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colbgcolor=#d60123> '''トヨタ自動車株式会社'''
Toyota Motor Corporation / 토요타 자동차 주식회사

[image]
'''정식 명칭'''
토요타 자동차 주식회사
'''종류'''
주식회사
'''시장 정보'''
도쿄증권거래소 1부 7203
나고야증권거래소 1부 7203
뉴욕증권거래소 TM
런던증권거래소 TYT
'''약어'''
토요타, TOYOTA, TMC
'''본사 소재지'''
아이치현 토요타시 토요타초 1
(愛知県豊田市トヨタ町1)
'''창립년일'''
1937년 8월 28일
(토요타 자동차공업 주식회사)
'''업종'''
운송, 장비
'''법인번호'''
1180301018771
'''사업영역'''
자동차 제조 및 판매업
'''대표자'''
우치야마다 타케시 (회장)
토요다 아키오 (사장)
'''시가총액'''
272조 2,893억원 (2021.01.08)[1]
'''자본금'''
3,970억 4,900만 엔 (2016년 3월 기준)
'''주식 총수'''
33억 3,799만 7,492주
'''매출'''
연결: 29조 9,299억 9,100만 엔
단독: 12조 7,297억 3,100만 엔
(2020년 3월 기준)
'''영업이익'''
연결: 2조 4,428억 6,900만 엔
단독: 9,788억 400만 엔
(2020년 3월 기준)
'''경상이익'''
연결: 2조 5,546억 700만 엔
단독: 1조 7,353억 6,500만 엔
(2020년 3월 기준)
'''순이익'''
연결: 2조 761억 8,300만 엔
단독: 1조 4,240억 6,200만 엔
(2020년 3월 기준)
'''순자산'''
연결: 21조 2,418억 엔
단독: 12조 4,502억 엔
(2020년 3월 기준)
'''총자산'''
연결: 52조 6,804억 3,600만 엔
단독: 17조 8,092억 4,600만 엔
(2020년 3월 기준)
'''종업원 수'''
연결: 370,870명
단독: 74,515명
(2019년 3월 기준)
'''결산기'''
3월 31일
'''회계 감사인'''
PwC아라타 유한책임 감사법인
'''주요 주주'''
일본 트러스트 서비스 신탁은행 13.07%
주식회사 토요타 자동직기 8.28%
일본 마스터 트러스트 신탁은행 6.34%
일본생명보험 상호회사 3.87%
JP모건 체이스 3.51%
주식회사 SUBARU 3.17%
덴소 주식회사 3.12%
'''자회사'''
토요타 그룹에 소속된 모든 기업
'''외부 링크'''
한국 공식 사이트
일본 공식 사이트
'''トヨタグループ'''
TOYOTA Group / 토요타 그룹

'''중심 회사'''
토요타 자동차 주식회사
'''종류'''
기업집단
'''구성 기업'''
154개
トヨタ自動車 / TOYOTA MOTORS[2][3]
토요타의 로고 역사[4]
아이치현 토요타시에 있는 토요타자동차 본사
1. 개요
2. 역사
3. 딜러점
4. 생산/판매모델
4.1. 해치백/CUV
4.2. 세단/왜건
4.3. SUV
4.4. MPV
4.5. LCV
4.6. 트럭
4.7. 버스
4.8. 스포츠카
5. 단종 모델
6. 개발 중인 모델
7. 논란
7.3. 블랙기업 논란
7.3.1. 반론
8. 생산 현황
8.1. 일본
9. 미디어에서의 토요타
10. 기타
11. 관련 문서
12.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ENJOY YOUR STYLE'''

''- TOYOTA''

''한국 시장용 캐치프레이즈.''

'''START YOUR IMPOSSIBLE'''

''2017년 11월부터의 일본 캐치프레이즈.''

일본의 자동차 제조기업이며 토요타그룹 산하의 자동차 브랜드이다.
일본 아이치현 토요타시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자동차 메이커를 넘어 일본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일본 전체 주식시장 1위의 시가총액을 자랑하며 동시에 전세계 자동차 회사들 중에서 시가총액 2위의 기업이다.[5] 참고로 중국에서는 豊田汽車라고 부른다.
2019년 포춘 500 기준 2726억 12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이는 '''세계 10위'''에 해당한다.

