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image] ''' 베트남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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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
[image]
[image]
'''국기'''
'''국장'''
'''Độc lập - tự do - hạnh phúc'''
'''독립, 자유, 행복'''
'''국가 정보'''
'''국가'''
'''진군가(Tiến Quân Ca)'''
'''국화'''
'''연꽃'''
'''역사'''
'''베트남 민주 공화국 수립''' 1945년 9월 2일
'''베트남 통일''' 1976년 7월 2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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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하노이
'''최대도시'''
호찌민
'''면적'''
331,212㎢[67]
'''내수면 비율'''
1.3%
'''접경국'''
[image]중국, [image]라오스, [image]캄보디아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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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전체 인구'''
98,168,829명(2021년) | 세계 15위
'''인구밀도'''
276명/㎢ (세계 31위)
'''출산율'''
1.79명 (2019년 기준)
'''민족'''
킨족 85.7%[68]
따이족 1.9%
타이족 1.8%
므엉족 1.5%
크메르족 1.5%
몽족 1.2%
눙족 1.1%
호아족 1%
기타 4.3% 등 53개 민족
'''HDI'''
0.683(2015)
'''공용어'''
베트남어
'''공용 문자'''
쯔꾸옥응으
'''종교'''
'''국교'''
없음(국가 무신론)
'''종교 분포'''
토착 신앙 및 무종교 73.2%[69],
불교 70%[70], 기독교 8.3%,
까오다이교 등의 신흥종교 6.2%. 기타 0.1%
'''군대'''
베트남 인민군[71]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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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민주집중제, 단원제, 일당제, 공산주의, 단일국가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37위'''[권위주의체제]
'''국가주석'''
응우옌푸쫑
'''서기장'''
'''총리'''
응우옌쑤언푹
'''국회의장'''
응우옌티낌응언
'''여당'''
베트남 공산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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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체제'''
사회주의
'''GDP'''
'''명목 GDP'''
$2,603억(2019년)
'''GDP(PPP)'''
$7,699억(2019년)
'''1인당 GDP'''
'''명목 GDP'''
$2,726(2019년)
'''GDP(PPP)'''
$8,063(2019년)
'''국부'''
$7,970억 / 세계 38위(2019년)
'''수출입액'''
'''수출'''
$24,350,000,000
'''수입'''
$23,670,000,000
'''외환보유액'''
$63,000,000,000
'''신용 등급'''
'''Moody's''' Ba3
'''S&P''' BB
'''Fitch''' BB
'''화폐단위'''
'''공식 화폐'''
(, đồng)
}}}#000,#ddd '''ISO 4217'''}}}
VND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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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7)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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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자 입국'''
'''양국 모두 불가능'''[72]
'''남북수교현황'''
'''남북동시수교''' (대한민국 : 1992년, 북한 : 1950년)
'''주한 대사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123 (삼청동)

'''ccTLD'''
'''.vn'''
'''국가 코드'''
'''704, VNM, VN'''
'''국제 전화 코드'''
'''+84'''
'''여행 경보'''
'''특별여행주의보'''
'''전 지역'''[코로나19]
[image]
'''위치'''
[image]

1. 개요
2. 상징
3. 지리
4. 기후
5.1. 소수민족 문제
7. 인구
10.1. 제국의 무덤
12. 교통
13. 문화
13.1. 주의 사항
13.2. 언어
13.3. 음악
13.4. 식문화
13.6. 스포츠
15. 정치
15.1. 정당
18.1. 주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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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동부에 위치한 공산주의 국가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정회원국으로 수도하노이이다.
수도는 하노이지만, 도시 규모는 오히려 경제 중심지인 남부의 호치민(구 사이공)이 더 크다. 호찌민롯데리아가 먼저 들어갔을 정도다. 인구도 호찌민이 인구수 1등이고 하노이가 2등이다.

2. 상징



2.1. 국호


정식 명칭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1], , 공화사회주의월남)이다. 베트남어에서는 공화국 국명을 표기할 때 국(quốc, 國)을 붙이지 않고 그냥 공화(Cộng hòa, 共和)라고 표기하며, 또한 피수식어가 수식어 앞에 놓이기에[2] '공화', '사회주의'가 '월남'보다 앞에 온다.
베트남이라는 국호는 옛 베트남 지역의 국가 남월(南越)에서 유래했다. 본래 越(Việt/비엣)은 중국 남부에 살던 민족 집단인 백월을 이르는 말로, 이들이 베트남 북부로 이동해 세운 나라가 남월이었다. 정완분쟁(鄭阮紛爭)과 서산조(西山朝) 시대 이후 베트남을 통일한 가륭은 국호를 남월로 정할 예정이었지만, 한나라 때 중국 남부까지 진출했던 과거의 남월 왕조가 연상된다고 꺼림칙해했던 청나라에서 '남월'의 앞뒤를 뒤집은 국호인 '월남'을 제안하였고, 가륭이 이를 받아들여 월남이 정식 국호가 된다. 이를 베트남식 독음으로 읽으면 '비엣남'이고 영어식 발음도 /볱남/(Vietnam)에 가깝다.인근 국가인 태국에서는 เวียดนาม(위엣남)으로 베트남 현지 발음과 비슷하다. 월남(越南)이라는 호칭은 '베트남'을 한자로 가차한 것이 아니라, 한자문화권인 베트남의 본래 한자 국호를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 읽은 것이다. 중국 역시 越南이라는 한자표기를 자신들의 언어 음대로 읽어서 '위에난(Yuènán)'이라 부른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월남으로 많이 불렀으나, 현재는 '베트남'이란 표기가 널리 쓰인다. 이는 '비엣남'을 일본에서 부르는 ベトナム(베토나무)의 영향을 받은 표기가 그대로 굳어졌기 때문이다.[3] 온라인 가나다의 답변에 따르면 단지 많이 쓰인다는 이유로 일본식 표기를 표준어로 등재한 것이다. 식민지 시기에는 베트남을 안남, 월남, 인도지나 등으로 표기했고, 이 중에 제일 많이 표기 된 것은 '안남'이었다. 베토남, 혹은 베트남이라는 표기가 등장한 것은 1940년대 후반부터인데, 이는 일제의 식민 잔재라기보다는 서양의 문헌을 지식인들이 직역을 한 것이 극히 일부분이었고, 대부분 일본에서 중역해서 가져오던 문헌이 많았기 때문에 대한민국 초창기의 지식인들의 문제점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과거 공문서에선 원어인 베트남어와 가깝게 ヴィエットナム(비엣토나무)이라는 단어를 표기한 예도 있다. 2004년 제정된 베트남어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 표기하면 '''비엣남'''이 된다.[4] 한편 북한에서는 2002년까지 '베트남'이라고 부르다가 이후로는 '윁남'으로 표기를 바꾸어 부르고 있다.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던 시절에는 오늘날의 베트남(정치체제)의 전신이 되는 북베트남월맹(越盟), 베트민(Viet Minh. 실제 발음은 '비엣민'.)이라 불렀다. 월맹이란 "베트남 독립동맹회('''越'''南獨立同'''盟'''會)"의 약칭으로 국가로 승인하지 않고, 일개 공산당의 정권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자유진영에 속했던 남베트남을 국가로 승인하고 유일한 합법정부로서 수교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베트남 공화국을 월남, 베트남이라고 불렀었다. 물론 오늘날 한국은 월맹 정권이 남베트남을 멸망시키고 세운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승인하고 수교했기에 지금은 당연히 월남 = 베트남 =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2.2. 국기


[image]
베트남의 국기는 붉은 바탕에 노란 별 하나가 새겨진 것으로 '''금성홍기'''(Cờ đỏ sao vàng/旗𣠶𣋀黃)라고도 한다. 1940년 항불/항일 투쟁을 하던 베트민에서 처음 사용된 깃발이며 이 깃발이 공식적인 국기가 된 것은 1945년에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이 세워지고 나서이다. 그리고 1975년에 베트남이 북베트남 위주로 무력 통일되면서 베트남 전체의 국기가 되었다.
1940년 반프랑스 독립 투쟁당시 국기의 붉은 색은 독립을 위해 흘린 피, 노란색은 베트남인의 인종을, 별의 오각은 각각 사농공상병(士農工商兵)의 다섯 인민을 나타낸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통일 이후에는 별은 베트남 공산당의 리더십을, 붉은색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국기의 뜻이 바뀌었다.
[image]
1950년대 세워진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은 황저삼선기(Cờ vàng ba sọc đỏ/旗黃𠀧𪟄𣠶[5])라고 하는 깃발을 사용했다. 지금도 미국이나 프랑스, 호주에 거주하는 반체제 베트남인들이 사용하고 있지만, 베트남에서 이 깃발을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베트남에서 이 깃발을 공공장소에서 내보이면 반정부주의자나 반공주의자로 취급되어 공안에 연행될 수 있다. 황저삼선기를 아예 볼 수 없는 것은 아니고, 베트남전이나 남베트남에 대해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 뉴스 같은 영상물이나 박물관, 교과서, 신문 등에서 황저삼선기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가위표가 쳐저 있는 등 온전한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남베트남 지지자가 적지 않은 미국의 베트남 타운에 가면 지금도 많이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육군의 당직부관 완장과 흡사한 디자인의 이 깃발은 응우옌 왕조의 10대 군주 타인타이 황제가 고안한 것으로, 붉은색 가로 세 줄은 팔괘의 첫 번째인 건(乾)괘를 형상화한 것으로 태극기 좌상단의 건괘와 같다. 황저삼선기의 노란색은 베트남인과 베트남의 토지, 붉은색은 베트남인의 피를 뜻한다.
전세계의 베트남 요리 식당들 중 북베트남계나 통일베트남계가 운영하는 곳에서는 금성홍기를 걸며, 남베트남계가 운영하는 곳에서는 황저삼선기를 건다. 전자는 주로 구 공산권 국가들이 해당되고 후자는 서방 국가들이 해당된다. 한국은 남베트남 유민들의 정착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베트남 요리 식당에서 금성홍기나 호찌민 전 주석의 사진을 건다.

2.3. 국가



국가는 진군가(Tiến Quân Ca)이다.

3. 지리




흔히 베트남 하면 밀림을 떠올리지만 실제 베트남 면적에서 숲의 비중은 37%에 불과하다. 물론 19세기 때만 해도 베트남의 대부분 지역은 밀림으로 덮여 있었으나 농경 목적의 개간이나 베트남 전쟁 때의 고엽제 살포로 인한 삼림파괴 등으로 거의 숲이 남아나지 않았던 적도 있기에 요즘에야 정부에서 국립공원을 지정해서 보호중이다.
비슷하게 기타 동남아 국가인 태국인도네시아, 미얀마, 말레이시아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삼림 비중이 얼마 되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길가다 밀림 수준은 아니지만 개발이 안 된 지역에서는 아직도 풀과 나무가 많이 보인다. 하노이 호안키엠에는 국보급 크기의 나무가 많이 있다.
한국보다는 낮지만 베트남도 인구밀도가 꽤 높다. 남한 기준 땅 넓이는 베트남이 3배 이상이나 넓지만 인구는 한국의 2배 정도니, 베트남이 꽤 낮다. 북한까지 포함한 대한민국 헌법상 영토를 고려하면 베트남이 1.5배 넓이에 인구는 베트남 인구가 2천만 정도 많아 거의 엇비슷하다.
칠레만큼은 아니지만 남북으로 길쭉한 형태다. 세로로 길게 잡아늘린 S자 모양으로 생겼는데, 남북으로 1,650 km 길이다.(칠레의 경우에는 4,200km) 동서로는 가장 좁은 곳은 50km 정도. 마라톤 선수라면 동해안에서 국경까지 뛰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적도에 가까운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받는 메르카토르 도법의 효과와 길쭉한 모양의 영향으로 지도상 넓이는 한반도와 비슷해보이지만, 실제로는 베트남 면적이 한반도의 1.5배나 되는 상당히 넓은 영토다.
남북으로 긴 지형 때문에 남북간의 기후차가 있다. 또한 이런 긴 지형 덕분에 지역차이도 존재하고 지역감정도 오래전부터 있었으며 베트남의 대표 도시인 호찌민과 하노이가 각각 남과 북에 존재하는탓에 도시문화마저 다르다.
주요 하천으로 홍강(Sông Hồng)과 메콩강(Sông Mê Kông)이 있다. 이 강 하류의 삼각주에는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활발하며 하노이호치민, 하이퐁, 껀터 등 주요 도시가 있다. 후에가 위치한 중북부 해안지역은 해안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중남부 해안지역은 리아스식 해안이다.
그 외 지역은 서쪽의 안남 산맥을 중심으로 한 산악 지대이며 서쪽 캄보디아 국경 지대엔 고원 지대가 있는데 이 지역은 커피 산지로 유명하다. 최서단에는 푸꾸옥 섬이 존재하는데 베트남 본토에서는 40km 정도 떨어져 있으나 캄보디아에서의 거리는 5km가 채 안 된다. 동쪽으로는 남중국해와 접하고 있는데 베트남에선 동해라고 부르며 중국호앙사 군도쯔엉사 군도의 영유권 문제로 다투고 있다.

