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라인/목록/스포츠

 



1. 개요
2. 야구
2.1. 개인 타이틀 관련
3. 축구
3.1. 국가대표
3.2. 클럽팀
3.3. 선수 및 해설
4. 농구
5. 배구
5.1. 국내 배구
5.2. 해외 배구
6. WWE (프로 레슬링)
7. 종합격투기
8. 연고 지역
11. 기타 스포츠
11.1. 팀
11.2. 개인


1. 개요


콩라인/목록의 스포츠 문단이 매우 길어지는 바람에 이 문서로 분리됐다.

2. 야구


  • 금민철: 3회. 두산 소속이던 2005년, 2007년, 2008년에 한국시리즈 준우승. 히어로즈로 이적한 후 2014년에 팀은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했지만 금민철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 김경문 감독: 1982년 OB 선수였을 때와 코치 시절에 우승을 한 적이 있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으나, 감독 시절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경험이 없어서, 특히 2007년&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에게 패하여 2연준을 기록하면서 콩라인으로 취급되고 콩경문이라 불렸다. 여기에 NC 다이노스 감독시절인 2015 페넌트레이스 2위를 기록하고, 2016년에는 페넌트레이스 2위&한국시리즈에서 4연패로 2위를 기록하며 콩경문 어디 안 간다는 것을 증명했다. 특히 2016년 현재까지를 기준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잠실 10전 전패, 홈 경기 10전 전패를 기록하는 중이다.
  •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 일본 시리즈 8회 준우승. 단, 선수로는 1950년 최초의 일본 시리즈 당시 마이니치 오리온즈 소속으로 우승한 바 있다.
  • 류지현: 바람의 아들을 넘지 못해서 콩라인이다. 우승은 1994년에 했으므로 우승 쪽에선 콩라인은 아니다.
  • 마루 요시히로: 히로시마 시절인 2016, 2018년, 자이언츠 소속으로 2019, 2020년에 일본시리즈에 나갔으나 모두 패했다.
  • 마스코트
    • 두산 베어스 곰돌이 2002 유니폼(눈알이 동그란 곰).
    • 빙그레 이글스 1986년 ~ 1993년
    • 삼성 라이온즈 1989년 ~ 1994년
  • 맷 랜들: 3회. 2005년~2008년에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했던 외국인 투수. 준수한 성적과 성실한 태도로 많은 두산팬들에게 사랑받았다. 하지만 그 기간에만 3번(2005, 2007, 2008) 준우승에 거친 어찌보면 한국프로야구를 거쳐간 외국인 용병 중에서 손꼽히는 콩라인의 수장.
  • 탤런트 박민영이 시구한 팀들: 2007년 두산, 2010년 삼성, 2011년 SK는 모두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했다.
  • 박치국: 3회. 2017년, 2018년, 2020년에 한국시리즈 준우승. 팀이 한국시리즈를 우승한 2019년에 박치국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 성준: 삼성 선수 시절인 1986년, 1987년, 1990년, 1993년 한국시리즈 4회 준우승. 롯데 선수 시절인 1999년에는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했지만 성준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 있지 않았다. 2012년에는 SK 코치 신분으로 1년 전에 몸 담았던 삼성을 상대로 준우승을 거뒀다.
  • 손시헌: 3회. 두산 시절인 2005년, 2013년과 NC 시절인 201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두산이 2007년, 2008년 한국시리즈 2연준을 했을 때 손시헌은 상무에서 뛰고 있었다.
  • 아라이 타카히로: 한신 시절인 2014년, 히로시마 시절인 2016년, 2018년 일본시리즈에서 탈락.
  • 아시아 시리즈에서의 대만프로야구 클럽들: 2005년 싱농 3위, 2006년 라뉴 준우승, 2007년 퉁이 3위, 2008년 퉁이 준우승, 2011년 퉁이 3위, 2012년 라미고(舊 라뉴) 준우승. 2013년은 대만이 개최국 자격으로 두 팀 나갔는데 EDA(舊 싱농)는 조별예선에서 탈락하였고 퉁이는 준결승에서 일본의 라쿠텐을 잡고 결승에서 호주의 캔버라를 만나며 대만 클럽으로는 첫 아시아 시리즈 우승이 점쳐졌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캔버라에게 참패하며 또 준우승했다.
  • 양상문: 선수 시절 1번(1985년),[1] 코치 시절 2번(1999년, 2002년).
  •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합병되어 해체되기 전까지 일본시리즈 우승이 없고 4회 퍼시픽 리그 우승(1979년, 1980년, 1989년,[2] 2001년)만을 했다.
  • 이강돈: 4회. 1988년, 1989년, 1991년, 199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빙그레 콩라인 역사의 산 증인.
  • 이만수: 한국시리즈 우승 없이, 준우승 6회. 게다가 선수 시절 등번호도 22번! SK 코치 시절에는 우승한 바 있으나 2011년 감독 대행으로 한국시리즈 준우승, 2012년 감독으로 페넌트레이스 2위 및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 그러나 1985년 전후기 독식으로 이룬 우승도 있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있을때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경험했기에 완전한 콩라인은 아니다.
  • 이병규: 3회. 한국에서 한정으로 1997년, 1998년,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단, 일본에 있을 때는 2007년 주니치 드래곤즈 소속으로 일본시리즈 우승을 했기 때문에 한일 통합 기준으로는 콩라인이 아니다.
  • 이재영: 3회. 두산 베어스 소속이던 2005년, SK 와이번스 소속이던 2011년, 201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시즌 중에 LG 트윈스에서 SK로 트레이드된 2010년에는 소속팀이 우승했지만 이재영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없었다.
  • 이재우: 3회. 두산 시절인 2005년, 2008년, 2013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2015년에 소속팀이 드디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대부분의 동료들이 콩라인을 탈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재우 본인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 이종욱: 4회. 두산 소속이던 2007년, 2008년, 2013년에 한국시리즈 준우승. NC 소속이던 201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현대 유니콘스에 소속 시절인 2003년에 팀이 통합 우승했지만, 이종욱은 그 당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그나마 코치로는 1개가 있지만 선수 시절로 한정하면 콩라인 중에서도 심한 편.
  • 정재훈: 4회. 두산 소속 시절인 2005년, 2007년, 2008년, 2013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2014시즌 후 FA 보상선수로 롯데로 옮겼다가 1년만에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으로 복귀했는데, 하필 그 2015시즌에 두산이 한국시리즈를 우승했기에 더더욱 안습이었다. 2016년에는 본인이 압도적인 차이로 홀드 1위를 기록하고 있었고 팀도 시즌 내내 1위를 하고 있었기에, 정재훈은 홀드 1위 타이틀 획득은 물론이고 당연히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 수 있었다. 하지만 시즌 중 오른팔에 타구를 맞는 부상을 당하여 시즌 아웃되었고, 팀은 21년만에 통합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결국 정재훈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하면서 콩라인을 탈출하지 못했다. 2017년에 팀은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했지만 정재훈은 재활하느라 퓨처스 리그에서조차도 경기를 뛰지 못하고 은퇴했다.
  • 최동수: 3회~4회. LG 트윈스 소속이던 1997년, 2002년, SK 와이번스 소속이던 2011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LG 소속이던 1994년, SK 소속이던 2010년에는 팀이 우승했지만 최동수는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없었다. 그리고 LG 소속이던 1998년에 팀은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했지만 최동수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있었는지 불분명하다.
  • 최준석: 3회. 롯데에 입단했지만 두산으로 이적한 뒤에 2007년, 2008년 한국시리즈 2연준 달성. 2013년에도 한국시리즈 준우승.
  • 최창호: 3회. 태평양 시절인 1994년, 현대 시절인 1996년, LG 시절인 1998년[3] 한국시리즈 준우승.
  • 한희민: 빙그레의 콩라인 역사의 산 증인으로 한국시리즈 4회 준우승. 빙그레 시절인 1988년, 1989년, 1991년, 1992년에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했다. 삼성 시절인 1993년에 팀은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했지만 한희민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 한큐 브레이브스 1962~1971 유니폼: 퍼시픽 리그를 5번 우승했으나 하필 시대를 잘못 만나서...
  • 강릉고등학교 야구부: 2010년대 후반부터 고교야구의 강자로 떠올랐으나 2019년 청룡기, 봉황기 준우승, 2020년 황금사자기 준우승까지 기록하며 현재 고교야구의 대표적인 콩라인이 되었다.

