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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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민주공화당에서 박정희를 따랐던 인사들을 일컫는다.
2. 활동
박정희는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고 윤보선 당시 대통령의 사임과 장면 당시 국무총리 강제 하야와 동시에 국회를 해산하며 정권을 차지했다. 이후 자신이 창당한 친위세력 민주공화당이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75석 중 110석으로 과반을 훌쩍 넘기는 성과를 거둔다. 공화당은 완전 친박정희였으며, 구성원은 군부 출신 인사를 중심으로 이기붕계를 비롯한 구 자유당/민주당 등 기성 정치권 출신 세력, 정구영 등의 학계 인사, 시민사회단체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공화당은 33.5%로 꽤나 낮은 득표율을 거두었지만 타 야당들이 단일화에 실패하며 어부지리로 거둔 것이었다. 어쨋든 선거 승리를 한 공화당은 순항을 하...지 못했다.
박정희는 내내 민주공화당의 총재를 역임했다. 하지만 민주공화당과 박정희 개인의 관계는 결코 순탄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의회민주주의를 불신한 박정희는 여당인 민주공화당을 무시하는 행동을 할 때가 자주 있었으며, 민주공화당은 때때로 행정부에 반발하기도 했다. 이때 민주공화당의 주류는 조카사위인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김종필계였으며, 김종필은 박정희의 최측근이였으나 계속 견제를 받았고 이로 인해 박정희에게 반발을 한다. 꼭 반발 때문이 아니더라도, 김종필을 견제하고 싶던 박정희는 김성곤[2] , 길재호[3] , 김진만[4] , 백남억[5] 으로 구성된 4인방을 키워준다. 4인방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구 이기붕계의 후원을 받으며[6] 박정희 친위 세력을 양성한다.
4인방의 힘이 커지게 되자[7] 박정희는 자신이 숙청한 김종필과 김종필계 오치성을 내각으로 다시 부른다. 4인방은 자신의 세력을 중심으로 오치성 해임안을 결의하나, 박정희가 공권력을 동원해 4인방과 그 세력을 불법 체포, 구금, 고문한다. 박정희는 김종필계를 민주공화당 전면 복귀시키고, 내각에도 대거 등용했다. 그러나 박정희의 독재 성향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민주공화당과의 '정권 내 충돌'이 간간이 벌어지게 되고 이때 자신의 친위세력인 유신정우회를 창당한다.
박정희 친위세력은 유신정우회로 이동되고, 민주공화당은 김종필계 중심이긴 하나 실권을 모두 잃는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유신정우회 소속 인원들은 모두 찬성표를 던졌고, 뒤따라 권력도 얻을 수 있었다. 어쨋든 유신정우회는 박정희의 친위세력 노릇을 충실히 하며 박정희 본인의 사망 직전까지 애용된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차지철이 권력을 독점한다. 이에 김종필계는 과거 정적이던 4인방과 연합하여 차지철 등을 견제하는 태도를 취했다.
10.26 사건이 일어나고 유신정우회는 다음날 바로 해산되며 민주공화당 역시 1980년 5.17 내란으로 해산되며 박정희계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이후 소속 인원들은 대다수 민주정의당으로 입당하고, 일부는 김종필계와 함께 한국국민당을 창당하며 세력화했다. 이후에도 신민주공화당, 자유민주연합 등이 창당되긴 하지만 김종필계(공화계) 중심이기에 박정희계와는 살짝 달랐다.[8]
3. 구성
- 김종필계[초기] : 김종필, 한태연, 이정우, 박종태, 오학진, 예춘호, 양순직, 구범모, 고재필, 김달수, 김택수, 정태성, 서인석, 윤주영, 윤천주, 오치성, 문형태, 김종호, 김창규, 김종하, 양정규, 오원선, 이영근, 정무식, 구자춘, 장영순, 신윤창, 김용태, 이종근, 김용채, 이병희, 이승춘, 오원선, 류광현, 최영두
- 4인방 등[중기] : 김성곤, 길재호, 백남억, 김진만, 백두진, 육인수, 김재순, 김창근, 강성원, 길전식
