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년기
[image]
|
'''배우'''
| '''곽정욱'''
|
'''등장 에피소드'''
| '''1 ~ 8화'''
|
'''극중 등장 시기'''
| '''1924년(7세) ~ 1930년(13세)'''
|
독립군 사령관입니다.[1]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아버지 김좌진의 질문에 대한 대답.
[2] 합성물에서는 래퍼라든지, 도둑, 갓수, 로또 당첨확률 분석가등이 대신 들어간다. 어느 영상에서는 '''국가 유공자 연금수령자'''(...)라는 패륜을 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어느 유튜버가 만든 관짝춤 야인시대 버전에서는 친일파(...)마저 나왔다. -
나는 왕초라는 소린 싫어. 이왕이면 대장이라는 소리가 좋아.[3]
왕초를 수표교에서 쫓아내고 대장이 되고 난 후 수표교 거지 아이들 앞에서 한 말.
유년기
배우는
곽정욱. 8화까지 등장한다.
다른 김두한 창작물과 마찬가지로 김두한을 일본식 독음으로 읽은 '''긴또깡'''이라는 이명이 있다.
독립군 장군인
김좌진의 아들로 태어난 김두한은 독립군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어릴 때 어머니가
종로경찰서의
미와 경부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는 일을 겪게 되었다. 그 일로 인해 김두한은 미와를 크게 증오하게 되었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와에게 언젠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죽일 거라고 엄포를 놓았으며 이후 오랜 기간 동안 미와 경부와 대립을 하게 된다.
감옥에서 나온 후 김두한은 외할머니, 원노인과 함께 만주로 가서 아버지인
김좌진을 만나게 되었고,
[4] 김좌진 위인전에서는 어머니와 함께 가서 김좌진을 만난 걸로 나온다.
아버지로부터 정표로 회중시계를 선물 받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외할머니를 잃고
[5] 기차에서 숨을 거두었다. 일본경찰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외할머니의 시신을 두고 나온다.
경찰서에서 출소한 어머니마저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김두한은 외삼촌
[6] 밑으로 들어가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외삼촌이란 작자는 노름에 중독된데다가 김두한을 머슴처럼 부리면서 학대를 하는 등 속된 말로
개차반이었기 때문에 김두한은 매우 암울한 환경에서 자라야 했다. 그러다 외삼촌이 김두한에게 아버지로부터 받은 회중시계를 빼앗아 고리대금업자인 가네야마에게 팔아 넘겨버렸고, 급기야 외삼촌은 김두한까지 가네야마에게 팔아먹는다. 가네야마에게 소작을 붙이려다 퇴짜맞은 주민이 이를 알려주자 김두한은 집을 나와 몰래 석유를 챙긴 다음 고리대금업자 가네야마의 집으로 쳐들어가 시계를 되찾고 마을 사람들의 빚 장부까지 가로챈다. 그것도 모자라 가네야마의 집에다 아예 불까지 질러버렸다.
이 일로 일본제국 경찰에 신고당하면서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고
일본제국 경찰에게 요시찰 인물로 찍혀버린다. 그렇게 도망 다니다가 우연히 곤경에 처한 두한을 발견한 유태권과
나석주와 인연을 맺게되고 두한은 간신히 일본제국 경찰들을 따돌리게 된다. 그리고 이 때 마을 사람들의 빚 장부를 불태워 버렸다. 이후 김두한은 나석주, 유태권에게 경성에 아는 아저씨(원노인)를 찾으러 가야 한다고 말했고 그들의 도움으로 함께 기차를 타고 경성까지 피신했다.
그러나 경성에 도착한 이후
경성역에서 나석주, 유태권과 헤어지게 되고
[7] 나석주와 유태권은 마침 원노인에게 가는 길이었으나 김두한이 바로 그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것은 몰랐고 김두한도 그들에게 이 사실과 찾는 아저씨가 원노인이라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엇갈려버린 것이다.
또 다시 미와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한창 도망 다니다가 우연히 종로 길바닥에서 수표교 거지패인
개코,
정진영과 만나 친구가 되고
수표교에서
거지로 지내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김두한은 거지 패의
왕초가 정진영의 모친에게 모욕
[8] 참고로 정진영의 모친은 장님이다. 그런데 왕초는 정진영의 모친이 똑같은 거지이면서 아무 일도 안 하고 동냥도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진영의 모친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고, 어느 날부터는 왕초가 정진영 모친한테까지 동냥을 시키려 했다. 심지어 부하에게 장님 흉내를 내보라는 식으로 정진영의 모친을 비꼬는 식으로 조롱하기까지 했다.
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왕초에게 결투 신청을 한다.
물론 김두한은 아무 생각 없이 왕초에게 덤벼든 것은 아니며 이전에
왕초를 붙잡으며 말리는 중 생각보다 왕초의 힘이 강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왕초와 대결을 해볼 만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지만 결국 혼자의 힘으로 수표교의
폭군 왕초를 쓰러뜨렸고,
[9] 김두한의 주먹과 날아차기를 얻어맞고 한 번 뒤로 넘어갔다가 몽둥이를 집어들고 다시 덤볐는데, 발차기 한 방에 그대로 GG.
그를 수표교에서 내쫓는다.
그러나 두한이 수표교의 새 대장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김두한을 다시 찾아낸 최동열 기자와 원노인
[10] 실존인물 원노인은 사동옥이라는 설렁탕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자기가 번 돈을 설렁탕집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제외하고는 몰래 독립운동의 군자금으로 대주고 있었다. 김두한을 키울 때도 '''어떻게든 잘 먹이려고''' 애썼으며 매일 새벽 4시에 김두한을 깨워서 설렁탕을 먹이고 다시 잠들게 했다. 이 설렁탕은 그냥 국물만 있는 설렁탕이 아니라 거의 고기로 빽빽하게 찬 그 날 가장 먼저 만든 설렁탕이었다. 이후 원노인이 수표교 거지들(정확히는 정진영의 모친)에게도 설렁탕을 제공했다.
의 도움으로 거지 생활을 벗어나 원노인의 설렁탕집에서 생활하게 되며
[11] 거지 생활을 하던 김두한을 원노인이 찾아내어 친할머니와 큰어머니에게 데려가 인사를 시켰다. 친할머니와 큰어머니는 처음엔 김두한과 함께 지내기로 했지만, 이들도 넉넉하지 못한 형편인 데다가 일본제국 경찰들의 끈질긴 감시까지 받고 있었기에 원노인은 당분간 본인이 김두한을 키우겠다고 자청했다.
수표교는 개코와 정진영이 김두한을 대신해 공동으로 대장이 되어 이끌어나간다. 그리고 사동옥에서 유태권과 재회하게 된다.
[12] 나석주와는 거지 시절에 종로거리에서 먼저 재회하긴 했지만, 하필 나석주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한 의거 후 일본제국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총탄에 맞아 거의 죽기 일보직전 상태로 들것에 실려가고 있었다.
이후 김두한을 걱정했던 큰어머니가 김좌진 장군의 유일한 핏줄인 두한이를 남의 손에 맡겨 놓은 게 마음에 걸린다며 김두한을 집으로 다시 데려오려 하지만 친할머니는 사정상 지금은 두한이를 키워줄 능력이 안 되며 두한이라면 스스로 잘 해낼 것이라며 거절한다.
얼마 뒤 김두한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지만 원노인은 김두한을 학교로 보내지 않았다. 이유는 당시 조선 땅에 있는 모든 학교는 일본식 교육을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두한이 일본식 교육을 받는 것을 원치 않았던 원노인이 일부러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것. 그 대신 김두한이 좀 더 성장하면 만주로 보내 독립군 사관학교를 다니게 하려 했다.
그렇게 지내던 중 어느 날 밤, 김두한은 잠이 오지 않아서 무심코 방문을 열어보던 중에 유태권이 마당에서 '''
공중부양(...)'''을 하면서 수련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다음 날에도 김두한은 나무 기둥을 격파 중인 유태권을 엿보고 있다가 유태권에게 들켰는데 유태권은 어제부터 두한이가 자신을 훔쳐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때 김두한은 유태권에게 무술을 배우고 싶다고 밝히며 유태권이 왜 무술을 배우고 싶어 하냐고 묻자, "혼내줄 사람들이 많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일본제국 경찰들로부터 목숨을 잃은
나석주 아저씨의 복수를 꼭 해주고 싶은 데다 무엇보다 독립군이 되려면 싸움을 잘 해야 한다."라고 대답한다.
[13] 유태권이 나석주와 함께 김두한을 구해준 뒤 점심으로 국밥을 먹던 중 김두한을 쫓는 일본제국 경찰들이 나타났는데 이때 유태권은 나석주와 김두한을 먼저 피신시키고 혼자서 총을 든 일본제국 경찰패들과 대치했을 정도로 전투력이 꽤 높다.
이렇게 김두한은 유태권의 제자가 되어 그에게 무술을 배우게 된다.
[14] 허나 유태권은 실존하지 않는 가상인물이다. 실제 김두한의 스승은 중국인이자 쿵후의 고수였다고 한다. 김두한이 그 고수에게 패하고 쿵후를 익히게 되었고 본래 타고난 김두한이 쿵후까지 배우면서 엄청난 실력자가 되었다고 한다. 유태권은 아마 이 중국인 고수를 기반으로 재구성해 만든 인물일 것이다.
그렇게 김두한은 성실하게 수련
[15] 원노인이 김두한이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을 한다며 김두한을 매우 기특해했다.
을 하면서 주먹 실력이 일취월장했고 길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일본 학생들 여러 명에게 조선 학생 1명이 몰매를 당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자 그 일본 학생 패거리들을 혼자의 힘으로 제압하면서 조선 학생을 구해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유태권은 김두한에게 어느 정도 무술을 전수해준 뒤
독립운동을 위해 갑작스레 만주로 떠나버렸고 김두한은 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악을 쓰며 모래를 담은 샌드백
[16] 지금은 관리상의 문제로 샌드백 속을 밧줄이나 솜뭉치 등으로 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샌드백을 진짜 모래로 만들었다.
줄이 끊어지고 터질 때까지 두들겨 팬다. 그러다 김두한 옆에 터진 샌드백이 떨어지면서 청년기의 김두한인
안재모가 첫 등장하고 유년기는 종결한다.
2. 청년기
[image]
|
'''배우'''
| '''안재모'''
|
'''등장 에피소드'''
| '''8화 선행 출연[17] / 9~50화'''
|
'''극중 등장 시기'''
| '''1933년(16세) ~ 1945년(28세)'''
|
'''난 종로의 김두한이다.'''
이후에도 김두한은 혼자 무술 수련을 하거나 사동옥에서
원노인과 종업원 박 군을 도우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몇 년 후, 만주에서 넘어온 유태권의 측근인 최석규라는 자가
미와 경부 일당들에게 덜미를 밟히는 바람에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었고 이 자가
[18] 야인시대 내의 주된 약속 장소인 중국 음식점에서 발각된다.
고문을 당한 끝에 원노인이 자신이 운영하는 설렁탕집인 사동옥의 수익으로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고백해버리는 바람에 혐의가 드러나면서 종로경찰서에서 원노인과 김두한을 체포하기위해 사동옥을 급습한다. 일본제국 경찰들이 원노인을 끌고가려하자, 김두한은 참지 못하고 무력으로 일본제국 경찰들을 떡실신 시켰지만,
권총을 든 오무라 형사에게 결국 제압되고 만다. 이후 김두한과 원노인은
종로경찰서로 끌려가 미와에게 모진 고문을 당한 후 김두한은 철창에 감금되었고 원노인은 고문의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여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자신을 세상 밖으로 낳아준 친어머니,
일본제국 경찰한테 쫓기던 김두한을 구해준
나석주 아저씨, 친할아버지나 다름없었던 원노인까지 모두 고문과 총격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으니 김두한은 미와를 향한 증오심이 더더욱 깊어져만 간다.
이후 김두한은 며칠동안 종로경찰서에서 철창 신세를 지다가
소매치기를 하다 체포되어 끌려온
번개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이후 번개는 같이 수감된 자들에게 주먹패라고 자칭하며 온갖 허풍을 떨다가 말 없이 조용히 있는 김두한에게 슬그머니 다가가서 시비를 걸며 배짱을 부리다, 되려 김두한에게 급소를 맞고
몇 분간 기절해버린다. 그 이후 두한이 풀려나게되면서 번개는 두한에게 바깥에서 만나면 꼭 형님으로 모시겠다며 깍뜻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원노인이 죽은 후 그의 소유였던 사동옥과 가옥을 모두
총독부에게 가압류당하면서 김두한은 거처를 잃었고 할 수 없이 수표교 거지촌으로 돌아와
정진영과
개코에게 잠시 얹혀 지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김두한은 어떻게든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가려고 했으며 김두한의 친할머니와 큰어머니 오씨는 그런 두한을 위해 만주로 갈 때 보탬이 되라고 아껴서 모은 돈을 두한에게 쥐어줬다. 친구 정진영은 김두한의 만주행을 돕고자 종로 2정목
[19]의 주먹패 오야붕인 쌍칼의 부하이자 밀선에 대해 잘 알고 있던
털보를 김두한과 만나게 해주었고 김두한은 만주행 밀선을 부탁하는 차원에서 털보에게 자신의 친할머니와 큰어머니에게 받은 돈 100원을 전부 넘겨주었다. 근데, 이미 만주에 갈 수 없는 것이 9화 초기에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일제가 조선 사람들을 더더욱 압박하고 있어 연락 자체도 힘들다고 하면서 만류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밀선을 알아봐준다던 털보는 감감무소식이었고 정진영은 불안한 느낌에
종로회관으로 털보를 찾아가지만, 털보는 밀선을 알아봐주긴 커녕 그 돈으로 종로회관에서 김무옥 외에 2정목 패거리들과 같이 술을 마시며 놀고 있었다. 이에 정진영은 당장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털보는 다 썼다며 배짱을 부렸고, 격분한 정진영은 털보에게 주먹 한 방을 먹이지만 되려 털보를 비롯해
삼수,
병수#s-2 등의 패거리들에게 역관광으로 심한 구타를 당해 큰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이때 두한 역시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개코과 함께 종로회관으로 향했으나, 때마침 친구 정진영이 털보 패거리들로 인해 부상 당한 모습에 크게 분노하여 털보에게 당장 돈을 돌려달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털보는 돈을 돌려주기는 커녕, 김두한에게도 배짱을 부리며 선빵을 날려보지만 김두한이 가뿐히 회피한 뒤에 털보의 종아리를 차서 넘어트리고 그 직후 삼수, 병수 등도 자신에게 덤벼들려하자 신나게 두들겨 패준 후 다시 털보에게 다가 가더니 이때 털보를 아예
묵사발로 만들어버렸다. 병원에 실려간 이후의 털보는 목발 신세를 지게 된다.