2. 역사




살림지식총서- 도요타
토요다 사키치가 창업한 토요다 자동방직기제작소가 모태로, 현재의 자동차생산 사업부는 1933년에 신설되었다. 이후 1937년 별도법인화. 초대 사장은 토요다 리자부로(豊田利三郎). 현 최고경영자는 창업주의 후손[6]토요다 아키오(豊田章男).[7]
한편 사명은 설립자의 성씨인 豊田을 딴 회사 이름이기는 한데, 이 사람의 이름은 토요'''타'''가 아니라 토요'''다'''이다. 그런데 왜 회사 이름이 '토요타'냐 하면 그쪽이 어감이 더 좋아서라나. 일본에서는 토요다 사키치가 서양인들이 발음하는 걸 보고 서양인들에겐 'TOYODA'보다 'TOYOTA'가 더 발음하기 쉬워서 바꿨다는 게 정설. 1936년부터 상호를 토요타(トヨタ)로 변경하였다. 공식적으로 한자가 아니라 카타카나로 쓰는데 '''이름 획수가 합쳐서 8획이면 운이 좋아서''' 이렇게 했단 얘기도 있다. 그걸 증명한 건지 태평양 전쟁 당시 군용트럭을 생산하기도 했지만 '''단 한번도 폭격을 당해본 적 없었고''' 정작 토요타 공장을 폭격하려 계획을 세우자 일본이 '''패망'''해버렸단 얘기도 있다.
패전 후 1949년 일본 전체가 닷지라인불황에 빠졌을 무렵 토요타자동차는 경영위기를 겪는다. 토요타자동차는 당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은행, 거래업체 등에 채무상환유예, 대금지불유예를 요청했지만 딱 두 회사로부터 거절당한다. 스미토모은행은 토요타의 채무상환유예를 거절하면서 칼같이 채무를 회수해갔고, 카와사키제철은 대금지불유예를 거절한다. 이때의 충격으로 창업자 토요타 키이치로가 급사했고, 정말 말 그대로 토요타는 망할 뻔했다.
이후 토요타는 그때의 원한을 기억하며 모든 거래에서 스미토모은행과 카와사키제철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일단 스미토모은행에는 절대로 대출하거나 예금을 맡기지 않았다. 그리고 스미토모은행이 1965년 자신의 거래업체인 프린스자동차가 경영위기를 겪자 토요타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당시 토요타가 딱 잘라 거절했다.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철강을 살 때도 카와사키제철의 것은 절대로 사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이 두 회사와의 거래는 1949년의 경영위기로부터 50년 이상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재개되었는데, 이는 모두 토요타와의 거래관계에 있던 은행, 회사와 경영통합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거래가 재개된 것이다. 스미토모은행과는 미스이 계열의 사쿠라은행과 경영통합되어 미스이스미토모은행으로 재탄생하자 거래가 튼다. 다만, 이때도 거래관계는 구 사쿠라은행 쪽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카와사키제철 역시 일본제관과 합병하여 JFE스틸로 재탄생하면서 거래가 재개되었는데, 역시나 구 일본제관 쪽 인물을 통해서만 거래한다고 한다. 질긴 원한... 참고로 미스이그룹과 일본제관은 토요타가 경영난을 겪었을 때 채무유예, 대금지불유예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한다. 이 사례는 토요타 본사 인근에 있는 나고야 사람들의 특성의 예로 거론되기도 한다.
1970년대 전 세계적인 석유 파동을 겪은 시점부터, 상대적으로 연비가 좋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이 부각되어 폭발적으로 판매량이 증가, 저렴한 가격에 믿을 만한 내구성의 자동차를 생산한다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북미에서는 아직도 중고차 감가상각이 가장 적은 차량들 중 하나가 토요타 물건들이다. 이는 패전 이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에서 배척받았던 에드워즈 데밍의 품질관리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혁신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전기 모터와 내연기관을 상황에 맞게 사용하여 연비를 향상시키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최초로 상용화하는데 성공한 기업이기도 하며,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분야에 있어서는 절대적 강자. 유일하게 하이브리드 모델을 100만대 이상 팔아치운 기업으로 모델은 토요타 프리우스.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중소규모 군벌들이나 테러리스트들이 토요타의 픽업트럭에 기관총, 무반동총 등을 단 테크니컬이 있는데, 1987년엔 차드-리비아 분쟁에서 기동성을 살린 테크니컬들이 전차를 위시한 기갑부대(!)를 발라버린 사건도 있었다(...). 일명 '''토요타 전쟁'''.
산하에 별도의 디비전으로 1989년에 런칭한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LEXUS)를 두고 있다.[8] 그리고 최초의 렉서스 차량인 LS의 일본 내수 사양인 토요타 셀시오에 최초로 현재 사용되는 로고가 적용되었다. 지분관계를 통한 자회사로 편입된 완성차 업체는 상용/특장차 부분의 히노(HINO)와 경승용차 전문 기업인 다이하츠가 있다. 4WD/수평대향엔진 기반 차량에 특화되어 있는 스바루 역시, 렉서스/다이하츠/히노와는 다른 형태로 토요타와 협력관계에 있다.[9]
허나 잘 나가던 토요타도 2010년 자동차 역사상 최악의 위기인 토요타 리콜 사태를 맞는다. 그러나 2012년 1분기에는 '''다시 세계 1위를 탈환했다.'''AutoM 기사 내용 심각한 위기(그것도 안전과 관련됨)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난 것을 보면 토요타의 네임밸류(브랜드가치)가 결코 작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리고 2016년 10월 12일, 스즈키의 스즈키 오사무 회장은 토요타 자동차와 제휴를 검토하기로 했다고 전격발표했다. 이로써 일본의 자동차 3강(토요타, 혼다, 닛산) 구도가 더욱 명확해지게 되었다. 관련기사. 그외 변속기로 유명한 아이신, 자동차 부품업체 덴소, 일본 5대 특수강업체 아이치스틸 등을 거느리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1960년대 중반에 신진자동차와의 기술제휴 형태로 진출했다. 원래 신진자동차는 미쓰비시 자동차와 기술제휴를 하려고 했었는데, 이 과정에서 신진자동차가 미쓰비시 자동차로 부터 콜트 1500을 100대 들여오면서 특혜 논란에다가 폭리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졌고(당시 제2의 새나라자동차 파동이라고 했었을 정도였다), 이 와중에 한국시장 진출에 뜻이 있었던 토요타가 잽싸게 신진자동차를 꼬드겨서 신진자동차가 토요타와 기술제휴를 하게 되었다는 후문이 있다. 토요타의 차종을 넉다운 생산하여 한국 시장에 판매하던 신진자동차는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을 사실상 독과점 하는 지위에 있었지만, 1972년 저우언라이의 일명 저우 4원칙으로 인하여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던 토요타는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한국에서 내빼고 말았다.[10] 그 이후 한동안 한국 시장에 재진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11]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한국시장에 미련을 못버렸던 것인지 24년후인 1996년에 진세무역과 인치케이프 코리아 라는 자동차 수입업체를 통해서 미국에서 생산된 아발론을 한국시장에 런칭 하였으며[12], 2000년 3월 드디어 28년만에 한국 재진출을 하면서 한국 현지 법인인 한국토요타자동차(주)를 설립하였다. 2009년 정식적으로 토요타 브랜드를 재런칭하기 전까지는 렉서스 브랜드를 판매했으며, 2009년 10월에 정식적으로 토요타 브랜드를 한국에 재런칭,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8년 3월엔 한국토요타자동차가 모범납세 법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주요주주로는 일본트러스티서비스신탁은행주식회사(11%), 주식회사토요타자동직기(6.9%)[13], 일본마스터트러스트신탁은행주식회사(4.7%), 일본생명보험상호회사(3.6%), State Street Bank and Trust Company(3.1%), 덴소(2.6%), JP모건체이스(2.1%), 미쓰이스미토모해상화재보험주식회사(1.8%), 자산관리서비스신탁은행주식회사(1.8%), The bank of new york mellon(1.7%) 등이 있다.
계열사로 토요타 방직, JTEKT, 토요타자동직기, 아이치 제강, 아이신정기, 덴소, 후지중공업 등이 있다. 지분관계상 KDDI의 2대 주주이며 이스즈자동차의 3대 주주이기도 하다. 2017년에는 마쓰다의 실질 최대주주가 되기로 합의.
  • 1대 사장 - 토요다 리사부로(키이치로의 매제)
  • 2대 사장 - 토요다 키이치로
  • 3대 사장 - 이시다 타이조
  • 4대 사장 - 나카가와 후키오
  • 5대 사장 - 토요다 에이지(기이치로의 사촌)
  • 6대 사장 - 토요다 쇼이치로[14](기이치로의 장남)
  • 7대 사장 - 토요다 타츠로(기이치로의 차남)
  • 8대 사장 - 오쿠다 히로시
  • 9대 사장 - 쵸 후지오
  • 10대 사장 - 와타나베 카츠아키
  • 11대 사장 - 토요다 아키오(쇼이치로의 아들)[15]

