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이순신/등장인물
1. 주요 인물
[image]
'''싸움을 피하지 마시오. 적이 눈앞에 있소이다!''' (중략) '''출전지 않겠다 하는 말을 먼저 거두시오!''' (중략) '''두려울 게 없는 목숨이오. 조선 수군의 앞길을 막는 자가 있다면 명나라 도독이 아니라 하늘이라 해도 내 가차없이 베고 전장으로 나아갈 것이오.'''[1]
— 진린에게 내뱉은 이순신의 작중 첫 대사
배역은 김명민. 아역은 유승호. 인간적인 모습이 많이 드러나는 편이다.[2] 지장+덕장+명장의 면모를 보이지만, 군 기강을 잡기 위해 군율을 어긴 부하들을 얄짤없이 처형하는 모습도 종종 나온다.'''아시겠소? 이것이 우리가 절대로 전장을 벗어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요. 전란을 우리 손으로 끝내고자 하는 것이 죄라면, 적을 섬멸하려 하는 우리를 역도라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역도가 될 것이오. 주저 없이 전장으로 나아갈 것이며 이기고 돌아와 당당히 그 죄를 받을 것이오!'''
-
— 선전관과 이순신의 대화 中
원래는 양반가의 자손이었지만 할아버지 이백록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역적 취급을 받아 어렸을 적 서당에서도 쫓겨나고 과거 시험에서 출중한 답을 썼으나 합격이 취소되는 등 고생을 많이 했는데, 실제 이순신은 역적의 후손이 아니니 역사 왜곡이다.
어릴 때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하여 덩치도 큰 원균의 패거리에 끼고자 했지만 몸집도 작고 나이도 가장 어려 따돌림받기 일쑤였지만 균이 자기 때문에 관아로 끌려가 매를 맞고 오자[3] 쑥을 갖다주기도 하고, 다들 지쳐서 포기하고 산을 내려갈 때 혼자서 균을 따라갔다. 균의 용감함을 평소에도 동경했다고.
무과 급제 후[4] 조산보 만호로 부임하여 선정을 펼치고 야인들의 침입에도 착실히 대비했다. 병력이 부족하여 상관인 이일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 결국 이일 대신 경흥부사 이경록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이순신이 병력지원을 받아내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야인들이 급습했고, 이순신이 지원 병력을 이끌고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한 발 늦어 피해가 꽤 발생한 후였다. 이후 야인들을 추격하여 포로들을 구출하고 전공도 세웠지만, 자신에게 녹둔도 전투의 책임이 돌아올 것을 염려한 이일의 책임전가로 인해 이경록과 함께 첫 번째 백의종군을 치렀다. 백의종군을 하면서 야인들을 토벌하는 공을 세워 복직되었고, 조정의 한직과 정읍현감을 거쳐 전라좌수사 자리에 올랐다.
전라 좌수사 부임 초반에는 자신에게 반감을 품은 부하들 때문에 속을 썩이기도 했지만 이내 인정을 받고 존경받는 상관이 되었다.[5] 임진왜란 발발후 연전연승하며 80화에서 삼도수군통제사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88회에서 파직당하여 압송 후 모진 고문을 받고 두 번째 백의종군을 치르게 된다. 칠천량 해전후 복직되어 명량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지만[6] ,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모함과 견제에 시달린다. 마지막 회인 104회에서 송희립의 승전 보고를 들은 후 세상을 떠났다.
88회부터는 드라마의 분위기가 점점 더 비극적이고 무겁게 변해간다. 팬들 사이에서도 '너무 슬퍼서 보기 힘들다'라는 반응이 많이 나올 정도. 그도 그럴만 한것이, 이 시기부터 이순신의 고난[7] 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image]
배역은 이재룡. 아역은 오승윤.[9] 이순신의 절친한 친우이며 든든한 조력자다. 원균을 전라좌수사에서 파직하고 이순신을 천거하는데 일조했다. 임진왜란 발발후 파직되었으나 옥포 해전후 복직한다. 그러나 이후 윤두수를 위시한 이순신 모함 세력들과 선조로 인해 끊임없이 골머리를 썩히게 된다.
원균과의 불화 등으로 출전에 극도로 신중한 이순신에 대해 조정 대신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에도 거의 유일하게 이순신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인물이지만 그가 부산포로의 출전을 보류하고 있을 땐 그를 다그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며 명량 해전 직전 수군 폐지론이 거론될 즈음에는 도원수 권율이나 다른 중신들이 그러했듯 이순신의 선택을 우려하기도 했다.
이순신이 압송되어 고문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자 죄책감을 느낀 듯 정승의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그를 찾아가 상황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이순신이 답답한 듯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참혹한 몰골로 옥중에 갇힌 이순신과의 면회에서 이순신이 여기 있지 말고 원균과 조선 수군이 무모한 행보를 하지 않도록 다독여달라고 끝까지 남 걱정이나 하자 복장이 터져 외친다.
결국 울분을 참다못해 당장 선조를 찾아가 "더는 고통받지 않고 죽게 해달라"고 항의를 하기도 했다. 선조가 "그대도 죽고 싶은가"라고 하자 "두렵지 않다"고 응수하기도 했고 칠천량 해전 이후 윤두수가 이순신의 재기용을 암시하는 발언을 던지자 '어찌... 어찌 그 입으로 감히 이순신을 거론할 수 있단 말이오?!'라고 호통을 치며 윤두수의 멱살을 잡을 정도로 분노를 드러내며 이순신의 재기용을 반대한다. 다시 수군을 맡겠다는 이순신의 강한 의지에 결국 그를 받아들인다.'''"그만! 그만하게, 이 사람아! 자넨 분하지도 않은가?! 이 나라가 자네에게 어떻게 했는데 아직도 나라 걱정을 그리 하는가! 이 나라가 자네에게 해준 게 뭔가. 고단하게 전장으로 내몰고, 일껏 적을 물리쳐 놨더니 의심하고, 괴롭히고... 결국 역도로 몰아 죽이겠다는 게 바로 이 나라일세!!"'''
다시는 이순신을 거론치 마시오. 이 나라는 이미 이순신을 버렸소. '''나라에 충성한 죄를 아주 혹독하게 물어서!! 대장검을 빼앗고, 육신을 무너뜨리고, 영혼마저 황폐하게''' 만든 장본인이 누구냔 말이오!! 헌데, 이제 와서 또다시 이순신을 전장에 세우겠다고요?! 가당찮은 일이외다. 우리가 아무리 세우려 해도, 이순신은 서려 하지 않... 아니... '''설 수가 없을 것이외다!!'''
이순신과의 관계와는 별개로 국정을 총괄하는 영의정이자 전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도체찰사로써 명과의 교섭에서 전면에 나서며 활약하고 직접 왜성을 찾아가 왜군의 장수들과 담판을 벌이는가 하면 극 후반에 등장하는 울산성 전투에서는 전술 지침를 하달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유능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전하, 차라리 소신 또한 죽여주시옵소서!
목숨을 버릴 각오로 나라를 지킨 자를 역도라 하고, 정사를 그르쳐 나라를 누란의 위기에 몰아넣은 자들을 충신이라 하신다면 이 나라 조선의 내일은 없사옵니다, 전하!
참혹했던 지난 7년간의 전란, '''그 책임을 자복하고 벌을 청해야 할 자들은 모조리 이 편전 안에 모여 있사옵니다!'''[10]
이 나라를 정쟁의 나라로 만든 자, 전란이 터졌음에도 백성들의 안위를 방기하고 도성을 내어준 자, 권력을 위해서라면 나라를 구한 장수조차도 음해하기를 주저치 않는 자, 먼저 그 자들에게 죄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전하! 신 류성룡, 지난 30년간 전하와 함께 했사옵니다. 하오나 그 세월은 전하를 섬기기 위함이 아니었사옵니다. '''전하의 하늘이신 이 나라 만백성을 섬기기 위함이었사옵니다!'''
하지만 이순신의 좌수사 부임 이후로는 안으로는 윤두수와 선조 및 조정 인물들에게, 밖으로는 명나라 지원군 때문에 두고두고 속을 썩이게 된다. 전자는 말할 것도 없고, 명량 해전 즈음 명군이 하라는 싸움은 안하고 오입질이나 해대는 것도 모자라 "기생을 보내 주연을 차리지 않으면 출전하지 않겠다"는 개소리나 지껄인다는 보고를 듣자 꼭지가 나가 명나라 조정에 ''' '이딴 쓰레기들 말고 머리 똑바로 달린 장수를 보내라. 조선 뚫리면 니들도 위험하는 거 잘 알지? 안 보내면 여진족이라도 손잡고 싸울 테니 그리 알아라''''라고 경고하라며 노발대발한다.
결국 노량 해전 무렵에 이순신이 선전관을 묶고 출전을 강행했다는 소식이 조정에 전해지자 선조에게 사직소를 올리고 떠나던 길에 자신이 꾸준히 집필한 징비록을 광해군에게 넘겨주며 적에게 짓밞혔던 오늘을 잊지 말아달라며 성군이 되어달란 부탁을 남기고 궁을 나선다.[11][12]
[image]
배역은 최재성. 아역은 김학준.[13] 작중 원균 미화 때문에 젊은 시절에는 나름 개념 캐릭터에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맹장이며, 이순신, 류성룡과 함께 호형호제하던 사이로 나온다. 하지만 그나마 개념이 박힌 이 시기에도 무고한 백성들을 야인놈들이랑 밀통했다며 죽이고 보는 등 막장 행각을 저지르기 일쑤.[14] 녹둔도 사건 때 이순신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병판 정언신을 데려온 것이 마지막 도움이었다. 이순신과 류성룡의 어릴적 지기로 등장했지만 전라좌수사 파직사건으로 인해 이순신과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지게 되었다. 경상우수사로 부임한 직후에는 부하들과 함께 전라좌수영으로 찾아와서 이순신을 "5관 5포의 작은 수영은 능히 지휘할 수 있는 자네였는데,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다"라는 식으로 비웃기도 했다. 이후로는 신립과 함께 왜국 정벌을 운운하는 등 노답의 냄새를 풍기더니[15] 전란이 발발하자 배를 몽땅 자침시키고 4척만 챙겨 곤양으로 도망간다. 이후 이순신이 승승장구하는게 배가 아팠던지 사사건건 이순신에게 딴지를 놓으며 전투상황에서는 전공을 세우겠답시고 무리하는 바람에 위기를 자초하는가 하면 왜놈들만 보이면 모가지를 썰어대고 심지어 아군에게 위해를 끼치기까지 하는 초기의 호기롭던 모습은 간데없고 열폭하는 찌질이로 전락한다.[16] 옥포 해전 종료 후, 포로를 생포하라는 지시에도 불구하고 포로들을 모조리 베어 수급을 취하라고 으른장을 놓고, 이순신의 명을 이유로 군관이 거절하자 '''아군 2명에게 활을 쏘아 부상을 입히는 미친 짓을 저지른다.''' 거기다 입부 이순신이 달려와 목숨을 걸고 막으려 하자 그마저고 베려다가 이영남의 필사적인 만류로 간신히 멈춘다.'''좀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내가 틀리고 이순신이 옳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가 옳았다는 것을 사흘, 아니 이틀전에만 깨달았어도 함대를 모두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야 말로 그와 함께 조선의 바다를 지켜내고 싶었다! 허나... 하늘이 내 죄를 너무 엄히 묻는 구먼.....'''