2.1. 개인 타이틀 관련


  • 노무라 카츠야: NPB 최다 경기 출장 1위, 최다 타수 1위, 전쟁 후 최초의 3관왕을 달성했으나[4] 최다 안타, 홈런, 타점은 오 사다하루, 장훈 등에게 빼앗기며 2위를 기록하였다. 거기다 인기도 퍼시픽리그 소속이라는 특성상 나가시마 시게오, 오 사다하루 등에 밀려 2인자 신세였다. 오죽하면 본인이 "나가시마와 오가 해바라기면 나는 쥐죽은듯 피는 달맞이꽃 이란 말까지 했을까..
  • 다르빗슈 유: NPB에서는 리그를 지배하던 투수였고 사와무라 상을 수상한 적이 있지만 MLB에서는 좋은 활약에도 2013년 AL 사이 영 상에서 맥스 슈어저에 밀려 2위, 2020년 NL 사이 영 상에서 트레버 바우어에 밀려 2위를 기록하였다.
  • 로이 오스왈트: 2001년 데뷔 시즌에서 알버트 푸홀스에 밀려 신인왕 2위, 2005년 월드시리즈 준우승, 2004, 2005시즌 2년 연속 20승 기록, 사이영상 0회.
  • 박민우: 2014년, 2015년 2년 연속 도루 2위.
  • 애덤 웨인라이트: 2009년 19승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에서 최다승을 기록했지만 사이영 상에서 팀 린스컴과 팀 동료 크리스 카펜터에게 밀려 3위를 기록했고, 2010년에는 20승을 기록했지만 로이 할러데이가 21승을 하며 다승 2위를 기록했고 사이영 상 투표에서도 로이 할러데이에게 밀리며 2위에 머무른다.
2013년에도 다승 1위, 이닝 1위를 하지만 클레이튼 커쇼라는 더한 괴물에게 밀리며 사이영 상에서 또 2위에 머물렀다. 2014년에는 커쇼도 부상당하고 이제 사이영 좀 타나 싶더니, 그 커쇼가 부상 복귀 이후 그야말로 커친놈 모드로 달리며 21승 1.77이라는 치트급의 성적을 찍어버렸다. 사이영상은 당연히 만장일치에, MVP까지 타버렸으니 말 다 했다...
  • 심정수 & 양준혁: 둘다 역대 최고의 1인자를 끝까지 넘지 못하고 은퇴했으며 각각 해당 문서 참고.[5]
  • 커트 실링: 1990년대에는 브레이브스 왕조 3인방에게 밀렸고, 승수 자체도 소속팀이 만패팀인지라 워낙 밀렸다. 그나마 1997년 17승을 거두면서 사이영상을 기대했으나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외계인 한 놈이 리그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바람에 밀렸다.
2000년대 들어가면서 외계인이 리그를 옮기고 브레이브스 왕조 3인방도 황혼기를 맞이하면서 이제야 사이영 한 번 타보겠구나 했더니 새로 옮긴 팀에 있던 콧수염 멀대가 리그를 초토화하며 2001, 2002년 모두 2위로 밀렸다.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한 덕에 외계인, 콧수염 멀대가 모두 옆 동네에 있게 되어 이번에야말로 사이 영을 받는구나 했지만,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또 다른 외계인이 튀어나와 리그를 씹어먹는 바람에 또 2위. 결국 은퇴할 때까지 사이 영은 못 받았다.
  • 키요하라 카즈히로: 팀 우승은 세이부 시절 때부터 이미 밥먹듯이 우승했었고, 본인도 꾸준히 성적을 올리며 통산 홈런, 타점 10위권에 이름을 올렸지만, 삼관왕의 주요 타이틀인 수위타자, 홈런왕, 타점왕을 한번도 못 타 팀 우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콩라인 취급된다. 무관의 제왕이란 별명이 붙여질 정도였다.
  • 폴 골드슈미트: 2013년에는 의 비밀번호를 끊어낸 앤드류 맥커친에게 밀렸고, 2015년에는 커리어 하이를 찍었으나 브라이스 하퍼가 역대급 성적을 찍어 또 다시 2위하였고, 2017년에는 조이 보토가 터지며 또 다시 2위가 되었다.
  • 홍성흔[6]: 2008년 ~ 2010년 3년 연속 타율 2위, 2010년 타율, 장타율, 안타, 타점 2위. 2010년에 같은 팀에 7관왕 이대호가 있었기에 1위를 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2001년 두산 베어스 우승 멤버지만 키요하라처럼 개인 타이틀이 없어서 콩라인 취급. 게다가 마저!그래도 기자들과 친분덕분인지는 모르지만 골든 글러브에서는 혜택을 많이 보았다.
  • 김태균: 2016시즌에 역대급 성적을 기록하고도 최형우에게 밀려 타율 2위&안타 2위&타점 2위를 기록했다. 그래도 볼넷 1위&출루율 1위를 기록하기는 했다.
  • 손아섭: 최다 안타상을 제외하고는 콩라인. 데뷔 이후 3차례의 시즌 최다 안타 1위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2013년과 2020년에 타율 2위를 기록하며 타격왕을 차지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현역 통산 타율 또한 2020년 기준 박민우에게 밀려 2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기록에서도 2위가 많아 득점 2위 3차례, 볼넷 및 도루에서 2위 2차례를 기록하는 등 스톡킹에서 본인도 스스로 한 시즌이라도 KBO리그를 씹어먹을 정도의 활약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고 FA 당시 메이저리그 진출 또한 포기하게 된 이유라며 자조했다.

3. 축구



3.1. 국가대표



3.2. 클럽팀


  • 바이어 04 레버쿠젠: 분데스리가 우승을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는데, 역대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 팀들 가운데 자국 리그 우승 경험이 없는 것은 레버쿠젠이 유일하다. 2001-02 시즌 트리플 러너업을 달성했고[8], 당시 수문장이었던 한스 외르그 부트월드컵까지 준우승하여 쿼드러플 러너업을 기록한 것도 모자라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고 나서 마지막 시즌인 2011-12 시즌에 또 트리플 러너업을 달성했다. 분데스리가와 챔피언스 리그 외에는 DFB-포칼 2회, UEFA 주관 유럽 대항전 2순위UEFA컵 우승 1회[9] 등 우승 경력이 있다. 아예 Neverkusen[10], Vizekusen[11]이 팀의 별명일 정도
  • 샬케 04: 1963년 분데스리가 통합 출범 이후로 준우승만 7번 했을 뿐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다.[12] 다만 챔피언스 리그 성적이 시원찮은지라 준우승이 영 임팩트가 없고 DFB-포칼도 레버쿠젠보다 더 많은 5회 우승 경력이 있어서 레버쿠젠처럼 콩라인 이미지가 심하지는 않다.
  • EFL 챔피언십 준우승팀: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는 건 똑같으나 우승팀과 승격 플레이오프 승자는 트로피를 받는 반면 준우승팀에게는 없다.
  • 경남 FC: 2005년에 창단하고 2006년부터 K리그에 참가하기 시작한 그렇게 길지는 않은 역사를 가진 팀이지만, 콩라인의 떡잎이 푸르다. 우선 리그 참가 3년차에 불과했던 2008년엔 FA컵 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포항 스틸러스를 만나 패배해 준우승을 기록한다. 4(22)년 뒤, 다시 FA컵 결승에 진출하지만... 또 포항 스틸러스에게 패하여 준우승에 그쳤다. 이로써 FA컵 준우승2번 달성하게 되었다. 2017년, 마침내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지만... 당시 경남은 K리그2, 즉 2부 리그 소속이었다.[13] 다음해에는 고대하던 1부리그로 승격해 모두의 예상을 깨고 돌풍을 일으켰지만, 워낙 강력한 상대에게 밀려 준우승을 기록하게 되었다.[14] 이로써 현재 이 팀은 4(22)개의 주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덧붙여서 2차례 강등된 적 있는데 모두 뒤에서 2등(11위), 즉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강등되었다. 1, 2차전 합산 스코어도 2점차 패배로 1무 1패로 강등되었다.(2014년 1차전 3:1 패, 2차전 1:1 무, 2019년 1차전 0:0 무, 2차전 0:2 패)
  • 울산 현대: K리그 최다 준우승 팀으로 준우승 횟수만 9번이 되었다. 더욱이 2013, 2019 시즌 모두 마지막 경기를 비기기만 해도 우승할 수 있었으나 그 한 경기를 비기지도 못해서 결국 포항 스틸러스[15], 전북 현대 모터스에게 우승컵을 내줬다. 아울러 2020 시즌도 24라운드까지 전북 현대 모터스를 승점 3점차로 앞서고 있었고 25라운드와 26라운드에서 승점 4점(1승 1무)을 땄다면 우승이 확정될 수 있었으나 포항 스틸러스와 전북 현대 모터스에 2경기 도합 5:0으로 털리면서 우승이 좌절됐다. 거기에 FA컵 준우승을 하면서 더블 준우승을 기록했다. 거기에 2020 AFC 챔피언스 리그도 결승에 올라 콩라인을 넘어서는 콩레블 달성 여부에 관심이 쏠렸으나 우승을 차지했다.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준우승을 한 적이 없다. 2020 AFC 챔피언스 리그에 우승하면서 K리그 2회 우승, ACL 2회 우승을 달성했다. FA컵에서도 우승 1번을 더 추가하면 2회가 된다.
  • 부산 아이파크(2010년대 한정): 2010년 FA컵 준우승을 시작으로 2015년 뒤에서 2등(11위)로 강등되었고, 2017년에는 경남 FC에게 밀려 리그 2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FA컵에서도 울산에게 패배해 준우승을 했다. 2시즌 연속 승격이 좌절되다가 2019년에도 광주 FC에게 밀려서 준우승을 했지만,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경남을 2:0으로 이기고 승격에 성공했다.

