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관련 기록
1. 개요
6.25 전쟁과 관련된 기록들을 모은 문서다.
2. 6.25 전쟁 참전국 및 지원국
'''6.25 전쟁은 역대 전쟁 중 가장 많은 국가가 단 하나의 국가를 위해 지원한 전쟁이다.'''
다만 이후 공산화해 관계가 틀어진 국가들도 있었는데, 일단 쿠바의 경우 공산주의 혁명으로 정권이 바뀐 뒤 대한민국을 적으로 간주했고, 월남 역시 북베트남에 의해 공산통일당해 사라졌고, 북배트남과의 관계는 90년대까지 냉랭했었다. 에티오피아 역시 공산 혁명이 일어나 황제가 살해당하고 파병부대원들도 핍박당했지만 정권이 무너진 지금은 관계를 회복했다.
부산광역시에 있는 UN기념공원에 2,300명의 각국 UN군 전사자가 모셔져 있다.
2012년 5월에 6.25 전쟁 당시 참전국 명단이 새로이 공개되었는데 정확히는 '''63개국'''으로 밝혀졌으며, 기존 참전국과 의료지원국을 제외하고 물자지원 및 물자지원 의사 및 표명 등을 밝혔던 국가가 추가로 공개되었다.
2.1. 전투 및 병력 파병국
터키는 타흐신 야즈즈 소장의 지휘하에 미국과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도 터키는 한국에게서 혈맹국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호주가 UN군의 일원으로 최초로 참전한 전쟁이 6.25 전쟁이다.
필리핀 제3공화국은 미국, 영국에 이어 세번째로 상륙하였으며, 필리핀 前대통령 피델 라모스는 6.25 전쟁 참전용사이다.
태국은 한국 전쟁에 육, 해, 공군을 모두 파병한 8개국 중 하나이다.
네덜란드는 과거 식민지였던 남아메리카 수리남(1975년 독립) 등 속령지역 용사들도 동원하여 참전했다.
콜롬비아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전투 병력을 파병한 국가이다.
그리스 왕국은 한국과 같이 공산주의에 위협을 받았고 미국의 도움으로 이 상황을 벗어났다. 그 후 6.25 전쟁에 기꺼이 군대를 파병했다.
뉴질랜드는 마오리족까지 참전했다.
에티오피아 제국은 하일레 셀라시에 1세 황제가 특별히 자신의 친위대를 내줘서 파병했다. 단 그 당시 에티오피아에 제대로 된 상비군이 친위대 밖에 없었다고 한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벨기에-룩셈부르크 연합으로 파병되었다. 룩셈부르크는 80명 남짓한 소규모 병력을 파견했지만 이는 룩셈부르크군 자체가 1000명 내외의 소규모 군대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병력이다. 또한 병력 대비 사상자의 비율은 전체 유엔군 중 가장 높았다.
프랑스군 중에서 랄프 몽클라르 중장은 이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자신의 계급을 '''스스로 중령으로 강등시키고''' 참전했다. 하지만 미군으로부터 그대로 중장 대우를 받았다.
남아프리카 연방은 아프리카의 잊혀져버린 6.25 참전국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과 국내 매체들도 에티오피아만을 아프리카 유일의 6.25 전쟁 참전국으로 기억한다. 남아공이 에티오피아와 달리 6.25 참전국에서 빨리 잊혀진 것은 1950년대 당시 영연방 국가였고, 다른 아프리카의 국가들과 다르게 소수의 네덜란드, 영국계 백인 이주민들이 국민 대다수의 아프리카 흑인들을 배제, 억압하며 20세기 말까지 백인 통치를 자행하는 등 사실상 백인 국가 마냥 취급받던 나라였던 점이 크다. 대한민국 정부 역시 남아공이 참전국임에도 불구하고 이 아파르트헤이트에 항의하는 뜻에서 공식 수교를 단절했을 정도였다. 또한 전쟁 당시 군대 파병 인원의 규모도 적었고 공군 병력만 파견한 것도 주요 이유이다.
사실 대만도 3만명대의 병력을 파병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고 한다. 만약 이 계획이 실행되었다면 영국에 이어 3번째로 많은 군대를 파병한 나라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때 미국은 대만의 참전이 중공군의 개입[2] 으로 인한 3차 세계대전이 터질 가능성, 중공군이 대만에 빈집털이를 시전하는 것 등을 두려워해 대만을 뜯어말려 물자 지원에 그쳤다고 한다.#
2.2. 의료 파견 지원국
- 덴마크
- 스웨덴
- 이탈리아 - 당시 UN 비회원국 자격으로 지원했다. 다만 이는 2차대전 당시 추축국의 일원으로 패전 후 UN에 가입하지 못한 이탈리아의 전범국 이미지를 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 인도 자치령
2.3. 물자 지원국
한국전 당시 병력을 파견한 16개국, 의료지원을 파견한 5개국 외에 국내 사정으로 물자나 재정지원만을 한 39개국도 있다.
