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스포츠

 


1. 개요
2. 종목
2.1. 구기 종목
2.1.1.1. 도도부현별 인기 프로야구팀
2.1.2.1. 대표적인 인기 프로축구팀
2.1.3.1. 막강한 자금을 통한 배구계에서의 영향력
2.2. 격투기 종목
2.3. 기초 종목
2.4. 동계 종목
2.5. 기타 종목
3. 역대 일본 개최 국제 스포츠 대회


1. 개요


경제 수준도 세계 3위이고 인구도 많아서[1] 전 세계적으로 스포츠 산업이 다방면에서 골고루 발전해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특히 학교 교육에서 클럽 활동이 큰 비중을 가지고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나라답게 학창시절 각종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굉장히 많아, 생활체육의 저변이 엄청나게 넓다. 거의 전 국민이 한두개 이상쯤은 스포츠 경험이 있는 생활체육대국이다.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종목에 참가하는 나라 중 하나이며, 이 전 국민의 생활체육 경험과정에서 엘리트스포츠 인재가 발굴되고, 이러한 엘리트 스포츠 선수가 해당 종목 붐을 일으키는 등 선순환을 이루는 모범사례로 꼽힌다. 문화에 굶주린 민족이라는 별칭답게 프로스포츠 문화도 아주 좋아해서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큰 스포츠 시장이기도 하다.
스모는 명실공히 일본의 국기이며 복싱도 수준이 매우 높고 잘 하면서 인기가 상당히 높으며 다수의 세계 랭커 및 챔피언들을 보유 중이다. 격투기로 분류하기는 좀 그렇고 예전만은 못하지만 프로레슬링도 전통적인 인기 스포츠이다.
일본의 국기라고 하면 유도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이외에도 검도, 아이키도, 가라테 , 슛복싱의 종주국이며 당연히 수준도 높다.[2][3]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킥복싱도 일본이 종주국이다. 물론 태국 무에타이와 차이가 크지않고, 킥복싱 시장의 경우에도 오히려 서양이 더 발달된 경향이 있기는하다.
국기는 아니지만 주짓수 또한 일본 유술의 영향을 받았다. 주짓수라는 이름부터가 한자 유술의 '''일본어 발음'''이다.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도 매우 흥했지만 K-1의 몰락과 PRIDE의 도산으로 현재는 거의 몰락.(프라이드 망한지가 벌써 '''13년'''차다) 그러나 격투기 종목 전반적으로 보면 다양한 종목에 걸쳐서 상당한 인프라와 대중성을 가진 강국이다.
육상 등의 일부 종목 이외에는 골고루 활약하는 기조를 보인다. 다만 육상의 경우에는 오히려 백인 국가들 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당장 일본 한 국가의 100m 10초대 미만 기록을 가진 선수들이 백인 전체의 2배이다. 그래봤자 2명이지만. 육상, 수영 등의 기초종목에서 부터 볼링, 컬링 등 다양한 인프라가 활성화가 되어 있다. 수영의 '''기타지마 고스케'''가 그런 스타의 대표격이다.
특히 동계스포츠 시장은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유럽과 북미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하였다.(1972년 삿포로, 1998년 나가노) 한국이 2018년 평창, 2022년 중국이 베이징에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게 되면서 아시아 유일 동계올림픽 국가는 아니게 되었다.
그렇지만 축구와 농구의 경우에는 경제력을 감안하면 의아스러울 정도로 한국보다 프로화가 늦었고, 심지어 일본 내 인기종목인 배구는 아직도 프로화가 이루워지지 않고 있는 의외의 면도 있다. 인기 종목도 프로화가 늦어지는데 반대로 인기가 많지 않은 종목들도 실업리그가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미식축구 리그인 X리그가 있다. 이 리그의 재미있는 특징은 리그 우승팀이 일본 대학 미식축구 우승팀과 고시엔 야구장에서 고시엔 볼이라는 경기를 치룬다는 점이다.

1.1. 2020 도쿄 올림픽


2020 도쿄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영국, 프랑스, 미국, 그리스 다음으로,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하계올림픽을 두 번 개최하는 국가가 되었다.
일본은 1964 도쿄 올림픽 이후 생활체육 정책을 폈는데, 90년대부터 조금씩 투자를 늘렸으나 여전히 메인은 생활체육이었다. 생활체육 기반의 엘리트체육, 둘의 통합이라 보는 것이 적절했다[4]. 이런 상황에서 2020 도쿄 올림픽 유치를 기점으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는 아예 스포츠청을 신설하여 유망주들을 발굴하기 시작했고, 2008년에 만든 아지노모토 센터를 중심으로 체육시설 또한 늘렸다.[5]
일본의 성적 향상의 또 다른 힘으론 일본 국적의 혼혈 스포츠 선수가 활약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오사카 나오미라는 역대급 여자 테니스 선수가 등장했고 NBA 1라운드 9순위로 워싱턴에 입단한 NBA 최대 유망주 중 하나 루이 하치무라가 대표사례.
사실 예전부터 혼혈선수나 귀화선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긴하다. 농구의 미국 혼혈 히루키 겐지(1985년생), 배구에선 브라질 혼혈 스기야마 마르코스(1973년생) 등 찾아보면 예전부터 활약하여 은퇴 나이에 접어든 혼혈 일본인 선수들이 상당히 많다. 상술된 선수들은 일본 혼혈이면서도 실력이 세계정상급인 선수들이여서 최근에 더 돋보이는 것이다.
마치 2012 런던 올림픽을 기점으로 체육 성적을 향상시킨 영국처럼, 일본 또한 자국이 유치한 올림픽을 기점으로 2010년 중반부터 스포츠 종목 전체의 전반적인 성적 향상이 눈에 띄는 중이다.

2. 종목


  • 일본이 종주국인 스포츠는 ☆.

2.1. 구기 종목



2.1.1. 야구


명실상부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다.[6] 구글 어스로 일본을 보게 되면 동네마다 야구장들이 즐비하게 널려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일본 프로야구인 NPB는 1936년에 첫선을 보여 80년이 넘고 세계 2위 리그 인프라와 역사를 자랑하는 인기 스포츠이다. 12개 구단이 존재하며 관중 동원 면에서도 846경기 동안 2167만명이라는 관중을 동원(2010시즌 기준)하며 전 세계 프로스포츠 관중 동원 수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하는 등 일본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스포츠이다. 2015년 기준 아시아에서 일본프로야구보다 많은 평균 관중 수를 동원한 리그는 '''없다'''. 그리고 2017년엔 이윽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을 추월''', 전세계 평균관중수 1위의 야구리그가 되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한신 타이거즈 같은 명문 야구단의 경우 평균관중수를 4만명 이상 기록하는 초 인기구단으로 MLB에서도 한신보다 평균관중이 높은 구단은 LA다저스 단 한 구단 뿐이다. 이들 구단이 벌어들이는 수익도 어마어마하다.
2014년 기점으로 젊은 층, 특히 여성 층의 인기도 계속해서 증가 추세다. 여성들 사이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응원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카프조시(カープ女子)[7]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했다.[8] 또한 2014년 설문조사에서도 프로야구를 즐기는 인구가 3,000만명이 넘는다는 것이 나오기도 했다. 전국 도도부현을 대상으로 응원하는 팀을 조사했을 때 오릭스 버팔로스가 제일 인기가 많다고 답한 도도부현은 하나도 없었다.
야구는 올해(2014년) 미쓰비시UFJ 리서치&컨설팅 조사에서도 역시나 일본인이 좋아하는 최고의 스포츠였다. 일본에서 프로야구를 즐기는 인구는 3,128만명에 이르렀다.
또한 2016년 1월에 나온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스타 순위에서도 야구스타들의 이름이 대거 포함되었다.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코시엔[9]은 일본 공영방송인 NHK 에서 전 경기를 중계하며, 매년 80만 명 이상의 관중 동원을 달성하고 있다. 특히 여름 고시엔은 일본에서 뜨거운 여름을 상징하는 대회이기도 하다. 또한 독립구단이나 사회인 야구(실업야구)가 매우 발달해 있는 편이다. 독립 구단도 4개가 존재하며, 사회인야구팀의 경우에도 기업에서 운영하는 야구팀과 전문적인 야구선수들이 활동하는 클럽야구팀만 해도 343개에 달한다.[10]
실업야구 또한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실업야구가 프로야구 출범 이후 실업야구가 프로야구에 밀려버려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 한국과는 달리 일본의 실업야구는 여전히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실업야구에서 잘하는 선수는 프로로 스카우트되고 프로에서 못해서 방출된 선수는 실업야구에서 뛸 수 있다.[11]
미국의 MLB 세계화와 야구 저변확대 움직임에 대응하여 일본은 2009 WBC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야구 국가대표팀 '사무라이 재팬'을 앞세워 그동안 인지도에서 밀려있었던 야구 국제대회의 일본 내 홍보 겸 이에 맟춰 본격적으로 육성하는 방침으로 대응했으며, WBSC 프리미어 12를 적극적으로 후원 및 유치하고, 2020 도쿄 올림픽 야구 복귀를 추진하면서 강력하게 야구 국가대표를 육성하고 있다.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은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국가대표팀이다.
2018년 12월 발표한 WBSC 남자 랭킹에서 일본은 1위를 했다. 참고로 종주국인 미국이 2위, 한국이 3위다. 다만 주의해야할게 리그위주로 인기있는 야구지만 해당 순위는 리그의 수준이나 규모가 아닌 국가대표 경기 위주로 집계된 성적이다.


