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지도자 경력
1. 코치 경력
2. 감독 경력
3.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
4. 기록
4.1. 주요 개인 수상
1. 코치 경력
1.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MLS에서 은퇴한 뒤 축구행정가로 진로를 정했으나, 갑작스런 조 본프레레 감독의 사임 사태를 맞아 2006년, 대표팀에 합류했다. 다만, 문제는 축구협회 규정상 유소년부터 대표팀까지는 클래스별로 일정 '''자격증'''이 필요한데,[1] 홍명보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즉, '''야매''' 코치.
축협 스스로 축협 규정을 위반한 초법적 행위라 잡음이 일었으나, 비상시국이란 공감 하에 일단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일단 언론에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그를 보좌할 코치로 홍명보를 원했다는 모양새. 참고 기사[2] . 그러나 뒷날 자격 문제가 다시 한 번 불거졌다.
1.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2006 FIFA 월드컵 독일이 끝난 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물러나고 핌 베어백이 새 감독이 되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발탁되었다.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3·4위전인 일본전 때에는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다가 핌 베어백 감독, 코사 골키퍼 코치와 함께 퇴장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3위를 차지하였다. 그 뒤에 핌 베어백 감독이 사퇴한 이후에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남아 있었다.
1.3.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한때 올림픽 대표팀 감독 유력 후보로 떠올랐으나,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되지 않고, 대신 박성화 감독 취임 이후 올림픽 대표팀의 수석코치로 합류하였다.[3]
1.4. FC 안지 마하치칼라 코치
최강희 감독이 처음 공언한대로 예선전까지 맡고 대표팀 지휘봉을 놓기를 고집하면서, 찌라시들은 신나게 차기 국대 감독 설레발을 쳤다. 그러나 홍명보는 이를 일축하고 거스 히딩크 감독의 초청으로 러시아 FC 안지 마하치칼라로 가서 코치 연수를 받는 쪽을 선택했고, 일단 6월 22일에 귀국할 예정이았다.
최강희 감독이 퇴임한 뒤 공석이 된 대표팀 감독 자리를 놓고 어떤 혼돈의 카오스가 벌어질지 불을 보듯 뻔할 테고... 그 때 과연 홍명보가 어떤 선택을 할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강희 감독이 본선 진출 확정후 사임하자 마자 홍명보 감독이 후임으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서 그야말로 난리판이 난 상황. 축협은 후보 중의 한 명이라고 부인하긴 했으나, 허정무 부회장이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다고 말해 사실상 내정되었다고 시인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언론들도 사실상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 당시 홍명보 본인은 침묵중이었다.
그런데 6월 20일에 나온 기사에 의하면 홍명보는 대표팀 감독을 고사했다고 한다. 차근차근 장기적 계획을 세워서 팀을 만들어나가는 그의 성향상 불과 1년도 안되는 시간에 최악의 상황에 있는 국대를 바로잡아서 월드컵에서 16강 이상의 성과를 낸다는건 너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일. 그런데도 축협은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들어서 끌어앉히려는 2년 전 최강희 감독 선임때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아무리 올림픽 동메달을 따낸 홍명보라고 해도 월드컵에서도 비슷한 성과를 내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결국 월드컵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천하의 홍명보라고 해도 장기 계약을 해서 러시아 월드컵까지 맡기려는 건 여론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홍명보의 커리어에도 심한 오점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표팀 감독을 하고 싶어하는 국내외 유능한 감독에게 브라질 월드컵을 맡기고 홍명보는 브라질 이후 2015 AFC 아시안컵 호주부터 국대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하지만 결국 그는 대표팀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2. 감독 경력
2.1.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1.1. 2009년 FIFA U-20 월드컵
2007년 아시안컵 수석코치, 2008년 올림픽 수석코치에 이어 2009년 U-20 청소년 대표 감독에 임명되었고, 언론에선 2012년 올림픽 대표를 그에게 맡길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인데, 이전에 언급되었던 자격증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하물며 지도자로서의 검증도 제대로 끝나지 않은 마당에 대표팀 감독이라는 중임은 너무 이르지 않은가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도자 연수 후 K리그 감독으로 커리어를 쌓고 있는 황선홍과는 대조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U-20 대표팀을 이끌며 2009년 FIFA U-20 월드컵 8강에 진출시켰다.
언론에서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벌써부터 명장 탄생이네 뭐네 하면서 찬양하기 바쁘고, 축협도 공적을 인정해 그를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청소년 대표팀이 전임 조동현 감독에 의해 90% 이상 완성되었던 팀이었고, 별다른 신예 선수 없이 사실상 물려받은 선수단이었긴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이 멤버들은 골짜기 세대 소리를 들으면서 기대치가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2009년 청소년 월드컵 8강에 오른 성과는 축협의 기대치에는 충분히 다다른 상황이다.
선수 시절 K리그 및 국대에서 홍명보와 같이 활약했던 황선홍, 신태용, 유상철 등이 K리그 감독으로 먼저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착착 경험치를 쌓고 있는 것에 비하면 클럽 운영 경험 없이 국가대표팀 감독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결국 이는 후일 현실로 드러나게 되었다.
2.2.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2.1.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청소년 대표 감독 이후 지도하던 선수들의 연령대가 오르자 아시안게임 축구 감독으로 발탁되었다. 비교적 만만한(?) 팀들이 출전하는 대회였...으나 첫경기부터 북한한테 쳐발리는 등(...) 불안한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고, 그래도 초반에는 승리을 이끌며 토너먼트까지 무사히 안착했으나... 4강전에서 UAE에 패하였다.
결과도 결과였지만 내용도 문제였는데, 압박이 좋고 몸싸움에 능한 UAE 대표팀을 상대로 공격 템포 변환이나 빠른 볼배급을 통한 속공을 전혀 시도하지 않고 느려터진 공수 전환에 볼을 이리저리 돌리며 확실한 공격루트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다 상대 수비에 번번히 막혀버렸다. 쉽게 말해 지나치게 완벽하고 예쁘게 공을 차는데만 집중하다 제대로 망해버렸다는 것. 이 날 경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전반전에는 후반전을 생각하고 후반전에는 연장을 생각하고 연장에는 승부차기를 생각하다'''[4] 경기를 그르쳤다. 더구나 이 날 UAE는 수비적인 전술운영을 하긴 했지만, 중동팀이 허구한 날 구사하는 '''침대축구'''도 구사하지 않았는데도 이랬다!
UAE 대표팀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부족했고 플랜A가 막혔을 때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5] 연장 후반 선수들이 불필요한 항의로 아까운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때도 코칭스태프는 그저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선수 선발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짧은 소집 기간과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대비하여 팀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자신이 성과를 낸 2009년 U-20 대표팀 위주로 선발했다. 그 때문에 K리그 2010 시즌 득점왕 유병수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 이승렬, 프로 선수였던 김신욱은 아시안 게임 나이 제한인 23세 이하의 검증된 공격수임에도 2009년 U-20 대표팀이 아니었기 때문에 탈락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U-20 대표팀이 아니었다고만 단정하기에는 팀 전술 문제나 개인 문제 등의 이유를 댈 수 있었다. 유병수는 박주영과 스타일이 겹쳤다. 하지만 박주영, 유병수와는 다른 스타일의, 피지컬이 강점인 원톱 공격수로는 대학선수였던 박희성보다 프로선수였던 김신욱이 더 나은 옵션이었고, 실제로 아시안 게임에선 박희성보단 지동원이 훨씬 더 중용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제대로 쓰지도 못한 박희성보단 김신욱을 뽑았어야 했다. 2010년 이후로도 박희성과 김신욱의 기량 차이는 점점 더 벌어졌다. 김신욱은 2014년 월드컵 엔트리에도 포함되고[6] 2018년 월드컵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린 반면에 박희성은 프로 선수가 된 후에도 K리그에서도 그다지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그야말로 '본인의 팀'을 만들어 출전해서 결과의 책임도 오롯이 다 몰렸다.
그래도 런던 올림픽 동메달 이후에는 인식이 바뀌었지만, 아시안 게임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살벌하게 욕을 먹었다(...). 그리고 런던 올림픽 때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선수 선발을 본인 맘에 드는 사람만 한다는 시각이 많다.
그런데 사실 이건 국대 감독이면 당연한 거다. '''다만 책임도 당연히 본인이 다 지는 것이고'''...
여하간 이란과의 3위 결정전에서 4:3 역전승을 하면서 동메달을 따내며 유종의 미는 거두게 되었다.
