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사례

 


1. 개요
2. 상세
2.1. 한국사
2.1.1. 상고시대 및 삼국시대
2.1.4. 근현대사
2.1.4.1. 대한민국
2.1.4.2. 북한
2.2. 동아시아/동남아시아
2.2.1. 중국
2.2.2. 일본
2.2.3. 베트남
2.2.4. 태국
2.2.5. 캄보디아
2.2.6. 미얀마
2.3. 서아시아(중동 중 아시아 지역)
2.3.1. 터키
2.4. 아프리카
2.5. 스페인-중남미
2.6. 그리스
2.7. 독일
2.8. 러시아
2.9. 미국
2.10. 프랑스


1. 개요


쿠데타의 사례들을 정리한 문서.

2. 상세



2.1. 한국사



2.1.1. 상고시대 및 삼국시대


  • 백제
    • 고이왕이 종손자인 사반왕을 폐위하고 즉위함
    • 계왕의 석연찮은 재위 기간과 죽음 : 단 2년 만에 승하했다. 여기에서 부여구 근초고왕을 비롯한 초고왕/비류왕 계열 왕족들이 고이왕계 왕족이었던 계왕을 시해하고 근초고왕을 왕위에 추대한 것이 아니냐는 가설이 있는데, 확실치는 않다. 심지어 계왕은 백제의 계보를 늘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가상인물이라는 가설도 존재한다. 여하간 이로써 고이왕 - 책계왕 - 분서왕 - 계왕으로 이어지는 고이왕계는 완전히 몰락해 버린다.
    • 숙부 진사왕이 사냥 나간 것을 틈타 아신왕왜#s-2의 지원을 받아 왕위를 찬탈 : 삼국사기에서는 그냥 진사왕이 사냥 중 행궁에서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일본서기에는 이 상황이 나름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런 정황을 보았을 때, 아신왕의 쿠데타에 왜#s-2가 적극 지원한 듯하다.
    • 아신왕 사후 전지왕일본에서 귀국하기 전 섭정으로서 국사를 대리하던 부여훈해를 암살하고 왕을 칭한 부여설례의 사례
    • 예식진의 의자왕 배신 :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하자 의자왕은 웅진성으로 피신을 해서 결전을 준비하였으나 웅진성을 기반으로 두고 있던 예식(=예식진과 동일 인물로 추정)이 쿠데타를 일으켜 의자왕을 체포해서 나당연합군에게 바쳤다. 예식진은 주군을 팔아먹은 대가로 당나라에서 좌위위대장군의 벼슬 자리까지 얻었다. 그의 손자 예인수는 묘지명에다 대놓고 자신의 조부인 예식진이 의자왕을 당 고종에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신을 신임한 주군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국가까지 멸망당하게 만들었던 매국적 쿠데타라고 할 수 있겠다.

2.1.2. 후삼국고려




2.1.3. 조선


조선 초기에는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주동자였던 대왕이 한 분 있었다'''. 정작 본인은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지만.[1]
  • 무인정사
  • 2차 왕자의 난
  • 조사의의 난 : 무인정사로 실권을 빼앗기고 상왕으로 물러난 태조가 왕위를 되찾기 위해 벌인 역쿠데타.
  • 계유정난
  • 중종반정
  • 기묘사화 : 중종의 친위 쿠데타.
  • 인조반정
  • 이괄의 난
  • 임오군란 : 시작은 군졸들의 봉기였지만, 군란 세력이 흥선대원군을 포섭하여 대원군도 이에 응했기 때문에 후반에는 쿠데타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리고 임오군란의 경우에는 부패한 민씨 일족들 특히 선혜청 당상으로 있었던 민겸호가 군졸들 봉급(쌀을 봉급으로 받음)에다 모래와 겨를 섞어주는 군납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에 군졸들이 분노해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쿠데타들은 정권 탈취를 목적으로 쿠데타를 계획적으로 실행한 반면, 임오군란 같은 경우는 우발적인 행위에서 시작한 것이다. 사실 민겸호나 조선 조정이 봉급만 제대로 줬거나 군인들을 잘 달래기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쿠데타였다.
  • 갑신정변
  • 을미사변 : 일본이 주도하고 흥선대원군과 친일 개화파가 관련한 쿠데타.
  • 춘생문 사건
  • 아관파천 : 고종이 왕권 회복을 위해 친일 개화파 내각을 붕괴시킨 역쿠데타적인 요소가 큰 사건이다.

