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미국)

 



[image]
<colbgcolor=#f5f5f5> '''Republican Party'''
'''한국어 명칭'''
공화당
'''창당일'''
1854년 3월 20일
'''전신'''
휘그당, 민주공화당
'''중앙당사'''
미국 워싱턴 D.C.
퍼스트 스트리트
'''이념'''
보수주의
사회보수주의
재정보수주의[1]

'''내부계파:'''
중도주의[2]
보수자유주의[3]
사회자유주의[4]
우파 자유지상주의
자유보수주의
신보수주의[5]
고보수주의[6]
반공주의
국민보수주의[7]
우익 대중주의
'''전국위원회 의장'''
로나 롬니 맥대니얼 (MI)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KY)
'''하원 원내대표'''
케빈 매카시 (CA-23)
'''상원 원내총무'''
존 튠 (SD)
'''하원 원내총무'''
스티브 스컬리스 (LA-01)
'''상원의원'''
'''50석 / 100석 (50.0%)'''
'''하원의원'''
'''213석 / 435석 (49.0%)'''
'''주지사'''
'''27석 / 50석 (54.0%)'''
'''당색'''
'''빨간색 (#E81018, Red)'''
'''국제조직'''

'''당원 수'''
35,041,482명 (2020년 기준)
'''청년조직'''
전국 대학생 공화당원 위원회 (CRNC)[8]
젊은 공화당 (YNRF)[9]
'''상징'''
[image]
코끼리
'''공식 사이트'''
gop.com[10]
'''SNS'''

'''△''' 왼쪽부터 율리시스 S. 그랜트, 조지 W. 부시, 로널드 레이건, 리처드 닉슨, 에이브러햄 링컨


'''△''' '''2016년 기준 역대 공화당 대통령'''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제럴드 포드(38대), 조지 W. 부시(43대), 조지 H. W. 부시(41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34대), 로널드 레이건(40대), 리처드 닉슨(37대), 에이브러햄 링컨(16대)[11]

'''△''' '''2018년에 그려진 역대 공화당 대통령 삽화'''[12]
1. 개요
2. 성향
2.1. 분파
3. 외교
4. 지지층
4.1. 지역
4.2. 인종
4.3. 군
4.4. 기업
4.5. 소득
4.6. 종교
4.7. 성별
5. 여담
6. 역사
6.1. 19세기
6.2. 20세기
6.2.1. 남부 전략과 신보수주의
6.3. 21세기
6.3.1. 오바마 2기 시절
6.3.2. 2014년 중간선거
6.3.3. 2016년 대통령 선거
6.3.4. 2018년 중간선거
6.3.5. 2020년 대통령 선거, 선거 이후
7. 역대 선거결과
7.1. 대통령 선거
8. 공화당 출신 정치인
8.1. 대통령
8.2. 부통령
8.3. 기타
9. 관련 문서
10.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Republican Party''' [13][14]
미국정당이자 제1야당이며, 현재 여당인 민주당과 함께 사실상의 양당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1854년 미주리협정의 폐기를 반대한다는 기치 아래 휘그당, 자유토지당, 북부 세력과 연합하여 공화당을 창당하였다. 세계에서 현존하는 정당들 중 세번째로 오래된 정당이자 2020년대 기준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당원을 보유하고 있는 정당이다.[15] 19세기 중반 창당 당시만 해도 공화당 급진파로 대표되는 진보파들이 주도하던 정당이었으나, 20세기 들어 경제적 자유주의사회문화적 보수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지금은 미국 보수 진영의 대표 정당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물론 내부 계파는 온건중도파부터 우익, 일부 극우까지 다양하게 모인 빅텐트 정당이다.[16]

2. 성향


1854년, 전신인 휘그당에서 노예제 존폐 여부를 놓고 갈등이 벌어지자 노예제를 반대하는 탈당파들을 중심으로 창당되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1860년대 첫 대통령으로 에이브러햄 링컨을 배출하였다. 때문에 창당 직후부터 20세기 초반까지는 노예제 폐지부터 시작해서 대기업을 규제하는 셔먼 반독점법 제정 등 지금과는 상당히 결이 다른 사회 개혁을 주장하는 진보적인 면모도 있는 정당이었다.[17][18] 그러다 1896년 대선 당시 좌익 성향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이후부턴 보수 세력들이 공화당으로 결집하는 현상이 두드러져 윌리엄 매킨리 이후부턴 제국주의적 면모가 두드러졌고[19], 20세기 들어선 공화당내 혁신파 세력도 서서히 몰락하며 보수정당화된다.
결국 19세기까지만 해도 지금의 남부가 아닌 대도시 권역과 북부가 주요 텃밭이었으나, 1930~1940년대 이후부턴 민주당과 본격적인 '텃밭 바꾸기' 현상이 일어나 1960~1980년대를 거치며 농촌과 남부가 주요 텃밭인 전형적인 보수정당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후부터는 확고하게 우파, 보수주의로 평가되는 정책 노선을 지지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노선과 일명 레드넥, 네오콘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우파, 기독교 우파적 관점도 보이기에 다른 서구권 국가의 우파 정당보다 좀 더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20] 티파티 항목도 참조. 외교적으로는 패권주의적 관점과 국제 개입주의를 상대적으로 지지하는 정당이다.[21] 물론 향후 조직체계의 적응성에 따라 조금씩 성향이 달라질 개연성은 있고, 민주당도 마찬가지지만 실제 대통령이나 당 대표 개인의 성향 등에 따라 행보 차이는 있다보니, 포괄 정당인 공화당 역시 "이게 어딜 봐서 보수야?" 라고 의문을 자아내게 하는 의원부터 극우에 가까운 의원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리버테리안이나 기독교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소수파들도 존재한다.
사족으로 미국에서의 '정통적 진보주의'는 중앙정부에 권한을 더 줘서 사회복지나 서민층 보호에 더 힘을 쓰자는 것이고, '정통적 보수주의'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되도록이면 줄여서 사람들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한 알아서 하게 냅두자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자유주의 같지만 기존 사회규범은 더 엄격하게 계승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구별되며, 그래서 자유주의(liber'''al'''ism)는 민주당의 이념이고, 자유의지주의(liber'''tarian'''ism)는 보수의 이념이다.[22] 자유의지주의는 개인에 대한 완전한 소유, 즉 정부의 권한을 줄이자는 이념이고, 자유주의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미국에선 자유의지주의보단 덜한 자유[23], 더 강화된 정부의 권한을 주장한다.

2.1. 분파



  • 중도주의 ~ 중도우파
    • 온건(중도주의, 진보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분파
Tuesday group과 Republican Main Street Partnership[24]에 모여 있다. 아이젠하워, 닉슨 시절 공화당의 온건 주류파였지만, 20세기 중후반 베리 골드워터 이래로 시작된 새로운 보수 운동의 결과로 레이건 이후부터는 비주류로 있다. 토마스 E. 듀이, 헨리 캐벗 로지, 리처드 닉슨, 조지 W. 롬니, 제럴드 포드, 넬슨 록펠러와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었다. 사회문화적 자유주의와 재정 보수주의[25], 보수자유주의, 자유보수주의, 고전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편이다. 또 탈이념적, 실용주의적인 성향이 특징적인 집단으로, 공공정책의 수립과 결정과정에 있어서 기술관료를 포함한 기업인, 엔지니어, 의사, 과학자, 경제학자 등 전문가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록펠러가 이 계파의 수장급 정치인으로 아예 '록펠러 공화당'이라는 표현까지 사용될 정도였다.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뉴잉글랜드뉴욕 등 북동부 지역을 기반으로 공화당을 주도했다. 1964년 록펠러가 배리 골드워터에게 경선에서 패하며 타격을 입었지만 1968년에는 닉슨이 대선에서 승리한 후 록펠러파의 정책을 상당 부분 수용하며 세력을 회복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몰락한 데 더해 1980년 보수파의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어 8년을 집권하며 계파로서의 힘을 상실하다시피 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몰락하여 북동부는 완전히 민주당의 텃밭으로 전락했고, 2010년 무렵에는 아예 티 파티로부터 직접적으로 '충분히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적이지 않다'며 경선에서부터 저격당하기까지 했다.
2010년대 후반에는 뉴잉글랜드 등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북동부의 공화당 온건파 주지사들이 전국의 주지사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높은 지지율로 차례로 연임에 성공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매사추세츠의 찰리 베이커, 뉴햄프셔의 크리스 서누누, 버몬트의 필 스콧, 메릴랜드 주지사 래리 호건 등이 이에 속하며, 경제정책과 사회문화정책에 있어서 자유주의적 성향을 띠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도~중도우파적 위치에 있다.
  • 우파 자유지상주의 분파[26]
론 폴로 대표되는 우파적 자유지상주의 분파로 마이너한 계파에 속한다. 말년의 배리 골드워터의 이념적 성향이 이쪽으로 이동했다고 보기도 하며, 론 폴의 아들 랜드 폴은 좀 더 강경한 자유지상주의적 보수주의 성향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자유지상주의 성향이 있지만 완전히 자유지상주의자로 분류되지는 않는 정치인들도 존재한다. 감세와 규제 철폐, 고립주의를 주장한다.
  • 우파
    • 신보수주의 분파
Republican Study Committee가 대표적이다. 신보수주의를 추구하며 레이건과 부시 이래의 주류 분파였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 이후로 힘을 잃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자유방임주의(신자유주의), 사회적으로는 보수주의 성향을 보인다. 외교적으로는 개입주의 성향을 보인다. 중도우파~우파적 위치에 있다.
  • 고보수주의 분파[27]
Tea Party Caucus와 Republican Study Committee에 일부 모여 있다.[28]도널드 트럼프도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원체 돌발적인 행동을 자주 하다보니 사실 이것도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 트럼프 이후로는 사실상의 주류이다.[29] 사회적으로는 보수주의 성향을 보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물론 자본주의를 추구하지만 완전한 자유방임주의와 거리가 있다. 외교적으로는 기본적으로 고립주의적이고, 미국 내셔널리즘 성향을 보일때가 있다. 우파~극우파적 위치에 있다.
  • 자유지상주의적 보수주의 분파
Liberty Caucus와 Freedom Caucus, Tea Party Caucus가 있다. Fusionism이라고도 하며 경제적으로는 자유방임주의, 사회적으로는 보수주의 성향을 보인다. 개입주의와 세계화를 주장하는 신보수주의와는 달리 고립주의적이다. 그러나 고보수주의가 내셔널리즘 경향을 보이는 것과 달리 내셔널리즘 경향은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3. 외교


네오콘은 적극적 군사개입을 중시하며 고보수주의 세력도 네오콘보다는 덜하지만 군사개입에 우호적이다. 그러나 닉슨 독트린만 봐도 알 수 있듯 공화당이라고 무조건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선호하는건 아니며, 당장 공화당 정부 당시 수행한 이라크전, 아프간전 대실패와 천문학적인 세금 낭비 등으로 인해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처럼 고립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 많아졌으며, 더 나아가 론 폴을 필두로 한 주한미군 무용론, 철수론을 주장하는 세력도 꽤 있다.[30]
2016년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는 노골적으로 한국이 미국의 안보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공화당의 주요 세력 중 하나인 티파티도 명목적으론 Libertarian들이기 때문에 남북한 외교에 대해서는 경제 문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31] 당선 이후에도 트럼프는 무임승차론을 계속 내세우며 과도한 방위비 증액을 요구해[32]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심지어 공화당 내에서도) 동맹국 대우를 그렇게 해선 안된다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물론 트럼프는 한국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를 상대로 이렇게 삥뜯기식 외교를 하고 있기에 트럼프와 공화당에 대한 인식이 주변국들 사이에서 갈수록 나빠지고 있긴 하다.
다만 트럼프의 경우 북한 문제에 있어선 상당히 유화적인 제스처도 보이고 있는데, 물론 그렇다고 트럼프가 유화파란 소린 아니고 초강경파는 아니다 정도가 맞을 것이다. 참고로 북한 문제를 미국 민주당은 정치범수용소와 인권 문제로 접근하는 경향성이 있다면[33], 기존 공화당은 체제는 신경 안 쓸테니 일단 핵부터 내놔라는 리비아식 모델을 주창하고 있었는데, 트럼프 집권기 리비아식 모델을 끝까지 주장하던 볼턴을 견해차로 내치며 일단 겉으론 리비아식 모델도 포기했다. 물론 그 이상 양보할 생각은 없어보이고 결국 2차 북미회담이 결렬된 후 트럼프 정부가 1기에서 막을 내리며 그렇게 끝을 맺는 모양새.
2천년대 부시 행정부 때는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놓으며, 강경 태도를 유지했다. 다만 이런 부시 역시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의 수렁에 빠진 후반기엔 도덕주의적 국제관 대신 현실주의적 협상론을 내세우는데, 6자 회담으로도 잘 안풀리면서 결국 마무리를 못하고 정권을 내주었다. 사실 미국의 대북 외교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이런 식의 순환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반복되는 모양새.
이외 다른 국가들의 경우, 과거에는 적극적인 개입주의를 유지했지만 현재는 갈수록 고립주의자들이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2010년대 시리아 전쟁에서 미국 내 여론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시리아 개입에 반대하는 것[34]이 대표적인 사례. 다만 지도부는 여전히 국제적 도덕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4. 지지층


정책 이념이 상당히 보수적이라 보수 성향이 짙은 이들의 지지도가 당연히 높은 편이다. 연령으로 봐도 보수세가 상대적으로 강한 고령층에서 지지세가 높고[35], 소득수준으로 분류했을 때는 고소득층, 지역적으로는 서부나 동부의 대도시보다[36] 중부나 남부의 변두리나 시골에서의 공화당 지지도가 높은 편이다.