이순신이 자신의 상관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찰을 일으키자 전라 병사로 좌천된다. 이때부터 이순신을 끌어내리기 위해 윤두수에게 줄을 대고 선조에게 내가 통제사가 된다면 당장 부산을 친다는 장계를 올리는 등 갖은 수를 쓰더니 기어이 삼도수군통제사로 활동한다. 통제사가 되자마자 이순신이 기용했던 병졸 출신 군관들을 모두 군졸로 다시 강등시킨다. 그리고 이순신은 역도이며, 역도를 두둔하는 자도 역도로 간주해 의금부로 넘겨버리겠다고 휘하 제장들을 윽박질렀다. 이에 이순신을 따르던 장수들은 줄줄이 사표를 썼다.[17][18] 거기에 이순신이 남기고 간 자료를 몽땅 불태우는 등 하라는 전투 준비는 안 하고 이순신 흔적 지우기에만 열중한다.[19][20]
부산을 조지겠다고 큰소리를 땅땅 쳐놨지만 막상 통제사가 되자 육군이 가덕과 안골의 왜적을 섬멸해야 출전할 수 있다는 이순신의 의견을 그대로 재방송하는 바람에 대노한 선조가 권율로 하여금 곤장을 치게 함으로써 출전을 강요한다. 칠천량 해전이 닥쳐서야 이순신이 옳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 김완, 이억기, 우치적 등이 목숨을 걸고 설득하여 한산으로 퇴영하도록 권유했고, 싸우다 죽으라고 내보냈던 권율도 이순신의 설득을 받아들여 원균에게 퇴영을 명하게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그 날 새벽 바로 일본군이 기습공격을 가하면서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도주하면서 우치적을 비롯한 부하들에게 반드시 살아남아 이순신의 충직한 부하가 되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신은 그들이 탈출할 시간을 벌어주고자 단신으로 왜군에게 맞서다 벌집이 되어 전사한다.
처음에는 맹장 캐릭터로 밀고 가려고 했으니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으면서 대본을 수정, 차츰 열폭형 찌질이 캐릭터로 바뀌었다.[21] 원균이 전라좌수사에서 파직되면서부터 최후가 너무 장렬하다는 비판이 있었으나 그래도 자신을 역사의 죄인이라고 칭하는 걸 보면 마냥 끝까지 미화해준 건 아니다. (영상은 옆의 링크 참고. 두 영상이 이어지니 순서대로 보면 된다.) 12
[image]
배역은 조민기(1-4화)/최철호.[22] 아역은 곽정욱.[23] 즉위 초에는 검소한 모습을 몸소 실천하는 한편 유성룡에게 백성들을 위한 개혁을 하고 싶지만 왕실의 법도가 번번히 가로막는다고 한탄하는 등[24] 개념찬 모습을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25] 점차 초심을 잃은 것으로 묘사되며,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를 거치면서 음험한 군주로서의 모습을 확립하게 된다.[26] 이 때부터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신하가 있으면 '''"그대가 도모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라는 고정 멘트를 친다.
이후 전쟁이 터지자 도성을 버리고 도망가다 백성들한테 욕을 들어먹고 돌팔매질을 당하거나 명나라 사신한테 모욕을 당하는 등[27] 온갖 추한 꼴을 보이며 점점 찌질해진다. 사천 해전때까지는 이순신을 치하하고 원균의 과오를 질책하기도 했으나, 한산도 대첩 시기부터 슬슬 찌질해지며 이순신을 견제하기 시작한다.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면서 대놓고 이순신을 적대하더니 기어이 이순신을 역도로 몰아 파직한 후 의기양양해 하지만, 칠천량 해전에서 수군이 전멸하자 "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라며 이순신을 재기용했다. 선조는 재기용을 탐탁치 않아했지만 그러나 조정 대신들이 한 목소리로 이순신을 언급하고[28] 본인도 이순신 말고 답이 없는 걸 알기에 류성룡을 찔러 이순신을 추천하게끔 유도하지만 도리어 류성룡이 선조의 입에서 이순신을 언급하게 만 든다. 이후 이순신이 수군 폐지에 반대하자 패배하면 그 죄를 엄히 물을 것이라 하며 명량에서 대승을 거두자 그 공을 치하하기는커녕 면사첩을 내리는 뒤통수를 친다.[29] 그 후로도 이순신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고 명군을 팍팍 띄워주며 종국에는 심복을 보내 이순신을 감시하기까지 한다.[30]
전란으로 인해 나라가 어지러운 와중에도 "과인이 언제까지 이런 치욕을 감내해야 하는가!"라며 자신의 권위를 유지할 생각만 한다. 이순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들인 광해군도 견제한다.
2. 조선
2.1. 전라좌수영
이순신을 직속상관으로 둔 곳이라 극중에서 등장하는 수군 진영들 중 비중이 가장 크다.
>권준: 명령을 하시면 따르겠습니다. 허나 마음으로부터 좌수사 영감의 사람이 되라 하시면, 싫습니다. 그것은 저뿐 아니라 다른 장수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허면 소관은 이만....
>이순신: 연유를... 물어도 되겠는가?
>권준: 적이 오늘밤에 온다면 전라 좌수군은 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간 부패했고 무능했으며 게을렀던 장수들 탓이겠지요. 허나 적이 6개월, 아니 1년 후에 온다고 해도 우리 전라 좌수군은 이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순신: 권 부사...
>권준: 관병 용모책[31] 을 다 외우셨겠지요. 군사들이 수천 명에 이르는데도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첫 번째 패인이 될 것입니다.[32] 내일 훈련의 세부적인 계획도 이미 수립하셨겠지요. 장수와 병졸 모두에게 명령을 내리시는 일만 남았을 것입니다. 화포는 언제 닦으실 것입니까? 배에 장착하는 일도 친히 하시겠지요. 살수[33] 와 습사수[34] 가 대부분인 군사들 중 포수는 어찌 확보하실 요량이십니까? 이미 관병 용보책을 살펴 결정을 하셨겠지요. 아니면 순시를 하신 연후 오늘 또 밤을 세워 그 안을 세우실 요량이시던가요, 아닙니까?
>이순신: 권 부사!
>권준: 내일 또 장수들은 적잖이 당혹해하겠군요. 납득할 수 없어 거칠게 항의하고 나오는 장수가 있다면 그 또한 어떻게 됩니까? 사직서를 내놓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입니까?! 수많은 전선은 왜 만드십니까? 영감이 다 타실 수도 없지 않습니까? 수개월 후, 아니 수년 후에 적이 온다고 해도 우린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전라 좌수군의 지휘관은 오직 한 사람뿐이기 때문입니다.
>권준: 곤룡포로 좌수사의 홍철릭을 찍어 누르겠다는 것인가? 변변찮은 사람 같으니... 그래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순신(입부): 이 싸움을 먼저 시작하신 쪽은 좌수사 영감이십니다!
>신호: 내 생각도 같네! 좌수사 영감은 너무 독단적일세!
>권준: 그렇게 보십니까? 저는 그리 여기지 않습니다. 먼저 싸움을 시작한 쪽은 좌수사 영감이 아니라 바로 우리입니다. '6품의 현감 따위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좌수사가 될 수 있나? 어디 한번 해 봐라, 며칠 못 갈 거다!'
>정운: (부들부들 대면서) 권 부사!
>권준: (정운의 말을 자르며) 아니오이까? 아니라면 이럴 수 없소이다. 좌수사께서 바다에서 싸우겠다 선언한 것이 언제요? 헌데 누구 하나 판옥선에 문제를 제기한 일 있소?
>수십만 왜군을 상대로 싸우자면 활과 창으로만은 안 될 터인데 화포가 필요하다 먼저 제안을 한 사람은요? 군사들은 어찌 충원할 것이며 앞으로 군량미는 또 어찌할지, 새로 판옥선을 건조하려면 인력은 어찌 충원하는 것이 좋으며 또 그 예산은 어찌할 것인지 누구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안을 낸 적이 있었소이까?
>없소!! 우리 중 아무도 그것을 하지 않았소, 왜입니까? 우리는 단순한 병졸이 아니라 장수인데 말입니다! 답은 두 가지겠지요. 우리 모두가 장수로서의 자격이 없는 자이거나, 혹은 좌수사에 대한 비틀어진 반감 때문에 모두 장님에 귀머거리가 된 탓이겠지요.
>명심하시오. 지휘관은 적을 맞아 싸우겠다 혼자라도 동분서주하고 있소이다. 헌데 우리는 정작 그 지휘관을 상대로 싸울 궁리만 하고 있소. 허면 우리를 진정 장수라고 할 수 있겠소이까?
배역은 박찬환[35] , 직책은 순천 부사. 무관들이 절대다수인 좌수영에서 몇 안 되는 문관이며 극중 이순신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렸고 핵심 참모 역할을 한다. 이순신이 정읍 현감이었을 때 정운과 함께 그를 만난 적이 있으며, 초반에 좌수영의 장수들이 이순신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때에도 혼자만은 이순신이 정말 올바른 지휘관인지 세세하게 파악하고 판단하여 이순신이 너무 급작스럽게 일을 추진[36] 하는 것에 대하여 요목조목 자신의 생각과 우려를 말해주었다. 저 대사 후 다음 장면에 조정에 이순신에 대한 참소를 올리려는 장수들을 위 대사로 다그쳐 이끌기도 했고 결국 진심으로 이순신을 지휘관으로 인정한 직후부터 좌수영 장수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이순신이 특히 아낀 장수로, 후일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고 원균이 경상우수사에서 짤리자 후임 경상우수사로 부임했으나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 사직했다. 원균이 함대를 말아먹고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가 되자 이순신이 직접 찾아가 설득해[37] 합류하여 충청수사 자리를 맡아 활약한다.
>권준: 고사하겠습니다, 장군.
>이순신: 권 수사.
>권준: 싫습니다. 장수의 군복, 받지 않겠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장군의 그 철릭도 벗겨 버리고 싶습니다!
