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즉위한 군주들
1. 설명
성년이 되지 않은 어린 나이(0~15세)에 황제#s-2나 왕 등 군주가 되는 경우는 대체로 선대왕의 폭정 또는 단명, 주변 세력들의 간섭, 왕위 계승에 있어서 직계자손 고집으로 인한 폐해,[1] 혹은 앞의 세 가지 이유가 모두 어우러진 경우 등 이유가 다양하다.
문제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이들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대개 이러면 왕의 후견인이 섭정이 되어 대신 정치를 맡는데 이러면서 생기는 정치적 폐단과 민심 문란 등으로 하루가 편한 날이 없고 이 상황이 심화되기 시작하면 황실 가족들끼리도 유혈사태가 일어난다. 덕분에 어린 나이에 왕위에 등극한 사람치고 일생이 편안하거나 그 마지막이 정상적인 사람이 드물다.
물론 예외는 있다. 조선 성종은 후세에 성공한 왕으로 평가받으며, 요 성종도 명군이었다. 고구려와 신라의 부흥기를 이끈 정복군주 태조왕과 진흥왕은 고작 7세에 즉위했다.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으로 유명한 후기신라의 명군 성덕왕은 11살 즉위, 그리고 여러모로 유명한 프랑스의 루이 14세도 어릴 때 즉위했다. 광개토태왕 또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2] 그리고 중국 역대 황제 중 끝판왕인 강희제도 8세에 즉위했다.
덧붙여, 시간이 지난 뒤에 '''어리다고 얕잡아보는 자들을 역관광'''보내는 경우도 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조선 숙종[3] , 진시황, 이반 뇌제, 루이 14세, 메흐메트 2세, 표트르 대제 등이 그런 경우.
다음 목차에서는 0~15세의 나이로 왕이나 황제가 된 사람들을 다룬다.[4] 국가, 군주, 등극할 당시의 나이, 즉위년일, 퇴위년일, 재위기간, 섭정의 순서이며, 군주와 섭정이 혈연관계인 경우 괄호 안에 명기했고 섭정 없이 친정했을 경우에는 '친정'이라 표기했다.
2. 실존 인물
2.1. 한국사
고려, 조선 시대의 연대는 양력으로 환산되었다.
- 광개토대왕은 16세라 아슬아슬하게 빠진다.
2.2. 세계사
2.2.1. 중국
- 유선은 16세라 아슬아슬하게 빠진다.
2.2.2. 일본
2.2.3. 기타
- 투탕카멘(9세, 신하들) - 이집트
- 샤푸르 2세(0세[17] , 모후 이프라) - 사산 왕조 페르시아
- 엘라가발루스(15세, 조모 율리아 마이사) - 로마 제국
- 알렉산데르 세베루스(14세, 조모 율리아 마이사) - 로마 제국
- 고르디아누스 3세(13세, 어머니 마키아 파우스티나 → 장인 티메시테우스) - 로마 제국
- 발렌티니아누스 2세(4세, 어머니 유스티나) - 로마 제국
- 호노리우스(10세, 스틸리코) - 서로마 제국
- 발렌티니아누스 3세(6세, 어머니 갈라 플라키디아) - 서로마 제국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아버지 오레스테스) - 서로마 제국
- 테오도시우스 2세(7세) - 동로마 제국
- 콘스탄스 2세(10세, 아버지의 측근이자 장인인 발렌티누스[18] 및 파울로스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 동로마 제국
- 알렉시우스 2세(11세, 모후 안티오키아의 마리아) - 동로마 제국
- 하인리히 4세(7세, 모후 아그네스) - 신성 로마 제국
- 장 1세(0세[19] , 삼촌 필리프 5세) - 프랑스
- 프랑수아 2세(15세, 모후 카트린 드 메디시스) - 프랑스 왕국
- 샤를 9세(10세, 모후 카트린 드 메디시스) - 프랑스 왕국
- 루이 13세(9세, 모후 마리 드 메디시스) - 프랑스 왕국
- 루이 14세(5세, 모후 안 도트리슈 + 재상 마자랭) - 프랑스 왕국
- 루이 15세(5세,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 프랑스 왕국
- 앙리 5세(5세)[20] - 프랑스 왕국
- 메흐메트 2세(12세, 찬다를르 할릴 파샤) - 오스만 제국
- 이반 6세(생후 4개월,모후 안나 레오폴트나)-러시아 제국안나 레오폴트나의 막장 정치로 13개월만 에 쫏겨나고 그후 23년동안 감옥에 있다가 탈옥을 시도했는데 들켜서 죽었다.
