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지명
1. 개요
1.1. 이해를 돕기 위해
2. 후한 13주
2.1. 사례(司隸)
2.1.1. 하남윤(河南尹)
2.1.2. 하내군(河內郡)
2.1.3. 하동군(河東郡)
2.1.4. 홍농군(洪農郡)
2.1.5. 경조윤(京兆尹)
2.1.6. 좌풍익(左馮翊)
2.1.7. 우부풍(右扶風)
2.2.1. 위군(魏郡)
2.2.2. 거록군(巨鹿郡)
2.2.3. 상산국(常山國)
2.2.4.1. 박릉군(博陵郡)
2.2.5. 안평국(安平國)
2.2.6. 하간국(河間國)
2.2.7. 청하국(淸河國)
2.2.8. 조국(趙國)
2.2.9. 발해군(勃海郡)
2.2.9.1. 장무군(章武郡)
2.3.1. 탁군(涿郡)
2.3.2. 광양군(廣陽郡)
2.3.3. 대군(代郡)
2.3.4. 상곡군(上谷郡)
2.3.5. 어양군(漁陽郡)
2.3.6. 우북평군(右北平郡)
2.3.7. 요서군(遼西郡)
2.4.1. 상당군(上黨郡)
2.4.1.1. 낙평군(樂平郡)
2.4.2. 태원군(太原郡)
2.4.3. 상군(上郡)
2.4.4. 서하군(西河郡)
2.4.5. 신흥군(新興郡)
2.4.6. 안문군(雁門郡)
2.6.1. 한중군(漢中郡)
2.6.2. 파군(巴郡)
2.6.3. 광한군(廣漢郡)
2.6.4. 촉군(蜀郡)
2.6.5. 건위군(建爲郡)
2.6.6. 장가군(牂牁郡)
2.6.7. 월수군(越嶲郡)
2.6.8. 익주군(益州郡)
2.6.9. 영창군(永昌郡)
2.7.1. 남해군(南海郡)
2.7.2. 창오군(蒼梧郡)
2.7.3. 울림군(鬱林郡)
2.7.4. 합포군(合浦郡)
2.7.4.1. 고량군(高凉郡)
2.7.5. 교지군(交趾郡)
2.7.6. 구진군(九眞郡)
2.7.7. 일남군(日南郡)
2.8.1. 남양군(南陽郡)
2.8.2. 남군(南郡)
2.8.3. 강하군(江夏郡)
2.8.4. 영릉군(零陵郡)
2.8.5. 계양군(桂陽郡)
2.8.6. 무릉군(武陵郡)
2.8.7. 장사군(長沙郡)
2.8.7.1. 한창군(漢昌郡)
2.8.8. 신성군(新城郡)
2.10.1. 영천군(穎川郡)
2.10.2.1. 양안군(陽安郡)
2.10.3. 양국(梁國)
2.10.4. 패국(沛國)
2.10.4.1. 초군(譙郡)
2.10.5. 진국(陳國)
2.10.6. 노국(魯國)
2.11.1. 동해군(東海郡)
2.11.2. 낭야국(琅邪國)
2.11.3. 팽성국 (彭城國)
2.11.4. 광릉군(廣陵郡)
2.11.5. 하비국 (下邳國)
2.11.5.1. 동성군(東城郡)
3.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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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주요 도시들의 현재지명
- 후한-삼국시대 지도 - 군현 및 주요 지명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2]
- 260년 기준 지도 - 260년의 군현 및 주요 지명 외에도 전한~서진시대의 지명도 살펴볼 수 있다.
1. 개요
후한 13주를 중심으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지명을 알아보는 문서.
위, 촉, 오, 이 삼국이 활약해 남긴 기반은 이후 서진-남북조시대-수,당 형성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실질적인 중국 중세의 시작이다.
1.1. 이해를 돕기 위해
- 군(郡): 후한 행정구역의 기본단위. 각 군에 태수(太守)를 임명하여 행정을 담당하게 하였다. 태수 밑에는 태수의 업무를 보조하는 승(丞)이 있었으며, 승 밑에는 승의 업무를 보조하는 장사(長史)가 있었다.
- 국(國): 왕국(王國)의 줄임말로 태수가 아닌, 황자(皇子)가 봉해진 군. 황자를 왕(王)이라 하며 왕은 명예직이고 실질적으로 국을 다스리는 사람은 국상(國相)이다.
- 속국(屬國): 이민족(異民族)이 모여 있는 군. 태수가 아닌, 도위(都尉)가 임명되었고, 속국은 중앙 정부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지 않았다.
- 현: 군의 아래에 있는 행정구역. 일만 호(戶) 이상의 현에는 현령(縣令)을, 일만 호 이하의 현에는 현장(縣長)을 임명하여 행정을 담당하게 하였다.
- 후국(侯國): 열후(列侯)가 봉해진 현이며, 현령 또는 현장의 역할을 하는 상(相)이 임명되었고, 상 이하의 관직은 그 후국에 봉해진 열후가 임명하였다.
2. 후한 13주
2.1. 사례(司隸)
낙양, 장안 주위의 수도권 일대. 서울의 관청[司]에 직속[隷]된 지역이라 사례이다. 절대 사주가 아니다. 후한에서는 하남(낙양을 속현으로 포함), 하내, 하동, 홍농, 경조(장안을 속현으로 포함), 우부풍, 좌풍익 총 7군을 거느렸다. 장안 부근의 경조, 우부풍, 좌풍익은 '삼보'라고 불렀고, 낙양부근의 하남, 하내, 하동을 삼하(三河)라고 한다. 현대 한국에 비유하자면 '경기도'와 비슷한 어감과 역할을 한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조위 건국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행정구역 변경이 행해지기도 했다. 조조가 기주 목이 되면서 조조의 세력권을 키우기 위해 기주를 엄청나게 키웠는데 그 과정에서 하내와 하동을 떼어서 기주에 줬다. 이후 양주를 없앴다가 재설치하는 과정에서 삼보를 떼어서 옹주에 주었다. 조위가 성립하자 기주를 비정상적으로 크게 운용할 명분이 없어졌으므로 기주를 축소하면서 하내와 하동을 사례에 되돌려주었다. 조위 시절에는 행정구역을 더욱 잘게 쪼개어 평양, 원무, 야왕, 형양[3] , 조가 6군을 증설했다.
후한 말기에는 동탁과 이각, 곽사의 깽판으로 폐허가 되어 황량했었다. 특히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합네 하면서 낙양 주민들을 강제로 장안으로 이주시킨 뒤 낙양을 완전히 소각시킨 사건은 인구에 회자될 정도의 악행이었다. 이후 조조가 강북을 장악한 뒤 낙양에 대한 복구가 이루어졌으며, 이후 조위 건국 이후 수도를 낙양으로 정해 천도하여 다시 수도권의 위상을 회복했다.
사례 지역은 말하자면 수도권이기 때문에, 군사령관+지방관격인 주목이나 자사를 설치하지 않았으며 이곳의 병권만을 담당하는 벼슬로 '''사예교위'''라는 관직이 있었다. 매우 요직이었으며, 요즘식으로 따지면 수도방위사령관 겸 서울시 경찰청장 정도의 직위가 된다. 참고로 사례교위는 원래 순수한 문관직이었다. 말하자면 사례의 관리들을 관리하는 직업으로 사례의 자사라고 할 수 있는 관직으로 대충 중앙 감찰관쯤 되는 위치였다. 하지만 후한에 이르러서는 치안에 관련된 업무로 바뀐다.
원소가 젊은 시절 이 벼슬을 했고, 이후 동탁이 집권한 후 장제가 맡았다. 조조도 헌제를 끼고나서 이 벼슬을 승상과 겸직했다. 촉나라는 건국 이후 이곳을 장악한 적이 없었지만 장비가 이 벼슬을 맡았다. 장비 사후 제갈량이 사례교위를 겸임했다.
2.1.1. 하남윤(河南尹)
후한의 수도인 낙양이 이곳에 있다. 하남윤은 관직 이름이기도 하며, 이곳은 태수를 두지 않고, 하남윤이 다스린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특별시 시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후한 말 하남윤 동쪽 지방을 다스리는 형양도위가 생겼다. 총 22현.
2.1.1.1. 낙양(洛陽)
- 낙양현(洛陽縣)
후한의 수도로 황궁이 있다. 하남윤의 치소 역시 낙양현에 존재한다. 맹광의 고향이다
- 하남현(河南縣)
현대 뤄양 시의 중심부이자, 주나라 때의 낙읍이 있던 곳.
- 양현(梁縣)
현대의 루저우(여주시)
- 평음현(平陰縣)
- 곡성현(穀城縣)
후한이 낙양을 도읍으로 삼으면서 방위용으로 새로 지은 함곡관이 여기에 있었다.
- 구씨현(緱氏縣)
- 공현(鞏縣)
현대의 공의(궁이시)
- 성역현(成睪縣)
- 신성현(新城縣)
현대의 이천(이촨현)
- 언사현(匽師縣)
현대의 언사(옌스시), 극정의 고향이다.
- 신정현(新鄭縣)
현대의 신정(신정시)
- 평현(平縣)
- 육혼현(陸渾縣)
190년까지는 흥농군에 속해 있었으나, 어느 시점부터 하남윤에 소속 되었다.
2.1.1.2. 형양도위(滎陽都尉)
- 형양현(滎陽縣)
현대의 싱양(형양시), 형양도위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권현(卷縣)
- 원무현(原武縣)
현대의 엄무(싱양시의 일부), 싱양시의 북쪽
- 양무현(陽武縣)
현대의 원양(위안양현)
- 중모현(中牟縣)
현대의 중모(중무현), 정저우시 동쪽, 연의에서 진궁이 이곳의 현령으로 있다가 조조를 체포한 곳이다. 삼국지연의에는 초군에 소속되어있는 걸로 나오는데, 당시엔 하남윤이 맞다. 후한의 수도가 허창으로 옮겨지게 됨에 따라 하남윤이 213년 예주로 편입되면서 하남군이 되었고, 이후 초군이 신설되고 팽창하면서 초군의 소속이 된 게 후세에 초군 중모현으로 나타난 거지, 조조가 체포된 시점은 분명히 사례 하남윤 중모현이었다. 반욱의 고향이다.
- 개봉현(開封縣)
- 원릉현(菀陵縣)
- 경현(京縣)
- 밀현(密縣)
현대의 신밀(신미시)
2.1.2. 하내군(河內郡)
한호의 고향이다. 총 18현.
- 회현(懷縣)
현대의 무척(우즈현), 하내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하양현(河陽縣)
현대의 맹주(멍저우시)
- 지현(軹縣)
현대의 제원(지위안시), 서상의 고향이다.
- 파현(波縣)
- 심수현(沁水縣)
- 야왕현(野王縣)
현대의 심양(沁阳;친양시)
- 온현(溫縣)
- 주현(州縣)
- 평고현(平睾縣)
- 산양읍(山陽邑)
현대의 초작(자오쭤시)
- 무덕현(武德縣)
- 획가국(獲嘉國)
현대의 위빈(신샹현 웨이빈구)
- 수무현(脩武縣)
현대의 획가(훠자현)
- 공현(共縣)
현대의 휘현(후이센시)
- 급현(汲縣)
현대의 위휘(웨이후이시)
- 조가현(朝歌縣)
현대의 기현(치현)
- 탕음현(蕩陰縣)
현대의 탕음현(탕인현)
- 임려현(林慮縣)
현대의 임주(린저우시)
2.1.3. 하동군(河東郡)
총 20현.
하동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양현(楊縣)
서황의 고향이다.
- 평양국(平陽國)
- 임분현(臨汾縣)
- 분음현(汾陰縣)
- 포판현(蒲板縣)
- 대양현(大陽縣)
- 해현(解縣)
관우 일족의 고향이다.
- 피씨현(皮氏縣)
- 문희읍(聞喜邑)
관구검 일족의 고향이다
- 강읍(絳邑)
- 영안현(永安縣)
- 하북현(河北縣)
- 의씨현(猗氏縣)
- 동원현(東垣縣)
- 양릉현(襄陵縣)
- 북굴현(北屈縣)
- 포자현(蒲子縣)
- 확택현(濩澤縣)
- 단씨현(端氏縣)
2.1.4. 홍농군(洪農郡)
소제 유변이 폐위되고 홍농왕으로 봉해짐에 따라 190년 일시적으로 홍농국(洪農國)이 되었다. 총 8현.
- 홍농현(弘農縣)
홍농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전국시대부터 존재하던 옛 함곡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섬현(陝縣)
- 민지현(黽池縣)
- 신안현(新安縣)
- 의양현(宜陽縣)
- 노씨현(盧氏縣)
- 호현(湖縣)
- 화음현(華陰縣)
2.1.5. 경조윤(京兆尹)
전한의 수도였기에 이곳 역시 경조군이 아니라 경조윤이다. 경조윤이 다스린다. 사마의의 아버지 사마방이 이 직책을 역임한 바 있다. 경조윤, 좌풍익, 우부풍을 묶어 삼보#s-1(三輔)라고 칭한다. 총 12현. 엄상의 고향이 이곳이다.
전한의 수도였으나 왕망이 전한을 멸망시킨 뒤 왕망을 쓰러뜨리고 세운 후한 왕조가 들어서자 낙양에게 수도를 내주었다. 이후 동탁이 장안에서 11명의 황제를 보내고 낙양에서 11명의 황제를 보냈으니까 다시 장안으로 가자느니 한고제가 장안에 도읍을 정하고 한나라를 세웠으니까 한고제의 뜻에 따라 다시 장안으로 천도해야 하느니 온갖 변명을 붙여가며 천도해서 일시적으로 후한의 수도가 되었으나 동탁이 사망한 이후 수도를 다시 낙양으로 이전했다.
- 패릉현(覇陵縣)
- 두릉현(杜陵縣)
- 정현(鄭縣)
- 신풍현(新豊縣)
- 남전현(藍田縣)
- 장릉현(長陵縣)
- 상현(商縣)
- 상락국(上雒國)
- 양릉현(陽陵縣)
- 하봉현(下邽縣)
30년에 폐현되었다가 159년에 부활.
- 음반현(陰盤縣)
30년에 폐현되었다가 한영제 재위 기간에 신풍현에서 분리되면서 부활.
2.1.6. 좌풍익(左馮翊)
삼보(三輔)의 하나로 이곳을 다스리는 관직명이기도 하다. 전한 건국 초기에 수도인 장안 근처를 다스리는 관직으로 내사를 관직을 두기로 하였고 좌우내사로 나뉘게 되었다. 좌내사가 과거 하상군 지역을 통치하게되었고, 좌내사의 명칭이 좌풍익으로 바뀌면서 굳어지게 되었다. 삼보의 난으로 인해 초토화되어 결국 삼국이 정립되면서 풍익군(馮翊郡)으로 바뀌고 풍익 태수가 통치하게 된 지역. 총 13현.
- 고릉현(高陵縣)
197년까지 좌풍익의 치소가 있었다.
