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문화
1. 개관
홍콩의 문화를 설명하는 문서.
홍콩의 문화는 광동성 일대에 오래 전부터 자리잡았던 한족/중국인들의 문화와 영국령 홍콩 시절을 통해 들어온 영국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홍콩은 원래 광동 지역이었으나 1841년 영국 해군에게 홍콩 섬이 함락당한 아편전쟁 이후 영국 땅이 되어 광동성과 분리되었으며 그래서 '''영국이자 중국'''인 특이한 곳이 되었다.
홍콩은 중국 대륙에 비해 대외 교류가 많았던 곳인만큼, 흔히 떠올리는 '''중국 문화''' 혹은 중국, 중국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홍콩이 기여했던 바가 크다. 중국권법을 쓰는 캐릭터부터가 홍콩 영화 덕분에 대중적이게 되었고 치파오를 중국 대표 전통 복장으로 생각하는 것도 홍콩의 영향이며, 또 중국어를 흉내낸답시고 내는 억양[1] 도 홍콩의 통용어인 광동어가 그런 억양을 지녔다. 치파오의 경우 원래 만주족의 정통 복식이지만 홍콩에서 학교들이 치파오를 교복으로 채택하기도 하고 개량된 치파오를 19세기 말 영국령 초기 때 사람들이 입고다니던 버릇이 영국인들에게 그대로 인상깊게 남아 중국 전통복장의 이미지에 있어 몽골계 의상인 치파오가 한족 전통의 한푸를 밀어낸 지 오래다.
오랫동안 자본주의 세계에서 홍콩은 대만과 함께 중국 하면 떠오르는 곳으로 자리잡았는데 냉전 시대에 중국이 죽의 장막을 쳤기 때문에 정작 중국 본토로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어 그렇다. 그런지라 중국 요리를 취급하는 중국음식점들도 해외 차이나타운에 개업 시 홍콩이나 대만 이름을 많이 팔았다.[2]
2. 언어
홍콩에서는 양문삼어[3] 라는 정부 정책에 의거하여 광동어, 영어, 표준중국어의 3개 언어가 모두 쓰인다. 홍콩인들은 공직 등 사회생활을 위해선 이 세 언어를 모두 할 줄 알아야 한다.
홍콩에서는 중국어 방언의 일종으로 간주되는 광동어가 널리 쓰인다. 광동어는 방언이라고는 하지만 표준중국어와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많은 홍콩인들은 교육의 영향으로 영어나 표준중국어도 잘 하지만, 대부분의 일상 대화가 광동어로 이뤄지고, 홍콩 대중문화도 광동어를 기반으로 한다. 홍콩 영화의 경우만 해도 광동어로 대부분 대사가 나가며 영국계 홍콩인이나 외국인이 같이 등장할 때는 영어를 쓰고 대만인이나 대륙인 등장 장면에선 표준중국어가 쓰인다. 그리고 광동어로 된 노래는 칸톤팝이라 불리며 해외 화교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누린다. 객가인이나 치우차우, 푸젠인 등 원래 타 언어를 쓰던 중국계 주민들 역시 요즘엔 그냥 광동어를 쓰며 해당 언어들은 집 안에서나 쓰거나 노인들만 쓴다.
홍콩 경찰의 경우만 해도 영어/광동어/표준중국어에 모두 능숙해야 하며 그래서 크리스 탕 경무처장은 공식석상에서 이 세 언어로 모두 성명을 발표한다.
3. 영화
홍콩에서 제작되고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홍콩 영화라고 한다. 현재는 극장판 영화는 중국 본토의 미칠듯한 물량공세로 중국 영화에 밀려 많이 쇠퇴한 감이 있으나 현재도 극장판으로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나온다.
1950년대~1960년대까지만 해도 멜로 영화와 호금전, 장철 감독의 무술 영화가 강세를 보였지만, 1970년대 그 이름도 유명한 이소룡의 사실적인 액션 영화와 허관문, 허관영, 허관걸 감독으로 이루어진 허씨 3형제의 코미디 영화 '미스터 부 시리즈[4] 가 등장하여 크게 히트하면서 리얼 액션과 코미디 영화가 홍콩 영화의 주된 장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두 장르를 적절히 조화시킨 성룡, 홍금보 배우가 뜨면서 이러한 경향은 정점에 달했다.
그러다 1980년대 말 그 유명한 영웅본색으로 대표되는 액션 느와르물이 대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암흑가와 속시원한 총격씬이 주가 되는 영화가 대세를 이루게 된다. 특히 이때 오우삼, 왕가위, 주윤발, 장국영 등의 명감독, 명배우들이 많이 등장했다. 90년대 초반에는 도신, 도협, 도성 시리즈로 대표되는 도박물과 특유의 병맛 코미디를 내세운 주성치가 인기를 끌었고, 중국으로의 홍콩 반환이 결정된 후에는 임청하 주연의 동방불패나 이연걸 주연의 황비홍 시리즈로 대표되는 무협물 붐이 일어났다.
즉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무협 영화, 1980년대 이후부터는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나, 영웅본색 시리즈, 최가박당 시리즈 등 현대물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으며 1997년 홍콩 반환 후에는 일본식 호러와 서구식 호러를 접미한 홍콩식 호러물과 타워링을 방불케 하는 재난 블록버스터 등이 떠오른다. 2000년대부터는 무간도 시리즈, 흑사회 시리즈, 콜드 워 시리즈 등 '홍콩식 네오 느와르' 인기가 많아졌다.
더불어 홍콩 배우들과 감독들의 헐리웃 진출도 많았는데, 배우 중엔 주윤발, 성룡, 이연걸, 견자단, 양조위 감독 중엔 오우삼이나 서극, 임영동, 당계레, 우인태, 양보지[5] 같은 사람들이 진출했다. 다만 성룡이나 오우삼, 우인태 등 몇몇를 빼곤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홍콩으로 돌아왔다.
예전에는 한국과 합작으로 영화를 자주 만들기도 했었다. 이는 당시 홍콩의 여건과도 관련이 있는데, 정통 중국 무협영화를 촬영해야 하는데 홍콩은 그럴 만한 고풍스런 사찰 등이 드물고 무엇보다 기후 조건이 안 맞는다.[6] 대만도 마찬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고, 본토인 중국 대륙에서 찍자니 중화인민공화국이 죽의 장막을 둘러치던 시절이라 아예 들어가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4계절이 뚜렷한 일본에서 찍자니 비용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이런저런 규제가 심하다. 그러면 어디서 촬영해야 하는지는 딱 답이 나온다. 4계절이 뚜렷한 온대기후대에 플러스로 당시 후진국이라 로케이션 비용이 싼 한국뿐이었다. 이건 1980년대 초반까지의 홍콩산 무협 드라마 쪽도 마찬가지. 물론 절대 다수는 세트로 떼우긴 했지만 몇몇 작품은 한국에 촬영을 하러 가기도 했다[7] . 다만 당시 한국영화사의 외화 수입 규제[8] 때문에 진짜 합작품도 있었지만 후시 촬영만 하고 홍콩이나 대만영화를 짜집기해서 합작품으로 둔갑시킨 괴작들도 꽤 된다.[9]
어찌됐든 이 덕분에 한국에서도 여러 걸출한 무술 배우들이 배출되었는데 합기도 특유의 독특한 꺾기 기술로 파격적인 액션씬을 보여준 황인식이나 가위차기의 달인 왕호, 신묘한 발차기 솜씨를 자랑하는 태권도 고수 황정리 등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필름이 홍콩 측에 가있는 탓에 한국어 더빙이 사라져 버려서 광동어나 영어 더빙으로나 구해 볼 수 있는 게 대부분이다. 정창화감독의 천하제일권의 경우 중국어판으로 DVD가 정발되었지만 TV를 통해 한국어판을 방영해준 바 있다.
이러한 한국 로케 붐은 1980년대 이후 폴리스 스토리, 영웅본색 등 현대물이 대세가 되면서 사라졌으며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은 잊혀진 나라가 되었다. 1960년대에야 한국이 저개발국가여서 로케 비용이나 쌌지 1990년대가 되자 한국경제도 발전해 로케비용이 비싸졌고, 1997년 홍콩 주권반환으로 중국 본토 촬영이 쉬워지면서 자연스레 한국 로케는 잊혀진 옛날 일이 되었고, 2010년대부터 한류가 대세를 타게 된다.
