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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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어?”'''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이 연출한 역사 드라마 영화.'''호헌 철폐 독재 타도!'''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둘러싸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군상극 영화. 당시 사건을 은폐하려던 상부 지시를 무시하고 법대로 부검을 강행한 최환 부장검사, 영등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전직 기자이자 민주화운동가인 이부영이 옆방에 수감된 고문 경찰관들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뒤 친한 교도관을 통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전달하여 폭로하게 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2. 마케팅
2.1. 예고편
2.2. 포스터
3. 시놉시스
4. 줄거리
시곗바늘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시곗바늘 소리가 멈추자 Badenweiler Marsch가 울리며 대한뉴스(=땡전뉴스)가 시작된다. 전두환 대통령이 신년을 맞아 박처원 대공수사처장 등등 치안본부의 인물들을 치하하는 장면이 나오고, 운동권들을 간첩과 연계되었다고 말하면서 "온 국민이 북한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 나오고 장면이 전환된다.
1987년 1월 14일, 임진각 망향단에서 박처원 대공수사처장(김윤석)이 가족사진을 놓고 그 앞에 훈장을 놓고 제사를 치른다. 그는 1950년 평안남도 용강군[4] 에서 월남한 실향민이기 때문에 임진각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5] 어투에도 평안도 사투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6] 제사가 마무리되는 즈음 박처원의 부하 유정방에게 전화가 온다.
같은 날 오후 12시 30분, 구급차 1대가 남영역을 스치듯이 지나가고, 빠른 속도로 골목길을 달린다. 구급차 안에는 중앙대학교병원 의사 오연상과 간호사 1명, 경찰 2명이 창문을 커튼으로 가리고 급하게 이동 중이었다. 경찰 1명이 무전기로 정문 개방이라 외치고 오연상이 호기심으로 커튼을 걷으려고 하자, 다른 1명이 험하게 제지한다. 급하게 달리는 구급차의 목적지는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 대공분실 안에서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여진구)이 쓰러져 있었고 긴박하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중이었다. 고문을 당하던 박종철이 사망한 상황이었으며, 급히 오연상 교수가 달려와서 이미 사망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걸 들은 경찰은 소생시켜달라는 요구를 해서 가슴에 묻은 물기를 닦아 내고 강심제를 주사한다.
망향단에서 제사가 마무리될 즈음, 박처원에게 "남영동 대공분실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곧바로 제사를 마치고 박처원은 남영동 대공분실로 이동하고, 오연상 교수는 심폐소생술을 하며 살려보려 했으나, 이미 소생은 불가능했다. 박종철의 시신은 옮겨지고 마침 박처원이 상황을 파악하러 도착한다. 오연상 교수와 간호사는 급히 건물을 나와서 병원으로 복귀한다.
대공분실에서는 "의사가 목격자가 되었다"며 질책하지만, 박처원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점심을 먹으라며 경찰들을 보낸다. 박종철의 시신은 시신을 화장하라는 취지로[7] 명령한 후, 으리으리한 요정에서 안기부의 장 부장(문성근)과 양주(로얄 살루트 21년산)를 나눠 마시며 "재야인사 김정남(설경구)을 미끼로 삼아 김영삼, 김대중 등의 거물 정치인들을 단칼에 격멸하겠다"고 선언한다.[8]
같은 시각, 화염병을 제조하다 체포된 한 대학생을 갈구며 박처원과 똑같은 양주를[9] 힙 플라스크에 담아 짜장면과 함께 먹방을 찍으려던 최환 검사(하정우)에게, 공안경찰들이 찾아오더니 "이런 거 드시지 마시고 저희랑 같이 가시죠.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라며 아부했고, 환은 뭔가를 기대했던 듯 "어디 갈 거냐"고 반색한다. 그러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서류 한 장을 내밀고 도장 하나만 찍어달라고 한다. 이에 그는 "웬일로 공짜술을 얻어먹나 했다"며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서류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서류는 치안본부에서 작성한 대학생 박종철 군의 사망경위서와 화장동의서.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죽은 지 8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부검은 고사하고 장례도 치르지 않고 화장부터 하겠다는 것. 공안경찰들은 부산에 사는 아버지한테서 화장동의서를 받았다고 했지만, 세상 천지에 어떤 부모가 멀쩡하게 살아 있던 서울대생 아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도 안 하고 죽었다는 말에 덜컥 화장동의를 해주겠는가.[10] 당연히 환은 "구라도 적당히 치라"며 믿지 않았다. 이에 그들은 대공업무이니 따지지 말고 도장이나 찍으라며 고깝게 말했지만 이에 더더욱 분노한 그는 경찰들을 밖으로 쫓아냈고 다른 경찰이 "왜 이러세요, 영감님![11] 저희 한 번만 살려 주세요!" 하는 식으로 애걸복걸한다.
도장을 못 찍겠다고 하자 온갖 라인을 통해 압박을 넣는 공안당국의 태도에 진노한 최환 검사는, 전화기를 깨부수고[12] 시신을 화장하는 대신 '''시신보존명령서를 발부'''해 버린 다음,[13] 사방에서 "이 말 안 통하는 꼴통 새끼 잡아들이라"고 난리가 난 가운데 목욕탕으로 잠적한다. 그리고 아랫기수이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이홍규 검사[14] 를 불러내어 '쥐약 좀 놔야겠다(언론에 정보를 흘리라)'고 부탁한다.[15]
다음 날 새벽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던 박처원은 최 검사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보고를 받고 서울지검장에게 연락하여 최환을 찾으라고 한다. 해가 밝은 후 지검장이 서울지방검찰청에 출근하고, 최환을 수사관들을 풀어서 잡으라고 한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최환 검사는 지검장실에 몰래 숨어들어 하룻밤을 보냈고, 출근한 지검장은 사색이 되어 최환 검사를 다그친다.
한편, 이홍규 검사는 최환 검사의 부탁대로 중앙일보의 신성호 기자(이신성)를 만나 "경찰들 큰일났다. 서울대생이라며?" 라며 은근슬쩍 정보를 흘렸다. 신 기자는 사실 아는 게 없었지만 기사의 촉으로 금세 무언가 엄청난 일이란걸 눈치채고는 "그러게 말입니다, 참…"이라며 맞장구를 치며 정보를 캐냈고 곧바로 밖으로 나가서 중앙일보에 전화를 걸어 기사를 내는데 성공한다.[17]지검장: 사람 봐 가면서 객기 좀 부리세요. 이때까지 박 처장한테 대들어가지고 살아난 놈을 못 봤어, 내가! 응?
최환: 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때요, 그 때 그 자식들이 하자는 대로 기소유예 했다가 우리만 똥을 뒤집어썼습니다. 이번 일은 법대로 하시죠.
지검장: 이거 좀 보세요. 길거리 다니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사돈에 8촌까지 다 뒤져봐. 월북자 한 사람쯤은 다 나오게 돼 있어요. 이 남영동 무서운 줄을 몰라.
최환: 이게요, 정황상 고문치사가 확실해요.
(중략)
지검장: 아, 이 꼴통 XX 진짜... 아, 몰라 난. 쯧쯧쯧.
최환: 뭐, 그거 좋겠네. 선배님께선 그냥 "꼴통(최환 검사 본인)이 땡깡 부린다"고 그렇게 혀만 끌끌 차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가 다.[16]
한편, 부산에 살고 있던 박종철 군의 모친 정차순(김혜정)과 누나 박은숙(정혜진)은 경찰의 연락을 받고 급히 서울 한양대학병원으로 왔다. "우리 아들이 왜 병원에 와 있냐"는 정차순의 질문에, 경찰들은 "조금 다쳤다"고 얼버무리면서 모녀를 영안실로 데려갔다. 정차순은 먼저 와 있던 남편(박종철 군 부친) 박정기(김종수)와 큰아들 박종부(조상웅)이 넋이 나가 주저앉아 있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한다. 정차순은 남편에게 다가가 작은아들 박종철부터 찾는데, 갑자기 어딘가를 보던 박은숙이 남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가 병풍과 함께 박종철의 영정사진을 발견한 정차순. 그제야 작은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엄청난 충격을 받아 오열한다.
1987년 1월 15일 오후 3시 서울지검 출입 기자실, 윤상삼 기자(이희준)를 비롯한 여러명의 기자들이 중앙일보 신문을 보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기자실의 모든 전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울렸다. 단박에 뭔가 심상찮은 기사가 나왔음을 직감한 그들은 서둘러 신문을 살폈다. 이후 신성호 기자 역시 편집국장(오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중앙일보는 보도지침을 어겼단 이유로 들이닥친 군인들 때문에 쑥대밭이 되어있었고 그는 전화에 대고 "당장 어디 여관방으로라도 도망가서 피하지 않으면 군인들에게 맞아죽는다"며 도망치라고 했다. 이 말을 끝으로 그는 군인에게 잡혔고, 신 기자 역시 수화기를 팽개쳐놓고는 급히 피신한다.
중앙일보의 기사로 인해 사회에 큰 파문이 일자, 안기부와 치안본부에선 이 일로 자기네들의 모가지가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걸 예상하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어쩌다 죽었냐"는 질문에 박처원이 준 서류를 보며 사인을 읊으려던 강민창 치안본부장(우현)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하자, 옆에 있던 박처원이 직접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말했다.[18] 이때 박처원이 기자들에게 "이만하면 적당히 알아들어라"고 보이는 눈빛이 일품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치안본부장이 나온 치안본부의 언론브리핑임에도 불구하고 사인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다, 이걸 말하는 박처원의 설명도 어색해서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팔팔한 청년이 심장쇼크사로 쉽게 죽었다고요?"라며 믿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강민창은 목격자였던 중앙대학교병원 의사 오연상의 이름까지 말해버렸고 당황해서 그냥 얼버무리려고 했으나, 동아일보의 윤상삼 기자가 계속해서 캐묻자 유도신문에 넘어가 이름을 말하게 된다. 이에 윤상삼 기자를 포함한 기자들은 그 즉시 오연상 교수를 찾아 죄다 뛰쳐나가고, 순식간에 텅 빈 치안총감실에는 강민창과 박처원 등만 남는다. 강민창이 "내 또 실수했는 기제(나 또 실수한 거지)?"며 당황하자, 박처원은 말없이 전화 수화기를 들고 사건 은폐를 위해 공안경찰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진료 중에 물밀듯이 밀려온 기자들에게 폭풍 같은 카메라 세례와 질문 세례를 받은 오연상 교수는 자세한 대답을 요구받자, "물기가 있었다."는 등 거짓말 속에 조금씩 의도치 않은 진실을 발설하게 된다. 거짓은 디테일이 없다. 그러나 박처원이 그 직전에 보낸 공안경찰들이 입단속을 시키는 바람에 기자들은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한다.[19] 기자들은 허탈하게 빠져나가지만 공안경찰의 감시를 눈치챈 윤상삼 기자는 꾀를 내어, 화장실에 숨어 오연상 교수가 화장실에 들르기를 기다린다.
