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정치 경력
1. 정계 입문
홍준표는 모래시계 검사로 명성을 떨치고, 권력형 비리 등으로 인해 기성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가지게 된 국민들에게 정의롭고 참신한 이미지로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정치인으로서의 잠재력을 충분히 갖고 있는 상태였다. 입당 과정이 참으로 드라마틱했는데, 밤 늦게 노무현을 비롯한 민주당 정치인들이 찾아와 입당을 제안했었으나, 몇 시간 후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찾아와 신한국당 입당을 권유했고[1] ,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전화통화로 권유하기까지 한 끝에 여당인 신한국당에서 정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홍준표도 이명박, 노무현 등[2] 유력정치인들과 함께 등과 함께 김영삼이 발굴해 낸 정치인이 되었다.#[3]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송파 갑 선거구로 출마, 자유민주연합 조순환 의원을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초선 소장파에 불과했지만 노동 최저 연령 상향을 발의 통과시키는 등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1999년 3월 8일,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 상실 위기에 몰리자 대법원 판결을 하루 앞두고 자진사퇴한다. 선거운동 당시에 동협의회 총무에게 2,400여만 원의 선거운동비를 주고 사후 허위 지출보고서를 제출한 혐의였다. 이에 대해 당초 검찰은 불기소처분(1996년 10월)을 내렸으나 야당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곧 이듬해 1997년 2월 21일 법원은 야당 측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였고 대법원 판결을 하루 앞 둔 1999년 3월 8일에 국회의원직을 자진사퇴했으며 이튿 날에 대법원은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해 홍준표는 피선거권까지 박탈당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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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DJ와 영수회담을 갖고, 추경예산 편성과 남북 경협자금을 승인해주는 대신 이명박, 홍준표 등 선거법 위반 사범에 대한 사면에 합의했다. 그 해 광복절 특사 때 사면돼 피선거권을 회복한 그는 2001년 치러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 보궐선거[4] 에 당선돼 국회로 복귀했다. 독을 제대로 품은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3남 김홍걸의 미국 은행 입출금 내역을 공개해 3달 동안 23만 달러, 1달 평균 8,700만 원이라는 비정상적인 금액이 인출된 사실을 폭로하였고 검찰이 이에 관해 수사에 들어가게 했다. 곧 검찰은 김홍걸이 최규선에게서 3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적발했고 김대중 정권을 뒤흔든 최규선 게이트가 터지며 대선판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2. 노무현 정부 시절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다른 후보들과 달리 탄핵 역풍을 뚫고 서울 동북권에서 홀로 당선[5] 되면서 보수정당의 몇 안되는 서울 다선 의원[6] 인 그는 단숨에 거물급으로 부상하였다.
2005년에 고위공직자, 사회지도층 및 원정출산자에 대한 병역기피를 막기 위해 국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속지주의를 택한 국가에서 태어나 이중국적을 유지한 채 병역을 이행할 연령이 되면 국적을 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로서 병역을 마치기 전에는 국적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런 개정 국적법은 이른바 '''홍준표법'''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2002년 스티브 유 병역기피 사건 이 후 국적포기와 이중국적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하늘을 찌를 때라 이는 곧 국민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어졌고 당시 보건복지부 김근태 장관에게 큰 칭찬과 격려를 받기도 했다. 홍준표 의원의 '국적법'에 네티즌 초당적 열광
다만 홍준표법에도 구멍은 있다. 이 법은 이중국적 상태로 국내에 살다가 시기가 되면 군을 가지 않기 위해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규제할 뿐, 일찍히 외국에 나가 살며 만 25세 이전까지 10년 이상 거주기간이 채워지면, 국외이주여행제도로 병역을 사실상 면제받을 수 있기에 외국에 나간 사람들에게는 아무 효과가 없다. 한국에 영구 거주하는 한국인 부모가 원정출산 후 복수국적자 자식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서 자식이 한국인으로 살아간 후 한국말이 서툴지 않은 중고등학생때 외국으로 이민가도 실질적으로는 잡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면 그 자식은 40세까지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다.
원정출산 등으로 외국에서 출생한 자녀가 있는데 자녀가 18세 대한민국 국적포기 기한을 놓치거나 혹은 한국에 연고가 있다고 판단해 병역기피로 판단되어 자녀의 국적포기가 불발된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홍준표법 폐지를 요구하는 여론이 최근 있다. 하지만 병역의무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한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한국계 외국인들 때문에 평판이 안좋아진 교포들과 박탈감을 느끼는 한국인들이 오히려 더 강화된 국적법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 즈음 민주노동당 소속 조승수 의원이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의 공식 선거운동 하루 전 지역구 주민집회에 참석하여 간단한 서명을 한 것이 빌미가 되어 억울하게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자 "조승수 의원 살리기"를 위한 대법원 탄원서 서명에 동참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 가운데 총 11명이 이 서명에 뜻을 모았는데 여기에는 의외로 극우보수의 아이콘인 김용갑 의원과 나중에 친이계 핵심이 되는 주호영 의원도 동참하여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를 놓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던 상황이라 더더욱 신선한 충격을 줬으나, 안타깝게도 조승수 의원은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하고 만다.
2005년 7월에는 당시 들끓는 부동산 시장의 현실을 감안하여 1인당 주택 1채만을 보유할 수 있게끔 하는 법 제정을 구상하기도 했다. 헌법 제37조 2항을 들며 "사회적 해악인 부동산 투기를 막자는 것은 '공공복리'이므로 이를 이유로 주택 소유도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였고 당시 정부 여당에 입법을 공개 제안했으나 실제로 추진되지는 못했다. 홍준표 "1인당 1채만... 주택소유 제한해야"
2006년에는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특별시장의 경선에 나섰다. 그러나 막판에 오세훈에게 밀려서 석패했다. 그리고 17대 국회 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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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4위로 고배를 마시고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면서 범 친이계가 되었다. 2007년 이명박의 BBK 사건이 터지자 BBK 가짜편지, 김경준 기획입국설 등을 터트리며 이명박 당선을 도왔다. 이 사건은 5년이 지나 이명박 임기말 2012년에 가짜편지 자체가 가짜라고 판명되었다.
3. 이명박 정부 시절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 열린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4선 의원이 되었고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추대되어[7] 이명박 정부 초기에 이루어진 민생 경제 법안들의 입법을 주도하였다. 동시에 국회운영위원장직도 겸임했다.
2010년 4월에는 사회취약계층의 대학 등록금을 차등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얼마 후 한나라당 서민정책특별위원장을 맡아 사채업계의 대출 최고 이자율을 연 25~30%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혀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2011년 7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섰는데, 계파 없이[8] 당 대표에 선출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때 대의원 유효 투표 11만 4,372표 명 중 4만 1,666표를 받아, 3만 2157표를 얻어 2위를 한 친박계 유승민 후보[9] 를 9천여 표 차이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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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후, 민주당 손학규 대표에 맞서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세를 조금씩 회복해 나갔다. 그러나 하필 취임 한달만에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무상급식 중단 주민투표를 한나라당과 협의도 없이 강행해버리면서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홍준표는 당대표였지만 당권을 확실히 쥐고 있지는 않은 위치에서, 이명박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야권에게 다소 유리하게 흘러가는 정국을 어떻게든 지켜야 했었다. 그런데 당과 상의도 없이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무상급식 중단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어버리는 독단적인 행동을 한 것. 홍준표는 이를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으나, 오세훈은 주민투표의 결과에 승복하여 서울시장에서 사퇴하였고, 25.7%가 나왔으니 사실상 승리라는 홍준표의 쉴드는 조롱거리만 되고 말았다.[10] 이때문에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는 사실상 미니 대선급 대형 선거가 되어버렸으며, 무상급식 어젠다 때문에 야권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뺏겨버린 한나라당은 나경원 후보를 내세워 서울시장직 탈환을 노렸지만, 안랩의 의장으로서 당시 엄청난 명성을 떨치던 안철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한 시민운동가 박원순을 지지하였고, 박원순은 다시 민주당 후보 박영선과 야권 단일화를 하여 야권 통합후보가 되었으며, 결국 서울시장 자리를 9년만에, 지방선거에서 간신히 승리한지 채 2년도 지나기 전에 야권에게 빼앗겨버리는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11]계파없이 홀로 뛴 선거에서 저 홍준표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대의원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을 받던 경비원의 아들, 고리채 사채로 머리채를 잡혀 길거리를 끌려다니던 그 어머니의 아들이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 여러분이 보여주셨다.
2011년 11월 22일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을 통과시킨 장본인이다. 참고로 2017년 4월 28일에 있었던 제19대 대통령 선거 2차 TV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한미 FTA를 자신들이 체결했다고 주장했는데, 협상 자체의 체결은 참여정부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 맞지만 한미 FTA의 완결과 실질적 발효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나라당이 체결한 것이 맞다. 팩트체크 당시 당 대표였던 홍준표가 매국노, 을사늑약 소리를 들으며 표결 처리했고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불상사를 저질렀다. 홍준표 "한미 FTA 비준 더이상 늦추면 공멸" 참고로 민주당은 당시에는 FTA에 반대했지만, 요새는 입장을 바꾸어 FTA에 찬성하고 있다.
이 FTA 체결이 있기 3주 전인 11월 2일 tvN의 끝장토론에 출연해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대학생들과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젊은이들에게 혼나러 나왔다"며 FTA를 포함한 여러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인사청문회의 한계, 한나라당이 친기업 정책을 펼친 것과 육아/출산 문제에 대한 실책은 순순히 인정했다.
2011년 12월에는 재창당 쇄신안을 발표하였다. "현역의원 전원의 불출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자기희생적이고 과감한 인재영입을 추진하겠다.", "현역의원과 당협위원장은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선수에 상관없이 의정활동과 조직활동으로 전원 재심사를 받도록 하겠다.", "재심사위원회는 전원 당외 인사로 구성해 공천심사위에 가기 전에 2단계로 심사를 진행하겠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발표한 것. 그러한 쇄신안이 당내 모든 계파로부터 거부당하자 대표직에서 사퇴하였다.[12] 물론 이것은 대세가 이미 기울어진 마당에 던진 수로, 실제로는 재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으로 일찌감치 당 지도력을 상실해 사퇴론이 불거진데다, 설상가상으로 재보궐선거때 터진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으로 특검까지 실시되는 등 한나라당의 선거부정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사퇴를 거부하면서 버티다가 발표한 것이었다.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2011년 12월 9일 재임 5개월 만에 사퇴했고,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대위 체제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박근혜 비대위 체제에서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홍준표는 '''한나라당의 마지막 당대표'''가 되었다.
이 즈음에 뜬금없이 강용석의 SNS[13] 에 언급당하였는데, "나약하고 무기력한 보수 세력과 내부분열 속에서 자기 희생만 강요하는 새누리당의 최근 행태를 보면서 답답하고 화가 났다"며 취중에 멘션을 날린 것이라 고백했다(...).[14] 이에 홍준표는 "무지랭이 부모덕에 내가 있다"며 답을 보냈다.
시간을 따져보면, 당 대표가 된 후 불과 4개월여만에 쫓겨난 셈이었다. 남경필, 원희룡 등 당내 소장파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서 저 사람은 도저히 안된다고 반기를 들었고[15] , 외관상 박근혜가 이를 인정하는 형태였다. 홍준표는 당 대표가 되기 전에 이명박 실정에 대해 할말을 하는 여당이 되겠다, 거수기 역할만 하는 한나라당은 되지 않겠다 하였다. 그러나 당 대표가 되자 임태희 청와대 실장은 홍준표에게 FTA 통과를 요청했고, 홍준표는 강행 통과를 밀어붙이며 국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그의 자기 존재감 과시, 자존심 강조로 국회는 대번에 싸움터, 악담을 하는 장소로 변해버렸다. 이 시절 홍준표는 완전히 인망을 잃었으며, 비대위원으로 김종인이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김종인은 홍준표의 행태를 소영웅주의라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이 여파로 당대표에서 낙마한 뒤 4개월이 지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떨어졌다. 동대문 을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민병두 후보에게 밀려 패배한 것. 동대문은 홍준표의 지역구였으나 동대문 주민들도 홍준표를 외면했다. 동대문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홍준표는 자신의 낙선을 예감하고 이때 동대문 을 지역주민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명박의 실정에 분노한 전반적인 서울의 민심 때문에 지지층이 결집하는 와중에도 여론조사에서 민병두에게 밀리는 양상을 보였고, 어찌됐든 홍준표도 이명박 정부 실정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어쨌든 앵그리 버드를 패러디하는 동영상도 찍으며(...)[16] 나름대로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때 홍준표를 지켜본 수많은 정치인들은 이것으로 홍준표의 중앙정치 생명은 완전히 끝났다고 평가했다.