그 여파로 김두한은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중간보스
김무옥의 눈에 들어와 털보 등에게 사과할 것을 강요받고, 두한이 "이 자식들은 내 돈을 가져갔어 내 돈!"고 말하지만 김무옥이 듣지 않고 끝까지 사과를 요구하지만, 두한은 "난 미안한거 없어"고 일침을 놓자 이때 정진영과 개코가 한 판 붙으려고하는 두한을 뜯어말리면서 김무옥에게 사과를 권유한다. 그러나 두한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결국 그와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둘이 밤낮으로 싸운 끝에 김두한은 자신의 목을 으스러뜨리려는 김무옥의 손아귀를 힘으로 떨쳐낸 뒤, '''"이야압!!!"''' 하는 힘찬 기합과 함께 날아차기로 김무옥을 날려버린다. 그렇게 쓰러진 김무옥은 몸을 다시 일으키려고 용을 쓰나, 김두한은 용서하지 않고 김무옥의 턱을 냅다 걷어차 완전히 졸도하게 만든다.
그 와중에 이 싸움을 바로 옆에서 직관한 정진영과 개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절친인 두한이 아니라며 충격을 받았고,
설향은 그런 김두한에게 한 눈에 홀딱 반해버린다. 그날 밤, 김무옥과 털보가 병원에 드러누워있는 모습을 본
쌍칼이 분노하여 졸개들에게 또 다른 중간보스
문영철이 종로로 돌아오는 즉시 내일 당장 김두한을 잡아오라고 지시했다.
그 다음 날 쌍칼의 지시로 문영철이 김두한을 잡아다 쌍칼에게 바치기 위해 삼수, 병수를 대동하여
수표교로 쳐들어왔지만, 문영철 역시 김두한에게 역관광으로 두들겨 맞고 병원 신세를 지고 만다.
[20] 결투 전에 문영철이 김두한에게 한 말 중 하나가 "너 조용히 갈래? 아니면 병원차에 실려갈래?"였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가 역으로 병원차에 실려간 셈.
이후 문영철은 자신의 패배와 김두한의 전투력을 인정하고 자신의 오야붕인 쌍칼은 위험한 사람이라며 진심으로 도피를 권유했으나, 김두한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잃어버린 100원을 꼭 되찾기 위해 결국 쌍칼과 마주하려고 한다.
이때 김무옥은 김두한에게 발차기 몇 번 맞고 갈비뼈가 세 개나 나갔고
[21] 당시 김무옥을 진찰하던 의사는 갈비뼈가 3개나 부러졌다며 '''"아무래도 쇠몽둥이 같은 걸로 맞은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부상이 이렇게 심할 수 없다"'''고 했으며, 병수가 이에 놀라며 그저 발길질 몇 번 당했다고 하자 정말이냐며 되물었다.
김두한의 발차기에는 못 당하겠다고 했으며 문영철은 "생전에 그렇게 강한 놈은 처음이었으며 마치 쇠망치로 두들겨 맞는 것 같았다"고 할 정도로 이미 최고의 실력자였다. 이때 당시 김두한의 나이가 18세.
이후 자신의 부하들이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본 후 단단히 화가 난 쌍칼은 김두한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조직의 참모인
김영태의 말에 서서히 마음을 바꾸게 된다. 김영태는 쌍칼에게 "오야붕! 싸움이란 원래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무옥이와 영철이가 이번에 임자를 만났다 한다면은 어떤 녀석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무옥이와 영철이도 종로에서 내로라 하는 싸움꾼들인데 걔네들이 나가떨어졌다면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일 겁니다. 쓸 만한 아이면 부하로 삼으시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이 바닥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맛을 좀 보여주셔야죠."라고 조언한다. 그 말을 들은 직후에도 도망치지 않고 결국 자신과 정면으로 맞서려고 하는 김두한의 패기에도 마음이 크게 바뀐 듯 보였다. 같은 날 밤
김영태가
쌍칼을 대신하여
수표교로 직접 찾아와서
[22] 쌍칼의 체면을 생각해서 김영태가 자청하여 대신 수표교로 가준 것이다.
김두한에게 쌍칼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김영태는 김두한과 이때 처음으로 대면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쌍칼은 김영태로부터 털보가
김두한의 돈을 꿀꺽 해버린 바람에 사태가 커진 것임을 알게 되었고 김영태는 실제로 김두한을 만나보니 그가 꽤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쌍칼에게 김두한을 조직의 일원으로 포섭하는 것이 좋겠다는 기색을 넌지시 내비친다. 같은 날 정오에 김두한은 전날 밤 김영태와 했던 약속대로 쌍칼의 사무실로 찾아간다. 그런데 가자마자
쌍칼은 김두한에게 잘못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 단검을 던지며 위협한 후 털보와 김무옥, 문영철을 왜 때렸냐고 일부러 추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자 쌍칼은 단검이 날아옴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쌍칼에게 당당히 '''"그럼 내가 당신을 이기면 되는 겁니까?"''' 라고 묻는 등, 패기넘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순박한
[23] 처음에는 쌍칼에게 눈을 부라리면서도 "아저씨"라는 어린아이다운 호칭을 사용하자 귀여워서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지만, 이어 김두한이 위의 대사를 하자 처음에는 정색하다가 그의 패기어린 눈빛과 말투를 보고 크게 마음에 들어한다. 이후 김두한은 처음 마셔보는 술에 크게 취한다.
모습의 김두한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털보가 꿀꺽한 돈 100원을 쌍칼이 대신 돌려주자, 두한은 마치 예상 밖의 일이었다는 듯이 몹시 당황하는 기색을 비친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의 잘못을 사과하는 의미로 김두한에게 종로회관으로 가서 술까지 사주었다.
[24] 이후 털보를 벌하게 된다. 어떻게 벌을 내렸나면 태형 100대를 처하게 하고, 김영태와 다른 조직원들 앞에서 엎드려 뻗쳐를 시킨 뒤 병수가 털보의 엉덩이를 각목으로 두드려 팼다. 이 때 털보가 병수에게 각목으로 두들겨 맞으면서 좀 살살 좀 때리라고 했지만, 김영태는 100대를 채우려면 아직도 멀었다면서 병수에게 계속 하라고 한다. 그 후 털보가 계속 맞으면서 김영태에게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 압권.
술자리에서 대화가 오가던 중 쌍칼은 김두한의 딱한 사정
[25] 쌍칼이 집이 어디냐고 물었는데 두한은 집이 없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김두한은 사동옥 철거 후 따로 거처없이 지내고 있다가 잠시 정진영과 개코의 도움으로 수표교 거지촌에서 지내고 있었다.
을 알게 된 후 두한을 자신의 식구로 맞이하려 하지만, 두한은 주먹패가 되기 싫다는 이유로 쌍칼의 제의를 거절한다. 허나 쌍칼은 두한이가 머지않아 다시 돌아올 것을 이미 예측이라도 한 건지 병원에서 퇴원하고 다시 2정목 사무실로 복귀한 문영철과 김무옥에게 "그 녀석이 다시 오게 되면 너희들이 아마 형님으로 모셔야 될 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때 합류 직후엔 워낙 어린 김두한이라 둘을 잠깐 형님으로 대했으나
[26] 구마적에게 소개할때도 문영철이 "저희 아웁니다"라고 소개하고, 설향이 들러붙을때도 "영철 형님 같이 가요!"라고 한다
, 쌍칼이 교통정리를 해 말놓고 친구로 지내게 된다. (김두한은 10대 후반, 둘은 20대 초반 정도 나이) 자신의 부하인 김영태에게 깍듯히 형님 대접할 정도로 선후배 관계에 철저한 쌍칼이었으나, 김두한이 언젠가 크게 될 것을 예상해 미리 교통정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짬이 엄청난 김영태는 그렇다고 쳐도, 김두한이 나중에 오야붕이 됐을때 나이 차이도 크게 안 나는데 중간보스밖에 안되는 김무옥/문영철에게까지 형님 대접을 하면 모양새가 좀 그렇다. 이때 셋의 위치는 쌍칼의 행동대장격으로 동격이었으나, 쌍칼이 이정목을 김두한에게 물려주면서 김두한이 두목이 되지만 이 셋은 죽을때까지 절친한 친구 사이로 지낸다.
이후 문영철과 김무옥도 쌍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고 두한을 찾은 뒤, 함께 종로회관에 가서 직접 찾아가 술을 사주면서 지난번 일에 대해 사과하였고, 두한 역시 문영철, 김무옥에게 다친 곳은 괜찮냐며 사과한다. 그 직후 문영철과 김무옥이 2정목에서 함께 지내자는 권유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주먹패는 아니라고 판단하여 황급히 자리를 떠버린다.
그 후 김두한은 되찾은 돈으로 다시 만주행을 추진하지만, 최동열 기자로부터 일본제국 경찰들의 감시가 너무 심해진 데다 만주의 형편도 좋지 않으므로 지금은 가는 것도 어렵지만 가봤자 할 일이 없을 거라는 말을 듣게 된다.
[27] 독립군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는 1910년대로, 이미 작중 시점인 1930년대는 일본군의 대대적인 중국 침략과 독립군 토벌로 크게 위축된 상태였다. 최동열이 비록 친일과는 거리가 멀고 독립운동을 좋게 보고 있다고는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독립운동에 몸담은 사람은 아니었고,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김두한을 만주에 보내겠다고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중국인 브로커에게도 부탁을 했지만 이 역시 거절당하고 결국 만주행이 사실상 좌절
[28] 두한이 주먹패에 입문하는 걸 반대했던 정진영마저도 개코가 두한에게 "그러게 넌 쌍칼 밑으로 들어갔어야 했다"고 말을 했을 때, 아무런 반박을 못 할 정도로 만주행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된다. 결국 지난번 쌍칼의 제의를 회상하면서
쌍칼 사람 자체는 괜찮게 느껴졌는지
[29] 왜놈들을 극도로 싫어하는 공통점이 있는 데다가 쌍칼과 함께 술자리를 했을 때 쌍칼 曰 "독립군은 만주에만 있는 게 아니다", "왜놈들로부터 시장 상인들을 보호하는 거리의 독립군"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때 이 말을 들은 김두한은 이미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고민 끝에 쌍칼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결심하고 주먹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때 쌍칼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두한에게 "난 네가 다시 돌아올 줄 알았다"며 크게 기뻐했고 너무나 기뻤던 나머지 그날 밤 두한을 위해 명월관에서 회식 자리까지 마련한다. 또한 이날 명월관 기생인 설향과 처음 만나서 인연을 맺는다.
이후 김두한은 번개와 재회하고 함께 술을 마시러가던 도중 신마찌 야쿠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던 한 조선인 여자를 구하기 위해 혼자 신마찌 패거리들을 모조리 때려 눕히면서 종로 2가에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그 소식을 접한
하야시와
구마적은 분노하고 이때 쌍칼은 김두한을 감싸려하다가 결국 구마적과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이때 두한이도 끝까지 책임지려고 하지만, 이때 쌍칼의 의견으로 너(두한)만의 문제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일본 패와 손잡은 구마적이 쌍칼에게는 눈엣가시였기에 그를 한 번쯤 꺾어보고 싶다며 구마적에게 도전장을 내게 된 것이다. 일이 어찌되었든 간에 김두한이 해를 입을 가능성은 낮았는데 구마적 역시 김두한이 옳은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으며 하야시는 신마찌 패거리를 내심 싫어했는지라
[30] 본인 입으로 유곽과 마약은 야쿠자가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고 했다.
구마적에게 항의한 것만으로도 자기 일은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후 쌍칼은 구마적과 대결하지만 대결에서 구마적에게 박치기를 얻어맞고 패배하면서 종로를 떠나게 되었고 쌍칼의 조직은 김두한이 이어받아 그가 종로 2정목 패의 새 오야붕이 된다. 새내기 막내가 수많은 선배들을 제치고 보스가 된 격이지만 쌍칼의 명령도 있고 조직 실세인 김영태, 김무옥, 문영철이 김두한에게 충성을 바치는지라
[31] 김무옥과 문영철은 이미 김두한한테 한 번씩 깨져서 병원신세를 진 적이 있는 만큼 김두한의 실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김영태는 쌍칼과 함께 김두한을 종로 이정목으로 영입한 사람 중 하나다. 비록 쌍칼이 사전에 언급해두기는 했지만 김영태 역시 김두한이 오야붕으로써의 자질이 충분하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었다.
김두한은 별다른 마찰 없이 조직을 접수할 수 있었다.
조직을 이어받은 후 오야붕이 된 김두한에겐, 쌍칼을 종로에서 떠나게 만들고 야쿠자들과 손을 잡은 구마적이 더더욱 눈엣가시였다. 그러나 구마적의 세력에 비하면 이정목은 조그마한 조직에 불과했기에
김영태는 구마적의 세력이 아직 강력하므로 지금은 일단 물러서고 훗날을 도모하자고 건의했지만, 김두한은 구마적의 측근들과
신마적의 싸움을 보고 해볼 만 하다 느꼈기에 항전을 결정했다. 이전에 신마적에게 구마적의 측근들인
평양박치기,
뭉치,
제비,
빡빡이 등이 모두 덤볐으나 박살이 났다.
[32] 왕발은 당시 그 자리에 없었다. 아마도 구마적이 김두한에게 패한 이후로 구마적 잔당 중 김두한에게 맞서는 최후의 대항마로서 기믹 보호를 위해서 신마적에게 무기력하게 박살나는 장면을 연출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봤자 실력이 안되니까 총들고 설치는 추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 후 구마적 역시 한발 물러서기도 하였다. 바로 '''패배하면 잃을 것이 많기에 사리는 구마적의 모습
[33] 모든 조폭들이 그렇지만 구마적은 칭호 자체가 마적일 정도로 명성이 대단했으며, 본인 역시 마적이라는 칭호에 대한 자존심이 상당했다. 걸핏하면 '이 마적을 말이다' 라며 본인의 칭호를 언급하는 것이 그 예. 그렇기에 단 한 번이라도 패하면 그는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으며 이 때문에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것이다.
'''을 캐치해낸 것, 그리고 '''신마적 자체의 실력을 보고 충분히 본인이 이길 수 있다''' 판단을 했던 것. 이렇게 김두한이 구마적에게 정면으로 반기를 들자 구마적은 뭉치를 보내 이정목을 접수하라 하였지만, 역으로 김두한은
뭉치와 그 수하들, 그리고
제비까지 모조리 때려 눕혀버렸다.