2.1.1.1. 도도부현별 인기 프로야구팀

아래는 2017년 기준이며, 전체적으로 연고지를 따라 응원하는 분위기가 강한 편이다.
아오모리는 홋카이도와 접한 영향으로[12] 닛폰햄의 팬이 많은 편이다.
  • 이와테현, 야마가타현, 후쿠시마현, 니가타현[13], 도야마현[14], 야마나시현, 간토 지방 - 요미우리 자이언츠
'''일본 최고의 인기 구단답게 간토 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위엄을 보여준다.'''
도호쿠 지역은 라쿠텐이 생기기 이전 야구를 보러 주로 도쿄로 갔기 때문에 요미우리 팬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바라키현, 도치기현, 군마현, 야마나시현, 니가타현 등 딱히 연고 구단이 없는 지역들은 거의 요미우리를 응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과거 프로야구가 전 경기가 중계되지 않던 시절, 프로야구를 즐기려면 경기장을 찾아가거나 라디오 중계가 일반적이었고, TV중계는 어쩌다 한 번 해주는 것이었던 시절, 그러나 교진만큼은 모기업인 요미우리 계열인 니혼TV에서 매우 자주 중계를 해 줘서 지상파로 시합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딱히 직접 보러갈 야구팀이 없는 동네의 경우 자연스럽게 가장 TV로 자주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볼 수 있던 팀인 교진을 응원하게 된 것.
사이타마와 치바는 각각 연고 야구팀을 갖고 있기는 한데, 각각 다른 지역을 떠돌다 연고이전해온 팀들이고 도시 자체가 도쿄의 베드타운이라 거주민들도 토박이보다는 외지 출신으로 도쿄에 취직해 베드타운인 치바나 사이타마에 주택을 구입해서 정착하는 루트를 탄 거주민들이 많아 팬들의 충성심이 그리 높지 않다. 그 외에 사이타마는 축구도시라서 야구보다 축구팀인 우라와 레즈의 인기가 높기도 하고. 사실상 도쿄권의 5팀 중 최근들어 독자적인 팬베이스를 구축한 요코하마를 제외한 나머지 3팀은 교진이 먹다 남은 파이를 나눠먹는 모양새에 가깝다. 엘지두산이 서울권의 인기를 나눠먹고 남은 파이를 먹는 히어로즈의 처지에 비유할 수 있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본은 인구가 1억3천만에 롯데와 세이부가 각각 치바나 사이타마에 정착한지도 30년은 넘어가는지라 3팀이 나눠먹어도 한국프로야구 팀들보다는 장사가 잘 되긴 한다.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홈그라운드.
간사이 지역과 간사이에 접한 현들이 주로 응원하는 팀이며, 교토부, 오사카부, 효고현, 나라현, 와카야마현의 경우 과거 요미우리 팬을 역적 취급했던 적이 있다. 심지어는 '''야구팀이 두 개나 있는 도쿄에도 한신 팬들이 많다.''' 사실 이상할 것도 없고 더 당연하다면 당연한 게 서울도 그렇지만 도쿄에는 간사이, 주고쿠 출신인 외지인들의 거주 비율이 꽤 높은 편이다. 그래서 한신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팀도 히로시마 카프. 3위가 요미우리다. 심지어 도쿄 출신인 오토타케 히로타다도 한신 팬이다.[16] 도쿄 토박이들이 교진 혹은 스왈로스를 응원하는데, 안 그래도 외지인들에 비해 절대다수라고 할 수 없는 토박이들인데 둘로 화력이 나뉘면 간사이의 종교인 한신에 이길 수가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지방출신이 많다 보니 기아나 롯데같은 지방 인기팀이 오히려 서울팀인 히어로즈보다 서울에 팬이 많다.
2000년대 대부분을 개막장 성적을 찍어댄 탓에 인근 지역을 연고로 하는 요미우리로 팬이 많이 유출되었으나 그래도 야구팀이란게 다 그렇듯이 연고도시인 요코하마시의 지지는 단단했고, 요코하마시는 꽤 인구가 많다. 거기에 모기업이 TBS에서 DeNA로 넘어간 이후에는 적극적인 마케팅과 투자로 팬층을 빠르게 키워나갔고 2016년부터는 5,6등만 찍어대던 팀의 성적까지 올라가면서 팬층이 두터워졌다.
나가노는 주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야쿠르트를 많이 응원하는데, 이유는 야쿠르트의 창업자인 시로타 미노루가 나가노 현 출신이기 때문이다.
시즈오카현에는 JR 히가시니혼 소속 열차가 다니는 구간이 있음에도, 미에현은 간사이 권역임에도 불구하고[17] 나고야의 영향을 깊게 받아서인지 주니치 팬이 많다.
시가는 간사이 지역이지만, 모기업의 영향 때문인지 한신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으며, 사가는 과거 니시테츠 라이온즈 시절 인연으로 팬이 많다.
오사카가 한신국이라면 여긴 그냥 카프국이다.
  • 규슈 지방[18], 시마네현, 야마구치현, 오키나와현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역시 규슈 지방 외에도, 인접한 타 지역에 팬이 많은 편이다. 파리그 제일의 인기팀이자 범 큐슈-시코쿠권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팀.

2.1.2. 축구


역시 일본의 인기 스포츠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야구와 인기면에서 넘사벽급의 차이가 있었으며 프로화도 한국보다 늦게 시작되었다. 1980년대에 급속하게 인기를 얻기 시작, 1990년대에 월드컵 개최를 목적으로 두며 프로화가 단행되었고 1998년 월드컵 진출도 이루어지며 야구와 호각세를 달리는 인기 스포츠가 되었다. 2020년 3월 기준 FIFA 랭킹 28위이다.
일본 프로축구 리그인 J리그는 2012년 기준 경기당 평균 유료관중 1만 7000명 수준으로 AFC에서 공인한 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리그다. 2018년 현재 일본 각 리그별 팀들은 지역밀착에 성공하면서 꾸준히 관중몰이를 하며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한국인들도 여기에 많이 가 있다.
여자축구는 원래 중국과 북한에 밀려 그다지 강하지 않았으나,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부 축구 4위를 기점으로, 2010년대 들어와서 전력이 급상승하여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선 은메달을 차지하는 등 상당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일본 여자 축구는 대지진으로 좌절을 겪었었던 일본에 희망과 용기를 전해주는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여 2011년엔 나데시코 재팬이 일본 유행어 제1위로 떠오르게 되었고 일본은 지금도 여자 축구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과거엔 한국 선수의 프리미어 진출 붐과 비슷하게 나카타의 일본 진출과 더불어 각종 매체의 호의적인 묘사 등으로 인해 세리에A 위주로 진출하려는 성향을 보였다. 당시 세리에는 지금의 프리미어 리그 급으로 넘버원 리그의 입지를 차지하고 있던 시절이기도 하고. 2010년대에 들어서 카가와 신지하세베 마코토 등 일본 국가대표 축구선수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거둔 성공으로 젊은 선수들이 덩달아 독일에 진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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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1. 대표적인 인기 프로축구팀

각 지역별로 프로축구팀 있는 편이라 자기 거주지나 고향의 팀을 응원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J리그의 대표적인 인기팀이다. 구장은 도쿄의 위성도시인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에 있다. 도쿄에도 J리그 팀이 두 팀이나 더 있지만 영 못하는 탓에 도쿄 사람들 중에도 우라와 레즈 팬이 제일 많다.
J리그 최다 우승팀이다. 2018년에는 FIFA 클럽 월드컵에도 진출했다. 또한 한국인 권순태 선수가 진출한 팀이기도 하다.
황의조지롱댕 보르도로 이적하기 전 있었던 팀이다. 현재는 김영권주세종이 소속되어 있다.
추부지방의 대표도시 나고야를 연고로 하기에 성적은 그다지임에도 상당한 인기를 자랑한다. 미에현 주민들도 응원할 정도다.