같은 시각, 최환 역시 부검을 위해 한양대학교 병원에 와 있었지만 부검실 앞은 공안경찰들이 점거하고 있는 상황. 검사 한 명이 검사 직위를 들먹이며 이들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공안경찰 한 명이 삐딱한 자세로 '''"아이고, 검사님. 어찌라고요?"'''하고 비꼬며 하체로(...) 검사를 밀어내는 만행을 저지른다. 정권의 묵인하에 공권력이 어디까지 막 나갈 수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법도 질서도 없는 그들의 막장행각에 서서히 눈이 뒤집어지려던 그때, 뒤에서 박종철의 누나 박은숙이 달려오다가 공안경찰에게 머리채가 잡혀 끌려가기 시작했다.
끌려가는 박은숙을 따라간 최환은 기막힌 상황을 목격한다. 그곳에는 박종철의 유가족이 몰려와 있었고, 정차순은 "아들의 손이라도 잡게 해달라"며 무릎까지 꿇었지만 경찰들은 그들을 강제로 끌고 가 차에 태워버린다. 이 모습과 여전히 부검실 앞을 점거하고 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검사들과 부검의들을 비웃고 있는 공안경찰들을 번갈아 보던 최환은, 결국 쌓여 있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당장 박처원에게 전화를 해서 "부검을 막고 있는 공안경찰들 안 치우면 공무집행방해죄로 감옥에 보낸다"고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처원은 "박종철 사건은 이미 부서끼리 정리된 일이니 부검 따위 때려치우라"며 눈 하나 깜빡 않았다. 최환 또한 아예 반말로 응수하며 그를 도발한다.
이에 도발된 박처원은 급히 남영동을 나서는데 사실 최환 검사는 남영동 앞에서 전화하여 불러낸 것이었다. 박처원이 탄 차를 가로막고 부검명령서를 내밀지만, 박처원은 부검명령서를 찢어버린다. 그러자 최환 검사는 품에서 잡지를 꺼내며[20] "먼 친척[21] 중에 하나가 뉴스위크지 기자와 국제결혼을 했는데, 요즘 핫한 뉴스 없냐고 나를 들들 볶더라고. 88 올림픽에 문제 생기면 대통령 각하께서 불편해 하실 건데?" 라며 협박한다. 하지만 박 처장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니 맘대로 해보라, 내래 니 모가지 땄어야.(이미 옷 벗긴 거나 마찬가지다.) 똥개니까 똥이나 먹고 살라"며 오히려 최환 검사를 비웃는다. 최환 검사는 부검은 가능할지 몰라도 자신의 직위는 박처원과 그 등 뒤의 권력에 의해 박탈당하게 될 것임을 직감했지만, "앞으로 소주 먹고 살지, 뭐"라며 쿨하게 애용하던 힙 플라스크를 버리고 떠나간다.[22]박처원: 거 기관들끼리 진작에 다 정리한 거야. 부검일랑 날래 걷어 치우라우.
최환: 하... 아저씨 나 알아? 얻다 대고 반말이지?
박처원: 내래 대공처장이야.
최환: 뭐, XX 대공은 법이고 나발이고 뭐 안 지켜도 된다 이거야? 검찰 수사관들 싹 다 불러서 깽판 한 번 쳐볼까? 어?
박처원: 뭐이 어드래?
최환: 지금 당장 형사소송법 펼쳐서, 수사지휘권이 누구한테 있는지 확인해 봐. '''그리고 그 사투리 좀 고치지? 김일성이네? 에에?'''
마침내 박종철의 부검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황적준 박사에 의해 실시되고, 삼촌인 박월길(조우진)이 박종철의 부모님, 형, 누나 대신 부검을 참관한다. 오연상 교수는 화장실에 향하고, 화장실에 숨어있던 윤상삼 기자는 너무 오래 숨어 있어서 다리가 저려 제대로 서지 못했다고 하고, 오연상 교수에게 질문한다. 다행히 공안경찰은 화장실까지 따라와 감시하진 않았고, 오연상 교수는 두려움을 이기고 밖에 있는 경찰관이 듣지 못하도록 세면대의 물을 틀어놓은 상태에서 자신이 본 것을 윤상삼 기자에게 말해 준다. 바닥에 물이 홍건했고, 젖어있는 시체 내부의 폐에선 수포음이 들렸다는 증언은 곧 물고문에 의한 사망임을 가리키는 말과 다름없었다.
부검의와 부검담당검사의 대화를 듣고 조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박월길은, 한양대학교 의료원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에게 "경찰이 죽였습니다!"라고 있는 힘껏 외쳤고 경찰들은 그를 강제로 차 안으로 밀어넣었다. 이때 이미 오연상 교수의 증언을 확보했던 윤상삼 기자는 "물고문이 있었지요?!"라고 캐묻다가 조한경에게 죽빵을 얻어맞고 팔을 다치는 변을 당한다.[23]
남영동에서는, 사건 수습을 위해 박종철을 고문한 공안경찰인 조한경(박희순)과 강진규에게 "감사과에 가서 감사를 받으라"고 한다. 조한경은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인 내가 왜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항의하지만, 박처원은 묵직한 압박으로 그에게 "다녀오라우"라며 명령한다.
윤상삼 기자는 동아일보 본사로 돌아와 이 사실을 기사로 내보낼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동아일보 편집국장(고창석)은 갈등 끝에 사건을 기사로 내보내기로 결정한다. 이 와중에 "보도지침은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편집국장은 보도지침을 적어놓은 칠판을 지우개로 싹 다 지워버리며 '''"경찰이 고문해서 대학생이 죽었는데 X발 보도지침이 대수야! 앞뒤 재지 말고 들이받어!"'''라 일갈한다.
이후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황적준 박사를 부르고, 황 박사가 "물고문 중 경부 압박으로 인한 질식사"라는 부검 소견을 말하자, 청와대 표시가 된 봉투를 쥐어주며 "쇼크사로 처리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황적준 박사는 끝내 그 제안을 거절하고,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나가는 황 박사의 뒤에 대고 "부검결과서에 진실을 써도 발표는 쇼크사로 할 것"이라고 윽박을 지른다.
황적준 박사가 치안본부실에서 나가고, 다음날 아침 그 자리에서 기자회견이 벌어지며 쇼크사로 발표된다. 박종철의 시신은 화장터에서 화장되었고, 이를 보고있던 모친 정차순은 오열하다 기절하여 급히 업혀서 버스안에 태워졌다. 당연히 화장터에는 기자들이 몰려와 있었지만 미리 진을 치고 있던 전경들이 사진을 못 찍게 방패를 높게 들어올렸다. 이 와중에 윤상삼 기자는 땅바닥에 엎드려 방패 아래로 박종철 유족들이 탄 차량번호를 잠깐 보는데 성공한다.
임진강으로 가는 길, 기자들은 유족들이 탄 차와 경찰이 준비한 가짜 차들을 따라갔다. 윤상삼 기자가 탄 차는 카메라를 이용해 번호를 멀리서 확인하고 뒤따라서 유해를 뿌리는 강가에 도착했다.[24] 하지만 그곳에서 유족들을 감시하고 있던 경찰들은 기자들 접근을 모두 막았고 급기야 카메라를 던져버리며 취재를 방해했다.
그러는 사이 박종부는 남동생의 유해를 뿌리고 있었고 그 뒤에서 아들의 사진을 들고 보고있던 박정기는 얼어붙은 강 위에 들러붙는 아들의 유해를 보고 그제서야 서럽게 울부짖으며 강가로 걸어들어가 아들을 강물에 흘려보낸다.
이후 윤상삼 기자는 최환 검사를 만나러 서울지검으로 찾아오지만 정문에서 제지당하고, 짐을 싸고 있던 최환 검사는 창문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며 "똥개 한 마리 추가요"라고 말하고 검사실을 나선다.[26] 이후 자기에게 따라붙는 윤 기자에게 최환 검사는 능청스럽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윤 기자를 외면하고, 분노한 윤 기자는 "당신 부끄러운 줄 알아!"라고 일갈하지만, 최환 검사는 "그래! 군인들 똥꼬 좀 핥아주고 출세할란다."면서 차를 몰고 가 버린다.와 못 가고 있노, 우리 철이... 내 새끼 와 못 가노...! 철아! 와 못 가고 이라고 있노... '''잘 가그래이… 철아...! 철아...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철아…'''[25]
그런데 최환 검사가 떠난 자리에는 일부러 남겨놓은 그의 짐 박스가 그대로 있었고, 그 맨 위에 부검결과서를 발견한 윤 기자는 급히 품속에 숨긴 후 동아일보 본사로 향한다.[27] 이 모습을 최환 검사는 "받아쓰기 잘해라"라고 속삭이며 바라본다.[28]
"물고문으로 인해 서울대생 사망"이라는 기사를 본 박처원은 대노하여 신문을 집어 던져버린 다음, 급히 자리를 뜬다. 과실치사로 감사과에 조사받으러 가야 할 그들이, 일이 틀려서 다른 곳에 가게 된 것을 눈치챈 것.
조한경과 강진규 등이 간 곳은 감사과가 아닌 신길동 특수수사2대 분실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특수수사대원들[29] 에게 끌려가 고문을 받게 되었던 것.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박처원은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고문을 중단시킨다. 상사가 나타나 "뭐하는 짓이냐"고 하자마자, 박처원은 혼자 상사를 어느 방에 끌고 가 폭행한다. 상사는 맞으면서도 박처원에게 으름장을 놓지만, 박처원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박처원도 조한경과 강진규 등을 감옥에서 꺼내줄 수는 없었다. 대신 박처원은 "며칠 지나면 고문치사를 과실치사로 바꿔주겠다. 잠시만 감옥에 있으라."고 달랜다.[32] 불안감과 억울함에 사로잡힌 조한경과 강진규는, 각각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흔들고 박수를 치며 목청껏 찬송가를 고래고래 부르거나[33] 밤새 질질 짜는 등의 추태를 부린다.상사: 이 XX가... 명령 불복종에, 상관을 폭행...!(박처원에게 얻어맞는다.)
박처원: 경찰이면 다 같은 경찰인 줄 아네? 니들이 뽀찌(뇌물) 뜯어서 이밥에 괴깃국 먹을 때, 내래 칼 맞아가면서 빨갱이 잡아댔어.[30]
나 아니었으면 이 나라... 김일성이한테 멕혔을 거야, 이 XX들아! 알갔어!?상사: 너 이 XX, 실수하는 거야. 감히 각하 명령을...(또 얻어맞는다.)
