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난민 수용 논란

 

1. 핵심 주장 정리
1.1. 수용찬성론
1.2. 수용반대론
2. 대한민국과 국제사회
2.1. 국제법적 의무와 권리 문제
2.1.1. 수용찬성론
2.1.2. 수용반대론
2.2. 국제 사회의 인식
2.2.1. 수용찬성론
2.2.2. 수용반대론
2.3. 정치적·역사적 책임 문제
2.3.1. 수용찬성론
2.3.2. 수용반대론
3. 난민의 자질 논란
3.1. 난민의 모국에 대한 책임 문제
3.1.1. 수용찬성론
3.1.2. 수용반대론
3.2. 가짜 난민 논란
3.2.1. 수용찬성론
3.2.2. 수용반대론
3.3. 범죄와 테러리즘 문제
3.3.1. 수용찬성론
3.3.2. 수용반대론
4. 대한민국의 국가 수용 역량
4.1. 인구 비율 문제
4.1.1. 수용찬성론
4.1.2. 수용반대론
4.2. 경제적, 재정적 지원 문제
4.2.1. 수용찬성론
4.2.2. 수용반대론
5. 기타
5.1.1. 수용찬성론
5.1.2. 수용반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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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문서

제주도에 예멘에서 온 난민 신청자 수백명이 한꺼번에 몰려온 사태를 놓고 한국에서도 '받아줘야 한다 vs 받아주면 안 된다'로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1. 핵심 주장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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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측 주장은 위선적이다, ~측 주장은 초등학생이나 할 법한 생각이다 ~측 주장은 들어줄 가치도 없는 의견이다 등등


1.1. 수용찬성론


오늘날 대한민국은 명백히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국가이며, 이미 난민 협약을 포함한 여러 인권 조약에도 발을 걸치고 있고, 무엇보다 과거 일제강점기한국전쟁기 우리 조상들이 중국, 미국 등지로 흩어져 살았던 아픈 역사도 기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선진국 중 대한민국의 난민 수용률은 아직 상당히 적은 수준이기에, 국제적 이슈인 난민 사태에서 자국의 위상에 걸맞는 책임감을 보여주어야 마땅하다. 또한 탈북자를 수용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다른 난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중잣대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탈북자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고 있지만 세계의 시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자칫하면 그걸 문제삼아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으로 입국하기 힘들어질수도 있다. 특히 이슬람권 난민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범죄를 저지르리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은 인종 차별적인 시각에 지나지 않으며, 중대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기본적으로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난민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
한국일보의 팩트체크 기사는 수용반대론에 다음과 같이 반론하였으므로 참고할 수 있다. ① '''한국인의 세금으로 난민에게 펑펑 쓴다는 주장'''은 틀렸다. 난민 관련 예산은 2020년 기준 약 25억 원으로 정부 총예산의 0.0004%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통역비·출장비 등의 행정적 인건비일 뿐이고, 별도의 법이 명시하지 않은 이상 난민들의 생활비로 지급되는 예산은 없다. ② '''난민들이 국내에서 마구 범죄를 저지른다는 주장'''도 틀렸다. 난민 관련 범죄는 아직까지 명확한 통계가 존재하지 않으나, 외국인 관련 범죄 자체가 내국인에 비해 적은데다 그나마 외국인 범죄자들의 국적도 난민 신청건수 상위국과는 무관하다. ③ '''정부의 온정적 행정으로 인해 난민들이 무차별적으로 몰려든다는 주장'''도 틀렸다. 2020년 한 해 동안 몰려든 난민 6,684명 중 법무부가 인정한 난민은 69명으로 인정률이 불과 1%에 지나지 않으며, 법무부는 앞으로도 난민 신청의 허들을 높이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④ '''난민들이 빈곤을 이유로 돈 벌러 왔다는 주장'''도 틀렸다. 경제적 빈곤은 국제사회에서 인정하는 난민의 정의 자체에 부합하지 않으며, 최근 11년 간 난민 자격이 인정된 외국인 88명을 살펴보면 종교인·인권활동가·대학생·교사 등으로 구성된다. ⑤ '''유럽이 난민으로 비상이 걸렸다는 주장'''도 틀렸다. 유럽난민기구의 2019년 글로벌 동향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난민의 85%가 유럽이 아닌 인접국에 체류 중이며 이들 국가들은 대체로 개도국인 경우가 많고, 난민으로 비상이 걸린 유럽 국가는 독일이 유일하지만 유엔난민기구 대표는 그것 역시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1.2. 수용반대론


대한민국은 그냥 선진국에 진입한것도 아니고 식민 지배와 내전을 겪으며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로, 과거 세계 곳곳을 침략하고 식민지로 삼으며 식민지배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세계 각지에 분쟁의 씨앗을 남겨두었고 이러한 분쟁이나 전쟁 난민 문제등에 분명히 책임이 존재하는 구 제국주의 열강들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오늘날의 난민 사태에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역사적·정치적 책임이 전혀 없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북한이탈주민 및 구 공산권 난민들을 받아들였고 앞으로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이므로 마냥 여유로운 입장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비록 선진국으로 평가받기는 한다지만, 내부적인 사회적, 경제적 문제점들도 수두룩한 상황에서 외부인인 난민에게 우선적으로 투자할 만큼 풍족한 나라는 아니다. 특히 우리는 선진국 반열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시적인 경제만 어느정도 반열에 올라섰을 뿐 이를 뒷받침해야 할 행정 시스템이나 복지제도는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게다가 현 대한민국은 서/북유럽식 복지국가보다는 아메리카의 야경국가를 추구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정부 신뢰도가 낮은 점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저과세 저복지를 유지하고 있다. 당장 정부부터가 IMF를 겪은 이후 현재까지도 고과세 고복지는커녕 지금의 저과세 저복지 정책과 중과세 중복지 절충안을 두고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처지인데, 난민복지 등 새로운 대규모의 재정지출이 필요해진다면 이를 감당할 능력이 부족하다. 자세한 내용은 개발도상국 혹은 중진국 함정/한국 문서 참조 바람.
또한 난민들이 대한민국에 가질 충성심이나 대한민국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예멘 난민 사태 이전 여태 대한민국에 난민 입국을 노려왔던 주로 동남아권 출신자들은 사유재산 관련한 개념이나 공과 사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고, 특히 교육열이 대한민국 국민들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이상 대한민국에 입국하더라도 제대로 대한민국에 적응하고 기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슬람권 난민들의 경우 유럽 난민 사태라는 선례를 고려할 때 우리들이 피땀 흘려 쟁취한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의 가치에 동화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이다. 단지 인도주의적 가치만을 위해 이처럼 많은 위험을 떠안으면서 상당한 경제적 부담까지 수반하는 난민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허울 좋은 이상론에 불과하다. 유럽난민사태로 난민문제를 인도주의로 포장할 수 있는 시절은 끝나고 이젠 정치적, 경제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후 전세계에서 난민반대를 기치로 내세운 정치세력들이 득세한 명백한 증거가 존재한다.

2. 대한민국과 국제사회



2.1. 국제법적 의무와 권리 문제



2.1.1. 수용찬성론


보호는 모든 난민에게 차별 없이 제공되어야 한다. 난민에 대한 최소한의 처우기준이 준수되어야 한다. 한편, 난민은 비호국에 대해 특정 의무를 지닌다. 비호국에서 난민의 추방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국가안보나 공공질서에 대한 위험을 근거로 예외적인 상황 하에서만 발생해야 한다. 비호의 제공이 특정 국가에 과중한 부담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국제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난민보호는 인도적인 조치이므로 비호 제공이 국가간 긴장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 UNHCR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 본 협약의 적절한 이행을 감독하는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국가는 UNHCR과 협력해야 한다.

- 1951년 난민의 지위에 대한 협약, 유엔난민기구 홈페이지 요약

국가는 자국민의 권리를 보장할 책임이 있습니다. 국가로부터 보호를 거부당하거나 여러 이유로 제공받을 수 없는 경우 국제적 보호의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국제적 보호를 제공하는 주된 책임은 개인이 비호를 요청하는 국가에 있습니다. 모든 국가는 국제인권법 및 국제관습법을 포함한 국제법에 따른 의무의 결과로 국제적 보호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1967년 의정서의 체약국은 해당 협약의 조항에 따른 의무를 지닙니다.

- 유엔난민기구 소개글

국제연합의 창설 계기였던 제2차 세계 대전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각지의 크고 작은 분쟁들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고 목숨을 위협받는 난민들의 수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 왔다. 특히 양차대전을 겪으며 제아무리 안정적인 국가라도 더 강력한 외세의 침입이나 내전, 거대한 자연 재해 등으로 인해 더 이상 자국민을 보호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위기감[2]이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얻고 있었다.
게다가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기준으로, 동구권은 현실사회주의에 기초한 탄압 정책 때문에 다수의 정치 난민을 배출하고 있었고, 이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고자 최초의 난민 협약이 체결되었다. 요컨대 '난민 문제는 특정 국가가 아니라 '''국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는 보편적인 인식이, 국제연합이라는 틀 안에서 현실적인 각국의 이해관계와 맞물리며 협약과 의정서라는 형태로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역시 1951년의 난민 협약 및 1967년의 난민 의정서에 모두 가입되어 있으며, 이는 (비록 강제성은 없을지라도) 국제사회를 상대로 "난민을 어떠한 방법으로도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그 생명 또는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하거나 송환하여서는 아니된다." 하는 난민 협약 제 33조의 내용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것과도 같다. 대한민국의 난민법 역시 이러한 국제적 기준에 맞추어 제정되어 있기 때문에, 법 개정을 포함한 적법한 절차 없이 포퓰리즘적인 선동으로 난민들을 추방하는 것은 국내법적으로 자가당착임은 물론 국제사회를 향한 신의도 저버리는 선택이다.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난민 인정률 또한 중장기적으로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단순히 국내법과 주권을 거론하며 난민의 수용을 피해나갈 구멍을 찾는데만 급급하다면 가깝게는 국제 사회에서의 발언권 문제가, 장기적으로는 우리 자신이 전쟁 등의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한국의 난민을 수용해야하는 도덕적 당위의 문제에서 대한민국은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다.

2.1.2. 수용반대론


협약과 의정서의 당사국에게 이들 조항을 이행하게 하기 위하여는, 누가 난민인가가 확인되어야 한다. 그러한 확인, 즉 난민지위의 결정은, 1951년 협약에서 언급되고 있지만(제9조), 특별히 규정되고 있지 않다. 특히 협약은 난민지위의 인정을 위하여 어떠한 형태의 절차가 채택되어야 하는지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당해국의 특별한 헌법상 및 행정상 구조를 고려함으로써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절차를 설정하도록 각 체약국의 선택에 맡겨 놓고 있다.

- 1951년 난민의 지위에 대한 협약, 제2부 난민지위 인정절차, A. 일반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본질상 어떤 국가의 국내 관할권안에 있는 사항에 간섭할 권한을 국제연합에 부여하지 아니하며, 또는 그러한 사항을 이 헌장에 의한 해결에 맡기도록 회원국에 요구하지 아니한다. (국내문제불간섭의무)

- 국제연합 헌장, 제2조 제7항

난민 협약은 대한민국이 준수하겠다고 약속한 국제법 상 조약이지만, 상기하듯 난민 인정의 기준과 절차는 각 체약국의 선택에 맡기고 있다. 쉽게 말해, '''누가 난민인지, 이들을 어떻게 대우할지 결정하는 과정은 전적으로 각국 정부의 고유 권한'''이고, '국내문제'이자 '주권'의 영역에 속한다.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인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든[3], 난민이 아닌 인도적 체류 허가를 제공하든[4], 난민으로 인정하되 예멘이 아닌 다른 적당한 곳으로 추방하든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국가의 1순위 목적은 자국과 외국에서 자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자국 국경을 통제하거나 자국민이 아닌 사람을[5] 자국 땅에서 추방하는 행위는 주권에 포함된다. 난민이 자국민에게 위협을 끼칠 수 있다고 여겨지면 그들을 추방하는 것은 국가의 고유 권한이고, 적법절차에 따랐다면 그 판단은 전적으로 용인된다.
왜냐하면 국제법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주권평등의 원칙'이고, 어떠한 국가도 국제법을 주권보다 우위에 두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난민 협약이 저런 내용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국제법이 만능이고 인도주의 정신이 중요하다면 주권 따위 무시하고 '모든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라고 조약을 정해버렸으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그런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6] 아무리 난민문제가 심각하더라도 주권을 존중하는 내용으로 조약 내용을 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국제법 상 규범에는 효력의 순위가 있고, 이는 강행규범>조약 및 관습법의 구조를 지닌다. 한국 헌법 상 조약 및 관습법은 국내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가지고, 강행규범은 조약법 협약 상 이보다 상위 효력을 인정 받는 개념이지만 국제법상 강행규범으로 인정되는 것은 극히 소수의 원칙, 그것도 대부분 주권침해로 인정되지 않을 정도로 공감대를 갖는 것들 뿐이다. 그리고 '난민의 수용'은 강행규범이 아니라 조약 상의 의무이다. 난민협약의 내용은 현재 우리나라 난민법에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다.
국제법을 운운하면서 난민을 받으라 압력을 행사하는것은 난민 수용을 원하는 외국 및 국내의 찬성론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주권보다 국제법을 우선시하는 것인데, 상기 했듯이 난민협약을 우선시할 것도 없이 이미 한국 난민법에 다 도입되어 있다. 그러니 이들 주장은 난민법을 헌법이나 다른 모든 법보다 우선시하자는 법치주의 원리에 위배되는 헛소리인데다가, 애초에 '우선시' 하려고 해도 난민협약은 각 국의 주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제정되어 있어 이걸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난민법을 우선시하면 대체 우리나라에 어떤 의무가 발생하는가? 억지 고집을 부리는데 핑계로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법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하고 어설프게 구성되지 않는다. 과연 이들이 '국제법', 아니 가장 기초적인 법학 개론이나 보고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즉, 대한민국이 난민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난민협약 및 난민법 위반이며 수용하지 않으려면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등의 의견은 이러한 난민협약 및 난민법, 무엇보다 법의 기초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주장이다.
특히 난민 협약은 그나마도 (난민 문서에 잘 설명되어 있다시피) 다른 주요 국제 협약과는 달리 자체적으로 강제성을 띄지 않는 UN난민고등판무관(UNHCR)의 권유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으며, 강제성을 띄는 조항은 앞서 언급한 33조의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하거나 송환하여서는 아니된다." 하나뿐인데, 이 강제추방 금지의무는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의 추방에 한해 적용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이 예멘 난민을 여전히 내전 중인 예멘 국경으로 돌려보내거나 명백히 수용 거부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국가로 강제추방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난민에게 이미 문호를 개방한 다른 국가들 혹은 예멘 난민들이 거쳐온 말레이시아 같은 국가로 되돌려보내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애초에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상기 제약이 모두 사라지니 아무 문제 없고.[7]
실제로 브렉시트에서 '유럽연합솅겐 조약이 국경통제에 대한 주권을 침해한다.'는 논리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독일 등 난민에 우호적인 국가들에서도 내부적인 정치 상황에 따라 난민 인정 기준이 고무줄처럼 바뀌는 것 역시 이것이 근본적으로는 주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날 북유럽부터 영국미국, 유럽 연합의 상당수 국가들,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협약에 대한 유권해석을 바탕으로 난민을 최대한 거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판이라, 대한민국 역시 반 난민 정서가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이유가 아님을 잘 어필하면서 절차에 따른 추방 단계를 밟는다면 인도주의를 운운하며 비난할 자격이 있는 국가는 사실상 없다. 정리하자면, 대한민국의 내부 사정 혹은 이해관계 상 난민을 받지 않는 것이 낫다고 판단된다면, 국제법이든 국내법이든 어기지 않고 적법하게 난민을 거부할 수 있는 길이 있다.

2.2. 국제 사회의 인식



2.2.1. 수용찬성론


21세기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선진국이며, 그러한 위상에 걸맞게 국제 사회의 각종 인도주의적 위기들을 해결하려는 책임감을 가질 도의적 의무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 영국, 일본 등 난민 수용에 적극적이지 않은 국가들을 거론하며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일각의 주장은, 결국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는커녕 자국의 책무를 대다수의 가난한 나라들에게 떠넘기려 드는 야비함을 우리도 그대로 본받자는 하향평준화식 논리에 불과하다.
실질적인 수치를 감안하더라도, 지금까지 유럽을 찾은 난민은 유럽 인구의 극소수에 불과하다. 지난 3년간 난민 100만여 명을 받아들였다는 독일에서도 인구의 2% 수준밖에 안 되며, 유럽보다 인구도 적고 가난한 레바논, 우간다 같은 나라들도 시리아나 르완다, 남수단 같은 내전 중이었거나 내전을 치뤘던 주변국가들에서 난민을 훨씬 더 많이 받아들였다. 많은 사람들이 능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난민을 수용하고 그마저도 배척하려 드는 구미 선진국들에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는 이유이다.
당장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자국우선주의를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서방 진영의 리더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고, 반대로 여러 정치적 악재에도 불구하고 유럽 난민 사태에 대해 이성적인 접근을 추구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독일은 여전히 유럽연합의 핵심 국가로서 나름의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저런 복잡한 원인이 얽혀 있었다지만 어쨌든 브렉시트를 택한 영국 역시 유럽 전반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일본은 비단 난민 문제가 아니더라도 특유의 폐쇄성과 배타주의로 오래 전부터 비판받아 왔다. 난민 위기는 환경 문제만큼이나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기에, 긴 안목으로 각국이 정치적인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 게 분명하다. 오히려 요즘같이 각박한 시대에 인권과 인도주의적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곧 후발 선진국으로서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끌어올리는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한국보다 난민을 적게 받는다는 편견이 있는데, 오히려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 대한민국 법무부는 "미국의 경우 2017년 한해 동안 약 23,000명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하였음"이라고 밝혔고, 우리나라 난민통계(‘94[8] ~ ’18.5. 현재)에서는 난민 인정자 839명, 인도적체류자 1,540명이라고 밝혔다. # 이에 따르면 미국은 '1년 동안' 23,000명의 난민인정자를 받았고, 한국은 '24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난민 인정자와 인도적체류자를 합해도 2,379명(연 평균 99명)을 받았다는 것. 전체 인구 대비로 따져본다고 해도 미국이 훨씬 많이 받는다. 미국은 '1년간' 인구 14,207명 당 1명 꼴[9]로 난민인정자를 받았고, 한국은 '24년간' 인구 21,774명 당 1명 꼴[10]로 난민인정자+인도적체류자를 받았다. 만약 한국이 도널드 트럼프만큼의 전체 인구 대비 난민인정자를 받는다면 1년에 난민 인정자 약 3,646명[11]을 받아야 한다. 자국우선주의를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조차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난민을 많이 받는다는 것.
반대 성향이 집권한 미국은 '''2017년 한 해 동안''' 5,180만 명(한국 인구) 당 난민인정자 약 '''36,46명'''(총 2만 3천 명)을 받았고, 한국은 1994년부터 2018년 5월까지 '''24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것도 난민인정자가 아닌 인도적체류자까지 합하더라도 겨우 2,379명을 받았다. 반대 성향이 집권한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난민 수용이 미국보다도 한참 못 미치는 난민 협약국인 한국이 난민 문호를 닫으려는 상황과, 난민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려는 상황, 둘 중 비웃음과 반감을 사는 상황은 어느 쪽일까 생각해 보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내용은 난민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국제 사회에 대해 반감을 살 지도 모른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며 한국미국과 비교해도 난민을 적게 받고 있다는 근거, 사실관계를 정리한 것이다. 난민 통계는 전술했다시피 법무부 자료에서 가져온 것인데, 법무부가 "미국의 경우 2017년 한해 동안 약 23,000명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하였음. 우리나라 난민통계(‘94 ~ ’18.5. 현재): 난민 인정자 839명, 인도적체류자 1,540명"이라고 했지만 법무부가 미국을 추켜세우는 것은 아니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 첨언하자면, ''만약' 한국이 도널드 트럼프만큼의 전체 인구 대비 난민인정자를 '받는다면' 1년에 약 3,646명'이라고 서술했을 뿐, '한국이 도널드 트럼프만큼 난민인정자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적은 없으며, 애초에 현재는 예산이 부족하여 연간 난민 3,646명을 모두 인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는 인구가 서로 다른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기 위한 계산일 뿐이며 한국의 난민 수용이 인구 대비 지나치게 적다는 점을 나타낼 뿐인 자료다.