그로부터 얼마 후, 신마적은 학생패들을 이끌고 명월관에 술을 마시러 왔다가 술자리에 있던 설향의 태도가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비롯한 설향과 명월관에 깽판을 놓는 일이 있었다. 이미 이전에 김두한은 신마적과 한 판 붙고 싶었으나 김영태의 만류로 흐지부지 끝이 났다. 뭉치 일행을 때려 눕힌 후 유치장에 갔다가 풀려난 기념으로 종로회관에서 술판을 벌이는 도중에 신마적이 난입을 했는데, 이 때 김두한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신마적과 기싸움을 했고 이 당시에는 김영태의 만류로 신마적이 그냥 넘어갔다. 이 때 김영태가 말린 이유는 신마적과 그냥 싸우기에는 명분과 김두한의 명성이 부족하다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구마적과 붙기 위해선 구마적에 버금가는 위치까지 커야 한다는 걸 깨닫고, 신마적을 먼저 이기기 위해 싸울 명분을 찾게 되었고 신마적의 미행을 시작한다. 신마적의 행패를 보고 김두한은 바로 명월관으로 가서 신마적과 대결을 하였고, 접전 끝에 그를 이기면서 구마적에 버금가는 주먹으로 성장한다.
[34] 신마적이라는 캐릭터가 일종의 전투력 측정기 담당이다보니 싸움 전체는 김두한이 압도한다. 물론, 김두한이 이길 때 특유의 브금이 나오기 전까지는 김두한이 몇 대 맞고 쓰러지기도 하지만.
또한 김두한은 병원에 입원한 신마적에게 병문안을 가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가 본래부터 망나니였던 것이 아니라 갖은 고생 끝에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으나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고 타락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위로한다.
이 무렵, 김두한의 수하인
문영철의 정부이자 기생인
애란이 아버지의 노름빚 5,000원
[35] 현재 가치로 약 2억원 정도에 해당하며, 당시 웬만큼 좋은 직종의 월급이 60~80원 정도였으니 어마어마한 액수다.
때문에
중국으로 팔려갈 위기에 처한 일이 생겼는데, 김두한은 문영철 대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혼마찌의
하야시 자택에 맨몸으로 쳐들어가 돈을 강탈한 뒤 하야시의 부하들을 때려눕히고 달아난다.
[36] 하야시는 후에 그 강도가 김두한이었음을 눈치채지만 그냥 넘어가는 대인배스러운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칼처럼 뭉친 신문지를 들고 쳐들어갔고, 하야시는 어렴풋이 그게 신문지인 줄 알았지만 복면 속에 숨겨진 그 눈빛 때문에 일부러 한 발 뺐다.
다음날 김두한은 그 돈을 문영철에게 건네주었고, 그 돈으로 몸값을 지불하여 애란은 일생일대의 큰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그리하여 애란과
설향 등이 소속된 한성 권번에서는 김두한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종로회관에서 축하 파티를 연다. 그런데 한창 파티를 즐기던 도중, 뭉치를 필두로 한 구마적의 패거리들이 기습을 하여 김두한을 포함한 그 부하들에게 큰 부상을 입히고 2정목 패를 일시적으로 와해시킨다. 이 때 김두한은 자기의 실력을 너무 과신해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걸 깨닫고 김영태의 말을 듣지 않은 걸 후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 덕분에 구마적과 도전장을 낼 수 있는 명분이 생겼고, 절치부심한 끝에 종로로 돌아와 구마적에게 도전장을 낸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 ||
그리고 구마적과의 대결이 성사된 당일, 몸이 정상은 아니었지만 김두한은 구마적과의 대결에서 초반에는 그의 박치기를 허용한 후 잠시 기절을 했으나 버프로 다시 일어났고, 그 후에는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형세가 되었다. 결국 접전 끝에 그를 이기면서 우미관에 입성, 그 후 소매치기 한게 제대로 들통나 원래는 종로를 뜨겠다고 찾아온 번개를 역으로 영입시키고, 거지촌에서 살던 친구인 개코와 정진영을 우미관 멤버로 받아들이며, 아편문제로 아사히마찌 패거리에게 붙잡혀 처형을 당할 위기에 처해져 있던 와싱턴마저 구출해 우미관 멤버로 영입시킨다.[37] 정확히는 와싱턴이 먼저 김두한에게 자신을 거두어 달라고 빌었다.
이후 경성 일대의 주먹패 오야붕들을 확실히 복속시키기 위해 먼저 작두와 그의 서대문패를 김영태, 김무옥, 문영철, 개코와 함께 접수하고, 구마적의 잔당인 왕발을 제압했으며, 용식과 짝코가 소집시킨 마포&시구문패 연합군과도 단신으로 맞아 싸워 굴복시켰다. 그리고 결국 10대 후반의 나이로 조선 제일의 주먹으로 등극하게 된다. 다만, 중간에 김좌진의 제삿날에 가족들을 감시하던 종로서의 오무라가 두한이 주먹패가 됐다는 걸 떠벌리는 바람에 할머니가 쓰러지게 만들고 두한 본인도 약간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하야시는 김두한을 견제하기 위해 연줄을 써서 일본의 유도 챔피언이자 경찰인 마루오까를 종로경찰서로 부임시키지만, 김두한은 마루오까와도 대결하여 이겼고, 김두한의 실력에 감탄한 마루오까는 의형제를 맺는다.[38] 이 때 미리 김무옥을 보내 마루오까의 약점을 알아오게 하였는데, 아무리 해도 꼼짝 안하던 마루오까가 턱 한 방에 나가 떨어졌다. 이 때 턱이 약점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싸운 게 한 몫 하였다.
그리고 사쿠라 카페에서 협상 중 김두한이 혼마찌에 매수된 종로 상인들의 계약서를 모두 찢어버리는 것을 본 하야시는 결국 김두한과 정면대결을 하여 승리해야만 종로에 진출할 수 있음을 깨닫고, 장충단 공원에서 40 vs 40으로 결투할 것을 신청하고 김두한은 승낙한다.
그러나 대결을 앞두고, 하야시의 심복인 가미소리는 반드시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전에 계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는다. 가미소리는 하야시에게는 비밀로 붙인 채 아사히마찌 패거리에게 몰래 연락을 취하였고, 그들이 종로에서 소란을 피워줄 것을 요구한 뒤,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우미관 패거리들이 달려오도록 유도한 다음 경찰에 연락하여 경찰들이 우미관 패거리 대부분을 경찰서로 연행하도록 조치를 취한다. 또한 가미소리는 이 소동이 있기 직전에 김두한을 따로 불러서 시간을 끄는 등, 주도면밀하게 행동했고, 김두한은 이후 가미소리의 계책에 휘말려 대부분의 부하들이 경찰에 끌려간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하지만, 싸움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40명이나 되는 야쿠자들과 싸우기 위해 홀로 결전의 장소로 간다. 이때 혼마찌 정예부대 대부분이 일본도를 차고 있었지만, 김두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모조리 때려눕힌다. 그러나 힘에 부쳤는지 점차 밀리기 시작했고, 그 때 경찰에 끌려가지 않았던 김무옥, 문영철, 정진영, 삼수가 달려와 김두한을 돕는다. 이 때 하야시가 장인인 고노에와 함께 싸움을 보러 왔고, 종로 패에서 단 5명만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하야시는 이 싸움이 정당하지 못한 결투라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결국 하야시는 스스로 패배 선언을 하였고, 이후 고노에의 주선으로 김두한과 만남을 가진 뒤 종로에 진출하지 않을 것이며 패배의 대가로 종로 진출을 포기할 것이며, 우미관에 매달 세금을 바치겠다고 약속한다. 이때부터 김두한은 하야시와도 우호적인 관계가 된다.
그리고 얼마 후, 김두한은 서대문패 작두의 소개로 레슬링 선수 황병관을 만나서 술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이때 황병관이 같은 술집에 있던 일본군 헌병 장교 스즈끼 대위와 우연히 시비가 붙어 그의 칼에 썰릴 위기에 처하자, 스즈끼 대위를 두들겨 패고 황병관을 구해주는 바람에 헌병대에 찍혀 쫓기게 된다. 이때 스즈끼 대위를 비롯해 얻어맞은 스즈끼의 부하들이 반 병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 때 김두한이 돈을 사기당해 머리 끝까지 빡쳐서 싸웠던 김무옥과의 싸움이나 일본 축구부원들과의 싸움[39] 축구부원을 전부 쓰러뜨린 후 한 명을 잡아 '''경찰이 올때까지 머리를 책상에 쳐박았다.'''
이상으로 상대를 잔혹하게 두들겨 팼다. 보통 구마적이나 금강 급의 네임드 급 결투에서 나오는 유효타수가 10대를 조금 넘어가는데, 여기서 김두한은 스즈끼 대위를 '''19대'''나 팼다. 그 이유는 낮에 시장을 순회하던 김두한이 스즈끼 대위의 발에 물을 튀었다는 이유로 한 조선인 인력거꾼이 스즈끼 대위에게 채찍질을 맞으며 무참히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김두한이 봤었다. 이를 본 김두한이 나서려 했지만 김영태가 이를 말렸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술집에서 하필 스즈끼 대위와 조우한것. 황병관에게 시비를 거는 스즈끼 대위를 본 김두한이 "아니 저 자는.."하고 스즈끼를 알아봤다. 그리고 그때의 분노가 같이 폭발한것. 이후 김영태의 지시로 정진영과 함께 산 속의 절로 버로우를 타지만, 그 때문에 우미관 패거리가 대신 잡혀들어가 고문을 당한다.
부하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뒤늦게 자수한 두한이었지만, 이미 부하들 중에 번개가 죽은 뒤였고, 거기서 스즈끼와 절친했던 헌병 장교에게 차라리 죽여달라는 소리가 나오게 될 정도의 고문을 당한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하야시가 김두한을 구명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힘을 썼고, 명월관의 설향 또한 몸까지 바치려 하며 김두한을 처분할 권한을 가진 헌병대장 다이호 대좌를 설득하였고, 다이호 대좌는 김두한에게 3명의 무술 고수 군인들과 대결하여 이기면 풀어주겠다고 통보했고, 김두한은 이들과 싸워 이겨서 자유의 몸이 된다. 물론 다이호 대좌의 부하들은 반대했지만, 다이호 대좌는 약속은 약속이라며 절대 보복하지 말 것을 명한다. 김두한의 석방에 큰 힘을 쓴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설향이라고 생각하나 결과적으론 하야시의 공이 컸다. 하야시가 대좌에게 김두한의 선처를 요구했을때 다이호 대좌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를 지켜봤던 다이호 대좌의 부관이 "곧 총독부에서 조선인 징용이 이루어질 예정인데 주먹패 또한 예외는 아니며 끌려간다면 김두한도 어차피 죽을목숨이다." "더군다나 하야시의 부탁이니 만큼 차라리 이를 받아들여 우리 실리도 챙기고 김두한을 국가에 봉사하게 하자"라고 제안을 하게 된다. 뒤이어 설향과의 만남에서 설향이 쐐기를 박은것이지 애초에 하야시의 청탁이 없었다면 설향의 단순 희생만으로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며 부관의 이러한 제안도 없었을 것이다.
얼마 후, 제2차 세계 대전이 격해지자 일본에서는 전국의 주먹패에게 징병령을 내리고, 징병을 가기 싫었던 김두한과 우미관패들은 대책을 세우기 위해 조선 팔도의 주먹패들을 경성으로 불러들인다. 이때 김두한은 이정재와 신영균, 홍만길, 휘발유 등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하야시의 주선으로 단게 국장을 만나 담판을 지은 끝에 주먹패들을 모아 근로보국대[40] 이 조직에 김두한은 조선의 주먹 외에도 젊은이들을 구분없이 모으려 한다. 이 조직이 경성 내 일본을 위한 공장 등을 짓기 위한 것임을 감안했을 때, 이것이 조선판 쉰들러 리스트인지 친일 행위인지 비록 드라마이지만 비극적인 일이다. 그리고 실용주의자로 총독부 말단에서 경무국장까지 오른 단게가 얼마나 철저하게 김두한의 자존심을 망가뜨렸는지 알 수 있다. 김두한은 자신을 비록 주먹패지만 거리의 독립군이라고 프라이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김두한이 어떠하였는지는 기록이 부족하여 알 수 없는 일이다.
를 조직해 군사 시설 공사를 도우는 조건으로, 자신과 부하들의 징병을 면제받는다. 이 무렵 극중에서는 민족말살정책으로 그저 당할 수 밖에 없는 당시 식민지로서의 우리 조상들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동열은 잡지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때쯤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져버렸고, 결국 최동열은 한글로 된 잡지를 출간한다는 구실을 잡은 미와 경부에 의해 모든 원고를 빼앗기고 잡지사 문을 닫아야 했다. 그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최동열은 경성을 잠시 떠나게 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최동열의 오랜 친구이자 카페 비너스의 주인이었던 김이수는 좌절하여 더욱 술에 취해 자기 카페에 있던 일본인 손님들에게 난동을 피우다가 경찰서로 끌려가 고문당한다. 김이수는 경찰서에서도 조사 중 자신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 개새끼라고 조소하며 미약하게 반항하지만, 이에 화가 난 형사에게 짓밟히며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씬 등이 민족의 비극을 점점 끌어올린다.
그리고 김두한은 자신이 근로보국대를 조직하여 활동하는 것이, 신문 기사를 통해 자신이 황국신민으로 앞장서며 대일본제국의 일꾼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정진영을 통해 알게 된다. 방법은 어찌 되었건 자신이 주먹을 이용하여서라도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김두한은 이 사실에 매우 괴로워한다. 그래서인지 47화부터 김두한이 지능적으로 일본제국 경찰과 조선총독부를 능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폭행사건으로 잡혀간 신영균과 개코 등 당사자들을 다음날 바로 빼 준다거나, 단게와 서장 앞에서 미와를 모욕 주고 협상을 하거나, 자신의 청년단원 일부를 형사로 보내든가 결국 그 형사들 중 이정재가 폭행사건 때 일로 문달영에 원한을 갖고 있었던 신영균과 함께 문달영을 잡아들여 역으로 고문한다.
그러다가 근로보국대가 공사를 하는 현장에서 쓰던 다이너마이트가 빠져나가 부민관 폭탄 테러 사건[41] 드라마에서는 부민관 폭탄 테러 사건으로 소개되었으나 "테러"라는 단어는 일본의 입장에서이고 대한민국에서 부르는 이 사건의 공식 명칭은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이라 한다.
에 쓰이는 바람에[42] 테러를 주도한 인물들이 배가 고파서 물고기를 잡으려 한다며 김두한에게 사정을 하였고, 김두한이 이들을 가엽게 여겨 내주라고 했던 것이다.
졸지에 김두한은 테러의 주범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었고, 그 때문에 김두한은 또다시 종로경찰서에 끌려가 미와에게 고문을 당한다. 하지만 김영태의 부탁을 받은 하야시가 경찰에 손을 써서[43] 하야시는 그 무렵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전황이 좋지 않음을 알았고, 경찰에서 김두한을 쉽게 풀어줄수도 없을 것임을 느꼈기에, 경찰국장을 불러 거금을 내놓으면서 김두한을 목숨만 보존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만 해두면 머지 않아서 풀려날 것이라는 걸 예상하였던 것.
