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역대 시험

 


1. 개요
2. 제47회 이전
3. 역대 주요 심화시험의 기출경향과 문제
3.1. 2020년
3.1.1. 47회
3.1.2. 48회
3.1.3. 49회
3.1.4. 50회
3.2. 2021년
3.2.1. 51회


1. 개요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초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은 역덕후만의 리그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난도가 높았으나, 5급 공채 지원자격 등에 반영되고 나서 현재는 평이한 난이도로 출제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2. 제47회 이전




3. 역대 주요 심화시험의 기출경향과 문제



3.1. 2020년



3.1.1. 47회


6월 27일 토요일2020년의 두 번째이자 체제 변화 이후 첫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치러졌다. 많은 응시자들은 개정 이후의 난이도가 기존 고급에 비해서 어렵지 않았고, 난이도 높은 중급 시험과 비슷했다고 평했다.[1] 생소한 지문이나 문제는 없었지만 헷갈릴 만한 선지들이 몇 개 있었다. 최태성은 제대로 공부했다면 크게 어렵지만은 않은 수준이라고 평했고, 설민석도 기존 고급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난이도라고 했다. 또한 두 문제를 지문 하나에 묶어서 냈다는 것도 특이 사항이다(47~48번).
합격률은 63.8%로 지난 시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3번(3점): 삼국의 발전과 경쟁을 묻는 문제다. 나제동맹이 체결되는 시점과 근초고왕광개토대왕의 연도 순서를 나열하는 문제인데, 근초고왕이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것이 가장 먼저 오는 선지임은 당연하나 광개토대왕이 먼저인지, 아니면 나제동맹이 먼저인지 알아차리는 것이 관건이었다. 나제동맹은 장수왕 때 비유왕과 눌지 마립간이 맺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 7번: 삼국의 통일 과정을 묻는 문제다. 대야성 함락의자왕 때의 일이며, 계백 장군의 황산벌 전투는 백제를 멸망시킨 사건이다. 의자왕이 대야성을 함락한 이후 김춘추는 나당연합을 결성하였다.
  • 8번(3점): 9주 5소경을 보아 신문왕 때의 통일신라의 통치 제도를 묻는 문제임을 파악할 수 있다. 사정부를 두어 관리를 감찰했다.
  • 13번(3점): 생소한 선지로, 이규보의 『동명왕편』을 알고 있는지 묻고 있다.
  • 20번: 조선 시대에 유학을 가르치기 위해 지방에 세운 교육기관은 향교다. 향교는 중앙에서 교수와 훈도를 파견하였다. 서원과 착각할 수 있지만 중복 선지가 나와서 오답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 33번(3점): 교정청 폐지, 군국기무처 설치, 은본위제 채택=갑오개혁이다. 보기의 과거제 폐지, 연좌제 금지, 공사 노비법 혁파, 과부 재가 허용 외에도 개국기년 사용, 문벌 폐지, 조혼 금지, 조세 금납, 도량형 통일, 경무청 설치 등이 있다. 건양 연호 채택은 을미개혁 때로 헷갈릴수도 있는 문제였다.
  • 35번(3점): 아관파천, 을미개혁, 을미사변의 순서를 알고 있는지 물어보는 문제이다. 보기의 내용에서 충분히 어떤 사건[2]인지 알려주므로 각각의 사건의 순서만 알면 풀 수 있는 문제였다.
  • 39번: 정말 오랜만에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 문제가 등장하였다. 에네켄 농장에 관한 문제는 거의 출제되지 않다가 이번 제47회 시험에서 등장하였다.
  • 43번(1점): 국민 총력 조선 연맹이 애국반 회보를 발행한 것은 1941년에 있었던 일이다. 이후 전개된 일제의 통치 정책은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1941년)이다. 2018년도 제41회 시험에서도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의 연도 문제가 출제된 적 있으므로, 30년대 이후 일제강점기 민족 저항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공부해야 한다.
  • 49번(3점) : 김대중, 김영삼신한민주당을 창당하고 신한민주당이 제1야당이 된 시기에 관한 문제다. 이번 제47회 심화 문제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문제다. 1984년 11월, 3차 정치활동 금지조치가 해제되면서 신당 창당이 시작되었다. 신당 창당은 김영삼, 김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와 이철승 등 구 신민당 인사 및 해금인사, 민주인사 등이 주축이 되었다. 1985년 2월 12일, 제12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신한민주당은 서울 등 5대 도시에서 전원 당선되며 압승을 거뒀다. 군부 독재 청산과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창당한 지 25일밖에 안 되는 신한민주당을 건국 이래 최대의 제1야당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국민들은 정권교체 열망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집회에서 강하게 표출했다. 천만인 서명운동이 진행되었으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은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낸 19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했다. 그러나 국민이 열망했던 정권교체는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현대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였다.