>이순신: 이보게...
>권준: 수군은 궤멸했고 남아 있는 전선이래야 고작 12척! 심지어 병사들은 모조리 도주하고 없고...! 헌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뭡니까?
>이순신: 그래도 귀는 열어놓고 살고 있었구먼.
>권준: 고작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순신: 전선이 모두 망실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세.
>권준: 적선은 100척, 아니 200척에 가깝습니다!
>이순신: 그래서 자네가 필요해! 나와 함께 12척의 전선으로 다시 시작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는 자네라 믿고 있네.
>권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장군께서도 하지 마십시오! 전하께옵서 다시 장군께 덫을 놓으신 겁니다! 모르시겠습니까?
>이순신: 권 수사...
>권준: 어느 쪽도 안전치 못합니다. 12척으로 기적적으로 수군을 재건하여 적을 맞아 싸워 이긴다면 전하의 경계심은 더욱 극심해질 것입니다. 이번에는... 백의종군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장군의 목숨을 거두고자 하실 것입니다. 또한, 12척... 그 하잘 것 없는 함대로 적을 맞아 싸우다 져서 남서 해안의 수로라도 내어주게 된다면, 전하께옵선 장군을 이 전란을 패배로 이끈 원흉으로 삼고자 하실 겁니다.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길을 가시려는 연유가 뭡니까?
굉장히 냉철하고 차분한 인물로 이순신도 가끔 권준의 말빨에 밀릴 때가 있지만 간혹 욱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38] 참모 이미지가 강한 지장이지만 와키자카의 진영에 와키자카 부하들 수급을 가지고 사신으로 가 의연한 모습으로 대담을 하며 와키자카의 심기를 박박 긁는 담력도 있다. 작품 중반 이후에는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이들로 구성된 첩보조직의 사령관 역할도 맡는다.
초반의 노량 해전 방영분에서 자막으로 전라 좌수사라고 하는 오류가 있다. 상술했다시피 이 사람은 충청 수사. 이후 방영분에서는 수정되었다.
[image]
초반 1~4화에서는 캐릭터를 다르게 설정하고 있었는지, 이영남의 대사 중 '장군이 통제사가 되었을 때 못마땅해했었지요'라는 대사가 있다.
나대용과 충돌이 잦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기 직속 부하라고 신경을 쓰기는 한 모양이다. 김완의 말에 따르면 거북선 침몰 후 나대용이 죽어버리기라도 했을까 봐 선소 앞을 계속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물론 무의공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즉각 부정.
중간에 도성을 수비하는 유도방호대장으로 임명되어 잠시 빠졌다가 명량해전 직후 제해권 강화를 하는 시점에 다시 합류하는데 이때 다시금 상관으로서 모시게 되어 영광이라고 스스로 밝힌다.
[image]
사도 첨사, 배역은 박철민. 좌수영의 개그 캐릭터로[40][41]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본디 게으르고 무책임한[42] 장수였으나, 이순신의 휘하에서 일하면서 점차 훌륭한 장수로 성장해간다. 과거에 어영담 휘하에서 권관으로 종사한 적이 있으며 어영담 사후 조방장 직위를 승계한다.
초반에는 사실 확실한 비중이 없었는데, 원균 통제사 시기에서 비중이 대폭으로 상승했다. 사실상 원균 에피소드의 서브 주인공. 원균에게 실망한 장수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와중에서도 사표를 쓰지 않고 계속 원균을 설득하며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한다. 이 사람이 과연 초반의 코믹 담당이었던 그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
> 지가 장군한테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오직 한 가지뿐이구마이라.
> 조선의 (현)삼도수군 통제사는... 바로 장군이어라.
> 저 뿐만이 아니라 삼도 수군 모든 군사들이 믿고 따르는 상관은...
> 누가 뭐라 혀도!! 오직... 장군 한 분 뿐이구마이라.
> 지들은 장군의 부합니다요. 장군을 뫼시고, 맞서 싸워서! 왜놈들을 이기고 싶습니다, 장군...
> -
> 자포자기하여 술만 퍼마시고 있는 원균에게 밀고 들어가 무릎을 꿇고 한 설득.
이렇게 김완을 비롯하여 이억기, 우치적 등이 목숨을 걸고 '조정의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맞서면 우리가 열심히 도우겠다'며 원균을 간곡히 설득한 끝에 결국 원균은 한산도로의 귀영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하필 그날 밤 왜군의 습격이 시작되었고, 수군은 궤멸, 장졸들이 뿔뿔이 흩어졌으며, 김완은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포로로 잡혔다. 처음 와키자카를 대면했을 때 하는 일갈이 일품.
>뜸 들이지 말고 얼렁 그 칼로 나를 썰어부러~! 아니믄 그 칼을 나 점 빌려주든지. 니놈들 문어대가리들의 주구가 되느니... 차라리, 차라리 그 칼을 디벼 불고 시원하게 세상을 떠불고 싶다! 얼릉 칼 주랑께!
그래도 와키자카가 오히려 조선 수군의 장수를 태합께 진상품으로 올려야겠다고 하자, 피를 씹으며 "부끄러워서 어쩔거나..."를 연신 읊어댄다. 이후 일본에서 살아남기위해 태도를 180도 바꾸어 온갖 아첨을 하며 속으로 이를가는 수모를 겪다가[43] 같이 투옥해 있던 조선인들과의 연기로 기어이 탈출하여 이순신에게 합류해 반갑다는 인사를 할 틈도 없이 아산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알렸다.[44]
김완 첨사의 후손들에게 항의를 받은 캐릭터였다. 문중의 입장에서는 나라를 지킨 자랑스러운 조상인데 유쾌하다 못해 촐싹대는 인물로 그렸다는 점도 있고, 실제 인물에 맞게 동남 방언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였냐는 점에서 받은 항의였다고 한다. 실제 김완 첨사는 경상도 영천 출신이다. 이에 대해서는 향후 배우 박철민 씨가 다른 작품에서는 연습을 통해 동남 방언이나 강원도 방언의 캐릭터를 소화한 점을 보면 당시의 개그 캐릭터형 서남 방언 컨셉이 조금은 아쉬운 편.
주로 쓰는 말은 문어대가리(...), 그가 왜군을 일컫는 애칭(?)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휘명령의 언변이 다른 장수들과 달리 매우 화려(?)하면서 유쾌하다. 유쾌하고 코믹한 모습이 그려지는 캐릭터지만 권준 못지 않는 담력의 소유자로 칠천량 해전에서 생포된 뒤에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분풀이로 포로들을 죽이면서 조선수군 본진에 일본군 깃발이 나부끼는 것이 어떠냐 묻자 "아조~ 개떡같네요... 문어대가리놈아...!"라고 대꾸한 뒤에 와키자카에게 박치기를 한방 먹였다. 열이 받을 대로 받아 부들부들 거리는 와키자카의 표정은 덤.
1~4화에서는 은근히 박대를 받는데, 다른 누구도 아니고 송희립과 같이 붙어 다니는 것으로 그려진다. 심지어 선조가 보낸 선전관의 말에 따지고 들다가 송희립의 제지로 말을 맺지 못하는 장면도 있었을 정도인데, 중반 이후에 계속 나오지만 김완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할 때부터 사도 첨사였던 반면[45] 송희립은 계속 군관생활을 하다가 노량 해전 즈음에서야 만호로 진급하므로 송희립이 한참 아랫사람이다.
[image]
[image]
녹도 만호. 안승훈[47] 이 배역을 맡았다. 괄괄하고 성질 급한 무장으로 성격에 맞게 부하들을 미친 듯이 굴리며 좌수영의 화약, 화포 관리 및 포병 훈련을 담당한다. 이순신이 정읍 현감 시절 자신의 행보에 태클을 건 적도 있어서 이순신이 좌수사로 부임해 오자 6품의 현감 따위가 하루아침에 좌수사가 되냐며 불만을 표출하며 이순신의 행보에 지속적으로 항의한다. 혈기 넘치는 성격 때문인지 동료 장수들에게 막말을 내뱉을 때도 있어서 무의공 이순신에게 '붓대나 놀리던 사람'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했고, 문관 출신이라고 깔보는 발언을 하여 그 냉정한 권준이 버럭하게 만들었다(...)[48] 말끝마다 "~다 이 말이외다!"를 붙이는 말버릇이 있다.
하지만 똑같이 입 잘 터는 김완이랑은 죽이 잘 맞으며, 초반에는 성격 탓인지 원균의 지지자로 나왔지만 원균이 갈수록 막장 행보를 보이자 차츰 회의를 품더니 사천 해전 즈음부터 완벽히 이순신에게 돌아선다.[49]
>위험해! 모두 엎드려!!
하지만 이후 부산포 해전에서 급류에 휘말린 원균의 함선을 구하려다가 자신의 배로 날아든 포탄을 온몸으로 막고 전사했다. 관을 옮길 때는 김완이 관을 붙들고 "이렇게는 못 가네"하며 통곡한다. 아들의 시신을 운구하기 위해 찾아온 정운의 노부가 바다를 보며 통곡할 때 이순신의 독백이 인상깊다. 이는 실제 이순신이 정운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시 '제증참판정운문'의 일부이다.
>人生必有死, 死生必有命, 爲人一死, 固不足惜
>(인생이란 반드시 죽음이 있고, 죽고 삶에는 반드시 명이 있나니, 사람으로 한 번 죽는 것은 진실로 아까운 게 없는 것이다.)[50]
[image]
>이순신: 신 군수님.
>신호: 소관이 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장군께서 하셨을 테지요. 군왕의 밥상을 줄여서라도, 새로 증궐할 궁궐의 주춧돌을 뽑아서라도 군사들을 살리고자 하셨을 겝니다. 허면 그 다음은 어찌 되었겠습니까? 조선 수군에는 장군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이 전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사사로운 정리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부하를 버려야 할 때는 버리는 것도, 최고 지휘관께서 가셔야 할 길입니다.
>이순신: 신 군수님...
>신호: 장군께만 이 무거운 짐을 지우고 소관만 편한 길을 가는 듯하여... 민망하고, 난망하기 그지없습니다. 부디 강건하십시오...!
>장군을 상관으로 모신 지난 4년이 소관에게는 가장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배역은 정진각. 직책은 낙안 군수. 주로 군량미 관리를 맡는다.[51] 좌수영 최고의 덕장으로 부하들이 그를 아버지처럼 믿고 따른다. 무관인지 문관인지는 안 나오지만 북방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용맹히 싸워 전공을 세운 적도 있었다고 한다.[52] 86회에서 도성으로 보내는 진상품을 삼도 내에 퍼진 역병을 치료할 약재와 교환한 죄로 사직한다. 이는 본래 이순신의 의지였으나 뭇 제장들이 결사반대했다. 진상품을 약재로 마음대로 바꾸라 명령한 것이 이순신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도성의 분노가 또다시 이순신에게만 향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막판에 역병에 걸려버린 입부 이순신 또한 이 점을 강조하며 신호에게 진상품 전달을 부탁하지만, 신호는 중간에 진상품을 실은 전선의 뱃머리를 돌려버리고는 약재로 바꿔온다. 즉 자신이 대신 총대를 메고 희생한 것이다. 그야말로 덕장.