1990년대에는 1995년만 해도 홍콩에서 타이베이, 도쿄, 싱가포르 등이 주변 선진국의 인기 여행지일 때 서울은 아웃오브 안중이었다. 이땐 현대자동차가 일본 기업인 줄 아는(...) 사람도 많았다.
4. 음악
홍콩에서 주로 소비되는 광동어 대중음악인 Cantopop(캔토팝)이 주류다. 60년대 이전에만 해도 서양 음악에 비해 촌스럽다는 인식이 팽배했으나 지속적인 서양식 창법 도입, 드라마 및 영화 출연 등으로 점차 세련된 모습을 갖추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듣게 되었다. 특히 90년대의 사대천왕 시기에 절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만 못한 편이다. 대륙의 표준중국어 노래가 홍콩 문화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반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K팝의 영향 역시 무시 못하기 때문이다.
5. 만화
격투천왕이니 스트리트 파이터 가두쟁패전이니 하는 괴작 만화들의 빛나는 산실(…)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만화강국이다. 주로 일본만화와 서양의 극화풍이 혼합된 것이 특징.
6. 음식
세계적으로 미식을 경험하기 좋은 동네로 꼽힌다. 식민 통치를 오랜 기간 받아온 영향으로 서양의 음식을 일찍이 유입되었고 중국 전역 및 동남아 일대에서 몰린 이주민들의 영향으로 타 지역의 요리도 상당수 유입이 되어 다채로운 식문화를 이뤄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높은 경제력으로 꾸준히 이를 발달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광동 지방답게 '''광동 요리''' 위주인데 그 중 한국인들에겐 완탕과 딤섬이 가장 친숙할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중국 요리 문화는 대개 산동 요리나 베이징 요리에 치중이 된 경향이 있어 기타 지방의 요리는 다소 어색하지만 그나마 청키면가(忠記麪家)와 딘타이펑 이라는 완탕면, 딤섬 전문점은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한국에선 어째 일본요리로 여겨지는 차슈도 사실 광동 요리이니만큼 상당히 유명한데 완탕이나 딤섬만큼이나 대중화 되어있다.
영국 영향을 주고받아서인지 '''밀크티 티타임''' 문화가 정착되어 있는데, 티타임이 사라져가는 영국 본토보다 비교적 더 온전하게 남아 있다. 한편, 영국 고유의 티타임 문화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한편 상당히 현지화가 이루어진 모습 또한 다수 존재하는데 밀크티만 해도 우유를 넣는 영국식과 달리 연유를 넣는다. 티타임 문화가 발달했으니만큼 디저트 문화도 상당히 발전한 축에 속하는데 이 역시 상당한 현지화가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프렌치 토스트가 있는데 빵 사이에 땅콩버터 등을 바르고 계란물을 입혀 기름에 튀긴 후 위에 연유를 뿌려준다. 에그타르트 역시 포르투갈에서 먹던 간식거리지만 마카오를 거쳐 홍콩에 들어온 후 한번 더 현지화가 이루어졌고 이후 양쪽에서 모두 보편화됐다. 그 뿐만 아니라 팬케이크 문화도 유입되어 '''빤켁'''이라는 요리도 생겼는데 역시 서양과 다르게 팬케이크 속을 생크림, 과일등으로 채운 뒤 반으로 잘라 먹는다.
그밖에 밀크티 말고도 유명한 음료가 여럿 존재한다. 망고를 디저트로도 먹고 죽에다 넣어 먹는 동네답게 망고 주스도 유명한데 한국 관광객들이라면 익히 알고있을 허이라우샨(허유산, 許留山)이 대표적이다. 또한 콜라에 레몬을 넣어 먹는 문화 역시 홍콩이 처음이고 한술 더 떠 레몬콜라생강차(檸樂煲薑)는 홍콩의 대표적인 감기 치료용 민간요법으로 꼽힌다.
'''차찬텡'''(茶餐廳)이라고 간단한 디저트와 차부터 값싸고 다양한 요리까지 파는 대중음식점이 있다. 한국으로 치면 김밥천국이나 분식집, 기사식당 등에 해당하는 서민음식점인데 잘 찾아보면 패밀리 레스토랑 등 체인점보다 되려 값싸고 푸짐한 양에 먹부림을 부릴 수 있다. 진짜다. 2차대전 이후로 영국 그리고 미국의 문화가 전파되는 과정에 찻집들이 여태까지만 해도 상류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스테이크나 파스타 등 서양 음식들을 현지화한 후 서민들을 대상으로 팔기 시작한데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원래 양식과 현지식이 섞인 포장마차 개념으로 시작했는데 1949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어 수많은 요리사 등이 홍콩으로 이주했으며 이들에 의해 중국 각 지역의 고급요리들까지 저렴하게 양산형으로 보급되기까지 하여 지금에 이르는 것이다. 현재의 차찬텡 역시 서민 대상으로 영업하는 저렴한 음식점들이다. 그리고 차찬텡 이라는 개념이 나온 50년대부터 지금까지 운영하는 노포들이 굉장히 많아서 대개 비좁고 낡은 경우가 많으며 유명한 업소의 경우 합석은 거진 필수다. 대표적으로 야우마테이역에 있는 미도 카페나 차찬텡의 효시로 꼽히는 홍콩 섬의 오래된 차찬텡 란퐁윈 정도가 있다.
홍콩 요리는 홍콩 문화에 끼친 영향도 적지않아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건 물론이고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를 추진하기도 했다.
대규모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 홍콩식 패스트푸드점 및 패밀리 레스토랑 역시 차찬텡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아서 비슷한 메뉴가 꽤 있는편이다. 다만 차찬텡에 비해 메뉴가 훨씬 많은편이고 기업체에서 운영하는지라 깨끗하고 매장의 규모가 큰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선 할인점 푸드코트와 비슷하다는 의견이 많은 편.
가성비가 상당히 좋은편인데 일본의 패밀리 레스토랑과 비슷하게 이쪽도 저렴한 가격을 맞추기 위해 냉동, 레토르트의 비중이 비교적 높은편이라 맛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
- 카페 데 코랄(따이까록, 大家樂)
장국영을 기용한 CF를 찍은 적도 있으며 #[16] 근래에는 한국식 퓨전 메뉴[17] 를 내놓을 때 강남스타일을 활용한 광고도 낸 적이 있다. # 이것과 별개로 같은 폰트에 마지막 한 글자가 다른 大家食(...)이라는 브랜드도 존재한다. 세트 메뉴가 N2, N3 등으로 주문하기 편리하다.
- 맥심(메이섬, 美心)
차찬텡 브랜드로만 한정하면 美心MX가 대표적이나, 사실 메이섬 식품 유한 공사(Maxim's Catering)라는 요식업 그룹의 일원이다. 제빵사업(美心西餠)에도 진출하거나 홍콩 내 스타벅스 운영권을 따낸 등 사업 영역이 넓은 편. 대가락이 한류 메뉴를 내놓자 이쪽도 역시 한류 메뉴를 내놓은 바가 있다. (광고)
- 페어우드(따이파이웃, 大快活)
주성치 주연의 식신에서는 페어우드(대쾌활)와 대가락이 융합한 대쾌락(...)이라는 차찬텡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 추이와(翠華)
이쪽은 패스트푸드점이 아닌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위의 세 업체와 꽤 다른 분위기이긴 하다만 메뉴 등을 보면 그다지 차이가 크지 않은것도 사실이다.
일찍이 일본과의 교류가 많이 있었던 지역인지라 일본 요리가 상당히 보편적이다. 애시당초 요시노야, 모스버거, 사이제리야[18] 같은 대규모 프랜차이즈들은 점포만 수십개씩 있으며 나고야 로컬 체인인 세계의 야마짱(世界の山ちゃん)[19] 같은 일본에도 몇 없는 프랜차이즈의 지점이 있을 정도니 말 다한 셈. 단순히 일본 업체가 많이 진출한걸 넘어서 사람들의 일상 생활속에 깊이 침투한지 오래라 홍콩계 프랜차이즈에서 일본 요리를 취급하는건 예사고 홍콩 사람이 차린 로컬 스시 전문점이 동네마다 심심치 않게 있는 수준이다. 하다못해 차찬텡에서 취급하는 라면부터가 어디 중국, 대만 브랜드도 아닌 닛신식품의 데마에잇쵸(出前一丁)라는 사실은 홍콩 내에선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한편 홍콩에서는 인도인 인구가 워낙 많아 인도 요리도 보편화되어 있다. 19세기 영국군을 따라 온 북인도 출신들이 처음 인도 레스토랑을 오픈했으며 이들은 모두 할랄 푸드를 취급하는지라 홍콩에 이주한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국가 출신 노동자들이 자주 찾는다. 홍콩의 인도요리는 북인도 요리로 커리나 탄두리 치킨 등이 유명하며 논베지가 대부분이다.