- 지양현(池陽縣)
- 운양현(雲陽縣)
- 대우현(祋祤縣)
- 빈양현(頻陽縣)
- 만년현(萬年縣)
- 연작현(蓮勺縣)
- 중천현(重泉縣)
- 임진현(臨晉縣)
197년부터 좌풍익의 치소가 있었다. 삼보의 난으로 인한 처사.
- 합양현(郃陽縣)
- 하양현(夏陽縣)
- 아현(衙縣)
- 속읍현(粟邑縣)
2.1.7. 우부풍(右扶風)
삼보(三輔)의 하나로 이곳을 다스리는 관직명이기도 하다. 전한 건국 초기에 수도인 장안 근처를 다스리는 관직으로 내사를 관직을 두기로 하였고 좌우내사로 나뉘게 되었다. 우내사가 과거 위남군과 중지군 지역을 통치하게되었고, 우내사의 명칭이 우부풍으로 바뀌면서 굳어지게 되었다. 삼보의 난으로 인해 초토화되어 결국 삼국이 정립되면서 부풍군(扶風郡)으로 바뀌고 부풍태수가 통치하게 된 지역. 194년에 칠현이 신평군으로 이현되면서 총 10현.
- 괴리현(槐里縣)
우부풍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안릉현(安陵縣)
- 평릉현(平陵縣)
- 무릉현(茂陵縣)
- 호현(鄠縣)
- 미현(郿縣)
법정의 고향이다.
- 무공현(武功縣)
- 순읍현(栒邑縣)
- 미양현(美陽縣)
- 진창현(陳倉縣)
2.2. 기주(冀州)
현재의 허베이 성, 산둥 성, 허난 성 일대. 기주 목 한복이 공손찬과 원소의 공격으로 몰락한 다음에는 공손찬과 원소가 패권을 놓고 대립하다가 원소가 공손찬을 물리치고 주요 거점으로 삼는다. 관도전 이후 주도 위군 '업'성은 조조의 주요 거점이었다. 조비가 선양받기 전까지 위왕국의 수도였다.
- 청주의 평원군이 213년 기주로 옮겨오지만, 청주 쪽으로 기재를 한다.
2.2.1. 위군(魏郡)
후한 말에는 총 15현이었으나 관도대전 이후 조조가 이곳을 거점으로 해왔고, 212년 위공이 되면서 동부도위, 서부도위가 나뉘어 통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213년 거록군에서 곡주(曲周), 남화(南和), 영도(廮陶) 3현, 안평군에서 임(任) 1현, 연주의 동군에서 돈구(頓丘), 동무양(東武陽), 발간(發干), 위국(衛國) 4현, 조국에서 양국(襄國), 역양(易陽), 한단(邯鄲) 3현, 사례 하내군에서 임려(林慮), 조가(朝歌), 탕음(蕩陰) 3현 총 14현이 편입되어 '''총 29현'''이 되었고, 위나라의 건국 때까지 유지되었다, 위나라가 건국되고 거록군의 8현이 편입되어 광평군[4] 이 되면서 위군서부도위가 다스리고, 발간현과 관도현이 합하여 양평군이 되면서 위군동부도위가 다스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위군서부도위, 위군동부도위, 위군을 삼위(三魏)라 불렸다.
'''이곳엔 후한 말 15현만 작성하도록 한다.'''
- 업성(鄴城)
위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관도대전 이후부터 조조의 주요 거점이었다. 조비가 선양받기 전까지 위왕국의 수도였다.
- 곡량현(曲梁縣)
- 관도현(館陶縣)
관도대전의 그 관도가 아니다. 관도대전의 관도는 官渡다.
- 내황현(內黃縣)
- 무안현(武安縣)
- 번양현(繁陽縣)
- 사현(沙縣)
- 양기현(梁期縣)
- 여양현(黎陽縣)
- 원성(元城)
- 위현(魏縣)
- 음안현(陰安縣)
- 척구현(斥丘縣)
- 청연현(淸淵縣)
- 평은현(平恩縣)
2.2.2. 거록군(巨鹿郡)
황건적의 난의 진원지이다. 213년 곡주(曲周), 남화(南和), 영도(廮陶) 3현이 위군에 편입이 되어 규모가 줄어들게 되며, 위나라 건국 이후에는 광평, 척장, 열인, 광년, 평향 5현마저 광평군으로 분리되어 떨어져 나간다. 전풍, 이부, 장천, 시묘, 양훈의 고향. 총 16현→13현→8현.
삼국지와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초한지에서 항우가 진(秦)군과 초(楚)군의 건곤일척의 결전을 벌인 거록대전이 여기서 벌어졌다.
- 거록현(鉅鹿縣)
- 곡주현(曲周縣)
- 광년현(廣年縣)
- 광종현(廣宗縣)
계교 전투의 주무대가 이곳이다.
- 광평현(廣平縣)
- 교현(鄡縣)
- 남련현(南縣)
- 남화현(南和縣)
- 도현(陶縣)
- 양씨현(楊氏縣)
- 열인현(列人縣)
- 영도현(廮陶縣)
거록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그러나 영도현이 213년 위군에 편입이 되므로 그 이후 거록 태수의 치소가 어딘지는 불명.
- 임현(任縣)
거록현이었으나 안평국으로 옮겼다가 위군으로 편입이 된다.
- 척장현(斥章縣)
- 평향현(平鄕縣)
- 하곡양현(下曲陽縣)
2.2.3. 상산국(常山國)
209년에 국이 폐지되어 상산군으로 바뀐다. 총 13현.
- 고읍(高邑)
- 구문현(九門縣)
- 난성현(欒城縣)
- 남행당현(南行唐縣)
- 도향현(都鄕縣)
- 방자현(房子縣)
- 상애현(上艾縣)
- 영수현(靈壽縣)
- 원씨현(元氏縣)
상산왕과 상산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정형현(井陘縣)
- 진정현(眞定縣)
- 평극현(平棘縣)
- 포오현(蒲吾縣)
2.2.4. 중산#s-1국(中山國)
이곳은 유비와 인연이 많은 곳인데 유비의 직계조상인 중산정왕 유승의 임지가 이곳이며 유비 역시 장거, 장순을 토벌한 댓가로 이곳에서 현위를 하다가 독우가 파견왔는데 독우를 구타하고 도망쳤다. 박릉군으로 여오현, 안국현이 이현되었다가 위나라 때 돌아왔다. 총 13현.
- 광창현(廣昌縣)
- 노노현(盧奴縣)
중산정왕과 중산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당현(唐縣縣)
- 망도현(望都縣)
- 무극현(毋極縣)
- 북평현(北平縣)
- 상곡양현(上曲陽縣)
- 신시현(新市縣)
- 안국현(安國縣)
박릉현으로 이현되었다가 돌아왔다.
- 안희현(安熹縣)
유비가 장거, 장순을 토벌한 댓가로 이곳에서 현위로 임명되었는데 현위로 재임하던 도중 독우를 만났고 독우가 유비를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고 무시하자 열받은 유비가 독우를 기습해서 곤장 200대를 때린 후 (다함께) 도망친 곳이다.[6] 유비는 이곳에서 도망친 후 대주태수 유회[7] 에게 의탁한다.
- 여오현(蠡吾縣)
박릉현으로 이현되었다가 돌아왔다.
- 포음현(蒲陰縣)
- 한창현(漢昌縣)
2.2.4.1. 박릉군(博陵郡)
연희(延熹) 원년(158년) 6월, 환제(桓帝)는 부친의 묘를 '박릉'이라고 이름짓는 한편 여오후국(蠡吾侯國)의 이름을 같은 이름으로 고치고, 중산 · 안평 · 하간의 땅을 떼어내어 박릉군을 신설하였다. 이후 한말에 폐지되었다. 박릉군의 속현은 문헌으로 전해지는 바가 없으며, 공표비(孔彪碑)에 고양(高陽) 남심택(南深澤) 박릉(博陵) 안국(安國) 안평(安平)이라는 이름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공표비에 기록된 현 이름들이 박릉군의 속현의 전부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위나라 건설 이후에 박릉군이 존재하였고 공표비의 5현과 일치하며, 총 7현이 존재했다.
제갈공명의 친우 최주평이 박릉군 출신이다
- 박릉현(博陵縣)
박릉 태수의 치소가 존재했다.
- 안평현(安平縣)
안평국에서 이현해왔다.
- 요양현(饒陽縣)
안평국에서 이현해왔다.
- 남심택현(南深澤縣)
안평국에서 이현해왔다.
- 안국현(安國縣)
중산국에서 이현해왔다.
- 고양현(高陽縣)
하간국에서 이현해왔다.
- 여오현(蠡吾縣)
중산국에서 이현해왔다.
2.2.5. 안평국(安平國)
거록군의 임현이 잠시 옮겨왔다가 위군으로 옮겨졌다. 안평현, 요양현, 남심택현이 박릉군으로 이현되었다가 위나라 때 돌아왔다. 총 13현.
- 관진현(觀津縣)
- 경현(經縣)
- 남궁현(南宮縣)
- 남심택현(南深澤縣)
박릉군으로 이현되었다가 돌아왔다.
- 당양현(堂陽縣)
- 무수현(武遂縣)
- 무읍(武邑)
- 부류현(扶柳縣)
- 부성(阜城)
- 신도현(信都縣)
안평왕과 안평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안평현(安平縣)
박릉군으로 이현되었다가 돌아왔다.
- 요양현(饒陽縣)
박릉군으로 이현되었다가 돌아왔다.
- 하박현(下博縣)
2.2.6. 하간국(河間國)
고양현이 박릉현으로 이현되었다가 위나라 때 돌아오게 되었다. 총 11현.
- 고양현(高陽縣)
박릉현으로 이현되었다가 돌아오게 되었다.
- 궁고현(弓高縣)
- 낙성(樂成)
하간왕과 하간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동평서현(東平舒縣)
- 막현(鄚縣)
장합의 고향이다.
- 무원현(武垣縣)
- 문안현(文安縣)
- 성평현(成平縣)
- 속주현(束州縣)
- 역현(易縣)
- 중수현(中水縣)
2.2.7. 청하국(淸河國)
148년에 이름이 감릉국(甘陵國)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206년 봉국이 폐지되어 감릉군이 되었다. 조조의 딸이자 하후무의 아내인 청하공주의 임지이다. 특이하게 여자가 왕으로 봉해졌고 그게 호칭이 되었다. 총 7현.
- 감릉현(甘陵縣)
청하왕과 청하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광천현(廣川縣)
- 동무성(東武城)
- 수현(鄃縣)
주령의 고향이다.
- 역막현(繹幕縣)
- 영현(靈縣)
- 패구현(貝丘縣)
2.2.8. 조국(趙國)
213년에 조왕 유규가 박릉왕으로 봉지가 옮겨지고, 한단, 양, 역양이 위군에 편제되면서 조군(趙郡)으로 재편성 되었다. 두 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유지가 되었으며, 위나라가 건국된 후인 232년 조조의 아들인 거록왕 조간(曹幹)이 조군으로 임지를 옮기게 되면서 조국으로 다시 복귀하였다. 총 5현.
- 백인현(柏人縣)
- 양국(襄國)
- 역양현(易陽縣)
- 중구현(中丘縣)
- 한단현(邯鄲縣)
조왕과 안평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2.2.9. 발해군(勃海郡)
213년 양신현이 낙릉군으로 편입된다. 인근의 바다인 발해만에서 유래한 이름. 총 9현.
- 고성현(高城縣)
- 남피현(南皮縣)
발해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원소가 이곳의 태수로 부임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래서 삼국지 게임에서는 주로 남피가 도시로 나온다. 삼국지8에서 단 한 번 발해군이 등장했다.
- 동광현(東光縣)
- 부양현(浮陽縣)
- 수현(脩縣)
- 양신현(陽信縣)
213년 낙릉군으로 편입된다.
- 요안현(饒安縣)
- 장무현(章武縣)
- 중합현(重合縣)
2.2.9.1. 장무군(章武郡)
건안 말기에 발해군의 장무, 하간국의 문안, 속주, 동평서를 합쳐 신설하였다. 위나라 때도 유지가 되었으며, 가평 연간인 249-253년 사이에 폐군되었다. 각각 본래의 속했던 군으로 편입되었다. 총 4현.
- 장무현(章武縣)
발해군에서 이현해왔다. 장무 태수의 치소가 존재했다.
- 동평서현(東平舒縣)
하간국에서 이현해왔다.
- 문안현(文安縣)
하간국에서 이현해왔다.
- 속주현(束州縣)
하간국에서 이현해왔다.
2.3. 유주(幽州)
현재의 베이징, 톈진 일대. 전국시대 연(燕)의 근거지. 조정에서 부임한 유주목 유우와 공손찬이 대립하다가 유우를 몰아낸 다음에는 공손찬의 거점이 되었으며, 공손찬이 원소에게 패망한 뒤에는 원소의 아들 원희가 유주목이 되어 유주를 다스렸다. 후대 이 땅에서 근거한 세력들은 대체로 연과의 연고성으로 "연"을 들먹이게 된다. 장비도 이러한 연고로 스스로 "연인"이라 칭한다. 그 이후로는 오호십육국시대에 고구려와 싸운 모용씨의 연이 대표적이다. (무협지에 종종 나오는 모용세가의 그 연나라가 이 나라다.)
- 요서중료(遼西中遼)가 190년 요동에서 분리되어 설치되었지만, 그 후 어찌되었는지, 속현은 무엇이었는지는 불명.
2.3.1. 탁군(涿郡)
손례의 고향인 용성현(容城縣)은 전한 때 첫 설치가 된 이래로 폐지와 신설을 반복했다. 후한 말에는 폐지되어 범양현에 속해있었으나, 위건국 이후 다시 신설되었다. 장비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장비가 어느 현 출신인지는 알 수 없다. 총 7현.
- 고안현(故安縣)
- 방성현(方城縣)
유방의 고향이다.
- 범양현(范陽縣)
- 북신성현(北新城縣)
- 양향현(良鄕縣)
- 주현(逎縣)
- 탁현(涿縣)
탁군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유비와 간옹[8] 의 고향으로 삼국지연의에 의하면 유비가 바로 이곳의 누상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누상촌이라 불리는 이유는 누에나무인 뽕나무로 유명했기 때문이다.[9] 현재는 허베이성 바오딩 시의 현급시 줘저우(涿州, 탁주)로, 베이징의 남서쪽에 인접해 있다. 어쨌든 이러한 배경 덕에 누상촌은 "천하의 그릇 유비가 돗자리를 짜고, 만인지적 장비가 돼지를 잡고 있으며, 의협의 적란운 관우가 서당훈장을 하고 있고,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옹 이 동네 백수를 하고있으며, 송대의 무기인 언월도를 82근으로 선뜻 만들어주는 대장장이가 있으며, 황건적의 5만 군사를 무찌르는 500명의 동네청년이 있고, 협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선뜻 내주는 장세평 같은 상인이 있는 오늘도 평화로운 동네."라는 장난스러운 수식이 붙기도 한다. 유비의 스승인 노식의 고향도 이곳이다.
2.3.2. 광양군(廣陽郡)
전한 때 연국(燕國)이었던 곳이다. 삼국시대 때는 다시 연국(燕國)이 되었다. 총 5현.