물자지원은 초기에는 CRIK(한국민간구제단)을 통해 레바논, 리히텐슈타인, 멕시코 등 초기 19개국이 지원하였으며 이후 UNKRA(유엔 한국 재건단)을 통해 중화민국, 과테말라 등 13개국이 지원, 기타 ERP(유엔긴급 구제계획)을 통해 서독 등 3개국이 지원하였다.
- 과테말라
- 도미니카 공화국
- 서독
- 라이베리아
- 레바논
- 리히텐슈타인
- 멕시코
- 모나코
- 미얀마(버마)
- 바티칸 교황청
- 베네수엘라
- 베트남국
- 사우디아라비아
- 스위스
- 시리아
- 아르헨티나
- 아이슬란드
- 아이티
- 에콰도르
- 엘살바도르
- 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 - 당시 추축국 측에 참전한걸로 간주되어 연합군의 군정 치하에 놓여 있었다. 군정 치하의 오스트리아는 꽤 많은 물자를 지원하였다.
- 온두라스
- 우루과이
- 이란 제국
- 이집트
- 인도네시아
- 연합군 점령하 일본[10] → 일본국[11] - 패전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한국을 도울 여력도 별로 없었기에 물자 지원국에 해당하기 어려워 보일 수 있으나, 실은 오히려 미국의 후방 군수공장역할이었기에 가장 중요한 유/무상 물자지원국이었다. 다른 나라들이 사실 없어도 별 상관없는 형식적인 지원 정도였다면, 일본은 6.25 전쟁에서 절대적으로 활약한 미군의 후방 군수공장 역할을 담당해서 미군이 필요한 물자를 그때그때 신속하게 조달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미국과 UN군 사령부의 요청에 따라 요시다 시게루 당시 내각 총리 대신의 결정으로 서해와 동해의 주요 항구들에서의 소해와 초계 작전을 위한 1200여명의 소해 병력과, 공산군이 점령한 적지에서의 정보 수집을 위한 후방 침투 병력을 포함해 추정 총 8천여명 내외의 인력이 6.25 전쟁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해 작전 도중에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나 한미일 삼국 모두 해당 사안에 대해 쉬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내용으로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주인공 우미(메르)의 아버지가 기뢰에 의해 전사한 것으로 나온다. 전후 일본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유사시 한국과 대만, 미국을 지원하기 위한 군수기지 역할을 맡으며 경제 개발을 위한 산업 지원과 자본 투자 그리고 미국의 정책 지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한국이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해 미국의 산업 및 관련 정책 원조를 받고 경제 개발을 위한 기초 자본을 확보한 것과 비슷한 모양새. 또, 일본의 민간인 남성 60명을 미군이 대동하고 그 중 18명이 전투에 참가했던 것이 미 국립 공문서의 미군 작성 일급 비밀 문서에서 밝혀졌다.#
- 자메이카
- 중화민국 - 물자 지원 외에도 전쟁 초기에 3개 사단을 파병하겠다고 하였으나 누가 봐도 본토 탈환을 목적로 한 의사가 강한데다가[12] 파병한 군대를 재정비하느니 그냥 한국군을 재정비하는게 더 낫다는 결론이 나와 무산되었다. 이때 트루먼 대통령은 정 참전하고 싶으면 하이난 섬을 탈환해서 제2 전선을 만들라라고 주문했는데 이는 사실상 완곡한 거절이나 마찬가지였다.
- 칠레
- 캄보디아
- 코스타리카
- 쿠바 - 이때는 피델 카스트로 집권 이전 시기라 국가가 아직 공산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 파나마
- 파라과이
- 파키스탄 자치령
- 페루
- 헝가리 인민 공화국 - 헝가리는 공산주의 국가인데도 지원을 해줬다. 당시 헝가리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 반소 감정이 격화된 상태였다. 이후 소련, 폴란드를 위시한 바르샤바 조약군이 진주하여 개박살을 내놓지만...
2.4. 물자지원 의사 표명 국가
2.5. 공산측 남침국 및 북한지원국
'''북한 내에서는 6.25 전쟁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북한을 도와준 것을 은폐해 버리는 한편 UN군의 참전으로 북한군이 크게 박살난 상태에서 다른 공산국가가 북한 대신 주체가 되어 수행한 모든 전투를 김일성의 업적으로 날조하고 있다.'''