7. 종교
홍콩은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말로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고 실제로는 탄압하는 중국 대륙과는 다르다. 그래서 각 종교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 예로 가톨릭은 정상적으로 바티칸의 수위권 내에 있으며 개신교도 대륙과 달리 활동이 자유롭고 파룬궁도 활동이 자유롭다. 또한 동남아 출신 이민자가 많은 관계로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도 적지 않다.
총 인구의 60%가 무종교 내지 무신론이고 40%는 종교인이다. 종교인은 기독교가 12% 정도, 도교, 불교가 각각 20%씩 차지하며 이슬람은 3% 가량을 차지한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기독교화 혹은 무종교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총 인구 중 40%를 차지하는 종교인 중에는 불교와 도교 그리고 기독교신자가 많은 편인데, 특히 도교 사원을 접할 기회가 드문 한국인 입장에선 도교사원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2010년 통계에 따르면 불교도가 21.2%(약 150만명), 도교 신자가 14.1%(약 100만명)로 집계되며 불교와 도교 사원이 무려 600여개 정도 있다. 포린 사원의 거대 청동좌불상 등 홍콩의 영화촬영지나 관광지로 유명한 곳도 많다.
현재 도교 및 불교는 교세가 쇠퇴하는 중이다. 집안 전통만 불교나 도교인 젊은 층이 대거 무신론자로 갈아타버렸기 때문이다.
7.1. 기독교
기독교인들은 2014년 기준으로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 등을 모두 합하여 87만 명으로, 700만 인구 기준 12% 이상으로써 교세가 만만찮게 크다. 현재는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만 해도 84만 명이었으며 6년이 지난 현재는 100만에 근접했을 걸로 추정된다.
2015년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인은 총 87만 명으로 인구의 12% 를 잡아먹으며 사실 상 도교 신자와 엇비슷한 비중이다. 원래부터 기독교 신자가 상당수였고 교회와 기독교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컸다. 이는 한국과도 비슷한 점. 특히 개신교 교파 중 성공회는 가장 많은 사립학교를 보유해 교육계에서 가장 끗발 날리는 종교이며 그 다음이 가톨릭이다. 그리고 복지 부분에서는 개신교 교파 중 하나인 구세군의 영향력이 큰 편인데 과거 무법지대로 악명높던 사실상의 무정부 월경지인 구룡성채에도 구세군만이 꿋꿋이 들어가 영어교육 등 학교교육을 실시하고 병원 등을 세우며 선교활동을 벌여 성채에서 나오게 된 주민 중 구세군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사람도 꽤 많았다.
홍콩은 반기독교 감정을 가진 서민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민 오는 중국 대륙 출신 이주민 중에 광둥성, 푸젠성 등 기독교인이 많은 남중국의 지하교회 교인도 많아서이다. 더구나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에서도 이슬람이 국교라 차별과 냉대를 받던 중국계 기독교인들이 대거 홍콩으로 이주 중이며 이들이 모이는 교회는 표준중국어와 간체자를 사용하며 화어[20] 교회를 만들기도 했다.
1997년 홍콩 반환으로 인한 불안감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대거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으로 이민가고 그 자리를 본토 중국인이 차지하면서 교세가 쇠퇴했으나 2000년을 기점으로 다시 이민자들이 귀국하고 중국 본토인들 중에 개종자가 생기면서 수가 다시 늘고 있다.
땅이 좁아 한국처럼 나대지에 으리으리하게 자리 잡은 대형교회는 거의 없다. 대개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조그만한 교회들이다. 교회가 있는지조차 잘 살펴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이지만 1,300개가 넘는 교회가 이 땅에 있고 절반은 개신교, 절반은 가톨릭이다. 홍콩 교회는 대형교회가 흔하지 않고 한국의 동네 길거리 교회마냥 상가건물 안에 십자가 하나 달랑 세우고 天主敎堂 내진 生命堂 등의 간판만 세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장 한인교회들 중에서도 아파트 단지 상가나 사무실 등에 입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홍콩 섬 셩완의 한인천주교회조차 사무실 건물에 있을 정도다.[21] 큰 교회는 오래된 교회로 영국인이나 포르투갈 정복자들이 세운 교회이며 전부 성공회와 가톨릭, 루터회의 교회들이고 크다고 해도 한국의 대형교회에 비하면 아기자기한 수준이다. 이렇게 소규모 교회가 흔한 이유는, 바로 땅값이 비싸고 부지도 협소해 대형교회를 지을 터가 통 안나와서이다.[22]
홍콩 섬에는 성 요한 성당 등의 오래된 교회 외에 현대식 고층건물(!!!) 교회도 나오는데 완차이에는 이 고층빌딩 교회가 감리교 본부로 있고 센트럴에도 성공회의 본부가 고층 빌딩이다.
홍콩은 기독교 문화가 강고하게 뿌리잡은 곳이라 아시아에서 대한민국, 마카오,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레바논과 함께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인 몇 안되는 곳이기도 하다. 기독교가 보편화된 동남아시아로서 동남아나 타 중화권에 비해서도 유독 기독교인과 교회 영향력이 커서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특히 개신교 복음주의자들과 감리교, 가톨릭 신자들이 주축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과 대치하는 친중 진영에도 보수 개신교도들이 많다.
홍콩 교회 성향은 장로교 및 침례교는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보수적이며 친중파들이 많고 성공회는 사회안정을 중시해 중도 진영에 속하며 가톨릭, 감리교, 루터교, 회중교회 등은 진보세력인 민주파/본토파의 주축을 이룬다.
7.1.1. 개신교
개신교인은 6.7% 정도 있다.
성공회, 감리회, 장로회, 루터회 등 다양한 종파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영국의 영향으로 장로회와 감리교, 성공회 교회가 제일 많은 편이다. 침례회는 침례대학 및 침례회 병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감리교는 완차이에 대형 고층빌딩을 본부로 두고 있으며 성공회는 가장 많은 사립학교를 두고 있다.
홍콩 개신교는 미국 개신교가 들어와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 개신교와 다르게 영국 개신교가 들어와 복음주의이지 근본주의는 아니다. 한국에서 마이너한 성공회와 루터회, 감리회가 여기서 흔하며 한국이나 미국 동북부 개신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히려 침례교가 백인 기독교인의 99%인[23] 미국 남부와 더 접점이 있고 실제로 홍콩 침례회와 미국 남침례회 간 교류가 많다.
성공회의 유일한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대교구가 홍콩 교구다.
홍콩의 각 교파 교회들과 한인교회들은 현재 셀교회(cell church)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셀교회는 교회 부서들을 셀이라는 소조직으로 나누어 조직 별로 활동하는 걸로 이 셀교회의 종주국이 싱가포르이며 홍콩 교회에도 들어왔고 현재 개신교의 쇠퇴 경향이 뚜렷한 한국 교회가 회복을 위해 들여오고자 연구 중이다. 셀 교회 덕분에 중화권의 교회들은 굉장히 활기를 띤다.
2014년의 우산 혁명 및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모두 기독교인들이 주도했다. 학생 지도자인 조슈아 웡도 그렇고 운동을 주도한 단체가 개신교와 가톨릭 계열 시민단체들이었으며 가톨릭 신자들의 참여가 특히 활발해 Sing Hallelujah to the Lord라는 성가가 불려지기도 했고 예수상을 앞세운 천막들도 많았다. 이 Sing Hallelujah to the Lord, 즉 우리 주께 영광을이라는 성가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때도 많이 불려졌다. 시위 주도를 기독교계 중 진보 성향 교단들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로교와 침례교의 경우 홍콩도 꽤 보수적이라 친중 성향이고 친중파 정치인들도 많이 믿는다. 침례교는 대놓고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폭력반대를 교회 입장으로 내놨다. 한국처럼 홍콩도 장로교, 침례교가 보수적이고 기독교 우파쪽에 가깝다.