박처원: 똑똑히 새기라우. 내래 빨갱이 잡는 거 방해하는 간나들은, 무조건 '''빨갱이'''로 간주하갔어![31]
그들의 소란을 묵묵히 듣고 있던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은, (하필이면 같은 교도소에 있던) 동아일보 해직기자 이부영(김의성)에게 그들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알고 보면, 한병용 교도관은 교도소 안의 이부영과 절에 숨어 있던 재야인사 김정남을 연결하는 속칭 "비둘기"였던 것.
이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그는 연세대학교 87학번 신입생이 된 조카 연희에게 대학합격 선물이라며 마이마이#s-1를 건네주었고 그 다음 잡지(이부영의 메시지가 담긴 잡지 <TV가이드>)를 꺼내 보여주며 운을 뗀다. 그러자 마이마이를 보고 뛸듯이 좋아했던 그녀의 얼굴은 구겨지며 "또, 그 아저씨(김정남) 만나라고?"라며 질색했다.[34] 그러자 병용은 자신은 생긴게 험악해서 길을 걸을때마다 검문에 걸린다며 계속 사정을 했고 연희가 들어주지 않자 마이마이를 다시 가져가려 한다. 하지만 연희가 이를 막으며 결국 해주겠다고 한다.
집을 나와 헤드폰을 끼고 길을 걷던 연희는 백골단과 전경 한 무리가 불심검문을 하는 거리를 지나게 된다. 연희는 그냥 땅바닥만 쳐다보며 덤덤하게 그 곁을 스쳐가는데, 고압적인 자세로 행인들을 붙들어 세우던 백골단들은 그녀 보고선 휘파람을 불며 장난을 치지만 딱히 수상하게 여기진 않고 그냥 통과 시켜준다.[35]
걷고 걸어서 어느 사찰에 도착한 연희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이화룡)와 대화를 나누던 김정남을 만나 삼촌이 말한 잡지를 대신 전해준다.[36]
한편, 동아일보가 낸 신문기사의 여파로 인해 사회에 각종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1987년 3월 3일. 미도파백화점이 있는 명동에서도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37] 이날 친구 정미와 미팅을 하기 위해 한껏 멋내고 나온 연희는, 시위현장을 보자 기분이 나빠져 빨리 자리를 뜨려고 할때였다.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리에는 최루탄이 난사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무장깡패 백골단이 튀어나와 시민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친구 정미와 흩어져 이리저리 도망다니던 연희도 백골단원에게 머리채가 잡혀 끌려가려던 찰나, 어디선가 마스크를 쓴 남자가 튀어나와 단원을 밀쳐낸 후 급히 연희를 데리고 건물 사이 샛길로 도망다니기 시작했다.[38]
하지만 이내 다시 제자리, 바로 그때 근처 신발가게를 하던 한 아주머니(황정민)가 급히 두 사람을 자기네 가게 안으로 피신시켰고 백골단원들이 달려오자 재빨리 가게 셔터를 닫아버렸다. 연희는 최루탄을 맞은 얼굴을 비벼대며 시위 때문에 미팅 약속이 날아간 것을 속상해했고, 멀리서 이를 보고 있던 남자는 복면을 벗으며 "손으로 만지면 더 따가우니 세수를 하라"고 한다.[39] 한참 후, 가게 앞이 잠잠해지자 다시 나온 두 사람. 연희는 남자에게 "신발 한 쪽이 없다"고 알려줬다. 남자는 괜찮다고 했지만 아주머니는 "그 꼴로 나가면 잡혀간다"고 새 운동화 한 켤레를 건네주며 "원래 8,000원인데 5,000원만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돈이 없다면서 난감해했고, 옆에서 보고 있던 연희는 자신이 내준다. 남자는 한사코 괜찮다며 거부했지만 아주머니는 놔두라면서 연희의 돈을 받아갔다. 그녀가 돈을 대신 내준 건 구해준 보답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연희의 얼굴을 보던 남자는 그대로 시선이 멈춰버렸고, 이어 아주머니 역시 쿡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아무말없이 계산대로 가셨다. 어리둥절해하던 연희는 곧 가게 안 거울을 보게 되는데 깜짝 놀랐다. 최루탄과 백골단원과의 추격전 때문에 화장이 번지고 머리카락도 헝클어져 몰골이 엉망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자신의 몰골을 알게 된 연희는 황급히 아까 숨어 있던 방으로 도망쳐버린다.
그로부터 며칠 뒤, 공안경찰들이 갇힌 교도소의 보안계장인 안유(최광일)는 수감되어 있던 공안경찰 강진규가 가족 면회를 하게 되자 대화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동석한다. 면회에는 강진규의 부모, 그리고 갓난아기를 업은 그의 아내까지 모두 참석했다. 아내와 모친은 눈물만 삼켰고 아버지는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사람을 죽이냐며 아들을 꾸짖었다. 하지만 강진규는 훌쩍거리는 목소리로 자신은 그냥 다리만 잡았으며 죽인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한다.[40]
그러나 이 말을 하기가 무섭게 공안경찰들이 난입해 강진규와 가족들을 끌어냈다. 안유는 면회규정을 준수해달라며 요구했지만 그들은 안유가 적은 대화내용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이딴 거 한 번만 더 쓰면 교도소 통째로 폭파해버린다"고 협박한다. 같은 날 저녁, 대화록을 하나하나 붙이고 있던[41] 안유에게 동아일보 해직기자 이부영이 면담을 신청한다. 이부영은 "혹시 알게 된 게 있다면 알려 달라"고 요청하지만, 안유는 "공무원은 직무상 얻은 비밀을 누설할 수 없다"며 차갑게 거부한다.[42]
안유가 겪게 되는 폭력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얼마 뒤, 박처원이 교도소를 찾아온 것이다. 안기부의 장 부장을 만나 "고문치사를 과실치사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가 "김정남 사건이나 빨리 조작하라"고 면박을 당한 박처원은 수습이 불가능함을 직감, 휘하경찰인 조한경과 강진규를 찾아와, 두 사람에게 각각 1억 원이 든 통장을 내밀며 입을 다물 것을 명령한다.[43] 조한경은 "애국자답게 처신하라"는 박처원의 말에 '''"이 손으로 때려잡은 사람들 비명 소리가 머릿속을 빙빙 돌아요! 우리가... 우리가 애국자입니까?!"'''고 절규한다.
분노한 박처원은 조한경을 구타한 후, 한 공안경찰의 권총을 뺏어서 조한경에게 겨눈다. 이에 안유는 박처원을 말리려 했으나 다른 공안경찰이 안유에게 총을 겨눈다. 이때까지만 해도 쏘라고 발악하던 조한경이었지만, 박처원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협박을 해댄다.
조한경은 박처원의 협박에 결국 굴복하고 만다.[44] 이 과정에서 안유는 "교도소에서는 수감자에게 신체적 접촉을 할 수 없으니, 규율을 준수해 달라"고 박처원에게 부탁하다 심한 폭행을 당한다. 더구나 한 공안경찰은 다리를 부둥켜안고 고통스러워하는 안유에게 돈봉투로 얼굴을 치며, "애쓴다, 간수들 회식비"라고 모욕을 가한다.박처원: (조한경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상판데기 구멍 나고 싶네?
조한경: 쏘세요... 쏴!
박처원: (쏘려는 듯하다가) 아니디. 아니야. '''네 마누라, 네 아새끼들 임진강에 던져버리갔어. 월북하다 뒤진 걸로 처리하면 그만이디. 해봤으니끼네 알 기야. 내래 네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꼴, 똑똑히 보갔어.'''
조한경: 처장님...
박처원: '''선택하라우. 애국자야, 월북자야!?'''
조한경: 받들겠습니다... 받들겠습니다! '''받들겠습니다!'''
한편,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검문하던 전투경찰들에게 운동권으로 의심받아 학번[45] 을 대야 했던 연희는 정미에게 투덜거리다가, 교내에서 만화 동아리[46] 를 홍보하고 있는 잘생긴 남학생을 다시 만나게 된다.[47] 잘생긴 남학생은 연희와 정미에게 "비디오 상영회가 있는데 오지 않겠냐"고 권유하고, 연희는 살짝 튕겨보지만 정미에게 이끌려 만화사랑 동아리의 상영회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48] 을 '''촬영한''' '''영상'''[49] 을 보게 된 연희는, 충격받아 눈물을 흘리며 상영회장을 빠져나간다.[50] 잘생긴 남학생은 걱정스레 연희를 따라와 달래지만, 연희는 절규하며 일어나 가 버린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4월 13일. 김대중과 김영삼을 간첩으로 몰아 박종철 사건을 덮어야만 살 수 있다는 안기부의 장 부장과 통화를 마친 박처원은 휘하에 그간 잡았던 재야 인사들을 일거에 풀어줄 것을 명령한다. 그들을 미끼로 삼아 김정남의 은신처를 알아낼 계획이었던 것이다. 의아해하는 부하들에게 박처원은 이야기 하나를 꺼낸다. 자신이 옛날에 키우던 수캐가 숲으로 자주 도망갔는데, 이를 찾고자 그가 썼던 방식은 암캐들을 여럿 대동하고 숲을 뒤지는 것이었다. 수캐가 암캐를 보고 발정해서 개구멍에서 기어나왔다고. 그날은 전두환이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던 날이었고, 박처원은 "이제 안 기어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잘생긴 남학생: 나도 처음에는 끝까지 다 못 봤어. 너무 떨리고 무서워서...
연희: 만화 동아리에서 그런 걸 왜 보여줘요? 뭐 어쩌자는 건데요? 총 든 군인들하고 싸울 거예요? 어떻게 싸울 건데? 그러다 또 사람 죽으면... 누가 책임 지냐고요!
한편 이 호헌조치에 운동권 학생들은 물론이고 시민들도 어이없어 하며, 기자들도 격분하고 변호사로 전업한 최환은 아예 밥을 먹다가 곧바로 소주로 병나발을 분다.[51] 반대로 안유가 근무하는 구치소에서는 뉴스를 보던 교도관들 거의 전체가 "대통령 직선제 하기에는 아직 국민 수준이 안 된다."며 정부의 결정에 호응한다.[52] 이에 한병용은 한숨을 쉬는데, 이때 안유가 "근무 썩 나가라"고 윽박지른 뒤, 왠지 한숨을 쉰다.
호헌조치가 공포되고 박처원은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사기가 떨어진 경찰들에게 자기가 총알받이가 되겠다며 사기를 충전시키고 재야 인사들을 추적하여 김정남을 체포하려 한다.
한편 "규율을 준수해 달라"는 당연한 요구를 폭력으로 돌려받는 등의 사건을 겪은 안유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씁쓸한 얼굴로 이부영을 독방으로 부른다. 그는 마지막으로 복구한 대화록을 건네면서, 빈 부분은 기억으로 채웠고 여기까지가 도울 수 있는 한계라고 전한다. 이부영은 그 사실을 정리한 후, 교도관 한병용을 통해 김정남에게 전달하려 한다.