훗날 밝히기로는 자신은 원래 19대 총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었는데, 당에서 자신에게"그래도 당대표를 지낸 사람이 불출마는 안되지 않냐"고 해서 마지못해출마를 하였지만 낙선하고 홍준표는 "정계은퇴하겠다" 선언하며 자신은 타 국회의원들처럼 구태의연한 말 바꾸기를 하지 않는다며 당당할 것임을 강조했으나 불과 몇달 뒤 경남도지사로 돌아왔다. 경남지사에 당선될 당시 홍준표는 TV 앞에서 조마조마해 하며 훌쩍이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여담으로, 분당선 청량리역 연장 관련하여 홍준표 의원실에도 문의가 꽤 들어왔는데 홍준표 의원 입장에서는 반응이 영 신통찮았다. 오히려 후임 민병두 의원이 적극적이었고 2018년 12월 31일에 개통되었다.[17]
4. 경상남도지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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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서 패배한 후 몇 달 동안 야인생활을 하다가 김두관 경남지사가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출마'''를 이유로 사퇴하여 경상남도지사 자리가 공석이 되자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거기서 야권의 권영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정치적으로 재기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2014년 6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김경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19대 대선 자유한국당 후보가 되면서 사퇴하기까지 재임하였다.
홍준표는 경남지사로 있던 3년 6개월 동안 총 1조 4천억 원의 채무를 행정개혁만으로 청산하였고[18] , 경남은 전국 최초의 흑자 광역지자체가 되었다. 또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2년 연속으로 가장 기업하기 좋은 지역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사천[19] 과 진주에 항공우주 산업단지를, 밀양에 나노 산업단지를, 거제도에 해양 플랜트 산업단지를 유치하여 이 3개의 국가산업단지가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2012년 15위, 2013년 14위 등 만년 최하위권에 머물던 도의 청렴도도 2014년에 3위로 수직 상승해 2015년 2위, 2016년에는 전국 1위를 차지하는 등 행정가로서 성공적인 도정을 운영하였다.#
하지만 도정 과정에서 국회 국정조사권까지 발동됐던 진주의료원 폐업,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무상급식을 좌파 정치세력의 전유물인 양 규정하며 이념 논쟁을 촉발하였으며[20] 도의회는 거꾸로 행정사무조사권까지 발동해 교육청을 압박했다는 비판, 교육감 소환 불법서명' 도청 공무원 조직적 가담## 꼼수 사퇴로 인한 전국 동시 지방선거 결과가 나오는 6월 말까지 15개월 동안 공석 초래 성평등기금, 환경보존기금, 통일협력기금 등이었다. 때문에 옹호자들도 많았지만 비판자들도 많았다. 경남도의 재정 자립은 증가했지만 경남도의 18개 시·군 재정상황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경남도가 부채를 줄여가는 동안 18곳 시·군의 재정자립도는 한때 낮아졌을 정도.
게다가 채무제로 정책에 유독 집착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채무 제로를 유지하기 위해 도로공사 등 신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또한 억제되었기 때문. 그 외에 경상남도의 저상버스 보조금을 거의 없에버리기도 했다.
산청엑스포 취소 논란도 있는데 산청군의회 무상급식 조례 제정 이후 경남도청측의 '조례 무효' 주장 이후 경남도 산청엑스포 취소 발표 이후 산청군에 의한 국의회 무상급식 조례안 재의 부결로 이어졌기 때문. 실제로 조례안 가결 이틀 뒤인 29일 경남도는 '무분별한 국제행사는 개최하지 않겠다'며 '재정건전화 정책의 일환으로 '2017산청 세계전통의약엑스포'와 '2017 대장경 세계축전'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였다.[21]
결국 2010년 이후 경남 경제성장률은 전국 경제성장률보다 해마다 낮았고 2015년과 2016년은 성장이 너무 없었다는 것에 대해 지적 당했고 이에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김태호 경남도지사 후보기 채무 제로는 당면한 시급한 현안에 대해 투자를 감소했다는 뜻도 있다고 어느정도 시인하였다. 다만 주의할 것이 김태호로서도 이는 어느정도 억울한 지적인 것이 본인이 도지사 재직시절에는 경남 경제가 잘나가는 호황이었다는 것이다. 홍준표 도지사 시절의 논란에 대해 김태호가 홍준표와 같은 당이었기에 추궁당한 것이다.
도지사로서 세운 성과 덕분에 차기 대선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22] ,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무상 급식 중단, 각종 막말 등 갖가지 논란들이 불거져 2015년 이후 여론에서 대하는 시선은 싸늘해져 갔고, 대권은 사실상 멀어졌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좌파 성향의 시민들을 중심으로 주민소환까지 이루어질 뻔하였으며, 실제로 ‘홍준표 경남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는 서명을 받아 선관위에게 심의를 요청하기까지 했다.[23]
5. 19대 대선 자유한국당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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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지키겠습니다 자유대한민국"'''
대선 당시 홍준표 캠프의 슬로건
경남지사 시절의 각종 논란 및 성완종 리스트 연루로 대권이 사실상 멀어진 것처럼 보였으나, 2016년 말부터 그의 대선후보 가능성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어 자유한국당의 지지도가 동반 폭락하고 바른정당과 분당 사태를 겪으면서 당 내 대권주자 라인업이 극도로 초라해지자, 난립하는 당 내 경선 군소 후보들 사이에서 홍준표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제 우리 숨지 맙시다! 부끄러워하지도 맙시다!'''
결국 2017년 3월 31일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전당대회에서 총 득표율 54.2%를 기록하며 이인제, 김진태, 김관용 후보 간의 경합에서 승리,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아무래도 대선후보 전당대회 참가자들은 박근혜를 끝까지 뒤따르려는 김진태보다 박근혜와의 단절을 선언해[24] 민심을 얻으려는 홍준표을 선출하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라 판단했던 듯하다.
단일화에 대해서는 바른정당에게 다시 힘을 합치자고 권유했으며, 국민의당과의 단일화는 힘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홍준표가 후보가 되고 난 후 바른정당과의 범 보수 단일화는 되레 멀어졌다. 홍준표가 후보가 된 후 "친박은 없다"며 오히려 구 친박 인사들을 적극 등용했기 때문. 또한, 바른정당을 향해 아무 조건 없이 백기투항하라는 말을 하는가 하면, '''대구경북 지역 사람들은 살인자는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여 유승민과 바른정당을 오히려 더 자극했다. 유승민도 홍준표에 대해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며 무자격 후보라고 주장했고, 비박이지만 친박의 지원을 받아 후보가 된 홍준표와 단일화할 수 없다며 서로가 대립했다. 그래서, 19대 대선에서 보수 후보 단일화는 사실상 물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을 정도였다.
홍준표가 주장하는 노태우 모델이 실제로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바른정당 후보인 유승민과 단일화했어야 하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유승민과 김무성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강성 친박계의 반발을 사 시너지 효과는커녕 자유한국당 지지 기반이 날아가버린다는 딜레마에 휩싸였다. 실제로 자유한국당 내에서는 김진태, 이우현, 이인제, 최경환 등 바른정당과의 연대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친박계 의원들과 당원들이 많았다. 물론 바른정당 입장에서도 당시 새누리당 내에 만연한 친박 패권주의를 대차게 까면서 탈당했는데, 홍준표가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면 바른정당을 창당했던 명분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꼴이었다.
또한, 국민의당과의 연대에 대해서도 2017년 4월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자신에게 단일화 압박이 가해지자 국민의당은 민주당 2중대에 불과하다면서 단일화의 뜻이 전혀 없음을 공고히 하였다. 4월 6일에는 홍준표 "안철수 찍으면 박지원이 상왕…安 각본에 춤추는 인형"이라며 이미 돌이킬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결론적으로 홍준표는 외연 확대를 위해서는 친박을 버려야 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자기 집토끼를 잃게 되는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또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성 친박계 정치인 중 하나인 조원진 의원이 탈당하여 친박단체가 창당한 새누리당에 합류,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집토끼인 강성 친박 지지세력을 지키기도 어렵게 되었다.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그동안 친박단체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김진태, 조원진, 박대출 의원같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으며, 강성 친박 세력도 청산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을 제지하면 집토끼인 강성 친박 지지세력이 이탈할 거라 우려하였기 때문이었다.[25]
대선 공약으로 10차 개헌에 대해서 4년 중임의 분권형 대통령제를 정부 형태로 제시했다. 행정수도를 세종특별자치시로 옮기는 내용도 내놓았다.#[26]
'''나라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겠다'''[27] 는 표현을 두고 토론회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설전 중 "내 세탁기는 삼성 세탁기" 드립을 치면서 빈축을 샀다. [28] 여기에 살균세탁 하셨나요 드립과 엮여서 이런 것도 나왔다. 거기에 하필, 삼성 세탁기가 미국 뉴저지 주에서 폭발사고가 난 적이 있어서 불량 세탁기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4월 15일 유세 도중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진실 여부는 우리가 이기면 바꿀 수 있다"라는 발언을 하였다. 그의 부인도 친박집회에 참여한 점을 보아 친박 표를 얻어가려는 것으로 보였다. 헌법재판소가 인민재판을 했다느니 좌파 1중대(문재인)보다 2중대(안철수)가 더 무섭다느니 하는 발언을 보면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발언하는 것과 관련하여 선거자금 보전과 관련되어 있다는 해석이 제기되었다. 즉, 현행 선거법상 15% 이상을 득표해야 선거자금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고,[29] 박근혜 탄핵에 반대했던 보수층은 15~20% 정도 되는데, 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외연 확장을 못하는 발언을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발언해야지만 이들의 표를 획득하여 15% 득표율을 달성해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것. 다만 친박 강성세력도 자유한국당 세력, 새누리당 조원진 세력, 남재준 세력으로 분산된 상황이라 과연 15%를 온전히 득표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았다. 한때는 홍준표가 10%도 거두지 못할 가능성까지 제기되었데, 만약에 진짜로 그랬으면 자유한국당도 경제적으로 파산하는 거지만 홍준표의 정치생명은 완전히 끝나버렸을 것이다.
다만 이후 조원진, 남재준과의 단일화를 추진했고, TV 토론 이후 거하게 삽질한 안철수의 지지율이 홍준표 쪽으로 옮겨간 데다가 TK 지역 지지율이 오름에 따라 15~20% 정도는 무난히 득표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이 힘을 얻었다. 그에 따라 안철수와 2위 경쟁을 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5월 2일자 마지막 공개 여론조사에서는 결국 안철수 후보를 제치고 실버 크로스를 달성했다.#기사 5월 7일, 대선을 이틀 앞두고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면서 美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서는 홍준표를 위시한 보수세력이 대결집하여 막판 대역전을 할 수도 있겠다는 기사가 떠올랐다.#기사
4월 21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자신의 공약과 미래 비전을 밝혔다.
5월 1일 게시한 홍보 애니메이션 '달려라 홍반장'이 쓸고퀄의 끝판왕을 보여주며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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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9일 20시 정각에 공중파 3사에서 출구조사가 밝혀졌는데, 3~7%대 군소 후보에서 1달 사이에 23.3%까지 꽤 많은 득표율을 올리는 성과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의 압도적인 지지차를 좁히지 못하고 여론조사대로 출구조사 2위를 차지하였다.[30]
개표를 하면서 안철수를 제치고 부동의 2위에 랭크되었지만, 문재인과의 격차가 자꾸 벌어져, 개표 중반에 기자회견을 했는데 거기서 "자유한국당을 되살려냈으니 그것만으로 감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매우 힘든 여건 속에서도 19대 대선에서 나름 선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여러가지 치명적인 개인 논란들이 존재하였기에 문재인, 안철수, 본인의 3자 대결 구도에서 가장 골치가 아픈 3위가 예상됐음에도 상승세를 잘 살려서 2위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홍준표가 기록한 득표 수와 득표율은 역대 보수 정당 계열 후보인 노태우, 김영삼,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 중에서 가장 낮은 785만 2,849표이며 득표율 또한 가장 낮은 24.0%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역대 대선에서 최고 표차인 557만 951표로 대패했다. 그러나 당시의 자유한국당 상황에서는 그 어떠한 후보를 내놓아도 압도적인 표차로 패배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으며, 그나마 홍준표가 압도적인 표차를 어느 정도 줄이는 데 성공하여 선거 보조금이라도 전액 보전하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일단 대선후보 경선에 나온 게 누구였는지부터 보자.'''[31] 그러나 제대로 된 대안 하나 없이"좌파네 우파네, 종북좌파"라는 이분법적인 시각, 냉전시대 사고방식, 구시대적 이념논리, 진영논리를 끊임없이 사용하여 온건보수,중도보수의 정치인들까지 피해를 입혔다는 주장도 있다.[32] 아무튼 15% 이상의 득표율로 선거비용을 보전받게 되어 상상 이상을 초월한 득표를 한건 부정할순 없다.[33]
5.1. 공약
홍준표/19대 대선 공약 참조.