가장 간단히 푸는 방법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여당은 민주공화당(약자로는 공화당)이며 민주정의당은 전두환 집권 이후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면 1, 2, 5번은 자동으로 제외되고 '민정당과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반발'이라는 보기를 볼 때 3번 선택지인 신군부의 집권은 신군부 비상계엄 이후이므로 제외된다. 그러므로 80년대 이후이고 민정당 집권 이후 벌어진 일이어야 하므로 답은 4번이다.

3.1.2. 48회


8월 8일 토요일에 2020년의 세 번째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치러졌다. 제47회 시험보다는 어렵고 생소한 지문 및 선지가 더러 있었지만, 추론과 소거법으로 풀면 답이 대부분 나왔다. 즉, 90점 이상 받기는 힘든 시험이었으나 1급(80점) 이상을 받기는 쉬운 시험이었다. 최태성은 예전의 고급 시험과 비슷한 수준이라 하였다. 어차피 고득점은 무의미한 시험이라 향후 이런 출제 경향을 유지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이 있다.
다만 3급을 노리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시험이었는데, 예전의 고급 시험과 비슷하게 출제한 까닭에 예전의 중급 실력이라면 붙기 어려웠다.
합격률은 61.6%로 지난 시험보다 소폭 하락했다. 특이 사항으로는 부정행위가 지난 시험에 비해 9건 늘어난 20건이 일어났다.#
  • 8번: 외국의 사료를 통해 한국사를 보는 문제다. 일본 나라현 헤이조큐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에 있는 '고려'라는 명칭을 통해 발해고구려 계승 의식을 찾아야 한다. 최근 국내의 사료뿐만 아니라 외국의 사료도 출제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외국 사료도 대충 보아서는 안 된다.
  • 20번: 조선 전기 과학 기술의 발전을 묻는 문제다. 해당 인물은 이순지세종 시기의 과학자다. 이순지가 누구인지 모르더라도 문제에 세종 시기의 인물이라고 나와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다.

여담으로 이 문제에 나온 기념우표2019년 4월 19일에 발행한 한국의 과학 시리즈 우표의 다섯 번째 묶음이다.
  • 27번: 신흥 종교의 성장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양학(洋學)', '하늘을 공경' 등의 표현으로 이 신흥 종교가 동학임을 알 수 있다.
  • 30번: 제44회 시험에 이어 박정양이 단독 문제로 나왔다. 박정양이 초대 주미 공사였다는 사실은 물론 독립협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중추원 관제 개편을 추진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 37번(3점): 한국사 문제임에도 외국인만이 등장하는 문제가 나왔다. ㈎는 호머 헐버트, ㈏는 조지 쇼다. 광혜원을 세운 사람은 호러스 뉴턴 알렌, 이화학당을 세운 사람은 메리 스크랜튼이다. 조지 쇼를 모르더라도 헐버트와 알렌의 업적을 알면 소거법으로 풀 수는 있다. 8번 문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외국과 관련된 자료를 주고 한국사를 묻는 문제가 앞으로도 충분히 나올 수 있으므로 잘 봐 두어야 한다.
  • 39번(3번): 국제연맹 조사단에 「조선독립원」이라는 혈서를 보냈다는 점에서 남자현임을 알아야 한다. 비교적 생소한 인물인데다가 옳은 것을 묻는 문제라 소거법을 쓸 수도 없어서 쉽지 않은 문제였다.
  • 46번: 우리나라 교육 제도의 시대별 변천을 묻는 문제다.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박정희 정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답은 중학교 입시 제도 폐지로, 중학교 입시에서 무즙 파동창칼 파동 등 각종 문제 출제 오류 사건으로 논란이 일자 중학교 입시 제도가 전격 폐지됐다.
  • 50번: 최근 가장 많이 나오는 남북 합의와 관련된 문제로, 노태우 정부의 통일 노력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꾸준히 추진한 결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을 이끌어냈다. 남북 합의와 관련된 문제는 시기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나오고 있으므로 눈여겨 보아야 한다.