박처원과 공안경찰들은 일부러 잡아 둔 인사를 풀어 주고 그 뒤를 쫓는 방식으로 김정남이 은신해 있던 절의 위치를 알아내고, 검거 직전에 다다른다. 하지만 공을 세우는 데 욕심을 낸 공안경찰이 지원 없이 단독행동을 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도망쳐 나온[53] 김정남은 향림교회(향린교회)로 은신처를 바꾼다. 때마침 이부영의 서신이 적힌 잡지를 전하기 위해 절에 와 있었던 교도관 한병용은 공안경찰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도망치지만, 안타깝게도 공안경찰 중 한 명이 그의 얼굴을 본 뒤였다.[54]
황급히 집으로 돌아온 한병용은 연희에게 대신 잡지를 전해줄 것을 부탁하지만, 연희는 노조 운동을 하다가 사람들에게 배신당해 죽었던 아버지 얘기를 꺼내며 외삼촌과 갈등한다.[55] 그리고 그날 밤, 연희네 집에 공안경찰이 들이닥쳐 한병용을 체포해간다. 한병용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처원을 만나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56]
연희는 침울한 상태로 일상을 보내는데, 잘생긴 남학생이 연희네 슈퍼마켓(구멍가게)으로 찾아온다. 그는 "너를 포섭하려고 왔다"며 웃더니, 연희에게 만화사랑의 회지를 1부 내밀며 "너도 우리 동아리에 들어와"라고 권한다. 연희의 친구인 정미도 이미 가입했다면서. 연희는 "시위한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그날'[57] 같은 거 오지 않아요."라고 회의한다. 잘생긴 남학생은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 마음이 너무 아파서. 마음 바뀌면 연락해."라고 답하고는 웃으며 떠나간다.
잘생긴 남학생이 떠난 후, 연희는 만화사랑 회지를 살펴본다. 1면에는 박종철 열사의 영정사진이, 더 넘겨 보니 연희가 백골단을 깔아 뭉개는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잘생긴 남학생의 연락처도 같이 적혀 있었다. 연희를 기억하지 못하던 게 아니었던 것.
집 안에 들어간 연희는, 일기를 숨겨두는 자신만의 비밀 장소에서 외삼촌이 남긴 쪽지[58] 와 잡지를 발견한다. 그 직후, 연희는 엄마를 통해 외삼촌 한병용이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피의자의 가족들이 단체로 남영동 정문 앞에서 항의하며 전경들과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엄마를 만난 연희는 엄마를 건드린 전경에게 화를 내다가, 백골단에게 납치되듯 끌려가 멀찍이 시골에 버려진다.[59]
빗속에서 신발조차 잃은 채 맨발로 터덜터덜 걸어가 근처 공중전화를 찾은 연희는 고민 끝에 잘생긴 남학생에게 전화를 걸고, 잘생긴 남학생은 우산을 들고[60] 찾아와 연희의 옆에 새 운동화 한 켤레를 놓아주고, 그녀와 함께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다.
한편,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던 한병용에게 박처원이 찾아온다. 박처원은 자신의 어린 시절 가족사진[61] 을 보여주면서, 한때 그의 어머니가 거두어 키웠지만 공산주의자가 된 뒤 자신의 가족을 악덕 지주로 몰아 인민군을 데리고 와 가족을 몰살시킨 '동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동이는 총알이 아깝다면서 박처원의 아버지를 죽창으로 찔러 죽였고, 박처원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인민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박처원은 "나는 대청마루 아래에 숨어서 이 모든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박처원이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다른 취조실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박처원의 가족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소리로 변조되어 오버랩된다.
박처원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 후 자신의 가족사진 위에 '''연희 모녀의 사진을 포개어 보여주며''' 그때의 자신과 같은 신세로 만들어주겠다는 듯이 한병용을 협박하고, 강도 높은 고문을 꿋꿋이 버티던 한병용은 결국 굴복해 김정남의 위치를 실토한다.[63] 공안경찰들은 빠르게 김정남이 숨은 향림교회로 달려간다. 이 급박한 순간, 연희는 향림교회로 가서 '''"삼촌, 고문 안 당하게 해주세요."'''라며 쪽지를 교회에 숨은 김정남에게 전달한다.너래... 지옥이 뭔지 알간? 내 식구들이 죽어나가는 판에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는 거, 소래기 한 번 못 지르는 거... 고거이 바로 지옥이야.[62]
쪽지를 확인한 김정남은 함세웅 신부에게 쪽지를 넘기고, 함세웅 신부는 바로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그 직후 공안경찰들이 향림교회로 들어서며 교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공안경찰들이 들이닥친 것을 알게 된 김정남은 향림교회의 옥상으로 피신하지만, 체포망은 점점 좁혀와 결국 교회 탑의 파이프를 타고 오르다 떨어져 다리마저 다치고 경찰들은 창문을 열어서 김정남은 발각될 위기에 처한다.
같은 시각(1987년 5월 18일, 5.18 7주기) 명동성당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쪽지를 전달받고, 김승훈 신부는 기자들 앞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공개하고 있었다.'''저희 정의구현사제단은 5.18 7주기를 맞아 성스러운 하느님의 성전에서 중대성명을 발표하겠습니다.'''
김승훈 신부의 폭로가 진행되면서 박종철이 죽임을 당하던 그날의 모습으로 화면이 바뀐다. 마지막에 강진규 경사가 폭로되면서 다리만 잡고 있었다는 강진규도 다리를 잡아 물구나무를 세워서 물고문하고 있었다고 드러난다.[64] 박종철을 물고문하여 가장 후임인 김진규 경사가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65] 조한경은 박종철의 안경이 있는 책상에서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앉아있는 모습이 섬뜩하다. 조한경은 여기는 남영동이고 너하나 죽어봤자 아무 일도 안생긴다고 말하고, 박종운의 행방을 묻지만, 박종철은 모른다고 한다. 그러자 애국가를 간만에 다 듣겠다며 4절을 요청하고 물고문은 시작된다. 그리고 박종철은 정신을 잃으며 마지막에 엄마라고 말하는 듯 화면이 명동성당으로 디졸브되며 바뀐다.'''故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은폐, 조작되었다. 박종철군을 고문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은… 치안본부 대공수사 2단 5과 2계 학원분과 1반 경위 / 조한경, 2계 1반 경장 / 이정호, 2계 1반 경위 / 황정웅, 2계 1반 경사 / 반금곤, 2계 5반 경사 / 강진규'''
축소, 은폐되었으며 고문에 가담했던 경찰은 2명이 아닌 5명이었다는 사실을 미사 중 발표했고, 한시라도 빨리 이 소식을 신문사에 전하기 위해 성당 마당의 공중전화 박스[66] 로 달려나간 기자들[67] 에 의해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그와 동시에 명동성당의 종이 크게 울린다.'''그리고 인간화와 민주화의 길을 걸을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중대한 관건이 이 사건에 걸려 있다. 1987년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역시 같은 시각, 향림교회에서도 종이 울린다. 김정남은 경찰들의 눈을 피하려 벽의 전선에 매달려 버티기를 시도하고, 경찰들은 김정남을 발견하지 못하고 간다. 그러고는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김정남을 내리쬐고, 전선이 끊어지며 추락할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박처원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그려진 스테인드 글라스 너머로 옥상에 매달려 버둥대는 김정남의 그림자를 발견한다.[68] 그 순간, 박처원에게 "큰일 났다"는 소식이 전해진다.[69]
박처원은 재빨리 그간 수사한 모든 자료를 모두 불태우라[70] 고 명령한 다음 사태 수습에 대한 대책회의를 위해 치안본부로 향하지만, 박처원과 그의 수하들 앞에 기자들이 나타나서 취재한다. 박처원과 수하들은 기자들을 막으며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박처원의 앞을 윤상삼 기자가 가로막고 박처원에게 있는 의혹들에 대해 질문하더니, 냉소적인 미소와 함께 쏘아붙인다.
분을 못 이긴 박처원이 윤상삼 기자의 멱살을 잡지만, 뒤에 있던 사람들이 말린다. 박처원은 치안본부로 들어간다. 그러나 텅 빈 치안총감실에는 탁자에 "박처원을 처벌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서류만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박처원은 거기서 장 부장과 전 대통령의 서명을 보고, 자신이 끝났음을 직감한다. 치안본부에 걸린 전두환 대통령의 초상화가 비춰지며, 밖에서 경찰들이 박처원의 그 수하들을 체포하는 소리가 들린다.'''고문, 살인, 은폐, 조작, 횡령. 끝났어, 당신.'''
이후 박처원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참여한 자들은 모두 구치소[71] 에 수감되고,[72] 이들 앞에 최환이 나타나 염장을 지르듯, "변호사가 필요하면 연락하시고~"라며 명함을 꽂고 간다. 그리고 한병용은 남영동에서 풀려나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뒤, 연희는 가판대에 놓을 양초[73] 를 정리하던 중 무심결에 가게로 배송된 석간 신문 뭉치를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 잘생긴 남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직사로 맞은 최루탄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죽어가며 부축을 받는 사진'''을 보게 된다.[74] 큰 충격을 받은 연희는 신촌을 지나 시청 광장으로 달려가는데, 그 길 가운데에는 회사원들, 평범한 주부들, 택시 기사와 버스 기사 등 수많은 시민들이 시위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시청 광장에 다다른 연희는 버스 위에 올라 '''시위하러 나온 시민들로 가득한 시청 앞 전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다, 이내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를 같이 외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위하는 군중들로 가득 찬 시청 광장을 배경으로 '''1987이라는 타이틀이 마침내 노출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75]
이야기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흐르면서 <그날이 오면> 합창을 배경으로 해서 이한열의 생전 모습과 어머니 배은심 여사와의 사진, 그리고 실제 6월 항쟁 당시 영상과 이한열의 장례식 장면이 나온다.
5. 등장인물
6. 평가
6.1. 평론가 평가
'''대공처장(김윤석)이라는 악역을 중심으로 인물들이 릴레이 하듯 대립하며 시대의 초상을 그려나간다. 군사정권의 어둠에서 시작해 광장의 함성에서 화면을 멈추는 영화. 서스펜스를 골조로 느와르, 로맨스, 복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장준환 감독의 밀도 높은 연출이 상이한 장르와 인물 군상을 하나로 엮어내는 비결이다. 모두가 뜨거웠던 그 해의 열기와 차가운 이성, 온탕과 냉탕, 픽션과 논픽션, 역사의 대로와 샛길, 역사를 재현하는 액션과 리액션의 영화. 관객 모두를 그날의 연루자로 만든다. 끝이 아닌 시작이 되어야 할 엔딩.'''