2.2.2. 수용반대론


2015년의 독일의 상황을 봐도 난민을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해진다.[12] 한국보다 경제 규모는 2배 이상, 인구는 1.6배인 독일은 난민 100만 명을 받고 난 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거대한 혼돈에 빠졌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 난민들을 성공적으로 관리했고 이후에도 대규모 난민들을 몇만 단위로 수시로 받아와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독일이기에 이번에도 현찰박치기와 시스템을 잘 활용하면 수용이 어렵지 않을 거라 여겼으나, 현실은 막장의 끝판을 달리고 있다. 난민인구가 2%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 2%면 자기의 주변에 자신을 포함해서 50명 중에 1명꼴로 난민이라는 뜻이다. 이게 과연 '밖에'일까?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선진국 반열에 진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복지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심각한 안보위협도 없는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높은 자살율, 높은 노동시간[13], 적은 노동권 등 사회 자체는 타 선진국과 비교하기가 부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에 더해 북한과의 갈등 등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으며, 이는 우리 스스로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OECD의 일원으로서 환경문제에 대한 의무나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 의무를 여력껏 수행하고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우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이미 다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은 이미 건국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북한이탈주민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탈북민들이 국내법적으로는 난민이 아니라고 하나, 이들의 실질적인 지위 내지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비용은 사실상 구미권의 난민 문제와 맞먹는다. 나아가 사실상의 파탄국가북한에 급변사태가 터지면 당장 '''2천만 명'''[14]의 북한 주민들을 난민으로 떠안을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외국인 난민까지 수용할 여력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기 배가 먼저 불러야 남이 배고픈걸 신경쓰는게 사람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국가라고 오죽할까?
무엇보다, 어떠한 국가도 자국의 안전을 위험에 빠트리면서까지 국제사회에 대한 의무를 챙기려 들지는 않는다. 부자들이 빈민들을 위한 정착촌을 만드는 데 거액을 투자하는 일은 흔하다. 그러나 안전할지 위험할지도 모르는 길거리의 부랑자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자기 처자식과 함께 살도록 하는 부자가 세상에 몇이나 되는가. 앞서 언급한 선진국들 역시 이미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경제적 원조 및 선제적 조치들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중동을 포함하여 세계 각지의 내전에 직접적으로 관여되어 있는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는 물론, UN에 막대한 기부비용을 내는 일본, 합법적인 거래를 통해 난민들에게 정착지를 마련해 주는 호주 등의 예시에서 알 수 있다. 물론 호주 정부가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나, 정착지의 정부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 그리고 비용 지원이 생각보다 잘 안돼서 비판을 듣고 있는 것이지, 자국 내 정착 거부 자체가 크게 문제가 되고 있지는 않다.[15]
이들이 자국 국민의 안전을 희생하면서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야비하다고 비난받을 이유는 전혀 없으며, 우리들 역시 이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물론 한국인의 안전을 위해 한국의 특정 구역에 난민 정착촌을 세워 격리시키고 먹고살게만 해주는 것조차 거부하면 비난의 소지가 있겠으나 애초에 일단 받아준 난민을 그런식으로 관리하는 것 자체가 국제법상 불법이다. 그냥 난민용 정착도시 하나 만들어 주고 동화가능자만 내보내는 거면, 애초에 독일이 저 골치 썩지 않았다. 사람 1명이 먹고 살 원룸을 주고 의식주를 보장하는 건 그리 비싸지 않지만, 그가 사회로 나가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문제해결비용은 절대 싸지 않다. 애초에 한국에 그런 정착도시를 만들 땅이 있는지도 문제다.
난민을 받아준다고 무작정 대한민국소프트파워가 올라간다고 보기도 어렵다. 애초에 소프트파워는 개별 정책이 아니라 한 국가가 쌓아온 종합적인 문화적 역량이 발현되어 나타나는 것인데다, 국가 규모를 고려할 때 대한민국은 국제적으로 난민 문제의 선도국으로 각인될 만큼 많은 난민을 받아줄 역량이 없다. 그나마 까다로운 필터링을 통과해야 받는 이민자[16]도 출생아 수가 20만 명을 밑돌게 생기자 충격 먹은 여론이 이제서야 거부감이 줄어들어 정부가 정책을 시행하기 조금 더 나아진 정도에 불과한데, 아예 수준보고 받아주고 말고를 결정할 수도 없는 난민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얼마나 도움이 될 지도 모르는 명예를 추구하다가 자국의 수용 한계를 넘어선 정책을 펼친다면,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격이다.
게다가 친난민적인 행보는 난민에 우호적인 국가들의 지지를, 반난민적인 행보는 난민을 거부하는 국가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유럽 연합 내에서는 난민 정책을 둘러싼 차이를 이유로 비셰그라드 그룹에 속한 정치인들이 서유럽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오늘날 국제 사회의 분위기가 국제주의·인도주의보다는 고립주의·반난민주의로 흘러가고 있는 만큼, 무작정 난민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반대 성향 정당이 집권한 국가들의 비웃음과 반감을 살 지도 모른다.
찬성론의 근거에는 2가지 중요한 사실관계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 있기도 하다. 첫째는 대한민국인구밀도OECD 1위라는 사실이다. 찬성론자들은 인구대비 난민 수용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미국보다 훨씬 정책이 폐쇄적이다.'고 비판하지만, 그들의 주장대로 난민이 수용국의 경제에 공헌한다면 인구 대비 수용률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 수치는 반대론자들의 주장대로 난민이 수용국의 경제에 공헌하지 못하고 수용국 국민들이 난민을 먹여살려야 할 때나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구대비 수용률을 가지고 한국이 난민을 적게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난민이 한국의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인정하는 꼴이다.
정말로 해당 국가가 난민을 받아들일 여유가 있는지를 보려면 인구대비가 아니라 국토대비(즉 사람이 더 들어와서 살 땅이 있는지)를 봐야한다. 미국은 인구밀도 세계 179위, 국토면적 세계3위로, 인구밀도 세계 23위, 국토면적 세계 109위인 한국에 비해 훨씬 빈 땅이 많은 나라다. 이 두 나라에 같은 수준으로 난민을 받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물론 애초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도시국가속령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한국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는 방글라데시대만뿐이며,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난민문제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서유럽 선진국들은 모두 한국보다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들임을 기억하자.
찬성론에서 간과하는 2번째 사실은 대한민국이 해마다 탈북자를 적게는 천 명, 3천 명씩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들 탈북자들은 현재 대한민국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명칭상 난민이 아닐 뿐 실제로는 완전한 난민이며, 일단 대한민국에 들어왔다면 간첩이나 위장탈북자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100% 받아들여준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이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일정기간 무상으로 숙식을 포함한 교육환경을 제공하며 그 후에도 일정부분 물적/인적지원을 하고 있다. 정작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에서 탈출해 온 같은 민족에겐 관심이 없으면서, 한국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이역만리 타지의 난민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이미 위선적이다. 이는 찬성론자들이 탁상공론으로 난민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대표적인 자국우선주의자로 꼽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서방세계의 리더 역할을 못한다.'며 비난한 바로 그 입으로 트럼프 대통령 체제하의 미국이 한국보다 난민을 많이 받았다며 추켜세우고 있다. 대체 트럼프가 비난의 대상인지 찬양의 대상인지 일관되지 못하고 찬성 논리에 국제정세를 끼워맞추기 위해 평가 기준을 이리저리 바꾸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트럼프가 서방세계의 리더 역할을 못한다는 말을 듣는 이유는 같은 서방세계 국가들 상대로까지 자국우선주의의 보호무역체제를 도입하려고 하기 때문이지 제3세계에 박하게 굴어서가 아니다. 게다가 유럽 전체 인구의 55%는 트럼프의 난민 정책에 동의하고 있으며 이슬람 출신 난민의 총체적 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나머지 20%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으므로 오직 20%만이 난민의 수용을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17] 다만 트럼프가 비판 받는 것은 난민 수용율의 고저 때문이 아닌, 어린아이를 강제로 부모와 떼어놓고 열악한 시설에 가두는 등의 어떤 문화나 종교에서도 용납하지 않는 비인도적인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만에 하나 북한과의 전쟁 등 소요 사태가 일어나면 한국에서 대량의 난민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지금 난민을 받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다른 나라들에게 무슨 명분으로 한국 난민을 받아달라고 할 것인가?'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오로지 근거를 위한 근거로써 자의적인 가정이며[18] 비형식적 오류의 일종인 힘에 의거한 논증(즉 협박)인데다 인도적 사정이나 국제적 책임을 들며 난민 수용을 외치던 것과 모순되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난민수용은 난민 보호의 정신 및 난민협정과 같은 국제적 합의에 기초하며 난민의 출신국이 이전에 국제사회에서 어떤 행동을 했느냐, 난민 수용을 얼마냐 했느냐 같은 사정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인도적 사정이나 국제적 책임에 따라 난민을 수용해야 하고, 만약 하지 않으면 인도적 사정이고 뭐고 향후 너희 나라 출신 난민은 수용하지 않겠다'는 주장은 난민 구제가 아니라 치졸한 보복감정에 지나지 않으며 이런 행위는 벌써 난민협약에 위배되므로 이런 것까지 상상, 고려해서 난민을 수용하지 않으면 불확정적인 미래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협박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데다 갈등만 유발하는 논점일탈식 도발에 불과하다. 또한 백보 양보해서 찬성론자들의 주장대로 그러한 보복이 기다리고 있다 치더라도, 그렇다면 그 순간부터 난민 수용은 자발적으로 행해지는 인도적 행위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행사에 대한 위력적 침해이며 내정간섭이 된다. 주권국가라면 마땅히 배제해야 할 행위가 되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우리나라에 난민 수용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종용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들은 유럽 등 서방 선진국, 미국, 기타 강대국의 반난민 정책에 대해 일체의 비난이나 우려, 비판을 하지도 않으면서 애꿎은 대한민국에게는 난민 수용을 해야 한다고 압력을 넣는 모순된 행동을 보이고 있다. 강대국에는 입도 뻥끗 못하면서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대한민국에게 왜 난민수용을 강요하는가? 국제기구와 국제단체의 눈치만 본다면 앞으로도 대한민국은 국제연대주의에 끌려가는 국제 호구 취급받을 것이 분명하다.
분명히 국제 연대 및 협력은 중요하지만, 굳이 다른 나라들이 반이민 및 반난민으로 선회하는 와중에 난민 수용률이 낮다는 해외 및 국내 언론의 비판 혹은 난민기구 담당자의 비판을 이유로 난민 수용을 해야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따라서, 도덕 혹은 위상을 이유로 난민을 수용한다면, 위상을 위하여 현실적인 어려움을 직면할지에 대한 논의 후 결정해야지, 당장 난민수용을 결정하는 것은 어렵다.
마지막으로 '나라의 위상'을 생각해서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무의미한 발언에 불과하다. 국가의 위상이란 것은 여러 분야에 걸쳐 유의미한 성공을 올렸을 때 높아지는 것이지, 난민을 수용한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인도적으로 난민을 수용한 유럽의 어떤 국가도 결과적으로 국가의 위상을 높이지 못했고, 오히려 난민수용이란 정부의 실책 때문에 유럽이 그렇게 두려워 하고 혐오하던 나치즘 추종 세력과 국수주의 극우가 부활하는 계기를 제공했다.[19] 시리아 내전 당시 시리아 난민들을 수백만이나 수용한 레바논, 터키, 요르단, 이집트가 과연 난민 수용으로 국가 위상이 높아졌는가? 미얀마의 로힝야족 탄압으로 미얀마에서 탈출해온 수많은 로힝야족 난민들을 수용한 방글라데시인도의 국가 위상이 높아졌는가? 레바논 밑 터키, 방글라데시와 난민에 배타적인 스위스나 동유럽권 국가들을 비교한다면 보통 후자가 국제적 위상이 전자보다 높고, 국력이 강하다 말할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위상같은 추상적 가치 하나 만으로 난민들을 수용하자는 논리는 현실적이지 못하다.

2.3. 정치적·역사적 책임 문제



2.3.1. 수용찬성론


예멘 난민 사태에 한정할 경우, 대한민국도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예멘을 폭격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무기를 수출한 국가 중 하나가 한국이기 때문. 트윗, 디시,2년 전 수출유력기사, 유튜브 싸움을 붙여서 이익을 얻었으면 얻어맞은 사람들을 위로해 줄 정도의 인성은 있어야 하고, 내전이 벌어지는 국가에 무기를 팔아서 이득을 취했으면 그 과정에서 발생한 난민들에 대해서도 동정심을 가지고 최소한의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나 당연한 처사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선진국에 난민을 몇백명 단위로 매년 꾸준히 배출하고 있는 국가이며# 복잡함으로 인해 한국인으로 인한 신분야 판례 개척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다. 당연히 복잡한 건일 수록 해당국의 행정력 낭비와 세금 지출은 치솟는다.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끊임 없이 발생하는 가정폭력동반자살 문제로 캐나다안전 국가 제도를 폐지하는데# 큰 힘을 보탰고, 정신보건법 제24조가 개정된 현재도 계속되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 및 사회적 박해로 인한 난민 배출# 그리고 병역거부자가 단순 신념만 있더라도 난민이 될 수 있다는 판례# 등 참 여러 분야에서 참전하고 있다. 신분야 개척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성소수자를 비롯한 각종 소수자 난민들도 배출하고 있다는 점을 잊으면 섭하다.
그리고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식민 지배와 내전을 겪고도 자주적으로 성장하여 선진국이 되었다고 했지만, 그리스의 경우도 4백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최대 90만명이나 학살당하고 강제 징용, 탄압, 억압, 종교 박해 등 이슬람교도가 절대다수인 터키한테 갖가지 엄청난 수모를 겪다가 1821년 3월 25일 겨우 독립했고 그 뒤 1923년 인구 교환 등 여러 가지 혼란이 있었지만 선진국이 되었다. 물론 요즘은 imf 금융 위기에 실업률은 1/4 수준이라경제가 많이 어렵지만 IMF, OECD, UN, 세계은행에서도 모두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렇듯 그리스는 과거 오스만 제국의 지배 때문에 이슬람과 악연이 엄청나게 깊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의 추세처럼 이슬람 난민을 많이는 아니어도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그리스는 무슬림들한테 시달린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슬라모포비아가 아주 강력해서 난민을 대상으로 한 범죄, 모욕도 많이 일어난다.

2.3.2. 수용반대론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배내전을 겪고도 자력으로[20]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국가이다. 제국주의 시기 세계 각지를 약탈하며 분쟁의 씨앗을 남겨두고 떠나갔던 구미 선진국들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오늘날의 난민 사태에 어떠한 책임도 없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대한민국이 광복 이후 세계 최빈국이던 시절 받았던 도움을 어딘가에 갚겠다고 하더라도, 그 대상은 주한미군과 경제원조 등으로 막대한 도움을 주었던 미국이나 기술교류 및 외교적 지원을 제공했던 서유럽의 몇몇 선진국들, 혹은 에티오피아처럼 한국을 도와준 국가의 국민들이 되어야지, 별다른 연고도 감정도 없는 예멘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예멘한국전쟁에서도 참전이나 물자 지원이 없었다. 상황이 이럴진대, '오늘 내가 이 사람을 도우면 언젠가 어디에선가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겠지' 따위의 막연한 정책은 말 그대로 이상론에 불과하다. 물론 도의적으로 당장 굶어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건 개개인의 선의에 기초한 선택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지 수천만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국가 정책의 형태로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
  • 첫째, 대한민국은 예멘 국민들에게 쓰라고 사우디에 무기를 판매한 것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현궁 미사일을 구입한 것은 자국군에 배치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설사 사우디가 예멘 내전을 대비하여 현궁 미사일을 구매했다고 해도, 한국은 간접적인 책임이 없다. 이 논리대로라면 흉기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살인자의 칼을 제조/유통/판매한 (칼 제조 회사, 철강기업 등)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조립생산만 한국이 했고 결국 설계 및 기술은 미국제이므로 그 논리라면 미국이 책임지는 게 맞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그 무기들이 순수한 Made in Korea였으면 모르겠으나, 우리나라가 수출한 무기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Designed in U.S.A & Assembled in Korea였다. 사우디에 일부 무기를 수출한 것은 사실이나 우리나라는 인터넷 쇼핑몰같은 중개업체 역할이었을 뿐이라서. 실제로 인터넷 쇼핑몰과 같은 중개업체들은 판매된 상품에 대해서 책임을 질 의무가 없다.
  • 둘째, 예멘 내전후티 반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군과 대치하면서 일어난 것이지 내전 개시에 원래 사우디가 개입했던 것도 아니고, 사우디는 오히려 전쟁 확전을 막으려 예멘 정부를 지원하고 있는 입장일 뿐이다. 물론 후티 반군에 정당성이 어느 정도 있다는 평가도 있고 선악구분을 하기 쉽지 않은 전쟁이지만, 예멘 내전은 말그대로 내전이지, 한국이 개입한 부분이 없다.
  • 셋째, 현재 전세계에서 후티 반군에 찬성하는 나라는 이란 정부가 유일하다. 국제사회에서는 후티 반군의 쿠데타에서 시작된 2015년 내전상황을 후티 측의 책임으로 보고 예멘 정부를 지지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또한 그렇다. 대한민국이 반군측에 무기를 공급했다면 모르되, '후티 반군의 징병이 싫어서 도망쳤다'고 주장하는 예멘인들에 대해, 그 후티 반군을 몰아내기 위해 예멘 정부군과 협력중인 사우디아라비아 측에 무기를 판매한 대한민국은 일체의 정치적/외교적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
게다가 찬성 측에서 달아놓은 링크를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이 소식들의 날짜는 6월 24일로, 다시 말해 현궁이 예멘 내전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주도 난민 기사가 나온 이후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무기에 사용되는 소재를 생산한 모든 국가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억지주장으로 이어질 것이고, 무엇보다 책임 소재가 문제라면 제주도의 난민들은 왜 직접적으로 이 내전에 개입해온 사우디아라비아로 가지 않고 한국으로 온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은 난민을 무작정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탈북자는 차치하더라도, 대한민국은 국공내전 당시의 중화민국 난민, 월남전의 책임에 따른 남베트남 보트피플, 90년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적 탄압을 피해 도망쳐온 민주화 운동가나 파룬궁 신자들 등 문화적으로 가깝거나 역사적인 교류·책임이 있는 곳의 난민들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 허나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중동지역 난민들은 한국인 입장에서 그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부터가 한 세기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21], 아예 쳐들어가서 마음대로 영토를 획정했던 서유럽 열강들이나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치고박고 싸워온 동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역사적·문화적인 공통분모조차 전무하다. 같은 셈족 종교[22]를 믿는데다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교류해온 유럽조차도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무슬림 집단을 동화시키지 못해 온갖 홍역을 치르고 있고, 대한민국 역시 같은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조선족이나 탈북자들과의 사상적, 문화적 차이로 적잖은 갈등을 겪고 있는 판에, 우리나라가 굳이 나서서 문화 충돌의 또 다른 실례를 몸소 입증해 줄 이유는 전혀 없지 않은가?[23]

