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역대 선수

 

1. 개요
2. 역대 멤버
3. 기타 올드멤버
3.1. 나무위키 내 개별 문서가 없는 올드멤버들
4. 역대 외국인 선수
5. 흑역사


1. 개요


과거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동했던 선수들의 명단.
프랜차이즈 스타들부터 과거 1년이라도 삼성에서 활동한 선수들 중,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선수들이라면 전부 포함되어 있다. 현재 삼성 라이온즈 소속 선수들은 삼성 라이온즈/선수단 명단 문서 참조.

2. 역대 멤버


이름이 진하게 표시된 선수는 영구결번
등번호
이름
포지션
입단년도
삼성 소속기간
은퇴년도
비고
6
강기웅
내야수
1989(삼성)
1989~1996
1996(삼성)
경주고등학교 코치
1
강동우
외야수
1998(삼성)
1998~2005
2013(한화)
두산 베어스 1군 코치
27
권영호
투수
1982(삼성)
1982~1989
1989(삼성)
경일대학교 감독
30
김상엽
투수
1989(삼성)
1989~1999
2001(LG)
경북고등학교 코치
5
김성래
내야수
1984(삼성)
1984~1996
2000(SK)
한화 이글스 육성군 코치
29
김시진
투수
1983(삼성)
1983~1988
1992(롯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전력분석 팀장
7
김용국
내야수
1985(삼성)
1985~1993
1995(태평양)
경주고등학교 감독
7
6
김재걸
내야수
1995(삼성)
1995~2009
2009(삼성)
삼성 라이온즈 2군 코치
3
김종훈
외야수
1994(롯데)
1997~2007
2007(삼성)
삼성 라이온즈 2군 코치
6
김태균
내야수
1994(삼성)
1994~2002
2007(SK)
kt wiz 1군코치
28
김태한
투수
1992(삼성)
1992~2001
2003(SK)
kt wiz 1군 코치
5
김한수
내야수
1994(삼성)
1994~2007
2007(삼성)

46
김현욱
투수
1993(삼성)
1993~1995
1999~2005
2005(삼성)

33
류명선
투수
1988(삼성)
1989~1995
1996(쌍방울)
계명대학교 감독
1
류중일
내야수
1987(삼성)
1987~1999
1999(삼성)

3
박승호
내야수
1983(삼성)
1983~1993
1993(삼성)
부산문화방송 해설위원
23
26
박정환
포수
1982(삼성)
1982~1992
1992(삼성)
저니맨 외인구단 기술자문위원
17
박충식
투수
1993(삼성)
1993~1999
2003(KIA)

3
배대웅
내야수
1982(삼성)
1982~1986
1986(삼성)

14
성준
투수
1986(삼성)
1986~1998
1999(롯데)
수성대학교 코치
70
신동주
외야수
1991(삼성)
1991~2000
2004~2005
2006(KIA)

28





BJ
9
양일환
투수
1983(삼성)
1983~1989
1989(삼성)
KIA 타이거즈 2군 코치
'''10'''
'''양준혁'''
외야수
1993(삼성)
1993~1998
2002~2010
2010(삼성)
MBC SPORTS+ 해설위원
양준혁 야구재단 이사장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
16
오대석
내야수
1982(삼성)
1982~1988
1991(롯데)
경상중학교 코치
'''22'''
'''이만수'''
포수
1982(삼성)
1982~1997
1997(삼성)
MBC SPORTS+ 객원 해설위원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J 브라더스 구단주
육군사관학교 총감독
70
34
이상훈
투수
1990(삼성)
1990~1999
2004(롯데)

'''36'''
'''이승엽'''
내야수
1995(삼성)
1995~2003
2012~2017
2017(삼성)
SBS Sports 해설위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회 위원
40
이종두
외야수
1985(삼성)
1985~1996
1997(쌍방울)

12
이태일
투수
1990(삼성)
1990~1997
1997(삼성)

4
장태수
외야수
1982(삼성)
1982~1992
1992(삼성)
KIA 타이거즈 잔류군 코치
'''10'''
장효조
외야수
1983(삼성)
1983~1988
1992(롯데)

17
전병호
투수
1996(삼성)
1996~2008
2008(삼성)

9
정경배
내야수
1996(삼성)
1996~2001
2009(SK)
한화 이글스 1군 코치
20
정현발
외야수
1982(삼성)
1982~1986
1988(청보)

62
19
정현욱
투수
1996(삼성)
1996~2012
2016(LG)
삼성 라이온즈 1군 코치
20
진갑용
포수
1997(OB)
1999~2015
2015(삼성)
KIA 타이거즈 1군 코치
13
진동한
투수
1984(삼성)
1984~1989
1992(쌍방울)

12
함학수
내야수
1982(삼성)
1982~1987
1987(삼성)

2
8
허규옥
외야수
1982(삼성)
1982~1988
1991~1992
1992(삼성)

38
홍승규
외야수
1983(삼성)
1983~1990
1990(삼성)
대구문화방송 해설위원
1
황규봉
투수
1982(삼성)
19832~1986
1986(삼성)

25
배영수
투수
2000(삼성)
2000~2014
2019(두산)
두산 베어스 2군 코치
33
박한이
우익수
1997(삼성)
2001~2019
2019(삼성)
삼성 라이온즈 육성군 코치
39
37
임창용
투수
1995(해태)
1999~2007
2014~2015
2018(KIA)

47
권혁
투수
2002(삼성)
2002~2014
2020(두산)


이름
포지션
입단년도
삼성 소속기간
현재 소속팀
8
'''18'''
박석민
내야수
2004(삼성)
2004~2015
NC 다이노스
56
이지영
포수
2008(삼성)
2008~2018
키움 히어로즈
13
장원삼
투수
2006(현대)
2010~2018

23
차우찬
투수
2006(삼성)
2006~2016
LG 트윈스
64
17
채태인
내야수
2001(보스턴)
2007~2015

'''34'''
최형우
외야수
2002(삼성)
2002~2005
2008~2016
KIA 타이거즈

3. 기타 올드멤버


'''나무 위키에 문서가 있는 선수들만 소개'''(문서가 없는 선수들은 아래 따로 소개.). 때문에 흑역사와 중복되는 선수들도 일부 있다.