반공 성향이 강한 홍콩 그리스도교인들은 대륙에서 망명한 파룬궁 신자들, 민주파 정치인들, 중국 민주화 운동가들과도 연대하며 공산당의 종교 탄압에 반대하며 중국의 민주주의 도입을 주장한다. 천멸중공[24] 은 기독교인들도 심심찮게 외치는 구호이기도 하다. 이들은 당연히 하나의 중국을 중시하며 그리스도를 믿는 중국인임을 강조한다.
홍콩 독립운동의 주도층도 그리스도인들이나, 이들은 파룬궁 신도나 민주화 운동가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지는 않는다. 이들도 결국엔 대륙 출신이고 중국과의 통합[25] 을 지향하므로, 완전독립을 추구하는 독립파의 가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인이라고 다 반중 성향은 아니고 좀 보수적인 성향인 장로회나 침례회는 친중 경향이며 성공회도 사회 안정을 중시해 현실 인정을 강조한다. 장로교, 침례교가 기독교 우파, 성공회가 중도를 구성하며 가톨릭과 루터교, 감리교, 회중교회 등이 진보 성향이다. 한국 개신교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나 대한성공회 등과 비슷한 진보 개신교인 셈이다. 주로 가톨릭 신자들이나 감리회 혹은 복음주의자들이 주로 독립파나 민주파가 된다고 보면 된다.
구룡반도 조던역 근처에는''''耶蘇是主'''"[26] 이라고 중국어 정체자 한문으로 쓰인 대형 빌보드가 교회가 입주한 빌딩에 붙어 있다. 동아시아에서 기독교 색이 강한 빌보드를 보기 힘들단 점에서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내용 자체가 미국의 남부 바이블벨트에나 붙어 있는 신앙고백이다. 참고로 이것 외에 조던 로드에는 위에화 백화점 근처에도 비슷한 신앙고백 빌보드가 영문과 한문으로 붙어 있다. [27]
침사추이에 있는 영국 양식의 성공회 교회인 세인트 앤드류스 교회가 있다. 이 교회에서는 영어 예배는 물론 말레이시아 출신 중국인이나 대륙인 등을 위한 표준중국어 예배도 드리며 외국인이 가도 아무 상관 없다 [28] .
그리고 홍콩 국제공항이 있는 란터우 섬이 가까운 마완 섬에는 구세군이 세운 노아의 방주라는 기독교 테마파크도 존재한다.# 역시 동아시아에서 찾기 힘든 곳이다. 한국에서도 몇몇 교회에서 이 곳을 답사하기도 했고 한인교회의 수련회도 여기로 간다. [29]
7.1.2. 가톨릭
가톨릭 교도는 인구의 4.9% 정도로 한국, 마카오, 싱가포르, 필리핀, 레바논과 함께 아시아에서 그나마 가톨릭 영향력이 큰 지역에 속한다. 포르투갈 땅으로 중세 때 이미 중국인 세례교인이 나온 마카오와 더불어 아시아 최초로 가톨릭을 받아 들인 곳이기도 했다.
가톨릭은 다수의 사립학교를 갖고 있으며, 완차이에는 가톨릭 교도 묘지도 있다[30] .
홍콩 가톨릭 교도들은 신심이 아주 두터운 편으로, 2014년 교황의 방한 당시에도 홍콩은 마카오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중국 남부에서 홍콩, 마카오, 일부 대만인[31] 으로 추정되는 트위터 맨션들이 이 당시 폭주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은 트위터를 틀어막는 곳이라 그렇다.(...) 물론 알고보니 개중에 홍콩으로 아이피를 우회한 광동성, 푸젠성 출신 대륙인 지하 가톨릭 교도도 많기는 했다. 이들은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의 단속을 피해 교황의 수위권에 속한 지하교회에 다녀 신분을 감춘다.
가톨릭은 중국 본토와 달리 교황의 수위권 하에 놓여있다. 단, 홍콩 교구는 광저우대교구 소속으로 중국 본토 가톨릭과 합일되어 있다. 그러니까 중국 본토의 가톨릭이 보편교회와 일치되지 않은 것일 뿐이지 '''중국 자체는 엄연히 교황의 수위권 내'''에 있으며 '''홍콩의 추기경은 중국 추기경으로 인정'''되고 주교도 홍콩주교는 중국주교로 인정된다. 그래서 홍콩 주교는 중국 가톨릭을 대표한다는 의미로 거의 항상 추기경에 선임되는 편이다.[32]
가톨릭 성지순례로 홍콩과 마카오를 묶어서 다녀오기도 한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최양업 토마스 신부, 최방제 프란치스코[33] 가 마카오에서 유학한데다가 홍콩 내에도 트래피스트 수도원 등의 가톨릭 성지가 꽤 있어서이다.
홍콩은 영국이 성공회와 감리회 등 개신교를 믿어 개신교가 기독교를 뜻할 정도로 주류이긴 해도 가톨릭 교세도 상당하다. 오히려 각 교파를 찢어놓아 보면 가톨릭이 성공회 다음으로 많다. 아일랜드 출신 가톨릭 신자들이 영국령 초기에 홍콩의 인프라를 만들며 선교에 힘쓴 결과물이다.
구룡반도 침사추이에 가톨릭 성당인 성 로자린 성당이 있으며, 홍콩 섬 셩완엔 한인천주교회가 있다. 2017년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홍콩 미니버스 광고판에 자주 등장하는 등 가톨릭 선교가 활발하며 수많은 홍콩인들, 특히 가톨릭 사립학교를 다닌 젊은 층이 새로 가톨릭에 입문하는 중이다. 이들 중엔 부모, 조부모는 불교나 도교를 믿는 사람도 많다.
7.1.3. 기타 종파
극소수의 정교회도 있다. 주로 아르메니아계 이민자들이 영국계 홍콩인의 일부로 자연스레 들어왔고 일부 중국인들도 믿는다. 1996년 11월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에 의해 홍콩과 대만, 그리고 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관장하는 홍콩-동남아시아 대교구가 설정되었다.
그리스 정교 외에 망명 러시아 정교회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영국을 거쳐 들어온 소련 공산화 이후 러시아인 및 우크라이나인 난민들이다. 러시아 망명인들은 같은 백인인 영국계 홍콩인에 동화되 지금 꽤 수가 많으며 회사 등을 차려 개방된 조국 러시아와 무역을 하고 있다.
7.2. 불교 및 토착 종교
홍콩 섬에선 도교 사당인 문무묘나 틴하우 사당들 외에는 주로 교회 시설이 많고, 구룡반도, 신계는 치린 사원이나 천단대불로 유명한 포린사, 무간도에 나온 만불사 그리고 불종사(佛宗社)라고 쓰인 조그만한 법당 등의 절과 도교 사원이 많다. 야우마테이의 템플 스트리트의 유래도 이 곳에 위치한 틴하우 사당이다.
물론 불교나 도교만 있진 않고 구룡에도 쿤통의 량파기념교회, 조던 로드의 카우룬 유니온 처치(Kowloon Union Church), 구룡성채 근처의 중화연합교회(Chinese Union Church) 등의 교회 숫자도 충분히 많다. 그러나 종교 비중을 보면 노인 인구가 많고 중국과 가까운 신계 및 신구룡은 불교와 도교 비중이 더 높고 사립학교도 불교학교, 도교학교가 더 자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홍콩 섬이 영국 통치 당시 홍콩의 중심지였고 구룡반도는 교외지역이었다보니 차이가 생긴다.
7.3. 기타 종교
무슬림 비율도 3.1%로 집계되며, 덕분인지 이슬람 성원이 5개나 있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 이란에서 온 이민자들과 회족 출신 대륙인들이 주축이라고 한다. 그 외 힌두교도, 유대교도, 시크교도 등 국제도시답게 다양한 종교가 분포해 있다. 유대교는 인구 중 극소수를 차지하는 유대인 계통의 홍콩 사람들이 신자로 숫자는 적지만 이들 유대인은 홍콩 경제에 화교와 함께 영향력을 행사한다. 영국계 홍콩인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유입되어서이다. 카두리 가든을 운영하는 바그다드 출신 영국계 유대인인 카두리 가문이 유대인이며 홍콩 회사 중 영국계 유대인 소유 기업도 많다.
대륙에선 금지된 파룬궁 신도들과 일본인들이 들여와서 주로 믿는 천리교 등 일본계 신흥종교도 극소수 존재한다. 이런 기타 종교들과 '''무종교인'''들이 50% 정도를 차지한다. 조사마다 좀 달라서 무종교인들은 그 이상을 보기도 한다. 무종교인은 일본처럼 젊은 층에 많은 편이다.