김두한은 광복할 때까지 형무소에서 느긋하게 지낸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은 광복을 맞게 되었고, 해방이 되자마자 김두한은 감옥에서 나와 종로경찰서를 찾아가 그 동안 자신의 철천지 원수였던 미와 경부를 만난다. 그러나 미와는 조국의 패전에 좌절한 나머지 일본으로 도망가지 않고 김두한을 기다렸고, 마지막으로 김두한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동안 김두한을 존경했었단 사실을 고백한 뒤 숨겨두었던 권총으로 자신의 턱을 쏴서 자결한다.
그 후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우미관패와 함께 종로경찰서에서 나오고 많은 주연들의 모습이 바뀌는데, 이때 김두한의 연기자는 안재모에서 김영철로 바뀌고, 개코는 연기자가 이동훈에서 성동일로, 정진영은 김정민에서 차광수로, 이정재는 김혁에서 김영호로 바뀐다.[44] 이정재는 청년기 배역인 김혁이 친일 고등계 경찰이었던 문달영과 김태서가 살아남기 위해 잽싸게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걸 보고 그들을 붙잡아 몇 바퀴 돌고 김영호로 배우가 바뀐다.
다른 멤버들은 연기자가 교체되지는 않았지만 다소 나이가 든 모습으로 바뀌는데[45] 홍만길과 휘발유가 연기자가 교체되었다. 다만 청년기의 배우가 20대였던 것과는 달리, 홍만길은 50대 중반의 배우(정일모)로, 휘발유는 40대 중반의 배우(이배국)로 연기자가 교체되어 외모의 갭이 매우 심하다.
김영태는 콧수염이 자라고 김무옥은 구레나룻이 자랐으며, 문영철은 안경을 착용하였고 삼수는 수염이 자라서 얼굴이 좀 사납게 바뀌었다. 이후 시라소니가 최초로 등장하여 아무것도 없는 화면에서 모습을 보이며 등장 암시를 주고, 다시 우미관패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지막으로 김두한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면서 야인시대 50화, 즉 1부가 끝난다.
2.1. 이야깃거리
청년기 편에서는 일제강점기 말까지 종로 일대를 무대로 활약하였으며, 방영 당시에는 다른 주먹패들과의 알력다툼과 액션씬, 그리고 일제와의 대립 등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지금에서야 심영 합성물 때문에 장년기가 더 유명하게 느껴지지만, 정치 이념 문제가 얽히기 시작한 중년기편보다도 청년기편을 더 재미있게 본 시청자들이 많았으며, 지금도 심영물을 보는 애청자들을 제외하면 당시에 살던 대다수가 '야인시대'라 하면 1부를 떠올릴 정도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9~50화까지의 야인시대의 인기는 정말 독보적이라고 해도 될 만큼 엄청났다.''' 시청률이 '''평균 40~50%''', '''최대 57.1%'''에 육박했고, 신마적이나 구마적, 마루오까와 같은 강자들과의 대결, 5 vs 40 장충단 혈투에서는 50%를 넘겨도 한참을 넘겼을 정도이니 당연히 김두한을 연기한 안재모도 이 당시 인기가 절정으로 올라갔으며, 이 기세로 '''24세의 젊은 나이에 SBS 연기대상을 타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46] 이는 현재까지도 방송 3사를 포함해 역대 남성 최연소 연기대상 수상 기록이다. 공동 2위는 김수현, 이종석의 만 27세.
주인공답게 여자가 많이 꼬이는데, 설향, 박인애, 하야시의 처제인 나미꼬[47] 그러나 김두한 본인은 나미꼬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거절했다.
등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와도 이어지지 않았으며, 마지막에 김두한과 결혼한 것은 김을동의 어머니인 이재희. 사실 이재희와의 결혼도 김두한의 할머니가 일방적으로 중매를 서서 결정한 것이었다.
[image]
작중 청년 김두한을 미남이라고 언급하는 장면이 가끔 등장한다. 김두한을 연기한 안재모가 훈남~미청년이었기도 하고. 그런 훈남이 조선이 독립하자마자 중년 아재로 변했으니, 50화 마지막에 시청자들이 충격받은 것은 당연지사였다. 외모보다 나이가 문제다. 사실 외모만 놓고보면 김영철도 나름 매우 미중년이다(...) 합성물로 김두한을 접한 이들은 모르겠지만 김두한은 매우 어린 나이에 보스 자리에 올랐다. 이 때문에 그는 김영태는 물론, 처음 만날 당시 20대 청년들이었던 문영철, 김무옥보다도 확연히 어리고, 심지어 우미관 막내급인 삼수보다도 어릴 가능성도 있다. 당시 삼수가 어리긴 했지만, 김두한은 18세 애송이였으니... 김두한의 자서전이나 후일담 등에 따르면 오야붕 짓거리를 하게 된 게 우리나이로 열 일곱살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극중 손기정의 금메달 딴 시기를 기준으로 해도 당시 김두한의 나이는 우리나이로 19세.. 고3나이였다. 안재모 김두한을 보면 이게 명확하지만 문제는 2부에서 김영철의 외모와 나이, 카리스마 때문에 산전수전 다 겪은 진중한 나이많은 리더처럼 느껴진다는 것. 편의상 중년기로 지칭되는 야인시대 2부의 상당 기간동안 청년이었다. 당장 독립 당시 20대 후반이었으며, 그가 40대에 접어든건 50년대 중후반이었으니... 차라리 이정재 역의 김영호처럼 30대 배우가 맡는게 나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김영철의 등장시기를 조금 늦추는 것도 방법이었을 것이다. 해방 직후에도 김두한은 20대였기 때문. 만약 이렇게 되면 정부 수립시기(1948년), 한국전쟁발발(1950년), 정계입문시기(1954년) 등에 안재모에서 김영철로 교체했으면 덜 어색했을 것이다.
작중에서 벌어지는 1대1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엄청난 실력을 자랑하며[48] 작중에 등장하는 주먹들은 대부분 명예를 걸고 1대1로 대결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여겼으며, 싸움에서 패한 자는 그 지역을 떠나거나 승자의 부하로 들어가는 것이 관습이었다.
, 그와 1대1 대결을 펼친 주먹들은 구마적을 제외하면 '''대부분 병원행을 면치 못했다.''' 털보는 다리가 부러졌고, 김무옥은 갈비뼈 3대가 부러졌으며, 기타노와 뭉치는 턱이 부서졌고, 제비는 장이 파열됐으며, 비록 주먹패는 아니지만 스즈끼 대위는 아예 반신불구가 되어버렸다. 이외에 문영철과 '''천하의 신마적'''은 어디가 다쳤는지는 나오지 않았으나 이들도 병원에 입원했다. 더불어 '''마루오까 역시''' 병원에 누워있는 장면은 나오지 않으나 미우라가 하야시에게 보고할 때 "큰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언급한다.
그나마 작두와 시바루는 김두한과 싸우고 난 뒤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으나, 둘 모두 김두한이 봐주면서 싸웠음을 감안하면 어찌보면 당연한 것.
사실 연출상의 주인공 버프[49]를 제외하고도 실제로 김두한은 조선 제일의 주먹이었으며, 심지어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에도 등장한다. 실제로도 김두한은 신마적이나 구마적, 마루오까 모두를 순식간에 때려 눕혔다고 하며, 작중 김영태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자신이 본 최고의 싸움꾼이 김두한이라고 한다. 다만 야인시대의 내용과는 별개로 실제 김두한이 증언한 내용은 어느정도 걸러서 들을 필요가 있다. 실존인물 김두한은 워낙 허풍이 많기로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고, 구마적이나 신마적과의 대결은 당시 자료상으로 봤을 때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말이다. 게다가 마루오까 경부는 아예 실존하는 인물인지 의문이 존재하기까지 하니...
상대방의 전투력에 따라 중절모와 상의를 차례대로 벗는다는 떡밥이 있다. 꼭 농담만은 아닌 게, 오야붕급을 상대할 때는 조끼만 입은 채 싸우고, 중간보스급이나 졸개를 상대할 때는 그대로 싸운다.
일제강점기임에도 불구하고 작중에서 김두한은 단 한 번도 일본어로 말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오야붕이나 나와바리 같은 일본식 단어를 쓰는 정도. 아마 작가가 김두한의 영웅적 면모와 반일 감정 기믹을 내세우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작중에서 하야시를 포함한 혼마찌 야쿠자 패거리들이나 미와, 마루오까 등의 일본인들과 잘만 대화하는데, 하야시 같은 경우에는 원래 조선 출신이기에 조선어가 가능했을 것이고, 미와나 마루오까 등은 조선에서 경찰로 근무하기 위해 조선어를 배웠을 것이며,[50] 실제 본작에서 미와 경부로 등장하는 미와 와사부로가 조선어장려시험 갑종 합격자이고 일본제국 경찰들 중 상당수가 조선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일제강점기라고 해서 조선 내 일본의 관리, 공무원들이 조선어를 안 배우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리 강제점령을 당하고 있는 국가와 민족의 언어라고 해도 알아둬서 전혀 나쁠게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선어를 알고 있음으로써 독립운동 등을 감시하기가 더 유리하기도 하고, 언어라는게 한 나라와 민족의 문화와 관습 등을 반영하는지라 피지배 민족인 조선인들의 문화와 관습을 알아두면 식민지배에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하야시 수하의 야쿠자들인 시바루, 미우라 등은 조선에서 활동하는 야쿠자로써 조선인 주먹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또는 조선인들과 마주칠 일 등의 필요성으로 배운 것으로 추측된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일본인들의 조선어가 필요 이상으로 유창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드라마니 그려러니 해야 할 듯.
안재모는 김두한 역할을 담당한 배우들 중에서 실제 김두한과 두상 및 이목구비가 제일 많이 닮은[51] 배우다. 다만, 실제 김두한에 비해 심할 정도로 미화된 미남이라는 차이가 있다.
큰 조직의 보스답게 능력은 출중하지만, 지나치게 저돌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인물이었다. 문영철의 애인을 구할 돈을 마련한답시고 혼자 하야시 집에 잠입하거나, 총을 겨눈 왕발에게 오히려 강하게 대응하는 등[52] 이 경우는 김두한 본인이 왕발이 자신을 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밝혔으며 다들 납득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긴 했지만.
, 주인공 보정이 없었으면 진작에 죽었거나 주먹계에서 활동을 못할 상황에 처할 경우가 많았다. 드라마 내에서도 김영태가 김두한의 저돌적인 태도를 걱정하거나, 혼마찌 측에서 김두한의 성격과 하야시의 신중함을 비교하는 등, 김두한의,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일을 밀어 붙이는 성격을 지적하는 장면들이 여럿 등장한다. 몇몇 사건들은 사실 잘 풀렸기에 망정이지 잘못됐으면 부하들을 모두 사지로 몰아넣을만한 일들이었다. 심지어 박인애 납치라는 누명을 쓰고 경찰서에 끌려갔을때 나미꼬가 여기서 이대로 무너질거냐고 그 여자를 잊어야 일이 쉽게 풀릴 거라고 했을 때도 그런 것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만약 본인이 그대로 감옥에 몇 년간 수감된다면 우미관패는 그대로 와해됐을 것인데도 무책임하게 말이다. 실제로도 박인애가 김두한을 포기하고 아버지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조건으로 김두한이 풀려난 그리 길지 않은 시기동안 마루오까에 의해 우미관패는 박살이 나고, 하야시의 시바루파는 종로상점들을 사들이는 등, 만약 김두한이 원래대로 형을 살았다면 종로는 그대로 일본인들에게 점령되었을 것이다.
구마적과의 싸움이 무모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김두한이 이기긴 했지만, 반대로 얘기하자면, 김두한의 컨디션이 충분했다면 구마적을 상대적으로 쉽게 이겼을 것이다. 구마적은 조선 최고의 주먹인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하고 덤벼야했겠지만, 김두한은 빨리 종로를 구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아직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로 싸움에 임했고 결국 쓰러지고 만다.
그 중 가장 무모했던 일은 하야시파 사무라이들과의 40 vs 40 싸움. 전투 전날 부하들이 계략에 빠져 감옥에 갇혔을 때, 김두한은 혼자 결투장에 갔다. 그동안의 결투와 다르게 이건 목숨을 건 승부였으므로 지면 목숨을 잃는 상황이었다. 승산이 조금도 없었던데다, 본인이 죽고 났을 때의 후계자나 2인자가 마땅히 없는 상태였다. 비겁한 계략에 빠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승부를 하루만 미뤘어도 하야시가 납득했을 일인데[53] 다만, 이 때 김두한은 아직 하야시의 진면목을 몰랐고 그저 나쁜 일본놈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후퇴는 있을 수 없다며 덤벼든 것. 그야말로 만용을 넘어 쓸데없는 무모함에 불과한 일이었다. 제대로 된 리더라면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알아야 하는데 오로지 전진밖에 모르니 그야말로 부하들 죽음으로 몰아넣기 딱 좋은 리더. 물론 드라마에서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계속 무모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드라마상에서의 김두한은 돌격대장이나 어울리지, 수많은 부하들을 책임질 리더나 오야붕의 그릇은 아니다. 오죽하면 참모 역할인 김영태의 가장 많은 대사가 "두한이 그건 무모한 일일세" 겠는가. 여러모로 참모를 피곤하게&무용지물로 만드는 독불장군형. 게다가 툭하면 직접 나서서 싸움을 해대는 통에 결국 일본 헌병대를 두들겨 패는 대형사고까지 친다. 결국 자신은 종로를 떠나 도망가게 되고, 죄없는 부하들만 죄다 끌려가 고문받고, 그 와중에 번개는 사망하기까지 한다. 일제 패망 직전엔 안면도 없는 노동자들에게 다이너마이트를 그냥 나눠주는, 안전불감증이 의심되는 행동 때문에, 미와의 의심을 산 김두한은 종로 경찰서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기까지 했다. 때문에 반일 감정에도 불구하고 김영태는 하야시에게 찾아가, 원한다면 종로를 내놓겠으니 제발 김두한을 살려달라고 굽신거리기까지 했다. 물론 패망 직전임을 알고 있던 하야시는 부하들의 안전보장이라는 다른 조건을 내세웠지만...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청년기 김두한 파트에서 벌어지는 사건 상당수는, 김두한에게 원인이 있거나, 김두한이 일을 크게 만든 것이다. 그야말로 주변 사람들을 개고생 시키는 스타일. 그래서 나이 먹고 청년기 파트 다시 보다 보면 젊은 김두한이 세상물정도 모르면서 자기가 다 옳고 자기가 하면 다 된다는 방식의 자아도취형 성격에 중2병, 영웅병 걸린 인물로 보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현실에선 참교육 당하고 넘어가거나 그대로 골로 갔을 위기를 본인의 압도적인 무력과 주인공 보정으로 멋지게 넘어가니 무마될 뿐. 2부 김두한도 막가파 경향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세상의 쓴맛을 어느정도 보고 큰 조직의 우두머리로 지내고 하는 관록으로 아주 조금은 나아진 것에 비해 1부 김두한은 거의 먼치킨 무협물의 발암 주인공캐 수준이다.