이름
포지션
입단년도
삼성 소속기간
은퇴년도
비고
12
강만식
투수
1982(해태)
1989
1989(삼성)

9
강명구
내야수
2003(삼성)
2003~2014
2014(삼성)
삼성 라이온즈 1군 코치
1
24
강봉규
외야수
2000(두산)
2007~2015
2016[1]
삼성 라이온즈 2군 코치
8
강영수
외야수
1989(삼성)
1989~1990
1998(쌍방울)

26
강영식
투수
2000(해태)
2001~2006
2017(롯데)
롯데 자이언츠 코디네이터
32
강희성
투수
2006(삼성)
2006~2009
2009(삼성)

6
고지행
내야수
2000(한신)
2003~2004
2005(한화)

62
곽동현
포수
2007(삼성)
2007, 2011
2011(삼성)
경운중 감독
37
곽동훈
투수
2005(삼성)
2005~2011
2011(삼성)

31
곽채진
투수
1992(삼성)
1992~1998
2003(두산)
언북중 감독
52
구자운
투수
1999(두산)
2008~2011
2011(삼성)

50
권오원
투수
2002(삼성)
2002~2011
2011(삼성)
삼성 라이온즈 2군 코치
61
길태곤
투수
2010(삼성)
2010~2012
2016(한화)

60
김건필
투수
2008(삼성)
2008~2015
2015(삼성)

49
김건한
투수
2001(SK)
2012~2016
2016(삼성)

14
김경모
내야수
2008(삼성)
2008~2015
2015(삼성)

66
김광현
포수
1994(OB)
1998~1999
2000(SK)

15
김근석
내야수
1983(삼성)
1983~1986
1988(청보)

17
김기태
투수
1971(히로시마)
1987
1987(삼성)

11
김기태
내야수
1991(쌍방울)
1999~2001
2005(SK)

35
김대익
외야수
1996(롯데)
2004~2007
2007(삼성)
부산고 코치
2
김동수
포수
1990(LG)
2001~2001
2009(히어로즈)
LG 트윈스 코치
111
김동영
내야수
2009(삼성)
2009~2013
2013(삼성)

2
김동욱
내야수
2007(삼성)
2007~2013
2018(kt)
8
김동은
내야수
2010(삼성)
2010~2011
2017(kt)

25
김동재
내야수
1983(삼성)
1983~1988
1993(LG)

23
김상준
외야수
2007(삼성)
2007
2007(삼성)

31
김상진
투수
1989(OB)
1999~2001
2003(SK)
두산 베어스 1군 코치
8
김성갑
내야수
1985(삼성)
1985
1995(태평양)

17
김성길
투수
1978(한큐)
1987~1992
1993(쌍방울)

23
김성현
포수
1986(롯데)
1989~1996
1998(쌍방울)
부산고 감독
43
김성훈
투수
2006(SK)
2011
2014(한화)

35
김승관
내야수
1995(삼성)
1995~2004
2007(롯데)
상원고 감독
9
김승권
내야수
1995(한화)
2001~2003
2006(현대)
외산중 감독
8
김실
외야수
1985(닛폰햄)
1994~1995
2000(두산)

38
김영복
포수
2003(삼성)
2003~2007
2012(NC)

20
12
김영진
포수
1995(삼성)
1995~2001
2001(한화)

107
김영훈
내야수
2012(삼성)
2012~2013
2014(고양)

24
김용철
내야수
1982(롯데)
1989~1992
1992(삼성)

67
13
김인철
투수
외야수
1990(삼성)
1990~2001
2007(한화)
청주고 감독
28
김일융
투수
1969(요미우리)
1984~1986
1992(야쿠르트)

37
김문수
투수
2003(삼성)
2003~2008
2008(삼성)

43
김우석
내야수
2002(LG)
2008
2008(삼성)
LG 트윈스 2군 코치
53
김재우
투수
2010(삼성)
2010~2015
2015(삼성)

-
김재현
투수
1998(한화)
2002
2011(한화)

20
김정수
외야수
1987(삼성)
1987~1992
1992(삼성)

16
김정혁
내야수
2011(삼성)
2011~2017
2017(삼성)
삼성 라이온즈 전력분석원
31
김종호
외야수
2007(삼성)
2007~2012
2017(NC)

91
김종화
투수
2010(삼성)
2010~2011
2011(삼성)

13
김주현
내야수
2008(삼성)
2008~2009
2013(NC)

43
김지호
포수
2009(삼성)
2009~2010
2015(NC)

57
김지훈
포수
1998(삼성)
1998~2001
2004(KIA)
KIA 타이거즈 스카우트 팀장
93
김지훈
투수
2010(삼성)
2010~2011
2011(삼성)

104
김지훈
투수
2012(삼성)
2012~2015
2015(삼성)

51
김진웅
투수
1998(삼성)
1998~2010
2010(삼성)

63
김창희
외야수
1997(해태)
2006~2009
2009(삼성)

42
김태룡
내야수
1992(삼성)
1992~1996
2002(KIA)
NC 다이노스 2군 코치
4
김태완
내야수
2004(LG))
2013~2016
2016(삼성)

35
김한근
내야수
1982(삼성)
1982~1985
1990(태평양)

42
김현수
투수
외야수
2002(삼성)
2002~2004
2010(두산)

20
김현우
투수
2010(삼성)
2010~2017
2017(삼성)

117
김현중
포수
내야수
2005(삼성)
2005~2006
2012~2013
2013(삼성)

39
김형석
외야수
1985(OB)
1998
1998(삼성)

69
김형준
투수
2010(삼성)
2010~2011
2011(삼성)

46
김효남
투수
2006(삼성)
2006~2012
2014(LG)

35
나광남
외야수
1989(삼성)
1989~1991
1991(삼성)
KBO 심판위원
27
나성용
외야수
2011(한화)
2016~2017
2017(삼성)
KIA 타이거즈 잔류군 코치
61
노병오
투수
2002(삼성)
2002~2003
2011(넥센)
키움 히어로즈 코치
18
노장진
투수
1993(빙그레)
1999~2004
2006(롯데)

40
노진용
투수
2008(LG)
2013~2016
2016(삼성)

46
27
동봉철
외야수
1992(삼성)
1992~1996
1999(쌍방울)
KBO 육성위원
23
라형진
투수
1999(삼성)
1999~2006
2007(경찰)[2]

49
마해영
내야수
1995(롯데)
2001~2003
2008(롯데)

69
명재철
투수
2011(삼성)
2011~2012
2013(한화)

49
19
모상기
내야수
2006(삼성)
2006~2014
2016(kt)

39
문선엽
외야수
2010(삼성)
2010~2017
2017(삼성)

61
문수호
투수
2002(KIA)
2011
2015(NC)

50
박근영
포수
1996(삼성)
1996~1997
1997(삼성)
KBO 심판위원
62
28
박근홍
투수
2004(기아)
2012~2018
2019(롯데)

21
박동희
투수
1986(롯데)
1997~2001
2001(삼성)

37
박민규
투수
2009(삼성)
2009~2017
2017(삼성)
마산고 코치
118
박상원
투수
2012(삼성)
2012~2016
2016(삼성)

59
39
박석진
투수
1995(삼성)
1995~1997
2004~2006
2008(LG)
LG 트윈스 2군 코치
2
박선일
포수
1989(빙그레)
1993~1996
1996(삼성)

54
15
박성훈
투수
2005(삼성)
2005~2009
2015(넥센)

33
박영진
투수
1982(삼성)
1982~1984
1984(삼성)

56
박정현
내야수
2006(삼성)
2006
2006(삼성)

8
박정환
내야수
2000(삼성)
2000~2007
2011(SK)

67
박제윤
투수
2014(삼성)
2014~2016
2016(삼성)

31
박종호
내야수
1992(LG)
2004~2008
2010(LG)
롯데 자이언츠 1군 코치
7
박진만
내야수
1996(현대)
2005~2010
2015(SK)
삼성 라이온즈 1군 코치
44
박찬
외야수
1982(삼성)
1982~1985
1986(빙그레)

101
박화랑
투수
2010(삼성)
2010~2012
2012(삼성)
상원고 코치
114
배진호
내야수
2015(삼성)
2015~2016
2016(삼성)

32
서동환
투수
2005(두산)
2014~2016
2016(삼성)