8. 언론
8.1. 신문
부류가 다양하고 신문의 종류 수도 많다. 당연히 인구수에 비해 신문들이 너무 많다보니 경쟁이 무지막지하게 치열하며, 따라서 신문시장을 자세히 파고들면 지옥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친중 자본에게 잠식된다는 목소리가 높기도 하다.
이러한 원인은 신문시장의 경쟁은 너무도 치열하지만, 친중 매체가 아닌 이상 중국 진입은 원천적으로 막혀있는데다가 대만으로 가서 신문을 팔려고 해도 대만도 경쟁이 치열하기는 매한가지인지라 사정이 썩 좋지가 않다. 그렇게 자본적으로 쪼들리다보니까 친중 자본에게 신문들이 줄줄히 인수되고 있다. 자료 출처는 여기.
- 친중 신문: 文匯報(문회보), 大公報(대공보), 상보(商報)
- 주류 신문: 東方日報(동방일보), 太陽報(태양보), 蘋果日報(빈과일보)[34]
- 경제 신문: 信報(신보), 經濟日報(경제일보)
- 지식 신문: 明報(명보)[35] , 星島日報(성도일보)
- 영향력 적은 신문[36] : 新報(신보. 위에 경제 신문인 신보(信報)와는 한자가 다르다. 광동어로 信(썬)과 新(싼)의 발음이 달라서 가능한 일.), 성보(成報)
- 무료 신문: Metro, AM730, 頭條日報(두조일보)
- 영자 신문: South China Morning Post(南華早報, 남화조보)
- 무료 영자 신문: The Standard [37]
8.2. 방송
지상파TV 방송국 3개가 있으며 라디오 방송국 4개가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케이블 채널이 있다. 대개 시청률 조사는 CSM媒介研究에서 조사하긴 하지만, aTV에서 "시청률을 너무 낮게 잡는다"라며 까면서 홍콩 대학(香港大學)에서 조사한 자료를 실은 적 있었다. 아날로그 TV 표준으로는 PAL을 채택했으며, 디지털 TV 표준으로는 DTMB를, 디지털 라디오 표준으로는 DAB를 채택했다.
홍콩의 음악 프로그램 순위는 대개 4곳에서 잡는데, RTHK, TVB, 新城라디오 997, 상업라디오 (商業電台) 903에서 잡는다.
공공방송인 RTHK는 홍콩 정부가 직접 소유하는 공영방송으로 최소한의 독립성은 보장되어있다. 라디오 방송으로 시작했으며, TV 프로그램은 자체 채널을 개국하지 않고 민영 방송사를 통해 내보내다가 디지털 TV 방송이 개시된 지 몇 년 뒤에 자체 채널의 시험 방송에 들어갔다. 이후 ATV가 2016년 4월 1일을 끝으로 폐국하면서 ATV의 아날로그 채널을 차지하는 식으로 아날로그 TV 방송에 진출했는데, 아날로그 시절에 개국했다가 디지털 방송을 개시하는 것과는 영 다른 모양새다. (참고로 홍콩은 아날로그 TV 방송을 아직 종료하지 않았다.)
민영 라디오 방송사로는 CRHK와 Metro, 디지털 라디오(DAB)로만 방송하는 DBC라는 곳이 있다. 디지털 라디오 방송을 개시하면서 봉황위성TV도 URadio라는 곳을 세워 진출했으나, 이후 폐국한다. 이 외에 허가를 받지 않은, 즉, 해적 방송인 곳이 2곳 있다.
텔레비전 방송은 유선 라디오 방송을 운영하던 영국계 Rediffusion 사가 유선 TV 방송(ATV의 시초)을 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홍콩 정부에서 지상파 TV 방송 면허를 발급하면서 TVB와 CTV(佳藝電視)[38] 가 개국했는데, TVB는 승승장구했지만 CTV는 재정문제로 3년만에 폐국한다.[39] 그 뒤 Rediffusion 사가 면허를 발급받고 지상파 방송을 개시하면서 유선 방송 사업 자체를 접었다. 80년대 초에는 Rediffusion 영국 본사의 사세가 기울어 홍콩 내 사업을 매각하면서 ATV가 됐다. ATV는 시청률이나 규모에서는 TVB에 뒤쳐졌지만 그래도 자리는 지켜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TVB의 독주는 심해지고, ATV의 시청률은 줄어들고 있었다.[40]
한편, 90년대 초에는 워프 (Wharf) 그룹이 세운 신생 유선 방송 사업자인 홍콩 유선 TV가 종합 유선 방송을 개시했다. 처음에는 워프 그룹의 통신 부문과 한 몸이었으나, 1999년에 유선 방송과 가정용 통신 사업이 I Cable로 분할됐고, Wharf T&T는 기업 전문 통신 사업자로 남았다. 이 이외에 TVB는 위성 방송에 뛰어들었고, 홍콩통신(HKT)은 ITV라는 유료 플랫폼을 운영했는데 망했다가 HKT를 인수한 PCCW에서 Now TV라는 IPTV를 개시했다. 리키 웡의 시티 텔레콤(City Telecom)은 HKBN BBTV라는 IPTV를 열었다. 이후 Now TV는 가입자 수로 홍콩 유선 TV를 추월했으며, 홍콩은 세계에서 IPTV가 가장 성공한 곳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홍콩 반환 이후 한참 뒤, 홍콩 지상파 TV 업계를 TVB가 사실상 장악한 양상을 타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되었다. 이 때, 리키 웡은 통신 사업을 다른 곳으로 매각하고 시티 텔레콤의 사명을 홍콩 텔레비전 네트워크(Hong Kong Television Network. 이하 HKTV)로 바꾸고 지상파 방송에 진출할 준비를 하였다. 한편 PCCW는 HKTVE를, 홍콩 유선 TV는 Fantastic TV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 중 HKTVE와 Fantastic TV는 2013년에 예비인가를 얻는데 성공했고, 리키 웡의 HKTV는 탈락했다. 이후 HKTV는 자체 제작 프로그램과 홈쇼핑 방송으로 구성된 인터넷 방송을 개시했으며, 한편으로는 지상파 TV 방송 면허를 다시 신청한 상태이다.
ATV가 경영난과 삽질로 고전하던 중에 2015년 4월 1일, 도저히 만우절 장난같지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홍콩 정부가 1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두고 ATV의 지상파 방송 면허를 말소하고 HKTVE에 정식 면허를 부여하였다. 이후 1년간의 준비기간이 지나고, 2016년 4월 1일/2일 사이 자정을 끝으로 ATV는 방송중이던 모든 채널의 프로그램을 완전히 끝내지 않은 채 지상파 TV 방송을 종료했으며, ATV가 사용하던 아날로그 TV 채널들은 RTHK가 차지하였다. 한편, HKTVE는 3월 31일에 인터넷 실시간 방송과 Now TV를 통해 광둥어 채널 ViuTV의 시험방송을 개시했으며, ATV가 방송을 종료한 이후에 디지털 지상파 방송을 개시했고, 4월 6일에 정식으로 개국했다.
2016년 5월 31일에는 Fantastic TV가 정식으로 면허를 부여받았다. 초기에는 홍콩 유선 TV가 구축한 케이블망으로 방송할 예정인데, 해당 통신 단자를 케이블로 연결해 TV 안테나 선에다 그냥 꽃으면 된다고 한다. 지상파 채널은 추후에 확보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2017년 5월 14일에 광둥어 채널을 정식으로 개국했다. 한편, ATV의 후예를 자처한 Forever Top (Asia) Ltd.라는 회사가 New Asia라는 이름으로 지상파 TV 방송 면허를 신청했으나, 이후 신청을 철회했다.
2017년에는 TVB가 위성 방송 사업을 중단했다. 현재는 TVB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OTT 다채널 플랫폼인 My TV Super를 미는 중. 같은 해에 워프 그룹은 통신 및 방송 사업에서 적자를 견디기가 어려웠는지 위의 Forever Top이란 회사에 I Cable을 매각했다. (Wharf T&T는 한국의 MBK파트너스와 미국의 TPG Capital이 매입해 WTT가 되었다.)
9. 스포츠
홍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럭비와 경마, 축구이다.