2.1.3. 배구


축구, 야구, 럭비 등과 더불어서 역시 일본의 최고 인기 스포츠 중 하나. 현재 일본에선 배구를 보통 바레보루(バレーボール, Volleyball의 일본식 발음)라고 부른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64 도쿄 올림픽에서는 여자배구가 소련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할 만큼 강팀이었고 당시 소련과의 결승전은 일본에서 집계한 TV 시청률이 무려 69%[19]가 나왔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었다. 지금도 여자배구 국가대표의 경기는 축구 시청률과 맞먹는 정도다. 반면에 남자 배구는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아시아 유일의 올림픽 남자 배구 금메달을 보유한 나라이며, 동양에서 배구만큼 강세를 보이는 구기 종목도 없다.'''[20]
일본의 배구 중계를 보고 있자면 버라이어티 쇼를 방불케 한다. 인기 아이돌 가수를 초청해 공연을 한다거나 공중파 TV에서는 대회기간 연일 경기 소식을 전하기 바쁘다.
여자 배구는 올림픽에서 금은동 각 2개를 딸 정도로 강팀이지만, 남자 배구는 여자 배구에 훨씬 못미친다. 인기면에서도 여자 배구가 남자 배구보다 압도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제대회에서 여자배구 성적이 더 좋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지속적인 성적 하락과 인기도 하락하여, 차츰 주춤하고 있다. 특히 90년대는 일본 여자 배구의 암흑기로, 94년부터 97년까지는 한국에 16전 전패를 당하기도 했다.[21] 2000 시드니 올림픽 탈락의 충격으로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가 세대 교체를 실시하기도 했다.
일본의 스타일은 단신이지만 끈끈한 조직력과 스피드로 승부하고, 수비가 강하다. 세터의 손에서 나오는 토스가 빠르고 이단연결이 상당히 좋은 팀이다.[22] 이러한 점 때문에 2000년대 초반 세대 교체에 실패한 한국 여자배구는 일본에 22연패라는 끔찍한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23] 그야말로 극공일증이다. 당시 일본 대표팀 멤버는 '텐상' 다케시타 요시에 세터를 필두로, 주포 구리하라 메구미, 살림꾼 다카하시 미유키, 센터 아라키 에리카, 오토모 아이, 월드리베로 사노 유코 등이 주축이었다. 다만, 일본도 세대교체에 은근 애를 먹기도 했는데, 2000년대 중반 서양식 장신 배구를 한다고 실력에 관계없이 키 큰 선수만 뽑아다가 경기하다 잠깐 폭망한 적이 있다.[24]
여자배구는 침체기를 겪다 2010년 세계선수권과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부활을 노리고 있다. 특히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똑같이 30여년 만에 메달을 노리는 라이벌 한국과 만나 3-0 스트레이트로 승리하며 메달을 따냈다.
리그의 경우에는 실업리그이긴 하나 용병제도도 있고, 실력면에선 사실상 프로나 마찬가지다. 이름도 V프리미어리그다.(1부리그) 프로가 아니라 실업리그이다 보니 선수들은 회사 소속 직원 신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프로화를 시도해보았지만 배구의 인기 하락으로 난관에 부딪치면서 현재도 프로화는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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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1. 막강한 자금을 통한 배구계에서의 영향력

일본은 이러한 국내 인기를 발판삼아 국제배구계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제배구연맹(FIVB)과 일본의 유착관계는 정말 심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스폰을 많이 해주기 때문에 국제배구연맹에 일본은 그야말로 VIP급 고객이나 마찬가지다. FIVB의 후원사인 미카사[25]데상트는 물론 전 세계 상당수 팀 유니폼과 선수들 운동화를 일본 기업인 아식스, 미즈노등 이 후원하고 있다. 국제배구연맹이 대놓고 일본을 편애할 정도다. 메이저 국제 대회와 자질구레한 대회까지 거의 모두 일본이 도맡아 개최하고 있으니 이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일본은 4년 주기로 개최되는 월드컵과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을 거의 자국의 통상적인 이벤트처럼 개최하고 있고, 세계선수권도 최근 개최수 빈도가 높아졌다.[26] 그 외 월드 그랑프리와 월드 리그 투어 경기도 빠짐없이 개최하고 있다.[27]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올림픽 최종예선은 올림픽 개최 국가가 어디건 간에 항상 일본에서만 개최된단 거다. 이 정도면 국제배구연맹이 얼마나 일본을 편애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최종예선이라는 기이한 예선 방식이 만들어진 것도 1990년대 일본이 한국에 밀려 자칫하면 올림픽에 갈 수 없게 되자 만들어낸 고안이다. 2000 시드니 올림픽 예선부터 쭉 개최하고 있다. 다른 대륙과 달리 아시아만 세계예선과 통합하여 치른다.
최종예선이기때문에 아시아 및 유럽, 중남미 국가가 참가하는데 여기서 주최국이 일본이니 이미 일본은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기 유리한 상황이다.[28]
이러한 일본을 여러 국가들은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데 이미 일본의 홈어드밴티지는 위험수위까지 올라왔다. 국제대회 개최로 지나친 편파 판정과 유리한 경기일정을 짜는 바람에 각국의 빈축을 사고 있다. 특히, 2012년 월드리그 남자배구대회에서는 본선 잔류에 실패한 일본을 아무런 조건없이 자동 진출권을 주는 노골적 편애까지 했다. 덕분에 한국은 일본보다 상위 성적이었음에도 탈락 위기에 놓였으나 결국 한국, 일본 두 팀 모두 본선에 잔류했다. 이러한 노골적 편애에 한국, 프랑스 등 다른 여러 국가들이 국제배구연맹을 규탄하여 항의 공문을 보냈다. 여자배구의 경우 도쿄에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세계 최종예선대회에서 세르비아와 짜고 승부조작을 했다는 구설수가 돌았다. 한국에게 진 일본이 올림픽 본선 진출에 빨간불이 켜지자 세르비아와 서로 윈윈하고자 짜고 경기를 했다는건데, 일본이 3-0, 3-1, 3-2로 이기거나 0-3, 1-3으로 지기기만 해도 태국이 올림픽 본선에 갈 상황이었고 2-3으로 일본이 지지만 않으면 됐었는데(일본이 세르비아에게 2-3으로 질 경우, 일본과 세르비아가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다. 쉽게 말해 안전하게 두 팀 다 올림픽 본선에 가기 위해 승부조작을 했다는게 태국측과 세계 대다수 배구팬들의 주장이다.) 일본은 4세트 이후 급격한 경기운영 저하와 잦은 범실로 세르비아에게 2-3으로 져버렸고, 덕분에 최대 피해국은 태국이 되고 말았다. 태국으로서는 눈앞에 둔 올림픽 출전권을 놓친 셈이다. 당연히 태국은 노발대발하며, 일본과 세르비아가 서로 짜고 승부조작을 했다고 국제배구연맹에 이의 제기를 했으나 결국 승부조작 혐의를 찾지 못했다고 일본의 편을 들어줬다. 당시 태국과 동남아 등지에서는 반일 감정이 일어날 정도다.[29]
그런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세계최종예선에서 일본은 태국과의 경기에서 또 다시 이해할 수 없는 편파판정으로 승리하며 4년 전 일을 재현했다.[30] 태국 감독의 경기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 압도적인데 '이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일본의 쇼에 불과하다.'[31]
2020 도쿄 올림픽을 일본이 유치했는데, 이번에 마침 국제배구연맹에서 20여년동안 유지해오던 아시아 올림픽 예선 방식을 변경했다. 일본이 올림픽 개최국이 되자마자 올림픽 예선 방식을 또 한번 변경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인 것이다. 주최국이므로 올림픽 예선에 참가지 않아도 되는 일본은 이번 변경된 예선방식을 지켜보면서 후에 있을 올림픽에서 본인들에게 유리하게끔 예선방식을 고쳐나갈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국제배구연맹(FIVB)은 일본의 산하기관이라는 조롱을 받아도 시원치 않다.