6
서정환
내야수
1982(삼성)
1982
1989(해태)
KBO 경기감독관
36
성낙수
투수
1982(삼성)
1982~1985
1986(빙그레)

3
성의준
내야수
2012(삼성)
2012~2017
2017(삼성)

37
손상대
포수
1982(삼성)
1982~1987
1987(삼성)

2
손상득
포수
1982(삼성)
1982~1988
1988(삼성)

3
손지환
내야수
1997(LG)
2008
2010(한화)
SK 와이번스 2군 코치
63
손형준
외야수
2012(삼성)
2012~2016
2016(삼성)

23
송일수
포수
1970(긴테쓰)
1984~1986
1986(삼성)

4
송주호
외야수
2007(삼성)
2007~2010
2018(한화)

17
송진호
투수
1982(삼성)
1982~1986
1986(삼성)

21
신경식
내야수
1982(OB)
1991~1992
1995(쌍방울)

14
신명철
내야수
2001(롯데)
2007~2013
2015(kt)

118
신영재
포수
2011(넥센)
2015
2015(삼성)
경성대 코치
15
신용운
투수
2002(KIA)
2012~2017
2017(삼성)

90
신희섭
투수
2011(삼성)
2011
2013(경찰)[3]

59
55
심광호
포수
1996(한화)
2008~2010
2012(LG)
kt wiz 전력분석원
12
심성보
외야수
1995(쌍방울)
2003
2003(삼성)

32
심정수
외야수
1994(OB)
2005~2008
2008(삼성)

60
안태영
내야수
2004(삼성)
2004~2005
2015(넥센)

59
양영동
외야수
2006(삼성)
2006~2007
2014(LG)
LG 트윈스 전력분석원
25
양용모
포수
1991(빙그레)
1996~1998
2002(SK)

44
양지훈
투수
2009(삼성)
2009~2013
2013(삼성)
삼성 라이온즈 2군 매니저
18
오봉옥
투수
1992(삼성)
1991~1995
2006(한화)

34
오상민
투수
1997(쌍방울)
2002~2007
2011(LG)

53
오정복
외야수
2009(삼성)
2009~2011
2018(kt)]

58
오태선
투수
2011(삼성)
2011~2012
2012(삼성)

8
우동균
외야수
2008(삼성)
2008~2017
2017(삼성)

50
우병걸
투수
2011(KIA)
2012~2016
2016(삼성)

34
63
우용득[4]
포수
1982(삼성)
1982~1983
1983(삼성)
대학야구연맹 전무이사
102
유원선
포수
2011(삼성)
2011~2012
2014(kt)

27
윤석환
투수
1984(OB)
1991
1991(삼성)

16
이강철
투수
1989(해태)
2000~2001
2005(KIA)
kt wiz 감독
97
이강혁
내야수
2010(삼성)
2010~2011
2016(NC)

87
이경록
외야수
2011(삼성)
2011
2017(KIA)

68
이계성
외야수
1996(삼성)
1996~1998
2000
2005(롯데)
KBO 심판위원
11
이광길
내야수
1983(삼미)
1991~1992
1992(삼성)

39
이규대
투수
2010(삼성)
2010~2012
2012(삼성)

52
이동걸
투수
2007(삼성)
2007~2013
2018(한화)
한화 이글스 코치
57
3
이동수
내야수
1992(삼성)
1992~1997
2003(두산)
경북고 코치
00
이동현
외야수
2012(삼성)
2012~2016
2016(삼성)

101
이동훈
외야수
2012(삼성)
2012~2016
2016(삼성)

15
이명호
내야수
투수
2000(삼성)
2000~2002
2003(롯데)

28
이문한
투수
1984(롯데)
1989~1991
1991(삼성)

00
이병훈
외야수
1990(LG)
1996
1996(삼성)

51
29
이상목
투수
1990(삼성)
1990~1993
2008
2008(삼성)

6
이상훈
외야수
2010(한화)
2013~2017
2017(kt)
한화 이글스 코치
26
이선희
투수
1982(삼성)
1982~1984
1987(MBC)

8
이순철
외야수
1985(해태)
1998
1998(삼성)
SBS Sports 해설위원
54
이승우
투수
2007(LG)
2013~2015
2015(삼성)

70
0
이여상
내야수
2006(삼성)
2006~2008
2017(롯데)

39
이영수
내야수
2004(KIA)
2013
2013(삼성)
삼성 라이온즈 2군 코치
41
이영욱
투수
2003(SK)
2014
2014(삼성)
진성중 감독
24
이영욱
외야수
2008(삼성)
2008~2017
2018(KIA)

16
이영재
포수
1991(삼성)
1991~1994
1994(삼성)
KBO 심판위원
20
이용철
투수
1988(MBC)
1993~1994
1994(삼성)

34
이용훈
투수
2000(삼성)
2000~2001
2014(롯데)
롯데 자이언츠 2군 코치
43
이우선
투수
2009(삼성)
2009~2014
2014(삼성)

27
이정식
포수
2004(삼성)
2004~2016
2016(삼성)
삼성 라이온즈 3군 코치
11
이정호
투수
2001(삼성)
2001~2004
2010(넥센)
키움 히어로즈 잔류군 코치
7
0
이정훈
외야수
1987(빙그레)
1995~1996
1997(OB)
한일장신대 코치
47
9
이중화
외야수
1987(빙그레)
1995~1996
1996(삼성)

11
이해창
외야수
1982(MBC)
1985~1986
1989(태평양)

40
이희성
외야수
1989(태평양)
1997
삼성(1997)

13
11
임동규
투수
2003(삼성)
2003~2010
2010(삼성)

-
임신근[5]
투수
1982(삼성)
1982
1982(삼성)

60
임익현
투수
2009(삼성)
2009~2010
2010(삼성)

3
임익준
내야수
2007(삼성)
2007~2011
2018(한화)]
2
임재철
외야수
1999(롯데)
2002~2003
2015(롯데)

41
31
임진우
투수
2010(삼성)
2010~2015
2018(두산)
28
장태수
투수
1987(삼성)
1987~1988
1990(롯데)

65
45
전상렬
외야수
1991(삼성)
1991~1996
2009(두산)
한화 이글스 2군 코치
13
전준호
투수
2005(SK)
2010
2012(NC)

56
정경훈
내야수
1990(삼성)
1990~1994
1999(한화)

43
정민우
포수
2010(삼성)
2010~2011
2014~2016
2016(삼성)

10
정성룡
외야수
1984(삼성)
1984~1992
1995(해태)

65
정성훈
투수
1996(삼성)
1996~2002
2010(LG)

11
정영규
외야수
1993(삼성)
1993~1994
2000(KIA)

97
정우양
포수
2011(삼성)
2011~2016
2016(삼성)

6
정진호
내야수
1983(삼성)
1983~1986
1990(태평양)

51
정형식
외야수
2009(삼성)
2009~2014
2014(삼성)

46
25
정회열
포수
1990(해태)
1998~1999
1999(삼성)
KIA 타이거즈 전력분석원
27
조계현
투수
1989(해태)
1998~1999
2001(두산)
KIA 타이거즈 단장
25
조범현
포수
1982(OB)
1991~1992
1992(삼성)

35
조영훈
내야수
2005(삼성)
2005~2012
2017(NC)
NC 다이노스 전력분석원
39
조진호
투수
1998(보스턴)
2008~2009
2009(삼성)