설상가상 야구 국가대표팀이 축구와는 대조되게 금메달을 따면서 상대적으로 여론이 나빴는데, 이란과 3, 4위전이 끝나고 인터뷰에서 '''"남들이 피자, 햄버거 등을 섭취할 때 우리는 스스로 컨트롤했다."'''[7] 언급했고 극적인 銅 홍명보 감독, "포기 안한 선수들 고맙다" 몇몇 선수들은 자신들의 미니홈피에 무난하게 금메달을 딴 야구대표팀을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의 글을 올려 파문이 일었다. 일부 亞축구대표 "햄버거 먹고 쉽게 金" 야구 비하
2.2.2. 2012 런던 올림픽/축구(남자) : 커리어의 정점
2.2.2.1. 본선 이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이후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어찌됐든 2012 런던 올림픽까지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었다. 이는 애초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을 때 올림픽 감독까지 맡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
비슷한 시기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3차 예선과 겹친데다, 쓰는 선수만 죽어라 굴리는(...) 조광래 감독 때문에 선수 차출 부분에선 꽤나 많은 피해를 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축협, 조광래, 홍명보 간의 선수 차출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루기도 했으나, 결국 겹치는 선수는 국대(월드컵)에 우선 배정하기로 함으로서 마무리. 이런 이유로 정상적인 전력을 꾸리지 못한 채 올림픽 최종예선을 진행해야 하는 홍명보 감독에 대한 동정 여론도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8]
차, 포떼고 치룬 올림픽 예선에서 현재까지 1승 1무의 성적을 거두었다. 오만과의 홈경기에서 윤빛가람, 김보경의 골로 2:0, 카타르 원정에서는 시종일관 경기를 주도하면서도 전반 막판에 페널티킥을 내주며 고전했으나 김현성의 골로 1:1로 무승부를 거두었다.
최근 들어 A대표팀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지라 홍명보 감독의 능력을 고평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나 카타르 원정에서는 예전 한국 축구 스타일을 보여주며 비록 경기 결과에서는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경기 내용에서는 카타르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윤빛가람, 서정진 등 A대표팀에 차출되었던 선수들을 선발에서 제외하고도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기에 홍명보 감독의 능력이 다시 재조명 받고 있다.[9]
2012년 2월 22일 밤 11시 30분에 열린 오만과의 원정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함으로서 2012년 런던 올림픽 진출 티켓을 거머쥐었다.
4월 24일 한국시간 19시 조 추첨 결과 멕시코, 스위스, 가봉과 같은조에 배정되었다.
6월 7일 화성 종합 경기타운에서 열린 올림픽 대표 평가전 시리아와의 홈경기에서 수비수 김기희의 2골 맹활약과 윤일록의 1골에 힘입어 3-1 승리를 거뒀다. 사실상 올림픽 시작 전 마지막 시험 무대였는데, 수비가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정예 멤버 중 구자철, 기성용, 와일드카드가 확실시되는 박주영 등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괜찮은 팀 전력을 보여주었다 평가받고 있다.
이후 「공간과 압박」이란 다큐멘터리를 통해 지도 스타일을 엿볼 수 있었다. 확실히 카리스마를 가지고 선수들을 지휘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그리고 홍정호에게 스스로의 위치와 역할을 자각하게 하는 모습이나, 선수들 스스로 전략과 전술에 대해 생각케 하는 모습, 팀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 등을 보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며 팀을 이끌어가고 있는 듯. 오랜만에 조광래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으며, 당시 선수 차출 문제에 대한 홍명보 감독의 생각도 들어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말하기를 "올림픽 대표팀 감독 하고 나면 다른 어떤 감독 자리를 가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다큐멘터리를 보다보면 홍명보 감독의 입술이 많이 상해 있고 얼굴이 초췌해 보인다는게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이며 그 강도는 다큐멘터리 후반부에 절정에 달한다. 올림픽 감독으로서의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라는걸 느낄수 있다.
올림픽에 참여할 최종 명단이 확정되었다. 기존에 홍명보 감독이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발탁했던 8인[10] 과 그 선수들 외에 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꾸준히 기용되었던 6명을 제외하고 황석호 1명만이 눈에 띈다.[11]
2012년 7월 14일, 올림픽 출정식을 겸한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박주영과 남태희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남태희의 결승골은 탁월한 개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골이었다. 검증 자료. 와일드카드까지 소집한 후 첫 경기였고, 선수들의 호흡이 아직 완벽하지는 않음을 고려한다면 좋은 경기내용을 보여주었다는 평가. 공격 루트가 상당히 다변화되었고 선수들이 자신감에 차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수비 불안이 이따금 눈에 띄었다.
2012년 7월 20일, 결전지인 런던으로 건너간 뒤 치러진 세네갈과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2002년 월드컵 대표팀을 연상시키는 엄청난 퍼포먼스로 세네갈을 '''3:0'''으로 제압하였다.[13] 초반부터 거세게 몰아붙이는 한국의 파상공세에 세네갈은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빼먹었으며, 경기시작 3분만에 터진 기성용의 중거리포, 그후 3분 뒤에 터진 박주영의 깔끔한 슛에 전반 중반 연속되는 구자철의 추가골까지. 거의 무결점에 가까운 전반전을 보여주었고 후반전들어 거칠어지는 세네갈 선수들에 한국 선수의 부상을 우려, 후반전은 롱패스 위주의 무리하지 않는 경기를 이어가며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 지어 올림픽에서의 메달 가능성을 밝게 했다.
'''그러나'''...
7월 24일, 미드필더 한국영이 발등 부상으로 낙마하고 급히 정우영을 불러들였다. 전술한 바와 같이 '''런던 현지'''에서 벌어진 돌발사건인데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당일 불운하게 입은 부상도 아닌 무려 '''6주 동안 부상을 숨겨왔다'''는 것. 허울 좋은 부상 투혼으로 실드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닌, 누가 봐도 팀을 망치는 이기적인 행위이다.
2.2.2.2. 조별 리그
2.2.2.2.1. 조별 리그 1차전 멕시코전 0:0 무
메달빛 전망을 쏟아내는 국내언론과는 다르게, 해외 도박사들은 한국이 멕시코를 꺾을 가능성이 적다고 전망했다.
7월 27일, 멕시코와 벌인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0:0으로 비겼다.
비에 젖어 미끄러운 그라운드 사정에도 불구하고 굳이 패싱 축구를 고집한 점, 멕시코가 전반전 영혼의 10백까지 써가면서 몸을 사렸는데 과감히 모험을 걸지 못한 점, 또한 후반전 멕시코가 빠르게 선수교체를 가져가면서 승부수를 띄운 반면 교체가 한박자씩 늦었던 점 등 내용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조별예선 최대의 난적[14] 을 만나 소중한 승점 1점을 얻었다는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경기력면에서도 아쉽긴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급기야 스위스와 가봉이 1:1로 비기면서 네 팀 모두 승점 1점을 획득, 헬게이트가 열렸다.
2.2.2.2.2. 조별 리그 2차전 스위스전 2:1 승
한국시간으로 2012년 7월 30일 새벽, 스위스와의 조별 예선 2번째 경기를 2:1 승리로 이끌었다! 후반전에, 그것도 짧은 순간에 3골이 한꺼번에 터졌다. 먼저 박주영이 다이빙 헤딩으로 선제골을 터뜨렸으나, 몇 분도 안 돼서 박주영이 넣었던 경로와 똑같은 헤딩골을 허용하면서 1:1 상황이 되었다. 이 상황을 깬 것은 김보경. 구자철의 슛팅이 수비수 몸 맞고 나왔는데, 이 루즈볼을 김보경이 놓치지 않고 논스톱 발리슛을 때려넣어 다시 경기를 뒤집는 데에 성공했다. 이 점수를 잘 지켜 승리를 따냈다.
2006 FIFA 월드컵 오심으로 얼룩진 스위스와의 리매치라 더 값진 승리다.[15] 박주영, 김창수와 같은 와일드카드는 물론 상대적으로 볼터치가 말끔한 김보경, 백성동, 구자철, 기성용 등을 중심으로 플레이를 풀어나갔다.
2.2.2.2.3. 조별 리그 3차전 가봉전 0:0 무
그 다음 조별 예선 3차전, 가봉과의 경기. 만약 가봉으로서는 이 경기에서 이기면 올라갈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선수비 후역습 전략으로 나오면서 공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에 잘 대응하면서 득점없이 비기면서 한국은 0:0 무승부를 거두고 1승 2무 조 2위의 호성적으로 8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경기 내내 한국이 몰아치다시피 했지만 골을 넣지 못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일부 축구팬들이 결정력 부족에 대해 우려했다고... 또 가봉이 골대를 맞추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도 있었다.
2.2.2.3. 토너먼트
2.2.2.3.1. 8강전 영국전 1(5):(4)1 무
다음 경기인 8강전 상대는 단일팀 영국. 도박사, 전문가들은 대부분 홈팀 영국의 승리를 점쳤다. 라이언 긱스, 크레이그 벨라미, 다니엘 스터리지, 아론 램지, 톰 클레버리 등 EPL에서 뛰는 훌륭한 선수들이 많고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이 그 이유라는 것. 국내 팬들도 이 점을 우려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리고 드디어 8월 5일 한국 시간 3:30분 영국과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홍명보는 김보경을 빼고 영국 현지 경험이 많은 지동원을 대신 투입하는 전략을 썼는데, 많은 불안과는 다르게도 이런 홍명보의 용병술이 먹혀들어 지동원 선수가 선제골을 넣으면서 1:0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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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잠시 후, 수비수 오재석의 핸들링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해 아론 램지가 넣으면서 1:1 상황이 되었다. 몇 분 되지도 않아, 또다시 황석호가 페널티 에어라인 내에서 스터리지에게 파울을 범하는 바람에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하지만 정성룡 키퍼의 선방으로 더 이상의 추가 실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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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김창수와 정성룡이 모두 부상을 입어 교체카드를 2개나 미리 쓰게 되는 불리한 상황이 이어졌지만,[16] 한국의 조직적인 압박에 박혀 영국은 영양가 있는 공격을 하지 못 했다. 오히려 역습으로 한국이 더욱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기는 연장전까지 돌입하게 되었고 결국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연장전도 득점 없이 끝났다.