2.1.4. 농구


농구의 경우 만화 《슬램덩크》의 인기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농구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실제로 즐기는 동호인은 비교적 적은 편이며 프로농구도 인기가 썩 많은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한국보다 농구의 프로화가 늦게 이루어졌다. 또한 프로리그의 경우에는 일본농구리그(JBL)과 일본프로농구리그(BJ리그)로 양대리그로 따로 출범하여 서로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찌보면《슬램덩크》의 히트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2014년 10월 24일 국제농구연맹(FIBA)에서 이원화된 리그를 합치지 않으면 일본농구협회(JBA)의 자격을 정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결국 JBA는 두 리그를 통합한 B.리그를 2016-2017 시즌부터 출범하였다. 새 리그는 승강제를 도입하였으며 동부, 중부, 서부 3개의 컨퍼런스로 나뉘어져 있고 1부 리그 18개 팀, 2부리그 18개 팀이 존재한다.각 리그마다 플레이오프 방식이 다른데 1부리그의 경우엔 각 컨퍼런스 1,2위팀과 그 팀들을 제외한 팀중 정규리그 성적이 가장 좋은 2팀이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며 준준결승과 준결승은 2경기, 결승전은 단판으로 치뤄진다.
최근엔 적극적인 유학 및 선진 농구를 받아들이며 눈에 띄게 실력이 성장했다. 귀화 선수를 받아들이며 높이도 올라가고 패스돌리기 스타일에서 시원시원한 아이솔레이션 농구를 구사한다. 다만 이제 시작한지라 2019 농구월드컵에선 부진했다.
최근 NBA로 와타나베 유타, 하치무라 루이(혼혈, 아버지가 서아프리카인) 같은 선수들을 보내는 등 좋은 선수들은 배출하고 있다.
남자부도 성장세지만 특히 여자부의 성장세는 더욱 높은데 2년마다 열리는 여자 아시안컵에서 2019년까지 4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특히 2015년 결승에는 기존 아시아 여자농구 최강국으로 평가받은 중국상대로 중국의 홈에서 85-50이라는 대승으로 중국을 큰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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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테니스


2010년대 들어 일본 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종목이다. 니시코리 케이가 대회마다 1만여 명이 넘는 일본인 팬을 몰고다닌 것으로 테니스 인기의 발판을 만들었고, 몇년 뒤 오사카 나오미라는 기름을 들이붓는 것으로 현재 일본 내 테니스 인기는 엄청난 상태다.
'''니시코리 케이'''는 2014년 9월 6일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세계1위인 노박 조코비치를 꺾고 아시아인으로써는 최초로 결승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으며, 2014년 11월 4일에는 세계랭킹 5위에 올랐다. 니시코리 이전에는 파라돈 스리차판(태국)이 2004년 9위까지 오른 적이 있지만 아시아인으로써는 세계 랭킹 5위는 니시코리가 세계 최초이다.[32] 그 후로 비록 메이저우승은 못했지만 꾸준한 활약으로 포브스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수입이 많은 선수리스트, ESP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선수 리스트에 아시아선수중 가장 높은 순위를 여러차례 차지하기도 했다.
뒤이어 오사카 나오미는 2018년부터 마스터즈에서 당시 랭킹 1위 시모나 할렙을 꺾고 차지한 우승을 시작으로 US 오픈, 호주 오픈까지 우승하면서 WTA 사상 최초로 아시아 선수로서 랭킹 1위를 달성하였다.
사실 2010년대 테니스 돌풍을 몰고온 일본인 선수 두 명이 등장하기 전에도 일본 내에서 테니스는 상당히 대중적인 스포츠였다. 축구, 농구처럼 사람이 모여야 할 필요도 딱히 없고, 당구 등처럼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 공 하나랑 라켓만 들고 혼자서 벽에다가 하루종일 스윙만 해도 되는 스포츠다. 현재 중/고교 방과 후 부활동으로서는 물론이고 대학교에서의 동아리도 굉장히 활성화 되어있다. 사회인 테니스인들도 포함하여 현재 일본 내에 정식 등록된 테니스 선수만 '''439만 명'''으로 집계된다.

2.1.6. 배드민턴


한국과 마찬가지로 진입장벽이 아주 낮고 나이대 있는 분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 일본에서도 나름 저변화가 잘 되어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52년 일본 협회가 국제 배드민턴 연맹에 소속된 뒤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한국을 포함한 중국, 말레이시아 등이 강세를 보이던 80대에 들어서기 전까진 일본이 나름대로 배드민턴 강국의 역할을 했는데, 1972 뮌헨 올림픽 단식 종목에서 나카야마 노코리가 금메달, 유키 히로에가 동메달을 획득하며 메달리스트 또한 배출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 후론 국제대회 성적이 상당히 암울했는데,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배드민턴이 정식 종목이 된 후론 무려 20년 동안 올림픽 메달이 없었다. 하지만 엘리트 체육을 병행하기 시작하고 박주봉을 감독으로 영입한 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후지이 미즈키, 카키와 레이카 조가 여자 복식 은메달을 획득했고, 4년 뒤 2016 리우 올림픽에선 타카하시 아야카, 마츠토모 마사키가 다시 한 번 복식에 출전해 일본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따내면서 배드민턴 강국으로의 도약을 노리고 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복식 금메달을 한 속칭 '타카마츠' 콤비를 이끈 감독이 상술했듯 한국 배드민턴 레전드 박주봉인데, 박주봉이 2004년에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뒤 엄청난 성적 상승을 가져온 종목이기도 하다. 일본을 꾸준히 세계랭킹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강팀으로 만들었으며, 당장 한국이 노메달로 부진한 2019 전영오픈에서만 남자단식 금, 여자단식 은, 남자복식 동, 여자복식 금은동, 혼합복식 동메달로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따내며'''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박주봉 항목 참조.

2.1.7. 탁구


세계적으로도 중국이 강세지만 배드민턴과 비슷하게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 2020 도쿄 올림픽 대비 투자를 늘려 상당한 강세를 보이는 중이다. 2018년엔 월드 투어에서 중국 선수들이 일본에서 일본의 어린 선수들에게 연달아 패배하는 등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언론 또한 중국의 탁구 만리장성을 넘을 수 있다며 기대를 모으는 중이다.

