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1. 역대 성적
'''FIFA 월드컵 역대 전적 서열: 3위'''
'''★★★★②②③④'''
2. 1934 이탈리아 월드컵
2.1. 16강전 미국전 - 7 : 1 승
2.2. 8강전 스페인전 - 1 : 1 무
2.3. 8강전 재경기 스페인전 - 1 : 0 승
2.4. 4강전 오스트리아전 - 1 : 0 승
2.5. 결승전 체코슬로바키아전 - 2 : 1 승
3. 1938 프랑스 월드컵
3.1. 16강전 노르웨이전 - 2 : 1 승
3.2. 8강전 프랑스전 - 3 : 1 승
3.3. 4강전 브라질전 - 2 : 1 승
3.4. 결승전 헝가리전 - 4 : 2 승
4. 1950 브라질 월드컵
4.1. 조별리그 스웨덴전 - 2 : 3 패
4.2. 조별리그 파라과이전 - 2 : 0 승
5. 1954 스위스 월드컵
5.1. 조별리그 스위스전 - 1 : 2 패
5.2. 조별리그 벨기에전 - 4 : 1 승
5.3. 조별리그 순위 결정전 스위스전 - 1 : 4 패
6.
지역예선에서 탈락했다. 북아일랜드·포르투갈과 같은 조였는데, 포르투갈 대 북아일랜드(포르투갈 홈) 경기가 1:1 무승부로 끝난 것을 제외하면 모두 홈팀이 이겼고 그 결과 이탈리아는 2승 2패가 되면서 2승 1무 1패를 거둔 북아일랜드에게 밀려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7. 1962 칠레 월드컵
7.1. 조별리그 서독전 - 0 : 0 무
7.2. 조별리그 칠레전 - 0 : 2 패
7.3. 조별리그 스위스전 - 3 : 0 승
8. 1966 잉글랜드 월드컵
8.1. 조별리그 칠레전 - 2 : 0 승
8.2. 조별리그 소련전 - 0 : 1 패
8.3. 조별리그 북한전 - 0 : 1 패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3차전 상대는 아시아의 신규 출전국 북한이었다. 북한의 전력은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었고 두 팀의 A매치 맞대결은 이번이 사상 최초였다. 북한은 조별리그 1차전 소련과의 경기에선 피지컬과 완력, 더티 플레이를 앞세운 소련에 철저히 압도당하며 0 : 3으로 대패했다. 그러나 2차전 칠레와의 경기에선 스피드를 앞세운 속공으로 나서며 1 : 1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러나 아무리 칠레와의 경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하더라도 주장 지아코모 불가렐리를 필두로 지아니 리베라, 산드로 마촐라, 자친토 파케티 등 내로라 하는 세리에 A의 슈퍼스타들로 도배된 이탈리아라는 거대한 산맥을 아시아의 신규 출전국 북한이 넘어서긴 어려울 것이란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측이었다. 대회 전 영국 도박사들의 우승 확률 예측에서 이탈리아는 브라질과 잉글랜드에 이어 3번째로 높았고 북한은 16개 출전국 중 16위였다. 한마디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경기는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이탈리아가 몇 골 차로 이기느냐가 주된 관심사였다. 승부가 뻔해보여서 그런지 이 경기를 찾은 관중은 17,000여 명에 불과했다. 굳이 찾아가서 안 봐도 이탈리아가 이길 게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북한은 8강에 진출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를 잡아야 했고 비기거나 지면 무조건 탈락이었다. 북한의 명례현 감독은 이 경기에서 회심의 작전인 사다리 전법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이탈리아와 북한의 8강 진출의 운명이 걸린 한 판 승부가 시작되었다. 경기는 예상대로 이탈리아의 일방적인 페이스로 흘러갔다. 짜리몽땅한 북한 선수들보다 머리 하나 더 큰 떡대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선수들은 볼을 공중으로 띄우며 농락했고 금방이라도 골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어찌된 것인지 문전에서 슛을 하기만 하면 족족 빗나가거나 북한 골키퍼 리찬명의 선방에 막히며 좀처럼 북한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약체 팀이라 쉽게 무너질 것 같았던 북한이 의외로 쉽게 무너지지 않자 이탈리아 선수들은 점점 평정심을 잃고 조급해졌다.
이탈리아의 초반 결정적인 3차례의 슈팅이 빗나간 후 북한의 반격이 들어왔다. 북한의 빠른 역습에 발이 느린 이탈리아 수비수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라이트윙 한봉진의 주력은 마치 번개 같아서 카테나치오로 악명 높은 이탈리아 수비진들이 우왕좌왕할 정도였다. 그리고 전반 34분, 북한의 역습 상황에서 주장 지아코모 불가렐리가 박승진을 향해 태클을 걸었는데 박승진의 몸이 불가렐리의 다리 위로 떨어지며 불가렐리가 큰 부상을 당했다. 당시엔 선수 교체 제도가 없었기에 이제 이탈리아는 10명이 뛰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전반 42분, 센터서클에서 북한의 림승휘가 전방으로 볼을 띄운 것을 수비수가 걷어냈다. 다시 넘어온 볼을 북한의 하정원이 공중볼을 따내며 헤더로 다시 이탈리아 진영으로 보냈고 이 볼이 바운드가 되면서 페널티 박스로 흘렀다. 그리고 이 볼을 박두익이 받아 페널티 에어리어로 쇄도하며 오른발 땅볼로 강슛을 날렸다. 수문장 엔리코 알베르토시가 몸을 날렸으나 볼은 이미 골문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렇게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북한이 1 : 0으로 앞서갔다. 주장이 부상으로 실려나가고 선제골까지 허용하자 이탈리아 선수들은 더욱 평정심을 잃고 무리하게 돌격을 해댔다.
후반전이 되자 이탈리아는 계속해서 북한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조급함을 이기지 못한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력이 와해되며 제각각 따로 놀았고 그 탓에 제대로 된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의 간헐적인 역습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휘청거렸다. 자신감을 얻은 북한 선수들은 전원 수비에 나서며 철저하게 이탈리아의 공격을 막아내고 또 막아냈다. 북한 골키퍼 리찬명은 잇단 슈퍼 세이브로 팀을 위기에서 구하며 이탈리아를 더욱 좌절시켰다. 결국 경기는 그렇게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북한이 이탈리아를 1 : 0으로 격파했다. 이것은 아시아 팀이 월드컵에서 거둔 최초의 승리였고 최초의 클린시트였다. 그러나 북한이 그 이후로 월드컵에 거의 나오지 못했기에 이 경기가 2019년 현재까지 그들의 월드컵에서 유일한 승전이자 유일한 무실점 경기로 남게 되었다. 2014년까지는 이 경기가 유일하게 아시아 팀이 유럽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유럽 팀을 이긴 경기였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독일을 2 : 0으로 이기며 52년 만에 갱신되었다. 또 다음 날 소련이 칠레를 2 : 1로 꺾으며 1승 1무 1패를 기록한 북한은 조 2위를 차지해 아시아 최초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편, 이탈리아는 북한에 0 : 1로 패배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자 큰 충격에 빠졌다. 자신들이 원조 축구 종주국이라 할 정도로 축구에 엄청나게 자부심이 강한 이탈리아인들은 자국이 월드컵에서 최초로 핫바리 아시아 팀에 패배한 팀이란 불명예를 뒤집어 쓴 것에 크게 분노했고 축구 강국으로서의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잔뜩 구겨졌다. 이탈리아 대표팀은 성난 자국 팬들의 난동이 무서워 몰래 입국하기로 하고 귀국 장소를 제노바로 바꿔서 한밤중에 크리스토포로 콜롬보 국제공항을 통해 우회 입국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축구팬들은 이미 공항에 잔뜩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고 선수들이 오자마자 썩은 토마토와 날달걀 세례를 퍼부었다. 그리고 에드몬도 파브리 감독은 즉각 경질되었으며 1년 간 어떤 팀 감독도 맡지 말고 근신하라는 '처벌'을 받아야 했다. 지금까지도 이탈리아 노인들이 박두익을 기억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오랫동안 이탈리아인들의 마음 속에 아픈 상처로 남고 말았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수습으로 일해본 요리사 박찬일은 주방장 노인이 처음에 자신의 이름을 듣었을때 "박? 자네 혹시 박두익과 무슨 사촌 사이라도 되나?" 라는 말을 먼저 했을 정도였다고. 박찬일이 "30년도 넘은 건데 아시네요?" 라는 말을 하자 그 주방장은 "그만큼 엄청났으니까." 란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36년이 지나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16강전에서 이탈리아와 맞붙게 되었을 때 붉은 악마들이 'AGAIN 1966'란 카드 섹션으로 또 다시 이 경기를 언급하자 이탈리아 측에서 노발대발하며 카드 섹션을 중지하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1994년 MBC로 축구 열풍이라는 제목으로 더빙 방영한 51부작 이탈리아와 일본 합작 애니메이션 <사커 포에버> (1994년작으로 최신작이었다.) 34화 <예상하지 못한 팀>에서는 주인공(1930 월드컵 당시 어렸을 적부터 월드컵을 보고 겪었다. 한국어판 성우는 김현직)과 이탈리아인 친구, 둘이 1966년 월드컵 당시, 영국 어느 시골길을 친구랑 가던 길에 어느 범죄자가 형사로 오해하여 두 사람이 할머니로 변장한 이 범죄자의 집 지하에 미로같이 되어있는 곳에 갇혀 고생하게 된다. 나중에 알고보니 여긴 불법 축구 도박관련 기지였다. 이 미로같은 지하길을 계속 가던 둘은 어느 좁은 길로 얼굴이 겨우 나올 정도로 구멍을 발견해 다가가보니 바로 이 경기가 열린 에이섬 파크 경기장 구석에 난 구멍이었다. 나가진 못하고 여기로 축구경기 결과를 볼 수 있었는데 박두익 골이 터져 북한이 이기는 결과에 주인공의 이탈리아인 친구(성우가 손원일)가 북한에게 이탈리아가 졌다는 것에 절망한다. 나중에 경찰이 오고 뭐하고 소동 끝에 이 곳이 일망타진되는데 이 불법 도박한 곳에서 이탈리아가 북한을 7 : 1로 이긴 걸 예상한 결과가 적힌 글을 보고 이탈리아인 친구는 원래 이럴 것이라고 봤다며 한탄한다.(다만 영어로 ITALY 7-1 KOREA라고만 적혀 있어서 국내 방영당시 북한이란 한글 자막이 달렸었다.)
9. 1970 멕시코 월드컵
9.1. 조별리그 스웨덴전 - 1 : 0 승
9.2. 조별리그 우루과이전 - 0 : 0 무
9.3. 조별리그 이스라엘전 - 0 : 0 무
9.4. 8강전 멕시코전 - 4 : 1 승
9.5. 4강전 서독전 - 4 : 3 승
9.6. 결승전 브라질전 - 1 : 4 패
10. 1974 서독 월드컵
10.1. 조별리그 아이티전 - 3 : 1 승
10.2.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 1 : 1 무
10.3. 조별리그 폴란드전 - 1 : 2 패
11.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11.1. 조별리그 프랑스전 - 2 : 1 승
11.2. 조별리그 헝가리전 - 3 : 1 승
11.3.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 1 : 0 승
11.4. 2라운드 조별리그 서독전 - 0 : 0 무
11.5. 2라운드 조별리그 오스트리아전 - 1 : 0 승
11.6. 2라운드 조별리그 네덜란드전 - 1 : 2 패
11.7. 3위 결정전 브라질전 - 1 : 2 패
12. 1982 스페인 월드컵
12.1. 조별리그 폴란드전 - 0 : 0 무
12.2. 조별리그 페루전 - 1 : 1 무
12.3. 조별리그 카메룬전 - 1 : 1 무
12.4. 2라운드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 2 : 1 승
12.5. 2라운드 조별리그 브라질전 - 3 : 2 승
12.6. 4강전 폴란드전 - 2 : 0 승
12.7. 결승전 서독전 - 3 : 1 승
13. 1986 멕시코 월드컵
13.1. 조별리그 불가리아전 - 1 : 1 무
13.2.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 1 : 1 무
13.3. 조별리그 대한민국전 - 3 : 2 승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3차전 상대는 아시아의 호랑이 대한민국이었다. 두 팀이 맞대결한 것은 이번이 사상 최초였다. 경기 전 모든 이들은 이탈리아의 압승을 예상했다. 그래서인지 이 경기를 찾은 관중의 숫자는 고작 2만 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탈리아는 지난 대회에서 전차군단 서독을 완벽한 경기력으로 3 : 1 압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지만 한국은 32년 만에 본선에 올라온 아시아의 듣보잡 약체 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2차전까지 2무에 그치며 위태위태한 경기력을 보였고 또 아시아 팀을 상대로 묘하게 약세를 보이는 징크스를 갖고 있었다. 20년 전인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선 북한과 맞붙어 박두익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 : 1로 패배해 사상 최초로 아시아 팀에게 패배한 팀이란 불명예를 안은 데다 4년 뒤인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이스라엘과 졸전 끝에 0 : 0 무승부를 거두었을 정도다. 더군다나 5년 전 호주에서 열린 U-20 청소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한국에 1 : 4 대패를 당한 바 있었고 그 때 멀티골을 터뜨렸던 최순호가 지금 한국 대표팀에서 뛰고 있었다.
과연 뚜껑을 열어보니 경기는 예상과 달랐다. 경기 초반엔 이탈리아가 아주 수월하게 풀어갔다. 전반 17분, 한국의 골키퍼 오연교가 또 치명적인 펀칭 미스를 범했고 그 세컨드 볼을 알레산드로 알토벨리가 낼름 줏어먹으며 가볍게 선제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1골을 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기력은 더욱 올라갔고 오히려 이탈리아가 라인을 끄집어내리고 수비하기에 급급했다. 그런 이탈리아에 구세주로 등판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 경기의 주심 데이비드 소차였다. 데이비드 소차는 노골적으로 이탈리아를 위한 편파판정을 남발하며 태극전사들의 플레이를 위축시켰다.
전반 33분, 이탈리아의 살바토레 바그니가 주심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손으로 허정무의 얼굴을 쳐서 쓰러뜨리는 파울을 범했는데 주심은 허정무가 뭔 할리우드 액션이라도 하고 있는 양 빨리 일어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관중들은 주심을 향해 야유를 퍼부었고 그제야 분위기가 안 좋다는 걸 느꼈는지 허겁지겁 바그니에게 경고를 주었다. 그리고 2분 후, 데이비드 소차 주심은 한국의 페널티 에어리어로 쇄도하던 알토벨리가 '''자기 혼자 스텝이 꼬여서 넘어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주심이 반칙을 선언하며 페널티 킥을 주었다. 이탈리아로서는 심판의 오심 덕에 추가 득점의 행운을 잡았다. 당연히 한국 선수들은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데이비드 소차는 항의하던 수비수 박경훈에게 경고를 먹이며 쿨하게 씹었다. 그러나 이 페널티킥은 골대 맞고 안 들어갔다.