김두한과의 싸움 후 김두한을 완전히 인정하게 된 하야시[54] 김두한에게 결국 패하긴 했지만, 사실 하야시야말로 조직의 오야붕으로서는 가장 적합한 인물상이다. 냉철하고 철두철미하며, 함부로 힘을 휘두르지 않지만, 힘을 써야할 상황이라면 전력을 다한다. 명분과 대의를 중시하면서도, 최소한의 희생으로 승리하는 방법을 추구하는 등, 지략적이면서도 현명한 모습을 보인다.
도, 김두한이 조직의 오야붕에게는 필수와 같은 갈대와 같은 유연함이나 상황에 따른 타협심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헌데 실존인물 김두한은 유연함이나 상황적응능력이란 점에서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오히려 중간 이상은 너끈히 가는 인물이었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물론 본작이 드라마다보니 주인공의 성격을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쪽으로 단순화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참 야인시대 방영하던 시절이야 그런식의 무모함이 김두한의 덕목으로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훗날까지 이 드라마가 입줄에 오르면서 말이 안 된다며 웃음거리가 된 사례라고 해야 할지... 어쨌던 김두한의 자전적 썰이 아닌 객관적으로 검증된 그의 일생 일화들만 살펴봐도 징용 끌려갈 위기에 청년단 단장으로 완장을 차게 된 일 같은 건 어지간한 처세술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같이 깡패질을 하던 이정재, 임화수 등이 박정희가 집권하자 모조리 잡혀가 죽는 와중에 김두한만 살아남아 정계에 진출한 것이나 일자무식으로 국회의원 두 번 해먹는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생각해보자. 이게 좋게 말하자면 세상 일 해쳐나가는 유연함이나 임기응변이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곧고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었다는 이야기.
물론 김두한이 작중 우미관 보스에 등극한 것이 고작 18세였고, 청년기 내내 그다지 세월이 흐르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이가 어려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러나 김두한의 이런 성격이자 단점은 중년기 파트에 이르러서 누그러지기는 커녕 더욱 심각해진다. 심지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무작정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을 밀어넣는 짓거리[55]까지 하게 된다. 즉, 경륜과는 상관없이 단점이 고쳐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3. 중년기
[image]
|
'''배우'''
| '''김영철'''
|
'''등장 에피소드'''
| '''1화[56] 및 50화[57] 58분부터 나오는데, '''이 때부터 시청률이 거의 반토막 난 사실'''로 더 유명하다(...). 선행 출연''' / '''2부 전체 에피소드'''
|
'''극중 등장 시기'''
| '''1945년(28세) ~ 1972년(55세)'''
|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김좌진 장군의 아들, 김두한이다!!'''
배우는 김영철. 중년기편에서는 시대적 배경이 혼란스러운지라 여러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엄밀히 나이를 따진다면 김영철이 나와야 하는 분량은 '''124화 딱 하나'''만 나왔어야 했다. 실제 김두한이 고작 55세(1972년 11월 21일)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를 구분하기 위해 일부러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뭐 배역에 존재하고 있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긴 하지만 위화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58] 그도 그럴 게, 자신이 맡은 김두한은 1918년 생인데, 극 중 김두한이 어른으로 모시는 1894년 생 조병옥은 자기보다 6살 어린 김학철이 맡았으니... 태조 왕건에서 각각 궁예와 박술희를 맡은 걸 생각하면 그저...
뭐 그 덕분에 "공산당 할거야 안 할거야?!", "개소리 집어쳐!" 같은 명대사도 많이 나왔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 ||
광복 당일 미와의 자결 이후 종로서에서 나오는 것으로 첫 등장.[59] 엄밀히 따지면 1화 초반에 처음으로 등장하지만, 해당 부분은 수미상관을 위해 일부러 드라마 완결과 같은 시점을 택한 것이므로, 스토리 전개상으로는 이때가 첫 등장이 맞다. 사실 이환경 작가의 작품 대부분은 주인공의 청년기 이상의 핵심 장면을 미리 넣어주는 경우가 많다.
이후 어느 절에서 눈을 감고 상념에 잠긴 모습이 나온다.[60] 이 부분부터 김영철이 연기한 김두한의 본격적인 첫 등장이자 첫 화인데, 마지막 화에 절에서 인생을 회상하는 장면과 대비된다. 이때 김두한은 ''''해방이다. 그토록 온 세상이 염원하던 독립이 왔다. 이 독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싸우다 죽어갔는가. 아버님이 그리하셨고, 어머님이 그리하셨다. 이제 난 이 새로운 조국에서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주먹패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무엇을 위해, 누구와 싸운단 말인가. 무엇을 해야 할까...''''라며 자신이 할 일에 대해 고민을 한다.
절에 꽤 오래 머물렀는지 절에 가 있느라 우미관을 몇 달이나 비웠다고 김영태가 그가 돌아온 후 언급한다. 또한, 이때에 이르러 조선에 진출한 모든 야쿠자들이 일본으로 도망가 사라지는 바람에 아무도 막을 자가 없는 조선 최강의 주먹이 된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 ||
건국준비위원회의 일원이 되어, 자기 패거리들을 다이너마이트와 둔기만으로 무장시켜 대동한 채 경성의 일본 해군 무관부를 양측 사망자 없이 털고, 일본군 대좌와 벼랑 끝 협상 끝에[61] 기습 전에 외벽 폭파용으로 쓸 다이너마이트 하나를 챙긴 후 품 안에 넣어놨다가 협상 할 때 도화선에 불을 붙인 후 자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같이 죽자고 말했다. 그러자 누구도 말을 안 하다가 그 일본군 대좌의 부하 장교가 상부에서 지정된 항구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음을 알려주자 대좌가 할 수 없이 김두한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러자 김두한은 불타는 도화선을 다이너마이트에서 분리시키며 협상을 종료했다.
일본군들을 무장 해제하고 주둔지에서 퇴거시켰다. 이 때 아리사카 소총 수백 정 등 다량의 무기와 몇 달치 식량, 육군 피복 수백 벌을 노획해 창고에 보관했다. 이 활약으로 건준과 백의사의 주목을 받는다.
이화룡과 시라소니와 만나기는 하나 별 다른 충돌 없이 친분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62] 사실 시시콜콜한 이유로 명동파와 싸우면 '''이득 보는 건 해방 후 오로지 한반도 적화만을 꾀하는 조선청년전위대 패거리들 뿐이다.'''
이화룡과는 맞붙었을 때 좀 더 유리한 상황에서 황병관의 중재로 싸움을 멈췄고[63] 그리고 이화룡을 비롯한 이북 출신 주먹들이 공산당의 억압을 피해 할 수 없이 서울로 피신해왔다는 사실을 듣자, 자신의 조직이 관리하던 명동 지역을 이들에게 넘겨준다.
시라소니와의 만남(아편사건이 마무리 되고 김두한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나온 날)에서는 시라소니의 강함을 인정하고 싸워봤자 이득이 전혀 없기 때문에[64] 김두한이 시라소니를 설득할때 언급하긴 했지만, 이 시점에서 김두한은 그냥 주먹패가 아니라 청년단 단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고 있었다. 게다가 공산당이라는 거대한 적을 앞두고 있고, 대놓고 공산당이 바로 직전에 김천호가 김두한을 암살하고자 했으니, 아무 적대 관계도 없는 시라소니와 피터지게 싸워봐야 이득볼 것은 하나도 없었다.
형님으로 모신다. 이때 시라소니 역시도 김두한의 대인배스러움을 인정하고, 그에게 주먹 한 번 제대로 날려보지도 못하고 졌다면서 김두한을 의형제로 받아들인다.
반공 활동을 하며 조직을 운영하던 와중에 절친한 친구인 정진영의 꾀임에 넘어가 좌익에 몸을 담게 되어 조선청년전위대의 전위대장으로 활동하지만, 얼마 안 가서 백의사 단원 박용직과 백의사의 두령 염동진, 김좌진의 의형제인 이규갑, 그리고 유진산에 의해 자신의 아버지 김좌진을 암살한 범인이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65] 김두한의 할머니는 일본군과 싸우다가 친일반민족행위자에게 돌아가셨다고 김두한에게 말해주었고 김두한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김두한이 그렇게나 일본을 증오했던 것이 바로 이 때문. 김좌진의 암살범 박상실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공산주의자인 것은 확실하고, 친일파의 사주를 받았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김좌진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김좌진의 독립운동세력은 북만주 지역에서 농민들로부터 군자금을 명분으로 착취를 했던 것이 사실이고, 이로 인해 공산주의 계열과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독립운동 내의 계파 갈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공산주의 계열 활동가였던 김봉환이 일제에게 사로잡혀 6-7년형을 선고받았다가 갑자기 풀려난 후 박상실에게 김좌진 암살을 사주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제에게 사로잡힌 독립운동가가 갑자기 풀려나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이로 인해 김봉환이 일제에게 협력하는 방향으로 전향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이같은 이유로 극중에서도 최동열이 김좌진 암살에 대해서는 동포의 손에 의해 피살당했다는 것과 그 범인이 친일파라는 말도 있고, 사회주의자라는 말도 있다는 것만 알 뿐 확실한 것은 모른다고 했던 것이다.
알고는 공산주의에 물든 정진영과 결별해 우익으로 간다.
이 떄 '사고야마'라는 야쿠자가 접근하여 대량의 아편을 전매국[66] 훗날, 전매청(專賣廳, 대한민국 재무부 소속 외청)→한국전매공사(공기업)→한국담배인삼공사(공기업)→現.KT&G(민영화)의 전신이 되는 대한민국 재무부 직속 부서였다.
창고(정부 자산)에서 훔쳐줄 것을 제의하였고, 우미관 패거리들은 청년단 자금을 마련한다는 명분 하에, 전매국 창고를 폭탄테러하고 아편을 모조리 훔쳐가버린다. 주먹들이 아편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일제강점기가 끝났음에도 우미관 주먹패들이 법과 질서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아무튼 우미관 패거리들은 아편을 중국에 팔아넘기고자 했으나, 이를 수사하던 조병옥은 김무옥을 제외한[67] 우미관 패거리들을 잡아들인 뒤, 김두한이 보는 앞에서 아편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린다. 조병옥은 우익에 우호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법을 대놓고 어기는 행위는 눈감아 줄 수 없었을 뿐더러, 그 아편으로 인해 수 많은 중독자(중국인이라고 할지라도)들이 발생하는 참사를 막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백의사에서 활동하면서 국군준비대 습격 사건, 심영 암살미수 사건 등을 터트리며 좌익과 싸워나간다. 이때 김두한의 연이은 공산당에 대한 테러로 보복에 눈이 벌개져 있는 공산당을 피해 잠시 애기보살의 집에 숨어있던중 정진영 패거리에게 습격당해 상하이 조와 김관철이 부상당하고, 아구도 포로로 잡힌 상태에서 정진영의 쏜 총에 머리를 맞고 목숨이 위태로운 적도 있었다.
좌익이 파업을 주도하자 금강을 쓰러뜨리고 부하들과 함께 조선청년전위대를 밀어 붙여 파업을 막기도 한다. 그런데 금강과 싸우기 전에 패배한 쪽이 물러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공산당 일당이 이를 어기고[68] 정진영이 '안 돼! 명령이다! 쏘지 마! 쏘지 마!' 라고 부하들에게 외쳤으나, 상관이 김두한과의 약속을 어기고 발포를 명령했다.
김두한 별동대와 경찰들에게 총을 난사하기 시작, 교전하는 과정에서 김무옥이 사망했다. 사태가 진정된 후, 부하들이 공산당 간부를 잡아오자, 김영태와 개코는 경찰에게 인계하자며 말렸으나 김두한은 김무옥의 복수에 눈이 뒤집혀 부하들과 함께 해당 간부를 무참히 살해하게 된다.
이후 정진영의 전위대와 김두한의 대한민청 청년별동대는 더더욱 사이가 험악해지고, 그들과 어릴 적부터 죽마고우 사이였던 개코는 정진영과 김두한을 화해시키고자 악착같이 노력하나, 김천호와 김해숙이 절대로 우익과 사이좋게 지낼 수 없다며 여러 수작을 부려 화해는 수 차례 물 건너 간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진영과 두한이 서로 만날 기회를 개코가 만들었으나 김천호의 흉계로 무산되었다.
그 흉계란 전위대원 몇 명을 정진영 몰래 빼내어 대한민청 소속 대원으로 위장하고 약속 장소인 명동장에서 그들이 총격으로 김해숙을 죽이라는 것. 이 계획은 성공했으며, 김해숙은 예상대로 위장한 전위대원들에게 총격당해 죽었고 뒤이어 김두한과 개코가 나타났다. 당연히 아무것도 몰랐던 정진영은 김두한에게 화를 내고, 김두한은 결백하다 말했으나 정진영은 씹고 이 만남이 마지막임을 고하고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옛 정을 끊고 돌아간다. 이때 개코가 떠나는 정진영의 차를 보면서 울부짖는 장면은 슬픈 명장면. 정진영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해숙은 그의 일생에서 유일하게 그가 사랑했던 여자였고, 아무것도 모르던 상황에서 화해하려는 적대세력한테 연인이 죽음을 당하니[69]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원수지간이 되고 만다.
얼마 후 좌익이 주도한 여공 파업 현장에 별동대가 출동해 여공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개코가 여공을 강간했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70] 이때 개코는 만취 상태여서 재정신이 아니었다. 김두한은 남으라고 했지만 기어이 고집을 피웠다.
평소에 개코를 고깝게 보던 우미관 패거리는[71] 별동대 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정진영의 미련을 못버려서 술만 들이키고 피해만 주니 외면하닌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김두한 만큼은 그를 감쌌다.
물론 이정재마저도 개코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김두한을 말렸으나, 기어이 김두한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개코를 자기 손으로 사살한다.[72] 다만, 이건 드라마 한정이고, 원작 소설에서는 진짜로 그 여공을 범한 끝에 그 여공이 추락사당한다.
결국 이 일 때문에 정진영과는 더욱 더 사이가 멀어진다.
개코의 장례 이후 백의사에서 비밀 임무가 들어오는데, 그 내용은 산정호수 별장과 평양에서 김일성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백의사는 평양을, 김두한은 산정호수 별장을 택하고 신영균, 홍만길, 휘발유, 갈치, 김관철에게 그 일을 맡긴다. 산정호수 별장 습격은 성공적으로 진행됐지만 그 곳엔 김일성이 없었고, 백의사가 맡은 평양에는 김일성이 있었기에 수류탄을 던져 공격을 가했으나 소련군 장교가 몸으로 막는 바람에 실패한다.