3. 딜러점


일본 국내에서는 고급차 중심인 '토요타', 중소형 중심인 '토요페트(토요펫)', 대중적인 차 중심인 '코롤라',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넷츠'로 딜러가 세분화되어 있다.[16] 이러한 영업 구조는 2차대전 후 소형차 시장에 진입하면서 이들 라인업을 '토요펫'으로 분리한 것이 시작이다. 2006년까지 오사카에서는 토요타와 토요펫의 취급 차종이 정반대였다. 토요타 외에는 닛산, 마쓰다, 이스즈 등이 이런 형태로 영업하고 있다. 혼다[17], 스즈키, 미쓰비시의 경우 재정문제로 2000년대에 대리점을 단일화했다.
2005년 이후 일본에 역진출한 렉서스 브랜드는 완전히 별도이다. 2019년 4월 이후부터 도쿄도 내에서는 이러한 체계가 폐지되었고, 토요타 모빌리티 도쿄 스토어 산하로 개편되었다.

4. 생산/판매모델


디비전만 다른 동형 모델의 변종일 경우 병기한다. ★은 대한민국에서도 판매되는 모델.

4.1. 해치백/CUV



4.2. 세단/왜건


  • 에티오스(ETIOS) - 소형 세단, 인도, 브라질과 같은 신흥국 시장 전략 차종이다.
  • 바이오스(VIOS) - 소형 세단, 동남아시아중국 시장 전략 차종이다.
  • 프리우스(PRIUS) - 준중형 하이브리드 세단 ★
  • 알리온(ALLION) - 준중형 세단. 일본 내수 전용차로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으나, 러시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뉴질랜드 등에 대량으로 병행 수출되고 있다.
  • 프레미오(PREMIO) - 준중형 세단. 일본 내수용 차량으로 코로나의 후속 차종으로 출시되었으며, 알리온과는 같은 차체를 공유하는 형제 차종이다.
  • 코롤라(Corolla) - 준중형 세단
  • 코롤라 악시오(Corolla Axio)
  • 코롤라 필더(Corolla Fielder)
  • 프로박스(Probox) - 준중형 왜건. 코롤라 밴의 후속 모델이다.
  • 석시드(Succeed)
  • 캠리(Camry) - 중형 세단 ★
  • 아우리온(AURION) - 준대형 세단.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판매.
  • 아발론(AVALON) - 준대형 세단 ★
  • 크라운(Crown) - 준대형 세단
  • 센추리(CENTURY) - 8기통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한 일본차의 최고기함.

4.3. SUV


  • C-HR/IZOA[18] - 소형 SUV
  • 라이즈(RAIZE) - 2019년에 출시된 소형 SUV로 다이하츠 록키배지 엔지니어링 차량
  • 어반 크루저(URBAN CRUSIER) - 2020년인도 시장 전략 SUV로 출시되었으며, 마루티 비타라 브레자배지 엔지니어링 차량
  • 러쉬(RUSH) - 소형 SUV
  • RAV4 - 준중형 SUV ★
  • 해리어(HARRIER) - 중형 SUV. 과거에는 렉서스 RX의 뱃지 엔지니어링 버전이었으나 현행 모델은 RX와 상관없다.
  • 포츄너(FORTUNER) - 하이랜더보다 살짝 작은 크기의 SUV.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등을 중심으로 판매한다.
  • 하이랜더(HIGHLANDER) - 준대형 SUV. 미국 기준으로는 미드사이즈급.
  • 4RUNNER - 대형 SUV
  • 세쿼이아(SEQUOIA) - 대형 SUV. 툰드라를 베이스로 만든 모델이다.
  • 랜드크루저 / 랜드크루저 프라도 - 대형 SUV

4.4. MPV



4.5. LCV



4.6. 트럭


  • 픽시스 트럭 - 경형 픽업 트럭
  • 하이럭스 - 중형 픽업 트럭
  • 타코마(TACOMA) - 중형 픽업 트럭. 하이럭스의 미국 시장 개량형
  • 툰드라(TUNDRA) - 대형 픽업 트럭
  • 다이나/토요에이스 - 1톤~3.5톤급 캡오버형 트럭. 다이나는 토요타 딜러에서, 토요에이스는 토요펫트 딜러에서 판매한다.

4.7. 버스



4.8. 스포츠카


  • 토요타 86 - 북미에서는 사이언 마크를 달고 FR-S라는 모델명으로 판매했다. 그러나 사이언 브랜드가 폐지됨에 따라 2016년부터 86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나오고 나서 토요타 86이라고 판매한다.
  • 토요타 수프라 - BMW Z4 3세대의 플랫폼으로 부활했다.

5. 단종 모델


토요타 크라운, 토요타 코롤라 등의 차량은 더 세분화도 가능하지만,세분화 가능한 차종 중에서 일부는 다뤄지지 않았다.

6. 개발 중인 모델



7. 논란



7.1. 토요타 리콜 사태


2009~2010년 일어난 토요타 자동차의 급발진 사건과 관련된 대규모 리콜 사태. 자세한 것은 토요타 리콜 사태 항목 참조. TPS 항목도 참조해두면 좋다. 참고로 자동차 업계에서 이에 준하는 사건으론 2015년 터진 독일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디젤게이트가 있었다. 그만큼 여파가 컸던 사건.