- 아흐메트 1세(13세, 친정) - 오스만 제국
- 오스만 2세(14세, 친정) - 오스만 제국
- 무라트 4세(11세, 쾨셈 술탄) - 오스만 제국
- 에드워드 3세(15세, 모후 프랑스의 이사벨라) - 잉글랜드
- 에드워드 6세(10세, 에드워드 시무어 → 존 더들리) - 잉글랜드
- 이반 뇌제(3세, 모후 엘레나 → 삼촌들) - 러시아
- 마르그레트 에이릭스도티르(3~4세) - 스코틀랜드 왕국
- 메리 1세(생후 1주일, 모후 마리 드 기즈) - 스코틀랜드 왕국
- 제임스 6세(1세, 신하들) - 스코틀랜드 왕국
- 이사벨 2세(3세, 모후 마리아 크리스티나) - 스페인
- 알폰소 13세(0세[21] , 모후 마리아 크리스티나) - 스페인
- 크리스티나(6세, 재상 악셀 옥센셰르나) - 스웨덴
- 헨리 3세(9세, 신하 윌리엄 마샬) - 잉글랜드
- 헨리 6세(생후 9개월, 삼촌들) - 잉글랜드
- 야드비가 (11세, 신하들) - 폴란드
- 이불금 (7세, 진수도) - 이조 베트남. 부황 혜종이 진수도에게 살해된 뒤 즉위했고 곧바로 진수도의 조카인 진경에게 선양했다.
- 마아드 알 무스탄시르 (6세) - 파티마 왕조. 58년간 재위하여 장수한 왕들 항목에도 이름을 올렸다.
- 알 파이즈 (5세) - 파티마 왕조. 11세에 사망. 동생인 알 아디드에게 이맘위를 물려주었다.
- 알 아디드 (11세) - 파티마 왕조. 알 파이즈의 동생.
- 페드루 2세(6세) - 브라질 제국 (1831~1889) 자그마치 58년이나 재위했지만 브라질이 공화국으로 이양되면서 폐위되었고 2년 후에 죽었다.
- 요르요스 1세(17세) - 그리스
- 빌헬미나(10세, 모후 엠마) - 네덜란드
- 파이살 2세(4세, 삼촌 압둘라) - 이라크 하심 왕조.(1939~1958) 1958년 군부 쿠데타 때 살해당한다.
- 페타르 2세 (11세, 삼촌 파울) - 유고슬라비아 (1923~1970) 아버지 알렉산다르 1세가 마르세유에서 암살되자 즉위. 나치 독일군이 침공해오자 영국으로 망명하였고, 티토 정권이 들어서자 계속 망명생활을 하다가 사망.
- 미하이 1세 (6세, 숙부+대주교+대법원장) - 루마니아 (1921~2017) 조부 페르디난트의 뒤를 이어 즉위했지만, 3년 뒤에 아버지 카롤 2세에게 양위한다. 1940년 19세의 나이로 재즉위. 1947년 12월 30일 루마니아가 공산화되자 폐위되었고 이듬해에 루마니아 시민권도 박탈당했다. 그후 그는 영국을 거쳐 스위스에 망명했으며 1989년에 차우셰스쿠가 축출된 후에 1992년 루마니아 정부의 허락을 받고 귀국했다. 그가 귀국했을때 부쿠레슈티 시민 백만여명이 길거리에 쏟아져나와 환영했고 이에 긴장한 이온 일리에스쿠 대통령은 그를 추방하고 귀국을 금지했으나 1997년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 다시 루마니아에 귀국을 허가받았고 시민권도 돌려주었다. 그 후 엘리사베타 궁전에 사는 것을 허가받고 루마니아와 스위스를 오가며 살다가 2017년에 붕어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사망한 전승훈장 수훈자이다.