-송경원-
'''<1987>은 멀지 않은 과거, 아직 청산되지 않은 야만의 시대를 기록하고, 고발한다. 고문, 강제 연행, 언론 탄압 등 일상에 촘촘히 박혀 있는 불의는 권력을 위해 복무하고, 그로 인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속속들이 파괴된다. 영화는 아픔에 그저 분노로 그치지 않는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손을 빌려 이 모든 비극을 유발했으며 아직까지 책임지지 않은 권력자의 민낯을 벗겨낸다. 치장보다는 담담히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전하는데 전력투구한 덕분이다.'''
-이지혜-
''''1987년이라는 시간에 한정되어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두 젊은이의 죽음을 기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개인’의 의미를 성찰한다.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려 하고, 그 반대편에선 그 힘을 억압한다. 각성하는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는 억눌렸던 양심을 꺼낸다. 그리고 용기를 내며 저항한다. 공교롭게도, 혹은 역사의 법칙인 듯, 지금은 우리 사회와 강하게 공명하는 <1987>.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의 무용담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지금의 젊은 세대들을 위한 가슴 벅찬 드라마다.'''
-김형석-
평론가 '''이동진'''은 "수많은 인물들을 통해 마치 벽화를 그려내는 듯 하고, 속도감과 긴장감을 동반해 1987년의 격랑을 먹먹하게 담아낸다"고 호평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급박하게 뒤얽히며 펼쳐지는 거대한 이야기가 길을 잃지 않은 데에는 보기 드물 정도로 화려한 출연진이 도움을 주었지만, 강동원과 하정우의 스타성이 도리어 영화 자체의 동력을 약화시키며 김태리 친구 역 배우같이 부주의한 관성으로 직조된 캐릭터를 단점으로 보면서 별 3개 반을 주었다. 본문'''용감한 기획을 곁눈질하지 않고 뚝심 있게, 그러나 사려 깊은 마음으로 밀어붙인, 올해의 한국 영화다. 장준환 감독은 역사적 무게에 짓눌려 망설이지 않는다. 실존했던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아직 차갑게 식지 않은 역사의 현장을 스크린에 재생시킨다. 악을 대변하는 박처장(김윤석) 얼굴 위로 그 사람 ‘전두환’ 얼굴이 중첩되는 부분에서 영화는 이 비극의 가해자가 누구인지 명명백백 수배하기도 한다. 시대의 공기를 밀도 있게 포섭한 김우형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관객을 그 시간으로 더 깊게 밀착시키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박종철로 시작해 이한열로 끝맺는 이 영화에서 배우들은 한 명 한 명이 작은 횃불이다. 계주하듯 바통을 이어받으며 거대한 바위에 기꺼이 몸을 날리는, 작지만 의미 있는 계란들의 질주. 역사를 바꾸는 건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다수의 민중이라는 점에서, 영화 내내 2017년 광장에 모인 촛불이 동시 상영된다. 이 영화를 ‘1987’로 쓰고 ‘2017’로도 읽을 수 있는 이유.'''
-정시우-
평론가 '''박평식'''은 역사의 무게에 눌리지 않는 뚝심과 통찰에 디테일을 곁들였으며, 스테인드 글라스의 예수 등 상황과 소품으로 의미를 캐는 솜씨가 빼어나다고 평했다.[스포일러] 김태리와 잘생긴 남학생의 관계는 뚝배기에 담긴 콜라를 숟가락으로 떠먹는 듯한 느낌이지만, 항쟁을 이끈 아름다운 기폭제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한국 영화의 역대급 엔딩으로 꼽았다. 본문
LA 타임즈의 로버트 아빌레(Robert Abele)는 HBO의 걸작 드라마 더 와이어에 빗대어, "점(인물이나 사건)을 연결하는 솜씨가 감탄할 만하다"는 호평을 남겼다. 본문
7. 흥행
1987의 순제작비는 115억 원, 총제작비는 145억 원으로 손익분기점(한국에서 매출 100%로 가정 시)은 400만 명이다. 링크
7.1. 대한민국
같은 주에 개봉하는 작품으로는 1987, 원더(이상 2017년 12월 27일), 고스트 스토리, 극장판 프리파라 모~두의 동경♪ 렛츠 고☆프리파리, 나의 연기 워크샵, 두 개의 사랑, 일주일간 친구, 줄리아, 하이 스트렁, 배틀그라운드 브릿지 전투(이상 2017년 12월 28일)까지 '''11편'''이다. 원래는 크리스마스 이전에 개봉해야할 작품들이 많았는데 강철비,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신과함께-죄와 벌, 위대한 쇼맨 등에 밀려서 대거 개봉 연기되었다.
12월 27일(1일차)의 관람 인원은 328,794명으로, 주요 경쟁작인 신과함께-죄와 벌보다 약 17만 명 정도 뒤지며 2위로 출발했다. 이날 스크린 수는 <신과 함께>가 129개 더 많았으나, 상영횟수는 <1987>이 76회 더 많았다. 가족 영화인 <신과 함께>에 비해 조조 또는 심야로 상영되는 횟수가 더 많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수치다. 개봉 다음 날부터는 스크린 수는 물론 상영횟수 역시 <신과 함께>가 더 많았다. 이후 1월 1일(6일차)까지의 스크린 수는 <1987>이 1,000~1,100개 <신과 함께>가 1,600여 개를 점유해, 차이가 더 벌어졌다.
개봉 후 첫 주말을 맞은 12월 30일(4일차)에 누적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변호인, 국제시장과 동일한 흥행 속도. 직전 개봉한 강철비, 신과함께-죄와 벌이 3일 만에 100만 명을 돌파한 것보다 하루가 늦다. 크리스마스 버프는 놓쳤지만, 문화가 있는 날에 개봉하여 방학과 주말 버프를 연달아 받았음을 감안하면 다소 부진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평단과 관객의 호응이 좋아서 보다 장기적인 추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2월 31일(5일차)과 1월 1일(6일차)의 연휴기간에 누적관객수 200만 명을 돌파했다. 좌석점유율도 1~3%의 근소한 차이로 <신과 함께>를 넘어섰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차트 역주행을 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중. 그러나 스크린 수의 차이로, 12월 31일 하루에만 100만 명이 관람하는 기염을 토한 <신과 함께>의 관람 인원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전술했듯이 이 기간 <신과 함께>는 1987보다 1.5배 가량 많은 스크린 수를 보유하고 있었다.[76]
1월 3일(8일차)에 964개를 찍은 스크린 수도 이후 다시 반등해 일일 스크린 수는 1,000개 선을 유지하고 있다. 1월 4일(9일차)에 누적관객수 300만 명을 돌파했으며, 1월 7일(12일차)에는 누적관객수 400만 명을 돌파하여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고, 제작진이 인증샷을 공개했다. # 영화의 소재와 시사성으로 말미암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뒷심을 발휘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1월 8일(13일차)에 주요 경쟁작인 <신과 함께>의 힘이 빠지면서, 처음으로 일일관객수 1위에 올랐다. 스크린 수는 여전히 <신과 함께>보다 160개가량 뒤처지지만, 좌석점유율에서 안정적으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1월 11일(16일)부터는 스크린 수에서도 <신과 함께>를 66개 차이로 넘어섰다.
1월 13일(18일차) 오전 7시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월 16일(21일차)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월 28일(33일차)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월 7일(43일차) 720만 관객을 돌파했다.
2월 8일 VOD가 출시되었다.
【동시기 대한민국 주요 개봉 영화 좌석점유율 / 상영점유율】 (펼쳐보기)
-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
7.2. 대만
2018년 1월 12일 정식 개봉하였다. 현지 반응(번역글)을 보면 관객이 가득 들어찬 저녁 상영시간인데도 영화가 끝나고도 상영관 전체가 조용했다거나, 중년의 관객이 눈물을 흘렸다거나 하는 평이 보인다.
대만에서는 1월 17일 수요일에는 타이베이 기준으로는 수요일에만 13.6만 대만달러, 총액 117.7만 대만달러를 벌었다. 순위는 8위로 5일간 벌어들인 액수가 <신과 함께>의 수요일 하루치의 절반 정도로 흥행은커녕 현재로서는 <군함도>나 택시운전사처럼 중박이라 보기도 어렵다.
1월 21일 기준으로 3,319,305 대만달러를 벌었다. 관객수는 14,363명.
2월 4일 기준으로 4,519,662 대만달러를 벌었다. 관객수는 19,659명.
8. 해외 상영
8.1. 북미
2017년 12월 29일 미국 영화 영화 시장에서 제한적 상영으로 개봉하였다. 배급사는 '우정 필름'.
8.2.
중국에서는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등과 마찬가지로 개봉이 막힐 것으로 보인다. 중국 대형 영화포털에서는 이미 "이 영화 관련정보가 언제 당국에 의해 삭제될지 두고 보자"는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이 있었다.(번역글) 삭제되기 전 평점은 무려 9.5/10
실제로 2018년 2월 1일부터 엠타임과 도우반에서 항목이 삭제처리 되었으며, 1987은 검열에 걸려 개봉이 전면 금지된 이후, 1987 관련 검색어들이 모조리 필터링 되고 있다.
그런데 바이두 백과에선 검색 결과가 나온다.
8.3. 홍콩
홍콩에선 2018년 3월 1일에 권력에 저항하는 시민이라는 뜻인 역권공민(逆權公民)이라는 부제가 붙어 개봉되었다.
참고로 홍콩에서는 과거 변호인이 권력에 저항하는 변호사라는 뜻인 역권대장(逆權大狀)으로, 택시운전사가 권력에 저항하는 운전사라는 뜻의 역권사기(逆權司機)라는 이름으로 9월 말에 개봉된 바 있다.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 모두 배급사가 한국에서는 다른데도 졸지에 역권 트릴로지가 완성된 셈.[79] [80]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과정 중에 이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다.
8.4. 일본
2018년 9월 8일 1987, 어떤 투쟁의 진실(1987、ある闘いの真実)이란 제목으로 개봉했다. 전체 관람가 등급(G)을 받았다.
9. 탐구
10. 논란
10.1. 강동원 출연에 대한 논란
이한열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의 외증조부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온 친일파로 밝혀지면서 친일파 후손이 출연한다는 이유로 영화가 평점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외증조부인 이종만이 친일파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친일 논란’ 강동원 외증조부 이종만, 그는 노동운동가였다?