6. 19대 대선 이후
6.1. 미국 체류
홍준표는 자유한국당에서도 자신을 따르는 계파 의원이 정치 커리어 내내 단 1명도 없는 비주류에 속하는 인물이고, 보수정당 역사상 대선에서 최악의 참패를 당한 후보이기 때문에[34][35] 여전히 의원 수와 조직세가 건재한 친박계가 다수인 자유한국당 내 당권 쟁탈 승리를 위해서 매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본인은 4월에 당권에 도전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36]
대선 다음 날인 2017년 5월 10일, 홍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이 나를 다시 부를 때까지 기다릴 것"'''이며 또한 "남은 세월이 창창하다"고 사실상 와신상담을 선언했다.기사 그 첫 행보로 보수 대통합의 적자로서 당 내 개혁에 뜻을 비추었다. 먼저 문재인 정부의 내각이 갖추어질 1~2달 동안 미국에서 가족들과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전당대회에서 자유한국당 대표로 출마할 가능성이 유력하다.[37]
항간에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 출마설이 제기되었지만 고사한 듯하다. 현재 안철수의 사퇴로 공석이 된 노원구 병 선거구 국회의원 출마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 역시 고사한 듯하다. 또 현재 재판 중인 국민의당 최명길 의원이 당선 무효로 판결되면 송파구 을 재보궐선거에 나갈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38][39] , 2017년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우세를 차지하고 있는 서울특별시에서는 어딜 나가든 당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노원구 병 지역구는 호남 출신 인구가 많아서 현재 여권인 더불어민주당에 크게 유리한 것은 물론,[40][41] 다른 지역인 송파구 을은 새누리당계 정당이 몇 번 승리를 거둔 지역[42] 이지만, 여기서도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43] 당장 2016 총선을 보아도 보수정당 불패일 줄 알았던 강남권마저 더불어민주당에 꽤 빼앗겼으며, 대선에서도 강남권은 더불어민주당에게 초토화됐다.
미국으로 떠나기 하루 전날 인터뷰에서는, 조국 민정수석을 향해 '''"조국인지 파국인지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일단 사퇴하는 것이 맞다."'''며 언급했다.[44] 이어서 '''"더불어민주당 마음대로 하게 놔 두지 않겠다."''', "이미 10년 야당을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강력한 제1야당을 구축해서 이 정부가 잘못하고 있는 것을 국민을 위해서 철저히 견제하겠다", "내가 싸움에는 천재다"라며 문재인 정부의 출범에 형식적으로나마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는 다른 야당들과는 달리 더불어민주당과의 지속적인 충돌을 예고하며 사실상 정치적 선전포고를 했다.
또한 자유한국당 내 친박 세력과 바른정당의 유승민 등을 겨냥하며 "'''바른정당 분들이 좀 더 돌아왔으면 좋겠다. '패션좌파'만 빼고.'''", "'''친박은 (탈당파들의 복당에 대해) 좀 빠져 줬으면 한다'''"라며 본격적으로 당 내 개혁에 뜻을 내비추었다.[45]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은 것이 친박계와 자유한국당의 텃밭인 대구 경북은 박근혜에 대해 매우 동정적이며, 바른정당 의원들을 한 마디로 배신자 취급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홍준표가 대선 막판에 바른정당 탈당파를 복당시키는 조치를 취하자, 친박계가 거세게 반발했고, 홍준표의 무서운 지지율 상승세가 정체되는 동시에 유승민 후보와 바른정당의 지지율만 올려 놓는 효과만 낳았다. 지역 구도 측면에서 보자면 홍준표의 복당 허용 결정은 대구 경북의 민심을 동요하게 만들어 이 지역의 전통적인 지지층이 결집하는데 방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정우택 원내대표는 "지금 막 대선에서 떨어졌는데 또 당권에 도전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동시에 반발하면서 홍준표와 친박 사이에 갈등을 낳았다.[46] 이에 다른 후보의 2배는 유세해서 선거 보조금은 유지해 줬더니, 트롤러가 남 탓하는 상황이라는 의견이 존재한다.
그 밖에 이미 홍준표가 친박과 바른정당 탈당자들을 용서하면서 '''직권으로 친박의 징계를 해제했음'''을 지적하며 옳고 그름을 떠나 일관되지 못한 행위일 뿐이며, 친박에서 이미 징계가 죄다 해제된 마당에 이제 와서 홍준표가 빠지라는 발언을 한 들 승복할 리 없기에 홍준표가 처음부터 잘못된 행보를 했음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즉, 친박에게 빠지라고 말할 것이었다면 친박에 대한 당 징계는 왜 풀어 줬냐는 의견.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서청원, 최경환, 이정현 등의 징계는 풀어 줄테니 탈당파들을 그만 용서하고 받아 주라는 모종의 거래로 받아들일 수 있다.
홍준표가 친박과 바른정당을 동시에 끌어안은 것은 1순위로 선거를 위한 보수세력 대 결집이 있으며, 2순위로 선거 이후에도 내부 파벌 항쟁을 그만두고 단결하여 여당에 대항하자는 뜻이기도 했다.[47]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경원 의원까지 자유한국당 대표직에 뜻을 내비추었다.[48]
2017년 5월 12일, 예정대로 LA로 건너갔다. 같은 날, 정우택 원내대표는 "당의 대승적 단합과 새 출발, 제1야당으로서의 책무에 충실하기 위한 것"이라 밝히면서 '''친박 징계 해제 및 탈당파들의 자유한국당 복당을 최종적으로 승인''', 홍준표 본인의 의견을 관철시켰다. 홍준표와 자유한국당 친박 세력과의 갈등은 일단 봉합되었고, 당론은 통일되는 듯 보였다.##
다만 홍준표가 탈당파와 친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했지만 당권까지 장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자유한국당은 누가 뭐래도 최근까지 박근혜를 결사옹위하고 있었던 친박정당이며 친박이 조직력 면에서 완벽한 우세를 점하고 있는 당이다.[49] 탈당파는 용서했을지라도 당권만큼은 친박계가 놓을 의사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 조직력 면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는 친박계와의 혈투가 불가피하다.[50] 또 본인도 대선 선거기간 동안 펼친 각종 구설수와 성완종 리스트로 대법원 재판을 앞두고 있는 상황으로 인해 도덕성 면에서도 약점을 갖고 있으며 이미 당 대표를 한 번 할때 당을 말아먹은 전력이 있는 인물이라 친박계에게 공격당할 소지가 많은 인물이다. 실제로 친박계의 조직력이 발동된 8.9 전당대회와 그동안의 원내대표 경선을 생각한다면 홍준표가 과연 당권을 차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상황이며 만약에 이 힘싸움에서 진다면 홍준표는 앞으로 당 대표는 커녕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조차 받기도 불투명한 상황이라 정치생명이 사실상 끝장날 수 있다.
미국으로 떠나서도 SNS 정치는 계속되었다. 5월 14일 '''"대한민국 보수의 나아갈 길, 신 보수주의"''', "귀국하면 신 보수주의 이념을 중심으로 당을 새롭게 할 것"이라 하면서 동시에 당 대표 전당대회 출마를 천명했다. 여기서 신 보수주의는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개인과 기업의 창의성을 존중해 경제성장을 이루고, 반체제 집단의 발호를 제압해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어서 바른정당에 대해 '''"'부모 잘 만나 금수저 물고 태어나 돈으로 세습으로 지역구 물려받고 정치권에 들어와 서민 코스프레 하는 '패션좌파', 밤엔 강남 룸살롱 전전하고 아침 회의에서는 술이 덜 깨 횡설수설, 낮에는 서민인 척 하는 모습, 역겨웠다"'''라고 맹비난했다.[51] 이에 바른정당의 이준석 등은 "스스로를 되돌아봐야될 것 같다", "홍 전 지사의 발언은 정서장애적 언행"이라 비판했는데, 전여옥 전 의원은 이에 대해 "홍준표도 멀리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본인도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와야 할 것 같다.[52] "며 홍준표를 비판하고 바른정당에 대해서도 "도둑이 제 발 저린다", "홍 전 지사의 말이 맞다, 금수저 세습 정치인 역겹다."며 양쪽을 모두 싸잡아 비판하며 현재 보여준 보수의 모습으로는 민심이 떠나갈 것이고 보수의 궤멸이 우려된다는 글을 남겼다.[53]
그러나 16일, 홍준표는 자유한국당의 친박세력을 두고 '구 보수주의의 잔당들'이라 칭하면서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박근혜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있었고, 박근혜 감옥 간 뒤 슬금슬금 기어 나와 당권이나 차지해보려고 설치기 시작하는 자들"'''[54] 이라며# 본격적인 당권 투쟁에 열을 올렸다.[55] 이에 친박계 홍문종은 "제정신이냐", "낮술 드셨나"라고 거세게 비판했으며, 마찬가지로 친박계인 정우택 역시 "역사적으로 대선에 패배한 사람은 정계 은퇴를 했다"며 홍준표 책임론을 들고서 비판했다. 이에 비박계의 중심인물인 정진석은 '''"보수개혁에 도움 안되는 것들은 육모방망이로 뒷통수를 빠개야 한다"'''며 친박계를 겨냥하는 듯한 강도높은 비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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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주차 갤럽 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대폭 상승하는 반면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한자릿 수로 떨어지는 굴욕을 맛보았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의 6분의 1밖에 안되는 처참한 지지율로, 친박세력들이 여전히 당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 당권을 둔 진흙탕 싸움이 유권자들의 실망으로 이어진 결과로 보여진다.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이해찬 의원이 언급하였던 보수 궤멸은 시간 문제. 서둘러 전당대회를 통하여 새로운 대표를 뽑고, 집권여당에 대항하기 위한 신 체제를 갖추는 것이 시급한 상태.
보수의 크나큰 난제는 결집을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홍준표에 의한 보수의 결집이 결코 좋지 만은 아니라는 것. 비록 친박보다는 그나마 낫겠지만 홍준표의 득세는 사실상 보수에게 있어 차악일 뿐이다.[56] 게다가 홍준표는 대선도중 탄핵에 불복하는 발언들과 일부 공약에서 무책임한 반응들을 해대서[57] 크게 흠 잡힐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은 상황이다.
그리고 홍준표가 당권을 장악하더라도 당을 살릴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의문이다. 먼저, 홍준표 자체가 대선 과정에서의 여러 막말과 논란으로 인해 젊은층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인물이다.[58] 또한. 당 개혁이 중도보수 유권자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오기 위해서는 친박계에 대한 인적청산은 필수적인데[59] 홍준표는 오히려 대선과정에서 친박계와 유착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친박계 핵심 3인방인 서청원, 윤상현, 최경환에 내려진 징계인 당원권 정지 3년 징계를 해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런 행보를 보인 홍준표가 대선이 끝난 후에 친박계를 향해 각을 세우는 글을 페이스북에 잇달아 게시하자 당연히 유권자와 친박계에서는 홍준표가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60] 또한, 의원들 중 친박계가 대다수인 상황에서 친박계를 인적청산 하는 순간 당이 오히려 두동강 날 수 있으며 당의 지지기반인 TK와 서부경남이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다.[61] 그리고 홍준표 자체도 박근혜 지지자들의 표심을 노리고 대선을 뛴 전력[62] 이 있는 인물이라 자유한국당을 혁신시켜 민심을 자유한국당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 미지수인 상황이다. 홍준표 입장에서는 당뿐만 아니라 본인의 이미지 쇄신 차원에서 세탁기에 직접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으며, 당의 나쁜 이미지를 상쇄시킬 수 있는 우파의 신선한 인물을 발굴해서 밀어줘야 할 때.[63] 하지만 자유한국당에 젊은 층의 지지가 전무한 상황에서 어떤 정책을 내민다한들 그것을 밥먹듯이 어겼던 전력이 가득한 자유한국당을[64] 국민들이 신뢰해줄 가능성은 낮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가득했던 인재풀의 이점도 바른정당과 분당되면서 더불어민주당에게 넘어간 실정이라 홍준표가 당권을 장악하든 친박이 당권을 장악하든 자유한국당이 암울한 것은 변함이 없는 상황이다.
