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별명
1. 개요
세계 역사에서 널리 알려진 역사 인물의 별명을 정리한 문서이다. 국가별, 왕조별로 정리하였다.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되는 별명은 볼드체로 구분하였다. 출신지나 가문명 등을 사용하는 것은 별명이라 볼 수 없으므로 제외.
참고로 군주의 별명은 한자문화권의 특성상 시호와 비슷하게 XX왕으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유의하고 볼 것. 예를 들어 사자심왕 리처드는 원래 의미대로 번역하자면 '''사자의 심장''' 리처드 또는 '''사자 심장을 가진''' 리처드가 된다. 대왕의 번역도 마찬가지.
2. 영국
- 노르만 왕조
- 플랜태저넷 왕조
- 헨리 2세 - 짧은 망토(영 Curtmantle / 불 Court-manteau), 여제의 아들(FitzEmpress)[1][3]
- 리처드 1세 - 사자심왕(영 Lionheart / 불 Cœur de Lion)
- 존 - 결지왕(缺地王) 또는 실지왕(失地王)(영 Lackland / 불 sanz Terre) : 원래 결지왕은 봉토를 받지 못했던 과거의 안습함 때문에 생긴 별명인데, 재위 기간 동안 프랑스의 광대한 영토를 다 날려먹은 덕분에 실지왕으로도 번역한다(...)
- 헨리 3세 - 윈체스터 성에서 태어나 윈체스터의 헨리라고도 불린다. 출생지이긴 한데 출신지라고 보기는 애매(...)
- 에드워드 1세 - 꺽다리왕(Longshanks), 스코틀랜드의 파괴자(Hammer of the Scots), 잉글랜드의 유스티니아누스(the English Justinian)
- 에드워드 2세 - 웨일스의 카나번 성에서 태어나 카나번의 에드워드라고도 불린다. 잉글랜드의 왕위계승자로써의 프린스 오브 웨일스로는 첫 번째 인물.
- 에드워드 3세 - 윈저 성에서 출생하여 윈저의 에드워드
- 리처드 2세 - 보르도에서 출생하여 보르도의 리처드
- 랭커스터 왕조
- 튜더 왕조
- 하노버 왕조
- 조지 3세 - 농부왕(Farmer King) : 농부처럼 굉장히 소박하고 서글서글했기 때문이라고. 참고로 조지 3세의 치세에 미국이 독립했는데 때문에 미국에선 조지 3세를 암군 취급한다.
3. 프랑크 왕국
- 카롤루스 왕조
4. 프랑스
- 카페 왕조
- 위그 카페 - 그의 이름의 '카페(Capet)' 자체가 이름이나 성이 아닌 별명으로 수령,대장, 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위그 대장님 같은 의미. 이후 그의 자손들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카페의 후손들이라 하여 카페 왕조(Capetiens dynasty)라고 한다.
- 로베르 2세 - 경건왕(le Pieux)
- 루이 6세 - 뚱보왕(le Gros)
- 루이 7세 - 소(小) 루이(le Jeune)[5]
- 필리프 2세 - 존엄왕(Auguste)
- 루이 8세 - 사자왕(le Lion)
- 루이 9세 - 성왕(Saint, 聖王)
- 필리프 3세 - 강용왕(le Hardi, 剛勇王)
- 필리프 4세 - 단려왕(le Bel, 端麗王): '단려'는 '단정하고 아름다움'을 뜻하는 단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많이 쓰이지 않는 단어라서 오늘날에는 미남왕 혹은 미모왕으로 번역되는 빈도가 더 많다.
- 루이 10세 - 완고왕(le Hutin)
- 장 1세 - 유복자왕(le Posthume)
- 필리프 5세 - 장신왕(le Long)
- 샤를 4세 - 미모왕(le Bel) : 아버지 필리프 4세와 별명이 같다.
- 발루아 왕조
- 장 2세 - 선량왕(le Bon)
- 샤를 5세 - 현왕(le Sage, 賢王)
- 샤를 6세 - 친애왕(le Bien-Aimé), 광인왕(le Fou) : 정신병에 걸려 광인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샤를 7세 - 승리왕(le Victorieux) : 백년 전쟁을 종결시킨 왕이었기 때문이다. , 충성받은 왕(le Bien Servi)
- 루이 11세 - 신중왕(le Prudent), 세계적인 거미(l'universelle aragne)
- 샤를 8세 - 상냥왕(l'Affable)
- 루이 12세 - 국민의 아버지 또는 국부왕(國父王)(Père du peuple) : 삼부회에서 헌정받은 칭호
- 부르봉 왕조
- 프랑스 제1제국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꼬마 부사관(Le Petit Caporal)[9]
5. 독일
- 신성로마제국 작센 왕조
- 잘리에르 왕조
- 독일 제국
-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 붉은 남작(Der Rote Baron)
- 오토 폰 비스마르크 - 철의 재상(Eiserner Kanzler)
- 나치 독일
6. 포르투갈
- 마누엘 1세 - 행운왕(o Afortunado)
- 주앙 4세 - 복구왕(o Restaurador) : 스페인을 몰아내고 포르투갈 출신의 브라간사 왕조를 개창했다.