전반전은 1 : 0으로 이탈리아가 앞선 채로 끝이 났다. 후반전에 들어 대한민국이 다시 공격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후반 17분, 이탈리아의 페널티 박스 좌측 외곽 지역에서 최순호가 벼락같은 오른발 중거리슛을 날렸고 이것이 그대로 빨랫줄처럼 이탈리아 골문으로 날아가며 동점골이 터졌다. 이탈리아로서는 20년 전 북한에 당한 치욕패가 슬금슬금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위기에 봉착한 이탈리아에 다시 데이비드 소차가 구세주로 등판했다. 데이비드 소차는 최순호의 동점골 이후 더욱더 노골적으로 이탈리아 편을 들었다. 한국 선수들의 파울은 엄격하게 잡아내면서 이탈리아 선수들의 파울은 관대하게 넘어갔고 한국 선수들이 볼을 잡을 때마다 호각을 불어서 리듬을 딱딱 끊었다. 덕분에 이탈리아는 아주 쉽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고 후반 28분에 역습 찬스에서 알토벨리가 추가골을 터뜨리며 다시 2 : 1로 앞서갈 수 있었다.
같은 시각 아르헨티나와 불가리아의 경기는 아르헨티나가 2 : 0으로 리드하고 있었다. 실시간 순위에서 아르헨티나가 2승 1무(승점 5점)로 1위에 있었고 이탈리아는 1승 2무(승점 4점)로 조 2위에 올라 16강 진출이 점점 가시권에 들어왔다. 대한민국으로서도 동점골을 넣어 비기기만 하면 승점과 득실 차 모두 불가리아와 동률이지만 다득점에서 앞서서 3위를 차지할 수 있었고 와일드카드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기에[12] 계속해서 밀리지 않고 의욕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데이비드 소차 주심은 곧 죽어도 한국이 16강 가는 꼴을 못 보겠다는 듯 계속해서 편파판정을 일삼았고 한국 선수들의 멘탈은 점점 흔들렸다. 그리고 후반 37분, 알토벨리의 슛이 수비하던 조광래의 손에 맞고 들어가 자책골이 되는 행운이 겹치며 이탈리아가 3 : 1로 앞서가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하지만 태극전사들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근성으로 맞서 싸웠고 모두가 절망하던 후반 43분에 허정무가 극적으로 만회골을 터뜨리며 스코어를 다시 3 : 2로 좁혔다. 이탈리아로서는 다시금 위기에 봉착하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는 최후의 필살기인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카테나치오를 발동하여 노골적으로 라인을 끄집어 내리고 잠그기에 들어갔다. 결국 이대로 경기가 종료되며 이탈리아는 조 최약체 한국을 상대로도 고전 끝에 3 : 2 진땀승을 거두며 어렵게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렇게 겨우겨우 심판의 도움 덕에 한국을 이긴 이탈리아는 세계구급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멕시코 현지 언론은 한국의 선전을 극찬했으며 오히려 이탈리아를 향해 "심판의 편파판정 덕에 겨우 이겼다."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 때문인지 이탈리아는 16강전에서 멕시코 현지 관중들의 집단야유를 받으면서 프랑스에게 0 : 2로 패배하였으며, 16년 후 이 때 부정하게 이긴 대가를 대전에서 대한민국 현지 관중들의 집단야유를 받으며 뼈저리게 치러야 했다.
13.4. 16강전 프랑스전 - 0 : 2 패
14.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4.1. 조별리그 오스트리아전 - 1 : 0 승
14.2. 조별리그 미국전 - 1 : 0 승
14.3. 조별리그 체코슬로바키아전 - 2 : 0 승
14.4. 16강전 우루과이전 - 2 : 0 승
14.5. 8강전 아일랜드전 - 1 : 0 승
14.6. 4강전 아르헨티나전 - 1 : 1 무(PSO 3 : 4 패)
14.7. 3위 결정전 잉글랜드전 - 2 : 1 승
15. 1994 미국 월드컵
15.1. 조별리그 아일랜드전 - 0 : 1 패
15.2. 조별리그 노르웨이전 - 1 : 0 승
15.3. 조별리그 멕시코전 - 1 : 1 무
15.4. 16강전 나이지리아전 - 2 : 1 승
15.5. 8강전 스페인전 - 2 : 1 승
15.6. 4강전 불가리아전 - 2 : 1 승
15.7. 결승전 브라질전 - 0 : 0 무(PSO 2 : 3 패)
16. 1998 프랑스 월드컵
16.1. 조별리그 칠레전 - 2 : 2 무
16.2. 조별리그 카메룬전 - 3 : 0 승
16.3. 조별리그 오스트리아전 - 2 : 1 승
16.4. 16강전 노르웨이전 - 1 : 0 승
16.5. 8강전 프랑스전 - 0 : 0 무(PSO 3 : 4 패)
17. 2002 한일 월드컵
17.1. 조별리그 에콰도르전 - 2 : 0 승
17.2. 조별리그 크로아티아전 - 1 : 2 패
17.3. 조별리그 멕시코전 - 1 : 1 무
17.4. 16강전 대한민국전 - 1 : 2 패
가까스로 16강 진출에 성공한 이탈리아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했다. 이탈리아의 16강전 상대는 개최국 대한민국이었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이번이 2번째였다. 지난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이탈리아는 주심 데이비드 소차의 편파판정 도움을 받아 고전 끝에 3 : 2 신승을 거두며 체면을 구긴 바 있었다. 객관적 전력에선 이탈리아가 우세하지만 16년 전 한국을 만나 꽤 고전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만만히 볼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4년 전까진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약체 팀이었지만 이번엔 네덜란드 출신 명장 거스 히딩크의 지휘 아래 환골탈태해 있었다. 1차전에서 폴란드를 2 : 0으로 이기며 첫 승을 신고한 이후 2차전에선 미국과 1 : 1로 비겼지만 3차전에선 루이스 피구, 파울레타, 세르지우 콘세이상 등 황금세대들이 즐비하여 우승후보로 거론되었던 포르투갈을 1 : 0으로 찍어누르고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보다 힘든 상대일 수 있었다.
두 팀의 신경전은 경기 시작 전부터 진행되었다. 경기 전 날 기자회견에서 프란체스코 토티가 "한국은 좋은 팀이지만 우리 팀의 1 : 0 신승을 예상해 본다."고 했던 말을 뉴스데스크에서 오역을 하여 "한국을 이기는데는 단 1골이면 충분하다."는 거만한 말투로 알려져버리고 말았다. 이 때문에 한국인들은 "이탈리아 놈들이 우리를 깔보고 있다!"며 잔뜩 격앙되었다. 그리고 경기 전 날 이탈리아 대표팀에 불길한 징조 하나가 벌어졌다. 당시 이탈리아 선수들은 천안연수원을 숙소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토티의 방에서 뱀 한 마리가 기어나온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탈리아에는 로마 시절부터 전쟁을 앞두고 진영에 뱀이 나오면 반드시 패배한다는 미신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데미지를 입었다. 그리고 경기 당일 붉은 악마들은 아주리 군단을 향해 엄청난 심리전을 감행했다. 이 날 붉은 악마들이 준비한 카드 섹션은 바로 ''''AGAIN 1966\''''였다. 즉,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를 1 : 0으로 격침시켰던 북한의 기적을 재현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탈리아인들의 아픈 상처를 후벼파는 것이었다. 이에 이탈리아 측은 노발대발하여 당장 카드 섹션을 중단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한국과 이탈리아의 8강 진출을 놓고 벌인 한판 승부가 대전광역시 유성구 노은동에 위치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초반부터 한국을 향해 거친 파울을 남발하며 기를 죽이려 하였다. 그 때문에 전반 4분 만에 프란체스코 코코가 경고를 받았고 이탈리아 우측 진영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그리고 송종국이 프리킥을 찼는데 그 때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이탈리아의 라이트백 크리스티안 파누치가 설기현의 유니폼을 잡고 씨름하듯이 넘어뜨리는 파울을 범했다. 주심 비론 모레노는 곧바로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이탈리아는 이른 시간에 위기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잔루이지 부폰 골키퍼가 킥커 안정환의 킥을 선방하며 위기를 넘겼다. 위기 뒤에 기회라고 이탈리아는 한국을 향해 거세게 반격을 했다. 그 때 한국 센터백 김태영이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팔꿈치 공격에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기까지 했다.[14] 그렇게 조금씩 우세한 경기를 하던 중 전반 18분, 코너킥 찬스를 얻었다. 킥커로 플레이메이커 프란체스코 토티가 나섰고 한국 센터백 최진철이 크리스티안 비에리를 철저하게 마크했으나 비에리의 피지컬은 정말로 천하장사였다. 비에리는 그 괴물 같은 피지컬로 한국 센터백 최진철을 기어이 날려버리고 헤더로 골을 우겨넣었다.[15] 그렇게 경기는 이탈리아가 1 : 0으로 앞서갔다. 이렇게 1점 앞서가자 이탈리아는 서서히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카테나치오를 발동하며 잠그기에 돌입했다. 한국 선수들은 이탈리아를 맞아 주눅들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웠으나 악명 높은 이탈리아의 빗장에 가로막히며 좀처럼 골문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났다.
후반전이 되자 한국은 계속해서 볼을 소유하며 공격을 펼쳤고 이탈리아는 수비로 버틴 후 간헐적으로 역습에 나섰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는데 이탈리아는 여전히 굳건한 빗장으로 단단히 걸어잠갔다. 그러자 한국의 거스 히딩크 감독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승부수를 띄웠다. 우선 후반 18분에 부상을 당한 수비수 김태영을 빼고 공격수 황선홍을 투입해 공격수 숫자를 늘렸다. 그리고 후반 23분, 역시 부상을 당한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 역시 불러들이고 공격수 이천수를 투입했다. 마지막으로 후반 36분엔 수비의 핵이자 대표팀 주장인 홍명보마저 빼고 공격수 차두리를 투입했다. 이렇게 공격수만 5명을 투입하는 총 공격 폭격 작전을 시행한 것이다.[16] 하지만 이 작전을 단순히 닥공으로만 치부해선 안 되는 것이 위 참고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수비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공격을 강화하는 교체 카드였다. 즉, 히딩크 감독의 철학인 '멀티 플레이어 육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서 어느덧 경기 종료가 임박해졌다. 그런데 후반 43분, 이탈리아 진영의 아크 정면 외곽에서 한국 미드필더 박지성이 우측의 황선홍에게 짧은 패스를 건넸고 황선홍이 중앙으로 짧은 패스를 했다. 그런데 그 때 라이트백 크리스티안 파누치가 치명적인 볼 처리 미스를 범했다. 이렇게 흘러나온 볼을 페널티 에어리어에 있던 설기현이 놓치지 않고 왼발 슛을 날렸고 그게 골문 우측 구석으로 빨려들어가며 극적으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다시 승부는 1 : 1 원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불과 1분 후에 선제골의 주인공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다시 끝내기 펀치를 시도했다. 반대쪽에서 함께 쇄도하던 젠나로 가투소가 대지를 가르는 크로스로 반대편의 비에리에게 볼을 건넸고 그걸 비에리가 받았으나 불행히도 오른발에 맞으며 하늘 위로 높이 떠버렸다. 비에리는 왼발의 달인이었지만 오른발엔 약했기에 한국으로선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17] 뒤이어 후반 종료 직전에 한국 공격수 차두리가 정석에 가까운 바이시클 킥을 선보였으나 잔루이지 부폰 골키퍼 선방에 막히며 득점이 무산되었다. 그렇게 후반전은 1 : 1로 마쳤고 이제 승부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연장전으로 이어지자 승부는 다시 팽팽하게 이어졌다. 당시는 골든골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1골을 넣어야만 경기가 끝났다. 특히 이탈리아는 지난 월드컵에서 3번 승부차기를 해서 3번 모두 패배한 바 있었기 때문에 악몽 같은 승부차기를 피하기 위해선 반드시 골든골을 넣어야 했다. 그렇게 1 : 1의 스코어가 이어지던 중 연장 전반 13분, 프란체스코 코코가 자기 진영에서 한번에 길게 전방으로 볼을 띄웠고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헤더로 받아 페널티 박스 부근에 있는 프란체스코 토티에게 떨어뜨려 주었다. 토티는 곧바로 문전으로 쇄도했고 한국 수비수 송종국이 달라붙어 밀착 마크했다. 그 때 토티가 페널티 킥을 유도하려고 다이빙 동작을 했는데 그만 비론 모레노 주심에게 적발되고 말았다. 결국 모레노 주심은 “시뮬레이션 액션 제재를 강화하라.”는 당시 FIFA의 지침에 따라 토티에게 즉시 경고를 주었다. 그런데 이미 토티는 전반 22분에 김남일에게 팔꿈치로 치는 반칙을 범해 경고를 받았으므로 결국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토티에게 레드카드가 내려지자 파올로 말디니와 비에리, 안젤로 디 리비오 그리고 토티 본인까지 모두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모레노 주심은 단호하게 판정을 번복하지 않고 그대로 토티에게 퇴장을 명령했다.[18] 그리하여 이제 이탈리아는 10명이 뛰는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 연장 전반엔 득점이 나지 않았고 이제 승부는 연장 후반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연장 후반에도 양 팀은 팽팽한 접전을 벌였으나 양 팀 모두 기회를 아쉽게 놓쳤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은 흘러갔고 스코어는 여전히 1 : 1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연장전도 서서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 조심스럽게 승부차기를 예측하기 시작할 때였다. 그러던 연장 후반 12분, 한국 진영 우측에서 송종국이 다시 전방으로 길게 패스를 했는데 이 때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안정환을 대놓고 미는 반칙을 했으나 비론 모레노 주심은 파울 콜을 불지 않았다. 어쨌든 송종국의 긴 패스는 이탈리아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 있던 이천수가 받았고 이천수는 뒤의 이영표에게 백패스를 했다. 그리고 볼을 받은 이영표는 곧바로 전방으로 볼을 띄웠고 안정환이 높이 솟구쳐 헤더 슛을 날렸다. 안정환의 헤더 슛은 그대로 이탈리아 골문 우측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며 골든골이 터졌다. 117분 간 피 말리는 접전 끝에 결국 경기는 대한민국의 극적인 2 : 1 역전승으로 끝났고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때 북한에 이어 아시아에서 2번째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로써 이탈리아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때 북한에 0 : 1로 패배한 이후 36년 만에 또 다시 아시아 팀에 패배하는 굴욕을 당하며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팀에 2번 패배한 팀이란 오명을 뒤집어 쓰고 말았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1 : 2로 패배했던 모로코가 24년 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이란에 0 : 1로 패배하기 전까지 이탈리아가 유일하게 월드컵에서 아시아 팀에 2회 패배한 팀이란 불명예를 갖게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이탈리아는 이 경기에서 아시아 팀에 최초로 역전패를 당한 팀이란 불명예도 뒤집어 썼고 세계 최초로 월드컵에서 남한과 북한에 모두 패배한 팀이란 불명예도 뒤집어 써야 했다. 나라는 다르지만 어쨌든 월드컵에서 'Corea'[19] 한테 두 번이나 패배하는 치욕을 당했으니 가히 '코리아 쇼크'라고 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번 모두 8강 진출 길목에서 일어난 일이란 것도 똑같았다. 이 경기 패배로 인해 이탈리아는 월드컵에서 아시아 팀과 총 4번 붙어 1승 1무 2패의 전적을 기록해 월드컵 우승국들 중에선 유일하게 '''아시아 팀을 상대로 전적 열세를 기록하는 치욕을 맛보게 되었다!'''