- 계현(薊縣)
광양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으며 유주의 중심지. 지금의 베이징이다.
- 광양현(廣陽縣)
- 군도현(軍都縣)
- 안차현(安次縣)
- 창평현(昌平縣)
2.3.3. 대군(代郡)
총 11현.
- 고류현(高柳縣)
대군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권정현(狋氏縣)
- 당성현(當城縣)
- 대현(代縣)
- 도인현(道人縣)
- 동안양현(東安陽縣)
- 마성현(馬城縣)
- 반씨현(班氏縣)
- 북평읍(北平邑)
- 상간현(桑乾縣)
- 평서현(平舒縣)
2.3.4. 상곡군(上谷郡)
주로 오늘날 허베이성 및 베이징의 북부 구역이다. 총 8현.
- 거용현(居庸縣)
- 광녕현(廣甯縣)
- 구무현(雊瞀縣)
- 반현(潘縣)
- 영현(甯縣)
- 조양현(沮陽縣)
상곡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탁록현(涿鹿縣)
- 하락현(下落縣)
2.3.5. 어양군(漁陽郡)
주로 오늘날 베이징의 동부 구역이다. 총 9현.
- 광평현(獷平縣)
- 노현(潞縣)
- 안락현(安樂縣)
- 어양현(漁陽縣)
어양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오늘날 베이징 시 미원 구.
- 옹노현(雍奴縣)
- 천주현(泉州縣)
- 치해현(傂奚縣)
- 평곡현(平谷縣)
- 호노현(狐奴縣)
2.3.6. 우북평군(右北平郡)
총 4현. 위나라에서는 이름을 북평(北平)으로 고친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북평으로 나온다. 이 북평이란 이름이 베이징 시의 별명인 북평과 같아서 혼동하는 경우도 있으나, 베이징 시는 광양군 계현을 중심으로 하며 삼국지의 이 우북평군과는 가깝지만 좀 떨어져 있다.
- 무종현(無終縣)
전주의 고향이다.
- 서무현(徐無縣)
- 준미현(俊靡縣)
- 토은현(土垠縣)
2.3.7. 요서군(遼西郡)
총 5현.
- 비여현(肥如縣)
- 양락현(陽樂縣)
요서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오늘날 진저우 시 이 현(义 县).
- 영지현(令支縣)
- 임유현(臨渝縣)
- 해양현(海陽縣)
2.3.8. 요동군(遼東郡)
청천강 이북 평안북도 일부도 포함된다. 총 11현.
- 답씨현(沓氏縣)
- 망평현(望平縣)
- 무려현(無慮縣)
- 문현(汶縣)
- 번한현(番汗縣)
현대의 평안북도 박천군(?).
- 서안평현(西安平縣)
이곳이 압록강 하구 주위. 현대의 단둥 시 진안구 인근이다.
- 신창현(新昌縣)
- 안시현(安市縣)
- 양평현(襄平縣)
- 평곽현(平郭縣)
- 후성현(候城縣)
현대의 선양 시 인근.
2.3.9. 현도군(玄菟郡)
이 시기의 현도군은 한반도에서 밀려나 지금의 랴오닝성 푸순 시 일대를 영역으로 하고 있었다. 요양현, 고현, 후성현은 원래 요동군이었으나 소속이 변경되었다. 총 6현.
- 고구려현(高句驪縣)
현대의 무순시. 현도 태수의 치소가 있다.
- 고현현(高顯縣)
- 상은태현(上殷台縣)
- 서개마현(西蓋馬縣)
현대의 평안북도 강계군 혹은 위원군.
- 요양현(遼陽縣)
- 후성현(候城縣)
2.3.10. 낙랑군(樂浪郡)
한반도 북부에 존재했던 군으로 한국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으며 한 무제가 고조선을 박살내고 설치한 이래 위촉오가 전부 망할 때도 쭉 유주 소속이였던 지방. 오늘날의 북한 평안남도와 황해도 일대에 해당된다. 현재 위치에 대해서는 항목 참고. 위서에 의하면 하후현, 이풍, 장집, 하후패의 남은 친족이 이곳으로 유배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교주에 이어서 유배지로 각광받은 모양이다(...) 이후 서진의 혼란을 틈타 313년 고구려의 미천왕이 낙랑군을 멸망시켰고, 427년 장수왕이 이곳으로 천도함에 따라 고구려의 수도 '''평양'''으로써 기능을 하게 된다. 총 18현.[10]
- 낙도현(樂都縣)
- 남함현(諵邯縣)
현대의 평안남도 순천군.
- 누방현(鏤方縣)
현대의 평안남도 성천군.
- 대방현(帶方縣)
현대의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항목에도 나오지만 대방군으로 분리된다.
- 둔유현(屯有縣)
현대의 황해도 황주군.
- 사망현(駟望縣)
현대의 평안남도 강동군.
- 소명현(昭明縣)
현대의 평안남도 신천군 북부면.
- 수성현(遂城縣)
현대의 황해도 수안군.
- 열구현(列口縣)
현대의 황해도 은율군 서부면.
- 장잠현(長岑縣)
현대의 황해도 신천군 남부면.
- 점제현(占蟬縣)
현대의 평안남도 용강군 해운면.
- 제해현(提奚縣)
현대의 황해도 평산군.
- 조선현(朝鮮縣)
현재는 평양직할시 토성동. 낙랑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증지현(增地縣)
현대의 평안남도 안주군.
- 패수현(浿水縣)
현대의 평안북도 영변군.
- 함자현(含資縣)
현대의 황해도 안악군.
- 해명현(海冥縣)
현대의 황해도 해주시.
- 혼미현(渾彌縣)
현대의 평안남도 평원군.
2.3.10.1. 대방군(帶方郡)
2세기 후반이 되어 주변 세력들의 압박을 받자 204년 요동의 지배자 공손강이 건안 연간(建安年間, 196~220) 낙랑군 둔유현(황해도 황주) 이남의 땅을 분할시켜 대방군을 설치하였다. 서진 황족 사마요가 유배된 곳인 만큼 중원에서 거리가 떨어져 있으며, 위치가 위치인 만큼 한군현과 적대한 주변 삼한, 예맥계 선주민들과 자주 충돌하였다. 246년 기리영 전투에서는 이들의 공격으로 대방 태수 궁준이 전사하기도.
- 낙도현(樂都縣)
- 대방현(帶方縣)
- 열구현(列口縣)
- 장잠현(長岑縣)
- 제해현(提奚縣)
- 함자현(含資縣)
- 해명현(海冥縣)
2.3.11. 요동속국(遼東屬國)[11]
도하, 빈도, 창료현은 본래 요서의 현이었으나 이현했다. 총 6현.
- 도하현(徒河縣)
- 무려현(無慮縣)
- 방현(房縣)
- 빈도현(賓徒縣)
- 창료현(昌遼縣)
도위의 치소가 이곳에 있었다.
- 험두현(險瀆縣)
2.4. 병주(并州)
현재의 산서성 일대를 중심으로 섬서성 북부와 내몽골 자치구의 접경지역 일부를 포함. 삼국지연의에서 표현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무시를 많이 당하는 지방.[12] 그도 그럴 것이 병주는 교주와 더불어 다른 지방에 비해 인구가 눈에 띄게 적은 지방이기 때문[13] 이었다. 한 주(州)인데 성 하나나 둘 정도로 때우는 경우가 많은 것 역시 인구가 너무 적고 영향력도 약화되어 사실상 방치 상태였던 옛 삭방주 지역의 군들을[14] 을 따로 독립된 성으로 만들어주기 뭐해서인 듯하다. 후한 초 인구 급감 이전부터,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으로 군들을 많이 설치하다 보니 주를 설치하기 전부터 이미 인구에 비해 군을 지나치게 많이 만든 경향이 있었다. 결국 건안 20년(215년)에 신흥군(新興郡)을 새로 만들어서 운중군(雲中郡), 정양군(定襄郡), 삭방군(朔方郡), 오원군(五原郡)의 4개 군을 모조리 군(郡)에서 현(縣)으로 강등시키고 합쳐서 신흥군에 배속시켰다. 사실 각각 군이라고 하기엔 인구가 지나치게 적어서 어쩔 수 없이 병합해야만 했는데 운중군은 26,430명, 정양군은 13,571명, 삭방군은 7,843명, 오원군은 22,957명에 불과해서 군(郡) 주제에 어지간한 현(縣)보다도 인구가 더 적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도 그런 게 흉노족의 침범이 많아서 준 군사주였기 때문에 그런 거지 아니었으면 주로 독립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 출신들은 하나같이 무예가 뛰어났다. 실제로 기마민족의 활동이 많아 그런 기풍이 깊게 남아 영향을 주었다. 그리하여 병주 태원은 후대 당나라의 건국 세력인 농서 이씨의 근거지가 된다.
원소의 조카 고간의 지배지역이었다. 여포와 장료, 왕윤의 고향이다. 정원이 자사를 지내기도 했는데, 가끔씩 형주 자사로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동탁은 병주의 목 신분으로 소제를 위협해 제위를 박탈시키고 헌제를 등극시킨 후 스스로 상국(相國)에 취임했다.
2.4.1. 상당군(上黨郡)
건안 20년 (215년) 상당군에서 낙평군이 떨어져 나갔다. 총 13현.
- 견씨현(泫氏縣)
- 고도현(高都縣)
- 곡원현(穀遠縣)
- 노현(潞縣)
- 동제현(銅鞮縣)
- 둔류현(屯留縣)
- 양아현(陽阿縣)
- 양원현(襄垣縣)
- 열현(涅縣)
- 의씨현(猗氏縣)
- 장자현(長子縣)
상당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점현(沾縣)
- 호관현(壺關縣)
2.4.1.1. 낙평군(樂平郡)
건안 20년에 신설된 군. 총 3현.
- 낙평현(樂平縣)
낙평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상애현(上艾縣)
- 요아현(轑阿縣)
2.4.2. 태원군(太原郡)
총 16현.
- 경릉현(京陵縣)
- 계휴현(界休縣)
- 낭맹현(狼孟縣)
- 대릉현(大陵縣)
- 기현(祁縣)
왕윤의 고향이다.
- 양곡현(陽曲縣)
- 양읍현(陽邑縣)
- 어리현(於離縣)
- 여이현(慮虒縣)
- 오현(鄔縣)
- 우현(盂縣)
- 유차현(榆次縣)
- 자씨현(茲氏縣)
- 중도현(中都縣)
- 진양현(晉陽縣)
태원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왕창 일족의 고향이다.
- 평도현(平陶縣)
2.4.3. 상군(上郡)
219년 폐지된다. 총 10현.
- 고노현(高奴縣)
- 구자속국(龜玆屬國)
- 백토현(白土縣)
- 부시현(膚施縣)
상군 태수의 치소가 있다.
- 사연현(奢延縣)
- 정림현(楨林縣)
- 정양현(定陽縣)
- 조음현(雕陰縣)
- 칠원현(漆垣縣)
- 후관현(候官縣)
2.4.4. 서하군(西河郡)
원래 서하태수의 치소는 평정현이었으나 영화(永和) 4년(139년)에 강족(羌族)이 침입해서 어쩔 수 없이 이석현으로 옮겼다. 총 13현.
- 고랑현(皋狼縣)
- 광연현(廣衍縣)
- 낙가현(樂街縣)
- 미직현(美稷縣)
- 은양현(圜陽縣)
- 은음현(圜陰縣)
- 이석현(離石縣)
서하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익란현(益蘭縣)
- 인현(藺縣)
- 중양현(中陽縣)
- 평륙현(平陸縣)
- 평정현(平定縣)
과거 서하 태수의 치소가 있었던 곳이다.
- 평주현(平周縣)
2.4.5. 신흥군(新興郡)
건안 20년(215년), 운중군 · 정양군 · 삭방군 · 오원군을 현으로 강등시키고 이 지역 모두를 합쳐 새로 만든 군이다. 저 군들이 인구가 지나치게 적은 탓에 모조리 합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7만 명에 불과해서 여전히 작은 군이었다. 총 7현.
- 광목현(廣牧縣)
- 구원현(九原縣)
구(舊) 오원군으로 신흥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마읍현(馬邑縣)
- 삭방현(朔方縣)
구(舊) 삭방군
- 운중현(雲中縣)
구(舊) 운중군
- 정양현(定襄縣)
구(舊) 정양군
- 평성현(平城縣)
2.4.5.1. 오원군(五原郡)
삭방군과 마찬가지로 건안 20년(215년) 오원현으로 강등당하고 신흥군의 속현이 되었다. 총 10현.
- 구원현(九原縣)
- 만백현(曼柏縣)
- 무도현(武都縣)
- 문국현(文國縣)
- 성의현(成宜縣)
- 오원현(五原縣)
- 의량현(宜梁縣)
- 임옥현(臨沃縣)
- 하음현(河陰縣)
- 서안양현(西安陽縣)
2.4.5.2. 운중군(雲中郡)
삭방군과 마찬가지로 건안 20년 운중현으로 강등당하고 신흥군의 속현이 되었다. 후한의 군벌 장양의 고향이다. 총 11현.
- 기릉현(箕陵縣)
- 무진현(武進縣)
- 무천현(武泉縣)
- 북여현(北輿縣)
- 사남현(沙南縣)
- 사릉현(沙陵縣)
- 성락현(成樂縣)
- 운중현(雲中縣)
- 원양현(原陽縣)
- 정양현(定襄縣)
- 함양현(咸陽縣)
2.4.5.3. 정양군(定襄郡)
삭방군과 마찬가지로 건안 20년 정양현으로 강등당하고 신흥군의 속현이 되었다. 총 5현.
- 낙현(駱縣)
- 동과현(桐過縣)
- 무성현(武成縣)
여건의 고향이다.
- 선무현(善無縣)
- 중릉현(中陵縣)
2.4.5.4. 삭방군(朔方郡)
후한 시대에 존재한 모든 군(郡) 중에서 인구가 가장 적어서 어지간한 현(縣)과 대등하거나 더 적었다. 심지어 삭방군에 소속된 현 중에서는 인구가 고작 수백 명인 현도 있었다. 이유인 즉 흉노 등 북방 오랑캐에 시달려서 인구감소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건안 20년 삭방군은 삭방현으로 강등당하고 신흥군의 속현이 되었다.
- 광목현(廣牧縣)
- 대성현(大城縣)
- 삭방현(朔方縣)
오늘날 오르도스 시 인근.
- 삼봉현(三封縣)
- 옥야현(沃野縣)
- 임융현(臨戎縣)
삭방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2.4.6. 안문군(雁門郡)
총 14현.
- 강음현(彊陰縣)
- 곽현(崞縣)
- 광무현(廣武縣)
- 극양현(劇陽縣)
- 날현(埒縣)
- 노성현(鹵城縣)
- 누번현(樓煩縣)
- 마읍현(馬邑縣)
장료의 고향이다.
