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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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민주정의당에서 활동했었던 보수정당 인사들, 특히 3당 합당 이후의 민주자유당에서 활동했던 민정당 출신 인사들을 일컫는다.
2. 활동
12.12 군사반란 이후 하나회 중심으로 창당된 민주정의당은 구 민주공화당의 재산과 인재풀을 모두 흡수한다. 박정희계 중 김윤환[2] , 박준규[3] 를 중심으로 전향한 인물이 많으며, 여기에 전두환을 비롯해서 노태우, 정호용, 권정달, 권익현, 이춘구 등등의 신군부 인사들이 이 주류를 형성하였고 하나회 인사들은 100% 민정계로 분류된다. 이외에도 신군부가 새인물 발탁을 명분으로 검찰 출신들(이한동 등)과 신군부에 협조적인 관료(고건 등), 대학교수(김종인 등[4] )들을 상당수 영입하였다. 소수지만 유신시절에 야당을 하던 인사들이 민정당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재형[5] , 채문식, 윤길중, 오세응이나 김정례, 나석호 같은 경우.[6]
전두환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99.1%를 득표하며 대통령이 되고,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이기며 기반을 다졌다. 다만 대부분의 야당인사들은 출마조차 할 수 없었으며, 국군보안사령부가 신군부에 협조적인 야당인사들을 대상으로 공작하여 만든 관제야당만이 있을 뿐이었다.[7] 어쨋든 이겼으니 꽤 순항했고 경제도 호황이라 지지율이 낮지 않았으나 국민들은 민주화를 원했고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민주한국당 선거 공조로 사실상 패배했다. 이후 6월 민주항쟁이 크게 일어나며 전두환 정부는 민주화 선언을 하고, 민정당은 몰락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경제 호황, 유신정권 등 박정희 정권 출신 인사 흡수와 대경권 유권자를 기반으로 건재한 득표율을 올렸다. 다만 민주정의당 내에서 전두환계와 노태우계간의 알력 다툼이 있었는데, 최종적으론 노태우계가 이기며 전두환은 강제 정계 은퇴했고, 전두환계는 은퇴나 전향을 택했다. 어쨌든 노태우는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추진하여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을 창당했고, 원래 창당 당시에는 최대규모를 자랑했던 거대 파벌이었다.[8] 그러나 차기 대권주자 김영삼을 비롯한 민주계는 민정계에 적대적이였으며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민정계를 거의 쫓아낸다. 일부 민정계는 김종필과 손을 잡아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으나, 나머지는 잔류를 택했다. 그 이후에 이회창이 당권을 잡은 이후에는 민정계 인원 대다수가 이회창계에 가담하기도 했다.
2006년 자유민주연합 해체 이후 민정계는 대다수 은퇴했으며, 한나라당에 있던 잔류 민정계는 친박 성향을 보였다. 다만 친이계 세력들 중에도 민정계가 제법 있었는데 이상득계 인사들이 민정계가 많았다.[9] 사실 계파의 수명으로 보자면 짧은 축에 속하는데, 1990년에 형성되어 1993년부터 권력을 잃었지만, 김영삼 정부 초반기 때만 해도 민정계가 다수였다. 당시에 국무위원도 민정계와 가까운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민주자유당이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개혁공천이 단행되면서 조금씩 숫자가 줄기 시작한다. 그래도 김영삼 정부의 국무위원들 중에도 민정계 출신 인사들이 있었고 2000년대 초까지는 DJP연합으로 인해서 김대중 정부 초반기 내각에 자민련에 있던 민정계 출신 인사들이 앉은 전례도 있고 한나라당에서도 당시 지분이 많던 이회창계의 인원도 대다수가 민정계 출신이라 민정계는 여전히 나름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정계 중진들이 줄줄이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하더니 2016년 20대 총선 이후부터는 거의 다 은퇴를 했다. 결국 민정계는 3당 합당 이후의 민정당 출신으로 정부나 국회에서 활동한 인사들을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와 민주화 운동에 적대적인 권위주의 이념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또한 반공주의 이념을 가지고 있었으나 전두환 파벌이 냉전적 반공주의라면 노태우 파벌은 소련과 중국 공산당과 수교한 북방정책으로 볼 때는 냉전적 반공주의는 아니고 지금의 반공주의에 더욱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내셔널리즘적 특성이 있는 국민보수주의 이념이 기초적이었다.[10] 우파~극우파적 위치에 있다.
