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비 매치/외국

 




1. 프로 축구



1.1. 유럽



1.1.1. 스페인


이른바 세계가 둘로 나뉘는 90분. 스페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더비 매치이며, 축구 팬이 아닐지라도 알고 있는 더비. 해당 문서 참조.
통칭 마드리드 데르비.[1]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두 팀 간의 로컬 더비이다. 특히 레알은 시내 중심가 부유층, 아틀레티코는 남부 지역 외곽의 서민층과 마드리드 주변에 거주하는 카탈루냐인 및 바스크인을 대표하기 때문에 더욱 경쟁 구도가 부각된다.
하지만 아틀레티코가 90년대에는 엄청나게 잘나갔던 것과 달리, 2000년대에는 아틀레티코가 레알을 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실력에 있어 레알이 훨씬 우월했기 때문에 라이벌이라 보기에 많이 부족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은 "이 더비는 한때 대단했다."라는 말을 한 적도 있고, 레알의 홈구장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더비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반응을 안 해 준다. 한편 10-11 시즌의 첫 마드리드 데르비에서는 레알이 2:0으로 승리했는데, 이 경기에서 호날두가 등으로 백패스를 하는 장면 때문에 AT 선수들이 자신들을 모욕하는 것이냐고 화를 내며 약간의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12-13 시즌, 아틀레티코가 드디어 2013년 5월 18일 코파 델 레이에서 연장 승부 끝에 2:1로 레알 마드리드를 격침시키며 17년 만의 코파 델 레이 우승과 동시에 13년 만에 마드리드 데르비 무승 기록을 격파하며 2010년대 아틀레티코의 부활을 알리게 된다. 또한 13-14 시즌 첫 마드리드 데르비에서도 아틀레티코가 1:0으로 이겨 레알과의 승점 차를 5점차로 만들었으며, 나중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맞붙게 되었다.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초로 같은 도시를 연고로 하는 클럽 간의 결승전을 성사시켜 더비의 위상을 높였다. 결과는 레알 마드리드의 연장 4-1 우승.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고 시즌 개막전 스페인 슈퍼컵에서 아틀레티코가 1-1, 1-0, 총합 2-1로 레알 마드리드를 격침시키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2015년 2월 7일에 벌어진 리그 22차전, 아틀레티코는 무려 4:0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뭉개 버렸다. 이는 87-88 시즌 이후 27년 만에 당한 4점차 패배.
2016년 5월 28일 이탈리아 밀라노 산 시로 스타디움에서 15-16 시즌 두 번째 마드리드 더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펼쳐졌다. 결과는 PK 5-3으로, 레알 마드리드는 15-16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며 전례없는 라 운데시마(La Undécima) 달성과 동시에 지단 감독의 성공적인 시즌으로 마무리했다. 아쉽게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13-14 시즌에 이어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패배하며 15-16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참고로 같은 마드리드 팀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마드리드'라 하면 레알 마드리드를 뜻한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줄여 부를 때에는 마드리드라 하지 않고 '아틀레티'라 한다.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두 팀 간의 로컬 더비. 마드리드 더비와 비슷하게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토박이인 팬이 많은 반면, 에스파뇰은 그에 반하는 카스티야나 바스크, 갈리시아, 발렌시아 출신 팬들이 주를 이룬다. 카탈루냐 더비가 치러지는 코르네야[2]캄프 누의 열정적인 응원은 스페인 내에서 매우 유명하다. 에스파뇰이 10-11 시즌에 좀 잘나가긴 했지만 워낙 바르셀로나가 우주 전함급이라 다소 싱거운 더비가 이어졌으나, 15-16 시즌 중국의 라스타 그룹이 에스파뇰을 접수한 이후 치러진 경기들에서는 에스파뇰 선수들이 UFC를 방불케 하는 전투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다시 더비의 열기에 불이 붙었다.
세비야의 로컬 더비. 두 팀의 연고지의 이름으로 '안달루시아 더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페인에서 가장 열광적이고 폭력적인 더비로 손꼽힌다. 특히 폭력적인 면에서는 엘 클라시코마저도 명함을 못 내민다고 할 정도다. 심지어 예전에는 구단주들 간의 주먹다짐에 세비야 구단주가 레알 베티스 구단주를 계단에서 밀어버려 굴러떨어지게 만드는 사건도 있을 정도였다. 지역 광산 노동자들이 설립한 세비야 FC에서 한 감독이 지역 공장의 노동자가 클럽에서 일하지 못하게 하자 구성원들이 파업을 일으키고 떠나서 만든 게 베티스.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다.
베티스가 강등되어 한동안 볼 수 없었다가, 10-11 시즌 세군다 리가에서 베티스가 승격을 확정지으며 11-12 시즌부터 다시 리가에서 보게 되었다. 허나 이 두 팀의 경우 세비야 유스 출신으로 리가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한 안토니오 푸에르타의 죽음 이후 베티스 구단주와 팬들이 세비야를 위로하면서 두 팀 간의 훈훈한 분위기가 조성됐고, 과거와 같이 과격한 더비 매치 양상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경기장 안에서의 라이벌 의식은 전혀 누그러들지 않았다.
갈리시아를 대표하는 두 팀 간의 로컬 더비 라이벌전. 또한 두 팀이 잘나가던 시절이 또 비슷하게 잘 맞아서 전성기 시절에 두 팀이 붙으면 꼭 치열한 경기가 펼쳐지곤 했다.
한동안 같이 시망했다가, 데포르티보가 수페르 체제에서 베이비 체제로 전환한 후 두 팀 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가 11-12 시즌에 같이 세군다에 있었고, 12-13 시즌에는 같이 승격. 그리고 같이 하위권(...). 이 매치의 이름인 "오 노쏘 데르비"는 갈리시아어로 "우리의 더비"라는 뜻이다.현재 전적은 셀타 비고가 50승 31무 45패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발렌시아 주를 대표하는 팀들이 붙는 로컬 더비. 과거 비야레알은 그다지 잘나가는 팀이 아니었기에 발렌시아의 위성 구단이나 다름없는 신세였는데, 03년 이후로 비야레알이 크게 발전하고 08-09 시즌에 준우승까지 일궈내면서 상황이 역전되었으나 11-12 시즌 충격의 강등(...)을 당하며 한동안 더비를 볼 수 없게 되었다. 현재는 비야레알이 다시 1부 리그에 자리잡아 치열한 더비를 연출하고 있다.
레반테는 한동안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는 팀이었고, 2000년대 중반에는 발렌시아와 비야레알 두 팀의 유스 임대 기지였으나 11-12 시즌 AC 밀란급의 노장 스쿼드로 레알 마드리드를 잡는 등의 이변을 보여주며 기적의 유로파 리그 진출을 이뤄내 무시 못할 팀으로 성장했다. 12-13 시즌에도 중위권에 안착하며 발렌시아까지는 무리여도 비야레알과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레반테는 발렌시아와 비야레알만 만나면 난 이미 죽었으니 너도 좀 죽어 보라는 식으로 경기를 한다. 특히 07-08 시즌이 절정기에 달해 발렌시아는 비야레알에게 두 번 다 지고(...) 07-08 시즌 최종전 발렌시아-레반테 전에서는 양 팀 합쳐서 퇴장 5명이 나오는 막장 경기가 벌어졌다.
10-11 시즌에는 레반테와 에르쿨레스가 동반 승격하면서 라 리가에 발렌시아 주 팀이 네 팀씩이나 되어 각종 데르비 매치를 양산했다. 실제로 에르쿨레스를 제외하면 지하철과 버스로 30분 내에 오고갈 수 있는 거리에 경기장이 위치한다. 이 시즌에 에르쿨레스는 초반에 바르샤를 잡는 해적질을 하며 상승세를 탔으나 강등(...). 레반테는 초반엔 고전하였으나 상술했듯이 이변을 일으켰다. 발렌시아 팬으로 유명한 웹툰 작가 칼카나마의 경우, 이 네 팀의 대결을 '도장 대결'로, 감독을 관장으로 비유하며 좋은 평을 받았다.
스페인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두 지역 중 하나인 바스크의 두 팀 간의 더비. 아틀레틱은 바스크의 주도인 빌바오에 위치해 있으며 이천수가 잠시 뛰기도 한 소시에다드는 해안가의 휴양지 산 세바스티안에 연고지가 있다.
둘 다 바스크인 선수들만 기용한다는 정책이 있었으나, 소시에다드는 89년부터 외국 선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양 팀이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사이 좋은 더비라는 점. 지역 내 라이벌이라는 인식보다도 같은 지역 사람이라는 유대가 강하다. 정작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클럽은 바로 카스티야를 대표하는 레알 마드리드.[3] 때문에 팀별로 서포터들이 격리되는 다른 더비와 달리 양 팀의 서포터들이 경기장에 마구잡이로 섞여 경기를 관람한다. 그럼에도 별다른 폭력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14-15 시즌부터는 에이바르 역시 라리가의 바스크 축구 대열에 가세했는데, 역시 서로 사이 좋기로는 매한가지. 오히려 빌바오와 소시에다드 두 구단이 에이바르의 라리가 정착을 돕기 위해 선수 임대를 적극 지원하는 등 훈훈한 모습을 보여줬다.
19-20 시즌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빌바오와 레알 소시에다드가 진출하게 되면서 결승무대를 바스크 더비로 장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뤄야하는것이 못마땅했던 두 팀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진 후 관중 수용이 가능해지면 경기를 치루도록 무기한 연기하였다. [4]
스페인 축구역사에서 처음으로 모든 디비전에서 성사된 라이벌매치이다.
그리고 지역 더비라고 보기에는 좀 멀지만, 스페인의 북아프리카 영토에 있는 AD 세우타와 UD 멜리야도 하부 리그 특성상 조가 나뉘어 경기할 일이 많지 않음에도 친선 경기 등을 통해 훈훈한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공식적인 경기에서의 전적은 레알 오비에도가 45승 28무 34패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1.1.2. 이탈리아