2.1.8. 럭비


일본은 300여개 실업팀과 6천여개 중, 고등, 대학교 팀이 있으며 등록 선수만도 13만명에 이른다. 또한 2003년 총 16개 팀으로 구성된 프로 럭비리그인 '''톱리그'''가 출범했다. 경기당 최대 3만명 이상의 관중이 찾을 정도로 인기 스포츠이며 최근에 상승세를 타고 있다. 동아시아에선 유일하게 나름대로 프로리그가 잘 존속될 만큼의 기반은 갖췄다.
아시아에서 럭비 유니온의 최강국이기도 하다. 그나마 7인제 럭비에선 한국이 아시안게임을 비롯한 아시아 대회에서 일본을 누른 바 있지만 주류 경기인 15인제에선 일본이 압도적이다. 1987년부터 4년마다 열리는 럭비 월드컵에서 아시아에 배정된 1장의 출전권은 항상 일본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아시아 안에서지, 럭비 강호들을 만나면 역시 일본이 동네북이 되어왔다.
2015 럭비 월드컵에서는 3승 1패를 거두고도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다. 이전 월드컵에서 단 1승을 거둔 것에 비하면 대단히 호성적. 첫 경기 남아공전에서 승리하면서 파란을 일으키더니 미국령 사모아와 미국을 상대로 차례로 승리를 거두었는데 스코틀랜드에 지면서 탈락했다. 그래도 일본이 거둔 월드컵 최고 성적으로 향후 자국에서 열리는 차기 월드컵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성적을 거둬 2015년에 일본에서 럭비 인기는 상상 그 이상이었고, 특히 대활약한 고로마루 아유무[33]는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사실 이 선수가 주목을 받는 것은 에이스인 것도 있지만 눈에 띠는 독특한 동작 때문인데 킥을 하기 전에 취하는 일명 '고로마루 포즈'는 일본에서도 대유행하여 누구나 따라하는 동작이 되었다. 그야말로 신드롬이다.
2019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럭비 월드컵을 개최하였으며, 아시아 최초로 유치한 것에 대해 굉장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럭비 월드컵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탈아론(脫亞論)''''[34]을 내세우며 ''''아시아의 유럽''''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일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메이지 정부는 럭비 종주국인 영국과 1902년 동맹을 맺기 이전부터 럭비를 장려했다. 럭비가 강조하는 팀워크, 희생정신, 끈기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추구하던 당시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졌다. 1920년대 일본 전역에 수천 개의 럭비팀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인기였다. 이런 전통 때문에 럭비는 지금도 일본에서 인기 스포츠 종목 중 하나로 손꼽힌다. 대학 럭비부 출신은 취업할 경우, 기업에서 환영하는 인재들이다. 모리 요시로 전 일본 총리는 와세다대 럭비부 출신으로 정치권에도 적지 않은 럭비 팬이 자리 잡고 있다.[35]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선 지난 월드컵에서의 아쉬움을 만회하며 전승으로 조별리그를 진출해 사상 최초로 8강에 올랐다! 스코틀랜드에게 복수한건 덤. 그러나 8강에서 역으로 남아공에게 복수를 당하며 탈락했으나 자국에서 최고성적을 내며 기분좋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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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격투기 종목



2.2.1. 스모


2019년까지도 NHK를 비롯한 각종 언론사의 인기 순위에서 야구, 축구, 다음가는 인기를 자랑 중인 일본의 전통 스포츠이다. 하지만 인기와 별개로 유도나 검도와 같은 일본 전통 격투기 스포츠에 비해 수련자 수는 확실히 적다.
그것이 무색하게 스모를 보는 일본인은 상당히 많다. 역사적으로도 1928년 라디오로부터 꾸준히 스모를 중계했으며, 지금까지도 오후 4시~6시 2시간 동안 NHK에서 스모를 중계해준다. 이 '오오즈모'는 '''평균 18%'''라는 엄청난 시청률을 자랑한다

2.2.2. 유도


항목 참조

2.2.3. 검도


항목 참조

2.2.4. 복싱


일본 복싱계는 올림픽 아마추어 성적은 안 좋고 프로 메이저 기구의 성적은 상당히 좋다. 프로복싱 4대 메이저기구에서 남자챔피언중에 일본 선수들이 한명 이상은 다 있고 WBA, WBC, IBF, WBO 등 '''WBO'''에서는 일본이 미국보다 챔피언이 많다. 다만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으로 계산하면 동률이다.
일본 내 인기 역시 괜찮은 종목이었지만, 201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인기가 더더욱 높아지고 있다. 세계 탑클래스 복서인 괴물 신예 이노우에 나오야와 세계 재패를 꿈꾸는 아시아 역대 최고의 중량급 복서 중 한명인 무라타 료타[36]등이 등장한 영향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이오카 카즈토, 테라지 켄시로 등 현역 챔피언을 다수 보유 중이다.

2.2.5. 레슬링


올림픽에서 성적이 상당히 좋은 편이며, 역대 올림픽 종합 순위로 보면 3위나 된다. '''여성, 경량급'''에서 메달을 주로 따낸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여성 성적이 좋아서 전체 2위를 했다. 대표적 선수로는 세계 랭킹 1위를 800주 이상 기록한 요시다 사오리와 올림픽 4연속 금메달(2004~2016)을 따낸 이초 카오리이며, 이 둘은 일본 국민영예상까지 받았다.
특히 프로레슬링의 경우 인기가 엄청난데 일본의 애니, 영화, 드라마 등에도 작중 프로레슬링 관련 장면이 꼭 나오며, 특히 액션씬에서 프로레슬링 기술이 최소 한번 이상은 나올정도에다 일본의 프로레슬링은 업계내 입지가 북미랑 멕시코 다음으로 높다.

2.3. 기초 종목



2.3.1. 육상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일본은 올림픽 초창기 육상 강국이었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일본의 올림픽 첫 금메달이 육상에서 나왔다.'''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세단뛰기의 오다 미키오가 그 주인공이다. 이 금메달을 시작으로 일본은 올림픽 세단뛰기 종목 3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세단뛰기 세계최강국으로 군림한다.[37] 그 외 멀리뛰기, 장대높이뛰기 등 종목에서도 메달을 배출했고 일본 최초의 여성 메달리스트 역시 800m 경기에서 배출되었다. 마라톤에서도 꾸준히 강호였다. 종전 이후 일본이 올림픽 육상에서 획득한 모든 메달이 마라톤에서 나왔다. 2000 시드니 올림픽-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2연속 여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기도 했다.
2010년대 들어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선수들이 그동안 동양적 체형의 한계라고 여겨졌던 세계 육상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일본과 중국 두 나라의 100m 10초대 미만 선수들은 '''백인 전체의 100m 10초대 미만 기록의 4배이며 최고 기록 또한 0.01초 더 빠르다.''' 특히 2004 아테네 올림픽 해머던지기에서 무로후시 고지가 금메달을 딴 것은 일대 사건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트랙 종목에서도 꾸준한 투자와 훈련으로 점점 세계 수준에 근접하는 중이고,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4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는데 미국, 캐나다, 트리니다드토바고 등 단거리 강호들을 다 밑에 깔았다. 국내 언론에선 이를 갑툭튀 은메달로 여기지만 사실 일본은 이미 2012 런던 올림픽에서 5위라는 좋은 성적을 냈었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업적은 아니란 얘기이다. 혼혈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중인데 앞서 말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400m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선 캠브리지 아스카자메이카 혼혈이고, 2015 청소년 세계선수권 100m와 200m를 석권한 사니 브라운은 가나 혼혈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아시아권에서는 중국과 함께 육상을 양분하고 있다. 다만 최근엔 중국에게 밀리고 있으며 귀화 선수들을 앞세운 아랍국가들도 치고 올라오고 있다.

2.3.2. 수영


일본 내에서 국제대회 성적과 별개로 언제나 인기있는 종목이 수영이다. 일단 초등학교, 길게는 중학교 까지도 수영을 체육시간에 필수적으로 하는 학교들이 많다. 특히 초등학교는 90% 이상의 학교가 수영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인시 일본 내 등록 선수 또한 45만 명에 육박한다.
하기노 고스케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과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인 혼영 4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같은 일본 선수 세토 다이야는 동메달을 딸 정도로 국제대회 성적 또한 양호하다.

2.3.3. 체조


우치무라 고헤이가 캐리하는 남자 기계체조가 유명하다. 최근엔 도쿄 올림픽을 위해 투자를 늘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12년 만에 단체전 금메달을 따는 등 약진하는 중이다.

2.4. 동계 종목



2.4.1. 피겨 스케이팅


선진국 스포츠라는 피겨 스케이팅 종목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여자 싱글과 남자 싱글에서 강세를 보이는 편이다. 여자 싱글은 러시아 신예 선수들이 많이 등장하기 전까지 메이저 대회 포디움을 차지 하는 경우도 많았다.[38] 동계 스포츠 중 인기도 많은 편인데 매년 장기간에 걸쳐 아이스 쇼가 열린다.[39]
인기만큼 서브 컬처에서도 많이 나오는 편인데 키노 마코토 처럼 피겨가 특기이거나 유리!!! on ICE 같이 아예 피겨가 주제인 경우도 있다. 일본의 여러 도시 중에서 나고야는 피겨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나고야 출신 피겨 선수로는 무라카미 카나코, 아사다 마오, 안도 미키, 우노 쇼마, 이토 미도리 등이 있다.