하지만 본인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였고 영화 개봉 이후에는 강동원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밝혀지지도 않았던 2016년 여름 감독을 제일 먼저 찾아와 불이익을 감수하며 영화에 참여한 것이 알려지면서 호의적인 반응이 늘어났다. 특히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진행 중이라 영화가 엎어질 뻔해서 소자본 독립영화를 고려했던 상황에서 강동원이 용기를 내어 참가하면서 많은 지원을 끌어낼 수 있었다는 점도 영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2017년 4월 언론들이 '친일파 후손 강동원이 1987에 참여해도 되는가' 하고 기사를 내자 이한열기념사업회와 이한열열사의 어머니가 "강동원이 1987에 나오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고 그 이후로도 수시로 감사를 표했다. 이한열의 어머니인 배은심은 인터뷰에서 "본인이 성실하게 잘 살아왔고 또 열심히 하겠다고 했으니, 외증조부가 친일파라고 연좌제로 비난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동원은 단순히 영화만 촬영한 게 아니라 이한열 묘소, 이한열 기념관을 수차례 들르며 본인의 배역에 다가가고자 노력했고 촬영을 마칠 때까지 이한열의 어머니 댁에 수시로 들렀다. 단순한 쇼맨십 정도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촬영에 임했기에 평가가 좋아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내용은 강동원이 1987에 특별출연한 배역이 개봉 직전까지 비공개였기에 개봉 이후에야 기사화되면서 알려졌다. ‘극중 아들’ 강동원에게 김치 선물한 이한열 열사 어머니 이후 2019년 1월에는 이한열기념사업회에 2억을 익명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기사
사실상 대중들이 친일파의 후손들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히 매국노의 자식이어서가 아니라 조상의 악행에 대한 반성이 부족한 태도가 문제였기 때문에[81] 강동원의 노력으로 이러한 논란은 거의 없어진 편. 또한 강동원은 독립운동가의 자손[82] 이기도 하다.
10.2. 가해자 미화
5.18 민주화운동 참여자이자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피해자로 14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바 있는 강용주는 이 영화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하였다.
영화에서 원칙주의자로 상관인 박처원에게도 항의하고 이부영에게 사건을 알릴 기회도 주는 의인으로 그려진 교도소 보안계장 안유가, 실제로는 90년대 장기 비전향 수감자들에게 고문을 가한 고문가해자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이전에도 재야 인사와 대학생 등 공안 사범을 감시하던 인물인데 이러한 묘사는 없이 선한 역할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영화 자체에서는 절대선보다는 입장을 바꾸는 방향으로 묘사되었다. 작중에서도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나는 사람'이라고 언급되긴 했다.
이에 안유 본인은 인터뷰에서 “나는 의인이 아니다”고 인정하였다. 그는 “그때 대학생들은 저를 가리켜 ‘전두환의 사냥개’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관하여 이부영 전 의원은 영화 관람 후에 오히려 안유는 자신의 직업 때문에 가혹행위를 용인한 점은 있지만 사안에 대해서 인지하자마자 자신을 찾아와서 '형. 나라가 망하게 생겼어.'라며 영화와 달리 즉시 사실을 전했으며 투옥되어 있는 운동권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사비로 약을 구입해서 나눠주는 사람이라고 언급하였다. 당시 과격파이던 학생들이 옥중에서 구호를 외치고 소란을 일으키려는 조짐을 보이자 학생들이 요구하는 운동권 서적을 정부의 지침을 어겨가면서 반입해 주는 등 익히 알려진 것에 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이라고 얘기하였다.
2018년 1월 11일 방송된 썰전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프로그램의 패널인 유시민 작가와 게스트로 출연한 우상호 의원은 영화를 보고 "최환 검사가 그전부터 공안 검사로 수많은 우리의 선후배들을 잡아 가두었고, 고문이 자행되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보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고 하였다. "물론 그분이 박종철의 시신 화장을 막고 부검을 진행한 것은 잘 한 일이지만, 우리의 눈앞에서 쓰러져 간 후배를 생각하면, 머리로는 이해를 하려 해도 감성적으론 잘 용납이 안 된다"며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그리고 동시에 "그분들이 검사나 교도관이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사람은 살다 보면 한 번 쓰이는 때가 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미워할 만한 99번의 일이 있었더라도 그 99번이 한 번의 일을 위해서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의견도 밝혔다.
이후 유시민 작가는 방구석 1열에 출연하여 최환 검사의 행동에 대해서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겪은 후 이 사건마저 관례대로 처리했다간 검찰조직에 피해가 올거라 생각하여 조직 보호 본능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작중에서도 그런 논리로 지검장을 설득하는 모습이 나온다.
우상호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과 같이 영화를 관람할 당시 한재동 교도관은 이한열의 모친 배은심에게 "내가 편지를 전달은 했지만, 그 이전부터 수많은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을 가두는 일을 했다. 아들을 잃은 분들 앞에선 차마 할 말이 없다."며 사과했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상술했듯이, 작중에서 최환 검사의 박종철 부검에 대해 묵인하는 역할로 나오는 정구영 서울지검장의 경우, 실제로는 이를 적극적으로 은폐하는 데 힘쓰던 인물이다.
10.3. 자유한국당의 소유권 주장
“대통령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그거 보고 울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그거 누가 밝혔습니까? 보수 정부에서 밝힌 거다”
1월 8일 신년인사회#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자유한국당 내에서 황당한 주장이 나왔다. 곽상도 의원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보수정권이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혔는데 왜 문 대통령이 우느냐"'''는 주장을 내놨다.[83] 김성태 원내대표 역시 "문재인 정부가 1987년을 독점하려 한다"며 "적폐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배하고 있는 문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운영 방식이 과연 국민을 위하고 대한민국을 위한 길인지 되돌아봐야 할 영화"라고 평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1987>과 큰 연관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약칭 국본)가 결성되었는데, 부산 지역 상임집행위원이 바로 문재인이였다. 즉, 이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저 현장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이다. 당연하게 이러한 자신의 과거가 생각날 수밖에 없는 일인데 "왜 우느냐"고 말하는 것은, 몰라서 하는 소리거나 알면서도 망언을 하는 것밖에 없다.“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당시 보수정권이 언론과 국민들의 진실규명 요청에 응답해 2차례에 걸친 수사를 통해 가해자들을 구속하고, 피해 사실을 규명한 것”
1월 9일#
그리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규명된 전두환 정권은 보수 정권으로 보기에는 정통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리고 보수 정권이라고 쳐준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시기가 맞기는 하다. 6월 항쟁으로 전두환이 당장 물러난 것도 아니고 그 뒤 87년 대선에서도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진 않았으니까. 문제는 '''죄 없는 박종철을 고문해 죽이고 그걸 은폐하려고 든 것이 바로 그 전두환 정권이며, 진상 규명도 도무지 발뺌할 여지가 없는 사건이었기에 국민적 요구를 못 이겨 규명당한 것'''이라는 자명하고 제일 중요한 사실을 쏙 빼놓고 저딴 언급을 하니 시민들의 어이가 날아간 것이다. 무엇보다 해당 사건을 알리려 노력한 사람은 당시 '''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 열사들과 기자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었지, 정부 차원에서 진실을 밝혀낸 것이 아니다!''' 부검을 밀어붙인 최환 검사나 있는 그대로 부검을 한 국과수 황적준 박사가 있지만, 그들은 엄연히 정부 수뇌부가 사건을 은폐하려는 중에 이를 거부한 양심적인 개인일 뿐, 절대 정부의 업적이 아니다.
정작 자유한국당은 <1987>은 관람하지 않고 뜬금없이 강철비를 안보영화랍시고 관람하는데, '''강철비는 자유한국당 코드의 영화가 절대 아니다.''' 영화의 주제나 줄거리를 살펴보면 진보나 보수 어느 성향에 편협되어 있지 않고 특정 사상을 최대한 배제된 연출을 사용한, 중립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강철비의 주요 인물인 곽철우만 보더라도 대한민국 핵무장에 동조하는 보수적인 안보관을 가지고 있는 듯 하나 반대로 '분단 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이용하려는 자들에 의해 고통받는다'라는 주요 대사를 통해 은근히 보수 진영을 비판하기도 한다. 애초에 강철비 감독의 전작부터 홍준표 자유한국당 당대표가 좌파영화라고 규정한 변호인(영화)이며 덕분에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까지 오른 인물로, 후안무치도 이런 후안무치가 없는 셈. 따라서 자유한국당의 '강철비' 언급은 그저 단순히 자기들이 밀고있는 안보에 관련된 이야기라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유로 행해진 것이다.
위에서 소개 된 곽상도 의원은 ‘박종철 고문치사’ 의혹은 보수정권이 밝혀”라고 했는데 일단 전두환 정권이 밝혔다는 것부터 심각한 역사왜곡이건 위에 소개된 바 있다.
이런 식으로 특정 층들이 좌/우라는 잘못된 이분법을 보여주고 있다. 친전두환 측은 1987 영화나 민주화 측을 좌익이라 단정하고 있는데 ## # '좌익 = 민주주의'가 아니다. 당장 5.18 민주화운동 문서의 '항쟁 주체의 성향과 이념' 문단만 봐도[84] 5.18 광주항쟁이 우익 성향, 우익 진영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10.4. 여성계의 '여성 민주화운동 과소평가' 주장
연희를 제외한 주요 배역이 모두 남성이라는 이유로, 일각에서는 여성의 민주화운동 참여를 외면한 영화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 경향신문 칼럼
그러나, '''우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관련자가 모두 실제로도 남성'''이므로 실화를 바탕으로한 이 영화도 주요인물 대부분이 남성일 수밖에 없다. 만약 이 주장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실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관련된 주요 여성들 중 배제된 인물이 있든지 하는 실제 사례가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비판은 페미니즘에 기반한 일반론적 주장만이 있을 뿐 구체적인 예시가 전혀 없다.일각에선 <1987>의 인물들 중 여성의 비중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도 있다. 김태리 씨가 맡은 연희는 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 중 거의 유일한 여성이다. 실제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여성이 많았음에도 <1987>에서 여성의 역할이 ‘연희’로 한정되는 점이 아쉽다는 것이다.
<1987> 개봉과 함께 당시 민주화의 성취를 특정 세대와 계층이 독점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의 민주화가 대학생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엘리트 계층, 검사, 종교인 등 특정한 인물들의 노력만으로 얻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6월 이후에도 ‘7·8·9 노동자 대투쟁’ 등 사회 각계에서 민주화 성취를 위한 노력이 계속됐다.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영화를 보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는 586들은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면서 “이 영화를 보며 감동을 느끼면서 불편해하기도 하는 여성·청년세대·노동자들, 또 그들이 ‘586 헤게모니’에 대해 가진 분노에 대해서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커버스토리 - 1987 그리고 나]“엘리트의 노력만으로 얻어진 건 아니다…불편해할 여성·노동자를 생각하자” #
운동권 서사를 운운하는 것도 이한열, 김정남, 이부영을 제외하면 영화 내에 운동권 비중이 높지도 않다. 주요 인물들 중 최환은 검사, 한병용은 교도관, 윤상삼은 기자이며 주요 인물들 중 유일한 여성인 연희는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새내기 대학생이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위를 밝혀내는" 부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한병용, 연희, 윤상삼 3인방이며, 김정남은 영화 내내 안절부절하며 소식을 기다리는 모습만 나오고 실제로 사건의 진위를 추정해 그림을 그렸던 이부영의 역할은 오히려 축소되어 있다. 이한열 역시 반전을 위해서였지만 이름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주연이 아닌 철저히 조연에 그친다.