- 무주현(武州縣)
- 번치현(繁畤縣)
- 왕도현(汪陶縣)
- 원평현(原平縣)
- 음관현(陰館縣)
안문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평성현(平城縣)
2.5. 양주(凉州), 일명 서량
서량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있으나, 이는 송나라 때의 지명으로 당연히 삼국시대에는 없던 지명이다. 두음 법칙을 적용하지 않고 한자 원음대로 읽으면 량주가 되며, 아래에서 설명할 양주(揚州)와는 한국어 한자발음으로만 같으니 주의. 후한 말에 옹주와 양주로 분리되기도 하였으며, 옹주에는 장안이 있었다.[15] 후일 병주와 함께 북주, 수, 당의 근거지가 된다. 현대 중국의 간쑤성과 거의 일치한다.
삼국시대에는 동탁의 근거지였으며, 안 그래도 변장, 북궁백옥, 이문후, 왕국 등이 다툼을 벌이는 곳이었는데 동탁 사후에 이각과 곽사가 몰락한 뒤에는 마등과 한수, 심지어 송건 따위(…)의 여러 군벌이 많이 일어서서 다툼을 벌이는 난세였다.
- 양주와 옹주를 나눠서 작성하였다.
2.5.1. 양주(凉州)
2.5.1.1. 농서군(隴西郡)
백석현을 포함하면 총 11현.
- 적도(狄道)
농서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왕국의 고향이다.
- 안고현(安故縣)
- 저도현(氐道縣)
- 수양현(首陽縣)
- 대하현(大夏縣)
- 양무현(襄武縣)
- 임조현(臨洮縣)
동탁의 고향이다.
- 장현(鄣縣)
- 부한현(枹罕縣)
평한왕을 자칭한 송건의 고향으로, 송건은 이 현 하나만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 하관현(河關縣)
- - 220년 강족의 반란으로 폐현되었다.
2.5.1.2. 한양군(漢陽郡)
본래 이름은 '''천수군(天水郡)'''이었으나 74년 한양군으로 개칭되었고, 위나라에서 이름을 도로 천수군으로 돌렸다, 연의에서 천수군으로 소개하였으므로[16] 대중에게는 천수라는 이름이 더욱 익숙하다. 환도는 188년 남안군으로 이현했다가 213년 다시 이현해왔으며, 같은해 신흥, 중도는 남안군에서 이현해왔다. 제갈량의 북벌과 관련되어 익숙한 지명이 많이 보인다. 상규, 청수, 한견, 면저도는 193년 영양군으로 이현했다가 213년 다시 이현해왔다. 총 18현.
- 기현(冀縣)
한양군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강유의 고향이다.
- 망원현(望垣縣)
- 아양현(阿陽縣)
- 약양도(略陽道)
- 용사현(勇士縣)
- 성기현(成紀縣)
- 농현(隴縣)
- 난우현(蘭干縣)
- 평양현(平襄縣)
- 현친현(顯親縣)
- 서현(西縣)
- 환도(豲道)
방덕의 고향이다.
- 신흥현(新興縣)
- 중도현(中陶縣)
- 상규현(上邽縣)
- 청수현(清水縣)
- 한견현(罕幵縣)
- 면저도(緜諸道)
2.5.1.3. 무도군(武都郡)
총 7현, 이후 제갈량의 북벌로 인해 촉한에 편입되었다.
- 무도현(武都県)
무도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상록현(上祿県)
- 고도현(故道県)
- 하지현(河池県)
- 저현(沮県)
- 강도현(羌道県)
- 하변현(下辨県)
2.5.1.4. 금성군(金城郡)
총 7현
- 윤오현(允吾縣)
금성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호문현(浩亹縣)
- 영거현(令居縣)
- 지양현(枝陽縣)
- 금성현(金城縣)
변장의 고향이다.
- 유중현(榆中縣)
- 윤가현(允街縣)
- 임강현(臨羌縣)
- 파강현(破羌縣)
- 안이현(安夷縣)
2.5.1.5. 안정군(安定郡)
총 6현. 양관의 고향이다.
- 고평현(高平県)
- 조나현(朝那県)
황보숭 일족의 고향이다.
- 임경현(臨涇県)
호준 일족의 고향이다.
- 오씨현(烏氏県)
양곡의 고향이다.
- 삼수현(三水県)
- 팽양현(彭陽県)
2.5.1.6. 신평군
194년에 신설되었다. 총 2현.
- 칠현(漆縣)
신평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순고현(鶉觚縣)
본래 안정군 소속이었다.
2.5.1.7. 북지군(北地郡)
총 6현이다 점차 축소되어 위나라대에 이르러서는 부평, 이양 2현만 남게 된다. 이각의 고향이 이 고을이다. 정확한 현은 불명.
- 부평현(富平縣)
북지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이양현(泥陽縣)
부손의 고향이다.
- 익거현(弋居縣)
- 염현(廉縣)
- 참현(參縣)
- 영주현(靈州縣)
2.5.2. 옹주(雍州)
후한 말엽 기준이며, 위나라 때는 옹주 항목을 참조. 행정구역이 대격변급으로 바뀐다.
2.5.2.1. 무위군(武威郡)
현재의 우웨이. 총 14현.
- 고장현(姑臧縣)
무위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가후의 고향이 바로 이곳.
- 장액현(張掖縣)
- 무위현(武威縣)
- 휴도현(休屠縣)
- 저차현(揟次縣)
- 난아현(鸞烏縣)
- 박환현(撲𠟼縣)
- 온위현(媼圍縣)
- 창송현(蒼柗縣)
- 선위현(宣威縣)
- 조려현(祖厲縣)
- 순음현(鶉陰縣)
- 현미현(顯美縣)
- 좌기관(左騎官)
2.5.2.2. 장액군(張掖郡)
장액속국이 장액군 내에 존재한다. 곽사의 고향이 이 고장이다. 총 7현.
- 역득현(觻得縣)
장액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었다
- 소무현(昭武縣)
- 산단현(刪丹縣)
- 저지현(氐池縣)
- 오란현(屋蘭縣)
- 여간현(驪靬縣)
- 번화현(番和縣)
2.5.2.2.1. 장액속국(張掖屬國)
본래 장액군에 속했고, 전한 때 속국도위가 설치가 되었으며, 한 안제 때 투항하는 이민족들을 다스리기 위해, 장액도위의 구역으로 장액속국을 두었고, 동시에 장액거연속국도 만들어졌다. 5관을 두었고 5관의 이름이 다음과 같다. 5관의 현재 위치는 불명.
- 후관(侯官)
- 좌기(左騎)
- 천인(千人)
- 사마관(司馬官)
- 천인관(千人官)
2.5.2.2.2. 서군(西郡)
헌제 건안 연간에 장액군에서 분리되었다. 총 1현.
- 일륵현(日勒縣)
서군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2.5.2.3. 주천군(酒泉郡)
총 9현.
- 녹복현(祿福縣)
주천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표시현(表是縣)
방육의 고향이다.
- 악관현(樂涫縣)
- 옥문현(玉門縣)
- 회수현(會水縣)
- 지두현(池頭縣)
- 안미현(安彌縣)
- 건제현(乾齊縣)
- 연수현(延壽縣)
2.5.2.4. 돈황군(敦煌郡)
삼국지연의에서 하후무가 제갈량에게 포로로 잡히는 등 온갖 망신을 당하고 난 이후 이곳으로 도망친 뒤 소식이 끊겼다. 총 6현.
- 돈황현(敦煌縣)
돈황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막고굴도 이곳에 있다.
- 명안현(冥安縣)
- 효곡현(效穀縣)
- 연천현(淵泉縣)
장창의 고향이다.
- 광지현(廣至縣)
- 용륵현(龍勒縣)
2.5.2.5. 서해군(西海郡)
본래 장액군에 속했고. 전한 때, 거연성을 장액도위의 치소로 하였다. 한안제 때, 장액도위의 구역으로 장액거연속국(張掖居延屬國)을 두어, 장액군과 동급으로 취급하였다. 동시에 장액속국도 만들어졌다. 장액거연속국은 거연 1현으로만 한정되었다. 후한 말 헌제 초기 무위 태수 장아(張雅)의 주청으로 장액거연속국이 서해군으로 바뀌었다.
- 거연현(居延縣)
서해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2.5.2.6. 서평군(西平郡)
213년 금성군에서 분할하여 신설되었다. 총 4현.
- 서도현(西都縣)
서평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임강현(臨羌縣)
- 파강현(破羌縣)
- 안이현(安夷縣)
2.6. 익주(益州)
현재의 쓰촨성(사천), 충칭시, 윈난성, 산시성, 간쑤성 일부 일대. 유주목 유언이 다스리다가 아들 유장에게 물려주었고, 유비가 유장을 쫓아낸 다음 촉한의 땅이 된다. 진(秦)나라 때 죄인을 유배보내는 벽지로 파촉[17] 이라 불리기도 하며 악명을 떨쳤으나 점차 초한-신, 후한 건국의 혼란을 거치며 근거세력들[18] 이 비옥한 토지로 개발한다. 비단으로 유명하였으며 현재도 쓰촨성은 비단으로 유명하다.
- 유장이 만들었다고 하는 파동속국(巴東屬國. 또는 부릉속국, 부릉군)이라는 곳도 있다.
2.6.1. 한중군(漢中郡)
한중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으며 이 전투에서 하후연이 전사했다. 총 9현.
- 남정현(南鄭縣)
한중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말 그대로 한중군의 중심이자 도심.
- 면양현(沔陽縣)
- 방릉현(房陵縣)
- 상용현(上庸縣)
맹달이 관우의 죽음에 연루되어 형벌을 피하고자 위나라로 귀순한 후 위나라에서 조비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이곳의 지방관이 되었으나 조비가 죽자 맹달은 제갈량과 내통하였고 결국 사마의의 지시에 의해 움직인 신탐과 신의에게 살해당했다. 맹달이 항복하면서 방릉현, 서성현이 합쳐져 형주 신성군(新城郡)으로 승격한다.
- 서성현(西城縣)
염온의 고향이다.
- 석현(錫縣)
- 성고현(成固縣)
- 안양현(安陽縣)
- 포중현(褒中縣)
2.6.2. 파군(巴郡)
총 14현.
- 강주현(江州縣)
파군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구인현(朐忍縣)
- 낭중현(閬中縣)
- 부릉현(涪陵縣)
- 선한현(宣漢縣)
- 안한현(安漢縣)
- 어복현(魚復縣)
이곳에 백제성이 있다.
- 임강현(臨江縣)
감녕의 고향이다.
- 점강현(墊江縣)
- 지현(枳縣)
- 충국현(充國縣)
- 탕거현(宕渠縣)
- 평도현(平都縣)
- 한창현(漢昌縣)
구부의 고향이다
2.6.2.1. 영녕군(永宁郡)
190년 신설되었다가 201년 다시 파군으로 흡수되었다. 치소는 강주현에 있었다.
2.6.2.2. 파동군(巴東郡)
195년 유장이 파군에서 고릉군(固陵郡)을 분할했고, 201년에 다시 이름을 파동군으로 고쳤다. 유비의 입촉 후 고릉군으로 바뀌었다가 221년 다시 파동군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그렇게 파동, 파서, 파군이 삼파(三巴)로 불리게 된다.
- 어복현(魚復縣)
- 구인현(朐忍縣)
- 한풍현(漢豐縣)
- 양거현(羊渠縣)
- 무현(巫縣)
- 북정현(北井縣)
2.6.3. 광한군(廣漢郡)
한안제 때(108년) 광한속국이 생겼고, 부현에서 낙현으로 치소가 바뀌었다 217년 유비가 광한군의 재동, 부, 가맹 등의 현을 분할하여 재동군을 만들었다. 총 11현.
- 가맹현(葭萌縣)
촉한의 중요한 방어선 중 하나인 가맹관이 있는 곳이다. 217년 재동군으로 이현.
- 광한현(廣漢縣)
- 낙현(雒縣)
광한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그리고 익주 자사의 치소도 이곳이다. 삼국지연의의 낙성이 바로 이곳.
- 덕양현(德陽縣)
- 면죽현(綿竹縣)
- 백수현(白水縣)
- 부현(涪縣)
- 신도현(新都縣)
- 십방현(什邡縣)
- 재동현(梓潼縣)
217년 재동군으로 이현.
- 처현(郪縣)
2.6.3.1. 재동군(梓潼郡)
217년 유비가 신설하였다. 총 6현.
- 재동현(梓潼縣)
재동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부현(涪縣)
- 한수현(漢壽縣)
- 백수현(白水縣)
- 한덕현(漢德縣)
- 검문현(劍門縣)
촉의 최후 항쟁장소로 유명한 관문인 검각이 이곳에 있다.
2.6.3.2. 광한속국(廣漢屬國)
한무제 때 저족의 땅인 음평도, 강저도, 승저도가 광한군에 소속이 되었고, 광한속국이라 되었다.
- 강저도(剛氐道)
- 승저도(甸氐道)
- 음평도(陰平道)
이곳에 치소가 있었다.
2.6.4. 촉군(蜀郡)
총 12현.
- 강원현(江原縣)
- 광도현(廣都縣)
- 광유현(廣柔縣)
- 면사도현(綿虒道縣)
- 문강도현(汶江道縣)
- 번현(繁縣)
- 비현(郫縣)
- 성도현(成都縣)
- 임공현(臨邛縣)
- 잠릉현(蠶陵縣)
- 전저도현(湔氐道縣)
- 팔릉현(八陵縣)
2.6.4.1. 촉군속국(蜀郡屬國)
전한시대 때까지만 해도, 이 4지역은 각각 현으로 구분이 되어있었고, 촉군의 4부도위 중 서부도위가 맡은 지역이었다. 그러나, 연광 원년(기원전 122년)에 이 지역을 촉군속국으로 따로 떼어서 촉군이 관할하게 되었다. 184년 한가군(漢嘉郡)이라고 불리었고, 188년 다시 촉군속국이 되었다. 삼국시대에 다시 한가군이 되었다.
- 모우(旄牛)
- 사(徙)
- 엄도(嚴道)
- 한가(漢嘉)[19]
이곳에 촉군속국도위 또는 한가 태수의 치소가 있었다.
2.6.4.2. 문산군(汶山郡)
촉군 북부도위가 맡은 지역이며, 문산군-북부도위-문산군-북부도위로 계속 바뀌다가, 유비의 입촉 후 진도가 북부도위로 임명되었고, 문산군 태수가 되면서 문산군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2.6.5. 건위군(建爲郡)
총 9현.
- 강양현(江陽縣)
- 남광현(南廣縣)
- 남안현(南安縣)
비시의 고향이다
- 무양현(武陽縣)
건위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양홍의 고향이다
- 부절현(符節縣)
- 북도현(僰道縣)
- 우비현(牛鞞縣)
- 자중현(資中縣)
- 한안현(漢安縣)
2.6.5.1. 건위속국(犍為屬國)
본래 건위군의 남군도위에게 속해있었고 107년 건위속국도위로 이름이 바뀌었다.
- 주제(朱提)
이곳에 도위의 치소가 있다.
- 한양(漢陽)
2.6.5.2. 강양군(江陽郡)
213년 신설되었다.
- 한안현(漢安縣)
- 강양현(江陽縣)
강양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부절현(符節縣)
2.6.6. 장가군(牂牁郡)
총 16현.