이탈리아 리그 팀들은 지역 내외 라이벌 관계가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같은 도시의 경우 같은 경기장을 공유하는 점도 있고, 남북부 및 역사적 사건 등을 배경으로 한 지역감정도 예를 들 수 있기 때문. 대조적으로 '''국적을 막론하고 선수와 감독은 라이벌 팀들을 아주 잘 왔다갔다한다'''. 선수로서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필리포 인자기,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감독으로선 안토니오 콘테[5]마우리치오 사리가 대표적이다.
같은 경기장을 두고도 '산 시로'와 '주세페 메아차'라고 달리 부르는 두 팀 간의 라이벌 의식은, 1908년 영국인들이 주도해 만들어진 밀란이 영국인과 이탈리아인만을 클럽의 선수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이에 반대한 이탈리아와 스위스 선수들이 밀란을 탈퇴해서 모든 국가의 모든 선수들을 받아들이겠다며[6] 인테르를 창설하며 시작했다. 세리에 A 내에서 가장 유명한 더비이며, 최고의 흥행 카드이다. '마돈니나'는 단어 그대로는 '작은 마돈나'라는 뜻이고, 밀라노의 두오모 꼭대기에 있는 마리아 상을 기리는 의미이다.
수도 더비라는 의미로, 스타디오 올림피코 경기장을 공유하며, 라치오 팬들이 북쪽 골대 뒤편, 로마 팬들이 남쪽 골대 뒤편 관중석을 사용한다. 이 둘의 더비는 경찰이 일단 무기를 검사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주로 네오 나치, 파시스트들로 구성된 라치오 팬들은 도끼부터 사제 폭탄까지 들고 와서 살벌한 분위기를 만든다고.
참고로 로마의 레전드인 프란체스코 토티가 본인을 소재로 한 유머집을 발간한 적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런 내용이었다: 라치오 팬이 총알이 2개 들어 있는 총 한 자루를 들고선 곰과 독사, 그리고 토티와 같은 방에 같이 갇혔다. 라치오 팬은 총 갖고 뭘 할까? 답은 토티를 두 방 쏜다.
1967년 당시 13회와 10회로 세리에 A 우승 회수 1, 2위를 기록하고 있던 유벤투스와 인테르 사이의 경기를 스포츠 저널리스트인 지아니 브레라가 명명한 것. 칼치오폴리 사건으로 유벤투스가 강등되기 전까지는 두 클럽만이 세리에 A에서 강등당한 적이 없다는 추가적인 의미가 있었다. 이 의미는 사라진 반면, 칼치오폴리가 인테르 측과 관련이 있는 텔레콤 이탈리아의 도청을 계기로 시작됨에 따라 그다지 사이가 나쁘지 않던 두 팀 사이의 감정은 최악으로 치달아 거칠어졌다.
'몰레'는 몰레 안토넬리아나에서 따온 것으로, 피에몬테 주의 주도인 토리노의 랜드마크이며 건축적 상징이다. 이탈리아 축구에서 최초로 등장한 더비 매치. 토리노가 잘 나갔던 시절에는 토리노 지방을 대표하는 두 팀의 라이벌전은 이탈리아 전체를 대표하는 라이벌전이 되기도 했으나, 토리노가 비행기 사고로 선수단의 8할을 잃는 수페르가의 비극을 계기로 침체되면서 많이 퇴색됐다. 하지만 토리노 지역 내에서는 상당히 인기가 있는 더비.
  • 데르비 델 솔레: SSC 나폴리 vs. AS 로마 - 직역하면 '태양의 더비'. 둘은 각각 남부 이탈리아와 중부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1926-27 시즌 내셔널 디비전에 편입된 팀이다.
북서부 연안의 대표 도시 제노바의 지역 로컬 더비로, 밀란, 로마처럼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 경기장을 홈으로 공동 사용한다. '란테르나'는 랜턴 즉 등불이라는 뜻인데, 제노바 항구에 있는 랜드마크 등대인 '토레 델라 란테르나'에서 따온 것이다.
시칠리아의 두 대도시 카타니아와 팔레르모의 맞대결. 제일 과격한 더비 중 하나로 악명이 자자했는데, 2007년 2월 2일 시칠리아 더비 때 서포터들 간 난동으로 이걸 진압하던 필리포 라치티 경관이 카타니아 서포터에게 살해당하는 사건도 벌어질 정도였다. 이 사건으로 세리에 A, 세리에 B의 하위 리그까지 모든 이탈리아 축구 시즌이 2주 동안 중단되고, 이탈리아 축구 협회의 조사에서 관중 난동의 위험이 있는 팀들은 홈 무관중 경기 혹은 제 3지역 홈 경기라는 처벌을 받는다. 카타니아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제3 지역 개최, 무관중 징계 콤보를 맞았다.
이후에도 자잘한 충돌은 있었지만 이만큼의 폭력 사태는 없었고 팔레르모-카타니아 양 구단주간 약간이나마 관계가 누그러지게 된다. 그리고 현재는 두 팀 간 승점 분배 의혹이 있을 정도로 관계가 발전했다(...).
이탈리아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인 베로나에서 열리는 더비 매치. 더비 명칭인 '스칼라(scala)'는 중세부터 초기 르네상스 시대 베로나 지역의 지배자였던 스칼리제리 가문에서 따온 것이다. 두 팀 모두 스타디오 마크안토니오 벤테고디 경기장을 홈으로 사용하며, 과거에는 헬라스가 베로나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1984-85 시즌 스쿠데토까지 차지한 명문이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키에보는 세리에 A 중위권에 안착하여 성장한 반면 헬라스는 세리에 A, B를 왔다갔다하고 있다.
두 팀의 특징으로는 상반되는 유니폼 색으로, 헬라스 기준으로 홈/어웨이가 상하의 모두 파란색/노란색인 반면, 키에보의 경우 노란색/파란색. 실질적으로 헬라스가 베로나를 대표하는 팀이라 헬라스의 경우 베로나라 칭하는 편이 많은 반면, 키에보의 경우 키에보 베로나 혹은 키에보라 불리는 편이 많다.
  • 데르비 델아펜니노: 볼로냐 FC vs. ACF 피오렌티나 - 볼로냐는 에밀리아로마냐의 가장 큰 도시이고, 피렌체는 투스카니의 최대 도시. 아펜니니 산이 두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두 팀은 1970년대 이른바 '울트라스'라는 극렬 팬층이 생겨나면서 사이가 나빠졌는데, 가장 큰 충돌은 1988-89 시즌 피오렌티나 홈 팬들이 볼로냐 원정팬들의 기차에 화염병을 던진 사건이었다.
  • 데르비 델로 스트레토: 메시나 SSD vs. 레지나 - 직역하면 '해협 더비'. 두 팀의 연고지인 메시나와 레지오 칼라브리아가 메시나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 데르비 델에밀리아: 볼로냐 FC vs. 파르마 FC - 에밀리아 주에서 가장 큰 두 팀이다. 그러나 에밀리아 연고 팀이 처음으로 세리에 A에 진출한 것은 1990년이 되어서였다(파르마).
양 시칠리아 왕국(Two Sicilies)의 양대 도시였던 나폴리와 팔레르모 간의 더비 경기.
이솔레는 섬들(islands)이라는 뜻. 이탈리아의 두 큰 섬인 시칠리아 섬과 샤르데냐 섬을 대표하는 팀 간의 경기이다.
  • 데르비 델엔자: 파르마 칼초 vs. AC 레지아나 - 엔자 강이 두 팀의 연고지 파르마와 레지오 에밀리아 사이를 가르며 흐르고 있다. 세리에 A에서의 맞대결은 1993년에야 처음 이루어졌다.

1.1.3. 잉글랜드


EPL은 자금력도 그렇고 인기도 최고 수준이라 한 도시에 여러 프로 팀이 몰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런던의 경우 EPL에만 적어도 대여섯 팀이 있는 경우가 많다.[7] 물론 챔피언십이나 EFL 리그 1, 2 또는 그 밑까지 내려가면 프로 팀이 정말로 많다. 그러므로 런던 연고 팀들에겐 더비 경기가 무지 많겠지만, 여기선 그 중 가장 유명하고 '''살벌한''' 경기만을 다룬다.
리버풀을 연고지로 하는 에버튼과 리버풀의 더비 매치이다.
국내에선 '레즈 더비'라고 한다. 현지에서는 빨간색을 쓰는 팀이 한둘이 아니라서 레즈 더비라고 하지 않는다.
실제 역사의 장미전쟁에서 유래한 더비. 지역감정이 발전된 형태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랭커스터 가문을, 리즈 유나이티드가 요크 가문을 상징한다.
리즈의 몰락 이후 뜸해지긴 했으나 최근 리즈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데다 09-10 시즌 FA 컵에서 만나 오랜만에 등장하였다. 그런데 리즈가 이겼다. 리즈의 반 맨체스터 감정은 상당한 수준으로 80년대 잉글랜드 훌리건 전성기 시절 물량으로 이름을 떨쳤던 맨유의 훌리건인 '레드 아미'가 리즈 지역에 원정 갔을 때, 리즈의 훌리건들은 물론 그냥 쇼핑 등을 하던 평범한 시민들도 리즈의 훌리건들과 함께 레드 아미를 사정없이 공격했고, 결국 레드 아미는 처절하게 발리고 말았다. 2019-20 EFL 챔피언십에서 리즈가 16년만에 프리미어 리그승격에 성공하면서 2020-2021 프리미어 리그에서 로즈더비가 다시 열리게되었다.
  • 런던 더비: 첼시 FC vs. 아스날 FC vs. 토트넘 핫스퍼 : 첼시가 2000년대 이후 신흥 강호로 급부상하였고 토트넘 역시 2010년대 중반이후 챔스 결승전에 진출하는 등 유럽의 강호로 성장하면서 런던의 3강 구도 자체가 치열한 라이벌전이나 다름없다. 특히 18-19 시즌의 유로파리그의 결승전은 첼시 대 아스날이다.

인근 공단 노동자들의 팀이었던 이 두 팀이 주축을 이루는 노조가 서로 반목하며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100년을 넘는 대립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밀월의 성적이 좋지 못해 자주 벌어지지는 않지만 그 양상이 과격하기로 악명이 높다. 영화 '훌리건스'의 배경이기도 한데, 이는 실화가 바탕인 영화이며 격투 장면 촬영 때도 실제 웨스트햄 팬들과 밀월 팬들이 등장했다.
이 더비는 다른 의미를 떠나 훌리건으로 대표되는데, 두 팀이 경기할 경우 팬들은 이겼건 졌건 비겼건 그냥 싸운다. 영국 FA와 런던 경찰이 서로 친선 경기 하지 말라고 권고할 정도. 물론 두 팀 간 친선 경기가 이뤄질 일은 별로 없다.
09-10 시즌, 칼링 컵 2 라운드에서 두 팀이 만났고 웨스트햄이 총 전적 3:1로 이겼는데, 이 경기가 끝나고 난 후 웨스트햄의 홈구장인 업튼 파크는 인외마경이 되었다. 마침내 웨스트햄이 10-11 시즌 강등당하여 챔피언십에서 드디어 이 더비가 벌어지게 되었다.
이 더비 같은 경우엔 맨유와 맨시티의 수준차가 심각해 맨체스터 현지인이 아닌 이상 딱히 주목받지 못했던 경기지만 2008년 여름 만수르가 맨시티를 인수해 당시 레알마드리드의 에이스 였던 호비뉴를 영입하는 걸로 시작해 전 대륙 곳곳의 스타플레이어들을 데려와 흥행성이 높아진 더비이다. 더군다나 스쿼드 네임밸류와 리그 성적, 그리고 실제 더비에서 시티가 유나이티드를 잡아먹은 적이 많았고 상당수가 맨체스터 더비에서 맨시티가 더 승산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뉴캐슬과 선더랜드, 미들즈브러는 잉글랜드 북동부에 위치해 흔히 북동부 3팀이라 불리는 라이벌이다. 각각의 도시에 흐르는 강 이름을 따 더비 매치의 이름을 붙였다. 뉴캐슬어폰타인선더랜드는 도시간 근 천 년을 헤아리는 대립의 역사를 지니고 있어 이 세 팀 간의 더비 가운데 가장 치열하다.
  • 세컨드 시티 더비: 아스톤 빌라 FC vs. 버밍엄 시티 FC[8]
국내 한정. 힐스보로 참사 때 아스날이 리버풀을 생각해서 승점 삭감을 감안하고 리그 최종전 경기 일정을 바꿨고, 두 팀의 최종전 결과 아스날이 승리하며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리버풀은 같이 응원가를 따라 부르며 아스날의 우승을 축하했다. 이 덕분에 아스날과 리버풀 팬덤은 사이가 좋은 편.
15-16 시즌에 맞붙은 2경기에서 양 팀이 사이좋게 에미레이츠에서 0:0, 안필드에서 3:3 무승부를 거뒀다.
2008년의 '더비 매치에 관한 보고서'라는 논문은 팬 설문, 리그에 끼치는 영향, 결과에 따라 받아들이는 팬들의 반응, 두 팀이 만난 기록, 언론 보도 등을 살펴 가장 첨예한 더비의 순위를 선정하였다. 물론 잉글랜드 리그의 더비만 포함된 자료이다.
순위
더비명
라이벌리
1
블랙 컨트리 더비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vs.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2
이스트 앵글리아 더비
입스위치 타운 FC vs. 노리치 시티 FC
3
노스웨스트 더비
리버풀 FC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4
남해안 더비
포츠머스 FC vs. 사우스햄튼 FC
5
사우스 웨일스 더비
카디프 시티 FC vs. 스완지 시티 AFC
6
세컨드 시티 더비
아스톤 빌라 FC vs. 버밍엄 시티 FC
7
스틸 시티 더비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vs. 셰필드 웬즈데이 FC
8
브리스톨 더비
브리스톨 시티 FC vs. 브리스톨 로버스 FC
9
타인-위어 더비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vs. 선더랜드 AFC
10
M23 더비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vs. 크리스탈 팰리스 FC
11
이스트 미들랜즈 더비
더비 카운티 FC vs. 노팅엄 포레스트 FC
12
웨스트 랭커셔 더비
블랙풀 FC vs.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13
더럼 더비
달링턴 FC[9][10] vs. 하틀풀 유나이티드 FC
14
M1 더비
루튼 타운 FC vs. 왓포드 FC
15
이스트 랭커셔 더비
블랙번 로버스 FC vs. 번리 FC
16
포터리스 더비
포트 베일 FC vs. 스토크 시티 FC
17
북런던 더비
아스날 FC vs. 토트넘 홋스퍼 FC
18
험버 더비
그림즈비 타운 FC vs. 스컨소프 유나이티드 FC
19
머지사이드 더비
에버튼 FC vs. 리버풀 FC
20
로즈 더비
리즈 유나이티드 FC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1.4. 독일