이 일이 있고 얼마 후, 이승만 박사의 귀국에 대비해 경호병력을 차출하여 이승만 박사의 귀국 예정지인 김포로 보내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김두한은 그 임무를 문영철, 김삼수, 아구에게 시킨다. 김포로 대원들을 다 보낸 탓에 본부에는 김두한, 김영태와 평대원 2명이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이 소식을 들은 정진영은 20명 정도 남은 전위대원들을 동원, 별동대 본부를 습격하였다.
전위대는 본부에 남아있던 2명의 대원들을 제압한 뒤 김두한이 있던 대장실을 포위하며 김두한을 밀어붙인다. 그러나 10명 정도 되는 장정들이 멍청하게 철문도 아니고 사무실 나무문 하나를 못 부수고 시간을 질질 끄는 바람에, 임무를 끝내고 돌아온 별동대원들이 전위대를 역공하여 김두한을 구출해내는데 성공한다. 한편 운 좋게 별동대 본부를 벗어난 정진영과 전위대원들은 장통교를 건너고, 얼마 못 가 대기하고 있던 신영균과 홍만길이 이끌던 별동대원들에게 잡힌다. 이렇게 잡히게 된 전위대는 고문을 당함과 동시에 전향서를 쓰도록 강요받았는데, 별동대는 그 과정에서 전향을 거부한 이들을 죽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전위대의 2인자인 김천호마저 신영균이 결투 끝에 죽여버린다.
김천호의 시체를 보여주며 이 꼴 되기 싫으면 전향하라는 문영철의 협박에 겁 먹은 나머지 전위대원들은 모조리 우익으로 전향했고, 전위대를 해체시키면서 김두한은 가장 친한 친구였던 정진영도 쏴 죽인다. 물론 처음에 김두한은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영에게 전향을 설득했지만, 그는 이미 죽기로 마음먹었기에 어쩔 수 없이 죽이게 된 것이다. 정진영이 죽으면서 어깨동무와 함께 그의 과거 행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그가 좌익에 투신한 이유가 나온다.
이후 전향서를 쓰고 풀려난 전위대원 중 1명이 미군에게 김두한의 별동대를 신고하고[73] 그런데 이 전위대원을 신영균이 쏴죽여버린다. '''그것도 미군이 보는 앞에서.'''
, 여태까지의 범죄 행각으로 인해 워태커 소령에게 구속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오키나와 형무소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마이클 상사와의 권투시합에서 이겨 형 집행이 연장됐고, 연장된 기간 중에 이승만의 특별 지시가 내려와 무죄방면. 그 후 김포로 오게 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해 이정재의 동료 형사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형사가 별동대는 이제 잊혀져 흑역사가 되었다 말해준다. 그리고 우미관 식구들과 이화룡, 시라소니 등 명동파와 이정재를 다시 만난다.
이후 반민특위에 참여했다 되레 고문당하고 경찰을 그만두게 되는 이정재를 보면서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이정재가 포목점을 개업했을 때 같이 고사를 지낸다.
3.2. 6.25 당시
전쟁 직전 문영철의 생일이 찾아오고[74] 아구가 말하는 와중에 삼수를 비롯한 몇 명에게 복부를 두들겨 맞는다.
오랜만에 제대로 논다. 이 날 김영태가 종로회관에서 김두한에게 영철이가 무옥이 떠나고 많이 외로워 한다며 잘 챙겨달라 말한다.
그리고 얼마 후 6.25가 터지고 부산으로 급히 피난하려 하나, 한강 다리가 폭파되어 서울에 발이 묶일 찰나 이화룡이 배를 구해와서 명동파와 함께 한강을 건넌다. 이 와중에 가족들을 서울에 두고 오게 된다. 피난을 내려갈 때 '가족들을 데려와야 하지 않냐'라는 부하들의 질문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럴 거 없다'라고 답한다. '''이 정도면 가족들을 돌볼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는 셈.''' 바로 뒤에서 북괴군이 피난행렬을 따라잡아 총질하고 있어서 한 걸음 1분 1초에 사활이 걸린 급박한 상황도 아니고, 대놓고 걸어서 쫄래쫄래 부하들과 피난가고 있는 상황 정도라면 본인이야 부하들 때문에 어쩔수 없다 쳐도 부하들 말대로 밑에 애들 한두명이라도 보내서 가족들이 피난을 갈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공산당들이 우익들 다 죽이겠다고 죽창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전쟁시 민간인 피해가 없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아무리 배운게 없어도 알수 있는 사실인데 걱정조차 없이 태평하게 일언반구에 그럴거 없다고 자른건 최악의 행동이었다. 여담이지만 극중 김두한의 여자들은 본부인을 제외하면 전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거나 다름없다. 그 여자들에게 목숨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로 빚을 많이 졌다는걸 생각하면 김두한의 행동들은 그야말로 최악.
부하들의 걱정대로 김두한의 집에 북한군이 들이닥쳤으나 한 북한군 군관이 김좌진 장군의 사진을 보게 됐고, 이재희가 김좌진 장군을 가리키며 '내 남편이 이 분의 아들'이라 말하자 군관은 존경하는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 어쩌다 반동이 됐냐고 혀를 차며 그냥 물러나 살아난다.[75] 이때 사진을 두고 절도 있게 경례까지 하는 군관의 태도는 조롱이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참고로 김두한을 사모하던 애기보살은 미처 피난하지 못해 북한으로 납북되고 만다[76] 혹시 피난가야 할 상황까지 되면 김두한이 알려주지 않겠냐는 매화의 말에 그럴거라며 믿고 있었는데, 정작 김두한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부하들과 함께 도망가버렸다.
이후 부산에서 다시 만난 이정재가 김두한에게 그간의 일을 이야기할 때, 감옥에 갇혔던 애기보살이 납북되는 과정에서 이정재와 마주칠 때 그를 알아보고 연모했다고 전해달라 했었는데, 이때 김두한은 매우 안타까워 했다. 그런데 이 당시 워낙 정신이 없다보니 아내와 자식이 어찌되었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마당에 볼륜 상대로 이런 행동을 해 가족과 시청자 입장에선 씁쓸하기도 한 장면이다.
한편 부산에 도착한 김두한은 대한노총일을 맡아 부둣가 노동자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항의하며 임금 지급의 책임이 있는 부둣가 주먹들을 상대한다. 그들을 꺾고 미군과 계엄사령관 김종원과 협상끝에 4달러로 월급을 합의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같이 도와주던 황병관이 부산 부둣가의 주먹패인 고사이마찌 고영목에게 총격당해 죽는다. 이 때 고사이마찌는 노동자에게 구타당하고 헌병대로 이첩되었다는 언급을 끝으로 퇴장한다.
이후 육군의 부탁으로 열악한 전황을 어떻게든 메우기 위해 자진해서 학도병을 이끌고 김석원 준장의 수도사단[77] 다만 현실에선 김 준장은 이 당시 수도사단 동쪽에 있던 3사단을 지휘했고, 수도사단은 송요찬 준장이 맡고 있었다.
휘하로 들어갔으나 하도 열악한 실태에[78] 일단 훈련 받고 있는 자원들부터가 아직 고등학생인지라 교관이 없어 훈련도 제대로 못하고, 제대로 된 훈련소가 아닌 그 고등학생 학도병들의 모교로 추정되는 학교의 운동장 내부에서 공간을 쪼개어 사격, 총검술, 수류탄 투척, 뜀걸음, 장애물 극복 훈련 등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투복도 제대로 보급 받지 못한 건 덤. 애초에 김두한을 비롯한 여러 간부들은 군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 무장조직을 이끌었던 경험이 있으니 교관으로 오라는 육군의 부탁을 받아 부임한 시점부터가 열악한 국군의 실태를 보여준다. 그나마 '''99식 아리사카''' 소총 등 병기 면에서는 열악한 실태가 안 나와서 다행일 지경이다.
놀라 김석원의 부관을 설득, 훈련 시간을 버는 데 성공한다. 한편 부하들을 학도병 훈련시키라고 다 보내고 김영태와 단 둘이서 얘기하는데, 이게 바로 분단국 및 이념 대립으로 인한 신생 약소국의 설움을 토로함과 동시에 이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이때 김영태는 창문으로 보이는, 학도병의 친지들이 학도병들을 걱정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그 날 밤, 갑자기 학교로 찾아온 유진산과 전진한을 만나 안부를 나누는 도중 김석원의 부관이 찾아와 지금 당장 학도병 병력을 투입시켜달라 요청한다. 김두한은 훈련이 덜 되었다며 거절하나 부관이 전황이 급하다며 쉽게 물러서지 않았고, 김영태마저 부관의 말을 따르기로 하자 어쩔 수 없이 출동 명령을 내린다. 이후 용진가를 부르며 트럭에 탑승한 학도병들과 지프에 탄 우미관패가 나오며 김두한은 유진산과 전진한에게 경례하며 영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영천으로 간다. 이후 김석원 장군과 대면 후 밤 9시에 적 고지를 공략하라는 명령을 받은 김두한과 부하들은 각오를 다지며 서로의 행운을 빈다.[79] 참고로 이 전투 뒤 인천상륙작전 소식이 들려오는 걸 보면 곤제봉과 호명리, 낙산 일대에서 벌어진 곤제봉(=곤계봉) 전투인 듯 하다.
이후 전차[80] 처음에 보면 장갑차나 기갑차량으로 보인다. 참고로 김두한이 오기 전부터 대기하고 있었다. 여담으로 드라마에 등장한 기종은 M48A5K였다. 원래 시대적 배경으로 생각하면 M4 셔먼이나 M26 퍼싱 그리고 M46 패튼이 그나마 적절했을 것이다. 심지어 6.25 전쟁 초기에는 국군에 탱크가 단 한대도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고증 오류인 셈. 참고로 작중에서 벌어진 영천 전투는 1950년 8월 ~ 9월 경에 벌어진 전투였으며, M48 패튼의 개발 시작년도는 1950년 12월이며 M48A5K의 개량년도는 김두한이 죽고 난 뒤 한참 지난뒤에 이뤄졌다. 이전 문서에서는 M48A3K로 나와있으나, 작중에서는 사이드스커트가 장착된 사양의 차량들이 등장하였으므로, M48A5K계열이 맞다.
의 화력지원으로 북한군의 공격을 분쇄하고 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며, 이때 기관총 등 여러 무기를 노획한다. 허나 이때 부하들이 자조 섞인 불만을 내비치자 김두한은 우리가 자원한 일이라며 끝까지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말이 끝나자마자 배경이 밤으로 바뀌더니 북한군의 포격이 시작되고 동시에 북한군이 돌격해온다. 이에 수류탄까지 던지며 저항하지만 고지 위로 북한군이 올라오며 백병전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부하들과 학도병들이 북한군들을 하나하나 쓰러트린다.
[image]
허나 전투 종반부에서 동료 문영철이 북한군에게 죽을 위험에 처한 학도병을 구해주려다 북한군 군인 4명의 총검에 찔려 대신 전사한다. 이를 본 김두한은 그들에게 권총을 쏘려 했으나, 탄알이 다 떨어져 주먹과 개머리판으로 영철을 공격한 북한군을 격퇴시킨다.[81] 이때 김영태도 빨갱이라 소리지르며 북한군들을 격퇴시킨다.
새벽녘에 영천 전투가 한국의 승전으로 끝나고 죽어가는 문영철을 끌어안고 오열하며 그의 마지막을 지킨다. 이후 김석원에게 잘 싸웠다는 격려를 듣고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소식과 함께 학도병 부대를 해산하라는 명렁을 받으며 고지에서 하산한다. 이후 전투 지역 근방에 문영철의 무덤을 다른 우미관 간부들과 함께 만들고, 거기에 시신을 묻어주며 마지막으로 그와의 행적을 회상한 후 부산으로 돌아간다.
이후 전쟁으로 젊은이들과 국군이 죽어나가는데도 카바레에서 춤추고 술 마시던 사람들을 보고 부하들과 함께 이들을 조리돌림 시키려 하였다. 실제로도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 후 여러 부산의 카바레를 돌며 보이는 족족 다 때려부수고 파괴한다. 그러나 이게 부산시경에 들어가고 경찰은 계엄군에게 이 사건을 넘기고, 계엄군은 이 사건을 경찰에게 다시 넘기는 책임 떠넘기기를 반복하다 어찌어찌해서 조병옥과 이승만의 귀에까지 들어간다. 하지만 이승만은 그를 체포하기는 커녕 오히려 잘했다 칭찬한다. 다만 폭력은 안된다며 더 이상은 못하게 말려라 지시했다. 그리고 곽영주를 시켜 그를 불렀고 이승만은 그에게 국민방위군을 맡아달라 했으나, 그는 나는 군인이 아니라며 이런 건 군인에게 맡겨야 한다며 거절한다. 만약 맡았으면 그의 목숨은 국민방위군 사건 참조.
전쟁이 끝나기 얼마전 이정재가 곽영주의 빽으로 동대문 상인 연합회를 결성하였고 , 켈로 부대로 입대하는 시라소니를 위해 이정재의 집에서 이화룡, 이정재와 같이 송별회를 했다. 이때 시라소니, 이화룡, 김두한은 대규모 주먹패를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특히 김두한은 권력과 너무 가까히 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훗날 이정재의 부하 김동진의 배신 및 이기붕의 토사구팽을 암시하는 내용인셈.
여담으로 6.25 때 얘기지만 포스타가 원스타한테 다나까 쓰고 원스타가 하오체 쓴다. 다만 김두한은 6.25 전쟁 이전까지는 군대와 인연이 없었고, 전쟁 당시 과거 준군사조직이었던 대한민청 별동대를 이끌었기에 군에 임시 캐스팅된 것이다. 반면 준장인 김석원은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하고 해방 당시 한국군 중 커리어에서는 대좌인 이응준 장군을 제외하면 가장 높았다. 더욱이 그는 대위 시절 중일전쟁 때 1개 국민혁명군 사단을 부하들과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지원군이 온다는 거짓 방송을 국민혁명군 1개 사단 진지에 틀어 기만전술로 국민당군을 쫓아내어 한중일 3국에도 명성을 떨쳤고, 6.25 전쟁 때도 포항 철수작전 등에서 활약하던 사람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군대 무경험자였던 김두한에게 김석원이 반말하는 건 김석원의 군 경력이 비교도 할 수 없이 우월하단 것, 그리고 김두한이 이걸 의식해 예의를 차려준 것. 그냥 김두한에게 계급을 잘못 달아준 거라 생각하면 편하다. 아니면 예의상 달아준 거나 마찬가지. 근데 잘 생각해 보면 군 경력도 없는 사람에게 대장은 정말 아니었다. 더구나 김두한의 부대는 많아야 200 ~ 300명 수준으로 중대나 소규모 대대급 부대이다. 그냥 대위 ~ 소령 정도를 달아줬으면 편할 걸 말이다. 참고로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김두한의 계급은 부사관인 상사였다.