3. 난민의 자질 논란



3.1. 난민의 모국에 대한 책임 문제



3.1.1. 수용찬성론


어느 나라나 난민들은 대체로 젊은 남성이 대부분이다. 이를 근거로 이들을 난민으로 위장한 불법체류자로 보는 여론이 있다. 그러나 이는 가족들이 구성원 중 젊은 남성 하나라도 살리려고 난민으로 내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 지역의 경우, 교통이 통제 혹은 기능 상실의 우려가 높아 해외로 자력 도피할수 있는 인구층은 긴 여행을 이겨낼 수 있는 젊은 남성일 가능성이 높다. 다 같이 난민으로 도망가는 것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랜도 블룸이 만난 한 시리아 난민 남성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남자들만 달아나니 비겁하다? 지금 시리아를 몰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다에쉬시리아군까지도 이젠 무차별로 남자들을 강제 징병까지 하고 있어요. 다에쉬는 징병을 거부하면 이슬람의 적이라며 잡아 가두고 협박과 구타와 고문까지 하고 그래도 거부하면 참수한단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남성의 온 가족을 죽이던지 여자들은 대놓고 성노예가 되는 거라고요! 이런데 남아서 뭘 어쩌란 말인가요? 우리가 다에쉬에 들어가 총 들고 비무슬림, 아니 무슬림이라도 따르지 않은 이들을 고문하고 죽여야 한다는 겁니까? 그럼 무기도 없는 우리들에게 맨주먹으로라도 그놈들에게 맞서 싸우라고요? 시리아군이니 반정부군들도 다들 다를 거 없이 미쳐가는데 대체 남아서 뭘 하라는 겁니까? 집에서도 아내와 늙은 부모가 "너만이라도 달아나라." 합니다. "남으면 되려 우리 가족 모두가 해가 된다. 차라리 너만이라도 안전한 곳에 가라." 이런답니다[24]

. 우리도 적어도 아내나 아이들은 데려오고 싶었어요, 하지만 놔두고 가는 게 더 안전하답니다. 다에쉬도 적어도 식구라도 남아 있다면 그들을 생각하여 돌아오던지 아니면 다에쉬에게 저항하는 일은 못한다고 인질 같은 존재로 놔둬서 그나마 건드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놔두고 온 거죠. 그런데 그저 남자만 왔다느니 뭐니라며 아무 것도 모르고 욕하고 비난만 하더군요.

또한

미쳐가는 내전 상황에 식구건 모든 걸 잃고 홀로 남아서 난민이 되는 남성도 많습니다. (올랜도 블룸을 만난 17살 시리아 소년 타렉 이브라힘은 지친 얼굴로 말했다) 저는 내전 중에 집도,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이웃도 죄다 잃었어요. 남은 건 폐허 속에서 찾아낸 가족 사진 몇 장, 옷 조금, 타버린 돈, 배낭 하나와 가족이 쓰던 옷이나 신발 등등 잡동사니 뿐. 이렇게 유럽으로 왔지만 희망이 없어요. 돌아갈 곳도 이제 피붙이도 없어요. 그런데 조국을 떠나 비겁하다?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오면서 느낀 게 뭔지 아십니까? 나랑 같은 이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심지어 10살도 안 된 아이들까지 홀로 와요, 부모도, 친척도, 누구도 없어요! (그렇게 분노하며 말하는 타렉의 곁에는 10살 정도 여자아이가 말없이 있었다) 이 아이도 나랑 같아요, 부모도 없이 난민 행렬로 와서 떠돌더군요. 이런 아이들은 인신매매단에게 납치당하거나 쇠약해져 죽어가요! 이 아이도 홀로 남아서 피난 와중에 가진 돈도 빼앗기고 굶주리고 물에 빠져 죽어가던 걸 구해줬습니다. 저 하나도 벌어먹기 어렵지만 도저히 놔둘 수 없어서 저랑 같이 다니고 있습니다. 그나마 죽은 여동생이 입던 옷을 가져왔는데, 이 아이에게 맞아 추위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견딜 수 있어 다행이더군요.

게다가 역사적 배경도 문화도 다른 예멘 내전한국전쟁과 1대 1로 비교하는 논리는 옳지 못하다. 현 예멘 내전의 경우 반군과 정부군 둘 다 막장인 상태인데다 일반인들까지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는데, 목숨바쳐 충성할 만한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그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주장이다. 한국전쟁이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민족의식이 가장 뚜렷했던 시기에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각자가 믿는 이상을 두고 벌였던 전쟁이라면, 예멘 내전은 애초부터 종교와 종파 그리고 부족이 더 우선시되는 곳에서 각자가 속한 집단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모양새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순국선열들을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멘은 한국이 아니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순국선열들과 난민들을 비교하는 것이 모욕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 문제가 있다. 독립운동가들 역시 일제의 탄압을 피해서 해외로 임시로 도피하여 활동한 적이 있다. 이는 말만 다를 뿐이지 실질적인 정치적 난민과 다를 바가 없다. 더불어 신흥무관학교만주에다가 지은 것 역시 일제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고, 우당 이회영 선생이 가산을 처분해 만주로 이주한 것 역시 표현이 다를 뿐 실질적으론 난민과 다를 바가 없음을 상기해야한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부당한 탄압과 전쟁에 맞서 싸워야 할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것에 맞서지 않고 도망치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지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맞서지 않았다는 것을 비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탈북자를 비롯한 여러 망명자들을 내부에서 변혁을 시도하지 않은 배신자 혹은 비겁자로 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비겁해서 그곳을 탈출했는지 그 자체가 불가능해서 탈출했는지는 누가 봐도 답이 나오는 문제이다.
또한 한국인은 절대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도망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이 잘못된게 일본의 재일교포와 중국의 조선족 다수가 한국전쟁당시 전쟁을 피해 일본과 중국으로 도피한 피난민의 후손이다. 물론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일제 패망후 본국으로 돌아왔다. 특히 제주도의 경우 제주 4.3사건학살을 피해 일본으로 매우 많이 도피했는데 이는 일본우익들이 재일교포를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도망간 비겁자 집단이라고 비난하는 근거가되고있다.

3.1.2. 수용반대론


우선 '난민들의 고백'에는 큰 모순이 있다. 폭격 속에서 온 가족을 잃고 피난온 난민은 왜 남성이 다수고, 여성은 거의 없는 것인가?[25] 대부분의 여성들은 폭격을 피하지도 못하고 몰살당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가족을 모두 잃고 혈혈단신으로 살아 도망친 난민은 왜 절대다수 20~40대 성인 남성인 것인가? 애초에 이들의 말이 사실이기는 한 것인가? 물론 난민에 우호적인 사람들은 난민 집단의 말을 신뢰하겠지만, 그들의 말을 교차검증할 방도가 없는 이상 진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한국인은 아무도 없다. '남성의 난민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유'는 제3세계의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장남에게만 난민 브로커 지불 비용을 투자하는 상황 때문이며, 그들이 객관적인 증거 없이 그들에게 유리하게 포장해 하는 주장을 우리가 곧이곧대로 믿을 이유는 없다또한 위 주장은 감정에 호소하는 논리적 오류의 전형적인 예시에 해당한다.(이에대한 반박은 찬성측의 의견참고)
탈북자들의 경우, 관리가 삼엄한 국경지대에서 군인들의 실탄을 피하며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야 하고, 중국에서도 중국 공안을 피해 도망 다녀야만 한다. 그렇게 중국 땅덩이를 가로질러 안전한 제3국까지 자력으로 가야만 하고, 이 사이 군대와 경찰을 피하기 위해 산, 늪지대, 사막 등을 관통한다. 탈북민의 회고에 따르면 중국 장춘에서부터 몽골 국경까지 물 한방울 없이 무조건 '걸어서' 가야 하며, 이 과정에서 낙오되는 탈북자도 많다고 한다. 영화 크로싱에 이 험난한 여정이 잘 담겨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도 탈북을 잘만 한다.[26] 여성의 탈출 비율이 예멘 여성처럼 급감했던 역사는 분단 이래 한번도 없었다. 여성남성보다 근력이 약한 것은 사실이나, 걷는 능력과 생존능력은 많이 뒤쳐지지 않는다. 이를 무시하고 '남성이 강하니까 혼자 도망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에서 찬성측이 그렇게 강조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전면으로 반박한다. 한국은 발전된 나라이니 책임감을 갖고 불우한 난민을 수용하는 것이 당연한데, 정작 그 남성들이 자신들보다 약한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도피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은 옳지 않다.[27]
찬성측에서는 우리가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 수많은 위기 속에서 난민이 대거 발생해왔고 그 시기에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았기에 도움을 받는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로써 난민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게다가 이 시기에 망명자가 발생하였다는 기록은 존재하지만, 오늘날 중동 난민처럼 대규모 난민이 발생한 것이 아니다. 대다수는 극한상황에도 자기신념을 지키기 위해 희생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포기하지 않고 독립을 이루기 위해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투쟁해왔다.[28] 6.25 전쟁에서는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바쳤다. 1970-80년대 독재정권의 혹독한 탄압속에서도 수많은 국민들이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희생해야 했다.
찬성측이 주장하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 사례도 적절치 않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위하여 한국 정부서독 정부의 공식적인 협의 하에 합법적으로 비자를 받고 주어진 노동을 하다 기한이 되면 귀국했다[29]. 그리고 국제 사회가 우리에게 원조를 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를 상대로 도움을 주었지, 우리나라의 난민을 수용해준 것이 아니다. 외세의 침략 속에 안 좋을건 다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을 감수하고 나라를 지키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던 한국인들 입장에서, 자국의 위기 사태에 용기있게 나서서 해결하지 못하고 대거 도망쳐 나와 망명하는 난민들을 달갑게 보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가족들을 버리고 건장한 남성 혼자서 '탈출'(내지는 '도망')한다는 개념이 많은 한국인들의 감성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당장 6.25 전쟁 때 이념대립으로 인한 무차별 학살의 위협에 처해있던 우리 남성들이 처자식 버리고 자기만 피난간 경우가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외국인 앞에서 떳떳하게 '내가 우선 살아야 하니까 버리고 도망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라. 난민 수용 찬성 측에서는 실향민 중 혼자 월남한 남성들이 많았으니 예멘에서도 건장한 남성이 혼자서만 도망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월남했던 남성들은 (가족들이 한 명이라도 살아야 한다고 혼자만 남쪽으로 보냈어도) 가족을 함께 데리고 월남하지 못한 미안함과 안타까움, 끝까지 가족을 지키지 못하고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졌다[30]. 그리고 이 감정은 이산가족 상봉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31] 현재 외국으로 탈출(?)한 난민들처럼 "어차피 여자랑 아이들은 탈출 못할 거 남자 혼자서만 안전하게 도망쳐 나오는 게 당연한데 그게 뭐 이상한 일인가" 정도로 당당하게 반응하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예멘 내전의 특수성을 운운하며 조국을 버리고 도망쳐온 비겁함을 변명하려는 태도 역시 비합리적이다. 특히 일제강점기한국전쟁, 군사 독재를 죄다 선악이 분명하니 선택하기 쉬웠다고 일방적으로 매도해 버리는 것은[32], 굴곡의 현대사 내내 도망치기보다는 끊임없이 투쟁하여 오늘날의 선진 대한민국을 물려준 순국선열들에 대한 대단한 모욕이다.
먼저 한국전쟁예멘 내전과는 달리 선악이 분명했다는 것은, 모든 역사적 문건들이 공개되고 남북한의 이념대결의 승자도 분명해진 뒤인 지금이기에 말할 수 있는 결과론일 뿐이다. 1950년 시점의 소련20세기 초 경제위기 도중에도 엄청난 성장을 이룬 데다 파시즘의 도전마저 분쇄해냈던 상황이었고, 공산주의는 여전히 다수의 지식인들을 현혹시키던 매력적인 이념이었다. 게다가 해방 이후의 혼란상을 감안하면, 일반 민간인의 입장에서 남북 양측이 서로 선공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어느 쪽의 말에 신빙성이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남북한 모두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조선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여 있었으며 분단된 지 겨우 몇 년 지났을 뿐이었기 때문에, 예멘 내전만큼이나 피아의 개념 역시 불분명했다. 당장 뭣도 모르고 형과 동생이 서로 총을 겨눠야 하는 경우도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한국전쟁은 확고한 이상을 두고 벌였던 전쟁이기는커녕 예멘 만만치 않은 진흙탕 싸움이었다.[33]
나아가, 한국전쟁이 뚜렷했던 이상 아래 통제된 전쟁이라는 것도 오류가 있다. 당장 한국전쟁#s-4 문서의 관련 단락만 보더라도, 북한군이 자행한 무수한 양민학살뿐 아있라 보도연맹 학살사건이나 국민방위군 사건,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등 국군이나 미군에 의해 벌어진 학살도 다수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전쟁이 끝난 지금이니까 '미군은 우릴 지켜줬다',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당시 우리의 조상들에겐 그놈이 그놈이었고 누구든 자신을 학살할 수 있었다. 낮에 국군을 도와주었다가 밤에 인민군한테 반동이라며 총살당하고, 밤에 인민군을 도와주었다가 국군한테 빨갱이라며 총살당했던 그 시기를 생각해보자. 민간인들은 점령군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수시로 바꿔야 했고, 그 죄목으로 점령군이 바뀌면 살해되는 일 또한 흔했다.
그렇게 한국전에서 희생된 인적 자원은 최소 250만 명을 넘지만, 예멘 내전의 사망자는 추산하길 8670명 내지 13,600명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전쟁 희생자가 180배를 훌쩍 넘는다!!!
그러나 그 당시 한반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이처럼 많은 것들이 불분명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가 옳다고 믿는 집단을 위해 싸웠다. 그들 중 다수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학살에는 반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나았던 남쪽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해 일단 북한에 맞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냈으며, 그 이후에는 또다시 목숨을 걸고 독재에 항거해 보다 나은 조국을 만들어냈다. 만약 당시 한국 국민들이 예멘인들마냥 '이승만도 나쁘고 김일성도 나쁘고 미군한국군북한군도 다 학살하니 에라 모르겠다 나는 내 살길 찾아 멀리멀리 가련다.' 하는 양비론을 취하며 내뺐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당대 아시아 최강대국을 상대로도 끊임없이 투쟁을 이어갔던 독립운동가들과, 독재자들의 총칼화염병으로 맞서 싸우던 민주열사들 역시, 나라가 시궁창이 되든 말든 제 한 목숨 빌어먹고자 도망쳤다면 충분히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존경하고 정신을 받들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한국에서, 정작 예멘인들에겐 보다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포장하는 것은 예멘인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예멘이 한국과 다르다고 강조하는 주장 역시 무의미하다. 위에서 일제강점기한국전쟁을 예로 들며 난민의 합당성을 주장한 것은 찬성측이었다.[34] 앞에서는 예멘이 한국과 비슷하다고[35] 주장하고는, 이제 와서 한국과 예멘은 다르다고[36] 강변하는 것은 자가당착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모호한 기억을 바탕으로 난민들을 동정하되, 논리적으로 비교하여 불편한 사실은 들추지 말라.'는 이야기인데, 이처럼 어떤 의구심도 일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로 무슨 토론이 가능하단 말인가?
내 목숨을 위해 가족들의 목숨과 모국을 저버리는 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정작 가족들과 조국을 위해 자기 목숨마저 초개같이 내버린 사람들의 피땀 위에 세워진 선진국의 과실만 누리려 한다. 심지어 그들은, 고국이 평화로워지면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조금만 머물다 곧 떠날 테니까 받아달라는 소리겠지만, 뒤집어 보면 자신의 조국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는 평화로운 선진국으로 도망쳐 그곳에서 꿀만 잘 빨아먹다가, 다른 사람들이 뼈빠지도록 힘들여 고생해서 다시 평화롭게 만들어 놓고 나면 슬그머니 거기에 무임승차해 다시 평화를 누리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단지 자신들이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된 평화로운 나라일 뿐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나라는 고국이지 한국이 아니라는 소리다. 같은 조건인 나라라면 한국 외에 아무 곳이건 상관없었을 것이다. 뼈를 묻을 곳이 아니라 그저 임시로 머물 곳이면 되니까. 그렇다면 만약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여 평화를 잃어버린다면 그들을 도와준 은혜를 갚으려들기는커녕 그냥 다른 곳으로 또다시 도망쳐버리지 않으리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그 '평화로워지는 시기'가 대체 언제일지도 알 수 없다. 만약 몇십 년이 지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실상 평생 받아달라는 소리 아닌가?
애초 한국인들은 역사적인 환란의 시기마다 의병을 일으키고, 일제강점기한국전쟁, 개발독재 시기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투쟁하고 저항해 왔다. 심지어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에도 국정운영망가진 상황에서 국민들이 단합하여 사태를 해결해낸 역사가 있다. 이는 한국의 문화이며 자부심의 원천이다. 그러한 국민에게 문화 차이를 들먹이며 무조건 난민을 이해하라고 강권하는 것은 본질적인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는 무슬림에게 무신론을 이해시키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시비비를 떠나 문화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차이이고 이렇게 이해를 강요하는 것 역시 폭력이다.
다만 2010년대 한국에서는 헬조선 담론과 자국혐오 현상이 심화되면서 이민드립이나 극단적으로 "전쟁해도 한국은 지킬 가치가 없다. 차라리 국가가 있는거보다 타국내에서 나라 없는 민족으로 사는게 더 낫다. 한국은 개인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국가일뿐이었다. 처음부터 나오지 말았어야할 국가였다." 는 생각이 한국인 기본사상에 깔려있게 되었다. 방법은 달라도 예멘 난민과 같은 사상과 상황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이전보다 훨씬 높다.