관중 동원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분데스리가의 특성상, 특별하게 라이벌 의식이 심하다기보다는 '''그냥 원래 열정적인''' 경우가 많다. 같은 지역이면 우리는 모두 친구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있으며, 과거 역사적, 지역적 성장 배경이 다른 도시들끼리의 지역감정이 축구 더비 매치의 근간 유래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레비어, 도이치, 바바리안 더비가 그 예. 또한 아우크스부르크와 1860 뮌헨처럼 비슷한 성적으로 같은 리가에 오랫동안 소속해 있어 자주 마주치다 보니 라이벌리가 형성된 경우도 있다.
세계 5대 더비 중 하나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을 대표하는 두 공업 도시 간의 경기. 평균 관중부터 도르트문트가 8만, 샬케가 6만 이상으로, 둘 모두 홈구장을 꽉 채울 수 있다. 관중 동원력이 좋은 분데스리가에서도 가장 팬층이 두꺼운 두 팀의 특성상 절대 매진 안 될 일이 없는 분데스리가 최고의 더비. 평소에도 도르트문트는 매 시즌 평균 홈 관중 수가 82,000명 중 81,000명을 웃돌고, 샬케 또한 62,300명 중 60,000명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매진이 많이 되는 클럽들이기에 더비 때 매진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리그 내에서 더블 기록을 가진 팀리그 내에서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험을 가진 팀이 맞붙는 경기. 브레멘과 함부르크는 독일 내에서 단 세 개밖에 없는 도시주이자 유이한 자유 도시이며, 본래부터 이 두 도시 간의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 분데스리가 최다 매치업이라는 기록을 가진 더비 매치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브레멘과 함부르크는 1.분데스리가에 가장 많이 출석한 팀이다. 레비어 더비 못지 않게 격렬한 더비 매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중부 라인강변을 연고로 하는 두 팀 간의 더비.[11]
바이에른 자유주의 남부 바이에른 지역을 대표하는 바이에른 뮌헨과, 북부 프랑켄 지역을 대표하는 뉘른베르크 간의 경기를 말하나, 크게 유명한 더비 매치는 아니다.
독일 축구의 산실이라는 뮌헨의 로컬 더비. 원래 두 팀은 밀란과 인테르처럼 같은 경기장을 썼다. 그래서 경기장의 좌석은 붉은색도 푸른색도 아닌 회색으로 되어 있었다. 또 FC 바이에른의 경기가 있을 때는 빨간색, 1860 뮌헨의 경기가 있을 때는 파란색으로 외부 조명을 켜고, 국가 대표 경기는 흰색, 두 팀이 붙을 때는 빨간색과 파란색을 같이 썼다. 그런데 2017년 여름 1860 뮌헨이 레기오날리가로 강등되고 알리안츠 아레나도 떠나 옛말이 되었다. 회색이었던 관중석은 2018년 여름에 FC 바이에른의 상징색인 빨간색과 흰색으로 교체되었고, 빨간색과 파란색이 한데 섞인 외부 조명도 두 팀이 DFB-포칼에서 만나지 않는 이상 보기 어렵게 되었다.
독일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두 개의 주는 바이에른 주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인데, 이들 두 주의 중심 도시인 뮌헨과 슈투트가르트 간의 자존심 대결이다.
함부르크를 연고지로 둔 두 팀의 대결. 사실 경력으로 보면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함부르크가 더 강하고 우승도 더 많이 했지만, 상 파울리의 서포터가 워낙 많고 인기도 많아서[12] 두 팀의 대결은 독일 내에서도 손꼽히는 격렬한 매치다.
라인 강변 하류의 두 팀 간의 더비.
2000년대 들어 주목받는 신흥 더비. 2000년대 중반 도르트문트가 한때 심각한 자금난으로 몰락했던 시절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위르겐 클롭 감독이 부임한 이후의 도르트문트가 2시즌 연속 바이에른을 무너뜨리면서 분데스리가를 우승하는 등 새 전성시대를 써가자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경기.
위에서 언급했듯이 독일의 가장 대표적인 클럽을 가린다는 의미이며, 12-13 시즌에는 두 팀이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 엘 클라시코 더비의 파트너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를 무너뜨리며 나란히 결승전에 진출하자 엘 클라시코(El Clasico)와 같은 의미의 독일어인 데어 클라시커(Der Klassiker)라고 불리게 되었다.
재밌는 것은 FIFA 홈페이지에서도 소개되고 세계 유수의 언론 매체에서 소개되고 있는 더비 매치이지만, 정작 독일 현지에서는 더비 매치는커녕 라이벌 취급도 안 하는 모양. #
데어 클라시커와 마찬가지로 2000년대 들어 생긴 신흥 더비. 팀 이름에 보루시아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더비이다. 독어 위키는 커녕 영어 위키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더비이지만 이상하게도 게임 풋볼 매니저에는 등재되어 있는 더비이다.[13]
좌파 클럽을 대표하는 파울리와는 정 반대로 한자 로스트크의 연고지는 구 동독의 주요 공업도시였던 로스토크였고, 최근 들어 네오나치와 파시스트들이 극성적으로 응원하는 덕에 독일 당국에서도 촉각을 세우는 더비 매치. 지역 더비와는 성향이 다르나 정치적으로 폭발할 여지가 다분한 편. 두 팀이 맞붙게 되면 큰 싸움이 날 것이라 관계 당국 모두 주시하고 있는 상태. 다행히 지금은 2부와 3부로 다른 리가에 배치되어 있다.

1.1.5. 스코틀랜드


로컬 더비와 라이벌 더비의 성격을 같이 지닌다. 구교(아일랜드 이주계들이 만든 셀틱)와 신교(기존에 스코틀랜드에서 살던 스코클랜드인들이 만든 레인저스)의 갈등 또한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몇 년 전 셀틱의 골키퍼인 아르투르 보루츠가 경기 시작 직전 골대 앞으로 서면서 성호를 그었다는 이유로 징계를 먹었다. 레인저스 팬들이 그것을 명백한 도발로 받아들였기 때문.[14] 그러나 2012년, 레인저스가 세금을 안 낸 이유로 강등당하게 되면서[16] 다시 올드펌 더비를 보려면 최소한 4년은 있어야 한다.
16-17 시즌, 레인저스가 SPL로 승격하면서 더비 매치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올드펌 문서 참조.
1980년대에 알렉스 퍼거슨이 이끌던 애버딘과 함께 던디 유나이티드가 급부상하면서 '뉴 펌(New Firm)'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이 둘의 대결 뉴 펌 더비가 상당한 화젯거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레인저스와 셀틱의 독주로 돌아가면서 뉴 펌이라는 단어도 거의 죽은 말이 되고 말았다.

1.1.6. 네덜란드


영어로는 엘 클라시코와 마찬가지로 'The Classic'.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내셔널 더비. 아약스가 암스테르담의 부유층, 페예노르트가 로테르담의 노동자 계급을 대표한다.
PSV가 리그 우승을 점령해 가면서 조금 주춤한 면이 있다. 최근에는 PSV까지 끼면서 세 팀의 라이벌 관계가 극심해졌고, 세 팀끼리 트라이앵글로 서로 까는 매치가 된 상태. 90년대 이후에는 세 팀끼리 붙는 게 이 표현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아약스와 페예노르트가 맞붙는 더비를 일컫는 표현이며, 이렇게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 알크마르가 강호가 되자 두 팀 성적이 같이 떨어지기도 했다. 거기에 네덜란드 국가 대표에서까지 페예노르트, 아약스, PSV 출신끼리 싸우면서 불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10-11 시즌에는 PSV가 페예노르트를 10-0으로 이기는 대박 진기명기 쇼를 보여줬다.
페예노르트가 상대적으로 주춤하고 PSV가 정상권에 머물면서 형성된 아약스와 PSV의 라이벌리를 일컫는 표현이다. Topper는 네덜란드어로 중요 인물, 최정상을 놓고 펼치는 대결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1980년대 PSV에서 뛰었던 허정무는 아약스에서 선수 생활 황혼기를 보내고 있던 요한 크루이프를 상대하게 됐는데, PSV의 서포터들로부터 "요한 크루이프를 죽여라"라는 살벌한 응원을 들었다고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언급했다.

1.1.7. 프랑스


북쪽의 파리 지방과 남쪽의 프로방스 지방의 대결. 그러나 사실 7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마르세유에 비해 생제르맹은 1970년대에 생겨서 그렇게 오래된 더비는 아니다. 서로의 지역감정이 강해서 파리에서 마르세유 유니폼을 입고 다니거나 거꾸로 마르세유 지역에서 파리 유니폼을 입고 다닌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7]
1953년부터 프랑스 동남부 아주르 해안 지방 근처에 있는 두 팀 모나코와 니스간의 더비 경기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됐으며 널리 알려진 더비 경기이다.
프랑스 남동부의 대도시인 리옹과 마르세유의 대표 팀 간의 대결이자 PSG 이전에 프랑스 리그의 양대 산맥인 두 팀 간의 경기. '올랭피크'라는 두 이름 때문에도 라이벌 의식이 있고, 이 때문에 이름의 유래가 된 것.
리옹이 리그 앙 7연패를 하기 이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리옹의 7연패 기간 동안 마르세유와 리옹이 끝없이 부딪히며 크게 주목받게 되었다. 프랑스 제 2의 도시를 가지고 싸우는 리옹과 마르세유 두 도시간의 자존심 대결도 한 몫 한다.
프랑스 남서부의 도시들인 보르도와 툴루즈 간 대결. 보르도와 툴루즈 지방을 모두 지나는 가론강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2019년 10월 FC 지롱댕 드 보르도 소속의 황의조가 해당 더비매치에서 환상적인 골을 득점하기도 했다.
프랑스 북부 오드프랑스 지방의 두 도시 클럽간의 더비매치이다. 옛부터 섬유 생산 및 무역의 중심지 과 탄광도시 랑스의 상이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부르주아 대 노동자 클럽간의 대결의 양상을 띄고 있다.