- 고저란현(故且蘭縣)
장가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구정현(句町縣)
- 누강현(漏江縣)
- 누와현(漏臥縣)
- 담고현(談稾縣)
- 담지현(談指縣)
- 동반현(同竝縣)
- 무단현(毋單縣)
- 무렴현(毋斂縣)
- 서수현(西隨縣)
- 심봉현(鐔封縣)
- 야랑현(夜郞縣)
- 원온현(宛溫縣)
- 진승현(進乘縣)
- 평이현(平夷縣)
- 폐현(鄨縣)
2.6.7. 월수군(越嶲郡)
제갈량의 남만 정벌 당시 고정이 월수군 태수였다. 총 14현.
- 고복현(姑復縣)
- 공도현(邛都縣)
월수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대등현(臺登縣)
- 대작현(大莋縣)
- 반수현(卑水縣)
- 삼봉현(三縫縣)
- 소시현(蘇示縣)
- 수구현(遂久縣)
- 영관도현(靈關道縣)
- 작진현(莋秦縣)
- 정작현(定莋縣)
- 천현(闡縣)
- 청령현(靑蛉縣)
- 회무현(會無縣)
2.6.8. 익주군(益州郡)
촉한에서는 이름을 '''건녕군(建寧郡)'''으로 고쳤다. 총 17현.
- 건령현(建伶縣)
- 곡창현(穀昌縣)
- 곤택현(昆澤縣)
- 농동현(梇棟縣)
- 동로현(同勞縣)
- 동뢰현(同瀨縣)
- 매현(味縣)
- 목마현(牧靡縣)
- 무절현(毋棳縣)
- 비고현(賁古縣)
- 승휴현(勝休縣)
- 쌍백현(雙柏縣)
- 연연현(連然縣)
- 유원현(兪元縣)
이회의 고향이다.
- 율고현(律高縣)
- 전지현(滇池縣)
익주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진장현(秦臧縣)
2.6.9. 영창군(永昌郡)
옹개가 사섭의 회유에 의해 손권에게 투항하면서 촉한과 맞선 곳이기도 하다. 총 8현. 영창
- 박남현(博南縣)
- 불위현(不韋縣)
- 비소현(比蘇縣)
- 수당현(巂唐縣)
영창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애뢰현(哀牢縣)
영창군에서도 최고 오지. 미얀마와 접경지역이다.
- 야룡현(邪龍縣)
- 엽유현(楪楡縣)
- 운남현(雲南縣)
2.7. 교주(交州)
지금의 베트남 북부 및 중부[20] 와 광동성, 광시 좡족 자치구, 하이난성 일대. 손권이 광동성과 하이난성 일대를 갈라내서 광주를 세웠다가 폐지했다.
사섭이 다스리다가, 사섭이 죽은 뒤에는 손권의 세력이 되었으나 반란의 온상이 되었다. 후에 진나라가 이곳으로 쳐들어오고 곽마도 반란을 일으키는 등 복잡했던 동네.
2.7.1. 남해군(南海郡)
오늘날 광둥성의 성도 광저우시이다. 총 7현.
- 게양현(揭陽縣)
- 박라현(博羅縣)
- 번우현(番禺縣)
남해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사회현(四會縣)
- 용천현(龍川縣)
- 중숙현(中宿縣)
- 증성현(增城縣)
2.7.2. 창오군(蒼梧郡)
오늘날의 광둥성 우저우시(梧州市)이다. 총 10현.
- 광신현(廣信縣)
창오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사섭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다.
- 단계현(端谿縣)
- 고요현(高要縣)
- 맹릉현(猛陵縣)
- 봉양현(封陽縣)
- 부천현(富川縣)
- 사목현(謝沐縣)
- 임하현(臨賀縣)
- 장평현(鄣平縣)
- 여포현(荔浦縣)
2.7.3. 울림군(鬱林郡)
오늘날의 광시 좡족 자치구 구이강시 인근이다. 총 18현.
- 건시현(建始縣)
- 광울현(廣鬱縣)
- 계림현(桂臨縣)
- 담중현(潭中縣)
- 무안현(武安縣)
- 신읍현(新邑縣)
- 아림현(阿臨縣)
- 안광현(安廣縣)
- 영방현(領方縣)
- 음평현(陰平縣)
- 임진현(臨塵縣)
- 임포현(臨浦縣)
- 장평현(長平縣)
- 정주현(定周縣)
- 중류현(中溜縣)
- 증식현(增食縣)
- 포산현(布山縣)
- 회안현(懷安縣)
2.7.4. 합포군(合浦郡)
오늘날의 광시 좡족 자치구 베이하이 시 인근이다. 이곳에서 곽마가 반란을 일으켰다. 총 5현.
- 고량현(高凉縣)
- 서문현(徐聞縣)
- 임원현(臨元縣)
- 주애현(朱崖縣)
오늘날의 하이난섬으로 손권이 백성 및 병력을 충원하기 위해 여기저기 명령해서 사람들을 잡아오라고 지시를 했었는데 위온과 제갈직에게 이주, 단주, 주애 등에 파견하여 사람을 잡아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242년 섭우, 육개에 의해 정복한 뒤에서야 현(縣)이 되었다.
- 합포현(合浦縣)
합포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2.7.4.1. 고량군(高凉郡)
220년 손권이 합포를 분할하여 신설하였다.
- 전백현(電白縣)
- 양강현(陽江縣)
- 은평현(恩平縣)
고량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양춘현(陽春縣)
- 무명현(茂名縣)
2.7.5. 교지군(交趾郡)
이곳부터는 현재의 베트남 영토에 들어간다. 교지군은 현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인근이다. 총 12현.
- 계서현(稽徐縣)
- 곡양현(曲陽縣)
- 구루현(苟漏縣)
- 망해현(望海縣)
- 미령현(麊泠縣)
- 봉계현(封谿縣)
- 북대현(北帶縣)
- 서우현(西于縣)
- 연루현(羸樓縣)
- 용편현(龍編縣)
- 정안현(定安縣)
- 주연현(朱鳶縣)
2.7.6. 구진군(九眞郡)
총 5현.
- 거풍현(居風縣)
- 무공현(無功縣)
- 무편현(無編縣)
- 서포현(胥浦縣)
구진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함환현(咸懽縣)
2.7.7. 일남군(日南郡)
교주 최남단으로 일남 태수의 치소는 오늘날의 베트남 중부 꽝찌성 동하 인근이다. 휴양지로 유명한 후에는 노용현 인근으로 이보다 아랫쪽에 있다. 끝장나게 나쁜 기후와 매우 높은 기온, 온갖 풍토병들이 창궐하는 데다가 후한의 속령 중 후한의 수도 낙양과 가장 멀리 이격되어 있는(13,400리) 곳이라서 당대의 사족들에게는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평가를 받은 최악의 동네이다. 보통 관리나 사족들을 유배를 보낼 때 죄의 무게에 따라서 유배지가 달라졌는데 일남으로 유배당하는 것은 참수와 사약, 교수형 등을 비롯한 사형과 성씨 박탈 후 가택연금형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형벌 중 최고로 가혹한 형벌이었다. 한마디로 삼수갑산의 후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때문에 이곳으로 유배를 당하는 것이 확정되면 '''장례식을 먼저 치르고''' 유배지를 향해 출발한다고 한다. 공손찬이 상관의 비리에 연좌되어 이곳으로 가게되어 북망산에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가다가 도중에 사면되어 일남군행을 면했다.
그래도 5개의 현(縣)에 인구 10만 명이 사는 군이다. 베트남 지도까지 모두 그려야 하는 수고 때문인지 코에이사의 삼국지 시리즈에는 교주가 나온 시리즈에서도 일남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2019년 출시한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사의 토탈 워: 삼국에서는 DLC를 통해 이 지역을 구현했다. 황개라는 사람이 일남태수를 역임했는데 오나라의 황개와는 동명이인이다. 사실 안 나올 법도 한 게 192년에 한나라에 반기를 들어 임읍(林邑)으로 독립했는데 이것이 베트남과 대립했던 참파의 시작이다.
- 노용현(盧容縣)
- 비경현(比景縣)
- 상림현(象臨縣)
후한의 영토 중 섬을 제외하면 최남단이다. 오늘날의 다낭 인근으로 추정.
- 서권현(西卷縣)
일남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주오현(朱吾縣)
2.8. 형주(荊州)
현재의 후난성과 후베이성 전역 및 허난성 남부 지역. 유표가 다스렸으며, 유표가 패망한 뒤에는 조조, 유비, 손권이 대립하는 땅이 된다. 유비 세력이 관우의 패망과 이릉대전으로 완전히 물러난 뒤에는 손권이 형남을, 조조가 형북을 차지했다. 다만 조조는 남양군 하나만 차지하고 나머지는 죄다 손권에게로 넘어갔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가장 상세하게 묘사되는 주(州)이다. 다른 주는 보통 2, 3개 정도의 성으로 표현되는데 형남은 꽤나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사실 영역이 원체 넓고 수도권인 사례하고도 인접해 있으며, 속해 있는 군들 또한 다른 주에 비해 하나같이 대형이고 인구도 많기 때문에 다른 주에 비해 존재감이 클 수밖에 없긴 하다.[21] 또 유비 세력을 위해서 현(縣)에 불과한 신야가 꼭 거점으로 끼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2.8.1. 남양군(南陽郡)
208년에 남향군이 분리되어 나가고, 산도현과 섭현이 신설된 양양군으로 이현한다. 총 37현. 남양군은 지리적으로도 사례 바로 남쪽에 붙어 있어서 수도권인지라 후한에서 인구밀도가 매우 높았다. 황충, 누규가 이곳 출신이며 자세한 현은 알려져 있지 않다.
- 관군현(冠軍縣)
- 극양현(棘陽縣)
등애의 고향이다.
- 남향현(南鄕縣)
- 노양현(魯陽縣)
- 단수현(丹水縣)
- 등현(鄧縣)
번성 공방전의 주 무대인 번성이 등현의 최남단에 있다. 여기서 강을 건너면 양양성
- 무당현(武當縣)
- 무음현(舞陰縣)
- 박망현(博望縣)
- 복양현(復陽縣)
- 비양현(比陽縣)
- 산도현(山都縣)
- 서악현(西鄂縣)
- 석현(析縣)
- 섭현(葉縣)
- 성도현(成都縣)
- 수현(隨縣)
- 순양현(順陽縣)
- 신야현(新野縣)
- 안중현(安衆縣)
- 양현(穰縣)
- 양향현(襄鄕縣)
- 열양현(涅陽縣)
- 완현(宛縣)
- 육양현(育陽縣)
- 음현(陰縣)
- 이현(雉縣)
- 자양현(堵陽縣)
- 장릉현(章陵縣)
- 조양현(朝陽縣)
- 찬현(酇縣)
- 채양현(蔡陽縣)
- 척현(酈縣)
- 추현(犨縣)
- 축양현(筑陽縣)
- 평씨현(平氏縣)
- 호양현(湖陽縣)
2.8.1.1. 남향군(南鄕郡)
208년에 남양군에서 분리되어 신설. 총7현.
- 남향현(南鄕縣)
- 단수현(丹水縣)
- 무당현(武當縣)
- 석현(析縣)
- 음현(陰縣)
- 찬현(酇縣)
- 축양현(筑陽縣)
2.8.1.2. 장릉군(章陵郡)
장릉현을 기반으로 후한 말에 신설되었다. 장릉현을 제외한 나머지 현은 알 수 없다.
- 장릉현(章陵縣)
장릉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2.8.1.3. 의양군(義陽郡)
조위 시절에 신설되었다. 조예 시기에 섭현과 약현이 편입되었다.
- 신야현(新野縣)
- 섭현(葉縣)
- 약현(鄀縣)
2.8.2. 남군(南郡)
조조가 점령한 이래 갈기갈기 쪼개져서 남군, 양양군, 임강군으로 나뉘게 된다.
2.8.2.1. 남군(南郡)
양양군과 임강군이 분리되어 남은 나머지. 총 6현.
- 강릉현(江陵縣)
남군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연의에서 양양성과 구분되는 형주성에 대한 이야기로 나옴. 현대의 형주라는 지명의 명칭은 이곳이 가져갔다. 현대의 징저우시.
- 당양현(當陽縣)
- 주릉현(州陵縣)
- 지강현(枝江縣)
- 편현(編縣)
- 화용현(華容縣)
화용도가 이곳에 위치한다.
2.8.2.2. 양양군(襄陽郡)
조조가 형주를 정복한 208년, 남양의 산도, 섭, 남군의 기, 약, 양양, 의성, 임저, 중로를 분리하여 신설하었다. 총 8현.
- 기현(邔縣)
- 산도현(山都縣)
- 섭현(葉縣)
- 약현(鄀縣)
- 양양현(襄陽縣)
- 의성현(宜城縣)
- 임저현(臨沮縣)
- 중로현(中盧縣)
2.8.2.3. 임강군(臨江郡)
조조가 208년 남군에서 분리하여 신설함이 임강군의 시작이다. 이후 210년 유비가 이름을 '''의도군(宜都郡)'''으로 변경했고. 여기까지가 이릉, 무, 자귀, 이도, 한산의 5현으로 유지되었으며, 216년, 유비가 익주에 고릉군을 설치하면서 무현이 익주로 넘어가면서 4현이 되었다. 219년 손권이 관우를 죽이고 관우의 영역을 완전히 접수하게 되었고, 이때 이릉, 이도, 한산, 자귀의 4현으로 구성된 의도군 역시 손권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222년 이릉대전 이후 이릉의 이름이 서릉(西陵)으로 바뀌고 서릉군(西陵郡)이 된다.[22] 즉, 임강군=의도군이며, 무현을 빼면 서릉군이다.
- 이릉현(夷陵縣)
육손이 유비를 격파한 이릉대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후 서릉으로 이름이 변경. 여담으로 이릉은 후세에 유일하게 조조를 모신 사당이 세워진 곳이었는데, 이곳의 조조 사당도 나중에는 파괴당하고 말핬다.
- 무현(巫縣)
216년 익주 고릉군으로 이현한다.
- 자귀현(秭歸縣)
- 이도현(夷道縣)
- 한산현(佷山縣)
2.8.2.3.1. 건평군(建平郡)
260년 임강군에서 분리되어 신설된 군이다. 자귀와, 신설된 흥산의 두 현으로 구성되어있다.
- 자귀현(秭歸縣)
- 흥산현(興山縣)
2.8.3. 강하군(江夏郡)
강수(江水)에서 면수(沔水)가 남군(南郡)으로 흘렀는데, 화용(華容)에서는 하수(夏水)라고 하였다. 이 하수가 군을 지나 흘러들어갔기 때문에, 이름을 '강하'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후한 말에는 총 14현이 설치되었으나, 삼국이 정립되면서, 강하군은 위와 오로 나뉜 상황이었고, 위는 강하군과 익양군으로 나누어 관리했고, 오도 강하군과 기춘군으로 나누어 관리했기 때문에 삼국시대에는 두 개의 강하군이 존재했다. 위가 점령한 지역은 맹, 경릉, 평춘, 남신시, 안륙, 서릉, 서양, 대현이고, 오가 점령한 지역은, 운두, 사이, 악, 하이, 기춘현이다.