이탈리아인들 입장에선 참으로 부끄러운 기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는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질구질하게 심판 판정 탓을 하며 패배를 승복하지 않는 추태를 보이고 있다. 프란체스코 토티와 당시 이탈리아의 주장 파올로 말디니는 여전히 비론 모레노 주심이 한국에 유리하게 편파판정을 했다고 하면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패배를 승복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들 입장에선 몇 가지 판정 문제가 불공정해 보일 수 있겠지만 이탈리아 역시 저지른 파울에 비하면 페널티를 덜 받은 편이었다. 우선 한국 수비수 김태영을 팔꿈치로 쳐서 코뼈를 부러뜨린 비에리는 레드 카드는커녕 옐로우 카드 1장도 안 받았다.[20] 또 후반 13분에 크리스티아노 자네티가 경고를 받았는데 사실 그 경고는 그 때 파울을 범한 선수가 프란체스코 코코였으므로 본래 그에게 가야할 것이었다. 모레노 주심이 착각하고 엉뚱한 선수에게 경고를 준 것이었다. 그런데 코코는 이미 전반 4분에 경고를 받은 상태였다. 제대로 판정했다면 이탈리아는 이미 후반 13분부터 10명이 뛰어야 했다. 모레노 주심이 실수를 해준 덕분에 그래도 100분 넘게 11명이 온전하게 뛸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이탈리아가 이 경기에서 마냥 불리한 판정을 받은 건 아니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승부에 승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과연 이 팀이 월드컵 챔피언으로서의 자격과 품위가 있는 팀인지 심히 의문스럽다. 현재까지도 이 경기로 인한 한국과 이탈리아 양 측 축구팬들 사이 감정의 골은 아직도 깊은 편이다.[21]
18.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팀 대한민국에 1 : 2로 패배해 16강에 그치며 체면을 잔뜩 구긴 이탈리아는 권토중래를 다짐하고 유로 2004에서 부활을 노렸다.
18.1. 조별리그 가나전 - 2 : 0 승
18.2. 조별리그 미국전 - 1 : 1 무
18.3. 조별리그 체코전 - 2 : 0 승
18.4. 16강전 호주전 - 1 : 0 승
18.5. 8강전 우크라이나전 - 3 : 0 승
18.6. 4강전 독일전 - 2 : 0 승
18.7. 결승전 프랑스전 - 1 : 1 무(PSO 5 : 3 승)
19.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24년 만에 조국에 4번째 월드컵 우승을 안겨준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명예롭게 퇴임하고 후임 감독으로 로베르토 도나도니 감독이 부임했다. 그러나 새롭게 출범한 도나도니호는 초반부터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월드컵 직후 열린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에서 이탈리아는 또 0 : 2로 패배하며 크로아티아전 무승 징크스를 깨는데 실패했다. 유로 2008 예선에서도 이탈리아는 의외로 상당히 고전하며 9승 2무 1패(승점 29점)의 전적으로 간신히 조 1위를 지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본선에서 이탈리아는 네덜란드, 루마니아, 프랑스와 함께 C조에 속했다. 이탈리아는 1차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뤼트 판 니스텔로이와 베슬리 스네이더르, 지오바니 반 브롱크호르스트에게 잇달아 실점하며 0 : 3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2차전에서 이탈리아는 조 최약체 루마니아와 1 : 1 무승부를 거두는데 그쳤다. 불과 2년 전 월드컵에서 우승한 팀이 이렇게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2차전까지 중간 순위는 네덜란드가 2승(승점 6점)으로 이미 8강 진출 및 조 1위를 확정지었고 루마니아가 2무(승점 2점)로 2위,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각각 1무 1패(승점 1점), 1득점 4실점으로 공동 최하위에 있었다. 이제 이탈리아로서는 3차전에서 반드시 프랑스를 꺾고 동시에 네덜란드가 루마니아를 상대로 최소한 무승부라도 해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고전 끝에 2 : 0으로 승리하였고 동시에 네덜란드가 루마니아를 2 : 0으로 이겨준 덕에 조 2위로 간신히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 상대는 티키타카로 한창 전성기에 올라 있던 스페인이었다. 이 때까지 이탈리아는 국제대회에서 스페인에 1920 안트베르펀 올림픽 축구에서 패배한 이후 88년 동안 단 1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스페인과 0 : 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끝내 2 : 4로 패배하며 그 좋은 징크스가 깨져버리고 말았다. 결국, 이탈리아축구협회는 도나도니를 경질했고 다시 리피 감독을 복귀시켰다.
이렇게 불안해진 상황에서 이탈리아는 이번 대회 지역예선을 치르게 되었다. 이번 대회 역시 UEFA 소속 53개국이 출전한다. 이 53개국을 9개 조로 나누는데 8개 조는 6개 팀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머지 1개 조는 5개 팀으로 구성된다. 그렇게 홈 & 어웨이 방식으로 리그전을 치러 각 조 1위 팀은 본선에 직행하고 2위 팀은 최하위 팀과의 전적을 제외한 조정 승점으로 순위를 매겨 최하위를 차지한 1팀은 탈락하고 나머지 8개 팀은 플레이오프를 치러 이긴 팀이 본선에 올라간다. 이탈리아는 아일랜드, 불가리아, 키프로스, 몬테네그로, 조지아와 함께 8조에 속했다. 사실상 이탈리아를 막을 자가 없는 꿀조 중 꿀조였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본선행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차전 키프로스 원정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고전 끝에 2 : 1 신승을 거두는데 그쳤다. 그리고 2차전 조 최약체 조지아와의 경기에서도 고작 2 : 0 신승을 거두는데 그쳤다. 그리고 3차전 불가리아 원정 경기에서도 이탈리아는 악전고투를 벌인 끝에 0 : 0 무승부를 거두는데 그쳤다. 즉, 3경기 치르는 동안 고작 4골을 넣는데 그친 것이다. 4차전 몬테네그로와의 홈 경기에서도 이탈리아는 고전 끝에 2 : 1 신승을 거두는데 그쳤다. 5차전 몬테네그로 원정 경기에서도 이탈리아는 2 : 0 신승에 그쳤다. 6차전 아일랜드와의 홈 경기에서도 이탈리아는 1 : 1 무승부에 그쳤다.
이 시점까지 8조의 순위는 이탈리아가 4승 2무(승점 14점)로 1위, 1경기 더 치른 아일랜드가 3승 4무(승점 13점)로 2위, 불가리아가 1승 5무(승점 8점)로 3위, 키프로스가 1승 2무 3패(승점 5점)로 4위, 몬테네그로가 4무 2패(승점 4점)로 5위 그리고 1경기 더 치른 조지아가 3무 4패(승점 3점)로 최하위였다. 7차전 조지아 원정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졸전 끝에 상대 자책골 2골로 2 : 0 신승을 거두는 안습한 모습을 보였다. 어쨌든 이탈리아의 승점은 17점으로 올라갔고 아일랜드 역시 키프로스 원정 경기에서 2 : 1로 승리해 16점으로 추가해 이탈리아와 1점 차로 턱밑까지 추격하였고 불가리아 역시 몬테네그로를 4 : 1로 이겨 승점을 11점으로 추가하였다. 그리하여 조지아와 몬테네그로, 키프로스의 탈락이 일단 확정되었다. 이제 8차전 경기는 불가리아와의 홈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승리해야만 본선 진출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된다. 이탈리아는 이 경기에서도 고전했지만 어쨌든 2 : 0으로 승리해 2위 아일랜드와의 승점 차를 4점으로 벌렸다.
9차전 아일랜드 원정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본선에 진출할 수 있게 된 이탈리아는 이 경기에서도 상당히 고전했지만 후반 45분에 마우로 카모라네시가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려 2 : 2 무승부를 거두었고 6승 3무(승점 21점)의 전적으로 2위 아일랜드와의 승점을 4점 차로 유지해 1경기 남은 상황에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마지막 키프로스와의 홈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먼저 2골을 내주며 어려운 경기를 했지만 알베르토 질라르디노의 해트트릭으로 간신히 3 : 2 역전승을 거두어 7승 3무(승점 24점)로 예선을 마무리지었다. 얼핏 봐선 꽤 잘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탈리아는 예선전 10경기에서 18득점 7실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경기당 득점력이 1.8골에 불과할 정도로 형편없었던 것이다. 예선전에서 이렇게 고전했기에 본선에서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부호를 남겼다.
더 큰 문제는 월드컵을 1년 앞두고 열린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불거져 나왔다. 그 때 이탈리아는 1차전에서 미국을 3 : 1로 이기며 좋은 출발을 했지만 2차전에서 이집트에 0 : 1 충격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탈리아는 3차전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반드시 무승부라도 거두어야만 4강에 진출할 수 있었으나 그 중요한 경기에서 안드레아 피를로가 자책골을 넣는 등 최악의 모습을 보인 끝에 0 : 3으로 대패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브라질이 3전 전승(승점 9점)으로 조 1위를 차지했고 이탈리아, 미국, 이집트 3팀이 모두 1승 2패(승점 3점)로 동률이 되었다. 우선 골 득실에서 이탈리아와 미국이 -2를 기록했고 이집트가 -3을 기록해 가장 골 득실이 낮은 이집트가 조 최하위로 탈락이 확정되었다. 이탈리아와 미국은 골 득실까지 동률이었으므로 이젠 다득점을 비교해야 하는데 이탈리아가 3득점 5실점, 미국이 4득점 6실점을 기록해 다득점에서 1골이 더 앞선 미국이 극적으로 4강에 올랐고 이탈리아는 조 3위로 탈락이 확정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내에선 점점 내년 월드컵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말에 열린 조 추첨에서 다시 안도감을 갖게 했다. 이탈리아는 파라과이, 뉴질랜드, 슬로바키아와 함께 F조에 속했다. 사실상 이탈리아를 막을 자가 없는 꿀조 중 꿀조였다. 그냥 이탈리아더러 3승하라고 대놓고 밀어준 조나 다름 없었다. 거기다 이탈리아가 조 1위를 하면 E조 1위로 유력한 네덜란드를 피하게 되고 덴마크, 카메룬, 일본은 모두 이탈리아보다 몇 수 아래 팀들이다. 8강에 갈 경우 스페인을 만날 것이 유력한데 스페인은 1920 안트베르펀 올림픽에서 패배한 후 단 1번도 진 적이 없었던 팀이었다. 그러니 최소 4강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조도 꿀조였고 대진운도 최상이었기에 일각에서는 이탈리아가 2번째 2연패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까지도 있었다. 선수 선발에서 리피 감독이 노장들을 대거 기용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있긴 했지만 워낙 조별리그 난이도가 껌이었던지라 무난하게 16강은 갈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꿀조가 사실 함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1. 조별리그 파라과이전 - 1 : 1 무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첫 번째 상대는 남미의 파라과이였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1950 브라질 월드컵 이후 무려 60년 만의 일이다. 그 당시에 맞대결 했을 땐 이탈리아가 2 : 0으로 승리했지만 1차전에서 스웨덴에 2 : 3으로 패배한 탓에 스웨덴에 승점 1점이 밀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바 있었다. 어떻게 보면 피로스의 승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조에 편성된 팀들 모두가 이탈리아보다 몇 수 아래의 팀들이었지만 그나마 조심해야 할 상대가 바로 이 파라과이였다. 왜냐하면 당시 파라과이는 그 빡센 남미 지역 예선을 3위로 통과한 팀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말이 3위이지 2위 칠레와 승점은 33점으로 동일했으며 1위 브라질과도 승점 차이는 고작 1점밖에 안 났다. 단지 골 득실에서 칠레에 2골이 밀리는 바람에 3위를 한 것뿐이다. 그리고 지역예선에서 파라과이는 총 10승을 거두어 9승을 거둔 브라질보다 승수가 더 많았다. 그렇기에 아주 만만하게 볼 만한 팀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이 경기에서 4-2-3-1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도메니코 크리시토 - 조르조 키엘리니 - 파비오 칸나바로 - 잔루카 참브로타 포백이 수비 라인에 서고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리카르도 몬톨리보 - 다니엘레 데 로시가 섰으며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빈첸초 이아퀸타 -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 시모네 페페가 섰으며 원톱에 알베르토 질라르디노가 섰다. 한편, 파라과이의 헤라르도 마르티노 감독은 4-4-2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는데 수비형 미드필더 빅토르 카세레스가 포백 라인 바로 앞쪽에 위치하여 공격시엔 4-4-2, 수비시엔 5-3-2 형태가 되는 라인업을 세웠다. 경기 전부터 흐린 날씨가 지속되던 케이프타운엔 경기가 시작하자 장대비가 퍼붓기 시작해 이 경기는 결국 수중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경기가 시작되자 양 팀은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였다. 대체로 이탈리아가 공격적으로 나섰고 파라과이가 끈끈한 수비로 버텨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공격력은 파라과이의 끈적한 수비벽을 뚫기엔 뭔가가 화력이 부족해 보였다. 공격수들의 노쇠화가 분명히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이어지던 중 전반 39분, 파라과이가 골문 우측 밖 35m 지점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킥커 아우렐리아노 토레스가 볼을 문전으로 붙여주었고 이걸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안톨린 알카라스가 다니엘레 데 로시의 공중볼 마크를 이겨내고 기어이 헤더로 우겨넣어 선제골을 터뜨려 예상을 깨고 파라과이가 1 : 0으로 앞서갔다. 지난 대회 야신상을 수상했던 이탈리아의 명물 잔루이지 부폰은 방향 예측에 실패하여 역동작에 걸려 그대로 실점하고 말았다. 골이 들어가자 파라과이 관중들은 신나게 부부젤라를 불어대며 환호했고 이탈리아 응원석은 적막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전반전은 파라과이가 1 : 0으로 앞선 채로 끝이 났다. 그런데다 이탈리아는 또 하나의 악재를 맞았다. 사실 이 경기를 앞두고 수문장 부폰은 허리에 부상을 당했으나 뛰겠다고 자청해서 경기에 나섰다. 그러나 도저히 허리 통증을 참을 수 없었고 결국 하프타임 때 못 뛸 것 같다는 의사를 밝혔다. 결국 하프타임 때 부폰을 빼고 후보 골키퍼 페데리코 마르체티를 투입했다.
