3사관학교는 왜 제외하느냐는 비판이 있어 왔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3개 사관학교 생도들의 인식 자체가 이미 우리는 3군을 각각 대표하는 사관학교 식으로 굳어져 있다.[91] 전패한 모 기수는 청주에서 서울까지 행군해야 했다. 체육대회만을 위한 "운동생도" 등이 있었으며, 말 그대로 체대생처럼 각 종목의 운동만 했다. 62기를 끝으로 "운동생도"들이 모두 사라졌다.[92] 이 때 주기를 잘못 편성받게 되면 3번 짐을 쌌다 풀러야 한다.[93] 중등교육기관 중에는 대구공고경남고가 있다.[94] 노태우가 대통령이 된 과정이 꽤나 웃긴데 당시 야권 후보 중 김영삼김대중 중에서 한 명만 나왔더라면 노태우가 당선될 일이 없었다. 그러나 김영삼과 김대중은 둘 다 양보를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반군사정권 표가 김영삼표와 김대중표로 갈리면서 노태우가 당선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95] 다만, 노태우가 당선되었던 1987년 선거를 앞두고, 외무부, 국가안전기획부 등을 통한 대통령 선거에 대한 개입 의혹이 있었다. 외무부는 민정당 노태우 총재 미국 및 일본 방문을 앞두고 친한파 미국언론인 초청 티켓 배분 추진, 주 일본대사를 동원한 일본 기자들의 예상질문 파악 및 보고를 비롯하여 노태우 총재 순방 관련 외무부 기밀문서를 집권여당이었던 민정당과 실시간으로 교류했다. 우연인지 당시 노태우 총재 미국 방문에 동행했던 한국방송공사(KBS) 김인규 기자는 이명박 정권기인 2009년 11월 한국방송공사 사장이 되기도 했다. 한술 더 뜬 국가안전기획부의 활동을 보면 '상록사업'이라는 공작명으로 대선을 조직적으로 관리했는데, 1987년 대선 직전의 KAL858기 폭파사건 등 이른바 '북풍'을 선거에 이용한 것을 비롯하여 ▲특정 단체에서의 시국 강연과 노태우 후보 지원 요구 ▲국가안전기획부 직원 및 가족들의 대민접촉을 통한 선거운동 ▲사업장 근로자 득표율 제고 대책 등을 담은 문건들이 2007년 공식적으로 확인됐다.[96] 현재 경례구호가 가장 긴 곳은 육군포병학교로 "충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