4. 기후


한국에서는 베트남 하면 1년 내내 더운 열대 국가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남북으로 길쭉한 나라인만큼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하노이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 지방은 대만중국 남부와 흡사한 아열대기후로 여름옷으로는 가끔 추울 수도 있을만큼 나름대로 뚜렷한 겨울이 있고 일부 고산 지대의 경우 온대 기후에 가깝다. 특히 이 지역에는 난방이 부실하기 때문에 체감상으로는 오히려 한국보다 추울 수도 있다. 2013년 12월 16일에는 폭설도 내렸고 1년 뒤에 또다시 폭설(…)이 내렸다.
반면 호치민 시를 중심으로 하는 남부 지방은 전형적인 건기→혹서기→우기의 인도차이나 기후이며 다낭 등 중부 지방은 이 중간쯤 되는 기후를 띄며 12월 낮 기온이 25도 정도 된다. 어쨌든 베트남 전체를 두고 보면 전반적으론 덥고 습한 편이다. 강수량은 대부분 지역에서 2,000mm 조금 안 되는 정도다. 북부 지역은 아열대로 연간 온도 차가 커서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 차가 약 20°C에 달하는 지역도 있으나, 남부 지역은 열대 몬순기후로 연간 온도 차가 크지 않아 연간 최저 및 최고기온 차는 약 7°C 이다.
강우량은 전국적으로 연 평균 1,800mm 정도이나 우기 때는 더 높은 강우량을 기록한다. 호찌민시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우기(5~10월)와 건기(11~4월)가 6개월씩 교차되며, 수도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 지역은 미묘한 사계절의 변화가 있어 연말과 연초의 기후가 한국의 4월 날씨와 유사하다. 우기(5~10월) 시에는 하루 30분 정도의 게릴라성 폭우가 내리는데 최근에는 기후 변화 현상으로 인해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때가 많다.
의외로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 지역은 강수량은 적은데 습도는 높은 경향을 보이며, 그래서 겨울 체감온도가 꽤 쌀쌀한 편이다. 분명 16~19℃대(2월 평균기온)인데도 현지인들은 두꺼운 오리털 잠바를 입을 지경.[6] 2018년 12월 31일에 영상한파에 못 이겨 50대 인력거꾼이 동사(凍死)한 채 발견되기도 했다. # 참고로 베트남의 기온이 영상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유치원, 초등학교가, 7도 이하로 떨어지면 중학교가 휴교하는 일이 벌어진다.

5. 민족




5.1. 소수민족 문제


베트남 정부가 공인한 민족 수는 54개이다. 하지만 전체 인구의 85.7% 정도를 비엣인(Người Việt, 越人, 월인)이라 불리는 킨족(Người Kinh, 京族, 경족)이 차지하기 때문에 킨족이 사실상 베트남인인 셈이다. 나머지 53개 민족은 소수민족이고 그중 가장 많은 타이족조차 1.9%밖에 안된다.
주변 동남아 나라들이 거의 그렇듯이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소수민족들에게 악랄하게 탄압과 차별을 자행했다.''' 예를 들어 이슬람힌두교를 믿던 참족에게 종교별로 돼지고기쇠고기, 도마뱀 고기를 강요하였고 힌두교, 이슬람 사원을 허물고 그 자리에 베트남인들이 믿는 대승 불교 을 지었다. 캄보디아를 잠깐 합병했을 때에는 합병 1년 만에 창씨개명, 풍습 개조, 지명 개명, 직할화, 캄보디아 왕족과 관리들에게 베트남식 단령 착용 강요 등을 시행하는 동시에 남부 베트남의 크메르족 마을의 경우 베트남인 촌락으로 크메르족 촌락을 포위하고 강제 통혼 혼혈을 시켜가면서까지 동화시키려고 하였다.[7]
베트남 전쟁 당시 므엉족(몽족)이나 참족같은 일부 소수민족들은 미군의 도움으로 20,000명 정도 되는 부대를 창설해서 결사항전을 벌였을 정도다. 이들을 활용하기 위해 미국은 그린베레 등의 특수부대를 보내 훈련시켰다.[8]
베트남전에서 북베트남이 승리한 이후 이들은 베트남 전역에서 엄청난 학살과 탄압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이웃 나라로 수많은 난민들이 탈출하기도 했고 지금도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출연한 미국 영화 <그랜 토리노>를 보면 이런 소수민족 출신의 이민자들의 삶이 묘사되고 있다.영화 자막에서는 '몽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므엉'족이다.
베트남 다수민족인 킨족의 역사가 참족의 나라인 참파를 정복해 나가는 역사인데다가 19세기가 되어야 지금의 베트남의 영토가 확정되었기 때문에 남북간의 문화가 상당히 이질적이다. 인종적으로도 확 구분이 갈 정도다. 반중 감정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종종 간과되는데 사실 베트남의 소수민족 탄압과 소수종교 박해는 '''베트남이 제국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중국을 아득히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중국에서 가끔 벌어지던 문화 대혁명 기간 수준의 소수민족 강경 탄압이 베트남 내에서는 상시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베트남 남서부의 떠이응우옌(Tây Nguyên, 西原) 고원 지역의 경우 현재도 베트남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934년 기준으로 떠이응우옌 지역 인구의 95%는 소수민족이었으며, 킨족의 인구수는 3만 3천 명에 그쳤다. 그러나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정권은 중부 고원 지역에 225곳의 지역 개발 중심지를 만들어 베트남화 정책의 일환으로 27만 명의 킨족을 이주시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베트남 전쟁이 격렬해지면서 중부고원지대는 치열한 전투지역으로 변했고[9], 1975년 북베트남의 통일 이후 북부 지방에서의 이주까지 더해지면서 베트남인의 이주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1979년 83만 명이었던 킨족 인구는 1989년 160만 명으로 증가했고, # 2010년대가 된 현재 떠이응우옌에는 5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데 이 중 400만여 명이 킨족이다.
2001년에는 베트남의 커피 산업이 발달한 떠이응우옌 지역에 킨족을 자꾸 이주시키자 곤란한 상황에 처한 소수 민족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 이 사건으로 인해 그 해 4월의 제9차 베트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는 소수민족 출신인 농득마인 (당시 국회의장)이 예상을 뒤엎고 베트남의 최고지도자인 당 서기장으로 선출되는 변화를 낳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정부의 킨족 이주정책은 계속된 상황. # .
바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캄보디아 동부의 몬돌끼리와 라따나끼리 주의 경우 크메르인의 인구가 20~30% 수준에 불과하다. 인구밀도도 km²당 20명 미만으로 km²당 100명 정도인 떠이응우옌보다 인구가 확실히 적은 편.
오늘날 베트남은 소수민족 문제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편이다. 베트남 전쟁 시기 물론 라오스쪽의 몽족이나 중부고원지대쪽에 살던 참족과 같은 일부 산악 소수민족들은 공산정권에 반대하여 미국 편에서 싸우기도 했지만, 북베트남군이나 베트콩 또한 대부분의 북남베트남의 소수민족들을 잘 설득하여 자신들 편에 설 수 있도록 했다. 베트콩이나 북베트남군들에게 있어서 소수민족들의 도움은 필수였기 때문이다.[10]
현재 베트남은 주로 태국이나 중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소수민족 정책을 세워나가고 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소수민족 출신인 농득마인이 제6대 베트남 공산당 중앙집행반 서기장을 지낸 적도 있으나 생색내기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베트남 내 힌두교와 이슬람은 씨가 마르다시피 했는데[11] 중국 내 후이족이 나름 배려를 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거기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떠이응우옌 같은 지역은 이미 킨족들이 압도적 다수가 된 상황이고, 설사 분리주의를 하더라도 그 지역에 존재하는 여러 소수민족들 간의 극심한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12] 이 지역에 대한 베트남의 집착과 커피 산업과 관광 산업을[13] 비롯한 경제적 이익이 상당한 곳이기에 현 베트남 정부가 곱게 포기할리가 없다.[14]
지금은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 금지가 베트남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베트남 헌법에 있는 민족 간 평등 보장 원칙이 베트남의 법 체계 전체에 걸쳐서 명시되어 있고, 많은 법률 문서에서 체계화하고 구체화되어 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정부의 차별 금지 노력에도 여전히 소수 민족에게 비공식적으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여 항상 사회 문제로 지적받는다.

6. 행정 구역



1차적으로는 58개 성(tỉnh, 省)과 5개 직할시(성포직속중앙 thành phố trực thuộc trung ương, 城舖直屬中央)로 나뉜다. 성의 면적은 제각각으로 면적이 가장 넓은 응에안(Nghệ An)省은 16,490㎢, 가장 좁은 박닌(Bắc Ninh)省은 불과 823㎢이다.
성 산하에는 성의 직할시, 즉 성도의 개념인 성포직속성(thành phố trực thuộc tỉnh, 城舗直屬省, 줄여서 성포라고도 한다. thành phố, 城舗)과 일반적인 시에 대응되는 시사(thị xã, 市社), 군에 해당되는 현(huyện, 縣)이 있고, 중앙직할시의 산하에는 구에 해당하는 군(quận, 郡)과 군에 해당하는 현(huyện, 縣)이 있다. 하노이의 경우 썬떠이성을 합병한 잔재로 직할시 중 유일하게 시사를 가지고 있다.
성포와 시사의 아래에는 우리의 동에 해당하는 방(phường, 坊)과 읍에 해당하는 사(xã, 社)가 있으며, 현의 아래에는 읍에 해당하는 사(xã, 社)와 면에 해당하는 시진(thị trấn, 市鎮)이 있다. 군의 아래에는 동에 해당하는 방만 있다.
다시 분류하면
  • 중앙직할시(중앙직할성포) (특,광역시)[15]
    • 군 (구)
      • 방 (동)
    • 현 (군)
      • 사 (읍)
      • 시진 (면)
  • 성 (도)
    • 성 직할시(성직할성포)(도청소재지인 시)
      • 방 (동)
      • 사 (읍)
    • 시사 (시)
      • 방 (동)
      • 사 (읍)
    • 현 (군)
      • 사 (읍)
      • 시진 (면)
의 형태가 된다.
[image]
베트남의 행정구역 계층도이다. 한자가 너무 강조되어 있어 오해를 살까봐 명시하는 것이지만 베트남은 한자가 아니라 그 위에 적힌 라틴 문자(알파벳)를 사용한다.
한국어와 어순이 다른 베트남어 특성상 이쪽은 Tỉnh Thanh Hóa(省淸化, 타인호아 성), Thị xã Quảng Trị(市社廣治, 꽝찌 시사) 이런 식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동네 이름 앞에 온다.
행정구역은 아니지만, 베트남은 크게 전국을 8개 지방으로 나눈다. 8개의 지방은 다음과 같다.
[image]
  • 서북부 (Tây Bắc) - 4성
  • 동북부 (Đông Bắc) - 11성
  • 홍강 삼각주 (Đồng bằng sông Hồng) - 9성 2직할시 (하노이, 하이퐁)
  • 북중부 (Bắc Trung Bộ) - 6성
  • 남중부 (Nam Trung Bộ) - 5성 1직할시 (다낭)
  • 서부 고원 (Tây Nguyên) - 5성
  • 동남부 (Đông Nam Bộ) - 7성 1직할시 (호치민)
  • 메콩강 삼각주 (Đồng bằng sông Cửu Long) - 12성 1직할시 (껀터)

7. 인구


CIA the Worldfactbook에 따르면 2020년 현재 베트남의 인구는 9,616만 163명으로 1억 명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래서 2020년대에 1억 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전망되었지만, 현재 급격히 저출산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 중이라 이제는 추계 전망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거기에다 고령화가 진행되자 은퇴연령을 올리고 두자녀운동폐지를 검토 중이다.#
인구의 34.9%가 도시에 살고 있다. 합계 출산율은 2019년 기준 약 1.79명으로 개도국치고는 조금 낮은 편이다. 영아 사망률도 1,000명 당 17.3명으로 다소 높다. 구성 민족은 킨족이 85.7%로 가장 많다.

8. 평균 수명


2017년 현재 베트남의 평균 수명은 73.7세이며, 남성의 평균수명은 71.2세이고 여성은 76.4세이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는데 현재 베트남의 65세 이상 노년층은 전체 인구의 6.1%로, 고령화사회의 문턱에 있다. 2030년에는 노인 인구가 전체의 17%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는데, 그 경우 베트남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하기까지 불과 17년밖에 걸리지 않은 한국보다 더 빠르게 고령사회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0~14세 유년층의 인구는 전체의 24%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위 연령은 30.5세로 인도보다는 높고 중국보다는 낮은 상태다.