1.1.8. 터키


크탈라르 아라스 데르비는 터키어로 '대륙 간 더비'를 뜻한다. 이스탄불 더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터키 리그는 몰라도 이 더비만큼은 유명하다. 터키의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에 연고를 둔 클럽들이 많아서 이스탄불 더비라고 할 수 있는 경기는 페네르바흐체-갈라타사라이, 베식타슈-페네르바흐체, 갈라타사라이-베식타슈 등 총 3경기가 있지만, 터키인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경기는 첫 번째 경기. 거의 지옥을 방불케 하는 홍염과 연기에 휩싸이며, 과격하고 흉포할 정도의 응원들이 오간다. 김건모송 참조.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도시인데, 페네르바흐체는 이스탄불의 아시아 쪽, 갈라타사라이는 이스탄불의 유럽 쪽을 대표한다. 양 팀의 경기장도 각각 페네르바흐체의 쉬크뤼 사라졸루 경기장은 아나톨루 지역에, 갈라타사라이의 튀르크 텔레콤 아레나 경기장은 유럽 지역에 있다.
샤다라빠의 얘기에 의하면 서로의 합의로 원정 응원은 안 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샤다라빠와 이야기하던 터키 축구 관계자에게 "경기장에 술 팔면 좋겠군요."라고 가볍게 말하자 기겁하면서 "안 돼요! 안 그래도 술 못 마시게 하는데도 이러는데 술 마시게 했다간 죽는 사람 마구 나올걸요!"라고 정색했다고 한다(...). 이후 2016년에 원정 응원 금지가 풀렸다.
여담으로 세르비아 출신으로 밑에도 나오는 베치티 데르비를 2년 동안 겪어 본 마테야 케즈만이 2006년부터 2년 동안 페네르바흐체 소속이었는데, 베치티 데르비도 세계적으로 과격한 더비로 알아줌에도 그런 그가 터키에서 이 더비를 치르고 나서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오늘 살아남은 것에 대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리겠다."라고 기겁했다.
  • 앙카라 데르비시: 겐츨레르비를리이 vs. MKE 앙카라귀쥐
  • 이스탄불 데르비시: 카슴파샤 vs. 파티흐 카라귐뤽
이스탄불 데르비시에 끼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세계적 인지도는 많이 약한 편. 그래도 터키 내에서 제일 험악한 더비 중 하나다.
  • 이즈미르 데르비시: 카르쉬야카 vs. 괴즈테페 vs. 알타이 vs. 부자스포르
위의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흐체만큼이나 과격한 더비들이다. 이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카르쉬야카 vs. 괴즈테페. 이 둘의 과격성은 위의 이스탄불 더비들을 대놓고 비웃고 있다. "이스탄불? 그놈들은 그냥 서포터일 뿐이지만 우린 훌리건이다"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할 정도로(...).
  • 아다나 데르비시: 아다나스포르 vs. 아다나 데미르스포르
  • 메르신 데르비시: 메르신 이드만 유르두 vs. 타르수스 이드만 유르두
  • 발르케시르 데르비시: 발르케시르스포르 vs. 반드르마스포르
  • 흑해 데르비시: 트라브존스포르 vs. 삼순스포르 vs. 차이쿠르 리제스포르 vs. 기레순스포르
  • 서부 흑해 데르비시: 존굴닥스포르 vs. 카라뷕스포르
  • 남동부 아나톨리아 데르비시: [18] vs. 엘라즈스포르
  • 아이든 데르비시: 아이든스포르 vs. 나질리 벨레디예스포르
  • 동부 아나톨리아 데르비시: 엘라즈스포르 vs. 말라탸스포르
  • 남서부 아나톨리아 데르비시: 데니즐리스포르 vs. 안탈랴스포르
  • 트라캬 데르비시: 테키르다스포르 vs. 륄레부르가즈스포르
  • 마니사 데르비시: 악히사르 벨레디예스포르 vs. 마니사스포르 vs. 투르구틀루스포르
  • 데니즐리 데르비시: 데니즐리스포르 vs. 데니즐리 벨레디예스포르
  • 중앙 아나톨리아 데르비시: 시바스스포르 vs. 카이세리스포르
  • 카이세리 데르비시: 카이세리스포르 vs. 카이세리 에르지예스스포르
  • 마르마라 데르비시: 사카랴스포르 vs. 코자엘리스포르
  • 추쿠로바 데르비시: 메르신 이드만 유르두 or 타르수스 이드만 유르두 vs. 아다나스포르 or 아다나 데미르스포르
  • 이스탄불 vs. 안티 이스탄불: 갈라타사라이 or 베식타쉬 or 페네르바흐체 vs. 이스탄불 아닌 나머지 팀들[19]
  • 터키 vs. 쿠르드: 부르사스포르 vs.
부르사스포르 서포터즈 '텍사스'는 터키 민족주의를 지지하고, 디야르바크르스포르는 쿠르드 지역의 대표라는 색채가 강했다. 그래서 터키 민족주의와 쿠르드 민족주의의 충돌 형식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도 디야르바크르스포르가 없어지면서 끝나는가 싶었지만 디야르바크르 뷰육셰히르 벨레디예스포르, 예니 디야르바크르스포르가 물려받았다.

1.1.9. 포르투갈


제1의 도시이자 수도 리스본에 연고한 벤피카와 스포르팅, 리스본에 이은 제2의 상공업 도시 포르투에 연고한 포르투의 지역 더비. 리스본과 포르투라는 포르투갈 양대 대도시의 자존심 대결이기도 하다.
스포르팅은 4~50년대, 벤피카는 6~70년대, 포르투는 80년대를 장식한 명문 팀들이다. 초기만해도 리스본의 수장은 스포르팅이었으나, 요즘은 벤피카가 리스본 수장을 먹고 있는 상태. 물론 그렇다고 스포르팅도 만만치 않은 것이, 가장 최근의 13-14 리그에서 벤피카에 이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본래 리그에서 FC 포르투와 리스본의 양 팀이 맞붙을 경우에만 사용되는 단어였으나, 현재는 리그 밖에서 격돌하는 모든 경기를 일컫는 표현이 되었다.
양 팀 홈 경기장 간 거리가 2km 미만이라 더비 경기가 있으면 시가행진으로 경기장에 걸어간다(...).


1.1.10. 세르비아


  • 베치티 데르비(Вечити дерби/Večiti derbi): FK 파르티잔 vs. FK 츠르베나 즈베즈다[20]
세르비아를 대표하는 두 클럽인 FK 파르티잔FK 츠르베나 즈베즈다베오그라드 더비이다.

1.1.11. 그리스


그리스를 대표하는 두 클럽인 파나티나이코스올림피아코스의 더비이다. 두 팀은 축구 말고도 여러 팀을 운영하는데, 95년에는 농구 경기, 06년에는 여자 배구 경기 이후 팬들이 충돌해 사망자가 나온 적도 있다. 그만큼 라이벌 의식이 강해 두 팀의 경기에서 원정 팬들에게 표를 팔지 않기로 약속했을 정도. 역사적으로 파나티나이코스는 아테네 북서쪽의 부촌인 암벨로키피에 연고해 부유한 서포터를, 올림피아코스는 아테네 남동쪽의 외항 도시 피레아스에 연고해 공장 노동자 서포터를 주로 두었다.

1.1.12. 헝가리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가장 대표적인 명문 라이벌 페렌츠바로시와 MTK 부다페스트의 경기이다. MTK 부다페스트는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 컵의 초대 참가 클럽이고, 페렌츠바로시는 헝가리 리그의 최다우승팀이자 전승 우승이라는 기록을 보유한 클럽이다. 총 전적은 85승 48무 79패로 페렌츠바로시가 약간의 우위에 있다. 최근 MTK가 승격과 강등을 왔다갔다하는 중위권 팀이 된 것에 비해 페렌츠바로시는 2019/20시즌 1부리그 31번째 우승을 달성하며 전력차가 많이 벌어진 상태다. 그럼에도 2020/21시즌 넴제티 바이녹사그 I(헝가리 1부리그) 첫 라운드에서 벌어진 외뢰크란가도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다시 승격한 MTK 부다페스트가 죽지 않았음과, 두 팀이 팽팽한 라이벌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1.1.13. 스웨덴


스톡홀름을 연고지로 한 두 구단의 라이벌전. 딱 동서의 거점이다 보니, 이날만 되면 스톡홀름은 그야말로 반토막이 나버린다. 게다가 서포터즈들이 성질 하나는 장난 아니어서 스웨덴 스포츠 대사건의 많은 건이 여기에서 터진다. 아이스 하키에서도 둘 다 같은 이름으로 참가하다 보니 아이스 하키와도 엮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1.1.14.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서아시아 대륙에 있지만 유럽 축구 연맹 소속인 점을 감안하여 이곳에 서술하였다.
진보층을 상징하는 하포엘과 그 반대인 마카비. 이스라엘 건국 이전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지역 리그 당시에도 서로 죽어라 사이 나빴고, 이스라엘 건국 이후 프로 리그에서 서로 못 잡아먹기로 유명한 라이벌이다. 두 팀이 격돌하면 양 서포터들이 돌팔매질, 화염병 투척에 총까지 쏴 버리고, 서로 히틀러의 자식들, 나치 피가 섞인 잡종이라며 서로를 죽일 듯이 욕하며 구타까지 벌여 이스라엘 축구 협회와 정부까지 골머리를 앓게 했다.
2000년대 와서는 마카비 하이파가 떠오르고 마카비 텔아비브가 주춤하며 하포엘과 하이파끼리 슈퍼더비라고도 불리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더비 하면 텔아비브 더비를 연상한다고 한다.

1.2. 남미



1.2.1.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데, El Superclásico, 영어로는 The Superclassic. 영국 신문지 The Observer에서 2004년 '당신이 죽기 전에 꼭 해 봐야 할 50가지 스포츠 활동'에서 당시 "비행기를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해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의 경기를 보라"라고 쓰며 1위에 선출한 라틴 아메리카 최고의 더비 매치. 로컬 더비이면서 라이벌 더비의 성격도 같이 지닌다.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고 중요한 더비 경기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사고도 무지 많이 일어난다.
2011년 6월 리버 플레이트가 부진한 성적 끝에 강등되며 맥이 끊겼다가, 리버가 한 시즌 만에 승격에 성공하여 다시 열리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로 인기 있는 클럽들[21]간의 로컬 더비. 둘 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외곽의 노동자 거주 지역인 아베야네다에 연고한다.
알레한드로 사베야는 인데펜디에테를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우승시킨 이력으로 세르히오 바티스타의 후임 아르헨티나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2013년 6월 17일, 인데펜디엔테가 역사상 처음으로 강등을 당했다. 그래도 1시즌 만인 2013-14 시즌 2부 리그에서 1부 리그로 승격하여 머지않아 더비 경기를 이어나가게 된다.