삼국지의 인물 중에서는 황조, 주유, 유기, 문빙, 정보, 채유, 손환, 조가, 녹식, 왕경, 고달, 유랑이 강하태수로 재임했다.
- 경릉현(竟陵縣)
- 기춘현(蘄春縣)
- 남신시현(南新市縣)
- 대현(軑縣)
- 맹현(鄳縣)
비의의 고향이 이곳이다.
- 사이현(沙羡縣)
- 서릉현(西陵縣)
강하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오늘날 우한 시 신저우 구. 장장을 경계로 우창 구와 마주보고 있다.
- 서양현(西陽縣)
- 악현(鄂縣)
- 안륙현(安陸縣)
황완의 고향이다. 오늘날 샤오간 시
- 운두현(雲杜縣)
- 주현(邾縣)
- 평춘현(平春縣)
이통의 고향이다.
- 하이현(下雉縣)
- 석양현(石陽縣)
2.8.4. 영릉군(零陵郡)
총 14현.
- 도량현(都梁縣)
- 도양현(洮陽縣)
오늘 날 샤오양 시.
- 부이현(夫夷縣)
- 상향현(湘鄕縣)
- 소양현(昭陽縣)
- 시안현(始安縣)
- 영도현(泠道縣)
- 영도현(營道縣)
오늘 날 융저우 시.
- 영릉현(零陵縣)
영릉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오늘 날 구이린 시 취안저우 현.
- 영포현(營浦縣)
- 중안현(重安縣)
- 증양현(烝陽縣)
- 천릉현(泉陵縣)
황개의 고향이다.
2.8.5. 계양군(桂陽郡)
총 11현.
- 계양현(桂陽縣)
- 곡강현(曲江縣)
- 남평현(南平縣)
- 뇌양현(耒陽縣)
방통이 유비에게 종사한 이후 부임한 곳이다. 정사와 연의의 내용이 영 다르지만, 부임한 곳은 둘 다 이곳이다. 오늘날 헝양시 남부 레이양.
- 음산현(陰山縣)
- 임무현(臨武縣)
- 정양현(湞陽縣)
- 침현(郴縣)
계양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오늘날 후난성 남부 천저우 시.
- 편현(便縣)
- 한녕현(漢寧縣)
- 함광현(含洭縣)
2.8.6. 무릉군(武陵郡)
형주 자사의 치소가 있던[23] 곳이며 황개의 최종 보직이 무릉 태수였다. 총 12현.
- 담성현(鐔成縣)
- 영양현(零陽縣)
- 원남현(沅南縣)
- 원릉현(沅陵縣)
- 유양현(酉陽縣)
- 임원현(臨沅縣)
- 작당현(作唐縣)
- 잔릉현(孱陵縣)
- 진양현(辰陽縣)
- 천릉현(遷陵縣)
- 충현(充縣)
- 한수현(漢壽縣)
2.8.7. 장사군(長沙郡)
손견이 구성과 허창을 제압하고 그 상으로 얻은 임지이다. 손견 사망 후에는 한현이 다스리고 있다가 유비에게 헌납했으며 익양대치 후에는 다시 오나라의 소유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아주아주 먼 훗날 이곳에서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지역예선(아시아)/최종예선/A조를 치뤘는데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1-0으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총 13현.
- 나현(羅縣)
- 도릉현(荼陵縣)
- 상남현(湘南縣)
- 소릉현(昭陵縣)
- 안성현(安城縣)
- 연도현(連道縣)
- 영현(酃縣)
- 예릉현(醴陵縣)
- 용릉현(容陵縣)
- 유현(攸縣)
- 익양현(益陽縣)
익양대치가 발생한 곳이다.
- 임상현(臨湘縣)
장사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하전현(下雋縣)
2.8.7.1. 한창군(漢昌郡)
210년 손권이 장사의 일부를 분할하여 신설하였다.
- 하전현(下雋縣)
- 나현(羅縣)
- 한창현(漢昌縣)
한창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었다.
2.8.8. 신성군(新城郡)
맹달이 항복해오면서 그가 다스리던 영토인, 방릉, 서성, 상용을 합하여 신성군이 신설되었으며 맹달 사후 각각 방릉군, 서성군, 상용군으로 나뉜다.
본래 익주이지만, 신성군이 되면서 형주에 속하게 되었다.
2.8.8.1. 상용군(上庸郡)
총 4현.
- 무릉현(武陵縣)
- 미양현(微陽縣)
- 상용현(上庸縣)
상용 태수의 치소가 있다.
- 안부현(安富 縣)
2.8.8.2. 서성군/위흥군(西城郡/魏興郡)
신의#s-2가 위나라에 항복한 후로 위흥군이라고 불렸다. 총 4현.
- 서성현/위흥현(西城縣/魏興縣)
서성/위흥 태수의 치소가 있다.
- 안양현(安陽縣)
- 위양현(魏陽縣)
- 평양현(平陽縣)
2.8.8.3. 방릉군(房陵郡)
방릉현을 제외한 나머지 현은 전해지지 않는다
- 방릉현(房陵縣)
방릉 태수의 치소가 있었고, 신성 태수의 치소도 이곳에 있었다.
2.9. 양주(揚州), 일명 강동
손권이 다스리던 주. 강동이라고 하면 흔히 이 주를 말한다. 위에 서술한 양주(凉州)와 한국어 한자 독음이 같으나, 한국 삼국지 팬덤에서는 보통 이쪽을 강동, 양주(凉州)를 서량이라고 불러서 혼동되는 일은 적다. 수춘, 합비 등이 있던 양주 북부는 원래 원술의 영역이었다가 원술이 패망한 후에는 조조가 차지한다. 합비가 건업의 코 앞에 있는지라 손권이 뻔질나게 공격했으나 뚫지 못했다. 후일 남북조-당말 오대를 거치면서 중국 경제를 좌우하는 중심지가 되지만 손오 시절은 아직 개발 단계라 습지가 많았다. 코에이 삼국지에 나오는 강남 도시들의 근방만이 당시로선 쓸 수 있는 땅이었다.
2.9.1. 구강군(九江郡)
후한 때 회남군(淮南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다시 구강군이 되었고, 삼국시대부터는 회남군으로 굳어진다. 원술이 중나라를 세우고 수춘을 수도로 정하면서 회남윤(淮南尹)이 되었으나, 원술이 패망하면서 얌전히 윤에서 군으로 돌아온다. 역양-수춘-합비 순으로 태수의 치소가 변경되었다. 장제 [25] , 장간, 장흠 [26] 등의 고향이다. 총 14현.
- 당도현(當塗縣)
- 부릉현(阜陵縣)
- 서곡양현(西曲陽縣)
- 성덕현(成德縣)
유엽의 고향이 이곳이다.
- 수춘현(壽春縣)
두 번째 구강 태수의 치소가 있던 곳이다. 후한 말 합비로 치소가 옮겨진다. 남양에서 형주를 지배하고자 한 원술이 손견의 뜻 밖의 죽음으로 형주 지배가 실패하게 되자 양주자사 진우를 몰아내고 근거지를 이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곳에서 중나라를 세우고 황제에 올랐으며, 수도가 되었다. 장흠의 고향이다.
- 역양현(歷陽縣)
처음 구강 태수의 치소가 있던 곳이다. 이후 수춘현으로 옮겨진다.
- 음릉현(陰陵縣)
- 의성현(義成縣)
- 전초현(全椒縣)
- 종리현(鍾離縣)
- 준유현(浚遒縣)
- 평아현(平阿縣)
장제의 고향이다.
- 하채현(下蔡縣)
주태의 고향이다.
- 합비현(合肥縣)
2.9.2. 단양군(丹楊郡)
오의 수도인 건업이 있는 곳이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손견의 처남이자 손책, 손권의 외삼촌인 오경이 이곳에 태수를 한다는 언급이 나온다. 이 오경이 유요의 공격을 받고, 손책이 원술의 휘하에서 떠나게 됨으로 손책의 강동평정이 시작되었다. 흡현과, 이현은 208년 신도군이 되어 분리된다. 총 16현.
- 강승현(江乘縣)
- 경현(涇縣)
- 고장현(故鄣縣)
- 구용현(句容縣)
하희의 고향이다.
- 능양현(陵陽縣)
- 단양현(丹陽縣)
도겸의 고향이다.
- 말릉현(秣陵縣)
- 무호현(蕪湖縣)
- 석성현(石城縣)
- 흡현(歙縣)
- 어잠현(於潛縣)
- 완릉현(宛陵縣)
- 율양현(溧陽縣)
오나라 승상 장제의 고향이다.
- 이현(黝縣)
- 춘곡현(春穀縣)
- 호숙현(湖熟縣)
2.9.2.1. 신도군(新都郡)
208년 손권이 단양군에서 흡현과 이현을 분리한 후, 흡현에서 4개의 신설현을 만들어서 신도군을 신설하였다. 하제가 이때 태수가 되었다.
- 흡현(歙縣)
- 이현(黝縣)
- 시신현(始新縣)
이곳에 신도 태수의 처소가 있다.
- 신정현(新定縣)
- 여양현(黎陽縣)
- 휴양현(休陽縣)
2.9.2.2. 임천군(臨川郡)
손권이 단양군에서 주연을 태수로 임명하였다. 치소는 불명. 주연 항목을 읽어보면 그야말로 주연을 위해 만들어진 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속 현의 이름도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소 5현 정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22~229년 사이 폐지되었다.
2.9.3. 여강군(廬江郡)
여강 태수였던 육강 항목 참조.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여기도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인데, 군명 자체는 여강이라는 장강의 지류에서 유래했지만 정작 여강은 단양군에 가서 찾아야 한다. 전한 시절 여강군을 옮겼기 때문. 원래 태수의 치소는 서현이었으나 199년 환현으로 옮겨졌고, 이후 여강이 분할되면서 손권의 세력권과, 조조의 세력권으로 분할된 상황이었고, 손권이 점유한 지역의 여강태수의 치소는 서현, 조조가 점유한 지역의 여강태수의 치소는 양천현이 되었다. 총 14현. 위나라가 통치한 영역은 육안, 심, 양천, 우루, 요, 안풍, 안풍현의 7현이었으며 220~226년 사이에 양천, 우루, 요, 안풍 안풍의 5현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255년에 송자현이 추가되었으며, 조위 말년에 육안, 심이 다시 부활하면서 8현이 된다. 오나라가 통치한 영역은 환, 심양 2현. 송자현 출신이 진무다.
- 거소현(居巢縣)
- 서현(舒縣)
여강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으며, 손권이 임명한 여강 태수의 치소도 이곳. 주유의 고향이다.
- 심양현(尋陽縣)
- 안풍현(安豊縣)
- 안풍현(安風縣)
- 양안현(襄安縣)
- 양천현(陽泉縣)
원래는 여강 태수의 치소가 아니나, 조조가 임명한 여강 태수의 치소가 이곳.
- 요현(蓼縣)
- 용서현(龍舒縣)
- 우루현(雩婁縣)
- 육안현(六安縣)
- 임호현(臨湖縣)
- 잠현(潛縣)
- 환현(皖縣)
199년부터 여강이 두 지역으로 분할될 때까지 여강 태수의 치소가 있었던 곳이다.
2.9.4. 회계군(會稽郡)
일남군(日南郡)만큼 극단적인 오지는 아니지만 여기도 꽤나 오지였다. 때문에 여기는 유배지로 각광받았다. 일남으로의 유배가 사형에 비견된다면 회계로의 유배는 징역형에 비견된다. 초한쟁패기에도 항우의 세력이 이곳에서 일어나 머나먼 함양까지 도달했으니 못갈 곳은 아니다. 수도권에서 단순히 거리가 먼 곳이며, 총 14현. 192년 태말현에서 신안현이(新安縣), 오상현에서 장산현(長山縣)이 분리되었고, 195년에는 제기현에서 오녕현(吳寧縣)이 분리되었고, 196년에는 장안현에서 송양현(松陽縣)이 분리되었다가 다시 분리하여 건안, 한흥, 남평의 세현을 더 분리하였다. 200년에는 태말현에서 풍안현(豐安縣)이 분리되었고, 205년에는 건안현에 상요현(上饒縣), 건평현(建平縣)을 두었다. 218년에는 태말현에서 수창현(遂昌縣)을, 신안현에서 정양현(定陽縣)을 분리시켰다. 그래서 건안 말기에는 총 26현으로 늘어났다.
- 구장현(句章縣)
반부인의 고향이다
- 동부현(東部縣)
- 무현(鄮縣)
- 산음현(山陰縣)
- 상우현(上虞縣)
- 섬현(剡縣)
- 여기현(餘暨縣)
- 여요현(餘姚縣)
- 영녕현(永寧縣)
- 오상현(烏傷縣)
낙통의 고향이다.
- 장산현(長山縣)
유찬의 고향이다.
- 은현(鄞縣)
- 장안현(章安縣)
- 송양현(松陽縣)
- 건안현(建安縣)
- 상요현(上饒縣)
- 건평현(建平縣)
- 한흥현(漢興縣)
- 남평현(南平縣)
- 제기현(諸暨縣)
- 오녕현(吳寧縣)
- 태말현(太末縣)
- 신안현(新安縣)
- 풍안현(豐安縣)
- 수창현(遂昌縣)
- 정양현(定陽縣)
2.9.5. 오군(吳郡)
오의 사성(四姓)이 바로 이 오군의 유력 호족 4가문이다. 모두 태수의 치소가 있는 오현에 있다. 당장에 여기에 보이는 인물들만 봐도 오나라의 주축들의 터전이 바로 이곳이다. 전종을 대표로 하는 오나라의 유력 호족인 전씨들의 고향인 전당현(錢塘縣)이 오군 소속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오군의 역사자체도 전한시기 회계군에서 분리되어 탄생했고, 이때 회계군 전당현이 오군 전당현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회계군 전당현(錢唐縣)은 한자도 미묘하게 다르고해서, 다른 곳이라는 주장도 있다. 오군 전당현이 확실하게 자리잡은 것은 서진의 삼국통일 이후인 283년에 오군 소속이 된 현이므로, 이 전당현이 삼국시대에는 오군의 무슨 현이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28] 화핵의 고향인 무진현(武進縣)의 경우 한자가 양주 운중군의 무진현과 동일하여 무석현의 오타가 아닐까 정도이지 확인된 바는 없다. 총 13현[29] 위소의 고향인 운양현(雲陽縣)도 이곳인데 어느 곳에서 분리된건지 알 수 없다. 오늘날 상하이시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 곡아현(曲阿縣)
- 누현(婁縣)
- 단도현(丹徒縣)
- 무석현(無錫縣)
고대의 고향이다.
- 부춘현(富春縣)
- 비릉현(毘陵縣)
- 안현(安縣)
- 양선현(陽羨縣)
- 여항현(餘杭縣)
- 오현(吳縣)
- 오정현(烏程縣)
- 유권현(由拳縣)
- 해염현(海鹽縣)
오늘날 상하이시 진산 구.