9. 성비


2017년 CIA the Worldfactbook에 따르면 베트남의 전체 성비는 100.4 : 100으로 남자가 약간 더 많은 수준이지만[16] 남아선호사상이 만연하기 때문에 특정한 연령대의 성비 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중국, 인도와 마찬가지로 청년층 이하의 성비 불균형이 특히 심각하다.
베트남의 신생아 성비는 111 : 100으로 심각한 남초이며, 0~14세 유년층 성비 역시 111 : 100, 15~24세 청년층 성비 역시 108 : 100으로 남초 현상이 심각하다. 25~54세 장년층 성비는 101 : 100으로 비교적 균형을 맞추고 있지만 55~64세 중년층부터는 85 : 100, 65세 이상 노년층은 63 : 100으로 심각한 여초 상태다.[17]

10. 역사




10.1. 제국의 무덤


세계사적으로 다른 인근 국가들의 기록에 꾸준히 등장하며, 기록을 남기고 관찰할 만할 정치 체제가 세워진 건 조타를 시조로 진나라-한나라 시절 장강 이남 오(吳)계 군벌들의 일부가 독자 세력화하며 현지 토착민들과 연합한 걸 생각하면 외세로서 '중국'의 '지배'를 천년 동안 받았다고 표현하기도 뭣하다. 오히려 오랜 시간 동안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정치적 발전을 거듭하던 게 결국 막판엔 정치체로서의 '중국'과 완전 결별하며 독자적인 나라와 민족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조타, 사섭 같은 명목상으로는 진, 한 조정에서 파견한 관리들을 종묘의 시조로 숭상하던 전근대 대월 황실의 공식 사관(史觀)은 이러한 중화 문명에서 기원하긴 했으되 분명 독자적으로 발전한 굉장히 미묘한 역사를 내포하고 있다.
1954년 프랑스디엔비엔푸 전투의 패배로 인해 제네바 협정에서 베트남에 대한 간섭을 하지 않기로 하고[18], 1973년에는 파리 평화 협정을 통해 미군이 철수하며, 1975년 남베트남 정권을 몰아내고 베트남 통일, 1979년은 캄보디아를 일시 점령하고 중국을 물리쳤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제국에 항전하기도 하였다.
고대사에서는 몽케칸 시절인 1258년에 그 악명높은 몽골 제국의 침략군을 상대로 승리한 전적도 있다. 1258년에 일어난 1차 원정 말고 2차, 3차로 원나라(몽고 제국)가 쳐들어왔지만 이것도 쩐흥다오의 전략으로 무산되었다. 그는 베트남의 지리와 그에 걸맞은 게릴라식 전법을 구사한 병법 : <<병서요략(兵書要略)>>을 저술했는데, 나중에 일본, 프랑스, 미국, 중국을 물리치는 데 기여를 했다. #
동남아 지역에서는 태국, 인도네시아와 함께 전통적인 강호다. 더욱이 캄보디아는 크메르 루주 시절(민주 캄푸치아)에 베트남에게 점령당한 이후 현재까지 베트남의 영향권 하에 있다.
여하튼 전투에 관해선 "근성의 민족"으로 유명하며, 중국 대륙을 제패한 몽골(쿠빌라이 칸)과 청나라(건륭제)도 베트남을 정복하려다가 실패했다.
그러나 명나라가 들어서고 1406년 베트남이 조공체제를 인정하지 않음을 이유로 영락제는 군대를 보내었고 베트남은 순식간에 정복당했다.[19] 명나라에 정복당한 베트남인들인 끈질기게 저항을 하였고 명나라는 선덕제때 베트남에서 손을 떼야 했다.
19세기 프랑스영국의 식민 침략을 걱정하면서도 패권 전쟁을 위해 태국, 크메르와 죽도록 싸우는 통에 국력이 쇠퇴하여 나중에 나라를 빼앗는 프랑스가 더 좋아할 일만 해 버렸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세계 열강인 프랑스, 일본, 미국, 중국과 모두 한 번씩 싸워 본 나라. '''게다가 이들과 싸워서 결국 다 몰아내 버렸다'''. 프랑스와 미국은 공식적으로 베트남에게 패전한 걸로 취급되고 있다. 중국 역시 1979년 베트남을 침공했으나 뭔가 조금 소득이 있다 싶을 때 결국 근성의 베트남인들에게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1940년에 일본이 베트남을 점령하고 1945년 3월에 괴뢰국 베트남 제국을 세웠으나 결국 그해 8월 연합국에 항복하고, 호치민의 주도하에 있던 베트민과 독립운동 세력들이 총봉기를 일으키면서 베트남 제국도 무너지고 1945년 9월 2일 호치민은 독립을 선언한다.[20]
근대사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남방작전(아시아 침공) 후로는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독립운동이나 공산주의 노선, 캄보디아와의 분쟁 등의 이유로 프랑스, 미국, 중국에 맞서 싸웠고 승리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승리했다는 것일 뿐, 이 과정 속에서 베트남 역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21]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전면전에서는 국력의 한계로 강대국들한테 털릴 수 밖에 없는 게 기정사실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국의 정글과 산악에 의존한 게릴라전으로 맞설 수 밖에 없었는데, 게릴라전의 특성에서 비롯된 문제 때문에 베트남 민간인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해 상술한 전쟁들의 후유증은 매우 심각했다.[22]