1.2.2. 브라질


브라질에서 가장 격렬한 더비다. 훌리건끼리의 패싸움으로 사람 죽어 나가는 것은 예사고,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까지 출동한다. 때문에 두 팀의 더비 매치가 있는 날에는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한다.
위의 더비가 히우지자네이루의 로컬 더비라면, 이쪽은 상파울루 시의 로컬 더비. 상파울루가 도시의 상류층의 지지를 얻으며 자신들의 거대한 홈 경기장을 완공한 것에 비해 코린치안스는 노동자 계급이 주요 팬층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맞춰 새 홈구장이 완성될 예정이다. 홈 경기장이 있기는 한데, 수용 인원이 너무 적어서 늘 다른 구장을 써서 아직도 홈구장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
역시 상파울루 시의 로컬 더비로, 캄페우나투 브라질레이루(Campeonato Brasileiro, 브라질 전국 대회) 최다 우승자(파우메이라스)와 캄페우나투 파울리스타(Campeonato Paulista, 상파울루 지역 대회) 최다 우승자(코린치안스)의 대결, 혹은 캄페우나투 파울리스타 우승 횟수 1위와 2위의 대결로서 데일리 메일이 세계 10대 클래식 매치로 선정한 네임드 더비이다.[22] 둘의 라이벌리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결혼하다'(2005)의 소재로 사용될 만큼 세계적인 인지도 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더비.

1.2.3. 우루과이


우루과이와 그 수도 몬테비데오를 대표하는 두 클럽의 더비로 엘 수페르클라시코, 데르비 파울리스타와 함께 남미 3대 더비라 할 만한 더비이다.
두 클럽은 이름으로 경쟁의 배경을 유추할 수 있다. 페냐롤은 본래 '중앙 우루과이 철도 크리켓 클럽(Central Uruguay Railway Cricket Club)'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된 클럽으로서 이민 노동자를 대표했다. 반면 나시오날은 이름 그대로 자국인을 대표했다. 남미 축구가 대체로 그렇듯 우루과이에 축구가 막 도입될 무렵에는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주로 팀을 창단해서 축구를 했는데, 페냐롤(당시 CURCC)을 비롯한 외국인 팀들이 리그를 이끌어나갈 당시 대항마 역할을 한 팀이 나시오날이었다. 이후 두 팀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우루과이를 양분하였으며 2019년 기준 우루과이 1부 리그에서 페냐롤이 50회 우승, 나시오날이 46회 우승을 기록해 거의 100개에 육박하는 타이틀을 나눠 가졌다. 한편 페냐롤은 국제 축구 역사 통계 연맹이 20세기 남미 최고의 클럽으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1.2.4. 파라과이


파라과이와 그 수도 아순시온을 대표하는 두 클럽의 더비이다. 파라과이는 올림피아, 세로 포르테뇨에 클루브 리베르타드, 클루브 과라니를 더해 빅 4를 꼽을 수 있으나, 올림피아와 세로 포르테뇨의 성적이 특히 좋고 둘의 경쟁 관계가 가장 치열하다. 2020년 종료 기준 올림피아가 파라과이 1부 리그 45회 우승으로 1위, 세로 포르테뇨가 33회 우승으로 2위를 지키고 있다.
올림피아는 파라과이의 역사적인 첫 프로 축구 클럽이면서 최다 우승 클럽이기도 한 파라과이 최고의 클럽이고, 세로 포르테뇨는 올림피아, 과라니, 리베르타드가 아순시온에서 차례로 창단되어 입지를 다진 상황에서 비교적 늦게 합류한 클럽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올림피아는 수도의 상류층을 상징하고 세로 포르테뇨는 수도의 하류층을 상징한다. 이 때문에 세로 포르테뇨는 '평민들의 클럽(El club del pueblo)'이라는 별명도 있다.

1.3. 북중미


L.A. 더비(L.A. Derby) 혹은 Los Angeles의 Angel을 따 엘 클라시코 앙헬리노(El Clásico Angelino)라고도 한다. 로컬 더비이긴 한데 갤럭시가 20승 7무 4패(2014년 1월 6일 기준)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어 다소 김빠지는 무게감의 더비. 2014년 시즌 후 치바스 USA가 해체하면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매치가 됐다.
2018년 프랜차이즈 확장 때 생긴 로스앤젤레스 FC가 갤럭시의 새로운 더비 라이벌이 되었다. 엘 트라피코는 엘 클라시코와 로스앤젤레스의 특징인 교통 정체(traffic)를 합친 이름으로, 팬들 사이에서 쓰이는 이름이다. 로스앤젤레스 FC가 신생 팀이긴 하지만 이전에 해체된 치바스의 팬들을 그대로 흡수하였고, 갤럭시 팬들도 이를 의식해 창단 전부터 견제를 했기 때문에 치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존에 뉴욕에 있었던 레드불스와 2015년 새로 창단한 시티와의 더비이다. 경기 도중에 서포터즈끼리 싸우는 것른 물론이고, 경찰이 출동할 만큼 폭력이 난무한다. 2016년에 레드불스가 시티를 7 대 0으로 꺾음으로서 뉴욕의 주인은 레드불스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멕시코시티의 상류층을 상징하는 아메리카와 수도에 저항하는 군소 지역들의 상징인 과달라하라의 라이벌 매치. 과달라하라는 멕시코인 선수만을 기용하는 정책과 멕시코 최고의 유소년 시스템을 가진 데 비해, 아메리카는 거대 미디어 재벌 텔레비자의 소유로 막대한 경제력을 자랑한다.
아이스하키의 열기엔 못 미치지만, 영어 문화권과 불어 문화권의 대표들의 자존심 때문에 이 둘이 붙으면 응원이 상당히 치열하다. 401 더비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두 도시를 잇는 도로의 이름을 딴 것이다.

1.4. 아시아



1.4.1. 북한


K리그국군 vs 경찰과 같은 구도다. 군 팀인 4.25와 경찰 팀인 압록강은 군 팀과 사이가 안좋다기 때문에 치열한 경기를 펼친다고 알려져 있다.
  • 4.25 vs 평양: 북한에서 최대 조직인 북한군과, 조선로동당 평양시당 소속의 평양의 더비 매치다. 특히 평양은 김일성이 직접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민간 기관 체육단들 중 최대 규모라고 한다.

1.4.2. 일본


큐슈 최고의 축구팀을 가리는 맹주 더비. J리그 원년 클럽의 자부심을 지키는 아비스파 후쿠오카윤정환의 돌풍으로 승격 쾌거를 이룬 후 큐슈의 신흥 강호로 떠오른 사간 도스 간의 라이벌 매치. 실제로 아비스파 후쿠오카의 연고지인 후쿠오카 현 후쿠오카 시 하카타 구에서 사간 도스의 연고지인 사가현 도스 시까지는 JR그룹 가고시마 본선을 타고 4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라 꽤나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두 팀 모두 J2리그소속 시절이었을 당시 아비스파 후쿠오카의 서포터 그룹인 오브리가 일방적으로 사간 도스의 서포터들을 조롱하고 놀리는 수준에 그쳤지만 [23] 사간 도스의 팬층이 두꺼워짐에 따라 안티 후쿠오카 성향을 띄는 팬들이 점차 증가, 11 시즌 이후로 신경전이 더욱 날카로워진 상황.
16 시즌에는 5년 만에 아비스파 후쿠오카J1리그 복귀에 성공하고 사간 도스의 홈 경기장인 베스트 어메니티 스타디움에서 서로가 리그 개막전 상대로 격돌, 양 팀 서포터 모두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결과는 사간 도스가 2-1로 승리. 아비스파 후쿠오카의 홈구장인 레벨 파이브 스타디움에서 열린 2차 큐슈 맹주 더비도 사간 도스가 3:2로 승리했다. 하지만 아비스파 후쿠오카의 17 시즌 J2리그 참가가 확정된 나머지 다음 더비를 보기 위해서는 아비스파 후쿠오카의 승격을 기다리거나 텐노하이 또는 르방 컵에서 만나기를 빌 수밖에 없다.
도쿄 도를 연고지로 하는 두 클럽의 라이벌 매치. 두 클럽 모두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아지노모토 더비'라고도 한다.
10 시즌 J1리그에서 9월 12일에 우라와 레즈가 FC 도쿄를 상대로 1:0으로 승리했을 때, 우라와의 응원단이 '축! J2 도쿄 더비 개최'라고 대문짝만하게 적힌 플랜 카드를 들어보이며 어그로를 끌었던 사건도 있었다. 당시 FC 도쿄가 부진을 면치 못해 J2리그로 강등당할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두고 15위였던 FC 도쿄는 16위였던 비셀 고베에게 승점 1점 차이로 앞서 있었기 때문에, FC 도쿄가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거나 비셀 고베가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FC 도쿄가 비셀 고베를 제치고 잔류할 수 있었다. 그러나 FC 도쿄의 마지막 상대였던 교토 상가 FC가 이미 강등이 확정된 상황에서도 승부욕을 발휘해 FC 도쿄를 2:0으로 뭉개버렸고, 비셀 고베는 4:0으로 이겨서 승점이 역전되어 결국 J2행 막차를 타는 팀이 비셀 고베에서 FC 도쿄로 바뀌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근데 하필이면 얄궂게도 비셀 고베의 마지막 상대는 응원단이 J2 도쿄 더비 드립을 쳐서 난리났던 그 우라와 레즈였다.
11 시즌 결과 FC 도쿄 혼자 J1로 재승격했다. 하지만 JFLFC 마치다 젤비아가 J2로 승격해 도쿄 베르디를 외롭지 않게 해 주었다. 그런데 마치다 젤비아가 또 강등되었다가 2015 시즌 후 J2로 재승격해서 새로운 도쿄 더비가 다시 성사되었다.[24]
요코하마시를 연고지로 하는 두 클럽의 라이벌 매치. 원래는 요코하마 플뤼겔스라는 팀이 있었는데, 경영난으로 인해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합병을 발표하며 1999년 1월 1일 천황배 우승을 끝으로 해체된다.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F가 요코하마 플뤼겔스를 흡수합병했다는 뜻으로 붙인 것이지만, 이 한 글자만으로는 플뤼겔스 팬들의 반발을 잠재울 수 없었다. 그 팬들이 독자적으로 창단한 구단이 요코하마 FC. 2006년 J2 우승으로 J1에서 요코하마 더비를 부활시켰다.
도쿄 베르디는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와 제휴를 맺었고, 미토 홀리호크는 걸즈 & 판처와 제휴를 맺었다. 그리고 두 팀 간 경기에서 관련 행사까지 열렸다고 한다. 참조
시즈오카 현은 정령지정도시가 무려 두 군데나 있는데, 시즈오카현 중앙의 시즈오카 시와 시즈오카현 서부의 하마마츠 시다. 시즈오카 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현의 형태가 다소 기묘하게 생겨서 약간의 지역감정이 있다. 주빌로 이와타는 하마마츠 바로 동쪽의 이와타 시를 연고로 하며, 시미즈 S펄스는 시즈오카 시 동부지역인 과거 시미즈 시를 연고로 한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동서간의 감정이 축구로 이어진 것. 특히 시즈오카현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축구선수를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영문 위키백과에 로컬 더비 중 항목이 있는 더비는 바로 시즈오카 더비와 오사카 더비뿐이다(...).
오사카 부 북부의 스이타 시를 연고로 한 감바 오사카와 오사카 남부를 연고로 한 세레소 오사카간의 더비. 감바는 아챔을 우승한 팀이기도 하고, 세레소 오사카는 황선홍이나 윤정환 같은 선수도 한때 뛰었기 때문에 두 팀 모두 국내축구팬들에게도 익숙하지만, 최근 세레소 오사카가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기 때문에 다소 열기가 식은 감이 없지 않다.
세레소 오사카의 경우 평소에 긴초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쓰는데, 감바와의 붙을 때는 더 큰 구장인 나가이 육상 경기장에서 경기를 한다. 영문 위키백과에 시즈오카 더비와 단 둘만 항목이 개설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더비다.
일본에서 가장 인지도가 있는 두 팀이라 할 수 있다. 우라와는 수도 도쿄의 팀들보다도 인기가 많아 간토의 대표 격이라면, 감바는 간사이의 대표격인 셈. 가히 일본의 엘 클라시코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국토가 긴 형태에 지방자치가 발달해 있고 지역색이 강한 편이기 때문에 지역감정이 있는 편이다. 도도부현마다 고르게 팀이 분포해 있는 데다 승강제 같은 자생적 스토리가 일찍 만들어져 지역더비가 흥행하는 편.[25] 위의 사례뿐만 아니라 일본의 로컬더비는 꽤 많다.
애니메이션 러브 라이브!에서 μ’s의 본거지 도쿄를 연고를 하는 FC 도쿄의 U-23팀과 Aqours의 본거지 시즈오카 현 누마즈 시를 연고로 한 아술 클라로 누마즈의 J3리그 더비 매치. 이런 포스터까지 만들었을 정도. 최근에는 후배 그룹인 니지가사키 학원 스쿨 아이돌 동호회와 Liella!가 도쿄에 합류하여 도쿄 팀 3 : 누마즈 팀 1의 구도가 되었다. 2020년부터 도쿄 FC U-23팀이 J3리그에 참여하지 않게 되어 도쿄 연고 팀이 J3리그에 입성하거나, 누마즈가 J2 라이센스를 받아 J2리그로 않는 한 이 더비를 보기 어려워졌다.