11
조현근
투수
2005(두산)
2006~2016
2016(삼성)

67
97
지승민
투수
2001(한화)
2003~2009
2010(두산)

38
채상병
포수
2002(한화)
2009~2014
2014(삼성)
삼성 라이온즈 2군 코치
7
천보성
내야수
1982(삼성)
1982~1984
1984(삼성)

53
최경철
포수
2003(SK)
2017
2017(삼성)
SK 와이번스 전력분석원
11
최동원
투수
1983(롯데)
1989~1990
1990(삼성)

33
24
최익성
외야수
1994(삼성)
1994~1998
2004
2005(SK)
한국독립야구연맹 사무총장
27
최일언
투수
1984(OB)
1991~1992
1992(삼성)

47
최재호
투수
1996(삼성)
1996~2001
2001(삼성)

68
최창양
투수
1995(필라델피아)
1996~2001
2001(삼성)

29
최한경
투수
외야수
1993(삼성)
1993~1999
2000(LG)

16
최한림
투수
1990(쌍방울)
1995~1997
1997(삼성)
인상고 감독
30
추승민
투수
2007(삼성)
2007~2011
2011(삼성)

21
한희민
투수
1986(빙그레)
1993
1993(삼성)
논산시 리틀야구단 감독
66
허삼영
투수
1991(삼성)
1991~1995
1995(삼성)
'''삼성 라이온즈 감독'''
37
허승민
외야수
2009(삼성)
2009~2015
2015(삼성)

27
현재윤
포수
2002(삼성)
2002~2012
2014(LG)

52
황두성
투수
1997(삼성)
1997~1998
2011(넥센)
삼성 라이온즈 1군 코치
18
황병일
외야수
1983(삼성)
1983~1985
1990(빙그레)


이름
포지션
입단년도
삼성 소속기간
현재 소속팀
30
44
김상수
투수
2006(삼성)
2006~2009
키움 히어로즈
48
김영환
내야수
2013(삼성)
2013
kt wiz
111
김주온
투수
2015(삼성)
2015~2017
SK 와이번스
10
김주찬
외야수
2000(삼성)
2000
KIA 타이거즈
54
나원탁
포수
2017(삼성)
2017
롯데 자이언츠
110
신용승
외야수
2012(삼성)
2012~2013
kt wiz
56
윤영삼
투수
2011(삼성)
2011
넥센 히어로즈
63
이준형
투수
2012(삼성)
2012~2013
LG 트윈스
48
이흥련
포수
2013(삼성)
2013~2016
두산 베어스
50
정현
내야수
2013(삼성)
2013~2014
SK 와이번스
31
최재원
외야수
2013(NC)
2016
LG 트윈스
64
최정용
내야수
2015(삼성)
2015
KIA 타이거즈
121
홍유상
투수
2014(삼성)
2014~2015
한화 이글스

3.1. 나무위키 내 개별 문서가 없는 올드멤버들


등번호 - 이름- 특이사항 순.
19 구윤: 고교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가졌으나 대학 진학 후에는 부진했고 프로 입단 후에도 무릎부상으로 별다른 활약을 못했다. 그나마 커리어 하이는 1989년으로, 나름 괜찮은 2루타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활약했다. 선구안은 썩 좋지 않은 편으로 삼진이 많고 볼넷이 적은 편. 1993년에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트레이드 되어 삼성을 떠난 뒤, 1994년 시즌 뒤 은퇴. 여담으로 역대 연타석 삼진 기록을 갖고 있다. 태평양에서 8연타석 삼진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49 김훈기: 영남대 출신으로 1986년 입단. 양일환-진동한-김훈기로 이루어지는 80년대 중후반 삼성 잠수함 삼각편대의 일원이기도 했다. 80년대 말 약화된 삼성 투수진에서 나름 활약한 선수다. 커리어 하이는 1988년으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118이닝, 평균자책점 2.72, 10승 5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1989년부터 급격하게 쇠락, 1990년엔 한 경기도 나오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은퇴 후 영남대 투수코치로 있었다. 재임 당시에는 아마야구 지도자로 프로 선수 출신이 활동할 수 없다는 법이 사라진 초창기라 아마추어 야구계의 질시로 덕아웃에도 못 앉는 등 고생하기도 했다.
18 김휘욱: 창단 원년멤버. 입단 2년만에 은퇴했다.
32 박봉수: 오사카 태생의 재일교포. 일본명 아라이 타카히데(新井 峰秀). 1군 출장 경기가 고작 8경기(2002년 삼성) 뿐인 무명선수나, 이 선수는 역대 최초로 한일 양국의 신인드래프트에 지명된 선수다. 한국에서 휘문고 재학 시절 1996 신인지명 때 쌍방울 레이더스에 2차 10라운드 지명을 받지만 고려대로 진학했다. 그러나 곧 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98 드래프트 때 주니치 드래곤즈 7순위 지명, 입단했다. 2년만에 퇴단, 다시 한국으로 건너와 2002년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1년만에 방출, 은퇴했다. 은퇴 후 군복무를 마치고[6] 한국에 있는 일본계 회사에 취직해서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우동에 꽂혀 일본에서 수타우동을 배우고 한국에 우동집을 차렸다. 공교롭게도 박봉수의 아버지도 한국에 온 후 우동집을 했다고 한다. 먼 길을 돌아 가업을 잇게 된 셈.2017년 기사
21 송광훈: 도쿄 태생의 재일 조선인. 일본명 타케다 미츠쿠니(竹田 光訓). 대학 시절에는 호시노 2세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으며 미일 대학야구 대회에 2년 연속 MVP를 수상하고 LA 올림픽 일본 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1984년 드래프트 때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주니치 드래곤즈 등 3팀이 1순위로 그를 지명, 추첨결과 다이요에 1순위로 입단했다. 그러나 입단 후 폭행사건으로 팀에서 찍혔다. 장명부의 추천으로 1989년 삼성에 입단했으나 그다지 좋은 활약은 하지 못했다. 1991년 일본으로 귀국해 다이요에 복귀했으나 그 해 은퇴했다. 은퇴 후 다이요의 배팅볼 투수로 있다가 1993년 타구에 머리를 맞는 사고를 겪으며, 다이요의 후신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구단직원이 되어 최근까지 근무 중이다.
4 송재익: 주로 백업내야수로 활동했다. 2000년 신생팀 SK로 신생팀 지원선수로 이적했다. SK에서 더 많은 기회를 받았다. 2004년 병역비리 파동의 여파로 현역병으로 입대했다가 제대 후 복귀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출되었다.
52 이준민: 주로 백업포수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삼성의 전력분석원.
50 이준호: 사이드암 투수. 1999년 1차 지명자로 꼽혔지만 실제로는 2차 12라운드로 지명됐을 정도로 당시 대구·경북 대학선수[7]들의 실력이 떨어졌음을 보여줬다. 입단 첫 해인 1999년에는 26경기에 등판했으나 이후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2002년을 끝으로 방출됐고, 이후 중국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귀국 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대구중학교,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경북고 투수코치로 활동하다가 2018년 초 박상길 감독이 비리 문제로 해임되자 감독으로 승격했다. 투수 최충연의 은사이기도 하다.
39 이현택: 아마시절 투타 모두 뛰어난 선수였고, 입단은 투수였지만 곧 타자로 전향했다. 한 때 주전 1루수로 기용되기도 했으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최해명과 함께 쌍방울로 트레이드되었고, 1992년 쌍방울에서 은퇴했다. kt 투수 김주원의 이모부.
59 장영균: 대학시절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로 뽑혔음에도 프로 5년간 통산 56경기 출장으로 1군 기록은 그야말로 듣보잡 수준이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다. 참고로 이 해 장영균의 정규시즌 기록은 5경기 출장 4타수 1안타.
8 정구왕: 창단 원년멤버. 1983년 삼미로 트레이드되어 1986년 은퇴했다.
13 정용생: 오이타 현 태생의 재일교포. 일본명 오타 타츠오(太田 龍生). 1982년 드래프트 5순위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했다. 그러나 1군에서 기회를 못 잡았고, 장명부의 추천으로 1988년 시즌 중 삼성으로 이적했다. 한국에서 별다른 활약 없이 1990년 일본으로 귀국해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 복귀했으나 그 해 은퇴했다. 은퇴 후 2002년까지 히로시마에서 배팅볼 투수를 맡았다.
31 정윤수: 1988년 삼성의 1차지명으로 입단했으며, 2년간의 준비 끝에 1990년에 포텐셜이 만개하여, 선발과 중무리를 오가며 3.91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한다. 그러나 이 해의 혹사로 인해, 구위가 많이 떨어졌으며, 특히 1990년 한국시리즈 중 2차전에서는 연장전에 들어간 팀의 마지막 투수로 나와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하며 대구아재들의 혈압 상승에 일조했다. 결국 1991년에는 그 전 해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쇠락, 1993년 시즌 후에 방출되어 은퇴했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울산제일중학교 야구부 감독을 역임했다.
2 최해명: 1989년에 입단한 내야수. 대학 시절에는 견실한 수비를 갖춘 유격수로 활동했고, 1988년 올림픽 대표팀에 뽑히면서 프로 입단을 미루고 실업야구팀인 세일통상 야구단에 입단했다. 하지만 팀이 4개월만에 해체되면서 1년을 그냥 쉰 거나 다름 없었지만 운 좋게 삼성에 1차 지명으로 받았다. 프로 입단 전까지는 이름을 날리던 그였지만 당시 삼성 내야진이 막강했기에 백업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후 정경훈이 백업으로 더 나은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쌍방울로 트레이드되었다. 쌍방울 이적 후에도 백업 내야수로 활약하다 1993년에 은퇴했다. 은퇴 후, 연세대 타격코치로 활동하며 재임 당시에는 아마야구 지도자로 프로 선수 출신이 활동할 수 없다는 법이 사라진 초창기라 아마추어 야구계의 질시로 덕아웃에도 못 앉는 등 고생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울산공고 야구부 창립 감독으로 초빙되었고, 2014년 두산 베어스 코치로 프로야구계에 복귀했다.
67 하춘동:얼굴로 보면 꽤 미남인 듯. 하지만 프로에서는 그리 빛을 보지 못했다. 2019년 현재 경북고 코치로 있다.
0 황성관: 주로 백업외야수로 활동했다.