2.1.4. 근현대사



2.1.4.1. 대한민국

현대 한국사에서는 박정희,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인물들이다. 이승만의 경우에는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갈아 엎는 것이 아닌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2]
  • 1952년 발췌개헌(부산 정치파동) : 1952년 1월 18일 실시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에 대한 표결은 찬성 14, 반대 143, 기권 1표로 부결되었고, 이승만은 국회 내에서 자신의 지지세력이 미약함을 깨닫게 되었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정부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에 맞서 내각 책임제 개헌안을 제출하였고, 반 이승만 성향 의원들이 다수였던 국회 의석 구조로 인해 내각 책임제 개헌안이 통과될 확률이 높았다. 결국 이승만은 정치 깡패들을 동원하여 국회 해산에 대한 여론을 부추기고, 이후 1952년 5월 26일에 개헌에 반대하던 야당 국회의원 50여 명이 탄 통근버스를 헌병대를 동원하여 강제 연행하는 최악의 만행을 저질렀으며, 10명의 국회의원들을 국제 공산당에 관련이 있다는 혐의로 구속하였다. 이에 국회에서 구속 의원 석방과 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나, 이승만 정부는 이를 묵살하였다는 점에서 정권을 위한 친위 쿠데타이다.
  • 1954년 에버레디 플랜 : 한국 군대가 아닌, 미국 정부가 꾸민 쿠데타 계획. 반공포로 석방 문제 등으로 인해서 이승만이 미국 정부와 사이가 나빠지자, 미국 정부에서 한국 군대를 사주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이승만을 몰아내고 한국군 장성이 한국 정부의 수반이 되는 일종의 군사 정권 수립 계획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에버레디('언제나 준비'라는 뜻) 계획이었다. 놀랍게도 이 에버레디 계획으로 한국 정부의 수반이 되는 한국군 장성은 백선엽이었다. 이 사실에 대해 백선엽 본인이 미리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다만, 이 에버레디 계획은 이승만을 몰아낼 경우, 야기되는 한국의 정치적 혼란을 우려하여 끝내 실행되지는 않았다.[3]
  • 1961년 5.16 군사정변
  • 1972년 10월 유신 : 정권 연장을 위한 친위 쿠데타.
  • 1973년 윤필용 사건
  • 1979년 10.26 사건
  • 1979~80년 12.12 군사반란5.17 내란 : 시작부터 완료까지 6개월이나 걸린, 세계 각국의 쿠데타 중 가장 긴 쿠데타란 타이틀을 얻었다. 여담으로 이 쿠데타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란 희대의 개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2.1.4.2. 북한


2.2. 동아시아/동남아시아



2.2.1. 중국



2.2.1.1. 춘추전국시대

  • 사구정변 : 조나라의 사구정변과 진나라의 사구정변 모두 쿠데타 적인 면이 있다.

2.2.1.2. 후한 ~ 삼국시대


2.2.1.3. 당


2.2.1.4. 명


2.2.1.5. 중화민국


2.2.2. 일본


근대 일본에서 군국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쿠데타였다. 물론 그 이전의 봉건 사회에서도 쿠데타는 왕왕 있었으나, 현대적인 쿠데타는 아래의 사건들로 더 유명하다. 다만, 일본의 쿠데타는 천황제를 비롯한 지배 체제의 완전한 전복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국가 정책이나 이념의 수정을 목표로 하는 제한적인 형태의 것들이라는 의미가 있다.