그리고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한국과 영국은 4:4의 팽팽한 상황을 만들었다. 참고로 한국 키커의 순서는 차례대로 구자철, 백성동, 황석호, 박종우였다.
그리고 영국의 마지막 키커인 스터리지의 슛을 이범영 선수가 볼의 진로를 읽어내 막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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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국의 다섯번째 키커 기성용이 마무리 골을 멋지게 성공시키며 홈팀이었던 영국을 꺾게 된다. 이로 인해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축구 4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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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건 영국전의 전개가 홍명보 감독이 10년전 대표팀 주장으로 뛰었던 2002년 월드컵의 한국 vs 스페인전과 흡사했다는 것.
스터리지의 실축과 이범영의 선방은 2002년 당시 호아킨의 슛을 선방한 이운재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기도 했으며, 우리나라쪽의 키커 다섯명 모두가 한명도 실패하지 않고 슛을 성공시킨 점도 같다. 역사적인 승부차기 보러가기.
게다가 한쪽은 월드컵, 또 한쪽은 올림픽에서 '''사상 첫 4강'''을 이룩하게 된 의미있는 대결이기도 하다.
2002년 스페인전 당시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이자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홍명보가 2012년에는 감독으로서 그 때의 감동을 재현해준 셈이다.
2.2.2.3.2. 준결승전 브라질전 0:3 패
그리고 2012년 8월 8일 한국 시간 새벽 3시 30분. 브라질과의 4강전을 가졌으나 '''3:0'''으로 패하여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전반 초반까지는 거세게 밀어붙였으나, 우려했던대로 수비진의 패스 미스를 브라질이 가로 채 그 한 번의 찬스를 골로 연결시켰다. 이 때부터 서서히 경기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 전후로 페널티킥 찬스가 두 번 있었지만 심판이 보지 못 했는지 둘 다 넘어갔다.
이 후, 후반전엔 조직력이 속절없이 붕괴되더니 추가로 2골을 허용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브라질은 조별 예선부터 이 경기까지 경기당 3골을 몰아넣는 화력팀이었고, 한국은 그런 공격력을 이기지 못 했다. 브라질은 경기 내내 개인 기량에 의한 돌파로 계속해서 찬스를 만들어냈고 한국은 그것을 막기에 바빴다. 어렵사리 한국이 공격 기회를 잡아도 적극적인 전진 압박에 막혀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했다. 박주영, 정우영, 백성동이 교체 투입되었으나, 효과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경기를 치룬 멕시코가 일본에게 3:1로 이기면서, 다음 경기인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일전이 성사되었다.
2.2.2.3.3. 동메달 결정전 일본전 2:0 승
일본을 2:0으로 가볍게 격파하여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대한민국 축구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로써 대표팀 선수 모두 병역 면제를 받게 되었다.[17]
전반 37분경, 수비 4명을 달고 들어가면서 침착하게 박주영이 골을 성공시켰다. 이어서 후반 11분, 구자철이 침착한 퍼스트 터치에 이은 쐐기골을 터뜨렸다. 홍명보 본인이 박주영이 군대 안가면 자기가 대신 간다고까지 하면서[18] 감싸준 박주영이 결정적인 순간에 큰 활약을 하는 등, 이번 올림픽에서 대표팀이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으므로 인터뷰에 따르면 홍명보 본인은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고 한다.
올림픽의 성과로 월드컵 대표팀에서 지역예선 이후 유력한 국가대표 감독 후보로 꼽히는 한편, 회의적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한 감독이 유스부터 국대까지 멤버를 일관되게 끌고가는 팀 운영'을 홍명보 감독에게 바라고 있는데,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그런 장기 비전에 걸맞는 팀이 아니었다. 지역 예선 전용 감독으로 최강희 감독을 선임해둔, 매우 괴상한 팀이었다.
또한 올림픽팀의 수비 조직력은 뛰어났으나 공격력은 한일전 단 한 경기를 제외하자면 시종일관 불만스러웠고, 그나마도 한일전도 '일본은 피지컬로 찍어눌러야 제맛'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써먹었고 여기에 보태서 박주영을 비롯해 와일드 카드로 뽑힌 선수들이 매우 잘해줬을 뿐 홍명보 특유의 색깔은 보이지 않았다. 즉 감독으로서 아직 성장할 여지가 많은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커리어를 걸고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다는 현실론도 만만찮다.
여담으로 이때 올림픽 본선에서 득점한 박주영, 김보경, 지동원, 구자철은 2년 뒤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에 모두 발탁되었다.
2.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나락의 시초
의리축구의 달인 홍명보 분석
대한축구협회는 2013년 6월 24일 회장단 회의를 열어 최강희의 후임으로 홍명보를 선임했다. 계약기간은 2년, 2015 호주 아시안컵까지이기는 하나 월드컵과 아시안컵 성적에 따라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3년 재계약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되었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홍명보호, 홍명보호/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문서 참조.
2.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사퇴 이후
2.4.1. 2014년
2014년 10월에 잠시 귀국했다. 후진 육성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 하지만 이 후진 육성도 대다수 축구팬들은 안 좋게 바라보고 있다. 이걸 빌미로 다시 축구계에 발을 들여서 재기를 노리는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보내는 중. 하지만 이건 홍명보가 선수를 은퇴한 시점부터 계속 해오던 것이다. 하지만 시점이... 의리의 화신이자 언플의 달인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 시점에선 그에게 실망한 팬들이 보기에 안 좋게 볼 수밖에 없다.
최강희 감독에 의하면 '까방권'이란 걸 줘서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자고 카더라.
2.4.2. 2015년
2015년 이리저리 축구계 활동을 하면서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는데, 향간에는 '''K리그 감독'''직을 노리고 있다는 말도 있다(...). 2010년에는 차범근 감독이 사퇴한 수원 삼성행이 나온것을 시작으로 이미 작년에 어느 K리그 구단이 제의를 했는데 거절했고, 현재 다른 감독직을 알아보고 있다는 루머가 있는데 홍명보의 신중함과 계산적 성향상 전력이 잘 꾸려져 있고 지원이 잘되는 구단으로 갈게 뻔하지만... K리그 클래식에서 그런 구단은 거의 기업구단이고 그 구단 감독들 자리는 나름 탄탄한 편이다. '''딱 한구단 빼고.''' 덕분에 해당 구단의 팬들이 이 루머로 벌벌 떨고 있다(...). [19]
그런데 5월 21일자로 대전 시티즌에 조진호 감독이 사퇴하면서, 일부 팬들의 입에서 홍명보 감독에 대한 말이 오가고 있었으나... 대전은 올대 코치인 최문식을 후임 감독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저 위의 루머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한동안 감독관련 루머도 없이 잘 지나갔는데... '''최용수 FC 서울 감독이 중국 슈퍼 리그의 장수 세인티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나오고 말았다'''. 이에 따라 서울빠들은 혹시 지난 루머대로 홍명보 오는 게 아니냐고 다시 불안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용수 감독이 '''FC 서울 잔류'''를 결정하면서 다시 없던 일이 돼버렸다. 다만, 현재 울산 현대가 조예스 시절보다 더 막장인 상태라 시즌이 끝나고 어떤 결정을 내릴 지 모른다. 만약 울산 현대가 다음 시즌 감독으로 홍명보를 영입한다면 포항과 동해안 더비는 피튀기는 혈전이 될 듯 하다. 하지만 최근 윤정환 체제가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이며 울산 현대 축구단도 믿고 맡기겠다는 의사가 나와 울산도 제외. 그리고 K리그 클래식 포항 스틸러스의 감독인 황선홍 감독이 2015년을 끝으로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팬들 사이에서 홍명보 감독이 선임된다는 루머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2002년 포항 시절 당시 홍명보의 이적 잡음을 기억하는 포항 골수팬들이 많아서 반대가 심한 모양.[20] 한편 포항의 새 감독은 한일 월드컵 때 함께 최강의 방패를 자랑했던 후배인 최진철 전 U-17 대표팀 감독으로 결정되었다.
2.5. 항저우 뤼청 감독 : 지도자로서 끊임없는 추락
아무튼 K리그에 심한 말을 했다보니 그쪽으로는 진출이 쉽지는 않아 보이고 중국, 일본 등 해외 리그로 타진을 시도했는데, 마침 J리그 알비렉스 니가타에서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현재는 후진 육성을 하고 있다 한다. 그래도 세월이 약인지 댓글을 읽어보면 이전의 부정적인 여론과는 달리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크다.
2016 시즌부터 중국 슈퍼 리그 소속 항저우 뤼청 그린타운의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다. 알비렉스 니가타 및 여타 일본, 중국 리그 팀 등지에서도 러브콜을 보내긴 했지만 최종적으로 항저우 행을 염두에 두었고, 결국 항저우행이 확정되었다. 계약기간은 2년. 이로써 홍 감독은 다시금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며, 여기서 성공하면 그런대로 재기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때 "그동안 모든 사람의 기대에 부응해야한다는 부담감이 누구보다 많았는데 더 이상 그 기대에 부응하진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평가가 엇갈리는 편이다.[21]
[人사이드] 홍명보의 고백 ① “의리로 뽑은 선수는 없다”
[人사이드] 홍명보의 고백 ② “나는 자유로워졌다"
항저우 감독을 맡으면서 오랜만에 한 인터뷰가 또 다시 논란이 되며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 인터뷰의 내용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의 심경과 소회인데, 인터뷰를 읽어보면은 알겠지만, 본인의 과오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고, 인터뷰 내내 초지일관으로 변명과 개소리로 일관하고 있으며, 여전히 K리그 선수들을 폄하하고 있다. 그리고 그 놈의 허세와 중2병도 여전히 고치지 못하며 축구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하다못해 실력 부족으로 까였던 최강희조차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기성용과 홍명보를 비난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는데 말이다.