2.4.2. 컬링


컬링/일본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동계 종목 중에서도 일본 내에서 상당히 인프라가 부족하고 선수도 별로 없는 비인기 종목이다. 일본 내 등록선수는 약 3천명이다.

2.4.3. 스키점프


한국 국내에선 영화 국가대표로 알려진 종목일지도 모른다. 작중 성동일이 '일본애들이 키가 작아서 존나 멀리 날아간다'고 하는데, 신빙성은 제쳐두고 일본이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스키점프 종목에서 강세를 보이는 국가는 맞다.
가사이 노리아키후나키 가즈요시 같은 메달리스트들이 있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 최근 20년 간 쏠쏠하게 메달을 얻어왔다. 일본 내 한 스포츠 칼럼에선 1972 삿포로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15년 간격으로 동계올림픽, 동계 아시안 게임 등을 주기적으로 유치하여 스키점프 종목을 비롯 동계 스포츠 인프라 유지와 인재확보를 이어간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2.5. 기타 종목



2.5.1. 바둑



최초로 바둑이 전래된 이래 꾸준하게 상류 계층의 취미 가운데 하나였으며, 높으신 분들이 바둑 스승을 모시고 바둑 스승들에게 일종의 타이틀을 부여하는 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특히 현대 바둑사에서 일본의 위치는 중요한데, 1924년 일본기원의 설립 이후 반 세기 가량 일본 바둑의 위상은 세계의 정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바둑 역사상 최강자를 논할때 빠지지 않는 우칭위안(呉清源)이 기타니 미노루와 신포석 연구를 일본기원에서 했다고 한다. 바둑 기사를 예술가이자 승부사로 인정하는 나라의 풍조와 함께, 바둑 기사를 꿈꾸는 많은 청소년들이 도장의 문하에서 경합을 벌이며 실력을 양성하는 원생[40] 체계가 이미 이 시기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기류를 타고 1970년대 ~ 1980년대의 일본 바둑은 황금기를 맞이한다. 가토 마사오, 이시다 요시오, 후지사와 슈코, 조치훈, 린하이펑, 고바야시 고이치, 다케미야 마사키 등 현대 바둑의 시초와 응용을 논할때 빠지지 않는 대부분의 기사들이 전부 일본 기원에서 등장했다. 심지어 훗날 응씨배 첫 제패의 영광을 거머쥔 한국의 국수 조훈현 또한 어릴 적에는 세고에 겐사쿠의 문하에 있으면서 기타니 도장의 문하생들과 대국을 두며 실력을 키웠으니 말 다한것. 그야말로 20세기의 대부분 동안 현대 바둑의 종가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일본 바둑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바둑의 주류에서 밀려나고 만다. 한국의 경우 초창기 위상이 형편없었던 것과 달리 조훈현, 서봉수, 그리고 '''이창호'''라는 절대강자의 탄생을 계기로 국제전에서 기세를 타면서 고수들이 속출하기 시작했고, 문화대혁명 당시 맥이 끊기긴 했지만 바둑의 발상지이자 그 인기가 뜨거운 중국에서도 속속들이 고수들이 등장했다. 결정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서로와의 대결을 마다하지 않으며 치열하게 실력을 길러 나갔지만, 일본 바둑기사들의 상당수는 폐쇄적인 일본 내 기전에 몰두함으로써 국제 경쟁력을 상실했다. 예, 도와 기묘하게 얽혀 있는 일본 바둑의 풍조는 바둑의 현대화를 성립시키는 계기이기도 했지만, 정작 바둑이 스피디한 두뇌싸움으로 흘러가는 과정에서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덕분에 2000년대의 일본 바둑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다. 치열하게 싸우는 힘바둑이 주류인 세계 기전의 기풍과는 달리 일본 기사들은 고바야시 고이치의 지하철 바둑을 비롯해 수비적인 태세 위주의 운영 바둑만 둔 것이 그 이유다. 물론 이창호가 보여준 것처럼 수비적으로 내줄 것은 내주고 반 보만 앞서 가는 바둑 패러다임에는 막강한 잠재력이 있지만, 이창호는 당대에 독보적인 수읽기 능력으로 이 시스템의 잠재력을 100% 살려낸 것이지 수비바둑 자체가 현대의 국제기전에서 정답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더군다나 이창호의 독주로 이창호의 바둑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흐름이 강해지면서, '''초중반에서 흔들어 놓는다'''는 공격적인 메타가 등장하게 되었다. 즉 이창호를 계기로 세계 기전은 치열한 수싸움이 번뜩이는 격전의 현장으로 이행하게 되었지만, 일본 바둑은 여전히 모양새와 운영에 집착하는 바둑에 치중한 것이 몰락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지적할 수 있다.
2010년대에는 이야마 유타 九단(남자)과 셰이민 六단[41]이 일본 남여 바둑계를 평정하고 독주하고 있으나, 일본기원은 정작 일본 내 최강의 자리에 오른 이야마 九단과 셰 六단에 대한 국제대회 및 외국대회 출전을 상당히 제약하는 불합리한 행보를 유지하고 있다. 일단 일본 국내 기전 상금이 어지간한 국제 대회를 능가하기 때문에 기사들의 해외 진출 동기 부여가 약한 것도 있지만, 일본기원 입장에서 볼 때 스타들이 국내 기전 대신 해외 기전을 택하면 국내 기전의 스폰서가 줄어들어 바둑계의 앞날 자체가 어두워진다는 우려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나름대로 사연이 없는 것은 아닌 셈이다. 일본 바둑이 폐쇄성으로 부진하지만, 적어도 국내 바둑 기전만큼은 중국보다도 많고 상금 규모도 월등하게 많다.
2017년 하반기 들어서 일본기원은 아예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들하고 인터넷 바둑(한큐바둑, 타이젬바둑, 사이버오로 등)에서 붙는 것도 자국의 딥젠고하고만 붙으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야마 유타 九단은 이 주장을 무시하고 절예, 릴라하고도 둔다. 위정치 七단도 절예하고도 접바둑을 둔다.