- 소비에트 연방 (물자 지원, 비공식 파병) - 소련 공군에서 당시 최신예기였던 MiG-15 운용 부대를 파병했다. 소련은 미국을 자극해서 3차 대전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했지만 아예 손을 떼기는 찜찜했는지 파병했으나 확전을 우려한 까닭에 이 사실을 비밀로 하기 위해서 MiG-15에 중국 공군, 북한 공군 라운델을 그려 넣었고 초기에는 통신도 중국어로 하게 시켰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서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로 소통이 잘 될 리가 없다보니 조종사들의 반발로 러시아어 사용을 허가했다. 결국 미군의 무전 도청 담당자와 전투기 파일럿들에게 이 사실이 들통났지만, 미국 또한 괜히 문제를 제기했다가 3차 대전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서 모른체 했다. 지휘관은 무려 2차대전 당시 연합군 최다킬수(공인 62킬)을 자랑하는 이반 코제두프.
- 중화인민공화국 (파병)
-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의료 지원)
- 폴란드 인민 공화국 (의료 지원)
- 헝가리 인민 공화국 (의료 지원) - 6.25 전쟁 한국어 위키에서 UN측, 공산측 지원국 양쪽에 모두 포함되어있다.출처
- 독일 민주 공화국 (의료 지원)출처
-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의료 지원)
-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 (의료 지원)
- 몽골 인민 공화국 (물자 지원)
- 인도 자치령 - UN측 의료지원국이면서 공산군 물자도 지원했다.
3. 주요 전투
'''1950년'''
북한, 인민군이 38선 전역에 걸쳐 남침 : 6월 25일
미국, UN 안보리의 즉시소집을 요구 : 6월 25일
- 개성-문산-봉일천 전투 : 6월 25일 ~ 6월 26일
- 고랑포 전투 : 6월 25일 ~ 6월 26일
- 동두천 전투 : 6월 25일
- 포천 전투 : 6월 25일
- 춘천-홍천 전투 : 6월 25일 ~ 6월 30일
- 강릉 전투 : 6월 25일 ~ 6월 27일
- 옹진반도 전투 : 6월 25일 ~ 6월 26일
- 김포반도 전투 : 6월 25일 ~ 7월 3일
- 대한해협 해전 : 6월 25일 ~ 6월 26일
- 옥계 전투 : 6월 25일
- 의정부 전투 : 6월 25일 ~ 6월 26일
유엔, UN 안보리가 한국 원조 권고 결의안을 채택 : 6월 27일
- 내촌-태릉 전투 : 6월 26일 ~ 6월 28일
- 봉일천 전투 : 6월 26일 ~ 6월 27일
- 창동 전투 : 6월 27일 ~ 6월 28일
- 미아리 전투 : 6월 27일 ~ 6월 28일
- 행주도하 작전 : 6월 27일 ~ 6월 28일
- 한강 방어선 전투 : 6월 28일 ~ 7월 3일
- 오류동 전투 : 6월 29일 ~ 7월 3일
- 신사동-과천 전투 : 6월 28일 ~ 7월 3일
- 울진-평해 전투 : 6월 29일 ~ 7월 1일
- 주문진항 해전 : 7월 2일
- 시흥-안양-수원 전투 : 7월 3일 ~ 7월 4일
- 무극리 전투 : 7월 4일 ~ 7월 10일
- 음성 전투 : 7월 4일 ~ 7월 10일
- 오산 전투 : 7월 5일
- 동락리 전투 : 7월 5일 ~ 7월 10일
- 평택-안성 전투 : 7월 5일 ~ 7월 6일
- 진천 전투 : 7월 6일 ~ 7월 10일
- 충주-수안보 전투 : 7월 7일 ~ 7월 9일
- 천안 전투 : 7월 7일 ~ 7월 9일
- 단양 전투 : 7월 8일 ~ 7월 12일
- 전의 전투 : 7월 9일 ~ 7월 11일
- 구암산 전투 : 7월 10일 ~ 7월 15일
- 포항 상륙 작전 : 7월 10일 ~ 7월 19일
- 공주 전투 : 7월 13일 ~ 7월 16일
- 대평리-공주 전투 : 7월 13일 ~ 7월 16일
- 이화령-문경 전투 : 7월 13일 ~ 7월 17일
- 점촌 전투 : 7월 13일 ~ 7월 17일
- 청주 전투 : 7월 14일 ~ 7월 16일
- 장항-군산-이리 전투 : 7월 16일 ~ 7월 19일