2.5.1. 2016 시즌
중국 슈퍼 리그가 10라운드까지 진행된 현재 8경기 연속 무승 행진으로 2승 3무 6패 승점 9점으로 14위를 달리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꽤나 고전하고 있다고 한다. 현지에서는 경질설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 참담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의외로 계약기간은 다 채울꺼라는 얘기도 돈다. 구단주가 성적에는 크게 미련을 두지 않았고, 홍명보 감독에게 성적보다는 어린 선수 육성을 잘해달라고 부탁했으니 항저우 서포터들만 속이 부글부글 끓을 판이다.
공교롭게도 브라질의 전설적인 수비수 둥가가 비슷한 시기 선수 시절에 같이 J리그에서 활약한[22] 데다가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고 경질당하자, 선수 시절은 물론 감독으로서의 모습까지 비슷한 점이 많다면서 서로 비교되고 있다. 더구나 둥가 같은 경우는 홍명보와 달리 국가대표팀을 두 차례나 이끌고도 모두 부진했다는 점에서 브라질 현지 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10경기 연속 무승을 찍으며 구단의 한 고위 인사가 매우 실망했다고 발언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현재 성적도 사실상 꼴찌.[23] 홍명보로서는 폭망한 입지와 이미지를 반전시키기 위해 중국 진출을 했을테지만, 현재로서 반전은커녕 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국 축구팬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항저우 구단주는 성적에 관심이 없고, 그저 슈퍼 리그에만 남아있는 게 목적이라고 하니 홍명보를 심하게 압박했을 것 같지는 않다.
상하이 선화와의 경기에서는 뎀바 바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며 0:4로 완패한다. 14라운드까지 진행된 현재 유일하게 한 자릿수 승점(...)을 획득하며 최하위로 쳐졌다.
그러나 6월 25일 허베이 화샤 싱푸를 1:0으로 꺾는 것을 시작으로 7월 3일, 박태하 감독의 옌볜 푸더를 4:2로, 그리고 7월 10일 이장수 감독의 창춘 야타이를 1:0으로 꺾으면서 3연승으로 강등권을 탈출했다. 이어 산둥 루넝 타이산에는 1:4로 참패했지만, 톈진 터다와의 대결에서는 3:1로 승리하여 강등권을 확실히 벗어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후 3경기에서 승점을 단 1점밖에 거두지 못하면서 한 경기를 덜 치른 15위 창춘 야타이와 3점차 16위로 떨어졌다. 그 후 남은 경기 상대는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장쑤(2위), 광저우 푸리(8위), 상하이 선화(3위), 허베이(5위) 그리고 연변(9위)이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 아닐 수 없다.
9월 24일 열린 최용수 감독의 장쑤 쑤닝과의 홈경기에서는 의외로 선전하여 3:0으로 승리, 한숨 돌렸다. 리그 2위를 달리던 장쑤는 이 패배로 우승권에서 멀어졌고, 항저우도 강등권인 15위 스자좡과 승점 5점을 벌려 한숨 돌렸다.
하지만 10월 말 현재 강등권 15위인 이장수 감독의 창춘 야타이와 승점 1점차로 강등의 기로에 있다. 잘하면 한국인 감독끼리의 단두대 매치도 볼 수 있을 듯.
이후 10월 30일 리그 최종전 날, 창춘 야타이가 최종전에서 승리함으로써 뤼청은 최종전은 옌볜 푸더와의 승부와 무관하게 중국 갑급 리그로 강등이 확정되었다.
2.5.2. 2017 시즌
항저우 구단 측은 강등 여부에 관계 없이 홍명보 감독과 계약을 존중하여 2017년에도 항저우를 맡길 것이라고 한다. 기사.
하지만 2017년 5월 25일 자로 성적 부진으로 결국 감독직을 사임하고 말았다. 기사. 본인의 설명으로는 구단은 성적보다는 선수팔이로 연명을 했고, 자기가 키운 유망주들을 모두 팔아치우면서 2부 리그로 진입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연패를 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어린 선수(20세 이하)들을 대거 기용하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자기는 성적에 책임을 지는 입장에서 이런 무리한 주문을 하는 구단 측과 충돌을 빚은 끝에 사임했다고. 구단 측에서는 성적에는 관심이 없었는지 3부 리그로 강등만 되지 말라는 수준이었다고 덧붙였다.
맥락을 보면 슈퍼 리그에서 중도에 해임된 대부분의 한국 감독[24] 들과는 달리 성적 부진으로 구단 측 주동으로 잘린 건 아닌 것 같고[25] 결국 구단 측과 의견 충돌로 자진 사임한 건 맞는 듯. 원래 항저우가 그렇게 선수팔이로 팀을 운영하던 팀이었는데, 본인과 생각이 다르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본인이 그런 운영 마인드를 가진 팀과 계약을 했으니 결과적인 실패도 본인 책임이다.[27]
참고로 후임 감독 세르지 바르주안의 지휘 아래, 항저우는 2부리그 3위를 기록했다(...).[28]
2.6. 울산 현대
항저우 감독에서 사퇴하고 축구협회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이제 행정가로 확실히 진로를 잡았나 싶었는데, 2020년 10월에 뜬금없이 '''김도훈의 뒤를 이어 울산 현대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김도훈이 우승 직전에 번번히 미끄러진 것은 K리그 팬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고, 이 때문에 우승을 원하는 프런트가 재계약을 안 하리라는 말이 많았는데 하필 김도훈 말년에 홍명보 얘기가 나온 것. 12월에는 김도훈 체제로 아챔 우승을 한 뒤에도 예정대로 재계약을 안 하고 새 감독을 물색한다는 오피셜이 나오더니 얼마 뒤 울산, 홍명보 감독 선임 유력 기사까지 뜨면서 순식간에 축빠들이 들썩였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줘야 한다는 여러 축구인들의 의견도 있었다 하고,[29] 홍명보 본인도 "언젠가는 선수들과 그라운드에서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어서 진지하게 홍명보 감독에 관해 논하는 사람들이 많다.
홍명보처럼 행정가 길을 걷던 최순호가 비록 친정팀이기는 하지만 5년만에 감독으로써 포항 스틸러스에 복귀한 전례를 고려한다면 감독 복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순호는 마지막에는 실패에 가까웠지만 초반에 팀을 크게 반전시켰고 성적에서 큰 기대는 못냈지만 나름 선수 발굴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친정에서 유스 총괄을 맡게 되어 실패했던 과거를 어느 정도 반전시킨 성과가 있다.
2020년 12월 24일, 김도훈 감독의 후임으로 울산 현대의 감독에 선임되었다. # 구단주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선임이라고 하는데, 으리사단, K리그 B급 발언을 위시한 남탓, 울산의 동해안 더비 라이벌 팀인 포항 출신, 땅 투기 논란 등 여러 이슈가 있는지라 홍 감독의 부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하지만 런던 이후 맡은 팀이 다 망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울산팬들은 지도자 홍명보의 능력에 의심을 품고 마땅찮은 눈길로 바라보는 중. 울산은 그 동안 호르곤 이후 조예스, 윤할, 김도훈[30] 이라는 환장의 라인업을 거치면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스쿼드에 걸맞는 성적인 우승을 시켜 줄 감독을 원하는데, 몇년의 공백기까지 있는 실패한 감독이 왔다고 못마땅하게 보고 있다. '''홍명보가 다시 기회를 받는 건 좋은데 왜 하필 우리팀이냐'''는 논지.
취임식에서 우승이 목표라고 언급하면서 좋은 스쿼드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과거 K리그 비하 발언에 대한 사과를 하며 속죄하고 싶다는 심경을 밝혔다. 하지만 그래놓고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하는 리빌딩'''을 외치면서 울산팬들은 할 말을 잊고 지켜만 보고 있다. 물론 새 감독이 오면 그에 맞춰 팀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홍명보 감독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엔트으리'''이기 때문에 반응은 좋지 않다.[31]
부임 이후 올림픽 대표팀의 주축 선수 중 한 명인 이동준을 3:1 트레이드 방식으로 영입했다.11월 21일에는 루카스 힌터제어를 영입했다.
부임 후 첫 대회인 FIFA 클럽 월드컵에서 멕시코 팀인 티그레스 UANL을 상대로 첫 경기를 치뤘는데, 많은 사람들이 반코트 경기가 될 것이라 예상한 것과는 달리 나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1:2로 석패하였다. 울산 팬들은 우승 당시 대비 스쿼드 약화 및 자가격리 등의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생각보다 괜찮은 이 정도의 경기력을 보여준 것에 대해 대부분 만족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5-6위전에서도 카타르의 알 두하일 SC에게도 1:3으로 패하면서 아쉬움을 크게 남겼다.