7.2. 도요토미 히데요시 미화 논란


2011년 말, 지진원전으로 얼룩진 일본 사회를 부흥한다며 ReBORN이라는 제목의 회사 PR광고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이 기무라 타쿠야가 분장한 오다 노부나가키타노 타케시가 분장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함께 토요타 차를 탄다는 내용. 때문에 당시 한국 일각에선 임진왜란을 일으킨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미화하는 거냐며 반발이 일기도 했다.[20] 나고야가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고향인 것과 관련이 있어서 분장한 것으로 보인다.

7.3. 블랙기업 논란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이 휘청거리거나 외자에 삼켜져 하나 둘 나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토요타가 홀로 쾌속질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극한의 '''가격 후려치기'''였다.
토요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자동화 비율을 높이고 '필요한 것을 제때 필요한 만큼 생산한다'는 개념의 'Just in time'(이하 JIT) 생산방식을 창출하여 심지어 '토요타 방식'이라는 경영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국내외 시장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이 JIT 방식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자면, 부품을 항상 준비해놓지 않고 생산할 물량이 정해지면 그때그때 필요한 양 만큼만 주문하여 낭비를 극한으로 줄이는 생산관리방식이다. 다른 일본기업들이 엔고현상에 의해 전부 작살나는 동안 토요타가 저가정책을 유지하며 해외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이 극한의 '낭비 절감 정책'에 있었다.
1便(편) 2便 3便 4便 이런 방식으로 납품한다
매일 아침 5시쯤 토요타 본사에서 필요한 부품을 직접 하청업체에 팩스로 보내준다. 그러므로 불량품이 나오는 순간 부품이 어느 공장에서,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신나게 깨지는거다.
근데 여기서 문제는 '그때그때 생산'하기 때문에 직원들 역시 '''정시출근을 할 필요가 없다.''' 이에 대해 토요타는 정말 좋은 것처럼 언플을 해대지만 실제로는 '''필요한 때 불러서 일단 계획된 물량이 나올 때까지는 무조건 일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노동강도가 급격하게 치솟는다. 게다가 이 직원들에게 잔업수당까지 지급하지 않았으며[21], 심지어 이 직원들 중 다수는 정직원이 아닌 '''파견사원'''이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가혹한 노동과 인색한 봉급, 불안정한 고용상황에 시달리던 토요타 파견사원이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등 각종 사건사고를 불러오는 상황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것은 하청업체에게도 마찬가지라서 필요한 부품을 '그때그때' 납품해야 한다. 물류이동상의 문제 때문에 납품시간을 정확하게 맞추기가 힘든데 교통체증이라도 생긴다면 납품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약간 미리' 예측해서 만들어 놓고 납품요청이 들어오면 최종 생산해서 납품시기보다 '''몇시간 먼저''' 출발하여 지정된 시간이 될 때까지 토요타 공장 근처 노상에서 대기하다가 납품한다. 납품시간이 이른 것도 늦은 것도 모두 용납 안 하다 보니 이렇게 할 수밖에. 당연히 노동강도는 본사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
결국, 하청업체의 부담이 매우 커지고, 만약 소비자인 토요타 자동차가 갑자기 리콜 사건 등으로 인하여 생산물량을 조절하면, 토요타 자동차 입장에서는 손해를 덜 볼지 몰라도, 하청업체에서는 대응을 할 새도 없이 죽창을 맞는 것이므로, 다르게 보면 하청업체만 죽어나간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차를 싸게 빨리빨리 만들어버리다보니 필연적으로 품질이 떨어지게 되었는데, 이는 바로 윗 항목인 '토요타 리콜 사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이다보니 토요타는 일본에서 대판 까여야 되겠지만, 대학들에서도 경영학적으로 21세기 제조업은 서플라이 체인 vs 서플라이 체인의 대결이라며 이런 방식의 원가절감에 대해 옹호를 하며[22][23] 매년 토요타가 각종 언론매체에 엄청난 광고비를 뿌려대는 상황이다보니 되려 적지 않은 일본 주류 언론에선 토요타의 수많은 단점과 비행은 전부 묻어두고 사실상 토요타를 직접 광고해 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일본 전자 업체들의 상대적인 침체 속에서 애국심 버프를 받은 토요타는 여기저기서 엄청난 비호를 얻는 상황.
그리고 심지어 필리핀 등 해외 현지공장에서도 노동자 탄압을 일삼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북미에서는 그런 거 없다인거 보면 현지 노동법의 문제로 보는 게 맞을 듯.
다만, 이렇게 원가 절감을 했어도 리콜 사태 이후에 다시 이미지를 회복하고, 북미에서의 지위를 회복했다#. 미국은 3대 자동차 회사들의 로비 및 자국 생산품 보호 규정이 존재하는 곳이지만, 토요타는 미국 현지에 공장 및 R&D 센터를 만들어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부 미국에서 하는 것으로 이를 피해가고 있다. 캠리아발론같은 차는 사실상 미국차라고 간주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

7.3.1. 반론


토요타가 악덕기업 논란이 사실이냐 아니냐 여부와는 별개로, 그 근거로 든 논리 대부분에 문제가 있다.
1. 가격 후려치기가 토요타 승승장구의 주역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납품단가 절감 노력은 사실상 모든 제조업체의 모든 분야에서 원가절감의 일환으로 항상 진행되는 것으로 유독 자동차업계가 납품단가에 민감한 업계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자동차업계의 특성일 뿐이지 토요타 성공의 원동력은 아니다. 게다가 일본의 세계적 자동차 업체가 토요타만 있는 것도 아니다.
2. JIT는 이미 60년대에 일본 제조업계의 트랜드에 가까왔던 방식이고 토요타 역시 60년대에 도입했으며 이것이 80년대에 서구 경영학 측에 토요타 방식으로 알려진 것일 뿐이다. 즉 애초에 토요타가 창안한 방식도 아니며 JIT 자체는 이미 90년대에 더욱 발전적인 생산관리방식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즉 산업계 전체가 이미 30년 전에 JIT 너머를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3. JIT는 엄격한 생산관리 체계 하에 '계획된 시간'에 '계획된 수량'을 '계획된 품질'로 생산하는 방식이지 그때그때 수요에 맞춰 임의로 생산하여 노동자를 고통에 빠트리는 방식이 아니다. 당연히 교통체증 같은 '예기된 사유'는 관리계획 내에 포함된다. 현대의 생산관리체계가 그렇게 만만한 체계가 아니다. 그리고 과연 공급망 내에서 수요가 무계획적으로 수립되고 운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느 정도의 오차범위 안에서 얼추 수요예측이 가능하다)
4. JIT의 주요 관리대상 중 하나가 바로 품질보증이다. 그리고 JIT가 알려지지도 않았던 70년대의 미국 자동차회사가 바로 그 불량률에 고통받고 있었다가 '무고장 자동차'의 전설을 써내려간 토요타, 확대하면 일제차에 점유율을 잠식당했다라는 점을 고려하면 JIT가 불량률을 높인다는 이야기 자체가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다.