후반전에도 이탈리아는 조금씩 파라과이에 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파라과이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도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간신히 실점만 면했을 뿐이었다. 골키퍼가 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비 라인이 썩 믿음직스러운 것도 아닌데 순전히 상대 선수들이 개발이어서 간신히 실점만 안 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라과이로서도 골을 넣어야 할 때 추가골을 못 넣은 게 아쉽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후반 18분에 이탈리아가 코너킥 찬스를 얻었다. 시모네 페페가 찬 코너킥은 문전으로 곧장 날아갔고 파라과이의 후스토 비야르 골키퍼가 펀칭을 시도했으나 헛손질에 그쳤다. 그리고 볼은 아래로 떨어졌고 이걸 지면에 닿기 전에 재빨리 다니엘레 데 로시가 미끄러지면서 오른발을 갖다대 동점골을 터뜨려 스코어를 1 : 1 원점으로 되돌렸다. 참으로 천금같은 동점골이 아닐 수 없었다.
승부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이탈리아는 계속해서 공격의 고삐를 당겼고 파라과이는 무승부도 나쁘지 않다는 듯 잠그기에 들어갔다. 경기 종료 직전에 몬톨리보가 강한 중거리슛을 날렸으나 후스토 비야르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결국 경기는 그렇게 1 : 1로 종료되며 양 팀은 사이좋게 1점씩 나눠가졌다. 그러나 다음 날 오후 3시 반에 열린 뉴질랜드 vs 슬로바키아의 경기에선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트 비텍이 후반 5분에 선제골을 넣어 1 : 0으로 앞서갔지만 경기 종료 직전에 세트피스 상황에서 윈스턴 리드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하며 1 : 1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그렇게 A조와 마찬가지로 4팀 모두 1차전에서 승점 1점씩 나눠갖는 혼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F조의 판세도 점점 꼬여가기 시작했다. 이제 이탈리아로서는 조 1위로 치고 올라가기 위해선 반드시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겨야만 한다.
19.2. 조별리그 뉴질랜드전 - 1 : 1 무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조 최약체로 꼽힌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였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탈리아는 월드컵에서 4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축구 강국이었지만 뉴질랜드는 본래가 축구보다 럭비가 더 인기가 많은 나라였고 축구는 철저한 비인기 종목이라 변변한 프로 리그조차 없던 나라였다. 월드컵도 1982 스페인 월드컵 이후 28년 만에 올라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당연히 이탈리아의 압승을 기정사실로 여겼고 이 경기는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이탈리아가 몇 골 차로 이기느냐가 관심사였다. 이탈리아로서도 편안하게 토너먼트를 치르기 위해선 반드시 뉴질랜드를 이겨야 한다. 한편, 뉴질랜드의 리키 허버트 감독은 이 경기를 앞두고 이탈리아를 향해 엄청난 도발을 감행했다.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허버트 감독은 "우리가 제 2의 한국이 되겠다!"며 이탈리아인들이 그토록 잊고 싶어하던 2002년의 악몽을 끄집어낸 것이다. 그만큼 한국이 8년 전 이탈리아를 2 : 1로 격침시킨 것은 약팀이 강팀을 꺾어버린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과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끔 했다.[22]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이 경기에서 포메이션에 변화를 주었다. 오늘 경기에선 4-4-2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나섰다. 1차전에서 중앙에 섰던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를 왼쪽으로 돌리고 레프트윙을 섰던 빈첸초 이아퀸타를 전방으로 올린 것이다. 즉, 전방 공격수 숫자를 늘려서 다득점을 노리겠다는 의도였다. 반면, 뉴질랜드는 1차전과 마찬가지로 4-3-3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고 선발 라인업도 동일하게 그대로 들고 나왔다. 그렇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불리는 경기가 펼쳐졌다. 경기가 시작되자 초반 몇 분 간은 탐색전이 오고 갔다. 그러나 전반 7분 만에 경기는 모든 이들의 예상과 크게 빗나가버렸다. 뉴질랜드가 프리킥 찬스를 얻었고 킥커 사이먼 엘리엇이 길게 전방으로 볼을 띄웠다. 그런데 주장 파비오 칸나바로가 볼을 제대로 클리어링하지 못했고 흐른 볼을 재빨리 문전으로 침투한 셰인 스멜츠가 잽싸게 밀어넣어 선제골을 터뜨린 것이다! 그렇게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뉴질랜드가 1 : 0으로 앞서갔다.[23]
워낙 기습적인 골이었던지라 이탈리아 관중석은 스턴건을 얻어맞은 듯 적막감에 휩싸였고 페데리코 마르체티 골키퍼와 주장 파비오 칸나바로도 모두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을 지었다. 뜻밖에 기습적인 선제골을 허용한 이탈리아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문제는 골 결정력이었다. 오늘 경기에서도 이탈리아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은 정말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그렇게 월드컵 우승만 4번 한 축구 강국이 럭비 강국에게 0 : 1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반 29분, 공격에 가담한 조르조 키엘리니가 뉴질랜드 진영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는데 공중볼 경합 도중 뉴질랜드의 레프트백 토니 스미스가 다니엘레 데 로시의 유니폼을 잡아 넘어뜨리는 반칙을 범했다. 주심은 즉시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이탈리아로서는 동점골을 넣을 절호의 기회였다. 킥커로 빈첸초 이아퀸타가 나섰고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스코어를 1 : 1 원점으로 되돌렸다. 그렇게 전반전은 1 : 1로 마쳤다.
하프타임 때 리피 감독은 시모네 페페와 부진했던 최전방 공격수 알베르토 질라르디노를 빼고 마우로 카모라네시와 안토니오 디 나탈레를 동시에 교체투입했다. 하지만 이 교체 카드는 패착으로 다가왔다. 카모라네시는 볼 키핑 능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선수여서 옆에 시모네 페페가 붙어 있어야만 플레이가 살아나는 선수였다. 그러나 페페와 카모라네시를 맞교대 해버렸으니 카모라네시의 부족한 볼 키핑 능력을 도와줄 선수가 없어져버렸던 것이다. 그러자 뉴질랜드 수비수들은 편안하게 카모라네시만 집중 마크해도 이탈리아의 공격의 혈을 막아버릴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 이탈리아 공격수들은 마음만 급해서 자꾸 부정확한 슈팅들만 난사하기에 바빴다. 뉴질랜드의 마크 패스턴 골키퍼는 여러 차례 슈퍼 세이브로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더욱 좌절감을 안겼다. 후반 16분에 리피 감독은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를 빼고 잠파올로 파치니까지 투입해 공격수 숫자를 더욱 늘렸으나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뉴질랜드의 크리스 우드가 주장 칸나바로의 마크를 이겨내고 페널티 박스 좌측 외곽에서 멋진 왼발 중거리슛을 날렸으나 아주 약간 골대를 벗어나며 아쉬움을 삼켰다. 만약 이게 들어갔다면 이탈리아로서는 8년 전 한국에 1 : 2로 패배했을 때보다 더 큰 치욕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뉴질랜드의 허버트 감독은 경기 종료 직전 은행원 출신의 아마추어 선수 앤디 배런을 투입해 이탈리아를 향해 능욕 아닌 능욕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경기는 또 1 : 1 무승부로 끝나버렸다.
1차전 파라과이전 무승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파라과이 역시 이탈리아의 발 끝에도 못 미치는 팀이었지만 그래도 남미의 축구 강국 중 하나인 팀이라 아주 무시할 만한 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질랜드전 무승부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월드컵 우승 4회에 빛나는 축구 강국이 저 핫바리 오세아니아 팀에게 비겼다는 건 전세계적인 웃음거리에 불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서서히 리피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이 싹트기 시작했다. 앞서 열린 슬로바키아 VS 파라과이의 경기는 파라과이의 2 : 0 승리로 끝나면서 판세는 3차 방정식 수준으로 꼬여버렸다. 우선 1승 1무(승점 4점)를 기록한 파라과이가 조 1위로 올라섰고 그 뒤를 이어 2무(승점 2점)를 기록한 이탈리아와 뉴질랜드가 공동으로 조 2위를 했으며 1무 1패(승점 1점)를 기록한 슬로바키아가 조 최하위로 떨어졌다. 이탈리아는 이렇게 젖과 꿀이 흐르는 쉬운 조에서조차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뉴질랜드가 이 조의 판세를 꼬아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점자판기인 줄 알았는데 2경기 연속 무재배로 쳐내버린 것이다. 즉, 고장난 승점자판기였던 셈이다. 한편, 리키 허버트 감독은 난적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귀중한 1 : 1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기자회견에서 했던 "우리가 제 2의 한국이 되겠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첫 번째로 출전했던 1982 스페인 월드컵 때엔 3전 전패로 무기력하게 물러났던 뉴질랜드였지만 이 경기에선 2무를 기록하여 무패를 기록했다. 감독이 "우리가 제 2의 한국이 되겠다."고 말한 것에 힘이라도 싣듯 뉴질랜드 응원단들도 태극기를 흔들며 심리전에 동조했다. 이를 볼 때 한국이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꺾은 약팀들의 상징이 된 듯하다.
'''한편 이탈리아는 3차전에서 아주 제대로 사달이 나고 말았다'''.
19.3. 조별리그 슬로바키아전 - 2 : 3 패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는 슬로바키아였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1993년에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기 전까진 월드컵에서 2번 만났던 바 있지만 체코슬로바키아 시절의 기록은 모두 체코가 승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기에 이번을 첫 맞대결로 본다. 2차전까지 이탈리아의 전적은 2무(승점 2점)였고 슬로바키아는 1무 1패(승점 1점)였다. 이탈리아로서는 이 경기에서 이기면 16강에 진출하고 비길 경우엔 뉴질랜드가 파라과이에 지거나 비기더라도 적은 골 득실로 비겨야 한다. 만약 만에 하나 뉴질랜드가 파라과이를 이길 경우엔 가차없이 탈락이다. 패배할 경우에도 따질 것 없이 바로 탈락이다. 한편, 슬로바키아는 1차전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 다 잡은 승리를 놓치며 1 : 1로 비기더니 2차전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0 : 2로 패배해 탈락 위기에 몰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도 어떻게든 이탈리아만 잡으면 16강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두 팀의 16강 진출의 운명이 걸린 단두대 매치가 펼쳐졌다.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이 경기에서 4-1-4-1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1~2차전까지 선발 출전했던 포백 라인은 그대로 유지하고 미드필더 라인에 변화가 왔다. 다니엘레 데 로시가 포백 라인 바로 위쪽에 포진해 포백 라인을 보호하고 중앙 미드필더로 리카르도 몬톨리보와 백전노장 파이터 젠나로 가투소가 이번 대회 첫 선발 출장을 했다. 그리고 좌우측 날개로 안토니오 디 나탈레와 시모네 페페가 서고 원톱에 빈첸초 이아퀸타가 섰다. 한편, 슬로바키아의 블라디미르 바이스 2세 감독은 지난 파라과이전과 마찬가지로 4-4-1-1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지만 선발 라인업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수비 라인에선 센터백 코르넬 살라타를 빼고 레프트백 얀 두리차를 중앙으로 옮겼고 라도슬라프 자바브니크가 새로 들어갔다. 그리고 미드필더 라인엔 스타니슬라우 세스탁과 블라디미르 바이스 3세[24] 를 빼고 유라이 쿠츠카와 미로슬라우 스토흐를 새로 투입했다. 공격진에도 얀 코작을 빼고 로베르트 비텍을 처진 스트라이커 자리로 내리고 센터 포워드 자리에 에릭 옌드리세크를 투입했다. 그렇게 파라과이전과 비교해 총 4명을 바꾸고 경기에 내보냈다.
전반 15분 동안 양 팀은 조심스럽게 탐색전을 벌였다. 그러다가 전반 16분에 다니엘레 데 로시의 중거리슛으로 이탈리아가 슬슬 발동을 거는가 싶었다. 그런데 전반 25분, 슬로바키아 공격수 옌드리세크의 크로스를 센터백 키엘리니가 차단했다. 키엘리니는 데 로시에게 패스했고 데 로시가 몬톨리보에게 패스했는데 그만 이 패스를 중간에서 슬로바키아의 미드필더 유라이 쿠츠카가 잘라먹었다. 곧바로 슬로바키아의 역습으로 이어졌고 쿠츠카는 키엘리니의 태클을 피해 전방의 로베르트 비텍에게 킬 패스를 넣었다. 그리고 비텍이 페널티 박스로 쇄도해 미끄러지면서 오른발 땅볼 슛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냈다. 그리하여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슬로바키아가 1 : 0으로 앞서갔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이번 대회에서 조별리그 3경기 내내 상대에게 먼저 선제골을 허용하고 경기를 하는 수모를 겪었다. 지난 대회에선 단 1개의 필드골도 허용하지 않으며 카테나치오의 악명을 전세계에 떨쳤건만 이번 대회의 이탈리아는 그야말로 녹슨 빗장이었다. 1골을 실점한 이후 경기 양상은 진흙탕 싸움이 되어버렸으며 이탈리아는 좀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헤롱헤롱거렸다. 볼 점유율도 45% : 55%로 밀리며 이겨야만 하는 경기에서도 상대에게 밀리는 답답한 모습만 보였다. 그렇게 전반전은 0 : 1로 뒤진 채로 끝이 났다. 같은 시각 파라과이 vs 뉴질랜드의 경기는 0 : 0으로 전반을 마쳤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게 되면 이탈리아는 조별리그 탈락은 둘째치고 꼴찌가 되어버린다.