11. 통화




12. 교통


'''공산권 국가들 중 정말 몇 안 되는 도로교통 초강세 국가'''로서, '''오토바이가 정말 엄청 많다.''' 대략 4,600만 대[23]. 처음 보는 사람은 무슨 폭주족이 이렇게 많은가 할 정도다. 단순히 차보다 싸고 정비도 간단해서 많은 것인데 중국처럼 온가족 4~5명이 스쿠터 하나에 타고 가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건 베트남에서도 '''불법이다.''' 2명까지는 괜찮은데 3명부터는 단속한다.[24] 한국에서 4인용 차량을 혼자서 타고 출퇴근하는 것보다 더욱 맞춤형 교통모델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으나, 대신 안전은 내다버린 방식이라서 당연히 사고도 엄청 많이 난다. 정부 통계에 의하면 하루 평균 30명이 사망하는 꼴이라고 한다. 괜히 길 좁은 유럽에서 1~2인용 전기차를 만드려 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많은 오토바이가 내뿜는 매연으로 과거에는 도시의 대기오염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다만 갈수록 환경기준이 강화됨에 따라 배기가스를 획기적으로 저감시킬 수 있는 인젝션기술이 오토바이에도 적용되면서 요즘에는 서울의 공기와 비교해도 별로 차이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징그럽게 많은 오토바이는 여기 빼고 세계 어느 나라든지 그렇듯이 거진 다 혼다, 스즈키, 야마하일본산이다. 물론 한국산도 있긴 있다. 최근에는 한국산이나 대만산도 많이 굴러다니고 있는 것 같긴 하다. 또한 레플리카나 크루즈 모델에 비해 언더본, 스쿠터가 압도적으로 많다. 거의 99%가 언더본, 스쿠터라 봐도 된다.
오토바이 라이더 거의 전원이 헬멧을 착용하는데, 이를 어기면 오토바이를 압류한다고 한다.[25] 그런데 헬멧이라고 하는 것이 한국에서 흔히 보는 하이바 같은 게 아니고, 말 그대로 플라스틱 바가지 수준이라, 목숨은 보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헬멧에 대한 품질기준이 강화되었다. 오토바이 헬멧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곳은 고속도로와 국도인데, 일반 도로와 국도가 겹치는 부분에서 공안들이 눈을 부라리며 감시하고 있다.[26]이 공안들이 겹치는 길을 넘어오는 운전자를 잡아 바로 벌금크리를 때린다. 보통 주차요금은 2천 동에서 5천동(2020년 기준)이다. 대체로 상점들은 무료로 주차가 가능하다.
그리고 헬멧과 함께 거의 필수로 착용해야 하는 것이 마스크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오토바이 매연으로 대도시의 공기질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매연 때문이 아니라도 날파리 등 때문에라도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마스크는 필수다. 특히 36거리나 호안끼엠 호수 주변 시장가들은 길의 폭이 좁고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한데 뒤섞여 아수라장이 되는 일이 다반사여서, 만약 가이드가 동반한 상태라면 마스크 착용을 권유하기도 한다.
오토바이가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자국제 차량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수입차에 대해 200%의 관세[27]를 매기고 있기 때문에 차 값이 상당히 비싸다. 게다가 어지간히 돈이 많지 않고서는 자동차를 유지하기 힘들다. 대졸 사무직 임금이 월 300달러이고 일반 서비스업 종사자 임금이 월 120~150달러 정도에 불과한데, 휘발유 1리터 가격이 대략 0.5달러(약 2만 2천 동)쯤 된다[28]. 탑기어 멤버들이 베트남에서 하노이-하롱베이를 갈 때 차를 구하지 못해 1,500만 동으로 바이크를 사고 달렸다. 1,500만 동은 약 '''80만원'''쯤 된다. 그런데 대도시의 길거리를 보면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포르쉐 등의 고급 스포츠카들이나 벤츠 S클래스와 GL 등 고급차들이 즐비하다. 호치민 7군에 가면 람보르기니와 벤틀리도 매일 굴러다닌다.
이렇게 오토바이가 많다 보니, 좀 큰 식당에서는 '''오토바이 발렛파킹'''을 한다. 그래서 베트남 대부분 도시의 4차선 이상 도로에서는 마지막 차로나 하위 차로 절반 정도는 항상 오토바이가 차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요즘은 아예 법으로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지나다니는 도로를 나눈다. --그리고 길이 막히면 도보로 가서 도보에 오토바이가 전진하고 있는 걸 가끔식 볼 수 있다. 베트남에서의 도보는 좋은 편에 속하지 않아서 출퇴근 시간에는 오토바이가 도보로 건너는 경우가 있으며, 관리가 안 되는 곳은 잡초가 무성하다. 특히 남부 지역(호치민 등)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도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토바이가 하는 난폭운전은 아예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 또는 버스를 이용해 넓은 도로와 좁은 도로가 교차하는 사거리에서 마치 고라니처럼 오토바이가 눈깜짝할 새 지나가는 순간에 급제동을 할 때 오토바이를 향해 큰 소리로 욕설을 하거나 경적을 울리는 보복운전은 거의 하지 않는다. 보통 10보 이상 오토바이 이동을 하기때문에 보도는 오토바이 주차공간으로 전락한 상태.
신호등은 한국과 같이 신호가 바뀌기까지 남은 시간을 초단위로 표시해준다.보행자용 신호 말고 차량 신호도 친절하게 표시해준다. 파란불일 때만 남은 시간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빨간불, 노란불, 좌회전 등의 경우 다음 신호까지 남은 시간까지 표기해 준다. 횡단보도 신호는 주로 같은 방향의 도로 신호와 동일하다. 이 때 초록불 깜빡일 때 길 건너지 말라는 교훈을 배울 수 있는데(?), 초록불 깜빡이기 시작한 지 '''3초''' 만에 신호가 바뀌기 때문.[29] 신호등에 따라서는 아예 안 깜빡이는 경우도 있다. 군소지역에는 신호등이 아예 없다시피하며 그들만의 룰로 오토바이건 버스건 택시건 엉켜달리며, 외국인 입장에서 그 기이한 흐름이 경이로울정도. 국제면허가 있다 하더라도 미국과 한국, 일본같은 꽉 짜여진 교통시스템에 적응된 사람은 베트남에서 가급적 운전을 하지 않기를 권한다.
도시고속도로급 정도 되는 도로에는 한국처럼 입체교차시설이 없는 대신 좌회전 신호가 따로 있지만 시내 주요 간선도로에는 좌회전 신호가 따로 없고 다 비보호 좌회전인데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하지 않고 신호 바뀌자마자 좌회전 차와 오토바이부터 닥돌하며 직진 신호와 동시에 보행신호를 받고 길을 건너는 보행자 사이로 지나다닌다. 그렇다고 직진차량이 좌회전 차 먼저 가라고 양보하는 게 아니라 같이 닥돌해서 순식간에 교차로가 엉킨다. 교차로가 심하게 엉키면 차량도 보행자도 '''신호를 씹는다.''' 아니, '''이쯤 되면 이미 신호 따위는 의미가 없다.''' 이 때는 경찰이 직접 개입해서 어떻게든 통제를 한다. 그런데 경찰의 통제는 교통이 엉키지 않아도 물량(?)이 꽤 많다 싶으면 출동한다. '''특히 크리스마스구정 등의 큰 연휴 때.''' 하여간 매우 조심해야 한다. 큰 도로의 경우 오토바이는 바로 턴이 불가능하고 턴을 할 도로의 횡단보도 앞쪽에 표시되어 있는 곳으로 이동한 다음 직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게 교통 정리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오토바이 물량이 미어터질 경우에는 이딴 거 소용 없다.
호치민 시에 비해 규모가 작은 도시(달랏 등)도 교통이 혼잡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나름의 규칙으로 잘 굴러간다. 이 쪽은 신호등을 보는 게 하늘의 별따기인 수준인데다가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그조차도 없다. 차선은 아무런 역할도 하고 있지 않아 마구 엉키는데, 택시 몇 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오토바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알아서 잘들 비켜간다. 대신 경적이 자주 울려 시끄럽다. 베트남은 '''유독 무단횡단이 심하고 그마저도 공안들이 매우 관대하다. 워낙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개판'''이다. 우스갯소리로 "횡단보도는 다른 나라엔 다 있길래 만들었다"라고 할 정도다. 이런 지역에서 도보로 다닐 경우 무단횡단에 익숙해져야 되는데, 혹시 길을 건널 때 오토바이가 오고 있으면 멈추지 말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지나가야 한다. '''괜히 멈추거나 빨리 가면 피하려다 치이는 수가 있다.''' 가던 속도 그대로 가면 알아서 피해간다. 익숙해진 사람들은 정말 겁도 안 먹고 잘 다니지만 처음이라면 타이밍이 안 잡힌다. 단, 자동차는 보행자가 알아서 피해가야 한다. 달리는 속도가 차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전술했듯이 횡단보도마저도 큼지막한 SUV들이 돌진하다시피하니 '''신호 건널 때는 조심 또 조심하자. 훅간다.''' 아니면 아예 출발을 하지 말든가. 정 못 건너겠으면 그냥 차가 안 올 때까지 기다리든가, 아니면 옆에 현지인들이 건널 때 같은 리듬을 맞추면서 건너자. 그러다보니 호치민 시 중앙터미널 등 보행자가 많은 곳에서는 공안이 항상 대기하다가 신호가 바뀌면 보행자들과 같이 건너준다.
택시마다 서로 차의 색상이 다른데, 가장 안전한 것은 초록색과 연두색, 그리고 하얀색이다. 마일린[30] 택시와 비나선[31] 택시로 국가가 운영하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니 사실상 공식은 이쪽. 실제로 호텔 프론트 데스크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면 전부 초록색 택시가 온다. 일부 호텔에서는 햐얀 색깔 하노이 택시도 온다. 이외 노란색, 빨간색 등의 택시는 사립이거나, 가짜(!!) 택시인 경우도 있다. 택시로고가 이상하거나 도어쪽에 칠해진 고유번호가 다르거나[32] 택시 요금이 급격히 오르면 짝퉁택시다. 아니라고 해도 이런 택시들은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편이다. 한국처럼 할증같은 걸로는 안하고 그냥 조금 더 멀리 돌아가는 수법. 물론 그렇다고 해서 초록색 택시는 전부 편하고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드물게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도 있기 때문. 결국 사람 운에 따라 달렸다.[33]
장거리 시외버스의 경우에는 금호고속이 진출해 있다. 정확히는 베트남 삼코 그룹과 협력하여 합작한 자회사 금호 비엣 딴(Kumho Việt Thanh)에서 운행중이다. 주로 한국에서 사용하던 2004년식 이전의 차량을 들여와 사용하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베트남 내 현지생산 유니버스를 투입하고 있다. 노선은 하노이(미딘) ~ 바이짜이(하롱베이)~캄파, 하노이 ~ 하이퐁 ~ 하롱, 하노이 시내 ~ 노이바이 공항, 호치민 ~ 캄보디아 프놈펜 등을 운영중에 있다.
베트남에서 여행을 할 때 차도를 유심히 살펴 보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토바이 중에서도 스쿠터가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자동차도 꽤 다닌다. 차 덕후들은 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차도에서 달리는 자동차들을 관찰하는 경우가 많은데, 관광버스를 타고 다니다 창 밖으로 지나치는 자동차들을 보면 꽤나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자동차는 개인이 소유한 경차, 세단, SUV 등의 보통 차량과 택시, 트럭, 버스 등의 상용차로 분류할 수 있는데, 먼저 경차의 경우 대한민국현대·기아자동차의 차종 반, 경차 대국인 일본의 토요타 혼다 닛산 스즈키 반 이렇게 대다수를 이룬다. 세단은 일본산 차종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보이는 브랜드는 토요타. SUV는 한국산과 일본산의 비율이 비스무리하게 굴러다니는데 픽업트럭 쪽에서 단연 강세를 보이는 일본산이 조금 더 많은 듯.
반면 상용차는 한국산의 향연이다. 히노, 후소, 이스즈자동가 제법 굴러다니는 트럭 분야를 제외하고 택시나 특히 버스는 거의 다 한국차라고 봐도 무방하다. 택시는 주로 현대나 기아의 경차나 소형 세단이 많이 보이고, 버스는 두 말 할 거 없이 한국산이다. 고속버스건, 관광객을 태우는 관광버스건, 시내에서 돌아다니는 시내버스건, 심지어 소형버스도 거의 다 한국산 버스다.[34] 한국에서 연식이나 주행 거리가 오래되거나 긴 중고버스를 베트남에서 직접 수입해 현지에서 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베트남을 여행하다 보면 한글 노선도나 버스회사, 학원 이름이 그대로 쓰인 버스를 많이 볼 수 있다. 러시아몽골과 비스무리한데 이쪽은 워낙 한국과 한국차의 이미지가 좋다 보니 일부러 한글 문구를 도색해서 타고 다니기까지 한다. 2018년 현재는 베트남 현지생산된 한국차도 많이 보이는 편인데, THACO사가 대표적으로, 일본 마쓰다, 이스즈자동차와 프랑스 푸조, 그리고 현대자동차[35], 기아자동차자일대우버스 제 차를 설계와 부품을 수입해와서 조립만 베트남 현지에서 하는 라이선스 생산으로 판매하는 업체다.[36]
한국산과 일본산을 제외한 수입차는 주로 독일차다.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지만 정작 프랑스산은 비싸서 거의 없다. 쉐보레 등의 미국산 차도 상당히 굴러다니는 편. 현지 쉐보레 차종들을 보면 한국에서 굴러다니는 쉐보레 차종과 거의 비슷하다.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고급 수입차들도 특히 호치민, 하노이에 상당히 많다. 다낭, 하롱베이 등 유명 관광지에서도 현지인이 몰고 다니는 비싼 차량을 볼 수 있다.
고속도로 인프라는 하노이, 호치민, 다낭 빼고 없다. 그나마 잘 갖추어진 고속도로는 하노이며 서측으로는 라오까이까지 이어주는 CT05 호선이, 반 돈 국제공항까지 이어주는 CT04[37], CT09[38] 등이 갖추어져 있다. 베트남-라오까이 간 고속도로를 제외하면 전 구간이 사실상 직선에다가 평지이며 아우토반을 뺨치는 수준이다. 때문에 직선 고속도로의 1차로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참고로 베트남의 고속도로 최고제한속도는 120km/h이며 하위차로로 갈수록 제한속도가 줄어든다. 참고로 3차로 기준 고속도로에서의 차로별 제한속도는 1차로는 120km/h, 2차로는 90km/h, 3차로는 80km/h이다. 오토바이는 진입할 수 없으나 대형 원동기에 한해 진입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하려고 준비중이다.
베트남에도 아시안 하이웨이가 있으며 총 5개의 노선이 지나간다. 대한민국의 경부고속도로, 통일로(1번 국도)에 속해있는 아시안 하이웨이 1호선(AH1)이 베트남 동당(Đồng Đăng) - 하노이 - 다낭 - 호치민 - 목바이(Mộc Bài) 구간을 지나간다. 이 외의 지선은 AH14, AH15, AH16, AH17호선이 지나간다.
철도는 미터 궤간으로 협궤 1,000mm인데 상태가 굉장히 나쁘다. 모든 노선이 단선이고, 전철화도 되어 있지 않다. 전용 부지같은건 그런 거 없고 그냥 군산시장항화물선 폐선 옆 철길마을이나 삼학도선, 경기화학선에서 볼 수 있는 풍경처럼 선로 앞 1m 반경에도 안전 펜스 하나 없이 주택가 건물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닌다.직접 보시라. 하노이 시내를 분명히 지나가는데도 단선에 깨진 콘크리트 침목을 쓰고, 컨테이너가 차량 밖으로 삐져 나올 정도에다가 대부분의 터널은 물이 약수터처럼 새어나오고 속도도 느리다. 그렇기 때문에,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가는 남북선(베트남) 철도는 한국으로 치면 경부선에 해당하는 간선 철도이지만 하노이역에서 호치민 시 사이공 역까지 대략 1,200km의 거리를 여객 열차로 장장 28-36시간이 걸려 아예 하노이에서 호치민으로 오갈 땐 대부분 항공편을 이용한다. 이렇다보니 오토바이를 선로 한 가운데에 버젓이 세워 놓고 용무를 볼 정도다. 어느 방향인지는 모르나 하노이에서 기찻길 걷기로 유명한 곳은 하루에 2번밖에 기차가 안 지나간다. 그나마 하노이 동쪽의 중국난닝으로 가는 철도는 중국의 표준궤 열차가 들어오는 것 때문에 1,435mm의 표준궤와 1,000mm의 협궤듀얼게이지로 부설되어 있고, 이 철도 중간에서 분기하여 하롱베이로 가는 철도는 표준궤로만 부설되어 있다. 2011년경 베트남으로 수출된 서울지하철 2호선 전동차가 객차로 개조되어 운행되었던 노선이 여기다. 요즘엔 그래도 관광 열차 개발과 노후화된 설비를 교체 중이지만 갈 길이 멀다. 다만 일본 철도관련 기업과 연계하여 고속철도를 건설중이긴한데 진전이 별로없다. 착공식을 하긴했는데 예산안 통과가 자꾸 미뤄지다보니 공사에 진전이 없는모양(...) 전구간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신칸센열차를 투입할 예정이란다. 또한 다른 간선철도와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중부고원지역의 중소도시인 달랏과 렘동성의 짜이맛 현을 연결하는 7km정도의 작은 관광산악철도가 존재한다.[39]
도시철도는 '''없다.''' 지옥 같은 도심 교통 환경 개선을 위해 약 20년 전인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차례 도시철도 건설 계획이 세워졌으나 삼성전자 등 여러 다국적 기업의 투자로 경제사정이 과거에 비해 나아진 편임에도 계획이 미루어져 오다 현재 KOICA의 자금 지원과 해외투자 유치 성공으로 드디어 교통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호찌민 메트로 건설을 시작하여 공사 중이며 한국 GS건설이 1호선 2공구를 수주받아 공사 중이다. 그러나 완공 연도가 계속 미뤄져서 2019년~2020년에나 개통할 예정이다. 하노이에도 하노이 메트로가 공사중이며 일부 공사를 현대건설이 맡고 있다. 문제는 하노이는 이미 도시철도를 다 착공하였는데 계속시운전중에 결함이 발생하여 개통을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 호치민 도시철도가 먼저 개통할 판국이다.
반면 강이 크다보니 하운을 이용한 물류 수송은 그럭저럭 되는 듯하다. 예를 들어서 사이공의 사이공 강은 웬만한 '''컨테이너 선박(!)'''도 들어갈 정도로 강이 깊다. 한강에서는 상상도 못할 상황. 다만 이 굉장한 강의 깊이 때문에 다리를 놓는 게 곤란하다.