남원성에서 전사하는 인물이지만, 드라마에서는 ‘남원성이 함락되었다.’는 나레이션만 나왔고 신호의 최후를 묘사하지는 않았다.
드라마를 위해 개작한 소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남원성이 무너지고 성 안의 사람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이순신이 신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image]
> 장군께서도 이제 속이 후련허셔요!? 지들이 뭐라고 했어요! 원균 그 숭악한[53] 놈헌티 통제영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고 혔잖아요! 시간을 줘요? 원균 그놈을 믿고 기둘려요? 결국 이 꼴이 아니어요! 함대에 통제영에 그것도 모질러 불쌍한 넘들 목숨만 날렸지, 우들이 얻은 게 뭐여요!! 말씸 좀 해보셔요... 말씸 좀...!
배역은 김명국.[54] 좌수영 직속 군관으로 이순신의 전속부관. 우직한 인상으로 맨날 송군관을 찾는 상관 덕에 맨날 고생만 하며 출전할 때 힘차게 독전고를 울린다. 사도첨사 김완과 함께 지휘관 중에서 매우 찐한 서남 방언으로 연기를 하였다. 원균이 통제사가 되자 사임한 뒤 이영남과 함께 백의종군하는 이순신에게 가장 먼저 합류한다. 노량 해전 무렵에는 만호로 승진했다. 종영 이후의 특집에서 밝혀진 NG 모음에 의하면 독전고를 워낙 힘차게 치다보니 북이 나자빠지는 NG가 많이 났다고 한다.
[image]
>어영담: 제 몸 하나 건사치 못해 진중에 누를 끼치는 못난 부하를, 어찌 그리 애달파하십니까.
>이순신: 내 그대에게 짐 지운 바가 많아 단 한시도 편할 날이 없어 그리 된 것을... 이 죄를 다 어찌 씻는단 말입니까.
>어영담: 그런 이유 당치 않습니다, 장군...
>이순신: 어 현감님...
>어영담: 저 먼저 저세상에 가 물길이나 잘 봐두고 있겠습니다. 그곳은 전란이 없는 곳일 것이니, 후일 오셔서 소장과 함께 그저 한가로이 낚시나 하시며 옛날 얘기나 하고 지내십시다...
그의 사후 김완이 조방장 직위를 계승했다. 딸도 포작이었으나 후에는 의무관으로 일하게 된다.
[image]
- 이언량
어느 군 소속인지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가끔 무의공 이순신과 붙어서 나오는 장면으로 미루어 볼 때 방답군 소속으로 추정된다. 옥포 해전에서 원균이 비무장한 포로를 베려 하자, 이에 반대하다가 원균이 쏜 화살에 맞기도 했다.
[image]
일본에 끌려갔을 때 천주교로 개종하여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았는데, 이후 기독교도인 왜군 포로를 심문할 때 치며 자신 또한 신자라며 설득하기도 한다.
[image]
- 조수창
원균이 통제사가 되자마자 군졸 출신 군관들을 모두 군졸로 강등시키는 바람에 다시 병졸이 된다. 칠천량 해전 때 거북선을 지키기 위해 거북선 돛대의 사각지대로 침입한 왜병과 접전을 벌이며 분전했지만 배에 불이 붙는 광경을 보고 눈이 돌아가 주위에 나뒹굴던 거적데기를 집어들어 정신없이 불을 끄려 시도했고 이 빈틈을 목격한 왜군의 칼에 전사했다.[64]
[image]
- 어진
여담으로 이 역을 맡은 배우 김영임은 불멸의 이순신이 끝난 뒤 유방암으로 인해 투병하다 2007년 사망했다.
[image]
- 마영갑
- 정일수
- 돌쇠
- 넙출네
- 정 진무 → 정 군관
- 이 진무(사도진무) → 이 군관
- 평산
- 짝보
- 상남
이후 칠천량 해전에서 왜군의 야습을 받아 전투를 벌이던 도중 조총에 맞아 전사한다. 직후 상남이 총에 맞는 광경을 본 정대만이 급히 달려오다가 다리에 총을 맞아 쓰러졌지만 필사적으로 기어와 이미 숨이 끊어진 상남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장면이 나온다.
- 정대만
- 계학
- 전우송
- 조선수군 궁수
2.2. 경상우수영
이제부터 얼마나 많은 부하들이 장군을 버리게 될까요? 장군께서는 단 한 명의 부하도 버리신 일이 없는데 말입니다. 우 부사께서는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전멸시키고 돌아왔을 때, 받아준 사람이 누굽니까? 상관의 자존심을 꺾고라도 우수사 영감을 얻겠다 하신 분이 또 누굽니까? 장군과 함께라면 그 어떤 불가능에라도 도전하겠다던 그 초심을... 벌써 잊으신 겝니까? 조방장님이 불행히도 왜놈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해왔을 때, 눈물로 맞아준 사람이 누굽니까?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물러서선 안된다는 것을, 물러선다면 전란은 또다시 되풀이될 것이라는 것을! 그것이! 장군이 결코 싸움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라는 것을! 하여 어떠한 경우라도 그 누가 말리더라도! 심지어 우리 모두가 싸우지 않겠다고 해도! 장군께서는... 싸울 것입니다. 이것이... 장군과 우리의 차이점입니다.||
- 기효근
- 한백록
- 서한수
- 서노인
- 김응함
2.3. 전라우수영
>- 녹도 만호 정운에게 검을 돌려주며
- 황세득
2.4. 경상좌수영
- 정발: 부산진 첨사. 57회 임진왜란 발발 초반에 부산진 전투에서 등장한다. 관민들과 합심하여 왜군들과 맞서 싸웠지만 정발을 포함하여 모두 전사한다. 실제 역사속의 정발이 경상좌수영 소속이라 경상좌수영 문단을 따로 만들어 서술했으나, 드라마에서 경상좌수영의 모습이 등장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도 그럴게 실제 역사상으로도 경상좌수영은 다른 수영과 연합작전이고 뭐고 짜기도 전에 임진왜란 극초반에 바로 증발해 버리기 때문.[91]
2.5. 육군 무관들
- 정담
2.6. 조정 인물
>자존심도 없는 미련한 인사같으니라고. 내가 졌소. 이 나라 조선의 경영은 서애가 나보다 한 수 위요.
>(대감...)
>아무래도, 난 역사에 기록되어지는 쪽을 선택해야 할 것 같소. 여기 남겠소. 어가가 무사히 의주에 당도할 때까지 나는 평양성을 지키리다.
>(대감!)
>역사를 기록하는 자들, 그 후세들은 서애가 맡아주시오. 허나, 그들에게 날 충신으로 기록하지는 말라고 하시오.
>40년 간 국녹을 먹었으나 지나간 세월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세월이었어요.
>동서로 갈라진 지 20년. 아니라, 아니라 해도, 국익보다는 자당의 이해를 앞에 두고자 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던 듯 싶소이다.
>무엇보다... 이 나라 조선의 자존감을 내 손으로... 우리의 손으로 지키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거늘...
>명국에 기대고... 사대의 예를 다하는 것으로 이 나라 조선을 능히 지킬 수 있다 믿었던 죄...!
>그 죄를 결코... 씻을 수 없을 겝니다...
>(대감...)
> -
>명 사신 양호에게 류성룡이 무릎을 꿇고 진언하여 지원 요청 허락을 받아낸 후. 윤두수는 이때까지만 해도 류성룡의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나라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부산포 해전을 전후하여 이순신의 위상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경계, 그에게 완전히 적대적인 입장으로 돌아선다. 역도로 몰아붙이는 것은 물론 그가 체포되어 의금부로 압송되었을 때에는 직접 심문했는데, 사실만 말하기는 했지만 특정 사실만 강조하고 고압적인 말투[101] 를 쓰는 등 어그로를 팍팍 끄는 모습이 압권.[102] 칠천량 해전 후의 모습이 가관인데, 이순신을 추국하며 반쯤 죽여놓고 원균이 대패하자 류성룡에게 은근슬쩍 “'역도' 이순신에게 죄를 씻을 기회를 주자"는 발언을 했다. 직후 뚜껑이 열린 류성룡에게 멱살을 잡혔다. 류성룡과 이순신이랑 대립했다는 이유로 본 드라마에서 다소 폄훼되는 인물. 윤두수는 비록 이순신 탄핵 건으로 류성룡과 대립하기도 하였으나 이항복처럼 서인 중에서도 중도파였던데다가, 유성룡과도 나름대로 말이 통하는 사이였다. 실제로 유성룡 탄핵 사건 때에도 유성룡 본인이 윤두수를 명으로 보내기를 추천했고, 서애집에 의하면 윤두수의 부음을 듣자 남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사람은 오늘날 쉽게 얻을 수 없다. 지나간 임진년 무렵에 만약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담당하게 하였다면 우리들은 이미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요사이도 자못 공평한 의론을 주장했는데 갑자기 이 지경이 된 것도 운수이니 어찌하겠는가.'라고 안타까워했다. 본작에서는 아주 악독하고 교활한 노대신으로 나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저렇게 애도한 것이 조금 어색해진다.# 오히려 징비록의 묘사가 실제에 그나마 더 가까운 편이다.
야인시대에서 장택상 역을 맡은 임혁주가 연기. 대신들 중에서 류성룡과 이순신에게 우호적인 편이었다. 이순신이 한양으로 압송당해 국문당하고 있을 때 그 전설적인 명문인 신구차를 올려 그를 구명했다. 다른 대신들이 위험하다며 말렸지만 위의 명대사를 날리며 다른 대신들을 숙연하게 했다.
>(윤두수: 이순신은 역도야. 헌데 자네가 나서서 그를 영웅으로 만들겠다는 겐가?)
>이순신이 역심을 품었다면 국청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 당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윤두수: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대체?)
