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등장인물

 


2000년~2002년 까지 방영된 KBS 대하 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에 대한 문서
드라마가 워낙 길었는지, 몇몇 조연들은 1인 다(多)역을 하기도 하였다. 관련 인물에는 ★ 표시. 그리고 가상으로 등장한 인물은 ☆, 사료와 달리 일찍 하차한 인물들은 #.
한편, 왕건 측과 궁예 측의 인물들 중에는 두 정권에 걸쳐서 활동한 인물들이 많은데, 왕건에 협조적인 인사들을 왕건 측으로, 대립하면서 반란을 일으킨 인물들을 궁예 측으로 정리한다.
1. 세 주인공
2. 왕건 측 인물
2.1. 가족[1]
2.2. 친인척 및 송악 시절의 인물들
2.3. 주요 신료
2.4. 주요 장수
3. 궁예 측 인물
3.1. 가족(처가)
3.2. 측근 및 장수
3.3. 반역자
4. 견훤 측 인물
4.1. 견훤 일가
4.2. 사벌주세력
4.3. 책사 및 신료
4.4. 주요 장수
4.4.1. 후백제 건국 전후
4.4.2. 후백제 중반 이후
4.5. 그 외 인물
5. 신라 측 인물
5.1. 국왕
5.2. 왕족 및 신료
5.3. 지방관 및 장수
6. 주요 호족들
7. 승려
8. 그 외의 인물


1. 세 주인공


* 왕건(최수종, 아역오현철): '''고려를 세운 초대 황제'''이다. 송악의 성주 왕륭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도선대사로부터 수학한 유발제자이다. 처음에는 뱃일을 도맡으며 노쇠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송악의 성주로 그 임무를 다하다가 궁예가 군사를 일으켜 송악에 다다르자 아버지와 함께 송악을 바치며 궁예의 신료가 되었다. 장군으로 모든 전투에서 승승장구하여 궁예의 눈에 들었고, 극 중에서 의형제를 맺으면서 궁예의 신임을 받았다. 왕건이 장군이 된 이후로는 궁예는 직접 전투에 나서지 않을 정도로 왕건에게 군사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맡길 정도로 신임을 받았으니 거의 황제에 가까운 권력을 갖기도 하였다.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를 공략해 취함으로써 궁예가 후삼국 중 가장 넓은 영토와 힘을 갖게 하는데, 왕건이 앞장섰다. 사주를 풀이하여 왕건과 궁예가 상극임을 알게 된 종간의 이간질에도 궁예의 신임을 받아왔으며, 그 때문에 부하 장수들의 혁명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충성을 맹세했었다. 결국엔 백성들의 굶주림과 어려움을 보고, 혁명을 일으킴으로써, 고려를 건국하여 초대 황제가 되었다. 덕을 겸비한 황제로 많은 신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똑부러지는 일 처리로 후백제와 다르게 태자(정윤) 문제를 해결했으며, 하늘도 그를 어여삐 보셨는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묘책이나 인물이 계속해서 등장하며 고려를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신료들의 권력 암투를 없애는데도 특출한 대화법을 이용해서 모두를 다스렸으며, 이러한 왕건을 위해서는 목숨을 기꺼이 바치려는 인물들이 엄청났음을 알 수 있다.

* 궁예(김영철,아역은 맹세창) : '''신라의 후궁의 아들로 태어나 왕족의 피를 이어받았음에도 권력에 밀려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인물로 신라를 증오'''했다. 승려로 수행 중에 사형인 종간을 만나 전국을 떠돌다가 죽주의 기훤과 북원의 양길에게 의탁했고, 백성들을 돌보면서 여기저기서 사람이 모여들어 황제로 추대했다. 활을 잘 다스린다는 이름의 궁예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산적들을 규합하고, 성을 장악하고 신라로부터 독립하고 적대심을 가진 인물들을 휘하에 들이면서 진정한 황제로 후고구려를 건국하였다. 처음에는 백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백성이 결코 원하지 않거나 힘든 일이 있다면 결단코 하지 않을 정도의 성군으로 자리매김했으나 건국 후 순행길에 올랐다가 만난 청주의 아지태를 만나 대동방국이라는 허황된 꿈으로 수도를 무리해서 옮기고, 나라명도 계속 바꾸면서 가혹한 나라 운영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샀고, 죽음의 기로에서 일어선 뒤에는 더욱 폭정이 심해져 특유의 관심법을 통해 죄가 없거나, 작은 죄를 지은 자들까지 모조리 숙청했는데, 이는 장인어른이나 황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나둘씩 신료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등을 돌리기 시작하였고, 결국엔 왕건 혁명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궁예는 왕건을 생각했고, 이 혁명을 그가 앞장서서 일으켰다고는 믿지 않았으며,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죽는 순간까지 왕건을 마음 속에 품었다. 극 중에서는 그렇게 왕건에 대해 원한을 갖지 않은 채 혁명 이후, 명성산에서 은부에게 부탁해 그 삶을 마감하였다.

* 견훤(서인석) : '''신라 여왕숙부를 경호하는 군관 출신'''으로 등장해 인생을 살다가 위홍 사후, 능환, 추허조 등 휘하의 의형제들과 함께 금성(錦城,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의 미다부리정으로 발령받아 이동해 터를 잡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나라를 세웠다. 특유의 호탕함과 완력으로 성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성주들을 휘하에 두었고, 남성다움으로 후백제를 건국해서 열심히 나라를 다스렸다. 궁예와는 다르게 전투에 직접 나서는 경우가 많았으며, 신라를 품으려 했던 왕건과는 다르게 그는 신라를 힘으로 무너뜨리려고 했었다. 그런 그에게는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먼저 책사 능환과 최승우의 갈등이 있었고, 아들들의 권력 갈등이 있었으며, 조강지처였던 황후와 황제 즉위 이후에 맞이한 승평 부인간의 갈등도 있었다. 나이를 들먹이며 후방으로 내쳐지는 장수들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있었으니 한 나라의 황제로써 피곤한 삶을 살았다. 궁예가 아닌 왕건의 진정한 라이벌로 세월을 보내는 호걸이었으나 친부인 아자개와의 단절과 아재개가 왕건과 손을 잡음으로써 항상 왕건에게 패배하는 전투가 여럿 있었다.[2] 그리고 이러한 갈등들이 그가 후에 나라를 잃게 되는 초석이 되었는데, 특히 많은 자식들을 잘 다스리지 못함이었고, 이 자식들로 하여금 난이 일어나 아끼던 아들을 잃었고, 권력 다툼으로 쫓겨나서 금산사에 감금되는 등 부끄러운 말년을 보내게 되는 인물로 극 중에서는 조물성 전투 중에 의형제를 맺은 왕건에게 귀부하여 일리천 전투에 나서다가 후백제가 멸망한 것을 보고, 생을 마감하는 인물이다.

2. 왕건 측 인물



2.1. 가족[3]


  • 왕륭(신구)[4] : 왕건의 부친으로 일찍이 도선대사를 통해 왕건이 황제 될 것임을 알고 훈육을 했으며, 궁예에게 송악을 통째로 맡기면서 왕건을 그의 부하로 두게 한다. 그리고 본인은 금성(金城, 지금의 김화군)의 태수직에 있다가 얼마 안 가 세상을 떠난다.
  • 한씨(서우림) : 왕륭의 부인이자 왕건의 어머니로 왕륭의 사망 이후, 암자에서 여생을 보낸다는 말과 함께 하차한다.
  • 신혜왕후 유씨(박상아)# : 왕건의 첫째 부인으로 송악 인근 정주의 대호족인 유천궁의 딸이며, 극 중의 이름은 부용. 1차 나주 침공 당시부터 등장해 부친의 권유로 왕건의 시중을 들면서 약혼을 하기는 했으나, 이후의 전개 상황에 실망했는지, 자살을 기도하다가 석총에게 발견되어 그가 머물던 절에서 승려가 되었으나 왕건을 잊지 못했는지 후에 석총을 처음 만나면서 그 소식을 들은 왕건과 오씨 부인이 절에 찾아가 되찾아 오고, 정식으로 왕건과 혼인을 맺었다. 첫째 부인이긴 하지만 초기 대소사는 둘째 부인이 맡았고, 이후 본격적으로 집안의 어른으로서 왕건의 혁명 당시에 가장 비중있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황후가 된 이후에 중병을 얻으면서 요양을 떠나면서 하차한다.[5]
  • 장화왕후 오씨(염정아) : 왕건의 둘째 부인이자 2대 황제 혜종(왕무)의 어머니이다. 금성(錦城, 지금의 나주) 관내의 목포의 호족 오다련의 무남독녀이며, 극 중 이름은 도영. 후백제 견훤 정권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있던 부친 오다련과 태수 종례(나총례), 수달(능창)이 대화[6]하던 중 다과상을 건내는 모습으로 첫 등장. 사내 못지않은 활동성으로 왕건의 1차 서남해 침공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이후로도 나주에서 태수인 부친보다 더 열심히 챙기면서 복지겸한테 "갑옷을 입지 않을 뿐 장수의 모습이다."라는 극찬을 받기도 하였다.[7] 왕건이 궁예 정권 말에 시중이 되면서부터는 아예 나주에 살다가 고려 건국 이후에 재합류. 충주부인과의 갈등 속에서 아들 무를 정윤에 책봉하게 된다. 첫 부인이자 황후였던 유씨(부용)가 떠난 후, 황후가 공석이 되면서 자연스레 왕후가 되어 드라마 후반대에는 그녀를 보여주면서 자막에 '나주부인' 대신 '장화왕후'로 많이 나온다.
  • 충주부인 유씨(전미선) : 왕건의 셋째 부인이자 고려의 3대, 4대 황제의 어머니[8]로 충주의 대호족인 유긍달의 딸로 극 중 이름은 수인. 왕건이 아자개를 만나려 할 때, 유긍달의 집에 들를 때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전투(사화진 전투) 이후 궁예 의 허락으로 왕건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9] 이후 철원으로 오긴 했지만, 둘째 부인인 오씨와의 미묘한 갈등 탓인지 소리소문없이 지내오다가 고려 건국 이후에 신혜왕후가 궁에서 떠나고, 아들인 태자 태를 낳자, 태를 정윤에 오르려고 대립을 세웠으나, 태가 일찍 요절하고 나서 오씨와 화해하고 이후 최종화까지 오씨와 함께 등장한다.
  • 왕무(훗날의 혜종)(안정훈, 아역은 강민규[10]) : 왕건의 장남이자 장화왕후 오씨의 유일한 아들이다. 왕건이 시중이 될 무렵에 태어나, 이후에는 아역 배우만 나오다가, 배역이 성인으로 들어서고, 조물성 전투부터 부친과 함께 전장에 나서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11]