2.2.3. 베트남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에선 1963년 ~ 1967년 사이에 5차례의 쿠데타가 있었고, 1960년에도 쿠데타가 있었으나 진압되었다. 혼란기의 4년 동안은 군사혁명위원회, 임시지도위원회, 국가지도위원회라는 군정 기구가 설치되어 군정 기구 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아래는 확인된 쿠데타 및 미수 기록.
  • 1960년 11월 11일 쿠데타 미수 → 1963년 11월 1일 쿠데타[4]1964년 1월 30일 쿠데타[5] → 1964년 9월 13일 쿠데타 미수 → 1964년 12월 19일 쿠데타 → 1965년 2월 19일 쿠데타
베트남 전쟁 시기에 계속 쿠데타가 일어났기 때문에 베트남 공화국은 그만큼 정국이 혼란스러웠다.

2.2.4. 태국


태국의 경우 '''툭하면 벌어지는 게 군사 쿠데타다.'''
태국의 쿠데타는 쿠데타 지휘관들이 국왕 앞에서 무릎 꿇고 질질 짜면서 "죄송합니다 폐하!" 하면 국왕이 등을 다독이며 "내가 니 맘 다 알아 임마."라고 한다. 쿠데타가 벌어져도 그 대상에서 국왕은 완전히 배제되고 쿠데타군이든 정부군이든 국왕에게 절대 충성하는 특이한 경우이다. [6] 태국의 국왕은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존경을 받고 있기 때문에[7] 국왕을 무시했다가는 민중 혁명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 수반들이나 쿠데타를 일으키는 장군들도 결국은 태국 국민인만큼, 무의식 중에 배였을 충성심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태국의 쿠데타는 국왕의 조종으로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태국도 헌법상으로 입헌군주제지만, 워낙 국왕의 권위가 세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민간정부는 국왕이 저런 식으로 해산한다고 한다. 탁신 총리의 정부를 뒤집은 쿠데타가 이런 경우인데, 태국 국왕은 권력을 늘리는 탁신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탁신의 부패혐의를 이유로 군부에 쿠데타를 사주했다고 한다. 반대로 1991년 수친다 장군이 일으킨 쿠데타의 경우에는 국왕이 처음에는 묵인하여 수친다는 총리로 취임하였으나 1992년 청백리로 이름높은 잠롱 방콕 시장이 주도하는 시민 봉기가 일어나 유혈사태가 벌어지자 국왕이 수친다와 잠롱을 어전으로 불러 수친다를 힐책하였고, 수친다는 총리직을 사임하고 해외 망명을 떠났다. 2014년에도 탁신 총리의 여동생인 잉랏 총리에 대항해서 쁘라윳 짠오차 육참총장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탁신 때와 마찬가지로 국왕의 승인을 받아 찬오차 장군이 총리직을 꿰찼다.
하지만 위 상황은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재위시기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푸미폰 국왕의 신성화는 태국의 전통적 성격 + 태국 근대 역사의 상징성[8] + 상좌부 불교 + 미국의 지원 + 푸미폰 국왕의 정치력이라는 복합적 형태로 완성된 것이다. 현 왕 마하 와찌랄롱꼰에게는 그만한 권위가 없다. 워낙 사고를 많이 쳐서 오래전부터 주요 지도부는 왕자 반대 운동을 벌였다.[9]

2.2.5. 캄보디아


캄보디아 총리 훈센이 1997년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지금도 절대 권력의 총리로 있다. 국왕이나 종교 지도자들, 군부도 훈센의 눈치를 보고 있는 지경. 2018년엔 장남 훈 마넷에게 권력을 물려줄거란 보도가 나왔다. # 사실상 캄보디아판 최충헌 또는 일본 막부.

2.2.6. 미얀마


  • 2021년 미얀마 쿠데타: 독립 직후부터 폭압적인 군사정권이 지배하고 있다가 민주화세력 지도자 아웅산 수지가 군부와의 타협을 통해 민간정권을 출범시켰고 2021년 1월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 세력이 승리하자, 경제난과 로힝야족 사태로 인한 국제적 비난 등의 악재를 핑계로 2021년 1월 31일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차지했다.#

2.3. 서아시아(중동 중 아시아 지역)


중동 역시 아프리카나 중남미에 비해 덜할 뿐이지 쿠데타가 만만치 않게 일어났었다. 대표적으로 이라크, 시리아, 예멘, 오만, 카타르, 이란 등.... 심지어 구약성경에는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이 아버지에 대항한 쿠데타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다.