리피 감독은 하프 타임 때 일찌감치 2장의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부진했던 레프트백 도메니코 크리시토를 빼고 크리스티안 마지오를 교체 투입했고 미드필더 젠나로 가투소 역시 빼고 공격수 파비오 콸리아렐라를 투입해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하지만 진흙탕 싸움은 도저히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답답함을 참지 못한 리피 감독은 급기야 후반 11분, 리카르도 몬톨리보마저 빼고 아직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은 패스 마스터 안드레아 피를로를 교체 투입해 일찌감치 3장의 교체 카드를 모두 썼다.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배수진이라 할 수 있었다. 패스 마스터 피를로가 들어가자 드디어 이탈리아도 막힌 공격의 혈이 조금씩 뚫리는 모습을 보이며 조금씩 이탈리아다운 수비와 공격을 펼쳐가며 득점 기회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후반 21분, 코너킥 찬스에서 시모네 페페가 피를로에게 패스했고 피를로는 다시 페널티 박스로 쇄도한 페페에게 패스했다. 페페는 크로스를 올렸고 슬로바키아의 수문장 얀 무차 골키퍼가 펀칭을 시도했으나 헛손질에 그쳤다. 그리고 이 떨어진 볼을 콸리아렐라가 가슴으로 한 번 트래핑한 후 멋진 오른발 발리슛을 날렸다. 그렇게 극적인 동점골로 연결되는 줄 알았는데..... '''그만 골 라인을 넘기 직전에 슬로바키아의 센터백 마르틴 스크르텔의 무릎에 맞고 빠져 나와버렸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골 라인을 넘었다고 항의했으나 하워드 웹 주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탈리아로선 참으로 불운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기회 뒤에 바로 위기가 찾아왔다. 후반 28분, 슬로바키아가 코너킥 찬스를 잡았다. 킥커 마렉 함식이 올린 코너킥은 키엘리니가 머리로 걷어냈으나 볼은 다시 전진한 함식의 발 앞에 왔다. 함식 앞에 피를로가 막아섰으나 함식은 피를로 옆으로 비텍을 향해 패스를 넣었고 비텍은 재빨리 골문 오른쪽 구석으로 차넣어 스코어를 2 : 0으로 벌렸다. 센터백 키엘리니가 비텍의 움직임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게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었다. 가히 이탈리아에 절망적인 상황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이제 이탈리아에 남은 선택지는 오직 공격밖에 없다. 아직 타 구장에서 열린 파라과이 vs 뉴질랜드의 경기는 0 : 0 스코어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제 이탈리아로서는 남은 20여 분 동안 부지런히 공격해서 어떻게든 2 : 2 무승부라도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그 때부터 뒤를 생각하지 않고 계속 공격 또 공격을 했다. 후반 37분, 시모네 페페가 중원에서 우측의 콸리아렐라에게 패스했다. 콸리아렐라는 문전으로 쇄도하며 이아퀸타에게 패스했고 이아퀸타는 감각적인 힐킥으로 다시 페널티 박스로 쇄도한 콸리아렐라에게 패스했다. 콸리아렐라가 곧바로 슛을 날렸으나 얀 무차 골키퍼가 쳐냈다. 그러나 그 볼은 좌측에 있던 디 나탈레의 발 앞에 굴러갔고 디 나탈레가 빈 골문에 골을 넣으며 스코어를 2 : 1로 좁혔다.[25] 남은 시간은 10분 정도. 아직 희망은 있다.
뒤이어 후반 39분엔 데 로시가 우측의 시모네 페페에게 패스했고 시모네 페페는 페널티 박스로 길게 크로스를 올렸다. 이 공중볼을 이아퀸타가 따냈으나 슬로바키아 센터백 스크르텔이 다시 머리로 걷어냈다. 하지만 이 볼을 페널티 박스 좌측 외곽에서 디 나탈레가 받았고 디 나탈레는 중앙의 콸리아렐라에게 패스했다. 콸리아렐라는 얀 두리차와의 몸싸움 때문에 넘어지면서도 슛을 날려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러나 선심은 디 나탈레의 패스가 가는 시점에 콸리아렐라의 상체가 얀 두리차보다 앞쪽에 있었다고 하여 오프사이드를 선언해 득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탈리아는 이렇게 2골이나 날아가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1골 차로 좁혀지자 슬로바키아의 블라디미르 바이스 감독은 86분 동안이나 아껴두었던 교체 카드를 쓰며 굳히기에 들어갔다. 먼저 후반 42분에 즈데노 슈트르바를 빼고 카밀 코푸네크를 교체 투입했다. 그리고 후반 44분, 슬로바키아의 스로인 찬스에서 이탈리아 선수들의 시선은 모두 공에만 쏠렸고 카밀 코푸네크의 움직임을 완벽히 놓쳤다. 이에 슬로바키아는 당연히 코푸네크를 향해 스로인을 했고 코푸네크는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로 페널티 박스로 쇄도했고 페데리코 마르체티와 1 : 1 상황을 맞았다. 마르체티 골키퍼가 각도를 줄여 선방하려고 전진했으나 코푸네크가 한 발 먼저 찍어찼다. 이 슛은 마르체티 골키퍼의 키를 넘기며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26]
그렇게 스코어는 3 : 1로 벌어지고 말았다. 이탈리아는 1970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1 : 4로 패배한 이후 단 1번도 1경기에서 2골 넘게 실점한 법이 없었다. 그러나 카밀 코푸네크에게 3번째 골을 실점하면서 그 기록도 40년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어느 덧 45분이 지나고 추가시간이 적용되었다. 이탈리아로서는 더욱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포기할 순 없었다. 추가시간 2분, 페널티 박스 외곽 혼전 상황에서 데 로시가 태클로 볼을 빼앗아 콸리아렐라에게 패스했다. 콸리아렐라는 골문 밖 18m 지점에서 로빙 슛을 날렸고 이것이 얀 무차 골키퍼의 키를 넘기며 만회골이 되었다. 그렇게 스코어는 다시 3 : 2로 좁혀졌다. 남은 시간은 3분. 이탈리아에는 아직 1골이 더 필요하다. 슬로바키아의 블라디미르 바이스 감독은 남은 교체 카드 2장을 마저 쓰며 시간을 끌었다. 같은 시각 파라과이 vs 뉴질랜드의 경기는 0 : 0으로 끝이 나며 파라과이의 16강 진출과 뉴질랜드의 탈락이 결정되었다. 이제 이탈리아는 1골만 더 넣으면 16강에 갈 수 있다. 경기 종료 직전, 이탈리아에 마지막 득점 찬스가 찾아왔다. 오른쪽에서 키엘리니가 스로인을 날렸고 이 볼을 유라이 쿠츠카가 머리로 맞췄지만 볼은 뒤쪽으로 흐르며 골문 좌측 외곽에 있던 시모네 페페의 발 앞으로 굴러갔다. 이제 그의 발에 이탈리아의 운명이 걸렸다.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면 이제 이탈리아는 기사회생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급했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페페는 오른발 슛을 시도했지만 그게 '헛발질(....)'이 되었고 어이없게도 디딤발인 왼발을 맞고 공이 빠져나가 버리며 이 중요한 득점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급한 마음에 벤치에 앉지도 못하고 일어서서 경기를 지켜봤던 잔루이지 부폰,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등 동료 선수들은 모두 골이 들어가는 줄 알고 일제히 일어섰다가 공이 골문을 비껴가서 광고판을 때리는 광경을 목도한 순간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했다. 결국 얀 무차 골키퍼의 골킥이 하늘 위로 뜸과 동시에 하워드 웹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고 경기는 그렇게 슬로바키아의 3 : 2 승리로 끝이 났다. 그리하여 파라과이가 1승 2무(승점 5점)로 조 1위를 차지했고 대어 이탈리아를 낚은 슬로바키아는 1승 1무 1패(승점 4점)의 전적으로 단숨에 조 2위로 껑충 뛰어올라 둘이 나란히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3무(승점 3점)를 기록한 뉴질랜드는 매우 선전했지만 조 3위에 그쳐 탈락했고 이탈리아는 2무 1패(승점 2점)에 그쳐 뉴질랜드에도 밀리며 조 꼴찌로 탈락하고 말았다.
이탈리아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은 1974 서독 월드컵 이후 36년 만의 일이었다.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건 1950 브라질 월드컵 때 이탈리아,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때 브라질, 2002 한일 월드컵 때 프랑스에 이어 4번째였다. 공교롭게도 이탈리아는 그 치욕을 2번이나 겪었다. 이번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2무 1패, 4득점 5실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탈리아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탈락한 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로 꼽히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때도 조별리그 탈락은 했을지언정 칠레를 2 : 0으로 이겨서 1승은 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단 1승도 못했다. 또 이번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32개국 중 26위에 그쳤는데 이것 역시 월드컵에서 기록한 최저 등수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회엔 44년 전 자신들을 울렸던 북한이 간만에 월드컵에 등장했는데 이번에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북한이 출전한 대회에선 무조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다.\''''는 징크스가 생기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지난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던 프랑스 또한 1무 2패로 조 최하위로 탈락해 지난 대회 우승국과 준우승국이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어쨌든 36년 만에 조별리그 탈락이란 참극으로 귀결되자 이탈리아인들은 크게 폭발했다. 언론들은 '''"북한보다도 못했다!"'''며 대표팀을 질타했다. 4년 전 조국에 4번째 우승을 안겨주며 국민 영웅으로 부상했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순식간에 국민 역적으로 전락해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이 때 대실패를 겪은 리피 감독은 말년에 커리어가 대차게 꼬이며 유럽에서 반쯤 추방되고 말았다. 결국 그는 명예 회복을 위해 아시아로 눈을 돌렸고 중국으로 가서 재기를 노리게 된다. 그 뿐 아니라 이탈리아인들은 "썩은 토마토를 준비해서 공항에서 기다리겠다!"며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그만큼 이 대회는 이탈리아로선 마음의 상처만 잔뜩 남은 최악의 대회로 기억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때 찾아온 참극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사건은 이탈리아 축구 암흑기의 서막에 불과했다는 것이 7년 뒤 밝혀지고 만 것이다.
20. 2014 브라질 월드컵
지난 월드컵에서 2무 1패라는 사상 최악의 성적을 거두어 축구 강국으로서의 체면을 완전히 구긴 이탈리아는 결국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떠났고, ACF 피오렌티나 감독을 역임했던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이 새로 부임했다. 프란델리 감독은 아주리 군단의 사령탑으로 부임하자마자 과감한 세대 교체를 단행했다. 그리하여 리피 감독 시절엔 외면 받았던 마리오 발로텔리, 안토니오 카사노 등 신진 선수들이 대거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그리고 첫 국제대회인 유로 2012에서 이탈리아는 어느 정도 희망을 보았다. 당시 이탈리아는 스페인, 크로아티아, 아일랜드와 함께 C조에 속했다. 이탈리아는 1차전 난적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놀랍게도 1 : 1 무승부를 거두었다. 2년 전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우승으로 한창 전성기에 있던 스페인을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는 기적을 쓴 것이다.
그러나 조별리그 2차전에선 천적 크로아티아를 만나 전반 39분에 안드레아 피를로가 선제골을 넣어 앞서갔으나 후반 27분에 마리오 만주키치에게 동점골을 허용해 1 : 1로 비기며 또 크로아티아를 이기는데 실패했다. 2차전까지 스페인과 크로아티아가 1승 1무(승점 4점)를 거두고 있었고 이탈리아가 2무(승점 2점), 아일랜드가 2패(승점 0점)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탈리아로서는 반드시 마지막 경기에서 아일랜드를 꺾고 동시에 스페인이 크로아티아를 이겨달라고 열심히 기도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아일랜드를 2 : 0으로 이겼고 같은 시각에 스페인이 크로아티아를 1 : 0으로 이기면서 간신히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 상대는 잉글랜드였는데 이탈리아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하고도 잉글랜드의 늪 축구에 고전을 면치 못하며 결국 0 : 0으로 비겼으나 승부차기에서 4 : 2 승리를 거두어 간신히 4강 진출에 성공했다. 4강 상대는 전차군단 독일이었다. 이 무렵 독일은 상승세를 타고 있었고 이탈리아는 하락세를 타고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독일의 승리가 예상되었으나 이탈리아는 마리오 발로텔리가 2골을 넣는 맹활약에 힘입어 독일을 2 : 1로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결승전에선 스페인에 0 : 4로 대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물론 총 전적은 2승 3무 1패(승점 9점)에 불과해 아주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2년 전 월드컵에서 처참하게 몰락한 팀을 이끌고 준우승까지 차지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게 하는데는 효과적이었다.
이번 대회 지역 예선에도 유럽엔 13장의 출전권이 부여되었다. UEFA에 소속된 53개국을 9개 조로 나누어 8개 조는 6팀씩, 1개 조는 5팀으로 편성해 홈 & 어웨이 리그 전을 치른다. 그리하여 각 조 1위는 본선에 직행하고 조 2위를 한 팀은 최하위 팀과의 전적을 제외한 조정 승점으로 순위를 매겨 가장 낮은 팀 1팀은 탈락하고 나머지 8팀끼리 플레이오프를 치러 승리한 4팀이 본선에 오르게 된다. 이탈리아는 덴마크, 체코, 불가리아, 아르메니아, 몰타와 함께 B조에 속했다. 제법 까다로운 상대들이 속한 조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탈리아는 1차전 불가리아 원정 경기에서 2 : 2 무승부를 거두며 불안한 출발을 했다. 2차전 조 최약체 몰타와의 경기에서도 겨우 2 : 0으로밖에 이기지 못하는 부진을 겪었다. 3차전 아르메니아 원정 경기에서 3 : 1 승리를 거두며 이탈리아는 다시 본 궤도를 찾아갔다. 그리고 4차전 덴마크와의 홈 경기에서 3 : 1 완승을 거두었다. 5차전 몰타 원정 경기에서도 2 : 0 승리를 거두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B조의 순위는 이탈리아가 4승 1무(승점 13점)로 1위, 불가리아가 2승 3무(승점 9점)으로 2위, 체코가 2승 2무 1패(승점 8점)로 3위, 덴마크가 1승 3무 1패(승점 6점)로 4위, 아르메니아가 1승 4패(승점 3점)로 5위, 몰타가 5전 전패(승점 0점)으로 최하위에 있었다.
6차전 체코 원정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0 : 0 무승부를 거두었다. 7차전 불가리아와의 홈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고전 끝에 1 : 0 승리를 거두었다. 이 시점에서 B조의 순위는 이탈리아가 5승 2무(승점 17점)로 1위, 불가리아가 2승 4무 1패(승점 10점)으로 2위, 덴마크와 체코, 아르메니아가 각각 2승 3무 2패(승점 9점), 3승 4패(승점 9점)로 동률이었고 몰타가 1승 6패(승점 3점)로 최하위였다. 최하위 몰타는 이 경기에서 패배하면서 결국 탈락이 확정되었다. 이제 이탈리아로서는 8차전 체코와의 홈 경기에서 승리하게 되면 본선 진출이 확정된다. 이탈리아는 체코를 상대로 선제골을 내주며 고전했지만 결국 2 : 1로 승리하여 2위 불가리아와의 승점 차이를 7점 차로 유지하면서 2경기 남은 상태에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9차전 덴마크 원정 경기는 2 : 2로 비겼고 10차전 아르메니아와의 홈 경기도 2 : 2로 비기며 이탈리아는 6승 4무(승점 22점)의 성적으로 무패를 기록하며 지역예선을 마쳤다.