2.2. 친인척 및 송악 시절의 인물들


  • 왕평달(장항선) : 왕륭의 아우이자 왕건의 숙부이며, 왕식렴, 왕신의 아버지. 왕륭 사후, 연일 전투에 나서는 조카를 대신해 집안을 이끌었으나, 궁예 암살에 연루되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궁예의 명으로 두 스승들과 함께 외딴 섬으로 유배를 가면서 하차한다.
  • 변사부(나한일)☆ : 왕건의 무예 스승, 1차 나주 공략 때 왕식렴과 이치와 함께 큰 역할을 했으며, 후에 왕평달, 마사부과 함께 유배를 가면서 하차한다.
  • 마사부(박영목[12])☆ : 왕건의 글 스승, 왕륭이 금성태수로 부임할 때 동행해, 왕륭의 임종을 지켰으며, 이후로는 왕평달, 변사부와 함께 암살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가면서 하차한다.
  • 왕식렴(정국진) : 왕건의 사촌 동생으로 일찍부터 왕건을 보필하면서, 나주 공방전에서 활약했으며, 이후에는 북방 지역을 다닌 적이 있었다. 고려 건국 이후에는 서경 총관으로 발령받아 그 곳의 책임자로 활약한다. 후속작 제국의 아침에서는 왕건 사후, 왕규#s-1와 대립하면서 그 권력을 드러내는 인물이다.[13]
  • 왕신(김광영) : 극 초반(허월이 송악에서 도선의 죽음을 알릴 때)부터 등장한 왕건의 사촌동생으로 형인 왕식렴에 이어 사촌 형인 왕건을 돕다가[14] 조물성 전투 이후, 화친의 목적으로 후백제에 볼모로 잡혀갔다. 이후, 화친이 깨지면서 극 중 자결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 장수장(장순국)☆ : 가상의 인물로 왕건 집안의 집사로 있다가 왕건이 황제로 즉위한 후에 복지겸 휘하의 내군으로 들어갔다. 이후, 왕무에게 무예를 가르쳤으며, 왕무의 첫 번째 전투인 조물성 전투에서 용검의 계락으로 위기에 처한 왕무를 구하려는 도중 상귀와의 일기토에서 우위를 점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것을 보고 달려나온 용검과의 일기토 끝에 전사했다.
  • 유천궁(김진해[15]) : 신혜왕후 유씨(부용)의 아버지이자 정주의 대호족, 유씨가 요양을 떠나면서 자연스레 권력에서 물러난다.
  • 오다련(이일웅) : 장화황후 오씨의 아버지. 발음 때문인지, 극중에서는 '오다'이라고도 가끔 불린다(...). 금성(錦城, 지금의 나주) 관내 목포의 호족으로 소금업을 하면서 부를 축적했으며, 견훤의 순행 도중, 태수였던 종례와 함께 인사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한다. 견훤의 압박에 힘들어하다가 서남해 공략을 목표로 한 왕건의 계획을 듣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면서 왕건이 보낸 사람들을 창고에 가두었으나, 사정을 안 딸 도영의 설득에 종례와 함께 견훤을 배신하고, 왕건에게 의탁해 서남해 일대를 왕건의 영향력 아래 두도록 한다. 이후, 나종례의 뒤를 이어 나주 태수를 맡다가, 고려 건국 이후 중앙에 들어와 광평성의 원로로 지냈는데, 자신의 외손을 정윤으로 책봉하고자 박술희를 대신해 왕건에게 주청했으나, 이후 이를 둘러싼 대립 끝에 왕건의 질책을 듣고, 향리로 내려가는 것으로 끝인 줄 알았지만... 드라마 후반부에 나주에서 다시 등장해, 견훤의 금산사 탈출과 관련된 내용을 왕건에게 전해주고, 금산사를 탈출해 나주를 떠나 왕건에게 가는 견훤을 배웅하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하차. 여담으로, 배웅을 받으며 견훤은 고비에게 "저 사람은 50년 전부터 나를 봐왔던 사람."이라고 하였다.
  • 유긍달(민욱) : 충주부인 유씨(수인)의 아버지로 나름 권력 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계 구도를 놓고 오다련, 패서 지역 호족들과 권력 싸움을 하다가 왕건의 질책을 받고, 오다련과 향리로 내려가게 되면서 140화에서 무의 정윤 책봉식을 끝으로 퇴장.

2.3. 주요 신료


  • 태평(김하균) : 유금필 휘하의 낭장으로 처음 등장했는데 사화진 전투 당시 지략을 펼치면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왕건의 군사가 되었고 2차 나주 전투와 고려 건국 이후에도 큰 공을 세우는 책사로 자리잡는다. 고려 건국 이후, 순군부령에 임명되었고, 141화 이후에는 병부령으로 재직 중일 때 조물성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염병을 얻어 전장에서 세상을 뜨고 만다. 책사로서 여러 큰 공을 세웠기에 주군인 왕건도 매우 슬퍼했다.
  • 최응(정태우) : 뛰어난 신동으로 일찍이 궁예의 눈에 띄어 그의 조정에 들어왔고, 이 때 만난 왕건을 여러차례 도운 일로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이후, 광평시랑과, 병부령, 내봉경 등의 여러 요직들을 맡았다. 관련 문서에도 나오지만, 사서오경과 문장에 능통했으며, 전장에서 전략을 세우는데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궁예가 황제로 있을 때는 늘 대전에서 궁예와 함께 있었고,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이후에도 늘 불려와서 왕건의 고민을 풀어주거나 조언을 하는 역할로 함께 있었다. 34세에 요절하게 되어 고려의 삼한통일을 보지 못하였으나, 죽는 순간까지 나라를 운영하는 법과 세상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글을 왕건에게 남겨 마지막 순간까지 왕건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충신.
  • 왕유#s-1(김진태) : 처음에는 허월이 종간에게 추천한 박유라는 인물로 등장하여 아지태를 견제하고, 궁예의 아들들을 가르치는 학사로서 일하다가 궁예의 폭정에 앞날을 개탄하며 종간에게 글을 남기고, 금강산에 몸을 숨겼다. 왕건의 즉위 이후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 왕건의 자식인 왕무의 스승으로 모셨으며, 왕씨 성을 하사하여 왕유가 되었다.
  • 김행선#s-1(민지환) : 고려의 시중 벼슬에 있는 원로 대신으로 왕건의 역성혁명 이전부터 금서성이란 관청에서 관직에 몸을 담아 왔던 인물로서 종간이 임춘길을 통해서 고경참문을 만들어 왕건을 모함하려는 당시 동료 학사들과 최응과 함께 거짓으로 해석해 자신들과 왕건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였다. 왕건이 즉위한 이후에 시중에 임명되는데, 상당히 유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왕건의 장인들을 비롯한 원로대신들이 140화 이후에 하나둘씩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문신들 중에선 왕규, 추언규, 최지몽과 함께 최종화까지 등장한다.
  • 왕규#s-1(김명수) : 140화에서 왕무의 정윤 책봉 이전, 추언규와 함께 천거된 신료로서 내봉성에서 많은 일을 도맡았으며, 김행선, 추언규와 함께 주요 신료로서 얼굴을 내민다.
  • 추언규(김경하)★ : 140화에서 중국 오월국에서 벼슬을 했던 인물로 왕규와 함께 천거되어 조정의 신료가 되었다. 여담으로, 처음 소개받은 때, 자막에 '추언위'라고 기재되었다. 이 배우는 태조왕건 초반에 견훤에 의해 함락당하게 되는 무진주 도독으로도 출연하였는데, 신강과 함께 막으려고 준비하던 중에 음독자결하였다가 후에 다시 다른 역할로 출연하게 된다.
  • 최지몽(지아니 박) : 천문에 밝은 신동으로 초명은 '최총진'이다. 조물성 전투 당시인 141화부터 언급이 되어 최응의 천거로 조정에 들어와[16] 최응을 수발해왔으며, 최응의 정신적인 유산을 받았다.[17] 길흉화복을 점치면서 고창 전투의 승리나 후백제의 정변을 예측하기도 하였다. 역사적으로 최지몽은 왕건부터 6대 황제인 성종까지 모시면서 81세까지 장수한 인물.