2.3.1. 터키


터키의 경우, 쿠데타는 일어나는데, 정권은 맨날 민간에 이양하는 좀 이상한 경우다. 즉, 터키군은 쿠데타를 일으키더라도 '''직접 권력을 잡지 않는다는 얘기'''. 덕분에 터키에서는 쿠데타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단, 군인이 직접 정치에 입문하는 일은 (심지어 군인이 멀쩡하게 전역해서 정상적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경우에도) 금기시되며, 대중의 지지도 얻지 못한다. 터키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이유는 군대 자체가 케말 아타튀르크 시대부터 국가원리가 된 '''세속주의'''와 '서구화 정책'의 강력한 지지세력이기 때문이다. 즉, 보수적 이슬람 세력이 정권을 잡고 세속주의를 후퇴시키려고 하면 쿠데타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쪽도 스페인, 중남미와 같이 정부가 친이슬람 성향으로 가려 하면, 공동성명을 열어 "니들 자꾸 그러면 정부 뒤집는다?" 라고 경고를 하고, 그래도 정부가 듣지 않으면 쿠데타를 일으켜 뒤집는 경우이다. 단 2016년 쿠데타는 기존의 전통(?)과 달리 아무 말도 없이 쿠데타가 발생했기 때문에, 그리고 과정 및 결과가 에르도안에게 너무나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주작설이 돌고 있다.
이러한 터키군의 세속주의에 대한 고수는 오스만 제국 후기, 제조업과 군대 운용 방식의 후진성(당시 근대화 정책의 반대 세력은 보수적 이슬람 법학자(=울라마)집단을 중심으로 모이고 있었다)으로 인하여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의 열강들에게 심심하면 털리던 터키의 쓰라린 기억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이 오스만 제국 시대의 예니체리 반란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10]
2000년대 중순 와서 압둘라 귈 총리를 비롯한 이슬람계 정당의 약진에 터키 군부는 고민중이다. 1960년, 1971년, 1983년, 1998년까지 그야말로 10년을 주기로 쿠데타를 벌였고 그럴 때마다 국제적으로 까였으며 여러 모로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이 옹호해주었으나 계속되는 쿠데타에 EU 가입 문제와 여러가지로 마찰을 빚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000년대 후반에 와서 이슬람계 정당인 정의개발당에 완전히 정국의 주도권이 넘어갔으며, 이 당 출신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그동안 군부의 눈치를 보던 관행을 탈피하여 "정치군인"들을 주도적으로 해임하고, 쿠데타 모의를 적발했다며 '''터키군 총사령관''' 등을 체포하여 '''종신형'''에 처하는 강수를 두었는데도 군부는 꼼짝도 못했다.# 아마 여기도 민간 정치의 군부에 대한 우위가 확실해지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 결과가 오히려 에르도안의 문민독재로 흘러가서 문제지만. 에르도안이 총리직을 버리고 대통령이 된 이후인 2016년 드디어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에르도안에 역습을 가했으나 오히려 패배하고 말았다. 이번에야말로 에르도안이 군부를 100% 장악하고 길들일 것이라는 전망. 자세한 내용은 2016년 터키 쿠데타 미수 사건 참고.