4. 역대 외국인 선수


  • USA: 미국
  • DOM: 도미니카 공화국
  • PRI: 푸에르토리코
  • MEX: 멕시코
  • JPN: 일본
  • NLD: 네덜란드
  • VEN: 베네수엘라
년도
이름
국적
포지션

1998
스캇 베이커
(Scott Baker)
USA
투수

호세 파라
(Jose Parra)
DOM
투수

1999
찰스 스미스
(Charles Smith)
USA
내야수

빌리 홀
(Billy Hall)
USA
외야수

2000
훌리오 프랑코
(Julio Franco)
DOM
외야수

찰스 스미스
(Charles Smith)
USA
내야수
시즌 중 방출, LG로 이적
마이클 가르시아
(Michael Garcia)
USA
투수
↖ 대체 영입
2001
매니 마르티네스
(Manny Martinez)
DOM
외야수

벤 리베라
(Ben Rivera)
DOM
투수
시즌 중 방출
카를로스 바에르가
(Carlos Baerga)
PRI
내야수
↖ 대체 영입
살로몬 토레스
(Salomon Torres)
DOM
투수
시즌 중 방출
발비노 갈베스
(Balvino Galvez)
DOM
투수
↖ 대체 영입
2002
틸슨 브리또
(Tilson Brito)
DOM
내야수

브론스웰 패트릭
(Bronswell Patrick)
USA
투수

매트 루크
(Matt Luke)
USA
외야수
시즌 중 방출
나르시소 엘비라
(Narciso Elvira)
MEX
투수
↖ 대체 영입
2003
틸슨 브리또
(Tilson Brito)
DOM
내야수

나르시소 엘비라
(Narciso Elvira)
MEX
투수
시즌 중 방출
라이언 글린
(Ryan Glynn)
USA
투수
↖ 대체 영입
2004
케빈 호지스
(Kevin Hodges)
USA
투수

트로이 오리어리
(Troy O'Leary)
USA
외야수
시즌 중 방출
멘디 로페즈
(Mendy Lopez)
DOM
내야수
↖ 대체 영입
2005
마틴 바르가스
(Martin Vargas)
DOM
투수

루서 해크먼
(Luther Hackman)
USA
투수
시즌 중 방출
팀 하리칼라
(Tim Harikkala)
USA
투수
↖ 대체 영입
2006
팀 하리칼라
(Tim Harikkala)
USA
투수

제이미 브라운
(Jamie Brown)
USA
투수

2007
제이미 브라운
(Jamie Brown)
USA
투수

크리스 윌슨
(Kris Wilson)
USA
투수
시즌 중 방출
브라이언 매존
(Brian Mazone)
USA
투수
↖ 대체 영입
2008
제이콥 크루즈
(Jacob Cruz)
USA
외야수
시즌 중 방출
톰 션
(Tom Shearn)
USA
투수
↖ 대체 영입, 시즌 중 방출
웨스 오버뮬러
(Wes Obermueller)
USA
투수
시즌 중 방출
존 에니스
(John Ennis)
USA
투수
↖대체 영입
2009
프란시스코 크루세타
(Francisco Cruceta)
DOM
투수

루넬비스 에르난데스
(Runelvys Hernandez)
DOM
투수
시즌 중 방출
브랜든 나이트
(Brandon Knight)
USA
투수
↖대체 영입
2010
프란시스코 크루세타
(Francisco Cruceta)
DOM
투수

브랜든 나이트
(Brandon Knight)
USA
투수
시즌 중 방출
팀 레딩
(Tim Redding)
USA
투수
↖대체 영입
2011
라이언 가코
(Ryan Garko)
USA
내야수
시즌 중 방출
덕 매티스
(Doug Mathis)
USA
투수
↖대체 영입
카도쿠라 켄
(門倉 健)
JPN
투수
시즌 중 방출
저스틴 저마노
(Justin Germano)
USA
투수
↖대체 영입
2012
미치 탈보트
(Mitch Talbot)
USA
투수