2.4. 주요 장수


  • 유금필(강인덕): 본래는 강 장자 휘하의 무사로, 왕건이 궁예 휘하에 들면서 송악성을 개축할 당시부터 그에게 합류한 인물로 왕건과 강비(연화)와의 관계를 누구보다 아는 사이이다. 역사적으로나 극 중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없는 최고의 무장이다.[18] 드라마상 왕건의 의형제 중에서 왕건 다음으로 둘째이며, 유배를 가서도 고려를 위해 큰 공을 세우는 최고의 무장이자 충신이다. 극에선 나오지 않지만 후에 왕건에게 자신의 딸을 보냄으로써 왕건의 장인이 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 신숭겸(김형일): 왕건의 의형제이며, 평산 신씨의 시조이며, 개국 1등 공신 4인 중 한 사람이다. 초명은 능산이며, 신숭겸이란 이름은 고려 건국 후, 서경으로 행차하던 중, 평산 인근에서 기러기를 활로 쏜 걸 본 왕건이 그의 성과 새 이름을 하사하였다. 진중하고, 생각이 깊으며, 형제들을 끔찍히 아끼는 장수였으며, 초기와 후반에는 언월도를 사용하였다. 공산 전투에서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왕건의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싸우다가 김락, 전이갑 형제와 함께 전사해, 고려 시대 최고의 충신으로 지금도 회자되는 최고의 장수이다.
  • 박술희(김학철): 본래는 궁예 밑에 들어온 이후로 왕건 휘하에서 활약했으며, 왕건의 유언을 받는 등의 충신이었고, 드라마에서는 23화 후반에 송악성을 개축하던 왕건에 신숭겸과 함께 합류하려 온 인물로, 왕건 의형제의 막내를 맡았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모습과 달리 문[19], 무[20], 예 모두 뛰어난 장수이며, 무엇보다 친화력도 뛰어났기에 친아들도 멀리하던 아자개가 제일 좋아했던 인물이다.
  • 홍유(송용태): 드라마에서는 김순식 휘하의 장수로 등장해 아래의 배현경과 세트로 나온다. 개국 1등 공신으로 이후에는 커다란 언월도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맹장으로 나온다. 청주의 선장이란 호족이 난을 일으킬 때, 앞장서서 우두머리인 선장 형제를 처단하는 공을 세운다.
  • 배현경(신동훈): 드라마에서는 김순식 휘하의 장수로 등장했으며, 개국 1등 공신. 병부령으로 있던 최응이 사망한 이후, 병부령를 맡았으며,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왕건을 보좌한다.
  • 복지겸(길용우): 드라마에서는 본래 양길의 수하로 나왔으며, 궁예의 밑에 있다가, 폭정을 견디지 못하고,[21] 왕건을 추대해 고려를 세운 개국 1등 공신으로 전장에 나서서 싸우는 다른 공신들과는 다르게 내군을 지휘한다. 하지만 왕건의 친정 때는 함께 종군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 김락(김기복): 드라마에서는 김순식 휘하의 장수로 나오고, 개국 2등 공신. 여러 전장에서 활약하다가 신숭겸과 함께 공산 전투에서 그 목숨을 다하여 왕건을 구해낸 충신이다.
  • 염상(심우창): 본래 궁예 휘하의 내군 소속으로, 종간의 명을 받아 미향의 목을 졸라 없애려 하는 등 궁예를 위해선 더러운 짓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신 도읍 철원의 실상을 알게 된 뒤, 궁예의 연이은 폭정과 난행에 실망하고 회의를 느끼게 된다. 결국 궁예가 석총을 공개처형하는 사태에 이르자, 염상은 내군에서 마군장군으로 보직을 옮긴다. 훗날 4기장이 역성혁명을 계획할 때, 염상은 옛 부하였던 장일 부장을 쿠테타 세력에 끌어들이는 활약을 하였다. 이로 인해 개국 2등 공신이 되었으며, 사료와 달리 드라마에서 다른 활약들을 펼친다.
  • 김언(조인표): 본래는 김순식 휘하의 장수로 나오며, 왕건의 나주 공략전 이후에는 오랫동안 나주 총관을 맡아 견훤의 침공을 막아왔다. 왕건이 즉위하고 난 이후, 조물성 전투 무렵부터 중앙으로 소환된 것으로 보이며[22], 공산 전투에서 애술에게 베였다. 실제로는 종희와 함께 왕건의 초기 최측근으로 유금필, 신숭겸, 박술희보다도 앞서서 왕건의 부장으로 활동했으며 나주 전선에서 실제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 전이갑(강만희)/전의갑(권혁호): 전이갑이 형, 전의갑이 동생으로 본관은 정선 전씨이다. 사화진 전투 당시부터 윤신달과 함께 등장해 많은 전투에 참여했으며, 둘 다 세트처럼 같이 나오다가 공산 전투에서 전이갑은 애술에게 전의갑은 소달+부장 1명에게 협공을 당하면서 전사한다.
  • 윤신달(이계영)★[23]: 사화진 전투 당시 위의 전이갑과 전의갑 형제와 함께 등장한다. 파평 윤씨의 시조로서 초기에는 부장으로 이름을 알렸으나, 고려 건국 이후부터는 박수문 형제, 왕충, 염상과 더불어 중간급으로 활약하면서 본격적으로 큰 임무에는 모습을 보이는 장수가 되었다.
  • 왕충(이한위)★[24]: 드라마 후반 무렵부터 등장했으며, 고려가 건국한 뒤 모습을 보인 장수로 대장군들의 뒤에서 보필하는 역할을 했으며, 막판에는 경보대사를 만나러 김행선, 최지몽과 함께 옥룡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 입전(오성렬)★☆[25]: 청주 출신의 인물로 아지태의 천거에 의해 법률을 관장하는 의형대의 일을 맡아 보고 있었다. 아지태의 역모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궁예의 관심법과 종간과 은부가 이끄는 내원의 감시가 두려운 나머지 신방과 함께 역모를 고변한다. 고려 건국 이후에도 의형대를 맡았지만, 비중은 줄어들었다.
  • 신방(김태형)☆: 고려 건국 이전 즉, 궁예 정권에는 같은 청주 출신인 입전과 같은 행보를 보이다가, 고려 건국 후에는 복지겸의 내군에 들어가 복지겸의 심복으로 활약한다. 함께 내군을 구성한 장일, 장수장이 모두 전사한 후에도 계속 복지겸을 보좌했으나 공산에서의 첫 전투 때 후백제군의 야습을 받아 전사.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백제의 기병대에 맞서려 안간힘을 쓰다 말발굽에 밟히며 가장 먼저 전사한 지휘관이 되었다.
  • 금식(김옥만)☆: 충주의 지방 호족이자 신명순성왕후의 아버지인 유긍달 휘하의 사병들을 이끄는 지휘관으로, 죽령 전투와 조령 일대의 사화진 전투 당시 왕건을 도왔으며, 왕건과 신명순성왕후가 되는 충주부인 유씨(수인)의 결혼식 장면과 이후 고려 건국 후, 아자개를 귀부하는 과정에서의 등장을 끝으로 퇴장한다. 이 역을 맡은 배우의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맹장에 가까운데, 극 중에서 가장 활약한 죽령, 조령 전투에서 보면 되려 군사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 극 중 활약으로만 본다면 맹장보다는 지장에 가까운 인물...
  • 애선(김동석,특별출연): 조물성의 성주. 1차 조물성 전투에서 후백제군과 싸우다가 애술에게 결국 전사했다.
  • 박수문(김경응)/박수경(김관기): 패강진의 대호족인 박지윤의 아들들로 박수문이 형, 박수경이 동생이다. 궁예 정권이 철원에 있기 전부터 간간히 나오다가, 고려 개국 직후에는 신료로, 조물성 전투(141화)를 전후해서는 순군부 휘하의 장수로서 활약하지만, 비중은 많은 편이 아니다. 다만, 이후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는 나름 비중이 큰 인물들로 나온다.
  • 장일#s-1(공호석): 왕건 초기의 부장급 장수, 내군에 몸담았다가 궁예의 폭정을 계속 경험하면서 회의감을 느꼈고, 이를 눈치챈 신숭겸과 염상의 조언에 결국 왕건의 혁명 때 궁예를 배반하고 궁문을 여는 장수가 되었다. 이후에도 복지겸 산해 내군의 부장 중 하나로 활약했지만, 이흔암의 반란 때 왕건 대신에 독화살을 맞고 대신 죽었다.
  • 이치(훗날의 이도)(장기용): 웅주(지금의 공주시)의 지방 호족이자 장군으로 왕건의 나주 공략전 당시에 왕식렴, 변사부 등과 함께 오다련을 만나기 위해 잠입하거나, 전투 당시 군을 지휘하는 등 공을 세웠고, 극 후반의 운주성 전투에서는 서목이라는 호족을 보내어 남천에 갇혀 있던 왕건 일행을 장대비 속에서 구해냈고, 직접 참전해 최필의 목을 베는 공을 세우고[26], 전의 이씨의 시조가 되며, 왕건으로부터 본래의 이름 '치' 대신 '도'라는 이름을 얻는다.

3. 궁예 측 인물



3.1. 가족(처가)


혈혈단신으로 살아온데다가 승려였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것 자체가 멀었던 궁예였다. 오죽하면, 송악에서의 팔관회 이후, 허월이 왕건과 유천궁의 딸(부용)과의 관계를 가져보라면서 "북원 부인(양길의 딸인 미향)도 그렇고, 황후도 안 됐어. 폐하(궁예)는 여자하고 담을 쌓은 분이거든!!!"라는 발언으로 주변에 있던 호족들을 놀라게 했다.
물론 지지기반을 다지기 전에 양길의 막내딸과 정략결혼으로 아이까지 가졌고, 나라를 세운 후에는 패서의 호족들 중 하나였던 강 장자의 딸인 연화와 결혼해 아이를 셋이나 가졌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불행해졌다. 처가도 포함해서...
  • 미향(유민주)☆ : 양길의 막내딸로 양길이 궁예를 좀 더 가까이 두고자 시집을 보낸 인물로 극 중에서 궁예의 첫 아이를 출산하였다. 그러나, 궁예와 양길이 적으로 끝을 본 상황으로 치닫으면서 아이는 허월의 사찰에서 승려가 되었고, 그녀는 끝내 자식을 보지 못하고, 순행 도중 명주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27] 그녀의 죽음은 궁예에게 나름 상처를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고 나서 궁예는 강비와 합방하게 된다.
  • 강비(김혜리, 아역은 이정후[28]) : 젊은 시절 왕건의 정혼자로 정해졌으나[29], 왕건의 부친인 왕륭이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를 모르고 종간이 천거하여 궁예의 부인이자 후고구려의 황후가 되었다. 궁예의 폭정 때에 억울하게 쌍둥이 아들들과 함께 생을 마감하였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 양길(이치우) : 궁예의 즉위에 어쩌면 발판을 마련하게 만든 사람이다. 그의 수하(은부, 복지겸, 환선길, 이흔암 등)가 대부분 궁예에게 귀속되면서 막강한 군사력으로 궁예가 즉위하게 된다. 이후, 궁예의 독립에 분개하면서 주변 세력들과 함께 궁예를 두 차례나 공격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최후를 맞는다.
  • 강 장자(김성옥)☆ : 권력에 눈이 먼 호족 출신으로 연화의 아버지다. 처음에는 송악의 왕륭과 사돈을 맺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으나 일찍이 권력 욕망을 가진 것을 안 왕륭이 왕건과 연화의 혼인을 반대하자, 극도로 송악 사람들을 경멸하였고, 우연히 마주친 궁예와 종간을 통해 딸 연화가 황후로 추대되자, 이를 발판 삼아 태자들을 앞세워 아지태와 손을 잡고 나라의 권력자가 되려는 야심을 품었다가 발각되었다. 시중이었던 왕건이 재판을 통해 그를 용서하는 대신 가택 연금을 하였으나 궁예는 끝끝내 다시금 이를 물고 늘어지며 장인인 그를 처형하였고, 이는 강씨 집안의 몰락을 야기하였다.
  • 백씨 부인(박주아)☆ : 강 장자의 아내이자 연화의 어머니. 남편보다는 눈치가 있지만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인물. 남편인 강 장자가 과욕을 부리자 나름 걱정을 하며 우려하나 결국 처형당하자 정신줄을 놓은 뒤 얼마 안 지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연화가 이에 분개하여 궁예에게 모욕적인 말을 쏟아냈고, 이것이 연화가 처형되는 빌미가 되었다.
  • 강 장자의 양자(이필모 - 김성수[30])☆ : 강 장자가 훗날 자신이 태자를 등에 업고 섭정 노릇을 하게 되었을 때, 집안의 대를 잇는 권력층을 만들기 위해 들인 양자이다. 물론 궁예와 연화는 이를 반기지 않았다. 비중은 그다지 없는 캐릭터로, 왕건 가문 측에서도 별 신통지 않은 인물로 평가했다. 연화가 왕건에게 역성혁명을 제안했을 때 양자 역시 내군에 잡혀 들어갔으나, 궁예는 연화와 두 아들은 처형하는 대신에 강 장자의 양자는 방면하였다. 그 이후의 등장이나 언급은 없다.