>이순신은 처음부터 영웅이었습니다. 허나! 이 나라 조정과 군왕이 그 같은 영웅을 담을 그릇이 못 되었던 겝니다! 그래서 질서를 유지하고자 영웅을 역도로 둔갑시킬 필요가 있었던 게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배역은 박병선.[103] 윤두수의 당론을 따르는 서인. 이순신을 싫어하진 않으나 그렇다고 그에게 마냥 호의적인 것도 아니어서 부산으로 출전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기도 했으며 이순신을 옹호하는 장인을 국왕이 해코지할까 염려하여 자중하라고 일러둔 적도 있다. 하지만 이순신이 의금부로 끌려와 고문을 당할 때 정탁이 가장 먼저 신구차를 올리고 친우인 이덕형까지 신구차에 동참하자 윤두수를 찾아가 자신도 신구차에 동참할 뜻을 밝힌다.
- 윤근수
- 윤길춘
- 황윤길
2.7. 왕실 인물
2.8. 그 외 인물
- 방연화: 최유정이 연기하였다. 이순신의 부인. 연화라는 이름은 창작 설정이다. 실제론 방씨 부인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다. 전형적인 조선 시대 현모양처의 모습을 보여준다.
- 이요신: 이순신의 둘째 형. 한범희[108] 가 연기. 학문에 뜻이 있었으나 아버지에게 글 배워서 뭐하겠냐는 호통을 듣고 현실을 직시하며 술이나 퍼마시는 한량이 된다.
- 송병택 : 가상인물. 윤기원 역. 아산 사또 아들내미로 이순신이 과거를 대리해 준 덕에 초시 장원 - 성균관 - 출사 테크를 타지만[109] 이순신이 부당한 세금 징수에 항의하여 자기 아버지인 사또에게 행패(?)를 부린 것도 있고 자신이 대리시험으로 출세한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연줄을 이용해 견제를 심하게 넣어 이순신에게 갖은 고생을 하게 만든 장본인. 또한 류성룡과 성균관에서 동문수학한 사이로 이순신을 마구 까대지만 류성룡은 그냥 흘려 넘긴다. 이순신의 무과 급제 후 조산보 만호 재임까지 14년이 타임워프되면서 퇴장했다.
- 이면: 이순신의 막내아들. 작중에서 유일하게 등장한 이순신의 자녀다.[110] 한산도 대첩과 명량 해전 패전에 대한 보복을 위해 아산에 쳐들어온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왜군들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다.
- 날발: 이한갈이 연기. 이순신의 호위무사 역할이다. 곤양 도공의 자식으로 왜군에 의해 부모를 잃었으며 이순신이 곤양에서 생활할 때 많이 챙겨 줬다.[112] 나이가 차자 녹둔도의 이순신을 찾아간 이후 이순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 정여립: 안내상이 연기. 조정에서 그를 역도로 몰아 체포하려 오자 고뇌하는 모습을 끝으로 나오지 않으며, '역도 정여립이 자진을 했단 말인가!'라는 선조의 호통(?)이 뒤따라 나온다.
- 임천수: 김규철[113] 이 연기. 가상 인물. 임란 당시 순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활약했지만, 배우인 김규철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인해 중도하차 당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게다가 그와 강하게 엮인 몇몇 인물들(천무직, 홍이 등)까지 한꺼번에 강판당하고 만다.[114] 임천수는 처음에는 아버지 묘와 가업까지 버리고 이순신을 따라가는 친구였지만 돈맛을 보고 "넌 과거 보고 임직하면 그만이지만 난 이 일 없으면 갈데 없다"며 점점 권력에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결국 허 도주와 공모해 함께 밀거래를 일삼는 등 타락한다. 그 후 허 도주가 잡히고 행수직에서 짤려 인생이 파탄나자 복수심을 품고 이순신의 발목을 여 러번 잡는다.[115] 임진왜란 때 악역으로 대활약(...). 조선과 왜국을 줏대없이 오가며 "한 몫 단단히 잡아보자"를 입에 달고 사는 비열한이 되어있다. 후에 달관한 듯 사극을 포함한 많은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는다. 그리고 2015년에는 최종보스가 되어 돌아왔다!
- 박미진(불멸의 이순신)/박초희: 김규리[116] 가 연기한 가상 인물. 1인 2역. 박미진과 박초희는 모녀 사이로, 박미진이 박초희의 어머니이다. 박초희의 경우 곤양 도공들의 손에 키워지면서 충무공과도 인연을 맺게 되고, 임진왜란 때도 활약한다는 설정으로 갈려고 했었다고 했으나, 아쉽게도 배우인 김규리의 스케줄 문제(영화 '분신사바' 홍보)로 인해 중도하차함으로써 실현되지 못했는데 역설적이게도 김규리와 방연화 역의 최유정은 자사 드라마 장희빈에서 숙빈 최씨 역 후보에 올랐으나 영화 촬영 등의 이유로 고사해 버렸다.
- 청향: 가상 인물. 전예서(전익령)가 연기했다. 석봉 한호의 제자로 조선 최고의 시기(詩妓)[117] 이며 대단한 배포를 가지고 있다. 류성룡을 따르면서 이순신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조정에 실망하여 희망을 버리고 낙향하여 서당 훈장이 되려는 류성룡에게 "그럼 영감께 배우는 자들이 배울 것은 희망을 버리는 법입니까"하고 일침을 가했다. 이후, 임란 당시 류성룡을 따르다가 평양에서 다시 한양으로 내려가 임천수를 죽이려고 의병에 가담했다가 포로로 잡혀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넘겨졌고,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와키자카의 수청을 들었다. 거북선에 대한 공격정보를 듣고 탈출하다 왜군의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으나 이영남에 구출된다. 이후 전라좌수영에서 부상병을 돌보는 일을 하며 이영남와 플래그가 서기도 하며, 명량 해전 당시 어진을 비롯한 주민들과 강강술래를 한 것을 끝으로 퇴장. 기생이지만 의기가 넘치는 여걸.
- 천무직: 이한위가 연기했다. 첫 등장은 얍쌉한 소매치기로 나왔지만 실은 정이 많고 의리를 중요시하는 성격. 임천수와 함께 상단 일꾼 시절부터 왜놈에게 붙을 때까지 쭉 함께 한다. 등장하는 내내 임천수의 막장행보에 불안&울화에 가슴을 치며 산다. 이에 맞게 임천수가 하차하자 홍이와 같이 중도하차했다(...)
- 방진 : 김동현이 연기. 방연화의 아버지이자 무인을 양성하는 교육자로 이일, 원균 등 여러 제자를 키워냈다. 상단 꼬봉 노릇을 하는 이순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제자로 특별 채용하며 나중에는 사위로 삼는다.
- 남궁두 : 조경환이 연기했다. 이순신의 스승으로, 방진의 추천을 받은 이순신이 곤양에 내려가 가르침을 받은 인물이다. 장평과 미진을 일본으로 잡아가던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부하들과 싸우다 전사한다. 이순신의 무예 스승일 뿐 아니라 사상적 스승이라 할 만한 인물로 무(武) 자를 파자하면 지과(止戈)가 된다며 진정한 무인이 될 것을 당부했으며, 이순신은 남궁두에게서 받은 검을 노량 해전 무렵에 이영남에게 물려줄 때까지 보관하고 있었다.[118] 가상 인물로, 16세기 후반 당시 남궁두(南宮斗)라는 인물이 있기는 했으나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 도사(道士)처럼 묘사되는데다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인에게 살해당하지 않고 광해군 대인 1620년까지 살았다.
- 소은우 : 손종범이 연기했다. 남궁두의 제자로 "서울 양반" 이순신과도 일찍이 안면을 텄다. 왜란이 터지지만 누가 가마를 지키냐며 곤양에 그대로 남아 왜놈들에게 억류되고, 사무라이가 된 장평을 설득해 일본군의 기밀을 빼돌리지만 와키자카에게 들켜서 죽는다.
- 이장평 : 가상 인물. 조재완 역. 곤양의 도공으로 청년 시절의 이순신과 만난 적이 있으며 그로부터 글자를 배우고 사람으로 대접을 받았다.[119]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납치 당해 일본에 끌려가 사무라이가 되었다.[120] 도자기 기술을 인정받아서 와키자카에게 신임을 얻고 임진왜란에도 참전해 조선 도공들을 납치하는 임무를 맡았다. 곤양에서 자신의 동네 형인 소은우를 만났을때 왜국으로 끌려간 이장평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일본 수군 휘하에서 명령에 따라 없애야 할 전라좌수사가 자신에게 어릴때 글을 가르쳐 준 그 이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121] 에는 정보를 빼돌리고 역정보를 흘리는 등 그를 도와준다. 결국 와키자카에게 들켜서 끌려갔고, 한산도 해전에도 끌려와 와키자카의 대장선에 실려 조롱을 당한다.[122] 그러나 와키자카의 수군은 이순신의 학익진 앞에 처참하게 패배하였고 이 광경을 지켜본 장평은 아주 즐겁게 와키자카를 비웃는다. 결국 분노를 이기지 못 한 와키자카가 장평을 베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죽기 직전에 와키자카에게 남긴 훈계가 인상적으로 표현되었다.[123] 이 배역을 맡아 연기했던 배우 조재완은 2015년에 징비록에서는 종의지 역으로 나온다.
- 장삼복: 가상 인물. 고향 옥포가 도도 다카도라 군에게 유린당할 때 해안가로 백련이[124] 와 함께 바닷가의 협선이 있는 곳까지 간신히 도망쳤으나 백련이가 배에 같이 타지 못하여 왜군에게 납치당한 아픔을 안고 전라좌수영으로 피난을 왔다. 이에 대한 한과 복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좌수사 이순신에게 전의를 표현하였고, 순천부사 권준에게 도도 군영을 정탐할 때 길잡이 역할을 하는 임무를 설명받는다. 하지만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백련이가 왜군 무장의 칼에 살해당하는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는데, 잠입한 사실이 들통나자 날발과 공태원을 포함한 나머지 정탐 요원들은 삼복만이라도 살아남기를 바라며 자신들이 희생하겠다고 했으나 삼복은 오히려 자신이 희생하겠다고 밝힌다. 결국 날발과 공태원 등이 탈출할 수 있도록 이목을 끄는 것으로 희생하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 횃불을 화약에 붙여 근처에 다가온 병사들과 자폭하는 것으로 퇴장.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매우 드문 날발도 그의 희생을 비통해하며 옥포 해전에 출항하기 직전 '장삼복, 자네의 원한을 풀어주겠다'고 독백하는 장면이 나오며, 이순신도 진혼제를 지내줄 것을 명한다.