5. 토요타 리콜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동차기술에서의 전자장치와 소프트웨어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는 데 비해 업계의 관리체계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크다. 이는 자동차업계 공통의 문제로 인식되는 상황이라서 ISO-26262 같은 개발지침 및 인증체계를 수립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6. 결정적으로 토요타의 원가 후려치기 문제는 토요타 스스로가 그 부작용을 인지해서 1995년부터 '3:3:3' 성과공유제 방식을 도입, 자사와 협력업체, 소비자들이 원가절감의 이익을 공유한지 오래됐다. 이는 일본 토요타 자동차의 상생경영이라는 제목으로 국민권익위 윤리연구소 페이지에 게재된 내용이기도 하니 참고해 볼 것.

8. 생산 현황


전 세계적으로 생산거점을 두고 있지만, 일본북미 두 곳을 최대 거점으로 삼고 있다. 특히 북미시장에서 토요타는 1980년대 플라자 합의를 기점으로 엔고현상 대비 수익확대와 북미 자동차업체[24]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 켄터키 주 조지타운 공장 건설을 시작으로 30년 동안 아예 미국기업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안착해버렸다. 그리고 코로나, 코롤라, 캠리를 앞세워 시장을 쓸어담기 시작했고, 이후엔 렉서스 브랜드를 런칭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북미시장의 대중차와 고급차 영역을 모두 쌍끌이해 2000년대 초반부터는 전미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했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진 세계금융위기, 도호쿠 대지진, 슈퍼엔고, 토요타 리콜 사태의 4중고를 겪으며 최악의 위기를 겪었지만, 이후 북미시장에서의 철저한 마케팅과 품질을 인정받으려는 노력 덕분에 이내 지위를 회복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북미지역의 토요타는 사실상 일본기업의 꼬리표를 떼고 현지 연구개발과 자체 공장, 부품업체들을 활용하면서 수익도 상당수 현지사회에 환원하고 있는 일본 다음가는 제2생산거점으로 역수출도 활발히 이루어지는 상황. 또한 북미 자유무역협정 이후 캐나다와 멕시코 공장도 적극 활용 중이다.
그 외 동남아, 유럽 등에도 각기 거점을 두고 있다. 한동안 엔고현상의 지속과 해외거점 공략을 목적으로 일본 공장에서의 수출은 정체되고 해외 거점의 생산은 확대된 상황이었지만, 2010년대 중반 들어 환율의 흐름이 엔저로 급격히 전환되어 수출에 유리해진 터라 내수침체로 인한 국내 공장 활성화 등까지 염두에 두고 일본내 공장 생산비중을 늘려나가고 있다.
컨베이어벨트의 시초는 포드자동차이다. 단순하게 제품이 자동적재되며 공정의 케파를 줄이기 위해 컨베이어벨트를 산업적으로 활용했지만 도요타는 하나의 컨베이어벨트에서 여러 모델을 생산하는 ‘혼류 생산방식’,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시간에 공정에 투입하는 ‘JIT(Just In Time)’ 등등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최적화 양산화에 당시 대표적인 자동차업체였다.

8.1. 일본


크게 아이치현, 후쿠오카 현, 이와테 현을 중심으로 일본 내 3 생산거점을 두고 있다.
(직영 공장)
본사 공장(아이치현 토요타 시): 1938년 11월 창설, 고용 1,776명, 픽업 트럭, 트럭 레더 프레임, 프리우스 드라이브 트레인 생산(상징적 거점)
모토마치 공장(아이치현 토요타 시); 1959년 8월 창설, 고용 4,085명 크라운, 마크 X, 에스티마, 토요타 미라이 생산, 엄마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토요타 생산 방식의 기본 거점 역할을 하는 곳이고, 플래그십 위주의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공장의 이름 또한 지역 공장 시절의 마음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붙여진 것.
카미고 공장(아이치현 토요타 시): 1965년 11월 창설, 고용 3,034명, 엔진 생산(5종, M, K, S, R, T 엔진)
타카오카 공장(아이치현 토요타 시): 1966년 9월 창설,고용 3,293명, 코롤라 (수출용), IQ, 해리어, ist, 오리스, 프리우스 알파, RAV4, 위시
츠츠미 공장(아이치현 토요타 시): 1970년 12월 창설, 고용 5,045명, 프리우스(수출, 내수 공통), 캠리(수출용), 프레미오, 알리온, 사이언, 기타 부품 생산
미요시 공장(아이치현 미요시 시): 1968년 6월 창설, 고용 1,456명, 엔진, 부품 위주 생산
묘치 공장(아이치현 미요시 시): 1973년 6월 창설, 고용 1,512명, 엔진, 주조부품 위주 생산
키누우라 공장(아이치현 헤키난 시): 1978년 창설, 엔진, 변속기 부품 위주 생산
타하라 공장(아이치현 타하라 시): 1979년 1월 창설, 고용 7,821명, 렉서스 GX, 렉서스 LX, 랜드크루저, 랜드크루저 프라도-생산 제 1부, 렉서스 IS, 렉서스 GS, 렉서스 LS
테이호 공장(아이치현 토요타 시): 1986년 창설, 프레스금형, 주조금형, 사출성형금형, 메카트로설비(사실 생산이 아니라 타사에서 사들인 설비를 개조한다) 생산
히로세 공장(아이치현 토요타 시): 1989년 3월 창설, PCU등 전장부품 생산 (덴소로 이관 예정)
(자회사 및 위탁생산 공장)
토요타 자동직기 나가쿠사 공장(아이치 현 오부 시): 비츠, RAV4, 마크 X 지오 생산
토요타 차체 후지마츠 공장(아이치 현 카리야 시): 노아, 복시, 프리우스 생산
토요타 차체 이나베 공장(미에 현 이나베 시): 하이에이스, 알파드, 벨파이어, 그란에이스 생산
토요타 차체 요시와라 공장(아이치 현 토요타 시): 랜드크루저, 코스터, 히노 리엣세 2 생산
토요타 자동차 큐슈 미야타 공장(후쿠오카 현 미야와카 시): 렉서스 ES, 렉서스 RX, 렉서스 NX 렉서스 CT 생산
토요타 자동차 동일본 (시즈오카 현, 미야기 현, 이와테 현): 아쿠아, C-HR, 시엔타 동북지역 공장에서 주로 하이브리드 차량을 생산
히노 자동차 하무라 공장 (도쿄 도 하무라 시): FJ크루저, 랜드크루저(프라도) 위탁생산
다이하츠 공업 이케다 공장(오사카 부 이케다 시): 팟소 위탁생산