- 시메온 2세 (6세, 숙부+신하들) - 불가리아 (1937~) 아버지 보리스 3세가 히틀러와의 회견을 마치고 돌아온 뒤 급서하자[22]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1946년 불가리아가 공산화되자 폐위. 그래도 1996년 공산당 붕괴 이후 귀국하여 군주제를 부활하기 위해 국왕 임기제까지 제안하며 동분서주했으나 국왕 개인에 대한 지지는 높아도 군주제 지지율이 3%도 나오지 않아 무산됐다. 허나 2001년 6월 17일 총선거에서 대승하여 불가리아의 총리에 올라 2005년까지 집권했으며 이는 동유럽에서 축출된 군주들 중 공화제의 형식으로나마 다시 권좌에 오른 유일한 형태다. 2005년 8월 불가리아 사회당에게 정권을 내주었다.
- 푸아드 2세 (6개월) - 이집트 (1952~) 아버지 파루크 1세가 가말 압델 나세르를 비롯한 자유장교단에게 퇴위당하고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즉위 11개월 만에 폐위되었고, 이집트는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 데이비드 2세 (5세, 신하들) - 스코틀랜드 왕국
3. 가상 인물
- 가아라, 사루토비 히루젠 - 나루토
- 나르디엔 루아 듀플리시아드(18세, 친정) - 세월의 돌
- 라시드 팬드래건(16세[23] , 친정) - 창세기전 2
- 루돌프 게어하르트 체펠린 3세(10세, 균터 프로이첸) - 조이드 배틀 스토리, 기수신세기 조이드
- 룬의 아이들 윈터러 - 엔디미온
-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 -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
- 리비우스 올비누스 이프리키아 - 그럼에도 세상은 아름답다
- 릴리안느 루시펜 도트리슈 - 에빌리오스 시리즈
- 에레원[24] - 마비노기
- 미네바 라오 자비(하만 칸) - 기동전사 Z건담, 기동전사 건담 ZZ, 기동전사 건담 UC
- 시부야 유리, 사라레기 - 마 시리즈
- 알렉산더 지크프리트 폰 로엔그람(생후 2달, 모후 힐데가르트), 에르빈 요제프 2세, 카타린 케트헨 1세(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 은하영웅전설
- 토멘 바라테온 - 얼음과 불의 노래
- 페르난데스 라스팔마스 - SKT
- 피터(13세, 공동), 수잔(12세, 공동), 에드먼드(10세, 공동), 루시(8세, 공동) - 나니아 연대기
- 필립 팬드래건(12세, 숙부 리처드 팬드래건) - 창세기전 외전 템페스트
- N - 포켓몬스터 블랙/화이트[25]
- 앙리에타 드 트리스테인, 샤를로트 - 제로의 사역마
- 홍령 - 신령
- 황제(아카메가 벤다!) - 아카메가 벤다![26]
4. 관련 문서
[1] 이게 동아시아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밑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이나 중동은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태아의 계승권을 미리 인정하고 아들로 태어나면 바로 왕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 오히려 동아시아보다 더 보수적이어서, 동아시아에서는 서자라도 왕의 아들이기만 하면 적자보다 우선순위가 밀릴 뿐 계승권을 인정해 주는데 서양에서는 서자에게 계승권이 없다. 정확히는 아예 '첩'과 '서자'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첩'이라는 지위는 '정실에 비해 지위 및 권리가 열등하게 주어지도록 되어 있는 또 다른 공인된 혼인 관계'인데, 서양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철저한 일부일처제를 고수하였으므로 '정식으로 결혼한 배우자에 비해 열등한 지위에 있도록 규정된 또 다른 혼인 관계'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없었다. 배우자 한 사람 이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모두 공식적으로는 내연 관계, 불륜이었다. 따라서 그런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서출'이 아니라 '사생아'였으며, 정식 결혼에서 태어난 적자녀들과 달리 상속권도 계승권도 받지 못했다. 생부가 자신의 사생아라고 공식적으로 인지하거나, 호적상 생모의 법적 남편의 자식으로 처리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부 케바케였고 법적으로 사생아에게 허락되는 권리는 없었다. 