3.2. 가짜 난민 논란



3.2.1. 수용찬성론


난민 신청자가 스마트폰을 지니고 있거나 페이스북 페이지에 연결되어 있으니까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 혹은 가짜 난민 신청자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편견에서 나온 오해로 아랍의 봄이 퍼진 이유 중 하나가 스마트폰의 보급과 SNS 이용의 일반화에 있듯이 세계 각국의 스마트폰 보급은 성장세이고 필수 요소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GPS와 구글 지도로 탈출 경로를 찾고 페이스북 페이지로 다양한 정보를 얻는 것이다. 난민들도 똑같은 사람이며 갑자기 전쟁이 일어났는데 스마트폰을 버리고 외국으로 간다는건 말이 안되는것이다.
반대 측은 예멘 난민으로 위장한 가짜난민이 입국해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예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먼저, 가짜난민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선 해당국이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성립되는 것이다. 하지만 예멘은 현재 내전 중인 국가로 이에 성립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 근거가 과거 중국난민을 토대로 생겨난 말인데 이는 예멘 난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이키 신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고 가짜 난민이라 칭하는데 헌옷이나 누더기를 입고 신발도 다 헤어진 것을 신는 사람만이 난민이 아니다. 난민이란 자신의 원래 국가에서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타국의 인도주의적인 수용을 기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3.2.2. 수용반대론


예멘 난민의 가짜 난민 논란이 일어난 것 자체도 그들 스스로 말레이시아는 안전했으나 일자리가 없었다는, 취업난민의 전형적인 변명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민이란 말 그대로 모국에 있으면 정치적 이유로 목숨이 위협받는 사람들을 의미하지, 취업이민을 위한 핑곗거리는 아니다. 우리는 못 살던 시절에 고학력자라도 외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탄광노동 같은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37] 심지어 베트남 전쟁 파병 등 깨끗하지만은 않은 국제적 이벤트에서도 자의 반 타의 반의 희생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현재 청년들의 취업난 역시 심각하고. 이런 상황에서 난민으로 받아줬더니 일자리 타령을 하고 알선해준 일자리도 개개인의 종교나 노가다라는 이유, 힘들다는 이유로 걷어찬다면 배불러 터진 가짜 난민들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한국에 오면 서울에서 일자리를 준다고 했다'며 거의 외국인 노동자 수준의 대우를 요구하였다. 현재 한국에서는 이미 노동의 목적으로 입국한 외국인도 많이 있다. 그럼 그 외국인 노동자 자격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바보라서 이런 난민 지위를 이용하지 않는 것인가? 당연히 자신이 본래 온 목적을 성실히 입증하는 것이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이런 판에 수백명의 난민이 한꺼번에 몰려와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이 일자리인 마당에 의심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 그들은 그들대로 '우리도 입에 풀칠하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본국에서 가져온 돈은 여기까지 오느라, 또 여기서 먹고 자느라 다 써버렸다. 복지만 받아먹지 않고 스스로 일해서 먹고살고 싶다는데 왜 이해해주지 못하느냐'고 항변하지만.
난민법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이민법'이 아니다. 본국에 잔류할 경우 정치적, 종교적 세력에 의해 살해당할 것이 확실시 되는 자들을 위한 생존책이다. 만약 그런 위기가 없다면, 그저 본국이나 제3국에서 먹고 살기가 힘들어 외국에서 본국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을 뿐이라면 정식으로 이민을 신청하거나 외국인 노동자 자격으로 입국을 해야 한다. 예멘 난민들처럼 관광하겠다며 들어오더니 갑자기 난민 신청을 하는 것은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이들을 난민이라 불러야 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목숨을 걸고 모든 걸 버린 채 타국으로 온 진짜 난민들의 대기시간을 길어지게 하는 해악에 불과하다.
실제로 동남아중국의 이민자들이 본국에서 탄압을 받았다며 서류를 조작한 뒤 난민 지위나 인도적 체류허가를 얻어 체류하는 경우는 매우 잦다. 최근 불법이민자들을 상대로 가짜 서류를 작성해주는 변호사들#이 체포되었는데, 이들은 난민신청이 거부되더라도 '일단 신청하면 불법으로라도 평생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했다. 또한 전 출입국관리 직원이 난민 브로커로 활동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렇게 가짜 난민을 들여오는 브로커, 그들의 난민 신청을 도와 주는 브로커들과 함께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체포되면 그제서야 난민 신청을 하거나# 합법적 체류기간을 모두 소진한 뒤 난민 신청을 해 한국에 눌러 앉아버리는# 외국인들도 많다. 이번 예멘 난민 사태만 해도, 예멘인인 척 가장한 기자에게 '134만 원을 보내주면 서울에 취업을 시켜주겠다'며 브로커가 접근을 했었다.# 즉 가짜 난민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렇게 유입된 가짜 난민들 중 일부는 인신매매, 마약밀매, 국제사기등 굵직한 강력범죄를 업으로 삼는다. 갈수록 그 수가 많아져 경찰들이 골머리를 앓는데, 경찰은 2018년 이러한 가짜 난민 범죄자 800여 명을 검거하고 100여 명을 구속하기도 했다.
애초에 정우성이 주장한 것처럼 '가짜 난민은 없다'란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는 '성폭행 무고자는 없다', '나쁜 장애인은 없다' 정도의 헛소리이다. 어떤 법망이든 허점이 존재하고, 그 허점을 악용하는 케이스는 반드시 존재한다. 그리고 약자는 약한 사람일 뿐이지, 남을 속이지 못하는 선인이 아니다. '가짜 난민이 없다'는 주장은 '모든 난민들은 모두 약하며 고로 선량하기 때문에 난민법의 허점을 악용하지 않는 순수한 집단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불과하다.[38]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가난은 난민 인정 사유가 될 수 없다.
또한 찬성측의 '모든 예멘 난민은 진짜다'라는 주장과 달리 난민 브로커 시장 자체는 취업 이주 브로커 시장만큼 자연스럽게 활성화되어 돌아가는 추세이다. 차이는 난민 비자 브로커 이용 가격이 취업 비자 브로커 이용 가격보다 비싸다는 점 하나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멘이 전쟁 중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나라 출신 모든 사람이 진짜 난민이며 공평한 난민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국내 밀입국 비용을 할인해주자.'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 난민 브로커가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난민으로 위장하여 한국에 들어왔던 테러범들은 우리가 모를뿐 분명 존재했음에도[39] 찬성 측은 테러리스트가 확실시되는 사람이라도 테러리스트가 아닐 1%의 확률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어떤 대처조차 거부한다. 하나 확실한 것은, 난민 브로커 산업은 엄연히 이민 브로커 산업의 일부라는 것이다.

3.3. 범죄와 테러리즘 문제



3.3.1. 수용찬성론


난민 범죄를 우려하여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이민을 원하는 난민일 경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별로 없으며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경찰 신고는 7건인데 이중 범죄 사건은 단 하나도 없다. 범죄를 저지르면 난민심사에 악영향을 주는 탓도 있지만, 난민 인정 이후에도 외지인으로서 정착해야 한다는 산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에는 난민과 범죄율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통계는 없다. 애초에 한국의 난민이 매우 적어 통계를 잡기 힘들고 실제보다 과대하게 인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범죄율이 늘기 때문에 난민의 범죄율이 늘어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난민과 직접 연관성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 난민을 포함한 외국인이 내국인보다 위험하다는 근거는 없다. 난민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어 추방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내국인 남성 범죄자가 존재한다고 한국 남성 전체를 범죄자로 매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반인륜적인 강력범죄가 빈발하지만 누구도 선진국 출신 남성을 모두 추방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공식 통계에 나타난 외국인 범죄의 발생 동향 및 특성’을 보면, 2011~2015년 5년 가운데 2011년 외국인 검거인원지수가 가장 높았다. 그때도 외국인 10만 명당 검거인원은 1591명으로, 내국인 10만 명당 검거인원 3524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스웨덴에서는 난민으로 성폭행이 1400% 증가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스웨덴 통계 당국은 인종에 따른 데이터를 집계하지 않는다. 무슬림 난민이 대거 유입되면서 전 세계적인 성범죄 국가가 됐다는 내용도 사실과 다르다. # 다른 예로 이민자의 경우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민자 때문에 독일 범죄율이 크게 올랐다.'고 주장했으나 독일에선 오히려 범죄율이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 이외에도 이민자 때문에 범죄율이 늘어난다는 통계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난민이 테러리즘과 연관되어 있으니 받아 주면 안 된다는 주장도 있으나 근거는 부족하다. 실제 2001년에서 2016년까지 미국에 정착한 난민 80만 명 중 5명만이 테러 혐의로 체포되었다. 또 2015년 독일에 도착한 이라크인과 시리아인 중 60만 명 중 17명만 테러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럽지하드의 90% 이상이 유럽 거주자였고 60%가 유럽 시민권을 가진 자국 출신이었다. 1975년부터 미국에서 난민에 의한 테러 공격으로 사망할 위험은 연간 36억 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사실 테러를 목적으로 입국하려 한다면 난민 신청은 최악의 선택이다. 막말로 양말 속에 뭐 들었는지까지 조사받는 난민보다, 그 나라에 돈뿌리러 온 외국인 관광객이나 엘리트 사업가 내지 고소득 전문직 등으로 위장하는 쪽이 훨씬 입국심사가 느슨하고 활동폭이 넓기 때문이다.
반대측은 유럽에서 일어나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사례를 보라며 들고 온다. 하지만 이 같은 시각은 아랍과 이슬람 문화를 바라보는 대표적 이슬라모포비아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슬람교 중에서도 극단주의적인 사례를 전체로 매도함으로써 타문화와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태도다. 이종일 대구교대 사회과 교수는 '사례분석을 통한 한국 인종편견 특성'이란 논문에서 "'극단주의'는 이슬람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기독교 내에서도 다른 종교에 대해 언제든지 행해질 수 있다." 하면서 "타문화와 타종교를 비판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적 교육은 극우주의자를 낳을 수 있다." 지적했다. 극단주의가 이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주장은 분명 맞는 말이나, 현대 기준으로 종교극단주의의 병폐가 표면적으로 가장 많이 표출되고 드러나는 종교가 이슬람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서도 극단주의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단순한 양비론적 가정만으로 이슬람권 난민들의 위험성을 간과하는건 옳지 않다는 주장도 매우 많다.
반대측은 또한 난민에 의한 범죄가 단 한 건이라도 발생하는 순간,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 일어난 것'이 되기 때문에 난민 수용에 반대한다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논리를 외국인 전체에게 적용하면 범죄를 수백, 수천건 저지르는 외국인들도 모두 추방하자는 주장도 가능하게 된다.