2.9.6. 예장군(豫章郡)
총 21현. 형주 장사군과 인접해 있으며 제갈량의 숙부 제갈현이 태수로 있었다.
- 감현(贛縣)
- 건성현(建城縣)
- 건창현(建昌縣)
- 교양현(鄡陽縣)
- 남성현(南城縣)
- 남야현(南野縣)
- 남창현(南昌縣)
예장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석양현(石陽縣)
- 시상현(柴桑縣)
- 신감현(新淦縣)
섭우의 고향이다.
- 애현(艾縣縣)
- 여간현(餘汗縣)
- 여릉현(廬陵縣)
- 역릉현(歷陵縣)
- 우도현(雩都縣)
- 의춘현(宜春縣)
- 임여현(臨汝縣)
- 파양현(鄱陽縣)
주유가 적벽대전 직전 이곳에 거처했었다. 이후 파양군으로 분리.
- 팽택현(彭澤縣)
- 평도현(平都縣)
- 해혼현(海昬縣)
2.9.6.1. 여릉군(廬陵郡)
194년 손책이 예장군 남부를 분할하여 우도현에 여릉군을 두었다고 한다, 손보를 태수로 삼아 다스리게 하였다. 다른 기록으로는 예장군의 한 지방에서 단양 사람 동지가 스스로를 여릉 태수라 칭했는데, 손분과 손보가 평정했고 손보가 여릉 태수가 되었다. 우도현 이외의 다른 현은 알 수 없으나, 서진 때는 10현이 존재하였다.
- 우도현(雩都縣)
2.9.6.2. 파양군(鄱陽郡)
210년 손권이 예장군 동부에서 파양군을 분리해서 신설했다. 치소는 파양현. 파양현 이외에 현은 알 수 없다. 서진 때 총 9현. 이민족인 산월이 많던 곳이다.
- 파양현(鄱陽縣)
2.9.6.3. 팽택군(彭澤郡)
후한 말 손권이 예장군을 분할하여 신설한 군이다. 치소는 팽택현으로 다른 현은 알 수 없다.
어떤 기록에는 손권이 여릉, 파양, 평택을 동시에 신설했다는 기록도 있고, 어떤 기록은 여릉은 손책이 분할했다는 기록도 있어서 확실하지는 않으나 210년 이후로 세 군이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 팽택현(彭澤縣)
2.10. 예주(豫州)
현재의 안후이성, 허난성 일대. 허창이 여기 있었다. 조조를 비롯한 조씨, 하후씨 일족의 출신지인 초 또한 이곳. 연주와 같은 하남 일대의 핵심. 특히 소속 고을인 '영천군'(허창은 이 영천의 속현)은 재사들이 엄청나게 모여 있던 터전(고향)이었다. 유비가 예주목 지위를 가지고는 있었으나 실권은 없는 명예직. 213년 하남윤이 예주로 편입되고 하남군이 된다.
- 하남군은 사례 소속의 하남윤으로 기재한다.
2.10.1. 영천군(穎川郡)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 영천 전투가 있었다. 한복의 고향이다. 총 18현
- 겹현(郟縣)
- 곤양현(昆陽縣)
- 무양현(舞陽縣)
- 부성현(父城縣)
- 신급현(新汲縣)
- 양현(襄縣)
- 양성(襄城)
- 양성(陽城)
- 양책현(陽翟縣)
- 언현(郾縣)
- 언릉현(焉陵縣)
- 영양현(潁陽縣)
- 영음현(潁陰縣)
- 윤씨현(輪氏縣)
- 임영현(臨潁縣)
- 장사현(長社縣)
- 정릉현(定陵縣)
- 허현(許縣)
보통 허창으로 유명하다. 후한의 마지막 수도.
2.10.2. 여남군(汝南郡)
총 37현의 거대한 군이다. 조조가 초현을 초군으로 승격시키면서 성보현이 이현한다.
- 고시현(固始縣)
호종의 고향이다
- 구양현(灌陽縣)
- 기사현(期思縣)
- 남돈현(南頓縣)
- 낭릉현(朗陵縣)
- 동양현(鮦陽縣)
- 부피현(富陂縣)
여몽의 고향이다.
- 북의춘현(北宜春縣)
- 사선현(思善縣)
- 산상현(山桑縣)
- 상채현(上蔡縣)
- 서평현(西平縣)
- 서화현(西華縣)
- 성보현(城父縣)
- 세양현(細陽縣)
- 소릉현(召陵縣)
- 송현(宋縣)
- 신현(愼縣)
- 신식현(新息縣)
- 신양현(新陽縣)
- 신채현(新蔡縣)
- 안성현(安城縣)
- 안양현(安陽縣)
- 양안현(陽安縣)
- 여양현(汝陽縣)
- 여음현(汝陰縣)
- 오방현(吳房縣)
- 원록현(原鹿縣)
- 은강현(濦強縣)
- 의록현(宜祿縣)
- 익양현(弋陽縣)
- 정강현(征羌縣)
- 정영현(定潁縣)
- 진양현(滇陽縣)
- 평여현(平輿縣)
여남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포신현(褒信縣)
- 항현(項縣)
2.10.2.1. 양안군(陽安郡)
198년에 신설된 곳으로 언제 사라졌는지는 알수 없다. 조엄과 이통 항목을 참조하면 양안군과 양안도위에 대한 언급을 확인 할 수 있다. 치소는 낭릉현
- 낭릉현(朗陵縣)
- 양안현(陽安縣)
2.10.3. 양국(梁國)
총 9현
- 곡숙현(穀熟縣)
- 몽현(蒙縣)
- 박현(薄縣)
- 수양현(睢陽縣)
- 언현(焉縣)
- 영릉현(寧陵縣)
왕수의 고향이다.
- 우현(虞縣)
- 탕산현(碭山縣)
- 하읍현(下邑縣)
양왕과 양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2.10.4. 패국(沛國)
한나라의 창시자인 한고제의 고향인지라 상당히 우대받았던 지역이다. 그러나 조조가 득세하게 되면서 조조의 고향인 초현이 초군으로 이탈하게 되고, 위나라 건설 이후에는 패현, 저추현, 풍현, 공구현의 기존 4현과 팽성국의 광척현을 제외하고는 죄다 초군으로 이현되거나, 폐현되었다. 총 21현.
- 건평현(建平縣)
- 곡양현(穀陽縣)
- 공현(虹縣)
- 공구현(公丘縣)
- 기현(蘄縣)
누현의 고향이다
- 다현(鄲縣)
- 부리현(符離縣)
- 상현(相縣)
패왕과 패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소현(蕭縣)
- 용강현(龍亢縣)
- 임수현(臨睢縣)
- 저추현(杼秋縣)
- 죽읍(竹邑)
- 즐현(銍縣)
- 차현(酇縣)
- 초현(譙縣)
조조를 비롯한 위나라 황실과 하후돈을 비롯한 하후씨 사람들의 고향이다. 허저, 화타 역시 이곳 출신이며, 문흠, 문앙, 문호 부자의 출생지도 이곳이다. 예주 자사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태구현(太丘縣)
- 패현(沛縣)
이곳이 삼국지 연의의 소패(小沛)다.
- 풍현(豊縣)
- 향현(向縣)
- 효현(洨縣)
2.10.4.1. 초군(譙郡)
신설된 해가 213년인지, 220년인지 분분하다. 조조의 고향인 초현을 초국으로 승격시키면서 패국에서 초현과 차현이, 여남군에서 성보현이 이현하여 신설되었다. 220년에는 초국으로 봉국되며 이후 다시 초군으로 돌아온다. 신설 당시에는 3현으로 구성되었으나, 위나라 건설 이후 238년에 이르러서는 패국[30] 의 대부분이 이현해 오게 되면서 15현의 거대군이 되었다.
- 초현(譙縣)
초군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차현(酇縣)
- 성보현(城父縣)
2.10.5. 진국(陳國)
총 9현
- 고(苦)
- 무평(武平)
- 부락(扶樂)
원환의 고향이다.
- 신평(新平)
- 양하(陽夏)
- 영평(寧平)
- 자(柘)
양습의 고향이다.
- 장평(長平)
- 진(陳)
진왕과 진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2.10.6. 노국(魯國)
삼국시대에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공자'''와 '''맹자'''가 이곳 출신이다. 총 6현
- 노현(魯縣)
- 문양현(汶陽縣)
- 번현(蕃縣)
- 변현(卞縣)
- 설현(薛縣)
- 추현(鄒縣)
2.11. 서주(徐州)
현재의 장쑤성 북부와 산둥성 남부(칭다오 주변) 일대. 도겸이 차지하고 있다가 잠시 유비가 차지하고 그 뒤에는 여포가 먹었다가 조조에게 빼앗긴다. 잠시 또 유비가 차지하지만 다시 조조에게 빼앗기고 그 뒤로는 쭉 조조의 영토가 된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군(郡)도 아니고 서주 소속도 아닌 소패(예주 패국 패현이다. 서주 경계에 인접해 있긴 하지만.)가 꼭 거점으로 표현된다. 유비에게 의탁하던 여포와 그 여포에게 서주를 뺏긴 유비의 임시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2.11.1. 동해군(東海郡)
총 13현
- 담현(郯縣)
미축 일족의 고향이다
- 양분현(襄賁縣)
- 창려현(昌慮縣)
- 승현(承縣)
- 음평현(陰平縣)
- 이성현(利城縣)
- 합향현(合鄉縣)
- 축기현(祝其縣)
- 후구현(厚丘縣)
- 공유현(贛榆縣)
2.11.1.1. 이성군(利城郡)
198년 조조가 여포를 토벌한 이후 북해, 낭야, 동해를 나누어 성양군, 이성군, 창려군을 설치했고 이성군의 치소가 바로 이성현이다. 치소인 이성 외의 현은 알 수 없다. 조비 때 이곳의 병사인 채방이 반란을 일으켰고, 이에 조비가 토벌하여 채방은 오나라로 달아났다는 기록에서 이성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 이성현(利城縣)
2.11.1.2. 창려군(昌慮郡)
198년 조조가 여포를 토벌한 이후 북해, 낭야, 동해를 나누어 성양군, 이성군, 창려군을 설치했고 창려군의 치소가 바로 창려현이다. 창려 이외의 현은 알 수 없다. 206년 폐지되었다.
- 창려현(昌慮縣)
2.11.2. 낭야국(琅邪國)
현재 린이시와 그 일대. '''왕희지''', '''순자''', '''제갈량''', 제갈근, 증자, 안진경, 귀곡자를 배출한 명사의 고향이다. 총 13현
- 개양현(開陽縣)
낭야왕과 낭야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동안현(東安縣)
- 동관현(東莞縣)
- 고막현(姑幕縣)
- 제현(諸縣)
- 동무현(東武縣)
- 낭야현(瑯琊縣)
지금의 칭다오 시내 지역이다.
- 구곡현(溝曲縣)
- 양도현(陽都縣)
- 임기현(臨沂縣)
안량의 고향이다.
- 거현(莒縣)
서성의 고향.
- 즉구현(卽丘縣)
- 증국현(繒國縣)
2.11.2.1. 동관군(東莞郡)
194년 낭야국과 제군의 일부를 때어내어 동관군이 신설되었다. 치소는 동관현
- 동관현(東莞縣)
- 임구현(臨朐縣)
- 이수현(沂水縣)
- 이원현(沂源縣
- 몽음현(蒙陰縣)
2.11.2.2. 동안군(東安郡)
199년 이전 낭야국에서 동안현이 분리되어 동안군이 되었다. 치소는 동안현. 위나라 건국 초기에 폐지되어 동관현과 통합되었다. 서진이 들어서고 297년에야 부활하여 동안왕 사마요의 봉국이 된다.
- 동안현(東安縣)
2.11.2.3. 성양군(城陽郡)
198년 조조가 여포를 토벌한 이후 북해, 낭야, 동해를 나누어 성양군, 이성군, 창려군을 설치했고 성양군의 치소가 바로 거현이다. 치소인 거 외의 현은 알 수 없다.
- 거현(莒縣)
2.11.3. 팽성국 (彭城國)
흔히 "서주"로 나오는 곳이 팽성이다. 총 8현. 초한쟁패 당시 항우의 본거지였던 팽성이 이곳이다.
- 팽성현(彭城縣)
팽성왕과 팽성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유현(留縣)
- 광척현(廣戚縣)
- 부양현(傅陽縣)
- 무원현(武原縣)
- 여현(呂縣)
- 오현(梧縣)
- 치구현(甾丘縣)
2.11.4. 광릉군(廣陵郡)
일부에서는 양주로 나오는 오류가 있다. 진등이 이곳 태수를 맡았다. 총 12현
- 광릉현(廣陵縣)
광릉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강도현(江都縣)
- 여국현(舆國縣)
- 당읍현(堂邑縣)
- 해릉현(海陵縣)
여대의 고향이다.
- 고우현(高郵縣)
- 평안현(平安縣)
- 동양현(東陽縣)
- 능현(淩縣)
- 사양현(射陽縣)
진림의 고향이다.
- 해서현(海西縣)
- 염독현(鹽瀆縣)
2.11.5. 하비국 (下邳國)
이곳이 여포가 마지막까지 농성했던 곳이다. 총 16현
- 하비현(下邳縣)
하비왕과 하비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양성현(良成縣)
- 사오현(司吾縣)
- 하상현(下相縣)
- 취려현(取慮縣)
- 동국현(僮國縣)
- 하구현(夏丘縣)
- 서현(徐縣)
- 수릉현(睢陵縣)
- 우이현(盱眙縣)
- 고산현(高山縣)
- 회릉현(淮陵縣)
- 동성현(東城縣)
노숙과 보즐의 고향이다. 정사 노숙전과 보즐전에는 '임회군(臨淮郡) 동성현 사람'이라고 되어 있는데, 임회군은 본래 전한 때 설치된 행정구역으로 후한 말엽 당시에는 하비국에 속해 있었다.
- 곡양현(曲陽縣)
- 회포현(淮浦縣)
- 회음현(淮陰縣)
2.11.5.1. 동성군(東城郡)
조조가 여포를 토벌한 후 하비국에서 동성군을 분리해내어 손책을 격파한 공으로 진등을 태수로 임명하였다. 치소는 동성현.
- 동성현(東城縣)
2.12. 청주(青州)
지금의 산둥성 일대. 공손찬의 지배하에 있을 때는 공융과 전해가 다스렸으며, 원소의 지배하에 있을 때는 원담의 영토였다. 조조의 2대 특수부대 중 하나 청주병은 여기서 발호한 황건적에서 차출되어 시작되었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유비와 관련이 있는 평원군과 북해군이 단골로 등장한다.
2.12.1. 제남국(濟南國)
총 10현
- 간현(菅縣)
- 동조양현(東朝陽縣)
- 동평릉현(東平陵縣)
제남왕과 제남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양추현(梁鄒縣)
- 어릉현(於陵縣)
- 역성(歷城)
- 저현(著縣)
- 추평현(鄒平縣)
- 태현(台縣)
- 토고현(土鼓縣)
2.12.2. 평원군 (平原郡)
유비의 초기 거점. 213년 기주로 옮겨간다. 때문에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주로 '기주' 소속으로 나온다. 총 10현. 후한시절에는 평원국이었던 걸로 보인다. 유비가 평원의 상(相)으로 부임했기 때문이다.