4.1. 지역


19세기만 해도 북부가 공화당의 기반이었으나, 1930년대 민주당의 뉴딜 동맹과 1960년대 시민권법 제정, 공화당의 남부 전략 등이 겹쳐지며 지금은 서로 텃밭이 바뀌어 남부가 공화당의 기반이 되었다. 물론 이는 상기했듯 20세기 들어 두 당의 성향이 체인지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유의할 점은, 미국은 우촌좌도가 확고하게 정립되어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북부라도 농촌과 소도시 지역은 공화당이, 남부도 대도시 지역은 민주당이 강세다. 교외 지역은 선거마다 표심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캐스팅보트가 되는 편.
미국의 우촌좌도 사례 중 하나로 러스트 벨트 지역은 원래 민주당의 텃밭이었으나 2010년대 들어 이 지역에서 도시 인구가 감소하면서 민주당 우세 지역에서 경합 지역[37]으로 변화하거나(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경합 지역에서 공화당 우세 지역으로 변화하는(오하이오, 아이오와) 등의 변화를 겪고 있다. 반면 공화당의 텃밭이던 남부 지역에서는 2010년대 들어 도시권의 인구 증가로 경합 지역이 민주당 우세지역으로 변화하거나(버지니아, 콜로라도, 뉴멕시코), 공화당 우세지역이 경합 지역이 되는(애리조나,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변화를 겪고 있다. 다만, 플로리다는 쿠바계에 더해 강경보수 성향을 갖는 베네수엘라계 히스패닉 유입까지 더해져 경합주에서 공화당 우세 지역으로 변화하는 추세도 보이고 있다.[38]
하지만 공화당의 최대 텃밭이자 아성으로 불리던 텍사스가 2010년대 들어 도시권의 인구 증가로 지지율 차이가 서서히 줄어들더니 2020년 대선 기준으로 5.6% 가량까지 줄어들었다는 점은 공화당 입장에서 매우 악재인 상황이다. 텍사스가 지금의 추세를 지속할 경우 2020년대 후반에 스윙 스테이트가 될 수 있다는 예측이 있다. 만약 실제 이게 실현되면 공화당 입장에선 매우 불리해진다.

4.2. 인종


백인의 경우 약 55~60%가 공화당을 지지한다. 2012년 대선이 레이건 이후로 가장 비백인과 백인의 정치성향 갭이 벌어진 선거로 기록되고 있다. 백인도 세대간 차이가 상당히 있지만 백인의 세대간 공화당 지지율 차이는 한국 수준으로 심하지는 않다.[39] 전체 미국인 상대 조사에서는 세대간 차이가 꽤 크게 나오지만, 이는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히스패닉계를 비롯한 비백인 평균 연령이 백인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영향이 크다.
반면 흑인들의 지지는 거의 한자릿수 수준으로 처참한 상황인데, 이는 19세기 창당 때까지만 해도 링컨으로 대표되는 노예제 폐지와 흑인 인권을 위해 싸운 정당이었지만 상기했듯 20세기 들어 성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비율이 상대적으로 많은 흑인들에게는 일부 보수 성향 의원들의 어그로와 공화당의 주요 경제정책인 감세와 복지예산 삭감이 못마땅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실제 1990~2010년대 대선에서 공화당은 흑인들로부터 6~8% 정도를 득표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다만 히스패닉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 같다는 일부 흑인들의 불만도 늘어나는 추세라서 약간의 변화 조짐도 보이긴 하다. 물론 약간이라서 절대치로 보면 여전히 낮긴 하다. 2016년 대선의 경우 흑인의 8%가 트럼프 후보를 지지했는데, 흑인 남성으로만 놓고 봤을 때는 약 13%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그 외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이민 신세대 그룹은 민주당 지지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예외는 있어서 쿠바나 베트남 같은 과거 공산권 지역 출신이나 독재자가 지배하고 있는 니카라과나 베네수엘라 같은 곳에서 온 히스패닉, 아시안들에게는 공화당 인기가 괜찮은 편인데, 이는 반공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이다. 특히 쿠바계와 베네수엘라계는 거의 플로리다에 모여살기 때문에 히스패닉계가 늘어나며 경합주가 되고 있는 플로리다에서 공화당이.민주당에 비해 우위를 점하게 해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민주당 우위인 멕시코계 히스패닉이 늘어나고 있어서 공화당 지지세가 약해지고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지는 텍사스와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아시아계는 1980~90년대 대선의 경우에는 공화당 지지세가 강했으나[40] 2000년대 들어 민주당 지지로 기울었다. 물론 아시아계라고 다 같은 건 아니고 저마다의 차이는 있다. 베트남계는 미국 내 유색인종에선 보기 드문 골수 공화당 지지층이었는데, 베트남계는 월남전 패망 당시 베트남을 탈출해온 보트피플의 후예라는 점이 컸다. 필리핀계같은 경우는 종교적 보수색이 높아서인지 공화당:민주당 지지 비율이 5:5 정도였으며, 파키스탄계나 중동계 무슬림들은 공화당 지지 성향이 높은 편이었으나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네오콘 정책에 반발해서인지 급격하게 민주당 지지층으로 바뀌었다.
이외에 일본계나 인도계, 기타 아시아계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했고 중국계도 민주당 지지 성향이 더 높았다. 특히 유대인 같은 경우는 7:3, 8:2 정도로 압도적인 민주당의 표밭이었으나 이스라엘에 우익 정권이 들어서고 오바마 정부와 갈등이 심해지면서 공화당을 지지하는 유대인 비율도 조금이나마 올라가는 추세라고 한다.
한국계 미국인은 20세기 기준으로 공화당을 선호하는 편이었고[41], 지금도 고령층 재미교포 사회에서는 공화당 인기가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21세기 새로운 이민층이 유입되며 이러한 성향에도 변화가 생겼는데, 2012년 대선 당시 결과만 놓고 보면 재미교포들은 공화당 롬니 20% vs 민주당 오바마 78%로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2016년 대선에선 트럼프의 공화당에 투표하는 비율도 이전보단 높아졌지만, 애초에 한인들이 몰려사는 지역 자체가 주로 '해안가 대도시 지역=민주당 우세 지역'이긴 하다.
2020년 전후 기준 미국 인구의 약 17%, 미국 유권자 중에서는 약 12%[42]를 차지하는 히스패닉계는 민주당 지지가 더 높긴 하지만, 흑인만큼은 아니라 공화당도 30% 정도의 지지는 받고 있는 편이다. 이 보수적인 히스패닉은 대부분이 공산국가인 쿠바계나 독재자가 있는 베네수엘라나 니카라과 같은 곳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의외로 강경 보수 성향을 가진 히스패닉도 아예 무시는 못할 숫자인 게, 도널드 트럼프가 내세운 출생 시민권 헌법 개정에 대해서 히스패닉 중 23%가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물론 이전에 히스패닉이 공화당을 지지한건 히스패닉계 부인을 둔[43] 부시 가문과도 연관이 있었겠지만.
2020년 미국 대선에서는 히스패닉의 공화당 지지율이 더 높아졌는데, 이는 쿠바계 히스패닉보다도 더 공산주의에 반감이 심한 베네수엘라계 히스패닉이 유입되었고, 2010년대 들어 민주사회주의 성향의 정치인들이 급격하게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민주당에 반감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이들의 레드 컴플렉스를 자극했던 것이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4.3. 군


전현직 군인들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사실 남북전쟁 이후 150년 이상 미군은 꾸준히 공화당 지지자가 많은 편이었는데,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대통령은 민주당이었지만 장군들은 공화당 성향이 많은 편이라[44] 이후 공화당에 입당해 대통령까지 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같은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45] 실제 '강한 미국'을 가치로 내세우기도 하는 공화당이라 군 관련 정책이 상당히 우호적인 편이다. 물론 네오콘 성향의 의원들 때문에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기는 했어도[46] 최강 미군 유지를 원하는 당의 성향이 여전히 강하다보니 군 관련 정책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이유로 NASA 같은 우주 관련 인사 및 집단들의 지지율도 괜찮은 편이다. 이 쪽 역시 미국 위상 관련해 예산 지원에 후한 편이기 때문. 사실 우주 관련 산업 엔지니어들 상당수가 미군 관계자들이기도 하다.

4.4. 기업


산업계의 경우 자동차나 가전, 철강 등 전통 제조업과 항공우주산업을 포함한 방위산업, 민주당의 친환경정책에 직격탄을 맞는 석탄산업과 석유화학산업, 운수산업과 유통업 등에 종사하는 대기업들이 공화당 지지성향이 강한 편이라는 분석이 있다. 공화당의 가장 큰 손인 코크 형제 또한 석유화학산업의 거물들이다. 아무래도 공화당이 경제적 자유주의 노선에 따라 감세와 규제완화를 자주 주장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들 기업들이 대놓고 공화당 지지 선언을 한다거나 이런 것은 아니라 다른 자료들에 비하면 실체가 좀 불분명한 측면은 있다. 또 공화당 내에서도 계파에 따른 선호도 차이는 있어보이는데, 당장 트럼프 정부 시절엔 트럼프의 반이민/반인종 정책에 반대하는 뉘앙스의 행보를 보이는 대기업들도 꽤 있었다.# 해당 기사에 언급된 구글, 애플, 스타벅스 외에도 나이키, 앤하이저부시 등 여러 기업이 트럼프와 각을 세웠다. 이런 쪽은 대체로 공화당/민주당 온건파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47]

4.5. 소득


중산층보다는 저소득층[48], 고소득층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데, 공화당의 주요 경제정책 중 하나가 소득세, 재산세, 상속세 등 각종 세금들을 감면하는 것이다보니, 이들 입장에선 실소득의 증가와도 관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49] 2018년 미국 중간선거의 경우 연 가구소득 10만 달러 이상인 소득수준 상위 26% 고소득층의 추정 지지율은 공화당 52%, 민주당 47%였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는 해당 계층에서 트럼프 54%, 바이든 42%로 산출되었고, 같이 치러진 2020년 미국 양원·주지사 선거에서는 해당 계층에서 공화당 56%, 민주당 44%로 산출되었다. # ##

4.6. 종교


유대교 신자들은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개신교[50]모르몬교 신자들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다. 이는 이들이 주로 낙태나 동성결혼 반대같은 쟁점에서 공화당 쪽의 스탠스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신교 교단이라도 흑인 교회는 민주당 지지가 압도적이고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교단들의 경우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세가 거의 반반 정도로 나타난다. 다만 이들 자유주의 성향의 교단들은 이전보다 세력이 축소되고 있다는게 함정.
가톨릭의 경우, 백인 가톨릭 신자들은 공화당 지지율이 높고, 히스패닉 가톨릭 신자들의 경우 민주당 지지세가 훨씬 강해서, 결과적으로 보면 민주당 지지세가 살짝 강하긴 하나, 2004년2016년 대선에서는 공화당 지지세가 더 강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총체적으로 봤을 때는 반반 정도라고 할 수 있다.

4.7. 성별


성별로 보았을 때는 남성의 공화당 지지율이 50%대 초~중반 정도로 여성에 비해 높지만, 흑인에게는 남녀 가리지 않고 인기가 별로 없다. 물론 카니예 웨스트처럼 예외적인 케이스도 있다. 웨스트는 부시를 비판하면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특이한[51] 케이스. 결론적으로 성별 변수도 없지는 않지만 인종 변수가 훨씬 많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5. 여담


신변에 탈이 나는 대통령들이 많은 편이다. 당장 암살당한 대통령만 에이브러햄 링컨, 제임스 가필드, 윌리엄 매킨리 3명이나 되고, 시어도어나 포드, 레이건처럼 암살 미수에 그친 케이스까지 포함하면 더 늘어난다. 워런 G. 하딩도 임기 중 돌연사했고[52] 리처드 닉슨은 알다시피 역대급 스캔들을 터트리고 알아서 사임했다.
공화당 집권기에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맞는다는 징크스도 있다. 물론 경기란게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거고 민주당 대통령 시절에도 불황은 있었다지만, 유독 세계구급 경제 위기는 공화당 집권기에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게 1929년 터진 대공황, 1973년 터진 1차 석유파동, 2008년을 전후해 터진 대침체(세계금융위기),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일명 대봉쇄.
범죄율 징크스도 있는데,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당선되면 범죄율이 점점 오르다가(...)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당선되면 피크를 찍고 다시 감소한다는 식. 다만 이건 그래프를 보면 징크스가 지나친 단순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미국의 범죄율 추세는 1990~1992년까지 증가하다가 그 이후 꾸준히 감소하는 큰 흐름을 보이고 있다.#