- 주앙 5세 - 관대왕(o Magnânimo), 포르투갈판 태양왕(o Rei-Sol Português)
- 주제 1세 - 개혁왕(o Reformador)
- 마리아 2세 - 교육왕(a Educadora), 좋은 어머니(a Boa Mãe)
- 페드루 5세 - 희망왕(o Esperançoso)
- 카를루스 1세 - 외교왕(o Diplomata), 순교자왕(o Martirizado)
- 마누엘 2세 - 애국자왕(o Patriota), 불운왕(o Desventurado)
7. 대한민국
- 삼국시대
- 후삼국시대
- 고려
- 조선
- 허조 - 수응재상(瘦鷹宰相), 주공(周公)
- 김종서 - 대호(大虎)
- 세종대왕 - 해동의 요순(海東堯舜)[11]
- 홍윤성 - 경음당(鯨飮堂) : 고래 경에 마실 음으로 글자 그대로 술고래라는 의미. 홍윤성에게 세조가 지어준 별명이다. 혹은 또 야사에서 나온 살인마 정승도 포함될 수 있을듯
- 허엽 - 묘지(卯地) : 십이지에서 토끼의 방위는 정동쪽을 가리키는데, 타협 없던 동인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별명.
- 이이 -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 과거시험에서 아홉 번 장원급제를 했다 하여 붙은 별명이다.
- 곽재우 - 홍의장군(紅衣將軍)
- 철종 - 강화 도령
- 전봉준 - 녹두장군(綠豆將軍)
- 대한민국
8. 중국
- 춘추시대
- 전국시대
- 서한
- 이광 - 비장군(飛將軍)
- 동한
- 조위
- 촉한
- 손오
- 손책 - 손랑(孫郞) : 손책의 별명은 연의의 '소패왕(小覇王)'이 유명하지만, 정사 손책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 당
- 북송
- 포증 - 청천(靑天), 포흑(包黑)
- 명
- 청
- 건륭제 - 십전노인(十全老人): 사실 이건 자칭이다.
- 중화인민공화국
9. 일본
10. 오스만 제국
- 무라트 1세 - 신이 내린 권위자(Hüdavendigâr)
- 바예지트 1세 - 뇌제(Yıldırım)
- 메흐메트 2세 - 정복제(Fatih)
- 셀림 1세 - 엄격제(Yavuz) : 단 Yavuz의 번역에 있어서 여러 의견이 있다.
- 쉴레이만 1세 - 입법자(Kanuni), 장엄제(The Magnificent) : '장엄제'의 경우 유럽에서 불린 별명이다.
11. 미국
- 더글러스 맥아더 - 쇼군(일본 한정)
- 리처드 닉슨 - 교활한 딕(Tricky Dick)
- 앤드류 잭슨 - 올드 히코리(Old Hickory)
- 에이브러햄 링컨 - 정직한 에이브(Honest abe)
- 캘빈 쿨리지 - 침묵의 캘(Silent Cal)
- 알 카포네 - 스카 페이스(Scarface)
12. 멕시코
[1] 어머니인 마틸다가 신성 로마 황제인 하인리히 5세의 황후였고 하인리히 사후 앙주 백작이던 조프루아 플랜태저넷과 재혼하여 헨리 2세를 낳았다.[2] 디에프라는 노르망디 소재의 항구도시의 자작을 겸하긴 했으나 당시의 자작은 백작대리(Viscount)였기 때문에 실제로 그 땅의 주인은 아니었다.[3] 다만 이 별명은 별명이 아닌 성씨처럼 쓰이기도 했다. 당시엔 성씨가 없던 시절이라 대부분 자신의 영지명을 성씨처럼 사용했는데 주어진 영지가 없던[2] 그의 동생인 윌리엄은 FitzEmpress를 성씨처럼 사용했다. 아이슬란드인들이 자신의 성씨를 자신의 부모에서 따오는 것과 비슷하다.[4] 엘리자베스의 애칭 중 하나이다.[5] 부친 루이 6세와 구분하기 위함이었다.[6] 실제 루이 왕호를 마지막으로 사용한건 그의 동생 루이 18세이다. 제1공화국 시기 기준. [7] 엄밀히 따지면 별명은 아니다. 루이 필리프 1세 시기의 프랑스 국왕의 정식 호칭이 '프랑스 국민의 왕'이었다.[8] 7월 혁명을 통해 즉위한 그를 고깝게 여긴 유럽 군주들이 부른 멸칭[9] 당시 프랑스의 평균키는 165cm, 나폴레옹은 168cm이었으나 당시 귀족들의 평균은 170cm을 넘겼고 본인의 호위무사들 역시 다들 키가 큰데다 본인이 직접 "하늘에서 키를 잰다면 내가 제일 크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기에 작은 이미지가 생긴 것 뿐이다. 또한 그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는 진짜로 단신이었기에 더욱 단신 이미지에 영향을 주었다.[10] 의자왕은 왕자 시절 효자로 유명했다.[11] 이게 무려 당대 신하들이 "전하는 해동의 요순이십니다. " 라고 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