- 범 4인방계: 최규하, 박경원, 배영호, 홍종철, 이한림, 김태동, 신범식, 민관식, 홍성철, 김치열, 이봉성, 정래혁, 이호, 태완선, 김영선, 김용식, 이경호, 장경순, 신현확, 황종률, 권오병, 양택식, 정상희, 신용남, 김홍식, 전예용, 이선근, 강서룡, 김대진, 윤재명, 김숙현, 박승규(1923), 김유탁, 신기석, 지종걸, 김영병, 전휴상, 신두영
- 구 이기붕계 등 자유당 출신: 곽의영, 한희석, 정존수, 박용익, 송인상, 구용서, 손창환, 이성우, 원용석, 이성주, 김일환, 최재유, 정낙훈, 강성태, 강경옥, 구흥남, 이근직, 권병노, 권태욱, 김동성, 김병순, 김봉재, 이용범, 김성탁, 김수선, 김용우, 김우동, 신규식, 김원규, 황성수, 김원태, 김의준, 김장섭, 김정근, 김정기, 김종갑, 김종신, 김종철, 김중한, 김형덕, 남송학, 류순식, 류지원, 문봉제, 문창모, 박만원, 박상길, 박순석, 박영교, 박충식, 박흥규, 반재현, 배길도, 변진갑, 이민우, 임철호, 백성욱, 장석윤, 김태선, 민병기, 박희현, 손문경, 손석두, 송방용, 이형모, 신영주, 이재현, 최석림, 유기수, 오범수, 양극필, 유봉순, 육홍균, 윤성순, 이영언, 이갑식, 이동근, 이우줄, 이원장, 이정석, 이존화, 이영희, 인태식, 임우영, 정규상, 정기원, 정낙훈, 정대천, 정문흠, 정세환, 정재원, 정준모, 조순, 정헌조, 정현모, 조경규, 조광섭, 조정훈, 지영진, 최규옥, 최헌길, 하을춘, 하태환, 함재훈, 황병규, 임흥순, 김정렬, 이익흥, 김두진, 권성기, 최치환, 안동준, 김형근, 이정희, 이상룡, 손재형, 최규남, 정재설, 이종림, 임문환, 윤건중, 김영찬, 김용우, 송관수 등[10]
- 구 민주당 출신: 곽상훈, 최희송, 박준규, 엄민영, 성낙현, 조흥만, 최석화, 오준석, 김성진(1905), 김성용, 서정귀, 강문봉, 김용성, 정진동, 김광준, 함종빈, 신광순 등
- 유신정우회[후기] : 갈봉근, 한태연, 백두진, 고재필, 서영희, 정재호, 최영희, 안춘생, 이진희, 최영철, 신상초, 한옥신, 최대현, 김윤환, 이자헌, 김영광, 황창주, 김성주, 김성환, 김세련, 김영수, 고귀남, 권중동, 송효순, 유민상, 김영도, 현기순, 이양우, 박동묘, 김기형, 이종률, 정일영, 전부일, 안갑준, 조병규 등.
- 민정회: 이후락, 윤필용, 권익현, 안교덕, 배명국, 손영길, 신재기 등을 위시한 윤필용계 하나회, 김원규
- 기타 세력: 민복기, 정일권, 이효상, 이응준, 현오봉, 양택식, 이한기, 김현철, 허정, 김형근, 윤치영, 양찬우, 구태회, 장기영, 임병직, 정대천, 오제도, 선우종원, 이협우, 사광욱, 최형규, 조진만, 주재황, 주운화, 신도성, 이활, 안준상, 김연준, 백선엽, 정대천, 서종철, 노재현, 채명신, 백한성, 남덕우, 박충훈, 이동원, 이범석, 박철웅, 문태준, 이원우, 노재필, 노인환, 박명근, 김성철, 김유택, 김임식, 김재식, 박준호, 심현직, 이병주, 이우헌, 이윤용, 이해원, 최두열, 신경식, 김용환, 김영구, 정창화, 김원기, 이원경, 정상천, 장동식, 정동성, 오유방, 서정화, 이성호, 김성진(1931년 10월), 임방현, 이도선, 이갑성, 이용희, 조용직, 지연태, 김효영, 유기정, 이태섭, 정소영, 최재구, 김봉환, 김영도, 김용호, 민병권, 이동원, 이석제, 이낙선, 김세배, 지종걸, 박정수, 최경록, 류승원, 조시형, 이선중, 박승규(1921), 김광수, 문형태, 이백일, 채영철, 이병옥, 심흥선, 서일교, 심의환, 김학렬, 문홍주, 유기춘, 이도영, 이원영, 김홍식, 장승태, 최각규, 김상년, 서상린, 민기식, 이세기, 조상호, 오용운, 노신영, 김주남, 박동규, 김동조, 정석모, 이강학, 이찬혁, 장예준, 김보현, 손수익, 유창순, 이광표, 이정환, 황인성, 한병기, 장덕진, 류병현, 이주일, 한신, 김윤근, 최주종, 이경식, 갈홍기, 정희택, 최세경, 이환의, 김성은, 나길조, 유경현, 윤국노, 이동진, 왕상은, 홍희표, 김문기, 염길정, 이상익, 이종순, 이인근, 강상욱, 강기천, 이준섭, 전정구, 이돈해, 신동욱, 이만섭, 임충식, 정휘동, 홍종욱, 이용훈, 김우경, 공정식, 권오석, 김봉호, 김봉환, 윤인식, 박종진, 박용기, 김상영, 박찬, 강병규, 신동관, 정간용, 이남준, 신동준, 정희섭, 박창달, 박승국, 김좌겸, 신승남, 이규현, 장일훈, 허형구, 이희성, 정해식, 최종완, 설인수, 손승덕, 옥조남, 송한철, 이상철, 이상무, 김신, 임인채, 임호, 정우식, 황호현, 정래정, 최용수, 최우근, 한갑수, 권오태, 변정일, 양병호, 임영득, 양회경, 신태환, 방순원, 고광만, 고재일, 나향윤, 강신익, 김재명, 홍순엽, 이영섭, 한성수, 박임항, 소준열, 손동욱, 우병규, 김치걸, 이한빈, 홍남표, 최창락, 유재방, 한봉세, 임항준, 한환진, 권해옥, 진필식, 홍병철, 이용, 남상진, 민병도, 박주천, 박성호, 김익렬, 김증한, 정채진