- 화령장 전투 : 7월 17일 ~ 7월 25일
- 영강 전투 : 7월 17일 ~ 7월 30일
- 원산 정류소 폭격 작전 : 7월 18일
- 대전 전투 : 7월 19일 ~ 7월 20일
- 정읍-장성-광주 전투 : 7월 20일 ~ 7월 23일
- 전주-임실-남원 전투 : 7월 20일 ~ 7월 24일
- 영덕-포항 전투 : 7월 20일 ~ 7월 22일
- 영덕-강구 전투 : 7월 22일 ~ 8월 9일
- 거창 전투 : 7월 24일 ~ 7월 27일
- 하동 전투 : 7월 25일 ~ 7월 31일
- 진주 전투 : 7월 25일 ~ 7월 31일
- 함창 전투 : 7월 26일 ~ 7월 29일
- 함창-안의 전투 : 7월 26일 ~ 7월 28일
- 청송 전투 : 7월 28일 ~ 8월 5일
- 김천 전투 : 7월 29일 ~ 7월 31일
- 안동 전투 : 7월 30일 ~ 8월 1일
- 낙동강 방어선 전투
- 부산시 부근 전투 : 7월 말
- 합천-권빈리 전투 : 7월 31일 ~ 8월 3일
- 안동·의성전투 : 8월 1일 ~ 8월 13일
- 진동리 전투 : 8월 3일 ~ 8월 4일
- 낙정-해평 전투 : 8월 3일 ~ 8월 12일
- 다부동 전투 : 8월 3일 ~ 9월 22일
- 마산 전투 : 8월 3일 ~ 8월 13일
- 킨 특수임무부대 반격 작전 : 8월 6일 ~ 8월 12일
- 창녕-영산 전투 : 8월 6일 ~ 8월 18일
- 안강-기계 전투 : 8월 9일 ~ 8월 18일
- 장사동-독석동 철수 작전 : 8월 10일 ~ 8월 17일
- 포항 전투 : 8월 11일
- 보현산 전투 : 8월 13일 ~ 9월 4일
- 왜관 융단폭격작전 : 8월 14일 ~ 8월 17일
- 군의-의흥 전투 : 8월 13일 ~ 8월 29일
- 수암산-유학산 전투 : 8월 13일 ~ 8월 30일
- 포남 328고지 전투 : 8월 14일 ~ 8월 30일
- 포항 탈환 전투 : 8월 15일 ~ 8월 30일
- 덕적도-영흥도 확보 작전 : 8월 15일 ~ 8월 24일
- 통영 전투 : 8월 17일 ~ 8월 19일
- 통영 원문고개 방어 전투 : 8월 19일 ~ 9월 11일
- 비학산 전투 : 8월 18일 ~ 8월 25일
- 경주 전투 : 8월 27일 ~ 9월 15일
- 신녕-조림산 전투 : 8월 30일 ~ 9월 4일
- 가산 전투 : 8월 31일 ~ 9월 4일
- 창녕 전투 : 8월 31일 ~ 9월 9일
- 마산 서측방 전투 : 8월 31일 ~ 9월 6일
- 영산 전투 : 9월 1일 ~ 9월 6일
- 영천·신녕전투 : 9월 2일 ~ 9월 13일
- 호명리 전투 : 9월 5일 ~ 9월 9일
- 형산강 방어 전투 : 9월 5일 ~ 9월 13일
- 곤제봉 전투 : 9월 6일 ~ 9월 13일
- 홍계동 전투 : 9월 6일 ~ 9월 13일
- 장사 상륙작전 : 9월 14일
- 포항 반격 전투 : 9월 14일 ~ 9월 22일
- 안강-기계 반격전 : 9월 13일[13] ~ 9월 23일
- 인천 상륙작전 : 9월 15일 ~ 9월 16일
- 신녕-조림산 반격전 : 9월 15일 ~ 9월 22일
- 가산-팔공산-청주 진격 전투 : 9월 16일 ~ 10월 5일
- 경인가도 진격 전투 : 9월 16일 ~ 9월 17일
- 포항-흥해 전투 : 9월 17일 ~ 9월 22일
- 안강-38선 진격 전투 : 9월 16일 ~ 9월 30일
- 청송-논산 진격 전투 : 9월 16일 ~ 9월 29일
- 마산-군산 진격 전투 : 9월 16일 ~ 9월 30일
- 왜관 탈환 전투 : 9월 18일 ~ 9월 20일
- 왜관-대전 진격 전투 : 9월 18일 ~ 9월 28일
- 구산동-의성 진격 전투 : 9월 20일 ~ 9월 24일
- 경주-서울 진격 전투 : 9월 21일 ~ 10월 7일
- 울진-38선 진격 전투 : 9월 21일 ~ 9월 29일
- 9.28 서울 수복 : 9월 22일 ~ 9월 28일
- 282고지 전투
- 신리-김포 전투 : 9월 18일 ~ 9월 21일
- 영등포 전투 : 9월 19일 ~ 9월 22일
- 행주 한강 도하 작전 : 9월 19일 ~ 9월 21일
- 연희고지 전투 : 9월 20일 ~ 9월 24일
- 104고지 전투 : 9월 21일 ~ 9월 22일
- 서빙고 도하 작전 : 9월 25일 ~ 9월 26일
- 서울 시가 전투 : 9월 25일 ~ 9월 28일
- 안동-영주-단양 진격 전투 : 9월 22일 ~ 9월 29일