3.2. 측근 및 장수


  • 종간(김갑수) : 궁예가 어린 시절 세달사에 머물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보좌[31]했으며, 궁예가 왕건과 함께 의지하는 인물로 벼슬에 욕심이 없어 내원이라는 곳에서 차를 마시면서 지낸 사람이다. 본래 자신도 신라 왕실의 일원이었지만, 역모에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할 때 살아남아 중이 되었다고 한다. 관상을 잘 보긴 하지만, 범교나 도선한테 꾸중만 듣는다. 끝없이 왕건을 경계하였으며, 궁예를 해하는 자라고 생각하며 온갖 간괴를 부려 왕건을 제거하려 했으나 결국엔 모두 실패했고, 차선책으로 왕건과 손을 잡고 궁예를 보좌하려는 시도도 보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왕건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우는 계기만 만들고 말았다. 궁예가 병상에 누워있을 때는 직접 조회를 주관하기도 할 정도로 공식적인 벼슬은 없었으나 절대적인 2인자의 행보를 걸었다. 신료들은 그에게 고개를 모두 숙였으며, '내원 어른'이라는 호칭으로 그를 대했다. 일을 처리하는 것이 날선 칼과 같이 철두철미 했으며, 휘하에 은부와 부장들(염상, 장일, 금대)를 두었지만, 궁예가 순행 이후에 아지태를 조정에 들어오고 난 후, 횡포가 시작되자 아지태를 견제하기 위해서 허월의 추천으로 불려들였던 박유가 떠나고, 철원의 현실에 환멸하던 염상이 떠나고, 장일마저 최후에 왕건에게 돌아설 때, 끝내 은부와 금대 부장만을 휘하에 둔 채 왕건의 혁명 때 제일 먼저 목숨을 잃었다. 왕건의 혁명 당시 궁예와 작별하고, 이후 궁에 입성한 왕건[32]에게 본인이 취하려는 이 나라가 결국 궁예가 만들어 놓았음을 상기 시킨 채 자결하였다.
  • 신훤(박승호)☆/원회(손호균)☆ : 이 둘은 본래 죽주(지금의 안성시)의 기훤의 부하들로서 수하들이 노략질을 하다가 궁예에게 당한 이후 복수를 하기 위해 궁예와 만나 격투 끝에 패배한 후 기훤에게 천거하여 함께 지내다 백성을 가장 먼저 생각하며 보이는 궁예의 행보에 감복하고, 망나니보다 더한 기훤의 폭정을 견디지 못하고[33], 기훤을 배신하고 제거한 후, 궁예를 추대하고 수하가 된 인물들이다. 궁예가 양길을 거쳐 자립하면서 송악에 이를 때까지 활약하다가 양길이 궁예를 처음 공격할 때 왕건과 함께 가평 축령산에서 제압하던 중에 양길에 의해 전사한다.
  • 은부(박상조) : 양길의 부하로 처음에는 양길이 자신의 막내사위였던 궁예를 감시하라는 명으로 옆에서 지켜보았으나, 이후, 궁예와 그를 모시는 종간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바꿨고, 나라를 일으키려는 허황된 꿈에 사로잡힌 양길을 등지고, 가장 먼저 종간을 섬겼고, 궁예 정권 하에서 내군을[34] 맡아 궁예와 종간을 보필한 장수였다. 궁예의 최후까지 보필하다가 명성산 계곡에서 궁예의 부탁으로 그를 죽이고, 자신은 부장 금대에 의해 최후를 맡는 인물로 나왔다.
  • 금대(최운교)★[35] : 선배인 염상과 동료인 장일이 왕건 쪽으로 돌아섰음에도 끝까지 궁예를 지키려 했던 내군의 은부 휘하의 장수이다. 왕건의 혁명 이후에 궁예를 처형한 은부를 자신의 손으로 처형하고, 본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종회(진운성) : 본래 김순식 휘하의 장수로 금성(金城, 지금의 김화군 지역) 태수로 있던 왕륭이 위독하다는 걸 궁예에게 알린 장수이다. 김언과 함께 나주를 지켰는데, 1차 나주 공방전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3.3. 반역자


이들은 대부분 궁예 조정에서 득세를 하였으며, 작게 크게 왕건의 진영과 대립각을 세우던 인물들이다. 이들 중 먼저 반란을 시도했다가 처형된 아지태를 제외하고는 왕건의 혁명(119화~120화)에 동참하거나 살아남았지만, 이후 반란을 도모했다가 처형된 인물들이다.[36]
  • 아지태#s-1(김인태#s-1) : 큰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궁예에게 접근하여 현혹시킨 청주 출신의 인물이다. 궁예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나라의 자리 곳곳에 청주인들을 심어 나라를 쥐락펴락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자 했던 욕망 덩어리였다. 궁예가 폭정이 심해지고 나라 운영이 어려워짐을 알게 되자 처음으로 왕건에게 손을 내밀어 혁명을 일으키자고 종용하였으나 왕건이 이를 거절하고 이후 청주인들과 강 장자를 끌여들여 반란을 시도했다가 입전, 신방의 고변으로 알게 된 종간과 은부에 의해 체포. 궁예가 이 사실로 국문을 열게 되자, 왕건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궁예의 의심만을 일으킨 채 처형되었다.
  • 환선길(백인철[37]) : 양길의 부하로 등장하였고, 후에 궁예를 모시면서 마군대장군이 되었다. 지략이 모자르고 오로지 힘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했는 인물로 왕건의 혁명 당시 얼떨결에 동참하긴 했지만, 보상을 받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가족들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가 발각되어 참형되었다.
  • 환향식(이원발) : 왕건이 나라를 세운 뒤에 천거된 인물로 형인 환선길을 부추겨서 난을 일으켰으나 도망치던 중 붙잡혀 목 베어 죽는다.
  • 임춘길(조재훈[38]) : 청주 출신으로 아지태와 함께 궁예 조정의 실세로 군림하여 순군부의 낭중으로서 있었지만, 이후 아지태의 반란으로 그 직을 잃고 나서 우연히 머무르게 된 후백제의 첩자인 도우의 농간과 종간의 부탁으로 계속해서 왕건을 견제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하고, 왕건의 혁명 때에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39] 그러나 도우의 계속된 농간에 고향인 청주에 난을 조종하긴 했으나, 왕건 조정의 적극적인 반격과 함께 모의가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 이흔암(최주봉) : 이흔암의 누이가 환선길의 부인으로 둘이 콤비인 탓에 환선길이 나올 때마다 같이 나온다. 고려 건국 직전에는 나주로 내려간 박술희의 후임으로 충주를 맡아오다가 고려 건국 후에, 그 곳보다 더 험지인 웅주(지금의 공주시)로 발령이 났다. 당연히 황도로 올라올 줄 알았다가 병부령 원극유에게 그 소식을 들은 환선길은 길길이 뛰고 난리쳤으며, 현지에서 그 장계를 본 이흔암 본인도 아주 불쾌하였다. 웅주로 옮긴 이후, 환선길이 난을 일으키고 실패하여 가족들과 함께 처형당한 소식을 듣자 이에 불만을 품었고, 지키던 웅주성을 버리고 철원으로 와서 과거 환선길의 수하들과 함께 왕건과 마침 고려에 귀부하려 오던 아자개를 제거하고자 난을 일으켰다가 역시 실패[40]하여 자결하였다. 그리고 그 여파로 웅주성을 비롯한 금강 유역의 고을들이 일제히 백제에 투항하였다.

4. 견훤 측 인물


다른 진영의 출연진들과는 다르게 갑자기 하차하는 경우가 많다.

4.1. 견훤 일가


견훤에게 그야말로 '''만악의 근원'''이나 마찬가지였다. 3대가 닮을 정도로 고집이 똑같았으며, 세대 간 갈등 특히, 본처와 후처간의 갈등이 커지면서 집안과 나라를 분열하게 만들었다. 결국 아버지가 아들을 버리고, 또 세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하였으며, 결국 아버지가 자신이 이룬 국가와 아들들의 목숨을 거두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 왕후 박씨(금보라)☆ : 견훤의 첫 번째 부인이자 신검 삼형제의 친모로. 초반에는 조용하면서도 다소 심약한 성격이었으나 승평 부인의 등장 이후 시기와 질투를 계속해서 반복한 끝에 신검의 정변을 최종적으로 승인하기까지 한 인물이다. 실제 영상에선 안 나오지만 대본에서는 후백제가 망하자 목을 매어 숨을 거둔다.
  • 신검(이광기, 아역은 김영찬) : 견훤이 큰 아들로 권력에 야망을 갖고 있었다. 탄탄대로 일것 같지만 해당 문서처럼 번번히 짧은 판단력으로 인해 많은 군사를 잃고 패배하는 전투가 많았다. 이에 반해 견훤과 함께 전투에 참가한 금강이 계속해서 승전보를 얻자,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꼈으며 늘 황제 자리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능환 등 신료들의 추대로 다음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견훤의 허락이 없으니 아직 황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견훤에 대해서는 끝까지 예를 지키려고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집안을 패가망신시킨 꼴이 되어버렸다.
  • 양검(주민준, 아역은 윤동원) : 견훤의 둘째 아들로 신검에게 복종하는 인물이다. 패망한 뒤 용검과 사이좋게 유배길에 올랐다가 나란히 처형되었다.
  • 용검(강인기[41]) : 견훤의 셋째 아들로 신검부터 용검까지 본처인 황후 박씨의 소생이다. 신검과 양검의 그늘에 가려져 큰 역할을 하진 않으나,[42] 조물성에서 왕건을 오랫동안 보필했고 정윤 왕무의 무예 스승이던 장수장을 죽인 인물이기도 하다.
  • 국대부인 견씨(임채원[43]) : 견훤의 딸이자 박영규의 아내로서 처음에는 아역으로만 나오다가, 드라마 후반에 승평으로 귀향한 남편 박영규를 격려하면서 금산사에 갇혀있는 친부 견훤을 탈출시키기 위해 남편을 설득시키고 이후에는 고려에 내응하고자 한 인물로 왕건의 장모[44]가 된다.
  • 고비(조민희) : 견훤이 황제가 되고 난 이후, 박영규의 청을 들어주면서 받은 두 번째 부인으로 박영규 집안의 여인이자 금강의 친모로 '승평 부인'이라고도 부른다. 소생인 금강이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자, 서서히 권력의 맛을 들이려고 욕심을 부리다 견훤과 함께 금산사에 갇히게 되었고, 이후 견훤과 함께 고려에 와서 살게 된다.
  • 금강(전현, 아역은 김경호) : 승평 부인의 소생으로 무예와 문예가 두루 출중하다. 일찍이 견훤의 후계자로 낙점 되었으나, 황후와 세 명의 이복 형들에게 끊임없는 견제를 받았다. 결국 신검의 난 때 왕위를 노렸다는 죄목으로 목숨을 잃게 됨으로 후백제는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 능애(전병옥[45]) : 견훤의 친동생으로 초반에 사벌주에 머물다가 부친과 계모의 미움을 견디지 못하고 견훤에게 합류. 능환, 추허조와 더불어 후백제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인물이었다. 여러 전장에 나서기도 했지만, 이후,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능환과 함께 후방에 머무는 날이 많고, 형제 간 다툼에서 장조카인 신검의 편을 들면서 견훤과 사이가 안 좋다가 결국 신검의 난으로 인해 형제 간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후백제의 패망 때 능환에 이어서 왕건에 의해 처형되었다.

4.2. 사벌주세력


  • 아자개(김성겸) : 견훤의 친부로, 고향인 사벌주(지금의 상주)를 중립 지역으로 설정하고, 그 곳을 지키는 성주이다. 박술희를 총애하였고, 본인이 병상에서 일어나게 하는데 왕건이 큰 도움을 준 것을 계기로 고려에 귀부하여, 철원에서 여생을 보낸다. 금산사에 갇혔던 견훤이 탈출해 고려로 돌아올 무렵에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난다. 다만, 죽기 전에 낮밤으로 머루주를 마셨다는 것[46]으로 보아 평생 갈등했지만, 아들이 폐위당하고 고려로 망명하는 처지가 된 것이 내심 괴로웠던 듯.
  • 남원부인(이미지)[47]☆ : 견훤의 계모로서 견훤 형제를 미워하고, 아자개를 정성껏 보살핀다. 늘 딸 때문에 속앓이를 하지만, 귀부할 때 동행하면서 아자개와 여생을 보낸다. 못된 계모이자 헌신적인 아내라는 상반된 속성을 절묘히 섞은 캐릭터. 소설판에서는 견훤이 계모를 강간하려고 했다는 누명을 쓰자 열받아서 상주를 떠나 서라벌로 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나 이게 드라마판에서는 너무 자극적인 설정이라 봤는지 그냥 둘이 사이가 나쁘다는 묘사만 한다. 견훤이 왕위에 올라 성공가도를 달렸기에 옛날 이야기 속 자업자득의 망해버린 못된 계모의 결말을 맞이할만 했으나 왕건이라는 힘을 갖춘 제3자가 뜬금없이 등장해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이걸 등에 업고 계속 견훤과 적대관계로 기세좋게 나갈 수 있었다.[48]
  • 용개#s-3(김대환) : 아자개가 성을 떠나면서 사벌주 성의 성주로서 생을 보낸다.
  • 보개(양재원) : 아버지인 아자개를 모시고 고려에 귀부하는 견훤의 이복동생이자 용개의 친동생이다.
  • 대주도금(박윤선) : 견훤의 이복 여동생이지만 부모와 친 오라버니들과는 달리 견훤을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드라마에서 박술희의 짝사랑 대상이었고, 본인도 마음 속으로는 사모하긴 했지만, 부모의 고려 귀부 후에 스스로 비구니의 길을 택하며, 박술희와의 연이 끊어진다. 드라마 막판에 비구니의 모습으로 등장해 박술희의 말을 잃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면서 그녀를 부른 남원부인의 말로는 철원의 도피안사란 절에 주석하는 스님이 되셨고, 법명이 '무상'이라고 한다.