9.1. 경마
영국의 영향으로 경마의 인기가 높으며, 21세기 들어 일본, 호주 등과 함께 떠오르는 경마 시행국으로도 유명하다. 홍콩 섬 완차이 끝자락에 있는 평일 야간 경마를 주관하는 크고 아름다운 해피밸리 경마장과 함께 주말에 국제 레이스를 주관하는 신계 남부의 샤틴 경마장이 있다. 남/북반구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G1급 경마국이라 일본, 호주, 유럽 등의 1류 경주마들이 국제 G1 우승을 노리고 원정오기도 한다. 서러브레드 생산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주마가 수입해 온 거세마라는 특징이 있다.
해피밸리나 샤틴 경마장은 한국의 서울 근교 과천시의 과천경마장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훨씬 규모가 크다.
9.2. 럭비
지금은 중국에 속하지만,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에서는 럭비가 가장 인기가 많다. 그러므로 홍콩에서 럭비는 150년 전부터 존재해왔으며, 럭비는 일본 다음으로 한국과 같은 아시아 2인자 이미지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한국과 경기 승패비율이 양국간이 비슷하다. 아시아 챔피언, 럭비 국가 리그, 럭비 월드컵 예선에서 자주 만난다. 이 정도면 라이벌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국제 대회로는 7인제 럭비에 해당하는 '''Hong Kong Sevens'''를 해마다 주최하기도 하며, 세계적으로 상당히 유명한 대회 중 하나이다.
매년 이곳 홍콩에서 Hong Kong Sevens 대회가 열리고, 이 대회를 보고 즐기기 위해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홍콩을 방문한다. 위 영상은 영연방 국가이면서 7인제 럭비 강국인 피지와 프랑스의 결승 경기이다.
9.3. 축구
지금과는 달리 이래 봬도 축구는 1950년대~1960년대만 해도 아시아에서 최정상급 리그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식민지 시절 영국 축구 영향이 커서인데 1908년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축구리그가 열렸고 1945-46 시즌부터 아시아 처음으로 2부리그 체제를 가졌다. 그 시절 아시아 리그에서 유일하게 2부리그 체제 및 스폰서 체계를 잘 잡아서 한국에서도 첫 해외리그 진출 선수가 바로 홍콩 리그로 진출했다.
최초로 해외 리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축구 선수를 배출한 지역이 홍콩이다. 허윤정 선수로 1968년 Sing Tao(星島/성도)팀에 입단했는데, 흔히 한국 최초로 알려진 차범근보다 10년 앞서 진출했다.[41] 공군사관학교 출신의 특이한 이력을 지녔던 선수로 이회택과 대표팀에서 같이 뛰었다. 연세는 이회택보다 훨씬 위. 참고로 허윤정 선수의 먼 친척뻘 조카가 바로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한편 이에 대한 반론으로 허윤정 선수보다 훨씬 앞선 1952년 Kwong Wah(光華/광화)팀에서 뛰었던 김규환 선수를 최초의 해외진출 축구선수로 이야기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후 신흥강호로 떠오른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오일머니 파워로 급성장한 중동 국가들, 그리고 은근히 꾸준한 투자를 한 태국 축구 국가대표팀 등에 밀려 현재 싱가포르 축구 국가대표팀과 함께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승점 제조기 신세가 되었다.(...) 1997년 초 열린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 당시 한국에 2-0으로 졌을 당시 홍콩에서 '''선전했다고''' 기뻐할 정도이며, 2004년 벌인 2006년 독일 월드컵 지역예선에선 쿠웨이트와 중국에게 7-0으로 대패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축구선수 출신이던 김판곤 감독이 이끄는 홍콩 사우스차이나 감독이 되어 2008-09, 2009-10 시즌까지 리그 2연패 우승을 거두자 그가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2009년 동아시안게임에서 오랜만에 홍콩이 우승하자 홍콩에선 월드컵 우승 분위기였고 당시 김판곤은 거스 히딩크 급 인기를 얻었다. 그 뒤로 김판곤은 2011년부터는 경남 FC 코치로 일했지만 1년도 안가서 홍콩축구협회의 끈질긴 애원과 부탁으로 돌아와 2012년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중 A대표팀 감독 겸 유소년 대표팀 총감독이 되었다. 2012년 4월 25일부터 30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14세이하 유스페스티벌에서 김판곤이 이끄는 홍콩은 6승 1무 2패로 3위를 차지했다. [42] 이를 두고 홍콩에서는 또 한번 '''김판곤 매직'''이라는 찬사를 받았는데 항상 5~6위에 머물던 홍콩 14세 이하 대표팀 역대 최고 성적이자 3~4위 단골 멤버였던 북한과 중국을 각각 4, 5위로 밀어버린 것이기 때문이었고, 게다가 2012년 중국과 갈등이 빚어진 가운데 바로 그 중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중국 14세 이하 대표팀 경기를 모두 이긴 것을 두고 유달리 홍콩에서 기뻐했기 때문이다. 경기를 본 AFC 관계자들이 홍콩 유소년팀이 놀랍게 성장했다면서 김판곤을 올해 아시아 유소년대표팀 최고의 감독 후보로 올리겠다고 할 정도였다. 김판곤 감독은 2017년 12월에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에 선임되면서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하였다.
김판곤 감독 재직 시 포스는 현재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에서의 박항서 감독 급이었다. 향후 베트남 대표팀 계약 종료 후 박항서 감독이 홍콩 축구를 맡게 되면 그 결과가 기대될 것이다. 이미 김판곤 감독의 피닉스 프로젝트로 홍콩축구에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남아공 등에서 받은 귀화 선수들이 넘쳐나며 피지컬에서 타 동남아시아를 앞서게 되고 유소년 축구 시스템도 손 봐서 박항서 급 감독이 부임 시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43]
이 나라의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해서는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참고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A매치 데뷔전 상대이기도 하다. 1948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중간 기착지였던 홍콩에서 홍콩 대표팀과 한국 대표팀이 맞붙어 한국 대표팀이 5-1로 승리했고, 이것이 한국 대표팀이 사상 처음으로 가진 A매치 경기로 기록되어 있다.
스포츠와 거리가 있는 스포츠 도박(?)에선 홍콩 경마회[44] 에서 발행하는 축구토토가 인기가 높다. 주 베팅 대상은 유럽 빅리그인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스페인의 라 리가, 이탈리아의 세리에 A, 독일의 분데스리가 등이며 특히 역사적 관련이 깊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배팅이 가장 많다. 가끔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홍콩경마회 로고가 새겨진 건물이 자주 보이는데 이 건물이 스포츠 토토, 경마 베팅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시설이다.
어느 정도 큰 사단법인 쯤 되는 모양인지 췬완쪽에 홍콩경마회 탁와(德華)공원이라는 지역 시민공원을 세운 적도 있다. 이 공원은 구룡성채공원보다는 조금 작지만 중국식 정원 위주의 인테리어고 주로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러 나온다. 아예 커다란 장기판으로 이루어진 휴식공간도 있어서 커다란 장기말(...) 위에 앉을수도 있다.
9.4. 야구
야구의 경우 인기가 아예 없지만 대표팀은 있다. 홍콩 야구 대표팀은 아시안 게임에 몇번 나왔지만 좋은 성적은 올리지 못하였다.
2017년 4월 홍콩 야구 대표팀의 장신 잠수함 케네스 추이가 체코 엑스트랄리가 소속 올림피아 블란스코와 계약했다. 홍콩 야구계에 있어서는 역사적 사건으로 "최초의 프로 야구 선수 탄생 '이라는 기사가 언론에 소개되었다. 케네스는 두 번째 등판에서 프로 첫 승을 올린다. 케네스 췌는 최종 성적 1승 7패, 5.67을 기록했고 2018년 시즌부터는 베이스볼 분데스리가의 베를린 플라밍고스에서 뛰게 된다.
9.5. 기타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중국과 더불어 손에 꼽는 사이클 강국이기도 하다.
올림픽에서는 2017년 기준으로 하계올림픽에서만 금/은/동메달을 각각 1개씩 획득하고 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요트 경기에서 리라이샨(李麗珊)이 획득한 메달이 현재까지 유일한 홍콩의 올림픽 금메달로 기록되어있다.시상식 영상 참고로 1997년 중국 반환 직전에 열렸던 올림픽이었기 때문에 국기는 영국령 홍콩기가 계양되었고, 국가는 God Save the Queen이 연주되었다.