홍준표가 이미 대선 운동을 하면서 친박과 비방의 화합과 통합을 주장하며 친박계에 대해 징계해제를 조치하는등 이들을 포옹하는 조치를 취한 뒤인 것도 문제다. 친박들 입장에서 이제 다 끝났고 화합하자고 주장하던 사람이 또다시 자신들을 축출해야 한다고 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비록 친박이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하지만 이러한 친박의 반발들을 자초한 것은 홍준표이다. 대선에서 미봉책으로 자유한국당 보수의 화합과 통합을 주장했다가 대선 이후 입장이 180도 돌변한 것은 일관성이 없다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애초부터 아무리 대선이 급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해도 친박에게 면죄부를 준건 홍준표의 치명적인 실수였던 것. 당장 친박계에 대한 징계조치는 홍준표의 대권주자의 직권으로 인해 전부 해제된 상태 홍준표, 바른정당 탈당파 복당·친박 징계해제 '단행'
썰전에서 전원책은 친박에게 일침을 가한 홍준표 본인도 과연 보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며, 홍준표 본인도 어느정도 자숙의 기간을 거쳐야만 한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홍준표 본인은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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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는 '경선없이 홍준표를 대표로 추대해야 한다'는 추대론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탈당파와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친홍준표' 세력이 형성되면서[65] 홍준표 추대론을 내세우고 있고 정우택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박' 세력은 불가론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친박쪽에서는 사실 그나마 정우택을 제외하면 마땅히 당권에 도전할 후보가 없는 것이 현실. 그 정우택도 결국 7월 전당대회에 불출마 선언을 하는 동시에 원내대표의 직함을 앞세워 홍문종같은 친박의 당권 개입을 원천 배제시키며 홍준표에게 당권 바톤을 넘겼다. 정우택에게 원내대표를 임기까지 유지한 채, 홍준표와 투 톱 체제로 간다는 조건으로 딜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홍준표의 당권 장악이 거의 유력한 상황. 그러나 정우택마저 홍준표의 손을 들어주는 상황 속에서도 홍문종같은 친박 세력들은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할 생각보다는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들 것을 더 우려하는 동시에 홍준표 단일체제를 막기 위해 '집단 지도체제'론을 내세우거나, 당 대표 후보로 참여정부 출신의 김병준을 거론하는 등 마지막까지 반항을 하고 있다. 이에 친홍세력을 형성한 초선 의원들 중 20여명이 성명을 발표하는 등 친박의 정치 공세에 격렬히 대치하고 있는 상황.#
20일, 홍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윤석열 중앙지검장 임명 및 최순실 재수사 지시를 두고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대통령은 검찰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할 수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FBI(연방수사국) 국장을 부당 해임해 탄핵의 위기에 처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확대해석"이라고 받아쳤다.
전당 대회를 위하여 6월 4일에 귀국 예정에 있다고 전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4대강 재조사에 발맞추어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 정부 당시 '''환경노동위원장'''이었던 홍준표는 TV 토론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녹조는 질소와 인 성분이 있는 생활하수, 축산폐수 등 오염물질이 하천에 스며들어 고온다습한 물과 만날때 발생한다. 4대강의 지류, 지천 등 비점오염원에 대한 수질개선 사업을 하지 않으면 녹조가 없어지지 않는다", "저는 어릴 때부터 낙동강 변에서 자랐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5년을 있었기 때문에 이를 잘 알고 있다”며 “정치적 목적으로 접근 하다보니 시작부터 헛발질”이라며 가열찬 비판을 했다. 그리고 홍준표는 "4대강 사업은 치산치수의 전형으로 훌륭한 업적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에는 홍수와 한해(旱害, 가뭄 피해)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안희정 충남지사는 처음부터 4대강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2012년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지역 가뭄 해결을 위해 금강을 활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
6.2. 귀국 이후의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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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 6월 4일에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대선에서 큰 격차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 당시에 보여준 우파 결집력 때문인지, 예상외로 많은 우파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홍준표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홍준표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패장이 귀국하는데 많은 인파에 깜짝 놀랐다"며 소감을 전했다. 홍은 "자유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함께 하겠다"며 간접적으로 차기 당권 행보를 향한 포부를 밝혔다. 이를 지켜본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은 “홍준표의 귀국일성은 간결했다“, ”반기문의 장황했던 귀국일성과 대조적이다. 내 눈에는 홍이 반보다 훨씬 고단수다. 흥행몰이의 방법을 안다“며 홍의 귀국을 반겼다. 참고로 정진석은 김무성 등과 함께 반기문 대망론을 주장하던 인물 중 한명이었다. 그의 평가대로 1달 만에 패배의 후유증을 손쉽게 잠재우고, 갈팡질팡하던 당의 분위기를 자기 쪽으로 가져온 것이다. 한 편, 홍준표의 대항마로 친박 쪽의 당 대표 후보로 원유철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결국 비박에 홍준표, 친박에는 원유철이라는 양강 구도로 흐르게 될 전망이다.
귀국 이틀째가 되는 6월 6일, 현충일을 맞이한 홍은 '''"체제를 파괴하려 한 사람들이 민주열사로 추모되고, 나라를 위한 희생이 희화화되는 나라는 정상국가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6.10 항쟁 30주년을 맞이해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재판 때나 향후 모습을 그려 보니 개헌 때 헌법재판소는 폐지하고 대법원에 기능 통일하는 것을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헌법재판소의 폐지 및 대법원으로의 흡수 통일을 주장했다. 홍은 지난 4월에, 개헌을 통해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 정부형태를 바꿔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세종시를 행정 수도로 헌법에 명시하고 국회 의원의 정수를 절반으로 축소, 상,하원 양원제로 개혁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6월 14일, 홍은 “기호지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원튼 원하지 않튼 간에 호랑이 등에서 내릴수 없는 입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곤혹스럽지만 받아 들일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라며 당 대표 출마를 공식화했다.# 예상대로 친박 측에서는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한다', '권력중독자다'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7. 초대 자유한국당 대표
7.1. 2017년
2017년 7월 3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원유철 의원, 신상진 의원과 가진 당 대표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2011년, 한나라당 대표 선출이후 6년만에 자유한국당의 임기 2년의 초대 당대표[66] 로 선출되었다.[67]
그동안 예측되던 행보와는 다르게 여권에 대한 관계 개선 및 갈등 관리 국면에 들어가려는 행보를 취하고 있다. 아무래도 대외투쟁보다 내부 혁신을 더 우위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정우택을 비롯한 친박계가 극도로 반발하고 있다. 앞으로 홍준표는 당 대표 권한이 대폭 강화된 단일성 지도체제 하에 혁신위 및 당직 인선 그리고 지방선거 공천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친박계를 밀어내고 자신의 계파를 늘리려고 할 것인데 이미 친박계를 대변하는 원내대표단과의 잡음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고 이는 혁신위 구성 및 지방선거 공천에서 더 심해질 것으로 보여 이 과정에서 친홍-친박간의 대립이 더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단, 이런 갈등 과정에서 홍준표가 친박 세력의 요구를 받아줄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본인부터 정치계에서 친박과의 갈등으로 여러 차례 손해[68] 를 입었던 사람이며, 무엇보다 한국당을 이익 집단에서 이념적으로 무장된 정당으로 탈바꿈하자는 것은 곧 친박에 대한 인적 정리를 포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유한국당을 이념적으로 무장시키겠다며 혁신위원장으로 류석춘 연세대 교수를 영입했다. 하지만 류석춘 교수의 영입을 두고 당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류석춘 교수는 뉴라이트 계열이며 이승만과 박정희와 같은 독재자를 옹호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태극기집회 옹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부당 발언, 박근혜 출당 불가 발언으로 인해 '당을 극우정당으로 만든다.', '대다수 국민들의 인식과 동떨어졌다.', '혁신위원장으로서 언행을 신중히 해야한다.'라는 말이 당내에서 나올 정도이다. 또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그리고 바른정당까지 가세하여 '혁신하기는 커녕 도로 친박당으로 만든다.'라는 평가를 들었다. 이런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모습에 여론조사 전문가나 정치 평론가들도 '전통 보수층 결집에만 신경쓰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대패한다.'라는 말을 할 정도이다. 그 외의 홍준표의 정치행보는 자유한국당/2017년 문서를 참고하면 된다.[69]
2017년 9월 30일 현재, 일단은 위 문단과 같은 우려와는 다르게 류석춘 연세대 교수를 위시한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 최경환 두 명의 친박 좌장에 대한 탈당 권유를 한 상태이며, 탈당 권유가 꼼수라는 타 정당과 친박계의 비난에 대해 홍준표 본인이 탈당 권유는 꼼수가 아닌 큰 수라는 말을 남기면서 실질적으로 박근혜 출당을 공식화했다. 혁신위와 당내 인사들의 말에 따르면 여의도연구원의 조사 및 연구 결과 박근혜 출당이 한국당을 살리는, 즉 지지를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혁신위에서 출당이 결정된 것이라고 한다. 일단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나면 출당 조치를 하겠다는 발표를 하기는 했으나, 검찰에서 구속 연장을 법원에 신청했기 때문에 1심 판결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종합하면 1심 선고가 나기 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당 당 대표 선출 후에는 당무 외에도 봉사활동이나 연세대학교에 예고 없이 방문하여 사회학과[70]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당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새로운 우파 정당으로 다시 거듭나겠다는 각오와 지지 호소를 하기도 했다. 영등포의 소방서에 방문하여 소방 장비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소방관 분들에게 애로사항을 접수하기도 했으며, 8월까지는 전국을 다니면서 토크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들을 하면서 논란거리가 생기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9월 20일에는 각계 여성 인사들과 토론을 했는데 '젠더 폭력' 이라는 단어를 모른다고 페미들과 타 정당에게 까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젠더 폭력이라는 단어를 모르는게 왜 무식한 것이냐는 옹호를 받기도 했다. 젠더폭력 모르면 무식? 홍준표 대표에 옹호 발언 쏟아진 이유[71]
최근에는 북한의 6차 핵실험로부터 이어지는 대북 제재 국면에서 미국과의 엇박자와 코리아 패싱, 시의적절하지 않은 대북 인도적 지원 결정과 전작권 환수 논란, 아프리카의 소국 감비아와 북핵을 논의하는 정부의 외교, 안보 분야 무능과 헛발질을 화두로 삼아 정부 여당에 대한 공세를 높이는데 당 대표로서 앞장서고 있다. 한미연합사령관 빈센트 브룩스 미 육군 대장과 1:1 회동을 하기도 했다. #
한편, 2018년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6곳을 지키지 못할 경우 대표에서 사퇴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현직 부산시장 서병수와의 갈등이 있는 상황이다.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홍준표 대표 등판론이 있는 상태이다.[72] 일단 홍준표 대표 본인은 꼭 원내에 국회의원 자리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원외 상태로도 당대표 활동에는 문제없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국민의당 최명길이 2심까지 당선무효형을 받은 송파구 을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후보로 등판할 것이 거론되지만 본인은 크게 관심이 없어보인다. 당대표로 선출되고 며칠후 조원진의 탈당으로 공석이 된 달서구 병의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에 관심있다는 뜻을 보였지만, 일단 2017년 10월 22일 현재도 달서구 병 당협위원장 자리는 공석이다. 조원진은 대한애국당 창당으로 이미 강을 건너버린 상황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당협위원장에 본인이 직접 앉아 대구에 기반을 닦을 수도, 정치신인을 앉혀 친홍 세력을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10월 19일 美 CNN과 인터뷰하면서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했다. #
2017년 10월 20일 부로 자유한국당 윤리위원회에서 전 대통령인 박근혜에 대한 탈당 권유를 의결한 것을 신호탄으로 박근혜 및 친박에 대한 청산 작업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이는 대선 후보이던 당시 '박근혜가 아프다고 하니 병원에 보내자' 등의 발언을 하고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등 3명에 대한 징계를 해제하던 본인의 행보를 반 년 만에 뒤집는 것이다. 다만 대선 당시에도 보수우파 내에서는 결국은 친박과 함께 갈 수 없는 홍준표의 친박을 끌어안는듯한 행보는 15% 득표율을 넘겨 일단 당을 살리기 위한 노림수라는 분석이 우세했기 때문에 예상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당대표 공약에 '전원 외부인사 영입을 통해 혁신위원회와 윤리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것은 결국 당 내에 남아있는 친박들을 척결하기 위한 수였던 것이다. 류석춘, "박근혜·서청원·최경환 탈당권유 변함없다"
윤리위원회에서 의결한 탈당 권유에 대해 10일 동안 본인이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자동으로 당에서 제명된다. 사실상 2017년 10월 30일부터 박근혜는 자유한국당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서청원과 최경환에 대해서도 제명 논의를 시작했다. 이와 같은 결정에 대해서 서청원, 최경환, 김태흠, 김진태, 이장우 등의 친박 의원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 ## ### ####
이와 같은 친박의 대대적인 반발에 대해 홍준표는 친박 핵심들이 보수 궤멸에 책임지지 않으면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며 친박 청산에 박차를 가할 뜻을 천명했다. 홍준표의 페이스북은 친박들과의 설전과 그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 친박 청산의 당위성에 대한 역설로 가득찬 상태. 어쨌든 친박들을 몰아내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 이상 홍준표 본인으로서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파동, 성완종 리스트 관련 논란에 이어 또 하나의 큰 정치적 고비를 맞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단, 박근혜와 친박 청산에 제대로 성공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면 다시 국민에게 신뢰를 읍소할 수 있는 우파정당으로 재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17년 10월 23일부터 27일까지 미국에 방문해서 전술핵 재배치 주장 등을 포함한 대미 외교에 나섰다. 홍준표가 미국에 가자마자 서청원의 성완종 리스트 녹취록 관련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와 친박 핵심 출당에 반발한 서청원이 성완종 사건 수사 당시 홍준표가 자신에게 협조 요청을 했다며 녹취록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했고, 홍준표는 자신에게 1억원을 전달했다는 인물은 서청원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거짓 주장을 하지 않도록 자제시키라는 전화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와중에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이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중 국민의당에 서청원이 주장한 녹취록이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논란이 확대됐고 이에 대해 장제원이 녹취록 있으면 까보라며 이용주 의원을 저격하면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정의당의 노회찬이 서청원이 홍준표 녹취록을 국민의당에 줬다는 얘기 들었다며 거드는 모양새. 정치공학적으로 타 정당의 의원들이 성완종 관련 녹취록에 대한 친박 좌장을 돕는 것은 결국 한국당에서 박근혜, 서청원, 최경환 출당에 실패하고 홍준표 체제를 무너지게 만드는 것이 친박 프레임으로 한국당을 완전히 망하게 할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한 결과라는 주장이 있다.