3.3. 선수 및 해설


  • 다비드 트레제게 - 걸출한 실력으로 유벤투스의 주전급의 스트라이커지만 늘 프랑스 대표팀에선 앙리에 밀려 늘 벤치 신세였다. 당시 대표팀 감독인 레몽 도메네크감독은 전술을 4231 전술을 쓰는데 언제나 "1"의 원톱은 앙리였기에...이런 안습한 상황을 잘 나타낸 "트레제게의 눈물이란 영상이[16] 꽤 유명하다. 이런 홀대와 감독과의 불화를 견디지 못하였는지 결국 트레제게는 도메네크 감독이 있는 이상 더 이상 대표팀엔 안 돌아간다! 라고 하며 2008년 국가대표 은퇴 선언을 하고 만다.
  • 디에고 밀리토 - 인테르 트레블의 1등 공신이 무슨 콩라인인가 싶겠지만 세리에, 라리가, 둘 다 득점왕을 2위에 머물렀다. 아니 사실은 2010-2011시즌에도 득점이 디나탈레에 밀려 또 2위다. 득점왕 2위 3번.[17][18] 여담이지만 이 사람 등번호도 22번이다. 트레블이 신경쓰이지만 이것도 나름 콩라인이다.
  •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 2012-2013 시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면서 분데스리가 준우승, 분데스리가 득점 2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챔피언스리그 득점 2위를 기록하며 콩라인에 입성했다. 2013-2014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했으나 팀이 준우승 더블...... 그래도 뮌헨으로 이적한 후에 리가 우승과 득점왕을 차지했고 그리고 2019-20 시즌엔 뮌헨의 트레블 뿐만 아니라 레반도프스키 자신도 득점왕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 마리오 고메스 - 마리오 콩메스.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대표팀에서 활약하고는 있지만 스페인과 독일의 중국적이다. 유로 2008에서는 벤치에서 독일이 스페인을 상대로 준우승에 그치는 것을 바라보아야 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독일이 스페인에게 4(22)강에서 무릎 꿇었다. 하지만 콩라인 본색은 2011-12 시즌에서 수많은 콩의 위엄을 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팀 바이에른 뮌헨이 리그 준우승, DFB-포칼 준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으로 준우승 트레블을 달성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리그와 포칼에서 뮌헨을 물리치고 우승한 팀 도르트문트는 리그-포칼 더블,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뮌헨을 승부차기 끝에 물리치고 우승한 첼시는 UEFA 챔피언스 리그-FA컵 더블을 달성한 팀들이었다. 거기에 유로 2012에서는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독일이 4(22)강에서 이탈리아에게 2 대 1로 패했다. 만약 결승에서 이탈리아의 발로텔리가 한 골 혹은 스페인의 토레스/파브레가스/사비 알론소가 두 골 이상을 넣게 된다면 득점 2위를 달성하게 된다...였는데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결승전에서 교체투입된 토레스가 1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동률이 되었으나 출전시간이 고메스가 더 길었기 때문에 결국 득점왕 경쟁에서 밀려버렸다. 그리고 이 시즌 리그 득점 2위[19],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 2위[20]를 기록하며 전무후무한 득점왕 콩레블[21]을 달성. 이 정도면 발락 이후 최고의 콩라인. 결국 2012년에 트로피에서 준우승 쿼드러플[22]과 득점 순위에서 준우승 트레블[23]를 달성하며 2012년 한 해에 준우승 레인보우...를 달성 역대급 콩라인을 완성했다.
  • 미하엘 발락 - 콩락이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 2001-02 시즌 레버쿠젠 소속으로 준우승 트레블에 2002 월드컵에서 독일의 준우승. 그 외에도 첼시에서 2007-08 시즌에 준우승 더블[24]을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유로 2008 준우승에 2010-11시즌의 레버쿠젠의 리그 준우승. 2002년[25]과 2008년[26]에 준우승 쿼드러플을 2번 달성한 전무후무 콩락..[27] 그야말로 안습 그자체...
  • 스티브 하퍼 - 골키퍼계의 콩라인. 뉴캐슬에서 20년 선수 생활을 했는데 넘버 원 저지를 2년밖에 달아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실력이 없는 골키퍼냐면 그것도 아니라서, 잉글랜드 국대감이라는 평가도 받았는데 2008년까지 뉴캐슬의 주전 골키퍼가 하필 기븐신이어서 묻히고, 기븐신이 떠나자 주전 자리를 얻었는데 하필이면 그 시즌 뉴캐슬은 강등. 게다가 승격 후에는 후배 팀 크룰이 치고 올라오는 바람에 또 다시 밀려났다. 결국 은퇴까지 영원한 2인자로 남았다.
  • 앙투안 그리즈만 - 2016시즌 그야말로 자신의 해를 만들기에 충분했던 시즌이였다 하지만 끝마무리가 좋지 않았다.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PK기회를 실축해버리고 말았고 결국 팀은 승부차기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무너지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어서 치뤄진 유로 2016 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하며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이번에도 팀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면서 2번의 결승전에서 2번 모두 준우승을 차지하며 콩라인에 가입한다. 2년 뒤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우승을 했지만 대회 최우수 선수에게 주는 골든 볼 수상은 실패했고,[28] 득점왕에게 주는 골든 부트도 해리 케인에게 밀려 2번째로 주는 실버 부트에 그쳤다.
  • 에르난 크레스포 - 국가대표로서 데뷔 대회부터 콩라인이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크레스포를 앞세운 아르헨티나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는 매양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로 인해 주전 자리를 빼앗겼다. 심지어는 남미 지역예선 역사상 최다득점을 하고도 바티스투타와 비엘사의 각별한 친분으로 인하여 2002월드컵때도 벤치였다. 1인자급 포스를 강렬하게 뿜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2등 인생을 살았다. 클럽에서도 첼시에 임대 선수로 가더니 영어 못하는 크레스포는 영국 특유의 우중충한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에 강도가 드는 등 너무나도 힘들었던 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영어 잘하는 디디에 드록바에게 밀려 결국 첼시에 팔리지 못했다. 그러나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크레스포는 조별리그에서 드록바를 산뜻하게 눌러줬다. 하지만 이 역시 미로슬라프 클로제에 밀리며 득점 순위 2위라는 실버슈가 되었다. 그는 콩라인이기 이전에 월드컵에 출전했던 모든 선수들 중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불행아였던 것이다. 요한 크루이프가 그를 평하기를 "1인자보다 더 뛰어난 2인자"라 했다.
  • 잔루이지 부폰 - 월드컵 우승도 했고, 소속팀 유벤투스에서 리그 우승을 수차례 경험한 1인자라고 볼 수 있지만 정작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험이 없다. 2002-03 시즌 결승전에서는 승부차기까지 가서 AC 밀란에게 패했고, 2014-15 시즌엔 바르셀로나, 2016-17 시즌엔 레알 마드리드에게 연달아 무너지면서 결국 준우승만 3번을 기록. 2017-18 시즌을 끝으로 유벤투스를 떠난다고 선언한다고 했다. 하지만 레알과 2017-18 챔스 8강 2차전에서 페널티킥 선언에 대해 거친 항의를 하다가 레드카드를 받고 불명예스럽게 퇴장하면서 우승은 커녕 영원한 챔스 한정 콩라인으로 남고 말았다.
  • 마르크안드레 테어슈테겐 - FC 바르셀로나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면서 트레블 1회, 라리가 우승 4회, 코파 델 레이 우승 4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등 무수히 많은 우승 트로피를 수집하였지만 개인 수상의 경우 얀 오블락, 다비드 데헤아, 티보 쿠르투아, 케일러 나바스, 알리송 베케르 등 다른 월드클래스 골키퍼들에게 밀려 수상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팀에서도 팀의 주장이자 부동의 1번 마누엘 노이어의 존재로 인하여 세컨드 골키퍼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한스 외르그 부트 - 세계에서 유일한 트리플 러너업 2회 달성자.[29] 2002년도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주전으로, 2012년도 바이에른 뮌헨에서 백업으로 한 번씩 달성했다. 문제는, 부트가 은퇴한 다음 해 바이에른 뮌헨이 즉시 트레블을 해 버렸다는 것이다.
  • 파올로 말디니 - 국가대표에선 무관의 제왕. 클럽에서 트로피는 들어올릴 대로 다 들어올렸지만 아쉽게도 국가대표에서 메이저 타이틀을 따내진 못했다. 그 중 1994 미국 월드컵에선 호마리우에게, 유로 2000에선 다 잡은 경기를 경기 막판에 교체로 들어온 선수에게 골을 헌납하고,트레제게에게 골든골을 먹혀 준우승을 차지했다.
  • 파트리스 에브라 - 2004년 AS 모나코 에서 뛸 당시 FC 포르투를 만나 패하면서 준우승 그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할때는 두번이나 결승에서 FC 바르셀로나를 만났고 결국 그 두 번 모두 지고 말았다. 그후 유벤투스 이적후에도 또 바르셀로나를 결승에서 만나 또 졌다. 무려 각기 다른 3팀에서 준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선수가 된 것이다. 그리고 유로 2016 준우승까지
  • 프란체스코 토티 - 리그 준우승만 무려 9번을 달성했고,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수많은 준우승을 기록했다. 특히 2013-14시즌에는 승점 85점으로 역대 최다 준우승 승점을 달성하기도 했다. 참고로 그 시즌 1위승점 102점.
  •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 마스체라노는 국가대표로서 완벽한 콩라인이었다. 리오넬 메시와 함께 뛰었던 2014년 월드컵, 2007년/ 2015년/ 2016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했다. 심지어 이전에도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2004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했다. 코파 4번, 컨페드컵 1번, 월드컵 1번으로 국가대표 준우승만 6연벙...
  • 한준희 - KBS 해설계의 2인자. 언제나 국가대표팀 경기는 이용수가 전담하고 국제 대회 3, 4위전이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경기만 해설한다. 2014년부터는 이영표가 새로이 KBS 해설진에 합류하면서 3순위로 밀리기까지 했으니[30] 이만한 안습도 없다. 하지만 세대교체를 원하던 KBS 제작진 때문에 브라질 월드컵때는 더블 2인자 자리를 유지하다, 월드컵 이후 이용수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직을 다시 맡으며 해설을 내려놓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또다시 콩라인으로 복귀했다. 현재는 위에 상술한 인물들이 전부 빠져 1인자의 위치에 있으나 월드컵 시즌에 맞춰 외부인사를 영입하면 다시 2순위로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경력이나 지식이나 해설 능력 등에 비해 방송사에서의 대접이 심히 좋지 않다.
  • 차두리: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내내 준우승만 했다. 2013년 AFC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2014년 FA 컵 준우승, 그리고 2015년 AFC 아시안컵 준우승. 또한 국가대표팀에서 그의 등번호는 22번이며, 이름도 둘째라서 두리[31]이다.
  • 김대환: 이운재라는 넘사벽 때문에 선수 생활 내내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No.2 골키퍼로 있다 은퇴했다.