- 민정계(직속 친위세력): 전두환, 노태우, 김진영, 허화평, 허삼수, 장세동, 이종구, 박희도 등 하나회, 차지철, 박종규
- 재계 인사: 이병철, 정주영, 최종현, 구인회, 구자경, 조중훈, 김종희, 박두병, 이원만, 김향수, 설경동, 이동녕, 박흥식, 조홍제, 이양구, 이한원, 이정림, 서정익, 김철호, 김우중, 박태준, 전택보
- 정수장학회 계열 인사: 김기춘, 최필립
- 중앙정보부 인사: 김형욱, 김재춘, 이용택, 이병호, 김근수, 윤석순
- 검찰 인사: 강우영, 김일두, 서정각, 김석휘, 최명부, 김용제, 김성재, 김기수, 정경식, 김종건, 최영광, 조준웅, 오탁근, 송종의, 김원치, 이건개
[1] 5.17 내란으로 수장이던 박정희가 피살됨과 동시에 5.17 내란으로 본거지 민주공화당이 해체되면서 박정희계는 전두환계, 노태우계, 김종필계 등으로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흩어졌던 박정희계의 후예들은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보수정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새롭게 부활하게 된다.[2] 당시 재정위원장[3] 당시 정책위의장[4] 당시 원내총무[5] 당시 당 의장[6] 김성곤, 김진만이 이기붕과 친분이 깊었기 때문이다.[7] 4인방은 재계에도 힘이 상당했는데 김성곤은 알다시피 쌍용그룹 창업주에 동양통신 회장이었고 김진만 또한 강원일보 사장을 지낸데다가 아들이 동부그룹 창업주인 김준기였다. 뿐만 아니라 백남억 같은 경우도 나중에 한국자동차보험 회장을 지냈고 길재호도 나중에 삼정펄프 사장을 지냈다.[8] 물론 정치 성향은 비슷했으며 신민주공화당은 이름부터 새로운 민주공화당이란 뜻이고 김종필 역시 친박정희 성향 유권자들 중심으로 지지를 받았다.[9] 김종필의 형이다.[초기] [10] 그외에도 정일권 전 국무총리, 백두진 국회의장, 민복기 대법원장, 이효상 전 국회의장, 조진만 전 대법원장, 김정렬 민주공화당 의장, 범 LG가 출신인 구태회 의원, 홍진기 중앙일보 창업주, 김형근 전 내무부장관, 신현확 전 쌍용산업 사장, 김연준 한양대학교 총장, 허정 전 내각수반,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구자경 럭키금성그룹 회장, 김종희 한국화약 회장,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 박두병 두산그룹 회장, 김향수 아남그룹 회장, 이동녕 봉명그룹 회장, 이원만 코오롱그룹 회장, 조홍제 효성그룹 회장,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박흥식 화신그룹 회장, 이양구 동양그룹 회장, 설경동 대한전선 회장, 이한원 대한제분 회장, 이정림 대한유화 회장, 서정익 동일방직 회장, 박철웅 조선대학교 이사장, 서정학 전 치안국장, 박영출 목사, 백선엽 전 교통부장관, 홍우준 경민학원 이사장, 이범석 전 국토통일원 고문, 정래혁 전 국방부장관, 이강학 고려통상 회장, 백한성 전 대법관, 이익흥 전 내무부장관, 이호 주일대사, 박경원 전 내무부장관, 양찬우 의원, 양택식 서울특별시장, 김현철 전 내각수반, 남덕우 재무부장관, 김학렬 경제기획원장관 겸 경제부총리, 홍종철 청와대 사정담당 특별보좌관, 이응준 전 체신부장관, 장기영 한국일보 회장, 방일영 조선일보 회장, 김상만 동아일보 회장, 배영호 전 법무부장관, 윤치영 전 민주공화당 의장, 손재형 국전심사위원장, 태완선 건설부장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신기석 부산대학교 총장, 신도성 전 경상남도지사, 현오봉 민주공화당 원내총무, 안동준 국제관광공사 총재, 안준상 전 자유당 상임위원, 오제도 변호사, 김종신 경남신문 사장, 사광욱 대법관, 이봉성 검찰총장, 최형규 전 문교부차관, 이협우 전 의원, 이활 전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임병직 전 외무부장관, 임흥순 전 서울특별시장, 정대천 민주공화당 중앙위원, 정상희 전 동방생명보험 사장, 박경원 전 내무부장관, 이경호 보건사회부 장관, 이재학 전 국회부의장, 최창순 전 의원, 최희송 전 의원, 홍범희 육민관재단 이사장, 선우종원 국회사무총장, 오탁근 법무부차관, 이한기 서울대 법대교수, 정소영 청와대 경제수석, 신우경 한일관 회장 등.[중기]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