2.5.2. 모터스포츠


자동차 강국 답게 모터스포츠도 아시아에서 가장 크게 발전해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일본 사람들은 우수한 공업 기반시설로 자동차 산업을 일찍이 일으켰다. 그덕에 일본은 자동차 문화가 빠르게 정착되었고 수많은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다양한 국내외 선수권 등에 참가하고 있다. 1976년에는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아시아 최초로 포뮬러 1을 개최하고 이듬해까지 개최 후 10년 간 대회를 열지 않았다. 그러다 1987년 본격적으로 유치, 현재까지도 아시아 최고 규모의 라운드로써 이어져오고 있다. 그 주 무대인 스즈카 서킷 또한 애초에 차량의 테스트 목적으로 지어진 서킷인 만큼 모터스포츠를 넘어선 일본의 자동차에 대한 관심도가 일찍부터 높았던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자동차 뿐만이 아니라 모터사이클에서도 아시아 최고수준의 기술과 성장동력을 가지고 있다. 모터사이클 최고 대회인 모토 GP에서 오랫동안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팩토리팀이 바로 혼다야마하이다. 이외에도 스즈키, 가와사키 중공업등도 유명하다.
이 정도만 보면 자동차 생산과 수출 상위권에 위치한 한국도 얼마든지 일본을 따라갈 수 있다 하는 말이 나오지만 현실은 그야말로 불모지 그 자체다. 무엇보다 문화와 인식의 차이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한국은 자동차를 단순히 이동 수단으로 여기는 성향이 강한 반면, 일본 사람들은 모터스포츠를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하나의 문화이자 자동차 축제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투자 및 정책 또한 이런 쪽으로도 상당히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관련 자동차 산업이나 튜닝문화 또한 발전이 잘 되어 있다.
이 외에도 세계 3대 투어링카 레이스에 포함되는 슈퍼 GT, 전 일본 F3000에서 발전하여 자국 프리미엄 포뮬러 시리즈로 발전한 Super Formula, 내구레이스 시리즈인 슈퍼 다이큐 등을 비롯한 국내외 수많은 레이스 카테고리가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펼쳐지고 있다. 그런 만큼 일본 내에 크고 작은 서킷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분포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대회 개최가 가능한 서킷들만 추려보면 후지 스피드웨이, 스즈카 서킷, 트윈 링 모테기, 오카야마 인터내셔널 서킷, 오토폴리스 서킷, 스포츠랜드 스고 서킷 총 6곳이 있다.[42] 이 중 후지 스피드웨이와 스즈카 서킷은 FIA 1등급 서킷[43]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차량들이 와서 경주하는 츠쿠바 서킷도 있다.
그리고 일본은 드리프트의 실질적인 고향이나 다름없다. 전직 프로 레이서 였던 츠치야 케이이치가 청년 시절 산길에서 갈고 닦은 드리프트 기술을 레이스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모든 것의 시발점이다. 또, 이니셜D라는 자동차 만화에 기술감수로 참여하면서 드리프트의 매력을 맘껏 느끼게 해주었다. 흰 연기를 내뿜으며 차를 미끄러트리는 드리프트는 보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지만 타이어 소모가 극심하고 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달릴 수 있는 주행법이 있기 때문에 포장도로 경주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44] 그래서 츠치야는 아예 드리프트가 주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대회를 직접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D1 그랑프리이다. 이후 말레이시아와 북미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 퍼져나가 '포뮬러 드리프트'라는 대회도 생겨났다. 드리프트는 차의 움직임이 매우 역동적이라서 보는 재미가 상당하기 때문에 아직도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현재 국제 대회에서 눈에 띄게 활약하는 일본 출신 레이싱 드라이버는 고바야시 카무이(포뮬러 1), 타쿠마 사토(인디카 시리즈), 나카지마 카즈키(WEC, 르망24시) 등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유럽이나 미국 드라이버들에 비해 큰 영향력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예전에 일본인으로써 최초로 F1에 진출한 타키 이노우에라는 인물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3. 역대 일본 개최 국제 스포츠 대회



3.1. 종합대회



3.1.1. 국제올림픽위원회 주관대회



3.1.1.1. 하계올림픽하계패럴림픽

  • 1964 도쿄 올림픽
  • 1964 도쿄 패럴림픽
  • 2020 도쿄 올림픽
  • 2020 도쿄 패럴림픽[45]

3.1.1.2. 동계올림픽동계패럴림픽


3.1.1.3. 청소년 올림픽


3.1.1.4. 스페셜 올림픽

  • 2005 나가노 동계 스페셜 올림픽

3.1.2. 월드 게임



3.1.3. 유니버시아드


  • 1967 도쿄 하계 유니버시아드
  • 1958 고베 하계 유니버시아드
  • 1995 후쿠오카 하계 유니버시아드

3.1.4.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주관대회



3.1.4.1. 하계 아시안 게임


3.1.4.2. 동계 아시안 게임


3.1.4.3. 장애인 아시안 게임

  • 2026 나고야 장애인 아시안 게임

3.2. 세계 선수권 대회



3.2.1. 세계육상선수권대회



3.2.2. 세계컬링선수권대회



3.2.3.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대회



3.2.4.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대회



3.3. 단일 종목 대회



3.3.1. 축구



3.3.1.1. FIFA 주관대회

  • 1979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46]
  • 1993 FIFA U-17 세계 축구 선수권 대회[47]
  •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3.3.1.2. 아시아 축구 연맹 주관대회

  • 1991년 AFC 여자 아시안컵
  • 1992년 AFC 아시안컵
  • 2003 EAFF E-1 풋볼 챔피언십
  • 2010 EAFF E-1 풋볼 챔피언십[48]
  • 2017 EAFF E-1 풋볼 챔피언십[49]

3.3.2. 야구



3.3.3. 농구


  • 1971 도쿄 아시아농구연맹 선수권대회
  • 1979 나고야 아시아농구연맹 선수권대회
  • 1991 고베 아시아농구연맹 선수권대회
  • 1999 후쿠오카 아시아농구연맹 선수권대회
  • 2006 일본 세계 선수권 대회(FIBA 농구 월드컵)
  • 2007 도쿠시마 FIBA 아시아 선수권대회
  • 2023 FIBA 농구 월드컵 필리핀-일본-인도네시아

3.3.4. 배구



3.3.4.1. FIVB 월드컵

  • 1977 FIVB 월드컵
  • 1981 FIVB 월드컵
  • 1985 FIVB 월드컵
  • 1989 FIVB 월드컵
  • 1991 FIVB 월드컵
  • 1995 FIVB 월드컵
  • 1999 FIVB 월드컵
  • 2003 FIVB 월드컵
  • 2007 FIVB 월드컵
  • 2011 FIVB 월드컵
  • 2015 FIVB 월드컵
  • 2019 FIVB 월드컵

3.3.4.2. FIVB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 컵

  • 1993 FIVB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 컵
  • 1997 FIVB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 컵
  • 2001 FIVB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 컵
  • 2005 FIVB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 컵
  • 2009 FIVB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 컵
  • 2013 FIVB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 컵
  • 2017 FIVB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 컵

3.3.4.3. FIVB 남자배구 세계선수권대회

  • 1998 FIVB 남자배구 세계선수권대회
  • 2006 FIVB 남자배구 세계선수권대회

3.3.4.4. FIVB 여자배구 세계선수권대회

  • 1967 FIVB 여자배구 세계선수권대회
  • 1998 FIVB 여자배구 세계선수권대회
  • 2006 FIVB 여자배구 세계선수권대회
  • 2010 FIVB 여자배구 세계선수권대회
  • 2018 FIVB 여자배구 세계선수권대회

3.3.4.5. 아시아 남자 배구 선수권 대회

  • 1983 AVC 아시아 남자 배구 선수권 대회(도쿄)
  • 2021 AVC 아시아 남자 배구 선수권 대회(도쿄)

3.3.4.6. 아시아 여자 배구 선수권 대회

  • 1983 AVC 아시아 여자 배구 선수권 대회(후쿠오카)