1.4.3. 중국


  • 중국 3대 더비(德比): 제노(济鲁) 더비(산둥성 내의 산둥 루넝 대 칭다오 중넝(청도 중능), 경진(京津) 더비(베이징 궈안톈진 터다),[26] 경호(京沪) 더비(베이징 궈안상하이 선화)[27]
  • 저장 더비 : 저장 뤼청 vs 저장 이텅
  • 톈진 더비 : 톈진 터다 vs 톈진 톈하이

1.4.4. 서아시아


사우디 아라비아 최고의 클럽들의 대결이라 '사우디 데르비(Saudi derbi)'라고도 한다. 알 힐랄의 경우 국내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국제 축구 역사 통계 연맹(IFFHS)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아시아 클럽(2009년 발표), 21세기 최고의 아시아 클럽(2012년 발표) 순위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의 축구단이고, 알 이티하드는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일명 '깡패'로 이름을 떨치며 21세기 최고의 아시아 클럽 2위에 선정되었으며 사우디 내에서 알 힐랄 다음 가는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는 클럽. 아시아에 존재하는 모든 더비들을 통틀어 네임 밸류만 따지면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의 엘 클라시코이다. 상대를 마음껏 비웃기 위해 기념품도 거침없이 찍어 대며[28] 축구뿐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으르렁대는 사이.
무려 9만에 이르는 평균 관중이 오는 중동 지역 최대 더비. 1960년대부터도 두 팀의 더비는 명성이 자자했다. FIFA 선정 세계 10대 더비에 아시아 더비로는 유일하게 들어갈 정도. 이란 팔레비 왕조 시절에는 '타지-퍼르세폴리스'라는 이름이던 두 팀의 경기가 워낙 뜨거워 무장 경찰이 경비를 서야 했을 정도였으며, 1979년 혁명 이후로 현재 이름으로 달라졌지만 피루지는 여전히 페르세폴리스란 이름을 쓰기도 한다. 아챔 경험한 팀이면 알 수 있겠으나 아챔에서도 절대 서로 응원 안 한다. 실제로 페르세폴리스와 울산이 격돌했던 2020 ACL 결승전에서는 에스테그랄 팬들이 울산을 응원했다.

1.5. 아프리카


언제나 10만 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하는 아프리카 최대의 더비. 국립 스포츠 클럽이라는 뜻인 알 아흘리[29]는 반-영국 식민 지배 때의 저항 세력을 근간으로 한 아랍 민족주의의 상징이며, 자말렉은 부유층을 대표한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소웨토 지역을 연고로 하는 두 클럽의 라이벌 매치. 두 팀의 현재 전적은 다음과 같다.

경기





카이저
34
12
12
10
32
30
올랜도
34
10
12
12
30
32
둘이 서로 비슷비슷하다.

1.6. 오세아니아



1.6.1. 호주



2. 국가대표




2.1.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2.1.1. 동아시아


동아시아 더비 매치로는 대표적으로 '''한일전'''이 있으며, 이밖에 한중전, 남북전, 중일전 등이 있다. 중국과 북한이 한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라 보통 동아시아 더비 중에서는 한일전이 가장 크게 부각되는 편이다.
한편, 여자 축구의 경우 남자 축구와 다르게 북한, 일본, 중국이 강호급이고, 대한민국은 그다지 강하지 못하다. 즉, 네 나라의 전력을 비교하면 남자는 '대한민국 ≒ 일본 > 북한 > 중국', 여자는 '북한 ≒ 일본 ≒ 중국 > 대한민국' 정도.
역사적으로도 앙숙으로 유명한 두 나라는 도하의 기적과 2002년 FIFA 월드컵 공동 개최를 계기로 축구계에까지 라이벌 의식이 싹트더니, 서로가 서로를 이기겠다고 아웅다웅하는 사이가 되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 라운드에서 한국이 일본 도쿄의 요요기 원정경기에서 2-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것을 '도쿄 대첩'이라고 부를 정도다. 여담으로, 한일전은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유명한 국가 간의 10대 더비 매치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에 대 일본전에 관해 2가지 어록이 있다.
  • 다른 경기를 모두 져도 일본만 이기면 다 이긴 것이고 다른 경기를 모두 이겨도 일본한테 지면 다 진 것이다.
  • 일본한테는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
이는 일본 쪽도 같다.
역사적으로도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원나라, 청나라 등 중국의 통일 왕조들과 고조선, 고구려, 신라, 발해, 고려, 조선 등 한반도의 여러 왕조 국가들끼리 전쟁을 치른 적도 있었고, 한국전쟁 당시 조국통일을 좌절시킨 전적도 있으며, 현재도 불법조업,사드배치 갈등,동북공정 등 갈등의 요소가 남아있다. 애초에 두 국가의 가 양립할수 없기도 하고.. 또한 국민 간에도 감정이 좋지 않다.
2010년에 중국이 대한민국을 32년 만에 크게 꺾었지만, 그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이 대한민국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공한증이라고 칭한다. 실제로 대한민국과 중국은 둘다 아시아 축구 연맹 소속이면서 거기서도 둘 다 동아시아 축구 연맹 소속이다 보니 서로 맞붙을 일이 많다. 물론 위 한일전도 마찬가지.
한반도 두 국가대표간의 더비이다. 이 더비의 서막은 축구대항전.[30] 조선일보 주최로 일제강점기 시대인 1929년 10월 8일에 첫 개최된 서울을 대표하는 경성축구단과 평양을 대표하는 평양축구단이 벌였던 대회이다.
그 외에도 1966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서막을 알릴 뻔 했으나 남한 측에서는 중립 경기를 치를 국가가 일본에서 캄보디아로 변경된 데 따른 항의[31]로 기권하는 바람에 무산.
2010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다시 만났는데, 3차 라운드에서 같은 조가 되어 나란히 진출 후 최종 라운드에서도 또 같은 조가 돼서 나란히 진출. 특히 10월드컵 예선 3라운드 두번째 남북전은 서울에서 열렸는데 당시 북한 도발로 인해 한국인들의 북한에 대한 감정이 많이 나빴고 태극기가 유난히 많이 보였던 경기이다. 경기는 김치우가 극후반에 넣은 프리킥 결승골로 1:0 승.
19세기 극후반 부터 일본이 청나라를 유린한 것 부터 시작해 20세기의 중일전쟁 에서 난징 대학살을 비롯해서 중국이 일본에게 심하게 얻어터진 역사가 있는데다 현재는 일본의 역사왜곡 및 조어도 관련 영토분쟁 등 외교적으로 두 나라가 몹시 사이가 나쁜 편이다. 이게 스포츠로도 옮겨와서 중국과 일본이 붙는 중일전은 유난히 파울과 카드가 많고 관중들 간의 신경전도 상당하다. 2004년 아시안컵은 중국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때 중국이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우승 바로 앞에서 만난 상대는 다름아닌 일본이었다.(...). 산동성 제남 에서 열린 결승전은 중국 관중들의 압도적인 중국 응원 및 일본에 대한 저주와 야유로 험악한 분위기였지만 정작 우승은 일본이 차지했다. 그 후에도 간간이 만났고 역대 전적으로도 비슷비슷하지만 여전히 빡센 분위기다. 2010년대 현재의 축구 구도는 일본의 실력이 중국보다 우세하다.

2.1.2. 그 외


한국과 이란의 국가대표 간 더비이다. 특히 식스투 참사부터 해서 10년 넘게 아시안컵 8강전에서 계속 만나 대혈투를 벌이면서 크게 부각되었다. 또 한국 국대가 이란을 쉽게 이겨본 적이 없다는 점 때문에 일단 성사되면 흥행하기 쉬운 경기이다. 한일, 한중전과 달리 국가간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 중동 더비: 중동에 위치한 국가들
중동이라는 지리적 특성 외에도 이슬람권이라는 공통점과 아랍권(이란 제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축구 팬들이 치를 떠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 이란-이라크 더비: 과거 1980년대에 벌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의 영향으로 인해 사이가 좋지 않다.[32] 물론, 축구판이 대부분 그렇듯이 원교근공인 경우가 많아서 이란 VS 이라크의 A매치는 서아시아권을 대표하는 더비 매치로도 유명하다. 농담이 아니라, 국가 간의 사이가 한일관계 이상으로 사이가 최악으로 안 좋은데다 바빌론 VS 페르시아 구도로 5000년도 넘게 해묵었을 정도라 한일전 따위는 명함도 못 내밀고 우습게 보일 정도로 늘상 치열한 난투극 같은 혈투가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2015년 아시안컵 8강전 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키기도 했다.
  • 아랍 더비: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아랍권 나라들
이들 중 특히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이집트가 서로 라이벌인 관계.
과거 호주가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에 속했던 시절 오세아니아 최강자 자리와 월드컵 출전권 등을 놓고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호주가 아시아 연맹으로 넘어간 뒤에도 여전히 이 둘은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단 지리상 같은 오세아니아이기도 하거니와, 행여 호주가 대륙 간 플옵으로 밀려 뉴질랜드와 양보할 수 없는 승부를 펼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2.2. 유럽