지역예선 중에 이탈리아는 유로 2012 준우승국 자격으로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라질에 참가했다. 본래 대륙컵 준우승팀은 출전 자격이 없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국 스페인이 유로 2012도 우승했기에 중복이 되어서 빈 자리에 이탈리아가 대신 들어간 것이다. 이 때 이탈리아는 자신들의 장기인 수비에 심각한 구멍을 발견했다. 이탈리아는 1차전에서 멕시코를 2 : 1로 이긴 뒤 2차전에선 일본을 상대로 먼저 2골을 내주며 상당히 고전한 끝에 4 : 3으로 겨우 이겼고 3차전에선 브라질에 2 : 4 완패를 당했다. 그리하여 조별리그에서만 무려 '''8실점'''이나 기록한 것이다. 4강전 스페인을 상대론 모처럼 클린시트를 기록했지만 승부차기에서 6 : 7로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3위 결정전에선 우루과이를 상대로도 고전하다가 2 : 2로 비겼고 승부차기에서 간신히 3 : 2로 이겨 3위를 차지했다. 3위라는 성적과 별개로 이탈리아는 이 대회에서 5경기 10실점이라는 형편 없는 수비력을 보였다. 카테나치오로 악명 높은 그 이탈리아가 국제대회에서 10실점이나 기록한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그리고 2013년 연말에 있었던 조 추첨식에서 이탈리아는 최악의 조 편성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번 대회에선 톱 시드 팀을 2013년 10월 피파랭킹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즉, 개최국 브라질과 본선 진출국 중 피파랭킹 1~7위에 해당하는 8팀이 톱 시드를 차지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리하여 브라질, 스페인, 콜롬비아, 우루과이, 스위스, 아르헨티나, 독일, 벨기에가 톱 시드 팀으로 선정되었다. 이탈리아는 피파랭킹 10위에 그쳐 톱 시드에서 잘려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처참한 결말을 안겨줄 줄 그 누가 알았으리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유럽 팀은 13팀인데 4팀이 톱 시드에 선정되어 9팀이 남았기에 유럽 팀이 한 조에 3팀 이상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 팀은 포트 X로 들어가야 했다. 이 포트 X로 들어갈 팀에 여러 설들이 오갔으나[27] FIFA는 조 추첨식 당일까지 포트 X팀에 대해 철저하게 함구했다.
조 추첨식 당일 포트 X팀은 우루과이가 톱 시드로 있던 D조에 편성되는 것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그 포트 X팀의 정체가 밝혀졌는데 그 팀은 바로 이탈리아였다. 뒤이어 아시아, 북중미 팀이 속한 포트 3에서 코스타리카가 걸렸고 마지막으로 시드를 못 받은 유럽 팀이 속한 포트 4에서 잉글랜드가 걸렸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우루과이, 코스타리카, 잉글랜드와 함께 죽음의 조인 D조에 속했다. 사실상 코스타리카를 빼면 모두 하나 같이 부담스러운 상대들 뿐이었다. D조에 속한 팀들 중 코스타리카를 빼면 모두 월드컵 우승 경험이 있는 팀들이었고, 이들의 월드컵 우승 횟수를 모두 합산하면 무려 '''7회'''였다. 그만큼 빡센 조였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전통적으로 쉬운 조 편성보다는 오히려 까다로운 조에 편성되었을 때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잉글랜드가 전력상 다소 처지는 모습을 보였기에 이탈리아와 우루과이가 16강에 갈 것이란 예측이 압도적이었다. 그렇게 4년 전 치욕을 씻고 다시 축구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부활시킬 각오를 다지고 결전의 땅 브라질로 향했다.
20.1. 조별리그 잉글랜드전 - 2 : 1 승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첫 상대는 축구종가 잉글랜드였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이번이 2번째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3위 결정전에서 처음 만났을 땐 이탈리아가 2 : 1로 승리해 3위를 차지했던 바 있다. 그 날 이후로 24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서 만난 것이다. 불과 2년 전인 유로 2012 8강전에서 두 팀이 만났을 땐 0 : 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가 4 : 2로 승리한 바 있다. 이탈리아는 이 경기에서 4-3-3 포메이션으로 나섰고 잉글랜드는 4-2-3-1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다만 이탈리아는 수문장 잔루이지 부폰 골키퍼가 부상에서 아직 회복되지 않은 관계로 오늘 경기에선 살바토레 시리구 골키퍼가 대신 출전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양 팀은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먼저 잉글랜드의 신예 라힘 스털링이 전반 3분 만에 강한 중거리슛을 날리며 포문을 열었으나 옆 그물을 출렁이는데 그쳤다. 이탈리아는 패스 마스터 안드레아 피를로를 중심으로 세밀한 패스 플레이를 통해 득점 기회를 만들어 갔고 잉글랜드는 좀 더 스피디한 속공으로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그렇게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지던 중 전반 35분, 이탈리아의 코너킥 찬스에서 킥커 안토니오 칸드레바가 페널티 우측 외곽에 있던 마르코 베라티에게 패스했고 베라티는 피를로에게 패스했는데 피를로는 뒤에 있던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가 노마크 상태인 걸 확인하고 재치있게 패스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려주었다. 그리고 패스를 받은 마르키시오는 오른발 땅볼 중거리슛을 날렸고 그게 그대로 잉글랜드의 골문 좌측 구석을 파고들며 선제골이 되었다. 그렇게 경기는 이탈리아가 1 : 0으로 앞서갔다. 백전노장 피를로의 센스 넘치는 플레이가 돋보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선제골의 흥분이 아직 채 가시기도 전에 잉글랜드가 거세게 반격을 게시했다. 잉글랜드의 미드필더 대니 웰벡이 센터 서클에서 웨인 루니에게 패스했고 루니는 빠른 스피드로 이탈리아 좌측 진영을 쇄도하였다. 발이 느린 이탈리아 수비진들은 잉글랜드 공격수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루니는 문전 좌측 외곽에서 크로스를 올렸고 그걸 반대편에서 쇄도하던 다니엘 스터리지가 오른발 논스톱 슛으로 마무리하며 동점골을 터뜨려 다시 스코어를 1 : 1 원점으로 되돌렸다. 이탈리아가 자신들의 강점을 잘 살려 득점했듯이 잉글랜드 또한 자신들의 강점인 스피디한 공격으로 득점을 만들어낸 것이다. 전반 종료 직전에 피를로의 킬 패스를 받은 마리오 발로텔리가 좋은 득점 기회를 얻었으나 잉글랜드 센터백 필 자기엘카의 집중력 있는 수비로 인해 득점 기회를 날리며 전반전은 1 : 1로 마쳤다.
후반전이 시작되자 이탈리아가 초반부터 기세를 잡았다. 라이트백 마테오 다르미안이 우측을 쇄도하다 전방에 있던 안토니오 칸드레바에게 패스했다. 칸드레바는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 외곽에서 반대편으로 길게 크로스를 올렸고 그걸 문전에 침투해 있던 마리오 발로텔리가 잉글랜드 센터백 게리 케이힐을 자신의 피지컬로 찍어누르는 헤더로 결승골을 터뜨려 스코어를 다시 2 : 1로 벌렸다.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은 경기가 열리는 마나우스가 고온다습한 기후라 선수들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보이자 후반 12분에 마르코 베라티를 빼고 티아고 모타를 투입해 체력 안배를 시켜주었다. 1골 차로 뒤지게 된 잉글랜드도 다시 반격에 나섰다. 후반 16분, 웨인 루니가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잡았으나 골문 바깥으로 벗어나며 또 첫 골을 넣는데 실패했다.
후반 25분을 넘어서자 프란델리 감독은 서서히 잠그기에 들어갔다. 후반 28분에 발로텔리를 빼고 치로 임모빌레를 교체 투입했고 후반 34분엔 칸드레바를 빼고 마르코 파롤로를 교체 투입해 주전 선수들 체력 안배를 시켜주고 카테나치오로 잠그기에 돌입했다. 남은 시간 동안 잉글랜드는 이탈리아를 향해 계속해서 포격을 가했지만 이탈리아의 굳게 닫힌 빗장을 부수기엔 그들의 골 결정력은 너무나도 허접했다. 수문장 살바토레 시리구는 월드컵 데뷔전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며 이탈리아엔 부폰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몸소 증명했다. 특히 후반 31분엔 레이턴 베인스의 날카로운 프리킥을 쳐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경기 막판에 이탈리아가 추가골을 넣을 기회를 얻었고 킥커 피를로가 멋진 무회전 프리킥을 날렸으나 아쉽게도 골 포스트를 맞추는데 그쳤다.
그리하여 경기는 이탈리아의 2 : 1 승리로 끝이 났다. 이로써 이탈리아는 2006 독일 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을 2 : 0으로 이긴 뒤 무려 5경기만에 첫 승을 신고했다. 전 날 우루과이 VS 코스타리카의 경기에서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코스타리카가 우루과이를 3 : 1로 이기면서 코스타리카와 이탈리아는 1승으로 동률을 이뤘으나 골 득실에서 앞선 코스타리카가 1위, 이탈리아가 2위를 차지했으며 잉글랜드가 3위, 우루과이가 조 꼴찌에 있었다. 1차전에서 난적 잉글랜드를 잡아낸 이탈리아는 이제 16강 진출이 거의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2차전 상대는 조 최약체로 꼽힌 코스타리카였기 때문이다. 비록 1차전에서 코스타리카가 우루과이를 3 : 1로 이기는 이변을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감히 이탈리아라는 대산맥을 넘어설 순 없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공은 둥글고 축구는 인간의 신체 중 가장 부정확한 발로 하는 스포츠라는 걸 알았어야 했다.
20.2. 조별리그 코스타리카전 - 0 : 1 패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북중미의 코스타리카였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만 이탈리아는 이 경기 전까지 월드컵에서 북중미 팀과 7번 맞붙어 4승 3무를 기록해 무패 신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지만 코스타리카가 1차전에서 톱 시드 팀 우루과이를 3 : 1로 잡아내는 이변을 일으켰기에 마냥 쉬운 경기는 아닐 것이다. 한편, 이 경기에 앞서 열린 우루과이 VS 잉글랜드의 경기는 1차전 때 부상으로 결장했던 우루과이 주포 루이스 수아레스가 급하게 복귀했고 혼자 2골을 터뜨린 맹활약을 보인 끝에 2 : 1로 승리해 16강 진출의 불씨를 살렸다. 그리하여 2차전까지 2패를 기록한 잉글랜드는 탈락 위기에 몰렸다. 이제 잉글랜드의 생명줄은 이탈리아가 쥐게 되었다. 이탈리아가 반드시 이 경기에서 이겨주어야만 3차전 결과에 따라 16강에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마리오 발로텔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가 이기면 잉글랜드가 16강 갈 희망이 있으니 골 넣으면 영국 여왕이 뽀뽀를 해달라."는 철딱서니 없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 경기를 중계하는 BBC 해설위원 게리 리네커 역시 아예 이탈리아 유니폼을 차려 입고 중계에 나섰다. 만약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가 이기더라도 이탈리아는 16강 진출이 확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3차전 결과에 따라 이탈리아, 우루과이, 코스타리카 3팀이 모두 2승 1패(승점 6점)로 동률이 되어 골 득실에 따라 탈락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면, 코스타리카는 이 경기에서 이기면 즉시 16강 진출이 확정되고 동시에 2패를 기록한 잉글랜드는 탈락이 확정된다. 과연 예상대로 이탈리아가 무난히 승리할지 아니면 코스타리카가 이탈리아마저 제압하고 돌풍을 이어갈지 주목되었다.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은 잉글랜드전과 비교해 선발 라인업에 크게 변화를 주었다. 먼저 수문장은 다시 잔루이지 부폰 골키퍼가 복귀했다. 그리고 조르조 키엘리니를 레프트백에서 다시 본 포지션인 중앙으로 옮기고 이냐치오 아바테를 레프트백 자리에 투입했다. 그리고 마르코 베라티 대신 티아고 모타를 선발 출전시켰고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의 자리도 잉글랜드전보다 더 전진 배치시켰다. 그렇게 해서 4-1-2-3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나섰다. 한편, 코스타리카의 호르헤 루이스 핀투 감독은 선발 라인업에 크게 변화를 주지 않았고 우루과이전과 마찬가지로 5-4-1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나섰다. 그렇게 양 팀의 16강 진출이 걸린 경기가 펼쳐졌다. 경기 초반부터 이탈리아는 코스타리카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전반 초반 발로텔리가 코스타리카의 수문장 케일러 나바스와 1 : 1 찬스를 맞았고 로빙 슛으로 나바스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데는 성공했으나 골문 밖으로 벗어나버리고 말았다.
코스타리카는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우루과이를 이긴 게 한낱 우연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강력한 수비로 이탈리아의 맹공을 버텨냈다. 그리고 그 수비진 뒤에는 케일러 나바스라는 최고의 골키퍼가 있었다. 그 때문에 이탈리아는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좀처럼 코스타리카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안드레아 피를로라는 양날의 검을 다시 한 번 실감해야 했다. 피를로는 패스 마스터란 별명답게 빌드업엔 없어선 안 될 선수였지만 스피드가 느리고 수비 가담 능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간파한 코스타리카는 역습 상황 때마다 피를로를 죽어라 물어 뜯었고 스피드가 느린 피를로는 어슬렁거리기만 할 뿐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이것이 끝내 이탈리아에는 크게 악재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전반 43분,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가 조르조 키엘리니에게 백패스를 하다가 패스 미스를 범했고 이를 코스타리카의 공격수 조엘 캠벨이 가로채 역습으로 이어졌다. 캠벨이 빠른 스피드로 이탈리아 진영을 쇄도하자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키엘리니가 뒤에서 캠벨을 찍어버렸다. 페널티킥이 선언되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주심은 그냥 넘어가버렸다. 코스타리카의 핀투 감독은 "왜 페널티킥을 주지 않느냐?"고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1분 후, 코스타리카의 레프트백 후니오르 디아스가 좌측에서 얼리 크로스를 올렸고 이걸 페널티 에어리어로 쇄도한 코스타리카 주장 브라이언 루이스가 헤더로 결승골을 터뜨려 코스타리카가 1 : 0으로 앞서갔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골라인을 넘지 않았다고 우겼으나 이번 대회부터 새로 도입된 '골 라인 판독기'로 판독한 결과 분명히 골라인을 통과했다는 게 드러나 코스타리카의 득점이 인정되었다. 그렇게 전반전은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코스타리카가 1 : 0으로 앞선 채로 끝이 났다.