2.4. 아프리카


'''아프리카엔 이런 식으로 권력을 잡은 이들이 많다. 아니, 사실 거의 대부분이라 봐도 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냐, 나미비아, 지부티, 탄자니아, 말라위, 앙골라, 모잠비크, 세네갈, 보츠와나, 잠비아, 모로코 등처럼 쿠데타가 없었던 국가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쿠데타가 매일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일어나는 국가들에서는 허구한날 일어나서 내전까지 벌인다는 특징도 있다.
대표적으로 바로 라이베리아새뮤얼 케니언 도[11]리비아무아마르 카다피, 우간다이디 아민, 콩고민주공화국모부투 세세 세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장 베델 보카사, 소말리아시아드 바레, 에티오피아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등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력으로 집권한 이 자들도 결국에는 무력으로 축출당했거나 반란군들에게 생포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또 하나의 예로 그 유명한 마가렛 대처의 아들인 마크 대처적도기니 쿠데타에 가담했다가 실패하고 도망쳤는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체포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SBS 정글의 법칙에는 촬영지였던 마다가스카르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는 바람에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 움직이지도 못한 적도 있었다.
수단가파르 니메이리오마르 알 바시르는 둘 다 쿠데타로 집권했으며 이슬람 원리주의와 군부독재를 혼합한 최악의 독재(...)를 실시 중이었다. 그리고 오마브 알 바시르도 2019년 쿠데타로 축출됐다. 또 모리타니도 잦은 쿠데타로 악명이 높으며, 특히 최근인 2008년에 쿠데타가 다시 발생, 국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
알제리는 1991년에 군부가 이슬람주의 정당들이 집권하면서 종교 근본주의 정치를 하는것에 반발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이슬람주의 정당들을 모두 토벌하고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국가로 만들었다.
이집트무슬림형제단을 몰아내려고 2013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압델 파타 엘 시시 장군이 대통령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집트인들이 격렬히 군부 독재에 반대했으나 탄압 당한 후 현재는 숨 죽이고 사는 상태. 물론 무슬림형제단의 정권도 문제가 많은 정권이었으나 쿠데타는 방법론이 틀렸다.
2020년 말리에서도 쿠데타가 다시 한 번 또 일어났다.

2.5. 스페인-중남미


이 동네에서는 아예 Pronunciamiento라고 하며, 막상 정부를 뒤엎기 전에도 쿠데타 주모자들이 미리 모여서 공개 장소에서 "정부가 이러이러한 이유로 똑바로 기능을 못하고 있으니 국가의 수호자인 군대가 나서서 정권을 갈아 엎겠다!"고 '''쿠데타 선포부터 하고 국가 기관을 장악하려고 하는''' 요상하면서도 '''고유의 정치적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하도 쿠데타가 많이 일어나니까, 스페인어로 군부 지도부를 의미하는 훈타(junta)는 이제 영어에서 쿠데타 지휘부를 일컫는 일반 명사가 되었다.[12]
대표적인 경우가 1868년 이사벨 2세의 정부를 무너뜨린 후안 프림과 프란시스코 세라노 장군의 쿠데타. 20세기 들어서는 이런 전근대 사회 특유의 대중 권력과 기사도에 기반한 쇼맨쉽이 넘치는, 기본적으로 귀족주의적 정서에 기반한 정치적 쇼맨쉽의 약빨이 떨어지기 시작해 1932년 스페인 제2공화국을 상대로 한 호세 산후르호 장군의 쁘로눈씨아멘또는 실패하고, 여기서 한계를 깨달은 우파와 군부는 4년 뒤 오히려 쁘로눈씨아미엔또와 거리가 먼 동시다발적, 기습적 쿠데타를 일으켜 스페인 내전의 서막이 되었다. 이 경우에서는 일반적인 쿠데타를 일으켜 3년간 내전이란 과정을 겪긴 했지만 어쨋든 성공했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배운 교훈은 없었는지 프란시스코 프랑코 사후 군부, 국가 헌병대 내 골수 반동 파시스트 세력이 일으켰던 23-F는 전형적인 쁘로눈씨아미엔또 과정으로 퇴행한 이후 당시 국왕과 반쿠데타 세력의 빠른 뒷수습에 데꿀멍하고 망했다(...).
이웃이자 같은 이베리아 반도의 형제국가 포르투갈도 군부 쿠데타로 군부가 영입한 살라자르나 카에타누 등이 집권해 군부독재를 벌인 바 있다. 하지만 둘 다 1975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군부 개혁파들에 의해 쫓겨나 포르투갈은 민주화된다.
당연히 여기서 많은 걸 배워 간 '''중남미의 경우 쿠데타계에서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1945년부터 15년간 30명이 넘는 지도자들이 쿠데타에 교체되는 충격적인 기록을 남겼다(...).
중남미의 쿠데타는 냉전의 연장으로서 반미성향이 강한 좌파세력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의 CIA가 개입한 경우도 많다. 피노체트가 일으킨 칠레의 1973년 쿠데타는 미국이 사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대에는 온두라스에서 또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이 지역은 결국... 미국에 등을 돌리고 러시아랑 친해지는 반미반서방 좌파 노선을 택했다. 물론 미국 눈치는 여전히 보고 있어 미국을 대놓고 적대하지 않으며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다.
중남미에서 쿠데타가 안 일어난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며, 중미의 코스타리카멕시코 정도이다. 사실 코스타리카는 군대가 없긴 하다. 볼리비아처럼 심한 나라는 지금까지 일어난 쿠데타만 수십 번으로 정상적인 정권이양보다 쿠데타에 의한 정권교체가 더 많을 지경이라고 한다. 사실 볼리비아는 그 유명한 혁명 전문가인 '''체 게바라조차 갔다가 사살당한 곳'''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 멕시코도 산타 안나, 포르피리오 디아스, 우에르타, 알바로 오브레곤 같은 쿠데타 군부 독재 종자들이 멕시코 혁명기를 전후로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그 성격이 단순한 군사독재 뿐만 아니라 민간 세력들도 많았고, 주로 소수 주동자들이 기습적으로 일으키는 쿠데타라기 보다는 좀 더 규모가 크고, 지속된 군사 반란으로서의 성격이 짙어서 그렇지... 그리고 브라질아르헨티나도 군부 쿠데타 이후 독재자들이 등장했었다. 브라질의 경우 제툴리우 바르가스, 아르헨티나는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등이 악명을 떨친 군부 독재자들이다.