3.3.2. 수용반대론


찬성론의 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2015년 이후 3년 동안, 유럽에선 테러 66건이 발생하여 사망자 347명에 부상자 1300명 이상이 발생했다.#[40] 즉 '''1년에 테러사건 최소 20건이 유럽에서 발생'''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테러와 난민 유입은 관계가 없다는 찬성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물론 수백만의 난민 중 테러에 가담한 것은 몇 명 되지 않는다.[41] 허나 국가는 분명 단 1개의 법으로 인해 국가의 기본 의무인 국민 보호에 구멍을 만들었고, 외국인의 안전을 국민의 목숨과 맞바꿨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42] 그리고 국민들에게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인도주의를 지지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다.
또한 찬성측의 주장과 달리 '''난민과 범죄율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통계 역시 존재한다'''. 영국 BBC에 따르면 난민을 수용한 직후 독일작센 주의 범죄율이 10% 이상 상승했으며 '''범죄자의 90% 이상이 난민 출신으로 밝혀졌다'''.# 이는 독일 정부의 요청 아래 진행된 연구이며 영국방송협회가 보도했으므로 타당성과 근거가 명확하다. 사실 찾아보자면 이를 증명하는 주류언론사 자료만 해도 차고도 넘친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러한 무수한 보도가 존재함에도 '''찬성측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도는 몽땅 음모론 취급'''하고 있다. 증거는 없는 것이 아니다. 찬성측이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연구결과조차 '정부에서 난민에게 유리하게 조작한 것'이라고 보는 독일의 여론 또한 만만찮다. 당장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당시 독일 당국의 난민정책 실패를 감추기 위해 언론보도가 통제되었다는 의혹이 있으며, 로더럼의 경우에는 '''실제로''' 해당 지역의 경찰과 노동당 출신 하원의원이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창녀 취급하며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는 보도가 났기 때문. 게다가 쾰른 사건과 별개로 독일 경찰 노조는 "이민자들의 기존 독일 시민들에 대한 흉기 공격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사법당국이 이들을 살인미수가 아닌 단순 폭행으로 처벌하는 방식으로 강력범죄율 집계를 회피하고 있다." 하며 # 법을 개정해달라고 연방하원에 탄원하는 상황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독일의 범죄통계 그 자체가 이미 독일 당국이 실패한 난민정책을 얼버무리기 위해 조작했다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며, 이는 필연적으로 난민 수용 찬성론자들이 내세우는 '난민을 받아들여도 범죄가 증가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에 크나큰 헛점이다.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통계를 조작할 필요가 처음부터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2011년에 젊은 이민자들의 범죄율이 특히나 높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전례가 있다.# 이는 대량난민이 유입되기 이전이며 200만 난민이 수용되기 이전에 이미 제기되던 문제였다. 이로 찬성 측의 '너무 많이 수용해서 생긴 문제'란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다.
또한 무슬림들이 비이슬람 국가에 모이게 되면 거의 필연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유입/자생적 극단주의자들이 생성된다. 유럽테러한 것으로 유명한 IS단원 지하디 존 역시 유럽이 인도주의적으로 수용한 난민가정 출신이고 압델하미드 아바우드도 유럽에 정착한 이민자 출신이다. 이는 다른 종교 혹은 문화권 이민자들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며, 미국도널드 트럼프의 반이민정책에 대해 내부 여론의 비협조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반면 유럽쪽의 반이민정책이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 이유와 흡사하다. 차이점은 딱 하나인데 미국 이민자들은 대부분 라틴계 세속주의자들로 최소한 지금 있는 미국의 사회 문제를 더 키울지언정 없는 문제를 만들진 않지만, 유럽 이민자들은 샤리아 게토 같이 이전에 없던 문제를 새로 만든다.
그리고 이들의 선동과 활동을 중심으로 샤리아 도입요구 등 극단주의 활동이 무슬림들을 대거 받아들인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나라인 영국샤리아 법정은 2014년 기준 85개로 이들은 영국과의 문화적 동화를 거부하며 비민주적, 중세시대 개념의 재판과 행동들을 일삼으며 영국 정부와 정면충돌 중이다. 이미 우파 정권이 집권해 반난민 정책을 '''국민적 지지를 얻으며''' 시행하는 헝가리, 폴란드 같은 사례나, 나치 독일의 영향으로 극우정권에 대한 정서적 반감이 있는 독일에서 비나치 세력이기는 하나 엄연히 극우에 속하는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 급성장하고, 전통적으로 서방국가 치고는 비교적 좌파가 강했던 프랑스에서 극우정권이 탄생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우려할 만큼 반난민 정서가 강해진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게다가, 로더럼 아동 성착취 사건,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과 같은 강력 성범죄, 2016년 브뤼셀 테러 사건, 2016년 니스 테러, 2016년 베를린 트럭 테러, 2017년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와 같은 테러 사건 등은 무수히 발생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매년''' 원주민 여자 청소년 1400명가량이 난민들의 성노예로 이용된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렇게 한번 터졌다 하면 '''사회 전체'''를 흔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거대한 테러들과 희생자들이 생기기 때문에, 난민 혹은 이민자에 의한 범죄를 내국인이 저지르는 범죄와는 별개의 차원에서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난민 수용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근거인 범죄와 테러 위협은 찬성론자들이 생각하듯이 일률적인 이유가 아니라는 뜻이며, 기계적인 데이터만으로 반대론자들을 설득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 또한 독일 못지않게 암울한데, 이는 프랑스가 이미 이슬람 인구 400만 명으로 이슬람 대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 인구의 35%가 '자살폭탄테러는 정당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는 160만 명에 달한다. 프랑스는 말 그대로 이슬람의 심기를 거스르면 언제 폭탄테러를 당할 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영국 무슬림의 75%, 즉 2백만 명은 '무함마드를 희화화한 만화가는 법적으로 사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무슬림의 13%가 '일반인을 향한 테러행위는 정당화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19%는 '알 카에다에게 호의가 있다.'거나 '알 카에다에 대해 모른다.'고 답변했다. 이는 50만 명에 이른다. 또한 미국의 무슬림 학생 단체(MSA) 소속 학생은 공개토론회에서 '유대인을 한 곳에 몰아넣고 학살해야 한다.'는 테러리스트 집단의 주장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바도 있다. '''그것도 유대인 교수 앞에서.'''# 이는 더이상 소수드립으로 해결 될 수준이 아니다.# 이와 더불어 중동지역의 급진주의자까지 합치면 지구상에는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그 동조자가 최소 6억 명이 존재한다'''고 한다. 최소라고 말한 것은 이는 조사가 불가능했던 사우디아라비아 등 각종 국가는 제외한 수치이기 때문. 이들을 합치면 8억 명이 넘어갈 수도 있다.
또한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IS 조직 활동을 벌이며 폭탄을 제조하던 자칭 난민신청자'''가 붙잡혔다. '무슬림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따위의 주장은 경찰들과 인터폴이 제 할일을 잘 하고 있는 덕분이지, 대다수의 무슬림들이 평화로워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이민특수조사대는 꽤나 일을 잘해서, 무슬림 테러단체와 계속해서 연락을 취하며 위명 여권을 들고 입국한 우즈베키스탄인을 추방한 적이 있다. 기사화된 것이 이것뿐이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테러와 싸우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존재한다.#[43] 또한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했을 당시 카이로 이집트는 이를 축하했다는 '''무슬림의 증언'''이 나왔다.# 이처럼 냉엄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에 대한 정당한 우려와 걱정을 이슬라모포비아 때문으로 몰아가며 논점을 흐리려 드는 것은, 반대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찬성측이 PC 문화에 빠져 현실을 고의로 회피한다는 비판도 가능해 진다.
해외 사례를 볼 필요도 없이 이미 한국에서도 난민에 의한 강력범죄들이 벌어지고 있다. 상술한 IS 선전 및 사제폭탄 제조자 외에도 2017년 1월엔 자칭 예멘 난민이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클럽에서 20대 '''한국 여성 4명의 가슴, 엉덩이, 다리를 만지고 볼에 입을 맞추고는 “원나잇 하자.” 하고 추행'''을 해 같은 해 3월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고, 이후 18년 6월에는 '''마약''' 구매와 난민 심사 탈락, 인도적 체류 불허에도 불구하고 출국하지 않아 실형을 선고받았다. 난민이 이슈화되기 전인 2015년 2월 16일에도 이집트 출신 자칭 난민이 경북 경주시의 한 금은방에서 시계 수리를 맡기는 척하면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금은방 주인을 찌르고 46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가''' 강도살인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2018년 7월 26일에는 수단 출신 난민이 가격이 비싸다며 빵집 유리창을 부수고 가게 주인에 벽돌을 던졌다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심지어 초범도 아니다. 법원도 미래에 재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으나 강제송환금지 조항에 따라 추방조차 할 수 없고, '난민의 특수성'을 참작받아 6개월을 양형하였다.
그리고 범죄와 별개로도 매우 많은 난민들은 이슬람 배경을 바탕으로 한 가치관과 사상 자체가 '''매우 여성 차별적'''인 사례가 다수로, 특히 비무슬림 여성에게 그러하다. 강성 이슬람권 국가들이 워낙 시정되지 않은 전근대적인 여성 억압 문화가 있는 데다, 다른 문화권에 가서도 적응하거나 개선하지 않고 원리주의적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고수하는 경향이 무시 못할 정도로 크다. 한국에서도 한국 여성들과 결혼한 일부 무슬림 남성들이 아내와 가정에 샤리아식 생활을 강요하면서 한국 여성들을 자기들 식으로 억압하고 공격적으로 위협할 소지가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기도 했으며, 과격한 무슬림 남편에 의해 피해를 보는 한국 여성들의 사례는 현재진행형으로 실제로 일어나고 있어서, 한국 대사관에서도 무슬림 남성들의 결혼 사기에 대한 위험을 공지로 알리기까지도 했다.
또한 일부 시민단체에서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이나 퇴행적 좌파적 사상에 물들어, 여성과 성소수자, 소수 종교인들의 인권을 가장 악독하게 침해하고 잔인하게 탄압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인데다 다른 나라에 가서까지 약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을 강요하는 무슬림들에 대한 '인권’을 계속 주장하면서 대중들의 불안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 역시 국가들을 가리지 않고 선진국 국민들에게 말 그대로 '''염증을 일으키고 있다.''' 결국 미국유럽에서는 이러한 추세가 이슬람권과 적대적인 스탠스의 우파의 집권에 힘을 실어주는 꼴을 만들어내는 중이기도 하다.
또 온건주의자들은 '''대다수의 이슬람은 온건하다'''라 주장하는데, 이 주장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들 중 '''단 1명이라도''' 극단주의자로 돌아서서 반사회적 행위를 벌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피해자가 당신이 될 가능성이 없다는 보장은 없다.''' 일반적인 다른 국가 시민도 아니고 15%에서 25%가 과격주의자 지하드 맹종세력임이 확실시 되는 이슬람 난민을 두팔 벌려 받는 것은 자국민의 목숨을 놓고 하는 도박행위에 가깝다.
그리고 독일 난민 캠프에서 봉사하던 19세 소녀를 강간 살해한 사건#이나 지난 21일 독일의 여성 난민 인권운동가가 무슬림 이민자에게 살해당하고 시체도 소각당할 뻔 한 사건# 같이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뒷통수를 치는 사건을 자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대중들의 반감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난민 심사에 탈락한 시리아인이 인도적 체류 허가 제도를 악용해 국내에 계속 머무르며 '''IS를 선전하고 사제폭탄 재료를 모으다가''' 경찰에 검거된바 있다.
난민이 범죄자 혹은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나 사례가 적다는 데이터는 설령 사실이라 할지라도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단 1건이라도 발생하는 순간,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 일어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감수하지 않아도 될 위험 요소를 굳이 자청하여 실제로 피해자가 나왔을 때, 과연 희생자 유족 앞에서도 인도주의와 인권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런 희생자들마저 '인권 선진국으로 가는 과도기에 거쳐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자 희생'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44] 난민을 수용하고자 한다면 먼저 자국민들에게 우리가 감내하게 될 희생에 상응하는 이익이 있음을 설득해야 공감대가 생길 텐데, 현실에서는 그저 '일방적인 희생을 각오하면서까지 남을 돕는 착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고만 있으니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45]
그렇다고 현재 문제가 되는 이슬람 계열 난민들이 인권 의식이 높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기들이 절대적 기득권자로 있는 이슬람권 사회에서 무슬림들이 자행하는 인권침해 사례들은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수준에 있으며[46] 그런 행동들의 기반이 되는 신념(샤리아)을 다른 문화권에 가서도 거의 꺾지를 않고 똑같이 행동을 하려 든다. 재교육, 재사회화를 하면 된다고 말은 쉽게 하지만 한국 정부에서 그런 걸 제대로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부터가 의심스럽고[47] 이런 부분들에 있어 훨씬 선진적인 국가들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샤리아 폴리스, 자칭 샤리아 적용 지역, 샤리아 법정 같은 게 생기고 있는 마당에, 제대로 된 효과가 있을법한 교육 프로그램 모델도 제시하지 못 하고 지식도 없으면서 무작정 재교육 타령 하는 것도 책임감이 없어 보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테러 목적의 위장난민'''에 대한 증언들까지 연이어 터지는 판이다. 다른 나라의 예시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IS 연계 테러 모의 혐의로 감비아 난민 체포, 심지어 '''예멘 난민들 중에서 사우디 국왕 암살 모의를 한 사람까지 있었다고 한다!''' 4명의 예멘인 테러 용의자가 사우디 국빈 암살 모의로 체포 오래 전도 아니고 바로 작년의 일이며, 말레이시아를 국빈방문한 사우디 국왕[48]을 암살하려던 시도가 있은 후 말레이시아 정부는 예멘 난민들에 대해 체류자격 연장을 거부했고, 그들은 우리나라로 왔다.
BBC는 '스웨덴 당국이 난민이 저지른 성범죄에 대해서 은폐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스웨덴의 신문사 '다겐스 뉘헤테르'는 경찰의 집단 성폭행 사건 관련 '''비밀 문건에서 이민자 출신의 성범죄 용의자 200명을 누락하고 50명만 발표할 것'''이란 내용을 확인했다. 또한 신문사 더 로컬은 특수 코드 R291 아래 5천 건이 넘는 이민자 관련 범죄기록(방화, 협박, 폭력)을 방관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웨덴의 성범죄 미해결 사건 수는 최고치를 찍고 있으며 당연히 시민들은 "국가가 '인권우선주의' 아래 난민들의 범죄들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난민 수용 이후 스웨덴의 범죄율이 급증한 것 역시 사실이고, 스톡홀름의 경찰서와 자동차는 지속적인 방화에 노출되었으며 언론들은 이를 '스톡홀름의 전쟁터(War zone)'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이는 난민 대량 유입 사태 이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일들이다.# 또한 성범죄율 또한 급상승하여 경찰은 '더 이상 치안을 보호할 인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였고, '''7세''' 소녀가 집단 강간을 당한 사건을 두 달 동안이나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찰 당국에게 질문하자 경찰관들은 '''"3살짜리도 강간당했으나 조사하지 못하고 있으니 기다려라."'''라고 답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웨덴 당국은 인종이나 종교와 관련해 범죄율을 조사하는 것을 불법화하였고, 또한 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조차 막았다. 난민과 범죄율 상관관계에 대한 조사는 없는 것이 아니라 시도 자체를 정부가 막은 것이다. 이런 난민들의 행패 때문에 2018년 9월의 스웨덴 총선거에서 극우 성향 스웨덴 민주당이 제1당까지 바라보고 있는 판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난민과 범죄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통계가 없다고 하는데, 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정치적 올바름에 사로 잡혀서 이슬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나 문제점에 대해서 보도하거나 드러내는 것을 정부 차원에서 막는다. 토미 로빈슨은 영국무슬림들의 그루밍 갱 문제에 대해서 취재하던 도중에 법정모독죄, 치안 방해라는 어이없는 죄목으로 체포되었고 그와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인종차별주의자, 극우라 보도했으며 판사는 토미 로빈슨 사건에 대해서 함구령을 내리는 식으로 진실을 가리려 했다.#
스웨덴노 고 존 역시, 스웨덴 당국은 부정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한다는 증거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다큐멘터리 <STOCKHOLM SYNDROME>의 인터뷰에서 두 경찰은 "실질적인 통제 상실 구역이 존재하며, 경찰들은 범죄자를 추격하다가 범죄자들이 일정 지역 안으로 들어가면 추적을 포기한다." 하고 밝혔다. # 인터뷰 경찰관은 후에 이 인터뷰 내용을 철회하였고 경찰서 역시 '그러한 공식적인 지침은 없다.'고 발표하며 이를 부정하였으나, 우체국에서는 이민자 거주지역에서 집배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일부 구역의 배송을 금지하는 철칙을 발표했다. 이러한 통제 상실 구역은 매년 늘어나는 중인데, 2017년에 23곳으로 확장되었다.# 물론 스웨덴 당국은 아직 이를 부인하므로 판단은 읽는 이의 몫이다.
독일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공식적으로 난민들 때문에 생긴 노 고 존이 존재함을 인정하기도 했다. # #
마지막으로 찬성측은 '난민의 범죄 1건 1건이 무서워 추방할 거면 외국인을 다 추방하라'라며 극단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의 유입은 우리나라에게 실보다 득이 많다. 첫번째로, 관광객들은 잘 알려진 수입원이 되고, 한국의 입지를 알려 전체적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인다. 또한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소비를 하거나 국내에는 없는 노동력, 정보, 자원을 판매하는 등 무역의 가장 중요한 골자가 되기도 하며, 문화 교류를 도와 예술 발전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물론, 외국인 범죄라는 단점이 분명 존재하나, 이 역시 비자를 발급받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걸러지기 때문에 백 그라운드 체크가 아예 불가능한 난민들과는 수준이 다르다.[49] 그럼에도 '범죄 가능성'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입국을 거부하라는 것은 윗동네처럼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은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 장점 중 난민이 가진 것은 노동력 하나 뿐인데, 이마저 국가가 통제하기 불가능 하다는 점에서 단점으로 귀결된다.[50] 그럼에도 찬성측은 아예 성질이 다른 둘을 하나로 묶어 같은 취급을 해줘야만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합법적 외국인 노동자들은 고용조건을 만족하고 범죄, 교육, 질병여부를 모두 확인받아 비자를 발급받았고 그를 통해 대한민국에 들어온 것이며, 불법적으로 입국한 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의 노력과 정부의 협력을 무시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 대한민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기 위해 들어온 난민 신청자와 대한민국/경제와 본국의 경제성장의 다리를 놓기 위해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어떻게 같은 취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난민은 다른 목적으로 입국한 외국인들과 분명 다르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찬성측은 이들은 둘이 '사람'이라는 공통점 하나만을 가지고 '외국인을 수용하고 싶으면 난민도 수용해, 아니면 북한 꼴 만들든가' 수준의 논리로 반대측을 공격하고 있다.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의 SNS에서 총 든 사진, 마약사진이 게시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거의 심사에서 탈락, 불인정됐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 그리고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항목에서도 알수있드시 무슬림들은 이슬람에 대해 비판과 풍자만 해도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메이저 종교중 비판 및 풍자했다고 폭력 및 살인까지 하는 종교는 없거니와 표현할 자유를 대놓고 위협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결코 이슬람자체를 좋게 볼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이슬람공포증은 결코 간단하게 생긴게 아니다.

4. 대한민국의 국가 수용 역량



4.1. 인구 비율 문제



4.1.1. 수용찬성론


반대측에서는 대체로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심하며, 무슬림들이 늘어나 한국에 모스크들이 생기고 이슬람 국가가 될까 우려하는 시선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한국은 현재 이슬람교의 비율이 매우 적어 집계조차 되지 않는 게 현실이고 난민 신청자 1만 명이 모두 무슬림이어도 이슬람 비율은 채 1%도 늘지 않기에 미래에 무슬림 국가가 될 가능성은 극히 드물다. 또한 무슬림들의 높은 출산율로 무슬림 비율이 늘어날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사실 대체로 무슬림들의 출산율이 높은 편이긴 하나, 여타 국민과 마찬가지로 교육 수준과 생활 수준이 오를수록 출산율이 줄어들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단순히 '무슬림'이라고 출산율이 높은 건 아니란 소리. 현실적으로 현재 연간 난민 수용율 약 '''1%'''에 근거하여 난민 수용을 추산할경우 찬성측이 주장하듯이 그렇게 심각한 사례는 오지 않는다. 연간 난민 인정자가 100명인 한국과 몇십만명을 수용하는 독일 등과 비교하기에는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한국의 매우 보수적인 난민 정책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유럽급으로 이슬람이 급속도로 늘어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대측 주장에서는 찬성측이 낮은 난민인정률에 강한 반감을 보이면서도 막상 인구 비율 문제에 관해서는 한국은 난민 인정률이 낮으니 괜찮다고 자가당착에 빠졌다고 하는데, 이는 찬성측의 주장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첫째로 찬성측, 그 중에서도 난민 인정률 상향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무한대의 난민인정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난민인정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수천만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 받아들이기도 전에 이미 예산이 부족해서 불가능하다. '한국은 난민 인정률이 낮으니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은 타 선진국에 비해 인구비율을 걱정할 수준이 아닐 정도로 난민 인정률이 매우 낮으니 위 단락들에서 설명했던 주장들을 토대로 하여 높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인 것. 둘째, 모든 찬성 측이 '낮은 난민인정률에 강한 반감'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난민 수용 찬성 측은 크게 '난민 인정률을 현행보다 높이면서 난민을 수용하자는 측'과 '현행을 유지하며 난민을 수용하자는 측'으로 나뉜다. 현행 유지 측은 현재의 난민인정률에 대해 반감을 보이지 않는다.

4.1.2. 수용반대론


  • 난민과 인구비례
난민 수용을 찬성하는 이들은 그저 지금 '난민의 숫자가 적으니 별 문제가 안될 것이다'라고 안이하게 주장할 뿐이다. 물론 당장 한 10만 명 받는 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난민 숫자가 미래에 현재의 몇배, 몇십 배 이상으로 불어나게 되었을 때 어떡할 지가 문제이다. 유럽처럼 엄청난 수준이 아니라, 1년에 난민 단 1만여 명만 받는다고 가정해도 10년이면 10만 명, 50년이면 50만 명이 된다. 더욱이 연평균 19000명(#)정도의 인구가 국외로 빠져나므로 해를 거듭할 수록 인구비율이 무시못할 수준으로 성장하게 된다. 단 이는 제주 난민 사태가 단기적이며 모든 난민을 전부 받는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 난민 신청자들의 가족 문제
"난민 신청자들 대부분은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본국에서 가족들을 데려오고 싶다."고 인터뷰에 응답한다. 독일의 터키인 이민 노동자 사례를 보면, 이민 안 받으려고 터키인 노동자는 무조건 단기비자 발급 후 귀국시키던 독일도 끝끝내 장기체류를 허용하고 뒤이어 가족들의 국내정착을 허용하다가 수백만에 달하는 터키인이 독일에서 살게 되었다. 인도적인 관점에서 거절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독일의 터키인 노동자 사례는 난민과는 사정이 다르지만, 난민들의 경우도 연간 만 명만 받는다 해도 연간 만 명에서 순식간에 4-5만이 될 수 있다. 단 이 주장은 난민이 올 때 그 가족이 같이 집계되는 경우(가족이 한 번에 올 경우)를 배제한 주장이니 통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 난민의 2세 문제
난민은 계획성 있게 자녀계획을 세울 만한 환경에서 사는 게 아니라서, '상황 나아졌을 때 많이 낳아둬야, 언제 또 영유아사망률이 높은 곳으로 쫓겨가서 애들이 많이 죽어도 남길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살고 있고, 그래서 오늘날에는 제3세계에서도 흔치 않은, 많은 자녀를 낳는 일이 난민가정에서는 매우 흔하다. 당장 한국전쟁 당시 아이를 버리고 간 부모들이 많았는데 하는 말이 이랬다고 한다. 시대가 나아지면 애는 다시 낳아도 된다는 것. 물론 한국은 이렇게 버려진 아이들을 당당히 외면할 수 있는 막장국가가 아니므로 결국 이들은 고스란히 국가 몫이 된다.
  • 프랑스의 무슬림 이민자 과포화 상태
프랑스의 경우 21세기 기준으로 무슬림 이민자만 700만 명인데 이렇게 될 때까지 불과 반세기, 50년(연간 14만 명)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7백만 명의 무슬림들은 난민 수용 찬성론자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프랑스 각지에 모스크를 세우고, 극단주의적 사상에 과도하게 빠졌으며, 이슬람 자치구역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거나 자기들의 자치구역 안에서는 이슬람 종교율법인 샤리아를 프랑스 법률보다 우선하게 해달라고 현재진행형으로 거대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중이다. 그나마 프랑스 정부가 강경하게 딱 잘라버리고 테러를 하건 말건 협상은 없다는 태도라[51] 최악의 상황에 이르지 않고 있을 뿐이다.
  • 영국내 이슬람계 난민 여론조사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저명한 언론사인 텔레그래프영국에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영국 거주 16~24세 무슬림의 40%가 '영국에서 샤리아법 아래서 살고 싶다.'고 답했다.#. 또한 소수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영국에서 샤리아 재판은 1980년대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영국 내 샤리아 법정은 2008년 기준으로 12개에 달했는데, 이게 2014년에는 85개로 늘었다. # 결론적으로 난민 인구가 과다하게 늘어나는 현상을 방지하고 싶다면 난민통과율(=난민인정율)을 연간 만 명 미만(2017년 난민 인정자 수는 171명#)으로 낮춰야 하고 인도주의적으로 대처한다면 난민통과율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인도주의적 찬성파는 한국의 낮은 난민인정률에 강한 반감을 보이면서도, 막상 인구 비율 문제에 관해서는 '한국은 난민 인정률이 낮으니 괜찮다.'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 난민의 한국국적 요구 문제
난민들이 언젠가 자신들의 고국에 돌아간다면 다행이지만, 이런저런, 특히 아동 인권의 일환으로 제공되는 교육을 받은 아이들을 명분으로 한국에 눌러앉게 요구하거나, 한국 국적을 요구하면 거부하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순 난민 신청자가 아동인권의 일환으로 제공되는 한국 교육을 받은 아이들을 내세워, 동정심에 호소하며 난민 인정 혹은 한국 국적을 요구하는 사태가 나온다면? (예: "이 아이는 제가 한국에 온 뒤 태어나 한국에서만 자랐고, 한국어밖에 할 줄 몰라요! 제 고국으로 돌아가도 살아갈 수 없어요. 그렇다고 저만 고향으로 돌아가고 생이별할 순 없어요. 부모인 제가 옆에 있어줘야 해요!") 혹은 이슬람권 국가 출신 불법체류자나 인도적 체류자가 국내에 머물며 다른 종교로 개종을 하고 종교박해를 근거로 난민 인정을 요구한다면? (예: "한국에서 기독교로 개종했기 때문에 다시 고향인 무슬림 국가로 돌아가면 박해당합니다. 난민으로 인정해주세요!" 실사례도 있다. 개종했는데 이란 돌아가라?…친구들 나서 '난민 인정') 난민 수용의 부담이 일시적인 것이 아닌, 영구적인 것으로 변할 수 있다. 미래의 대한민국의 저출산이 문제되는 이유는 고령화로 인해 부양자의 비율이 늘어나고, 피부양자가 감소하여 부양자에 대한 복지를 유지하기 갈수록 어려운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생산인구가 아닌 부양인구가 된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일을 해서 세금이나 사회기금을 납부하기보다는 수용국의 복지만 받고있다. 아무리 난민수용이 옳을지라도, 저출산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심각해지는 현 상황에서, 부양해야 될 가능성이 큰 난민 수용을 인구비율상 난민 수가 적으니 찬성하라는것은 재정상, 그리고 사회적 문제를 고려하면 납득하기 어렵다.
  • 난민 수용구역 및 난민의 거주지 문제
한국은 국토의 7할이 산지이고 용적률을 높이기 위해 아파트 등과 같은 공동주택을 짓고 거주한다. 만일 난민들을 인구비율이 적다는 이유로 수용한다면, 그 주변의 대다수의 한국인들과 충돌(난민의 경제력을 볼 때 주로 난개발 지역의 하층민과 대립)을 피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국토가 적고, 사람이 거주가능한 토지가 적어 관리할 수 있는 난민 수용 거주지가 제한되기 때문에 한국인과 대면 접촉시간이 늘기 때문이다. 단순 거주뿐만 아니라 난민신청자의 수용시설도 문제이다. 님비현상을 고려할 때, 대안학교, 종합병원, 장애인 시설 등 반드시 필요한 시설들도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주민반대에 좌초되는 경우가 많은데, 난민 수용 시설을 어디로 한단 말인가? 반대하는 주민의견을 무시하고 집단 난민 시설지를 신청할 정치가는 아무도 없다. 이 부분에서는 난민 수용 비율만 가지고 수용을 찬성하라는 이상론보다는 난민을 얼마나, 어디에서, 언제까지 수용한다는 구체적 계획을 토대로 난민 수용을 주장해야 반대 의견과의 건전한 토론이 될 것이다.
  • 난민인정의 적정인원 산출이 난해함
찬성측은 반론으로 '적정한 접점'을 찾아서 수용하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결국 말만 쉽다. 애초에 적정한 숫자의 난민이 얼마인지는 찬성측이나 반대측이나 알 길이 없다. 단지 반대측에서는, 찬성측이 제시하는 적절한 수용율이 성공사례가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어 난민인정율을 현행보다 낮추는 게 좋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찬성론자 측에서는 우리나라에는 '더 받아들여야 한다'면서도 유럽의 모든 실패사례에는 '너무 많이 받아들여 생긴 일'이라는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찬성측이 (무의식적 혹은 의도적으로) 간과하는 사실 중 하나는, 대다수 난민의 경제상황이 선진국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난민 만 명을 수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이민자 혹은 외국인 노동자 만 명이 아닌, 기초 생계 지원이 필요한 빈민 몇 만 명을 수용하는 것을 뜻한다. 이번 제주 난민 사태와 같이, 취업 알선을 인도적으로 수행해주어도 적지 않은 수의 난민신청자들이 여러 이유로 인해 자의 또는 타의로 일을 그만두었으며, 해외의 경우 난민의 취업률이 1프로대였고 99프로가 수용국의 복지로 연명하였다. 난민 수용 찬성의 근거로, 생산인구가 감소하므로 수용하자는 주장이 현실성이 없다는 결과로서 난민을 수용하면 반드시 난민의 생계 혹은 복지에 대한 세금이 지출될 것이다.