6. 역사



6.1. 19세기


초창기에는 개혁의 선두주자였다. 모체는 휘그당으로, 사실 이때만 해도 당시 민주당에 밀려 야당일 때가 더 많은 비주류였다. 게다가 기껏 집권한 윌리엄 해리슨재커리 테일러이 모두 임기 초반에 사망하면서 어수선한 정국을 보내게 된다. 물론 이 당시 민주당도 가치 정립이 덜된 상태라 지금의 민주당과는 상당히 다른 결의 정당이었지만, 여하튼 이렇게 제1야당 시절을 보내다 19세기 중반 노예제도가 당의 주요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이에 대해 어정쩡한 입장을 취한 당시 지도부 때문에 노예제 찬성파와 반대파의 갈등이 극심해지자 결국 휘그당이 깨지는 사태가 초래된다. 그리고 그 결과 '''1854년 북부의 노예제 확산 반대론자들을 중심으로 지금의 공화당이 창당'''된다.
1861년 그 유명한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1860년대에 처음으로 여당이 된다'''. 당시 공화당 내에는 링컨처럼 연방 보존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온건파부터 시작해서 남부 노예 즉각 해방에 무상 토지 분배까지 주장하는 급진 개혁파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계파가 있었는데, 이들을 아우르는 노선 두 가지는 '''연방의 권한 강화'''와 노예제 확산 반대, 장기적/궁극적으로는 '''노예제 폐지'''였다.
사족으로 당시 공화당이 이런 인권 노선을 내세운 배경엔 여러 설들이 있는데, 과거엔 경제적 요인이 컸고 심지어 남북전쟁의 원인은 온전히 경제적 요인 때문이었다는 비정한 주장이 정설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공업화에 성공한 북부와 농촌 시골이라 노예 일손이 필요했던 남부의 갈등이 부각되는 식. 다만 최근의 연구는 되레 경제적 요인만으로 남북전쟁을 설명하기보다는, 도덕적 이슈가 정치의 메인이 될 만큼 성숙한 당시 미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적 변화를 주목하는 측면이 더 부각되고 있다. 단순히 경제적 문제만으로 전쟁이 일어났다고 보긴 어려운 면이 많기 때문. 남북전쟁 항목도 참조.
하여튼 그렇게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고 링컨이 암살당한 이후, 19세기 중후반 공화당은 반대로 장기집권을 이룩한다. 어찌보면 당연한게 남북전쟁에서 남부연맹을 지지했던 전력이 있던 민주당은 '''반역당'''이 되었으니 북부의 군정에 숨죽여 지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남부 백인들은 연방에 충성 서약을 하기 전까진 한동안 참정권조차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일명 재건 시대(1865~1877) 동안 공화당 내 급진 세력인 공화당 급진파가 세력을 키워 집권에 성공하는데, 이들은 공화당 급진파를 반대하는 앤드루 존슨 대통령 탄핵안을 제출하기도 하고[53], 이후 공화당 급진파 소속 인물인 율리시스 S. 그랜트가 대통령이 되면서 급진보적인 정책들을 펼쳐나간다. 이때 통과된 법이 미국 헌법 수정헌법 제13조[54], 제14조, 제15조 등. 1875년엔 시민권법을 통과하고 흑인 남성에게 투표권과 함께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자격도 부여했다. 재건 시대 당시 흑인 상원 의원들이 남부에서 많이 취임한 건 공화당 급진파의 공이 큰 것.
이런 정책들을 순탄하게 밀고 나갈 수 있었던건 이 당시 공화당의 위세가 대단했기 때문인데, 1866년과 1868년 미국 상원의 공화:민주 의석 비율은 무려 57:9, 62:12이었고, 하원은 174:48, 168:70으로 공화당이 압도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1872년에도 하원 203:89라는 기록을 세웠다. 다만 이후부터 공화당은 하락세를 타기 시작해 하원은 1874년부터 1894년까지 20년간 두 번(80년, 88년)을 제외하고는 소수당이 되었는데[55],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링컨 이후 19세기 중후반 공화당 대통령들이 링컨에 비해 지지를 얻지 못 했기 때문. 이 시절 대통령들 중 (앤드루 존슨을 빼면) 사실상 유일한 민주당 당적 대통령이었던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상당수 학자들에겐 지금도 가장 고평가받고 있으니 말 다했다. 첫 패배는 북부군 지휘관 출신 율리시스 S. 그랜트 정권의 말년이었는데, 디버프#s-1와 함께 경제 공황이 몰아닥치자 민주당은 여전히 지지 기반 측면에선 열세긴 했으나[56] 그래도 공화당 인기가 낮아져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인기 등을 바탕으로 하원 과반을 이뤄낸다. 클리블랜드가 대통령이 된 1894년 이후로는 불황에 공화당이 다시 하원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2기 행정부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근데 사실 흑인 인권 측면에선 이 시기 공화당의 부침이 좀 아쉬운게, 하원 패배와 함께 대선에서도 득표율 격차가 줄어들며 심지어 전체 득표율에선 공화당이 뒤지는 경우도 나오자[57], 공화당 내부에선 우리가 너무 노예제 문제에만 치중했나 하는 자성론이 나오게 되었고, 이후 경제성장과 공업화에 집중하게 되어 연방군이 철수하고 '''남부는 사실상 방치된다'''. 그리고 덕분에 남부는 말로는 노예 해방이 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심각한 인종차별이 남아있는 상태가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등이 주도한 흑인 민권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100여년 가까이 지속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도 친연방을 표방하던 공화당 정권 아래 연방정부의 힘은 상대적으로 세졌는데, 이는 지금도 미국 연방정부의 권력이 다른 나라 중앙정부에 비해 약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필요한 조치였다. 초창기의 연방정부는 '''세금을 부과할 권리도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미국에서 소득세를 부과하게 된 것은 헌법을 수정하고 나서인 1895년이다. 물론 이것 역시 사회주의라고 매도하는 수많은 반발을 뚫고 이룩한 것이었다.

6.2. 20세기


20세기 초반 공화당은 계파들이 좀 짬뽕되어 있었는데, 1890년 셔먼 반독점법을 입안한 세력부터 경제적 자유주의 성향과 관세 보호무역 기조를[58] 가진 세력까지 당시 미국 주류정당답게 스펙트럼이 다양한 계파들이 몰려있었다. 물론 미국의 주 수출품이었던 농산품으로 먹고 살던 남부 농민들은 북부인들을 더 싫어하게 되었지만... 그러던 와중,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주도한 소위 '''혁신주의''' 바람은 20세기 초 미국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
시어도어(테디)는 기업들이 각종 편법을 사용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는 법을 제정하고 독점을 막았으며[59], 식약청이 세워지는 등 안전과 발전을 위한 규제를 마련했다. 또 루스벨트는 노동자와 흑인들에게 어느 정도 온정적인 노선을 취하면서 그들의 권익을 적당히 보장해 주었다. 물론 그는 인종주의, 제국주의적 시각이 있는 자로 민권운동엔 별 관심이 없었다. 실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 정부는 공화당이고 민주당이고 운동 세력은 박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다만 테디는 전 대통령들보다 국내적인 문제에선 확실히 사회주의적 성향이 있었고, 그런 배경에서 테디의 노선은 그의 엘리트적인 배경을 생각할 때 상당히 놀라운 것이었다. 인민당이나 진보당 등이 성행했던 시기도 이때였다.
그러나 같은 시기 미국의 제국주의가 융성한 것도 사실이다.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의 미서전쟁이 대표적. 매킨리 이후 시어도어까지 공화당 정권은 쿠바 독립에 관여하며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등의 식민지를 빼앗으면서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에 돌입했다. 덕분에 필리핀의 독립운동가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스페인을 미국과 함께 몰아내고 필리핀 혁명 정부의 대통령이 되었으나, 졸지에 늑대를 쫓으려다 호랑이를 불러온 꼴이 되었다. 1899년 벌어진 전쟁은 1902년까지 계속되었고 수십만명 이상의 필리핀인들이 희생되었다. 당시 대통령 매킨리는 백악관에서 어느 날 들었다는 '''필리핀을 개종시키라는 신의 음성'''(...) 때문에 필리핀을 식민지화 하기로 결정했다고 했지만 사실 변명일 뿐, 그동안 테디나 다른 제국주의자들이 요구한 지속적인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또 먼로 독트린 이래 미국은 유럽 분쟁에 개입하지 않고 아메리카 대륙에 지분을 늘리려 노력해왔는데, 이 시기에 이르러선 아예 대놓고 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극대화한다.
그리고 이시기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는데 동의한다는 일명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맺어진다.
다시 본론으로 와서, 혁신주의의 공은 1912년 학자 출신인 민주당 우드로 윌슨에게로 넘어갔고, 공화당 내에서 혁신주의는 점점 세력을 잃기 시작한다. 공화당은 윌슨의 재임 기간 민주당에게 6년 연속 상하원 다수당 자리를 내주었는데, 특히 윌슨이 재선을 거둔 1916년의 경우 의석상에선 승리(216:214)를 거뒀지만, 진보당과 사회당이 민주당을 지지해줌에 따라 하원 의장은 민주당에 또 내주게 된다. 그래도 1920년엔 하원 대승(302:132)과 더불어 대선에서도 승리해 다시 정권을 되찾게 되는데,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열심히 지지하던 워런 하딩은 별다른 업적없이 죽었고, 그렇게 공화당내 혁신주의 세력이 시들해지며 캘빈 쿨리지 시대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경제적 자유주의 비슷한 성향을 띄기 시작한다.
하지만 공화당에 닥친 불행은 1929년 허버트 후버 대통령 당시 터진 '세계 대공황'이었다. 물론 대공황 자체는 사실 그 혼자 책임을 질 사항은 아니었고, 원인을 따지자면 전임자 쿨리지의 지나친 자유방임 정책에 원인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허나 후버는 적어도 그 대처에 있어 실패했으며 차후 대응은 분명 부족했고 너무 늦게 나왔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남북전쟁의 후유증을 완전히 씻어낸 민주당의 거센 반격이 시작된다.
1930년대 민주당에서 그 유명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60]가 나와서 일명 뉴딜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고, 민주당 내의 진보세력과 규합하면서 민주당의 정책을 바꿔놓는다. 이때부터 공화당은 링컨 이후 흔들림이 없었던 흑인들의 지지를 잃었으며 민주당은 '''소수인종-유대인-이민자-노동자-농민'''으로 구성되는 강력한 지지 기반을 얻게 된다. 이른바 뉴딜 라인.[61]
그 극명한 결과는 1936년, 루스벨트의 재선에서 드러난다. 재선에서 루스벨트는 무려 60.8%를 득표하며 36.5%를 득표한 알프레드 랜든을 득표수로는 1100만여명, 선거인단으로는 515명 차이(루스벨트 523명:랜든 8명[62])로 격파했으며, 민주당이 상원에서는 76석(82%), 하원에서는 334석(76.7%)을 차지하면서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린다. 공화당은 상원 16석에 하원 88석이란 그야말로 악몽적 대패. 더 우울한건 이때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수십년간 공화당은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상하원 선거에선 모두 열세를 면치 못한다'''.
결과적으로 흑인들은 1930년대 이후 공화당 지지를 버렸고,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이 활발해지고 이를 당시 린든 존슨 민주당 대통령이 지지한 이후부턴 전형적인 민주당 지지층이 되어버린다.[63] 물론 1970년 이후에도 흑인 사회의 자립과 향상을 주장하는 토머스 소웰이나 암스트롱 윌리엄스 같은 소위 '''흑인 보수주의자'''들은 공화당을 지지한다. 물론 그 비율은 웬만해선 10%를 넘기 힘든게 현실이지만.
FDR에서 해리 S. 트루먼까지 민주당은 무려 20년간 미국을 '''연이어''' 통치한다. 하지만 장기집권과 전쟁통에 미국인들도 슬슬 염증을 내기 시작하고, 공화당은 그 틈을 타 그 동안의 경제 파탄 정당 이미지를 어찌저찌 수습하면서 다시 세력을 키운다. 물론 그럼에도 안심이 안됐는지, 중도적 성향의 2차대전 전쟁 영웅이었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를 영입해 1952년 후보로 내세우는데, 대선 결과 승리하면서 기어코 민주당의 장기 집권을 끝내게 된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선 좀 씁쓸하기도 한 것이, 1952년 대선 당시 아이젠하워의 공약 중 하나는 한국전쟁을 끝내겠다는 것이었고 실제 그가 당선되면서 한국전쟁은 어떤 결말을 맺지 못한채 지금까지 이어지는 휴전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미국 입장에선 어찌됐든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냈고, 아이젠하워는 군인 출신이지만 오히려 그 경험을 살려 국방 예산을 효율적으로 줄이고 사회보장정책에 예산을 집중하는 등 전쟁에 지쳐있던 자국을 복구하는데 힘써 나름 개념 대통령 취급을 받는다. 이 시기(1950년~1958년) 상하원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적은 의석차로 엎치락뒤치락했으며,[64] 의석동수로 인해 당시 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까지 불려와 표결에 참여하기도 했다.

6.2.1. 남부 전략과 신보수주의


미국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남부, 공화당은 북부 지역의 지지를 받았으나, 20세기 중후반 들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변화를 주도한 것이, '''민주당과의 텃밭 바꾸기 전술, 일명 남부 전략(Southern Strategy)'''이었다. 사실 20세기 들어와서도 남부에서 공화당의 입지는 거의 없었다. 공화당이 남북전쟁 이후 남부를 방치한 것도 있지만, 남북전쟁 자체가 노예제라는 한 제도를 넘어 노예제를 포함한 여러 문제, 즉 농업과 산업의 대립, 남부의 현금작물 대농장과 북부 개척민(자영농)들의 대립 등 다양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기에, 아예 출신 성분 자체가 달랐던 공화당은 남부와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들은 딕시크랫이라고 불리며 20세기 중반까지도 민주당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어색한 동거는 FDR 정권 시기 쯤부터 흐름을 타기 시작한 연방정부 강화주의와 민권운동 등 민주당의 진보화와 함께 삐걱대기 시작하더니, 1960년대 존 F. 케네디린든 B. 존슨이 민권운동을 강력히 지지하면서부턴 본격적으로 두 정당의 정치색이 반대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존슨이 남부의 상원의원 거물로 민권운동과 여러 중요한 법안(업적)들을 이끌어 냈지만 남부인들 속은 곪고 있었던 것.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남부는 지금의 미국 기준이 아닌 초기 미국 기준의 남부다. 즉, 지금으로 치면 남동부쯤 된다. 다만 이런 곳들조차도 도시는 민주당이 북부도 시골은 공화당 지지 성향이 제법 있는 등 마냥 남북 구도로만 설명하기엔 복잡다단한 부분도 있다.
하여튼 이런 분위기를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 남부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던 스트롬 서먼드가 감지하였고, 그는 주권민주당을 창당하면서 남부 백인들의 마음을 돌려 민주당을 분열시키려 했다.[65] 그리고 이 상황을 포착한 공화당의 닉슨은 당시 일고 있던 민권운동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며 이 딕시크랫들을 유혹했고, 기어이 1964년 서먼드가 공화당에 입당하면서 남부의 정치토양은 대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1964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남부 애리조나 출신인 배리 골드워터였다. 그래도 결국 선거 결과는 존슨의 대승으로 끝나나, '''압승 속에도 공화당을 지지한 것은 기어이(그리고 도리어) 남부'''였다. 존슨의 지지 기반이었던 텍사스를 비롯하여 아칸소,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주 등은 존슨을 찍어 주었으나 Deep South로 분류되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조지아, 미시시피, 루이지애나는 골드워터의 손을 들어 주었다. 참고로 50개주+DC 중에서 골드워터가 승리한 주는 전술한 Deep South 5개주+골드워터의 Home State인 애리조나가 전부. 상황이 정반대가 된 것이다.[66] 이는 잠시 남부 출신인 지미 카터가 등장하면서 주춤해지지만[67] 후에 레이건이 이런 문화적 보수주의 전략을 한층 더 승화시켜서 현대 공화당의 전략을 확립한다.
그나마 온정적이고 중도적이며 총기 규제에 적극 나서는 등 과거의 진보적 유산을 승계한 공화당의 이미지는 닉슨대에서 끝난다. 닉슨은 닉슨 독트린 발표와 이후 중국과의 수교 추진 등 데탕트 무드를 발휘하며 재선에도 성공하지만,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임기 중 사임을 하고 만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시대는 워터게이트 이후 암흑기로 떨어질뻔한 공화당이 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레이건은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노선을 들고 나오며 소련과 협상을 시작, 소련을 개방의 길로 이끌려했으나 지지부진한 협상 속에 어쩌다보니 소련 스스로 국가가 붕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68] 일명 "고르바초프 서기장, 이 장벽을 허무시오!"가 실현된 것.
이런 분위기 속에 치뤄진 레이건과 월터 먼데일의 1984년 미 대선은 보나마나한 승부였다. 먼데일은 미국 50개 주+DC 가운데 자신의 고향인 미네소타와 DC만 간신히 먹고 나머지는 모두 레이건에게 내주는 대패를 당한다. 득표율은 58.8 : 40.6%. 당시 레이건의 인기도 인기지만, 먼데일이 좀 멍때리는 인상이라서(...) 이런 극단적인 결과가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69] 그러나 집권 2기 들어 경상수지, 재정적자와 더불어 주가가 폭락하는 블랙 먼데이 사건이 터지는 등 레이거노믹스의 약빨이 떨어지고, 하원과 상원 선거의 잇따른 패배와 함께 이란 콘트라 사건까지 터지면서 공화당의 지지율도 떨어져 1988년 대선에선 공화당 재집권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조지 H. W. 부시가 짠 선거전략이 꽤 효과를 발휘하면서 선거 결과는 생각외로 제법 여유있게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
조지 H. W. 부시 임기 때는 냉전 뒷수습은 잘했지만, 걸프전의 함정과 경기 침체로 인해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를 내세운 민주당의 젊은 아칸소 주지사에게 백악관을 내주며 재선에 실패하고 만다. 그래도 전화위복이라고 클린턴 정권이 의료개혁의 실패로 비틀거리자, 1994년 중간선거에서 하원 지도자 뉴트 깅그리치가 내세운 '미국과의 약속(계약)'으로 공화당이 40년만에(...) 하원 다수당 자리를 되찾는 쾌거를 맛보기도 했다. 정권을 되찾았지만 의회 권력을 몇십년만에 빼앗긴 민주당으로서는 상당한 충격이었으며, 덕분에 클린턴 정권은 이전 공화당 정권이 그러했듯 임기 내내 공화당이 주도하는 하원에 끌려다니게 되었다.