13. 문화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향과 교류로 유교 문화권 국가로 분류되고 있지만, 공산주의 정권의 통치로 중국과 마찬가지로 유교적 전통은 상당히 희석된 부분이 있다. 기본적으로 연장자 존중, 효도, 체면 등의 문화가 남아있지만 동시에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의도적으로 나이와 관련된 서열 문화를 무시하려는 경향도 공존한다. 물론 문화대혁명을 겪은 중국보다는 많이 덜하다. 종교적으로는 불교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 나라였지만 역시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지금은 희석된 상태.
베트남의 성씨는 일찍부터 동북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 까닭에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 달리[40] 한국, 중국, 일본과 유사한 형식으로 한자식의 성씨에 동아시아 이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자문화권에 속하였으나 근현대에 들어서서 한자(쯔놈)가 폐지되고 쯔꾸옥응으를 쓰면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할 줄 아는 베트남인은 극소수가 되었지만, 베트남의 성명에는 한자 뜻이 포함되어 있는 성명이 많다.[41] 중화권을 제외[42]한 한자문화권의 최남단인 셈이다.
한국 성씨와 비슷하게 소수 성씨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다. 특히 가장 많은 성씨인 '''응우옌(Nguyễn.阮.완)''' 씨가 베트남 전 인구의 38.4%나 된다. 베트남의 김씨인 셈.
그 외에 주요 성씨들로는 (Trần.陳.진)(11%), (Lê.黎.여)(9.5%), 호앙(Hoàng.黃.황)(5.1%), (Phạm.范.범)(5%), (Phan.潘.반)(4.5%), (Võ.武.무)(3.9%), (Đặng.鄧.등)(2.1%), 부이(Bùi.裴.배)(2%), (Đỗ.杜.두)(1.4%), (Hồ.胡.호)(1.3%), 응오(Ngô.吳.오)(1.3%), 즈엉(Dương.楊,양)(1%), (Lý.李.이)(0.5%) 등이 있다.
유교권 국가인 베트남에서도 한국, 일본, 중국과 마찬가지로 조상에 대한 제사를 모신다. 물론 기독교 신자들은 제사가 교리상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제사를 안 모시는 것도 동일하다.[43]
베트남과 한국의 부처님오신날은 1주일 차이가 나며 두 나라 간에 윤달이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1984년에는 한국에만(윤10월), 1985년에는 베트남에만 윤달(윤2월)이 있었으며[44] 1987년에는 한국이 윤6월, 베트남이 윤7월이었다. 2012년은 한국은 윤3월, 베트남은 윤4월이었고 2017년은 한국이 윤5월, 베트남이 윤6월이었다.
베트남 공산당은 초기부터 전통주의, 민족주의 세력을 많이 포섭했고, 대민 선전용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같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못지 않게 근성의 저항의 역사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또한 강조했다. 때문에 아시아권의 다른 공산주의 국가, 특히 크메르 루주 치하의 캄보디아, 문화대혁명 당시의 중국, 허를러깅 처이발상 치하의 몽골, 김일성 왕조가 현재까지도 지배하는 북한처럼 정신나간 말세적, 초월적 집단 광기에 휩쓸려 전통 문화를 초토화하고 단절하는 과정이 없었다. 오히려 혁명과 전쟁을 기반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재창조하기 위해 이념 대립 이전의 베트남 역사와의 연결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관혼상제 등을 비롯한 일상 생활과 사회 전반에서 여전히 성리학불교로 대표되는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된 편이다. 비록 건축물 같은 물질적인 전통의 상징물들은 20년 내전 속에서 쑥대밭이 된 게 많지만.
한자, 유교문화권 국가라 역시 장유유서 정서가 있다. 한국인들이 남에게도 가족 호칭을 붙이듯이 베트남에서도 가족 호칭을 붙인다.(형, 언니 등) 그렇지만 보통 "누나, 오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동생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너"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이나 "동생"이라고 부른다. 베트남 기준으로 나이가 많아도 "너"라고 부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한다. 몇 부분은 많이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한국과 비슷한 유교적 가치관을 공유하면서도 공산주의의 영향, 그리고 참파나 이웃 타이족 등과 교류하면서 생긴 발전으로 대인 관계는 나이 차, 직급 차가 크지만 않으면 비교적 수평적인 편이다.
무엇보다 조선처럼 성리학을 국교에 가까운 중심 사상으로 내세웠던 근대 이전에도 실제로 지배자 계급 아래 민간 사회 차원으로 내려가면 성리학적 사회 질서의 핵심 기관이었던 서원이 베트남에는 없었다.
한 고장에 꾸준히 눌러 앉아 수직적 인간관에 기반한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를 각 지방에 지속적으로 전파하는 기관인 서원이 없다 보니 민간 차원의 사회적 유교화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여기다가 조선과 달리 베트남은 역사상 끊임 없는 남진을 하며 유동적인 사회 구조를 유지하다 보니 사회적 인간 관계의 큰 틀은 유교적이라 할지라도 그 내부의 실질적인 구조는 수평성과 개방성이 더 돋보이게 된 것이다.즉 쉽게말하면 유교의 영향으로 어느정도 동북아처럼 수직 관계도 있으나 다른 동남아 민족과 접촉 때문에 수평문화가 더 발전됐다는 것.
그 외에도 나이가 많고 결혼한 사람을 한국에서 "아저씨(삼촌), 아줌마(고모)"라고 부르듯이 베트남에서도 "아저씨, 아줌마"라고 부른다. "아저씨, 아줌마" 입장에 있는 사람은 그렇게 호칭하는 상대를 "조카"나 이름으로 부른다.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상호 대칭적인 편이다. 그만큼 전반적인 사상적인 틀은 유교 성리학을 택하면서도 현지의 사회적 생활상은 동남아적 성격과 섞여서 동북아권과 다른 부분이 있다.
설날(뗏, 節)과 추석(쭝투, 中秋)을 쇠는 나라다. 추석과 뗏을 아주 크게 지낸다. 한국처럼 세뱃돈을 주는 문화도 있는데 특이한 것은 절을 안한다는 것.
민속의상 아오자이(Áo dài)가 알려져 있다. 월남판 치파오. 언론에서는 여자만 입는 것처럼 소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은 남자도 입는다. 물론 남성복 비중은 없다. 또 베트남 항공이 아오자이를 스튜어디스 복장으로 쓴다.
베트남에는 토끼 해가 없다. 대신 고양이 해가 있다. 베트남어로도 토끼에 해당하는 묘(卯)와 고양이를 뜻하는 묘(猫)의 발음이 같다.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제2외국어/한문 영역 기초 베트남어 시험지에도 베트남에는 토끼띠 대신 고양이띠가 있다는 내용으로 문제가 나왔다.
베트남에서 공식 지정한 공휴일은 1월 1일 새해첫날(Tết Dương Lịch, 뗏 즈엉 릭), 음력 설날인 뗏 암 릭(Tết Âm Lịch), 음력 3월 10일 훙왕기일(Giỗ tổ Hùng Vương)[45], 4월 30일 남베트남 해방기념일, 5월 1일 노동절, 9월 2일 독립기념일이 있다. 이중 9월 2일 독립기념일이 베트남에서 가장 중요한 국경일이다.
베트남에는 3월에 공휴일이 없고, 6월부터 8월은 물론 10월부터 12월까지 공휴일이 하나도 없다. 그나마 국제학교 학생들은 크리스마스에 쉬기라도 한다.
베트남은 인구가 많지만 경제발전이 시작된 시점이 늦어서 그런지 대중문화에서 한국이나 중국, 일본, 태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한국 드라마가 많이 방영되고 있으며 중국 드라마도 사극을 중심으로 많이 방영되는 편이다. 특히 베트남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한국문화에 대한 호감 및 관심도는 근래 들어 베트남 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할만큼 높다. 유명한 베트남 배우로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페이지 티코역을 맡은 응오타인반 등이 있다. 다만 소련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성우 1-2명이 모든 배역을 맡고 국어책 읽기식 더빙을 하는 경우가 많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다중배역을 맡아서 한국처럼 성우 여러 명이 나와서 더빙하는 경우가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기는 하다.
구비문학의 전통이 강한 나라다. 역사적으로 한시나 쯔놈소설이 발달하기는 했으나 문학의 주류는 이야기, 연극 등 구비문학이었고 한시나 쯔놈소설도 여기서 영감을 받은 경우가 많다.[46]
성문화에 있어서는 라이벌 국가인 태국처럼 동성애트랜스젠더에 그리 관대한 성향이 없었다. 성별정정이 처음 허용된것도 2000년대 말로 비교적 늦기는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빠른속도로 인식이 개선되어가고 있다. 공산당도 LGBT 문제에 대해서 그리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젊은층 사이에서는 동성애나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이 관대해져가고있다. 하지만 여기도 케바케이다. 나이든 사람들 사이에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당연히 좋지 못하다. 사실 전반적인 성문화는 현재 남한보다는 훨씬 보수적인 편.[47]
고등학교에 임신한 여학생들이 적어도 한명은 있다고 한다.
동남아에서는 교육열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2015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는 과학에서 525점(8위)으로 평균 493점보다 높았고, 수학에서 495점(22위)으로 평균 490점과 비슷했고, 읽기에서 487점(32위)으로 평균 493점과 비슷했다. 같은 동남아권의 태국(과학·수학 55위, 읽기 59위)이나 인도네시아(과학 63위, 수학 65위, 읽기 66위), 말레이시아(과학 45위, 수학 44위, 읽기 49위)와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최근에는 사교육도 팽창하고 있는 편이라고 한다. 다만 베트남 대학들의 안습한 경쟁력이나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영어의 경우 자신의 학력 수준을 알리는 지표이기도 하다. 자신이 영어를 할 수 있음을 어필하기 위해, 외국인이 유창한 베트남어로 물어도 대답은 영어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만큼 지역 전반적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수준이 낮다. 대학 졸업 조건에 토익 등 영어 성적이 걸려 있지만, 일반적으론 영어를 거의 못하는 수준이다. 특히 지방쪽은 더 심한데, 공공시설 영어병기가 되어있지 않고 다낭을 기준으로 경이로울 정도로 영어를 모른다. 영어로 말걸 시 얼굴 빨개지면서 어물어물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구사한다 하더라도 특유의 성조발음에 알아듣기가 힘들다. 이는 미국을 적대시하는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영어교육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며 현재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스터디도 하는 등 공부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팁 문화가 있다. 아울러 몇몇 업체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월급 말고 팁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팁 요금은 베트남 동으로 가능하나 미국 달러, 한국 원화로도 가능하다. 대략 $1~2 또는 1천원[48] 정도로 충분하다.[49]

13.1. 주의 사항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조금이라도 모욕적으로 대하고 평가하는 순간 베트남인들이 극대노한다. 예를 들어 아오자이를 입고 술담배를 한다거나, 바인미를 단순 빵쪼가리라고 비아냥거리는 순간 절교할 기세로 화를 낼 것이다.

13.2. 언어


베트남어가 공용어이다.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한다. 인도 동부 산지대 주민, 캄보디아인도 이 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쓴다. 한자문화권이며 오묘하게 일본어, 중국어 등과 함께 한자 한국어 독음과 흡사한 단어들이 있다. 예를들어 축구선수 응우옌 꽝하이의 한국어 한자 독음은 "완광해" 이다. 그리고 베트남 국가의 명칭은 한국어 한자 독음으로는 "진군가" 인데 베트남 어로 읽을 시 "티엔 쿤 카"이다.
베트남어성조(聲調)가 6개다. a, á, à, ạ, ả, ã. 성조가 2개 겹치는 경우가 있다는 오해를 하곤 하지만 "Việt Nam"이라는 단어에도 성조는 Việt부분에 있는 성조 하나 뿐이다. 왜냐하면 ê 자체로 독립된 글자이기 때문이다.(ê는 e와는 발음이 다르다). 더욱이 a-ă, â-ơ 같이 발음은 비슷한데 장단이 다른 모음들도 있다.
주요 외국어로는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한국어[50]로 이 언어들은 모두 제1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프랑코포니에 가입되어 있다. 프랑코포니 국가이기도 하고 100년 정도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아 많은 프랑스어 차용어가 유입되었지만, 외국어로서의 학습 열기는 영어에 밀린다. 그래도 프랑스에서 베트남에서 프랑스어 학습 관련 프로젝트를 이래저래 지원해서 2019년 기준으로도 67만 명 가량의 프랑스어 화자가 존재한다. 일상 언어로의 영향력은 거의 없으나 대략 5천-6천명의 사용자가 여전히 존재한다. 대략 한국의 노인들이 일본어를 아는 것처럼 베트남에서도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노인들이 있다.
최근에 베트남은 초등학교(장소학) 때부터 일본어를 제1외국어로 지정하기로 결정하였다.# 베트남어 단어 중에 한자어가 60%에 이르고 중국과의 교류가 증가하고 있어 베트남 내에서도 한자 교육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반중정서'''로 인해 흐지부지되었다. 또한, 소련시절부터 주요외국어로 배웠던 러시아어도 21세기에 들어서면서 2016년부터 초등학교에서도 영어와 중국어에 더해서 주요외국어로도 지정되었다.#
베트남에서 한국 기업에 취업하기를 원하는 구직자가 늘어나면서 TOPIK을 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던 와중에, 2021년부터 한국어가 제1외국어로 지정되었고, 정규 교육 과정에 채택되었다. 관련 뉴스

13.3. 음악


전체적으로 대중음악은 도이모이 정책 이후 개방이 되면서 서구 문물이 많이 유입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개발도상국에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정책 부실이 이곳도 마찬가지라서 대중문화 산업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책이 없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는 동남아시아에서 제법 음악과 사이키델릭 음악이 성행한 나라였다.
그러나 1975년 사이공 함락 이후 공산주의 정권에 겁먹은 상당한 뮤지션들이 해외로 망명하거나 지하로 잠적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CBC 밴드. 이 팀은 1960년대부터 활동한 밴드인데 사실상 친미적인 사람들이어서 미국의 CIA 요원들과도 연계가 있었다고 한다. 1971년 클럽에서 공연하던 중, 테러리스트가 설치한 폭탄으로 인해 미군 1명과 베트남 여성 1명이 사망한 뒤 베트남 생활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밴드는 1974년 남베트남의 패망을 예견한 CIA 요원인 친구로부터 소식을 전해듣고 베트남을 탈출하여 인도에 거주하다가 국제 난민으로 인정받아 미국 휴스턴에 정착했다고 한다.# 2011년, 당시 클럽에 관객으로 왔던 베트남 참전용사들을 모아서 그때 중단되었던 연주를 다시 하는 공연을 열었다고 한다. #.
공식적으로는 서구식 대중음악을 베트남 정부가 통제를 했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활동이 가능했고 도이모이 정책 이후에는 해금되었다고 한다. 현재 베트남에는 다양한 록 밴드가 활동 중이며 언더그라운드 씬도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다. 베트남 록 포털사이트 참고. 물론 아직도 일반 대중들은 이러한 '서구의 강한 음악'에 익숙치 않기 때문에 아직 많은 인기는 없다고 한다.#
다만 록과는 다르게 아이돌 음악은 한국이나 중국, 일본, 태국 등의 영향으로 청소년이나 젊은층들을 중심으로 인기가 있다.
1980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당타이선이 베트남 출신이다. 아시아 최초이며 2015년 한국의 조성진이 우승한 그 대회다. 당시 피아노와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베트남인이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자 전세계적으로 큰 충격이었고 아시아 최초라는 귀중한 기록을 남겼다. 당시 한국 언론에서 손 아무개라는 사람이 우승했다고 오보를 내 큰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 때 당시만 하더라도 베트남은 그저 빨갱이 나라였기 때문.
베트남의 가수인 뚜언 아인(Tuấn Anh)이 아시안 프린스라는 가상의 인물로 다른 베트남계 미국인 가수(Heart2Exist)의 노래와 같이 잘못 알려진 바가 있다. 또 2015년 3월 28일 뮤직뱅크 in Hanoi로 성공적으로 콘서트가 개최된 바 있다.

남 베트남 출신 이민자 가수 Heart2Exist의 Who i am/25 Years(Tôi Là Ai/25 Năm, 2002)공연 실황에서 '''남 베트남 국기'''가 나오는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하는 공연이라 당연히 나올 수 있다. 심지어 '''성조기도 나온다.''' 물론 미국에서 미국인이 하는 공연이니 당연한거지만. 즉 저 공연은 베트남 현지가 아니다. 저 가수들도 베트남 출신의 미국인들이다. 특히나 캘리포니아 지역은 현 베트남 정부에 대한 반감이 상당한 보트피플 출신들이 많으니 베트남 타운에서 남베트남 깃발을 자주 볼 수 있다.
최근에는 Hai Phut Hon틱톡에서 자주 쓰이는 음악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일렉트로닉 뮤직에서는 2020년 들어서 Hoaprox가 유명한데, 베트남인 최초로 Monstercat에 릴리즈한 아티스트가 되었다.