3.3.5. 럭비



3.3.6. 빙상



3.3.6.1. 피겨 스케이팅


3.3.6.2.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1] 바로 옆에 붙어있는 나라인데도 일본의 경제 수준이 높다는 건 많이 알고 있지만 인구는 의외로 잘 체감하지 못한다. 참고로 일본의 인구는 세계 11위다. 그렇지만 바로 옆에 붙어있는 또 다른 나라가 압도적인 인구 1위니 일본 정도는 많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2] 다만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남자 유도가 사상 최초로 노골드를 기록하는 등 총 14개 체급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3개, 동메달 3개로 그치며 충격을 줬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8개로 유도 메달 종합 1위를 기록하며 종주국 자존심을 되찾았다.[3] 검도의 경우에도 3년마다 열리는 세계검도선수권대회가 16회(2015년 현재)나 개최될 동안 개인전 우승자는 모두 일본인이었다. 단체전에서도 13회 대회 때 한국이 우승한 것(일본은 3위)을 제외하면 모두 일본이 우승을 차지하였다.[4] 미국의 시스템을 벤치마킹 했다는 분석이 있다.[5] 한국의 태릉선수촌을 벤치마킹 했다는 분석이 있다.[6] 어느 정도냐면 야구, 축구, 농구 전부 일본에서 만든 단어지만 현재 일본에서 야구는 그대로 부르는 반면 축구, 농구는 한자어를 더 이상 잘 쓰지 않는다. 영어 단어를 일본식으로 발음하여 축구는 삿카(サッカー), 농구는 바스켓토 보루(バスケットボール, 줄여서 바스케(バスケ)라고도 한다.), 배구는 바레보루(バレーボール)로 부른다. 물론 이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는데 야구의 들 야(野)자는 일상에서도 많이 쓰이는 쉬운 한자이나, 축구의 찰 축(蹴)자나, 농구의 대바구니 롱(籠)자, 배구의 물리칠 배(排)자 등은 한자가 어렵기 때문이다.[7] 한국어로 "카프 여자"라는 뜻이며 히로시마 도요카프를 응원하는 여자를 일컫는 말이다.[8] 자세한 내용은 히로시마 도요 카프 항목 참조.[9] 일본의 야구 만화에서 꿈의 무대로 종종 등장하는 그 갑자원이다.[10] 한국에서 보통 이야기하는 사회인 야구팀은 풀뿌리야구(쿠사노큐, 草野球)라 불리우는데 이들 수는 (당연하지만) 훨씬 많다.[11] 한국은 2020년부터 실업야구의 부활을 본격적으로 선언했지만 프로에서 방출된 선수는 창단 과정에서 일찌감치 합류한 경우를 제외하면 실업야구팀에서 뛸 수 없다.(추가로 독립리그에서 뛴 선수들 역시 실업야구 선수 등록이 불가능하다.)[12] 오쿠츠가루이마베츠역JR 홋카이도 소속이다(!!!). 아오모리현에서도 JR 홋카이도 소속 열차가 다니는 구간이 있다. 과거에는 하쿠쵸, 하마나스 등의 특급, 급행 열차가 아오모리와 홋카이도를 이어 주었을 정도였다.[13] 서부 일부만 JR 니시니혼 소속일 정도로 도쿄의 영향력을 깊숙히 받고 있다.[14] 철도는 JR 니시니혼 관할이지만, 호쿠리쿠 신칸센 개통으로 도쿄와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덤으로 호쿠리쿠 본선 중 이 현을 지나가는 구간이 아이노카제 도야마 철도로 분리되었다.) 때문에 요미우리 팬이 많은 것.[15] 시가현, 미에현 제외[16] 반대로 그의 아버지는 요미우리 팬이다.[17] 이 현을 다니는 JR 노선은 JR 니시니혼이 아닌 JR 도카이 소속이다.[18] 사가현 제외[19]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20] 중국과 일본은 전통적인 여자배구 강호이다. 남자배구도 일본과 한국 등이 주춤한 사이 이란이 세계 구급의 팀으로 발돋음하고 있다. 애초에 농구나 축구처럼 몸싸움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보니 아시아쪽에 유리한점이 있긴 있다. 실제로 유럽이나 남미 등 팀들이 아시아팀만 만나면 고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가 키가 높지도 작지도 않아 공격을 하기가 상당히 애매하다고 한다. 게다가 아시아팀은 기본적으로 스피드와 수비 등 조직력이 뛰어나다.[21] 간단히 말해, 저 시절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호남정유+한일합섬의 김남순''''의 팀이었다.[22] 그러나 현재는 일본도 세대 교체중인지라 예전보다는 전력이 많이 약화됐다. 일본의 전통 강점인 이동 공격이 사라진 점도 한몫했다.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멤버들이 전성기였을때는 정말 대단했다. 이때 시기는 한국 여자배구의 침체기로 정말 일본만 만나면 탈탈 털렸었다. 오토모 아이의 이동공격은 유럽 팀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정도였다. 2004 아테네 올림픽 8강전 중일전에서는 세계최초로 백이동공격을 해버렸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가하면 전위도 아니고 후위공격위치인 자리에서 이동을 하면서 때린 것이다.[23]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본선에서 3-0으로 승리한 뒤, 2011년까지 내리 22연패했다. 중간에 3승을 한 적이 있으나 일본이 2진 선수단을 내보내서 승리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1진 대결에서는 22연패나 마찬가지다.[24] 대표적인 선수가 구리하라 메구미와 잠깐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 오야마 카나다. 기무라 사오리도 한때 큰 주목을 받아 김연경과 라이벌을 이루기도 했다.[25] 주로 배구공을 제작하는 일본 기업 브랜드다. 국제공인구이기 때문에 FIVB가 주관하는 모든 국제대회에 사용된다. 또 해외 여러 나라에서 자국 리그에서 사용된다. 한국은 스타공을 사용한다.[26] 여자배구의 경우 2006, 2010년에 연이어 개최하더니 2014년 대회에 한번 이탈리아가 개최하고 2018년에 또 다시 개최했다.[27] 때문에 아시아 대회는 아예 신경도 안 쓴다. 모든 국제 세계대회를 밥먹듯이 개최하는데 대륙간 선수권을 개최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28] 올림픽 최종예선은 총 8개국이 참가하고 아시아 국가는 4개국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일본은 이미 주최국이기 때문에 예선에 무리없이 참가한다. 한국 남자배구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최종예선에조차 중국에 랭킹 순위가 밀려 출전하지 못했다.[29] 당시 태국 배구팬들의 분노는 정말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태국이 친일국가인점을 생각하면 그 분노가 얼마나 컸을지 예상이 된다.[30] 이번에는 타 국가팀과의 승부조작이 아닌 태국과의 직접적인 경기에서 편파판정으로 경기를 이겨버렸다. 태국으로서는 가뜩이나 2012 런던 올림픽 예선때도 좋지않은 기억이 있는데 결국 2012년과 2016년 둘다 피해는 태국이 입은 셈이다.[31] 당시 경기 영상이 유투브에 많이 올라와 있다. 마지막 5세트만 봐도 이 경기의 판정이 얼마나 형편없고 어이없는지 알수 있다. 심지어 5세트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태국의 선수 교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는데, 태블릿 PC의 이상 때문인데도 주심은 태국 감독이 항의한다는 이유로 태국 팀에게 가차 없이 경고를 주고 일본에게 1점을 선사해버렸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일본에 유리한 판정까지 내려버렸다. 경기가 끝나고 대역전패 당한 태국 선수들은 억울한듯 통곡을 하며 우는데 가관이다. 참고로 이 올림픽 예선을 끝으로 태국 감독은 20여년 동안 지휘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결국 올림픽 본선 진출은 하지 못했다. 태국 주전선수들도 거의 30대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유감이 아닐 수 없다.[32] 이후 최고 4위까지 올라갔다.[33] 자민당 창당 60주년 행사에 참석해 축사까지 했다.[34] 탈아시아(아시아를 벗어나자는 주장.)[35] 하지만, 일본 럭비 국가대표팀의 절반 이상은 폴리네시아인과 같은 외국 선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36] 미들급 올림픽 금메달과 WBA 우승까지 차지했다.[37] 조선인 출신의 우수한 세단뛰기 선수 김원권이 활약한 것도 이 시기이다.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초 일본 내 세단뛰기 1인자였는데, 당시 일본이 세단뛰기 세계 최강이었으니 일본 1인자가 곧 전세계 1인자였던 시대였다. 실제로 김원권은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세운 적도 있었고 1940 도쿄 올림픽이 전쟁으로 취소되기 전까지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다. 해방 후 1948 런던 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긴 하지만 전성기가 지난 나이였던지라 12위의 성적을 기록했다.[38] 단, 아이스 댄싱과 페어는 좀 약한 편으로 싱글 종목 선수가 전향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한국보다는 강하다.[39] 우리나라의 경우, 김연아의 등장 이전엔 아이스 쇼라는 개념이 없었다. 올댓스포츠에서 개최한 것 외의 아이스쇼는 현대카드와 2018년도에 차준환을 호스트로 개최한 인공지능 LG ThinQ 아이스 판타지아 아이스 쇼 뿐이다.[40] 한국 바둑의 연구생이다.[41] 여자대만 출신이다.[42] 당장 한국보다 2배 많은 서킷이다.[43] 포뮬러 원을 개최할 수 있는 서킷[44] 랠리를 포함한 비포장 도로 경주에서는 자주 보인다.[45] 역사상 최초의 동일 도시 하계 패럴림픽 2회 개최이다.[46] 당시 연령 제한이 19세였으며, U-20 월드컵에 대한 제도적 개편이 이루어지기 전이라 '1979 FIFA U-20 월드컵 일본' 등으로 불리지 않으며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가 정식 명칭이다.[47] 1979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와 마찬가지로 연령 제한이 17세인 선수권 대회이며 당시엔 월드컵이라 불리지 않았다.[48] 남녀 대회 일관 개최[49] 남녀 대회 일관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