9. 미디어에서의 토요타


2010년대 중반부터 비 일본 게임에 토요타 차량 라이선스를 웬만하면 허용하지 않기로 방침을 바꿨다. 방침상 GT3를 빼면[25] 들어 올 수 없는 아세토 코르사 콤페티치오네는 제쳐두더라도 프로젝트 카스 2, 포르자 시리즈, 니드 포 스피드 시리즈 등 해외 레이싱 게임에서는 일본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 스포트이니셜D 아케이드 스테이지, 완간 미드나이트 MAXIMUM TUNE 시리즈 등에 등장하는 모델 상당수를 볼 수 없다.
유명한 일화로 니드 포 스피드: 히트에 토요타 차량 수록이 불발되자[26] 유저가 토요타 영국 계정에 "이번 신작 NFS에서 토요타는 어디 갔죠?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거 아닌가요" 라고 질문했는데, 그에 대한 토요타의 대답이 "저희 차는 공도 레이싱을 조장하지 않는 그란 투리스모 스포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위에 봤듯 공도 레이싱 게임인 이니셜D 아케이드 스테이지나 맥시멈 튠에서는 버젓이 들어가 있는지라 완전한 모순이었고,[27] 이를 알고 있던 니드 포 스피드 한테 pfft nerds(풉 얼간이들)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2019년 말부터 포르자 호라이즌 4에 토요타가 복귀하면서 서서히 깨지고 있다.

10. 기타



미국 내에서 방영되는 광고의 한국어 버전. 이 광고의 성우는 김승준. 이외에 중국어, 광둥어, 심지어 베트남어 버전도 등도 있다.[28]
나고야의 신공항이자 민자 공항인 센트레아 나고야 중부국제공항을 운영하는 회사의 대주주로 참여 중이다. 또한 후지 스피드웨이의 운영법인인 후지 스피드웨이 주식회사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29]
2011년 5월, 미국에서 하츠네 미쿠를 모델로 내세운 토요타 공식 광고가 방영되었다. 오덕취향 중에서도 마이너한 물건을 오피셜 광고에다 내보내는 토요타의 행보에 미쿠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경악한 상태. 광고 영상엔 미쿠 콘서트 장면과 노래가 대놓고 나오고, 내레이션 성우 김승준이 '''"하츠네 미쿠의 꿈을 응원합니다."'''라고 결정타(…)를 날린다.
2012년부터 외국 회사로는 유일하게 나스카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성적도 쏠쏠하게 얻고 있어 빠질 일이 없는 모양. 오히려 나스카가 외국 회사에게 참가 독려를 했었다.
VOCALOID 엔진의 판권이 야마하의 소유고, 야마하가 토요타의 자회사 비슷한 위치인지라 기획된 광고로 예상된다. 근데 이쯤 되면 미쿠가 자동차를 광고하는게 아니라 자동차가 미쿠를 광고하고 있는 셈. 하지만 정작 토요타 레이스 차량이 미쿠 리버리를 쓴 적은 없다.[30]