브라이언 고든
(Brian Gordon)
USA
투수

2013
아네우리 로드리게스
(Aneury Rodriguez)
DOM
투수
시즌 중 방출
에스마일린 카리대
(Esmailin Caridad)
DOM
투수
↖대체 영입
릭 밴덴헐크
(Rick van den Hurk)
NLD
투수

2014
J.D. 마틴
(John Dale "J.D." Martin)
USA
투수

릭 밴덴헐크
(Rick van den Hurk)
NLD
투수

야마이코 나바로
(Yamaico Navarro)
DOM
내야수

2015
알프레도 피가로
(Alfredo Fígaro)
DOM
투수

타일러 클로이드
(Tyler Cloyd)
USA
투수

야마이코 나바로
(Yamaico Navarro)
DOM
내야수

2016
앨런 웹스터
(Allen Webster)
USA
투수
시즌 중 방출
요한 플란데
(Yohan Flande)
DOM
투수
↖대체 영입
콜린 벨레스터
(Collin Balester)
USA
투수
시즌 중 방출
아놀드 레온
(Arnold Leon)
MEX
투수
↖대체 영입
아롬 발디리스
(Aarom Baldiris)
VEN
내야수

2017
앤서니 레나도
(Anthony Ranaudo)
USA
투수

재크 페트릭
(Zach Petrick)
USA
투수

다린 러프
(Darin Ruf)
USA
내야수

2018
팀 아델만
(Tim Adleman)
USA
투수

리살베르토 보니야
(Lisalverto Bonilla)
DOM
투수

다린 러프
(Darin Ruf)
USA
내야수

2019
저스틴 헤일리
(Justin Haley)
USA
투수
시즌 중 방출
맥 윌리엄슨
(Mack Williamson)
USA
외야수
↖대체 영입
덱 맥과이어
(Deck McGuire)
USA
투수
시즌 중 방출
벤 라이블리
(Ben Lively)
USA
투수
↖대체 영입
다린 러프
(Darin Ruf)
USA
내야수
구단 역사상 최장수
2020
데이비드 뷰캐넌
(David Buchanan)
USA
투수

벤 라이블리
(Ben Lively)
USA
투수

타일러 살라디노
(Tyler Saladino)
USA
내야수(유틸리티)
시즌중 방출
다니엘 팔카
(Danial Falka)
USA
외야수
↖대체 영입

5. 흑역사


  • 감병훈: 1994년 1차지명자. 빠른 공을 던지는 좌투수로, 별명이 불펜특급이었는데 그 이유가 불펜에서 몸풀 때만 빠른 공을 던져서. 7년간 선수생활 동안 1승조차 못 올리고 은퇴했다.
  • 곽용섭: 한때 김응용 감독이 밀어주던 좌타 거포 유망주였다. 경찰 야구단에서 군복무하며 2007년 박석민, 최형우와 더불어 2군 북부리그 홈런 공동 1위에 올랐지만 제대 후 어깨 부상으로 재활하는 동안 1루수로 채태인이 치고 올라오는 바람에 1군 자리가 없어서 결국 방출되었다. 이후 LG로 이적했지만 LG에서도 별다른 활약 없이 방출. 2013년 3년만에 복귀해 두산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지만 1년만에 다시 방출되었다.
  • 김동수: 2000년 FA로 삼성에 왔으나, SK로 트레이드되기 전인 2년간 성적은 안 좋았다. 성적으로만 봐서는 이강철이나 홍현우(LG)와 비교했을때에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으나 현대에서 팀 우승하고 골든글러브도 땄기 때문에 삼성 입장에서는 먹튀다.
  • 김승관: 1995년 입단. 고교 시절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이승엽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라이벌이었다. 그런데 이승엽이 타자로 전향하면서…. 거기다 이승엽의 타자 전향을 고려하던 코칭스태프에게 이 선수가 '승엽이는 방망이도 잘 쳐요'라고 한 게 이승엽이 타자 전향을 한 이유 중 하나.[8] 삼성에 오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군에만 머무르는 바람에 이 선수에게 따라다니던 딱지는 2군 홈런왕. 그야말로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 비운의 천재.[9] 결국 롯데로 트레이드되었고 거기서 또 2군 홈런왕 타이틀만 먹고 2007년 은퇴했다.
  • 김영진: 1995년 입단. 암흑기 시절 주전 포수였으며, 주전 포수임에도 타율이 2할도 못 칠 정도로 삼팬들의 골치를 썩였다. 무엇보다 그가 야구팬들의 기억에 남은 건 1997년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규정이 어떻게 적용되는가와 야구퀴즈에 흔히 나오던 선수가 플레이 중이던 볼을 관중석으로 던지면 어떻게 되는지 야구팬들의 이해 증진을 위하여 몸소 시범을 보인 선수였기 때문. 결국 삼성에서는 여러팀에서 방출된 포수나 유망주 포수를 사오고 마침내 FA로 포수를 지른 결과 김영진은 주전 자리를 뺏기고 2001년 한화로 트레이드된 후 그해 은퇴. 하필이면 낫아웃 사건 당시 상대팀 감독이 김성근이였던 게 이 선수의 불행이었다. 뭐...타격도 답이 없었으니 언젠가는 빠졌어야 했다.
  • 김주찬: 2000년 입단. 입단 당시만 해도 당해 최고의 고졸 유격수로 평가받으며 주목을 이끌었다. 그러나 입단 1년만에 마해영과 트레이드되어 롯데로 이적. 현재 삼성 선수로서의 이미지는 전혀 남아있지 않다. 또한 삼성에 있을 적에 수비를 하다가 송구가 1루측 담장을 넘겨버리는 일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김주찬 본인에게도 큰 트라우마로 남아 이후 외야수로 전향하게 되었다
  • 김준희: 2011년 신인으로, 시즌 전 음주 운전 사건으로 인해 데뷔하지도 못하고 방출됐다.
  • 김현수: 2002년 입단. 장타력을 가진 거포가 될 타자로 기대를 모았으나, 프로 입단 후에는 강견인 장점을 살려 투수로 전향했다. 투수로도 기대주였으나,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이후 방출되었다. 이후 2010년에 두산 신고선수로 입단하지만 1년만에 방출되었다. 여담으로 현재 엘지 트윈스 소속 김현수와 동명이인으로, 둘다 신일고 출신.
  • 김현중: 2005년 입단. 고교 시절 공격형 포수로 유명했으며 삼성에 2차 2라운드에 지명되었을 정도. 하지만 입단 후에 "내 실력이 2군 백업포수보다 못하다."며 갑작스레 투수 전향을 해, 망했다. 그러나 2012년 신고선수로 재입단했다. 하지만 별다른 활약 없이 2013년 방출되면서 흑역사에서 탈출하는데 실패했다.
  • 노병오: 2002년 입단. 이정호와 마찬가지로 2000년대 초반 투수 유망주 중 한 명으로, FA 박종호의 보상선수로 2004년 현대 유니콘스에 이적했다. 양일환 투수코치가 칭찬했을 정도의 재목이었으나 현대 이적 후에는 부상과 부진으로 듣보잡으로 전락. 2011년 말 은퇴했다.
  • 라이언 가코: 2011년 영입한 외국인선수. 제이콥 크루즈 이후 3년만에 영입한 외국인 타자인데다 스프링캠프 때 류중일 감독의 "나는 믿을거야. 가코 믿을거야.", 이른바 나믿가믿 발언으로 유명해졌다.[10] 하지만 58경기 동안 홈런 1개[11]만을 기록하고 아름다운 2군행. 결국 2군에서 훈련 중 손가락 부상을 당하며 결국 퇴출되었다.
  • 루넬비스 에르난데스: 2009년 선발로 영입한 외국인선수로, 실력은 그다지였으나 친화력과 특유의 개그로 주목받았다. 발목 부상으로 퇴출 된 후 약물 복용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었다.
  • 문남열: 1997년 입단. 연습생 출신으로 별다른 활약이 없었는데, 2002년 등번호를 14번으로 바꾸었다. 문남열은 우완투수였지만 정작 1군 성적은 밋밋했고[12] 그가 바꾼 번호인 14번이 한때 성준이 달았다는 이유 때문에 성준과 비교되면서 악평만 받았다.[13] 더 큰 문제는 선수본인 존재자체도 이미 묻혀버렸다(!)... 또한 이 선수는 등번호 건을 제외하고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데다가 현대 유니콘스에서 2군 생활 끝에 방출되었다. 등번호 잘못 달아 까이게 된 불운한 케이스다.
  • : 2009년 일본 독립리그에서 활동하던 중 여성을 검열삭제하면서 체포,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2008년 삼성에 입단해 활동했다는데, 문제는 문상훈이란 선수가 삼성에 입단한 적이 없었다. 즉 일본 언론의 실수.
  • 박성훈: 2005년 입단. 입단 첫 해인 2005년 두산전에서 후에 한솥밥을 먹게 되는 선수한테 3루타를 얻어맞은 일화도 있다. 조원수박차의 멤버로 이름을 날렸지만, 무엇보다 유명해진 건 장원삼 트레이드 때문. 2008년 말에 트레이드되어서 히어로즈 훈련에 합류했을 때 "삼성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인터뷰했지만, 트레이드가 무산되며 삼성으로 돌아왔다. 2009년 말 결국 트레이드가 성사되어 넥센으로 이적.
  • 발비노 갈베스: 2001년에 15경기에 등판해 10승 4패 2.51이라는 호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시즌 중에 모친의 병간호를 해야한다며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출국해버렸는데 7번씩이나 입국거부를 하며 물의를 빚었다. 게다가 부상까지 찾아와서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신나게 불을 질렀다. 결국은 나이도 있고 큰 경기에서 삽질을 한 덕분에 재계약 실패.
  • 백상원: 나바로가 지바 롯데 마린스로 이적하고 조동찬, 김태완 등의 2루수 자원들이 부상을 입은 2016년부터 자주 2루수로 선발 충장했으나, 기회가 올 때마다 공격, 수비에서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였고, 팬서비스와 인성에서도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A 우규민의 보상선수로 유망주 최재원이 뺏기는 와중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오히려 빈축만 샀지만, 결국 강한울과 김성훈에게 밀려 점차 1군 출전 시간이 줄어들었고, 2018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 아놀드 레온: 카리대를 잇는 의료관광객. 그래도 카리대는 몸값이라도 쌌다.[14]
  • 아롬 발디리스: 아놀드 레온 때문에 묻혔지만 이쪽도 만만찮은 유리몸. 그나마 인성이 좋다는 이유로 비난받지는 않았지만, 시즌 후 한국행을 후회한다며 삼성을 디스하는 인터뷰를 했다.
  • 안성필: 2010년에 입단한 외야수. 시즌 중 술집에서 만난 여자의 지갑을 훔치려다 불구속 입건됐다. 사실이 확인된 다음날 바로 방출. 다만 2014 시즌에 재영입한 것이 확인되었으나 2군 경기에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고 다시 방출됐다.