4. 농구



  • : 선수 시절에도 허재에 밀려 2인자 신세였으며, 감독으로서도 2연준 달성. 특히 2011-12 시즌은 44승 10패로 역대급 시즌을 보내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안양 KGC인삼공사에게 2:4로 분패했다. 그 뒤 그가 감독 시절 승부조작을 하다 걸려서 지금은 영원한 금지어가 되었다.
  • 도미니크 윌킨스: 1980년대~1990년대 초 마이클 조던 에 버금가는[32] 득점기계이자 덩크 스페셜리스트. 폭발적인 득점력을 자랑했으나 1986년에 득점왕을 차지한 이후로는 마이클 조던에게 순위에서 번번히 밀리곤 했다. 1987시즌엔 무려 평균 29점을 기록했지만 1위 조던이 평균 37을 찍는 바람에 8점 차이로 2위했고, 1988시즌엔 커리어하이이자 어느 시대에서라도 득점왕급인 30.7점을 찍었으나 조던은 35점을 기록했다. 득점 2위만 네번...우승 경력은 커녕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조차 해본 적 없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못간 선수 순위에서 크리스 폴에게 밀려 2위를 차지했다. 또한 하필이면 래리 버드와 전성기가 겹치는 바람에 1980년대 최고의 스몰포워드란 항목에서도 확고한 2위다.
  • 스카티 피펜(전 NBA 농구선수): 실력은 뛰어났지만 팀동료이자 농구의 황제로 불린 마이클 조던에 밀려 최고의 2인자로 불린다. 다만 우승은 6번이나 경험했다. 샤킬 오닐과의 설전에서 6회우승을 거론했으나 조력자 빠지라는 식의 말로 굴욕 당했다.[33]
  • 엘진 베일러(전 NBA 농구선수): 역사상 최고의 득점기계 중 한 명. 경이로운 체공력으로 유명했고, 결승전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61득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커리어 내내 LA 레이커스에서만 뛰면서 8번이나 결승에 올라갔음에도 모두 준우승. 더 황당한 건 1971년 시즌 도중 은퇴를 선언했는데, 하필 바로 그 시즌에 팀이 우승했다.[34] 그리고 그의 등번호 22번은 LA 레이커스에서 영구결번이 되었고, 은퇴 후 LA 클리퍼스에서 22년간 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 유니폼
    • 서울 삼성 썬더스 2007~2010: 이상민이 있었던 시기, 챔피언 결정전에 두번 진출하지만 한 번은 동부를 상대로 준우승, 한 번은 KCC를 상대로 7차전 끝에 분패하면서 2연준을 달성했다.
    • 원주 DB 프로미 2010~현재 녹색 바탕 유니폼[35]
  • 유타 재즈
    • 존 스탁턴(전 NBA 농구 선수): 챔피언 결정전에서 번번히 마이클 조던에게 가로막혔다.
    • 칼 말론: 스탁턴의 영혼의 파트너. 역시 챔피언 결정전에서 번번히 마이클 조던에 가로막혔다. 이후 그는 2003년, 나도 우승하겠다고 18시즌을 뛰었던 유타 재즈에서 나와 샼-코비의 LA 레이커스로 이적했지만 또 준우승을 하고 은퇴했다. 통산 득점 2위도 달성. 1989, 90시즌엔 득점왕급인 평균 29점, 31점을 찍었으나 조던이 각각 32점, 33점을 찍어버리면서 밀린다. 1992시즌까지 4년연속 득점 2위를 기록한 뒤 1993시즌엔 나란히 득점 콩라인인 도미닉 윌킨스와 함께 2, 3위를 기록했고 조던이 1993시즌 이후 은퇴하면서 득점왕 좀 노려보나 했는데... 갑자기 그 전까지 둘보다 항상 낮은 득점을 보이던[36] 데이비드 로빈슨이 각성이라도 했는지 29.8점을 찍으면서 득점왕을 차지한다.[37]또한 통산득점에서도 카림 압둘 자바에 이어 2위이다.
  •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 WKBL 최고의 콩라인. 리그 초반에는 4회 우승하는 등 잘나갔으나 그 후로 5연속 준우승 4연속 준우승을 한 번씩 쓰면서 여자농구에 한해서는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콩라인이 되었다. 2002년부터 콩콩콩콩콩-우승-콩콩콩콩-콩을 찍고 있다.
  • 윤호영: 원주 동부 프로미 소속으로, 2010-2011, 2011-2012, 2014-2015, 2017-2018 총 네 번 준우승을 맛보며 '콩호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박지현: 고양 오리온스에서 2002-2003, 원주 동부 프로미에서 2010-2011, 2011-2012, 2014-2015 총 네 번의 준우승.
  • 이시준: 서울 삼성 썬더스에서 11년동안 원클럽맨으로 뛰었지만 준우승만 3번 했다. 윤호영 박지현과는 다르게 정규 시즌에서 1번도 우승한 경험이 없다.
  • 찰스 바클리(전 NBA 농구선수) 포워드로서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매 경기 20득점-10리바운드 정도 잡아내는 당대 최고의 선수. 1993년 정규시즌 MVP까지 수상했으나 그 해 결승전 때 바클리가 이끄는 피닉스는 마이클 조던[38]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에게 패했다.
  • 창원 LG 세이커스: 준우승은 2번뿐이지만 정규리그 준우승은 더 많다. 하지만 2013~2014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정규리그에서는 콩라인에서 벗어났다.
  • 청주 KB 스타즈 - WKBL에서 18~19시즌 첫 통합우승을 하기 전까지 나머지 5팀 중 4팀에게 준우승을 먹어 이제 KDB생명에게만 준우승을 당하면 준우승 그랜드슬램을 이루게 된다.
  • 테렌스 레더(2007~2008 프로농구, 2008~2009 프로농구에서 서울 삼성 썬더스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지만 각각 4:1, 4: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후 2009~2010 프로농구 시즌 중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전주 KCC 이지스로 이적, 다시 한 번 결승전까지 오르지만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4:2로 패하며 3연준을 달성했다. )
  • 패트릭 유잉(전 NBA 농구선수) 1990년대 4대 센터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훌륭한 실력을 지녔으나 동부 플레이오프에서 그분이 이끄는 시카고나 레지 밀러의 인디애나 등에게 번번히 좌절당했다. 결승에 오른 적은 2번 있으나 한 번은 7차전 접전끝에 패하고, 다른 한 번은 부상으로 출전을 못했다. 그러나 조던이 첫 우승을 한 이후 그의 팀을 7차전까지 몰고간 팀은 닉스와 페이서스 뿐이란 점에서 닉스는 불스왕조를 가장 힘들게 했던 주인공이자 최대의 라이벌이기도 했다. 특히 인디애나는 힘이 빠진 1998시즌의 불스를 상대한 것이었지만 닉스가 불스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갔던 1992시즌에 불스는 67승씩이나 거둔 대단한 전력이었다.[39]
  • 황진원: 2006~2007 부산 KTF 매직윙스 소속때 준우승, 2010~2011 시즌과 2011~2012 시즌 원주 동부 프로미에서 준우승을 맛보았다.