그런데 2013년에는 붉은 혜성을 모델로 하신 신 광고가 등장했다.[31]세 배 빠르다.
2015년에는 자동차 업계 최초로 올림픽 TOP 스폰서가 되었다. 2020 도쿄 올림픽을 노리고 체결했는데 계약 기간이 2018년부터 시작되고 한 종목에 2개의 회사를 스폰서로 둘 수 없는지라 먼저 스폰서 자리를 탐내던 현대차는 그저 안습(...). 다만 평창 조직위원회에서는 국민 정서를 감안하여 예외적으로 두 회사를 동시에 스폰서로 위촉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단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2015년 AQUA의 X-URBAN 시리즈의 광고가 몬스터 헌터 시리즈와 콜라보하여 나왔다. 차들이 몬스터 헌터에 나올법한 도로들을 달리고,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나 열기구가 곳곳에서 보이며 BGM은 영웅의 증표이다.
2016년 6월 9일, 파격적인 재택근무 혁명을 발표했다. 주 2시간만 회사에 출근하면 된다고 한다. 재택근무를 발표한 이유로는 경력직 여성들이 육아와 부모 부양으로 인해 퇴직을 하는 경우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총 직원의 35%에 해당하는 2만 5000명에게 시행한다. 이는 파격적인 경영 실험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관련기사.
아마도 나고야를 거점으로 두고 있다 보니 나고야 쪽 철도회사들의 심기가 많이 불편한다... 특히 JR 도카이의 밥줄은 재래선이 아니라 신칸센이라는 결과도 나왔고 킨테츠의 나고야 쪽 철도망은 심히 안습이다. 메이테츠도 매한가지.
장 르노도라에몽으로 캐스팅해서 도라에몽을 소재로 한 CF를 찍기도 했는데 여기서 퉁순이엄청난 미인으로 등장한다.
2016년 즈음 자동차에 알루미늄 테이프를 붙이면 연비가 좋아지고 차량 운행에 안정감을 찾아준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그 얘기를 발표한 회사가 바로 토요타였다.
발음이 도요타, 토요다, 도요다 등 다앙한데, 일단 정식발음은 '''토요타'''다.
산하에 사회인야구팀을 두고 있다. 1947년에 창설했으며 도카이 지방의 강호로 거듭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안습한 역사를 가졌지만 1989년 도시대항전[32]에서 명포수 후루타 아쓰야를 내세워 도시대항전 첫 승을 거둔 시점부터 강팀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다만 22차례의 도시대항전 출전횟수와는 별개로 우승은 2016년 단 1번뿐일만큼 대회 우승운은 없는 편. 도시대항전보다 아랫급인 일본 선수권 대회에선 5차례의 우승을 기록했다. 본격적으로 강팀이 된 1989년을 기점으로 프로 선수들을 꽤나 많이 배출하였으며. 이곳 출신의 유명 프로 선수로는 '''후루타 아쓰야''', 카네코 치히로, 겐다 소스케, 오기노 타카시 등이 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축구 결승전에서 이승우선수가 첫번째 골을 넣고 광고판 위에 올라가는 세레모니를 하는데 '''그 광고판이 다름아닌 토요타 광고판이었다.''' 일본 언론에서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전 당시 이승우의 세리머니를 언급하며 자존심을 짓밟혔다고 발끈했다면서 완전히 일본을 농락하는 장면이 벌어졌다고 한다.
아랍 및 이슬람권에서 인지도가 엄청 많다. 오래전부터 이스라엘 보이콧같이 아랍 분위기에 맞춰줬기 때문. 덕분에 이스라엘에서 인지도가 박살났지만[33] 대신 압도적인 이슬람권에서 인지도가 엄청나서 일부 차종을 아예 토요타라고 부를 정도로 엄청나다. 토요타 전쟁을 봐도. 거꾸로 이스라엘 보이콧을 거부한 경쟁사 스바루는 아랍 및 이슬람권에서 폭망 수준 인지도로 차량을 보기가 극히 드물고 수입도 어려워졌다. 문제는 다에시 세력의 새로운 도요타 밴 차량 때문에 미국에서 새 차량을 수출했냐는 비난과 의심을 받았다.
유럽 축구팬들에겐 나름 인지도가 있는데, 1980~2004년까지 인터컨티넨탈 컵을 후원했으며 1999~2002, 2004~2010년까지 두 차례 이탈리아 프로축구팀 ACF 피오렌티나 스폰서를 맡았다.
모터스포츠에선 참 안습한 전적을 갖고 있다. 대표적으로 르망24시인데, 16-17 시즌은 경기 스타트라인을 폴 포지션으로 출발하게 되어 '올해 1등은 토요타'라고 모두가 예상하였으나 경기 마지막에 대이변이 많이 일어나서 포르쉐가 우승을 싹슬이 해가는 바람에 같은 LMP1 클래스의 라이벌인 아우디와 포르쉐가 철수하고 난 다음해인 2018년에는 토요타 외 다른 경쟁자가 없어서 르망24시 출전 20여년만에 겨우 우승했다. 이 외에도 2002시즌부터 2009시즌까지 포뮬러 1에 출전한적도 있었는데, 이 기간 동안 스쿠데리아 페라리보다 개발비를 엄청나게 몇조 가까이 들이붓고도, 8년 동안 챔피언은 커녕 그랑프리 우승도 한 번 해보지 못하고[34] 이듬해 BMW와 같이 철수해버리고 만다. 그야말로 본사 입장에선 그야말로 빼도박도 못할 엄청난 흑역사.[35] 하지만 그래도 나스카나 랠리에선 나름 호성적을 거두고 있다.
마지막에 차가 뻗어버리는 일을 여러 번, 그것도 굵직한 데에서 당해서 자주 언급되기도 한다. 1998년 월드 랠리 챔피언십에서는 결승선을 불과 300m 남기고 엔진블로우가 나면서 다 잡을 뻔한 우승을 미쓰비시에게 넘겼고, 2008년 포뮬러 1 브라질 그랑프리에서는 역시 차가 마지막 랩에서 타이어가 제대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36] 해밀턴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기회를 만들어준다.[37] 2016년에는 르망 24시에서도 경기 종료 직전 5분을 남기고 차가 뻗으면서 포르쉐에게 또 우승을 넘겼다. 그리고 자사 드라이버를 잔뜩 넣으며 우승을 자신하던 2020년 슈퍼 GT에서는 결승선을 앞에 두고 연료가 바닥나면서 우승은 저 멀리.