4.2. 경제적, 재정적 지원 문제



4.2.1. 수용찬성론


[image]
난민을 받아들였을 때 2년 내에 실업률이 떨어지고 국가의 1인당 GDP가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
난민들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도 사실무근이다. 흔히들 일자리 수는 정해져 있고 난민이 늘면 청년 몫이 줄어든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연구 결과 난민을 받아들였을 때 2년 내에 실업률이 떨어지고 국가의 1인당 GDP가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를 한국에 적용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진단했다. 난민이 적응하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계속 나오고 있다. 영국이코노미스트지나 세계은행, IMF 등에서도 '''난민 수용이 오히려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의견을 내는 중이다.이코노미스트, 세계은행, IMF 대부분의 난민들이 대한민국의 청년 실업자들과 취업경쟁에서 다툴 확률은 별로 높지 않다. 이는 난민 출신 이민자들의 주된 취업직종이 소위 3D로 대한민국 청년들은 오히려 꺼리는, 인력공백이 생기기 쉬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인구 감소와 경제시스템의 위기로 미래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상황에 부닥쳐있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세계 최저인 합계 출산율 1.2명(2018년 기준이다. 2019년에는 더 떨어져 무려 '''0.88명'''! 평생 애를 한명도 낳지 않는 수준이다.)은 오르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한국은 생산자도 소비자도 줄어들어 경제도, 국방도 유지하기가 어려워 질 것이다. 대안은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폐쇄적이던 이민 정책을 수정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숙련기술 노동자나 산업연수생 등의 이민을 적극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 중인데 고급 노동력을 확보하면서도 위에서 언급된 기존 국민들의 일자리 박탈을 최대한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한국에겐 좋은 참고대상이 바로 옆에 있는 셈.
법무부가 2018년 7월 5일에 발표한 공식 입장에서는 "언론이나 SNS에 게재된 내용 중 오해의 우려가 있는 내용에 대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하며 자료를 첨부했다. 법무부는 제주 난민 사태에 대하여 "취업분야는 국민들이 취업을 기피하는 농‧축‧수산업 및 요식업 등 제주도 내 인력이 부족하고 국민 일자리 잠식 가능성이 적은 업종으로 제한하고 있음"이라고 밝혔다.
특히 6.25 참전용사의 연금과 난민 지원 생계비의 비교에 대한 루머가 퍼졌다. '6.25 참전용사의 연금보다 난민 지원 생계비가 더 많고, 참전유공자는 지정병원에서 고작 60%의 지원을 받을 뿐인데 난민은 무상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지' 묻는 질문에 법무부는 사실과 다르다 하면서 "6·25 참전유공자는 월 30만원의 참전명예수당을 지급받으며, 기초생계비는 일반 국민과 동일하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1인 가구 기준 501,632원을 지원받을 수 있음. 참전유공자는 보훈병원에서 본인부담비용의 90%를 감면 혜택을 받음."이라고 밝혔다. 반면 난민은 "난민법에 따라 난민신청자가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신청일부터 최장 6개월까지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음(최근 4년간 평균 3.5개월). 생계비는 난민신청자 모두에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요건과 나이, 질병 등을 고려하여 기준에 부합하는 취약자를 선정"한다며, 선정될 경우 "난민신청자 생계비 지원 기준금액은 긴급복지지원법상 생계지원금액인 1인 가구 432,900원(센터입주자 216,450원)임. 의료지원의 경우 전염병 예방 등 국민보건상 필요한 결핵, 매독, 에이즈 등 기본항목에 대한 검진비용만을 지원하며, 부상이나 수술 등으로 긴급한 치료를 받은 경우에는 의료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음"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결과를 말하자면 모든 난민신청자가 지원금을 신청하였으나, 실제로 인정되어 돈을 받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4.2.2. 수용반대론


난민 수용을 꺼리는 의견의 다른 근거는 경제적 이유다. 경제적 이유에는 단순한 난민 공포, 가난 공포 같은 정서적 요인을 넘어 중요한 쟁점이 있는데, 대한민국은 현재 북한과 휴전중이지만 특별한 문제가 발생치 않을 경우 가까운 장래에 일단 북한과 종전협정을 맺게 될 것이고, 그 이후에는 북한과 경협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필연적으로 북한 주민들에 대해 인도적 차원의 원조가 뒤따르게 될 것이다. 만일 북한과 통일이 되거나 최소한 그 전단계로 이행하게 될 경우 대한민국은 2010년대 기준 확인된 북한 인구 중 최대 90%가 넘는 2500만 명을 국제법상 난민으로 받아들여 한순간에 경제적으로 떠안아야 하는데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력으로는 매우 힘에 부친다.
그나마 북한 주민들은 같은 인종, 같은 민족, 같은 언어, 같은 문자, 같은 역사(현대사를 제외하고)를 공유하는 데도 불구하고 이들과 교류 내지 상호이주가 시작되면 엄청난 혼란이 예상되는데, 여기에 더해 문화도 인종도 언어도 종교도 완전히 다른 낯선 나라 사람들을 수천만 명 단위로 떠안을 여유나 도의적 책임이 있느냐는 이야기다.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을 받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질문에 대해서는 회피할 뿐 아무 답변도 내놓지 않는다.
또한,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국가에 보탬이 될 자질 있는 외국인을 수용했을 경우'''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한국인이라도 직종을 따질 여유가 없는 저소득층이나 고령층은 취업경쟁에서 이민자들과 정면으로 경쟁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도 공사장 등의 일용직이나 폐기물 수거 직종으로 가면 외국인 노동자들을 싼값에 고용하는 사업주들 때문에 한국인 노동자들이 밀려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인력시장의 '''80%'''를 중국인이 장악했다는 업계 종사자의 증언. 아무 외국인이나 무분별하게 수용할 경우 가뜩이나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국민들에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이 될 것이고 그러면 그들을 부양하기 위해 다시 국가나 지자체에서 지출을 늘려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게다가 미국에서 연방정부의 불법체류자 단속에 반발해 일어난 이민자 파업처럼 이민자들의 수가 어느 정도 늘어나 계층화될 경우 기존 국민들과의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 계층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과격한 행동'''을 벌일 가능성도 높다. 찬성 측에서 친이민정책의 예시로 내세우는 일본조차도 '''취업 목적의 난민 신청은 최대한 억제하는 상황이다'''. 이런 사례를 보면 그나마 받아들이고 있는 산업연수생조차도 철저히 제한된 분야에 종사시킬 목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난민 수용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는 또다른 헛점이 있는데, 바로 난민을 받아들임으로써 지출해야 하는 비용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는 점이다. 알기 쉬운 것은 난민 개개인의 생활지원을 위해 지출되는 세금이지만 지출 비용은 이것만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는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 난민들이 수용국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비용, 현지사회와 문화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난민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배려'하기 위해 확충해야 할 시설과 인원에 대한 비용, 여기에 더해 국민들이 느끼는 거부감을 '교화'하기 위해 쓰이는 홍보비용까지 엄청난 비용이 지출되게 되며 그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도 최종적으로는 실패할 수 있다. 자국의 저명한 경제지에서 '난민을 받아들이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분석을 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난민 받기 싫다고 EU를 탈퇴하는 영국을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가?
또한 찬성측은 난민들이 3D업계에 종사해주며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기여하리라 기대하지만, 그러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당장 우리나라에 들어온 예멘 난민들이 일자리를 지원받은지 1달도 되지 않아 60%가 중도포기하거나 해고됐으며, 재취업조차 시도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졌다. 인권단체 측은 난민들의 이러한 행태에 관해 정부를 탓하며 '일단 취업을 시키는 데만 바빠 적성이나 본업 등은 신경쓰지 않고 마구잡이로 일자리를 소개해서 그렇다.'고 비판했지만, 독일의 경우, '''수용된 난민의 99%가 비고용상태에 있으며 복지수당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아니, 사실은 99.99%에 가까우며 '''1만명당 1명 꼴로 취업을 한 상태이다'''. 2015년 유입 난민 취업률 10% 즉 찬성측이 예상하듯 난민들은 현지인들의 기피업종을 찾아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수당과 출산장려수당만 받으며 백수로 산다. 출신에 따라서는 고향에서 하루종일 잡담만 하고 도박하면서 대박 터트릴 생각만 하고 살았던 사람들도 꽤 많은데, 이 사람들이 선진국에 오자마자 성취감을 가지며 열심히 3D 산업에 종사하리라는 생각은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얘기이다.''' 애당초 의사소통도 불가능하고 현지문화를 수용할 의지조차 없는 이들이 사회발전의 토대를 건설하리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우리는 과연 인도주의라는 무형의 가치를 위해 얼마만큼의 현실을 희생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책임은 누가 지는 걸까. 난민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릇 인도주의에 대하여 반대하는것이 아니다. 난민을 수용하기 위한 어떠한 사회적 논의없이 난민을 수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일례로 언론에서 빈국이나 개도국에 지원하는 공적 개발지금 혹은 해외원조에 대해 우호적이다. 그러나 난민을 한국에 수용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난민 지원예산은 그다지 많이 배정되어 있지 않다. 만일 현재 언론에서 예측하는 수만큼 난민 신청이 폭주한다면, 난민 관련 예산은 급증하게 될것이다. 독일의 경우 수십만 난민을 위한 몇조원에 달하는 난민 예산을 편성하였다. 과연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각종 SOC, 국책, 복지 예산을 삭감하여 난민 예산으로 전용한다고 하면 난민 수용에 찬성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난민 찬성자들에게 특별세에 준하는 직접세를 부과한다면 난민 찬성을 계속할수 있을까? 실제로 부과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빈말로라도 '내가/우리가 그 돈만큼 세금 더 낼 테니 받아주자'고 주장하는 찬성론자는 적다.[52]
또한 제주도 출도를 요구하는 예멘 난민들에 대해서도 '불쌍하니 출도제한을 풀어주라.'고는 하지만, '우리 동네에 빈 집이 있으니 옮겨와서 살게 해달라.'는 주장은 드물다. 물론 개인의 호의로 난민들에게 자신이 사는 가정집 방 한 칸을 빌려줘 묵게 해주는 주민이나, 자신이 운영하는 숙박업소 방을 싸게 내준 호텔과 여관 경영자들, 기부금을 모아 펜션을 빌려 난민 쉼터를 만들어 머물 곳과 먹을 것을 주는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극소수이며,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정부가 (나와는 떨어진 곳에서) 어떻게든 하라'고 요구할 뿐이다. 물론 양심의 자유가 있는 국가에서 불우한 난민을 돕고자 하는 개개인의 신념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하나 그렇다면 자신의 도덕적 만족감을 위한 비용과 위험부담 역시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마땅하다.''' 난민 수용에 부정적인 사람들도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동등한 의무를 다하고 있는데, 스스로 솔선수범하지도 않으면서 정책적으로 난민 복지를 먼저 규정하려 드는 것은 도덕적인 행동에 수반되는 현실적인 고난만 다른 국민들에게 전가하려는 이기적인 행태에 불과하다.
난민을 지원해줄 돈은 하늘이나 인도주의가 내려주는것이 아닌 현실의 세금에서 지출된다. 과연 한국 사회에서는 난민 지원을 위해 어떠한 것을 포기하거나, 증세를 하면서 난민 지원 예산을 지출할수 있는지 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논의 없이 난민 수용을 인도주의 관점에서 찬성하라는 것은, 수용후 세금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
난민 문제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도 문제가 정말 많고 이에 대한 국민여론도 분노하고 있다. 뉴스1은 법무부 자료를 바탕으로 난민들이 6.25 참전용사들보다 더 높은 지원금을 받는다는 의혹을 반박했는데, 그 논리가 어이없다. 링크 참전용사의 지원금은 30만원이고 난민 지원금은 43만원인데, 참전용사들은 50만원이 넘는 기초생계비 지원이 가능하므로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초생계비는 극빈상태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가지는 권리이다.''' 참전용사들도 극빈상태에 떨어져야 기초생계비에 더해서 받는 지원금이고 또 국가가 망하기 직전일 때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 나라 망하지 않게 하겠다고 전쟁터로 달려가 고지에서 죽을고비 수없이 넘기고 살아 돌아온 대가로 받는 돈으로 일반적인 경우와 비교할 수 없다, 이를 애초에 참전용사 지원금에 포함시키는 어이없는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 '지원금을 신청했어도 실제로 돈을 받은 난민들은 1명도 없다'는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기는커녕 국민들을 엉터리 논리로 훈계시키려는 언론의 태도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다.
2018년 8월 7일 정부에서는 난민에 대해서 지원을 확대하고, 영주권 획득이나 귀화를 쉽게 하는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을 통과시켰다.

난민 사회통합 강화 및 처우 개선

• 난민특성에 맞는 사회통합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교육을 이수한 경우 영주권 또는 국적부여

등 이민정책과 연계한 혜택 제공

- 난민의 영주권 취득요건(거주기간 등)을 완화하거나 귀화요건(생계유지능력 등)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여 우리사회 영구적 구성원으로 정착 유도

• 민관 협력 난민지원 체계 구축

- 대한적십자사와 협력하여 난민인정자, 인도적체류자, 난민신청자 등에 대한 국내 생활

실태조사 실시,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 정책 방안 모색

- 유엔난민기구(UNHCR) 등 국제기구 및 시민단체와의 협력을 통한 난민지원체계 구축

및 난민에 대한 대국민 인식 개선

-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의 운영을 통한 난민신청자 초기 정착 지원 지속


5. 기타



5.1. 인종차별이슬람공포증 논란



5.1.1. 수용찬성론


반대측이 난민을 꺼리는 이유로 불안감과 혐오감을 들지만.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인종 다양성과 범죄 공포 사이 관계를 과대평가'''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는 일반적인 고정 관념이다. 그 책임은 난민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는 여태까지 정부가 올바른 정책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25년간 한국 정부가 난민협약 당사국으로서 의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면 법 제도를 만들고 국민에게 알리려는 꾸준한 노력을 했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
한편 문화 충돌과 관련하여 반대 측은 동화주의적 가치관이 당위인 양 말한다. 반대 측은 '자신의 문화를 고집하고, 난민 수용국과 동화되지 않는 난민들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난민에 대한 단순한 공포나 무지, 혐오인 것인가?'는 질문이 그들의 동화주의적 가치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동화주의적 가치관은 '''정답이 아니다.''' 이는 그저 다문화를 수용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반대측에선 통계 및 연구 자료등에서 지적하는 자료는 무시하고 가짜뉴스SNS를 통한 근거 없는 주장을 통해 지극히 집단간의 혐오감과 불안감에 근거해 반대한다는 것이다. 실제 소수의 몇 범죄 사례만을 들어 반대하는데 이런 논리로는 경우 '모든 남자는 잠재적 범죄자니까 추방시켜야 한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물론 한 사회는 분명 이방인을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한국의 국경 통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난민이 몰려올 조건이 안 된다. 반대측은 제주도에 온 540여명 예멘 난민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민과 난민에 대한 토론은 공포가 아니라 논리에 입각해 논의돼야 한다.'''