4.3. 책사 및 신료


  • 능환(정진) : 후백제의 역신으로 초기에는 견훤을 도와 나라를 건국하는데 일조하면서 이찬이라는 높은 벼슬에 있었지만, 최승우의 등장으로 나라에서 그가 할 일이 줄어들자 시기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눈 밖에 나고 있음을 직감하고, 거기에 견훤이 금강을 후계자로 삼자 신검을 설득하여 난을 일으키게 한 장본인이다. 후백제 패망 직후, 여러 인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처형되었다.
  • 최승우(전무송) : 신라의 3명의 천재 중 한 사람[49]으로, 중국에서 유학한 뒤에 신라는 기울었고, 자신이 모실 황제가 이곳에 있다고 하면서 견훤을 섬겼다. 하지만 그는 중국 유학길에 돌아와서 견훤을 섬기기 전까지 옥룡사에 머물렸는데, 머무를 당시 도선으로부터 "자네가 머무는 곳에는 주인의 의자가 없다는 것이다"라는 얘기를 듣고 처음부터 후백제는 후삼국의 주인이 되지 않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도선대사의 예언을 빗겨나가게 하기 위함인지, 역사에서 그가 후백제 통일의 큰 역할을 하기 위함인지 견훤을 택했던 것이다. 능환의 천거로 최승우를 만난 견훤도 극진히 그를 아꼈다. 술을 하지 않았으며, 늘 책을 옆에 두었고, 견훤이 큰 근심에 잠겼을 때 늘 옆에서 함께 했으며, 고려의 계책에 큰 패배를 보게 되었을 때도 함께였던 충신이었다. 순리대로 신검을 다음 황제로 하는 것이 맞다고 하였으나 견훤의 고집이 꺾일 줄 몰라 차라리 황후 소생을 멀리 보내거나 죽여야 한다고 하여 금강에게 다음 황제를 물려주라고 하였다. 하지만 견훤은 자신의 아들들을 끝끝내 죽이지 못하였고, 결국 견훤의 우유부단한 결정으로 인해 난이 일어났고, 신검의 난 때 금강을 추대하였다는 이유로 능환이 보는 앞에서 최후를 마쳤다.[50] 고려의 신동이었던 최응을 특별히 생각했던 인물로, 전쟁중에서도 따로 만나 차를 마시며 책사로의 고충을 나눴고, 최응 역시 병이 들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그를 만나고 그를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 종훈(민경진): 극 후반부터 등장하는 책사로, 견훤의 대사로 미루어 보면 능환이 천거한 모양이지만, 최승우는 물론 능환보다도 한 단계 아래인 것으로 묘사된다. 고창 전투 당시에는 신검을 보좌했으나, 결국 신검이 견훤을 돕지 않아 대패한 것으로 설정되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견훤에게 제대로 야단을 맞기도 했다. 그 후 운주 전투에서 포로로 잡한다
  • 영순(신국): 극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신검파 관료. 기본적으로 전쟁 사극인 이 작품에서 순전한 정치 관료라는 점부터가 비중이 낮다는 의미이며, 실제로도 '신검파 관료 A' 이상의 비중은 없다. 대본에 따르면 일리천에서 승리한 왕건이 완산주(지금의 전주)의 옛 후백제의 궁궐에 들어가 옛 후백제의 신하들을 위로하는 장면에서 마지막으로 등장.
  • 신강(태민영)# : 무진주(지금의 광주)의 외사정으로 사벌주(상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아자개의 아들인 견훤의 군권을 환수하려 왔다가 추허조에게 곤장을 맞았고, 이후에 견훤이 무진주 성을 취할 당시, 자결한 도독을 대신해 군을 이끌고 저항하다가 방회의 화살에 부상을 입긴 했으나, 견훤의 명으로 살아남아서 견훤에게 충성을 바치면서 활약하는 듯... 했지만, 촬영 기간 중에 배우 태민영[51]이 지병인 간암으로 조기 하차를 하고 그 해 가을에 사망하면서, 캐릭터가 중간에 증발해 견훤이 공들여서 영입했음에도 갑자기 없어져서 스토리가 조금 꼬였다. 실제로 신강은 후백제가 망하고, 고려 시대까지 계속 생존하는 인물로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 잠깐 등장한다.
  • 염흔(차기환) : 백제의 일길찬이란 벼슬을 하면서 왕건이 송악으로의 천도 후에 백제의 사신으로 왔으며, 고창 전투 이후에 어지러운 후백제의 정치에 환멸을 느끼면서 고려로 투항을 한다.

4.4. 주요 장수



4.4.1. 후백제 건국 전후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견훤의 경주의 군관으로 있을 때부터 의형제를 맺었고, 견훤의 금성(錦城) 관내 미다부리정의 지휘관으로 있을 때, 영입한 사람 , 건국 직후에 입조한 이들이다.
  • 추허조(강재일)# : 초창기부터 견훤을 보필했던 우직하고 충직한 장수이다. 신검을 아꼈으며, 성미가 급한 것이 흠이지만 전투에 선봉을 맡으면서 뒷걸음이 없었다. 2차 나주 공방전 당시 능창의 복수를 하기 위해 견훤과 앞장서다가 화살을 맞고 완산주로 이송되었으며, 이후, 3차 대야성 전투 도중 신검의 실수로 그를 구하려다 쏟아지는 신라군의 화살에 전사함으로 견훤이 가장 슬퍼한 사건이 되었다.[52]
  • 김총#s-2(유태술) : 견훤을 처음부터 보좌했던 군인으로, 백제 건국 후에 장군이 되었다. 다만 전투에서는 부장급 이하만 벨 수 있으며 장군급에게는 늘 발리는 중간급에 해당되며, 억지로 신검의 난 때 애술과 억류되었다가 신검의 편에 서서 일리천 전투에 참여했으나 홍유에 의해 사로잡혀 애술과 함께 고려로 귀부한 장수이다.
  • 방희(방형주)☆ : 우직한 맹장 타입으로 설정된 가상 인물로 상주 전투에서는 겨울에 방심하고 있다가 조령을 넘어온 왕건의 군사들의 기습을 받아 대패하였고, 나주 전투에서는 화공에 당한 후 퇴각하는 견훤을 호위하다가 신숭겸에 의해 죽는다.
  • 능창(일명 수달)(김시원) : 견훤이 금성에서 힘으로 의형제를 맺은 장수로 지금의 전남 서남해안 일대를 주름잡았던 해적 출신이다. 본명보다는 물에 능통하다고 하여 수달이라는 별명이 즐겨쓴다. 작중에서는 견훤 휘하의 장수들 중에서도 추허조와 더불어 최강자로 손꼽히는 인물로 혼자서 여러 명의 장수들을 상대로 무쌍을 찍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다. 왕건에 의해 금성을 비롯한 서남해 일대를 잃었으며, 이후, 재탈환을 위해 압해도에서 군선들을 모아놓고 시위를 벌이다가 화공과 신숭겸의 계략으로 사로 잡혔다. 왕건과 신숭겸의 설득에도 굴하지 않고, 옥 안에서 금식을 하면서 견훤을 섬기겠다고 의지를 보였다가 이후 철원으로 끌려갔고, 궁예 앞에서 화형을 당해 견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 박영규#s-1(임혁주) : 승평(지금의 순천시)의 호족으로 후백제 건국 이후에 공직과 합께 입조하면서 등장하는데, 집안의 여인이던 고비를 승평부인으로 견훤에게 바침과 동시에 견훤의 맏 사위가 되는 사람이다. 견훤과 신검, 이후에는 금강과 함께 참전하는 경우가 많았고, 최승우 다음으로 견훤이 신뢰하는 인물이다. 극중에서의 무예실력은 운주전투에서 도망가는 견훤일행의 뒤를 막기 위해 고려의 이치 장군일행과의 전투에서 잠시 나왔다. 신검의 난 당시 병부의 수장을 맡았지만, 진압하지 못한 채 실패하고, 이후 고향인 승평으로 내려가 지내다가 견훤을 탈출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극에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왕건과 그의 아들인 정종에게 딸을 주어 세 왕의 장인이 되는 인물이다.
  • 공직#s-2(이정웅)# : 박영규와 함께 입조한 노장으로 본래 매곡성(지금의 보은군 회인면 일대)의 성주였다. 왕건의 고려 조정 초기, 환선길이 역모로 인해 죽자 불안과 위협을 느꼈던 이흔암을 설득하여 난을 일으키게 했으며, 그 와중에 웅주(지금의 공주시)성과 주변 지역들을 취하였다. 하지만, 이후에 늙었다는 이유로 견훤에게 버림받다시피 하자 고려로 귀부했고, 이에 격분한 견훤이 공직의 자식들의 다리 힘줄을 끊었다는 후문이지만... 사실은 해당 문서에 나왔다시피, 배우인 이정웅의 건강 악화로 인해 전사 처리를 하면서 예정보다 일찍 하차한 것이다.