3.3. 6.25 이후
'''소속'''
| '''우미관 → 무소속 국회의원'''
|
[image]
좌익과의 대립이 끝나고 독재로 흘러가는 자유당과 그들의 부하가 된 동대문파의 수장 이정재와 대립하게 된다. 자유당의 부하가 되기 전부터 이정재가 조직을 만들고 상당한 수의 주먹패가 그쪽에 가담했다고 하자 우미관 패들은 은근히 기분 나쁜 기색을 보였다. 김두한이 아무리 스스로를 주먹패가 아니라고 말한다지만 주먹조직을 청년단 별동대로 개편한 것이라 어깨들은 일단 김두한 수하들인 셈이다. 따라서 이들을 누군가가 빼가는 것은 분명히 김두한에 대한 도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김두한 스스로는 더이상 주먹이 아니라 자부하고 이정재를 누구보다 믿고 신뢰하는 친구로 여겨 이를 이상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애국 이딴 거 전혀 모르고 아직 김두한을 오야붕으로 모시는 그의 부하들은 이를 심각한 도전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어쨌든 전쟁이 완전히 끝나고 그 유명한 김두한의 4달라 협상과정에서 약자들의 인권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걸어가며 했던 일련의 행동에 내심 감명받았던 미군은 전쟁물자 처리는 김두한 같이 사심 없는 사람이 처리해야한다며 이를 김두한에게 맡긴다. 김두한은 전쟁 물자를 자기혼자 독차지하여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었으나 이를 서울 각지 조직과 상해 군인 등과 나누는 통큰 결단을 내리며 건중친목회를 조직하여 이권을 최대한 분배하려 노력한다. 여기에는 이제 신흥조직인 동대문도 참여하는데 평소 이정재의 조직확산에 불만히 많았던 김두한 부하의 대표격이 된 신영균과 이정재의 신경전이 벌어진다.
이정재가 김두한과 친구지만 이정재는 원래 김두한 밑에서 일했었고 그 당시 이정재는 신영균과 친구였다. 하지만 이정재가 경찰로 떠나면서[82] 이정재의 경찰 생활도 다 김두한이 봐준 덕택에 하고 있던 것으로 이는 이정재 입으로도 언급한 적이 있다.
주먹도 아니고 친구처럼 지내자고 하여 친구가 된 것이지 막말로 주먹계에서 이력으로 김두한과 대등한 급이 되어 말을 놓게 된 것이 아니다. 즉 이정재는 김두한과 사적으로 친구라지만 여전히 신영균과 친구이고 만약 이정재가 주먹이 된다면 그 레벨은 신영균 급인 것이다. 문영철과 김무옥이 없는 상황에서 신영균은 3인자인데다 애초에 신영균도 오야붕이었으나 김두한 친위대가 되면서 중간보스가 된 상황일 뿐이다. 김두한은 주먹황제이고 그 밑에 오야붕 급을 중간보스를 두고 있을 뿐이라 신영균의 급이 낮아진 것도 아니다. 더욱이 신영균이 오야붕이었을 때 이정재는 장도리를 모시던 오야붕도 아닌 존재였다. 그럼에도 비슷한 연배와 호의로 둘은 친구를 먹었던 것이다.
아무리 이정재가 오야붕이 되었다 하더라도 건중친목회로 모든 조직의 큰형님으로 아우들을 챙기는 입장에 있는 김두한 앞에서는 부하들 앞에서의 자신의 가오따위는 운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가오 운운이 대범하게 넘긴 것이 절대 아니다. 쉽게 말해 나는 김두한과 대등한 위치인데 사적으로 친구이지만 중간보스인 니가 나한테 그러면 내 체면이 뭐가 되냐는 이야기인데 이는 신영균을 무시하고 김두한과 맞먹겠다는 말이 된다. 반대로 지금 이정재는 김두한과의 사적인 친구 위치를 주먹조직에 대입해 최고 오야붕인 김두한에게 맞먹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언급하겠지만 이 마찰은 동대문이 건중친목회에 들어오면서 발생한 일이다. 가오 운운할거면 건중친목회에 오지도 않고 김두한과 아예 독자노선을 걸었다면 그때가서야 해볼까 말까한 이야기를 얻어먹으러 온 입장에서 안면몰수로 꼬장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비록 김두한과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고 현재 자신이 오야붕이니 신영균과는 급이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데 이는 하극상이 분명하다. 게다가 이석재는 자기 오야붕과 동급인 신영균에게 막대하며 시비를 거는 등의 하극상을 이어간다. 이 사건은 동대문이 건중친목회에 참여하는 장소에서 벌어졌던 것으로 잘 쳐줘야 손님인 동대문은 김두한이 양보하여 이권을 나눠주는 자리에서 마치 자신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꼴인 것이다. 오죽하면 나중에 김영태가 김두한 보고 불쌍하다고까지 말한다. 김두한은 좋은 뜻으로 이익을 나눠주지만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자신들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형국이라며 안타까워한다. 김두한은 그래도 자신이 오야붕이었으니 밑에 사람들을 잘 타이르고 이끌어 가야 한다고 대답한다. 이런 김두한이 이석재보고 신영균에게 사과하라고 말하고 신영균이 이정재에게 친구처럼 대하는 것이 잘못 없다고 말하는 것이 소인배짓이나 꼰대짓이 절대 아니다. 윗사람으로 도리를 다하고 함께 잘 살아보자는 자리에서 건방지게 윗사람에게 대든것이 누구인지 찬찬히 생각해보자.
어쨌든 이 장면은 주먹조직의 이야기의 중심이 자유당을 등에 업고 본격적으로 정치깡패로 활약을 하는 이정재가 된다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후 김두한은 건중친목회에서도 한 발 빠져 유진산, 최동열의 조언에 따라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정계로 진출하면서 우미관패는 해산한다. 따라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김영태, 김관철, 삼수, 홍만길, 휘발유, 신영균, 아구, 갈치를 비롯한 부하들과 작별하게 된다. 더이상 국회의원이 조직을 거느리고 단체행동을 해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된 뒤로 무소속으로서 자유당과 싸우지만 자유당의 세력은 만만치 않았고, 오히려 자유당에서 김관철을 이용해 김두한을 협박해 김두한을 자유당에 집어넣어 버린다. 그러나 자유당 내에서 오히려 자유당 중진의원인 장경근을 두들겨 패고, 김영삼 등과 함께 이승만 종신집권제에 야당과 손잡고 훼방을 놓으며, 이기붕을 반대하는 파벌을 만드는 등의 사고를 치자 이에 질려버린 이기붕은 김두한을 당에서 내쫓는다. 그리고 김두한은 이정재가 자유당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해 이정재를 설득했으나 이정재는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김두한과 이정재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나빠지게 된다.
이정재와 사이가 나빠지면서 계속해서 대립하게 되었는데, 국회의사당에서 이정재와 맞짱을 뜨기도 하고[83] 그러나 유지광이 총을 슬쩍 보여주며 협박을 하자 허탈해서 그냥 물러나 버렸다.
2부 네임드 주먹들인 낙화유수, 독사, 권상사등이 포함된 화랑동지회 주먹패 수십 명을 상처없이 혼자 때려 눕히면서 주먹의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그렇게 구차하게 살지 말라고 훈계를 하고 떠났다.[84] 이때 독사가 얻어맞고 나서 김두한이 떠나는 걸 보고 한 말이 '''"살아있어... 아직 이빨이 살아있어...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니라 펄펄 살아있어!"'''
또한 야당 국회의원들의 독재 반대 시위를 자유당에서 경찰들을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자, 홀몸으로 경찰들과 싸워서 대항하기도 했다.
김두한은 국회의원이 되기는 했으나, 그의 멘토인 유진산과 마찬가지로 정치 활동을 하는 데에 돈을 많이 썼기 때문에,[85] 극 후반부의 유진산의 대사를 들어보면, 그 역시 대대로 금산 땅 만석꾼 집안이었으나 정치를 시작하면서 가산을 모조리 처분했다고 한다.
오히려 우미관 시절보다 더 가난한 인생을 살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한때 생사를 함께 했던 부하들도 예전만 못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빚까지 내면서도 그들의 생활고를 해결해주지 못했던 김두한은 더욱 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우미관패 막내 라인이었던 아구, 갈치, 휘발유는 스스로 벌어먹고 사는 것조차 불가능해지고 거의 매일같이 김두한에게 돈을 빌리러 올 정도가 되었다.[86] 김두한이 옛날 식구들 챙긴다고 주변에 여기저기 돈을 빌리고 다닌 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심지어 당시 동료 국회의원이던 김영삼에게 돈을 빌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극중 김영태의 언급에 의하면 그나마 학식이 있어 먹고살 수는 있었던 김영태나 시골로 간 신영균, 홍만길, 김관철을 제외한 나머지 우미관 패들은 전부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언급이 나온다. 김두한은 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국회의원 세비를 몇 달치나 가불하고,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몽땅 전당포에 처분했으며,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기까지 해서 밥을 사주고 생활비를 마련해주는 등 애를 썼으나, 결과적으로 이들은 재기하지 못하고 결말에서 자살, 정신병원행 등으로 비참한 모습을 보여준다.
애초에 주먹 밖에 쓸 줄 모르는 이들을 아무 대책도 마련해두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당선됐다고 무책임하게 그냥 무일푼으로 다들 해산시켰으니, 배운 것도 없고 사업 수완도 없는 하위 조직원들 대부분의 삶이 평탄치 않으리라는 점은 당연한 결과였다.[87] 후술되었듯 본래는 자활개척단을 만들어 조직원들 챙겨 줄 생각을 했다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대책 없이 해산시킨 것과 다를 바 없다.
차라리 조직자금이 넉넉한 편이고[88] 이화룡은 이화룡의 누나가 기업형의 큰 식당을 운영하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다고 한다.
우미관 패거리와 사이도 좋으며, 작중 최고 호인인 이화룡의 명동파나[89] 명동파도 이후 영 좋지 않은 사건이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기존 부하들이 명동파에 합류할 경우 김두한에게도 여러번 조언을 해주었던 김영태역시 명동파에 합류하게 되므로 조금 다른 결말이 있었을 수도 있다. 실제처럼 명동파가 구속된다 해도, 이후 이화룡의 사업에 동조하여 실제처럼 비참한 결말을 맞지는 않을 수도 있다.
, 아니면 지방의 본인 하부 조직들에 적절히 자리를 마련해주든가 그도 아니면 아직 오야붕으로 있을 때 우미관패가 공동으로 크게 할 수 있는 사업이라도 마련해두고 떠나든가 혹은 우미관을 김영태나 신영균 등 남아있는 부하들 중 하나에게 맡기기라도 했다면 그런 비참한 결말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극 중에서 김두한이 간혹 부하들의 근황을 살피는데 어쩐지 삼수의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삼수는 조직 해체 뒤 본인이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처음에는 홍영철이 말하길 아구, 갈치와 함께 돈을 꾸러왔다고 언급, 나중에는 서대문파의 최창수의 밑으로 들어가 그의 오른팔이 됐는데 이정재가 서울 내 전 조직을 통합, 이정재의 활동을 돕게 되면서 사실상 김두한을 배신한 꼴이 되었다. 근데 어떻게 보면 다른 부하들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김두한이 조직 해체 뒤 적절한 대책을 줬다면 삼수가 배신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김두한 본인도 부하들의 생계 문제를 처음부터 어느 정도는 생각을 했었는지 몰락한 휘발유와 만난 후 국회의원이 된 뒤 옛 식구들 밥이나 굶지 않게 자활개척단[90] 1960년대 실존했던 조직이다. 정부 산하에 총 7개가 있었으며 자활개척단장으로 유명했던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김춘삼이다. 그럭저럭 성과를 거둔 곳도 있지만, 막장을 달린 곳이 많았으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로 악명 높은 서산개척단이 자활개척단의 후신이다.
이라도 하나 만들려 했는데 잘 안 되었다고 언급하며, 이후에도 조직 해체하기 전 생계를 마련해 주었어야 한다고 자책을 하지만 너무 늦은 후회였다.
그러던 중 정, 부통령 선거철이 오자, 마침 산에서 내려온 시라소니에게 '그 힘을 나라를 위해 쓰자'라고 제의해 그를 야당 대표 신익희의 경호원으로 세운다. 하지만 시라소니를 경호원으로 세운 보람도 없이, 신익희는 병으로 급사한다. 시라소니는 급사한 신익희 대신 부통령 후보 장면의 경호를 서게 되고, 장면은 우여곡절 끝에 부통령에 당선된다. 그리고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종로구에 출마해 재선을 노려보았지만, 이전만큼 반응이 좋지 않았고 결국 낙선한다.[91] 웃기는 사실은 상대 후보였던 한근조는 바로 유진산과 조병옥이 속한 민주당이었다는 사실이다. 유진산이 김두한을 달래는 신이 나오는데, 민주당의 당원이 민주당의 다른 당원에게 깨진 김두한에게 위로를 하는 셈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와중에 대선 후보로 나선 조병옥도 선거 기간 중 위암으로 사망하며 김두한에게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결국 이정재가 국회의원 선거구 문제로 자유당과 마찰을 일으켜서 사이가 틀어지게 되고, 때마침 부정선거와 고대생 습격 사건 등의 일이 쌓이며 4.19 혁명이 발발, 결국 역사대로 이승만은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며, 자유당은 몰락하고 그 측근들은 비참한 결말을 맞는다. 이후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으로 세상이 바뀌면서, 자유당에 부역했던 인물들이 다시 재판에 끌려오고, 그 과정에서 이정재와 임화수, 유지광 등 동대문파 핵심인물들이 사형 선고를 받고 조리돌림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조리돌림 당하는 것을 안타깝게 쳐다보다가 이정재와 시선이 마주치자 끝내 "이런 건 아니야!"[92] 아마도 이정재를 비롯한 과거 주먹들의 비참한 말로를 보고는 충격을 받아 나온 말인 듯 하다.
라는 말을 연발하며 절규한다. 그 후, 그들의 사형 소식[93] 유지광은 예외로 사형을 당하지 않고 특별 사면을 받아서 무기징역으로 형이 감형되었다.
을 듣고 시라소니, 이화룡과 함께 술자리에서 이정재가 흑화하기 전에 말리지 못한 게 후회된다며, 이정재가 자신에게 덤볐을 때 박살을 내서라도 손을 떼게 만들었어야 했다고 한탄한다. 국회에서 이정재와 마찰이 있을때 이정재보고 역사라는 이름 앞에 더 크게 깨져야한다며 말한 적이 있으나 김두한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한 상상 이상의 결말에 충격과 안타까움이 겹친 말이다.