여담으로 문제에서 많고 많은 공산권 나라들 가운데 왜 헝가리가 나왔냐면, 공산권에서는 처음으로 헝가리와 수교하면서 북방정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다.

3.1.3. 49회


9월 19일 토요일에 2020년의 네 번째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치러졌다. 지난 제48회 시험보다는 빈출 자료가 많이 나온 편이지만, 생소한 문화재들이 더러 나와 난도를 높였다.
합격률은 57.9%로 지난 시험보다 조금 떨어졌다.#
  • 4번: 답사 계획서 형식의 지역사 문제인데, 특이하게도 뒤에서 설명할 32번 문제와 함께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 한 시험에 두 개가 나왔다. 부소산성과 관북리 유적, 정림사, 나성, 능산리 고분군2015년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가운데 부여군에 있다. 성왕이 천도한 곳이 사비성, 즉 오늘날의 부여군 일대다. 장용영의 외영이 설치된 곳은 수원시, 배중손삼별초를 지휘하였던 근거지는 진도군, 한성근 부대가 서양 세력에 맞서 항전한 장소는 강화도, 남북한 경제 협력 사업으로 공단이 설치된 곳은 개성특별시다.[3]
  • 5번(3점): 최근 들어서 자주 나오는 가야 관련 문제로,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김구해의 항복을 받은 왕은 신라법흥왕이다. 법흥왕은 '건원'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제정했다.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한 왕은 신문왕, 지방에 22담로를 둔 왕은 백제무령왕, 독서삼품과를 시행한 왕은 원성왕,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한 왕은 선덕여왕이다.[4] 문재인 정부 들어 가야사 연구가 활기를 띠는 만큼 가야사를 빼놓지 말고 보아야 한다.
  • 12번(3점): 고려의 문화재를 묻는 문제다. 개태사 철확(鐵鑊)이란 개태사에 있는 커다란 철제 가마솥을 가리키며 고려의 문화재가 맞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조선 세조 때 세운 석탑이다. 원각사지 십층석탑과 비슷한 경천사 10층 석탑은 고려의 석탑이라 헷갈릴 수 있다.
  • 15번: 조선의 인쇄 기술과 관련된 문제다. 조선의 대표적인 금속활자로는 계미자갑인자가 있는데, 계미자는 태종, 갑인자는 세종 때 만들었다. 사간원의 독립이 태종 때 있었던 일이다. 『경국대전』의 완성은 성종, 백두산 정계비의 건립은 숙종, 신해통공의 실시는 정조 때 있었다. 비교적 생소한 이시애의 난은 세조 때 있었던 대규모 반란으로 함경도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향후 지역사 문제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 18번: 관리를 감찰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임무를 맡은 기구는 역사 속에 많지만, '대사헌'이라는 표현으로 사헌부임을 알아채야 한다. 권근이 누구인지 안다면 더 쉽게 풀 수도 있지만… 사헌부는 감찰과 탄핵, 서경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보기에 나온 '은대(銀臺)'는 은빛 건물이라는 뜻으로 승정원의 다른 이름이다. 집현전의 학문 연구 기능을 계승한 곳은 홍문관, 서얼 출신 학자들이 검서관으로 등용된 곳은 규장각,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국정 최고 기구로 성장한 곳은 비변사다.
  • 20번: 성종 시기에 완성한 다양한 책을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다. 성종 때 『경국대전』과 더불어 『동국여지승람』[5], 『악학궤범』, 『동국통감』 등 중요한 서적들을 완성했으므로 반드시 잘 알아야 한다. 『동의보감』은 광해군, 『동국문헌비고』는 영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태종, 『칠정산 내편』은 세종 때 완성했다.
  • 32번: 앞선 4번 문제와 마찬가지로 답사 계획서 형식의 지역사 문제로, 근현대 시기에 덕수궁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문제다. 임오군란 때 구식 군인들이 습격한 곳은 선혜청과 일본 공사관 등으로 확실히 러시아 공사관은 아니다.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린 곳은 덕수궁 석조전, 각종 신극을 공연한 곳은 원각사, 일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곳은 경복궁 옥호루다. 대한제국의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 곳이 바로 환구단이다.
  • 44번(3점): 이번 시험에서 어려웠던 문제 가운데 하나.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자주 다루지 않던 대동단결선언이 문제로 나왔다. 3.1 운동 때 독립 선언을 하기에 앞서 이미 몇 차례의 독립 선언이 있었는데, 1917년상하이에서 대동단결선언이 발표됐고, 1918년만주에서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됐으며, 1919년에 3.1 운동을 앞두고 도쿄에서 2.8 독립 선언이 발표됐고, 결국 3.1 운동을 계기로 통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다. 문제에 나온 발췌문은 명문장이기도 하거니와 독립 운동의 방향이 공화주의임을 드러내는 중요한 글이므로 기억해 두는 것도 좋다. 각 독립 선언이 있었던 시기뿐만 아니라 장소를 묻는 문제로도 나올 수 있다.