4.4.2. 후백제 중반 이후


이들은 상주 전선에 있던 왕건이 잠시 중앙에 소환되고 나서, 견훤이 계책으로 환선길의 후고구려군을 무찌르고 귀환한 이후부터 등장한 장수들이다. 먼저 하차한 지휜과 최필, 그리고 애술을 제외한 대부분이 신검의 편이며, 대부분이 신검의 난에 참여했으며, 일리천 전투 와중에 전사하거나 이후 대거 처형되었다.
  • 애술(이계인#s-1) : 후백제의 맹장으로 중반 이후에 등장한 후백제의 장수들 중에서도 특히 용맹함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복잡한 계략보다는 전면전을 선호하는 장수로 후백제에서는 이를 당해낼 장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략이 어느 정도 있는지, 견훤을 그 동안 애먹이던 대야성을 끝내 함락을 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다만 견훤에 대한 충성이 너무도 각별하여, 신검의 난 때는 다른 장수들의 만류로 신검이 그를 합류시키지 않았고 김총과 함께 잠시 억류되고 나서 신검 진영에 붙었다. 고려와 후백제의 마지막 전투인 일리천 전투 때 김총과 사로 잡혀 고려의 포로가 되었다. 극 중에서는 적장인 박술희와 우정이 깊다.
  • 신덕#s-3(임병기) : 문무 양면에서 모두 뛰어난 장수로 견훤이 후백제의 인재를 등용할 때 등장하였다. 신중하고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특히 최승우와 의견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 안목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고려의 배현경과 막상막하의 싸움실력을 선보일 정도로 무예 또한 뛰어났다. 후반부에는 정치적으로 능환, 능애와 함께 신검의 편에 서서 견훤을 몰아내는데 일조하였으며 이후 일리천 전투이후, 후백제가 패망하면서 이들과 같이 처형되었다.[53]
  • 파달(기정수) :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예성강 전투를 전후로 한 시기였으며, 신검의 난 이후에 금산사에서 견훤을 경비하는 역할로 그 이름을 보였다. 견훤이 금산사를 탈출한 후, 자책하는 표정은 덤. 그러고 패망 이후 능환, 능애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 상귀(김명국)★[54] : 능창 이후에 후백제의 바다를 맡은 장수로 앞장서서 신검의 난 당시 최승우를 처단하고, 견훤을 아주 무시했던 장수이다. 마지막 회의 일리천 전투에서 유금필에 칼에 베여 전사한다.
  • 상애(최용욱) : 파달, 상귀처럼 드라마 후반에 등장한 장수로 일리천 전투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면서 한눈을 팔다가 배현경에 의해 전사했다.
  • 지훤(박철호) : 신덕, 애술 등과 함께 등장하긴 했지만, 무진주에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중이 없다가 이후 소리소문없이 하차했다.
  • 최필(한정국) : 극 초반에 화살에 맞은 유금필과 전투를 벌여 거의 베기 직전까지 갔었던[55] 후백제의 용장이지만, 운주성 전투에서 역사상으로는 유금필에게 포로로 잡힌 인물이지만, 드라마에서는 해당 전투에서 견훤의 탈출을 돕다가 무명의 고려 부장에게 단 한 합에 통째로 베이고 끝내 목숨을 잃었다[56].
  • 부달(김천만)★[57] : 조물성 전투 당시 소달의 형인 부달로 나온다. 소달과 함께 고창 전투에서 유금필에게 목숨을 잃는다.
  • 소달(신원균)★[58] : 조물성 전투 이후부터 부달의 동생인 소달로 나온다. 부달과 함께 고창 전투에서 유금필에게 죽었는데, 실제 역사에서 부달과 소달은 후백제 멸망 때까지 살아 남아서 포로가 된다.

4.5. 그 외 인물


  • 훈겸(고희준): 작중 백제의 어의로 등장한다. 지리산에서 공부를 하다가 최승우가 어렵게 모셔왔다는 설명으로 첫 등장해서, 조물성 전투에서 괴질이 만연해서 고려군, 백제군 모두 고생을 할 때[59] 견훤의 조상신의 도움으로 지렁이 약을 지어 괴질을 치료하는 활약을 보여주었고 예성강 전투 이후, 운주 전투에서 등창을 앓으면서도 친정을 나가려는 견훤을 만류하지만, 군의 사기를 우려해 나가고자 한 견훤을 끝내 막지 못하고 대신 종군을 하였다가 패퇴하던 도중에 낙마, 고려군의 기병에게 죽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견훤과 금강, 박영규와 최승우가 안타까워 하는 장면을 보인다. 다만, 실제 역사에서는 최필, 종훈 등과 함께 포로로 잡힌다.
  • 도우(원석연)[60]☆: 최승우가 보낸 승려 출신의 첩자로, 형제 모두가 수달의 부하들이었으나 왕건에 의해 모두 죽었기에 태봉으로 가는 임무를 자처했다고 한다. 임춘길에게 붙은 것은 태봉의 내부 혼란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는데, 정작 임춘길은 자신과 도우를 체포하려는 군사들이 들이닥친 뒤에야 이런 사실을 알아차렸다. 2017년 초부터 궁예 밈이 재발굴됨에 따라 덩달아 발굴, '피자의 생명은?'이라는 제목으로 도우의 얼굴과 자막이 캡처된 짤이 올라오는 게 일반적으로 가끔 다른 이름으로 자막을 바꾸거나 얼굴도 다른 이미지로 합성하기도 한다.
  • 진호(박유승)★[61]: 조물성 전투 때 화친을 맺은 고려에 보낸 후백제 측의 볼모이다. 견훤의 처가 쪽 사람으로 고려의 왕신과 서로 교환되어 적국에서 머물게 되었다. 왕건의 사촌 동생인 왕식렴의 집에서 기거하다가 나라를 위한 최응의 계책으로 그 목숨을 잃게 되어 화친이 깨지게 되었다. 사망 후 백제로 시신이 옮겨졌다.

5. 신라 측 인물


유독 신라 왕들을 맡은 배우들은 하나같이 배우 매칭이 사서의 기록과 고증이 잘 맞지 않는데, 진성여왕의 경우는 비록 여성이지만 골격이 흡사 장부와 같다고 기록되었지만 비교적 단신인 노현희가 배역을 맡았고, 소년기에 왕위에 올라 20대 후반의 나이로 요절한 효공왕제4공화국(드라마)에서 정호용, 야인시대에서 경성제국대학 미야케 교수 역으로 나왔던 중견 연극 배우 한근욱이 맡았다. 견훤의 신라 침공 당시 3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경애왕을 당시 만 56세의 문회원이 맡았고, 경순왕은 한술 더 떠서 왕건의 아들뻘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만 62세였던 신귀식이 맡았다(...)[62]

5.1. 국왕



5.2. 왕족 및 신료


  • 마의태자#s-1(이병욱)★[63] :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의 첫째 아들이다. 역사에 기록된대로 신라에 대한 충정을 지키고 개골산으로 들어가 생을 마친다.
  • 김위홍(김주영) : 경문왕의 아우이자 상대등으로서 드라마 초반에 등장했던 인물이다. 조카인 진성여왕과 분에 넘치는 사랑을 나누다가 궁예와 만난 직후, 이상 증세를 보였다. 결국에는 마지막에 황궁 대전에서 조카가 보는 앞에서 복상사를 하고야 말았다.
  • 김효종(신라)(김효원) : 효녀 지은 일화로 유명한 화랑. 드라마에서는 신라의 마지막 명장으로 1차 대야성 전투에서 견훤의 침공을 막아낸다.
  • 김율(유병준)★[64] : 신라 아찬벼슬을 가진 자이다. 신라 경명왕고려에 구원을 요청하여 원군을 받기 위해 사신으로서 고려에 방문하기도 했으니 왕건이 장수에게 명하여 군대를 내어 구원하게 하였다. 견훤이 이 말을 듣고 바로 물러갔다고 한다. 그러나 대야성을 빼앗기고 견훤의 군대가 서라벌로 진군하자 월성 전투에 나섰으나 격전 끝에 불타는 망루 위에서 끝까지 북을 치며 신라의 장졸들과 백성들에게 독려를 부르짖다 끝내 타 죽고 만다. 적군의 손에 죽는걸 원하지 않아서 그런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견훤과 최승우도 이 모습을 보고 놀란다. 드라마에서는 신라의 마지막 충신이자 최후의 수호신으로 묘사 되었는데, 고작 벼슬이 아찬이라 좀 깨는 느낌이 있다.
  • 연식(박경득) : 견훤이 서라벌 황궁으로 쳐들어오고 경애왕이 포로로 잡혀오자 견훤이 경애왕에게 자결하라고 칼을 건네고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못해 연식이 어차피 자신도 죽을 목숨이라고 하면서 경애왕을 찔러 죽이고 견훤의 명령으로 애술 휘하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 최치원(김성수): 진성여왕에게 간언을 하는 충신으로 잠깐 나오지만 한국사에서의 명성과는 별개로 비중은 지나가는 배경 수준이다.
  • 유염(윤덕용) : 신라의 매국노로 김응겸과 셋트로 나온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의 2번 문단 참조.
  • 김응겸(강성욱) : 신라의 매국노로 유염과 셋트로 나온다. 이 사람의 이름이 된 모티브는 경순왕의 친척이였던 국상 김웅렴으로 추측되는데, 유염과 시종일관 음모를 꾸며 후백제를 끌어들였다가 끔살되는 드라마와 달리 고려에 구원군을 청한 인물이었다. 견훤이 왕건에게 보낸 최승우가 쓴 서한에서 신라의 친고려파 대표 인물로 딱 언급을 해놨을 정도로 견훤이 이를 갈던 인물이었다.

5.3. 지방관 및 장수


  • 영기(김종구) : 거병 이전 견훤의 상관으로 망해 가는 신라 왕정을 관찰하는 입장이다. 위홍의 사후, 견훤과 함께 지방으로 발령이 났는데, 견훤의 고향인 상주의 반란을 진압하러 가는 것으로 발령이 났다. 서라벌을 나서면서 자신과 반대로 견훤은 젊으니 잘 해낼거라고 격려해 준다. 이후 견훤이 아자개를 방문하러 가는 걸 끝으로 등장 없었는데, 나중에 옥룡사에서 도선과 그 제자인 경보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바로는 도적들을 토벌하러 갔다가 패하여 죽임을 당했다고 짧게 언급되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발령 후 상주의 반란을 진압하지 못해 참수 되었다고 한다.
  • 무진주 도독(김경하)☆★ : 견훤이 거병하자 신강과 함께 무진주 방어에 대해 논해보지만 심약한 성격인지 자살한다. 결국 무진주 방어의 총지휘는 신강이 맡게 된다. 그리고 극 후반 고려의 신료 추언규로 재등장하였다.
  • 철원성주(송영창)☆ : 드라마 초반, 궁예의 미륵군을 막다가 포로로 잡혔다. 참고로 철원성의 부장과 방어진장으로 나선 이들은 송금식과 유종근[65]이었으며, 그가 입었던 갑옷은 이후 복지겸이 내군 장군을 맡으면서 자주 나온다.
  • 금성(錦城)태수(양재성)☆ : 견훤이 부임한 임지인 미다부리정의 관할 태수. 견훤이 부임하면서 자신의 관할 구역의 군관 두 명을 죽이자, 크게 놀라 견훤에게 이곳은 사실상 능창의 영역이고 부임지의 사정이 암울함을 징징댄다. 일처리를 잘하는 견훤을 보고 "장군은 참 젊다."[66]고 감탄한다. 능창의 견훤 암살 계획[67]에 참여하기도 하나 결국 수달이 패하고 견훤 밑으로 들어가자 자신의 벼슬자리 걱정이나 하면서 비장을 시켜 도독에게 징징대고, 칙사로 온 신강과 세력을 일으킨 견훤에게 목숨 구걸을 한다(...). 나중에는 태수 자리도 종례에게 빼앗기고 쫒겨나는 안습한 인물. 포인트는 하이톤에 질질 끄는 말투.
  • 양길의 사위(황덕재)