3.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
홍명보의 지도자 생활은 코치 시절부터 항상 논란의 연속이었다. FIFA U-20 월드컵 8강이나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정도 빼고는 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었으며 결정적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시작할 때부터 잡음이 떠나가지를 않았고, 이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파멸적 성적과 이후 사퇴과정에서 한국 대표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K리그에 대한 비하 인터뷰로 K리그 팬들은 그를 사실상 의절한 자식이자 금지어로 취급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K리그 소속 구단들도 이런 팬들이 무서워서라도 웬만해서는 그를 임명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32]
그래도 국내에서 계속 감독 생활을 하고 싶으면 K3리그, K4리그가 있었지만 이들은 운영 구조 자체가 불안하기 때문에 계산적인 홍명보의 성향을 절대 만족시킬 수 없어서 이 리그 소속 구단이 홍명보에게 제안을 해도 본인이 거절할 게 뻔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U리그에서 감독을 하며 재기를 노리는 건데 대학 축구부 감독직은 리쿠르팅 능력이 제일 중요한지라 프로 무대에 비해서 부담은 적고 웬만하면 임기는 잘 보장해주는 편이라 프로무대보다는 훨씬 철밥통(...)이다. 또한 축구 명문으로 잘 알려진 대학들 중에서는 재단이나 학교 동문들의 후원이 빵빵한 학교들도 많아서 위에 열거한 홍명보의 계산적 성격을 만족시킬 수도 있다. 문제는 U리그에서 감독 생활을 하기엔 홍명보의 명성이나 경력이 너무나 빵빵한지라[33] 대학 팀에서 데려오고 싶어도 부담스러워서 데려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거다.[34] 고교 축구나 그 이하야 뭐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면 외국의 프로 무대를 노크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미 중국 슈퍼 리그와 갑급 리그에서 실패한 감독이라는게 드러난 이상[35] 재취업은 꽤 힘들 것이다. 기껏해야 J2리그 팀이나 동남아를 노리는 수 밖에...[36] 그러나 이것도 홍명보 본인 입장에서는 좌천이나 마찬가지라 과연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결국 지금 홍명보는 어느 쪽으로든 재기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각국 최상위 리그를 노리기에는 앞선 구설수와 항저우에서 부진했던 게 그의 발목을 잡고, 학원축구로 가기에는 그의 지나치게 높은 경력이 발목을 잡는다. 마찬가지로 하부리그나 동남아로 가기에는 그의 계산적 성격이 앞길을 막는다. 현장을 포기하고 행정가로 돌아가자니 국가대표 감독 시절의 삽질과 구설수 때문에 지금 이상의 팬들의 비난과 스폰서의 반발이 거셀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황보관, 이회택, 허정무, 김주성, 조중연처럼 행정가 생활 내내 욕만 먹다가 끝낼 수도 있다. 결국 남는 건 방송사 해설위원[37] 이나 신문이나 잡지에 축구 관련 칼럼을 연재하는 정도인데, 이미 지도자 시절 무수한 삽질을 아는 팬들이 그의 해설이나 평론, 분석 등을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 그나마 상술한대로 자신의 국가대표팀 감독 경력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으니 스포츠 관련 학계로 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38]
영광의 선수 시절부터 은퇴 이후 U-20 월드컵 8강과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호성적을 낼 때만 하더라도 그의 앞날에 레드카펫이 깔려있을 줄 알았지만 불과 5년 만에 프로팀 감독, 행정가, 언론계 종사 어느쪽으로든 어려운 홍명보의 처지가 씁쓸할 축구팬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이란 것은 일반 팬들이 보기에는 쉬이 간파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분명히 감독으로서의 능력과 실력이 있는 건인데, 다른 유소년 지도자들이 다 만들어준 팀을 가지고 올림픽에서 행운으로 따낸 동메달에[39] 눈이 멀어 자신의 그릇을 알지 못한 홍명보의 자업자득이다.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지도자들은 시작이 다들 유소년 팀 감독/코치나 프로팀 코치, 가장 특례를 받은 케이스 조차도 프로팀 감독 소방수 전격기용 정도다. 그만큼 다들 천천히 단계를 밟으면서 실력을 쌓고 있다.
홍명보는 이제 더 많은 기회를 프로에서 받을 기회도 없고, 그것은 '''감독으로서의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감독으로서 성공하고 싶다면 코치나 유소년 지도자부터 다시 차근차근 공부하지 않는 이상 힘들다. 그러나 선수 은퇴 이후 귀중한 시간들을 행정가 타령을 하면서 파트 타임으로 대표팀 코치 정도나 하며 10여 년을 날렸으니 이제는 지도자로서의 재기는 힘들어 보인다.[40]
불행인지 다행인지, 2017년 9월 12일 감바 오사카의 감독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나왔다. # 런던 올림픽 이후로 입지가 계속 추락하긴 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여전히 그를 찾는 팀이 있긴 있는 모양. 하지만 결과적으로 안 되었다.
'''2017년 축협 파동에 의한 조직 개편에 의해 전무이사로 선임되었다.''' 사실상 지도자로서 커리어는 종결된 셈. 단, 홍명보의 행적을 보면 축협 파동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축피아 라인의 인사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축구팬들은 여전히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어쨌든 본인 스스로도 지도자는 안 맞는다고 생각하고 행정가의 길을 갈 작정이라고 한다. # 지도자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점만큼은 몹시 잘한 일인데, 위에서 지적했듯이, 홍명보의 손으로 축협의 개혁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는 그지 높지 않다. 선수 시절부터 패거리를 만드는데 상당한 능력을 보였고, 그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으리축구"라는 꼬리표에서 보듯이 인맥이나 연줄과 같은 적폐를 청산하는데 소극적일 것이기 때문. 선수 시절에도, 감독 시절에도 파벌 논란이 항상 따라다녔던 선수이자 감독이었으니 행정가가 된다고 별로 변할 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오히려 한국 축구의 병폐습을 더 뿌리깊게 만드는 주범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되었지만...
그러나 정작 행정가로 일을 시작하고서 김판곤 부회장 및 감독선임위원장을 초빙하며[41] 축협 내부의 개혁을 시작하고, 비주류 인사 섭외도 전보다 더 늘어나면서 행정체계가 확실히 안정화되어서 축구팬들에게 평가가 좋아진 편이다. 물론 파벌 논란은 잔재가 남아있어 완전히 좋은 건 아니지만, 감독 시절에 비하면 그렇게 큰 문제거리는 아닌 수준.
2021년 울산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감독 취임하는 것에 있어서 이례적으로 상당한 논란이 거듭되고 있으므로 이 문서의 우려가 어느 정도 적중하였다. 감독 부임에 관한 소문으로는 구단주의 의지가 강하게 적용되었다고 한다.
3.1. 신태용호와의 비교
슈틸리케호 이후 졸속 행정으로 신태용을 급하게 임명한 뒤 신태용호의 경기력이 바닥을 치자, 홍명보도 할만큼 했다는 재평가도 나오고 있다. 예선은 최강희, 본선은 홍명보라는 괴상한 행정력을 보여준 축협 때문에 고생했다는 것으로, 슈틸리케호-신태용호에서 축협의 졸속 행정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자 홍명보도 신태용과 같은 희생자가 아니었냐는 것. 의리축구를 시전한 것도 1년도 채 안 남은 시간에서 결과를 내기 위해 자신의 전술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런던 올림픽 멤버 위주로 선발을 했다는 주장도 나오며, 결국 요지는 축협이 앞길이 창창한 젋은 지도자들을 망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명보와 신태용은 상황이 많이 다른데, 신태용은 감독 선임 시점에서 홍명보보다 훨씬 자격을 갖춘 감독이다. 성남 일화 천마를 이끌며 AFC 챔피언스 리그도 제패한 적도 있고, 얇은 선수층으로 꾸역꾸역 FA컵 우승도 달성해 봤다. 반면 홍명보는 코치 생활의 출발부터 코치 자격증도 없이 국가대표 코치 자리에 앉았으며, 이는 U-20월드컵을 감독으로서 지휘할 때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42] 중간에 행정가를 준비한다며 코치직을 파트타임이나 다름없는 형태로 보내기도 했다. 신태용도 2009년부터 성남 일화 천마 감독대행으로 시작했고, 홍명보도 2009년부터 U-20 감독으로 시작했으니 감독 경력은 큰 차이 없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으나, 1년에 몇 번 훈련을 소화하지도 않는 국가대표팀과 시즌 내내 수많은 경기를 소화하는 클럽을 지휘해 본 경험은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43] 하나라도 더 많은 경기를 지휘해봐야 하는 감독 생활 초창기를 홍명보는 놓친 셈이다.[44]
또한 홍명보 경력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지도자 생활의 시작부터 제대로 된 루트를 통해 수행한 것이 아니라 축구협회에서 강력하게 밀어주는 형태로 각 연령별 대표팀 코치-감독직만 골라서 수행했다는 점이다. 홍명보의 경력은 비슷한 연령대의 다른 감독들인 황선홍, 최용수 등과 비교해봐도 명확하게 이질적이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선임되기 위해서는 감독으로서 어떤 실적이 검증되어 있고, 또한 어떤 스타일의 축구를 추구하는지 등이 파악 가능해야 하는데 신태용, 황선홍, 최용수 등과 달리 홍명보는 이것이 안 된다. 실전 경기를 지휘해 본 경험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이기에 올림픽 동메달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홍명보의 대단한 업적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45][46] 올림픽에서는 전술메타나 선수단의 폼, 거기에 병역특례라는 특급 떡밥에 자발적으로 사활을 걸고 달려드는 선수들 + 그래봐야 U-23일 뿐 여기서 내가 활약해서 내 몸값을 올리고 클럽에서 활약하는 게 중요한 타국 선수들 등등의 시운이 맞아 떨어졌으며, 경기 내내 감독이 흐름을 알아서 되돌리거나 팀워크를 다지기 위한 노력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고 갈림길이라 할 수 있는 3 4위전은 일본전이 떨어지며 맞춤전술을 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월드컵이라는 그야말로 축구계 최상위 실전 앞에서는 경험이 적었고 준비도 부족했다. 타국에서는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여 분석한 후 잘 짜놓은 계획에 따라 경기를 운영해 한국이라는 먹이를 잘 낚아챘다. 이와 반대로 홍명보는 그냥 예상답안 하나만 준비해 온 다음 문제가 다르게 나와서 경기 흐름이 넘어가자 그 다음에는 경기 흐름을 되돌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못하고 가만히 보고 있었다. 완전 실력이다. 물론 올림픽에서 3위를 달성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세간에서 말하는 명장급의 업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미이다. 그거 바라볼 바에야 올림픽 금메달 감독인 조 본프레레를 재선임 하는 것이 그래도 나은 일이었다.