3.1.4. 50회


10월 24일 토요일에 2020년의 마지막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치러졌다. 시험 직후 역대급으로 어렵다는 평가가 많이 나왔다. 그해의 마지막 시험이 불시험이라는 경향이 벗어나지 않은 것.
특히 근현대사의 난도가 엄청나게 높았다는 평가가 많다. 46, 47번 문제는 지문만 보고 발췌 개헌(1952년)과 사사오입 개헌(1954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오답률이 매우 높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합격률 47.6%를 기록하였다.# 1급 합격률은 48-49회가 25% 전후였던 것에 비해 13%로 반토막날 정도로 쉽지 않은 시험이었다. 제50회 시험까지 치러진 시점에서 보면, 체제 변화 이후 첫 시험이었던 제47회의 합격률이 63.8%로 이전보다 다소 높은 편이었다가 그 뒤로 제48회에서 61.6%, 제49회에서 57.9%, 제50회에서 47.6%를 기록하며 난도를 조정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 6번: 최근 들어서 자주 나오는 가야사 문제다. 목걸이가 김해에서 출토됐고 김수로왕이 건국했다는 설명으로 가야 가운데에서도 금관국임을 알 수 있다. 금관국은 이 풍부했을뿐만 아니라 교통의 요지에 있어서 철을 낙랑왜국 등에 수출하며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다.
  • 9번: 견훤의 활동을 묻는 문제가 나왔는데, 상주 가은현 사람이라는 것을 통해서 알기는 어렵고… 무진주완산주를 권력의 기반으로 삼았다는 데에서 견훤임을 알 수 있다. 후백제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견훤은 원교근공 정책을 취해 외국과는 적극 교류하면서 고려신라와는 대립각을 세웠다. 후당오월에는 사신을 파견하고 책봉을 받기도 했다. 광평성궁예가 세운 정치 기구고, 『정계』나 『계백료서』 등은 왕건이 지었다. 견훤이 후당이나 오월과 교류했다는 사실을 모르더라도 나머지 선지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소거법으로 풀 수 있다.
  • 12번(1점): 문제에 나온 역사서는 2020년 8월 27일에 국보 제306-4호로 갓 지정된 『삼국유사』 범어사본이다. 일연이 지은 역사책인 『삼국유사』는 현존하는 책 가운데 단군 신화를 최초로 기록한 책이다. 참고로 이름이 비슷한 역사책인 『삼국사기』에는 단군 신화가 없다. 사초와 시정기 등을 바탕으로 편찬한 책은 『조선왕조실록』, 각훈이 왕명에 따라 고승들의 전기를 기록한 책은 『해동고승전』, 본기와 열전 등 기전체 형식으로 쓴 책은 『삼국사기』, 서사시 형태로 고구려 계승 의식을 반영한 책은 『동명왕편』이다. 모두 시험에 자주 나오는 역사서들이니 눈여겨보아야 한다.
  • 24번: 조선의 농업 서적들이 쭈르르 나왔다. 가장 유명한 『농사직설』은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담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구황촬요』는 명종 때 흉년이 들었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담아 펴낸 책이고, 『금양잡록』은 성종 때 강희맹이 경기도 금양현에서 손수 농사를 지은 경험을 담아 펴낸 책이며, 『산림경제』는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이 농사와 가정생활과 관련한 내용을 담아 펴낸 백과사전 형식의 책이고, 『임원경제지』는 실학자 서유구가 농업과 관련 있는 내용을 정리해 담은 백과사전 형식의 책이다. 화북 지방의 농법을 소개한 책은 고려 시대에 이암원나라에서 가져온 『농상집요』다. 만약 시험 고득점이나 공무원 시험 등을 노리고 있다면 세조강희안이 쓴 원예서인 『양화소록』, 중종 때 기근에 대처하는 방법을 담아 펴낸 책인 『구황절요』, 실학자 박지원이 펴낸 농서인 『과농소초』 등도 함께 기억하는 것이 좋다.
  • 32번(3점): '한국사 문제에 웬 에디슨?'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 조선 조정은 에디슨이 전구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1883년에 에디슨에게 궁궐에 전등을 설치하고 싶다는 친서를 보냈고, 1884년에는 에디슨이 세운 회사인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과 전등 설치 계약을 맺었으며 1887년에 미국인 기사를 초빙해 경복궁 건청궁[6]에 전등을 설치했다.[7] 경복궁에 전등을 가설한 시기는 갑신정변이 일어나 일련의 초기 개화 정책이 멈춘 때다. 이후 갑오개혁으로 개혁의 시동을 다시 걸고 을미개혁을 거쳐 광무개혁경인선을 개통한다.
  • 46번(3점), 47번: 이번 시험에서 어려웠던 문제 가운데 하나. 대한민국 헌법 내용을 보고 어떤 시기인지 알아야 한다.