3. 구성
- 하나회 출신: 전두환, 노태우, 박세직
- 민주공화당, 유신정우회 출신: 김윤환, 박준규, 서정화(1933), 김종하, 신경식, 정래혁, 오유방, 박창달, 신영균, 권해옥, 김종인, 남재희, 정동성, 이태섭, 이성호, 김영구, 정창화, 정래혁, 이자헌, 이승윤, 양정규, 신상초, 이해원, 최영철, 김세배, 김숙현, 신윤창, 이양우, 정석모, 박정수, 이찬혁, 이종률, 윤국노, 이동진, 유경현, 노인환, 권중동, 고귀남, 김광수, 이도선, 이상익, 정휘동, 민관식, 안갑준, 임영득, 손승덕, 김창규
- 신민당 출신: 이재형, 진의종, 채문식, 윤길중, 김재순, 오세응, 김정례, 나석호, 김중위, 조종호, 천명기, 김기철, 김종기, 안병규, 박권흠, 한병채, 최운지, 황병우, 조기상, 홍문표
- 기타 민주정의당 소속: 정재철, 김기배, 하순봉, 이한동, 박태준, 권익현, 권정달, 박희태, 김태원, 오유섭, 구상찬, 강용식, 박재홍, 김영진, 이영일, 이기원, 이정현, 김학용, 김형오, 나오연, 현경대, 서정화(1939), 김용갑, 이세기, 이해구, 고건, 최병렬, 이상득, 이종찬, 장경우, 강재섭, 유흥수, 노신영, 강성모, 함종한, 서상목, 박주천, 박명환, 이순재, 나웅배, 김종호(1935), 이상희(1938), 강경식, 김영일, 장영철, 정양석, 이병기, 박지원(1942), 정갑윤, 김성기(1935), 박현태, 이범준, 이재환, 이응선, 이영일, 이헌기, 조상래, 김현욱, 김용태, 김태호, 이민섭, 남재두, 김한규, 이영문, 전용원, 곽정출, 유용태, 한승수, 박경석, 신상식, 오장섭, 김명섭, 박종문, 김상구, 황인성, 이대순, 김주호, 최창윤, 윤원중, 이상재, 조영장, 김일윤, 박범진, 이진우, 최재욱, 정희택, 김영선, 김양배, 김완태, 홍희표, 김재호, 배성동, 박동진, 박윤종, 박익주, 장성만, 심명보, 박지원(1934), 오제도, 유상호, 도영심, 박경석, 박우병, 박규식, 양경자, 안찬희, 왕상은, 이긍규, 김문기, 봉두완, 강우혁, 김영생, 우병규, 권영우, 구용상, 김용대, 정시채, 류돈우, 박유재, 손주환, 심상우, 심정구, 염길정, 윤석순, 이강희, 이병직, 이봉모, 이용택, 이재우, 김인영, 김종경, 안병규, 이용호, 이치호, 최명헌, 정선호, 전병우, 현홍주, 홍우준, 이광노, 임사빈, 이덕호, 천영성, 최창규, 조경목, 홍종욱, 황성균, 조정제, 지갑종, 김식, 김학준, 양창식, 이용훈, 이정무, 임철순, 정남, 정동윤, 조남조, 조진형, 황윤기, 김장숙, 이국헌, 송지영, 심기섭, 정해남
- 기타: 김복동, 김기춘, 이진백, 이진희, 이원홍, 허문도, 이광표, 이웅희, 정치근, 주영복, 김재익, 서석준, 신병현, 이원경, 신현확, 김정렬, 최광수, 김만제, 사공일, 손재식, 배명인, 김석휘, 김성기(1936), 윤성민, 이기백, 권이혁, 정종택, 이한기, 이원종, 이규호, 서상철, 금진호, 윤자중, 이희성, 최순달, 문태준, 오명, 임방현, 염보현, 김성진(1931년 11월), 손제석, 김영수, 황선필, 김성진(1931년 10월), 최각규, 홍성철, 정구호, 조상호, 김만제, 서상철, 윤자중, 최창락, 최동규, 이원경, 김주남, 김성배, 공로명, 이홍구, 정원식, 전석홍, 김근수, 이영덕, 정재석, 유종하, 김종호(1926), 윤석중, 김동휘, 김용래, 김준성, 남덕우, 노건일, 이범석, 이상배, 이재창, 이병주, 손수익, 유창순, 박충훈, 송언종, 윤치영, 이규효, 이봉서, 