11. 관련 문서



12. 둘러보기





[1] 25조 9,049억 엔. 일본 기업 1위[2] 한국 사람들에겐 외래어 표기법을 따른 '도요타'라는 이름도 친숙하나 한국법인 명칭이 '한국토요타자동차(주)'인 관계로 한글 표기에 다소 혼란이 있는 편이다. 나무위키에선 일단 정식명칭을 우선한다는 원칙에 따라 토요타로 작성한다. 참고로, '도요타'로도 이 문서로 들어올 수 있다.[3] 여담으로 이와 같이 정식 명칭과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가 괴리가 있어 정식 명칭으로 작성된 문서로는 시트로엥(외래어 표기법상 시트로엔) 폭스바겐(외래어 표기법상 폴크스바겐), 포르쉐(외래어 표기법상 포르셰), 쉐보레(외래어 표기법상 셰브럴레이) 등이 있다.[4] 1936년에 쓰던 중앙의 로고는 일본 국내의 일부 공장 간판이나 토요타 사내에서 드물게 쓰이고 있다. 1978년 4월부터 1989년 9월경까지는 광고 등에서 로고없이 빨간색 'TOYOTA' 글씨만 사용했다. 현 로고는 50주년인 1989년 10월 2일부터 등장했다.[5] 2020년 6월 기준으로 독일 3사인 폭스바겐 그룹, 다임러 그룹, BMW의 시가총액을 전부 합쳐도 토요타 하나보다 작다. 그러나 테슬라에게 추월당해 현재는 2위.[6] 정확히는 증손자. 할아버지가 토요타 자동차생산 사업부의 대표였던 토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郎)이다.[7] 토요다 리자부로 초대 사장은 창업주의 사위, 즉 토요다 기이치로의 매부다. 참고로 토요다 아키오나 그 아버지인 토요다 쇼이치로의 아내는 모두 미쓰이그룹 재벌 출신.[8] 청년층을 타겟으로 한 사이언(SCION)도 있었으나, 2016년에 사라졌다.[9] 토요타 공식 웹사이트의 관련링크 일람을 참조할 것. 이 리스트에 후지중공업은 없다. GM은 후지중공업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를 인수한 토요타는 현재 16.5%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토요타와 스바루는 독립경영을 보장하는 대신 자본 제휴 관계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기술교류를 행하고 있다. 어차피 토요타와 스바루는 지향하는 고객층이 달라서 완전히 통합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스바루의 주력차종인 레가시/아웃백/엑시가/포레스터/임프래자 등 스바루의 고유 모델과, 새로 출시하는 경차나 소형차는 다이하츠/토요타의 모델을 스바루에서 도입하여 판매하고 있으며, 토요타 86/스바루 BRZ와 같은 공동개발차량도 판매되고 있다.[10] 이후 신진은 GM과 합작하여 GM코리아(현재의 GM코리아와는 다르다)를 세웠다가 내놓은 시보레 1700이 폭망한 이후 1976년 산업은행에 매각되었고 1978년 대우그룹에 인수된 이후 1983년 대우자동차로 사명을 바꾸었다. IMF 이후 대우그룹이 파산하면서 2002년 GM에 인수된 이후 GM대우가 되었다 2011년 한국GM 쉐보레로 이름을 바꾸었다.[11] 다만 6년후인 1978년에 토요타의 계열사인 히노자동차가 기아산업/아시아자동차와 기술제휴를 하면서 1998년까지 기술제휴 관계에 있었다. 그렇게 신진자동차와 한국을 배신하고 일방적으로 떠나놓고는 계열사인 히노자동차를 통해 겨우 6년만에 한국으로 재진출을 꾀하려고 했었다는 점에서 한국시장에 미련이 남았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는데, 어찌보면 신진자동차를 배신하고 떠난것을 한동안 후회하고 있었을지도...[12] 1996년 당시 가격으로 3,630~3,814만원이었는데 상당히 고가에 속했었다.[13] 그룹의 모태이기도 하지만 토요타자동차와는 순환출자 관계에 있다.[14] 그의 아내는 전쟁 전 최대 재벌이었던 미쓰이家 출신.[15] 이 사람의 아내도 미쓰이家 출신이다. 참고로 알아주는 모터스포츠 팬으로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 레이스에 가명으로 출전한 경력도 있다. 이때 쓰는 가명은 모리조.(Morizo)[16] 예를 들어서 마크X 같은 경우는 토요페트 딜러에서 살 수 있다. 단, 프리우스 등 일부 차량은 모든 대리점에서 판매한다.[17] 프리모점, 베르노점, 클리오점.[18] IZOA의 경우,중국 수출명이다.[19] 크라운 컴포트의 가격이 150~180만 엔 선이었는데 새로 출시 예정인 택시 전용 모델 가격이 300만 엔으로 책정되었다. 새로운 택시 모델에 휠체어 탑승 보조기능이 추가되어 일본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구입에 필요한 금액은 토요타 크라운 컴포트와 비슷해진다.[20] 다만 이것은 얼토당토 않은 억지인 것이, 임진왜란과 상관없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인들에게 있어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전국 3영걸로 존경받는 인물일 뿐이고, 무엇보다도 그저 역사적 인물에 불과하다.[21] 당시 일본에서 유명한 사회적 논란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미라이 공업의 사장이 한국 매체 앞에서 대놓고 언급하기도 했다.[22]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데, 실제 경영학 수업에서도 천재지변 및 돌발사태 등으로 인한 JIT 방식의 실패, 그리고 무조건적인 원가절감에 대한 맹신 풍조에 비판 의견이 상당히 많다. 실제로 동일본 대지진 당시 그 JIT전략 때문에 토요타가 상당한 생산차질을 빚었다. 생각해보라. 수많은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를 만드는 데 있어서 특정부품 하나를 납품가능한 하청업체가 모두 천재지변으로 스톱된다면 재고부품이 없는 상황에서 토요타의 생산라인 전체가 올스톱 되버리는 것이다. 그런 문제 때문에 경영학에서는 재고를 줄이는 것을 중요시하면서도 적정재고 유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최근의 경영학은 동일본대지진 당시 토요타의 상황과 같은 돌발적 리스크에서 조직을 어떻게 더 빨리 예전의 상태로 회복시킬 것인가 하는 부분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23] '옹호'도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과 일본의 경영학계가 주류다. 해외에서도 JIT시스템을 배우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 수준이고 위에서 언급한 가격 후려치기, 하청업체에 비용 떠넘기기 등으로 특히 '경제학계'에서는 곧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24] 일명 빅3라 불리는 제너럴 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25] 토요타 브랜드로 등록된 GT3 차량은 없다.[26] 그룹 차원에서는 스바루가 들어가긴 했다.[27] 진짜 공도 레이싱을 조장하는 것을 극혐하여 서킷 레이싱에만 라이선스를 주로 제공하는 회사는 혼다이다. 혼다는 플레이어들도 이해는 하는 게, 혼다가 폭주 사건에 연루된 바 있기 때문.[28] 사실 이러한 버전의 광고는 현대자동차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미국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사람들에게 홍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토요타의 미주 한인어 광고는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대한민국의 불매운동의 영향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비공개로 전환된 경우가 많다.[29] 2017년 현재 토요타가 가지고 있는 후지 스피드웨이 주식회사의 지분율은 93.4%.[30] 미쿠 리버리는 BMW, 포르쉐에 사용된 적이 있고, 그 때를 거친 뒤 메르세데스-AMG에 정착되었다.[31] 전용 자쿠II의 컬러링과 데칼이 오리진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32] 일본 사회인야구 대회 가운데 가장 높은 위상을 가진 대회이다.[33] 이스라엘은 대신 르노같은 유럽 브랜드가 대세다.[34] 폴 포지션마저 3번 따낸게 전부다. 컨스트럭터 챔피언쉽 최고 성적은 4등.[35] 대신 LFA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는 잘 얻어 먹었다고 하며, 또한 당시 토요타 F1 팀이 사용하던 곳은 이후 현재 토요타 가주 레이싱의 지휘소가 되어 WEC나스카를 비롯하여 토요타가 나가는 각종 국제적인 모터스포츠를 지휘하고 있다.[36] 정확히는 피트월의 판단 미스로 비가 오는데도 드라이 타이어를 그대로 끼는 무리수를 강행했었다.[37] 만약 그때 토요타가 맛이 가지 않았다면 그해 F1 월드 챔피언 우승은 펠리페 마싸가 차지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