홍명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 것은 이러한 점들과 맞물려 K리그 비하 발언이나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 땅이나 보러 다니는 등[47] 의 문제가 같이 터져 나와서였다. 경기력 하나만 놓고 따질 문제가 아니다. 팀을 만드는 데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은 다수가 동의했겠으나, 그 부족한 시간 내에서 최선을 다 했는지를 보았을 때 홍명보호는 그 점이 부족했다. 최선을 다하였는데도 부족함이 있었다면 축구협회나 축구인들, 소수 축구 매니아들은 그나마 정상참작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홍명보는 바히드 할릴호지치가 K리그까지 분석하는 월드컵 직전까지도 "대표팀 감독은 한 달에 열흘 정도 일하고 20일은 개인시간" 같은 소리를 하며 땅을 보러 다니는 등 없는 시간을 더 없게 만드는 행보부터 시작해 K리그 비하까지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당시에도 축협의 막장 행정력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홍명보에 대한 동정표가 적었던 이유는 홍명보가 자격증도 없이 부족한 경력으로 축협의 황태자 자리를 차지했으며, 그나마 수행한 감독직도 성심성의껏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신태용과 비교하며 동정표를 던질 이유는 없다. 신태용은 본인의 힘으로 성남 일화 당시부터 감독 경력을 쌓아 왔지만, 홍명보는 감독 생활의 출발부터 낙하산 인사였고, 그나마도 대표팀 감독직만 수행해서 실전 지휘 경험도 현저하게 적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축협 정치 라인을 제대로 타고 있던 인물이지 축협에게 희생당했다고 말하기도 뭐하다.
정리하자면 홍명보가 감독에 선임되는 과정은 신태용과 마찬가지로 동정할 여지가 있겠지만, 홍명보의 감독 경력 자체를 재평가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지도자 생활의 시작부터 문제가 있는 감독이었기 때문. 홍명보 같은 경우 황석호, 지동원, 윤석영, 김보경 등 런던 올림픽 출신 선수들과 손흥민, 기성용, 이청용 등 유럽파에만 의지했다. 그리고 당시 폼이 좋던 남태희, 박주호, 이근호 등 국내 리그 선수들, 그리고 타 리그 선수들을 외면하고 전술 역시 유연성이 없게도 4-2-3-1 전술만 고집했고, 그리고 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조차 제시하지 못했고, 전술을 짤 월드컵 기간 동안 땅이나 보러 다니거나 팀 관리도 못 하고 그리고 선수들과 전술을 실험할 평가전 기간 동안 실험조차 하지 못했다. 그 결과 크로아티아, 러시아, 페루, 일본, 중국, 호주, 가나, 튀니지, 스위스, 말리 등의 국가대표팀들이 이미 본선이 확정된 상황에서 14회나 달하는 평가전을 가졌지만, 꼴랑 5승만 달성한 뒤 월드컵에서 벨기에, 알제리, 러시아 등의 꿀조에서 1무 2패라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이후 최악의 월드컵 성적을 냈고, 그리고 자국 리그까지 비하하며 스스로 자멸을 했다.
반면 신태용 감독의 경우 이미 본선이 확정된 상황에서 선임된 홍명보와 달리 슈틸리케가 한국을 개막장으로 떨어뜨린 상황에서 선임이 됐고, 비록 월드컵 최종예선과 러시아, 모로코와의 10월 평가전까지 2무 2패로 고전했지만, 고집불통들의 울리 슈틸리케나 홍명보와 달리 자신의 부족함을 깨끗하게 인정하고[48] 코치진 보강을 요청하거나 전술을 바꾸는 노력 덕에 랭킹 11위 콜롬비아, 38위 세르비아와의 11월 평가전에서는 엄청난 경기력으로 1승 1무라는 호성적을 기록했고, 동아시안컵에서는 7년 동안 이기지 못하던 라이벌 일본을 4:1로 철저히 떡실신시키며 하반기를 3승 2무로 마무리하며 노답이던 국대를 그래도 희망적인 팀으로 바꾸어났다.
선수 선발 역시 해외파만 총애하는 홍명보와 슈틸리케와 달리 지동원, 윤석영, 박주호, 홍정호, 이청용 등 경기에 제대로 뛰지 못하는 해외파 대신 김진수, 이재성, 김신욱, 최철순, 이승기, 홍철, 정우영, 김민재, 이창민, 김민우 등 비록 이름값이나 뛰는 리그가 아시아권이라도 팀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 위주로 선발하고 팀 운영 역시 비록 공격축구이지만 철학 없이 비효율적인 점유율 축구만 추구하던 슈틸리케와 홍명보와 달리 그래도 최소한 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있다. 전술 역시 4-2-3-1만 쓰던 홍명보나 슈틸리케와 달리 평가전 기간 동안 4-2-3-1 또는 3-5-2나 4-4-2 등 다양하게 실험하며 대표팀에 최적화된 플랜A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선수들과 소통을 중시하는 탈권위주의 방식을 사용해 국대의 분위기를 바꾸었고 선수들의 능력과 분발을 잘 이끌어내는 편이다.
계속 대표팀에만 오면 겉돌던 손흥민을 토트넘 홋스퍼 FC에서처럼 톱으로 올려 손흥민을 부활시켰고, 파트너로 활동량이 좋은 이근호를 배치해 손흥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수비력이 좋은 고요한을 기성용 옆에 배치시켜 기성용의 약점인 수비를 전담케 했다. 똥크로스를 남발하던 김진수와 헤딩 셔틀로만 쓰여졌던 김신욱을 바꾸어 놓아 김진수는 날카로운 크로스를 날리는 풀백이 되었고, 김신욱은 신태용호에서 6골을 넣는 등, 계륵이던 둘을 국대의 또 다른 옵션이 되게 했다. 또한 3번째 골키퍼이던 조현우도 과감히 선발 출전시켜 조현우가 활약하면서 그동안 김진현 아니면 김승규 체제로 돌아가던 골키퍼 포지션의 경쟁도 일으켰다.
신예 수비수 김민재를 과감히 발탁, 곽태휘 이후 불안하던 중앙 수비 라인도 커버했다. 동시에 나이 때문에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하던 염기훈을 발탁해 중용함으로서 나이에 싱관없이 기량이 좋다면 언제든지 대표팀에 승선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또 연령별 대표팀에서 자신이 지도했던 리우 올림픽 출신이나 청소년 월드컵 출신들은 각 팀에서 핵심 주전인 권창훈, 이창민, 진성욱, 이찬동, 황희찬 정도를 제외하고는 뽑지 않고 제 포지션을 찾지 못하던 이재성을 제 포지션에 정착시켜 이청용의 역할이던 공수 연결고리를 맡겼다. 전술 짜고 상대팀을 분석할 시간에 땅이나 보러 다니던 홍명보와 달리, 신태용 감독의 경우 부인의 말에 따르면 코치와 선수들과 미팅을 가지거나 전술을 짜거나 상대팀을 분석하고 선수들을 보기 위해 출장을 가거나 경기장에 가서 집에 안 들어오는 일이 허다하고, 집에 들어와서도 상대팀 분석 및 대표팀 전술을 짜느라 본인한테는 신경을 안 써 서운해한다고 한다.