6.3. 21세기


조지 H. W. 부시의 아들 조지 W. 부시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전체 득표율은 밀렸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이기면서 앨 고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후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9.11 테러와 그로 인한 일련의 안보 관련 사태들,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과 신자유주의 세력의 지지에 힘입어 재선에 성공한다. 물론 그의 온정적 보수주의와 도덕성도 전임 대통령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에 질린(...) 국민들의 지지를 끌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이 점차 수렁으로 빠져들면서 돈 먹는 하마가 되고,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막심한 피해가 발생한데다가, 무엇보다 부시 재임 중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그로 인한 세계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부시 행정부의 신보수주의 노선은 국민적 지지를 상실하고 만다.
덕분에 2008년 대선 당시 공화당 경선 후보, 특히 존 매케인의 경우는 '''부시를 까면서 지지를 구하는 수준'''이었다.(...) 사실 매케인은 대통령 후보가 된게 신기할 정도로 중도온건 성향에 속하는 그중에서도 비주류격인 보수주의자였다.[70] 물론 그의 표결 다수는 보수 성향을 띠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부시 부자가 이끄는 공화당 당론에 반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그가 부통령 후보로 영입한 사라 페일린은 그녀의 지적 수준을 의심하게 할만한 무식한 발언과 행보들을 잇달아 저질렀고, 고령의 나이 + 포로로 잡혔던 후유증 때문에 건강이 썩 좋지 않았던 메케인이었기에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직 승계 서열 1순위인 부통령 후보의 자질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였는데, 이런 디버프로 인해 매케인은 결국 큰 격차로 오바마에게 패배하고 만다. 물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오바마 자체 경쟁력이 쎈 것도 있었다.
하여튼 공화당은 2008년 대선에서 패배했고, 동시에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도 패배하여 의회에서도 소수당이 됐다. 팽팽하던 배아복제도 오바마가 새로운 법령으로 허용한 당시 60~70% 전후의 찬성률을 보이는 등 공화당의 문화적 보수주의는 이대로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의료보험 개혁정책에 반발하여 등장한 티 파티 등을 기점으로 공화당은 다시 세력을 되찾아가기 시작하고[71], 2010년 중간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며 4년만에 하원을 되찾는다.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을 유지했다.

6.3.1. 오바마 2기 시절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 밋 롬니 후보를 여유있게 제치고 재선에 성공한다.
그러다 2013년 10월 셧다운 사태가 터지고, 그 원인이 민주당 오바마케어를 막으려는 공화당의 무리수임이 지적되면서 피해를 받는 유권자들의 분노가 공화당에게로 향했다. 주로 공무원이 많은 주들과 노인이나 중소기업처럼 국가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대상이 많은 주들이 피해를 많이 보았다. # '''그리고 그 주들에는 공화당의 텃밭인 앨라배마와 알래스카도 끼어있다'''. 이외에도 셧다운 사태에 피해를 보는 주들 중에 공화당 지지세가 강하고 인구가 많은 주들이 다수 끼어있어 이들의 지지도가 낮아졌다. 셧다운 사태가 극적으로 해결된다 하더라도 이미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기에... 공화당으로서는 당장 급한 일 땜빵하려다가 지지 기반이 흔들리는 자충수를 둔 셈.
결국 셧다운 중단 협상에서 공화당은 요구사항 중 단 하나도 얻지 못했고, 지지 기반만 흔들리고 미국에 재산 피해를 끼쳤다. 근데 공화당 강경파는 '''아직도 정신 못차렸다.''' 셧다운 후폭풍으로 다른 공화당원들이 2013년 시장, 주지사 선거에서 이리저리 털리는 와중에도[72] 티 파티와 담을 쌓고 허리캐인 샌디를 통해서 자기 PR을 착실하게 해온 크리스 크리스티는 전형적인 진보州로 통하는 뉴저지에서 주지사 자리를 지켜냈다. 하지만 다음 대선 후보로 주목을 받았던 크리스티가 포트 리의 시장이 선거 기간 동안 자신을 밀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포트 리(뉴저지)와 뉴욕 시를 이어주는 조지 워싱턴 다리[73]의 차선을 의도적으로 '''정치 보복'''을 하기 위해 막아버렸던 사실이 드러나고, 허리캐인 샌디의 피해를 받았던 호보켄 역시 시장에게 구호금을 가지고 은유적으로 협박을 했던 게 드러나면서 그의 정치 생명과 공화당의 향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74]
심지어 '보수단체에 대한 차별적 세무조사 청문회'에서는 로이스 러너 미 면세국장이 수정헌법 5조를 근거로 대답을 거부하고도 공화당 의원이었던 조사위원장이 계속 질문공세를 하자 민주당 쪽 의원이 손을 들어 의사 진행 발언을 요청했으나 위원장이 이를 무시하고 휴회를 선언하는 일이 벌어졌다. # 이런 일은 미국 의회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라 미 언론에서도 "요즘 미 의회의 예절이 땅바닥에 떨어졌다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다."며 까였다.
한편, 2013년 유로마이단 사태와 연이은 2014년 크림 위기에서 미국은 아무리 멀리 있다고는 해도 사태가 저렇게 악화될 때까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는데, 러시아크림 반도를 다시 흡수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대부분을 친러로 돌려 대규모 이득을 보는 상황에서 미국이 유럽연합보단 낫다지만 아무런 제동도 못 걸었다는 점에서 이는 현 오바마 행정부에게 비판의 화살이 돌아갈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남오세티야 전쟁 때 집권당이 공화당이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 꼭 민주당에게만 비난의 화살이 돌려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시리아 내전 사태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을 보듯 미국인들은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에서의 피해 이후로 해외분쟁에 끼어드는 것을 꺼리는 고립주의 성향이 강해졌다. 우크라이나가 서유럽 국가들이나 일본한국처럼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으로 맺어진 동맹국이라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을 미국인들이 과연 좋게 볼까? 당장 티 파티가 터트린 병크인 셧다운의 상처도 아직 아물지 못한 마당에? 뿐만 아니라 유로마이단의 주축에 네오 나치 세력이 끼어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후로 우크라이나 임시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여론은 더욱 차갑게 식을 것이 분명한 만큼 공화당이 이걸 공격해서 별로 얻을 것이 없다는 분석도 나올 수 있다.
물론 오바마의 대러시아 정책의 실상은 아들 부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나 미국인들은 잘 모르고 있어서 공화당이 이를 집요하게 파고들 수는 있다. 그러나 애초에 아들 부시가 먼저 깽판을 친 상태에서 태클 걸어봤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소리 이상은 듣기 힘들 듯. 매케인처럼 또 자기 당의 네오콘들을 까거나 대오각성의 의지를 보여주면 또 모를까 과연 그런 인물이 있을지...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당장 공화당이 사실상 티파티와 온건파의 두 당파로 완전히 분열되어 있다. 당이 힘을 합쳐서 기회를 잡아 압도적인 열세를 극복해나가야만 하는 마당에 이러고 있으니 어쩌면 현재 공화당 수뇌부의 상황과 우크라이나 임시정부의 행태는 그닥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6.3.2. 2014년 중간선거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이자 공화당 원내 대표인 에릭 캔터가 예비 선거에서 다른 공화당원에게 패배했다.[75] 사실 하원의원이 예비 선거에서 다른 인물에게 밀리는 건 그다지 대수로운 일도 아니지만, 문제는 이 양반이 공화당에서 다음 하원의장으로 예상될 정도의 '''거물 네임드'''라는 것. 거기다가 이 양반이 떨어진 이유가 그들 기준 '너무 진보적'이어서 복음주의 티 파티 후보에게 털렸다.[76] 물론 저 진보적이라는건 그들 기준 진보로, 실제 에릭 캔터가 민주당쪽 사상을 가진 인물은 '''절대 아니다'''(...). 캔터가 이들에게 찍힌 이유는 별거 없고, 이민법 개정에 찬성하는듯한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거 말고도 캔터는 월가쪽과 상당히 친했고[77] 셧다운#s-4 등을 통해 공화당 내부에서 중도에 가까운 투표자들이 아예 공화당 자체에 등을 돌리거나 관심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생기면서, 티 파티 후보가 남아있는 강성 투표자들의 지지를 받고 올라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사실 2014년 경선 뿐만이 아니라 미국 현대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인 것이, 가뜩이나 나라도 크고 인구수도 많은데 공화당과 민주당 네임드급 거물들이 대부분 극과 극을 달리는 우와 좌라는 것이다. 다인종, 다문화 국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세금이 제일 많이 걷히는 중산층 사람들은 소득으로서나 교육으로서나 어느 한쪽의 극을 좋아할 이유가 딱히 없는 딱 중간, 진보적인 보수요 보수적인 진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인데 그걸 다 제쳐놓으니... 위의 에릭 캔터만 해도 미쳐서 이민법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적극적으로 시민권 가진 이민자들이 늘어나면 유권자가 늘어난다는 당연한 생각에 기반한 것이니 말이다. 이민법 문제 말고도 선거에 자주 등장하고 의견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낙태동성결혼 등의 문제의 경우도, 물론 선택할 권리와 행복권에 기반한 중요한 이슈이지만 선거할 때마다 이런 걸 가지고 물고 늘어지면 평범하게 벌어먹고 사는 보통 사람 입장에서는 경제 상황부터 챙기지 왜 저러고들 있냐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2014년 중간선거에선 노스캐롤라이나 등 스윙 주에서 이기면서 상원을 다시 먹었다. 2014년 퍼거슨 소요에 놀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결집, 프리즘 폭로 사건으로 인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이탈, 티 파티와 상대적으로 거리를 둔 공화당 온건파들의 대안화 등을 기반으로 중도파들이 대거 공화당 온건파들을 지지한 것 등이 원인으로 파악되며, 상하 양원을 모두 공화당이 장악함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레임덕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은 오바마와 민주당을 등치시키면서 오바마 심판론을 전개했고, 경합지역에는 상대적으로 온건파 후보를 배치하며, 온라인 여론전에도 신경을 썼으며, 티 파티와 민주당 행정부 양자에 모두 실망한 중도파들이 공화당 온건파들을 지지한 것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떨어졌던 것이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 승리의 요인이었다. '오바마 심판론'이라고도 볼만한 미국인의 결집에 득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78]
다만 지금은 썰물처럼 빠지긴 했지만 다시 밀물처럼 들어올 수 있는 티 파티가 공화당의 발목을 계속 잡는 것이 문제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을 지지한 재계와 중도층은 티 파티는 싫으나 공화당 온건파를 지지한 경우가 다수라, '''티 파티가 다시 강해지면 언제든지 공화당을 버릴 수 있기 때문'''(…). 여기에 자칫 핵전쟁을 부를 우크라이나 적극 개입을 외치거나,[79] 이미 이라크와 아프간전을 통해 안정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검증된데다 사회 자체가 극히 전근대적이라 현대적인 마인드 하에서의 접근 자체가 무의미한 중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주장하는 등, 공화당은 자신들이 비난하는 그 오바마보다도 외교정책에서는 비판의 소지가 충분한 마인드를 갖고 있는데[80] 이는 이라크나 아프간전과 경제위기로 인해 외부 개입에 대한 피로증이 심각한 미국 여론의 반발과 더불어 공화당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공화당 입장에서 최대 난점은 힐러리를 압도할 후보가 아직은 없다. 현재 공화당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후보는 29%의 지지율인 '''젭 부시'''지만 '''부시'''라는 성에서 알 수 있듯이 부시 가문, 그것도 '''조지 W. 부시의 남동생'''이다(…). 스펙트럼이 넓어진 공화당에서 온건파에 속하고 '''형이 아닌 아버지를 닮았다는 점'''이 매우 큰 장점이긴 하지만, '''부시 가문에 환멸을 느끼는 미국인들이 워낙에 많아서''' 표를 주지 않겠다는 의견이 절반이라 형의 아우라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부터가 문제다(…).[81] 그 다음으로는 25%의 지지율인 랜드 폴이 있는데 그는 공화당의 딜레마인 '''티 파티'''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밋 롬니는 여운을 남겨 놨지만 다시 출마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은 상황이고, 24%인 크리스티는 미국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다리 중 하나인 조지 워싱턴 다리의 차선을 의도적으로 '''정치 보복'''을 하기 위해 막아버렸던 사실이 드러나고 나서 그동안의 블루 칼라스러운 좋은 이미지가 완전히 박살났다. 또 이름을 대자면 스콧 워커마코 루비오 정도? 물론 공화당 후보로 공천되는 시점에서 '인지도' 정도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하나, 힐러리 클린턴과의 가상대결에서 모두 10% 가량의 차이로 패배할 것으로 예상되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힐러리를 압도할 만한 인물이 없는 게 문제지만, 적어도 힐러리라도 있다는 것이 민주당에겐 유리하다. 힐러리는 젊은 층에겐 비교적 인기가 적긴 하지만 최소한 blue dog 민주당원들이라는 든든한 지지 배경이 있고, 남편인 빌 클린턴의 고향인 아칸소를 비롯해 인접 남부 일대에서 공화당의 텃밭을 가져올 확률도 적지 않기 때문에 여러 모로 공화당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후보이다. 후보로 거론되는 다른 인물로는,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인 엘리자베스 워런이나 이때만 해도 무소속이었던 버몬트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가 있었다. 워런의 경우는 민주당 내부에서 비주류에 속했는데도 2014년 중간선거 이후 당에 변화를 주기 위해 당 주요 인사에 추대될 정도로 민주당 내부에서도 주목받는 인물이지만, 워런 스스로 자신이 할 일은 의회에 있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출마할 가능성은 낮다.