후반전이 되자 하프 타임 때 프란델리 감독은 티아고 모타를 빼고 안토니오 카사노를 투입해 공세를 강화했다. 이탈리아는 후반전 내내 코스타리카의 골문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하지만 뭔 마가 낀 것인지 이탈리아 선수들의 슛은 코스타리카 수비수 몸에 맞고 빗나가거나 골문 위로 떠버리거나 케일러 나바스 골키퍼의 선방에 틀어막히는 등 좀처럼 코스타리카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후반 12분에 프란델리 감독은 안토니오 칸드레바를 빼고 발 빠른 로렌초 인시녜를 투입해 공격 속도를 높이는 교체 카드를 써보았으나 이것도 무효했다. 파이브백으로 두텁게 수비벽을 쌓은 코스타리카는 좀처럼 이탈리아에 골을 허용하지 않으며 애간장을 잔뜩 태웠다. 이탈리아는 그간 국제대회에서 자신들이 상대를 괴롭히던 방식을 역으로 코스타리카에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반 24분엔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마저 빼고 알레시오 체르치를 투입해 계속해서 코스타리카의 골문을 두들기고 또 두들겼지만 끝내 코스타리카의 골문은 열리지 않았고 결국 이탈리아는 0 : 1로 충격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2승(승점 6점)을 기록한 코스타리카는 16강 진출이 확정되었고 2패를 기록한 잉글랜드는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었다. 2차전까지 1승 1패(승점 3점)를 기록한 이탈리아와 우루과이는 이제 3차전에서 단두대 매치를 벌여 16강 진출자를 결정해야 한다. 처음 시작이 좋아서 이번엔 뭔가 크게 기대감을 갖게 했건만 코스타리카의 돌풍에 휘말리며 이번에도 순식간에 탈락 위기에 몰려버린 것이다. 어쨌든 이 경기에서 패배하며 이탈리아는 사상 최초로 월드컵에서 북중미 팀에 패배하는 치욕적인 기록을 또 하나 남기게 되었다. 이제 이탈리아가 무패를 기록하고 있는 대륙은 아프리카와 세계 축구 최약체들만 모인 오세아니아 단 둘만 남게 되었다.
20.3. 조별리그 우루과이전 - 0 : 1 패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는 남미의 우루과이였다. 두 팀이 월드컵에서 만난 건 이번이 3번째였다. 양 팀의 A매치 통산 전적은 2승 4무 3패로 이탈리아가 근소하게 열세에 있지만 월드컵에서의 전적은 1승 1무로 이탈리아가 근소하게 우세하다. 1970 멕시코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처음 만났을 땐 0 : 0으로 비겼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6강전에서 다시 만났을 땐 이탈리아가 2 : 0으로 이겼다. 이 경기 전까지 이탈리아는 월드컵 우승 경험이 있는 팀들 중에서 브라질과 프랑스를 제외한 그 어떤 팀에도 패배를 기록한 적이 없는 좋은 기록을 갖고 있다. 과연 그 기록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2차전까지 지켜본 결과 이 조의 판세는 사전 예측을 크게 벗어났다. 당초 예상으론 유일하게 우승 경험이 없는 코스타리카가 마치 고래들 싸움에 낀 새우 같이 3전 전패로 무기력하게 퇴장하고 우루과이, 이탈리아, 잉글랜드 3파전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조 최약체인 줄 알았던 코스타리카가 사실 조 최강자였다. 가장 먼저 2승을 거두어 16강에 진출했고 3파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 잉글랜드는 2패로 일찌감치 탈락해버렸다. 이제 남은 16강 티켓 1장을 놓고 이탈리아와 우루과이가 단두대 매치를 벌이게 되었다. 두 팀 모두 1승 1패(승점 3점)를 기록했으나 골 득실에서 이탈리아가 0, 우루과이가 -1을 기록 중이다. 고로 이탈리아는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올라가는 조금 여유로운 상황이었고 우루과이는 반드시 이겨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진출하는 이탈리아인지라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은 이번 경기에선 지키기 전술을 들고 나왔다. 그리하여 3-5-2 포메이션을 들고 나와 중앙에 안드레아 바르찰리 - 레오나르도 보누치 - 조르조 키엘리니 스리백을 가동했다. 중원엔 마티아 데 실리오 -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 안드레아 피를로 - 마르코 베라티 - 마테오 다르미안이 포진했고 전방엔 마리오 발로텔리 - 치로 임모빌레 투 톱이 섰다. 반면, 반드시 이겨야 올라갈 수 있는 우루과이는 좀 더 공격적인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우루과이의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은 알바로 페레이라 - 디에고 고딘 - 호세 히메네스 - 마르틴 카세레스 포백과 중원에 크리스티안 로드리게스 - 에히디오 아레발로 - 알바로 곤살레스를 배치하고 전방에 루이스 수아레스 - 에딘손 카바니 투 톱과 처진 스트라이커 자리에 니콜라스 로데이로 삼각편대를 배치하는 4-3-3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경기가 시작되자 갈 길이 급했던 우루과이가 맹렬하게 공격을 퍼부었으나 탄탄한 이탈리아의 스리백 수비와 명수문장 잔루이지 부폰의 선방쇼에 힘입어 골을 내주지 않고 버텼다. 우루과이는 주포 루이스 수아레스를 앞세워 이탈리아를 거세게 밀어붙였으나 이탈리아의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한편, 이 경기에 출전한 우루과이의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나 이탈리아의 공격수 마리오 발로텔리 두 사람은 모두 멘탈에 문제가 있는 선수들로 악명 높았다. 그래서 이 둘의 이른바 똘끼 맞대결도 경기 전 필수 관전 요소로 꼽혔다. 아니나 다를까 발로텔리가 먼저 전반 22분에 우루과이의 레프트백 알바로 페레이라를 향해 엄청난 점프력을 선보이며 '''플라잉 니킥'''을 시전하다 주심에게 적발되어 먼저 경고를 하나 받았다. 알바로 페레이라는 전 경기 잉글랜드전에서 라힘 스털링과 충돌하여 기절하기까지 했으나 정신력으로 버텨내며 풀 타임을 소화한 바 있었는데 오늘 경기에서 또 상대 선수에게 니킥을 당한 것이다.
우루과이는 계속해서 이탈리아를 밀어붙였으나 명수문장 부폰이 지키는 이탈리아의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전반전은 0 : 0으로 끝이 났다. 같은 시각 벨루오리존치에서 열린 코스타리카 VS 잉글랜드의 경기 역시 0 : 0으로 전반전을 마쳤다. 그리하여 실시간 순위에서 코스타리카가 2승 1무(승점 7점)로 조 1위에 올랐고 이탈리아와 우루과이가 1승 1무 1패(승점 4점)로 동률이었으나 골 득실에서 1골이 더 앞선 이탈리아가 2위, 우루과이가 3위에 있었고 잉글랜드는 1무 2패(승점 1점)로 조 최하위에 있었다. 이제 이탈리아로서는 45분을 무사히 버텨내기만 해도 16강에 올라갈 수 있다. 하프타임 때 프란델리 감독은 경고를 받은 발로텔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빼고 마르코 파롤로를 교체 투입했다. 공격 숫자를 줄이고 수비 숫자를 늘려서 지키는데 주력하고 토너먼트에서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도였다. 우루과이의 타바레스 감독 역시 부진했던 로데이로를 빼고 오버래핑 능력이 활발한 수비수 막시 페레이라를 교체 투입했다.
후반전에도 양 팀은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그러나 후반 13분, 이탈리아에 악재가 찾아오고 말았다. 미드필더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가 우루과이의 미드필더 에히디오 아레발로의 다리를 밟아 쓰러뜨리는 파울을 범했는데 하필 주심이 바로 코 앞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주심 마르코 로드리게스는 곧바로 레드 카드를 꺼내 마르키시오에게 퇴장을 명령했다. 아직 경기가 30분 넘게 남아 있는데 이탈리아는 이 때부터 10명이 뛰어야 하는 불리함을 안게 된 것이다. 수적 우세를 등에 업은 우루과이는 더욱더 거세게 밀어붙였다. 이탈리아는 수문장 부폰의 맹활약에 힘입어 간신히 실점하지 않고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후반 33분, 이탈리아 진영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공중볼들이 오가며 혼전 상황이 지속되던 중이었다. 경기 내내 충돌하던 센터백 조르조 키엘리니와 우루과이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가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또 다시 맞닥뜨렸는데 주심은 그 때 한참 공이 이리저리 튀고 있던 페널티 박스 좌측 외곽을 보고 있었다. 그 때 주심이 안 보는 틈을 타 수아레스가 '''키엘리니의 왼쪽 어깨를 깨무는''' 이른바 핵이빨 사건을 터뜨렸다.
페널티 박스 한 가운데에 키엘리니와 수아레스가 쓰러진 걸 뒤늦게 본 주심은 휘슬을 불어 경기를 중단시켰다. 수아레스는 뻔뻔스럽게도 마치 자신이 키엘리니와 부딪혔다는 듯 이를 감싸쥐며 고통을 호소했고 깨물린 키엘리니는 어깨를 감싸쥐며 통증을 호소했다. 그러나 주심과 부심 모두 이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그냥 인플레이를 시켜버렸다. 그러자 키엘리니는 주심에게 직접 유니폼 상의를 걷어 수아레스에게 물린 자국을 보여주며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수아레스에겐 카드 1장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 문제 때문인지 이탈리아 선수들은 심리적 흥분을 이기지 못해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수아레스의 핵이빨 사건이 바로 이 경기의 분수령이 되었다. 평정심을 찾지 못한 이탈리아 선수들은 결국 3분 후 재앙을 맛보게 되었다.
후반 36분, 우루과이가 이탈리아 우측 진영에서 코너킥을 얻었다. 교체 투입된 우루과이의 미드필더 가스톤 라미레스가 찬 코너킥은 중앙으로 곧장 날아갔고 그걸 공격에 가담한 우루과이 센터백 디에고 고딘이 정확하게 헤더로 연결했다. 볼은 지면으로 떨어진 뒤 바운드가 되며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가 우루과이가 1 : 0으로 앞서갔다. 이탈리아로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다. 이미 후반 30분에 모든 교체 카드를 다 써버렸기에 승부를 뒤집을 비책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남은 시간 동안 동점골을 넣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이탈리아 공격수들은 형편없는 골 결정력으로 찾아온 기회를 족족 날려먹었고 우루과이는 주장 디에고 고딘을 중심으로 강력한 늪 축구로 전원 수비에 들어가며 이탈리아의 맹공을 버텨냈다. 결국 경기는 우루과이의 1 : 0 승리로 끝이 나고 말았다.
같은 시각 코스타리카 VS 잉글랜드의 경기도 0 : 0 무승부로 끝이 나며 코스타리카가 2승 1무(승점 7점)로 조 1위를 차지했고 우루과이가 2승 1패(승점 6점)로 조 2위에 올라 나란히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1승 2패(승점 3점)에 그친 이탈리아와 1무 2패(승점 1점)에 그친 잉글랜드는 각각 조 3, 4위를 기록하여 나란히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로써 이탈리아는 2개 대회 연속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치욕을 뒤집어 쓰고 말았다. 이탈리아가 조별리그에서 두 대회 연속으로 탈락한 것은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하고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한 후 무려 48년 만의 일이다. 가히 이탈리아 축구의 암흑기라고 불릴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기 종료 후 프란델리 감독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도 "마르키시오의 퇴장 문제는 승복한다. 그런데 왜 수아레스에겐 퇴장을 주지 않았느냐?"며 주심의 판정에 대해 항의를 남겼다. 아울러 축구협회장도 함께 사임 의사를 밝혔다.
2개 대회 연속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자 자신들이 원조 축구 종주국이라고 여길 정도로 엄청나게 자국 축구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이탈리아인들은 마음의 상처만 잔뜩 받고 말았다. 1950~1960년대 암흑기가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수페르가의 비극이라는 확실한 원인이라도 있었다지만 현재 찾아온 암흑기는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어 더욱 골치 아프게 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어쨌든 이탈리아는 이번 대회에서도 조별리그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64년 전과 마찬가지로 '''브라질에서 개최된 대회에선 무조건 조별리그 탈락한다'''는 징크스를 남기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4년 후에 더한 비극이 터지면서 이 비극은 그냥 전주곡으로 남게 되었으니'''...
21.
2개 대회 연속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축구 강국으로서의 자부심과 체면을 잔뜩 구긴 이탈리아는 40대의 젊은 기수 안토니오 콘테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안토니오 콘테는 뛰어난 지도력으로 이탈리아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첫 번째 메이저 대회인 유로 2016에서 이탈리아는 벨기에, 아일랜드, 스웨덴과 함께 죽음의 조인 E조에 속했다. 이탈리아는 1차전에서 신흥 강호 벨기에를 맞아 2 : 0 승리를 거두며 자신들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2차전에서도 스웨덴을 1 : 0으로 격파하며 일찌감치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3차전에선 아일랜드에 0 : 1로 패배했지만 그래도 조 1위를 지키며 아직 죽지 않았음을 과시했다. 그리고 16강전에선 지난 대회 결승전에서 0 : 4 대패의 수모를 안겨주었던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과 재회하여 2 : 0 승리를 거두며 설욕에 성공해 8강에 올랐다.
8강전 상대는 여태껏 국제대회에서 이탈리아가 단 1번도 져본 적이 없었던 팀이자 2년 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전차군단 독일이었다. 불과 3개월 전 이탈리아는 독일 원정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독일에 1 : 4 대패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국제대회 독일전 무패 신화가 깨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콘테 감독은 굳건한 스리백 수비로 독일의 맹공을 봉쇄하며 역습을 노려 독일을 크게 고전시켰다. 이탈리아는 그렇게 잘 버텨냈지만 결국 후반전에 본격적으로 포문을 연 독일의 공격에 결국 후반 20분, 메수트 외질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0 : 1로 끌려갔다. 하지만 후반 33분, 이탈리아의 역습 상황에서 독일 센터백 제롬 보아텡이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핸드볼 파울을 범했고 킥커 레오나르도 보누치가 성공시키며 1 : 1 동점을 만들었다. 두 팀은 치열하게 격돌했지만 결국 연장전까지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승부는 승부차기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선축으로 시작된 승부차기에서 양 팀은 9번 킥커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를 벌였지만 결국 독일이 승부차기 강국답게 6 : 5로 승리하며 이탈리아는 처음으로 국제대회에서 독일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러나 2년 전 월드컵을 우승했던 팀을 상대로 치열한 승부를 벌였기에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래도 승부차기는 공식적으로 무승부로 기록되기 때문에 독일의 아주리 징크스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후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재계약을 하지 않고 첼시 FC 감독으로 부임했고 뒤이어 잔 피에로 벤투라 감독이 새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이번 월드컵은 UEFA에 속한 55개 팀 중 개최국 러시아를 제외한 54개 팀이 6팀씩 9개 조로 나누어 예선을 치른다. 유럽 지역예선에 배당된 출전권은 총 13장이며 개최국 러시아를 포함해 총 14장이 유럽에 돌아갔다. 각 조 1위를 차지한 9개 팀은 본선에 직행하고 조 2위 팀은 2위 팀끼리 순위를 매겨 그 중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한 1팀은 탈락이 확정되고 나머지 8개 팀은 서로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그리하여 와일드카드를 획득한 4팀이 본선에 오르게 된다. 이탈리아는 이번 유럽 지역예선에서 스페인, 알바니아, 이스라엘, 마케도니아, 리히텐슈타인과 함께 G조에 속했다. 사실상 스페인을 빼면 핫바리들만 모인 꿀조라고 할 수 있는 조였다.