13.4. 식문화


식문화가 엄격한 편이다.
  • 젓가락을 가운데보다 아래쪽으로 쥐면 가족 중 누군가가 곧 죽음을 맞이한다는 오랜 미신이 있어 가운데 또는 가운데보다 윗쪽으로 음식을 집어먹어야 한다.
  • 젓가락이 입술, 치아, 혀에 직접 닿지 않게 해야 한다.
  • 한 번에 한 입 분량의 음식만 집어 들어야 한다.
  • 공동접시에 자신의 식기를 써서 침을 묻히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 반드시 개인접시에 덜어먹어야 한다.
  • 음식을 뒤적거리며 먹는 것은 불결한 행동이다.
  • 젓가락으로 음식을 쿡 찌르는 행동을 해선 안된다. 젓가락으로 쥐기 힘들어 미끄러지기 쉬운 기름진 음식이라도 예외는 없다. 다만 젓가락이 힘들면 포크로 먹고 싶다고 요구할 수 있다.

13.4.1. 음식



베트남 요리는 풍부하고 신선한 채소허브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채소가 없으면 밥을 먹은 것 같지가 않다."'''라고 말할 정도로 채소 요리를 좋아한다. 반면 육류 요리의 경우 궁중 요리에서도 고기를 사용한 요리가 별로 발달하지 않았으며,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미국의 "When on Earth"에서 채식주의자들이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10개의 도시들 중 하나로 하노이를 뽑기도 했다. 허브, 야채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베트남 여행을 추천한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스피어민트, 고수, 레몬그라스, 각종 민트류를 마음껏 곁들여 먹을 수 있다. 가끔 한국의 꽈리고추와 비슷한 고추를 내기도 하는데 매움의 정도가 국산 청량초에 비할 바가 아니니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한다면 절대 손대서는 안 된다.
2016년 기준으로도 상당수 식당에서는 냉장고가 잘 보급되지 않은 상황이라 식당에서 맥주를 주문하면 맥주에 얼음을 넣어 준다. 먹어 보면 의외로 마실만 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51]. 단지 얼음의 위생 상태를 보장할 수 없을 뿐. 현지에 나가있는 주재원의 말에 의하면 얼음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있으면 괜찮다고 한다. 베트남은 얼음을 사용하는 음식이 없기 때문에 냉각 파이프를 사용해서 얼음을 만들지, 각얼음을 만드는 관념 자체가 없기에 얼음이 가운데 구멍이 뚫린채 제공된다. 파이프를 중심으로 얼음이 냉각되기 때문이다. 냉각파이프에 물을 흘려 얼음을 형성하는 원시적인 구조가 태반이다.
맥주 소비량이 정말 많다. 전세계 10위 안에 들어가는 맥주 대국 중 하나. 아시아에서도 중국, 일본에 이어 3위인데다가 동남아로 범위를 한정하면 '''1위'''이다. 그럼에도 특이하게 하이네켄이나 버드와이저같은 메이저 맥주 브랜드들이 힘을 못 쓰는 지역 중 하나이다. 워낙 자국 맥주 소비량이 많아서 그렇다고. 실제로 베트남은 자국 내 맥주 생산량이 굉장히 많고 브랜드도 상당히 많다.[52] 거기다가 자국 맥주가 외국산 맥주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것도 하나의 요인 중 하나.[53] 때문에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반가운 소식이라 보면 될 듯 하다.

13.5. 영화



'''대한민국CGV가 베트남 영화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원래 베트남은 국영 영화관인 메가스타 시네플렉스 하나만 있었는데, 대침체로 인해 베트남 정부에서 메가스타를 매각하기로 결정했고, CGV가 이걸 인수해서 베트남 사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13.6. 스포츠


축구가 가장 인기 많은 스포츠다. 프로리그인 V.리그를 갖추고 있으며 동남아에서는 꽤 강호급이라 동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도 우승한 바 있다. 심지어 2003년에는 오만 쇼크와 더불어 한국에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준 팀으로도 유명하다. 하노이에서 조금만 눈에 불을 켜면 축구장을 찾을 수 있을 정도. 하노이 쭝화 만다린 가든 쪽에도 많이 있다.[54]
그러나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컵같은 국제경기에서는 늘 예선 탈락. V.리그도 세계적으로는 약체급이다. 리그 강호인 다낭 FC는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일본 감바 오사카에 15-0으로 크게 지며 성남 일화가 2004년에 페르시크 케디리(인도네시아)를 15:0으로 이긴 것과 더불어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최다 골실점 차 기록으로 남아있다. 다만 아챔리그 개편 전인 아시아 클럽컵에서 2001년 11월 24일 스리랑카 리그 소속인 SC사운더스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18:0으로 진 기록이 있다. 리그 우승팀은 AFC컵으로 진출한다.
그러나 2007년 아시안컵 공동개최국으로 진출하여 일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와 엮인 조에서 조 2위로 8강에 진출하여 그나마 개최국의 체면을 살린 바 있다. 참고로 공동 개최국인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는 죄다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베트남 전통 무술인 보비남이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 외 배드민턴, 테니스, 배구, 탁구, 체스 등이 인기가 있다.
체스의 경우 인기가 많아서 동남아 지역에서는 지존급이며 아시안 게임에서도 체스로 은메달을 따는 등 여러차례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또한 태권도의 인기도 꽤 있어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 트란 히에우 응안 선수가 여자부 57㎏급에서 은메달을 따 베트남 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다. [55]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호앙쑤언빈(42) 선수가 사격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올림픽 신기록인 202.5점으로 기록해 베트남의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베트남 사격팀 사령탑이 바로 한국인 박충건 감독이었고 사격장 시설도 부족하여 한국 인천에 머물면서 사격 연습을 해야했다. #
e스포츠가 발달했으며 그 중 리그 오브 레전드 역시 인기를 끌고 있다. 2017년 롤드컵 조별리그에서 기가바이트 마린즈가 비록 탈락하긴 했어도 대활약을 펼치고 깊은 인상을 남긴 덕에 지역 리그 VCS는 2018년부터 GPL로 산하로부터 독립하기는 했지만, 플레이-인 급에서는 최고로 평가되며 조금만 더 발전해도 5대 지역과 맞먹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2019 MSI에서도 4위로 탈락하긴 했으나 MSI 우승팀인 G2를 2번이나 잡아내는 등 충분히 높은 발전 가능성을 보였다. 특히 강세를 보이는 라인은 정글.
CS:GO에서도 동남아는 중국 다음으로 활성화되어있는데, 베트남은 한 때 그 동남아들 중에서 가장 유명했다. 중국이 부상하기 전에는 국제 경기에서 거의 유일하게 활약하는 아시아국가였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도 인기가 많고 지금도 대회가 열린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역시 하는 사람이 꽤 있다