10. 창작물에서
블랙 블러드 브라더스에서는 1997년도 쿠롱쇼크라고 해서 홍콩이 박살난다. 마치 도쿄가 괴수나 외계인의 침략으로 허구한 날 박살나듯 이 도시도 만만찮게 동네북이다.(...) [45] 그리고 블랙 블러드가 처음으로 인류에게 대대적으로 나타난 도시라고도 할 수 있다.
쿼런틴 등 사이버펑크류의 SF소설이나 국제 폭력조직을 다루는 작품에도 자주 나온다. 구룡성채의 영향 때문인듯 하다. 삼합회가 나오는 작품에도 필수요소처럼 등장한다.
창작물에서 홍콩의 이미지는 약간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은밀한 암거래나 범죄, 돈만 주면 무엇이든 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안고 있다. 이는 옆동네인 마카오도 마찬가지이나, 마카오는 주로 카지노 및 도박관련 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다.[46]
그러나 홍콩은 영화계에서 박힌 깊은 인상이 있다. 중국이자 영국인 곳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국적 따위 상관없고 뭘 해도 되는 '''자유국'''의 이미지가 강하다.[47] 그래서 범죄 영화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도시 중 한 곳이다.
한국 영화인 도둑들에도 등장했으며, 다크 나이트에서는 마피아들의 돈세탁 장소로도 등장한다. 퍼시픽 림에서도 역시 암거래 관련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미지일 뿐, 현실에서 홍콩은 세계적으로도 치안이 우수한 도시이다. 물론 자유무역항+ 영국이자 중국인 특이한 지역이라는 이미지에서 오는 선입견이었기에 요즘에는 이러한 경향이 뜸하다. 영화와 같은 암수범죄가 지금도 몽콕 뒷골목 등에서 저질러지는 건 사실이지만 민생치안에 영향을 줄 정도는 절대 아니다! 뉴욕 같은 곳은 낮에는 아주 안전한 센트럴파크도 밤에는 히스패닉 및 라틴아메리카계 마약 카르텔의 마약 밀거래 장소가 되며 이게 진짜 민생치안에도 영향을 주지만, 홍콩에 잔존한 삼합회는 철저히 엎드려 있어서 절대 민간인에게 해가 안 가게 조용히 처리한다. 아무리 허름해보이는 거리라도 해가 지면 일반경찰도 아닌 PTU 즉 경찰기동대 소속 전투경찰들이 2인1조로 중무장하고 순찰을 돌며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거나 우물쭈물하는 즉시 연행해 간다. 불법체류 외국인들도 이렇게 덜미가 잡히곤 할 정도다. 그러니까 애초 영화에 나오는거 같은 그런 암수범죄가 민생치안까지 악영향을 줄 정도면 한국인 여성관광객들이 여자 혼자 오거나 여자끼리 오는 여행지는 절대 될 수가 없다.
헐리우드 영화 내에서는 원래부터 많이 나왔다. 성룡의 러시아워라든가 프로텍터 등 헐리우드와 홍콩 합작영화는 1980년대부터 흔했다. 물론 중국에 반환된 후에 차이나머니 영향으로 더욱 많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며 특히 재난이나 SF 영화 등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현상이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중국 본토의 도시가 아닌 홍콩에 집중되는 이유는 중국 영토 중 서방에 가장 가까운 곳이 홍콩이고 교류의 역사도 중국 본토보다 오래되었기 때문이다.[48]
좀 뜬금없지만 일종의 가상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일본작품 풀 메탈 패닉에서는 중국이 장강을 기점으로 남북으로 나뉘어 내전 중이고 때문에 홍콩이 베를린 마냥 갈라져있다는 설정이다. 이를 이용해서 가우룽이 테러를 일으키고 소설 7,8권과 애니메이션 3기의 주 무대가 된다.
퍼시픽 림에서는 중반 이후에서 비중이 매우 큰 배경이다. 기지의 위치나, 영화가 영화니만큼 도시가 신나게 박살난다거나 여러가지 의미로.(...) 영화 툼 레이더: 판도라의 상자(Lara Croft Tomb Raider: The Cradle of Life, 2003)에서 악당 조나단 라이스의 근거지로 나온다. 홍콩내 타임 스퀘어 쇼핑몰에 자신의 화학무기 연구소를 숨겨 놓았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는 뉴욕, 런던과 더불어 마법사들의 근거지인 생텀이 있는 3개의 지역 중 하나로 나온다. 또한 영화 종반부에는 다크 디멘션의 강림으로 인해 위기에 빠지고 케실리우스와 도르마무와의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곳이다.
게임에서는 격투게임에서 스테이지로 나오거나 전세계를 무대로 하는 게임에서 1~2 미션 나오는 정도였지만, 쉔무 2와 슬리핑 독스에선 주무대로 나온다. 쉔무의 주인공 하즈키 료는 아버지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알기 위해, 슬리핑 독스의 주인공 웨이 쉔은 원래 홍콩 출신이였으나 가정사정으로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홍콩 삼합회에 잠입수사를 위해 다시 돌아왔다는 설정이라 주인공의 고향이기도 하다. 물론 실제에 비하면 게임이니까 현실 스케일에 근접한 구현을 기대하기에는 많이 아쉽긴 하지만, 주무대로 나오니 그냥 넘어가자.(...)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11년 늦게 나온 슬리핑 독스쪽이 그래도 구현도가 더 높다.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의 중국 미션 2에서 GLA가 홍콩의 컨벤션 센터를 장악해 중국군이 이 도시를 탈환하는 미션이 등장한다.
워게임: 레드 드래곤의 시나리오 동방의 진주의 무대로, 홍콩반환문제를 놓고 영국과 중국이 대립하다가 끝내 중국이 홍콩을 침공한다.
또한 절제할수 없는 끈적이는 기분을 느끼며 가버릴때 홍콩행 열차를 탄다고도 사용된다.
트랜스포머 4에서도 후반부 주무대로 등장한다.
배틀필드 4에서 빅토리아 하버가 맵으로 등장한다. 'DAWNBREAKER'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여명의 시작' 정도의 뜻을 '여명의 '''파괴자'''(...)'라고 오역.
소년탐정 김전일에서도 두번 등장한다 김전일, 목숨을 걸다, 홍콩 구룡 재보 살인사건
극장판 카드캡터 사쿠라의 주 배경지가 홍콩이다. 샤오랑과 메이링의 고향이며 경품 당첨으로 여행갔다는 설정이다.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에서 중국미션 2에 등장한다. 국제적 테러리스트인 GLA가 홍콩 컨벤션 센터를 장악하여 테러리스트와 독소 트랙터를 이용하여 홍콩을 점령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중국군에게 신나게 털리고 홍콩을 상실하게 된다.
헐리우드 미스터리물 엑스 파일에서도 1998년 막 개항한 홍콩 국제공항이 등장한다. 이때 이 공항 화장실에서 기름 형태 외계인이 출몰한다.