- 청하-울진 진격 전투 : 9월 22일 ~ 9월 27일
- 다부동-개성 진격 전투 : 9월 23일 ~ 10월 17일
- 북한강 전투 : 9월 29일 ~ 10월 7일
- 의정부 탈환 전투 : 9월 29일 ~ 10월 3일
- 양평-연천 진격 전투 : 9월 30일 ~ 10월 10일
- 원주-횡성-춘천 진격 전투 : 9월 30일 ~ 10월 6일
- 38선 돌파 작전 : 10월 1일 ~ 10월 15일
- 양양-간성 진격 전투 : 10월 1일 ~ 10월 3일
- 양구-신고산-안변 진격 전투 : 10월 1일 ~ 10월 9일
- 원산 상륙 작전 : 10월 2일 ~ 10월 25일
- 고성-고저 진격 전투 : 10월 4일 ~ 10월 7일
- 원산 전투 : 10월 8일 ~ 10월 15일
- 금천-사리원-황주 진격 전투: 10월 9일 ~ 10월 17일
- 철원-곡산 진격 전투 : 10월 9일 ~ 10월 18일
- 영흥만 소해작전 : 10월 10일 ~ 10월 25일
- 구화-시변-율리 진격 전투 : 10월 11일 ~ 10월 17일
- 금천 전투 : 10월 12일 ~ 10월 14일
- 신고산-원산-양덕 진격 전투 : 10월 14일 ~ 10월 19일
- 영흥-함흥-성진 진격 전투 : 10월 16일 ~ 10월 30일
- 원산 평정 전투 : 10월 16일 ~ 10월 26일
- 원산-장진호 진격 전투 : 10월 16일 ~ 11월 30일
- 평양 전투 : 10월 18일 ~ 10월 19일
- 목포 전투 : 10월 19일 ~ 11월 26일
- 숙천 및 순천 공수작전 : 10월 20일 ~ 10월 22일
- 성천-개천-희천 진격 전투 : 10월 20일 ~ 10월 22일
- 평양-영변-운산 진격 전투 : 10월 22일 ~ 10월 25일
- 초산 전투 : 10월 23일 ~ 10월 26일
- 덕천-구장동 진격 전투 : 10월 24일 ~ 10월 25일
- 온정리 전투 : 10월 25일 ~ 10월 28일
- 운산-영변 전투 : 10월 25일 ~ 11월 1일
- 함흥 전투 : 10월 27일 ~ 11월 5일
- 이원-혜산진 진격 전투 : 10월 27일 ~ 11월 22일
- 간성-고성 전투 : 10월 27일 ~ 11월 26일
- 태천-구성 진격 전투 : 10월 28일 ~ 11월 1일
- 곽산-정차동 진격 전투 : 10월 29일 ~ 11월 1일
- 길주-청진-부령 진격 전투 : 11월 1일 ~ 11월 30일
- 개천-비호산 전투 : 11월 1일 ~ 11월 6일
- 진남포항 소해 작전 : 11월 2일 ~ 11월 7일
- 제1차 청천강 전투 : 11월 3일 ~ 11월 5일
- 박천-태천-용산동 전투 : 11월 4일 ~ 11월 6일
- 마전리-동양리 전투 : 11월 10일 ~ 12월 2일
- 합수 전투 : 11월 17일 ~ 11월 26일
- 제1차 덕천 전투 : 11월 22일 ~ 11월 26일
중국, 중공군 제2차 공세 : 11월 25일 ~ 12월 15일
- 영원 전투 : 11월 25일 ~ 11월 27일
- 제2차 덕천 전투 : 11월 25일 ~ 11월 27일
- 제2차 청천강 전투 : 11월 24일 ~ 11월 30일
- 와원 전투 : 11월 27일 ~ 11월 30일
- 장진호 전투 : 11월 27일 ~ 12월 11일
- 무산-혜산진 전투 : 11월 27일 ~ 11월 30일
- 군우리 전투 : 11월 29일 ~ 12월 1일
- 평양-38선 철수 작전 : 12월 1일 ~ 12월 4일
- 혜산진, 길주-흥남 철수 작전 : 12월 1일 ~ 12월 6일
- 원산-함흥 전투 : 12월 3일 ~ 12월 15일
- 합수, 청진-흥남 철수 작전 : 12월 7일 ~ 12월 16일
- 흥남 철수 : 12월 15일 ~ 12월 25일
- 양양-서림 전투 : 12월 21일 ~ 12월 31일
- 홍천 전투 : 12월 21일 ~ 12월 31일
- 현리 전투 : 12월 24일 ~ 12월 31일
- 제2차 동두천 전투 : 12월 11일 ~ 1951년 1월 3일
- 서울 철수 전투 : 12월 31일 ~ 1951년 1월 4일
- 고양 전투 : 1월 2일 ~ 1월 3일
- 1.4 후퇴 : 1월 4일
- 황해도 피난민 구출 작전 : 1월 5일 ~ 1월 31일
- 원주 전투 : 1월 6일 ~ 1월 12일
- 적성리 전투 : 1월 12일 ~ 1월 15일
- 남대리 전투 : 1월 14일 ~ 1월 19일