2.6. 그리스


20세기 그리스는 쿠데타의 시대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친 동맹 성향인 국왕을 갈아버린 당시 총리 엘렙세리오스 베니젤로스의 쿠데타 이후로 쿠데타는 일종의 전통이 되어서(...) 터키 독립전쟁의 패배 이후 혁명으로 들어선 공화 정부를 1936년 이오아니스 메탁사스 장군이 쿠데타로 뒤집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내전, 왕정 복고로 들어선 정부도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장군이 1968년 쿠데타로 뒤집어 1973년까지 집권한다. 대체로 쿠데타군은 왕정 복고 및 반공을 내세웠으며, 집권 과정 및 내용은 중남미의 쿠데타와 유사한 편이다. 냉전 시기 쿠데타에는 역시 미국의 CIA가 뒤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7. 독일


독일 현대사에 획을 그은 한 차례의 쿠데타 미수 사건과 두 차례의 친위 쿠데타가 있는데,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벌어진 카프 폭동은 보수파 인사들이 신생 바이마르 공화국을 전복하려고 시도했던 쿠데타 미수 사건이고, 프로이센 쿠데타로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의회의 견제를 무력화하였고, 이는 결국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히틀러가 집권한 후 2인자 에른스트 룀 및 군부의 반 히틀러 장성들을 숙청하기 위해 벌인 장검의 밤이 있다.

2.8. 러시아


소련 시절 공산당 보수파들이 마지막 발악으로 8월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이 쿠데타를 저지했던 보리스 옐친은 자신이 집권한 후 자신을 탄핵하려는 연방의회를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 친위 쿠데타를 통해 제압했다.

2.9. 미국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 현직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무효화시키기 위해 지지자들을 선동해 미국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친위 쿠데타 시도인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이 발생했으나 조기에 진압되며 미수로 끝났다. 하지만 그 후폭풍은 여전하다. 이후 QAnon이 도널드 트럼프의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기 위해 지속적으로 조 바이든 암살시도를 암암리에 계획하고 실행하려고 눈독을 들이고 있다.