14. 외교




15. 정치


공산주의 일당독재 국가이다. 현재 베트남의 유일한 정당이자 집권 정당은 '''베트남 공산당'''(Đảng Cộng sản Việt Nam 당 꽁 싼 비엣 남/ 黨共產越南/ 당공산월남), 일명 '월공'이다.
이전엔 구색정당으로 민주당과 사회당이 있었지만 둘다 1988년에 해체되었다. 한편 남베트남 출신 이민자들이 해외에서 결성한 각종 단체들은 베트남에서 반체제조직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2006년에는 자유 베트남 임시 정부[56] 소속인 베트남계 미국인 사업가 응우옌흐우짜인이 한국에 입국했다가 베트남 정부의 요청으로 체포되어 강제송환될 뻔한 사건도 있었다.
베트남 헌법 제5조는 '''"베트남 공산당은 베트남 노동자의 선봉대이고 노동자, 농민계급 및 전 민족의 권리에 충성하는 대표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호치민 사상을 신봉하는 국가 및 사회의 영도세력이다. 당의 모든 조직은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활동한다."'''[57]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헌법 제9조에서는 '''"베트남 조국전선과 그 구성조직들이 인민정권의 정치기반이다. (중략) 인민으로 하여금 주권을 행사하고 헌법과 법률을 엄정히 시행토록 하며 국가기관, 민선대표, 간부의 활동을 감시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일반적인 공산주의 국가의 헌법에 나오는 '''공산당 중심의 프롤레타리아 일당독재'''를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민주주의나 인권 등의 상태는 열악하다는 평가가 많다. 중국이나 이웃 인도차이나 국가들보다 겨우 조금 나은 수준이라고 한다. 2004년 미 국무부 인권 실태 보고서에는 베트남의 인권 상태가 상당히 심각하다고 발표했다.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에서 통제가 따른다고 보고했다. 현재 베트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강제 노동은 상당히 큰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베트남 정부는 국가보안법(국가안녕법)을 명분으로 응우옌꾸옥꿘, 레꽁딘 등의 민주 운동가들을 테러와 국가전복 혐의로 체포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이들과 같이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정치범으로 낙인찍힌 160명의 운동가들이 투옥된 상태이다.
2010년대초에 들어서 각종 반체제 사건에 3~4년형 정도의 징역형 혹은 이에 상응하는 집행유예나 보호감찰 정도만 내리는 등, 갈수록 체제비판 세력에 대해 관대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베트남 인권상황에 대한 미국의 비판과 압박이 주효하고 있기 때문인데, 북한/쿠바 등과는 달리 베트남은 중국과 끊임없이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어 미국과의 우호관계 유지가 중요하다보니 어느정도 미국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다.[58] 그마저도 요즘은 사라진 듯하다.
재미있는 것은 저 반체제 행위들 중에 '중국에 대한 비난'도 들어가 있다는 것. 이는 중국에 대한 비난이 곧 중국과 공산주의 형제 관계를 맺고 있는 베트남 정부에 대한 비난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베트남 대중의 대중감정이 상당히 나쁘고, 정부 차원에서도 양국간에 적지 않은 알력과 충돌이 있었던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베트남 입장에서는 인접한 강대국인 중국과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는 것 역시 난처하고 위험하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나름 베트남을 지원한 일단은 우방국인 중국과 어느 정도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던 것. 90년대 동구권 붕괴 이후에는 미국 등 서방국가와의 적대관계가 빠르게 해소되긴 했지만, 그 대신 중국의 국력과 영향력은 빠르게 성장하고 중월관계에 대한 소련/러시아의 대중국 견제력 역시 사실상 소멸했다.
베트남 국민들의 여론은 아니지만, 이 부분이 과거 국부였던 호치민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한 것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호치민이 베트남에 사회주의를 실시할 때 '''민족주의적 공산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공산주의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지금 베트남 정부의 운영방침이기도 하다. 호치민은 처음부터 공산주의에 열성적이었던게 아니라, 독립운동을 시작할 무렵에 베트남 독립을 도와준다는 세력이 반제국주의를 내걸고 식민지 민족독립을 지원하겠다고 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뿐이었다. 그래서 공산주의자가 된 것.
즉, 반체제(국가비판)는 그럭저럭 넘겨도 되나 '''반민족(국가전복), 정확히는 국가반역죄만 죽일 놈의 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서방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매국노에게는 관용이 없지만 반체제 행위는 적당히 눈감아 준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외환죄라는 것이 존재한다. 물론 베트남 당국이 한국이나 서방 국가들보다 과도하게 처벌해서 문젯거리가 된다.
또한 보트피플의 후손들이 아직 디아스포라 상태[59]이기 때문인 것도 크다.
하지만 2013년 개헌을 앞두고 '''사회 전반에서 엄청난 개혁 요구들이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물론 언제까지나 반체제이다. 특히 국호에서 '사회주의'를 제외하자는 가히 파격적인 의견도 나왔다. 베트남 공화국으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호치민 살아 생전의 베트남 민주 공화국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이다. 아마 북한이었으면 고사포에 죽을 만한 짓도 베트남은 정당만 흔들지 않으면 그냥 놔두는 등, 북한하고 비교하면 상당히 자유스러운 분위기이긴 하다.
게다가 '''심지어는 주석 직선제나 다당제를 도입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다당제 도입은 정권 수뇌부에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쳐도, '''공산당이 다수의 후보를 내세우고 직접 국민이 투표하는 주석 직선제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의견들이 묵살되지 않고 일단은 검토 의제로 수용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묘\~하게 한국이 걸어온 길에 가깝다.
현재 사회주의 공화국은 베트남을 포함하여 단 4곳이 남아있다. 나머지 3국은 중국, 쿠바, 라오스. 세 나라 모두 베트남과 사실상 마찬가지로 사회가 많이 자유로워졌다. 여기서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정치 개혁에 적극적이며 앞으로의 정치 개혁 상황을 진지하게 지켜봐야 할 나라'''인 점에서 주목 받는다. 지금 현재 베트남은 5공시절 대한민국이나 카스트로 사후 쿠바에 가까운 상태다. 과도기라는 것.
인터넷 관련해서도 윗동네 중국과 똑같은 인터넷 검열 국가지만 그나마 중국과는 달리 '''구글,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디스코드, 트위치[60], 위키백과, 스팀, 오리진, 틱톡 등을 베트남 체제 전복용으로 쓰지 않는 한 막지는 않는다.''' 덕분에 베트남인 유튜버나 베트남어 위키백과도 활발하고 보트피플이나 통일 이후 재교육 과정에 대한 내용도 서술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61] 베트남어 위키백과는 세계에서 12번째로 많은 문서를 자랑하며 문서 수도 한국어판의 3배에 육박한다. 스팀 창작마당에는 베트남인이 올린 모드 또한 활발하게 업로드 되고 있다.
지역이나 장소마다 차이가 있는지 다낭 공항에서는 트위터를 막아놨는지 접속이 되지 않는 반면 다낭의 리조트에서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모두 접속되는 등... 현재, 호치민과 하노이에서 페이스북 로그인 및 SNS를 사용하고 게시물을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현지 로밍폰이든, 와이파이든. 한국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네이버로 인식하듯 베트남에서는 페이스북이 그런 위치에 있다. 2016년 2월 경, 베트남에서 트위터도 뚫렸다.
교육문제에서는 공산주의 국가답게 국정교과서를 썼었으나 2015년 UN 권고안으로 검정교과서 도입 준비에 들어갔고, 4월 말에 비준 통과 후 하반기에 2018년 검정교과서 도입을 확정했는데, 이때 벤치마킹한 나라가 하필이면 한국인 탓에[62] 한국 정부가 적잖게 까였다. 그 문제에 대해선 박근혜 정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 참조
중국 공산당처럼 베트남 공산당도 파벌이 갈리고 있는데, 응우옌푸쫑 서기장과 응우옌쑤언푹 총리를 필두로 한 친중 보수파와 쩐다이꽝 주석을 필두로 한 친미파로 갈리고 있다.[63]
하지만 친중 정권으로 바뀐 들어서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시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22세의 블로거에게 징역을 선고할 정도로 정부 비판에 관용을 보이지 않으며, 베트남은 1만명의 사이버 부대를 운용하면서 반체제 게시물을 감시하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의 레이디 가가로 불리우는 팝가수 마이 코이가 반체제성향때문에 베트남 정부의 블랙리스트로 올랐다.# 거기에다 베트남에서는 법정에서 다당제도입을 주장해온 인권변호사 6명에게 "다당제도는 국가전복행위에 해당된다"고 중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는 9∼13년 전에 있었던 도서출판을 문제 삼아 저명한 학자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체제단속을 대폭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고, 소셜미디어 업체에 베트남 이용자들의 데이터 저장을 의무화하는 사이버 보안법을 제정해서 2019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베트남은 2019년 1월 2일. 전날에 사이버보안법을 발효하자 인권단체들은 반발했으며# 사이버보안법 통과 이후 SNS 검열이 점점 강화해지고 있다.# 이런 모양이니 베트남 사람들도 스스로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페이스북에다가 반정부 글 삭제 요구에 나서고 있다.#
이러다보니 베트남은 언론자유지수가 2019년 기준으로 176위에 불과할정도로 매우 낮으며 언론 탄압이 심각한 편이다.#, # 최근 페이스북을 차단한 적도 있고, 반정부 웹사이트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가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인터넷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게시물이 올려지면 해당 고액의 벌금을 물리고 있다. # 해외의 남베트남 잔존 세력이나 베트남에서 금지되어 해외로 망명한 정당들[64]이 목표물이 되고 있는데 한국의 자유북한방송, 북한민주화위원회 포지션쯤 된다고 보면 된다. 2016년 11월에는 정부를 비판한 블로거 2명을 체포했다.# 거기에다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2017년 11월 30일에 한 사회운동가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는 일이 발생되었다.# 그리고 2018년 1월 24일에 남베트남 국기를 내건 반정부운동가들이 반체제 선전 혐의로 체포되었다.# 2018년 1월 30일에는 미국의 망명단체인 베트남임시중앙정부를 테러단체로 규정했다.#
지방정부나 하위급 공무원들의 비리에 대한 보도는 잘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지만 공산당 내부의 일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 보장되지 않고 있고 언론사 중에 관영지가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자체검열이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시된다.
구글 검색으로 얻을 수 있는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은 많지 않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자신들의 종교를 탄압하고, 경제적인 소외에 따라 빈민층으로 밀려났다. 게다가 월족들과의 지역감정, 이권다툼으로 좋은 상황이 아니다.
그래도 그나마 긍정적인 점이라면, 베트남 국회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나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와는 다르게 최소한의 견제기능(?)은 잘 돌아간다는 점이다. 실제로 각료들을 해임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이 안 좋은 각료들에 대해서 신임투표를 해서 망신을 준다거나 하며,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반대의견이 높은 사업에 대해서 국회에서 직접적으로 제동을 거는 경우가 확 늘어났다.
정리하자면 중국 등에 비해 공산당 내에 집단지도체제가 나름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개혁개방을 거치면서 오히려 지방권력이 강해지면서(90년대 이후로 지방의 당조직이 중앙에 끼치는 영향이 강해졌다) 중국처럼 상향집중된 권력체계가 형성되지 못한것. 특히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과 국가주석이 분리되어서 군통수권에 따라 권력이 갈려버리는 중국과 다르게 베트남은 중앙군사위가 있긴 해도 헌법에서부터 인민군 통수권자가 국가 주석이며 장군의 임면권까지 있다고 명시해놓은 탓에 그쪽에서의 분쟁도 적다.
이는 호치민이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집단지도체제를 장려하였고, 일반적인 공산국가처럼 최고기관으로 기능하던 공산당 정치국이 1988년의 정치개혁으로 내각에 개입하기 어려워진 덕이다.[65] 정치국의 지도자가 없는 것도 특징인데, 스탈린과 김일성은 총서기와 정치위원장 자리로 권력을 장악했지만 베트남 공산당 정치국은 중앙위원회의 득표수로 정치국 내 서열순위가 정해진다. 총서기가 1위긴 한데 국가주석이 10위를 할 수도 있고 유동적이다. 이 때문에 좋든 싫든 집단지도체제가 유지될 수 밖에 없는 것. 어찌 보면 중국이나 쿠바보다도 레닌이 구상한 공산국가의 정치형태에 가장 가까운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베트남인 셈이다. 중국이나 북한처럼 당주석의 자리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유일한 당주석은 호치민이었고 호치민 사후 당주석은 폐지되어 부활하지 않았다. 이후엔 총서기가 가장 높은 자리이긴 했으나 당중앙위원회가 정치국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든가 아예 총서기를 투표로 해임시키는 일이 여러번 일어난 바 있다.
이런식으로 나름 안정된 집단지도체제가 31년이나 유지된 덕에 마찬가지로 독재국가 일색인 주변국과 비교하면 오히려 베트남이 민주적으로 보이는 기현상이 일어나버린 것. 장기적으로도 베트남 공산당의 독재가 하루아침에 완화되지는 않겠지만 중국처럼 심해질 가능성은 낮다. 당원들에게 불신임당해 실각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베트남 국민들은 국부인 호치민 주석을 존경하면서도 한편으론 현 정부에 대해서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어 머이 정책으로 인해 경제는 개방되었지만 그들의 정치는 아직 개방되지 않은 셈이다. 물론 예전부터 본인들도 이미지를 챙기고 싶어했는지 베트남 정부가 사실 국민들의 시선을 아예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 예시를 들자면, JTBC 비정상회담에서 베트남의 오토바이 이야기를 하다가 '가슴이 작으면 운전하지 못하는 법'이 있다고 소개하자 모두 놀라는 모습을 보였는데, 베트남 비정상 도안닝이 설명하기를 2008년 베트남 보건부에서 부상 위험을 염려하여 도로 운전자에 대한 체격 규정안(체중 40kg, 신장 150cm, 가슴둘레 72cm 이상)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렇게 되자마자 한 언론에서는 "'가슴이 작은' 사람은 자동차, 오토바이 운전이 금지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제목을 달아버려서 이 소문이 멀리 퍼지는 바람에 '무리한 법안이다'라는 국민들의 여론에 부딪혀서 무산되었다고 한다.

15.1. 정당



윗 문단 첫번째에서도 서술되었지만 '''현재 베트남의 정당은 베트남 공산당 하나 뿐이다.''' 1988년 이전까지는 구색정당으로 베트남 민주당과 베트남 사회당이 있었지만 현재는 폐당된 상태다.
무소속도 존재하며 500석 중 100석 정도를 가졌으나 지난 2016년 5월 22일에 치뤄진 선거에서 494석 중 21석으로 4.2%를 차지한다. 6석은 기준미달로 배정되지 않았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5년이다. 그래서 5년에 한번씩 국회의원 선거가 열린다. 가장 최근엔 2016년 5월 22일에 선거가 있었는데, 매우 신기하게도 개표 완료 및 결과 공표까지 2주가 걸렸으며 투표율은 '''99.35%'''로 누가 봐도 조작이 의심되는 수준이다.
베트남은 직선제 투표가 치러지기는 하고 일단 후보별로 골라서 뽑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하지만 정당별이 아닌 말 그대로 계파별로만 투표가 가능한 형태이고, 아무리 출마를 원해도 공산당 소속이거나 친정부 성향 단체 회원이 아닐 경우에는 출마가 쉽지 않아서, 젊은층에서 투표에 무관심한 사람이 많고, 실제 투표율은 90% 후반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대리투표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66] 가족이나 친지 가운데서 한 사람이 투표에 참여를 안 했을 때의 불이익을 고려하여 다른 사람들의 몫에 해당하는 표까지 투표하는 경우가 많아서, 공식투표율은 보통 80%대를 넘기는 수준으로 높게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대리투표가 아니었으면 베트남의 투표율이 확 떨어졌을 것이라는 것이 현지인들의 평. 또한 총리인 응우옌쑤언푹이 출마한 지역에서는 응우옌쑤언푹 후보가 '''99.48%'''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현재 496명의 국회의원중 133명은 여성이고 71명은 40세 미만, 그리고 86명은 소수민족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영어)
이외에도 정당들이 있지만 베트남은 일당제라 다른 정당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 망명 중이거나 베트남 국내에 있더라도 대놓고 활동하지 못하는 상태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인민행동당, 베트남 국민당, 베트남 갱신개혁당 등이 있다.
2019년을 기준으로 베트남 내외로 존재하는 다른 정당들은 다음과 같다.
  • 베트남 인민행동당: 미국으로 망명 중인 베트남의 반공 정당이다.
  • 베트남 국민당: 1927년에 창당된 정당으로 통일 뒤 미국으로 망명 상태.
  • 베트남 민주당: 원래 구색정당으로 있었다 폐당되였으나 2006년에 동명의 반체제 정당으로 나왔으며 당기도 같다.
  • 베트남 갱신혁명당: 미국으로 망명 중인 정당으로 구 남베트남 쪽을 지지하고 있다.
  • 8406 연합(Khối 8406): 베트남의 민주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정당이다.

16. 경제




17. 군사




18. 관광




18.1. 주의 사항


일단 공산주의 국가라 어지간한 강력 범죄는 사형에 처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강력 범죄는 많이 일어나지 않지만 특히 한국인들을 타겟으로 한 각종 덤탱이 사기, 소매치기, 날치기가 많아 조심해야 한다.
한국인을 호구로 알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사기가 매우 기승을 부리고 있는 곳이다. 모 유명 여행 유튜버에 따르면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남미, 아프리카, 인도 등 각종 우범 지역 및 여행 제한 지역을 다녀봤지만 베트남 사기꾼들이 가장 악랄했다고 한다. 아예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조직적으로 사기를 치기 때문에 빠져 나가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고, 오히려 협박을 한다고 한다. 게다가 사기치는 액수도 가장 큰 편이라고 한다. 인도나 필리핀 사기꾼들이 수십 퍼센트 정도 남겨먹는 사기를 친다면 베트남 사기꾼은 몇 배를 남겨먹는 사기를 친다고. 인터넷에 쳐봐도 알겠지만 상당히 다양한 유형의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소매치기, 날치기도 심각하다. 호치민, 하노이에 여행 계획이 있다면 물건 간수를 꼭꼭 잘하자. 궁금한 사람은 구글이나 네이버에 베트남 날치기나 베트남 소매치기 정도만 검색해 봐도 우수수 쏟아져 나올 정도로 사례가 많다. 어께에 매는 가방(특히 여자들 핸드백)을 매거나 뒷주머니에 뭘 넣는다면 '''"이거 가져가 주세요!"'''라고 소매치기에게 광고하는 것이니 백팩을 매고 다니자. 백팩도 가급적이면 앞으로 매는 것이 좋으며, 크로스백도 강한 충격으로 절단되어 절도되는 피해사례가 많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차도 쪽으로 걸으면 당연히 오토바이 날치기에 노출되므로 반드시 인도 쪽으로 걷도록 한다. 차도 가까이 갈수록 날치기 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또 요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유형으로 도둑이 피해자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가져간다. 현지인이 주머니를 손으로 쓲 훑고 간 것 같다면 이미 사라져있는 경우가 다반사. 특히 2월처럼 설날이 있어 바쁘고 마트같은 복잡한 곳에서 당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전기 충격기 따위를 현지에서 구입해서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말 것. 저런 걸 구입해서 국제선 비행기도 못 타지만 호신 무기에 대상이 범죄자라도 저런 걸로 현지인을 조지면 보복당하거나 현지 경찰서로 끌려가서 곱게 안 끝난다. 아예 처음부터 극도로 조심해서 날치기범의 표적이 되지 말든가, 뺏기면 그냥 공안에 신고하고 잊자.
그전에 돈은 그 날 쓸 돈만 들고 다니고 스마트폰은 잘 간수하며 아이패드 같은 고가제품은 숙소 같은 곳에만 들고 다니면 소매치기 당할 일은 없다. 다 자기 간수하기 나름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다낭의 경우 관광도시로서 높은 소득을 올리는 동남아의 마카오 같은 곳이라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여자 둘셋이 밤에 혼자 돌아다녀도 안전할 정도로 시민들 치안이 잘 유지되고 있다.