그리고 감독과 사이가 험악하던 선수들이 신태용 감독한테 안기거나 머리를 만지고 신태용 감독 역시 선수들과 스킨쉽을 하며 선수들과 관계가 좋다. 슈틸리케 감독이 위기에 빠진 그 순간에도 대충 뛰던 선수들이 신태용 감독이 위기에 빠지자 미친듯이 뛸 정도. 그리고 자국 리그를 비하한 홍명보와 달리 자국 리그를 극찬하며 팬들에게 월드컵이 끝나도 K리그를 사랑해 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월드컵 본선에서의 성적을 비교해봐도 둘의 차이는 명확해진다. 벨기에, 알제리, 러시아라는 손쉬운 조편성에서 대회 직전까지 16강 진출 가능성이 제법 높다고 봤으나 되레 1승도 못 거두고 꼴찌로 탈락한 감독과, 독일, 멕시코, 스웨덴이라는 상당히 어려운 조편성에서 3패가 확정적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만 받아든데다가 주축 선수 상당수가 부상으로 인해 빠진 암담한 상황 속에서 1승을, 그것도 디펜딩 챔피언이자 해당 대회 우승후보 1순위였던 독일을 상대로 따낸 감독의 차이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또 멕시코전은 패하기는 했어도 홍명보호 수준의 폐급 경기력은 절대 아니었다.[49] 오히려 홍명보가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One Team, One Spirit, One Goal은 신태용호에서 제대로 구현되었다고 봐도 될 정도.
총평은 홍명보가 아무런 플랜 없이 국대를 운영하는 바람에 노답이던 국대를 더 노답으로 만든 반면에 신태용은 그래도 플랜을 가지고 대표팀을 운영한 덕에 노답이던 국대에 희망을 불어넣었다는 거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은 11월과 3월 평가전까지 다 합쳐서 도합 2승 1패를 기록하였으나 좋은 소리는 못 들었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의 경우 11월과 3월 평가전을 다 합쳐서 1승 1무 2패를 기록하였으나, 경기 내용도 아쉬운 점은 있으나 선전했고, 가능성도 보여줬다.
4. 기록
4.1. 주요 개인 수상
- 아시안 게임 축구 동메달 : 2010
- 올림픽 축구 동메달 : 2012
[1] 흔히 말하는 P급 라이선스가 이 중 하나다. 유소년 D급, 초등학교 C급, 중,고교 B급, 모든 팀이 가능한 A급(프로팀은 감독 불가)과 P급.[2] 당시 대표팀의 수비력 문제가 지속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기에, 홍명보의 코치진 합류에 대한 여론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3] 핌 베어백 감독은 올림픽 대표팀 감독도 겸임하고 있었으며, 사퇴한 이후 결국 박성화 감독으로 결정되었다. 참고로, 국대 감독 자리는 2007년 하반기 내내 A매치도 치르지 않기로 합의한 채 공석으로 남겨두다가 그 해 겨울에 허정무를 임명하였다.[4] 골키퍼를 교체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김승규를 이범영으로 교체한 이유는 김승규의 손목 골절 부상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아시안 게임이 끝난 후 몇 달 동안 경기에 뛰지 못하고 소속팀에서 장기 결장했다. 골키퍼 김승규의 부상만 없었다면 공격적인 선수로 교체하는 것도 가능했다.[5] 그리고 이 부분은 끝내 보완되지 않았으며, 그의 대표팀 감독 커리어가 흑역사로 마무리되는 단초가 된다.[6] 어쨌든 아시안 게임에는 뽑아주지도 않았고, 월드컵에서도 별로 기용하지 않은 걸 보면 어지간히도 맘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7] UAE와 4강 경기전에 축구대표팀 쇠고기 회식으로 15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중국에선 쇠고기보다 햄버거가 더 비싸긴 하다. 단, 중국산 쇠고기라는 전제 하에... 대한민국에서 고기를 공수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8] 선수 차출에 A대표팀이 우선권을 갖는 거는 당연하다 쳐도, 그 뒤에 전혀 쓰지 않는 선수가 많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9] 이둘은 조광래가 대표팀에 부임한 이후 꽤 유망한모습을 보였다. 윤빛가람은 사실상 조광래가 직접키운 인재로 나이지리아와의 A매치 이자 데뷔무대에서 골도 넣고 2011년 아시안컵 8강 이란전에서 결승골을 넣는등 활약을 쏠쏠히 했으며, 서정진은 2010 아시안컵 동메달 결정전 에서 1:3으로 다 져가던 경기를 2도움을 기록하여 4:3 역전승을 일궈내고 A매치 폴란드전에선 박주영에게 두번의 어시스트를 내주는등 그야말로 만점급의 활약을 한 바있다.[10] 와일드카드로 발탁했던 박주영 포함[11] 올림픽 예선에서 뛰지 않은 선수들 중에서 정성룡과 김창수는 와일드 카드로 발탁된 것이지만 그 전부터 본인들이 23세 이하였던 2008 올림픽에서 꾸준히 올림픽 예선을 치루면서 경험을 쌓아왔다. 게다가 정성룡은 지난 올림픽에서 주전 골키퍼였다. 기성용은 이번 올림픽 예선에서 뛰진 않았지만, 지난 2008 올림픽에서 3년을 월반하여 뛰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본선에 진출하면 발탁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순수하게 깜짝 발탁된 선수는 황석호 뿐이다.[12] 2012 스페인 올림픽 대표팀은 선수들 이름값만 높은 팀이었고, 올림픽 조별리그에서 극도로 부진했다. 유로컵에서 맹활약하며 우승에 기여했던 호르디 알바도 유로 출전 이후로 체력이 바닥난 상황이었다.[13] 참고로, 세네갈은 한국과 붙기 1주일 전 '''스페인'''을[12] 경기내용에서 압도하면서 2:0으로 쾌승, 스위스를 1:0으로 이기면서 상승세가 붙고 있던 팀이었다![14] 실제로 멕시코는 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갔고, 올림픽 무대에서 정말 강적(2연속 디펜딩 챔피언이었다)인 아르헨티나가 이번에는 지역예선을 통과하지 못하였고, 그나마 강호라 여겨졌던 스페인, 우루과이 등도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해 사실상 멕시코와 브라질이 최강인 상태였다.[15] 이번 경기에서도 상당히 많은 할리우드 액션이 난무했기 때문에 더더욱… '박주영 장풍'을 한 번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밟히지도 않은 반대쪽 발을 잡으면서, 엄청난 오버액션을 떨면서 쓰러졌다. 심판은 즉시 엘로카드를 꺼내들었고 박주영은 밀지도 않았는데 억울한 경고를 받게 되었다.[16] 그러나 이 부상 때문에 2명의 후보 선수가 출전할 수 있게 되어 결과적으로 축구 국가대표팀 전원이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었다.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 [17] 이 때 박종우가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돌아다니는 세레머니를 하는 바람에 박종우의 동메달 획득이 잠시 보류되었다. 사실 구자철도 세레머니를 할때 같이 독도는 우리땅을 외치려 했으나, 이 쪽은 주변에서 말리는 바람에 그냥 만세만 부르고 끝났다. 만약 구자철까지 실행에 옮겼더라면 단체로 메달이 보류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지지부진하게 전개되었던 메달 보류사태는 FIFA가 박종우에게 소액의 벌금과 A매치 몇 경기 출장 금지라는 경고 수준의 처벌을 내렸으며, 남은 건 IOC의 결정만이 남은 상태. IOC는 축구 문제는 FIFA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주의라서 메달인증서는 받긴 했지만, 메달 수여가 역시 문제 쟁점이다. 그 이외는 전원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그 후 올림픽이 끝난지 8달 뒤에 박종우도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처벌은 벌금으로 끝났다고 한다.[18] 참고로 홍명보 감독의 저 발언은 말 그대로 한군두였다. 본인은 이미 상무에서 군생활을 했기 때문.[19] 다만 윤정환의 경우 그 전 감독이 하도 죽을 쒔는지라(...) 잘릴 가능성은 낮아보인다.[20] 여담으로, 포항은 박성화(2008년의 배신 때문에 욕먹지만, 포항에서는 유능했다.) 다음 최순호, 세르지오 파리아스 다음 레모스 올리베이라 식으로 좋은 성적을 낸 감독 후임으로 함량 미달 감독을 선임했다 말아먹고 다시 유능한 사람 찾는 역사가 있다(...).[21] LA 갤럭시 이적을 목적으로 한 포항에서의 태업, 올림픽에서의 박주영 기용, 브라질 월드컵의 엔트으리 등등 홍명보가 모든 사람의 기대대로만 행동한 것은 전혀 아니다.[22] 다만, 소속팀은 달랐다. 홍명보는 쇼난 벨마레(당시 팀명은 벨마레 히라츠카), 둥가는 주빌로 이와타.[23] 현재까지 13경기 진행에 승점 9점으로 15위에 랭크되어 있는데, 16위 팀의 승점이 9점이라 동률인데다 이 팀은 아직 한 경기 덜 치렀다.[24] 이장수, 최용수 등[25] 성적 부진으로 자르려고 했으면 강등되었을 때 잘랐을 것이다. 당시 홍명보도 책임을 지고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구단주가 사표를 반려했다고.[26] 같은 갑급 리그의 베이징 쿵구에서 뛰다가 2017년 6월 초에 안타깝게 급사한 셰이크 티오테만 해도 조금 폼이 떨어졌지만 바로 전해까지만 해도 EPL에서 뛰던 선수다.[27] 홍명보로서는 중도 사퇴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선수팔이에만 관심을 갖는 항저우 구단주가 다른 중국 구단처럼 특급 외국인 선수[26] 를 사올 리 만무하니, 성적이 좋아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자기 지도하에 팀이 갑급 리그에서도 하위권에서 마감하면 정말로 앞으로 전도가 불투명하고, 지금 사퇴하면 어쨌건 2016시즌 때 뭔가를 해볼려고 노력한 건 인정받고 있고, 그럼에도 구단주와 방향이 맞지 않아 도저히 버틸 수 없어 나갔다는 항변은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서 조금 연봉 더 받겠다고 계약기간 종료까지 감독을 맡았다가 항저우가 3부 리그로 추락하거나 혹은 하위 스플릿에 머문다면 홍명보는 무능한 감독으로 찍혀 정말로 재기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28]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바르주안이라는 사람도 뭐 대단한 명장도 아니다.