5. 배구



5.1. 국내 배구


  • 우리카드 위비: 프로배구 컵대회(Kovo 컵)에서 2015년에 우승했지만, 네 번이나(2011, 2013, 2014, 2017) 준우승했다.[40]
  • 대한항공 점보스: V-리그에서 만년 우승후보로 지목받았지만, 네 번이나(2011,2012,2013,2017) 준우승하다가, 2018년 챔피언 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을 꺾고 팀 역사상 최초로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41]
  •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그 동안 여자부 한정 만년 준우승 팀(2005, 2006, 2015)이었으나, 2017-2018 시즌에 정규리그에서 우승하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IBK기업은행 알토스를 꺾고 최초로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배구 컵대회(코보컵)에서는 2011년에 우승하긴 했으나, 준우승 횟수는 네 번(2006, 2008, 2010, 2017)이나 된다.[42]

5.2. 해외 배구



6. WWE (프로 레슬링)


  • 골든 제네레이션
  • 뉴 제네레이션
    • 숀 마이클스 - 젊은 시절에는 브렛 하트에게 밀려 명확한 1인자가 되지 못했고, 몬트리올 스크류잡 이후 잠시 1인자가 되었지만 등부상으로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해 오스틴에게 1년도 안돼서 자리를 넘겨줬다. 복귀 이후에는 본인 나이도 있고, 그래서 타이틀 샷을 스스로 거부.
  • 애티튜드 시대
    • 더 락 - 애티튜드 시대의 양대 아이콘이지만 명백한 1인자 스티브 오스틴에게는 상대 전적에서 압도적으로 밀린다.[43]
  • VS 존 시나
    • 에지 - 존 시나가 1인자로 등극하면서 새롭게 떠오른 라이벌. 하지만 챔피언으로서 기록이 짧은데다가 중요한 경기에서는 결국 시나의 제물이 되기 일수였다.
    • 랜디 오턴 - 존 시나와 지겨울 정도로 대립했으며 할아버지,아버지 부터 활동해왔던 레슬링 가문에다가 나름대로 나쁘지 않는 비주얼과 경기력으로 회사에서도 많이 밀어주었으나 결정적인 때에 항상 일이 꼬여 아이콘이 되지 못한 경우다.
  • 기타
    • 언더테이커 - 물론 타이틀도 여러번 차지했지만 인기나 단체에서의 비중을 보면 데뷔 이후 줄곧 브렛 하트-숀 마이클스-스티브 오스틴-더 락 시대의 1인자를 받쳐주는 2인자 포지션이었다. 바꿔 말하면 수많은 시대의 1인자들이 제대로 1인자 노릇 하게 해준 든든한 버팀목 노릇을 20년 넘게 해오고 있는지라 팬들에게는 1인자보다 위대한 2인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쯤 되면 사실상 공인 명예회원 수준.[44]
    • 리타 - 실력과 캐릭터에서는 트리시 보다 훌륭했지만 하필 심각한 부상을 당한데다가 WWE 공식 커플 소리 들었던 매트 하디를 버리고, 에지랑 바람나는 바람에 이미지가 안좋아지고 말았다. 에지와 바람난 여파 때문인지 일찍이 WWE를 떠났다.
    • 로얄럼블 매치 한정의 로만 레인즈 - 로얄럼블 준우승 4회.

7. 종합격투기


1등을 한 적이 있어도 2위 자리가 굳어지면 콩라인으로 편입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인데 2001년 정상에 올랐다가 2003년에 2위로 내려앉은 후 약 6년간 줄창 2위만 하다보니 넘사벽의 2인자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 2001년 PRIDE 17에서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며 MMA 헤비급의 정상에 올랐지만 2003년 PRIDE 25에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에게 벨트를 내준다. 2004년 헤비급 그랑프리와 남제에서 2차례 러버매치를 가졌지만 승리하지 못했다.
  • 조셉 베나비데즈 - UFC 플레이급의 강자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자기 밑으로는 싹다 정리해버렸으나 드미트리우스 존슨만큼은 죽어도 넘지 못하고 있다. 존슨이 벤텀급 월장을 하거나 핀급이 신설되지 않는 이상 베나비데즈는 영원히 콩라인으로 머물지도 모른다.
  • 존 피치 - 2005년부터 2011년까지 UFC 웰터급에서 15전 13승 1패 1무라는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1패는 조르주 생 피에르에게 당한 것인데 이 경기에서 지면서 타이틀 획득에 실패하고 만년 콩라인이 되고 말았다. 2010년 UFC 117에서 가진 티아고 알베스와의 콩라인 결정전에서도 승리.
  • 케니 플로리안 - TUF 시즌 1 미들급 결승에서 디에고 산체스에게 TKO를 당하면서 콩라인으로 UFC 커리어를 시작하더니 2006년과 2009년 UFC 라이트급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각각 션 셔크BJ 펜에게 패했다. 결국 2011년 페더급으로 체급을 낮추었으나 또다시 타이틀 매치에서 조제 알도에게 패하였다.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 켄 샴락 - 1993년 UFC 초대 토너먼트에서 호이스 그레이시에게 패하며 탈락한다. 리벤지를 위해 출전한 94년 UFC 3 토너먼트에서는 반대편 블럭에 있던 호이스가 기권하면서 샴락도 연달아 기권. UFC 5에서 원매치로 재대결하지만 승리하지 못했다. 결국 호이스가 떠난 95년 UFC 6에 이르러서야 챔피언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토너먼트 우승은 아니었고 댄 서번과의 원매치 대결에서 얻은 슈퍼파이트 챔피언이었다.
  • 탱크 애봇 - 1995년 UFC 6 토너먼트 결승에 진출하지만 올렉 탁타로프에게 패한다. 이듬해인 96년 올스타전인 Ultimate Ultimate에서도 결승까지 오르지만 돈 프라이와의 난타전에서 패하면서 또 다시 준우승.
  • 파울로 필리오 - PRIDE 웰터급(-83kg 미들급)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무사도 4인 토너먼트와 2006 웰터급 그랑프리에서도 각각 결승에 오르지만 부상을 이유로 기권하며 팬들의 의혹을 샀다. 웰터급 타이틀은 댄 핸더슨이 가지고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필리오가 1인자로 여겨지고 있었다. 2007년 WEC 타이틀을 얻긴 하지만 PRIDE 시절의 무관포스가 워낙 강했다.
  • 페드로 히조 - 2000~2001년에 걸쳐 모두 3차례 UFC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케빈 랜들맨랜디 커투어에게 패했다. 특히 UFC 31에서의 커투어와의 대결은 손꼽히는 명승부. 그밖에도 전직 챔피언, 훗날 챔피언에 오르게 될 선수들과 대결해서 4번이나 승리했지만 정작 본인은 한번도 타이틀을 차지해 본 적이 없다. 벨트에 크립토나이트라도 박혀있는 걸까.
  • 채드 멘데스 - 2010년 이후로 항상 랭킹 3위 이내를 유지하고 있고, 충분히 페더급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실력을 가졌으나, 챔피언 결정전에서 조제 알도만 두 번 만나 두 번 다 졌다. 조제 알도의 부상으로 2015년 7월 코너 맥그리거와 잠정 챔피언전을 가졌으나 역시 패배.
  • 유라이아 페이버 - 2016년 6월 5일 도미닉 크루즈와의 타이틀전에서 패하면서 ufc 챔피언 도전 경기에서 4번이나 패했다. 이쯤되면 완벽한 콩라인.
  •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미르코 크로캅은 PRIDE에서의 2인자가 아니었다. 중요한 시점마다 호드리고나 랜들맨 등에게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특히 2003년 호드리고와의 잠정 타이틀에게 패한 것은 꽤나 뼈아팠다. 실질적으로 헤비급에서의 크로캅은 락라인이거나 그 이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8. 연고 지역


  • 1999년 부산광역시 연고 팀: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대전 현대 다이넷에게 패하면서 챔프전 준우승을 시작으로 약 반 년 후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시리즈에서 한화 이글스에게 패해 준우승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틀 후 부산 대우 로얄즈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챔프전에서 패하면서 부산연고 3팀이 모두 준우승을 거두었다.
  • 2010년대 창원시 연고 팀: 2012년 경남 FCFA컵 준우승을 시작으로 2014년 창원 LG 세이커스챔피언결정전 준우승[45]을, 2016년에는 창원 LG 세이커스가 프로-아마 최강전 준우승, NC 다이노스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달성했으며, 2018년에는 경남 FC가 K리그1 준우승을 기록하며 2년마다 콩을 적립하고 있다. [46] 하지만 2020년 NC 다이노스가 정규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통합우승을 차지하면서 콩라인에서 벗어났다.
  • 2013년 서울특별시 연고 팀: GS칼텍스 서울 KIXX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에게 패배하면서 준우승을 했고, 서울 SK 나이츠울산 모비스 피버스에게 패배해 준우승을 했다.[47] 뒤이어 두산 베어스삼성 라이온즈에게 패배하면서 준우승을 했고, FC 서울이 ACL에서 광저우 헝다에게 패하면서 준우승을 했다.
  • 2015년 대구광역시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패하면서 준우승을 했고, 대구 FCK리그 챌린지 2위를 기록했지만 챌린지 플레이오프에서 수원 FC에게 패해 승격하지 못했다.

9. 바둑


  • 고바야시 고이치 - 일본 바둑계에서 조치훈의 라이벌로 유명하지만 현실은 본인방전 같은 결승전에서 만날 때마다 우승은 전부 조치훈이 하고 고바야시는 준우승만 반복하는 등 실속은 조치훈이 다 챙겼다. 이후 둘의 전성기가 사실상 끝난 뒤에도 조치훈은 세계대회에서 어느 정도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지만 고바야시는... 안습.
  • 서능욱 - 우승없이 준우승만 무려 14번을 한 바둑계의 전설적인 콩라인. 그가 활약한 시대는 소위 조국수서명인의 시대로 불리던 조훈현, 서봉수 양강체제의 시대로 본선에서는 늘 서봉수에게 무너졌고 어쩌다 간신히 서봉수를 꺾고 결승에 올라가면 조훈현에게 떡실신당했다. 조훈현에게 진 것만 무려 12번이며 조훈현이 1990년대에 들어가면서 전성기가 한 풀 꺾인 뒤에는 돌부처 이창호에게 결승에서 2번이나 만나면서 끝끝내 우승하지 못했다.[48]
  • 최명훈 - 한국 바둑계의 콩라인을 논할 때 빼면 안 되는 기사. 2000년 LG정유배 하나, 그것도 여류기사인 루이나이웨이 九단[하지만]을 꺾어 차지한 것을 제외하면 전부 준우승이다.