대신 적녀에게도 계승권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살리카 법을 따르는 곳에서는 아예 여계 계승 자체가 금지되고 오로지 적자에게만 계승권이 주어졌다. 이 때문에 동양에서는 대가 끊겨 왕조가 망하는 일은 없었지만(있긴 있었는데 인위적으로 대를 끊어버려서 그렇게 됐다), 서양에서는 합스부르크 가문처럼 편법을 쓰지 않는 이상은(여성이 왕위/작위를 계승한 경우 그 후계자가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해서 왕조의 성씨를 유지하게 하는 등, 현재도 유럽의 몇몇 왕실에서 쓰는 방법이다) 왕조의 수명이 100~300년 정도를 넘는 경우가 잘 없다.[2] 광개토태왕을 제외하고는 어렸을 적 할머니나 어머니, 후견인들이 섭정에 충실하여 왕들이 성인이 된 후의 발판이 되어 주었다는 공통점이 있다.[3] 사실 이쪽은 즉위 직후부터 예송논쟁을 이어받아 환국을 진행시켜버렸다. 또 다음 다음 환국에서는 '''송시열'''을 숙청했다.[4] 이 기준에 따라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즉위한 건 20세이므로 제외한다.[5] 6촌이 6부가 되었고, 촌장들의 이름도 다 있으니, 엄밀하게 촌장도 맞다. 그러나 13세가 되니 숙성하여 왕이 되었다고 하니 13세 이후는 친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6] 성덕왕의 생모 신목왕후는 성덕왕 즉위 2년 전인 서기 700년에 죽었다.[7] 가야 건국 설화에 의하면 왕이 알에서 깨어난 뒤부터 계속 자랐다고 하며 다음 달 보름(생후 15~40일 사이)에는 웬만한 성인과 같아졌다고 한다. 물론 신화의 내용이므로, 실제 즉위 나이는 알 수 없다.[8] 충정왕의 생모는 충혜왕의 2비인 희비 윤씨지만 1비인 덕녕공주가 섭정을 했다.[9] 수렴청정을 맡을 대비가 없었다.[10] 이미지와 달리 3년만에 수렴을 거두었다.[11] 장제의 정비. 화제의 생모 양귀인을 죽였다.[12] 장덕황후 두씨의 오빠.[13] 황제로서 동아시아 최연소 즉위. 황제로 제한하지 않고 모든 동아시아 군주들을 통틀어 보아도 수로왕에 이어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14] 즉위하자마자 폐위당했다는 얘기도 있다.[15] 생모인지 적모인지 불명.[16] 일본 역사상 최연소 즉위, 최연소 양위, 최연소 상황.[17] 호르미즈드 2세는 임신 중인 아내 이프라의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 샤푸르 2세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왕위 계승자로 삼은 뒤 죽었다. 남편의 유언을 충실하게 지킨 이프라는 샤푸르 2세의 대관식 때 자신의 배 위에(물론 그 안에 샤푸르가 들어있기 때문) 왕관을 올렸으며, 출산 전까지 왕관을 다리 사이에 둬서 태아가 태어나자마자 즉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마기들이 아들이라고 호언장담하긴 했다. 일단 동서양 합쳐서 최연소 황제로 간주.[18] 원래 장인은 아니었고, 이렇게 제위를 찾아준 후 딸을 시집보내고 권신의 행보를 보이다가 마침내 제위에 욕심을 보여서 수도 시민들에게 살해당했다.[19] 유복자였다. 즉, 태어나기 전부터 왕위 계승이 확정되어 있던 것. 비록 생후 5일 만에 숨졌지만.[20] 프랑스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샤를 10세는 손자인 앙리에게 양위한 후 인기가 좋았던 친척 루이 필리프에게 섭정을 맡길 생각이었는데, 7월 혁명 때문에 앙리 5세가 즉위했을 때 혁명의 주도 세력이 루이 필리프를 왕으로 옹립(사실 루이 필리프 자신이 혁명을 일으킨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21] 장 1세와 마찬가지로 유복자였다. 즉, 아들로 태어나면 누나들을 제치고 태어나기 전부터 왕위 계승이 확정되어 있던 것. 장 1세와는 다르게 오래살았지만 공화혁명으로 퇴위당했다.[22] 독살설이 유력함[23] 실질적인 왕위에 오른 것은 16세, 대관식 후 정식으로 왕이 된 것은 21세이다.[24] 다만 G16을 끝냈을 경우에만 해당된다.[25] 이쪽은 원래 게치스가 얼굴마담으로 놓은 황제. 그러나 그가 전설의 군주 하르모니아의 후예란 떡밥이 있다.[26] 사실 아카메 세계관의 현 황제는 왕위 계승 순위가 매우 먼 인물이었으나 대신 오네스트의 농간에 휘말려 황제가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