결과적으로 운동권들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주도하는 본 영화를 운동권 서사라고 하는 것도, '''실제로 여성 주요 인물이 없었는데''' 여성 비중이 적다고 불만을 표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이 영화는 주요 관련자들이 남성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인 연희란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 여성의 비중을 실제보다 더 늘린 셈이다. 실제로 이한열 열사가 사망했을 때 수많은 여성 민주화 운동가들은 "이한열 열사가 저렇게 목숨을 던진 동안 우린 대체 무얼 했는가"라고 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민주화운동에서 여성들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며,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닌 대중들의 노력을 묘사하는 이 영화에서도 이를 반영하기 위해 주연급 배역이 아닌 조연 내지 단역에서는 당시 여성의 민주화 운동 참여를 다각도로 반영하고 있다.
작중 등장한 미도파 백화점 앞 3·3 평화대행진[85] , 연세대학교 정문 6·9 궐기대회, 서울시청 앞 6월 항쟁 시위에서 모두 여성들의 적극적인 시위 참여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3·3 평화대행진에서 연희를 숨겨준 신발가게 주인, 5·18 다큐 상영회를 주관한 만화사랑 동아리의 부장, 한병용과 통화하면서 김정남의 소재를 알린 연락책, 6·10 항쟁에서 버스 위에 있던 방송 선창자(문소리)가 모두 여성으로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동조했던 여성들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박처원이 한병용을 취조하러 가는 장면에서 들리는 비명소리를 잘 들어보면 여자들의 비명소리도 섞여 있으며 이 장면에서 얼굴에 검은 포대자루가 씌워진 채 취조실로 끌려가고 있는 사람도 비명소리와 체격으로 미루어 젊은 여성임을 알 수 있다.[86]
더욱이 장준환 감독도 성비 문제를 인식하고 주연급에서도 김정남의 배역을 여성으로 바꾸려는 생각까지 해봤지만, 실화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판단했기에 어쩔 수 없이 많은 남성들이 나오는 영화가 되었다고 밝혔다.# 엄연한 실존인물인 김정남의 배역을 만약 정말로 여성으로 바꿨다면, 1987은 시대배경을 무시한 역사왜곡물이 되었을 수도 있다.
영화평론가 황진미도 이 점에서 여성을 배제했다는 비판에 반론하였다. 황진미는 역사 영화에 대해 잘못된 지식에 기반하거나 정치관을 전근대에 무리하게 대입한 평론을 많이 하여 비판받는 경우가 많으며 과격한 페미니즘 성향을 보이는데, 그런 인물조차 <1987>이 여성을 배제했다는 비판에 대하여 반박했다는 것은 그만큼 근거가 많이 부족한 지적임을 방증한다. #
10.5. 동아일보의 자화자찬
동아일보는 이 영화를 인용하여 자신들이 6월 항쟁에 업적을 세웠다며 연신 자화자찬을 하다가, "너희들이 그럴 자격이 있냐"고 빈축을 사기도 했다.#
실제로 동아일보 소속이었던 윤상삼 기자가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며, 당시 동아일보에서 큰 역할을 한 것 자체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아일보사는 전두환 측근을 비롯한 인사들이 대표를 역임하고, 신문은 권력 비판적인 논조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등 급속하게 변질되었다. 또한 1980년대 당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기자들을 비롯하여 당시 동아일보 해직 기자였던 이부영 전 의원, 5공의 보도지침에 반발하여(동아투위 사건) 해직된 기자들을 영화가 개봉된 2017년 12월 27일 시점까지도 복귀시키지 않는 등 당시와는 반대되는 길을 계속해서 걷고 있다.
현재 논조나 평가 등을 떠나서 사실 역사를 제대로 따져보면, 이 영화로 자화자찬할 언론사는 '''한겨레''' 신문사이다. 독재 정권과 펜으로 싸우던 기자정신이 투철한 기자들이 '''동아일보로부터 해직되고,''' 이 해직기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신문사가 바로 한겨레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동아나 한겨레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1987에 나온 동아일보 기자들의 헌신은 실질적으로 한겨레에 이어져 있다.
11. 여담
- 중국 영화 시장에서는 한국 개봉 초기에는 엠타임, 도우반 등에 항목이 생성되었다. 하지만 2018년 1월 검열 조치에 딱 걸리는 바람에, 엠타임과 도우반에서 1987 항목이 삭제되고, 중국에서 1987 관련 언급을 한 모든 인터넷 글들을 삭제하며, 1987이나 When the Day Comes 등으로 검색할 수 없게 필터링으로 막혀있다.
- 박근혜 대통령 시절 제작이 시작된 영화여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투자자와 주요 배역 캐스팅이 난항을 겪었다고 한다. 때문에 제작사는 저예산 영화로 제작할 계획까지 세웠지만, 때마침 강동원이 출연하겠다고 나서면서 투자자를 모을 수 있었고, 지금의 <1987>이 완성될 수 있었다. 이에, 강동원이 배역을 맡은 인물의 기념사업회[스포일러2] 는 강동원에게 감사를 전했다. 특별히 감사 인사를 전할 분이 있습니다. 스포일러 역을 해낸 강동원 배우입니다. 참고로 해당 비화에 대해 감독 본인은 JTBC의 영화 예능 방구석 1열에 출연해서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결혼을 잘못해서 그런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말하면서[87] 아마 독심술을 하는 사람이 거기 있지 않았겠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래도 본인은 후에 "이래서 기를 쓰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서 관리하려고 했구나"라는 댓글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 2015년 당시에 감독이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의 제목은 <보통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똑같이 1987년을 다룬 영화 <보통사람>이 앞서 2017년 3월 개봉하면서 제목을 바꿨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When the Day Comes>다. 엔딩크레딧에서 나오는 그날이 오면은 이한열 합창단[88] 과 대건챔버콰이어가 불렀다.
- 대전 엑스포 회장을 밀어버리고 재개발한 대규모 세트장인 스튜디오 큐브의 사실상 첫 대관 촬영작으로 여겨진다. 정식 개관 전부터 찍은 것이라고.
- 영화의 주인공 최환 변호사[89] 는 2000년 자유민주연합의 공천을 받아 대전 대덕구에 출마하나 17.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3위로 낙선하였고, 2012년 새누리당 후보로 충북 보은-옥천-영동 지역에 출마를 시도하고#, 2014년 충북도지사로 출마를 시도하나# 모두 불발에 그친다. 2016년 총선에도 세종시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시도했지만 무위로 그쳤다.#
- 초반 대한뉴스에 나오는 음악은 Badenweiler Marsch로, 실제론 우리나라에서 잘 쓰지 않은 매우 독특한 선곡이다. 이 곡은 아돌프 히틀러가 굉장히 좋아한 음악인지라, 해당 곡을 유튜브에 검색하면 대부분 2차대전 나치 독일 시절 영상이 주로 나올 정도. 곡 자체는 1차대전 때 작곡한 곡이긴 하나 이 나치 색채가 강해서 독일에서도 공식 금지까지는 아니지만 연주를 상당히 꺼릴 정도이다. 따라서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된 선곡인 듯 하다. 대한뉴스의 삽입에 대해 감독은 "다큐처럼 시작해서 진짜 다큐를 보게 되길 바랐다"고 밝혔다.
- 영화 소품용 차량대여를 해주는 업체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차량 1대로 여러 장면을 돌려 쓰거나 도색만 바꿔서 쓰는 장면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만섭"이 몰았던 '브리사' 택시(패밀리아를 갖고 와서 개조한 그 소품차)가 그 모습 그대로 장면에 나오기도 하였다. 윤 기자가 탄 은색 포니2는 전면부는 포니2 픽업의 그릴과 헤드라이트를 장착하고 있는 부분 복원차량. 차량을 대여한 업체 2곳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포니2는 "인아트웍" 업체의 차량으로 추정된다. 소품 사정상 1987년에 생산되지 않았던 차량도 어쩔 수 없이 나오는데, 그 예로 대우 BS106(1988년식), 대우 BF105(1989년식)[90] 기아 뉴 콩코드(1992년식), 현대 1세대 후기형 그랜저(1989년식),[91] 뷰익 6세대 르세이블(1987년식)[92] 등이 있다. 3세대 현대 포터(1996년 생산)의 적재함 후미등이 달린 2세대 현대 포터도 나온다.
- 김윤석과 하정우는 추격자, 황해에 이어 3번째로 대립 관계로 나온다.[93] 먼저 시나리오를 받은 김윤석이 하정우에게 전화로 출연을 제안했다고 한다. 김윤석은 “다른 사람들은 연기 대결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연기 앙상블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룬 사실상 첫 번째 작품이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기는 하지만, 극으로 재현된 장면은 얼마 없고 대부분 영상 자료와 내레이션으로만 나온다. 그리고 여기서는 최환 검사보다 안상수 검사의 활약이 더 많아 이후 밝혀진 사실과는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 하정우의 또 다른 주연작 신과함께가 1주 먼저 개봉함으로써, 자신이 출연한 영화 둘이 경쟁하는 묘한 상황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두 영화의 활약 덕분에 2,000만 배우로 등극하였다. 다만, 두 영화를 병행하다보니 영화 시사회에 종종 빠지는 경우가 있다.
- 이희준의 경우, 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감동을 받아 촛불집회에도 참석하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김태리 등도 참여했다고 밝히며 "1987년과 2017년은 미묘하게 연결된 것 같다"며 남다른 소회를 말했다.
- 장준환 감독의 아내인 배우 문소리가 마지막 장면에 빨간 손수건을 손에 두르고 버스 위에서 선창하는 사람으로 출연했다. 뿐만 아니라 캐스팅 과정에도 직접 다리를 놓아 주는 등 도움을 많이 주고, 현장에서 배우들의 연기 지도도 도와 줬다고 한다. 특히 데모하는 장면에선 본인의 운동권 경험을 살려서 각종 시위 노하우를 전수했다고 한다. 원래는 정식으로 출연하고 싶어했으나, 시나리오를 아무리 읽어봐도 그럴싸한 배역이 없어서 포기했다고 한다.