6.3.3. 2016년 대통령 선거


2010년대 초중반에는 공화당 자체가 기반부터 뿌리채 흔들리는 위기에 놓이기도 했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민주당과의 지지층 대결구도 그 자체에 있었는데, 서부/동북부의 리버럴한 백인+도시 노동자+흑인+히스패닉계+아시아계를 포함한 비백인계 이민자+여성+성 소수자+할리우드라는 황금동맹, 다르게 말하면 강력한 콘크리트 지지 기반을 형성한 민주당에 비해, 공화당의 갑부 자본가+남부와 중부의 시골 백인(레드넥)+종교적 보수주의자 연합이 기본적으로 머릿수 싸움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아졌던 것이었다. 게다가 공화당이 이긴 2014년 중간선거도 민주당 최대 표밭 캘리포니아뉴욕은 참가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리 공화당이 대승했어도 앞으로의 전망은 특별한 변수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낙관적이지 못한 이유. 그리고 공화당에게 있어 더 불리한 점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당분간은 그 숫자가 더욱 늘어날 것이고(특히 히스패닉계를 포함한 비백인계 이민자), 공화당의 경우 특히 남부와 중부의 시골 백인(레드넥)과 종교적 보수주의자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는 것.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공화당이 존립의 위기를 맞을 것이란 예상이 팽배해졌으나...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내부 경선에서 한바탕 태풍이 몰아치게 된다.
일단 2015년에는 존 베이너가 은퇴를 하여 공석이 된 하원의장 자리를 폴 라이언이 대신하게 되었다. 이때 기존 공화당 기득권 세력이었던 온건 보수 세력과 티 파티의 대립이 분명하게 나타났는데, 베이너가 은퇴한 후 그의 후계자인 케빈 매카시를 티 파티 성향(극우)의 공화당원들이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그래서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베이너는 은퇴를 늦추기도 했다. 결국 온건 보수와 티 파티의 지지를 모두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던 폴 라이언이 하원의장이 되었다.
경선에서는 티파티와 온건보수주의자들을 포함한 다른 모든 후보들이 나가 떨어지면서 뜬금없이 반이민을 내세우는 괴짜 이미지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추대되는 이변이 일어났고, 덕분에 2014년 중간선거의 완벽한 반대 버전이 나오는 것 아니냔 걱정도 공화당 내부에선 돌았다. 도널드 트럼프에 투표하고 싶어하지 않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아예 선거를 하지 않으면서 민주당이 손쉽게 대선에서 이길 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유력 미디어로부터도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티파니와 온건보수주의자들을 모두 결합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내놓아야지만 제대로 된 본선이 치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
'''부통령 후보 마이크 펜스'''
결국 2016년 7월 19일,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 마이크 펜스가 부통령 후보가 되었다. 이는 미국 역사적으로도 압도적인 득표수로 확정된 것이라 나름 의미가 있다. 트럼프는 아웃사이더 출신이라 공화당 내부에서도 많이 당황스러운 분위기다. 물론 관련 전문가들도 충격을 금치 못하는 상황. 불과 몇개월 전만 해도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될 것이라 예상했던 전문가는 '''0'''명이었고, 그중 단 한 명만이 "그래도 높게 주자면 20% 정도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 전부였다.
여담으로 공화당 주류 세력들은 얼마나 트럼프가 싫었는지, 이미 사망한 로널드 레이건 이후의 역대 공화당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 중에서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인물은 밥 돌 단 한 명 뿐이고 부시 부자, 존 매케인, 밋 롬니 등은 모조리 불참했다.(...) 공화당 대통령 경선에 나섰던 인물 중에서도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와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마크 루비오 플로리다 주지사는 불참했다. 테드 크루즈는 참석해서 연설을 하기는 했는데, 끝내 트럼프 지지연설을 하는 대신에 "당신의 양심에 따라서 투표하라"고 발언해서 트럼프를 엿먹였다. 이 외에 공화당 상원의원만 10여명이 불참하는 등, 공화당 주류의 반 트럼프 기조는 여전하다.
그런데 2016년 11월 9일,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이변'''이 일어난다. 그야말로 세계가 깜짝 놀랐고, 심지어 공화당과 트럼프 본인도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힐러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 공화당에서조차 트럼프는 버린 자식 취급했으며, 이미 대통령 자리는 민주당에게 넘겨줄 것이라 예상하고 상하원 선거라도 잘해보자는 전략을 세웠었는데 그야말로 드라마 각본으로 쓰라고 해도 현실성이 없다는 소릴 들을 기적이 일어났다. 웬 돈 많은 아웃사이더 한 명이 공화당 주류도 아니면서 공화당 후보들을 전부 박살내고, 막판에는 민주당의 거물 힐러리 클린턴에게마저 선거인단 수로 앞서며[82] 공화당에게 승리를 안겨준 셈이니..
공화당 서열 1위 폴 라이언은 지속적으로 트럼프를 견제하다가, 당선 이후 트럼프를 칭송하고 나섰다.
트럼프의 승리에 대해선 많은 분석이 있지만, 일단 선거 결과를 보면 예전부터 계속 공화당 찍어오던 사람들이 트럼프를 찍지 않는 일은 없었다. 기존 공화당 지지층에서의 이탈은 별로 없었다는 소리. 특히 테드 크루즈의 강력한 지지기반인 개신교도들의 60%[83]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양심에 따르라는 테드 크루즈의 말과 달리 공화당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버릴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즉, 트럼프의 승리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에게 지지를 보내오던 유권자들+원래 민주당 찍던 러스트벨트의 백인 유권자들이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혹은 백인들의 기독교적 신앙심과 민주당 엘리트들의 자신들에 대한 소외정책 등이 이런 사태를 불러왔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인구의 다수인 백인들이 민주당의 8년 집권 시기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에 알게 모르게 불만을 누적시키다, 기존 정치인들의 화법과 달리 시원한 어법을 구사하는 트럼프의 등장에 지지를 보냈다는 식.
민주당은 정치적 올바름에 기초한 실질적 평등 추구를 위해 백인 소외를 시도했고, 상당수 백인들의 불만을 누적시켰는데 트럼프는 이러한 불만을 제대로 간파했던 것.[84] 하여 백인들이 많은 러스트 벨트의 백인인 석탄 탄광 노동자들, 농촌과 소도시를 중심으로 선거를 돌며 이들의 마음을 휘잡아 승리했다는 것이다.
허나 '''정반대'''의 주장도 있는데, 선거가 끝나고 각계 각층의 투표율을 종합해보니 2012년 선거와 비교해 트럼프를 찍은 여성 투표율이 2%, 백인 투표율이 1% 감소한 반면 히스패닉, 흑인 투표율은 2% 증가에 '''무슬림의 표가 무려 2배 증가했다'''는 주장도 있다.[85] 이에 따르면 힐러리에 대한 흑인의 지지율도 이전보다 감소[86]했고, 비백인 여성의 지지율도 1%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뭔가 매치가 잘 되진 않지만, 트럼프의 언행과 반대로 공화당이 백인에게서 전보다 덜한 성과를 거두고 무슬림과 유색인종에게서 전보다 더 나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이다.[87] 이를 보면 무슬림들은 기독교 중심주의를 세속화보다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지고 보면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아브라함계 종교긴 하다.
사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 자체가 대단히 특이한 기질을 가지고 있고, 선거 결과도 기존 예상에서 많이 벗어나 앞으로의 공화당, 민주당의 행보를 예상하기 쉽지 않다. 다만, 미래가 암울해보이던 공화당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건 맞다. 그게 반이민 같은 배타적인 모습으로 보여서 문제긴 하지만. 그리고 트럼프와 공화당 지도부의 관계 역시 그리 좋지 못해서 차후 미국 국정운영에서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트럼프가 보여준 행동이나 언행들이 기존의 공화당의 정당정책에서 상당히 벗어난 점이 많아 애시당초 공화당 지도부와 마찰을 빚었을 뿐 아니라 이번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한 법조계의 제동을 두고 트럼프의 '판사' 비하 트윗으로 인해 지도부 역시 "이건 아니지."란 반응을 내놓을 정도로 서로간의 신뢰는 아직도 보여지지 않고 있다.

6.3.4. 2018년 중간선거


2018년 중간선거는 2018년 캘리포니아 하원의원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게 미국 언론의 주된 분석이다. 캘리포니아에서 대략 지난 대선때 트럼프가 패배한 현역 공화당 지역구가 20여 곳 되는데, 이곳에서 현역 공화당 의원들이 좋은 성적을 보인다면 민주당으로서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고, 여기서 대거 공화당 현역이 민주당이나 기타 아웃사이더에게 교체당한다면 민주당의 하원 장악에 긍정적 신호로 읽힐 수 있다는 것. 또한 공화당이 여당이어도 트럼프의 예스맨이나 이중대는 아니다. 이 사람들도 트럼프가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정책이나 우방이나 동맹과의 불화를 조장하고 친러적인 행보를 보이며 외교관계를 비즈니스처럼 권위적이고 독선적으로 처리 하고 있는 트럼프 행동에 못마땅하게 여겨 트럼프 지시에도 민주당과 합세하여 개기는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결국 공화당 입장에선 상당히 찜찜한 선거 결과를 얻었다. 상원에선 다수당을 지켜냈고 주지사 선거에서도 플로리다, 오하이오, 조지아 등 스윙 스테이트를 간발의 차로 지켜냈지만, 하원은 언론의 예상보다도 더 크게 패배해 향후 행정부 견제가 심해질 것으로 보이며,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던 미시건,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 지역구 상당수도 다시 빼앗겼다. 게다가 트럼프 본인이 밀던 후보들도 그리 많이 당선되지 못하며 빛이 바랬다.# 세부적으로 봐도 상원은 한꺼번에 다 뽑는게 아니라 이번엔 기존 공화당 의석은 별로 안뽑고 민주당이 수성해야 될 의석이 다수였기에 애초에 지는게 이상할 정도로 구도가 유리했으며, 호황과 난민 행렬, 북핵 문제 진전 등 집권여당인 공화당에게 유리한 호재가 많았음에도 트럼프 개인에 대한 비호감이 높아 위기감 속에서 선거를 치룬 것 자체가 문제. 향후 대선에서도 비호감 지수는 유지되는데 유리한 이슈마저 없어져버린다면 재선 여부는 진짜 알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88]