한국에서는 성완종 녹취록 관련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는 한편 홍준표 본인은 일체의 대응 없이 미국에서 외교 활동을 하고 있다. 홍준표가 대통령도 아니고 일개 야당 대표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계는 명확하다. 10월 23일 CIA의 코리아임무센터에 방문하여 전술핵 재배치의 필요성을 전달했다. 외교활동에 앞서 한국전 참전 미군들을 추모하는 위령공원에서 조화를 했다. # 10월 24일 폴 라이언[73] 美 하원의장과도 회담했다. 폴 라이언, 홍준표 만나 "한국당, 북핵 상황 답답해하는거 이해해" 코리 가드너[74] 상원 의원 및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과도 회담하여 중국이 북핵에 대한 제거 역할을 못한다면 전술핵 재배치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가드너로부터 얻었다. #
그러나 이것은 미국 측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최선이 아닌 최후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해석해야 타당하다. 실제로 일부 공화당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홍준표의 의견에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거기에 전술핵 재배치를 반대하는 전문가들과 설전을 벌이다 '''전술핵 재배치가 안 되면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다'''[75] 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자체 핵무장에 관한 주장은 전술핵 재배치를 관철시키기 위한 공수표 남발로 보인다. 자체 핵무기 개발을 한다면 일단 최대 우방국인 미국부터 두고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무리수다.[76]
2017년 11월 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한국당에서 제명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탄핵의 부당성과 현재 재판부의 불공정성을 언급하는 등 사실상 보여주기식이라는 지적이 있다.[77]
바른 정당 탈당 의원 9명이 합류한 이후 눈에 띄게 김무성 의원을 견제하고 있다.
2017년 12월 14일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총리를 만나 북핵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홍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일본 아베 정부가 북핵 문제에 대해 한국당과 동일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아베 총리와 북한 문제에 대해 충분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자평했다. 또한 " "문재인 정부가 시 주석에게 알현하러 가는 날 우리는 한·미·일 자유주의 핵동맹을 맺어 북·중·러의 사회주의 핵동맹에 대항하자는 취지로 일본에 왔다" 라고 한미일 군사동맹에 대해 아베와 같은 의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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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홍준표의 정치 커리어 최대 위기였던 성완종 리스트 대법 선고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이로써 홍준표 체제는 더욱 굳건해졌다.
7.2. 2018년
2018년 1월 22일 신년기자회견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벤치마킹했는지 형식상 기자들의 자유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졌지만 SBS와 KNN과 관련된 언론관 논란 등 불리한 질문들에 대해선 답변을 거부했고 이런 자신을 변호하려고 자신은 문재인 대통령처럼 앞에 프롬프터도 두지 않고 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78] 하지만 안습하게도 이 신년기자회견을 언론이 별로 다루지 않아서 묻혔다. 심지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아예 신문에 기사를 싣지도 않았다(...).
2018 2월 1일 가짜뉴스와 전쟁을 선포했다. 홍준표 대표는 MBN의 기사를 문제삼았는데 요지는 류여해 전 최고위원이 자신이 홍준표 대표에게 성추행당했다고 주장한 것을 사실인양 보도해서 자신을 모욕했다는 것.# 앞으로 MBN 기자들에 대한 당사출입 금지령을 내리고 앞으로 어떠한 취재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조치에 반발해서 MBN의 정당출입부 기자들과 친홍 성향의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이 격하게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2018년 3월, 정부의 개헌안에 비판의 소리를 내었다. 2년전 개헌 안 한다고 할 때와 다른 모습으로 지지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Anything but Moon(문재인만 아니면 뭐든지)로 일관하고 있는데, 개헌 국회투표에 자유한국당의 당원들이 참여할 경우 제명조치도 취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인이 할 소리가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2018년 4월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한 일본 방송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는데, '좌파만이 정상회담을 지지한다'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정상회담이 끝난 이후 국내외에서 정상회담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으로 반응한 단체는 자유한국당뿐이었고 그마저도 당내에서도 반발 기류가 있다(...) 그런데 2020년에 이 말이 현실이 되었다 김태호 경남도지사 후보, 남경필 경기도지사 후보,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 등은 이런 홍준표의 남북정상회담 부정적 평가에 너무 나갔다고 반기를 들고 있다.#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는 당의 지방선거 공식 슬로건인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쓰지 않기로 선언하고, 홍준표의 후임 도지사 후보인 김태호는 무상급식 시행 등 홍준표의 입장과 반대되는 정책을 내놓고 있어 당내에서도 입장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2018년 6월 현재 제7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의 후보들이 홍준표를 피하면서 유세를 할 정도로 당내 입지가 매우 나쁘다. 원래 당 대표의 유세지원이 오면 후보의 입지와 당의 홍보효과로 환영받는 게 정석인데 후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자유한국당 내의 홍준표 입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세를 다녀도 시민들이 듣기 싫다고 경적을 울리는 등 반응이 매우 나쁘다. 동영상 1 동영상 2
끝내 홍준표는 2018년 6월 4일 선거 유세 지원을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하지만 5일만에 자기는 굴복해본 적이 없다며 지역유세를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상당수 후보들이 홍준표의 유세 지원을 뿌리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8. 당대표 사퇴 이후
2018년 6월 13일, 홍준표 대표 체제 하에 치러진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는 역사에 기록될 대참패로 끝났다. 이튿날 홍준표는 이에 대한 총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을 사퇴했다. # 동시에 이날 자신이 맡고 있던 대구 북구 을 당협위원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사퇴하면서 마지막 막말을 하겠다며 페이스북에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분류하는 글을 남겼다. ##
8.1. 2018년
변호사 재개업을 신청했다. 다만 변호사로 활동할 목적이 아니라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오랜 시간 접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2018년 7월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9월 15일에 귀국했다. 2019년 2월에 있을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나 2019년 4월에 있을 재보궐선거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79] 또한 유튜브에서 홍카콜라tv 채널을 개설하겠다고 하였다.
2018년 11월 20일 “최근 국민의 절반 이상이 대선이나 지방선거 때 홍준표의 말이 옳았다는 지적에 힘입어 다시 시작하겠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정계 복귀를 선언하였다. 홍준표 정계 복귀를 두고 과연 성공적으로 복귀가 가능할지 의아하단 반응이 많다. 솔직히 왜 나오는지 모르겠단 반응도 있을 정도. 한편으론 홍준표의 정치인생을 보면 혼자만의 셈법을 가지고 혼자서 헤쳐나온 것을 생각하면 나름의 생각과 계산, 큰 그림이 있는 거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홍준표의 복귀에 대해 정의당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홍준표의 복귀를 격하게 환영한다. 홍 전 대표가 꼭 자유한국당의 종신 대표직을 맡아 수구 보수의 소멸이라는 대업을 이뤄주길 바라고 있었다. 이제 그 꿈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라고 반어적으로 비꼬았다.
현재 홍준표의 유튜브 채널이 보수 정치인 채널중 가장 많은 구독자 수를 보유하는 등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재보궐 선거때 정계에 입문한 배현진 자유한국당 송파구 을 당협위원장이 방송계에 있던 경력을 바탕으로 영상 기획 및 제작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8.2. 2019년
2019년 2월 11일 당대표 후보로 거론되던 홍준표 전 대표가 불출마 선언을 했다. 홍준표, 2·27 전대 불출마.."탄핵 뒤치다꺼리 정당 미래 없어"(종합)
2019년 7월 공식적으로 21대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지역구는 대구광역시나 부울경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8월 들어서는 고향인 창녕군에 자주 모습을 보여 고향인 창녕밀양의령함안에 출마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현직 의원인 엄용수 의원이 의원직 상실이 유력하기에 다음 총선에서 출마할 수 없기도 하다.
2019년 9월 들어서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무능한 야당'''이라며 본인이 몸담았던 자유한국당(특히 나경원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검사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선배검사로 할 말을 다하고 있는 상황. 특히 나경원 사퇴를 주장하며 민경욱과 충돌하기도 하고, 자신을 비주류 투쟁이라고 표현한 조선일보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 등[80]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중. 추석 연휴 첫날에는 "전쟁 중에는 말을 바꿔타지 않는다."면서 나경원을 옹호하는 민경욱의 발언에 대해 "패전한 장수는 참수하기도 한다."고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2019년 10월 22일 유시민과 함께 100분 토론 20주년 특집방송에 출연했다.
2019년 11월 창원시 성산구 출마설이 돌자 창원 성산의 현직 국회의원인 정의당 여영국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기사
2019년 11월 22일에는 KBS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특집 10부작 시사프로그램 정치합시다 1회에 출연했다.여기에서 21대 총선 출마에 대해서 한국당 비례대표가 아니라 지역구 후보 경선을 할지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2019년 12월 30일 공수처 설치 법안이 통과된 직후 SNS를 통해서 " 한국당은 1년동안 무엇을 했는가 ? 공수처 법안이 통과되었으니 의원직 총사퇴를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 야당의 존재가치가 없어졌으니 오늘밤에라도 한강에 가라 " 라고 심경을 밝혔다.#
8.3. 2020년
1월 3일 TBS 라디오 <김지윤의 이브닝쇼> 에 출연해 " 안철수와 유승민이 황교안의 자유한국당과 연대하는 상황을 기대하기 힘들다. 보수 대통합을 위해서는 유승민을 주저앉혀야 하겠다. 대구 동구 을 선거구나 밀양에는 한국당 국회의원이 없다."[81] 등의 발언을 하였다.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에 21대 총선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다고 한다. 본인은 험지에서만 출마해 왔으니 이번엔 고향에서 출마하고 싶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본인이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송파구 갑은 13 ~ 15대 총선 전부 보수계 정당이 당선되어 왔던 보수정당의 텃밭이고, 16대 ~ 18대 내리 3선한 곳인 동대문구 을은 13~18대 내리 보수정당이 의석을 큰 차이로 석권해온 서울의 TK라 불렸던 지역인 데다 본인이 도지사를 7년동안 지낸 경남 지역은 현재는 세가 약해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새누리당 텃밭으로 불리던 지역이다.
상술한 대로라면,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양지에서만 출마한 셈이다. 그럼에도 험지에서만 정치했다고 주장하는건 어폐가 있다.
현재 송파구 갑과 경남 지역은 보수정당 우세지이다. 다만, 동대문구 을 지역은 본인이 추진한 전농답십리뉴타운으로 유권자 구성이 바뀌어 더불어민주당 우세지로 바뀌었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종로 출마 선언 후 김형오 한국당 공관위원장으로부터 서울 험지인 구로구 을[82] 에 출마해 달라는 연락이 왔지만, 너무 늦었다는 답과 함께 거절했다. 이대로라면 출마 선언한 지역구에서 컷오프가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으나 2월 11일에 당에서 PK 수비대장을 맡겨준다면 경상남도의 험지인 양산시 을[83] 에서 김두관과 맞붙겠다며 공관위에 타협안을 제시했다. 같은 당의 PK 유력 인사인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고향 출마의 뜻을 접지 않고 있는데다, 김두관이라는 또 다른 거물이 PK에 차출된 만큼 PK 수비대장이라는 명분을 지키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3월 5일 김태호 전 경남지사, 이주영 국회부의장 등과 함께 컷오프됐다.링크 면접 당시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같이 무소속 출마 혹은, 정계 은퇴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에 소감을 올렸는데, 컷오프 사흘 전에 김형오 위원장으로부터 나동연 전 시장을 경선에 응하도록 설득하면 컷오프하지 않고 경선하겠다는 전화가 와서 그러겠다고 대답했는데, 컷오프가 되어서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3월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협잡에 의한 컷오프는 받아들일 수 없고, 승복할 수 없다' '하지만 양산지역 무소속 출마는 곧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후보를 도와주는 꼴이 될 수 있기에 양산 지역구 출마를 포기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대구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할 의사를 밝혔다. 미래통합당 현역 의원이 없는 곳에 출마할 예정이라 밝혀서, 수성구 을이 유력하다.[84] 일단 동구 갑, 을과 서구, 달성군은 강력한 후보가 있는 곳이고 북구 갑, 을과 달서구 갑, 병은 보수후보가 2명 이상 출마한 곳이었다. 그래서 선택지가 달서구 을, 수성구 을 밖에 없었는데 그 중 만만한 여성후보가 공천받았고 민주당 후보의 힘도 약해서 더 쉬운 수성구 을에 출마하게 되었다.
9. 원내 복귀
9.1. 21대 총선 출마
결국 3월 25일 부로 미래통합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구 을 출마를 확정했다. 17일에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며, 탈당은 무소속 후보 등록에 맞춰 할 것이라고.#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북한으로부터도 주목 받았다.