2.10. 프랑스


프랑스 혁명 시기의 각 정치세력들의 쿠데타와 나폴레옹 1세의 쿠데타, 나폴레옹 3세의 친위 쿠데타, 이후 알제리 전쟁 와중에 군부 강경파의 쿠데타 시도 등이 있다.
[1] 세종대왕 본인 또한 장남양녕대군을 제치고 삼남으로서 세자에 책봉된 터라 정통성을 의문을 품는 수도 있겠지만, 충녕대군 또한 엄연히 정실(원경왕후)의 소생인 적자(嫡子)이고, 양녕의 폐위와 충녕의 책봉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현직 국왕이 직접 시행한 사안이다. 따라서 정통성 측면에서 문제될 것이 없었기에, 당시나 후대에나 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2] 자세한 건 대한민국 제1공화국 관련 문서(발췌 개헌, 3.15 부정선거, 4.19 혁명) 등을 참고.[3] 이승만 본인은 미국이 에버레디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챈 듯한데, 에버레디 계획이 실행되던 때에 백선엽을 황급히 대만 주재 한국 대사로 발령해서 대만으로 보내버렸다. 군인(무관)인 백선엽을 문관인 대사에 임명해서 그것도 거리가 먼 대만으로 서둘러 보낸 이유는 이승만이 미국의 에버레디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 그 적임자인 백선엽한테서 군사권을 빼앗으려 했기 때문이었다.[4] 당시 대통령이던 응오딘지엠이 암살당했다.[5] 위의 쿠데타를 지휘했던 즈엉반민의 행보에 반감을 가진 미국이 응우옌카인을 지원해 즈엉반민을 실각시킴.[6] 이는 옆나라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5.15, 2.26, 궁성사건 같은 근현대사의 쿠데타에서 덴노는 어디까지나 공격 예외 대상이었다. 심지어 2.26 당시 히로히토에게 쿠데타의 취지를 설명하러 황궁에 들어간 한 장교는 총애하던 각료들이 쿠데타로 죽어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열받아 있던 히로히토가 "감히 어딜 들어오느냐!"며 불같이 화를 내자 사죄하고 밖으로 나가 덴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며 스스로 할복했다고 한다. 1868년 무진전쟁 당시 막부군도 신정부군이 덴노 가문의 깃발인 니시키노미하타(錦旗)를 앞세우자 함부로 덤비지 못하고 도망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7] <옹박: 두번째 미션>으로 국내에 개봉된 <똠양꿍>이라는 영화에서 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평생을 가족처럼 애지중지 키운 코끼리임에도 국왕 폐하께 코끼리를 바칠 심사대회에 나갈 수 있게 되자, 극 중에서 토니 쟈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합장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절대로 과장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태국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존경심에 비추어 보면 모자란 감이 있을 정도.[8] 나라 보존 문제. 다만 이 문제는 운 + 영토 할양 + 일본과의 동맹이라는 복잡한 형태로 완성되었다. 마지막 문제 때문에 태국은 전범 국가가 될 뻔했으나, 냉전 상황이라서 넘어갔다.[9] 탁신이 쿠데타로 밀려난 이유가, 탁신의 부패 문제 때문이라기보다는 왕자를 지지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이 입장에서 보면, 탁신을 몰아낸 쿠데타는 왕의 의도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도 건강상으로 문제가 많았던 푸미폰 국왕과는 아무 상관없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높다. 푸미폰 국왕의 권위가 떨어진 증거는 수완나품 국제공항 점거 중단 명령이 무시당한 것을 포함해서 분명히 존재한다.[10] 오스만 제국 시절 중앙군인 예니체리의 반란은 후기로 갈수록 정권획득을 위한 반동이라기보다는 군의 요구 관철을 위한, 혹은 각 사회계층의 요구를 대리하기 위한 보조수단적인 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실제 반란의 주체가 직접 중앙의 정권을 잡은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으며, 많은 반란이 일방적인 진압이 아닌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종결되었다. 물론 그 후에 정치적으로 보복을 당한 경우도 허다하다.[11] 전두환 시대 때 방한한 적이 있으며, 이때 한국외국어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를 수여하자, 매우 자랑스러워했다는 일화가 있다. 새뮤얼 도는 원래는 군 하사 출신이다. 쿠데타 당시 계급은 상사. [12]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중방"도 일종의 훈타이다. 그리고 5.16 쿠데타 이후에 등장한 국가재건최고회의도 영어권 자료에서는 훈타로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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