10. 체스


  • Viktor Korchnoi - 체스계에서의 영원한 콩라인. 세계 챔피언쉽 우승경력이 없는 선수중 최강선수로 언급된다. 무려 10번이나 세계 챔피언 후보였으나 (1962, 1968, 1971, 1974, 1977, 1980, 1983, 1985, 1988 and 1991) 매번 실패했다. 세계 챔피언 칭호는 못얻었지만 이외 경력은 무려 소련 체스 챔피언 4회 우승, 유럽 챔피언 5회 우승, 체스 올림피아드 6회 우승. 소련에서 탈출한 이후론 가족들이 공산당에 볼모로 잡힌 상태에서 소련출신 세계 챔피언 Anatoly Karpov와의 라이벌구도로 유명하다. 2006년엔 드디어 노인 세계 챔피언쉽 (60세 이상)에서 우승했다.

11. 기타 스포츠



11.1. 팀


  • NFL
    • 미네소타 바이킹스 - 슈퍼볼 시행 이후 준우승만 4번(1970, 74, 75, 77) 우승은 0번. 문제는 이 쪽으로는 독보적인 버펄로 빌스 때문에 존재감마저 2등.
    • 버펄로 빌스 - 바이킹스와 마찬가지로 슈퍼볼에서 4번 준우승(1991~94). 특히 더 처절한 것은 4년 연속 슈퍼볼 준우승.[49]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처절한 건 이 팀을 제외하면 슈퍼볼을 4년 연속 진출한 팀이 없다는 사실이다[50].
  • 핸드볼
    • 스웨덴 남자핸드볼 국가대표팀 - 올림픽 한정. 올림픽에서만 4번 은메달을 받았다. 특히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6 애틀란타 올림픽,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3회 연속 올림픽 은메달을 기록했으며 그것도 전승준이었다.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해 결승에 올랐지만 프랑스에게 21-22로 석패하면서 또다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51]
  • 아시안 게임
    • 대한민국 - 워낙 양 옆에 있는 나라들이 강력한 스포츠 강국들이다보니 종합 우승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2위만 9번을 차지했다. 동계 아시안 게임 역시 종합 우승은 단 한 번도 차지하지 못하고 2위만 3 기록했다.