3월 24일에는 본인의 선거 사무실에서 정책간담회를 열어 수성 을 5대 공약을 발표했다. 대구를 살릴 미래산업으로 플라잉카, 반도체등의 첨단산업 유치등을 내걸었으며, 대구지역에 코로나19 뉴딜 20조원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후보 등록을 한 뒤, 기호 8번이 되었다.[85] 숫자로만 보면 뒷번호지만, 원내에 여러 정당들이 수성구 을에 후보를 내지 않으면서 투표용지에는 4번째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매일 저녁 8시 수성못에서 정치 버스킹을 진행한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참신하다는 평가가 많다. 캠프 관계자에 따르면 지역주민들과의 직접적인 소통 방법을 고민하다 시도하게 된 것으로, 즉문즉답 형식으로 진행되기에 더욱 호응이 좋으며 매일 늦은 시간, 코로나 정국 속에 진행됨에도 수백명의 주민이 모인다. 당연하지만 손 소독제는 비치되어 있으며, 마스크를 착용해야 참여할 수 있다.
4월 15일 투표 종료 후 발표된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에서 모두 미래통합당 이인선 후보에게 뒤지는 결과가 나왔으나, 저녁 11시 30분 현재 대부분의 출구조사 결과와 달리,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1위를 달리는 기염을 토하며 판세를 뒤엎어 버렸다. 특히, 사전투표함이 열리고 더욱 격차를 벌렸는데, 젊은 층에서 지지세가 강한 민주당 후보들이 사전투표에서 더 많은 표를 가져간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여진다.[86]
그리고 마침내 # 대구 수성구 을에서 38.51%의 득표율로 3% 이내의 차이로 간신히 당선되었다. 당을 등에 업지 않고 보수의 성지인 대구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를 꺾고 오직 홍준표 이름 석 자 만으로 당선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현역의원인 정태옥과 3선 구청장인 곽대훈도 10~20%정도의 표를 받고 낙선했는데 홍준표는 지역 기반도 없이 한 달도 안되는 시간에 맨땅에 헤딩해서 당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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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및 인터뷰
무소속으로서 보수정당만 뽑는 험지인 대구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데다 황교안, 나경원, 오세훈 등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던 미래통합당의 주요 인물들이 모조리 낙선하고 대표직마저 공석이 되면서 차기 당 대표와 대선주자에서 모두 유력한 후보로 급부상했다. 물론 정진석, 주호영 등 당 내 다선 의원들이 존재하는 만큼, 대표직을 차지하기가 생각보다는 쉽지 않을거라는 예상도 존재하기는 한다.
만약 복당 후 다시 당 대표가 된다면 벌써 3번째 당대표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세 번 모두 당의 이름은 다르다.[87] 덤으로 홍준표 키즈의 대표주자인 배현진 후보가 송파구 을에서 거물급 현역 정치인인 최재성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친홍계가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본인 역시 당선 직후 직접적으로 2022년을 언급하며 차기 대선 출마 의지까지 강력하게 내비쳤다.
당선 후 인터뷰에서 미래통합당의 참패에 대해 가슴이 아프다며 속히 당으로 돌아가 당을 강화하는 데 힘쓰겠다는 소감을 밝혔으며, 더불어 21대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에서 사퇴한 황교안에 대해서는 손을 잡을 생각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황교안이 본인을 공천에서 배제해버렸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반감을 가질 만한데 총선 결과도 참패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입장으로도 선을 그을 명분이 충분하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분명 21대 총선이 미래통합당의 참패이기는 하지만, 2년 전 그가 대표로 있었을 때 치러졌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비해 훨씬 선방한 거라는 것이다. 그 때 빼앗겼던 몇몇 PK 지역도 다시 찾아왔고 TK지역 전역을 탈환하면서[88] 부울경 과 전체 영남권에서의 패권을 다시금 미래통합당 이 확실히 차지하였고 강남 3구와 용산에서도 당선자를 내었으니, 선거 성적은 그가 대표를 역임했던 2년 전보다 오히려 더 올랐다고 봐야 한다.[89] 하지만 2018년과 2020년 상황과는 전혀 다른 게, 2018년에는 전국적으로 불어닥쳤던 '문풍'[90] 에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으로 인한 평화 무드[91] 로 인해 보수정당이 선거 자체를 치르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탈당파의 복당을 막겠다던 황교안 전 대표가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데다가, 100석을 겨우 넘는 총선 결과 때문에 의석 1석이 아쉬운 미래통합당의 사정상[92] 복당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17일에는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기자의 복당을 운운하는 질문 자체가 불쾌하고 무례하다며, 25년간 당을 지키고 공중분해 직전에서 구출해 낸 사람에게 잠시 당권을 차지한 뜨내기들이 본인의 복당을 운운하는 것 또한 어이없는 일이라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이제는 되려 황교안이 출당당하게 생겼다.
총선승리 후 페이스북과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대권 도전을 확실히 하고 연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보수 진영의 중진들은 물론 차기 대선 주자급 인사들이 모두 낙선해 보수진영 자체가 궤멸한 상황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상황. 사실 이번 선거 전까지만해도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황교안, 안철수 등에 비해 크게 밀렸는데 이제 상황이 완전 뒤바뀌었다.
홍준표 본인으로써는 이번 총선에서 최대 승부수를 던졌던 것인 셈. 문재인 정부의 남은 기간 동안 보수 진영에서 대선에 도전할만한 새로운 인물을 찾지 못한다면 지난 대선처럼 자신에게 기회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연일 그의 행보가 주목받는 상황이다.[93]
당선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일부 보수 유튜버들을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유튜브가 거짓 낚시성 선정적 기사로 조회수나 채워 코인팔이로 전락하는 모습은 앞으로 정치 유튜브 시장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매우 강도 높은 비판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우호적인 유튜버들[94] 과 부정적인 유튜버들[95] 을 분류하였다.
이후 대권 도전을 천명하며 국익을 위해서라면 국민에게 도움이 되면 좌파 정책도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 하였다. 홍준표 “차기 대선 도전…우파도 국민 도움되면 좌파정책 펼쳐야”
4월 25일, 김종인이 차기 비대위원장으로 언급되자 본인의 페이스북에 김종인이 과거 자신이 조사했던 뇌물사건인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으로 인해 사법처리된 전력을 언급하며#, 이 사건의 부정과 비리에 얼룩진 김종인에게 무기한 무제한 권한을 주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기는 것을 반대했다. 다음 날 본인의 페이스북에 자신과 당시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당시 주임검사였던 함승희 검사가# 김종인을 수사하고 자백 조사를 받아냈던 이야기를 한 뒤, 뇌물 전과자로 개혁 대상자인 분이 개혁팔이로 이당 저당 오가면서 비례대표 5선을 했으면 그만 만족하고 그만둬야한다고 했다. 이후 1995년 노태우 수천억 비자금 사건에서 재계 인사들로부터 경제수석이란 직함을 이용하여 뇌물 브로커 행세를 한 혐의로 특가법상 뇌물죄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 받고 항소를 포기했던 일도 언급하면서#,국민 대부분은 김종인의 부패전력은 모른 채 그 자신이 마치 개혁의 전도사인양 자처하고 있는 것만 알고 있다고 한 뒤, 이제라도 실체가 다 드러났으니 이제부터라도 정계 언저리에 어슬렁거리지 말고 사라지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하는 길이며 우리 당 근처에도 오지 말라는 글을 올렸다.
5월 16일, 전날 통합당의 유의동, 오신환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진중권 전 교수가 "당의 지도체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물음에 답하는 도중 "당의 대선 후보까지 지낸 분이 똥개도 아니고 집 앞에서 이렇게 싸우느냐"며 홍준표 본인을 비방한 것에 대해 반격하며 이번이 두번째 모욕이다"며 "(진중권이) 분수 모르고 자꾸 떠들면 ×개로 취급 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다. @ 사실 이번 토론회 주최자중 한명인 유의동은 홍준표의 복당을 반대하고 있으며 진중권도 과거부터 홍준표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이였던 만큼 어찌보면 예상된 일. 물론 이러한 진중권의 발언에 대해 홍준표역시 '똥개 눈에는 똥개만 보인다'며 SNS를 통해 응수했다.
9.2. 제21대 국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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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희망 상임위로 국토교통위원회를 꼽았다. 하지만 상임위 배분 우선권이 원내교섭단체에 있기 때문에 인기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에 들어가기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관련 기사
1호 법안으로 재건축 등 부동산 규제 완화 법안을 내놓았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96] 재건축부담금 유예, 재건축시 국민주택 건설 의무비율 폐지, 재건축 안전진단 제도 개선[97] 등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재건축초과이익환수에 관한 법 개정안' 등 3법이다. #
6월 15일, "대구 통합 신공항 건설[98] 과 남북 관계 경색에 대한 대비가 더 시급하다는 판단 아래 국방위로 상임위를 변경 하여 지원하기로 했다"며 국토교통위원회에서 비인기 상임위인 국방위원회로 희망 상임위를 변경했다. # 그리고 같은 날 오후, 민주당에서 국방위를 비롯해 6개 상임위의 원구성을 강행하면서 홍 의원도 자신의 희망대로 국방위에 배치되었다.
6월30일 홍준표는 반인륜 범죄와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사형선고를 받은 자에 대해 6개월 이내로 사형 집행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2020년 7월이 거의 다 끝나가는 현재까지도 복당을 하지 않고, 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 총선 참패 이후 책임공방으로 더욱 분열하면 복당하여 당권을 잡은 후 그대로 대권에 재도전 하려는 그림을 생각 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본인이 강력히 비판하던 김종인이 비대위원장을 맡은 이후 민주당의 지지율을 역전 하는등 당 재건 정책이 순항하고 있기에 홍준표를 굳이 받아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99]
그러나 2020년 9월에 들어서면서 김종인 대표의 극우 집회 3.1 운동 비유 관련 망언이 국민들의 비판이 크며, 공정거래법, 상법, 금융그룹감독법을 개정하는 이른바 '공정거래 3법' 입법과 경제민주화 정책을 강행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 경제적 자유주의, 친기업 성향 보수 유권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고, 곧이어 같은 당 장제원 의원이 김종인의 국민에 대한 적절치 않은 발언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면서 슬슬 장제원과 더불어 다시 김종인과 각을 세울 가능성도 있다. 9월 17일, 21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 불복해 탈당했던 의원들 중 권성동 의원이 복당에 성공했으나 홍준표 의원은 아직 복당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10월 30일 보수 대통합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안철수뿐만 아니라 김문수, 조원진, 정규재와 여러 태극기 세력들까지 똘똘 뭉쳐야 이길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것은 현재 국민의힘 대표인 김종인과 완벽하게 정면충돌하는 주장이다.'''
11월 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또다시 지도부를 비판했다. 야당은 싸우고싶은 마음이 없다며 김종인 지도부 사퇴를 주장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서자라고 표현하면서 적통인 내가 서자를 데려와서 운영하는 당 지도부에게 복당 심사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금태섭이 야권의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거론되는 것에도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여담으로 의외로 과 협업하는 분야가 있다. 국회 내 연구단체 중에서 '국회 문화콘텐츠포럼'이라는 곳에 몸담고 있다.[100]
12월 4일 으로의 복당을 주호영 원내대표가 '''화이트칼라층의 홍준표를 향한 비호감 이미지가 너무 커서 당장은 힘들다'''며 거부의사를 표한 것에 대한 분노로 자신이 '''야당의 적장자'''라 주장하며 올드비 의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다시 한번 국민의힘의 분열의 핵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에 관해 장제원 같은 찬성입장들은 야권을 대통합을 빨리해야 내년 서울, 부산 재보궐 선거에 유리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홍준표는 이에 대해 "배은망덕하다"며 굉장히 화가 난듯한 반응을 보였다.#
1월 28일 김무성, 윤상현 등 다른 보수야권 거물들과 함께 안철수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과 다른 길을 걸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기사
9.2.1. 코로나-19 백신 의무접종 조항 삽입 의안 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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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2일 홍준표 외 17인의 국회의원[101] 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퇴치를 위한 특별조치법안에서 모든 국민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무적으로 코로나19 백신의 접종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 삽입 의안을 발의하여 논란이 되었다. # 백신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보다는 백신을 강제적으로 맞도록 하는 법안이라며 일각에선 논란이 있었으나, 실상은 근로의 의무나 투표의 의무 처럼, 강한 의지를 담고 있으나 아무론 처벌 조항이 없다.