[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경보[1] 꽁호아싸호이쭈응이어비엣남[2] 예를 들어, '빨간 모자'가 아니라 '모자 빨간'이다.[3] '월남(越南)'을 일본어로 음독하면 '에츠난(えつなん)'이지만, 이렇게 부르는 경우는 드물다. 네이버 일본어 사전에 에츠난도 등재되어 있긴 하다.[4] 한국인들도 영어 표기인 Vietnam 때문에 이 표기에 익숙하긴 하다.[5] 황저삼선기(黃底三線旗)라고 흔히 번역되지만 베트남어에 따른 뜻은 '노란색(黃, vàng)과 붉은(𣠶, đỏ) 세(𠀧, ba) 줄(𪟄, sọc)의 깃발(旗, cờ)'이다.[6] 더군다나 더운 기후에 익숙해서 더더욱 그렇다. [7] 이런 관계로 캄보디아 사람들은 "이러나 저러나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이 가장 나았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있다. 비록 역시 캄보디아인을 혹독하게 차별하고 착취했을지언정, 베트남의 식민지배 시절이나 크메르 루주의 폭정에 비하면야 훨씬 양호한 수준이라서 상대적으로 프랑스가 욕을 덜 먹는 것이다. 게다가 아예 민족말살정책까지 벌인 철천지 원수 베트남을 개발살내준 것도 프랑스요, 덕분에 캄보디아란 나라 자체가 참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던 것이 프랑스의 침략으로 겨우 중지되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프랑스에 대한 향수를 부르고 있다. 프랑스라고 착취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비유하면 돈만 빼앗아가는 것과 아예 민족성을 없애버리려고 작정하고 달려든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서...[8] 그린베레와 같은 미국의 특수부대는 중앙고원과 캄보디아 국경지대 근처에 거주하던 참족을 비롯한 일부 산악부족들과 라오스 국경지대에 있던 몽족을 포섭하여 베트콩에 맞서 싸우도록 했다. 이는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이 쿠르드족을 이용하던 같은 맥락이다. 이들 중 몇몇 이들은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난 뒤, 베트남 정부와 싸우다 1990년대 캄보디아로 대거 넘어가서 미국이 특별기로 시민권 주고 데려갔다.[9] 미군과 북베트남 정규군의 최초로 교전했던 이아드랑 전투 한국군의 두코 전투 그리고 양측의 엄청난 사상자를 속출시킨 닥토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다.[10] 애초에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비정규전을 치르고 중부고원을 비롯한 남베트남 전역에 국가 내의 국가를 만들어 싸우고 있던 베트콩측에선 이들의 도움이 당연히 필요했다.[11] 일부 소수민족들의 토속 신앙에 이슬람 영향이 일부 더해진 정도이다.[12] 크메르족, 참족을 비롯한 15개 이상의 소수민족들이 그 지역에 거주한다.[13]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달랏이 그러하다.[14] 부온마투옷의 경우 베트남전쟁으로 황폐화가 되었으나 1980년 베트남이 소련에게 차관까지 빌려와 공을 들여 재건한 도시였기때문에 지금도 부온마투옷 시 당국에 많이 신경을 쓰는 편이다.[15] 하노이호치민, 껀터,다낭,하이퐁 이 해당[16] 남자가 여자보다 19만 419명 정도 더 많다.[17] 20년간의 내전으로 인해 이 당시 태어난 남성의 숫자사 급격히 줄어든 것이 원인이다.[18] 8년 간의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는 총 7만 명 이상의 병사를 잃었다. 이 중 디엔비엔푸에서만 2,300명 이상이 전사했고, 1만 명 이상이 항복했다.[19] 이때 명군은 수마트라까지 진격했다고 한다.[20] 2차세계대전 말기 미국의 OSS는 호치민의 베트민을 지원했고, 그들을 대일전에 활용하려 했지만, 조기에 일본이 항복하면서 그 계획은 무산된다.[21] 미국과 싸운 베트남 전쟁만 하더라도 베트콩측 전사자'''만''' 100만 이상이다. 고엽제나 폭격, 기타 학살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는 상상을 초월한다.[22] 비슷한 경우가 아프가니스탄. 힌두쿠시 산맥을 비롯한 척박한 산지를 통한 전투로 영국소련, 미국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치며 세 나라에게 패전을 안겨줬다. 그밖에 무굴제국이라든지 여러 강대국도 아프가니스탄에 쳐들어갔다가 좋은 꼴 못 봤다. 그나마 몽골이 일부 지역을 점령했지만 이마저도 오래 지배하지 않고 스스로 물러났다. 그리고 위의 전쟁들의 결과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을 보시는 대로다.[23] KOTRA 인용 2018년 통계[24] 다만 성인3명일 경우 불법이지만 성인2명,아이1명일 경우엔 합법이라고 한다.[25] 의외로 지방 소도시에서도 헬멧 법규를 잘 지키는 편이다. 북부 하노이의 경우는 호치민보다 착용하는 비율이 낮아 보인다.[26] 베트남은 '교통 경찰(Cảnh sát giao thông)'과 '공안(Công an)'이 분리되어 있다.[27] 2018년 이후 ASEAN 생산 차량의 경우는 무관세로 바뀌었고, 덕분에 차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28] 베트남은 산유국이고,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저유가를 유지하고 있다.[29] 사실 이건 한국만 유난히 점등시간이 긴 것이다. 다른 외국의 횡단보도 역시 깜빡이기 시작하면 눈깜짝할새에 빨간불로 바뀌므로 주의가 필요하다.[30] Mai Linh[31] Vinasun[32] 마일린 택시의 고유번호는 38 38 38 38, 비나선 택시는 38 27 27 27이며 54 27 27 27같은 경우는 명백한 짝퉁택시이다. 단, 전자에 마일린 택시 도어에 38 38 38 38가 정상적으로 쓰여져 있으나 도색이 하얀색이며 스티커로 대충 붙인 흔적 또한 보이면 역시 짝퉁이다. 정작 이걸 못 외우겠으면 우측 도어 쪽에 광고가 붙어있냐 붙어있지 않으냐인데 그렇지 않으면 75% 확률로 가짜택시란 것이다. 물론 정식 택시에도 광고를 붙어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33] 베트남 사는 한국인이나 베트남 현지인들은 차라리 그랩을 이용하라고 충고한다.[34] 확실히 더 분류하자면 시내버스는 자일대우버스 BS(하노이)와 현대 뉴 슈퍼 에어로시티(호치민)가, 관광버스와 고속·시외버스는 현대 유니버스가 대다수를 이룬다. 간혹 현대 에어로 스페이스 LS도 유니버스에 이어 콩라인을 이루기도 한다.[35] 버스만 해당[36] 타코 타운을 예로 들면 전체 모습은 현대 유니버스를, 앞 가니쉬는 FX212, 안개등은 뉴프, 뒷모습은 자일대우버스 레스타를, 중국산 저질 170마력 엔진을 골고루 섞었다고 보면 된다. 이외에도 완벽한 현대 뉴 프리미엄 유니버스인데 타코사의 라이선스를 씌운 것도 적지 않다.[37] 하노이-하이퐁[38] 하이퐁-반 돈 국제공항[39] 렘동성 정부와 베트남 철도당국은 계획은 닌투언성의 성도인 판랑짬탑(과거 참파의 수도)까지 연결할 계획이지만 예산부족으로 연장개통될지는 미지수.[40] 다만 참파캄보디아의 영역이었던 오늘날의 베트남 남부 지역은 부분적으로나마 전형적인 동남아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 편이다.[41] 대표적인 예로, 나무위키의 베트남 인물 문서에는 대부분 일본, 중국의 인물 문서들처럼 한자 리다이렉트가 걸려있다. ex: 호지명, 이공온, 양문명 등.[42] 중화권을 포함하면 한자문화권의 최남단은 싱가포르다.[43] 한국의 개신교 신자들은 제사 대신 추도예배를 드린다.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제사는 지내지만 위령미사를 드리는 경우가 많다.[44] 이 때문에 1985년 설날은 베트남의 경우 1월 20일, 한국은 2월 20일이었다.[45] 베트남의 국조인 훙 브엉(Hùng Vương, 雄王, 웅왕)의 기일. 한국의 개천절과 성격이 유사하다. [46] 최귀묵, <베트남문학의 이해>, 창비, 2010,p21[47] 사실 현재 지구 전체 면적으로 보았을 때 남한보다 성문화가 개방적인 곳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성적으로 보수적인 것은 아직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지 못한 국가들에서 흔히 보이는 현상이므로 시간이 해결해줄 일.[48] 지폐 한정[49] 팁은 기본적으로 서비스 받은 금액에 비례해서 늘려서 주는 것이 좋다. 베트남에서 10만 원 넘는 서비스를 받았으면 아무래도 5만 동(2500원) 정도는 주는 것이 좋다.[50] 2021년 부터 참고[51] 맥주에 얼음을 넣을 경우 얼음이 녹으면서 맥주의 씁쓸한 맛과 알콜 도수가 낮아지므로 맥주 자체를 술로써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불만족스럽겠지만... 더운 날씨에 시원한 음료로써 마시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냥 맥주보다 더 부담없이 들이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52] 가령 베트남 북부는 하노이비어를 주로 마시며 남부로 가면 비어사이공이 많이 팔린다. 거기다가 각 지역별로 유통되는 맥주를 합하면 맥주 브랜드가 정말 수도없이 많을 정도...[53] 베트남 북부 전역에 유통되는 맥주 중 하나인 하노이 비어가 5천~1만동(한국돈 300~500원...)인데 반해 하이네켄이나 버드와이저같은 맥주는 최소 2만동정도 한다고 보면 된다. 물론 관광객 상대로는 얄짤없이 저 가격의 두배 이상.[54] 단 축구 자체의 인기에 비해 V.리그의 인기는 좀 약하다. 그나마 2018년부터는 오름세에 있다.[55] 당시 결승상대는 대한민국의 정재은 선수였다.[56] 베트남 공화국의 후신임을 자처하는 망명 정부. 베트남 공산정권을 타도하고 베트남 공화국을 재건하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2013년 해체되었다.[57] Đảng Cộng sản Việt Nam - Đội tiên phong của giai cấp công nhân, đồng thời là đội tiên phong của nhân dân lao động và của dân tộc Việt Nam, đại biểu trung thành lợi ích của giai cấp công nhân, nhân dân lao động và của cả dân tộc, lấy chủ nghĩa Mác - Lê nin và tư tưởng Hồ Chí Minh làm nền tảng tư tưởng, là lực lượng lãnh đạo Nhà nước và xã hội..[58] 요즘 미국이 베트남에 변화에 대해 보상이 커져가는 중이므로, 사실상 베트남은 점점 민주화가 된다고 볼 수 있다.[59] 물론 대부분 미국/영국으로 퍼져있긴 하지만[60] 트위치는 한때 2018년에 축구 중계를 불법으로 스트리밍을 했다는 이유로 베트남의 최대 인터넷 통신사인 비엣텔 텔레콤(Viettel Telecom)에서 불법 축구 스트리밍 웹사이트로 식별해 비엣텔 접속을 일시적으로 차단한 적이 있으며, 실제로 2020년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사유로 중계권을 보유한 램블러그룹이 트위치를 고소한 적이 있다. # #(베트남어) 현재 트위치는 정상적으로 접속이 가능하나 그 영항으로 인해 트위치에서 활동하는 베트남인 스트리머가 거의 없으며 트위치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선호하는 편이다. 맥또마또가 한때 유튜브와 트위치의 동시송출을 한 이유도 바로 베트남 시청자들의 압도적인 유튜브 라이브 선호.[61] 나무위키의 노무현 문서나 중문판에서 천안문 사태 등의 문서엔 잠금이 걸려있는 반면 위의 두 문서 다 락이 걸려 있지 않다.[62] 실제로 주한베트남대사관 및 베트남 교육부가 한국의 교육현장 참관까지 했다고 한다.[63] 쩐다이꽝이 사망한 후 급 친중파로 독재를 이어나가는 거 아닐지 우려되지만, 갑자기 그럴 수 없는 게, 이미 미국하고는 사이가 좋다. 그 판을 깨는 건 불가능하다.[64] 베트남 개혁당, 대베트남 국민당 등[65] 정치국의 내각 개입에 반대한 건 공산국가에서는 아주 오래된 발상이다. 다름아닌 레닌이 주장한 것이다.[66] 공식적으로는 대리투표가 불법이지만 실제로는 사문화된 법 취급받는다. 사실 일당독재 국가특성상 여러 성향의 후보들이 다양하게 출마하지 못해서 투표율이 낮아지니까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서 가라를 쓰는 것인데 당국에서 묵인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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