먼저 ㈎ 헌법을 보면 제31조에 "국회는 민의원과 참의원으로써 구성한다."고 돼 있는데, 여기에서 "양원제니까 제2공화국 시기로구나!" 하면 그대로 출제위원이 판 함정에 빠지고 만다. 찬찬히 더 읽어보면 대통령과 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고 1차 중임할 수 있다고 나온다. 즉 (전에는 간선제로 뽑던) 대통령을 국민이 직선제로 뽑으며 재선까지만 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인데, 바로 발췌 개헌으로 바뀐 헌법이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간선제를 유지하면 대통령 재선이 어렵다고 판단해 직선제 개헌을 추진했고, 개헌에 반대하던 국회의원들을 강제로 연행하고 계엄을 선포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결국 헌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그래도 국회의원들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어서 정부와 여당, 야당의 각 안 가운데 좋은 것들만 발췌해 개헌했다고 해서 발췌 개헌이라고 부르는데, 정부의 안 가운데 양원제를 발췌해 헌법상으로는 양원제를 처음으로 채택했지만 여당인 자유당의 반대로(…) 결국 제1공화국 때에는 양원제를 실시하지 않았고 제2공화국 때가 돼서야 실시했다. ㈎ 헌법은 제2대 국회에서 제정했고[8], 앞서 말했다시피 계엄이 선포된 상황에서 국회에서 기립 표결로 통과시켰다.
㈏ 헌법을 보면 부칙에 헌법 공포 당시의 대통령은 연임 제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돼 있는데, 이것이 바로 사사오입 개헌으로 바뀐 헌법이다. 이미 발췌 개헌으로 대통령 선거 제도를 직선제로 바꾼 이승만 대통령은 이로도 만족하지 않고 아예 대통령 연임 제한을 초대 대통령에 한해 없애려 했다. 그 뒤에 벌어진 추태는 사사오입 개헌 문서에서 볼 수 있고… 결국 개헌을 선포하며 해당 부칙을 끼워넣는 데 성공한다. 한편 사사오입 개헌을 계기로 이승만의 독재에 반발하는 정치인들은 호헌동지회를 결성해 활발한 대여 투쟁을 벌였고, 이는 민주당의 창당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⅓을 추천한다는 조항은 제3공화국 말기에 10월 유신으로 추가됐고, 대통령 선거를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 선거제로 규정한 조항 역시 10월 유신으로 추가됐으며 제5공화국에서도 이어졌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 헌법은 발췌 개헌 이후(1952년~1954년)의 상황이고, ㈏ 헌법은 사사오입 개헌 이후(1954년~1960년)의 상황이다. 발췌 개헌 이후에는 6.25 전쟁 정전 협정이 있었다. 발췌 개헌이 6.25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일어났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풀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출제위원이 선지에 한·미 상호 방위 원조 협정이라는 함정을 파놓았는데, 한·미 상호 방위 원조 협정은 미국애치슨 라인을 선포하고 주한미군을 대한민국에서 거두어들이자 대한민국 정부가 전쟁 위협을 제거하고자 미국과 1950년 1월 26일에 맺은 조약으로 한·미 상호 방위 조약과는 다르다.
  • 50번: 요즈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필수요소인 남북 합의와 관련한 문제다. 다만 하도 많이 나와서 그냥 물어보기엔 쉽게 느껴졌는지 광주대단지사건을 주고 이 때 있었던 통일 정책을 물어보았다. 광주대단지사건은 전태일 분신 사건과 더불어 제3공화국 때 있었던 대표적인 빈민 운동으로 손꼽힌다. 남북 조절 위원회는 제3공화국 때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한 뒤에 세운 기구다.