10.1. 홍콩 출신 캐릭터
[1] '띵뚱쌰옹'거리거나 '알았다해~' 같은 말투.[2] 홍콩반점, 홍콩주루, 구룡소식 등이 홍콩을 판 이름들이고 태로각, 아리산, 화련(화롄), 다카오(가오슝) 등 대만을 판 이름들도 있는데 특히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70%인 싱가포르에 이런 곳이 흔하다.[3] 2개의 문자, 3개의 언어[4] 귀마쌍성(鬼馬雙星), 반근팔량(半斤八兩), 매신계(賣身契), 천재여백치(天才與白痴), 마등보표(摩登保鏢), 철판소(鐵板燒)의 6개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저 제목은 다 떼고 미스터 부 시리즈로 발매.[5] 梁普智. 이름이 한국에서 그대로 쓰기엔 좀 그래서인지 보통화 발음인 리앙부지라는 감독 이름으로 개봉된 등대여명 같은 영화로 소개된 바 있다.[6] 예를 들어 중국식의 사찰을 배경으로 무협영화 찍는데 배경으로 야자수나무? 뭥미? 이런 식이다. 배경이 남방 일대일 경우면 몰라도 중원 한복판에서 아열대 식생은 부적합하다.[7] 예를 들면 호해쟁패록(湖海爭覇錄)과 위의 금도정협, 진시황. 이 중 호해쟁패록은 덕수궁에서, 진시황의 일부 겨울을 배경으로한 씬은 제주도에서 촬영하기도 했다.[8] 한국영화 제작 수를 채워야 외화 수입을 허용했다.[9] 대표적인 작품이 용지인자(龍之忍者)란 영화를 짜깁기한 '''남기남'''의 흑룡통첩장.[10] 다만 위의 호금전, 장철 감독까지 포함해서 원체 시대가 옛날이다 보니 지금 보면 유치하다고 느낄 만한 장면도 있다. 다만 1980년대 중반인 1984년쯤부턴 그런 부분이 많이 제거되어 지금 봐도 별 위화감이 없는 명작들이 많다.[11] 인지도는 영웅본색 시리즈에 비해서 밀리는 감이 없지 않지만, 동시기에 나온 홍콩 느와르물의 숨겨진 명작이다. 총 4편까지 만들어졌으며, 3편에서는 유덕화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1편을 제외한 모든 시리즈에 서금강이 주연 또는 조연으로 나오는 것도 특징.[12] 장르가 원체 짬뽕이라 분간이 잘 안되긴 하지만(...), 여튼 명작이다. [13] 홍콩식 재난영화로 홍콩판 분노의 역류라 할 수 있다. 배경이 쿤통선 웡타이신역 일대인 자운산이라 소방서 이름이 자운산 소방서이다.[14] 일본식 공포영화와 헐리우드 호러가 만난 홍콩식 호러로 중국계 태국인인 팡 형제가 감독 및 제작했다. 영화의 주요 배경도 태국이다.[15] 2014년에 나온 홍콩식 재난영화로 신계 서북부 화력발전소 화재로 홍콩 크리스마스 시즌에 블랙아웃이 닥친다는 스토리이다.[16] 이 광고가 장국영의 첫 광고....는 아니고 이쪽이다.[17] 이후 한국 메뉴를 또 냈는데 그게 밥에다 양념치킨 다리를 올려놓은(...) 것도 나왔다.[18] 일본의 이탈리안 전문 패밀리 레스토랑 프랜차이즈.[19] 나고야의 명물 술안주인 테바사키를 전문으로 하는 프랜차이즈.[20] 말레이 반도 쪽에선 표준중국어를 보통화 대신 화어로 부른다.[21] 홍콩 한인은 타 국가들과 달리 유독 가톨릭 비중이 높다. 다른 영어권처럼 교회가 한인 커뮤니티 역할을 하지만 정작 가장 교세 큰 기독교는 개신교가 아닌 가톨릭이다.[22] 비슷하게 싱가포르도 90% 이상의 교회가 아파트 단지나 상가건물 내에 십자가만 세워놓은 수준이다. 오죽하면 이 나라는 물론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교회인 시티하베스트 교회(아시아에서 2번째로 크다. 아시아 1위는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특이한 교회로 주목 받았을 정도. 그러나 2009년 시티하베스트교회의 공금횡령 사건이 터지고 2015년 콩히 목사가 징역 8년을 선고받면서 망했어요.[23] 히스패닉은 당연히 가톨릭이 대부분이다.[24] 天滅中共: 하늘이 중공을 멸할 것이다[25] 공산 중국과의 통일이 아닌 민주화된 중국과의 통일을 말한다.[26] 예수는 주. 중국어로 야소가 예수를 뜻한다[27] 기독교인이 많다는 대한민국 조차도 종교색 강한 기독교 빌보드는 찾아보기 힘들다. 붙였다가 당장 불교 단체나 반기독교 단체들부터 들고 일어나 욕 먹을 것이다. 일본은 인구 중 기독교인이 전 종파 합쳐 1%도 안 되니 논외. 북한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고, 중국 대륙은 공산당이 통치해 아직까지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다. 대만은 인구 3%의 외성인만 기독교를 믿고, 본성인은 기독교를 믿는 장제스 같은 외성인 사회지도층을 싫어해 기독교 교세가 약했고, 워낙 도교세가 강해 불교도 소수였다. 현재는 10% 정도의 대만인이 기독교를 믿어 제법 교세가 늘었다.[28] 중국 대륙은 정부 공인교회에서 드리는 중국어 예배에 외국인 참석을 금지한다. 외국인은 따로 모여야 한다.[29] 솔라 타워라는 베이스 캠프와 영국이 처음 들어올 때 구세군이 세운 마완 예배당이 있고 좀만 걸으면 공항으로 가는 칭마대교를 볼 수 있는 해변이 나온다.[30] 특이하게 아파트 바로 뒷쪽에 있으며 중국식과 서양식이 섞여있다. 묘비가 중국식이라 겉으로는 가톨릭 교도 묘지인지도 모른다.[31] 당연히 외성인들이다. 본성인은 외성인 독재자들인 장제스 같은 사람들이 믿는 기독교를 아주 싫어해 오고 있다.[32] 중국 본토도 지하교회는 정상적인 교황의 수위권 내에 있으며 최근 바티칸과 중국본토의 수교 노력을 통해 애국교회를 공인할 조짐도 보인다.[33] 유학 중에 병으로 세상을 떠남[34] 역명은 사과일보. 2003년부터는 대만판도 발간중. 민주파에 우호적인 신문으로 2012년 초 홍콩 네티즌의 반중국 광고를 전면게재하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이웃나라/한지붕 두가족 참조.[35] 무협 소설가 김용이 창간한 그 명보 맞다. 신뢰도는 SCMP와 더불어 최상위권.[36] 원래는 주류 신문이었지만 재정 악화 등으로 영향력 하락.[37] 1949년에 영자신문으로 창간하여 2007년에 무료로 전환, 홍콩의 유일한 무료 영자신문. 타블로이드 규격으로 지면이 작다. 그리고 미국식 영어가 나온다?! 아마도 홍콩의 영어는 영국식/미국식에 약간의 호주식이 짬뽕되어서 가능한 듯 하다. http://www.thestandard.com.hk[38] 비록 3년만에 경영문제로 폐업했지만, 당시 김용 원작의 소설(사조영웅전, 신조협려, 벽혈검, 설산비호, 녹정기 등)을 최초로 드라마한 방송국이라는 것에 의의가 있다. 또 금도정협(金刀情俠; 고룡의 구월응비를 원작으로 한 작품. 일부 장면은 한국에서 찍기도 했다.)이란 드라마에서 서극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39] 원인으로는 황금시간대에 교육프로그램을 광고없이 방영해야 했고, 이외에도 면허 발급에 불리한조건 때문에 지장이 있었다. 게다가 폐국이 좋지 않았던 것이 이 방송국에 소속된 배우나 제작진들에게도 사전에 알리지 않은 상태였으며 그 이후 프로그램은 TVB와 RTV가 구매하였고 CTV의 소속 배우와 제작진들은 양대 방송사로 이적하였다.[40] 원인은 1987년 사옥 화재, 1994년 6명의 기자들의 집단 사퇴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었던 것이다.[41] 최초로 해외에 진출한 선수가 차범근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차범근은 한국인 최초로 유럽 리그에 진출한 것이지 해외 리그에 진출한 것은 아니다.[42] 우승은 9전 전승인 한국, 2위는 7승 2패인 일본이다.[43] 참고로 중국은 홍콩과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예선전을 앞두고 다인종/ 다민족 홍콩 대표팀을 오합지졸(...)이라고 까며 중국 축구는 중화민족 단일민족이라 조직력에서 홍콩보다 앞선단 개드립을 시전하는 졸렬함을 보였다. 물론 이 드립은 사실이 아니다. 우레이만 해도 소수민족 회족이다.[44] Hong Kong Jockey Club.도박산업 독점기관이다. 경마, 로또, 스포츠토토를 주최한다.[45] 도쿄는 이게 아주 심해 도쿄타워는 허구한 날 박살나고 또 박살나며 골백번 박살난다. 홍콩은 다행히 랜드마크가 박살나진 않는다.[46] 아시아의 라스베이거스라 불릴 정도로 호텔과 도박장이 즐비하다.[47] '''물론 불법이지만, 여기는 홍콩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이 소설에도 등장할 정도.[48] 참고로 재난영화나 SF 영화 중에서 중국 내에 범 지구적인 조직의 사령부나 최첨단 공장 등이 설정되어 있는 것은 환영받는 편이다. 때문에 사령부는 중국에 있는데 정작 중국본토는 털리지 않는 기이한 상황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종종 있다. 물론 일본 영상물들은 그딴 거 없어 울트라맨 뫼비우스 최종회에는 무쌍철신 인페라이저 군단이 베이징을 쑥대밭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