11.2. 개인


  • 강민구 - PBA 당구선수. PBA TOUR 첫번째 준우승자가 된 이후 총 4번의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결승전 상대는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 프레데릭 쿠드롱, 하비에르 팔라존 그리고 다시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 4번의 준우승으로 1회 우승 상금을 넘어서는 상금을 획득하였다.
  • 김동문-라경민 복식조 - 14개 대회 연속 우승, 국제경기 70연승에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부동의 세계랭킹 1위를 지켜내던 환상의 배드민턴 혼합복식조. 반면 올림픽 금메달과는 지독하게 인연이 없는데 2000 시드니 올림픽2004 아테네 올림픽 연속 8강을 기록했다. [52]
  • 닉 하이트펠트 - 독일의 포뮬러 원 선수. 실력도 준수했고 '퀵 닉' 이라는 별명도 가졌지만 그랑프리 우승을 그의 커리어 12년 동안 단 한번도 들지 못했다.
  • 다니 페드로사 - MotoGP의 라이더. 250cc 클래스[53]에서는 챔피언을 3번이나 했지만 2006년에 MotoGP 클래스에 올라오면서부터는 10년 동안 시즌 3위 3번, 시즌 2위 3번으로 챔피언에 아주 가까이만 근접할 뿐 챔피언 자리에 오르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2013, 2014 시즌에는 팀메이트였던 마르크 마르케스가 보란 듯이 2년 연속으로 챔피언을 먹었다. 잦은 부상으로 인한 기량저하로 콩라인 탈출에 실패하고 2018년 은퇴를 발표하게 되었다.
  • 다리아 콘다코바 - 이리나 차시나의 뒤를 잇는 리듬체조계 콩라인의 적자이다. 예브게니야 카나예바에게 밀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세계선수권에서 3회 연속 개인종합 은메달이라는 위업에 그쳐야 했다. 세계선수권 뿐만 아니라 유럽선수권, 월드컵, 그랑프리시리즈에서도 전부 카나예바에게 밀려 은메달이었다.
  • 도미니크 팀 - 오스트리아테니스 선수. 세계 랭킹 3위, US 오픈 챔피언이라는 성적을 거둘 정도로 뛰어나지만 결승에서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라는 괴물을 만나 4번의 결승 진출에도 불구하고 1회의 우승에 그치고 있다.[54] 연말 왕중왕전이라 할 수 있는 ATP 파이널스 역시 스테파노스 치치파스, 다닐 메드베데프에게 패해 준우승 2번을 기록하고 있다.
  • 라슬로 체흐 - 헝가리의 수영 선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국의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에게 밀려 메달만 3개를 획득했다.
  • 루벤스 바리첼로 - 포뮬러 1계의 대표 콩라인. 커리어의 전성기를 페라리 소속으로서 팀동료였던 어느 먼치킨을 뒷바라지하는 데 고스란히 갖다 바쳤다.[55]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십 시즌 최고기록 2위 2회.
  • 리총웨이 - 2008,2012,2016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단식 은메달, 2011,2013,2014,2015 배드민턴 세계선수권 준우승. 세계랭킹은 1위였지만 실질적인 1위는 린단이었다.
  • 마르가리타 마문 - 라이벌인 야나 쿠드랍체바에 밀려 늘 2인자 였다. 2014,2015 세계선수권 2회 연속 은메달이라는 기록[56]과 콘다코바에 이은 리듬체조계의 2인자였으나 꿈의 무대인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콩라인에서 벗어났다.[57]
  • 마르틴스 두쿠르스 - 라트비아의 스켈레톤 선수. 스켈레톤계의 우사인 볼트로 불리며 2010년대 세계 스켈레톤계를 씹어먹다시피했지만 정작 올림픽 무대에서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연달아 개최 선수에게 밀려 은메달에 그치더니 윤성빈이 금메달을 차지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마지막 4차 시기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 목메달에 그쳤다.
  • 마크 마틴 - 바리첼로가 F1의 콩라인이면 이 분은 나스카계의 콩라인. 30년동안 시리즈 챔피언쉽 종합 우승은 못 해보고 2위만 총 5번했다.
  • 멀린 오티 - 자메이카 출신의 세계적인 여자 육상선수.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 출전한 이래 세계 선수권 대회, 실내 육상대회, 영연방 대회에서는 3개씩 금메달을 땄으나 유독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이 없다. 현재까지 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은 은메달 3개, 동메달 6개인데 1996 애틀랜타 올림픽 100m 결승에서는 불과 0.005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다. 2004 아테네 올림픽 때에는 슬로베니아로 국적을 바꿔가면서까지 금메달에 도전했으나 100m 부문과 200m 부문 모두 결승 진출에 실패. 그럼에도 현재까지 선수활동을 하고 있는 현역 최고령 육상선수.
  • 모리시타 타쿠 - 쇼기계의 대표적인 무관의 제왕. 7대 타이틀 전에서 6회 패배, 기사 선수권에서 준우승만 9회. 그가 아직도 타이틀을 한번도 획득하지 못했다는 자체가 일본장기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통산 800승을 기록중인데 타이틀 획득 경험이 없는 기사로는 유일한 기록.
  • 문세영 - 서울 경마공원 소속의 한국 최정상급 기수..이지만 1500승에 빛나는 박태종 기수의 존재감이 워낙 뛰어나 경마꾼들 사이에서 2인자 취급을 받는 모양이다. 개인 최다승수 기록 대신 1년 최다승수 (128승. 2의 7승이다!)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09년 혹서기 휴장 전까지의 누적 수득상금은 22억으로 2위. 콩라인 확정..
  • 문의제 - 대한민국 레슬링 자유형에서 마지막으로 국제경쟁력을 지녔던 선수. 국내 및 아시아권에서는 아시안게임 2연패[58]를 차지했을 정도로 적수가 없었지만 세계 무대에서는 우승을 눈앞에 두고 한 끗 차로 아쉽게 준우승한 대회가 4회나 되었다. 1998년과 2001년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했고 2000 시드니 올림픽[59]2004 아테네 올림픽[60]에서 연속 은메달을 땄다.
  • 미카 히르보넨(WRC) - 핀란드가 배출해낸 WRC 굴지의 드라이버지만 현재까지 단 한 시즌도 제대로 세바스티앙 로브를 제치고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적이 없이 2위만 4번. 2009시즌 마지막에 준우승을 하면서 로엡에게 1점차로 2위, 2011시즌 최종전인 웨일즈 랠리에서 리타이어를 하는 바람에 로엡의 8년 연속 챔피언 등극을 알아서 갖다바친 꼴이 되었다.
  • 박광덕 - 백두장사는 3번 했으나, 천하장사 등극에는 실패. 천하장사 준우승만 5번했다.
  • 박세리 - 한국에선 챔피언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 분도 은근 콩라인이다. 동시대에 활약한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이 있었다. 미 LPGA 데뷔시즌부터 상금랭킹 2위로 콩을 하나 까더니 2001년~2003년 3년 연속으로 상금랭킹 2위를 찍었다. 거기에 메이저대회인 크래프트-나비스코 챔피언십 딱 한 대회만 우승한 적이 없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 못했다.[61]
  • 박인비 - 국내한정이다. 이미 세계 최정상급선수에 우승기록도 많으며 112년 만에 올림픽에 복귀한 골프 금메달리스트이지만 국내 KLPGA대회에서는 준우승 기록만 있다.
  • 사샤 코헨 - 미국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과 2회 연속 세계선수권 은메달리스트이다.
  • 스털링 모스 - F1의 원조 콩라인. 1955년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1위 후안 마누엘 판지오), 1956년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1위 판지오), 1957년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1위 판지오), 1958년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1위 호손). 물론 바리첼로와 같이 대놓고 팀에서 2인자로 설정한 경우가 아니었고 기량도 대단했으며 당대 영국을 대표하는 드라이버였기에 평가가 굉장히 높은 선수이다. 일종의 무관의 제왕. 기사작위도 받았고 다수의 챔피언보다도 위상이 높은 선수.
  • 아사다 마오 - 일본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여러 번 차지했기에 콩라인은 아니다. 단지 피겨퀸이 포텐을 터트리며 압도적인 강자가 된 2008-09시즌 부터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 여담으로, 이거와 별개로 2와 인연이 많다. 해당 문서 참고.
  • 알렉산드로스 니콜라이디스 - 2004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결승에서 문대성 선수한테 헤드샷 맞고 떡실신하며 은메달. 절치부심하며 준비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역시나 우리나라의 차동민 선수한테 막판 쳐맞으며 은메달을 따내며 올림픽 콩라인 등극 .
  • 알베르트 뎀첸코 - 러시아의 루지선수이며, 동계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딴 메달이 은메달이다.
  • 얀 에길 스톨홀트 - 노르웨이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유럽선수권에서 1977년, 79년 2번이나 우승했었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나 북미가 두각을 나타내기 전이라 유럽 1위가 곧 세계 1위였으나, 하필이면 그의 전성기가 스피드 스케이팅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미국 에릭 하이든의 4년 간의 현역 시절과 정확히 겹쳤다. 스톨홀트는 1977~79년까지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하이든에게 밀려서 2위에 그치며 3년 연속 준우승을 달성하였다. 끝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지 못 하고 자국에서 열린 1981년 세계선수권에서 3위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그나마 1976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에서 1500m 금메달은 따서 다행.[62] 사실 이 시기는 모든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가 콩라인이었다.
  • 얀 울리히 - 사이클계의 홍진호. 독일의 자전거 선수로, 사이클링 실력 자체는 최상위권이었으나 하필이면 활동하던 시대에 랜스 암스트롱이 있어 세계구급에서는 준우승만 했다. 물론 둘 다 약물 복용으로 기록과 자격을 싸그리 박탈당했는데, 약물 복용으로 박탈당한 선수의 등위는 그 다음 사람이 메꾸는 게 아니라, 공석 처리를 하기 때문에 랜스 암스트롱이 먼저 걸려 박탈당했음에도 울리히는 끝내 1위가 되지 못했다.
  • 앤디 머리 - 테니스 선수. 다른 국제 경기에서는 우승 경험이 있지만 호주 오픈에서만은 이상하게 준우승만 5번해서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그 중에서 상대가 4번은 노박 조코비치로, 이상하게 결승에서 조코비치만 만나면 힘을 못쓰고 지고 만다.
  • 앤디 쉴렉 - 2009/10 두 시즌에 걸쳐 투르 드 프랑스 2연준. 게다가 투르의 이벤트 격인 화이트 저지[63]3년 연속 획득, 콩라인의 자격을 갖추었다. 2011년 투르에서는 똑같이 2회 준우승자 출신인 카델 에반스와 콩라인 결정전으로 격돌, 막판 TT에서 허무하게 역전을 허용하면서 3연준의 위업을 달성했다...[64]
  • 왕하오 - 중국탁구 선수로, 올림픽 남자 단식 부문 3년 연속 준우승을 달성하였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한 수 아래라 여겼던[65] 유승민에게 결승에서 4:2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결승에서 대표팀 동료 마린에게 패,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결승에서 또다시 대표팀 동료 장지커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우노 쇼마 - 일본피겨 스케이팅 선수.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2회 연속 세계선수권 은메달리스트이다.
  • 이규혁 -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동계올림픽에(6회) 출전했음에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4위를 한 게 최고 성적이다.
  • 이리나 차시나 - 리듬체조계의 콩라인이였다. 별명부터가 영원한 2인자였다. 그녀와 동시기에 활동했던 알리나 카바예바에게 밀려 늘 2위를 했지만, 예술성만은 카바예바를 능가했다는 평을 받는다. 성적과는 별개로 카바예바와 함께 리듬체조계의 레전드로 꼽히는 선수다.
  • 이호석 - 안현수이정수에 밀려서 올림픽에선 개인전 은메달만 3개가 있다. 그래도 2006년에 계주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나마 한국 선수 중 대표팀 최다 출전 기록은 있었으나 그마저도 곽윤기에 의해 깨졌다.[66]