3.4. 5.16 이후 행적과 말년
5.16으로 박정희가 실권을 잡은 이후 아버지 김좌진의 건국훈장 수여식장에서 만난 김종필의 권유로 다시 청년 단체를 만들어 정계에 진출하려고 했으나 좌절된다. 당시 김종필은 4대 의혹 사건에 휘말려 정치적 입지가 불안한 상황이었다. 사실 이 청년단체 일은 김두한을 따르던 일부 청년들이나 유진산, 최동열 등 극 중에서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처음부터 참여하지 말거나 그만 둘 것을 권했다. 경쟁상대였던 이정재가 비슷한 루트를 타고 몰락과 최후를 본 김두한이 결국 자신도 비슷한 루트를 타려고 하는것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 한 일이다. 이 때 주변인물로부터 반대적인 입장을 들은 김두한이 상황을 김영태에게 털어놓지만 평소 같았으면 한번 더 고민해보고 진지하게 생각해봤을 그도 깊게 생각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두한이 이 일이 좌절된 것을 알게 된 것도 시골로 낙향한 최동열의 도예공방으로 걸려온 김종필의 전화 덕이었다.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세 차례나 내리 낙선하면서 실의에 빠졌다가, 한때 그가 도왔던 고학생 중 한 명이었던 이찬오의 권유로 한국독립당#s-6에 입당해 용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 하지만 김종필과 가까이 지내던 김두한을 고깝게 보고 있던 정부에 의해 끌려와서 빨갱이라는 애먼 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하다가 풀려난다.
[image]
그러다가 사카린 밀수 사건을 보고 분노한 김두한은 국회에서 정일권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요인들에게 오물을 투척해 응징을 가하고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하고 감옥에 갇힌다.[94] 1화 에서는 이 장면 지나고 나면 어릴적으로 회상하면서 극이 시작지만 마지막회 에서는 감옥에서 생활한지 몇년이나 지나버린다. 이 때, 건강상태가 안좋아져서 죽음을 맞게 되는건 덤.
이 국회 오물 투척 사건 이후 감옥에서 고혈압과 심근경색으로 인한 병보석으로 출소하고, 박정희를 찾아가 다시는 정계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경제적 지원을 약속받았다.[95] 하지만 실제로 김두한은 이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원시에 한 번 더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에 박정희는 김현옥 서울특별시장을 통해 정릉유원지 개발사업권을 넘겨주지만, 사업에 문외한이던 김두한은 사기꾼들에게 걸려 사업권을 전부 털렸고, 다시 광산업에도 손을 댔으나 그마저도 실패하면서 여관을 전전하는 처지가 된다. 김영태마저 미국으로 떠난 탓에 김두한의 곁에는 함께 지낸 우미관패 식구가 아무도 없게 되었다. 그나마 김영태가 떠나기 전 소개해준 충청도 주먹패 보스 조일환이 김두한의 곁을 지켰고, 김두한은 조일환을 데리고 다니며 진짜 협객이란 어떤 것인지 가르쳐준다.[96] 이때 김두한의 병색이 짙어진 탓에 죽기 직전에 후계자에게 인수인계하는 느낌이 든다. 조일환은 첫 등장 때부터 김영태와 함께 사무실에 들어오거나 시장 상인들의 열혈한 환영을 받는 등 청년 시절 김두한과 비슷한 연출을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병세가 깊어진 김두한은 조일환과 함께 어느 절을 찾아가 불공을 드리며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97] 배우의 또 다른 대표 배역이 연상되는 묘한 장면이다. 태조 왕건에서 궁예는 석가모니를 자신의 자리를 훔친 도적이라 칭했었다.
이때 청산리 전투와 아버지의 얼굴,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죽음, 노름꾼 외삼촌, 쌍칼과 하야시, 김무옥, 문영철과의 첫 만남, 한평생 최대의 산이었던 구마적, 자신을 사랑한 세 여인, 시바루와 마루오까, 장충단 공원의 결투, 조선의 광복, 두 죽마고우와 두 심복의 죽음, 시라소니, 이정재의 죽음, 임화수, 그리고 국회 오물 투척 사건까지, 지금까지 김두한이 걸어온 삶의 발자취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번개의 죽음은 어째서인지 없다. 그리고 김두한은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한다, 자신들은 깡패가 아닌 독립열사였다고 말하기 위해서.
'''자비로운 부처님, 아무래도 이제 갈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모든 것이 안타깝고 섭섭하기만 합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너무도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그게 다 애국을 하느라고 그렇게 됐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용서해주십시오... 나 때문에 상처받고 다친 사람들 많을 것입니다. 다, 용서해주십시오... 불쌍한 내 옛 부하들 다 좀 살펴주십시오. 이미 죽은 사람이거나 살아있는 사람이거나 다, 다 살펴주십시오. 평생 고생만 해온 내 가족들, 한 번, 한 번 더 살펴주십시오...'''
'''과거 회상을 하며 남긴 실질적인 유언.'''
'''1972년 11월 21일, 김두한은 오랜 지병이었던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향년 55세였고, 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또 한번의 정권 연장을 위해 유신헌법을 통과한지 한 달만이었다. 많은 인파가 몰린 그의 장례행렬에는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도 그 뒤를 잇고있었다. 백야 김좌진 장군의 국가유공자 연금 전액을 매달 삼애 고아원이라는 곳에 기탁한 이유였다. 김두한. 그는 일제 말 우리가 주권을 잃었던 식민지 시절부터 해방 이후 좌우익의 대립에 이어서 자유당 부패정치와 5.16 박정희 정권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생애 온 몸을 다 던져 불의와 싸웠다.'''
'''(최동열 : 난 오랫동안 자네를 지켜봐온 사람일세. 자네는 자네답게 살았어. 조선의 주먹황제답게 말이야. 늘 야인이였지만 용감하고 멋있게 살았어. 나름대로 자네의 역사를 가지고 자네의 시대를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다는 의미야. 뭐랄까..? 야인시대라고나 할까?)'''
'''야인시대! 그렇다. 그것은 바로 그가 몸바쳐 살아왔던 이 나라 격동기의 또다른 역사의 한 장이었다.'''
'''극중 나레이션의 마지막 대사'''.
[image]
결국 1972년 11월 21일, 조일환과 헤어진 직후, 김두한은 오랜 지병인 고혈압으로 거리에서 쓰러져 회한에 찬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이 때 쓰러지면서 길가에 놓인 손수레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는데, 참으로 불운했던 운명의 수레바퀴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배경음악으로 ‘전설의 영웅’ 낮은음 버전이 깔리며 비장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 50회 말미에서 2부 등장인물들을 소개할 때 나왔던 힘찬 분위기의 높은음 버전과는 대비되는 구조이다. 실제로는 1972년 11월 18일 서울 센추럴호텔 객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21일 성북구 정릉동에 있던 자택에서 운명했다.
한평생을 나름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인물치고는 비참한 최후였고, 드라마판에서는 김두한의 기존 우미관 패거리는 김영태와 홍영철을 제외하면 알콜중독, 자살, 생활고 등등으로 말로가 비참하다. 물론 이건 드라마판에서의 이야기고, 실제 역사에서는 집이 나름 은수저였던 신영균은 숨겨온 병 따윈 없이 건강했고, 김관철과 홍만길, 휘발유도 별다른 병 없이 사업을 하였다.[98] 이들은 모두 1987년 경향신문에서 대한민청에 대한 연재기사를 냈을 때 김두한의 우미관 식구들 함께 근황이 공개되었고, 이로부터 멀지 않은 시점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래도 조폭 드라마다 보니 일부러 끝을 비참하게 낸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실존인물 김두한의 말년도 드라마와 비슷하게 끝났다.
김두한의 장례식에는 김두한의 비서였던 정대발을 비롯해서 조일환, 시라소니, 이화룡, 최동열, 유진산, 휘발유 등과 한 무리의 어린 아이들[99] 김좌진 장군의 국가유공자 연금을 이 아이들이 있던 고아원에 전액 기부했던 인연 덕분이라고 한다.
이 참석했다. 이 장례 행렬을 따라가던 최동열이 "자네는 자네답게 당당하고 멋지게 살았다. 그리고 '''이 시대가 바로 야인시대였다고나 할까"'''라고 회고 하고, 김두한의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장면을 끝으로 마지막회인 124화가 끝난다.
여기서 불멸의 크리넥스스런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을 자세히 보면 멀리 아파트가 보인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아예 이상할 건 없는 게, 김두한이 사망한 년도는 1972년이었다. 그런데 사실상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라고 할 수 있는, 다시 말해서 우리가 흔히 아파트 하면 떠올려지는 최초의 아파트는 마포아파트였다. 마포아파트는 1962년도에 건축이 완료됐다. 그 뒤로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을 넘어 차차 아파트가 건축됐으니... 굳이 따지고 보면 아파트가 멀리 좀 보이더라도 시대 배경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는 맞다는 얘기.[100] 드라마적 허용으로 보면 미래로 나아가는 한국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건지도 모른다.
야인시대 촬영장은 현재의 부천 상동신도시와 인천 삼산동 경계에 있었다. 위치는 상동, 정문에서 길 건너면 삼산동이다. 7호선 삼산체육관역 부근. 그러나 현재 촬영세트는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해 헐려 없어졌고, 세트가 있던 장소는 캠핑장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방영 당시 야인시대 출연진들이 인천시선관위의 주도로 대통령 선거를 홍보했다.
나오는 장의차는 페퍼포그로 보인다.
3.6. 이야깃거리
청년기(20대 후반까지)의 김두한이 독불장군형으로 딱 주먹패 두목 할 정도의 리더쉽이었던 것처럼, 장년기 김두한 역시 막나가는 성격과 정세 판단에 어두운 모습을 자주 보였다. 특히 큰 돈줄이 될 수 있었던 건중친목회를 부하들에게 맡기지 않고, 다른 조폭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 큰 패착이었다. 정작 우미관 패거리들은 건중친목회의 득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101] 김관철이 우미관 패거리에게 돈을 보내준다는 언급이 있긴 했지만 그 돈도 김두한의 선거 유세에 모조리 소모했다.
, 김두한의 국회의원 당선 직후 조직이 해체되자 대부분 힘겨운 삶을 살게된다. 게다가 다 같이 힘든 시기를 넘겨보자는 김두한의 이상과는 달리, 건중친목회의 주먹패들은 이권문제로 수 많은 갈등과 물의를 일으켰다. 주먹패들이 모이기만 해도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다들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일을 이런식으로 처리했다는 점에서 김두한이 지나치게 순진했음을 알 수 있다. 해방기의 혼란한 시대와 전쟁통의 난리에 먹히던 4달러 정신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행동이 되었음에도 결국 그 자신과 부하들의 신세까지 모두 망쳐버린 셈이었다.
청년 김두한과 비교했을때, 욕설과 막말이 상당히 많아진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캐릭터 차이 때문일 수도 있는데, 처음 주먹패에 입문할 때만 해도 김두한은 다소 숙맥인 미청년이었고, 오야붕이 된 이후에도 정의감 넘치는 열혈 청년으로 묘사되었기에, 안재모가 연기한 김두한이 장년 김두한 처럼 '병신을 만들어주겠다', '개소리 집어쳐', '똥구데기들아!"같은 심한 욕설을 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김영철의 김두한은 이미 산전 수전 다 겪은 베테랑 주먹이며 거대조직의 보스인 만큼, 이전보다는 욕설과 막말이 좀더 자연스러워졌다.
청년시절에 비해 중년시절은 다소 안좋은 방향으로 캐릭터의 변화가 일어났는데, 뻔뻔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중년 김두한은 일제강점기 때 자신의 행적을 '일제와 맞서 싸웠다'로 포장한다. 물론 청년 김두한도 자신을 거리의 독립군으로 여겼으니 그 것의 연장선상이겠지만, 근로보급대 건에 대해 자아비판이라도 했던 청년 김두한과 달리 중년 김두한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을 '어느 누구보다도 독립운동을 생각한 인물'로 내세운다(국회의원 후보 연설이 대표적). 게다가 청년 시절에는 정진영으로부터 아편에 대해 어느정도 듣고 나서는 아편은 나쁜 것이니 태워버리자고 했지만 중년 때는 오히려 이 아편을 돈벌이에 활용할 생각만 했으니 얼마나 생각이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은근히 노회한 면도 보이는데, 장충단 공원 습격사건 당시에도 대응하지 않고 얻어맞게 시켜서 오히려 동대문사단과 자유당에 대한 이미지를 악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덕분에 작중 조병옥이나 유진산 등에게 지략으로 칭찬을 받기까지 한다.
사망하기 전, 절에서 회상을 하는 씬에선 김두한 인생의 주요 사건들(장충단 공원 전투, 광복, 6.25 전쟁 등) 및 가족들, 과거 주먹패 동료 및 친구들(쌍칼, 김무옥, 문영철, 정진영, 개코, 시라소니)과, 라이벌(구마적, 하야시, 시바루, 마루오까, 이정재), 옛 연인들이 (설향, 박인애, 나미꼬, 애기보살) 한번씩 얼굴을 비춘다. 그런데 김두한의 인생에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간에 큰 영향을 주었던 원노인, 유태권, 미와 경부는 등장하지 않았고, 또한 김두한 때문에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던 부하 번개, 김두한이 주먹패에 들게하는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부하 털보 역시 등장하지 않았다. 또한 이런저런 인연이 있었으 뿐더러, 6.25 전쟁 때는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던 이화룡 역시 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짧은 악연이었던 외삼촌과, 그리고 직접 대면한 적도 거의 없었던 임화수가 회상 씬에 나왔다.
좀 황당한 점은 중년 김두한 역의 김영철은 1953년 생으로 같은 드라마에서 김좌진 역의 최동준의 1959년 생보다 6살이나 나이가 많은 것이다. 최동준은 조병옥 역의 김학철과 나이가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김좌진이 사망했을 때는 만 40세에 불과했으며, 어린 시절 김두한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는 당연히 30대였을 것이다. 김두한은 이보다 만 54세에 죽었으니 그가 중년이 된 이후 기준이라면 당연히 김좌진보다 나이가 많아야 한다. 사실 황당한 점은 해방 직후에 만 27세 청년이었던(...) 김두한 시절부터 김영철이 맡았은 것. 편의상은 청년기/중년기로 갈리지만 청년기는 만 나이 기준 18~27세까지 10년이 채 안되는 시절인 반면에 중년기는 27~54세부터 무려 27년을 다루기 때문에 20대 청년부터 50대 중년까지 만 49세였던 김영철이 혼자 커버한 것이다. 이는 사극의 고질적인 문제점이긴 하지만, 그나마 수염이라도 붙히는 사극과 달리 여기선 외모 변화가 전혀 없다.
정치깡패 미화가 많은 드라마 특성상, 작중 김두한에 대한 미화가 굉장히 많다. 김두한의 모든 행적 및 비판받을 부분들을 모두 '국가를 위한 필요악',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투사' 등으로 포장한다. 김두한이 저지른 명백한 범죄(대표적 예시: 김관철 살인미수)도 권력자가 억지로 죄를 만드는 식으로 묘사된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에도 그저 자유당의 독재에 맞서는 민주투사로만 묘사될 뿐, 사람을 폭행하는 등 이런저런 사고를 쳤던 그의 깡패같았던 행적에 대해선 묘사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