3.2. 2021년



3.2.1. 51회


2월 6일 토요일에 2021년의 첫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치러졌다. 본격 '''시험보다 접수가 더 어려웠던 회차.''' 시험 출제나 풀이보다 접수가 훨씬 어려웠던 서버 마비 사태를 뚫은 이들에게, 국사편찬위원회가 시험취소해달라고 독촉해도 결시자가 거의 없었다.(전체 접수자 중 10% 남짓) 50회를 기준으로 준비한 응시자들은 쉽게 합격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를 보였다. 수험생들 사이에선 지난 50회 시험의 터무니없는 고난이도 출제와 함께 이번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서버 마비 및 접수 전쟁으로 인해 한바탕 홍역을 치르며 엄청난 비난을 받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사과와 보상의 차원에서 일부러 쉽게 낸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올 정도다. 최태성 강사는 이러한 출제 기조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리고 고급, 심화를 통틀어 역대 최고 합격률인 74.6%를 기록하였는데, 특히 1급 합격률만 45.5%, 평소의 1~3급 '''합산''' 합격률과 맞먹는 수치가 나왔다.
  • 4번: 무령왕릉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물어보는 문제이다. 금동 대향로가 백제 문화유산이라서 헷갈릴 수 있으나 금동 대향로는 능산리 고분군에서 발굴되었다.
  • 7번: 김헌창의 난이 일어난 헌덕왕최치원의 시무 10조를 받아들이는 진성여왕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지목하는 문제이다. 소거법으로 풀 수 있어서 어렵지는 않으나, 정답 선택지인 원종 애노의 난과 최치원의 시무 10조가 둘 다 진성여왕 시기의 일이라 헷갈릴 수 있다. 원종-애노의 난은 진성여왕 3년에, 최치원의 시무 10조는 진성여왕 8년에 일어난 일이다.
  • 17번(3점): 비교적 생소한 『제왕운기』에 대한 문제가 나왔다. 다른 선택지는 크게 어렵지 않으나, 1번 선택지에서 언급된 '남북국'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책은 제왕운기가 아닌 『발해고』이다. 제왕운기가 처음으로 서술한 것은 '발해'를 한국사로 서술한 것이다. 참고로 나머지는 2번은 『조선왕조실록』, 4번은 『직지심체요절』, 5번은 『삼국사기』로 출제 빈도가 높은 선택지에 대한 이야기라 소거법으로 풀 수 있다.
  • 29번: 강화도에 관한 문제다. 생소한 조일 수호 조규(강화도조약)가 체결된 장소(연무당 옛터)가 나왔지만, 초지진은 미국군이 점령했다. 참고로 영국군이 점령한 곳은 전남 여수 거문도이다.
  • 30번(3점): (나)의 내용은 지문으로서의 출제 빈도는 비교적 낮은 조일통상장정의 내용이다. 다만 핵심인 방곡령에 대한 내용만 지문으로 포함되어 난이도 자체는 어렵지 않다.
  • 34번(3점): 너무나도 쉬웠던 51회 시험에서 나온 그나마 어려운 문제이다. (가)는 1차 갑오개혁, (나)는 2차 갑오개혁에 발표된 홍범 14조, (다)는 을미개혁 때 발표된 단발령이다.