  • 에게 해 더비[33]: 그리스 vs. 터키
에게 해를 둘러싸고 있는 두 나라의 더비로, 두 나라는 옛날부터 무지하게 티격태격하고 지금도 서로 앙숙인 사이라 한일전보다도 훨씬 심한 라이벌 의식이 있다. 이 둘은 유로 2008 예선에서 같은 조가 됐고, 조별 예선 첫 경기서 터키가 그리스를 4-1로 원정에서 이기자 다음 날 터키 언론들이 헤드라인에 "그리스 국민 여러분, 독립을 축하드립니다"[34]라는 비아냥을 올려댔다. 그러나 막바지에는 터키가 홈에서 그리스를 상대로 0-1로 패배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이 경기 다음날이 터키 현충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그리스 언론이 똑같은 방식으로 조롱해댔고, 터키 언론들은 "당장 순국 선열들의 무덤 앞에 사죄하라"라는 헤드라인을 뽑는 등 대표팀을 무지막지하게 까댔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최종 순위가 그리스-터키-노르웨이-보스니아-몰도바-헝가리-몰타 순으로 되어 둘이 본선에 동반 진출하긴 했다. 참고로 이 대회의 본선에서 그리스는 디펜딩 챔피언이었음에도 3전 전패를 당하며 밑바닥으로 추락해 버린 반면, 터키는 조별 리그에서 체코를 제치고 극적으로 8강에 오르더니, 8강에서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연장 후반이 끝날 즈음에 골을 먹고 패배할 뻔했다가 종료 직전 동점골을 터뜨린 후 승부차기에서 승리하여 4강까지 가는 기염을 토했다.
  • 독프전: 독일 vs 프랑스 두 나라는 19세기 이후 앙숙관계로, 비록 냉전을 거쳐 유럽연합이 되었어도 라이벌 의식이 있다.최근 경기는 네이션스 리그 2018-19 시즌에서의 프랑스의 2:1 승리.
  • 체코슬로바키아더비: 체코 vs. 슬로바키아
과거에 한 나라였던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더비. 이 둘은 1998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같은 조가 되어 1승씩 주고받았지만 스페인과 유고슬라비아에 밀려 둘 다 울었다. 그리고 12년 만인 2010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같은 조가 되었는데 1승 1무로 슬로바키아가 앞섰다. 결과적으로 슬로바키아는 웃고 체코는 울었다. 게다가 그 슬로바키아는 4년 전 체코를 16강 문턱에서 광탈시킨 이탈리아를 광탈시키며 복수(?)에 성공했다.
유로로 눈을 돌려 보면, 유로 2008 지역 예선에서 같은 조가 된 적 있다. 당시 전적은 체코의 2전 전승(홈 3:1, 원정 3:0)에, {체코는 조 1위로 본선 진출에 성공하고 슬로바키아는 조 4위로 광탈했다.
여기서 남자 축구는 주로 스웨덴 vs. 덴마크가, 여자 축구는 주로 스웨덴 vs. 노르웨이가 두드러진다.
  • 이베리아 반도 더비 혹은 대항해시대 더비: 스페인 vs. 포르투갈
  • 바스크 더비: 스페인 vs 프랑스
재미있는 사실은, 평가전은 스페인이 전승을 찍는데 국제 대회에서는 유로 2012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가 전승이었다. 하지만 유로 2012에서 스페인이프랑스를 이기면서 프랑스의 국제 대회 전승은 깨졌다. 이쪽은 플라티니 시대에는 결승에서 1번 격돌하고 지단 시대에는 이탈리아와 더불어 3번이나 격돌했고 유로 2012 8강에서도 격돌했다. 심지어 2014 월드컵 예선에서도 만나 악연이 엄청나다.
  • 베네룩스 더비: 벨기에 vs. 네덜란드 vs. 룩셈부르크
베네룩스 3국의 더비. 저지대 국가 더비라고도 한다. 룩셈부르크가 워낙 약체인지라 벨기에 vs. 네덜란드 매치만 주목받고 있다. 이 두 국가간의 경기는 저지대국 더비라고 명칭이 따로 존재한다.
영국 안에 있는 4개 국대 간의 더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원래 사이가 너무나도 안 좋다. 역시 축구도 예외는 아니어서, 잉글랜드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스코틀랜드의 축구 팬들이 대동단결하여 잉글랜드의 게양식을 기원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1950년 FIFA 월드컵 에서도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 함께 본선에 가게 되자 자존심 상해서 기권한 적이 있다. 1994년 FIFA 월드컵유로 2008 에선 4개국이 모두 본선도 진출못하면서 광탈했다.
한때 숙적 관계였지만, 프랑스의 이웃 나라가 커지며 위상(?)이 약간 하락했다.
유고슬라비아 국가들 간의 더비. 이 중 비교적 강팀인 세르비아크로아티아 간 더비가 주목받고 있다. 둘이 강팀이기도 강팀이지만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사이가 원체 험악하기 때문에 더비 감정이 꽤 큰편.
  • 세계대전 더비: 독일 vs 잉글랜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던 잉글랜드}와 제2차 세계대전의 주도국인 독일 간의 더비 매치. 이 둘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결승에서 만났는데, 당시 잉글랜드는 독일과 2-2 동점 상황에서 골인지 아닌지 모를 애매한 상황이 골로 인정되어 우승컵을 안을 수 있었으나, 44년 만의 리턴 매치에서는 공교롭게도 같은 상황이 나왔지만 골로 인정되지 않았다. 결국 그 경기는 독일의 4-1 승리. 80년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던 게리 리네커는 "축구는 22명이 뛰지만 최후에는 서독이 승리하는 스포츠"라 말한 바 있다.
앞의 한반도 더비와 마찬가지인 분단 국가 더비로, 현재는 둘이 독일로 통일되었기 때문에 역사 속으로만 남은 더비.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둘이 같이 본선에 가더니, 1차 조별 리그에서 같은 조가 되었다. 그리고 동반으로 2차 조별 리그에 진출했다. 유로 1992 예선에서도 같은 조가 됐지만, 첫 경기가 개시되기도 전에 통일이 돼서 동독 국대가 해체되는 바람에 무산.
  • 바이킹 징크스: 잉글랜드 vs. 스웨덴
특별히 더비라고 칭하지는 않고, 두 팀의 관계도 우호적인 편이다. 초기에는 잉글랜드가 앞섰으나 1968년 런던에서 있었던 승리 이후 잉글랜드는 스웨덴에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었다. 이후 전적은 4승 8무로 스웨덴 초강세였었다. 잉글랜드는 이 바이킹 군단을 이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스웨덴 출신의 에릭손 감독이다. 특히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솔 캠벨의 골로 잉글랜드가 앞서나갔지만 스웨덴의 알렉산데르손이 동점골로 1대1 무승부. 4년뒤인 2006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에서 또 맞붙었는데 이땐 조 콜의 멋진 독수리 슛과 스티븐 제라드의 골로 잉글랜드가 2:1로 앞서며 드디어 징크스를 끊나 싶었는데, 경기 종료 직전 스웨덴의 알벡과 라르손이 동점골을 넣게되면서 결과는 2대2 또 무승부. 결국
#red 잉글랜드
는 징크스를 깨기 위해 또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운명의 2011년 11월 15일, 가레스 배리의 결승골로 잉글랜드가 스웨덴을 1:0으로 이겨 마침내 이 징크스가 깨졌고 유로 2012 조별리그 에서도 잉글랜드가 앤디 캐롤이 선취득점을 했지만 스웨덴이 멜베리의 동점골과 잉글랜드 수비수 글렌 존슨의 자책골로 앞서가면서 잉글랜드의 징크스가 되살아나는듯 했다. 그러나 대니 웰벡, 시오 월콧의 골로 결과는 3대2로 잉글랜드가 승리하였고 6년뒤인 2018년 러시아 월드컵 8강전에서도 해리 맥과이어델리 알리의 골로 잉글랜드가 2대0으로 승리하면서 28년만에 4강에 진출하였고 바이킹 징크스 또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역대 전적은 잉글랜드가 우세하다.
남자 축구 한정. 특별히 더비라고 칭하지는 않지만[35] 독일은 이탈리아에게 월드컵과 유로본선에서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있다. 굳이 더비라고 따진다면 '유럽 최강자 더비' 정도. 독일과 이탈리아는 월드컵에서 각각 4번씩 우승한 축구 강호이기 때문.
독일은 이 아주리 군단을 이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특히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연장전까지 양 팀 무득점으로 드디어 징크스를 끊나 싶었는데, 경기 종료 직전 이탈리아의 연속 두 골로 또 패배했다. 그리고 유로 2012 때야말로 정말 이 징크스를 끊나 싶었다. 왜냐하면 독일은 유로 2012 때 절정의 기량으로 강력한 우승후보인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을 연달아 학살한 반면, 이탈리아는 그 둘보다 급이 훨씬 떨어지는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졸전 끝에 비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8강전도 독일은 쉬운 그리스를 상대로 2군으로 이긴 반면, 이탈리아는 잉글랜드 상대로 승부차기로 겨우 올라왔다. 하지만 막상 그 둘이 만난 준결승에서는 또다시 이탈리아가 독일을 학살하고 말았다. 유로 2016 8강전에서 드디어 독일이 이탈리아를 꺾고 4강 진출에 성공하긴 하였으나, 승부차기 승리였기 때문에 무승 기록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36]
서로에 대한 적대감도 전통적인 라이벌들에 비하면 덜한 편이지만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탈리아가 2018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을 때 미하엘 발락이 ‘Pray for Italy’라고 이탈리아를 조롱하였고, 이후 독일이 본선에서 험한 꼴을 당하자 이탈리아 팬들이 발락을 역조롱했다. 2010년 월드컵 때에는 양국 팬들이 월드컵 우승 횟수를 놓고 설전을 벌이다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기사
유럽연합의 구제금융을 책임지고 있는 독일과 그 금융지원을 받는 유럽 국가들 간의 매치. 2012년 유로 2012에서 독일 vs 그리스 경기가 있었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독일 vs 포르투갈 경기가 있었다. 참고로 결과는 전자는 4:2, 후자는 4:0으로 독일의 압승(...). 원래 독일이 전통적인 축구 강호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독일이 남유럽을 떡실신시키는 것에 대해 상대 국가가 구제금융 추가지원을 유도하고자 축빠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기분 좋게 하기 위해 일부러 골을 허용하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알바니아세르비아의 더비 매치. 두 나라는 코소보 전쟁에서 싸웠을 만큼 사이가 매우 매우 험악하다. 유로 2016 예선 I조에 나란히 속해 경기를 하게 되었는데, 세르비아의 홈에서 알바니아의 민족주의자가 대알바니아의 지도와 이사 볼레티니, 이스마일 체말리라는 알바니아의 위인들 그리고 Autochthonous라는 글귀가 새겨진 깃발을 드론에 매달고 도발을 하여 충돌 사태가 벌어졌었다.