- 영월 전투 : 1월 19일 ~ 1월 24일
- 수리산 전투 : 1월 23일 ~ 1월 31일
- 금양장리 전투 : 1월 25일 ~ 1월 27일
- 인천 기습 상륙 작전 : 1월 25일 ~ 1월 27일
- 이천 381고지 전투 : 1월 29일 ~ 1월 30일
- 모락산 전투 : 1월 30일 ~ 2월 4일
- 쌍터널 부근 전투 : 1월 31일 ~ 2월 2일
- 제2차 인천 상륙 작전 : 2월 1일 ~ 2월 10일
- 횡성 전투 : 2월 12일 ~ 2월 13일
- 지평리 전투 : 2월 13일 ~ 2월 15일
- 해군의 옹진 전투 : 2월 20일 ~ 2월 22일
한국, 국군과 UN군이 38선을 재회복 : 3월 25일
- 전략도서 확보 작전 : 4월 2일 ~ 5월 7일
중국, 중공군 제5차 공세 : 4월 22일 ~ 4월 30일
- 사창리 전투 : 4월 22일 ~ 4월 25일
- 장승천 전투 : 4월 22일 ~ 4월 23일
- 율통 전투 : 4월 22일 ~ 4월 23일
- 매봉·한석산 전투 4월 22일 ~ 5월 10일
- 금굴산 전투 : 4월 22일 ~ 4월 25일
- 설마리 전투 : 4월 23일 ~ 4월 25일
- 가평 전투 : 4월 23일 ~ 4월 25일
- 현리 전투 : 5월 16일 ~ 5월 22일
- 벙커고지 전투 : 5월 17일 ~ 5월 19일
- 용문산 전투 : 5월 17일 ~ 5월 21일
- 인제 전투 : 5월 30일 ~ 5월 31일
- 자일리 전투 : 5월 30일
- 도솔산 전투 : 6월 4일 ~ 6월 19일
쌍방, 휴전회담이 개성에서 시작 : 7월 10일
- 대우산 전투 : 7월 15일 ~ 7월 31일
- 송현리-송정동 전투 : 8월 18일 ~ 9월 18일
- 향로봉 전투 : 8월 18일 ~ 8월 27일
- 피의 능선 전투 : 8월 18일 ~ 9월 5일
- 스트랭글 작전 : 8월 18일 ~ 1952년 5월 30일
- 펀치볼 전투 : 8월 31일 ~ 9월 20일
- 가칠봉 전투 : 9월 4일 ~ 10월 14일
- 단장의 능선 전투 : 9월 13일 ~ 10월 13일
- 적근산 삼현 전투 : 9월 21일 ~ 9월 22일
- 백석산 전투 (1,2차) : 9월 24일 ~ 10월 1일
- 마량산 전투 : 10월 3일 ~ 10월 8일
- 연천 313고지 전투 : 10월 3일 ~ 10월 5일
- 학당리 전투 : 10월 11일 ~ 10월 13일
- 월비산 전투 : 10월 16일 ~ 10월 19일
쌍방, 군사분계선 설정 합의 : 10월 28일
- 949고지 전투 : 11월 17일 ~ 11월 18일
쌍방, 휴전회담에서 군사분계선이 최종 확정 : 12월 7일
쌍방, 포로명단 교환 : 12월 18일
-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1,2차) : 12월 25일 ~ 2월 13일
쌍방, 휴전협정이 가조인 : 6월 8일
- 김화 400고지 전투 : 6월 21일
- 수력발전소 폭격 작전 : 6월 23일 ~ 6월 27일
- 불모고지 전투 : 6월 26일 ~ 8월 1일
- 수도고지-지형능선 전투 (1~5차) : 7월 7일 ~ 10월 14일
- 154고지 전투 : 7월 8일 ~ 7월 9일
- 351고지 전투 : 7월 10일 ~ 11월 10일
- 평양대공습 작전 : 7월 11일 ~ 8월 29일
- 고양대 전투 : 9월 6일 ~ 12월 13일
- 854, 812고지 전투 : 9월 21일 ~ 1953년 6월 17일
- 피의 고지 및 독수리고지(748, 572고지) 전투 : 9월 28일 ~ 10월 2일
- 노리 고지 전투 : 9월 29일 ~ 9월 30일
- 백마고지 전투 : 10월 6일 ~ 10월 15일
- 화살머리고지 전투 (1차) : 10월 6일 ~ 10월 10일
-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3차) : 10월 13일 ~ 10월 14일
- 체로키 스트라이크 작전 : 10월 9일 ~ 1953년 7월 27일
- 저격능선 전투 : 10월 14일 ~ 11월 24일
- 삼각고지 전투 : 10월 21일 ~ 10월 25일
- 고왕산 전투 : 10월 23일
'''1953년'''
- 김화 잣골 전투 : 2월 26일 ~ 4월 21일
- 180고지 전투 : 3월 10일
- 올드 발디 전투 (5차전) : 3월 23일 ~ 3월 26일