  • 43번(3점):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비교적 덜 출제되던 인물인 이육사가 등장하였다. 다만 본명이 언급되기도 하고, 지문의 제목으로 '초인을 염원했다' 라고 대표작인 광야의 맨 마지막 문단을 암시하는 문구를 넣었고 정답 선택지조차도 광야, 절정 등의 저항시를 썼다는 내용인지라, 한국사와 별개로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졸지만 않았다면 이육사 이름 석 자와 사진, 대표작 정도는 기억하여 쉽게 풀 수 있던 문제가 되겠다.
  • 49번(3점):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자료로 2021년 작고한 故 백기완 선생이 작곡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왔다. 또 최근 5.18 관련 법제가 정치권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이슈이며, 최근 뉴스에 대두되고 있는 이슈나 사건들을 다루는 것을 좋아하는 한능검의 최근 문제 출제 경향을 잘 보여주는 문제 중 하나이다,
  • 50번(3점): 이전 시험과 마찬가지로 남북 합의에 관련된 문제로 나왔으며, 50회와 마찬가지로 직접 물어보면 너무 쉬워서인지 중국과 외교가 수교된 시기의 정책을 물어보았다.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외교 수립은 1992년이며 이 때는 노태우 대통령의 재임 시절이다. 문제에 날짜가 적혀 있는데, 실제로 노태우 대통령은 문제에 적힌 대로 1992년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중국을 방문했다. 따라서 이 때의 남북 합의는 남북기본합의서이다.

[1] 주변 사례를 보면 이전 고급 1급(70점 이상)을 받았던 학생들이 심화시험에서 대략 90점 초반~80점 중반 정도의 점수를 맞았다. 과거 고급 1급보다 개정 이후 심화 1급이 더 쉽다는 것.[2] 러시아 공사관으로 왕이 옮김, 대군주 폐하께서 머리카락을 자름, 자객이 왕후 시해[3] 만약 문제가 어렵게 나온다면 남북한 경제 협력 사업으로 경제특구 건설을 추진했던 곳을 묻고 해주시를 답으로 낼 수도 있다. 남북은 10.4 남북공동선언 제5항에 따라 해주시에서 경제특구 건설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으나 흐지부지된 바 있다. 2015년 순경 공채 한국사 과목에서 선언문의 해당 부분을 문제화한 적이 있다.[4] 참고로 황룡사를 세운 왕은 진흥왕이다.[5]신증동국여지승람』은 중종 때 『동국여지승람』을 증보한 것으로 서로 다르다.[6] 뒷날 을미사변이 일어나는 곳이다.[7] 조선이 전기를 상당히 빠르게 도입한 것은 맞지만 아시아에서 최초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일본 제국이 조선보다 앞서서 고쿄에 전기를 도입했다고 보는 쪽도 있다.[8] 국회의원 임기는 예나 지금이나 4년이지만 초대 국회의원만 2년이었다(1948년 5.10 초대 국회의원 선거, 1950년 5. 30 2대 국회의원 선거). 이 사실을 기억하면 쉽게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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