노재봉, 이상희(1932), 정인용, 정영의, 최완복, 강현욱, 민복기, 유태흥, 김용철, 김창근, 이강두, 이영섭, 정기승, 김형기, 안응모, 이영창, 강민창, 강영훈, 최동섭, 김용휴, 최호중, 이현재, 이연택, 오자복, 이규성, 이상옥, 허형구, 이정우, 정근모, 김유후, 박영수, 소준열, 조철권, 조종석, 김우현, 민태구, 김갑현, 김영식, 이은상, 김진현, 박종우, 백원구, 손종석, 이어령, 이종국, 이진무, 심재홍, 이판석, 이진설, 정채진, 정한모, 안상영, 강원용, 김영수, 김인호, 김한곤, 이동호, 박승, 조완규, 주병덕, 진념, 우근민, 윤근환, 류혁인, 이상룡, 이동훈
- 재계 인사: 이병철, 정주영, 최종현, 신격호, 조중훈, 김우중, 김한수, 이양구
- 국가안전기획부 인사: 이병호, 서수종
- 검찰 인사: 이창우, 김기수, 정경식, 최상엽, 김종건, 고영주, 이건개, 김종구, 안강민, 전재기, 최명부, 김영광, 송종의, 조준웅, 김경한, 이사철, 이종백, 장윤석, 김원치, 권재진, 홍경식, 황교안, 김학의, 문성우, 곽상도, 남기춘, 윤석만
[1] 공식적인 붕괴일은 2006년이나 전두환과 노태우가 무너진 이후로도 이후는 친박과 계파를 공유하며 새누리당 말년까지 계파를 어찌어찌 연장한다. 그러나 이후 제20대 총선에서 대부분의 민정계가 공천 탈락 혹은 낙선, 불출마 등으로 인해 정계 은퇴를 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2] 사적으로는 전두환, 노태우와는 친구사이었다.[3] 단, 제5공화국 때는 정치규제를 당하였고 1987년 입당하였다.[4]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시절 비난을 받았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민정당 출신이라는 것이다.[5] 대림산업 오너 일가로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신민당 부총재까지 지낸 야당 거물이었다.[6] 민정당 창당 당시 군사정권의 여당이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재야 및 야당계 인사들의 영입에 적극적이었다. 그 중엔 의열단에 가담했던 유석현은 창당발기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재야인사 및 야당거물들의 영입은 이회영의 손자인 이종찬이 주도하였다.[7] 제1야당인 민주한국당은 2중대, 제2야당인 한국국민당은 3소대라고 불렸을 정도였다. 여기서 '''1대대가 민정당'''이었다. 민정당에 공천신청한 인사를 보안사가 조정하여 야당 후보로 출마시킬 정도였으니, 이 때의 야당이 얼마나 있으나마나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민한당 참여를 권유받은 신상우는 아무리 구색맞추기용 이라고 해도 그래도 야당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고 훗날 이야기했다.[8] 통일민주당 출신은 민주계, 신민주공화당 출신은 공화계라고 불린다.[9] 반면에 민주계 중에서도 서청원, 조원진, 김태호, 원유철 등은 친박 성향이었다.[10] 도널드 트럼프, 홍준표 및 친홍계가 추구하는 대중적 국민보수주의와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