6.3.5. 2020년 대통령 선거, 선거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지지율이 불안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화당 지지자들과 열성적 우파들은 웬만해서는 트럼프에게 등을 돌리진 않을 것으로 보여 트럼프가 금방 무너질 일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 지지층은 극단적이라 할만큼 트럼프에 반감을 표하고 있지만, 반대로 지지층은 트럼프를 열렬히 추종하고 있다. 트럼프가 추진하는 이민자 관련 법안도 사상적 논쟁과 도덕적 비난은 있을지언정 찬반 양론이 공존하기에 선거 당락을 가를만큼 핵심 변수는 아니다.
미국 상당수 언론이 진보좌파적 성향인 것을 고려할 때, 공화당 입장에서는 국민이 '주류 언론에만 의존'하려는 성향 또한 경계할 필요가 있고 실제로도 비판적이다. 갤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공화당 지지자, 백인, 고학력자, 고소득자일수록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다고 대답했고,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국민들의 언론 의존도와 신뢰도가 낮아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런 변화 양상 때문인지, 트럼프와 주류 언론은 서로를 '가짜'라고 비난하며 신랄하게 타격하는 모양세를 띄고 있다.[89]
곧 다가올 획기적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을 포함하여, 현재는 웬만한 매체보다 퓨디파이[90] 등의 메이저급 개인 유튜버가 더 큰 이슈를 만드는 것이 현실이고, 보수 성향의 칼럼니스트와 유튜버들만 'FAKE' 등으로 매도하는 분위기에 반감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어쨌든 이런 충돌로 인해 무작정 언론을 신뢰하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근거 자료들을 찾아보는 젊은 세대가 점차 늘고, 이것은 주류 언론과 적대적인 공화당에게 긍정적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주류 언론이 좌편향되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특이할만한 점.
공화당이 2008년 매케인 5,990만 표, 2012년 롬니 6,090만 표를 받은 것에 비해, 2016년 트럼프는 6,290만 표를 받아 전체 득표수는 4년마다 100~200만 표씩 상승중인 반면, 민주당은 2008년 오바마 6,940만 표, 2012년 오바마 6,590만 표, 2016년 힐러리 6,580만 표를 받아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떨어지는 모습을 띄는 것도 공화당 입장에서 긍정적인 소식이다. 여전히 전체 득표율이 밀리는 점은 개선해야 될 사항이지만.
정치학자인 루이 타이사이라 교수는 NYT에 “인구 변화에도 불구하고 저학력 백인이 상당 기간 미국 유권자의 최대 집단을 형성할 것”이라며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고졸 이하 백인이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4%에 달하고, 대졸 이상 학력의 백인 비율은 23%에 머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2020년부터 2036년까지 대선전에서 전체 득표수에서는 뒤지면서도 주별 선거인단 숫자에서 앞서 백악관을 연속으로 차지할 것”이란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공화당에 악재인것은 2019년 중반부터 2020년에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은퇴를 선언하는 공화당 하원 의원들이 대거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문제는 고령의 의원들이 때가 되어서 은퇴를 하는게 아니라 텍사스의 윌리엄 허드[91]처럼 공화당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나이의 의원이나 적은 숫자의[92] 여성 공화당 의원 중 두명인 앨라배마의 마사 로비, 인디애나의 수잔 브룩스 같은 의원들이 은퇴를 선언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19년 후반을 휩쓴 우크라이나발 트럼프 탄핵 사태도 잠잠해졌기에, 본격적인 2020년 대선 체제가 접어들고 있다.
2020년 11월 3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을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여론조사상 여유있게 제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저번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경합주 지역에서 대부분 밀리는 것으로 나타나 트럼프의 고심을 깊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플로리다,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4곳에선 6% 이상 뒤졌고, 노스캐롤라이나와 애리조나 역시 각각 2.4%, 4% 뒤졌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여성, 독립 성향, 유색인종의 지지가 상승세인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핵심 지지 기반인 중장년 백인과 저학력 유권자층 내의 이반도 나타나고 있어 미국의 급격한 코로나19 확산과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악재로 작용했다는 평.#
대통령 및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공화당 내부에서도 트럼프그렛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낙선 운동 및 조 바이든 지지가 늘어나고 있으며, 존 케이식, 칼리 피오리나 등이 트럼프 행정부 출신 인사들과 함께 바이든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동시에 젭 부시는 아예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트럼프 낙선 운동에 들어갔다. 심지어 공화당원, 공화당 지지자들이 2016년 실패로 끝난 '네버 트럼프' 운동과는 다르게 2020년에는 반트럼프 슈퍼팩 등을 통해 많은 물적, 인적 자원을 투입하여 낙선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The Lincoln Project 등은 아예 공화당원들에게 트럼프 낙선 및 조 바이든 투표를 촉구하는 중이다.[93][94] 물론 그럼에도 공화당 지지층 다수는 이들을 배신자 취급하며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대선 개표 결과 4년 전과는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났고, 트럼프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선거 불복을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낙선이 확정되었다. 현직 대통령으로 재선에 실패한건 1992년 조지 H. W. 부시 이후 28년만이다. 낙선 요인은 역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안이한 대처 방식과 방역 실패, 그에 따른 대공황 이후 역대 최저 경제 성장률과 실업률 상승 등 경기침체가 핵심으로 꼽히며, 트럼프의 마이웨이적 행보로 인해 인종갈등과 사회분열로 안티층이 늘어난 것도 주요한 요인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트럼프가 낙선한 현재, 친트럼프계가 주류인 공화당은 존 매케인과 같은 비트럼프계 공화당원의 당내 세력이 매우 약화되어 있으며,[95]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들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오히려 친트럼프계 강경 보수층들이 득세 하고있다.[96] 심지어 미국판 일베라고 할 수 있는 '''큐어논 출신 마조리 테일러 그린이 조지아주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기까지 했다'''. 게다가 친트럼프계 인사들이 트럼프의 선거 불복에 찬성하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로 인해 악화된 당 이미지 회복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친트럼프계와 반트럼프계의 공화당 내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콜린스나 롬니같은 중도성향 인물들은 민주당내 중도 성향 인물인 맨친 의원과 합작해서 법안을 쓰는등 여러모로 극우 정치에서 벗어나려 노력을 하고 있지만[97], 테드 크루즈나 조시 홀리같이 젊고 2024년 대선을 노려볼만한 인물들은 공화당 내부에서 주류 세력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트럼프 세력의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위해 여전히 트럼프의 극우 정치를 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공화당 내부의 갈등의 폭풍의 눈은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결과 불복' 관련 이슈인데, 도널드 트럼프 본인 보다도, '도널드 트럼프 퇴임 이후 공화당 유권자들의 성향과 공화당의 방향성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두고 친/반트럼프계 할것 없이 상원의원들 개개인이 각자 갈등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면, 테드 크루즈나 조시 홀리 같은 인물들은 '도널드 트럼프의 퇴임 이후, 공화당을 대표할 다음 주자는 트럼프의 신임을 얻은 트럼프의 후계자다'라고 판단을 한건지 트럼프의 선거 불복을 지지하며 선거 인단을 인증하지 않겠다고 나섰다. 반대로, 같은 강경 친트럼프 인사인 톰 코튼은 트럼프가 퇴임 한 이후 그의 영향력이 줄어들거라 판단한건지, 오히려 트럼프의 선거 불복을 비난하는 밋 롬니, 수전 콜린스, 리사 머카우스키, 벤 새스같은 중도계/반트럼프 의원들과 함께 트럼프의 선거 불복을 지지하는 인물들을 비난했다.[98] 여기에 팻 투미같이 아예 은퇴를 앞둔 노령의 의원들은 트럼프의 반민주주의적인 행적을 공개적으로 비난 하고 있다.[99]
이런 공화당 내부의 갈등은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이후 더 빠르게 가속화 될것으로 보인다. 맥코널을 비롯한 공화당 지도부는 유통기한이 지난 백인 위주의 공화당 지지기반의 방부제가 되었던 '트럼프 이전엔 정치 참여를 하지 않았던 백인'들의 표심이 아까웠는지 트럼프와 어느정도 거리를 두지만 아예 손절은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으나, 트럼프 지지자들의 폭동 이후론 아예 손절을 하려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100] 위에 언급된 조시 홀리나 테드 크루즈같은 친트럼프 극우계 인물들은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계승하는 자가 차기 공화당 대선 후보라고 판단을 한건지 폭동 이후에도 트럼프의 부정선거 주장을 지지했지만 역풍을 맞고 의회에서 고립되었다.[101]
장기적으로 보면, 공화당 내부 중도를 대표하는 롬니, 콜린스, 머코우스키 같은 인물들은 고령의 나이 때문에 차기 대권주자로 나서기가 힘든 인물들이며, 이들이 극우성향의 강한 공화당 상/하원의 젊은 의원들과 대권을 두고 경쟁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중도층에서 극우계 의원들과 대권을 두고 경쟁할만한 중도우파계 젊은 의원은 플로리다마르코 루비오네브라스카벤 새스 상원의원들이 있고, 의회 밖에서 찾아본다면 메릴랜드래리 호건 주지사나 매사추세츠찰리 베이커 주지사같은 동북부 주들의 '뉴 잉글랜드 공화당'이 있다.[102][103] 문제는, 메사추세츠주의 주지사 출신이었던 '뉴 잉글랜드 공화당원'인 밋 롬니도 2012년 공화당 경선 승리를 위해 상당한 우클릭을 했었는데, 공화당 유권자들이 그 시절보다 더 심각하게 극우쪽으로 심화된 상황이라 중도계 인물들이 2024년 경선 시즌에 어떻게 나올지가 미지수인 상황이고, 공화당의 극단주의자들이 중도 성향의 인물들을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탄핵을 앞두고, 탄핵 결정에 대하여 상원 의원들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전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롬니 같은 경우는 여전히 탄핵에 찬성표를 던질 의사를 보이고 있고, 다른 인물도 아닌 미치 매코널도 탄핵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지만, 퇴임한 도널드 트럼프가 찬성한 의원들 상대로 공화당 예비 선거에서 자객 후보들을 보낼게 뻔한 상황인지라 다른 의원들은 "이미 퇴임 한 대통령을 꼭 탄핵 할 필요가 있나?", "지금 탄핵을 계속 추진하는건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거다" 라며 간을 보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 이미 고령의 나이를 이유로 은퇴를 선언한 펜실배이니아의 팻 투미 상원 의원에 이어 오하이오의 롭 포트먼 상원의원도 재선을 포기하고 은퇴 선언을 했다.[104] 결국 켄터키의 랜드 폴이 표결에 올린 '퇴임한 도널드 트럼프의 탄핵이 위헌인가?'에 대한 상원 투표에서 롬니, 머코우스키, 콜린스, 새스, 그리고 투미 의원을 제외한 45명의 공화당 상원 의원들이 탄핵을 진행하는것에 대해 반대를 하면서 트럼프 탄핵을 통과 시키기엔 무리가 있어보인다. 여기에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인 케빈 매카시가 2022년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직접 트럼프를 찾아가서 결탁하는 등 공화당이 스스로 트럼프를 축출하는건 가망이 없어보인다.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의 탄핵안에 지지표를 준 의원들에게 각종 압박이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와이오밍의 리즈 체니[105] 하원 의원 같은 경우, 플로리다의 하원의원인 맷 게이츠가 체니 본인의 와이오밍 지역구에 날라와선 '배신자를 축출하자' 라는 식의 유세활동을 하는 등 압박을 받고 있다. 참고로, 리즈 체니는 롬니나 콜린스같은 중도성향의 인물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네오콘쪽의 강경 보수쪽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RINO'[106] 취급을 받는 상황이 현재 공화당이 얼마나 심각하게 극우에 오염되었는지, 얼마나 '도널드 트럼프의 당'이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큐어넌 지지자로 알려진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이 의원 입성 전 발언들이 드러나면서 상임위원직을 박탈당하는 징계를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신당을 창당할 경우 공화당 지지층의 셋 중 두 명이 지지하겠다고 응답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게다가 신당 창당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화당의 이런 극단적인 모습은 결국 공화당 자신을 옭아매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양당정치가 자리잡은 미국이라도 선거는 중도층에 의해 좌우되는데 이러한 모습은 결국 중도층이 다수 분포된 스윙 스테이트[107]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앞으로 만년 야당을 희망하지 않는 이상 결국 극우적인 성향을 떨쳐내야 할텐데, 트럼프 지지층이 공화당의 주류를 차지하게 된 현 상황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이후로 공화당은 수만명의 등록된 공화당원들을 잃고 있는 상황인데, 이렇게 당내 온건 보수나 중도층 당원의 이탈이 가속화 된다면 당내 극우파 비중이 더 커지게 되고 이는 당의 후보를 정하는 예비 선거에서 극우파 후보가 승리하거나 기존의 공화당 정치인이 예비 선거 승리를 위해 더욱 우측으로 가는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도층의 지지를 빠르게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 도널드 트럼프가 키워낸 극우 지지층마저 잃는다면 선거에서 승리할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어지기 때문에 이미 잃거나 잃기 시작한 중도층을 회유하기 보다는 트럼프의 극우층을 감싸고도는 상황이다. 미국의 극우 세력들은 트럼프가 집권한 4년 동안 전면에서 활동하며 세력을 불렸고, 공화당이 극우층의 표를 포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했다. 이로인해 공화당은 점점 더 극우 정당으로 변해갈 것이라는 전망도 존재한다.

7. 역대 선거결과



7.1. 대통령 선거



공화당(미국)의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
'''연도'''
'''결과'''
'''후보자'''
'''득표율'''
'''선거인단'''
'''대통령'''
'''부통령'''
1856년
낙선
존 C. 프리몬트
윌리엄 L. 데이튼
33.1%
114/296명
1860년
'''당선'''
'''에이브러햄 링컨'''
해니벌 햄린
39.8%
180/303명
1864년
'''재선'''
앤드루 존슨[108]
55.0%
212/233명
1868년
'''당선'''
'''율리시스 S. 그랜트'''
스카일러 콜팩스
52.7%
214/294명
1872년
'''재선'''
헨리 윌슨
55.6%
286/352명
1876년
'''당선'''
'''러더퍼드 B. 헤이스'''
윌리엄 A. 휠러
47.9%[109]
185/369명
1880년
'''당선'''
'''제임스 A. 가필드'''
체스터 A. 아서
48.3%
214/369명
'''전임 암살 승계'''
'''체스터 A. 아서'''
-
1884년
낙선
제임스 G. 블레인
존 로건
48.3%
182/401명
1888년
'''당선'''
'''벤저민 해리슨'''
리바이 P. 모턴
47.8%[110]
233/401명
1892년
낙선
벤저민 해리슨
화이트로 리드
43.0%
145/444명
1896년
'''당선'''
'''윌리엄 매킨리'''
개릿 A. 호바트
51.0%
271/447명
1900년
'''재선'''
시어도어 루스벨트
51.6%
292/447명
'''전임 암살 승계'''
'''시어도어 루스벨트'''
-
1904년
'''당선'''
찰스 W. 페어뱅크스
56.4%
336/476명
1908년
'''당선'''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제임스 S. 셔먼
51.6%
321/483명
1912년
낙선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니콜라스 버틀러
23.2%
8/531명
1916년
낙선
찰스 에반스 휴즈
찰스 W. 페어뱅크스
46.1%
254/531명
1920년
'''당선'''
'''워런 G. 하딩'''
캘빈 쿨리지
60.3%
404/531명
'''전임 병사 승계'''
'''캘빈 쿨리지'''
-
1924년
'''당선'''
찰스 G. 도스
54.0%
382/531명
1928년
'''당선'''
'''허버트 후버'''
찰스 커티스
58.2%
444/531명
1932년
낙선
허버트 후버
39.7%
59/531명
1936년
낙선
알프레드 랜든
프랭크 녹스
36.5%
8/531명[111]
1940년
낙선
웬델 윌키
찰스 맥너리
44.8%
82/531명
1944년
낙선
토마스 E. 듀이[112]
존 브리카
45.9%
99/531명
1948년
낙선
얼 워런
45.1%
189/531명
1952년
'''당선'''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리처드 닉슨
55.2%
442/531명
1956년
'''재선'''
57.4%
457/531명
1960년
낙선
리처드 닉슨
헨리 로지
49.6%
219/537명
1964년
낙선
배리 골드워터
윌리엄 밀러
38.5%
52/538명
1968년
'''당선'''
'''리처드 닉슨'''
스피로 애그뉴[113]
43.4%
301/538명
1972년
'''재선'''
60.7%
520/538명
'''전임 사임 승계'''
'''제럴드 포드'''
넬슨 록펠러
-
1976년
낙선
제럴드 포드
밥 돌
48.0%
240/538명
1980년
'''당선'''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50.7%
489/538명
1984년
'''재선'''
58.8%
525/538명
1988년
'''당선'''
'''조지 H. W. 부시'''
댄 퀘일
53.4%
426/538명
1992년
낙선
조지 H. W. 부시
37.4%
168/538명
1996년
낙선
밥 돌
잭 켐프
40.7%
159/538명
2000년
'''당선'''
'''조지 W. 부시'''
딕 체니
47.9%[114]
271/538명
2004년
'''재선'''
50.7%
286/538명
2008년
낙선
존 매케인
세라 페일린
45.7%
173/538명
2012년
낙선
밋 롬니
폴 라이언
47.2%
206/538명
2016년
'''당선'''
'''도널드 트럼프'''
마이크 펜스
46.0%[115]
304/538명
2020년
낙선
도널드 트럼프
46.8%
232/538명