6. 주요 호족들


서술된 이들 외에도 많은 호족들이 있으니, 이들에 대해서는 한국어 위키백과 참조.
  • 김순식(훗날의 왕순식)(박상규) : 당대의 고승 허월의 아들로 지금의 강릉시인 명주의 대호족이자 본래 신라 왕족 출신이다. 그는 군사를 이끌고 온 궁예에게 처음에는 반감을 가지긴 했지만, 미리 궁예를 살펴보고 결단을 내렸던 허월의 판단으로 성을 통째로 맡기며 충성하였다. 그 때문에 처음에는 왕건의 혁명 때 그를 추궁하면서 칙사의 목을 베고, 반란을 도모하였으나 허월대사의 설득과 이후 왕건이 보여준 황제로의 행보에 감복해 충신으로 돌아섰고, 공산 전투 이후에 환궁하던 왕건을 맞이하였다. 드라마 최후반부 일리천 전투에서 참전하였다. 극 중에서는 전투 장면이 하나도 없는 장수로 나온다.
  • 박지윤(이신재) : 패강진(평주, 지금의 황해도 평산군 지역)의 대 호족으로 왕륭, 유천궁과 함께 패서 지역을 대표하는 대 호족으로 불린다. 궁예 정권 초기 시중을 지낸 바 있으며, 왕건 조정 초기까지 활동하다가 후계를 두고 권력 싸움 이후 왕건의 명으로 서경으로 보내지면서 아들인 박수문, 박수경 형제들을 남겨두고 떠나면서 퇴장.
  • 원극유(박승규) : 패서 지역의 호족들 중 한 사람으로 궁예 정권 말기~왕건 조정 초기 병부를 맡았던 인물로 왕건의 혁명 때 군사 지원을 마련해 준 인물이다. 박지윤, 박질 등 몇몇 원로 대신들과 함께 서경으로 보내지면서 퇴장.
  • 박질(김봉근) : 패서 지역의 호족들 중 한 사람으로 원극유와 세트 분위기. 왕건이 시중이 되기 이전에 잠시 임명되었다.
  • 종례(서상익) : 분명 사료 상의 이름은 '羅聰禮'. 그러니까 '종례' 가 아니라 '총례' 인데, 이상하게도 본작에서는 이렇게 불린다. 웃긴 건 이래 놓고 '훗날의 나총례'라는 부연 설명이 있다는 거(...).[68] 견훤이 미다부리정(금성(錦城), 지금의 나주시)의 군관으로 부임할 때, 수달과 친문이 있던 대호족으로 등장해, 견훤의 혁명 이후에는 금성 태수로 있다가 왕건의 1차 나주 점령 이후, 태수직에서 물려나고 이후에 잠시 등장한 것을 끝으로 하차. 참고로 출연 배우인 서상익 씨는 마지막 즈음인 196화에 견훤이 금산사를 탈출해 고려에 귀부할 무렵, 나주 태수로 다시 등장한다.
  • 이총언(김영인[69], 특별출연) : 중립 지역이던 벽진군(지금의 경북 성주)의 호족이었으나 패륜을 저지른 견훤을 등지고, 고려로 귀부하게 되는 장수이다. 여담으로 당시 벽진군을 공격하다가 왕창 털렸던 신검 역의 이광기는 이총언을 시조로 한 벽진 이씨다.

7. 승려


  • 도선(이대로) : 궁예와 종간, 왕건의 사이[70]를 간접적으로 멀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왕건이 후에 나라를 세우게 되는 제왕의 기운을 가진 자라고 도선비기에 적었다는 이유로 갈등을 빚게 되었다.
  • 석총(신충식) : 궁예와는 대립되는 인물로서 왕건과는 첫 부인 유씨(부용)을 구하고 이를 왕건에게 알릴 때, 처음 만났으며, 이후 왕건이 사화진 전투 과정에서 충주에 머물 때, 허월과 함께 진표율사가 간직하고 있던 부처님의 간자를 왕건에게 바치면서 황제가 될 것임을 말하며 절을 올렸고, 바로 수도인 철원으로 올라가 궁예는 미륵이 아니라고 여러차례 비판을 하다가 83회 초반부 법회에서 금대가 휘두른 철퇴를 맞고 절명하였다.
  • 형미(박병호) : 두려움을 갖지 않는 사무외대사 중 한 사람으로 나주에서 왕건을 만나 함께 궁예의 나라 태봉의 철원으로 왔다가 궁예의 폭정을 보고, 이를 비판하면서 나라를 위해 옳은 말을 하고, 죽임을 당한 연화의 장례를 치르다가 반역자의 장례를 했다는 죄목을 받아 초파일에 공개 처형을 당하게 되는 인물이다.
  • 범교(안대용) : 경문왕이 즉위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로, 극 중에서는 처음에는 화랑의 일원으로 나온다. 경문왕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그가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자 크게 실망하였다. 이후에는 화랑의 길을 버리고 세달사의 고승이 되어 궁예를 맞이한다.[71] 궁예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으며, 세달사에서 그를 받아주고 길러주었다. 수행을 마친 궁예가 자신이 미륵이 되어 세상을 구제하겠다고 하자, 궁예를 나무라지만 한편으로는 종간과 더불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왕륭을 통해 갈 길을 주선해주었다. 나중에 왕건을 가르치기 위해 도선대사가 세달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궁예가 세상을 구원할 사람인지를 물었지만, 도선은 궁예가 뒷날에 올 성인을 위해 그 자리를 예비할 뿐이라고 대답하자 매우 놀라고 안타까워 하면서 열반에 들었다. 궁예의 뜻을 듣고 나무라기도 했지만, 내심으로는 제자를 아끼고 그가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를 바라며 걱정을 많이 한 듯 하다. 궁예가 명주 공략을 하던 당시에 입적했다고 허월의 입을 통해 언급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경문왕의 선배 뻘 되는 화랑으로[72], 범교가 화랑의 우두머리 자리에 있을 때 경문왕이 되는 응렴이 낭도였으며, 후에 응렴이 헌안왕의 사위가 될 때 헌안왕의 두 딸 중 누구와 혼인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할 때, "첫째와 혼인하면 세 가지 좋은 일이, 둘째와 혼인하면 세 가지 나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 경보(서영진) : 도선대사의 제자로 유발제자[73]인 왕건과는 다르게 승려이다. 도선대사의 부탁으로 왕륭의 도움을 받아 중국에서 유학하고, 후삼국 시대 이후인 920년대에 다시 돌아와 옥룡사에 주석하였다. 견훤이 절까지 가서 모시겠다고 했지만, 거절하였다가, 드라마 막판에 금산사에 갇힌 견훤을 설득하여 고려에 귀부하도록 만든 인물이다.
  • 허월(곽경환) : 김순식의 부친. 원래 신라 황실의 후예이며, 명주(지금의 강릉시)의 유력 호족이었으나 ,권력의 허망함을 느낀 뒤 자식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불교에 귀의하여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불교 교리에 얽메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겉모습과 달리 인재를 보는 눈과 현실 정세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정보 수집 능력이 상당한 인물로, 궁예와 왕건에게 여러 도움을 주었다.
  • 금산사 주지(강태기[74])☆ : 견훤이 금산사로 유폐되었을 당시의 주지 스님.