홍준표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 법안에서 그 조항(제6조 1항)은 근로의 의무처럼 의무는 있지만 처벌 조항은 없기에 전혀 불이익이 없다고 해명하였으며, 제7조 3항과 연관되어 있는 부분은 오히려 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백신 여권을 성문화한 법안이다. http://www.mk.co.kr/news/world/view/2020/12/1325838
맘카페 등의 커뮤니티나 유튜브를 통해 알려진 잘못된 정보로 해당 법안의 입법예고 사이트는 반대 의견이 많으며, 특히 딥스테이트, 일루미나티 등의 음모론을 신봉하는 극단적 음모론자들이 대다수이다. 유튜버 중에서는 진자유TV, 스피카스튜디오가 이런 음모론들을 결합시켜 홍 의원을 근거 없이 비난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9.2.2. 해병특수군 창설 의안 발의
해병대와 특전사를 통합하여 대장이 지휘하는 제4군으로 만들자는 주장은 이미 19대 대선 공약으로 주장할 정도로 홍준표의 지론이기도 한데, 2020년 7월 6일 홍준표 외 12인의 국회의원들이 대한민국 해병대와 육군특수전사령부, 해군특수전전단, 공군 공정통제사, 제6탐색구조비행전대 등 모든 국군의 특수부대를 통합하여 육해공군과 동급의 제4군인 '''해병특수군'''을 신설하고 그 수장을 대장인 해병특수군참모총장으로 보임하며 참모총장과 참모차장은 소속이 다른 군으로 보임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군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이다.# 하지만 서욱 국방부장관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
[1] 정작 강삼재는 이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을 지지했다. 사실 문재인 당시 후보와 경희대 법학과 선후배로 이전부터 친분이 두터웠던지라 전혀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2] 김무성, 이회창, 이인제, 이재오, 김문수, 손학규, 정의화 등 [3] 하지만 그렇다고 위의 인물들을 YS 키즈라고까지는 부르기 어렵다. 나중에 박근혜 키즈라고 불리게 된 손수조와는 달리 스스로 역량을 키우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고, 사회적인 명성까지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4] 전임자인 김영구 의원과 2위를 한 허인회 후보가 같이 위장전입을 한 게 밝혀져서 선거 자체가 무효가 되었다. 김영구 의원은 이론상 재출마가 가능했지만 결국 불출마로 결론지었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고 변호사 생활을 하던 홍준표에게 다시 기회가 온 것이다.[5] 정치합시다에서 밝히길 본인은 이 때 패배를 예감했는데 사전 여론 조사에서 3배 가까이 차이날 정도로 불리했고, 거리에 나서면 욕도 많이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거 유세 시작 후 일주일간 집에서 바둑만 두고 있었다고 한다.[6] 총 48명의 서울 선거구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다선 의원은 겨우 8명(김덕룡, 이재오, 홍준표, 맹형규, 박성범, 박진, 원희룡, 권영세)으로 훗날 중립과 친박 사이에 걸친 권영세를 제외한 대부분이 친이계로 편입되었다.[7] 같이 추대되었던 정책위의장은 나중에 고용노동부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게 될 친이계 핵심 임태희였다.[8] 이전 판에는 거대 계파의 지원 없이 당대표에 선출됐다고 돼있었으나, 사실 이 당시 한나라당 주류였던 친이계가 유승민을 막기 위해 홍준표를 지원했었다.[9] 사실 그 때도 이미 유승민과 박근혜는 많이 소원해진 사이었으나, 언론에서는 계속 친박계로 분류하였다.[10] 전형적인 정신승리의 사례로 이 때 홍준표의 '사실상' 드립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조롱거리로 쓰였다.[11] 이 때 당 지도부와 상의없이 독단적인 행보를 펼친 오세훈에게 크게 실망해서 의절했다고 한다.[12] 처음에는 이명박 대통령에 용감히 항거하는 이미지로 당내 지지를 얻었는데, 정작 대표가 된 후에는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면서 친박과 친이 모두로부터 버림받았다.[13] [image][14] 이 일이 있은 후 강용석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 제기와 관련하여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였고 사퇴할 뻔 했지만 앞에서 서술한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범인이 '''현직 국회의장인 박희태'''로 밝혀지면서 국회의장직이 공석이 되어 결국 사퇴서가 수리되지 않았다. 참고로 2010년 9월에 여자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때문에 출당된 관계로 당적은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19대 총선에서 강용석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했다.[15] 홍준표 대표는 소장파 최고위원들과 갈등을 빚다가 "꼴 갖잖은게 대든다. 패주고 싶다." 같은 발언을 하여 갈등의 끝을 보여주고 만다.[16] 스트레스로 눈썹이 빠지자 눈썹문신을 하면서 진해진 눈썹 때문에 '홍그리버드'(...)라는 별명도 생긴 적이 있었다.[17] 다만 경원선의 선로용량을 생각해보면 비판만 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18] 이 때 복지 등 도민들에게 돌아갈 경제적 혜택은 거의 줄이지 않았다고 한다.[19] 사천은 KAI의 본사와 공장이 있는 등 원래부터 항공우주 산업이 발달된 지역이다.[20] 이 발언의 배경은 무상급식을 했더니 품질이 너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상급식 반대 여론이 줄지 않았던 것이었다. 감사까지 해본 결과 상당히 좋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손을 써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21] "두 행사를 했던 당시에는 어떻게 평가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결과를 갖고 효과를 분석했더니 많이 부족하다는 부정적 평가가 나왔다는 경남도청 관계자의 언급과 경남도가 '흑자 엑스포'라며 크게 자랑했던 국제행사를 2년 만에 '무분별한 국제행사'로 폄하하고 폐지했다는 반발로 나눠졌다.[22] 이를 두고 홍준표 지지자들은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성공한 도지사가 실패한 비서실장에게 패배한 선거'라고 평하기도 한다.[23] 주민소환은 경남 총 유권자의 10%인 27만명을 넘으면 홍준표의 소명을 받아 실시가 되는데 신청 서명한 사람이 35만 명에 달해 주민소환이 유력하다는 말도 나왔다. 선관위에 의해 투표 공고가 나오면 투표일까지 직위는 중단된다. 이후 투표가 진행되면 총 유권자의 1/3이 투표한 가운데 과반수를 차지하면 직무가 해제된다. 만약, 해제가 되면 2016년 4월 재보궐로 새로운 도지사를 뽑게 된다.# 다만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시점이었기에, 실제 주민소환이 이뤄지기 위해선 중복서명 검사 등의 필요한 절차들을 밟아야 했고, 총선이 끝난 뒤에 명단 검토 및 주민소환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였으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24] 실제로 홍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사건에 대해 "안타깝지만 박근혜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25] 하지만 조원진이 자유한국당을 탈당하면서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후보는 탄핵을 찬성하는 보수 세력은 물론이거니와 반대하는 보수세력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고사당하게 될 위기에 처하였다. 따라서 홍준표 후보는 당시 어느 쪽으로든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26] 개헌에 대해서는 문, 홍, 안의 공통 사안이기도 했으며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이기도 하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취임하면서 밝혔던 공약 사안이기도 하다.[27] 여담으로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이루어낸 사카모토 료마는 생전에 '일본을 한 번 세탁할까 한다'는 편지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28] 구체적인 상황은 이렇다. 홍준표의 공약 토론 중 유승민이 성완종 리스트를 두고 "본인도 세탁기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비판하자 홍준표가 "나는 이미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왔다"(=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니 괜찮다)고 반박했다. 그 후 심상정이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온 건 맞는데 그 세탁기가 고장난 거 아니냐"는 투로 받아치자 저 드립이 나온 것.[29] 10% 이상의 경우 50% 보전을 받는다.[30] 정작 선거유세기간 초반만 해도 문재인과 지지율 경쟁을 벌이던 안철수는 전국 250여개의 시군구 지역들 중 단 한곳에서도 1위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홍준표는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전 지역과 경상남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승리했고, 부산광역시, 강원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경기도, 인천광역시 일부 지역에서도 승리하면서 선전했다.[31] 그나마 후보들을 쳐내서 최종 선발된 후보들이 강성 친박, 철새 그리고 인지도가 떨어지는 도지사였다.[32] 적어도 19대 대선만 보면 예상 외로 많은 표를 얻으며 집토끼 전략이 성공한 건 맞다. 하지만 좌파, 친북 등의 단어로 네거티브 공세를 수없이 사용하며 색깔론으로 대선 구도를 끌고 가며 비호감도 상당히 많이 생긴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33] 당선자인 문재인이야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선거라도 낙선하더라도 15% 이상의 득표율만 얻으면 선거비용을 보전받으며 19대 대선의 경우 홍준표와 안철수가 각각 24.0%, 21.4%의 득표율로 비용을 보전받았다.[34] 민주당 계열 정당에는 정동영이 있다.[35] 다만 홍준표의 경우 그 상황 속에서는 상당히 선방한 편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새누리당 지지율이 4%였던 때가 있으니..[36] 2017.5.10에 뜬 인터넷 뉴스에서 언급되길 당권에 도전할 생각은 (적어도 지금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뒤집어서 보면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난데없이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 예를 들어 유력한 대선 주자가 갑자기 언론에 '나는 대통령에는 뜻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라며 공공연히 떠들다가 갑자기 '국민의 부름을 받아서'라는 이유로 대선에 출마를 하는 모습도 있다.[37] 썰전에서 나경원 의원과의 통화에서도 홍준표 전 후보에 대해 당 대표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38] 마침 홍준표의 주민등록상 주소가 송파구다. 실제로 대선 선거운동 기간 초반에 홍준표가 송파구민이니 찍어 달라는 현수막이 송파구 내 곳곳에 걸려있었다.[39] 사실 홍준표 역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송파구 갑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이 있다.[40] 다른 지역구인 노원구 갑 지역구의 경우 연고가 있는 사람이 당선되었기 때문에 새누리당계의 아성이고 노원구 을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하기는 하지만 항상 보수정당과 접전을 한 지역구다. 하지만 노원구 병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제외하면 민주당계나 진보정당이 매번 이겼다.[41]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노원 병은 열린우리당의 임채정 후보가 당선되며 4선을 기록하여 민주당 지지세가 상당히 높아졌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홍정욱 후보가 당선되어 여당 지지가 잠시 강력해졌지만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정권심판론이 작용해 진보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이겼고 이후 재보궐선거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기반 영향으로 안철수 전 의원이 재선에 성공했다.[42] 15대 맹형규, 17대 박계동, 18~19대 유일호[43] 사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이 지역의 새누리당 후보는 친박 성향의 유영하가 단수 공천되었지만 과거 의혹으로 인해 무공천 지역이 되고 친여 무소속 후보인 김영순 후보가 나왔지만 더불어민주당 최명길 후보에게 졌다.[44] 단순한 비아냥이 아니라, 민정수석직을 받아들이기 전에 서울대학교 교수를 먼저 사퇴해야 한다는 것.[45]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친박 퇴출과 동시에 바른정당 끌어안기가 현 상황에서는 최선이다. 홍준표 전 후보는 3월 경선 때부터 바른정당의 복당을 계속 외쳐 온 중심 인물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바른정당을 띄우면서 자유한국당을 고립시키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훗날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서는 친박 청산과 보수 세력의 재결집이 꼭 필요하다.[46] 실제로도 정우택 원내대표는 친박계와 텃밭 지역인 대구 경북의 정서를 잘 알고 있어서, 대선 기간 때 바른정당 탈당파의 복당을 줄곧 반대해 왔다.[47] 그러나 기껏 친박의 정치 생명을 살려 줬더니 책임론을 들고 나오면서 홍준표를 방해하자, 이 후 인터뷰에서는 '친박은 빠졌으면 한다'에서 굉장히 불쾌해하는 표정을 짓는다.[48] 그러나 조국 모친의 재단 탈세 문제 공세를 통해 드러난 나경원 본인의 재단 탈세가 큰 핸디캡으로 작용하고 있다.[49] 홍준표와 경선에서 경쟁했던 후보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인제, 김진태는 사실상 친박으로 부류되는 인물들이다.[50] 말이 혈투이지 사실상 김영삼이 3당합당 이후 민정계를 몰아낸 투쟁을 자신이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자신의 편을 갖고 있던 김영삼과는 다르게 이분은 독고다이 스타일이라 자신의 편 조차도 얼마 없다.[51] 실제로 바른정당 의원들이나 지자체장을 보면 아버지가 고위 관료이거나 부자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유승민, 김세연, 김무성, 남경필 등이 있다.[52] 보수 대통합을 외치면서 정작 같은 보수를 물어뜯고 있는 당사자의 작태, 그리고 박근혜를 싫어하는 정치인이면서 겉으로는 박근혜 지지자들한테 듣기 좋은 '박근혜 사면(유세에서는 정확히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 '(아프면)병원에 보내자'고 했지만 일반 유권자들이 보기에는 박근혜 사면이라는 말을 돌려 말하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친북좌파 집권막자'같은 입발린 소리만 골라서 하는 모습, 또 선거 후에는 '친박은 빠져라'라고 속내를 드러내는 솔직하고 당당하지 못한 모습 등을 비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변명아닌 변명을 하자면 박근혜 탄핵 이후 대다수의 민심은 문재인 및 더불어민주당 쪽으로 돌아섰고 보수는 결집력을 잃고 방황했다. 심지어 지난 선거에 이명박과 박근혜를 투표한 사람들 중에서도 민주당으로 돌아선 사람이 나올 정도. 이대로 간다면 자유한국당은 궤멸될 것이 뻔했기에 선거에 이기려는 목적보다는 당장에 방황하는 보수표를 끌어모으는 목적이 더 강했을 것이다. 홍준표가 선거 기간동안 했던 '막말'들은 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지극히 계산적인 말이었다. 