- 장백수: 이순신이 북방 6진을 지켰던 시절에 거느렸던 병졸. 사냥꾼 출신으로 궁술에 능하여, 이순신 휘하에서 습사수(궁수) 훈련장이 되고, 아들을 낳자 이순신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청하는 등 각별한 사이였다. 그러나 집안 사정이 곤궁하여 임천수의 꼬임에 넘어가 여진족과 내통하여 화살을 건네주었다가 발각되어 이순신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장백수가 자신의 권한을 일부 빼앗아간다고 불만을 표했던 오형을 비롯해 병사들 모두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이순신 자신도 평생의 아픔으로 남을 것이라고 독백. 생전에 이순신에게 아들에게 지어줄 이름을 새겨 내어주었는데, 이순신은 유족에게 이 활을 보내며 장백수는 여진족에 맞서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고 전하게 했다. 이순신이 지어준 아들의 이름은 현(賢).
3. 일본
- 홍이(아까이)
- 신이치
4. 명나라
- 진린: 김하균[147] 이 연기했다. 첫 등장부터 이순신의 면전에 술을 뿌리고 대접이 마음에 안든다고 불평하는 등 행패를 부려 조선군의 반발을 산다. 왜교성 전투에서는 유정보다 큰 전공을 세우기 위해 무리하다가 고립되는 바람에 구원하러 간 황세득이 전사하는 등 조선군의 피해를 유발했음에도 거만하고 전투를 기피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 조선 수군에선 명군을 배제하고 우리끼리 싸우자는 의견이 거셌으나 이순신은 정치적인 파장까지 고려하여 진린에게 지속적으로 호의를 베풀고, 나중에 노량 해전 즈음에서는 몸소 출격하여 이순신과 목숨을 나누겠노라고 다짐하는 등 이순신을 점차 신뢰하게 된다. [148]
- 유정: 손호균이 연기했다. 왜군 공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순천 예교성 공격 시 수륙협공을 약속해 놓고 일본군의 뇌물에 매수되어 발을 뺀다. 또한 진린과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등자룡: 배역은 함석훈. 진린의 부관으로 명나라의 지위를 믿고 조선군 앞에서 오만방자한 행동을 일삼는다.
- 임세록: 배역은 최범호. 선조가 열심히 피난가면서 지원을 요청하자 진상조사 차 내려온 명나라의 사신. 이 당시 명나라는 일본군의 진군 속도가 너무 빨라서 조선과 일본의 협공을 의심하고 있었으므로 명나라의 원병을 요청하는 선조의 앞에서 무례한 행태를 보인다. 이에 류성룡이 강하게 항의하자, 류성룡에게 싸대기를 날린다.
5. 여진족
- 우을기내: 배역은 야인시대애서 신영균 역을 맡았던 윤용현. 여진족의 추장으로 일부러 공격을 늦춰 조선군에게 불안감을 심어주며, 이순신이 자리를 비운 것을 알고 공격을 지시해 녹둔도를 함락한다. 그러나 6진을 통째로 손에 넣기 위해 일부러 녹둔도를 점령하지 않았으며, 북병영이 남쪽으로 향한다는 것[149] 을 듣고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여겼지만 조선군의 기습을 받아 패하면서 포로로 붙잡히고 이순신에게 죽는다.
- 맛니응개: 배역은 선동혁. 우을기내의 부하로 우을기내에게 조선군을 서둘러 공격할 것을 주장했지만 불안감을 심어주기 위해 출정을 늦추는 것을 듣고 납득하며, 이순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녹둔도를 공격해 함락한다. 그러나 녹둔도를 털고 철수하던 중 뒤늦게 나타난 이순신의 지원군과 싸우다가 전사한다.
- 사송아: 배역은 강재. 맛니응개의 부하. 녹둔도 전투에서 오형을 죽이고 뒤늦게 나타난 이순신에게 부상을 입히며 임경번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공을 세운다. 북병영이 남쪽으로 향한다는 것을 듣고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여겼지만 조선군의 기습을 받아 전사한다.
선조: 명나라 경리 양호가 이순신에게 최고 품계를 주라네? 그럼 정 1품인데... 그런데 이 다음에도 공을 세우면 그 땐 어째?
유성룡: '''이순신은 보답을 바라고 싸우는 장수가 아닙니다.'''
선조: 그래? 그럼 뭐야. '''설마 이 나라를 자기의 나라로 여기고 싸우는 건가?'''
윤두수: 그게 아니고 ,이순신은 다만 '''지난날의 무군지죄를 씻기 위해''' 싸우고 있을 것이옵니다.
선조: 그래? 좋아, 그럼 내가 면사첩을 내려 그 죄를 용서토록 하지.[30] 하지만 우연히 일본에서 보낸 닌자들과 충돌하게 된 과정에서 내금위, 내시본부사들이나 이용하는 맹호은림세(猛虎隱林勢)를 사용하는 것을 간파한 날발에 의해 조정에서 파견한 자들이라는 것이 파악된다.[31] 병사 신상 명세부.[32] 병법에 이르기를 병사를 향한 너무 지나친 애정은 오히려 과감한 작전을 세우는 데 방해된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33] 창, 검을 다루는 보병.[34] 궁병.[35] 허준에서 선조를 연기한 배우다.[36] 현대 사회에서도 큰 과실을 범한 직원을 징계하는데는 그 직원의 직속 상관의 의견을 반영하는것이 대부분인데 이순신은 군 기강을 잡아야 한다는 조금의 강박이 있어 성급하게 직속상관인 이순신(입부)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나대용을 독단으로 처벌하였고 이에 이순신(입부)는 큰 반감을 가져 사직서를 냈으나 이순신은 지휘관으로서의 권위와 자존심을 내려놓고 직접 사과를 했다.[37] 극중 이르기를 함대보다도 더 먼저 얻어야 할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그만큼 이순신이 그를 크게 생각했다는 뜻이며 다른 장수들은 모두 이순신에게 스스로 갔는데 비해 이순신이 직접 얻으러 가는 장수는 처음이다.[38] 정운이 자신을 모욕했을 때 버럭하기도 했고, 위 대사처럼 선조가 이순신에게 한 짓거리에 분노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39] 태조 왕건에서 금강 왕자를 연기하였으며, 후일 대조영에서는 측천무후의 조카인 무승사를 분했다.[40] NG장면을 보면 김완의 애드립에 다른 출연진들이 빵 터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41] 그러나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극중 분위기가 무거워지다보니, 후반부에서는 개그 캐릭터로서의 면모는 잘 부각되지 않는 편. 97화에서 일본에 포로로 잡혔을 때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상대로 보인 철저한 포커 페이스를 제외하면 극 후반에서의 가벼운 인물 묘사는 거의 없다.[42] 난중일기에서도 좌수사 영감이 가장 먼저 정찰소홀로 처벌한 휘하 장수였다. 드라마에서는 좌수사가 옆 동네 시찰을 갔다가 병사들과 놀다 갔다는 얘기를 듣고 자기 근무지에 시찰을 오자 기생들을 준비했지만 이내 군포 횡령, 무기관리 소홀의 죄를 물어 곤장을 맞는다. 나중에도 부실 함선 방치로 인해 또 한 소리 듣는다.[43] 처음에는 위에 대사처럼 그 칼로 날 썰어버리라 일갈하는 김완에게 너희 조선놈들은 좀 고분고분하면 덧나냐고 이를 갈던 와키자카도 이렇게 변절한 김완의 겉모습을 보고 조선놈답지 않게 기개가 없고 한심하다면서 혀를 차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44] 이순신의 아들 이면이 있는 곳으로 극중 와키자카 야스하루 휘하의 왜군들이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 패전에 대한 보복을 하려고 아산을 공격하고 있었다.[45] 적어도 오늘날의 대령~준장에 맞먹는 높은 위치이다.[46] 이를 두고 좌수사 영감과 첨사양반이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중재 끝에 적당히 처벌하고 선소로 보내는 걸로 합의를 봤다.[47] 야인시대의 이화룡 역으로 유명하며, 정도전에서는 태종의 장인 민제를 연기했다.[48] 첫 출전 당시 권준이 신중론을 제기하자 '막상 싸움에 나가려니 겁이 나서 그러시오? 아니면 붓대나 놀리던 손으로 장검을 잡으려니 무거워서 그러시는 게요.'라 한 것.[49] 원균은 자기가 잘 안다며 근거로 자기가 원균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제시하기도 한다.[50] 여기까지밖에 인용되지 않아서 얼핏 들으면 '그대가 죽은 것도 결국 운명이니 슬퍼할 필요가 없다'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는데, 원문에서 이 인용문의 바로 다음 문장에 '그러나 그것이 그대의 일이라면 마음이 아프다'라는 구절이 이어진다.[51] 그래서인지 회계 담당인 입부 이순신과 종종 같이 등장하기도 한다.[52] 이순신 자신의 대사로 밝혀진 사실인데, 그가 신호에게 이런 과거를 꺼낸 이유는 일본이 언제 침략해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아버지 같은 지방관보다는 훌륭한 장수가 필요하니 과거의 용맹스런 모습을 다시금 보여달라는 것.[53] '흉악한'의 전라도 사투리.[54] 이 드라마를 촬영할 즘에 아들이 백혈병을 앓고 있어 이후 종영 기념 특집 프로그램에서도 자신의 아들과 같은 병으로 투병 중인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후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아들은 안타깝게도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55] 대조영에서는 연개소문을 연기했다.[56] 고기나 생선, 소금 따위를 채취하는 사람들. 쉽게 말해 어부.[57] 어영담은 현감으로 정6품에 불과하지만 옛 부하인 김완만 해도 종3품 첨사다.[58] 현재의 대한민국 해군 편제로 보자면 각종 특작부대를 지휘하는 면에서 제5성분전단장으로 보면 대략 어울린다. 당연히 UDT/SEAL 전단장은 날발[59] 아내는 공태원이 첩보대 소속이라는 점을 모르는데, '전쟁통에 아무 말도 없이 며칠씩 싸돌아다닌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60] 위 공태원처럼 현재의 대한민국 해군 편제로 옮길 때 제8전비전단장이나 수리창장으로 보면 대략 어울린다.[61] 다만 실제 역사에 비추어 보면 이런 장면은 나올 수 없었다. 실제로는 아무리 천민이라도 공을 세우면 그만큼 대접하는 것이 조선 사회였기 때문. 가령 천민으로서 관직에 오른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만한 장영실을 호군으로 임명하는 논의를 하는 자리에서도 '태종 때부터 천민으로서 호군 이상의 관직에 제수된 경우 많습니다'라는 말이 나왔고, 이 외에도 실록에서 免賤이라고 검색하면 관련 기사가 수백 건 나온다. 