1차전 이스라엘 원정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3 : 1 승리를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리고 2차전 난적 스페인과의 홈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후반 10분에 비톨로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불리한 경기를 했지만 후반 37분에 다니엘레 데 로시의 페널티킥 동점골로 1 : 1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러나 3차전 마케도니아 원정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악전고투를 벌인 끝에 3 : 2 신승에 그쳤다. 치로 임모빌레가 막판에 2골을 넣지 않았더라면 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4차전 리히텐슈타인 원정 경기에서도 이탈리아는 고작 4 : 0 승리를 거두는데 그쳤다. 5차전 알바니아와의 홈 경기에서도 이탈리아는 고전 끝에 2 : 0 승리를 거두는데 그쳤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G조의 순위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4승 1무(승점 13점)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 득실에서 스페인이 +17을 기록한데 반해 이탈리아는 +9에 그쳐 스페인이 1위, 이탈리아가 2위였다. 뒤이어 이스라엘이 3승 2패(승점 9점)로 3위를 차지했으며 알바니아가 2승 3패(승점 6점)로 4위, 마케도니아가 1승 4패(승점 3점)로 5위, 리히텐슈타인이 5전 전패(승점 0점)로 최하위에 있었다.
6차전 리히텐슈타인과의 홈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5 : 0 대승을 거두었고 결국 이 경기에서 리히텐슈타인이 예상대로 제일 먼저 탈락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같은 날 스페인 역시 마케도니아 원정 경기에서 2 : 1 신승을 거두며 조 1위 자리를 수성했다. 이 경기로 인해 마케도니아 역시 탈락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7차전 스페인 원정 경기가 열렸다. 사실상 이 조의 1위 결정전인만큼 이탈리아는 이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무기력한 경기 끝에 스페인에 0 : 3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G조의 순위는 스페인이 6승 1무(승점 19점)로 조 1위 자리를 유지했고 이탈리아는 5승 1무 1패(승점 16점)에 그쳐 조 2위에 그쳤고 뒤이어 알바니아가 4승 3패(승점 12점)로 3위, 이스라엘이 3승 4패(승점 9점)로 4위, 마케도니아가 2승 5패(승점 6점)로 5위, 리히텐슈타인이 7전 전패(승점 0점)로 최하위에 있었다. 즉, 스페인과는 승점이 3점 차로 벌어졌고 알바니아와는 4점 차이로 좁혀진 것이다.
8차전 이스라엘과의 홈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악전고투를 벌인 끝에 후반 8분, 치로 임모빌레의 결승골로 간신히 1 : 0 승리를 거두는데 그쳤다. 어쨌든 이 경기로 이스라엘은 탈락이 확정되었고 알바니아 역시 마케도니아 원정에서 1 : 1 무승부에 그쳐 본선 직행은 불가능해졌다. 그 사이 스페인은 최약체 리히텐슈타인을 원정에서 8 : 0으로 두들겨 부숴버리면서 승점을 22점까지 쌓았다. 조 1위를 위해선 반드시 9차전 마케도니아와의 홈 경기에서 대승을 거두고 알바니아가 스페인을 상대로 이변을 일으켜줄 것을 기대해야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이 중요한 경기에서 1 : 1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같은 날 스페인은 알바니아를 3 : 0으로 크게 이겼다. 그리하여 스페인의 승점은 25점까지 올라갔고 이탈리아는 20점에 그쳐 5점 차이로 벌어졌다. 결국 1경기 남은 시점에서 스페인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고 알바니아의 탈락이 확정되었다. 마지막 알바니아 원정 경기에서도 이탈리아는 고작 1 : 0 신승에 그치며 자존심 회복도 못했다. 어떻게 보면 이탈리아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다. 본인들은 승점을 23점이나 쌓고도 2위에 그쳐 본선에 올라가지 못했는데 A조의 프랑스와 I조의 아이슬란드는 같은 승점을 얻고도 본선에 직행했고 심지어 D조의 세르비아는 21점을 쌓는데 그치고도 본선에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렇게 운도 지지리도 없는 이탈리아는 조 2위 팀 간 순위에서 2위에 들며 조 2위 팀 간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이제 이탈리아에 남은 길은 플레이오프에서라도 이겨서 본선에 올라가는 것 뿐이었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북유럽의 강자 스웨덴이었다. 1차전 스웨덴 원정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반드시 승리를 거두어야 했는데 무기력한 플레이를 보인 끝에 후반 16분, 스웨덴의 야콥 요한손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 : 1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제 이탈리아로서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몰렸다. 원정 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기에 원정 다득점 원칙을 고려할 때 반드시 홈에서 2점 차 이상의 승리를 거두어야 했다. 만약 1골을 먹게 되면 반드시 3골 이상을 득점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지난 대회 플레이오프 당시 원정에선 0 : 2로 졌으나 홈에서 3 : 0 대승을 거두어 대역전극의 기적을 쓴 프랑스의 사례를 재현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탈리아 축구의 성지 밀라노의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에서 운명의 플레이오프 2차전이 열렸다.
1골의 여유가 있는 스웨덴은 초반부터 시종일관 강력한 수비로 나섰다. 갈 길이 급했던 이탈리아는 90분 동안 무려 27개나 되는 소나기 슈팅을 날리면서 스웨덴의 골문을 향해 수시로 포격을 가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창은 걸출한 수비수 안드레아스 그랑크비스트가 지휘하는 스웨덴의 방패를 좀처럼 뚫지 못했다. 거기다 이 날 경기 주심은 페널티킥을 주는데도 상당히 인색하여 두 팀 모두 페널티킥을 얻을 기회가 최소 2차례씩 있었으나 단 1번도 페널티킥을 주지 않았다. 두 팀 모두 억울한 건 매한가지겠지만 아무래도 여유가 있는 스웨덴보다는 갈 길이 급했던 이탈리아 쪽이 더 심리적으로 악영향을 받았을 듯하다. 경기 막판이 되자 이탈리아로서는 일단 1골이라도 넣어서 어떻게든 연장전까지 가보겠다고 막판 세트피스 찬스에서 수문장 잔루이지 부폰까지 문전으로 올라가 공격에 가담했으나 그런 보람도 없었다. 마지막 세트피스 찬스에서 이탈리아의 코너킥을 스웨덴 수비가 헤더로 걷어냈는데 그 볼이 이탈리아의 베르나르데스키 앞에 굴러갔고 베르나르데스키가 볼을 띄우기 전에 스웨덴 수비진이 세컨드 볼을 따내려고 줄을 맞춰 앞으로 전진하면서 오프사이드 트랩이 형성되었다. 그 때 공격에 가담했던 조르조 키엘리니가 오프사이드 트랩에 딱 걸려 버렸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베르나르데스키가 띄운 볼이 정확히 그 키엘리니 앞에 배달되어 버리며 영락없이 오프사이드 위치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주심은 경기 종료 휘슬을 불어버렸고 결국 경기는 0 : 0 무승부로 끝나버리며 이탈리아는 '''1958 스웨덴 월드컵 이후 60년 만에 지역예선 탈락이 확정되고 말았다!''' 이른바 밀라노 참사였다.
예선 탈락의 주범이 된 잔 피에로 벤투라 감독은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전락하였고 국민 역적 신세가 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 이탈리아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 '''2018 러시아 월드컵 지역예선 탈락'''이란 기록을 쓰면서 2010년대 월드컵 3개 대회를 모조리 망치고 말았다. 축구 강국으로서의 자존심과 위신이 땅바닥까지 추락하고 만 것이다. 공교롭게도 1950년대 암흑기의 이력을 그대로 따라가고 말았다. 하지만 그 때는 수페르가의 비극이란 확실한 원인이 있었지만 지금은 왜 이렇게 추락한 것인지 이유조차 알 수 없어서 의문이다. 사람으로 치면 60년 전에는 확실히 암이란 병명이 잡혀서 치료할 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뚜렷한 병명도 안 잡히면서 자꾸 시름시름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탈리아는 21세기에 치른 월드컵에서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우승한 걸 빼면 모두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역예선에서 탈락해버린 건 자신들이 원조 축구 종주국이라 할 정도로 이탈리아인들의 강한 자존심과 긍지에 먹칠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탈리아는 60년 만에 월드컵을 남의 잔치로 구경하게 되고 말았다.
이 와중에 미하엘 발라크는 트윗에다 ''' 'Pray for Italy' (이탈리아를 위해 기도합시다.)''' 란 조롱을 올려 안 그래도 울고 싶은 이탈리아인들의 속을 박박 긁어놨다. 그러나 불과 7개월 후, '''독일이 훨씬 더 수치스러운 역대급 대참사'''를 당하자 이탈리아인들은 발라크의 트위터에 ''' 'Pray for Germany' ''' 등의 반격을 해 그나마 약간의 대리만족과 위안을 할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 이후로 한국이 패배하면 그렇게 좋아하는 이탈리아인들도 이 때만큼은 한국을 비난하는 여론은 거의 없이 독일을 조롱하는 분위기였다.[28]
[1] 8강전에서 스페인과 비기고 재경기 끝에 진출,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누르고 우승. 당시 무솔리니가 이탈리아가 우승하지 못할 경우 총살(...)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음[2] 아르헨티나에서 선수들을 빼내서 자기네가 사용하는 바람에 아르헨티나는 1라운드 탈락, 이탈리아는 우승했다. 참고로 아르헨티나는 이 직전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으며 당시에도 항상 우승후보였던 팀이다. 참고로 1930년대 남미 축구계 양대산맥은 브라질이 아니라,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였다.(당시 브라질은 지금으로 치면 콜롬비아 축구팀 정도의 포지션으로,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에게 언더독 정도였다.)[3] 1949년 수페르가의 비극 때문에 주축 선수 상당수를 잃고 탈락. 다만 잠비아처럼 국가대표팀 정예멤버들이 사망한게 아니라 리그 최상위권을 달리던 토리노FC 선수들이 사망한 것이었기 때문에 전력의 이탈은 있을지언정 치명상을 입은 정도는 아니었다.[4] 조별예선에서 1승 1패로 스위스와 동률을 이뤄 재경기끝에 탈락.[5] 그 유명한 북한에 0:1로 졌던 대회[6] 월드컵 사상 최다경기, 최장시간 무실점(519분) 기록[7] 로베르토 바조의 결승전 승부차기 실축으로 유명한 대회.[8] Again1966, 한국에게 16강전에서 1:2로 지고 탈락[9] 역대 최초로 무승 탈락한 대회[10] 조별예선에서 스페인에 밀려 조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스웨덴을 상대로 1무 1패로 져서 탈락. 60년만의 본선 진출 실패.[11]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12] 만약 이 때 16강 진출에 성공했다면 우루과이가 탈락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루과이가 2무 1패, 골 득실 -5였는데 조 3위 팀 간 순위에서 간신히 4위를 차지해 16강에 올랐기 때문이다.[13] 참고로 이 사람은 골키퍼다.[14] 문제는 이런 파울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이 보질 못해서 비에리는 카드 1장도 안 받았다.[15] 경기 영상을 다시 보면 알겠지만 포지션을 선점하고 있었던 사람은 비에리가 아니라 최진철이었고 최진철은 비에리의 유니폼을 잡아당기면서까지 비에리의 힘을 역이용해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공을 머리에 맞추지 못하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에리는 최진철의 방해를 뿌리치고 헤더 골을 성공시켰다. 그만큼 비에리가 얼마나 괴물 같은 피지컬과 힘을 지닌 자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인지 최진철은 경기 후에 "비에리 그 선수 힘이 아주 천하장사더군요."라고 회상했다.[16] 실제 박항서 코치에게 전달한 교체 지시 사항에도 "공격수만 투입하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17] 비에리가 오른발을 잘 못 썼던 것도 있지만 급한 마음에 낮고 빠른 크로스를 무작정 발부터 갖다 대는 바람에 홈런이 되어버렸다. 이건 이탈리아에 있어 정말 결정적인 득점 찬스였는데 급한 마음에 이렇게 날린 것이다. 비론 모레노 주심 또한 "가투소의 패스를 하늘로 날려버린 건 내 잘못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판정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 득점 찬스가 왔을 때 득점에 실패한 이탈리아 자신들이나 되돌아보라는 일침인 것이다.[18] 당시 모레노 주심의 표정은 상당히 압권이었는데 이 장면이 패러디 되어 배우 임채무는 모레노 심판 역으로 돼지바CF를 찍기도 하였다.[19] 이탈리아어에서 코리아는 'Korea'가 아니라 'Corea'로 표기한다.[20] 특히 이탈리아 선수들은 이 경기에서 습관적으로 팔꿈치를 휘둘렀는데도 주심의 제지가 너무 약했다. 이렇게 팔꿈치 공격을 하던 이탈리아는 결국 적군과 아군도 구분 못하고 다미아노 톰마시가 한국의 세트피스 상황에서 같은 팀 동료 프란체스코 코코를 팔꿈치로 쳐서 부상을 입히는 촌극을 만들었다.[21] 그 밖에 당시 안정환의 소속팀 페루자 칼치오의 구단주 루치아노 가우치는 "소속팀의 국가를 상대로 득점하는 배은망덕한 짓을 했다."는 해괴한 이유로 일방적으로 안정환을 방출했으며 이탈리아 훌리건들은 현지에 있던 안정환의 자택을 습격해 박살을 내는 만행을 저지른데다 살해 위협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 이혜원이 대신 이탈리아로 가서 짐 정리를 하고 왔다는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자택은 물론이고 자가용 스포츠카까지 모조리 부숴놨다고 한다.[22] 사실 이보다 6년 전인 유로 2004 때에도 덴마크 응원단들이 이탈리아전 때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해 심리적 도발을 감행한 사실이 있었다.[23] 사실 스멜츠의 골은 오프사이드였다. 프리킥이 한 번에 깔끔하게 스멜츠에게 간 게 아니라 윈스턴 리드의 머리에 맞고 스멜츠의 발 앞에 갔기 때문이다. 리드의 헤더 패스가 가는 시점에 스멜츠는 이탈리아의 골키퍼 포함 2번째 수비수인 칸나바로보다 한 발자국 앞에 있었다. 그러므로 원칙대로라면 오프사이드인데 부심은 프리킥이 한 번에 넘어왔다고 판단하고 오프사이드 선언을 안 했다.[24]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감독의 친아들이다. [25] 이 때 이탈리아 선수들은 급한 마음에 빨리 경기를 속개하려고 볼을 집으러 골문 안으로 들어갔는데 얀 무차 골키퍼가 공을 잡고 안 놔주며 시간을 질질 끌자 이아퀸타가 얀 무차 골키퍼를 주먹으로 때렸고 얀 무차 골키퍼도 엉뚱하게 콸리아렐라를 주먹으로 때리는 충돌이 있었다.[26] 참고로 이 슛이 코푸네크의 첫 번째 볼 터치였다.[27] 대체로 프랑스가 들어갈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28] 물론 알레산드로 델피에로가 ''' "한국은 심한 농담을 만들어내는 나라" '''라며 토로하긴 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