게다가 좋든 싫든 보수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구심점이자 상징이 '박근혜'였으니 계파가 없는 홍준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마자 친박세력과 곧바로 의절하는 이중적인 모습은 멀리 내다보지 못한 경솔한 처사였다.[53] 실제로 전여옥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닌 게 바른정당은 현재 탄핵 찬성 보수층인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온전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TK와 서부경남 민심은 이들을 배신자로 취급하고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TK와 서부경남이라는 든든한 지지기반이 있지만 이 지역들이 모두 친박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라 친박청산을 하는 순간 TK와 서부경남이라는 지지기반 자체가 날아가버린다. 그렇다고 친박청산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탄핵 찬성 보수층인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얻기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결국 자유한국당은 모든 선거에서 TK와 서부경남 빼놓고는 거의 외면당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라 사실상 딜레마에 빠져 있다. 결국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보수정당은 앞으로 정권잡기가 어려워지며 소멸될 가능성이 높다.[54] 박근혜도 2011년 경 공식적으로 계파 해체를 선언#했기 때문에 이들에게 더이상 명분은 없다. 그저 홍준표 말대로 선거철때나 박근혜 얼굴, 이름 팔아서 경북에서 당선되어 정치생명을 이어가는 바퀴벌레같은 자들임은 틀림없다.[55] 비록 세력은 홍준표가 불리하나 이미 대다수의 국민들은 골수 박근혜 지지자들을 제외하곤 친박으로부터 등을 돌렸기 때문에 명분은 홍준표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이 쇄신하는 길은 친박정당이라는 프레임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새로운 보수정당으로 태어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 정론.[56] 19대 대선에서 안철수에게 표가 잠식당한 것이 이를 잘 보여주는데 자유한국당의 집토끼인 보수 지지층들조차도 홍준표에 대해 돼지 흥분제 자서전 기입 논란등으로 대통령이 되기에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다고 보았기에 안철수를 찍어줬을 정도이다. [57] 여기서 화룡점정을 찍은게 바로 일자리 110만개 공약은 실무진이 했기에 자신은 왜 그렇게 숫자가 나온지 모른다 발언이었다. 자신의 대통령 당선 공약 수치를 자신도 왜 그렇게 됐는지 몰랐다는 것. 결국 안철수에게 크게 털렸다.[58] 박근혜조차도 대선에서는 젊은층의 지지를 30프로 이상은 받았지만 이 분에 대한 젊은층의 지지는 10프로 미만 정도이다. 중장년 보수층은 자유한국당을 지지하지만 젊은 보수층은 바른정당을 지지하는 쪽이 더 많은 실정이다. 사실 박근혜의 경우에는 여성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워 여성 유권자들의 표를 많이 받은 영향도 없잖아 있다. 반면 홍준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9] 당장 바른정당이 탄생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친박계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다.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과 연대하거나 당대당 통합을 하기 위한 조건으로 박근혜에 대한 출당조치, 친박계 인적청산을 그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60] 이런 상황은 홍문종이 홍준표를 향해 '''"낮술하셨나?'''"라는 말을 통해 잘 드러나 있다.[61] 비슷한 사례로 YS가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의 당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민주자유당의 최대 주주인 민정계를 몰아내는 투쟁을 벌이다가 TK에서 반YS정서가 일어 YS가 1992년 대선 때 TK에서 60프로 미만으로 득표했으며 민정당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자민련이 대구지역 의석 13석 중 8석을 휩쓴 전력이 있다.[62] TV 토론회에서 존경하는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은 것을 시작으로 지방 유세에서도 '박근혜가 옥중에서 병고를 치르고 있는데 병원에 보내야 한다', '박근혜가 공정하게 재판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중장년층의 박근혜 지지자들의 표심을 자극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이용한 것까지는 그런대로 효과를 봤으나 이에 욕심을 부려 일관되게 박근혜와 선을 긋기는 커녕 간접적으로 기대는 모습을 보여 당장에 선거에는 표를 좀 더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에 가깝다. 독에 든 성배를 마신 셈이나 다른 없다.[63]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당시 소장파였던 젊은 대권주자들이 대거 바른정당으로 넘어간 상황이라 자유한국당에는 인물들이 많이 없어진 상황이다. 그나마 김진태, 나경원이 있지만 워낙 구설수나 행보들이 좋지 않아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문재인과의 알력 다툼으로 인해 민주당을 탈당한 또다른 독고다이 파 조경태 의원이 남아있기는 하다. 부산에서 꾸준히 텃밭을 갈고 닦아 부산 사하 을에서만 4선을 한 인물. 허나 지난 경선 과정에서 친박에게 밀려 1차 컷오프를 당할 정도로 아직 당내 지명도는 극히 낮다.[64] 대표적으로 박근혜가 김종인을 등용하여 경제 민주화 공약을 내걸어서 대통령이 되었다가 정작 대통령이 된 후에는 그것을 내팽개친 전력이 있다.[65] 정확히는 김무성계(친무)와 친홍의 연합전선이다.[66] 2016년 12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사퇴 이후 자유한국당은 근 6개월 반 동안 인명진 비대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의 대표 권한대행 체제로 돌아갔다.[67] 지금까지 여야를 통틀어서 임기를 다 채운 당대표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실제로 홍준표도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보수계열에서는 그나마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 황우여 새누리당 초대 대표가 2년을 채웠으나, 민주당계에선 거의 없다. 2018년 문재인 정부의 인기에 힘입어 대선과 지선을 모두 압승한 추미애가 간만에 2년 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퇴임하는 대표가 되었다.[68] 2006년 한나라당 혁신위원장을 맡아 당이 부흥하는데 기여했으나 2008 총선에서 공천 탈락한 친박들이 당을 뛰쳐나가 미래희망연대에 가담, 2011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당 개혁안이 거부당하고 친박 브레인 유승민이 최고위원들의 동시 사퇴를 주도하면서 당 대표에서 반강제로 사퇴, 2012년 경남도지사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는 과정에서 경선부터 친박의 집중 견제를 받고 후보로 선출되어 선거 운동을 할 때도 박근혜와 친박의 눈치가 보였던 당원들이 제대로 도와주지 않음.[69]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복지라는 대세를 바탕으로 적절히 녹아들고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를 잘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반면 자유한국당은 반문과 종북, 그리고 반공으로 공격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비전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단적으로 공무원 증원에 반대하고서는 정작 국회의원 세비와 보좌관 증원에는 찬성을 한다. 여기에는 국민의당, 더불어민주당까지 한몸으로 찬성했다. 유일하게 반대한 세력은 바른정당인데 홍보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여론도 타지 못했다.[70] 류석춘 혁신위원장이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이기 때문에 이뤄진 듯 하다.[71] 좀 더 자세히 본다면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남녀차별과 폭력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류석춘이 여성에게 벌어지는 폭력은 구시대적 발상이고 홍준표는 집안일은 자신도 한다는 발언을 했다. 즉 젠더 폭력이라는 단어 보다는 여성이 당하고 있는 폭력에 무지하다는 의미다.[72] 2018년 지방선거가 아닌 이유는 대선 출마 전까지 이미 경남 도지사였다는 점도 있지만, 지자체장은 정치적인 입장을 직접적으로 표명하는 게 금지되기 때문에 당대표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점이 더 크다.[73] 공화당 소속[74] 공화당 소속[75]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적 핵무장은 아예 다른 개념이며, 후자가 현실적으로 더 어렵다.[76]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적극 지지하는 것은 애초에 미국이 한국의 핵개발을 막아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리고 우리나라 핵무장은 곧 일본의 핵 무장, 대만의 핵무장을 불러오지 않는다고 장담 못한다. 그건 중국이 제일 싫어하는 시나리오다.[77] 박근혜를 출당시킴으로써 명분을 살리고 동시에 이의 대한 비판적 논조를 이어가 박근혜 지지세력을 흡수할 요량이지만, 그게 가능할 리 없다.[78] 현재 SNS나 자유한국당의 일부 의원들이 신년기자회견 때 문재인 대통령 앞에 있던 프롬프터를 가지고 보좌관들이 작성한 답변을 문재인 대통령이 그대로 따라 읽었을 뿐이라는 폄하 공작을 하고 있는데 앞에 놓여있던 프롬프터의 스크린에는 기자들의 성명과 소속 언론사 질문 내용이 있었을 뿐이었다.[79] 실제로 밀양-의령-함안-창녕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엄용수 의원이 재판을 받고 있어 의원직 상실형이 선고된다면 창녕이 고향인 홍준표 대표가 이 지역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창원 성산구나 고성-통영에 출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80] 홍준표가 문제시한 기사는 바로 이 기사이다.[81] 대구 동구 을은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인데, 유승민 의원은 지역구 여론조사에서 자유한국당 김규환 후보에게 크게 밀리고 있는 형국이며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에서 당선된 엄용수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2019년 11월 의원직을 상실하여 2020년 4월까지 의석이 비어 있다.[82] 홍준표의 입장에서 보면 연고도 전혀 없는 지역인데다 총선에서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된 사례가 한 번도 없는 곳인지라 사실상 나가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83]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경상남도에서 김해시와 더불어 민주당의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84] 주호영 의원이 지역구를 수성구 을에서 수성구 갑으로 옮겨 수성구 을에는 미래통합당 의원이 사실상 비게 되었다.[85] 이를 이용해 '8번을 찍으면 팔(8)자를 고칩니다.'라고 홍보하기도 한다.[86]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여지듯이 50대 60대 이상만 빼면, 홍준표 후보의 지지세가 압도적으로 강했다. '''심지어 10~20대에서도 홍 후보의 지지세가 압도적으로 강했다.'''[87] 한나라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88] 무소속 당선자1명이 홍준표다.[89] 실제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양당 득표를 기준으로 의석수를 따지면 더불어민주당이 개헌선을 훨씬 뛰어넘는 230석을 얻는 결과가 나온다.[90] 출구 조사와 함께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실제로 80%를 찍었던 시절이다.[91] 얼마나 심했냐 하면, 도널드 트럼프가 지지자들의 노벨상 챈트에 웃으며 반응하기도 했고 문재인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을 정도였다. 당시 홍준표는 이런 현상을 경계하고 '''위장평화쇼'''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판했지만, 오히려 ''''평화 방해꾼', '전쟁광'''' 프레임이 씌워지는 역풍을 맞았고, 결국 보수 철옹성이라고 불리던 '''강남3구와 옹진군, 강원도 최전방 지역'''까지 더불어민주당에 패했다. 그러나 지방선거 대패 이후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원자력 연구소를 철거한 뒤에도 여러 개의 핵무기 개발 시설이 가동 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 뒤로 북한의 도발이 다시 시작되면서, 홍준표의 예상은 어느정도 적중했다.[92] 복당 신청을 한 홍준표, 김태호, 권성동, 윤상현이 복당하면, 그래도 107석이 된다. 다만 재보궐 선거 전까지는 이게 통합당의 최대 확보 가능 의석 수 이다. 다른 보수정당들이 모두 원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93]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종인과 대립각을 세우는 등 복당계를 내고 나서도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94] “이번 압박과 설움의 총선을 거치면서 외롭게 광야에서 나홀로 총선을 치루던 저를 도와주신 정규재TV, 황장수TV, 김거희TV, 홍카TV, 이큐 채널, 강우나라TV, 떳다!송만기TV, 장준호TV, 상도TV, 에타몽TV, 채널300 등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95] “선거기간 내내 홍준표 비방 방송을 일삼던 내친구 K TV, 대구까지 내려와 상대 후보 지지 방송을 하던 신의 한 수, 박철언 장관 보좌관 출신이 운영하는 유투브, 내가 보기에는 FALSE에 불과한데 FACT라고 우기는 TV에는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돌려서 비판했다.[96]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부작용이 많은 제도로 지적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김현미/비판 및 논란#s-1.1.1 참조.[97] 지나치게 안전진단 통과 요건이 까다로워서 위험성이 큰 건물만 재건축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를 완화해서 재건축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다.[98] 이 문제는 대구지역의 오랜 떡밥이다. 이 문제를 잘 해결하면 TK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있다.[99] 다만 김종인이 재건 과정에서 기본소득제 등의 급진적인 정책을 받아들이고, 보수색 빼기를 주장하는 등 당이 좌클릭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어 이에 불만을 가지는 보수층을 흡수할 가능성도 존재한다.[100] 조승래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고, 정청래 의원이 고문을 맡고 있는 등 민주당 의원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박성중, 이영, 권성동 의원 같은 보수 정치인도 속해있다.[101] 한기호, 최승재, 윤한홍, 배현진, 김기현, 홍문표, 백종헌, 조명희, 구자근, 권성동, 강기윤, 홍석준, 윤상현, 윤재옥, 하영제, 최연숙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