- 네바다 전초 전투 : 3월 28일 ~ 3월 30일
- 폭찹힐 전투 (포크찹 고지전) : 4월 16일 ~ 7월 11일
- 나부리 전투 : 5월 2일
- 후크 고지 전투 : 5월 2일 ~ 5월 28일
- 저수지 폭격 작전 : 5월 13일 ~ 5월 29일
- 요크-엉클 고지 전투 : 5월 19일 ~ 5월 20일
- 351고지 전투 : 6월 2일 ~ 7월 18일
- M-1고지 전투 : 6월 10일 ~ 6월 23일
- 수도고지-지형능선 전투 (중공 6월 공세 방어전) : 6월 12일 ~ 6월 15일
- 화살머리고지 전투 (2차) : 6월 29일 ~ 7월 11일
- 중가산 전투 : 7월 8일 ~ 27일
- 베티 고지 전투 : 7월 15일 ~ 7월 16일
- 금성 전투 : 7월 13일 ~ 7월 19일
- 425고지-406고지 전투 : 7월 20일 ~ 24일
4. 주요 작전
5. 주요 사건/사고
전쟁 중 일어난 주요 사건/사고들.
- 신천·재령군 봉기
- 한강 인도교 폭파
- 거창 양민 학살사건
-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 보도연맹 학살사건
- 국민방위군 사건
- 서울대병원 학살사건
- 서천등기소 학살 사건
- 대전형무소 학살 사건
- 전주형무소 학살 사건
- 303고지 학살 사건
- 고성군 학살 사건
- 고산군 천주교도 학살 사건
- 해주시 학살 사건
- 수안군 학살 사건
- 영흥군 학살 사건
- 함흥시 학살 사건
- 고원군 학살 사건
- 원산시 학살 사건
- 평양시 학살 사건
- 갑산군 학살 사건
- 반공포로 석방 사건
- 납북
- 한국전쟁 미귀환 포로 문제
6. 휴전 이후의 주요 사건/사고/전투
- 북한/대남 도발
- 창랑호 납북 사건
-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
- 1.21사태
-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 EC-121 격추 사건
-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
-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 휴전선 남침용 땅굴 발견 사건
- 헨더슨 소령 사건
-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 최은희·신상옥 납치사건
-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
-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 화성 해안초소 K-2 소총 사취 사건
- 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 사건
- 제1연평해전
- 북한의 1차 핵실험
- 제2연평해전
-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 북한의 2차 핵실험
- 대청해전
- 천안함 피격사건
- 연평도 포격 사태
- 북한의 3차 핵실험
-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
- 서부전선 포격 사건
- 북한의 4차 핵실험
- 북한의 5차 핵실험
- 북한의 6차 핵실험
-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사건
7. 관련 인물
7.1. 국군 및 UN군
7.1.1. 대한민국
- 이승만
- 김석원
- 김신
- 김영환
- 김정렬
- 김종오
- 김홍일
- 박정희
- 백선엽
- 백인엽
- 손원일
- 송요찬
- 신성모
- 신현준
- 심일 - 중위계급으로 제6보병사단 대전차소대 소대장으로 참전. 춘천-홍천 전투당시 특공조 5명과 함께 자주포를 파괴하는 전과를 올려 대위로 특진하였다. 이후 충북 음성지구 전투, 영천전투에서도 활약을 했으며, 이후 제7보병사단 수색중대장으로 임무 수행중 북한군의 흉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후 소령으로 추서됨과 동시에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로 강원도 원주시 현충탑에는 심일 소령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고, 7사단 수색대대에도 이와 비슷한 기념물이 있다.[14]국방부 심일 소령 공적확인 최종 결과 보고서[15]