  • 안지만: 리그 최강의 셋업맨이었고, 통산 홀드 1위(171개) , 그러나 인성은 실력에 비례하지 못했던 투수. 2015년 도박 사건에 연루되었고 이후 스포츠 도박 까지 한 게 알려져 결국 계약 해지 처리로 반강제로 은퇴. 도박꾼, 먹튀XX로 까인다.
  • 앤서니 레나도: 카리대-레온을 잇는 의료관광객. 심지어 카리대, 레온보다 몸값도 더 비쌌다.
  • 양영동: 신고선수로 입단. 그러나 2군에서 주전 중견수에 1번타자로 꾸준히 기용되었음에도 타격에서 발전이 없어 결국 방출되었고 이후 LG로 이적했다.
  • 에스마일린 카리대: 2013년에 영입했던 KBO 사상 최악의 외국인 선수였던 인물이자 외국인 사기꾼. 톰 션의 실력과 발비노 갈베스의 인성을 동시에 갖춘 선수. 일부러 부상을 숨기고 스스로 한국에 찾아와서 계약을 하고 바로 오자마자 드러누워 삼성의 우월한 재활 시스템을 누리는 악질 중의 초 악질이었다. 이러한 행태에 그때까지 크게 화내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던 류중일 감독이 3년 만에 대노하였다는 기사를 싣게 만든 원흉.
  • 오봉옥: 1995년에 커리어하이를 찍었으나 시즌 끝나고 음주운전을 했고 사상사고를 내는 바람에 성적이 좋았어도 방출되었다. 결과만 보면 술만 아니었어도 삼성에서 에이스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우동균: 고교 시절까진 제 2의 장효조라는 별명이 있었을 만큼 엄청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프로에 입단한 이후 그렇다할 포텐을 터뜨리지 못하고 만년 유망주로만 남아있다 결국 2017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고 말았다.
  • 이강철: 김동수와 마찬가지로 FA로 영입, 김동수는 포수 부재로 인한 영입이었지만 이강철은 박충식의 빈자리를 받쳐주지 못했다. 게다가 선수로서는 끝났다고 판단, 고향팀에 보내줬으나 부활해 몇 년 더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바람에 삼성으로서는 FA 먹튀다.
  • 이명호: 2000년 입단. 한때 제2의 이승엽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김태균과 함께 롯데로 트레이드되었는데 백인천의 갑작스러운 투수 전향으로 말미암아 희생양이 되어 버린 선수. 다만 이 선수가 불성실했다는 카더라도 있지만 어쨌든 백골퍼가 삽질한 것은 맞다.
  • 이상훈: 1990년 입단해서 1999년까지 삼성에 있던 투수. 진갑용 트레이드 때문에 두산에 가버렸고 김인식에게 혹사당하고 소리 없이 사라졌다.
  • 이승우: FA 정현욱의 보상선수로 지명했으나, 어깨 부상으로 인한 재활로 3년 동안 실전 경기에 전혀 등판하지 못한 채 2015년 방출됐다.
  • 이정호: 2001년 1차지명자. 삼성 구단 역사상 최고액 신인 계약금인 5억을 받고 입단, 당시에도 프로야구 사상 최고액 신인 계약금이었다.[15] 그러나 이런저런 부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프로 10년차를 맞는 2010 시즌까지 통산 1승. 결국 2005년 심정수, 박진만을 FA로 데려올 때 보상선수로 현대 유니콘스로 넘어갔다. 생각해보면 더 불쌍한 선수. 결국 2010 시즌을 끝으로 넥센에서 임의탈퇴로 공시. 해외 진출을 모색한다고 했다가 무산되었는지, 모교 상원고에서 코치를 하고 있었고 고양 원더스에서 프런트로 근무하다가 김성근 감독을 따라서 한화 이글스에 육성,재활군 투수코치로 부임했다.
  • 임창용: 선수로서는 역대 최고의 사이드암 투수라는 말로 수식이 가능하나, 2003 시즌 전의 간통논란과 2015년 도박사건 연루 등 사생활 문제는 최악인 선수였다. 어찌보면 투수버전 김동주라고도 볼 수 있는 인물이다.[16] 그밖에 2001 시즌 전 연봉 협상 잡음에 이은 조기 귀국,[17] 2004년 말 FA 자격을 얻은 뒤 삼성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해외 진출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실패하고 국내에 돌아와 어찌어찌 연봉 재계약을 맺었으나 계악을 맺은 뒤 하루만에 부모님까지 대동하여 계약을 파기해주거나 트레이드를 요구하여 임의탈퇴 직전까지 가는 등 당시 프런트와의 갈등도 심했었다. 이후 일본 진출 후에도 삼성을 디스하며 "은퇴는 KIA에서 하고 싶다"고 했고, 2014년 해외 생활을 끝내고 삼성에 복귀하며 앙금이 풀어진듯 싶었으나 이번에는 도박 사건을 일으켜 방출되었고, 2016년 KIA에 입단하면서 삼성 팬들에게 대한 사과는 커녕 삼성에 있을 때에도 KIA에 갈 생각을 했었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삼성 팬들의 뒤통수를 친 건 덤.[18]
  • 정성룡: 장효조의 대를 이어 10번을 달을 정도였으나 좀처럼 활약하지 못했다. 결국 해태로 트레이드, 더욱 안습한 것은 자신이 삼성 선수가 아닌 해태 선수로 언급하기도 한다.