즉 조정에 보고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철릭부터 입힌 것이 문제라면 모를까 일단 허락만 떨어진다면 건조장에 임명을 하든 어디 만호로 임명을 하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었고, 입부 이순신의 대사도 '지금 우리보고 저 자의 지시를 따르라는 겁니까'가 아니라 '하온데 영감, 조정에 상차는...?'이었어야 한다. 이후 극 후기에 수군만의 과거를 보고 병졸들을 군관으로 임명하는 부분도 이와 마찬가지.[62] 나대용이 조수창 휘하로 편입되기 전 그의 재능을 보여주는 일화로 조수창이 작전 회의 자리에서 평저선(배 밑바닥이 평평한 배)보다 첨저선(배 밑바닥이 뾰족한 배)이 훨씬 뛰어난 배라며 앞으로는 전함을 모두 첨저선으로 건조하자고 주장했는데, 나대용이 나서서는 평저선이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 것이 있다.[63] 나대용과 별도로 이순신과 함께 태종 때 거북선이라는 함선이 있었다는 기록을 찾아냈고, 건조 자체에 반대했다기보다 나대용의 설계대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것.[64] 나대용이 원균 휘하를 떠나면서 수창에게 입고 있는 군복이 어떻든 당신은 최고의 지휘장이며 거북선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는데, 결국 거북선과 운명을 함께 한다.[65] 마영갑, 정일수, 서한수.[66] 그래도 추측해 보면 가장 유력한 설정은 아들이 왜구에게 살해당했다거나 수영의 군사로 있다가 전사했다거나 하는 것. 거북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언급되는데, 정대만의 언급으로 넙출네의 아들의 기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가운데 나대용이 거북선 발명에 골몰하느라 그 생각만 하자 보다 못한 언복이 '나으리(나대용의 아버지)께서 가만 계시지 않을 것' 이라며 막말(...)을 하기에 이른다. 이에 넙출네는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함함하다고 하는데 못 하는 말이 없다' 며 혼을 내는데, 정대만의 언급과 이 장면으로 미루어 보면 아들을 잃었고 그 뒤 스스로 좌수영에 찾아온 것으로 볼 때 그 아들은 일본이나 수군. 최소 바다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여담으로 고슴도치라는 말은 거북선이 발명되는 데 결정적인 한 마디가 된다.[67] 아래에 나오는 가공인물인 정대만이 취사병일 때에만 등장하고 화포장으로 보직이 변경된 이후로는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대만과 짝보, 상남 등을 소개하기 위한 기능적인 캐릭터였다고 볼 수도 있다.[68] 중사~상사 급의 부사관, 드라마를 유심히 살펴보면 장수가 아님에도 철릭을 입고 병졸을 지휘하는 군인들을 볼수가 있는데 이들을 작중에선 진무라 부른다. 수군만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이영남과 송희립의 대사를 보면 이들은 군영의 아전급이라 한다.[69] 이전 문서엔 군관으로 기재되어 있었지만 드라마의 작중 대사를 보면 수군만의 과거가 실시된다는 벽보가 붙자 사도진무, 병졸인 정대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지원을 고려해보는 사실을 알수 있다. 거기다 상관인 이언량에게 무과에 급제하려면 격구와 학문연마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듣는다.[70] 사천 해전 이후 이순신이 가선대부로 임명되어 원균보다 지위가 높아진 뒤 정 진무 등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김완의 평소 말투를 아주 똑같이 흉내냈다.[71] 1위는 경상 우수영 소속의 서노인.[72] 그 선상 훈련이라는 것이 바닷물이 무서워서 못 일어난다고 하니 아예 배 밖으로 던져 버리는(...) 것으로, 휘하 장수들마저도 이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다. 이후 선상 적응 훈련이랍시고 배 위에서 밥을 먹어야 했는데, 다시 배멀미를 해서 "또 다시 바닷물에 던져야 정신을 차리겠느냐?"라는 불호령을 듣는다. 이에 간신히 먹으나 다시 배멀미 크리. 이를 본 좌수사는 옆에 있는 정대만에게 "멀미를 멈출 때까지 계속 먹여!!!!!"라고 연타로 날린다. [73] 이후 활쏘기 대회에서 이순신이 짝보를 칭찬하자 같이 거들었는데, 이어서 이순신이 그럼 상남이는 이제 멀미도 안 하니 전쟁터에서 무얼하겠느냐 하니, 왜놈들 가슴팍도 쏘고 그리고 왜놈들 사내 구실을 못하게 만들겠다고 이야기해 이순신과 다른 좌수영 장병들을 웃게 만들었다.[74] 당시까지만 해도 원균 빠였던 정운이, 이순신에게 반감이 있었던 나머지 훈련을 필요 이상으로 혹독하게 했기에 벌어진 사건이었다.[75] 이 배역을 맡은 정은표의 실제 고향이 곡성이다.[76] 대본에서는 일본군이 아내의 젖가슴을 잘라서 아들이 굶어죽었다고 나온다. 노량해전 직전 이순신이 선전관에게 항의하면서 직접 언급한다.[77] 참고자료(5:10부터 확인가능)[78] 이는 역사와는 다른 설정으로 실제 우치적은 이순신을 매우 잘 따랐으며, 무의공 이순신과 더불어 통제영의 양대 명궁이었다.[79] 김명민에 앞서 이순신 역으로 낙점될 뻔했던 송일국이 '불멸의 이순신' 때문에 고사한 MBC 왕꽃 선녀님 남자 주인공이었던 김성민과 고교 동창이다.[80] 당시 선조는 부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이순신이 선뜻 받들려 하지 않자 그를 포박해 오라고 윤두수를 파견했는데, 윤두수는 이억기에게 이순신의 지휘권을 빼앗아 부산을 공격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억기까지 이순신에게 동조하자 원균을 꼬드겨 이순신 함대를 빼앗도록 했다. 이영남은 이에 반발하여 원균을 감금했던 것.[81] 대조영에서 당나라 장수 소정방, 근초고왕에서 해녕을 연기했다.[82] 그런데 실제로도 지휘관감은 아니었던 것이, 난중일기에 따르면 출정을 한 상황인데 함선에 기생을 숨겨두고는 들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고 한다.[83] 가덕도에서 500명이 몰살당하는 와중 정일수와 단 둘이서 살아남았다. 이후 정일수는 칠천량에서 전사하지만 서한수는 끝까지 살아남아 이순신한테 합류한다.[84] 고니시가 화친하자는 의미로 포로들을 송환했다. 이순신은 쌩깠지만.[85] 프롤로그 부분인 4회에서 전사하는 장면이 나왔으나 마지막회에서는 생략되었다.[86] 이 장면 역시 4회에서는 나왔으나 마지막회에서는 생략된다.[87] 무인시대에서 기회주의적 소인배 이광정을 맡았다. 명성황후에서는 고종 황제의 충직한 심복인 이 내관 역을 맡았다.[88] 태조왕건에서 박수경을 맡았고 대조영에서는 마파를 맡았다.[89] 실사 북두의 권 영화의 레이 역(...)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도전에서는 변안열을 연기했다.[90] 실제로 김억추는 명량 해전 이후로 밀양 부사로 전근가 버리고 후임 전라우수사에는 안위가 임명된다.[91] 원균의 첫 부임지였으며 임천수와 이순신과 엮여 극 초반에는 여러 번 등장했다. 좌수사도 나왔지만 이름은 없는 단역.[92] 대조영에서는 비열한 신라 장수 김찬 역을 맡았다.[93] 이 작품에 나온 원균처럼 이런 어리석은 행동이 다소 미화되는 연출이 있었는데... 망연자실해있는 이운룡에게 다가와 적은 병력과 낮은 훈련도로 인한 모랄빵을 방지하기 위해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겠다고 정한 것이며, 무조건 승리 아니면 죽을 각오로 싸워야만 희망이 있을거라는 조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94] 이때 거절하는 것이 단지 원균을 조롱하려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칠천량 직전 육군은 가덕도까지 진군하는 묘기가(...)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다.[95] 명성황후에서는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일본 낭인인 사사키 역을 맡았다.[96] 그런데 다시보는 불멸의 이순신에선 어찌된 영문인지 드라마에선 등장한 적 없는 경상좌수사 박홍으로 소개되어 나온다.[97] 성문을 열어 경상 우군을 성으로 들여보내면 왜군도 뒤따라 성으로 들어와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성문을 열지 못했다.[98] 참고로 본편에선 이름자막이 기재 되지 않으나, 다시보는 불멸의 이순신에선 이름자막이 기재된다.[99] 한 병사가 "나으리, 2차 방어선도 무너졌습니다. 퇴각을 하는 것이..."라고 하자 "퇴각은 없다. 적 한 명을 죽이고 죽을지언정 어찌 장수가 일보 물러나 살기를 도모한단 말이냐"라고 말했다.[100] SBS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이영준 신부 역을 맡았다.[101] 토설을 해! 토설을![102] 임관 초기에 상관들과 마찰을 빚었던 일과 녹둔도 이후 백의종군을 했던 점 등을 거론하며 한 말이, '파직과 백의종군을 밥 먹듯이 했군... ㅉㅉ'.[103] 2015년 3월 31일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향년 48세로 사망하였다.[104] 선조를 맡은 조민기와 함께 5화 이후 교체.[105] 혹은 '전하께서 어떤 모습이시든 나는 충직하게 따르기만 하면 될 뿐'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더불어 이전까지 상선이었던 자는 선조가 직접 조사를 명한 뒤 부당하게 재물을 축적했다는 죄를 물어 축출해 버리는데, 선조가 이순신을 경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전임 상선과 그닥 다르지 않게 보이게 된다.[106] 명성황후에서 고종 황제의 아역, 대왕 세종에서는 양녕대군의 아역으로 출연했다. 이 당시는 예명인 이준을 썼다가 뒤에 본명으로 돌아왔다.[107] 명성황후에서 안동 김씨가의 중진인 김병국, 근초고왕에서 고구려 대장군 고치수, 대왕의 꿈에서는 백제 무왕 역을 맡았다.[108] 명성황후에서는 흥선군의 장남 흥친왕 이재면, 대조영에서는 당 고종 역을 맡았다.[109] 처음에 이순신의 글솜씨를 알아보고 대리시험을 제안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한다. 이에 앙심을 품고 이순신이 역도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흘려 급제를 취소시킨 뒤 술에 빠져사는 이순신의 형 이요신을 적당히 꼬투리잡아 감옥에 쳐넣고 형을 살려야하지 않겠나면서 대리시험을 강요, 결국 압력을 이기지 못한 이순신이 대신 시험을 쳐 준다.