8. 공화당 출신 정치인



8.1. 대통령


  • 에이브러햄 링컨 - 16대 대통령
  • 율리시스 S. 그랜트 - 18대 대통령[116]
  • 러더퍼드 B. 헤이스 - 19대 대통령
  • 제임스 A. 가필드 - 20대 대통령
  • 체스터 A. 아서 - 21대 대통령
  • 벤저민 해리슨 - 23대 대통령
  • 윌리엄 매킨리 - 25대 대통령
  • 시어도어 루스벨트 -26대 대통령
  •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 27대 대통령
  • 워런 G. 하딩 - 29대 대통령
  • 캘빈 쿨리지 - 30대 대통령
  • 허버트 후버 - 31대 대통령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34대 대통령
  • 리처드 닉슨 - 37대 대통령
  • 제럴드 포드 - 38대 대통령
  • 로널드 레이건 - 40대 대통령
  • 조지 H. W. 부시 - 41대 대통령[117]
  • 조지 W. 부시 - 43대 대통령[118]
  • 도널드 트럼프 - 45대 대통령

8.2. 부통령


볼드체는 '''대통령'''이 된 인물.

8.3. 기타



9. 관련 문서



10. 둘러보기


'''공화당의 역사'''
휘그당

'''공화당'''

'''현재'''
개혁당
민주공화당
헌법당

[1] 경제적 자유주의고전적 자유주의. 다만 도널드 트럼프는 보호무역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만큼 경제적 자유주의와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다.[2] Tuesday Group과 Republican Main Street Partnership[3] 크리스 스누누 등의 온건한 공화당원들[4] 래리 호건과 필 스콧 등의 북동부의 공화당 출신 주지사들.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블루스테이트에서 당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5] Republican Study Committee를 비롯한 Neoconservatives.[6] Tea Party Caucus를 비롯한 Paleoconservatives.[7] 아메리칸 내셔널리즘. 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내셔널리즘과 이 성향을 가지고 있다. 과격한 부류는 미국 국수주의로도 분류된다.[8] College Republican National Committee[9] Young Republican National Federation[10] 그냥 접속하면 사이트가 깨져서 보이므로 VPN 등으로 미국 IP로 접속해야 정상적으로 보인다.[11] 여담으로 부시 부자는 누가 부자지간 아니랄까봐 해당 그림에서 단 둘이서만 신체접촉을 하고 있다. 참고로 모든 공화당 출신 대통령을 다 그린건 아니다.[12] 역대 대통령들이 쳐다보는 선대 대통령은 주로 그 정당의 첫번째 대통령으로 그린다. 그래서 공화당은 에이브러햄 링컨을 그렸고, 마찬가지 이유로 민주당 삽화에서는 민주당 출신 첫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앤드루 잭슨을 그렸다. 다만 두 대통령 모두 현대의 공화당, 민주당이 내세우는 가치와는 상당히 결이 다른 대통령들이라 미묘한 감은 있다. 여담으로 금주하는 트럼프 음료는 술이 아니고 다이어트 콜라다.[13] 자주 쓰이는 별칭으로 Grand Old Party(GOP)가 있으나, 어디서 유래한 이름인지는 '''공화당조차 추측설만 내놓을 뿐 잘 모른다.''' 참고로 정당 역사 자체는 민주당이 더 오래되었다. 물론 둘 다 전신은 따지고 보면 민주공화당이긴 하다만. (이후 민주당vs국민공화당->휘그당->공화당.)[14] 상징은 코끼리이다. 원래 상징은 아니었으나 공화당을 까던 기사에서 풍자하면서 그렸고, 그게 퍼지다 보니 후에는 그냥 상징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사실 미국 민주당의 상징인 당나귀도 원래는 언론에서 민주당을 당나귀에 빗대 디스하던 걸 쿨하게 "당나귀도 멋있어!" 하면서 갖다 쓴게 시작이다.[15] 인도 인민당, 중국 공산당, 미국 민주당 다음.[16]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당 내 티 파티 운동가들과 Freedom Caucus를 비롯한 고보수주의들을 당 내 우파~극우정파로 평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도 성향상 고보수주의에 가깝다. #[17] 이 시기의 공화당에 대한 정보는 공화당 급진파 문서도 참조.[18] 다만 연방당 시절부터(공화당의 전신 휘그당은 연방당과 민주공화당 내 앤드루 잭슨 반대세력, 기타 세력들의 정치적 연합체이다. 다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민주공화당내 앤드루 잭슨 반대세력이 주축이었다. 이 당시 연방당이나 기타 세력은 항목에도 있듯 이미 비주류 세력으로 밀려나있는 상태였기 때문.) 이어져온 일부 경제관료, 장교, 자본가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는 이때도 유지되어와, 남북전쟁 이후 이른바 재건 시기 동안 북부군을 도운 자본가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준다. 반면 이 당시 남부는 노예 농장을 운영하는 지주들이 주류였기 때문에, 남북전쟁을 인종과 연방 문제라는 이념 갈등을 넘어 남북간 지역주의와 자본가vs지주의 기득권 싸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19] 다만 매킨리 사후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대외적으론 제국주의, 대내적으론 사회자유주의적 면모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 오히려 국내 문제에선 진보, 혁신파 정치가로 알려지기도 했다.[20] 종교 세력의 경우, 기존 기독교 세력이 급격하게 위축된(유럽에서는 20세기 이후 무종교인 비율이 늘며 종교 영향력이 감소하는 추세다) 유럽을 보고 겁먹은 북미권 기독교 우파 세력이 더 결집한 원인도 있다.[21] 다만 월남전 철수 이후 더이상의 직접적인 대외 개입은 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닉슨 독트린의 예만 봐도 알 수 있듯, 반대 경우도 얼마든지 목도할 수 있다.[22] 다만 자유의지주의 역시 기존 사회규범에 저항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보수주의와도 구별된다. 당장 자유의지주의를 주장한 대표적 인물이었던 론폴만 해도 공화당에선 소수파였다.[23] 물론 보수주의보단 앞선다. 다만 보수 진영내에서도 주류 스펙트럼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주의 측면에선 보수주의자들이 리버럴보다 좀 더 자유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24] 존 매케인이 과거에 속해 있었다.[25] Governors lead a Republican renaissance in New England [26] 다만 주류는 온건파더라도 Freedom Caucus 같이 고보수주의와 연계된 우파~극우 성향 분파도 존재한다. 이쪽은 Fusionism으로도 불리는 자유지상주의적 보수주의 파벌이다.[27] 국민보수주의, 전통주의적 보수주의와 일부 기독교 우파도 포함된다.[28] RSC의 주류는 신보수주의이지만 하원과 주지지층은 친트럼프 성향 고보수주의도 상당하다.[29] 당 중진들은 소극적으로 반대하지만, 이미 공화당원 대다수가 지지하는 주류 계파의 위치에 있다.[30] 물론 공화당 내에서도 주한미군 철수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기에 현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31] 티파티의 기조는 쉽게 말하면 "내 돈에 손대지 마라"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금전적 손해가 가지 않는 문제에 대해선 거의 무관심 수준이다.[32] 기존의 5배 이상.협상용 뻥카라고 쳐도 최소한 현실적으로 2배 이상은 뜯어내겠다는 목적성이 다분하게 느껴져서 원성을 사고 있다.[33] 즉, 북한이 민주화되면 북핵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라는 입장. 물론 이것도 확정적인 기조는 아니다. 외교 정책이란게 원래 시대상황이나 개인 변수도 크다보니.. 당장 클린턴 정부 시기만 해도 북폭한다고 엄포놓다가 다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이 방북하는 등 유연한 기조변화가 있었다.[34]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탄 사용여부를 막론하고 반대하는 입장이 다수다. 이는 다른 중동 지역 전쟁조차 확실하게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시리아까지 개입하는 것은 부담되기 때문인 점도 있다. 그래서 오바마 행정부 당시에도 적극적 개입보단 물자지원이 주로 이뤄졌다.[35] 이는 미국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관찰되는 특성이긴 하다. 물론 예외적인 케이스도 있다.[36] 다만, 베트남계와 한국계 미국인이 모여사는 LA 광역권의 오렌지 카운티, 베네수엘라계와 쿠바계 미국인이 모여사는 마이애미, 뉴욕에서 고소득층과 백인들이 모여사는 스태튼 아일랜드의 경우 다른 대도시권보다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편이다.[37] 미국에서는 스윙 스테이트라고 한다. 승자독식제를 시행하는 미국 대선의 특성상 선거 때마다 승리하는 정당이 다르단 뜻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38] 실제 2016년 미국 대선 플로리다 지역 선거에서 트럼프는 힐러리에게 1.2%차로 간신히 승리하였으나, 2020년 미국 대선에서는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3.3%차로 생각보다 여유있는 승리를 거두었고, 같은 날 치뤄진 미국 연방의회 하원 선거 역시 지난 2018년 미국 중간선거보다 공화당이 플로리다 지역에서 의석을 더 늘리며 민주당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절대치로는 여전히 확고한 텃밭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경합이기는 하다.[39] 선거마다 차이는 있지만, 중장년층, 노년층 지지율은 보통 60~65% 정도 수준으로 민주당보다 압도적으로 높지는 않지만 청년층 지지율도 51~53% 수준으로 민주당보다 지지율이 약간이나마 더 높은 편이다. 실제 1980년 이후 청년층 백인들이 민주당을 더 지지한 대통령 선거는 2020년 기준 1992년과 1996년, 2008년 세 번으로 추정된다. 재미있는 점은 빌 클린턴과 오바마는 청년층 백인의 지지를 받는 것에 성공해 공화당 후보를 이겼는데,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은 오히려 백인 노년층에서 선전해 공화당 후보 트럼프에게 승리했다.[40] 1984년 대선 당시 레이건은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약 70%를 득표했고, 88년 대선에서도 부시가 54%를 득표해 44%를 득표한 듀카키스를 앞섰다.# 이는 92년(부시 55% vs 클린턴 31%)과 96년(돌 48% vs 클린턴 44%)까지 이어진다.#[41] 당장 최초의 한국 출신 연방하원의원이었던 김창준이 공화당 소속이다.[42] 히스패닉의 평균연령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선거권이 없는 미성년자 비율이 높다.[43] 조지 부시의 동생 젭 부시 아내가 멕시코 사람이었다. 당연히 자식들도 히스패닉으로 분류.[44] 대통령까지 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외에도 존 조지프 퍼싱더글러스 맥아더 등이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군으로 당내에서 거론되기도 했다.[45] 다만 아이젠하워는 중도적 성향이 강해서, 군에 무조건 호의적인건 아니라 오히려 장성 출신의 장점을 살려 낭비되는 군 예산을 효율적으로 감축할 수 있었고, 그걸 전후 복구기 사회복지예산으로 돌려버린다.[46] 한국군 vs 북한군/경제력 비교 문서에 네오콘이 어떤 정책을 폈는지를 설명해 놓았다. 특히 이들 때문에 많은 미군의 최신무기 양산이 취소된 것을 생각해보면.[47] 사실 주류 언론사나 게임, 영화, IT 업계 등은 표현과 언론의 자유 문제 등이 엮여 트럼프 이전부터도 민주당 지지율이 높다는 인식이 있는 편이었다. (물론 이것 역시 정확한 데이터가 있는건 아니다.) 할리우드 등 미국의 예술계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이유도 이와 같다.[48] 다만 공화당을 지지하는 저소득자들은 대부분 백인인데, 이들은 또 저소득층 중에서는 상위권이다[49] 물론 이런 감세 정책이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비판은 있고, 때문에 오히려 빌 게이츠워런 버핏 등처럼 증세를 주장하는 부자들도 있긴 하다.[50] 특히 자유주의 성향의 교단 신자보다는 복음주의/근본주의 계통 교단의 신자들.[51] 사실 부시 일가와 트럼프는 사이가 나빠서 딱히 특이하다고 볼 일은 아니다.[52] 전신이긴 하지만 휘그당 시절 배출한 대통령 2 역시 모두 임기 초반 병사했다.(...)[53] 민주당&남부 출신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링컨이 통합을 강조하며 스카웃한 인물로 양쪽에서 눈칫밥을 먹었는데, 링컨 사후 공화당 온건파들을 설득해 남부연맹을 지지한 민주당 인물들을 중용하려 했기에 급진파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54] 링컨 때 통과되었지만 이 법을 본격적으로 인용한 건 재건 시기부터다.[55] 상원은 그래도 사정이 나아 1878, 1880, 1892년 선거를 빼면 다수당 지위를 유지한다.[56] 인구적인 측면에서 당시 서부를 개발한 북부의 인구는 압도적이었다. 민주당이 중서부 농업주들의 지지를 받을 때도 공화당 지지자들의 인구가 더 많아 호재로 작용했다.[57] 애초에 남북전쟁 이후에도 의외로 대선 득표에선 민주당이 폭망까진 아니라 40%대 득표율을 이어오다 1876년 대선에선 민주당 새뮤얼 틸던이 전체 득표에선 이겼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1표차'''로 져 낙선하기도 했다. (이때의 여파로 1877년 남부 군정도 종료된다.) 자세한건 새뮤얼 틸던과 러더퍼드 B. 헤이스 항목 참조. 사실 민주당이 선거인단 투표라는 미국의 투표 제도에 상당히 손해를 많이 본 정당이긴 하다. 당장 1888년 대선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58] 당시 공화당은 주로 보호무역을 주창했고, 민주당은 자유무역을 지지했다.[59] 참고로 셔먼 반독점법은 이미 1890년 셔먼 공화당 상원의원 주도로 제정된 법이었다. 다만 기업들이 편법으로 악용하면서 유명무실해진 측면이 있었는데, 이를 다시 바짝 쪼인 것.[60] 시어도어 루스벨트와는 친척 관계다. 물론 12촌이라 본관만 같을 뿐 사실상 남남이지만, 아내가 시어도어의 조카딸이라 조카사위긴 하고 사적으로도 친했다고 한다.[61] 이 '뉴딜 동맹'의 지지 기반은 훗날 '남부전략'으로 공화당이 남부에 거주하는 백인들을 끌어들일 때까지 한동안 지속된다. 물론 이 그룹 빼면 나머진 지금까지도 대체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그룹이긴 하다.