8. 그 외의 인물


  • 기훤(김윤형) : 궁예가 처음으로 모셨던 죽주 일대의 도적으로 여색을 좋아하고,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면서 세상을 자세히 보지 못한 탓에 훗날 부하였던 원희에게 죽고 휘하 세력들은 궁예에 편입되었다.
  • 설부(맹호림)☆ : 설악산에서 내려온 도인으로 최승우의 사주를 받고 양길의 잔당들이 쏜 화살에 맞은 궁예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박유에 의해 불러들여 궁예를 살려내었다.
  • 사벌주(상주)의 의원(유순철)☆ : 아자개가 병에 걸렸을 때 증상을 살피던 의원들 중 한 명.
[1] 사료에 나와있는 왕건의 부인들은 모두 29명이지만, 드라마에서는 다 소개하기는 어려운 관계로 신혜왕후와 장화왕후, 충주부인 유씨 3인만 등장하게 했다.[2] 특히 지금의 상주시에 해당되는 사벌주 일대가 그러했다.[3] 사료에 나와있는 왕건의 부인들은 모두 29명이지만, 드라마에서는 다 소개하기는 어려운 관계로 신혜왕후와 장화왕후, 충주부인 유씨 3인만 등장하게 했다.[4] 그의 조상은 신숭겸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5] 이는 당시 박상아가 동 시간대의 드라마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되었기 때문이었으며, 이후에 연예계에서 은퇴를 선언했다.[6] 완산주로 도읍을 옮기는 비용의 대부분을 내라는 것에 대한 불만...[7] 복지겸의 해당 발언은 능창을 잡은 이후, 왕건을 데려오라는 궁예의 명을 받고 내려올 무렵에 말한 것이다. 여담으로 딸 때문에 집안에 남아나는 것이 없다는 오다련의 말은 덤.[8] 단, 왕요와 왕소는 드라마에서 아역으로만 나온다. 고창 전투 이후인 174회에서 예성강 전투 사이에 왕소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형제가 등장한 것이 유일.[9] 당시 하객으로 아자개 가족들이 참석해 견훤의 뒤통수를 심하게 때렸다!!![10] 1997년 KBS 주말연속극 첫사랑에서 장군이 역을 맡았다. 재밌는 것은 첫사랑에서는 최수종을 외삼촌으로 만났는데 태조 왕건에서는 아버지로 만났다는 것이다.[11] 여담으로 배역을 맡은 안정훈은 극 중 모친으로 나온 장화왕후 역의 염정아보다 나이가 많아 미스 캐스팅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12] 이 작품이 그의 유작이었으며, 드라마 와중인 2001년 8월에 세상을 떠났다.[13] 여담으로 왕식렴 역을 맡은 정국진 씨는 제국의 아침에서는 왕욱으로 야인시대에서는 이만섭 역을 한 배우이지만, 2004년 구미호 외전 이후로는 지상파에 출연하지 않고 있다.[14] 여담으로, 고려 건국 직후에 수단령으로 맡았으며, 조물성 전투 당시에는 순군부 휘하의 장수로 나왔다.[15]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물러났는데, 그 이후의 행적은 해당 문서 참조.[16] 이때, 왕건이 사화진 전투에서 꾼 꿈을 해몽함으로서 '최지몽'이란 이름을 하사하기도 하였다.[17] 최응의 실질적인 유산 즉, 병부령 직은 최응이 잠시 내려놓은 후, 후백제 군의 송악 침공 이후, 배현경이 맡게 되었다.[18] 물론 유금필 문서의 7.1.문단 하단에 나오지만, 초반에는 그도 실수가 다소 있었다. 그럼에도, 문자 그대로 불패의 용장. 실제로는 왕건의 고려 건국 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는 인물이라 왕건의 서남해 공략때는 참전한 기록이 없기에 극중에서 실수한 일도 실제로는 없었던 일이다.[19] 무식하다고 평한 아자개 앞에서 『대학(大學)』의 한 구절을 읖어 좌중을 놀라게 했다. 실제 박술희는 호족 출신이니만큼 우수한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20]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 변사부와의 대련에서 밀리지 않은 실력을 보였다. 지켜보던 왕건과 유금필도 "예사 사람같지 않다."라고 놀랄 정도인데, 자신과 대련했던 상대 역의 배우가 누구인지를 알면, 밀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당시 두 사람의 대련은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무승부.[21] 양길을 떠나 궁예를 따르게 될 때 만약 궁예가 타락하면 자신은 그를 처단하는데 힘을 다할 거라 경고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다.[22] 조물성 전투 이전, 경보가 중국에서 옥룡사로 향할 때, 그가 있었다. 그런데 해당 씬이 꼭, 과거 최승우가 금성 포구에 내릴 때의 오마주였다.[23] 드라마 초반에 궁예가 공격했던 철원성의 부장으로 나왔다.[24] 왕충 역 이전에 청주의 호족 진선 역으로 나온적이 있다. 형인 선장(김명국)과 왕건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홍유의 언월도에 썰리게 되었다.[25] 극 초반부에는 기훤에게 간 양길의 사자로 나와서 목이 잘릴 뻔한 역을 맡았으며, 극 후반부에는 박영규의 집사로 출연하여, 견훤을 금산사에서 탈출시키는데 주역을 담당하였다. 1인 多역이 많았던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많은 배역을 소화한 인물들 중 1명. 그 외에 이병욱이나 김창봉(서남해 호족, 왕창근, 의원, 김행 역)도 1인 多역을 많이 하였다.[26] 다만, 드라마 다시보기로 보면, 이치가 아닌 그의 부장들 중 하나가 벤 것으로 보인다.[27] 사실, 순행 자체가 강비(연화)의 부탁으로 되었지만, 나고 자랐던 북원의 폐허(양길 처단 후, 은부의 명으로 고을이 불타 없어짐.)를 보고 발광하다가 은부에 의해 몇 번 제압되었고, 이후 명주에서 한 번 더 발광하다가 은부가 그녀를 관아 내 건물에 가두고 바깥에 못질까지 했는데, 건물 내에서 아이의 환청을 듣고 서성거리다가 양초를 건드리고 그것이 화재로 이어져 탈출하지 못하고 숨지고야 말았다.[28]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도 '바람의 손자'라는 닉네임이 있는 어느 야구선수와는 동명이인이다. 2016년 12월 10일, 32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29] 이와 관련해서 116화에 강비가 최후를 맞을 때 나레이션의 말미에, 역시 철원 지역의 설화에서 전해 내려오는 왕건과 강비의 정혼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밝혔다.[30] 최치원 역을 맡은 배우와는 동명이인이며 야인시대에서 오무라 형사를 맡았다.[31] 다만 세달사와 서라벌에서는 승려로, 이후에는 환속하면서 지낸다. 10화를 기점으로는 삭발되었던 머리가 길게 자랐다.[32] 종간이 떠나지 않고 내원에 있다는 사실을 최응이 알려주었다.[33] 14회에서 양길이 기훤에게 사자를 보내오자 기훤이 사자를 죽이려는 것을 원회가 말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기훤이 당장 내일 아침에 양길을 치러 출정하겠다고 선언하자 원회가 거듭 말렸고, 이에 빡친 기훤이 원회의 얼굴에 술잔을 끼얹고 그의 머리를 마구 때렸다.[34] 초기에는 병부령을 겸해서 맡긴 했지만, 순행 이후에 병부령을 복지겸에게 맡겼다.[35] 드라마 초반 금성(錦城)태수의 비장 역으로 나왔다.[36] 따라서 드라마를 굳이 1부와 2부로 나눈다면, '''궁예가 진 주인공이었던 1부(~120화)와 왕건과 견훤의 후삼국 쟁탈전과 후삼국 통일을 다룬 2부(132화~)''' 사이(121화~131화)가 1.5부로 봐야 할 것이며, 왕건의 고려 건국 이후 연이은 혼란을 수습하던 시기라 할 수 있다.[37]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는 염상 역을, 드라마 무신에서는 이자성 역을 맡았다.[38] 방송인 조향기의 아버지로 이 드라마 이후에 야인시대, 제5공화국 등 사극과 시대극에서 조연으로 나오다가 2007년 1월에 지병인 간암으로 별세했다.[39] 목숨을 구하기보다는 왕건을 추대하려던 4기장(능산(신숭겸), 홍유, 배현경, 복지겸)들이 그가 졸장부라며 어느 정도 무시했다는 것이 맞다고 할 것이다.[40] 당시 이들이 머물던 주막 주인이 환선길의 옛 수하라서 방을 준 것인데, 그 주인의 아내가 이를 한탄해하면서 내군에게 알렸다. 문제는 내군장군인 복지겸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가 하필 왕건이 부인들과 신료들을 이끌고 아자개를 맞이하던 길 중간에서 알게 되었고, 매복하고 있던 이흔암 일당이 쏜 독화살에 장일이 맞고 사망하기에 이르렀다.[41] 삼국기에서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 역을 맡았다. 재밌는 것은 삼국기에 이어 태조 왕건에서도 극중에서 서인석과 부자지간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42] 첫 등장도 130화 이후였다.[43] 당시 임경옥이라는 이름으로 출연.[44] 그녀와 박영규 사이의 딸 하나가 왕건의 부인이 되고, 다른 두 딸은 고려 3대 왕인 정종의 왕후가 된다.[45] 드라마 종영 후 자신이 배역을 맡았던 능애의 이름을 따서 충남 공주시 정안면 평정리에 능애 낚시터를 운영하고 있다.[46] 이 부분은 199화에서 복지겸과 내군 부장간의 대화에서 나왔다.[47] 3년뒤 무인시대에선 견훤역의 서인석과 부부로 출연한다.[48] 아이러니하게도 남원부인이 '백제로 가봤자 결국 구박덩어리가 된다.'고 한 발언은 훗날 백제가 후계자 문제를 놓고 일이 터지면서 앞날을 예측한 격이 됐다. 실제로 아자개가 백제에 있었다면 아자개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들이 무슨 일을 했을지 모르는 일이다.[49] 그를 소개할 때 나레이션으로 최언위는 나중에 소개한다고 되었지만,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50] 미리 이런 일이 든다는 예감에 하인들을 내보내고, 족자들을 태웠으며, 능환과 군사들이 올 때, 미리 독약을 든 차를 마시면서 눈을 감았다. 이후 상귀에 의해 목이 잘렸고...[51] 전작인 용의 눈물에서 정종 역할을 맡았고,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중년의 한병태를 맡았다. 이 작품이 그의 유작이 되었다.[52] 사실, 역사대로라면, 오래 나와야 하지만, 후술한 사건사고 하나로 인해서... 일찍 퇴장한 셈이 되었다. 배역을 맡았던 강재일 또한 이후, 대조영까지 출연을 할 수 없었다고...[53] 다만, 해당 장면에서 신덕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이는 배우인 임병기가 낙마하면서 이탈한 것이다. 결국, 그가 처형 직전에 하려고 한 말은 파달이 하게 되었다. 다만, 부상 정도가 심하지 않은 편이라 이후 임병기는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 최언위의 아들인 최행귀를, 무인시대에서는 전존걸을 맡았다.[54] 드라마 중반, 청주의 호족 선장 역을 맡았는데, 고려 조정 초기 임춘길에 의한 청주의 난 당시 임춘길이 보낸 부장으로 알고 청주 관아로 들어온 홍유의 일기토에 단번에 전사한다.[55] 사실 유금필이 싸움을 못했다기 보다는 화살에 맞은 유금필의 한 팔을 스크래치 낸 수준이다. 그래도 백제군에서 유금필의 털끝이라도 건들어 본(...) 사람은 최필 하나 뿐이다.[56] 최근 KBS 유튜브에서 다시보기를 제공했는데, 느린 그림으로 살펴보면, 최필을 벤 인물이 장군급인 이치가 아닌 무명 배우로 평범한 고려 부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왕건에게 최필의 목을 가져다 주는 부장은 이치가 베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치의 부대가 베었다는 말을 한 것이 그렇게 전해진다. 다시 말하지만 느린 그림을 보면 평범한 부장이 베었다. 예전에는 부하가 한 일을 주인이 한 것으로 많이 보고 되기도 하였다. [57] 드라마 초반에 능창의 부장으로 나왔다.[58] 드라마 시작 부분 철원성으로 향하는 궁예군을 보고하는 신라군 전령을 시작으로 전령이나 부장으로 등장하였다.[59] 고려군에선 태평이 죽었고, 백제군에선 금강이 역병에 걸렸다.[60] 용의 눈물에서 의안대군(이화)으로 등장.[61] 드라마 초반 서라벌에서 죽주 사이의 성의 관문을 지키는 군관으로 나오면서 궁예와 종간에게 위홍의 죽음을 알린 역할을 한다. 또한, 고려가 청주 반란군을 진압할때 성문 문지기로도 나온다.[62] 경순왕이 태어난 해는 구체적인 기록은 없지만, 퇴위와 신라 멸망 이후로도 43년을 더 살아 고려 경종 재위기간에 죽었다. 즉 이 드라마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이 다 끝날 때쯤에도 딸까지 보면서 잘 살아있던 사람을 태조 왕건 때부터 노인으로 묘사한 확실한 고증오류. 경순왕의 딸 헌숙왕후 김씨는 경종과 결혼했고, 경종은 왕건이 견훤에게 그랬던 것처럼 경순왕을 상보(尙父)라 부르며 아버지처럼 대우하였다. 이 정도면 경순왕의 세대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63] 마의태자 역을 맡았던 이병욱은 극 중반부에 최승우가 사주하여 궁예를 암살하기 위해 보낸 자객의 일원들 중 하나로 등장한 바 있다. 다른 자객들은 궁예가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 준다고 하였으나, 솔직히 말하기는 커녕 왕건의 숙부인 왕평달이 사주하여 왕씨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궁예를 암살하려 했다고 진술하였고, 이에 제대로 분기탱천한 궁예가 국문장에서 철퇴로 동료 자객들을 모두 죽이자 이 쪽만 두려움에 떨면서 자신들이 후백제에서 왔음을 실토하고 살아남았다. 그 전에는 효공왕에게 대야성에서 견훤의 백제군을 격퇴했다고 알리는 전령으로 등장했다.[64] 드라마 초반에 서남해 호족들 중 하나로 등장했우몊1.2차 대야성 전투에서 견훤의 침공을 막아냈다.[65] 전북도지사를 지낸 동명이인과는 다른 배우 출신이며, 후속 작인 무인시대에서 생선장수 출신의 이영진 역을 맡았다.[66] 사실은 "견훤 네가 나이가 어려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라는 의미다.[67] 연회를 가장해 견훤을 죽이려고 했지만 견훤과 그 일행의 활약으로 역관광 당한다.[68] 이환경 작가는 고질적으로 꼼꼼함의 부족을 보여 주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이것도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환경 작가의 작품에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경우가 한둘이 아닌데 예를 들어 SBS연개소문에서는 대걸걸중상을 대걸중상이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이름으로 등장시킨 바 있다.[69] 야인시대에서 심영 역을 맡은 배우와는 동명이인인 1940년생 원로 배우.[70] 정확히는 종간과 왕건이라 할 수 있다. 궁예는 반신반의하지만, 둘 다 믿는 존재라 할 수 있다.[71] 작중에서는 말을 타고 화랑의 모습을 한 채 갓난아기인 궁예를 신라군으로부터 구하는 모습이 나와서 궁예가 버림받은 후 출가했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이미 이보다 한참 전에 출가한 지 오래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범교는 그 도선에게조차 존대를 받는 고승인데, 출가한지 불과 8년 정도의 중이라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이런 대접은 절대로 받을 수 없다. 실제 기록에서도 이미 경문왕이 헌안왕의 사위가 될 시점에 범교가 중이었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화랑 생활은 한참 전에 마치고 출가했을 것이다.[72] 작중에서는 범교와 경문왕 간의 명확한 관계가 나오지 않았고 거의 동료 화랑처럼 묘사되지만, 이후 범교가 도선대사에게 존대를 받고 본인은 도선에게 하대하는 것으로 보아 도선보다 연배가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경문왕은 도선보다 17 ~ 20세 정도 아래이기 때문에 범교와 경문왕이 동료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작중에서도 범교가 경문왕의 선배일 가능성이 높다.[73] 머리카락을 기르는 불제자를 말한다.[74] 드라마 중반에 지리산 도인으로 출연하였으며 도인이 지어준 탕제를 마신 궁예가 답답함을 참지 못해 은부에게 도인을 죽이라고 명하여 죽임을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