[110] 이순신의 장남인 이회도 아역으로 딱 한번 등장했지만 대사도 별로 없었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등장한 자녀는 이면뿐이다.[111] 훗날 대조영에서 연남건을 연기한다.[112] 아버지는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형이 밀무역을 할 때 죽었으며 어머니는 와키자카가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 곤양을 털 때 죽는다.[113] 처음에 고니시 유키나가 역을 제의받았다가 악역 캐릭터를 계속 맡기 싫어서 거절했다. 고니시 역은 정승호가 캐스팅.[114] 초기 설정으로는 임천수는 거북선 탈취를 꾀하다가 실패하고 이순신의 용서를 받고는 감화되어 그의 여불위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었는데, 배우 개인에게 부상은 불행이지만, 이 캐릭터가 계속 남아서 설정대로 갔으면 후반에도 역사왜곡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란 점에서 드라마 완성도에 있어서는 차라리 다행인 점이다.[115]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납치되어 이순신과 곤양을 팔아넘기고, 나중에는 여진과 밀거래하다 겨우 탈출하더니 최종적으로 임해군과 순화군을 팔아넘기는데 일조한다.[116] 당초 김보경이 캐스팅되었으나 교체되었다.[117] 시를 짓는 기녀.[118] 이 검에 止戈가 새겨져 있었으며, 이영남이 와키자카와 결투를 벌이던 중에 부러지고 만다.[119] 양반들이 도자기는 애지중지하면서 왜 그 도자기를 만드는 사기장은 사람 취급도 안 하느냐는 대사가 있으며, 일본으로 국적을 바꾼 것도 이런 불만 때문이었다고 스스로 언급한다.[120] 이때 '고헤이'라는 이름을 얻는데, 이전 버전에서는 이를 가리켜 창씨개명이라 했지만 국적을 바꿨으면 그 나라식 이름을 얻는 게 당연한 일이다. 배설이나 할보, 석호필 등 조선인이 아니면서도 조선식 이름을 짓고 조선 독립 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좋은 예. 더불어 平 자가 へい로 읽히지만, 한국어식으로 '장'이라는 음을 가진 한자 중에 일본어식으로 'こ' 나 'こう', 'ご', 'ごう' 등으로 읽히는 것은 없다. 실제로 임진왜란으로 일본도 꽤나 인명피해가 심각했기에 고향으로 돌려보낸 조선인외에도 왜에 남은 조선인의 경우도 꽤 많았다.[121] 처음에 전라좌수사의 정체를 알아오라는 정탐 임무를 받았을 때도 그 이름이 이순신이라는 것을 듣고 자신이 아는 그 이순신이 아닐 것이라고 애써 부정한 장면이 묘사되었다.[122] 이 당시 와키자카는 일부러 한산도를 향해 단독으로 돌격한다는 거짓정보를 장평에게 흘렸고, 이 떡밥을 문 장평이 그대로 전라 좌수영에 소식을 알리자마자 붙잡아 가두었다. 그런 다음 실제로는 병력을 셋으로 나누어 진격하여 한산도를 애워싸면서 일자진을 치고 기다리는 이순신의 본대를 포위 섬멸하려고 했던 것. 때문에 와키자카는 이순신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어 한산도 먼 바다에 삼도 수군을 집결시켜 학익진을 펼쳐 공격하도록 작전을 세웠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고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면서 이대로 이순신을 무찌르고 장평을 처형한 다음 그 묘비에 이순신을 무찌른 조선 최고의 명장이라 새겨주겠다고 장평을 조롱하였다.[123] "무릎꿇고 빌어라. 이순신 장군, 아니, 네놈들이 짓밟은 조선 백성들 앞에서 무릎꿇고 빌어라! 그것이 네놈들이 사람으로 죽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라!" 다만 이 장면은 비록 통쾌하고 인상적이긴 했지만 한참 전투 중에 일개 함장도 아니고 총사령관씩이나 되는 사람이 포로 한 명과 씨음을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124] 장삼복과 백련이의 관계는 부부나 약혼자 내지 연인이다. 스스로 희생하겠다고 말하며 '제 계집도 지키지 못하는 게' 라고 한 것에서 확인 가능.[125] 한산도 해전 당시 일본 해군 총사령관은 구키 요시타카였는데, 자신이 사령관이 아닌 것에 불만을 품은 와키자카는 군사들을 훈련시키겠다고 보고해 놓고서는 이순신의 목을 따러 갔다. 물론 결과는 참패.[126] 센노 리큐의 할복, 고헤이몬의 암살 시도, 이순신, 조선 수군에게 패배하는 군사들[127] 쓰러지면서 모든 것을 달관한 듯 허망한 목소리로 "이렇게 끝인가, 오사카의 영광이... 이 모든 게 꿈 속의 꿈이었던가." 하는 유언을 남긴다. 실제로 죽기 전에 남겼던 사세구를 적절히 인용한 셈.[128] 야인시대에서 김좌진, 대조영에서 조문홰, 광개토태왕에서 고구려 국상 개연수, 대왕의 꿈에서 연개소문 역을 맡았다.[129] 이를 가또가 상인 출신 어쩌구 하며 마구 까는 모습도 나온다.[130] 대조영에서 검모잠, 정도전에서 공민왕 역을 맡았다.[131] 거북선을 파괴하려다 실패해서 죽은 부하들에게 직접 염불을 하며 명복을 빌어주고, 히데요시가 한산도 해전의 패전의 책임으로 야스하루의 부하 장수들에게 할복을 명하자 '부하들은 죄가 없다. 차라리 나에게 할복을 명해달라'라며 빌기도 한다. 물론 히데요시는 넌 할복할 권리도 없다며 무시한다.[132] 이 말에 히데요시는 '넌 자객이 될 자격도 없는 놈이야...!!' 라면서 다른 이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까고 뺨을 치는 식으로 모욕을 주었다.[133] 도요토미가 세상을 떠나고 일본군 지휘관들 모두가 조선에서 철수할 것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심지어 가토 기요마사조차도 '태합이란 놈은 죽어 나자빠졌으니 이제 우리가 조선 놈들이 보는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일만 남았다' 라는 막말을 내뱉는 상황이었다) 군사들을 혹독하게 훈련하고 자기 자신도 함께 구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134] 작중에서 와키자카가 포로로 잡힌 김완에게 이순신의 가솔을 도륙할 것임을 알려주며 향도가 되라고 지시하는데, 이를 김완이 탈출하는 장면과 엮어 전투가 아닌 다른 방법을 쓰기 싫었던 와키자카가 일부러 김완에게 정보를 누설하여 탈출을 방조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부 시청자들의 추측일 뿐이다.[135] 날발의 아비는 야스하루의 형에게 어미는 야스하루 일당들에게 죽었다.[136] 참고로 부산진 전투와 제1차 진주성 전투는 이순신과도 전혀 무관하다. 그런 전투에서 와키자카가 출전했다고 묘사하는 건 더더욱 이상하다.[137] 태조 왕건에선 신라의 마지막 충신 김율 역을 맡았고, 무인시대에선 2회만에 목이 잘린 환관 왕광취 역을 맡았다.[138] 비슷한 시기 타 방송국에서 방영하던 드라마 주몽에서 잠시 단역으로 투잡을 뛰었다.[139] 일본 조정의 최고기관인 태정관의 4등관 중 2등관에 속하는 직책, 오늘날의 차관급 고위직책이라 보면 된다.[140]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일본의 사실상의 진주인공으로 봐도 그만이다.[141] 수군이 계속하여 패전하는 데 격분한 도요토미가 도도 다카도라에게 할복을 명하는데, 이에 도도는 자기가 할복해야 한다면 조선에 파견한 장수들 전원이 배를 갈라야 한다며 거세게 반발한다. 이에 더욱 분개한 도요토미가 직접 검을 빼들고 도도를 베려 하는데, 그 손을 직접 잡으며 뜯어말린다. 여기까지는 충신으로써 주군의 잘못된 행동을 몸으로 막아내는듯한 모습이지만 히데요시가 난동을 멈추지 않자 "직접 칼을 거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아랫것들을 불러 그 칼을 빼앗으라 할까요?"라고 협박한다. 놀란 히데요시가 네 놈들이 감히 나에게 반기를 드냐고 호통치자 "언제 자신에게 칼을 휘두를 지 모르는 자에게 충성을 바칠 사람은 없다"며 카운터를 먹이고 쇼타이를 뺀 모든 신하들을 데리고 퇴장한다. 사실상 히데요시의 정치 생명은 여기서 끝이 났으며, 가뜩이나 몸도 안좋은데 정신적 충격까지 받은 히데요시는 그날 밤 사망한다.[142] 비하인드에 따르면 징비록 방영 당시 배역을 위해 삭발을 했다. 일본 장군들의 헤이하치컷을 구현하기 위해 배우의 머리에 작업을 하는데 삭발을 해서 그런지 훨씬 자연스럽다.[143] 명량해전 직전 술자리 씬까지 찍은 것으로 봐서 도도와 비슷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구키 역을 맡은 배우 서영진의 건강 문제로 하차. 서영진은 불멸의이순신 종영 직후 별세했다.[144] 정욱은 2006년 자신의 아들와 함께 9천여 명 투자자 상대로 1000억 이상 사기를 쳐서 걸렸으며 정욱 본인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자신의 아들은 징역 6년을 받으며 이 일로 인해 10년째 출연금지 연예인 명단에 있다. 정욱와 같이 경제범죄로 출연금지 받은 연예인은 서세원과 나한일이 있다. 집유받은 연예인들 중에서 정욱이 형량이 제일 높다.[145] 할복 직전 '부하의 방자함을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라고 꾸짖는 도요토미에게 '저는 공의 신하가 아니라 그저 불제자일 따름입니다' 라고 반박하는데, 이는 도요토미의 신하가 되며 스스로를 '불제자이기 이전에 전하의 가신인 것을요' 라고 정의하는 사이쇼와 좋은 대비를 이룬다.[146] 후추를 줍는 기생들의 뺨을 친 뒤 유즈야의 술잔에 담긴 술을 마시고 맨 손으로 상에 놓인 고기를 먹으며 개에게 하듯이 후추를 던지셨으니 자신도 개의 예법으로 답례를 했다고 고한다.[147] 사극에서 조연을 주로 맡는 배우다. 태조 왕건에서 왕건의 책사 태평, 명성황후에서 일본 외교관 사이온지 긴모치, 대조영에서 매국노 부기원 역을 맡았으며 이밖에도 근초고왕에서 신라 실성왕, 광개토태왕에서 탐관오리 가렴, 대왕의 꿈에서 신라 진평왕, 징비록에서 양호 역을 맡았다. 영화 연평해전에서는 참수리 357호의 갑판장 역을 맡았다. [148] 드라마에서와 실제 역사에서 모습이 꽤나 다른데 실제로는 이순신 장군을 "노사" 라 칭하며 웃어른으로 공경하며 모셨고 만력제에게 전란이 끝나면 명나라 조정에서 중히 써야할 인물이라 천거했을 정도,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하자 대성통곡을 하며 슬픔에 몇번이나 졸도했다고 한다.[149] 이순신이 제안하고 이일이 받아들인 위장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