  • 잡다캐릭 - TEKKEN CRASH 시즌 4 4위, 시즌 5 3위, 시즌 6 준우승, 시즌 7 준우승, 시즌 8 준우승.
  • 제롬 르 밴너 - K-1 WGP 결승에 숱하게 진출했지만 그때마다 피터 아츠,앤디 훅,어네스트 후스트에게 막혀 준우승에 그쳤다.
  • 조현준 - 카트리그가 한창 인기 있을 무렵에 인기있는 게이머 중에 하나였으나, 정규리그 경력은 준우승 3회, 우승 0회이다. 4차리그 그랜드파이널 프로모 영상에서는 조현준을 비운의 황태자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 쥘리앵 베네토 - 프랑스의 1982년생 테니스 선수. ATP 투어 개인 타이틀 결승에서 10번 올라서 준우승만 했다. 웬만큼 투어에서 비빈 선수들은 거의 타이틀 하나쯤은 따는데 결국 은퇴 시점까지 타이틀을 따지 못한 안타까운 경우.
  • 진종오 - 아시안 게임 한정. 개인전 금메달만 없다.
  • 짐 켈리 - 버펄로 빌스와 함께 4년 연속 슈퍼볼 준우승을 해낸 미식축구계의 대표적인 콩라인이다. 개인기록마저 댄 마리노, 존 엘웨이에게 밀려서 콩라인이다. 미국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콩라인 드립 지분의 반 이상은 이 사람. 그나마 나머지의 반 이상은 소속팀이었던 버펄로 빌스이다.
  • 차민규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0.01초 차이로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콩라인에 합류했다. 2017년 12월에 캘거리에서 있었던 월드컵 3차대회에서도 0.001초 차이로 1위에 오르지 못하는 등 이래저래 콩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 타이슨 게이 - 우사인 볼트에 밀려 참여하는 대회마다 2위를 했으나, 요즘은 2위도 버거워하고 있는 안습한 상황이다. 그 뒤 금지 약물이 걸리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다.
  • 탄량더 - 1984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1988 서울 올림픽,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스프링보드 3m에서 은메달을 획득햇다.
  • 폴 케레스 - 에스토니아 체스 그랜드마스터, 콩라인에 어울리는 선수들을 살펴보자면 빅토르 코르치노이 와 알렉산더 벨리에브스키 가 있겠지만 그중 제일 으뜸 콩라인은 바로 이 선수이다. 1938년에 AVRO대회를 우승하고 당시 세계챔피언을 도전할 기회가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무산. 그 이후 세계체스챔피언 도전자 결정전을 4연속 준우승[67] 함으로써 매번 도전자 자격을 안타깝게 획득하지 못했다. 전성기 시절, 대회란 대회는 죄다 우승했지만 유독 세계챔피언쉽에서는 인연이 없어 챔피언 타이틀이 없는 선수중 제일 강한 체스 플레이어라고 불리운다.
  • 프랭키 프레데릭스 - 나미비아의 육상선수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1996 애틀란타 올림픽 2개 대회 연속 100m, 200m 2종목 은메달의 신화를 썼다. 참고로 이 네 종목의 금메달리스트는 전부 다른 사람이었으며(바르셀로나 100m:린포드 크리스티, 200m:마이클 마쉬, 애틀란타 100m:도노번 베일리, 200m:마이클 존슨), 2019년 현재까지 나미비아가 올림픽에서 딴 메달은 이 은메달 네 개가 전부이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실로 위대한 선수이자 위대한 콩라인이다.
  • 필 미켈슨 - 전성기가 하필이면 역대 최고의 사기캐와 겹치는 바람에 PGA투어 시즌 상금 랭킹 2위만 5번을 했다.
  • 황형범: 대한민국의 당구 선수로 준우승만 4회 있다.
[1] 이 해는 제도의 맹점으로 인해 한국시리즈 자체가 열리지 않았지만 통합 준우승 트로피가 사직구장에 있다.[2] 이 해엔 그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3연승으로 우승 직전까지 갔으나 그후 4연패로 요미우리에게 처참하게 처발렸다.[3] 그런데 이때 우승팀이 1998년 시즌 중에 최창호 본인이 뛰었었던 현대였다.[4] 덤으로 불명예스런 기록인 병살타 통산 1위 도 달성했다. 그 외에도 희생플라이 통산 1위 등을 달성하였다.[5] 더불어 양준혁은 2007년 시즌에 타율, 출루율, 장타율, 안타 4개 부문에서 2위를 기록했다[6] 2004년에 최다안타 타이틀이 있지만 논외로 취급된다.[7] 1988년 아시안컵에서 사우디에게 승부차기로 패배.[8] 트리플 러너업은 11-12 시즌의 FC 바이에른 뮌헨도 기록했으나, 이쪽은 독일 내 리그, 컵, 챔스 최다 우승팀이고 바로 다음 시즌에 트레블을 달성했다.[9] 1987-88 시즌으로 당시 차범근이 에이스로 활약했다.[10] 절대(Never) 우승 못한다고 붙여진 별명[11] Vise는 독일어로 "2등"을 뜻한다. 우리말로 옮기면 대략 '레버젠' 정도.[12] 4분 챔피언 같이 아쉽게 우승을 놓친 사례도 많다.[13] 당시 팀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로 평가받던 말컹은 리그 22골을 기록, 득점왕을 수상했다.[14] 준우승을 결정지은 리그 37라운드에서 결승골을 기록한 쿠니모토 선수의 등번호는 22번이다. 거기다 8월 5일 전북 원정에서 0:1로 이겼을 당시에도 쿠니모토가 결승골을 넣었다.[15] 심지어 2013시즌 마지막 경기는 두 팀의 맞대결(...)이었다. 포항은 이후 2019시즌에도 마지막 경기에서 울산을 4:1로 관광보내며 우승컵을 전주로 보냈다.[16] 2006 독일 월드컵에선 거의 벤치였으며 기껏 결승전때의 승부차기에서 나왔는데.....직접 보도록 하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7] 22골도 득점왕 2위에 오른적도 있다.[18] 참고로, 2부리그를 포함하면 2003-04세리에B 득점2위도 있다! [19] 1위는 클라스 얀 훈텔라르[20] 1위는 리오넬 메시[21] 챔스, 리그, 유로. 참고로 포칼은 2 득점으로 순위권에 들지 못함[22] 리그, UCL, 포칼 + 유로[23] 리그, 챔스 + 유로[24] 리그컵까지 합치면 준우승이 3번.[25] 리그, UCL, 포칼+월드컵[26] 리그, UCL, 리그컵+유로[27] 하지만 우승을 못한 것은 아니다. 바이에른 뮌헨 시절 우승을 많이 하기는 했다. 첼시에서 2009-10 시즌에 우승으로 더블을 이룩하기도 했고[28] 다만 이건 골든 볼이 이상할 정도로 우승 팀의 선수에게 잘 주어지지 않는 것도 있다. [29] 리그컵도 포함한다면 발락도 해당자이긴 하다.[30] 2014 K리그 클래식 개막전 해설을 이영표 해설이 맡았다.[31] 누나의 이름은 첫째라서 차하나이며, 동생의 이름은 셋째라서 차세찌다. 게다가 이런 아버지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 역시 맏딸의 이름을 독일어로 1을 뜻하는 차아인, 둘째 아들은 켈트 어로 2를 표현하는 차아일로 정했다.[32] 윌킨스와 조던이 둘 다 건강하게 뛰었을때 윌킨스는 단 한번도 조던을 능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쌍벽을 이룬다고 할 수는 없다. 윌킨스가 유일하게 앞선게 1986년인데 이때 조던은 큰 부상으로 20경기도 못 뛴 시즌이었다.(심지어 후반기에 부상에서 복귀하고 컨디션 조절하며 잠깐씩 뛰느라 시즌 평균 출장시간도 평균 25분대에 그쳤다. 근데 평균 22.7점 넣었다;;) 심지어 윌킨스는 2년이나 먼저 데뷔한 선배인데도 (나이도 3살 많다) 슈퍼루키 조던에게 득점순위에서 밀렸다. (신인이던 조던은 28.2점, 윌킨스는 27.4점을 기록)[33] 사실 이건 오닐의 어그로라고 할 수 있다. 피펜이 2인자인 건 맞지만 본인도 1990년대 최고의 스몰포워드로 올NBA 퍼스트팀에 여러번 올랐고 조던이 없을때는 MVP후보였을 정도로 슈퍼스타였다. 또한 불스에 조던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팀의 리딩을 전담하고 수비의 축이었던 피펜을 단순한 조력자로 볼 순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오닐은 이 설전에서 피펜보다 론 하퍼나 스티브 커가 더 공헌했다고 했는데 이쯤되면 그냥 막 내뱉는 것.[34] 다만 엘진 베일러 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은퇴는 구단도 감독도 은퇴를 강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은퇴를 만류했음에도 자신이 팀의 우승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팀의 우승을 위해 본인이 직접 내린 결정이었고, 자신의 은퇴로 팀이 우승을 하자 그 누구보다도 기뻐했다고 한다. 이유는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35] 다만, 2011~2012 시즌과 2017~2018 시즌에는 정규 시즌 우승은 차지했다.[36] 직전 시즌에 23.4점, 그전까지 가장 높은 평득이 25.6점이었다.[37] 윌킨스와 말론은 각각 4위, 5위. 여담이지만 이 시즌에는 1위 로빈슨이 29.8점, 2위 샤킬 오닐이 29.3점, 3위 하킴 올라주원이 27.3점을 기록하며 득점 1,2,3위가 센터라는 무시무시함을 보였다. 또한 4대센터의 마지막이자 가장 나이가 많은 유잉은 24.5점으로 득점 6위였고, 올라주원, 로빈슨, 오닐, 유잉은 해당 시즌 MVP 투표에서 각각 1, 2, 4, 5위를 기록한다.[38] 이때 그분은 결승전 평균 41득점을 퍼붓는다.[39] 특히 운동능력과 기술, 노련함의 조합이 절정을 이룬 이 시즌의 조던을 역대 최강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40] 19~20시즌에 코로나19로 인해 정규리그가 조기종료하면서 1위로 마감하였다.[41] 정규리그 우승은 3번하였다.[42] 정규리그 우승은 2번하였다.[43] 달랑 2승 그 중에서 1승은 1 VS 1 매치는 아니지만 팀 경기로 올린 승리다.[44] 참고로 언더테이커는 골든 제너레이션,뉴 제너레이션,애티튜드 에라,PG 에라를 거친 유일한 선수이며 모든 세대의 아이콘 들과 대립한 경험이 있는 흔치 않는 선수이기도 하다.예외로 존 시나와는 존 시나가 아이콘이 되기 전 기믹인 랩퍼 기믹때 대립하였다.[45] 단, 정규시즌은 우승했다.[46] 근데 2019년 준우승을 하자마자 뒤에서 2등으로 승강 PO에서 강등당하며 그럴 가능성이 생겼다. [47] 단, 그 해 정규시즌은 우승했다.[48] 2011년 대주배에서 우승했으나 대주배가 50세 이상의 기사만 참여하는 제한기전이다. 스타크래프트로 따지면 이벤트전의 성격. [하지만] 루이나이웨이는 여류기사 최초로 타이틀을 따는등 전성기때에는 웬만한 남자기사 못지 않았다[49] NFL, MLB, NBA, NHL까지 미국 4대 프로스포츠까지 범위를 넓혀도 4년 연속 준우승은 버펄로 빌스 밖에 없다.[50] 마이애미 돌핀스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3년 연속 진출해서 2승1패를 기록한게 그 다음의 연속진출 기록이다.[51] 2004 아테네 올림픽2008 베이징 올림픽에선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52] 김동문-라경민 조만 따졌을 때의 이야기다. 단, 김동문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길영아와 함께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이 결승전 경기의 상대는 박주봉-라경민 조였다. 부인은 파트너를 바꿔도 콩라인. 한편, 김동문은 하태권과 함께 2004 아테네 올림픽 남자복식 금메달을 딴 적이 있다.[53] 현재 Moto3 클래스와 동급이다.[54] 1번의 우승도 라파엘 나달, 로저 페더러의 불참과 노박 조코비치의 실격패 덕분에 어렵게 우승을 거두었다.[55] 한 번은 레이스 막판 바리첼로가 1위, 슈마허가 2위로 달리고 있던 도중 '슈마허가 1위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어라'는 지시를 받았을 정도. 페라리가 매번 이런 식으로 대해서 빡칠 만한 데도 묵묵히 팀오더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위대한 2인자라는 별명을 얻기도.[56] 2013년에는 치명적인 실수로 개인종합 6위를 차지했다.[57] 로테이션 2까지 했을때 중간 순위 2위였으나 쿠드랍체바가 곤봉을 떨어트리는 실수를 하면서 전 종목 19점대로 금메달을 땄다.[58] 1998 방콕 아시안 게임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방콕대회 때 금메달을 결정짓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대성통곡하며 급히 귀국했던 선수로 유명하다.[59] 당초 3위였으나 준결승에서 문의제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한 독일 선수가 도핑테스트에 적발되어 2위로 격상되었다.[60] 시드니 때보다 한 체급을 올려 도전했다. 아테네에서는 당당히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무릎부상 후유증으로 아쉽게 패했다.[61] 나머지 메이저 대회인 LPGA 챔피언십, US오픈, 브리티시 오픈은 우승했었다.[62] 이 동계올림픽 1500m가 하이든의 성인 데뷔경기로 7위를 했다.[63] 25세 이하 라이더 중 가장 기록이 좋은 선수에게 시상[64] 2010년 투르 드 프랑스 우승자인 콘타도르가 뒤늦게 약물복용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앤디가 우승한 것으로 기록이 되었다. [65] 2012년 8월 7일 현재 왕하오:유승민의 역대 전적은 14:2. 그 2패중의 1패가 바로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이다.[66] 그나마 올림픽은 곽윤기와 함께 최다 출전 공동 1위다. 횟수는 3번.[67] 1950년도에 4등 . 1953년, 1956년, 1959년, 1962년동안 연속 2등. 1965년엔 8강 에서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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