2.3. 아메리카


  • 북미 더비: 멕시코 vs. 미국 vs. 캐나다
캐나다가 다른 두 나라에 비해 약체인 탓에[37] 보통 북미 더비라 하면 미국과 멕시코 경기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 경제적으로 악감정도 쌓여 있겠다, 마침 축구도 미국에서 인기가 많아졌겠다...[38]
참고로 여자 축구의 경우 남자 축구와는 정반대로 미국과 캐나다가 강호급이고, 멕시코는 그다지 강하지 못하다. 남자 축구는 '멕시코 ≒ 미국 > 캐나다', 여자 축구는 '미국 > 캐나다 > 멕시코' 정도.
  • 남미 더비: 브라질 vs. 아르헨티나(+다른 8개 국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20세기 초에는 브라질보다도 우루과이가 더 강력한 팀이었으며,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더비를 '셀레스테 더비'라고 칭한다.
  • [39] 셀레스테 더비: 아르헨티나 vs. 우루과이
남미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더비로, 첫 월드컵 결승전도 이 더비였다(우루과이 우승).
  • 브라질 vs. 우루과이
마라카낭의 비극이 낳은 결과. 원래 우루과이는 독립 이전까지 시스플라티나 주(州)라는 이름으로 브라질의 일부 지역에 편입되었는데, 500일 전쟁 끝에 독립한 국가이다. 유서 깊은 앙숙인 셈. 우루과이에게 지면 브라질 선수들은 평생까임권 확정일 정도로 지면 안 되는 경기다. 여담으로, 이것 때문에 브라질 유니폼이 흰색에서 홈 노랑, 원정 파랑으로 고정되었다. 또한 그 어느 종목에서도 브라질이 하얀 옷 입고 경기하는 것은 보기 힘들다.
이쪽은 축구 경기 때문에 전쟁까지 한 나라들이다. 그 전부터 정치 경제 쪽으로 사이가 안 좋다가, 축구 경기가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2.4. 기타


  • 식민지 더비
저 맨 앞의 한일전을 포함하여 상당히 많은 더비 매치를 포함하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상대가 브라질 이외의 모든 남미 팀이 해당된다.
  • 포르투갈어 더비: 브라질 vs. 포르투갈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두 나라 간의 더비. 포르투갈어 사용국은 이 두 나라 외에도 모잠비크 등 여러 나라가 있지만 이 둘의 전력이 압도적이므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G조에서 만났다. 재미있는 것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이 둘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으나, 둘이 함께 독일에게 처참한 꼴을 당했다는 점이다. 포르투갈은 독일전에서 0:4로 대패하는 등의 졸전 끝에 조 3위로 광탈해 버렸고 브라질은 잘 나가다가 4강전에서 독일을 만나 미네이랑의 비극으로 회자되는 1:7 대패를 당해 버렸다.
  • 정점 더비: 브라질 vs. 독일
각각 유럽과 남미에서 월드컵 우승을 가장 많이 한 나라의 더비. 기록상으로만 따지면 최강 vs. 최강의 더비이다. 2014년 독일이 월드컵에서 우승했으므로 이 대열이 바뀌었다. 한 마디로 최강의 빅매치.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준결승전에서 독일이 7:1로 브라질에게 대승을 거둔 미네이랑의 비극을 연출했다.
  • 월드 더비: 브라질 vs. 이탈리아
전술한 브라질 vs. 독일보다도 이 쪽이 더 전통적인 라이벌리다. 브라질 vs. 독일의 경우 높은 성적에 비해 월드컵 본선에서 만난 적이 너무도 적다. 그에 비해 브라질 vs. 이탈리아는 월드컵 역사에 남을 명경기를 여럿 남겼다. 덤으로 최강의 창과 최강의 방패라는 상징적 의미도 있었다. 지금은 두 나라 다 전력이 예전같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운 점.
  • 말비나스/포클랜드 더비: 아르헨티나 vs. 잉글랜드
두 나라는 이미 1982년 말비나스/포클랜드 전쟁 이후 앙숙이었지만, 1986년 월드컵에서 디에고 마라도나가 신의 손으로 골을 넣으면서 완벽하게 더비 매치가 성립. 그러나 막상 두 팀의 더비가 벌어지면 둘 다 월드컵에서 손에 꼽는 네임드 팀임에도 불구하고 전무후무한 졸전이 벌어진다.
월드컵에서 처음 맞붙은 것은 1962년 4조 2차전으로, 이 경기에서 잉글랜드가 3-1 완승을 거두었다. 그나마 이 경기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본격적으로 두 국가 간의 관계가 악화된 것은 그 다음 대회인 1966년 월드컵 8강인데, 잉글랜드는 심판 매수를 이용하여 당시 아르헨티나의 주장인 안토니오 라틴을 경기 시작과 동시에 퇴장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온갖 방법으로 편파 판정을 해 결국 더러운 승리를 거두었다. 패한 아르헨티나는 경기 종료 직후 잉글랜드의 라커룸에 쫓아가 잉글랜드} 선수단의 짐에 오줌을 싸는 방법으로 복수를 했다.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한 지 4년 후인 1986년 월드컵에서는 마라도나가 손으로 슛을 날리질 않나, 2002년 월드컵에서는 오웬이 자해공갈로 있지도 않은 페널티 킥을 뽑아 내질 않나... 두 팀 모두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가 대표팀임에도 불구하고 이 더비만 벌어졌다 하면 엄청 더러운 경기가 되고 만다.
아르헨티나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전국이 추축국의 공격을 받아 1946년 월드컵이 예정되어 있었던 다섯 경기장들 중 네 군데나 파괴되었다.[40] 이후 1986년과 199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연속으로 만났고, 전자의 경우 아르헨티나가, 후자의 경우 독일이 우승하였다. 후자의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는 텃세와 판정 시비로 놓쳤기에 독일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
이후 두 나라는 2006년과 2010년 대회에도 만났고, 두 대회에서 벌어진 맞대결에서 모두 독일이 승리하였다. 이 두 대회에서 2006년에는 패싸움이, 2010년에는 경기 전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2014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으로 발생한 더비다. 결과는 1:0으로 독일이 승리해 우승.
참고로 이들은 월드컵 매치업 중 제일 많이 만난 팀들 중 하나이며, 결승전에서 제일 많이 만난 상대이다.
  • 이데올로기 더비: 미국 vs. 러시아
자본주의 진영의 수장인 미국과 공산주의 진영의 수장인 러시아의 대결. 냉전 이후엔 옅어졌고 또 두 나라들이 그렇게 축구를 엄청나게 잘하는 나라는 아닌지라 별다른 건 없다.


[1] 데르비는 영어의 더비(derby)와 같은 말이다.[2] 유이스 콤파니스를 대체하고 지은 경기장이다. 유이스 콤파니스는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에스타시오 몬주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 경기장으로, 우리에게는 황영조의 마라톤 우승 경기장으로도 유명하다.[3] 이천수가 레알 소시에다드 입단식 때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싶다."라는 발언을 하자마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고(...).[4] 5-6개월 가까이 지난 2020년 11월 현재까지도 바이러스가 종식되지 않아 아직도 치루지못한 아이러니한 상황..[5] 유벤투스의 레전드 선수 및 감독 출신이나 2019년 인터 밀란의 감독으로 부임[6] 인테르나치오날레라는 이름의 뜻부터 '국제적'.[7] 런던 소속 프리미어 리그 구단만 해도 아스날 FC,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첼시 FC, 크리스탈 팰리스 FC, 토트넘 홋스퍼 FC, 풀럼 FC 등이 있다.[8] 둘 다 버밍엄 시 연고.[9] 2012년 해단.[10] 이후 달링턴 1883이 새로 생겼으나, 다시 달링턴 FC로 이름을 바꿨다.[11] 바이어 04 레버쿠젠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공업도시로, 쾰른 근교에 있다. 레버쿠젠은 FC 쾰른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다.[12] 파울리는 강팀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특유의 독특함 때문에 그 유명세가 상당한 클럽이다. 자세한 것은 FC 장크트 파울리 문서 참조.[13] 물론 보루시아가 프로이센의 라틴어이긴 하지만 프로이센과는 관련없다. 애초에 보루시아라는 단어 자체가 미칭(美稱)으로 아무 의미없이 붙인 거다. 베스트팔렌 지역이 프로이센 영역에 포함된 것은 200년 남짓. 서프로이센은 베를린 주변을 말하고, 동프로이센은 지금은 러시아땅이 된 칼리닌그라드를 말한다. 우리로 치면 팀 이름에 고구려나 발해를 붙이는 것과 비슷한 것. 여담으로 도르트문트의 경우에는 창단 당시 인근 양조장의 이름을 따서 만든 거라고 한다.[14] 레인저스 서포터석을 향해 성호를 긋고 곧바로 뒤돌아섰다는 점, 보루츠가 평소에도 "나는 싫어하는 사람과 악수를 하지 않는다."라며 레인저스와의 악수를 거부하여 레인저스 서포터들의 심기를 건드린 점 등을 봐서는 반박의 여지 없는 도발. 사실 의도가 불분명했다면 징계가 내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15] 현재는 PR, CH, L1, L2로 개편되었다.[16] 정확히 말하자면 기존 레인저스 팀은 해체되고 더 레인저스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스코틀랜드 D3 리그부터 시작한다. 스코틀랜드는 PR>D1>D2>D3로 리그가 진행되는데[15], 즉 4부 리그이다. 자세한 설명은 레인저스 FC 문서 참조.[17] 꼭 그렇지는 않다.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에 타 지역 구단 팬들이 많이 거주하듯이,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에도 타 지역 구단을 응원하는 사람은 많이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세유 유니폼을 입고 파리를 거느린다고 해도 신경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만, 마르세유에서 PSG 유니폼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18] 2014년에 재정난으로 해체되었다. 대신 그 자리를 디야르바크르 뷰육셰히르 벨레디예스포르, 예니 디야르바크르스포르가 물려받았다.[19] 부르사스포르, 트라브존스포르가 대표격이다.[20] 영어식 표기인 '파르티잔 베오그라드',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로도 알려져 있다.[21]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위의 둘.[22] 국내 축구 팬들이 코린치안스는 클럽 월드컵 우승을 계기로 많이 알아도 파우메이라스는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파우메이라스는 상파울루 주 축구 연합(FPF)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브라질 클럽으로 선정된 명가 중 명가이다.[23] '날지 않는 놈은 사간 도스'라는 의미. 오브리의 도발용 챈트.[24] 베르디와 마치다의 매치업은 도쿄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협약을 맺고 진행하고 있다. 다만 마치다는 베르디보다는 오히려 SC 사가미하라 쪽을 의식하는 편.[25] J리그의 실력은 우리나라나 중국과 엇비슷하나, 분명 시스템으로는 아시아에서 훌륭한 편이다. 정대세도 수원을 떠날 때 중국 리그는 돈이라면 일본 리그는 시스템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26] 우리나라로 치면 경인더비.[27] 베이징 궈안상하이 선화간의 맞대결은 중국 정치의 수도 베이징과 경제의 수도 상하이간의 내셔널 더비라고도 불린다.[28] 알 힐랄 5-0 알 이티하드 기념 셔츠가 대표적.[29]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권에서는 알 이티하드와 더불어 흔한 축구단 이름이다.[30] 위키백과 링크[31] 표면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 당시 북한한테 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32] 8년 가까이 총력전을 벌였을 정도로 박터지게 싸웠다.[33] 터키 내의 에게 해 지방 클럽 간 더비도 에게 해 더비라고 부른다.[34] 이 경기 다음날이 그리스 독립기념일이었다.[35]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해설자 한준희는 독일-이탈리아 경기를 '클래식 매치'라 불렀다.[36] 승부차기는 원래 무승부로 기록된다.[37] 캐나다 미국 간의 매치는 국가 대표 더비보단 MLS의 캐스캐디아 컵이 더 주목을 받고 있다. [38] 미국은 억지로 멕시코에서 캘리포니아 일부와 텍사스를 비롯한 엄청난 넓이의 영토를 뺏어갔고, 멕시코 내전을 부채질하며 이득을 취한 역사가 있다. 한편 미국 쪽도 멕시코 쪽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들과 마약 카르텔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더군다나 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가 멕시코를 대놓고 깎아내리고 실제 정책에도 그 입장을 반영시켜 국경정벽에 멕시코 돈을 내게 한다고 해서 멕시코 대통령이 직접 단 한 푼도 못 낸다고 공식 선언을 했을 정도로 양 국가 국민 간의 감정은 심히 악화된 상태이다.[39] 두 국가의 국기에 '5월의 태양'이라 하여 얼굴 있는 태양이 있기 때문.[40] 이 때문에 월드컵 개최권을 앙숙한테 뺏겼다.