- 초호화 캐스팅이긴 하나 영화 자체가 군상극인지라, 배역별 분량 수준은 대부분 조연이나 단역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캐스팅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서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영화에서, 동시대를 살았던 386 연배의 배우들이 당시 자신이 주역은 아니었지만 영화를 통해서라도 일익을 담당하고 싶어하는 부채의식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감독 본인은 이같은 초호화 캐스팅에 대해 "계란으로 바위를 끝없이 쳐서 결국 깨트리는 서사"를 연출하면서 국내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이름있는 배우들을 기용했다고 밝혔다.
- 극중 주요 무대로 나오는 연세대학교 동아리 만화사랑은 현재에도 존재하는 연세대학교 중앙동아리로, 실제로 이한열 열사가 만든 동아리이다. 당시에는 영화에서 보여지듯이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 중 하나였으나, 학생운동에 비협조적인 학생들을 고문해 죽인 흑역사 이후 사회운동에서는 손을 떼게 되어 현재는 순수한 만화 동아리로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출신 중 유명 인물로는 경향신문 장도리를 그리는 박순찬 화백이 있다.
- 호헌 선언 방송이 나올 때 만화사랑 동아리방에서 한 학생이 "저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다른 학생 중 하나가 장난처럼 "너 연세대 어떻게 왔냐, 너 쁘락치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장난스럽게 묘사되었지만 당시 운동권의 프락치에 대한 감정을 고증함[94] 과 동시에, 실제로 그 동아리방 안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다. 해당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관람객에게는 소름 돋는 대사.
- 작중에서 연희의 신발이 한 짝 벗겨지는 장면이 2번 나올 때 이한열의 신발이 같이 부각되고,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신문 기사가 나오는 장면에서도 신발이 부각되는데, 이한열이 신었던 한 짝 남은 신발은 현재도 이한열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2015년에 복원 작업을 하기도 했다. 같은 사건을 다룬 최규석 만화가의 수작 100도에서도 시위 다음날 집회에서 총학생회 관계자가 "이 신발 누구 거냐"며 주인을 찾고, '신발 주인'이란 글귀와 함께 중태에 빠진 이한열의 모습이 등장한다.
-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같이 민주화에 대해서 다루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개봉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바이두 백과에서 문서가 만들어져 있거나 일부 언론에서 해당영화에 대한 기사를 낸 것을 봤을 때, 아직까지는 검색불가능 수준은 아닌 듯. 중국 네티즌들이 한국에서 영화를 관람한 뒤 남긴 감상평도 올라오고 있다. 중국 본토 외에 대만에서는 2018년 1월 12일에, 홍콩과 마카오에서는 같은 해 3월 8일 개봉한다.
- 김윤석은 연기를 위해 실제 박처원의 사진을 구해 똑같은 스타일링을 시도했다. 일부러 이마를 넓혀 M자 모양을 만들고, 머리카락을 올백 스타일로 넘기고, 마우스피스를 해서 하관 쪽을 두껍게 하는 작업을 거쳤다. 다만 마우스피스를 착용하면 침이 자꾸 고이는 탓에 발음에 제약이 와서 고생했다고. 참고로 방구석1열에 출연했던 장준환 감독이 밝힌 바로는, "수사관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대사 당시 김윤석의 연기는 애드립이었다고 한다.
- 엔딩 크레딧의 도움주신 분에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영화에도 등장한 이부영 전 의원 등 6월 항쟁과 관련된 재야인사들 외에 신원호 PD도 올라가 있다. 재야인사들은 당시 상황에 대해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자문했던 점이, 신원호 PD는 영화 중 나오는 교도소신의 촬영을 위해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촬영 장소인 장흥교도소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이유 때문이라고.
- 2017년 12월 28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박상기 법무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 이철성 경찰청장 4인이 검찰과 경찰의 흑역사를 다룬 이 영화를 동반 관람하였다. 법무부 인권국장의 기획과 박상기 장관의 제안으로 성사되었다고 한다. 김부겸 장관의 경우, 6월 항쟁에서 몸소 뛰며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만큼, 감회가 남다르다고. 김 장관은 "나는 원래 영화 보면 10분이면 잠들지만, 이 영화는 끝까지 다 봤다"고 한다. 박상기 장관은 당시 연세대학교 법대 강사로 재직 중이였고, 문무일 총장은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생으로, 이철성 청장은 순경으로 재직 중이였던 때라고 한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1987이 경찰 최고 흑역사를 다룬 만큼 음흉한(?)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기자들이 실제로 이 질문을 하자, 김 장관은 "박상기 장관이 그럴 사람도 아니고, 영화에서도 검찰들의 부실수사로 수사결과가 3번이나 바뀌지 않았냐"고 답했다.[95]
- 정부 인사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단체 관람을 추진하였다. 2018년 1월 2일에는 정의당이 단체관람을 행하였고 다음 날인 3일에는 국민의당이 단체관람을 행하였다. 더불어민주당은 본래 2017년 12월 28일에 단체관람을 추진했으나 국회 본회의 개회 문제로 순연하고 1월 9일에 우원식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단체관람을 행하였다. 합당을 진행 중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도 함께 관람하였다. 또한 1월 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부부가 영화를 관람하였다. 이 자리에 최환 검사 등 실제사건에 핵심역할을 했던 인물들도 다수 함께 하였으며, 장준환 감독과 김윤석, 강동원 등 주요 배역들도 같이 관람하였다. 관람 중 김정숙 여사는 여러 번 눈물을 보였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가장 인상적인 대사로 연희의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를 꼽았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렵지만 함께한다면 세상이 바뀌고 그렇게 착실히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평하였다. 이날 배은심 여사도 영화관에 왔으나 영화 관람은 차마 하지 못하였고, 대신 관람 후의 환담 자리에 참석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만났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아들 이한열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고. 또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단체관람을 신청한 시민들과 함께 1월 14일에 영화를 관람하였다. 마침 이날은 박종철 열사의 31주기 기일이다.
- 이철성 경찰청장의 관람 이후 경찰 간부들도 단체 관람하였고, 청장과 고위 간부들의 공개 관람으로 부담감이 없어져서인지 경찰 내부망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현직 경찰들의 감상평도 올라오는 등, 경찰의 흑역사를 다룬 영화에 대한 경찰의 관람도 이어졌다. 조현배 부산지방경찰청장은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 씨[96] 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문병하고 유가족에게 사과한 후 부산경찰청 수뇌부와 영화를 단체관람했다. #
- 실제 박종철#s-1과 이한열의 나이차는 고작 2살이었다(박종철이 1964년생[97] , 이한열이 1966년생으로 박종철이 2살 연상임).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이한열 역을 맡은 강동원이 박종철 역 여진구보다 무려 16살이나 많다.[98]
-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타이틀 시퀀스 제작자 중 한 명의 이름이 노태우다. 다들 알다시피 영화에 배경이 된 사건 이후에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선자와 이름이 같다.
- 김윤석의 딸이 이 영화를 보고 "아빠가 (여진구를 괴롭혀서) 밉다"고 하자, 김윤석이 "아빠 말고 장준환 감독님을 미워해"라고 했다고 한다. 이 인터뷰 때 김윤석이 여진구를 예비 사위라고 불렀다. 장준환 감독의 전작 <화이>를 생각하면 배우 개그일지도. 사실 화이 찍고나서도 사위삼고 싶다고 인터뷰 했었다.
- 레 미제라블의 마지막 무대가 되는 1832년 6월 봉기과 한국의 6월 항쟁을 비교해보게 됐다는 평가도 있었다. 영화의 말미를 장식하는 노래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의 마지막 가사가 'Tomorrow Comes!이고'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한국 민중가요도 그날이 오면이기 때문.(영문판 부제도
다.) 바리케이드를 두고 시민과 진압군이 대치하는 장면도 기시감을 일으킨다. 1832년 6월 봉기로 시작해, 1848년 2월 혁명을 일으켰으나, 그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루이 나폴레옹이 당선, 보수 반동에 따른 왕정 복고라는 결과를 목도한 것과 5.18 민주화운동에서 6월 항쟁으로 이어졌지만 이후 선거에서 양김의 분열로 군부 출신 노태우가 당선된 것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 우현은 연세대학교 신학과 84학번으로 87년 당시 투쟁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걸로 익히 알려져 있다.[99]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그들의 투쟁 대상이었던 경찰(강민창 치안본부장) 역할을 맡은 것은 아이러니. 장준환 감독이 영화 기획부터 어떤 식이든 참여시키려고 하였으나 연배에 맞는 역할이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우현은 그 사건에 서 있던 당사자이자, 한명의 배우로서 정반대의 입장에 서서 연기하는 기회를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했다.
- 김윤석도 자신이 "책상을 탁! 하고 치니 학생이 억! 하고 죽었다" 라는 말을 대사로 할 것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김윤석은 박종철과 같은 혜광고 동문후배기도 하다.
- 실제 역사와 혁명 과정을 그린 시대극이자 민주화를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이지만, 일부 영화팬들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같은 갱스터 장르 영화로 보거나, 혹은 남한산성같이 패배의 역사를 다루는 영화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100]
- MBC에서 2019년 설날 특선영화로 방송된다. 날짜는 2월 6일 밤 8시 40분이었다.
12. 수상 내역
- 제39회 청룡영화상 - 최우수작품상(1987), 남우주연상(김윤석), 촬영조명상(김우형 촬영감독, 김승규 조명감독)
- 제54회 백상예술대상 - 대상(1987), 남자 최우수연기상(김윤석), 남자 조연상(박희순), 시나리오상(김경찬 작가)
- 제55회 대종상 - 감독상(장준환), 기획상(이우정 우정필름 대표)
- 제3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최우수작품상(1987), 음악상(김태성 음악감독), 영평11선(1987)
- 제27회 부일영화상 - 촬영상(김우형)
- 제18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 올해의 감독상(장준환), 올해의 각본상(김경찬), 올해의 특별언급(1987)
- 제38회 황금촬영상 - 최우수작품상(1987), 감독상(장준환), 남우주연상(김윤석)
- 제9회 올해의 영화상 - 작품상(1987), 감독상(장준환)
- 제19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 기술상(최은아 음향 편집기사), 홍보마케팅상(앤드크래딧)
- 제5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 작품상(이우정), 각본상(김경찬)
- 2018 한극극예술학회 - 올해의 작품상(1987)
- 제7회 마리끌레르 영화제 - 특별상(장준환), 특별상(이우정)
- 제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 JIMFF OST(김태성)
- 제23회 소비자의 날 문화연예 시상식 - 관객이 뽑은 올해의 영화(1987)
- 제11회 시네마아시아 영화제 - 최고감독상(장준환)
- 제20회 우디네극동영화제 - 관객상(1987), 블랙 드래곤 관객상(1987)
- 제17회 뉴욕아시아영화제 - 아시아스타상(김윤석)
- 제13회 파리한국영화제 - 작품상(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