- 격현(鬲縣)
- 고당현(高唐縣)
- 낙릉현(樂陵縣)
213년 기주 낙릉군으로 편입된다.
- 반현(般縣)
- 서평창현(西平昌縣)
- 안덕현(安德縣)
- 염차현(厭次縣)
213년 기주 낙릉군으로 편입된다
- 축아현(祝阿縣)
- 탑음현(濕陰縣)
- 평원현(平原縣)
평원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2.12.2.1. 낙릉군(樂陵郡)
213년 청주 평원군과 기주 발해군의 일부를 떼어내어 신설하였다.
총 5현
- 낙릉현(樂陵縣)
청주 평원군 소속이었다. 낙릉 태수의 치소가 존재했다.
- 신락현(新樂縣)
- 양신현(陽信縣)
기주 발해군 소속이었다.
- 염차현(厭次縣)
청주 평원군 소속이었다.
- 탑옥현(漯沃縣)
2.12.3. 낙안국(樂安國)
총 9현
- 고원현(高菀縣)
- 낙안현(樂安縣)
- 박창현(博昌縣)
- 수광현(壽光縣)
- 요성(蓼城)
- 이현(利縣)
- 익현(益縣)
국연의 고향이다.
- 임제현(臨濟縣)
낙안왕과 낙안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천승현(千乘縣)
2.12.4. 북해국(北海國)
공융이 북해의 상이었으나, 원담에게 쫓겨난다. 206년 봉국이 폐지되고 북해군이 된다. 총 18현. 유비의 부하 손건과 화흠과의 일화가 유명한 관녕도 북해국 출신.
- 고밀현(高密縣)
- 관양현(觀陽縣)
- 교동현(膠東縣)
- 극현(劇縣)
- 도창현(都昌縣)
- 동안평현(東安平縣)
- 순우현(湻于縣)
- 안구현(安丘縣)
- 영릉현(營陵縣)
시의의 고향이다.
- 이안현(夷安縣)
- 장무현(壯武縣)
- 정현(挺縣)
- 주허현(朱虛縣)
- 즉묵현(卽墨縣)
- 창안현(昌安縣)
- 평수현(平壽縣)
- 평창현(平昌縣)
- 하밀현(下密縣)
2.12.5. 동래군(東萊郡)
현재의 산동반도 북동쪽. 총 13현
- 갈로현(葛盧縣)
- 검추현(黔陬縣)
- 견현(惤縣)
- 곡성현(曲成縣)
- 노향현(盧鄕縣)
- 당리현(當利縣)
- 동모현(東牟縣)
- 모평현(牟平縣)
유대의 고향이다.
- 불기현(不其縣)
- 액현(掖縣)
동래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지금의 옌타이시 라이저우 시.
- 장광현(長廣縣)
- 창양현(昌陽縣)
- 황현(黃縣)
태사자의 고향이다.
2.12.5.1. 장광군
196년 즈음 동래군에서 장광군이 신설되었으나 오래가지 않아 폐지되었다.
- 장광현(長廣縣)
장광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동모현(東牟縣)
- 모평현(牟平縣)
유요의 고향이다
- 불기현(不其縣)
- 정현(挺縣)
- 창양현(昌陽縣)
2.12.6. 제국(濟國)
194년 임구현이 동관군으로 이현한다. 총 7현
- 광현(廣縣)
- 광요현(廣饒縣)
- 반양현(般陽縣)
- 서안현(西安縣)
- 임구현(臨朐縣)
- 임치현(臨菑縣)
제남왕과 제남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창국현(昌國縣)
2.13. 연주(兗州)
순욱이 "천하의 중심"이라며 극찬한 곳. 지리적으로도 요지로 정말 예주, 서주, 기주, 사례주, 청주... 안 통하는 곳이 없다. 연주목으로 추대된 뒤에는 조조의 거점이다. 하남 일대의 핵심으로 예주와 함께 웬만한 명망있는 사족들의 터전(고향)이었다. 허나 동란 이후 대부분이 흩어지고 전란으로 기아에 시달리게 된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조조와 관련이 있는 진류가 꼭 끼어 있다.
2.13.1. 진류군 (陳留郡)
조조가 거병한 곳. 준의현은 뒷날 북송의 수도인 카이펑이다. 소제가 즉위하여 헌제가 진류왕으로 잠시 봉국되었으므로, 잠깐 진류국이었던 시절이 있다. 노수, 노초, 공주의 고향이다. 총 17현
- 진류현(陳留縣)
진류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 옹구현(雍丘縣)
- 위지현(尉氏縣))
완우의 고향이다.
- 부구현(扶溝縣)
- 어현(圉縣)
- 양읍(襄邑)
- 기오현(己吾縣)
전위의 고향이다.
- 고성현(考城縣)
- 외황현(外黃縣)
- 제양현(濟陽縣)
- 동혼현(東昏縣)
- 소황현(小黃縣)
- 준의현(浚儀縣)
- 봉구현(封丘縣)
- 평구현(平丘縣)
모개의 고향이다.
- 장원현(長垣縣)
- 산조현(酸棗縣)
2.13.2. 동군(東郡)
총 15현. 삼국지 시리즈에서 복양은 언제나 나온다.
- 복양현(濮陽縣)
- 백마현(白馬縣)
- 연현(燕縣)
- 돈구현(頓丘縣)
북부의 위 이후 조조의 부임지.
- 위국(衛國)
악진의 고향이다.
- 동무양현(東武陽縣)
- 양평현(陽平縣)
- 동아현(東阿縣)
정욱의 고향이다.
- 범현(范縣)
- 곡성현(谷城縣)
- 임읍(臨邑)
- 낙평현(樂平縣)
- 발간현(發干縣)
오나라 장수 반장의 고향이다.
- 요성현(聊城縣)
- 박평현(博平縣)
2.13.3. 동평국(東平國)
총 7현. 여광, 여상 형제의 고향이다.
- 무염현(無鹽縣)
동평왕과 동평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수장현(壽張縣)
- 수창현(須昌縣)
- 부성현(富城縣)
- 장현(章縣)
- 동평육현(東平陸縣)
- 영양현(寧陽縣)
유정의 고향이다.
2.13.4. 임성국(任城國)
조조의 후사를 조비가 이은 이후 조창의 임지이다. 총 3현
- 임성현(任城縣)
임성왕과 임성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항보현(亢父縣)
- 번현현(樊縣縣)
2.13.5. 태산국(泰山國)
총 12현. 장패의 고향이 이곳의 화현(華縣)이라는 곳인데, 화현은 전한 때는 태산군 소속이었으나, 후한 때, 낭야군, 동해군으로 이현되다가 없어지기도 해서, 순제, 화제 때에 이르러서 아래 12현이 정립이 되었고, 후한 말기에나 화현이 다시 설치되었다. 왕광과 손강, 손관 형제의 고향이다.
- 봉고현(奉高縣)
태산왕과 태산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박현(博縣)
- 양보현(梁甫縣)
- 거평현(鉅平縣)
우금의 고향이다.
- 치현(茌縣)
- 영현(嬴縣)
- 모현(牟縣)
- 내무현(萊蕪縣)
- 개현(蓋縣)
- 남무양현(南武阳縣)
- 비국(费國)
- 남성현(南城縣)
2.13.6. 제북국(濟北國)
포신의 임지로 포신은 이곳의 국상(國相)을 역임했다. 총 5현
- 노현(盧縣)
제북왕과 제북국 상의 정부가 이곳에 있다.
- 치평현(茌平縣)
- 사구현(蛇丘縣)
- 강현(刚縣)
- 성현(成縣)
2.13.7. 산양군(山陽郡)
후한 헌제가 조비에게 제위를 내주고 난 뒤 그 이후의 임지이다. 총 10현
- 창읍현(昌邑縣)
- 거야현(巨野縣)
이전의 고향이다.
- 금향현(金鄕縣)
- 동민현(東缗縣)
- 방동현(防東縣)
- 방여현(方與縣)
- 고평현(高平縣)
- 호륙현(湖陸縣)
- 남평양현(南平陽縣)
- 가구현(瑕丘縣)
2.13.8. 제음군(濟陰郡)
제음태수를 맡은 사람은 하후돈, 정욱이 유명하다. 총 11현.
- 정도현(定陶縣)
제음 태수의 치소가 이곳에 있다. 동소의 고향이다.
- 원구현(冤句縣)
- 승씨현(乘氏縣)
- 구양현(句陽縣)
- 성양현(成陽縣)
- 견성현(鄄城縣)
- 늠구현(廪丘縣)
- 이호현(離狐縣)
늠구현과 이호현 본래는 동군(東郡) 소속이었다가 제음군이 되었다
- 성무현(成武縣)
- 단보현(單父縣)
- 기지현(己氏縣)
3. 도시
3.1. 위
3.2. 촉한
3.3. 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 강원도의 각 지명은 장강 유역의 도시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 많다. 그래서 겹치는 이름이 많다. 강릉, 영월, 양양, (충북) 단양 등이 그렇다.
[1] 요동 이외에도 다른 속국이 존재하는데 이민족(異民族)이 모여 있는 군을 속국이라고 하며, 각 속국에는 태수의 역할을 하는 도위(都尉)가 임명되었고, 속국은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지 않았다.[2] 단 틀린 배정도 있으므로 주의[3] 따라서 오관육참에 나오는 형양 태수 왕식은 고증오류. 후한에 형양 태수가 있을 리가 있나![4] 후한초기 광평국이 있었으며, 임성, 남화, 광평, 척장, 곡주, 열인, 광년, 평향의 8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임성, 남화, 곡주는 이미 위군에 편입되어 있었고, 나머지 5현이 거록군에 분할되면서 광평군이 성립되게 되었다.[5] 조범의 경우는 연의상으로는 이곳이 고향일 가능성이 높으나, 정사에는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6] 여기에는 배경상황이 존재하는데 당대에는 매관매직이 엄청나게 성행했었는데 매관매직이 아닌 업적으로 관직을 따낸 인물이라는 게 손견, 유비 등 정말 몇 없었고 중산국 전체에서 이런 관리는 유비가 유일했을 정도로 정부가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십상시들은 어떻게든 유비를 짤라야 안희현 현위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먹을 텐데 유비에게는 딱히 해임시킬 명분이 없었고 독우는 유비의 약점을 잡으러 파견된 상태였다. 문제는 유비가 이걸 알았기 때문에 독우를 패고 도망친 것이다. 다만 손견의 경우는 전국구 수준의 무력과 군재를 지녀 후한 어디에든 출동해 구성의 난, 허창의 난 등 굵직굵직한 반란들을 수없이 진압한 공로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손견만은 그냥 냅둬야 했다.[7] '대주'는 후대의 지명이다. 자세한 내용은 유회 항목 참고.[8] 간옹도 장비처럼 그냥 '탁군 사람'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는데, 어려서부터 유비와 친했다는 말도 정사에 있어서 유비와 현까지도 같은 동향인일 가능성이 높다.[9] 유비의 집에 큰 뽕나무가 있었다는데 그걸 바탕으로 출신지를 정했을 가능성이 있다.[10] 25현이라는 사료도 있다.[11] 요동 이외에도 다른 속국이 존재하는데 이민족(異民族)이 모여 있는 군을 속국이라고 하며, 각 속국에는 태수의 역할을 하는 도위(都尉)가 임명되었고, 속국은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지 않았다.[12] 병주자사 정원이 등장하는 것과, 관문인 호관을 고간이 지키고 있다는 것,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고 나서 병주 자사로 임명되어 가다가 죽는 것, 그리고 사마의가 고평릉 사변을 일으키기 직전 감시역인 이승이 그가 진짜 치매인지 아닌지 판별을 하기 위해 형주 자사로 임명받았다고 전하자 사마의가 잘못 알아들은 척하며 병주 자사? 한 정도로만 언급이 될 정도로 안습하다.[13] 그나마도 대부분 주의 남동부인 태원과 상당에 몰려 있었다.[14] 실제로 오원군의 경우 전한 말기에는 16현에 23만 명 규모였던 것이 후한 순제 시기인 2세기 중반에 이미 10현에 2만 2천 명 규모로 쪼그라들게 된다. 안 그래도 지형도 건조한 고원이거나 내몽골 초원-사막지대라 험악한데 흉노, 강족, 오환, 선비 등 온갖 유목민족의 침략에 시달리니 사람들이 전부 빠져나갔기 때문. 현 하나에 인구 1,000명 미만인 경우도 있었다.[15] 장안은 본래 낙양과 같은 사예였으나 위가 세워진 이후 옹주로 편입되었다.[16] 한 가지 이유는 나관중이 삼국지와 배송지주를 주요 자료로 사용했기에 위나라 기준으로 작성된 자료가 많아서 그럴 것이다. 예를 들면 삼국지연의의 마등의 아버지 자석의 소개는 마초전 주석으로 남은 전략의 자석 소개와 거의 일치하는데, 전략에서는 위나라 기준으로 자석을 '천수군의 난간위'를 지냈다고 서술한다. 자석 생전이라면 한양군의 난간위라고 했을 것이다. 다른 이유는 이 군은 제갈량의 북벌의 배경 지역으로 자로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위나라에서 이름을 천수군으로 고친 이후다.[17] 엄밀히 말하면 이 파촉이란 지명은 익주에서 한중을 제외한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옛날 파나라와 촉나라가 있던 땅이고, 전한에서 파군, 촉군을 두었기 때문.[18] 고조 유방의 초기 근거지이기도 하며 후한 건국 때 군벌 공손술의 기반이었다.[19] 본래 청의(靑衣)라 하였으나, 양가(陽嘉) 2년(133)에 고쳤다.[20] 일남[21] 사서를 보면 오가 점거한 남형주만으로도 동오의 본거지 양주보다 훨씬 인구가 많은 걸로 나온다. 큰 도시라곤 강릉이랑 장사밖에 없었는데... 북형주는 이보다 인구가 더 많았다고 하니 형주의 인구 수는 짐작도 안 갈 정도.[22] 강하군 서릉현과는 다르다[23] 유표가 부임하면서 남군 양양으로 옮겼다.[24] 관우의 작위 한수정후가 이 한수현의 정후(亭侯)를 의미한다.[25] 위나라 관료 장제이다[26] 인근에 세거지라도 있었는지 장제, 장간, 장흠 모두 蔣(장)씨를 쓰는 인물들이다.[27] 형제의 이름이 한국어로는 동명이인이라서 그렇다. 한자가 다르다.[28] 283년 오군은 오현, 가흥현, 해염현, 염관현, 전당현, 부춘현, 동려현, 건덕현, 수창현, 해우현, 누현의 11현으로 이름까지 대대적으로 개편이 되기 때문이다.[29] 전당현과 무진현을 제외하였다.[30] 당시엔 패군이었다[31] 인근에 하동군에도 같은 이름의 평양현이 있었기에, 태산국의 평양현은 동평양현으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