  • 정형식: 배영섭에게 밀려 주로 백업 외야수로 활약했지만, 어느정도 포텐이 있었고, 배영섭의 군입대 후 자연스럽게 주전 중견수 자리를 차지했으나, 주전 중견수로 자리잡은 첫 시즌 첫 경기부터 에러와 빈타로 엄청난 임팩트를 남기더니 결국 음주운전으로 임의탈퇴당하고 말았다. 그가 임의탈퇴당하고 비게 된 주전 중견수 자리는 박해민이 말끔히 메꾸었다.
  • 최경철: 백업 포수감으로 영입했으나 시즌 초반에 도핑 적발됐다. 그럼에도 출장정지가 풀릴 때까지 기다려줬을 뿐더러, 시즌 후반 복귀했을 때 이지영이 석연찮은 이유로 2군으로 강등되면서 양아들 논란까지 나왔다.
  • 최동원: 선수협 파동으로 인해 역시 선수협 파동에 연루된 김시진이 포함된 5대6 트레이드로 삼성에 왔지만 삼성에서 2년간 7승 7패의 성적을 남겼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조
  • 최용희(미국명 다니엘 최): 1994년 입단한 재미교포. 빠른 강속구를 가져 이목을 끌었으나 프로 3년 동안 고작 1승만 거뒀다. 물론 선수 문제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영입할 때 그의 투구 영상과 기록만 보고 영입한데다, 재미교포인 최용희는 한국 생활에 익숙치 않았지만 삼성에서 그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도록 해준 것은 전혀 없었다. 결국 1995 시즌 끝나고 대대적인 선수단 정리 때 OB 베어스로 트레이드 되었고 거기서 은퇴했다.
  • 최창양: 1996년 입단. 중앙대를 중퇴하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입단했다가 이적료를 지불하고 트레이드해오는 방식으로 1년만에 국내에 복귀해 삼성에 입단했다.[19] 이 선수의 경우 백인천 감독으로부터 훈련에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저주(?)받은 케이스. 백인천 감독이 그의 행동거지를 보고 1년에 6승 이상 못한다고 해서 했는데. 정말로 1년에 6승 이상을 못했다. 이후 부상과 불성실한 모습 등으로 인해 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2001년 시즌 종료 후 방출.
  • 톰 션: 2008년에 영입했던, 카리대 영입 이전까지 KBO 사상 최악의 외국인 선수.[20]
  • 트로이 오리어리: 2004년 영입했던 외국인선수. 메이저리그에서 3할을 치고 30홈런 언저리를 치는둥 해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는데 시즌 초부터 적응 실패 등으로 인해 돌연 귀국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가버리는 등 말썽을 일으켰고, 이후 어찌어찌 돌아왔으나 2할 초반대의 타율과 10개 정도의 홈런을 치는 등 공갈포의 모습만 보여주다가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었다.
[1] 독일 세미프로 팀 부흐빈더 레지언나레에서 뛰었다.[2] 경찰 복무 중 방출[3] 삼성에서 방출 후 경찰 야구단 입대.[4]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플레잉코치로 선수명단에 이름만 올렸었다. 그래도 경기출장 기록은 있다.[5] 전 한일은행 감독, 플레잉코치로서 이름을 올렸었다. 그래도 경기 출장 기록은 있다.[6] 당시 일본 국적을 유지하고 있었던 한국 영주권자였기에 입영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입대했다고 한다.[7] 1999년까지는 고졸우선지명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1차 지명에서 고졸 선수들을 지명할 필요가 없었다.[8] 이 말 이후 두 선수의 행보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9] 다만 어떤 코치에 의하면 김승관은 특유의 뻗어나오는 거친 스윙으로 인해 프로에서 성공하지 못할 건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10] 다만 영입은 선동열 전 감독때 이루어진 것이다.[11] 뿐만 아니라 김상수보다도 장타율이 낮았다.(...)[12] 문남열은 그 이전에는 1999시즌에는 고작 3승만 거두기도 했다.[13] 1999년에 우완 노장진도 14번을 달았었지만 이쪽은 10승을 거두긴 했다.[14] 카리대는 계약금 없이 연봉 12만 달러였고, 이쪽은 계약금 5만 달러와 연봉 45만 달러로 총액 50만 달러. 이와는 별개로 원 소속팀에 이적료까지 지급했다.[15] 그 후 이 타이틀은 차례차례로 김진우(1983), 한기주가 가져간다.[16] 둘 다 프랜차이즈 스타이면서 동시에 흑역사이며 둘 다 간통을 했었다.[17] 이 당시 연봉 대우를 같은 팀의 이승엽급으로 해달라고 했다가 오히려 삼성 구단에서 삭감을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후 이것과 시드니올림픽 당시 도박설 등으로 인해 이승엽과 임창용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퍼졌다.[18] 사실 일본 진출 이전부터 FA가 되면 고향팀 타이거즈로 가고 싶다, 일본에서 뛰던 시절에도 무조건 은퇴는 KIA에서 할 거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19] 여담으로 애초에 최창양이 미국에 진출할 정도의 선수가 아니었는데다 1년만에 국내로 돌아와, 삼성에서 미국 진출부터 국내 복귀까지 관여한 것이 아니냐하는 의심을 샀고, 결국 해외진출선수가 국내에 복귀할 경우 지명을 받아야한다고 규정이 바뀌었다.[20] 하지만 배스는 톰 션의 커리어(...)를 결국 넘지 못했다. 보여주기도 전에 방출돼버렸으니까. 그러나 이 타이틀은 같은 팀의 에스마일린 카리대가 가져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