- 유재흥
- 이성가
- 이응준
- 이종찬
- 이한림
- 이형근
- 임부택
- 장도영
- 채명신
- 채병덕
- 최석
- 한신
7.1.2. 미국
- 해리 S. 트루먼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더글러스 맥아더
- 매튜 B. 리지웨이
- 알레이 버크
- 월튼 워커
- 샘 워커 - 월튼 워커 중장의 아들
- 에드워드 알몬드 - 미 10군단 군단장
- 올리버 P. 스미스
- 에드워드 L. 로우니
- 마크 클라크
- 맥스웰 테일러
- 제임스 밴 플리트
- 김영옥 - 한국계 미국인이며 한국전쟁 때 처음으로 한반도 땅을 밟았다.
- 딘 헤스
7.1.3. 터키
7.1.4. 프랑스 제4공화국
-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 - 자료에 따라서 랄프 몽클라르 또는 몽클라르라는 가명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그가 2차대전 및 한국전쟁에서 이 가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7.2. 공산군
7.2.1. 북한
- 김일성(전범)
- 박헌영(전범)
- 강건 - 개전 당시 북한군 총참모장으로 전쟁 중 전사하였다.
- 김광협
- 김무정
- 김책
- 남일
- 리승엽
- 리학구
- 방호산 - 한국전쟁에서 최고의 기동전을 구사한 팔로군 출신의 북한군 지휘관이다. 후퇴 당시에도 부대편제를 유지하면서 북으로 귀환하여 드물게 이중영웅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전후엔 연안파에다 반김일성 성향 때문에 영웅칭호와 군적을 모두 박탈당하고 숙청당했다.
- 정봉욱 - 다부동 전투에서 국군 1사단에 투항. 이후 한국군에서 장성으로 활동하며 육군훈련소장 및 육군3사관학교장을 역임하였다.
- 최용건
- 최현
7.2.2. 중국
7.2.3. 소련
8. 사용 장비
6.25 전쟁/사용 장비 문서로.
[1] 다만 저 사진은 잘못된 점이 많다. 이란 국기에 있는 문장이 파괴되어 있고, 저 당시 베트남은 월남(베트남) 임시 중앙 정부가 베트남국이 된 후였다. 또한 헝가리, 이집트, 미얀마, 시리아, 에티오피아, 남아공의 국기가 당시의 국기가 아닌 현재의 국기로 되어 있다.[2] 사실 러시아와 중공이 짜고 전쟁에서 북괴군이 밀려 북괴의 패색이 짙어진다면 중공군을 대량 투입할 계획을 미리 만들어놓고 있었기에 의미없는 걱정이긴 했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렇게 되었고.[3] 대만이 아니라 중화민국이라고 한 이유는 당시에는 아직 상임이사국 지위를 획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4] 당시 후안 페론 정권이었다.[5] 쿠바 혁명으로 바티스타 정권이 물러나기 전이었다.[6] 수카르노 집권기 시절이다.[7] ~1952[8] 1952~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9] 우리가 알고 있는 대지진이 일어난 그 아이티 맞다![10] ~1952[11] 1952~[12] 이게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 전쟁 초기에 진먼다오 연안을 대거 폭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13] 다만 인천 상륙작전 이후에야 공세가 본격화되어서 사람에 따라 15일로 치기도 한다.[14] 하지만 심일 소위의 전공이 조작이라는 주장이 최근 나왔다. 참조바람.[15] 그러나 이 보고서는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의 공청회 진행이 심일이 전투에 없었다는 증언과 같은 특정 증언의 삭제 등 불공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서 비판을 받는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