[29] 좋게 보자면 레전드에게 주어질 만한 기회겠지만,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가 싼 똥이 워낙 심했기 때문에 러시아 월드컵에서 기사회생하기 전까지는 한국 축구가 정말로 거꾸러질 뻔했다. 게다가 홍명보 본인이 축구인으로서 완전 몰락한 것도 아니고 행정가로서 잘 활동하고 있다. 그러니 이 기회라는 것은 그야말로 레전드로서의 명예회복에 관한 건인데, 온갖 추태와 실태 그리고 칼끝까지 몰리고 있던 한국 축구의 명운을 생각한다면 감독으로서 그 명예를 회복하고 싶은 욕망은 레전드를 떠나서 홍명보 개인의 욕망이라고 해야 한다.[30] 그래도 김도훈은 2017 대한축구협회 FA컵과 2020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나름대로 성과를 냈으며 특히 마지막에 아챔에서 우승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했다는 평.[31] 다만 김도훈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울산의 최대 문제는 원두재를 제외한 유망주 육성 부족과 지나치게 높은 평균 나이의 스쿼드로, 젊은 선수를 주축으로 하는 리빌딩은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32] 월드컵 이후 K리그 디스 인터뷰 때문에 그의 친정팀이었던 포항 스틸러스 팬들이 스틸러스 명예의 전당에서 홍명보를 빼버리라는 항의가 한동안 이어진 걸 생각하면 된다.[33] 성적이나 각종 논란이야 둘째치고 어쨌든 한 나라의 국가대표 감독과 프로팀 감독까지 전부 역임해 본 사람이다.[34] 다만, 같은 2002년 멤버 출신 가운데에서 프로축구 대전 시티즌 감독까지 역임한 커리어가 있음에도 울산대학교 축구부의 감독을 역임했던 유상철의 사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유상철은 지도자 생활을 해외 연수를 거쳐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직(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창단 감독직을 역임했다.)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대학 축구부 감독으로 내려오기가 훨씬 수월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유상철은 울산의 레전드이고 울산대학교의 축구부를 지도했다는 것은 곧 언제든지 울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모종의 협약이 있다는 축구계 뒷얘기도 있다. 울산 미포조선에서 울산 현대로 사실상의 감독 승격을 시켰던 전례도 있고. 반면 홍명보는 처음부터 너무 높은 레벨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지라 내려오기에는 대학 측에서도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고 본인의 커리어도 하향세라는걸 인정하는 꼴이니......[35] 물론 슈퍼리그는 현재 유럽-남미 명장들을 끌어모으고 있기 때문에 슈퍼리그의 실패 자체는 그다지 큰 흠집이 아닐 수 있는데, (이는 최용수도 마찬가지다. 최용수가 장쑤 쑤닝에서 성적 부진으로 해임되기는 했지만, K리그나 J리그에서 다시 기회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지도력에 특별한 장점도 없으면서 성과는 없는 등, 홍명보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문제였다. 홍명보는 구단주의 호의가 아니라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더이상 기회를 잡기가 힘들 것이다.[36] 최윤겸 강원 FC 감독이 대전에서 실패하고 한동안 터키 지도자 연수와 베트남 호앙 아인 잘라이 FC를 맡으며 재기를 노렸고 결국 강원이 K리그 챌린지 시절 때 감독에 부임하고 나서 2년 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올라오며 다시 메인스트림으로 돌아왔다.[37] 이영표, 안정환, 이천수 등 적지 않은 2002 멤버들이 그들의 네임밸류 덕에 방송사 해설위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38] U-17 대표팀의 실패로 한동안 축구계를 떠나 대학 교수를 맡았던 박경훈이라는 예가 있다.[39] 이 문서에도 몇 차례 쓰여져 있지만, 행운의 오심 같은 게 아니라 세계 축구의 대세나 한국 선수단 구성 등 쉬운 부분에서 맞아 떨어진 행운이라는 뜻.[40] 기본적으로 축구의 스타플레이어는 감독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애매하다.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는 높고,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낮은 애매한 편이다.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축구계의 성공한 감독들을 차근차근 찾아보면 의외로 스타플레이어 감독이 많은 데 놀랄 수 있다. 어쨌든 2016~2017년 기준으로 유럽 무대에서 가장 잘 나가거나 리그에서 우승한 유럽 축구팀의 감독들은 모나코의 자르딤 감독을 제외하면 다 스타플레이어 출신들이다. 2017년 K리그 클래식 감독들도 리그 개막 기준으로 12팀 중에 국가대표 경력이 없는 사람들은 대구 FC의 손현준, 광주 FC의 남기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조성환 3명이다. 챌린지 감독들도 10명 중에 국가대표 경력이 없는 사람들은 3명뿐이다. 반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실패하고 잊혀진 스타 플레이어 출신 감독들을 추려 보면 또 놀랄 수 있다. 어쨌든 홍명보도 이런 사실을 자각하고 처음부터 몸을 낮추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어야 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출중한 재능으로 쭉 한국 축구계의 황태자 노릇을 했고 오히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던 코칭스텝조차 무시하던 성격으로는 이렇게 시작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선수로서 꽃길만을 걷다가 지도자로서 새로 시작해야 할 때 제대로 리셋을 못해서 사그라든 케이스이다.[41] '''홍명보 파벌과 전혀 무관한 인물이며''', 홍콩 국대 감독을 맡으면서 사실상 홍콩 축구계를 책임졌을 정도로 축구 비전과 지도력이 이미 검증되어있던 인물이다.[42] 신태용도 클럽에서 전임 감독이 경질되며 급하게 자격증 없이 감독 대행으로 앉기는 했으나, 클럽팀에서 감독이 경질된 뒤 자격증이 없는 코치의 감독 대행 체제로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것과 국가대표팀의 신임 코치/감독을 애초부터 자격증 없는 사람으로 뽑아서 올림픽, 월드컵 등에 내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43] 괜히 유럽에서도 국대 감독보다 클럽 감독 연봉이 훨씬 센 게 아니다.[44] 이는 홍명보가 월드컵 이후의 인터뷰에서 직접 "대표팀 감독은 한 달에 열흘 정도 일하고 20일은 개인시간" 이라고 밝혔다. 동년배 초년 감독들이 매주 경기를 준비하며 경험을 쌓는 동안 데뷔부터 대표팀 감독직만 골라서 수행한 홍명보는 1년의 2/3 가량을 개인 시간으로 보냈다는 소리다.[45] 축구계에서 선수 평가하는 데 있어서 제 3세계 선수들이 아니고서야 누가 진지하게 올림픽 메달을 경력으로 들이미는가? 파벨 네드베드가 올림픽 메달의 유무에 의해서 커리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는가? 애초에 메달이 있지도 않지만 땄다고 가정하더라도 아주 미세하게 덤 삼아서 움직일 뿐이다. 또한 리오넬 메시가 올림픽 메달을 땄지만 메시 커리어 평가하는데 있어서 누가 그걸 진지한 평가 요소로 들이미는가? 김신욱이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땄고 박주영은 논산 2를 시전했는데 그래서 박주영과 김신욱의 커리어 평가에 그 사실들이 유의미한 요소로 작용하는가? 기껏해야 박주영의 논산 2는 경기력적인 측면에서 논산 2와 같은 유형의 단점이 있다 수준이지 김신욱이 금메달 땄다고 더 쳐주는 건 없다. 애초에 해당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게 일본임을 생각해보자. 일본 축구의 위상이 올림픽 4위로 인해 드라마틱하게 상승하였는가? 당장 우리나라부터 4위 팀의 위상을 높게 쳐주지 않는데 3위 팀이라고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리가 없다.[46] 다만 그렇다고 해서 올림픽, 아시안게임의 커리어를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것은 아니며, 김신욱의 예시는 다소 적절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김신욱의 커리어를 논할 때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부상으로 거의 활약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중요한 경기에서 활약하여 많은 득점을 올렸다면 다른 평가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다음 대회에서 MVP급의 활약을 보인 황의조는 자연스레 국가대표 원톱 스트라이커로 발돋움하였고, 이런 황의조를 발탁한 것은 그를 이 대회에서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외국인 감독이었다.[47] 홍명보호 문서에도 기술되어 있지만, 땅을 보러 다니는 것은 절대로 하루 한두 시간만 낼 문제가 아니다. 이사를 갈 땅을 찾으려면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야 하고, 분당구 - 파주시 간 왕복 이동거리만 해도 서너 시간이 넘는다. 이걸 월드컵 코앞에 둔 일과 중에 했다는 말이다.[48] 물론 신태용도 축구팬들이 걱정하는 수비 부분에서 4백 수비가 아닌 변형 3백 수비를 구사해서 평가전에서 여러 번 패배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변형 3백 수비를 고수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아 고집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49] 멕시코 선수 미겔 라윤이 이 경기 후 이 경기력이면 독일을 이길 수 있다고 칭찬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