5.1.2. 수용반대론


난민 찬성측은 반대자들이 이유없는 불안혐오를 바탕으로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주장하고 있다. 많은 국민여론에서 난민 문제에 반대하는 이유는 국민들이 무작정 차별주의자나 이기주의자, 또는 제노포비아라서가 아니라, 대체로 이슬람의 각종 병폐에 대한 실질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난민은 선량한 일반 무슬림이며 이슬람 극단주의자는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이 일반 무슬림에 대한 정의도 오락가락한게 현실이다. 이것은 노르웨이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의 평화 회담 현장이다. 이곳에 모인 수백 명 무슬림 대부분 스스로 '나는 극단주의자가 아니며 평화를 추구하는 '''수니파'''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곧이어 ''''동성애자 학살, 여성혐오, 쿠란에 적힌 모든 사형방법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이 법을 전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다못해 이슬람들 스스로도 이슬람의 폐해[53]를 잘 알고있는 상황에도, 이들은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고, 모든 폐해는 그저 일부에 불과하니, 이슬람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면 인종차별주의자'라며 신중론자들을 매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간 몇만 명 단위로 난민을 받는다면, 이슬람 국가화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현재 유럽 국가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과 비슷한 난민 사회 내부의 이슬람 극단주의 창궐, '''국민들의 숨통을 옥죄며 끝이 안 보이는 테러리즘''', '''샤리아 게토화'''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지금까지 논의대상에서 빠져있는 문화충돌에 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난민들의 모국인 중동, 북아프리카, 시리아는 대한민국과 상반된 문화를 가지고있다. 이는 기존 원주민인 한국인과 충돌할 여지가 많다는 것을 추측하게 한다. 현재는 난민 신청자 수가 상대적 소수여서 문화충돌에 대한 주장이 개진되지 않으나, 난민 수용이 늘어날수록 문화충돌은 늘어날 것이다. 자신의 문화를 고집하고, 난민수용국과 동화되지않는 난민들을 보면 과연 이것이 난민에 대한 단순한 공포나 무지, 혐오인것인가? 난민 수용을 인도적으로 해주었는데, 왜 기존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난민들의 주장으로 인하여 바꾸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문화를 존중하는것은 양측이 같이해야 옳지, 한쪽만 하는것이 아니다.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인 대한민국에 왔으면 난민들은 유교 문화권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한데, 난민들은 그것을 존중하는 태도가 부족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고집하며, 주변 한국인들과 충돌한다. 난민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면, 그들의 국가 혹은 인접 수용국에 지원함이 옳지, 대한민국에 수용하여 한국의 문화를 난민들에게 맞춰주는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민주적이지도 못하다
또한 찬성측은 '''인종다양성과 범죄 공포 사이의 과대평가'''를 이유로 들며 인종과 범죄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거짓이다. 애초에 왜 한국과 일본이 비자 없이 가장 많은 나라를 방문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이는 이 두 나라 국민이 해외에서 저지르는 범죄의 수가 세계 평균과 비교해 유의미할 정도로 낮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시아계는 외견상으로 다른 인종과 확연히 구별되는데도 지구상에 '동양인의 범죄율이 높다'고 주장하는 나라는 단 1군데도 없다.[54] 만약 찬성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유럽국가에서는 동양인을 이슬람만큼이나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절대적이지는 않으나 인종과 범죄율에는 연관성이 있는 것이 현실이며[55], 이슬람의 강력범죄율이 높은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56]. 이러한 상황에서 이슬람 공동체는 자정작용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이런 강경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방관하고만 있다.[57] 그리고 난민 찬성파는 이들의 편에 서서 이슬람의 강경세력에 회의적인 국민들을 이슬람포비아로 몰아가고 있다.
게다가 인권주의에 앞장서고 다문화 수용을 위해 노력했던 '''유럽연합의 인구 55%는 이슬람 난민의 무조건적 추방을 요구하고 있다'''. 난민수용을 찬성하는 측은 20%, 절반에도 못 미치는 소수에 불과하다. 만약 찬성측 말대로 반대론자들이 논리 없이 공포심에만 휘둘리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라면, 유럽 인구의 70%가량이 인종차별주의자이며 이슬람 혐오자인 셈이 된다. 특히나 폴란드는 71%가량이 무슬림 밴(Muslim Ban)에 동의했고, 오스트리아는 65%나 동의했다[58]. '''이슬람 난민에 대한 반감은 전세계적 현상'''이며, 단지 한국인들이 속이 좁고 겁이 많아서가 아니다.
게다가 이들은 무슬림에게 문을 개방하고 많은 난민을 수용한 우리의 롤 모델들이다. 만약 찬성측의 주장대로 난민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평화로운 민족이여서 '범죄율을 희석시키는' 선량한 존재였다면 이런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왜 난민을 수용한 정당이 지지기반을 잃은 것인가? 게다 이 국가들 대부분은 초창기 난민 수용에 찬성하고, 난민이 자신의 땅을 밟을 때 환영팻말을 들고 그들을 응원했었다. 도대체 근 3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유럽에선 절대악으로 분류되던 나치즘이 부활하고 인종주의가 발생하고 극우, 국수주의가 위세를 떨치게 되었는지, 찬성측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한 채 이 모든 게 '만연한 인종차별 때문'이라고만 주장하고 있다. 이 정도의 혐오가 고작 3년만에 온 대륙 전체에 퍼져나간 상황에서, 난민은 무고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난민들이 진실로 무고하다고 해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적극적으로 난민 정책을 반대한다면 그 정책은 그만두는 것이 옳다'''. 국민은 그러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할 권리가 있으며, 난민을 옹호하는 극소수가 목소리가 크단 이유만으로 대다수의 의견을 묵살할 권리는 없다.
찬성파들은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인도주의적이라는 뉘앙스로 비판하거나, 인종차별, 이슬라모포비아, 극우파로 몰아가면서, 찬성파는 국제적으로 지지받는 인도주의적, 정의로운 사람 되기위해서는 난민 수용을 해야한다 주장한다.[59] 이런 비판을 제외하더라도, 여론 조사에서 절반 혹은 많은 수의 조사가 반대 혹은 엄격한 수용에 동의하는 마당에, 반대하는 사람을 극우파라는 딱지를 붙여, 반대측의 의견을 단순 혐오, 무지, 비인도적, 비논리로 무시하거나 훈계하려는 태도는 민주적이지 못하다. 대한민국민주주의 국가이며, 소수의 의견을 중시하되, 다수결의 원칙을 가지는 선거제도를 운영중이다. 난민 수용 반대하는 이들이 많다면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타협 혹은 중재되는 의견을 제시하여야지, 반대자를 혐오주의자, 극우파로 몰아가는것은 2차대전 당시 일본 정부가 전쟁에 반대하는 국민을 비국민으로 낙인찍은것과 다를바 없는 행동이다.
'난민 추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같은 논리로 나라에서 추방되어도 할 말 없다'는 주장도 감성에 치우친, 비논리적인 주장이다. '''국가는 어떤 경우에도 자국민을 추방할 수 없다'''. 애초에 둘이 비교할 대상이 되지 않는데, 찬성측은 외국인과 자국민을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하고 있다. 이는 '부모의 입양을 반대하는 자식은 고아가 되어도 된다' 수준의 막장변론과 다를 바 없다. 모든 인간은 모국에서 추방받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를 포기하고 모국을 떠난 것은 난민 스스로이다. 그 책임을 한국 국민들에게 덮어씌우며 '반박하는 사람들 역시 추방감'이라고 말하는 것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수준의 협박이다.
결정적으로 찬성측의 의견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다. 각각의 비유의 대한 건 위에서 언급했지만 짧고 굵게 이야기하자면, 결국 난민이 들어오지 않으면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상주의 때문에 그걸 반대하고 싫어하는 사람까지 '같이 고통을 감내'할 이유는 전혀 없으며, 그렇게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다.[60] 결국 찬성측은 난민에 눈이 멀어, 앞서 언급된 수많은 사례들은 일부의 문제로 축소, 은폐, 무시하고,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자국민'을 차별주의자로 몰고 고통을 감내하게 하는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이다.[61]
또한 한국은 분명 국경통제가 삼엄하지만, 난민신청자의 수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늘고 있다. 법무부는 "앞으로 3년 안에 누적 난민 신청자가 12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하였다. 찬성측의 '국경이 굳건하니까 과민 반응하지 말라.'는 주장은 미래는 알 바 아니니 손 놓고 구경이나 하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찬성측의 '정부의 잘못'을 일갈하는 주장도 한계가 있다. 한국에서 이제껏 받아왔던 난민은 대부분 탈북자, 중국인 그리고 동남아인들이 전부였다. 전체적으로 우리와 친숙한 문화를 지녔고, 그럼에도 정부는 오래전서부터 다문화 가정 지원정책과 공익광고를 통해 이를 밝혀왔다. 어느날 갑자기 지구 반대편에서 이슬람 관광객 수백명이 몰려와 난민 신청을 할 날이 오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더러 여태까지 중동 난민에 대해서 광고하지 않고 뭐했냐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비판이다.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국가에서 제공해야 할 올바른 정보와 올바른 정책' 또한 모호하다. 독일은 자국민에게 다문화를 꾸준히 알리며 '''히잡은 아름다우니 히잡을 쓰라'''는 공익광고를 냈었고, 스웨덴 등 다른 유럽국가들도 '이들은 새로운 국민이니 내성을 길러라(tolerance)'라는 문구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위에서 밝혔듯, 그 대가는 유럽 전체에 홍역처럼 국수주의가 번지는 결과로 돌아왔다. 비극적 사례는 쌓여만 가는데 성공사례는 전무하다. 성공사례는 적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전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에 '국민에게 이슬람 난민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여 문화충돌을 예방하고 올바른 법률을 제정하여 국민과 난민이 어우러지며 살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죄목을 비판하는 것은, 이 땅 위에 최초의 유토피아를 건설하지 못한 죄목을 비판하는 것과 똑같다.
또한 이들이 정부에게 가면 갈수록 지나친 요구를 하는 면모도 없잖아 있다. 원래 난민신청자들은 일정 기간동안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이는 이 법률을 악용하고자 하는 가짜 난민들을 막기 위한 방법이며, 또한 자국민을 보호하는 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는 '난민들이 돈이 없어 길거리에 나앉거나 굶기 시작하고 있다'는 소식에 인도적 차원에서 '''기존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했고, 대처 또한 빨랐다[62]. 그러나 난민과 인권단체 측은 자신들이 원하는 직종에 보내주지 않았다고 불평만 하고[63], 당국이 원칙까지 어겨가며 취업을 주선해준 데 대해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다.''' [64] 결과적으로 대다수가 일자리를 스스로 그만두거나 해고당했는데, 이들은 그것마저 법무부의 탓으로 돌리며 법무부 때문에 자신들이 게으르다는 편견을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난민신청자들의 '''직업적 자아를 실현시키기 위해 일자리를 주선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이 굶거나 노숙을 하는 것을 면하게 해주기 위한 인도적인 조치였다.[65] 또한 정부 측에서 난민이 취업할 수 있는 직종에 제한을 둔 것은 자국민 보호를 위한 것도 있지만, 최대한 빨리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당장 인기가 좋고 경쟁률이 높은 곳에 그들을 지원시켰다면, 난민들은 일자리를 얻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여론 또한 최악을 달렸을 것이 뻔하다. 내국인이 잘 안 와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곳에만 취업하도록 제한해 실제로 일자리를 잃는 한국인은 딱히 없었던 지금도 '난민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혐오 의식이 급속도로 퍼져가는 판인데, 정말로 한국인들도 없어서 못 가는 곳에 가도록 허락했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결국 난민들에게도 해가 되는 결과가 일어났을 것이다.
게다가 출도제한은 난민뿐 아니라 무사증 입국을 한 모든 외국인들에게 적용되는 것임에도 그걸 가지고 '정부가 난민 혐오를 확산시킨다.'고 설파하며, 뒤이어 정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걸었다. # 물론 출도를 원하는 사연은 사람마다 갖가지다. 본토에 이미 들어와 있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있고 싶다, 본토에 있는 큰 병원에서 치료받고 싶다,[66] 익숙지 않고 고된 제주도의 일자리가 아니라 좀더 편한 대도시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 제주도는 관광지라 물가가 너무 비싸 돈이 금방 다 떨어진다 등등.
만약 난민이 지금 얻고 있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권리가 아니라 '특혜'를 달라고 하는 것이고, 정부가 이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정부가 난민사태에 대응을 못하고 있거나, 난민협약 당사국으로서 의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교라는 이유로 수용을 반대하는 이들을 광신적인 기독교도들의 근거없는 공포라고 몰아붙이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이는 이슬람 선교사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개신교 선교사들의 이슬람 교리 공격에는 논리적인 허점이 많기 때문에 진보 진영과 이슬람 선교사들이 대놓고 조롱하면서, 대답으로 이슬람 근본주의를 슬쩍 끼워넣는 방법으로 이슬람 근본주의가 무오하다는 식으로 선동한다. 오히려 그 날고긴다는 이슬람 선교사들은, 역사적 근거와 사례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무신론자[67]들한테는 자신들이 반박을 어설프게 해봤자 질 게 뻔하므로 대놓고 토론하지 못한다. 기독교는 오히려 이슬람교 교리에서는 같은 신을 믿는 종교로 취급되기에 무슬림들이 가장 선민사상을 가지는 대상은 무교(無敎)인, 무신론자들, 다신교우상숭배자들이다. '''무슬림들은 때에 따라서는 기독교 교리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려 하지만 불교 교리나 힌두교 교리는 전혀 존중하려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슬람이 기독교를 증오하는 것 역시 사실이나[68]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대한민국에서 활동을 시작할 경우, 가장 위험에 처한 대상은 기독교(가톨릭+정교회+개신교) 신자들이 아닌, 불자들과 아무 종교도 갖지 않은 이들이다. 무종교자, 무신론자, 불교 신자, 다신교 신자[69]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불신자'라는 살벌한 단어 한마디로 취급되며, 이슬람 온건파들조차 힌두교나 불교 교리를 이해하거나 존중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70]
애초에 이들에게는 샤리아법이 국교 그 자체인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한국에서 대한민국 헌법을 무시하고 샤리아법을 따른다고 한다면 당연히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71] 괜히 '''정교분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무슬림들이 '샤리아법을 적용시켜 달라.'는 시위를 여러 번 한 사례가 있다.2018이태원 야간 집회 특히 종교법에 따르면, 이슬람교도가 타 종교로 개종할 경우 추방 혹은 심지어 사형까지 가능하다. 즉 이슬람 국가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없는데,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 와서 자신들의 법을 찾아서 종교의 자유를 없애려고 하는 건 은혜를 모르는 짓이다. 갑자기 무슬림들이 불어나서 '이 지역은 샤리아 지역이니 우리 법을 따르라.'고 하면 당연히 헌법 위반이다.[72]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남의 나라에 와서 이슬람을 믿을 수 있는데, 종교의 자유를 없애려고 하는 건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꼴이다. 이슬람교가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런 상태에서 무슬림 난민들을 받아들인다는 건 잠재적인 문제들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이미 현실화된 지역이 존재한다. 아예 인구 대부분이 가톨릭필리핀에마저 무슬림 자치정부가 생긴 걸 보면, 당연히 반대할만 하다.
혐오라는 표현을 언론, 정치권, 난민 수용 찬성측에서 너무 남발하는 것도 문제다. 불안하고 의심이 가는 것을 무작정 혐오라는 표현으로 멋대로 단정짓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슬람과 난민들을 무작정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함에 대한 근거가 차고 넘친다. 몇해 전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유럽에서의 난민 범죄와 테러 문제가 들려오고 있다. 또한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가 한국인에게는 전혀 이해가 안 가는 동떨어져 있는 종교다. 그리고 난민 문제를 결정하고 이를 실행하는 측은 정치인과 국가 단체들일 텐데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매우 낮다는 것도 난민 수용에 대한 불안감의 원인으로 작용한다(특히 정치인). 이렇게 국민들은 팩트와 근거를 가지고 불안해하고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데 언론과 정치인 그 외에 난민 수용 찬성 측은 난민 수용 반대가 그저 난민에 대한 이유없는 혐오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혐오는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유럽식의 무조건 평등 제일주의의 다문화주의는 실패한 정책임이 이미 드러난 지 오래이다. 어린이들부터 외모로 서로 차별하는 마당이며, 인간 내면의 무의식적인 인종차별까지 한번에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다문화가 갈등없이 정착된 국가는 존재하지 않으며, 남미에서는 흑인 인구 비율과 치안 안정도가 반비례한다.[73]미국마저도 서로 다른 인종집단 및 종교집단 간의 갈등으로 수많은 내분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도 거대한 영토와 자원, 강력한 연방정부를 가진 미국이니까 그만큼이라도 하는 거지, 안 그래도 외세의 등쌀에 시달리느라 정신없는 한국이라면 그런 내분을 견뎌내기도 힘들 일이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한국인이며,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한국민들이 동화주의를 원한다면 한국에 살기 원하는 이민자들은 한국의 규칙과 관습을 존중해야 한다'''. 그 어떤 사회도 참정권은 외부인에게 함부로 주지 않는다.
물론 이민자들이 가진 선진적인 문화(예:민주주의)가 현지의 악폐습을 개선하는 경우야 있을 수 있겠지만, 오늘날 인간개발지수성평등지수, 민주주의지수, 언론자유지수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모든 이슬람교 국가들이 명백히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통계지표상으로도 나타나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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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문서