[62] 역대 미국 대선 중 선거인단 최소 득표.(...)[63] 193~50년대까지만 해도 흑인의 30% 정도는 공화당을 지지했으나, 60년대 이후부턴 10%대로 떨어져버린다. 다만 민주당 입장에선 당시 인종주의가 판치던 남부 텃밭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는 선택이었기에, 출혈도 상당했다.[64] 사실 공화당은 1946년과 1952년 각각 2년간 하원 다수당을 회복하는데(246:188, 221:213), 이후 '''40년간''' 이 지위를 되찾지 못한다. 1930년의 석패부터 따지면 대략 '''64년'''간... 상원도 상황은 비슷해서 1930~1970년대는 민주당이 대부분 우위를 가져갔다. [65] 케네디의 경우엔 대선에서 남부 선거인단 15명이 제3의 인물을 지지하는 돌발 사태까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서먼드의 표였다.[66] 참고로 골드워터가 출마한 이때를 미국 20세기 보수주의의 시작으로 본다. 골드워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자유의지주의'와 '신보수주의'가 생소한 개념이었으나, 이후 미국에서 보수주의의 싹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골드워터는 낙태를 반대하지 않는 등 그야말로 자유주의자라서 훗날의 미국 공화당 정서와는 조금 안 맞는 인물이긴 하지만... 재밌게도 이 계통을 존 매케인이 이어받았다.[67] 카터는 버지니아 주를 제외한 모든 남부 주에서 승리했다.[68] 물론 이는 당시 소련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의지도 있긴 했다. 레이건 지지자들은 소련과의 군비경쟁이 결국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소련을 경제적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어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 노선을 이끌어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고르바초프의 온건 노선 자체가 유리 안드로포프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었다. 물론 군비경쟁에서 나자빠진 것이 급진적인 정책에 영향을 끼친건 있겠지만. [69] 다만 이 선거에서 민주당 제럴딘 페라로가 미국 대선 사상 최초의 거대양당 여성 부통령 후보로 나오긴 했다.[70] 덕분에 2016년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와도 당내에서 각을 세우다 2018년 사망하고 만다. 얼마나 사이가 안좋았으면 트럼프가 장례식 초청도 못받았을 정도. 그리고 2020년엔 공화당원이던 매케인 부인이 평소 매케인과 친분을 쌓아온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고, 실제 매케인의 지역기반이던 기존 공화당 텃밭 애리조나주도 이변이 일어나면서 '죽은 매케인이 산 트럼프를 잡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71] 근데 티파티의 주요 인물 중 한명이 상기된 사라 페일린이다.(...)[72] 2013년 주목할 만한 새 시장들 보면 알겠지만 전부 민주당이다(…). 게다가 신시내티처럼 공화당은 아예 존재감이 없고 민주당 후보만 둘이 격돌한 도시도 있다. 그저 안습.[73] 미국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다리 중 하나다.[74] 여러모로 시원시원하고 까칠하지만 정감 있는 '블루 칼라'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쌓으면서 민주당의 표밭을 위협하던 크리스티가 무슨 마피아 영화에나 등장할법한 스캔들로 무너지면서, 2014년 시점에서 남은 '빅 네임' 후보는 론 폴의 아들인 랜 폴같은 티 파티/리버테리언 계열 인사들만 남은 상태다.[75] 원내대표가 경선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미국 역사상 처음이다.[76] 더 놀라운건 5~600만 달러 선거자금을 쓰고도 10만 달러 쓴 티 파티 후보에게 털렸다.[77] 선거 떨어진 지 반 년도 안 돼 월가에서 '국회 내부 커넥션'을 위한 로비스트로 몇 백만불의 연봉을 주며 모셔갔다.[78]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했던 빌 게이츠가 해당 선거에선 공화당 지지로 돌아섰었다.[79] 게다가 이 전쟁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비판 항목 보면 알겠지만 미국의 병크도 엄청난 수준이다.[80] 실제로 해당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외교관들은 오바마의 이슬람권 및 우크라이나 개입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당장은 공화당이 까이지 않지만 결국 공화당의 정책이 오바마의 정책을 더 강경하게 계승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똑같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81] 좀 '''많이'''(…) 극복하기 힘든 문제긴 하지만,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공화당 입장으론 최상의 후보이긴 하다. 일단 성향이 공화당 내부에서 온건파에 속해서 중도표를 끌어들이는 데도 문제가 없고, 본인이 미국 대선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는 스윙 스테이트 중 하나인 플로리다에서 주지사를 지냈기 때문에 스윙 스테이트 하나를 공화당쪽으로 끌어오기에도 적합하다. 그리고 부인이 히스패닉계이고, 정계 활동을 하고 있는 아들도 히스패닉의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는 혼혈이기 때문에 공화당의 가장 큰 고심거리인 히스패닉계의 표를 끌어들이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에 젭 부시가 스페인어를 네이티브 수준으로 사용하고, 대학 전공 역시 '''남아메리카 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여러모로 히스패닉에게 어필이 가능하다.[82] 다만 전체 득표율에선 트럼프가 300만표나 밀리긴 했다. 선거인단 투표 제도 때문에 또 민주당이 엿 먹은 셈.[83] 이것은 2012년 선거에서 롬니가 받은 투표율보다 높다.[84] 정치적 올바름을 중요시하는 측에서는 트럼프의 당선에 대해 분석하길 인종차별 욕구를 가진 상당수 백인들의 불만을 누적시켰는데, 이러한 화난 백인들은 비도덕적 행위를 하고 싶은데 그들이 부도덕한건 그들도 알기에 역차별 라벨링을 씌우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역차별 라벨링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미국 백인 가난한 층보다 흑인 전체 평균이 더 가난하다는 통계이다.[85] 출처1, 출처2의 voter demographics 참조.[86] 이건 오바마가 흑인이어서 2012년 선거에서 좀 득을 본 감이 있다.[87] 하지만 민주당도 백인 유권자에게서 2012년 대통령 선거(39%)보다 덜한 성과(37%)를 거두었다.[88] 전임인 오바마는 중간선거에서 참패를 거두고도 재선에 성공했지만, 이는 트럼프랑은 달리 개인에 대한 비호감도가 그리 높지 않았고 오히려 적절한 호감도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반해 트럼프가 가지는 비호감도는 역대급인 상황. 물론 이것을 감안하고서라도 향후 정국운영에 따라 재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트럼프가 2016년 선거에서 이긴 러스트벨트 3주(WI, MI, PA)들 중 위스콘신만이라도 지켜내고, 메인 2선거구, 플로리다, 오하이오, 아이오와, 애리조나 수성에 성공하면 선거인단 270:268로 재선에 성공할 수 있다. 위스콘신은 저 러스트벨트 3주 중 그나마 트럼프가 가장 강력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수성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물론 현실에선 셋 다 수성에 실패했지만..[89] 다만 언론에 대한 신뢰도 저하는 언론이 자처한 부분도 있다. 실제로 트럼프가 미국 언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 전인 약 2000년부터 미국 언론 신뢰도는 지속적 하락 추세였기 때문에, 단순히 트럼프라는 사람 하나 때문에 언론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비약이 지나치다. 또 트럼프 지지자들이나 반대자들이나 자기가 믿고 싶은 뉴스만 믿고 싶은 측면도 있다.[90] 트럼프에게 조소 섞인 농담을 즐기는 등 우파 성향의 인물은 아니지만, 주류 언론의 선동으로 많은 피해를 입어 이러한 언론 불신 여파에 큰 영향을 끼쳤다.[91] 국경 지역의 남부 텍사스가 지역구라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지역이기도 하고, 허드는 공화당의 유일한 흑인 하원 의원이었다.[92] 11명.[93]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가 취하는 반이민 및 반인종적 정책은 이민국가란 미국의 전통적 정체성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지금도 수많은 다인종 이민이 이뤄지는 미국의 현실을 볼때 일시적인 승리는 달성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공화당에 손해로 가는 길이기에 더이상 당내 이념 논쟁에서 밀리면 안된다는 나름 절박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94] 다만 공화당은 한동안 백인 위주 정당이었던만큼 소수인종 한정으론 과거에도 반이민 흐름을 제법 보여왔으나, 히스패닉에 친화적이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꽤 친이민적인 모습도 보였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서는 백인뿐만 아니라 소수인종들의 지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민주당을 보며 더이상 저학력 보수 백인 표에만 의지해서는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쿠바계인 마르코 루비오 등을 내세워서 중도파 히스패닉들의 표심을 잡으려고 했었다. 허나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트럼프도 2020년 대선에서 남부 출신의 강경보수 히스패닉이나 일부 흑인 남성, 아시아계 표를 생각보다 좀 더 얻긴 했지만, 투표율 자체가 저번 대선때보다 많이 올라간 것도 있고 해서 장기적인 전망이나 절대치로 보면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었다.[95]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출마한 거물이자 유타 주의 상원의원인 밋 롬니조차 현 공화당 지지층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96] 마르코 루비오(비트럼프계)나 테드 크루즈(친트럼프계) 등의 인사들은 기독교 근본주의 성향의 강경 보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트럼프 이후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었던 폴 라이언은 정계를 은퇴했다.[97] 롬니나 콜린스 같은 경우, 18년 중간선거와 20년 상원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앞으로 4~6년간은 재선을 위한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계열 공화당 후보에게 공격당할 걱정이 없어서 트럼프랑 연을 끊어도 아쉬울게 없는 상황이다. 거기에, 4~6년 후엔 둘 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다음 선거출마를 아예 포기하고 명예롭게 박수를 받으며 은퇴를 해버리는 방법도 있다.[98] 톰 코튼의 경우는, 롬니 등과는 달리 추가적으로 '지금 선거 결과를 불복하며 선거 인단 인증을 막는다면, 민주당에게 선거 인단 제도를 없애버릴 구실을 내어 준다' 라는 이유를 더했다.[99] 심지어 매캐인 사후, 트럼프의 충실한 신하로 자처한 린지 그래이엄 마저도 다른 상원의원들의 선거인단 인증을 막는 행동을 비난하고 있다.[100] 대선 의회 인증회에서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는 의원들을 제외한 공화당 의원들의 연설을 보면 이런 분위기를 쉽게 볼 수 있다.[101] 밋 롬니가 연설을 하는 하올리 의원을 대놓고 노려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102] 호건이나 베이커는 2024년엔 70세에 가까운 나이인지라 나이가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103] 사회적으론 (비교적)열려있지만, 경제적으론 온건 보수 성향의 중도~중도우파 정치인들. [104] 공화당 측의 후임 후보로는 트럼프의 충실한 수하였던 짐 조던 하원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상원 의원선거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상태.[105] W. 부시의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의 딸이며, '''공화당 하원 서열 3위'''인 거물이다.[106] 'Republicans In Name Only', 이름뿐인 가짜 공화당원 취급을 뜻하는 멸칭이다.[107] 위스콘신, 미시간, 팬실베이니아, 애리조나,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108] 민주당 인물이었지만 통합을 명분으로 링컨이 부통령 후보로 삼았다. 덕분에 링컨이 암살당하면서 17대 미국 대통령으로 임기를 수행한다.[109] 전체 득표율에선 밀렸다. 사실 선거인단도 1표차 초박빙.[110] 전체 득표율에선 밀렸다.[111] 공화당 대선 역사상 최악의 패배를 겪은 선거이기도 하다. 랜든이 이긴 곳은 메인 주와 버몬트 주 단 2곳으로 선거인단은 8명밖에 얻지 못했다. 공화·민주 양대 정당을 통틀어 대선 후보 중 가장 적은 선거인단을 얻은 후보.(...) 당시 상대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였다.[112] 안습의 대선을 두 번이나 겪었다. 지금도 회자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패배한 44년 대선은 그렇다 쳐도,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던 트루먼과의 48년 대선에서조차 역전패하는 굴욕을 맛보게 되었다. 이 듀이 - 트루먼 사례는 정계에서 선거 국면이 불리한 진영의 희망고문 비슷한 소재로 지금도 종종 쓰이곤 한다.[113] 1973년, 비리로 제럴드 포드로 교체.[114] 전체 득표율에선 밀렸다.[115] 전체 득표율에선 밀렸다.[116] 정확히는 공화당 급진파 대통령으로 분류된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117] 43대와 부자간이다.[118] 41대와 부자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