[2] 양차대전을 통해 유럽에선 제국이 무너졌고, 당대 최고의 선진강대국이던 독일은 2번의 패전과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었으며,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나 폴란드 인민 공화국처럼 공산권에서 나름 건실했던 국가도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의 침략 앞에 무력했다. 나치 독일 시기 탄압받았던 유대인들의 이야기는 유명하고, 국력으론 어디 뒤지지 않던 소련독소전쟁을 겪으며 동유럽에서 수천만의 실향민을 발생시켰다. 요컨대 20세기 초는 누구라도 한순간에 나라가 망하고 탄압을 피해 도망쳐야 할 난민이 될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시대였다.[3] 그러면 난민법에 명시된 난민에 대한 보호 의무의 대상자가 되지 않으므로 추방해도 무관하다[4] 이 경우 국내법에 의거해 인도적인 지원은 해야겠지만 난민법에 따라 내국인과 동일한 수준의 보호를 할 필요는 없다[5] 반면 국가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자국민을 자국 땅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다.[6] 조약이란 것은 국가들의 '동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데 자신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에 동의하는 바보국가는 없다. 즉, 이런 전 세계적인 조약에서는 조약 내용을 엄격하게 할 수록 동의할 국가가 적어져 조약의 가치가 떨어지고, 조약내용이 느슨할 수록 기본 정신을 지키는 수준에서나마 동의 국가가 늘어나 세계적인 참여가 가능하다. 이러한 딜레마는 국제법의 기초 논의 내용 중 하나이다.[7] 특히 이 강제추방금지 원칙은 고문방지협약 등에도 포함되어있고 국제법 상 상위규범인 강행규범jus cogens(조약 등이나 일부 국가합의만으로는 이를 배제할 수 없다)이므로 당연히 우리나라 난민법 제3조에도 도입되어 있다. 찬성론에서는 무려 이 부분에 (비록 강제성이 없더라도) 라고 하고 있는데 국제법에 대한 기초도 없는 아전인수격 주장이다.[8] 한국은 난민 협약을 1993년 3월 3일에 발효하였다.[9] 326,767,000명(미국 인구) ÷ 23,000명 = 14,207[10] 51,801,449명(한국 인구) ÷ 2,379명 = 21,774[11] 51,801,449명(한국 인구) × 23,000명(미국 1년 난민인정자) ÷ 326,767,000명(미국 인구) = 3,646[12] 난민 찬성론이건 반대론이건 독일을 롤모델로 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13] OECD 평균보다 무려 2배나 오래 일한다[14] 유럽 난민 사태 당시 유럽 대륙으로 넘어온 난민 전체 수가 천만을 넘지 않았는데도 사회적으로 파탄이 난 상태이다. 열 몇 선진국/중진국들이 수백만의 난민들을 분산 수용하는 것도 버거워 하는데 한국은 위에서 뭔 일이 생기면 대한민국이 사실상 난민 2천만 명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 희망자에 한해 일부 인원을 타국으로 보내서 분산 수용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북한 주민들은 북한 영토에서 계속 살거나 남한으로 내려오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며 이럴 경우 만주/연해주/일본 열도로 분산수용 및 북한 영토 잔존인구를 고려 한다고 쳐도 최소 천만명은 내려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15] 현재 한국 정부의 정책이 예멘 난민제주도에 묶어두는 점에서, 호주와 많이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정말 사정이 있으면 옮길 수는 있고, 자국 내 특별구역에 묶어두니까 한국 법과 사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 이야기가 다르기는 하다.[16] 한국의 이민정책은 독일과 많이 비슷한데,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외국인 노동자를 받고, 자국 출생률이 급감하자 이제 베트남, 태국 등 그나마 문화적으로 차이가 크지 않은 동남아 국민들을 중심으로 이민을 적극 허용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추세이다. 그마저도 연간 10만 명 허용하자는 식이다.[17] 인도주의적인 유럽의 인구 절반 이상이 난민구제에 반대하고 있는데, 찬성측은 한국인종차별이 만연해서 난민구제에 소극적인 것처럼 주장한다. 찬성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서방세계의 50~70%가 인종차별주의자에 이슬라모포비아인 셈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대량 난민 유입사태 이전만 해도 유럽의 대부분은 난민 수용을 적극 지지하고 찬성했는데 고작 3년만에 인구 대부분이 국수주의로 돌아섰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이슬람계 난민들을 무고한 피해자로 포장하며, 기득권들만이 이기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과연 유럽에 도착한 난민들은 어떤 행태를 보였기에 한 대륙에서 3년만에 나치즘을 부활시키고 국수주의를 도래시킨 건가?[18] 유사한 반대논리로 '만일 난민 받았다가 문제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반론도 가능하다. 오히려 다른 나라의 실제사례가 있다는 점에서 이쪽이 더 근거가 있다.[19] 한국의 진보 성향 시민들 중에서도 이 이유로 외국인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은 극우성향의 군사독재에서 벗어나 민주화가 된 지 약 3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다 민주화를 위해 많은 희생을 치루었는데, 난민수용이 실패할 경우 극우세력의 부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20] 한국냉전시기 대 공산전선 최전방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을 필두로 한 서구권 선진국의 막대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미국이 제시했던 모델에 반해 우리 정부가 스스로 선택한 노선인 국가 주도의 중공업 개발로 이루어졌고, 민주화 역시 미군이나 다른 외세의 도움 없이 우리 국민들 스스로의 손으로 이루어냈다. 그런 점에서 식민지에서의 약탈로 초기 경제성장의 자본을 충당했던 유럽의 열강등과는 궤를 달리한다.[21]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한반도에 자리했던 역사적 국가들의 인식 범위는 기껏해야 중국, 일본, 몽골, 동남아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외에는 교역의 대상으로서나 간혹 기록에 등장할 뿐이다.[22] 유대교, 기독교(가톨릭+정교회+개신교), 이슬람교[23] 물론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공급의 필요성 때문에 문화충돌을 감수하는 국가도 많은 게 사실이다. 하다못해 일본조차도 취업이민자에 대해서는 백기를 들었으니. 하지만 이들은 한국에 정착하여 한국 사회의 가치관을 존중하기로 마음먹고 와서 3D업종도 할 사람들이다. 난민은 그냥 위험을 피하기 위해 고른 나라가 한국일 뿐인 사람들이다. 받아들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다르게 느낄 수밖에.[24] 한국 전쟁실향민 중 혼자 월남한 남자들이 많았던 것도 같은 이유다. "인민군에 끌려가느니 너라도 도망가라." 하고 가족들이 아들, 아버지만 월남시킨 경우가 많았다.[25] 제주에 온 여성 난민 45명 중 가족과 함께가 아닌 혼자 온 여성은 단 4명뿐이다. 반면 혼자인 남성은 훨씬 많다.[26] 오히려 남성이 군입대의 문제로 탈북률이 떨어진다. 이처럼 성비율의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날 때에는 외부적인 요인이 반드시 있다.[27] 태국 유소년 축구팀 동굴 조난 사건의 경우만 봐도, 구조 당시 성인 남성이었던 축구 코치의 체력 상태가 가장 안 좋았다. 이는 그가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남아있던 식량을 모두 아이들에게 양보하고 본인은 조난기간 열흘 내내 생으로 굶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난민들의 논리가 정당하다면, 코치는 자신이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으므로 식량을 독점하고 혼자 살아남았어야 옳다. 남성만이 자력생존이 가능했다는 주장은 변명에 불과하다.[28]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타 독립군들은 왜 외국에 갔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해외에서 재기를 노리고 활동했지, 개인의 안위를 위하여 망명한 것이 아니다. 이분들은 일제의 침략을 받고 있었던 중국과 연합하여 일본과 투쟁했고, 광복 후 이들은 즉시 귀국했다.[29] 물론, 일부는 남아서 독일에 영주하거나 결혼 등으로 시민권을 얻어서 귀화하기도 했다. 많은 수의 재독교포 1세대가 이 시절에 형성되었다. 어찌되었건, 이들은 남성들의 경우 주로 광부와 건설 노동자, 여성들의 경우는 대개 간호사(일반적인 병원 간호사보다는 시체닦이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함)나 병아리 감별사 등 독일 국내에서 근무 강도, 인건비 등의 문제로 인해 기피되고 있던 직종에 주로 종사하였고, 독일 정부도 해당 직종에서의 구인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협약에 응했다. 다시 말해서, 독일 정부에게도 일면 이익이 되는 면이 있었다. 손해를 감수하고 끌어안아야 하는 난민 문제와는 완전히 다르다.[30] 1983년 비행기를 타고 남한으로 도주한 북한의 공군 장교 이웅평 또한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이 전부 정치범 수용소 신세를 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괴로워하다가 죽었다.[31] 무엇보다도 그들은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온 것이므로 예멘을 탈출해 외국으로 도망친 사람들과 동렬로 취급할 수 없다. 반군에게서 도망쳐 정부군에 가담한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월남한 이들은 한국에 정착 후 국방의 의무를 포함하여 한국 국민과 똑같이 의무를 수행했고, 6.25 이전에 월남한 이들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으로서 입대해 싸우기도 했다. 반군이 싫다면서 그들과 전쟁 중인 정부군에 가담해 싸우는 게 아니라 그냥 외국으로 도망친 사람들을 이들 실향민과 비교하는 행위 자체가 모욕이다.[32] 찬성측은 이것이 단지 '다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 뿐, 한국전쟁을 단순화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허나 이를 바탕으로 한국에는 없었던 대량 난민 사태를 정당화 하므로 듣는 사람에 따라 매도라 받아들일 수 있다.[33] 신충행 동화선집,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도 이러한 내용이 실려있다.[34] 애초 이 단락이 이렇게 길어진 것 모두 찬성측이 난민과 파독광부, 예멘내전과 일제강점기 따위를 기계적으로 비교하며 동정에 호소하였기 때문이다.[35] '한국에서도 힘든 시기에 난민이 발생했으니 예멘 난민도 합당하다'[36] 그것도 한국전쟁이 남긴 파괴는 과소평가하고 예멘 내전의 상처는 강조하면서 말이다.[37] 사실 나라가 어렵거나 망하게 되면 어지간한 경우가 아닌 한 개털이 될 수 밖에 없다. 베네수엘라에 경제난이 심각해진 후로, 주변국을 전전하는 베네수엘라 난민 여성들은 허드렛일은 물론이고 매춘까지 하며 겨우겨우 살고 있는데, 이들 중에는 자국에서 변호사나 기업 행정 업무를 하던 고학력자도 상당히 많다.[38] 당장 어금니 아빠의 케이스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사회적 약자 역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싸이코패스일 수 있고 강력범죄자가 될 수 있다. 난민들도 마찬가지란 걸 유념하자.[39] 예시로 밑에 설명되어 있듯, 테러단체와 연락하던 우즈베키스탄인이 위명여권으로 입국하고 난민신청까지 했던 사례가 존재한다.[40] 더욱 자세히 보자면 2011년, 노르웨이 연쇄 테러사건 이후 자취를 감췄던 테러가 2015년서부터 급증했고 모두 무슬림에 의해 이루어졌다.#[41] 애초에 난민반대여론은 '모든 난민은 테러리스트'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한 적이 없다. 다만 '테러가 1건만 발생해도 사회 전체가 흔들리므로, 안전에 만전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다.[42] 이것은 정치적 올바름의 폐해중 하나로, 그들은 대상이 불법체류자이건 외국인이건 국민이건 간에 모든 사람을 1:1로 단순비교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유럽은 수백만의 인구를 수용하고 고작 수백명을 잃은 셈이니 인도주의는 많은 사람을 살린 셈이 된다. 허나 그 주장대로라면 국경이나 애국심, 나아가 국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43]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사실이 발각되어 송환되는 과정에 이 외국인은 '나는 종교박해로 도망 온 난민'이라 주장하며 난민신청을 하려 들었다는 것. 인권단체는 '일단 그가 난민 신청을 했으므로 수용하고 보호해야 한다.' 주장하였다. 또한 '그가 실제로 테러리스트일지라도 아직 한국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았으므로 본국으로 송환한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 주장했다. 그럼 테러를 실제로 저지를 때까지 보고만 있다가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나서야 추방했어야 한다는 소리인가? 그렇게 사람이 다치는 일을 막는 것이 경찰의 의무다. 이처럼 인권단체측은 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내국민을 위험에 내모는 짓을 서슴치 않고 있다. 만약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인권단체의 의견 때문에 이민특수조사대가 수사를 종결했다면?? 수십, 혹은 수천명의 자국민이 피를 흘렸을 수도 있었다.[44] 심지어 난민 수용을 찬성하는 집단이 다수라 할지라도, 다수의 도덕적 우월감을 위해 소수의 구성원을 희생시키자는 것 역시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다. 난민은 한국민이 아니며 대한민국 정부가 지켜줄 의무도 없지만, '''희생자는 우리 국민이 될 수 있으며 모든 국가는 자국민을 지켜주어야 한다.'''[45] 2018 평창 동계올림픽아이스하키 단일팀 추진이 현 정권 주 지지층인 2030에게까지 비판받은 이유와 비슷하다. 확연히 드러나는 손해에 비해 그 대가로 얻는 것에 대한 여권의 설명은 온갖 정치적 수사들뿐이었다. 그 후 얻은 것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남북한 간에 평화 무드가 급격히 진행되고 여자 아이스하키 팀도 주목도가 급속히 높아져 사상 첫 실업팀이 생겨나 취직 자리가 생기고, 미성년 선수들은 대학 특례입학을 보장받았으며, 본인들도 북측 선수들과 매우 친해져 헤어질 때 펑펑 우는 모습까지 보이는 등...[46] 이슬람권의 여성혐오 성향은 좀 심하게 말해서 인도에 비해서도 심각하다. 인도는 그나마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 많은 거라 계속 갈구면 고치지만, 이슬람권은 종교적 논리를 기반으로 일부다처제, 미성년자 성노예, 강제 조혼, 여성할례 같은 미친 악폐습들이 지금도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47] 당장 왕따 등 학교폭력 방지 교육 같은 것부터가 거의 날림 수준이고, 공직 기관에서 하는 성범죄 방지 교육 같은 것도 소용이 없네 마네 하는 말이 나오는 수준이다. 전자는 그나마 미국에서는 덜한 편인데, 심각하게 이질적인 학생은 학교 대신 집에서 홈스쿨링하게 하고, 적응가능한 학생은 학교에서 같이 지내되 왕따 가해자들을 아주 혹독하게 처벌하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 그냥 적발되면 기본 소년교도소에 죄질이 나쁘면 진짜 지옥인 성인교도소 가서 몇년씩 지내야 하니. 미성년자면 솜방망이 처벌이 남발되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48]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예멘 정부군을 도와 내전에 개입, 후티 반군과 전투 중이며, 예멘 난민 신청자들은 그들의 말을 믿는다면 후티 반군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자신들을 대신해 후티 반군과 '싸워주고 있는' 나라의 국가수반을 암살하려는 자가 나왔다. 6.25 때 북한군을 피해 도망쳤다고 주장하는 무리에서 미국 대통령 암살 주동자가 나왔다고 생각해보라.[49]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해선 관련 서류가 필요하기 때문에 난민들도 안전하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이는 거짓이다. 유럽 난민촌에서는 위명여권이 버젓이 판매되고, 서류조작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이 서류들의 진위여부도 가리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난민의 인도적 수용과 범죄자 수입은 항상 발을 맞춰 함께 이루어졌다.[50] 합법적 외국인 노동자들은 나라에서 비자를 내줘야만 입국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가가 수요에 따라 이 수를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난민은 그것이 불가능하고 무조건 국민과 같은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 이는 국민, 특히 서민들에게 경쟁자를 늘리는 꼴이다.[51] 프랑스의 반세속주의에 대한 태도는 유럽 내에서도 초강경에 속한다. 이슬람 정착지는 경찰의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으며, 테러 모의 등 이상한 짓 하다 걸려서 재판에 넘겨지면 20세기 중반까지는 말 그대로 진짜로 목이 잘렸고 지금도 재수없으면 이 법률 저 법률 적용받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받고 악마섬에서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한다.[52] 영국의 팝스타 릴리 알렌 역시 유니세프 난민 구호 활동에 참여하며, 난민을 수용하기만 한다면 자신이 불쌍한 난민을 거둬주어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겠다고 난민의 선량함을 설파한 전력이 있다.링크 그리고 그 후 수십만명의 난민이 몰려왔지만, 그녀가 실제로 집에 초대한 난민은 단 한명도 없다. '''자신이 책임 질 것도 아니며 질 수도 없으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 난민 구호에 앞장서는 것처럼 행동하며 대중을 선동했던 그녀 역시 그녀 덕분에 입국할 수 있었던 난민 범죄자들의 범죄행위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53] 이 박사는 이슬람 가정은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이에 노출되어 자란 젊은이들이 과격한 사상을 지니기가 얼마나 쉬운지 지적한다. 더하여, 그 '''스스로도 과격분자였었다'''. 이슬람 내부에 과격분자가 많은 것은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 엄연한 현실이다.[54] 마찬가지로 한국에 정착한 베트남계나 는 좀 예외적이니 제외하고(조선족범죄도시대림역 문서 참조 바람), 태국계 주민들의 범죄율도 높지 않다. 이들은 종교적으로도 대부분 불교도교를 믿으며 이들 종교는 이슬람교와는 달리 타 문화권의 종교와 충돌할 여지가 거의 없어서인지 북미나 유럽권으로 이주하더라도 종교 관련 문제를 거의 일으키지 않으면서 현지 문화에 잘 융화되는 편이다. 기독교를 믿거나 아예 종교가 없는 사람도 많다.[55] 미국을 예시로 들면, 2013년 미국 전체 살인사건의 범죄자 50%는 아프리카계였으며 아시아계는 1%대에 그쳤다. 인종대비 살인율을 보면 아프리카계 살인자가 전체 아프리카계의 0.0102%인데 비해 아시아계 살인자는 전체 아시아계의 0.0005%로 아프리카계가 '''20배나 범죄율이 높다'''.# 이를 '과대평가'라 아무리 주장해 봤자 신뢰가 갈 리가 없다.[56] 실제로 한국 거주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인의 강력범죄율(특히 강간)은 한국인 강간 범죄율에 비해 6배, 3배 정도 높다. #[57] #이 영상이 방관하는 공동체의 '온건한 시민'역시 동조자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중동에 비해 역사적으로 온건파가 많은 일본, 독일, 러시아일지라도 '''평화로운 국민 대다수'''가 일부의 폭력을 방조하기 시작하자 수십만의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방조 역시 죄이며 이슬람 공동체는 이 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58] 서유럽에 비해 동유럽과 중부 유럽은 다문화주의에 대해 폐쇄적인 경향이 강하다.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서유럽 전반에 펼쳐진 68운동의 영향은 당시 공산권이었던 동유럽에까지 영향을 주지 못했고, 공산권은 아니었으나 영세중립국이며 서유럽과 동유럽에 걸쳐 있는 오스트리아스위스에 미친 영향도 미약했기 때문에 문화적 다원주의와 같은 진보적인 가치관이 이곳 세계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아무튼, 이들 나라의 대도시를 방문해 보면 뉴욕이나 토론토에 맞먹게 인종의 전시장이 되어가는 서유럽의 주요 도시들에 비해 비백인/비유럽권 사람들이 극히 적어보이는 게 사실이다.[59] 이는 전형적인 정치적 올바름의 폐해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거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대신에 상대방의 인격을 매도하고 공격하므로써 자신의 입지를 다자는 행위이다. 이는 중세시대의 마녀사냥과 다른 바가 전혀 없는 구시대적이고 생산적이지도 못한 행동이다. 이들은 진영논리에 휩싸여 자신의 편(이슬람)의 극단주의, 여성혐오, 폭력성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 그에 대해 비판하는 모든 세력은 도덕적으로 사형시킨다. 이 태도는 찬성측의 논리 대부분에 계속해서 반복되며, (이슬람을 비판하면 이슬라모포비아라거나, 난민 추방을 주장하면 모든 외국인을 혐오하는 것이며 민족주의자라는 둥) 반대측의 주장을 원천봉쇄한다.[60] 어찌 됐던 난민 수용이 결정나면 그에 대한 세금이나 비용, 사회적 문제는 반대측도 같이 겪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61] 적어도 난민을 받지 않는다면, 찬성측의 신념이 꺾이기는 하나 그 결과에 의한 현실적인 비용 문제나 사회 문제로 찬성측이 고통받지는 않는다.[62] 인권단체는 이를 두고 ''마구잡이로' 고용시켜 그들이 고작 며칠 만에 그만두거나 해고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난민들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바탕으로 했으므로 100% 믿을 수만은 없다. 또한 고용주들에 따르면 그들은 손님에게 무례했으며, 제공해준 음식을 거절하거나, 근무시간 도중 기도하러 사라져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과 피해를 주는 등#, 인종과 문화를 떠나 고용주들과 마찰을 일으킬 상황을 충분히 제공했다고 한다. 말이 안 통해 일을 시키기가 굉장히 불편하고, 그렇다고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며, 일을 못하는데 똑같은 임금을 주니까 다른 노동자들이 반발을 해서 그냥 내보내는 게 편했다고.[63] 이들 중 대부분은 '우리는 육체노동을 해본 적이 없으며, 교사, 엔지니어, 학생 등 화이트칼라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언어도 문화도 다른 우리나라에서 그들의 주장만을 토대로 원하는 일자리를 내줄 가능성은 없다. 그들이 정말로 능력이 있다 한들, 한국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그들이 고국에서처럼 정상적으로 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64] 난민과 인권단체들은 늘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혹평만을 내놓는다. 이런 점이 미흡하다, 저런 점이 부족하다, 자국민을 안심시키겠다고 혐오를 확산시킨다 등등. 그나마 제일 좋은 말이 '더 빨리 되었어야 했는데 이제야 가능해졌다.'는 식으로, 특혜를 받아도 그것이 특별한 줄 모르고 당연히 자신들이 받아야 했던 것으로 취급하는 정도.[65] 애초에 원하는 직종에서 일하고 싶었다면 난민 신청이 아니라 정식적으로 취업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이 세상 어느 나라도, 난민들에게 난민들이 원하는 직종만을 제공할 의무가 없다.[66] 그러나 임산부나 가족단위인 사람들은 특별히 출도를 허락했다. 상태가 안 좋은 정신질환자나 중환자도 마찬가지.[67]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이븐 와라끄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이슬람 사회 세속화 운동가들이 있다.[68] 이조차도 교리상 증오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현재 (특히 중동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권 국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서방 기독교 문화권 국가들의 탓으로 돌리는 아랍 민족주의와 결합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오스만 투르크 전성기의 이슬람교는 특별히 기독교에 대해 증오성향을 보이지는 않았으므로.[69] 힌두교조로아스터교 같은 종교가 여기에 분류된다.[70] 다만 한국은 세계적으로 매우 세속적인 편에 속하며(사실 동아시아 전체가 그렇지만), 종교에 아예 흥미를 안 느끼고 안 믿는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하므로 극단주의 선교사들이 아무리 빵빵한 지원을 받더라도 극단주의 선교가 힘든 편이기는 하다.[71] 단 모든 이슬람 국가들이 샤리아를 완전히 따르는 건 아니다.[72] 이 때문에 여러 국가 및 주에서 샤리아법 자체를 금지시켰다.[73] 브라질아르헨티나의 치안 차이를 비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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